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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만여객기 착륙중 폭발… 262명 사망

    ◎“고도 급히 올리다 엔진꺼져 참사”/일조사반 추정/재일교포 1명 참변… 9명 생존 【도쿄=이창순특파원】 26일 하오 일본 나고야 국제공항에서 발생한 대만 중화항공 소속 에어버스 A 300­600R기(기장 왕락기)추락참사는 조종사가 1차 착륙에 실패한 것으로 간주하고 급하게 기체의 고도상승을 시도한 것이 결정적 원인이 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사고 조사단의 한 관계자가 27일 시사했다. 이날 사고로 승객과 승무원 등 2백71명의 탑승자 가운데 모두 2백62명이 사망하고 9명이 생존한 것으로 최종 집계됐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있는 이들 생존자 가운데 대만인과 필리핀인이 각각 2명씩이며 나머지 5명은 모두 일본인인 것으로 밝혀졌다. 일 교도통신은 일본 운수성의 소식통을 인용,사고진상 조사단이 조종사가 고도상승을 위해 갑자기 엔진의 출력을 강화하는 과정에서 기체의 엔진 2개 가운데 하나가 꺼져 버리면서 이번 사고가 발생한 것이 아닌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보도했다. 전문가들은 사고기의 조종사가 갑자기 기체의 고도상승을 시도함에따라 엔진을 통과하는 정상적인 공기흐름이 교란되면서 사고가 났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사고 조사단의 일원으로 현장에 나온 나고야대학 항공우주학과의 후지와라 도시다카 교수도 사고기의 잔해 모습이 조종사가 기수를 너무 급하게 위쪽으로 꺾다가 무리가 가해진 한쪽 엔진이 꺼지면서 꼬리날개 부분이 먼저 땅에 닿았음을 시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같은 사고 상황은 결국 사고 원인이 조종사의 실수일 개연성이 크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공항 관계자들은 사고기의 음성·비행기록장치가 회수돼 이에 대한 면밀한 조사결과가 나올때까지는 정확한 사고 원인을 파악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일본 운수성이 공개한 사고기 조종사와 공항관제탑간의 교신내용에서도 사고기 조종사는 추락 직전까지도 공항 관제탑에 항공기의 어떤 기술적 이상이 생겼음을 보고한 적은 없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 활주로서 3차례 폭발… 불길 휩싸여/일 나고야 참사

    ◎“랜딩기어 안나와 곤두박질”/동체 산산조각… 바람강해 구조 어려움/희생자 대부분 기체내서 못빠져나와 ○…타이베이발 중화항공에어버스300(140편)이 나고야공항에서 폭발,2백여명이 사망한 참사가 발생하자 일본 TV방송은 일제히 정규방송을 중단한채 현장상황을 생방송으로 중계. TV방송들은 소방관들과 의료진들이 아수라장이 된 사고현장에서 사망자들을 후송하고 부상자를 구출하는 장면을 되풀이 보여주었는데 현장을 중계하는 기자들은 유례없는 참사에 상당히 흥분된 목소리로 현장상황을 보도. TV화면은 활주로를 벗어나 불에 그을린 비행기와 구조대원들에 의해 오렌지색 담요로 둘러싸인채 실려나오는 사체와 부상자들을 반복 중계하면서 중간중간에 탑승객명단과 시시각각 늘어나는 사망자 숫자를 자막으로 보도. TV화면에 비친 사고기의 홍·백·청기체는 산산히 조각난 채 넓게 튕겨져나가있어 사고당시의 충격이 상당했음을 보여줬다. 일본 NHK TV는 승무원을 뺀 탑승객 2백57명 가운데 1백58명이 일본인이고 99명이 다른 국적을 가지고 있다고 보도. ○…사고현장의 한 목격자는 사고기가 착륙기어가 나오지 않은채 기수부분이 활주로에 곤두박질쳤다고 전언. 이 목격자는 이어 3차례 폭발이 이어졌으며 기체가 화염에 휩싸였다고 사고 당시 모습을 소개. 또 노무라씨라고만 알려진 또다른 목격자는 『사고기가 사고직전 상승하려 했으나 실패했다』고 밝혀 이번 사고가 착륙과정에서 발생한 「문제」에 의한 것임을 강력히 시사. ○…사고기가 속한 타이베이항공의 유안 싱 유안 회장은 이날 기자들에게 승객 가운데 63명이 대만인들이라고 발표. 이번 사고는 일본에서 발생한 항공사고로는 지난 85년 8월 JAL기 추락사고 이후 최대의 참사. 이에따라 일본정부는 공항요원및 소방대원 뿐만 아니라 사고지역 인근에 주둔하고 있는 자위대원과 차량 등을 긴급 지원. 85년 당시 JAL의 보잉747 참사로 5백20여명이 사망. 한편 사고기 제작사인 에어버스사의 대변인은 『날씨가 화창하고 바람 한점 없는 기상하에 일어난 이번 사고의 정확한 원인규명을 위해 조사단을 사고현장에 곧 보낼 것』이라고발표. ○…나고야공항 로비에서 가족·친지를 기다리던 사람들은 눈앞에서 대참사가 발생한 사실에 경악을 금치못하고 불안속에 현장중계 TV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모습.일본인 탑승자중 대부분은 단체관광객으로 알려졌다.
  • 대만여객기 착륙중 폭발/일 나고야공항서 2백17명 참사

    ◎탑승객 2백72명 사상자 계속 늘어/외국인 1백1명 한국인승객 없는듯 【도쿄=이창순특파원】 26일 하오8시18분쯤 일본 나고야 (명고옥) 공항에 착륙하려던 타이베이발 중화항공 소속 에어버스300(140편)이 착륙에 실패하면서 활주로를 벗어나 불이 나는 바람에 타고 있던 승객·승무원 2백72명중 대부분이 사망하거나 중경상을 입었다. 한국인 승객은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중화항공측은 사고 여객기에는 일본인 1백56명,외국인 1백1명,승무원 15명 등 모두 2백72명이 타고 있었다고 밝혔다. 일본 경찰과 나고야 공항 당국은 이날 밤12시 현재 사고로 인한 인명피해는 사망자 2백17명,중·경상자는 46명으로 확인했으며 20명이상이 행방불명이라고 말했다. 공항 당국에 따르면 승객들은 이날 여객기가 랜딩기어가 나오지 않아 착륙에 실패,기수가 활주로에 부딪히면서 갑자기 화염에 휩싸이는 바람에 미처 밖으로 빠져 나오지 못한채 대부분 기내에서 숨진것으로 알려졌으나 정확한 사고원인은 즉각 밝혀지지 않았다. 희생자들은 아이치(애지)현고마키(소목)시에 있는 일본 자위대 체육관에 수용됐으며 중·경상자들은 고마키 시내 등의 병원에 분산,치료를 받고 있으나 사망자 가운데 상당수는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운 상태다. 나고야 공항 당국은 불이 나자 35대의 소방차와 25대의 구급차를 동원,진화 작업과 함께 승객의 구출 작업에 임했으나 워낙 불길이 강해 기체에 쉽게 접근하지 못했다. 불길은 하오9시가 지나면서 잡혔다. 중화항공 에어버스300기는 이날 하오4시30분쯤 타이베이의 중정 공항을 출발,순조롭게 나고야 공항을 향해 비행했으며 착륙 당시 나고야 공항은 서풍 약4m로 기상 조건은 비교적 양호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사고 항공기를 지켜본 목격자들은 『여객기는 나고야 공항 활주로의 남쪽으로부터 진입하다 다시 기체를 위로 올리는 모습을 보였으나 활주로를 벗어나 그대로 땅에 떨어졌다』고 밝히고 『기체가 땅에 닿는 순간 3차례 폭발음이 들렸으며 오른쪽 날개에서 불길이 치솟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중화항공기는 타이베이∼나고야간을 주 4회 왕복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이날밤 사고가 나자 이토 시게루(이등무) 운수상을 본부장으로 하는 사고대책본부를 설치하는 한편 운수성 항공사고조사 위원을 사고 현지로 급파,정확한 사고 원인을 조사중이다.
  • 일 휴대폰개방 최종합의/먼데일 미대사/미 기업에 동등기회 부여

    【도쿄 로이터 AP 교도 연합】 월터 먼데일 주일 미국대사는 12일 미국과 일본 양국은 일본 휴대용 전화기 시장 개방을 위한 협정에 최종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먼데일 대사는 미대사관이 발표한 성명에서 『이번 합의는 도쿄­나고야간 휴대용 전화기 시장에서 미국업체에게 일본업체들과 동등한 기회를 제공한다는 일본정부의 약속을 구체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먼데일 대사는 이날 밤 간자키 다케노리(신기무법) 우정상과 회담을 갖고 이같이 밝혔다. 일본 우정성도 이날 밤 같은 내용의 합의 사실을 발표했다. 미 모토롤라사의 일본시장 접근문제는 지난 달 15일 모토롤라사와 일본이동통신(IDO)간 협상 실패 뒤 양국 무역마찰의 주요 쟁점으로 부각됐으며 미행정부는 이 문제가 오는 17일까지 해결되지 않을 경우 무역제재조치를 경고한 바 있다. 이번 합의에 따라 미·일 양국정부는 IDO의 합의 이행 여부를 검사하기 위한 정기 회담을 개최할 예정이다. 한편 IDO는 이번 합의로 현재의 무선주파수를 8MHz에서 모토롤라 및 일본전신전화회사(NTT)와 같은형식인 6·5MHz로 변경할 예정이다.
  • 일본의 경우(현지점검 행정구역 개편:5)

    ◎53년 고도성장 대비 시·정·촌 통합/기업생산활동 지원 초점… 행정 간소화/69년 도농 결합… 광역화로 경쟁력 높여 일본의 지방자치제도는 1백년 이상의 긴 역사를 갖고 있다. 그러나 민주적 지방자치는 유럽과 같은 「시민혁명」을 통한 「주민자치」가 아니라 전후 유엔점령군 지시에 의한 타율적 출발로 시작됐으며 그 행정구역은 시대의 변천에 따라 많은 변화를 했다. 일본의 근대적 지방자치제도는 지난 1888년 시·정·촌제도와 1890년 부·현·군제도의 도입과 함께 시작됐다.그러나 도·도·부·현의 지사를 국가에서 임명함으로써 지방자치기구는 중앙집권적 국가체제확립을 위한 보조수단에 머물렀다. 지사의 국가임명은 2차대전때까지 계속됐다.그러나 패전과 함께 일본의 지방자치제도는 획기적 변화를 맞았다.전후 일본헌법에 「민주적 지방자치」의 도입이 명시되고 1947년 지방자치법이 만들어짐으로써 단체장을 주민이 직접 뽑는 서구적 의미의 지방자치시대가 열렸다. 지방자치의 기초단위는 시·정·촌이다.기초단위 위에 도·도·부·현이라는 광역단체가 있다.도는 도쿄,도는 홋카이도,부는 오사카와 교토뿐이며 현은 43개이다.시·정·촌은 전국적으로 3천2백38개(91년). 시·정·촌은 법적 기능면에서는 큰 차이가 없으나 규모가 다르다.정은 도·도·부·현의 조례에 따라 다르지만 대개 인구 5천∼1만이상이며 촌은 주로 농촌지역으로 그 규모가 조금 작다. 시는 인구 5만이상,중심시가지의 호수가 전체의 60%이상,상공업등 도시적 산업에 종사하는 세대수가 전체의 60%이상이어야 한다. 일본의 지방자치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 많은 변천을 해왔다.40년대 후반에는 일본에 민주주의를 정착시키기위한 점령군의 시나리오에 따라 행정의 민주화가 지방자치의 최대의 명제였다. 그러나 일본이 미국의 세계전략차원에서 공산주의에 대한 전초기지로 인식되기 시작한 50년대 초부터는 「능률화·간소화」가 추진되었다. 일본은 이를 위해 1953년 정·촌합병촉진법을 제정 3년간 강력히 실시하며 시·정·촌의 수를 절반이하인 4천8백12개로 줄였다.이는 2번째 대규모 합병이었다.첫번째는 「명치자치제」라 불리는 최초의 지방자치제를 도입하면서 7만여개였던 시·정·촌을 1만5천8백여개로 대폭 줄였다. 합병에 대한 반발은 물론 심했다.그러나 일본은 50년대초 「고도경제성장」의 준비를 위해서는 국가도 지방자치단체도 행정·재정능력의 주요 부분을 기업의 생산활동과 산업기반정비 지원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는 공동인식을 배경으로 간소화·합리화를 위해 합병을 강행했다.합병은 그후도 계속 부분적으로 이루어져왔다. 일본은 또 1969년 도시와 그 주변의 농어촌을 묶어 일상사회생활권을 기초로 한 「광역 시·정·촌권」제도를 도입했다.도로,쓰레기,소방,교육,문화등 시나 촌이 단독으로 하기 어려운 사업을 공동으로 효율적으로 처리하기 위한 구상이다.광역권은 현재 3백36개가 지정됐으며 77년부터 시작된 대도시와 그 주변을 묶은 「대도시지역광역행정권」은 24개가 만들어졌다.시·정·촌 전체중 97%가 현재 이러한 광역권에 포함돼 있다. 일본은 경제발전에 따라 도시집중화 현상이 나타나며 정령지정도시제도 도입했다.이 제도는 대도시의중요성과 특수성을 감안 50만이상의 대도시를 부·현에서 떼어내어 부·현과 같이 광역단체의 기능을 갖도록 하는 것이다.1956년 지방자치법 개정에 따라 오사카,교토,나고야,요코하마,고베등 5도시가 정령시로 지정됐으며 그 수가 계속 증가 현재는 11개 도시로 늘어났다.지금은 1백만명이상이어야 정령시로 지정된다.도쿄도는 시와 기능이 유사한 23개 특별구로 구성되어 있으며 보통의 부·현과는 다른 특별한 성격을 갖고 있다. 일본의 이러한 지방자치제는 고도 산업사회의 도래와 정보의 고도화,고령화사회등을 맞으며 지방과 중앙정부와의 긴밀한 상호의존관계로 발전하고 있다.분리형 지방자치가 아니라 중앙정부와 공존하는 지방자치를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 휴대폰/미,일에 24만대 수입 요구

    ◎「수치목표」 제시/일선 거부 방침/교도통신 【도쿄 연합】 국은 일본과 무역현안의 하나인 휴대용전화 시장개방과 관련해 미국의 모토롤라방식의 카폰및 휴대전화 보급대수를 1년동안 24만대 늘려주도록 수치목표를 제시했다고 일 교도(공동)통신이 8일 보도했다. 교도통신은 워싱턴발 보도에서 관계소식통의 말을 인용,일본정부는 그러나 휴대용전화 분야에서 수치목표를 수용할 경우 자동차및 부품등 다른 분야 협상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수용하지 않을 방침이라고 전했다. 미국은 일본정부에 도쿄∼나고야(명고옥)간에서 약 24만대를 늘려주도록 요청했는데 일본정부는 소비자의 휴대용 전화기 선택문제를 놓고 목표치를 설정할수 없다는 입장이다.교도통신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토롤라와 일본이동통신(IDO)이 민간차원에서 협상을 벌여 초점이 되고 있는 무선기지국(이동전화 중계시설) 1백59개국 증설을 IDO가 받아들이고 단말기는 모토롤라가 양보하는 방향으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앞서 미국과 일본은 IDO가 일본전신전화(NTT) 방식및 모토롤라 방식을 모두 사용토록 합의했으나 작년말 현재 도쿄·나고야지역에서 NTT방식은 30만8천대가 보급된 반면 모토롤라 방식은 1만2천9백대에 그쳐 미국은 무역제재조치를 취할 것임을 경고해 놓고 있다.
  • “도쿄무대 벗어나자” 일 연극계 새바람

    ◎지방공연 늘려 문화저변 확대/극단 「사계」,나가노현에 연극자료관 개설 일본 연극계에 「도쿄 무대를 벗어나자」는 새바람이 일고 있다. 연극계에 새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대표적인 곳은 바로 극단 「사계」.지난해 창단 40주년을 계기로 「도쿄무대에서 지방무대로」라는 기치를 내걸어 연극무대의 저변확대를 표방하고 나섰다. 일본의 전통물 가부키(가무기)가 전국을 무대로 공연돼온데 비해 일본 연극은 도쿄에서 집중돼 왔다.때문에 사계의 탈중앙화 선언은 지방문화수준의 향상을 꾀하고 중앙과 지방의 문화격차를 줄일수 있다는 점에서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다. 극단 「사계」의 아사리 게이타 대표는 『칭기즈칸의 몽골처럼 전국에 걸쳐 연극무대를 설치하고 싶다』면서 극단의 활발한 지방공연을 통해 일본의 평균적인 문화수준을 높이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이를 위해 「사계」는 우선 일본 중부지방인 나가노(장야)현 오마치시에 연극자료를 체계적으로 정리해 보관할 수 있는 대규모 연극자료관을 개설했다.수집·보관된 자료들로 일본 근대연극의 발자취를 한눈에 볼수 있고 또 이를 연극제작을 위한 자료로도 적극 활용한다는 방침이다. 무대장치용의 창고도 병행해 마련한다는 구상인데 소요되는 공사비는 모두 10억엔(한화 약 75억원)정도로 예상되고 있다. 아사리씨가 지방공연 진출의 교두보로 나가노현을 택한 것은 나가노가 오는 98년 동계올림픽 개최예정지여서 연국소품운반이 쉽도록 고속도로가 잘 정비돼 있다는 점 때문.게다가 지리적으로도 인근 지방으로의 이동이 쉽다.따라서 이지역을 중심으로 지방공연을 활성화시키겠다는게 경영자와 아사리 대표의 생각이다. 지방연극을 활성화시키려는 노력은 아사리가 처음은 아니다.시즈오카현에서 무대예술올림픽을 기획하는 연출가인 스즈키 다다가 오래전에 도야마현 이카무라와 미즈시등 지방도시에서 이같은 활동을 펴왔다.여기에 아사리가 불을 지핀 셈이다. 지방연극활성화를 위한 첫 작품으로 사계는 금년 상반기 공연예정인 뮤지컬 「크레이지 포 유」를 비롯해 「지저스 크라이스트」 「꿈에서 깬 꿈」등을 계획하고 있다.도쿄·오사카에서첫 공연한뒤 전국 각지를 순회한다는 것이다. 아사리씨는 지방연극의 활성화와 함께 일본연극의 본격적인 해외나들이도 꿈꾸고 있다.일단 전국에 걸쳐 연극의 붐을 조성한뒤 그 여세를 몰아 일본 연극을 국제무대에 올려 놓겠다는게 그의 야심찬 구상이다. 이처럼 아사리씨가 다부지게 지방연극의 활성화에 관심을 쏟자 도쿄 데이코쿠(제국)극장,나고야의 아이치현 예술극장,도쿄제2극장등 일본 연극계의 내로라하는 대다수 극장들은 아연 긴장하고 있다.도쿄 연극무대의 활성화에 적극적이었던 아사리씨가 예상밖으로 지방진출에 눈을 돌린데 허를 찔렸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같은 아사리씨의 시도가 일단은 성공적인 것으로 평가되고 있어 다른 극장들의 충격은 클수밖에 없다.사계의 지방공연 횟수가 도쿄 공연을 휠씬 상회해버린 것이다. 일부에서는 아사리씨의 이번 변신이 그 성공여부에 따라 일본의 「연극무대지도」를 새로 그리게 되는 계기가 될지도 모른다는 성급한 예측도 나오고 있다.
  • 월드컵유치 이대론 어렵다/송수남 체육부장(데스크시각)

    한국과 일본 사이에 축구외교전쟁이 시작됐다.국제축구연맹(FIFA)이 아시아에서 열리기를 희망하는 2002년 월드컵 유치를 놓고 두 나라가 한판 승부를 벌이게 됐다. 일본은 한국보다 4년이나 앞서 지난 90년에 유치위원회를 발족시켜 활동을 시작,60억엔(약 4백45억원)의 기금을 바탕으로 국제축구계에 영향력을 넓혀가고 있는 중이다. 이시하라 다카시 전 닛산자동차 회장을 위원장으로,전국지사회회장 경단련회장 일경련회장등 정·재계 거물급 인사들을 고문으로 한 유치위원회는 운영위원만도 3백50명이나 된다.올해안에 국회에는 3백∼4백명 정도의 국회의원연맹도 결성된다고 한다. J리그를 출범시켜 국내 축구붐 조성에도 성공했다. 한국에 뒤지는 것이라면 월드컵 본선진출 기록이 없다는 것 뿐이다. 지난 1월18일에야 어렵게 발기인총회를 가진 한국은 월드컵본선 4회 진출과 남북공동개최를 비장의 카드로 최대한 활용한다는 복안뿐 조직체계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있다. 이번 월드컵 유치는 88올림픽때를 그대로 옮겨 놓은듯 하다.서울과 나고야라는 도시명이 한국과 일본이라는 국가명으로 바뀌었을 뿐 선발과 후발주자의 위치도 같고 일본의 일방적인 우세속에 진행되고 있는 점도 닮았다. 그러나 승패까지 그때를 닮는다는 보장은 없다. 우리가 월드컵을 개최하기 위해서는 대략 경기장 증·개축과 운영비등으로 1천5백억원쯤(남북공동 개최가 이루어지면 이 비용은 절반이하로 줄어든다) 투자해야 하는 큰 행사다.그러나 기대수익이 2천5백억원에 달하는 「사업」이므로 모든 비용을 빼고도 수백억원이 남는다.개최능력만 있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 거기에다 한국은 월드컵의 남북공동 개최가 성공할 경우 통일의 주춧돌을 놓는다는 강력한 명제가 있다. 그러나 지금 우리나라의 어디에서도 월드컵을 유치하자는 열기를 느낄 수 없어 안타깝다.곧 프로축구가 열리는데도 획기적인 중흥책을 마련한다는 얘기는 들려오지 않는다.국민적 공감대 형성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현정권이 진정으로 월드컵을 유치할 의사가 없는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든다.의지가 있다면 지금처럼 무관심해서는 안된다.정부지원단을 만들어 적극적으로 유치단을 돕고 이끌어야 하며 정·제계에도 앞장서 참여를 권유해야 한다.우리 사회여건상 민간단체만의 힘으로는 될 일이 아니다. FIFA도 명문화되어 있지는 않으나 개최조건으로 ▲정부가 월드컵개최 환영과 성공을 보장할 것 ▲축구문화와 경기수준이 높을 것을 우선으로 꼽는다.그 다음에 ▲경기장과 숙박시설 ▲통신시설을 비롯,선수단및 보도진에 대한 편의등을 정부가 보증해야 한다고 못박고 있다. 이같은 조건에서 보듯이 월드컵 유치는 정부당국의 종합적 적극적 지원이 따라야 가능한 것이다. 국민들 가운데는 현정권이 체육정책을 너무 소홀히 취급하고 있으며 월드컵도 다음 정권때 시행될 행사여서 열성을 보이지 않는다,정·재계도 현정권이 스포츠에 별 관심이 없기 때문에 형식적인 활동만 하려는게 아닌가 하는 추측까지 생겨나고 있다. 월드컵 유치위원회와 정부는 이같은 의구심을 떨쳐내고 서로 밀고 당겨 월드컵을 유치,민족의 자긍심을 높여줄 것을 기대해 본다.
  • 공관급16명인사/주가대사 신기복/주인니대사 김경철/주호대사 권병현

    정부는 27일 주캐나다대사에 신기복전외무부1차관보,주인도네시아대사에 김경철전외무부기획관리실장,주호주대사에 권병현전외무부외교정책실장을 임명하는등 15명의 해외공관장과 1명의 공사등 공관장급 16명에 대한 인사를 발령했다. 주파키스탄대사에는 고창수문화협력담당대사,주이스라엘대사에는 박동순외무부본부대사,주파나마대사에는 홍순용아랍에미리트대사,주폴란드대사에는 정기옥대전엣스포사무차장이 임명됐다. 정부는 또 주모로코대사에 김동호프랑스공사,주콜롬비아대사에 조갑동외교안보연구원연구관,주요르단대사에 오정일전외무부재외국민영사국장,주쿠웨이트대사에 권찬부산시자문대사를 발령했다. 주방글라데시대사에는 변종규전외무부중동아프리카국장,주아랍에미리트대사에 금정호전외무부국제기구국장,주브루나이대사에 최광식외무부본부대사,주볼리비아대사에는 김상철외교안보연구원연구관이 기용됐다. 주일본공사에는 이종무주쿠웨이트대사가 전보됐다. ◇신주캐나다대사(서울·59)=▲서울대 영문과·행정대학원▲주인도공사▲국제기구조약국장▲주카이로총영사▲주유엔차석대사 ◇김주인도네시아대사(부산·58)=▲연세대 정외과▲외무부 통상국장·정보문화국장▲주싱가포르대사▲주로마교황청대사▲주폴란드대사 ◇권주호주대사(경남 하동·56)=▲서울대 행정학과▲주태국공사▲외무부 아주국장▲주버마대사▲부산시자문대사 ◇고주파키스탄대사(부산·60)=▲성균관대 영문과·대학원 문학박사▲외무부 경제협력2과장▲청와대 의전비서관▲주에티오피아대사▲주시애틀총영사 ◇박주이스라엘대사(경남 함양·59)=▲서울대 법학과▲외무부 의전관▲주요르단대사▲외교안보연구원 교수부장▲주카이로총영사 ◇홍주파나마대사(서울·52)=▲육사졸·미스탠퍼드대 수료▲국방부장관보좌관▲청와대 의전비서관▲주호놀룰루 총영사 ◇정주폴란드대사(경기 평택·52)=▲서울대 법학과·미위스콘신대 석사▲청와대 의전비서관▲외무부 공보관▲주캐나다공사▲주밴쿠버 총영사 ◇김주모로코대사(전남 영암·57)=▲서울대 불문과▲외무부 행정관리담당관▲주유엔 참사관▲주카메룬대사▲주마이애미총영사◇조주콜롬비아대사(서울·58)=▲외국어대 서반아어과·스페인 국립 마드리드대 로만스어과 문학박사▲외무부 미주국 심의관▲주볼리비아대사▲주바르셀로나 총영사 ◇오주요르단대사(부산·50)=▲연세대 정외과▲외무부 여권관리관▲주이란공사▲주가나대사▲부산시자문대사 ◇권주쿠웨이트대사(경북 월성·57)=▲외국어대 영어과·미 캘리포니아 주립대 정치학석사▲주이라크 공사▲주나고야 총영사 ◇변주방글라데시대사(서울·54)=▲서울대 외교학과▲외무부 정보1과장▲주오만참사관▲주브라질 공사▲중동아프리카국장 ◇금주아랍에미리트대사(경북 영주·51)=▲외국어대 독어과▲외무부 홍보문화과장▲주유엔참사관▲국제기구국 심의관·국장 ◇최주브루나이대사(경기 수원·56)=▲서울대 정치학과▲외무부 중동과장▲주가나참사관▲주나이지리아공사▲외교안보연구원 연구관 ◇김주볼리비아대사(서울·55)=▲외국어대 서반아어과▲주스페인참사관▲주콜롬비아참사관▲주멕시코공사 ◇이주일본공사(서울·54)=▲서울대 외교학과·고려대 경제학 석사▲외무부 동아프리카과장▲주인도네시아참사관▲주제네바공사▲주독일공사▲국제경제국장
  • 일 경실련 8대 회장/도요타/새달 7일 정식선출

    【도쿄=이창순특파원】 일본 경제단체연합회(경단연)는 14일 현재 부회장을 맡고 있는 도요타 쇼이치로(풍전장일랑·68) 도요타 자동차 회장을 오는 5월 임기가 끝나는 히라이와 가이시(평암외사·동경전력상담역·79)회장 후임으로 경단연회장에 내정했다. 경단연은 다음달 7일 정·부의장 회의를 열어 도요타 쇼이치로 부회장을 회장으로 정식으로 선출할 예정이다.도요타 회장 내정자는 오는 5월 하순에 열리는 경단연 정기총회에서 제8대 회장으로 취임하게 된다. 1937년 도요타자동차를 창업한 도요타 기이치로(풍전희일낭)의 장남으로 나고야대와 동북대대학원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한 공학박사인 쇼이치로 부회장은 1952년 입사 이래 줄곧 도요타자동차에서 일해왔다.
  • 구주의 나고야성박물관(일본속의 한국문화:13·끝)

    ◎“조선정복” 풍신수길의 야욕 그대로 보는듯/섬뜩한 비문 “바다건너 섬들을 겨누어 보다”/“역사의 아이러니” 거북선·일 판옥선 나란히 임진위란이 아직 끝나지 않고 풍신수길이 살아 있을 때 어리석게도 우리나라 사신이 명나라 사신을 따라 강화조약을 맺자고 현해탄을 건너간 일이 있었다.1596년 8월.임란 발발 4년만의 일이었다. 일행이 대마도와 이키섬을 거쳐 구주 본토에 다다랐을 때 바닷가 언덕 위에 거대한 성벽이 치솟아 있고 한 복판에 5층 누각이 내려다 보고 있었다.이것이 바로 나고야(명호옥:낭고야)성으로서 풍신수길의 소위 「조선정벌」전진기지였다. 나고야성 5층 누각 위에 올라서면 멀리 일기·대마 그리고 조선본토까지 보인다는 곳이다.이곳에 최근 기념박물관이 섰다고 해서 가보았다.이름하여 명호옥성박물관.개관 2개월만에 3만명이 다녀갔다면서 서곡관장이 기뻐하고 있었다. 『반대도 많았습니다만 침략전쟁을 반성하기 위해 꼭 필요하다는 지방민의 여론이 결국 이겼습니다』 ○군국주위자가 새겨 먼저 나고야성지 위에 올라서서 북쪽바다를 바라보았다.『한국이 보인다』는 소리를 듣고 바다를 건너다 보니 정말 두 나라는 가까운 나라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그러나 아직도 일제때 일본군의 해외정벌 성지로서 세워놓은 기념탑이 유령처럼 모습을 드러내놓고 있었다.어떤 광신적인 군국주의자가 새겨놓았는지 「태합께서 바다 건너 섬들을 겨누어 보시다」라는 글이 보인다.태합이란 바로 풍신수길을 두고 한 말이다.아무리 지난 일이라 하더라도 섬뜩한 글귀이다. 성지에서 내려오면 새로 완성된 박물관 건물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는데 진열실을 둘러보고 느낀 소감이 『아직도 한일 두 나라가 보는 임진왜란의 역사적 의미에는 큰 시각차가 있다』는 것이었다.4백년이나 지난 옛날 사건이 이토록 오래오래 상흔을 남길 줄이야 아무도 몰랐으리라. 박물관 진열실에서 가장 강한 인상을 남기는 것이 거북선 모형이다.거북선 바로 옆에 똑같은 크기로 일본 수군 판옥선이 전시되어 있는데 두 배는 서로 싸우지 않고 나란히 사이좋게 서있다. 내용을 잘 모르는 제3국인이 이 진열실을 일별하면 어느 쪽이 침략자이고 어느 쪽이 피침략자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것이다.일본인들이 볼 때는 특히 불쾌하지 않게 잘 꾸며 놓았다.3만명이 다녀간 이유를 알것 같았다.만일 우리나라에 이런 박물관을 지었다면 이렇게 형편없이 가해자와 피해자의 구분없이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라 생각했다. 복강(후쿠오카)에는 아직도 진주성을 본떠서 만들었다는 성지와 임란때 납치해온 당인(가라비토 즉 한인)정이 남아 있다.그들 한인들은 도공도 아니요,아무것도 아닌 무고한 농민들이었다.임란때 끌려간 우리 동포들 말고도 후쿠오카 땅에는 불과 50여년전 이곳 탄광에서 혹사당하다 죽어간 너무나 많은 한국청년들의 넋이 있는데 지금도 위령제 한번 지내주지 않은 채 한국관광객이 드나들고 있다. ○임란직전 국력 비슷 임란이 끝난 뒤 서둘러 국교정상화를 했다가 큰 손해를 본 조선정부.배상금과 송환인을 받기는 커녕 매년 30만냥이란 거액의 돈을 대마도에 지불하면서까지 평화를 유지하려 했던 가엾은 조선왕조의 국력과 외교력.그때를 생각하면 임란이 우리나라에 준 타격은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다.간단히 말해서 15세기말 임란이 일어나기까지는 한일 양국의 국력은 비등비등했었다.그러나 난이 끝난 뒤 두나라 국력의 격차는 1대3으로 기울어지고 말았다.일제침략을 받은 뒤에는 그 격차가 1백분의1,2백분의1로 떨어져 오늘에 이르렀다.그런데도 한일관계의 장래를 걱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이상하다 하겠는데 바로 신정초에 일본의 친지(정명으로 해 두겠다)로부터 이런 내용의 서신을 받았다. 『작년 일본의 호소카와(세천)총리가 한국을 방문하여 새삼스레 식민지지배에 대한 사죄발언을 했습니다.사죄발언 자체는 평가받을만한 일이나 다른 일면이 있다는 사실도 잊지마십시오.즉 금후에 예상되는,보다 대담한 (일본)자위대의 해외파견에 대한 다른 아시아 여러나라의 비판을 미리 막아 두려는 속셈이 깔려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솔직하게 말하면서 호소카와내각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구자민당계세력이 왕년의 매파였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면서 『장차 4,5년 안에는 꼭 일을 저지를 작자들』이라고 경고하였다.호소카와의 얼굴 생김새로 보아 전쟁을 일으킬 인물이 아니라고 속단할수 있다.그러나 한일관계라는 것은 그리 간단하고 달콤한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명심하여야 할 것이다.임란이 끝난 뒤 2백년간 통신사라는 평화의 사절단이 현해탄을 건넜다.그러나 그것을 지금의 시점에서 진정한 의미의 「평화의 시대」였다고 회고하는 사람은 없다.1894년 갑오위란이라는 또하나의 침략전쟁을 준비하는 시대로 치부해야 하기 때문이다. 내년으로 광복 50주년,일제패망 반세기를 맞는다.광복후 한 시대를 넘기면서 작금 돌아가는 국제관계의 변화를 주시해야 할 것이다.일본이나 중국에서는 민족주의가 강하다.한국에도 나름대로 강했다고 생각되는데 어찌된 일인지 최근에는 국제주의라고 하는 달콤한 슬로건에 현혹되어 이 나라는 동양 3국중 하나가 아닌 것처럼 착각하는 어른과 어린이들이 늘어가고 있다. 명호옥 언덕 위에서 본 비문:『태합(풍신수길)이 바다 건너 섬들을 겨누어 보다』란 글귀가 자꾸 눈앞에 어른거리는 것을 필자만의 기우라 비웃을수 있는 것일까.
  • 한국인 5백71명/일 정부,강제추방

    【도쿄 연합】 일본 법무성은 불법체류 외국인에 대한 집중단속을 벌여 한국인 5백71명을 비롯한 2천6백97명을 강제 추방했다고 26일 발표했다. 이를 성별로 보면 남자가 1천6백98명,여자가 9백99명이며 나라별로는 태국인이 6백32명으로 가장 많고 다음이 한국인이며 세번째는 말레이시아인 4백53명등 순이다. 이번 단속은 주로 도쿄와 오사카·나고야등지에서 집중적으로 이루어졌으며 매춘과 여권및 비자 위조등이 적발됐다. 강제 추방당한 외국인중 90% 이상인 2천4백91명이 불법취업자로 이중 남성의 경우 말레이시아인이 3백39명으로 가장 많고 한국(2백78명),이란(2백65명)등 순이며 직종은 공원과 건설현장 인부등이 대부분이다.
  • 접목 선인장 1백만불 수출/청풍/이색상품 생산업체들

    ◎고려상감가구 개발… 급성장/사임당/고가 묘비석 전량 일에 팔아/대한석재 제30회 무역의 날에 상을 탄 업체 중에는 일반인이 생각하기 어려운 독특한 상품을 개발,일본·미국 등 선진국에 거뜬히 수출하는 업체들이 적지않다. 아이디어 경쟁에서 승리한 업체들이다.묘비석·선인장·만화영화·패러글라이더·고려상감가구 등 기발한 상품으로 세계에 우뚝선 이색업체들을 간추려 본다. ◎…1백만불 탑을 수상한 청풍무역상사(사장 김헌구)는 열대식물인 선인장을 수출하는 업체다.꽃의 나라인 네덜란드를 비롯해 미국·일본 등 세계 14개국에 접목 선인장을 심고 있다. 수출액이 지난해 98만달러에 이어 올해는 1백20만달러를 넘어설 전망이다.국내 화훼류 수출업체 가운데 1백만달러 수출을 달성한 것은 청풍이 처음이다.지난 78년 일본에서 선인장 접목기술을 배운지 6년만인 84년부터 일본을 따돌리고 세계 최대의 선인장 수출업체로 발돋움했다. ◎…대통령 표창을 받은 대한석재산업(대표 박원덕)은 묘비석을 수출해 대일역조 개선에 앞장서는 기업이다.사후를 중시하는 일본인들의 사고에 맞춰 화강암을 원석으로 한 최고급 묘비석만을 생산,전량 일본에 수출한다. 지난 89년 설립후 매년 30% 이상씩 성장,지난해 수출은 5백15만달러에 달했고 올해 목표는 8백만달러이다.수출가는 1세트에 5천달러선. ◎…원목가구에 고려상감기법을 표현한 것은 사임당 가구(대표 이흥업)가 처음이다.지난 79년 화재로 전 자산을 잃었으나 3년간의 연구끝에 목상감 기법을 도입,신사임당의 초충도를 가구 표면에 새기는데 성공했다.지난 85년 나고야 박람회에 출품한 뒤 공급이 달릴 정도로 수요가 크게 늘고 있다.지난 해 수출은 54만달러지만 성장성을 인정받아 소액수출업체로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세계 패러글라이더 시장에서 「에델」하면 프로들도 고개를 끄덕인다.대교엔터프라이즈(대표 서성준)는 세계 최대의 패러글라이더 생산업체이다.시장 점유율 35%를 차지하며 품질·신뢰도·가격 등 모든 면에서 최고를 자랑한다.92년 세계 20개 패러글라이딩 대회 중 「에델」이 13개 대회를 휩쓸었다.지난 83년 설립된 뒤 자기 상표로만 수출,지난 해 6백55만달러를 기록했고 올해는 7백만달러에 육박할 것으로 보인다. ◎…상공자원부 표창을 받은 애니비전 코리아(대표 이성희)는 세계적 만화영화 제작업체인 미국 필립노만사에 만화영화 필름을 공급한다.미 20세기 폭스사의 「심슨 가족이야기」등 그동안 수출 작품만도 50여편을 넘는다.지난 91년 설립,1년만에 2백만달러를 돌파한데 이어 지난해에는 무려 95.7%나 늘어난 4백73만달러를 수출했다.
  • 물에 뜨는 초경량금속 개발/일 나고야공대 알루미늄무게의 3분의 1

    일본 과학자들은 최근 세계 최초로 물에 뜨는 초경량 금속을 개발했다고 로이터통신이 25일 보도했다. 나고야공대의 고바야시 요 교수팀이 개발한 이 금속은 마그네슘과 리튬 합금으로 만들어져 비중이 0.95밖에 되지않는 초경량이어서 비중이 1인 물에서도 뜰 수가 있다. 고바야시 교수는 이 금속을 경량 소재가 요구되는 노트북컴퓨터와 항공기,우주선 등을 제작하는 용도로 활용할 수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고바야시 교수는 이번에 개발된 초경량 금속은 무게가 알루미늄의 3분의1 밖에되지 않는 등 많은 장점을 갖고있어 앞으로 기존의 경량금속들에 대체 사용될 가능성이 클 것으로 예상했다.
  • 하은생물학상 수상 연세대 강빈구교수/“호르몬 식물생리학 연구30년

    ◎총 60여편 논문 발표… 국제적 인정받아 국내 3대 자연과학분야 학술상중 하나인 하은 생물학상(이사장 정순희)의 제25회 시상식이 지난20일 성균관대에서 열렸다. 「한국식물도감」「원색식물도감」등을 냈으며 우리 생물학계를 일으킨 고 하은 정대현박사가 68년 5·16민족상 학술부문 수상을 기념해 만든 이 상은 올해 30년간 식물생리학을 전공한 강빈구교수(56·연대)가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역사와 권위를 갖고 한국생물학계에 활기를 불어넣어온 하은 생물학상을 수상하게돼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강교수는 연대를 나와 미국 미시간대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미시간주 원자력청 식물학연구소에서 포스트닥,페어차일드 열대식물연구소의 연구원을 지내고 76년 귀국,국내뿐 아니라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60여편의 논문을 발표해 생물학 발전에 기여해왔다. 그의 연구는 식물의 생장에 간여하는 빛등 물리적인 요인뿐아니라 식물연구의 중심분야인 호르몬등 화학적인 요인이 성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 기작을 규명하는데 집중돼 왔다. 『식물호르몬에는 옥신과 에틸렌등 5가지가 있으며 옥신과 에틸렌의 합성등 여러측면의 연구를 통해 옥신이 에틸렌의 생성을 유발시키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그의 연구는 국제학술지는 물론 생물학 교과서에 수록,인용되고 있다.피토크롬이라는 식물의 광수용체가 식물의 성장과 분화에 어떻게 작용하는가등을 밝힌 「피토크롬 관여 적색광 반응」및 「호르몬 옥신과 에틸렌의 상호관계」「옥신수용체,전달체및 옥신감수성」등이 대표적인 연구로 꼽힌다. 미국 스미소니안 환경연구소 객원연구원,일본 나고야대 생화학제어연구시설 초빙교수등을 지냈고 주말이나 방학도 없이 묵묵히 연구해 온것으로 유명한 그는 『최근 대학이나 국가에서 기초과학에 대한 지원이 점차 늘고 있다』며 국내과학발전 전망을 밝게 본다.
  • 「위안부급모」 일제 광고 첫 발견

    【도쿄 연합】 2차대전 말기인 지난 44년 조선총독부가 실권을 쥐고 서울에서 발행하고 있던 「매일신보」에 「군위안부급모」 광고가 나온 사실이 밝혀졌다고 일본 교도통신이 18일 보도했다. 교도통신은 군대 위안부등 일제시대 강제연행 문제를 조사하고 있는 나고야시의 시민단체 「아이치(애지)현 조선인 강제연행 역사조사반」이 이 광고를 발견했다면서 한반도로부터 군대 위안부를 직접 모집한 자료가 발견된 것은 지극히 희귀한 일로 연행·동원등 실상을 파악하는데 단서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 대한투자 최대장애/일본,노사분규 지적

    일본기업가들은 노사분규를 대한투자의 가장 큰 걸림돌로 생각한다.그러나 근로자의 교육수준이 높고 정치가 안정된 점은 투자매력으로 꼽는다. 정부가 지난 6일부터 15일까지 박용학무협회장을 단장으로 도쿄·나고야·오사카 등지를 돌며 가진 투자유치설명회에서 일본의 기업가들은 과거 스미다전기의 노사분규를 예로 들며 한국의 노사분규를 가장 큰 대한투자 애로사항으로 들었다.
  • “녹차 효과” 과학적 연구 활기

    ◎한국식품과학회 내일 롯데호텔서 「국제심포지엄」/일·중·미·러 등 연구 전문가들 토론·발표회/「유방암·간암 억제」 등 다양한 효능 밝혀 녹차의 효과는 과연 무한대인가. 녹차는 이미 우리에게 노화를 예방하고 체내 중금속을 제거하며 암 발생을 억제하는등의 효과가 있는 식품으로 알려져 있고 우리나라뿐 아니라 외국서도 활발히 연구하고 있다. 한국식품과학회가 각국의 녹차 전문가들을 초청,2일 롯데호텔에서 제2회 국제 녹차 심포지엄을 열고 녹차의 항암성을 비롯한 생리활성과 생산·가공·성분에대한 최근의 연구동향을 파악하고 최신 이론을 소개키로 해 관심을 모은다. 이번 심포지엄에는 주최국인 한국을 비롯’미국·일본·미국·러시아·인도·대만등에서 녹차연구 전문가들이 참가’건강에 있어서 차의 기능부터 AIDS 바이러스에대한 효과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발표할 계획이다. 일본 나고야 시립의대 이토 노부유키 학장은 「유방암과 간암에대한 녹차성분의 억제효과」란 발표를 통해 녹차에 함유된 카테킨류라는 성분이 십이지장암·결장암·폐암·피부암등의 여러실험에서 발암 억제작용이 있음을 밝힌다. 이토 교수는 15마리의 암컷쥐에 강력한 발암물질을 위내에 투입하고 1주일후부터 1%녹차 카테킨을 함유한 녹차사료를 투여’36주후에 유방의 종양을 검색한 결과 발암물질만 투여한 쥐는 33%의 생존율을 보인반면 카테킨을 첨가한 쥐는 94%의 높은 생존율을 나타냈다고 발표했다.이런 실험은 간암에서도 비슷한 결과로 나타났는데 이토 교수는 이를 근거로 만일 1일 3잔이상의 녹차를 마시면 자연적인 암발생까지도 막을 수 있다고 밝힌다. 또 이대 식품영양학과 이서래교수는 흰쥐 40마리에 3주일간 중금속을 투여하면 간·신장·대퇴골등에 납이나 카드뮴등의 중금속 함량이 크게 증가하는것을 볼 수 있는데 녹차음료를 함께 투여한 군에서는 간과 대퇴골의 중금속 함량이 납은 40∼50%,카드뮴은 20∼40%의 뚜렷한 감소를 보였다고 그 효능을 발표한다. 이밖에도 일본 시즈오카 약대의 이사오 토미타 교수는 「노화 및 돌연변이에대한 녹차의 저해효과」란 논문을 통해 녹차의 카테킨과베타 카로틴 성분이 동물 실험결과 노화의 원인인 과산화지질의 증가와 돌연변이 발생을 억제했는데 이는 녹차가 총 콜레스테롤을 떨어뜨리고 혈장에서의 과산화지질의 증가를 막아 산화적 스트레스로부터 인체를 보호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함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 한국화가 송수남씨(이세기의 인물탐구:34)

    ◎화폭에 시정 가득… “시인같은 화가”/수묵현대판화 개척… 「남천산수」는 독보적 경지/유연하면서도 예리한 운필로 화력 30년 빛내/가장 한국적인 소재에 집착… “동서양 넘나드는 화격” 꿈꿔 남천은 시인같은 화가다.그는 그림으로 시를 쓰는 시인이다.그의 그림만 봐도 알 수 있다.먼산 먼강 안개 서린 먼동,잔잔한 금강이며 섬진강 얼어붙은 겨울산하까지도 그의 그림속에는 교교한 시정이 담겨있다.공간에 뜬 몇개의 산이 담묵 농묵으로 꿈결같은 원근을 이루거나 또는 보석처럼 빛나는 수묵채색일 때도 아름다운 여백을 살려 화면전체에 서정시가 흐르는 듯한 향수를 품고 있다. 그가 쓰는 먹은 모든 색의 출발이자 모든 색깔을 포함한 색채다.어둠이 흩뿌리는 혼묵,비내리는 잿빛하늘의 회묵일지라도 단순한 검은색인가 하면 전혀 검은 색깔이 아닌 현묘 심묘의 먹색일색이다.그는 눈부시게 하얀 백지위에서 먹으로 백색을 백답게 살리고 먹색을 가장 먹답게 표현할 줄 아는 화가다. 색깔과 색깔을 배합해서 얻어지는 효과와는 달리 물과 먹의 비율은그 농도를 계산할 수는 없으나 모필이 한지에 닿는 순간의 유연성과 날카롭고 경쾌한 선조,그 번짐이 내는 의외의 조형에 흠뻑 빠져든듯 그는 지난 수년간 수묵을 매재로 하는 긴 실험과 모색의 시기를 거쳐왔다. 그리고 수묵추상 발색산수 동양화판화에서 다시 발묵산수로 이어지는 그의 수묵작업은 이제 포만과 방출의 단계를 통과하여 그만의 독자적인 「남천산수」를 이루고 있음을 인정받고 있다. ○충격던진 첫 개인전 그의 이런 실험정신은 그가 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할 때도 일관되게 지켜지던 그만의 방법이다. 이대입구 신촌 하숙집 골방에 틀어앉아 낙엽이란 낙엽은 모조리 주워다가 수북하게 쌓아놓고는 이를 화면에 이리저리 꼬아 붙이는 나뭇잎 콜라주,켄트지에 유화 한지에 수채화등 그가 무엇을 어떻게 선택할 것인가를 스스로 모색하고 타진한 시기라 할 수 있다. 그때의 「높지도 낮지도 않은 고향의 뒷동산」과 「강언덕 버들개지 꽃샘바람에 한바탕 춤추고 나면 온산은 진달래가 물들어」샤갈과 드가를 변주한 듯한 영롱한 색채는 그가 범상치않은 화가로 탄생될 것을 그의 주변에 일찍이 예감시켰다. 화력 30년의 화가로서나 대학교수로서나 그는 이제 중진의 위치다. 그러나 스승의 문하에서 스승의 화풍을 이어받은 다른 화가들과는 달리 혼자서 자신의 세계를 암중모색으로 성취한 편에 속한다.이에대해 그 자신도 「누구에게 배운 적도 영향을 받은 바도 없다」고 말한다. 그래서 초기 「한국화」전이란 타이틀로 그가 첫 개인전을 열었을 때는 한지와 먹,탑이나 기와지붕등 동양화재료와 한국적 테마를 택하고 있으면서도 지금까지의 동양화에서의 설채와 운필을 벗어나 서양추상화를 보는듯한 충격을 던졌다. 원로미술평론가 이경성씨는 『시류에 영합하지 않은 송수남 한국화는 새로운 공간예술을 실천한 예로서 70년대 화단에서 독보적인 위치로 우뚝 설것임』을 다짐했었다. 70년대후반 실경산수가 한창 붐 일때도 그의 산은 진채표현의 중량감을 과시하여 적묵산수의 특징을 강조했고 담백한 여운을 느끼게 하는 수묵과는 달리 강렬한 발색산수에서 중성적 느낌을 안겨주는 다채로운 채색과분방한 화풍을 구사해 보였다. 야트막한 구릉과 하천을 부드러운 선과 극도로 절제된 간결한 구성으로 암시하는가 하면 상상을 초월하리만큼 거대한 산봉은 휘염의 범람인듯 화면을 압도하기도 한다. 그곳에는 시의 빛과도 같은 섬세한 장식이 둥우리를 틀고 우뚝한 삼각형,묵취와 묵광,산정에서 갑자기 솟아오른 빨갛고 동그랗고 자그마한 해만으로 먹구름같은 화면에 눈시린 청량감을 뿌렸다. ○동양화서 추상 시도 그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동양화가로서는 드물게 「산」을 주제로한 판화를 제작,목판·석판·실크스크린·모노타입등 4종류를 찍어 수묵화의 수묵현대판화로서의 새로운 화경을 열었고 88년 「자연과 도시」전도 빼놓을수 없는 탁발한 전시로 손꼽힌다. 굵거나 묽은 선으로써 시작과 끝을 흐려뜨리면서 드로잉적인 필선과 발묵의 번짐으로 독특한 도시의 서정을 구현,울창한 잡목숲과도 같은 어지러운 도시의 여러 풍경을 특징적으로 묘사해 냈다. 도시나 산하외에 그가 즐겨 그리는 미루나무는 먹으로 화면을 가득채운 동양화의 현대추상을 시도한 선시리즈와 고향으로 가는듯한 휴식을 살린 첨단과 향수의 두면을 대비적으로 선보여주고 있다. 붓끝에 힘을 주어 사군자를 치는듯한 한계를 자유하여 그는 이제 모필만이 갖는 유연성으로 동서양을 넘나드는 그만의 화격을 이루는것이 꿈이다. 남천으로서는 어느구석에도 그 겉모습에선 화가의 티는 찾아볼 수 없다. 아마도 그런 「티」는 그에게는 지난 시절의 치기일지도 모른다.문학과 철학에 빠져 세상을 온통 부정적으로 바라보던 니힐리스트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이른바 가난이면 가난, 슬픔이면 슬픔, 외로움이면 외로움이었던 회오리가 한바탕 지난후 거추장스러운 껍질을 훨훨 벗고 「평범」과 「무심」을 과장하는 것처럼도 보인다. 굵은테 안경으로 얼굴을 가리고 「다 그런거지 세상이란 그런거지」털털 웃으면서 술잔을 기울이는 그를 바라보노라면 지난 날이 흔적없이 허무하게 느껴진다는 수류운공이 떠오른다. ○단체활동 개입 안해 그러나 그는 여전히 어눌하고 치밀하지 못하여 지난 90년 한 신문사가 주는 예술대상을 수상하는 자리에서 「상을 제정해주신 신문사에 감사한다」는 인사말을 여러차례 연습까지 해놓고는 막상 단상에 올라 다른 신문사 이름을 들먹이며 중언부언하는 바람에 관계자와 좌중을 난처하게 했었다. 또 두주불사로 학생들과 어울려 춤을 추고 사심없이 놀다가도 갑자기 한밤중에 전화를 걸어 『한국적이란 무엇일까.중국하면 도가 떠오르고 인도하면 명상이 떠오르듯이 「한국」하면 뭐가 먼저 생각나지?』심각하게 추궁하여 주위를 당혹케하기 일쑤다.이런 한국적인데 대한 집착은 75년 스웨덴 스톡홀름국립박물관 초대전이후 수십차례의 세계미술전에 참가하면서 생긴 징후다. 그는 전북 전주에서 농가 송대석씨의 3남매중 외아들.조부가 쓰던 먹과 벼루가 있는 환경에서 자라나 일찍이 그림에 재능을 보였고 그의 소원은 언제나 그림을 그릴 수 있는 환경을 성취하는 일이었다.소원대로 지금은 서교동 그의 집에 마련된 80여평의 드넓은 화실에서 마음껏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되었고 바로 이를 이루기 위해 그는 끝없이 노력해왔다고 할 수 있다.가족은 부인 백명희교수(이대사대학장·54)와 1남2녀.그림을 그리는 자녀는 없다. 화가친구보다는 옛날 신촌하숙방에서 함께 뒹굴던 소설가 이제하 시인 강위석 등과 즐겨 어울리고 80년대 수묵화운동을 함께 했던 후배 제자들이 있지만 화단에서의 단체활동등에는 전혀 개입하지 않는 화가로 유명하다. 사람들은 남천을 소탈하고 소박하다고 말한다.대체로 자신의 일에만 충실할뿐 그는 만사에 서툴고 머뭇거리는 형이다. 그러나 가까이 화단일부에서 그의 후배들이 말하는 남천은 뚝심과 정열,실험정신이 투철하여 기왕에 있어온 타성을 묵살하고 언제나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도전적 욕망이 꿈틀대는 야심파다.또는 감정이 격하고 제스처가 명확하며 일을 벌이면 끝장을 내고 한번 눈밖에 난 사람은 끝끝내 돌아보지않는 독선적인 면이 지나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림의 완성을 설계 어느것이나 화가로서 인간으로서 그가 지닌 일면일 것이다.사람이 나이들면 환경과 시대변화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듯이 아마도 남천 역시 그런 여러 측면을 복합적으로 지닐 수도 있다.그래선지 그는 다른 예술과는 달리 미술은 음악처럼 세계도전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을 서슴없이 긍정한다.그리고 한때 지나치게 탐닉했던 화려한 색채를 단순하게 저버린것이 아니라 이를 오채의 먹으로 종합한다는 의지다. 그는 결국 시와 철학으로 살찌운 마음속에다 그의 수많은 붓들을 담가두었다가 어느날 하얀 한지위에 먹만의 조형으로 세계화단에 발돋움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그는 그림의 완성,그의 그림의 끝을 알고있는 이시대 소중한 화가의 한사람임에 틀림없다. □연보 ▲1938년 전북 전주출생 ▲전주중앙국교 서중­공고졸업 ▲1956년 홍대 서양화과 입학 ▲군복무후 1961년 동양화과로 전과 ▲1963년 홍대 졸업 ▲1962년 국전입선후 신광여고­이대부고교사 ▲1967년 제9회 동경국제비엔날레 출품(동경) ▲1969년 송수남 「한국화」전(신문회관화랑) ▲1970년 인도 트리엔날레 출품(뉴델리) ▲1972년 한국현대작가7인전(샌프란시스코 아시아재단화랑) ▲1973년 송수남 개인전(신세계화랑) ▲1973년 상파울루 국제비엔날레(상파울루)한국 동양화10인전(동경) ▲1974년 양지화랑 초대개인전 ▲1974년 현대 화랑 기획전(현대화랑)현대한국동양화전(나고야) ▲1975년 스웨덴 스톡홀름국립박물관 초대개인전 ▲1976년 한국현대 동양화대전(국립현대미술관) ▲1977년 한국 미술대상 초대전(국립현대미술관) ▲1978년 맥향화랑 초대전 ▲1978년 뉴욕 한국화랑 초대개인전 ▲1978년 한국미술20연 동향전(국립현대미술관) ▲1979년 한국미술­오늘의 방법전(문예진흥원 미술회관) ▲1980년 하와이대 한국학센터 개관기념 초대전 ▲1981년 백상미술대전 한국현대작가 드로잉전(뉴욕 브루클린미술관) ▲1983년 송수남전(현대화랑) ▲1983년 초대 송수남 개인전(뉴런던 코네티컷대,뉴욕브루클린대 시카고 스코키시립미술관) ▲1984년 송수남 개인전(뉴욕 한국문화원) ▲1985년 송수남 판화전(조선화랑) ▲1986년 한국화,오늘과 내일 전망(워커힐미술관) ▲1986년 한국화 100연전(호암갤러리) ▲1986년 동양화 초대전(강남현대화랑) ▲1986년 송수남 초대전(부산진화랑) ▲1988년 자연과 도시전(동산방화랑) ▲1989년 남천 판화전(청작미술관)해마다 국립현대미술관 주관 현대미술초대전,한국의자연전,서울미술대전,현대작가초대전 등 단체전 수회출품 동아미술제심사위원,문예진흥원 미술대전심사위원,운영위원 역임〔현재〕서울 미술대전 운영위원,서울시 예술위원,홍대교수(홍대박물관장) 중앙예술대상수상 「수묵화」「동양화」「자연과 도시」「남천사군자(상·하)」
  • 학력 허영심 파고든 “상혼”/학위논문 대작 어떻게 했나

    ◎유명대 출신 대학원생 수백명 고용/“논문지도” 신문광고후 희망자 모아/석사 2백만원·박사 1천만원대… 대부분 심사 통과 10일 검찰에 적발된 석사학위논문 대작사건은 실력보다는 학벌과 학력을 중시하는 사회풍토와 그릇된 인사들의 지적허영심,일부 특수대학원의 형식적인 논문심사,그리고 이를 교묘히 파고든 상혼이 함께 만들어 낸 합작품으로 볼 수 있다. 구속된 대관자료개발원장 최석봉씨는 명문인 서울법대 출신으로 학원강사를 거쳐 경찰관 승진시험 및 대학입시 교재를 출판하는 「대관문화사」를 설립,운영하다 90년부터 독학사제도가 생긴뒤 사업영역을 확장,학사고시 교재까지 만들기 시작했다.그러나 기대했던 것만큼 사업이 되지않자 생각을 바꿔 다소 경제적 여유가 있는 석·박사학위취득 희망자들을 대상으로 한 학위논문대작사업에 뛰어들었다. 최씨는 이 사업의 일단계로 지난 4월부터 9개 중앙일간지에 광고를 내 서울대·파리대·나고야대·대만대·모스크바대등 국내외 유명대학 출신 1백98명을 논문대작을 위한 「옵서버」로 채용했다. 「옵저버」들의 모집을 마친 최씨는 지난 5월 동작구 노량진동에 「대관자료개발원」이라는 업소를 차려놓고 다시 두달여동안 중앙일간지에 90여차례(7천만원어치)나 「2백명의 석·박사학위 소지자가 논문자료를 수집해주고 지도해줌」이라는 내용의 광고를 집중 게재,주로 직장을 가지고 있는 특수대학원생들을 끌어들였다. 석사논문은 2백만∼2백30만원,박사논문은 1천2백만원씩을 받아 두달남짓에 5천여만원을 거뜬히 챙긴 최씨는 검거 당시에도 70여명의 의뢰자와 상담중일만큼 호황을 누렸으며 이번에 검찰에 잡히지 않았으면 논문의뢰 성수기인 8월부터는 「떼돈」을 벌었을 것으로 검찰수사관들은 짐작했다. 최씨는 사업가로서의 수완을 발휘,서울뿐 아니라 부산·창원·대전 등 3개지역에 지사를 두고 지방으로까지 사업을 확장하려다 적발됐다. 인덕전문대 출신의 이규철씨(30)는 기존 논문과 자료등을 짜집기만 해도 학위논문을 작성할 수 있다는 점에 착안,대작업계에 발을 내딛었다. 대학가 주변에 논문작성작업을 도와준다는 전단등을 배포해영업을 시작한 이씨는 점차 전문 대작요원의 필요성을 느끼고 고교후배 소개로 한국과학기술원 경영정책학과 박사과정에 있는 김선민씨(28·구속)를 논문 1편당 60만원씩 주기로 하고 전문요원으로 채용했다. 이씨는 특히 논문의뢰자가 바쁘다는 구실로 논문대작자를 대학에 보내 논문지도까지 대신받게하는 대담성을 보여 22편의 대작논문 가운데 21편이 무사히 심사를 통과,석사학위를 받아내게 했다. 또 임원택씨와 한재희씨도 각각 「미래사회과학연구소」와 「논문자료센타」라는 그럴듯한 사무실을 차려놓고 대학가 주변에 홍보전단을 돌리거나 대학원생 주소록을 입수,매학기초 학위논문 제출예정자 집으로 전단을 보내 논문의뢰자들을 유인해 톡톡히 재미를 보다 이번에 덜미를 잡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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