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나가사키
    2026-01-29
    검색기록 지우기
  • 금천구
    2026-01-29
    검색기록 지우기
  • 회고록
    2026-01-29
    검색기록 지우기
  • 전통시장
    2026-01-29
    검색기록 지우기
  • 구더기
    2026-01-29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218
  • [김대영의 무기 인사이드] 日 도쿄 불태워버린 美 폭격기 ‘B-29 슈퍼포트리스’

    [김대영의 무기 인사이드] 日 도쿄 불태워버린 美 폭격기 ‘B-29 슈퍼포트리스’

    지금으로부터 70여 년 전인 1945년 3월 9일 일본 도쿄. 밤늦은 시각 공습경보 사이렌이 울리고 하늘에 미 육군 항공대 소속의 B-29 폭격기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날 B-29 폭격기의 공습은 과거와 매우 달랐다. 고공으로 비행하던 B-29 폭격기들이 저공으로 날아들었고, 폭탄 대신 적의 표적물을 소각 파괴할 목적의 소이탄을 가득 싣고 있었다. 태평양의 사이판과 티니안섬에서 출격한 325대의 B-29 폭격기들 가운데 279대가 도쿄 상공에 등장했다. 3월 10일 자정 무렵 B-29 폭격기들의 폭탄창이 열리고, 38만 1300발의 M69 소이탄이 지상으로 투하된다. 도쿄 시내 8500여 곳에 소이탄이 떨어졌고 치명적인 화재가 연달아 발생했다. 여기에 바람까지 더해 화재는 대규모로 확산되었다. 폭풍처럼 불이 번지면서 화재진압 노력은 실패로 돌아간다. 무수한 인명이 화마에 사라졌고 당시 일본 경시청 발표에 따르면 사망자는 8만여 명에 달했다.또한 이재민은 100만여 명 그리고 피해주택은 26만여 채에 달하는 것으로 보고되었다. 하지만 전후 민간조사에 따르면 실제 사망자 수는 10만 명이 넘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 날 공습은 도쿄대공습의 시작에 불과했다. 도쿄대공습의 주역은 B-29 폭격기였다. B-29 폭격기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만들어진 항공기 가운데 가장 큰 크기를 자랑했다. 유럽 전선에서 활약한 B-17, B-24와 달리 태평양 전선 특히 일본 본토를 공습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이 때문에 B-29 폭격기를 개발할 당시 미 육군 항공대는 막대한 폭탄탑재량과 함께 4800km 이상의 항속거리를 요구했다. 1942년 9월 21일 첫 비행에 성공한 B-29 폭격기는 당시 미국이 만든 폭격기 가운데 유일하게 여압장치를 갖추었다. 여압장치란 높은 고도를 비행하는 항공기 내부의 기압을 조절해 주는 장치로 일반적으로 8천 피트 즉 고도 2.4km 상공의 기압을 기내 기압으로 유지하도록 해 준다. 유럽 전선에서 활약했던 B-17이나 B-24 폭격기의 경우 여압장치가 없어, 추위를 이겨내기 위해 두꺼운 항공점퍼를 입어야 했고 산소호흡기도 착용해야 했다. 반면 여압장치가 있었던 B-29 폭격기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자체무장으로는 2연장 12.7mm M2 중기관총을 장착한 원격조종 포탑을 기체 네 곳에 설치했고, 기체 꼬리 부분에는 2연장 12.7mm M2 중기관총 혹은 20mm 기관포 1문이 장착했다. 막강한 자체무장과 많은 폭탄탑재량으로 B-29 폭격기는 슈퍼포트리스(Superfortress) 즉 하늘의 요새라는 별칭을 갖게 된다. 2200마력 공랭식 피스톤 엔진 4개를 장착한 B-29 폭격기는 최대 시속 575km로 비행할 수 있었고 최대 이륙 중량은 60여 톤(t)에 달했다. 항속거리는 최대 5230km에 달했지만, 폭탄 2.3톤을 탑재할 경우 고고도 비행 시 최대 2600km에 불과했다.이 때문에 미군은 B-29 폭격기의 일본 본토 공습을 위해 막대한 희생을 치르며 사이판과 괌 그리고 이오지마를 탈환해야만 했다. 1943년부터 1946년까지 3900여대가 만들어진 B-29 폭격기는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투하해 제2차 세계대전을 마무리 지었다. 이후 6.25 전쟁 때는 낙동강 전선에서 ‘융단폭격’ 즉 특정지역에 집중적으로 폭탄을 투하하는 대규모 폭격을 감행해 전세를 역전시키는데 도움을 준다.
  • 美언론인, 동료기자 日편의점 예찬에 “방사능” 언급했다가 봉변

    美언론인, 동료기자 日편의점 예찬에 “방사능” 언급했다가 봉변

    미국 뉴욕타임스 소속 기자 한 명이 해외 취재진의 잇단 ‘일본 편의점 예찬론’에 찬물을 끼얹었다. 5일 허핑턴포스트 일본판은 뉴욕타임스 에디터 줄리아나 바르바사가 동료 기자의 편의점 샌드위치 극찬에 ‘방사능’을 언급했다가 뭇매를 맞았다고 전했다. 지난 2일 뉴욕타임스 스포츠전문기자 타릭 판자가 일본 편의점에서 산 샌드위치 사진을 자신의 트위터에 올렸다. 그는 “동료 말이 맞았다. 로손 편의점의 간단한 달걀 샌드위치인데 전혀 다른 수준의 미식 경험을 했다”고 만족감을 드러냈다. 이번 도쿄올림픽에 참가한 각국 대표팀 선수와 스태프, 심판, 취재진은 행사 기간 내내 숙소와 경기장만 오갈 수 있다. 일정한 권역 내에 모아두고 외부 위험 요소를 차단하는 이른바 ‘버블 방역’ 차원이다. 외출은 딱 15분만 허용되는데, 숙소 바로 인근의 편의점 정도만 갈 수 있다. 매일 똑같은 숙소 조식과 메인프레스센터(MPC) 식당 고정 메뉴에 질린 해외 취재진이 색다른 먹거리를 접할 수 있는 곳도 사실상 편의점뿐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메인프레스센터 로비에 있는 로손 편의점은 새로운 먹거리를 체험하려는 각국 취재진으로 만원이다.만족도는 높은 편이다. 뉴욕타임스 기자 앤드루 케는 1일 기사를 통해 “편의점의 냉동 닭똥집이 내 삶을 구했다. 닭똥집을 해동해 한입 베어먹고 차가운 맥주 한 모금을 마신 그 순간, 평화가 찾아왔다”고 밝혔다. “일본의 편의점은 질이 뛰어나고, 다양하고, 어디서든 쉽게 만날 수 있다. 미국의 편의점과 비교해 얼마나 월등한지를 이루다 설명하기 어렵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CNN도 “숙소에서 벗어날 수 없는 많은 사람에게 일본의 24시간 편의점이 있다는 건 그나마 행운”이라며 “주장하건대 일본의 편의점은 세계 최고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음식과 음료를 제공한다”고 평가했다. 해외 취재진의 편의점 예찬론이 이어지면서, 각종 논란으로 얼룩졌던 올림픽에도 오랜만에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형성됐다. 일본 누리꾼은 모처럼 전해진 해외 취재진의 호평에 반색했다. 하지만 미국 뉴욕타임스 소속 에디터 한 명이 방사능을 언급하면서 분위기는 급냉각됐다. 뉴욕타임스 에디터 줄리아나 바르바사는 2일 자사 기사 타릭 판자의 로손 편의점 달걀 샌드위치 예찬 트윗에 “그거 약간 방사성 같은데”라는 답글을 날렸다.파장은 컸다. 현지에서는 “일본인에게 상처가 되는 표현”이라는 비판이 잇따랐다. 특히 ‘원폭의 날’ 76주년을 앞두고 미국 기자가 방사능을 언급한 건 매우 부적절했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였던 1945년 8월 6일 일본이 일으킨 태평양 전쟁을 끝내기 위해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투하했다. 일본 누리꾼들은 “미국이 (감히) 방사성과 피폭을 운운하냐”, “곧 미국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투하한 지 76년 되는 날이다. 미국 기자는 피폭국인 일본에 예의를 갖추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논란이 일자 바르바사는 4일 트위터를 삭제했다. 허핑턴포스트 일본판에 따르면 “단어 선택에 문제가 있었다. 의도치 않게 다른 의미를 내포한 단어를 썼다”고 해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분노는 쉬이 가라앉지 않는 모양새다. 허핑턴포스트 일본판은 “바르바사가 소속된 뉴욕타임스 측에 코멘트를 요청했지만, 그녀가 트윗을 삭제하고 해명한 것만 지적했을 뿐 구체적인 언급은 피했다”고 날을 세웠다. 한편 브라질에서 태어난 뉴욕타임스 에디터 바르바사는 이라크, 몰타, 리비아, 스페인, 프랑스, 미국을 오가며 생활하다 텍사스에서 언론인 생활을 시작했으며, 2003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특파원으로 AP통신에 합류했다. 현재는 미국에 머물며 뉴욕타임스 라틴아메리카 및 카리브해 담당 에디터로 근무 중이다.
  • [씨줄날줄] 1945년 8월 6일/임병선 논설위원

    [씨줄날줄] 1945년 8월 6일/임병선 논설위원

    사흘 뒤인 6일이면 일본 히로시마에 ‘검은 비’가 내린 지 76년이 된다. 1945년 그날 오전 8시 15분 미군의 B29 전폭기 ‘에볼라 게이’가 인류 최초의 원자폭탄 ‘리틀 보이’를 떨어뜨렸다. 43초 뒤 시마(島) 외과병원 상공에서 강한 섬광과 함께 폭발하는 순간 섭씨 100만도의 열선이 사방을 3000~4000도의 용광로로 바꿔 버렸다. 엄청난 후폭풍과 방사선, 잿빛 폭우가 뒤따라 히로시마 인구 35만명 가운데 7만 8000명이 즉사하고 5만명이 다쳤다. 시간이 지나면서 각종 후유증으로 24만명이 목숨을 잃었다. 징용·징병 조선인 7만명도 그 참화를 피하지 못했다. 그래도 일본 군부와 왕실이 항복하지 않고 버티자 미국은 사흘 뒤 나가사키에 두 번째 원자폭탄 ‘팻맨’을 투하해 미쓰비시 철강 공장을 포함해 산업시설 30%를 잿더미로 만들었다. 7만 4000명이 죽었고, 7만 5000명이 다치거나 실종됐다. 또 조선인 3만명이 피폭 피해를 입었다. 그제야 일본 군부는 천황제를 존속시키는 조건으로 항복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했고 미국이 받아들이지 않자 히로히토 일왕이 무조건 항복을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마침 2020 도쿄올림픽이 열리고 있어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고 싶어 하는 일본인들이 많다. 마쓰이 가즈미 히로시마시장은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에게 “선수와 대회 관계자가 선수촌 등 각자가 있는 장소에서 묵도하는 등 마음으로 히로시마 평화기념 제전에 참가하도록 호소해 달라”고 요구했다. 바흐 위원장이 지난달 히로시마 평화공원(※사진※)을 찾아 피폭 위령비에 헌화했으니 받아들일 만하다고 여겼던 모양이다. 도쿄올림픽조직위원회는 한발 나아가 6일 피폭 시간에 맞춰 대회 참가자들이 ‘침묵의 시간’을 갖자고 제안했다. 스스로 죄를 의식한 듯 ‘묵념’보다 더 중립적인 것으로 생각되는 표현을 찾아낸 것으로 보인다. IOC는 일본의 제국주의적 침략과 인권유린에 참화를 겪은 한국과 중국, 필리핀 등 아시아 국가들이 예민하게 나올 것을 우려해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포기하지 않은 조직위는 8일 폐회식에서 희생자들을 언급하는 내용을 넣을 계획이라고 마이니치신문이 전했다. 수출규제 갈등에다 독도 표기 문제를 겪은 우리로선 일본이 피해자처럼 구는 것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도쿄신문에 따르면 일본 유권자 1889명의 49%는 스가 요시히데 총리가 15일 패전일 추도식 도중 가해와 반성을 언급할 필요가 없다고 답했다. 반면 언급해야 한다는 응답자는 47%에 그쳤다. 일본이 반성하지 않은 채 피폭 희생자들의 넋을 달래자는 것은 염치없다.
  • [서울광장] 배티성지와 나가사키 천주교 유산/서동철 논설위원

    [서울광장] 배티성지와 나가사키 천주교 유산/서동철 논설위원

    TV에서 본 진천 백곡저수지의 새뱅이 매운탕이 궁금해 안성에서 천안 입장으로 직진해 엽돈재를 넘었다. 이 지역에서는 민물새우를 새뱅이라고 부른다. 저수지가 가까워질 무렵 왼쪽으로 최양업 신부의 흔적이 남아 있다는 배티성지를 알리는 표지판이 나타났다. 올해가 김대건(1821~1846)과 최양업(1821~1861) 동갑내기 신부의 탄생 200주년이라는 사실은 각종 기념행사가 열리고 있어 알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안성으로 넘어가는 이치(梨峙) 방향으로 차를 돌렸다. 배티성지의 역사는 한국 천주교의 역사이자 한국의 역사이기도 하다. 파리외방선교회의 피에르 모방 신부는 1835년 1월 천주교 사제로는 처음으로 조선에 들어왔다. 그는 교세를 넓히려면 조선인 사제가 있어야 한다는 판단에 따라 김대건 안드레아, 최양업 토마스, 최방제 프란치스코 하비에르를 후보로 선발했다. 최양업의 외할아버지는 김대건의 할머니와 남매이니 두 신부는 6촌 간이다. 마카오에서 사제 교육을 받는 동안 최방제는 열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잘 알려진 대로 1845년 8월 17일 조선의 첫 번째 신부가 된 김대건은 선교사 입국 루트를 개척하려다 옹진반도 순위도에서 붙잡혀 1846년 9월 서울 새남터에서 참수됐다. 1849년 4월 15일 두 번째 조선인 신부가 된 최양업은 12년 동안 조선 전역을 누비며 선교와 사목 활동에 힘쓰다가 1861년 선종했다고 한다. 성지가 가까워지니 산골에서는 보기 드문 크기의 ‘최양업 신부 선종 150주년 기념 대성당’과 ‘최양업 신부 박물관’이 눈에 들어온다. 지형을 깎아 만든 마당과 주차장도 넓기만 하다. 필자 같은 비신자의 시각은 아무래도 다를 것이다. 순교자 묘역으로 오르는 길 중간의 조촐한 성지수도원과 ‘최양업 신부 탄생 175주년 기념 성당’에 더 마음이 간다. 대성당과 박물관 이전에 지었다. 배티는 1801년 신유박해 당시 신자들이 숨어든 오지였다. 1837년 모방 신부가 공소를 설정하고, 1850년 다블뤼 신부가 조선 최초의 교회를 세웠다. 1853년부터 최양업 신부가 이곳을 중심으로 사역을 했다. 조금 올라가면 성당과 신학교를 겸했다는 삼간초가가 복원돼 있다. 이 소박한 흔적에 이르러서야 매우 잘 지어진 건축물임이 틀림없는 대성당이나 박물관에서는 없었던 성지다운 숙연함을 느낄 수 있었다. 진정성이 가진 힘일 것이다. 문화재로 지정됐다고 이전보다 더 중요한 문화재가 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세계유산으로 지정됐다고 더 훌륭한 문화재가 되는 것도 당연히 아니다. 하지만 국가 지정 문화재든, 세계유산이든 그 지정 절차를 따라가다 보면 사라질 위기에 있었던 진정성이 되살아나기도 한다. 경주 황룡사 터가 사적으로 지정되지 않았고, ‘경주역사지구’라는 이름의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지 않았다면 주변은 이미 온갖 건축물로 가득찼을지도 모른다. 배티성지를 돌아보면서 2018년 세계유산에 등재된 ‘나가사키 지역의 은둔 기독교 유적’을 떠올렸다. 일본의 천주교는 1549년 예수회 선교사 프란치스코 하비에르가 포교를 시작한 이후 박해와 잠복, 부활의 역사를 거쳤다. 하비에르라면 최방제의 세례명이기도 하다. 오랜 금령은 1858년에야 풀렸는데, 파리외방전도회가 1863년 세운 오우라 천주당을 비롯해 나가사키 세계유산을 이루는 다수의 성당은 모두 그 이후 지어진 것이라고 한다. 나가사키 유적은 소박한 역사를 보존하는 데 힘을 기울였고, 그 결과 세계유산에도 등재될 수 있었다. 또 다른 특징은 적지 않은 우리 천주교 성지가 특정 성인 중심으로 현양되고 있다면 나가사키는 박해와 잠복 시기 소규모 종교 공동체의 모습이 최대한 부각되고 있다는 것이다. 배티의 초라한 초가집 성당과 신학교가 화려한 성당과 박물관보다 더 마음을 잡아끄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일본 천주교가 세계유산을 배출했다고 우리도 그래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질 이유는 없다. 다만 전국 가톨릭 성지에 대해 세계유산 등재 과정에 상응하는 진정성 회복 작업을 벌이는 것은 괜찮겠다 싶다. 그러러면 과거의 흔적을 찾는 발굴 작업을 정성껏 하는 것이 우선이다. 그 흔적이야말로 성지로 받들어지는 이유가 아닌가. 그렇게 조금씩 진정성이 축적됐을 때 국가 지정 문화재도 되고, 유네스코 세계유산도 도전해 볼 수 있다. 성당과 기념관은 이후 역사성 훼손이 없는 주변 장소를 골라 지으면 되지 않을까. 그렇게 성지의 진정성이 응축될 때 믿음도 깊어지는 게 아닐까 주제넘은 생각을 해 본다.
  • 유네스코 “日, 조선인 군함도 강제노동의 역사 왜곡”

    유네스코 “日, 조선인 군함도 강제노동의 역사 왜곡”

    일제 강제징용의 상징 ‘군함도’를 2016년 세계문화유산에 억지로 등재시키는 과정에서 국제사회와 했던 약속을 어긴 일본을 유네스코(UNESCO)가 강하게 비판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WHC)는 태평양전쟁 중 군함도에 끌려온 한반도 출신 징용 피해자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며 일본의 세계유산 관리 방식에 유감을 표명하는 비판 결의문을 22일 채택했다고 교도통신이 보도했다. WHC는 결의문에서 군함도를 다룬 도쿄의 산업유산정보센터를 개선하라고 일본 정부에 요구했다. 공식 명칭이 ‘하시마’인 군함도는 일본 나가사키항으로부터 남서쪽 18㎞ 해상에 있는 섬으로, 1943~1945년 500~800명의 조선인이 이곳에 끌려가 강제 노역을 했다. 이 가운데 122명이 질병, 탄광사고 등으로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앞서 WHC와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 공동조사단은 지난달 7∼9일 산업유산정보센터를 시찰한 내용을 담은 실사 보고서를 지난 12일 인터넷을 통해 공개했다. 이를 통해 일본이 조선인 강제노동의 역사를 왜곡했다고 밝혔다. 공동조사단은 “1940년대 한국인 등이 본인 의사에 반해 강제로 노역했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게 하는 조치가 불충분할 뿐 아니라 이 산업유산정보센터가 군함도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강제노역 희생자를 기리기 위한 전시가 없는 등 희생자 추모를 위해 적절한 조치를 하지 않은 것도 문제라고 밝혔다. 비슷한 역사를 지닌 독일과 같은 국제 모범사례와 비교해 볼 때 조치가 미흡하고 한국 등 당사국들과의 지속적인 대화도 부족하다고 했다. 결의문은 일본이 2018년 6월 세계유산위에서 채택된 결정을 이행하지 않은 데 대해서도 ‘강력한 유감’을 표하고 약속 이행을 거듭 촉구했다. 당시 결정에는 가혹한 조건하에서 강제 노역이 이뤄진 사실과 일본 정부의 징용 정책에 대해 알 수 있도록 조치하라는 내용 등이 포함돼 있다.
  • “日, 강제징용자 설명 부족” 유네스코, 군함도 역사왜곡 비판결의 채택

    “日, 강제징용자 설명 부족” 유네스코, 군함도 역사왜곡 비판결의 채택

    일본, 2015년 군함도 세계유산 등재 때“징용 등 전체 역사 알리겠다” 약속 후 위반탄광서 韓 동원 노무자 강제노역 잇단 확인 日정부 “약속 성실히 이행해왔다” 억지유네스코(UNESCO) 세계유산위원회가 수많은 역사적 증거자료에도 전쟁 중 강제 징용된 한반도 출신자에 관한 일본 정부의 설명이 부족하다며 일본의 세계유산 관리 방식에 강한 유감을 표명하는 결의문을 현지시간 22일 채택했다고 교도통신이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세계유산위원회는 결의문에서 하시마(端島, 일명 ‘군함도’)에 관해 설명하는 도쿄의 산업유산정보센터를 개선하라고 일본 정부에 요구했다. 일본 나가사키현에 있는 군함도에는 일제 강점기에 해저 탄광이 있었으며 한반도에서 동원된 노무자들이 이곳에서 심각한 인권 침해를 당하며 강제 노역했다는 것이 당사자들의 증언과 역사 전문가들의 연구로 거듭 확인됐었다. 일본 정부는 2015년 군함도 등 일제 강점기 조선인 강제 노역 현장이 다수 포함된 일련의 근대 산업시설을 세계 유산으로 등재하는 과정에서 한국 등의 반대를 극복하기 위해 징용을 포함한 ‘전체 역사’를 알리겠다고 국제사회에 약속했다. 하지만 군함도의 역사를 알리기 위해 도쿄에 설치한 산업유산정보센터의 전시물은 조선인에 대한 차별이나 인권침해가 없었던 것과 같은 이미지를 부각하고 있다. 산업유산정보센터를 운영하는 일반재단법인 산업유산국민회의(이하 국민회의)는 인권 침해의 역사를 부정하는 내용의 옛 군함도 주민 동영상 등을 홈페이지에 게시하기도 하는 등 역사 왜곡에 앞장서고 있다. 한국 정부와 뜻있는 한일 시민단체는 일본 정부에 징용 등 강제 노역의 역사를 제대로 알리도록 전시관을 개선할 것을 거듭 촉구했으나 일본 정부는 “약속한 조치를 성실하게 이행해 왔다”며 억지를 부리고 있다.
  • [세종로의 아침] 7만명이 겪게 될 이상한 올림픽/최병규 체육부 전문기자

    [세종로의 아침] 7만명이 겪게 될 이상한 올림픽/최병규 체육부 전문기자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도쿄올림픽이 개막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 도쿄 대회는 코로나19 탓에 역대 올림픽 사상 처음으로 1년이 미뤄진 것도 모자라 지금까지 일주일이 멀다 하고 개최의 정당성이 입방아에 올랐다. 하지만 화살은 이미 시위를 떠난 모양새다. 몹쓸 바이러스의 확산과 진정세에 따라 취소와 재연기, 강행 논란이 지겹도록 반복됐지만 이제 일본 도쿄는 각국에서 도착하는 선수와 관계자로 들썩거리기 시작했다고 외신은 전하고 있다. 코로나19의 일본 재확산에 따라 두 차례나 방일을 취소했던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도 8일 도쿄에 도착해 총회 준비에 나설 예정이다.특히 그는 존 코츠 조정위원장과 각각 원폭 피폭지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를 방문, 도쿄올림픽이 ‘평화의 제전’이 될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져 57년 만에 도쿄에서 두 번째 열리는 여름 올림픽은 이제 거스를 수 없는 일이 된 듯하다. 하지만 코로나19 재확산 가능성을 우려하는 전문가들의 경고 속에서 선수를 비롯해 대회에 참가하는 이들은 난생처음 보는 ‘이상한 올림픽’을 겪게 될 게 뻔하다. 근대올림픽 이후 선택받은 올림피언들이 경험했던 일상적인 일들은 도쿄에서는 대부분 금지되고 제한되기 때문이다. 세계 각국에서 도쿄로 향하는 인원은 선수 1만 1500명을 비롯해 취재진, IOC와 올림픽 스폰서 등 약 7만명이다. 특히 3만여명에 달하는 해외 취재진은 마치 1970년대 ‘냉전시대’의 적성국 한가운데 있는 것과 다름없는 갑갑한 상황을 피해 갈 재간이 없을 듯하다. 도쿄올림픽 조직위원회는 지난 5월 선수와 취재진이 지켜야 할 규정집인 이른바 ‘플레이북’을 배포했는데 무려 51쪽에 달하는 이 규정집의 내용을 줄이고 줄이면 결국 ‘일본국 국민과 섞이지 말라’는 경고로 요약된다. 인터뷰와 기자회견을 포함해 마음대로 만나지도 말고 아무 데서나 자지도 말고 밖에 나가 먹지도 말고 아무 차나 함부로 타지도 말고 허락 없이 가지도 말라는 얘기다. 한 달 뒤 보강된 개정판에서는 벌금과 추방 등 제재 내용까지 적시했다. 모든 매체는 체류 기간 각 사별로 지정된 ‘코로나19 연락 담당자’(CLO)와 연락을 유지해야 하고 입국 시 조직위가 제공하는 애플리케이션을 스마트폰에 설치해 위치정보시스템(GPS)으로 엄격하게 통제를 받는다. 이쯤 되면 발찌가 채워진 흉악범에 불과하다. 사전에 제출한 ‘활동계획서’에는 개인과 숙소 정보는 물론 방문 예정인 경기장 등까지 빠뜨려선 안 된다. 경기장 출입도 사전 예약시스템 등록이 전제돼야 하고 승인 이메일을 받아야만 비로소 가능하다. 이마저도 하루 10개 경기로 제한된다. 사정이 이러하자 뉴욕타임스, AP통신 등 미국 주요 신문사와 통신사들은 지난달 28일 항의 서한을 대회조직위에 보내 ‘올림픽 헌장’의 내용까지 상기시키며 재검토를 요구했지만 조직위는 아직까지 요지부동, 묵묵부답이다. 하지만 조직위의 이런 조치도 ‘친절한 관리’ 수준으로 봐야 할지 모른다. 교도통신은 4일 “긴급사태 아래 단계인 ‘중점 조치’가 도쿄도를 비롯해 올림픽 경기장이 널려 있는 수도권 4개 지자체에서 한 달 정도 연장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전날 도쿄도의 일일 확진자가 38일 만에 가장 많은 716명에 달한 것을 상기시킨 이 통신은 또 “이렇게 되면 지난달 최대 1만명의 유관중 상한선도 절반으로 줄이고 아예 전 경기의 40%를 무관중으로 열 수도 있다”고 전했다. 올림픽이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삼은 ‘도박판’이 될지 모른다는 비판 속에 개막 직전까지 갈피를 못 잡는 아주 이상한 올림픽이 폭주 기관차처럼 개막을 향해 달리고 있다.
  • 코로나 재확산에 올림픽 무관중 전환될까…원폭 지역서 평화 외친다는 IOC

    코로나 재확산에 올림픽 무관중 전환될까…원폭 지역서 평화 외친다는 IOC

    도쿄올림픽이 열리는 일본 도쿄도의 코로나19 감염자 수가 증가세를 보이면서, 최대 방역 조치인 긴급사태의 직전 단계인 ‘만연 방지 등 중점조치’가 연장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경기장 수용 관중 수를 1만명 이하로 제한해 허용하며 올림픽 흥행을 노린 일본 정부의 계획도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27일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도쿄도 등에 내려진 음식점 등 영업시간 단축 등의 조치를 이어가야 한다는 만연 방지 연장론이 일본 정부 내에서 힘을 얻어가고 있다. 일본 정부는 도쿄도를 포함해 10개 도시에 내려진 만연 방지와 오키나와현에 발령 중인 긴급사태선언이 종료되는 다음달 11일 전인 8일 해제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만연 방지 연장론이 힘을 받는 데는 도쿄도의 코로나19 감염세가 심상치 않기 때문이다. 26일 도쿄도의 코로나19 신규 감염자 수는 534명으로 전 주보다 146명 늘었다. 최근 일주일 평균 신규 감염자 수는 476명으로 전주보다 26%나 늘었다. 일본 정부는 도쿄도 등에 내려진 긴급사태선언을 지난 21일부터 해제하고 만연 방지로 전환했는데 그 시기와 맞물려 감염자 수가 증가한 것이다. 만연 방지가 연장되면 도쿄올림픽 유관중 개최도 어려워질 수 있다. 일본 정부와 도쿄올림픽조직위원회 등은 지난 21일 경기장당 수용 인원의 50% 범위에서 최대 1만명까지 국내 관중을 수용하기로 결정하면서 코로나19 감염 확산 우려가 커졌다. 이에 대해 스가 요시히데 총리는 긴급사태선언 발령 시 무관중 개최를 해야 한다며 논란을 수습한 바 있다. 7월 23일 개막하는 도쿄올림픽을 한 달도 남겨놓지 않고 코로나19 방역 대책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이 다음달 9일 세계 최초의 원폭 피해지인 히로시마를 방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같은 날 존 코츠 IOC 부위원장 겸 도쿄올림픽 조정위원장은 또 다른 원폭 피해지인 나가사키를 방문할 예정이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는 일제가 일으킨 태평양전쟁 말기인 1945년 8월 6일과 9일 각각 미국의 원폭 공격을 받은 곳이다. IOC를 이끄는 두 사람은 원폭 지역에서 올림픽 개최의 의미인 세계 평화를 염원하는 메시지를 내놓을 계획이다. 다만 더 큰 이유로는 세계 평화를 강조해 코로나19 확산 상황에서 열리는 도쿄올림픽 개최 반대 의견을 불식시키겠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 ‘고양이 책빌딩’ 지식 거인, 세상 모르게 하늘로 탐사

    ‘고양이 책빌딩’ 지식 거인, 세상 모르게 하늘로 탐사

    1974년 日총리 뇌물 보도로 이름 알려정치·사회·우주 등 100여권 저서 남겨이어령과 한일 과거사 주제로 대담도고양이 그려진 건물에 책 10만권 보관 정치, 사회, 우주, 의료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100여권의 저서를 남긴 일본 탐사 저널리스트이자 평론가·작가인 ‘지(知)의 거인’ 다치바나 다카시가 지난 4월 30일 급성 관상동맥증후군으로 별세했다고 일본 언론이 23일 보도했다. 80세. 1940년 일본 나가사키시에서 태어난 다치바나는 도쿄대 불문과를 졸업한 후 분게이주(문예춘추)에 입사해 주간지 기자로 활동했지만 2년 만에 퇴사했다. 1967년 도쿄대 철학과에 다시 입학해 공부하면서 평론, 르포 기사 등을 기고하는 자유기고가로 활동했다. 고인이 이름을 알린 건 1974년 분게이주에 발표했던 ‘다나카 가쿠에이 연구, 그 금맥과 인맥’이라는 제목의 탐사보도를 통해서였다. 다나카 가쿠에이 총리의 뇌물 관련 의혹을 드러내 그의 퇴진으로 이어진 계기가 된 기사였다. 총리의 인맥을 샅샅이 훑고 회사 등기부등본 등 여러 자료를 모아 분석한 것으로 ‘탐사보도의 선구’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철저한 취재를 바탕으로 분야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책을 썼다. ‘일본공산당 연구’(1978), ‘우주로부터의 귀환’(1983), ‘뇌사’(1986), ‘천황과 도쿄대-대일본제국의 생과사’(2005), ‘망해가는 국가, 일본은 어디로 향하는가’(2006), ‘죽음은 두렵지 않다’(2015) 등을 출간했고 한국에도 그의 작품 20여권이 번역돼 출간됐다. 그는 1979년 제1회 고단샤 논픽션상, 1983년 기쿠치 간상, 1998년 제1회 시바 료타로상 등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는 1995년부터 도쿄대 강사·객원교수로 활동하며 젊은 세대의 육성에 나섰다. 2007년 방광암이 발견됐다는 사실을 밝히고 수술을 받은 뒤 자신의 체험기를 잡지에 발표했고 다큐멘터리 제작에도 참여했다. 그는 2013년 이어령 교수와의 대담에서 “과거 역사에 대해 한국인들이 겪은 체험과 감정을 일본인이 얼마나 느낄 수 있을까. 시간이 흘러도 잘 안 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고인은 ‘관심이 있는 분야는 최소 10권의 책을 읽어야 한다’는 지론으로 장서가 10만권에 가까운 독서가로도 유명했다. 책 보관을 위해 도쿄도 분쿄구에 지하 2층, 지상 3층의 건물을 지었는데 건물 모서리에 고양이 얼굴이 그려져 있어 ‘고양이 빌딩’으로 유명하다. 다치바나의 별세는 가족들이 조용히 장례를 치른 다음 그의 제자가 운영하는 사이트에 공표하면서 뒤늦게 알려졌다. 고인은 지난해 저서 ‘지식의 여행은 끝나지 않는다-내가 책 3만권을 읽고 100권을 쓰면서 생각한 것’에서도 “장례식에도 무덤에도 전혀 관심이 없다”는 말을 남겼다. 김진아 기자 jin@seoul.co.kr
  •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A급 전범 도조 히데키 유해 태평양에 뿌린 이유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A급 전범 도조 히데키 유해 태평양에 뿌린 이유

     1941년 일본의 미국 진주만 공격을 지휘해 태평양 전쟁으로 확전시켜 일본 군국주의를 멸망의 길로 이끈 A급 전쟁 범죄자 도조 히데키 전 총리의 유골이 태평양에 흩뿌려진 사실은 어느 정도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정확히 어느 지점에 흩뿌려졌는지는 미국 정부와 미군이 철저히 비밀에 부쳐왔다. 도쿄에 있는 니혼 대학의 다카자와 히로아키 교수가 메릴랜드주에 있는 국립문서기록관리청이 소장하다가 2018년에야 기밀 해제된 문서를 통해 미국 육군의 연락용 항공기에 탑승한 장교가 요코하마에서 동쪽으로 48㎞ 떨어진 태평양 바다 위에 도조와 나란히 교수형이 집행된 전범 6명 등 7명의 유해를 흩뿌린 사실을 기록한 것을 찾아냈다고 영국 BBC가 AP 통신 등의 보도를 인용해 14일(이하 현지시간) 전했다. 후손들이야 늦게라도 알게 됐으니 다행이라고 반겼지만 전쟁의 참화를 고스란히 당한 우리 민족으로선 스스로 단죄하지 못한 전범의 유골 존재가 이제야 밝혀진 것을 통탄할 일이다.  도조는 유럽에서의 전쟁을 빨리 매듭지으려던 미국 등 연합군의 관심을 아시아 지역으로 돌려 2차 세계대전을 연장하려 한 원흉이다. 영국 등 옛 제국의 아성을 무너뜨리고 아시아를 손아귀에 넣겠다는 야심에서 전쟁을 시작해 수백만명의 무고한 인명을 희생시킨 전범 중의 전범이다.  그러나 미국 정부는 1948년 11월 사형이 언도됐고, 다음달 성탄절을 이틀 앞두고 교수형으로 처형 당한 도조의 유골이 어디에 있는지 함구해왔다. 그곳이 알려지면 애국 영웅으로 여기던 우익 지지자들이 성지로 받들며 순교자로 떠받드는 일이 벌어질 것과 한국과 중국, 필리핀 등 막대한 전쟁 피해를 입은 나라들이 들고 일어날 것을 우려해 철저히 비밀에 부쳤다.  이번에 다카자와 교수가 찾아낸 문서는 루서 프라이어슨 소령이 도조 등의 사형 집행 모습을 참관하고 유해를 화장하는 과정, 항공기에 유해를 싣고 공중에서 살포하는 과정을 상세히 기록으로 남긴 것이었다. 그는 1948년 12월 23일이라고 찍히고 ‘비밀’ 도장이 박힌 문서에다 “난 다음에 적힌 전범들의 형이 집행된 뒤 이들의 시신을 넘겨받아 화장하도록 감독하고 제8 육군 연락용 항공기에 올라 유해들을 태평양 바다 위에 흩뿌렸음을 확인한다”고 적었다. 그 밑에는 도조 히데키와 다른 6명의 전범 이름이 적혀 있었다. 화장을 마친 뒤에는 유해들을 빠짐없이 모았고, 유해들을 바다 위에서 뿌릴 때도 각별히 주의해 용기를 비워냈다고 적었다.  이듬해 1월 4일 작성한 문서에는 조금 더 구체적으로 시간대별 상황을 꼼꼼이 기재했다. 그날 새벽 2시 10분쯤 지문 확인을 마친 도조 등 7명의 시신을 담은 관을 2.5t 트럭에 싣고 감옥 밖으로 나와 모터사이클 호송을 붙여 요코하마의 미군 묘지 관리부대에 1시간 30분 뒤 도착해 최종 점검을 했다. 트럭은 다시 아침 7시 25분에 그곳을 떠나 30분 뒤 요코하마 화장터에 이르렀다. 관들을 차례로 트럭에서 내려 각기 “오븐들”에 들어가 10분씩 있었으며 근처를 병사들이 지켰다.  그 뒤 근처 공항으로 옮겨져 프라이어슨 소령이 탑승한 항공기에 유해들이 실렸다. 그리고 “우리는 대략 요코하마에서 동쪽으로 48㎞쯤 날아가 내가 직접 화장된 유해를 넓은 지역에 흩뿌렸다”고 적었다.  도조의 증손자 도조 히데토시(48)는 “유해가 없다는 것은 유족에게 오랫동안 굴욕이었다”는 불편하기 이를 데 없는 소감을 뇌까렸다. 그는 “유해에 대한 정보가 드러나 안심된다”면서 “만약 그의 유골이 일본 영해 안에 뿌려졌다면 행운이다. 유해가 뿌려진 장소가 좀 더 구체적으로 밝혀지면 친구들을 불러 모아 헌화하며 묵념하겠다”고 덧붙였다. 또 “증조할아버지에 대한 모든 것이 봉인됐다”면서 “유해를 보존하지 않는 것이 전범재판의 일부라고 생각한다”고도 했다.  다카자와 교수는 “도조의 유해가 신성시되는 것을 막으려는 의도와 함께 미군은 유해를 일본 영토에 돌려주면 일본인이 절대적인 굴욕으로 여길까 생각했던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일종의 배려를 한 것이란 해석인데 우리로서는 그의 견해에 동의할 수 없고 화가 나는 대목이다.  그는 전범으로 기소된 이가 4000명 이상이며 이 중 920명이 사형에 처해졌다며 전쟁 재판에 대한 연구를 더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아베 신조 전 총리가 참배했고 스가 요시히로 현 총리가 공물을 봉납했던 도쿄의 야스쿠니 신사에는 전범들의 유해가 없고, 대신 도조를 포함한 A급 전범 14명의 위패가 합사돼 오늘도 우익들이 찾아 추모하고 있다. 1869년에 세워진 이곳에 위패가 모셔진 일본인은 250만명 가량인데 전범들이 합사돼 오히려 이들의 희생 정신을 퇴색시킨다고 뜻있는 일본인들은 개탄하는데 군국주의 향수에 빠진 우익들은 반성하지 않는다. 도조 히데키는 일본 육군 참모장을 지냈으며 1941년부터 1944년까지 총리를 지냈다. 줄곧 일본 영토 확장을 부르짖었고 미국과 유럽의 제국주의 세력을 타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941년 12월 7일 진주만 공습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휘해 총리에 올랐지만 1944년 전세가 기울자 히로히토 일왕의 신임을 잃게 됐고 압력 끝에 물러났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떨어져 무조건 항복하기에 이르렀고, 1945년 9월 11일 미군 병사들이 집을 포위하자 권총으로 극단을 선택하려 했으나 실패해 체포됐다.  도조 히데키가 떵떵거릴 때에도 뜻있는 우익들은 공군력이 절대 열세인 일본이 미국을 끌어들여 자멸의 길로 이끈 책임이 실로 크다고 비판했다. 히로히토 일왕이 교활하게 도조 히데키 등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고 미군정과 결탁해 목숨과 기득권을 부지했다는 비판도 대두된다.  도조 히데키를 체포한 미군 병사 5명 가운데 마지막 생존자 존 윌퍼스가 지난 2013년 93세를 일기로 메릴랜드주에서 세상을 떠났다. 윌퍼스가 도조의 자살 시도를 막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
  • [씨줄날줄] 거꾸로 가는 일본 각의 결정/황성기 논설위원

    [씨줄날줄] 거꾸로 가는 일본 각의 결정/황성기 논설위원

    일본군 위안부 모집 과정의 강제성을 인정한 1993년 ‘고노 담화’의 실체를 뒷받침하는 문서가 또 발견됐다. 일본 법무성이 3월 31일 위안부 관련 문서로 내각관방보실에 보낸 ‘나가사키 지방재판소 및 항소법원에 있어서 국외이송 유괴 피고사건 판결 개요’가 바로 그것이다. 일본 공산당의 가미 도모코 참의원 의원이 입수해 공개했다고 아카하타(赤旗)가 지난 3일 보도했다. 판결 개요는 나가사키 항소법원 형사제1부가 1936년 9월의 항소심 판결에서 인정한 범죄 사실이 주요 내용을 이룬다. 나가사키 현에 사는 여성 15명을 ‘식당 종업원이라 손님을 받지 않는다’고 꾀어 중국 상하이의 해군 지정 위안소에 보낸 뒤 성매매를 시킨 민간인 10명이 받은 유죄 판결이 기술돼 있다. 판결은 당시 일본 대심원(대법원)도 받아들여 일본군과 정부에 충격을 줬다. 판결 뒤인 1937년 7월에 육군성이 ‘야전주보규정’(野戰酒保規定·해외 원정군을 위한 상업시설 규정)을 개정해 “필요한 위안시설을 설치해도 좋다”는 내용을 추가해 관보에 게재했다. 즉 일본군 위안소 설치가 명실상부하게 법적으로 제도화한 것이다. 당시 상하이는 중국과 일본이 치열하게 다투던 곳이다. 일본군 병력 4만명이 투입되면서 위안시설을 확대해 돈벌이를 키우려던 업자들이 여성 확보에 혈안이 돼 있었다고 한다. 지금까지 일본 정부는 “위안부의 강제 연행을 기술한 문서는 없다”고 했으나 이런 주장을 뒤집는 중요한 판결문인 셈이다. 법원은 해군 지정 위안소에 여성들을 속여 보낸 업자의 법적 책임을 물은 것이다. 군 또한 쉬쉬하던 여성의 해외 송출 절차를 공식화했다. 위안부 문제에서 일본의 퇴행적인 각의 결정은 몇 차례 있었다. 아베 신조 1차 내각 때인 2007년 “정부가 발견한 자료 중에서는 군이나 관헌에 의한 강제 연행을 직접 밝히는 기술은 찾지 못했다”는 답변서를 각의 결정했다. 지난 4월 27일에는 “종군 위안부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어 위안부라는 표현이 적절하다”고 결정했다. 위안부 강제 동원을 입증하는 문서는 있었지만 발단이 된 나가사키 판결 개요의 발견은 의의가 크다. 그런데도 종군 위안부에서 종군을, 강제징용에서 강제를 삭제하려는 일본 정부의 집요한 움직임은 일본 책임이란 역사적 사실을 두 손으로 가리려는 치졸한 역사수정주의가 아닐 수 없다. 역사를 거스르는 각의 결정을 서슴지 않았던 일본은 지금까지 고노 담화를 각의 결정하지 않고 아베 2차 내각 때는 검증을 통해 폐기까지 시도한 적이 있다. 위안부 관련 두 각의 결정은 철회하고 고노 담화를 각의 결정하는 게 순리인데도 거꾸로 가는 일본이다. marry04@seoul.co.kr
  • [금요칼럼] 과학정신, ‘처리수’와 ‘오염수’ 사이/황두진 건축가

    [금요칼럼] 과학정신, ‘처리수’와 ‘오염수’ 사이/황두진 건축가

    1990년대 초반 일본에 잠깐 살았을 때 이야기다. 휴가 계획을 짜다 보니 기차 노선도에 히로시마가 있었다. 인류 최초로 원자폭탄이 떨어졌던 도시다. 고등학교 교련 수업 때부터 군대 시절에 이르기까지 원폭의 무서움에 대해서는 익히 들어온 바가 있었다. 방사능 피해가 워낙 오래가기 때문에 한 번 원폭이 떨어진 곳은 영원히 불모의 땅이 되고, 생명체가 살기 어렵고 등등의 이야기였다. 핵은 절대 파괴의 대명사 같은 것이었다. 히로시마는 어떻게 되었을까? 도시로서 기능하고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일본인 동료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지금 그곳 상황이 어떠냐고. 원폭 떨어진 지 불과 60년 정도밖에 안 되지 않았냐고. 그런데 도대체 무슨 이야기냐는 식의 대답이 돌아왔다. 사람이 사는 것은 물론이고, 아주 번성하는 상공업 도시라는 것이었다. 며칠 후 기차를 타고 가다가 창밖으로 내다보니 과연 그랬다. 여느 일본 도시와 다르지 않았다. 히로시마는 건재했다. 나중에 들었지만 나가사키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자료를 찾아보았다. 원폭 투하 직후 당연히 인구가 감소했다. 당시 인구 34만명 중에 8만명 정도가 피폭 직후에, 그해 연말까지 14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사망했다. 전체 관련 사망자 수는 30만명에 달했다. 그런데 히로시마의 인구는 다시 늘어났다. 전쟁이 끝나고 많은 군인이 고향으로 돌아왔다. 아무리 고향이지만 원폭이 떨어진 곳으로 돌아간다고? 방사능은? 후유증은? 폭심에서 가까운 부분은 한동안 비어 있었지만 그 너머의 지역은 일상의 삶이 회복되었다는 것이다. 현재 히로시마의 인구는 120만명에 달한다. 진실은 ‘영원한 불모지’와 현재의 히로시마 사이 어딘가에 존재할 것이다. 비슷한 혼란을 요즘 경험한다. 다름 아닌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처리수, 혹은 오염수 문제다. 보통의 시민이 이 문제에 대한 정보를 얻고 의견을 갖기 위한 최선의 수단은 다름 아닌 언론이다. 그런데 여러 기사를 비교해 가며 읽어 봐도 도대체 정확한 상황을 알기 어렵다. 한쪽에서는 워낙 방사성물질의 밀도가 낮아서 아무 문제없다는 의견이 있는가 하면, 다른 한쪽에서는 곧 대재앙이 닥칠 것이라는 경고가 올라온다. 보통의 독자로서는 판단할 수 없고, 따라서 이 문제에 대한 의견도 가질 수가 없다. 소심하게 앞으로 회를 못 먹게 될 수도 있으니 미리 먹어 두는 것이 어떨까 정도의 생각을 가질 뿐이다. 작심을 하고 파고들면 아마 희미한 답의 윤곽 정도는 얻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보통의 시민이 굳이 그런 수고까지 하지 않아도 되도록 하는 것이 언론의 존재 이유 아닐까. 사회, 정치, 문화 등 가치관과 관련된 문제에 대한 인문적 ‘해석’이야 분분할 수 있고 또 그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과학, 그리고 기술의 영역이다. ‘처리수’와 ‘오염수’ 사이 어딘가에 분명히 객관적 사실이 존재할 것이다. 과학도 궁극적으로는 절대적이지 않다는 여러 의견이 있지만, 지금 이 상황이 그런 시각을 적용해야 할 경우인지는 잘 모르겠다. 개인적인 소견으로는 그냥 과학이 외면당한 자리를 다른 것들이 차지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이런 상황을 겪으면서 세상에 얼마나 기본적인 과학 정신이 부족한지 새삼 깨닫는다. 자연은 ‘스스로 그러해서’ 자비심이나 증오심이 없고, 쇠는 녹이 슬고 물은 낮은 곳으로 흐른다. 그것을 인간이 원해도, 원하지 않아도 그렇다. 거기에 목적을 부여하는 일체의 시도는 부질없다. 그것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과학정신의 기본이라고 믿는다. 그런 입장에서 누군가가 보통의 시민이 이런 문제에 대해 유의미한 의견을 가질 수 있도록 과학정신에 입각한 도움을 준다면 매우 감사하겠다. 히로시마건, 나가사키건, 후쿠시마건.
  • 日 “피어나면 국가에 중대한 일” 속설 가진 꽃 개화

    日 “피어나면 국가에 중대한 일” 속설 가진 꽃 개화

    일본 ‘도치기 꽃 센터’의 트위터에 올라온 사진 한 장에 일본 누리꾼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도치기 꽃 센터는 트위터 계정에 토비카즈라(トビカズラ)의 꽃 사진과 함께 ‘5년 만에 피었습니다’, ‘없었던 일로 할 수 없으니 못 본걸로 해주세요’라고 적었다. 일본에서 토비카즈라 꽃은 ‘피어나면 국가에 중대한 변화가 일어난다’는 속설을 가지고 있어 이를 재치있게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도치기 꽃 센터의 직원 나카시마 아키는 지난 22일 주말이 지나고 출근해 온실을 둘러보던 중 토비카즈라가 두세 송이 피어있는 것을 발견했다. 나카시마는 “1주일 정도 전에 봉오리를 발견했다”며 “매우 드문 일이었기 때문에 놀랐다”고 전했다. 이어 “꽃이 피어 기쁘지만 무언가가 일어날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불안하기도 하다”며 꽃이 가진 속설을 걱정했다. 일본에서 토비카즈라는 불교에서 3000년에 한번 피어난다는 전설의 꽃인 ‘우담화’로 불리기도 한다. 그만큼 개화가 드물어 꽃이 피면 국가에 중대한 일이 발생한다는 말이 전해지게 됐다. 하지만 이와 달리 자생지역과 환경에 따라 매년 꽃이 피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도호대학교 약용식물원의 가와카미 츠요시는 일본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개체 수가 적고 볼 수 있는 곳이 드물어 여러 속설들이 생겨난 것 같다”며 “어두운 자줏빛의 색깔과 땅을 바라보고 피어나는 꽃의 형태 때문에 안 좋은 일과 연관된 속설이 탄생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한편, 도치기 꽃 센터에서는 7~8년 전부터 토비카즈라를 재배해 왔다. 일본 내에서 토비카즈라를 볼 수 있는 곳은 개화 사진으로 화제가 된 도치기를 비롯해 나가사키, 쿠마모토 등 3개 지역 정도에 불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강경민 콘텐츠 에디터 maryann425@seoul.co.kr
  • “속옷은 흰색, 체육복 안엔 노팬티” 日 교칙 논란

    “속옷은 흰색, 체육복 안엔 노팬티” 日 교칙 논란

    최근 일본의 한 지자체에서 상당수의 중고등학교가 학생들의 속옷 색깔을 검열해 논란이 인데 이어 일부 초등학교가 저학년 학생들에게 체육복 안에 속옷을 입지 말도록 지도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되고 있다. 15일 일본 인터넷 매체인 허프포스트에 따르면 일본 가나가와현 가와사키시의 시립 초등학교 일부는 초등학교 저학년생에게 체육복 안에 속옷을 입는 것을 금지했다. 자민당 소속 야마다 에리 시의원은 지난 9일 시의회에서 “초등학생 학부모로부터 속옷착용 금지 규율에 대한 상담을 받았다. 많은 아이들이 이에 대해 ‘싫다’고 말하고 있다”라며 비판했다. 일부 남성 교사는 속옷 착용 여부를 판단해 주기 위해 여학생의 가슴 성장 상태를 확인한 것으로 드러났다. 가와사키시 교육위원회 측은 “운동 후 땀이나 몸이 차가워지지 않게 하는 등 건강 및 위생상의 문제로, 주로 저학년 학생에 대해 속옷을 착용하지 않도록 지도하고 있는 학교가 일부 있는 것을 확인했다”라고 인정했다. 야마다 의원은 “초등학생은 성의식이 싹트는 매우 중요한 시기”라며 “성의식을 확실히 길러야 하는 시기인데 이에 역행하는 지도를 하고 있다”라며 어떤 지자체에서는 초등학교 고학년에게 브래지어 착용을 금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시 교육위원회에 체육복 안 속옷착용 금지 규율에 대한 조사를 요청했다. 일본 일부 초등학교 학생들의 속옷 규정 논란은 어제 일이 아니다. 이달 초에는 나가사키현의 국공립 중·고등학교의 60% 가량이 학생들의 속옷 색깔을 흰색으로 지정하고 검열해 논란이 됐다. 나가사키현 교육위원회는 속옷 색깔 지정과 속옷을 직접 확인하는 행위는 인권 문제가 될 수 있다며 학교 측에 재검토를 요청한 상태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조선 얼리 어답터 양반들 독일산 광천수 ‘SELTERS’ 마셨을까

    조선 얼리 어답터 양반들 독일산 광천수 ‘SELTERS’ 마셨을까

    14세기 청자상감버드나무갈대무늬대접 한 점신안보물선보다 10년 앞선 첫 수중 신고유물고대부터 中도자기 아시아 넘어 전 세계 유통이집트 푸스타트 유적에선 모방품 발굴되기도 2002년 군산 해역서 ‘SELTERS’ 인장 병 발견獨 천연 광천수 브랜드… ‘젤터스’ 샘물의 기원폴란드 발트해에서도 인장 찍힌 병·물건 발굴도기 병 근대 해양실크로드 연구의 연결 고리1967년 5월, 바닷속 유물이 긴 침묵을 깨고 빛을 봤다. 전남 강진군 마량 앞바다에서 강모씨가 14세기 청자상감버드나무갈대무늬대접 한 점을 신고하면서다. 1975년 어부 최모씨가 존재를 알리면서 발굴이 시작된 신안보물선보다 10년이나 앞선, 우리나라 최초 수중발견 신고유물이다. ●수중 유물 발견 신고 421건 2168점·압수 655건 659점 수중에서 발견해 신고한 유물은 지금까지 421건 2168점이다. 이 유물은 1967년부터 50여년 동안 우리나라 서남해안에서 집중적으로 나왔다. 2004년부터 현재까지 무단으로 도굴된 유물을 압수한 건수는 655건, 659점에 이른다. 발견 지역은 고군산군도를 중심으로 한 전북 군산해역에 집중돼 있으며 전남 신안·완도 해역, 충남 보령·태안 해역과 경기만 일대에서도 신고가 많이 들어온다. 이렇게 찾은 수중 유물은 청자, 백자, 도기, 토기 등 도자기류를 비롯해 동전, 마제석검 등도 있다. 마제석검은 청동기시대 유물로 손잡이가 있는 유병식 한 점과 손잡이를 결합해 사용하는 유경식 석검 한 점인데, 각각 전남 무안군 해제면 도리포 앞바다와 함평군 손불면 월천 앞바다에서 나왔다.토기는 청동기시대 붉은 간토기, 삼국시대 항아리, 시대 미상의 토제품 등이 있다. 동전은 중국 전한의 무제 때부터 사용했던 오수전과 조선시대에 제작한 다양한 상평통보 종류다. 오수전은 전남 여수시 삼산면 서도리 해역에서 발견됐고 상평통보는 충남 보령시 무창포 앞바다와 불모도 앞바다, 태안군 안면도 방포 앞바다에서 신고가 들어왔다. 이 외에 고려시대 동곳(상투가 풀어지지 않도록 고정하는 장신구)과 청동 숟가락, 철제 화포도 있다.●범선 머물던 기착지 도자기는 신안 증도면 방축리 인근 해역에서 신고된 중국 송·원대의 자기가 많은 양을 차지한다. 근대 중국·일본·독일 등에서 생산된 도자기도 포함됐다. 고대부터 중국의 대표 특산품이었던 도자기는 아시아를 넘어 세계 각지로 유통됐다. 당대 이후 활발했던 중국의 도자 수출은 송·원대 적극적 교역정책으로 교역량과 교역 범위가 확대된다.징더전요, 룽취안요, 딩요, 루요 등에서 생산한 중국 도자기는 한국·일본·동남아·페르시아만 연안·아프리카·인도양 연안·홍해유역·유럽 등의 해안과 수중에서 발견된다. 중국 자기가 인기를 끌면서 국제적으로 수요가 증가했고 모방품이 나오기도 했다. 이집트 푸스타트 유적에서는 중국 룽취안요에서 생산된 뚜껑 있는 주름무늬항아리 청자와 닮은 도기질의 주름무늬항아리 뚜껑 편이 발굴되기도 했다. 우리나라 서남해안은 고대부터 한중일 선박이 왕래하던 주요 뱃길이었다. 19세기 초부터 한반도 주변 해역에는 중국과 일본을 왕래하며 무역 활동을 하던 외국 상선이 드나들기 시작했다. 범선이 조수간만의 차이가 심한 서해안 연안을 항해하려면 바람과 조류의 흐름을 잘 이용해야 한다. 조류는 하루에 썰물과 밀물이 두 번씩 약 6시간 간격으로 반복된다. 서해에서 밀물은 남서에서 북동으로, 썰물은 북동에서 남서로 흐른다. 범선은 조류를 기다려야 하는데, 선원들이 사용할 물품을 공급받을 장소가 필요했다. 범선이 머물렀던 기착지는 험난한 항해 구간을 지나기 전 조류를 기다리기에 좋은 장소였다. 그래서 기착지 주변 해역은 수중발견 유물이 주로 신고되는 주요 지점이기도 하다. ●세계 곳곳서 발견된 ‘SELTERS’ 인장 2002년 전북 군산시 옥도면 야미도리 해역에서 ‘SELTERS’ 인장이 찍힌 도기 병을 박모씨가 발견한 적이 있다. 도톰한 입술부와 짧은 목의 이 병은 어깨 부분 한쪽에 손잡이가 붙어 있고, 반대편에는 동그란 인장과 명문이 찍혀 있었다. 인장은 왕관을 쓴 사자 한 마리를 중심으로 ‘SELTERS’라는 문자가 둘러싸고 아래에 ‘○○○THUM NASSAU’라는 명문이 있었다. 이 병은 2002년 신고된 이후 국가 귀속 절차를 거쳐 국립전주박물관에 소장됐다. 병에 찍힌 ‘SELTERS’는 독일 타우누스산맥의 헤센주 젤터스(Selters) 지역에 있는 수원지에서 공급된 천연 광천수 브랜드다. 이 광천수는 청동기시대부터 알려진 유명한 천연 탄산수로, 현재 유명 호텔이나 레스토랑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젤터스’ 샘물의 기원이다. 16세기에 귀족과 왕족을 중심으로 이 광천수 수요가 많아졌다. 젤터스 광천수는 16세기 말에서 17세기에 도기로 만든 병에 담아 전 세계로 수백만개가 수출됐다고 한다.최근 폴란드 발트해 해안에서도 군산 옥도면 야미도에서 발견된 ‘SELTERS’ 인장이 찍힌 병과 유사한 물건이 발굴됐다. 폴란드 그란스크 국립해양박물관 고고학자 토마즈 베드나르즈 박사와 폴란드 고고학자들은 발트해 12.2m 아래에서 난파선을 발견했는데, 이 난파선에서도 200년 된 ‘SELTERS’ 인장이 찍힌 도기 병과 코르크 마개, 도자 편 등이 함께 나왔다. 2001년, 말레이시아 조호르 데사루 해안에서 약 2해리(3.7㎞) 정도 떨어진 지역의 수심 20m에서 1830년대 선박과 중국 징더전요와 더화요에서 생산한 청화백자병이 발굴됐다. 자줏빛 흙으로 만든 항아리로 유명한 이싱요에서 생산한 찻주전자와 함께였다. 1956년 미국 정부는 미네소타 스넬링 요새의 유적을 보존하고 원래 모습대로 복원하고자 발굴했다. 이 요새는 1946년 군대가 해체할 때까지 다양한 군사 기능을 수행했다. 스넬링 요새는 1820년 미국 정부가 서부 영토에 거점을 확보하기 위해 미시시피강과 미네소타강이 합류하는 곳에 설립했는데, 미국 미네소타 역사협회(MNHS)의 낸시 벅 호프먼은 이 요새 복원 중에 발견한 ‘SELTERS’ 문장과 그 아래에 ‘HERZOGTHUM NASAU’라는 글자가 적혀 있는 독일 도기 병에 특별한 관심을 보였다. 그는 ‘왜 1만여개의 호수가 있는 땅에서 무거운 도기 병에 담긴 물을 머나먼 유럽에서 수입했을까’라는 의문이 생겼다. 그는 그 이유를 해상 운송 시스템의 뒷받침과 건강에 관심이 많았던 19세기 중반의 사회현상으로 보았다. ●獨 상인 1868년 조선과 통상 요구하며 군산으로 들어와 군산 야미도에서 나온 도기 병은 폴란드 발트해 연안 난파선, 말레이시아 데사루 해안 난파선, 미국 미네소타 스넬링 요새 등에서 발굴된 독일 병과 함께 근대 해양실크로드 연구의 연결 고리 역할을 한다. 이 도기병은 근대 한반도 서남해안의 외국 범선의 항해와도 관련 있는 유물이다. 1868년 독일 상인 오페르트는 조선과의 통상 요구를 강화하고자 충남 덕산에 있는 흥선대원군의 아버지인 남연군의 묘를 도굴하기로 했다. 그 일행은 일본 나가사키에서 소총과 도굴용 도구를 구입한 후 ‘차이나호’와 ‘그레타호’라는 두 척의 기선을 이끌고 덕산군 구만포에 들어왔다. 군산 야미도는 일본 나가사키에서 구만포로 올라가는 길목에 있는 주요 기착지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이 해역은 2006년부터 3년에 걸쳐 12세기 고려청자 4000여점이 발굴된 곳이기도 하다. 목포에 있는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는 우리나라 수중발견 신고·압수유물을 정리해 2010년과 2020년 두 차례에 걸쳐 2권의 도록으로 발간했다. 일부 유물은 연구소 전시실에서 직접 감상할 수 있다. 화려한 조명을 받으며 세상에 나온 수중발굴 유물과는 달리 긴 세월 동안 관심 밖에 있던 수중발견·압수유물 연구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김애경 문화재청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
  • “흰 속옷 아니면 학교에서 벗긴다”…상상초월 日학교 교칙[이슈픽]

    “흰 속옷 아니면 학교에서 벗긴다”…상상초월 日학교 교칙[이슈픽]

    “남자가 욕정 느끼니 목덜미 감춰라”, “흰 속옷 아니면 입지마” 일본 중학교의 상상초월 교칙이다. 일본 나가사키현의 국공립 중·고등학교의 60%가량이 학생들의 속옷 색깔을 흰색으로 지정하고 속옷 색을 검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5일 NHK 방송에 따르면 나가사키현 교육위원회가 현 내 국공립 중고등학교 총 238곳을 대상으로 학교 교칙에 대해 조사를 벌인 결과 이 같은 결과가 나왔다. 나가사키현 교육위원회는 속옷 색깔 지정과 속옷을 직접 확인하는 행위는 인권 문제가 될 수 있다며 학교 측에 재검토를 요청했다. 나가사키현 전체 58%에 해당하는 138개교가 속옷 색깔을 ‘흰색’으로 지정하고 있다. 교육청 아동학생지원과는 “학교가 난폭했던 시대에 풍속 보호를 위해 속옷 색을 흰색으로 통일한 것으로 기억한다. 오래전에 만들어진 교칙이 아직 남아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어 관계자는 “인권 문제의 관점 및 시대가 바뀜에 따라 그에 맞는 교칙으르 적극적으로 재검토해야 할 필요가 있다”며 “각 학교에서 재검토 해달라”고 당부했다. NHK에서 한 여중생은 “학교 교칙에 따라 속옷 색이 흰색으로 지정되고 정기적으로 속옷 색상 확인이 이뤄지고 있다”며 “체육 시간에 옷을 갈아입을 때 여선생님이 교실에서 속옷 확인을 한다. 속옷은 흰색이 아니면 안된다”고 말했다. 이어 이 여중생은 “속옷 가게에 따라 흰색이 아닌 색상만 파는 경우도 있어, 흰색 속옷을 고집하는 것은 현시대에 맞지 않는다”며 “속옷 색깔을 확인하는 것도 싫다”고 덧붙였다. 나가사키대학 교육학부 교수는 “속옷 색에 관해 교칙으로 규정할 필요가 없지 않을까 한다”며 “속옷을 실제 확인하는 행위도 있다. 방법에 따라 인권적으로 문제가 된다”고 지적했다.앞서 후쿠오카현에서도 비슷한 논란이 있었다. 후쿠오카현 변호사회는 “교칙 중에 불합리한 내용이 많고 인권침해에 해당하는 것도 있다”면서 현 교육위원회 등에 재검토 제안을 했다. 변호사회는 정보 공개 청구를 요구해 각 학교 교칙 자료를 입수해 조사했다. 그 결과 속옷 색상을 흰색 등 특정 색깔로 지정한 학교는 조사 대상의 83%에 달하는 57개 학교였다. 속옷에 관해서는 “규정 위반이면 속옷을 학교에서 벗긴다”, “복도에서 일렬로 줄지어 선 뒤 셔츠를 열어 속옷을 체크한다”는 답변까지 나왔다. 또 여학생이 뒷머리를 귀밑으로 묶어야 하는 이유를 묻자 교사가 “남성들이 목덜미를 보고 욕정을 느끼니까”라고 답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김채현 기자 chkim@seoul.co.kr
  • 상 차리는 로봇, 재택근무 전용석…日음식점 ‘코로나 역발상’

    상 차리는 로봇, 재택근무 전용석…日음식점 ‘코로나 역발상’

    일본에서도 코로나19 장기화로 자영업이 직격탄을 맞으며 폐점하는 점포가 속출하자 현 상황에 맞는 영업 방식을 찾기 위해 외식업계가 골머리를 앓고 있다. 사람이 아닌 로봇이 서빙하거나 재택근무 전용 좌석을 만드는 등 코로나19 시대에 적응하기 위한 여러 가지 점포가 선보여지고 있다. 28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100대 상장 기업의 폐점 계획 조사(실제 폐점 점포 포함) 결과 지난해부터 올해 1월까지 전체의 약 5%에 해당하는 2700개 점포의 폐쇄가 결정됐다. 지난해 7월 말까지만 해도 약 1170개 점포였지만 2.3배 확대된 수치다. 도쿄 등 주요 지역에 긴급사태가 선포되고 또 연장되면서 매출 하락이 장기화되고 있고 또 긴급사태가 해제된다 하더라도 매출 회복을 기대할 수 없어 폐점을 선택한 기업이 많다는 게 이 신문의 설명이다. 특히 코로나19가 극성을 부리던 지난해 12월부터 1월까지 2개월간 무려 700개 점포 폐점이 결정되기도 했다. 나가사키짬뽕 전문점 링가하토는 지난해 12월 말까지 70개 점포의 폐점을 결정한 데 이어 추가로 23개 점을 닫기로 했다. 이자카야 이소마루수산을 운영하는 크리에이트레스토랑HD는 올해 2분기 전체 점포의 10%인 115점을 폐점하기로 했지만, 그 규모는 더 늘어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영업 방식을 코로나19 상황에 맞춰 전면적으로 바꾸려는 노력도 이어지고 있다. 100엔 초밥으로 유명한 회전초밥 전문점 쿠라스시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해 음식을 주문하고 음식을 받고 계산하는 전 과정에서 점원을 거치지 않고 할 수 있는 비접촉식 매장을 열었다. 라면 체인점인 코라쿠엔홀딩스는 올해 안에 손님이 상차림이 가능한 로봇 100대를 매장에 도입할 계획이다. 재택근무 체제를 새로운 사업 아이템으로 이용하는 업체도 있다. 패밀리레스토랑 데니스를 운영하는 세븐&아이·푸드시스템즈는 4~13개석의 재택근무 전용석이 있는 점포를 운영 중이다. 콘센트와 와이파이 이용이 가능한 데다 음료 포함 600엔의 이용료로 오후 2시부터 6시까지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김진아 기자 jin@seoul.co.kr
  • 일본 변호사 램지어 ‘위안부’ 논문 안믿어…같은 하버드 교수도

    일본 변호사 램지어 ‘위안부’ 논문 안믿어…같은 하버드 교수도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활동해 온 도쓰카 에쓰로 변호사도 피해자를 매춘부로 규정한 존 마크 램지어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의 글이 학술 논문의 기본 요건을 제대로 갖추지 않아 신뢰할 수 없다고 밝혔다. 도쓰카 변호사는 28일 연합뉴스를 통해 램지어 교수의 논문이 “자기가 말하고 싶은 내용에 부합한 것만 인용했다”며 “연구의 객관성이나 여러 가지 요건을 주의 깊게 살피는 태도가 갖춰져 있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램지어가 일본군 위안부 동원을 계약이라는 틀로 분석한 것과 관련해 “(피해자들 다수가) 속아서 간 것”이라며 “계약이니까 괜찮다고는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도쓰카 변호사는 1932년에 일본인 여성 15명을 일본 나가사키항에서 배에 태워 중국 상하이로 보낸 후 ‘해군 지정 위안소’에서 당시 일본 해군에게 성적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강요한 사건을 예로 들었다. 이 사건으로 일본인 10명이 기소됐고 1936년 11월 1심에서 유죄 판결이 내려졌다. 도쓰카 변호사는 앞서 이 사건의 1심 판결문을 분석한 논문에서 피해자들이 “일본군 위안부가 된다는 것을 모르고 속아서 나가사키에서 유괴돼” 중국으로 이송된 것이라고 규정한 바 있다. 도쓰카 변호사는 일본 열도 내에서 이런 식으로 여성을 속여서 동원하는 것은 경찰이 문제를 삼았고 일본 내에서 그렇게 하는 게 쉽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한반도에 가서 총독부나 경찰과의 협력하에서 단속되지 않는 방식으로 피해자들을 동원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조선 피해자들의 증언을 들으면 나가사키 판결에 쓰여 있는 대로다. 대부분의 사람이 속았다”고 강조했다.같은 하버드대 로스쿨에 근무하는 한국인 여성인 석지영 교수도 지난 26일 미국 현지 잡지 ‘뉴요커’에 기고한 글을 통해 램지어의 논문을 반박했다. 석 교수는 하버드대 로스쿨에 임용된 최초의 한국인 여성으로 램지어와는 일본 칼에 대한 안내를 받을 정도로 친분이 있는 사이라고 설명했다. 뉴요커지의 기자로도 활동하고 있는 석 교수는 ‘위안부의 진실을 찾아서’라는 제목의 기고문에서 램지어 교수가 “한국인 위안부가 작성한 계약서를 갖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앞서 램지어 교수는 자신의 논문 ‘태평양 전쟁의 성 계약’을 통해 위안부 문제를 매춘업자와 예비 매춘부 간 계약행위로 규정한 바 있다. 하지만 학계에선 그가 계약 문제를 언급해놓고서도 정작 한국의 위안부 피해자들이 작성한 계약서를 제시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제기돼왔다. 대신 램지어 교수는 앞서 자신이 전쟁 전 일본에서의 매춘 고용계약에 관해 1991년 쓴 논문에 기초했다고 석 교수에게 추가로 설명했다. 램지어 교수는 석 교수에게 “한국인 여성의 계약서를 확보하면 좋을 것 같았는데, 찾을 수 없었다”고 시인한 뒤 “당신도 못 찾을 게 확실하다”고 말했다. 램지어 교수는 또 10살짜리 일본 소녀 위안부의 사례도 잘못 인용했다고 밝혔는데, 오사키란 이름의 이 소녀는 당시 위안부가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몰랐다고 증언했다. 하지만 램지어 교수는 ‘반일 종족주의’ 공동저자 4명을 포함한 한국인 15명이 이번 논란을 램지어 교수에 대한 “마녀사냥”이라고 비판한 성명서도 석 교수에게 보내줬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샌프란시스코 서점 ‘시티라이츠’ 끝까지 지킨 펄링게티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샌프란시스코 서점 ‘시티라이츠’ 끝까지 지킨 펄링게티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서점 ‘시티라이츠’는 1950년대 물질만능·소비지향 사회에 저항한 ‘비트 세대’의 안식처였다. 주인은 시인인 로런스 펄링게티다. 1950년대 초 샌프란시스코에 자리를 잡고 당시 이 일대를 중심으로 펼쳐진 시작(詩作) 활동인 ‘샌프란시스코 르네상스’에 동참했다. 문학인들의 모임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그는 1953년 사회학자 피터 마틴과 함께 500달러씩 출자해 페이퍼백(보급판) 책을 파는 이 서점을 열었다. 서점 이름은 찰리 채플린의 영화 제목에서 따왔다. 그는 일간 뉴욕 타임스(NYT) 인터뷰를 통해 “무언가를 사야 한다는 곤란함 없이 앉아서 책을 읽을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 됐다”고 말했다. 아직 보편화하지 않았던 페이퍼백을 판매하는 시티라이츠는 곧 ‘다른 서점이 무시하는 책을 파는 서점‘이자 ‘저자들의 모임 공간’이 됐다. 펄링게티는 1955년부터 시티라이츠를 통해 출판에도 나섰다. 자신의 시집을 포함해 비트 세대의 ‘지도적 시인’으로 꼽히는 앨런 긴즈버그, 그레고리 코르소, 마이클 매클루어 등의 시집을 냈다. 펄링게티가 지난 22일(이하 현지시간) 저녁 샌프란시스코 자택에서 별세했다고 미국 언론들이 일제히 보도했다. 향년 101. 아들 로렌조는 AP 통신에 아버지가 폐 질환으로 숨졌으며 지난주 코로나19 백신 관련 1차 접종을 받았다고 전했다. 다음달 24일 102번째 생일을 불과 한 달 남겨두고 세상을 등졌다. 최근 몇년 시력이 크게 나빠졌는데도 시티라이츠의 운영시간을 지키고 시 쓰기를 계속해왔다고 했다. 부음을 들은 팬들이 다음날 서점을 찾아 추모했다고 영국 BBC가 24일 전했다. NYT는 고인을 ‘비트운동의 정신적 대부’라고 평가했다. 1950년대 미국에서 등장한 비트세대는 1920년대 태어나 제2차 세계대전을 겪은 세대로, 당시 찾아온 ‘풍요의 시대’에 인간이 획일·동질화해 산업사회 부속품으로 전락하는 것에 저항했다. 1919년 뉴욕에서 태어난 펄링게티는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아버지는 그가 태어나기 전에 세상을 떠났고, 어머니도 곧 정신질환으로 병원에 입원했다. 그 뒤 친척 집을 전전하던 그는 부유한 가정에 입양됐다. 노스캐롤라이나대에서 언론학을 공부한 뒤 해군에 입대했다. 그는 1945년 나가사키에 핵폭탄이 투하된 지 몇 주 뒤 일본을 방문했고 이 때의 경험이 스스로를 ‘곧바로 평화주의자로 만들었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군 복무 뒤엔 컬럼비아대에서 영문학 석사학위, 프랑스 파리 소르본대에서 비교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1958년 낸 시선집 ‘마음속 코니아일랜드’가 세계적으로 100만권 이상 판매될 정도로 재능있는 시인이었다. 1956년 긴즈버그의 시집 ‘울부짖음’(Howl)을 출판하면서 외설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펄링게티는 그해 10월 한 미술관에서 긴즈버그가 ‘울부짖음’을 낭독하는 것을 보고 즉석에서 출판을 제안했다고 한다. 외설물을 출판했다는 혐의로 기소된 펄링게티는 1957년 무죄 판결을 받았는데 ‘울부짖음’의 주제가 성적이긴 하지만 현대사회에 대한 비판을 담았고 헌법상 표현의 자유 보호 대상이라는 것이 판결의 요지였다. 이 판결은 수정헌법 1조와 관련한 역사적 판결 중 하나로 꼽힌다. 정작 자신은 2013년 다큐멘터리 인터뷰를 통해 스스로를 운동의 일부로 여기지 않았다고 털어놓았다. “날 비트라고 부르지 말라. 난 결코 비트 시인이 아니었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헌재 “해방전후 일본인 재산거래 무효화한 미군정법 합헌”

    헌재 “해방전후 일본인 재산거래 무효화한 미군정법 합헌”

    1945년 8월 해방 전후에 한국에 남아 있던 일본인의 재산 거래를 무효로 간주한 미군정법이 합헌이라는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왔다. 헌재는 해방 전후 일본인의 재산을 미군정 소유로 한 재조선 미국 육군사령부 군정청법(미군정법)이 소급입법 금지 원칙을 위반한다는 내용의 헌법소원 심판에서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합헌 결정을 내렸다고 3일 밝혔다. 미군정법 2호 4조 등은 1945년 8월 9일 이후 성립된 일본인 재산거래는 모두 무효이며, 일본인 재산의 소유권은 같은 해 9월 25일자로 미군정청에 귀속하도록 했다. 1949년 8월 9일은 연합군이 일본 나가사키에 2차 원자폭탄을 투하한 날이다. 이 조항은 사실상 2차 세계대전이 마무리된 1945년 8월 9일부터 미군정이 수립될 때까지 일본인 재산 거래의 법적 상태가 불안정했던 점을 반영한 것이다. 이번 헌법소원 사건의 청구인은 2016년 11월 경매를 통해 울산시 소재 토지 소유권을 취득하고, 이 토지를 점유한 울산시 중구를 상대로 부당이득금 반환청구 소송을 냈다. 하지만 중구는 “등기부상 토지 소유자가 1945년 8월 10일 일본인으로부터 이 토지를 사들여 같은 해 9월 7일 이전 등기를 한 만큼 이 계약은 미군정법에 따라 무효”라고 맞섰다. 청구인이 애초 소유권이 없는 자로부터 토지를 넘겨받은 것이라는 지적이다. 헌재는 미군정법의 일본인 재산거래 무효 조항이 법적으로 이미 종결된 법률관계에 적용되는 법을 만들지 못하도록 한 헌법의 소급입법 금지 원칙을 위반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비록 1945년 9월 이후 공포된 미군정법이 이미 완료된 계약을 소급해서 모두 무효로 본 것은 맞지만 일본이 불법적인 한일병합 조약으로 축적한 재산을 그대로 대한민국에 이양하는 공익이 더 크다고 봤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