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끌려
    2026-06-13
    검색기록 지우기
  • 수익
    2026-06-13
    검색기록 지우기
  • 부진
    2026-06-13
    검색기록 지우기
  • 진천
    2026-06-13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2,783
  • 호주 운하서 식인상어 낚은 12살 소년

    호주의 한 운하에서 낚시하던 12살 소년이 식인상어로 알려진 황소상어를 낚아 화제가 되고 있다. 23일(이하 현지시간) 호주 일간 오스트레일리안 등 현지 언론 보도에 따르면 20일 퀸즐랜드주(州) 골드코스트 인근 한 운하(Dunlops Canal)에서 이삭 캘러웨이(12)라는 소년이 릴 낚시로 40kg짜리 황소상어를 낚았다. 당시 이삭은 부친 딘 캘러웨이와 함께 운하에서 낚시를 즐기고 있었다고 전해졌다. 딘은 “처음에 우리는 그 상어가 얕은 물로 끌려올 때까지 싸우려고 하지 않아 가오리인 줄 알았었다.”고 말했다. 그는 “난 이삭이 상어를 (안전하게) 끌어올릴 수 있도록 그 상어에게 달려들었다.”면서 “옆에 있던 이웃 남성도 우리가 꼬리부터 상어를 끌어올릴 수 있도록 도와줬다.”고 덧붙였다. 사실 이삭이 운하에서 상어를 낚은 것은 처음이 아니라고 한다. 즉 상어가 해안을 지나 수로의 깊숙한 안쪽까지 들어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삭은 “지난해부터 상어를 총 3마리 잡았지만 이만큼 큰 적은 없었다.”면서 “단지 상어가 너무 커 놀랐을 뿐 무섭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호주의 한 해양과학 전문가는 이 같은 운하 내에서 수영하는 것을 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취임식 중 마이크 뺏긴 마두로

    ‘차베스의 후계자’ 니콜라스 마두로(51)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개표부정 논란 속에 치러진 취임식 도중 괴한에게 마이크를 빼앗기는 망신을 당했다. AP·AFP 통신에 따르면 마두로는 지난 19일 오후(현지시간) 수도 카라카스 국회의사당에서 취임식을 갖고 대통령에 공식 취임했다. 그는 디오스다도 카베요 국회의장 앞에서 헌법책을 들고 “베네수엘라를 14년간 통치한 차베스의 정책들을 계속 밀고 나가면서 그의 유산을 계승하겠다”고 덧붙였다. 취임 선서를 한 마두로 대통령이 연설을 하려는 순간 갑자기 나타난 한 괴한에 의해 연설이 제지당했다. 붉은색 점퍼를 입은 괴한은 의사당 내 왼쪽 통로를 통해 쏜살같이 연단으로 달려와 마이크를 낚아챘다. 국회의장석에 앉아 있던 카베요 의장이 괴한을 붙잡으려 했지만 팔이 닿지 않았다. 괴한은 마이크를 잡고 “니콜라스, 내 이름은 헨리”라고 외친 뒤 경호원들에게 끌려 나갔다. 괴한이 왜 연단에 올라 연설을 방해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마두로 대통령은 괴한이 끌려 나간 뒤 “여기서 총에 맞을 수도 있었다”며 “이번 사건은 지나갔다. 내가 나중에 그 남성과 대화를 시도해 보겠다”고 애써 침착함을 보였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 “아싸~가오리!”…107kg ‘괴물’ 낚였다

    ”아싸~ 가오리!” 한 낚시꾼이 바다에서 100kg이 넘는 거대 가오리를 낚아 올려 화제가 되고 있다. 최근 취미로 낚시를 즐기는 영국인 데이비드 그리피스(47)는 스코틀랜드 오번 인근 바다에서 꿈에서만 그리던 ‘대물’을 낚아 올리는데 성공했다. 그리피스가 낚싯줄에 단 고등어 미끼를 덥썩 문 대물은 바로 가오리과의 바닷물고기인 눈가오리. 특히 이 가오리는 무게가 무려 107kg, 길이도 230cm가 훌쩍 넘는 괴물 수준이었다. 그리피스는 “처음 낚싯대에 신호가 왔을 때 무엇인가 큰 놈이 걸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면서 “90분 간이나 가오리와 사투를 벌인 끝에 낚아 올릴 수 있었다.” 고 밝혔다. 이어 “보트가 끌려다니는 느낌이 들 정도로 가오리의 힘이 무척이나 쎘다.” 면서 “가오리 덕분에 난 낚시꾼의 전설이 됐다.”며 즐거워했다.   현지언론에 따르면 그리피스가 잡은 가오리는 비공식적으로 영국에서 가장 큰 놈으로 기록됐다. 보트의 선장은 “그리피스가 잡은 가오리를 다시 바다로 돌려 보내 기록을 인정받지 못했다.” 면서 “그가 행운의 사나이기도 하지만 거대 가오리를 낚아 올린 힘과 기술도 대단했다.” 며 혀를 내둘렀다. 인터넷뉴스팀 
  • 미친 세상, 홀로 울며 노래하며 살아낸 ‘광주’를 위하여

    미친 세상, 홀로 울며 노래하며 살아낸 ‘광주’를 위하여

    “영암집 숙자가 죽은 사람은 있어도 죽인 사람은 없는 야속한 세상이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산 사람들은 사는 것이 바빠서 그렇게 많은 사람이 죽었어도 그 사람들이 언제 죽었느냐 하고서 잊어버리고 그렇게 많은 사람을 죽인 사람이 분명히 있을 텐데도 그 사람이 누구를 죽였든지 말든지 내 알 바가 아니라고 시치미 뚝 떼는 세상이라고. 이놈의 세상이 그렇게도 야속하고 무정하다고.”(166쪽) 공선옥(50)의 새 장편소설 ‘그 노래는 어디서 왔을까’(창비 펴냄)는 시간상으로 1970년대 새마을운동부터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까지를 다루고 있다. 황석영이 1985년에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가 전달했던 즉각적인 충격과 분노를 이 책에서는 찾을 수 없다. 5·18 이후 살아남은 자들의 고통을 그린 장선우 감독의 영화 ‘꽃잎’과 이창동 감독의 ‘박하사탕’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역사를 관통하는 것은 그 사건이 아니라 개인들의 연속된 삶이기 때문이다. 새마을운동이 한창인 농촌에서 순박한 부모를 잃고 쫓겨나 도시로 이주해 콩나물을 팔면서 동생을 건사해야만 했던 15살의 어린 소녀 ‘정애’의 삶을 그저 불운했다고 하기에는 마음이 답답하다. 국가의 요구에 무차별적으로 부응하는 집단의 광기와 국가의 폭력이 없었더라면 정애의 삶은 평범하고 아름답게 늙어 갈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몹쓸 일을 당할 때마다 노래를 불렀다. 어떤 형식이나 형태가 있는 노래가 아닌데, 무서움도 사라지고 위로가 찾아온다. 문제는 그녀가 너무 자주 노래를 불러야 했다는 것이다. 1970년대와 80년대가 여성들로 표상되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비우호적이고 야만적인 사회였는지 새삼 깨닫게 된다. 이 소설에는 오일팔(5·18)을 겪고 정신적 고통을 이기지 못해 미쳐 버린 인물이 ‘셋이나’ 나온다. 남동생을 찾으러 갔다가 군인들에게 몹쓸 일을 당한 정애를 비롯해 학생으로 오인받는 재미로 전두환이 누군지도 모른 채 얼결에 데모대에 휩쓸려 삼청교육대까지 끌려갔다가 돌아온 카센터 직원 박용재, 5·18에 공수부대 무전병으로 국난극복기장을 받았지만 제대 후 멀쩡한 팔을 기차 바퀴에 밀어 넣은 오만수다. 사실 ‘미친 사람이 셋이나’ 나온다는 기술은 정확하지 않다. 공선옥은 “자네를 미쳤다고 하는 사람들도 미친 것은 다 한가지여. 세상이 미친 거여. 미치지 않은 세상은 언제였을까. (중략) 미친 세상에서 미친 사람만이 미치지 않은 거여”라고 박샌댁 입을 통해 일갈한다. 정애는 또한 말한다. “나쁜 사람이 나쁜 일을 한 것보다 좋은 사람이 나쁜 일을 하는 것이 나는 더 무서웠다”라고. 신뢰했던 국가, 그 국가의 폭력 앞에 노출된 시민들은 치유할 수 없는 상처와 흔적을 입은 것이다. 그 당시 국가의 폭력은 이제 완전히 사라졌다고 우리는 자신할 수 있을까. 제3세계 국가에서 배우려고 오는 새마을운동이 1970년대 이농을 부추긴 실패한 정책이었음이 공선옥의 기억에서 되살아났다. 주인공 정애는 “새마을을 만들었는데도, 새마을이 됐다는데도 어인 일인지 사람들은 자꾸자꾸 새마을을 떠났다”고 했다. 당시 농사를 지으면 지을수록 농가는 빚이 늘었단다. 정부는 통일벼를 심으라고 강요하고, 통일벼로 못자리를 하지 않으면 공무원들이 와서 짓밟았고, 정부 시책을 따르지 않는 사람은 다 빨갱이라고 했단다. 통일벼는 해충에 약해서 농약이 없으면 지을 수 없었다. 키가 작고 힘이 없어 초가집의 이엉을 얹을 수도 없었단다. 그러니 농가에서는 슬레이트로 지붕을 올려야 했고, 농약을 듬뿍 친 통일 볏짚을 소의 여물로 쓸 수 없으니 비싼 수입 사료를 먹여야 했단다. 70~80%가 농부였던 대한민국은 새마을운동을 거치고 21세기에 접어들어 이제 7~8%의 농부만 농촌에 남았다. 그 많은 농부는 저임금의 도시 노동자로 전락해 일요일 아침에 농촌 드라마 ‘전원일기’를 시청하면서 겨우 고향에 대한 향수를 누그러뜨렸으니 말이다. 공선옥은 저자의 말에서 “나의 이 허술한 글을 하고 싶은 말은 많으나 들어주는 사람이 없어 혼자 노래하고 혼자 울었던 내 어머니에게 바친다. 그리고…하고 싶은 말은 많으나 들어주는 사람 없어 혼자 울어야 했던 그대, ‘광주’에 바친다”고 했다. 돌아보자. 광주가 아직도 홀로 울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문소영 기자 symun@seoul.co.kr
  • 혜리측 “토니가 만나자고 했다”

    혜리측 “토니가 만나자고 했다”

    걸스데이 소속사 드림티엔터테인먼트가 걸스데이 멤버 혜리와 토니 안의 열애에 대해 공식입장을 밝혔다. 드림티엔터테인먼트는 16일 미투데이를 통해 ”팬 여러분께 혜리 양 관련된 문제로 심려를 끼쳐드려 진심으로 머리숙여 죄송한 마음을 전한다”며 “우선 소속사에서는 두 사람의 만남을 미리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음을 팬 여러분들에게 진심으로 죄송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혜리양에게 확인 결과 두 사람은 그동안 방송을 통해 선후배 사이로 알고 지내다가 올해 3월 걸스데이 정규앨범 컴백 초기 상대방에게 만나보자는 연락을 받았으며 자상함과 세심한 배려심에 끌려 몇 차례 만나 서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고 들었다”고 설명했다. 드림티엔터테인먼트는 이와함께 “아직 연예계와 일상적인 생활에 대한 조언과 위로를 주고받는 상황으로 알고 있다. 혜리양은 현재 두 사람의 만남이 기사화 되는 등 지나친 관심으로 심리적으로 많이 놀라고 힘들어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추측이나 이야기가 확산되지 않기를 언론과 여러분께 간곡히 부탁드리며 다시 한 번 팬 여러분들께 걱정을 끼쳐드려 죄송한 마음을 전한다”고 당부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16살차’ 토니 안-혜리, 심야 데이트 장면 공개

    ‘16살차’ 토니 안-혜리, 심야 데이트 장면 공개

    1990년대 최고의 인기 아이돌 그룹 H.O.T 출신 토니 안(36·본명 안승호)와 걸그룹 걸스데이의 멤버 혜리(20·본명 이혜리)가 열애 중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 토니 안-혜리의 ‘몰래 데이트’ 사진 더 보러 가기 스포츠서울닷컴은 16일 두 사람의 열애 사실과 함께 몰래 데이트를 즐기는 사진을 공개했다. 보도에 따르면 두 사람은 지난달 부터 만남을 가져왔다. 매체는 지난 14일 밤 토니 안의 차를 타고 한강 근처의 카페에 들어가는 사진을 공개했다. 토니 안이 걸스데이의 숙소 근처에서 기다리고 있는 모습과 혜리가 주변을 살피며 차 안으로 올라타는 모습, 카페 안에서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 등이 사진 속에 담겼다. 두 사람은 16살이라는 나이차에도 불구하고 여느 연인과 마찬가지로 ‘사랑의 밀어’를 속삭이기 바빴다고 매체는 전했다. 매체는 지난 달 음악방송 등에서 마주친 혜리의 모습에 토니 안이 호감을 느끼고 먼저 다가갔고, 혜리 역시 토니 안의 자상함과 세심한 배려에 마음이 끌려 만남을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두 사람의 소속사는 “좋은 감정으로 만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인정하면서도 “아직 서로를 알아가는 단계다. 애정을 가지고 지켜봐달라”고 조심스러운 입장을 밝혔다고 덧붙였다.. H.O.T 출신의 토니 안은 1세대 아이돌로 최고의 인기를 누렸으며 현재 연예 기획사 TN엔터테인먼트의 대표로 후배들을 양성하고 있다. 최근에는 같은 그룹 출신 문희준과 젝스키스의 멤버 은지원, GOD의 데니 안, NRG의 천명훈 등과 함께 리얼리티 예능 프로그램 ‘20세기 미소년’에 출연하고 있다. 2010년 걸스데이 멤버로 데뷔한 혜리는 지난달 14일 첫 정규앨범 ‘기대해’를 발표하고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타이틀곡 ‘기대해’에서는 이른바 ‘멜빵춤’을 선보이며 섹시한 이미지로 인기를 끌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명사가 걸어온 길] 평생을 민중의 아이콘으로 살다 백기완(상)

    [명사가 걸어온 길] 평생을 민중의 아이콘으로 살다 백기완(상)

    백기완(80)은 거리에 있었다. 1973년 유신헌법 개정 투쟁 때도, 1987년 6월 민주화 항쟁 때도 그는 늘 대오의 맨 앞에 서 있었다. 그는 지금도 거리에 있다. 박근혜 대통령 취임 이후 서울 중구청이 대한문 앞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의 분향소를 철거할 때도 백발의 백기완은 새벽같이 나와 천막을 지켰다. “피눈물 흘리는 사람들의 몸부림이 있는 곳이 나의 삶터”라고 말하는 백기완. 스스로 “늙었다”고 말하면서도 세상에 호통치고 노래 부르기를 멈추지 않는 그는 여전히 젊다. 백기완의 삶과 예술을 두 차례에 나눠 싣는다. 백기완을 거리로 이끈 것은 가난과 분단이었다. 1933년 황해도 은율 산자락에서 태어났다. 땅 한 뼘 갖지 못한 아버지는 돈이 없었다. 배가 고팠다. “돼지기름 덩어리 한 조박(조각의 황해도 사투리)을 날로 먹는 것이 어릴 적 꿈이었다”고 회고할 정도다. 일제의 잔학한 수탈이 계속되던 때였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왜놈들이 집에 와서 놋그릇을 뺏어갔어요. 쌀도 뺏고 밥그릇도 뺏고, 나도 울고 엄마도 울고. 그런데 엄마가 그만 울래요. ‘사내 새끼가 자꾸 울면 키가 안 큰다. 어서 커서 엄마 원수를 꼭 갚아 달라’고. 그때부터 민족의식이 싹 텄던 것 같아요.” 1946년 백기완은 아버지를 따라 맨발로 서울에 왔다. 도시는 냉정했다. 설렁탕 집에서 일을 하다가 “식은 밥을 너무 많이 먹는다”는 이유로 쫓겨났다. 그에게 서울은 “주먹으로도 안 되고 참아도 안 되고 울어도 안 되는 곳”이었다. 가진 게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저항심리가 그에게 민중 의식을 심어줬다고 했다. 축구 선수가 되고 싶었지만 하루하루 입에 풀칠하기도 힘들었다. 학교는 꿈도 못 꿨다. 충무로 책방에서 주인 몰래 영어 사전을 외우다 쫓겨나기를 거듭했다. 그의 할아버지(백태주)에게서 항일투쟁 때 도움을 받았던 백범 김구(1876~1949)와 임시정부의 외무부장을 지낸 조소앙(1887~1958) 선생이 학교에 보내겠다고 했지만 아버지는 마다했다. 아버지는 “백범에게 밥을 얻어먹으면 백범 같은 사람밖에 안 된다. 깡패가 되든 거지가 되든 혁명가가 되든 혼자서 크라”고 했다. 1950년 전쟁으로 나라가 찢어졌다. 어머니는 여전히 은율에 있었다. 남쪽에서 참전한 작은형은 “북쪽에 계시는 어머니를 겨냥해서는 단 한 방도 쏠 수가 없다. 그래서 하늘에 대고만 빵빵 쏜다”는 편지를 남기고 전장에서 숨졌다. 형의 유해를 찾으러 강원도에 갔다가 사격을 당해 죽기 살기로 뛰었다. 뛰면서 다짐했다. 언젠가 나라의 허리를 내 손으로 잇겠다고. 전쟁이 끝났다. 국토는 폐허였다. 백기완은 ‘나라가 온통 퇴폐와 이기주의에 빠져 있다’고 여겼다. “우리 생명을 심자”며 젊은 날을 나무심기와 농민운동에 바치기로 했다. 1953년부터 꼬박 7년. 그때는 불덩어리 같았다고 했다. 젊은이들의 주머니를 털어 100만 그루가 넘는 나무를 심었다. 뜨거운 청춘이 되살아나는 듯 백기완은 인터뷰를 멈추고 거친 목소리로 자신이 만든 노래를 불렀다. “바라보라 붉은 산 햇빛에 탄다/ 저 산을 푸르게 마음도 푸르게/ 저 산을 푸르게 조국도 푸르게/ 영치기 영치기 영차차 영치기 영차차/ 영치기 영치기 영차차 영치기 영차차 우리는 선봉이다 자진녹화대” 100만 그루의 나무는 이 땅에 생명이 되었을까. 뜻대로 되지는 않았다. 이승만 독재가 강화되면서 그는 본격적인 싸움을 시작했다. 싸움은 반 세기 넘게 이어졌다. 그는 ‘가대기 형(兄)’ 이야기를 했다. “가대기 형은 서울역에서 막일하던 지게꾼이었어요. 이름도 제대로 모르고 그냥 가대기 형이라고 불렀어요. 싸움을 잘했지만 주먹쟁이는 아니었어요. 내가 가난한 친구들이랑 주먹다짐을 하고 나면 이렇게 얘기했죠. ‘싸움은 있는 놈, 나쁜 놈들이랑 하는 거야. 없는 놈들끼리 싸워봤자 서로 코만 터져’ 그 말이 내 인생의 길라잡이가 됐어요.” 이승만 전 대통령은 백기완에게 ‘나라를 반으로 가른 미국의 앞잡이’였다. 정권을 바꿔가며 30년 넘게 이어진 독재의 시작이기도 했다. 그는 “길이 없으면 길을 찾아가고 그래도 길이 없으면 새 길을 내자”며 4·19 혁명에 참여했다. 이승만 정권은 무너졌다. 그러나 이듬해 5·16 군사 반란이 터졌다. 그가 “독재자의 야욕과 자본주의의 폭악이 결합된 극악한 체제”라고 부르는 ‘박정희 18년’의 시작이었다. 1972년 유신헌법이 나왔다. 1974년 1월에는 긴급조치 1호가 나왔다. 1973년부터 ‘유신헌법 개헌청원 백만인 서명 운동’을 벌이던 백기완과 고 장준하(1918~1975) 선생은 긴급조치 1호 위반으로 15년형을 선고받았다. 2년 뒤 풀려났다. 그는 가장 힘들었던 순간으로 그때를 꼽았다. 유신은 그에게 ‘반통일, 반평화, 반균등, 반자유, 반문화, 반예술, 반역사, 반진보’였다. “유신 타파 운동을 하다 집에 들어와서 잠시 눈을 붙이고 있었어요. 탕탕탕, 누가 현관문을 부수고 구둣발로 들어와 이불을 확 베끼더라고. ‘너희 집 안방에 강도가 구두를 신고 들어와서 이불을 벗기면 좋겠어. 빗자루로 쓸어 이 새끼야’ 그랬더니 나를 짓이기며 질질 끌고 가요. 기가 막혔습니다. 내 생각대로 목숨을 걸고 떳떳하게 살았는데 그렇게 끌고 가면 되겠어요. 온몸이 노여움으로 부들부들 떨렸습니다.” 그는 끌려가면서 아내에게 “여보, 나 기다리지 마. 훗날 내 무덤에 이름 모를 꽃이 피면 그게 해방 통일의 꽃일 거야”라고 외쳤다. “지금 들으면 어쭙잖은 얘기처럼 생각되기도 하는데, 그때는 죽기 살기로 싸울 때였으니 진지했어요. 거의 반 죽어서 감옥에 있는데 아내에게 편지가 왔어요. 새벽녘 추위가 더 매서운 법이니 견디어 내시라고.” 그러나 1975년 기다리던 아침이 오는 대신 믿고 따르던 장준하가 죽었다. 장준하는 그에게 “모든 통일은 좋다. 제국주의와 독점자본주의의 틀을 뒤집는 첫 걸음이 통일이다”고 알려준 스승이었다. 그는 “야비한 학살”이라고 했다. 여섯 달을 내리 울었다. 지난달 26일 장준하 선생 사인 진상조사 공동위원회가 “머리에 둔기를 맞고 숨졌다”는 사인을 발표할 때 백기완은 다시 울었다. 1979년 유신 체제가 끝난 뒤 그 자리를 채운 것은 또 다른 군사 정권이었다. ‘반동분자’ 백기완은 다시 끌려갔다. 모질게 맞았다. 손톱이 뽑혔다. 정신을 잃으면 물바가지가 날아왔다. 독재는 짐승만도 못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죽기 살기로 시를 쓰며 버텼다. 그때 쓴 ‘묏비나리’는 ‘임을 위한 행진곡’으로 작곡돼 대표적인 민중가요가 됐다. 맨 첫발/ 딱 한발띠기에 목숨을 걸어라 (중략)/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싸움은 용감했어도 깃발은 찢어져/ 세월은 흘러가도 구비치는 강물은 안다/ 벗이여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라/ 갈대마저 일어나 소리치는 끝없는 함성/ 일어나라 일어나라/ 소리치는 피맺힌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산자여 따르라 1987년 6월 민주화 항쟁 이후 백기완은 민중후보로 대통령 후보에 추대됐다. 야권에서는 김영삼, 김대중, 백기완이 단일화를 모색했다. 하지만 민주화는 눈앞의 신기루였다. 백기완이 선거 이틀 전 단일화를 외치며 후보를 포기했지만 ‘양김’은 끝내 각자의 길을 갔다. 노태우 후보가 당선됐다. 그는 “민중을 위해 싸운 100여년을 승리로 매듭지을 기회를 날렸다. 피눈물이 그치지 않았다”고 했다. 1992년 말 다시 민중후보로 대통령 선거에 나섰지만 낙선했다. 1993년 김영삼 정부가 ‘문민’(文民)의 간판을 내걸고 들어선 이후 지금까지 총칼을 앞세운 독재는 사라졌지만 백기완은 싸움을 멈추지 않는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이명박 정부를 거치는 사이 독재의 폭력은 신자유주의로 횡포로 바뀌고 있었다. 노동 현장을 찾아다녔다. 자본의 낯은 겉으로만 번지르르했다. 그는 “이명박 정부는 가장 극악하게 노동을 탄압한 정권”이라고 했다. 정도는 달랐지만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도 사정은 비슷했다. 그는 “사람의 마음까지도 상품으로 만들어 돈으로 환산하는 신자유주의의 폐해를 근본적으로 없애야 한다. 신자유주의에서 민중이 해방되는 것이 역사적 과제”라고 했다. “젊은이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비바람과 가뭄을 견디지 못하고 여름 한때 없이 떨어지는 가랑잎을 ‘개죽’이라고 합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자본주의의 모순을 깨뜨릴 생각은 않고 그 속에서 출세, 돈벌이, 명예, 행복만 좇다가 개죽이 되어가는 것 같아요. 젊은이들이여, 개죽이 되지는 마시오. 개죽으로 사느니 마음껏 자라다가 거름이라도 되는 게 나아요.” 그가 이번 정부에 가장 우선해 요구하는 것이 노동 문제다. “지난해 한진중공업 노조에서 최강서라는 젊은이가 서른넷에 목숨을 끊었어요. 유서에 ‘가진 자들의 횡포에 졌다. 박근혜가 대통령이 된 5년을 더 기다릴 수 없다. 돈이 전부인 세상에 없어서 더 힘들다’고 적었어요. 사실상 학살이나 다름없었어요. 장례식에 갔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꼬마들이 ‘아빠 왜 안 오냐’면서 사탕을 먹고 있어요. 울었어요. 집으로 돌아오는데 앞이 안 보입디다. 하지만 나는 앞이 안 보인다고 주저앉지는 않아요. 그대로 주저앉는 건 자본주의에 져서 인간성을 포기하는 겁니다.” 백기완은 박근혜 대통령을 두고 ‘유신 잔재’라는 거친 표현도 서슴지 않았다. “유신에 대한 거부와 비판이 한마디도 없다”고도 했다. 그는 다시 ‘장산곶매’ 이야기를 했다. “장산곶매는 일찍이 애미 애비를 잃고 너무나 배가 고팠습니다. 올빼미와 까마귀를 찾아가 밥 한 술을 빌다가 부리와 발톱을 빼앗겼죠. 땅 속으로 가면 쥐들이 쫓아오고, 바깥으로 가면 사람들이 보약이라며 달려들고. 그렇게 벼랑까지 쫓기다 보니 앞에는 끝도 없는 바다, 뒤에는 사람과 쥐새끼예요. 장산곶매는 벼랑 끝에서 넓은 바다와 하늘을 보며 깨친 바가 있어 힘이 약한 짐승은 잡아먹지 않고 일년에 두 번 나쁜 놈 하고만 싸우기로 합니다. 장산곶매가 싸움을 떠나는 날 밤이면 숲에서 ‘딱, 딱’ 하는 소리가 나요. 부리질로 제 둥지를 ‘딱, 딱’ 까부수는 소리. 집에 집착하면 온몸으로 싸울 수가 없어요. 싸움을 할 때는 목숨을 걸어야 돼요.” 2009년 백기완은 “한평생 하는 일들이 죄다 실패였다. 다시 실패의 어두움 속으로 반딧불이를 찾아 뛰어드는 느낌”이라고 했다. 어둠 속에 뛰어드는 그는 싸움을 멈출 생각이 없다. 백기완은 둥지가 없다. 백기완은 여전히 거리에 있다(하편에 계속). 배경헌 기자 baenim@seoul.co.kr ■백기완은 ▲1933년 황해도 은율 출생 ▲1953년 농민운동 시작 ▲1965년 한·일협정 반대 운동 ▲1974년 긴급조치 1호 위반으로 15년형 ▲1979년 YMCA 위장결혼 사건으로 징역형, 1981년 3·1절 특사로 석방 ▲1987년 민중후보로 대선 출마 뒤 단일화 주장하며 사퇴 ▲1988년 통일문제연구소 개소 ▲1992년 민중후보로 다시 대선 출마, 낙선 ▲1999년 계간 ‘노나메기’ 창간 ▲2002년 대한축구협회 요청으로 월드컵대표팀에게 강연, 히딩크 감독과 인연 ■주요 저서 항일 민족론(1986) 장산곶매 이야기(1994) 백기완의 통일이야기(2003) 사랑도 이름도 명예도 남김없이(2009) 시집 이제 때는 왔다(1985), 젊은 날(1990) 극본 대륙(1998)
  • [마스터스] ‘무관의 실력파’ 가르시아 55번째 도전 빛 볼까

    세르히오 가르시아(33·스페인)는 한때 스타의 반열에 올랐던 골프선수지만 대표적인 ‘메이저 무관’의 선수이기도 하다. 1999년 프로 전향 당시만 해도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미국)에 곧잘 비교되기도 했다. 2008년에는 세계 랭킹 2위까지 올랐다. 그런데도 유독 메이저대회와는 인연이 닿지 않았다. 2007년 브리티시오픈 3라운드까지 2위에 3타 앞선 단독 선두를 달렸지만 마지막 18번홀 2.5m짜리 파 퍼트에 실패해 연장전에 끌려 들어간 뒤 결국 파드리그 해링턴(아일랜드)에게 우승컵을 내줬다. 이듬해 미국프로골프(PGA) 투어챔피언십에서도 그는 4라운드 마지막 3개홀에서 2타를 잃는 바람에 또 해링턴에게 1위 자리를 뺏겼다. 마스터스대회 최고 성적은 2004년 공동 4위, US오픈에선 2005년 공동 3위 등을 비롯해 메이저대회에서 모두 우승 언저리만 맴돌았다. 12일 밤 10시 39분(한국시간) 미국 조지아주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클럽에서 속개된 제77회 마스터스 2라운드. 가르시아는 2009년 대회 챔피언인 ‘오리’ 앙헬 카브레라(아르헨티나), 애덤 스콧(호주)과 힘차게 이틀째 1번홀 티샷을 날렸다. 전날 1라운드 6언더파 66타로 공동 선두에 나섰던 터. 가르시아는 10번홀까지 버디 5개를 몰아친 뒤 “확실히 내가 마스터스에서 가장 잘 친 10개홀이었다”며 만족감을 나타내기도 했다. 가르시아의 55번째 도전은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1라운드에서 2002년 대회 3라운드 이후 11년 만의 무보기 플레이를 펼친 가르시아의 2라운드 1번홀(파4·445야드)은 이븐파로 시작됐다. 9시 28분 가르시아에 앞서 전 세계 랭킹 1위 비제이 싱(피지)과 함께 티오프한 양용은(39·KB금융그룹)은 이 홀에서 보기를 범해 출발이 좋지 않았다. 최병규 기자 cbk91065@seoul.co.kr
  • 대낮 학교주변서… 중학생이 장애 초등생 살해·암매장

    중학생이 초등학교 여학생을 성폭행하려다 실패하자 살해한 뒤 암매장해 충격을 주고 있다. 인천 서부경찰서는 11일 학교 수업을 마치고 귀가하던 최모(12·초등학교 6학년)양을 살해한 뒤 암매장한 인천 모 중학교 3학년 장모(16)군에 대해 살인 및 사체유기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장군은 지난 10일 오후 2시 50분쯤 인천시 서구 마전동 K초등학교로부터 200여m 떨어진 곳에서 최양을 ‘공놀이하자’며 꾀어 인근 상가로 데려갔다. 정신지체장애 3급인 최양은 별다른 저항 없이 장군의 손에 이끌려 갔다. 장군은 K초등학교에 다닐 당시 최양과 같은 특수학급에 편성돼 아는 사이다. 장군은 상가 2층과 3층 사이 계단에서 최양을 성폭행하려 했으나 최양이 완강히 저항해 미수에 그쳤다. 장군은 이어 최양에게 ‘흙놀이를 하러 가자’며 철물점에서 삽을 산 뒤 초등학교에서 500m가량 떨어진 밭으로 유인했다. 장군은 그곳에서 삽으로 깊이 15㎝, 길이 1m의 구덩이를 파고 최양을 엎드리게 한 뒤 최양의 책가방을 뒷머리에 얹고 자신의 엉덩이로 눌러 질식사시킨 뒤 암매장했다. 장군은 경찰에서 “흙놀이를 하던 중 장양이 건방지게 굴어 화가 나 살해했다”고 진술했다. 경찰 관계자는 “장군은 거짓말을 잘하고 감정 변화가 심해 자기 통제가 되지 않는 스타일 같았다”고 말했다. 장군은 부모 없이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생활하고 있다. 장군은 지적장애 등급 판정을 받지는 않았지만 공격성이 강해 품행(정서) 장애를 겪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장군은 인천 M중학교 일반 학급에 소속돼 있으면서 하루 1∼2시간 특수 학급에서 수업을 받아 왔다. 학교 관계자는 “장군은 과잉행동장애가 있고 주의가 다소 산만한 편”이라고 밝혔다. 경찰은 10일 오후 7시 50분쯤 최양의 언니로부터 가출신고를 받고 학교 주변 폐쇄회로(CC)TV를 분석, 장군의 신원을 확인하고 탐문수사 끝에 11일 오전 4시 30분쯤 인근 병원에 입원해 있던 장군의 신병을 확보했다. 경찰은 장군으로부터 범행 일체를 자백받고 이날 오전 5시쯤 최양의 시신을 찾았다. 발견 당시 최양은 50㎝ 높이의 흙에 묻혀 있었고 옷은 정상적으로 입혀진 상태였다. 김학준 기자 kimhj@seoul.co.kr
  • 네덜란드에서 ‘대마초 마요네즈’ 개발

    네덜란드에서 ‘대마초 마요네즈’ 개발

    유럽에서 이색적인 소스가 개발돼 관심을 끌고 있다. 네덜란드의 한 패스트푸드체인 ‘오줌싸개 동상’이 칸나비스를 사용해 만든 마요네즈를 선보였다고 외신이 보도했다. 이 회사는 감자튀김을 팔면서 원하는 고객에게 칸나비스 마요네즈를 내주고 있다. 칸나비스를 재료로 만든 마요네즈는 대마초 향기를 갖고 있을 뿐 환각효과는 내지 않는다. 향정신성 물질인 THC가 빠져있기 때문이다. 회사는 “향정신성 물질이 빠져 있어 칸나비스 마요네즈가 불법 판정을 받진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칸나비스 마요네즈는 독특한 향기 때문에 개발됐다. 패스트푸드점 ‘오줌싸개 동상’의 대표 알버트 빅은 “(대마초를 합법적으로 필 수 있는) 커피점에서 나오는 대마초 향기에 이끌려 칸나비스 마요네즈를 만들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네덜란드에선 대마초가 불법이지만 1976년부터 커피점에선 소량의 대마초 소비를 허용하고 있다. 1인당 5g 이하의 대마초가 사실상 합법화됐다. 사진=자료사진 손영식 해외통신원 voniss@naver.com
  • [세종로의 아침] 성균관 스캔들/김성호 문화부 선임기자

    [세종로의 아침] 성균관 스캔들/김성호 문화부 선임기자

    ‘한국 유림의 수장’인 최근덕 성균관장이 결국 구속 수감됐다. 오랫동안 종교를 담당해 왔던 기자로서 안타깝기 그지없는 일이다. 이른바 ‘7대 종단’의 현직 수장이 구속되기는 처음이다. 그것도 국고보조금 유용 지시와 공금 유용 혐의다. 어쩌다 이 지경까지 이르렀는지 답답하기 짝이 없다. 지난 2010년 화제의 KBS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 타이틀을 놓고 당시 최 관장이 했던 말을 떠올리자니 실소마저 나온다. ‘우리 전통사회 유일한 국립대학이며 국가를 경영한 인재를 양성한 성균관에 왜 스캔들이란 이름을 붙이느냐’고 항의했던 최 관장이다. 최 관장의 구속 사태를 살펴보면 일단 내부 갈등의 소산으로 보인다. 최 관장은 잘 알려졌듯이 최장수 성균관장이다. 지난 1994∼98년 관장직을 맡은 데 이어 2003년 이후 지금까지 관장직을 내려놓은 적이 없다. 잇따른 연임 과정에서 불만을 품은 인사들이 문제 제기를 해왔던 터다. 실제로 지난해 부관장이 자금 유용 사실을 들어 최 관장을 서울 중앙지검에 고발했고 이번 사태도 그 연장선상에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혐의는 법정에서 가리겠지만 최 관장은 어떤 식으로든 대가를 치러야 할 것으로 보인다. 최 관장의 구속으로 사회 일반이 종교계를 보는 시선은 한층 더 삐딱해질 전망이다. 항간에 떠도는 말이 괜한 게 아닐 듯싶다. ‘종교가 세상을 걱정하는 게 아니라 세상이 종교를 걱정한다’는 비아냥조의 쑤군거림 말이다. 개신교 연합단체인 한국기독교총연합회의 내분과 분열만 해도 대표회장 선거 과정에서 이어졌던 금권타락 선거가 원인이다. 그런가 하면 지난해 ‘백양사 승려 도박’사태 이후 이어졌던 불교계의 은처승이며 룸살롱 출입 승려들에 대한 의혹 제기가 여전히 무성하다. 세상에 흠결 없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김수환 추기경만 해도 독재정권을 향해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았지만 도마에 오른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2004년 국가보안법 폐지 논란에 대해 ‘시기상조’라며 부정적 태도를 보여 배신자라는 눈총을 받았고, 서울대교구장 은퇴 후 구설수에 올랐다. ‘가난한 사람을 위한 가난한 교회’를 천명한 프란치스코 교황도 예외는 아니다. 1970∼80년대 군사정권이 정권 반대자들을 탄압해 3만여명이 실종·살해된 이른바 ‘더러운 전쟁’에서 당시 아르헨티나 예수회 총장이던 프란치스코 교황은 군에 끌려가 고문당한 사제들을 방조해 인권단체들로부터 고발당했다. 지금 전국 선방엔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의 기치를 걸고 뼈를 깎는 수행에 매진하는 부처님 제자들이 넘쳐난다. ‘수고하고 짐진 자들아 나를 따르라’고 외쳤던 예수님의 뜻을 따라 청빈한 사목과 나눔의 봉사에 목숨을 거는 목회자와 사제들이 부지기수다. ‘종교는 인류가 가진 최고의 도덕률’이라는 믿음 아래 ‘빛과 소금’이 되려는 일반의 신도도 태반이다. 그래서 종교 지도자들은 더욱 떳떳해야 한다. ‘조고각하’(照顧脚下·머리 숙여 자신의 발밑을 살핀다)라는 좋은 경계도 있지 않은가. 이제 ‘성균관 스캔들’같은 참사가 더 이상 없기를 바란다. kimus@seoul.co.kr
  • ‘득점선두’ 호날두 2골…레알 마드리드, 지고도 4강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레알 마드리드)가 두 골을 터뜨려 유럽 챔스리그 득점 선두를 내달렸다.  호날두는 10일 터키 이스탄불의 튀르크텔레콤 아레나에서 열린 갈라타사라이(터키)와의 2012~13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8강 2차전에 팀의 두 골을 모두 책임졌다. 레알은 2-3으로 역전패했지만 1차전을 3-0으로 이긴 덕분에 합계 5-3으로 4강에 선착했다. 대회 10호와 11호 골을 뽑아낸 호날두는 8골의 리오넬 메시(바르셀로나), 부락 일마즈(갈라타사라이)와의 격차를 3골로 벌렸다.  호날두는 전반 7분 사미 케디라가 골 지역 오른쪽 각도 없는 곳에서 올려준 낮은 크로스를 골문 앞에서 왼발로 방향만 살짝 바꿔 선취점을 뽑았다. 간판 골잡이 일마즈가 경고 누적으로 결장한 갈라타사라이는 디디에 드로그바와 베슬러이 스네이더르를 중심으로 공격을 펼친 끝에 후반 들어 세 골을 몰아쳤다.  갈라타사라이는 후반 13분 스네이데르의 크로스를 페널티 아크 부근에서 에마뉘엘 에부에가 오른발 슈팅으로 골문에 꽂아 균형을 맞췄다. 13분 뒤에는 스네이데르가 페널티 아크 근처에서 추가점을 올린 데 이어 1분 뒤에는 드로그바가 절묘한 힐킥으로 골문을 다시 열었다. 호날두는 경기 종료 직전 카림 벤제마의 패스를 받아 골 지역 중앙에서 오른발로 강하게 차 넣어 4강 진출에 마침표를 찍었다.  한편 도르트문트(독일)는 후반 추가시간 두 골을 뽑아내 말라가(스페인)에 기적 같은 3-2 역전승을 거두고 4강에 합류했다. 1차전을 0-0으로 비긴 도르트문트는 후반 37분 엘리세우에게 골을 얻어맞고 1-2로 끌려가다 마르코 로이스가 살린 희망의 불씨를 1분 뒤 펠리페 산타나가 마무리했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행수는 불문곡직 사내를 들쳐 업었다. 부러진 한쪽 다리가 하반신 아래로 축 늘어졌다. 아래쪽 자드락길에서 무명짐과 시겟짐을 수습하고 있던 동무들은 시신이나 다름없는 사내를 업고 가파른 기슭을 내려오는 행수의 거동을 먼발치에서 바라보고 있다가 고샅길 어귀에 똥 본 개 새끼들처럼 우르르 모여들었다. “행수님, 명줄은 붙어 있습니까?” “당장은 붙어 있네만 서둘러 따뜻한 봉노에 안동하지 않으면 당장 저승사자가 업어가겠구먼. 추운 날씨에 기한인들 오죽했겠나. 우리가 조금만 늦게 당도했어도 그대로 강시 날 뻔했네.” “이런 변고가 있나…. 적변을 당한 것입니까. 짐승을 만난 것입니까. 떠돌이 왈패들에게 걸려들어 매타작을 당한 것입니까? 어떤 육시랄 놈의 소행인가.” “어떤 무뢰배나 산적의 소행인지, 짐승을 만난 것인지 알 수 없네만, 냉큼 조처하지 않으면 이런 혹한에 살아남는다고 장담할 수 없네.” “실족을 했다면 자드락길이긴 하나 가근방 길목이 그다지 험하지 않고… 매타작을 당했다면, 봇짐 털려던 무뢰배나 산적이었겠지요.” “그런 말 할 경황 없네.” 난감한 일이었다. 명색 신표(信標)를 지닌 원상으로 자처하는 행상이라면 노상에서 마주친 행려병자나 실족한 동배간을 구완하지 않고 지나친 사례는 없었다. 사람에 따라 구급에 인색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사실이 나중에 들통나면, 임소나 접소에 끌려가서 혹독한 징치를 당하는 것이 예로부터 원상들이 지켜온 엄중한 기강이었다. 그러나 정한조 일행이 구완해야 할 이 길손은 본색조차 알 수 없었다. 그것이 그들을 잠시 망설이게 했다. 행수 정한조는 결단을 내렸다. 그는 일행 어느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초주검이 된 포병객을 들쳐 업었다. 그리고 견마 잡았던 만기와 동행으로 걸음을 재촉하였다. 뒤에 남은 일행들은 그 자리에 있다가 나귀와 등짐 들을 다시 수습하여 뒤따르도록 하였다. 샛재를 겨냥하고 걸음아 날 살려라, 종종걸음하는 행수의 뒤를 따르던 만기가 물었다. “이 사람이 우리와 같은 원상이라면, 신표를 지녔거나 추수전(秋收錢)에 바친 척문(尺文, 영수증)을 지니고 있을 텐데요?” “사추리 밑까지 샅샅이 뒤져보았지만 찾지 못했네….” “갓 쓰고 박치기를 해도 제멋이라지만 이 작자가 원상도 아니라면, 무슨 배포로 이 험한 산길에 대중없이 뛰어들었을까요. 횡액을 당할 것을 진작에 예견했을 만한데요.” “요사이는 접소에 적을 둔 원상이 아니라도 행세하는 잠상배나 부랑꾼 들이 많아서 신표를 지녔다 해도 도무지 본색을 믿을 수 없는 세상이 되었네. 조정에서는 지난 임오년 난리를 겪고부터 서북인이며 송도인이며 서얼이나 역관, 서리, 군졸 할 것 없이 벼슬길에 나설 수 있도록 조처하고, 장시에까지 양반의 직첩이 흘러나와 거래될 뿐만 아니라, 절집을 중수한답시고 공명첩까지 내돌리고 있지 않은가. 굶어 죽지 못해 명줄만 겨우 지탱해 오던 하찮은 궁반들도 보부상 노릇 한답시고 장시에서 물화를 사고팔도록 조처하여 어느덧 반상의 구별이 없어진 수상한 시절이 되고 말았네. 빈부귀천이 돌고 도는 물레방아가 되었다는 말은 바로 그걸 빗대어 하는 말일세. 요사이 들어선 장시에 창궐하는 무뢰배들은 물론이고 심지어 약초 캐어 연명한다는 산척(山尺)이며 난데없는 협잡꾼들까지 지난 신분을 숨기고 장시 어귀에서 사사로이 다듬은 물미장을 내저으며 행세들을 하고 있지 않은가. 허욕이 난무하고, 완악하고 거만한 작자들이 장시를 주름잡고 있어 은혜와 의리는 이제 우리와 거리가 멀게 되었다네. 그것은 자네도 익히 경험해서 알고 있는 일이 아닌가. 대원위대감이 청나라로 붙들려간 뒤 나라의 제도가 눈코 뜰 사이 없이 바뀌고 있어. 우리 부상들도 덩달아 갈피를 못 잡고 있다네. 그건 그렇구 서두르게.” “시세가 글렀습니다.” “그렇다 해서 우리 원상들이 지켜오던 정리를 헌신짝처럼 버릴 수는 없네. 만약 그렇게 되면 이보다 더 혹독한 환난을 겪게 될 것이야. 더욱이 우리 소금 상단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있어선 안 되네.”
  • 北 “개성공단 폐쇄는 눈앞의 현실”… 인질구출 언급에 위협

    우리 측 근로자들의 개성공단 진입을 이틀째 차단한 북한은 4일 개성공단 북측 근로자 5만 4000여명의 전원 철수를 언급하면서 압박 수위를 한층 끌어올렸다. 북한의 대남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대변인은 “남조선 당국과 보수언론이 못된 입질을 계속하면 개성공업지구에서 우리(북한) 근로자들을 철수시키는 단호한 조치를 취하게 될 것”이라고 위협했다. 우리 정부와 언론이 ‘개성공단 대규모 억류사태’, ‘인질구출 대책’ 등을 계속해서 언급한다면 북측 근로자마저 철수시키겠다는 것으로, 개성공단 폐쇄에 대비한 명분 쌓기용으로 풀이된다. 조평통은 “(남한이)지금처럼 개성공업지구를 동족 대결장으로 악용하는 조건에서 공업지구의 폐쇄는 당장 눈앞의 현실이 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개성공단에 대한 군사적 도발은 곧 자멸이다. 개성공단이 서울에서 불과 40㎞도 안 된다는 것을 명심하고 입조심하라”고 경고했다. 북한은 이날 우리 기업 몇 곳에 10일까지의 남측 귀환 계획서를 미리 제출하라고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말이 우리 측 인원의 전원 철수 요구처럼 와전돼 오전 한때 소동이 일기도 했다. 5일은 북한의 민속명절인 ‘청명절’로 휴일이고, 6일부터는 주말인 관계로 10일까지의 통행 계획 제출을 요구한 것으로 보이지만, 일부에서는 북한이 개성공단의 통행 전면 차단에 앞서 우리 측 귀환 인원수를 미리 가늠해보려 한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됐다. 4일에는 전날보다 많은 220명의 우리 측 근로자들이 귀환했으며, 개성공단에는 608명이 체류 중이다. 장기 체류에 대비한 식자재 공급이 필요한 상황이지만 통일부는 북한에 식자재 반입을 요청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납득하기 어려운 북한의 조치에 끌려다니지 않겠다는 것이다. 여분의 부자재와 식자재 공급이 중단되면 개성공단은 2~3일 내 조업이 중단되고 일주일 내 문을 닫는 상황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통일부는 “개성공단의 안정적 운영을 위해 대처하고 있다”고 했지만 해결방안을 찾지 못해 부심하는 분위기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400개 낚싯바늘로 잡는 흑산도 홍어

    400개 낚싯바늘로 잡는 흑산도 홍어

    대한민국 최대 홍어 어장 흑산도. EBS 극한직업은 흑산도에서 벌어지는 홍어잡이 사투 현장을 3~4일 오후 10시 45분 생생하게 전달한다. 목포항에서 92.7㎞ 떨어진 흑산도에서는 모두 7척의 배가 홍어잡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흑산도 홍어가 유명한 이유는 따로 있다. 흑산도 인근 해역은 수심 80m 이상으로 깊고 뻘이 많아 홍어 서식과 산란으로는 최적지로 꼽힌다. 어획량이 확 줄어들고 있는 추세였으나 최근 중국 불법어선 집중 단속으로 어획량이 다시 늘고 있는 추세다. 거기다 흑산도 어부들은 홍어의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해 미끼를 쓰지 않고 오로지 낚싯바늘로만 잡는 주낙 방법을 쓴다. 바퀴당 400개나 되는 날카로운 바늘을 주렁주렁 달고 있는 주낙을 끌어올리는 작업은 조금의 방심도 허용하지 않는다. 제작진은 홍어잡이 배 가운데 유일하게 한국인 선원으로만 구성된 영진호를 따라나섰다. 30년차 베테랑 선장에서부터 4개월 된 초보 선원까지, 모두 5명의 선원은 매번 같은 마음으로 조업을 준비한다. 만선의 꿈을 안고 영진호가 5시간을 달려나간 끝에 첫 조업을 시작한다. 투망 작업 뒤엔 이전 조업 때 내려놓은 위치에 놓이도록 양망 작업을 시작한다. 쉴 새 없는 강행군에 선원들은 지쳐 가는데, 그 와중에 어망이 잘리는 돌발사태가 벌어진다. 설상가상으로 바다가 거세지기 시작하는데…. 거기다 고생 끝에 끌어올린 주낙에는 홍어가 보이질 않는다. 주로 끌려 올라온 것은 이런저런 쓰레기들. 선원들로서는 힘이 쭉 빠질 만한 일이다. 30년차 베테랑 선장마저도 얼굴에서 웃음기가 슬슬 사라지기 시작한다. 제대로 건진 게 없으니 작업은 또 이어진다. 2시간 쪽잠을 잔 뒤 이어지는 작업들. 점점 무거워지는 몸과 마음을 가볍게 만드는 것은 역시 바늘에 걸려 줄줄 올라오는 홍어들. 마침내 본격적인 작업이 시작된다. 조태성 기자 cho1904@seoul.co.kr
  • [깔깔깔]

    ●선과 악 주일예배 시간에 목사가 창세기 3장 ‘인류의 타락’에 대해 설교했다. “그리하여 이브가 아담과 함께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고 에덴동산 중앙에 있는 금단의 열매를 따 먹음으로써, 인류는 낙원에서 추방된 것입니다. ” 그러자 아내의 손에 이끌려 처음 교회에 나온 한 남자가 혼자 중얼거렸다. “멍청한 것들! 좀 기다렸다가 가을이 됐을 때 땅에 떨어진 걸 주워 먹었으면 그렇게 되지 않았을 거 아냐?” ●애인이 변했다 1. 십분 이상 안 기다려줄 때. 2. 너 늙었다, 라는 말을 할 때. 3. 팔짱 안 낄 때. 4. 일찍 들어가라고 말할 때. 5. 환한 곳으로만 다닐 때.
  • 실패에서 찾는 기업 생태계 진화

    2005년, 하이트그룹이 진로를 인수한 뒤 가졌던 첫 번째 회식 자리에서 벌어진 일이다. 하이트 그룹 측 최고위 관계자가 돌연 진로 측 임원들을 향해 듣기 민망할 정도의 폭언을 퍼부었다. 이제 진로에서 체득한 습관들은 버리라는 요지의 쓴소리였지만, 듣기에 따라선 모욕이라 느낄 만한 언사였다. 하이트 맥주와 진로 소주를 섞어서 폭탄주를 마시려던 양 사 임원들은 순간 얼어붙어버렸다. 그날 술자리는 점령군 하이트와 피정복자였던 진로 간의 심리적 격차를 줄여보자고 마련한 자리였다. 그걸로 끝이었다. 진로의 자존심은 땅에 떨어졌고, 승자와 패자 간 간극은 이전 보다 더 벌어졌다.  ‘사라진 실패’(신기주 지음, 인물과사상사 펴냄)가 전하는 당시 풍경이다. 두 회사 간 결합은 당시 주류 시장의 태풍의 눈이었다. 하이트는 맥주 시장에서, 진로는 소주 시장에서 1등이었다. 시장 점유율도 각각 50%가 넘었다. 경쟁업체들은 양사 영업망이 합쳐지면 역대 최강의 공룡 주류 기업이 탄생할 거라며 긴장했다.  결과는 딴판이었다. 두 조직은 사사건건 반목했다. 진로의 정예 인력들이 줄줄이 새 나갔다. 당연히 기대했던 시너지 효과가 나올 리 없다. 옛 조선맥주 시절부터 오비맥주에 끌려다니다 가까스로 뒤집기에 성공했던 하이트였지만, 결국 시장 지배자의 지위를 다시 오비맥주에 넘겨주고 만다.  책은 성공했다고 평가받는 국내 13개 기업의 실패 사례를 분석하고 있다. 기업의 실패를 소화해내지 못한다면 결국 한국 사회도 진화하지 못한다는 판단에서다. 봉건적이고 제왕적인 한국의 대기업들은 참담한 실패 사례를 지우고, 승리의 기록만 남기려 애쓴다. 미화를 거듭하면서 한국 기업은 실패를 모른다는 그릇된 신화에까지 이르는 지경이 됐다.  책이 전하는 기업의 실패사는 놀라울 만큼 세밀하다. 경영진의 치부 때문에 위기에 봉착했던 오리온 그룹을 ‘왕과 왕비가 다스리는 왕국’으로, 국내 소비재 사업의 강자였다가 난데없이 종합중공업 그룹으로 변신을 시도했던 웅진그룹을 두고 ‘한국 기업 생태계가 빚어낸 실패’로 묘사하는 등, 한때 신문 사회면과 경제면을 장식했던 기업들의 ‘실패의 추억’을 마치 ‘핵심 관계자’처럼 꿰뚫고 있다. 책은 흔히 진화된 기업으로 평가받는 ‘네이버’의 NHN조차 ‘삼성이 버린 가치 체계를 들고 삼성처럼 추격자의 길을 걷는 기업’으로 혹평하고 있다. 저자는 “국가 간 경쟁은 이제 정부와 정부 간 대결이 아니라 기업을 통한 대리전 양상으로 변화됐다”며 “더욱 진화한 기업 생태계를 조성하는 데 성공한 국가와 사회라야 생존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1만 3000원.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 [여자프로배구] 창단 2년만에… ‘막내’ 기업은행 통합 우승

    [여자프로배구] 창단 2년만에… ‘막내’ 기업은행 통합 우승

    ‘막내의 반란’이다. 여자 프로배구의 막내구단 IBK기업은행이 정규리그에 이어 챔피언결정전에서도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기업은행은 29일 경북 구미의 박정희체육관에서 열린 프로배구 여자부 챔피언결정(5전3선승제) 4차전에서 GS칼텍스를 3-1(25-18 20-25 25-19 25-21)로 꺾고 먼저 3승(1패)을 올렸다. 2011년 8월 창단한 기업은행은 프로·실업을 합쳐 23년 만에, 창단 2시즌 만의 통합 우승을 일구는 새 역사를 썼다. 신생팀이 창단 2년 만에 정규리그 정상에 오른 것도 국내 4대 프로스포츠(야구·축구·농구·배구)를 통틀어 기업은행이 처음이다. 1·2차전을 내리 이긴 뒤 27일 3차전에서 통한의 역전패를 당한 기업은행은 이날도 초반에는 쉽게 경기를 풀어가지 못했다. 하지만 서브득점과 블로킹이 돌파구가 됐다. 특히 1세트에서만 서브로 5점을 뽑고 상대 주포 베띠(도미니카공화국)의 공격을 알레시아(우크라이나)가 세 차례, 유희옥이 두 차례나 가로막으면서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GS는 17-21로 뒤질 때 공격수 한송이가 알레시아의 공격을 막으며 착지하다가 오른쪽 발목을 다쳐 더욱 궁지에 몰렸다. 1세트를 내준 GS는 2세트에서도 6-8로 끌려가자 응급치료를 한 한송이를 바로 투입했다. GS는 한송이가 오픈 공격과 블로킹으로 투혼을 발휘했고 베띠가 상대 블로킹 벽을 뚫기 시작하면서 결국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다. 그러나 승부의 분수령이던 3세트에서 GS는 잦은 범실로 스스로 맥을 끊었다. 기업은행은 4세트 초반에도 끌려갔지만 베띠의 서브 범실 이후 김희진의 블로킹, 알레시아의 서브득점으로 단숨에 균형을 되찾았다. 이후 끈끈한 수비를 바탕으로 알레시아, 박정아, 김희진의 ‘삼각편대’를 가동하며 승부를 매듭지었다. 이날 양팀 통틀어 최다인 36득점(공격성공률 38.89%)한 알레시아는 기자단 투표에서 27표 중 19표를 얻어 챔프전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됐다. 이정철 기업은행 감독은 “이효희, 윤혜숙, 남지연 셋이 고생을 많이 했다. 언니들이 살림살이를 하면서 알레시아, 김희진, 박정아가 잘해줬다. 고생한 대가를 얻어 너무나 행복하다”며 모든 선수들에게 공을 돌렸다. GS는 최근 두 시즌 연속 최하위에 머물렀다가 올해 정규리그 2위로 포스트시즌에 진출, 2007~08시즌 이후 5년 만에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노렸지만 끝내 준우승에 머물렀다. 김민희 기자 haru@seoul.co.kr
  • [사설] 민·관·군, 北 도발 최악의 상황 대비할 때다

    북한의 도발 위협 수위가 정점으로 치닫고 있다. 북은 어제 남북 간 군 통신선을 단절하고 서해지구 남북관리구역 군 통신연락소의 활동도 중단한다고 선언했다. 그제 군 최고사령부가 야전 포병군에 ‘1호 전투근무태세’를 발령한 데 이은 조치다. 북한 외무성도 성명을 통해 “미국과 남한의 도발 책동으로 조선반도에 핵전쟁 상황이 조성됐다는 점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통고한다”고 밝혔다. 자신들의 군사 행동이 재래식 무기를 앞세운 국지적 도발 차원을 넘어 미국과 남한을 대상으로 한 핵미사일 공격이 될 것이라고 엄포를 놓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북한은 조만간 노동당 중앙위 전원회의를 소집, ‘주체혁명 수행의 결정적 전환을 이루기 위한 중대 문제를 결정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중대 문제’와 관련, 일각에선 군사적 주요 사항은 당 중앙군사위가 따로 정한다는 점을 들어 장기적 대외전략 정도를 논의하지 않겠느냐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이는 안이한 인식이다. 북한이 그럴 정도로 시스템화돼 있는 체제가 아니지 않은가. 일련의 북한 움직임을 감안하면 최소한 국지적 무력 도발이나 사이버테러와 관련돼 있을 가능성을 열어놓고 대비에 만전을 기하는 게 올바른 자세다. 지금까지 북한의 숱한 도발은 늘 우리의 안보의식이 해이해진 틈을 타고 자행됐다. 지속적 도발 위협에 따른 피로감과 대북 전략에 대한 강온 논란이 우리 사회에 확산되는 상황에서 북한은 뒤통수를 때렸다. 지난해 12월 북한의 로켓 발사 이후 석 달여 북한의 도발 위협이 계속돼 온 데 따른 긴장의 피로감과 안보 위협 상승에 대한 둔감함이 확대된 지금 시점이 바로 이에 해당한다. 3년 전 천안함이 폭침됐을 때 전군을 지휘하는 합참의장은 술을 마시고 자기 집무실에서 쉬고 있었다. 이 때문에 보고와 지휘가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았었다. 절대 되풀이돼선 안 될 일이다. ‘짖는 개는 물지 않는다’는 소리는 어떤 경우에도 군이 할 소리가 아니다. 대비 태세를 최고 수위로 끌어올릴 시점이다. 외교·통일 정책적 대응도 보다 면밀해야 한다. 외교부와 통일부는 어제 대통령 업무보고를 통해 대북 인도적 지원과 북한 조림사업 등을 위한 사회분야 교류를 북핵 문제와 별개로 추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남북 간 신뢰 형성을 위한 돌파구 마련을 위해 제한적이나마 남북 간 교류협력을 재개하겠다는 구상을 밝힌 것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고 본다. 그러나 모든 것은 때가 있다. 북한이 언제든 도발하겠다고 엄포를 놓는 상황에서 이런 입장 표명은 자칫 북한의 위협에 끌려가는 듯한 잘못된 메시지를 북한에 줄 수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지금은 북한이 도발한 이후 전개될 외교안보 지형 변화와 외교적 대응 시나리오를 짜는 데 전념할 때다.
  • 中낚시꾼, 철갑상어 잡았다가 물에 끌려들어가 그만…

    中낚시꾼, 철갑상어 잡았다가 물에 끌려들어가 그만…

    철갑상어를 잡은 낚시꾼이 줄을 당기다 반대로 물 속으로 끌려들어가 목숨을 잃는 끔찍한 사고가 발생했다. 최근 중국 남부 난닝시의 강에서 낚시를 즐기던 한 남자의 낚싯대에 ‘대물’이 걸려들었다. 바로 민물에 주로 사는 귀한 어류인 철갑상어. 이날 ‘대물’을 낚은 사람은 인근 마을에 사는 후앙 우(58)로 기쁨의 환호성도 잠시 거센 철갑상어의 힘에 이끌려 강에 빠지고 말았다. 함께 낚시중이었던 첸 완은 “즐겁게 대화를 나누던 중 낚싯대에 큰 놈이 걸려들었고 그 순간 바로 후앙이 강으로 떨어졌다.”고 밝혔다. 첸의 신고로 수색에 나선 경찰은 인근 제방에서 후앙의 시신을 수습했다. 경찰은 “철갑상어는 멸종위기종으로 국제적 보호 대상”이라면서 “경험없는 낚시꾼이 함부로 잡으려다가는 큰 위험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편 상어와는 전혀 관련없는 어류인 철갑상어는 암컷의 알인 ‘캐비어’로 유명하다. 성격이 비교적 온순한 철갑상어는 그러나 피부가 철갑처럼 단단하고 날카로운 경골로 돼 있어 여기에 스치거나 부딪치면 심각한 부상을 당할 수 있다. 사진=자료사진 인터넷뉴스팀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