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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객기 화장실 ‘배설물 범벅’ 만든 남자…결국 비상착륙

    여객기 화장실 ‘배설물 범벅’ 만든 남자…결국 비상착륙

    한 20대 남성이 비행기 내에서 배변활동을 ‘통제’하지 못해 결국 수갑을 찬 채로 체포된 황당한 일이 발생했다.… 미국 현지 언론의 5일 보도에 따르면 미국 시민권을 가진 베트남 출신의 22세 남성은 현지시간으로 지난 5일 오후 미국 시카고를 출발해 홍콩으로 가는 유나이티드항공 비행기에 탑승했다. 하지만 이 남성이 탄 비행기는 알래스카 테드 스티븐스 앵커리지 공항에 비상 착륙해야 했고, 문제의 남성은 현지 공항 경찰에 의해 수갑을 찬 채 끌려 나와야 했다. 공항 경찰에 따르면 이 남성은 기내에 설치된 화장실 2곳에 자신의 대변을 마구 문질러 엉망으로 만든 혐의를 받고 있다. 남성의 기이한 행동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자신의 티셔츠를 벗어 변기에 내려보내려 했으며, 당시 비행기에 함께 탑승했던 승객 245명은 불쾌한 냄새 때문에 고통스러워 해야 했다. 화장실의 ‘끔찍한 상황’ 등을 마주한 승무원과 기장은 결국 비상 착륙을 결정했다. 현지 지역 경찰과 연방 수사관들이 기내에 올라 이 남성의 손목에 수갑을 채웠고, 그는 별다른 저항을 하지 않은 채 순순히 경찰 지시에 따랐다. 문제의 남성은 경찰서에서 기본 검사를 받은 뒤 정신 감정을 위해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다. 현지경찰은 “현재로서는 고의성이 없는 것으로 판단돼 기소하지 않았다”면서 “아직 조사가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해당 비행기는 기내 청소와 점검 등을 위해 밤새 공항을 떠나지 못했고, 유나이티드항공은 발이 묶인 다른 승객들에게 숙박 시설을 제공한 뒤 5일 목적지로 재출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北신년사~남북회담’ 숨가빴던 닷새… 두 정상 지휘로 성사

    ‘北신년사~남북회담’ 숨가빴던 닷새… 두 정상 지휘로 성사

    金 신년사 ‘강한 핵버튼’ 美 응수 ‘움찔’ 文 이튿날 “北의 평창 참가 방안 마련” 북한의 거듭된 핵실험과 국제사회의 강경한 대북 제재로 틈바구니조차 없을 것 같던 남북대화의 문은 새해 들어 불과 닷새 만에 열렸다. 대화 의지를 밝힌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신년사(1일)에 우리 정부가 고위급회담을 제의했고(2일), 남북 연락 채널이 재개되더니 (3일) 평창올림픽 기간에 한·미 연합훈련을 연기(4일)하기로 한·미 정상이 합의하는 등 그야말로 ‘숨 가쁜 진전’이 매일 거듭됐다. 그리고 북측은 우리 정부가 제의한 ‘1월 9일 판문점 평화의집 남북 고위급 회담’을 5일 수락했다.결과적으로 빠르게 회담이 성사됐지만 그 과정은 결코 녹록지 않았다. 김 위원장의 신년사에 ‘평창올림픽 대표단 파견 및 남북 당국의 시급한 만남이 가능하다’는 내용도 있었지만 미국을 겨냥해 “핵 단추가 내 사무실 책상 위에 항상 놓여 있다”는 부분도 포함됐다. 이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나는 더 크고 강력한 핵 버튼이 있다”고 응수할 때만 해도 남북 대화는 쉽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이튿날인 2일 오전 국무회의에서 “북한 대표단의 평창올림픽 참가를 실현할 수 있도록 후속 방안을 조속히 마련하라”는 지시를 내렸고, 같은 날 오후 조명균 통일부 장관이 ‘남북 고위급 당국회담’을 제의하면서 분위기가 급변했다. 다음날인 3일 오후 북한 대남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리선권 위원장은 조선중앙TV에 나와 ‘김 위원장 지시’라며 판문점 연락 채널 개통 의사를 밝혔다. 실제 이날 오후 3시 30분 북한이 판문점 연락 채널로 전화를 걸어오면서 23개월 만에 판문점 연락채널이 재가동됐다. 첫 통화에서 북측이 “(회담에 대해) 알릴 내용이 있다. 기다려 달라”고 하면서 우리 측 기대감은 더욱 커졌다. 하지만 이튿날인 4일까지 북한이 특별한 내용의 연락을 하지 않았고, 이에 따라 일각에선 북한의 전략에 끌려가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됐다. 강경 대북 제재를 고수하는 미국과 남북 고위급 회담을 제안한 우리나라를 두고 ‘엇박자 외교’라는 분석도 나왔다. 하지만 이날 밤 10시부터 30분간 문 대통령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전화 통화를 통해 평창 동계올림픽 기간에 한·미 연합훈련을 실시하지 않기로 전격 합의했다. 회담 성사에 가장 큰 걸림돌을 넘는 순간이었다. 북측은 한·미 합의 이후 불과 12시간 뒤인 5일 오전 10시 16분 “고위급 회담을 위해 9일 판문점 평화의집으로 나가겠다”는 내용을 담은 전통문을 보내왔다. 이렇게 빠른 진전이 가능했던 건 남북 양측의 최고 지도자가 간접적으로 뜻을 교환하면서 사실상 진두지휘를 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다만, 실제 회담 테이블에서 서로의 요구사항을 구체적으로 전달할 경우 진통을 겪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장은석 기자의 호갱 탈출] 결혼박람회서 충동 계약, 14일 안에 환불받을 수 있어요

    [장은석 기자의 호갱 탈출] 결혼박람회서 충동 계약, 14일 안에 환불받을 수 있어요

    #1. 예비 신부 A씨는 최근 약혼자와 서울 강남의 한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결혼박람회에 갔습니다. 스튜디오 촬영과 드레스, 메이크업 등 ‘스·드·메’는 물론 혼수와 예물 가격 등 결혼 준비에 필요한 정보를 얻기 위해 방문한 건데요. 입장하자마자 웨딩플래너의 손에 이끌려 결혼 준비 대행 서비스에 대한 설명을 한참 듣게 됐죠. A씨는 각종 무료 이벤트라는 웨딩플래너의 말에 혹해 즉석에서 250만원짜리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계약금으로 25만원도 냈죠. 하지만 집으로 돌아온 A씨는 ‘박람회 한 곳만 가보고 너무 빨리 계약한 것 아닐까’라는 후회가 밀려왔습니다. 약혼자와 상의 끝에 다음날 웨딩플래너에게 전화해 계약 해제를 요구했는데요. 웨딩플래너는 “한 번 사인하면 계약은 해제할 수 없다”면서 계약금을 못 돌려주겠다고 합니다. #2. 예비 신랑 B씨도 최근 약혼자와 한 결혼박람회를 방문했습니다. 결혼 자금이 부족해서 저렴한 서비스를 찾고 있었는데요. 마침 한 웨딩플래너가 “우리보다 가격이 싼 업체가 있으면 계약금을 바로 환불해 주겠다”고 장담해 179만원짜리 계약을 체결했죠. 그런데 며칠 뒤 지난해 결혼한 친구의 소개로 다른 웨딩플래너로부터 상담을 받았는데 가격이 더 싸네요. B씨는 이미 계약한 웨딩플래너에게 연락해 “다른 업체와 계약하려고 하니 계약금을 돌려 달라”고 요구했지만 거부합니다.A씨와 B씨는 결혼박람회에서 한 계약을 해제하지 못하고, 계약금도 돌려받지 못할까요? 5일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결혼박람회를 찾았다가 계약 해제 거부 등 피해를 입는 예비 신랑·신부들이 여전히 많은데요. 결혼박람회에서 체결한 계약은 ‘방문판매 등에 관한 법률’(이하 방문판매법)에 따라 계약일로부터 14일 안에는 청약 철회가 가능합니다. 다만 주의할 점이 있는데요. 방문판매법 적용을 받으려면 결혼대행 업체가 자신의 회사 건물이나 대리점 등 영업장이 아닌 다른 장소에서 연 박람회여야 합니다. 최근에는 업체들이 회사 건물 로비나 대리점 등에서 소규모 박람회를 개최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이런 박람회에서 한 계약은 방문판매법이 적용되지 않아 청약 철회가 어렵습니다. 김태훈 소비자원 서비스팀 조정관은 “박람회 방문 전에 반드시 결혼대행 업체의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회사 주소와 박람회장 위치를 비교해야 한다”고 당부했습니다. 계약 체결 후 14일이 지났거나, 방문판매법 적용을 못 받는 박람회에서 한 계약이더라도 소비자는 환불을 요구할 수 있습니다. ‘소비자 분쟁 해결 기준’에 따르면 결혼 준비 대행 서비스는 단순 변심 등 소비자의 잘못으로 계약을 해제해도 서비스가 시작되기 전이라면 총요금의 10%를 위약금으로 떼고 나머지 금액을 되돌려 받을 수 있죠. 서비스가 이미 시작됐더라도 그동안 받은 서비스의 비용과 함께 남은 서비스 요금의 10%만 위약금으로 내면 됩니다. 소비자원에 피해 구제를 신청하면 소비자 분쟁 해결 기준에 따라 권고·조정 과정을 거쳐 보상받을 수 있지만, 강행 법규가 아니어서 사업자가 무조건 따라야 할 의무는 없다고 합니다. 소비자 분쟁 해결 기준보다 당사자 간 계약서가 우선이기 때문에 소비자는 계약 전에 환불 조건 등 계약서 내용을 꼼꼼히 따져 봐야 안전하죠. B씨의 사례처럼 결혼박람회에서 웨딩플래너가 “다른 업체가 우리보다 싸면 계약금을 환불해 주겠다”는 말로 예비 신랑·신부를 꾀는 경우도 있는데요. 막상 비용이 더 저렴한 업체를 발견한 소비자가 계약 해제를 요구하면 업체에서 환불을 거부하는 피해가 많죠. 업체에서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오리발을 내미는 건데요. 입증 책임이 소비자에게 있어서 반드시 증거를 남겨 둬야 합니다. 계약 전에 웨딩플래너와 이런 내용을 말로만 하지 말고 계약서에 특약 사항으로 정확하게 적어 놔야 하죠. 김 조정관은 “가장 좋은 피해 예방법은 결혼박람회에서 충동 계약을 하지 않는 것”이라면서 “결혼박람회를 여러 곳 둘러보면서 서비스 대비 가격이 합리적이고 자신들에게 꼭 맞는 상품을 골라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esjang@seoul.co.kr
  • 영국 BBC “손흥민 웨스트햄 동점골은 30야드(27.4m)짜리”

    영국 BBC “손흥민 웨스트햄 동점골은 30야드(27.4m)짜리”

    토트넘 유니폼 입고 날린 21골 중 20m 넘는 골은 처음 .. 페널티박스 외곽에선 세 번째 손흥민(26·토트넘)이 5일 프리미엄리그(EPL) 웨스트햄전에서 기록한 시즌 10호골은 자신이 잉글랜드 진출 이후 넣은 최장거리 골 중 하나로 기록될 전망이다.손흥민은 런던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웨스트햄과의 EPL 22라운드 홈 경기에서 팀이 0-1로 끌려가던 후반 39분 동점골을 터뜨렸다. 에릭 라멜라가 내준 공을 중원에서 천천히 몰고 간 뒤 페널티아크 오른쪽 뒤편에서 벼락같은 오른발 중거리 슛을 때렸는데, 공은 바로 앞 수비수를 제친 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휘는 궤적을 그리며 그대로 골대 구석으로 빨려 들어갔다. 슈팅 지점은 페널티박스와는 한참 거리가 있었다. 영국 매체 BBC는 손흥민의 중거리포 거리를 30야드(27.4m)라고 측정했다. AFP통신과 스카이스포츠 등은 25야드(22.8m)로 봤다. 손흥민의 골은 14분 먼저 들어간 웨스트햄 페드로 오비앙의 골과 거리가 비슷해 보였지만, 현지 언론은 오비앙이 5야드(4.5m) 더 길다고 봤다. 이날 손흥민의 동점골은 토트넘 유니폼을 입고 넣은 가장 긴 중거리골 가운데 하나다. 손흥민은 주로 페널티박스 안에서 슈팅을 날리거나, 페널티박스 경계 지역에서 대부분 골을 넣는다. 올 시즌 10골 가운데 이처럼 페널티박스로부터 거리가 떨어진 지점에서 중거리 슈팅을 골로 연결한 것은 이번이 유일하다. 총 21골을 기록했던 지난 시즌에도 페널티박스 밖에서 날린 중거리 슈팅은 두 차례 정도 뿐이었다. 지난 4월 왓퍼드와 경기 당시 페널티 아크 정면에서 왼발 중거리 슈팅을 골로 연결했다. 5월 레스터시티와 경기에서 넣은 21호 골의 슈팅 지점 역시 페널티박스 밖이었지만, 거리는 20m가 되지는 않았다. 최병규 전문기자 cbk91065@seoul.co.kr
  • 토트넘 손흥민, 웨스트햄 상대로 동점골…시즌 두자릿수 골 기록

    토트넘 손흥민, 웨스트햄 상대로 동점골…시즌 두자릿수 골 기록

    잉글랜드 프로축구 토트넘의 손흥민(26)이 웨스트햄을 상대로 2018년 첫 골을 넣으며 팀의 4경기 연속 무패 행진을 이끌었다.손흥민은 5일(한국시간) 영국 런던의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웨스트햄과의 2017-2018 프리미어리그 22라운드 홈경기에서 팀이 0-1로 끌려가던 후반 39분 1-1 동점 골을 터뜨렸다. 지난해 마지막 경기인 12월 26일 사우샘프턴과의 경기에서 1골 2도움의 종횡무진 맹활약을 펼친 뒤 2경기 만에 나온 득점이다. 이로써 손흥민은 올 시즌을 통틀어 10번째이자, 프리미어리그에서는 7호 골을 기록했다. 2016-2017시즌 21골(리그 14골, FA컵 6골, 유럽 챔피언스리그 1골)을 작성한 손흥민은 두 시즌 연속 두 자릿수 득점을 돌파했다. 손흥민의 활약 속에 토트넘은 웨스트햄과 1-1로 비겨 최근 4경기 무패(3승 1무)를 이어가며 리그 5위(승점 40)를 달렸다. 이날 토트넘의 최전방에는 해리 케인이 선발로 나섰고, 손흥민은 델리 알리, 크리스티안 에릭센과 2선을 이뤄 왼쪽 측면에 배치됐다. 이전 3경기에서 10골을 터뜨리는 공격력을 자랑한 토트넘을 상대로 웨스트햄이 작정하고 수비벽을 쌓아 맞서면서 손흥민을 포함한 공격진이 좋은 기회를 잡기가 쉽지 않았다. 손흥민도 반대편까지 오가며 활발한 움직임으로 활로 찾기에 나섰으나 골문에 다가갈 기회를 얻기 어려웠다. 토트넘은 전반 70% 넘는 점유율을 기록하며 일방적인 경기를 펼쳤지만, 빽빽한 수비에 좀처럼 골문을 열지 못했다. 하나의 슈팅도 없이 수비에 치중하는 웨스트햄을 상대로 토트넘은 전반 12개의 슈팅(유효슈팅 3개)을 기록했으나 무위에 그쳤다. 전반 종료를 앞두고 알리와 패스를 주고받은 에릭센이 페널티아크 뒤에서 때린 오른발 슛이 상대 아드리안 골키퍼에게 막힌 게 가장 아쉬운 찬스였다. 후반에도 토트넘이 공세를 이어가는 가운데 손흥민은 후반 13분 알리가 찔러준 패스를 페널티지역 중앙에서 오른발 슛으로 연결했으나 아드리안에게 막히자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토트넘이 17개의 슈팅을 하나도 골대에 넣지 못하는 사이 웨스트햄은 후반 25분 감춰둔 발톱을 꺼냈고, 팀을 통틀어 첫 슈팅이 선제골로 이어졌다. 마누엘 란치니가 살짝 흘려준 공을 페드로 오비앙이 페널티아크 왼쪽 뒤에서 벼락같은 중거리 슛으로 연결한 것이 그대로 골대에 빨려 들어갔다. 토트넘의 패색이 짙어지던 후반 39분 해결사로 나선 건 손흥민이었다. 손흥민은 에릭 라멜라가 내준 공을 중원에서 천천히 몰고 간 뒤 페널티아크 오른쪽 뒤편에서 벼락같은 오른발 중거리 슛을 때렸고, 이것이 그대로 골대로 빨려 들어갔다. 아드리안 골키퍼가 팔을 뻗으며 몸을 날렸지만, 정확히 오른쪽 구석을 노린 손흥민의 날카로운 슈팅을 막아내지 못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위안부 할머니들, 대통령께 간곡히 당부한 말은?

    위안부 할머니들, 대통령께 간곡히 당부한 말은?

    지난해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한 문재인 대통령의 사과 발언에 대해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일본으로부터 사죄를 꼭 받도록 해달라고 4일 촉구했다.이날 청와대 오찬에 초청된 8명의 할머니는 12·28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한 문 대통령의 공식 사과를 받은 뒤 감사를 표하면서 이 같은 뜻을 전했다고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이 서면브리핑에서 전했다. 이용수 할머니는 “2015년 12월 28일 합의 이후 매일 체한 것처럼 답답하고, 한스러웠다. 그런데 대통령께서 이 합의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조목조목 밝혀주어 가슴이 후련하고 고마워서 그날 펑펑 울었다”고 사의를 표했다. 이옥선 할머니는 “해방 이후 73년을 기다리고 있는데 (일본은) 아직도 사죄를 하지 않는다. 어린아이를 끌어다 총질, 칼질, 매질하고 죽게까지 해놓고, 지금 와서 하지 않았다는 게 말이 되나. 우리가 살면 얼마나 살겠나. 사죄만 받게 해달라”고 당부했다. 13세에 평양에서 끌려가 아직도 집에 돌아가지 못한 길원옥 할머니는 인사말 대신 가요 ‘한 많은 대동강’을 불렀고, 작년에 발매한 음반 ‘길원옥의 평화’를 문 대통령에게 선물했다.이날 오찬에는 위안부 피해 할머니 8명 외에 윤미향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공동대표, 지은희 정의기억재단 이사장, 안신권 나눔의 집 소장이 참석했고 정부에서는 강경화 외교·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 남인순 국회 여성가족위원장 등이 배석했다. 정대협 윤미향 공동대표는 오찬 뒤 “전남 담양 등 굉장히 멀리서 오셔서 힘드신 분도 계셨는데, 할머니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굉장히 환하게, 그리고 감동한 모습으로 계셨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윤 대표는 “특히 이용수 할머니는 문 대통령을 ‘친척 집사람 같다’고 표현하셨고, 다른 한 할머니는 ‘대통령이 눈도 코도 잘생겨서 복 받겠다’고 농담하셔서 주변에서 깔깔대고 웃을 정도로 분위기가 좋았다”고 덧붙였다. 그는 “할머니들이 나라의 최고 권력자로부터 지지와 존중을 받으신 것”이라며 “오늘도 할머니들은 ‘일본 정부 사죄받는 것이 소원’이라고 말씀하셨지만, 과거엔 그런 말을 할 때 고통스러워 하셨다면 오늘은 마치 소원이 이뤄진 것과 같았다. 얘기의 결이 달랐다”고 전했다.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국빈급으로…의전차량에 앰뷸런스 배치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국빈급으로…의전차량에 앰뷸런스 배치

    문재인 대통령이 4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만나 깊이 사과했다. 박근혜 정부 때 맺은 12·28 위안부 합의가 “잘못된 합의”였다는 이유다. 비록 전 정권 시절 체결된 합의지만 한·일 양국 정부 간에 맺은 합의라는 점에서 ‘대통령으로서’ 공식 사과한 것이다.이날 오찬은 지난달 외교부 태스크포스가 ‘12·28 위안부 합의’는 피해 할머니들의 의견이 배제된 채 이뤄졌다고 발표한 뒤 할머니들을 먼저 위로해야 한다는 문 대통령의 판단에 따라 마련됐다. 문 대통령은 피해 할머니들을 모셔오는 데 세심한 배려를 준비했다. 먼저 부인 김정숙 여사와 함께 청와대 본관 현관 입구에서 서서 경기도 광주의 위안부 피해 할머니 지원 시설인 ‘나눔의 집’을 출발해 도착한 할머니들을 일일이 반갑게 맞이했다. 이어 개별적으로 이동해 나중에 도착한 할머니까지 15분간 현관에 서서 기다렸다. 문 대통령은 인사말에서 “저희 어머니가 91세이신데 제가 대통령이 된 뒤로는 잘 뵙지 못 하고 있다”면서 “오늘 할머니들을 뵈니 꼭 제 어머니를 뵙는 마음”이라고 첫 마디를 열었다. 그러면서 “할머니들을 전체적으로 청와대에 모시는 게 꿈이었는데 오늘 드디어 한 자리에 모시게 돼 기쁘다”고 덧붙였다. 문 대통령은 전임 정권에서 이뤄진 ‘12·28 위안부 합의’에 대해 “할머니들의 뜻에 어긋나는 합의를 해서 죄송하다”면서 “대통령으로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은 “가슴이 후련하다”면서 문 대통령의 사과를 반기고 감사의 뜻을 밝혔다. 이용수 할머니는 “2015년 12월 28일 합의 이후 매일 체한 것처럼 답답하고 한스러웠는데 대통령이 합의가 잘못됐다는 것을 조목조목 밝혀줘서 가슴이 후련하고 고마워 펑펑 울었다”며 심경을 전했다. 이어 “(일본의) 공식 사과와 법적 배상을 26년이나 외쳐왔고, 꼭 싸워서 해결하고 싶다”면서 “대통령이 여러 가지로 애쓰는데 부담드리는 것 같지만 이 문제는 해결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일본이) 소녀상을 철거하라고 하는데 소녀상이 무서우면 사죄하면 된다”고 덧붙였다. 이옥선 할머니는 “대통령이 바뀌고 할 말을 다해주니 감사하고 이제 마음 놓고 살게 됐다”고 말했다. 이옥선 할머니는 “어린아이를 끌어다 총질, 칼질, 매질하고 죽게까지 해놓고 지금 와서 하지 않았다고 하는 게 말이 되나”라면서 “우리가 살면 얼마나 살겠나. 사죄만 받게 해달라. 대통령과 정부를 믿는다”고 호소했다. 13살 때 평양에서 끌려갔던 길원옥 할머니는 인사말 대신 ‘한 많은 대동강’을 불렀고, 지난해 자신이 직접 노래를 불러 발매한 음반인 ‘길원옥의 평화’를 문 대통령에게 선물했다. 김정숙 여사는 할머니들에게 목도리를 직접 매 드리며 선물했다. 이 목도리는 아시아 빈곤 여성들이 생산한 친환경 의류와 생활용품을 공정한 가격에 거래해 여성의 경제적 자립을 지원하는 국내 최초의 공정무역 패션 브랜드 제품이라고 청와대는 설명했다. ‘대통령과 사진 찍는 게 가장 하고 싶었다’고 한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들은 문 대통령은 오찬이 끝나고 김정숙 여사와 함께 할머니 한분 한분과 기념사진을 찍었다. 앞서 문 대통령은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가 입원해 있는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에 이날 오전 직접 찾아 문병하고 이야기를 나눴다. 청와대는 이날 할머니들이 ‘나눔의 집’과 청와대를 오가는 길에 비서실 의전 차량을 제공했다.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은 서면 브리핑에서 “경찰의 에스코트 아래 국빈 이동 때와 같은 최고의 예우를 갖춰 모셨다”면서 “건강상 불편사항에 대비해 차량 이동 때 앰뷸런스까지 배차했다”고 설명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메달 달랑 2개, 북한 동계올림픽 “하계 54개와 비교하면 초라”

    메달 달랑 2개, 북한 동계올림픽 “하계 54개와 비교하면 초라”

    “(메달을 받으려고) 몸을 수그려 본 적이 별로 없다.” 평창동계올림픽에 실제로 북한이 선수단을 파견하게 될지에 비상한 관심이 쏠리는 가운데 영국 BBC가 3일(현지시간) 하계올림픽에 견줘 동계올림픽에서 부진했던 북한의 아픔을 이렇게 함축했다. 북한이 동계올림픽에 처음 참가한 것은 1964년 인스부르크 대회로 1972년 뮌헨 대회에 처음 나선 하계올림픽보다 오히려 빨랐다. 북한이 쟁취한 하계올림픽 메달은 54개로 금 16, 은 16, 동메달 22개였다. 경제규모에 견줘 메달 성과에서 성공적인 국가 7위에 꼽힌다는 통계도 있다. 레슬링이나 역도, 유도, 복싱 등 투기 종목에서였다. 그러나 동계올림픽 메달은 둘에 그쳤다. 인스부르크에 처음 등장했을 때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3000m에서 22세 한필화가 은메달을 따낸 것이 역대 최고 성적이다. 1992년 알베르빌 대회에서 황옥실이 여자 쇼트트랙 500m에서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1964년 이후 동계올림픽은 모두 14차례였는데 이런저런 이유로 빠져 평창에 참가하면 아홉 번째가 된다. 하지만 정치적인 이유로 보이콧한 것은 아니었다. 반면 하계올림픽에는 1980년 모스크바 대회에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이유로 미국 등이 보이콧하자 옛 소련이 보복으로 1984년 LA 대회를 보이콧하자 동참했고, 1988년 서울올림픽을 1년 앞두고 KAL기 폭탄 테러를 저질러 115명이 희생됐다. 하지만 2000년 시드니하계올림픽과 2006년 토리노동계올림픽 개회식에는 남북한 선수단이 한반도기를 앞세우고 입장하며 화해 무드를 조성했다. 이번에도 북한 핵무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설전으로 조장된 긴장 분위기를 북한 선수단 참가나 응원단 방문으로 해빙해낼지 주목된다. 아울러 평양 당국은 여전히 주민들을 통제하기 위해 올림픽과 같은 메가 스포츠 이벤트 중계도 몇 시간 뒤 내보내곤 한다며 북한 대표팀이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남자축구 결승에서 한국에 0-1로 지며 준우승했지만 경기 결과는 주민들에게 전해지지 않았다고 소개했다. BBC의 북한 모니터링 요원인 앨리스테어 콜먼은 “그들은 결코 결과를 언급하지 않았다. 북한의 누구도 심지어 공식 매체 종사자들도 경기 결과를 알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또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낸 선수들에게 승용차나 아파트가 제공되고 북한 체제의 우월성이나 경애하는 지도자의 은덕을 입은 영웅으로 묘사되는 반면 성적이 좋지 않은 선수는 정치범 수용소로 끌려간다는 소문이 많았지만 전문가들은 확인하기 어렵다고 일축한다. NK뉴스의 표도르 테르티치키 분석가는 “적어도 최근 몇십 년 동안 국제대회에서 나쁜 성적을 거두면 대개 자아비판으로 끝난다. 국가는 이제 선수를 수용소 군도에 보내기 시작하면 선수가 남아나지 않을 것이란 점을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따라서 내가 알기로는 재앙적인 대회 결과를 남겼더라도 당에서도 축출되지 않으며 다음번 이데올로기 집회 도중 자아비판을 많이 하도록 강요받지도 않는다”고 덧붙였다. 그런데도 1990년 베이징아시안게임 유도 결승에서 패배한 선수가 나중에 귀순해 털어놓은 바에 따르면, 경기에 진 것 때문에 탄광으로 끌려갔다고 털어놓았다. 반면 올림픽에 참가한 선수 가운데 망명한 사례는 전혀 없는데 외교관처럼 선수들도 탈출하기 쉬워 가족들을 볼모로 잡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만약 북한이 출전권과 관계 없이 주어지는 와일드카드 출전권을 얻지 못하면 현재로선 출전권을 확보했던 두 선수, 피겨스케이팅 페어의 김주식(25)-렴태옥(18) 어깨에 공화국의 미래가 걸린 셈이 된다. 캐나다인 코치는 둘이 “거친 다이아먼드 원석”처럼 자신에게 왔으며 “그들의 궁극적인 꿈은 세계 챔피언이 되는 것”이라고 전했다. 김정은 북한 최고 지도자가 평창 대회에 참가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은 미국과의 몇개월에 걸친 입씨름을 끝내고 조국의 위신을 드높이겠다는 취지가 강하게 작용했다고 분석하고 있다. 남한으로선 북한이 참가함으로써 핵 위협의 공포 없이 안전하게 올림픽을 치를 수 있게 됐다는 점을 높이 사고 있다고 방송은 분석했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길섶에서] 방어회 값/임창용 논설위원

    새해 첫날. 마음을 새롭게 다잡을 겸 동네를 한 바퀴 돌고 오니 속이 헛헛하다. 모처럼 아이들까지 모였다며 아내가 수산시장에서 생선회를 떠 오란다. 생각이 비슷한 사람들이 많은가 보다. 텅 비었으려니 하고 달려간 가락시장이 제법 손님들로 북적인다. 수산물 코너마다 어른 팔뚝만 한 대방어를 내놓고 손님들을 유혹한다. ‘맞아, 방어가 제철이지.’ 목소리 큰 호객꾼에 이끌려 걸음을 멈춘다. 몇 분이 드실 거냐기에 네 사람이라고 하니 8만원만 내란다. 시장에선 흥정이 제맛이라고 했지 않나. 용기를 내 7만원에 달라고 해 본다. 호객꾼은 멍게와 석화 몇 개를 덤으로 준다며 8만원을 고수한다. 흐뭇하다. 호기롭게 “오케이”를 외친다. 가게로 들어가는 호객꾼이 내가 뒤따라 가는 줄 몰랐나 보다. 가게 안을 향해 “방어 7만원, 멍게, 석회 만원”이라고 덤덤하게 내뱉는다. 차라리 못 들었으면 좋았을 뻔했다. 새해 첫날부터 따질 수도 없고. 방어 만 원어치만 손해 봤다. 물건값 깎는 아내 뒤에서 항상 주뼛거리던 샌님이 나선 게 잘못이다. 흥정은 아무나 하나. sdragon@seoul.co.kr
  • [서울광장] 집중하라 2018/최용규 편집국 부국장

    [서울광장] 집중하라 2018/최용규 편집국 부국장

    새해맞이는 기대와 소망을 품게 하기에 새롭고 활기찬 법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사정은 어떠한가. 무술년(戊戌年) 새해가 시작됐지만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란 말이 거리낌 없이 튀어나올 정도로 신년 같지 않은 신년이다. 새해의 설렘보다는 긴장감이 등 뒤에 엄습하고, 불투명한 내일이 희망 대신 불안감을 조성하는 게 작금의 현실이다. 시민의 힘으로 출범한 새 정부가 다방면에 걸쳐 고치고 바로잡으려 애를 쓰고 있지만 국내며 외교며 난마처럼 얽힌 난제 가운데 어느 것 하나 속시원하게 해결된 것은 아직 없다. 그렇게 우리는 2018년 새해를 맞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기회 있을 때마다 현 정부는 촛불혁명으로 탄생했음을 강조하고 있다. 문 대통령의 인식처럼 깨어난 시민의 힘이 현 정권을 만들어 냈다는 점을 부정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용광로 같은 이런 열기가 하루아침에 만들어졌겠는가. 아닐 것이다. 힘을 못 쓸 정도로 힘이 빠지지 않았고, 아직은 기세가 살아 있는 권력을 그렇게 날려 버릴 정도의 강력한 힘은 순간의 감정 폭발만으로 형성되는 게 아니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인고의 세월을 거치며 차곡차곡 조직화되고, 내적으로 응축된 힘이 실정을 비집고 일시에 분출됐다고 봐야 한다. 며칠 전 검·경 수장인 문무일 검찰총장과 이철성 경찰청장, 그리고 박상기 법무, 김부겸 행자부 장관이 영화 ‘1987’을 관람했다. 1987년 겨울 치안본부(현 경찰청)로 끌려가 물고문으로 숨진 서울대생 박종철을 ‘탁 하고 (책상을)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사정 당국의 조작 발표는 시민항쟁의 도화선이 됐다. 그해 7월 연세대생 이한열이 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아 숨졌고, 8월 전대협 발대식이 충남대에서 열렸다. 비록 처해 있는 곳은 달랐지만 불의에 항거하는 30년의 유전자(DNA)가 살아 움직인 것이다. 그 힘을 현 정권이 받고 있는 터라 이전 진보 정권과는 다르다.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인들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고 싶지 않았겠나. 그러나 이는 구호로만 되는 것이 결코 아니다. 그럴 만한 힘과 배경이 없었기에 그토록 갈구했지만 관철시키지 못했고, 한 사람은 비운의 대통령으로 기록됐다. 이제 미완의 숙제를 현 정권이 풀어내야 한다. 나라다운 나라는 단순히 상식이 통하는 나라가 아니라 상식이 강물처럼 흐르는 나라다. 이를 위해서는 민주주의 심화가 전제돼야 한다. 지금도 눈앞에서 불합리한 주장과 행위가 횡행하고 있다. 합리가 외면당하고 불합리가 통제받지 않고 작동한다면 진정한 민주주의 국가라 할 수 없다. 적폐청산은 민주주의 회복과 직결돼 있다. 외과수술하듯 환부를 정확히 도려내야 한다. 적폐는 눈에 보이는 것만 제거한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일벌백계식 단죄뿐 아니라 민주주의를 질식시켰던 악습과 폐해를 걷어내는 제도개혁이 근본이다. 겉으로 드러난 독초만 잘라내고 끝내선 안 될 일이다. 지금처럼 정권의 지지율이 높다고 해서 빗자루질 몇 번하고 건물을 올렸다가는 바람 한번 불면 건물이 성할 리 없다. 땅을 깊게 파야 한다. 기반석이 나오면 기반석을 뚫어 견고한 지지대를 세워야 한다. 그러고 나서 건물을 세운다면 그 어떤 풍파도 견딜 수 있다. 새해에 집중해야 할 것은 이것 말고도 또 있다. 다름 아닌 미래 먹거리를 확보하는 일이다. 지금 세계는 4차 산업혁명 블랙홀로 빨려들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반도체 굴기를 현실화한 중국은 4차 산업혁명의 꽃인 인공지능에서 미국을 턱밑까지 추격했다. 그러나 우리의 인공지능 특허출원 건수는 중국에 비교조차 안 될 만큼 초라하다. 정부의 최우선 과제인 일자리 창출은 기존 산업에서는 기대하기 어렵다. ‘신사업’을 일으키는 게 중요하다. 고용은 여기에서 나온다. 그러나 ‘한국적 규제’가 신사업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어느 정권 할 것 없이 규제혁파를 강조했지만 죄다 실패했다. 문 대통령 역시 규제개혁과 혁파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런데 재계 수장들의 신년사 요지는 규제혁파 호소다. 현실과 괴리가 크다는 말 아닌가. 분명한 것은 과잉규제로 자승자박한다면 우리의 미래는 잿빛 미래가 될 것이란 점이다. ykchoi@seoul.co.kr
  • [여기는 남미] 군부정권이 강제 입양한 아기, 40년 만에 가족 찾았다

    [여기는 남미] 군부정권이 강제 입양한 아기, 40년 만에 가족 찾았다

    군사정권이 납치한 여자에게서 태어나 아무도 모르게 불법으로 입양된 여자아이가 40년 만에 혈육을 찾았다. 아르헨티나의 인권단체인 '마요광장 할머니회'는 지난달 29일(현지시간) "실종자 부부 카를로스와 마리아의 딸을 찾아 친척과 연락이 닿았다"고 밝혔다. 카를로스와 마리아 부부는 일명 '더러운 전쟁'의 희생자다. 1976년 쿠데타로 집권한 군부는 반체제 인사를 마구 잡아들여 정보조작, 고문, 비밀처형 등을 자행했다. 역사는 국가테러와 공포정치로 얼룩진 이 시대를 '더러운 전쟁'이라고 부른다. 마리아와 카를로스는 1977년 반체제운동에 가담한 혐의로 군에 끌려갔다. 부인 마리아는 당시 임신 7개월이었다. 마리아는 아기를 낳은 뒤 처형된 것으로 추정되지만 부부의 생사는 아직 공식적으로 확인되지 않았다. 출산 여부도 추정만 가능할 뿐 자신할 수 없었다. '마요광장 할머니회'는 '더러운 전쟁' 때 자식을 잃은 여성들이 결성한 인권단체다. 비참한 최후를 맞은 것으로 보이는 자식들의 생사는 확인하지 못하고 있지만 실종자 자식들에게 친인척을 찾아주는 운동을 하고 있다. 임신한 채 끌려가 출산하고 실종된 여자가 많기 때문이다. DNA(유전자) 검사 끝에 이번에 핏줄을 만나게 된 여성은 '마요광장 할머니회'가 뿌리를 찾아준 127번째 손녀다. '마요광장 할머니회'에 따르면 여성은 1977년 5~6월쯤 당시 반체제인사 감금장소로 사용됐던 해군사관학교에서 태어났다. 여성은 군사독재정권 관계자의 집에 아무도 모르게 입양돼 있었다. '마요광장 할머니회' 덕분에 여성은 아버지의 친동생, 그러니까 고모와 만나게 됐다. 그의 고모는 "생사는 물론 출생 자체도 확신할 수 없었던 조카를 만나게 돼 정말 기쁘다"면서 "무엇보다 조카가 마음의 준비를 하도록 충분한 시간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한편 '마요광장 할머니회'는 실종자 손자손녀의 뿌리찾기 운동을 계속 전개할 예정이다. '마요광장 할머니회'에 따르면 '더러운 전쟁' 때 불법으로 입양돼 뿌리를 모르고 성장한 실종자 자식은 아직 300명 정도 더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더러운 전쟁' 실종자는 약 3만 명에 이른다. 사진=과거 '마요광장 할머니회'가 친인척을 찾아준 한 실종자의 딸. (자료사진) 서울신문 나우뉴스 남미통신원 임석훈 juanlimmx@naver.com
  • “4년 전 대지 조성도 안 됐던 평창, 이젠 IOC도 스키장 엄지척”

    “4년 전 대지 조성도 안 됐던 평창, 이젠 IOC도 스키장 엄지척”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휩쓸려 이대론 어렵다는 말들이 나돌았다. 그래도 다들 올림픽과 월드컵까지 치렀는데 동계올림픽도 ‘어떻게 되겠지’라고 여겼다. 그로부터 1년여 뒤 평창동계올림픽 경기장들은 예정대로 웅장한 모습을 하나둘 드러냈다. 이를 본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종목별 국제경기연맹은 ‘엄지척’이었다. 평창동계올림픽 인프라와 시설, 수송, 정보통신(IT)을 관장하는 김상표(60) 평창조직위 시설사무차장(차관급)은 “시간이 지나서 저절로 이뤄진 건 없다. 과정은 험난했다. 뒤에서 말없이 헌신한 ‘보이지 않는 손’들이 일궈낸 것”이라고 말했다. 그만 해도 지난 4년간 ‘기러기 생활’을 했다. 좋아하던 마라톤도 딱 끊었다. 스트레스로 몸무게가 7㎏이나 빠졌다. 그의 아내는 “꽃미남은 사라지고 폭삭 삭은 얼굴만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지난달 31일 강원 평창조직위원회 사무실에서 이제껏 겪은 ‘희로애락’을 들었다.→평창과의 인연은 어떻게 닿았나. -당시 김진선 조직위원장이 부추겼다. “너, 거기 암만 있어도 차관이나 장관 못 한다. 여기서 시설 부위원장(차관급)을 하라”고 제안했다. 난 강원도 경제부지사(1급)였다. 그렇게 끌려간 게 2014년 4월 17일이었다. 그런데 김 위원장이 얼마 지나지 않아 그만두면서 혼자 고생을 많이 했다. 당시만 해도 평창은 휑했다. 대지 조성도 안 됐다. 그나마 경기장은 예산이 있었으니 나았지만 국제방송센터(IBC)와 선수촌은 민간 자본을 유치해 해결해야 했다. 맨땅에 헤딩이었다. 인구 5000명도 안 되는 이곳에 누가 선수촌을 지어 100% 분양 성공을 생각할 수 있겠나. 알음알음 건설업체를 구했지만 각종 규제로 발목이 잡힌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렇게 첫 삽을 떴다. →정선 알파인스키장 건설이 난관이었다고 들었다. -우리가 활강(다운힐) 코스를 처음 만들다 보니 IOC도 걱정돼 올림픽 개막 2년 전인 2016년 2월에 테스트 이벤트를 하라고 요구했다. (우리는) 환경영향평가와 시민단체 반대 때문에 착공도 못했다. 시간만 흘러가니 국제스키연맹(FIS)도 ‘올림픽이 못 열릴 수도 있겠구나’라고 우려했다. 원래 남녀 코스 2개를 만들어야 하는데 (우김질 덕에) 올림픽 사상 첫 남녀 활강 경기가 한 코스에서 열리게 됐다. 예산을 아껴서 좋기는 한데…. 날씨도 도와주지 않았다. 공사 중에 비가 많이 내려 미들 스테이션의 곤돌라 타워 기둥 방향이 살짝 틀어졌다. 큰 문제는 아니었지만 설계·감독을 맡은 독일업체 도펠마이어가 원칙대로 재시공을 지시했다. 이대로 가면 테스트 이벤트는 물 건너가고 파장도 만만찮았다. 운이 있었던지 일이 묘하게 풀렸다. 당시 조양호 조직위원장의 자가용 비행기 유리 창문에 금이 가 오스트리아 빈 공항에서 10시간가량 머물렀다. 때마침 도펠마이어 대표도 이곳에 볼 일이 있어 즉석 만남을 가졌다. 재시공 대신 1m만 파서 교정하는 것으로 합의했다. 테스트 이벤트에서 극찬이 쏟아졌다. 가장 기뻤던 순간이다.→환경영향평가와 환경단체 주장은 어떻게 풀었나. -환경단체들은 정선 알파인경기장이 들어선 가리왕산이 500년 된 원시림이라고 주장했다. 경기장 건설이 아무리 중요해도 원시림을 훼손할 수 없어 직접 확인하기 위해 현장답사를 갔다. 문헌 조사도 시켰다. 이미 일제강점기 때 벌목이 이뤄졌다. 해방 후에도 국내 목재상들이 대거 벌목한 것으로 나오더라. 그러자 이번엔 자생종 군락지와 천연기념물 보호 등을 이유로 반대했다. 가리왕산 중봉과 하봉 사이에 주목 군락지가 자리했지만 스키 슬로프 예정지를 비켜서 있었다. 가슴을 쓸어내렸다. →예산 때문에 마음고생이 심했다고 했는데. -당초 기존 시설을 재활용하려던 휘닉스 스노경기장이 틀어지면서 예산 문제가 불거졌다. IOC와 종목별 국제경기연맹이 경기장을 둘러본 뒤 “규격과 경사가 다르다”며 재설계를 요구했다. 기획재정부와 문화체육관광부로서는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고 당장 500억원을 만들어 내야 했다. 불똥이 다른 경기장으로 튀었다. 문체부가 ‘전체 경기장 예산 700억원을 줄이라’고 공문을 보냈다. 테스트 이벤트 기한을 맞추기 어려워 ‘설계 변경만은 안 된다’고 항변했지만 돈 앞에 인정은 없었다. 억울한 게 평창올림픽 관련 예산이 14조원이라고 하지만 KTX 경강선(서울~강릉) 공사비를 포함해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이 태반이다. 경기장 건설엔 8400억원이 투입됐을 뿐이다. 돈이 없어 IBC 건설할 땐 간과 쓸개를 빼놓고 다녔다. KT에 겨우 사정해 구두 약속을 받아냈는데 KT 회장이 바뀌면서 흐지부지됐다. 가까스로 포스코까지 끌어들여 IBC 기둥을 세웠다. →IOC·국제경기연맹 등과 다툼이 많았다는데 어떻게 해결했나. -설상 경기장 그랜드스탠드(야외 관람석)가 기억에 남는다. 평창올림픽 유치전에서 한 표라도 더 받기 위해 그랜드스탠드 2만석을 설치하겠다고 발표했다. 막상 지으려고 하니 비용이 만만찮고 위험 부담도 커보였다. 그래서 50%가량 줄인 1만 1000석 규모로 가닥을 잡았다. 아니나 다를까. IOC와 종목별 국제경기연맹이 “홍보를 다 해놨는데 줄이면 어떡하냐”며 들고 일어섰다. 미안했지만 우리 코도 석자여서 밀어붙였다. 다툼은 커져만 갔다. 연구기관을 동원해 설득 작업에 들어갔다. 후배가 원장으로 있는 강원발전연구원에 용역을 맡겼는데 제법 논리가 괜찮았다. 관중 서비스 제공과 수송 문제로 접근했더니 그들도 마지못해 주억거렸다. 또 강릉하키센터를 준공했는데 화장실 수가 부족하다며 더 늘리라고 생떼를 써 곤란한 적도 있었다. 우리 사정은 고려하지 않고 항상 최고를 요구한다. 수용하고 싶어도 돈이 없었다. →‘최순실 사태’ 불똥이 평창올림픽에도 튀었는데…. -당시엔 최순실이 뒤에 있는 줄도 몰랐다. 유일하게 돈이 되는 사업은 대형 텐트 임시 시설인 ‘오버레이’ 건설이었다. 3000억원대 오버레이 사업을 최순실과 관련 있는 스위스 전문 건설업체 ‘누슬리’에 맡기자는 얘기가 내려온 것 같았다. 그런데 대림산업이 적자를 감안하고 턴키(일괄수주) 방식으로 개폐회식장과 부대 시설을 짓기로 했는데, 누슬리에 맡기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야 했다. 개폐회식장과 메달 플라자, 정보통신기술(ICT) 전시관, 부대시설 건설에 주어진 예산은 고작 940억원. 아무도 입찰을 안 해 대림산업에 떠넘긴 것이었다. 그래서 ‘개폐회식장은 올림픽의 꽃이다. 국내 기업이 맡아야 한다’는 논리로 적극 방어했다. 누슬리가 수주했다고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이렇게 일정이 늦어졌는데 예상보다 빨리 올림픽 시설이 완공됐다. -설계 변경과 재설계 등으로 시간을 잡아먹었고, IOC 요구 사항도 많아 일정이 너무 늦어졌다. 속도전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올림픽을 치르지 못할 것 같았다. 매주 금요일마다 공정 관리를 체크했다. 예컨대 공정표를 만들어 공사 진척 사항을 1주 단위로 파악했다. 어디가 진척이 안 되는지, 무엇이 문제인지, 어떤 것을 해결해야 하는지를 한눈에 알 수 있었다. 그제야 공사가 타임 스케줄에 맞춰 따라왔다. 평창올림픽 개막 3개월 전 경기장 12곳을 모두 준공했다. →지붕 없는 개폐회식장에 대한 우려가 많다. -추위 고민을 많이 했다. 그런데 IOC는 관심이 별로 없더라. 동계올림픽은 원래 추운 데서 하는 거라고 쉽게 넘어갔다. 어떤 개막식에서는 영하 11도까지 내려갔는데 얇은 우비를 주는 것으로 끝냈다. 정서상 (우리는) 그럴 수 없어서 남은 기간에 스탠드 좌석 1층과 2층 사이 외부를 아크릴판으로 둘러 바람을 막을 것이다. 시뮬레이션 결과 바람 차단 효과가 75%에 이르렀다. 핫팩과 발열 방석까지 놓으면 2~3시간은 견딜 만할 것이다. 추위보다 폭설이 더 걱정이다. 지붕이 없다 보니 ‘이상 폭설’이 오면 개회식을 강릉에서 여는 ‘플랜B’를 가동해야 한다. 평창 김경두 기자 golders@seoul.co.kr 평창 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
  • [2018 서울신문 신춘문예 동화 당선작] 남자를 위한 우주비행 프로젝트 (유소영)

    [2018 서울신문 신춘문예 동화 당선작] 남자를 위한 우주비행 프로젝트 (유소영)

    “나는 네가 상상도 못할 것을 봤어. 오리온 전투에 참가했었고, 탄호이저 기지에서 빛으로 물든 바다도 봤어.” 넓은 스튜디오를 가득 채운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지금 이 순간, 나를 향하고 있었다. 심장이 터질 것처럼 뛰었다. “…1982년 영화 <블레이드 러너>의 대사예요. 리들리 스콧 감독, 해리슨 포드 주연.” 침착해 머큐리. 할 수 있어. 네가 어떤 고생을 해서 여기까지 왔는데. “프레디가 처음으로 보여준 영화였어요.”원형 스튜디오의 중앙을 가득 채운 대형 홀로그램 화면에 프레디의 사진이 떴다. 누가 로봇 아니랄까봐, 저 로봇미소는 어째 변하질 않냐. 입꼬리만 올라간 프레디 특유의 어색한 미소는 그가 최근 돌보기 시작한 7살짜리 브라이언의 환한 웃음과 대비되어 떨떠름해 보이기까지 했다. ‘아이 돌보기는 이제 지긋지긋해. 웃기지 않아? 그게 내가 제작된 유일한 이유인데. 하지만 그 생각만 하면 유동액이 역류할 것 같아.’ 그런데 너는 아직도 그러고 있구나. 어쩌면 영원히 그래야겠지.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D구역 아동보호시설 아이들은 대부분 생일을 자기가 정해요. 언제인지 모르니까. 저는 프레디와 처음 만난 날이 생일이죠. 7살 생일날 밤, 프로틴 바를 하나 먹고 자려고 누워 있는데 갑자기 프레디가 그러더라구요. 우리, 나가자.” 그때 꽉 잡혔던 손목의 감각을 아직도 기억한다. 정신없이 이끌려 따라간 곳은 기숙사 옥상이었다. 프레디는 옥상 한쪽 벽에 기대 앉았다. 나도 그 옆에 쪼그려 앉았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우리 둘뿐이었다. 여기 춥고 무서워, 나는 중얼거리며 프레디 옆에 몸을 바짝 붙였다. 프레디는 대답 없이 팔에 붙은 버튼을 만지작거렸다. 별안간 깜깜하던 밤하늘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눈앞을 가득 채운 별들은 금방이라도 내게 쏟아질 듯 가까웠다. 우와! 나도 모르게 입술 새로 탄성이 새어나왔다. “일곱 살짜리가 볼 건 아닌데, 그래도 볼래?”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건 분명 반칙이었다. 이미 영화의 첫 장면이 눈앞에 펼쳐진 이상, 내게 선택권 따위는 없었다. 하지만 순진했던 나는 고개를 마구 끄덕였다. “나는 네가 상상도 못할 것을 봤어. 오리온 전투에 참가했었고, 탄호이저 기지에서 빛으로 물든 바다도 봤어.” 프레디는 영화를 보는 내내, 거의 모든 대사를 목소리까지 바꿔 가며 따라했다. 좀 조용히 하라고 말하려던 순간이었다. “그 모든 기억이 곧 사라지겠지…. 빗속의 내 눈물처럼.”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나는, 어둠 속에서 푸르게 빛나던 프레디의 옆얼굴. 영화 속 안드로이드 로봇의 마지막 대사를 따라하면서, 프레디는 분명 울고 있었다. 내가 로봇의 눈물을 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꼬맹아, 재미있었어?” 영화가 끝나자 프레디는 언제 울었냐는 듯 예의 그 쾌활하고 능글맞은 목소리로 돌아왔다. 나는 열심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재미있었다, 정말로. “너 정말 별난 애다. 보통 5분 내로 지루해하던데. 끝까지 다 본 애는 네가 처음이야.” “나, 저기 갈래.” 아, 정말이지 일곱 살이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이었다. 그때의 나는 방금 전까지 눈앞에 펼쳐졌던 별세계에 진짜 갈 수 있다고 믿었으니까. 프레디가 피식 웃었다. “나도 가고 싶어. 우주로 갈 수만 있다면 없는 영혼이라도 팔겠다.” “그럼, 가자.” 나는 프레디의 옷소매를 잡아당겼다. “그래, 가자.” “언제? 언제 가?” “음….” 잠깐 말이 없던 프레디는 손가락으로 자기 머리를 툭툭, 가리켜 보였다. “여기 저장돼 있는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정말?” “그럼.” 프레디는 우주에 가려면 알아야 할 게 많으니까, 영화를 많이 봐 둬야 해. 라고 덧붙였다. 아아, 그렇구나. 일곱 살의 나는 홀린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우주를 꿈꿨던 건 그때부터였어요.” 대형 홀로그램 화면을 가득 채운 내 얼굴이 보였다. 프레디가 영화를 보여 줄 때마다 얼빠진 표정이라고 놀렸던, 꿈꾸는 듯한 눈동자였다. “하지만 제 인생은 시작부터 지지리도 운이 없었죠. 하필 D구역에서, 자연출산으로 태어났어요. 그래도 여자로 태어날 가능성이 50%는 있었는데, 보시다시피 그마저도 저버렸죠. 그것도 모자라 세상에 나오자마자 길가에 버려져서 아동보호시설에 맡겨졌어요. 저도 알아요. 우주는 여자, 그것도 최고로 우수한 유전자들만 배양한 인공자궁에서 태어나는 A구역 여자들에게만 허락된 영역이라는 거. 하지만 기적처럼 이 프로젝트가 시작되었고, 저는 166만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지금 이 자리에 서 있어요. 이번 한 번만, 제 인생에도 행운이 찾아와 주길 바라면 안 될까요?” 다음 순간, 고막을 찢을 것 같은 함성이 장내를 울렸다. 홀로그램 화면을 가득 채운 내 이름 아래 숫자가 미친 듯이 올라가고 있었다.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나한테 투표했다고? 나는 멍하니 화면을 쳐다보았다. 그 어마어마한 숫자가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지구 연방 시민 여러분, 정말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석 달간 이어져 온 프로젝트가 드디어 끝을 보이고 있는데요. 이제, 최후의 한 명을 밝힐 차례입니다. 지구연방 항공우주국 QUEEN에서 주최한 <남자를 위한 우주 비행 프로젝트>의 최종 탑승자는,” 사회자가 여기까지 말하고 입을 다물자, 일제히 야유가 쏟아졌다. 그녀는 스튜디오를 훑으며 여유롭게 웃어 보였다. 제발. 제발. 제발! 1초가 영원처럼 느껴지는 순간, 사회자가 다시 입을 열었다. “행운의 주인공은 바로 D구역이 낳은 기적의 소년, 머큐리 군입니다! 축하드립니다!” 그 이후에 정확히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멍멍하게 울리던 함성, 번쩍이는 플래시, 내 목에 걸린 지구 모양 메달의 무게, 대형 홀로그램 화면을 꽉 채우던 실시간 리플들, 밤하늘에 수없이 아로새겨지던 네온 폭죽들, 밖으로 튀어나올 듯 거세게 뛰던 내 심장 박동, 그런 것들이 드문드문 기억날 뿐이다. 다음날 새벽, 눈뜨기가 무섭게 최신형 AVR 세트 광고 촬영이 시작되었다. AVR 콘택트렌즈와 귀 뒤에 부착하는 센서티브 패치, 웨어러블 슈트에 AVR 워치까지, 그야말로 풀세트였다. AVR 기기를 주렁주렁 차고 침대에 누워 있자니, 실험용 생쥐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나는 괜히 몇 번 몸을 떨었다. 광고 촬영 장소는 카페였다. AVR 시스템에 접속해 장소를 설정하고 이동 버튼을 누르자, 나는 순식간에 어느 대형 체인 카페의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이동하자마자 맨 먼저 느껴진 것은 감미로운 커피 향과 갓 구워진 빵 냄새였다. 뒤이어 은은하게 흐르는 카페 안의 음악 소리가 귓가를 맴돌았다. 쿠션감이 가득한 의자는 편안했고, 노란빛이 감도는 조명은 정면으로 올려다보아도 눈이 시리지 않았다. 방금 전까지 나는 자고 일어난 모양 그대로 숙소 침대에 누워 있었는데, 아니 지금도 그러고 있을 텐데, 한껏 꾸미고 카페에 여유롭게 앉아 있는 또 다른 나는 테이블에 세팅된 초콜릿 케이크를 포크로 우아하게 떠냈다. 촉촉한 빵과 끈적이는 초콜릿의 질감이 그대로 느껴졌다. 떠낸 케이크를 입에 넣었다. “!” 쌉싸름하고 달콤한 초콜릿이 혀를 싸고돌았다. 프로틴 바만 먹고 살았던 나로서는 생전 처음 느껴 보는 맛이었다. 입속에서 폭죽이 터지는 듯한 느낌에 나는 잠시 멍해졌다. “저기, 머큐리다!” 날카로운 하이 톤의 목소리에 퍼뜩 정신이 들었다. 어느새 몰려든 내 팬클럽 회원들이 카페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촬영감독의 미간이 확 찌푸려지는 게 보였다. 하지만 그녀는 곧 언제 그랬냐는 듯 상냥하게 웃어 보였다. “죄송하지만, 촬영에 조금만 협조해 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저렇게까지 공손할 필요는 없어 보이는데, 감독은 C구역 사람인가 보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감독의 애처로운 부탁에도 불구하고, 카페에 접속하는 사람들의 숫자는 가히 폭주 상태였다. 어느새 넓은 홀을 꽉 채우며 테이블 바로 앞까지 몰려온 그녀들은 내 몸 이곳저곳을 함부로 만지고 잡아당기기 시작했다. “악! 아파!” 비명 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아픔도 감각이라는 걸 잊고 있었어! 최신 버전 AVR답게 머리카락이 통째로 뜯기는 아픔은 너무나도 생생했다. 나는 필사적으로 손을 뻗어 AVR 전원을 껐다. 짧은 삐 소리와 함께 다시 침대 시트와 주렁주렁 달린 AVR 세트들의 감촉이 온 몸으로 느껴졌다. 왠지 모를 한숨이 나왔다. 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촬영을 마치고 QUEEN에 도착하자마자, 공기는 180도 달라졌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나는 A구역 여자들마저 극성팬으로 만든 기적의 소년이었는데, QUEEN으로 들어오는 순간 거짓말처럼 다시 D구역 머저리 남자아이가 되어 있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나를 훑는 눈길들은 서늘하기 그지없었다. 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나는 우주로 갈 거야. “네가 머큐리구나. 나는 이번 프로젝트의 총괄 책임자인 비치 박사라고 한다.” 그녀의 첫인상은 뭐랄까… A구역을 사람으로 만들면 나올 것 같은, 그야말로 ‘A구역 표준형 인간’이었다. 나이를 가늠할 수 없을 만큼 탄력 있는 피부와 완벽한 몸매, 지적이면서도 단정한 인상까지. 금발 머리를 한 올도 삐져나오지 않게 틀어 올렸는데, 그 동그란 머리가 각진 은빛 유니폼과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나는 엉거주춤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오늘부터 7일간 여기 머물면서 우주 비행에 필요한 훈련과 검사들을 할 거야. 그리고 7일 후 우주로 출발한다. 더 궁금한 점은?” “아, 저기….” “다음 일정은 기자회견이야. 이동.” 내 말은 못 들은 건지 안 들은 건지, 비치 박사는 자기 팔목에 채워진 AVR 워치만 만지작거렸다. 나는 못 다한 말을 혀 밑에 꾹 눌러 씹은 채 조용히 그 뒤를 따랐다. 벌써 세 시간이 지났는데, 기자회견은 도무지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A구역마저 사로잡은 애교 한 번 보여 달라는 기자의 끈덕진 요구에 나는 마지못해 볼에 어색하게 바람을 넣었다. 욕이 나오려는 걸 꾹꾹 참고 억지로 웃어 보이느라 광대뼈가 아려왔다. 내가 생각한 인터뷰는 이런 게 아니었다. 아니, 다른 우주비행사들 인터뷰 영상에는 멋있고 프로페셔널한 질문들이 막 넘쳐나던데, 어? 그래서 어제 밤을 새서 예상 질문이랑 답변도 다 연습했는데. 왜, 왜 나한테는 피부 관리 비결이나 물어보고, 애교나 부리라는 거야?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자, 그럼 다음 질문. 자신이 QUEEN의 수석연구원이었다고 주장한 메이 박사가 공개한 영상이 오디션이 진행되는 내내 큰 이슈가 되었는데요. 머큐리 군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그게 무슨….” “잠깐, 사전에 협의되지 않은 질문입니다. 머큐리 군은 이 질문에 대답하지 않습니다.” 내가 미처 입을 열기도 전에, 옆에 있던 비치 박사가 단호하게 말을 잘랐다. “QUEEN에서 이미 입장을 발표한 바와 같이, 문제의 영상은 논리적 근거가 1%도 없는 가십성 루머에 불과합니다. 현재 QUEEN은 이에 대한 법적 대응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메이 박사의 영상과 관련해 매니스트(MENIST) 또한 QUEEN 측에 의혹을 제기했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QUEEN의 입장은 앞서 말한 바와 같으며, 따로 언급할 가치가 없는 사안입니다.” 기자들의 머리 위로 앞다투어 초록색 광선이 나타났다. 다들 실시간 기사 전송 중이구나. 이런저런 생각들로 머리가 복잡했지만,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미소를 지어 보였다. 다시 한 번 초록색 광선이 우수수 떠올랐다. 좋아, 완벽했어.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걸 아무도 눈치 못 챘을 거야. 나는 숙소로 돌아오자마자 AVR 검색 기능을 켰다. 메이 박사는 뭐고, 매니스트는 또 뭐야? 생전 처음 듣는 이름들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D구역에는 제대로 된 미디어나 검색 장치가 하나도 없었다. 고작해야 스마트폰이니, 말 다했지 뭐. 요즘 누가 스마트폰 쓴다고. ‘메이 박사 영상’을 입력하자 사람들이 올려놓은 문제의 영상이 여기저기 떴다. 이미 모두 재생이 막힌 상태라는 게 문제였지만, 그래도 영상 아래 달렸던 댓글들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나는 정보의 조각들을 짜 맞추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내가 실험체라는 거네?” 메이 박사의 주장은 충격적이었다. 그녀의 말대로라면 QUEEN의 최종 목적은 우주 공간에서 AVR 시스템을 구현시키는 것으로, 이미 상당 부분 진행되었다고 했다. 하지만 우주는 지구와는 조건이 다르기 때문에, 실험체가 꼭 필요했다. 여기서부터가 문제였다. 희생당할 게 뻔한 실험체를 QUEEN의 고급인력들로 채울 수는 없었다. 실험을 진행하는 데 드는 막대한 비용 또한 골칫거리였다. 그래서 열린 게 ‘남자를 위한 우주비행 프로젝트’라는 거였다. 실험체도 얻고, 프로젝트에 쏟아지는 사람들의 관심에 따라 거대기업들로부터 굴러들어오는 지원금은 덤이라는 게 그녀의 결론이었다. 사람들은 댓글마다 갑론을박을 벌이고 있었다. <이게 진짜일까요?> <queen에서 듯.=“” 헛소리인=“” 그냥=“” 생각에는=“” 제=“” 한다던데요?=“” 강경대응=“”> <매니스트에서도 진상규명을 요구하던데, 뭔가 있으니까 그러는 거 아닐까요?> 맞다. 매니스트. 저건 뭐지? 나는 다시 검색어를 입력했다. <매니스트: 여남이 평등하며 가치가 동등하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 또는 그 단체.> 백과사전에서 말하는 매니스트는 간단명료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그 아래에는 훨씬 복잡한 댓글들이 가득했다. <여남의 권리 평등은 법으로 보장되어 있는데 웬 헛소리?> <이론과 실제는 다르죠. 모든 직업에 여남 모두 지원할 수 있도록 되어 있지만, 실제로 남자가 뽑혔단 얘기 들어보셨어요? 분명히 차별은 있어요.> <여자가 가진 특성이 현대 사회에 더 적합한 걸 어쩌란 말입니까? 남자들이 가진 거라고는 육체적 힘뿐이잖아요. 요즘 세상에 로봇이 있는데 누가 그걸 남자한테 시키겠어요?> <그러니까 문제죠. 심지어 D구역에서조차 여아선호사상 때문에 남자가 태어나면 버리거나 낙태시킨다고 하더라구요. 최소한 아이들이 죽는 건 막아야 하지 않을까요?> <이분 대화가 안 통하네. D구역 여자들이 스스로 그렇게 하겠다는 걸 우리가 무슨 수로 막아요? 당신 매니스트죠?> <아니, 그건 아닌데….> 한 가지 확실한 건, ‘매니스트’라는 단어는 욕이나 마찬가지였다. 너 매니스트지? 는 상대방을 꼬리 내리게 하는 마법의 주문 같았다. 아니, 그런데 매니스트고 뭐고 간에…. 나는 어떻게 되는 거야? 분명히 알게 된 건 많은데, 정작 중요한 의문은 여전히 그대로 남아 있었다. 메이 박사 영상이 사실일까? 그대로 믿기에는 너무나도 허무맹랑한 소설 같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소설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왜냐하면 나는 남자, 그것도 D구역 남자니까. “에휴, 모르겠다.” 나는 AVR 워치의 전원을 꺼 버렸다. 렌즈도 빼고, 센서티브 패치도 떼고, 종일 입고 있던 슈트도 벗어던지고 침대에 몸을 던졌다. 메이, AVR 시스템, 실험체, QUEEN, 매니스트, 여자, 남자… 방금 전까지 봤던 낱말들이 뒤죽박죽 섞여 머리 위를 떠다녔다. 나는 고개를 세차게 흔들어 몰려드는 글자들을 쫓아냈다. 눈꺼풀이 점점 무거워졌다. 다음날 첫 번째 일정은 우주선 홍채 등록이었다. 홍채 등록은 AVR로 대체가 불가능할 정도로 세밀한 작업이기 때문에 실제 눈동자가 필요하다고 했다. 덕분에 나는 직접 우주선으로 가는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내 이름을 딴 우주선, 머큐리-17473호는 모든 점검을 마치고 발사대에 설치된 상태였다. 출발 신호가 떨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거대한 우주선을 보자 새삼 가슴이 벅찼다. “자, 홍채가 제대로 등록됐는지 점검한다. 눈을 여기 갖다 대.” 비치 박사가 시키는 대로 홍채를 인식시키자, 육중한 우주선 문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다. 나는 정신없이 우주선 내부를 둘러보았다. 여기저기서 계기판과 레버, 버튼들이 깜박이고 있었다. “저 중앙에 있는 녹색 버튼이 출발 버튼, 그 옆에 있는 건 자동항로검색장치….” “자동항로검색장치를 아나?” “인공 지능에 등록된 우주 지도를 이용해서 목적지의 좌표를 찍으면 알아서 최단거리의 항로를 찾아주는 장치죠,” “그 위에 있는 파란색 레버는?” “수동조종레버요. 작동법도 싹 다 외웠어요. 물론 실제로 해 본 적은 없지만.” “보통이 아니군.” 비치 박사가 찌르는 듯한 시선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나 또한 눈을 피하지 않았다. “어디서 감히….” 비치 박사가 입을 열려는 찰나, 연구원 한 명이 그녀에게로 급하게 뛰어왔다. 그녀의 말을 듣던 비치 박사가 곧 입술을 잘근거리며 내 쪽으로 걸어왔다. “넌 일단 돌아가 있어.” 비치 박사는 그 말만 남긴 채 쌩하니 몸을 돌렸다. 하여튼 싸가지 없긴. 이번엔 또 뭐야? 나는 부지런히 숙소로 걸음을 옮겼다. “매니스트, QUEEN 측에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시위 시작?” AVR 시스템을 켜자마자 기사들이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되고 있었다. 아까 숙소로 올 때 주변에서 어른거리던 것들이 그럼 매니스트 회원들이었나 보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부지런히 기사를 클릭했다. “뭘 보고 있는 거지?” 아뿔싸. 나는 천천히 돌아섰다. 비치 박사가 문간에 서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5분 내로 인터뷰실로 이동해. 긴급 기자회견이야.” “하지만….” “메이의 영상은 당연히 거짓말이야. 그래서 너한테 알리지도 않은 거고. 다만 지금 여론이 너무 뒤숭숭하니까 네가 나서서 불필요한 헛소문을 좀 멈추라는 뜻이야. 알겠니?” “….” “지금 헛소문이 돌아봤자 너한테 좋을 건 하나도 없어.” 그래. 지금 헛소문이 돌아봤자 나한테 좋을 건 하나도 없지. 나는 비치 박사의 말을 떠올리며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저는 QUEEN과 비치 박사님을 전적으로 신뢰합니다. 매니스트 회원들은 근거 없는 루머에 휘둘리고 있어요. 당장 불법 시위를 멈춰야 합니다.” 말이 끝나자마자 기자들이 앞다투어 손을 들었다. 지켜보고 있던 비치 박사가 손을 들어 웅성거리는 장내를 정리했다. “머큐리 군의 입장 표명은 이상입니다. 기자회견을 종료하기 전에, QUEEN 측에서 준비한 영상을 이 자리에서 최초로 공개하겠습니다.” 비치 박사는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버튼을 눌렀다. 심드렁하게 화면을 쳐다보던 나는 영상이 재생되자마자 튕기듯 일어섰다. “프레디!” 화면에 등장한 건 프레디의 얼굴이었다. “안녕, 머큐리. 잘 지내고 있지? 오늘이 벌써 9월 4일이야. 네 생일 이브.” 그러고 보니 내일이 내 생일인 것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우리는 항상 9월 4일에서 9월 5일로 넘어가는 밤, 12시가 되면 기숙사 옥상에서 영화를 봤지. 한 번도 빼먹은 적이 없었는데, 이번 생일에 너는 QUEEN 숙소에 있겠구나. 그곳 옥상은 어때? 보고 싶어, 머큐리.” 영상은 거기서 끝이었다. 기자들이 앞다투어 소감을 물었다. 나는 거의 울기 직전의 표정으로 너무 놀랍고 보고 싶다는 등의 말을 주워섬겼다. 기자들의 머리 위로 녹색 광선이 휙휙 지나갔다. 아마 실시간으로 ‘머큐리와 프레디, 감동적인 만남의 현장!’ 따위의 기사가 쏟아지고 있을 것이다. 나와 프레디의 기사가 매니스트의 시위 기사를 밀어낼 수 있을까? 알 수 없는 일이었지만, 비치 박사는 꽤 만족한 얼굴이었다. “좋아. 오늘 일정은 여기서 끝이야. 쉬어도 좋다.”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나는 숙소로 이동했다. AVR 워치를 뽑아내듯 벗겨내 던져 버리고, 침대 위에 쪼그려 앉았다. 춥지도 않은데 몸이 덜덜 떨려왔다. 프레디와 나는, 단 한 번도 9월 4일에서 9월 5일로 넘어가는 밤 12시에 영화를 본 적이 없었다. 처음 영화를 보던 날은 9월 5일에서 9월 6일로 넘어가던 밤이었다. 그 이후로는 시도 때도 없이 영화를 봤었고, 생일이 되면 내가 영화를 보여 달라고 조르긴 했지만 시간을 정해놓은 적은 없었다. 옥상은 더더욱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처음 영화를 보던 날, 내내 옥상에서 찬바람을 맞은 내가 지독한 감기에 걸려 몇 주를 앓았기 때문에 프레디는 그 이후로 옥상이라는 말만 나와도 거부 반응을 일으켰다. 프레디는 왜 그런 말을 했을까? ‘9월 4일에서 9월 5일로 넘어가는 밤, 12시가 되면 기숙사 옥상에서 영화를 봤지.’ ‘이번 생일에 너는 QUEEN의 숙소에 있겠구나.’ ‘그곳 옥상은 어때?’ ‘보고 싶어.’ 순간 머릿속에 불이 번쩍, 했다. 지금이 몇 시지? 튕기듯 일어나 AVR 워치를 켜자, 11시를 가리키는 계기판 알림음이 울렸다. 나는 알림음이 끝나기도 전에 AVR 시스템의 전원을 껐다. A구역에서 AVR 없이 움직인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였지만, 실시간 위치를 노출시키는 것보다는 나았다. 나는 살금살금 숙소를 빠져나왔다. 옥상은 여기서 61층 위. 진공관에 타는 게 가장 빠르겠지만 들킬 위험이 너무 높다. 나는 계단 쪽으로 눈을 돌렸다. 아마 이 건물이 세워진 이래 한 번도 쓰인 적 없는 계단일 것이다. 1일 필수 운동량조차 실내 운동기구로 해결하는 A구역 사람들이 건물에 계단을 만든 것 자체가 기적이었다. 하지만 D구역에서 14년을 살아온 나라면 얘기가 다르지. 나는 심호흡을 하고 계단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각오는 했지만, 61층을 걸어 올라간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당장이라도 주저앉고 싶었지만 계단을 오르는 데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낭비했기 때문에 멈출 수가 없었다. AVR 시스템을 껐으니 지금이 몇 시인지도 알 도리가 없었다. 그저 최대한 빨리 도착하는 수밖에. 나는 얼얼한 다리를 이끌고 걸음을 재촉했다. 드디어, 옥상이었다. 나는 쓰러지듯 한쪽 벽에 기대앉았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 나 하나뿐이었다. 여기 춥고 무서워, 나는 중얼거리며 두 팔로 무릎을 감쌌다. 그 순간 내 귓가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열네 살짜리가 볼 건 아닌데, 그래도 볼래?” “프레디!” 조용히 해야지, 프레디가 속삭였다. 나는 재빨리 입을 다물었다. 프레디가 씩 웃으며 팔에 붙은 버튼을 만지작거렸다. 깜깜하던 밤하늘이 환해짐과 동시에, 나는 입을 틀어막았다. 영상에 등장한 사람은 비치 박사였다. 그리고 그녀 앞에 한 사람이 등을 보이며 서 있었다. “…시위가 갈수록 커지고 있어. 이제는 머큐리 팬클럽까지 합세하고 있다고.” “지금 그게 문제가 아냐.” “그럼? 대체 이것보다 큰 문제가 뭐야?” “머큐리가 우주선 조종법을 알아. D구역 남자애 주제에 건방지게 어디서 주워들은 건지. 하도 어려서 아무것도 모를 줄 알고 뽑아놨더니, 내 발등을 내가 찍었어.” “뭐? 그럼 어쩌자고?” “나도 모르겠어. 하지만 머큐리가 우주선 안에서 수동조종이라도 한다면 통제할 방법이 없어. 무슨 일이 있어도 저런 걸 우주선에 태워선 안 돼.” 영상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오늘 밤 12시에 공개될 거야.” 프레디가 말했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한동안 둘 다 말이 없었다. 다시 입을 연 건 프레디였다. “돌아가자, 머큐리.” 나는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프레디가 믿어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방금 영상 못 봤어?” “봤어.” “여기 있으면 위험해. 메이 박사의 영상은 거짓말이 아냐. 저들은 애초에 널 우주선에 태울 생각이 없어! 그저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널 카메라 앞에 내세워서 이용할 뿐이지, 나중에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고.” “나도 알아.” “그럼 돌아가자. 난 이런 곳에 너를 1초도 놔둘 수 없어.” “아니, 나는 안 돌아가.” “머큐리!” 프레디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프레디, D구역과 우주의 공통점이 뭔지 알아?” “뭐?” “둘 다 AVR 시스템이 안 통한다는 거야. 우주는 누구에게나 평등한 곳이니까. 우주에 가는 길이 평등하지 않아서 문제였지. 그런데 이렇게 기회가 왔잖아. 이제 와서 스스로 이걸 포기하라고?” “머큐리, 우주에 가고 싶은 건 나도 마찬가지야. 아니, 내가 더 간절할지도 모르지. 너는 7년 동안 간직한 꿈이지만 나는 59년이니까.” 프레디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하지만 머큐리, 지금 네가 우주에서 살아남을 확률은 0%에 수렴해.” “0%에 수렴한다는 말은 0%는 아니라는 말이네. 생각보다 희망적인데?” “머큐리!” “내가 우주에서 살아남을 확률이 0%에 수렴한다면, 내가 지구에서 살아남을 확률은 그냥 0%야. 왜 아직도 그걸 몰라?” “뭐?” “네가 영원히 아이 돌보기 로봇에서 벗어날 수 없듯이, 나 또한 영원히 D구역 남자니까. 지구에서 우리에게 허락된 미래가 있어?” “….” “아주 조금의 가능성이라도 있다면, 난 그걸 택하고 싶어.” 다시, 한동안 둘 다 말이 없었다. 이번에도 먼저 입을 연 건 프레디였다. “머큐리, 마지막으로 물을게. 정말 나랑 같이 가지 않을 거야? 나를 여기 데려다 준 매니스트 회원들이 우리가 돌아가는 걸 돕기 위해 기다리고 있어. 지금이 아니면 이런 기회는 두 번 다시 없어.” “미안해. 하지만 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없는 건 나도 마찬가지야.” “그럼 좋아, 머큐리. 우주에 간다 치자고. 지금 QUEEN 주위에 수십만 명이 있어. 우주선까지는 어떻게 갈 거야?” “어차피 다 AVR 홀로그램이야. CCTV에만 안 들키면 돼. 밤이고, 나는 몸집이 작으니까 잘 숨으면 눈에 안 띌 수도 있어.” “무모한 짓인 걸 알면서도 해보겠다는 거지, 결국은.” 프레디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불쑥 손을 내밀었다. “그럼, 네 AVR 세트를 나한테 줘.” “뭐?” “난 인간형 로봇이니까, AVR 착용이 가능할 거야. 그럼 너 대신 내 위치가 노출되겠지. 오래는 못 버티겠지만, 시간을 조금 더 벌어줄 수는 있을 거야.” “하지만 프레디, 너무 위험하잖아!” “그건 너도 마찬가지야. 너는 하면서, 나는 하지 말라는 건 반칙 아냐?” 프레디가 내 손에서 AVR 워치를 풀었다. 이러면 안 된다고 해야 하는데, 어쩐지 움직일 수가 없었다. 내가 멍청히 서 있는 사이, 프레디의 손목에 내 워치가 채워졌다. 다음은 렌즈, 그 다음은 센서티브 패치, 마지막으로 내 웨어러블 슈트와 프레디의 옷까지 바뀌었다. 내가 된 프레디가, 프레디가 된 나를 보고 웃었다. “이 마당에 부담 주긴 싫지만, 이렇게 된 이상 넌 꼭 성공해야 돼.” “프레디….” 지금 울면 안 돼. 프레디의 기억 속에 그렇게 남으면 안 돼. 애써 웃어 보이려 노력하는데도 눈가가 자꾸 화끈거렸다. 프레디가 나를 꽉 끌어안았다. “머큐리, 그거 알아? 네가 이 프로젝트 지원하던 날 밤에 본 영화, 그게 내 저장 장치 속 마지막 영화였어.” 그 말을 마지막으로 프레디가 등을 돌렸다. 곧이어 빠르게 계단을 내려가는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나는 계단을 향해 무작정 소리쳤다. 울음 때문에 발음이 제멋대로 뭉개져 나왔다. “프레디! 나 꼭 돌아올게! 옥상, 옥상으로 올 거야! 그러니까 기다려…. 무조건 기다리고 있어야 돼!” 내 말이 들렸을까. 발소리는 점점 작아지더니 곧 사라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숙소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홀로그램들이 크게 동요하며 일렁거렸다. 홀로그램들은 일제히 비행장 반대 방향으로 몰리기 시작했다. 지금이다.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계단으로 달렸다. 바깥은 아수라장이었다. 여기저기 홀로그램들이 떼 지어 몰려다니고, 경비로봇들이 울리는 사이렌 소리가 날카롭게 귀를 파고들었다. 나는 비행장 쪽으로 있는 힘을 다해 달렸다. 목에서 쇠 맛이 나더니, 나중에는 피 맛이 났다. 머큐리-17473호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조금만 더, 열 걸음만 더, 한 걸음만 더…! “홍채를 인식합니다.” 정신없이 얼굴을 갖다 대자, 경쾌한 안내 음성이 울렸다. “환영합니다! 비행사는 우주선 안으로 입장해 주십시오.” 우주선 전체가 윙윙거리며 진동했다. 계기판과 레버, 버튼에 불이 깜빡였다. 머큐리-17473호는 날아오를 준비를 마치고 비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조종간으로 다가갔다. 녹색 버튼을 누르자 추진 로켓이 굉음을 내며 떨리기 시작했다. 7살 생일날 밤, 내 앞에 금방이라도 쏟아져 내릴 것처럼 반짝이던 별들이 떠올랐다. 주인공 로봇을 흉내 내던 프레디의 눈물방울이 별빛에 반사되어 빛났다. 꿈꾸는 듯 펼쳐졌던 그 모든 것들이 지금 이 순간 우주선 밖으로 보이는 밤하늘과 겹쳐졌다. 얼굴에 번진 눈물을 대충 훔쳐내고, 조종석에 앉아 벨트를 채웠다. 남자, 여자, D구역, A구역, 비치 박사, QUEEN, 그리고 나를 괴롭게 했던 모든 것들. 안녕히 계세요. 나는 이제 떠날 거예요. 우주로 갈 거예요. 장미성운의 그 오묘한 빛깔을 내 눈으로 보고, 말머리성운의 머리 위를 비행할 거예요. 별의 물결이 흐르는 파로크 바다를 항해하고, 불사라 지구의 쏟아지는 운석들 사이에서 아찔한 곡예비행도 할 거예요. 이제 막 태어나는 별을 발견하면 프레디와 내 이름을 붙여줄 거고, 주어진 운명을 다하고 사라지는 별도 말없이 지켜볼 거예요. 우주에서라면 그 모든 것이 가능하죠. 나는, 그냥 머큐리일 뿐이니까. “가자, 머큐리.” 수동 조종 레버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2166년 9월 5일 01시 06분 11초, 머큐리-17473호 발사.
  • [2018 서울신문 신춘문예 희곡 당선작] 가난 포르노 (최고나)

    [2018 서울신문 신춘문예 희곡 당선작] 가난 포르노 (최고나)

    무대 쪽방촌 느낌의 골방. 원근감을 주기 위해 사선으로 놓인 방 두 개가 나란히 놓여 있다. 관객석에서 앞쪽 방은 들어찰 곳 없이 빽빽한 쓰레기(보기에 따라서 생활용품으로 보일 수도 있다)가 들어차 있으며 몸 하나 간신히 뉘일 정도로 좁은 공간이 쌓아 놓은 물건들을 중심으로 둥그렇다. 그 옆방은 그에 비해 제법 집의 형태를 갖추었다. 티브이도 있고 버너도 있고 조그만 냉장고와 작은 침대도 있다. 앞쪽 방 위쪽으로 CCTV가 연결되어 있다. 그 화면은 뒷방 티브이를 통해 볼 수 있다.남자, 휴대폰을 귀에 대고 옆집을 살피는 듯 창밖을 힐끔 본다. 남 (통화 중) 모르긴 해도 강남에 빌딩 두어 채는 가지고 있을 거라니까. 구라 아니야. 몇 달간 이 몸이 뭐빠지게 고생해서 알아낸 거지. 원래 있는 사람들이 지 꺼 꽉 쥐고 안 쓰잖아. 그 할매 골골거리는 꼴이 길어봐야 두 달이야, 두 달. 두 달 후면 여기 청산하고 우리 가족 넷이서 알콩달콩…. 만삭의 여, 양손 가득 짐을 가지고 들어선다. 손이 모자라 휴대폰은 어깨로 귀에 댄 채다. 여 꼭 이렇게까지 해야 돼? 남 얘기 다 끝났잖아. 나도 좋아서 이러는 거 아니거든? 그냥 우리 지금은(여자의 배 내려다 보며) 알콩이랑 달콩이만 생각하자. 여 알콩하고 달콩한 그 기간이 두 달 남았다는 건 확실한 사실이구? 남 그럼! 당연하지! 여 (짐 내려놓고) 당연은 무슨! 지금 상황만 봐도 그래. 너랑 나랑 아침부터 저녁까지 죽어라 살펴봐도 삼시세끼 꼬박 챙겨 드셔, 새벽기도 빠짐없이 참석하셔, 아침마다 정정하게 일 나가셔, 도대체 어느 부분에서 너랑 알콩달콩인데? 남 너 오빠, 못 믿어? 여 응. (사이) 그러다 천수해로 하면 어쩌려고? 남 확실하다니까. 걷는 폼이 골골한 게 먹는 약도 확연히 늘어났고, 새벽에 잔기침도 엄청나게 심해졌어. 길어봐야 올해 설까지야. 여 그래도…. 남 (여자의 말 막으며) 어쩔 수 없잖아. 여 (흘겨보며 짐 내민다) 이거나 받아. 남 (물건 받아들며) 이게 뭐야? 생활비도 없다면서. 여 복지관에서. 겨울이라고 이것저것 챙겨주네. 확실히 강남이 좋긴 좋아. 나눠주는 것부터가 격이 달라. 쌀 하나를 줘도 꼭 이천 쌀만 준다니까. 남, 문 옆으로 쌀가마니랑 받아 온 물건들을 차곡차곡 쌓아 놓는다. 여, 봉투 안을 뒤적거리다 과자 봉지를 꺼내든다. 여 (과자를 우적거리며 바닥 짚는다) 아직 한 겨울도 안 됐는데 벌써부터 바닥이 냉골이네. 남 수도관 동파가 올해는 좀 빨리 됐어. 그래도 나는 여기 몇 년 살았다고 금방 적응되는 거 있지. (걱정스러운) 자기, 많이 불편해? 여 아냐. 나도 전에 살던 고시원보단 백밴 나은데 뭐. 거긴 주방을 공동으로 썼는데, 꼭 내가 사놓은 김치만 훔쳐가던 놈이 있었어. 의심 가는 놈이 있긴 한데 확실하게 단정은 못 짓겠구. 그렇다구 무턱대고 범인으로 몰수도 없고. 그래서 나중엔 김치를 아예 안 샀었지. 자기, 김치 없는 라면 먹어 봤어? 진짜 (고개를 저으며) 사람이 할 짓이 못 돼. 남 그 자식은? 가만 뒀어? 여 가만 두긴. 나중에 여자 속옷 훔치다가 덜미 잡혀서 개망신 당하고 쫓겨났어. 어찌나 속이 시원하던지. 남 미친놈이네. (침대 가리키며) 자기야, 여기 앉아. 여긴 좀 나을 거야. 여 (침대 위로 올라간다.) 할머닌 괜찮을까? 뜨거운 물은 고사하고 입 안에서 김이 나와. (호호 불며) 자기야, 이거 보여? 남 (옷장을 뒤적거려 커다란 점퍼를 뺀다. 이때 짐이 쏟아져 문 앞에 약간의 옷들이 쌓이게 된다. 자신도 입고 여자에게도 두꺼운 점퍼 하나를 건넨다) 이거 입어. 괜히 감기 걸리지 말구. 여 (점퍼를 입으며 침대 위 이불 안으로 들어간다.) 내가 워낙 건강 체질이라 웬만한 추위에는 꿈쩍도 안 하는데 자기랑 살림 합치고부터 몸이 약해졌어. 임신 때문인가 아침부터 삭신도 쑤시고 목도 아프고 머리도 지끈거리는 게 조만간 감기가 올 것 같아. 남 (버럭) 감기? 그러게 독감예방접종 하랬잖아! 여 삼만 팔천 원이야. 그걸 어떻게 맞아? 남 그러다 약값이 더 나는 거 몰라? 그깟 돈 몇 푼 아끼려다가 병원비, 약값 더 나가는 거라고! 진짜 짜증 나게! (바닥에 쌓인 비닐봉지를 걷어찬다) 여 야! 남 뭐! 여 너 지금 뭐 하는 짓거리냐? 남 짓거리? 짓거리? 다시 한번 말해 봐. 남편한테 짓거리? 여 그래. 짓거리라 했다. 남 말하는 본새하곤. 그러니까 네가 어디 가서 고등학교 중퇴자란 소릴 듣는 거야. 여 고졸인 넌 뭐 얼마나 그렇게 대단한데? 남 이거 왜 이래? 나 전문대까지 휴학했어. 너하곤 완전 급이 달라. 이번에 네가 임신만 안 했어도 나 학교 복학했다. 여 얼씨구? 등록금은 있냐? 남 …. 까짓것 벌면 되지. 여 (코웃음 친다) 퍽이나 벌겠다? 지 앞가림도 제대로 못 하는 게. 남 으이구! (자신의 머리 때리며) 그날 밤 내가 왜 술을 마셨는지 그날 밤이 내 인생 천추의 한이다, 한! 이래서 몸 굴리는 애들하곤 함부로 노는 게 아닌데. 여 (벌떡 일어나 노려본다) 그 몸은 나 혼자 굴렀냐? 애는 나 혼자 만들었고? 한 번만 자달라고 졸라 될 땐 언제고. (배 만지며) 알콩아, 달콩아, 봤지? 네 아빠가 저렇게 병신 같은 놈이란다. 남 (애써 누르며) 됐다, 됐어. 말을 말자, 말을 말아. 내가 저 고등학교도 못 나온 년이랑 무슨 얘길 하냐? 남, 옷을 추려 입고 밖을 나가려는데, 기계음이 들린다. 기계음 김복임 할머니가 들어오셨습니다. (기계음은 내내 남과 여의 집에서만 들린다) 여, 재빠르게 리모컨 집어 티브이를 켠다. 남, 언제 그랬냐는 듯 잽싸게 달려와 티브이 앞에 선다. 티브이 화면 가득 노파의 집이 한눈에 들어온다. 여 (티브이 화면에서 시선 떼지 않는다. 언제 싸웠냐는 듯) 다리를 절고 있네. 남 (티브이 화면에서 시선 떼지 않는다. 언제 싸웠냐는 듯) 빙판길에 넘어졌나? 노파, 문을 열고 들어선다. 머리 위에 짐을 얹고 양손에도 한 가득 짐을 들고 있다. 다리를 절며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여 (티브이 화면에서 시선 떼지 않는다.) 양 손에 짐이 한 가득이야. 남 (티브이 화면에서 시선 떼지 않는다.) 어디 폐지 같은 거나 주워 오는 거지. 남, 눈치 보며 슬금슬금 여의 옆으로 다가가 앉는다. 여, 기다렸다는 듯 남의 어깨에 머리를 기댄다. 과자를 우적거리며 영화 감상하듯 나란히 모니터에 집중하는 두 사람 여 저런 건 도대체 어디에서 줍는 거야? 남 아파트 쓰레기통, 상가 앞, 식당 뒤, 구석구석 뒤지겠지. 여 저게 진짜 돈이 될까? 남 진종일 쌔빠지게 고생하면 끽해야 하루 5천 원 정도? 여 그렇게나 적어? 남 몸만 죽어나는 거지. 노파, 가져온 물건들을 겹겹이 쌓아 올린다. 금방이라도 쌓인 물건들이 넘어질 듯 위태하다. (혹은 넘어져도 무방하다) 여 저러다 정말 큰일 나시겠다. 쓰러지면 어쩌려고. 남 저런 게 바로 궁상이야. 사는 거 자체가 민폐 인생. 여 너무 그러지 마. 찾아오는 가족도 없다는데 안 됐잖아. 남 아들이 하나 있긴 한데 연 끊은 지 꽤나 된 거 같아. 여 하나밖에 없는 자식새끼, 금이야 옥이야 길렀는데 머리 커서 귀찮다고 외면하고? 남 뻔한 스토리지. 여 사람들은 왜 늘 뻔한 것에 속는 걸까? 남 견디려고 그러는 거지. 그래야 견딜 수 있거든. 여 그래서 수집하나? 헛헛한 마음을 물건으로. 남 마음이 물건으로 대체될 수 있다는 그 생각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온 거야? 여 오빠. 남 응? 여 난 저렇게 살기 싫어. 남 (여자의 배 쓰다듬으며) 내 자식도 저렇게는 살면 안 돼. 천장에서 쿵쿵쿵 하는 소리가 들린다. 여 (하늘 올려보며 남자의 곁으로 바짝 붙는다) 뭐지? 남 저놈의 쥐새끼들. 여 쥐야? 남 사람 없을 땐 내내 조용하다가 꼭 들어오면 저 난리지. (둘러보다 빗자루를 집어 천장을 하늘로 쿵쿵 찌르면 이내 조용해진다) 조용히 해, 새끼들아! 여 (번뜩 뭔가 생각난 듯 남자의 빗자루를 빼앗는다) 오빠, 줘 봐. (천장 환기구를 열어 그 안을 기웃거린다.) 남 뭐해? 여 (이내 뭔가를 손에 쥐고 내려온다) 잡았다! 남 (여자에게 멀찍이 떨어지며) 잡았다구? 쥐를? 여 (의기양양) 응. 남 뭐하려고? 여 할머니 갖다 주게. 남할머닐? 여 적을 알고 나를 알면 그때부터 백전백승! 게임 끝이야. 여, 남자가 말릴 새도 없이 후다닥 밖으로 나간다. 남 야! 자기야! 여, 어느새 옆집으로 넘어갔다. 노파 집 대문을 두드린다. 남, 티브이를 통해 그 모습을 지켜본다. 여 할머니! 노파 목소리 뉘슈? 여 저어, 옆집인데요. 잠깐 문 좀 열어주실래요? 노파, 절룩거리며 느리게 현관 앞을 걸어간다. 기계음 김복임 할머니가 외출하셨습니다. 노파 (문 살짝 열고 고개만 삐죽 내민다. 경계하는 느낌이다.) 뭔디 그랴? 여 수도관이 동파 돼서 걱정 돼서 한 번 와봤어요. 많이 추우시죠? 노파 겨울인디 추운 건 당연하지. 여 그래서! (쥐 내밀며) 이거라도 가지고 계시라고요. 만져보세요. 노파 (떠밀리듯 받아들며) 이게 뭔디? 여 쥐요. 노파 쥐? 여 살아있어요, 아직 따뜻하구요. 노파 (의심스러운) 애기 엄만 안 춥가니? 똑같이 사람으로 태어난 몸땡아리, 애기 엄마도 솔찬히 추울 텐디. 여 전 괜찮아요. 옆에 남자친구도 있구, (배를 내려다보며) 뱃속에 아기도 있잖아요. (돌아가려면) 노파 (문을 처음보다 조금 활짝 연다) 저기, 색시! 여 (돌아보면) 네? 노파 나 그런 사람 아녀! 여 뭐가요? 노파 선물을 받았으면 은혜를 갚아야지. 쪼매만 기다려. 뭐라도 줄 거 없나 찾아 볼랑게. 난 천성이 신세 지곤 못 사는 성격이여. 노파, 집 안으로 들어간다. 기계음 김복임 할머니가 들어오셨습니다. 노파, 물건들 사이를 뒤지기 시작한다. 둘러보다 한 묶음의 짐 보따리를 내밀며, 기계음 김복임 할머니가 외출하셨습니다. 노파 이불 있어? 여 네? 노파 새댁 집에 이불 있느냐고? 여 (생각하다) 하나 있긴 한데 그게 사계절용이라 그렇게 따뜻하진 않지만 그럭저럭 쓸 만해요. 그래도 없는 것보단 낫잖아요. 추우면 우리 자기랑 꼬옥 껴안고 있기도 하고…. 노파 (자랑스럽게) 날도 추운디 한 사람당 두 개 정돈 덮어야지. 우리 집엔 이불 엄청 많아. 이것 말고도 여덟 개나 더 있는디? 여 (받아들며 감동이다) 감사합니다, 할머니. 할머닌 정말 마음이 따뜻하시네요. 노파 세상 혼자 살간? 서로 돕고 사는 기 세상이지. 추워. 얼른 가. 노파, 먼저 들어간다. 기계음 김복임 할머니가 들어오셨습니다. 여, 자신만한 커다란 이불을 가지고 들어온다. 여 (한숨 길게 내쉰다) 아후, 안 되겠어. 도저히 못하겠어. 남 (이불을 받아들며) 왜 또 그래? 여 백퍼센트 코튼 마크잖아. 오리털도 아닌 거위털이야. 이게 얼마나 비싼 건지 오빠가 알기나 해? 남 할머니가 주신 거야? 여 그래. 저쪽 집에 엄청 많대. 남 자기야, 이럴 때일수록 마음을 강하게 다져야 해. 생각해 봐, 저 할머니 돌아가시면 그게 전부 우리 거야. 이불 깔고 덮고 지지고 볶고 뭐든지 다 할 수 있다니까. 여 몰라. 암튼 기분이 안 좋아. 양심의 가책이 느껴져서 도저히 그 일은 못하겠어. 이건 옳은 짓이 아냐. 우리도 그냥 남들처럼 평범하게 취직 같은 거 해 보는 거 어때? 남 아니. 구직은 더이상 희망이 없어. 여 오빠, 그러지 말고 일용직이라도 구해 보자. 남 (여자의 배를 내려다보며) 이 몸을 해 가지고? 여 우리 사정 얘기하면 받아주는 데가 있을 거야. (남자의 손 잡으며) 오빠…. 남 …. 여 제발…. 남 …. 넌 그럼 빠져. 이번 일은 나 혼자서 할 테니까. 여 그런 말이 어디 있어? 우린 한 몸이야. 이 아이들 낳기로 결정한 날 잊었어? 뭐든 함께하기로 약속했었잖아. 남 그랬었지. 여 우린 그때 너무 힘들었어. 남 알아. 여 집도 없고. 돈도 없고. 부모도 없고. 빽도 없고. 남 아무것도 없었지, 우린. 여 그래도 행복했었잖아. 남 사랑만이 전부였던 시기였지. 여 극복하자. 할 수 있어. 노력하면 어떤 일도 다 이뤄낼 수 있다니까. 남 개소리야. 여 오빤 옆집 할머니 보면 친할머니 생각 안 나? 오빠도 할머니가 키워 주셨다며? 남 그때 생각 따윈 하고 싶지 않아. 여 난 가끔 그 시절이 그립던데…. 아무것도 몰랐던 그 시절, 차라리 아무것도 몰랐던 그때가 나았던 거 같아. 너무 많이 아는 지금은…. 남 할머닌 나를 학대했어. 여 학대? 남 어린 꼬마였지. 아빠 손에 이끌려 왔던 날, 아빠 등 뒤로 숨었던 날, 할머니의 우악스런 손아귀가 나를 질질 끌고 갔어. 그리곤 내가 아빠 인생을 망쳤다며 끝없는 폭언과 폭력을 휘둘렀지. 여 오빠, 옆집 할머닌 오빠네 할머니와는 달라. 이렇게 이불도 주고 정말 좋으신 분이라고. 남 아무리 그래도 나쁜 점은 분명 있을 거야. 옆집 할머니의 나쁜 점을 한 번 생각해 봐. 여 할머니의 나쁜 점? (생각하다가) 예를 들면…? 남 예를 들면…. (생각났다) 저장강박! 저렇게 쓰지도 못할 거 쟁여만 놔서 이웃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잖아. 저것도 일종의 정신병이라고 티비에서 본 거 같아. 기억 안 나? 전에 복지관에서 도배 새로 해준다고 했을 때…. 여 (조금 솔깃하다) 아, 그때! 난리부르스도 아니었지. 문 앞에 대자로 쫙 드러누워가지고. 남 그래! (좀 장황하게) 물건들 좀 치우려고 그러면, “차라리 날 밟고 가라! 이것들아! 내 두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까지 저 물건들 못 뺏는다!” 아니, 지가 무슨 이순신이야? 잔다르크야? 저 중에 쓸 만한 물건이 어디 있다고 저 난린지. 저런 건 욕심이 많다는 반증이야. 여 욕심? 남 그래. 스크루지보다 더 지독한 짠순이. 집에 물건들은 숨기면서 정작 중요할 땐 나 몰라라 외면하지. 저러다 결국 저 쓰레기 더미에 깔려 돌아가실 거야. 자기 꺼 꽉 움켜쥐고 남의 거 야금야금 훔치면서. 여 (놀라) 저 물건들이 훔친 거야? 남 훔친 거지. 박스 뒤지고, 남의 물건 뒤지고, 더 가난한 사람들 기회 뺏으면서. 여 (동조됐다) 몰랐어. 할머니가 그런 사람인 줄. 남 (여자의 손 잡으며) 자기야, 그러니까 마음 약해지면 안 돼. 우리도 남들처럼 살아야지. 혼인신고도 제대로 하고, 애들 호적도 제대로 올리고. 남들 사는 만큼 딱 그만큼만 살자.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그만큼만. 기계음 김복임 할머니가 외출하셨습니다. 노파 (노크 소리) 색시, 안에 있어? 여 누구지? 남 할머니다! 노 파색시! 여 왜 온 거지? 혹시 우리의 계획을 눈치채신 건가? (남자를 쿡 찌르며) 오빠! 오빠가 나가봐. 얼른. 남 (경계하며 문 쪽으로 다가선다.) 누구시죠? 노파 옆집이외다. 색시 있슈? 여, 겁에 질려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남 잠깐 이 앞에 나갔는데요. 왜 그러시는지…? 노파 구청에서 라면 한 박스를 선물로다 줬는디. 내가 밀가리를 먹으면 위가 쓰려. 남 (여전히 경계하며) 그래서요? 노파 색시 먹을랑가 물어볼라고 그러지. 남 무슨 라면인데요? 노파 진라면이랑 너구리랑 짜파게티랑 뭐 이것저것 섞였는디? 남, 여자를 바라보면 여, 세차게 고개를 끄덕인다. 남 (찜찜하지만 문을 살짝 연다) 뭘 이런 걸 다 주시고…. 노파 (고개 들이밀며) 애기 엄만 어디 멀리 갔수? 여 (잽싸게 이불로 머리를 덮는다) 남 슈퍼 갔어요. 라면 사러. 노파 아이고, 잘 됐고만. 내가 그 시간에 딱 맞춰 왔네. 얼른 전화혀서 라면 사지 말고 오라 그랴. 신혼부부들이 무신 돈이 얼마나 있다고. 얼른 전화혀. 남 네에. 그럴게요. 노파 (가려다가 돌아본다) 임신했을 땐 특히 남자가 잘해야 혀. 먹고 싶다는 거 있담 다 멕이구, 짜증내도 것도 일절 받아주고. 남편이 잘해야 그 기운에 평생 살아. 늙은이 말이라고 무시허지 말구 새겨들어. 알겄지? 남 네, 그럴게요. (하다가) 근데 겨울엔 딸기를 못 구하잖아요. 노파 색시가 딸기가 먹고 싶대? 남 네에. 노파 딸인가 보네. 딸기가 땡기는 걸 보니. 남 (헤벌쭉, 딸 생각에 기분 좋다) 딸이래요, 딸. 것도 쌍으로다. 노파 둘씩이나 들어 있어? 남 (헤벌쭉) 네에. 그렇다네요. 노파 아이고, 장해라. 장해. 참말로 장하네 그려. 남 (꾸벅 인사하며) 할머니, 라면 잘 먹을게요. 감사합니다. 남, 라면박스를 입구 옆에 놓는다. 기계음 김복임 할머니가 들어오셨습니다. 여 (뒤집어쓴 이불 밖으로 빠져나오며) 갔어? 남 (복잡하다) 응. 여 할머니 정말 나쁜 사람 맞아? 남 (찜찜하다) 그렇다니까. 여 이렇게 이불에 라면까지 주셨는데도? 남 (멈칫) 의도를 생각해야지. 왜 이런 조건 없는 나눔을 베푸는지. 여 조건 없는 나눔? 남 세상엔 공짜란 없는 법이야. 본디 그렇게 세상은 굴러가게 돼 있어. 근데 이거 봐봐. 할머니가 주신 것들. 이게 뭘 의미하는 건지 모르겠어? 여 (생각하다 머리를 쥐어 잡으며) 정말 모르겠어. 남 중졸인 네가 이해하기엔 좀 어려운 문제일 거야. 좀더 깊게 생각해 봐. 여 (생각하다) 할머니에게 실망했어. 남 (환희에 차) 생각났어? 여 임산부에게 라면을 먹으라니. 딸기는 못 줘도 라면을 먹으라고 권하는 건 아니잖아. 라면은 성인병 고혈압의 원인이야. 과다한 나트륨 함량으로 내 아이들이 아토피를 일으키는 원인이 될 수도 있지. 남 그래! 바로 그거야! 여 (여자 뭔가를 깨달은 듯 놀라 입을 막는다) 설마 할머니가 이 모든 걸 꾸민 거야? 남 그, 그런 거지. 여 꼴랑 라면 하나 주면서 생색은 있는 대로 다 내면서? 남 드디어 깨달았구나. 여 오빠 말이 맞았어. 저 할머닌 나쁜 사람이야. 남 그럼. 난 언제나 네 편이야. 여 내 앞에선 위해주는 척, 순진한 척하면서 뒤로는 엄청난 계략을 꾸미고 계셨던 거야. 남 이제 말이 통하는구나. 여 할머니 재산이 얼마라고? 남 한 십억쯤 되려나? 여 확실한 거야? 남 (당황스러운) 그냥, 사람들 얘기가…. 그러지 않겠느냐. 풍문이지, 풍문. 여 강남에 빌딩이 두 개라며? 설마 그것밖에 안 되겠어? 아아, 할머니가 빨리 뒈져버렸음 좋겠어. 남 걱정 마. 조만간 그렇게 될 테니까. 그전에 우리는 먼저 선수 치고 튀자. 할머니 재산 홀라당 챙겨가지고. 여 몇 주 후에나 발견되시겠지? 이참에 단단히 한몫 챙기자고. 남 우리가 먼저 발견한 걸 고마워할지도 몰라. 여 무연고니 찾아오는 사람도 없을 테니까. 남 장례식은 고사하고, 저 많은 짐들 정리하려면 국가도 고생이지. 여 맞아. 저 중에 쓸만한 건 전부 처분하고 할머니 통장이랑 국가보조금 남은 거랑 이것저것 모아서 한몫 단단히 챙기자고. 남 그 돈으로 알콩이랑 달콩이 피아노랑 발레를 가르치는 건 어때? 여 피아노랑 발레? 남 내 오랜 로망이거든. 알콩이는 피아노를 치고 달콩이는 그 옆에서 발레를 하고. 나랑 넌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완벽하지 않니? 여 (상상하다 흐뭇한 미소가 지어진다) 죽이자! 남 (놀라) 뭐? 여 할머니가 죽을 때까지 도저히 못 기다리겠어. 지금 당장 죽이자! 시간이 얼마 없어. 좀 있으면 알콩이와 달콩이가 태어날 거라고! 남 그래도 지금은 너무 이르잖아. 여 이르긴 뭐가 일러? 당장에 실행에 옮겨야지. (찬장을 뒤져 식칼을 꺼낸다. 금방이라도 실행에 옮길 듯 위협적인 표정이다) 남 자, 자기야. 왜 그래? 여 시간이 얼마 없다니까. 우리 애들은 우리처럼 자라게 할 순 없잖아. 오빠. 남 그래도…. 여 일단, 최고급 산후조리원부터 예약해줘. 거기에서 인맥을 쌓아야지. 남 결심이 선거야? 여 응! 남 양심의 가책 같은 건 사라지고? 여 그딴 거 개나 주라 그래! 남 그래도 좀 그렇잖아. 살인과 고독사는 엄연히 다른 문제라고. 여 (비장하다) 아니, 나는 해야겠어. 이제는 행동으로 옮길 때야. 여, 성큼성큼 현관을 향해 걸어가는데 남, 급하게 현관문을 막아선다. 남 자! 잠깐! 여 왜 이래? 비켜. 남 어쩌면 우리 할머니보다 옆집 할머니가 조금은 더 나은 사림일지도 몰라. 여 무슨 소리야? 언제는 나쁜 사람이라며. 자기보다 가난한 사람 등쳐 먹는. 남 그건…. 그냥 내 생각인 거고. 여 아니. 아무리 자기가 진실을 외면해도 그건 명백한 사실이야. 남 자기야. 진정하고 조금만 기다리자. 여 뱃속의 아이가 세상 구경을 하고 싶어 한다니까. 남 알아! 그건 나도 알지. 하지만 얼마 안 남았어. 금방 돌아가실 거야. 여 알콩달콩이도 시간이 없어. 남 그래도 애들은 어리니까 아직 세상에 대해서 잘 모르잖아. 어쩌면 돈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라고 믿을지도 몰라. 여 위선 좀 그만 떨어. 알콩이 달콩이도 우리처럼 살게 할래? 우리처럼 거지 같은 옷 입고 거지같은 방 안에서 지내면서. 입에서 김 나와서 겨울이면 끔찍하고. 여름이면 뜨거운 선풍기 끌어안고 지내면서. 거지 같은 학교 졸업해서 쥐꼬리만 한 월급 못 받을까 전전긍긍하고. 외식은커녕 맨날 돈돈 거리면서 지내겠지. 남들 다 다니는 학원 한 번 못 보내고, 학교도 간신히 졸업하고, 어쩜 못할지도 몰라. 그렇게 눈치 보며 살게 할 거야? 남 돈만 있다고 행복한 건 아니잖아. 우리 둘이 사랑하는 모습 보여주고 우리가 떳떳하면 자식들도 언젠간 알 거야. 언젠간 부모의 노력과 수고를 이해하는 날이 오겠지. 여 떳떳해? 우리가 뭐가 떳떳한데? 복지관에서 공짜밥 얻어오는 게 떳떳한 거야? 예방접종비용 비싸 못 맞는 게 떳떳한 거야? 정확히 어떤 부분에서 떳떳한 지 알려줘 봐. 내 손에 싸구려 반지라도 하나 끼워주고 남들 하는 만큼 결혼식도 제대로 올리려면 그 망할 놈의 돈이 필요하다고 난! 네가 뭐라고 떠들던 간에 난 오늘 저 할머닐 죽여야겠어! 여, 남자를 밀어낸다. 남, 막았던 자리 무너지듯 자리를 비켜선다. 여, 밖으로 성큼성큼 걷는다. 거칠게 현관문을 두드린다. 한 손엔 칼을 숨기듯 쥐고 있다. 여 할! 머! 니! 노파, 느리게 현관으로 다가온다. 노파 옆집 색신가? 기계음 김분임 할머니가 외출하셨습니다. 노파 (문을 활짝 열며) 색시, 마침 잘 왔어. 들어와 봐, 어여. 여, 무시무시한 얼굴이다. 성큼성큼 노파 집 안으로 들어간다. 좁은 집 안, 서로를 마주 보고 간신히 선 노파와 여자 그 가운데 딸기 한 팩이 덩그러니 놓여 있다. 여, 칼을 빼들고 찌르려다 딸기를 보고 멈칫하는데, 노파 먹고 싶었다며? 여 네? 노파 신랑한테 다 들었어. 딸기 먹고 싶다 그랬다며. 여 (냉랭한) 그런데요? 노파 요리하다 온겨? 여 뭐여? 노파 지금 칼 들고 서 있잔여. 여 (칼을 숨기며) 대파 있으세요? 노파 대파? 여 라면에 넣으려고 보니 대파가 마침 똑 떨어져서요. 노파 글씨. 대파가 있는지 없는지 모르겄네. 혼자 사는 노인네라 집 안에 마땅한 게 없어. 배고프면 먹고 안 고프면 굶고 그러니께. 노파, 쭈그려 앉아 냉장고를 연다. 이것저것 뒤적거린다. 여, 딸기 팩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다. 노파 (냉장고 뒤지며) 찬물에다 밥이나 말아먹지. 음식이 변변찮해. 대파가 있을라나 모르겄네. (돌아보며) 대파 대신 양판 안 되야? 여 그거라도 주시면 고맙구요. 노파, 양파를 한 망 건네준다. 계란, 버섯 이것저것 한 움큼 들려 있다. 여, 얼떨결에 받아든다. 노파 딸이라매? 여 네? 노파 남편이 많이 좋아하드라고. 여 그 자식이 임신한 걸 좋아해요? 노파 가장의 위치가 원래 그런 거여. 좋으면서 티도 못 내고 맘속 복잡허고. 섭섭하고 서운한 게 있더라도 자네가 넓은 맴으로다 이해혀야지. 여 싫어하는 줄 알았어요. 노파 한 인간을 다른 인간을 완전히 이해하기란 쉽지 않제. 용기 잃지 말구 악착같이 살어잉. 여 …. 노파, 딸기를 까 여자의 입에 넣어준다. 노파 어뗘? 맛이? 여 달아요, 아주. 노파 내가 샥시가 딸기 좋아하는 걸 우찌 알았겠어? 신랑이 챙겨주고 싶은디 맘처럼 되지 않응게 속상한 겨. 색시도 알지? 신랑이 많이 노력하고 있다는 거. 여 네에. 노파 겨울엔 딸기가 없어. 비싸기도 하고. 우리 같은 사람은 먹기 쉽지 않제. 맴이야 그렇지 않겄지만 그래도 너무 서운해하덜 말어. 여 (맛있게 딸기를 먹는다) 할머닌 안 드세요? 노파 난 늙어서 식욕도 읍서. 뭐가 맛난지도 모르겄고 배만 차면 그만이여. (딸기 팩 건네며) 가져가서 신랑이랑 맛나게 나눠 먹어. 여 자꾸 이렇게 주시기만 하면 제가 너무 감사하고 죄송하잖아요. 노파 아녀, 아녀. 내가 뭐 바라고 그런 것도 아닌디. 여, 딸기 팩 챙겨들고 느리게 돌아서면, 노파 샥시. 여, 멈춰 선다. 노파 내가 쪼매난 부탁 하나만 혀도 될까? 여 (다시 경계한다) 부탁이요? 노파 뭐 거시기한 건 아니고. 내가 만약 죽거들랑 내 시신 처리 좀 해돌라고. 그냥 보다가 요 며칠 안 보이면 구청 같은데다 연락 좀 햐줘. 그 짝에서 알아서 잘 해줄 텐게. 여 할머니. 그런 말씀 마셔요. 오래오래 사셔야죠. 노파 암만 그래도 아가들도 있는디 시체 냄시 풍기며 마무릴 할 순 없지 않겄어? 죽는 날을 내가 택할 수 있으면 좋겄지만 살아보니 그것도 내 맘대로 안 되고. 시상에서 제일 나쁜 게 지 목숨 지가 끊는 거라 그럴 수도 없고. 얼마 안 되지만 이 콧구녕만한 집구석도 여기저기 뒤져보면 쓸 만한 게 있을 거여. 마지막 부탁 들어준 보답이다 생각하고 부담 갖지 말고 가져. 보니께 나도 이제 얼마 안 남은 거 같더라고. 세상천지 아는 사람이라곤 자네가 준 요 쥐새끼랑 자네 집안 식구들이 전부니께. 여 할머니, 그런 말씀 마세요. 그러면 저희가 너무 죄송하잖아요. 노파 죄송하긴 뭐가 죄송해. 내가 오히려 미안허지. 나, 한 번만 만져 봐도 되나? 노파, 여자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여자의 배에 손을 지그시 댄다. 노파 꼼틀거리는구만. 생명이. 한 생명이 가믄 또 다른 생명이 오겄지. 그것이 자연의 섭리니께. (여자의 배에 대고) 환영하네. 이 세상에 온 걸. 여, 노파가 준 딸기 팩을 가지고 도망치듯 그 집을 빠져나온다. 여, 급하게 집 안으로 들어선다. 남 어떻게 됐어? 여, 딸기 팩을 남자에게 집어 던진다. 너부러진 딸기들 남 뭐야, 이게? 여 입양 보내. 남 뭐? 여 그렇게 해. 남 뭔 소리야? 여 막달이라 지우진 못하겠구, 그냥 입양이나 보내자구! 남 지긋지긋하다, 정말. 또 그 소리냐? 여 네가 듣고 싶어 했던 말이잖아! 남 난 어떻게든 살고 싶어서 그런 거야. 여 (노려보며) 미친 새끼. 할머니가…. 할머니가….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트린다) 기계음 김복임 할머니가…. 김복임 할머니가…. 김복임 할머니가…. 김복임 할머니가…. 김복임 할머니가…. (반복 재생된다) 남과 여, 동시에 옆집을 돌아본다. (암전) >>등장인물 남자 여자 노파
  • [사설] 다 함께 선진국 문을 열자

    부 불평등, 청년실업 등 난제도 많아 분배 추구해도 성장과 조화도 필요 다 함께 더 나은 미래를 향해 나가야 희망에 부푼 가슴으로 황금 개띠해 무술년 새해를 맞는다. 어느 시인은 새해의 의미를 ‘서설처럼 차고 눈부신 희망의 백지 한 장’이라고 했다. 우리 앞에는 또 한 해 동안 그림을 그려 갈 하얀 종이 한 장이 놓여 있다. 어떤 그림을 그릴지는 우리의 몫이다. 새해는 임시정부 수립 99주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헌법 제정 70주년이 되는 해다. 일제의 지배와 북의 남침, 외환위기 등 숱한 고난을 슬기롭게 헤치고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으로 우뚝 선 대한민국의 현대사는 경이롭기만 하다. 그동안 국가의 근본 규범인 헌법은 9차례 발전적으로 개정됐고 대한민국은 국민의 기본권을 최대한 보장해 자유롭고 평화로운 민주공화국으로 발돋움했다. 주권재민(主權在民)의 헌법 정신을 재확인하고 국민의 힘으로 정권을 교체한 2017년은 헌정사에 큰 획을 그은 해다. 돌이켜 보면 독재에 저항하고 민주주의를 발전시켜 온 주체는 바로 우리 국민이었다. 위정자가 탐욕에 빠지고 국가가 위기 상황에 내몰렸을 때 국민은 분연히 일어나 나라를 구해 냈다. 근면한 국민성과 뜨거운 교육열, 위기 때 더 강해지는 극복의 유전자가 없었다면 오늘의 대한민국은 없을지도 모른다. 드디어 올해 우리는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로 들어선다. 임정 수립 백수(白壽), 정부 수립 고희(古稀)의 잔칫상이라 해도 좋다. 우리 국민은 열심히 일해 온 만큼 잔칫상을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 소득 3만 달러 이상 국가는 세계에 27개국밖에 없다. 명실공히 선진국 반열에 오르는 것이다. 특히 6개국밖에 없는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이상, 인구 5000만명 이상의 조건을 갖춘 30-50클럽에 일곱 번째로 가입해 미국, 일본 등 강대국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1980년대 ‘아시아의 소룡(小龍)’에서 ‘세계 속의 대룡(大龍)’으로 뛰어오르는 해가 2018년 새해다. 그러나 현실은 달콤한 꿈에 빠져 있을 만큼 한가롭지 않다. 국민의 살림살이는 팍팍하기만 하다. 부(富)의 쏠림은 더욱 심해져 양극화가 심한 정도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5위다. 소득 상위 1%가 국민 전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4.2%로 사상 최고다. 상위 10%의 소득 비중도 48.5%에 이른다. 기업 매출이 성장하고 있다지만 일부 대기업에 편중돼 있다. 지난해 OECD 최상위권의 성장률을 달성했지만 고용에는 봄바람이 불지 않고 있다. 청년실업률은 성장과는 무관하게 치솟아 통계 작성 후 28년 만에 최고치(9.2%)로 올랐다. 연애와 결혼마저 포기한 청년 세대의 절망은 저출산이라는 더 큰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집권 2년차를 맞은 문재인 정부의 어깨는 무겁기만 하다. 부의 불평등과 고용 감소, 저출산, 노인빈곤, 저성장 등 풀어야 할 난제가 한둘이 아니다. 이제 가시적인 성과를 보여 줘야 할 시기에 들어섰지만 나라 안팎의 여건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문 정부의 일자리와 소득주도 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제라는 3대 정책 방향은 돌파구를 찾을 패러다임으로 손색이 없어 보인다. 문제는 균형감 있는 실행력이다. 분배에 방점을 두더라고 성장을 게을리하다간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질 게 뻔하다. 무분별한 복지 확대와 공무원 증원을 통한 ‘큰 정부’는 국가 부채 증가와 후세의 부담을 키운다는 지적도 무조건 내칠 것만은 아니다. 최저임금 인상은 ‘소득주도 성장’의 효과로 이어지는지 확인한 다음에 확대해도 늦지 않다. 혁신성장은 중소기업 활성화와 4차 산업혁명 대응으로 설명되지만 핵심은 미래 신수종 산업 개척이다. 반도체가 지난해 성장을 주도했듯이 성장을 선도할 신산업 발굴을 게을리해선 안 된다. 인공지능이나 전자상거래 분야 등에서 중국은 한국을 추월한 지 오래다. 강소 기업과 유능한 젊은 기업가들이 마음껏 기술개발과 창업에 매진하도록 토양을 만들어 주는 것이 정부가 할 일이다. 성장이 절대적 가치가 아니듯이 분배도 절대적 가치는 아니다. 두 이념이 조화를 이루어야 시너지 효과를 볼 수 있다. 역대 최악의 북한 정권과 마주한 한반도의 안보 상황은 새해에도 위태로울 것이다. 핵 경제 병진노선을 포기하지 않는 북한의 체제 유지를 위한 핵 개발과 미사일 도발의 위험은 줄어들 기미가 없다. 공포정치를 앞세워 유일 체제를 재건하려는 김정은이 권력 유지에 실패해 내부에서 심각한 투쟁이 벌어진다면 그 결과 또한 예측하기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트럼프와 중국 시진핑, 두 ‘스트롱맨’은 한반도 평화보다는 자국의 이익과 자신의 지지율 상승에 더 관심이 크다. 결국 한반도 안보의 궁극적 책임은 우리 정부와 국민이 져야 한다는 사실을 절감해야 한다. 정부나 국민이나 안보 의식을 더욱더 가다듬어야 하며 미국이나 중국에 끌려가지 않는 우리만의 안보관을 확립해야 할 것이다. 강과 온 어느 한쪽에만 매달리지 말고 북한을 최대한 압박하면서도 대화의 문을 닫지 않는 양면 전략이 요구된다 하겠다. 문 정부 집권 2년차에도 개혁의 발걸음을 멈출 수는 없다. 그러나 각 분야에서 진행되는 ‘적폐청산’은 서서히 피로감을 부르고 있다. 보수진영에서는 여전히 ‘정치 보복’의 시선을 거두고 있지 않으며 이념 프레임으로 얽어매고 있다. 과거의 부정과 불의를 따져 고치는 것은 미래의 발전을 위한 개혁의 일환이며 명분도 충분하다. 하지만 과거 청산에 장기간 함몰되면 미래를 향한 전진에 장애가 된다. 70%에 가까운 지지율에 취해 나만이 정의이며 내 방식이 정답이라는 일방통행식 밀어붙이기는 틀림없이 부작용과 역작용을 낳는다. 그런 ‘불통’이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는 전 정권의 실패에서 입증되지 않았는가. 다당제하 한국 정치권의 올해 풍향계는 심하게 흔들릴 것이다. 6월 4일에는 제6회 전국지방동시선거가 치러진다. 지지율 유지와 지난 대선의 판도를 뒤엎기를 바라는 야당들의 공세로 전국이 정치바람에 휩쓸릴 가능성이 크다. 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의 재편과 이합집산은 예고된 것과 마찬가지다. 바람에 휩쓸리지 말고 유능하고 정직한 지역 일꾼을 뽑는 것은 국민, 유권자의 권한이자 의무다. 유권자의 관심과 올바른 선거권 행사가 풀뿌리 민주주의의 정착과 지역 발전, 지방 분권의 확대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정부와 국민 앞에 떨어진 가장 화급한 과제는 다음달 9일 개막하는 평창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다. 성공과 실패에 따라 경제에 미칠 영향도 크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국민적 관심이다. 새 정부의 정강과 정책이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우려면 일관성과 지속성을 갖춘 행정적 추진력과 국회의 협조도 필수적이다. 정부와 기업, 국회가 유기적으로 혼연일체가 돼 움직여야 1년 후 달라진 대한민국을 다 함께 맞을 수 있다. 여소야대, 다당제의 정치 상황에서 쉽지 않은 과정이다. 그러나 야당은 생각이 다르다고 사사건건 정부 정책에 발목만 잡는 야당이 돼서는 국민의 지지보다는 외면을 받기가 더 쉽다. 우리 국민과 정치권이 추구해야 할 모토는 정의와 상식이다. 논어 안연(顔淵) 편에 ‘정자정야(政者正也) 자수이정(子帥以正) 숙감부정(孰敢不正)’이란 말이 있다. “정치는 바른 것이어야 한다. 당신이 솔선하여 스스로 바름을 행한다면, 누가 감히 바르지 않겠는가”라는 말이다. 바르고 건전한 의식이 국가와 사회 발전의 굳건한 토양이 된다. 당리당략에 빠져 이권만 챙기는 정치권부터 반성하지 않으면 무술년의 연말에 우리는 또 한번 뼈저린 후회를 하게 될 것이다. 새 정부를 탄생시킨 주체는 노조 세력이 아니라 엄동설한에 삼삼오오 가족이 광장에 나가 국정 농단을 비판했던 평범한 국민들이다. 민노총을 비롯한 노조의 정부에 대한 청구권 행사를 국민은 묵과하지 않는다. 민노총 스스로 외쳤듯이 대한민국의 주인은 바로 국민이다. 문 정부 또한 기업은 물론이고 노조에도 할 말은 해야 한다. 새해는 선진국으로 들어가느냐 마느냐가 결정되는 주요한 의미를 담은 해다. 국민이 하나가 돼 함께 뛰어야 대한민국의 업그레이드가 가능하다. 공동체 의식이 없이는 어떤 목표도 쉬 달성할 수 없다. 불행히도 여전히 우리 사회에는 남의 말을 경시하고 아집에 빠지는 악폐의 뿌리가 깊다. 성향별, 지역별, 연령별로 떼를 짓는 끼리끼리 문화는 발전을 가로막는 가장 경계해야 할 대상이다. 괴담이 양산되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무차별 인신공격을 가하는 습성은 사회의 건강을 해친다. 이념 갈등은 국민 통합을 가로막는 가장 큰 병폐다. 나와 생각이 다르다고 해서 무조건 배척하지 말고 관용과 포용의 미덕으로 나부터 마음을 활짝 열고 얼싸안는 사회에 미래가 있다.
  • [새해 인터뷰| 한반도 정세] “한·미 훈련 연기 제안, 文정부 처음 목소리 낸 일종의 사건”

    [새해 인터뷰| 한반도 정세] “한·미 훈련 연기 제안, 文정부 처음 목소리 낸 일종의 사건”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에서 통일부 장관을 지낸 정세현(73) 평화협력원 이사장은 집권 2년차를 맞은 문재인 정부가 이제야 대한민국의 입장에서 대한민국 외교를 해나갈 자세를 갖췄다고 평가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평창동계올림픽 기간 한·미 연합군사훈련 연기를 미국에 제안한 사실을 공개한 것을 두고는 집권 7개월 만에 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일종의 사건이라고 표현했다. 정 이사장은 또 문 대통령이 후보 시절 밝혔던 ‘남북 관계를 중심축에 놓고 한반도 문제를 풀어나가겠다’는 초심으로 돌아가 통일부가 남북 관계 개선에 나설 수 있도록 힘을 실어 줘야 한다고 제언했다. 지난 21일 서울 서초구 평화협력원 연구실에서 정 이사장을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내용.→한·미 연합훈련 연기를 제안했는데 어떻게 평가하시는지. -평창올림픽을 평화 올림픽으로 만드는 것은 우리 책임이다. 그걸 하려면 해마다 해왔던 한·미 연합훈련이 추진되면 안 된다. 연합훈련은 아무리 방어적이라는 식으로 정당화해도 상대방한테는 위협적이고 공격적인 전쟁 상황으로 넘어갈 수 있는 군사행동이다. 전쟁과 평화를 동시에 해낼 수 없다는 점에서 그걸 연기하자는 얘기를 우리가 먼저 한 거다. 북핵 문제 때문에 한 6개월 동안 완전히 미국과 똑같은 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다. 근데 6개월여 만에 처음으로 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다시 말해서 한반도 문제는 내가 운전을 하겠다는 입장을 명실공히 천명한 일종의 사건이라고 본다. 소위 거기서부터 새로운 흐름이 시작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한·중 정상회담 이후 연장선상에 있는 움직임으로 보시는지. -문 대통령은 한·중 정상회담을 하고 돌아와서 공관장 회의 석상에서 ‘균형외교’라는 단어를 썼다. 이번 한·중 정상회담을 계기로 중국과의 관계를 원만하게 풀어냈다. 결과적으로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을 철회하고 앞으로 한·중 간에 경제 무역관계를 계속 활성화해 나가자는 얘기를 리커창 총리가 하도록 만들었다. 그건 10월 말에 ‘3불(不)’을 중국한테 얘기했기 때문에 12월 중순에 그런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거다. 하지만 그 3불이 나올 때부터 보수 쪽에서는 왜 중국에 끌려가느냐는 비판을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주권이라고 하는 개념이 미국 편에 서서 미국이 시키는 대로 하면 주권을 지킨 거고 미국과 거리를 두고 자기 목소리를 내면 주권 상실이라는 식으로 양단논법으로 얘기하는 잘못된 점이 있다. 한·미 관계는 기본으로 적절하게 관리해 나가면서 한·중 관계를 원만하게 풀어나가는 외교를 처음 시작한 거다. 균형외교라는 것이 조금 더 심화되면 대한민국 외교에 있어서 자국 중심성이 강화된다. 이번 한·중 정상회담과 한·미 연합훈련 연기 요청을 보면서 문재인 정부가 비로소 대한민국의 입장에 서서 대한민국 외교를 해나갈 자세가 갖춰졌다는 생각을 했다. →한·미 연합훈련 연기 제안을 공식화한 데 대해 북한이 어떻게 반응할지. -북한은 한·미 연합훈련 연기 정도 가지고는 성에 안 찰 거다. 중단해 주길 바라지 않으면 최소한 축소를 바랄 거다. 첫 번째는 매년 봄마다 하는 한·미 연합훈련은 북한한테 군사적 위협이 된다. 수시로 한반도 상공을 돌고 가는 B1B나 B2 같은 것은 북한의 입장에서 볼 때는 굉장한 위협이다. 두 번째는 위협적인 군사훈련이 전개되면 북한도 그에 대한 대비를 해야 된다. 비상 경계태세를 위해 비행기, 군함, 탱크, 대포를 움직이려면 기름을 써야 되기 때문에 적지 않은 돈이 들어간다. 군사훈련이라는 것이 북한한테 군사적인 위협이 되는 동시에 엄청난 경제적인 손실을 가져오기 때문에 북한이 그렇게 저항하고 반발하는 것이다. 그것을 연기하면 두세 달 있다가 또 그것이 재연되기 때문에 별로 북한한테 매력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연기 정도 가지고 평창올림픽 참가 등 결단을 내릴지는 조금 의문이다. →미국은 한·미 연합훈련 연기 요청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문 대통령이 일단 공개적으론 연기라고 얘기했지만 내막적으로 축소라든지 또는 가능하면 일단 상반기에는 훈련을 중단했으면 좋겠다는 식의 얘기를 했는지는 모르겠다. 최소한도 연기는 아마 동의를 해줄 거 같으니까 연기 요청을 공개한 것 같다. 북한도 바로 반응을 보이기 어려운 것이 미국이 먼저 여기에 대해서 사인을 줘야 한다. 난데없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그런 건 있을 수 없다는 식으로 잘라버리면 소용없는 일이 된다. 중요한 건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반응보다 돌발성이 더 강한 트럼프 대통령의 반응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문 대통령을 어렵게 만드는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평창올림픽을 ‘평화 올림픽’으로 만들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강한데. -일본은 위안부 문제가 불편할지라도 평창올림픽에 온다. 중국도 웬만하면 올 거다. 중요한 것은 북한이다. 북한이 평창올림픽에 안 온다고 해서 올림픽 기간 중에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발사하거나 핵실험을 추가로 하거나 하진 않을 거다. 그러나 북한이 실제로 참가를 하는 경우에야 비로소 평화 올림픽이라고 하는 그림이 완전히 그려진다. 물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참석해 주면 더 좋겠지만 시 주석이 참석하는 것도 북한이 참가를 해야 금상첨화가 된다. 북한은 아마 평창올림픽 파이널 엔트리를 제출하는 1월 29일까지는 한·미 간에 어떤 식으로 논의가 되는지 예의주시하면서 최종적인 결정을 내릴 거다. 그러나 방향 자체는 아마 특별히 나쁜 일이 없으면 참석해야 되는 거 아니냐는 쪽으로 정해질 것으로 생각된다. 평창 올림픽 참가를 핑계 대고 남북 관계를 복원하는 것이 북한한테도 유리하다. →평창올림픽에 북한이 오면 이산가족 상봉이나 군사회담 제안에도 응답을 할까. -우리가 물어보지도 않는데 북한이 얘기할 가능성은 별로 없고 만나게 되면 우리가 적극적으로 촉구를 해야 된다. 특히 평창올림픽에 북한이 오면 단순히 선수단, 감독, 코치만 오지 않고 국가체육지도위원회 위원장 같은 사람들이 올 거다. 지난번 인천아시안게임 때 국가체육지도위원회 위원장 자격으로 최룡해가 왔었다. 그 자리를 지난 7월에 있었던 조선노동당 7기 2차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최휘라는 사람한테 넘겨줬다. 그런 사람이 오면 자연스럽게 얘기를 꺼낼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전달되는 강도가 그냥 방송에다 대고 일방적으로 제안하는 거보다 훨씬 더 임팩트가 들어간다. 북한은 우리가 지난 7월에 제안해 놓은 군사적 긴장 완화를 위한 군사회담과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적십자회담에 답을 하지 않았다. 분명하게 받는다 안 받는다는 얘기를 안 했기 때문에 그걸 답하라는 얘기를 할 수 있고 그 자리에서 반승낙 비슷한 얘기를 하거나 아니면 가서 내부적으로 협의를 한 뒤에 답을 보내겠다고 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거다. →1월 초에 미리 같은 제안을 다시 한번 하는 건 어떤지. -평창올림픽 때 얘기해서 시작이 되면 결국 또 3월로 넘어간다. 1월 초에 미리 얘기를 해서 설을 계기로 한 이산가족 상봉 사업을 먼저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이산가족 상봉 사업을 하려면 한두 번 회담을 해야 되고 명단을 뽑아서 보내는데 북한이 전산화가 안 돼 수작업을 해야 하는 바람에 보름 이상 한 달 가까이 걸린다. 분리해서 하는 것도 좋다. 군사회담과 이산가족 회담도 제안해 놓고 북한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면 평창올림픽에도 좋은 신호가 된다.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해서 군사회담 얘기를 좀더 심도 있게 할 수도 있다. 관건은 김정은이 직접 읽는 1월 1일 신년사에서 어떤 얘기를 하느냐다. 아마 정부도 대북 대화 제의 계획을 만들어 놓고 신년사를 봐 가면서 받겠다 싶을 때 얘기를 하지 그쪽에서 강하게 나오면 못하게 될 거다. →집권 2년차를 맞은 문재인 정부에 제언을 해 주신다면. -문 대통령이 후보 시절에 했던 남북 관계를 중심축에 놓고 한반도 문제를 풀어나가겠다는 것을 확실하게 통일·외교·안보정책의 기본으로 천명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우선 문 대통령이 통일부에 힘을 실어 줘야 한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남북 관계 전성기에 모든 남북 관계 실무를 풀어나갔던 교류협력국장 출신이다. 회담 경험도 제일 많기 때문에 힘만 실어 주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 문 대통령이 회의 때마다 통일부 의견을 먼저 묻고 통일부 장관을 존중하는 모양새만 취하면 가능한 일이다. 과거처럼 통일부 장관을 부총리 부서로 옮겨주거나 최소한 부서 순위를 높여주는 것도 필요하다.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새롭게 균형외교의 기반을 닦아 놓은 상황에서 다시 초심을 가지고 남북 관계를 중심축에 놓고 한반도 문제를 풀어나가기 위한 상징적인 사건은 통일부를 살려 주는 거다. 강윤혁 기자 yes@seoul.co.kr ■정세현 이사장은김대중 정부 시절인 2002년 1월부터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4년 6월까지 통일부 장관을 지냈다. 1977년 국토통일원(현 통일부) 공산권연구관실 연구원으로 통일부 업무를 시작한 그는 김영삼 정부 시절인 1995년 청와대 통일비서관으로 ‘베이징 쌀회담’에서 능력을 발휘했다. 1998년 통일부 차관 시절 비료 지원과 이산가족 문제를 연계한 차관급회담 수석대표로 활동했다. 남북 당국 간 회담만 30여 차례가 넘었던 2002년에는 장관급회담 우리 측 수석대표로 활약했다. 그가 통일부 장관으로 재임하던 때는 남북 접촉이 가장 활발했던 시기로, 남북대화만 95차례나 이어졌다. 정 이사장은 개성공단과 경의선 및 동해선 개통도 주도했다.
  • [아하! 우주] 길이 600만 광년 거대 ‘칫솔 은하단’ 포착

    [아하! 우주] 길이 600만 광년 거대 ‘칫솔 은하단’ 포착

    태양 같은 별 수천 억 개가 모여야 우리 은하 같은 대형 은하를 이룰 수 있다. 따라서 은하는 정말 큰 천체이지만, 우주에서 가장 큰 천체는 아니다. 사실 거대한 은하 수천 개가 모인 은하단에 비교하면 은하 하나는 작은 점에 불과하다. 은하단은 물질과 암흑물질이 만드는 중력에 의해 묶인 은하들은 집단으로 일정한 속도로 우주를 여행하면서 다른 은하단과 충돌해 더 거대한 은하단을 만든다. 과학자들은 많은 관측을 통해서 이 과정을 상세하게 연구했다. 그 가운데 ‘1RXS J0603.3+4214’는 천문학자들 사이에서 ‘칫솔 은하단’(Toothbrush galaxy cluster)이라는 별명으로 더 잘 알려졌다. 은하단 자체가 칫솔 모양으로 생긴 건 아니지만, 대신 은하단 사이 가스(intracluster gas)가 거대한 칫솔 모양으로 뭉쳐져 관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은하 사이 공간은 별 사이 공간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관점에서 보면 진공 상태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우주 공간 어디에도 물질의 밀도가 0이 되는 장소는 없다. 아무리 희박해도 약간의 물질은 있게 마련이다. 은하단 내 가스 역시 밀도가 매우 낮지만, 적어도 은하단 밖의 우주 공간보다는 더 높은 밀도의 물질을 지니고 있다. 사실 은하 사이 공간이 워낙 넓기 때문에 은하단 사이 가스를 모두 합치면 은하단의 별의 질량보다 더 크다고 생각된다. 따라서 은하단 사이 가스는 은하단의 진화와 형성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칫솔 은하단의 경우 두 개의 은하단이 서로 충돌하면서 가스의 밀도와 온도가 높아져 전파 망원경으로 관측이 가능한 경우로 생각된다. 하버드 - 스미스소니언 천체물리 센터의 연구팀은 거대 전파 망원경인 VLA(Very Large Array)를 이용해서 칫솔 은하단을 세밀하게 관측했다. 연구팀은 이 독특한 모양의 가스 구름이 생성된 이유로 은하단 충돌 가설이 가장 타당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비록 밀도는 낮지만, 중력에 이끌려 서로 충돌한 은하단의 충돌 에너지로 인해 은하단 내 가스의 온도는 섭씨 1000만 도까지 상승한다. 고온의 가스가 방출하는 에너지는 지구에서도 관측이 가능하다. 사진에서는 붉은색으로 보이는 것이 전파 망원경 관측 부위이며 치약처럼 보이는 아래의 파란 구름은 은하단 주변 가스인 헤일로의 X선 관측 결과다. 그리고 이 두 관측 결과를 광학 망원경 관측 사진과 합쳐 위의 사진을 만든 것이다. 지구에서 봤을 때 칫솔처럼 보이는 것은 물론 우연의 일치지만, 칫솔 손잡이와 브러쉬 부분까지 구분이 가능할 정도로 닮았다는 점은 흥미롭다. 하지만 과학자들에게 정말 흥미로운 부분은 우주에서 가장 큰 충돌 사건인 은하단 충돌에서 은하단 사이 가스의 역할을 밝히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앞으로 이 과정을 더 상세하게 밝히기 위한 연구가 계속 진행될 것이다. 고든 정 칼럼니스트 jjy0501@naver.com
  • ‘친부 암매장’ 고준희 실종사건…“자연사 아닌 폭행치사 의심”

    ‘친부 암매장’ 고준희 실종사건…“자연사 아닌 폭행치사 의심”

    ‘실종 여아’ 고준희(5)양이 29일 군산 한 야산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고양의 가족이 지난 8일 경찰에 거짓 실종 신고를 한지 22여일 만이다. 경찰은 전날 준희양 생부인 고모(36)씨로부터 “숨진 준희 양을 군산 야산에 유기했다”는 자백을 받아낸뒤 밤 10시부터 본격적인 수색 작업에 들어갔다.경기대 범죄심리학과 이수정 교수는 이날 오전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학대에 의한 사망이든 아니면 정말 살해를 했던간에 자연사는 아닐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고 그걸 누가 했느냐 이 부분을 강제면담수사를 시작해 알아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아이가 병원에 진료를 받았던 기록에 주목했다. 현재 생부 고씨는 아이가 어린이집을 그만두고 일정기간 후인 4월 27일 유기만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2월과 3월에 머리가 찢어지는 상처를 입어 진료를 받은 기록을 볼 때 이 교수는 유기 경위가 폭력과 연관될 가능성, 치사 가능성 내지 살인까지 적용할 수 있는 가능성이 굉장히 높다고 설명했다. 아파트 복도에서 발견된 혈흔에서 생부와 계모, 피해자 DNA가 모두 검출된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는 것이다. 아이가 사망한 시점도 주목할 점으로 꼽았다. 이 교수는 “아이가 사망한 시점이 내연녀와 함께 있던 그 시간대일 가능성도 있다. 이미 숨을 거둔 아이를 처리를 하기 위해서 생부를 불러다가 처리만 요구를 했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며 “여러가지 조사를 해봐야 알겠지만 아버지의 진술 중에 본인은 집에 가보니까 애가 숨을 거둔 상태였다라는 진술했다면 그것은 병사라기보다는 계모에 의한 폭행치사일 가능성이 굉장히 높아 보인다”고 추정했다. 앞서 전북지방경찰청에 따르면 이날 오전 4시 45분 수색작업을 벌이던 군산시 한 야산에서 준희양의 사체가 발견됐다. 준희양이 살던 전주 집에서 사체가 발견된 장소까지 차로 약 50여분 거리다. 유기 현장에 끌려온 준희양 생부인 고씨는 취재진 질문에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범행 동기와 공모 여부, 유기 수법 등에 입을 다물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준희양 실종 수사는 고씨 내연녀 이모(35)씨가 지난 8일 “밖에 나갔다가 집에 돌아오니까 아이가 없어졌다”고 경찰에 신고하면서 시작됐다. 경찰은 고씨와 이씨, 이씨 어머니이자 준희양 양육을 책임진 김모(61)씨를 압박했지만 비협조적인 태도로 수사에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경찰이 올해 초 고씨와 김씨가 함께 군산을 다녀온 사실을 파악해 집중 추궁한 끝에 생부 고씨가 범행을 자백하면서 사건의 전모가 드러났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고준희양 군산 야산서 숨진 채 발견…시신 수건에 덮여

    고준희양 군산 야산서 숨진 채 발견…시신 수건에 덮여

    ‘실종 여아’ 고준희(5)양이 결국 군산 한 야산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고양의 가족이 지난 8일 경찰에 거짓 실종 신고를 한지 22여일 만이다.29일 전북지방경찰청에 따르면 이날 오전 4시 45분쯤 수색작업을 벌이던 군산시 한 야산에서 준희양의 사체를 발견했다. 당시 시신은 쓰러진 나무 밑에 수건으로 덮여 있었다. 사체 발견장소는 왕복 8차로에서 100여m 떨어진 야산 중턱이었다. 준희양이 살던 전주 집에서 사체가 발견된 장소까지는 차로 약 50여분 거리다. 시신 훼손 여부 등은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았으며 경찰은 정밀 감식을 통해 사인을 확인할 방침이다. 유기 현장에 끌려온 준희양 생부인 고모(36)씨는 취재진 질문에 고개를 떨군 채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이날 오전 5시 30분쯤 전주 덕진경찰서로 압송된 뒤에도 범행 동기와 공모 여부, 유기 수법 등에 입을 다물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전날 고씨로부터 “숨진 준희 양을 군산 야산에 유기했다”는 자백을 받아낸 뒤 밤 10시부터 본격적인 수색 작업에 들어갔다.수색작전 6시간 30여분만에 야산 중턱 부근에서 고양의 사체를 발견했다. 준희양 실종 수사는 고씨 내연녀 이모(35)씨가 지난 8일 “밖에 나갔다가 집에 돌아오니까 아이가 없어졌다”고 경찰에 신고하면서 시작됐다. 고씨와 이씨, 이씨 어머니이자 준희양 양육을 책임진 김모(61)씨를 압박했지만 비협조적인 태도로 수사에 어려움을 겪었다. 결국 올해 초 고씨와 김씨가 함께 군산을 다녀온 사실을 파악한 경찰의 집중 추궁에 고씨가 범행을 자백하면서 사건의 전모가 드러났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영화 ‘1987’ 보기 전 알아야 할 단어들 ‘호헌철폐’부터 ‘최루탄’까지

    영화 ‘1987’ 보기 전 알아야 할 단어들 ‘호헌철폐’부터 ‘최루탄’까지

    압도적인 몰입감, 배우들의 열연, 강한 울림까지. 완벽한 3박자를 갖춘 영화로 호평을 받고 있는 ‘1987’(감독 장준환, 제공/배급 CJ엔터테인먼트, 제작 우정필름)이 영화 속에 등장하는 단어들 중, 중요하지만 지금은 생소할 수 있는 단어들을 풀이했다. #1. 호헌철폐 당시의 헌법을 지키는 것(호헌)을 중단하고 헌법을 개정하라는 뜻. 전두환 정권 당시의 대통령 선거는 국민이 직접 투표하는 직접선거가 아닌 대통령선거인단에 의한 간접선거였고, 국민들의 뜻과는 상관없이 군부정권이 계속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에 반발하여 민주화세력을 비롯한 다수의 국민들은 직접선거제도를 포함한 개헌을 요구했으나 전두환 정부는 1987년 4월 13일에 기존 헌법을 유지하겠다는 ‘호헌’을 선언했다. (4.13 호헌조치) 이 조치를 거두라는 것이 바로 ‘호헌철폐’. 영화 ‘1987’ 속 시위행렬이 외치는 “호헌철폐, 독재타도”는 4.13 호헌조치에 맞선 6월 항쟁의 구호였다. #2. 보도지침 전두환 정권 시절, 문화공보부 홍보정책실에서 거의 매일 내렸던 기사 작성에 관한 가이드라인. 1987년 9월, 해직된 언론인들이 만든 민주언론운동협의회가 폭로함으로써 처음 알려졌다. ‘1987’ 영화 속 일간지 사회부장(고창석)이 사건의 취재를 지시하며 칠판에서 지우는 내용이 바로 이 ‘보도지침’이다. #3. 간선제(↔직선제) 간접선거제도. 전두환 정권 시절, 국민들은 직접 투표를 통해 대통령을 선출하는 것이 아니라, ‘대통령선거인단’의 투표를 통해 선출되었다. 실상 이 ‘대통령선거인단’은 전두환 세력으로 채워졌기 때문에 후계자를 지목하는 것이나 다름 없는 무의미한 선거제도였다. 장충체육관에 모여 진행되어 ‘체육관선거’로도 불렸다. 이에 반발하여 국민들이 요구했던 것이 ‘직선제’, 즉 국민이 직접 대통령을 선출하는 직접선거제도이다. #4. 정의구현사제단 한국의 민주화와 인권회복, 사회정의실천 등을 위해 천주교 사제들이 결성한 종교단체. ‘1987’ 영화 속 사건의 진범 명단이 바로 이 정의구현사제단의 이름으로 명동성당에서 발표된다. #5. 백골단 1980~1990년대 학내 시위자들과 시위 군중들을 진압하고 체포하기 위해 구성된 사복경찰관들. 대부분 무술 유단자와 특전사 출신이 주류로 구성되었으며, 흰색 헬멧에 청자켓 복장 때문에 백골단이라는 별칭으로 불렸다. ‘1987’ 영화 속 연희(김태리) 모녀를 붙잡아 강제로 차에 태우는 흰색헬멧-청자켓 차림의 이들이 바로 백골단이다. #6. 남영동 대공분실 군사독재시기 경찰청 산하의 기관으로, 민주화 운동 인사에 대한 고문이 자행되었던 곳이다. ‘1987’ 속 투옥중인 민주인사가 적은 비밀서신을 몰래 외부로 전달하던 교도관 한병용(유해진)이 끌려가 고문당하던 장소가 바로 남영동 대공분실이다. 2005년까지 ‘보안분실’이라는 이름으로 사용되다가 현재는 경찰청 남영동 인권센터로 운영 중이다. #7. 최루탄 최루제를 넣어 쏘는 화학무기. 최루제는 주로 눈을 따갑게 만들고 통증을 일으키며 심지어는 일시적인 실명 현상을 일으키는 화합물이다. 군사독재시기 시위 진압용으로 자주 사용되었다. 최루탄에서 분사되는 최루액이나 최루가스가 피부, 호흡기 등으로 들어가면 일시적으로 눈물과 콧물이 분비되며 극심한 통증을 느끼게 된다. 뿐만 아니라, 탄알이 직접 사람을 가격하면 사망에 이르기도 했다. ‘1987’ 속 시위장면이나 언론사 사무실 안에서 하얀 가스를 일으키는 탄알이 바로 최루탄이다. 장준환 감독의 탄탄한 연출력과 김윤석-하정우-유해진-김태리-박희순-이희준 등 믿고 보는 연기파 배우들의 뜨거운 열연으로 1987년 그해를 고스란히 담아낸 ‘1987’은 전국 극장에서 절찬 상영중이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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