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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문이불여일행] ‘나 새(鳥)됐다’…겁쟁이 여기자, 패러글라이딩 도전하다

    [백문이불여일행] ‘나 새(鳥)됐다’…겁쟁이 여기자, 패러글라이딩 도전하다

    “자, 이제 내리세요.” 트럭 문을 열고 내리니 좁은 산길. 작은 트럭 하나가 구불구불 한참을 올라온 게 신기할 따름이다. 이 길을 만들기 전에는 훨씬 오랜 시간이 걸려 올라왔다고 한다. “뒤로 타요, 얼른!” 타고 싶다고 할 땐 안 된다더니 출발지점보다 한참 더 올라온 산 위에서 트럭 뒤 칸으로 자리를 옮겼다. 시동소리와 함께 난간을 잡은 손은 힘이 팍 들어간다. 덜컹거림이 멈출 줄을 모른다. 놀이기구 같은 승차감에 새어나오는 웃음. 오프로드의 매력이 이런 걸까. 좁은 길이 답답하다고 느낄 때쯤 확 트이는 시야, 영화 속에서 본 풍경이 라이브로 펼쳐진다. “와” “우와” “대박”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감탄사가 쏟아진다. ‘서울 가까이에 이런 곳이 있었구나. 왜 몰랐을까.’ 유명산의 자태를 담아보려 카메라를 꺼냈지만 영 아쉽다. 눈으로 멀리, 가득 바라본다. 비행복을 입고 헬멧, 장갑, 하네스 등을 꼼꼼하게 갖춰 입었다. 제법 폼이 갖춰질수록 긴장감이 더해온다. 전문가가 하나부터 열까지 함께하지만 ‘첫’ 비행은 설렘만큼 두렵기도 하다. 캐노피(패러글라이더의 지붕)를 달기 전, 사진을 찍으며 긴장을 풀어준다. 친구와 어깨동무도 하고 점프-샷으로 뛰기 전 순간을 남긴다. “몸을 앞으로 숙이고 계속 달려요. 멈추면 안 됩니다. 무릎이 땅에 닿으면 안 돼요.” 가뜩이나 겁이 많은 내 머릿속이 하얘진다. 63빌딩(250m)보다 높은 810m 위에서는 쉬운 설명도 귀에 잘 안 들어온다. 입으로 ‘계속 달린다. 무릎이 닿으면 안 된다’를 반복해 말했다. 하늘 위를 인솔해줄 전문가는 태연하게 몸에 달린 끈들을 재차 조였다. “하나, 둘, 셋. 뛰세요!” 세 걸음 정도 뛰니 내리막이다. 힘이 풀려 무릎이 땅에 끌렸다. 내내 친절하던 전문가는 호통을 쳤다. “일어나! 일어나! 닿으면 안 된다고 했지!” 긴박한 순간, 몸을 일으켜 있는 힘껏 달렸다. 갑자기 캐노피의 무게가 등 뒤로 느껴지며 몸이 훅하고 끌려가더니 두 다리가 하늘 위를 젓고 있다. 이제 괜찮다는 전문가의 말에 동작을 멈추고, 질끈 감았던 눈을 뜬다. 매캐한 매연과 빵빵거리는 경적소리 대신 맑은 공기와 바람소리를 느낀다. 양 팔을 벌리고 구름 옆을 날고 있으니, 새가 돼서 하늘 위를 훨훨 날고 있는 듯하다. 직접 조종줄도 잡아본다. 오른쪽으로 당기면 캐노피를 따라 몸이 기울어진다. 왼쪽 오른쪽으로 움직이니 짜릿하다 못해 무섭다. 전문가가 그 모습을 카메라로 생생하게 담는다. 잔뜩 힘이 들어가 몸이 웅크려지지만 어느 쪽으로 날아도 하늘색과 녹색으로 가득한 풍경을 보고 있으니 황홀하다. 저 멀리엔 1시간 거리의 서울의 풍경이, 바로 밑엔 양평의 그림 같은 모습이 눈동자에 박힌다. 물아일체(物我一體)가 되어 도시에서의 스트레스를 말끔히 씻어낸다. 12~15분의 비행시간은 직접 경험하지 않으면 설명하기 힘든 행복감을 선물해준다. 안전하게 착륙장에 발을 내딛으니 하늘에서의 시간이 금세 그립다. 하늘 위에서 촬영한 사진들을 현장에서 받아보니 웃음이 나온다. 패러글라이딩 체험은 ‘왕초보’도 문제없다. 경험 많은 전문가와 2인으로 조를 이뤄 탠덤비행을 한다. 혼자 날고 싶다면 패러글라이딩스쿨에서 2~3일 정도 교육을 받으면 된다. 국내에는 접근성이 좋은 양평·단양·문경·하동 활공장이 인기다. 날씨만 좋다면 계절에 구애받지 않고 날 수 있다. 봄여름가을겨울 사계절의 하늘이 다른 매력이 있다. 최근 패러글라이딩 스쿨과 동호회를 중심으로 각광받고 있는데 장비 가격이 450만~650만원으로 비싸지만 대여해주는 곳이 많아 처음부터 부담을 가질 필요는 없다. 1회 체험 비용은 활공장마다 다르지만 8만원~15만원 사이다. 패러글라이딩(Paragliding)은 낙하산과 글라이더의 장점을 합하여 만들어 낸 레포츠로 별도의 동력 장치 없이 패러글라이더를 타고 활강한다. 국내에는 1986년부터 보급되기 시작했다. 광주의 무등산, 부평의 계양산, 양평의 유명산, 영종도의 백운산, 성남의 남한산성, 경기도 광주의 파라봉, 원주의 치악산, 대천의 성주산, 청주의 성무봉, 단양의 소백산, 이리 미륵산, 무주리조트, 남원의 정령치, 대구의 금계산, 고령의 약산, 부산의 금정산, 진해의 장복산, 남해의 금산, 삼천포의 와룡산, 제주의 영주산 등에서 즐길 수 있다. 장비의 중량은 10kg정도다. 주의 사항만 준수하면 위험성은 거의 없다. 설사 떨어진다 해도 시속 20km/h로 달리는 자전거에서 뛰어내린 정도의 부상이기 때문에 마음 놓고 배울 수 있다. 안전을 위하여 주의할 점은 조종 줄을 급작스럽게 조종하지 말아야 하며, 좌우 방향 조종 시 조종 줄을 너무 과다하게 당기지 말아야 한다. 백문이불여일행(百聞不如一行). 백번 듣고 보는 것보다 한번이라도 실제로 해보는 것, 느끼는 것이 낫다는 말이 있다. ‘보고 듣는 것’ 말고 ‘해 보고’ 쓰고 싶어서 시작된 글. 일주일이란 시간동안 무엇을 해보고 어떤 생각을 했는지 나누고 이야기하고 싶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생명의 窓] 논두렁 밭두렁 출신들/이재무 시인

    [생명의 窓] 논두렁 밭두렁 출신들/이재무 시인

    두부가 둥그런 원이 아니고/각이 진 네모인 까닭은/네모가 아니라면 형태를 간직할 수 없기 때문/저 흔한 네모들은/물러터진 속성을 감추기 위한 허세다(중략)/우스꽝스러운, 장난 같은 네모/지가 진짜 네모인 줄 아는 네모/언제든 처참하게 으깨어질 수 있는 네모/둘러보면 그런 두부 같은 네모들이 얼마나 많은가(졸시, ‘두부에 대하여’) 시골 출신 중에 논두렁 밭두렁 출신들이 있다. 아래와 같은 사정 때문에 생겨난 이들이다. 지식백과에 의하면 여우라는 동물은 행동이 민첩해서 금방 눈앞에 나타났다가 눈 깜짝할 새 가뭇없이 사라져 버린다. 예상치 않게 홀연히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여우처럼 여우비는 햇볕이 난 날에 잠깐 흩뿌리다가 마는 비를 말한다. 지역에 따라서는 여우비가 내리는 것을 ‘호랑이 장가간다’고 말하기도 한다. 한여름 논에서 김을 매는 지아비에게 주려고 오후 새때 새댁이 광주리에 샛밥을 이고 가다가 뜻밖의 여우비를 만날 때가 있는데, 이때 베적삼이 젖어 살갗이 훤하게 드러나게 되는 바람에 그걸 보고 다급해진 젊은 지아비가 그만 충동에 못 이겨 새댁을 논둑 미루나무 밑으로 쓰러뜨리게 되고 그로부터 열 달 뒤 태어나게 된 이들이 바로 논두렁 밭두렁 출신들이다. 그런데 절기상 소서나 대서 때 논두렁 밭두렁에 자라는 것들이 있다. 완두콩, 강낭콩, 검정콩, 서리태, 밤콩 등속이다. 깍지 속에는 고만고만한 것들이 자라고 있다. 콩들에게 깍지는 한 가정의 울타리이다. 콩들은 한집에서 자라는 형제요, 자매들이다. 이들은 덩치가 커지면서 가정이, 집이 답답하다. 그리하여 다 여문 뒤에 다투어 꼬투리를 열고 튀어나간다. 하지만 콩들은 튀어나가기가 무섭게 커다란 손에 이끌려 자루에 담겼다가 이윽고 뜨거운 물이 끓는 가마솥에서 형태가 뭉개져 곤죽이 된다. 본래의 둥글고 단단한 개성을 버리고 흐물흐물, 개성 없는 각으로 태어나 식당이나 가게로 팔려 나간다. 마침내 음식이 되어 사람의 입속에 들어가 씹히는 생이 되는 것이다. 논두렁 밭두렁에서 태어나 자란 콩이 두부가 되어 가는 과정은 영락없이 시골 출신들의 굴곡진 인생을 닮았다. 네모의 각을 지닌 두부는 허세를 부리는 우리의 모습과 유사하다. 그러나 그 허세는 얼마나 근거가 허약한가. 살아가기 위해 본래의 성정을 버리고 우스꽝스럽게 가짜 생을 연출해야 하는 너와 나는 현대판 꼭두각시요, 광대인지도 모른다. 바깥에서 시끄러운 하루를 보내고 돌아와 저녁 식탁 앞에 앉아 아내가 차려 주는 가난한 소찬들을 둘러보다가 사발에 담긴 묵을 본다. 이 쓸쓸한 맛의, 물컹한 고동의 색은 어디서 왔는가. 나는 곰곰, 상수리나 도토리들이 묵이 되기까지의 간단치 않은 이력을 떠올려 본다. 비바람과 벌레를 견디고 이겨 차돌처럼 단단해진 상수리나 도토리들의 형상은 어딘가 동글납작한 남도의 얼굴들을 닮았다. 나는 또 이것들이 가지를 떠난 후 뭉개지고 녹아서 쓰고 떫은맛을 내려놓고 한 덩어리 담백한 살(肉)이 될 때까지 누구의 귀에도 가 닿지 못했을 소리 없는 절규와 비명을 떠올려 본다. 농경제 사회의 적자로 태어나 산업사회 그리고 후기 자본주의 사회에 강제적으로 편입된 채 살아가야 하는 콩과 상수리와 도토리 출신들이 두부와 묵이 되어 살아가는 슬픈 현실을 떠올리자니 불현듯 목과 가슴이 먹먹해진다. 젓가락 숟가락 앞에서 속수무책인 것, 어찌 저녁 식탁의 두부와 묵뿐이겠는가.
  • 리우 가는 길 밝혔다…한국 남녀탁구대표팀 아시아선수권 은1, 동2 마감

    “내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메달 루트를 확인했습니다” 강문수 한국 탁구대표팀 총감독은 2일 남녀대표팀의 모든 경기를 끝낸 뒤 비장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세계 랭킹 4위 장지커를 단체전과 개인단식에서 두 차례나 꺾은 ‘싸움닭’ 장우진(20)이 이날 8강전에서 랭킹 17위의 웡춘팅(홍콩)에 0-4(2-11 7-11 3-11 8-11)로 맥없이 무너져 4강 진출에 실패한 상황. 어느새 대표팀 기둥 노릇을 떠맡은 정영식(23·이상 KDB대우증권) 역시 이어 벌어진 8강전에서 ‘왼손 팬홀더의 달인’ 세계 2위의 쉬신(중국)에게 2-4로 지는 바람에 남자대표팀은 이번 대회 개인전 단식에서 빈 손으로 돌아섰다. 정영식은 중반까지 세트 2-2의 대등한 경기를 펼쳤지만 가공할 힘과 스피드, 그리고 상대를 질리게 할 만큼 폭넓은 공격 반경을 가진 쉬신에게 역부족을 느끼며 두 세트를 더 내리 내줬다. 그러나 두 경기를 뚫어지게 관찰한 강 총감독의 얼굴에는 아쉬움 대신 흡족한 표정이 묻어있었다. 그는 “특히 장우진의 경우, 당초 대등한 경기를 할 것으로 예상하면서도 어제 16강전에서 장지커를 상대로 오버페이스한 것이 은근히 걱정되더라. 장지커의 세계 4위답지 않은 불손한 행동도 멘털에 영향을 준 것 같다”면서 “그러나 실업 1년차로 국제무대에 처음 나선 대표팀 새내기가 보여준 패기는 칭찬하고도 남음이 있다”고 평가했다. 사실, 대표팀은 이번 대회에 나설 때부터 ‘반쪽’이나 다름없었다. 여자대표팀은 ‘복식 간판’ 박영숙(27·한국마사회)이 빠졌고, 남자대표팀에서는 주세혁(35·삼성생명)이 부상으로 단체전에만 나섰다. 양하은(21·대한항공) 역시 아르헨티나오픈에서 성치 않은 몸을 이끌고 대회 개막 이틀 전에야 대표팀에 합류했다. 실업 1년차로 처음 성인대회 태극마크를 단 선수만 9명의 남녀대표팀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4명. 이 가운데 랭킹 100위권 밖의 김민혁(19·삼성생명)은 개인전 단식 32강전에서 11위의 추앙치유안(홍콩)과 풀세트 접전을 벌이다 마지막 세트 듀스 끝에 아쉽게 16강 티켓을 내줬고, 여자대표팀 막내 이시온(19·KDB대우증권)도 단체전 준결승 제2단식에서 여자 세계 1위 딩닝(중국)을 2, 3세트 듀스까지 물고 늘어지며 괴롭혔다. 정영식-이상수(25·이상수) 조도 이날 대표팀 마지막 경기인 남자복식 결승에서 쉬신-펜잔동(중국·3위) 조와 맞붙어 0-3으로 졌지만 이번 대회 처음으로 호흡을 맞춘 터라 기대 이상의 성과를 냈다는 게 코칭스태프의 중평이다. 특히 이 둘은 앞서 가진 준결승에서 일본에 0-2로 끌려가며 패색이 짙었지만 이후 내리 세 세트를 쓸어담는 뒷심을 발휘해 한국 남자복식의 ‘플랜B’로서의 가능성을 충분히 보여줬다. 이번 대회 은메달 1개, 동메달 2개(남녀 단체전)을 수확한 강 총감독은 “가장 큰 소득은 어린 선수들의 재발견, 그리고 내년 리우에서 중국의 빈 틈을 공략할 새 무기를 찾았다는 데 있다”고 말했다. 파타야 최병규 전문기자 cbk91065@seoul.co.kr
  • ‘유승민 정국’ 닮은꼴 안심번호 파동

    청와대와 새누리당 친박근혜계 의원들이 30일 보여 준 김무성 대표에 대한 강한 반발이 지난 5~7월 있었던 ‘유승민 정국’을 떠올리게 하고 있다. ‘국회법 개정안’을 고리로 이뤄진 친박계의 유승민 전 원내대표 ‘몰아내기’가 ‘안심번호 국민공천제’를 빌미로 김 대표에게도 똑같이 되풀이될지 주목된다. 박근혜 대통령과 김 대표의 ‘애증의 10년’도 새삼 회자되고 있다. ‘야당과 합의→청와대 직격 대응→친박계와 대치’라는 이런 흐름은 현재 김 대표에게도 유사하게 나타나고 있다. 김 대표는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와의 추석 회동에서 안심번호 국민공천제에 합의하면서 청와대와 친박계로부터 ‘십자포화’를 맞고 있는 중이다. 야당의 프레임에 끌려갔다는 친박계의 주장도 일맥상통한다. 두 사람 모두 박 대통령과 누적된 갈등 사례가 있다는 점도 일치한다. 유 전 원내대표는 박근혜 정부의 국정 방향과 다른 “증세 없는 복지”를 주장하며 엇박자를 냈고 김 대표는 지난해 10월 중국을 방문한 자리에서 “개헌 봇물” 발언으로 박 대통령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 이 때문인지 유승민 정국 당시부터 유 전 원내대표 다음 타깃이 김 대표가 될 것이라는 설이 나돌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 ‘안심번호 파동’이 김 대표의 거취 문제로까지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내년 4월 총선이 임박한 상황에서 여권 대선 주자 1위인 김 대표를 흔드는 것이 새누리당에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박 대통령으로서도 국정 최대 과제인 노동 개혁을 비롯한 4대 개혁(공공·노동·금융·교육)을 완수하려면 김 대표의 도움이 절실한 상황이다. 그간 박 대통령이 정치적 고비를 맞을 때마다 김 대표가 우군이 돼 줬다는 점도 막판 관계 개선의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게 하는 대목이다. 이영준 기자 apple@seoul.co.kr
  • [문화마당] 문화의 흔적과 문화경제/코디 최 미술가·문화이론가

    [문화마당] 문화의 흔적과 문화경제/코디 최 미술가·문화이론가

    우리나라는 1894년 갑오개혁의 혼란한 근대화를 정리하기도 전 일제 식민지 치하에 놓이게 되어 일본 근대화의 흐름을 표방하며 개화의 바람이 시작되었고, 이 과정은 대한민국 근대문화 역사의 한 부분으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해방 후에 정치적 갈등 구조를 해결하지 못한 채 한국사는 전쟁으로 이어졌고, 그 전쟁을 통해 보여진 막강하고 부유한 미국의 모습을 부러움과 경계의 대상으로 여기며, 표면적으로 흉내 내듯 이끌려가며 또 하나의 문화화 과정이 벌어졌다. 즉 전쟁 후 가난 속에서의 탈출이라는 역사적 과제 아래 부와 힘의 상징이었던 미국의 존재는 우리에게 왜곡된 시각을 갖게 했다. 우리에게 서양과 현대사회 그리고 앞서간 문화의 개념은 미국을 통해 이해되면서, 현대화와 서양화와 미국화를 동일시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것은 국제관계와 권력구조에서 비롯된 우리 역사의 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으며, 간과할 수 없는 우리의 현실이자 우리의 문화화 과정이다. 이는 서구 자본주의의 본질과 역사를 이해하고 우리의 입장에 타당한 토착화를 이루었다기보다는 그들의 자본주의를 흉내 내고 편파적으로 받아들였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경제 불황 속에서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에 의해 성과를 만들어낸 수정자본주의는 국가 차원의 경제통제를 통해 자본주의의 결함을 제거하고, 사회 여러 계층의 소득을 평준화함으로써 소득 불평등을 해결하고 경제 불황을 극복하는 사회보장제도를 앞세웠다. 그러나 우리의 입장은 달랐다. 가난한 현실을 벗어나야 한다는 의지 아래 사회보장 제도보다는 대외적으로는 경제 발전의 모습을 보여주는 데 급급했고, 내부적으로는 몇몇 재벌 경제에 치중하게 되면서 소득의 불평등은 극대화되어 마침내 새로운 부유계층과 빈곤계층이 형성됨에 따라 고급문화와 대중문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 지점에서 빈곤계층이 즐기는 문화는 대중문화로, 부유계층이 즐기는 문화는 고급문화로 치부하게 되었다. 또한 1990년대 들어 미국의 신자유주의 경제에 영향을 받기 시작한 우리 사회는 이윤의 극대화가 강조되는 신자유주의 경제의 단적인 면이 크게 부각되어 각인돼 이윤의 획득이 도덕성을 앞서게 되면서 배금주의 현상은 현 시점의 우리의 문화를 지배하고 있는 듯하다. 단적으로 현재 우리는 문화를 내용적 가치에 의해 평가하기보다는 자본의 가치로 평가하고 측정하려고 하는 듯하다. 즉 비싸게 취급되는 문화가 곧 좋은 문화라고 착각을 일으키고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여성들이 값비싼 명품 백에 매료되고 있는 것은 값비싼 명품 백을 드는 순간 자신이 문화적으로 신분 상승을 하는듯한 착각에 빠지고 있다는 것이다. 혹은 예술품의 가치를 예술품의 내용이나 그 저변의 철학적 사유를 뒤로 하고 수백억을 호가하는 경매가를 근거로 뛰어난 예술 혹은 위대한 작가로 여기는 사례들이 그러하다. 이러한 발상들은 문화의 경제적 가치를 숫자로 계산을 하는 직업군마저 출생시켰고, 그들은 지금도 문화경제라는 말을 신종어로 유행시키고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아이러니를 발견한다. 자본주의 세상에서 경제적 가치의 틀을 벗어날 수 있는 존재가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문화라는 대상을 바라볼 때, 우리는 그 속에서 경제적 가치가 아닌 정신적 의미와 위로받기를 원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렇기에 문화의 가치를 이처럼 경제적 수치로만 환산하는 일은 우리의 정신을 자본화시키는 과정일 수 있기에 경계를 해야 할 것이다.
  • [프로농구] 헤인즈 38점… 오리온 “연패는 없다”

    [프로농구] 헤인즈 38점… 오리온 “연패는 없다”

    에런 헤인즈(오리온)가 모비스를 패배의 수렁으로 밀어넣었다. 헤인즈는 29일 울산 동천체육관을 찾아 벌인 모비스와의 프로농구 1라운드 대결에서 35분37초를 뛰며 38득점 12리바운드 6어시스트 3스틸을 기록, 83-74 짜릿한 역전승을 이끌었다. 지난 27일 삼성에 시즌 첫 패배를 당했던 오리온은 분위기를 추스르게 됐다. 반면 함지훈의 허리 부상과 리오 라이온스의 아킬레스건 파열이 겹쳐진 모비스는 그 공백을 메우지 못하고 연승을 저지당했다. 모비스는 1쿼터 전준범과 백인선의 6득점 활약을 묶어 헤인즈가 10득점으로 분전한 오리온에 22-19로 앞섰다. 커스버트 빅터는 5득점 5리바운드 3어시스트로 거들었다. 2쿼터에도 빅터는 6득점 3어시스트로 오리온 공략에 앞장섰고 오리온은 허일영(5득점, 이현민이 4득점을 기록하며 추격했지만 헤인즈가 2득점에 그치며 33-42로 끌려갔다. 그러나 3쿼터 종료 2분27초를 남기고 전정규의 3점슛으로 46-52까지 쫓아간 오리온은 1분21초를 남기고 헤인즈의 레이업으로 51-53을 만든 뒤 김동욱이 자유투 실패에 이어 백인선에게 2점을 얻어맞아 결정적 흐름을 내주는 듯했다. 그러나 3쿼터까지 침묵했던 문태종이 4쿼터 9득점으로 폭발하고 전정규가 8득점, 헤인즈가 15득점으로 끝내 경기를 뒤집었다. KCC는 전태풍(17득점 3리바운드 3어시스트)과 안드레 에밋(17득점 7리바운드), 정희재(11득점 6리바운드)의 활약을 엮어 삼성을 80-61로 무너뜨렸다. KCC는 지난해 10월 18~25일 이후 339일 만에 3연승을 내달렸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월드피플+] “당신도 내 딸의 아버지”…두 아빠와 입장한 신부 눈물

    [월드피플+] “당신도 내 딸의 아버지”…두 아빠와 입장한 신부 눈물

    “당신도 내 딸의 아버지니까요.” 미국 현지시간으로 지난 26일, 오하이오주의 한 공원에서 아름다운 결혼식이 열렸다. 주인공인 신부는 올해 21살인 브리타니 펙. 하지만 결혼식 당일 누구보다도 빛나야 할 신부의 얼굴에는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그녀에게는 친아버지와 양아버지가 있었고, 누구의 손을 잡고 식장으로 들어가야 할지 고민했기 때문이다. 신부는 내내 눈물을 글썽였다. 부모님이 이혼한 뒤 줄곧 양아버지인 토드 샌드로스키(45)의 보살핌 속에 자랐지만, 친아버지인 토드 바크만(43)과의 사이도 돈독했다. 결국 그녀는 친아버지의 손을 잡고 입장하기로 결정했고, 양아버지와 친어머니 부부는 객석에 앉아 딸의 결혼식을 바라봐야 했다. 신부가 친아버지와 함께 입장을 시작했을 때, 갑자기 친아버지인 바크만이 걸음을 멈췄다. 신랑과 신부 모두 의아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동안 그는 성큼성큼 객석에 다가갔고, 딸의 양아버지인 샌드로스키의 손을 이끌고 딸 옆으로 돌아왔다. 양아버지 샌드로스키의 표정이 감격으로 일그러졌다. 그렇게 두 아버지는 딸의 양 옆에 나란히 섰고, 하객들은 눈물을 흘리며 박수갈채를 보냈다. 샌드로스키는 “아내와 결혼한 뒤 어여쁜 딸 3명을 얻었다. 내게는 ‘의붓딸’이 없다. 그저 딸만 있을 뿐”이라면서 “바크만(딸의 친아버지)이 내 손을 이끌고 딸의 곁으로 간 그 순간은 내 생애 최고의 순간이었다. 나는 언제나 딸의 결혼식에서 딸 곁에 서고 싶은 아버지였다”고 소감을 밝혔다. 딸의 친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딸의 곁으로 가는 양아버지의 모습을 담은 사진은 SNS를 통해 순식간에 화제가 됐다. 당시 결혼식 사진을 담당한 작가 델리아가 SNS에 사진을 올린 직후 1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좋아요’로 화답했다. 사진작가 델리아는 “이런 아빠들을 가진 신부는 매우 행운아다. 당시 장면을 찍으면서 하객뿐만 아니라 나 역시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고 전했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정현용기자의 밀리터리 인사이드] 명품 무기라던 K11 소총은 왜 애물단지로 전락했나

    [정현용기자의 밀리터리 인사이드] 명품 무기라던 K11 소총은 왜 애물단지로 전락했나

    현대화된 국산 소총의 시초는 무엇일까요. 1974년 군이 미국 콜트사의 라이선스를 얻어 생산한 M16A1이 시작이었습니다. 하지만 순수 우리 기술로 개발한 무기가 아니었기 때문에 갈증은 여전했습니다. 그래서 1970년 창설된 국방과학연구소는 K1A 기관단총과 K2 소총을 자력으로 개발해 각각 1982년과 1984년부터 군에 보급했습니다. 이 총들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군에 제식 소총으로 보급돼 있습니다. 군은 이후 누구도 개발하지 못한, 심지어 군사 강국인 미국도 개발에 실패한 총기에 도전하기로 했습니다. 국방과학연구소가 2000년부터 8년 동안 185억원을 들여 ‘미래형 명품 무기’로 개발했다던 K11 복합소총이 그것입니다. 그런데 K11은 사실상 애물단지로 전락했습니다. 애초 이 무기는 5.56㎜ 자동소총과 20㎜ 공중폭발탄 발사기를 갖춰 군은 물론 많은 국민들의 이목을 집중시켰습니다. 레이저 거리측정기를 이용해 조준점을 잡으면 마이크로 프로세서가 거리를 탄환의 회전수로 환산해 공중폭발탄을 적의 상공에서 터트릴 수 있습니다. 1정당 가격은 1600만원 수준으로 책정됐습니다. ●수년 동안 사고 원인 못 알아내… 문책조차 없어 그러나 2009년부터 지금까지 900정가량 군에 보급한 총기는 도입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2011년 10월 야전 운용성 확인사격 중 20㎜ 공중폭발탄이 총기 내부에서 터져 병사 1명이 얼굴과 손등에 열상과 찰과상을 입은 사건이 시작이었습니다. 2012년 2월까지 약 5개월간 진행한 국방부 감사에서 ‘전자기파 간섭 현상’이 원인으로 지목됐습니다. 사업을 주관하는 방위사업청은 문제를 충분히 개선할 수 있다고 장담했습니다. 방사청은 다음해 사격통제장치와 격발장치를 개선하고 유탄이 일정 회전을 한 뒤에 폭발하도록 신관(기폭장치)을 개량했다고 밝혔습니다. 지난해 3월 경기 연천군 국방과학연구소(ADD) 다락대사격장에서 또 폭발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3명이 다치는 사고였는데요. 이번에는 레이저 거리 측정기와 사격통제장치 이상이 원인이라고 했습니다. 레이저 거리 측정기를 2~3번 눌렀는데 사격통제장치가 이것을 방아쇠 격발로 오인해 신관에 신호를 줬고 유탄이 폭발했다는 설명이었습니다. 결국 앞서 조사와 마찬가지로 총기 내부의 문제로, 개선이 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국방부는 자석만 대도 폭발한다는 지적까지 나오자 아예 군 관계자, 기자, 일반인들을 다락대사격장으로 초청해 실제로 총기에 자석을 갖다 대는 시연회까지 벌이며 국민들을 안심시켰습니다. 총기 외부에 폭발을 일으킬 요인은 절대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결론은 다른 방향으로 나왔습니다. 방사청은 지난 4월 “공중폭발탄에 영향을 미치는 전자기파 간섭 현상은 저주파수 고출력 전자파에 의해 발생하는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외부의 전자기파에 공중폭발탄이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겁니다. 구형탄은 모두 해당되고 전자기파 충격 센서를 단 신형탄만 문제가 없답니다. 비축한 구형탄 15만발은 1발당 16만원입니다. 하지만 240억원의 예산이 공중에 날아갈 위기에 처한 것보다 더 황당한 것은 여전히 완벽하게 문제의 원인을 규명하지 못했다는 겁니다. ●1306만원짜리 사격통제장치 품질은 ‘엉망’ 방사청은 언론의 문제 지적에 “규정이 없어 탄약에 대한 전자기파 시험을 하지 못했다. 미국도 탄약에 대한 조사 규정은 없다”고 항변했습니다.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무기이기 때문에 규정이 없는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수년 동안 이어진 사고 원인조차 규명하지 못한 책임은 누가 져야 할까요. 그제서야 방사청은 저주파수(60Hz) 대역의 180dBpT 수준의 강한 자기장을 방출하는 장비가 존재하는지, 있다면 무엇인지 전자파연구소를 통해 조사에 착수했다고 했습니다. 대신 신형탄을 사용하면 된다고 거듭 해명했습니다. 비난 여론이 높았습니다만 그래도 여기까지는 일반적인 무기 개발 과정에 벌어지는 여러 시행착오 중 하나라고 여기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빈번한 총열 고장 등 다른 문제도 많이 있었고, 올해 사업 예산이 60%나 삭감되는 수모를 당했지만 많은 이들이 완전히 기대를 버리진 않았습니다. 여기서 결정적으로 총기 가격의 77%(1306만원)를 차지하는 핵심 장치인 사격통제장치의 품질이 엉망이라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이것은 완전 전자식 총기의 존재 의미를 상실하게 할 수 있는 중대한 문제입니다. 사격통제장치 문제는 2011년 아프가니스탄에 파병된 오쉬노 부대에서 처음 발생했습니다. 사격통제장치가 사격 도중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갈라지는 현상이 발생했습니다. 방위사업비리 합동수사단 조사에서 납품 업체는 충격량을 3분의1로 줄여 검사를 마친 뒤에 불량 부품으로 납품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시험검사를 납품 업체가 직접 진행했고, 지난해까지 검사 조작 문제는 누구도 알지 못했습니다. 군에는 국방기술품질원이라는 품질검사기관이 있었지만 눈먼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방산업체 사업본부장 등 간부 3명이 구속 기소됐고 비난 여론은 잦아들 기미를 보이지 않습니다. ●전차 등 대형 사업 골몰… 예산 선진국의 20%뿐 완제품으로 보급된 사격통제장치 250대 가운데 208대가 결함으로 반품됐습니다. 나머지 660여대 가운데 일부에서도 각종 균열과 이물질 발생 등 결함이 나왔다고 합니다. 폭발 사고가 벌어진 2011년부터 숱하게 감사를 벌인 국방부나 사업을 주관하는 방사청도 이 문제를 짚어 내지 못했습니다. 문제가 있는 무기는 다시 만들면 됩니다. 하지만 전문가들이 모두 모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문제점조차 제대로 잡아내지 못한 군 기관들이 변화하지 않는 한 이런 문제는 또 벌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극소수 수출 물량을 제외하면 군납 외에는 총기 시장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나라에서 주먹구구식 총기 개발 계획을 진행한 군에 대한 비난은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릅니다. 투자는 부실하고 장기 계획은 미흡하니 개발이 제대로 이뤄질 리가 없습니다. 양욱 국방안보포럼 연구위원은 “평상시에 총기 개발 사업을 진행한 사례가 없다. 누구도 보병 화기에 대한 얘기를 제대로 내놓지 못했고, 기본화기에 대한 투자 자체가 부실하다”고 지적했습니다. 또 “현대전은 첨단장비의 각축장이라지만 전투력의 핵심은 보병의 전투력인데 전투기다, 전차다 대형 사업에만 골몰해서 이리저리 끌려다닌다”면서 “사업 자체가 없는데 누가 총을 개발하려고 하겠나”라고 반문했습니다. 정홍용 국방과학연구소 소장은 “미운 오리새끼가 돼버린 K11 복합소총을 백조로 만들고자 내년 말을 목표로 대폭 개량하려고 한다”고 밝혔습니다. 조급하게 서두르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연구소는 사격통제장치 크기를 절반 이하로 줄이고 품질을 개선하는 한편 전체 총기 무게도 10%가량 줄일 계획입니다. 격발 시 충격 문제도 개선한다고 합니다. 역사적으로 총기를 단번에 개발한 사례는 많지 않습니다. 우리도 과감한 투자를 해야 하지만 우리 국방 예산 규모로 보면 쉽지 않은 일입니다. 현재는 해외 선진국의 5분의1, 7분의1 예산으로 총기를 개발하는 실정입니다. 미국조차 복합소총 개발에 실패한 점을 보면 시행착오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정부는 늘 이런 애로를 호소해 왔습니다. 그렇지만 사업 관리도 제대로 못 한다는 비판은 받지 말아야겠죠. 과감한 투자를 받으려면 국민들의 공감부터 끌어내야 합니다. 미운 오리새끼라는 오명을 벗고 백조가 되는 그날을 기대하겠습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이 모두가, 그안에 있었다

    이 모두가, 그안에 있었다

    ‘박하사탕’ 속 영호·‘오아시스’ 속 홍종두 간직한 최초의 천만 배우 설경구는 한국 최초의 ‘1000만 영화’ 배우다. 12년 전 그가 ‘실미도’에서 교관 안성기에게 총을 겨누며 부르짖었던 “비겁한 변명입니다”라는 대사는 ‘1000만 영화는 감히 넘볼 수 없는 꿈’이라고만 여기던 한국 영화계를 향한 외침이기도 했다. 덤으로 이미 ‘박하사탕’, ‘오아시스’를 통해 보는 이를 전율케 하는 연기력을 선보였던 설경구가 일반 대중에게도 충분히 호소할 수 있는 흥행 배우임을 증명했다. 그는 2009년에도 ‘해운대’로 다시 1000만 배우가 됐다. 두 편의 ‘1000만 영화’ 사이에 ‘공공의 적’, ‘감시자들’, ‘타워’, ‘스파이’ 같은 적당한 오락영화에서 그는 적당히 재미있고, 적당히 관객이 드는 배우로 존재했다. 깊고 깊은 슬픔의 심연을 모두의 것으로 만들었던 영호(박하사탕), 홍종두(오아시스)는 그 안에서 사라져 버린 걸까. 힘 빼고 몰입해서 더 비극적이었던 ‘서부전선’ 속 어리숙한 남복이 지난 22일 서울 삼청동 한 찻집에서 그를 만났다. 수척한 얼굴이었다. 새 영화 촬영에 들어가기 전 몸을 만들고 있다고 했다. ‘살인자의 기억법’ 크랭크인을 앞두고 연쇄살인범 안으로 서서히 들어가고 있는 중이었다. “한 10㎏쯤 뺀 것 같아요. 며칠 전에 쟀을 때 68㎏이었거든요. 모처럼 들어온 새로운 색깔의 캐릭터라 진심으로 기쁘게 준비하고 있어요.” 설경구는 24일 개봉한 영화 ‘서부전선’에서 농사짓다 끌려나온, 어리바리한 남한군 병사 남복 역할로 여진구와 함께 호흡을 맞췄다. 그는 “머리 아프게 분석해야 하기보다는 편하게 접근할 수 있는 캐릭터였고, 개인이 중요한 게 아니라 두 사람의 합이 중요한 영화였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여진구와 워낙 나이 차가 많이 나니 촬영장에서부터 영화 속 남복이 영광을 대하듯 충청도 말투로 적당히 욕을 섞는 말을 툭툭 던져 가면서 편하게 지냈다”고 말했다. 어깨에 힘주지 않아도 역할에 몰입할 수 있었던 그만의 비결 아닌 비결이다. 비극적일 수밖에 없는 전쟁 속에서 순박한 이들이 벌이는 희극적인 상황은 단순히 웃어넘길 수 없는 짙은 페이소스를 준다. 흥행 참패에도 부끄럽지 않은 ‘나의 독재자’ 속 망상증 무명배우 그의 직전 작품은 ‘나의 독재자’였다. 캐릭터에 대한 욕심 하나로 출발했고, 영화의 만듦새 역시 훌륭했다. 설경구는 여기에서 망상증에 빠진 무명 배우의 모습을 가슴 먹먹히 풀어 냈다. ‘메소드 연기’(캐릭터에 몰입해 대상과 일체가 되는 연기)라는 연기학 전문용어를 일반인조차 편하게 쓰도록 했다. 아버지 세대와 자식 세대 앞에 놓인 화해라는 과제를 한국 사회의 특수성 속에 버무려 냈고, 세상 모든 배우의 삶에 바치는 헌정이기도 했다. 최근 몇 년 사이 보기 드문 참신한 소재와 주제의 수작이었다. 그러나 흥행은 참패였다. 38만명의 관객이 보는 데 그쳤다. 설경구는 “그 영화가 정말 잘될 줄 알았는데, 이렇게 안될 줄 몰랐다. 재미가 없었던 게지”라면서 애써 덤덤히 말했다. 그는 “(흥행이 전혀 되지 않아) 지방 극장에 무대 인사를 가지 못한 영화는 그때가 처음이었다”면서 “영화라는 게 관객과 합이 맞아야 하는데, 영화 관객의 다수가 김일성이라는 존재도 잘 모르고, 영화를 통해 새로운 것을 얻고자 하는 마음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고 흥행 패인을 분석했다. ”한번 썼던 캐릭터는 다시 쓰기 부끄럽다”는 진짜 배우 설경구 이번 영화에 대한 기대감은 어떠냐는 질문에 “영화 흥행은 확신할 수 없다. 욕망이 있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관객을 읽어 내며 안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라면서 “1000만 흥행이 안부럽다면 거짓말이겠지만 배우의 몫은 그냥 현장에서 열심히 연기하는 것까지인 것 같다”고 답했다. 흥행의 최정점과 나락을 함께 경험한 이가 몸으로 체현한 영화판의 섭리였다. 그는 “한 번 썼던 캐릭터는 다시 쓰기가 부끄럽다. 배우는 소모하는 직업”이라고 말했다. ‘공공의 적’ 시리즈 등에서 비슷한 캐릭터를 반복하며 소모했던 과정에 대한 부끄러운 고백처럼 들렸다. 이와 함께 ‘나의 독재자’에서 설경구만의 연기를 다시 선보인 데 대한 당당함으로도 들렸다. 인터뷰 내내 흥행의 중요성을 강조했지만 연기하는 배우로서 자부심이 더욱 크게 엿보였다. 설경구 안에는 그렇게 여전히 영호도, 홍종두도, 망상증의 무명 배우도, 어리숙한 남복도 모두 설경구라는 커다란 집 안에 각자의 방을 만들어 꿈틀대고 있었다.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프로야구] 나바로 내가 바로 넘버 원 용병

    [프로야구] 나바로 내가 바로 넘버 원 용병

    5년 연속 정규리그 우승을 눈앞에 둔 삼성이 나바로의 외국인 한 시즌 최다 홈런 신기록과 안지만의 홀드 타이 기록으로 겹경사를 누렸다. 삼성은 24일 경기 수원구장에서 열린 KBO리그 kt와의 경기에서 나바로의 홈런 등에 힘입어 5-2로 이겼다. 6연승을 달리며 매직넘버(자력 우승을 위해 필요한 승수)를 5로 줄였다. 삼성은 4회 박기혁에게 적시타를 얻어맞고 선취점을 빼앗긴 데 이어 5회에는 김상현에게 2루타를 허용해 추가점을 내줬다. 그러나 6회 무사 2루에서 타석에 들어선 나바로가 홍성용의 3구 124㎞짜리 체인지업을 걷어올려 가운데 담장을 넘는 동점 투런포를 터뜨렸다. 시즌 46호. 1999년 로마이어(한화)와 2002년 페르난데스(SK)가 기록한 45개를 뛰어넘어 역대 외국인 최다 홈런 기록을 새로 세웠다. 삼성은 8회 초 박한이의 2루타와 박해민의 희생번트, 최형우의 고의사구로 잡은 1사 1·3루에서 박석민의 2타점 2루타로 경기를 뒤집었다. 채태인의 2루타까지 이어져 한 점 더 달아났다. 승기를 잡은 삼성은 곧바로 필승조를 가동했다. 안지만이 8회 말 올라와 박경수-장성우-김사연 세 타자를 깔끔하게 처리했고, 9회에는 임창용이 퍼펙트로 마무리했다. 이날 승리로 안지만은 시즌 34홀드를 기록해 2012년 박희수(SK)의 한 시즌 역대 최다 홀드 기록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두산은 부산 사직에서 3년 만에 치러진 더블헤더를 싹쓸이하고 4연승을 질주해 3위 넥센에 한 경기 차로 따라붙었다. 1차전에서 두산은 1회 김현수의 2타점 2루타와 오재원의 1타점 적시타로 얻은 석 점을 끝까지 잘 지켜 3-2로 이겼다.2차전에서는 1-3으로 끌려가다 6회 오재일의 투런홈런으로 동점을 만들었고 8회 양의지의 투런포와 홍성흔의 만루포로 순식간에 경기를 뒤집었다. 롯데가 황재균의 투런홈런으로 쫓아왔으나 윤명준이 올라와 잘 틀어막아 10-6 승리를 따냈다. 롯데는 6연패 수렁에 빠져 한껏 부풀었던 가을야구의 꿈이 다시 꺼질 위기에 처했다. 경남 마산에서는 NC가 손시헌의 멀티홈런 등 대포 5방을 앞세워 KIA에 16-5 대승을 거뒀다. 2회 무사 1·2루에서 손시헌의 3점 아치로 기분 좋게 선취점을 얻은 NC는 김종호의 적시타와 테임즈의 3점포로 한꺼번에 7점을 쓸어담았다. 3회에도 폭죽처럼 터진 지석훈(2점)과 이호준(3점), 손시헌(1점)의 홈런 등으로 9점을 추가해 일찌감치 승부를 갈랐다. 서울 목동에서는 SK가 넥센을 12-4로 꺾고 5위로 한 계단 올라섰다. 박병호(넥센)는 6회 시즌 51호 투런홈런을 쏘아올렸으나 팀 패배로 빛이 바랬다. 임주형 기자 hermes@seoul.co.kr
  • ‘모바일 지갑’ 누가 더 열까

    ‘모바일 지갑’ 누가 더 열까

    바쁜 아침 커피 한잔을 사기 위해 가방에서 지갑을 꺼내고 신용카드를 끄집어내는 수고스러움, 인터넷 쇼핑을 하기 위해 각종 보안모듈을 다운받고 휴대전화 인증까지 거쳐야 하는 번거로움…. 모바일 간편결제 서비스가 하나둘씩 생겨나면서 이 모든 과정은 ‘3초’ 안에 압축되고 있다. 스마트폰을 카드 단말기에 갖다대거나 스마트폰으로 비밀번호를 입력하기만 하면 결제가 완료되는 세상이 열렸기 때문이다. 이 3초의 간편함은 빠른 속도로 소비자들을 매료시키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7월 온라인에서 이뤄진 전체 쇼핑 거래액 중 모바일로 결제한 거래액이 44.6%로 절반 가까이를 차지했다. 2013년 1분기 1조 1270억원이었던 모바일 간편결제 시장은 지난 2분기 5조 7200억원으로 팽창했다. 삼성, 애플 등 스마트폰 제조업체는 물론 네이버, 다음 등 포털, 이동통신사뿐 아니라 최근에는 유통업계까지 저마다 ‘페이’ 서비스를 내놓으며 시장 선점에 나섰다. 그야말로 ‘페이 춘추전국시대’가 열린 셈이다. 유통업계 ‘빅3’는 모바일 간편결제 시장에서 맞붙는다. 롯데그룹은 이달 중으로 자체 모바일 간편결제 서비스인 ‘엘페이’(L-Pay)를 시범 적용한다. 그룹의 계열사 매장에서 스마트폰 앱 하나로 결제와 마일리지 적립 등을 한 번에 처리할 수 있는 방식으로 알려졌다. 현대백화점도 이달 말 ‘H월렛’을 출시한다. 결제와 청구 내역 조회, 마일리지 적립 등 현대백화점 플라스틱 카드를 스마트폰 앱으로 대체할 수 있다. 앞서 신세계는 신세계백화점과 이마트 등에서 사용할 수 있는 ‘SSG페이’를 내놓았다. 페이 서비스들은 저마다 휴대전화 단말기, O2O(Online To Offline) 등으로 중심축을 다변화하고 있다. 이에 따라 기업들이 구상하는 수익 모델도 제각각이다. 삼성전자가 지난달 출시한 ‘삼성페이’는 기존의 카드 단말기가 설치된 상점이라면 어디서나 사용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삼성전자가 별도의 수수료 수익을 얻는 서비스는 아니지만 편리함과 범용성으로 무장해 최신 프리미엄 스마트폰의 판매량까지 끌어올리고 있다. 포털, 이동통신사 등 정보통신기술(ICT) 업계는 모바일 간편결제를 O2O 서비스와 연계해 새로운 먹을거리로 키워 나간다는 전략이다. SK플래닛은 ‘시럽페이’를 자사의 시럽오더 및 11번가와 연동해 스마트폰으로 음료를 주문하고 쇼핑도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네이버는 ‘네이버페이’를 통해 상품의 검색과 주문, 결제까지 네이버 아이디 하나로 가능하도록 설계했다. 페이 서비스 하나로 종합적인 쇼핑 플랫폼이 완성되는 셈이다. 그러나 모바일 간편결제 서비스가 단시간 내에 우후죽순 쏟아지면서 우려의 목소리도 들려온다. 특히 저마다 차별화를 통해 파이를 늘려 가기보다 기존의 파이를 유지하는 데 그친다는 지적이 많다. 예를 들어 유통 3사의 페이 서비스들은 자사의 유통망에서만 사용 가능하다. 소비자들은 3사의 페이 서비스를 모두 이용하기보다 기존에 자주 찾는 유통망의 서비스만 이용할 가능성이 크다. 페이 서비스가 신규 고객의 창출까지 미치지는 못한다. 업계의 과열 경쟁이 소비자들에게 혼란을 가져다줄 수도 있다. 초기 가입자를 끌어모으기 위해 포인트 적립이나 할인 서비스를 내거는 데 끌려 앱을 다운받고 가입을 하다 복잡한 절차 때문에 불편을 호소하는 이용자도 적잖다. 서비스에서는 별 차이가 없지만 가맹점이 제각각 달라 이용자들은 자신이 자주 찾는 가맹점에 따라 여러 앱을 다운받아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업계에서는 모바일 간편결제 시장이 춘추전국의 시기를 지나 주도적인 사업자를 중심으로 재편될 것으로 보고 있다. 결국 가장 폭넓은 가맹점을 확보한 사업자가 살아남는다는 게 전반적인 시각이다. 업계 관계자는 “각종 페이 서비스들이 난립하고 있지만 정작 이용자들에게는 자신에게 유용한 서비스가 무엇인지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있다”면서 “간편결제 자체에 그치지 않고 다른 서비스와 연결해 차별화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말했다.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 [열린세상] 범선 전함 ‘테메레르’의 운명과 복지논쟁/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

    [열린세상] 범선 전함 ‘테메레르’의 운명과 복지논쟁/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

    영국 낭만주의 풍경화의 거장인 윌리엄 터너의 그림 ‘전함 테메레르’는 1805년 트라팔가르 해전에서 크게 활약했던 범선이 소재다. 나폴레옹 주축의 프랑스·에스파냐 연합 함대의 영국 침공 시도를 좌절시킨 넬슨 제독의 영국 함대 주력 범선 전투함이 ‘테메레르’다. 산업혁명으로 증기선 시대가 도래하면서 범선 시대의 종말을 알려주는 상징성을 지니고 있다. 규모가 훨씬 작은 증기선에 예인돼 ‘해체를 위해 최후의 정박지로 끌려가는 전함 테메레르’가 그림의 주제라서 그렇다. 국민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테메레르’의 장례 행렬과도 같다(그림 속의 경제학, 141쪽). 산업화로 인구가 대거 도시로 유입되며 전통적인 부양 체계가 붕괴함에 따라 등장한 것이 서구 사회보장제도의 출발점이다. 도입 이후 200년 이상 경과한 지금 제도 도입 당시와는 비교조차 어려울 정도로 늘어난 평균수명 등 급변한 사회·경제여건 변화 속에서 제도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해 원조 사회보장 국가들은 근본적인 개혁을 단행하고 있다. 산업혁명 와중에서 사회보장제도를 처음 도입한 국가가 독일이다 보니 독일에 대한 관심이 클 수밖에 없다. 널리 알려진 것처럼 독일은 남성 근로자 한 사람만 일해도 퇴직 후 한 가족이 충분히 먹고살 수 있을 정도로 관대한 사회보장제도를 운영해 왔다. 비스마르크 모형으로 불리는 독일 제도는 오랫동안 중요한 복지 모형으로 자리 잡았다. 이처럼 관대한 독일 모형이 일본을 거쳐 우리나라 사회보장제도의 토대를 형성하다 보니 독일의 제도 변화에 촉각을 세우는 것은 당연하다. 몇 차례 시행착오를 거쳐 독일은 2004년 근본적인 개혁을 단행했다. 장기보험인지라 상당한 기간이 지나서야 문제점이 드러나는 속성으로 인해 정치적으로 쉽게 악용되는 공적연금제도에 정치적 판단이 개입되는 것을 원천적으로 차단한 것이다. 평균수명 증가로 연금받는 기간이 늘어나 부양 부담은 늘어나나, 경제성장률과 출산율이 떨어져 부양 능력이 하락하게 되면 줄어든 국가의 부양 능력만큼 자동으로 연금액을 줄이는 자동 안전장치를 도입한 것이다. 소모적인 정치적 논쟁 대신 매년 국가 ‘독일호’의 실적을 바탕으로 연금액을 자동 조절하는 것이다. 이미 연금을 받는 수급자까지 포함해 운영하는 순도 100%짜리 자동 안전장치다. 이런 식으로 제도를 운영하다 보니 과거 높았던 소득대체율(근로기간 월급 대비 연금액의 비율)이 어느새 40% 초반으로 떨어졌다. 부담하는 보험료가 19%를 넘나드는데도 말이다. 과거 관대했던 시절의 독일과 유사한 수준으로 도입된 우리 국민연금은 두 차례 개혁으로 2015년 소득대체율이 46.5%로 낮아졌다. 매년 0.5% 포인트씩 하락해 2028년에는 40%까지 낮아진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이 너무 낮아 국민연금을 받아도 노후빈곤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독일은 이미 남성 근로자의 평균 가입 기간이 35∼40년이지만, 우리는 향후 30∼40년 뒤에도 25년 정도에 불과할 것으로 전망되다 보니 실제 가입 기간이 독일의 절반에 불과해 노후빈곤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이미 독일과 우리의 평균수명에는 큰 차이가 없다. 평균수명은 비슷한데 30∼40년 뒤에도 일한 기간, 즉 보험료를 납부한 연금가입 기간이 절반에 불과하다면 인생 백세시대에 ‘대한민국호’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우리에게 낯익은 과거의 독일 연금제도를 증기선에 밀려 해체되는 운명의 범선 전투함 ‘테메레르’호로 봐야 하지 않을까. 새로운 시대에 적응하기 위해 늘어난 평균수명만큼 오래 일해 실제 가입 기간을 늘릴 수 있도록 우리 사회의 발전 방향을 잡는 것이 올바른 접근이 아닐까. 소득대체율은 독일보다 더 높으면서도 정작 부담하는 보험료는 독일의 절반에 불과한 우리 현실을 더 우려스럽게 봐야 할 것 같다. 부담 수준은 거론하지 않으며 어렵게 낮춘 소득대체율을 다시 50%로 올리자는 주장이 우려되는 이유다. 9월부터 본격 가동되고 있는 ‘공적연금 강화 및 노후빈곤 해소를 위한 사회적 기구’에서 이러한 우려를 고려한 미래 지향적인 논의가 이뤄지기를 기대해 본다.
  • “아베 역풍 비상”… 日여당, 의원들 지역구 급파

    “아베 역풍 비상”… 日여당, 의원들 지역구 급파

    “슈퍼 휴일에 선거구로, 지방으로, 거리로.” 안보 법제 통과 강행으로 내각 지지율이 급락하고, 국민 반발이 확산되자 화들짝 놀란 집권 여당이 의원 총동원령을 내렸다. 황금연휴 기간에 의원들이 직접 주민들을 만나 안보 법제의 타당성을 역설하라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21~23일이 법정 공휴일이지만 24, 25일도 쉬는 기업이 많아 사실상 19일부터 27일까지 9일간의 황금 연휴가 이어지고 있다. 야당은 안보법 강행 이후 아베 신조 정부에 대해 “국민에게 귀 기울이지 않는 오만한 불통 정부”, 안보 법안에 대해 “법안 졸속 통과”, “남의 전쟁에 언제든지 끌려들어갈 수 있는 전쟁 법안”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집권 여당이 신경을 곤두세운 것이다. 특히 내년 7월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악영향을 우려하는 집권당이 비상을 건 것이다. 아사히신문은 21일 이 같은 여권 움직임을 ‘여당 의원의 필사의 연휴’란 제목으로 보도했다. 참의원 외교방위위원장인 가타야마 사즈키를 비롯해 마쓰시다 신헤이(참의원)·미야가와 노리코(중의원)·다케이 슌스케(중의원) 등이 지역구 및 지역 행사에 참석해 야당 주장을 반박하고 안보 법제의 필요성을 설명했다고 전했다. ‘평화의 당’이란 명분을 내세웠던 공명당도 평화주의를 어그러뜨렸다는 당내 반발과 볼멘 지지자들을 다독거리느라 당직자들을 지역 선거구로 급히 발걸음을 옮기게 했다. 공명당 청년위원장으로 아베 내각에서 방위정무관을 맡은 이시가와 히로다가도 오사카 공명당 본부에서 불만 찬 당원과 지지자들에게 “전쟁 법안이 아닌 전쟁 방지 법안”이라고 역설하며 진땀을 뺐다. 21일 공개된 주요 언론 여론조사 결과에선 공통적으로 정권 지지율은 내려앉고, 법안 반대 의견은 과반수를 넘겼다. 아사히신문 조사에선 법안 반대 51%, 친아베 성향의 요미우리신문에선 “법안 통과를 평가 않는다”는 응답이 58%로 나왔다. 법안 통과 과정에 대해선 67%가 “좋지 않다”(아사히)고 답했고, “정부 여당 설명이 충분치 않다”(요미우리 조사)도 82%가 됐다. 마이니치신문 조사에서도 응답자 대다수가 강행 처리는 문제(65%)며, 설명이 불충분했고(78%), 위헌(60%)이라는 입장을 보였다. 마이니치신문 조사에서는 아베 총리가 다음달부터 새로 시작하는 자민당 총재 임기 3년을 꽉 채워서 총리직을 수행하지 말고 중간에 그만두면 좋겠다는 의견이 50%였다. 아사히신문 조사에서 내각 지지율이 전주보다 1% 포인트 떨어진 35%로 나타났다. 그러나 NHK는 “총리 주변에서는 지지율 하락이 소폭에 그쳤다면서 안도하는 분위기도 있다”고 전했다. 도쿄 이석우 특파원 jun88@seoul.co.kr
  • [신뢰받는 군을 위하여] 수의계약은 과거 유물 100% 경쟁입찰 도입을…실제 이익은 업주 차지 유공자엔 인센티브를

    전문가들은 대체로 ‘군피아’를 양성하는 보훈복지단체 피복 군납 비리의 사슬을 끊기 위해서는 수의계약 관행을 철폐해 완전 경쟁 입찰 방식을 도입해야 한다는 데 공감했다. 국가유공자나 상이용사에 대해서는 계약이 아닌 다른 방식의 보상이 필요한 때라는 지적이 나온다. 안영수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피복 같은 경우는 특별한 시설이나 기술이 필요한 품목이 아닌 만큼 보훈복지단체의 독과점을 철폐하고 100% 경쟁 입찰 시장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안 선임연구위원은 “경쟁 시스템으로 진행하되 국가유공자나 보훈단체들이 기여한 부분에 대해 가산점이나 인센티브를 주는 방식도 고려해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안 선임연구위원은 “부정당업체에 벌금을 부과하거나 제재를 해도 방위사업청이 제때 납품해야 한다는 이유로 소수의 업체들에 끌려다니게 된다”면서 “이제 전력화 시기의 유연성을 가질 필요도 있다”고 덧붙였다. 김종대 디펜스21플러스 편집장은 “수의계약을 없애고 일반경쟁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은 14대 국회 때인 20여년 전부터 제기됐었다”면서 “국가유공자 지원이라는 명목은 사실 허울에 불과하고 실제 돈은 업주들이 버는 시스템이 고착화됐다”며 수의계약 체계 철폐를 주문했다.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는 “보훈단체에 대한 수의계약 관행은 우리 국가가 정당한 보훈을 해 줄 국가 예산이 없었을 때 사업권을 주면서 배려했던 과거의 유물”이라며 “60만 장병들의 복지를 희생해 소수의 상이용사촌이나 재향군인회 같은 단체들을 배불리는 시스템은 없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신 대표는 “경쟁 입찰로 품질이 훨씬 좋고 가격도 싼 보급품을 공급한다면 병사들이 월급을 사제품 사는 데 쓰지 않아도 돼 상대적으로 월급을 올려 주는 것과 같은 효과도 있다”고 덧붙였다. 새정치민주연합 권은희 의원은 “같은 일반 물자 납품이라도 조달청과 비교했을 때 방사청에서 원가 부풀리기, 대명 사업 등 고질적인 문제가 반복된다는 점을 되새겨 봐야 한다”며 “방사청은 이제라도 일반 물자 납품을 조달청에 이관하고 무기 도입 사업에만 집중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강윤혁 기자 yes@seoul.co.kr
  • [日 강제노동 희생자 유골 봉환] “3000㎞ 대장정… 꼭 돌려 드려야만 했다”

    [日 강제노동 희생자 유골 봉환] “3000㎞ 대장정… 꼭 돌려 드려야만 했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에 끌려간 조선인 강제 징용 희생자들의 유골 115위(位)가 광복 70주년 추석을 앞둔 20일 경기 파주시 용미리 서울시립묘지에 안장돼 고국 산천에 비로소 몸을 뉘었다. 이번 유골 봉환 작업에는 일본 민주당 중의원(하원)을 지낸 고바야시 지요미(46·여)도 참여했다. 고바야시는 지난 11일 홋카이도에서 출발해 19일 서울광장에 유골이 도착하기까지 3000㎞에 달하는 봉환길을 처음부터 끝까지 동행했다. 고바야시는 이날 “몸은 힘들지만 그래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유골들을 돌려 드려야 한다는 명확한 목표가 있었기 때문”이라면서 “안전하게 유골을 고향까지 보내드리는 것, 그리고 (유골 봉환 작업에 나선) 참가자들의 몸 상태가 나빠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임무였다”고 강조했다. 봉환 작업을 주도한 곳은 한·일 시민단체가 만든 ‘강제노동 희생자 추모 및 유골 귀향 추진위원회’. 고바야시는 추진위원회 일본 측 단체인 동아시아시민네트워크 부대표를 맡고 있다. 2010년까지 홋카이도에서 중의원으로 활동한 그는 2003년부터 조선인 유골 발굴과 송환 문제에 관여한 ‘지한파’로 꼽힌다. 의원 시절 ‘전후 보상을 생각하는 의원 연맹’ 등의 활동을 통해 꾸준히 한·일 문제를 환기시켜 온 고바야시는 2013년 일본 민주당 전·현직 의원들과 함께 국무총리 소속 대일항쟁기 강제 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 강제 동원 희생자 등 지원위원회를 방문한 바 있다. 일본 전국에는 수많은 조선인 강제 동원 피해자의 유골이 있지만 정부는 현재 정확한 실태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양국 정부는 2008년 1월~2010년 5월 일본 사찰에 보관돼 온 조선인 군인과 군무원 유골 423위의 한국 봉환을 이끌어낸 뒤로 손을 놓고 있다. 고바야시는 “정부와 시민사회 어느 한쪽만의 노력으로는 결코 이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면서 “민간과 정부 차원의 협력이 자동차의 두 바퀴처럼 잘 굴러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전쟁 없는 세상’ 얼마나 좋을까요

    ‘전쟁 없는 세상’ 얼마나 좋을까요

    올 추석 한국 영화 기대작 중 한 편인 ‘서부전선’이 베일을 벗었다. 추석에는 국내 영화계 4대 메이저 배급사 중 세 곳에서 신작을 내놓고 자존심 싸움을 벌인다. ‘암살’과 ‘베테랑’으로 나란히 1000만 관객을 돌파한 쇼박스와 CJ E&M이 각각 ‘사도’와 ‘탐정’을 내놓은 가운데 ‘서부전선’은 상반기 부진을 만회하려는 롯데엔터테인먼트의 야심작이다. 이 영화는 한국 영화계의 단골 소재인 남북 분단을 다루고 있다. 여전히 대립과 긴장 완화를 반복하는 남북 관계는 늘 마음이 무거워지는 숙제와도 같다. 때문에 영화적 소재로서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한다. 실제로 이 영화의 제작 보고회 직전 서부전선을 둘러싸고 확성기 설치, 포격 등으로 남북의 긴장 관계는 최고조에 이르기도 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서부전선’은 냉랭한 남북 관계를 따뜻한 휴먼 코미디로 녹인 영화다. 영화의 시대적 배경은 남북 간 휴전협정(1953년 7월 27일) 직전의 마지막 3일이다. 각본과 연출을 맡은 천성일 감독은 이 시점을 택한 이유에 대해 “휴전 협정이 계속 진행되고 심지어 발효가 된 뒤에도 서부전선에서는 사기 진작을 위해서 비밀을 유지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영화는 이 같은 내용이 담긴 한 장의 비밀 문서에서 시작된다. 농사를 짓다 전쟁터에 끌려온 남복(설경구)은 일급 기밀문서를 정해진 장소와 시간에 전달하라는 임무를 수행하던 도중 갑작스러운 적의 습격으로 부대가 전멸한다. 이 문서는 교전 도중 탱크와 함께 홀로 남겨진 열여덟 살 어린 북한군 영광(여진구)의 손에 들어간다. 영화는 무사귀환을 꿈꾸는 두 사람이 비밀문서를 서로 손에 쥐기 위해 벌이는 소동이 주를 이룬다. 협박과 회유를 반복하는 탱크 안은 전쟁터의 축소판이다. 이념의 충돌도 발생한다. “미제의 앞잡이를 벗어나 민족을 해방시켜 주겠다”는 영광의 외침에 남복은 “내가 니들한테 해방시켜 달라고 부탁을 했어? 사정을 했어? 애기 얼굴도 못 보고 이게 무슨 XX이여!”라며 쏘아붙인다. 난투극 끝에 누가 총을 차지하느냐에 따라 탱크의 방향은 남과 북으로 엇갈리기를 반복한다. 긴장은 점차 고조되고 서로 총구를 겨누던 두 사람은 서로 방아쇠를 당기고 만다. 비극적 결말? 아니다. 인류로서 존재의 소중함과 민족의 동질성은 이념의 강팍함과 전쟁의 냉엄함을 뛰어넘는다. 인류애적 위대함을 보여주는 장치는 곳곳에 깔려 있다. 남복이 우연히 북한 마을에 들어가 위협을 하지만 주민들은 오히려 그에게 따뜻한 밥상을 차려준다. 초상집에서도 아기가 태어나는 현실을 통해 전쟁통에도 새 생명은 태어나고 인간의 삶은 이어진다는 사실을 에둘러 표현한다. 서로 반목하던 두 사람은 남복이 아내와 배속의 아이를 두고 온 사연을 털어놓고 영광이 형들이 모두 전쟁통에 죽고 홀로 계신 어머니를 봉양해야 한다는 사실을 털어놓으며 점차 가까워진다. 영화는 문서의 정체도 모르고 쫓기만 하던 남복이 “우리가 뭘 알어.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는 거지”라는 대사를 통해 전쟁의 무의미함과 비인도적인 문제를 고발한다. 1959년 발표된 선우휘의 소설 ‘단독강화’를 시작으로 영화 ‘웰컴 투 동막골’, ‘고지전’, ‘적과의 동침’ 등 수많은 영화와 문학에서 북한군과 남한군의 이념을 넘어선 우정과 민족애는 여러 차례 다뤄져 왔다. 물론 이 영화도 그런 클리셰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다만 차이점이 있다면 마치 연극 무대 위 배우를 보는듯 두 주인공에게만 집중해 소소하고 일상적인 코미디로 풀어냈다는 점이다. 화려한 볼거리가 있는 전쟁영화는 아니지만 자칫 썰렁해 보일 수 있는 구성을 메운 것은 배우들의 연기다. 설경구는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를 쓰는 푸근한 40대 아저씨로, 여진구는 어리바리하지만 혈기 왕성한 10대 소년병사 역을 맡아 상호보완적인 시너지를 냈다. 이들이 나이와 이념을 넘어 우정을 확인하는 순간은 뭉클한 감동을 준다. 드라마 ‘추노’와 영화 ‘7급 공무원’, ‘해적:바다로 간 산적’의 각본을 썼던 천성일 작가의 감독 데뷔작이다. 아기자기하게 날리는 잽펀치는 많지만 관객을 단번에 휘어잡는 몰입도는 떨어지는 편이다. 24일 개봉. 12세 관람가.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
  • 프랑스 ‘親獨 청산’ 아직 한참 남았다

    프랑스 ‘親獨 청산’ 아직 한참 남았다

    미완의 프랑스 과거사/이용우 지음/푸른역사/520쪽/2만 9500원 우리 민족에게 일제강점기는 가장 뼈아픈 역사다. 특히 강점기 친일이라는 반민족 행위에 대한 단죄와 청산은 미완의 문제로 여전히 진행형이다. ‘미완의 프랑스 과거사’는 프랑스에서도 완성되지 못한 청산의 작업과 갈등을 통해 우리를 돌아보게 만든다. ‘콜라보’는 흔히 예술가끼리의 협업을 뜻하는 미학적 용어로 통한다. 그러나 프랑스에서 이 ‘콜라보’는 그다지 좋지 않은 개념이다. 오히려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과거사의 상징이다. ‘점령군이나 적국에 협력하는 행위’의 뜻이 담긴 콜라보라시옹의 줄임말로, 1940∼1944년에 걸친 독일 점령기의 대독 협력자를 일컫는다. 그 기간 중 정부의 수반을 비롯한 고관대작은 물론 레지스탕스를 공격한 민병대까지 대독 협력자는 다양하게 포진해 있었다. 독일 강점에서 해방된 뒤 프랑스에서 나치 협력 혐의로 조사받은 사람은 줄잡아 35만명에 달한다. 반역 행위가 매우 광범위하고 철저하게 이뤄졌음을 알 수 있다. 프랑스는 이 콜라보 12만명 이상을 재판정에 세워 4만명에 가까운 인원을 단죄했다. 해방 전후의 혼란기에 걸쳐 9000명이 약식 처형되기도 했다. 프랑스 과거사 청산과 관련한 연구에 천착해 온 저자는 그 콜라보 단죄와 협업의 청산 과정에 의문을 품고 있다. 1951년, 1953년 두 차례 사면을 통해 프랑스의 과거사가 일단락된 것으로 통하지만 실상은 “협력의 문제는 반세기가 지나도록 여전히 현재진행형의 과거였다”고 꼬집는다. 이를테면 독일 강점기 나치 독일의 홀로코스트에 적극 협력했던 경찰 총수인 르네 부스케는 가벼운 형을 살고 난 뒤 재계 유력인사로 승승장구했다. 프랑스 경찰이 유대인 1만 3000명을 체포해 수용소로 넘겨 죽게 한 이른바 ‘벨디브 사건’은 1992년에야 재조명됐고 3년 뒤 자크 시라크 대통령이 사과하기에 이르렀다. 2차 대전 독일 강점기 프랑스의 대독 협력과 레지스탕스, 전후의 과거사 청산을 다루고 있는 책은 어찌 보면 우리에게 약간의 위로와 ‘반복하지 말자’는 짜릿한 교훈을 겸해 전한다. 프랑스의 독일 강점기 과거사 청산을 대독 협력자와 그에 대한 인식·처벌·사면, 국가적 협력과 홀로코스트, 레지스탕스 역사·기억·논쟁으로 구성해 흥미롭다. 주목할 부분은 유대인 학살, 즉 홀로코스트와 레지스탕스에 대해서도 날카로운 메스를 들이댔다는 점이다. 독일 강점기의 비시 정부는 ‘의무 노동제’를 통해 65만명의 프랑스 국민을 강제로 독일 공장으로 보냈고 항독(抗獨)운동을 탄압하기 위해 ‘특별재판부’를 설치하는가 하면 준군사조직인 ‘프랑스 민병대’를 창설했다. 저자는 비시 정부의 국가적 대독 협력이 낳은 최대의 비극이자 가장 끔찍한 측면은 나치 독일의 홀로코스트 정책에 적극 협력한 것이라고 지적한다. 비시 프랑스는 2차 세계대전기 독일군의 점령을 받지 않은 지역에서 유대인들을 독일 측에 기꺼이 내준 유일한 국가였다. 독일이 요구하지 않은 16세 미만 유대인들까지 강제 이송 대상에 포함시킨 결과 7만 3000명의 유대인이 아우슈비츠 등의 수용소로 끌려가 학살당했다. 저자는 비시 대독 협력을 거부한 채 점령 당국과 비시 정부에 끝까지 맞서 저항한 30만∼50만명의 레지스탕스에 대해서도 새로운 시각을 보인다. 비시 정부가 대독 협력 정부였으므로 항독 행위인 레지스탕스는 응당 반(反)비시여야 할 터. 하지만 초기 프랑스의 레지스탕스는 비시 정부에 대해 모호하거나 우호적인 성향이 꽤 컸음을 밝히고 있다. 레지스탕스 자체 내의 배반 내지 실책으로 레지스탕스 최대의 영웅인 장 물랭이 체포된 칼뤼르 사건도 추적했다. 책을 읽고 난 뒤 의심의 눈길은 자연스럽게 우리의 역사 청산으로 향한다. 친일파의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기 위해 제헌국회에 설치된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는 총 682건을 취급해 이 가운데 221건을 기소했고 40건의 재판부 판결이라는 성과를 내는 데 그쳤다. 체형은 고작 14명이었고 실제 사형 집행은 단 1명도 없었다. 체형을 받은 사람들도 곧바로 풀려났다. 저자는 이렇게 쓰고 있다. “일제강점기 점령과 협력의 기간, 정도, 성격은 프랑스와 매우 다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 사회의 과거사 청산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게 정당화되지는 않는다.” 김성호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kimus@seoul.co.kr
  • [日 안보법안 처리 강행] 日 ‘군국의 부활’… 공격 징후만으로 자위대 파견·무력 행사

    [日 안보법안 처리 강행] 日 ‘군국의 부활’… 공격 징후만으로 자위대 파견·무력 행사

    일본 국회에서 강행 처리된 11개 안보 관련 법률 제·개정안의 핵심은 ‘집단자위권’ 행사를 법률로 합법화했다는 것이다. 제3국 군대를 지원하기 위한 후방 지원 활동 범위의 제약을 없애고 활동 범위를 세계로 넓혔다는 점도 두드러진다. 미국 등이 관여하는 분쟁에 ‘일본 군대’인 자위대를 세계 어디에도 파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공격을 받은 경우가 아닌 위기의 사전 징후만으로도 군대를 파견하고, 다른 나라를 공격할 수 있게 한 점도 특징이다. 이 때문에 공격 방어를 위한 ‘전수 방위’만을 허용한 헌법 제약을 넘은 ‘전쟁 법안’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정권의 자의적 판단만으로도 일본 젊은이들은 전쟁터 등 분쟁지에 파견될 수 있다. 후방 지원이라고 하지만 사상자가 발생하는 전투에 휘말릴 것에 대한 우려는 현실적이다. 자국에 대한 직접 공격이 아닌 동맹국 등 제3국에 대한 공격 등도 자국 안위와 연결 짓는 것이 소위 ‘집단자위권’이다. 이 때문에 미국 등의 전쟁에 일본이 언제 어디라도 끌려들어 갈 수 있게 됐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크다. 집단자위권은 모든 국가가 갖는 고유 권한으로 유엔이 보장한다. 하지만 무력 보유와 교전을 인정하지 않는 헌법에 따라 일본은 그동안 집단자위권 행사에 많은 제약을 받아 왔다. 아베 신조 정권은 “이번 안보법안 제·개정안은 집단자위권의 한정적 행사”라고 강조하며 전수 방위를 규정한 헌법 9조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집단자위권은 주요사태대처법, 자위대법 등에 명문화돼 있다. 외국 군대에 대한 후방 지원 활동 영역의 확대는 중요영향사태법 등을 통해 구체화했다. 일본의 미국에 대한 후방 지원 등 군사 협력 범위는 그동안 일본 주변 지역으로 제한됐다. 1998년 북한의 대포동 미사일 발사 시험에 자극받은 일본은 1999년 한반도 및 일본 주변의 유사 사태에 한정해 미군을 지원할 수 있는 필요 사항을 규정한 주변사태법을 만들었다. 그러나 이번 개정에서는 지리적 제약을 의미하는 ‘주변’이라는 표현을 삭제하고 ‘중요영향사태법’으로 바꿨다. “안전 확보를 위해서라도 지역을 한정하는 것은 곤란하다”는 게 주변을 삭제한 논리다. 일본 정부는 1999년 당시 오부치 게이조 총리가 “중동과 인도양에서의 자위대 활동은 상정하지 않고 있다”는 입장을 지켜 왔으나 이번에 주변에 대한 족쇄를 풀었다. 그동안 일본 정부는 자위대를 해외에 파견할 때마다 특별법을 제정해야 했다. 그러나 이번에 관련법들의 통과로 그럴 필요가 없게 됐다. 국제적 분쟁에 휘말린 미국 등 제3국 군대의 후방 지원을 위해 자위대를 수시로 국외에 파견할 수 있도록 하는 근거를 일반 법으로 만든 것이다. 국제평화지원법, 중요영향사태법 등에 관련 내용이 규정돼 있다. 또 제3국 후방 지원에 포함되지 않았던 탄약, 장비 수송 등도 가능하도록 추가됐다. 국제평화지원법으로 유엔 틀 안에서 전투 행위도 가능해졌다. 자위대 파견 등은 국회 동의를 기본 원칙으로 하지만 (국가) 존립 위기 등의 이유를 들면 사후 승인도 가능하다. 이 같은 11개 제·개정 법안에 대해 헌법학자 등 법률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무력행사를 영구히 포기하고 군대 보유를 금지한다”고 명기한 일본 헌법 9조를 위반하는 것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도쿄 이석우 특파원 jun88@seoul.co.kr
  • 아베의 야욕… 日 ‘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

    아베의 야욕… 日 ‘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

    일본 자위대의 집단자위권 허용 등을 골자로 한 아베 신조 정권의 안보 관련 법안들이 야당의 결사적인 반대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법제화됐다. 일본 집권 자민·공명당은 이들 11개 법안에 대해 19일 새벽 참의원 본회의 처리를 강행했다. 반면 민주당 등 5개 야당은 내각 불신임안과 아베 총리 문책 결의안 등을 내놓으며 총력 저지로 맞섰다. 아베 정부는 지난해 각의(국무회의)에서 집단자위권에 대한 헌법 해석을 바꾼 뒤 이번 제·개정까지 일사천리로 달려왔다. 이번 안보법 제·개정은 1960년 아베 총리의 외조부인 기시 노부스케 총리가 미·일안전보장조약을 개정한 지 55년 만이다. 교전권을 포기한 헌법 9조를 사문화시킨 조치로 일본의 ‘평화헌법’을 무력화시켰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중국과의 대결이 첨예화되면서 동북아의 불안정 우려도 높아졌다. 안보법안의 핵심은 정부의 헌법 해석 변경을 통해 전후 70년 동안 금지했던 집단자위권 행사를 인정한 것이다. 또 자위대가 일본 주변 지역을 넘어 전 세계적으로 군사작전을 전개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고 있다. 일본과 밀접한 미국 등 제3국에 대한 무력 공격도 일본 정부가 국가 안전에 대한 위협이라고 판단하면 자위대가 개입할 수 있다. 제3국의 분쟁 및 전쟁에 일본 자위대가 개입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된 것이다. 일본에 대한 직접 공격이 없더라도 사전 징후 및 그럴 위험성이 있을 경우 사전 조치를 인정한다. 시민사회는 “전쟁을 금지한 헌법을 위반한 위헌이며 일본 청년들이 남의 나라 전쟁에 끌려가게 된 전쟁 법안”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지지통신 등은 “전후 일본 안보 정책의 70년 만의 대전환”이라고, 마이니치신문은 “평화국가로 걸어온 일본의 큰 전환점”이라고 평가했다. 일본이 전쟁을 할 수 있는 나라로 변신했다는 의미다. 이와 관련해 존 커비 미국 국무부 대변인은 “미·일 동맹을 강화하기 위한 일본의 노력을 환영한다”고 반긴 반면 훙레이(洪磊)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일본 정부가 국내 및 국제사회의 정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역사적 교훈을 새겨라”고 비판했다. 한편 18일 민주당 등 5개 야당은 공동으로 아베 내각에 대한 불신임 결의안을 중의원에 제출하면서 표결까지 가는 등 저지에 나섰지만 불신임안은 부결됐다. 자민당은 19일부터 23일까지 이어지는 연휴 이전에 안보 법안을 기습적으로 표결하기 위해 리허설을 반복했다고 교도통신이 전했다. 시민들의 반발도 거셌다. 18일에도 최소 4만명이 도쿄 지요다구 국회 의사당을 둘러싸고 “전쟁 법안 폐기”를 외치며 6일째 대규모 시위를 이어 갔다. 도쿄 이석우 특파원 jun88@seoul.co.kr
  • 열받은 中 “北 당 창건일 특사 안 보낼 수도”

    북한에 대한 중국의 불만이 쌓이고 있다. 지난 3일 항일전쟁 승리 70주년 기념 톈안먼광장 열병식을 앞두고 지뢰 사건을 일으켜 긴장을 조성하더니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미국 방문을 앞둔 시점에 장거리 로켓 발사와 핵실험 강행 엄포를 놓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연유로 중국이 오는 10월 10일 북한 노동당 창당 70주년 기념식에 사절단을 파견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베이징의 한 외교 소식통은 16일 “중국의 입장이 상당히 강경하다”면서 “올해가 노동당 창당 70주년으로 중국과 북한이 전통적으로 중요하게 여기는 소위 ‘꺾어지는 해’(끝자리가 ‘0’이나 ‘5’인 해)이지만 이 같은 분위기에선 중국이 특사를 파견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 당국의 공개적인 입장도 단호하다. 외교부 훙레이(洪磊) 대변인은 지난 15일 브리핑에서 북한을 향해 “긴장 조성 행위를 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관영 환구시보는 16일 사설에서 “북한이 정말로 행동에 나선다면 비극적인 악순환만 초래할 것”이라고 비판 수위를 높였다. 중국 학자들은 북한의 행태를 미·중 정상회담을 앞둔 ‘몸값 높이기’로 보고 있으며 시 주석의 외교 행보에 ‘딴지’를 걸었다고 판단하고 있다. 신화통신 세계문제연구센터의 가오하오룽(高浩榮) 교수는 “국제적인 관심을 끌려는 북한의 행동이 중국 외교에 부담이 될 수 있다”면서 “북한 핵을 반대하는 중국의 입장은 단호하고 확고하다”고 말했다. 중앙당교 국제전략연구소의 장롄구이(張璉?) 교수는 “북한이 다시 핵실험을 하면 중국을 포함한 국제사회는 더 근본적인 결심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베이징 이창구 특파원 window2@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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