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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만, 연내 위안부 박물관 첫 개장

    2차대전 때 일본군의 성노예로 끌려갔던 여성들을 기리는 ‘위안부 박물관’이 대만에서 처음으로 문을 연다. 21일(현지시간) 미국 내 아시아 전문가인 데니스 핼핀 존스홉킨스대 한·미연구소 방문연구원과 대만 언론 등에 따르면 대만 여성인권단체들의 노력으로 수도 타이베이에서 오는 12월 10일 위안부 박물관이 개장한다. 박물관 개설을 주도한 여성인권단체 ‘타이베이여성구조재단’ 관계자는 “박물관의 주제는 평화와 여성의 권리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재단 측은 위안부 박물관의 공식 개장에 앞서 8월 14일 박물관 명판을 공개하는 기념식을 개최한다. 이날은 한국과 중국, 인도네시아, 대만, 필리핀 등의 시민단체들이 ‘위안부의 날’로 지정한 기념일이다. 재단 측은 또 위안부의 치유와 극복 과정을 담은 76분 분량의 다큐멘터리도 지역별 극장에서 개봉할 예정이다. 360㎡ 규모의 박물관은 대만 위안부에 대한 역사적 자료를 비롯해 지난 20여년간 재단 측과 위안부들이 주고받은 연대기 등을 전시할 예정이다. 재단 측은 그동안 위안부들을 인터뷰하고 그들의 치유를 도왔다. 재단 측은 또 박물관에서 위안부 관련 전시와 함께 인권 교육, 성적 학대 등의 주제에 대한 워크숍 프로그램도 계획하고 있다. 재단 측에 따르면 2000명이 넘는 대만 여성이 일본군 성노예로 끌려갔으며 중국과 한국 등으로부터 끌려간 전체 위안부 규모는 20만~30만명 규모인 것으로 파악됐다. 워싱턴 김미경 특파원 chaplin7@seoul.co.kr
  • [사설] ‘끼워 넣기’ ‘물타기’ 데자뷔 성완종 리스트 수사

    사실상 파장 분위기로 알려졌던 검찰의 이른바 ‘성완종 리스트’ 수사에서 뜬금없이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를 지낸 김한길 의원과 이인제 새누리당 의원의 이름이 흘러나오고 있다. 이들이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에게서 금품 로비를 받은 것으로 의심할 만한 정황을 검찰이 포착해 곧 불러 조사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이번 수사에서 리스트에 거명된 여권 핵심 인사 8명 외에 여야 정치인이 소환조사 대상에 포함된 것은 처음이다. 검찰 수사에 성역이 있어서는 안 되고, 김 전 대표든 누구든 혐의점과 단서가 드러나면 직접 수사를 해야 하는 게 옳다. 수사 대상에는 여당이든 야당이든 청와대든 구분이 있을 수 없다. 검찰에 수사권과 기소독점권을 부여한 이면에는 성역 없이 사회의 악(惡)을 척결하라는 주문이 담겨 있기도 하다. 하지만 이번 수사에서 김 전 대표 이름이 흘러나오는 순간 ‘성역 없는 수사’라는 찬사를 보내기 앞서 ‘야당 끼워 넣기’ 또는 ‘물타기’ 데자뷔가 드는 까닭은 무엇인가. 그것은 아마도 성완종 리스트 수사가 미진하기 때문일 게다. 애초 이번 사건 수사는 성 전 회장이 죽음으로써 폭로한 8명의 금품 수수 의혹에서 출발했다. 리스트가 수사의 단초이자 본류였다. 하지만 본류 수사는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검찰은 이완구 전 국무총리와 홍준표 경남지사 등 2명을 불구속 기소하고, 나머지 6명에게는 면죄부를 주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홍문종 새누리당 의원을 제외하고 서병수 부산시장, 유정복 인천시장, 허태열·김기춘 전 비서실장, 이병기 현 비서실장 등 5명에 대해서는 서면 답변만 받고 끝냈다. 대선 자금 수사는 한 발짝도 떼지 못했다. 앞서 얘기했듯 누구든 혐의점과 단서가 드러나면 성역 없이 수사해야 한다. 리스트 외에 다른 단서가 나오면 수사하는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앞서야 할 것은 성 전 회장이 직접 남긴 증거인 리스트 속 8명에 대한 수사여야만 한다. 공여자의 진술이 남아 있는 ‘살아 있는 권력’은 불러 조사하지도 않고, 야당 유력 정치인을 포함해 다른 쪽으로 수사 방향을 트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혹여 ‘보이지 않는 손’의 가이드라인에 이끌려 ‘물타기’하는 것이라면 그 후폭풍은 만만치 않을 것이다. 결국 특별검사를 통해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릴 것이기 때문이다. ‘물타기’ ‘면죄부’ ‘끼워 넣기’ 수사로는 국민적 공감을 얻을 수 없다.
  • [동영상] ‘암살’ 하정우 “캐릭터 이름에 끌려 출연”

    [동영상] ‘암살’ 하정우 “캐릭터 이름에 끌려 출연”

    “‘암살’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 나눈 건 2년 전 부산의 한 횟집에서 장어 덮밥을 먹으면서다” 22일 오전 서울 신사동 압구정 CGV에서 열린 영화 ‘암살’ 제작보고회에 참석한 하정우가 작품에 출연하게 된 뒷이야기를 들려줘 눈길을 끌었다. 이날 하정우는 “최동훈 감독님은 늘 설레는 작품을 만들어 오신 분이다. 그렇기 때문에 언제 한 번 불러주시나 생각하고 있었다”며 말문을 열었다. 이어 그는 “감독님과 함께 작업을 하면 재미있는 캐릭터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주저하지 않고 참여하게 됐다”고 밝혔다. 영화 ‘암살’은 1933년 상하이와 경성을 배경으로 친일파 암살 작전을 둘러싼 독립군들과 임시정부대원, 그들을 쫓는 청부살인업자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하정우는 암살단을 쫓은 청부살인업자 ‘하와이 피스톨’ 역을 맡았다. 이에 하정우는 “캐릭터 이름이 마음에 들었다. 작품을 결정하는데 50%정도 (캐릭터 이름이) 작용을 한 것 같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또 그는 촬영 내내 즐거웠다면서 “재미있는 걸 관객들에게 보여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다”고 덧붙여 작품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타짜’와 ‘도둑들’ 등을 연출해 충무로 흥행 보증수표라 불리는 최동훈 감독의 다섯 번째 영화 ‘암살’은 이정재, 하정우, 전지현을 비롯해 오달수, 조진웅, 이경영, 최덕문 등이 출연한다. 오는 7월 22일 개봉. 문성호 기자 sungho@seoul.co.kr
  • 박성현은 두 번 울지 않았다…한국여자오픈서 생애 첫 메이저 우승

    박성현은 두 번 울지 않았다…한국여자오픈서 생애 첫 메이저 우승

    내셔널타이틀이 걸린 올해 제29회 한국여자오픈 골프선수권대회는 ‘스타 탄생’으로 막을 내렸다. 21일 인천 베어즈베스트 청라골프클럽(파72·6635야드)에서 끝난 대회 4라운드에서 박성현이 2주 전 역전패의 아픔을 딛고 프로 데뷔 후 첫 우승을 메이저 타이틀로 장식했다. 4타 앞선 선두로 라운드를 시작, 벌어 놓은 타수를 죄다 까먹고 1타를 더 잃는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1오버파 289타의 성적으로 힘겹게 우승의 문턱을 넘었다. 특히 2주 전 롯데칸타타 대회의 영락없는 ‘데자뷔’였다. 당시 마지막 날 3타 차 리드를 지키지 못하고 마지막홀 짧은 파퍼트를 놓치는 바람에 이정민(23·비씨카드·3오버파 291타)에게 연장전으로 끌려들어가 역전패를 당했던 박성현은 두 번 울지 않았다. 트리플보기를 포함해 5타를 잃으면서도 집중력을 잃지 않고 우승후보 ‘0순위’ 이정민을 2타 차 2위로 따돌렸다. 상금 2억원과 함께 향후 4년 동안의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출전권도 받았다. 이정민과 챔피언 조에서 2주 만에 다시 만난 박성현은 타수를 줄이지 못하다가 9번홀(파4)에서 3퍼트로 1타를 잃었다. 10번(파5)~11번홀(파4) 연속 버디로 타수를 만회했지만 이후 4개홀에서 무려 6타를 잃는 위기를 겪었다. 5타 뒤진 2위로 라운드를 시작한 이정민이 5번(파3)~6번홀(파5) 연속버디로 거센 추격에 나선 상황이었다. 13번홀(파4) 보기로 한 타를 잃은 직후 박성현은 14번홀(파5) 티샷을 오른쪽 워터 해저드로 보냈다. 1벌타를 받고 그 자리에서 친 세 번째 샷을 페어웨이에 잘 올렸지만 이번엔 어프로치샷을 그린 오른쪽 벙커에 빠뜨렸다. 다섯 번째 샷마저 그린을 넘긴 박성현은 결국 여섯 번째만에 공을 그린에 올리고 두 차례 퍼트 만에 홀을 벗어났다. 16번홀(파4)에서도 한 타를 더 잃어 전날 쌓아 놓은 타수를 모두 까먹은 박성현은 17번홀(파3)에서는 어이없는 3퍼트를 범하는 바람에 이정민의 1타 차 추격을 허용한 채 18번홀(파4) 티박스로 올라갔다. 승부는 두 번째 샷에서 갈렸다. 이정민은 그린 에지에 공을 떨군 반면 박성현은 깃대 10m 남짓한 곳에 공을 보냈다. 이정민이 시도한 러닝 어프로치가 예상을 깨고 깃대를 훌쩍 지나간 뒤 박성현은 홀에서 손가락 마디 2개만큼 가깝게 공을 붙인 뒤 가볍게 챔피언 퍼트를 떨궜다. 자신의 골프백에 ‘남달라’라는 문구를 새겨 놓은 박성현은 “남과 달라야만 정상에 오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른 선수를 롤모델로 삼기보다는 나만의 스타일로 경기를 하고 싶다”고 우승 소감을 대신했다. 최병규 전문기자 cbk91065@seoul.co.kr
  • [프로축구] 종료 직전 동점골… 수원 산토스 멀티골

    [프로축구] 종료 직전 동점골… 수원 산토스 멀티골

    산토스(수원)가 경기 종료 직전 거짓말 같은 동점골을 터뜨렸다. 프로축구 K리그 2위 수원은 21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선두 전북과의 경기에서 2-2로 비겼다. 산토스가 2골을 터뜨렸다. 전북(승점 36)과 수원(승점 29)의 승점 차는 7로 유지됐다. 수원은 전반 20분 전북 에두에게 선제골을 허용했다. 수원은 그러나 실점 5분 만에 산토스의 골로 경기를 원점으로 돌렸다. 정대세가 깊이 찔러준 공을 상대 골문을 향해 쇄도하던 산토스가 그대로 차 골대 구석에 꽂았다. 후반 28분 수원은 전북 레오나르도에게 실점하면서 끌려갔다. 패색이 짙었던 후반 추가시간, 산토스가 전북의 골망을 흔들었다. 산토스는 코너킥 후 페널티 박스 안 혼전 상황에서 슈팅을 날렸고 공은 그대로 골대 안으로 빨려들어갔다. 울산문수경기장에서 열린 울산과 인천의 경기도 1-1로 승패 없이 끝났다. 울산은 수비수 유준수의 퇴장에 실점까지 당했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울산의 공격수 김신욱이 후반 33분 정동호의 크로스를 정확하게 머리에 맞춰 동점골을 뽑았다. 대전 역시 홈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제주와 2-2 무승부를 기록했다. 강신 기자 xin@seoul.co.kr
  • IS에 점령당한 삶…생존자들이 전하는 참상

    IS에 점령당한 삶…생존자들이 전하는 참상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가 자신들만의 강력한 율법을 중심으로 하는 ‘칼리프'(이슬람 지도자) 체제를 선언한지 약 1년이 지난 현재, IS 점령지 주민들의 삶은 어떨까? 레바논 데일리스타 등 외신은 18일(현지시간) 흡사 중세 암흑기를 연상케 하는 IS의 비상식적인 폭정에 시달렸던 현지인들의 이야기를 소개했다. 에스키 모술 마을의 ‘셰이크’(촌장) 인 압둘라 이브라힘은 IS 전투원들이 마을을 점령한 순간 자신의 아내가 오래 살아남기 힘들 것이라는 절망스러운 예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IS는 군인 혹은 경찰이었던 자, 과거 정부와 관련 있었던 자들로 하여금 ‘회개 카드’에 서명할 것을 요구한다. 회개 카드에 서명하면 과거의 행동을 모두 잊고 IS에만 충성할 것을 맹세한다는 의미가 된다. 이브라힘의 아내에게도 ‘회개 카드’에 서명하라는 요구가 있었지만 아내는 “비굴해지지 않겠다”며 서명을 거부했다. 이에 이브라힘은 아내를 멀리 피신시켰지만 세 딸과 두 아들을 그리워한 아내는 매번 마을로 돌아왔다. 결국 같은 해 IS 대원들이 이브라힘의 집을 포위했고 아내는 끌려갔다. 며칠 뒤 돌아온 것은 IS가 발급한 ‘사망신고서’ 뿐이었다. IS의 판사가 서명한 이 서류에는 아내의 무덤 위치를 포함, 기타 정보는 전혀 없었다. 피난민들에 따르면 IS는 자신들만의 국가를 건설하려는 중이다. 자체적인 관료체계도 있으며 히스바(Hisba)라고 불리는 비밀경찰이 주민들을 감시한다. 점령 지역 밖으로 나가고 싶은 사람은 IS 지도부의 허가를 맡아야 한다. 아직 IS 점령지에 머물고 있는 가족들을 보호하기 위해 ‘아드난’이라는 가명을 쓰는 28세 시리아 운동가는 IS가 점령한 시리아 라카(Raqqa)시의 참상을 전했다. 2014년 1월 점령당한 이래 라카 시는 IS의 ‘수도’ 역할을 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한때 화려한 대도시였던 라카는 이제 삭막하기 그지없는 장소가 됐다. 외출하는 여성들은 굽이 없는 신발을 신고 전신을 검은 옷으로 완전히 가린 채 황급히 목적지와 집만 오간다. 흡연자들은 향수를 흠뻑 뿌리고 다닌다. 담배를 피우는 것이 금지돼 있기 때문이다. 비밀경찰들은 마을 곳곳을 누비며 사람들에게 담배 냄새가 나지 않는지, 복장은 ‘적절’한지 감시한다. 적발된 자는 어김없이 매를 맞는다. 주민 대부분은 이들에게 꼬투리를 잡히지 않으려 외출을 삼간다. 기도시간에는 모든 가게가 문을 닫아야 하며 이 시간에 밖을 돌아다니는 사람들은 처벌받는다. 자동차 운전자들은 대개 IS가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라디오 방송만을 듣는다. 자동차 오디오로 음악을 듣다 발각되면 채찍 10대에 해당하는 처벌을 받기 때문이다. IS가 판단하기에 ‘위험’하거나 ‘불경’한 사람들은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진다. 이들의 소식은 간단한 사망신고서 혹은 잔혹한 처형 영상을 통해 알 수 있을 뿐이다. 지역의 축구 경기장은 이제 감옥이자 심문소가 됐다. 수많은 처형이 일어나는 중앙 광장은 ‘지옥 광장’이라는 뜻의 ‘자힘'(Jaheem)으로 불리고 있다. 여기서 처형된 시신은 일종의 ‘본보기’로써 며칠간 매달려 방치된다. 아드난은 “점령지 주민들은 IS를 증오하지만, 들고 일어난다 해도 아무도 힘을 보태지 않을 것을 알기 때문에 좌절하고 있다”며 현지 주민들의 암담한 상황을 전했다. 사진= ⓒ AFPBBNews=News1 방승언 기자 earny@seoul.co.kr
  • 일제 강제동원 희생자 유골봉환 자료 전시

    일제 강제동원 희생자 유골봉환 자료 전시

    과거 일제에 강제로 끌려갔던 희생자들의 유골 봉환 관련 자료 전시회가 17일 서울광장에서 아태평화교류협회 주최로 열렸다. 시민들이 일본 후쿠시마 탄광 등 강제 동원 현장에서의 유골 수습 과정 등을 기록한 사진 자료 등을 보고 있다. 전시회는 19일까지다. 강성남 선임기자 snk@seoul.co.kr
  • 강제로 트렁크에 실리는 女…보고도 지나치는 경찰

    강제로 트렁크에 실리는 女…보고도 지나치는 경찰

    보고도 믿기 힘든 사건이 슬로바키아에서 발생했다. 눈앞에서 여성이 끌려가고 있는 장면을 뻔히 보고서도 이를 지나치는 경찰의 모습이 포착된 것.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의 16일자 보도에 따르면 최근 슬로바키아 중부 도시인 즈볼렌의 대로변에는 새벽녘 한 여성을 강제로 택시 트렁크에 태우려는 남성들의 모습이 생생하게 포착됐다. 당시 수 명의 남성들은 택시를 세워둔 채 해당 여성을 끌고 나왔고, 경찰차는 이들과 불과 십여m 떨어진 곳에 정차돼 있었다. 한 남성에게 끌려나온 이 여성은 트렁크에 타지 않으려 발버둥치고 소리를 지르는 등 반항했지만 경찰은 마치 드라마를 보듯 이를 지켜보고 서 있었다. 경찰은 이를 제지하기는커녕 지척에서 우두커니 서서 바라보다가 발길을 돌렸고, 여성을 강제로 트렁크에 태운 남성들 중 한명이 조수석에 앉자 택시는 그대로 현장을 떠났다. 해당 영상은 대로변이 훤히 보이는 건물의 높은 곳에서 촬영된 것으로 보인다. 이 영상이 인터넷에 퍼지자 시민들은 여성이 강제로 트렁크에 태워지는 것을 바라보고만 있던 경찰에게 비난의 화살을 쏘고 있다. 현지 경찰 측은 “당시 현장에 있던 경찰관 두 명이 실수를 저질렀다”며 사과의 뜻을 밝혔지만 비난은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즈볼렌의 시의원까지 나서 이번 사건의 책임을 묻고 있다. 한 의원은 “즈볼렌 시장은 해당 경찰관들의 근무태만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반드시 이에 따른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경찰들은 곧장 수사에 돌입해 당시 강제로 택시 트렁크에 태워졌던 여성의 신원을 찾아내는데 성공했다. 인적사항 공개를 원치 않은 이 여성은 현지 언론과 한 인터뷰에서 “상당한 시간을 트렁크에서 보내야 했다. 그 남성들은 나를 강제로 트렁크에 태운 뒤 집 앞에 아무렇게나 버리고 가버렸다”고 주장했다. 현재 경찰들은 택시운전기사도 이번 사건과 연관이 있는지 등 자세한 경위를 조사 중이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스페인 가톨릭 영성 성지를 가다] ‘영적 심장’ 2000년 고도 톨레도

    [스페인 가톨릭 영성 성지를 가다] ‘영적 심장’ 2000년 고도 톨레도

    이베리아반도의 스페인은 독특한 천주교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대표적인 국가다. 종교개혁의 구호와 운동이 거세게 번지는 격동과 혼란의 순간에도 천주교를 이탈하지 않는 신학과 영성이 유난히 강했고, 그 올곧은 믿음의 정신과 신앙의 질서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주관으로 지난 7일부터 14일까지 스페인의 가톨릭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영성 성지를 돌아보는 순례 행사가 열려 본지 김성호 선임기자가 동행했다. 4회에 걸쳐 현지 순례 인상을 연재한다. 지난 7일 오전 10시 스페인 수도 마드리드에서 남쪽으로 약 72㎞ 지점에 오뚝하게 선 2000년 고도 톨레도의 복판인 톨레도 대성당. 고딕의 웅장한 ‘하느님 집’ 외관에 압도당해 성당 안으로 들어서니 경당(소성당) 속 신자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성체성혈대축일을 기리기 위해 톨레도의 주교좌성당에 일찍부터 모인 예수님 제자들의 몸짓이 예사롭지 않다. 성체성혈대축일은 예수님이 성체성사를 세워 몸과 피를 빵과 포도주의 형상으로 내어줌을 기념하고 되새기는 천주교 일곱 성사 중 하나다. 전체 인구의 85%가 가톨릭 신자인 만큼 가톨릭 국가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스페인 대표 영성 성지에서 만난 부활 끝자락의 각별한 인상이 불청객을 사로잡는다. 다소 어두운 듯한 공간에 자리잡은 22개의 경당을 지나쳐 중앙 제대에 이르니 5600개의 조각과 1만 2000개의 황금 나사로 만들었다는 거대한 성광(성체 현시대)이 일행의 눈길을 끈다. 평소 이곳 감실에 모셔진 성체를 성체성혈대축일 때마다 거리로 모시고 나와 행렬을 하는데 오늘이 바로 그날이란다. 맞은편 소성당인 코로에 우뚝 서 있는 백성모마리아. 미사 때 129명의 보좌주교와 참사 신부들이 앉는다는 공간 한가운데 들어선 성모마리아의 턱을 만지는 아기 예수와 그 모습에 웃고 있는 성모마리아의 현신을 본 방문객들의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걸출한 영성가들과 아직까지도 절대적인 영향력을 갖는 신학, 신비주의로 압축된다는 스페인 가톨릭의 첫 영성 성지에서 만난 성모마리아의 웃음, 그 웃음에 톨레도를 잠깐 얹어 본다. 로마제국의 지배 후 서고트족이 들어오면서 서고트 왕국의 수도로 번영했던 곳이다. 711년부터 1492년까지 무려 780년간 이슬람 지배하의 수도였으며 1085년 알폰소 6세의 탈환 이후 1561년 펠리페 2세의 마드리드 수도 천도 때까지 스페인 수도로서 정치, 문화, 산업의 중심지였다는 가이드의 낭랑한 목소리가 귀에 박힌다. 그 톨레도는 과연 무엇일까. 로마 지배의 영향으로 세워진 난공불락의 요새인 톨레툼(방어지대)일까, 유대교와 이슬람, 가톨릭이 혼재했던 관용과 융합의 톨레랑스 지대일까. 안내자의 한마디가 콕 박힌다. “적지 않은 부를 형성하고 있었던 30만명의 유대인들이 가톨릭의 중심 도시로 바뀐 뒤 떠날 것인지 머물 것인지를 선택하라는 통치자의 말을 따라 이동했고, 이는 스페인 몰락의 적지 않은 원인이 됐다.” 그 한편에선 성당이며 건축물들을 세우고 복원할 때 이슬람 신자들을 참여시켰다니 톨레도는 관용과 조화의 종교 공간임이 틀림없다 제의실로 들어서니 예사롭지 않은 성화들이 눈에 박힌다. 성당의 주보인 성 일데폰소 대주교가 성모마리아로부터 제의를 하사받는 천장 벽화며 입고 있는 빨간 성의가 벗겨지는 순간에도 평온한 웃음을 짓고 있는 모습이 그려진 성화인 중앙의 ‘모욕당하는 예수’, 그리고 ‘베드로의 눈물’…. 중앙 제대 뒤편으로 옮기자니 천장 아래로부터 중앙 제대로 쏟아지는 빛의 향연이 펼쳐진다. 대리석의 바로크식 조각들이 빛을 받으니 무수한 천사가 힘차게 약동한다. 미소 짓는 성모마리아를 뒤로한 채 성당을 나오니 좁은 거리에 기다랗게 이어진 천들이 하늘을 가리고 있다. 오후에 있을 성체성혈대축일 성체 현시대 거동 행사 때 길을 인도하고 햇빛을 가리는 천들이다. 집집마다 벽에 내건 추기경 문장이며 알록달록한 태피스트리들이 강렬한 빛과 색의 조화를 이뤄 눈부시다. 태피스트리와 천들의 향연에 취해 잠시 걷다가 골목 한편에서 맞닥뜨린 산토 토메 성당. 호기심에 이끌려 안으로 들어서자 스페인에선 빼놓을 수 없다는 화가 엘 그레코(1541~1614)의 최고 걸작이라는 ‘오르가스 백작의 장례식’이 시선을 압도한다. 이 교회의 후원자였던 돈 곤살로 루이스를 매장할 때 스테파노와 아우구스티노 두 성인이 나타나 친히 백작의 시신을 입관했다는 기적의 장면을 묘사한 명화다. 이 명화를 보려는 전 세계의 신자며 관람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는 안내자의 말이 아니더라도 톨레도의 가톨릭 영성을 가늠하기란 어렵지 않아 보인다. 톨레도를 휘감아 흐르는 타호강을 건너기 전 뒤돌아본 적갈색의 성채 도시 맨 아래에 자리잡은 산 후안 데 로스 레예스 성당. 이슬람 지배 시절 이슬람 교도들로부터 받은 치욕을 잊지 말자며 성당 외벽에 걸어 놓은 옛 지하감옥의 쇠사슬이 둔중하게 걸려 있다. 스페인의 정신적 지주이자 심장 격의 역사를 고스란히 갖고 있는 톨레도의 가톨릭을 한눈에 압축해 보이는 흔적이 아닐까. 글 사진 톨레도(스페인)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할머니, 꼭 기억할게요… 대구 위안부 역사관 문 연다

    할머니, 꼭 기억할게요… 대구 위안부 역사관 문 연다

    대구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이 광복절에 문을 연다. 대구시와 정신대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은 ‘희움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을 오는 8월 15일 개관한다고 15일 밝혔다. 희움은 ‘희망을 모아 꽃피움’이라는 뜻으로 지난 3월 이름 짓기 공개 모집을 통해 선정됐다. 위안부 역사관은 대구 중구 서문로1가에 지상 2층 연면적 83.29㎡ 규모로 건립됐다. 1층은 전시실, 2층은 기획전시실과 교육관으로 꾸며진다. 내부에는 영상 감상 코너, 위안부 문제 해결 운동 안내, 대구·경북 지역 위안부 피해 할머니 소개, 위안부 스토리 검색대 등이 배치될 예정이다. 희움 위안부 역사관은 2009년 12월 시민사회에서 건립추진위원회를 만들면서 본격 추진됐다.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갔던 고 김순악 할머니가 ‘대구에 위안부 역사관을 건립하는 데 써 달라’며 내놓은 5000만원이 계기가 됐다. 건립에는 모두 12억 5000만원이 들어갔다. 시민모금운동에다 여성가족부와 대구시가 각각 2억원, 대구 중구청이 4000만원을 보탰다. 개관일에 맞춰 위안부 관련 기획전도 열린다. 기획전에서는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수십년간 활동해 온 일본인의 이야기가 주로 다뤄진다. 위안부 역사관은 지난해 12월 1일 문을 열 예정이었으나 건물 보강 공사와 내부 콘텐츠 보강 등을 이유로 2차례 더 연기됐었다. 대구 한찬규 기자 cghan@seoul.co.kr
  • 맺힌 恨 못 풀고… 같은 날 떠난 두 위안부 피해 할머니

    맺힌 恨 못 풀고… 같은 날 떠난 두 위안부 피해 할머니

    30분 간격을 두고 두 명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가 한 맺힌 생을 마감했다. 여성가족부는 경북 포항에 사는 김달선(왼쪽·91) 할머니와 경기 광주의 김외한(오른쪽·81) 할머니가 노환으로 별세했다고 12일 밝혔다. 김달선 할머니와 김외한 할머니는 각각 11일 오후 9시 15분, 오후 8시 40분에 눈을 감았다. 두 할머니의 별세로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피해자 238명 가운데 생존자는 50명만 남게 됐다. 김달선 할머니는 1925년 경북 포항시 북구 환여동에서 3남 3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19세 때인 1943년 어머니를 따라 흥해읍에서 청어를 팔던 중 일본 경찰에 의해 미얀마로 끌려갔다. 그곳에서 무참히 성을 유린당하며 자궁 수술을 두 차례 받고 자살을 시도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해방이 된 뒤 꿈에 그리던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위안소에서 받은 고초로 평생 병원과 요양원을 전전했다. 고인의 여동생 김만금(73)씨는 “생전에 ‘일본놈들이 우리가 가고 싶어서 간 것이라고 하는 데 죽기 전에 자꾸 이야기를 해 진실을 밝혀야 한다’고 자주 말하셨다”면서 “언니는 평생 사과 한마디 없는 일본 정부를 증오했다”고 전했다. 경기 광주 나눔의집에서 생활해 온 김외한 할머니는 1943년 위안부로 끌려가 일본 훗카이도에서 혹독한 생활을 했다. 위안부 피해 후유증으로 오랜 기간 병을 앓아온 김외한 할머니는 1998년 12월 공식 피해자로 등록됐다. 김희정 여성가족부 장관은 이날 오후 김외한 할머니의 빈소가 차려진 안동의료원 장례식장과 김달선 할머니 빈소인 포항시민장례식장을 각각 찾아 조문했다. 김 장관은 “일본군의 위안부 만행은 피해 당사자가 없는 상태에서의 사과는 의미가 없다”면서 “생전에 사과하지 않는다면 또 한 번의 씻을 수 없는 역사적 과오로 인류사에 기억될 것임을 가해 당사국이 명심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윤수경 기자 yoon@seoul.co.kr
  • [프로야구] 삼성 위에 ‘新星’

    [프로야구] 삼성 위에 ‘新星’

    신성현(25·한화)이 데뷔 첫 홈런을 화려한 만루포로 장식했다. 꼴찌 kt는 9회 5점 차를 극복하고 기적 같은 역전 드라마를 썼다. 한화는 10일 대구에서 벌어진 KBO리그에서 신성현의 역전 만루포를 앞세워 삼성을 7-2로 격파했다. 한화는 2연승했고 삼성은 4연패에 빠지며 2위로 밀려났다. 한화는 0-1로 끌려가던 4회 정근우, 김태균의 안타와 최진행의 볼넷으로 무사 만루의 찬스를 잡았다. 이어 나선 신성현은 선발 차우찬의 3구째 146㎞짜리 직구를 통타, 가운데 담장을 넘는 대형 만루 아치를 그렸다. 신성현이 데뷔 8경기, 선발 출장 5경기 만에 터뜨린 첫 홈런이자 그랜드슬램이다. 데뷔 첫 홈런이 만루홈런인 경우는 역대 15번째다. 신성현의 야구 인생은 한 편의 ‘드라마’다. 서울 덕수중을 졸업하고 일본 교토 국제고로 진학한 그는 거포로 이름을 날리며 2008년 히로시마에 4라운드로 지명받았다. 하지만 1군에서 한 경기도 뛰지 못하고 2013년 방출됐다. 이후 김성근 감독이 이끄는 독립구단 고양 원더스에 입단했고 지난해 8월 신인지명회의에 응시했으나 무릎 부상 탓에 지명받지 못했다. 그를 눈여겨본 김 감독은 한화의 지휘봉을 잡으면서 신고선수로 불러들였고 신성현은 지난달 27일 정식 선수로 등록됐다. 신성현은 이 홈런으로 자신의 가치를 입증했고 한화는 스타 탄생의 기대를 부풀렸다. kt는 사직에서 연장 10회 롯데에 10-7로 극적인 역전승을 거뒀다. kt는 2-7로 뒤져 패색이 짙던 9회 배병옥의 2점포 등 장단 6안타를 집중시켜 동점을 만들었다. 이어 10회 댄블랙의 1점포와 박경수의 2점포가 폭발해 롯데를 망연자실케 했다. 롯데 강민호는 2회와 6회 각 1점포를 터뜨렸으나 팀 패배로 빛을 잃었다. 시즌 20·21호포를 몰아 친 강민호는 자신의 한 시즌 최다를 기록한 2010년(23개) 이후 5년 만에 20홈런 고지를 밟았다. 강민호는 이날 홈런을 보탠 테임즈(NC)와 어깨를 나란히 했고 박병호(넥센)도 18호포로 추격의 고삐를 조여 홈런 경쟁은 더욱 달아올랐다. NC는 문학에서 2홈런 등 장단 10안타로 SK를 7-2로 물리쳤다. 4연승의 NC는 삼성을 제치고 9일 만에 선두로 복귀했다. 넥센은 광주에서 8회 박병호의 1점 동점포와 9회 박동원의 결승타로 KIA에 4-3으로 역전승했다. LG는 잠실에서 한나한의 3점포로 두산을 5-1로 제압, 3연패를 끊었다. 김민수 선임기자 kimms@seoul.co.kr
  • [서울광장] 광복 70주년 어떻게 자축할 텐가/박홍환 논설위원

    [서울광장] 광복 70주년 어떻게 자축할 텐가/박홍환 논설위원

    2009년 10월 1일 오전 중국 베이징 톈안먼(天安門) 광장. 꼭 60년 전의 그날과 마찬가지로 44만㎡(약 13만평)의 드넓은 광장에 수십만 명의 인파가 새벽부터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톈안먼의 성루에는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을 비롯해 당시 중국 최고지도부와 후 주석 전임자였던 장쩌민(江澤民) 전 주석 등이 올라 몹시도 흡족하고 상기된 표정으로 눈 아래 펼쳐진 광장의 모습을 바라봤다. 중국 건국 60주년 기념일은 그렇게 시작됐다. 8000여명의 정예 장병과 전략핵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비롯한 500여대의 첨단 무기, 조기경보기 등 150여대의 항공기가 장엄하게 펼친 열병식을 마친 뒤 마이크를 잡은 후 주석은 “지난 60년 동안 중국은 거대한 발전과 진보를 이룩했다”며 중화민족의 부흥을 선언했다. 똑같은 자리에서 마오쩌둥(毛澤東)이 “중국인들이 이제 일어섰다”며 건국을 선언한 지 꼭 60년 만의 중화민족 부흥 선언에 중국인들은 환호하며 하나가 됐다. 두 달여 후 우리는 8·15 광복 70주년을 맞는다. 10년 단위로 ‘꺾어지는 해’에 맞는 광복의 기념비적 의미는 각별할 수밖에 없다. 역량을 대내외에 과시할 수 있는 중요한 기회이기도 하다. 중국이 건국 60주년에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주요 2개국(G2) 반열에 오른 것을 대대적으로 자축한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지도자로서는 더욱 의미가 깊다. 그 같은 감격적 순간은 다시 오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 방문 당시 말할 수 없는 수모를 당한 뒤 “반드시 산 정상에 올라 주위의 작은 산을 내려다보리라”라는 두보의 시 망악(望嶽)을 읊으며 와신상담했던 후 주석이 건국 60주년 기념일에 중국의 부흥을 선언했던 심정이 그랬을 것이다. 지난 70년 우리의 지도자들은 어땠나. 이승만 전 대통령은 6·25 전쟁의 폐허 속에서 기념하기조차 민망했던 광복 10주년을 맞았고, 박정희 전 대통령은 그나마 광복 30주년에 ‘한강의 기적’을 언급할 수 있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광복 50주년에 문민 민주화의 실현을 자랑스럽게 내세웠다. 그후 20년, 박근혜 대통령은 어떤 희망의 메시지를 던지며 국민들과 함께 광복 70주년을 자축할 것인가. 광복의 기쁨은 분단의 슬픔을 동시에 내재하고 있다. 남북이 분리된 것도 모자라 우리 내부적으로는 동서로 나뉘고, 계층과 세대 간에도 분열돼 있다. 광화문 광장은 진보와 보수로 양분된 상태다. 하나 된 대한민국은 요원해 보인다. 이보다 슬픈 일은 없다.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가 곧 열린다고 역설해 봤자 국민 절반 이상은 콧방귀도 뀌지 않는다. 광복 70주년 기념식이 국민 통합의 자축연이 돼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역대 지도자 누구도 못 했던 일이어서 더욱 값질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제 박 대통령은 귀와 가슴을 열어야만 한다. 광장을 보듬고, 소외된 사람들을 끌어안아야 한다. 선거 지지층만 끌고 가겠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그렇게만 되면 고작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정도에 화들짝 국란 수준으로 치닫는 대한민국의 못난 모습은 사라질 수 있다. 기껏 100만원의 벌금을 못 내 당장 노역장에 끌려가야 하는 가장들이 ‘장발장 은행’을 찾지 않도록 해 주고, 상당 부분 죗값을 치른 기업인들도 경제활성화에 동참할 수 있도록 해 줘야 한다. 원칙에 얽매여 사면과 가석방을 차단해선 극적인 국민 대통합의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 8·15 광복 70주년 직후 박 대통령은 5년 임기의 반환점을 돌고, 집권 후반기로 접어들게 된다. 이보다 좋은 국민 통합의 기회가 있을 수 없다. 광복 70주년에 국민들을 하나로 모으고 새로운 70년의 기반을 다지는 지도자라니, 이 얼마나 멋진 모습인가. 우리라고 대통령의 한마디에 환호하며 하나 되지 못할 이유가 없다. 강한 국력을 과시하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하지만 더 늦어선 안 된다. 전설의 새 봉황은 한번 날갯짓으로 구만리를 날아간다고 했다. 그만큼 비축된 저력이 있기 때문이다. 향후 70년 대한민국의 비상(飛翔)을 이제부터 준비해야 한다. 그 첫 출발은 국민 통합이다. 질시와 반목과 저주는 이제 끝장내야 한다. 그 청사진을 광복 70주년에 박 대통령이 내보여 줄 수 있다. 박 대통령에게도, 우리 국민들에게도 이보다 더 좋은 기회가 있을 수 없다. 두 달 뒤인 8월 15일, 박 대통령의 국민 대통합 선언을 기대한다. stinger@seoul.co.kr
  • [그린에서 만난 사람] 탈북자 캐디 1호 리영미씨

    [그린에서 만난 사람] 탈북자 캐디 1호 리영미씨

    “골프를 처음 봤을 때요? 뭐 저런 걸 갖고 경기를 하나 싶었습니다.” 9일 경기 안성의 골프존카운티 안성W 컨트리클럽에서 만난 북한이탈주민 리영미(29·가명·여)씨의 표정은 화창한 6월 하늘만큼이나 밝았다. 리씨는 골프전문기업 골프존이 지난 3월 선발한 북한이탈주민 캐디 교육생 1기다. 12주 동안의 교육을 모두 마친 지난주 정식 캐디가 돼 처음으로 그린을 밟았다. “한국에 와서야 골프를 알게 됐어요. 북한에서 아는 운동이라곤 축구와 아이스하키뿐이었거든요.” 그의 고향은 함경북도 회령이다. 겨울이면 영하 40도까지 내려가 아이스하키가 가장 인기가 많다. 학창시절 선수로도 활동했던 그는 “하키채 휘두르듯 하면 될 줄 알았는데 막상 해보니 어렵더라”며 까르르 웃었다. 그가 한국땅을 밟은 건 2009년이다. 고향에 부모님을 남겨둔 채 겨울에 홀로 두만강을 건넜다. “한국 드라마를 봤다는 이유로 노동단련소(수용소)에 끌려갔어요. 하루 종일 일을 하고 3평 남짓한 공간에서 열댓 명의 사람들과 무릎을 꿇은 채 잠을 자야 하는 곳이었죠.” 한 달 반 정도 지났을까. 어느 날 엄마가 찾아왔다. 딸에게 따뜻한 밥 한 끼 해주고 싶었던 엄마는 없는 돈을 긁어모아 경비에게 건넸다. 하지만 그는 그 길로 국경을 넘었다. 뒤에서 총성이 울렸다. 바로 옆에서 배가 뒤집히며 사람이 죽었지만 리씨는 살아 남았다. “한국에 가기만 하면 드라마에 나오는 2층 집에 살 수 있을 줄 알았어요.” 하지만 하나원에서 나온 첫날, 천장을 바라보며 엉엉 울었다. 외로움과 막막함이 밀려들어왔다. 한국은 자기가 한 만큼 가져가는 사회였다. 그는 몇 년간 하루에 한 시간만 자면서 일과 공부를 병행했다. 평소 옷을 좋아했던 그는 폴리텍대학 패션디자인과에 진학해 직접 디자인한 옷을 동대문에 내다 팔았다. “앞이 보이지가 않았어요. 디자인으로 돈을 벌려면 백(배경)도 있어야 되는데 저는 그런 것도 없고….” 다시 4년제 대학 사회복지학과에 입학한 그는 3학년이던 지난해 복지관에 취업했다. “하루 종일 일해도 월급이 130만원이 채 안 됐어요. 어떻게든 돈을 모아 북에 계시는 부모님을 모셔 오고 싶었습니다.” 당시 멘토 역할을 해 주던 교수가 캐디에 지원해 보는 게 어떻겠냐고 넌지시 물었다. 떨어지면 다시 복지관으로 돌아오라는 말을 떠올리며 지원한 그는 5대1의 경쟁률을 뚫고 최종 4명의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쉬운 일은 없었다. 교육기간 동안 합숙을 하면서 생소한 골프용어와 규칙 등 모든 것을 빨리 배우고 습득해야 했다. 게다가 하루 종일 골프장을 헤매고 다니는 거리가 10㎞ 안팎. 밤이면 무릎까지 시큰거렸다. 안 그래도 아이스하키 훈련 후유증으로 오랫동안 골다공증에 시달렸다. “제 자신이 이것밖에 안 되나 실망스러웠어요. 하루에 열두 번씩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북한 출신은 어쩔 수 없나 보다’라는 소리가 듣기 싫어서 이를 악물고 버텼습니다.” 그렇게 혹독한 트레이닝을 거쳐 캐디가 됐다. 처음 캐디를 도우미 수준으로 생각했던 그도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 “골프는 매너 게임입니다. 잘 치기만 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 패션부터 모든 걸 다 갖춰야 게임이 완성된다고 생각해요. 물론 캐디도 그것의 한 부분이고요.” 올해 만으로 스물아홉인 그에게 결혼 계획을 물었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한국에 와서 한번도 연애를 해 본 적이 없어요. 머릿속에 늘 하루빨리 돈을 모아서 북에 계신 부모님을 모셔 와야 한다는 생각만 했던 것 같아요.” 그는 “안 그래도 내가 북한에서는 상당히 노처녀에 속한다”며 웃었다. “제가 다녔던 고등학교에서 13명이나 한국에 들어왔어요. 얼마 전 동창회에 갔는데 네가 뭘 아느냐며 애나 보라고 저를 무시하더라고요(웃음). 하지만 잘사는 사람들보다는 힘들게 사는 사람이 훨씬 더 많은 것 같아요. 아직까지는 일에 치중하고 싶어요.” 그의 최종 꿈이 캐디는 아닐 것 같았다. 한참을 뜸들이다 그는 “사회적으로 영향력 있는 사람이 돼서 탈북자들을 도와주고 싶어요. 하지만 아직 꿈만 크죠”라고 되물으며 서둘러 필드로 향했다. 심현희 기자 macduck@seoul.co.kr
  • 아빠들 주목! 우리 아이 책과 친구 되게 해주는 법

    아빠들 주목! 우리 아이 책과 친구 되게 해주는 법

    “나중에 쉬고 애들한테 책 좀 읽어줘요.” 아내의 성화에 마지못해 책을 든 김모(39)씨. “이리 와봐. 아빠가 책 읽어줄게!” 하지만 여섯 살 아들과 네 살 딸은 아빠를 한 번 쓱 쳐다보더니 이내 관심을 꺼버린다. 머쓱한 김씨가 책을 밀어 놓고 소파에 누워 리모컨으로 텔레비전을 켜는 순간, 아내의 ‘스매싱’이 어김 없이 등짝을 강타한다. “TV 좀 그만 보고 애들 책 좀 읽어주라니까!” 벌개진 등을 만지며 김씨도 소리를 빽 지른다. “책 읽어준대도 애들이 싫어하는데 나보고 어떡하라는 거야!” 아빠의 육아 참여가 높을수록 아이의 자아 존중감과 정서가 발달하는 것은 물론, 학습과 인성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영국 옥스퍼드대 자녀양육연구소는 “자녀의 성장과 교육에 적극적인 아빠 밑에서 자란 아이는 사회성이 높다”고 했다. 심리학자 블란차드와 빌러에 따르면 아빠와 접촉이 많은 자녀가 그렇지 않은 아이들보다 학업 성취도 평가에서 상위권을 유지한다. 자녀와 친밀해지는 가장 좋은 방법은 될 수 있으면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이다. 하지만 잦은 야근으로 자녀와 함께하지 못한 아빠들이 대다수일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자녀에게 책도 읽어주고 싶다’는 욕심으로 억지로 책 읽기를 시도한다면 아이가 도망가게 마련이다. 책에 대한 친밀감을 높이고 책도 많이 읽히고 야외활동도 즐기는 방법은 없을까. 전문가들은 이런 아빠들에게는 ‘아빠표 독서 교육법’을 권하고 있다. [1단계] 우선 책에 대한 발상부터 바꿔보는 것이다. 정은주 한우리 독서토론논술 연구소장은 8일 “책은 가만히 앉아 읽기만 하는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깨면 장난감이 필요 없을 정도로 다양한 놀이 활동이 가능하다”면서 “독서를 꺼리는 아이들이 책과 친숙해지도록 하는 효과가 있고, 육아 초보 아빠들도 쉽게 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특히 책을 도구로 활용한 ‘책 놀이’는 따로 비용이 들지 않고, 가정에 책이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육아를 처음 시작하는 아빠들이 시도하기에 안성맞춤이다. 신체 활동을 동반하기 때문에 일거양득의 효과도 거둘 수 있다. 책을 볼링핀처럼 세워두고 공을 굴려 책을 쓰러뜨려 승자와 패자를 가리는 ‘책 볼링’, 거실에서 일정한 간격을 두고 자녀와 함께 책을 이어서 세운 뒤 쓰러뜨리는 ‘책 도미노’는 창의력과 집중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 ‘책 다리 만들기’는 정해진 시간에 바닥에 책을 일렬로 이어 가장 긴 다리를 만드는 사람이 승리하는 놀이다. ‘책 옮기기’는 막대기 2개를 11자로 만들어 그 위에 올린 책을 골인 지점까지 빠르게 옮기는 게임이다. 아빠와의 대결은 신체 발달에도 좋다. 아빠와의 놀이에서 이기면 성취감을 맛볼 수 있고, 자존감도 높아진다. [2단계] 부모가 자녀에게 책을 읽어주는 활동은 책에 흥미가 적은 아이에게도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해준다. 자녀가 책과 어느 정도 친숙해졌다면 ‘잠자리 독서’를 시작해보자. 잠자리에 들기 전 30분이면 충분하다. 아이의 집중력과 상상력을 키워주는 데 효과적이다. 자녀가 아빠에게 사랑받고 있음을 느끼도록 해주기 때문에 정서적으로도 권장할 만하다. 책을 읽어줄 때에는 자녀와 대화를 나눈다는 느낌으로 읽도록 한다. 책의 표지나 그림에 대해 자녀와 이야기 나누거나 책 문장에 아빠의 감정을 담아 읽은 후 자녀가 이를 따라 읽는 방법도 권할 만하다. 역사나 모험 등과 같은 남성적 성향의 책이나 의성어·의태어가 풍부한 문장으로 이루어진 도서도 좋다. 김수연 제천북스타트위원장(인천재능대학 교수)은 “잠자리에 들 때에는 정적인 책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마련인데, 굳이 그런 책을 억지로 고를 필요는 없다”며 “책 읽어주기의 본질은 ‘소통’이라는 점부터 명심하자”고 했다. 예컨대 김 위원장이 추천하는 ‘곰 사냥을 떠나자’는 곰을 사냥하러 수풀 사이를 헤치고, 강도 건너고 동굴도 건너다가 결국 ‘아이고 무서워!’ 하면서 침대 안으로 들어가는 내용이다. 유아 때에는 이런 책들이 아이의 올바른 수면습관 형성에도 큰 도움이 된다. [3단계] 주말이나 휴일에는 자녀와 함께 읽은 책 속의 내용을 주제로 야외 활동을 해보자. 독서를 통한 야외활동은 자녀와 더욱 깊은 교감을 쌓을 수 있도록 해준다. 또한 책에 대한 흥미를 확장하고, 관련 분야에 대한 깊이 있는 독서로 연결하는 마중물 역할을 한다. 억지로 손에 이끌려 체험학습을 하는 학생도 많은데, 책을 읽고 체험학습을 하다 보면 능동적인 학습도 가능하다. 신체놀이를 할 수 있는 책을 선택해 읽어주고, 주말에 관련 활동을 하면 자녀와의 유대감이 훨씬 더 커질 수 있다. 책 내용과 연관된 야외 활동은 배경 지식에 경험이 덧붙여져 내용 이해가 쉽다. 신체활동과 연결도 가능하다. 예컨대 운동에 관심이 많은 자녀와 함께 ‘WHY-스포츠 과학’ 중 야구에 관련된 내용을 읽고 나서 야외에서 책 속에 삽화로 표현된 직구나 변화구의 손가락 모양을 따라 하며 캐치볼을 하는 방식이다. ‘신기한 수영장’을 읽고 자녀에게 수영을 가르치며 용기를 북돋아주거나 ‘난 자전거를 탈 수 있어’를 읽고 자녀에게 자전거 타는 법을 직접 알려주는 등의 활동은 자녀의 성장에도 큰 도움이 된다. 이런 방식이 습관화하면 ‘나들이는 반드시 멀리 떠나야 한다’는 막연한 부담감도 줄어든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할매들 다 떠나기 전에 일본 사과 꼭 받았으면”

    “할매들 다 떠나기 전에 일본 사과 꼭 받았으면”

    비영리 공익재단인 ‘아름다운재단’ 소속 김현아 국장과 간사 등 10여명이 지난 4일 경기도 광주 ‘나눔의 집’을 찾았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군자 할머니의 구순(九旬) 생일을 축하하는 자리였다. 거동이 불편해 보조기구에 의지하던 김 할머니는 화사한 노란색 옷을 입고 손님들을 맞았다. 13세에 고아가 된 김 할머니는 열일곱 살이었던 1942년 중국 혼춘의 위안소로 끌려가 광복이 될 때까지 고초를 겪었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억척같이 일하며 어려운 사람들을 돌봤다. 김 할머니가 아름다운재단이 창립된 2000년에 기부한 5000만원은 ‘재단 1호 기금’이 됐다. 김 할머니는 2006년 재단에 또 5000만원을 추가로 기부했다. 이 일로 지난해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았다. 최근에는 인근 퇴촌성당에 장학금으로 써달라며 남은 재산 1억원마저 기부했다. 이제 김 할머니 수중에는 40만원만 남았다. 김 할머니는 평소 “내가 돈을 쓰는 건 너무 아까운데 남 주는 건 하나도 안 아까워. 나 같은 사람이 더이상 안 나오게 하려고 그렇게 살았어”라고 말했다. 2007년 미국 하원 청문회에서 위안부 피해 증언을 했던 김 할머니는 8일 “일본은 결국 사과와 배상을 안 하고는 못 견디게 될거야. 그런데 사과받기도 전에 자꾸 할매들이 저세상으로 가고 있어. 죽기 전에 일본이 사과하는 거 꼭 봤으면 좋겠어”라고 말했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에 따르면 지난달 27일 이효순(91) 할머니가 타계했고, 현재 우리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피해자 238명 중 생존자는 김 할머니를 포함, 총 52명(국내 47명·국외 5명)뿐이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국내여행 | [Village in Seoul 문래동] 공장과 예술의 사적인 동거

    국내여행 | [Village in Seoul 문래동] 공장과 예술의 사적인 동거

    두터운 철근이 빼곡히 누워 있고 붉은 쇳가루가 흩날리는 문래동. 철공소와 예술이 묘한 동거를 시작하면서 알록달록한 꽃이 피어나고 있다. ‘초상권을 존중하는 매너 있는 촬영문화를 만들어 주세요’ 무작위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문래동 주민들의 일상이 괴로워졌다. 이방인에게는 서울에서 보기 힘든 신선한 풍경일지 모르겠지만 그들에게는 고된 삶을 살아내는 일터이자 휴식처다. 초상권은 침해당했고 작업 공간은 불편해졌다. 문래동 창작촌은 철공소들과 공존하기에 더욱 빛을 발하는 곳이다. 진정한 여행자라면 그들의 사생활을 보호하고 그 공간을 이해하려는 최소한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예술가들은 왜 문래동으로 갔을까 문래역 7번 출구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 그곳에 ‘문래동 창작촌’이라는 이름의 작은 예술 마을이 있다. 발끝에 채이는 것이 맛집이고 카페인 홍대 거리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과거(?) 가난한 예술가들이 모여 그림을 그리고 악기를 연주하던 홍대 거리는 그 독특한 풍경을 보러 온 사람들을 위한 공간들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모이면서 땅값은 물론 물가도 올랐다. 값싼 작업실이 금값이 되어 버린 덕에 예술가들은 하나둘 인근 지역인 상수동, 합정동으로 밀려났고 이제는 그보다 더 멀리 떨어진 문래동과 성수동까지 터를 옮겼다. 한편 문래동은 그 반대다. 1930년대 방직공장지대였던 일대에 1960년대부터 경제개발계획으로 인해 철재 공장들과 철물상들이 하나둘 들어섰고 1980년대에 이르러서는 그 절정을 맞이한다. 그러나 1990년대 IT산업 성장과 함께 산업구조가 바뀌면서 대부분의 공장들은 문을 닫거나 도심을 빠져나갔다. 상권이 약해지니 땅값은 떨어졌고 텅 비어 있던 낡은 건물들은 헐값에 나왔다. 가난한 예술가들이 꽃을 피우기에 비옥한 토양이 만들어진 셈이다. 이렇다 할 간판도 없는 작업실들이 어두운 골목길을 환하게 밝히기 시작했고 골목마다 크고 작은 갤러리들로 채워졌다. 주말이면 어두컴컴한 지하실에서 작은 공연이 펼쳐지기도 하고 시끌벅적한 파티가 열리기도 했다. 2~3년 전부터는 다양한 분야의 공방들도 모습을 드러냈다. 그렇게 ‘문래동 창작촌’은 자연스럽게 형성됐다. 그래서 문래동은 알리고 싶은 동네라기보다 지키고 싶은 동네다. 헝그리 정신으로 무장한 예술가들이 쫓겨나다시피 터를 옮기지 않도록 말이다. 컴컴한 어둠 속에서 찾아낸 빛이 누군가에게는 다시 어둠으로 향하게 만드는 악순환의 시작일 수도 있다는 것을, 문래동에서 배웠다. ●문래동에서 만난 골목길 아트 ●손고은 기자의 문래동 그곳? 정다방을 지켜 주세요 정다방 프로젝트 문래동에는 작은 다방 하나가 있었다. 이름은 정다방. 30여 년 동안 인근 법원을 찾는 민원인들에게 인기 있는 다방이었다. 그러나 법원이 이전하면서 드나드는 손님은 줄었고 정다방은 문을 닫았다. ‘정다방 프로젝트’는 이를 안타깝게 여긴 몇몇 사람들이 모여 만든 예술 공간이다. 가난한 예술가들에게는 전시 공간을 무료로 빌려 주고 주민들은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문화 예술을 경험할 수 있다. 도예, 사진, 설치 미술 등 여러 분야에서 활동하는 작가들과 이야기를 나누거나 함께 작품을 만들 수 있는 시간도 마련했다. 길 건너편에는 정다방 카페가, 옆 건물에는 예술 문화센터와 같은 정다방 공방이 자리한다. 서울시 영등포구 문래동4가 7-1 지하 1층 02-2633-4711 www.jungdabang.com 내 안경은 내가 만든다 로코 안경공방 정말이지 처음 알았다, 안경공방이 있다는 것을. 단순히 안경을 맞춤 제작해 주는 곳이 아니다. ‘공방’이라는 타이틀답게 스스로 안경을 디자인하고 만드는 과정에 참여해 ‘배움’이 있는 공간이다. 안경공학을 전공한 박정미 대표가 10여 년 동안 갈고 닦은 실력으로 기초부터 차근차근 가르친다. 화랑대역 근처에 본점이 있고 지난 1월 문래동에 2호점을 오픈했다. 한 달에 4번, 하루에 약 2~3시간씩 진행하는 기본 과정에 참여하면 원하는 디자인의 ‘내’ 안경을 ‘직접’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서울시 영등포구 문래2가 14-12 010-8632-0721 총 4회 수업 20만원(재료비 포함) 와인에 떡볶이가 어때서? 한잔 차차 어쩐지 낯설지가 않았다. 한식도 와인과 찰떡궁합이라는 것을 보여 주고 있는 홍대 앞 와인바 ‘와인주막 차차’의 두 번째 브랜드로 ‘한잔 차차’가 지난 3월 문래동에 입성했다. 한잔 차차는 와인도 커피처럼 가볍게 즐길 수 있다는 신개념을 장착한 와인 카페다. 두부김치, 황태포, 오관자, 더덕북어실채 등 20여 가지의 간편 한식과 와인 한 잔은 모두 3,000원. 그야말로 커피 값이다. 숯불차돌박이와 꽁치 한 마리가 속을 꽉 채우고 있는 김밥, 생 모차렐라 치즈를 통으로 넣은 떡볶이도 와인과 훌륭하게 어울린다. 그래도 고개를 갸우뚱 하는 당신에게 자신 있게 말한다. 와인에 떡볶이가 어때서?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3가 58-97 02-2631-3378 간편 한식, 한잔와인 3,000원, 차차떡볶이 1만5,000원 싱그러운 꽃향기가 가득한 라이드 앤 타이드 꽃공방 좁은 골목길까지 철공소들이 들어선 문래동. 그 안에 소박한 꽃이 피었다. ‘정다방 프로젝트’에서 기획자로 지내던 이정주씨가 ‘라이드 앤 타이드’ 꽃공방에서 또 하나의 예술 영역을 넓히고 있다. 매달 꽃다발, 소이캔들, 티컵플라워 만들기 등 다양한 일일 강좌를 통해 꽃꽃이 취미의 문턱을 낮추고 공연이나 레스토랑 데이 등과 같은 크고 작은 프로젝트도 함께 진행하는 등 활기가 가득한 공방이다. 가끔 길가에서 ‘비정주 꽃가게’ 이름을 내건 채 예쁘게 만든 꽃다발을 손수레에 싣고 판매하기도 한다니 그 모습이 궁금하기만 하다. 라이드 앤 타이드의 클래스는 3~4명의 소규모 인원으로 진행한다. 서울시 영등포구 문래동 3가 58-37 blog.naver.com/rideandtied 별도 문의 들어는 봤니? 드라이 에이징 스테이크! 셰프’s 마켓Chef’s market ‘마켓’이라는 간판을 달고 있지만 오해는 말자. 드라이 에이징 스테이크를 선보이는 엄연한 레스토랑이다. 드라이 에이징은 고기를 일정한 온도와 습도에서 2~3주간 유지하며 숙성시키는 방법이다. 덕분에 고기의 질감은 더욱 부드러워지고 촉촉한 육즙을 머금고 있어 소화가 잘 되는 것이 특징. 깊고 진한 고기의 맛을 느낄 수 있다 하여 커피로 치면 에스프레소에 비유되기도 한다. 뜨거운 팬에 두툼한 꽃등심 스테이크를 얹어 내오는데 아삭아삭한 숙주와 곁들여 고기의 느끼함은 잡아 주고 담백한 맛은 살려 준다. 고급 스테이크지만 셰프’s 마켓에서는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 드라이 에이징을 전문적으로 가공하는 ‘와이월드’에서 발벗고 나서서 만든 레스토랑으로 가격 거품을 없앴기 때문. 서울시 영등포구 문래동3가 58-2 070-4195-1119 꽃등심 스테이크(호주산, 200g) 1만8,000원, 안심 스테이크 덮밥 1만원, 고르곤졸라 비프 크림 파스타 1만6,000원 꼭꼭 숨어 있는 갤러리 이포 벽화에 마음이 끌려 들어선 좁은 골목길. 그 안에 대안 예술공간 ‘이포’가 꼭꼭 숨어 있다. 이름 참 예쁘다 생각했는데 박지원 대표의 고향 여주 이포에서 따온 이름이란다. 낡은 주택을 개조한 공간이라 왠지 발을 들이기 편안하다. 지하실부터 1·2층 모두 아티스트들의 전시 공간이자 예술 연구소의 느낌이다. 사진과 영상 등 미디어 아트가 전시의 주를 이룬다. 전시가 없는 날에는 작업에 열중하고 있는 아티스트들을 엿볼 수 있다. 서울시 영등포구 문래동3가 58-77 010-5382-6921 오늘은 어떤 일이 벌어질까? 재미공작소 어떤 곳인지 정의 내리기가 어려울 정도로 재미공작소에서는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그래서 알쏭달쏭하기만 한 곳. 2011년 상수동에 처음 문을 열었고 주중에는 누구든 예술 작업을 할 수 있는 오픈작업실로 주말에는 문화, 공연과 관련된 재미있는 일이 벌어지는 공간으로 운영되어 왔다. 그리고 지난 2013년 문래동으로 이전하면서 시 낭독회, 공연, 워크숍, 전시 등 문화예술 이벤트가 열리는 공간으로 변화했다. 누군가에게는 공연장이기도, 누군가에게는 배움의 공간이 되기도 하는 이곳에서는 매일매일 재미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서울시 문래동3가 58-84 1층 070-7517-6961 blog.naver.com/studiozemi 철공소 사이, 아늑한 그곳 어반아트 게스트하우스 허름하고 어둑한 건물 때문에 ‘게스트하우스’라고 적힌 입간판이 없었다면 그냥 지나칠지도 모를 일이다. 내부 구석구석은 빈티지 소품들로 단장했고 영문으로 쓴 서울 여행 및 공연, 갤러리 정보가 벽면을 가득 채웠다. 손님을 맞이하는 스태프는 파란 눈이 매력적인 프랑스 청년. 서울을 찾은 외국인 투숙객들을 위해 남이섬, DMZ, 설악산 여행 프로그램까지 마련되어 있다. 게스트하우스에서 몇 걸음 떨어지지 않은 곳에 ‘스페이스 문’을 함께 운영하고 있는데 주말이면 각종 공연과 콘서트, 파티가 열린다. 투숙객들에게는 스페이스 문을 좀더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는 할인 혜택까지 쏠쏠하게 제공한다.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3가 58-77 2층 070-4137-3565 주중 기준, 도미토리 8인실 1만5,000원, 4인실 2만원, 더블룸 3만5,000원, 패밀리룸 4만5,000원 이건 그냥 가방이 아니야 골드 테구 가죽공방 ‘한땀 한땀’의 장신정신이 깃들어 있는 곳, 가죽공방 ‘골드 테구Gold Tegu’다. 골드 테구에 들어서면 재밌는 가죽 세계가 펼쳐진다. 작은 토트백부터 숄더백, 백팩 등의 가죽 가방과 팔찌, 명함 케이스 등 액세서리도 다양하다. 골드 테구의 정찬구 대표는 나비 넥타이, 마스크와 같은, 공연이나 파티에서 필요한 아이템들도 맞춤 제작한다. 가죽에 대해 ‘ㄱ’자도 몰라도 괜찮다. 가죽공예 수업은 가죽에 대한 기초 설명과 함께 도안을 그리고 제작하는 방법까지 1~2명의 소수 정예 클래스로 운영되고 있다. 총 8회 수업(주 2회, 회당 2시간 30분) 60만원 (재료비 포함) 서울시 영등포구 문래동3가 58-77 1층 02-2677-0674 www.goldtegu.com ▶문래동을 알차게 여행하는 방법 올래?문래! 영등포구청과 문화예술단체 보노보C가 문래 창작촌 일대를 둘러보는 투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역사문화 해설사가 동행해 영등포의 역사부터 차근차근 설명해 주고 창착존에서 활동 중인 예술 작가와 곳곳의 벽화와 예술작품을 함께 감상할 수 있는 골목길 투어다. 매월 첫째 주, 셋째 주 토요일 오후 3시부터(2시간 진행) 1인 기준, 1만원 보노보C 02-2637-3313 글·사진 손고은 기자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 “日 강제노역 아버지 한 맺힌 곳이 세계유산이라니…”

    “日 강제노역 아버지 한 맺힌 곳이 세계유산이라니…”

    “일제에 끌려간 뒤 생사를 알 수 없었던 아버지의 흔적을 찾기 위해 평생을 동분서주했습니다. 일본 정부가 강제 동원 피해자들의 한 맺힌 장소를 과거의 영광을 기리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하는 건 절대 용납할 수 없습니다.” 일제 강제 징용 시설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여부가 이달 말 독일에서 확정될 예정인 가운데 피해자 유족 강종호(74)씨는 7일 “일본 정부는 자신들이 일으킨 전쟁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았는지에 대한 인식이 전혀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강씨의 부친 강태휴씨는 11만여명에 이르는 ‘무자료’ 강제 동원 피해자 유족 가운데 한·일 정부가 아닌 양국 시민단체의 문서 발굴을 통해 강제 노역 기록을 공식 확인한 첫 사례다. 태평양전쟁 피해자 보상추진협의회에 따르면 제주도 뱃사람이었던 부친은 1943년 일본으로 끌려갔다. 모친은 재혼해 섬을 떠났고 강씨는 조부모 밑에서 자랐다. 하지만 조부모마저 1948년 제주 4·3사건 때 “아들이 이북으로 간 게 아니냐”며 좌익으로 몰려 숨졌다. “산산조각 난 가정이 당시 우리 집뿐이었겠습니까. 아버지가 일본에 끌려갔지만 강제 동원 명부에도 이름이 없다 보니 평생 아버지의 자취를 찾느라 속을 끓였습니다.” 강씨가 처음으로 부친의 흔적을 찾은 건 지난해 2월. 협의회와 일본 시민단체의 오랜 추적 끝에 일본 시모노세키의 한 사무소에서 아버지와 관련된 문서 기록을 발견했다. 그 기록에는 부친이 시모노세키에 있던 한 선박회사 소속으로, 1944년 2월부터 3월까지 연금을 낸 내용이 기재돼 있었다. 강씨는 지난해 6월 시모노세키를 찾아 얼굴도 기억하지 못하는 부친의 제사를 지냈다. 그는 “이 기록 한 줄을 찾기 위해 바친 세월이 눈앞에 스쳐갔다”며 “무관심했던 우리 정부가 야속하기만 했다”고 말했다. 강씨는 오는 13~27일 한·일 시민선언실천협의회 등이 주관하는 ‘한·일협정 50년·광복 70년 한·일 공동기획 특별강좌’에서 강제 동원 유족 자격으로 증언대에 선다. 그는 “강제 동원 피해의 아픔이 70년이 흐른 지금도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말할 것”이라며 “일본 정부가 나가사키 조선소, 하시마 탄광(일명 군함도) 등 조선인 수만명이 강제 노동한 7곳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하려는 시도도 비판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지역들의 세계유산 최종 등재 여부는 오는 28일부터 독일 본에서 열리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결정된다. 강씨는 “일본 정부가 과거에 대한 진심 어린 사과와 앞으로 평화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약속을 하지 않는 이상 죽을 때까지 이 아픔을 증언하고 다니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글 사진 최선을 기자 csunell@seoul.co.kr
  • 저 너른 바다에 온몸을 맡긴다

    저 너른 바다에 온몸을 맡긴다

    경북 울진 하면 흔히 대게와 송이버섯의 산지로 꼽힌다. 가을부터 늦은 봄까지 나라 안 식도락 기행의 정수를 이루는 식재료니 그럴 법도 하다. 한데 울진에 어디 대게와 송이뿐이랴. 바다에 접한 도시답게 여러 해양 레포츠 체험시설도 잘 갖춰놨다. 바다를 위, 아래에서 두루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들이다. 특별히 준비해야 할 장비는 없고, 그저 몸만 가면 된다. 명성은 익히 들었다. 벌써 몇 해 전 겨울부터다. 현지인들은 초보자도 스쿠버 다이빙을 즐길 수 있는 시설이 잘 갖춰져 있다고 입을 모았다. 당시엔 한 귀로 흘려 들었다. 초보자가, 그것도 한겨울에 스쿠버 다이빙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이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한데 경험해 보니 알겠다. 바닷속 풍경은 외려 겨울이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걸 말이다. 울진 남쪽의 해양스포츠센터를 찾았다. 아시아 최대 규모의 스킨-스쿠버 다이빙 전문교육시설이다. 풍경 예쁜 오산항 인근. 눈요기만으로도 배가 부른 듯하다. 앞서 교육을 받고 있는 119 구조대원들을 보니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교육시설이라는 느낌이 물씬 풍겼다. 울진해양스포츠센터는 2011년 문을 열었다. 수심 5m에 달하는 국내 최대 규모의 다이빙 전용 풀장과 교육 중 발생할 수 있는 잠수병을 신속하게 치료할 수 있는 챔버 치료실 등을 갖추고 있다. 체험 다이빙 프로그램도 운영중이다. 초보자도 기초 이론 등을 배운 뒤 잠수풀에서 체험다이빙을 즐길 수 있다. 개방수역 체험 다이빙은 강사 인솔 아래 5~10m 수심의 바다 수중세계를 탐험한다. 숫자는 책임강사 1명에 체험 다이빙 교육생 4명으로 제한한다. 수중 시야가 5m 이상 확보되지 않거나 파도가 높으면 책임강사 판단에 따라 개방수역 체험다이빙을 실시하지 않을 수도 있다. 거대한 잠수풀에 담긴 물을 보니 더럭 겁부터 났다. 세계 3대 잠수풀 중 하나로 꼽힐 만큼 큰 규모란다. 물 위에서 스노클링 몇 차례 즐긴 게 고작인 초보자가 산소통 매고 저 거대한 수조 속으로 들어갈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된다. 다만 스쿠버 다이빙에 앞서 기본 이론 정도는 달달 외워야 한다. 아울러 안전이나 장비 사용과 관련된 대목은 사소한 것이라도 강사 지시를 잘 따라야 한다. 교육에 앞서 잠수복으로 갈아입었다. 3㎜ 두께의 웨트슈트(Wet suit)다. 방수 형태의 드라이슈트(Dry suit)와 달리 슈트 사이로 들어온 물을 체온으로 덥혀 따뜻하게 유지하는 게 웨트슈트의 원리다. 얼굴엔 물안경(마스크)을 썼다. 보통의 물안경과 달리 코까지 덥는 게 특이하다. 물속에선 입으로 호흡해야 하기 때문이다. 허리엔 4㎏짜리 웨이트(Weight) 벨트를 맸다. 윗몸에 걸친 부력조절재킷(BCD·Buoyancy Control Device)의 주머니에도 4㎏짜리 웨이트를 넣었다. 총 8㎏의 웨이트를 몸에 두른 셈이다. 이는 가라앉기 위해 몸에 무게를 더하는 것이다. 뒤집어 말하면 위급 상황 시 웨이트 벨트만 풀어도 몸이 저절로 물 위에 뜬다는 얘기다. 이어 핀(오리발)을 신고 산소통이 달린 BCD를 맸다. BCD 내부는 공기가 들고 날 수 있는 구조다. 상승할 때는 공기를 넣고 하강할 때는 빼는 식이다. 이어 입으로 호흡기를 물었다. 호흡기는 주 호흡기 외에 하나가 더 달려 있다. 주 호흡기에 문제가 생겼을 때 쓰는 보조 호흡기다. 이제 잠수 준비 완료다. 강사 손에 이끌려 잠수 시작. 2m 쯤 내려갔을까. 귀에 통증이 느껴졌다. 수압 때문이다. 이때 반드시 ‘이퀄라이징’(압력평형)을 해야 한다. 손으로 코를 꽉 막은 채 코를 풀듯 힘을 줘 귓속을 누르는 압력을 뚫어 내는 것이다. 귀에 압력이 느껴질 때마다 이퀄라이징을 해주면 편안한 상태가 된다. 사실 ‘마린 보이’가 되느냐 마느냐를 가르는 기본 요건 가운데 하나가 이퀄라이징이다. 이퀄라이징만 잘 되면, 그 순간부터 바다는 자신의 놀이터가 된다. ‘마린 보이’의 필수 요건 하나 더. ‘침착’이다. 이퀄라이징이 잘 안 되거나 불안감이 느껴지면 곧바로 잠수풀 위로 오르면 된다. 굳이 서둘러 수면 아래로 내려갈 필요는 없다. 이런 적응 과정을 몇 차례 반복하고 나면 자연스럽게 잠수할 수 있게 된다. 잠수풀에서 기본기를 다진 뒤 울진 바다 체험에 나섰다. 몇 차례 이퀄라이징을 하고 나니 어느새 목표 수심층이다. 한데 시계가 불량했다. 삭기 시작한 수초와 바다 생물 몇 개 본 것이 전부다. 교육생들을 태우고 간 선장의 설명은 이랬다. 바닷속은 바깥 세계에 견줘 한 계절이 늦다. 밖이 초여름이면 바다는 늦겨울이다. 그러니 지금의 바다 밑 풍경이 황량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이맘때 20여일 정도는 물색이 매우 탁하다고 한다. 가장 최악의 계절에 스쿠버 다이빙에 도전한 셈이다. 그렇다고 아쉬울 건 없다. 다이빙 포인트로 유명한 거북초와 왕돌초를 ‘버킷 리스트’로 남겨뒀으니 말이다. 요트, 윈드서핑 등 해양 레저스포츠에 관한 한 울진 바다는 세계 최상급의 장소라는 평을 곧잘 듣는다. 해마다 국제 규모의 코리아컵 국제요트대회가 열리는 것도 그런 이유다. 요트대회 개최 장소는 일반인들이 해양스포츠를 즐기는 장소로도 활용된다. 후포항의 울진요트학교에서 6~9월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수영복과 아쿠아슈즈, 세면도구, 여벌 옷 등은 각자 준비해 가야 한다. 윈드서핑도 즐길 수 있다. 3시간 강습을 받으면 기본적인 세일링이 가능하다. 가족 단위로 바다낚시를 즐길 만한 공원도 만들어 뒀다. 울진 북쪽의 나곡리엔 바다낚시공원이 있다. 350m 길이의 해안데크가 바다까지 이어져 있다. 해안 옆으로 조성된 목재 데크를 따라가면 기암절벽 아래로 바다낚시터가 조성돼 있다. 물고기 대신 해안절벽의 절경만 건져도 ‘남는 장사’지 싶다. 남쪽의 평해읍 거일리에도 ‘울진 바다목장 해상낚시공원’이 조성돼 있다. 낚시 잔교와 해상산책로 등 총연장 470m로 나곡리보다 다소 길다. 낚시공원이 들어선 거일리는 울진대게 원조마을로 알려져 있다. 이를 기념하는 조형물들이 바닷가 쪽에 세워져 있다. 글 사진 울진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지역번호 054) →가는 길:수도권에서 승용차로 갈 경우 영동고속도로, 동해고속도로를 거쳐 7번 국도를 타고 가는 게 알기 쉽다. 구불구불한 국도 여행을 즐기겠다면 중앙고속도로 영주나 풍기 나들목으로 나와 36번 국도로 갈아타면 된다. 울진해양스포츠센터와 요트학교 모두 울진 남쪽에 있다. 어느 도로를 이용하든 울진읍내를 지나 영덕 경계까지 내려가야 한다. 해양스포츠센터 잠수풀은 오전 9시부터 낮 12시 30분, 오후 1시 30분부터 오후 5시까지 이용할 수 있다. 성수기에는 오후 6시 30분부터 9시 30분까지 야간에도 이용할 수 있다. 체험 다이빙은 잠수풀 이용 시 6만원(공기탱크, 장비, 강습비 포함), 잠수풀과 바다 다이빙을 동시에 할 경우 12만원이다. 강사 면허 과정은 별도의 비용이 책정된다. 781-5115. 울진요트학교는 후포항 아래 있다. 크루저 요트 1일 항내체험 2만원, 연안 세일링 3만원이다. 윈드서핑은 1일 체험 5만원, 4일 정규반은 18만원이다. 788-4771, www.uljinyacht.com →맛집:붉은대게(홍게)는 6월까지 맛볼 수 있다. 7~8월 금어기를 거친 뒤 9월부터 다시 어로작업이 개시된다. 후포항의 왕돌회수산(788-4959)은 홍게 정식을 잘 한다. ‘우럭지리탕’(맑은탕)도 별미다. 울진읍내 칼국수식당(782-2323)은 해산물이 듬뿍 들어간 칼국수와 회무침으로 이름난 집이다. 점심 무렵엔 자리 잡기 어렵고 재료가 떨어지는 오후 2~4시엔 영업을 하지 않는다. 망양정횟집(783-0430)의 해물칼국수도 별미다. 칼국수의 양이 적게 느껴질 정도로 가리비 등의 해산물을 듬뿍 넣는다. →잘 곳:울진해양스포츠센터에서 숙박 시설을 운용하고 있다. 50인까지 수용할 수 있는 단체실을 비롯해 오션뷰와 마운틴뷰로 나뉜 8인실, 18명을 한꺼번에 수용하는 이층침대 등 다양하게 마련되어 있다. 스킨 스쿠버 동호인들뿐 아니라 가족 단위, 혹은 단체의 해양캠프로 맞춤이다. 한화리조트 백암온천(787-7001)도 묵어 가기 좋은 곳이다. 여름이면 평해읍내부터 백암온천 입구까지 8㎞에 걸쳐 백일홍 꽃길이 펼쳐진다. 후포항 쪽에선 지앤미(788-8885) 모텔이 깔끔한 편이다.
  • [특파원 칼럼] 수교 50주년 맞는 한국과 일본/이석우 도쿄특파원

    [특파원 칼럼] 수교 50주년 맞는 한국과 일본/이석우 도쿄특파원

    오는 22일 주일 한국대사관 주최로 도쿄에서 열리는 한·일 수교 50주년 기념행사에 아베 신조 총리가 참석할까. 서울에서 주한 일본대사관 주최로 열리는 같은 행사에 참석할 한국측 최고위급 인사는 누가 될까. 두 나라 대사관은 양측 전·현직 최고 지도자들에게 초청장을 보냈다고 한다. 수교 기념행사의 두 정상 참석 여부가 관심을 끄는 것은 의례적인 외교행사를 계기로 냉랭한 두 나라 관계가 돌파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때문이다. 우리의 2대 교역국인 일본, 일본의 3대 교역국인 한국. 인적 왕래도 서로 1, 2위를 차지해 온 이런 나라끼리 지난 3년 동안 정상회담을 단 한 차례도 하지 않고, 외교부 장관의 상호 방문이 한 차례도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은 어찌 보아도 정상은 아니다. 두 정상의 ‘결자해지’를 기대하는 것은 우리나 일본이나 고위 관료들과 주요 기관장들이 최고지도자의 생각과 행보에 눈과 귀를 맞추면서 교류와 협력의 속도를 조정하고, 제동을 거는 등 파장이 크기 때문이다. 정상 간 만남의 효과는 중·일 관계에서도 보인다. 지난해 11월 베이징에서 시진핑 주석은 아베 신조 총리와 찡그린 표정으로 마지못한 듯한 악수를 나눴지만 두 나라 국민들은 “교류 재개의 신호”로 받아들였다. 각종 당국 간 회담과 의회 교류가 이어졌고, 인적 교류 등 민간 교류에도 속도가 붙었다. 정상회담이 이뤄지지 않아도 엔저 속에서 일본을 찾는 한국 관광객 수는 기록을 경신하고, 이자카야 체인점 숫자와 사케 등 일본 술 수입량은 가파르게 늘고 있다. 한국과 달리 일본에서는 새로 나온 갤럭시가 단말기에서 회사 이름을 아예 지워 버렸고, 백화점 진열대에 있던 한국 상품과 막걸리들은 자취를 싹 감췄다. 일본의 세계문화유산 등재 신청에 한국이 왜 반대하는지 대부분의 일본인들은 알지 못한다. ‘조선인’들이 끌려가 강제 노동을 했던 7곳에 대해서만 그 역사를 밝히라는 주장임을 아는 일본인도 거의 없다. 지역경제 활성화를 기대하는 그들에게 반한 감정에 불을 더 지피는 악재가 됐다. 외교의 실패로서 한국의 대일 외교는 일본인이 대상이 아니라 국내의 청자(聽者), 한국인 오디언스가 주 대상자인 탓이다. 대일 외교의 결과를 국내 정치의 표로만 계산해서는 생존 환경 변화를 따라갈 수 없다. 대일 관계 개선 시도를 “반민족, 굴욕외교”란 틀에 넣어 “보수 정부는 친일”이라는 도식으로 몰아가려는 일부 정치 진영의 구태도 이제는 그쳐야 한다. ‘아베 때리기’가 국내 정치에는 먹힐지 몰라도 오랜 경제적 정체와 중국 부상에 압박감을 느끼며 수심이 깊어진 일본인들에게는 반발을 사는 계기도 된다는 사실을 바로 봐야 한다. 커 가는 혐한론 속에 한국을 제쳐 놓고 가자는 ‘무시 외교’ 주장이 일본 내에서 확산되고 있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미국과 중국을 통해 서로를 움직이게 하려는 시도의 한계와 위험을 심각하게 고려하고 서로를 마주해야 할 때다. 이제는 대화하면서 견제하고 협력과 갈등의 균형을 맞출 때다. 갈등과 이견이 종횡으로 얽히는 국가 관계 속에서 명분을 잃지 않으면서 주고받기를 하며 협력 틀을 넓혀 나가는 데 집중해야 한다. 수교 50주년을 맞으며 과거사 정리는 정리대로 하면서도 동북아 공동체를 열어 나가기 위한 협력과 실천의 장에서 진전을 이뤄 나가야 한다. 한·일은 서로 아쉬운 존재고, 담을 쌓고 지내기에는 너무 잃을 게 많은 소중한 전략적 자산이다. jun88@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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