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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신대 할머니 명예 졸업장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 갖은 고초를 겪은 李容洙할머니(71·대구시 달서구 상인동)가 6일 경북대 사회교육원에서 명예졸업장을 받는다. 李할머니는 일본총리를 직접 만나 일본군의 만행을 따지는 등 일본정부를상대로 피해배상과 사죄를 요구하며 길고 긴 투쟁을 벌이고 있는 대표적 인물로 꼽힌다. ‘국제법을 알아야만 일본의 사죄를 받아낼 수 있고 법적 배상투쟁도 벌일수 있다’며 96년 경북대 사회교육 과정의 명예학생으로 등록했다.지난 3년간 하루도 빠지지 않고 손자·손녀뻘 되는 학생들과 국제법학,역사,일어,현대사회와 법,경제 등 5과목을 수강했다. 일제때 초등학교를 중퇴하고 야학에서 한문을 배웠다.지난 43년 만16세의나이에 강제로 일본군 위안부로 대만에 끌려가 고생하다 해방 이듬해인 46년 귀국했다. 보험회사 등에 다니며 홀로 지내다 92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 신고한 뒤 수시로 일본을 오가며 아시아 각국의 일본군 위안부 재판에 증언도 서고 일본정부와 언론을 상대로 진실규명작업에 매달리고 있다. 보다 체계적인 역사 지식을쌓고 국제법을 터득하기 위해 배움의 길에 나섰다 李할머니는 “일본은 오욕의 역사를 진실로 사죄하고 피해보상이 아닌 피해배상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은반요정 나리-예지 황홀한 묘기 펼친다

    비엘만 스핀-.‘세계적 은반요정’ 남나리(13)와 국내 최고의 피겨스케이트 선수 신예지(15경희여중 3년)가 한 무대에서 세계 최고의 기술를 선보인다. 두 요정의 묘기는 5일 오후 7시 그랜드 하얏트 호텔 특설링크에서 펼쳐진다.남나리와 신예지는 피겨 스케이팅에서 최고의 고난도로 불리는 ‘비엘만 스핀’ 등의 연기로 팬들을 매료시킨다. 비엘만 스핀은 한쪽 다리를 등뒤로 머리끝까지 들어올린 상태에서 8번 회전하는 것을 말한다.허리가 반원을 그릴 정도로 몸의 유연성을 지녀야 가능한기술이다.80년대 스위스의 피겨스타 비엘만이 처음 시도,성공해 붙여진 이름이다.지금도 이 기술을 완벽하게 소화하는 선수는 남나리와 타라 리핀스키등 손으로 꼽을 만큼 극히 일부다. 남나리는 지난 전미주니어선수권에서 ‘비엘만 스핀’을 완벽하게 연출,준우승을 차지하면서 그 모습이 미국 언론에 보도되면서 화제를 모았다.미국대표팀코치 존 닉스씨는 “인체의 아름다움이 극치에 달한 표현”이라고 극찬한다. 우연치고는 묘하게도 신예지의 특기도 비엘만 스핀이다.신예지는 지난해 3월 전국종별선수권 등 3개 대회를 석권,더 이상 국내에는 적수가 없다는 평을 듣고 있다.지난해 11월 세계주니어선수권에서는 발목 부상에도 불구하고12위에 올라 국내 피겨 사상 최고의 성적을 거뒀다. 남나리는 5살때 외할아버지 손에 이끌려 스케이트장을 처음 찾은 뒤 닉스씨의 손에 키워졌고 신예지는 6살때 대표팀 코치인 고모 신혜숙씨(41)의 권유로 스케이트를 신었다.12살때에는 ‘천재요정’이라는 화제속에 사상 최연소 나이로 국가대표에 선발됐다. 남나리는 3일 고국에 도착한 뒤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에 미국대표로 출전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신예지는 4일 “올림픽에 꼭 출전해 나리와 금메달을 겨루고 싶다”고 말했다. 김경운 kkwoon@
  • 국회 이슈별 대정부 질문…빅딜·실업대책·국민연금·내각제

    4일 경제 및 사회, 문화에 관한 국회 대(對)정부 질문에서는 5대그룹의 빅딜,실업대책,국민연금 문제가 쟁점으로 부각됐다.한나라당과 자민련측은 이틀째 내각제 문제를 꺼냈다. ▒빅딜 여야가 치열한 공방전을 벌인 대표적인 분야였다.한나라당이 그동안장외집회를 한 것도 빅딜과 무관치 않았던 것처럼 이 부문에 관한 여야의 생각은 판이했다. 국민회의 朴光泰의원은 “빅딜과 관련해 장관이나 관료들은 재벌이나 근로자,해당지역의 무리한 요구에 절대로 끌려다녀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한나라당 羅午淵의원은 “빅딜은 경제논리에 의해서가 아니라 정치논리에의해 추진되고 원칙과 투명성도 결여됐다”고 혹평했다.같은당 白承弘의원은 “밀실에서 공동여당 총재와 재벌총수,대통령과 재벌총수가 빅딜을 논의하는 것은 신 정경유착”이라고 빅딜을 반대했다. ▒실업대책 여야는 한 목소리로 실업정책 실패를 지적하면서 획기적인 대책마련을 촉구했다.접근방향은 달랐다.야당은 미봉책에 급급한 현정부의 정책부재를 집중 부각했고 여권은 ‘현장’을 무시한 행정부처의 탁상공론을 주원인으로 꼽았다. 한나라당 白承弘의원은 “현정부의 실업대책은 무(無)중심,무(無)계획,무(無)점검 등 3무(無)정책”이라고 질타했다.또 “정부가 공식발표한 실업자는 200만명을 밑돌지만 국내 민간연구단체들이 파악한 숫자는 295만명이며 미국의 실업통계 방식(U-6)을 적용하면 368만명”이라며 실업자 통계조작 의혹을 제기했다. 국민회의 宋鉉燮의원은 “실업대책이 관료들의 펜대 하나로 우왕좌왕하는것은 편의주의적이고 무사안일에 빠진 생색내기 행정 때문”이라며 공공근로사업의 건설사업 전환을 대안으로 냈다. ▒국민연금 확대실시를 앞두고 국민들의 반발과 혼란을 초래한 것에 대해 여야는 ‘한목소리’를 냈다.처방은 달랐다.여당의원들은 이번 사태의 본질을‘홍보부족’으로 규정하면서 보완해 강행할 것을 주장한 반면 야당은 연기를 촉구했다. 국민회의 李聖宰의원은 “정부는 일부에서 나오는 연기나 유보론에 쉽게 흔들려서는 안된다”며 “모든 인력을 동원해 국민연금의 우수성을 홍보하라”고 주장했다. 한나라당 金洪信의원은 “엉터리 자료를 갖고 보험료를 내라고 강요해 민원대란이 났는데도 밀어붙이는 것은 유신시대나 가능한 구태”라고 비난했다. ▒내각제 자민련은 내각제를 이틀째 물고늘어졌다.경제분야에서도,사회·문화분야에서도 내각제 질의를 했다.전날 집중공세가 나름대로 효과를 거뒀다며 고무된 분위기다.국민회의는 침묵했다.한나라당 일부 의원은 공동여당 틈새벌리기에 다시 나섰다. 자민련 李相晩의원은 “내각제를 채택하면 한국경제의 회복과 성장이 빠를것”이라고 주장했다.또 “내각제를 실시하지 않거나 연기하면 金大中대통령에 대한 불신은 극도에 달할 것”이라며 “대선공약을 어기고 대통령과 국무총리가 존립할 수 있느냐”고 따졌다. 같은당 金許男의원은 “내각제 개헌은 눈가림 약속이 아니라 집권하면서 두 지도자가 7,000만 겨레 앞에서 한 약속”이라고 상기시켰다.이어 “내각제약속을 어길 경우 두 분이 초래할 혼란과 국론분열에 대한 책임은 중차대한것”이라고 지적했다. 한나라당 白承弘의원은 “공동정권의 약속인 내각제 개헌문제 역시 약속을뒤집기 위한 수순을 밟고 있다는 것이 국민들의 일반적 시각”이라며 “지난달 25일 집권세력간의 야유와 몸싸움,폭력사태 등은 국민을 불안케 하는 행동”이라고 끼어들었다. 金鍾泌총리는 답변에서 “내각제문제는 시간에 따라 진행되어 갈 것이므로지켜봐주시기를 바란다”고 비켜갔다.
  • 權魯甲고문 일문일답…“黨 화합-단결에 최선”

    ‘DJ의 그림자’‘동교동계의 맏형’으로 불리는 국민회의 權魯甲고문이 고희(古稀)를 하루 앞둔 4일 정치권을 떠난 지 2년만에 당무에 복귀했다. 그의 70평생을 되돌아 보면 金大中대통령과 함께한 40년은 어쩔 수 없이 강요된 형극의 길이었다.서슬퍼런 유신독재와 군사정권을 거쳐 YS정권에 이르기까지 온몸으로 金대통령의 방탄막 역할을 해왔다. 목포상고 4년 후배인 그는 60년 4·19 직후,당시 민주당 대변인인 金대통령을 찾아 첫 정치적 인연을 맺는다.그후 71년 대선부터 4번의 대통령 선거를치르면서 역대정권의 집요한 탄압과 회유를 이겨내며 ‘DJ 분신’으로 자리매김했다는 평이다. 유신과 5공시절 수시로 중앙정보부와 안기부에 끌려가 ‘통닭구이’ 등 온갖 고문을 당하면서도 金대통령에 대한 변함없는 ‘충성심’을 과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金대통령의 ‘생애 마지막 승부’였던 97년 대선은 감옥에서 지켜봐야 했다.그해 2월 한보비리에 연루된 탓이다. 權고문은 정권교체 직후 “나에 대한 사면복권이 정치적 부담이 된다면 마지막까지 감옥에남겠다”는 비장한 각오를 전달,金대통령의 눈시울을 적셨다는 후문이다. 다음은 기자들과의 일문일답. ▒당무 복귀한 소감은감개무량하다.책임이 무겁다. ▒당내 역할은. 당의 화합과 단결,金대통령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 ▒당의 화합을 저해하는 요소는. 국민회의에는 국민신당출신 등 외부사람도 많다.이들이 소외감이나 섭섭함이 없이 똘똘 뭉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李康來전청와대정무수석의 구로을 공천 낙마와 관련,權고문이 흔들었다는설이 있는데. 잘못된 얘기다.李전수석이 후보로 내정됐을 때부터 불러다가 도와 주려고 노력했다.특히 구로을 종교계 지도자들과의 만남을 주선하는 등 노력했다.李전수석도 이 사실을 알고 있다. ▒상도동에 갈 계획은. 가고 싶었던 것은 사실이다.辛相佑국회부의장도 만났고 그런 역할을 하고싶었다.그러나 현재로선 분위기가 아니다. ▒5월 전당대회에서 李壽成평통부의장을 밀고 있다는 소문이 있는데. 李부의장은 나를 선배로,나는 李부의장을 후배로 대하고 있다.집사람들끼리는 동기동창이다.인간적으로 친하고 가깝게 지내는 것은 사실이다.
  • “체감경기 6개월내 회복”…전철환 한은총재 회견

    全哲煥 한국은행 총재는 “경기가 지난해 4·4분기나 올 1월에 저점을 지난것 같지만 아직 통과 여부를 확인할 수는 없다”며 “수출주력 상품을 제외한 다른 부문에서는 경기회복을 체감하려면 앞으로 6개월 정도는 걸릴 것”이라고 밝혔다.全총재는 이어 “물가도 안정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에 당분간 시중자금을 여유있게 공급해 금리를 낮게 유지해 갈 것”이라고 밝혔다.또한은 고유 업무인 통화신용정책에 대해 “정부가 금리문제를 한은보다 먼저발표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는 6일로 취임 1년을 맞는 全총재를 대한매일 경제과학팀 廉周英 차장이 3일 만났다. ■한은이 통화신용정책 권한을 확보한 지 1년이 다 돼 갑니다.그러나 아직정책 선도기능이 부족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있습니다. 정부는 금융 기업 정부부문의 구조조정을 추진하면서 인·허가권 등 이른바‘권력’을 동원하는 반면 중앙은행은 이런 권한이 없습니다.또 지금은 기계의 부속품을 바꾸는 구조조정기여서 기름(통화정책을 통한 이자율 조정)을넣어도 효과가 제대로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러면 언제쯤 한은의 역할이 부각될 것으로 보십니까. 임직원들에게 “구조조정이 끝난 다음은 우리가 나설 차례”라는 말을 자주 합니다.구조조정은 이제 30% 가량 진행된 것으로 보입니다.올해는 지나야통화신용정책의 작동 매커니즘이 복원될 것 같습니다. ■한은이 정부논리에 끌려다니며 여전히 대외적으로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지난해 정부가 구조조정 비용으로 쓸 국채를 한은이 직접인수할 것을 요구했지만 결국 시장발행을 관철시키지 않았습니까.청와대 회의에 가서도 “직접인수는 안된다”고 버텼습니다.한은이 국채를 인수하면 돈이 풀려 물가불안 요인이 되기 때문이지요.한은의 ‘공’을 언론에서 너무 몰라 주는 것 같습니다. ■정부에서는 경기저점을 지난해 4·4분기로 보고 있습니다.그런데 지표경기와 체감경기의 괴리가 여전히 큽니다. 경기가 빠른 속도로 회복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그러나 아직 저점통과여부를 확인할 수 없습니다.지난해 4·4분기나 올 1·4분기에 바닥을 친 것같기는 하지만 경기가 ‘L’자형이 될 지 ‘U’자형이 될 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합니다. ■올 경제성장률을 어떻게 내다보십니까. 한은은 연초에 올 경제성장률을 3.2%로 수정 전망한 바 있습니다.상반기에는 2%대,하반기에는 3%대의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구조조정의 진전과 신용등급의 상향 조정,외환·금융시장의 안정 등으로 경제주체들의 불안심리가 해소되면서 소비·투자 등 내수의 회복속도가 빨라질 것으로 예측해 하반기의 성장률을 상반기보다 높게 잡았지요. ■물가문제가 대화의 소재에서 사라진 느낌입니다.올해에는 물가걱정을 하지 않아도 됩니까.내년 총선을 앞두고 올 하반기에는 통화관리가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가 있습니다. 물가가 안정돼서 그러는 지,(정부가) 담배 값을 비롯한 공공요금을 마구 올리는 것 같습니다.시중에 돈이 많이 풀린 것은 사실이지만 올해에는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올 하반기에는 경기회복세가 확산되고,물가상승 압력이 높아질 것으로 보여 통화공급을 약간 낮추는 쪽으로 통화신용정책을펼 계획입니다.일부에서 걱정하는 것처럼 정치논리에 흔들리지 않고 물가안정목표(3±1%)를 차질없이 달성하겠습니다. ■금리조정은 한은의 고유 권한인데도 외부 목소리가 앞서거나 끼어들곤 합니다.지난해 연말에도 콜금리를 5%대로 내리겠다는 얘기가 정부 쪽에서 먼저 나오지 않았습니까. 답답한 노릇입니다.그래서 정부 당국자에게 몇번 화도 냈습니다.그렇지만언론에는 이미 보도된 상태고….정부가 금리문제를 먼저 얘기하면 금융시장에 불필요한 충격을 주고,경제주체의 의사결정에 혼선을 부르게 됩니다.중앙은행의 통화신용정책 신뢰도를 해칠 우려도 있습니다. ■한은법이 개정돼 지난해 4월부터 시행되고 있습니다.한은 독립성을 확보하는 데 미흡하지는 않습니까. 독립성을 높이긴 했지만 중앙은행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기엔 미흡한 점도있습니다. 全총재는 97년 외환위기 이후 모든 부문에서 구조조정이 급속히 이뤄지고있는 와중이어서 통화신용정책의 효과가 외부에 잘 나타나지 않고 있을 뿐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한은이 펴는 통화신용정책에 대해 95% 이상 확신을 갖고 있으며,지금의 금리정책이 기업구조조정을 지연시킬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지적했다.
  • [대한광장] 지역감정의 실체와 언론개혁

    ‘지역감정’을 우리는 망국적인 병이라고 부른다.그래서 대통령이 할 수만 있다면 무인도에 가져가서 국민들을 편하게 하겠다고까지 했다.며칠후의 기자회견에서도 다시 한번 강조하기도 했다.대통령 뿐 아니라 지역감정이 사라져야 한다는 데에는 모든 국민이 공감하고 있을 것이다.그런데도 왜 이것이사라지지 않고 망령처럼 배회하며 우리를 괴롭히고 있는 것인가. 사실 지역감정이라는 표현은 어폐가 있다.태초에 지역차별이 있었으며 그것이 특정 지역의 소외를 잉태하였을 뿐이다.차별과 소외를 전제하지 않고 감정을 운운할 수는 없다.예나 지금이나 호남사람들은 지역감정을 품기보다는소외로 인한 고통을 받으며 살아왔다.오히려 누군가가 타 지역 사람들에게호남지역에 대한 감정을 조장해왔다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고 믿는다. 지금 지역감정으로 분기탱천해 있는 지역이 어디인가.그렇다면 대통령은 무슨 지역감정을 어떻게 푼다는 것인지 분명치가 않다.호남지역 사람들은 지금 전혀 예견치 못했던 역차별로 상심해있으며 소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지역감정의 해소는 차별을 시정하여 균형을 잡는데 있다.루머 등에 흔들려이 원칙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 지역감정을 조장하는 세력이 있다.문제는 일반국민들이 아니라 바로 이 세력들이다.영남지역 사람들도 이들의 의도에 따라 끌려온 셈이다.그 세력이란 바로 야당과 일부 언론이다.작년 초 영남지역에서 있었던 재·보선에서 야당의 중견 정치인들은 지역감정을 조장하는 망언들을 쏟아낸 적이 있다.‘김대중정부의 호남 싹쓸이 인사로 여러분의 후배 아들이 밀려나고 있다’ ‘한풀이정치의 피해자는 경상도 사람이 될 것이다.경상도 기질이 보통 기질이냐.뭉쳐서 덤벼들지’.이런 식이었다.또 최근에는 영남지역을 돌며 대규모 집회를 열어 불이 붙은 지역감정에 기름을 쏟아 붓고 다녔다.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양 축을 이루는 한쪽에는 일부 언론이 또아리를 틀고톡톡히 한몫을 하고 있다.야당의 장난에 맞장구를 침으로써 힘을 실어주고있는 것이다.그 목적은 간단하다.개혁적인 정부의 위세를 꺾어 언론권력을강화하는 한편 대중의 정서에 영합하여 경제적 이익을 도모하자는 것이다.지역감정의 해소에 앞장서야 할 언론이 오히려 조장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 원인은 사회적 공기로서의 언론을 재벌과 족벌이 소유하여 좌지우지하고 있는 데 있다.독점적 소유구조로 인하여 소유주의 영향력이 막대한 결과 편집의 자율성이 부여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여기에서 우리는 언론개혁,특히 신문개혁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된다. 언론개혁을 위해서는 대통령의 의지와 정부의 역할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정부는 개입을 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표명하며 자율개혁만을 강조하고 있다.단언하건대 언론개혁은 절대 자율적으로는 되지 않는다. 불가능한 일을 자꾸 강조하는 것은 책임회피에 불과하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정부의 개입은 통제를 위한 간섭이 아니라 왜곡된 구조를 바로잡기 위한 정당한 조치요 의무다.결코 언론자유의 침해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해둔다. 언론개혁의 핵심은 재벌과 언론의 분리,족벌소유의 타파에 있다.그와 더불어 경영의 투명성과 편집의 자율성을 확보하고여론의 독과점을 해소해야 한다.이를 위해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것은 특정 재벌 내지는 개인의 소유지분을 엄격하게 제한하는 방향으로의 법의 개정이다.‘정기간행물의 등록 등에관한 법률’을 개정하는 일이다. 그리고 국민의 참여를 위해 주식을 공개하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이것은 정부가 단안을 내리지 않는 한 불가능한 일이다.언론개혁을 논의할 특별위원회를 구성할 것을 제안한다./김동민 한일 장신대 교수.언론학
  • 3·1항쟁 80돌 아침에/김삼웅 대한매일 주필

    3·1항쟁 80주년이다. 1세기에 가까운 세월의 더께와는 달리 갈수록 엷어지는 항쟁의 정신을 아쉬워하면서 다시 그날을 맞는다. 해마다 3월이면 3·1정신을 계승하자는 구호는 요란하지만 정작 우리 주변은 일제 잔재로 가득차 있다. 여기서는 지식인들까지 부지불식간에 쓰고 있는 일제가 남긴 ‘역사용어’에 대해 살펴본다. 일제는 한국침략과 지배를정당화시키고자 관학자들을 동원하여 각종 용어를 만들었다. 그런 용어를 우리는 해방 반세기가 지나도록 부끄러움을 모른채 그대로 쓰고 있다. ▲정한론(征韓論)― 중·고등학교 국사책이나 역사학자들의 저서에 ‘정한론’이란 용어가 수록돼 있다. 1860년대 이후부터 일본 정부내에서는 조선을정벌하여 식민지로 만들어야 일본이 대륙에 진출할 수 있고 아시아의 패권을 누리게 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일본은 이미 강호(江戶)시대의 해방론(海防論)에 이어 막부(幕府) 말기의정한론,다시 명치 이후에는 일선동조론(日鮮同祖論)·일한일역론(日韓一域論)으로 한국침략의 정당성을 내세웠다. 먼저 정(征)자의의미를 살펴보면,두인변과 바를 정(正)자가 합쳐서 생긴 회의문자다. 아버지와 아들 관계 또는스승과 제자 즉,올바른 웃어른이 어린아이의 잘못을 꾸짖어 훈계한다는 뜻이다(여씨춘추). 또 다른 의미에는 정(征)이란 천자(天子)가 죄인을 호되게 꾸짖음을 의미한다. 우리가 ‘여진정벌’이나 ‘대마도정벌’의 경우,도발하는 외적을 응징할때 주체적 의미로 쓴다. 그런데 일본이 우리를 침략하는 의미의 ‘정한론’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은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일제의 침략론’으로써야 옳다. ▲이조(李朝)― 우리 역사에 ‘이조’란 나라는 없다. 일본이 조선을 침략·합병하면서 한국민에게 조선왕조를 격하,한 씨족사회를 합방했다는 점을 인식시키고자 만든 용어다. 즉,일본은 ‘조선’이란 국가의 존재를 부정하면서 씨족 대표가 지배하는 사회를 해체하고 대신 자기들이 다스리게 되었으니독립운동이나 애국심 따위를 갖지 말도록 조작한 용어다. 이런 것도 모르고 우리는 ‘이조 500년’,‘이조백자’,‘이조시대’ 어쩌고 하면서 역사를 말한다. 정식국호는 ‘대조선왕국’(1894),‘대조선제국’(1895),‘대한제국’(1897)이고 통칭 ‘조선왕조’또는 ‘조선’이라 써야 옳다. ▲의병토벌― 일제의 침략에 맞서 전국 각지에서 의병이 봉기하자 일본군이한국의병을 토벌했다는 기록이 많다. ‘토벌’은 관군이 반란군을 진압하는것인데,왜병은 관군이고 우리 의병은 반란군이란 말인가? ‘의병학살’로 써야 한다. ▲당쟁― 흔히 조선왕조가 ‘당쟁’으로 망했다고 말한다. 당쟁이란 용어는일본인들이 만들었다. 대한제국의 학정참여관을 지낸 幣原단이 1907년에 쓴‘한국정쟁지(韓國政爭志)’에서 처음으로 ‘당쟁(黨爭)’이란 용어를 쓰면서 조선시대를 당쟁시대로 부정적으로 규정했다. 細井이란 자는 “조선사람의 혈액에 특이한 검푸른 피가 섞여 있어서” 당쟁이 여러 대에 걸쳐 계속되고,결국 고칠 수 없는 것이라고 체질론을 폈다. 조선시대에 파쟁이 심했던것은 사실이지만 일본을 비롯,어느 나라든 정도의 차이일 뿐 정치적 파쟁은 있기 마련이다. 조선시대에는 ‘붕당’이란 용어가 사용됐다. ▲민비― 고종의 왕비 민황후를 일제는 민비로 비칭했다. 1895년 일본공사미우라가 일본군대와 정치낭인들을 내세워 왕궁을 습격하고 황후를 시해한뒤 정권을 탈취하는 을미사변의 만행을 저질렀다. 대한제국 정부는 1897년명성황후로 추책하고 국장으로 장례를 치렀다. 일제는 한국의 황후를 시해한 만행이 세계에 알려지는 것이 두려워 ‘민비’라 부른 것을 우리가 그대로호칭한다. ▲모의(謀議)― 항일독립운동가들의 모임을 ‘모의’라고 표기하는 경우가흔하다. 모의는 “옳지 않은 일을 하기 위한 음모”를 말하는데,독립운동이옳지 않은 일인가. 일본 경찰이나 헌병이 쓴 용어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협의’나 ‘논의’로 써야 한다. ▲징용(徵用)― 일제시대 많은 한국인이 전쟁터나 탄광으로 강제로 끌려가노역에 시달렸다. 이를 ‘징용’이라 부르는데,원래 징용은 국가가 사람을불러 일을 시키는 것을 말한다. 우리는 ‘징용’당한 것이 아니라 ‘강제노역’당한 것이다. ‘징병’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정신대― 정신대란 몸을 던져 나라를 위해 일하는 사람이다. 일제에 끌려가 성노예 노릇을 한 여성을 어찌 정신대라 부를까. ‘일본군 강제 위안부’라 표기하자. 3·1항쟁 80주기를 맞아 일제의 용어 한가지라도 바로 잡으면서 선열들의구국정신을 기렸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kimsu@
  • 방송개혁안 최종 내용/방송개혁위 평가·과제

    ‘방송개혁’의 사령탑인 방송개혁위원회가 26일 지난 3개월의 공식 일정을 모두 끝마치고 최종안을 확정했다. 방개위는 이 최종안을 법안과 정책보고서 형태로 27일 金大中대통령에게 보고한 뒤 오는 3월2일 해체된다. 방개위는 지난해 12월 당정이 ‘통합방송법의 국회상정 유보’를 발표한 직후 출범한 ‘대통령 자문기구’이다.실제 활동기간은 두달 보름남짓하지만,방송의 독립성과 공익성을 강화하면서 전세계적인 ‘통신과 방송의 융합’추세에 대비하는 21세기형 방송토대를 구축하는데 상당히 성공한 것으로 평가된다. 아울러 ▒방송규제기구인 통합방송위의 위상을 강화하고 위원구성에 시청자 대표성을 고려한 점 ▒KBS-1·2TV에 공익성을 분명히 부여한 점 ▒MBC 수익의 일부를 사회에 환원하고 단계적 민영화 방침을 결정한 점 등은 큰 성과로 꼽힌다. 케이블TV-중계유선방송,방송사-노조,방송사-시청자단체 등 갈등 집단을 공론의 장에 끌어들여 어느 정도 합의를 이끌어 낸 점도 의미가 깊다. 하지만 KBS 조직효율화나 공익성 제고의 기준이나 검증과정,MBC민영화를위한 일정 등 주요 사안에 대해 “앞으로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할 것”이라는 원론적 선언만 한 채 통합방송위로 떠넘긴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또 2차공청회 직전 방송노조연합(방노련)이 탈퇴하고 이날도 항의성명을 낸 것은위원회측이 이해관계의 조정에 실패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방개위가 이처럼 ‘한계’를 보인 것은 실행위와 본위원회의 역할이 뒤바뀐 탓이 컸다.실행위는 이해관계를 떠나 합의를 도출해야 함에도,방노련 등 특정 목소리에 이끌려 다녔다.그만큼 개혁의 폭이 좁아진 셈이다.여기에 KBS와 MBC 등 두 지상파방송사가 자율적 구조조정안을 제출하지 않아 이 문제는전혀 논의할 수 없었다.본위원회는 시간적 제약으로 인해 이같은 주요 과제를 정면으로 다루지 못하고 ‘우회’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앞으로 과제는 이번 최종 개혁안을 입법화 하는 일이다.姜元龍 위원장은 사견임을 빌려 “정부입법을 예상한다”고 말했지만 정치권은 의원입법할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여야의 협상과정에서 방개위의 개혁적 성과가 퇴색되지 않도록 시민단체 등이 지속적인 관심을 쏟아야 할 것으로 지적된다.일부는 姜위원장 등방개위 인사들이 통합방송위원회에 참가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李鍾壽
  • ‘어머니’ 27일부터 정동극장서

    어머니라는 말은 아늑함과 가슴 찡한 느낌을 동시에 떠오르게 한다.시대가어려울 수록 복합적인 감정의 울림이 커진다.지난 17일 ‘어머니’(이윤택작·연출)의 연습장인 서울 정동극장.마냥 포용하는 모성의 넉넉함은 난방이 없는 무대를 훈훈하게 덮혀준다. “어머니는 영원한 테마잖아요.자식 키우는 에미로서 내용이 가슴에 와닿습니다”.정동극장과 20년 장기공연 계약(본지 1월15일자 보도)을 맺은 손숙씨의 말엔 27일부터 시작되는 공연에 대한 ‘흥분’이 실려 있다. 내로라하는 여배우를 설레게 한 ‘어머니’의 삶에는 찢어질 듯한 가난,일제시대와 해방기의 혼란,한국전쟁의 상흔 등 우리 현대사가 고스란히 녹아있다.연극은 일순(손숙)의 현실과 회상을 넘나들면서 펼쳐진다. 일순은 사사건건 논리적으로 따지는 신식 며느리(송정화)와 마찰이 잦다.그래도 방송작가 아들(김학철)에 거는 기대와 토끼같은 손자 손녀의 재롱에 웃음을 감추지 못한다. 어느날 죽은 남편 돌이(원용부)를 꿈에서 만나면서 한많은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낸다.만약 “글만 배웠더라면 ‘노베르(노벨)상’도 떼어놓은 당상일기막힌 내용”들이다.징용으로 끌려간 첫사랑 양산복(김경익).논 서마지기에 팔려온 결혼생활.밖으로만 내돌며 집안일은 아랑곳 하지 않는 남편.무뚝뚝하지만 ‘핍박받는 여성’이라는 공통점으로 속내를 터놓고 지내는 시어머니와 주렁주렁 달린 자식들이 유일한 낙이었다. 피란 중 학질에 걸려 죽은 아들(첫 사랑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이)을 놓고통곡하는 장면은 눈물의 절정.온몸으로 흐느끼는 일순의 아픔은 손숙씨의 것으로 체화된다.“연습 때마다 눈물로 범벅이 되는 진지한 모습에 다른 연기자들이 모두 숙연해진다”고 김학철은 귀뜸한다. 그렇다고 눈물만 있는 것은 아니다.경남 밀양지방의 설화와 민요,옛날 시골아이들의 놀이와 창가를 재현해 볼거리가 풍성하다.구수한 경상도 사투리도재미를 키운다.절로 입가에 미소를 띄우게 한다.연출을 맡은 이윤택은 익숙한 풍경을 참신하게 조리해낸다.환상과 현실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특기를 맘껏 펼쳐 극에 생동감을 불어넣는다. “깔끔하고 재미있는 작품입니다.현실과 회상을 따로 놔두면 지루해지는데이를 피하기 위해 꿈과 안보이는 세계를 섞었습니다.연극적 재미라는 점에무게를 두었습니다”. 그는 일순과 남편 영혼의 대화 장면에서 배경음악과 사투리의 운율을 맞추느라 핏대(?)를 올린다.2∼3차례 되풀이하자 대사와 음악이 3박자 운율을 갖추고 감칠 맛 나게 태어난다. 가슴에 와닿는 사연의 힘은 이윤택의 체험에서 비롯된다.연극 속 일순의 원형은 그의 어머니였다.나아가 30∼40대 성인들 모두의 어머니일지도 모른다. 거친 세파를 건너온 어머니를 모신 아들에겐 정동극장 무대가 반가울 것이다.모든 어머니의 가슴 속에 맺힌 매듭을 잠시나마 풀어 드리기에 제격인 연극이다.4월25일까지.평일 오후 7시30분,주말 오후 4시·7시30분,화·금 쉼.(02)773-8960李鍾壽 vielee@
  • 中거주 위안부할머니 64년만에 귀국

    “정말 내 나라에 왔어…” 12일 오후 3시 30분 아시아나항공 332편으로 중국에서 귀국한 일본군대 위안부 출신 文明今할머니(82)는 눈물을 글썽이며 말문을 열었다. 지난 해 55년만에 고향을 찾은 캄보디아 훈할머니(본명 이남이)에 이어 해외에 거주하는 일제 치하 피해자가 고국을 방문한 것은 이번이 두번째다.수양딸 白玉蘭씨(56)와 동행했다. 휠체어를 탔지만 건강한 모습이었다. 文할머니는 또렷한 우리말로 “너무나좋아서 자꾸만 눈물이 난다”고 소감을 밝혔다. 文할머니의 귀국은 국내에 거주하는 위안부 출신 할머니들의 정성으로 이루어졌다. 안식처인 ‘나눔의 집’에 사는 할머니들은 지난 5∼7일 사흘간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서 일일찻집을 운영해 모은 돈 700여만원을 여비로 보내 文할머니의 귀국을 도왔다. 文할머니는 현재 중국 흑룡강성(黑龍江省) 손오현(孫吳縣)에 살고 있다.고향은 전남 광양군 진상면 구황리(현 황중리).18세 때인 1935년 “취직시켜주겠다”는 일본군의 꾐에 속아 중국으로 끌려갔다. 10년 동안 혹독한 위안부 생활을 강요당했고 해방 뒤에는 수치심 때문에귀국하지 못했다.
  • 총재회담 길목‘徐相穆 돌부리’

    총재회담의 물꼬를 트기 위한 여야물밑 접촉이 속도를 더하고 있는 느낌이다.그러나 전화 접촉 이외의 공식 대화 채널은 여전히 시원스레 가동되지 못하는 형편이다.시각차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총재회담의 길목에서 가장 큰 걸림돌은 역시 여권의 정계개편 ‘포기선언’여부다.국민회의 趙世衡 총재권한 대행은 9일 “인위적인 정계 개편은 하지 않겠지만 스스로 입당하는 것까지는 막을 수 없다”며 순리론을 강조했다.정당이당세를 확장하고,집권 여당이 국민화합에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당연하다는논리다.朴智元청와대대변인도 “정치는 물흘러 가듯 흘러갈 수도,뛰어갈 수도 있는 일”이라며 “국민회의도 정당인데 정치활동을 하지 말라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나라당 李會昌 총재는 “동서화합형 정계개편 중단을 선언하지 않으면 대화에 임할 수 없다”고 배수진을 치고 있다.현재로선 절충점이 없는셈이다. 그러나 ‘정계개편’은 대화정국을 가로막는 ‘무늬’일 뿐 ‘속내’는 徐相穆의원의 체포동의안 처리에 있다는 게 여권의 분석이다.여야 모두 이를부인하고 있지만 곳곳에서 감지된다.한나라당이 여론의 비난을 무릅쓰고 ‘방패국회’를 소집한 것도 맥을 같이한다.국민회의 鄭均桓 사무총장은 “한나라당이 국회에 낸 법무장관 해임건의안과,검찰 총장 탄핵소추건을 徐의원 체포동의안과 함께 일괄 처리하겠다”는 원칙론을 피력했다.야당의 의중을 떠보기 위한 의도된 발언으로 여겨진다.한나라당에서는 불기소 처분을 요구하고 있다.따라서 徐의원 처리의 해법이 대화의 물꼬를 트는 단초를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정치력 부재를 원인으로 꼽기도 한다.鄭총장은 “李총재가 비주류를 끌고가기 위해 강경 투쟁을 주도하고 있다”면서 “비주류는 어쩔 수 없이 노래방에 끌려가 주류가 노래를 부르면 박수를 치고 있는 형국”이라고 李총재의정치력 부재를 꼬집었다.그렇다고 여권이 면죄부를 받는 것은 아니다.정국경색의 원인이 어디에 있든 그 책임의 일정 부분을 여권에서 져야하기 때문이다.여야가 어떤 해법을 내놓을지 주목된다.
  • 비리판사 처리 앞둔 대법원

    대법원이 대전 법조비리 관련 판사 5명의 처리문제로 속앓이를 하고 있다.대법원은 검찰이 관련 판사들의 명단과 비위사실을 통보한 지 1주일이 지났지만 단죄를 바라는 검찰과 여론,대법원장의 경고 선에서 끝내야 한다는 판사들의 ‘항변’ 사이에서 묘책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이 와중에 ‘법원이 거물 변호사 양성소로 전락했다’는 수원지법 文興洙부장판사의 주장이 제기돼 대법원 수뇌부를 더욱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대법원은 판사들의 처리방향과 관련,검찰과의 형평성이나 여론보다는 내부의견에 더 무게를 두고 있는 것 같다.사법부의 독립성이라는 측면에서 여론에 끌려가지 않고 최대한 독자적인 결정을 내리겠다는 것이다. 부산고등법원 배석판사들과 서울지법 단독판사들은 지난 6일 법원장을 통해 대법원장에게 전달한 의견서에서 “지난날의 전별금을 이유로 법관들을 퇴진시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대법원장이 직접 나서 과거의 잘못된 관행을 반성하고 재발방지를 약속하자”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법원은 이같은 움직임에 힘을얻어 설 연휴 직전에 관련 판사들에 대한징계 등 처리를 마무리짓기로 했다.대법원은 ‘소환조사 후 진상규명’이라는 정공법을 채택하고 있는 듯이 언론에 흘리면서도 ‘일부 대법원장 경고’‘일부 소명 수용’하는 선에서 마무리지을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검찰에비해 지나치게 관대하다는 비판도 있겠으나 인사·제도 개혁방안을 함께 내놓으면 최소한 내부의 반발여론은 잠재울 수 있을 것이라는 게 대법원 수뇌부의 판단인 것 같다.
  • 中國거주 위안부할머니 위한 ‘동병상련’ 모금

    일본군대 위안부 출신 할머니들이 중국에 사는 같은 처지의 할머니 2명의귀향을 돕기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경기도 광주군 퇴촌면 ‘나눔의 집’(원장 慧眞 스님)에서 지내는 할머니 7명은 5일 서울 인사동의 전통찻집 ‘살마시 오소라’에서 중국 헤이룽장(黑龍江)성 순우(孫吳)현과 둥닝(東寧)현에 사는 文明今(82)池돌이 할머니(75)의 귀향비용 마련 행사를 열었다.행사는 7일까지 계속된다. 文할머니는 18살 때 끌려가 10년 동안 일본군 막사에서 갖은 고생을 겪었다.전쟁이 끝난 뒤에도 귀국하지 않았고 중국의 양로원에서 외롭게 지내고 있다. 池할머니는 군 위안소가 있던 마을 근처에서 지금까지 살고 있다.훈할머니처럼 한국말을 전혀 하지 못한다. 文할머니는 몇년 전 나눔의 집과 한국정신대연구소에 의해 생존사실이 확인됐다.지난해에는 중국에서 63년 만에 동생들을 만났다.“죽기 전에 고국 땅을 밝고 싶다”는 것이 文할머니의 바람이다.하지만 동생들은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초청할 수 없었다. 딱한 사연을 전해들은 慧眞스님은 중국대사관과 외교통상부 등을 뛰어다닌끝에 중국 정부의 출국허가를 얻었다.池할머니는 출국허가를 기다리는 중이다.(02)734-4388.金榮中 jeunesse@
  • 파동진정 검찰주변…“총장중심 단결” 대세속 일부 반발

    총장퇴진과 정치적 중립화 요구를 골자로 한 일선 검사들의 집단반발 파문이 2일 열린 전국 차장·수석검사 회의에서 ‘총장중심의 일치단결’을 결의함에 따라 진정국면에 접어들었다. 평검사 대표 59명은 3일 새벽 11시간여의 난상토론 끝에 “총장을 중심으로일치단결해 국민으로부터 신뢰받는 검찰이 되도록 노력하겠다”는 결의문을발표했다. 대검은 3일 전국 지검·지청별로 검사전체회의를 소집,2일 회의결과 등을널리 알리도록 지시하고 조직 안정을 거듭 당부했다. 서울지검은 이날 오전 10시30분 대회의실에서 전체 검사회의를 개최,전날회의 참석자들이 평검사들에게 회의내용을 설명했다. 이 자리에서 대부분의 검사들은 총장퇴진 요구 철회에 대해 공감했지만 일부 검사들은 회의 결과에 반발한 것으로 알려져 파문이 재연될 가능성은 남아있는 상태다. 한 검사는 “도대체 가서 한 일이 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다른 검사는“일을 시작할 때와 비교해보면 하늘과 땅 차이”라고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일부는 정치적 중립에 관한 의지표명이 없게 된 경위를 따지기도 했다. 이에 앞서 2일 오후 대검 청사에서 열린 전국 차장·수석검사 회의에서 검사들은 관행으로 여겨져 오던 떡값·전별금 수수 관행이 원죄였음을 참회하고 언론의 선정적 보도와 이를 방관한 지도부의 안이한 대처에 대해 성토했다. 한 검사는 “대전사건 수사에 임하면서 오도된 여론에 이끌려 검찰간부들을희생양으로 만들었다”면서 수뇌부의 용기있는 결단을 촉구했다.또 특정지역에 치중된 인사가 이번 기회에 없어져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한편 대검은 전국 차장·수석검사회의를 계기로 검찰 수뇌부와 일선 검사들의 폭넓은 의견교환이 필요하다는 지적에 따라 전국 평검사 회의를 정례화하기로 했다.또 정기인사에서 평검사들의 보직을 대폭 순환시키는 방안도 검토중이다.任炳先 bsnim@
  • 墺은행,홀로코스트 희생자에 9천만弗 배상

    ┑빈 AP 연합 ┑ 나치의 강제노동과 유태인 홀로코스트 희생자들에게서 강탈한 금 판매로 재미를 보았다는 비판을 받아온 오스트리아 은행이 배상금으로 9,200만달러를 지급하기로 했다. 홀로코스트 생존자측의 변호인 에드 페이건(미국)은 지난달 31일 오스트리아은행이 이처럼 비교적 적은 배상금을 무는 대신 독일 은행들에 대한 유사한 조사에 협력하기로 약속했다고 말했다고 주간지 포맷과 오스트리아통신이 보도했다. 5만여명에 이르는 홀로코스트 희생자들의 대표 5명은 지난해 독일계 은행 2개와 오스트리아계 은행들을 상대로 뉴욕 연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하고 이들은행이 죽음의 나치수용소로 끌려가는 유태인들의 재산들을 챙겼다고 주장했다.
  • [대한광장]동포애로 희망을/조비오 신부.광주가톨릭대 사회교육원장

    인간은 누구나 행복을 누리고 평화롭게 살 권리가 있다. 그러나 타인에 의해 행복과 평화가 깨뜨려지고 불행과 고통속에 인생을 살아 가기도 한다. 힘없고 가난한 사람은 힘있는 자들에게 억눌려 지내고 정치적,경제적 사건으 로 희생되고 상처입고 한맺힌 삶을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포로로 끌려가거나 평생을 감옥살이로 희망과 자유를 송두리째 빼앗기고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 그 누구도 행복하게 살 권리를 빼앗거나 자유를 짓밟아서는 안된다.자기 생 계를 위하여 함부로 선량한 사람의 자유와 인권을 빼앗고 남의 행복과 생명 마저 앗아가 버리는 참담한 사건이 세상을 어둡게 한다. 도산과 실직으로 행복한 가정이 깨지거나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인생은 누가 보상할 것인가. 국정을 잘못한 사람의 책임이 크다.기업인과 금융인의 책임이 크다.지식인과 언론인의 책임 또한 크다. 그 책임 추궁과 공과는 정의의 법으로 가려져야 한다.그래야 정의가 서고 역 사적 매듭이 지어질 것이다. 그것은 정치적 흥정이나 세력다툼이 아니라 정의와 진리의 토대위에 나라를 바로 세우기 위하여 사실 그대로가 밝혀져야 한다. 책임을 회피하거나 전가하는 것은 비굴한 짓이다.국가 부도위기로 인한 피 해자와 실직자와 국민을 위로해주고 힘을 북돋워 주며 희망과 신뢰감을 회복 시켜줄 수 있어야 한다.교회 자선단체와 사회복지 기관에서는 굶주린 자들이 한끼라도 해결할 수있는 사랑의 급식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실직자와 노숙자에게 근본적인 생활대책이 되지는 못할지라도 우선은 허기 진 배를 채워주기 위해 따뜻한 음식을 제공한다는 것은 사랑과 인정과 자선 의 마음이 없이는 할수 없는 일이다.다행히도 우리국민들은 인정이 많아 자 신도 부족과 결핍 속에서 생활하지만 자기의 한끼를 줄여 불우한 이들과 나 누려는 마음이야말로 얼마나 훈훈하고 아름다운 동포애의 발로인가. 지난해말 ‘1998년,지금 북한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나’라는 KBS 일요스 페셜에서 보여준 부모없는 꽃제비,북한아이들의 처절한 양상을 본 시청자들 은 동포의 연민으로 모두가 마음이 서글프고 분노에 가까운 아픔을 느꼈으리 라 생각된다. 사상과 정치적인 이념과 체제를 떠나 민족의 반쪽 한 세대가 파탄에 이른 현실을 우리는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수수방관만 하고 있을 수는 없지 않 은가? 천진난만한 어린이들을 길거리와 시궁창 땅바닥에 굶주림과 죽음으로 몰고도 장거리 미사일과 핵무기 개발에 총력을 기울이는 북한 위정자들은 이 러한 현실을 어떻게 해명할 것인가. 엄동설한에 굶주려 죽어가는 북한의 아이들과 굶주리는 남한의 노숙자들.동 포애만이 그들을 살릴 수 있고 한 시대를 같이 살고 있는 우리가 함께 살아 갈 길이다. 한 끼의 절약이 굶주린 동포를 살린다.참담한 처지에서 헤어날 길이 없는 동 포에게 한 끼의 선양이 어두운 밤을 비추는 빛처럼,굶주리는 이들에게 희망 의 빛이 되고 위로와 힘과 삶의 의욕을 주는 큰 사랑이 된다. 세상에는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는 사람도 있고 괴로움을 주는 사람도 있다. 우리는 기쁨을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사랑을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자선행위는 최고의 인간다운 자기표현이요,하느님의 명령이다.자선은 상대방을 구원하고 자신을 구원하며 동포를 구원한다.‘네 곳간을 적선으로 채워라.그러면 네가 모든 불행에서 벗어나리 라’
  • 대한포럼…북한개방은 생존의 선택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은 최근 국가정책센터 강연에서 북한에 대해“개방이냐 고립이냐를 선택”하라고 촉구했다.북한은 앞으로 1년 동안 평화와 관계개선을 추구하는 개방으로 나오든지 아니면 고립심화를 감수하든지두 가지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라고 역설한 것이다. 미국의 이같은 대북 개방촉구는 지하 핵문제와 미사일 개발에 대한 북한의이중적 태도를 더이상 수용할 수 없다는 강한 의지를 천명한 것이란 점에서앞으로 귀추가 주목된다.북한의 도식적 전략에 더이상 끌려다니지 않겠다는입장 전달과 함께 발상의 전환을 강조하고 있다.더욱이 미·북 기본합의는물론 제네바 핵협약에도 연연하지 않겠다는 전략 변경의 메시지를 전달했다는 점에서 북한의 대응이 관심을 모은다. 이와함께 러시아 국영 프라우다지(紙)도 최근 북한의 개혁,개방 필연성을정책특집으로 다루었다.특히 고르바초프 개혁·개방정책의 실패경험을 교훈으로 삼도록 평양당국자들에게 충고까지 하고 있다.최근 북한개방과 관련한이같은 국제적 시각은 한반도 평화정착은 물론 북한 내부의 총체적 위기를해소하는 핵심적 요인이라는 점에서 설득력을 갖는다. 북한도 내부적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개방의 불가피성을 인식하고 있다.더욱이 그동안 북한 주민들이 金日成주체사상이라는 상징과 강력한 카리스마 때문에 인내해왔던 경제적 욕구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실용주의적 개방을 시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金正日체제가 헌법 개정을 통해 기업의 독립채산제 허용과 개인소유의 허용범위 확대 등 일부 도입된 시장경제체제를 크게 보완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특히 金正日체제 출범 이후 심화되고 있는 주민들의 사상적 일탈 및 사회이완현상을 희석시키기 위해서도 개방은 필연적인 과제로 인식되고 있다.그러나 새로 출범한 金正日체제가 과연 과감한 개방정책을 선택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부정적 시각이 많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폐쇄체제를 고수해 왔고 공산권 국가들 중에서는 유일하게 스탈린식 통제·명령경제체제를 지속해 온 북한경제가 과연 주민의 의식변화,합리주의,실용주의 노선으로 연결되는 경제개혁을단행할 수 있겠는가하는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북한이 개혁과 개방이라는 변화의 불가피성은 인정하면서도 개방에 따른 체제위기라는 부작용을 의식해서 개방의 속도를 조절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다. 본격적인 대외 개방정책을 단행할 경우 중국에서 나타난 민주화시위와 같은 일련의 심각한 부정적 현상이 초래되고 개방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나타나는 자본주의적 사고와 행동양태는 金正日체제의 안보를 근본적으로 위협할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북한은 앞으로 金正日체제가 손상받지 않는 범위내에서 제한적 개방정책을 전개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북한이 원하든 원치 않든 북한 내부에 자본주의 바람은 불게 마련이다.북한이 아무리 튼튼한 장막을 치고 감시와 통제를 강화한다고 해도 주민들의 극심한 생활고 속에서 자생하고 있는 자본주의 의식과 생활양식은 결코 막을수 없다.북한의 개방은 역사의 필연이며 생존의 선택이라는 점을 강조하는대목이다.특히 우리정부의 대북포용정책은 민족의 화해와 협력의 길을 넓혀가는 데 근본목적이 있는만큼 북한은 개방 지향의 발상 전환으로 남북교류를 뒷받침해야 할 것이다.또한 그같은 변화가 빨리 와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바람이다.
  • 金永旭씨 모친 李賢卿여사 별세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金永旭씨(51)의 어머니 李賢卿여사가 24일 새벽 서울 운니동 자택에서 별세했다.향년 90세. 고인은 우리 음악계에 영재교육의 중요성을 처음으로 일깨운 인물로 金씨는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4살 때부터 바이올린을 배웠고 명교수 이반 갈라미언의 조련을 거쳐,명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이 ‘진정한 천재’라고 극찬하는 입신의 경지에 올랐다. 고인은 특히 李承晩 전대통령의 주치의였던 남편 金承鉉씨(93년 별세)가 50년전 구입한 운현궁 별채 영로당(永老堂)의 안주인으로 외국의 저명음악가들이 내한하면 자택으로 초대해 손수 만든 궁중음식을 대접해 온것으로 유명하다.金씨는 국내 연주회가 있을때면 꼭 이 고옥에 머물며 어머니 곁에서 마음의 안정을 찾곤 했다. 고인은 “진정한 교육은 개인의 개성을 최대한 발현시키는 것”이라는 지론에 따라 엄격하면서도 개인의 자유의지를 중요시하는 가정교육을 실천,슬하의 4남2녀를 인재로 키웠다. 막내 永旭씨 외에 장남 永軾씨(66)는 미국 UC버클리대 교수,차남 永琦씨(63)는미국 미네소타대 교수,3남 永珷씨(57)는 국내 대표적 법률회사인 김&장법률사무소의 대표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1주일전 모든 연주일정을 취소하고 귀국해 임종을 한 金씨는 “영로당이란집의 현판처럼 어머니가 영원히 늙기만 할 줄 알았는데 큰 스승을 잃어버렸다”며 오열했다.발인은 28일 오전 7시.(02)765-0021.
  • 친일의 군상(22회)-독립선언서 기초 崔南善

    육당(六堂) 崔南善을 ‘역사의 저울’에 달면 공(功)으로 기울까,과(過)로기울까? 공과가 교차되는 인물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참으로 어렵다.견해나 입장에따라 한 쪽으로 기울기 쉽기 때문이다.육당 최남선(1890∼1957)이 바로 그런 인물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흔히 육당은 3·1의거 당시 ‘독립선언서’를 기초한 독립운동가이자 사학자·문필가·출판인 등으로 알려진 인물이다.70이 안되는 생애를 살다간 그지만 그가 문화사 분야에서 남긴 업적은 결코 과소평가 될 수 없다. 육당은 1907년 18세의 나이로 출판사인 신문관(新文館)을 설립,계몽도서를출판하였다.또 이듬해에는 종합잡지 ‘소년(少年)’을 창간,창간호에 최초의 신체시 ‘해에게서 소년에게’를 게재한 사실은 우리 문화사 첫 페이지에기록돼 있다. 육당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민족적 면모는 그가 3·1의거 때 ‘독립선언서’를 작성한 사실이다.문체를 두고 지나치게 나약하다거나 한문투라는 비판적인 견해도 있지만 그는 이 일로 31개월간 감옥살이를 하였다.그러나 그는 다른 독립운동가들이받은 건국훈장을 받지 못했다.이유는 간단하다.그의 친일행적 때문이다. 친일파 중에는 초창기 민족진영에서 활동하다가 일제의 탄압이 극심해진 일제말기에 가서 친일로 변절한 사람이 상당수 있다.그러나 육당은 사정이 다르다.1921년 10월 가출옥으로 석방된 그는 출옥 직후부터 일제와 ‘교감’을 하고 지냈다. 출옥 이듬해 그는 16년동안 운영해온 신문관을 그만두고 동명사(東明社)를설립,주간지 ‘동명(東明)’을 창간하였는데 창간과정에서부터 일본측 인사로부터 도움을 받은 구석이 역력하다.출옥후 육당이 일본인 거물인사에게 보낸 편지에 이런 대목이 있다. “잡지는 ‘동명(東明)’이라는 이름으로 원서를 제출하였습니다(중략).잡지건은 진력한 성과가 가까운 시일안에 나타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금후의처분은 모든 것을 하나로 하여 선생님의 가르침에 어긋나는 일이 없도록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이 편지는 본지가 일본 국회도서관 헌정자료실에서 입수,처음으로 공개하는 것임) 특히 이 편지의 첫 부분과 끝 부분을 보면 정말 이 편지를 육당이쓴 것인지 의심이 갈 정도다.“지난날 (선생께서) 경성(京城,서울)을 출발하실 때부친과 함께 역까지 달려갔습니다만 공교롭게도 정각에 늦어 실례가 많았습니다.”우선 보고(報告)를 드리면서 이것으로 붓을 놓겠습니다.” 이 편지를 받은 사람은 사이토(齋藤實)총독의 정치참모이자 총독부 일어판기관지 ‘경성일보(京城日報)’의 사장을 지낸 아베(阿部充家)였다.‘독립선언서’를 기초한 애국지사 육당 최남선의 면모는 이미 보이지 않는다.3·1의거가 발생한지 불과 2년 9개월만의 일이다. 육당이 친일대열에 본격적으로 합류한 것은 1928년 10월 총독부의 역사왜곡기관인 ‘조선사편수회’의 편수위원직을 수락하면서부터다.조선사편수회는1911년 총독부가 ‘구습(舊習)제도의 조사와 조선사 편찬계획’을 목표로 발족한 단체.본래 목적은 조선을 영구히 강점하기 위해 조선인을 일본인으로개조한다는 ‘동화주의(同化主義)’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따라서 여기서 편찬하려는 조선사는 식민사관에 의한 조선사 왜곡이 주목적이었다.육당은 편수위원으로 위원회활동에도 참여하였으며 실무자로 직접편찬작업에 참여하기도 하였다(1928년∼36년).이밖에도 그는 총독부가 위촉하는 여러가지 위원직을 수락,일제에 협조했는데 이 공로로 그는 중추원 참의(주임관 대우·1936.6∼38.3)를 지냈다. 육당의 대표적인 친일행적중의 하나는 만주에서 있었다.중추원 참의를 물러난 직후인 1938년 4월 그는 만주행에 올랐다.처음 맡은 직책은 만주의 친일지 ‘만몽일보(滿蒙日報)’의 고문자리였다.원래 이 자리는 秦學文이 있던자리였는데 진씨가 다른 곳으로 옮겨가자 그 자리를 물려받은 것이다.1년뒤그는 다시 만주국의 엘리트 양성기관인 건국대학(建國大學) 교수로 부임하였다.대우는 칙임(勅任)교수에 월급은 400∼500원으로 최상급이었다.(‘삼천리’1938년 5월호). 사학자로 육당과는 절친한 친구였던 위당(爲堂) 鄭寅普선생이 그의 집 대문앞에 술을 부어놓고 “이제 우리 육당이 죽고야 말았다”며 대성통곡을 한것은 그가 건국대학 교수로 부임한 것을 두고 한 것이었다.육당은 이 대학예과에서 만몽(滿蒙)문화사를 강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편 건국대학 교수 재직중 그는 1940년 10월에 조직된 ‘동남지구 특별공작후원회본부’의 고문직을 맡기도 했다.이 단체는 일본 관동군의 반공·선무(宣撫)공작을 지원한 친일단체로 독립군과 항일빨치산을 상대로 한 귀순공작이 주임무였다.이 단체의 총무 朴錫胤은 육당과 처남-매부간으로 나중에만주국 외교부 조사처장,‘매일신보’ 부사장 등을 지냈다. 육당의 친일은 일제 말기까지 계속됐다.4년 7개월간의 만주생활을 청산하고 1942년 11월 귀국한 그는 칩거하면서 집필활동에 전념하였다.그러던중 이듬해말 총독부의 부탁으로 李光洙 등과 함께 일본으로 건너가 조선인 유학생들을 상대로 학병지원을 권유하는 연설을 하기도 했다.훗날 육당은 자신의 학병권유가 마치 조국의 광복을 대비하여 ‘민족 기간요원 양성’을 위한 행위였던 것처럼 변명하고 있지만 이는 설득력이 없다.속으로는 일제패망을 확신하고 있었는지 모르지만 당시 그는 일제의 필승을 장담하면서 대일본제국의성전(聖戰)을 위해 조선청년들이 전쟁터로 나가 죽어야 한다고 공언했다. 여기서 재미있는 일화 한 토막을 소개하면,그는 학병권유를 한 반면 그의 3남은 그와 정반대편에 서 있었다는 사실이다.경도(京都)상고 출신으로 동경(東京)제대 법학부에 재학중이던 그의 3남 漢儉(1922∼?)은 학병출진을 끝까지 거부하다가 해방을 맞았다.해방후 월북하여 문학대학·김일성대학에서 교편을 잡기도 했던 그는 부친의 친일행적 때문에 적잖은 곤욕을 치뤘다고 한다(북한 고위직 출신 신모씨 증언). 49년 1월 초부터 반민족행위자 검거에 나선 반민특위는 2월 들어 문화계 인사를 손대기 시작했다.2월 7일 마침내 육당의 우이동 집에 특위 조사관들이들이닥쳤다.자택에서 ‘조선역사사전’의 원고를 집필중이던 그는 “시대적현실을 역행할 수 없다”며 순순히 체포에 응했다.같은 날 세검정에서는 춘원 李光洙가 체포됐다.일제하 문화계의 양대 거물이었던 두 사람이 ‘역사법정’에 끌려나온 것이다. 마포형무소 수감시절 육당은 ‘자열서(自列書)’라는 일종의 ‘반성문’을쓰기도 했다.“내가 변절한 대목,즉 왕년에 신변의 핍박한사정이 지조냐학식이냐의 양자중 하나를 골라잡아야 하게 된 때에 대중은 나에게 지조를 붙잡아라 하거늘 나는 그 뜻을 휘뿌리고 학업을 붙잡으면서 다른 것을 버렸다.대중의 나에 대한 분노가 여기서 시작하며 나오는 것을 내가 잘 알며 그것이 또한 나를 사랑함에서 나온 것도 내가 잘 안다” 양자택일의 기로에서 학문을 위해 지조를 버렸다.이 선택을 그는 ‘변절’이 아닌 ‘방향전환’이라고 했다.명색이 학자를 자처한 그가 지조와 학식을 별개라는 궤변을 늘어놓고 있다.그에게 지조있는 지식인이 되어줄 것을 기대한 자체가 조선동포들의 착각이었는지도 모른다. 유학자이자 독립운동가인 심산 金昌淑선생이 대전형무소에 수감돼 있을 때의 일이다.한번은 전옥(典獄,교도소장)이 육당이 쓴 ‘일선융화론(日鮮融和論)’을 갖고 와서는 읽고 감상문을 쓰라고 했다.심산은 첫 몇 장을 읽고는책을 전옥에게 던지며 이렇게 호통쳤다.“나는 반역자가 미친 소리로 요란하게 짖어대는 흉서(凶書)를 읽고 싶지 않다.기미년 독립선언서가 남선(최남선)의 손에서 나오지않았는가.이런 사람이 도리어 일본에 붙어 역적이 되었으니 비록 만 번 죽여도 그의 죄가 남는다”고.
  • 금지문화 금지인생 이제야 말한다(15회)-문학평론가 金宇鍾씨

    “칸트도 ‘순수이성비판’에서 말하기를 ‘개념이 없는 직관은 맹목’이라고 했다.아무리 직관으로 아름다움에 통하는 시라 하더라도 거기서 시인이진정 무엇을 호소하려 했는지 그 개념이 빠져 있다면 그 시는 맹목의 시,동공이 빠져 있는 시,알맹이가 없는 시이다.그러므로 순수문학은 그 작법의 제1장 제1절부터가 진정한 예술정신의 타락을 의미하는 것이다” 문학평론가 金宇鍾씨(70)가 1965년 일본의 교포잡지 ‘한양(漢陽)’지에 발표한 ‘순수의 자기기만’이란 글의 한 대목이다.문학은 현실문제에 어떻게대응할 것인가.60년대 순수-참여논쟁의 중심에는 늘 金씨가 있어 풍요로웠고 든든했다.그에게 순수문학은 “겉볼상만 깨끗한 매춘부의 문학이요 도금(鍍金)문학이요 페인트칠 문학”이었다.그는 “순수의 성벽을 허물고 민중의 광장으로 뛰쳐나오라”고 외쳤다.그러나 그의 주장은 애당초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였다.60년대 순수문학에 대한 비판은 그를 문단의 미운 오리새끼로 만들었다. “순수비판과 참여운동은 60년대 초반에는 ‘현대문학’지를 중심으로 전개됐습니다.그뒤 60년대 중후반 ‘창작과 비평’ 등이 나오면서 이 운동은 한층 확산돼 갔지요.초기단계에는 어려움이 한 두가지가 아니었습니다.당시 문단은 순수문학의 독천장이었어요.한번 이단자가 돼 고립되면 발표지면도 얻기 어려웠지요” 金씨는 지난 57년 ‘현대문학’에 ‘은유법논고’와 ‘이상론’이 趙演鉉선생에 의해 추천되면서 등단했다.‘현대문학’은 처음부터 순수문학을 표방했다.그가 비록 ‘현대문학’을 통해 평단에 나왔지만 그 지면을 통해 순수문학 타도를 외치기는 곤란한 일이었다.‘한양’지에 글을 발표하게 된 것은 그런 연유에서다. 유신체제를 탄생시킨 朴정권은 문인탄압의 구실을 찾고 있었다.그러던중 문인 몇몇을 ‘한양’지와 연결시켜 이른바 ‘문인간첩단사건’을 만들어내게된 것이다.74년 2월 5일 서울지검 공안부는 “서울을 거점으로 한 ‘문인 및 지식인 간첩단’을 적발,李浩哲(43·소설가) 任軒永(34·문학평론가) 金宇鍾(45·경희대교수) 鄭乙炳(40·소설가) 張秉禧씨(필명 張伯逸·41·문학평론가) 등 5명의 문인을 반공법 위반 및 간첩혐의로 구속했다”고 발표했다.구속된 5명의 문인은 북한 노동당 재일공작지도원 金基深에 포섭돼 문단·언론계 등의 동태를 보고하고 반정부 활동을 선동하는 작품활동을 해왔다는 게 혐의 내용이다.한편 金基深은 49년 북한에서 일본으로 건너와 62년 민단에위장입적한 뒤 ‘한양사’란 회사를 세워 일본에 오는 문인·학자들을 포섭해왔다는 것이다.‘한양’지는 바로 金基深씨를 발행인으로 한 국문(한글)월간 종합지였다. 金宇鍾씨에 따르면 ‘한양’지는 1973년까지도 주일 한국공보관에 전시돼있었으며 국내에도 정식으로 수입·배포되던 잡지였다.정부기관이나 민단측에서도 이 잡지를 ‘불온’으로 문제삼은 적은 없었다.‘한양’은 구속된 5명의 문인들뿐 아니라 한국의 각계 인사들이 전부터 기고해오던 잡지로 불온서적으로 낙인찍은 것은 구실에 불과하다는 게 金씨의 설명이다. “‘한양’지는 민족주의적인 색채가 강했습니다.남한의 사회상과 정부시책을 비판적으로 본 측면이 있긴 했지만 그것이 곧 반국가단체의 위장출판물이라고 단정할 근거는 될 수 없어요.그럼에도 당국이 무리하게 기소를 감행한것은 피고인들이 73년 11월 문인 60여명의 연명으로 된 개헌요구 성명에 참여했기 때문이며 지식인 사이에 그런 개헌운동의 확산을 막아야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봅니다” 당시 검찰당국은 ‘한양’지의 자금 출처가 조총련쪽이라고 주장했다.그러나 그렇게 볼만한 증거는 찾기 힘들다.이에 대해 金씨는 金基深씨가 경영하는 ‘한양원’이라는 음식점에서 나오는 수익과민단계의 협찬광고 등이 그 재원이었다고 증언한다. ‘문인간첩단사건’으로 내몰린 5명의 문인들은 결국 검찰 발표에 앞서 73년 12월 투옥됐다.金宇鍾씨의 회고.“감옥에 들어가면서 이브 몽탕이 주연한 프랑스영화 ‘생사의 고백’의 한 장면이 떠올랐습니다.주인공은 억울하게스파이 누명을 쓴채 법정에서 진술하는 연습까지 강요당하지요.그는 텔레비전에 생중계되는 공개재판에서 할 수 없이 스파이임을 자백한 뒤 사형장으로 끌려가게 됩니다.제 경우 영문도 모르고 체포된 뒤 숱한 반증자료들을 제시했지만 무죄언도를 받지는 못했습니다.결국 몇개월의 형을 산 뒤 74년 6월집행정지로 풀려났습니다” 출옥되자 金씨는 경희대 국문과 교수직에서 강제휴직됐다.이어 76년 해직됐다.80년 덕성여대 국문과 교수로 취임하기까지 6년동안의 세월은 소태보다쓴 것이었다.그 시절 그는 피폐한 심신을 추스리기 위해,아니 생계를 위해그림 그리는데 몰두했다.“해일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나가 조개나 잡겠다는 패배주의적인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외려 깨어진 뱃조각을 주워 모아더 큰 고기를 잡겠다는 오기가 솟더군요.그때 그린 그림들은 모두 분노의 시절 제 마음의 무늬들입니다” 金씨의 삶의 자취는 75년에 나온 에세이집 ‘그래도 살고픈 인생’(학진출판사)에 그대로 드러나 있다.한낱 수상집에 불과하건만 유신당국은 이 책을긴급조치 4호 위반으로 금서목록에 올렸다.“판금조치가 된 이유를 알 수 없어요.살풍경한 감옥의 일상을 그린 글 ‘옥중인생’이 당국의 눈에 거슬렸는지…” 엄혹한 ‘겨울공화국’에서도 金씨는 희망을 잃지 않았다.생명에 대한 경외감이 그를 부축했다.그때의 심경을 그는 글로 남겼다.“비단실을타고 봄의 정액이 땅속으로 스며든다.얼어버린 대지는 어느새 봄을 잉태하고…” 그래서 그에게 인생은 ‘그래도 살고픈’ 것인지 모른다.서슬퍼런 감옥의 한평 쪽창 어둠 속에서도 그는 밝게 타오르는 촛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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