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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독]中하이난 ‘천인갱’ 징용한인 유해, 귀향길 열린다

    [단독]中하이난 ‘천인갱’ 징용한인 유해, 귀향길 열린다

    韓기업 1995년 이후 유해 100여위 수습 정부, 유전자 감식… 연내 中과 협의 추진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판결에 따른 일본의 경제보복으로 한일 관계가 최악에 이른 상황에서 정부가 일제강점기 중국 하이난섬에 끌려가 노역에 강제동원됐다 숨진 한국인 징용 피해자들의 유해 봉환 작업을 본격 추진한다. 하이난성 싼야시 난딩촌에는 일제시대 강제징용 조선인들의 집단 매장지 ‘천인갱’(千人坑)이 있는데, 이곳에는 1200구의 유골이 묻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11일 행정안전부 과거사관련업무지원단은 “하이난에서 농장을 운영하는 한 한국기업이 1995년 조선인 강제징용자 유골을 처음 수습한 이후 현재까지 100여위의 유해를 발굴해 추모관에 모시고 있다”며 “하이난 지역 강제징용 피해 신고 유족들과 발굴 유해의 유전자 감식을 통해 강제징용 여부를 확인한 후 국내로 봉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태평양전쟁 때 하이난 지역을 침략한 일제는 1943년부터 경성형무소 등 전국 12곳에 수형된 조선인 2000여명을 ‘조선 보국대’라는 이름으로 탄광이나 비행장 건설 등에 강제동원했고, 이 중 1200여명이 일본군의 학대와 굶주림 등으로 사망해 이곳에 집단 매장된 것으로 알려졌다. 천인갱은 1995년 중국 하이난성 정부가 엮은 일제 피해자 구술집을 통해 처음으로 공식 확인됐다. 정부는 “천인갱 피해자 유족 신고 129건 중 사망·행방불명 62건의 유전자 감식을 진행 중”이라며 “조선인 징용자들의 유골 매장지 보존 및 발굴 조사를 벌일 계획”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천인갱 유해 봉환 작업은 난관이 예상된다. 천인갱 지역은 1990년대 중반 한국의 중소기업이 망고 농사를 위해 중국 정부와 30년간 토지 임대 계약을 맺고 작업을 진행하던 중 우연히 천인갱을 발견한 뒤 일부 유골 수습 작업을 했지만, 지난 5년간 토지 사용료 등을 내지 못해 현장 보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집단 매장 추정지 500여평을 국내 민간단체인 ㈔하이난천인갱희생자추모회가 20년 넘게 관리하고 있으나 최근 인근 부동산개발 바람 등에 따라 현장 훼손이 심각하다”고 말했다. 앞서 정부는 올해 미국 측과 협의를 통해 태평양전쟁 격전지인 타라와섬에 강제동원돼 희생된 군무원 유해 봉환 작업을 위해 145개 유해 시료를 가져와 현재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희생자 유족 183명의 유전자와 대조하고 있다. 행안부 황동준 강제동원희생자유해봉환과장은 “올해 안에 중국 정부와 천인갱 유해 국내 봉환 등을 논의하기 위한 실무 협의를 추진할 예정”이라면서 “강제동원된 피해자들의 유해를 국내에 모셔 오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했다. 최광숙 선임기자 bori@seoul.co.kr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복날엔 수박을”…말복 ‘개 식용 반대’ 집회 열려

    “복날엔 수박을”…말복 ‘개 식용 반대’ 집회 열려

    서울 도심에 80여개 동물권단체 모여폐기물관리법·축산법 개정안 처리 촉구동물단체들이 말복을 맞아 개 도살과 식용 금지를 촉구하고 나섰다. 동물유관단체협의회는 11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계단 앞에서 ‘동물 임의도살 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국민 대집회’를 열고 “정부가 식용으로 희생되는 개들을 버려두고 있다”면서 “동물 불법 도살 금지법을 제정하라”고 촉구했다. 이날 집회에는 동물해방물결, 동물권행동카라 등 80여개 동물 보호단체에서 500여명(주최 측 추산)이 참가했다. 대전, 광주, 부산 등 전국 각지에서 모인 활동가들은 ‘개 도살 금지’라고 적힌 검은색 티셔츠를 입고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 세상에 먹는 개도 없다”, “몇백만마리가 죽어야 멈출 것인가” 등이 적힌 피켓을 들었다. 유주연 협의회 대표는 “국내에서는 식용 목적으로 매년 100만 마리의 개가 사육, 도살되고 특히 복날이면 희생이 막대하다”면서 “올여름에도 전국 곳곳에서는 개를 잔혹하게 사육, 도살하는 농장에 대한 민원 및 제보가 빗발쳤고 개를 먹으려고 산채로 두드려 패거나 불태워 죽이는 만행이 적발됐다”고 말했다. 이어 “지난해 6월 모든 동물의 임의도살을 금지하기 위해 일부 개정된 동물보호법이 발의됐지만, 국회에서 1년 넘게 계류 중”이라면서 “최근 서울 경동시장, 성남 모란시장 등 대표 전통시장에서 개 도살이 철폐되는 추세인데도 정작 정부에서는 식용으로 희생되는 개를 방치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동물권행동카라 소속 최민경 활동가는 “집에서 키우는 개도 잠깐 밖에 나갔다가 개장수에게 끌려가면 식용견이 되는 게 현실”이라며 “강한 사람이 약한 사람을 무시하고 때리면 안 되는 것처럼 인간도 자신보다 약한 동물을 보호하고 존중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동물 임의도살 금지법과 함께 동물들에 음식물 쓰레기 먹이를 주는 것을 막는 폐기물관리법 개정안, 개를 가축에서 제외하는 축산법 개정안도 올해 안에 통과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축산법 개정안을 발의한 이상돈 바른미래당 의원은 이날 집회에 참석해 “개 식용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대한민국은 선진국이 아니다”면서 “개 불법 도살은 물론 군견 퇴역견 문제 등 다양한 동물보호 이슈로 논의를 확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복날에는 개고기 대신 시원한 수박을 먹자”면서 수박 30통을 나눠 먹는 퍼포먼스를 벌이기도 했다. 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
  • 北 억류됐다 풀려난 “한미 스파이” 김동철 목사 “날 돕던 북한인 6명 처형”

    北 억류됐다 풀려난 “한미 스파이” 김동철 목사 “날 돕던 북한인 6명 처형”

    북한에 31개월 동안 억류됐다가 지난해 5월 풀려난 한국계 미국인 김동철(65) 목사가 미국 뉴욕타임스(NYT)의 최상훈 기자와 서울에서 만난 9일(현지시간) 인터뷰 기사를 통해 강제노역과 고문 등 억류 당시의 뒷얘기를 전했다. 다음날 신문 A섹션 7쪽에 게재됐다. 앞서 다른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한국과 미국의 정보당국을 위해 스파이 활동을 했다고 털어놓았던 그는 자신을 도운 북한인 6명이 처형됐다고 밝혀 눈길을 끌었다. 김 목사는 1980년대 부친의 권유로 미국에 이민을 간 뒤 목사가 됐다. 2000년 선교를 위해 중국으로 거처를 옮긴 뒤 2002년에는 대북사업을 위해 북한 당국으로부터 나선지구 거주 허가를 받았다. 280만달러의 전 재산을 털어 현지에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두만강 호텔을 열었다. 연간 호텔 수입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40만달러를 북한 정부에 냈다. 김 목사는 북한에서 사업을 하며 한국과 중국을 방문했을 때 한국과 미국 정보기관이 접근해 스파이 활동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그는 정보기관으로부터 손목시계에 장착된 카메라와 도청 장치, 활동자금 등을 건네받았으며, 북한의 핵·미사일 프로그램에 대한 정보수집을 요구 받았다고 설명했다. 김 목사는 북한 내 정보원들에게 돈을 주고, 핵 과학자나 무기시설에서 종사하는 북한 관리들과의 접촉을 위해 군 엘리트들에 대한 접근을 지렛대 삼았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에 대해 더 많이 알수록, 이 같은 정권이 지구 상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는지 의아해지면서 더 혼란스럽고 궁금해졌다”면서 “북한에 대해 더 많이 알아내 정보기관과 공유하기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김 목사는 2015년 10월 함경북도 나선에서 체포돼 약 31개월간 억류 생활을 했다. 누군가 자신의 차 안에 “김 회장, 당신이 찾던 정보요”라고 말하며 봉투를 던졌는데 그 안에는 컴퓨터 저장 장치와 근처 항구에서 촬영한 선박 사진 등이 들어있었다. 얼마 안가 국가보위부 요원이 차를 세워 함정에 빠졌다는 것을 직감했지만 이미 늦었다고 털어놓았다. 그에게는 간첩과 체제전복 혐의가 붙여졌고, 2016년 4월 노동교화형 10년을 언도 받았다. 자신에 협력했던 북한인 6명도 처형돼 “그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했다. 김 목사는 체포된 후 7개월 동안 나선과 평양의 안전가옥에서 조사를 받았다. 그는 조사 요원들이 두 손을 뒤로 묶고 무릎을 꿇린 뒤 머리를 욕조 물 속에 집어넣는 물고문을 했으며,이 때문에 두차례나 기절했다고 주장했다. 노동교화형 10년을 선고받고 눈을 가린 채 평양 외곽의 강제노역소로 끌려갔다면서 ‘수인번호 429(번)’를 달고 일주일에 6일, 아침 8시부터 오후 6시까지 노역을 했다고 설명했다. 관리 요원들이 겨울에는 언 땅을 파게 한 뒤 다시 묻게 했다고 말했다. 북측이 제공한 식사는 현미 밥과 된장국, 깍두기 세 조각으로 변함이 없었다면서 베리류나 식물 뿌리를 캐먹고, 심지어 단백질 보충을 위해 유충을 잡아 먹기도 했다고 전했다. 김 목사는 여러 차례 극단적인 선택도 생각했다면서 8명의 무장 경비원들이 하루 24시간 교대로 밀착 감시해 그런 선택을 할 수가 없었다고 돌아봤다. 고문 후유증으로 손가락이 구부러지고 만성적인 허리 통증 등을 앓고 있다고 전했다.그는 싱가포르에서 열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첫 북미정상회담을 앞둔 지난해 5월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방북 때 역시 한국계 미국인인 김상덕(미국 이름 토니 김), 김학송 씨 등과 함께 석방돼 폼페이오 장관과 함께 미국으로 귀환했다. 메릴랜드주 앤드루스 공군기지에 안착했을 때 트럼프 대통령이 기내에 올라 환영했는데 그때까지도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이란 사실을 몰랐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북한에 대해 “애증의 나라”라면서 “북한은 사회주의도 공산주의도 아닌, 상상할 수 있는 가장 통제가 강력한 독재이며 노예 시스템”이라고 평가했다. 지난 6월 서울에서 자신의 억류 생활상 등을 담은 ‘보더 라이더’(Border Rider)를 출간했으며, 영어와 일본어판도 낼 예정이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日시민들 도쿄서 ‘야스쿠니 반대’ 촛불시위…우익 “때려죽여”

    日시민들 도쿄서 ‘야스쿠니 반대’ 촛불시위…우익 “때려죽여”

    평화지지 일본 시민 등 400여명 ‘아베 퇴진’ 구호2006년부터 14년째…“아베 ‘평화 헌법’ 반대”‘야스쿠니 반대 도쿄 촛불행동’을 지지하는 일본 시민들이 10일 저녁 도쿄 도심에서 전구형 촛불 막대를 들고 거리행진을 하면서 유족들의 뜻에 따라 합사 취소를 허용하라고 촉구했다. 외신 등에 따르면 이날 오후 7시 재일본 한국YMCA 건물 앞을 출발해 야스쿠니신사 인근의 공원까지 약 1.5㎞ 구간에서 45분 동안 펼쳐진 행진에는 일본 각지에서 모인 400여명이 함께했다. 이들은 ‘평화의 촛불을, 야스쿠니의 어둠에’라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을 앞세우고 경찰의 삼엄한 경계 속에서 합사 취소, 야스쿠니 반대, 전쟁 반대, 인권 회복, 개헌(평화헌법 개헌) 반대, 아베 퇴진 등의 구호를 반복해 외치며 1개 차로를 따라 행진했다. 우익 세력과의 충돌을 막기 위해 시위 참가자보다도 많은 경찰관이 시위 행렬 인도에 동원된 것으로 전해졌다. ‘야스쿠니 반대’ 시위에 맞서 우익 세력들은 대형 스피커가 장착된 차량 여러 대를 동원해 소음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때려죽이자’와 같은 섬뜩한 구호를 외친 것으로 알려졌다. 야스쿠니신사로 이어지는 야스쿠니대로 네거리 주변에서 양측 시위 진영이 바싹 근접하면서 잠깐 위험스러운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지만, 경찰이 적극적으로 분리 작전을 펼쳐 물리적 충돌은 발생하지 않았다. 민족문제연구소, 태평양전쟁피해자 보상추진협의회, 촛불행동 일본실행위원회 등 한일 시민단체들이 참여하는 ‘촛불행동’ 측이 8월에 야스쿠니 반대 시위를 조직한 것은 2006년 이후 이번이 14번째다.이날 시위에 동참하려고 가와사키시에서 왔다는 사쿠라이 다카오(69) 씨는 “아베 정권의 평화헌법 개정 움직임에 반대한다”면서 “평화를 지키기 위해 시위에 참여했다”고 말했다. 야스쿠니 신사에는 도쿄 전범재판에서 교수형을 당한 도조 히데키 당시 총리 등 7명을 포함해 태평양전쟁을 이끌었던 A급 전범 14명이 1978년 비밀리에 합사돼 있다. 합사된 246만 6000위 중에 일제의 군인이나 군속으로 징용됐다가 목숨을 잃은 조선인 출신 2만 1181위와 대만인 2만 7864위도 본인이나 유족의 뜻과 무관하게 야스쿠니에 봉안돼 있다. 일부 유족들이 이에 반발해 일본 법원에 합사 취소를 요구하는 소송을 여러 건 제기했지만 아직 승소한 사례는 없다. 야스쿠니 합사 취소소송 원고 중 한 명인 이병순씨는 이날 도쿄 지요다구 재일본 한국YMCA에서 촛불행동 주최로 열린 ‘지금의 야스쿠니와 식민지 책임…왜 가해자가 피해자 행세를 하는가’란 주제의 심포지엄에서 일본인 방청객들에게 일제의 침략전쟁에 강제로 끌려가 숨진 뒤 야스쿠니의 영령이 된 아버지를 구해 달라고 호소했다. 이씨는 “저는 많은 걸 바라지 않는다”면서 “야스쿠니에 합사된 아버지의 이름을 그곳에서 지워 제가 당당하게 제사를 지낼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말했다고 연합뉴스는 전했다. 이씨의 아버지는 대부분의 다른 조선인 희생자들처럼 일제의 일본식 개명 강요로 이름 석 자가 넉 자가 돼 전범들과 함께 야스쿠니에 합사됐다.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아하! 우주] 죽은 별 주위의 행성도 ‘신음소리’를 낸다

    [아하! 우주] 죽은 별 주위의 행성도 ‘신음소리’를 낸다

    죽은 별을 공전하는 행성의 핵은 전파를 방출하며, 지구에서 10억 광년 거리에서 오는 그 전파까지 탐지할 수 있다는 새 연구논문이 발표되었다. 별이 연료를 모두 소진하면 바깥층을 우주공간으로 방출하는데, 이것이 바로 별의 임종이라고 할 수 있다. 방출된 별먼지는 거대한 고리를 만들고, 그 중심에는 별의 속고갱이라 할 수 있는 백색왜성이 남는다. 별들이 죽을 때면 보통 근처의 천체를 파괴하는데, 궤도를 도는 행성의 경우에는 바깥층이 벗겨져나간다. ​ 영국 워릭대학의 천체 물리학자 디미트리 베라스가 이끄는 연구에 따르면, 백색왜성 주위를 공전하는 행성의 핵은 여전히 전파를 방출하며, 과학자들이 지구에서 그들을 탐지할 수 있다. 이 같은 사실은 외계행성을 탐색하는 데 활용될 수 있다는 의미라고 연구자들은 말한다. 베라스 박사는 “이전에는 자기장 신호를 탐색하는 방법으로 주요 행성을 발견한 적이 없었다”면서 “백색왜성 주위를 도는 주요 행성이나 그 핵을 발견한 적도 없는 만큼 이번에 발견된 행성 핵의 전파는 세 가지 의미에서 ‘처음’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새 연구에 따르면, 백색왜성과 그 궤도를 도는 살아남은 행성 핵 사이의 자기장은 단극 유도 회로를 형성할 수 있다. 이 회로는 금속 물체가 자기장에서 회전하여 전류를 생성할 때 형성된다. 이 회로의 방사선은 전파로 방출되며, 이는 연구원들이 전파 망원경으로 관측할 수 있다. 연구원들은 이 현상을 통해 ‘죽은’ 행성계를 탐지하는 것 외에도 단극 유도 회로를 형성하는 목성과 그 위성 이오를 연구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백색왜성 주변의 모든 행성이 핵을 남기는 것은 아니다. 행성의 핵이 백색왜성에 너무 가까이 위치하면 모성의 조석력으로 핵이 파괴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핵이 살아남더라도 모성에서 너무 멀리 떨어진 궤도에 있으면 그 전파를 탐지해낼 수가 없다. 또한 자기장이 너무 강하면 핵이 백색왜성으로 끌려들어가 파괴되고 만다. “따라서 우리는 약 태양 반지름 3배에서 수성-태양 간 거리 사이에서 백색왜성 주위의 행성만을 찾아야 한다”고 베라스 박사는 밝혔다. 연구자들은 백색왜성 궤도를 도는 행성 핵 시스템을 모델링한 결과, 별이 죽을 때 외층이 벗겨져나가도 행성 핵은 1억 년 이상 생존할 수 있으며, 때로는 10억 년 생존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1990년 대 초, 과학자들은 궤도를 도는 별들로부터 전파를 감지함으로써 최초의 외계행성을 발견했다. 이 연구팀은 전파를 탐지하여 행성의 핵을 발견함으로써 외계행성 발견과 탐사를 위한 강력한 도구를 발견한 셈이다. 이 연구에 이어 연구팀은 아레시보 전파망원경 등을 사용하여 백색왜성 주위를 도는 행성 핵를 탐지하고 연구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베라스 박사는 "그러한 연구는 항성계의 역사를 밝히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면서 “우리 인류의 먼 미래와 태양계가 어떻게 진화할 것인지에 대한 통찰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밝혔다. 이 연구는 지난 6월 21일 왕립천문학회 월보에 발표되었다. 이광식 칼럼니스트 joand999@naver.com 
  • [여기는 중국] 밥 느리게 먹어서…8살 딸 폭행해 살해한 비정한 엄마

    [여기는 중국] 밥 느리게 먹어서…8살 딸 폭행해 살해한 비정한 엄마

    평소 밥을 느리게 먹는다는 이유로 고철 막대기로 여아를 폭행, 사망에 이르게 한 여성이 공안에 붙잡혔다. 올해 8세의 사망자는 이 여성의 친딸로 밝혀졌다. 지난 3일, 중국 산둥성 쩌우핑현(邹平)의 한 가정에서 발생한 이번 사건은 친모에 의한 아동 폭행 사건으로, 폭행 후 방안에 방치된 8세 여아가 사망에까지 이른 것으로 확인됐다. 지역 병원 의료진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공안국 측은 가해 여성 동천 씨와 사건을 방조한 남편 곽 모 씨를 현장에서 체포했다. 공안국 측이 공개한 사건 내용에 따르면, 올해 8세의 여아 샤오잉 양(가명)은 평소 ‘밥을 느리게 먹는다’는 이유로 친모로부터 줄곧 폭행과 폭언을 당해왔던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친모의 가해 행위는 8세 친딸 뿐만 아니라 남편에게도 이어졌는데, 사건 당일 낮 2시 경 평소 폭력적인 성향이 있었던 친모 동천 씨는 딸이 ‘수저를 늦게 뜬다’는 이유로 폭언을 시작했다. 당시 함께 식사 중이었던 샤오잉 양의 친부 곽 모씨는 “딸의 밥 먹는 속도가 느리다는 이유로 아내는 딸에게 ‘밥을 빨리 먹지 않으면 쇠몽둥이로 심하게 맞게 될 것’이라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면서 “이후에도 딸이 밥 먹는 속도를 내지 않는 것처럼 보이자, 아이를 데리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내게는 방에 들어오지 말고 문을 열지도 말라며 방문을 걸어 잠갔다”고 설명했다. 당시 엄마의 손에 끌려 안방에 들어간 샤오잉 양은 이후 약 1시간 동안 계속되는 폭행과 구타로 온 몸에 멍이 든 채 방안에 방치됐다. 이 시간, 남편 곽 씨는 아내가 딸을 폭행하는 것을 방조, 밖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고 공안국 측에 증언했다. 적극적으로 아내의 구타를 저지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그는 “아내는 평소 딸 뿐만 아니라, 나도 자주 구타했다”면서 “아이를 구타할 때 말리면 그 화가 다 나한테 돌아온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 적극적으로 말리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후 방문을 열고 나온 친모 동천 씨는 남편에게 “방 안에 남겨진 샤오잉 양을 병원에 데려가 치료 받게 해서는 안 된다”며 그대로 방치할 것을 강요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남편은 아내가 방을 떠나고 나서야 방문을 열어봤으나, 1시간에 걸친 구타로 샤오잉 양의 온 몸은 피멍이 든 채 바닥에 누워있던 상태였다. 당시 곽 씨는 샤오잉 양에게 ‘먹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는데, 샤오잉 양은 “시원한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다”고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곽 씨는 딸의 요청으로 아이스크림을 전해 주려고 했으나, 방 문 앞을 지키고 있던 친모 동천 씨에 의해 이마저도 저지당했다고 현지 언론을 통해 설명했다. 그러면서 곽 씨는 “온 몸에 피멍이 든 채 누워있는 아이를 한 눈에 봐도 이대로 방치하다가는 큰 일이 발생할 것 같았다”면서 “아내에게 아이를 병원에 데려가겠다고 하자, 아내는 이때부터 표정이 돌변, 내 뼘을 수 십대 때리는 등 폭행을 시작했다. 어쩔 수 없이 장모에게 전화를 걸어 병원 응급차를 불러달라고 요청했다”고 설명했다. 남편 곽 씨의 구조 요청으로 출동한 구조대 측은 사건 현장에서 샤오잉 양을 발견 후, 직감적으로 그가 치명상을 입었다는 것을 느꼈다고 증언했다. 당시 출동했던 구조대원 총핀진 씨는 “샤오잉 양의 집 근처에는 불과 도보로 약 10분 거리에 대형 병원이 있었다”면서 “폭행 후에도 마음만 먹었다면 샤오잉 양을 쉽게 병원으로 데려가 치료받게 할 수 있는 거리였다”고 설명했다. 구조대의 출동으로 병원에 도착한 샤오잉 양은 진료 의사의 소견 상 온 몸의 뼈가 골절, 병원 치료를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사망에 이른 것으로 확인됐다. 사건 당일 폭행이 시작된 지 3시간 만에 사망에 이른 것. 한편, 쩌우핑현 공안국 측은 공식 웨이보 홈페이지를 통해 이번 사건의 경과 과정을 공개했다. 공안국 측은 사건 직후 인근 마트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던 동천 씨를 검거, 현재 형사 구류된 상태라고 밝혔다. 검거 직후 동천 씨는 폭행 혐의 일체를 자백했으며, 폭행 이유에 대해 “평소 아이의 식습관이 좋지 않았는데, 이를 고쳐주려고 했을 뿐”이라고 답변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공안국 측은 가해 여성 동천 씨의 사건과 관련, 가족과 친지를 대상으로 한 추가 폭력 행사 등 여죄를 추가로 조사 중이다. 임지연 베이징(중국) 통신원 cci2006@naver.com
  • 말레이시아 정글에서 사라진 소녀 찾기 위해 엄마 목소리 스피커로

    말레이시아 정글에서 사라진 소녀 찾기 위해 엄마 목소리 스피커로

    애타게 딸의 이름을 부르며 찾는 엄마 목소리가 말레이시아 정글에 울려퍼지고 있다. 말레이시아 경찰이 지난 4일 이후 종적이 묘연한 영국의 15세 소녀 노라 쿠오이린을 찾기 위해 이런 방법을 동원하기로 했다고 영국 BBC가 8일 전했다. 경찰은 노라와 가족들이 머무르고 있던 두산 리조트 주변 정글 안에 여전히 노라가 있다고 믿고 어머니 미브가 “사랑하는 노라, 사랑한다. 엄마는 여기 있다”라고 녹음한 것을 정글 수색에 이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프랑스계 세바스티앙과 아일랜드계 미브 쿠오이린은 노라와 남동생 남매를 데리고 영국 런던을 떠나 2주 휴가를 보내기 위해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 도착, 남쪽으로 60㎞ 떨어진 세렘방의 두산 리조트에 숙박했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문이 열려진 채 노라는 흔적 없이 사라졌다. 말레이시아 경찰은 “어떤 것도 배제하지 않겠다”면서도 노라가 정글 속에서 길을 잃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반면, 가족들은 장애 때문에 “겁도 많고 두려운 것도 많아” 부모 곁을 쉽사리 떠나지 않는 노라의 평소 행동을 볼 때 정글로 나가 길을 잃은 것이 아니라 자다가 납치됐을 가능성에 무게를 싣고 있다. 어머니 미브 뿐만아니라 아버지 세바스티앙이나 남동생 목소리도 녹음해 경찰은 이들의 목소리에 이끌려 노라가 정글 밖으로 걸어 나와주길 기대하고 있다. 250명 남짓의 수색대는 닷새째인 8일 아침부터 여섯 팀으로 나눠 4㎢의 숲속을 뒤졌다. 온라인 모금을 통해 수색 비용에 쓰라는 돈 5만 5000 파운드가 걷혔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아탐바예프 前 키르기스스탄 대통령 결국 “두 번째 검거작전에 투항”

    아탐바예프 前 키르기스스탄 대통령 결국 “두 번째 검거작전에 투항”

    중앙아시아 키르기스스탄에서 부패 혐의를 받고 전날 자택을 급습한 검거 작전에 저항해 체포를 면한 알마즈벡 아탐바예프 전(前) 대통령이 8일(이하 현지시간) 결국 보안 당국에 체포된 것으로 알려졌다. 아탐바예프는 수도 비슈케크에서 남쪽으로 20㎞ 떨어진 코이 타슈 마을에 있는 자택에 머무르다 체포됐다. 아탐바예프 진영 관계자는 이날 오후 타스 통신에 “전 대통령이 보안당국 요원들에 항복했으며 그가 자택에서 끌려나갔다”고 전했다. 리아노보스티와 인테르팍스 통신도 아탐바예프가 당국에 항복하면서 체포됐다고 소개했다. 그는 두 참모와 함께 헬리콥터를 이용해 비슈케크로 옮겨졌다고 현지 매체 24.kg가 전했다. 보안당국 소속 특수부대는 전날에 이어 또다시 급습하면서 체포 작전에 나섰다. 수백명의 경찰과 특수부대원들이 고무탄을 쏘고 섬광탄을 발사하며 저택을 공격한 뒤 내부 진입에 성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수부대 차량이 아탐바예프 자택의 대문을 부쉈고 근처에선 총격 소리가 들렸다고 인테르팍스 통신은 전했다. 약 400명의 아탐바예프 지지자들은 몽둥이를 휘두르고 돌을 던지며 저항했으나 역부족이었다. 또다른 지지자 수천 명이 코이 타슈 마을로 몰려들었으며 그 가운데 약 500여명이 마을을 에워싼 특수부대원들의 포위망을 뚫고 전 대통령 저택으로 향했지만 이미 아탐바예프가 체포된 뒤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전 대통령은 이날 다른 지역에서 집회를 계획해 지지자들이 그쪽으로 떠나 자택 방어에 허점이 발생한 것으로 전해졌다고 영국 BBC는 전했다.소론바이 제엔베코프 현 대통령은 이날 오전 개최한 긴급 안보회의에서 아탐바예프 전 대통령이 당국의 체포에 무력으로 저항한 것은 헌법과 법률 위반이라고 강하게 비난했다. 그러면서 관계 당국에 법질서 유지를 위한 모든 조치를 취하라고 지시했다. 1차 작전 때 체포를 피한 아탐바예프 전 대통령은 이날 새벽 자신이 소유한 TV 채널 ‘아프렐’(4월)을 통해 공개 호소문을 발표했다. 그는 특수부대의 무력 체포 작전을 비난하면서 자신에 대한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자고 촉구했다. 이에 앞서 전날 오후 키르기스스탄 보안기관인 국가보안위원회 산하 특수부대원들이 아탐바예프 전 대통령을 체포하기 위해 저택을 급습했으나 체포에 실패했다. 아탐바예프 지지자들은 저택으로 진입하려는 부대원들을 몽둥이와 몸으로 막으며 저지했고 뒤이어 추가로 몰려든 전 대통령 지지자들과 증원된 보안부대원들 간에 교전이 벌어졌다. 양측의 충돌로 약 80명이 부상했으며 아탐바예프 지지자들이 쏜 총탄에 맞아 부상했던 특수부대원 1명이 수술 도중 사망했다고 국가보안위원회는 밝혔다.리아노보스티 통신은 당국이 아탐바예프를 강제 연행하려는 것은 그가 지난 2013년 발생한 범죄조직 두목 불법 석방 사건과 관련한 수사당국의 증인 출석 요구를 세 차례나 거부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비슈케크 열병합발전소 현대화 사업 관련 부정, 불법 토지 취득 등의 혐의를 받고 있다고 수사당국은 밝혔다. 재판에서 유죄가 확정될 경우 그는 종신형을 선고받을 수 있다. 키르기스스탄 의회는 앞서 지난 6월 27일 아탐바예프의 면책특권과 전직 대통령 직위를 박탈하기로 결의했다. 아탐바예프는 지난 2011~2017년 대통령으로 재임하고 스스로 물러나면서 제엔베코프를 대선 후보로 추천했고 뒤이어 2017년 10월 치러진 대선에서 그를 적극적으로 지원해 당선시켰다. 하지만 그 뒤 정부 구성 문제 등에서 두 지도자에 불화가 불거졌고, 제엔베코프는 지난해 4월 초부터 보안 부처와 검찰 등에서 아탐바예프의 측근들을 몰아내는 등 ‘홀로서기’에 나섰다. 파미르 고원의 관문 격인 키르기스스탄은 아탐바예프 지지자들과 현 정권의 대립 격화로 정국 혼란이 가중될 것으로 우려된다. 이 나라에는 러시아 공군기지가 있는 데다 중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어 자칫 러시아와 중국이 개입해 중앙아시아 전체로 갈등이 비화할 수 있다는 걱정마저 제기된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75년前이나, 지금이나 반복되는 일본의 과오

    75년前이나, 지금이나 반복되는 일본의 과오

    일본 제국 패망사/존 톨런드 지음/박병화, 이두영 옮김/글항아리/1400쪽/5만 8000원 “짐의 선량하고 충성스런 국민에게. 오늘날 세계 대세와 일본 제국의 실태를 깊이 고려해 본 후 짐은 비상 조치를 취함으로써 현 상황을 타개해 나가도록 결정했다….”1945년 8월 15일 라디오를 통해 흘러나온 카랑카랑하고 비현실적인 ‘학’(일왕을 상징)의 목소리를 들은 수백만명의 일본인은 동시에 눈물을 흘렸다. 수년에 걸친 태평양전쟁도 이렇게 막을 내렸다. 태평양전쟁은 미국과 일본의 전쟁이었지만, 우리와 절대 무관하지 않다. 조선인 수십만명이 징용돼 머나먼 타국으로 끌려갔다. 젊은 여성들은 일본군의 성 노리개가 되는 수모를 겪었다. 이후 75년이 지났지만, 전쟁의 상흔은 완전히 지워지지 않았다. 일본은 가해 사실에 대해 사과는커녕 외면하고 있고, 강제 징용에 대한 피해자 배상을 요구하자 우리에게 경제보복을 하고 있다. 일본의 이런 행태를, 그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태평양전쟁을 통해 가늠할 만한 책이 나왔다. 1970년 출간했지만 이제서야 한국에 번역 출간된 세계적인 전쟁사학자 존 톨런드(1912~2004)의 ‘일본 제국 패망사´에 손이 간 이유다. 책은 1936년부터 일본이 패망한 1945년까지 10년 동안을 무려 1400쪽에 이르는 분량에 담았다. 만주사변 이후 이어진 중일전쟁, 삼국동맹 조약, 미 교섭 결렬, 나치의 유럽 침공, 진주만 기습 전야부터 이후 벌어진 전쟁의 양상을 관통해 서술했다. 이어 일본의 말레이반도와 필리핀 상륙, 싱가포르 함락, 자바섬 장악, 미드웨이 해전, 사이판·레이테섬·이오섬 전투, 오키나와 사투, 도쿄 공습,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 일왕의 항복 등에 이르기까지 일본 제국의 상승과 쇠망을 다룬다. 저자는 일본이 일으킨 태평양전쟁을 ‘기묘한 전쟁´이라 말한다. 연합함대 사령관이자 해군의 실질적인 총수였던 야마모토 이소로쿠 해군 대장은 미국과의 개전을 앞두고 “처음 6개월에서 1년 정도는 우세하겠지만, 그 뒤는 장담할 수 없다”면서 전쟁을 반대했다. 그럼에도 전쟁을 감행한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는 방대한 자료와 인터뷰, 관련 인물들의 적극적 협조를 바탕으로 답을 찾는다. 당시 어전회의와 연락회의의 기록들, 타다 남은 부분으로 추정되는 고노에 전 총리의 일기, 육군 원수 스기야마의 1000쪽짜리 메모, 그리고 주요 전범과의 인터뷰 등으로 역사를 재구성했다. 일본이 대미 전쟁을 결정한 배경엔 나치 독일의 승리에 편승해 한몫 챙길 수 있을 것이라는 기회주의적인 욕심, 어떻게든 되리라 생각한 수뇌부의 판단 오류 등이 조합된 결과라고 봤다. 결국 300만명이 넘는 사상자를 내고 패했다. 책은 방대한 분량이지만, 사건에 관한 세밀한 설명과 인물에 관한 탁월한 묘사, 대화체 형식 구성으로 페이지를 술술 넘기게 한다. 예컨대 2·26 당시 군부의 오카다 총리대신 살해 미수 사건은 마치 소설을 읽는 느낌마저 든다. 원자폭탄 개발 과정과 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 투하 장면, 그리고 이후 참상도 생생하다. 특히 원폭 투하 당시의 상황은 피해자를 옮겨 가며 오히려 담담하게 묘사한 것이 오히려 오싹하다. 원폭 투하 이후 도쿄 최상층부에서 일왕을 두고 벌이는 암투 역시 드라마를 보는 듯하다. 저자는 책을 쓴 이유를 두 가지 들었다. 우선 태평양전쟁 당시에 관한 새롭고 중요한 기록들이 1970년대 나왔다는 점, 과거사에 대한 일본의 태도가 바뀌었다는 점을 들었다. 당시 다나카 가쿠에이 총리는 “일본 측은 전쟁을 통해 중국인에게 저지른 심각한 피해에 대한 책임을 날카롭게 알아채고, 스스로 깊게 책망한다”고 중국에 사과했던 때다. 그러나 책이 세상에 나온 뒤 일본의 태도는 분명히 후퇴했다. 우경화가 가속하고, 과거사를 문제 삼았다는 이유로 경제보복을 서슴없이 해대는 지금의 일본을 본다면 저자는 무슨 생각을 할까.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16년 만에 다시 받을 미국의 파병 청구서… 제2의 이라크戰 될까

    16년 만에 다시 받을 미국의 파병 청구서… 제2의 이라크戰 될까

    미국이 또다시 한국에 공식적으로 해외파병을 요청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과 이란 간의 군사적 긴장감이 높아지면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호르무즈 해협에 다국적방위연합체를 구성하겠다고 발표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호주 시드니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지난 4일(현지시간) 호르무즈 연합체에 대해 “일본, 한국처럼 이 지역에 이해관계가 있고 상품과 서비스, 에너지를 운반하는 나라들이 그들의 경제적 이익을 지키는 차원에서 참여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밝혔다고 미 국무부가 전했다.한국은 미국의 요청으로 2003년 이라크에 자이툰 부대를 파병한 이래 16년 만에 다시 미국으로부터 해외파병 요청을 받았다. 미국의 다국적방위연합체 구상은 최근 이 지역을 운항하는 유조선들이 이란으로부터 공격을 받거나 이란군에 의해 나포되면서 안전이 크게 위협을 받는다는 판단에서 비롯됐다. 물론 이란 정부는 유조선 피격에 가담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영국 유조선을 나포한 것은 영국이 먼저 이란 유조선을 나포한 데 대한 대응이라고 반박한다. 진실이야 어찌 됐든 간에 호르무즈 해협의 운항이 예전보다 훨씬 더 위험해진 것만은 사실이다. 호르무즈 해협은 중동 최고의 유전지대인 페르시아만에서 석유를 실은 유조선이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길목이다. ●英 유조선 나포 후 호르무즈 해협 불안 가중 한국으로서는 미국의 요청을 피할 명분이 별로 없다. 사실 파병을 요청한 미국은 중동산 원유에 별로 의존하지 않는다. 셰일오일 산출량이 크게 늘면서 미국은 자국 소비 석유 가운데 20% 정도만을 중동에서 수입한다. 미국이 호르무즈 해협에서 군사적 액션을 취하는 건 정치적인 이유다. 반면 한국은 원유 수입의 70% 이상을 중동 지역에 의존하고 있다. 일본 역시 중동산 석유에 대한 의존도가 80%를 넘는다. 따라서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유조선의 안전은 한일에는 매우 중대한 사안이다. 호르무즈 해협 사태를 미국에 맡기고 우리는 뒷짐만 지고 있을 수 없는 이유다. 하지만 이란과 오랫동안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 온 일본은 미국의 요청이라지만 선뜻 해상자위대를 이란 앞바다에 파병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일본 언론은 일본이 파병을 거부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니 미국의 요청에 대한 한국의 반응은 더더욱 무게감을 지니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 트럼프 파병 요청 거절 쉽지 않을 듯 만일 한국이 트럼프 대통령의 요청대로 호르무즈 해협에 병력을 보내게 된다면 우리의 관심은 무엇보다 파병부대의 안전에 쏠릴 것이다. 그리고 안전의 최대 변수는 전쟁 발발의 유무다. 과연 호르무즈 해협에서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미국과 이란 간에 전면적인 전쟁이 벌어질 확률은 낮다. 크게 세 가지 이유다. 첫째, 미국의 동맹인 유럽이 전쟁을 꺼린다. 전쟁에는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기에 모든 것을 돈으로 계산하는 트럼프 대통령이 단독으로 전쟁을 벌일 가능성은 크지 않다. 누군가 비용을 나눠 부담해야 한다. 미국으로서는 최대의 파트너가 유럽이다. 하지만 유럽 국가들 가운데 누구도 이란과의 전쟁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다. 오히려 과거에 버락 오바마 대통령 주도로 이란 정부와 맺은 핵합의를 유럽 국가들은 어떻게 해서든 유지하고자 안간힘을 쓴다. 왜 유럽은 이란과의 전쟁을 꺼릴까. ‘이라크 학습효과’ 때문이다. 2003년 미국 조지 W 부시 행정부 주도하에 벌어진 이라크 전쟁은 애초 미국이 이끄는 다국적군이 쉽게 이라크 정부군을 제압하고 상황을 정리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됐다. 전투는 미국의 일방적인 승리였지만 전후 재건 과정에서 늪에 빠졌다. 미국의 기대와는 달리 시아파와 쿠르드족이 주도하는 이라크의 신정부는 정국을 장악하지 못했고 권력에서 밀려난 수니파 병사들이 급진 이슬람주의 세력에 흡수되면서 테러와 반란이 끊이지 않았다. 이라크는 해법이 보이지 않는 혼란 상태가 지속됐다. 그 과정에서 많은 미군 사상자가 발생했고 미국이 감당해야 할 비용은 계속 늘어만 갔다. 결국 오바마 정부는 이라크에서 철군을 결정했다. 2011년 ‘아랍의 봄’이 시리아까지 번지자 이라크에서 세력을 확보한 이슬람 급진단체들은 시리아로 침투해 더욱 기승을 부리며 미국의 안보를 크게 위협했다. ‘이슬람국가’(IS)도 이러한 상황 속에서 성장했다. 중동에서의 전쟁과 혼란은 난민을 낳았고, 이 난민들은 유럽으로 밀려들었다. 이와 더불어 이슬람 급진단체를 배후로 하는 각종 테러로 유럽은 공포에 떨었다. 미국이 주도한 이라크 전쟁은 유럽인들에게 악몽 그 자체였다. 유럽인들에게 미국과 이란 간의 군사적 대립은 과거 이라크 전쟁의 악몽을 다시금 떠올리게 한다. 만일 이란과 미국이 전쟁을 벌인다면 중동 지역이 최대 피해자가 될 테지만, 그다음 피해자는 유럽이 될 수밖에 없다. 대서양 건너에 있는 미국보다 지리적으로 중동과 훨씬 인접한 유럽이 난민과 테러로 몸살을 앓을 것이다. 유럽 국가들로서는 이란 정부를 무너뜨리는 것보단 현상 유지를 하면서 핵개발을 통제하는 편이 훨씬 이득인 셈이다. 그래서 독일 등은 미국이 주도하는 다국적방위연합체 대신 유럽이 독자적으로 방위연합체를 만드는 방안을 논의하는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미국의 호전적인 대이란 정책에 끌려가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러시아 개입 땐 미국 일방적 승리 장담 못 해 둘째, 러시아가 이란을 지원할 가능성도 높다. 만일 러시아가 이란 문제에 군사적으로 개입하면 전쟁에서 미국이 일방적으로 승리한다고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이라크 전쟁과는 양상이 완전히 다르다는 의미다. 과거 걸프전과 이라크 전쟁을 미국이 주도할 때 러시아는 뒷전에 물러나 있었다. 무너지기 직전의 소련이나 블라디미르 푸틴이 갓 집권한 혼란기의 러시아로서는 해외전쟁에 개입할 여력이 없었다. 하지만 지난 시리아 내전을 계기로 러시아는 중동에서 강력한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러시아는 이란과 한 팀이 돼 시리아 정부군을 지원했다. 이들은 미국의 지원을 받은 반군과 쿠르드 민병대를 꺾고 결국 시리아에서 승리를 거머쥐었다. 이후 이란과 러시아의 관계가 조금 경색되는가 싶었는데 호르무즈 해협의 상황이 긴박해지자 이란 정부는 다시 러시아에 SOS를 쳤다. 그 결과물로 러시아 해군과 이란 해군은 호르무즈 해협에서 합동 군사훈련을 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군사훈련의 내용은 중요하지 않다. 타이밍이 모든 걸 말해 준다. 한창 이란을 압박하는 워싱턴을 향해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다. “오판하지 말라. 러시아는 이란이 서방세계에 공격당하는 것을 지켜만 보지 않을 것이다.” ●러, 2010년 ‘아랍의 봄’ 사태로 중동에 관심 러시아가 왜 이렇게 적극적으로 중동 정치에 끼어드는 것일까. 돌아보면 2010년 ‘아랍의 봄’이 전환점이었다. 멀리 북아프리카에서 시작된 ‘혁명’의 불길이 홍해를 건너 아라비아반도에 상륙하더니 시리아까지 뒤흔들었다. 푸틴이 보기에 아래로부터의 반정부 투쟁이 점점 러시아 근처로 몰려오는 모양새였다. 아랍의 독재자들이 넘어지면 다음으로는 이란이나 중앙아시아 국가가 영향을 받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이들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러시아도 안심할 수 없었다. 특히 러시아에는 1500만명이 넘는 무슬림 인구가 있다. 이들이 급진 이슬람주의의 영향을 받게 된다면 러시아의 내정도 불안해진다. 이에 푸틴은 단호하게 시리아에 개입했다. 전쟁이 아무리 참혹해져도 푸틴의 권좌를 위협하는 아래로부터의 저항의 불씨가 러시아로 번지지 못하도록 완전히 꺼 버리겠다는 심산이었다. 동시에 아랍의 봄을 빙자해 중동 지역 안보와 경제적 이권에 개입하는 미국과 서방세계의 영향력도 차단하고자 했다. 러시아에 있어 중동은 정치·군사적 안보뿐만 아니라 경제 안정을 위해서도 매우 중요한 존재다. 러시아의 최대 수출품목인 천연가스와 석유 가격을 적정하게 유지하는 것이 러시아 경제의 가장 큰 과제라고 할 수 있다. 만일 미국이 중동을 장악해 석유와 천연가스의 국제시세를 의도적으로 낮춘다면 러시아는 경제적으로 심각한 타격을 입는다. 미국의 제재로 경제 상황이 어려워진 러시아로서는 천연가스와 석유의 가격을 지켜 내기 위해서라도 중동에서 영향력을 확보하는 것이 국가경제에 긴요한 사안이다. 이러한 종합적인 판단의 결과 러시아는 이란과 함께 시리아 정부군을 지원했고 시리아 내전에서 최후의 승자가 됐다. 지상군 투입을 꺼리며 점차 시리아에서 발을 뺀 미국은 중동에서의 영향력이 크게 축소된 반면 러시아는 중동 정치에서 가장 큰 존재감을 과시하는 역외 행위자로 자리잡았다. 최근 호르무즈 해협에서 러시아·이란 합동 군사훈련을 실시하겠다고 발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시리아 내전으로 확보한 중동 지역 내 영향력을 잃지 않겠노라는 의지를 밝힌 것이다. 만일 이란이 미국과 서방세계의 영향력에 들어간다면 러시아로서는 턱밑에 칼이 겨누어지는 형국이 된다. 그 위협을 가만히 앉아서 당할 푸틴이 아니다. 만일 미국이 주도하는 연합군이 이란을 침략하면 러시아는 군사적 개입을 할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미국이나 유럽 국가들이 이러한 상황을 모를 리 없다. 이란과의 전쟁에서 얻는 이익이나 명분이 러시아와의 충돌을 감수할 만큼 크다고 보기 어렵다. 미국이 이란과의 전쟁을 쉽게 결정하기 어려운 이유다. 셋째, 이란은 다른 아랍 국가들과는 달리 오랜 정체성을 간직한 민족국가다. 따라서 외국의 군대가 전투에서 승리한다고 해도 이란의 국민적 저항과 반발을 제압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쉽게 이라크와 비교해 보자.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과 프랑스의 이해관계에 따라 건국돼 시아파-수니파-쿠르드로 정체성이 삼분돼 있는 이라크와 달리 이란은 최소 500년, 최대 수천년간 ‘페르시아’라는 정체성을 이어 온 민족국가다. 이란인들은 중동의 아랍 국가들에 대해 늘 약을 올리며 이렇게 이야기한다. “너희의 국경은 제국주의 국가들이 만들어 준 것이지만 우리 국경은 역사적으로 자연스레 형성된 것이다.” ●이라크와 달리 전쟁 이겨도 기대효과 낮아 이라크 전쟁 당시 미국은 비주류인 시아파 및 쿠르드와 손잡고 지배세력인 수니파를 몰아내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이란은 서방국가들이 무력으로 제압한다고 한들 현 집권세력을 대체할 만한 대안세력이 존재하지 않는다. 기껏해야 이란의 이슬람 신정주의에 반발하는 세속주의 세력일 텐데, 그들조차도 과거 서구 제국주의에 의해 침탈당했던 아픈 역사를 기억하고 있기에 미국의 우호세력이 되기 어렵다. 요컨대 유럽이 미국을 도와 이란 정부군과 싸워 이긴다고 한들 그 이후에 친서방 세력이 이란에 세워지리라고 장담할 수 없다. 미국과 유럽으로서는 치러야 하는 비용 대비 기대되는 효과가 낮은 전쟁인 셈이다. 결론적으로 호르무즈 해협에서 전쟁이 발발할 가능성은 낮다. 물론 이란에 적대적인 이스라엘이나 미국과 이란의 강경파 등 상황을 악화시킬 수 있는 위험요소들도 존재한다. 또 파병부대가 국지적인 충돌에 휘말릴 가능성 또한 무시할 수 없기에 완전히 안심할 수는 없다. 그러나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여러 상황이 미국과 이란 간의 전면전 가능성을 낮게 가리키고 있다는 것은 이 지역에 파병하게 될지도 모르는 우리로선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이다. 박정욱 MBC 라디오 PD ■박정욱 MBC 라디오 PD는 ‘중동은 왜 싸우는가’ 저자로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 ‘양희은 서경석의 여성시대’, ‘배철수의 음악캠프’ 등을 담당했다. 고려대 정치학 석사.
  • 뮤지컬 ‘위안부’ 이달 LA무대 오른다

    뮤지컬 ‘위안부’ 이달 LA무대 오른다

    2015년 미국 뉴욕 무대에 처음 올랐던 뮤지컬 ‘위안부’가 이달 중순부터 미 로스앤젤레스(LA) 무대에 오른다. 7일(현지시간) 주미 한인단체 위안부행동에 따르면 연극감독 겸 제작자 김현준 연출의 창작 뮤지컬 ‘위안부’가 오는 15~25일 LA 시내 시어터센터에서 공연된다. 이 작품은 1941년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도쿄의 공장에 일자리가 있다는 말에 속은 조선인 소녀 ‘고은’이 인도네시아의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는 이야기를 다룬다. 이 작품은 2015년과 2018년 뉴욕에서 공연됐으며 2015년 초연 때는 최우수 오프 브로드웨이 뮤지컬 후보에 올라 30편 가운데 2위에 오르기도 했다. 이번 LA 공연의 주연 ‘고은’ 역은 한국계 혼혈배우 에비게일 아레이더가 2018년 재연 때에 이어 다시 한번 맡으며, 필리핀 출신 배우 린딘 아돌프 아포스톨, 제니퍼 선 벨 등이 캐스팅됐다. 주최 측은 “한 젊은 여성의 삶이 어떻게 굴곡진 비극으로 변해 가는지를 지켜보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 광복의 달 8월… 종로, 연극으로 역사 되새긴다

    오는 14일로 예정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을 맞아 서울 종로구는 10일 어린이청소년국학도서관에서 연극 ‘꽃할머니’를 무대에 올린다고 8일 밝혔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은 위안부 문제를 국내외에 널리 알리고 피해자들을 기리고자 제정된 국가기념일이다. 고(故) 김학순 할머니가 1991년 8월 14일 기자회견을 통해 생존자 중 최초로 피해 사실을 공개 증언한 날이기도 하다. 이번 연극은 어른과 아이 모두 관람할 수 있는 여름방학 특별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기획됐다. 구 관계자는 “결코 되풀이돼선 안 될 비극적 역사를 기억하고 이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공감을 이끌어 내고자 마련한 자리”라고 했다. 연극은 태평양전쟁 시기인 1940년, 열세 살 어린 나이에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 모진 고초를 겪어야만 했던 ‘심달연’ 할머니의 생애를 담은 그림책 ‘꽃할머니’를 바탕으로 했다. 어린이 대상 워크숍, 춘천인형극제, 하이서울 페스티벌 등을 통해 주목받은 극단 문(門) 대표이자 연극배우인 박영희씨가 출연해 1인극 무대를 선보인다. 김영종 종로구청장은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생애를 그려 낸 연극 ‘꽃할머니’를 통해 비극적 역사를 기억하고 할머니들의 삶과 아픔에 공감하는 시간을 갖길 바란다”면서 “할머니들의 명예와 인권회복을 위해 꾸준히 목소리를 내겠다”고 말했다. 황비웅 기자 stylist@seoul.co.kr
  •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폐광의 기적, 일제의 흔적을 지우다 - 광명동굴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폐광의 기적, 일제의 흔적을 지우다 - 광명동굴

    #일제의 만행 #창조적 변신 #한여름 피서공간으로 “당시 조선총독부는 대한제국 고종황제를 압박하며 '광상조사기관'을 설치하고 금ㆍ은광산을 발견해서 이를 독점하려고 안간힘을 쏟았다. 광명동굴 역시 1912년 고바야시 토우에몬 일본인의 이름으로 광산 설립이 되었고 '광상조사기관'을 앞세운 일제의 광업권 침탈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광명동굴 소개글, 광명시>한 여름 밤의 꿈을 꾼다. 한국관광 100선에도 선정되었다. 광명동굴만한 도심 피서지가 따로 있으랴. 7.8㎞ 길이의 갱도, 수도권 유일의 인공 동굴, 3만 1천 400㎡의 공간을 부딪쳐 돌아 나오는 지하 서늘한 바람은 계절없이 늘 섭씨 12도를 유지한다. 반드시 점퍼나 스웨터를 들고 가야한다. 동굴 안에는 ‘뜬금없이’ 늦가을 내음도 난다. 춥다. 폭염 푹푹 내리쬐는 이 시기에 광명동굴은 광명 시민들에게는 축복이다. 일제강점기 수탈의 역사를 이겨내고 도심 속 복합 문화 예술 공간으로 멋지게 탈바꿈한 광명동굴로 가 보자.경기도 광명시 가학동 도고네 마을 가학산(山). 광명동굴의 시작은 일제 강점기 침탈과 자원 수탈의 생생한 기억에서 출발하며, 최초의 흔적은 1903년 5월 2일 가학리에 「시흥광산」이 설립되었다는 기록에서 확인된다. 일제는 조선통감부 설치 직후인 1906년 7월에 「광업법」과 「사광채취법」을 제정하여 금광 채굴권을 독점하였고 광명동굴 역시 ‘가학광산’이라는 이름으로 1912년부터 본격적인 채굴을 시작하였다. 1915년 12월 24일 일제는 한국의 지하 자원을 약탈하기 위하여 조선광업령(朝鮮鑛業令)을 공포하여 우리나라 국토 곳곳은 흡사 들쥐가 논바닥 헤집어 놓은 듯 알맹이만 쏙쏙 빼 빠져 버린다.#아직도 황금은 가득히 #다채로운 동굴 풍광 #연인들 데이트 코스 광복 후에도 근대화, 산업화라는 명목 아래 1972년까지 광명동굴에서는 금, 은, 구리, 아연과 같은 수많은 광물들이 채굴되었다. 특히 광명동굴은 황금광산으로 개발되었던 탓에 1955년부터 1972년까지 총 52kg의 황금이 나왔으며, 광산채광을 시작한 1912년부터 1954년까지는 수백kg 이상의 황금이 채굴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더구나 1972년 광명동굴 폐광의 원인이 자원 고갈이 아닌 홍수에 따른 환경 오염과 가학동 인근 논밭의 보상문제였기에 지금도 상당량의 황금이 동굴 안에는 묻혀 있을 것이라고 추정된다.광명동굴은 폐광된 이후 인근 소래포구나 안산, 강경, 전북 군산 등지에서 올라와 서울로 들어가는 새우젓, 토하젓, 멸치액젓 등속을 보관하는 장소로 사용되다 2011년 광명시가 매입하여 현재와 같은 역사ㆍ문화 관광명소로 탈바꿈되었다. 현재 광명동굴은 산업유산으로서의 가치와 문화적 가치가 결합된 대한민국 최고의 동굴테마파크라는 찬사를 받고 있으며 연간 10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는, 세계가 놀란 폐광의 기적을 이룬 곳으로도 이름나 있다. 광명시는 현재 동굴 안 총 길이 2.4㎞를 개발하여 관광객들이 접근할 수 있는 공간으로 동굴 안을 꾸며 놓았다. 동굴 안에는 분당 1.4t의 물이 쏟아져 내리는 황금 폭포를 비롯하여, 공연 및 전시가 가능한 예술의 전당, 황금궁전, 소망의 벽, 황금의 방, 불노문(不老門), 와인터널 등 다채로운 장소 등이 마련되어 있어 관람객들의 동굴 탐험(?) 맛을 느끼게 한다.또한 동굴 밖을 나가면 전망대와 아이샤 숲, 체험 놀이터 등이 있어 자녀들과 함께 온 가족들에게는 편안한 휴식 공간이 또 한 번 제공된다. 특히 아이샤 숲에는 각종 재활용품을 활용한 벤치와 아이샤의 친구들 조각상이 있어 아이들이 맘껏 뛰어놀 수도 있기에 가족 단위 관람객들에게는 항상 인기 만점인 장소이기도 하다. <광명동굴에 대한 방문 10문답> 1. 방문 추천 정도는? - ★★★☆ (★ 5개 만점) - 시원함을 넘어 춥다. 반드시 점퍼나 스웨터를. 2. 누구와 함께? - 가족 단위. 혹은 연인끼리도 좋다. 추워서 두 손 꼭잡고 포근히 안으면서. 3. 가는 방법은? - 광명시 가학동 가학산 산 17-1 - 주말의 경우 교통 체증이 심하다. 대중교통은 화영운수 17번 (개봉역-철산역-광명시민체육관-광명역-광명동굴) 4. 특징은? - 일제강점기 자원수탈의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창조적인 변신이 놀랍다. 5. 명성과 내실 관계는? - 중화권 관광객을 비롯하여 내국인 관광객들도 많이 오고 있다. 주말은 인산인해. 6. 꼭 봐야할 장소는? - 와인터널, 황금폭포, 예술의 전당, 바람길 7. 토박이들이 추천하는 먹거리는? - 원조광명할머니빈대떡, 선매떡볶이, 홍두깨칼국수, 진미칼국수 8. 홈페이지 주소는? - 요금 및 운영 관련 자세한 내용은 http://www.gm.go.kr/cv/index.do 으로 9. 주변에 더 볼거리는? - 구름산, 서울푸른수목원, 충현박물관, 광명업사이클아트센터, 광명가학동지석묘 10. 총평 및 당부사항 - 광명동굴은 인공동굴이다. 석회동굴과는 달리 동굴 벽 곳곳에는 노동자로 끌려온 우리 민족의 흔적이 선명히 남겨져 있다. 일제 자원 침탈의 아픔을 우리 힘으로 멋지게 복원해 놓은 곳이다. 글·사진 윤경민 여행전문 프리랜서 기자 vieniame2017@gmail.com
  • 텍사스, 참사 겪고도 총기 규제 완화…기마경찰은 흑인 용의자 ‘밧줄 연행’

    텍사스, 참사 겪고도 총기 규제 완화…기마경찰은 흑인 용의자 ‘밧줄 연행’

    새달 교회 등 공공장소 총기 소지 허용 연행 사진엔 “노예 연상” 비난 빗발쳐유엔, 대량살상범 처형법 추진에 반발지난 3일 46명의 사상자를 낸 총격 사건의 상흔이 아물지 않은 미국 텍사스주에 다음달부터 공공장소 내 총기 소지를 완화하는 법률이 발효해 논란이 가중되고 있다. 6일(현지시간) USA투데이에 따르면 지난 6월 주 의회에서 통과된 총기 소지법에 따라 9월부터 텍사스주에서는 교회, 이슬람 사원(모스크), 유대교 회당(시너고그), 아파트단지, 아동 위탁시설, 공립학교 부지 등 공공장소에서 총기 소지가 허용된다. 공화당이 장악하고 있는 텍사스주 주의회에서 해당 법안의 통과를 위해 전미총기협회(NRA)가 로비를 벌인 것으로 전해졌다. NRA는 지난 주말 텍사스주 엘패소와 오하이오주 데이턴에서 연달아 일어난 총기 난사로 여론이 들끓자 “이런 비극을 정치화하는 데 동참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런 가운데 소셜미디어에는 지난 3일 텍사스주 갤버스턴에서 건물 무단침입 혐의로 경찰에 체포된 흑인 용의자가 말에 올라 탄 두 명의 경찰관에게 밧줄로 묶여 끌려가는 사진이 올라와 최근 총격 사고의 배경이 된 인종 갈등에 기름을 끼얹었다고 워싱턴포스트는 6일 보도했다. 이들의 모습을 목격한 한 행인이 찍어 올린 사진으로 1800년대 미 남부에서 도망치다 붙잡힌 흑인 노예의 모습을 연상시킨다는 비난이 빗발치자 경찰은 황급히 사과했다. 미 의회에서는 총기 소지를 제한하기 위한 법 제정 논의가 본격화되는 모습이다. 총격 사고가 난 오하이오주 마이크 드와인 주지사와 데이턴이 지역구인 공화당 마이클 터너 하원의원 등은 신원 조회를 통해 정신질환이나 중범죄 전력이 있는 사람이 총기를 구매하지 못하도록 하는 ‘붉은 깃발’(레드 플래그)법 통과를 촉구했다. 전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대국민 성명에서 입안을 촉구한 법안으로, 뉴욕타임스는 “(공화당이 장악한) 미 상원에서 유일하게 통과될 가능성이 있는 총기 관련 규제”라고 평가했다. 한편 대량 살상 가해자를 신속히 처형할 수 있도록 법 개정을 지시하겠단 미 정부 입장에 대해 유엔 인권사무소는 “사형은 잔인하고 돌이킬 수 없는 처벌로 21세기에는 설 자리가 없다”며 반기를 들었다. 우루과이와 베네수엘라 등 국가들은 미국 내 잇단 총격 범죄에 자국민을 대상으로 미국 여행 주의보를 발령했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수원도시공사 여자축구단, 전국여자축구선수권대회 우승

    수원도시공사 여자축구단, 전국여자축구선수권대회 우승

    제18회 전국여자축구선구권대회 일반부에서 우승을 거머쥔 수원도시공사 여자 축구단(구단주 이부영)이 7일 우승 깃발을 염태영 수원시장에게 전달했다. 이날 오전 수원시청에서 열린 봉납식에서 염 시장은 “무더운 날씨와 빡빡한 경기 일정에도 큰 부상 없이 경기를 치른 것도 대단한데 우승까지 해줘서 감사하다. WK리그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도록 응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선수들을 격려했다. 앞서 수원도시공사 여자축구단은 지난 4일 경남 합천 황강군민체육공원에서 열린 ‘전국여자축구선수권대회’ 일반부 결승전에서 구미스포츠토토와의 연장 접전 끝에 3:2로 우승을 차지했다. 전반 2분 구미스포츠토토의 최유리 선수에게 선제골을 허용했으나 공사 문미라 선수가 전반 24분 만회골을 넣었다. 하지만 후반 53분 상대의 김상은 선수에게 두번째 골을 허용해 1:2로 끌려갔으나 75분에 또다시 문 선수가 동점골을 터뜨려 2:2로 만들고 승부를 연장으로 몰고 갔다. 연장전에 돌입한 공사 여자축구단은 연장 전반 14분 프리킥 상황에서 이케지리 마유가 왼발 슛을 성공 시켜 3:2 극적인 승리를 거뒀다. 한편 수원도시공사 여자축구단은 8일 오후 7시 수원종합운동장에서 서울시청과 WK리그 14라운드 경기를 치른다. 현재 공사 여자축구단은 8개 구단 가운데 2위(승점 23점)를 달리고 있다. 김병철 기자 kbchul@seoul.co.kr
  • 딸로 변장해 탈옥 시도했던 브라질 갱 두목, 숨진 채 발견

    딸로 변장해 탈옥 시도했던 브라질 갱 두목, 숨진 채 발견

    면회 온 자신의 10대 딸로 위장해 탈옥을 시도했던 브라질의 마약 두목이 교도소에서 의식이 잃은 채 발견된 후 결국 숨졌다. 리우데자네이루에서 마약을 유통하는 가장 강력한 갱단 중 하나를 이끌던 클라우비누 다 실바(42)는 최근 자신을 면회 온 19세 딸을 대신 남겨놓고 딸처럼 변장해 교도소를 나가려는 계획을 세웠다. 당시 그는 실리콘 마스크와 길고 검은 가발, 분홍색 티셔츠를 입고 자신의 본래 모습을 거의 완벽하게 지웠다. 그러나 불안해 보이는 태도와 눈빛이 들통나 결국 발각됐고 그는 다시 교도소로 끌려갔다. 리오타임즈 등 현지 언론의 6일 보도에 따르면 다 실바는 탈옥에 실패한 뒤 보안 수준이 더 높은 교도소로 이송됐고 징계를 받을 예정이었다. 하지만 탈옥 시도가 있은 지 불과 3일 후, 자신이 수감 돼 있던 감방에서 의식 불명의 상태로 발견됐고 교도소 측이 곧바로 심폐소생술을 실시했지만 결국 숨지고 말았다. 현지 교도소는 성명서에서 “수감자가 침대 시트를 이용해 스스로 목을 맨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당국은 이번 사건의 전말을 파악하기 위해 조사 중이라고 밝힌 가운데, 브라질에서는 교도소의 보안 수준이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미국 CNN의 6일 보도에 따르면 지난달 30일에는 브라질 북부의 한 교도소의 수감자들 사이에 대규모 패싸움이 벌어져 57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 폭동은 브라질에서 가장 수감자 밀집도가 높고 예산이 적은 교도소에서 벌어진 일이었으며, 2017년에는 브라질 서부의 교도소 4곳에서 유사한 폭동이 벌어져 수감자 55명이 사망하기도 했다. 송현서 기자 huimin0217@seoul.co.kr
  • 폭염속 일제불매운동 실천중인 안선희 시흥시의회 의원

    폭염속 일제불매운동 실천중인 안선희 시흥시의회 의원

    안선희 경기 시흥시의회 의원이 연일 35도를 웃도는 폭염속에서도 일제 불매운동에 나서고 있어 눈길을 끈다. 안 의원은 누구보다 먼저 지난 7월 8일부터 날마다 오후 6시 30분부터 8시까지 시민과 함께 정왕역과 배곧 롯데마트 등지에서 일본 제품 노노재팬 운동을 벌이고 있다. 안 의원은 “일본 정부와 기업은 그들이 저지른 불법적이고 반인륜적인 행위를 인정하지 않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정치적 이익을 위해 한국에 경제적 공격을 감행하고 있다”며 “일본 정부의 이러한 조치들은 대한민국의 국민과 사법권을 무시하는 처사”라고 강력히 규탄했다. 또 “강제징용과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 일본 정부의 진심어린 사과와 대한민국 사법부의 정당한 배상판결을 즉시 이행해야 한다”며, “더 이상 일본의 비상식적인 도발 행위를 묵과할 수 없고, 경제적으로도 끌려 다니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안 의원은 “일본과 경제전쟁에서 반드시 승리할 수 있도록 시흥시의회도 시민들과 합심해 끝까지 싸워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명선 기자 mslee@seoul.co.kr
  • 명동성당 앞에서 비수로 거사… 공범 묻자 “2000만 동포가 도왔다”

    명동성당 앞에서 비수로 거사… 공범 묻자 “2000만 동포가 도왔다”

    한자까지 똑같은 동명이인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알아도 이재명 의사(李在明 義士)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완용을 처단하려다가 실패한 독립운동가 정도라도 알고 있는 사람이 드물다. 이 지사는 우연히도 의사의 의거일이 자신의 생일과 같은 날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매국노를 죽이려다 스물셋 꽃다운 나이에 교수형을 당한 의사에 대한 인식과 대접이 이렇다. 의사에게는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됐지만, 직계 후손이 없어 훈장을 국가보훈처가 보관하고 있었다. 고향도 평북 선천이라 생가나 일가붙이를 찾을 수도 없다. 형이 집행된 후 시신도 수습되지 않아 유골의 행방도 묘연하니 묘소도 있을 리 없다.잊혀진 의사의 존재를 세상에 알린 것은 종친회였다. 이 의사의 본관은 진안인데 진안 이씨는 전북 진안을 비롯해 의사의 고향인 평북 등지에 집성촌이 있다. 또한, 진안 마이산은 1907년 이석용이 조직한 호남 의병 창의동맹단의 집결지였다. 진안에는 1925년 유림들이 일제에 항거해 순국한 의사와 열사 등 79위를 배향한 사당인 이산묘(耳山廟)도 있다. 말의 귀를 닮은 마이산 두 봉우리의 서쪽이다. 이산묘 영광사(永光祠)에는 안중근· 윤봉길· 이봉창 의사 등과 더불어 이 의사도 모셔져 있다.그런 인연으로 의사의 동상과 기념관이 고향에서 천 리 길이 넘는 먼 곳 진안에 자리잡게 되었다. 진안군청에서 마이산도립공원으로 들어가다 보면 도로 오른쪽에 이재명 의사 기념관이 있다. 2001년 종친회와 정치인들이 이재명 의사 추모사업회를 결성해 진안읍 군하리 6500여㎡ 부지에 조성한 시설이다. 그러나 금요일에 찾아간 기념관과 사업회의 문은 자물쇠가 굳게 채워져 관람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 홍살문은 나무가 삭아 홍살이 떨어져 뒹굴고 있고 마당에는 잡초가 무성했다. 이러니 방문객은 있을 리도 없고 간혹 지나가다 들러도 관람을 할 수 없다. 몇 해 전 수리를 요청하는 민원이 제기됐지만, 군청에서는 토지보상금 사용 승인이 나지 않았다고 답했다. 뜻을 모아 거액을 들여 지은 기념관이 보상금 갈등과 무관심, 예산 부족으로 방치되고 있는 것이다. 기념관 옆 타향 땅에 세워진 의사의 동상은 더 쓸쓸해 보였다. 이 의사는 1887년 10월 16일 선천에서 태어나 8살 때 평양으로 이사 가서 그곳에서 성장했다. 의사는 평양 일신학교를 졸업하고 1904년 미국 노동 이민회사의 모집에 응해 미국 하와이로 갔다. 1906년 3월에는 공부를 더 할 목적으로 미국 본토로 옮겨가 안창호가 중심이 돼 창립한 공립협회에 가입했다. 이듬해 일제는 고종을 강제 퇴위시키고 ‘정미7조약’을 체결하는 한편 대한제국 군대를 해산시켰다. 이에 공립협회는 매국노 처단을 결의하고 실행자를 선발했는데 거기에 지원한 사람이 바로 이 의사다.●이토 암살 실행 무산되자 이완용 죽이기로 의사는 그해 10월 9일 일본을 거쳐 고국으로 돌아왔다. 때를 엿보던 의사는 1909년 1월 평안도 순시를 떠난 한국통감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하려고 평양역에서 기다렸다. 그러나 거사를 실행하지 못했다. 안창호가 이토와 함께 다니던 순종 황제의 안전을 위해 만류했기 때문이었다. 이토는 10월 26일 안중근 의사에게 하얼빈역에서 사살됐다. 의사는 원래 목표대로 을사 5적을 비롯한 매국노들을 처단할 계획을 세웠다. 여러 동지와 야학당에 모여 이완용은 이 의사와 김병록· 이동수가, 이용구는 김정익이 죽이기로 했다. 그러던 중 이완용이 12월 22일 종현 천주교당(명동성당)에서 벨기에 황제 레오폴드 2세의 추도식에 참석한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당시 양심여학교 학생이던 아내 오인성씨와 마지막 작별의 밤을 지냈다. 오씨는 울지 않았고 남편의 거사를 만류하지 않았다고 한다. 날이 새자 김병록, 이동수와 함께 의사는 명동성당으로 향했다. 그날 오전 11시 30분쯤 의사는 성당 밖에서 군밤장수로 변장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드디어 이완용이 인력거를 타고 앞으로 지나갔다. 의사는 비수를 들고 달려들었다. 인력거꾼 박원문이 제지하려 하자 그를 찔러 숨지게 하고 이어 이완용의 허리 쪽을 공격했다. 혼비백산한 이완용이 달아나려 하자 다시 3곳을 더 찔렀다. 거사 직후 의사는 현장에서 일경에게 체포됐다. “오늘 우리의 공적(公敵)을 죽였으니 정말 기쁘고 통쾌하다”고 외치며 만세를 불렀다. 그러나 이완용은 치명상을 입지는 않고 목숨을 건졌다. 이완용은 자신의 집으로 가서 의사를 불러 응급 치료를 받았다. 일본 경찰은 이 의사를 이완용의 집으로 데리고 갔다. 그곳에 와 있던 농상공부대신 조중응이 “네가 흉행(兇行)을 한 자냐”고 물었다. 이에 의사는 눈을 치켜 뜨며 “너 조중응은 귀중한 인사를 이 모양으로 하대하느냐”며 오히려 추상과 같이 꾸짖었다. 그러면서 옆에 있던 일경에게 “더러운 냄새가 코를 찌르니 권연초 한 개를 가져오라”고 하여 유유히 피웠다.●“내 목숨 빼앗을 수 있으나 충혼은 못 빼앗아” 경시청에서 조사를 받은 의사는 일경이 “공범이 있느냐?”고 묻자 “이러한 큰 일을 하는데 무슨 공범이 필요하냐. 공범이 있다면 2000만 우리 동포가 모두 나의 공범이다”고 말했다. 이듬해 4월 열린 재판에서도 “도와준 자를 말하라”는 일본인 재판장 스가하라에게 “이완용을 죽이는 것을 찬성한 자는 우리 2000만 동포 모두며 방조자는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엄숙한 목소리로 역적 이완용의 8개 죄목을 거론하며 통렬하게 비판했다. “공평치 못한 법률로 내 목숨을 빼앗을 수는 있으나 나의 충혼, 의혼(義魂)은 절대 빼앗지 못할 것이다. 한번 죽음은 슬프지 않다. 생전에 이루지 못한 일이 한심스러울 뿐이다. 내 결코 죽어서 그 원한을 갚을 것이다.” 의사는 1910년 5월 18일 경성지법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이 의사는 사형 선고를 받고 꼿꼿한 자세로 재판장을 꾸짖으며 이렇게 최후 진술을 했다. 부인 오씨는 ‘국적 이완용이 아직 죽지 않고 살았는데 우리 가부(家夫)는 왜 사형에 처하느냐’며 눈물을 흘렸다. 의사는 총독부 체제 발족 바로 전날인 1910년 9월 30일 순국했다. 의사는 의거를 공모한 사람들은 아무 관련이 없다고 보호하면서 끝까지 단독 범행임을 주장했다. 그러나 김병록 등 동지 10여명도 최고 징역 15년형의 중형을 선고받았다. 이 의사는 부인 오씨를 성모여학교 교사인 함마리아의 소개로 만나 1907년 겨울 부부의 연을 맺었다. 오씨도 경찰에 끌려가 혹독한 심문을 받았다. 그러면서도 변호인을 선임하는 등 남편 뒷바라지에 열성을 다했다. 남편이 죽은 뒤 오씨도 독립운동에 뛰어들어 중국 길림성과 상해 등지로 돌아다니며 독립운동을 도왔다. 1919년 3·1만세운동이 일어나자 오씨는 귀국했다가 일경에 체포됐다. 증거와 단서가 없어 석방되었지만, 미행과 감시를 받았다. 오씨는 다시 망명을 도모하다 병을 얻어 29세에 요절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인 외과 의사의 집도로 수술을 받은 이완용은 53일 동안 입원했다. 순종과 고종은 이완용이 퇴원하는 날까지 하루도 거르지 않고 시종을 보내 안부를 묻고 거액의 위로금을 보냈다. 전국의 관찰사와 군수들로부터도 위로금이 답지했다고 한다. 퇴원 후 충남 온양에서 휴양을 한 이완용은 총리직으로 복귀해 데라우치 통감과 한일합방조약에 서명했다. 그 4일 후 순종 황제로부터 대한제국 최고훈장인 금척대수훈장을 받았다. 이완용은 일제의 보호 속에 백작 작위를 받고 호의호식하면서 부귀영화를 누리다 1926년 68세로 사망했다. 사인은 의사의 칼을 맞아 폐를 다친 후유증이었다고 한다. 글 사진 논설고문 sonsj@seoul.co.kr
  • 日 히로시마서 한인 원폭 희생자 위령제 열려

    日 히로시마서 한인 원폭 희생자 위령제 열려

    2차 세계대전 당시 강제 연행 등으로 일본에 끌려왔다가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폭탄에 피폭돼 숨진 한국인의 넋을 기리는 위령제가 유족 등 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5일 거행됐다. 히로시마시 나카구에 있는 평화기념공원 안의 한국인 원폭희생자위령비 앞에서 거행된 이날 추모 행사에서는 지난 1년간 새롭게 사망자로 확인된 14명을 더한 희생자 2760명의 명부가 비석 아래에 안치됐다. 참석자들은 원폭 투하 74년을 하루 앞둔 이날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는 묵념을 한 뒤 한복 차림의 여성들이 위령의 노래를 불렀다고 교도통신이 전했다. 피폭 생존자 이종근(89)씨는 “그때 겪은 고통이 복받쳐 오른다”며 “무엇보다 핵 폐기를 목표로 삼지 않으면 안 된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일제가 남긴 ‘알뜨르’ 軍시설·상처 입은 오름… 기억하겠습니다

    일제가 남긴 ‘알뜨르’ 軍시설·상처 입은 오름… 기억하겠습니다

    조선을 강제 합병한 일제는 1931년 만주사변을 일으키고 1937년 중일전쟁을 도발한다. 뒤이어 국가총동원법을 만들어 한반도를 군수기지화해 무자비한 수탈을 감행한다. 조선 청년 40만명이 징병으로, 72만명은 징용으로 끌려가 이역만리에서 죽거나 죽을 고생을 했다. 특히 제주도는 육지가 당한 수탈에 더해 중국 침략의 전초기지로, 일본 본토 방어의 최전선으로 이중 삼중의 피해를 입게 됐다.●육중한 콘크리트 구조물에 띠 입혀 위장한 비행기 격납고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상모리, 넓은 감자밭에 수십 개의 풀무덤들이 작은 오름과 같이 펼쳐져 있다. 자세히 보면 육중한 콘크리트 구조물 위에 띠를 입혀 위장한 비행기 격납고들이다. 그 옆에 마련된 넓은 벌판은 과거 활주로의 흔적이다. ‘아래 펼쳐진 벌판’이라는 뜻의 ‘알뜨르’ 비행장은 1937년 당시 중국의 수도 난징을 폭격하기 위한 징검다리였다. 난징 폭격은 일본 나가사키현에 기지를 둔 오무라항공대가 담당했다. 나가사키에서 이륙한 항공대는 난징을 폭격하고 알뜨르에 착륙, 연료와 폭탄을 보충해 이튿날 다시 난징을 폭격한 후 나가사키로 귀환했다. 총 36회 출격, 300여t의 폭탄을 투하해 난징의 도시 시설 89%를 파괴했다. 폭격에 뒤이어 진주한 일본 육군은 30만명의 민간인을 학살하고 8만명의 여성들을 강간했다. 아직도 중일 간에 해결이 안 된 ‘난징대학살’이다. 1941년 일제는 하와이 진주만 공습으로 태평양전쟁을 도발했다. 초기에는 우세했지만 곧 미드웨이 해전을 기점으로 본격적인 반격에 밀리게 된다. 1944년 4월, 80일간의 치열한 전투 끝에 미군은 오키나와를 함락했다. 오키나와 전투에서 미군 1만 5000명, 일본군 6만 5000명이 전사하고 섬 주민 20만여명 중 12만명이 사망했다. 그해 11월부터 대대적인 일본 본토 공습이 시작됐다. 미군의 이른바 ‘몰락작전’의 시작이었다. 이 작전은 공습으로 일제를 무력화한 후 일본 규슈와 혼슈를 차례로 점령한다는 계획이었다.이에 대응해 일제는 전원 죽음으로 본토를 수호한다는 ‘결○호작전’을 펼친다. 일본 본토를 1호부터 6호까지 나누어 방어하고 7호는 제주도가 맡는다는 내용이다. 일제는 미군이 곧 제주도에 상륙하리라 예상했고, 제주도를 본토 방어의 최전선으로 삼았다. 제주도는 이른바 ‘결7호작전’의 작전지가 돼 군사시설을 건설하는 대대적인 노역에 시달린다. 알뜨르 외에도 여러 곳에 군사비행장을 만들고 훈련장과 포대, 대피소, 특공대 기지 등을 섬 전체에 건설했다. 대부분의 군사시설은 지하로 파들어 간 진지동굴이었는데, 제주도 내 총 360여개의 오름 중 160여개에 지하 진지를 구축했다. 58군 사령부 예하에 5개 사단, 보병 5만 8000명, 포병과 기갑부대 1만 6000명이 주둔했다. 이는 한반도 전체에 주둔한 군대보다 많은 숫자이며 10만명이 주둔했던 오키나와에 육박하는 규모였다.●모슬포 마을 주민 5000여명 강제 동원해 격납고 38개 지어 알뜨르비행장이 있는 모슬포 일대는 결7호작전의 핵심지역이었다. 비행장은 1944년부터 활주로를 늘리는 등 대대적으로 확장했고 이때 지은 격납고 38개 중 20개가 잔존하고 있다. 매일 주민 5000여명을 강제 노역에 동원한 결과였다. 격납고는 폭 10m, 길이 20m, 높이 4m의 반원통형 구조로, 전투기에 꽉 끼는 옷과 같은 최소한의 크기이다. 30~80㎝ 두께의 매우 견고한 철근콘크리트 구조물로서, 공중 관측을 피하기 위해 지붕에 풀을 덮어 위장했다. 여기에 숨긴 전투기는 일본의 주력인 제로센이었다. 제로센은 기체의 무게를 과감하게 줄여서 민첩하게 움직일 수 있었고 개전 초기에 우수한 전과를 거두었다. 전범기업인 미쓰비시중공업은 무게를 줄이기 위해 저출력 경량엔진을 장착하고 보호용 장갑판을 제거했다. 그래서 민첩함은 얻었으나 속도가 느려 쉽게 노출되고 적기의 공격에 취약한 문제가 있었다. 전쟁 말기에는 급기야 자살특공대인 가미카제의 운송수단으로 전락하게 된다. 알뜨르의 격납고들은 모두 가미카제 특공대를 위한 위장 보호시설이었다.격납고 인근에 지하 벙커가 남아 있다. 터널같이 긴 콘크리트 구조물을 만들고 그 위에 3~5m 두께의 잡석들을 쌓아 인공 둔덕을 만들었다. 풀을 심은 둔덕은 얼핏 동산같이 보이지만 벙커 내부는 수십 명이 너끈히 들어가 작전을 펼 수 있다. 환기용 굴뚝과 배수로, 별도의 설비관로까지 설치한 모습으로 보아 아마도 중요한 통신시설로 쓰인 듯하다. 활주로 반대 송악산 쪽으로 3개의 작은 오름이 연달아 있는데 이를 통틀어 셋알오름이라 부른다. 이 오름 정상부에는 고사포진지의 흔적들이 남아 있다. 땅을 파고 지름 6m의 원통형 콘크리트 진지를 구축했다. 원통의 중심부에 고사포를 설치해 360도 회전하며 적기를 공격할 수 있었다. 현재 포좌는 없어지고 원통부만 남아 하늘에서 보면 마치 숲속에 뚫린 원형탈모 상흔과 같다. 모두 5기를 배치했는데 하나는 미완성이며 2기는 온전한 모습으로 남아 있다. 인근 송악산의 원래 이름은 ‘절울이오름’으로 ‘물결이 우는 소리를 듣는 오름’이란 뜻이었다. 바다 위에 솟은 대단한 절경이지만 60여기의 일제 동굴진지가 여기저기 뚫린 상처 입은 오름이다. 화순포구 쪽에서 보면 인공적으로 뚫은 해안동굴들이 절경을 훼손하고 있다. 총 15기의 해안동굴에는 1인용 모터보트들을 주둔시켰는데, 선두에 250㎏의 폭약을 싣고 적함에 돌진해 자폭하는 특공함이었다. 합판으로 선체를 만들고 자동차 엔진을 달았다니 애초부터 돌아오지 못하는 1회용 자살함정이었다. 하늘에 가미카제가 있었다면, 바다에는 인간어뢰라고 불린 가이텐 특공대가 있었다. 모두 나 죽고 너 죽자 식의 무모한 전술이며 최후 발악의 광기였다.●“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다시 반복된다”… 다시 봐야 할 이유 전쟁은 건축을 파괴하지만, 그래도 군사용 시설은 건설된다. 1940년대 제주에 남겨진 알뜨르비행장의 격납고나 지하 벙커, 고사포진지, 해안동굴 진지들은 여러 감상을 불러온다. ‘이 땅과 민족을 희생시켜 일본의 영토를 지킨다?’ 일제에 분노가 치밀지만 이 지경까지 당하게 된 역사적 수치심이 앞선다.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다시 반복된다.” 이 수치 유산들을 둘러보고 다시 생각해야 하는 이유다. 왜 이 땅에 이런 것들이 세워졌으며 어쩌다 그러한 역사에 처하게 됐는가. 어두운 체험과 불쾌한 사유의 여정을 일컬어 다크 투어리즘이라 한다. 수백만 명의 유대인을 학살한 아우슈비츠 수용소가 그 대표적인 성공(?) 사례이다. 제주의 일제군사시설은 거의 다 철근콘크리트 구조물이다. 인장력(당기는 힘)에 강한 철근과 압축력(누르는 힘)에 강한 콘크리트를 합쳐 천하무적이 된 건축 재료다. 20세기 초 발명한 이 재료는 강하기는 강철 같지만 밀가루 반죽과 같이 어떤 형태든지 만들 수 있다. 알뜨르의 격납고는 공중폭격에 가장 강한 반원통 구조로 지어졌다. 지하 벙커는 수m 두께의 토압을 견디고 내부 통행이 가능하도록 아치형 터널로 만들었다. 철저하게 기능적이며, 단순하고, 아름답기까지 하다. 건축은 죄가 없다. 하지만 이를 만들고 사용한 인간들의 탐욕과 광기는 용서 못 할 죄악이다. 식민지근대화론도 그렇다. 일제는 이 땅에 항만, 철도, 공장 등 근대적 시설을 지었다. 해방 후 근대화는 그 혜택의 연장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그 목적은 무엇이고, 이익은 누가 차지했는지 손익 계산을 해야 한다. 그러면 식민지근대화는 허구이며 식민지수탈이 있을 뿐이다. 2차대전 직전에 프랑스 국방장관 앙드레 마지노는 350㎞ 길이의 초대형 철근콘크리트 지하 진지를 완성했다. 참호전으로 점철했던 1차대전의 교훈에서 얻은 방어선이었다. 그러나 개전과 동시에 독일군은 탱크를 앞세운 기동력으로 마지노선을 돌파, 이를 무력화했다. 마지노선 건설은 지상 최대의 삽질로 비웃음거리가 됐다. 일제의 전략은 무모하고 시설은 어리석다. 전원 옥쇄란 사무라이 싸움에서나 있을 법한 전략이다. 총길이 15㎞에 달하는 제주 내 동굴 진지들도 자학적이다. 내부에 아무 지원시설 없어 단 며칠도 버티기 어려운 동굴에서 미군의 첨단 전투력을 어찌 대항하나. 가미카제나 가이텐 특공대의 성공 확률은 얼마나 높을까. 통계에 따르면 특공대 1명의 자폭으로 미군 1명을 사살했을 정도라 한다. 전쟁의 실체를 모르는 시대착오적 전술은 얼마나 허망한가. 해방 74년, 일제가 남긴 알뜨르의 군사건축이 던지는 역설적 교훈이다. 건축학자·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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