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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언론 문건 파문] 여권 이젠 ‘민생·개혁현안’주력

    국민회의가 ‘언론 문건’에 시달리던 정국의 흐름을 ‘민생과 개혁’쪽으로 되돌리고 있다.‘언론 문건’관련 진실 규명은 국회 국정조사에,법적 처리는 검찰 수사에 맡기고 정치권은 산적한 민생·개혁 현안에 주력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를 위해 여당은 이번 사건을 ‘정치적으로’ 매듭짓고 정기국회 활동에전념키로 했다.국정운영의 한 축을 책임진 여당으로서 무작정 야당의 정치공세에 끌려다닐 수 없다는 판단이다.당초 한나라당이 주장한 ‘여권인사 개입설’이 사실무근으로 밝혀진 마당에 계속 소모적인 공방에 휩쓸릴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특히 각종 국회 현안은 정치권의 ‘손길’을 재촉하고 있는 상황이다.오는3일 예결위와 상임위를 가동,내년도 예산안 예비심사와 법률안 심의에 착수하기로 여야가 합의했지만 ‘언론 문건’관련 국정조사 협상과 맞물려 진통이 예상된다. 게다가 국회 정치개혁입법특위 활동시한이 11월30일까지로 돼있고 내년 총선에서 적용할 선거법 확정도 시급하다.내년 예산안 법정시한도 12월2일로한달 남짓밖에 남지않았다. 이번 정기국회에서 반드시 처리해야 할 법안도 정부제출 112건 등 150건 안팎에 이른다.서민 세금경감을 위한 각종 세법 개정안,제조회사의 책임강화를 내용으로 하는 제조물책임법안 등 민생법안과 총액출자제도 부활을 골자로하는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법 개정안 등 경제개혁관련 법안,인권법·비영리민간단체지원법 제정안 등 주요 개혁법안이 쌓여 있다. 직장·지역의보의 통합을 2년 연기토록 한 국민건강보험법 개정안이나 이견이 팽팽한 인권법·통합방송법 제정안,법개정 자체를 둘러싸고 논란이 일고있는 국가보안법 개정안 등 진통이 예상되는 법안도 곳곳에 깔려 있다. 이만섭(李萬燮)총재권한대행 등 당 지도부가 휴일인 31일 여의도당사에서당3역회의를 갖고 “한나라당이 차분하고 냉정한 자세로 국정현안을 논의하는데 적극 임해야 한다”고 촉구한 것도 “민생과 개혁 현안을 더이상 미룰수 없다”는 인식에서 비롯됐다.박홍엽(朴洪燁)부대변인은 회의 직후 “산적한 예산안 처리와 정치개혁협상 등을 위해 한나라당은 근거없는 정치공세를자제하고 국정현안에 매달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이대행과 이영일(李榮一)대변인의 고발 등 한나라당의 정치공세에는단호하게 대응키로 했다.박부대변인은 “이번 사건에서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면밀히 검토하고 있다”고 은근히 한나라당을 압박하며 자세 변화를 당부했다. 박찬구기자 ckpark@
  • [오늘의 눈] 정형근의원의 궤변

    ‘언론 문건’을 폭로한 한나라당 정형근(鄭亨根)의원은 언제까지 억지 주장을 펼칠까.또 한나라당은 정치를 희화화하는 정의원의‘1인 독무’에 마냥끌려만 갈 것인가. 정의원은 문건의 ‘작성자’(중앙일보 文日鉉기자)와 ‘전달자’(평화방송李到俊기자)가 밝혀진 29일까지 “문건 작성 및 청와대 전달과정에 ‘이종찬(李鍾贊)국민회의 부총재-이강래(李康來)전청와대 정무수석팀’이 관여했다”는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도리어 여권의 ‘역(逆)공작’을 제기하며궁지에서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썼다. 특히 끝까지 보호하겠다던 제보자의 신원을 28일 밤 전격 공개하면서 “이기자가 여권의 ‘역공작’에 이용당하고 있다”고 주장한 대목은 할 말을 잃게 한다. 그는 정치에 입문하기 전 오랫동안 정보분야에 근무하며 나름대로의‘명성’을 쌓아 왔다.하지만 이번 만큼은 ‘작전’에 성공하지 못하고‘실패’로 끝날 게 점점 확실해지고 있다.문건의 신빙성을 배가하기 위한 검증작업을 제대로 하지 않고 당내 지휘 계통을 무시한 점은 누가 뭐래도 그의책임이다. 무차별적인 폭로로 공당(公黨)의 이미지를 훼손함은 물론 정치권 전체에 대한 불신을 더해 주었기 때문이다. 동료 의원들의 얘기를 들어봐도 그렇다.그와 가까운 한 의원은 “정의원이지난 25일 국회 정치분야 대정부 질문 시작 10분 전에야 비로소 이회창(李會昌)총재에게 문제의 문건을 보고한 뒤 폭로했을 때부터 당혹감과 불안감을떨쳐 버릴 수 없었다”면서 “당 지도부와 미리 조율했더라면 이처럼 궁지에몰리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보고 체계의 문제점을 그대로 노출했다는 지적이다. 특히 이 사건의 ‘키’를 쥐었다고 볼 수 있는 ‘문건 전달자’ 대목에 이르러서는 의원들조차 넋을 놓는 분위기다.정의원은 제보자에 대해 “이부총재의 가까운 측근으로 성실하고 훌륭한 인격과 성품을 가진 사람” 등의 말로 계속 연막을 쳤다. 그러나“언론의 속성상 기자를 어떻게 믿나”라고 한탄한 한 핵심 당직자의말에서 한나라당이 현재 처한 ‘위기감’을 읽을 수 있다. 그렇다면 정의원과 한나라당, 특히 이총재는 적어도 이 부분에 대해 진솔한사과를 하는 게 도리가 아닐까. [오풍연 정치팀 차장 poongynn@]
  • 새달 18일 금세기 마지막 ‘우주쇼’

    다음달 18일 새벽 1시부터 5시40분사이 별똥별이 쏟아져 내리는 사자자리유성우(流星雨)현상이 펼쳐진다. 흔히 별똥별이라고 부르는 유성은 우주공간을 떠돌던 티끌,먼지 등이 지구중력권 안으로 끌려 들어와 떨어지면서 대기와 마찰로 인해 불타는 현상이다. 유성들이 비처럼 쏟아지는 경우를 유성우라고 한다. 사자자리 유성우는 ‘템펠-터틀’혜성이 지나가면서 남겨진 물질들이 유성체가 된다.매년 11월 14∼20일 나타나는데 유성이 가장 많이 떨어지는 날은보통 11월 17일.평년에 시간당 떨어지는 유성은 평균 10∼15개이지만 템펠-터틀 혜성이 동반하는 유성체의 띠가 지구궤도를 통과하는 33년마다 유성개수가 보통 시간당 수백∼수천개를 기록한다.일부 천문학자들은 사자자리 유성우가 98년부터 2000년 사이에 이같은 폭우를 퍼부을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의 경우 33년만에 지구가 템펠-터틀혜성이 지나간 궤도를 통과하기때문에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아시아에서 기록적인 유성우가 관측될 것으로예상됐으나 실제로 유성우는 유럽(시간당 340개)에 집중돼 실망을 안겼었다.
  • 고위직 병역공개 내용및 의의

    사상 처음으로 고위공직자의 병역내역이 29일 샅샅이 공개됨에 따라 병무행정은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됐다. 앞으로 본인은 물론 직계비속까지 병역문제에 대한 투명성을 담보하지 못하면 고위공직으로의 진출이 사실상 불가능하게 됐기 때문이다. 지난해 병무비리문제가 표면화되면서 우리 사회는 가진 자와 못가진 자,권력층과 서민층 사이에 불신의 골이 한층 깊어졌다.‘힘 없고 못가진 어둠의자식만 군에 끌려간다’는 자조적인 분위기가 군 내부에까지 확산되는 상황이 빚어지기도 했다.따라서 병역실명제가 실시돼 ‘특권층’의 병력사항이만천하에 공개된 이상 이같은 논란은 한결 사그라들 것으로 예상된다. 이날 공개된 고위공직자 및 자녀의 병역면제율은 일반인(36.5%)의 절반 수준인 17.8%로 수치상으로는 ‘건전한’ 것으로 평가된다.그러나 일반인들의병역면제 사유가 대부분 학력미달이나 생계곤란,고아,범죄 전과 등임을 감안하면 결코 낮은 수준은 아니라는 게 병무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내용면에서도 과거 성행했던 병무비리 연루의혹이 물씬 풍기는 면제 사유도적지 않다. 대표적인 기관이 입법부가 될 것 같다. 막노동보다 더 힘들다는선거운동을 거뜬하게 견디어 내는 국회의원 32명이 질병으로 군입대가 ‘좌절’됐고 22명은 의병제대한 것으로 밝혀졌다.국회의원 자녀도 5명 중 1명꼴로 질병 등으로 군에 가지 못했다.병명도 병무비리 수사당시 단골메뉴였던척추디스크나 안과계통이어서 의혹의 눈길이 가시지 않고 있다. 적잖은 직원들이 병무비리에 연루됐던 병무청 역시 직원들의 병역면제율은4%에 불과하나 자녀들의 병역면제율은 18.4%로 여타 고위공직자 자녀들의 병역면제율보다 월등히 높아 ‘빗나간 자녀사랑’의 의심을 받고 있다. 고위공직자 4명이 우울증이나 자폐증 등 정신과질환으로 군복무를 면제받았고 직계비속 정신질환자도 7명이 된다는 점도 석연치 않은 대목이다. 따라서 과거 어떤 이유로 병역이 면제됐든 병역실명제가 제대로 뿌리를 내리려면 면제사유에 대한 철저한 검증작업이 뒤따라야 한다는 게 지배적인 의견이다. 한편 병무청의 확인작업을 거쳐 이날 공개된 내용은 입영일자,전역일자,전역사유 등이며,병적관련 공부상 확인이 가능한 내용만 공개됐다. 공개기준에따르면 29년생 이전 출생자는 ‘병역법 제정 이전으로 병적부 작성안됨’으로,병적부가 보존연한 경과로 폐기된 경우에는 ‘병적부 보존기간 경과로 기록없음’으로 표기됐다. 우득정기자 djwootk@ *기관별 병역내역 분석 청와대와 입법·사법·행정부별 주요 공개대상자의 병역실태를 정리한다. [청와대·행정부]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해상방위요원으로 근무했으나 병역법이 만들어지기 전이어서 병역기록이 없다.김중권(金重權)비서실장과 청와대 수석 8명 가운데 김정길(金正吉)정무,김성재(金聖在)민정수석 등 2명이질병 사유로 면제됐다. 행정부처 고위공직자 719명(여성 10명 포함) 가운데 병역을 마친 사람은 606명,면제자는 103명이다.장관 18명 가운데 면제자는 강봉균(康奉均)재정경제,김성훈(金成勳)농림,정덕구(鄭德龜)산업자원부,진념(陳稔)기획예산처장관등 4명으로 경제부처가 많은 편이었다. 장관 아들 23명 가운데 5명은 소아마비·근시 등질병으로 병역을 면제받았다.직급별로는 장·차관급 91명 가운데 21명(23.6%)이 면제됐고,1급 공직자213명 가운데 45명(21.8%)이 면제됐다. [국회 국회의원] 10명 중 3명은 국방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김종필(金鍾泌)총리를 제외한 국회의원 287명(여성의원 11명 제외)중 병역의무를 행한 사람은 206명이었다.병역이 면제된 의원은 81명이었다. 당별로는 한나라당의 면제율이 가장 높았다.한나라당이 31.7%(40명),자민련27.7%(15명),국민회의 24.8%(25명) 순이었다. 반면 현역입영률은 국민회의 68.3%(69명),자민련 66.6%(36명),한나라당 64.3%(81명) 순이었다. 국민회의 김영배(金令培),자민련 박철언(朴哲彦),한나라당 이부영(李富榮)의원 등 45명은 부자(父子)가 함께 병역을 필한 ‘현역가족’이다. 반면 한나라당 박주천(朴柱千),국민회의 박정수(朴定洙),자민련 김용환(金龍煥)의원 등은 본인은 물론 가족중 한 명도 현역으로 군복무를 필하지 않았다. [법원·검찰] 법조계 인사의 병역면제율은 18.42%로 전체 고위공직자 평균병역면제율인 17.4%를 약간 웃돌았다.그러나 법조인 아들들의 면제율은 6.05%로 전체 고위공직자 자제 평균 면제율(10.1%)의 절반 수준이었다. 최종영(崔鍾泳)대법원장은 육군대위로 만기 전역했고,외아들은 육군대위로복무중이다.대법관 13명과 고·지법원장급 23명은 전원이 육군 또는 공군 대위·중위로 전역했다.고위 법관의 아들 124명 가운데 8명이 질병을 사유로면제됐다. 검찰은 검사장급 이상 48명 가운데 39명이 복무를 마쳤고 면제자의 경우 질병 사유가 4명,질병 이외의 사유가 5명이었다. 박순용(朴舜用)검찰총장은 육군대위로 만기 전역했고,장남은 현역병 입영대상으로 법무사관 후보생으로 있으며 차남도 재학중 입영연기가 돼있는 상태다.대전고검 채수철(蔡秀哲)차장검사는 생계곤란을 이유로 면제가 됐으나 장남은 현역입영을 신청했다. [지방자치단체] 서울시의 경우 고건(高建)시장은 58년 제1보충역에 편입된뒤 79년 병역의무가 끝났으며 강홍빈(康泓彬)행정1부시장은 질병으로 징집이면제됐다. 부산시는 20명 가운데 전진(全晋)행정부시장과 안영일(安英一)부산진구청장이 질병으로 징집 면제를 받았을 뿐 대상자 모두가 군대에 다녀왔다.광주시는 8명중 고재유(高在維)시장을 비롯해 6명이 병역을 마쳤다. 전북도에서는 대상자 16명중 김완주(金完柱)전주시장 등 4명이,전남도는 27명중 이영권 장흥대학장 등 7명이 병역 의무를 다하지 못했다.경북도는 대상자 27명중 노병용 정무부지사 등 5명이,경남은 25명중 고영호 거창전문대학장 등 7명이 질병 등의 사유로 병역을 면제받았다.제주도에서는 5명중 김태환(金泰煥)제주시장이 고령으로,신철주(申喆宙)북제주군수가 체중미달로 군대를 가지 못했다. 박정현 김재순 김성수 강충식기자 jhpark@ * 병역 면제사유등 특이사례 29일 공개된 고위 공직자 병역사항 가운데 신상우(한나라당)국회부의장이‘육군 이병 탈영삭제’로 표기돼 단연 눈길을 끌었다. 국회 국방위원장을 역임한 신부의장은 59년 3월 입대후 탈영했다가 10년 만인 68년말 국방부의 특례조치로 보충역 편입과 동시에 전역한 것으로 드러났다.탈영 경력자는 신부의장을 비롯,도의원 1명,시의원 2명,군의원 3명 등 모두 7명이다. 입영기피자는 외교통상부 김석현 외교안보연구원을 비롯,시의원과 군의원각 1명,구의원 6명 등 모두 9명이다.김연구원은 67년 소집에 불응한 이후 병적기록이 남아 있지 않았다. 김봉호(국민회의)국회부의장도 질병으로 징집면제 처분을 받았으나 병명은공개되지 않았다.한나라당 이세기·한이헌 의원,국민회의 조세형 의원,자민련 김용환·지대섭 의원 등 모두 32명의 국회의원이 질병으로 군면제 처분을받은 것으로 집계됐다. 한나라당 서상목 의원은 영주권 취득으로 군복무를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보충역에 편입됐다가 병역을 치르지 않고 소집면제 처분을 받은 국회의원도 한나라당 김덕룡 의원을 비롯,23명이나 됐다. 이홍구 주미특명 전권대사와 한나라당 강용식 의원,이진설 서울산업대총장 등14명은 병적부에 군복무 기록이 없어 ‘병적부에 기록되어 있지 않음’으로공개됐다. 의병전역한 고위공직자는 이기호 청와대경제수석비서관 등 156명,직계비속은 외교통상부 박영준 대사의 장남 등 74명이었다.기관별 의병전역자는 기초및 광역의회가 86명으로 가장 많았고 ▲국회 22명 ▲자치단체 17명 ▲교육부 15명 ▲외교통상부 8명 ▲행자부 2명 ▲대통령비서실 1명 ▲검찰 1명 ▲경찰 1명 등이었다. 병역내역이 공개된 전체 1만2,674명 가운데 강원도 원주시의회 양창운 의원이 가장 모범적인 사례로 꼽혔다. 우득정기자
  • [오늘의 눈]‘性 해방’과 시대조류

    ‘성의 도전’이 거세지고 있다.탤런트 서갑숙씨(38)의 ‘나도 때론 포르노그라피의 주인공이고 싶다’가 세간의 화제를 모으고 있다.벌써 5만부 이상팔리는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고 한다. 이런 분위기는 전혀 새로운 게 아니다.올 상반기 ‘O양의 비디오’는 PC통신에서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비정상적인 관계’를 그린 영화 ‘거짓말’도 엄청난 관심을 끌고 있다.최근 부산영화제에서 상영되자 인산인해를 이뤘다.이뿐만 아니다.TV,인터넷,서점가 등에는 ‘성’이 넘쳐 흐른다. 이같은 요즘의 ‘성의 해방’은 한가지 특징을 갖고 있다.여성이 주도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점이다.일부에서는 이런 현상이 상업적인 ‘성의 판매’에 불과하다고 폄하한다.스토리와 구성의 탄탄함보다는 말초적 감각을 자극해 ‘손님’을 끌려는 얄팍한 수법이라는 것이다.특히 세기 말에 편승한장삿속이라고 개탄한다. 그러나 당사자격인 여성계의 시각은 전반적으로 다르다.서씨의 책을 ‘괜찮게 썼다’고 후하게 점수를 준다.“남성의 음성적인 성뿐 아니라 여성의 음성적인 성도 떳떳하게 공개돼야 한다”는 주장이다.특히 서씨의 경우 “공인이면서도 솔직하게 자기를 표현했다”고 칭찬하는 여성학자들도 많다.‘거짓말’ 등의 영화도 마찬가지다.다소 문제가 있지만 창작의 자유로운 정신을막으면 안된다는 입장이다.우리 문화의 가장 큰 맹점이 창작성 부족이기 때문에…. 그러면서 여성계는 서씨의 책에 모아진 ‘이상 열기’에 고개를 갸우뚱한다.“여자가 주인공이라 그런 것 아니냐”고.여성 장관,방송인 백지연,남자접대부 처벌,옷 로비 등 여성과 관련된 사안 등이 크게 화제를 부르는 것과 동일선상이 아니냐는 시각도 갖고 있다. 요즘 여성들이 달라지고 있다는 증거는 무척 많다.이혼율이 높아지고 있으며 여자가 먼저 이혼을 신청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또 미혼여성의 48%는 ‘결혼은 선택’이라고 답한다. 물론 성의 무분별한 해방은 사회발전을 가로막는다.그러나 댐이 무너질 때는 물이 격류로 흐른다.또한 고인 물은 썩게 마련이다.이번 서씨의 ‘도발’은 이런 차원에서 봐야 되는 게 아닐까. 21세기에는 여성과 남성이 평등한 관계를 형성해야 한다는 건 남성 지식인등도 강조한다.그렇지만 서씨의 책이 화제가 되는 것은 말로는 21세기의 패러다임 변화를 떠들지만 아직 의식이 봉건적으로 낙후돼 있다는 반증이다.사족 한마디.검찰이 이 책을 ‘건전한 풍속을 해치는 것’으로 보고 처벌하려한다면 도도한 사회변화의 흐름을 몰라도 한참 모르는 당랑거철(螳螂拒轍)의 몸짓이란 생각이 든다. 박재범 특집기획팀 차장jaebum@
  • [변혁으로서의 문학과 역사](38)한수산’욕망의 거리’

    연행 인사들은 대략 2박3일 내지 4박5일 코스로 전혀 예기치 못했던 혹독한고통을 당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는데,우선 당사자인 한수산은 이렇게 털어놓는다. “나는 공항에서 눈이 가려졌고,신원을 알 수 없는 세 명의 건장한 사내들에게 양팔과 허리를 ‘달랑 들려져’ 차에 태워졌고,우박처럼 쏟아지는 폭행속에서 승용차 재떨이에 이마를 처박힌 채 어디론가 끌려갔다.거기서의 며칠 몇 밤을 이제와서 떠올릴 분노조차 나는 가지고 있지않다.도구만은 기억한다.찢기고 부서져 가는 내 알몸 위로 쏟아지던 몽둥이,물,전기,주먹과 발길,매어달림….”(신동아 1987.12)작가에게 시종 추궁한 것은 ”현 정부에 대하여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느냐?“는 것이었던 데 비하여 정규웅부장에게는 더 한층 가혹했다.수사관은 정부장을 작가 한수산의 배후 조종인물로 설정하고 그 틀에 맞추려는 낌새였다.어느 필화나 그랬듯이 그 구성요건은 필자 한 사람만의 책임이 아니라 배후 조종인물을 가상하고 있다.말하자면 정부장은 반정부적 시각을 가지고 자신이책임지고 있는 신문지상을 통해 한수산으로 하여금 반정부 사상을 사주했다는 식이었다.여기서 끝나면 오히려 간단하다.존재하지도 않는 정부장의 배후 조종세력이 누구인가를 밝혀내는 것은 여간 어렵지 않을 테고 그 난이도에비례해서 매타작은 더 더욱 심해지기 련이다. 과연 위에 인용한 구절 때문에 이들은 고문을 당해야만 했는지,국가와 사회에 위해를 끼쳤는지에 대한 해답은 곧 필화사건은 원천적으로 불필요하다는인식으로 이어질 것이다. 이 사건으로 가장 억울했던 인사로는 박정만 시인을 꼽는다.고려원 출판사편집부장으로 작가 한수산을 몇 번 만났다는 사실 때문에 연행된 박시인에게 가해진 고문은 간첩 불고지죄 정도에 해당하는 가혹한 체벌이었다.시인은‘저 쓰라린 세월’이란 시집 ‘후기’에서 ”나를 죽인 것은 5월의 그날이다…광주사태로 민심은 소란하고 힘을 결집할 곳이 없었다.그런데 왜 가십란에도 못 오르는 뭇매가 나를 때리는가.적어도 나는 건강하게 살려고 했던 이 땅의 보통사람에 불과했다”면서 고문의 고통을 시로 읊었다. ”펄펄 끓는 물솥에수건을 적셔/내 몸의 어혈 위에 찜질도 하고…/탕기에선 한밤내 부글부글/죽은이들 끓는 소리/절명하라,절명하라,절명하라/이를 갈다 이를 갈다/가슴도 부글부글 소리를 내고…/분노도 피딱지도 약에 녹아/하나 되고”작가 한수산은 “전화번호부 두께의 책으로 만들 수 있을 것 같다”는 다양한 “고문으로 인한 육체적 고통보다는 인간에 대한 혐오감 극복이 더 힘들었습니다”라고 이 사건을 회고했다. 그는 고문 후유증으로 가끔의 폭음과 10여일씩 자취를 감추는 기행을 저지르다가 1988년 9월 일본으로 떠났다.한수산은 이해 5월 28일 교보문고의 ‘작가와의 대화’에서 “일체의 연재를 중단함과 아울러 TV와 영화에 의해 자신의 작품이 영상화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며,어떤 매스컴에도 얼굴을 내놓지 않겠다는 작가로서는 매우 의미심장한 선언”(이문재의 글)을 한 바 있다. 시인 박정만은 어땠을까.고문 이후 그는 심한 육체적·정신적 공허감으로 삶의 보금자리를 잃은 데다 병마까지 겹쳐 1988년 10월 2일 타계했는데,누구도 박정만 시인은 고문 후유증으로 일찍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았다. 소설 ‘욕망의 거리’는 80년 5월의 군부독재가 남긴 가장 비인간적인 필화사건의 한 전범으로 남을 만하다. 任軒永 문학평론가
  • [사설] 주목되는 日고법 판결

    일본의 전후 보상과 관련하여 최근 오사카(大阪)고등법원이 내린 판결은 일본정부의 보상방침에 대해 법원이 처음으로 위헌의 소지를 지적했다는 점에서 관심을 끈다.2차대전때 징용으로 끌려갔던 이들의 보상청구소송에 대해재일한국인들이 처한 딱한 사정을 깊이 동정한다며 법적 구제의 필요성을 인정한 법원의 판결은 그동안 여러차례 있었다.그러나 위헌소지를 지적하며 관련조항의 개폐 등을 제시한 상급법원의 첫 요구에 대한 일본정부와 의회의후속조치가 주목된다. 일본 오사카고등재판소는 지난 15일 2차대전때 일본군의 군무원으로 강제징용돼 중상을 입은 재일한국인 강부중(姜富中·79)씨가 일본정부를 상대로 낸 ‘장애연금지급청구 각하처분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재일한국인에게 일본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원호법에 따른 장애연금을 지급하지 않는 것은 법앞에 평등을 정한 헌법과 국제인권규약에 위반된다는 의심이 있다’고 판결했다.재판부가 연금지급 등 원호의 내용은 입법정책에 속하는 문제라는 이유로 강씨의 청구를 기각한 것은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그러나 국회가 관련조항의 개폐 등 신속한 시정조치를 취하지 않을 경우 국가배상법상의 위법행위로 평가될 수 있다고 지적한 것은 보상문제를 적당히얼버무리고 넘어가려는 일본정부에 따끔한 경고가 아닐 수 없다. 2차대전중 일제에 의해 강제로 징용돼 전쟁터로 끌러간 한국인은 20여만명이 넘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이중 3,000여명이 현재 일본에 생존해 있지만 죽을 때까지 연금을 타고 있는 일본인과는 달리 한푼도 보상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연금법 및 원호법의 지급대상이 일본인으로 국한돼 있다는 이유 때문이다.65년의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모든 보상문제가 완전히 해결됐다는 입장을 지키고 있는 일본정부는 최근들어 재일한국인 피해자들에게 연금대신 일시금을 지급하는 특별보상법의 제정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21세기를 맞아 한·일 양국은 새로운 동반·협력관계를 다짐하고 있다.이는 일제 강점과 침략전쟁으로 이웃에게 말할 수 없는 고통과 피해를 주었던 20세기의 불행한 과거사를 말끔히 청산하는 것을전제로 하는 것이다.침략전쟁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고 솔직한 사죄와 함께 충분한 전후보상이 이루어져야 한다.강제징용된 재일한국인 뿐아니라 일본군 위안부문제도 마찬가지다.정부 차원의 보상을 피하려고만 할 것이 아니라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 책임지고 과거사를 깨끗이 마무리하는 것이 마땅하다.새로운 한·일관계를 위하는 길이고 일본의 국제적인 위상과 역할에도 걸맞은 일이라고 본다.오사카고등법원의 판결을 계기로 일본 정부와 의회의 대승적인 후속조치가 신속히뒤따르기를 기대한다.
  • 6·25참전 美軍증언

    [워싱턴 AP 연합] 1950년 8월 3일 미군은 왜관교와 고령교를 폭파하면서 수백명의 양민도 함께 숨지게 했으며,이 일이 있기 전에도 피란민들에게 총격과 포격을 가해 숨지게 했었다고 미 참전병사들은 증언했다. 제대군인인 에드워드 L.데일리는 왜관교의 경우 북한 인민군의 남진으로 밀려드는 피란민들을 저지하기 위해 피란민 머리 위로 경고 사격을 했지만 별도리가 없었다고 말했다. 피란민의 남하를 저지하는데 실패한 미 1기갑사단 사령관 호바트 게이 소장의 지시로 왜관교에 장전한 폭약을 터뜨렸으며,폭발과 동시에 불길이 치솟았고 교량 지지대들이 산산조각났다고 데일리 등 다른 병사들이 전했다. 왜관교에서 40㎞ 하류에 위치한 길이 195m의 고령교 폭파도 이보다 약간 앞서 일어났으나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당시 미 육군 공병이었던 조지프 이포크는 “나는 ‘사람들이 있다’고 외쳤지만 다른 병사들이 ‘폭파해야 한다.달리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고 회고했다.제14 전투공병대 병장 출신의 캐럴 킨즈먼은 “제 14 공병대가 이틀간에 걸쳐 3,000㎏의 폭약을 설치한 뒤 당일 오전 7시 1분에 폭파 명령이 떨어졌으며 이어 폭발과 함께 다리가 산산조각났다.당시 다리에는 피란민들이가득했다”고 말했다. 앞서 1기갑사단 병사들은 다리 폭파가 있기 하루 전인 2일 수십명의 다른군인들과 함께 낙동강으로 퇴각중이었으며,이들 뒤를 80명 가량의 흰옷 입은 한국인 피란민들이 뒤따르고 있었다고 참전병사들은 전했다.그런데 오후 민간인으로 가장한 5명의 인민군이 그들 앞에 나타났다. 당시 상황을 에드워드 데일리는 “북한군이 발포하자 즉각 사살했다”고 말한 반면,유진 헤슬먼은 “인민군들이 항복해 끌려갔다”고 엇갈린 증언을 했다.헤슬먼은 “인민군들이 피란민 사이에서 나왔다고 생각됐기 때문에 우리는 피란민들을 제거하라는 명령을 받았고 대부분 사살했다”고 말했다. 이보다 1주일 전쯤에도 서울에서 남동쪽으로 160㎞ 떨어진 철길을 따라 걷던 피란민 수백명에 대해 미군의 박격포 공격이 이뤄졌다고 1기갑사단 재향군인들은 회상했다. 제임스 맥리어는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대령이 포대에 무전을 보내 그들이 남하하지 못하도록 죽이라고 지시했다”면서 “포탄이 떨어진 뒤 팔다리,몸뚱이가 어지럽게 널렸다”고 덧붙였다.
  • 검찰, 행인 감금·폭행 파문 진범 잡히자 사과않고 풀어줘

    검찰 수사관들이 불법 도·감청사범 수사 과정에서 무고한 시민 3명을 불법체포해 감금·폭행했다는 주장이 제기돼 파문이 일고 있다. 양경주(梁景周·36·제주시 아라2동)씨 등 3명은 13일 “지난 2일 오후 3시30분쯤 서울 종로구 세운상가에서 서울지검 강력부 수사관들에게 불법 체포됐다”고 주장했다.양씨 등은 방송음악제작에 필요한 시장조사차 이곳에 들렀다가 갑자기 덮친 3∼4명의 건장한 청년들에게 영문도 모른 채 끌려갔다. 양씨가 “왜 이러느냐.당신들은 누구냐”며 항의했으나 이들은 신분도 밝히지 않은채 “이 ××야,따라와”라고 폭언하며 한적한 곳으로 끌고 갔다.이어 양씨 등에게 수갑을 채우며 “떠들지 말라”고 말했다.이들은 반발이 심하자 양씨에게는 등 뒤로 수갑을 채웠다. 양씨는 “인신매매범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도대체 누구냐’고 다시 물었다가 ‘이 ××,왜 이렇게 말이 많아’하는 폭언과 함께 목과 얼굴을 수차례 얻어맞았다”고 주장했다.수사관들은 이어 이들을 승합차 안에 감금한 뒤 쇠파이프를 흔들며 “눈을 마주치거나 고개를 들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위협하고 소지품을 모두 압수했다.한 수사관은 “당신들은 통신관련 위반 사범으로 체포됐다”고 엄포를 놓았다. 양씨 일행은 차 안에 감금된 지 40여분만에 풀려났다.다른 검찰 수사관들이 진짜 용의자를 붙잡았기 때문이다.하지만 수사관들은 사과를 요구하는 이들에게 “공무집행 방해”라고 위협한 뒤 그대로 자리를 떠났다. 양씨 일행은 이 사실을 곧바로 인권실천시민연대에 신고했다.또 PC통신 등을 통해 억울한 사정을 호소했다. 문제가 확대되자 지난 8일 양씨 일행을 체포했던 서울지검 수사관들이 양씨와 함께 체포됐던 김모씨(36) 형제를 찾아가 형식적으로 사과했을 뿐 실제폭행을 당했던 양씨에게는 사과조차 없었다. 양씨는 “영문도 모른채 공포에 떤 40여분간의 악몽을 잊을 수가 없다”고억울함을 호소했다. 이에 대해 서울지검 관계자는 “조사결과 수사관들이 양씨 일행을 용의자로오인, 체포하는 과정에서 약간의 실랑이를 한 것은 사실이지만 폭행한 적은없다”면서 “피해자를 찾아간 것도 수사과정에서 있었던 오해를 풀기 위한것이었다”고 해명했다. 이상록기자 myzodan@
  • [변혁으로서의 문학과 역사](38) 한수산’욕망의 거리’

    한수산 필화사건의 전말을 가장 적절하게 묘사한 이문재 시인의 글(레이디경향 1988년 11월)은 이렇게 시작된다.“1981년 5월28일 오후 3시,중앙일보사 편집국 문화부.문화부장을 찾는 직통전화가 걸려온다.‘보안사령부 X소령입니다.제주에 살고 있는 한수산씨의 집주소와 전화번호를 좀 알려주시겠습니까?’ 정중했지만 차갑고 딱딱한 목소리였다.이 한 통의 전화로 이튿날부터 끔찍한 사건이 저질러진다.이른바 한수산 필화사건….”문학평론가 정규웅 (당시)문화부장은 좋잖은 예감으로 즉각 연재소설 ‘욕망의 거리’를 검토하기 시작했다.이미 1980년 5월1일부터 시작된 이 장편은미모의 30대 여주인공을 중심으로 흥미진진하게 도심 속의 욕망을 추적하는중이었는데,아무리 뒤져도 관계 당국의 비위를 거슬릴만한 구절이나 반정부적인 요소는 없었으나 다만 아래 구절이 약간 마음에 걸렸다. “어쩌다 텔리비전 뉴스에서 만나게 되는 얼굴,정부의 고위관리가 이상스레촌스런 모자를 쓰고 탄광촌 같은 델 찾아가서 그 지방의 아낙네들과 악수하는 경우,그 관리는돌아가는 차 속에서면 다 잊을게 뻔한데도 자기네들의 이런저런 사정을 보고 들어 주는 게 황공스럽기만 해서,그 관리가 내미는 손을 잡고 수줍게 웃는 얼굴,바로 그 얼굴들은 언제나 그렇게 닮아 있어서 그것이 모내기 하는 논둑이든,산동네 빈민촌이든,탄광촌이든 항시 같은 사람처럼 느껴질 정도였다.”(317회)박회장과 함께 잠자리에 들면서 세희는 박회장 집에서 보았던 죽은 부인의사진을 떠올렸는데,그 ‘부자 사모님 얼굴에서 탄광촌 여인의 모습’을 왜떠올렸는지 자신도 모른다고 소설은 서술하고 있다.그리고 다음 장면을 또보자. “월남전 참전 용사라는 걸 언제나 황금빛 훈장처럼 닦으며 사는 수위는 키가 크고 건장했다.그는 지금도 그 수위 복장에 대해서 남모를 긍지를 가지고 있는 듯 싶었다.내가 월남에 있을 때 말이야,그러니까 그때가 서기 일천구백 몇 년인가 하면…그렇게 그는 시간 나는대로 자서전을 썼었다.그리고 그럴 때면 그는 자신의 그 꼴같지않게 교통순경의 제복을 닮은 수위제복을 여간 자랑스러워 하지않는 눈치였다.하옇든 세상에 남자놈 치고 시원치 않은게 몇 종류가 있지.그 첫째가 제복 좋아하는 자들이라니까.그런 자들 중에는 군대 갔다온 얘기 빼놓으면 할 얘기가 없는 자들이 또 있게 마련이지.”(324회)세희의 남동생 경태는 사장이 유일하게 애첩의 집에까지 데려갈 정도로 신임을 받는데,다른 회사의 스카웃 제의를 받아들여 사직원을 냈건만,사장은 일을 다 배운 뒤에는 도로 자기 회사로 오라고 간단히 잘라버린다.화가 난 경태가 사무실을 나오며 수위를 보고 떠오르는 잡념들을 묘사한 대목이다. 그나마 문제가 된다면 이 구절이겠거니 예견하고 있던 차에 드디어 사건은터졌다.5월29일 오전 10시 경,언제나 이런 사건이 터질 때마다 반복되듯이낯선 중년들에 의하여 정규웅부장은 검은 세단에 태워져 끌려갔다.중앙일보에서는 손기상(당시 편집국장대리,현 삼성문화재단 상무),권영빈(당시 문예중앙 주간,현 중앙일보 주간),허술(당시 출판국 부장)이 연행 당했고,엇비슷한 시각에 한수산은 제주에서 항공편으로 압송 당했으며,박정만 시인(당시고려원 편집부장) 역시 끌려 들어갔다.빙고동 보안사 대공분실이었다. [任軒永 문학평론가]
  • [화제의 인물] 수영 한국新 최수민“시드니올림픽 메달 도전”

    “몸 상태가 안좋아 걱정했는데 좋은 기록이 나와서 기쁩니다” 수영 첫 한국신기록을 세운 최수민(18·서울체고3)은 시종 함박웃음을 터뜨렸다.이로써 최수민은 배영 100m(1분3초12) 혼계영 200m(2분1초10)에 이어세번째 한국기록을 보유,국내 배영 1인자로서의 입지를 굳혔다. 7살때 어머니 손에 이끌려 처음 수영장을 찾은 최수민은 개일초등학교 4학년때 선수로 입문해 지난해 8월 국가대표가 됐다.이후 98방콕아시안게임 배영 100m에서 자신의 한국기록을 갈아 치우며 대기로서의 가능성을 입증했다. 매일 오전과 오후 5,000m씩 훈련을 한다는 최수민은 “내년 아시아선수권대회(4월)와 시드니올림픽에서 메달을 목에 거는 게 꿈”이라고 당찬 포부를밝혔다.167㎝·55㎏으로 유연성이 좋고 킥이 빠른 게 장점이지만 어깨 근력이 약한 게 흠.여행업을 하는 최국옥(53)씨의 무남독녀로 장래 꿈은 기자.
  • [20세기 문명기행] (3)질병으로부터의 해방

    뇌졸중,암,교통사고,심장질환,당뇨병,자살….지난해 우리 국민의 주요 사망원인이다.순서에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의 다른 나라도 비슷하다. 지금부터 100년전 이같은 조사를 했다면 그 결과가 어떠했을까.폐렴,폐결핵,콜레라,디프테리아,소아마비 등이 그 자리를 차지했을 것이다. 20세기 전반 반세기는 일단 걸리면 ‘사형선고’나 다름없던 감염성 질환의정복사였다.금세기초 50세에 불과했던 평균수명이 지금 80세 안팎까지 높아진 것은 페니실린을 필두로한 항생제와 각종 예방백신 개발이 절대적 역할을 했다. 이와함께 진단기술의 비약적 발전,장기이식 확산,수술기법의 첨단화,유전자발견과 생명과학 발전,먹는 피임약및 발기부전치료제 등장 등이 20세기 의학적 성과로 특징지워진다. 감염성 질환 정복의 실마리가 된 것은 17세기 네덜란드 렌즈기술자였던 안톤 레벤호크가 개발한 현미경이었다.그때까지 콜레라,디프테리아,결핵,폐렴 등 수많은 세균성 질환에 걸린 환자들이 영문도 모른채 죽어갔다.그런 병의 정체,즉 병원균들은 그후 19세기 말까지 현미경렌즈아래 그 실체를 속속 드러낸다.예방백신도 잇달아 개발된다. 이러한 배경아래 20세기 들어 인류 최초의 항생제 페니실린이 개발됐다.1928년 영국 런던대 세균학자 알렉산더 플레밍은 우연히 페니실린 노테튬이라는곰팡이가 병원균을 죽이는 것을 발견한다.그리고 1942년 곰팡이에서 대량의페니실린을 추출하는데 성공한다.당시 페니실린은 2차대전 부상병 치료에서95%라는 놀라운 상처 회복률을 보였다. 세균말고도 바이러스가 소아마비 등 치명적 질환을 일으킨다는 것이 알려진것은 20세기 초다.1909년 오스트리아의 칼 란트슈타이너는 소아마비를 일으키는 바이러스를 처음 분리해내는데 성공했다.1930년엔 전자현미경 개발로바이러스의 구조가 밝혀지고 세포와의 상호작용에 대한 연구도 이뤄졌다. 그리고 드디어 1955년 미국의 조너 소크가 소아마비 백신을 개발했다.백신이 개발되기전 미국에서만 매년 수천명의 아이들이 소아마비 바이러스에 감염돼 죽거나 다리 불구가 됐다.백신 덕분에 소아마비는 1994년 지구의 서반구에서는 완전히 박멸됐음이 공표됐다.백신이 보급되지 않은 제3세계 오지에서만 그 명맥이 유지되고 있다. 진단의학은 현미경에 X레이가 힘을 보태면서 눈부신 발전을 시작한다.1895년 독일의 물리학자 빌헬름 뢴트겐이 발견한 X레이는 기존의 현미경 이론과 접목해 인체속을 수술 없이 처음으로 들여다 볼 수 있게 했다. 이는 더욱 발전해 여러가지 각도로 방사선을 쏘여 그 결과를 컴퓨터로 처리하는 컴퓨터 단층 촬영장치(CT)와 핵자기공명영상장치(MRI) 개발로 이어졌다.인체 내부를 정교하면서도 입체적으로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진단기술이 발달하고 첨단 의료기기들이 등장함에 따라 수술기법도 눈부시게 발전했다.각종 장기는 물론 혈관 속까지 손금보듯 관찰하며 수술이 이루어지고 있다.그중 가장 괄목할 만한 것이 장기이식수술이다.1954년에 처음으로 미국에서 신장이식수술이 이루어져 장기이식의 장을 열였다.1967년에는 남아공에서 인공심폐기를 이용,신장이식보다 훨씬 어려운 심장이식에 성공했다. 20세기 중반이후 미생물학의 진보는 현미경이나 방사선을 이용해 인체기관을 식별하는 전통적 기술을 넘어서고 있다.분자생물학 발달로 이제 과학자들은 인체조직을 더이상 물리적 특성에 의해 식별하지 않고 유전자 구조를 통해식별하고 있는 것이다. 그 시초는 1953년 미국의 왓슨과 영국의 크릭이 DNA의 이중 나선형 구조를밝히면서 제공했다.유전자 연구는 이후 가속도가 붙어 DNA 복제와 확대가 가능하게 됐다.유전자 연구는 암 등 지금까지 한계에 부딪쳤던 난치병 치료에서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 먹는 피임약과 발기부전 치료제 개발도 20세기 의학의 성과에서 빼놓기 어렵다.미국 펜실베니아주립대 러셀 마커 교수는 1960년 멕시코에서 자생하는 백합과 식물 ‘얌’에서 추출한 스테로이드계 물질 프로게스테인을 이용해 피임약을 개발했다.그것은 인체의 호르몬 생성과정에 간섭해 배란을 방해하는기전을 가진 피임약이었다.경구용 피임약 개발은 의학적 성과와 함께 인구억제와 여성의 임신에 대한 공포 해소 등 사회적인 기능까지 수행했다. 우리나라에서도 곧 시판될 발기부전 치료제 비아그라는 20세기를 마감하는마지막 의학적성과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부작용에 대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비아그라는 각종 질환에 의한 발기부전 환자와 노인 등에 ‘청춘’을 되찾아줬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세기 의학의 눈부신 성과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만만찮은 도전에 직면해 있다.금세기들어 계속 줄어들던 감염성 질환 사망자가 81년 이후 증가추세를보이고 있다.80년부터 1992년까지 미국에서는 감염성 질환에 의한 사망이 58% 늘어났다는 충격적 보고도 있다.그 주범은 바로 에이즈다. 에이즈환자는 1981년 처음 발견된 이후 기하급수적으로 확산돼 왔다.미국에서는 몇가지 치료제를 혼합해 사용하는 방법으로 에이즈로 인한 사망률이 줄고 있지만,치료제를 살 능력이 없는 아프리카 일부 국가의 경우 사망요인의수위를 달리고 있을 정도. 노약자들의 폐렴이나 독감으로 인한 사망률도 증가 추세에 있다.이는 세균의 항생제에 대한 내성이 강해졌기 때문이다.현존하는 가장 강력한 항생제인반코마이신도 듣지 않는 ‘슈퍼박테리아’의 등장은 21세기에도 20세기에 이어 감염성 질환과의 전쟁을 치러야하는게 아닌지 우려를 낳게 한다. 거침없이 돌진하는 생명과학 연구와 사회적 가치체계를 어떻게 조율해야 할지도 21세기의 커다란 과제다.동물복제가 이미 일상적으로 연구되고 있는 시점에서 인간의 정체성 보전이 강력하게 위협받고 있는 것이다. 인문학자는 물론 과학자 조차도 과학발달이 인간에게 행복을 줄 것인가에 회의적인 이들도 있다.건국대 생물학과 조명환 교수(43)는 “인간 행복을 위한 과학의 역할에 논란이 있다면 이를 무시하면 안될 것”이라고 주장한다.그는 “그럼에도 대부분의 과학자가 맹목적인 과학발전을 위해 끌려가고 있는게 현실”이라고 말한다. 21세기에는 질병과의 싸움이라는 20세기에졌던 짐에 더해,탈인간화하는 생명과학 연구로부터 인간을 지키기 위한 짐까지 져야할지 모른다임창용기자 sdragon@
  • [문명자 회고록] 비화 3공의 실세들(3)성판

    5·16직후 최고회의 공보실장을 거쳐 63년부터 대통령 비서실장직에 있던이후락(李厚洛)을 나는 공식석상에서 몇차례 만난 적이 있다.그런데 이후락에 대해 나에게 가장 강렬한 인상을 심어준 사람은 정일권 후임으로 63년부터 주미대사로 일했던 김정렬(金貞烈·전총리)이었다.그는 은퇴후 서울에서만났을 때 이런 말까지 했다. “문 기자,이후락이 같이 교활한 사람은 이 세상에서 다시 없을 거요.이후락과 김형욱이란 악당 손에 박 정권은 결국 몰락하고 말거야.3선개헌때 우리 공화당 의원들이 그 두사람 손에 어떻게 끌려갔는지 아시오? 깜깜한 어둠속에 앞 사람 허리띠를 붙잡고 소경처럼 질질 끌려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면서 끌려간 곳이 제3별관(현 대한매일 주차장 자리)이야.가보니 촛불 몇개 켜놓고 개헌안을 통과시키는데 이효상 국회의장이 시간을 끈다고 장경순(張坰淳·당시 국회부의장)이가 이 의장 손에서 의사봉을 확 뺏더니 “왜 이렇게지체해요? 이건 이렇게 때리는 겁니다”하면서 땅땅 때리는데,개헌안 통과시키는데 1분도 안 걸렸어요.모두가 화적단같은 사람들이야.문 기자,내가 죽은 후에 언젠가 이것만은 역사에 밝혀주시오” “대사님,그러게 5·16 나고 나서 공화당 사전조직 의혹이다 뭐다 해서 모두들 들고 일어나 공화당 해체하라고까지 하는 판국에 무엇 때문에 공화당에 참여하셨습니까?”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어요.5·16이 났을 때 내무부장관(4.19 당시 법무부장관)으로 있던 홍진기(洪璡基·전 중앙일보 회장·작고)가 발포책임자의한 사람으로 잡혀들어가 사형선고를 받고 감옥에 있었거든.그런데 홍진기 하고 나하고는 일제 때부터 절친한 사이로 자유당때 각료도 같이 했고 해서 인간적으로 몰라라 할 수 없는 관계였어요.그런 판에 하루는 박 의장(박정희)이 나를 부르더니 ‘공화당 의장을 좀 맡으라’고 하더구만.그래서 나도 ‘부탁이 하나 있다.공화당에 갈테니 홍진기 좀 풀어달라’고 했지.나는 결국홍진기 살리려고 공화당에 간거야” 김정렬은 이후락에 대해 다음과 같은 일화를 들려주기도 했다.“이후락이는말이오, 국군 창건 당시에 대위로 시작한 사람이오.그보다 나이도위고 계급도 위였던 박정희가 소위로 시작했는데 말이오.해방직후 귀국한 일본군 장교 출신들은 모두들 군사영어학교에서 훈련을 받았는데 거기를 수료하면 일본군 시절의 계급을 참작해서 국군 장교로 임관시켰거든.그런데 이후락이는 끝까지 자기가 일본군 대위였다고 우긴거야.하도 우기니까 미군측에서도 사실을 뻔히 알면서 대위로 임관시켰지.사실상 그때부터 이후락이는 미군측과 거래가 있었겠지만…” 공화당 정책위원장 박준규(朴浚圭·현 국회의장)는 나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5·16후 감옥에 잡혀 들어갔을 때 이후락이가 내 옆방에 있었는데 이 사람이 얼마나 약던지 삽살개처럼 굴더니 먼저 빠져 나가더구만” 이때 이후락이가 빠져나올 수 있었던 것은 CIA의 뒷받침 때문이었다.민주당 정권에서 장면(張勉)의 비서를 지낸 선우종원(鮮于宗源·변호사)은 그 점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민주당 정권때 이후락이가 중앙정보부의 전신이라 할 ‘정보조사국’을만들었다.당초 정보조사국 책임자로 이후락이가 추천됐을 때 여러 사람이 안된다고 했는데 결국 이후락이가 맡게 된 것을 보니 CIA 한국지부에서 그를민 것 같았다” 사실 이후락은 5·16 이후 CIA가 박정희 주변에 깊숙이 박아놓은 첩자였다고 할 수 있다.그는 최고회의 공보실장 시절부터 최고회의 정보를 미군측에보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미국으로서는 창군 초기부터 내내 미국 정보기관의 끄나풀이었던 이후락을 좌익전력을 가진 박정희 옆에 붙여 놓았으니까 박정희에 대해 자신만만할 수 있었다.그렇다고 박정희가 일방적으로 감시만 당했던 것은 아니었다.박정희는 박정희대로 이후락 같은 미국의 끄나풀을 자기 곁에 둠으로써 오히려 그를 자신이 미국으로부터 신뢰를 얻는 방편으로 써먹었던 것이다. 63년 이후 대통령 비서실장을 하면서 이후락의 이른바 ‘떡고물’ 정치가본격화됐다.그것은 비단 국내에서만이 아니었다.이후락은 자신의 아들·딸·사위 등을 모두 미국에 보내놓고 미국에서조차 축재에 열을 올렸다.사위등은LA 현지에 은행을 설립해 주주로 참여했고 교포방송인 LA방송국을 설립하기도 했다.이같은 재력을 기반으로 그의 사위는 LA한인회장에 당선되기도 했다. 그는 또 LA의 부자동네인 윌셔 브루버드에 당시 돈으로 3,000만 달러를 주고 빌딩을 사들여 이것을 한국교포들에게 세를 놓았다.당시 교포들 사이에“이 빌딩은 실은 이후락 것이다”하는 소문이 나 현지의 민주화운동 그룹들이 “이후락의 부정부패와 해외 재산도피의 산 증거인 문제의 건물을 불태워 버리겠다”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훗날 코리아게이트 조사과정에서 FBI가 조사에 들어갔을 때 그는 빌딩을 매각한 뒤인 것으로 확인되었다.70년 중앙정보부장에 취임한 이후락은 그 해 12월 정보 무경험자인 사위를 중정 국제담당 2국장으로 앉히고 둘째아들도 자신의 비서로 임명해 72년 남북회담 당시 모두 북한까지 자신을 수행토록 했다. 정리 정운현기자 jwh59@[알림] 문명자회고록 ‘내가 본 박정희와 김대중’ 연재물 제목을 문명자회고록 발췌 ‘비화,3공의 실세들’로 바꿉니다.이는 본지가 문씨의 회고록 중 일부를뽑아 정리,게재하기 때문입니다.
  • 유서같은 유고소설-장용학 ‘빙하기행’

    “아픔에는 어디까지라는 한계가 없었다.숨이 끊어지지 않는 한 어디까지라도 아파질 수 있는 육신이 저주스러웠다.그런 육신과 인연을 끊고 싶었다.비명을 흘리면서 뒹구는 자기 자신을 거기에 떼쳐 버리고 도주하고 싶었지만아픔은 놓아주지 않았다” 지난 8월31일 타계한 장용학(張龍鶴·사진)의 유고(遺稿)소설 ‘빙하기행(氷河紀行)’의 일부다.‘문학사상’이 발굴하여 10월호에 실은 이 작품은 미발표작 ‘천도시야비야(天道是也非也)’의 초고에 해당한다. 장용학은 ‘요한시집’과 ‘역성서설(易姓序說)’‘비인탄생(非人誕生)’등 실존주의적 색채를 띤 일련의 우의(寓意)적 작품들로 한국 지식인 소설의개척자로 평가받는다. 그의 작품들은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내용을 주로 다루고 있어 읽기가 쉽지않은 편이다. ‘빙하기행’은 그러나 이례적일 정도로 정치체제의 비판이라는 현실적인문제를 다루고 있다.특히 자신이 실제로 경험한 고문에 대한 묘사가 매우 사실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전작들과 차별적이다. 장용학은 1962년 ‘원형의전설’ 이후 반절필상태에 들어가 1987년 ‘하여가행’ 이후로는 침묵해 왔다.그런 그가 왜 이런 작품을 썼으며,왜 발표하지않았을까. 문학평론가 박창원(청양대교수)이 말년의 작가와 이야기를 나눈 데 따르면장용학은 1960년대 ‘경향신문’과 ‘동아일보’의 논설위원을 지냈으나 박정희정권에 대한 부정적 입장 때문에 해직됐다. 당시 그는 ‘남산’에 두차례 끌려갔고,이후 감시를 받는 생활을 했다.이런와중에서도 ‘문학실천협회’ 초대회장을 지내기도 한 그는 이런 제3공화국이 오래 가지 않을 것으로 예상하고 칩거를 시작했으나,임종 때까지 이어질줄은 몰랐다고 한다. “개 돼지처럼 취급되는 수모에서 오는 수치감에 자기 혐오의 수렁에 빠졌고,늘 자기를 보고 있는 누구의 눈을 느껴야 했는데 암만 해도 그것은 자기의 눈인 것 같았다.그 눈앞에서 그는 나날이 비굴해지고 천해져갔고 그 눈이두렵고 부끄러워 볼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해서 그는…겨울만 있는 세계로쫓겨났고,자기를 보고 있는 눈을 의식하면서 살아야 했다” ‘빙하기행’의 한 대목이다.바로 장용학이 왜 수모를 당한 이후 오랜 칩거에 들어갈 수 밖에 없었고,작품활동도 이어갈 수 없었는지를 밝힌 대목이라고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그런 점에서 ‘빙하기행’은 유고이자,유서라고볼 수도 있을지 모른다. [서동철기자]
  • 한국인 핏줄에는 피 대신 감정이 돈다

    ‘걸핏하면 화를 내고 금방 파김치처럼 낙심한다’,‘공중도덕이 없다’,‘빨리빨리를 외치며 급하다’,‘여자들 화장이 지나치다’.한국인을 둘러싼이런 얘기는 한두번 듣는게 아니다.외국인들이 한국인의 단점을 말할 때 빼놓지 않는 단골메뉴고,스스로도 이를 고치자고 목청을 높인다. 이런 한국인을 뜯어보는 두 권의 책이 최근 잇달아 나와 관심을 끌고 있다. 미국인 스코트 버거슨(32)의 ‘맥시멈 코리아’(자작나무 8,500원)와 중국교포 3세로 일본 히로시마대 연구원인 찐원쉐(한국명 김문학·37)의‘한국인이여 상놈이 되라’(우석 7,000원)가 그것. 두 책은 소재는 대체로 같지만 해석은 정반대이다.버거슨은 “한국문화는뒤죽박죽의 세계”이지만 “마구 뒤섞인 행운의 과자”가 되기를 기원한다. 그러나 찐원쉐는 “한국인이 보면 이가 갈릴 것”이라면서 “이제 한국인을그만두자”고 외친다. 우선 ‘감정의 극단성’에 관해 버거슨은 “외국인들이 한국인의 멜로드라마적인 감성을 오해한 것”이라고 분석한다.한국인은 자신이 강조하려는 바를 의도적으로 과장시키는 버릇이 있다는 설명이다.그러나 찐원쉐는 “이유도 없이 한순간 화를 냈다가 마치 죽은 뱀처럼 축늘어진다”는 19세기 초 중국의 사상가 양계초(梁啓超)의 말을 소개하고 “한국인 핏줄에는 피 대신 감정이 돌고 있다”고 말한다. 침뱉기 등 공중예절을 안지키는 행위를 놓고 버거슨은 “공적장소에서 통제된 유교적 도덕성에 대한 최소한의 반항”으로 보면서 “침뱉기가 역겹기는하지만 하드코어 펑크락커의 행위와 같은 맥락일 수 있다”고 말한다.급한모습에도 “우아하게 서두른다”며 긍정적으로 본다.그러나 찐원쉐는 “자기멋대로 구는게 굳어진 탓”이라고 진단하면서 “‘빨리빨리’가 사라져야 한국인이 제대로 될 것“이라고 말한다. 여자의 화장에 관해서도 해석이 다르다.버거슨은 “한국여인들은 단지 아름다운 것에 만족하지 않고 빈틈없이 완벽해지려는 것”이라고 하는 반면 찐원쉐는 “자기 현시욕과 허례허식의 풍조가 한국을 특유의 ‘화장사회’로 만들고 있다”고 비평한다. 어째서 같은 사안에 보는 눈이 이렇게 다를까.이유는 이들의 출신과 한국에온 배경 등에서 찾을수 있다. 버거슨은 “현대성과 편리함 등을 찾아 한국에온 것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그는 미국 UC버클리대학을 나와 샌프란시스코에서 프리랜서로 활약하다 ‘동양의 신비’에 이끌려 96년 무작정 서울에 왔다. 반면 중국 선양에서 태어나 10여년전부터 일본에서 유학중인 찐원쉐는 김포공항에 들어설 때마다 ‘조선족’이라며 차별대우를 받은 씁쓸한 경험을 지니고 있다.그때문에 그는 한국에 대해 ‘뜨거운 애정과 지극한 슬픔’을 책곳곳에서 드러낸다.서양인이 본 한국인,중국에서 태어난 동족이 본 한국인. 이들의 관점은 적어도 어느 면에서는 진실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한번쯤 읽어볼만 하다. 박재범기자 jaebum@
  • K2TV ‘초대’ MBC ‘날마다‘ 출연 김상경

    탤런트 김상경(28).이름앞에 따라붙는 직함 세글자가 아직도 어색할 법한 초짜 연기자.하지만 조금만 얘기를 나눠보면 중견급만큼 흔들림없는 그의 심지에 작은 탄성이 나온다.양가집 도령처럼 반듯한 태도로 연기 열정을 다져가는 성실함,그를 차세대 선두주자감으로 손꼽히게 하는 동력임이 분명하다. 지난해 11월 MBC ‘애드버킷’으로 데뷔한지 1년도 안돼 김상경은 KBS,MBC양사 드라마의 주연으로 고속성장했다.그것도 역할마다 ‘매력남’이다.KBS-2TV 월화드라마 ‘초대’에서 전도유망한 명문가 자제 승진으로,11일 첫방송하는 MBC 일일극 ‘날마다 사랑해’에선 적당히 이기적이지만 실상은 속깊은 보통청년 준제로 동분서주하고 있다. “절보고 법대생 같다고들 하세요.또래 연기자들에게서 흔치않은 이런 지적인 면모 때문에 비교우위를 누리는 것 아닐까요.”드라마에서도 과묵한 검사보(애드버킷),꼿꼿한 독립지사(왕초),타산적인 법대 졸업생(마지막 전쟁)등 이같은 이미지 언저리를 맴돌았지만 중앙대 연극학과를 올 봄학기에 마친 그는 문리가 트이고부터 늘 연기자 지망생이었단다.어릴 때 영화광인 아버지 손에 이끌려 영화관 순례를 하며 자라선지 카메라 앞이 몸에 맞는 수트처럼 편안하기만 하다.SBS ‘홍길동’의 주인공 김석훈과는 대학 동기이자 막역한 친구사이. “아직 젊어선지 빡빡한 스케줄이 정신없기보다는 많은 것을 한꺼번에 배울수 있는 기회라 고맙기만 해요.‘초대’는 미혼의 작가,PD가 만드는 결혼이야기기에 오히려 상상의 여지가 넓은것 같고 ‘날마다 행복해’는 소박하면서도 깨소금같은 대본맛에 푹 빠져 있지요.”군대갔다 와서는 늘 4.0이상(4.5 만점)학점을 유지했으며 현업으로 들어온뒤 지난 강의노트에서 더 많은 것을 깨우치게 됐다는 이 학구파는 “연극,영화의 경계를 무제한 누비고 다닌 알 파치노같은 ‘풀 옵션’배우”가 꿈이다. 손정숙기자
  • [사설] 고문없는 나라 만들기

    고문수사 사건에 관련됐던 전직 경찰관들을 상대로 국가가 구상권(求償權)청구에 나섰다.국가는 28일 경찰청을 소송수행자로 삼아 박종철(朴鍾哲)씨고문치사 사건과 김근태(金槿泰)씨 고문 사건에 가담했던 강민창(姜玟昌) 전 치안본부장 등 전 치안본부 소속 경찰관 13명을 상대로 “국가가 피해자들에게 손해배상한 금액을 갚으라”며 각각 2억4,000여만원과 5,890여만원의구상금 청구소송을 서울지법에 낸 것이다. 국가는 지난 87년 당시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물고문으로 숨진 서울대생 박종철씨 유족과 85년 고문수사를 당한 김근태씨(현 국민회의 부총재)가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각각 패소가 확정돼 모두 2억9,890여만원의 손해배상을 한 바 있다. 강제연행과 고문수사는 명백한 불법행위다.따라서 공무원이 불법행위로 국가에 손해를 끼쳤다면 국가는 국가배상법에 따라 구상권을 행사할 권리를 갖는다.그런데도 이 사건에서 구상권을 행사할 것인지를 놓고 그동안 논란이있었다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고문은 그 자체가 비인도적인 범죄행위다. 범죄를 징치(徵治)하는 게 국가의 임무 아닌가.더구나 국민의 정부는 인권을 최우선의 가치로 내세우고 있다.“고문 경찰관에 대해 구상권을 행사하면일선 수사관들의 사기를 떨어뜨릴 위험성이 있다”는 주장은 전시대적 발상이다.고문을 자행한 수사관은 형사 처벌과 함께 경제적 불이익도 받아야 한다.그래야만 고문의 불법성에 대한 경각심이 생긴다.따라서 우리는 뒤늦게나마 정부가 이들에 대해 구상권을 행사하는 것을 평가하고 싶다.그것은 고문을 근절하겠다는 정부의 의지로 보이기 때문이다. 과거 엄혹했던 군부독재 시절 대공수사기관에 끌려간 피의자들에게 혹독한고문이 가해진다는 것은 국민적 상식이었다.잠안재우기,물고문,전기고문,비녀꽂기,통닭구이 등등 고문의 종류도 갖가지로 열 손가락이 부족할 정도였다.고문이 공공연하게 행해졌던 것은 부도덕한 정권이 그것을 용인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독재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용공조작도 서슴지 않았다.이런 경우 당연히 고문이 동원됐다.고문행위가 국제적으로 문제가 되자당국은 고문이라는 말 대신 ‘가혹행위’라는 말을 썼고 언론이 그 말을 그대로 받아 쓴적도 있다.그러나 이제는 그런 암울했던 시대와 결별해야 한다.고문 경찰관들에 대한 정부의 이번 구상권 행사가 ‘고문 없는 나라’ 만들기의 의미있는 출발점이 됐으면 한다.
  • [대한광장] 역사적 전환기 민족적 대처

    한반도의 냉전체제는 종식되는가.민족의 숙원인 통일은 달성되는가.최근 한반도를 둘러싼 상황전개는 예측할 수 없는 역사적 의의를 가질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물론 이는 관련당사국의 앞으로의 조치 및 대응조치 여하에 달려있다.기간중에 있은 주요사안은 9월 12일 베를린 북·미 미사일회담 타결,15일 윌리엄 페리 대북정책조정관의 권고안 발표,17일 미 대북 경제제재 완화 발표,24일 북의 미사일 발사 유예 선언,27일 북 백남순 외상의 유엔 연설 등이다. 여기까지 오게 된 상황의 진전을 보는 시각은 두 가지가 있다.하나는,북의대남 적화노선이 불변이며 예측불허하고 모험적이며 벼랑끝 전술을 행사한다는 것이다.98년 8월 31일 다단계 로켓 발사(인공위성 시험발사),금창리 핵시설 의혹,2차 로켓 시험발사 시도,서해 북방한계선(NLL) 침범 등.이런 상투적인 협박으로 양보를 얻어내고 있으니,끌려다닐 것이 아니라 적기 군사적 응징을 포함한 강경한 대책만이 유효하다는 견해이다. 다른 하나는,합의사항을 이행하지 않은 것은 미국측이다.94년 제네바합의에서 영변 핵의혹 시설을 개방,국제원자력기구(IAEA) 요구대로 연료봉을 밀봉폐쇄했으나 약속된 경제제재조치 해제,원조,국교정상화 등 성의있는 이행이없었으며,핵과는 관계없이 빈 동굴로 판명된 금창리 ‘핵시설’ 의혹,또는미사일문제 등을 새로 제기하면서 북을 압살하려 한다는 것이다. 미국은 작전계획 5027-98의 공개를 통하여 휴전선의 군사력을 격파하고 북한정권을 전복,민주정부를 수립한다고 했는데,협박하는 쪽은 어느 쪽인가.작은 나라 북은 코소보사태에서 보여지는 초강대국의 이러한 실제적 위협에서국가안보를 확인하기 위해 선군정치·군사력 강화를 하지 않을 수 없다는 시각이다.94년 합의사항을 불이행한 미측이 이번 약속은 지킬 것인지 주시할것이며 신의 여부에 따라 미사일 개발,인공위성 발사 등 북도 대응조치를 취하겠다는 것이다. 페리 권고안은 앞으로의 경제협조,국교정상화 과정에 있어 화학,세균 등 대량 살상무기 문제,마약 문제 등도 논의될 것이라 했다.이런 추가적인 사안의 제기는 논의 정도에 따라 사태를 복잡하게 하고국교정상화문제는 쉽게 이뤄지기는 어려울 수 있다.또 일본과 국교정상화에 있어 ‘납치 일본인 문제’의 해결을 제시한바,북은 이를 식민지 통치의 사죄와 배상과는 관계없는별개의 문제라며 거부하고 있다. 권고안은 최종의 장기적인 목표로 한반도 냉전체제의 종식을 제시했다.한국의 내부적인 문제라 할 수 있는 통일문제를 미국으로서는 구체적 능동적으로 논의하기를 삼갔을 것이다.그러나 한국 민족에 있어 장기적인 목표라면,통일문제를 제쳐놓을 수는 없다.이는 우리 민족의 숙원임과 동시에 통일문제의 근본적 논의와 달성을 위한 해법 없이 진정한 긴장완화,냉전체제 해소,평화는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지난달 27일 북의 백남순 외상은 기자회견에서 “7·4 공동성명의 자주·평화통일·민족대단결의 3대 원칙을 존중하고 북의협상제의를 받아들인다면 정상회담도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했다. 북은 외세와의 공조 중지,국가보안법 폐지,통일관련 단체와 인사들의 활동자유 보장 등 조치의 선행을 제시한 바 있다.정치는 타협의 예술이라고 했다. 북의 조평통 허담 위원장은 85년 필자에게 “북의 고려연방제나 남의 통일방안이나 서로 대동소이하다.서로 협의해 보자”고 했다. 94년 6월 16일 미국은 북의 영변 핵의혹 시설에 대한 폭격을 포함한 군사조치를 계획하고 이를 실행하려고 했다(D.Oberdorfer,‘The Two Koreas’,페리 회고).카터 전 미 대통령과 김일성 주석과의 ‘핵의혹 시설’의 공개 및 중단의 극적인 합의로 이 군사계획은 다행히 중단되었다.우리 민족 전체의 사활에 관한 문제가 초강대국에 의하여 결정될 뻔했던 작은 나라의 고충과 비애를 실감한다. 김대중 대통령은 95년 남북연합을 중심으로 3단계 통일론을 제창했다.지도자의 이념과 그 실천을 세계가 주시하고 있고 우리의 민족사가 엄숙하게 기록할 것이다. 손장래 전말레이시아 대사
  • [변혁으로서의 문학과 역사](36) 현기영 소설’순이삼촌’

    매타작과 구류로 석방된 현기영은 여전히 서울사대 부속고교 영어교사로 나가며 울분 속에서 제주4.3항쟁과 너무나 닮은 광주항쟁 소식을 듣고 뜻밖의실책을 하고만다.“작취 미성인 상태로 1교시 수업에 들어갔다가 그(현기영)의 입에서 느닷없이 금기의 말이 튀어 나왔던 것이다.‘광주사태를 아는가?’ 보도 금지되어 있던 터라 아이들이 모르고 있거나 알아도 모른 체 할 게뻔했다.그러나 한 아이가,‘일제 때의 광주학생사건 말입니까?’ 하고 어이없는 반문을 해오자 불끈 화가 치밀었다.‘누구 아는 사람 없어? 그 옆 사람,몰라? 그 앞 새끼,몰라? 그 옆 새끼,그 뒷 새끼,그 옆 새끼,그 앞 새끼,몰라? 그래,빌어먹을,나도 모른다!” 이때가 1980년 5월 중순.계엄 아래서도 세월은 흘러 여름이 닥치자 잠잠하던 현기영의 주변에서 뭔가 이상한 낌새가 느껴지기 시작했다.관계기관으로부터의 내사가 시작된 것이었다.“출판사에서도,고향에서도 알려올 정도로반 공개적이었다.심지어 직접 집으로 찾아와 ‘새로 동서기로 부임해 인사차 왔노라’라고 엉뚱한 소리를 하고 가기도 했다.스무날 가까이 도마에 오른고기가 되어 칼 맛을 볼 날이 이젠가 저젠가 마음 졸이다 보니 체중이 급격히 떨어져(6kg이나!) 몸이 휘청거릴 정도로 야위어 버렸다.그 20일 동안에얼마나 정신적으로 시달렸던지 막상 그들이 들이닥쳤을 때는 오히려 마음이홀가분했다.”(이상 인용 ‘위기의 사내’). 1980년 8월21일,여름방학이 끝나고 운동장에서 조회를 하고 있는데 안에서누가 부른다는 전갈을 받고 복도로 들어서자 바로 종로서로 연행 당했다.이사건은 한국 필화 문학사에서 한 전환점을 이룬다.이제까지의 필화는 거의첫 심문에서 필자 이외에 다른 세력의 조종에 의하여 씌여진 것이 아닌가를밝히는 데서 시작했는데,현기영의 경우는 시종 단독 조사에다 애초부터 왜그런 글을 썼느냐는 추궁이었다. 단단히 혼 날 걸 각오했던 작가와는 달리 수사관 쪽은 오히려 건수를 채우고자 갖고 왔으나 헛수고라는 분위기였다.4박5일 동안의 밤샘 조사 뒤 작가는 석방됐으나 바로 ‘순이 삼촌’은 판금도서가 되어 전국 도서관과 서점으로부터 회수 당했다. 현기영은 다행히 교직에 그대로 머물렀다가 1987년 사직한 후 창작에 전념하고 있다. 문제의 작품 ‘순이 삼촌’은 70년대부터 분단소재 문학에서 성행했던 귀향 회상 형식의 소설이다.주인공 순이삼촌(제주도에서는 촌수 따지기 어려운남녀 어른을 두루 삼촌이라 부르기에 소설 제목은 순이 아주머니의 뜻임)은4·3 때 26세로 과수가 되어 외딸을 출가시킨 뒤 홀몸으로 떠돌던 중 화자인 ‘나’(곧 작가)의 서울 집에 와 일년도 채 못되는 동안 부엌일을 맡아 하다가 신경쇠약으로 두 달 전 귀향해 버렸다.‘나’는 할아버지 제사로 8년만에 귀향하여 일가친척의 안부를 묻던 중 순이삼촌을 거론하자 죽은 날짜도모르게 길가 밭에서 “머리 맡에는 먹다 남은 꿩약 사이나 몇 알갱이 흩어놓고 시체로 발견되었다”고 했다. 그 밭뙈기는 1949년 1월17일,그녀와 어린 남매를 포함한 마을 사람들 상당수가 끌려가 총살 당한 현장이었다.총소리에 혼절해 버린 탓인지 그녀는 살아났으나 행불된 남편 때문에 엔간히도 고초를 겪으며 유복녀를 추스려 기르던 그녀는일생을 피해망상증으로 시달렸던 것으로 이 소설은 촘촘히 묘사하고 있다. 작가 현기영은 애초에 이 작품으로 현실비판 의식의 작품은 끝내고 보다 아름다운 소설을 쓰고자 결심했었으나,필화를 겪으면서 작가 스스로가 피해자란 의식을 갖게되어 이후 보다 적극적으로 4.3항쟁을 비롯한 민주화와 통일에 밀착해 가게 되었다고 말했다.필화가 작가와 문학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었다는 산 교훈이 바로 ‘순이삼촌’과 작가 현기영인 것 같다. 任軒永 문학평론가
  • [변혁으로서의 문학과 역사](35)’순인 삼촌’

    필화 10년 뒤인 1988년 현기영은 자신이 겪었던 고초를 ‘위기의 사내’란소설에서 그대로 재생시켜 놓았는데,이 장면은 아마 YWCA위장 결혼 사건의역사적인 증언이 될법 하여 여기 옮겨본다. “위장 결혼식의 신랑은 카네이션 꽃에 흰 장갑 끼고 서서,해사한 미소로 손님들을 맞이하고,손님들은 ‘신랑 그만하면 잘 생겼는걸’,‘혹시 신혼여행은 빵깐으로 가는 거 아냐’하고 농담을 걸며 입장하고,예정시간보다 훨씬늦어져 강당이 사람들로 빼곡 들어차자 돌연 단상에 현수막이 내리 걸리고잇따라 강당 곳곳에서 삐라가 분수처럼 솟아올라 사람들 머리 위로 떨어지고,마이크에서 격정적인 목소리가 폭포수처럼 터져나오고,사복들이 급히 강당을 빠져나가고,반 시간도 못되어 경찰진압대가 들이닥치고,대회장은 연행조의 난입으로 금방 수라장으로 변하고,뒤이어 벌어진 대회장 밖 명동길 시위도 얼마 후 진압되었다.상황은 끝나고 호송차량 두 대가 연행자로 만원이었다.”그 이틀 뒤인 11월26일,계엄사는 위장결혼 사건으로 함석헌·박종태·양순직·김병걸 등 96명을 포고령 위반으로 검거,조사중이라고 발표했다.바로 이날 종암동 소재의 서울사대 부속고교로 출근한 작가 현기영은 수업에 들어가려던 교실 앞 복도에서 관할 성동경찰서원들에 의하여 연행당했으나 바로 중부서로 인계되어 갇혀 있는데 실내 방송으로 수배자 명단이 흘러 나오는 속에후배들 이름이 넷이나 포함되어 있어 필시 제주 출신 친목회를 겨냥한 것이려니 여겼다.며칠 뒤 현기영은 중부서 지하실로부터 끌려나와 검정색 승용차에 실려 남산으로 넘어갔다.도착지는 유명한 서빙고동 보안사였고,당시로서는 중범자를 다뤘던 합동수사본부로 인계된 것이었다. 체험자들의 수기를 통해 알려진대로 그는 군복으로 갈아 입혀진 뒤 2박3일동안 혹독한 육체적인 학대를 당했다.애초에는 친목회 명단을 밝히라며 매질만 반복하다가 소설 ‘순이 삼촌’을 거론하고 부터는 “왜 이렇게 썼느냐”고 추궁하면서 아예 빨갱이로 몰아갔다. 소설 ‘위기의 사내’에서 작가는 당시의 고문을 이렇게 묘사했다. “해병대에서 5파운드 곡괭이 자루를 대여섯 대까지는 신음소리 내지 않고맞아본 그였지만,당장 첫 매에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매가 몸에 터질때마다 강한 충격이 살속을 파고들어 뼈를 울리고 골수를 후볐다.(중략) 매는 한쪽 허벅지 주위를 나선형으로 돌며 빈틈없이 골고루 타격한 뒤,다른쪽허벅지로 옮아가고,이어서 정강이 뒤쪽,팔뚝,어깻죽지….매는 뼈를 피해 살집만 골라 정확히 타격했다.(중략) 아,이 고통스러운 육체를 벗어버릴 수만있다면! 정신을 배반하는 육체,제 몸이 이렇게 저주스러울 줄이야.영혼과 육체가 분리되어,차라리 죽을 수만 있다면! 가무라치기라도 했으면….”이어 작가는 매질의 심리학적 파급효과를 “매질이 끝났을 때 그는 교사도,작가도 아닌,세 아이의 아버지도,한 여자의 남편도 아닌,그 무엇도 아닌,팬티에 겁똥을 깔긴 한 마리의 사냥감 짐승이었다”고 쓴다. 현기영의 성장소설 ‘지상에 숟가락 하나’에 군에 몸 담았던 아버지를 추억하는 장면이 나오는데,그게 이 위기의 돌파구에 어느 정도 작용을 했을까. ‘빨갱이’에서 벗어난 그는 마지막 단계로 구둣발 세례를 받고는 집시법 위반으로 20일간 남부경찰서에서 구류를 살고 석방되었는데,그건 “잉크빛,보랏빛으로 물든 그의 몸뚱이”에 남겨진 맷자욱을 치유시켜 내보내려는 기간에 다름 아니었다. 그러나 20일 구류를 무사히 살고 출감한 작가 현기영 앞에 기다리고 있었던것은 ‘순이 삼촌’ 제 2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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