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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할린 징용자 유골 70년 만에 봉환

    “아버지께서 사할린에 강제 동원돼 고생하시다 고국 땅을 밟지 못하고 돌아가셨습니다. 어머니 생전에 유골이라도 모셔와 평생의 한을 조금이나마 풀어드린 것 같아 더없이 기쁩니다.” 일제강점기 러시아 사할린 강제징용 피해자의 유족인 박재일(68)씨는 기쁨의 눈물에 더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행정안전부는 13일 러시아 사할린에 강제징용으로 끌려가 끝내 귀국하지 못한 한국인 노무자의 유골 16위를 70여년 만에 고국으로 봉환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강제징용에 시달린 모든 희생자의 유골을 봉환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확인된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의 묘지 수가 1395기였는데 고인의 생전 행정정보가 러시아에 없는 사례가 많아 피해자 신원을 파악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어서다. 70여년의 세월이 흐른 것도 걸림돌로 작용한다. 행안부 관계자는 “고인이 러시아에서 생활하며 현지에 새로운 유족이 생겼고, 한국으로 희생자의 유골을 봉환하는 데 의견을 달리할 때가 종종 있다”고 말했다. 추도식은 14일 충남 천안에 있는 ‘국립망향의 동산’에서 열린다. 추도식에는 강제동원 피해자 유족과 유족단체, 정부 부처 관계자와 국회의원 등 200여명이 참석한다. 신형철 기자 hsdori@seoul.co.kr
  • ‘서른이지만’ 신혜선♥양세종, 13년 전부터 시작된 사랑 확인 ‘눈물’

    ‘서른이지만’ 신혜선♥양세종, 13년 전부터 시작된 사랑 확인 ‘눈물’

    ‘서른이지만’ 신혜선♥양세종이 13년 전부터 서로를 좋아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지난 11일 방송된 SBS 드라마 ‘서른이지만 열일곱입니다’(이하 ‘서른이지만’)에서는 서리(신혜선 분)와 우진(양세종 분)이 서로의 과거를 모두 알게 돼 가슴 아파하는 모습이 그려져 안방극장을 눈물바다로 만들었다. 이날 우진은 수미의 납골함과 함께 놓여진 사진을 보고 첫사랑 소녀가 서리였다는 사실을 알아채고 살아줘서 고맙다며 서리를 끌어안았다. 하지만 이내 자신이 서리의 인생을 앗아갔다는 자책감에 휩싸인 우진은 집에 돌아와 “나 때문에”라며 가슴을 부여잡으며 오열했다. 그리고 그렇게 우진은 조용히 떠나버렸다. 그런가 하면 서리는 친구 수미(이서연 분)가 죽었다는 충격이 잠으로 이어진 듯 했다. 이내 텅 빈듯한 표정으로 마당에 앉아있던 서리는 우진의 휴대전화 벨소리에 이끌려 창고로 들어갔고, 그 곳에서 열일곱 자신의 모습이 그려진 그림을 발견하고 화들짝 놀랐다. 이어 우진의 방에서 스티커가 붙여진 익숙한 화구통과 열일곱 우진의 사진까지 보고 그에 대한 모든 의문점을 꿰 맞춘 서리는 마치 꿈 같았던 우진의 애틋하고 슬픈 이마 뽀뽀를 떠올리며 “이대로 가버리면 안 되는데..”라며 눈시울을 붉혀 관심을 집중시켰다. 뿐만 아니라 서리는 우진이 떠나기 전 자신에게 남긴 편지를 읽으며 눈물을 터뜨리는 모습으로 눈물샘을 자극했다. 우진이 자신을 처음 본 그 날부터, 자신을 수미로 착각했던 이야기, 떠나는 이유까지 빼곡히 적힌 그의 편지에 서리는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더욱이 이때 편지를 쓰며 오열하고, 편지를 다 쓴 뒤 퉁퉁 부은 눈으로 서리의 모습이 담긴 그림을 바라보며 방문을 닫는 우진의 모습은 시청자들의 가슴까지 먹먹하게 했다. 이후 서리는 우진을 만나고 싶을 때마다 그를 마주쳤던 육교로 향했지만, 보이지 않는 우진의 모습에 주저 앉아 눈물 흘렸다. 하지만 이내 “안 갔어요, 나”라며 들려온 우진의 목소리에 서리는 고개를 들어 그를 끌어안았다. 그런 서리의 두 손을 맞잡은 우진은 “뭘 어떻게 해도 이제 널 떠날 수가 없어.. 네가 없는 내가 상상도 안될 만큼 널 너무 사랑하게 돼버렸어”라며 돌아온 이유를 설명했다. 이에 더해 우진은 “원망, 네 옆에서 들을게. 죽을 만큼 미워하고, 죽을 만큼 밀어내도 있고 싶어. 네 옆에”라며 서리에게 애원했다. 이에 서리는 “아니면? 그게 다가 아니면? 우진이 네가 알고 있는 게 전부가 아니면?”이라며 슬며시 미소 지었고, 이어진 13년 전 과거 장면은 보는 이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열일곱 서리(박시연 분) 또한 열일곱 우진(윤찬영 분)을 짝사랑 했었던 것. 이에 13년 전부터 운명적으로 이끌린 ‘꽁설커플’ 서리-우진의 앞날에 궁금증이 모아지고 있다. 이 장면은 최고 시청률 12.5%를 기록, 열연을 펼치고 있는 신혜선과 양세종의 인기를 증명했다. 한편, 극 사이사이에 궁금증을 유발했던 미스터리들이 풀려가며 관심을 끌어올렸다. 제니퍼의 남편은 서리-우진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버린 청안사거리 12중 교통사고의 사망자였고, 이로 인한 스트레스로 유산을 했음이 밝혀졌다. 또한, 코마상태에 빠진 서리의 병원비를 대주던 사람은 외삼촌이 아닌 사고를 냈던 트럭 운전사였음이 드러나, 앞으로의 전개에 궁금증이 고조되고 있다. 한편, SBS ‘서른이지만’은 매주 월, 화 오후 10시에 방송된다. 사진=SBS ‘서른이지만’ 방송 캡처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자신보다 10배 큰 거대 비단뱀 타고 노는 아이

    자신보다 10배 큰 거대 비단뱀 타고 노는 아이

    한 꼬마가 거대한 비단뱀과 노는 모습이 포착됐다. 무엇보다 이 모습을 부모가 지켜보고 촬영까지 한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더 하고 있다. 최근 인도네시아 이스트 자바 주에서 촬영된 영상에는 한 아이가 자신의 몸보다 10배는 큰 비단뱀과 노는 모습이 담겼다. 아직 말도 다 떼지 못한 듯한 아이는 비단뱀의 몸에 걸터앉아 끌려다니는 모습이다. 아이는 즐거운 듯 연신 웃음을 터뜨리며 뱀에게 몸을 치댄다. 다행스럽게도 비단뱀은 아이가 그렇게 거슬리지 않는 듯 보인다. 자신이 얼마나 위험한 상황인지 모르는 아이는 뱀의 앞으로 다가가 뱀 머리를 들어 올리기까지 한다. 영상이 공개된 후 누리꾼들은 뱀이 언제 공격할지 모르는 위험한 상황에서도 아이를 말리기는커녕 태연히 아이의 모습을 촬영한 부모의 태도를 지적했다. 사진·영상=뉴스 그레이트/유튜브 영상팀 seoultv@seoul.co.kr
  • 규제올인·수급예측·다주택자 조준 ‘헛다리 대책’ 집값만 올렸다

    규제올인·수급예측·다주택자 조준 ‘헛다리 대책’ 집값만 올렸다

    재건축 옥죄기→ 매물 품귀→ 가격 상승 찔끔찔끔 공급대책 세입자 불안 못 재워 다주택자는 임대사업자 등록하며 버티기 판단 미스·조급증 책상머리 정책 후유증전방위적으로 주택 정책이 쏟아졌지만, 정곡을 찌르지 못한 채 시장에 질질 끌려다니고 있다. 지난해 정부 출범 이후 야심 차게 내놓은 ‘8·2대책’은 후속조치가 나오기도 전에 약발이 떨어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8·27대책’에도 시장이 가라앉지 않자 정부는 한 달도 안 돼 추가 대책을 내놓기로 했다. 부처·정치권의 다듬어지지 않은 중구난방식 대책 남발로 투기꾼의 내성만 키우고 있다. 갖가지 대책에도 집값이 잡히지 않는 데는 고장 난 시스템이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주택시장의 가장 큰 문제점은 거래량이 줄어들면서 가격만 오르는 이상현상이다. 매물이 돌지 않는 비정상 시장에서 이따금 높은 수준에 거래된 주택 가격이 시장가격으로 굳어버리는 부작용이 나타났고 있다. 정책 실패가 이어지면서 무주택자, 서민들의 불안 심리가 더욱 커지고 있다. 원인은 무엇일까. 먼저 규제위주 정책이 시장을 왜곡시켜 집값을 끌어올렸다는 지적이 나온다. 재건축 규제를 강화하고, 금융권 대출을 옥죄는 정책이 대표적이다. 여기에 ‘다주택자=투기꾼’으로 몰아 세금으로 압박하는 정책도 얹혔다. 장희순 강원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정부가 규제정책을 내놓으면서 투자 수요가 줄어들고, 매물이 쏟아져 자연스럽게 가격도 큰 폭으로 내릴 것으로 판단했는데, 되레 시장을 왜곡시킨 결과로 이어졌다”고 지적했다. 예컨대 재건축 사업 승인을 까다롭게 하고, 재건축 대상 아파트 거래를 규제하면 집값이 잡힐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는 보기 좋게 빗나갔다. 대책 발표 때는 잠깐 가격이 내려가는 것처럼 비쳤으나 충격은 금세 사라졌다. 조합원 지분 거래를 막아 정작 처분하고 싶어도 팔 수 없는 게 현실이다. 도심 아파트를 보유하려는 수요는 여전한데 지분 거래를 틀어막으니 매물만 귀해졌고, 가격은 다시 오르는 부작용을 낳았다. 둘째 수급 예측도 실패했다. 정부는 새 아파트 준공 물량을 내세워 공급량이 충분하고, 가격도 내려갈 것으로 기대하고 홍보했다. 이는 준공 물량 증가가 곧 매물 증가로 이어지지 않는 현실을 무시한 ‘순진한’ 예측이다. 주택이 준공되면 전체 주택 재고량은 분명히 늘어난다. 집주인이 바로 입주하지 않는다고 매물이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기존 주택에서 살면서 전세를 줄 수도 있다. 반대로 새 집에 입주하고 기존 주택을 매매하지 않고 임대로 돌리는 경우도 많다. 새 집이 늘어나면 전세 물건은 상응해서 증가하지만, 매매 물건은 준공 물량 증가와 비례해 늘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간과한 결과다. 주택문제를 투기수요 탓으로만 돌리고, 공급 부족 문제에는 고개를 돌렸다는 지적도 나온다. 뒤늦게 서울과 근교 그린벨트를 풀어 주택 공급을 확대하겠다지만 시기를 놓친 감이 있다. 찔끔찔끔 내놓는 공급대책으로 무주택 서민들의 불안감을 잠재우고 수요를 가라앉힐 수 있을지 미지수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어떤 지표로 보든 서울의 주택공급은 부족한 상황인데, 8·2대책에는 공급 확대 메시지가 빠졌다”면서 “정부가 이번에 서울과 수도권에 주택 공급을 확대하는 방안을 내놨지만 당분간 상승세가 계속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셋째 다주택자 규제정책도 주택시장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부작용도 따랐다. 지난 4월부터 다주택자에게는 무거운 세금을 물리고 있다. 지난해 8·2대책에서 예고된 터라 연말부터 올해 3월 말까지는 일시적으로 거래가 급증했다. 정부는 매물 증가 현상이 이어지고 가격도 내려갈 것으로 예상했지만, 효과는 단기간에 그쳤다. 많은 다주택자가 양도세를 무겁게 내더라도 집을 처분하지 않고 버티기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다주택자들이 주택을 처분하지 않고 빠져나갈 자리를 깔아 준 것도 매물 부족으로 이어졌다. 다주택자에 대한 임대주택사업등록 유도 정책이 그것이다. 10년간 임대사업을 벌이면 양도세를 감면해 주겠다는데 굳이 무거운 세금을 내면서까지 집을 팔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시장에서는 “단기간에 집을 처분하라고 압력을 넣으면 가격이 정상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정책 당국자뿐”이라는 비아냥이 나올 정도다. 박원갑 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다주택자 규제, 대출 규제 등으로 투기 수요가 분명히 줄었지만, 공급은 이보다 더 감소했다”며 “조심스럽지만, 시장에 물량이 많이 나오게 하는 정책도 펴야 한다”고 지적했다. 넷째 금융규제도 맥을 잘못 짚었다. 다주택자가 집을 추가로 사들일 때만 상황능력 범위를 벗어난 금융대출을 규제해야 하는데, 시장에서는 전반적인 대출 규제로 이어졌다. 예를 들어 단독주택에 사는 사람이 신규 아파트를 분양받아 입주하려고 하는데 잔금을 마련할 수 없어 입주를 포기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새 아파트는 기존 대출도 끼어 있지 않다. 1순위 담보대출이 가능하지만, 다주택자라는 이유로, 기존 주택에 담보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대출 길이 막혀 있다. 마지막으로 강도 높은 규제정책을 내놓으면 투기수요가 줄어들고 가격도 내려갈 것이라는 안이한 판단과 조급증이 화를 불렀다. 부처 간, 부처와 정치권의 엇박자 정책 등 현실성 떨어지는 책상머리 정책도 되레 투기를 키웠다는 지적에서 피할 수 없다. 류찬희 선임기자 chani@seoul.co.kr
  • 행안부 ‘갑질감사’ 논란…“거짓말로 언론플레이”

    행안부 ‘갑질감사’ 논란…“거짓말로 언론플레이”

    최근 불거진 행정안전부 ‘갑질감사’ 논란과 관련해 사건 피해자인 홍모 주무관이 “행정안전부가 거짓말로 언론플레이를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김부겸 행안부 장관에게 진상조사를 요구하고 행안부 관련자들에 대한 별도의 법적 절차도 밟겠다”고 밝혔다. 경기 고양시청 소속 홍 주무관은 지난달 30일 행안부 조사관 2명이 탄 개인 차량에 끌려가 약 1시간 30분 동안 인권침해 수준의 굴욕적 취조를 당했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행안부는 “개인의 일방적 주장”이라고 맞서고 있다. 아래는 홍 주무관과의 일문일답. Q. 이번 갑질논란과 관련해 책임자인 김종영 행안부 감사관은 6일 기자들에게 “지난 7월 홍 주무관이 사무관리비를 편취했다는 익명제보가 들어왔고 이에 대해 홍 주무관이 감사를 거부해 행안부 감사관실이 나서게 됐다”고 밝혔다. A. 난 감사를 거부한 적이 없다. 얼마 전 내가 속한 부서에서 노숙인 관련 업무·직원 생일축하 등 과정에서 라이터와 이어폰 등 사무용품을 구입한 것이 도(道) 감사에서 지적됐다. 일부 물품이 공무 용도로 구입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최종적으로 2건, 7200원이 사무관리비 용도 이외 비용으로 판명됐다. 당시 난 이 부분에 대해 성실히 감사에 임했고 담당자에게서 “수고했다”는 이야기까지 들었다. 이 건은 이렇게 마무리됐던 사안이다. 그걸 행안부에서 무슨 이유에서인지 갑자기 다시 들고 나와 “도 감사 결과를 인정하지 못하겠다”며 조사에 나선 것이다. 내가 감사를 거부했다는 것은 행안부의 거짓말이다.(이에 대해 행안부는 “이미 경찰에 수사를 의뢰한 사안이기 때문에 더 이상 이 문제를 언급하지 않겠다. 다만 홍 주무관 조사 당시 7200원 건만 문제가 됐던 것은 아니다. 도 감사에서는 큰 문제가 없던 것으로 판명됐지만 익명 제보 내용을 살펴볼 때 다시 한 번 조사해 볼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했기에 나섰던 것”이라고 밝혔다.) Q. 김 감사관은 “현재 홍 주무관이 휴대전화를 꺼둔 채 연가를 내고 잠적해 추가 조사를 하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A. 말도 안 된다. 나는 잠적하지 않았다. 지금도 집에 잘 있다. ‘갑질감사’로 생긴 충격 때문에 신경정신과 치료를 받고자 병가를 낸 것 뿐이다. 휴대전화를 꺼놓은 적도 없다. 정말로 나를 조사해야 한다면 문자 메시지라도 하나 남겨서 답신을 요청해야 하는 것 아닌가. 행안부의 언론플레이 때문에 주위 사람들은 내가 뭔가 캥기는 게 있어서 뒤로 숨었다고 의심한다. 혹은 신변을 비관해 극단적 선택을 하려는 것 아닌가 우려도 한다. 행안부가 면피를 위해 나를 두 번 죽이려는 것 같아 화가 난다. 논란 이후 행안부는 단 한 번도 나에게 만나자고 직접 연락한 적이 없다. 행안부에 통신내역 대질을 요구한다. 지금이라도 좋으니 언제든 만나서 얘기하자. 제발 내 휴대전화로 연락 좀 해라.(확인 결과 행안부는 홍 주무관에게 직접 전화나 문자메시지를 보낸 적이 없었다. 고양시 김모팀장을 통해 간접적으로만 몇 차례 면담 의사를 전달했다. 행안부는 “홍 주무관이 감정적으로 격해질 수 있어서 그랬다. 이런 경우에는 당사자에게 직접 연락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라고 해명했다.) Q. 행안부는 “몇 차례 고양시청을 찾아갔지만 그때마다 홍 주무관이 면담을 피했다”고 주장한다. A. 행안부 감사관실의 행태가 이해되지 않는다. 정말로 날 만나고 싶다면 나에게 먼저 연락해서 상황을 설명하고 시간과 장소를 정해야 하는 것 아닌가. 처음 갑질논란 기사가 나간 다음날인 4일 행안부 직원들이 아무 연락도 없이 다짜고짜 고양시청에 찾아와 나를 만나겠다고 했단다. 그때 나는 이번 일로 생긴 스트레스 때문에 병원 진료를 받고 있어 그 자리에 못 갔다. 이틀 뒤인 6일에도 김 팀장을 통해 나를 만나고 싶다고 연락이 와 병가 중에도 시청에 출근해 이들을 기다렸다. 그런데 면담장소에 노조 사무국장을 데려 가겠다고 하니 “그럼 다음에 보자”며 일방적으로 약속을 취소하고 가 버렸다. 정말 나와 면담할 의사가 있기는 한 것인지 행안부에 되묻고 싶다. 그저 날 만나려 했다는 면피성 보고를 위한 행동 아닌가 싶다. 오히려 고양시 공무원노조에서 행안부에 면담을 요청하려고 수십차례 연락을 했지만 그쪽에서 일체 반응하지 않고 있다. 원하면 부재중전화와 문자메시지 전송 내역을 보여주겠다. Q. 지금 행안부에 가장 화가 나는 부분은 무엇인가. A. 행안부는 그간 갑질감사에 사과하고 진정성있는 재발방치 대책을 내놓으면 된다. 그런데 감사관실이 자기들 책임을 떠넘기고 제식구만 감싸려고 일을 자꾸 어려운 쪽으로 가져간다. 행안부는 설명자료 등을 통해 나를 마치 공금에 손을 댄 듯한 부패 공무원 이미지로 포장시켰다. 해당 자료를 작성한 감사관실 윤모 사무관에게 “해당 내용은 사실이 아니니 수정해 달라”고 요구했지만 “알았다”고 대답만 할 뿐 지금껏 아무 조치도 없다. 또 이번에 물의를 일으킨 해당 조사관은 과거에도 여러차례 갑질논란으로 구설에 오른 인물이다. 행안부는 늘 그때마다 엄중조치와 재발방지를 약속했지만 이번 건을 봐도 알 수 있듯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공무원노조와 상의해 이런 부분들에 대한 법적 조치에 나설 생각이다. Q. 김부겸 행안부 장관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A. 오늘 아침 ‘장관과의 대화’ 게시판에 글을 올렸다. 제발 김 장관이 내 글을 꼭 읽어줬으면 한다. 사실을 더하거나 빼지 말고 있는 그대로 봐 달라는 것이다. 같은 공무원끼리 ‘누워서 침뱉기’ 식으로 싸우는 현실이 부끄럽지만 진실은 반드시 밝혀져야 한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논설위원의 사람 이슈 다보기] 北 집필정지 명령·교도소 수감설… 최근엔 월북보다 납북설 유력

    [논설위원의 사람 이슈 다보기] 北 집필정지 명령·교도소 수감설… 최근엔 월북보다 납북설 유력

    여운형 계열 좌우 합작 노선에 가까워 자본주의적 퇴폐풍조 모더니즘 작품 함께 월남한 가족들 두고 홀로 北으로김기림은 해방 공간에 북한으로 간 것으로 돼 있다. ‘간 것으로 돼 있다’는 표현을 쓰는 것은 1908년 함경북도 성진에서 태어난 그가 해방 이후 스스로 북행했다는 설이 있는가 하면 한국전쟁 발발 직후 인민군에 의해 납치돼 북으로 끌려갔다는 설이 공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납북설이 유력하다. 그는 해방 직후 ‘조선문학가동맹’ 가입 건으로 좌익으로 분류되면서 초·중·고 교과서에서 사라졌다. 해금된 1988년 이전까지는 자진 월북한 문인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김기림 연구자인 서울대 국문과 김유중 교수는 “최근 여러 증언과 자료들을 종합해 볼 때 월북이 아닌 납북이라는 게 다수 의견”이라는 학계 분위기를 전한다. 좌익단체에 몸담은 것은 사실이나 순수 좌익이라기보다는 여운형 계열의 좌우 합작 노선에 가까웠던 점, 가족과 더불어 월남했고 북으로 갈 때도 가족과 동행하지 않은 점, 이미 북한에서 지주 계급이라는 이유 등으로 옥고를 치렀다는 점, 북에서의 행적을 확인할 길이 없고 다른 월북 문인들과는 달리 조금이라도 대우받은 흔적조차 없는 점, 결정적으로 임화나 김남천 등 좌익 문인들이 남로당 불법화 이후 북행길에 올랐을 때 여러 차례 기회가 있었는데도 월북하지 않았던 점 등이 그 이유라고 김 교수는 강조한다.김 교수는 신문 보도, 탈북자 정보, 김기림을 아는 지인의 얘기 등을 종합할 때 그의 북한 행적에 관한 두 가지 설이 있다고 말한다. 첫째가 1958년 한국일보에 보도된 내용으로 간첩죄로 체포된 북한군 정치부사단장 출신의 증언이다. 증언에 따르면 김기림, 정지용은 북한에 가자마자 당국으로부터 집필활동 정지 명령을 받았다. 김 교수는 이 내용이 현재까지 알려진 것 가운데 “가장 신빙성 있다고 본다”고 했다. 북한 출신으로 해방 후 월남했으며, 자본주의적 퇴폐풍조로 분류되는 모더니즘 계열의 시 창작활동을 한 그를 북한 당국이 좋게 봤을 리가 없다는 것이다. 둘째가 김기림이 북한에 가자마자 교도소 수감 생활을 했는데 친척, 지인, 제자들이 탄원서를 내 풀려났다는 설이다. 그렇지만 한 차례 숙청을 당한 몸이라 좋은 보직을 얻지 못하고 평양에 있는 극장의 말단 직원으로 허드렛일을 했다고 한다. 이때 남편과 별거 중인 극장 아나운서와 눈이 맞아 연애를 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자숙해도 못마땅할 놈이 부화뇌동해서 연애질이나 한다”고 당국의 눈총을 받고 재수감되었다는 그럴 듯한 스토리까지 붙어 있다. 김기림은 7살 때인 1915년 임명 보통학교에 입학, 서울로 와서 보성고등보통학교에 들어갔다가 중퇴한 뒤 1930년 일본의 니혼대학 문학예술과를 졸업했다. 귀국 후 조선일보 사회부에서 기자 활동을 하였으며, 이 시기에 서구 모더니즘의 영향을 받은 시와 시론들을 집중 발표했다. 문인과 기자로서 한창 명성을 얻던 1936년, 신문사를 휴직한 그는 28세의 적지 않은 나이에 홀연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도호쿠제국대학 영문과에 들어갔다. 깊이 있는 학문에 대한 열정과 갈망이 그를 그렇게 이끌었을 것이다. 졸업 이후 조선일보에 복직한 그는 학예부로 소속을 옮겨 보다 왕성한 활동을 한다. 그러나 태평양전쟁 개시를 전후하여 신문사가 폐간되고, 총독부의 감시와 억압이 심해지자 그는 고향인 성진으로 가 한동안 인근의 경성(鏡城)고보에서 영어와 수학을 가르치는 한편 ‘무곡원’(武谷園)이라는 과수원을 운영하며 간간이 지면을 통해 작품을 발표한다. 해방과 더불어 문단에 복귀한 그는 모더니즘의 실질적인 청산을 선언하며 근대를 넘어선 새로운 시대의 개막을 주장하는 파격적인 행보를 감행한다. 서울대, 중앙대, 연세대, 조선대 등에서 강의했다. 1930년 ‘가거라 새로운 생활로’를 신문에 발표하면서 시단에 진출하였고, 시집 ‘기상도’(1936), ‘태양의 풍속’(1939), ‘바다와 나비’(1946), ‘새노래’(1948)와 수필집 ‘바다와 육체’(1948), 시론집 ‘시론’(1947)과 ‘시의 이해’(1949) 등을 냈다. 상당 기간에 한국에서는 ‘월북’이라는 딱지가 붙어서 그의 시집의 소지조차 금기시됐으나 1988년 해금 조치되면서 출간이 잇따르고 연구도 활발하게 됐다.
  • [월드 Zoom in] 미국의 인도 딜레마… 끊자니 中견제 막혀 품자니 실익만 챙겨

    미국이 인도를 두고 깊은 고민에 빠졌다. 미국이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육상 해상 실크로드)에 맞선 인도·태평양 전략 실현을 위해 인도에 러브콜을 보내고 있지만 정작 인도는 미국 대 중·러 갈등 구도 속에서 실익만 챙기며 선뜻 미국 편에 서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매티스·폼페이오 인도서 2+2 회담 그렇다고 미국이 인도를 제재할 수 있는 입장도 아니다. 인도와 전략적 동맹 관계가 파열음이 날수록 중국 견제가 어려워지고 아시아 전략 전반이 흔들리는 상황을 깊이 인식하고 있다. 5일(현지시간) AP통신 등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의 6일 인도 뉴델리 방문을 앞두고 경제 제재 카드를 검토 중이다. 미국은 인도와의 외교·국방(2+2) 회의 결과에 따라 제재 스탠스도 정할 것으로 보인다. 미 국방부 관계자는 “이번 뉴델리 2+2회의는 개별적인 무기 거래 등에 대한 조율이 아니라 전반적인 동반자적 관계 확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AP통신에 말했다. 이는 인도의 이란산 원유 수입과 러시아제 방공망 도입, 중국과 경제 거래 활성화 등 미국이 원치 않는 정책들에 대한 변경을 요구할 것이란 의미로 풀이된다. ●인도·태평양사령부로 바꾸고 러브콜 그러나 인도가 거부해도 미국으로선 대응 카드가 마땅치 않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태평양사령부를 인도·태평양사령부로 이름까지 바꿀 정도로 인도는 대중 견제를 위한 전략적 요충지다. 지난 7월부터 ‘인도·태평양 전략’에 1억 1000만 달러(약 1200억원)를 투자할 정도로 미국은 몸이 달아 있다. 미국으로선 영어를 공용어로 쓰고 있고 민주주의 가치도 공유하는 인도가 매력적인 파트너다. 인도만 미국 편을 들어 주면 아시아 전략이 승승장구할 수 있다고 믿는다. 워싱턴의 한 소식통은 “미국은 경제·군사 지원만 해 주면 인도가 확 끌려올 것으로 판단한 것 같다”면서 “하지만 인도는 미국과 중·러 갈등 속에서 줄타기하며 실익을 챙기고 있다”고 분석했다. ●美·中 줄타기한 인도, 8.2% 고공 성장 인도의 실리 외교는 지난 2분기 8.2%의 깜짝 경제성장률을 기록한 것에서 드러난다. 지난해 6.6%에서 급상승한 것은 물론 2년 만에 8%대 성장률로 복귀했다. 미·중 무역전쟁의 여파로, 중국 시장에서 사라진 미국산 제품을 인도산이 대체하기 시작했다. 인도는 포도와 면화린터(짧은 섬유), 합금강 심리스 보일러 등 40여개 제품을 중국에 집중적으로 수출하고 있다. 인도는 미국의 구애를 즐기는 와중에 최대교역국인 중국에 대한 수출을 획기적으로 늘려 670억 달러(약 70조원)에 달하는 대중 무역적자 규모를 빠른 속도로 줄이고 있다. 미국의 경제 전문가는 “인도는 1980~90년대 미·일 갈등 속에서 경제 체력을 쌓았던 중국처럼 미·중, 미·러 갈등 속에서 착실히 실익을 챙기고 있다”면서 “인도가 중국의 빈자리를 메울 날이 머지않았다”고 전망했다. 워싱턴 한준규 특파원 hihi@seoul.co.kr
  • 중산층이 사라지고 난 후…

    중산층이 사라지고 난 후…

    순수한듯, 자극적이며 중독적인 필력 죽음 향해 살아가기 급급한 인간의 삶 승자·패자 양극화된 이분법 세상 그려아내가 임신할 무렵 두 집 살림을 차린 대기업 회장의 아들, 시아버지와 남편을 제치고 기업을 손에 넣겠다고 마음먹은 금수저 며느리, 기업 회장 아들과 사귀며 화려한 ‘톱’의 세계를 꿈꾸게 된 평범한 젊은 여성. 김사과(34) 작가가 2013년 ‘천국에서’ 이후 5년 만에 선보이는 신작 장편 ‘뉴(N.E.W.)’(문학과지성사)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막장 드라마’에서 본 듯 익숙하다. 작가는 부와 권력을 좇는 그들의 욕망보다 그들이 세계를 대하는 방식에 초점을 맞춘다.소설은 대기업 오손그룹을 이끄는 정대철 회장 일가 사람들과 우연히 이들과 얽히게 된 젊은 여성의 이야기다. 아버지인 정 회장의 카리스마에 눌려 무능력하다는 평가를 받는 정지용은 겉은 멀쩡하지만 어쩐지 의뭉스럽다. 학벌과 미모, 집안 등 삼박자를 고루 갖춘 최영주는 정지용과 정략결혼을 하지만 이내 자신 앞에 놓인 절망적인 삶에 괴로워한다. 두 사람이 신혼집을 마련한 아파트에 우연히 입주한 이하나는 정지용의 유혹에 이끌려 그의 내연녀가 되고 자신도 모르게 그에게 중독된다. 미국에서 집필 활동을 하고 있는 작가는 이메일 인터뷰에서 “전작 ‘천국에서’를 통해 몰락하는 중산층의 삶을 묘사하고 난 뒤, 정말로 중산층이 사라져버리고 나면 남는 풍경은 어떨지 궁금했다”면서 “승자와 패자, 먹는 자와 먹히는 자로 양극화된, 흑과 백의 완벽한 이분법의 세상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집필 계기를 설명했다. ‘200평짜리 최고급 펜트하우스’에 사는 상류계층과 ‘5평짜리 서민용 원룸’에 사는 하류계층의 배경과 특징은 다르지만 자신의 사회적 위치에 극단적으로 순응한다는 점에서 같다. 작가는 “등장인물들은 저마다의 곤경에 처해 있지만 곤경의 이유를 곰곰이 따져보기보다는 그저 가능한 한 빨리, 스마트하게 그 곤경에서 빠져나오는 데 몰두한다”면서 “그 수단으로서 하는 행동들이 누군가의 눈에는 유령처럼 보일 수도 있을 만큼 괴상한 방식이지만 최선을 다해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살아나가려는 젊은 세대의 모습을 가능한 한 긍정적으로 그려 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불륜 치정극이 속도감 있게 전개되는 듯하다가 후반부에서 작가 특유의 파괴적인 면모가 드러난다. 정지용은 무표정한 얼굴로 아버지에게 자신을 위해 제발 죽어 달라고 호소한다. 최영주는 지용의 후계자인 아이를 제 손으로 죽이고, 아이 잃은 슬픔을 태연하게 연기한다. 정지용에게 삶을 송두리째 ‘잡아먹힌’ 이하나의 왼쪽 팔은 쥐도 새도 모르게 잘린다. 돈과 물질에 집착하는 시대, 인간의 존엄과 생명을 가볍게 여기는 세태를 꼬집는 것처럼 보이지만 작가는 “그보다 인간이란 존재에 대한 기대치가 낮아진 것 같다”고 말했다. “인간 종족은 대체로 비이성적이고, 공격적이며, 단기적인 사고를 한다는 특징을 갖고 있는 것 같아요. 따라서 진보주의자들이 말하듯 세상이 점점 더 나아진다는 개념은 사실과 완전히 동떨어져 있다고 느낍니다. 그저 죽음을 향해 매일매일을 살아가기에 급급할 뿐이죠.” 세상을 향한 분노를 격정적으로 표현한 작가 특유의 형식 실험은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편하게 술술 읽히지만 현 세태를 조명하는 날카로운 문제의식은 여전하다. “여러 가지 심각한 이야기들이 뒤섞여 있기는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 소설을 읽는 것이 순수한 즐거움, 순도 높은 쾌락에 가깝기를 바랍니다. 텔레비전, 극장, 스마트폰이 줄 수 없는 복잡하고 세련된 수준의 자극적이고 중독적인 경험으로서의 독서를 제공하는 것이 저의 작가로서의 야심 가운데 하나입니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궁중족발 사건’ 가해자에 중형 구형…“임차인권리 보호 자리 아냐”

    ‘궁중족발 사건’ 가해자에 중형 구형…“임차인권리 보호 자리 아냐”

    상가 임대료 문제로 극심한 갈등을 겪다가 건물주에게 망치를 휘두른 ‘본가궁중족발’ 사장에게 검찰이 징역 7년의 중형을 구형했다. 5일 이틀째 열린 국민참여재판에서는 건물주 이모(60)씨가 사건이 일어난 지 석 달 만에 궁중족발 사장 김모(54)씨와 법정에서 마주했다. 다만 두 사람 사이에는 가림막이 세워졌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3부(부장 이영훈) 심리로 이틀째 열린 김씨에 대한 국민참여재판에서 검찰은 “피고인은 상가 임차인의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고 있지만, 분쟁이 있다고 해서 법원의 판결을 무시하고 법이 정한 절차를 무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면서 “우리나라에서는 사적인 복수가 가능하지 않아 법이 있는 것인데 그걸 피고인은 무시했다”며 김씨에게 징역 7년을 선고할 수 있게 해 달라고 배심원들에게 요청했다. 앞서 이날 재판에서는 건물주 이씨와 김씨의 아내 윤모씨 등이 차례로 증인으로 나왔다. 이씨는 서로 깊은 감정싸움을 하던 김씨와 가림막을 둔 채 “무서웠다”는 말을 거듭 되풀이했다. 김씨가 자신의 자녀를 언급하며 “대를 끊어놓겠다”는 등의 협박 메시지를 보냈고, 망치를 들고 쫓아왔을 때, 폭행했을 때 등 김씨와 얽힌 상황에 대한 심정을 묻는 검사의 질문에 잇달아 “무서웠다”고만 했다. 특히 김씨가 망치를 휘둘렀을 땐 “살아야겠다는 생각 밖에 없었다”고 회상했다. 가림막 뒤에 있던 김씨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고 가만히 이씨의 증언을 듣기만 했다. 반면 김씨의 아내인 윤씨는 “이씨가 애아빠(김씨)에게 끊임없이 문자와 연락을 해왔다”면서 “나중에 합의를 할 일도 있기 때문에 건물주와 임대인 사이의 끈을 놓지 않아야 해서 차단할 수 없었다”며 또 다른 공포심을 언급했다. 윤씨는 특히 이씨와의 명도소송에서 패한 뒤에도 가게에서 나가지 않은 이유를 검사가 묻자 “건물주가 정당해서 얻어진 결과가 아니라 형평성을 잃어버린 법 때문”이라면서 “판결문이 건물주에게 너무 과도한 권한을 줬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평생 모은 재산이 가게 하나인데 그냥 나갈 수가 없었다. 법에서도 외면받고 보호받지 못해 저희는 스스로 지킬 수밖에 없었다”며 북받쳤다. 2009년부터 서울 서촌에서 궁중족발을 운영하던 김씨 부부는 2016년 1월 이씨가 족발집이 입점한 건물의 소유권을 취득한 뒤 기존보다 4배 높은 임대료를 요구하면서 이씨와 갈등을 빚게 됐다. 이씨는 보증금을 3000만원에서 1억원으로, 월세를 297만원에서 1200만원으로 올렸다. 김씨는 이씨에게 건물명도 소송을 냈지만 지난해 11월 패소했고, 12차례 강제집행이 이뤄졌다. 강제집행 과정에서 김씨는 건물에서 빠져나가지 않기 위해 조리대 밑을 붙잡고 버티다가 경비 용역들에게 강제로 끌려나오는 과정에서 손가락 4개가 절단되는 중상을 입기도 했다. 지난 6월 6일 12번째로 이뤄진 강제집행이 모두 완료된 날이었고, 이씨와 김씨의 갈등은 더욱 극에 달했다. 맘상모(맘편히 장사하고픈 상인모임) 등 소상공인, 자영업자들과 시민단체가 연대해 궁중족발 앞에서 집회도 가지며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을 촉구했다. 6월 7일 오전 8시 20분쯤 김씨는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서 이씨를 망치로 폭행해 어깨와 손목 등을 다치게 하고, 이에 앞서 골목길에서 자신이 운전하던 차량으로 이씨를 들이받으려다가 지나가던 행인 염모씨를 차로 쳐 전치 12주의 상해를 입도록 한 혐의(살인미수), 이씨가 사용하던 차를 들이받아 손해를 입힌 혐의(재물손괴)로 구속돼 재판에 넘겨졌다. 국민참여재판에서 검찰과 변호인들은 처음부터 배심원단을 향해 신경전을 벌였다. 검찰은 재판이 시작되자마자 “이 법정은 임대인과 임차인 사이의 분쟁을 논하는 자리가 아닙니다. 임차인의 권리를 어디까지 보호해줘야 할지를 논의하는 게 아니라, 피고인이 과연 사람을 죽이려고 했는지를 밝히는 자리입니다”라고 밝혔다. 김씨가 이씨에게 망치를 휘두르다 폭행한 6월 7일 그날의 현장만 증거에 의해 판단해 달라는 것이었다. 반면 변호인들은 “피고인의 입장에선 99를 가진 사람이 1을 빼앗는 듯한 억하심정이 있었다는 것을 좀 이해해주셨으면 합니다”라면서 “피고인이 전혀 죄를 짓지 않았다는 게 아니라 지은 죄 만큼만 처벌해 달라는 것”이라고 호소했다. 김씨의 살인미수 등의 혐의에 대한 재판의 핵심 쟁점은 과연 김씨에게 살인의 고의가 있었냐는 것이다. 검찰은 “미리 준비한 길이 40㎝ 쇠망치를 들고가 이씨에게 여러 차례 휘둘렀고 이씨가 필사적으로 피하는데도 끝까지 추격해 머리 부위를 겨냥해 망치로 때렸다”며 김씨에게 고의가 있었음을 강조했다. 반면 변호인은 “자신을 괴롭힌 임대인을 혼 내주려고 한 것일 뿐 살인의 의도는 전혀 없었다. 살인할 생각이 있었다면 피고인이 더 자주 사용하는 칼을 갖고 밤에 은밀히 불러내 범행을 저질렀을 것”이라며 팽팽히 맞섰다. 이틀간 재판을 지켜본 국민배심원단 7명의 평의 결과를 바탕으로 6일 김씨에 대한 선고가 이뤄진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뱀과 몽구스의 한판 대결…과연 승자는?

    뱀과 몽구스의 한판 대결…과연 승자는?

    호기심 많은 몽구스 한 마리가 나무에 매달려 있는 뱀을 공격하는 모습이 포착됐다. 4일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은 최근 인도 서부에서 뱀과 몽구스가 싸우는 모습이 담긴 영상을 공개했다. 스마트폰으로 촬영된 영상은 거대한 검은 뱀의 꼬리가 갑자기 뒤집힌 테이블로 떨어지는 것으로 시작된다. 몇 초 후, 몽구스 한 마리가 나무에서 내려와 뱀을 신기하다는 듯 쳐다본다. 뱀은 나뭇가지 사이로 몸을 가로질러 미끄러지듯 열심히 기어간다. 그런 뱀을 쳐다보던 몽구스는 몸을 일으키더니 나무를 향해 뛰어올라 뱀을 공격하기 시작한다. 몽구스는 뱀 머리에 이빨을 박고 머리를 이리저리 흔들어댔고, 뱀은 결국 나무 아래로 떨어진다. 뱀은 몽구스 몸을 꼬리로 감으려는 듯 공격을 시도해보지만, 이미 머리를 물려 공격 우위를 빼앗겨 속절없이 몽구스에게 끌려가고 만다. 한편 몽구스(mongoose)는 재빠른 몸놀림과 순발력으로 작은 포유류, 물고기, 게 등을 잡아먹는 잡식성이다. 성질이 사나워 코브라 같은 독사도 잽싸게 잡아채 죽일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진·영상=제트앤 뉴스 얼러트/유튜브 영상팀 seoultv@seoul.co.kr
  • [박상익의 사진으로 세상읽기] 코끼리의 열정

    [박상익의 사진으로 세상읽기] 코끼리의 열정

    열정(熱情)은 영어로 ‘인수지애즘’(enthusiasm)이다. 미국 생태학자 르네 듀보는 이 단어의 어원(en과 theos)을 풀어 ‘내재(內在)하는 신’(a God within)이라고 풀이한다. 내 안에 ‘신’이 임한 상태가 열정이라는 것이다. 당연히 열정은 인위적으로 만들어 낼 수 없다. 열정적인 삶이란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불가항력적으로 자신의 영혼을 불태운다. 그것은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과 불행을 수반할 수도 있다. 하지만 모든 위대한 생애가 그런 것 아니었던가?독일 문호 괴테는 ‘괴테와의 대화’에서 말한다. “나는 지금 열여덟 살이 아니라는 것이 기쁘네. 내가 열여덟 살이었을 때는 독일도 겨우 열여덟 살이어서 아직 무언가를 할 수 있었지. 하지만 지금은 어느 쪽을 보아도 길이 막혀 있네. 나는 모든 게 갖춰진 이 시대에 젊지 않다는 것을 하늘에 감사하고 있어. 젊었더라면 미국으로 도망쳤을지도 모를 일이야.” 한국 사회는 아직 부족한 점이 많다. 그러나 괴테처럼 생각한다면 오히려 긍정적으로 생각할 여지가 있다. 그만큼 기회가 많다는 뜻도 된다. 현실을 개선하고 역사를 발전시킬 임무를 준다. 역설적으로 모든 게 갖추어진 선진국 젊은이들은 불행한 처지일 수도 있다. 모든 게 완비된 체제 안에서 개인의 역할은 극도로 제한된다. 그 결과 마약, 총기 등 퇴폐와 일탈에서 돌파구를 찾기도 한다. 결국 인간의 삶이란 열매나 결과보다는 가치와 의미를 위해 투쟁해 나아가는 과정 자체가 더 중요한 것이 아닐까.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아직 해야 할 일이 지천으로 널려 있는 한국 사회야말로 힘들기는 하지만 값진 성취감을 맛보기에는 더할 나위 없는 기회의 땅이 아닐까. 그래서였을까? 괴테는 ‘과정’의 중요성을 이렇게 말한다. “매너리즘에 빠진 사람은 늘 작업을 끝내기만 바라며 작업 자체에는 즐거움을 느끼지 못한다네. 그러나 진정으로 위대한 작가는 제작 과정에서 최상의 기쁨을 발견하지. 재능이 부족한 사람일수록 예술 그 자체에 만족하지 않고 작업을 하는 동안에도 그것을 끝내고 얻게 될 이익만을 염두에 두는 법이지.” 코끼리가 큰 귀를 펄럭이며 열정적으로 돌진하고 있다. 역사를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기쁨을 느끼는 열정적인 젊음이 많아지기를, 그리고 그들을 격려하는 사회가 되기를.
  • ‘외식하는 날’ 홍윤화♥김민기, 해외 먹방까지...‘원데이 세계일주’

    ‘외식하는 날’ 홍윤화♥김민기, 해외 먹방까지...‘원데이 세계일주’

    오는 5일 방송되는 SBS Plus ‘외식하는 날’에서는 홍윤화♥김민기 커플이 하루 만에 5개국 음식 여행을 떠나는 모습이 그려진다. 홍윤화로부터 해외여행을 간다는 소식을 들은 김민기는 여행용 캐리어에 하와이안 셔츠를 챙기는등 머리부터 발끝까지 여행용 착장을 선보인 채 공항버스 정류장에 등장, 설레는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홍윤화의 발길이 멈춘 곳은 공항이 아닌 이태원의 터키요리 음식점. 그제서야 해외여행의 숨은 진실을 알아차린 김민기는 배신감에 휩싸여 넋이 나간 웃음을 터뜨렸다. 허탈함도 잠시 김민기는 홀린 듯 홍윤화의 손에 이끌려 다니며 터키를 시작으로 베트남, 스페인, 호주 등 5개국의 음식점을 방문했다. 한 나라를 방문하기 무섭게 쉴 새 없이 다음 나라로 발걸음을 옮기며 바쁘게 움직인 결과, 홍윤화와 김민기는 한 끼에 5개국 17개 메뉴를 섭렵하는 역대급 먹방을 선보이며 스튜디오를 혼란에 빠트렸다. 한편 홍윤화는 녹화장에서 신혼집 계약 소식을 알렸다. 이와 함께 과거에 반지하를 벗어나 이사갈 때 강호동에게 알렸던 추억을 회상하며 강호동을 자신의 ‘하우스 요정’으로 칭했고, 김영철은 강호동에게 “나중에 집 한 채 사줘야겠다”며 너스레를 떨어 웃음을 자아냈다. 홍윤화와 김민기가 떠난 당일치기 해외 먹방의 종착지는 오는 5일 오후 9시 30분 SBS Plus ‘외식하는 날’에서 확인할 수 있다. 사진=SBS Plus 연예팀 seoulen@seoul.co.kr
  • 한밤중 대청호 쓰레기 모아둔 밧줄 ‘싹둑’…5일간 수거 작업 허사

    한밤중 대청호 쓰레기 모아둔 밧줄 ‘싹둑’…5일간 수거 작업 허사

    대청호에서 집중호우로 떠내려온 쓰레기를 모아 묶어둔 밧줄이 한밤 중에 훼손돼 5일간의 수거 작업이 허사가 됐다. 누군가 일부러 밧줄을 끊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게 수거업체와 한국수자원공사 측 입장이다. 4일 한국수자원공사 대청지사에 따르면 전날밤 충북 옥천 군북면 대청호 선착장에 쓰레기를 가둬둔 밧줄이 끊기면서 호수가 삽시간에 쓰레기 천지로 변했다. 쓰레기 수거작업에 투입됐던 방모(68)씨는 연합뉴스에 “오전 7시쯤 호수에 나와보니 선착장 주변에 모아둔 쓰레기가 흩어져 수면을 가득 뒤덮었고, 쓰레기 더미를 묶었던 밧줄도 군데군데 끊겨 있었다”고 말했다. 이곳에는 지난달 26∼30일 내린 집중호우로 1만 5000㎥의 쓰레기가 떠밀려 들어왔다. 쓰레기의 90%는 나뭇가지와 풀 등 초본류이고 나머지 10%는 빈병, 플라스틱 등 생활쓰레기다. 심지어 장롱이나 TV, 냉장고 같은 가전제품도 있다.수공은 댐 본류로 통하는 길목에 펜스를 설치해놓고 이곳에 모아진 쓰레기를 그물망으로 포위한 뒤 밧줄로 묶어 호숫가로 끌어낸다. 수공과 계약한 수거업체는 지난달 30일부터 선박 2척과 20여명의 인부를 투입해 이 같은 방식의 수거작업을 했다. 닷새간의 작업 끝에 수면을 가득 뒤덮었던 쓰레기는 호숫가로 끌려 나와 선착장 부근에 거대한 섬을 이룬 상태였다. 수공 관계자는 “어제부터 포크레인을 동원해 호수 안 쓰레기를 선착장으로 퍼 올리는 작업을 하던 중인데, 어이 없는 일이 벌어졌다”고 말했다.수공 측은 쓰레기를 수거하는 밧줄이 과거에도 몇차례 끊긴 적이 있었지만 문제 삼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수공 관계자는 “어민들이 이용하는 어선이나 수상스키 등 레저활동을 하는 동호인이 통행하다 밧줄이 끊어지는 상황이 더러 있어 충분히 이해하고 넘어갔었다”며 “하지만 이렇게 밧줄이 여러군데 절단되고 상황이 심각한 적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방씨는 “절단된 밧줄 중에는 지름 1.6∼1.8㎝에 이르는 굵은 줄로 여러 개”라며 “예리한 칼이나 낫으로도 끊기 어려운데, 군데군데를 잘라놨다”고 고의성을 지적했다. 수공과 수거업체는 이날 인력과 장비를 총동원해 흩어진 쓰레기 수거에 총력을 기울이는 중이다.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 [여기는 중국] 스마트폰에 빠진 엄마, 딸아이 물에 빠져도 몰라

    스마트폰에 한눈을 파는 행동이 얼마나 위험한 일을 초래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영상이 공개돼 충격을 주고 있다. 영국 일간 미러닷컴 등 외신은 최근 중국에서 발생한 한 충격적인 사고의 원인을 알 수 있는 CCTV 영상을 소개했다. 지난 7월 31일 오후 5시쯤 푸젠성 푸저우시에 있는 한 수영장에서 찍힌 이 영상은 유아용 수영장에서 튜브를 낀 채 놀고 있는 두 아이의 모습을 보여준다. 영상은 우씨라는 성만 알려진 한 여성이 잠시 남자아이를 데리고 놀아주는 모습부터 시작된다. 근처에 있는 우씨의 어린 딸아이는 혼자서 노는 모습이다. 그런데 이 여성이 잠시 자리를 벗어나 스마트폰을 확인하는 순간 딸아이가 타고 있던 튜브가 균형을 잃고 뒤집힌 것이다. 이 때문에 샤오아이라는 이름의 이 여아는 완전히 물에 빠지고 만다. 하지만 그 누구도 샤오아이가 물에 빠진 줄 모른다. 때마침 시설 관리자들 역시 자리를 비운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나마 같은 수영장 안에 있던 남아가 샤오아이의 모습이 이상하다는 것을 깨닫고 도우려고 하지만 튜브를 타고 있어 돕는 것이 수월하지 못한 모습이다. 아이는 우씨의 아이도 아니지만 근처에서 스마트폰을 하느라 정신이 팔린 우씨에게 이 사실을 알리기 위해 애쓴다. 하지만 여성은 아이가 가까스로 팔을 건드려도 스마트폰에 빠진 채 하던 일을 계속한다. 그래도 남아는 계속해서 우씨의 관심을 끌려고 노력한다. 그제서야 뒤를 돌아본 여성은 딸아이가 물에 빠진 것을 보고 달려가 아이를 물에서 건져냈다. 하지만 여아는 물에 빠진지 한참이 지나 숨도 쉬지 않았고 몸도 보라색으로 변한 상태였다. 여성은 즉시 아이에게 흉부 압박을 시도하지만 반응이 없어 인근 병원으로 아이를 데리고 뛰었다. 의사들의 빠른 조치로 아이의 호흡은 되돌아왔지만, 현재까지도 의식불명 상태인 것으로 전해졌다. 우씨는 자신이 스마트폰을 하느라 1~2분 정도 한눈을 판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첫돌을 맞이한 아이에게 물놀이를 즐기게 해주려고 했다고 해명했다. 샤오아이는 우씨의 둘째아이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수영장 측은 이번 사고에 대해 아이의 일부 치료비를 부담하겠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미스터 션샤인’ 이병헌, 포승줄에 묶인 모습 ‘궁금증 UP’

    ‘미스터 션샤인’ 이병헌, 포승줄에 묶인 모습 ‘궁금증 UP’

    ‘미스터 션샤인’ 이병헌이 포승줄에 묶인 위기 속에서 급변하는 ‘눈빛 열연’을 선보이며 긴박감 넘치는 스토리 전개를 예고하고 나섰다. 1일 tvN 주말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측은 이병헌이 갑작스럽게 포박당해 어딘가로 끌려가는 스틸을 공개했다. 이는 국밥을 먹고 있던 유진(이병헌 분)이 경위원 총순들에게 체포당한 후 두 손을 포승줄로 포박당한 채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는 장면이다. 예상치 못하게 닥친 사태에 혼란스러워하던 유진이 누군가를 목격한 후 더욱 불안해하는 모습으로 궁금증을 증폭시키고 있다. 촬영 당시 이병헌은 ‘포승줄 체포’ 장면에서 짧은 순간순간 변하는 감정을 눈빛으로만 격렬하게 드러내야 했다. 두 손이 포승줄에 묶여 움직일 수 없는 유진이 갑작스러운 상황으로 인해 충격에 빠지고, 당황한 후, 걱정스러워하는 모습을 표정과 눈빛 연기로만 완벽하게 소화, 보는 이들의 탄성을 자아내게 했다. 제작사 측은 “유진이 여유롭게 식사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순검들에게 갑작스레 끌려가게 된 사연은 예상외의 ‘반전 내용’이 될 것”이라며 “과연 유진이 흔들리는 눈빛 속에 맞닥뜨리게 된 사건은 무엇일지, 그 내막이 밝혀지게 될 이날 17회 방송분을 기대해 달라”고 밝혔다. 한편, tvN 주말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은 1일 오후 9시에 방송된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아이스맨’정현, 라켓 내던지고 US오픈 2회전 탈락

    ‘아이스맨’정현, 라켓 내던지고 US오픈 2회전 탈락

    2세트 물집 터져 하위랭커 쿠쿠슈킨에 0-3패 발목정현(23위·한국체대)이 US오픈 테니스대회(총상금 5천300만 달러·약 590억원) 2회전에서 허무하게 탈락했다. 정현은 31일 뉴욕에서 열린 대회 남자 단식 64강전에서 미하일 쿠쿠슈킨(84위·카자흐스탄)에 0-3(6-7<5-7> 2-6 3-6)으로 완패했다. 2015년과 2017년 2회전 진출을 넘어 US오픈 개인 최고 성적을 노렸던 정현은 세계랭킹에서 한참 뒤처진 상대에 일격을 당했다. 올해 호주오픈에서 한국 선수로는 처음으로 준결승에 올랐던 정현은 프랑스오픈과 윔블던은 부상 때문에 출전을 포기했다. 마지막 메이저대회인 US오픈을 앞두고 “대회가 많이 기대된다”고 말했지만 이번에도 부상이 발목을 잡았다. 1세트 정현과 쿠쿠슈킨 모두 서브 난조를 겪으며 남자 선수 단식경기답지 않게 브레이크가 난무했다. 둘 다 브레이크에 4차례 성공했지만, 대신 자신의 서브 게임에서는 두 번밖에 게임을 따내지 못한 채 타이브레이크에 돌입했다. 정현은 5-3으로 앞서가며 먼저 7점을 따면 승리하는 타이브레이크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했지만, 스매시 실수를 범하면서 결국 5-7로 1세트를 먼저 내줬다. 2세트에는 정현의 발바닥에 문제가 생겼다. 지난 1월 로저 페더러(2위·스위스)와의 호주오픈 준결승전에서 정현의 발목을 잡았던 오른발바닥에 다시 물집이 터진 것. 게임 1-2로 끌려가던 가운데 정현은 잠시 경기를 멈추고 치료를 받았지만, 곧바로 자신의 게임을 빼앗겼다. 경기가 안 풀리는 데다가 몸 상태까지 온전치 않았던 정현은 1-4에서 또 브레이크를 당하자 라켓을 내던지기까지 했다.냉정한 경기 운영으로 해외 언론으로부터 ‘아이스맨’이라는 별명을 얻었던 정현에게서 보기 힘들었던 장면이다. 결국, 정현은 2세트마저 2-6으로 내주고 말았다. 3세트 들어 정현은 발바닥 통증 탓인지 스트로크가 흔들렸고, 활동 반경도 현저히 줄었다. 정현은 한 차례 브레이크에 성공해 마지막 투지를 보여줬지만, 동점 기회에서 치명적인 더블 폴트를 범한 걸 만회하지 못했다. 최병규 전문기자 cbk91065@seoul.co.kr
  • ‘5월의 시인’ 김준태, 통일 염원 외치다

    ‘5월의 시인’ 김준태, 통일 염원 외치다

    ‘한 놈을 업어주니 또 한 놈이 자기도 업어주라고 운다/ 그래, 에라 모르겠다/ 두 놈을 같이 업어주니/ 두 놈이 같이 기분 좋아라 웃는다/ 남과 북도 그랬으면 좋겠다’김준태(70) 시인이 평화와 통일의 염원을 담은 ‘쌍둥이 할아버지의 노래’(도서출판b)를 펴냈다. 17번째 시집이다. 시인의 둘째아들이 낳은 쌍둥이 손자를 보면서 얻은 영감을 제목으로 달았다. 김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아이와 꽃, 하늘, 흙 등을 자주 쓴다. 인간과 자연, 우주가 합일된 평화와 사랑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통일 역시 평화를 토대로 이뤄져야 한다는 꿈을 전한다. 그는 6·25전쟁, 베트남전쟁 참전, 5·18민주화운동을 겪었다. 할아버지가 일제의 징용에 끌려가고 아버지가 6·25 때 좌우 이데올로기의 소용돌이에서 희생된 비극적 이력을 지녔다. 그가 여러 시집을 통해 통일과 평화, 인권 등에 남다른 감수성과 깊은 세계관을 드러낸 것도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1980년 ‘아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를 지방신문에 게재해 5·18 학살의 참상을 세계에 알렸다. 신군부로부터 갖은 고초를 겪으며 ‘5월의 시인’이란 이름을 얻었다. 이번에 담은 ‘쌍둥이 할아버지의 노래’, ‘자정을 넘어서, 새벽에 쓴 시’ 등이 일본 주오대학에서 발행하는 종합 계간지에 번역돼 실리기도 했다. 김 시인은 “남북 정상회담과 이산가족 상봉 등 통일의 물꼬를 틀 즈음 발간돼 남다른 감회를 느낀다”고 말했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60년 전 묻어둔 비극, 풀꽃이 먼저 싸매주었네

    60년 전 묻어둔 비극, 풀꽃이 먼저 싸매주었네

    저 앞의 끝 간 데 없이 이어진 초지가 평강고원이랍니다. 아직은 닿을 수 없는 북한 땅이지요. 시선을 가까이에 두면 초록빛 철원평야가 다가섭니다. 눈앞의 풍경 중 어디까지가 남한 땅이고 어디서부터가 북한 땅일까요. 철책에서 쉬어 가는 잠자리는, 쩌렁쩌렁 울어 대는 매미는 어디에서 날아온 걸까요. 강원 철원의 소이산 생태숲 녹색길 전망대에서 바라본 풍광은 미답의 땅, 북한을 그려 보게 합니다. 녹색길이 특별한 것은 지뢰구역 철조망 옆을 걷다가 북녘을 마주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말보다는 생각이, 달뜬 걸음보다는 차분한 사색이 어울리는 길이지요. 북녘을 향한 그리움을 부려 놓을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길은 걸어 볼 가치가 있습니다.철원은 한국전쟁의 흔적이 또렷이 남아 있는 땅이다. 소이산 생태숲 녹색길은 평화전망대나 제2땅굴 같은 안보 관광지에 비해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그 대열에 이름을 올릴 만하다. 해발 362m의 작은 산은 남한 땅과 북한 땅을 가득 품는다. 소이산은 한국전쟁 후 60여년 동안 민간인통제구역이었다. 2010년에 통제구역에서 해제된 뒤에도 지뢰 때문에 일반인들은 접근할 수 없었다. 그동안 전쟁의 폭격에 황폐해진 산은 스스로를 치유했고, 사람 손을 타지 않은 자연은 원시림 같은 울창함을 되찾았다. 그러던 2012년, 철원군과 육군부대가 힘을 합쳐 4.8㎞ 길이의 소이산 생태숲 녹색길을 열었다. 길 끝에서 바라보는 북녘 땅은 자연스레 통일의 꿈을 꾸게 한다. 숲길이 주는 미덕도 빼놓을 수 없다. 녹진한 풀 향을 맡고 묵은 낙엽을 밟으며 자연이 낸 길을 따른다. 시간에 맞춰 한 장소에서 다음 장소로 이동해야 하는 대개의 안보관광지와 달리, 이곳에선 머물고 싶은 만큼 머물고 바라보고 싶은 만큼 바라볼 수 있다.●전쟁이 남긴 구멍 난 상처 노동당사 철원이 1946년에는 북한 관할구역이었다는 사실을 아시는지. 노동당사는 해방 후부터 한국전쟁 전까지 북한이 조선노동당 당사로 쓴 건물이다. 늦여름 햇덩이가 내리쬐는 낮에도 건물에는 스산한 기운이 감돈다. 신축 당시 성금이라는 명목으로 한 리(里) 당 쌀 200가마씩 거두었다는 이야기, 기밀 유지를 위해 공산당원 외에는 건축에 참여하지 못했다는 이야기, 공산주의를 반대하던 사람들이 이곳에서 고문을 당했다는 이야기, 혹은 영문도 모르고 끌려온 사람들이 다시는 돌아가지 못했다는 이야기 등이 전설처럼 전해진다. 전쟁 중 폭격으로 건물 대부분이 파괴돼 지금은 네 면의 벽체와 군데군데 골조만 남아 있다. 건물 뒤는 앞보다 훨씬 처참하다. 외벽이 거의 무너져 내려 기다란 파이프가 건물을 지탱하는 상태다. 벽에는 깊게 팬 탄알 자국이 무수하다. 손 한 뼘 되는 간격으로 총알의 흔적이 이어진다. 밤중에 노동당사 주변을 지나는 군인들이 조금이라도 이상한 낌새가 보이면 그곳에 총을 난사했기 때문이란다. 부서지고 구멍이 뻥뻥 뚫린 건물은 남과 북의 서글픈 현실을 말해 준다. 신청 후 단체로 움직이는 철원의 다른 안보관광지와 달리, 노동당사는 민간인통제선 밖에 있어 특별한 절차 없이도 갈 수 있다. 노동당사 맞은편에 소이산이 보인다.●철조망 따라 핀 ‘지뢰꽃’… 소이산 생태숲 아래부터 위로 천천히 고개를 든다. 산수국이 핀 땅, 철조망, 지뢰라고 쓰인 삼각형 표지판, 철조망 안팎을 오가는 잠자리, 새파란 하늘. 숲길 옆으로 철조망이 끝없이 이어진다. 소이산 생태숲 녹색길의 첫 번째 구간은 1.3㎞ 길이의 지뢰꽃길이다. 지뢰와 꽃이라니 얼마나 상반되는 조합인가. 철원 출신의 시인이 쓴 시 ‘지뢰꽃’에서 이름을 따왔단다. ‘지뢰 지대로 출입을 절대 금함.’ 철조망에는 무시무시한 경고문이 붙어 있다. 그렇다. 철조망 안은 아직 지뢰 지대다. 지뢰가 있다 한들 뿌리 내리고 잎을 틔우려는 자연의 생명력을 막을 순 없다. 도심 가로수처럼 때 되면 모양을 가다듬어 주지 않는 데도 철조망 안 수풀은 제 알아서 자라 푸르기만 하다. 어떤 나무는 가로로 누워 자라다가 철조망에 막혀 가지 뻗을 곳을 잃었다. ‘지뢰꽃’의 한 구절이 스쳐 간다. “저 꽃의 씨앗들은/ 어떤 지뢰 위에서/ 뿌리내리고/ 가시철망에 찢긴 가슴으로/ 꽃을 피워야 하는 걸까” 산수국, 벌개미취, 하늘말나리, 노루오줌, 맥문동…. 소담한 꽃들이 철조망 따라 피어나 스산한 마음을 달래 준다.●철원평야 뒤 백마고지까지 파노라마 뷰 두 번째 구간인 생태숲길이 시작되면 철조망이 걷혀 시야가 트인다. 너른 들판에 농촌 마을이 눈에 들어온다. 지뢰밭을 일궈 세운 대마리 마을이다. 1968년 민간인통제선 북쪽의 농지를 개간한다는 계획에 따라 반공정신이 투철한 제대 군인과 지역 주민들 150가구가 모여 마을을 이뤘다. 농지를 개간하다가 지뢰가 폭발해 팔다리를 잃은 이들도 있다고 한다. 평화로워 보이기만 하는 마을에는 쉽게 짐작할 수 없는 사연이 있다. 40분 정도 좁다란 숲길을 오르면 마지막 구간인 봉수대 오름길이 나온다. 온통 아스팔트 도로다. 산에 웬 아스팔트 길인가 싶겠지만 이곳에 주둔하던 군인들이 군 작전로로 닦아 놓은 길이다. 소이산은 최근까지 군사적 요지였다. 철원평야를 비롯해 주변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지형 때문이다. 한국전쟁 당시에도 이곳을 차지하기 위한 전투가 치열했다고 한다. 봉수대 오름길은 산으로 따지면 깔딱 고개다. 걷는 맛이 적은 아스팔트 길인 데다가 경사가 가팔라 숨이 가쁘다. 고진감래. 옛말에 틀린 것 하나 없다고 묵묵히 걸어 전망대에 오르면 선물 같은 풍경이 기다린다. 너른 철원평야 뒤로 백마고지, 김일성고지, 아이스크림고지 등이 360도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전망대 유리판에 지명이 적혀 있어 눈앞의 풍경과 지명을 하나하나 맞춰 볼 수 있다. 낮은 언덕 세 개가 삼자매봉, 삼자매봉 뒤의 봉우리가 백마고지, 저긴 김일성고지, 저 아득한 초원이 평강고원…. 열흘 동안 열두 번의 전투를 하며 심한 포격을 받은 탓에 산등성이가 하얗게 벗겨졌다는 백마고지는 여전히 허옇다. 사람에게나 자연에나 전쟁의 상흔은 오래도록 지속된다. 끝을 알 수 없이 광활한 평강고원 너머 북한의 산 능선이 흐릿흐릿하게 이어진다. 예쁜 꽃도 아니고 눈부신 일몰도 아니지만 그리운 땅이라는 이유만으로 하염없이 바라보고픈 풍경이다. 소이산에 다녀간 이들의 메시지가 전망대 앞 밧줄에 묶여 바람에 나부낀다. “동생과 제가 싸우지 않도록 평화를 주세요. 평화 통일을 이룰 수 있게 해 주세요.” 한 아이에게는 동생과 싸우지 않는 것이 평화다. 한 국가에는 갈라진 두 땅이 하나가 되는 것이 평화다. ‘평화’라는 거창한 단어를 읊조리게 되는 곳, ‘통일’이라는 거대한 주제를 돌아보게 되는 곳, 이곳은 소이산 생태숲 녹색길이다.●시간과 자연이 빚은 주상절리 ‘송대소’ 소이산 생태숲 녹색길의 출발지인 노동당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송대소가 있다. 30m 높이 현무암이 수직 절벽을 이루고 절벽을 휘감는 물줄기가 깊은 소(沼)를 이룬 곳이다. 절벽은 다각형 기둥으로 뒤덮여 있다. 30만년 전, 화산 폭발로 흘러내린 용암이 식으며 수직 틈이 생겼고, 풍화작용이 일어나며 여러 모습으로 갈라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송대소 주상절리다. 송대소는 멀리서 볼 때와 가까이서 볼 때, 저마다의 감흥이 있다. 멀리서는 깎아지른 듯한 수직 절벽과 S자로 돌아 나가는 한탄강이 한눈에 담긴다. 절벽이 수면에 비치는 모습은 시 한 수가 절로 나올 법한 풍광이다. 가까이서 보려면 인내심이 필요하다. 한탄강 얼음 트레킹을 할 수 있는 계절을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한겨울에 꽁꽁 얼어붙은 한탄강을 걸으면 주상절리의 기이한 모양을 가까이서 관찰할 수 있다. 4~8각형의 다각형 기둥이 있는가 하면 널빤지처럼 넓적한 판도 있다. 수십만년의 시간과 비바람이라는 자연이 빚은 합작품이다. 내비게이션에 ‘송대소’를 치면 정확한 주소가 나오지 않는다. 멀리서 송대소를 잘 볼 수 있는 곳이 있다. 모닝캄빌리지 펜션 옆 나무데크다. 모닝캄빌리지 정원 한편에 나무 계단이 있는데, 시야가 탁 트여 송대소와 S자로 흐르는 한탄강을 훑을 수 있다. 글 이수린(유니에스 여행작가) 사진 장명확(사진작가) ■여행수첩(지역번호 033) →가는 길:서울에서 승용차로 갈 경우 신평화로를 거쳐 평화로와 연신로를 지난다. 신평화로로 가다 소요산사거리에서 좌회전 후 평화로를 따라 25㎞가량 직진한다. 신서교차로에서 ‘철원, 도산리’ 방면으로 우회전하고 연신로를 따라간다. 노동당사삼거리에서 ‘관인, 철원읍사무소’ 방면으로 우회전해 금강산로에 다다르면 노동당사다. →맛집:철원은 유독 매운탕 집이 많다. 물살이 거센 한탄강에서 난 민물고기 맛이 좋기 때문이다. 고석정 입구에 있는 임꺽정가든(455-8779) 역시 민물매운탕을 잘한다. 고석정과 한탄강 등 철원의 명소와도 가깝다. 삼정콩마을두부집(455-9284)은 두부전골, 두부청국장 등 각종 두부 요리를 한다. 가게에서 국내산 콩을 직접 삶고 갈아 속이 편안하다. →잘 곳:한탄리버스파호텔(455-1234)은 고석정, 삼부연폭포 등 철원의 대표 관광지와 가깝다. 게르마늄 온천 사우나와 실내 온천 풀장이 있어 물놀이를 하기에 좋다. 백마고지역에서 차로 10분 거리의 학마루 철원펜션(010-6711-0818)은 한탄강에서 수상 레저를 즐길 수 있다.
  • “강변에 널려있는 수많은 유골… 낙동강 전투 참혹함 잊지 못해”

    “강변에 널려있는 수많은 유골… 낙동강 전투 참혹함 잊지 못해”

    6·25 한국전쟁 당시 6년제 인천상업중학교 3학년생이었던 이경종(85) 씨는 6·25 전쟁에 자원입대하기 위해 1950년 12월 18일 인천에서 출발해 부산까지 500㎞를 매일 25㎞씩 20일간 걸어갔다. 1951년 1월 10일 부산육군 제2 훈련소(부산진국민학교)에 도착했으나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입대가 불허됐다. 결국 실종 군인의 군번을 부여받아 편법으로 입대했고 4년 동안 참전한 후 1954년 12월 5일 만기 제대했다. 1996년 7월 15일 이경종 씨는 큰아들 이규원 치과 원장과 함께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사 편찬위원회’(이하 6·25 편찬위)를 창립해 198명의 참전 학생과 참전 스승(신봉순 대위)의 육성을 녹음하고, 흑백 참전 사진과 참전 관련 공문 등을 수집해 인천 중구 용동에 ‘인천학생 6·25 참전관’(오른쪽 사진)을 세웠다. 6·25 편찬위(위원장 이규원 치과 원장)는 부산까지 걸어가서 자원입대한 인천 학생 약 2500명과 참전 스승의 애국심을 기억하고, 전사한 인천 학생 208명과 스승 1명(심선택·1926년 10월 25일 인천에서 태어나 서울대를 졸업하고 해병 소위로 참전하여 1950년 11월 12일 24세 때 전사)을 추모하기 위해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기’를 시리즈로 본지에 기고한다. 편집자 주정대연 인터뷰 일시 1997년 8월 4일 장소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사 편찬위원회(이규원 치과 3층) 대담 정대연 이경종(6·25 참전사 편찬위원) 이규원 치과 원장(이경종 큰아들) 인민의용군으로 끌려가 실종된 인천 학생들 나(정대연)는 인천 화도진 고개 넘어 화수동 111번지 쌍 우물 앞 배급소 집 외아들로 태어나 창영국교를 졸업하고, 인천동산중학교를 졸업하고, 서울 서대문에 있는 감리교 신학대학교 2학년 때 6·25 사변이 터졌다. 인천을 점령한 북한괴뢰군들은 인천 지역에서 중학생들을 닥치는 대로 인민의용군에 입대시켰는데, 강제로 끌려간 중학생들은 그 후 모두 실종이 되었다. 9·15 인천수복과 인천학도의용대의 창설 UN군의 9·15 인천상륙작전 성공으로 수복이 되어서, 고려대 2학년생 이계송을 대장으로 인천학도의용대(仁川學徒義勇隊)를 조직하여 치안 유지, 피난민 안내 등 호국(護國) 활동을 하게 되었다. 이때 나는 인천학도의용대의 부연대장으로 추대되었다. 1950년 늦은 가을 중공군의 참전으로 우리 국군과 UN군은 후퇴하게 되어, 또다시 인천이 적화(赤化)가 되면 인민의용군으로 끌려가서 실종될 것 같은 두려움으로 우리들은 걱정만 하고 있었다.1950년 12월 18일 인천학도의용대 남하 1950년 12월 초 국방부 정훈국 인천파견대에서는 인천 지역의 중학생들도 남쪽으로 이동시키기로 결정하였다. 1950년 12월 18일 제일은행 인천지점 건너편에 있었던 경기도 병사구 사령부(현재 병무청) 소속 국민방위군 소위가 선두에서 인천학도의용대 3000명 대원을 이끌고 경상남도 통영의 국민방위군 수용소(통영충렬국교)를 향하여 우리들은 걸어서 남하하기 시작했다. 1950년 12월 24일 대전역 도착 1950년 12월 18일 인천에서 출발하여 처음 1박을 한 곳은 안양이었다. 우리들은 1950년 12월 20일 수원에 도착하여 수원역에 안내판을 만들어 성탄절 날까지 대전으로 오라고 알렸다. 1950년 12월 24일 인천학도의용대 본대는 대전에 도착하여 성탄절을 대전역에서 맞았다. 1950년 12월 29일 마산 도착 대구를 지나서 경산, 청도, 밀양, 삼랑진을 거치면서 우리들은 논밭에 버려진 수많은 얼거나 굶어 죽은 국민방위군 시체를 보면서 그 머나먼 남쪽 끝까지 모진 고생을 하면서 내려온 우리들은 부패한 국민방위군의 제3수용소(통영충열국교)에 어린 대원들을 입소시킬 수 없어서 마산에 임시 거처를 마련하고, 통영으로 남하하는 것을 정지하였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진로를 모색하기 위해 참모회의를 신마산역 중앙여관에서 하여, 대구 육군본부를 찾아가서 담판 짓기로 하였다.대구 육군본부에서 황헌친 인사국장 만남 이계송 대장과 나는 걸어서 대구를 가게 되었다. 낙동강에 도착했을 때는 생전에 잊지 못할 끔찍한 장면을 보게 되었다. 강변에 많은 유골이 널려있는 것이 낙동강 전투가 얼마나 치열했는가를 보여 주는 끔찍한 장면들은 전쟁의 참혹함을 알려주는 것이었다. 이계송 대장과 나는 육군본부 인사국장 황헌친(黃憲親) 준장을 만나서 우리가 육군본부에 찾아오게 된 동기를 인사국장에게 설명하고 인천학도의용대의 진로에 대한 각서를 받았다. 황헌친 준장이 만들어준 각서 내용 ①인천학도의용대 대원들의 이동함에 있어 차량이나 선박을 이용할 수 있는 차량·선박 징발권(徵發權)을 준다. ②인천학도의용대 대원들은 부산 육군 제2훈련소에 1951년 1월 10일까지 입소하고, 포병사관학교에 응시할 기회를 준다.中 4~6학년생들이 먼저 해병으로 자원입대 이계송 대장과 나는 다시 걸어서 낙동강을 건너 인천학도의용대원들이 수용돼 있는 마산 임시 거처에 와서 보니까 그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것은 그동안 마산에서 가까운 진해 해병교육대 신병으로 중학교 4~6학년생들 600여명이 자원입대했고, 인천에서 같이 출발한 국민방위군 소위가 나머지 중학교 1~3학년 대원들을 국민방위군 제3수용소(경남 통영출열국교)로 데리고 갔다. 中 1~3학년생들 부산 육군 제2훈련소 입소 국민방위군 제3수용소에 수용돼 있는 우리 대원들을 데려오기 위해서, 이 계송 연대장과 나는 마산에서 출발하여 통영을 향하여 배를 타고 가서, 통영 국민방위군 제3수용소인 충렬국민학교에 들어갔다. 당시 우리 대원들이 마산에서 통영으로 가게 된 경위는 인천에서부터 우리와 같이 행동했던 국민방위군 인솔 소위가 자기가 받은 명령대로 2000명이 넘는 대원들을 통영의 국민방위군 제3수용소에 입소시킨 것이었다. 육군본부에서 받은 징발증(徵發證)을 수용소 소장에게 보여주고, 우리들은 모두 배에 나누어 타고 통영에서 출발하여 부산으로 향하였다. 1951년 1월 10일 인천학도의용대원 1500여명은 육군 제2훈련소(부산진국민학교)에 입소하였으며 훈련병이 된 이 날부터 인천학도의용대의 조직은 사라지게 되었다. 1951년 2월 1일 육군통신학교 입교 부산육군 제2훈련소를 마치고 부산육군통신학교로 간 날이 1951년 2월 1일이다. 우리가 지휘관 옆에서 조금 안전하게 근무하는 통신병이 된 데에는 인천상업중학교 물리 교사 출신의 부산육군통신학교 신봉순 교육대장님 덕분이었다. 신봉순 교육대장님은 1951년 2월 1일 인천학도의용대 대원 중 500명을 부산육군통신학교에 입교시켰으며, 오갈 데 없었던 여학생 120명의 숙식을 해결해 주고, 다시 인천으로 여학생들이 돌아가는 것을 도와주신 인천학도의용대의 영원한 스승이시다. “반드시 살아서 고향에서 꼭 다시 만나자” 부산육군통신학교에서 통신교육을 마친 나는 인천에서부터 부산까지 같이 걸어와서 함께 자원입대한 고향 후배들에게 반드시 살아서 인천에서 다시 만나자고 말하며 울면서 헤어졌다. 처음에는 육군 제8사단으로 배치받았다. 다음에 나는 육군본부 내의 통신부분을 담당하는 561부대로 가게 되었다. 그 후 건강이 급격히 악화되어서, 1953년 3월 9일 군에서 명예제대하였다. ‘전쟁터의 이슬로 사라진 학창시절’ 1997년 6월 25일 자 인천일보에서 6·25 특집(特輯) ‘전쟁터 이슬로 사라진 학창시절’이라는 기사를 읽었다. 내 가슴에 와닿는 것은 나하고 같이 부산까지 걸어가서 자원입대했던 인천학도의용대 대원 이경종(인천상업중학교 3학년때 자원입대)의 큰아들 이규원 치과 원장이 우리 인천학도의용대의 6·25 참전역사 찾기를 시작했다는 기사에 많은 감동을 받았다. 또한 나의 기억을 글로 남기게 해준 것을 고맙게 생각한다. 이경종규원 2부자(父子)의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역사 편찬 사업이 잘 이루어지길 바란다. 글 사진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사 편찬위원회■ 참전기 14회를 마치며 23살 대학교 2학년생이었던 정대연 인천학도의용대 부연대장님은 육군 중위로 장교 현지임관 제의도 거절하고, 중학생 동생들과 사병으로 자원입대하여 참전하였습니다. 많은 인천의 중학생들을 위기에서 구했지만, 누구에게도 자랑하지 않았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으나 섭섭해하지 않았던 인천의 훌륭한 형입니다. 이규원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사 편찬위원장■ 정 대 연 ▲인천학도의용대 부연대장 1951년 10월 5일 강원도 향로봉전투에서의 정대연(가운데). 1928년 9월 3일 인천 화수동 출생 1949년 2월 15일 인천동산중학교 졸업 1950년 6월 25일 서울감리신학대학 2학년 1950년 9월 25일 인천학도의용대 부연대장으로 추대 1951년 1월 10일 통신병으로 입대(군번 0246202) 1953년 3월 9일 의병 제대
  • [이기철의 노답 인터뷰]“50 넘으니 덤으로 사는 인생, 의미있는 일 고민”

    [이기철의 노답 인터뷰]“50 넘으니 덤으로 사는 인생, 의미있는 일 고민”

    탈북민 1세대 강철환 대표가 말하는 ‘한국 생활’“이젠 한국에서 더 오래 살았습니다. 북한에서 24살 때까지 살았고, 한국에서 27년째 살고 있습니다. 북한 사람이 아니라 한국 사람으로서의 정체성이 더 가까워지기는 했는데···. 나이가 들면 고향이 그리워진다던데 그래서인지 북한에 더 가까워지는 느낌이 듭니다. 북한 인권에 관한 일을 하고 북한 사람들과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다 보니깐, 그런 것인가 합니다.” 제21회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 끝난 다음 날인 27일 서울시 중구에 있는 강철환(51) 북한전략센터 대표 사무실을 찾아갔다. 남북 문제나 통일 이슈에 관한 이야기는 그가 수도 없이 인터뷰했을 터이니 이보다는 한 명의 인간으로서 그와 인터뷰하고 싶어서 찾았다. 그는 “뭐, 인터뷰는 많이 해봤지만 이런 인터뷰는 처음 해봅니다.”라며 말문을 연다. 자연스럽게 이산가족 상봉이 화제에 올랐다. “부모님이나 친지들과 헤어진 실향민들이 금강산에서 이산가족들을 만나던데, 이젠 제가 이산가족이 된 지 25년이 넘었어요. 이분들의 절망 같은 그리움 이런 게 제게도 똑같이 밀려오는 거죠. 북한에 부모님과 동생들도, 많은 친구도 남아 있고···. 절절한 그리움이 어떤 것인지 나이 50이 넘으면서 조금씩 알겠더라고요.” 북송된 재일교포 3세인 그는 9살 때인 1977년 재일 조선총련 간부 출신인 할아버지가 정치범으로 몰리면서 집안이 풍비박산 났다. 이혼한 어머니를 제외한 가족들 모두 함경남도 요덕 정치범수용소에서 10년간 참혹하게 지내다 풀려났다. 이후 요덕 근처에서 5년가량 지내다 1992년 탈북해 한국에 들어왔다. 그는 ‘귀순’이 아닌 탈북민 1세대인 셈이다. 한양대를 마치고, 한국전력에서 신입사원으로 들어가 3년 근무했다. 조선일보 기자로 활동하다 그만두고 2007년부터 북한에 인권과 자유 등을 확산시키는 북한전략센터 대표를 맡고 있다. ‘수용소의 노래, 평양의 어항’이란 책을 내기도 했다.- 죽을 고비를 많이 넘겼는데, 강 대표에게 인생이란.☞ 제가 가장 귀염을 받아야 할 9살부터 11살까지 요덕수용소에서 지냈습니다. 수용소에서 몇 번 죽을 고비를 넘기고, 항상 언제든지 죽는다는 생각에 가장 불행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20~40대를 한국에서 보냈다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제 인생의 황금기였죠. 친구들과 만나서 여행도 하고 연애도 하면서···. 저랑 같이 수용소에 끌려갔던 많은 아이 가운데 저만 인생을 이렇게 살고 있으니, 나이 50이 넘어가니깐 이제 덤으로 살아가는 느낌이 들어요. 이제는 덤으로 사는 인생, 이미 죽었어야 하는 인생인데···, 그래서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해야 되지 않을까 이런 고민을 합니다. 처절한 생활을 했던 그에게 어떤 꿈을 꾸는지를 물었다. “한국에 처음 왔을 때, 옛날에는 북한에 잡혀가는 악몽을 자주 꾸었지요. 소스라치게 놀라 깨기도 하고. 한 10년 지나니 꿈에 한국과 북한이 섞여 나오더라고요. 북한에 잡혀 가 고문을 받는데 유엔이 나와서 감시한다든지, 이런 신변안전에 관한 꿈이 섞여 나왔습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꿈에도 잘 안 나와요. 꿈도 사회에 적응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국 생활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일은.☞ 대학을 졸업하고 한국전력에 다닐 때의 일이 생각납니다. 전기요금을 장기간 내지 못한 사람들에게 전기 공급을 끊는 일을 했습니다. 어느 날 서울 성북동 한 단란주점의 전기를 끊자 업소 주인이 식칼을 들고 ‘다 죽인다.’며 욕설을 난리를 쳤습니다. 다른 직원들은 모두 도망가는데 저는 같이 욕설을 하면서 맨주먹으로 싸우려 했지요. 그때 제 말투가 이상하고 도망을 안 가니 업소 주인이 칼을 내던지고 이야기를 하다 나중엔 친구가 됐습니다. 또 한 번은 금호동에 전기를 끊은 집이 몰래 전기를 훔쳐 쓰나 싶어서 찾아가보니 촛불을 켜고 지내더군요. 그때까지 한국의 좋은 모습만 봤는데 ‘가난하고 힘들게 사는 사람도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대학 다닐 때 남쪽의 학생들과 통일 문제를 이야기하고 싶어서 갔더니 “반역자”라며 욕설을 해서 상당히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의 사무실에 들어갈 때 자원봉사를 한다는 외국인 두 명과 한국인 여성 직원 한 명이 컴퓨터 작업에 한창이었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자 외국인 여성 한 명이 더 나와 일하고 있었다. 그의 사무실 한쪽 벽면엔 북한에서 발행한 한반도 지도가 걸려 있었다. 맞은편 서가엔 북한 관련 책들이 꽂혀 있었다. 낡은 책들이 보이기에 ‘뭐냐.’고 물었더니 그는 “북한의 학교 교과서”라며 끄집어내 보여줬다. 바스러질 듯 누런 종이에 적힌 활자의 잉크마저 바래서 글씨를 읽기가 어려웠다. 교과서 위쪽에 성경책이 꽂혀 있기에 “교회에 다니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네, 15년 됐습니다.”고 답한다. 부인과 두 자녀와 함께 다닌다고 했다. - 한국 생활에서 적응하기 힘들었던 점은.☞ 와서 보니깐 지연과 학연 이런 것이 보기보다 강했습니다. 한국 사회의 고질적 병폐인 고향과 출신 같은 지역주의, 학교와 학벌과 같은 학연, 가족주의 이런 데 탈북자 출신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습니다. 그러니 우리 탈북자들은 더욱 소외되고···. 북한은 독재를 강화하면서 끼리끼리 모여 세력화하는 것을 철저히 방지했습니다. 북한에서 고향이고 나발이고 뭐 다 필요없이 흩어버렸습니다. 지역주의 이런 게 없지는 않지만 상당히 완화됐습니다.북한의 인권 운동을 빼고는 그가 어떻게 지낼까. “대학 졸업한지 20년이 넘었는데 갑자기 친구들이 옛날 찍었던 사진을 단톡방 이런데 올려요. 거칠고 투박했던 시절인데, 이때가 엊그제 같은데 참 빠르게 세월이 지나갑니다.” 학교 친구들 만나서 옛날 이야기하고, 몸무게가 늘어 걱정이라는 고민도 한단다. 해외에는 웬만큼 나가볼 만한 나라는 다 가봤다고 했다. 한국의 평범한 50대 남성의 모습이었다. - 예멘 난민이 최근 한국사회에서 이슈가 된 적이 있다.☞ 한국정부가 난민협약에 가입돼 있어서 난민쿼터를 받아들이고는 있지만 분단국가기에 한국은 엄청난 난민 발생 가능성을 예상해야 합니다. 따라서 한국만큼은 북한 난민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유엔을 설득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북한에 예멘 정도의 자유가 주어지면 북한주민 절반이 국경선을 넘을 것으로 봅니다. 지금도 중국엔 10만명 이상의 탈북자들이 떠돌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이 다 난민이지요. 우리 가족, 우리 동포도 지키지 못하는 상황에서 대규모 외국 난민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일의 순서가 맞지 않다고 봅니다. - 탈북자를 바라보는 한국인의 시선이 곱지 않다.☞ 북한 사람은 기회가 없어 배우지 못했고, 문화생활을 못 했기에 수준이 떨어지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런 것으로 탈북자들을 이등국민 취급하고, 열등하게 취급하는 어떤 선입견 같은 것이 있어요. 지금이야 한국에 사는 탈북자가 3만명이니 눈에 띄는 분쟁이 없겠지만 나중에 통일이 되면 5000만명대 2500만명이 되면 큰 분쟁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우리를 깔보거나 무시하고 이등국민 취급하는 그런 선입견 빨리 고쳤으면 좋겠습니다. 경쟁이 없는 사회에서 살다가 자본주의 무한경쟁은 우리 탈북자들에게도 엄청난 스트레스입니다. 저는 후배들에게도 당부합니다. 후배들이 북한 출신이라는 자격지심 때문에 누군가의 사소한 한마디의 말에 상처를 입습니다. 그런데 ‘사소한 말에 신경 쓰지 말고, 그 말이 악의적이지 않으면 대범하게 넘겨라.’고 충고합니다. 예전에 제가 밥을 먹는데 “야, 너는 수용소에서 쥐도 잡아먹었다는데, 고기를 남기면 되겠냐.”는 말을 들었습니다. 기분은 되게 나빴지만 대수롭잖게 넘겼지요.그는 요즘의 젊은 탈북자들은 한국사회뿐만 아니라 국제사회 진출도 많아질 것으로 예상했다. “똘똘하고, 영어를 유창하게 하는 후배들도 많아요. 지금은 탈북자를 위한 다양하고 체계적인 교육프로그램도 많아졌어요. 우리야 한국에서 기자 한 것이 최고의 사회 진출이었지만, 국제무대에서 활동이 많이 늘어날 것입니다.” 그는 한국에서 정치도 하게 되는 후배들이 나올 것으로 기대했다. 강 대표는 “한국사회가 그동안 통일을 준비한다고 말하면서도 준비를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근혜 정부의 통일준비위원회 자문회의에 참석한 적이 있어요. 그 회의의 주요 사업으로 ‘DMZ박물관’을 건립하자고 논의하더라고요. 민간 업체에 맡기면 되는 것을 이 위원회가 주요 안건의 논의하는 것을 보고 ‘참, 한심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글·사진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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