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2026-07-04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3,107
  • 80여년된 건물 사용 종로구 “새청사 지어주세요”

    “새 청사 좀 지어 주세요.” 종로구는 서울에서 가장 오래되고 낡은 청사를 쓰고 있다. 청사가 비좁아 2002년에 신 청사 건립계획을 세웠지만 예산이 턱없이 부족해 전전긍긍하고 있다. 서울 광화문 미국 대사관 뒤편의 종로구 청사는 지은 지 80년도 넘은 노후건물이다.1922년부터 수송초등학교 등으로 쓰이다 1975년에 증축을 해서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다. 증축한 본관 5층이 부족해 그 옆에 6층짜리 1별관, 또 4층짜리 2별관을 지었다. 이마저 비좁아 강당은 청사 옆의 종로소방서 건물에 들어있다. 청사가 3곳으로 나눠져 구청 마당에는 서류를 들고 두리번거리는 민원인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주차장에는 승용차 50여대가 주차하면 꽉 차버린다. 요즘 자치구 청사는 주민 편의시설을 두루 갖춘 복합공간으로 각광을 받는다.2003년 청사를 새로 지은 도봉구의 경우 맨 꼭대기 16층은 라운지로 임대를 하고, 지하층과 로비에는 온갖 주민편의시설이 들어있다. 그러나 주민들이 수시로 드나드는 민원실에도 앉을 곳이 별로 없는 종로구로서는 꿈도 못 꿀 일이다. 직원들은 여름에 부채나 선풍기로 더위를 달래야 한다. 일부 방에 소형 에어컨이 있지만 소리가 크고 전기료도 부담스럽다. 휴게공간엔 3명이 들어서면 꽉 찬다. 종로구는 6년 전에 현 부지에다 지하 3층, 지상 10층짜리 건물을 짓는 신청사 건립계획을 세우고 조례까지 만들었다. 직원 1인당 사무공간도 37.7㎡로 현재 16.5㎡보다 두배를 훨씬 웃돈다. 그러나 문제는 예산.2009년 착공을 목표로 했을 때 건축비가 840억원이 들 것으로 예상된다. 해마다 예산을 조금씩 떼어 적립하고 있지만 이제 115억원을 모았을 뿐이다. 서울시는 신청사 건립비의 40∼50%를 특별교부금으로 지원했으나, 지금은 지원을 장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구는 민간자본 유치, 구유 재산의 매각 등 별의별 아이디어를 다 짜내고 있지만 뾰족한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종로구 관계자는 “구 청사는 직원들의 업무 공간이 아니라 주민을 위한 서비스 공간이라는 개념에서 시의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김경운기자 kkwoon@seoul.co.kr
  • [12일 TV 하이라이트]

    ●大한민족의 재발견(YTN 오전 10시30분) 오대양 육대주에서 한민족의 위상을 드높인 한민족 후예들을 확인할 수 있다. 지구상 마지막 남은 희망의 땅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뿌리내린 평범한 한인가정에서부터 미국 정계에 진출한 미셸스틸 박 캘리포니아 조세형평국 위원까지 한민족의 가능성이 밝혀진다.   ●살림의 여왕(EBS 오전 11시) 내용물의 크기와 모양에 구애받지 않는 보자기 포장. 보자기 하나만 있으면 어떤 선물도 멋스럽게 포장할 수 있다. 꿀 항아리 같은 작은 상자, 한과 세트처럼 큰 상자 등 쉽고 간단하게 보자기로 설 선물 포장하는 방법을 배워본다. 또 집에서 보자기 만드는 법 등 보자기 포장의 모든 것이 공개된다.   ●솔로몬의 선택(SBS 오후 8시55분) 재혼 후, 남편이 정관수술을 받은 사실을 모르고 임신을 당당히 말하는 아내. 그러나 남자는 새어머니를 너무나 좋아하는 아들로 인해 모른 척하고 아이를 낳아 키운다. 하지만 남자는 모든 사실을 일기에 모두 적어놓고 세상을 떠나기 전 친아들이 아닌 둘째를 호적에서 빼라는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뜨는데….   ●주몽(MBC 오후 9시55분) 북옥저 국경지역, 저자거리 주막에서 일하는 예소야와 함께 옥저의 한 상단에서 위험을 무릅쓴 밀거래를 해 얻은 대가로 생활하는 유리. 유리가 돈을 벌기 위해 왈패들과 어울려 상단을 드나드는 것을 알고 있는 예소야는 안타깝기만 하다. 한편, 고구려를 건국한 주몽은 직접 주변국 정벌에 나서 점차 세를 넓혀간다.   ●김동건의 한국 한국인(KBS2 밤 12시45분) 1980년대 초 재즈 댄스를 국내에 도입해 대중화시키며 ‘재즈 선구자’로 불리는 무용가 전미례씨가 여성 신문사가 주관하는 제5회 ‘미지상(미래를 이끌어갈 여성 지도자상)’을 수상해 화제를 모았다. 예술적 열정을 온몸으로 표현하는 춤꾼 재즈 댄스 박사, 전미례를 만나본다.   ●TV 책을 말하다(KBS1 밤 12시30분) 차기 대선이 올해 말로 다가오면서 그 어느 때보다 ‘리더’에 대한 관심이 높다. 때론 혼란의 위기 속에서, 또 때론 변화의 격동 속에서 한 사회를 이끌어가야 하는 리더. 하워드 가드너의 ‘통찰과 포용’이라는 책을 통해 2007년 지금, 우리는 어떤 리더를 필요로 하는지 전문가와 함께 토론해 본다.
  • [사외이사 도입 10년(上)] “피감때 사외이사 인맥 총동원 로비”

    “사외이사의 역할에 대해 사회가 너무 큰 기대를 했던 것 같다.” 한화증권 리서치센터장 이종우 이사가 나름대로 사외이사제 도입 10년에 대해 내린 평가이다.1998년 외환 위기 이후 정부는 지배주주의 경영 독주를 억제하고, 경영진의 전문성 등을 보완하기 위해 사외이사 제도를 도입했다.1998년 2월 개정된 유가증권 상장규정에서 ‘모든 상장회사는 이사수의 4분의1 이상(최소한 1인 이상)을 사외이사로 선임하도록 한 것이 법적인 근거다.●“수백만원 거마비… 얼굴 붉힐 수야” 이 이사는 “사외이사제 도입 자체는 긍정적이지만, 우리 기업의 문화를 고려할 때 사외이사의 독립성을 확보하는 데 한계가 명백히 있다.”면서 “때문에 이 제도의 도입과 함께 대기업 경영의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본 건 우리의 착각이었다.”고 말했다. 이 이사는 대표적으로 인터넷 포털인 ‘다음’의 사례를 들었다. 당시 포털업계 1인자였던 다음은 사회 안팎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막대한 자금을 들여 미국의 인터넷검색회사인 ‘라이코스’를 인수했다. 그러나 이 투자는 잘못된 것이었고 결과적으로 포털 1인자 자리를 경쟁사인 ‘네이버’에 내주고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 이사는 “당시 사외이사들이 반대하지 않았다는 근거는 없지만, 어쨌든 통과됐으니까 인수가 추진된 것 아니냐.”고 분석한다. 금융감독기관의 한 관계자는 “기업에 감사를 나갈 일이 생기면 감사는 물론, 사외이사들까지 총동원돼 각종 연줄을 타고 로비가 들어온다.”면서 “지배주주를 옹호하거나, 기업경영의 잘못된 점을 은폐하기 위해 사외이사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 않으냐.”고 지적했다. 사외이사로 활동했던 한 관료는 “사외이사로 임명되는 과정에서 최고 경영자와의 친분관계가 고려된다.”면서 “기업으로부터 월급을 받는 것은 아니지만 ‘거마비’ 형식으로 한달에 평균 200만원 정도씩 받는 상황에서 ‘안된다.’고 다부지게 말하기 쉽지 않다.”고 고백했다.●`띄엄띄엄´ 이사회… 회사 정보도 부족 사회·문화적 한계도 지적된다. 상장기업의 사외이사로 임명되는 사람들은 대부분 사회적 명망가이거나, 법조계·관료 출신, 경영층과 친분이 있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이 모인 이사회에서 얼굴을 붉혀가며 경영실적을 비판하거나 반대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정보의 한계’도 사외이사제가 정착되기 어려운 이유다. 경영이사는 각종 회의에 참석해 의사결정이 이뤄진 상황에 대해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다. 하지만 두 달에 한 번, 또는 분기에 한 번 열리는 이사회에 참석하는 사외이사는 정보가 불충분할 수밖에 없다. 때문에 ‘꿀먹은 벙어리’가 되더라도 크게 이상하지 않다는 것이다.●꿩잡는 것이 매 최근 태광으로부터 우리홈쇼핑의 롯데매각 취소 소송을 당한 경방의 사례. 경방 이사회의 이사 수는 8명. 이중 사외이사는 2명으로 상법상 4분의1 요건을 충족했다. 하지만 내용적으로는 2명 모두 경방의 대주주들로 제척사유가 있는 이해 당사자들이다. 경방의 한 관계자는 “대주주가 사외이사이기 때문에 경영문제를 보고할 때 더욱 신경쓰인다.”면서 “특히 우리홈쇼핑 매각을 결정할 때도 사외이사들이 대주주였기 때문에 신속하게 의사결정을 하고, 적대적 M&A(기업인수합병)로부터 발생할 수 있는 기업의 손해를 막았다고 자부한다.”고 설명했다. 즉, 사외이사의 성격과 상관없이 주주의 이익을 극대화했다는 것이다. 문소영 이두걸기자 symun@seoul.co.kr
  • ‘바람피기 좋은날’ 윤진서-김혜수 연기대결

    ‘바람피기 좋은날’ 윤진서-김혜수 연기대결

    도발적인 제목에다 등장인물 모두 유쾌하게 웃고 있는 포스터만 봐도 이 영화의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다.8일 개봉하는 ‘바람피기 좋은날’은 유부녀들의 일탈을 유쾌하게 다루고 있을 뿐이어서 여기에 도덕적인 잣대를 들이대며 혀를 끌끌 차는 것은 격에 맞지 않는다. 그랬다간 감상에 방해만 되기 십상이다. 영화는 그저 편안한 자세로 이들의 바람을 파도 타듯 즐기라고 얘기하는 듯 하다. 특히 남성 관객들은 어떨지 몰라도 여성 관객이라면 극명하게 다른 두 여자 주인공의 모습에 자신들을 대입시켜 보는 재미도 있지 않을까. 3년 전 외도한 남편에 대한 복수로 남자 헌팅을 시작한 이슬(김혜수). 이 여자 참으로 대담하고 뻔뻔하다. 연하의 대학생(이민기)과 모텔을 전전하며 벌이는 애정 행각에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 급기야 남편(박상면)은 경찰을 대동하고 불륜현장을 급습한다. 대부분의 여자들이라면 죽을 죄를 졌다며 싹싹 빌겠지만 그녀의 기세는 여전히 하늘을 찌른다. 경찰차 안에서 “니 둘다 감옥에 쳐 넣을거야.”라며 씩씩거리는 남편을 향해 “나는 널 지옥에 쳐 넣을거야!”라며 한술 더 뜨는데 그녀를 보면서 속이 확 풀리는 관객이 없진 않을 듯. 친구들 대학갈 때 결혼해 가정을 꾸린 작은새(윤진서). 과묵하지만 성실한 경찰이자 남편과 외동딸을 두고 남부럽지 않은 가정을 꾸리고 살지만 언제부턴가 가슴은 뻥 뚫린 것만 같다. 유일한 낙인 채팅에서 만난 남자 여우두마리(이종혁)와 6개월째 온라인 데이트 중이다. 가녀린 외모에 여전히 소녀 같은 감성을 지닌 이 여자, 그런데 보통이 아니다.‘세상에서 제일 나쁜 여자가 줄듯 말듯 안주는 여자’라는 남자들의 농담처럼 처음 만난 여우두마리의 애간장을 살살 녹인다. 몸이 아니라 말이 먼저 통해야 한다면서. 그러던 그녀가 점차 본색을 드러낸다. 여우두마리를 상대로 남편과는 꿈도 꿀 수 없는 자신의 성적 판타지를 실현시키려 하고 여우두마리의 근무처를 찾아가 대낮 뜨거운 정사신도 불사하려 한다. 남자는 여자가 서서히 무서워지기 시작한다. 영화에서 바람은 여자들의 일상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기는 하지만 그 일상을 완전히 깨뜨리는 장치는 아니다. 때문에 온통 밝은 색감으로 넘쳐나는 스크린에 불행한 남편과 아이의 모습은 등장하지 않는다. “세월가면 잊혀질까. 그렇지만 다시 생각날걸. 바람아 멈추어다오.” 영화 전·후반에 흘러나오는 가수 이지연의 히트곡 ‘바람아, 멈추어다오’처럼 여자 주인공들은 가정을 깨뜨리는 바보짓을 하지 않는다. 한때의 아찔한 줄타기로 잃어버린 삶의 활력을 되찾고자 할 뿐. 불륜을 이토록 가볍게 다뤄도 되나 하는 것보다 이 영화의 타깃층이 분명하다면 그들의 판타지를 충족시킬 만하냐는 것에 딴죽을 걸고 싶다. ‘행복한 장의사’로 국내외 평단의 찬사를 받았던 장문일 감독이 10년 만에 내놓은 작품.18세 이상 관람가다.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 바짝 다가온 설 어떤 선물할까

    올해 설 선물 트렌드도 지난해와 비슷하다. 백화점들은 고가 설 선물 매출이 매년 급증하는 것과 관련해 ‘명품’을 주제로 웰빙을 앞세운 육류와 과일 등과 명인들의 ‘작품’급 선물을 내놓고 VIP마케팅에 열을 올린다는 복안이다. 반면 인터넷 쇼핑몰들은 시중보다 싼 가격을 무기로 고객들을 잡으려 하고 있다. ■ 백화점 ‘프리미엄 세트’+‘작품급’ 선봬 올해에도 한우, 과일, 견과류, 홍삼, 와인, 올리브유 등이 주류다. 현대백화점 상품본부 최보규 부장은 29일 “웰빙 트렌드가 정착되면서 친환경과일, 견과류, 프레시 육류 등 건강을 고려한 제품이 대표적인 명절 선물로 자리잡고 있다.”고 설명했다. 신세계는 ‘명품9’를 주제로 ‘명품 목장한우’(75만원),‘명품 은빛 멸치 세트’(40만원), 명품 재래굴비 세트(55만원) 등 9개 종류의 프리미엄 선물 세트를 내놓았다. 제주도 갈치 특호(20만원) 등 유기농·친환경 ‘그린스타’ 선물 세트도 있다. 현대백화점은 냉장 한우 물량을 30% 이상 늘려 잡았다. 은과 참숯 성분이 있는 항균밀폐용기나 고급소재의 냉장 포장 등으로 자사의 최고급 한우 이미지를 강화한다는 전략이다. 현대 명품 한우 매(梅)호는 60만원. 롯데백화점은 육류 이외에 청자 매화 귀족멸치세트(70만원), 나전칠기 굴비세트(80만원) 등을 내놓는다. 주요 백화점들은 차, 전통주, 젓갈, 종가 비법 음식 등 명인들의 작품급 선물을 주력 선물세트로 내놓았다. 롯데백화점은 혜경궁 홍씨 진찬연세트(240만원)와 기순도 장류세트(40만원) 등을, 신세계백화점은 대한민국 전통수제녹차 제조 1호 명인인 박수근 명인차(55만원), 농림부 선정 신지식인으로 선정된 김대립씨가 생산한 청토 토종꿀(15만원) 등을 내놓았다. ■ 인터넷 쇼핑몰 다양한 품목 특가할인 전략 인터넷 쇼핑몰들도 건강을 주제로 잡고 있지만 역시 ‘특가 할인’을 내세운 저가 공략이 대세다. 우리닷컴(www.woori.com)은 과일, 육류 등의 선물을 정상가보다 10∼20% 싼 가격에 판다.‘이상정 명장육우 설날맞이 특별세일전’에서는 갈비 등으로 구성된 ‘이상정 명장 혼합갈비세트’가 8만 9900원. 찜질기, 음이온 돗자리 등 효도 상품은 10% 할인해준다. G마켓(www.gmarket.co.kr)은 ‘설맞이 할인대잔치’를 열고 한우, 굴비세트, 한과 등을 시중보다 30∼40%가량 할인된 가격에 선보였다. 한우 혼합세트 3㎏을 정가보다 40%가량 할인된 13만 8000원에 판매한다. 엠플(www.mple.com)은 설날 특별 선물전을 준비했다.‘정관장 천년홍삼 60포’를 온라인 최저가인 8만 4900원에 판매한다. 디앤샵(www.dnshop.com)에서는 30일부터 2월15일까지 ‘2007년 설 선물 기획전’을 열고 할인 쿠폰 및 경품 증정 행사,10개 사면 1개를 덤으로 증정하는 이벤트, 일일특가 코너 등을 마련했다. 안동한우불고기는 1㎏에 2만 9000원. H몰(www.hmall.com)은 오는 2월7일까지 2007 설날 선물대전을 열고 토종꿀, 한과, 미역세트, 수삼세트 등을 최고 30%까지 할인 판매한다. 수삼세트(26만원→23만 4000원), 더덕세트(10만원→9만원), 청해명가 멸치알뜰세트(5만원→4만 5000원) 등이 있다. 인터파크(www.interpark.com)는 ‘설 추천 선물 대전’을 2월14일까지 연다. 정육, 과일, 식품 선물세트 등을 특가에 판매한다. CJ몰(www.CJmall.com)은 지난 24일부터 설 특집 기획전을 하고 있다. ■ 호텔 조리사 직접가공 음식세트 등 차별화 특급·1급 호텔들이 내놓은 프리미엄 선물 세트도 많다. 광장동 워커힐 호텔은 올해에도 조리장이 직접 가공한 훈제연어와 소시지 세트를 판매한다. 훈제연어와 와인으로 구성된 훈제연어 스페셜세트(12만원), 소시지 세트(13만∼17만원) 등은 매년 준비한 게 모두 팔려나가는 인기 상품이다. 소공동 프라자호텔은 다음달 16일까지 델리프라자의 햄퍼세트(15만∼22만원), 중국차세트(9만∼22만원) 등을 판매한다. 장충동 소피텔 앰배서더 서울은 다음달 18일까지 레드와인과 스테이크 소스가 포함된 안심 스테이크 세트(19만∼29만원), 연어세트(14만원), 산송이 꿀 세트(6만∼8만원) 등을 판매한다. 한남동 그랜드 하얏트 서울은 주방장이 직접 만든 초콜릿, 너겟, 무설탕 잼, 차 등으로 구성한 선물세트(18만∼40만원)를 판다. 주현진기자 jhj@seoul.co.kr
  • [인혁당 재건위 무죄판결] “자식까지 빨갱이 매도… 30년 恨 풀어”

    [인혁당 재건위 무죄판결] “자식까지 빨갱이 매도… 30년 恨 풀어”

    “죽은 사람을 살릴 수도 없고, 그동안 당했던 원통한 삶을 되돌릴 수도 없고, 가해자들을 처벌할 수도 없고….” 30여년간 갖은 고생의 무게가 한 순간에 밀려온 듯 한동안 입을 떼지 못했다.‘인민혁명당 재건위’ 사건으로 형장의 이슬이 된 고(故) 우홍선씨 부인 강순희(74)씨다. 험한 세파를 이겨내며 아이 넷을 키워낸 강인한 어머니지만 23일 법정에서 무죄 선고를 받고 나오는 순간은 북받친 눈물을 참기 힘들었는지 함께 고생한 어머니들과 한동안 얼싸안으며 울음을 터뜨렸다. 그러나 기쁨의 울음은 이내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남편에 대한 오열로 변했다. 그는 22살 꽃다운 나이에 당시 장교로 있던 우씨를 만나 2년간 연애끝에 결혼했다. 아이 넷을 낳고 단란하게 살아온 그에게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 떨어진 건 1974년 4월25일. 남편은 인혁당 재건위 사건에 연루돼 어디론가 끌려간 뒤 이듬해 4월9일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강씨는 같이 무죄판결을 기뻐해야 할 남편을 죽인 국가와 정권에 대한 분노는 여전했다. “공판정에 들어가 봤는데 이 아녀자가 들어봐도 조작됐다는 걸 한눈에 알 수가 있었어. 그런데 30여년이 지나서야 무죄판결 받다니…. 이게 다 국민들 앞에 사죄하지 않는 정치세력 때문이야.” 남편을 보내고 난 이후 강씨는 100일간 꼼짝도 못하고 누운 ‘반시체’ 상태가 될 정도로 충격에 빠졌다고 한다. 마음속에 응어리진 분노에 잠을 이루지 못했고, 자다가도 벽을 주먹으로 치고, 음식을 만들다가도 화가 나서 도마에 칼을 내리치고, 앉아 있다 보면 또 너무 억울해서 경찰서에 무작정 전화해 “인혁당 사건은 조작됐다.”고 외쳐댔지만 마음 속 응어리를 삭일 수는 없었다. 스트레스가 쌓여 어느날 갑자기 시야가 반으로 줄어드는 신경성 각막염까지 걸렸다. “몇달간 그렇게 있다가 로열젤리와 꿀을 먹으니 차츰 낫게 되어 이것 파는 직업도 해보고 그랬죠.”라면서 지난 세월의 기억을 더듬었다. 강씨는 자식들이 ‘빨갱이’로 매도당하는 일이 가장 가슴 아팠다고 했다.“당시 아버지가 수감돼 집에 들어오지 못하자 아이들이 너무 보고 싶어 해 면회를 신청했는데도 받아 주지 않았다. 그래서 아이들과 서대문형무소 뒷산에 올라가 플래카드를 들고 아버지를 먼 발치서라도 응원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모두들 어머니의 고초를 알아주는 듯 건실하게 컸고, 이제는 엄마의 자랑거리가 됐다.”는 강씨는 언젠가 윤보선 대통령을 만났을 때 박정희 대통령이 인혁당 사건에 대해 언급한 말을 전해 주더라며 눈시울을 붉혔다.“박 대통령은 윤 대통령에게 ‘내가 집권 때 한 가장 큰 실책은 인혁당 8명을 죽인 것이다.’라고 말하더래요.” 임광욱기자 limi@seoul.co.kr
  • [열린세상] 그럼에도 불구하고/차동엽 신부

    필자는 연초에 기업 CEO 및 실업인들에게, 그리고 행복에 목마른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희망을 전할 기회가 있었다. 그 두 자리에서 타고르의 시 ‘동방의 등불’을 읽어주면서 2007년을 기분 좋게 출발할 것을 권유했다. 필자는 서울신문 애독자님들께도 타고르의 시로 늦었지만 새해 인사를 대신 올리고 싶다. <일찍이 아시아의 황금 시기에/빛나던 등불의 하나였던 코리아/그 등불 다시 한 번 켜지는 날에/너는 동방의 밝은 빛이 되리라/마음에는 두려움이 없고/머리는 높이 쳐들린 곳/지식은 자유스럽고/좁은 장벽으로 세계가 갈라지지 않는 곳/진실의 깊은 속에서 말씀이 솟아나는 곳/끊임없는 노력이 완성을 향해 팔을 벌리는 곳/지성의 맑은 흐름이/굳어진 습관의 모래 벌판에 길 잃지 않는 곳/무한히 퍼져나가는 생각과 행동으로/우리들의 마음이 인도되는 곳/그러한 자유의 천국으로/내 마음의 조국 코리아야 깨어나소서> 이 시를 찬찬히 음미하여 보면 타고르가 한국에 대해 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그야말로 성의 있게 쓴 시임을 알 수 있다. 그는 이 짧은 시에 오랜 전통에 빛나는 문화, 어떤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고 새로운 환경에 도전하는 진취적 기상과 고상한 정신, 사상과 물류 유통에 적합한 지정학적 특장, 꿈의 성취를 위해 줄기차게 달리는 근면성, 미래지향적 태도, 나아가 글로벌한 행동지평 등을 훌륭하게 담아내었다. 그리고 그는 이러한 저력의 코리아가 언젠가 ‘동방의 밝은 빛’으로 다시 떠오를 것을 예언하였다. 이 작품은 인도의 시성(詩聖)이요,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타고르가 한국의 3·1 독립 운동이 실패로 돌아감을 보고 지은 노래이다.1929년 타고르가 일본을 방문했을 때 이태로(李太魯) 당시 동아일보 도쿄지국장이 한국 방문을 요청했는데, 그에 응하지 못함을 안타깝게 생각하며 일제의 식민 치하에서도 희망을 버리지 않고 꿋꿋하게 살아가는 우리 민족에게 보낸 격려의 송시(頌詩)라 한다. 지난 역사를 더듬어보건대, 시인의 예언은 놀랍게도 하나하나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한강의 기적, 세계 10대 무역 대국,IT 강국, 유엔 사무총장을 배출한 나라, 등등 무엇을 더 열거할 필요가 있으랴. 누가 뭐래도 목하 한국은 ‘아시아의 등불’뿐 아니라 ‘지구촌의 등불’이 되기 위해 웅비를 준비 중에 있다고 말할 자격이 있다. 그렇다고 오늘 한국이 처한 정치, 사회, 경제적인 처지가 낙관만 할 입장이 아님을 모르는 바 아니다. 풀어야 할 문제도 많고, 넘어야 할 장벽도 많고, 채워야 할 부족함도 많음을 왜 모르랴. 우리는 2006년을 험난함 가운데 헤쳐 왔으며,2007년을 좋지 않은 전망에서 시작했다. 정가에서는 헌법 개정 논의로 연일 시끄럽고, 오고가는 말들이 곱지 않다. 분명 이런 문제들은 건강한 토론문화를 통해 시시비비와 선후경중을 가려 최선을 선택하는 냉철함을 요구한다. 그러나 이럴 때일수록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사고방식이 아닐까. 시성 타고르가 그랬던 것처럼 시대가 어두울수록 우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얘기할 줄 알아야 한다. 단순한 지성인들은 잡다한 데이터에만 근거하여 부정적인 전망만을 내 놓는다. 그러나 진정한 지도자는 꿈과 희망에 근거하여 어떠한 경우에도 밝은 비전을 제시한다. 성경을 보면 이스라엘 민족이 모세의 영도하에 이집트에서 탈출하여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입성할 때 하느님은 비관적인 관점을 갖고 불평불만을 일삼던 사람들은 결코 데려가지 않았다. 반면 여호수아와 칼렙과 같은 긍정적인 비전을 가진 사람들만 약속의 땅을 밟게 해 주셨다(민수 14장 참조). 미래는 이렇게 긍정적인 비전을 가진 사람들의 몫인 것이다. 차동엽 신부
  • [책꽂이]

    ●농부 철학자 피에르 라비(장 피에르 카르티에 등 지음, 길잡이 늑대 옮김, 조화로운 삶 펴냄) ‘생명농업의 선구자’ ‘미래의 씨앗을 뿌리는 농부’ ‘현실적인 신비주의자’ 등으로 불리는 알제리 태생의 환경운동가 피에르 라비의 사상을 소개.1960년 이후 프랑스 파리에서 남부 시골마을 아르데슈로 귀농해 살고 있는 라비는 평생 ‘생명농업’을 일구고 친환경 운동을 펼쳐 왔다.“인간은 지구의 절대적인 주인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라비는 우주의 생명현상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생산제일주의의 폐해를 꼬집은 그의 저서 ‘대지의 말’은 뮤지컬로도 만들어졌다.9800원.●주변에서 글쓰기, 상처와 선택(김인환 등 지음, 민음사 펴냄) 1906년에 태어난 이하윤, 이주홍, 강경애, 최정희, 유진오, 엄흥섭, 김오남, 이정호 등 근대문학의 여명기를 개척한 작가들을 대상으로 한 문학론.1931년 만주사변을 전후해 작품활동을 시작한 이들의 문학적 업적과 생애를 통해 우리 문학이 걸어온 길을 되돌아본다.2만 2000원.●정열의 수난(문광훈 지음, 후마니타스 펴냄) 국내 포스트모더니즘 문학의 대표주자로 꼽히는 소설가 장정일의 정신세계와 작품세계를 다룬 에세이 모음집. 장정일에게 ‘세계관적 친화력’을 느낀다고 말하는 저자(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교수)는 장정일 문학이 “권력의 작동과 담론 구성에서의 폭력성을 문제시하고 그에 대한 반성을 지속적으로 촉구하고 있는” 점에 주목한다.1만 5000원.●초대하지 않은 손님, 전염병의 진화(최석민 지음, 프로네시스 펴냄) 광우병은 소의 성장을 촉진하기 위해 동물성 사료를 먹인 데서 비롯된 질병이다. 광우병에 걸린 소를 먹은 인간은 변형 크로이츠펠트­야콥병에 걸린다. 사스는 사향고양에게서 흔히 발견되는 바이러스로 사향고양에겐 별다른 해를 입히지 않지만 인간에게는 치명적인 괴물 바이러스다. 로마제국 멸망의 복병이었던 말라리아, 유럽역사를 바꾼 나폴레옹의 앞길을 가로막은 발진티푸스, 신대륙 정복의 첨병이었던 천연두 등에 관한 이야기가 실렸다.9000원.●영원과 사랑의 대화(김형석 지음, 한우리북스 펴냄) 일본의 종교가 우치무라(內村鑑三)는 “신에게는 무인론이 없으나 인간에게는 무신론이 있어서….”라고 탄식한 적이 있다.저자(연세대 명예교수)는 이렇게 말한다.“신앙인들이 신의 존재나 본질을 논하는 것은 마치 자식들이 방에 들어앉아 아버지의 존재와 본질을 논하는 것 같이 쑥스러운 일이다. 아버지는 바로 옆방에 계시는데…” 1만 2000원.●넥타이와 암브로시아(클라우스 뮐러 지음, 조경수 옮김, 안티쿠스 펴냄) 전통적인 자급자족경제에서는 채집 곤충이 식품으로서 매우 중요했다.고대에는 애벌레를 별미라는 이유로 밀을 먹여 키우기도 했다. 아리스토텔레스도 통통한 굼벵이 섭취를 찬미했다. 성서 시편의 작자는 만나를 ‘하늘양식’이라고 말한다. 사람들이 그것을 ‘천사의 음식’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만나는 이스라엘인들이 황야 행군을 버텨내고 결국 그들에게 약속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도달할 수 있게 도왔다. 인류의 먹고 마시는 문화를 다룬 책.1만 2000원.
  • [생활의 지혜] 주름살에 효과 좋은 꿀마늘

    알이 굵은 마늘을 골라 껍질을 까서 깨끗하게 씻는다. 그리고 마늘에 천연꿀을 골고루 섞은 뒤 밀봉해서 저장해둔다. 두 달 정도 지난 후 꺼내보면 마늘에서 물이 나와 맑은 액체가 생긴다. 그 물을 자기 전에 크림 바르듯이 발라주면 주름살 제거에 좋다.
  • [생활의 지혜] 코막힘엔 배와 양파즙으로

    코가 막혀 힘들 때 모과나 배, 꿀 등의 뜨거운 차에 양파즙을 타서 마시면 효과가 그만이다. 또 뜨거운 물수건을 코와 이마 사이에 올려놓고 막힌 쪽이 위를 향하도록 옆으로 눕혀도 코가 뚫린다.
  • [희망 2007 새벽을 여는 사람들] (3) 응급실 근무 인턴 의사 박현주씨

    [희망 2007 새벽을 여는 사람들] (3) 응급실 근무 인턴 의사 박현주씨

    2007년 새해를 축복하는 축제가 벌어지던 구랍 31일과 지난 1일 새벽 사이. 서울 양천구 목동 이화여대 의과대학부속 목동병원 응급의료센터는 ‘야전 병원’을 방불케 했다. 응급센터 밖에는 긴박함을 알리는 구급차 사이렌 소리가, 센터 내부에는 분주하게 움직이는 의료진의 다급한 목소리와 환자들의 신음 소리만이 감돌았다. 전국이 새해를 맞느라 들떠 있었지만 응급센터는 1분 1초의 여유도 느껴지지 않았다. ●“1주에 비번은 단 7시간 뿐” 응급센터에서는 긴장된 표정으로 정성껏 환자를 돌보는 한 의사가 유달리 눈길을 끌었다.6년 과정의 이화여대 의과대학을 막 졸업한 박현주(27)씨. 그는 지난해 2월 인턴 생활을 시작한 새내기 의사다. “죽을 것처럼 힘들다가도 혼수 상태에 빠져 있던 할아버지가 호전돼 저에게 손 흔들며 일반 병실로 옮기실 때, 보호자 분이 제 손을 꼬옥 쥐고 고맙다고 할 때는 쌓인 피로가 싹 사라지죠.” 그는 응급센터 생활에 대해 조금만 방심해도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전쟁터에 떨어진 이등병과 비슷한 심정이라고 말했다.1주일에 세 번은 ‘24시간+α’ 근무를 하고 나머지 세 번은 15시간을 일하는 살인적인 스케줄이다.1주일에 한 번인 ‘오프(비번)’도 7시간뿐, 밀린 잠을 보충하기에도 부족한 시간이다. 밤이 깊어지자 응급센터는 아비규환으로 변했다. 소아 응급실의 갓난아기 울음소리는 안쓰럽도록 계속됐다. 성인 응급실에는 구급차가 쉬지 않고 환자들을 토해냈다. 밤 10시 45분,119구급차가 들어오자 또다시 긴장감이 감돌았다. 다행히 배에 가스가 차고 혈변이 나오는 평범한(?) 50대 환자로 밝혀지자 “말리그네.”라며 담당의를 제외한 나머지는 고개를 돌렸다.“원래 이 날씨에 119차 타고 오면 심근경색 환자 정도인데…”라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말리그는 ‘악성(malignancy)’에서 나온 은어로 ‘별 것 아닌데 유난을 떠는 환자(혹은 캐릭터)’를 뜻한다. 자정이 되자 곳곳에서 문자메시지를 알리는 ‘삐리릭∼’소리가 울렸다. 병원 안에서 종일 사투를 벌이는 그에게도 바깥 세상과 이어진 끈이 있었던 셈이다. 짬을 내 문자 메시지에 대한 답장을 보내던 그는 “제일 친한 친구도 3주일 전에 만난 게 전부예요. 물론 다른 친구들이 부럽진 않아요. 제가 좋아하는 건데요.”라고 말했다. ●“두경부암 권위자가 되는 날까지 잠은 아껴둘래요.” 이날 오전 10시부터 자정까지 응급실에서 발바닥이 퉁퉁 부르트도록 뛰어다닌 그는 1시간 동안의 꿀 같은 휴식을 뒤로하고 내과로 올라갔다.1일 오후 6시까지 당직근무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병동에서 호출이 오면 총알처럼 튀어가야 해서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쏟아지는 잠을 쫓아 가며 환자를 돌보던 그는 “가장 힘든 기억이요?내과를 돌 때였는데 새벽 4시에 호출받아 두 시간 동안 심폐소생술하고 나서 저도 모르게 펑펑 울었어요. 왜 아무도 알아 주지 않을까란 생각에 서럽기도 했고요.”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날로 그의 응급실 근무는 끝났다.1월부터는 내과로 옮기게 된다. 응급실에서 일한 지난 한 달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은 누구였을까. “배 아파서 오신 분을 ‘배돌이’‘배순이’라고 불러요. 신경은 많이 쓰이지만 괜찮은 편이에요. 문제는 ‘술탱이(술에 취해 온 환자들)’들이죠. 링거를 놓으면 맘대로 주사 바늘을 빼버리고 행패를 부리니 기피 대상 1호예요.”라고 귀띔했다. 그의 꿈은 아직까지 국내에서 미개척 분야에 해당하는 ‘두경부암(頭頸部癌·구강이나 후두에 발생하는 암)’의 최고 권위자가 되는 것. 유난히 도전 정신이 강한 그에게 딱 떨어지는 목표란 생각이 들었다. “새해 소망이요.2월말부터 인턴 딱지 떼고 레지던트 1년차가 되는데 더 열심히 뛰어야죠. 이제 꿈을 향한 첫 계단에 올라섰을 뿐인데요.”라며 활짝 웃었다. 글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서울신문 신춘문예-희곡당선작] 문득, 멈춰 서서 이야기 하다- monologue Quartet/김정용

    따사로운 봄볕, 아련한 음악. 그리고……. 명일, 고개를 숙인 채 힘없는 걸음으로 등장, 어디론가 걸어간다. 신내, 꽃다발을 들고 환한 얼굴로 등장, 어디론가 걸어간다. 두정, 병원복 차림으로 휠체어를 타고 등장, 잠시 휠체어를 세우고 주위를 둘러보더니 이내 어디론가 간다. 신흥, 전화기를 들고 등장, 상대가 받지 않는지 계속 버튼을 눌러대다가 퇴장한다. 다시 명일이 등장했다 사라진다. 다음엔 신흥, 신내, 두정 차례로 등장했다가 사라진다. 그들은 서로 인식하지 못한 채,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어느새, 각자 자리를 잡고 서 있는 네 사람. 모두들 잠시 망설이다, 각자 어딘가를 향해 이야기를 시작한다. 네 사람: (동시에)저기……. 짧은 암전. 명일: 그녀를 처음 본 건 두정: 치악산이었습니다. 신흥: 어찌할 바를 모르겠더군요. 신내: 환하게 웃는 모습이 너무 멋졌어요. 신흥: 숨이 멎는 것 같았습니다. 명일: 노을이 너무나 아름다웠던 해질무렵이었는데, 지금도 기억나요. 두정: 그날 따라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았습니다. 신내: 어떻게 말해야 할까요? 명일: 운명이라고 해야 할까요? 남들이 뭐라하건 전 그때 운명을 느꼈습니다. 두정: 이렇게 될 운명이라 그랬던 걸까요? 신흥: 앞이 깜깜하더군요 신내: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그 사람 모습만 보이는 거 있잖아요. 신흥: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어떤 것부터 수습해야 할지, 그때만 생각하면……. 두정: 생각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날 일은. 명일: 그날이 제 생애에서 가장 큰 기적이 일어난 날입니다. 신내: 제가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편이라……, 그래도 용기를 내야겠죠? 신흥: 용기가 나질 않더군요, 어떻게 마누라 얼굴을 봐야 할지, 술이라도 먹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술은 입에도 못 대고……. 두정: 술요? 입에도 대지 않았습니다. 산행하는 날은 술을 마시지 않습니다. 내려와서 마시면 모를까. 명일: 시간 되시면 저랑 술 한 잔 하실래요? 명일 주변이 밝아지고, 나머지 사람들은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명일: 이 말이, 제가 그녀에게 처음 건넨 말이었어요,‘술 한 잔 하실래요?’ 참 바보 같았죠, 머릿속에 별별 말이 다 떠돌았는데, 막상 나온 말이 그거였어요, 말을 해놓고 아차 싶었죠,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그런데 그녀가 뭐라고 한 줄 아세요? ‘한잔만요?’(미소) 그렇게 시작 했어요. 우리들. 정말 행복했어요, 너무 행복해서 불안할 정도로, 왜 그런 거 있잖아요, 좋은 일만 계속 생기면 왠지 불안해지고 그러는 거. 육상 경기복 차림의 신내 등장. 얕은 숨으로 몸을 푼다. 명일: 하지만 그런 불안도 그녀의 미소 앞에선 힘을 잃고 말았죠.(신내 환하게 미소 짓는다.) 우린 언제나 함께였어요, 몸이 떨어져 있는 시간에도 마음만은 늘 붙어 있었죠. 신내: 그만해, 더는 못 들어주겠다. 그래서 대학 떨어지면 누구 탓하려고? 아빠가 그러시더라고요. 많이 놀랐어요, 원래 말씀을 거침없이 하시는 편이시지만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리라곤 생각지 못했거든요, 제가 원하는 일에 반대 한번 안 하셨던 분인데, 아빠도 제가 고3이 되는 게 스트레스가 되셨나봐요, 사실 전 아무렇지도 않은데. 육상하면서 공부 열심히 할 수 있다고 아무리 말해도 들으실 생각조차 안 하세요 명일: 그런 우리를 하늘이 시샘했는지 신내: 그만해 명일: 불안함을 현실로 만들어 버리더군요. 신내: 그래서 그만두기로 했어요. 명일: 그게 마지막이 될 줄이야. 신내: 낼 모레가 마지막 시합이에요. 오빠가 와 줄까요?(호루라기 소리) 예, 가요! 암튼 쉬는 꼴을 못 본다니까.(급하게 달려 나간다.) 명일: 다 제 잘못이에요, 급하게 달려 나가는 연수를 잡았어야 했는데, 연수가 제 눈앞에서 붕 떠오르더니 바닥으로 나뒹굴었어요, 아주 잠깐 사이였는데……, 두정: (휠체어를 타고 등장) 그렇게 몇 바퀴를 굴렀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습니다. 깨어나 보니 병원이더군요. 명일: 수술실 앞에서 내내 기도했어요,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두정: 멀리서 누군가 절 부르는 것 같은 소리에 눈을 떴는데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어요, 하얀 천장, 그보다 더 하얀 형광등뿐이었죠, 고개를 돌릴 수도 없었고, 목소리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명일: 잠깐만 쉬었다 하면 안 될까요? 저 세수좀 하고 올게요. 죄송합니다.(나간다.) 두정: 이제 에베레스트는커녕 문턱하나 넘지 못하게 된다고 생각을 하니 죽고 싶었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결과가 나와봐야 안다고, 설령 잘못 되더라도 열심히 재활하면 될 거라고 말했지만, 제 몸은 그 누구보다 제가 잘 압니다. 저는 걷지 못할 겁니다. 이제 에베레스트는 제게 있어 그림엽서 속에서만 존재하는 산일 뿐입니다. 신흥: (통화하며 등장)아니라니까 그러네, 왜 내 말을 못 믿어, 다 잘 될 테니까 너무 걱정마……, 나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끝나지 않아,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그깟 일로 안 무너져……, 여보 나 믿지? 그래 내가 알아서 잘할게, 그리고 내 전화 말고는 다른 전화는 절대 받지마……, 알아, 알아 당분간 친정에 가 있어, 애들은……, 그래, 너무 걱정마.(끊는다.) 두정: 너무 걱정마, 모두들 저에게 그렇게 말했습니다. 저라도 그렇게 말했을 거예요, 인간이란 동물은 원래, 남의 불행에 대해서는 지나치리만큼 관대한 법이니까요. 이렇게 되고나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관대함이란 게 무관심의 다른 말이라는 것을요, 지나친 비약이라고 생각하시죠? 그것도 다 여러분이 사고를 당하지 않았기 때문에 드는 생각입니다.(사이)저도 며칠 전까진 여러분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저에게 이런 일이 일어날 줄 상상도 못하고 있었죠. 정말 순식간이었습니다. 절망이란 놈은 순식간에 저를 이곳에 앉혀 놓고는 두 다리를 옭아맸습니다. 정말 순식간에……. 신흥: “너무 걱정 마”,“걱정하지 마세요.” 도대체 이 말을 몇 사람에게 몇 번이나 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습니다. 길거리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붙잡고 걱정 말라고 당부하는 꿈을 꿀 정도였으니까요, 근데 웃긴 건, 그 어느 누구도 저에게 이 말을 해주지 않았다는 겁니다. 이 일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사람은 저인데도 말이죠. 가해자 취급만 당했어요, 물론 제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건 아닙니다. 저 잘못 했어요, 그건 인정합니다. 하지만 이건 아니지 않습니까? 딱 까놓고 말해서, 저만 좋자고 프로젝트 진행시킨 겁니까! 다 같이 잘되자고 한 일인데, 일이 틀어지고 나니까 언제 그랬냐는 듯이 모든 사람들이 피해자로 돌변하더군요, 같이 진행한 동료들까지도 말이죠, 정말 순식간이었습니다, 정말 순식간에……. 두정: 다 필요 없습니다. 신흥: 다 필요 없어요. 신내: (등장)꽃이 필요할 거예요, 그쵸? 신흥: 그래서 준비한 게 있습니다. 두정: 전……, 이곳에서 탈출할 생각입니다. 신흥: (약병을 꺼낸다)저만 없어지면 됩니다. 두정: 제가 없어지면 모두들 걱정하는 척하다가 금세 잊어버릴 겁니다. 다리병신 하나쯤 없어졌다고 변하는 건 아무것도 없을 테니까요 신내: 아니야, 그건 아니야.(두정 나간다.) 여자가 먼저 꽃을 주는 건 좀 그렇겠죠? 신흥: (병뚜껑이 열리지 않는다.) 이게 왜 이래. 신내: 어떡하지? 신흥: 어떡하지? 신내: 오빠가 와주긴 할까요? 신흥: 깨버릴까? 신내: 용기내서 말하긴 했는데 대답을 못 들었거든요 신흥: 용기가 깨질 때 유리 파편이 섞이면 먹기 힘들 텐데.(열심히 뚜껑을 돌린다.) 신내: 다시 한 번 말해 볼까요? 이상한 애로 보이면 어쩌죠?(사이) 안 되겠어요. 신흥: 안 되겠어. 수건 같은 게 있으면 좋겠는데. 신내: 무슨 수를 써야지……. 명일, 나가는 신흥과 교차되며 들어온다. 신내: 아하! 다시 말하기는 그러니까, 편지가 좋겠어요. 그렇죠? 좋은 생각이죠? 마지막 시합에 오빠가 와주면 더 힘내서 뛸 수 있을 것 같다고 쓰는 거예요. 역시 솔직한 게 좋겠죠? 그래, 그래야겠어요. 명일: 죄송합니다. 어디까지 얘기했었죠? 신내: 편지 명일: 편지 얘기는 아직 안 하지 않았나요? 신내: 우선 펜하고 종이가 필요하겠죠? 명일: 적지 않으셨으면 좋겠는데, 그냥 듣기만 하시면 안 될까요?(신내, 고개를 끄덕인다.) 감사합니다.(신내, 나간다.) 그럼 얘기가 나왔으니 편지 얘기를 할게요.(잠시 머뭇거리다) 사귀기로 한 날부터, 저는 하루도 빠짐없이 그녀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뭐 그렇다고 대단한 연애편지를 쓴 건 아니고요, 일기 쓰듯이 오늘 하루 무슨 일이 있었나 써서 메일로 보냈어요. 하루도 빼먹지 않았어요, 단 하루도.(웃음) 어떤 일이 있었냐면요, 어느날 술을 잔뜩 마셔서 떡이 된 적이 있었는데요, 그 다음날 아침에 눈을 떴는데 아차 싶은 거예요, 하루도 빼먹지 않겠다고 약속했었거든요, 늦었지만 변명이라도 해볼 양으로 부랴부랴 컴퓨터 앞에 앉았죠, 그리고 메일을 쓰려고 로그인을 했는데 수신 확인 창이 뜨는 거예요, 그래서 뭔가 하고 봤더니, 글쎄 제가 전날 밤에 메일을 보냈더라고요, 무슨 말을 썼는지 궁금해서 메일을 열어 봤는데(피식거린다.) 그게, 영어도 아니고 한글도 아니고 그런 거 있잖아요.fhufhㅈ뎌???ㄷew 이런 거 (웃는다.) 더 웃긴 건, 제목이 뭐였는지 아세요? fhi롤fwqo어ㅈㅇ……. 명일, 말을 잊지 못하고 정신없이 웃는다. 무대 뒤에서 두정과 신흥의 절규가 들려온다. 명일: (무안해 하며)죄송합니다. 신흥, 두정 서로 반대편에서 등장 신흥, 두정: 이럴 순 없어 두정: 병원 정문도 못가서 잡혀버리다니. 신흥: 내 맘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어 신흥, 두정: 어떻게 이럴 수가 있냐고. 내가 아무리 이런 꼴이 됐어도 두정: 병원문턱 하나 신흥: 병뚜껑 하나 신흥, 두정: 내 맘대로 두정: 넘지, 신흥: 열지-못하다니, 왜 하필 이런 일이 나한테 닥친 거야, 왜 하필이면 나냐구, 내가 뭘 잘못했게! 내가 바라던 삶은 이런 게 아니었어. 다시 시작할 수만 있다면……. 명일: 다시 시작하죠. 두정: 그만하자, 그만해, 이런다고 뭐가 달라지겠어, 내 꼴만 더 우스워지지. 두정, 신흥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신흥: (병을 내밀며) 저……, 이것 좀. 명일: 네? 두정: 뭘 봐! 휠체어 탄 사람 처음 봐! 명일: 네. 신흥: 죄송합니다. 이것 좀 열어 주세요, 부탁 좀 드릴게요.(병을 건넨다.) 두정: 씨발.(술병을 꺼내 마개를 따려한다.) 이건 왜 이렇게 안 열려 신흥: 잘 안 열리죠? 너무 무리하지는 마세요. 명일: 무리라뇨, 전 괜찮아요.(사이) 알겠습니다. 내일 오면 되는 거죠? 같은 시간에 두정: (술병을 집어던진다) 젠장, 젠장, 젠장! 신흥: 그렇게 까지 하실 필요는 없는데,(사이) 안 열리면 할 수 없죠 뭐(병을 받는다) 감사합니다. 명일: 안녕히 계세요. 아련한 음악 다시 흐른다. 명일, 천천히 무대를 돌고. 신흥 뚜껑을 열기 위해 애쓰며 퇴장, 두정 지친 듯 어깨를 늘어뜨리고 퇴장, 신내 편지를 들고 등장, 음악이 끝나면 명일과 신내 각자 자리를 잡는다. 신내: 편지 다 썼어요, 들어 볼래요?(편지를 꺼내 읽는다.) 오빠 명일: 연수야, 야! 신연수 신내: 잘 지내고 계세요? 명일: 난 잘 지내고 있어, 너는 잘 지내고 있는 거야? 신내: 전 무지무지 잘 지내고 있어요. 제가 며칠 전에 오빠에게 했던 말 기억나세요? 명일: 기억난다. 너랑 여기 자주 왔었는데, 신내: 죄송해요, 갑작스럽게 말하고는 대답도 듣지 않고 도망쳐 버려서, 놀라셨죠? 명일: 아니야. 네가 미안할 건 없어, 붙잡아 주지 못한 내가 미안하지. 신내: 그래서 말인데요. 오빠가 너무 당황스러운 나머지 제 얘기를 못 들었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어 이렇게 편지를 써요. 저, 내일모레 있을 시, 도 대항 육상 대회에 시 대표로 나가게 됐어요, 아마도 제 인생의 마지막 경기가 될 것 같아요, 아빠가 육상을 못하게 하시거든요. 마지막 경기를 오빠가 꼭 보러 와줬으면 좋겠어요, 그럼 힘이 불끈 불끈 날거 같아요 어쩌면 한국 신기록을 세울지도 몰라요, 그렇게 되면 아빠도 더는 반대 못하시겠죠.-제발 그렇게 됐으면-, 자라나는 한국 육상 꿈나무의 앞길을 열어 주세요, 네 오빠! 우리가 대기하는 곳이 3번 게이트 쪽이거든요, 그쪽 스탠드 앞쪽에 계시면 제가 오빠를 찾을 수 있을 거예요, 꼭 와주셔야 해요, 오빠가 오지 않으면 저는 실망한 나머지 다리에 힘이 풀려 꼴찌를 할지도 몰라요, 꼭 와야해요, 꼭 꼭 꼭. 명일: 가고 싶어, 그곳에……. 멀리서 호루라기 소리 들려온다, 신내 재빨리 편지를 감춘다. 명일: 저 소리 들려? 우는 소리가 괴상하니까 분명 생긴 것도 이상한 새일 거라고, 확인해 보고 싶다고 몇 시간이나 헤매고 다녔었잖아. 결국 확인도 못해보고…….(목이 멘다.) 두정, 훈련복 차림으로 호루라기를 불며 걸어서 등장. 두정: (버럭)지금 뭐하는 거야! 정신이 있어 없어!(신내 얼른 뛰어 나간다.) 그런 정신 상태로 뭘 하겠다는 거야, 응! 그것밖에 안 되는 놈이었냐? 정말 실망이다. 네놈만은 꽤 괜찮은 녀석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너 같은 녀석은 에베레스트를 입에 담을 자격도 없어! 명일: 미안, 그때 널 잡았어야만 했는데. 두정: 에베레스트는 고결한 자에게만 허락된 곳이다, 약해 빠지고 결점투성이인 인간에게는 절대로 그 하얀 살결을 허락하지 않아! 명일: 그렇지 않아, 다 내 탓이야. 두정: 그깟 집안일 때문에 술에 절어 사는 게 부끄럽지도 않냐? 네가 말했던 꿈이라는 게 고작 이런 거였어? (사이) 그래, 나 이해 못한다, 아니 이해하고 싶지도 않아. 네가 이 세상에서 제일 불행한 것 같지? 얼빠진 놈.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게 어떤 인간인 줄 알아? 바로 너 같이 환경 탓, 상황 탓 하는 것들이야. 우리는 최악의 상황을 뚫고 나가야 하는 사람들이야. 별것도 아닌 일에 주저앉아 버리는 너 같은 놈은 필요없어! 당장 내 눈 앞에서 사라져, 무슨 염치로 훈련장에 나타난 거야, 나타나길. 다른 팀원들이 너 보면 사기 떨어지니까, 좋은 말로 할 때 얼른 꺼져라, 그리고 다시는 우리 앞에 나타나지 마. 명일: 제발 나타나줘, 한번 만이라도 좋으니까, 제발 내 앞에 나타나줘. 암전. 빛 속에 홀로 있는 신흥 신흥: (반쯤 줄어든 약병을 들고 허탈하게 웃으며) 안되는 놈은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고, 겨우겨우 열어가지고 스무알을 넘게 먹었는데……, 뭐? 고통 없이 갈 수 있다고? 나쁜 새끼들.(꺽꺽댄다.) 이딴 걸 20만원씩이나 주고 산 내가 미친놈이지.(전화 벨이 울린다, 병을 내려놓고 전화를 확인하고는 배터리를 빼버린다.) 미안해 여보. 날 용서하지 마.(사이) 한심하죠? 저도 처음부터 이러진 않았습니다. 하기야 태어날 때부터 한심한 인간이 어디 있겠습니까. 살다보니까, 어찌어찌 하다보니까 한심해지는 거지.(사이) 돌아가신 저희 아부지께서 술만 드시면 어린 저를 붙잡고 늘상 하시던 얘기가 생각나네요. 두정: (빛 속에서 등장) 너 같은 놈은 필요 없어.(사라진다) 신흥: 그때는 그게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어요, 근데 상황이 이렇게 되니까 알겠더군요, 그게 무슨 말이었는지, 아부지가 어떤 심정이었을지.“넌 어른이 되지 마라, 세상에서 가장 더럽고 추악한 동물이 바로 어른이란 동물이다.” 백번 맞는 말인 것 같아요, 그렇지 않나요? (사이) 그나저나 이제 어떡해야 하죠? 수습할 수도 없고, 도와줄 사람도 없고, 빌어먹을 죽지도 못하고, 어떡해야 하죠? 신내: (빛 속에서 등장) 그럴 땐 초콜릿을 먹으면 돼요, 그것도 아주 진한 다크 초콜릿, 아무리 우울해도 한두 조각이면 기분이 좋아지거든요, 한두 번 혼난 것도 아니고 뭐. 괜찮아요. 초콜릿 하나면 땡이에요.(사라진다.) 신흥: 그 생각도 안해본 건 아닙니다. 근데 제가 고소공포증이 있어서……, 예? 그건 너무 고통스럽지 않을까요? 제가 아픈건 딱 질색이라. 명일: (목소리) 연수야, 연수야 신흥: 쉿! 지금 누가 제 이름 부르지 않았나요? 설마 놈들이 여기까지? 내가 여기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텐데. 제발 좀 도와주세요, 잡히기라도 하는 날엔……, 이 모든 게 꿈이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명일: (목소리)아! 꿈이었구나. 신흥: 윽!(배를 움켜쥔다.) 아 배야, 갑자기 왜 이러지? 뭐 먹은 것도 없는데. 화장실, 화장실……, 크 아퍼, 먹은 거라곤 이것뿐인데,(무언가 떠올라.) 약! 이 약! 개새끼들.(배를 부여잡고 달려 나간다.) 빛 속에 덩그러니 남겨진 약병. 빛이 점점 번져 공간을 환하게 만든다. 밝아지면 테이블에 앉아 있는 신내. 신내: 이 시간이면 항상 이곳을 지나가는데 (두정 등장) 어! 태령 오빠! 두정: (신내의 맞은편에 앉는다.) 왜 불러낸 거야? 신내: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 드릴 게 있어요. 두정: 뭔데 신내: (편지를 건네며) 이거 두정: (받으며) 이게 뭔데? 신내: 나중에 읽어 보세요(얼굴이 붉어진다.) 두정: (읽은 후) 각서……, 야! 지금 너 장난하냐? 신내: 아니에요, 안 빨개요 두정: 이딴 종이 쪼가리를 어떻게 믿어? 신흥 한손에 휴지를 들고 등장, 처절한 소리를 지르며 부리나케 테이블을 지나쳐 반대편으로 사라진다. 신내: 전엔 죄송했어요, 제 말만 하고 멋대로 가버려서. 두정: 죄송하다면 다야? 신내: 예, 그치만 오래 기다리진 않았어요. 두정: 그 말을 어떻게 믿어. 신내: 오빠. 두정: 이제 날 그렇게 부르지 마. 더 이상 난 네 대장이 아니다 신내: 호, 혹시……, 여, 여자친구……, 있으세요. 두정: (단호하게) 없어, 추호도. 난 한번 결정한 건 목에 칼이 들어와도 바꾸지 않아. 마음 같아서는 널 죽도록 패주고 싶지만 옛정이 있어 참는다. 신내: 다행이다. 제가 얼마나 조마조마했다고요. 두정: 더 할 말 없으면 나 간다. 훈련중이었거든, 네놈이 그렇게 하찮게 여겼던 그 훈련 말이다. 신내: 그러세요, 예, 가보세요, 편지 꼭 읽어 보시고요, 두정: 두 번 다시 널 만나는 일이 없길 바란다.(각서를 구겨 테이블에 던진다.) 신내: 저도요, 그럼 안녕히 가세요 신내 꾸벅 인사하고는 떠나는 오빠(두정)의 뒷모습을 눈으로 는다. 두정 나간다. 신내는 오빠의 모습이 사라진 것을 확인하고 자리를 뜬다. 신흥 허겁지겁 등장, 숨을 곳을 찾는다. 급하게 숨을 곳을 찾고는 몸을 숨긴다. 신흥: (숨을 몰아쉬며) 하필이면 화장실에서 마주칠 건 뭐야, 그나마 나오는 길에 마주쳤기에 망정이지 들어가는 길에 마주치기라도 했어봐. 아유아유 죽겠네.(두정이 버렸던 병을 발견) 뭐야? 새거잖아.(너무나 쉽게 병을 열고는 벌컥벌컥 마시고는 다시 뚜껑을 닫아 제자리에 놓는다.) 햐 시원하다.(허탈하게 웃으며) 안좋은 일만 생기는 것 만은 아니구나.(제자리에 털썩 주저앉는다.) 제 인생이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요? 아부지 말처럼 어른이 돼버려서 이렇게 된 걸까요? 가장 더럽고……, 후후후.(사이) 네? 어른이 되기 전에요? 글쎄요, 어른이 되기 전이라……. 그러고 보니 제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네요. 그땐 뭐, 다들 그렇겠지만 하고 싶은 것도 많고, 되고 싶은 것도 많고 그랬는데, 샐러리맨 따위가 될 거라고는 상상이나 했겠어요, 그 때의 저한테 미안한 생각까지 드네요,(사이) 그럼요, 뭐였냐면요……, 막상 말하려니까 쑥스럽네요, 웃지 마세요, 가수예요, 가수 (웃음) 웃기죠? 가수를 꿈꾸던 청년 도망자 되다! (웃음 소리속에 점점 슬픔이 담긴다.) 명일: (초췌한 모습으로 등장) 꿈이었어, 꿈. 연수야 보고 싶다. 보고 싶다 연수야.(컴퓨터를 켠다, 윈도 시작음악) 언제까지 너한테 편지를 쓸 수 있을까? 언제 와서 이 편지 읽어 줄래,(창 뜨는 소리, 몹시 놀란다.) 어, 어! 신흥: 아, 아! (배를 움켜쥐고) 또야? (뛰어 나간다.) 명일: (흥분) 틀림없어요. 그녀가 읽은 거예요. 그녀가 읽은 거라고요! 연수는 살아 있어요. 죽은 사람이 어떻게 메일을 읽어요, 안 그래요?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죽은 게 아니었던 거예요, 오 하나님 감사합니다.(짧은 사이) 지금 진정하게 생겼어요? 신흥: (등장) 지독한 놈들, 왜 화장실 앞에서 죽치고 있는 거야, 아, 미치겠네.(반대쪽으로 달려 나간다.) 명일: 봤죠, 네 봤어요, 근데 제가 본건 사고 나서 실려 가는 것까지였어요, 죽은 연수를 본 건 아니잖아요. 장례식요? 어……, 그건……, 아 그래그래, 필요했던 거예요 장례식이, 연수는 큰 사고를 당했어요, 죽지는 않았겠지만 몸이 성치는 않을 거예요, 왜 그런 것 있잖아요, 영화나 소설 보면 죽은 걸로 하고 숨어서 지내는 거, 그래 그거야, 그거.(짧은 사이) 비약요? 그건 선생님 일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게 말씀하시는 거예요. 다시는 여기 오지 않겠어요, 연수가 살아있어요! 제 우울증 따위는 한방에 끝났다고요. 하나님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연수를 데려가지 않으시다니, 정말 감사합니다. 어떤 모습이라도 좋아요 살아 있기만 하다면요, 신흥: (퀭한 얼굴로 등장) 살았다……. 두정: (목소리) 야! 야! 신흥: (소리 나는 쪽을 보며) 젠장! (도망친다.) 두정: (휠체어를 타고 등장. 낮은 목소리로) 거기 서! 뭐 나한테 속이는 거 있지? 틀림없어, 귀신은 속여도 나는 못 속이지. 뭐야? 사실대로 말해봐. 뭐야 대체? 명일: 예? 두정: 뭐라고 했어 지금? 다시 한 번 말해봐. 명일: 몇 번을 얘기해야 알아들으시겠어요, 지금은 연수가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해요.(짧은 사이) 선생님! 왜 자꾸 그러세요? 선생님은 연수가 살아 있는 게 싫으세요? 비밀 번호를 아는 사람은 연수밖에 없어요, 그런 건 철저한 애였어요, 수신확인이 됐다는 건 연수가 열어 봤단 소리예요. 다른 가능성은 없어요. 두정: 그래 알았어, 너희들이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거 이해한다. 알았어, 알았어,(짧은 침묵) 잘 가라, 참 그리고 앞으론 문병 같은 거 오지마라, 훈련에만 전념해, 나 들어간다. 명일: 안녕히 계세요. 연수를 찾아봐야겠어요.(나간다.) 두정: (가다 멈춰서) 개자식들! 신흥: (온 몸엔 상처, 옷은 쥐어뜯겨 엉망인 채로 등장) 개새끼들! 두정: 의리 없는 놈들 같으니라고, 내가 이렇게 된지 얼마나 됐다고……, 그 자식을 끌어들여? 신흥: 아무리 그래도 사람을 이렇게 패냐 두정: 씨발, 씨발 씨발,(거친 웃음) 신흥: 아, 진짜 아프다, 돈 몇 푼에 아주 사람을 죽이려고 환장을 했구먼, 도망치지 않았으면 골로 갈 뻔했네.(어이없다는 듯이 웃다가 흐느끼기 시작한다.) 씨발 새끼들, 아부지, 여보, 나 아퍼.(울음소리 점점 커진다.) 두정: 그만해, 그만해!(울먹인다.) 두정과 신흥의 울음소리가 무대를 가득 메운다. 신내 허겁지겁 들어온다. 신내: 뭐하는 거예요 대체,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잖아요. 이러고 있으면 어떡해요 얼른 일어나요 (두정, 신흥 울음을 그친다.) 자 초콜릿 (두정과 신흥 앞에다 놓는다.) 이거 먹으면 힘나거든요, 씹어 먹지 말고 천천히 녹여 먹어요.(사이) 자 가요, 가서 멋지게 1등하고 돌아오면 되잖아요. 그럼 분명 코치님도 기뻐하실 거예요, 얼른 일어나세요. 시간 다 됐어요. 우리 몸도 풀겸, 경기장까지 뛰어 가요! 오케이.(나간다.) 두정, 신흥 꾸역꾸역 자리를 털고 일어나, 신흥은 두정의 자리로, 두정은 신흥의 자리로 간다. 둘은 동시에 바닥에 떨어져 있는 초콜릿을 발견하고 집어든다. 신흥: 아깐 음료수 이번엔 초콜릿? 두정, 신흥: (하늘을 올려다보고 주변을 둘러보고는 다시 초콜릿을 본다.) 뭐야? 둘, 초콜릿을 까서 입에 넣는다. 마법같은 음악 잠깐. 알 수 없는 미소가 둘의 얼굴에 감돈다. 두정, 신흥: 그래, 힘내자, 신흥: 약을 스무 알씩이나 먹고, 그렇게 맞았는데도 안 죽었는대. 두정: 어차피 이렇게 될 일이었던 거야, 발버둥 쳐 봤자지. 두정, 신흥: 뭔가 길이 있을 거야. 두정: 그렇지? 신흥: 그렇지. 둘, 서로 반대편으로 퇴장, 신내 다른 곳으로 들어온다. 신내: 자! 우리 파이팅하는 거예요! 코치님도 병원에서 틀림없이 우릴 지켜보고 있을 거예요.(몸을 풀며 두리번거린다.) 아직 안 왔어요, 조금 있으면 시작인데 설마 안 오는 건 아니겠죠? (관중석으로 손을 흔들며 웃는다.) 엄마, 아빠 여기, 여기.(사이) 차가 막히나? 설마 무슨 일 생긴 건 아니겠지? 아닐거야. 그래, 그래. 오빤 틀림없이 올 거야. 자! 힘내자 연신내. 멋지게 달려서 일등 하는거야, 알았지? (더욱 열심히 몸을 푼다.) 명일 등장. 신내: 어! 오빠! (명일에게) 여기에요, 여기.(환하게 웃으며 인사) 오빠가 왔어요, 오빠가 왔다고요. 좋았어, 아자아자! 명일: 어디서부터 시작하지? 친구들은 모를 테고, 부모님을 찾아뵈어야 하나? 그래, 일단 아이피 추적부터 해보자, 좋았어, 아자아자! (컴퓨터 앞에 앉는다.) 소리: 여자 800미터 예선전 참가자들은 본부석 쪽으로 와주시길 바랍니다. 신내: (오빠 쪽을 향해) 꼭 일등 할게요! (나간다.) 두정 등장, 휠체어를 세우고 천천히 바닥으로 내려 재활운동을 시작한다. 각자의 일에 열심인 두 사람. 명일: 안 되네, 이렇게 하는 게 아닌가? 두정: 헛 둘, 헛 둘. 한참을 하다 지친 둘. 명일: 아, 모르겠다.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거 야? 두정: (숨을 몰아쉬며) 두고 봐 꼭 해내고 말 테니까. 기다려라 에베레스트, 내 네놈을 꼭 밟아주고 말 테다. 소리: 딩동댕동.601호 특실 환자분 면회객이 와 있습니다. 속히 병실로 돌아와 주시길 바랍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명일: 뭐가 이렇게 시끄러워, 어디서 공사하나? 집중을 할 수가 없잖아 집중을. 두정: 면회? 누구지? (휠체어에 오른 후 퇴장.) 명일: 도저히 안되겠다. 누구 컴퓨터 잘하는 사람 없나? 아 그렇지! (휴대전화를 꺼내 건다.) 여보세요? 문정이냐? 응, 나 명일인데·…….(통화하며 나간다.) 나가는 명일과 교차하며 신내 등장. 긴장을 풀기 위해 몸을 턴다. 소리: 여자 800미터 세번째 경기가 시작되겠습니다. 선수들은 입장해주시길 바랍니다. 신내 앞으로 나와 몸을 푼 다음 놓여 있는 병을 들고 마시고는 (두정이 버렸던 병) 출발선에 선다. 소리: 차렷, 준비. 소리2: 거기 서 개새끼야! 소리: (총소리) 탕 출발과 동시에 터지는 응원과 환호성 속에서. 슬로 모션으로 출발하는 신내.“안 서면 죽어!” 소리를 등지고 신흥 슬로로 뛰면서 등장. 신내와 신흥 같은 방향으로 뛴다. 혼신의 힘을 다해 뛰는 두 사람. 신흥이 점점 신내를 따라잡아 이윽고 나란히 뛰게 된다. 신흥이 신내를 앞서가려는 찰나. 신흥의 발이 꼬여 중심을 잃고, 그런 신흥에 걸려, 비명을 지르고 넘어지는 신내. 신흥은 얼른 추스르고 멀리 달아난다. 엎어진 채 그대로 있는 신내에게 빛이 모아진다. 빛은 점점 작아진다. 암전. 다시 서서히 밝아지면 신내의 자리에 서서 홀로 빛을 받고 있는 신흥 신흥: 하하하, 꼴좋다, 내 그럴 줄 알았어. 내가 한번은 잡혀도 두 번은 안 잡힌다! 이래 봬도 왕년에 한달리기 한 사람이야 왜 그러셔.(사이) 그나저나 이제 뭘 어떡해야 하지? 집에 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이렇게 길거리에서 전전긍긍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약만 안 샀더라도 좀 더 나았을 텐데 (뒤적거려 지갑을 꺼낸다.) 육 만원. 육 만원이라, 이걸 갖고 뭐해……, 인생 허무하다, 나이 서른여덟에 가족 버리고 수중에 딸랑 육 만원 들고서 고민하는 꼴이라니……, 아니다, 아니다. 돈 한푼 없는 것 보다 낫지, 그래 그렇게 생각하자. 육 만원으로 새출발하는 거야! 까짓 인생 대역전이 별거야, 나라고 뭐 육 만원의 신화 만들지 말라는 법 있어? (절규한다.) 젠장, 근데 뭘 하냐구! 세 개의 빛이 동시에 들어온다. 빛 속에 나란히 있는 명일, 신내, 두정, 신흥. 명일은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하고 있고, 신내, 입 주변이 피에로처럼 초콜릿이 범벅인 채로 무지막지 멍하게 앉아 있다. 두정은 한 곳을 응시한 채 얼어있다. 지하철 환승 멜로디가 경쾌하게 울린다. 소리: 이번 역은 전동차를 갈아타실 수 있는 환승역입니다. 다른 전동차를 이용하실 손님께서는 빠뜨리신 물건이 없나 잘 살펴보시고 다른 열차로 갈아타시길 바랍니다. 넷. 각자의 자리를 떠나 각기 다른 사람이 있던 자리로 이동한다. 두정과 신흥 쪽의 빛이 어두워진다. 명일: 틀림없다니까요, 증거요? 몇 번이나 말씀드려야 돼요, 제가 보낸 메일이 수신 확인이 되어 있었다고요, 왜 그게 증거가 안 되는 건데요, 비밀번호는 연수 말고 다른 사람은 아무도 모른다니까요.(사이) 그러니까 한번만 조사해달라는 거예요, 저기요, 무슨 얘긴 줄 알겠는데요, 사망신고가 됐다고 해서 꼭 죽었다고 볼 수는 없잖아요.(사이) 말이면 답니까! 제가 미친놈으로 보입니까? 당신들 시민의 요청을 거절하는거 그거 직무 유기야 알아? 민중의 지팡이라며? 친절봉사라며! 이따위로 일할 거야! (사이) 제발요, 딱 한번만이라도 좋으니까 조사해 주세요. 연수는 살아 있어요, 죽은 사람 살리는 셈치고 아니, 정말로 죽은 사람 살릴 수 있는 일이니까 한번만 도와주세요? 네? 한번만요. 신내: 안 돼! 안 돼! 아무리 초콜릿을 먹어도 나아지지 않아,(흐느낀다.) 마지막 시합이었는데, 다시는 달릴 수 없는데……, 오빠가 보고 있었어, 정말 잘하고 싶었는데……, 끝이야, 전부 끝장나버렸어. 명일: 이대로 끝낼 순 없어. 신내: 코치님 얼굴을 어떻게 보지? 입원하실 정도로 열심이셨는데. 명일: 이젠 뭘 어떡해야 하지? 신내: 이젠 뭘 어떡해야 하지? 모두들 나한테 손가락질할 거야, 부모님도 친구들도 오빠도 모두들 한심하게 생각할 거야. 내가 전부 망쳐버린 거야. 어떡해. 멀리서 신흥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한 손에 낡은 기타를 들고 등장하는 신흥 미친 듯 웃으며 무대를 휘젓고 다닌다. 신흥: 하하하, 이거야 이거! (기타를 튜닝하며 흥얼댄다.) “나는야 돈 한푼 없이 기는 도망자라네 하지만 나에겐 낡은 기타와 노래가 있어 둥기둥가.” 가수가 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고요? 육 만원으로 어떻게 새 삶을 시작할까 고민해 봤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방법이 없더군요, 이럴 때 의지할 마땅한 친구도 없는 내 자신이 한심했습니다. 갈 곳은 없고 배는 고프고, 그러고 있자니 일단 배라도 채우고 보자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눈에 띄는 포장마차에 들어가 오뎅을 집어 들었습니다. 터진 입술에 닿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한입 베어 물었는데,(웃음) 오백원짜리 오뎅이 그렇게 맛있는 거예요, 사실 길거리에 서서 쩝쩝거리며 먹는 사람들을 보면 손가락질 했었는데……, 아! 이래서들 먹는 거구나, 이해가 되더라고요. 막 세 개째 꼬치를 집어드는데 낯익은 노래가 들려왔어요, 포장마차 앞에 있는 레코드 가게 스피커에서 흘러나온 노래였어요, 렛잇비였는데, 너무 유명해서 촌스럽게까지 느껴졌던 그 노래가 전혀 다르게 들리는 거예요, 길거리 오뎅과 렛잇비, 저한테는 그냥 그저그런 뻔한 것들에 지나지 않았거든요……, 뭐 암튼, 오뎅을 질겅거리며 노래를 들었어요. 렛잇비가 그대로 두라는 뜻이라면서요? 어렸을 때는 왜 그대로 두라는 건지 이해를 못했었는데, 그 순간에 아! 그런 거구나 하고 고개가 끄덕여졌어요 그래서 그길로 곧장 중고 악기상으로 달려가 이놈을 장만했습니다. 지금 제 수중에 있는 거라곤 이 녀석과 단돈 삼천원이 전부입니다. 기타와 삼천원이라 뭔가 고독하기도 하고 낭만적이지 않나요? 그래서 결정했습니다.20년 만에 만들 노래의 제목.“기타와 삼천 원” 하하하, 놀라셨죠? 저도 놀랐습니다 이런 완벽한 제목을 만들어 내다니, 제목부터 뭔가 확 필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명일: 뭐라고요? 다시 한 번만 말씀해 주세요. 신흥: 기타와 삼천원 명일: 설마……. 신내, 신흥 쪽을 바라보다 ‘흑’ 소리를 내며 고개를 돌려 뛰쳐나간다. 신흥: (신내가 나간 방향에 대고) 놀라시긴……, 노래가 완성되면 여러분은 지금보다 열배는 더 놀라실 겁니다. 명일: 잘 알겠습니다.(사이) 흥신소요? 아닙니다. 그냥 개인적인 일 때문에 찾는 겁니다. 그러니까 서둘러 이사를 간 것 같은 느낌을 받으셨다는 거죠.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신흥: 일단은 제가 고등학교 다닐 때 만들었던 노래로 시작할 겁니다. 장소는 뭐, 찾아봐야죠, 설마 서울 하늘아래 제가 노래할 만한 곳이 없겠습니까. 지금 이 순간부터 저는 가숩니다. 불행한 샐러리맨이 아니라 어릴적 꿈을 이룬 멋진 사람이 된 거죠. 하하하. 자! 그럼 저를 기다리는 무대를 찾으러 이만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신흥, 큰 소리로 웃으며 퇴장, 명일 쪽지와 주소들을 확인하며 여기저기를 기웃거린다. 두정 휠체어를 타고 등장. 두정: (놀람을 감추며) 웬일이냐? 명일: 여기가 16-28번지 맞죠? 두정: 용케도 올 생각을 했구나. 명일: (떨리는 목소리로) 연수네 집 맞죠? 두정: 다 알고 온 거 아니야? 그런 건 왜 물어. 명일: 저는 연수 남자친구 명일이라고 합니다. 두정: 팀을 맡게 됐다고, 축하한다. 명일: 힘드시겠지만 저도 어렵게 마음먹고 온 것이니 제 얘기 좀 들어주세요. 두정: 너하고 할 얘기 없으니까 그만 가봐. 명일: 그 심정 이해합니다. 하지만……. 두정: 사실대로 말하지, 네 얼굴 두번 다시 안 봤으면 좋겠다. 명일: 잘 알겠습니다. 오늘 이후 찾아뵙는 일은 없을 겁니다. 대신 한 가지만 대답해 주십시오. 두정: 꼴 좋다고 웃고 싶겠지, 웃고 싶으면 웃어. 명일: 연수……, 연수 살아있죠? 네? 두정: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는 거야! 명일: 사실대로 얘기해 주십시오. 사고 이후에도 매일같이 연수에게 메일을 보냈었는데 며칠전 그 메일이 모두 수신 확인이 됐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그리고 전에 살던 집에서 이사 하실 때 도망치듯 떠났다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연수가 살아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두정: 상상력이 풍부하구먼. 그따위 소리는 집어치워, 보시다시피 난 글러먹었어. 명일: 그렇다면 제가 납득할 수 있게 설명해 주세요, 그렇지 않으면 저는 연수 찾는 걸 포기하지 못합니다. 두정: 내가 그런 소리를 했던가? 그래 그런 말을 했겠지……, 하지만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달라. 상황 탓, 환경 탓 하는 게 아니야, 현실이 그렇다는 거지. 네 놈이 그런 말을 하는 저의를 모르겠다. 더 이상 널 마주하고 얘기하고 싶지 않다. 조심해서 가라.(나가려 한다.) 명일: 거짓말……, 거짓말이죠? 그럴 리 없어, 저를 포기하게 하려고 하는 얘기죠? 그렇죠? 두정: (멈춰서서 혼잣말로) 고결한 자만이 에베레스트에 오를 수 있다·……, 고결한 자라…….(쓴웃음) 에베레스트. 그런 게 있기는 한 걸까 (나간다.) 명일: (절망적으로) 잘 알겠습니다, 폐를 끼쳐 드려서 죄송합니다.(나가려다 멈춰서서) 연수야……, 너 정말 없는 거야? 명일이 나가자마자, 박수 소리와 함께 현란한 조명이 무대를 훑는다. 무대 중앙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선글라스를 쓴 신흥이 기타를 들고 마이크 앞에 서 있다. 신흥: 여러분 감사합니다. 다음에 들려드릴 곡은 지금의 저를 있게한 바로 그 노래입니다.20년 전 그러니까 제가 고등학교 다닐 때, 가수의 꿈을 가득 품고 며칠 밤을 새우며 코피를 쏟아가면서 만든 노래입니다. 제 입으로 말하기는 쑥스럽지만, 좋은 노래는 세월이 흐를수록 그 가치를 더해간다는 얘기가 있죠, 그게 바로 이 곡을 두고 한 얘기란 걸 요즘 들어 새삼 느끼게 됩니다. 자 그럼 눈을 감고 제 목소리에 취해 보시기 바랍니다. 제목은 “빌어먹을 인생.” 신흥 기타를 연주하기 시작한다. 단조롭고 유치한 느낌의 멜로디. 신흥: 인생이란 무엇일까 인생이란 무엇일까 그것이 뭔지 몰라도, 이건 아니야, 이건 아니야 산다는 건 무엇일까 산다는 건 무엇일까 각각의 빛을 받으며 세 사람 나타난다. 약통을 들고 있는 명일, 휠체어 위의 두정, 경기 중에 쓰러져 있는 신내. 신흥: 그것이 뭔지 몰라도 신내: 이건 아니야, 명일, 두정: 이건 아니야 신흥: 목적도 모른 채 공부를 하고, 의지와 상관없이 순위가 매겨지고 누구의 인생인데, 내 삶의 주인은 대체 누구야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니야. 모두: 이건 아니야. 간주. 두정 굳은 표정으로 한곳만 응시하며 생각에 잠겨있다. 명일: 전부 제 착각이었습니다. 여동생이 혹시나 하고 비밀번호를 쳤는데 열렸대요, 계정을 없앤다고 그러더군요, 그렇다고 앞으로는 메일 보내지 말라고……, 근데 비밀번호가 뭐였는지 아세요? ‘엠, 와이, 유, 엔, 지, 아이, 엘’이었대요. 명일, 제 이름이었어요.(허탈하게 웃는다.) 연수야 조금만 기다려 내가 갈게.(약병을 바라본다.) 신내: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어떡하지, 일어날 수가 없어, 오빠, 엄마, 아빠, 코치님……. 일어나 달려야 하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아요, 모두들 저만 바라보고 있겠죠, 고개를 들 수 없어요, 너무 무서워요. 신흥: 이른 아침, 아니 그건 해도 안 뜬 새벽이야. 흔들어 깨우며 하시는 말씀, 얼른 일어나, 얼른 일어나. 늦은 밤에, 아니 그건 달도 지는 새벽이야 지친 나에게 하시는 말씀, 공부 하다 자, 공부 하다 자, 조금만 더 자고 싶어요 제발. 잠도 못 자가며 난 무얼 하는 걸까. 누구의 인생인데, 내 삶의 주인은 대체 누구야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니야. 이건 아니야. 간주. 명일 결심한 듯 약을 꺼내 털어 넣는다. 신내는 여전히 그대로 엎드린 채다. 등이 들썩거린다. 두정, 휠체어에 브레이크를 걸고 수건을 감은 숟가락을 꺼내 입에 문다. 명일 쓰러진다. 두정, 있는 힘껏 일어나려 하지만 바닥에 쓰러지고 만다. 온힘을 다해 일어나려 한다. 신흥: 귓가에 맴도는 어머니 말씀. 일어나, 일어나, 어서 일어나 일어나, 일어나, 다 너를 위해 하는 말이야 인생이란 다 그런 거야, 좋은 말로 할 때 어서 일어나, 다 너 잘되라고 하는 말이야. 신내 서서히 일어나기 시작한다, 일어나려고 애쓰는 두정 신흥: 일어나, 일어나, 일어나, 일어나. 명일 갑자기 일어나 비명을 지르며 뛰쳐나간다. 명일: 아 배야! 눈물을 흘리며 일어난 신내, 이를 앙다물고 슬로로 뛰기 시작한다, 두정 간신히 몸을 지탱해 휠체어에 오른다. 신흥을 제외한 나머지 빛이 사라진다. 신흥: 인생이란 그런 거야 이유는 없어, 모두들 다 그렇게 살아 일어나, 일어나. 얼른 일어나서 밥 먹고 학교가 빌어먹을! 일어나, 어서 일어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기쁨에 차 인사를 하다가 갑자기 표정이 굳는다.) 여, 여보……. 무대 밝아진다. 신흥 머뭇거리는 사이 신내 천천히 등장한다. 신내: 오빠 신흥: 여, 여보 신내: 어쩐 일이세요? 신흥: 당신이 어떻게 여길……. 신내: 잘 왔어요, 그렇지 않아도 할말 있었는데. 신흥: 그러니까……, 그게 신내: 아무 말 마세요, 부탁이에요, 제가 얘기할 테니 듣기만 하세요. 신흥: 미안해, 정말 미안해. 신내: 사실 저 오빠 좋아했었어요, 하지만 이제 아니에요. 신흥: 그게 무슨 소리야? 신내: 말 그대로예요, 이젠 오빠를 좋아하지 않아요. 신흥: 여보, 그러지 마, 제발, 응? 내가 잘못했어, 내가 죽일 놈이야. 신내: 고마워요, 진작 얘기해 줬으면 좋았을 텐데, 정말 고마워요 그렇게 말해줘서, 저 꼴찌해서 이런 거 아니에요. 정말 오빠에 대한 마음이 식어 버려서 그런 거예요. 신흥: 내 뭐든 할 테니까, 제발 죽는다는 소리는 말아줘, 부탁이야. 신내: 그러지 마세요, 오빠답지 않아요. 신흥: 난 이미 끝난 놈이지만, 당신하고 우리 창신이 수진이는 아니잖아. 남편, 아버지 잘못 만난 죄밖에 없잖아, 여보, 그러니까 그런 소리 두번 다시 하지마. 신내: 괜찮아요? (사이) 저요? 보세요 전 아무렇지 않아요. 신흥: 많이 생각해 봤는데 그 방법밖에 없는 것 같아. 신내: 그래요, 그렇게 해요. 신흥: 이혼하면 놈들도 더는 못 괴롭힐 거야, 자리잡히는 대로 연락할게, 당분간은 어렵겠지만 생활비랑 애들 교육비는 최대한 노력해 볼게. 어떻게든 아빠 노릇은 하도록 할게. 미안해 여보. 신내: 그럼 저 이만 가볼게요, 오빠도 조심해서 가세요. 안녕……, 안녕.(자리를 옮긴다.) 신흥: 놈들이 위치추적을 해서 전화기 못쓰니까, 내가 연락할게. 신내: 오빠도 제가 좋대요, 우습죠? 기껏 마음 정리했는데 고백을 받다니……, 조금만 빨리 말해줬으면 좋았을 텐데, 하지만 괜찮아요, 저, 아무렇지도 않아요, 아무렇지도…….(사이) 저 끝까지 달렸어요, 포기할까도 생각했었는데, 그 순간 어디선가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어요,“일어나, 일어나! 어서 일어나서 레이스를 마쳐!” 목소리를 따라 나도 모르게 일어나서 다시 달리기 시작했어요, 사실 그 이후엔 아무 생각도 안나요, 어떻게 결승점을 통과 했는지, 어떻게 집으로 돌아 왔는지……. 정신이 들고 보니까 제 방에 덩그러니 앉아 초콜릿을 잔뜩 쌓아놓고 먹고 있더라고요, 그러다 우연히 거울을 봤는데 눈은 너무 울어서 퉁퉁 부어 있고, 입 주변은 초콜릿이 번져서 피에로처럼 되어 있더라고요, 순간 그 모습이 너무 우스워서 깔깔대고 웃어버렸어요, 한참을 그렇게 웃고 있는데 또다시 목소리가 들려 왔어요,“일어나, 일어나! 어서 일어나서 레이스를 마쳐!” 눈을 감고 목소리에 온 신경을 집중해서 들어 봤어요, 자세히 들어 보니까 제 목소리더라고요, 자기 목소리를 녹음해서 들어 보면 처음엔 자기 목소린 줄 모르잖아요, 그런 것과 비슷한 거였어요, 조금 익숙해지니까 알겠더라고요, 제 목소리인지. 신흥: 그랬어? 그거 다행이네. 알았어 그러니까 그렇게 하자고.(사이) 내 걱정은 하지마, 당신하고 애들이 힘들지 나야 뭐……. 그만 가봐, 수일내로 전화할게, 조심해서 들어가고 (손을 들어 가볍게 흔든다.) 여보! (사이) 아, 아니야. 애들한테 안부 전해줘.(사이. 혼잣말로) 잘 살아,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었는데 평소에 안해 버릇해서 힘드네. 신내: 근데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경기는 이미 끝나버렸는데, 레이스를 마치라니, 곰곰이 생각해 봤어요, 그게 무슨 뜻일까 하고,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신흥: 자! 이젠 나의 무대를 찾아가 볼까,(기타에게) 가자 로시난테, 갈 길이 멀다. 서두르지 않으면 날이 저문다고.(나간다.) 신내: 800미터 경기는 트랙을 2바퀴 도는 거예요, 작전도 중요하긴 하지만 페이스 조절과 순간의 판단력이 그 어떤 종목보다 중요해요, 처음부터 너무 빨리 달려도 안 되고 페이스 조절한다고 천천히 출발해도 안 되죠, 작전대로 달리다가도 상황에 따라 작전을 포기하고 감으로 스퍼트하는 경우도 많고요. 생각해 봤어요, 나는 지금 어디쯤 달리고 있을까.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달려온 것보다 달려야 할 트랙이 더 많이 남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낸다.) 알람이네요. 저 이제 그만 가봐야 해요, 중요한 일이 있거든요.(나간다.) 텅 빈 무대. 멀리서 전동차가 다가오는 소리가 점점 가까이로 들려온다. 소리는 멈추지 않고 무대를 가로지른 후 점점 멀어져 간다. 두정 훈련복 차림으로 빈 휠체어를 끌고 등장한다. 휠체어를 세우고 한두 걸음 떨어져 선다. 두정: (휠체어에 대고) 너한테는 안 된 일이지만, 위로해 주고 싶은 맘은 추호도 없다. 잔인하게 들려도 할 수 없어. 다 네 잘못이야, 한 번 더 점검했어야지, 한 번 더 살폈어야지. 그 정신 상태로 에베레스트에 올랐다면 너 때문에 동료들 모두 목숨을 잃었을 수도 있어, 너 이렇게 된 거, 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목숨과 다리를 바꿨다고 생각해, 어찌 보면 이렇게 된 거 너한테는 축복일지도 모른다, 이런 경우를 한두 번 본 게 아닌 인생 선배로서 하는 얘기니까 귀담아 듣는 게 좋아, 휠체어 생활도 익숙해지면 괜찮을 거야, 괜히 재활한다고 힘 낭비하지 말고 그 다리에 적응하는 편이 나을 거다. 나같이 바른 말을 하는 선배를 만난 걸 다행이라고 생각하라고. 이제 가봐야겠다, 돌아가서 합숙 준비를 해야 하거든, 들어가서 한 숨 자는 게 어때? (휠체어를 밀고 나간다.) 화장실 물 내리는 소리와 함께 두정이 나간 반대편에서 피골이 상접한 명일이 다리 힘이 풀린 채로 등장 명일: 이렇게, 이렇게 죽는 건가……. 정말 특이한 약이야. 고통스럽냐고 물었을 때 왜 그런 웃음을 지었는지 이해가 돼.(힘없는 웃음) 왜 죽으려고 했는지, 죽기로 결심한 내가 원망스러워지다니……, 아픈 배를 감싸고 변기 위에 앉아 있자니 살려달라는 말이 절로 나오더군요, 그러다 알게 됐어요, 연수를 잃었을 때보다 변기 위에서 더 고통스러워하고 있다는 것을요. 너무 아파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는데 웃음이 나왔어요, 눈물은 줄줄 흐르고 웃음은 멈추지 않고, 아래도 멈추지 않고 (힘없는 웃음) 제가 연수를 사랑하지 않았던 걸까요?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는데, 배가 아프기 전까지만 해도 더 이상 아픈 일은 없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던 걸까요? 멀리서 호루라기 소리 명일: 저 새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을 까요? (고개를 숙인다.) 서로 다른 곳에서 나오는 신흥, 신내, 휠체어 탄 두정. 각자 자리를 잡고 선다. 네 사람: 요 며칠 정말 힘들었어요. 세상에서 버려져, 혼자 어딘가에 버려진 것 같은 느낌, 세상의 모든 불행이 한꺼번에 나한테 달려든 것 같은 느낌, 빠져나오려 하면 할수록 더 깊이 빠져드는 진흙 구덩이에 빠진 것 같았죠. 두정, 신흥: 왜 하필 나야? 명일, 신내: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거지! 네 사람: 속으로 원망도 하고 고래고래 소리도 질러 봤습니다. 근데 변하는 건 아무것도 없었어요. 당연한 얘기죠, 고민하고 소리 질러서 일이 해결 된다면 이 세상에 힘든 사람은 한 명도 없을 테니까요. 그래서 결심했습니다. 신흥: (큰 목소리로) 가수가 되기로요! 두정, 명일: (바로 이어) 받아들이기로요 신내: (이어서) 다시 달리기로요. 네 사람: 많이 겁나고 솔직히 자신 없기도 하지만 어쩌겠어요? 일어나야죠, 신흥: (노래한다) 일어나, 일어나, 어서 일어나 네 사람: 변하는 건 하나 없지만 그렇다고 되돌릴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두정: 저, 결국 에베레스트에 오르게 되었습니다.(휠체어를 뒤로 돌리자 자동차 번호판 모양의 판에 ‘에베레스트’라고 쓰여 있다.) 썰렁했나요? 지하철이 들어온다고 알리는 방송이 나온다. 지하철이 다가오는 소리, 멈추는 소리, 문 여는 소리. 모두 한발씩 앞으로 자리를 옮긴다. 다시. 따사로운 봄볕, 아련한 음악. 그리고……. 명일, 고개를 숙인 채 힘없는 걸음으로 어디론가 걸어간다. 신내, 힘찬 걸음으로 어디론가 걸어간다. 두정, 주위를 둘러보더니 이내 어디론가 간다. 신흥, 기타를 정성껏 보듬으며 어디론가 간다, 다시 명일이 등장했다 사라진다. 다음엔 신흥, 신내, 두정 차례로 등장했다가 사라진다. 그들은 서로 인식하지 못한 채,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어느새, 각자 자리를 잡고 서 있는 네 사람. 모두들 잠시 망설이다. 각자 어딘가를 향해 이야기한다. 네 사람: (동시에) 저기……. 암전. 어둠 속에서 신흥의 목소리 신흥: (목소리) 드디어 완성했습니다.‘빌어먹을 인생’을 이을 평생의 역작.‘기타와 삼천원’ 조명을 받으며 멋지게 등장한 신흥. 노래한다. 신흥: 옛날 어느 시골 마을에 가수를 꿈꾸는 소년이 살았다네 매일 밤 꿈속에서 노래하던 소년은 매일이 너무나 행복했다네 그러나 어느 샌가 소년은 노래하는 꿈을 꾸지 않게 되었네 그렇게, 그렇게 어른이 되어 갔다네. 서울 하늘 아래 어딘가 가수를 꿈꿨던 남자가 살고 있다네 꿈을 잊은 채로 살아가던 남자는 하루가 너무나 힘들었다네 그러나 어느 순간 갑자기 노래하던 꿈을 떠올렸다네 그렇게, 그렇게 어른이 되어 갔다네 아, 가진 건 사랑스런 기타와 단 돈 삼천 원뿐이지만 세상 그 누구보다 행복하다네, 아, 가진 걸 모두 잃어 남은 것 하나 없어 불행하지만 나에겐 기타와 삼천원 있네, 기타와 삼천원, 기타와 삼천원. 기타와 삼천원, 기타와 삼천원. 세상에 내 것이 하나 없어도, 노래를 할 수 있어 행복하다네, 기타와 삼천원, 기타와 삼천원, 기타와 삼천원 있어 너무 행복하다네. 너무 행복하다네. 박수 소리에 몇 번이고 감사의 인사를 하던 신흥, 키스를 날리며 퇴장한다. 무대 한쪽에서 연수, 차분한 걸음으로 등장 어디론가 걸어간다. 태령, 꽃다발을 들고 환한 얼굴로 등장, 어디론가 걸어간다. 약장수, 전화기를 들고 등장, 상대가 받지 않는지 계속 버튼을 눌러대다가 퇴장한다. 다시 연수가 등장했다 사라진다. 다음엔 약장수, 태령, 차례로 등장했다가 사라진다. 그들은 서로 인식하지 못한 채,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어느새, 각자 자리를 잡고 서 있는 세사람. 연수: 그 사람을 처음 만난 건 약장수: 종로 5가입니다. 태령: 어찌 할 바를 모르겠더군요. 연수: 환하게 웃는 모습이 너무 멋졌어요. 약장수: 주로 자살하려는 사람들이 고객이죠. 혹시 필요하신가요? 태령: 네, 그녀를 사랑했거든요. 연수: 사랑했어요, 그래서 많이 미안했고요, 혼자 남겨두고 떠나서 약장수: 미안한 마음은 들지 않습니다. 태령: 그녀는 떠났지만 전 아직 그녀를 떠나보내지 않았습니다. 연수: 이제 떠날 거예요, 명일씨를 놓아주려고요, 마음속에서 서서히 사라질 거예요. 약장수: 그 약을 먹게 되면 죽을 각오로 살게 되죠, 태령: 각오는 되어 있습니다. 우선은 열심히 달리는 신내를 뒤에서 지켜보는 것부터 시작하고요 연수: 뒤에서 지켜본다는 거 그리 쉽지 많은 않더라고요, 많이 아파하는 모습을 보면서 아무것도 해주지 못한다는 것이……. 약장수: 그것이 문제죠, 부작용이 너무 심해요, 설사가 장난 아니거든요, 어떻게든 해결해 보려고 했는데 잘 안 되네요, 하하하. 세 사람 모두 정지. 두정이 휠체어를 밀고 들어온다. 무대 중앙에 휠체어를 놓고 나간다. 휠체어 홀로 빛을 받는다. 휠체어: 전 에베레스틉니다. 제 주인님이 붙여준 이름이에요, 전 어디를 가나 주인님과 함께 하죠,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라고나 할까요. 늘 인상을 찌푸리고 있던 주인님이 제게 이름을 붙여주고 난 뒤로 가끔이긴 하지만 웃는 모습을 보이시더라고요, 저는 그래서 제 이름이 좋습니다. 지하철 들어오는 소리가 들린다. 휠체어: 지하철이 왔네요, 못다한 얘기는 나중에 하기로 하죠, 저는 지금 지하철을 갈아타야 하거든요. 경쾌한 음악과 함께 암전. ■ 등장인물 명일(25세, 대학생) 신내(18세, 고등학생, 육상부) 두정(32세, 산악인) 신흥(38세, 샐러리맨)
  • [서울신문 신춘문예-희곡당선작]당선 소감

    무대가 있습니다. 관객이 있습니다. 노오란 조명이 들어옵니다. 배우는 크게 쉼 호흡을 한 다음, 자리를 박차고 그 안으로 뛰어듭니다. 그렇게, 연극은 시작됩니다. 그렇게, 작은 세상 하나가 꾸려집니다. 그렇게, 오늘도 꿈을 꿉니다. ‘꾸다’라는 말은 뒤에 도로 갚기로 하고 남의 것을 얼마 동안 빌려 쓴다는 말입니다. 저는 꿈이 없습니다. 그래서 매일매일 꿈을 꿉니다. 서른 해가 넘는 동안 한 번도 갚지 않고 무수한 꿈을 꾸어오기만 했습니다. 이제 그 꿈을 조금이나마 갚을 수 있는 발판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더 많이 꿀 생각입니다. 오롯하게 꿈을 갚기 위해 더 많은 꿈을 꿀 것입니다. 병마와 싸우고 계신 아버지, 당선 소식에 누구보다 기뻐하셨던 어머니께 먼저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부족함 많은 작품을 뽑아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 끊임없는 관심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던 여러 동료들, 글쓰기의 기쁨을 알게 해준 ‘자작´ 식구들, 그리고 정말 오랜 시간 탕자로 지내고 있음에도 넘치는 사랑을 쏟아주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김정용 ●약력 1976년 서울 출생,2000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연기과 졸업, 연극배우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풍수지리·주역 대가 장태상 공주대 교수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풍수지리·주역 대가 장태상 공주대 교수

    간밤에 붉은 돼지와 실컷 놀았다. 돼지는 헤어지면서 아쉬운 듯 “내꿈 꿔.”라고 했다. 실실 쪼개며 콧구멍이 벌렁벌렁거리는 모습이 못생겼지만 어찌나 귀여운지…. 정해년 새해가 ‘쨍하니’ 밝았다. 앵무새가 ‘부자 되세요.’라고 쫑알거린다. 어쩌면 올해에 가장 어울리는 말이다. 돼지해를 맞아 누구나 돼지꿈을 꿀 확률이 많기 때문이다. 돼지꿈이 돈된다는 얘기는 아마 한자로 돈(豚), 듣는 어감이 일단 좋지 않은가. 돼지 얘기를 약간 더하면,12지신 중 마지막으로 해(亥)이다. 오행으론 물(水)이며, 방향은 북쪽이다. 계절은 겨울이며, 색깔은 흑색이다. 성질은 지혜롭고, 숫자는 1과 6이다. 계절 중 10월에 해당한다.10월은 하늘과 땅 그리고 인간이 화합을 하기에 상달로 여겨 예부터 제천의식이 많다. 돼지는 또 다산(多産) 동물이므로 풍년을 기원했다. 이 대목에서 ‘올 한해 운세는 어떻게 될까.’라는 물음에 솔깃하지 않을 사람 어디 있을까. 특히 올해는 대통령 선거가 있으니 국운이 더욱 궁금해진다. 과연 누가 이 나라를 이끌어갈 것인지, 또 어려워진 경제사정은 좀 나아질 것인지, 집값은 어떻게 될지 등도 매우 궁금하다. 장태상(63) 공주대 교수(풍수지리학 전공)는 풍수지리와 주역의 대가로 알려져 있다.1970년 26세때 육임정의(六任精義)를 집필했고 2000년에는 국내 최초로 본격 현공풍수(玄空風水) 연구서인 ‘풍수총론’을 펴내 명성을 확고히 했다. 서울 양재동 ‘이산학당’에서 장 교수를 만났다. ●“대선까지 여당 곤경 계속” 자리에 앉자마자 그는 “나라에서 국민들한테 땅장사하고 집팔아먹는 경우는 우리나라밖에 없다. 이런 식으로 가면 종래에는 망하고 만다.”고 언성을 높인다.“정치인이나 선장(대통령)도 배가 그쪽으로 가면 안 되는 줄 알면서도 택할 수밖에 없는 이상한 형국”이라면서 이는 잘못된 서울의 터에서 비롯된다고 했다. 고사에 따르면 조선 건국때 무학대사와 권중화(權仲和)는 철원이나 신경(新京-현 서울), 신도천(新都川-현 신도안) 등 세곳을 답사하고 신도안을 가장 명당으로 꼽았으나 배극렴, 정도전, 하륜 등 당시 혁명주체 세력들의 주장에 밀려 서울로 정했다. 장 교수는 “문제는 바로 서울에 대궐터를 정할 때였다.”면서 “무학대사와 권중화는 현 사직공원 자리에 유좌묘향(酉坐卯向)을 놓아야 한다고 했지만 정도전 등은 남향을 우겨 현재의 경복궁터에 자리를 잡았다.”고 했다. 결국 서울의 터 경복궁은 자리도 가짜, 좌향도 가짜, 용맥도 난립해 정래(正來)하지 못하기 때문에 조선 500년은 백성이 아닌 정치가를 위한 정치를 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이어 “엉뚱한 데로 흐르는 정치이념의 배에 동승해 있기 때문에 몇몇 훌륭한 정치가가 있더라도 뱃머리를 바로잡지 못했다.”면서 작금의 나라상황도 조선시대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반백년도 안돼 두번씩이나 대궐이 전소되는 사례는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다고 비유했다. 때문에 행정복합도시 자리도 신도안으로 정했어야 마땅한데 이를 놓쳐 결국 국민들만 속인 셈이 됐다고 했다. 지금이라도 신도안으로 정하면 20∼30년내에 일본보다 더 잘 살 수 있는 나라가 된다고 주장했다. 국운에 대해서는 “지난 600년 통계로 보면 주역의 9운 중 우리나라의 경우 현재 8운에 해당하며 9운 다음에 이어지는 1운이 되던 해에 망하게 된다.”고 말했다.20년 기한을 1운으로 치면 180년마다 한번씩 돌게 되는데 오는 2023년까지가 8운이다. 또 2024년부터 2048년까지는 9운, 그리고 2049년부터 20년 동안 1운에 해당하는데 이때 국가의 큰 위기가 닥친다는 것.1864년 경복궁을 지을 당시 1운이었는데 결국 조선이 망하지 않았느냐고 반문하면서 “국회건물만 보더라도 아무런 의지처도 없이 덩그렁하게 있어 이상한 사람들이 들락거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치와 관련해서는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여당이 굉장한 곤경에 빠지고 민심은 더욱 악화될 운”이라고 했다. 국운을 점치는 주역의 태을수(太乙數)에 따르면 쳐들어오는 쪽이 객(客)이고 방어하는 쪽이 주(主)인데 객산(客算)이 30수로 주산(主算) 5수에 비해 월등히 높아 객산인 야당은 더욱 강해지고 주산인 여당은 아주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된다고 설명했다. 또한 여당은 바보여서가 아니라 바보짓만 골라서 하는 격이 더욱 많아지며 졸수만 두게 된다고 풀이했다.“손자병법에 보면 ‘패신(敗神)’에 홀린다는 말이 있듯이 올 대선 때까지 여당은 계속 곤란지경에 빠진다.”고 예고했다. ●“강골한 사람이 권좌 오를 것” 대통령 선거 얘기가 나오자 “반드시 객산에서 주인이 나온다.”면서 “현재 박근혜·이명박 두 예상 후보의 위치는 요지부동이며 사주로 봤을 때 박근혜씨가 좀 나은 편”이라고 했다. 또 다음 대통령은 교통문제를 해결해야 많은 표가 나올 것이라고 하면서 모 후보가 얘기하는 운하는 우리의 실정과 맞지 않으며 차라리 한강다리 넓히는 대책을 세우는 것이 낫다고 했다. 많은 국민들이 교통체증 때문에 울화증에 걸리다시피 한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아울러 지금 거론되는 인물 외에 새로운 인물이 나타날 기세는 아니며 노무현 대통령처럼 탁골(濁骨)이라도 강골(强骨)한 사람이 권좌에 오를 것이라고 했다. 예를 들어 박근혜씨는 귀골(貴骨). 이명박씨는 기골(氣骨)에 해당된다고 귀띔했다. 남북관계에 대한 전망을 물었다.“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사주에 있어 극귀(極貴)가 있어 권좌에 오르긴 했지만 2008년이 중요한 고비다. 사주에 의하면 그해에 운이 바닥나면서 2009년에 망하는 운이다.”면서 중요한 것은 김 위원장이 중국의 동북공정에 잘 대처하는 일이라고 했다. 중국의 속셈은 황해도, 함경도, 평안도의 땅까지 손에 쥐려는 것이며 2008년이면 이를 더욱 노골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반도의 통일은 중국과 타이완이 이루어진 뒤에나 가능할 것으로 내다봤다. 경제사정에 대해서는 “경제난으로 여당이 정치적 공박을 많이 당하며 서민의 주름살은 더욱 늘어날 것”이라면서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화될 것으로 내다봤다. 또한 올해는 풍해(風害)와 전염병이 많고 40대 이상인 경우 특히 심장마비를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정해년이 황금돼지해라고 한 것은 날조된 것입니다. 오히려 신해년이 황금돼지면 돼지지 정해년은 아무런 상관없지요. 그냥 붉은 돼지해라고 하면 됩니다. 다만 역사 이래 주요 인물들은 돼지띠와 뱀띠에서 많이 나왔습니다. 태조 이성계와 이승만 전 대통령이 돼지띠이고 박정희와 케네디가 정사년 뱀띠 출생입니다. 또 예수도 원래는 기사년(己巳年)생 뱀띠이지요.” ●중학생때 ‘풍수의 대가´ 되기로 결심 장 교수가 풍수지리에 관심을 가진 것은 선린중학교에 다니던 15세때. 개구쟁이에다 놀이를 좋아하던 그가 어느날 하숙집에 혼자 귀가하면서 문득 우리나라 최고의 풍수가가 되겠다고 마음 먹는다. 초등학교 시절 서당에 다니면서 논어를 익혀 일찍부터 한문에는 매우 밝았다. 19세가 되자 서울 태평로에 있는 한 중국서점에 들러 주역 등의 책을 한보따리 싸고 고향인 공주로 내려갔다. 당시 소문난 송인옥 선생을 찾아 주역을 공부하기 시작했다.22세때 명리학과 주역을 터득하고 이듬해 ‘역술인’ 간판을 내걸었다. 생각보다 많은 손님들이 찾아왔고 그의 명성이 자자해졌다. 그러던 38세때 처갓집이 미국 뉴욕으로 이민가게 되자 함께 떠났다. 현지에서도 주역강의를 계속했다.1986년 어머니가 세상을 뜨자 다시 한국에 오게 됐고 2002년부터 공주대 대학원에서 초빙을 받아 강의를 하게 됐다. 현재 경기도 용인 동백지구 아파트에 큰아들과 함께 사는 그에게 “집 자리는 어떠냐.”고 물었더니 “축좌미향, 즉 서남향”이라고 하면서 풍수지리학상 좋은 위치라고 했다. “올 한 해는 그렇게 썩 좋은 운이 아니니 처변불경(處變不驚), 즉 어떤 상황이 닥쳐도 놀라지 말고 담담하게 대처해야 합니다. 아울러 집을 장만하려면 집값에 연연하지 말고 배산임수(背山臨水)와 서·동남향인 건좌(乾坐)·해좌(亥坐)이면 좋습니다. 올 한해는 다들 행복한 부자되세요.” km@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44년 공주 출생 ▲66년 자평명리학 터득 ▲70년 관악산에서 육임정의 집필, 방한암 스님의 수제자 장성해 스님을 만나 풍수지리 수업 ▲80년 경희대 한의대 현무회 회원에게 주역 강의 ▲82년 뉴욕 한국일보 주역 연재. 뉴욕 소재 원각사에서 2년간 주역 강의 ▲88년 김구암 선생의 태을수 전수받음 ▲96년 정신세계원에서 2년간 주역 및 풍수 강의 ▲2000년 국내 최초 현공풍수 연구서 ‘풍수총론’ 출간 ▲01년 퇴계선생 성학십도 역해서 출간 ▲02년 한국전통문화센터에서 주역 및 풍수, 기문, 육효 강의. 현재 국립공주대학교 대학원 교수
  • [사설] 중소기업 못 크는 나라에 희망은 없다

    중소기업들은 지금 내수부진에다 환율 급락과 고유가, 원자재값 급등으로 경영 사정이 말이 아니다. 하루에 수백 곳이 문을 닫는가 하면, 기업생명을 근근이 이어가는 곳이 수두룩하다. 중소기업을 창업해서 성실하게 일하면 중견기업으로 발돋움하고, 또 대기업으로 성장하던 기업발전 모델은 옛 이야기일 뿐이다. 중소기업이 대기업으로 성장할 확률이 0.01%라니 말 그대로 만에 하나만 겨우 대기업의 장벽을 뚫는 셈이다. 경제의 주춧돌에 비견되는 중소기업들이 이렇게 스러지면 나라경제에 미래와 희망이 없다는 의미일 것이다. 중소기업의 경영환경이 어려워진 데는 자금·전문성 부족과 취약한 기술력 탓이 크다. 그러나 정부의 정책부실과 대기업의 상생정신 결여도 무시 못한다. 지금처럼 입에 풀칠하기조차 어려운 상황에서는 예전의 삼성·현대·LG처럼 중소기업으로 시작해서 대기업으로 도약하는 꿈은 아예 꿀 수 없다. 그렇다고 손놓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중소기업은 고용증대와 지역경제 발전, 중산층 형성 등에 공헌도가 높다. 중소기업 육성의 당위성이 누차 강조된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동안 백가쟁명식 해결책이 제시됐지만 문제는 실천이다. 삼성전자가 지난 3년동안 중소협력사의 취약분야에 4000억원을 지원해서 상생모델을 이끌어낸 것은 좋은 본보기다. 이렇게 대기업이 신경쓰면 중소기업은 얼마든지 소생할 수 있다. 정부와 대기업이 중소기업에 자금과 경영전문화를 적극 도와주면 우리도 머잖아 타이완처럼 ‘중소기업 천국’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마침 내일 대통령과 재벌총수, 중소기업 관계자들이 모여서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보고회의’를 여는 만큼, 형식보다는 실행 가능한 대책이 집중 논의되길 기대한다.
  • [어린이책꽂이]

    ●이여도로 간 해녀(박재형 지음, 에스카 그림, 베틀·북 펴냄) 해녀들의 삶을 다룬 동화. 해녀들은 오직 가정을 위해 살아온 소박한 어머니였으며 일본인들의 착취에 힘을 모아 항거한 집단이기도 했다. 일제강점기 여자들이 힘을 모아 맞서 싸운 유일한 항쟁인 ‘세화리 해녀 항쟁사건’을 소재로 했다. 테왁망사리(해녀들이 타는 뒤웅박과 해산물을 넣는 그물주머니를 합한 말), 정낭(대문 구실을 하는 나무), 상군해녀(물질을 잘 하는 해녀), 톨파리(솜씨가 형편없는 해녀)등 제주도 말도 소개한다.8500원. ●알고 보면 더 재미있는 곤충 이야기(김태우 등 지음, 공혜진 등 그림, 뜨인돌어린이 펴냄) 소똥을 굴리지 않는 뿔쇠똥구리, 꿀 대신 진딧물을 먹는 바둑돌부전나비, 제주도에만 사는 두점박이사슴벌레,‘소를 죽이는 파리’라는 뜻을 지닌 체체파리 등 신기한 곤충들의 이모저모를 소개한다. 카메라 렌즈로는 담아낼 수 없는 미세한 부분은 세밀화로 표현해 생동감을 더해 준다.9000원. ●정글탐험(지니 존슨 지음, 박윤경 옮김, 스콜라 펴냄) 영국 킹피셔 지식탐험 시리즈 가운데 한권. 정글이라고 불리는 열대우림은 지구상에서 가장 신기한 곳이다. 언제나 덥고 축축한 정글의 숲은 그 넓이가 지구의 6%밖에 되지 않지만 세계 동물과 식물종의 반 정도가 살고 있다. 썩은 고기 냄새를 풍기는 지름이 1m나 되는 거대한 라플레시아꽃, 개미들의 천적인 왕개미핥기 등 정글의 동식물도 다룬다.1만 2000원.
  • [HAPPY KOREA] 강원지역 4곳 주민활동 탐방

    [HAPPY KOREA] 강원지역 4곳 주민활동 탐방

    과거를 답습하면 미래는 없다. 같은 맥락에서 농촌이 변해야 한다는 사실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농촌이 변화하려면 일거리의 ‘양’을 늘리거나, 생산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부가가치인 ‘질’을 높여야 한다. 그 밑거름은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노력이다. 이같은 변화의 과정을 만들어가고 있는 강원도 산골마을들을 찾았다. ■ “농한기 따로 없어요” “농한기가 뭐이래요?” 겨울은 한가한 농한기가 아니냐는 질문에 순박함이 물씬 풍기는 강원도 사투리로 농담반, 진담반 이렇게 되묻는다. 강원도 정선군 정선읍 용탄2리 달뜨락마을 주민들과 평창군 봉평면 흥정리 펜션마을 주민들의 겨울은 농번기 이상으로 바빴다. ●달뜨락마을 주민, 영농자금 ‘소 닭 보듯’ 달뜨락마을은 몇 해 전만 해도 이맘때가 마땅한 할 일이 없는 농한기였다. 마을 주민들의 소득원 가운데 80%는 콩이다. 콩은 5∼6월에 파종해 9월이면 수확이 끝나기 때문에 10월부터 이듬해 이른 봄까지는 별다른 일거리가 없었다. 해발 1500m가 넘는 가리왕산 자락에 위치한 산촌마을이라, 겨울철에는 땔감을 구하러 산을 오르는 게 고작이었다. 하지만 지난 2003년 마을 주민들이 공동으로 ‘달뜨락’이라는 상표를 만든 뒤 상황은 180도 달라졌다. 고철호 당시 이장은 “일반적으로 농촌은 농번기 6개월은 일하고, 농한기 6개월은 쉰다.”면서 “농한기에 술에 빠지거나 씀씀이가 커지게 마련이라, 일거리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지금은 수확한 콩으로 11∼12월에 메주를 쑨다.2월에는 메주로 간장과 된장 등 장류를 담근다. 메주와 장류는 마을 공동생산·판매시설에서 달뜨락이라는 상표로 판매되며, 수익금은 주민들이 일한 만큼 나눠 갖는다. 예전에는 콩 80㎏ 1가마를 내다팔아 20만원 정도를 버는 데 만족했다. 하지만 지금은 콩 1가마를 메주로 팔면 60만원, 장으로 판매하면 90만원으로 각각 소득을 높일 수 있다는 비결을 터득했다. 농사일이 한가해지는 여름철에는 도시민들을 위한 체험프로그램을 운영, 매년 5000명 정도가 마을을 찾는다. 마을 근처에는 국내 두 번째로 매장량이 많은 정선탄전이 있다.80년대에는 달뜨락마을을 포함한 인근 5개 마을에 3000명 가까이 살았지만, 탄전이 폐광된 현재 주민 수는 채 1000명도 안 된다. 유독 달뜨락마을은 최근 10가구 30명가량 늘었다. 농한기, 농번기 구분이 사라진 덕분이다. 고씨는 “우리 마을에 배정되는 연간 1억원의 영농자금을 예전에는 서로 빌리겠다고 다툼이 일었지만, 지금은 절반 이상 남는다.”면서 “마을의 소득이 높아지면서 돈을 빌려가라고 먼저 제안하는 금융기관도 있지만, 오히려 주민들이 관심조차 갖지 않을 정도”라고 귀띔했다. 달뜨락마을 주민들은 현실에 만족하지 않는다. 마을 공동기금을 활용해 ‘생약초체험관’을 짓고 있다. 지천에 널려있는 황기, 더덕, 도라지 등 약초와 산나물을 새로운 소득원으로 만들겠다는 취지다. ●펜션마을 주민,“시골에서 농사만 지어야 하나요?” 흥정계곡을 끼고 6㎞ 구간에 길다랗게 위치한 흥정리 펜션마을은 옥수수와 감자, 배추 등이 주산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마을 122가구 가운데 ‘손에 흙을 묻히지 않는’ 농가가 전체의 40%가 넘는 49가구다. 더이상 농사 지을 힘이 없는 노령층이 많아서가 아니다. 오히려 40세 미만 젊은층이 전체 주민의 절반에 육박한다. 산골짜기와 계곡 사이사이에 농업기반 시설을 늘리는 노력 대신, 흥정계곡이라는 자연자원과 연계한 펜션 등 체험관광시설을 확충하는 데 주력한 결과다. 현재 마을에는 모두 80여개 펜션이 자리잡고 있다. 모양과 형태도 제각각이어서 전국적으로 손에 꼽히는 펜션단지로 자리잡고 있다. 하룻밤에 600여 가족이 동시에 머물 수 있다 보니, 지난해 방문객만 17만명에 이른다. 김형일 이장은 “주민들의 평균 소득은 연간 2000만원 안팎이지만, 상위 20%의 소득은 5000만원 이상”이라면서 “상위 소득자들은 농업과 펜션을 겸업해 사계절 쉬지 않고 일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다만 주민간 소득격차가 심해지고 있어 이를 해결하는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고민 중”이라고 덧붙였다. 글 사진 정선·평창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부가가치 높였어요” “부가가치를 높여야죠.” 인구와 소득 감소로 신음하는 우리 농촌의 살 길은 없느냐는 질문에 대답은 의외로 명쾌하고 간결했다. 강원도 횡성군 둔내면 삽교1리 산채마을 주민들과 홍천군 화촌면 외삼포2리 산초울마을 주민들이 몸으로 실천하는 농촌의 나아갈 방향을 들여다봤다. ●산채마을 주민,30~40대 평균소득 7000만~8000만원 산채마을은 당초 해발 700m 고지에 자리잡은 화전민 마을이었다.60∼70년대 정부의 화전민 이주정책으로 250가구 1500명이던 주민 수는 37가구 110명으로 급감했다. 위기를 기회로 만든 것은 주민들이었다. 주민 수는 줄었지만, 고랭지 배추와 감자 등을 재배했던 농지는 고스란히 남아있었던 것. 지금은 농가당 경지면적이 평균 2만∼3만평에 달해 주민 모두가 ‘만석꾼’인 기업농 형태가 됐다. 1999년부터는 마을 공동으로 산채작목반을 구성, 산나물을 심기 시작했다. 마을 주변 산에서 생산되는 나물만 취나물과 곤드레 등 13종에 이른다. 더덕과 꿀, 오미자 등 철마다 생산되는 농산물이 수십종에 달할 만큼 생산품이 다양해졌다. 감학석 당시 이장은 “농촌도 변화하는 환경에 대응해 부가가치를 높이려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렵다.”면서 “주민들끼리 협의를 통해 품목별 생산량을 자율 조정하기 때문에 가격이 폭락해 울상 짓는 일도 줄어들었다.”고 강조했다. 마을이 명성을 얻고 체험시설을 갖추자, 방문객도 증가했다.1999년 당시 한 명도 찾지 않던 이곳에 지난해는 1만명이 다녀갔다. 김씨는 “방문객이 늘면서 직거래가 가능해져 생산자와 소비자가 모두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윈-윈’이 가능해졌다.”면서 “특히 산나물은 마을 주민들이 공동으로 설립한 ‘태기산채영농조합’에서 적정 가격으로 일괄수매하기 때문에 중간도매상들이 가격을 낮추고 폭리는 취하는 횡포도 차단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주민들의 평균 소득은 3000만원 안팎이다. 마을 주민들에게 균등 분배하는 체험마을 운영수익 등 가구당 500만원 정도의 농업외소득도 포함돼 있다. 특히 30∼40대 젊은층의 평균 소득은 7000만∼8000만원을 웃돈다. 마을 땅의 30% 정도를 외지인이 사들였을 정도로 여느 농촌의 ‘팔리지 않는 땅’과도 거리가 멀다. 김씨는 “마을의 발전된 모습을 벤치마킹하기 위해 찾는 사람들도 부쩍 늘었다.”면서 “하지만 마을이 바뀌기까지 주민들이 어떠한 노력을 기울였는지를 배워가야 자신들에게 어울리는 발전 방향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산초울마을 주민,“생산은 필수, 가공도 필수” 산초울마을은 지난 3월 마을 공동으로 발아현미 작업장을 건립했다. 발아현미는 영양소가 풍부할 뿐만 아니라, 발아과정에서 유익한 효소도 생성되기 때문에 친환경 농산물로 떠오르고 있다. 발아현미는 현재 전국적으로 10여곳에서만 생산된다. 농민 입장에서는 굳이 생산물을 바꾸지 않아도 소득을 끌어올리는 수단이 된다. 일반쌀은 80㎏ 한 가마당 16만원 선이지만, 친환경재배를 통해 현미로 팔면 24만원 정도를 받을 수 있다. 현미를 발아시키면 가격은 70만원으로 껑충 뛰어오른다. 주민 최철수씨는 “앞으로는 발아현미를 이용한 가공식품에 대해서도 연구할 계획”이라면서 “다만 판로 확보에는 아직 어려움을 겪고 있는 만큼 외부의 도움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산초울마을은 갈수록 늘어나는 노인층과 휴경 농지를 각각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묘안’도 짜냈다. 주민 330명 가운데 3분의1 정도인 65세 이상 노인들이 공동으로 휴경 농지를 경작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상섭 노인회장은 “농사를 안 지으면 농지도 흉물이다.”면서 “수익금은 노인회 운영기금 등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글 사진 횡성·홍천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지방시대] 희망심는 전남 양돈사업

    [지방시대] 희망심는 전남 양돈사업

    서민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생삼겹살의 인기를 등에 업고 고공 비행하고 있는 돼지값은 지난 10년 동안 농촌경제의 버팀목이 돼왔다.2007년 ‘황금 돼지해’가 밝아오면서 오염이 덜 된 청정지역 전남의 양돈사업 전망도 덩달아 밝다. 돼지농사의 승패를 판가름 하는 새끼돼지 폐사율의 경우 수도권은 40∼50%를 웃돌지만 전남은 30%를 밑돌기 때문이다. 전남지역에서 돼지 1000마리 이상을 기르는 310가구의 전업 양돈농가가 돼지해의 희망주자이다.1만마리 이상을 기르는 농가는 웬만한 중소기업체 사장이 부럽지않다. ●양돈업은 돼지해의 희망주자 돼지농사 10년 만에 부와 명예를 거머 쥔 강인규(51·전남 나주시 반남면 청송리 청송양돈)씨. 돼지 1만마리를 길러 연 매출 40억원을 올린다. 돼지꿈을 자주 꾸는 탓인지 2002년 이후 연거푸 시의원에 당선됐다. 청송양돈은 1만 5000평 부지에 300평짜리 축사 11동으로 이뤄져 있다. 나주에서 손꼽히는 규모의 양돈가이다. 강씨가 한 달에 벌어들이는 돈은 3억 1200만원정도. 마리당 26만원씩 한 달에 1200마리를 판 값이다. 새끼를 180일 동안 키우면 육질이 가장 좋다는 110㎏이 된다. 반면 나가는 돈은 한 달에 2억 7000만원. 사료값 2억원(500t)에 인건비(13명) 2500만원, 약품비·전기료·운영비 등 3500만원, 톱밥구입비 1000만원 등이다. 이것저것 다뺀 4200만원이 순수익이다. 도내에는 강씨같은 부농이 상당수다. 특히 무안군에서 자수성가한 돼지부자 박천재(50·성아농장)씨는 양돈농가에겐 선망의 대상이다.1980년 일로읍 감돈리 고향에서 새끼돼지 10마리로 시작해 지금은 청계면, 현경면 3곳으로 농장을 늘려 3만여마리를 기른다. 변변찮은 학력이지만 30년 동안 고집과 뚝심으로 무장한 외길 승부로 보란 듯 우뚝섰다. 매달 2500∼3000마리를 출하해 줄잡아 연간 매출액이 100억원을 웃돈다. ●매주 목요일은 단체 출산일 나주 청송양돈의 새끼를 낳는 분만사(2동)는 목요일이면 귀청이 따가울 정도로 시끄럽다. 어미돼지의 출산통과 새끼돼지의 ‘꿀∼꿀합창’때문에 정신이 혼미하다. 임신한 어미돼지 900마리 가운데 40마리가 한꺼번에 새끼를 낳는다. 마리당 10∼12마리씩 하루 평균 400마리가 세상에 나온다. 강씨는 “인공수정 때 출산 날짜를 맞추고 분만일이 다가오면 약물주사로 분만을 유도한다.”고 말했다. 이렇게 해야 과학적인 관리(사육)와 출하가 가능하다고 한다. 그는 “새끼들은 출산 후 3일이면 힘 센 순서대로 젖이 잘 나오는 가슴 앞쪽부터 젖꼭지 임자가 정해진다.”고 웃었다. ●모두 실패하고 강씨만 생존 강씨가 돼지농사에 뛰어 든 것은 1992년. 이 때 강씨는 반남농협 직원으로 일하면서 현금 5000만원을 출자했다. 동업자들과 함께 축산발전기금 22억원을 받아 어미돼지 200마리를 사고 축사도 지었다. 그러나 1997년 외환위기가 닥쳤다. 달러화 폭등으로 수입곡물인 사료값이 폭등했다. 기존 빚에다 밀린 사료값 8억원, 약품비 2억원 등 10억원이 더해졌다. 함께 시작한 12농가 중 결국 9농가가 손을 들고 떠났다. 이듬해 나머지 3농가도 포기하면서 강씨만 남았다. 자그마치 빚이 32억원(연리 5%)에 사료값도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위기를 기회로 경영합리화만이 살길이라고 믿은 강씨는 어미돼지 960마리를 800마리로 줄였다. 직원들 급여도 깎았다. 그러나 우려와는 정반대로 외환위기로 소비자들이 돼지고기를 선호하면서 소비량이 급증했다. 돼지값도 덩달아 올랐다. 지난해에는 사상 최고치인 한마리(110㎏)당 30만원을 호가했다. 마리당 8만∼9만원이 남는 그야말로 노다지 사업이었다. 수태율(임신율)과 분만율을 높이고 새끼돼지가 질병에 감염되지 않도록 보살펴 생존율을 높이자 매출액이 쑥쑥 늘었다. 수태율은 95%, 분만율 90%, 출산에서 판매까지 80%도 어렵다는 출하율이 88%를 기록중이다.2000년 5월 빛이 보였고 2002년부터 안정궤도에 들어섰다. 지금 빚은 저리(1.5%)의 정책자금 18억원정도로 큰 부담이 없다. 강씨는 “치사율 30%로 백신이나 치료제가 없는 서코바이러스(PMWS) 때문에 사육두수가 자동으로 조절돼 돼지값은 큰 변동이 없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돼지농사 미래는 밝다 돼지의 임신 기간은 114일. 어미돼지는 새끼를 낳은 지 5일만에 다시 발정한다. 일년이면 어미돼지 1마리가 2∼3회 출산에 대개 20마리를 낳는다.5년 동안 100마리 정도 새끼를 낳으면 도태시킨다. 때문에 돼지농사는 자금회전이 빨라 수익성이 좋다. 국내 소비자들은 냉동이나 냉장된 수입산보다 생삽겹살을 선호한다. 그래서 판로는 트여 있는 셈이다. 돼지는 출하 1개월 전에는 항생제를 쓰지 않는 안전식품이다. 도축시 항생제 잔류검사에 걸리면 출하정지 3개월을 먹기 때문이다. 강씨는 주변 농가에 새끼돼지를 분양하고 기술교육에도 앞장선다. 돼지농사는 초기투자 자본이 적잖아서 뛰어들기 힘들지만 시설임대나 차츰 규모를 늘려가면 정말 매력있는 사업이란다. 강씨는 “젊은이들이 도시로 나가지 않고 5000만원을 투자해 2∼3년 동안 돼지를 기르면 길이 보인다.”면서 양돈업 진출을 적극 권유했다. 또 “황토 먹인 기능성 돼지를 생산하고 광주 등 대도시에 직판장을 열어 소비자들 곁으로 한발짝 다가 가겠다.”고 다짐했다. 나주 남기창기자 kcnam@seoul.co.kr ■ “돼지배설물 비료로 월 1000만원 수입” 청송양돈의 김재섭(46)농장장은 올해로 28년째 돼지를 기르는 돼지박사다. 돼지 울음소리만 듣고도 어디가 아픈지, 열이 나는지 알 정도이다. 농장 사람들은 “김씨는 모돈(씨받이 어미돼지) 900마리의 얼굴을 전부 기억하고 있다.”고 치켜 세운다. 종돈 선정에서 인공수정, 사육관리, 출하까지 모두 알아서 한다. 인공수정과 출산에는 그의 실력을 뛰어넘을 사람이 없다. 김씨는 “지금껏 경험으로 한 번에 가장 많은 새끼를 낳은 돼지는 23마리였다.”고 했다. 하지만 어미돼지는 젖꼭지가 14개여서 더 이상의 새끼를 낳으면 다른 어미에게 양자로 보낸단다. 단 돼지 후각은 사람보다 훨씬 예민해서 양자 보낼 때는 입양한 어미돼지의 오줌을 꼭 묻혀서 속여야 한다고 했다. 김씨에 따르면 돼지 배설물도 돈이다. 돼지 배설물을 톱밥에 섞어 3개월 가량 발효시키면 영양가 높은 거름이 된다. 돼지 배설물은 사료에 미생물을 첨가해 먹이기 때문에 냄새가 거의 나지 않는다. 어미돼지가 하루에 먹는 사료는 3㎏. 이 가운데 60%인 1.8㎏는 배설물이 된다. 요즘처럼 기온이 떨어지면 체온보존을 위해 사료를 더 많이 준다. 청송농장에서 나오는 배설물은 월 평균 500여t. 다달이 1000만원의 목돈이 된다. 나주 남기창기자 kcnam@seoul.co.kr
  • [데스크시각] 경제자유구역에 다녀와서/손성진 경제부장

    지난 주말 다녀온 인천경제자유구역(IFEZ)은 야경이 제법 화려해 보일 만큼 공사가 착착 진행중이었다. 고층 아파트들은 이미 완공돼 입주가 끝나 있었고 컨벤션센터를 비롯한 건물들도 쑥쑥 올라가고 있었다. 그러나 겉만 그렇지 속내는 매우 복잡했다.IFEZ측의 브리핑을 듣고는 몇가지 의문스러운 생각을 하게 됐다. 우선, 왜 기반시설사업비만 14조원 이상의 자금이 소요되는 거대한 사업의 추진을 지방자치단체가 주도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동북아 물류, 비즈니스, 관광의 허브’라는 IFEZ의 목표는 분명 국가적 차원이다. 마땅히 국가가 이끌어 효율적으로 사업을 진행하는 게 맞다. 도로 등 기반시설 건설비의 50%를 국고에서 지원하게 돼 있지만 실제 지원 비율은 겨우 5∼15%에 그치고 있다고 한다. 국가는 거의 외면하고 있었다. 또 하나는 어차피 완성돼야 할 국가적인 사업이 정부의 정책 방향에 휘둘리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이 사업은 김대중 정부 시절 입안되고 법안이 마련됐다. 그러나 참여정부가 들어서면서 수도권 억제정책을 펴는 동시에 지방분권을 강조하면서 뒷전으로 밀려나게 되었다. 알다시피 참여정부는 행정수도와 지방의 혁신도시 정책 등을 통해 지방 살리기에 주력해 왔다. 때문에 수도권에 있는 경제자유구역, 즉 경제특구에는 지원을 소홀히 한 것으로 보인다. 일종의 레임덕 현상도 이 사업에서 벌써 나타나고 있었다. 대통령도 관심밖인 사업이라서 이미 이 정부에서는 국가가 적극적으로 주도하기는 어렵다는 인식을 관계 공무원들은 하고 있는 듯하다. 결국 이런 문제점들의 저변에는 잘못이라면 잘못인 정부의 시각이 자리잡고 있다.‘특구=특혜’라는 인식이다. 이곳에 입주하는 국내외 기업은 부지 사용과 세금면에서 혜택을 받는다. 이것을 특혜라면서 색안경을 끼고 보고 있다. 경제자유구역의 궁극적인 목적은 외국의 선도산업체를 유치해 국내에서 고용을 창출하고 그들의 선진산업 기술과 시스템을 우리나라가 보고 배우자는 데 있다. 세계는 경제자유구역의 시대로 가고 있다. 중국이 시장경제 체제로 빠르게 변화할 수 있었던 데는 올해 26년을 넘긴 선전, 주하이, 샤먼, 하이난, 산터우 등 경제자유구역이 견인차 역할을 했다. 덩샤오핑의 주도로 중국은 이 도시들을 필두로 ‘죽의 장막’을 열어젖혔다. 인천경제자유구역도 중국의 급속한 성장에 위기감을 느껴서 대응책으로 나온 것이다. 이런 배경에서 선·후진국을 막론하고 세계 각국은 산업과 무역의 중심도시(허브)를 키우고 있다. 두바이나 네덜란드, 인도네시아 등이 그런 국가들이다. 그렇다면 경제자유구역을 일종의 특혜로 간주하고 중앙정부가 손을 놓고 있는 것은 판단 착오라 아니할 수 없다. 그것이 레임덕 때문이라면 더욱 큰 문제다. 경제자유구역 사업은 2020년까지 지속해서 추진해야 할 국가적인 사업이다. 그 사이에 정권이 두세번은 더 바뀐다. 정권의 가치 기준과 판단에 국책사업의 운명이 좌우된다면 국가 전체로도 큰 손해다. 외국산업과 자본을 유치하려면 달콤한 ‘꿀’을 주지 않으면 안된다. 왜 그들에게 ‘시혜’를 베풀어야 하느냐고 묻는 것은 국수주의적인 생각이다. 꽃이 나비에게 꿀을 주고 생명의 연속성을 이어가듯이 외국인들에게 잠시 베푸는 혜택은 장기적으로 우리의 생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정부는 지금부터라도 인천경제자유구역에 대한 정부 차원에서 관리하고 감독할 체제를 갖추고 규제 완화책을 강구해야 한다.7일 정부가 경제자유구역의 특별지방자치단체 전환 근거를 마련하는 등의 개선책을 내놓은 것은 늦었지만 잘한 일이다. 세계적인 인천공항과 영종도라는 천혜의 관광자원이 어우러진 인천경제자유구역의 조건은 타국보다 월등하게 좋다. 열대 사막으로 외국인들을 불러 모으고 있는 두바이의 지혜를 배워야 한다. 손성진 경제부장 sonsj@seoul.co.kr
  • ‘보물찾기’ 삽화 유기훈씨 성공기

    ‘보물찾기’ 삽화 유기훈씨 성공기

    ‘오늘따라 그림이 잘 풀리지 않는다. 아내와 함께 저녁을 먹은 뒤 산책을 했다.’ 30년 전 한 초등학생이 ‘20년 후의 내 모습’이라는 주제로 수업시간에 발표했던 글이다. 반 전체가 웃음바다가 됐지만 소년은 꿈을 버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산문집 ‘연탄길’로 유명한 이철환(45)씨의 신작 ‘곰보빵’ ‘보물찾기’의 그림을 그린 일러스트레이터 유기훈(38)씨 얘기다. 가난 때문에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미술학도가 꿈을 이뤄내기까지의 인생 역정이 그의 작품이 실린 책 내용만큼이나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빚쟁이가 학교까지 찾아올 정도라 미술 공부는 꿈도 꿀 수 없었습니다.” 유씨는 군인이었던 아버지가 전역 후 벌인 사업이 망하는 바람에 고교 2학년 때 학교를 그만뒀다. 중학생이었던 여동생마저 공장에 다닐 만큼 힘들었다. 양파 장사를 하면서 대입 검정고시를 치렀지만 미술학원은 꿈도 못 꿨다. 당시 일반 입시학원 종합반 학원비는 6만원 정도였지만 미술학원은 20만원 안팎이었다. 그래도 꿈을 버릴 수는 없었다. 장사해서 번 돈을 쪼개 데생 연습용 아그리파 석고상을 샀다.“미대는 말 그대로 꿈이었지만 그래도 뭔가 준비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죠. 장사를 마치고 집에 오면 늘 데생 연습을 했습니다.” 이런 모습을 본 작은아버지가 군대 후배인 이은우(50·고도미술학원장)씨를 소개했다. 당시 서울 논현동에서 막 미술 입시학원을 시작한 이씨는 학원비를 5만원만 받기로 하고 유씨를 가르치겠다고 약속했다.“당시 학원비는 작은아버지가 내주셨는데 이 선생님은 매월 그걸 저한테 재료비며 다른 입시학원 단과비 등록에 쓰라고 돌려주셨습니다.” 이씨는 금전적인 도움 외에 시간이 날 때마다 유씨를 불러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그는 홀로 공부하는 다른 학생들에게도 무료로 미술을 가르치고 다른 공부 학비까지 대줬다. 그 중에는 이름만 대면 알 만한 국내 유명 의류업체 디자인실장도 있다.1년 넘게 이씨의 도움을 받은 유씨는 홍익대 미대에 합격했다. 지난 28일 유씨는 이 원장을 찾았다. 함께 도움 받았던 친구와 5년 전 찾은 이후로 처음이었다.5년전 그때는 자기 그림을 들고 출판사를 전전하며 일감을 달라고 통사정 하던 시절.‘다음에는 꼭 좋은 모습으로 뵈어야지.’라고 마음 먹었고 그렇게 한 자신과의 약속을 지켰다. 선생님은 제자를 보며 “이제 네가 길을 찾았구나.”라며 흐뭇해했다. 하지만 “내가 뭘 했다고 이러는지 모르겠다. 학원이라는 게 영리를 추구하는 곳이긴 하지만 교육이 먼저라는 생각을 실천한 것밖에 없다.”며 말을 아꼈다. “선생님이 아니셨다면 30년 전 미술가를 꿈꾸던 소년은 지금도 양파를 팔고 있었을 겁니다.” 아무리 작은 도움일지라도 받는 사람에게는 그게 전부가 될 수 있다. 그 소중함은 유씨의 가슴 속에서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