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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음의 고향」/우리 옛영화 파리에 있다

    ◎48년 제작,16㎜ 흑백필름… 제작자 이강수 보관/함세덕희곡 「동승」 각색… 최은희 데뷔작/개봉당시 이승만대통령 각료들과 감상 몇개 남아있지 않은 1940년대 영화작품 가운데 1948년작 「마음의 고향」(윤용규감독)을 이 작품의 제작자인 파리거주 이강수씨(74)가 지니고 있다.이 영화는 국내에도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 자료부족을 절감하고 있는 영화관계자들을 기쁘게 할 것으로 보인다.「마음의 고향」은 이씨 개인의 인생항로를 바꿔 길고긴 타국살이로 이끈 작품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 함세덕원작 희곡 「동승」을 영화로 만든 것이며 이강수씨가 시나리오로 각색하고 기획·제작도 맡았다.출연진은 변기종·석금성·김선영 등 당시 유명배우와 무명시절의 최은희 그리고 아역의 유민 등이다.촬영은 잘 알려진 한형모. 이씨는 30세때 이 작품 하나만을 만들고는 영화제작을 계속하지 못했다.그는 처녀작에 대한 애착때문에 40여년간 일본과 프랑스로 삶의 터전을 옮겨다니면서도 꼭 챙겼다.흑백 16㎜필름인데 보존상태가 비교적 좋은 편이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어느 절의 12살 애기중 도성.이 소년은 얼굴도 모르지만 착하고 아름다운 어머니가 언젠가 찾아올 것이라고 믿는다.실상인즉 그 어머니는 고아로서 절에서 성장했으며 어느 남자와 눈이 맞아 도주했다가 세살된 도성을 절에 맡기고는 또 다른 남자한테 간 뒤 소식이 없었다.소년은 이런 내력을 모른다. 죽은 어린 아들의 재를 지내러 온 젊고 친절한 미모의 과부 서울아씨(최은희)가 도성을 수양아들로 삼기로 한다.이 무렵 도성의 생모(김선영)가 마음을 돌려잡고 아들을 찾으러 왔다가 이 사실을 알고는 장래를 위해 아들이라고 불러보지도 못하고 홀로 슬픔을 억누른채 돌아선다. 입양은 다른일 때문에 보류된다.주위사람의 탄식을 귓곁에 얼핏 들으면서 도성은 서울아씨와 만나던 애절한 표정의 아주머니가 생모라는 것을 깨닫는다.봇짐을 꾸려 어머니를 찾으러 떠나는 도성의 걸음걸이가 힘차다. 도성역 유민의 연기가 훌륭하고 김선영 또한 인상적이다.뒷날 대스타가 되었고 아직도 현역으로 있는 최은희의 젊을적 모습을 볼 수 있다.변기종(주지역)과 석금성(과부의 어머니역)의 이름은 옛 영화애호가들에게 향수를 느끼게 할 것이다. 영화배우 윤정희씨는 이 영화를 보고나서 『보고 싶었는데 정말 좋은 영화였다』면서 『최은희씨의 데뷔작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이강수씨 말로도 『최은희씨가 전에 다른 작품에도 출연했지만 인정을 받고 있지는 못했다』는 것으로 보아 출세작으로 보는데 큰 무리가 없을 것이다. 아역의 유민은 좋은 배우로 성장했을 수도 있을 터인데 『그 뒤 난리가 터져서 그 통에 어찌 됐는지…』 이씨는 소식을 전혀 듣지 못했다고 한다.이씨 자신 또한 『전쟁이 아니었으면 영화 제작을 더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직업적 문필가는 아니었으나 문학을 좋아하여 틈만 있으면 시 소설 희곡 시나리오를 썼으며 그중 「흘러간 수평선」이란 소설은 신문(어느 신문인지 본인은 기억하지 못했으나 부인이 결혼전해인 19 40년에 읽었다고 말함)에 「춘인」이란 필명으로 연재했다고 한다. 『영화를 좋아해서 시나리오를 써보곤 했지만 영화 제작 경험도 없으면서 「마음의 고향」을 만들게 된 것은 함세덕의 신문 신춘문예 당선 희곡 「동승」이 지닌 인간미가 너무 좋아서였다』고 그는 말했다.이 영화를 만드느라 집을 잡히고 은행 돈을 끌어댔는데 『은행이 영화계에도 돈을 빌려주었다더라』하고 화제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씨는 범한무역이라는 회사의 일로 1950년 가족과 함께 일본도쿄에 건너가 있었다.그뒤 가족이 일본으로 합류했다.가지고 간 「마음의 고향」을 일본인 친구에게 보여준 것이 그를 영화 수입상인 유니온 영화사에 입사케 하는 계기를 만들었으며 안정된 일본 생활을 보장해주었다.업무 때문에 프랑스에 자주 갔다가 파리의 예술적 환경에 끌려 19 60년 가족과 함께 일본을 떠났다. 생계를 위해 파리에서 일식집을 시작했는데 선견지명이 있었던지 그 뒤 일본인 유럽 관광바람을 타게 되어 재미를 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들만 다섯을 두었으며 이들중에서 몇이 식당업을 이어받았다. 요즘 이씨는 신병으로 거동과 대화가 자유롭지 않으나 「마음의 고향」에 대해서는 되도록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했다.
  • “흙에 강한 매력느껴 도예입문”/대상 오서운씨

    ◎상금으로 미 유학… 서울신문에 감사 최고영예의 대상을 안은 오서운씨(26)는 입선정도는 미리 예상했다는 신예작가. 『조합토를 가지고 곧바로 성형에 들어가 세번 구워냈어요.소품이라 크게 힘들지는 않았습니다.그러나 6면체의 골조가 처지지않게 하려고 건조과정의 작업은 매우 조심스러웠습니다』 섬세함과 대담함이 잘 조화됐다는 심사평을 얻은 「사각의 소우주」는 흙이 지닌 오묘한 표정을 찾아내는데 성공한 작품.상반된 느낌의 직선을 표현하는 조화를 추구하고 있다.예년의 대상 작품들이 대형이었던데 비하면 자그마한 크기에 색상 또한 짙은 회색톤의 독특한 모양새를 갖고있다. 홍익대에서 도예를 전공하고 올9월 동대학원을 마친 그녀는 『흙에 대한 강한 매력에 끌려 도예에 빠지게 됐다』는 것.광산업을 하는 아버지를 따라 강원도 사북에서 어린시절을 보냈다. 『그곳 탄광촌의 기억이 거의 없는 편이지만 시골생활을 통해 자연의 깊은 맛이 제 잠재의식속에 들어와 흙을 사랑하게 된 것같습니다.뜻밖의 대상을 받게돼 얼떨떨하지만,흙과 더불어 살 작정입니다』 2남1녀의 가운데에서 귀염을 받고 자란 그녀는 대학원을 졸업하고는 홍대앞의 후후도예공방에서 디자이너로 있다.지난 90년과 91년 서울현대도예공모전에 출품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그러나 두번 다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가 세번째 대상의 영광을 차지했다. 『내년쯤 미국으로 유학갈 준비를 하고 있어서 이번 상금은 유학자금에 쓰겠습니다.서울신문에 감사를 드립니다』
  • “「사할린의 한」 고국서 풀렵니다”

    ◎무연고 독신 노인교포 76명 어제 영주귀국/춘천군 「사랑의 집」서 여생보내/징용뒤 50년간 설움속 타국살이/“고향에 뼈 묻게돼 이젠 여한없어” 『꿈에도 잊을 수 없던 고향에 다시 돌아가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습니다.이제 눈을 감아도 여한이 없습니다』 29일 하오 2시10분(현지시간 하오 4시10분)사할린국제공항의 활주로를 천천히 미끄러져나가는 대한항공 전세기에 몸을 실은 사할린동포 1세 76명(남 69·여 7명)은 설렘과 감회가 교차되는 격한 감정을 이기지 못한채 눈물을 글썽이며 창밖으로 시선을 던지거나 눈을 감는 모습들이었다. 『도대체 고향이 뭐길래…』 이번에 영주귀국하는 65세가 넘은 동포들중 최고령인 강시동옹(90·경남 하동출생)은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을 손등으로 연신 훔치며 지나온 과거를 회상한다. 강옹은 자신의 생일보다 아직도 더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는 44년2월16일 아침,아내와 4살난 아들을 고향에 남겨놓고 일제의 강제징용에 이끌려 산설고 물설은 머나먼 이국땅 사할린으로 왔다.태평양전쟁 막바지를 악으로 버티던 일제의 활주로 건설작업에 투입돼 전쟁이 끝난 45년9월까지 하루 15시간 이상 땅을 파는 중노동으로 세월을 보냈다고 한다. 해방이 됐건만 강옹에게는 주인만 일본군에서 소련군으로 달라졌을 뿐 허기를 채우기 위해 밭에서 이삭을 주워먹고 풀을 뜯어 연명하는 생활은 계속 이어졌다. 탄광부로 끌려왔던 한국인 여자를 만나 40년대말 현지에서 재혼을 하고 아들·딸까지 두었으나 11년전 부인이 사망하면서 자식들마저 노쇠해진 아버지가 부담스러워 어느날 말없이 떠나갔다.다시 혼자가 된 그는 지난 89년 모국방문단으로 45년만에 고향을 찾은 이래 『반기는 사람들은 없지만 뼈만은 고국땅에 묻겠다』고 다짐,마침내 소원을 이루게 됐다고 한많은 세월을 되뇌었다. 『이제야 기나긴 고통의 세월에서 벗어나게 됐다』며 즐거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 이원두옹(72·경북 칠곡군 지천면 백운동출생) 역시 지난 43년9월 결혼한지 반년도 채 되지 않은 아내를 뒤로 하고 사할린 탄광으로 끌려왔다.56년 러시아 여자와 결혼하기 위해 그동안 고수했던 무국적의 고집을 버리고 러시아국적을 취득했던 것이 평생 마음에 걸린다는 그는 『또다시 자식과 생이별하는 아픔보다는 고향에 대한 향수가 너무나 커 인간으로서 해선 안될 짓을 다시 하게됐다』고 풍파가 새겨놓은 깊은 주름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그는 또 『막노동하며 겪어야 했던 고통은 그런대로 참을 수 있었지만 마늘냄새가 난다며 식품가게에서 쫓겨나던 설움과 마누라에게조차 소수민족이라고 멸시를 받으며 살았던 수모는 떠나는 이날까지 잊혀지지 않는다』며 입을 굳게 다문다. 43년 가을 결혼 한달만에 징용에 끌려가는 남편을 따라 무작정 따라온 박정숙할머니(66·경남 하동출생)는 4년만에 남편을 여의고 젖먹이 아들 하나에 의지하며 50년 가까운 인고의 세월을 보냈다고 울먹인다.부모님의 산소에 절이라도 한번하고 그 곁에 묻힐 수 있다면 더이상 바랄 것이 없다고 남몰래 간직해온 소원을 말한다. 불운한 시대에 태어나 약소민족으로서의 설움을 평생 몸으로 체험하고 돌봐줄 피붙이 하나없이 쓸쓸한 여생을 보내던 이들은 앞으로 강원도 춘천군의 서울 광림교회(담임목사 김선도)가 운영하는 양로원 「사랑의 집」에서 마지막 안식처를 찾게 된다. 귀국동포들은 30일 민속촌과 삼성전자를 둘러보고 1일부터 사흘간 고향을 방문한뒤 사랑의 집으로 들어간다.
  • 외언내언

    70만이라는 재일 한국교포들은 한때 한국교포임을 숨기려하는 경향을 보였던 때가 있다.한국교포임이 들어나면 일본인들의 차별때문에 많은 생활상의 불이익을 강요당했기 때문이다.가난했던 시절 강제로 끌려온 과거도 상기하기 싫었을 것이다.분단과 대립 그리고 가난과 혼돈의 대명사였던 시절의 이야기다.◆재일교포 뿐아니라 재미교포등 해외교포들이 한국인임을 자랑스레 생각하며 그것을 드러내보이려 애쓰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한강의 기적으로 통하는 경제성장의 결과가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부터다.너무 일렀다는 비판도 있지만 특히 서울올림픽은 그런 변화의 결정적 계기.자학적인 엽전의식 청산의 기폭제였다고나 할까.◆교포들은 모국의 거울이란 말을 흔히 한다.모국이 가난하고 혼돈에 빠져있으면 그들도 천대받고 사기가 죽는다.안타까워 하면서도 외면하고 출신임을 숨기게 된다.모국이 발전하고 번영하면 그들도 존경받고 사기충천하기 마련.한국인임이 자랑스러워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그들을 위해서도 모국은 번영하고 존경받는국가로 발전해가야하는 것이다.◆우리 대통령의 역사적 방문이 이루어지고 있는 중국에도 많은 교포들이 살고있다.조선족자치주 40주년을 기념한 연변을 포함하는 길림의 1백40만,흑룡강 40만,요령 20만명등 동북 3성에 2백만명이 살고있다.가장 큰 규모다.개척의 역사도 깊고 중국건설에의 기여도 높아 가난은 해도 긍지는 높은 자랑스런 교포들이다.◆그동안 그들의 모국은 분단의 한반도였다.북한이 있고 한국이 있었으나 한쪽은 가깝고 또 한쪽은 멀었다.중국개방과 한·중수교 그리고 우리 대통령의 이번 방문은 그 구도를 결정적으로 바꾸어놓는 중요한 계기가 되고있다.가난하고 폐쇄된 북한을 가슴아파하면서 개방되고 번영하는 새모국 한국의 존재를 자랑스러할게 틀림없다.대통령내외를 마중나온 예쁜 한복의 교포 화동들 모습에서 그들 마음의 기쁨과 환영을 읽는다.
  • 영생교 승리재단 경찰 셋 한때 감금

    【부천=조덕현기자】 28일 하오1시30분쯤 경기도 부천시 남구 역곡1동 역곡시장내에서 서울지검 파견 경찰관 오광일경장등 경찰관 3명이 「영생교 승리재단」교주 조희성씨(63)를 연행하려다 오경장이 신도50여명에게 승리재단사무실로 끌려가 감금됐다 4시50분쯤 풀려났다.
  • 필리핀 종군위안부/일 정부에 소송 제기

    【마닐라 AP 연합】 2차 대전중 일본군에 종군 위안부로 끌려갔던 한 필리핀 여인이 일본정부를 상대로 1천만 달러의 소송을 제기할 것이라고 담당 변호인이 25일 발표했다. 이 변호인은 마리아 로사 루나 헨손(65)이라는 이 여인이 「1개월이내」로 일본인변호인들의 도움을 받아 일본법원에 소송을 제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 양평 남행/한강줄기따라 깊어가는 여심

    ◎양수서 남한강과 친근한 첫 만남/용문산 백운봉선 강 전경 한눈에/태고의 고요 담은 강변의 첩첩산들 장관 여름이 도시인들을 바캉스로 내몰았다면 가을은 여행에의 은근한 권유이다.소란피우지 않고 휴일 한나절 가을에 이끌려 도시를 등진다. 도시에서 나가는 길은 무수히 많다.그러나 도시를 벗어난다는 그런 맛을 주는 길은 흔치 않다.도시가 발달할수록 빈틈을 찾기가 어려워지는 것이다. 이때 도시의 태반이자 근원인 강,서울의 한강을 나그네의 적수공권으로 역습해 봄이 어떨까.한강을 거슬러 오른다.서울은 곧 끝장이 나지만 한강은 그제사 시작인 듯 싶다.서울의 포위를 벗어나자 한강은 보란 듯이 크게 가슴을 벌리고 숨을 들이쉰다. 강의 매력은 보는 사람을 흡인해버리는 연속성에 있지만 한강 5백㎞ 전장을 휴일 여행객이 쫓아갈 수는 없다.또 구태여 그럴 필요도 없을 터이다.무턱대고 강가를 따라 달리는 평면적인 여행대신 레저의 다른 요소를 가미해 한강구경을 보다 입체화할 수 있을 것 같다.두가지 방식을 연결해 한강을 느껴보자. 여행의전반부는 서울 상봉터미널이나 청량리역에서 시외버스나 중앙선열차로 경기도 양평까지 한강가를 따라가는 50여㎞의 동반여행이다.그러다 버스나 기차가 제공하는 편안하고 수동적인 좌석을 털고일어나는 능동적 쇄신에서부터 후반부가 시작된다.양평부근 남한강을 가장 가까이서 우뚝 내려다보는 해발 9백40m의 백운봉을 등반하는 것이다. 버스나 기차가 출발하더라도 얼맛동안은 지극히 산문적인 도시풍경이 좀체 바꿔질 성 싶지 않아 여심이 주눅들 수도 있다.그러나 이점이 오히려 이번 여행의 묘미이다.낮고 어두운 데서부터의 출발은 변화에 대한 감수성을 몇배나 예민하게 길러주는 법이다.양평까지의 남행은 많은 사람들이 익히 경험해버린 코스이긴 하지만 「한강과의 조우」을 염두에 두고 있노라면 언제나 새로운 긴장감을 기분좋게 자아낸다. 한강은 중앙선 하행열차나 남행 시외버스 여행객들에게 결코 생각없이 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차창으로 한강을 예감하고 추적하노라면 한강의 노출은 가끔 애가 탈 만큼 점층법적이어서 드라마틱하기 조차하다.10㎞가 훨씬 지난 덕소에 이르러서야 잔기침으로 기척을 내고 팔당댐을 건너면 이쪽이 고개를 돌릴 만큼 정면으로 응시하는 것이다.능내·양수의 다리구간에서 도도하고 위압적이었던 한강은 남한강으로 갈라지면서 친근하게 옆구리에 달라붙는다. 양평까지 오면 한강에 약간 물린다.과감히 좌석을 박차고 일어설 때이다.용문산 연봉이 드높은데 최남단 봉우리인 백운봉은 한강구경의 절정을 약속해준다.남한강에 대한 수직의 조망대를 세우려는 백운봉 등반은 간단치가 않다.옥천면 용천2리 정류소에서 사나사 뒷계곡까지 3㎞을 걸어들면 오른쪽 계곡 옆으로 등산로가 나있고 정상까지 4㎞에 달하는 이길은 꼬박 2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역시 고생한 보람이 있다.두평남짓한 정상은 평평하고 앞이 탁 틔어 도무지 거칠 것이 없다.팔당에서부터 이주쪽에 이르는 남한강 큰줄기가 한눈에 조감된다.강줄기와 몇번 눈길을 마주치노라니 주변에 수십겹으로 중첩해 있는 산들의 침묵마저 말이 통할 것 같다.이런 힘으로 강은 도시를 배태했을 것이다. ▷안내◁ ○…양평행 시외버스는 상봉터미널에서 7시부터 20분간격으로,중앙선 하행열차는 청량리역에서 10시부터 1시간마다 출발한다.승용차로는 구리·미금을 지나 남양주에서 6번국도를 탄다. ○…일부 등산안내책자에는 백운봉 하산코스가 부정확하게 기입되어있다.정상 서쪽 아래의 샘터를 잘 찾아야 한다.
  • 한국인 원폭희생자 인권수호 앞장/일 오카 마사하루목사(인터뷰)

    ◎“피해당사자·유족 반드시 보상받을것” 재일한국인 원폭희생자들의 인권수호를 위해 평생을 바쳐온 일본인 오카 마사하루목사(74·나가사키루터교회시무)는 23일 『한일협정으로 양국간 정부차원의 보상은 끝났을지 몰라도 민간차원의 보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당시 피해를 당한 당사자나 유가족이 일본정부 혹은 고용됐던 기업체를 상대로 보상신청을 하면 반드시 받아낼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 퀘이커교도들의 모임인 FOR 초청으로 내한,강연을 위해 1주일 정도 머물 예정인 오카목사는 74년에는 나가사키의 노노구시항앞 미쓰비시사 폐광인 하지마탄광에 아무렇게나 버려진 사망자들의 유골과 명부를 발견,회사측 뿐 아니라 일본제국주의의 만행을 전세계에 폭로하기도 했다.또 「오무라수용소와 조선인 피폭자」「원폭과 조선인」1­5집등 수많은 저서를 통해 한국인 원폭피해자에 관한 최고의 권위자로 알려져 있다. 『일제말기 해군교관으로 일하며 강제로 끌려와 희생된 수많은 한국인들을 눈으로 지켜보았다』는 그가 조선인 원폭피해자들의 실태를 조사하게 된 것은 전쟁이 끝난후에도 그같은 한국인들에 대해 일본인들이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데 인도적인 분노를 느껴서였다. 그는 실증적 자료만이 정부나 국민들의 관심을 끌수 있다는 생각에서 나가사키현 일대를 샅샅이 뒤져 당시 거주 7만한국인들의 거주지별 지도를 완성했다.그러면서 폭심2㎞이내 거주 1만여명은 모두 사망으로 추정,일본정부에 대해 정확한 조사와 사죄및 보상을 끈질기게 주장했다.이같은 행동이 매스컴을 통해 자주 알려지자 대학교수등 지식인들이 적극 참여,65년 「재일조선인 인권을 지키는회」가 결성돼 지금까지 대표를 맡아오고 있다. 26세때 상처한후 1남1녀를 키우며 홀로 살아온 강직한 성격의 오카목사는 그동안 천황의 상징인 국화무늬가 새겨진 여권으로의 해외여행을 거부,이번 방한이 첫해외여행이기도 하다.
  • 대선정국 세몰이 “파상공세”/민주 왜 「초강경」 선회했나

    ◎“물러서면 선거서 패배” 위기의식/「연기」 등 장기 이슈화 “여 흠집내기”/정국 공동책임론 제기땐 공세에도 한계 민주당이 3당대표회담 거부등 초강경자세를 보이고 있는 것은 외형상으로는 김영삼 민자당총재가 기자회견을 통해 「단체장선거 연내실시 불가」를 천명한 것에 대한 강한 반발처럼 보이지만,사실은 대선을 앞두고 김총재와 김대중대표간의 본격적인 「힘겨루기」라고 할 수 있다. 김대표가 17일 의원총회에서 행한 『김총재의 어제 발언을 우리당이 잘못 다루면 정국주도권을 김총재에게 넘겨주는 꼴이 되고 잘다루면 저쪽의 자충수로 만들수도 있을 것』이라는 발언이 이를 강력히 뒷받침하고 있다.김대표가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지금은 어떻게 할수 없으니 국회에 들어가서 싸우자고 한다면 대선에서 몰릴뿐아니라 결국 민자당에 끌려 다니게 된다』며 정기국회까지 거부할 뜻을 분명히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결국 「여기서 물러서면 대선은 해보나 마나한 싸움」이라는 내부의 위기의식 때문에 민주당이 초강수를 구사하고 있다고볼수 있다. 사실 민주당은 대선전에서 민자당 김총재 특유의 「대세를 몰아가는 방식의 돌파력」을 가장 경계하고 있으며,여기에 한번 걸리면 헤쳐나오기 어려울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지난 임시국회때 속마음으로는 국회등원을 희망했던 소장 개혁파의원들이 최근 「강경투쟁」이라는 한목소리를 내고 있는 점도 김대표가 강경자세로 돌변한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이들 소장의원들은 한준수 전연기군수사건이후 몇차례 회합을 갖고 벌써부터 의원직사퇴결의와 국회농성등을 벌여야한다는 주장을 공공연히 외부에 표출시키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민주당이 이같은 강경목소리를 계속 내는것은 단체장선거를 연내에 반드시 관철시키려는데 있다기보다는 현재의 이슈를 대선까지 계속 끌고가 반사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전략이라는 것이 정가의 일치된 관측이다. 민주당은 단체장선거 문제를 계속 물고늘어질 경우 최소한 기초·광역중 어느 하나라도 얻어낼수 있을 것으로 「희망」하고 있으며 최악의 경우라도 대선에 임하는 민자당에 상처와 흠집만은 낼수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지금까지 단체장선거 연내실시 주장을 통해 대선법·정치자금법등 공정선거 보장을 위한 협상에서 유리한 입장에 서있지 않았느냐는 민주당내 분위기가 이를 반증하고 있다. 게다가 정부·여당이 연기군 관권선거 사건과 민주당사 진입사태에 대한 대국민조치로 조만간 중립내각을 구성할 태세여서 민주당으로서는 예상외의 많은 효과를 얻게되는 셈이다. 그러나 이는 달리보면 민주당의 강경일변도의 전략은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그 효력이 약화될 수밖에 없다는 논리와도 통하며 민주당 관계자들도 이를 인식하고 있다. 따라서 민주당의 강공드라이브는 세싸움에서 밀리지 않으면서 대선돌입을 위한 사전준비작업의 성격이 짙다는 게 당안팎의 일치된 분석이다. 당관계자들은 정국및 국회운영에 대한 야당책임론이 서서히 제기되고 있어 언제까지 무한정치공세화만 할수 없는데다 그럴 경우 국민당과의 공조관계유지 여부가 매우 불투명하다는 점을 이같은 분석의 근거로 적시하고 있다.
  • 임씨 소환 11시간만에 전격수감

    ◎「관권개입」 아닌 「사전운동」 적용에 당황/검찰,주내 수사종결 방침/「대아」 관계자 불러 자금유출경로 조사 【대전=박국평·최용규·이천렬기자】 한준수전연기군수의 관권선거폭로사건을 수사중인 대전지검특수부(구본성부장검사)는 15일 3차소환된 임재길전민자당연기지구당위원장에 대해 국회의원선거법위반(사전선거운동및 금품살포)혐의를 적용,이날 하오7시30분 구속영장을 신청,소환 11시간만인 하오8시45분쯤 대전지법 이상용당직판사로부터 영장을 발부받았다. 검찰은 법원으로부터 영장을 발부받기 전까지만 해도 기각될 것을 우려,영장내용을 수차례 검토하는등 긴장하는 모습을 보였으나 당직판사로부터 영장이 발부되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날 수사협조차 대전지검을 방문한 민주당 박계동의원은 임씨에 대한 구속영장이 발부될 때까지 검찰청사에서 보도진의 질문에 답하며 영장발부를 끝까지 지켜봤다. 검찰은 이에 앞서 이날 상오부터 김학현금산군수,권오창현 연기군수,이근영천안시장등 5∼6명의 시장·군수를 차례로 불러 선거지침서로 알려진 「지방단위당면조치사항」이란 이종국지사 「친전」서한이 연기군외 다른지역에 전달됐는지 여부및 이지사 개입 또는 지시가 있었는지에 대해서 조사를 벌이는 한편 총선직전 이들에게도 격려금이 전달됐는지에 대해서도 수사를 펴고 있다. 검찰은 지난 14일에 이어 이날 하오까지 동형모대아건설전무등 대아측 관계자들을 불러 압수된 경리장부를 토대로 지난 2월29일 대아측이 충청은행 본점에서 인출한 10억7천만원의 인출경위및 사용처를 조사하고 충남도로 흘러간 수표 1천만원에 대해서도 돈이 나간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검찰은 대아측이 발행한 10억7천만원 가운데 상당액도 선거자금으로 쓰였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은행감독원등의 협조를 얻어 인출된 돈의 행방을 추적할 방침이다. ○“한씨가 스스로 한짓” ○…임씨에 대한 영장은 당초 이날 상오에 청구할 계획으로 지난 14일 저녁에 필요한 절차를 대부분 마치고 관계 사실까지 모두 확인해 놓았으나 이날 상오 출두한 임씨가 관련 사실을 극구 부인하는 바람에 이날 저녁까지 늦어졌다고. 특히 임씨는 한씨에게 돈을 전달한 부분과 관권을 끌어 들인 부분에 대해서는 거의 모두 『한씨가 스스로 알아서 한 짓』이라며 관련 사실을 부인했다는 후문. ○…구속된 임씨는 영장이 집행되자 미리부터 특수부 건물앞에서 준비하고 있던 사진기자들에게 포즈를 취하는등 다소 여유있는 모습을 보였으나 지난 10일 소환때 자청해서 기자회견을 하던 모습과는 달리 다소 기가 죽은 모습. 특히 지난번 회견때는 기자들에게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는가 하면 군시절의 무공을 자랑하는등 호기마저 부렸으나 자신이 결백을 주장했던 관권 선거에 대한 혐의가 아닌 사전선거운동 혐의로 구속된 것에는 당황한 표정. ○…임씨가 구속 수감된 15일 하오 대전지검에는 지구당 관계자 20여명과 보도진 50여명,전경 1백여명이 모여 있다가 임씨가 두손에 수갑을 찬채 청사를 빠져 나오자 한데 엉겨붙어 한동안 혼잡을 연출. 이날 임씨는 감색 양복 차림에 침통한 표정으로 눈시울을 붉힌채 수사관 2명에게 이끌려 현관으로 나와 대기하고 있던 사진기자들에게 포즈를 취한뒤 승용차편으로 대전교도소로 출발. ○「시간끌기」 비난 의식 ○…검찰은 「시간끌기 수사」라는 비난을 의식한듯 15일 임재길 당시민자당후보를 국회의원선거법(사전선거운동)위반혐의로 구속함으로써 이번주안에 이번 사건을 종결할 방침임을 은근히 시사. 검찰관계자는 이날 상오 임씨의 구속방침을 귀뜸하면서 가능한 한 수사를 일찍 마무리 지을 것이라고 설명.
  • 주식투자의 정도/최경국 대신증권사장(굄돌)

    증권회사에 몸담고 있으면서 항상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다.많은 투자자들이 재산증식을 위해서 주식매매를 하는데 왜 이익보다 손해보는 사람이 많은가? 정확한 매매지침은 없을까? 만약 있다면 투자자에게 큰 도움이 될텐데… 성공적 주식투자가 「좋은 종목을 골라 쌀때 사서 비쌀때 팔아 이득을 취한다」라고 정의한다면 주식에 투자하는 모든 사람들이 성공적 주식투자 방법을 가져야함은 당연한 것이다. 연초에 자본시장이 개방되면서 외국투자자들이 저PER(주가수익비율)주를 공략하기 시작하자 덩달아 너도나도 저PER주를 쫓아다니기 시작해 한동안 거래조차 없던 주식들이 사고자 해도 살 수 없는 지경이었고 이들 주식의 가격은 하늘 높은줄 모르고 올랐다. 그러나 엄밀히 따지면 우리 증시의 저PER종목은 대부분 중·소형주로 유통물량이 적어 그동안 국내투자자들에게는 외면을 당했었다.따라서 내재가치에 비해 저평가되었기 때문에 외국투자자들의 선호대상이 되었다.우리 증시의 일반투자자들도 뒤늦게 저PER주 매매에 편승해 이익보다는 손해를 본경우가 있는데 자본시장 개방을 맞이하여 주식을 고르는 방법이 변한 일면이라 하겠다. 이제 우리도 주식투자에 있어서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과학적인 방법으로 임해야 할 시점이 온 것같다. 과거에는 분위기에 이끌려 어느 종목의 부도설이 돌거나 루머에 휩쓸리면 이름만 비슷해도 동반하락하는 경우가 허다했고 한 종목이 오르면 동일업종이 오르고 뒤이어 관련업종마저 올라버리는 장세가 쉽게 연출되곤 했다. 이제 주식투자도 증시의 생리를 이해하고 기본적 원리를 습득하려는 노력이 더욱 요구된다. 주식투자의 기본은 국내·외 정세를 판단하고 산업동향을 주의깊게 살피며 기업의 사업내용 및 전략·자금사정·재무상태 등을 분석한 후 투자에 임하는 것이라 하겠다. 덧붙여 명심해야 할 것은 주식투자는 떼돈을 버는 투기가 아니라 여유자금으로 재산을 증식할 수 있는 좋은 저축의 수단으로 인식하자는 것이다.
  • 사할린 무연고교포 첫 영주귀국

    ◎적십자사,징용1세중 65세이상 독신 83명 초청/29일 고국품에… 춘천 사랑의 집서 여생 일제때 강제징용돼 사할린에 끌려갔던 우리 교포 가운데 국내에 연고가 없는 고령자 83명이 처음으로 영주귀국한다. 대한적십자사는 7일 일제치하에서 강제징용됐다가 귀국길이 막혀 지금까지 사할린에서 살아왔던 우리 교포1세 7천여명가운데 독신으로 살고있는 65세이상 고령자 83명을 오는 29일 전세기편으로 영주귀국시킨다고 밝혔다. 이번에 귀국하는 사할린 교포1세들은 고국에 돌아와 우리나라 국적을 취득한 뒤 춘천 광검교회 「사랑의 집」에서 여생을 보내게 된다. 지난 89년 사할린교포 모국방문사업이 시작된 이래 국내에 연고자있는 교포가 영주귀국한 사례는 수차례 있었으나 무연고 교포가 집단으로 영주귀국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 북 출신 「정신대」 증언 청취/평양 아시아여성토론회

    ◎우리측대표 오늘 귀환 【평양=공동취재단】 「아시아의 평화와 여성의 역할」평양토론회에 참석한 남측대표단 일행이 5박6일간의 공식일정을 마치고 6일 하오 평양을 출발,하오4시 판문점을 거쳐 돌아온다. 이에 앞서 남·북한 및 일본측 대표들은 5일 상오 평양시내 천리마거리 인민문화궁전에서 북측 생존 종군위안부의 증언을 듣는 「종군위안부와의 좌담회」를 가졌다. 이날 좌담회에는 북한에서 확인된 종군위안부 1백23명 가운데 리복녀(73·함북 화성군)리경생(76·평남 대동군)김영실(69·양강도 혜산시)김대일(77·개성시 장풍군)씨등 4명이 대표로 참석,일제 식민지하에서 우리 여성들이 일본군에게 끌려가 당한 만행을 고발했다. 첫번째 증언자로 나선 리복녀할머니는 『소련과 중국의 국경지대인 아오지로 끌려가 37년부터 45년까지 위안부 생활을 했다』면서 『일본놈들에게 두들겨 맞고 갖은 흉칙한 일을 당해 일본서 사죄할때까지 죽을래야 죽을수도 없다』고 격분했다.
  • 여,개혁차원서 「연기파문」 잠재우기/민주­국민 공조확대와 민자대응

    ◎엄정수사 촉구로 조기수습 모색/여/정국교착 떠넘겨 「장선거」 세몰이/야 민주·국민 두 야당은 한준수전연기군수의 「관권선거주장사건」을 계기로 양당대표회동을 통해 단체장선거 연내실시등 4개항을 요구하는 등 대여공조체제를 강화하고 나섰다. 민자당은 이에 맞서 철저한 수사와 관련자의 엄중문책을 촉구하는 등 정면대응으로 선회,정치권이 「폭로정국」을 어떤 식으로 헤쳐나갈지 귀추가 주목된다. ▷민자당◁ 민자당은 야권이 한준수 전연기군수의 「관권선거주장사건」을 계기로 대여공세의 수위를 높여가고 있는 가운데 『철저한 엄중수사와 관련자가 있을 경우 엄벌』이라는 정공법적 처방전을 내놓고 있다. 민자당측이 이처럼 「폭로정국」에 정면돌파전략으로 맛서기로 한 것은 「선진상규명 후조치」라는 소극적인 관망자세를 고수할 경우 득보다 실이 많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즉 어차피 야당측이 이번 사건을 단체장선거 관철을 위한 대여압박카드로 장기적으로 활용하려는 마당에 우물쭈물하는 태도를 보이기보단 야당보다 한발 앞서 「환부」를 치유하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것이 사태의 조기수습에 도움이 된다고 보는 것이다. 이날 박희태대변인이 야당측의 이른바 4개항 요구에 언급,『한씨의 폭로사건에 대해서는 수사결과에 따라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형사적·행정적 책임을 물을 것』이라며 단호한 입장을 표명하면서도 단체장선거문제에 관해서는 『연내 불가입장에 변화가 없다』고 분명한 선을 그은 것도 이같은 맥락이다. 민자당의 이같은 정면돌파 태세는 올 정기국회 정상화 협상과정에도 그대로 적용될 전망이다.즉 이번 사건을 기화로 야당측이 13일 예정된 3당대표회동에서 단체장선거와 원구성을 연계시키려는 전술을 구사할 것에 대비,「국회차원」의 조사를 선제 요구한다는 입장이다.박희태대변인이 이날 민주당측이 제안한 「정당차원」의 3당공동조사위 구성제안에 대해 『국회의원들이 국회라는 좋은 무대를 두고 바깥에서 구걸식으로 돌아다닐 이유가 없다』고 일축한것도 파문확산을 노리는 야당측의 공세에 끌려다니지 않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물론 민자당측이 이처럼 정면대응으로 방향을 잡고 있는데는 여론의 흐름에 민감한 김영삼총재의 정세판단이 큰 몫으로 작용하고 있다. 당초 당일각에서는 『범여권 결속이 시급한 마당에 일선 공무원을 포함한 행정부의 사기저하를 초래할지도 모르는 강경대응만이 능사가 아니다』라는 우려도 적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번 사건에 단호히 대처,대선에서 「행정선거」를 하지 않겠다고 강력한 의지를 천명하는 것이 대권후보로서 이미지 제고는 물론 공무원의 사기진작에도 역설적으로 도움이 된다는 최종 결론을 내렸다는 김총재 측근들의 설명이다. ▷야권◁ 이날 열린 대표회담에서 민주당의 김대중대표와 국민당의 정주영대표의 4개항 합의는 달리 표현하면 단체장선거와 정기국회에 대한 야권의 공조를 새 궤도위에 올려놓았다고 볼수 있다. 특히 한전군수의 「관권부정선거 주장사건」과 관련,양대표가 노대통령과 김영삼총재의 사과를 요구하고 한씨의 신변안전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합의한 것은 그동안 정대표의 언행으로 미뤄볼때 주목할만한 대목이다.이는 공조의 기틀이 될 정부·여당에 대한 공세의 시각이 서로 같아졌다는 것을 의미하며 결국 본격적인 대선경쟁에 돌입할 때까지는 공조의 틀이 유지될 것이기 때문이다. 민주당 입장에서 보면 이번 회담으로 무엇보다 정기국회 정상화에 대한 부담이 크게 줄었다는 점을 들수있다. 양대표는 정기국회 문제에 대해 지자제수락과 공명선거를 위한 법개정이 「정기국회 순항을 위한 절대조건」이라고 천명했다.당내에서조차 『국정감사와 예산심의만은 포기해선 안될 것』이라며 강한 집착을 보이고 있는 정기국회문제에 대해 국민당이 독자행동을 취할 가능성이 희박해진 것이다. 두 대표는 회담이 끝난뒤 『정기국회는 모든 것이 민자당의 김총재에게 달렸다』고 언명하고 나선 것도 같은 맥락이다. 야권이 3당대표회담을 앞두고 이처럼 강공으로 나서게 된 것은 국회특위가동으로 상당히 희석된 단체장선거문제가 한전군수의 관권선거 주장사건을 계기로 다시 일부 공감대를 얻게 됐다는 판단때문이다.그러나 내부적으로 보면 향후 정국주도권 확보라는(민주당),또 여당과의차별성(국민당)이라는 양당의 서로 다른 이해가 묘하게 합치된 결과인 셈이다.이렇게 볼때 3당대표회담에서 단체장선거에 대해 여당으로부터 최대한의 양보를 얻어내기위한 한시적인 「세몰이」일 가능성도 없지않다. 그러나 현재로선 민주 국민 양당의 공조체제가 본격 대선전에 돌입할 때까지는 공고히 유지되리라는 게 정가의 일치된 관측이다.
  • 국민당사 농성 주민/몸싸움 10여명 실신/아파트입주 지연 항의

    3일 하오3시20분쯤 서울 종로구 세종로 국민당사1층 로비에서 경기도 성남시 은행동 현대아파트 주택조합원 40여명이 정훈목사장과의 면담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이다 국민당 직원들에게 당사밖으로 끌려나가며 몸싸움을 벌이는 과정에서 김혜숙씨(36·여)등 10여명이 실신,병원으로 옮겨지는 소동을 빚었다.이날 소동은 주택조합원 2백여명이 『현대건설이 조합측의 동의없이 공법을 변경해 입주가 3개월가량 늦어졌으므로 지체보상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농성을 벌이는 과정에서 당사로비에 들어가 있던 40여명을 국민당 직원들이 뒤쪽문으로 끌어내면서 일어났다.이날 충돌로 농성주민 10여명이 계단에 굴러떨어지거나 한꺼번에 넘어져 깔리면서 안경이 깨지고 옷이 찢어졌다.
  • 대야관계의 변화(김영삼 총재 시대:5)

    ◎“양보마지노선 분명히”… 강·온 양면 전략/국민여론 중시… 강공보다는 협상/야 「장선거」 흠집내기엔 정면대응 민자당 김영삼대통령후보가 당총재에 취임함에 따라 명실상부한 집권여당의 중심이 됐다. 그런만큼 김총재는 연말 대선이라는 「본고사」에 앞서 올 정기국회라는 「예비고사」에서 여당의 최고책임자로서 정치력을 시험받게 된다.이제까지 여권의 크고 작은 정치적 결단에 대한 야당의 반격과 이로 인한 여론의 반향으로부터 때로는 바람막이가 되어주던 노태우대통령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게 된 만큼 국민으로부터 직접 정국주도력을 평가받게 된 셈이다. 올 정기국회에서는 민주·국민 등 야당측은 연말 대선을 의식,김총재(YS)와 민자당에 타격을 주기 위해 총공세를 펼 전망이다.야당측이 원구성과 새해 예산안 등을 볼모삼아 단체장선거 연내실시를 관철하거나,여권의 지방자치법개정안처리를 막아 대선에서 여당후보인 YS에게 정치적 부담을 지우는 전략을 구사할 게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YS가 새로운 여야관계를 정립,각종 민생 및 정치현안들을 풀어나갈지에 대한 해답은 1차적으로 국민여론에서 찾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왜냐하면 YS 만큼 여야를 통틀어 여론에 민감한 정치인도 드물기 때문이다.그의 이같은 면모는 한때 당정간 갈등요인이었던 이동통신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여실히 보여준 바 있다.그는 사업주체로 선경측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공정한 심사절차를 밟았다는 정부측의 주장을 십분 이해했다.그럼에도 불구,여론으로부터 불필요한 오해를 살 필요가 없다는 점에서 사업자선정연기를 주장했고 끝내 이를 관철시켰던 것이다. YS의 한 핵심측근은 1일 총재취임후 새 대야관계 정립과 관련,『야당에 양보할 것은 과감히 양보하되 안되는 것은 안된다고 분명한 선을 그은 뒤 최종적으로 국민여론에 호소하는 방향으로 나갈 것』이라고 예고했다.이는 집권여당으로서 1차적으로 각종 민생문제에서는 과감한 개혁정책을 펴나가는 한편 야당측이 주장하는 공정한 대선경쟁을 위해서 대통령선거법 및 정치자금법에서 대폭 양보하되 단체장선거와 관련한 야당측의공세에 더 이상 끌려다니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시로 이해된다. 그렇다고 해서 YS와 민자당으로서는 단체장선거 연기를 위해 정부가 제출한 지방자치법 개정안을 굳이 무리하게 이번 정기국회에서 통과시키지는 않는다는 입장이다.김총재는 이미 지난달 11일 여야3당 대표회담에서 정기국회에서도 여당 단독으로 강행처리하지 않는다는 합의를 해준 바 있다.이는 대선법과 정치자금법의 양보를 통해 야당측을 최대한 설득해보되 여의치않을 경우 단체장선거 연기를 대선의 이슈로 내걸어 국민의 심판을 구하겠다는 전략이다.민자당과 김총재가 단체장선거 연기에 관한한 국민여론에 대한 자신감을 갖고 있다는 것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를 뒤집어 분석하면 야당,특히 민주당측이 단체장선거 관철을 빌미로 원구성을 계속 거부,대여공세의 주무대인 올정기국회와 국정감사를 포기할 가능성이 극히 희박하다는 정세판단과 무관치 않다.뉴DJ플랜을 내세우고 있는 DJ자신이 종전처럼 전면적인 장외공세를 선택할 가능성도 거의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설령 민주당측이 단체장선거 관철을 구실로 장외로 뛰쳐나갈 경우 민자당으로서는 별반 손해를 볼게 없다는 입장이다.이 경우 안정을 바라는 대다수 국민이 고개를 돌려 민주당으로서는 커다란 대선감표요인을 감수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민자당측은 이같은 견지에서 민주당측이 최대한 시간을 끌어본뒤 일단 원구성에는 임해 국정감사등을 통해 지자제관철을 위한 파상적인 대여공세를 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때문에 민자당으로서는 굳이 단독국회강행이라는 무리수를 둘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다.즉 민주당측이 한두차례의 대형장외집회를 열어 정국긴장을 야기할 가능성도 없지않지만 별다른 호응을 얻지 못할 뿐만 아니라 여론의 역풍을 맞을 경우 장내라는 실리를 택하지 않을 수 없을 것으로 보는 것이다. 다만 여론을 중시하는 김총재로서도 민주당측이 단체장선거와 새해예산안 연계투쟁을 펼 가능성을 내심 우려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국정운영의 무한책임을 진 집권당으로서 민주당측의 실력저지를 이유로 예산안처리를 포기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해서 여론으로부터 양비론을 뒤집어쓰면서까지 「강행처리」를 단행하기도 곤란해 상당한 딜레마인 셈이다.당일각에서 야당측이 끝내 예산안을 볼모로 잡을 경우 대선직후 임시국회로 처리를 연기하자는 아이디어가 나오고 있는 것도 이에 대비한 고육지책이라고 할 수 있다.
  • 환갑 지난 두 노인 못배운 한 풀었다

    ◎고입·고졸 검정고시 최고령 합격/내년에 전문대 입시에도 도전/이근복씨/국졸 50년만에 「중졸소원」 풀어/김해수씨 환갑이 넘은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올해 하반기 고졸·고입 검정고시에 합격해 평생 가슴에 응어리진 「못배운 한」을 풀었다. 서울시교육청이 31일 발표한 검정고시 합격자 가운데 고졸부문 역대 최고령자로 밝혀진 이근복할아버지(68)와 고입부문 최고령자인 김해우할머니(61). 이들은 합격의 기쁨에 그동안의 노고가 말끔히 씻긴듯 『이제 어느 누구도 부럽지 않은 부자가 된 기분』이라며 밝게 웃었다. 경기도 강화가 고향인 이할아버지는 가난 탓에 학교 문턱에도 가보지 못하고 막노동·남의집살이등 온갖 궂은 일을 해오며 가시밭길 같은 인생을 억척스럽게 헤쳐왔다. 일제때는 징용으로 끌려가 홋카이도·남양군도등지에서 탄광노동자로 일하며 죽음의 고비를 넘나들었다.해방이 된 뒤에도 등짐장사등 「장돌뱅이」생활을 해왔지만 네 아들만은 대학과 고교를 어엿히 졸업시켰다. 새벽5시부터 하오1시까지 서울 중구 신당동 중앙시장쌀가게에서 「나이든 종업원」으로 허드렛일을 하다 하오6시면 어김없이 학원으로 달려가 밤11시까지 강의를 들었다.집에 돌아와서는 그날 배운 것을 복습하고서야 고단한 몸을 눕혔다. 젊은이들 못지않게 하루 4시간씩 잠을 자며 4년동안 꾸준하게 책과 씨름했다.이렇게 해서 이할아버지는 지난해 5월 중학교입학검정고시에 합격했고 이어 지난4월에는 고입검정고시를 통과했다.이할아버지의 향학열은 더욱 불타올라 또다시 4개월만에 고졸자격까지 얻게 된 것이다. 이할아버지는 『얼마전 군에서 제대한 막내아들(24)과 함께 대학입시준비를 할 예정이며 농과계열 전문대에 진학해 여생을 농사일에 바치고 싶다』고 「내일」의 포부를 밝혔다. 한편 경북 상주출신인 김할머니는 일제때 국민학교를 졸업한뒤 50년만에 중학졸업자격을 따내 평생의 설움을 풀었다.남매를 모두 결혼시키고 지난90년8월부터 책을 잡은 김할머니는 처음엔 수학과 음악과목이 제대로 되지 않아 큰 어려움을 겪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공부에 재미가 붙어 포기하지 않고 책과 씨름한 끝에이날 기쁨을 맛보게 됐다고 했다. 김할머니는 『손자들이 영어·수학을 물어봐도 부끄럽지않게 대답할 수 있어 무엇보다 기쁘다』면서 환하게 웃었다.
  • “정신대 전기고문”/일군이 “말 안듣는다” 만행/60대할머니 폭로

    【대구】 일제때 일본군에게 정신대로 끌려가 종군 위안부생활을 거절한 사람의 경우 심한 전기고문을 당했으며 위안부생활중 성병에 감염된 후에도 위안부생활을 계속 하도록 강요당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같은 사실은 경북대 총여학생회가 31일 하오 경북대 소강당에서 개최한 「정신대 할머니 초청 좌담회」에 참석한 정신대할머니 이모씨(64·대구)에 의해 밝혀졌다. 이씨는 『일제때 일본군에게 정신대로 끌려가 종군위안부생활을 거절하다 심한 전기고문을 당하는등 치욕적인 온갖 고초를 다 겪었다』며 해방전까지 3년여동안의 위안부생활상을 폭로했다.
  • 성숙한 외교 공감의 외교/한·중 우호시대에 부쳐/김정원(특별기고)

    냉전체제 붕괴 이후의 새로운 세계질서의 구축과정에서도 여전히 적대적 위치에 남아 있던 한국과 중국이 수교하였다는 것은 참으로 많은 의미를 갖는다.국내적 차원에서 보았을 때는 한국북방정책의 완성과 통일에의 한 걸음 전진을 의미하는 것이고 세계적 차원에서는 동북아에 있어서의 평화체제 구축의 토대를 닦았음을 의미한다.진정 반기고 기뻐해야 할 일이다.그러나 몇 가지 아쉬움을 떨쳐 버릴 수가 없는 것도 사실이다. 첫째는 대만과의 외교관계를 정리하는데 있어서 앞으로 우리외교는 좀더 성숙한 자세를 보여야 할것 같다.한중수교는 다만 시기가 문제였을뿐 오래전부터 예견되어 왔던 일이다.따라서 대만측에서도 우리가 중국과 수교하게 되면 단교하게 되리란 것을 충분히 예측하고 있었다.그런데도 한중수교에 대만인들이 저토록 분개하는 것은 우리가 단교에 앞서 그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설득하는 과정을 소홀히 한데서 온 결과가 아닌가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의리와 체면을 중시하는 그들로서는 자신들이 모욕받았다고 여기는 것이 당연한 일이며 이로 인해 대만인들의 대한감정은 극도로 악화된 상태이다.악화된 대한감정은 차차 약화되겠지만 이는 앞으로의 대만과의 관계에서 우리의 운신의 벽을 제한하는 요소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아무리 중국과의 수교가 중요하더라도 정부가 좀 더 성의를 갖고 대만측에 우리의 입장을 설명하고 그들을 설득했더라면 한·대만관계는 좀 더 부드럽게 마무리 될 수 있었을 것 아닌가. 둘째 수교협상과정에 있어서 정부가 좀더 확실하고 외교 의원칙을 살려나갈 수는 없었던가 하는 점이다.과거사 청산문제에 있어 중국측의 사과가 있었다는 외무부장관의 공식성명에도 불구하고 중국측에서는 사과한 적이 없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실상 중국으로선 한국전쟁참전에 대한 유감표명을 공개적으로 하기 어려운 점도 있을 것이다.그러나 우리정부는 반드시 이 문제에 대한 중국측의 공식입장표명을 받아내는 것이 마땅하다고 본다.그렇지 않고 이 문제를 대강 덮어둔채 넘어간다면 이 또한 장래의 양국관계를 불편하게 만들 수도 있는 하나의 족쇄로 작용할 것이 분명하다.원래 외교란 꾸준한 협의와 조정의 게임이다.일방적으로 끌려다녀서는 안된다.그런점에서 어째서 중국은 남·북한과 동시수교를 하면서 한국은 대만과 단교해야만 하는가.설혹 어쩔 수 없이 단교해야만 할 상황이라면 그것을 근거로 더 많은 양보를 얻어내었는가.그리고 평소에 한국외교가 얼마나 얕잡아 보였기에 20억달러 경협운운하는 루머가 나돌게 되었는가.정부의 설득력있는 외교원칙이 충분히 설명되지 못했다고 볼때 역시 아쉽다는 생각이다.자존이란 스스로 지키고자 노력할 때 얻을 수 있는 법이다.우리 외교의 자주성문제에 대한 심각한 반성이 필요하다고 본다. 셋째 이번과 같은 큰 역사적수교를 발표함에 있어 정부는 더욱 당당하게 멋있게 할수는 없었는가 하는 욕심이다. 물론 중국과의 수교가 그 특수한 성격으로 인하여 비밀을 유지해야 함은 이해할 수 있다.사안의 중대성 때문에 보안이 철저히 유지되어야 하는 측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비단 중국수교의 경우에만 그런 것이 아니라 다른 국가중대사의 경우에도 흔히 국민은 아무것도 모르고있다가 어느날 갑자기 신문의 제1면을 장식하고 있는 충격적인 소식에 접하곤 했다. 그렇더라도 그것이 반드시 옳거나 바람직한 것만은 아니다.원칙론적으로 얘기하면 중요국가정책의 결정에는 국민적 합의의 도출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며 국민적 합의가 근본을 이루고 있는 정책이라야 원만히 추진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모든 정책결정과정에서 국민의 의사를 최대한 존중하는 것이 민주주의 원칙과도 부합한다.그렇다면 이번같은 중요 외교정책을 결정,발표하는 과정에 있어서 국민을 소외시켜서는 안된다는 측면과 현실외교상 필수적인 보안과 비밀유지측면이 어느정도로 조화를 이루었는지 한번 깊이 생각해 봄직하다.그런 점에서 우리 외교는 아직 미숙하며 좀 멋이 없다.외교정책 결정과정은 너무나 경직되고 제도화되어있지 않다는 느낌을 준다. 한·중수교로 동북아에는 새로운 국제관계형성의 가능성이 점점 더 짙어지고 있다.그것은 아시아 집단안보체제의 형태로 나타날 수도 있으며 동북아 경제권의 형태로도 나타날 수 있다.이러한 변환의 시기에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그 어느때보다도 섬세하면서도 치밀한 성숙된 외교능력이요,자주적인 외교자세다.변화에 대한 충분한 사전준비가 필요한 것은 물론이요,타국과의 협상에서 우리의 목소리를 결코 거두어들이지 않는 자주적 자세가 필요하고 정책의 집행을 뒷받침할 수 있는 국민적 공감대가 필요하다 하겠다. ◇존스홉킨스대 국제정치학박사,하버드 법과대학 법학박사
  • “강제연행 한인에 일 보상은 마땅”

    ◎IED 파커수석대표,유엔 인권소위서 주장/65년 체결된 한일 청구권협정 무효/개인 대일 배상권리 소멸되지 않아/“피해보상” 국제적 압력 가중… 일 대응 주목 일본은 종군위안부(정신대)등 일제에 강제연행된 한국인들에게 배상 및 보상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여론이 국제사회에서 확산되고 있다. 국제인권단체의 하나인 국제교육개발(IED)은 지난 65년 체결된 한일청구권·경제협력협정이 국제법의 강행규범을 위반했기 때문에 일본은 강제연행된 한국인들에게 보상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강조했다고 요미우리(독매)신문이 18일 보도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본부를 둔 IED의 파커수석대표(변호사)는 제네바에서 열리고 있는 유엔의 차별방지·소수자보호소위원회(인권소위)에서 이같이 강조했다.강행규범은 일본 민법 90조의 『공공질서 또는 미풍양속에 반하는 사항을 목적으로 하는 법률행위는 무효』라는 규정과 같은 논리이다. 인권소위는 지난 14일 전종군위안부에 대한 보상과 명예회복을 위한 피해실태조사 자료수집 결의안도 채택했다.유엔인권위원회의 노예에 관한 소위도 이에 앞서 지난 봄 종군위안부 관련자료의 유엔제출을 권고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IED의 파커대표는 『인간 모두는 본래의 기본적인 권리를 가지고 있으며 국가도 그러한 권리를 소멸시킬수 없다』고 국제법이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국민의 권리(청구권)는 소멸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파커대표는 일본의 식민지 지배와 제2차대전중 강제로 연행된 한국인을 비롯,아시아인들은 보상청구권이 있다고 밝혔다.그는 노예제도의 국제적 금지와 제2차대전 이전에 만들어진 강제노동을 금지한 국제노동기구(ILO) 29호 조약등을 근거로 『강제노동을 강요받지 않을 권리,종군위안부로 끌려가지 않을 권리등은 국제사회의 공공질서와 미풍양속으로 확립되어 있기 때문에 그 권리는 당연히 보상청구의 권리도 포함하고 있다』고 말했다.그는 개인의 청구권이 소멸되었다고 일본이 주장하는 한일협정은 국제법의 강행규범을 위반하고 있기 때문에 협정의 일부 또는 전부가 무효라는 것이 국제적으로 인정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요미우리신문은 이같은 국제인권단체의 논리가 국제적으로 인정될 경우 전종군위안부 뿐만아니라 일본에 의해 강제연행되었거나 학살된 아시아인들의 대일청구권의 근거가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일본은 제2차대전이 끝난지 거의 반세기가 지났지만 과거 침략행위와 종군위안부 강제연행등 반문명적 행위에 대한 반성과 전후청산을 하지 않고 있다. 일본정부를 상대로한 전종군위안부등 피해자들의 개인 손해배상 청구소송이 최근 계속 증가하고 있다.중국의 피해자들도 10만명이상이 「연합회」를 결성,일본에 대한 배상요구를 본격화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아사히(조일)신문이 15일 보도했다. 아시아피해국가들의 이같은 움직임과 국제사회에서 고조되고 있는 피해보상 당위론에 대해 일본정부가 어떻게 대응할지 주목된다.요미우리신문은 배상청구문제가 국제문제화되고 있는 것을 고려,일본정부는 국제법과 인도적 차원에서 해결책을 서둘러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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