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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30 세대] 댄디/김현집 공군사관학교 교수부 역사·철학과

    [2030 세대] 댄디/김현집 공군사관학교 교수부 역사·철학과

    댄디, 댄디하다. 영어로 댄디(dandy)는 옷 잘 입는 사람, 옷에 관심 많은 사람을 가리킨다. 차려입지 않은 듯, 힘을 주지 않고도 멋스러워 보이는 사람, 이것도 댄디다. 댄디한 사람으로 18세기 영국인 ‘보 브러멜’이 있다. 이 브러멜이 지금 우리가 입고 있는 남성 정장의 스타일을 만들었다. 댄디는 댄디즘(dandyism)을 만들었고, 문학 스타일, 삶의 태도, 미학, 예술인의 모습까지 일컫기에 이르렀다. 위티한 오스카 와일드, 흰색 플란넬 바지를 입은 TS 엘리엇이 댄디라 할 수 있다. 위트, 댄디, 플란넬, 지금은 자주 쓰는 단어가 아니다. 이 단어들을 무엇이 대체했을까. 댄디 하면 떠오르는 사람으로 조금은 생소한 영국의 20세기 연극평론가 케네스 타이넌을 꼽고 싶다. 케네스 피콕 타이넌. 1927년생이다. 자기 아버지의 성(姓)인 중간 이름 피콕(Peacockㆍ공작새)에서 벌써 댄디의 냄새가 물씬하다. 타이넌은 영국 최고의 연극 평론가이다. 적어도 내 생각엔. 글을 뼈를 파고들게 잘 쓰고, 그 글 안에 통찰을 담았다. 내가 쓰고자 하는 글의 롤모델이었다. 타이넌은 옥스퍼드에 입학하던 날 보라색 사슴가죽 슈트와 황금빛 새틴 셔츠를 입었다. 가난한 학생이었지만 고급식당에서 값비싼 식사를 한 후 잔돈의 쨍그랑거리는 소리가 거슬린다며 거리에 동전을 호기롭게 던졌다. 이 현란한 제스처가 그에겐 ‘댄디즘’이다. 타이넌은 무섭게 일했다. 글 쓰고, 토론하고, 엄청난 분량의 책을 읽었다. 졸업 후 연극 리뷰를 모아 첫 책을 출간했는데 서문을 써 줄 사람으로 그 당시 유명했던 천재 감독이자 배우인 오슨 웰스로 정했다. 안개 낀 날 파리의 다리 위에서 웰스를 붙잡고 책의 원고를 보여 주며 서문을 써 달라 했다. 타이넌의 당돌함과 명석함에 반했을까. 웰스는 흔쾌히 서문을 써 주었다. 타이넌은 1980년 53세에 폐기종으로 사망했다. 타이넌에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에 나는 옥스퍼드의 여러 칼리지 중에서도 타이넌(과 오스카 와일드)이 몸담았던 모들린칼리지에 지원했다. 모들린 도서관에서 일하는 할아버지가 보라색 옷을 입고 휘청거리며 걷던 타이넌을 기억한다는 얘기를 듣고 얼마나 반가웠던지. 무엇보다 나는 타이넌처럼 글을 쓰려고 했다. 그가 했던 것처럼 옥스퍼드의 신문사에서 편집장도 하고 연극 리뷰도 썼다. 공모전에도 리뷰를 냈었는데 영국 가디언지의 평론가가 내 글을 보며 “우리 사이에 작은 타이넌이 있는 것 같다”라고 한 말을 듣고 뛸 듯이 기뻐하기도 했다. 공모전에서는 탈락했다. 멋은 좋은 동기가 된다. 멋지고 싶다면 추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문학을 알면 이롭다, 서로를 존중하는 것은 도리이다, 공부해야 성공한다.’ 이 같은 말은 와닿지 않는다. ‘문학을 알고, 존중하고, 공부하는 삶이 멋있다’는 게 설득력이 있다. 멋지게 살자. 설령 올라가서 차버릴 사다리일지라도.
  • [2030 세대] 30대 ‘꼰대’가 MZ세대와 일하는 법/박누리 스마트스터디 IR&기업전략 리더

    [2030 세대] 30대 ‘꼰대’가 MZ세대와 일하는 법/박누리 스마트스터디 IR&기업전략 리더

    만 서른아홉, 직장인 13년차다. 수평적인 조직 문화를 지향하는 스타트업으로 오면서 직급이나 직함이 내가 하는 업무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게 되었고, 직급이 올라가도 권위가 따라오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어쨌든 일반 기업에서는 대략 고참급 중간관리자인 셈인데, 그마저도 지금 회사에서는 1인팀이라 시시콜콜한 잡무부터 반드시 직접 해야 하는 일까지 전부 혼자서 하고 있다. 수십 장의 계약서를 인쇄해서 한 장 한 장 간인을 찍거나, 백 통이 넘는 주주총회 소집통지서를 일일이 손으로 접어 봉투에 넣고 풀칠하면서 “이게 지금 내 짬밥에 할 일인가” 자조 섞인 불평을 하기도 한다. 이번에는 기필코 사람을 뽑아야겠다고 궁시렁거리기도 하지만, 사실은 홀몸이 편할 때가 더 많다. 조직장이 되어 챙겨야 할 부서원이 생기면, 말 그대로 ‘관리’에 많은 시간과 품이 들기 때문이다. 모든 주니어들이 그렇듯이, 상사가 부당한 지시를 하거나 귀찮은 일을 떠넘기는 것이 너무 싫었던 어린 시절에는 위로 올라가면 모든 것이 저절로 해소될 줄 알았다. 그런데 웬걸, 처음으로 밑에 사람이 생기고 보니 신경 쓰이는 일이 이렇게 많을 줄이야. 더욱이 나는 요즘 세간에서 “낀 세대”라 부르는 전형적인 샌드위치 30대 후반이고, 내 밑의 주니어들은 전 세계가 무서워하는 바로 그 MZ세대인 것이다. 대기업을 나와 첫 스타트업에서 만난 91년생 주니어에게 “회사에서 대외적인 커뮤니케이션은 기본적으로 (메신저가 아닌) 이메일로 해 주세요”라고 얘기했다가 면전에서 “너나 잘하세요”라는 말을 들었을 때의 컬처쇼크를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내가 아직 대기업 물이 안 빠져서 그런 건가, 이게 말로만 듣던 스타트업 문화인 건가, 이게 정상이고 이 상황에 경악하는 내가 비정상인 건가. 순간적으로 가치관에 혼란이 오면서 내가 과연 이 세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 자신이 없어졌었다. 두 번의 이직을 거쳐 이제 세 번째 스타트업에 안착했지만, 여전히 주변에는 20~30대 초반 직원들이 절대적으로 많고, 나는 그들 나이 때 내가 그랬던 것처럼 윗사람의 심기를 살피기보다는, 나보다 한참 나이 어린 친구들 눈에 내가 그저 능력도 역량도 없이 타이틀만 차지하고 있는 ‘노땅’이 아닌지 더 눈치를 본다. 실력도 실력이지만, 말이 안 통하는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해 말 한마디를 하더라도 상대방 입장에서 한 번 더 생각해 보게 된다. 한편으로는 억울하고 한편으로는 스트레스받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그래도 ‘라떼’(나때는)와 비교하면, 윗사람이 아랫사람 눈치를 보는 세상이 그 반대보다 더 낫다는 생각을 한다. 나도 모르게 “요즘 애들은”이라고 한탄하지만, 세상은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생각도. 그러니 꼰대로 보이지 않으려고 발버둥칠 시간에 차라리 필요할 때 언제든지 연락할 수 있는 쿨하고 멋진 큰언니, 큰누님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나 고민해 봐야겠다.
  • “판 커지는 반도체·배터리… 美에 장기파트너 인식 심어 줘야”

    “판 커지는 반도체·배터리… 美에 장기파트너 인식 심어 줘야”

    한미 정상회담이 임박하며 한국 기업들의 대미 행보에도 관심이 쏠린다. 우리 정부의 가장 시급한 현안인 백신 확보와 맞물려 이번 방미 일정에 동행하는 주요 기업들이 미 행정부에 반도체·배터리 등의 ‘투자 보따리’를 풀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학계 전문가들은 장기적인 안목에서 대미관계에 대응할 것을 주문했다. 우선 이번 한미 정상회담이 기업들에도 중요한 기회가 될 것이라며 한국이 조 바이든 행정부의 장기적인 파트너가 될 수 있음을 보여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양준모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19일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미국 정부는 자국 일자리 문제 해결 등을 위해 우리 기업들의 미국 투자가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이번 정상회담에서 강조할 것”이라며 “기업들은 한발 앞서 과감한 현지화 전략을 갖고 미국에 생산 교두보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양 교수는 또 바이든 행정부가 반도체와 배터리 산업 등에서 자국 중심의 글로벌 공급망 재편을 추진하고 있는 상황에 대해 “앞으로 판이 더 커질 수 있다. 유연한 사고를 갖고 글로벌 밸류체인(가치사슬)의 역할 분담에 나서야 한다”고도 말했다. 정인교 인하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더 많은 대미 투자의 기회가 열렸다”면서도 단순히 투자 규모에 함몰돼서는 안 된다고 진단했다. 삼성전자와 대만 TSMC 등 반도체 일류기업의 투자 금액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지만 규모만큼 투자의 ‘내용’도 중요하다는 의미다. 정 교수는 “미국은 (한국 기업과의 파트너십이) 지속 가능한지를 살필 것”이라며 “우리 기업들이 미국에서 어떤 생산활동을 할 것인지를 종합적으로 봐야 하는데, 현재는 너무 투자금액에만 관심이 쏠려 있다”고 지적했다. 이상근 서강대 경영학부 교수는 “우리 기업들이 백신 때문에 투자를 한다는 압력이나 부담을 받아서는 안 된다”면서 “냉정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을 기점으로 우리 정부와 기업 모두 미중 사이 선택의 딜레마에 빠질 것이란 관측도 대체적이다. 이와 관련, 이경묵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이번 정상회담에서) 바이든 행정부는 우리 기업들에 중국의 ‘기술 굴기’에 협조하지 말라고 요청할 수 있다”고 예상했다. 이 때문에 재계 입장에서 정부 역할이 가장 필요한 지점이 바로 ‘미중 딜레마’에 있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정 교수는 “한국이 미중 사이에서 균형을 찾을 수 있는 게 제일 좋지만, 세계질서가 급변하는 상황에서는 어려운 일”이라며 “우리 기업들이 이러한 변화에 대응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정부는 미중 사이에 놓인 기업들이 대책을 준비할 수 있도록 시간을 벌어 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경묵 교수는 “정부가 지나치게 간섭하기보다는 우리 기업들이 면밀하게 검토해서 새롭게 투자할 곳을 찾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안석·한재희 기자 sartori@seoul.co.kr
  • 톡톡 쿵쿵 곰곰 슥슥 어른들 모르는 박공형 정거장

    톡톡 쿵쿵 곰곰 슥슥 어른들 모르는 박공형 정거장

    건축가들은 사용자의 생활을 관찰하고 요구를 파악한 뒤 자연과 역사, 도시적 맥락을 고려해 공간을 디자인한다. 때로 사용자들을 적극적으로 디자인 기획에 끌어들이기도 한다. 전주시립도서관 3층에 조성된 국내 최초의 트윈세대 전용 공간 ‘우주로 1216’의 경우다. ‘트윈’(tween)은 10대(teenager)와 사이(between)의 합성어로 초등학교 고학년과 중학생의 연령대를 가리킨다. 공간 구축을 맡았던 이유에스플러스건축의 공동대표 서민우·지정우 건축가를 만나 참여설계를 기반으로 한 우주로 1216의 설계 과정을 들어 봤다.우주로 1216은 도서관 건물에 자리잡았지만 조용하게 앉아서 책을 읽는 도서관과는 완전히 딴판이다. 맘껏 떠들고 쿵쿵거리며 친구들과 뛰어다녀도 된다. 친구들과 몸을 던져 놀기도 하고 다락방 같은 곳에서는 책을 읽다가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도 보인다. 혼자 열심히 그림을 그리는 아이, 소파에서 독서 중인 아이도 있다. 한 테이블에서는 초등학교 고학년생 둘이 3D 펜슬로 자동차도 만들고, 어떤 아이들은 블록 쌓기를 한다. 어떤 아이는 책 보다가 철봉을 넘기도 한다. 녹음실에서는 친구들과 목청을 높여 좋아하는 노래를 부르고 있다. 선생님에게 뜨개질 수업을 받는 아이들도 있다. 형님뻘 되어 보이는 아이들은 그물망 위의 아지트에서, 언니뻘 되는 아이들은 창가에 마련된 바테이블에서 친구들과 도란도란 이야기 중이다. 다양한 디자인의 가구와 설치물을 이용해 자유롭게 놀고, 만들고, 얘기하고, 그러다 지치면 책을 본다. 아무튼 다들 즐겁다. 트윈세대는 나이로 치면 12세에서 16세, 초등학교 5학년에서 중학교 3학년의 아이들이다. 어느 정도 자기 의견이 서고 취향이 생기는 중요한 시기다. 그럼에도 이들에 대한 사회의 관심은 거의 없다. 중요도에 비해 그들을 위한 공간 자원은 마련돼 있지 않다. 지정우 건축가는 “트윈세대는 어린이의 세계에서 청소년의 세계로 건너가는 전환점에 선 나이”라고 정의했다. 다양한 영역에 호기심이 생기고 새로운 경험을 하고 싶지만, 집과 학교 공간은 그 요구를 채워 주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그는 “학교는 천편일률적이고 집도 아파트나 빌라여서 구조가 단순하고, 도서관은 너무 딱딱하다. 키즈카페와 입시학원 사이에서 안전한 탐험공간과도 같은 곳을 마련해 주고 싶었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트윈세대 아이들에게 관심을 갖고 이들을 위한 공간을 만들어 주자는 제안은 도서관의 새로운 모델을 고민하고 준비하는 책읽는사회문화재단, 도서문화재단씨앗에서 비롯됐다. 첫 사업으로 전주시립도서관 1개 층 전체를 트윈세대의 전용공간으로 구축하기로 하고 벤처 1세대의 기금으로 운영되는 C프로그램이 프로젝트 기획과 진행을 맡아 ‘스페이스 T’ 프로젝트가 2019년 1월 출범했다. 콘텐츠 기획은 진저티프로젝트가 맡았고 어린이박물관과 학교 등의 디자인 경험이 축적된 이유에스플러스 건축은 물리적 공간의 구축을 맡게 됐다.두 건축가의 접근 방법은 시작부터 달랐다. 아이들에게 ‘주말에 가는 좋아하는 공간은 어디가 있나요?’, ‘그곳을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학교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는 어디인가요?’와 같은 질문들이 담긴 ‘트윈 공간노트’를 나눠 주고 자유롭게 표현하도록 했다. “원하는 것을 표면적으로 드러내는 것뿐 아니라 아이들의 잠재력을 일깨우고 아이디어를 단계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해서입니다. 전주시라는 도시적 맥락에서 트윈세대의 일상이 어떤지, 아이들이 주로 가는 곳, 생각하는 이상적인 공간 등은 어떤 곳인지 알기 위해 글을 써 보도록 했습니다.” 서민우 건축가의 말이다. 트윈세대 공간은 국내에서 처음 만들어지는 것인 데다 공간을 새로 짓는 것도 아니어서 처음부터 어떤 구상을 가지고 시작하지 않았다. “층고는 똑같고 옆으로 기다란 평면적인 공간을 어떻게 입체적으로 구상할지 처음엔 막막하기도 했다”는 지 건축가는 “아이들과 디자인워크숍으로 만나면서 이들의 생각을 알아가는 것이 디자인 과정이 될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낀 세대 아이들은 또래 친구들과의 우정을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그런데 집과 학교 외에 가장 마음 편하게, 자주 가는 곳이 고작 편의점이었다. 돈이 좀 있다면 모아서 친구들이 함께 노래방에 가서 발산하는 정도였다. 이들이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은 제한적이었지만 원하는 공간은 구체적으로 그릴 수 있었다. ‘무언가를 꼭 해야 하는 의무감이 없는 공간, 친구네 집같이 편안하면서도 자유로운 공간, 공부 말고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공간’을 원했다. 아이들은 자신들만을 위한 공간을 만드는 일에 참여한다는 자부심을 가져서인지 생각을 촘촘하게 얘기해 주었다. 이 공간에서 갖게 될 감성과 느낌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들을 수 있었다. 워크숍에서 얻은 아이디어에 “트윈공간노트를 해부하면서 전주라는 지역 특성을 살린 ‘길’을 디자인 콘셉트로 도출할 수 있었고 다른 분야 전문가들과의 협업을 통해 공간개념을 구체화시켜”(지 건축가) 설계를 완성했다. 우주로 1216은 박공형 구조물이 설치된 길 ‘트윈가로’를 중심으로 네 개의 공간이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구조다. 구역은 구획을 짓기 위한 것이 아니고 자연스럽게 트윈세대 아이들의 다양한 에너지 레벨과 생각, 감성과 의지를 수용하기 위해 만들었다. 각 구역은 조금씩 다른 재료와 분위기를 갖는다. 아이들이 각기 다양한 관심사와 삶의 방식, 그날의 감정에 따라 공간의 경계를 넘나들며 자신의 취향과 관심사를 넓고 깊게 확장시켜 나가도록 했다. 입구에 들어서면 안내 데스크를 거쳐 가장 먼저 만나는 곳이 소통을 위한 ‘톡톡존’이고, 그 다음은 ‘쿵쿵존’이다. 공연을 하거나 서로의 이야기를 공유할 수 있는 무대가 설치돼 있고 바닥에는 우주선이 안착한 것 같은 고무재질의 구조물이 놓여 있다. 사내아이들은 여기에 몸을 던지며 논다. 천장에는 각이 진 철봉이 나란히 박혀 있다. 아이들은 뛰고 뒹굴고 매달리면서 에너지를 발산한다. ‘슥슥존’은 무엇이든 만들어 보며 창의력을 발휘하는 공간이다. 종이, 물감, 실 등 창작을 위한 모든 재료는 무료로 제공된다. 편안한 의자가 군데군데 놓여 있는 곳은 사색의 공간 ‘곰곰존’이다.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고 독서와 휴식을 취할 수 있다. 구석진 곳에는 조용히 공부할 수 있는 책상도 마련돼 있다. 벽장 뒤에는 비밀 공간도 있다. 서 건축가는 “학교든, 놀이터든 디자인을 할 때 자칫 범하기 쉬운 오류가 있는데 그건 어른들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이라면서 “이건 너무 위험하지 않나, 이렇게 하면 아이들에게 더 좋지 않을까 하면서 디자인을 한다”고 했다. “어른들의 기준으로 정해 주지 않아도 자기들끼리 잘 알아서 이용한다”면서 이용자인 아이들 기준으로 바뀌어야 하는 이유를 덧붙였다.우주로 1216에서 아이들은 유별난 ‘우주인’이 된다. ‘우주’는 우리가 주인이라는 중의적인 표현이다. 트윈세대들에게 길잡이가 되는 우주정거장 같은 역할을 하는 안내 데스크는 ‘지구인 출몰지역’이라고 이름 지었다. 전주시립도서관 사서들은 이곳에서 ‘지구인’의 역할을 맡아 우주인들이 도움을 요청할 때에만 등장한다. 코넬대 선후배 사이인 지정우·서민우 건축가는 비슷한 또래의 트윈세대 아이들을 두었다. 집에서 아이들과 소통할 때의 경험이 많이 도움이 됐다는 그들은 건축가인 동시에 아빠의 마음으로 아이들의 속내를 들여다봤다고 했다. “건축 설계의 완성은 사람이 한다고 하는데 이 공간 역시 아이들이 완성해 주고 있어요. 아이들은 누가 무얼 하라고 지시하거나 참견하지 않아도 이곳에 와서 그날의 기분에 맞게 좋아하는 공간을 찾아가서 원하는 것을 합니다. 이처럼 자발적으로 공간을 이용해 본 아이들이 점점 많아졌을 때 우리 사회도 바뀌어 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서 건축가) “우주로 1216이 트윈세대에게 인생이라는 너른 우주로의 창의적인 탐험을 위한 정거장의 역할을 하기를 바랍니다. 이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는 동안 아이들은 자연스레 크리에이터가 됩니다. 이곳을 경험한 아이들이 자라서 20·30대가 됐을 때 어떤 모습일지 궁금합니다.”(지 건축가) 우주로 1216은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 주최 ‘대한민국 공간문화대상’ 대상(대통령상)과 국토교통부 주최 ‘대한민국 공공건축상’ 최우수상(국토교통부장관상)을 수상했다. 이곳을 찾은 날 전주에는 봄비가 제법 내렸다. 나무들이 봄비 속에 싱싱하게 자라는 것처럼 이곳에서 뛰어노는 트윈세대 아이들이 푸른 꿈을 쑥쑥 키워 나갈 거란 기대감이 커진다.함혜리 칼럼니스트
  • 5명도 못 모이지만… 新가상현실선 2억명 함께 논다

    5명도 못 모이지만… 新가상현실선 2억명 함께 논다

    인기 모바일게임 ‘포트나이트’로 유명한 에픽게임즈의 팀 스위니 최고경영자(CEO)는 2019년 12월 트위터에 “포트나이트는 게임이다”라는 글을 올렸다. 이어 그는 “하지만 12개월 뒤에 (정말 포트나이트가 게임인지에 대한) 질문을 다시 해달라”고 말했다. 당시 그가 듣고 싶었던 대답은 포트나이트는 ‘게임 이상의 다른 무엇’이라는 말이었을지 모른다. 최근 게임업계에서는 포트나이트의 가상현실이자 3차원 소셜미디어 공간인 ‘파티로얄’의 인기를 실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게임 등 가상현실에서 사회적, 경제적 활동을 벌이는 현상을 지칭하는 개념이 최근 유행하고 있다. 바로 ‘메타버스’다. ‘10대들의 놀이터’나 현실과 동떨어져 사는 괴짜들이나 관심있는 것으로 여겨졌던 가상현실은 새로운 경제모델을 창출하며 이제 ‘메타버스 이코노미’가 탄생했다는 말까지 나온다. 가상·추상을 뜻하는 ‘메타’(meta)와 현실 세계를 뜻하는 ‘유니버스’(universe)의 합성어인 메타버스는 1992년 닐 스티븐슨의 소설 ‘스노 크래시’에서 가상세계의 이름으로 처음 등장하며 알려지게 됐다. 그보다 10년 전인 1982년 영화 ‘트론’ 등에서 이미 비슷한 개념이 소개됐다는 점에서 ‘스노 크래시’가 가상현실을 다룬 원조 콘텐츠가 아니라는 반론도 있지만, 이후 이 소설에서 영감을 받은 영화나 게임들이 우후죽순 만들어지며 대중의 관심이 더욱 높아졌다. 영화 ‘매트릭스’나 닌텐도 인기 게임 ‘모여봐요 동물의 숲’, ‘마인크래프트’, 토종 소셜미디어 ‘싸이월드’ 등이 좋은 예다. 사실 가상현실은 정보기술(IT)이나 관련 문화 콘텐츠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이들이라면 아주 낯선 개념은 아니다. 하지만 메타버스는 기존의 가상현실보다 이용자의 참여도가 높고 한 단계 진보한 개념이라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코로나와 함께 찾아온 ‘메타버스 신드롬’ 미국에서는 최근 가상현실 개념을 차용한 게임들이 인기를 끌며 메타버스가 주목받게 됐다. 가장 대표적인 게임은 지난달 뉴욕 증시에까지 상장된 ‘로블록스’다. 로블록스에서는 이용자가 아바타가 돼 다양한 게임에 참여하거나 직접 게임을 만들 수도 있다. 이용자들이 기존의 다른 게임처럼 ‘게이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개발자가 돼 수익을 얻을 수 있다는 의미다. 로블록스 내에서 아이템이나 개발 게임 등 각종 상품을 사고팔 때는 가상화폐 ‘로벅스’가 이용된다. 이용자들에게 로블록스는 게임 이상의 또 다른 현실을 의미한다. 로블록스 이용자들은 친구들과 게임을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가상 테마파크에서 놀 수 있고, 콘서트와 생일 파티 등도 즐긴다. 로블록스는 코로나19로 인한 비대면 생활이 일상화되며 10대들에게 더욱 인기를 끌게 됐다. BBC에 따르면 지난해 로블록스 사용자는 전년 대비 85% 증가했다. 미국에서는 9~12세 어린이 4명 가운데 3명이 로블록스에 가입돼 있다. 지난 1월 기준 한 달에 한 번 이상 로블록스를 즐긴 이용자는 2억명에 이르고 하루 평균 이용 시간은 2시간 36분이나 된다. 앞서 소개한 ‘포트나이트’도 일종의 메타버스인 ‘파티로얄’로 큰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포트나이트 이용자들은 파티로얄에서 다른 이용자들과 함께 영화를 보거나 콘서트를 즐기는 등 또 다른 세상을 즐긴다. 특히 그룹 방탄소년단(BTS)이 지난해 신곡 다이너마이트의 안무 버전 뮤직비디오를 파티로얄에서 공개하며 한국에서도 큰 관심을 끌었다. 이처럼 로블록스나 포트나이트 파티로얄에서 가수들이 신곡이나 뮤직비디오를 발표하는 사례는 이제 미국에서는 더이상 화제가 아닐 정도가 됐다. 메타버스는 정치권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미국 대선 유세가 한창이던 지난해 9월 게임 ‘동물의 숲’에는 선글라스를 낀 낯익은 중년 남성이 등장했다. 바로 조 바이든 당시 민주당 후보의 아바타가 게임에 등장해 유세를 벌인 것이다. ‘동물의 숲’을 좋아하는 젊은 유권자들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가기 위한 전략으로, 정치에서조차 가상현실과 실제의 경계가 더욱 모호해지고 있음을 보여 주는 사례로 꼽혔다. ●한국도 메타버스 기반 비즈니스 속출 국내에서도 메타버스 기반의 새로운 이벤트와 사업 아이템이 속속 소개되고 있다.SK텔레콤과 순천향대는 지난달 초 메타버스 공간에서 새 학기 입학식을 여는 가상현실 속 캠퍼스를 소개했다. SK텔레콤의 가상현실 플랫폼인 점프VR 내 ‘소셜월드’에 순천향대 본교 대운동장을 구현한 뒤 대학 총장과 신입생들이 ‘아바타’로 참여해 상견례를 나눈 것이다. 코로나19로 오프라인 행사가 어려워지자 가상현실에서 입학식을 연 것인데, 업계에서는 게임을 통해 알려진 메타버스가 교육이나 의료 등에도 활용될 수 있음을 보여 준 시도라는 평가가 나왔다.네이버 계열사 네이버제트의 메타버스 애플리케이션 ‘제페토’는 가입자가 2억명에 달하며 세계 시장에서 로블록스와 경쟁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사용자가 원하는 아바타를 만들어 가상현실에서 다른 이용자와 다양한 활동을 즐기는 제페토는 얼굴 인식과 증강현실(AR), 인공지능(AI) 등 네이버의 IT가 총동원된 플랫폼이다. 네이버는 향후 글로벌 신규 투자를 전개할 사업으로 이커머스와 더불어 메타버스를 꼽고 있다.LG전자는 게임 ‘동물의 숲’에 LG 올레드TV를 알리는 가상공간인 ‘올레드 섬’을 마련하기도 했다. 가상현실에서 ‘노는’ 것에 익숙한 MZ세대(밀레니얼과 Z세대)를 겨냥한 시도로 게이머들은 올레드섬을 방문해 다양한 이벤트를 즐기고 제품의 장점을 자연스럽게 알 수 있게 된다. 게임업계의 움직임은 더욱 빨라지고 있다. 컴투스는 최근 시각특수효과(VFX) 전문업체에 450억원대의 투자를 결정했는데, 메타버스 분야에서의 협업까지 염두에 둔 행보로 해석됐다. ‘게임 한류’의 원조로 불리는 중견게임사 위메이드, 블록체인 기반 게임업체인 플레이댑 등도 앞서 메타버스 진출을 선언한 바 있다. 메타버스에 참여하기 위해 필요한 장비인 AR·VR 기기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글로벌 컨설팅 업체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는 전 세계 AR·VR 시장이 2019년 464억 달러(약 51조원)에서 2030년 1조 5000억 달러로 급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마이크로소프트(MS)와 페이스북 등 유명 IT 기업들은 이미 관련 기술을 선도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메타버스 이코노미의 미래는 코로나19 사태가 메타버스 신드롬을 만들었다면 반대로 현재의 팬데믹(전염병 대유행) 상황이 종식된 이후에는 가상현실에 대한 관심도 줄어들게 될까. 전문가들은 코로나19 이후에도 메타버스에 대한 관심은 계속될 것이란 전망을 내놓는다. 이미 가상현실 내에서 소비하고 즐기는 ‘메타버스 이코노미’가 형성되기 시작하며 더이상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되어 가고 있다는 게 이들의 분석이다. 로블록스를 보면 메타버스의 경제적 가치를 실감할 수 있다. 지난해 매출이 1조원을 돌파한 로블록스는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된 첫날 종가 기준 시가총액이 382억 6000만 달러(약 43조 3700억원)로 뛰며 초등학생들이나 하는 게임이라는 일각의 평가를 무색하게 했다. 이 같은 가상현실이 만든 대박의 배경에는 핵심 비즈니스 모델인 가상화폐 ‘로벅스’가 있었다. 디즈니랜드를 가상의 테마파크로 바꾸겠다는 틸락 만다디 월트디즈니파크 부사장의 발언은 이미 물리적 공간을 중심으로 한 사업 모델을 가상공간으로 바꾸는 움직임이 시작됐음을 보여 준다.전문가들은 메타버스 속에서 가상화폐, 사물인터넷, 클라우드, 모빌리티, 스마트헬스 등 신기술들이 연결되면서 또 다른 새로운 시장이 형성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가짜’ 현실이지만, 이를 통해 나오는 수익은 ‘진짜’라는 의미다. 세계 최대의 아바타 소셜 플랫폼인 IMVU의 데런 추이 CEO는 포브스에 “사람들이 가상현실에서 아바타를 위한 장비를 사는 이유는 그것이 재미있고 몰입감을 주기 때문”이라며 “우리는 사람들이 계속 머물기를 원하는 가상현실을 구축하고 있다”고 말했다.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 사계절 같은 곳에서 ‘찰칵’·커플 굿즈 … 둘만의 추억 쌓는다

    사계절 같은 곳에서 ‘찰칵’·커플 굿즈 … 둘만의 추억 쌓는다

    서원경(25)씨는 벚꽃잎이 흩날리던 지난해 4월 ‘과잠’(학과 점퍼)을 입고 연인과 팔짱을 낀 모습으로 대학 교정에서 사진을 찍었다. 한여름인 지난해 8월엔 원피스, 늦가을인 지난해 11월엔 가죽재킷을 입고 남자친구와 같은 포즈로, 같은 장소에서 사진을 촬영했다. 지난달 서씨가 졸업 가운을 입고 남자친구와 함께 찍은 사진을 끝으로 숲, 공원에 이어 캠퍼스를 배경으로 하는 서씨 커플의 역대 네 번째 ‘사계절 사진’이 완성됐다.서씨는 “친구들 중엔 제가 4년 전에 처음 시작했는데 지금은 주위 친구들이 다 따라하고 있다”며 “시간이 흘러도 그 자리에 계속 서 있는 나무처럼 우리 관계도 오래 지속할 것이라는 마음을 더욱 잘 표현할 수 있는 사진”이라고 말했다. ●연애 10명 중 7명 “커플 굿즈 제작 경험” 요즘 Z세대 커플들은 과거와 달리 다양한 방법으로 둘만의 특별한 연애를 추구하고 있다. 같은 모양의 옷·신발·가방·반지 등 기성품으로 연인임을 인증하던 방식에 머물지 않고 세상에 유일무이한 둘만의 ‘굿즈’(물건)를 같이 제작하거나 이색적인 경험을 공유하려는 연인들이 많아지는 분위기다. 28일 성대신문이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지난 18~24일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128명 중 70.3%가 ‘연애 중 커플 굿즈를 제작한 경험이 한 번 이상 있다’고 응답했다. 제작 횟수를 물었더니 ‘1회 이상~3회 미만’이 43.5%로 가장 많았고, ‘3회 이상~5회 미만’도 22.6%를 차지했다. 굿즈 종류는 다양하다. 박은정(23)씨는 현재 연인과 올해로 3년째 연애하는 동안 둘이 같이 찍은 사진으로 디자인된 휴대전화 손잡이(그립톡)와 케이스, 에어팟(무선 이어폰) 케이스 등을 만들었다. 박씨는 “남자친구랑 같이 찍은 사진 한 장만으로도 둘만의 추억을 남길 수 있지만 함께했던 순간들을 기록한 사진이 평소 자주 사용하는 커플 굿즈에 담겨 있으면 더 자주 보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선물을 고를 때 상대방 마음에 드는 것은 물론이고 실용적인 선물이어야 한다는 생각에 선택에 어려움을 겪는데, 커플 굿즈 덕분에 이런 부담을 많이 덜 수 있었다”고 말했다. 공방 체험도 인기를 끌고 있다. 현재 연인과 연애한 지 7개월이 넘은 황지섭(21)씨는 지난해 12월 25일 크리스마스날에 여자친구와 서울 강남 지역의 한 반지 공방을 방문했다. 공방에서 손가락 크기를 재고, 반지에 박을 보석을 고르고, 반지에 새길 문구를 같이 정했다. 이후 함께 망치질과 사포질을 하면서 반지를 완성하기까지 1시간 30분 동안 특별한 추억을 쌓았다. 황씨는 “커플 아이템으로 똑같은 신발, 티셔츠 등을 사는 것보다 서로를 생각하며 무언가를 직접 같이 만들었다는 점이 이 반지가 더욱 각별한 이유”라고 밝혔다.●공유주방서 함께 요리하며 행복 만끽 공유주방을 찾는 연인들도 많아졌다. 현재 연인과 만난 지 올해로 3년이 돼 가는 김도현(23)씨는 데이트 장소로 공유주방을 애용하고 있다. 김씨는 “둘 다 자취를 안 하다 보니 같이 요리할 기회가 전혀 없었는데, 공유주방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마음껏 요리할 수 있어 힐링 여행을 떠난 기분이었다”며 “공유주방이 정해진 시간에 연인끼리만 사용하는 안전한 공간이라는 점에서도 마음이 끌렸다”고 말했다. 지난해 8월부터 서울에서 공유주방을 운영하기 시작한 이민철(가명)씨는 “손님의 약 80%가 20대이고 스테이크와 파스타를 많이 요리한다. 미역국와 밀푀유나베, 떡볶이 등 다양한 요리를 하는 손님들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연인과 함께 메뉴를 정하고 장을 보며 요리하는 과정은 매우 뜻깊고 행복한 시간이지만 자취방이 없는 20대 연인들 사이에서는 펜션이나 리조트 여행이 아니면 쉽게 서로에게 요리해 주는 경험을 할 수 없다”며 “시간, 비용 등 부담 없는 가까운 곳에서 함께 요리하는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라고 밝혔다. 연애할 때 ‘데이트 통장’을 사용하는 젊은 연인들도 늘고 있다. 같이 사용하는 통장에 각자의 주머니 사정에 맞게 매달 일정 금액을 입금하고 데이트 비용으로 사용하는 방식이다. 인터넷은행 ‘카카오뱅크’에 따르면 카카오뱅크가 2018년 12월 출시한 ‘모임통장’ 중 데이트를 목적으로 개설된 통장 계좌 수는 2019년 17만여개에서 지난해 27만여개로 늘었다. ●수동→능동적 데이트로 달라지는 이유 서씨는 “나만의 아이템을 만들어 나만의 색깔을 드러내는 일이 이젠 익숙해진 사회”라며 “이런 영향으로 요즘 연인들도 ‘우리만의 모습’을 담아내는 것이 아닐까 싶다. 예전에 비해 DIY(Do It Yourself·원하는 물건을 직접 만듦) 제품을 제작하기 쉬워진 환경도 변화의 원인”이라고 말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경험의 공유는 관계를 유지하는 데 굉장히 중요한 요소다. 다양한 기성품이 생산되는 상황에서 둘만의 물건을 함께 만드는 경험을 공유하는 일은 그만큼 가치가 높을 수밖에 없다”며 “데이트를 할 때 남성은 어떻게 해야 하고, 여성은 어떻게 해야 한다는 전통적인 성역할에서 벗어나 서로 동등한 위치에서 연애하려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고 밝혔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조소희(경제학과 3학년)·옥하늘(영어영문학과 2학년) 성대신문 기자
  • “품 많이 들지만 더 특별하니까…” 세상에 둘도 없는 ‘우리만의 연애’

    “품 많이 들지만 더 특별하니까…” 세상에 둘도 없는 ‘우리만의 연애’

    [편집자주] 서울신문은 3월부터 성균관대 학보사 ‘성대신문’과 Z세대(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 출생)의 문화를 탐구하는 ‘요즘 것들의 문화 답사기’를 함께 취재합니다. 3주에 한 번씩 대학생 기자들과 요즘것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전하겠습니다.서원경(25)씨는 벚꽃잎이 흩날리던 지난해 4월 ‘과잠’(학과 점퍼)을 입고 연인과 팔짱을 낀 모습으로 대학 교정에서 사진을 찍었다. 한여름인 지난해 8월엔 원피스, 늦가을인 지난해 11월엔 가죽재킷을 입고 남자친구와 같은 포즈로, 같은 장소에서 사진을 촬영했다. 지난달 서씨가 졸업가운을 입고 남자친구와 함께 찍은 사진을 끝으로 서씨 커플의 역대 네 번째 ‘사계절 사진’이 완성됐다. 서씨 커플은 지난 4년 동안 해마다 다른 장소를 배경으로 요즘 유행하는 사계절 사진을 촬영했다. 서씨는 “친구들 중엔 제가 처음으로 시작했는데 지금은 주위 친구들이 다 따라하고 있다”며 “시간이 흘러도 그 자리에 계속 서 있는 나무처럼 우리 관계도 오래 지속할 것이라는 마음을 더욱 잘 표현할 수 있는 사진”이라고 말했다. 요즘 Z세대 커플들은 과거와 달리 다양한 방법으로 둘만의 특별한 연애를 추구한다. 같은 모양의 옷·신발·가방, 반지 등 기성품으로 연인임을 인증하던 방식에 머물지 않고 세상에 유일무이한 둘만의 ‘굿즈’(물건)를 같이 제작하거나 이색적인 경험을 공유하려는 연인들이 많아지는 분위기다. 선물 고르는 부담은 덜고, 각별함은 ‘껑충’ 28일 성대신문이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지난 18~24일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128명 중 70.3%가 ‘연애 중 커플 굿즈를 제작한 경험이 한 번 이상 있다’고 응답했다. 제작 횟수를 물었더니 ‘1회 이상~3회 미만’이 43.5%로 가장 많았고, ‘3회 이상~5회 미만’도 22.6%를 차지했다. 굿즈 종류는 다양하다. 박은정(23)씨는 현재 연인과 올해로 3년째 연애하는 동안 레터링 케이크 외에도 둘이 함께 찍은 사진을 그래픽 이미지로 활용한 휴대전화 손잡이(그립톡)와 케이스, 에어팟(무선 이어폰) 케이스 등을 만들었다. 박씨는 “남자친구랑 같이 찍은 사진 한 장만으로도 둘만의 추억을 남길 수 있지만, 함께 했던 순간들을 기록한 사진이 커플 굿즈에 담겨 있으면 더 자주 보게 된다”면서 “커플 굿즈를 볼 때마다 떠오르는 옛 추억들을 같이 이야기하면 서로가 소중하다는 사실을 한 번 더 깨닫게 된다”고 말했다. 손수 만든 커플 굿즈는 선물을 고르는 부담을 덜어주는 효과도 있다. 박씨는 “진로 문제로 고민하는 연인에게 위로가 될 수 있는 책을 선물할 때 여러 후기들을 살펴보면서 책 2권을 3일에 걸쳐 읽은 적이 있고, 향수를 선물할 때는 30종이 넘는 향수를 시향하면서 코가 마비된 느낌이 들기도 했다”면서 “시계를 선물할 때 한 달 전부터 고민하며 겨우 골랐다. 제가 시계를 사용하지 않으니까 어떤 시계가 더 편하고 괜찮을지 생각하는 게 더욱 어려웠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선물을 고를 때 상대방 마음에 드는 것은 물론이고 실용적인 선물이어야 한다는 생각에 선택에 어려움을 겪는데, 커플 굿즈 덕분에 이런 부담을 많이 덜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공방 체험도 인기를 끌고 있다. 현재 연인과 연애한지 7개월이 넘은 황지섭(21)씨는 지난해 12월 25일 크리스마스날에 여자친구와 서울 강남 지역의 한 반지 공방을 방문했다. 공방에서 손가락 크기를 재고, 반지에 박을 보석을 고르고, 반지에 새길 문구를 같이 정했다. 이후 함께 망치질과 사포질을 하면서 반지를 완성하기까지 1시간 30분 동안 특별한 추억을 쌓았다. 황씨는 “커플 아이템으로 똑같은 신발, 티셔츠 등을 사는 것보다 서로를 생각하며 무언가를 직접 같이 만들었다는 점이 이 반지가 더욱 각별한 이유”라고 밝혔다. 같이 요리하는 ‘공유주방’ 데이트도 눈길 공유주방을 찾는 연인들도 많아졌다. 현재 연인과 만난 지 올해로 3년이 돼가는 김도현(23)씨는 데이트 장소로 공유주방을 애용하고 있다. 김씨는 “둘 다 자취를 안 하다 보니 같이 요리할 기회가 전혀 없었는데, 공유주방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마음껏 요리할 수 있어 힐링 여행을 떠난 기분이었다”며 “공유주방이 정해진 시간에 연인끼리만 사용하는 안전한 공간이라는 점에서도 마음이 끌렸다”고 말했다. 지난해 8월부터 서울에서 공유주방을 운영하기 시작한 이민철(가명)씨는 “손님의 약 80%가 20대이고 스테이크와 파스타를 많이 요리한다. 미역국와 밀푀유나베, 떡볶이 등 다양한 요리를 하는 손님들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연인과 함께 메뉴를 정하고 장을 보며 요리하는 과정은 매우 뜻깊고 행복한 시간이지만 자취방이 없는 20대 연인들 사이에서는 펜션이나 리조트 여행이 아니면 쉽게 서로에게 요리해주는 경험을 할 수 없다”며 “시간, 비용 등 부담 없는 가까운 곳에서 함께 요리하는 경험을 가까이에서 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라고 밝혔다. 연애할 때 ‘데이트 통장’을 사용하는 젊은 연인들도 늘고 있다. 같이 사용하는 통장에 각자의 주머니 사정에 맞게 매달 일정 금액을 입금하고 데이트 비용으로 사용하는 방식이다. 인터넷 은행 ‘카카오뱅크’에 따르면 카카오뱅크가 2018년 12월 출시한 ‘모임통장’ 중 데이트를 목적으로 개설된 통장 계좌 수는 2019년 17만여개에서 지난해 27만여개로 늘었다.보다 능동적인 데이트를 선호하는 이유 김씨는 “식당에서 같이 맛있는 식사를 먹고 백화점에 함께 가서 물건을 고르는 일도 물론 좋지만 직접 요리하고 반지를 만드는 보다 능동적인 데이트를 요즘 젊은 연인들이 많이 선호하는 이유는 직접 뭔가를 체험하는 데에서 흥미를 느끼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라며 “둘만의 추억을 오랫동안 기억할 수 있다는 점이 긍정적인 영향”이라고 말했다. 서씨는 “나만의 아이템을 만들어 나만의 색깔을 드러내는 일이 이젠 익숙해진 사회”라며 “이런 영향으로 요즘 연인들도 ‘우리만의 모습’을 담아내는 것이 아닐까 싶다. 예전에 비해 DIY(Do It Yourself·원하는 물건을 직접 만듦) 제품을 제작하기 쉬워진 환경도 변화의 원인”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요즘 연인들이 무언가를 함께하는 특별한 데이트 방식을 선호하는 이유로 개성을 중시하는 젊은 세대 안에서 성평등 의식이 높아지고 있는 것과 관련이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경험의 공유는 관계 유지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요소다. 다양한 기성품이 생산되는 상황에서 둘만의 물건을 함께 만드는 경험을 공유하는 일은 그만큼 가치가 높을 수밖에 없다”며 “데이트를 할 때 남성은 어떻게 해야 하고 여성은 어떻게 해야 한다는 전통적인 성역할에서 벗어나 서로 동등한 위치에서 연애하려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고 밝혔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옥하늘(영어영문학과 2학년)·조소희(경제학과 3학년) 성대신문 기자
  • “샤오미 막아라” 삼성, 가성비폰 출격

    “샤오미 막아라” 삼성, 가성비폰 출격

    중국 업체들의 공세 속에 삼성전자가 주력 중저가폰 언팩(공개) 행사를 이례적으로 개최하며 공격적인 마케팅에 나섰다. 삼성전자는 갤럭시A52, 갤럭시A72 등의 온라인 언팩 행사를 오는 17일(현지시간) 개최한다는 초청장을 10일 글로벌 미디어와 파트너사에 발송했다. 삼성이 중저가 라인업인 갤럭시A 시리즈의 온라인 언팩 행사를 여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최근 삼성전자는 갤럭시A 라인업을 잇따라 소개하고 있다. 앞서 인도에서 갤럭시A32를 출시한 데 이어 국내에는 40만원대 5세대(5G) 스마트폰인 ‘갤럭시A42 5G’의 12일 출시 사실을 알렸고, 올해 상반기 갤럭시A52와 갤럭시A72 모델을 준비 중이다. ‘갤럭시A42’는 44만 9900원의 가격으로 국내 출시된 5G 스마트폰 중 가장 저렴하다. 전 세계를 대상으로 값싼 ‘가성비폰’을 앞세운 마케팅에 나선 이유는 애플과 중국 경쟁업체들 사이에 낀 삼성의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삼성은 앞서 미국 행정부의 제재로 중국 화웨이가 주춤한 자리를 메우며 세계 스마트폰 시장 선점에 나섰지만, 지난해 4분기 애플에 점유율 1위 자리를 내줬고, 또 다른 중국 스마트폰 제조 업체인 샤오미와 오포 등의 추격을 받고 있다. 중저가폰을 앞세운 샤오미의 세계 점유율은 2018년 4분기 6%에서 지난해 4분기 11%로 상승했고, 오포는 같은 기간 8%에서 9%로 올랐다. 삼성과는 격차가 크지만, 업계에서는 화웨이의 빈자리를 또 다른 중국 업체들이 차지하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삼성으로선 미 행정부가 화웨이뿐만 아니라 샤오미에 대해서도 제재의 칼날을 들이대고 있는 점은 호재다. 지난 1월 중순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 행정부는 중국군과의 연관성을 이유로 샤오미를 블랙리스트에 올려놨고, 이 같은 반중 기조는 현 행정부에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미국의 반중 기조에만 마냥 기대고 있을 수만도 없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샤오미는 지난해 4분기 남미 시장에서 삼성, 모토로라에 이어 애플을 제치고 점유율 3위에 올랐을 만큼 미국 밖 시장에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중국 업체들과의 경쟁에 맞서기 위해 삼성전자가 내놓은 승부수는 중저가폰의 고급화다. 이번 언팩 행사에서 소개되는 모델에는 플러그십 스마트폰에만 적용됐던 광학식 손떨림 방지와 90Hz 화면 주사율 등이 적용됐을 것으로 예상된다.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 44세 브래디, 신화를 쓰다

    44세 브래디, 신화를 쓰다

    미국 프로풋볼리그(NFL) 전설의 쿼터백 톰 브래디(44·탬파베이 버커니어스)가 자신의 커리어 사상 가장 화려한 우승으로 또 하나의 전설을 만들어냈다. 탬파베이는 8일(한국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탬파의 레이먼드 제임스 스타디움에서 열린 NFL 슈퍼볼에서 디펜딩 챔피언 캔자스시티 치프스를 31-9로 꺾고 ‘빈스 롬바르디 트로피’를 품에 안았다. 탬파베이는 2003년 창단 첫 우승 이후 18년 만의 정상 탈환이자 역대 처음으로 슈퍼볼 개최지에서 우승한 팀이 됐다. 슈퍼볼은 3~5년 전에 개최지가 결정된다. 많은 전문가가 이번 슈퍼볼에서 캔자스시티의 우세를 예상했다. 지난해 우승을 차지한 데다 차세대 전설의 쿼터백 패트릭 마홈스(26)가 있기 때문이었다. 마홈스는 2017년에 데뷔해 이듬해 주전 자리를 꿰차 곧바로 최우수선수(MVP)를 수상한 선수로 지난 시즌 슈퍼볼 MVP를 차지한 화려한 이력을 자랑한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자 예상은 크게 빗나갔다. 캔자스시티는 1쿼터 필드골로 선취점을 따냈지만 탬파베이의 강한 수비에 고전했다. 이 사이 탬파베이가 브래디와 롭 그론카우스키의 콤비 플레이를 앞세워 1쿼터 종료 37초 전과 2쿼터 종료 6분 5초 전에 2개의 터치다운을 합작해 14-3으로 점수 차를 벌렸다. 전반은 21-6 탬파베이의 우세. 탬파베이는 3쿼터 초반 필드골로 3점을 허용했지만 레너드 포넷의 터치다운과 필드골을 묶어 31-6으로 달아났다. 4쿼터 추가 득점이 나오지 않으면서 우승은 그대로 탬파베이가 차지했다. 신구 전설의 대결 또한 브래디의 판정승으로 끝났다. 마홈스가 상대 수비에 고전해 49차례 패스 중 26번의 패스를 성공한 반면 브래디는 29차례 패스 중 21번을 성공했고 터치다운 패스 3개를 포함해 201야드 전진을 주도했다. 개인 통산 10번째 슈퍼볼에서 7번째 우승반지를 낀 브래디의 이번 우승은 조금 더 특별하다. 브래디가 2000년에 데뷔해 20년간 뛴 ‘왕조’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에는 브래디를 G.O.A.T(Greatest Of All Time·역대 최고의 선수)가 될 수 있도록 이끌어 준 최고의 전술가 빌 벨리칙 감독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팀에서 독립해 만년 하위권인 탬파베이로 옮긴 그는 은퇴자, 방출자, 문제아 등을 모아 자신만의 팀을 만들었다. 브래디의 리더십 하에 탬파베이는 모두의 예상을 깨고 우승하는 반전신화를 써냈다. 슈퍼볼 MVP에 선정돼 자신이 보유한 MVP 최다 수상 기록을 5회로 늘린 그는 경기 후 “다들 우승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다고 생각한다”면서 “우리는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예고했다. 이번 슈퍼볼은 코로나19로 역대 최소인 2만 2000명의 관중만 입장했다. 또 매년 화제가 되는 광고 역시 터줏대감이었던 버드와이저, 코카콜라 등이 빠지고 코로나19 특수 호황을 누린 배달업체 등 비대면 서비스 기업들이 새로운 광고주로 등장해 화제가 됐다. 류재민 기자 phoem@seoul.co.kr
  • [열린세상] 정의당 사태 단상/김세연 전 국회의원

    [열린세상] 정의당 사태 단상/김세연 전 국회의원

    정치에서 희망을 찾는 것은 쓰레기통에서 장미꽃 찾기를 바라는 것이 될 정도로 현실성 떨어지는 기대가 돼 버렸다. 상대를 경쟁자 아닌 적으로 여기며 증오하는 것을 정치의 본령으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정치권을 채우고 있기 때문이다. 보수정당은 재벌개혁하고, 진보정당은 노조개혁하는 것이 정당 간의 이상적인 역할 분담일 텐데, 진영에 충성하고 이해관계를 떠받드는 정치인들의 현실 안주와 용기 부족으로 보수정당은 재벌 감싸기, 진보정당은 노조 감싸기를 반복해 왔고, 결과적으로 열심히 하루를 살고 있는 국민들이 대가를 치러 와야 했다. 최근 몇 달간 신선한 충격과 새로운 희망을 접했다. 보수정당에서도 입을 열기 어려웠던 ‘공무원연금의 국민연금 통합’과 사회연대 원리에 따른 ‘저소득층까지 보편증세’를 공개적으로 주창한 ‘진보정치 2세대’ 김종철 정의당 대표의 등장 덕분이었다. 양대 정당의 적대적 공생구조에 늘 문제의식을 가져 온 입장이라 새 모습과 열정으로 움직이는 정의당과 녹색당에 대해 ‘지않응’, 즉 ‘지지하지는 않지만 응원하는’ 사람 중 하나였기에 노조를 주요 지지 기반으로 삼는 정당의 대표가 저런 유연하고 통합적인 견해를 용기 있게 내놓는 것을 보고는 ‘드디어 한국 정치도 바뀔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녹색당이 지난 총선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의 후폭풍으로 큰 타격을 받아 안타까웠는데, 이념과 노선이 탄탄한 정의당이 좌파에서 중도로 확장해 들어오며 이제야 정당 간에 제대로 된 정책 노선 경쟁이 시작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 전혀 예상 못했던 일대 사건으로 정의당도 쑥대밭이 됐다. 조국 전 장관에 대한 오락가락한 입장으로 당원들의 대거 탈당 등 내홍이 겨우 수습되던 와중에 다시 결정타를 맞으니 존폐 논란이 일어날 법도 하다. 그래도 정의당은 다른 정당들보다 훨씬 원칙과 품위를 지키며 사태를 수습해 가고 있다는 점에서 양대 기득권 정당보다 높은 평가를 받을 만하다고 본다. 피해자 장혜영 의원의 용기, 씻을 수 없는 과오를 저질렀지만 김종철 대표의 신속한 사과와 사퇴, 대표 직무대행 김윤기 부대표의 사퇴로 이어지는 일련의 상황은 그 의미를 새겨 보기도 전에 순식간에 지나갔고, 원래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 일어난 것 자체가 문제의 근원이지만, 이런 문제가 터질 때 어떻게든 부인하고, 얼버무리고, 버티고,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를 일삼던 지난 1년간의 민주당 모습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대응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지도부 총사퇴나 4ㆍ7 보궐선거 무공천 등에서 주춤거리는 모습을 보여 아직 최종 평가를 하긴 이르지만, 결과에 앞서 과정만 본다면 그래도 우리 정치가 바뀌고 있는 것을 보여 주는 사례가 된다. 한국 사회의 세대 구성은 농업국가를 첨단산업국가로 재탄생시킨 위대한 산업화 세대, 권위주의 체제의 청산에 몸을 던져 앞장선 민주화 세대, 한국 최초의 개인주의 세대라고 하는 X세대, 그 뒤를 잇는 밀레니얼세대 등으로 크게 나누어 볼 수 있겠다. 정당의 이념 스펙트럼은 잠시 덮어 두고 유권자 개인을 끌어당기느냐 밀어내느냐 하는 자력(磁力) 역할을 하는 감성 능력을 기준으로 보면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은 산업화세대와 민주화세대의 인지능력이나 감성을 각각 대변한다고 할 수 있다. 이들 꼰대정당 1중대와 2중대가 담아내지 못하는 다음 세대들의 감성과 정책을 정의당이 상당히 잘 소화하며 받아내고 있었다고 본다. 한편 기후위기 시대를 맞아 녹색당은 밀레니얼세대 감성에 더욱 밀착돼 있을 것이다. 각 분야 허리 역할의 연령대인 X세대들이 요즘 ‘낀세대’로 고충이 크다고 한다. ‘꼰대’와 ‘요즘 것들’ 사이에서 치이고 있다. X세대의 일원으로 스스로를 바라볼 때 아무리 봐도 우리는 새 시대의 맏이보다는 구시대의 막내가 더 맞는 것 같다. 세상이 바뀌었다. 이젠 경험이 독(毒)이 되는 시대다. 우리는 선배 세대들처럼 기득권 움켜쥐고 내어놓지 않으려고 끝까지 발버둥치는 짓은 하지 않으면 좋겠다. 새 시대를 여는 데는 누군가의 양보와 희생이 필요하다. 디지털 원주민인 밀레니얼세대가 전면에 나설 때 나라가 좀더 상식적이고 평화로워질 것으로 기대한다.
  • 아시아엔 중국만 있는 게 아니다…코로나 이후 10개국을 주목하라

    아시아엔 중국만 있는 게 아니다…코로나 이후 10개국을 주목하라

    새 아시아 질서 여러 국가 ‘집단지도체제’ 전망베트남·미얀마 등 팬데믹 속 외환 보유고 든든2차 세계대전 후 韓·中·日 주도 성장시대 넘어남·동남아시아가 이끄는 ‘네 번째 성장’ 관측전 세계를 덮친 코로나19에 경제·군사 대국인 미국과 문화 강국 유럽이 속절없이 무너졌다. 부실한 의료체계가 고스란히 드러났고, 경제는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반대로 우리나라를 비롯해 중국, 싱가포르 등 아시아 국가들은 굳건히 버텨 내고 있다. 세계경제포럼이 차세대 글로벌 리더로 꼽은 국제관계 전문가 파라그 카나 퓨처맵 창립자는 ‘아시아가 바꿀 미래’에서 코로나19 이후 아시아가 세계질서를 주도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저자는 2009년 ‘제2세계’(에코의서재)에서 아시아 신흥 강국의 부상을 강조했다. 미국, 중국, 유럽의 틈바구니에서 제2세계로 불리는 아시아 여러 나라의 영향력이 확대된다는 내용이다. 이번 책은 그 후 10년 동안을 추적하고, 중국을 필두로 한 아시아 중심 체제가 필연이라고 결론짓는다. 저자는 중국이 세계의 선두에 선 상징적인 사건으로 2017년 5월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일대일로 정상회담’을 꼽는다. 철도와 항구 등으로 유라시아와 아프리카를 하나로 연결한다는 취지로 모였다.세계 GDP의 절반을 차지하는 68개국이 10년 동안 상업과 문화 교류의 중심이 될 새로운 실크로드 건설에 수조 달러를 투자한다. 세계 중심축이 되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없었다. 유럽과 중국 사이에 낀 러시아도 미국, 유럽을 등지고 아시아로 눈을 돌렸다. 2014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략했을 때 유럽은 러시아에 대한 경제제재에 나섰다. 2016년에는 미국 대통령 선거에 개입한 사실이 밝혀져 긴장을 부르기도 했다. 러시아는 한편으로는 유전, 가스, 광산에 관한 중국의 대규모 투자를 받아들였다. 저자는 “러시아가 부유한 아시아에 속할 것인가, 아니면 가난한 유럽이 될 것인가를 고민하지만 사실상 결과는 정해졌다”고 설명한다. 터키의 사정도 비슷하다. 훈족에서 셀주크, 오스만에 이르기까지 튀르크 민족은 1000년 동안 유럽의 문을 두드렸지만 진입에는 실패했다. 2000년대 초까지 유럽연합 가능성은 낙관적이었지만, 키프로스를 둘러싼 그리스와 영토 분쟁이 얽히면서다. 아시아 의존도가 높아지는 호주라든가, 브렉시트로 ‘유럽의 싱가포르’를 꿈꾸는 영국 등 사례도 아시아의 성장을 예견케 한다.중국이 미국처럼 주도권을 잡을 수 있을지 전망한 부분이 흥미롭다. 중국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지만 저자가 본 미래의 아시아 질서는 중국이 이끄는 체제가 아니다. 한국, 일본, 인도, 러시아, 인도네시아, 호주, 이란, 사우디아라비아가 힘을 모으는 집단지도체제에 가깝다. 아시아의 미래상은 미국이 추구하는 ‘용광로’ 모델이 아니라 각자의 개성이 살아 있으면서 조화로운 ‘샐러드 볼’ 모델이라는 뜻이다. 책 원제목이 ‘아시아가 미래’(The Future is Asia)일 정도로 저자의 주장은 확고하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한중일이 주도한 세 번째 성장 시대를 넘어 남아시아와 동남아시아가 이끄는 네 번째 성장 시대가 펼쳐질 것이라고 설명한다. 베트남, 미얀마, 말레이시아 등 코로나19 팬데믹에도 든든한 외환 보유고를 유지하며 강한 회복 탄력성을 입증한 아세안 10개국을 주목하라고 조언한다. 저자의 관측이 맞을지 빗나갈지 알 길은 없다. 다만 풍부한 자료를 기반으로 아시아 전체를 조망한 책은 앞으로 펼쳐질 아시아 시대를 내다보는 길잡이로 손색없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흑과 백 사이… 절묘한 빛을 담다

    흑과 백 사이… 절묘한 빛을 담다

    아날로그 방식의 흑백사진만 고수 군산 인근 서해서 1년간 집중 촬영 아웃사이더로 제한 없는 자유 추구흑과 백 사이에 수많은 회색이 존재한다. 아날로그 방식의 흑백사진을 고수하는 사진가 민병헌은 ‘회색의 달인’으로 불릴 정도로 그 복잡 미묘한 차이를 절묘하게 포착해 내는 작가다. 잡초, 폭포, 안개 등 자연을 주제로 그동안 선보인 연작 작업들은 한 폭의 수묵화나 연필화처럼 고즈넉이 스며드는 힘으로 보는 이들을 매혹시켰다. 그가 이번엔 ‘새’ 연작을 들고 왔다. 지난 10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갤러리나우에서 개막한 개인전에 새를 촬영한 작품 26점을 공개했다. 창공을 홀로 나는 새, 물위에서 헤엄치는 새의 무리, 하늘을 뒤덮은 철새들의 군무가 안개에 싸인 듯 흐릿한 회색 조로 펼쳐져 마치 꿈인 양 환상인 양 비현실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사진이 흐리니까 자세히 보려고 가까이 다가가는데 떨어져서 봐야 외려 잘 보인다”고 조언했다. 말 그대로였다. 뒷걸음질할수록 피사체의 윤곽이 점점 선명해졌다. 그의 사진들에는 디지털 기술을 빌린 어떤 인위적인 가공이나 첨삭이 없다. 현장에서 촬영한 사실 그대로의 자연이 담겼을 뿐이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회화적인 느낌이 가능할까.그는 “흐릿한 사진은 흐린 날씨에 찍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똑같은 광경이라도 광선의 차이에 따라 분위기가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자신이 원하는 상황이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카메라 셔터를 누른다. 흐린 날, 안개 낀 날, 어스름 저녁에 주로 촬영하는 이유다. 이전 연작 작업은 주제를 정한 뒤 3~4년 긴 시간을 두고 피사체를 촬영하는 방식이었다. 이번 ‘새’ 연작은 달랐다. 지난해 과거 필름들을 정리하다 새가 찍힌 작품이 많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1년간 집중적으로 작업했다고 한다. 촬영지는 집과 작업실이 있는 전북 군산 인근 서해안이었다. 전시회에는 서해안에서 찍은 작품과 이전에 촬영한 작품이 섞여 있다. 개인전에 맞춰 프랑스 최대 사진 출판사인 ‘아틀리에 EXB’에서 ‘새’ 연작 50여점을 실은 사진집도 나왔다. 1955년생인 작가는 홍익대 건축공학과를 다니다 적성에 맞지 않아 중퇴하고 독학으로 사진을 공부했다. 그는 “취미로 시작했는데 어쩌다 보니 헤어나질 못하겠더라”며 웃었다. 당시 사진을 전공한 유학파 1세대들이 활약하던 시기라 열등감과 소외감이 심했다고 한다. “그때는 사진이 재미있어서 열중했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돌이켜보니 암실을 열등감에서 벗어날 수 있는 도피처로 여겼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작업을 계속 하면서 “전공을 안 한 게 오히려 다행”이라는 깨달음이 왔다고 한다. “아웃사이더로서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홀로 작업해 온 것이 훨씬 도움이 됐다”고 했다. 안개가 잦은 양수리에서 17년을 살았던 작가는 5년 전 군산에 있는 100년 된 고택으로 거처를 옮겼다. 도시이면서 시골의 정취가 남아 있는 군산의 매력에 빠져 연고도 없는 곳에 무작정 정착했다. 군산과 서해안의 날씨와 풍광이 그의 카메라에 어떻게 기록될지 궁금하다. 전시는 오는 12월 2일까지. 글 사진 이순녀 선임기자 coral@seoul.co.kr
  • 흑과 백 사이 절묘한 빛을 담다, 사진작가 민병헌 개인전 ‘새‘

    흑과 백 사이 절묘한 빛을 담다, 사진작가 민병헌 개인전 ‘새‘

    흑과 백 사이에 수많은 회색이 존재한다. 아날로그 방식의 흑백사진을 고수하는 사진가 민병헌은 ‘회색의 달인’으로 불릴 정도로 그 복잡 미묘한 차이를 절묘하게 포착해 내는 작가다. 잡초, 폭포, 안개 등 자연을 주제로 그동안 선보인 연작 작업들은 한 폭의 수묵화나 연필화처럼 고즈넉이 스며드는 힘으로 보는 이들을 매혹시켰다. 그가 이번엔 ‘새’ 연작을 들고 왔다. 지난 10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갤러리나우에서 개막한 개인전에 새를 촬영한 작품 26점을 공개했다. 창공을 홀로 나는 새, 물위에서 헤엄치는 새의 무리, 하늘을 뒤덮은 철새들의 군무가 안개에 싸인 듯 흐릿한 회색 조로 펼쳐져 마치 꿈인 양 환상인 양 비현실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사진이 흐리니까 자세히 보려고 가까이 다가가는데 떨어져서 봐야 외려 잘 보인다”고 조언했다. 말 그대로였다. 뒷걸음질할수록 피사체의 윤곽이 점점 선명해졌다. 그의 사진들에는 디지털 기술을 빌린 어떤 인위적인 가공이나 첨삭이 없다. 현장에서 촬영한 사실 그대로의 자연이 담겼을 뿐이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회화적인 느낌이 가능할까.그는 “흐릿한 사진은 흐린 날씨에 찍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똑같은 광경이라도 광선의 차이에 따라 분위기가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자신이 원하는 상황이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카메라 셔터를 누른다. 흐린 날, 안개 낀 날, 어스름 저녁에 주로 촬영하는 이유다. 이전 연작 작업은 주제를 정한 뒤 3~4년 긴 시간을 두고 피사체를 촬영하는 방식이었다. 이번 ‘새’ 연작은 달랐다. 지난해 과거 필름들을 정리하다 새가 찍힌 작품이 많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1년간 집중적으로 작업했다고 한다. 촬영지는 집과 작업실이 있는 전북 군산 인근 서해안이었다. 전시회에는 서해안에서 찍은 작품과 이전에 촬영한 작품이 섞여 있다. 개인전에 맞춰 프랑스 최대 사진 출판사인 ‘아틀리에 EXB’에서 ‘새’ 연작 50여점을 실은 사진집도 나왔다.1955년생인 작가는 홍익대 건축공학과를 다니다 적성에 맞지 않아 중퇴하고 독학으로 사진을 공부했다. 그는 “취미로 시작했는데 어쩌다 보니 헤어나질 못하겠더라”며 웃었다. 당시 사진을 전공한 유학파 1세대들이 활약하던 시기라 열등감과 소외감이 심했다고 한다. “그때는 사진이 재미있어서 열중했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돌이켜보니 암실을 열등감에서 벗어날 수 있는 도피처로 여겼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작업을 계속 하면서 “전공을 안 한 게 오히려 다행”이라는 깨달음이 왔다고 한다. “아웃사이더로서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홀로 작업해 온 것이 훨씬 도움이 됐다”고 했다.안개가 잦은 양수리에서 17년을 살았던 작가는 5년 전 군산에 있는 100년 된 고택으로 거처를 옮겼다. 도시이면서 시골의 정취가 남아 있는 군산의 매력에 빠져 연고도 없는 곳에 무작정 정착했다. 군산과 서해안의 날씨와 풍광이 그의 카메라에 어떻게 기록될지 궁금하다. 전시는 오는 12월 2일까지. 이순녀 선임기자 coral@seoul.co.kr
  • 시적 뼈대가 자라고 삶이 갈무리된 곳… 기형도에 위로받다

    시적 뼈대가 자라고 삶이 갈무리된 곳… 기형도에 위로받다

    지금쯤 같은 땅과 하늘 아래서 살고 있었다면 이들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상상하게 되는 두 사람이 있다. 가수 김광석과 시인 기형도다. 생몰 연대가 비슷하고 활동 시기가 살짝 겹치는 두 사람은, 각자의 자리에서 어쩌면 서로의 존재를 알고 지냈을지도 모르겠다. 노래로 타인의 마음을 울렸던 이와 단 한 권의 유고 시집으로 신화가 된 사람이 저 하늘에, 달나라 어디쯤에 살고 있다. 각자의 노래와 시로. 달에서 시를 쓰기 위해 지상엔 단 한 권의 시집만 남기고 간 사람, ‘입 속의 검은 잎’으로 신화가 된 주인공. 시인 기형도는 너무 일찍 이생의 삶을 접어 버린 사람이지만 그의 시는 지금까지도 계절과 기후를 막론하고 사람들을 위로하며, 때로는 울리고 있다. 그의 시와 김광석의 노래들이 그 어느 때보다 어울리는 가을이 왔다. 계절이 부르는 낙엽의 신호를 따라 경기 광명시 기형도문학관을 찾았다.기형도문학관은 광명시와 광명문화재단 그리고 기형도 시인의 문우들과 유족들이 뜻을 모아 그가 마지막으로 머물다 간 장소이자 시의 배경이 되는 의미 있는 공간에 마련했다. 오롯이 그의 독자들과 문우들이 시와 시인을 기리기 위해 만든 장소인 까닭에 더욱 특별하게 다가오는 곳이다. 기형도는 1960년 3월 13일 경기 옹진군에서 태어나 1964년 시흥(현 광명시)으로 이사했다. 연세대를 졸업하고 중앙일보에 입사해 기자 생활을 하던 중 198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안개’가 당선돼 등단했다. 4년 후인 1989년 3월 7일 종로의 심야극장에서 급작스럽게 죽음을 맞이했다. 너무 이른 죽음 앞에서 모두가 황망해하는 사이에 유고 시집 ‘입 속의 검은 잎’이 출간됐고, 이 시집은 지금까지도 수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고 있다. 아마 앞으로도 그러지 않을까. 시인과 시집 그리고 문학관에 대해 기형도문학관의 명예관장이자 시인의 누나인 기향도 관장과 대화를 나눴다. 현재 어머님을 모시고 함께 지내고 있다는 근황을 전해 온 기 관장은 동생이자 시인인 기형도에 대한 질문을 꺼내자 표제작 이야기부터 들려줬다. 누나에게 보낸 안부 편지 말미에 표제작 이야기를 써 뒀다고 했다.●“시인으로서 동생으로서 좋은 사람이었다” ‘누나, 첫 시집을 내려고 하는데 제목을 ‘정거장에서의 충고’와 ‘길 위에서 중얼거리다’ 중에서 택하려 하고 있어. 나는 ‘정거장에서의 충고’로 하고 싶은데 누나 생각은 어때?’ 이 편지가 마지막이 될 줄 몰랐다며 그때를 회상하는 기 관장의 목소리가 한결 애틋해졌다. 더불어 가장 좋아하는 동생의 시가 ‘정거장에서의 충고’라고 덧붙였다. “미안하지만 나는 이제 희망을 노래하련다”고 읊조리듯이 시작하는 그 시의 첫 구절이 입가에 맴돌기 시작했다. 시인으로서 그리고 동생으로서의 기형도에 대해 묻자 “좋은 사람이었다”는 첫 마디가 돌아왔다. “조용하고 겸손했던 사람, 자기를 나타내지 않고 한없이 겸손했고 남들에게 자상한 사람이었다”며 “내 동생을 떠나 인간적으로 참 괜찮은 사람”이라고 했다. 또 그는 젊은 청년의 혈기를 뛰어넘어 인간의 근본적인 어떤 것을 꿰뚫고 있던, 기본적으로 삶에 대해 애착이 컸던 사람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기형도에게 광명은 ‘그의 마지막이 갈무리된 곳이자 그의 시적인 뼈대가 자란 곳’이라고 했다. “안개가 유독 많이 끼는 안양천 주변에서의 삶이 그를 키운 셈이에요. 이곳 소하리 뚝방에는 수재민과 이재민들이 살았어요. 공단과 폐수를 가두던 안개들을 보고 자란 기형도가 서울과 안양, 시흥을 오가며 사회 격변기를 거쳤던 거죠.” 폐수가 안개에 휩싸여 사람을 지우는 거리에서 시인이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은 바로 시를 쓰는 일이었으므로 그는 그것을 성실하게 기록했다. 그리하여 그의 시 ‘안개’는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는데, ‘안개’라는 단어를 기형도 시인이 가장 크게 점유했다는 말이 과언은 아니다. 안개 속에서 자라 안개의 시인이 된 사람의 눈에는 모든 세상사가 안개 속에서 일어난 일이 돼 버렸던 것일까. 그리하여 그도 안개 속으로 사라져 버리고야 만 것일까. “기형도 시인이 살던 집 자리 앞에 광명메모리얼파크가 놓였고, 우리의 모든 것이 변했지만 그의 시만큼은 변하지 않고 지금까지도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기 관장의 말이 유독 반가웠던 것은 그것이야말로 시의 본질이자 시가 있어야 할 자리가 아닐까 싶은 마음에서였다. 그는 “문학관은 어떤 면에서 인위적인 것이지만 그 속에서 진정으로 시로써 사람들을 사랑하고 위로하는 것들은 분명히 존재한다”고 덧붙였다.●“모든 사람의 삶의 이야기가 시 자체” “문학관을 방문하는 분들 가운데 ‘암울한 시절에 이 시집 하나 가지고 견뎠다’고 말하는 사람이 참 많아요. 기형도는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에 대해 깊게 사유했던 사람이었어요. 그의 시뿐만 아니라 그를 사랑해 주는 독자들이 없었더라면 이 장소는 없었을 겁니다.” 문학이라는 의미가 얼마나 사람들을 위로하는가, 한 사람의 삶이 이토록 귀중하다는 것을 이렇게 드러내는 듯하다. 기 관장은 요즘이야말로 사람이 ‘사람’을 잊어버리는 세상이 된 것 같다며 크게 안타까워했다. 기형도의 시 ‘빈집’, ‘엄마 걱정’, ‘정거장에서의 충고’ 같은 것들이 ‘사람됨’을 노래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느냐는 의견을 피력했다. “시인 기형도가 바라봤던 인간상이 투영된 이 시편들이 독자들에게도 통한 것이 아닐까요.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 충족 외에 마음을 위로할 수 있는 어떤 것의 으뜸은 단연 시가 아닐까 합니다.”그는 마지막으로 문학관을 찾는 기형도 시인의 독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린다고 하자 “동생은 동생만의 이야기를 하고 갔지만 이곳에 온 독자들은 자기 삶을 가지고 와서 동생의 시와 함께 이야기를 하고 간다. 그 시간을 통해 위로를 주고받았으면 한다”는 따뜻한 말을 건넸다. “모든 사람의 삶의 이야기가 시 자체라고 생각합니다. 자기 시를 자기가 표현하면서 사는 거죠. 그것과 교감하고, 함께 이야기를 하며 마음을 나누는 일이 이곳에서는 가장 중요한 일이 아닐까 해요. 기형도가 시에서 그토록 중요하게 써 놓았던 ‘삶’이고, 또 삶과 죽음이 각각의 의미가 있고 서로 나눔으로써 위로가 되고 격려할 수 있다는 것이죠.” 달나라에 있는 시인이 이 얘기를 들으면 아마도 ‘누나 말이 맞다’고 맞장구치지 않을까. 기형도문학관은 시집에 나온 시의 제목들로 구역을 나누고 테마를 정해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체험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았다. 1층 전시실에서는 시인 기형도, 유년의 윗목, 안개의 강, 은백양의 숲, 저녁 정거장, 빈집, 더 넓게 더 멀리, 사진으로 보는 기형도, 기형도 소리에 담다 같은 소제목들이 이끄는 대로 따라가면 어느새 시집을 읽는 독자에서 시집 안으로 훌쩍 들어온 ‘사람’이 돼 버리는 마법을 체험할 수 있다. 2층은 북카페, 도서 공간으로 꾸며져 있고 3층에는 강당과 창작체험실이 마련돼 있다. 문학관 건물 뒤편으로는 ‘기형도 시길’이 나 있는데, 이 역시도 시의 제목을 따라 여러 테마를 체험할 수 있는 야외 공간이다.문학관은 지금 특별 전시 중에 있다. 기형도문학관 기증자료전인 ‘도로시를 위하여’가 그것이다. 기형도의 문우였던 이성겸, 장사국, 홍순창 등이 그의 생전 사진들을 기증해 많이 알려지지 않았던 기형도의 학창 시절과 문우들과의 사진, 손글씨와 편지들 그리고 그가 직접 그렸던 그림들을 전시하고 있다. 시와 시인에 대해 이미 알려진 것이 아닌 새로운 사진들이 그곳을 찾는 독자들의 발걸음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기형도 시집을 읽지 않고 문청 시절을 통과한 이들이 있을까. 필자 역시 기형도의 시집을 읽고 필사하고 또 읽던 때가 있었다. 그의 시에 대해 후배 시인들은 어떤 마음일까 궁금해 최근 매우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창작동인 ‘켬’의 이소연 시인과 주민현 시인에게 ‘기형도의 시는 나에게 어떤 의미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이소연 시인은 “기형도는 제게 질투하는 마음을 선물해 준 사람”이라며 “기형도의 시를 읽으면 시가 쓰고 싶어지고, ‘나도 좋은 시를 쓸 거야’ 하는 마음을 가지게 한다”고 말했다. 주민현 시인은 “우울하고 안개 낀 그러나 푸른 희망이 뒤섞인 포도밭을 천천히 통과할 수 있어 좋았다”는 말을 전해 왔다.한 권의 시집과 한 사람의 시인을 기리는 터전을 마련한 공간에서 독자들은 마음을 누이고 위로를 받고, 후배 시인들은 그의 시를 질투하고 또 경외하며 살아가고 있다. 시인의 물리적인 생은 끝났을지라도 시 속에서 그가 아직도 살아 있다고 늘 확인하며 마음의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공간, 기형도문학관이다. 소설가 이은선
  • 툭하면 가출했던 ‘질풍노도’의 영재, 뇌과학에서 인간 관계의 답을 얻다

    툭하면 가출했던 ‘질풍노도’의 영재, 뇌과학에서 인간 관계의 답을 얻다

    ‘뇌과학자, 과학 커뮤니케이터, 대기업 미래기술전략팀장….’ 그에게 따라붙는 수식어는 여러 분야를 오간다. 장동선 뇌과학자. 생소한 과학을 일반인들에게 강의하며 소통하고 TV에도 출연하며 유명세를 얻은 그가 최근 3년 반 몸담았던 대기업을 박차고 나와 유튜브 방송 ‘궁금한 뇌’를 시작했다. 자칭 ‘변화 전문가’를 지향하는 그는 ‘경계 없는 삶’을 살아온 주인공이다. 독일에서 태어나 7세 때 한국에 돌아온 이후 30대까지 한국과 독일, 미국을 오가며 공부한 영재다. 하지만 초등학교에선 체벌과 왕따를 겪었고, 일반고 입학 전 약 2년은 반복된 가출로 반항과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냈다. 다행히 이 무렵 ‘사람과의 관계’에 목말랐던 자신에게 눈을 떴고 뇌과학자 길을 걷게 됐다. ‘회식자리에서 후배들을 대신해 고기 굽고 술 따르는 전형적인 낀 세대’라며 웃어 젖히는 그에게선 명민함에 어울리지 않는 옆집 아저씨 같은 소탈함이 엿보인다. -최근 모친상을 당했다. 퇴사 이유가 간병 때문이었나. “코로나 때문에 가정 간병인도 다 막혔다. 어머니를 간병하시던 아버지께서 못 버티겠다 하셔서 가족돌봄 휴가를 알아봤는데, 차라리 간병과 글쓰기를 병행하는, ‘여러 아궁이에 불 때는’ 작업을 해 보기로 했다. 10년 넘게 ‘과학 커뮤니케이터’라는 아궁이에 불 때고 살다가 선택의 순간이 온 거다. 40대 임원을 위해 회사를 위해 불사를 것인가, 안정감은 떨어지나 내 콘텐츠를 기반으로 새 도전을 할 것인가.” -자아정체성 혼란이 극심한 유년기를 보냈을 것 같다. “가장 힘든 것은 ‘세상과의 분리감’이었다. 독일서 박사과정 밟은 아버지, 간호사 어머니가 한국 가족에게 송금한 것 외에 정착을 위해 고향 친구분께 꼬박꼬박 돈을 보냈는데 고스란히 사기를 당했다. 부모님은 독일 시민권을 포기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는데 무일푼이 되셨다. 서울 은평구 역촌동 달동네 반지하 단칸방에 네 식구가 살게 됐다. 부모님은 속이 문드러졌지만, 꼬맹이는 연탄 때는 달동네와 서울이 신기하기 그지없었다. 그러다 초등학교 입학해 문화충격이 왔다. 체벌과 싸움과 촌지 요구. 결국 1학년 때부터 홈스쿨링, 조기교육을 받고 중학교는 검정고시 졸업했다. 고등학교 입학 전까지 9년을 공교육에서 분리돼 있었던 셈이다.” -뒤늦게 가출은 왜 하게 됐나. “영재 교육을 계획한 어머니가 저와 여동생을 데리고 다시 오스트리아로 가셨는데, 직업도 시민권도 없는 상태여서 너무 힘들었다. 실패하고 한국으로 돌아온 뒤 병환을 얻으시고 가정불화도 심했다. 가족이 무너지는 경험을 한창 예민한 사춘기에 했다. 2년 정도 가출을 밥 먹듯 했다. 서울역 지하보도에서 자고, 부산 광안리에서 ‘조폭·삐끼’와 어울리는 비행 청소년들과 어울렸다. 영재교육을 받던 아이가 사회 경계 밖 버려진 집단과 어울린 거다. 그런데 그런 애들이 오히려 나를 받아 줬다. 물론 내게도 편견을 갖고 있고 욕도 하고 거칠었지만, 우리는 ‘소외됐다’는 동질감이 있었다.” -영재교육과 비행 청소년의 삶을 모두 겪었다. “또래집단에 소속되지 못했던 단절이 크다 보니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 컸다. 남들이 하는 건 다 하고 싶다는 열망이 커서 일반고로 입학했다. 충격적인 것은 그렇게 방황하고 고등학교 입학해서 수학 정석을 보니 안 풀리더라. 괴테가 ‘전진하지 않는 자는 후퇴한다’고 했는데, 아무리 똑똑해도 매일 갈고닦지 않으면 근육도 뇌세포도 망가진다는 걸 알았다. 학교에서 동아리 활동 자율화를 해 줘 음악밴드를 조직했고, 고 2때 ‘전국고등학교 과학동아리연합’을 만들어 천체 관측, 로켓발사 등을 하러 다녔다. 소문을 듣고 당시 카이스트 총장님이 내가 어떤 아이인지 보려고 학교를 방문했는데, 하필 결석하고 놀러 나간 날이었다.(웃음)”-어렸을 적 소통 욕구가 과학 커뮤니케이터로 발돋움하게 한 건가. “뇌과학은 어릴 때부터 목말랐던 인간관계를 탐구하는 학문이었다. 생물학에서 과학철학으로 전과했는데 독일 정부가 비자 가진 유학생의 전공 교체를 불허했다. 랩에서 쥐 실험 하는 게 너무 싫었다. 한데 나는 어려운 시기가 오면 새로운 환경을 찾아 떠나는 유목민 기질이 있다. 마침 미국 교환학생 자리가 났는데 (독일서) 반미 감정이 높던 때라 운 좋게 순번이 와서 무조건 갔다. 지금 죽을 것 같이 힘들다면 무엇이라도 능동적으로 바꿔 보시라. 대부분 내 탓이라고 생각하지만 환경 탓일 때가 많다.” -2020년 한국사회에서도 그런 게 통할까. 젊은이들에게 ‘동남아로 진출하라’고 했던 정부는 역풍을 맞았다. “우리처럼 교육수준이 굉장히 높은 사회에서는 내가 못나 보인다. 환경을 바꾸면 분명히 새로운 기회가 생긴다. 우리만 갖고 있는 장점인데 여기서는 못 보는 게 있다. 코로나로 전 세계가 똑같은 위기 상황에서 오히려 기회가 왔다고 본다. 한국에서 3D 프린터로 안경을 만들어 뉴욕 유명인사들한테 판매하는 브랜드가 있던데, 한국적 콘텐츠로 온라인을 활용해 새 기회를 잡는 것도 가능하다.” -‘N포세대’에게는 쉽지 않은 말이다. “우리는 ‘성공해야 된다’는 압박이 너무 크다. 실패하면 낙인찍히고 재기 못할까 봐 두렵다. 좋아하는 격언이 극작가 사뮈엘 베케트의 ‘Ever tried, Ever failed, No matter’(시도해 본 적 있는가, 실패해 본 적 있는가, 괜찮다), ‘Try again, Fail again, Fail better’(다시 시도해라, 다시 실패해라, 더 나은 실패를 해라)이다. 매번 도전할 때마다 실패해도, 용기를 갖고 또 도전하고 ‘덜’ 실패하면 된다. 블랙유머 같지만 도전하면 실패하는 게 너무 당연하지 않은가. 우리 사회는 7전 8기를 용납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의 존재 의미는 성공보다 실패의 영역을 조금씩 줄이는 데서 찾는 거다. 상처받을 것을 미리 두려워하지 마시라.”-애프터 코로나 시대 뇌과학이 더 중요해졌다고 말하는 이유는. “코로나 위기를 통해 ‘온라인 커뮤니케이션, 디지털 플랫폼’이 5년은 가속화됐다. 무한한 데이터 중에서 유의미한 정보를 뽑아내고, 인간이 어떻게 느끼고 생각하는지 인간에 대한 이해가 중요해졌다. 엔지니어도 중요하지만 뇌과학자, 심리학자의 통찰이 필요한 분야다. 코로나 시대 물리적 거리두기가 중요해졌지만, 역설적으로 사회적 거리는 좁혀져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오해마시고(웃음), 힘든 시기일수록 서로 연결돼 있어야 힘이 되고 아이디어가 솟구친다는 뜻이다. 20만년 전 구석기 시대 인류의 뇌와 오늘날 인류의 뇌 용량은 진화하지 않고 똑같다. 그럼 21세기 문명을 어떻게 이룩했느냐 의문이 생기는데, 책·증기기관처럼 연결성이 고도화된 기술혁명 때문이다. 코로나 시대라고 해서 연결성이 끊긴 사회로 가선 안 된다. 우리 뇌는 연결을 지향하는 사회적 뇌로 진화해 왔고, 연결 속에서 행복하고 혁신을 찾으며 발전한다.” -한국으로 돌아온 계기는. “2014·2015년 독일 사이언스 슬램(과학교육부 주관 과학강연대회), 세계 페임랩 인터내셔널에서 연이어 수상하며 유럽에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1회 강연에 2000만원까지 주는 독일 최대 ‘스피커 에이전시’(강연자 전문회사)에도 들어가게 됐는데 아내가 한국행을 원했다. 삶의 제일 큰 딜레마를 겪었다. ‘나 혼자 내가 원하는 삶을 살 것인가, 가족을 따를 것인가’. 결과적으로 현명한 선택이었다.” -한국에 돌아온 경험은 어땠나. “한국에서 혁신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아직 더 많은 것이 변화해야 한다. 톱다운 방식의 ‘꼰대 문화’와 ‘고맥락사회’가 문제다. 가족, 학연, 지연 등 사회적 연결고리가 중요하다 보니 개인이 실패를 감수하고 뭔가 지르기 힘들다. 밉보이면 안 된다는 사회적 낙인에 대한 두려움도 혁신을 저해한다. 풀뿌리처럼 아래서부터 올라오는 아이디어가 자라도록 대기업·정부는 판만 깔아 주고 그 안에서 개인·스타트업이 동반성장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영재 출신 아버지의 교육법이 궁금하다. “나도 답이 없다.(웃음) 코로나 시대 부모들의 짜증도 이만저만 아니다. 아이들 뇌에 가장 중요한 것은 ‘나는 늘 너를 위해 존재한다’는 신뢰와 공감을 주는 말이다. 영재교육도 사회성이 가미되어야 한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 잔여 연봉 다툼하다 축생축사 법학도로

    잔여 연봉 다툼하다 축생축사 법학도로

    부상으로 방출… 남은 월급 못 받아소송 계기로 법학대학원 진학까지“선수·구단 윈윈할 시스템 개선 목표”“중·고교생 때는 책상에서 잠만 잤는데 이렇게 열공(열심히 공부)하는 대학원생이 될 줄은 저도 몰랐네요.” 13일 두툼한 법학 서적을 옆구리에 낀 채 인터뷰 장소인 서울 방배동의 한 카페에 들어선 이광열(28)씨는 영락없는 법학도의 모습이었다. 반바지 아래로 보이는 굵은 장딴지가 그의 이력을 슬쩍 보여 줬다. 이씨는 초교 4학년 때부터 10년 넘게 축구만 하고 살아온 전직 K리거(국내 프로축구 선수)다. 워낙 운동만 열심히 해 대학 운동부 동료들이 ‘축구와 결혼할 것 같은 친구’로 꼽기도 했다. 이씨는 전도유망한 공격형 미드필더였다. 연세대 졸업 뒤 2015년 프로축구 K리그 드래프트에서 6순위로 지명받았다. 빠른 순번은 아니었지만, 그해 드래프트 참가자 526명 중 약 16%(84명)만 지명받았으니 좁은 취업 문을 통과한 것이다. 하지만 입단 첫해 대학팀과의 연습경기에서 삶의 계획이 완전히 틀어졌다. 상대 골키퍼와 경합하다가 발목 골절상을 당했다. 수술 뒤 6개월간 재활해 그해 11월 팀에 돌아왔지만 이미 그의 자리는 없었다. 구단의 방출 통보만큼 이씨를 힘들 게 한 건 잔여 연봉 문제다. 애초 3년 계약을 맺었는데 공식 연습경기 때 다쳐 1년 만에 팀을 떠나게 됐으니 2년치 급여를 받을 권리가 있었다. 하지만 구단은 줄 생각이 없었다. 민사소송을 제기했고 2017년 1심에서 이겨 잔여 연봉 4800만원을 받았다. 소송이 끝나고 이씨는 덩그러니 세상에 놓였다. 20대 중반의 젊은 나이였다. 그는 ‘다른 선수들보다 조금 일찍 은퇴했을 뿐’이라고 스스로 위안하며 다른 인생을 찾아 나섰다. 법학이 눈에 들어왔다. 소송 과정에서 ‘세상을 살며 다치지 않으려면 법을 알아야겠다’고 생각했던 터다. 우연히 프로 스포츠 선수의 법적 지위 관련 논문을 읽고 저자인 김은경(현 금융감독원 부원장) 교수가 있는 한국외국어대 법학대학원에 진학했다. 늦게 시작한 법 공부는 만만치 않았다. 엉덩이 붙이고 앉아 있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 ‘청약’, ‘유인’ 같은 기초 법률 용어도 이해되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동료 학생들에게 물어보며 수업을 따라갔다. 이씨는 “운동하며 길렀던 체력 덕에 책을 읽을 때 졸리거나 피곤함을 잘 느끼지 못했다. 무더운 운동장 대신 시원한 도서관에서 공부하니 너무 좋았다”고 말했다. 그는 “축구할 때도 전술 이해도가 중요하다. 이때 기른 사고력이 공부할 때도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3학기까지 4.5만점에 평균 4.27점을 받았을 만큼 학점이 좋다. 이씨는 자신의 특별한 인생 궤적이 어려움에 처한 다른 후배 선수들에게도 용기를 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학창 시절 내내 운동만 하다가 부상 등으로 그만두면 막막한데 체육인 특유의 근성과 끈기라면 어떤 분야든 도전할 수 있다는 얘기다. 프로 선수들의 법적 지위 문제를 주제로 석사 논문을 준비 중인 그는 내친김에 박사 학위까지 도전할 계획이다. 이씨는 “입단이나 이적 등 법적 계약 과정에서 선수와 구단이 윈윈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개선하는 데 힘을 보태고 싶다”고 말했다.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 “잔여연봉 두고 싸우다가 법학도 됐어요” 전직 K리거의 도전

    “잔여연봉 두고 싸우다가 법학도 됐어요” 전직 K리거의 도전

    입단 첫해 부상 탓 방출…구단 “잔여 연봉 지급 어려워”민사소송 끝에 4800만원 받아…이후 법학대학원 진학“축구는 전술이해도가 중요…공부할 때 사고력에 도움”“일찍 은퇴한 후배 선수들에게 내 도전이 응원되길”“중·고교생 때는 책상에서 잠만 잤는데 이렇게 ‘열공’(열심히 공부)하는 대학원생이 될 줄은 저도 몰랐네요.” 13일 두툼한 법학 서적을 옆구리에 낀 채 인터뷰 장소인 서울 방배동의 한 카페에 들어선 이광열(28)씨는 영락없는 법학도의 모습이었다. 다만 반바지 아래로 보이는 굵은 장딴지가 그의 이력을 슬쩍 보여줬다. 이씨는 초교 4학년 때부터 10년 넘게 축구만 하고 살아온 전직 K리거(국내 프로축구 선수)다. 워낙 운동만 열심히 해 대학 운동부 동료들이 ‘축구와 결혼할 것 같은 친구’로 꼽기도 했다. 이씨는 전도유망한 공격형 미드필더였다. 연세대 졸업 뒤 2015년 프로축구 K리그 드래프트에서 6순위로 지명받았다. 빠른 순번은 아니었지만, 그해 드래프트 참가자 526명 중 약 16%(84명)만 지명받았으니 좁은 취업 문을 통과한 것이다. 하지만 입단 첫해 대학팀과의 연습경기에서 삶의 방향이 완전히 틀어졌다. 공이 골대를 향해 날아갔는데 살짝 건드리기만 하면 들어갈 것 같았다. 이씨와 상대 골키퍼는 함께 몸을 날렸다. 순간 발목에 통증이 밀려왔다. 골키퍼가 발목을 밟아 골절상을 입은 것이다. 곧장 수술 받고 이후 6개월간 재활을 거쳤다. 11월 팀으로 돌아왔지만 이미 그의 자리는 없었다. 구단 측은 “다음 시즌에는 함께 하기 어렵겠다”고 했다. 천청벽력 같은 방출 통보만큼 이씨를 힘들 게 한 건 잔여 연봉 문제다. 애초 3년 계약을 맺었는데 공식 연습경기 때 다쳐 1년만 뛰고 팀을 떠나게 됐으니 2년치 급여를 받을 권리가 있었다. 하지만 구단은 줄 생각이 없었다. 결국 민사소송을 제기했고 2017년 1심에서 승소해 잔여 연봉 4800만원을 받았다. 소송이 끝나고 이씨는 덩그러니 세상에 섰다. 20대 중반의 젊은 나이였던 그는 ‘다른 선수들보다 조금 일찍 은퇴했을뿐’이라고 스스로 위안하며 다른 인생을 찾아 나섰다. 법학이 눈에 들어왔다. 소송 과정에서 ‘세상을 살며 다치지 않으려면 법을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강해졌다. 우연히 프로 스포츠 선수의 법적 지위 관련 논문을 읽고 저자인 김은경 교수(현 금융감독원 부원장)가 있는 한국외국어대 법학대학원에 지원해 진학했다.늦게 시작한 법공부는 만만치 않았다.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있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 ‘청약’, ‘유인’ 같은 기초 법률 용어도 이해되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판사·변호사 등 현직에서 일하며 공부하는 동료 학생들에게 물어보며 수업을 따라갔다. 이씨는 “운동을 하며 길렀던 체력 덕에 책을 읽을 때 졸리거나 피곤함을 잘 느끼지 못했다. 밖에서 더위를 견디며 운동하다가 시원한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니 너무 좋았다”고 말했다. 그는 “축구할 때도 전술이해도가 중요하다. 감독이 두루뭉술하게 지시해도 정확한 뜻이 뭘까 생각해 풀어 설명할 수 있을 정도로 이해하려 노력했었다”면서 “이때 기른 사고력이 공부할 때도 많은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3학기까지 4.5만점에 평균 4.27점을 받았을 만큼 학점이 좋다. 이씨는 자신의 특별한 인생 궤적이 어려움에 처한 다른 후배선수들에게도 용기를 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학창 시절 내내 운동만 하다가 부상 등으로 그만두면 막막한데 스포츠인 특유의 근성과 끈기라면 어떤 분야든 도전할 수 있다는 얘기다. 프로 선수들의 법적 지위 문제를 주제로 석사 논문을 준비 중인 그는 내친김에 박사 학위까지 도전할 계획이다. 이씨는 “공부 하면서 입단이나 이적 등 계약 과정에서 선수와 구단이 윈윈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개선하는데 힘을 보태고 싶다”고 말했다.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 도심 한복판 소형공동주택 ‘세운 푸르지오 헤리시티’ 분양

    도심 한복판 소형공동주택 ‘세운 푸르지오 헤리시티’ 분양

    최근 부동산 시장은 강력한 6.17 대책 발표 이후, 추가 대책까지 예고되며 불안정성이 증가하고 있지만, 소형 주택 시장은 영향이 크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같은 영향은 최근 1인가구 수요가 급증하며 소형 주택을 찾는 수요가 늘어서다. 특히 서울에서도 대학가나 주요업무지구를 낀 관악구와 중구, 종로구 등은 2가구 중 1가구가 1인 가구로 나타났다. 이 중에서도 종로구와 중구의 경우 서울에서도 1,2위를 다툴 정도로 고소득자가 몰려 있어 고급 소형주택에 대한 수요가 풍부하다. 이런 가운데 서울의 최중심인 중구 세운지구에 들어서는 ‘세운 푸르지오 헤리시티’가 분양 중이다. 이 단지는 지하 9층~지상 26층, 전용면적 24~42㎡, 총 614세대 소형 공동주택으로 금회 공급규모는 293세대이다. 세운6-3-4구역에 들어서는 ‘세운 푸르지오 헤리시티’가 위치한 서울 중구 인현동2가 151-1번지 일원은 단순한 역세권을 넘어선 쿼드러플 역세권의 희소성이 크다. 지하철 2·5호선 환승역인 을지로4가역 역세권 자리이며 가까이에는 지하철 2· 3호선 환승역인 을지로3가역과 지하철 3·4호선 환승역인 충무로역도 이용할 수 있다. 단지 바로 앞에는 지난해 대우건설이 신사옥을 이전한 을지트윈타워가 위치해 중심업무지구의 입지를 더욱 견고히 하고 있다. 특히 1500여명의 대우건설 본사 직원은 물론 BC카드와 KT계열사 등 예정된 기업들까지 입주 완료할 경우 임직원 1000여명이 추가로 근무하게 돼 배후수요는 더욱 탄탄해진다.‘세운 푸르지오 헤리시티’의 경우 금번 6.17 규제 대상에서 제외된다. 이 단지는 지난 6월18~19일 정당계약이 이뤄졌고, 현재 잔여분을 계약 중이다. 도심형 소형 공동주택이지만 16층 이상 최상층에 위치하여 탁월한 조망권을 누릴 수 있다. 발코니확장도 기본으로 제공해 실사용면적이 30~40%까지 넓어졌다. 세대 내에는 최고급 외산 원목마루와 마감재, 빌트인가구 및 가전 등을 모두 무상옵션으로 제공하면서도 주력 평형대의 분양가는 4억~5억 초·중반대 가격이어서 가격경쟁력도 갖췄다는 평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6.17 부동산대책 반사이익에 ‘착한 분양가’ 우성고덕타워 뜬다

    6.17 부동산대책 반사이익에 ‘착한 분양가’ 우성고덕타워 뜬다

    정부는 지난 17일, ‘주택시장 안정을 위한 관리방안’을 발표했다. 수도권 규제 지역을 대폭 확대하고 갭투자(전세 낀 주택 매입) 차단을 위해 주택담보대출 요건을 강화하며, 부동산 법인의 과세 부담을 대폭 확대하는 등의 내용이 주요 골자다. 업계에서는 이번 부동산 발표로 수익형 부동산이 풍선효과를 누릴 것으로 예측했다. 주택시장을 겨냥한 촘촘한 규제로 주택시장 진입이 어려워졌고, 제로금리가 지속되면서 은행 상품 역시 안정적인 수익률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 동안 주택시장으로 몰리던 유동자금이 비주거 상품으로 유입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안정적인 투자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는 상품이 있어 눈길을 끈다. 고덕국제신도시 중심상업지역 내 위치한 ‘우성고덕타워’가 바로 그것. ‘우성고덕타워’에 투자자의 관심이 집중되는 이유는 바로 ‘합리적인 분양가’다. 상가 투자에서 분양가는 향후 수익률과 공실률에도 영향을 미치는 만큼, 투자자들이 입지 다음으로 눈여겨 보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향후 입점 업체 유치면에서도 분양가는 영향을 미친다. 입지가 비슷할 경우 임대료가 저렴한 곳으로 입점 업체들이 몰리다 보니, 향후 공실률은 물론 상가 활성화 측면에서도 우위를 점할 수 있다. 이런 가운데 ‘우성고덕타워’는 인접 상가 대비 20~30% 가량 저렴한 분양가로 공급돼 투자자들의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인접 상가 대비 안정적인 수익률은 물론 향후 시세차익까지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입지 환경도 뛰어나다. ‘우성고덕타워’는 신도시 대비 낮은 상업시설용지 비율(2%)을 갖춘 고덕국제신도시 핵심 권역에 입지하는데다, 고덕국제신도시 내 총 7개 상권 중 유일하게 위락시설이 허용된 중심상업지에 조성돼 높은 희소성을 자랑한다. 중심상업지구로 통하는 사거리 메인 코너 자리에 위치해 접근성과 가시성도 우수하다. 주거시설과 행정타운, 중앙공원, 삼성반도체 평택캠퍼스를 지나는 주요 동선의 길목에 위치해 유동 인구 흡수에 용이하다. 고정수요 선점도 기대된다. ‘우성고덕타워’는 이미 입주를 완료한 3,000여 세대의 공동주택이 인접해 있으며, 도보 5분 거리에 세계 최대 규모의 반도체 생산기지인 삼성반도체 평택캠퍼스가 위치해 주말과 평일 상관없이 수요가 풍부할 것으로 기대된다. ‘우성고덕타워’는 외식, 문화, 교육, 의료, 오락 등 다양한 MD가 적용돼 이 일대를 대표하는 상업시설로 자리매김할 전망이다. 특히 주변으로 업무단지와 행정단지, 백화점, 쇼핑센터, 영화관, 위락시설 등 다양한 편의시설도 조성이 예정돼, 집객력은 더욱 우수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우성고덕타워’는 고덕국제신도시 중심상업지구 1-1블록에 지하 5층~지상 16층, 연면적 3만2031㎡ 규모로 조성되며, 현재 일부 호실을 선착순 분양 중이다. 홍보관은 평택시 지제동에 위치해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규제 빈틈은 있다… “투기지구 다세대·서울 재개발로 돈 몰릴 것”

    규제 빈틈은 있다… “투기지구 다세대·서울 재개발로 돈 몰릴 것”

    투기과열지구 재건축 ‘2년간 거주’ 의무 12월前 조합설립인가 신청땐 해당 안 돼 전세자금 낀 ‘갭 투자’ 조정지역에선 가능 수도권 규제 확대… 서울 되레 큰 변동없어 노원·구로 등 중저가로 ‘풍선효과’ 가능성 수도권 전역을 규제지역으로 묶고 갭투자 여지를 차단한 고강도 6·17 부동산대책에도 ‘규제 빈틈’은 있다. 투기과열지구가 아닌 조정대상지역에서 주택을 사면 전세자금을 반환하지 않는다거나 대출규제에 오피스텔 등은 포함되지 않는 것 등이다. 건설·부동산 전문가들은 “정부 대책에서 빠진 서울 재개발 단지, 다세대 주택 등 틈새시장으로 자금이 쏠릴 수 있다”고 경고한다. 시장에서 지적하는 6·17 대책의 ‘규제 우회로’를 22일 짚어봤다. 우선, 수도권 투기과열지구 재건축 단지 중 2년 이상 거주한 조합원만 분양자격을 얻게 되는 ‘재건축 거주의무’ 규제 적용 시기는 올 연말이다. 즉 조합설립 인가를 12월 전에만 신청하면 2년간 해당 지역에 산 조합원이 아니어도 분양권을 얻을 수 있다. 지역도 조정대상지역이나 비수도권 투기과열지구 등이라면 규제 적용이 안 된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특히 서울 같은 투기과열지구도 재개발, 리모델링 사업에는 거주 의무가 없는 만큼 재건축 대신 이쪽으로 투자가 몰릴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논란이 큰 ‘투기과열지구 3억원 초과 주택 구입 시 전세대출 회수’도 지역을 잘 따져봐야 한다. 상당수 국민이 전세대출을 받은 상태에서 집을 사면 전세금을 반환해야 하는 줄 알지만 조정대상지역 내 집은 해당이 안 된다. 예컨대 서울에서 전세대출을 받아 사는 사람이 부천, 안산, 남양주 같은 조정대상지역에서 전세를 끼고 집을 산다면 전세대출을 반환하지 않아도 된다. ‘투기·투기과열지구’가 아닌 곳에서는 여전히 갭투자가 가능하다. 또 전세금을 지렛대 삼아 집을 산 것이지 주택담보대출을 받은 것도 아니어서 6개월 내 새로 산 집에 들어가야 하는 ‘전입의무’도 없다. 만일 현재 전세가 아닌 월세로 살고 있다면 투기과열지구에서 집을 산다고 해도 전세 낀 매매인 갭투자가 가능하다. 이번 대책의 초점이 수도권 전역으로 규제를 ‘광역화’한 데 있는 만큼 기존 규제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은 서울 시장의 후폭풍도 눈여겨봐야 한다. 서울은 여전히 9억원 미만 집은 주택담보대출비율(LTV) 40%까지 대출받을 수 있다. 새로 규제지역에 포함된 곳이 많은 만큼 오히려 서울 중저가 아파트로 부동자금이 계속해서 몰릴 우려가 크다. 윤지해 부동산114 수석연구원은 “수도권으로 대출규제가 확산한 만큼 노원, 강북, 구로, 금천 등 중저가 아파트가 많이 몰린 서울지역은 되레 풍선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번 규제에서 빠진 김포, 파주 등 비규제지역 역시 벌써 아파트값이 급등하며 요동치고 있다. 김포 공인중개업소는 “운양동 반도유보라 2차 59㎡(전용)는 대책 발표 전 3억 6000만원대에 거래됐는데 나흘 만에 호가가 5000만원이 뛰었다”고 전했다. ‘투기과열지역 내 전세대출 규제’에도 우회로는 있다. 다음 달 중순쯤부터 시행되는 전세대출 규제에는 주택이나 빌라는 포함되지 않는다. ‘아파트’만 규제한다. 백민경 기자 whit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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