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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 영화] ‘드래곤 블레이드’

    [새 영화] ‘드래곤 블레이드’

    ‘드래곤 블레이드’는 최근 급팽창하는 중국 영화 시장의 단면을 엿보게 하는 작품이다. 중국의 거대 자본은 할리우드 유명 스타들은 물론 해외 스태프들을 대거 영입해 대작들을 만들고 있다. 이 영화 역시 기획 단계부터 중국의 액션 스타 청룽을 비롯해 할리우드 스타 존 큐잭, 애드리언 브로디, 한국의 아이돌 스타 최시원 등을 주요 배역으로 캐스팅한 글로벌 프로젝트로 주목받았다. ‘적벽대전’과 같은 역사적 서사를 바탕으로 한 전통적인 영화와 달리 이번에는 화려한 액션 및 전쟁 장면을 담았다. ‘반지의 제왕’ 등 웬만한 할리우드 판타지 영화 못지않은 기술적인 진보도 눈에 띈다. 내수용뿐만 아니라 세계 시장을 겨냥한 중국 영화계의 야심이 읽히는 대목이다. 하지만 내용적인 면에서 진부함을 벗어나지 못하는 한계를 드러냈다. 일단 영화의 배경이 광활한 실크로드인 만큼 거대한 스케일이 눈길을 끈다. 제작에만 7년이 걸렸고 7000만 달러(약 771억원)의 제작비가 들었다. 중국 서부에서 중부까지 3200㎞를 오가며 촬영을 진행한 덕분에 웅장한 볼거리가 화면을 압도한다. 영화 속 후오안(청룽)은 실크로드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36개 부족의 분쟁 해결에 고군분투한다. 그러나 후오안은 누명을 쓰고 옌먼관으로 끌려간다. 그곳에서 지금껏 볼 수 없었던 무기와 전투 편대를 갖춘 로마 군대를 만난다. 후오안은 이 군대를 이끌고 있는 루시우스(존 큐잭) 장군과 결투를 하지만 각각 자국에서 반역죄의 누명을 쓰게 된 사연을 알게 되면서 두 사람은 서로를 이해하게 되고 둘도 없는 친구가 된다. 이들은 실크로드의 평화를 위협하는 로마제국의 왕자 티베리우스(애드리언 브로디)에 맞서 목숨을 건 결투를 벌인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지만 극의 짜임새가 헐겁고 교훈적인 면만 강조한 탓에 밋밋한 영웅담을 보는 것처럼 맥 빠진 전개가 이어진다. 여러 민족을 규합해 공공의 적에 맞선다는 내용은 중화주의 사상을 강요하는 듯한 인상도 풍긴다. 스토리 안에 담아야 할 다양한 가치, 창의적 상상력이 취약한 중국 영화의 한계를 보여 준다. 물론 영화의 중심을 잡는 청룽의 캐릭터는 비교적 잘 구축됐지만 다른 할리우드 스타들과의 조합이 부자연스러운 것도 안타깝다. 개봉 전의 대대적 홍보와 달리 한류스타 최시원의 분량도 5분 남짓에 불과하다. 그는 실크로드의 부사령관 잉포 역으로 출연해 극 초반과 후반에 강한 카리스마 연기를 선보였다. 오히려 후오안의 부하 중 한 명으로 출연한 유승준의 분량이 더 많다. 병역 회피 논란으로 2002년 입국 금지된 유승준은 청룽의 엔터테인먼트 기업인 JC그룹 인터내셔널과 전속 계약을 맺고 중국에서 활동 중이지만 국내 홍보 단계에서는 전혀 부각되지 않았다. ‘흑협’ ‘성월동화’ ‘삼국지-용의 부활’ 등을 연출한 리런강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12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
  • 우주의 ’일체무상’(一切無常)...경험해보실래요?

    우주의 ’일체무상’(一切無常)...경험해보실래요?

    -우주에는 '제자리'가 없다 책상 앞에 앉아 있을 때, 우리는 조금의 움직임도 없이 정지해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이것은 착각이다. 그 자리에 앉은 채 당신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 없이 적어도 1초에 400m는 공간이동을 당하고 있는 중이다. 그것은 지구의 자전 운동 때문이다. 지구가 24시간에 한 바퀴 도니까, 지구 둘레 4만km를 달리는 셈이다. 적도지방에 사는 사람이라면 1초에 500m씩 이동당하고, 북위 38도쯤에 사는 사람은 초속 400m로 이동당하는 것이다. 이는 음속을 넘는 수치로, 시속 1,500km에 달하는 맹렬한 속도이다. 항공기 속도의 두 배니까, 자동차로 이렇게 달린다면 날개 없이 공중 부양을 할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2단계로, 지구는 지금 이 순간에도 당신을 싣고 태양 둘레를 쉼없이 달리고 있는 중이다. 태양까지의 거리가 1억 5천만km니까, 반지름이 1억 5천만km인 원둘레를 1년에 한 바퀴 도는 셈인데, 이것이 무려 초속 30km의 속도다. 그런데도 우리는 왜 못 느낄까? 우리가 지구라는 우주선을 타고 같이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바다 위를 고요히 달리는 배 안에서는 배의 움직임을 알 수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 이것을 갈릴레오의 상대성 원리라고 한다. 3단계가 또 있다. 우리 태양계 자체가 은하 중심을 초점으로 하여 돌고 있다. 시속 70만km라니까, 초속으로 따지면 약 200km다(아래 영상에서는 시속 70,000km로 나와 있는데, 틀린 것임). 이처럼 맹렬한 속도로 달리더라도 은하를 한 바퀴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은 무려 2억 3천만 년이나 된다. 이는 곧, 광대한 태양계란 것도 은하에 비한다면 망망대해 속의 물방울 하나라는 얘기다. 하긴 은하라는 것도 이 대우주의 크기에 비한다면 역시 조약돌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어떤 천문학자는 신이 인간만을 위해 이 우주를 창조했다면 공간을 너무 낭비한 것이라고 푸념하기도 했다. 태양이 은하를 한 바퀴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을 1은하년이라 한다. 태양의 은하년 나이는 20살쯤 된다. 앞으로 그만큼 더 나이를 먹으면 태양도 생을 마감하게 된다. 적색거성으로 태양계 모든 행성들과 함께 종말을 맞게 될 것이다. 어쨌든 이 정도만 해도 멀미가 날 것 같은데, 이게 아직 끝이 아니다. 우리은하 역시 맹렬한 속도로 우주공간을 주파하고 있는 중이다. 우리은하는 안드로메다 은하, 마젤란 은하 등, 약 20여 개의 은하들로 이루어져 있는 국부 은하군에 속해 있다. 지금 이 국부 은하군 전체가 처녀자리 은하단의 중력에 이끌려 바다뱀자리 쪽으로 달려가고 있는데, 그 속도가 무려 초속 600km나 된다. 마지막 결정적으로, 우주 공간 자체가 지금 이 순간에도 빛의 속도로 무한팽창을 계속해가고 있으며, 수많은 별들이 탄생과 죽음의 윤회를 거듭하고 있다. 광막한 우주공간을 수천억 은하들이 비산하고, 그 무수한 은하들 중에 한 모래알인 우리은하 속 태양계의 지구 행성 위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것이다. 이는 실제 상황이다. 따지고 보면, 이 우주 속에서 원자 알갱이 하나도 잠시 제자리에 머무는 놈이 없는 셈이다. 이처럼 삼라만상의 모든 것들이 무서운 속도로 쉼없이 움직이는 것이 이 대우주의 속성이다. 이를 일컬어 '일체무상(一切無常)'이라 한다. 당신은 지금 이 순간에도 우주의 '일체무상' 속에 몸을 담그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소설이나 공상이 아니라, 현실이다. 이 정도면 어질어질하신가? 하지만 우주는 너무나 조화로워, 우리는 이 모든 격렬한 움직임에서 보호받으며 이렇게 평온 속에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우주는 이토록 위대하며, 신비를 넘어 감동이다. 만약 당신이 시인의 마음으로 이 우주의 감동을 느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우주 속에 태어나서 본전은 뽑은 셈이 아닐까? (동영상 보기 http://youtu.be/0jHsq36_NTU) 이광식 통신원 joand999@naver.com
  • [아하! 우주] 당신은 지금 ‘초속 600km’로 우주를 달리고 있습니다

    [아하! 우주] 당신은 지금 ‘초속 600km’로 우주를 달리고 있습니다

    -우주에는 '제자리'가 없다 책상 앞에 앉아 있을 때, 우리는 조금의 움직임도 없이 정지해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이것은 착각이다. 그 자리에 앉은 채 당신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 없이 적어도 1초에 400m는 공간이동을 당하고 있는 중이다. 그것은 지구의 자전 운동 때문이다. 지구가 24시간에 한 바퀴 도니까, 지구 둘레 4만km를 달리는 셈이다. 적도지방에 사는 사람이라면 1초에 500m씩 이동당하고, 북위 38도쯤에 사는 사람은 초속 400m로 이동당하는 것이다. 이는 음속을 넘는 수치로, 시속 1,500km에 달하는 맹렬한 속도이다. 항공기 속도의 두 배니까, 자동차로 이렇게 달린다면 날개 없이 공중 부양을 할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2단계로, 지구는 지금 이 순간에도 당신을 싣고 태양 둘레를 쉼없이 달리고 있는 중이다. 태양까지의 거리가 1억 5천만km니까, 반지름이 1억 5천만km인 원둘레를 1년에 한 바퀴 도는 셈인데, 이것이 무려 초속 30km의 속도다. 그런데도 우리는 왜 못 느낄까? 우리가 지구라는 우주선을 타고 같이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바다 위를 고요히 달리는 배 안에서는 배의 움직임을 알 수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 이것을 갈릴레오의 상대성 원리라고 한다. 3단계가 또 있다. 우리 태양계 자체가 은하 중심을 초점으로 하여 돌고 있다. 시속 70만km라니까, 초속으로 따지면 약 200km다(아래 영상에서는 시속 70,000km로 나와 있는데, 틀린 것임). 이처럼 맹렬한 속도로 달리더라도 은하를 한 바퀴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은 무려 2억 3천만 년이나 된다. 이는 곧, 광대한 태양계란 것도 은하에 비한다면 망망대해 속의 물방울 하나라는 얘기다. 하긴 은하라는 것도 이 대우주의 크기에 비한다면 역시 조약돌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어떤 천문학자는 신이 인간만을 위해 이 우주를 창조했다면 공간을 너무 낭비한 것이라고 푸념하기도 했다. 태양이 은하를 한 바퀴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을 1은하년이라 한다. 태양의 은하년 나이는 20살쯤 된다. 앞으로 그만큼 더 나이를 먹으면 태양도 생을 마감하게 된다. 적색거성으로 태양계 모든 행성들과 함께 종말을 맞게 될 것이다. 어쨌든 이 정도만 해도 멀미가 날 것 같은데, 이게 아직 끝이 아니다. 우리은하 역시 맹렬한 속도로 우주공간을 주파하고 있는 중이다. 우리은하는 안드로메다 은하, 마젤란 은하 등, 약 20여 개의 은하들로 이루어져 있는 국부 은하군에 속해 있다. 지금 이 국부 은하군 전체가 처녀자리 은하단의 중력에 이끌려 바다뱀자리 쪽으로 달려가고 있는데, 그 속도가 무려 초속 600km나 된다. 마지막 결정적으로, 우주 공간 자체가 지금 이 순간에도 빛의 속도로 무한팽창을 계속해가고 있으며, 수많은 별들이 탄생과 죽음의 윤회를 거듭하고 있다. 광막한 우주공간을 수천억 은하들이 비산하고, 그 무수한 은하들 중에 한 모래알인 우리은하 속 태양계의 지구 행성 위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것이다. 이는 실제 상황이다. 따지고 보면, 이 우주 속에서 원자 알갱이 하나도 잠시 제자리에 머무는 놈이 없는 셈이다. 이처럼 삼라만상의 모든 것들이 무서운 속도로 쉼없이 움직이는 것이 이 대우주의 속성이다. 이를 일컬어 '일체무상(一切無常)'이라 한다. 당신은 지금 이 순간에도 우주의 '일체무상' 속에 몸을 담그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소설이나 공상이 아니라, 현실이다. 이 정도면 어질어질하신가? 하지만 우주는 너무나 조화로워, 우리는 이 모든 격렬한 움직임에서 보호받으며 이렇게 평온 속에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우주는 이토록 위대하며, 신비를 넘어 감동이다. 만약 당신이 시인의 마음으로 이 우주의 감동을 느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우주 속에 태어나서 본전은 뽑은 셈이 아닐까? (동영상 보기 http://youtu.be/0jHsq36_NTU) 이광식 통신원 joand999@naver.com
  • [속보]김기종, 병원이송 중 자기도 아프다며…

    [속보]김기종, 병원이송 중 자기도 아프다며…

    5일 오전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를 흉기로 습격한 우리마당독도지킴이 대표 김기종(55)씨는 자신도 부상을 당해 병원으로 이송돼 치료를 받고 있다. 김씨는 이날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열린 민화협 주최 조찬 강연회 행사장에서 리퍼트 대사가 앉은 중앙 헤드테이블의 오른쪽 뒤쪽 테이블에 앉아있었다. 오전 7시 35분쯤 리퍼트 대사가 도착하고 5분여 뒤 본격적인 강연에 앞서 조찬이 시작되자 갑자기 일어나 다른 테이블에 앉아있던 한 참석자 옆에 A4 용지 크기의 유인물 10장을 내려놓고는 “받으라”고 말했다. 그 후 김 대표가 헤드테이블 쪽으로 이동해 리퍼트 대사를 밀쳐 넘어뜨리고 흉기를 수차례 휘두르기까지는 불과 1∼2초 밖에 걸리지 않았다고 목격자들은 전했다. 한 참석자는 “다들 여유롭게 식사를 시작하려던 참이었는데 리퍼트 대사가 아침으로 나온 죽 첫술을 뜨자마자 갑자기 공격당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참석자는 “테러범이 옆으로 다가오자 리퍼트 대사가 자신에게 인사하려는 줄 알았는지 악수를 청하려는 자세로 일어났는데 그러고 나서 바로 목을 부여잡고 쓰러졌다”고 전했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놀란 참석자들과 김씨를 제지하려는 관계자들 및 취재진이 뒤섞이면서 현장은 이내 아수라장이 됐다. 그 사이 김씨는 뒤쪽 테이블에 있던 미 대사관 경호팀과 민화협 관계자들, 새누리당 장윤석 의원 등 참석자들에 의해 제압당해 바닥에 엎드려 있다가 출동한 경찰에 인계됐다. 김씨는 행사장 밖으로 끌려나간 뒤에도 아스팔트 바닥에 엎드린 채 한동안 저항했다. 결국 종로경찰서로 이송된 김씨는 “경호요원에게 밟혀서 발목 등을 다쳤으니 치료를 받고 변호사가 오면 그때 진술을 하겠다”고 버텼다. 이어 제압당하는 과정에서 다쳤다며 병원 치료를 먼저 받겠다고 요구, 오전 11시 11분쯤 적십자병원으로 이송됐다. 김씨는 간이침대에 이불을 덮고 누운 채 종로경찰서에서 나와 응급차량으로 옮겨지는 와중에 “전쟁훈련 반대한다”, “이산가족이 못만나는 이유가 전쟁훈련 때문이라 그랬다”, “전쟁훈련 중단하자, 키 리졸브…”라고 외치다 “아~ 아파! 아파!”라고 고통을 호소하기도 했다. 병원에 이송된 김씨는 간이침대에 이불을 덮고 누운 채로 구급차에서 나와 응급실 안으로 실려 들어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김기종 우리마당 대표 “아파! 아파!” 고통…장윤석 국회의원 누구길래?

    김기종 우리마당 대표 “아파! 아파!” 고통…장윤석 국회의원 누구길래?

    우리먀당 김기종, 우리마당 김기종 대표, 장윤석 국회의원 김기종 우리마당 대표 “아파! 아파!” 고통…장윤석 국회의원 누구길래? 미국 대사를 흉기로 공격한 우리마당독도지킴이 대표 김기종(55)씨가 5일 병원으로 이송돼 치료를 받고 있다. 김기종씨는 이날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열린 민화협 주최 조찬 강연회 행사장에서 리퍼트 대사가 앉은 중앙 헤드테이블의 오른쪽 뒤쪽 테이블에 앉아있었다. 오전 7시 35분쯤 리퍼트 대사가 도착하고 5분여 뒤 본격적인 강연에 앞서 조찬이 시작되자 김씨는 갑자기 일어나서 다른 테이블에 앉아있던 한 참석자 옆에 A4 용지 크기의 유인물 10장을 내려놓고는 “받으라”고 말했다. 그 후 김 대표가 헤드테이블 쪽으로 이동해 리퍼트 대사를 밀쳐 눕히고 흉기를 수차례 휘두르기까지는 불과 1∼2초밖에 걸리지 않았다고 목격자들은 전했다. 한 참석자는 “다들 여유롭게 식사를 시작하려던 참이었는데 리퍼트 대사가 아침으로 나온 죽 첫술을 뜨자마자 갑자기 공격당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참석자는 “테러범이 옆으로 다가오자 리퍼트 대사가 자신에게 인사하려는 줄 알았는지 악수를 청하려는 자세로 일어났는데 그러고 나서 바로 목을 부여잡고 쓰러졌다”고 전했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놀란 참석자들과 김씨를 제지하려는 관계자들, 당시 현장에 있던 취재진이 뒤섞이면서 현장은 이내 아수라장이 됐다. 그 사이 김씨는 뒤쪽 테이블에 있던 미 대사관 경호팀과 민화협 관계자들, 새누리당 장윤석 의원 등 참석자들에 의해 제압당해 바닥에 엎드려 있다가 출동한 경찰에 인계됐다. 장윤석 의원은 2013년 제 21대 대한아마추어복싱연맹 회장으로 활동한 사실이 알려져 화제가 됐다. 당시 김씨는 “유인물을 나눠주십시오. 지난 3월 2일에 훈련 반대하면서 만든 유인물입니다. 한일관계 다리가 날아갔어. 왜 전쟁훈련합니까. 전쟁훈련하면 우리나라 통일 영원히 안 됩니다”라고 소리를 지르며 몸부림을 쳤다고 목격자들은 말했다. 김씨는 행사장 밖으로 끌려나간 뒤에도 아스팔트 바닥에 엎드린 채 한동안 저항했다. 경찰 조사를 받던 김씨는 제압 과정에서 부상을 당했다며 병원 치료를 먼저 받겠다고 요구해 이날 오전 11시 11분쯤 서울 종로구 적십자병원으로 이송됐다. 그는 간이침대에 이불을 덮고 누운 채 종로경찰서에서 나와 응급차량으로 옮겨지는 와중에 “전쟁훈련 반대한다”, “이산가족이 못만나는 이유가 전쟁훈련 때문이라 그랬다”, “전쟁훈련 중단하자, 키 리졸브…”라고 외치다 “아~ 아파! 아파!”라고 고통을 호소하기도 했다. 김씨는 검거 직후 종로경찰서로 이송돼 조사를 받았지만 진술을 거부했으며, “경호요원에게 밟혀서 발목 등을 다쳤으니 치료를 받고 변호사가 오면 그때 진술을 하겠다”고 말했다. 병원에 이송된 김씨는 간이침대에 이불을 덮고 누운 채로 구급차에서 나와 응급실 안으로 실려 들어갔다. 김기종 대표는 과거 일본 대사에게도 시멘트 덩어리를 던져 처벌을 받았다. 김 대표는 2010년 7월 7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특별강연회 도중 시게이에 도시노리(重家俊範) 당시 일본 대사에게 지름 약 10㎝와 7㎝인 시멘트 덩어리 2개를 던진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됐다. 이후 김 대표는 법원에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형을 선고받았다. 김 대표는 지난해 시게이에 전 일본 대사를 공격했던 일을 엮은 책인 ‘독도와 우리, 그리고 2010년’을 출간하기도 했다. 이 책에는 테러를 미화하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은 일본 대사를 공격했을 때 그를 두둔한 것으로 확인됐다. 조선중앙방송은 김 씨의 일본 대사 공격 직후인 2010년 7월13일 “일본 대사가 남조선과 일본 사이의 새로운 시대니, 공동번영이니 뭐니 하고 망발하는 데 격분한 우리마당독도지킴이 대표 김기종은 그에게 콘크리트 덩어리를 던졌다”고 보도했다. 김씨는 같은 해 7월 7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시게이에 도시노리(重家俊範) 당시 주한 일본 대사 초청 강연회에서 시게이에 대사에게 시멘트 덩어리 2개를 투척했다. 중앙방송은 남한 네티즌들이 김 씨의 행동을 지지하는 글을 올렸다며 “김기종의 항의 행동은 일본에 대한 분노를 던진 것이라고 하면서 찬양을 받아 마땅하다고 주장했다”고 강조했다. 대외용 라디오 방송인 평양방송도 2010년 8월 1일 이 사건이 “역사왜곡과 독도강탈 책동을 끈질기게 벌이고 있는 일본 반동들이 당한 너무도 응당한 봉변”이라고 주장했다. 평양방송은 남한 시민단체와 언론이 김씨의 행동을 “윤봉길 열사의 폭탄투척 사건”에 비유하며 “속이 후련해 했다”고 덧붙였다. 북한은 김씨가 이 사건으로 기소돼 법정에서 징역 4년을 구형받은 직후인 2010년 8월 24일에는 대남선전용 웹사이트 ‘우리민족끼리’를 통해 정부가 그에게 ‘부당한 탄압’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우리민족끼리는 “(정부가) 정당한 권리를 행사한 김기종을 구속하고 탄압을 가해오던 끝에 폭거를 감행했다”고 비난했다. 이 매체는 “일본 대사란 자에게 날아든 투석 세례는 민족적 분노의 분출로서 거기에 문제시될 것이란 하나도 없다”고 옹호했다. 김씨는 이외에도 간담회 등 행사에서 소동을 벌여 폭행과 상해 등의 혐의로 여러차례 처벌을 받았다. 김씨는 지난해 2월 13일 오후 서대문구 창천교회에서 열린 신촌 번영회 정기총회 박원순 서울시장 강연회가 끝날 무렵 맨 앞줄에 앉아 있는 변모(55)씨의 왼쪽 뺨을 때려 재판에 넘겨졌다. 법원은 상해 혐의로 기소된 김 대표에 대해 벌금 70만원을 선고했다. 김씨는 같은 해 5월에는 일본대사관에 일본 정부의 집단자위권 규탄 항의서한을 전달하려다 제지당하자 경찰에게 신발과 계란을 투척해 입건되기도 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우리마당 김기종, 후송되면서 “아파! 아파!” 장윤석 국회의원 제압

    우리마당 김기종, 후송되면서 “아파! 아파!” 장윤석 국회의원 제압

    우리먀당 김기종, 우리마당 김기종 대표, 장윤석 국회의원 우리마당 김기종, 후송되면서 “아파! 아파!” 장윤석 국회의원 제압 미국 대사를 흉기로 공격한 우리마당독도지킴이 대표 김기종(55)씨가 5일 병원으로 이송돼 치료를 받고 있다. 김기종씨는 이날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열린 민화협 주최 조찬 강연회 행사장에서 리퍼트 대사가 앉은 중앙 헤드테이블의 오른쪽 뒤쪽 테이블에 앉아있었다. 오전 7시 35분쯤 리퍼트 대사가 도착하고 5분여 뒤 본격적인 강연에 앞서 조찬이 시작되자 김씨는 갑자기 일어나서 다른 테이블에 앉아있던 한 참석자 옆에 A4 용지 크기의 유인물 10장을 내려놓고는 “받으라”고 말했다. 그 후 김 대표가 헤드테이블 쪽으로 이동해 리퍼트 대사를 밀쳐 눕히고 흉기를 수차례 휘두르기까지는 불과 1∼2초밖에 걸리지 않았다고 목격자들은 전했다. 한 참석자는 “다들 여유롭게 식사를 시작하려던 참이었는데 리퍼트 대사가 아침으로 나온 죽 첫술을 뜨자마자 갑자기 공격당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참석자는 “테러범이 옆으로 다가오자 리퍼트 대사가 자신에게 인사하려는 줄 알았는지 악수를 청하려는 자세로 일어났는데 그러고 나서 바로 목을 부여잡고 쓰러졌다”고 전했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놀란 참석자들과 김씨를 제지하려는 관계자들, 당시 현장에 있던 취재진이 뒤섞이면서 현장은 이내 아수라장이 됐다. 그 사이 김씨는 뒤쪽 테이블에 있던 미 대사관 경호팀과 민화협 관계자들, 새누리당 장윤석 의원 등 참석자들에 의해 제압당해 바닥에 엎드려 있다가 출동한 경찰에 인계됐다. 당시 김씨는 “유인물을 나눠주십시오. 지난 3월 2일에 훈련 반대하면서 만든 유인물입니다. 한일관계 다리가 날아갔어. 왜 전쟁훈련합니까. 전쟁훈련하면 우리나라 통일 영원히 안 됩니다”라고 소리를 지르며 몸부림을 쳤다고 목격자들은 말했다. 김씨는 행사장 밖으로 끌려나간 뒤에도 아스팔트 바닥에 엎드린 채 한동안 저항했다. 경찰 조사를 받던 김씨는 제압 과정에서 부상을 당했다며 병원 치료를 먼저 받겠다고 요구해 이날 오전 11시 11분쯤 서울 종로구 적십자병원으로 이송됐다. 그는 간이침대에 이불을 덮고 누운 채 종로경찰서에서 나와 응급차량으로 옮겨지는 와중에 “전쟁훈련 반대한다”, “이산가족이 못만나는 이유가 전쟁훈련 때문이라 그랬다”, “전쟁훈련 중단하자, 키 리졸브…”라고 외치다 “아~ 아파! 아파!”라고 고통을 호소하기도 했다. 김씨는 검거 직후 종로경찰서로 이송돼 조사를 받았지만 진술을 거부했으며, “경호요원에게 밟혀서 발목 등을 다쳤으니 치료를 받고 변호사가 오면 그때 진술을 하겠다”고 말했다. 병원에 이송된 김씨는 간이침대에 이불을 덮고 누운 채로 구급차에서 나와 응급실 안으로 실려 들어갔다. 김기종 대표는 과거 일본 대사에게도 시멘트 덩어리를 던져 처벌을 받았다. 김 대표는 2010년 7월 7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특별강연회 도중 시게이에 도시노리(重家俊範) 당시 일본 대사에게 지름 약 10㎝와 7㎝인 시멘트 덩어리 2개를 던진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됐다. 이후 김 대표는 법원에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형을 선고받았다. 김 대표는 지난해 시게이에 전 일본 대사를 공격했던 일을 엮은 책인 ‘독도와 우리, 그리고 2010년’을 출간하기도 했다. 이 책에는 테러를 미화하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은 일본 대사를 공격했을 때 그를 두둔한 것으로 확인됐다. 조선중앙방송은 김 씨의 일본 대사 공격 직후인 2010년 7월13일 “일본 대사가 남조선과 일본 사이의 새로운 시대니, 공동번영이니 뭐니 하고 망발하는 데 격분한 우리마당독도지킴이 대표 김기종은 그에게 콘크리트 덩어리를 던졌다”고 보도했다. 김씨는 같은 해 7월 7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시게이에 도시노리(重家俊範) 당시 주한 일본 대사 초청 강연회에서 시게이에 대사에게 시멘트 덩어리 2개를 투척했다. 중앙방송은 남한 네티즌들이 김 씨의 행동을 지지하는 글을 올렸다며 “김기종의 항의 행동은 일본에 대한 분노를 던진 것이라고 하면서 찬양을 받아 마땅하다고 주장했다”고 강조했다. 대외용 라디오 방송인 평양방송도 2010년 8월 1일 이 사건이 “역사왜곡과 독도강탈 책동을 끈질기게 벌이고 있는 일본 반동들이 당한 너무도 응당한 봉변”이라고 주장했다. 평양방송은 남한 시민단체와 언론이 김씨의 행동을 “윤봉길 열사의 폭탄투척 사건”에 비유하며 “속이 후련해 했다”고 덧붙였다. 북한은 김씨가 이 사건으로 기소돼 법정에서 징역 4년을 구형받은 직후인 2010년 8월 24일에는 대남선전용 웹사이트 ‘우리민족끼리’를 통해 정부가 그에게 ‘부당한 탄압’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우리민족끼리는 “(정부가) 정당한 권리를 행사한 김기종을 구속하고 탄압을 가해오던 끝에 폭거를 감행했다”고 비난했다. 이 매체는 “일본 대사란 자에게 날아든 투석 세례는 민족적 분노의 분출로서 거기에 문제시될 것이란 하나도 없다”고 옹호했다. 김씨는 이외에도 간담회 등 행사에서 소동을 벌여 폭행과 상해 등의 혐의로 여러차례 처벌을 받았다. 김씨는 지난해 2월 13일 오후 서대문구 창천교회에서 열린 신촌 번영회 정기총회 박원순 서울시장 강연회가 끝날 무렵 맨 앞줄에 앉아 있는 변모(55)씨의 왼쪽 뺨을 때려 재판에 넘겨졌다. 법원은 상해 혐의로 기소된 김 대표에 대해 벌금 70만원을 선고했다. 김씨는 같은 해 5월에는 일본대사관에 일본 정부의 집단자위권 규탄 항의서한을 전달하려다 제지당하자 경찰에게 신발과 계란을 투척해 입건되기도 했다. 2007년 6월에는 명동성당에서 열린 ‘6월항쟁을 기록하다’ 출판기념회에서 “6월 항쟁 기념사업이 분파적으로 일이 진행되고 있다”면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를 고발한다는 내용의 유인물을 나눠주려 하다가 제지당하기도 했다. 일본 대사에게 시멘트 조각을 던지기 전인 2010년 2월 김씨는 외교기관 인근에서 옥회집회나 시위를 금지한 ‘집시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조항이 헌법에 위반된다며 헌법소원을 내기도 했다. 당시 김씨는 주한 일본대사관 한국어 홈페이지의 ‘일한관계’에서 ‘다케시마 문제’에 대한 삭제요구를 하기 위해 대사관 앞에서 항의 집회를 하려고 했지만 집시법 규정 때문에 집회를 하지 못했다며 헌법소원을 냈지만 같은 해 11월 헌재는 ‘합헌’이라고 결정했다. 2006년에 일본 시마네현이 다케시마의 날을 선포하자 김 대표는 동료 6명과 함께 본적을 경북 울릉군 독도리 38번지로 옮긴 바 있다. 김씨는 2000년대 중반 여러 차례 북한을 방문하기도 했다. 공안당국에 따르면 김씨는 2006년 11월부터 2007년 4월까지 정부 승인을 받아 모두 8차례 방북했다. 공안당국은 반일활동에 주력했던 김 대표가 수차례 방북한 이후 반미활동으로 전환한 것으로 보고 그의 반미활동 내용을 유심히 들여다보고 있다. 새누리당 권은희 대변인도 브리핑을 통해 “김 대표는 헌재에서 북한의 주체사상을 추종한다는 등의 이유로 해산 결정을 받은 통합진보당이 속해 있던 ‘전쟁반대 평화실현 국민행동’의 일원”이라면서 “대법원으로부터 이적단체 판결을 받은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민족자주통일중앙협의회(민자통), 우리민족연방제통일추진회의(연방통추) 등도 국민행동에 포함돼 있다”며 북한과의 연계 가능성을 지적했다. 권 대변인은 이어 “가장 우려스런 점은 김 대표가 교수라는 직함을 가지고 청년들을 가르쳤다는 사실”이라면서 “김 대표는 1997∼2007년 성공회대 교양학부 외래교수로 재직한 사실이 확인됐다”고 덧붙였다. 교수 재직과 관련해 성공회대 측은 “김 대표는 ‘전통 예술의 이해’라는 수업 하나만 맡았지만 그만둔 지가 오래돼 정확한 수업 내용은 파악이 어렵다”면서 “외래교수라는 말은 시간강사를 예우하는 차원의 명칭일 뿐 교수는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김씨는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당시 서울 도심에 분향소를 설치하는 데 관여하기도 했다. 그는 2011년 12월 26일 ‘국가보안법피해자모임’ 회원들이 서울 중구 대한문 앞에 김 위원장 분향소 설치를 하려다 보수단체 회원들과 충돌·대치하는 과정에서 보수단체 회원으로 추정되는 10여명으로부터 집단 폭행을 당했다. 2007년에는 1988년 발생한 ‘우리마당 습격사건’의 진상 규명을 요구하며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던 중 분신을 시도, 전신에 심각한 화상을 입기도 했다. 우리마당 사건은 서울 서대문구 창천동에 있었던 ‘우리마당’ 사무실을 괴한 4명이 습격해 안에 있던 여성을 성폭행하고 달아난 사건이다. 당시 야당이었던 평민당은 이 사건이 군 정보사령부에 의해 저질러진 정치테러라고 폭로했지만 현재까지 진상은 규명되지 않았다. 김씨는 2001년부터 3년간, 2005년부터 2년간 두 차례에 걸쳐 민주평통 자문위원을 지내기도 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우리마당 김기종, 후송 도중 “아파! 아파!” 장윤석 국회의원 제압

    우리마당 김기종, 후송 도중 “아파! 아파!” 장윤석 국회의원 제압

    우리먀당 김기종, 우리마당 김기종 대표, 장윤석 국회의원 우리마당 김기종, 후송 도중 “아파! 아파!” 장윤석 국회의원 제압 미국 대사를 흉기로 공격한 우리마당독도지킴이 대표 김기종(55)씨가 5일 병원으로 이송돼 치료를 받고 있다. 김기종씨는 이날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열린 민화협 주최 조찬 강연회 행사장에서 리퍼트 대사가 앉은 중앙 헤드테이블의 오른쪽 뒤쪽 테이블에 앉아있었다. 오전 7시 35분쯤 리퍼트 대사가 도착하고 5분여 뒤 본격적인 강연에 앞서 조찬이 시작되자 김씨는 갑자기 일어나서 다른 테이블에 앉아있던 한 참석자 옆에 A4 용지 크기의 유인물 10장을 내려놓고는 “받으라”고 말했다. 그 후 김 대표가 헤드테이블 쪽으로 이동해 리퍼트 대사를 밀쳐 눕히고 흉기를 수차례 휘두르기까지는 불과 1∼2초밖에 걸리지 않았다고 목격자들은 전했다. 한 참석자는 “다들 여유롭게 식사를 시작하려던 참이었는데 리퍼트 대사가 아침으로 나온 죽 첫술을 뜨자마자 갑자기 공격당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참석자는 “테러범이 옆으로 다가오자 리퍼트 대사가 자신에게 인사하려는 줄 알았는지 악수를 청하려는 자세로 일어났는데 그러고 나서 바로 목을 부여잡고 쓰러졌다”고 전했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놀란 참석자들과 김씨를 제지하려는 관계자들, 당시 현장에 있던 취재진이 뒤섞이면서 현장은 이내 아수라장이 됐다. 그 사이 김씨는 뒤쪽 테이블에 있던 미 대사관 경호팀과 민화협 관계자들, 새누리당 장윤석 의원 등 참석자들에 의해 제압당해 바닥에 엎드려 있다가 출동한 경찰에 인계됐다. 장윤석 의원은 2013년 제 21대 대한아마추어복싱연맹 회장으로 활동한 사실이 알려져 화제가 됐다. 당시 김씨는 “유인물을 나눠주십시오. 지난 3월 2일에 훈련 반대하면서 만든 유인물입니다. 한일관계 다리가 날아갔어. 왜 전쟁훈련합니까. 전쟁훈련하면 우리나라 통일 영원히 안 됩니다”라고 소리를 지르며 몸부림을 쳤다고 목격자들은 말했다. 김씨는 행사장 밖으로 끌려나간 뒤에도 아스팔트 바닥에 엎드린 채 한동안 저항했다. 경찰 조사를 받던 김씨는 제압 과정에서 부상을 당했다며 병원 치료를 먼저 받겠다고 요구해 이날 오전 11시 11분쯤 서울 종로구 적십자병원으로 이송됐다. 그는 간이침대에 이불을 덮고 누운 채 종로경찰서에서 나와 응급차량으로 옮겨지는 와중에 “전쟁훈련 반대한다”, “이산가족이 못만나는 이유가 전쟁훈련 때문이라 그랬다”, “전쟁훈련 중단하자, 키 리졸브…”라고 외치다 “아~ 아파! 아파!”라고 고통을 호소하기도 했다. 김씨는 검거 직후 종로경찰서로 이송돼 조사를 받았지만 진술을 거부했으며, “경호요원에게 밟혀서 발목 등을 다쳤으니 치료를 받고 변호사가 오면 그때 진술을 하겠다”고 말했다. 병원에 이송된 김씨는 간이침대에 이불을 덮고 누운 채로 구급차에서 나와 응급실 안으로 실려 들어갔다. 김기종 대표는 과거 일본 대사에게도 시멘트 덩어리를 던져 처벌을 받았다. 김 대표는 2010년 7월 7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특별강연회 도중 시게이에 도시노리(重家俊範) 당시 일본 대사에게 지름 약 10㎝와 7㎝인 시멘트 덩어리 2개를 던진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됐다. 이후 김 대표는 법원에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형을 선고받았다. 김 대표는 지난해 시게이에 전 일본 대사를 공격했던 일을 엮은 책인 ‘독도와 우리, 그리고 2010년’을 출간하기도 했다. 이 책에는 테러를 미화하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은 일본 대사를 공격했을 때 그를 두둔한 것으로 확인됐다. 조선중앙방송은 김 씨의 일본 대사 공격 직후인 2010년 7월13일 “일본 대사가 남조선과 일본 사이의 새로운 시대니, 공동번영이니 뭐니 하고 망발하는 데 격분한 우리마당독도지킴이 대표 김기종은 그에게 콘크리트 덩어리를 던졌다”고 보도했다. 김씨는 같은 해 7월 7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시게이에 도시노리(重家俊範) 당시 주한 일본 대사 초청 강연회에서 시게이에 대사에게 시멘트 덩어리 2개를 투척했다. 중앙방송은 남한 네티즌들이 김 씨의 행동을 지지하는 글을 올렸다며 “김기종의 항의 행동은 일본에 대한 분노를 던진 것이라고 하면서 찬양을 받아 마땅하다고 주장했다”고 강조했다. 대외용 라디오 방송인 평양방송도 2010년 8월 1일 이 사건이 “역사왜곡과 독도강탈 책동을 끈질기게 벌이고 있는 일본 반동들이 당한 너무도 응당한 봉변”이라고 주장했다. 평양방송은 남한 시민단체와 언론이 김씨의 행동을 “윤봉길 열사의 폭탄투척 사건”에 비유하며 “속이 후련해 했다”고 덧붙였다. 북한은 김씨가 이 사건으로 기소돼 법정에서 징역 4년을 구형받은 직후인 2010년 8월 24일에는 대남선전용 웹사이트 ‘우리민족끼리’를 통해 정부가 그에게 ‘부당한 탄압’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우리민족끼리는 “(정부가) 정당한 권리를 행사한 김기종을 구속하고 탄압을 가해오던 끝에 폭거를 감행했다”고 비난했다. 이 매체는 “일본 대사란 자에게 날아든 투석 세례는 민족적 분노의 분출로서 거기에 문제시될 것이란 하나도 없다”고 옹호했다. 김씨는 이외에도 간담회 등 행사에서 소동을 벌여 폭행과 상해 등의 혐의로 여러차례 처벌을 받았다. 김씨는 지난해 2월 13일 오후 서대문구 창천교회에서 열린 신촌 번영회 정기총회 박원순 서울시장 강연회가 끝날 무렵 맨 앞줄에 앉아 있는 변모(55)씨의 왼쪽 뺨을 때려 재판에 넘겨졌다. 법원은 상해 혐의로 기소된 김 대표에 대해 벌금 70만원을 선고했다. 김씨는 같은 해 5월에는 일본대사관에 일본 정부의 집단자위권 규탄 항의서한을 전달하려다 제지당하자 경찰에게 신발과 계란을 투척해 입건되기도 했다. 2007년 6월에는 명동성당에서 열린 ‘6월항쟁을 기록하다’ 출판기념회에서 “6월 항쟁 기념사업이 분파적으로 일이 진행되고 있다”면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를 고발한다는 내용의 유인물을 나눠주려 하다가 제지당하기도 했다. 일본 대사에게 시멘트 조각을 던지기 전인 2010년 2월 김씨는 외교기관 인근에서 옥회집회나 시위를 금지한 ‘집시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조항이 헌법에 위반된다며 헌법소원을 내기도 했다. 당시 김씨는 주한 일본대사관 한국어 홈페이지의 ‘일한관계’에서 ‘다케시마 문제’에 대한 삭제요구를 하기 위해 대사관 앞에서 항의 집회를 하려고 했지만 집시법 규정 때문에 집회를 하지 못했다며 헌법소원을 냈지만 같은 해 11월 헌재는 ‘합헌’이라고 결정했다. 2006년에 일본 시마네현이 다케시마의 날을 선포하자 김 대표는 동료 6명과 함께 본적을 경북 울릉군 독도리 38번지로 옮긴 바 있다. 김씨는 2000년대 중반 여러 차례 북한을 방문하기도 했다. 공안당국에 따르면 김씨는 2006년 11월부터 2007년 4월까지 정부 승인을 받아 모두 8차례 방북했다. 공안당국은 반일활동에 주력했던 김 대표가 수차례 방북한 이후 반미활동으로 전환한 것으로 보고 그의 반미활동 내용을 유심히 들여다보고 있다. 새누리당 권은희 대변인도 브리핑을 통해 “김 대표는 헌재에서 북한의 주체사상을 추종한다는 등의 이유로 해산 결정을 받은 통합진보당이 속해 있던 ‘전쟁반대 평화실현 국민행동’의 일원”이라면서 “대법원으로부터 이적단체 판결을 받은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민족자주통일중앙협의회(민자통), 우리민족연방제통일추진회의(연방통추) 등도 국민행동에 포함돼 있다”며 북한과의 연계 가능성을 지적했다. 권 대변인은 이어 “가장 우려스런 점은 김 대표가 교수라는 직함을 가지고 청년들을 가르쳤다는 사실”이라면서 “김 대표는 1997∼2007년 성공회대 교양학부 외래교수로 재직한 사실이 확인됐다”고 덧붙였다. 교수 재직과 관련해 성공회대 측은 “김 대표는 ‘전통 예술의 이해’라는 수업 하나만 맡았지만 그만둔 지가 오래돼 정확한 수업 내용은 파악이 어렵다”면서 “외래교수라는 말은 시간강사를 예우하는 차원의 명칭일 뿐 교수는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김씨는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당시 서울 도심에 분향소를 설치하는 데 관여하기도 했다. 그는 2011년 12월 26일 ‘국가보안법피해자모임’ 회원들이 서울 중구 대한문 앞에 김 위원장 분향소 설치를 하려다 보수단체 회원들과 충돌·대치하는 과정에서 보수단체 회원으로 추정되는 10여명으로부터 집단 폭행을 당했다. 2007년에는 1988년 발생한 ‘우리마당 습격사건’의 진상 규명을 요구하며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던 중 분신을 시도, 전신에 심각한 화상을 입기도 했다. 우리마당 사건은 서울 서대문구 창천동에 있었던 ‘우리마당’ 사무실을 괴한 4명이 습격해 안에 있던 여성을 성폭행하고 달아난 사건이다. 당시 야당이었던 평민당은 이 사건이 군 정보사령부에 의해 저질러진 정치테러라고 폭로했지만 현재까지 진상은 규명되지 않았다. 김씨는 2001년부터 3년간, 2005년부터 2년간 두 차례에 걸쳐 민주평통 자문위원을 지내기도 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김기종 우리마당 대표 “아파! 아파!” 고통…제압 장윤석 국회의원 누구?

    김기종 우리마당 대표 “아파! 아파!” 고통…제압 장윤석 국회의원 누구?

    우리먀당 김기종, 우리마당 김기종 대표, 장윤석 국회의원 김기종 우리마당 대표 “아파! 아파!” 고통…제압 장윤석 국회의원 누구? 미국 대사를 흉기로 공격한 우리마당독도지킴이 대표 김기종(55)씨가 5일 병원으로 이송돼 치료를 받고 있다. 김기종씨는 이날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열린 민화협 주최 조찬 강연회 행사장에서 리퍼트 대사가 앉은 중앙 헤드테이블의 오른쪽 뒤쪽 테이블에 앉아있었다. 오전 7시 35분쯤 리퍼트 대사가 도착하고 5분여 뒤 본격적인 강연에 앞서 조찬이 시작되자 김씨는 갑자기 일어나서 다른 테이블에 앉아있던 한 참석자 옆에 A4 용지 크기의 유인물 10장을 내려놓고는 “받으라”고 말했다. 그 후 김 대표가 헤드테이블 쪽으로 이동해 리퍼트 대사를 밀쳐 눕히고 흉기를 수차례 휘두르기까지는 불과 1∼2초밖에 걸리지 않았다고 목격자들은 전했다. 한 참석자는 “다들 여유롭게 식사를 시작하려던 참이었는데 리퍼트 대사가 아침으로 나온 죽 첫술을 뜨자마자 갑자기 공격당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참석자는 “테러범이 옆으로 다가오자 리퍼트 대사가 자신에게 인사하려는 줄 알았는지 악수를 청하려는 자세로 일어났는데 그러고 나서 바로 목을 부여잡고 쓰러졌다”고 전했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놀란 참석자들과 김씨를 제지하려는 관계자들, 당시 현장에 있던 취재진이 뒤섞이면서 현장은 이내 아수라장이 됐다. 그 사이 김씨는 뒤쪽 테이블에 있던 미 대사관 경호팀과 민화협 관계자들, 새누리당 장윤석 의원 등 참석자들에 의해 제압당해 바닥에 엎드려 있다가 출동한 경찰에 인계됐다. 장윤석 의원은 2013년 제 21대 대한아마추어복싱연맹 회장으로 활동한 사실이 알려져 화제가 됐다. 당시 김씨는 “유인물을 나눠주십시오. 지난 3월 2일에 훈련 반대하면서 만든 유인물입니다. 한일관계 다리가 날아갔어. 왜 전쟁훈련합니까. 전쟁훈련하면 우리나라 통일 영원히 안 됩니다”라고 소리를 지르며 몸부림을 쳤다고 목격자들은 말했다. 김씨는 행사장 밖으로 끌려나간 뒤에도 아스팔트 바닥에 엎드린 채 한동안 저항했다. 경찰 조사를 받던 김씨는 제압 과정에서 부상을 당했다며 병원 치료를 먼저 받겠다고 요구해 이날 오전 11시 11분쯤 서울 종로구 적십자병원으로 이송됐다. 그는 간이침대에 이불을 덮고 누운 채 종로경찰서에서 나와 응급차량으로 옮겨지는 와중에 “전쟁훈련 반대한다”, “이산가족이 못만나는 이유가 전쟁훈련 때문이라 그랬다”, “전쟁훈련 중단하자, 키 리졸브…”라고 외치다 “아~ 아파! 아파!”라고 고통을 호소하기도 했다. 김씨는 검거 직후 종로경찰서로 이송돼 조사를 받았지만 진술을 거부했으며, “경호요원에게 밟혀서 발목 등을 다쳤으니 치료를 받고 변호사가 오면 그때 진술을 하겠다”고 말했다. 병원에 이송된 김씨는 간이침대에 이불을 덮고 누운 채로 구급차에서 나와 응급실 안으로 실려 들어갔다. 김기종 대표는 과거 일본 대사에게도 시멘트 덩어리를 던져 처벌을 받았다. 김 대표는 2010년 7월 7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특별강연회 도중 시게이에 도시노리(重家俊範) 당시 일본 대사에게 지름 약 10㎝와 7㎝인 시멘트 덩어리 2개를 던진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됐다. 이후 김 대표는 법원에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형을 선고받았다. 김 대표는 지난해 시게이에 전 일본 대사를 공격했던 일을 엮은 책인 ‘독도와 우리, 그리고 2010년’을 출간하기도 했다. 이 책에는 테러를 미화하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은 일본 대사를 공격했을 때 그를 두둔한 것으로 확인됐다. 조선중앙방송은 김 씨의 일본 대사 공격 직후인 2010년 7월13일 “일본 대사가 남조선과 일본 사이의 새로운 시대니, 공동번영이니 뭐니 하고 망발하는 데 격분한 우리마당독도지킴이 대표 김기종은 그에게 콘크리트 덩어리를 던졌다”고 보도했다. 김씨는 같은 해 7월 7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시게이에 도시노리(重家俊範) 당시 주한 일본 대사 초청 강연회에서 시게이에 대사에게 시멘트 덩어리 2개를 투척했다. 중앙방송은 남한 네티즌들이 김 씨의 행동을 지지하는 글을 올렸다며 “김기종의 항의 행동은 일본에 대한 분노를 던진 것이라고 하면서 찬양을 받아 마땅하다고 주장했다”고 강조했다. 대외용 라디오 방송인 평양방송도 2010년 8월 1일 이 사건이 “역사왜곡과 독도강탈 책동을 끈질기게 벌이고 있는 일본 반동들이 당한 너무도 응당한 봉변”이라고 주장했다. 평양방송은 남한 시민단체와 언론이 김씨의 행동을 “윤봉길 열사의 폭탄투척 사건”에 비유하며 “속이 후련해 했다”고 덧붙였다. 북한은 김씨가 이 사건으로 기소돼 법정에서 징역 4년을 구형받은 직후인 2010년 8월 24일에는 대남선전용 웹사이트 ‘우리민족끼리’를 통해 정부가 그에게 ‘부당한 탄압’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우리민족끼리는 “(정부가) 정당한 권리를 행사한 김기종을 구속하고 탄압을 가해오던 끝에 폭거를 감행했다”고 비난했다. 이 매체는 “일본 대사란 자에게 날아든 투석 세례는 민족적 분노의 분출로서 거기에 문제시될 것이란 하나도 없다”고 옹호했다. 김씨는 이외에도 간담회 등 행사에서 소동을 벌여 폭행과 상해 등의 혐의로 여러차례 처벌을 받았다. 김씨는 지난해 2월 13일 오후 서대문구 창천교회에서 열린 신촌 번영회 정기총회 박원순 서울시장 강연회가 끝날 무렵 맨 앞줄에 앉아 있는 변모(55)씨의 왼쪽 뺨을 때려 재판에 넘겨졌다. 법원은 상해 혐의로 기소된 김 대표에 대해 벌금 70만원을 선고했다. 김씨는 같은 해 5월에는 일본대사관에 일본 정부의 집단자위권 규탄 항의서한을 전달하려다 제지당하자 경찰에게 신발과 계란을 투척해 입건되기도 했다. 2007년 6월에는 명동성당에서 열린 ‘6월항쟁을 기록하다’ 출판기념회에서 “6월 항쟁 기념사업이 분파적으로 일이 진행되고 있다”면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를 고발한다는 내용의 유인물을 나눠주려 하다가 제지당하기도 했다. 일본 대사에게 시멘트 조각을 던지기 전인 2010년 2월 김씨는 외교기관 인근에서 옥회집회나 시위를 금지한 ‘집시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조항이 헌법에 위반된다며 헌법소원을 내기도 했다. 당시 김씨는 주한 일본대사관 한국어 홈페이지의 ‘일한관계’에서 ‘다케시마 문제’에 대한 삭제요구를 하기 위해 대사관 앞에서 항의 집회를 하려고 했지만 집시법 규정 때문에 집회를 하지 못했다며 헌법소원을 냈지만 같은 해 11월 헌재는 ‘합헌’이라고 결정했다. 2006년에 일본 시마네현이 다케시마의 날을 선포하자 김 대표는 동료 6명과 함께 본적을 경북 울릉군 독도리 38번지로 옮긴 바 있다. 김씨는 2000년대 중반 여러 차례 북한을 방문하기도 했다. 공안당국에 따르면 김씨는 2006년 11월부터 2007년 4월까지 정부 승인을 받아 모두 8차례 방북했다. 공안당국은 반일활동에 주력했던 김 대표가 수차례 방북한 이후 반미활동으로 전환한 것으로 보고 그의 반미활동 내용을 유심히 들여다보고 있다. 새누리당 권은희 대변인도 브리핑을 통해 “김 대표는 헌재에서 북한의 주체사상을 추종한다는 등의 이유로 해산 결정을 받은 통합진보당이 속해 있던 ‘전쟁반대 평화실현 국민행동’의 일원”이라면서 “대법원으로부터 이적단체 판결을 받은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민족자주통일중앙협의회(민자통), 우리민족연방제통일추진회의(연방통추) 등도 국민행동에 포함돼 있다”며 북한과의 연계 가능성을 지적했다. 권 대변인은 이어 “가장 우려스런 점은 김 대표가 교수라는 직함을 가지고 청년들을 가르쳤다는 사실”이라면서 “김 대표는 1997∼2007년 성공회대 교양학부 외래교수로 재직한 사실이 확인됐다”고 덧붙였다. 교수 재직과 관련해 성공회대 측은 “김 대표는 ‘전통 예술의 이해’라는 수업 하나만 맡았지만 그만둔 지가 오래돼 정확한 수업 내용은 파악이 어렵다”면서 “외래교수라는 말은 시간강사를 예우하는 차원의 명칭일 뿐 교수는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김씨는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당시 서울 도심에 분향소를 설치하는 데 관여하기도 했다. 그는 2011년 12월 26일 ‘국가보안법피해자모임’ 회원들이 서울 중구 대한문 앞에 김 위원장 분향소 설치를 하려다 보수단체 회원들과 충돌·대치하는 과정에서 보수단체 회원으로 추정되는 10여명으로부터 집단 폭행을 당했다. 2007년에는 1988년 발생한 ‘우리마당 습격사건’의 진상 규명을 요구하며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던 중 분신을 시도, 전신에 심각한 화상을 입기도 했다. 우리마당 사건은 서울 서대문구 창천동에 있었던 ‘우리마당’ 사무실을 괴한 4명이 습격해 안에 있던 여성을 성폭행하고 달아난 사건이다. 당시 야당이었던 평민당은 이 사건이 군 정보사령부에 의해 저질러진 정치테러라고 폭로했지만 현재까지 진상은 규명되지 않았다. 김씨는 2001년부터 3년간, 2005년부터 2년간 두 차례에 걸쳐 민주평통 자문위원을 지내기도 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리퍼트 대사 피습…목격자 “첫 술 뜨자마자 공격당해”

    리퍼트 대사 피습…목격자 “첫 술 뜨자마자 공격당해”

    리퍼트 대사 피습 목격자 증언“첫 술 뜨자마자 공격당해” 리퍼트 대사 피습, 김기종 우리마당 대표 마크 리퍼트 미국 대사를 5일 습격한 범인은 가까운 테이블에 참석자로 가장해 앉아있다가 달려들어 흉기를 휘두른 것으로 드러났다.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 주최 조찬 강연회 현장에 있던 참석자들에 따르면 공격을 가한 김기종(55) 우리마당독도지킴이 대표는 리퍼트 대사가 앉은 중앙 헤드테이블의 오른쪽 뒤쪽 테이블에 앉아있었다. 오전 7시 35분쯤 리퍼트 대사가 도착하고 5분여 뒤 본격적인 강연에 앞서 조찬이 시작되자 김씨는 갑자기 일어나서 다른 테이블에 앉아있던 한 참석자 옆에 A4 용지 크기의 유인물 10장을 내려놓고는 “받으라”고 말했다. 그 후 김 대표가 헤드테이블 쪽으로 이동해 리퍼트 대사를 밀쳐 눕히고 흉기를 수차례 휘두르기까지는 불과 1∼2초밖에 걸리지 않았다고 목격자들은 전했다. 한 참석자는 “리퍼트 대사가 아침으로 나온 죽 첫술을 뜨자마자 갑자기 공격당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참석자는 “테러범이 옆으로 다가오자 리퍼트 대사가 자신에게 인사하려는 줄 알았는지 악수를 청하려는 자세로 일어났는데 그러고 나서 바로 목을 부여잡고 쓰러졌다”고 전했다. 한 참석자는 “리퍼트 대사가 피를 많이 흘린 것만 기억날 뿐 다른 앞뒤 상황은 잘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로 충격을 받았다”며 긴급했던 당시 상황을 전했다. 김씨가 휘두른 흉기에 얼굴과 손 등을 다쳐 피를 많이 흘린 리퍼트 대사는 “도와달라”고 외쳤고 손수건으로 상처 부위를 감싼 채 수행원들의 부축을 받으며 걸어서 행사장 밖으로 이동했다. 일부 대사관 소속 직원들은 이 같은 돌발사태에 충격을 받은 듯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그 사이 김씨는 미 대사관 경호팀과 민화협 관계자들 등 참석자들에 의해 제압당해 바닥에 엎드려 있다가 출동한 경찰에 인계됐다. 김씨는 “유인물을 나눠주십시오. 지난 3월 2일에 훈련 반대하면서 만든 유인물입니다. 한일관계 다리가 날아갔어. 왜 전쟁훈련합니까. 전쟁훈련하면 우리나라 통일 영원히 안 됩니다”라고 소리를 지르며 몸부림을 쳤으며 행사장 밖으로 끌려나간 뒤에도 아스팔트 바닥에 엎드린 채 한동안 저항했다. 현장에 있던 또 다른 참석자는 당시 김씨가 출입증을 갖고 있긴 했지만 사전에 등록해서 발급받는 정식 출입증이 아니라 손 글씨로 써서 현장에서 교부한 출입증이었다고 전했다. 행사 참석자들은 미국 대사라는 중요 인사가 왔는데도 특별히 경호가 강화된 것을 느끼지 못했다며 애초부터 돌발사태에 대한 대비가 부실했다고 한 목소리로 지적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리퍼트 美대사 피습 목격자 증언“첫 술 뜨자마자 공격당해”

    리퍼트 美대사 피습 목격자 증언“첫 술 뜨자마자 공격당해”

    리퍼트 美대사 피습 목격자 증언“첫 술 뜨자마자 공격당해” 리퍼트 美대사 피습, 김기종 우리마당 대표 마크 리퍼트 미국 대사를 5일 습격한 범인은 가까운 테이블에 참석자로 가장해 앉아있다가 달려들어 흉기를 휘두른 것으로 드러났다.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 주최 조찬 강연회 현장에 있던 참석자들에 따르면 공격을 가한 김기종(55) 우리마당독도지킴이 대표는 리퍼트 대사가 앉은 중앙 헤드테이블의 오른쪽 뒤쪽 테이블에 앉아있었다. 오전 7시 35분쯤 리퍼트 대사가 도착하고 5분여 뒤 본격적인 강연에 앞서 조찬이 시작되자 김씨는 갑자기 일어나서 다른 테이블에 앉아있던 한 참석자 옆에 A4 용지 크기의 유인물 10장을 내려놓고는 “받으라”고 말했다. 그 후 김 대표가 헤드테이블 쪽으로 이동해 리퍼트 대사를 밀쳐 눕히고 흉기를 수차례 휘두르기까지는 불과 1∼2초밖에 걸리지 않았다고 목격자들은 전했다. 한 참석자는 “리퍼트 대사가 아침으로 나온 죽 첫술을 뜨자마자 갑자기 공격당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참석자는 “테러범이 옆으로 다가오자 리퍼트 대사가 자신에게 인사하려는 줄 알았는지 악수를 청하려는 자세로 일어났는데 그러고 나서 바로 목을 부여잡고 쓰러졌다”고 전했다. 한 참석자는 “리퍼트 대사가 피를 많이 흘린 것만 기억날 뿐 다른 앞뒤 상황은 잘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로 충격을 받았다”며 긴급했던 당시 상황을 전했다. 김씨가 휘두른 흉기에 얼굴과 손 등을 다쳐 피를 많이 흘린 리퍼트 대사는 “도와달라”고 외쳤고 손수건으로 상처 부위를 감싼 채 수행원들의 부축을 받으며 걸어서 행사장 밖으로 이동했다. 일부 대사관 소속 직원들은 이 같은 돌발사태에 충격을 받은 듯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그 사이 김씨는 미 대사관 경호팀과 민화협 관계자들 등 참석자들에 의해 제압당해 바닥에 엎드려 있다가 출동한 경찰에 인계됐다. 김씨는 “유인물을 나눠주십시오. 지난 3월 2일에 훈련 반대하면서 만든 유인물입니다. 한일관계 다리가 날아갔어. 왜 전쟁훈련합니까. 전쟁훈련하면 우리나라 통일 영원히 안 됩니다”라고 소리를 지르며 몸부림을 쳤으며 행사장 밖으로 끌려나간 뒤에도 아스팔트 바닥에 엎드린 채 한동안 저항했다. 현장에 있던 또 다른 참석자는 당시 김씨가 출입증을 갖고 있긴 했지만 사전에 등록해서 발급받는 정식 출입증이 아니라 손 글씨로 써서 현장에서 교부한 출입증이었다고 전했다. 행사 참석자들은 미국 대사라는 중요 인사가 왔는데도 특별히 경호가 강화된 것을 느끼지 못했다며 애초부터 돌발사태에 대한 대비가 부실했다고 한 목소리로 지적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디자이너 꿈 찾은 ‘28세 탈북 새내기’

    디자이너 꿈 찾은 ‘28세 탈북 새내기’

    “학교에 들어가면 화려한 옷을 마음껏 만들어 볼 거예요. 환상적인 웨딩드레스를 만드는 패션 디자이너가 되는 게 꿈입니다.” 그녀의 고향은 함경남도 함흥. 1990년대 이른바 ‘고난의 행군’ 시절 그곳의 삶은 비참했다. 그래도 그녀는 인형을 좋아했고, 인형 옷처럼 예쁜 웨딩드레스를 만드는 게 꿈이었다. 20여년이 흘러 꿈은 현실로 다가왔다. 4일 서울 관악구 봉천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문혜지(28·가명)씨는 들뜬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오는 16일 서울 동숭동에 있는 한국패션디자인전문학교에 입학하게 된 것. 1995년 여덟 살이던 문씨는 3살 터울의 남동생, 어머니와 함께 두만강을 건넜다. “아버지가 오래 병을 앓다 돌아가시고, 어머니가 우리 남매를 먹여 살리셨어요. 사람들이 여러 이유로 탈북하겠지만, 저희는 생존을 위해 떠나야만 했어요.” 중국에 와서도 ‘없이 사는 삶’은 이어졌다. 생존을 위해 중국동포 남성과 결혼한 어머니는 문씨 남매를 지린성(吉林省)의 한 교회에 맡겼다. 세 식구가 합친 것은 10여년이 지난 2008년. 그러나 행복은 1년도 지속되지 않았다. 이듬해 1월 어머니가 공안에 끌려가 북송된 것. “통곡을 했죠. 돈이 있었더라면 벌금을 내더라도 ‘옴마’를 변방대(출입국관리소) 가기 전에 구해 낼 수 있었을 텐데….” 문씨의 눈가에 금세 눈물이 고였다. 문씨에게도 위기가 닥쳐왔다. 마을 주민의 밀고로 공안에 잡혀간 것. 함께 잡혀 온 탈북민들은 “중국동포 행세를 하라”고 충고했다. 그 말을 듣고는 밤낮 중국말만 했다. 그 덕분일까. 문씨는 보름 만에 기적처럼 풀려났다. “그때 한국행을 결심했어요. 중국에서 14년을 살았지만 한국에 가야 마음 놓고 살 수 있겠더라고요.” 그해 4월 문씨는 태국을 경유해 한국으로 왔다. 중국에서 헤어졌던 동생도 2011년 한국에 들어오면서 남매는 다시 한 지붕 아래 살게 됐다. 2012년부터 탈북청소년 대안학교 우리들학교에 다니며 3년 만에 4개 검정고시(초졸·중졸·고입·고졸)를 통과했다. 졸업 즈음 진로 문제로 고민이 많았다. 교내 밴드에서 보컬을 맡아 지역 축제에서 공연을 할 만큼 노래를 잘했기 때문. “TV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면 노래 잘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더라고요. 난 북한 억양을 고치기도 어렵고….” 고민 끝에 어린 시절 꿈을 떠올렸다. “남쪽에 온 뒤로 어깨에 ‘뽕’이 들어간 드레스를 자주 입고 다녔어요. 좋아하는 드레스를 마음껏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니 신이 났어요.” 이론보다 실무를 배우고 싶어 4년제 대학이 아닌 2년제 직업전문학교를 선택했다. 입학을 앞둔 지금 설렘과 함께 걱정이 앞선다. 정부와 학교에서 학비를 지원해 주지만, 다른 비용은 스스로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남쪽에서 나고 자란 나이 어린 동기들과 지낼 일도 걱정이다. 하지만 “죽을 고비만 수차례 넘겼다”는 문씨는 웃음을 잃지 않았다. ‘노래방 18번’이라는 ‘혼자가 아닌 나’의 가사를 흥얼거렸다. ‘힘이 들 땐 하늘을 봐~ 나는 항상 혼자가 아니야~.’ 글 사진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아하! 우주] 빛도 먹는 블랙홀에도 ‘안전지대’ 있다...”유기물 생존”

    [아하! 우주] 빛도 먹는 블랙홀에도 ‘안전지대’ 있다...”유기물 생존”

    영화 '인터스텔라'에는 거대 블랙홀 주변에 존재하는 행성의 이야기가 나온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런 블랙홀은 단독으로 존재하는 경우가 드물다. 거대한 질량을 가진 블랙홀이 탄생하는 장소는 은하의 중심과 같이 물질이 집중된 장소이다. 그리고 거대한 중력을 가진 블랙홀에 이끌려 주변 물질들이 흡수되면서 더욱 거대한 블랙홀로 커진다. 거대한 질량을 지닌 은하 중심 블랙홀 주변에는 이 블랙홀의 중력에 이끌린 가스와 먼지들에 의해 거대한 나선 모양의 원반이 형성된다. 그리고 블랙홀의 사상의 지평면 아래로 사라지기 전 높은 온도로 가열되어 X선과 자외선 파장에서 강력한 에너지를 내놓는다. 여기에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지 못한 물질은 제트의 형태로 분출된다. 블랙홀 자체는 빛마저 흡수하는 괴물 같은 천체이지만, 역설적으로 은하 중심 블랙홀은 막대한 에너지를 내놓는다. 일본 국립 천문대(NAOJ)와 나고야 대학의 천문학자들은 세계 최대의 전파 망원경 가운데 하나인 알마(ALMA)를 이용해서 지구에서 4,700만 광년 떨어진 은하 M77(NGC 1068)을 관측했다. 이들이 연구한 것은 이 은하 중심에 있는 거대 블랙홀 주변에 존재하는 핵주위 원반(circumnuclear disks·CND)의 구조였다. 연구팀이 이 지역에 어떤 물질이 존재하는지를 분석하자 전혀 예상할 수 없었던 물질들이 검출되어 과학자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이들이 검출한 것은 탄소 기반 화합물이었다. 여기에는 일산화탄소 같은 단순한 분자도 있었지만, 사이아노아세틸렌(cyanoacetylene, HC3N)이나 메탄올(methanol, CH3OH), 아세토나이트릴(acetonitrile, CH3CN)같은 유기 화합물도 존재했다. 이것이 놀라운 이유는 블랙홀 주변의 환경이 이런 복잡한 분자의 형성을 허용하지 않는 위험한 환경이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블랙홀 주변의 강력한 X선과 자외선으로 인해 이런 분자가 형성되었다고 해도 순식간에 분해될 수밖에 없다. 연구팀은 이것이 가능한 이유로 블랙홀 주변에 일종의 안전지대가 존재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즉, 일부 가스와 먼지의 농도가 두꺼운 장소가 블랙홀 주변으로 존재해서 X선과 자외선을 차단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가정할 경우 단순한 유기물질이 블랙홀 주변에서 생존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은하 중심 블랙홀 같은 거대 블랙홀 주변은 빛조차 빠져나올 수 없는 사상의 지평면까지 근접하지 않더라도 블랙홀로 흡수되는 물질의 흐름과 강력한 에너지 방출 때문에 극도로 위험한 장소다. 영화에서와는 달리 우주선을 타고 이 근처로 돌진하면, 가까이 가기도 전에 우주선이나 탑승자 모두 살아남기 힘들다. 하지만 등잔 밑이 어두운 것과 같이 이 무시무시한 블랙홀 주변에도 숨을 곳은 있는 셈이다. 고든 정 통신원 jjy0501@naver.com
  • 갤럭시S6 vs 아이폰6, 뭐가 더 끌려? 비교 영상 화제

    갤럭시S6 vs 아이폰6, 뭐가 더 끌려? 비교 영상 화제

    삼성의 갤럭시S6와 애플의 아이폰6를 함께 비교한 영상이 공개돼 화제가 되고 있다. 애플 전문매체 나인투파이브맥(9to5Mac)에 IT전문 유명 블로거 돔 에스포지토가 갤럭시S6와 아이폰6를 비교·분석한 영상이 공개했다. 3일 공개된 영상은 그가 지난 1일 오후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갤럭시S6 행사에서 공개된 갤럭시S6와 자신의 아이폰6를 비교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여기서 그는 “삼성은 이전 모델보다 훨씬 좋아 보이는 신선하고 새로운 디자인을 구현해냈다”며 “일부 사람은 이를 아이폰6와 아이폰4를 합쳐놓은 듯하다고 지적하지만, 솔직히 난 삼성이 이전 모델의 플라스틱 소재를 채택하지 않은 것이 기쁘다”고 말했다. 두께에 관해서는 갤럭시S6가 6.8MM로 6.9mm인 아이폰보다 약간 얇아 이겼다고 그는 평가했다. 갤럭시S6는 앞·뒷면 모두 고릴라 글래스4라는 강화유리를 채택하고 테두리는 메탈 프레임으로 처리했다. 이는 애플이 이전 모델인 아이폰4에서 채택했던 디자인과 비슷하다고도 볼 수 있다. 애플은 최신 모델에서 메탈 하우징을 채택하고 있다. 또 그는 갤럭시S6와 아이폰이 디자인 면에서 어느 정도 타협한 듯하다고 설명했다. 갤럭시S6에서는 탈부착 가능 배터리와 SD카드 확장 슬롯, 방수 기능이 사라져 아이폰6와 유사해졌다. 디스플레이에서는 갤럭시S6가 해상도 2,560 x 1,440을 자랑하는 5.1인치 QHD 슈퍼 아몰레드를 채택했다. 참고로 아이폰6는 해상도 1,334 x 750짜리 4.7인치 IPS 디스플레이를 채택하고 있다. 갤럭시S6의 전면 카메라는 500만 화소짜리를 채택했다. 아이폰6는 120만 화소짜리 전면 카메라를 채택하고 있다. 갤럭시S6의 하단 홈버튼에는 개선된 지문인식 장치가 내장됐다. 이번에는 손가락 전체를 가져다 대는 에어리어 방식으로 확장성을 높였다. 후면을 보면, 갤럭시S6는 광학 손떨림 보정 기능을 갖춘 1600만 화소 카메라와 함께 LED 플래시, 심박센서 등을 탑재했다. 반면 아이폰6는 800만 화소 후면 카메라, 듀얼 톤 LED 플래시 등을 탑재하고 있다. 이 밖에도 버튼이나 충전 단자 등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측면과 바닥의 전반적인 배열은 유사한 편이다. 한편 갤럭시S6는 오는 4월 10일 전 세계에 동시 출시된다. 사진=유튜브 캡처(http://youtu.be/vlPz6gBAFh0)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중년으로 돌아온 ‘지글리 보이’와 농구스타 케빈 가넷의 재회

    중년으로 돌아온 ‘지글리 보이’와 농구스타 케빈 가넷의 재회

    ‘지글리 보이(jiggly boy)’라 유명한 남성 농구 팬이 또다시 미국프로농구(NBA) 농구스타 미네소타 팀버울브스의 케빈 가넷(Kevin Garnett·38)과 재회했다. 중년의 나이로 돌아온 ‘지글리 보이’ 49세의 존 스위니. 스위니는 지난 2003년 가슴에 팀버울브스를, 오른팔엔 미네소타의 간판스타였던 케빈 가넷의 이니셜 ‘KG’를 새기고 상의를 벗은 상태로 막춤을 추다 경기장 보안요원의 제지를 받은 바 있다. 또다시 케빈 가넷과의 재회가 이뤄진 날은 지난달 25일(현지시간) 미네소타 팀버울브스의 홈구장 타깃 센터에서 열린 미네소타 대 워싱턴의 경기. 이날 경기는 8년 만에 친정팀 미네소타로 돌아온 가넷의 복귀전이었다. 영상에는 작전타임을 이용해 경기장의 이벤트인 관중석 댄스 타임이 시작된다. 잠시 후, 카메라가 아이들과 앉아 있는 한 남성을 비춘다. 그는 다름 아닌 12년 전 춤을 추다 보안요원에 끌려나갔던 ‘지글리 보이’였던 스위니. 11살과 9살 소년의 아빠가 된 중년의 스위니 모습에 관중들이 환호하자 그가 손을 흔들어 답례한다. 미네소타 구단 측은 반복해 그에게 춤을 출 것을 요청하지만 이미 두 아들의 아빠 스위니는 춤을 사양한다. 하지만 결국 스위니는 미네소타 구단 측의 계속된 요청과 두 아들의 적극적인 권유로 자리에서 일어선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관중석 옆 계단통로 나오자 관중들이 열광하며 박수갈채를 보낸다. 그는 12년 전처럼 두 아들과 함께 화끈한 막춤을 선보인다. 그가 상의를 벗어 던지자 ‘복귀를 환영해요, KG(가넷)’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이는 그가 구단과 사전 협의해 준비한 퍼포먼스였던 것이다. ‘지글리 보이’ 스위니의 열광적인 환영 춤사위에 코트 위 가넷도 손을 들어 감사를 전했고 관중들은 기립박수를 보냈다. 한편 지난달 27일 유튜브에 올라온 이 영상은 현재 286만 5200여 건의 조회수를 기록 중이다. 사진·영상= Minnesota Timberwolves youtube
  • 공중부양 스케이트보드가 현실로? 수중부양해 타는 ‘하이드로포일’

    공중부양 스케이트보드가 현실로? 수중부양해 타는 ‘하이드로포일’

    미래의 서프보드는 어떤 모습일까? 지난달 26일(현지시간) 허핑턴포스트코리아는 최근 윈드서핑의 고향 뉴질랜드 라글란 해변에서 미국 서퍼 겸 스포츠모델 레어드 해밀턴(Laird Hamilton·52)이 수면 위에서 공중부양해 보드를 타는 모습을 영상과 함께 소개했다. 높은 파도를 헤치며 서핑을 즐기는 해밀턴이 올라탄 보드는 하이드로포일(hydrofoil) 서프보드. 하이드로포일은 보드 아래 날개가 달려서 고속으로 달리면 보드 자체가 물 위로 떠오르는 보드다. 이는 수중익선(배의 밑에 평면 또는 곡면의 수중 날개를 단 배)과 같은 원리다. 영상에는 라글란 해변에서 제트스키에 이끌려 보드를 타는 해밀턴의 모습이 보인다. 하이드로포일에 속력이 붙자 보드가 수면 위로 떠오른다. 마치 영화 ‘백 투더 퓨처2’에서의 공중부양 스케이트보드를 연상케 한다. 수면부양(?)한 해밀턴이 보드에 몸을 맡긴 채 큰 파도를 가르며 멋진 서핑을 선보인다. 한편 지난달 18일 유튜브에 올라온 이 영상은 현재 26만 6400여 건의 조회수를 기록 중이다. 사진·영상= The Ultimate Waterman youtube 영상팀 seoultv@seoul.co.kr
  • 파도 위 공중부양 보드 ‘하이드로포일’ 화제

    파도 위 공중부양 보드 ‘하이드로포일’ 화제

    미래의 서프보드는 어떤 모습일까? 26일(현지시간) 허핑턴포스트코리아는 최근 윈드서핑의 고향 뉴질랜드 라글란 해변에서 미국 서퍼 겸 스포츠모델 레어드 해밀턴(Laird Hamilton·52)이 수면 위에서 공중부양해 보드를 타는 모습을 영상과 함께 소개했다. 높은 파도를 헤치며 서핑을 즐기는 해밀턴이 올라탄 보드는 하이드로포일(hydrofoil) 서프보드. 하이드로포일은 보드 아래 날개가 달려서 고속으로 달리면 보드 자체가 물 위로 떠오르는 보드다. 이는 수중익선(배의 밑에 평면 또는 곡면의 수중 날개를 단 배)과 같은 원리다. 영상에는 라글란 해변에서 제트스키에 이끌려 보드를 타는 해밀턴의 모습이 보인다. 하이드로포일에 속력이 붙자 보드가 수면 위로 떠오른다. 마치 영화 ‘백 투더 퓨처2’에서의 공중부양 스케이트보드를 연상케 한다. 수면부양(?)한 해밀턴이 보드에 몸을 맡긴 채 큰 파도를 가르며 멋진 서핑을 선보인다. 한편 지난 18일 유튜브에 올라온 이 영상은 현재 19만 8700여 건의 조회수를 기록 중이다. 사진·영상= The Ultimate Waterman youtube 영상팀 seoultv@seoul.co.kr
  • [주말 하이라이트]

    ■눈길 제1편(KBS1 토요일 밤 10시 30분) 1944년 일제강점기 말, 열다섯 살 종분은 가난이 지긋지긋한 철부지 소녀다. 학교를 다니는 동네 친구 영애는 늘 부러움의 대상이다. 그러던 어느 날 종분은 영문도 모른 채 일본군 막사에 강제로 끌려가게 되고, 그곳에서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놓인 영애와 마주한다. 아직 끝나지 않은, 끝날 수 없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야기다. 광복 70주년을 맞았지만 전쟁으로 인한 여성의 피해는 지금도 끊임없이 자행되고 있다. 비극적인 운명 속에 피어난 두 소녀의 우정을 통해 척박한 현실에도 희망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 시간을 갖는다. ■다문화 사랑(EBS 1TV 토요일 오전 6시 30분) 전남 여수에 속한 섬 월호도에 6년 전 베트남에서 온 마이나가 살고 있다. 매일 아침 남편과 함께 섬에서 섬으로 우편 배달을 다니는 그녀의 직업은 특수지 집배원이다. 거기에 우편물이 실린 배를 직접 운전해 섬으로 향하는 그녀는 바다 건너 소식들을 전하는 일도 하고 있는데…. ■3·1절 특집 SBS 스페셜(SBS 일요일 밤 11시 15분) 배우 백진희가 3·1절을 맞아 내레이션에 참여한다. 백진희는 ‘나의 할아버지 김학철, 조선의용대 최후의 분대장’ 편에서 일제강점기 때 독립운동가였던 김학철 선생의 삶과 행적을 고스란히 전한다. 프로그램은 독립투쟁을 벌였던 김학철 선생의 삶을 통해 우리 민족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진단해 본다.
  • [이주일의 어린이 책] 자유 찾아 떠난 고래와 소년의 아름다운 우정

    [이주일의 어린이 책] 자유 찾아 떠난 고래와 소년의 아름다운 우정

    꿈꾸는 고래 아이딘/조르디 시에라 이 파브라 지음/김정하 옮김/노란상상 출판/104쪽/9000원 500㎏의 수컷 북극고래가 폭풍우 몰아치던 날 흑해에 있는 우크라이나의 한 연구소에서 탈출했다. 고래는 연구소에서 여러 가지 과학 실험에 쓰였다. 그물을 뚫고 탈출한 고래는 터키의 한 항구도시 게르제로 흘러들었다. 소년 고다르는 평소처럼 바다로 낚시를 하러 갔다가 고래를 만났다. 엄청난 크기에 처음에는 깜짝 놀라 온몸이 굳었지만 고래의 선한 눈빛과 미소에 끌려 친구가 됐다. 고다르는 고래에게 아이딘이라는 이름을 지어 줬다. 소년과 고래는 물놀이도 낚시도 함께 하며 우정을 나눴다. 그러다 문제가 생겼다. 아이딘이 국제 분쟁의 중심에 서게 된 것이다. 우크라이나 정부가 아이딘을 법적 주인인 연구소에 돌려줄 것을 터키 정부에 공식적으로 요청하면서다. 터키 당국은 아이딘이 스스로 선택한 곳, 게르제에서 그곳 어부들의 사랑을 받으며 살아가기를 원하는 아이딘의 선택을 존중해야 한다고 맞섰다. 영국에선 환경단체들이 아이딘을 본고향인 북극으로 돌려보내야 한다는 캠페인을 시작했다. 국제 분쟁으로 떠오르면서 전 세계의 신문·방송 관계자들이 게르제로 몰려왔다. 소동 끝에 아이딘은 결국 우크라이나의 실험실로 가게 됐다. 고다르는 아이딘을 꼭 껴안고 작별 인사를 나눴다. 아이딘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아이딘과 고다르는 다시 만날 수 있을까. 1992년 2월 우크라이나의 실험실을 탈출해 터키의 게르제로 흘러든 고래의 믿기 힘든 실화를 바탕으로 쓴 동화다. 자유를 찾아 미지의 세계로 용기 있는 여행을 떠나는 아이딘의 여정에 대한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고다르의 성장 소설이기도 하다. 갇혀 지내는 모든 존재에게 보내는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이기도 하다. 저자는 “어떤 그물도 자유로운 존재의 의지나 마음의 자유, 생을 향한 갈망과 사랑을 막을 수는 없다”고 말했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女性’ 전쟁의 최대 피해자

    ‘女性’ 전쟁의 최대 피해자

    조선인 군위안부와 일본군 위안소 제도/윤명숙 지음/최민순 옮김/이학사/606쪽/3만 2000원 아우슈비츠의 여자들/캐럴라인 무어헤드 지음/한우리 옮김/현실문화/536쪽/1만 8000원 올해는 광복 70주년이 되는 해다. 동시에 세계 2차대전이 종전된 지 70주년이자 독일이 패망해 아우슈비츠 수용소가 소련의 붉은 군대에 의해 해방된 지 7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새로운 미래를 설계하기에 앞서 우리는 전쟁의 희생자들에 대한 진정한 애도와 사과를 잊지 말아야 한다. 성적 소수자인 여성의 인권은 전쟁의 참화 속에 무참히 짓밟혔다. 이에 대한 지속적인 문제 제기와 조명 작업이 필요하다. 일본 제국주의 점령기인 1930년대부터 1945년 일본이 패망하기까지 중국과 아시아 일대 전선에 끌려가 일본군의 성노예로 인권을 유린당한 일본군 위안부들, 제2차 대전 당시 독일군이 점령한 프랑스에서 항독 활동을 하다 체포돼 정치범으로 죽음의 수용소 아우슈비츠로 끌려간 여성들에 주목한 책이 나란히 출간돼 의미를 더한다. ‘조선인 군위안부와 일본군 위안소 제도’는 이 문제의 권위자인 윤명숙 박사가 일본 히토쓰바키대에서 9년 동안 연구해 얻은 성과를 고스란히 담았다. 군 위안부 피해자의 증언과 문헌자료를 기반으로 철저히 실증주의에 입각해 써 내려간 묵직한 책이다. 2002년도 과학연구비 보조금을 지원받아 일본 아카시 서점에서 2003년 출간한 책을 번역한 것으로 저자는 “출간 10년이 지났지만 책의 논지는 변함 없이 유효하며, 조선인 군 위안부의 형성 과정과 일본군 위안소 제도의 실태를 이해하기에 부족함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책은 2부로 구성돼 있다. 1부는 군 위안부 문제가 어떻게 전후 보상 문제로 부상했고, 그 과정이 어떠했는지를 검토한다. 아울러 군위안소 정책과 관련한 일본 정부와 군의 통제감독 실태를 군 위안소 설치, 군 위안부의 징모와 이송, 군위안소의 운영으로 나누어 살펴본다. 일본 군부는 군의 기강해이와 각종 범죄에 대응해 점령지의 치안 유지와 병사들에 대한 위안을 충족시킬 목적, 점령지 부대의 성병 확산 방지책으로 공창제도를 대신하는 효과적인 제도로서 군위안소를 확대해 나갔다는 것이 드러난다. 2부에서는 조선인 군 위안부 피해자의 증언을 토대로 군 위안부 징모 및 징모업자 등에 대해 검토한다. 당시 조선에서의 징모는 인신매매 업자들의 취업 사기, 유괴, 역취 등 영리 유괴와 비슷한 양태로 지속됐으며 경찰이 직접 징모하거나 인솔하기도 하는 등 적극적으로 가담했다. 경찰은 도항에 필요한 신분증명서를 발급하고 징모에 협력했다. 저자는 조선인 군 위안부가 양산된 배경으로 경제적 요인과 사회적 요인을 지적한다. 조선에 대한 식민지 정책으로 총인구의 80%를 차지하는 농촌 인구 중 70%가 빈농이었다. 집안의 가난과 불우한 사정이 더해진 학력이 없는 빈농 출신 여성들은 징모업자들의 표적이 됐다. 저자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일본군 위안소 제도 규명을 통해 제국주의 군대의 폭력성을, 그리고 일제의 식민지 조선에서의 위안부 징모와 관련한 실태 규명을 통해 일제의 식민주의·식민성·폭력성을 드러내고자 했다”고 밝혔다. ‘아우슈비츠의 여자들’은 역사·인권 분야에서 활약하는 영국의 기록문학 작가 캐럴라인 무어헤드가 아우슈비츠 생환자들의 개인적 기록과 공문서, 생존자 구술을 채록해 서사적으로 재구성한 르포르타주다. 나치의 피해자 가운데 ‘여성들’에 주목한 최초의 책으로 영국과 미국에서 2011년과 2012년 출간 직후 베스트셀러가 되며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책은 프랑스의 평범한 아내, 어머니, 딸이었던 여성들이 가족과 이웃을 잃고 분노하며 레지스탕스의 심장이자 팔다리가 돼 지하 언론 제작과 배포를 담당하고 유대인의 밀항을 도우며 투사가 된 이야기들을 다룬다. 거대한 폭력에 맞서 나치에 저항하며 프랑스 전역에서 활약하던 여성들은 피말리는 감시와 미행 끝에 1942년부터 각각 체포돼 1943년 1월 24일 가축 수송열차에 실려 아우슈비츠로 향한다. 정치범이라는 딱지를 달고 죽음의 수용소로 끌려간 여성은 모두 230명. 이들 중 181명이 구타와 질병, 생체실험으로 죽었지만 49명이 기적적으로 살아 돌아왔다. 저자는 이들이 살아 돌아올 수 있었던 이유로 “그들 각자가 믿을 수 없을 만큼 행운아였으며, 그들 사이의 우애가 극심했던 야만성을 견딜 수 있게 해 주었다”고 썼다.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광복 70년 기획] “항일역사 더 자세히 가르쳐야”

    [광복 70년 기획] “항일역사 더 자세히 가르쳐야”

    일본의 교과서 역사 왜곡에 대해 우리 정부가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면서 양국의 갈등으로 커진 형국이다. 일본 역사학자이면서도 한국의 대표 역사연구단체인 역사문제연구소 후지이 다케시(44) 연구실장에게 바람직한 역사교육에 대해 물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일본의 역사 왜곡 시도가 지속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다. -역사교육만 놓고 봤을 때 역사 왜곡은 정부 간에 외교적으로 풀기 어려운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를 한국과 일본의 갈등으로까지 연결하니 해법이 어려워지고 있다. 두 나라가 역사를 외교에서 서로 계산적으로 이용하는 측면이 강하다. →일제 식민통치가 한·일 역사교과서 문제의 핵심인데. -한국인은 그 기간을 어떻게 봐야 할지,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고민하고, 더 자세히 가르쳐야 한다. 일제 시대 피해상만 강조해선 안 된다. 그 당시 한국이 어떤 저항을 했는지 좀 더 많이 알려줘야 한다. 한국인은 다양하게 저항했고, 새로운 사회를 갈망했다. 이런 것들을 가르쳐 주고 학생 스스로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고민하도록 해야 한다. 왜 이런 것들에 대해서는 더 자세히 가르치지 않는지 의문이다. →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역사는 하나로 가르쳐야 한다” 고 했다. -역사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가 결여된 것 같다. 역사가 마치 변하지 않는 사실이고, 그 변하지 않는 사실이나 규범을 주입식으로 가르치는 게 역사 교육이라고 착각한 것이다. 우리가 역사적 사실이라고 믿는 것들은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역사교육은 그런 관점을 가르쳐야 한다. →한국의 바람직한 역사교육의 방향은. -역사교육은 나와 국가와의 ‘연결 고리’가 중요하다. 이 고리가 너무 강하면 민족주의로 흐를 우려가 있다. 한국의 역사교육에서는 해방 이후 이념 대립에 따라 개인이 이 고리를 어떻게 바라볼지에 대한 정립이 제대로 안 되고 끌려다녔다. 내가 어떤 위치에 있는지, 국가와 나와는 어떤 관계가 있는지, 나는 이 사회 속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할 수 있도록 역사를 가르쳐야 한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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