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낀 세대
    2026-06-14
    검색기록 지우기
  • 시군
    2026-06-14
    검색기록 지우기
  • 장날
    2026-06-14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390
  • “일단 붙고보자” 빗나간 교육열/대리시험 부정입시 파장

    ◎교사·학부모·명문대생 가담 큰 충격/아르바이트광고 내 극빈학생 포섭/7개월간 준비… 대학관계자 연루된듯 30일 밝혀진 현직교사와 대학생이 낀 후기대 대리시험 입시부정은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대학에 들어가려는 삐뚤어진 윤리의 단면을 보여준 것으로서 학부모들과 교육계에 큰 충격을 주고있다. 더욱이 이번 사건은 중간층 학부모,현직고교교사,명문대학생 등이 범행을 저질렀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더하다. 이번에 검거된 신훈식씨등 현직교사와 브로커들은 지난해 5월부터 치밀한 계획아래 조직적으로 입시부정을 준비해왔다. 신씨는 같은학교 교사 김원동씨(39)와 부동산관계로 알게된 김세은씨(37)와 함께 임무를 분담,김세은씨는 신문광고를 통해 대리시험을 볼 대학생들을 모집하고 교사 김씨등은 홍정남씨(46·J여상 교감)와 입시브로커등을 통해 성적미달 수험생 자녀를 둔 학부모들을 접촉한 것으로 드러났다. 김씨는 지난해 10월부터 교차로·벼룩시장등에 난 명문 대학생들의 아르바이트 광고와 일간지등에 낸 명분대학생모집광고를 통해 30여명의 서울대,연세대,고려대등 명문대학생들을 모집했다. 김씨는 이들을 대상으로 고등학교 생활기록부,대학성적증명서 등을 제출케하고 가정형편,성격등을 면밀히 관찰한뒤 이들 가운데 가정형편이 어렵고 지방출신인 우수학생 10여명을 선정했다는 것이다. 김씨는 이들을 대상으로 한달여동안 용돈으로 10만∼20만원씩 주고 가정형편이 어려운 이모양(19·고려대 법학과 1년)에게는 1백만원을 주는등 선심을 써오다가 지난해 11월 말쯤 자신들의 의도를 알리면서 가난한 대학생들의 약점을 이용,거액을 제시하며 꾀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김씨는 특히 올 대학입시를 치른 전기 명문대 합격생들을 노렸으나 여의치않아 송형렬군 이외에는 대학1년생들을 택했다고 한다. 또 신씨는 포섭한 대학생들에게 사진4장을 제출토록 해서 수험표,수험표부본,입학원서 등의 사진을 수험생들 것과 바꿔붙이고 수험생들의 출신학교장 직인을 위조해 도장을 찍는 수법을 쓴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이때문에 이들이 한양대등 해당대학의 관계자들과 짜고 일반인들이 접근할 수 없는 입학원서의 사진을 바꿔치기 한 것으로 보고 해당 대학관계자들도 조사하고 있다. 경찰은 또 신씨등이 임시 사무실로 쓴 서울 송파구 잠실 위너스오피스텔에서 서울시내 8개고교학교장의 위조직인을 압수,이들이 이번에 적발된 3건 이외에도 여죄가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또 경찰이 압수한 이들의 계획표에는 후기대 대상 3∼4명,전문대 대상 8∼9명이라는 메모와 함께 30여명의 명문대 대학생들의 주소,특히사항등이 적혀있어 이들이 후기대 대리시험부정이외에 전문대 대리시험 부정도 저지르려 했던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이와함께 경찰조사 결과 이번 사건의 주범인 신씨와 김씨,그리고 중간브로커 역할을 한 홍씨등이 모두 86년1월부터 90년3월까지 서울 대원외국어고등학교에 재직했었으며 특히 씬씨와 김씨는 90년4월부터 92년2월까지는 서울 대일고,92년3월부터는 K고로 함께 학교를 옮겨다녔으며 입시브로커 이정택씨는 전강동고 이사였다. 이러한 점들로 미루어 경찰은 이들이 이번 사건이외에도 올 전기대입시 등에서도 같은수법으로 입시부정을 저질렀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또 신씨와 김씨가 서울시내 명문고의 국어와 수학교사로 재직해온 점으로 미루어 이들이 과거 자신들의 비밀과외망을 통해 대상 학부모들을 물색해온 것으로 보고 있다. 한편 이번에 붙잡힌 학부모 3명은 모두가 강남지역의 60평이상 고급아파트등에 사는 월수입이 높은 제조업·상업등에 종사하는 부유층들이다. 또 대학생 이모양은 지난해 대입시에서 학력고사 3백10점을 받았고 학교성적이 4·5점만점에 1,2학기 평균 4·07점인 우수자였으며 송형렬군은 올 대학입시에서 3백24점을 받은 고득점자이다. 경찰은 20여일전에 이들이 포섭대상으로 모집했던 30여명 가운데 한 대학생으로부터 『수상하다』는 제보를 받아 그동안 이들을 은밀히 미행감시해 오다 29일 하오 후기대입시에서 대리시험을 치른 것을 확인하고 이들을 붙잡았다.
  • 뉴욕필 150돌/오페라·콘서트 등 자축공연/7일부터 필하모닉주간

    ◎내년 3월엔 유럽 등 해외순회공연 떠나 수많은 음악애호가들의 사랑과 갈채를 받아온 미국 최고의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뉴욕필)가 오는 7일로 대망의 창립 1백50주년을 맞는다.뉴욕필은 이 뜻깊은 날에 즈음하여 다채로운 음악행사를 펼칠 계획아래 요즘 행사준비에 더없이 바쁘다.뉴욕에서는 이날부터「필하모닉 주간」을 설정,오페라·콘서트·심포지엄·세미나·전시회등 각종 기념공연 및 행사를 갖는다.내년 3월22일부터는 베를린·부다페스트·런던·파리·마드리드·빈 등지로 해외순회공연에도 나선다. 음악을 통해 세계평화의 가교역할을 해온 뉴욕필은 지난 80년대만해도 전미순회공연 4회를 포함해 세계 50개국 3백48개 도시를 방문,수많은 음악팬들의 심금을 울렸다. 특히 독일통일의 해인 89년 역사적인 동베를린공연을 통해 평화의 사도로서의 역할을 훌륭히 수행했으며 최근에는 AIDS퇴치를 위한 자선공연도 가줬다. 현재 뉴욕필을 이끌고있는 상임지휘자는 클래식음악을 통한 삶의 질의 향상과 젊은 세대를 위한 음악보급에 힘을 쏟고있는쿠르트 마수르.마수르는 이번 1백50주년기념 첫공연에서도 관례에 따라 1893년 뉴욕필의 첫 해외공연때 선을 보인 드보르자크의「신세계교향곡」을 지휘한다.전임지휘자인 피에르 불레(71∼77년),주빈 메타(78∼91년)도 이날 무대에 서게된다. 지금은 조직과 기구가 방대해지고 연주기법면에서도 세계 최고의 수준이란 호평을 받고있는 뉴욕필이지만 그 출범은 음악애호가들의 단출한 모임에서 비롯됐다. 1842년 봄 브로드웨이에서는 뉴욕음악협회 회원 몇몇이 조촐한 모임을 가졌다.이 모임은 뉴욕일원에서 「음악 미치광이」소리를 듣던 코렐리 힐이 주관했다.안건은 기악의 발전을 위해 직업음악인협회를 설립하자는 것. 이들은 모임을 몇차례 가진뒤 그해 4월23일 그때까지의 성악위주에서 벗어나 기악에 비중을 두는 「뉴욕 필하모닉협회」를 창립했다.창립회원은 모두 70명이었으며 실제 연주자는 53명밖에 되지않았다.공연리허설은 1주씩 걸러 토요일 하오에 가졌고 경비는 불참회원들의 벌금으로 충당했다. 뉴욕필의 창단은 시기적으로 적절했다.창립당시뉴욕은 인구 35만명으로 세계 7대도시의 하나로 성장해있었고 불경기였지만 부호들이 몰려있어 문화수용기반이 탄탄했다.또한 풍성한 레퍼토리로 하루종일 공연하는 극장이 4개나 있을 정도로 이미 문화적 체취가 깊숙이 배어있었다.셰익스피어와 셰리던의 희곡이 상연되었으며 에머슨·월터 스콧·바이런등 시인들의 문학활동도 잦았다. 이같은 분위기속에서 뉴욕필은 협회를 창립한지 7개월 남짓만인 그해 12월 7일 마침내 역사적인 첫 연주회를 열었다.관객은 6백명. 이날밤 83센트를 치르고 아폴로룸에 입장한 관객들은 하얀 장갑을 낀 젊은 연주자 52명으로부터 직접 정중한 안내를 받았다.그리고 베토벤·베버·로시니·모차르트 등의 작품이 연주됐다. 공연이 끝났다.그러나 관객들은 박수갈채를 보내느라 귀가도 잊은채 객석을 떠날줄 몰랐다.젊은 연주자들의 눈에는 이슬이 맺혔다.첫공연의 성공과 뉴욕필의 무한한 가능성이 확인되는 장엄한 순간이었다.밖에는 눈이 내리고 있었다.서설이었다.
  • 새 봄 화랑가/신진작가 기획전 활기

    ◎대가위주 탈피,생동감있는 작품 선봬/이달중 6건… 민속·생명등 주제도 다양 연말연시 썰렁했던 화랑가가 이달 중순을 넘어서면서 「주제」가 있는 그룹기획전들을 잇따라 마련,활기를 불어넣을 전망이다. 새봄을 여는 이 기획전들은 이달에만도 6건이 마련되는데,예년에 상업화랑들이 인기작가 3∼4명을 내세운 천편일률적인 신춘초대전들과는 달리 기획의도 자체에 무게가 들어가 있어 눈길을 받을 만하다. 갤러리서목의 「민속을 주제로 한 그림전」(15∼29일),국제화랑의 「생명을 찾는 사람들전」(28∼3월14일),「갤러리도올의 「1992신춘현대학국화 10인초대전」(26∼3월10일),청남미술관의 「1992서울전」(10∼18일),갤러리 포커스의 「휴머니즘의 회복전」(17∼29일),가산화랑의 「92현대회화초대전」(20∼3월14일)등이 그것들. 이 전시회들이 특히 신춘화랑가에 밝은 기운을 조성하리란 기대를 주는 것은 여기에 초대된 대부분의 작가들이 역량은 있되 아직은 상업성에 크게 물들지 않은 30∼40대 소장파들이란 점이다. 최근 미술시장의 큰 불황으로그림값이 턱없이 치솟은 원로·인기작가들의 작품발표가 위축된 반면,이같은 현상에 구애되지 않고 독자적인 창작세계를 펼치고 있는 젊은 작가들을 전폭적으로 수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시선을 받는 것이다. 「민속을 주제로 한 미술전」은 민속명절인 설날과 대보름이 낀 2월을 특별히 장식하겠다는 욕심에서 꾸며진 것으로 중견7인의 작가가 한국적 이미지나 분위기를 구성하는 일관된 주제아래 작품을 낸다. 박동인 백성도 이두옥 이령수 이왈종 장순업 전래식씨가 각자 고유한 민족정서를 형상화시킨 작품을 출품한다. 「생명을 찾는 사람들전」은 굵직한 상업화랑인 국제화랑이 모처럼 기획한 젊은 작가들의 공동 발표전이다. 김근중 박관욱 박영하 박일순 신현중 우순옥 최인수씨 등 7명이 참여하며,이들중 반수 이상이 입체작품에 전념하고 있다.인간과 물질에 대한 의미를 예술행위에 결부시켜 작가적 인식을 저마다의 조형성으로 풀어나가고자 애쓰는 촉망되는 젊은 작가들로서 1인당 3∼5점의 대작을 선보일 예정이다. 「1992 신춘 현대한국화10인초대전」은 현대한국화의 다양성을 한눈에 조감한다는 취지아래 가장 주목되는 30∼40대 한국화가를 망라했다.전래식 박남철 이철량 사석원 석철주 표기봉 조환 이왈종 홍석창 황창배씨들로 「새로운 가능성」을 지향하는 중견·소장작가들의 신춘전시회로 꾸며진다.이 전시는 특히 예술적인 측면과 대중적 애호의 맞물림이 만나는 장을 추구하고 있는데,서양화의 위세에 밀려온 한국화의 재생가능성을 점쳐볼 수 있는 자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1992서울전」은 미술평론가 서성록씨에 의해 기획·구성된 청년작가전으로 우수한 회화적 기량과 날카로운 사회적 시각이 돋보이는 6명이 초대됐다. 초대작가는 강성원 정일 조덕현 윤동천 김영길 최승호씨등.「차세대 미술의 주역」이란 전제를 붙여 초대한 이들의 작품속에 공통으로 흐르는 것은 「시대정신에 대한 주목」이다. 올초 「꽃이 있는 공간전」을 꾸며 큰 호응을 얻었던 갤러리포커스가 제2탄으로 선보이는 「휴머니즘의 회복전」은 초대작가의 연령이나 성향·특성 등이 매우 다채로우면서도 인간의존엄성과 순수성을 작품에 투영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맥락을 함께하는 인물 14명이 초대된다. 회화의 최영림 정점식 황용엽 손상기 신명범 박무웅 임옥상 곽성동 황주리 노태옹 이원희,조각의 강관욱 황현수 김홍곤씨등이다. 그밖에 개관1주년을 맞는 가산화랑이 기념전으로 꾸미는 「92현대회화초대전」에도 한국화 7명,서양화 8명등 30∼40대 소장파 작가 15명이 참여한다. 한국화엔 김진관 김천영 박남철 석철주 윤여환 이철량 홍순주,서양화엔 강경규 박승규 이은산 이중희 임철순 주태석 지석철 홍정희씨들로 한국화가 20∼29일,서양화가 3월5∼14일에 전시된다. 「한국성의 국제화」란 대명제아래 30∼40대 엘리트기수를 참여시켜 각자 개성있는 다양한 표현양식을 통해 우리 미술의 가능성을 조명해 본다는 것이 화랑측의 기획의도이다.
  • 장애아교육 개척 김후리다여사(이사람)

    ◎“정박아 가슴에 「복음밀알」 심기 20년”/73년 「성베드로학교」 설립… 「사랑실천」 첫발/“「한가족 삶」 부축” 아동 놀이도서관도 운영/일서 성공회 김성수주교 만나 69년 가정 이뤄/“모두가 형제… 장애아교육에 더 많은 관심 보였으면…” 덕수궁과 바로 이웃하고 있는 낡은 건물­대한성공회 주교관을 찾았을때 김후리다여사(59)는 영문편지를 쓰고 있었다.장애자를 위해 오랜기간 봉사를 했다고 해서 털털하고 소박한 외양을 떠올렸으나 금테안경을 낀 얼굴이 단정하고 흐트러짐이 전혀 없어 뵈는 인상이다. 영국태생으로 대한성공회 김성수주교(61)의 아내인 김후리다여사는 불모지나 다름없었던 우리나라 정신장애 어린이 교육의 개척자.현재 갓난 아기에서 8세까지의 정신장애 어린이를 장난감을 이용해 교육하는 시설인 「레코텍 코리아(Rekotek Korea)」의 원장인 그와 한국의 인연은 20여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지난 62년 30살의 나이로 고국인 영국을 떠나 일본땅을 밟았다.성공회의 선교사가 되어 한달반이 걸리는 배편으로 낯선 아시아에 도착한 것이다. 『집안에서 부모님과 하나뿐인 언니가 많은 걱정을 했습니다.그러나 하느님의 말씀에 따라 결정한 것이기 때문에 다른 생각은 할 수 없었습니다』 억양이 조금 이상하긴 하지만 유창한 한국말로 김여사는 당시를 회상했다. ○사회복지학등 전공 영국의 리즈사범대에서 음악교육을 받고 런던대에서 사회복지분야를 전공했던 그는 일본에서 청소년 지도상담을 맡았다.그당시 일본은 벌써 제2차대전의 참화를 극복한 때라 국민들의 생활이 서구사회와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그래서 자신의 전공분야인 사회복지 활동보다는 성공회 선교사로서 종교적인 업무에 주로 매달리고 있었다.그무렵 한국에서 온 현재의 남편 김신부를 만나게 됐다. 김여사는 김신부와의 결혼을 역시 하느님의 뜻으로 돌린다.당초 두사람 가운데 누구도 결혼하자는 말은 없었다고 말한다.함께 일하다보니 그냥 자연스럽게 결혼하게 됐다는 것.어떻든 69년 그는 결혼을 하러 김신부와 함께 한국에 왔다. 『결혼과 함께 정식선교사로서의 직분은 떠난 셈이었으나 한국에서주교님을 도와 하느님의 큰 뜻을 실천할 그 무엇이 있을 것으로 믿었습니다』 당시 한국은 일본에 있을 때 상상했던 것보다 경제사정이 더 나빴다고 김여사는 이야기한다.한겨울인 2월에 입국했는데 길에는 눈이 많이 쌓여 있어 교통사정이 형편없었으며 거리를 오가는 버스와 택시등도 금방 고장이라도 날듯 오래된 것들이었다는 것이다. ○박봉에 “애옥살이” 그때 김신부의 월급은 1만7천원이어서 하룻동안 김여사가 쓸 수 있는 생활비는 2백원에 불과했다.밥 짓고 연탄 가는 일이 어렵긴 했지만 너무 바빠 그럭저럭 저도 모르게 지나갔다.밥은 일본에서 길들여져 잘 먹었으며 김치도 처음부터 잘 먹었다.크게 불편했던 것은 오랫동안 마셔왔던 커피를 구하기 어려웠던 것. 73년 한국말에 어느정도 입과 귀가 열릴 즈음 그는 남편의 도움을 받아 서울 구로구 항동에 국민학생 연령의 정신장애아를 교육하는 「성베드로학교」를 설립했다.2층 건물의 윗층에서 김원장부부와 수녀 2명,교사 4명이 장애아 14명을 돌보았는데 나중에 학생수가 40명까지 늘어났다.그때 화장실이 하나였던 것이 가장 문제였다고 김여사는 회상한다.그는 집이 종로구 원서동에 있어 「성베드로학교」까지 버스를 3번 갈아타고 다녔다. 얼마뒤 이 시설들에 대한 정부의 제도적인 지원책이 마련되면서 김여사는 여전히 도움을 받지 못하고 있는 미취학 장애어린이쪽으로 눈을 돌리게 됐다. 현재 김여사가 관리하고 있는 교육시설은 지난 83년 개관한 서울시 중구 정동 성공회관의 「레코텍 코리아」를 비롯,피어슨 빌딩의 「레코텍 코리아」와 중계동의 「마들사회복지관 레코텍」등 세곳이다.레코텍은 스웨덴말로 놀이도서관이란 뜻.김여사는 이 세곳의 교육시설에서 장애어린이의 부모들을 위한 상담역할을 하고 있다. ○“미취학아에 관심을” 김여사는 이젠 한국에도 미취학 정신장애어린이를 위한 놀이방이 전국적으로 50∼60여곳으로 늘어나 장애어린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 같다고 말한다. 『정부도 이젠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겼으니 미취학 장애아에 대한 교육에 신경을 써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이들에 대한 교육은 빠르면 빠를수록좋기 때문입니다』 ○장애아도 “가족일원” 김여사는 레코텍의 역할중 장애어린이를 가족의 일원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그는 장애어린이가 일단 가족 속에 끼어들어 자연스럽게 섞이게 될 때 그 다음단계인 학교와 사회에서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지낼 수 있게 된다고 말한다.이 때문에 장애어린이를 가진 부모와의 상담을 통해 그들이 아기에 대해 가지고 있는 분노와 죄의식,절망등 여러가지 부정적인 감정을 해소시키는 활동을 중요시하고 있다. 현재 김여사가 관리하는 세곳의 장애아시설에는 10명의 교사가 1백여명의 어린이를 교육하고 있다. 「레코텍 코리아」는 운영비가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에 특별한 경우이외에는 회비를 받고 있다.또 87년부터 기금마련을 위해 해마다 「레코텍 코리아」후원의 밤을 열고 있다. 김주교와의 사이에 1남1녀를 둔 김여사는 한국에 온 뒤 미8군영내에 있는 남캘리포니아대 분교에서 교육학석사,연세대에서 교육학박사를 받기도 했다. 장애어린이 상담 문의는 733­3469.
  • 고교졸업생등 5명/술취해 여학생 추행

    8일 하오8시30분쯤 서울 서대문구 신촌동 연세대 운동장에서 이날 졸업식을 가진 이모군(18·G고 졸업) 등 졸업생 3명이 낀 10대 5명이 이곳에 놀러온 이모군(17·D상고 1년) 등 고교생 4명을 각목으로 때리고 현금 5만원을 빼앗은 뒤 함께 있던 양모양(15·M여중 3년)을 번갈아 폭행하고 달아나다 출동한 경찰에 이군 등 5명이 모두 붙잡혔다. 경찰조사결과 이군 등은 이날 졸업식을 마치고 선후배들과 함께 신촌에서 축하술을 나눠 마신 뒤 연세대에 놀러갔다가 범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 「범죄와의 전쟁」 이기는 길을 찾는다(질서있는 사회로:8)

    ◎“공적1호” 마약… 잔혹한 「환각범죄」 유발/10대ㆍ주부까지도 상습복용 “충격”/공급로 차단 통해 “백색공포” 추방 지난 9월 남미 콜롬비아의 현지인이 낀 국제적 코카인밀매조직이 코카인 1㎏을 국내에 들여와 팔려다 적발돼 전국에 「코카인비상」이 걸렸었다. 히로뽕만으로도 골머리를 앓아온 우리나라의 마약문제가 70년대의 대마초,80년대의 히로뽕에 이어 이제 90년대에 이르러 코카인이라는 제3세대 강력 환각제 문제에 부딪치는 심각한 국면을 맞게 된 것이다. 특히 코카인 대량적발사건은 국제적으로 악명높은 콜롬비아의 카르텔과 연계돼 있을 가능성이 크며 우리나라가 미국ㆍ유럽ㆍ일본에 이어 이들의 다음 공략대상지로 꼽힌 것으로 보여 수사당국을 바짝 긴장시키고 있다. 마약은 현재 쾌락의 수단뿐만 아니라 범죄를 잔혹화하고 정신적ㆍ육체적 건강마저 송두리째 파괴해 「공적1호」로 지목돼 세계 각국에서 전면전을 치르고 있는 실정이다. 서울ㆍ부산 등지의 유흥업소가 몰려있는 지역에서는 하룻밤에도 히로뽕투약에 사용된 피묻은 1회용 주사기가 수십개씩 발견되고 있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던 히로뽕사범이 대형 밀매ㆍ밀조조직의 검거로 금년들어 약간 주춤하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대마ㆍ마약사범의 증가로 전체적인 마약류 사범은 여전히 증가추세에 있으며 마약류의 상용계층이 10대ㆍ20대로,주부ㆍ운전기사ㆍ농부등에로까지 전계층으로 퍼지고 있다는데 그 심각성이 있다. 올들어서만도 지난 1월9일 유명패션모델 겸 노량진청과시장 부사장 노충량씨(30)와 유명모델 김모씨(25ㆍ여)등 5명이 쾌락의 도구로 히로뽕을 상습적으로 복용해오다 검찰에 구속됐다. 지난 5월까지 재벌2세ㆍ연예인 등 소위 「유명인」들이 마약류를 상습복용해 적발된 것만도 모두 4건 32명에 이르며 이들은 감수성과 호기심이 강한 청소년들을 마약에로 유혹하거나 모방심리를 불러 일으키는 기폭제 역할을 하고 있다. 문제의 심각성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지난해 9월 인천 S고교생 29명은 학교 숲속과 화장실 등지에 모여 대마초를 돌려가며 피우다 적발돼 무더기로 징계를 당하기도 했다. 시민의 생명과 직결된 대중교통 운전자들의 마약복용 실태 또한 80년대 중반 1∼2명에 불과하던 것이 88년 93명,89년 1백18명 등으로 급격히 늘고 있다. 학교도,도로도 더이상 「마약의 안전지대」가 아닌 것이다. 대검에 따르면 지난 9월까지 전국에서 검거된 각종 마약류 사범은 모두 3천1백84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3% 늘어 났으며 이 가운데 히로뽕 등 향정신성의약품 사범이 23.2% 줄어든 반면 대마ㆍ마약사범은 26.3%와 43.5%나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무엇보다도 히로뽕사범 가운데 10∼30대가 75.6%를 차지하고 대마의 경우 10∼20대 청소년층이 45.8%로 절반가량 돼 젊은층이 모든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기보다는 피해가려는 경향을 나타내고 있어 사회의식전반을 나약하게 만든다는 우려가 높다. 이와 함께 히로뽕의 확산은 인질극ㆍ폭행ㆍ강간 등 이른바 「환각범죄」를 불러오고 있다. 의약관계자는 이에 대해 『중독자가 되면 뇌신경이 손상돼 환각ㆍ환청ㆍ환시현상에 시달리고 극도의 피해망상증과 편집증 증세를 보여 자해행위는 물론 대담한 범행을 서슴없이 저지르게 된다』고 마약폐해의 심각성을 지적했다. 마약문제가 이런 상황에까지 이르자 사회일각에서는 손을 쓸 수 있을때 뿌리 뽑아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고 서울신문사는 지난 6월24일 범국민마약추방운동을 벌이기 시작,지금은 전국적인 시민운동으로 확산되고 있다. 검찰은 검찰대로 주요 밀조ㆍ밀매관련자 10여명을 전국에 수배하고 마약공급선을 차단하는 데 주력하는 한편 마약상용자를 적발하기 위해 시약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시민단체의 한 관계자는 『일상생활에서 오는 가중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마약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건전한 놀이문화를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며 마약류에 관한 계몽영화 같은 것을 보급하는 일도 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현재 정부가 마산에 지을 계획인 마약사범들을 수용하기 위한 전문치료병원의 신축이 지역주민들의 심한 반대에 부딪쳐 난항을 겪고 있다』고 밝히고 『마약복용자들을 문제자로만 보는 시각에서 탈피해 이들도 피해자 또는 환자라는 인식을 갖고 치료를받을 수 있도록 해주는 등의 도와주는 풍토가 빨리 조성돼야 이들이 다시 마약에 빠지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정부도 마약공급을 차단하기 위해 마약관련사범들의 명단을 전산입력시켜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이들에 대한 재산이동상황과 출입국 상황등을 세밀히 추적해야 하며 허가를 받아 마약류를 취급하고 있는 제약회사ㆍ병원등에 대해서도 부정하게 유출되는 것을 막기 위한 추후관리를 철저히 해 나가야 할 것이다.
  • 김동석 경원대총장/고속도서 윤화 사망

    김동석경원대총장이 22일 상오5시50분쯤 경기도 광주군 신천리 중부고속도로 서울기점 23.3㎞상행선에서 신진기업소속 서울1 아1377호 스텔라택시(운전사 최종현ㆍ33)를 타고 가다 교통사고로 별세했다. 향년 51세. 김총장은 이날 혼자서 택시를 전세내 고향인 강원도 원주군 문막면에 있는 선영에 추석성묘준비를 하러 갔다 오다 변을 당했다. 사고는 김총장이 탄 택시가 시계 70m의 짙은 안개가 낀 고속도로를 시속 80㎞로 달리면서 앞서가던 화물트럭을 추월하기 위해 노견으로 들어갔다가 고장으로 노견에 서있던 서울7 로5871호 화물트럭을 들이받아 일어났다. 사고택시 운전사 최씨도 숨졌다. 김총장은 63년 연세대 법학과를 졸업한뒤 지난81년 경원대학을 설립,이사장을 지내오다 88년3월 이 학교가 종합대학으로 승격하면서 총장직을 맡아왔다. 빈소는 영동세브란스병원 영안실이며 발인 26일 상오10시. 연락처 569­4715ㆍ252­1112.
  • 외국관광객 올해 3백만 몰려든다/교통부 추산

    ◎2년만에 1백만 급증… 일인이 48%/내국인 해외여행도 1백60만/“씀씀이 헤픈 한국인”… 1인평균 2천불/외국인은 1천1백불… 알뜰쇼핑 즐겨 올해 우리나라를 찾는 외국관광객이 사상 처음으로 3백만명을 넘어설 전망이다. 이같은 사실은 교통부가 7일 발표한 지난 7월말까지의 올해 관광동향보고에서 밝혀졌다. 교통부는 이날 보고서에서 『지난 7월말까지 모두 1백65만여명의 외래관광객이 입국,이 추세대로라면 올연말까지 3백만명을 훨씬 웃도는 입국기록을 세우게 될 것』라고 밝혔다. 예년의 경향으로 보아 우리나라를 찾는 관광객은 가을철이 낀 하반기에 부쩍 느는 양상을 보이고 있어 이같은 전망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지난7월 우리나라에 온 외래관광객은 모두 25만3천여명으로 1월부터 6월까지의 평균 23만2천여명보다 2만1천여명이나 늘어나 이같은 경향을 뚜렷이 보여주고 있다. 우리나라는 지난78년 처음으로 외래관광객 입국자수가 1백만명을 돌파한 이래 서울올림픽이 열린 지난88년 만 10년만에 2백만명을 넘어섰었다. 따라서 2백만명을 돌파한지 2년만에 다시 3백만명의 관광객입국기록을 수립하는 것은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우리나라가 세계에 널리 알려지고 우리의 관광산업이 그만큼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올해 우리나라에 온 외국관광객은 일본인이 전체의 48.6%인 88만2천여명으로 가장 많았고 미국인이 11.4%,대만인 7%,유럽인 6.5% 순이었다. 미국인의 경우 입국자가 지난해보다 5백여명이 줄어든데 비해 대만인은 2만7천4백여명이 늘어 31.3%의 놀라운 증가율을 보였다. 그러나 외래관광객이 우리나라에서 쓰고 간 외화는 모두 19억3천4백만달러에 이르러 지난해 같은 기간의 20억4천2백만달러보다 5.3%가 줄어들었다. 이는 일본 엔화가 가치가 떨어진데 따라 일본인들의 구매력이 줄어든 때문 등으로 분석되고 있으나 근본적으로는 우리의 관광상품 개발수준이 낮기 때문인 것으로 개선책을 마련하는 일이 시급한 실정이다. 한편 외국으로 나가는 우리관광객도 올 연말까지 1백60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올들어 지난달말까지 출국한 내국인은모두 88만1천여명에 이르렀고 특히 휴가철이었던 지난 7월에는 15만6천여명으로 사상 최고의 월간출국기록을 세웠다. 내국인의 출국기록은 지난 87년까지만 해도 50만명선에 그쳤으나 올림픽이 열리며 국제교류가 활발해 진 88년 70만명을 넘었었다. 이어 지난해 해외여행자유화가 이뤄지면서 1백21만3천여명이 출국,해외여행붐을 일으켜 올해까지 출국러시현상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내국인의 해외여행에서 특히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는 것은 지나치게 해픈 씀씀이로 올해 내국인 출국자들이 가지고 나간 외화가 벌써 17억5천3백만달러에 이르고 있다. 올해 외래관광객의 한사람앞 외화소비액이 1천1백72달러인데 비해 우리나라 사람이 해외여행에서 쓴 외화는 거의 두배에 가까운 1천9백89달러나 되는 것이다.
  • 한국전 40돌 맞아 재조명 미 유에스 뉴스지

    ◎“잊혀진 전쟁”6ㆍ25… 「공산화 도미노」막았다/동ㆍ서 이념대립서 군사충돌로 급선회/「값비싼 희생」은 동구민주화와 연계성/“전쟁의 물적ㆍ심리적 유산은 한국인 모든 세대에 깊이 자리” 미국의 시사주간 유에스 뉴스 앤드 월드 리포트지는 6ㆍ25 40주년을 맞아 「잊혀진 전쟁」을 재조명하고 이 전쟁이 남긴 유산과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남북대결의 현실을 분석하는 특집기사를 6월25일자 카버스토리로 다뤘다. 장장 14쪽에 이르는 유에스 뉴스지의 특집기사를 요약한다. 지금부터 꼭 40년전 장마비가 내리는 아침에 시작돼 그후 37개월동안 이미 수탈당한 아시아 변방의 반도를 뒤흔든 야만적인 투쟁은 마지막 전쟁(제2차 세계대전)의 후기인 동시에 다음에 일어날 전쟁의 서문이었다. 이것은 갑자기 열전으로 변한 냉전이었고 공산주의 사상 가장 담대한 「국제해방전쟁」이었으며 유엔으로서는 처음이자 아마도 마지막일 「경찰업무」였다. 판문점이라는 무인지대의 황량한 「휴전마을」에서 교착상태로 끝날 때까지 이 전쟁에는 22개국이 참전했고5백만명의 인명이 이로 인해 희생됐으며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정치적ㆍ경제적 소요를 탄생시켰다. 그러나 발발 40년이 지난 지금 한국전쟁은 미국인들의 기억속에 미국의 킬링필드였던 안개낀 산들만큼이나 아물거리는 존재로 남아있다. 폭찹힐이나 하트브레이크 리지에서,또는 장진호에서 퇴각하는 길에 쓰러진 수많은 사람들의 죽음에 값하는 기념비는 어디에 있는가? 베를린 장벽이 유럽 분단의 상징이라면 남북한을 가르는 경계선은 아시아의 베를린 장벽이다.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과 한국의 노태우대통령이 2주전 샌프란시스코에서 만났을때 이들은 냉전의 가장 뚜렷한 흔적인 한국의 분단상태를 언젠가는 끝낼 수도 있을 해빙작업을 시작한 것인지도 모른다. 더구나 아시아에서 화해의 봄이 무르익고 있는 지금 공산주의 양대 종주국인 중국과 소련은 자신들이 지난 1950년 파괴하려 했고 그후 40년간 무시하고 비난하고 전복시키려 애써 왔던 한국과의 외교재개를 위한 새로운 조치들을 취하고 있다. ▷냉전의 모델◁ 한국전은 유럽일변도였던 미국의 관심을 태평양쪽으로 되돌렸다. 2차 대전후 극동에 대한 미국의 관심은 약화되기 시작했었다. 트루먼행정부는 「중공」과의 타협에 접근하게 된다. 당시 칼럼니스트 월터 리프먼은 『아시아는 서방의 군사적 영향력,경제력 통제 및 사상적 영향력에서 벗어나 있다』고 기술했다. 한국전이 중국과 소련간 불화의 서막이었다는 증거가 현재 나타나고는 있지만 당시 한국전은 획일적 공산주의의 이미지를 강화했으며 미정책입안자로 하여금 이때문에 오랜기간 골머리를 앓게 해왔다. 한국전은 무엇보다도 냉전을 정치ㆍ이념적 성격에서 군사충돌로 변모시켰다. 이는 전후 봉쇄정책의 촉매일뿐 아니라 드와이트 아이젠하워가 표현한대로 「군사산업 복합체」를 형성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1951회계연도 미군사예산은 1백40억달러(책정기준)에서 53회계연도에는 5백40억달러로 상승된다. 보다 놀라운 점은 미국의 대외 원조계획의 군사화이다. 1950회계연도의 경우 군사원조가 대외원조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12%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는 60회계연도에 41%로높아졌다. 한국전은 또한 냉전기간을 통해 미국의 외교정책을 괴롭혀온 기본적인 모순을 가져다 주었다. 미국은 한편으로 국내에서 악의에 찬 반공주의에 반대하는 것처럼 행동하면서 한편에서는 공산주의 침략이 이루어지는 세계 어디서고 이를 퇴치한다는 결의를 다짐하도록 만들었다. 50년 9월30일 북한이 남침을 시작한지 3달째가 되는 날 트루먼은 국가안보회의문서 68호에 서명한다. 이 문서는 『소련의 강대국 부상을 막기위해 미국은 희생이 어떠하더라도 국내외에서 민주주의를 수호할 결의를 갖추어야 한다』고 언급한다. ▷미 극우세력의 득세◁ 다른 수준에서 한국전은 핵시대(소련은 전쟁발발 3개월전 첫 핵실험에 성공했음을 발표한다)에서 전쟁이 가열돼서는 안된다는 점을 상기시켜준 전쟁이었다. 이같은 새로운 「제한전」의 개념은 그러나 중국을 핵공격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온 더글러스 맥아더장군에게는 맞지 않는 것이었다. 51년 3월 맥아더는 중국 로비스트였던 조셉 마틴하원의원에게 보낸 서한에서 트루먼의 제한전 개념을 공개적으로통박한다. 그는 『공산주의가 세계무대 장악을 위해 준동하는 지역이 아시아』임을 상기시키면서 『아시아가 떨어지면 유럽도 공산화를 피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이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명령에 순종하는 외에는 대안이 없었다. 트르먼은 마침내 맥아더를 해임하나 공산주의 「격퇴」에 관한 논란은 끊이지 않는다. 맥아더가 밀려난데 자극받아 존 맥가시상원의원은 공산주의 동조세력이 트루먼 행정부안에 도사리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이게 된다. 그로부터 13년후 피그만사건이 있고난후 미국이 아시아에서 또다른 제한전으로 치달을 무렵 배리 골드워터상원의원은 64년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자유방위를 위한 극단주의는 악이 아니다』라고 선언함으로써 맥아더를 상기시켰다. 이같은 우익노선은 마침내 로널드 레이건에 의해 미국의 정책으로 채택된다. ▷잊혀진 전쟁◁ 한국전의 여파가 오래 지속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전에 관한 한 가장 놀라운 것은 거의 잊혀졌다는 사실이다. 한국전에서 전사한 미군 병사수는 5만4천여명으로 한 세대후의 베트남전의 미군희생자 5만8천명에 거의 육박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반 미국인들의 한국전에 대한 기억은 뚜렷한 것이 없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과 일본으로부터 무조건 항복을 받아낸 사람들에게 북한과 중국을 상대로 싸운 전쟁에서 비겼다는 사실은 결코 달갑지 않는 일이었을 것이 분명하다. 트루먼대통령은 ▲징집연장 ▲세금인상 ▲임금ㆍ물가 통제부과 등을 취했으나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상황에 비교하면 국내의 피해는 극히 미미했다고 하겠다. 또 베트남전이 TV를 통해 대대적으로 소개된 것에 비하면 한국전은 신문에나 조금 보도되는 등 일반인들의 관심밖의 일이다. 한국전이 끝난지 40년이 지난 지금 냉전이 종식되고 있는 현실을 되돌아 보건대 한국의 산하에서 치른 희생과 최근 프라하,바르샤바,부다페스트에서의 민주주의 태동은 분명한 연계성을 갖고 있다. 미국의 봉쇄정책은 성공했으며 미국과 우방국들은 한국에서 공산주의의 침공을 저지하기 위한 값비싼 희생을 치른 것이 분명하다. 최종적인 결과를 볼때 그 희생이 가치 있는 것이었다고 역사는 결론을 내릴 것이 분명하다. ▷계속되는 남북대결◁ 한국전쟁은 총성이 멈춘지 1세대가 지났지만 아직도 남북한 국민들의 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국이 경제기적을 거두고 한소 정상회담이 열렸음에도 불구하고 전쟁의 물적ㆍ심리적 유산은 모든 세대와 사회계급에 걸쳐 깊이 자리잡고 있다. 도쿄에서 발행되는 친북한신문의 편집인 손진형씨는 『전쟁은 민족 최대의 비극』이었다고 말한다. 휴전된지 37년이 되도록 남북한은 아직도 기술적으로 전쟁상태이며 1백51마일 휴전선에는 1백만의 병력이 마주 대하고 있다. 한국의 영화관에서는 영화상영전에 간첩과 공산주의자를 113으로 신고하라는 자막이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 북에서는 김일성이 또다른 전쟁 가능성을 내세워 권력을 유지하고 있다. 모든 북한주민은 매년 열리는 한미 합동군사훈련 기간동안 전투비상체제하에 놓인다. 김일성은 『미제국주의자와의 전쟁경험은 금과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경험』이라고 말했다. 남쪽에서는 전쟁이 재벌이라는 신흥기업군이 자랄 수 있는 혼란스럽고 독점적인 시장을 마련해 주었다. 전쟁은 남북을 합쳐 1백50만명의 사망자와 실종자를 낳았으며 수백만명의 인구가 고향을 떠나게 만들었다. 인구의 대량이동은 도시화를 촉진시켰다. 전쟁이 미친 가장 큰 영향은 남북 모두 군인들이 정치권력을 쥐도록 만든 점이다. 남에는 장성출신의 대통령이 3명이나 되고 그중 2명은 쿠데타로 집권했다. 북에서는 전현직 고위 장교들이 김일성의 강력한 지지그룹을 형성하고 있으며 당의 고위직에 앉아 있다. 경희대 나종일대학원장은 『전쟁은 우리가 정치적으로 성숙되지 못했음을 보여줬다. 우리는 우리의 문제들을 군사적인 수단과 독재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라고 지적한다. 아직도 남북 모두에게 분단상황은 마음속에 굳게 자리잡고 있으며 남한은 독일통일방식의 단계적 통일을,북한은 1국2체제 방식을 내놓고 있다. 한국전쟁의 사회적 영향을 연구한 서울대 김경동교수는 『전쟁이 왜,어떻게 발발했는지 분명히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 우리는 당시 전쟁을 막을 통제능력이 거의 없었다』라고 진단한다. 전쟁이 한국민들에게 가치 있었다고 한다면 그것은 적어도 남한은 자신들이 1950년에는 갖지 못했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할 힘을 갖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 부동산 투기 갈수록 지능화/미등기 전매ㆍ무주택위장 분양 받기도

    ◎땅은 업무용가장 매입…용도위반 일쑤/전국이 투기장화…봉급자도 가담 부동산투기가 확산되면서 그 수법도 다양해지고 있다. 13일 건설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부동산을 재산증식이나 상속ㆍ증여수단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일반화돼 전문투기꾼 뿐만 아니라 봉급생활자 까지도 투기에 가담하고 있으며 대상지역도 전국적으로 확산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투기수법도 다양해져 주택의 경우 ▲명의신탁ㆍ가등기를 이용한 미등기 전매 ▲전매가 금지된 아파트 입주권 양도 ▲세대분리등 무주택자를 위장한 신규분양 ▲집을 세준뒤 전세금에 웃돈을 보태 다시 집을 사는 1가구 다주택보유 등이 널리 쓰이는 것으로 드러났다. 토지에 있어서도 개발지역ㆍ상가지역에서의 미등기전매가 성행하는 것을 비롯,▲업무용을 가장한 기업의 과다매입 ▲토지거래허가지역내의 용도 위반행위 ▲주민등록을 위장,농지매매증명을 받는 행위가 늘고 있다. 이처럼 투기가 극성을 이루는 원인으로는 각종 규제에 따른 공급부족이 가장 큰 요인으로 지적됐다. 주택의 경우핵가족화ㆍ농촌인구의 도시유입 외에 가수요까지 겹쳐 수요가 크게 늘었음에도 불구,주택공급가격을 89년11월까지 동결시킴으로써 신규 건설이 부진했던 것을 들고 있다. 토지의 경우도 농지전용규제ㆍ용도지역제한 등으로 개발이 제약된데다 개발지역의 지가상승에 따른 이익을 제대로 세금으로 환수하지 못한 점이 주요인으로 꼽혔다. 이 결과 부동산가격은 2∼3년새 크게 뛴 것으로 나타났다. 주택은 형태별로는 아파트가,지역적으로는 서울지역이 상승폭이 높았다. 서울지역 아파트값은 88년 한햇동안 18.4%,89년 19%가 오른데 이어 올들어 2월말까지 8.6%나 상승했다. 특히 강남등 일부지역의 중대형아파트는 매물이 적은 가운데 가수요까지 겹쳐 지난 1년동안 50%이상 올랐다. 전세값도 덩달아 급등,서울지역 아파트는 89년에 29.4%,올들어 2월까지 20.5%가 각각 올랐다. 또 토지가격도 87년부터 상승세를 보이고 있는 가운데 지방중소도시와 농지를 낀 도시주변의 녹지지역이 큰 폭으로 올랐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