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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커버스토리] 저승서도 주먹쥐고 외칠거다 사죄하라

    [커버스토리] 저승서도 주먹쥐고 외칠거다 사죄하라

    “내가 먼저 가려고 했어. 그런데 군자가 10만원이 든 흰 봉투를 주면서 자기가 먼저 가겠다는 거야. 결국 말대로 됐지.”8일 경기 광주시 나눔의집 인근 병원에 신장 치료차 입원한 이옥선(90) 할머니는 지난 7월 세상을 떠난 김군자 할머니를 떠올리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 할머니는 “형제보다 더 가까이 지냈는데, 이제 얘기할 사람도 없다”면서 “하긴 얘기할 사람이 있다고 해도 이젠 말할 정신이 없다”고 말했다. 이 할머니는 하상숙(89) 할머니의 지난달 28일 별세 소식도 뒤늦게 듣고 굵은 눈물방울을 떨궜다. 이 할머니는 “정신이 없다”고 했지만 75년 전 위안부로 끌려간 그때 그 일만큼은 또렷하게 기억했다. “15살 때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아 학교에 가질 못했어. 그러다 결국 1942년에 중국 연변으로 끌려갔어. 일본군이 차를 끌고 다니면서 길에 있는 여성들을 다 태웠었지. 그때부터 3년간 위안부 생활을 했어. 그러고 나서 한국으로 돌아오려고 했는데 차마 가족을 다시 만날 자신이 없어서 중국에 눌러앉았어. 2000년 6월에 한국으로 돌아왔는데 가족들은 모두 죽고 아무도 없었어.” 이 할머니는 자못 담담하게 아픈 기억을 쏟아냈지만 이내 눈시울을 붉혔다. 할머니의 가슴에 남은 상처와 분노에는 아직도 굳은살이 생기지 않은 듯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저항은 26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1년 8월 14일, 고 김학순 할머니는 일본 정부가 “일본군은 위안부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발표한 것에 분노해 마이크를 잡고 자신이 당한 피해를 증언했다. 김 할머니의 증언으로 의혹으로만 제기됐던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처음으로 공개됐다.지난달 29일 고 하상숙 할머니의 빈소에서 만난 이용수(89) 할머니는 25년 전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에 위안부 피해자라고 신고하던 순간을 생생하게 기억했다. 이 할머니는 “1992년 6월 25일에 내가 직접 위안부 피해자라고 신고했다”면서 “다음날 모임에 나갔더니 거기서 수십명의 동료(피해 할머니)들을 만났다”고 회상했다. 이 할머니는 75년 전 기억을 마치 최근에 겪었던 일처럼 끄집어냈다. 이 할머니는 16살이던 1944년 어느 날 한밤중에 ‘밥도 많이 먹게 해 주고 가족들도 잘살게 해 준다’는 말만 듣고 군복을 입은 일본인을 따라 나섰다. 잠들어 있었던 가족들에게 인사도 하지 못했다. 그날 밤 이 할머니와 함께 일본인을 따라 나선 ‘소녀’는 이 할머니의 친구 ‘분순이’를 포함해 모두 5명이었다. 2015년 12월 28일 박근혜 정부가 일본과 체결한 한·일 위안부 합의는 피해 할머니들에게 위로는커녕 상처만 남겼다. 특히 이 합의에 따라 일본 정부의 예산으로 지난해 설립된 여성가족부 산하 재단법인 화해·치유재단을 둘러싼 논란은 지금도 뜨겁다. 할머니들은 “돈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라며 한·일 위안부 합의 폐기와 재단의 해체를 주장하고 있다. 할머니들이 바라는 것은 돈이 아니라 일본의 진정성 있는 사과와 명예회복, 그것뿐이었다. 이용수 할머니는 “1억원 같은 거 필요 없다. 명예회복이 필요하다”면서 “일본 국왕이 무릎 꿇고 빨리 사죄해야 한다. 일본 총리가 법적인 배상을 해야 한다”고 단호하게 말했다.할머니들이 그렇게 26년 동안 일관되게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를 요구해 왔지만 일본의 태도는 변함이 없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할머니들도 하나둘씩 하늘의 별이 돼 가고 있다.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 이후에만 12명의 할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일본은 할머니가 모두 돌아가시길 기다리고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이용수 할머니는 “일본은 우리가 살아 있는데도 저렇게 거짓말을 하는데 우리가 죽고 나면 무슨 소리를 할지 모르지 않느냐”면서 “저승에 가서라도 사죄하게 할 거다. 데모할 거다”고 호소했다. 현재 경기 광주시의 나눔의집에 9명, 서울 마포구 연남동 ‘평화의 우리집’에 2명의 할머니가 거주하고 있다. 나머지 생존자 24명은 가족과 함께 살거나 혼자 생활하고 있다. 여가부 관계자는 “신분 노출을 꺼려 하는 할머니 중에는 가족들에게 위안부 피해자라는 사실을 알리지 않고 지내는 할머니들이 많다”면서 “모두 85세가 넘는 고령분들이시고, 아직 당시의 상처를 가족에게 알리기 어려운 분들”이라고 설명했다. 이용수 할머니는 오는 20일 ‘평화의 소녀상’이 세워지는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떠난다. 이 할머니는 “소녀상을 한국에 빼곡하게 세우고, 미국에도 세우고, 마지막은 동경 벌판에 세워서 사죄를 받아낼 것”이라면서 “어떻게든 내가 해결해 놓고 가겠다”고 했다. 김주연 기자 justina@seoul.co.kr 기민도 기자 key5088@seoul.co.kr
  • [단독] [커버스토리] 사과는 아직 없다 시간이 정말 없다

    [단독] [커버스토리] 사과는 아직 없다 시간이 정말 없다

    생존 위안부 피해 할머니 35명뿐 평균 92세… “日 달라지지 않아” “기다림의 폭력 더 안겨줘선 안돼” “정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이제 남으신 분은 35명뿐입니다. 평균연령도 벌써 92세나 됐습니다.”올 들어 5명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가 ‘노랑나비’가 돼 고통 없는 세상으로 떠났다. 할머니들은 끝내 가슴속에 응어리진 분노를 풀지 못한 채 세상과 작별을 했다. 이로써 정부에 등록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239명 가운데 생존자는 35명으로 줄었다. ‘노랑나비’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상징으로 정신적 고통으로부터 해방돼 자유롭게 날갯짓하기를 염원하는 의미를 담았다. 특히 일본 정부의 공식 사죄를 요구하며 1992년 1월 8일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시작된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수요집회)가 오는 13일로 1300회를 맞는다. 25년이나 흘렀지만 피해 할머니들은 “(일본의 태도가) 달라진 건 하나도 없다”고 깊은 숨을 내쉬었다. 2015년 12월 28일 이뤄진 한·일 위안부 합의도 할머니들의 마음을 다독이지 못했다. 아까운 시간만 하염없이 흐르고 있는 것이다. 8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거주하는 경기 광주시 퇴촌면 ‘나눔의집’은 가슴의 한을 풀지 못하고 생을 마감한 할머니들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졌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10여명이 거주할 때 느껴졌던 온기도 적잖이 식은 듯했다. 할머니의 물품과 사진들로 가득 차 있었던 방들은 하나둘씩 빈방이 돼 갔다. 이제 나눔의집에는 9명의 할머니만 남았다. 이제 수요집회에 나가 마이크를 잡고 우렁찬 목소리로 증언할 수 있는 할머니도 거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펜으로 글씨를 써서 의사 전달을 할 수 있는 할머니조차도 드물다고 한다. 하점연(95) 할머니는 식사를 마친 뒤 거실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TV에서 나오는 소리는 왁자지껄했지만 할머니의 표정은 썩 밝지 않았다. 얼굴에 팬 주름살에 근심이 가득 차 있는 듯했다. 박옥선(93) 할머니는 반갑게 인사를 건넸지만 초기 치매 증세가 있는 듯 “몰라. 난 잘 몰라”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노환으로 나눔의집 인근 병원에 입원 중인 이옥선(90) 할머니는 “이제 나도 아파서 증언을 잘 못해. 기억도 잘 안 나고 말을 예전처럼 잘 못하겠어”라고 힘겹게 입을 열었다. 이어 1942년 일본군에 의해 중국으로 끌려간 얘기를 꺼내다 이내 말을 멈추더니 “말해 뭐해. 일본이 사과하길 기다리는 것은 필요 없는 기다림이야”라며 고개를 돌렸다. 지난 6일 1299회차 수요집회에 참여한 김복동(91) 할머니도 “우리가 살아서는 일본의 사과를 못 받을 것 같다”며 깊은 체념의 한숨을 내쉬었다. 윤미향(53)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대표는 “더이상 할머니들에게 기다림이라는 폭력을 안겨 줘서는 안 된다. 이제 남은 시간이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기민도 기자 key5088@seoul.co.kr 김주연 기자 justina@seoul.co.kr
  • “요즘 군 복무 중 병사들 위안부 문제 관심 많아요”

    “요즘 군 복무 중 병사들 위안부 문제 관심 많아요”

    “요즘 젊은이들, 군 복무 중인 병사들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관심이 많습니다.”군 복무 중 모은 사병 월급 100만원을 지난달 31일 전역하자마자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거주하는 경기 광주시 나눔의 집에 기부해 화제가 됐던 권준영(22)씨는 7일 서울신문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입대 전엔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에 대해 깊게 생각하지 못했다는 권씨는 군 복무를 하면서 역사의식을 갖게 됐다고 했다. 권씨는 “저녁 점호시간에 일본 정부가 위안부 만행에 대해 제대로 사과하지 않는다는 뉴스를 보고 ‘저건 아니지’라며 분개한 전우가 많았다”고 전했다. 전역 후 경일대 화학공학과 1학년에 복학했다는 권씨는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께서 사과를 받고 마음의 짐을 덜고 사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안신권 나눔의 집 소장은 “(권씨의 기부가) 많은 젊은이가 피해자 할머니들의 인권과 올바른 역사 회복을 위해 함께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신동원 기자 asadal@seoul.co.kr
  • 강경화 “위안부 합의 검토 후 나아갈 방향 모색”

    강경화 “위안부 합의 검토 후 나아갈 방향 모색”

    ‘화해재단’ 김태현 이사장 사의, 논란 지속… 해산 수순 가능성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23일 2015년 12월 한·일 정부의 위안부 합의와 관련, “외교부는 합의 내용이나 협상 경과를 좀 더 꼼꼼히 검토해보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려 한다”고 말했다. 강 장관은 이날 경기 성남시 분당차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고(故) 김군자 할머니 빈소를 찾아 조문한 뒤 취재진과 만나 이같이 밝혔다. 강 장관은 “문재인 대통령이 분명히 말씀하셨듯이 국민이 정서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상황에서 피해자분 중 또 한 분이 흡족한 답을 못 얻고 가셨다”고 말했다. 지난달 2일 경기 광주 나눔의집을 방문한 강 장관은 “(당시) 김 할머니는 휠체어를 타고 있었다. 그런대로 건강해 보였는데 또 한 분 돌아가셨구나 생각하니 안타깝다”고 말했다. 앞서 일본 정부의 출연금으로 운영되는 화해·치유재단의 김태현 이사장이 사의를 표명했다. 화해·치유재단은 2015년 한·일 정부 간 ‘위안부’ 합의에 따라 설립됐지만 합의 내용과 재단 활동에 대한 비판 여론이 컸다.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김 이사장은 지난 19일 이사회에서 이사장직을 그만두겠다는 뜻을 밝혔다. 재단은 조만간 정식으로 김 이사장을 사직 처리할 방침이다. 화해·치유재단은 일본 정부 출연금 10억엔(약 108억원)으로 위안부 피해자에게 현금을 지급하면서 당사자 동의 없이 지급을 강행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등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여가부가 화해·치유재단의 사업 내용을 전면 재검토하기로 한 데다 이사장까지 사임하면서 재단은 한·일 합의에 따른 피해자 지원 사업을 추가로 벌이기 어려운 상황이다. 정부 차원의 위안부 합의 검증과 향후 대응 방향에 따라 해산 수순을 밟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재단 정관에 따르면 이사회가 재적이사 3분의2 이상의 찬성으로 의결해 여가부 장관의 승인을 받으면 재단을 해산할 수 있다. 여가부 장관은 해산을 결정할 때 외교부 장관과 협의해야 한다. 화해·치유재단은 여가부 등록 비영리법인이다. 정현백 여가부 장관은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재단 해산 문제와 관련해 “일단 외교부와 논의해야 하고 10억엔이라는 돈을 낸 일본과도 전혀 논의를 거치지 않고 결정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강윤혁 기자 yes@seoul.co.kr
  • 위안부 할머니 찾은 美의원 “日의 진짜 사과 받도록 노력”

    위안부 할머니 찾은 美의원 “日의 진짜 사과 받도록 노력”

    “일본 정부로부터 진짜 사과를 받아낼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에드워드 브라운스타인(36·민주당) 미국 뉴욕주 하원의원이 5일 경기 광주 나눔의집을 방문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하점연(95)·박옥선(93)·김군자(91)·이용수(89) 할머니를 만나 위로하며 이같이 말했다. 브라운스타인 의원은 매년 동해 병기 법안을 의회에 상정하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해결에 관심을 가져온 대표적인 친한 인사로 최근 외교부 초청으로 방한했다. 평소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유대인 학살(홀로코스트)에 대해 관심이 컸던 브라운스타인 의원은 일본군 위안부에 대해서도 문제의식을 갖고 나눔의집 방문을 결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2015년 12월 한·일 위안부 합의에 진정성 있는 사과는 없었다는 할머니들의 지적에도 공감했다. 이용수 할머니는 “한·일 위안부 합의는 본인(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도 모르는 사이 합의가 이뤄졌다”며 “거기에다 10억엔을 받았는데, 이것을 따지고 보면 우리를 팔아먹은 것이나 다름없다”고 억울함을 토로했다. 브라운스타인 의원은 “합의문에 있는 내용 자체가 구체적이지 않은 데다 모호했던 것으로 안다”며 “당시 이뤄진 합의는 적절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브라운스타인 의원은 할머니들과의 면담에 앞서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 등을 둘러보는 등 2시간가량 나눔의집에 머물렀다. 할머니들은 나눔의집을 찾아준 브라운스타인 의원에게 거듭 감사의 뜻을 표하며, 희망을 상징하는 나비 배지와 고 김순덕 할머니가 그린 작품 ‘끌려감’을 선물로 전달했다.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 강경화 후보자 지지선언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 강경화 후보자 지지선언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를 지지한다고 선언했다.위안부 피해자인 박옥선(94)·이옥선(91)·이용수(90) 할머니는 8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일 위안부 합의를 한 외교통상부는 ‘일본통상부’였다”며 “강 후보자가 우리 문제를 해결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대한민국 외교통상부 장관이 됐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할머니들은 “한·일 위안부 합의는 10억엔을 받고 위안부 할머니들을 팔아먹은 것”이라면서 “우리는 돈이 아니라 사죄를 받아야 한다. 10억엔을 돌려주고 일본의 사죄 각서를 받아 달라”고 요구했다.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서도 “옳은 정치를 해서 위안부 문제만은 해결해 달라”고 부탁했다. 안신권 나눔의집 소장은 “할머니들이 강 후보자를 절대적으로 지지한다는 의미”라면서 “정치적 성향도 중요하지만 인권전문가인 강 후보자의 전문성을 가지고 판단해 달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강 후보자는 지난 2일 경기 광주시 퇴촌면의 위안부 피해자 보호시설인 나눔의집을 방문했다. 이때 이옥선 할머니는 강 후보자에게 위안부 소녀 배지를 달아 주었다. 강 후보자는 이 배지를 지난 7일 국회 인사청문회에 출석할 때도 착용했다. 강신 기자 xin@seoul.co.kr
  •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 “강경화 후보가 외교장관 돼야”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 “강경화 후보가 외교장관 돼야”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가 장관에 임명돼야 한다”고 주장했다.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이옥선, 이용수, 박옥선 할머니는 8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이같이 밝혔다. 이들은 “강경화 후보자가 장관이 돼서 한일 위안부 합의 등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도와달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강 후보자는 장관도 되기 전에 할머니들을 찾아 위로해준 고마운 사람”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강 후보자는 지난 2일 경기 광주시 퇴촌면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쉼터인 나눔의집을 방문해 “인권 문제의 기본은 피해자가 중심이 되고 그 뒤에 진정성이 느껴져야 한다”면서 “장관이 되면 정부의 지혜를 모아서 진정성 있는 조치를 취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위안부 피해 할머니 만난 강경화

    위안부 피해 할머니 만난 강경화

    강경화(오른쪽) 외교부 장관 후보자가 2일 경기 광주시 퇴촌면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쉼터인 나눔의집을 방문해 할머니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 [대선 D-1] 劉 “대구가 부끄러운 선택 않도록 도와 달라”

    [대선 D-1] 劉 “대구가 부끄러운 선택 않도록 도와 달라”

    “사표라는 단어 자체가 비민주적” 한·일 위안부 합의 재협상 약속유승민 바른정당 대선 후보는 7일 ‘보수의 심장부’ 대구로 향해 막판 보수 표심 공략에 나섰다. 이날 오후 대구 동성로 대구백화점 앞은 유 후보를 보러 나온 수천명의 시민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바른정당은 이날 5000명이 모인 것으로 추산했다. 유 후보가 무대 위에 모습을 드러내자 지지자들은 큰 소리로 환호하며 “유·찍·기”(유승민을 찍으면 기적이 생긴다)를 연호했다. 유 후보는 “우리 대구가 이번 선거에서 부끄러운 선택을 하지 않도록 여러분이 일어나 달라”고 힘주어 말했다. 이날 밤 방문한 서문시장 야시장에도 수백명의 시민이 몰려들었다. 시민들은 유 후보와 딸 담씨를 따라다니며 악수하고 사진을 찍으려고 스마트폰을 치켜 들었다. 앞서 동구에 있는 대구시당에서 기자회견을 마친 유 후보는 ‘사표’(死票) 논란에 대해 “자기가 찍은 후보가 당선되지 않은 것, 말 그대로 죽은 표라는 뜻인데 그것은 단어 자체가 굉장히 비민주적”이라고 지적했다. 전날 유 후보는 경기 광주시에 있는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공동생활시설 ‘나눔의집’을 처음 방문, 2015년 체결된 한·일 위안부 합의를 재협상하겠다고 약속했다. 대구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 [당신의 책]

    [당신의 책]

    ●역관상언등록연구(이현주 지음, 글항아리 펴냄) 조선 인조 15년(1637)부터 숙종 18년(1692) 사이에 역관(譯官)들이 작성한 문서와 지방 수령이 중앙정부에 올린 보고서인 ‘역관상언등록’(譯官上言謄錄)의 첫 완역본. ‘상언’은 신하가 임금에게 글을 올리는 일을 뜻한다. 17세기 역관의 인사 이동과 처우 개선 문제, 조선을 둘러싼 동아시아 정세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당시 중국에서는 후금이 청나라를 세우면서 명나라를 압박하고, 일본에서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후손들이 권력을 세습하고 있었다. 저자는 책이 제작됐을 당시의 시대적 배경과 역관의 세계를 소개한 뒤 문서 65건을 빠짐없이 번역했다. 468쪽. 2만 5000원. ●우리는 아이들을 믿는다(리처드 벡 지음, 유혜인 옮김, 나눔의집 펴냄) ‘맥마틴 유치원 아동학대 사건의 진실’이라는 부제가 달린 이 책은 미국 현대사의 기상천외한 사건으로 꼽히는 아동학대를 다뤘다.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아동학대 사건의 방대한 기록을 조사하고, 핵심 인물 수십 명을 인터뷰함으로써 사건의 진실을 파헤쳐 나간다. 아동학대 사건은 그 자체로 선정적이고 자극적이어서 언론과 수사기관 모두 ‘악마 찾기’에 몰두한다. 그러다 보니 아동학대 자체가 진실과 상관없는 집단 패닉을 낳고, 공포 분위기를 조성한다는 게 저자의 인식이다. 개별 사건 측면을 넘어 문화적 측면까지 저자는 분석해 낸다. 452쪽. 1만 7000원. ●농촌(마이클 우즈 지음, 박경철·허남혁 옮김, 따비 펴냄) 우리는 흔히 농촌을 어촌, 산촌과 함께 분류되는 지역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어촌이나 산촌에 사는 사람 역시 대부분 어업이나 임업 등을 농사와 병행하고 있다는 점에서 농촌은 생각보다 광범위하다. 이 책은 다양한 기능과 상반되는 이미지가 교차하는 농촌을 9개의 주제로 다룬다. 영국 농촌지리학자인 저자는 지리학과 사회학에서의 농촌 연구를 개괄하고 경제적 공간, 자본주의 농촌 변화, 소비 공간으로서의 농촌을 탐색한다. 농촌이 생산 공간일 뿐 아니라 관광과 레저의 소비 공간으로 글로벌하게 진행되고 있으며, 자연과 문화유산 등의 가치도 재평가되는 등 학제적 통찰의 필요성을 제시한다. 400쪽. 2만 2000원.
  • [당신의 책]

    [당신의 책]

    사피엔스의 미래(알랭 드 보통 등 지음, 전병근 옮김, 모던아카이브 펴냄) 알랭 드 보통, 맬컴 글래드웰, 스티븐 핑커, 매트 리들리 등 작가와 학자 네 명이 지난해 11월 캐나다 토론토에서 인류의 미래를 놓고 벌인 토론을 정리했다. 심리학자이자 언어학자인 스티븐 핑커 미국 하버드대 교수와 영국의 과학 저술가인 매트 리들리가 ‘찬성’ 팀을 이뤄 인류의 미래가 밝다는 견해를 피력하고, 알랭 드 보통과 미국의 기자 출신 작가인 맬컴 글래드웰이 반대편에 서서 미래에 관해 비관적 전망을 내놓는다. 당시 토론은 90분간 진행됐으며, 토론을 지켜본 청중은 더 설득력 있는 주장을 펼친 쪽을 선택해 투표했다. 결과는 73%의 지지를 얻은 찬성 팀의 승리였다. 208쪽. 1만 3500원. 배우는 삶 배우의 삶(배종옥 지음, 마음산책 펴냄) 30여 년간 꾸준히 대중과 함께 호흡해 온 연기자 배종옥이 배우로서 고민하고 성장해 온 여정의 기록. 중앙대 연극영화과를 나와 KBS 특채로 데뷔했지만 연기력 부족으로 시청자들의 지탄을 받았던 시절에 이어 영화 ‘걸어서 하늘까지’로 백상예술대상 최우수연기상을 받고, 드라마 ‘거짓말’로 멜로 연기까지 섭렵하며 노희경 작가의 페르소나로 거듭난 과정을 진솔하게 털어놨다. 연극 무대에 도전하고, 고려대 언론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는 등 배우로서 배우는 삶을 살아온 이야기와 더불어 여배우로서 아름다운 얼굴을 강요받는 고충, 당차고 똑똑해 보인다는 세간의 인식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232쪽. 1만 3000원. 갈증의 대가(캐런 파이퍼 지음, 유강은 옮김, 나눔의집 펴냄) 세계에 존재하는 물 가운데 마실 수 있는 물은 1%에 불과하며 그 물조차 오염과 지하수 고갈, 기후변화 등으로 줄어들고 있다. 그 틈을 파고들어 가는 것이 물 기업들이다. 2006년 뉴욕타임스는 ‘목마른 건 돈이 된다’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글로벌 물 시장의 가치를 수천억 달러에 이른다고 추산하기도 했다. 저자는 7년간 6개 대륙 10여개 나라의 활동가, 환경론자, 기후변화 전문가 등과 수십 차례의 인터뷰를 통해 물 사유화가 낳은 세계의 참혹한 모습을 보여 준다. 또한 세계 곳곳에서 벌어진 분쟁의 이면엔 목마른 사람들의 절규가 있었음을 지적한다. 432쪽. 1만 5000원. 문화적 냉전:CIA와 지식인들(프랜시스 스토너 손더스 지음, 유광태·임채원 옮김, 그린비 펴냄)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냉전 시기 서유럽에서 문화를 이용한 선전선동 활동이라는 비밀 첩보 프로그램을 수행하기 위해 만든 민간단체 세계문화자유회의의 실상을 다뤘다. 1950년부터 1967년까지 활동한 이 단체는 전 세계 35개국에 지부를 두고 미국적 가치를 전 세계에 전파하고자 했다. 영국의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미국의 정보공개법을 활용해 기밀문서를 열람하는 한편 민간 기관이 보유한 각종 문건을 조사하고 관계자들을 두루 인터뷰해 냉전 기간 공산주의 세력과의 문화적 성취 대결에 힘썼던 CIA와 세계문화자유회의의 음모를 생생하게 보여 준다. 776쪽. 3만 7000원. 다행히 졸업(장강명 외 8인 지음, 김보영 엮음, 창비 펴냄) 깔깔 웃기도 했지만 털썩 절망하기도 했던, 그리하여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학창 시절을 젊은 작가 9인이 소설로 풀어냈다. 시기는 1990년부터 2015년까지다. 책을 기획한 김보영 편집자는 작가를 섭외하며 건넨 질문이 “당신의 학창 시절은 거지 같았습니까?”였다고 했다. 학교를 잘 다닌 사람보다 잘못 다닌 작가들을 귀히 모셨다는 얘기다. 장강명, 정세랑, 김아정, 우다영, 임태운, 이서영, 전혜진, 김보영, 김상현 등 재기 넘치는 작가들은 보통의 학생들이 경험했던 불안과 억압의 순간을 포착해 통렬한 쾌감을, 씁쓸한 웃음을 안긴다. 420쪽. 1만 3000원.
  • 위안부기금 출연 1주일 만에… 日, 10억엔 입금 완료

    위안부기금 출연 1주일 만에… 日, 10억엔 입금 완료

    일본 정부가 지난 24일 각의 결정을 통해 위안부 기금으로 10억엔(108억여원) 출연을 최종 확정한 지 1주일 만인 31일 송금 절차를 완료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 12월 28일 한·일 간 위안부 합의에 따라 일본 측이 해야 할 핵심 이행조치는 사실상 마무리됐다. 하지만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를 비롯한 일본군 위안부 관련 시민단체와 피해자들이 반발하고 있어 이와 관련한 논란은 그치지 않을 전망이다. 앞서 한·일 양국은 위안부 합의에서 위안부 피해자 지원을 위해 한국 정부가 재단을 설립하고, 일본 정부가 재단에 예산 10억엔을 일괄 거출해 양국 정부가 협력해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와 존엄 회복, 마음의 상처 치유를 위한 사업을 시행해 나가기로 했다. 일본이 10억엔을 출연하면서 적어도 한·일 정부 사이에서 ‘외교적 현안’으로서의 위안부 문제는 ‘최종적, 불가역적 해결’ 수순으로 진입하게 된다. 1991년 고 김학순 할머니가 최초로 증언에 나서면서 위안부 문제가 첫 공론화된 지 25년 만이다. 그러나 정대협과 나눔의집,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등 민간이 주축이 된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재단’은 이날 서울 중학동 옛 일본대사관 맞은편 소녀상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한·일 정부가 역사를 지워 버리는 담합을 감행했다”며 한·일 정부의 ‘12·28 합의’를 비판했다. 위안부 피해자인 김복동(90) 할머니는 일본이 소녀상 이전·철거를 희망하고 있는 데 대해 “100억원이 아니라 1000억원을 줘도 역사를 바꿀 수는 없다”면서 “우리 뒤에는 국민이 있고 젊은이들이 있으니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같은 장소에서 개최된 1246차 수요집회 참가자 약 300명은 성명서를 통해 “돈 몇 푼으로 역사적 진실을 덮으려는 일본과 박근혜 정부의 추악한 협잡 행위를 규탄한다”며 ‘12·28 합의’ 폐기를 요구했다. 서울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도쿄 이석우 특파원 jun88@seoul.co.kr
  • 日배상금이라던 10억엔… 위안부재단 위원장은 “치유금”

    日배상금이라던 10억엔… 위안부재단 위원장은 “치유금”

    “비영리단체로 민간 모금” 발언도재단 성격 부합하는지 논란 일 듯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지원을 위한 재단 설립 준비위원회 위원장으로 31일 선출된 김태현 성신여대 명예교수가 일본 측이 출연키로 한 10억엔(약 107억원)에 대해 “치유금이지 배상금이 아니다”라고 말해 논란이 예상된다. 김 위원장은 이날 서울 종로구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재단 설립은 피해 당사자인 할머니들의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을 고민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정부는 지금껏 일본 정부가 지원 재단에 출연키로 한 돈을 일본 측의 책임 인정에 따른 사실상의 ‘배상금’이라고 설명해 왔다. 김 위원장의 설명은 정부 입장과 완전히 배치되는 셈이다. 김 위원장은 이후 이어지는 질문에도 “일본 정부가 책임을 인정하고 피해자의 명예를 존중하겠다고 10억엔을 출연한 것으로 배상금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다만 김 위원장은 이 같은 설명이 정부 입장과 다른 게 아니냐는 취재진의 질문이 이어지자 “제가 단호하게 배상금이 아니라고 했지만 여러 의견이 있을 수 있어 여지를 남기겠다”고 한발 물러섰다. 김 위원장은 또 피해자 지원 재단이 비영리 민간법인 형태로 운영되는 이유에 대해 “정부는 한계가 있다. 민간인들에게 펀드레이징(모금)을 해서 지원 사업을 좀 더 구상할 수 있다”고 말했다. 향후 국민들을 대상으로 모금을 해 지원 사업을 벌이겠다는 의미이지만 이 역시 지원 재단의 성격에 부합하는지를 두고 논란이 일 가능성이 있다. 그동안 정부는 지원 재단은 우선 일본이 출연하는 예산으로 사업을 한다는 입장이었다. 주한 일본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 이전에 대해서는 “민간단체가 하는 일로 정부와 무관하다”면서 “10억엔 출연과 관계가 없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지원 재단 활동에 반대하고 있는 나눔의집 등 위안부 관련 단체 등에 대해선 “설득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이날 첫 회의를 연 준비위원회는 유명환 전 외교통상부 장관, 여성가족부 차관 출신인 김교식 아시아신탁회장, 이원덕 국민대 국제학부 교수 등 각계 인사 총 11명으로 구성됐다. 강병철 기자 bckang@seoul.co.kr
  • ‘흑룡강성 마지막 위안부’ 할머니의 가슴 아픈 인생사

    ‘흑룡강성 마지막 위안부’ 할머니의 가슴 아픈 인생사

     지난 17일 95세를 일기로 별세한 중국 헤이룽장(黑龍江)성의 마지막 위안부 이수단 할머니의 가슴 아픈 인생사가 뒤늦게 알려져 안타까움을 주고 있다. 특히 이 할머니의 슬픈 사연에는 당시 일본군의 잔학함 뿐 아니라 조선의 악습과 무능도 그대로 드러나 있어 더욱 마음을 아프게 한다.  22일 중국 내 최대 한글 신문인 흑룡강신문은 이 할머니의 기구한 운명을 상세히 전했다.  1921년 평양 부근 농촌에서 태어난 이 할머니는 16살되던 해 남편과 결혼해 딸 하나를 낳았다. 하지만 행복도 잠시. 이듬해 남편과 딸이 병으로 잇따라 숨을 거두면서 고난이 시작됐다.  더 이상 의지할 곳이 없어진 할머니는 시댁에서 나와 친정에 돌아왔다. 하지만 이미 부친은 새로 맞은 첩에게 빠져 조강지처를 내친 상태. 슬펴할 겨를도 없이 이 할머니는 어머니의 생계까지 책임져야 했다. 설상가상으로 19살때 어머니마저 큰 병에 걸려 급하게 치료비가 필요했다. 바로 이때 ‘중국 하얼빈에서 일할 공장 노동자를 모집한다’며 여종업원을 모집하는 사람들이 돌아다니는 걸 목격했다. 이 할머니는 이들의 말만 믿고 선뜻 어머니의 치료비 마련을 위해 하얼빈에 따라 나섰다.  하지만 할머니가 간 곳은 공장이 아닌 일본군 위안소였다. 그와 함께 끌려온 여성은 7~8명 정도였으며, 가장 어린 처녀는 13살 밖에 되지 않았다. 대부분 시집도 안 간 처녀들이어서 이들은 자기가 온 곳이 어디인지 알고는 결사적으로 도망쳤다. 하지만 얼마 안돼 다시 잡혀와 죽도록 매를 맞길 여러번. 이들은 “누구든 도망칠 생각을 아예 말라”고 윽박지르며 성노예 생활을 강요했다.  이 할머니는 21살 때 중국과 러시아와 접경지역인 헤이룽장성 둥닝셴(東寧縣)에 있는 일본 관동군 위안소로 옮겨졌다. 당시 이곳에는 13만명의 관동군이 주둔하고 있어 수천명의 위안부가 필요한 상황. 할머니는 이곳에서 비인간적 대우를 받으면서 비참한 생활을 했고 함께 간 위안부들이 병과 폭행에 시달려 죽어가는 것을 보며 혼자 가슴을 뜯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일본 패망 무렵 이곳에서 사변이 일어나 혼란해진 틈을 타 이 할머니는 다른 위안부들과 함께 탈출에 성공했다. 이제 할머니는 어두운 과거를 끝내고 새 인생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할머니에게 진정한 의미의 해방은 찾아오지 않았다.  이곳에서 생활하던 위안부 피해자들은 2차대전이 끝난 뒤 일본군에게 버림받았고 남북한 정부도 이들에게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바람에 고향에 돌아가지 못했다  결국 할머니도 둥닝셴에 남아 중국인 남성을 만나 다시 결혼했지만 아이는 생기지 않았다. 두 번째 남편은 그가 위안부 출신인 것을 불쾌해하며 수시로 모욕하고 때렸다. 처음에는 할머니도 모든 것을 참고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살려 했지만 강도가 더해가는 폭력에 위안부 출신이라는 비관, 고통스러운 결혼 생활 등을 견디지 못하고 여러 차례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다. 말년에는 치매증세까지 보였다.  80년대 초 헤이룽장성 정부는 할머니를 가정 폭력에서 벗어나게 해 주려 양로원에 보냈다. 할머니는 마음이 답답할 때마다 강변에 나와 눈물을 흘리며 소리를 지르며 회한을 달래곤 했다고. 말년에는 인형을 끔찍히 좋아했는데 이 가운데 특히 두 아기인형에 ‘량량(亮亮)’과 ‘뉴뉴(??)’라고 이름을 지어주고 한시도 몸에서 떼지 않으려 했다고 한다.  이 할머니를 돌봐온 양아들 고지상씨는 “어머니가 아이를 기르지 못한 것을 인생의 한으로 생각해 왔으며 연세가 많아질수록 인형들을 더 좋아하셨다”고 말했다.  할머니는 조선을 떠나온지 너무 오래 돼 우리말을 다 잊어버렸지만 민족에 대한 정체성만은 확고했다고 한다.  2007년 하얼빈시 조선족 예술관에서 할머니에게 한복을 선물하자 감격이 북받쳐 눈물을 비오듯 흘리며 “죽을 때 이 한복을 입혀 보내달라”고 말하기도 했다.  1960년대에 평양에 사는 남동생에게 연락이 와 “고향으로 돌아오라”고 했고 한국의 여러 단체에서도 모셔가려 했지만 할머니는 이를 모두 거절했다.  그는 “고향에 돌아가고 싶지만 평양에는 친척이 없고 그저 배다른 남동생만 한 명 있을 뿐이다. 조선말을 잊어버려 남한이나 북한 어딜 가더라도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클 것 같다. 이곳(둥닝셴)에선 모두 나에게 잘 대해주니까 죽을 때까지 여기 있는 게 더 나을 것 같다”고 말하곤 했다고 한다.  이 할머니의 사연은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쉼터인 ‘나눔의집’ 원장 혜진(惠眞) 스님이 1998년 이곳에 들러 이 할머니를 포함해 당시 5명의 위안부 피해 할머니가 생존해 있다는 소식을 한국에 처음 소개하면서 알려지게 됐다.  지난 20일 이 할머니는 생전 유언대로 한복을 입은 채 화장돼 헤이룽장성 하이린(海林)시 중·한우호공원에 안치됐다.  이 할머니 별세 소식을 접한 박근혜 대통령과 황교안 국무총리,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화환을 보내 조의를 표했고 주심양 한국 총영사관 관계자들도 빈소를 찾아 조문했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친구 넋이라도 데려와 밥 한술 먹였으면

    친구 넋이라도 데려와 밥 한술 먹였으면

    위안부 할머니 영화 ‘귀향’ 24일 개봉 “이 영화를 찍으며 제일 많이 들었던, 화가 나는 이야기들이 바로 ‘증거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증거가 아주 많은데도 그런 말들을 합니다. 살아계신 할머니들의 증언도 증거가 아니라고 합니다. 그럴 때마다 그렇다면 제가 영화로 만들어 문화적 증거를 남기겠다고 말하곤 했습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증언을 토대로 만들어진 영화 ‘귀향’이 오는 24일 개봉한다. 각본·연출·제작을 맡은 조정래 감독이 작품을 구상한 지 14년 만이다. 그는 2002년 위안부 피해 할머니 후원시설인 나눔의집 봉사활동을 하다가 강일출 할머니가 미술 심리치료를 받으며 그렸던 그림 ‘태워지는 처녀들’을 보고 충격을 받아 시나리오를 썼다. 그림 속에서는 일본군에 총살당한 수많은 조선의 소녀들이 한 구덩이에서 불타고 있었다. 16세에 중국 목단강 위안소에 끌려갔던 강 할머니가 목도한 장면이다. 강 할머니는 일본군과 광복군의 교전이 일어나며 가까스로 탈출할 수 있었다. “타향에서 외롭게 세상을 뜬 분들을 영화에서나마 고향으로 모시고 와 따뜻한 밥 한술 올렸으면, 영령으로나마 우리와 함께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화를 한 번 상영할 때마다 한 분씩 돌아온다는 그런 마음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영화 제목의 한자가 ‘歸鄕’이 아닌 ‘鬼鄕’이다. 다큐멘터리 분위기가 강할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작품은 무척 ‘영화적’이다. 이야기는 일제강점기 막바지인 1943년과 위안부 피해 접수가 처음 이뤄졌던 1991년을 오간다. 경남 거창의 시골 마을에 사는 열네 살 소녀 정민(강하나)은 어느 날 갑자기 일본군에 끌려간다. 알 수 없는 곳으로 향하던 기차에서 정민은 한 살 위 영희(서미지)를 비롯해 비슷한 처지의 수많은 소녀들을 만난다. 이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성욕에 굶주린 잔혹무도한 일본군. 영화는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된 영희(손숙)가 어린 무녀 은경(최리)을 통해 정민의 영혼과 만나며 뼛속 깊이 사무친 한과 아픔을 치유하는 과정을 동시에 그린다. 은경은 위안부 피해 소녀들의 넋을 모시는 귀향 굿을 펼치며 과거를 현재로 가져온다. 영화는 일본 제국주의의 만행을 장면 하나하나 사실적으로 표현하는 데 집중하지는 않는다. 자극적일 수 있는 요소를 최대한 배제하며 영상미를 살린다. 목단강 위안소 실내 전경을 위에서 잡은 짧은 장면 하나에 당시 상황이 지옥도와 같이 집약된다. 작품은 일찍 기획됐지만 투자자들의 외면으로 진행은 더뎠다. 중국 쪽 투자가 성사되는 듯하다가 엎어지기도 했다. 대략적 줄거리와 티저 영상을 온라인에 올린 게 계기가 돼 2014년 말부터 시민들의 기부가 이어졌다.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 미국에서도 후원이 이뤄졌다. 올해 1월 기준으로 모두 7만 5270명이 문자 후원, 자동응답전화(ARS) 후원, 펀딩 등으로 약 12억원을 성원했다. 순제작비의 절반이 넘는다. 지난해 4월부터 2개월간 이뤄진 촬영에도 수많은 배우와 스태프들이 재능 기부 형식으로 참여했다. 문화부 장관을 지낸 손숙을 비롯해 오지혜, 정인기 등 연기파 배우가 동참했다. 일본에서도 영화적 공감대를 이끌어 낼 수 있게 일본어가 모국어에 다름없는 재일교포 배우들을 상당수 캐스팅했다. 재일교포 4세인 강하나, 3세인 정무성이 주연을 맡았다. 조 감독은 관객들이 이 영화를 정치적 이슈나, 한·일 간 이슈가 아닌 휴먼 드라마로 봐 줬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단순하게 일본은 나쁘다, 일본 제국주의를 고발한다는 의미로 만들지 않았습니다. 수많은 분들이 끌려갔지만 살아 돌아와 정부에 등록된 숫자는 238명에 불과합니다. 현재는 마흔여섯 분만 생존해 계십니다. 이분들은 물론 모든 영령들이 마음을 푸는 계기가 되는 치유의 영화입니다.” 127분. 15세 이상 관람가.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한·일 위안부 타결 이후] 할머니들 “어느 나라 외교부냐” 외교차관 “사전협의 못해 송구”

    [한·일 위안부 타결 이후] 할머니들 “어느 나라 외교부냐” 외교차관 “사전협의 못해 송구”

    할머니들의 표정엔 못마땅한 기색이 역력했다. 섭섭해하는 것 같기도 했고, 분노를 느끼는 것 같기도 했다. 29일 오후 2시쯤 서울 마포구 연남동의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쉼터 거실에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89), 이용수(88), 길원옥(87) 할머니가 나란히 앉아 있었다. 전날 이뤄진 한·일 협상에 대해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던 이들은 정부 고위 당국자가 찾아온다는 소식에 되레 격앙돼 있었다. 임성남 외교부 제1차관이 쉼터 안으로 들어서자 이 할머니는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 “당신 누구예요. 뭐하는 사람이에요. 대체 어느 나라 외교부예요”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일본과 협상을 한다고 미리 이야기는 해줬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역사의 산증인이 이렇게 살아있는데 어떻게 우리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을 수가 있나요.” 임 차관을 향해 호통을 치던 이 할머니는 끝내 눈시울을 붉혔다. 김 할머니는 비교적 차분한 목소리로 “아베 일본 총리가 직접 ‘법적으로 우리가 잘못했다’고 사죄해야 한다”며 협상 내용에 대해 항의했다. 임 차관은 “그래서 뒤늦게라도 왔다”며 이 할머니의 손을 잡았다. 이후 1시간 동안 대화가 이어졌지만 할머니들의 표정과 생각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피해 할머니들이 있는 경기 광주 ‘나눔의 집’을 찾은 조태열 외교부 제2차관도 “한마디 상의도 없이 정부 마음대로 합의한 것은 인정할 수 없다”는 쓴소리만 듣고 돌아섰다. 조 차관의 방문이 예정된 오후 2시 30분 이전부터 나눔의 집에는 냉랭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강일출(87) 할머니는 “모든 걸 다 합의해 주고 이제 와서 우리들 손잡고 설명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며 정부의 뒤늦은 ‘성의’에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조 차관은 “일본 정부가 할머니들이 입은 상처와 명예훼손에 대해 책임을 통감한다고 인정했고, 아베 총리도 공식적으로 사죄했다”고 전했다. 이어 사전협의가 없었던 점을 의식한 듯 “합의가 마무리된 후에 찾아뵐 수밖에 없었다. 송구스럽다”고 말했다. 하지만, 조 차관의 짧은 설명이 할머니들의 상처를 달랠 순 없었다. 유희남(86) 할머니는 “우리가 원하는 것은 법적 배상과 공식적인 사죄이지만, 어느 것 하나 합의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조 차관은 “이번 합의를 시작으로 위안부 할머니들의 존엄이 회복되는 날까지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나눔의 집을 떠났다.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조용철 기자 cyc0305@seoul.co.kr
  • “법적 배상·사죄 아니다” 격앙… 일부 “연내 해결 시도는 감사”

    “법적 배상·사죄 아니다” 격앙… 일부 “연내 해결 시도는 감사”

    28일 오후 3시쯤 경기도 광주에 있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쉼터 ‘나눔의집’. 한·일 협상 타결 발표를 30여분 앞두고 할머니들이 TV 앞으로 한 명, 두 명 모여들었다. 지팡이를 짚거나 주변 사람들의 부축을 받으며 간신히 옮기는 힘겨운 발걸음이었지만 표정은 결연했다. 정복수(100) 할머니는 휠체어를 타고 나왔다. 생중계를 직접 지켜본 할머니는 전체 10명 중 6명. 숨죽이며 한국과 일본 외교장관의 발언을 들으면서 그들은 씁쓸한 속내를 감추지 못했다. 유희남(88) 할머니는 “올해 안에 해결하겠다는 정부의 시도 자체에는 감사의 뜻을 표한다”면서도 논의 과정에서 정작 당사자인 자신들을 제외한 것에 아쉬움을 표했다. 강일출(88) 할머니는 “일본 정부가 우리 말을 듣겠다고 하면 의견을 전달할 용의가 있는데 안 듣지 않느냐”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개인 청구권 문제나 법적 배상, 공식 사죄 등이 명확히 언급되지 않은 점에 대해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많았다. 이옥선(89) 할머니는 일본 정부가 10억엔을 출연해 위안부 피해자 지원 재단을 설립한다는 계획과 관련해 “이건 법적 배상에 해당되지 않는다”며 “법적 배상은 사죄와 함께 개개인에게 개별적으로 이뤄져야 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는 “피해자와 국민의 바람을 배신한 외교적인 담합”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정대협은 이날 발표한 공식 입장문에서 “일본의 조직적인 범죄라는 점이 드러나지 않았고 아베 신조 총리가 직접 사과하지도 않았다”며 “진정성이 담긴 사죄라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정대협은 이어 “불완전한 합의를 얻기 위해 한국 정부는 최종적 및 불가역적 해결을 확인해 주는 등 충격적인 약속을 내걸었다”면서 “굴욕적인 외교”라고 평가했다. 이날 서울 마포구의 정대협 사무실에서 기자들과 만난 이용수(88) 할머니는 “(협상 내용을) 전부 무시하겠다”며 “사죄로 인정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나눔의집, 정대협, 남해여성회 등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관련 단체 6곳은 공동으로 입장문을 발표하고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 철거가 거론되는 것에 대해 한국 정부를 비판했다. 이들은 “모호하고 불완전한 합의를 얻어내기 위해 한국 정부가 내건 약속은 충격적”이라면서 “되를 받기 위해 말로 줘 버린 한국 정부의 외교 행태는 굴욕적”이라고 밝혔다. 이들 단체는 소녀상이 합의나 조건의 수단이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소녀상은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해결과 평화를 외쳐 온 수요시위의 정신을 기리는 역사의 상징물이자 공공의 재산”이라며 “소녀상에 대해 한국 정부가 철거 및 이전을 운운하거나 개입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강신 기자 xin@seoul.co.kr 김희리 기자 hitit@seoul.co.kr
  • 배우 박재민, 나눔의집에 1000만원 기부…‘조용한 선행’

    배우 박재민, 나눔의집에 1000만원 기부…‘조용한 선행’

    배우 박재민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쉼터인 경기도 광주시 ‘나눔의 집’에 1000만원을 기부했다. 10일 나눔의 집 측은 “박재민 씨가 나눔의 집에 1000만원을 기부했다”고 밝혔다. 이어 “지난 8월 12일에도 1000만원을 기부해 지금까지 총 2000만원을 기부했다”고 덧붙이며 박재민의 선행을 전했다. 그의 후원금은 사회복지공동모금회를 통해 나눔의 집으로 지정 기탁됐으며 후원자의 뜻에 따라 할머니들의 난방비 등 생계비에 쓰이게 된다. 한편, 박재민은 서울대학교 체육교육학을 전공한 뒤 동 대학원 정책학 석사과정을 마쳤다. 그는 비보이그룹 ‘티아이피 크루(T.I.P CREW)’의 멤버이자 방송인으로 현재 예능과 드라마를 넘나들며 활발한 방송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사진·영상=박재민 페이스북, 채널A ‘이제 만나러 갑니다’ 방송분(유튜브) 문성호 기자 sungho@seoul.co.kr
  • 정대협 “아베, 위안부 문제 사죄·배상하라”

    다음달 2일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첫 한·일 정상회담을 앞두고 30일 시민단체들이 잇따라 집회를 갖고 위안부 등 과거사 문제에 대한 일본 측의 사죄와 배상을 요구했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는 이날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일 정상회담에서 아베 총리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사죄와 문제 해결을 약속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정대협 측은 아베 총리에게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국가적·법적 책임 인정 및 이행과 안보법제 즉각 폐기를, 박 대통령에게는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공식 사죄와 법적 배상을 촉구하고 일본 자위대의 한반도 진출 불가 원칙을 천명할 것을 요구했다. 이들은 이러한 내용을 담은 시민사회의 요구서를 김복동·이용수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 생존자 47명과 나눔의집 등 167개 단체, 개인 1477명의 연명으로 일본대사관과 외교부에 전달할 예정이다. 참여연대, 한국진보연대 등 76개 시민·사회·종교단체는 이날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아베 총리의 방한 및 한·일 정상회담 반대를 주장했다. 이들은 “일본이 과거사에 대한 사과 없이 안보 법제를 강행 처리하는 상황에서 정부가 한·일 정상회담을 추진하는 것을 납득하기 어렵다”며 “역사 정의와 평화를 훼손하는 굴욕적 정상회담이 아니라 올바른 과거사 청산과 평화 정책에 기초한 관계 정립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위안부 할머니를 향한 당신의 목소리 잊지 않겠습니다”

    “위안부 할머니를 향한 당신의 목소리 잊지 않겠습니다”

    미국 의회에 일본군 위안부의 강제 동원 사실을 알리며 ‘위안부 결의안’ 채택을 위해 노력해 온 레인 에번스 전 민주당 하원의원을 기리는 추모 출판기념식이 2일 위안부 할머니들이 있는 경기 광주 나눔의집에서 열렸다. “우리와 피부도 다르고 국적도 다르지만 그의 발자취는 영원히 남아 기억될 겁니다.” 워싱턴 정신대대책위원회 고문이자 컬럼비아칼리지 교수인 서옥자씨는 이날 연인이자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함께 싸운 동료였던 에번스 전 의원의 활동상을 책으로 펴낸 ‘그대의 목소리가 되어’를 소개했다. 이 자리에는 에번스 전 의원과 생전에 인연을 맺어 온 위안부 할머니들도 함께했다. 에번스 전 의원은 파킨슨병을 앓다 지난해 11월 5일 63세로 세상을 떠났다. 책에는 1983년 31세에 일리노이주 연방 하원의원이 돼 한국의 일본군 위안부와 고엽제 피해자 등 약자를 위한 법안을 마련하는 데 평생을 바친 에번스 전 의원의 활동상이 담겼다. 서 교수는 “그는 누구보다도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해 노력했던 사람”이라며 “1999년 워싱턴정신대책위원회 총회에 참석한 인연을 계기로 평생 위안부 문제에 관심을 쏟았다”고 말했다. 에번스 전 의원은 2001~2006년 3차례에 걸쳐 일본의 사죄 촉구 등을 담은 ‘위안부 결의안’을 의회에 제출했지만 폐기되는 아픔을 겪었다. 2006년 말 파킨슨병으로 정계를 은퇴할 때까지 그는 2004년, 2006년 두 차례 나눔의집을 방문해 피해 할머니들을 위로하고 응원했다. 위안부 피해자 강일출 할머니는 “에번스가 우리를 위해 많은 신경을 쓴 것을 잘 알고 있다”며 “이제는 남은 사람들이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힘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 2007년 7월 미 하원에서 만장일치로 ‘위안부 결의안’이 채택되자 마이크 혼다(민주·캘리포니아) 하원의원은 “이 결의안은 나의 스승이자 동료 의원이었던 에번스 전 의원의 끊임없는 노력 덕분”이라고 공을 돌렸다. 이태식 전 주미대사는 “많은 사람이 미 하원 결의안 통과의 주역을 혼다 의원으로 알고 있지만 결의안 통과까지의 산파 역할을 에번스 전 의원이 했다는 것을 기억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며 안타까워했다. 서 교수는 “에번스 전 의원이 생전에 소외된 사람들, 약한 자들의 목소리가 돼 일한 만큼 이제는 내가 그 역할을 대신하고 싶어 ‘그대의 목소리가 되어’라고 책 제목을 정했다”고 말했다. 조용철 기자 cyc0305@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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