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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상익의 사진으로 세상읽기] 독서의 추락

    [박상익의 사진으로 세상읽기] 독서의 추락

    몇 해 전 무궁화호 열차 안. 앞자리의 승객이 스마트폰을 보면서 소리 없이 손짓을 열심히 하고 있었다. 뭔가 하고 지켜봤더니 영상통화를 하면서 수어로 대화를 나누는 중이었다. 청각장애인 두 분이 스마트폰을 매개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이분들에게 영상시대는 축복이다. 영상시대가 좋기만 한 건 아니다. 미국 작가 레이 브래드버리가 1953년 펴낸 ‘화씨 451’은 500년 뒤(25세기) 미국을 그린 디스토피아 소설인데, 뜻밖에도 오늘의 한국 사회에 잘 들어맞는다. 소설에서 미래의 미국 사회는 사람들에게 독서금지령을 내리고, 대신 영상오락물에만 탐닉하도록 한다. 금서목록이 100만 권에 달한다. 책 읽기를 금지당한 사람들은 밤낮 거실 벽에 설치된 대형 텔레비전에 빠져 산다. 사람들은 속도에 익숙하다. 걸어 다니거나 자동차를 천천히 몰았다가는 감옥행이다. 시속 60킬로미터로 차를 운전하다가, 서행했다는 이유로 잡혀 가서 이틀 동안 감옥에 갇힌 사람도 있다. 외곽 도로의 광고판들은 길이가 60미터씩이나 된다. 옛날에는 6미터 정도였으나 차들이 너무 빠르게 달리다 보니 광고판도 길어졌다. 그래야 보이기 때문이다. 풀 한 포기, 꽃 한 송이 찬찬히 관찰하고 음미할 여유도 없는 삶이다. 주인공 몬태그의 직업은 ‘파이어맨’(fireman)이다. 통상 불 끄는 ‘소방관’(消防官)으로 옮겨야 하지만, 이 소설에서는 불 지르는 ‘방화수’(放火手)로 옮겨야 맞다. 그의 임무는 책을 몰래 보관하거나 빼돌리는 ‘배교자들’을 색출해 책과 함께 불태우는 것이다. 책을 접하는 경로는 법으로 철저히 차단돼 있다. 주인공의 아내는 허구한 날 대형 텔레비전을 시청하며 시간을 보낸다. 1953년 출간된 이 소설은 오늘의 한국 현실을 보여 준다. 집집마다 거실에 비치된 초대형 벽걸이 텔레비전을 70년 전에 예견했다는 것이 놀랍다. 소설에 등장하는 미래 사회의 특징은 오늘의 한국 사회에서 이미 구현돼 있다. 소설에서는 사람들이 책을 못 읽도록 불태우는 것으로 돼 있지만, 오늘의 한국 사회는 그럴 필요조차 없다. 국민 대부분이 스스로 책을 읽지 않기 때문이다. 팬데믹 시대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필수다. 생각해 보면 요즘처럼 책 읽기 좋은 시절도 없다. 이 상황을 독서운동의 기회로 삼는 건 어떨까. 독서의 추락은 인간의 추락을 동반한다.
  • 역병과 정치에 염증난 조선 선비의 자가격리

    역병과 정치에 염증난 조선 선비의 자가격리

    코로나19의 전 지구적 감염을 극복할 근본 해법은 아직 없다. 물리적 거리두기로 전염 속도를 줄이는 것이 유일하다. 300년 전 더 참혹한 역병 속에서 한 지식인은 반생의 노력으로 안전하고 아름다운 유토피아를 만들었다. ●치사율 30% 넘는 역병에 정중기가 택한 방역법 경북 영천시 임고면 선원동은 무릉도원으로 불릴 정도로 이상적인 영일 정씨들의 씨족마을이었다. 1719년 이 지상 낙원을 전염병 두창이 휩쓸었다. 두창은 천연두의 옛 이름으로 전염력이 강하고 치사율이 30%를 넘으며, 회복되더라도 피부가 얽어 곰보가 되는 무서운 역병이었다. 원인도 치료법도 모르니 두창 여신을 ‘별성마마’라고 극존칭으로 대접하는 수밖에 없었다. 신라의 선덕왕도 앓았으니 역사가 오래됐고, 청나라 황제 강희제도 앓았다니 국제적인 역병이었다. 조선의 숙종도 감염돼 한때 혼수상태로 위중했다니 귀천도 가리지 않았다. 선원마을의 유지, 35세의 선비 정중기(1685~1757)는 이때의 두창으로 부친을 잃었고, 그 전해에 모친도 잃었다. 부모 봉양을 위해 과거시험도 거부했던 정중기는 절망에 빠졌다. 이제 선원동은 부모를 앗아간 상실의 땅이며, 언제 역병에 걸릴지 모르는 위험 지역이었다. 그래서 찾아낸 ‘피두지’가 지금의 삼매리, 매곡이었다. 이곳에 간소(艮巢)라는 서재를 짓고 틈틈이 머물며 공부했다. ‘간’이란 주역 팔괘 중 하나이며, ‘소’란 나무에 얼기설기 지은 둥지를 뜻한다. 소박한 초가였지만 철학적 의미를 지닌 만만찮은 집이었다. 43세에 과거에 응시해 장원급제, 수석으로 합격했다. 곧바로 등용돼 고향을 떠나 벼슬길에 올랐다. 그러나 세속은 꽃길이 아니었다. 그는 워낙 출세와 성공 따위에 초연한 성품이었다. 기뻐해야 할 출발 길부터 “원래 얻고 잃음은 모두가 운명이기에/ 어느덧 마음속에 생각이 아득해지네” 하며 마땅찮아 했다. 당시 정계는 노론의 세상이었고, 그가 속한 영남 남인들은 소외된 재야 세력이었다. 나이 많고 꼿꼿한 신참 비주류 선비가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정계에서 버티려니 험한 자갈길에 아득할 수밖에 없었다. 46세에 관직을 사양하고 잠시 낙향했다. 이듬해 선원동을 비롯한 경상도 일대에 천연두가 더 심각하게 창궐해 정중기의 사촌과 친아우들이 목숨을 잃었다. 실의 속에서 다시 벼슬길로 떠났다가 결성현감을 끝으로 은퇴해 고향으로 돌아온다. 56세 때 고향인 선원동을 아우 중보에게 넘겨주고 아예 매곡으로 이주하게 된다. 장자로서 말년에 고향을 떠나 오지로 가는 파격적인 모험을 감행했다. 친척은커녕 인적조차 없는 곳이었다. 그러나 이 첩첩산골에 그만의 세계를 꾸준히 만들어 나갔다. 64세에 오록서당을 건립해 후학을 길러내고, 68세에 멋진 산수정을 지었다. 간소 자리에 살림집을 새로 짓다가 세상을 떴고, 아들 일찬이 완공한 집이 바로 지금의 매산고택이다. 참혹한 전염병과 지저분한 세속을 피하기 위한 정중기식 거리두기는 멀리 떠나서 새로운 낙원을 만드는 일이었다.●정중기와 후손이 120년 4대에 걸쳐 이룩한 매화골 매곡, 매화의 골짜기는 선원동으로 이어지는 선원천의 상류에 자리한다. 도가나 선가에서 상류란 미지의 근원을 뜻한다. 마치 시냇물에 흘러 내려온 복숭아 잎을 보고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 신선들의 도원을 발견했듯이. 영천의 주산인 보현산이 흘러 기룡산에 이르고 그 지맥이 매곡에 이른다. 정중기는 이곳을 겹겹이 싸인 산과 돌아 흐르는 시냇물 사이에 우묵하게 들어간 곳이라 했다. 풍수가들은 ‘매화낙지형’이라 하여 뒷산이 매화나무이며 그 가지가 늘어진 곳이 마을 자리라 한다. 둥글한 앞산 봉우리들은 매화를 향해 날아드는 나비 형상이다. 매화가지 끝에 간소를 짓고, 나중에 매산고택을 증축해 꽃을 피웠다. 앞산에 정중기는 산수정을, 후손들은 산천정을 지어 한 쌍의 나비를 완성했다. 후대에 다른 매화가지에 향양정을 지어 매화골을 완성하게 된다. 120년 4대에 걸친 노력의 결과였다. 정중기는 자신의 호를 매산으로 지을 정도로 매화를 사랑했다. 매화는 사군자 중 으뜸으로 강인한 기품과 고결한 향기를 상징한다. “매화는 은둔하고 낙향하는 선비를 위한 나무다. 도시보다는 시골의 나무이며, 젊은이보다는 명상의 맛을 아는 중년에 어울린다.” 마치 정중기에 맞춘 것 같은 이 비평은 그보다 350년 전 정도전이 쓴 글이다. 매곡이야말로 매화 마니아를 위해 준비해 둔 땅이었다. 그리고 그와 후손들은 매화 동산을 훌륭하게 가꾸었다. (실물 매화는 드물고 풍수적 상징이다.) 정중기가 태어나고 자란 선원마을에 조카 일룡이 건립한 연정고택이 있다. 연정고택은 4동의 독립건물이 모여 마당을 감싸는 ‘튼ㅁ자집’이다. 별당인 연정도 본채와 떨어져 있다. 또한 건물들은 나지막하게 땅에 붙어 있다. 전체적으로 수평적이고 개방적이다.반면 매산고택은 건물이 모두 하나로 이어진 ‘막힌ㅁ자집’이다. 높은 축대 위에 누마루 사랑채와 2층 안채를 세웠다. 전체적으로 수직적이며 폐쇄적이다. 사촌 간인 두 집은 8㎞ 남짓 거리지만 달라도 너무 다르다. 매산고택의 폐쇄성은 격리와 보호를 위함이고, 수직성은 펼쳐진 자연을 음미하기 위함이다. 정중기의 건축관과 자연관이 강하게 반영된 집이다. 균형 잡힌 형태와 날렵한 누각형 사랑채 등, 가장 아름다운 살림집 중 하나로 남아 있다. 맞은편 절벽에 지은 산수정의 의미는 더욱 명확하다. “우뚝 솟은 청산은 천년의 빛이요/ 길게 달리는 벽간은 만리를 흐르는 소리다/ 자연의 물상을 관찰해 인과 지의 묘한 이치를 깨닫는다.” 산과 물이란 인(仁)과 지(智)의 상징이다. 논어에 “인자한 이는 산을 즐기고, 지혜로운 이는 물을 즐긴다”고 했다. 3칸 정자는 절벽에 반쯤 걸려 뒷면에서 출입한다. 1층 집인 줄 알고 들어오면 툭 터진 산수의 경관이 펼쳐진다. 대청 양옆의 방 이름은 인수재와 지급재다. 산수정이란 인과 지의 집으로, 자연과 인문학이 하나가 된 철학적 정자다.●그때도 지금도 거리두기와 희망만이 치료제 1347~1350년 유럽에 페스트가 창궐해 인구의 3분의1 정도가 죽었다. 페스트의 원인도 모르고 치료법도 없었다. 단지 온몸이 시커멓게 굳으며 죽는다고 흑사병이라는 이름만 붙였다. 믿었던 교회가 알려준 치료법이란 비둘기 피 바르기, 담배 피우기, 피 뽑기 등으로 흑사병마를 몰아내는 정도였다. 인문주의자 보카치오가 발견한 최상의 방법은 격리와 피신, 그리고 이상향의 희망이었다. 그의 소설 데카메론은 피렌체 교외 피에솔레의 고립된 별장에 남녀 10명이 피신해 10일 동안 풀어놓은 100개의 이야기다. 데카메론 에피소드 중에 이상적인 정원들이 종종 등장한다. 둘째 날 이야기 무대인 빌라 팔미에리의 레몬 정원을 지상 천국으로 묘사했다. 사방이 담으로 막히고, 아름답고 평화로운 곳, 그리고 향초와 약초가 있는 치유의 장소다. 생지옥 같은 도시를 탈출한 피난자들이 갈구하는 이상적인 빌라와 정원이었다. 조선시대 사람들도 천연두의 원인과 치료법을 몰랐다. 기껏 치료법이란 제사와 성생활을 금지해 별성마마를 공손히 모시는 수준이었다. 1721년 전국적인 천연두 감염 앞에서 국왕 영조는 “전염은 거센 불길 같아 치료할 방법이 없다. 예전의 처방이 전혀 없고 의원조차 어떤 증상인지 모른다”고 한탄할 따름이었다. 그러나 맑은 정신을 가진 정중기는 안전한 골짜기로 떠나는 것만이 근본적인 대책임을 알았다. 일시적 피난이 아니라, 아예 마을을 새로 만들고 정착해 후손들까지 보호하려 했다. 집안의 아우 정윤문 역시 역병을 피해 남쪽으로 잠시 대피하려 하자 이렇게 조언했다. “임시로 피하는 것보다 인근 길지를 찾아 한 마을을 만들고 굳건히 대대로 사는 것이 낫다.” 뚜렷한 봉우리가 없는 매곡 같은 지형은 재복이 머물지 않고 흘러나간다고 한다. 이런 단점에도 불구하고 이곳은 겹겹이 싸여 외부로부터 보호받는 천혜의 격리지이다. 임진왜란 때 여기에 성곽을 쌓고 영천고을의 피란처로 운영한 적도 있었다. 정중기는 이러한 지리적 장점 때문에 매곡을 택했다. 풍수적 단점이란 다분히 심리적인 것이어서, 지속적인 건축과 조경으로 극복할 수 있었다. 적극적인 건축과 철학적 의미 부여를 통해 매화가지로 나비가 날아드는 치유의 낙원을 만들었다. 백신도 치료제도 없었던 암울한 시대에 가능한 유일한 선택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격리와 거리두기, 그리고 새로운 희망만이 백신이자 치료제이다. 건축학자·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
  • 산엔 눈꽃, 땅엔 봄꽃… 강원 ‘하얀 4월’

    산엔 눈꽃, 땅엔 봄꽃… 강원 ‘하얀 4월’

    13일 강원 양양 낙산지구에서 바라본 눈 덮인 대청봉과 저지대의 봄꽃이 어우러져 한 폭의 풍경화를 연출하고 있다. 지난 12일 강원 산간에는 대설주의보가 내려진 가운데 많은 눈이 내렸다. 이날 오전 6시까지 쌓인 눈의 양은 홍천 구룡령 15.3㎝, 평창 스키점프대 6㎝, 태백 4.6㎝, 강릉 왕산 2.8㎝, 대관령 2.7㎝, 정선 임계 0.9㎝ 등이다. 양양 연합뉴스
  •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라일락 꽃 속의 연인들/김송이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라일락 꽃 속의 연인들/김송이

    라일락 꽃 속의 연인들/김송이 누가 우주에서 이쪽을 향해 손전등을 켜고 있어 늪으로 푹푹 쏟아지는 빛에 등을 맞댄 채 우리는 젖지도 않고 익사를 맹세했네 그럴 때 우리, 헐렁한 서로의 옷에 핀을 찌르며 웃었지 바짝바짝 꽃이 튀네 붉은 라일락이 맨 등을 문지르고 우리가 뒤집힌 낙하산에서 잠을 잤다는 사실을 빨래줄에 달랑 널어놓은 속옷처럼 들키고 싶었네 배 위로 물뿌리개가 지나는 동안 어둠이 수평선에 휘발유를 부으며 지나가는 동안 우리의 섬은 점점 솟아오르며 멀어져가지 사다리로부터 층계로부터 라일락, 라일락, 빵처럼 부풀던 둥근 밤에 샤갈의 그림, 사랑스럽고 신비합니다. 어떤 고통의 순간도 사랑과 신비함으로 해석해 낼 수 있다면 그 시는 독자의 마음을 훔칠 것입니다. 시 속의 연인, 라일락 꽃 덤불 속에서 봄밤을 지샜군요. 낙하산을 뒤집어쓴 것처럼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았으나 자랑처럼 들키고도 싶었지요. 지나가는 배 위에 소나기 내리고 수평선에 휘발유를 부으며 동이 터 오릅니다. 당신, 한때 봄꽃나무 아래 밤을 새워 본 적 있는지요? 없다면 잘못 살았군요. 그래요, 이번 주말 봄꽃나무 아래 랜턴 세우고 앉아 헤세나 릴케, 동주나 백석을 읽음은 어떻겠는지요? 곽재구 시인
  • [금요칼럼] 매화를 사랑한 퇴계 이황/백승종 한국기술교육대 겸임교수

    [금요칼럼] 매화를 사랑한 퇴계 이황/백승종 한국기술교육대 겸임교수

    퇴계 이황은 후세가 길이 기억하는 대학자다. 그가 얻은 학문적 결실은 조선은 물론 일본의 에도시대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또 그의 문하에서 수업한 유성룡 같은 이는 나라의 든든한 기둥이 됐다. 그러나 나는 지금 성리학자 이황의 학문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나는 그를 매화의 시인으로서 만나려고 한다. 내가 주목한 것은 한 편의 매화 시다. 어느 해인지는 몰라도 3월 13일에 이황이 고향인 도산의 매화에 관해 쓴 짤막한 글이 보인다(‘퇴계선생문집’, 제4권). 그해에는 날씨가 유독 추워서 매화가 상했다고 한다. 그날 퇴계는 제자 정유일과 약속이 있었다고 회상하면서 시 한 수를 적어 놓았다. “아침나절 산북에서 봄을 찾아왔네(朝從山北訪春來) 눈에 들어오는 산꽃, 비단 더미처럼 아름다워라(入眼山花爛錦堆) 시험 삼아 대나무 햇순 헤쳐 보다가 파리해 놀랐네(試發竹叢驚獨悴) 문득 매화나무 잡아당기며 늦게 핌을 한탄하오(旋攀梅樹歎遲開) 성긴 꽃송이 또 바람에 뒤집혀 흔들린다오(疎英更被風顚?) 애써 지킨 절개, 모진 비 거듭되자 꺾이고 말았나(苦節重遭雨惡?) 작년에 만난 친구들 오늘은 소식도 끊겼네(去歲同人今又阻) 맑은 시름 여전하여 참기 힘드오(淸愁依舊浩難裁)” 시에 덧붙여 이황은 한 줄을 더 썼다. “이날 바람이 불고 비가 내렸다.” 범연해 보이는 이 한 문장이 내 가슴을 찌른다. 날씨와 경치를 말하고 있지만 중의적인 느낌이 들어서다. 그가 맑은 시름을 이야기한 것도 마음에 걸리고, 작년에 만난 친구들과는 소식이 끊겼다고 한탄한 대목에 이르면 이것이 매화 이야기만은 아니란 생각이 더욱 짙어진다. 하면 모진 비에 꺾인 절개도 한낱 초목의 이야기는 아니다. 이황의 은밀한 고백으로 읽힌다. 바람이 불고 비가 온 것은 그날 날씨였으나, 이황이 몸담았던 조정의 형편도 다르지 않았다. 그가 매화를 보고 싶어 하고, 제때 피지 못하는 그 꽃을 염려한 것도 마찬가지였을 터이다. 매화는 퇴계 자신이었다. 평생 이황은 많은 매화 시를 썼다. 때로는 기쁨에 넘쳐 매화의 어여쁨을 노래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 가지 사실은 분명해 보인다. 퇴계는 늘 이해관계와 탐욕으로 얼룩진 조정을 벗어나서 자연을 벗 삼아 인생의 참뜻을 캐고 싶었다. 매화란 그에게 자연의 너그러운 품이요, 덕(德)스런 인간 본성의 회복이었다. 그 꽃은 구원의 약속이었던 것이다. 매화는 그 자신의 본래 모습이자 지향점이었고, 속세를 벗어난 신선의 세계와도 같았다. 이황에게 매화는 영원한 이상이었다. 이 꽃을 떠나서는 숨도 제대로 쉴 수 없는 시인이 퇴계였다. 그런 시인답게 인생을 마감하던 날 그는 이렇게 유언했다. “신축일 유시 정침(제사를 모시는 몸채 방)에서 눈을 감으시다. 그날 아침 선생은 모시고 있는 사람더러 매화 화분에 물을 주라고 하였다. 유시 초가 되자 드러누우신 자리를 치우게 하시고 부축을 받아 자리에서 일어나 앉은 채로 평안히 운명하였다.”(‘퇴계선생연보’, 제2권) 경오년(선조 3) 12월의 일로 그의 향년은 70세였다. 매화의 시인 퇴계가 앉아서 숨을 거두었다는 이야기도 신기하지만, 하필 그날 아침 매화 화분에 물을 주라고 당부했다는 구절이 자꾸 생각난다. 올해는 다른 해보다 매화꽃이 한 달이나 먼저 피었다.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어디서도 매화축제가 제대로 열리지 못했다. 이렇듯 안타까운 우리 사정을 듣고 나면 매화의 시인은 과연 무슨 시로 우리를 위로할지 모르겠다.
  • [길섶에서] 신(新)선거풍경/이동구 수석논설위원

    기억 속의 선거철은 언제나 시끄럽고 혼란스러웠다. 골목골목을 누비는 선거운동원이나 귀를 따갑게 하는 확성기 소리, 줄을 잇는 흥청망청 관광 행렬 등등. 그 당시 가장 흔하게 듣던 단어 중 하나가 ‘선거특수’. 선거 관련 각종 모임이 늘어나고 은밀히 전달되는 선물 등으로 소비가 활성화되고 사회 분위기는 한껏 들뜨게 마련이다. 막걸리와 고무신이 부정·혼탁 선거의 대명사로 꼽혔던 기억이 생생하다. 며칠 후면 지역 대표를 뽑는 선거일인데 요즘 거리 분위기는 이상하리만큼 차분하다. 확성기를 통한 출마자의 유세, 선거운동원들의 외침뿐 아니라 선거 관련 홍보물조차 별로 보이지 않는다. 선거특수라는 말은 아예 들리지도 않는다. 잊힌 단어가 됐다. 코로나19 때문이라고 하지만 여느 선거 때와는 다른 분위기다.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선거 문화가 정말 제대로 자리를 잡은 것일까. 아쉽게도 선거판에 남아 있는 몇 가지 현상들은 그런 기대감을 저버린다. 출마자들의 막말, 상대 후보 비방, 아니면 말고 식의 선심성 공약 등등. 개중에 복지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포퓰리즘은 신종 바이러스처럼 변화된 모습으로 확산 중이다. 막걸리와 고무신이 50만원, 100만원 등으로 변화된 듯하다. yidonggu@seoul.co.kr
  • 황각규 부회장, 화훼농가 돕기 캠페인

    황각규 부회장, 화훼농가 돕기 캠페인

    롯데지주는 황각규 부회장이 코로나19 확산으로 피해를 본 화훼농가를 돕기 위한 릴레이 캠페인에 동참했다고 9일 밝혔다. 이 캠페인은 코로나19로 졸업식과 입학식 등 행사가 줄줄이 취소되면서 매출이 급감한 화훼농가를 돕기 위해 시작된 것으로 ‘아이스버킷 챌린지’처럼 동참할 다음 사람을 지목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황 부회장은 삼성전자 고동진 사장의 지목을 받아 캠페인에 참여하게 됐다. 롯데는 이날 서울 송파구 잠실 롯데월드타워의 위생·방역 담당 협력사 직원들에게 남대문 꽃시장에서 구매한 꽃다발과 선물을 전달했다. 황 부회장은 “최근 위생·방역 시스템이 대폭 강화되면서 고생하는 협력사 직원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심현희 기자 macduck@seoul.co.kr
  • 전남지방경찰청, 화훼농가 돕기 ‘꽃 선물 릴레이’ 동참

    전남지방경찰청, 화훼농가 돕기 ‘꽃 선물 릴레이’ 동참

    전남지방경찰청이 지난 8일 졸업·입학식 등 각종 행사가 취소돼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강진 소재 수국 재배 화훼농가를 방문해 ‘꽃 선물 릴레이’ 캠페인에 동참했다. 이번 운동은 코로나19로 매출이 급감한 화훼농가를 돕기 위해 지난 2월 박원순 서울시장의 제안으로 시작했다. 김남현 전남청장은 장석웅 전남교육감으로부터 이어받았다. 김 청장은 “도민의 아픔을 함께하는 전남경찰의 마음이 조금이나마 화훼농가에 도움이 되고자 한다”며 동참 취지를 밝혔다. 앞으로 승진 등 각종 행사에서 꽃 선물하기와 ‘1인 1화분’ 가꾸기 운동으로 전개된다. 전남청 직원들은 “코로나 19로 야외 활동이 어려운 시기인데 꽃 한 송이로 봄을 느낄 수 있어 좋다”는 반응들이다. 김 청장은 다음 캠페인 참여자로 김도준 서해지방해양경찰청장과 박민서 목포대학교 총장을 추천했다. 무안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 제주백서향 전남 도서에서 첫 확인

    제주백서향 전남 도서에서 첫 확인

    산림청 국립수목원은 9일 전남 도서 산림지역에서 ‘제주백서향’의 대규모 자생지를 확인했다고 밝혔다.팥꽃나무과 제주백서향은 한반도 특산 식물로 2013년 학계에 처음 보고됐고, 현재까지 제주도 일부 지역에서만 자라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에 확인된 자생지에서는 많은 수의 제주백서향 개체가 확인됐는 데 특히 좁은 장소에서 100여개체 이상이 집단으로 분포했다. 또 어린 개체에서 1m가 넘는 성목까지 고루 분포하며 다양한 엽형과 화색을 보이는 개체가 자생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일부 제주백서향은 잎이 넓고 꽃의 수가 적은 백서향의 특징을 보이기도 했다. 희귀 수목인 제주백서향 및 백서향에 대한 분류학적 검토가 필요성이 제기되는 가운데 새로운 개체군 발견은 형태 및 유전적 단서를 제공할 수 있는 학술적 의미가 크다는 평가다. 조용찬 박사는 “제주백서향 자생지가 개방된 환경의 초지 및 관목지로 일부 개체에 대한 불법 채취 흔적이 발견돼 현지 보전을 위한 정밀조사와 생태학적 연구를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대전 박승기 기자 skpark@seoul.co.kr
  • 쌍둥이 슈퍼팀 가능할까… 여자배구 샐러리캡 23억원 상향

    쌍둥이 슈퍼팀 가능할까… 여자배구 샐러리캡 23억원 상향

    9일 이사회에서 샐러리캡 상향 합의연봉 18억원에 옵션 5억원으로 늘어투명성 기대… 트라이아웃은 재논의여자배구의 샐러리캡이 14억원에서 23억원으로 향상됐다. 연봉 제한이 크게 늘어남에 따라 이다영과 이재영 등 거물급 자유계약선수(FA)들이 한 팀에 모이는 슈퍼팀이 가능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한국배구연맹(KOVO) 9일 서울 마포구 KOVO회관에서 이사회를 열고 외국인선수 트라이아웃, 여자부 연봉제도에 대한 논의를 했다. 배구계의 뜨거운 감자였던 여자배구 샐러리캡은 투명성을 강화하는 차원에서 이번 시즌 14억원에서 다음 시즌 23억원으로 상향 조정된다. 연봉은 18억원 옵션은 5억원이 포함되는 안으로 그동안 불투명했던 옵션까지 포함된 금액이어서 당장 다음 시즌 계약에 미칠 여파가 클 전망이다. 이날 회의 전까지 여자배구 샐러리캡 상한선을 얼마로 할지, 옵션도 포함시킬지, 시행시기는 언제로 적용할지 등을 놓고 이견이 있던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날 발표에 따라 당장 다음시즌부터 모든 사항이 합의가 됐다. 여자배구는 겨울 스포츠의 꽃으로 자리잡으며 최고 인기를 누렸지만 남자배구에 비해 샐러리캡이 낮으며 개선이 요구되는 상황이었다. 금액 제한이 늘어남에 따라 이재영과 이다영이 한 팀에서 뛰는 그림도 가능하게 됐다. 여자배구계 인기스타로서 두 선수가 기존 샐러리캡에 한 팀으로 FA를 맺으려면 나머지 선수들의 계약에 제약이 많아져 사실상 한 쪽을 포기해야했지만 이제 연봉이 늘어난 만큼 구단들의 사정에 따라서는 한 팀에 머물 가능성도 있다. KOVO는 5월 체코 프라하에서 개최 예정이었던 외국인선수 트라이아웃은 추후 재논의하기로 했다. 코로나19로 일정 조율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섣부르게 강행할 수 없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KOVO는 연습경기 미개최시 참가 선수를 영상으로 확인하는 방법 외에 기량을 점검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보완하여 진행할 예정이다. 류재민 기자 phoem@seoul.co.kr
  • [이소영의 도시식물 탐색] 행운 찾느라 수많은 꽃을 놓친 건 아닌지

    [이소영의 도시식물 탐색] 행운 찾느라 수많은 꽃을 놓친 건 아닌지

    한 대학의 원예학과 학생들에게 식물세밀화 강의를 한 적이 있다. 나 역시 원예학을 공부했지만 원예란 대체로 화려한 재배식물을 다루기 때문에 이 수업만큼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자생식물을 관찰하도록 교정의 들풀을 그리도록 했다.햇볕은 따뜻하고 바람은 선선한 사월 중순 학교 잔디밭과 화단에는 그야말로 봄꽃과 연둣빛 잎들이 한창 자라나고 있었다. 그중엔 특히 ‘클로버’라 불리는 토끼풀이 많았다. 토끼풀은 햇볕이 잘 드는 곳이라면 어디에서든 볼 수 있는 유럽 원산의 귀화식물이다. 워낙 적응력과 생명력이 강해 세계 곳곳으로 뻗어나간 식물. 당연하게도 토끼풀을 그리기로 하고 채집을 하기 시작한 학생들이 있었고, 그중에는 꼭 행운의 네 잎 클로버를 찾아 그리겠노라며 허리를 구부리고 열심히 잔디밭을 뒤적이는 학생도 있었다.그러나 누구도 네 잎은 그리지 못했다. 네 잎을 발견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식물세밀화는 식물종의 가장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형태 모습을 그리는 기록물이기 때문이다. 네 장의 잎은 일반적이지도, 유전적 돌연변이도 아닌 일시적인 현상이며, 보통의 토끼풀은 세 잎이다. 식물세밀화를 그릴 때만큼은 네 잎은 보편적인 형태를 관찰하는 데 방해일 뿐 행운의 의미는 퇴색한다. 대신 평범한 세 잎과 땅 표면을 기는 뿌리, 그리고 생식기관인 꽃(화서)에 무게중심이 실린다. 학생들이 행운의 네 잎을 찾으려 밟고 지나간 토끼풀 꽃은 식물세밀화에서 가장 중요한 기록 부위다. 이 꽃은 자세히 들여다보면 여러 개 꽃송이로 이루어져 있다. 그중 한 송이를 떼어 보면 꽃은 마치 토끼의 얼굴과 같은 형상을 하고 있다. 토끼풀이란 이름에는 많은 속설이 따른다. 토끼가 잘 먹기 때문이라는 설이 가장 유력하지만, 토끼 모양의 이 꽃송이를 관찰하다 보면 왜 토끼풀이라 불리는지 꽃이 이미 말해 주고 있는 듯하다. 게다가 이 수많은 꽃송이들은 한꺼번에 피고 한꺼번에 지지 않는다. 아래에서부터 위로 순차적으로 피고 진다. 이것은 토끼풀의 생존 전략이기도 하다. 오랫동안 꽃이 피는 것처럼 보여 수분을 도울 더 많은 곤충을 불러들이기 위한 방법이다. 우리가 하나의 꽃으로 알고 있던 것이 사실은 100여개 꽃과 1000개의 수술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 우리는 꽃 한 송이를 그냥 지나칠 수 없게 된다. 결국 식물세밀화를 그리는 수업은 그림 기술을 익히거나 수술과 꽃잎 개수를 학습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식물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경험을 통해 자연의 현상을 이해하는 교육인 셈이다. 토끼풀과는 전혀 다른 식물이긴 하지만 지난달에는 향신료로 쓰이는 딜을 그렸다. 우리나라에서는 생소하지만 유럽에서는 대부분 요리에 딜잎이 들어간다고 할 정도로 익숙한 식재료다. 아직 노지에서는 잎조차도 볼 수 없는 때라 서울에 있는 한 온실에서 딜을 관찰해야 했다. 방문한 온실의 정중앙에서 딜은 꽃을 피우고 있었다. 희미하고 가느다란 잎 사이사이에 핀 노란 복산형화서의 꽃은 마치 페넬 꽃과도 비슷했다. 꽃까지 볼 수 있을 거란 기대는 없었는데 이왕 꽃도 그려야겠다는 마음으로 다가갔다. 꽃에 손바닥을 대고 자세히 들여다보니 지름 0.2㎝도 되지 않는 수백 개의 작은 꽃이 각자 수술 4개와 암술 1개를 내보인 채 만개 중이었다. 멀리에서 ‘딜 꽃 하나’라고 불렀던 것은 300여개 꽃이었고, 꽃 하나에 수술 4개와 암술 1개, 5장의 꽃잎이 있었다. 이들 꽃은 가장자리에서부터 피고 안으로 들어갈수록 봉오리를 맺고 있었다. 딜잎만 이용하느라 이 치밀하고 세세한 꽃의 구조와 아름다움은 놓치고 살았다는 것이 왠지 억울했다. 식물세밀화를 그리지 않는다면 나는 결코 꽃과 수술의 개수를 일일이 헤아려 보거나 자세히 들여다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나는 이 일을 하며 안으로 들여다볼수록 더 넓은 세상이 펼쳐진다는 것을, 그리고 어느 특별하고 희귀한 존재가 아닌 평범하고 보편적인 존재의 가치와 아름다움을 깨달아 가고 있다. 몇 년 전에 본 드라마에서 나온 대사가 문득 떠오른다. ‘드라마에서나 주연, 조연이 있지. 우리가 사는 세상은 다 각자가 주인공이지 않으냐.’ 식물의 세상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그토록 찾는 네 잎 클로버나 향신료로 이용하는 딜의 잎 외에도 식물에겐 보통의 세 잎 클로버와 수백 개의 작은 꽃이 있고, 평범한 기관들이 보편적인 규칙 속에서 자연의 대부분을 이루고 있다. 벌써 2020년의 일 분기가 지났다. 이럴 때일수록 네 잎 클로버처럼 확신할 수 없는 불투명한 목표를 향하느라 수많은 꽃송이와 같은 기회를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리를 돌아보는 건 어떨까.
  • 롯데몰 수지점 화훼 농가 판로 확대 지원

    롯데몰 수지점 화훼 농가 판로 확대 지원

    경기 용인 롯데몰 수지점은 코로나19로 졸업식, 입학식 등 각종 행사가 취소되면서 매출이 감소한 화훼 농가의 판로 확대를 위해 오는 19일까지 매장 1층에서 화훼 농가의 꽃 판매 코너를 선보인다고 8일 밝혔다. 사진은 수지점 직원들이 ‘화훼 농가 판매 스토어’에서 꽃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 롯데자산개발 제공
  • 롯데몰 수지점 화훼 농가 판로 확대 지원

    롯데몰 수지점 화훼 농가 판로 확대 지원

    경기 용인 롯데몰 수지점은 코로나19로 졸업식, 입학식 등 각종 행사가 취소되면서 매출이 감소한 화훼 농가의 판로 확대를 위해 오는 19일까지 매장 1층에서 화훼 농가의 꽃 판매 코너를 선보인다고 8일 밝혔다. 사진은 수지점 직원들이 ‘화훼 농가 판매 스토어’에서 꽃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 롯데자산개발 제공
  • 바위 틈 발그레 핀 너… 물드는구나 나의 맘

    바위 틈 발그레 핀 너… 물드는구나 나의 맘

    단언컨대 여기는 진달래의 영토다. 칼처럼 뾰족 솟은 암봉도 지금 여기에선 꽃을 돋보이게 하는 보조 장치에 불과하다. 전남 강진의 덕룡산(德龍山). 고도는 낮아도 험하기가 설악의 용아장성을 뺨친다는 산이다. 그 산의 바위 벼랑 사이에 지금 연분홍 진달래가 장관이다. 진달래 하면 저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라는 애잔한 시구로 기억되는 꽃이다. 애이불비(哀而不悲)의 정한 가득한 진달래가 어떻게 험상궂은 바위 벼랑 틈마다 여린 꽃잎을 심어 둔 건지, 볼수록 신기하다. 그래도 이런 부조화의 아름다움이 좋다.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것들이 어우러지는 모습 말이다. 개체수가 많지 않으면 또 어떠랴. 노류장화처럼 흔천인 것보다 외려 이편이 더 낫다. 덕룡산은 찾는 이가 많지 않은 산이다. 그래도 사회적 거리두기를 염두에 둬야 하니 가급적 올봄일랑 지면과 랜선으로 즐기시고 내년 봄을 기약하시길.덕룡산의 이름을 한글로 풀면 덕이 있는, 그러니까 후덕한 용의 모습을 한 산이라는 뜻이다. 뭐 용의 등뼈를 닮았다는 건 그렇다 치자. 창날처럼 솟은 희디흰 암봉들이 실제 꿈틀대는 백룡을 보는 듯하니까. 한데 덕이 있다는 것에는 선뜻 동의하기가 어렵다. 이 산은 두 팔과 두 다리를 모두 쓰고서야 겨우겨우 ‘등뼈’ 하나를 넘을 수 있다. 그런 암봉을 여러 개 넘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체력은 물론 멘탈까지 탈탈 털린다. 그런데 덕이 있다고? 용은 본 적이 없으니 현실에서 이 산줄기와 가장 닮은꼴을 찾으라면 지네다. 마치 지네의 발처럼 여러 산줄기를 이 마을 저 마을로 늘어뜨리고 갈지자로 꿈틀대는 듯하다. 멀리 월출산에서 일어선 산자락은 다산 정약용이 머물던 만덕산을 지나 석문산, 덕룡산, 주작산을 세운 뒤 해남 쪽 두륜산, 달마산을 거쳐 바다로 빠져든다. 그 장대한 줄기의 일단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자리에 주작산 일출전망대가 세워져 있다. 덕룡산은 주봉인 서봉(432.9m)과 동봉(420m)을 비롯해 크고 작은 다수의 암봉으로 이뤄져 있다. 우지끈 솟아오른 거대한 암봉들이 선사하는 장쾌한 풍경이 일품이다. 반면 찾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겨울철엔 하루 한 명 보기도 쉽지 않다. 진달래가 피는 이맘때는 사람들이 꽤 찾는다. 그것도 주말에 서울 등 대처에서 등산 단체가 찾을 때나 잠깐 북적댈 뿐이다. 덕룡산과 주작산은 이어져 있다. 사실상 한몸이나 다름없다. 덕룡산이라 따로 부르는 게 일반적이지만, 주작산에 딸린 봉우리로 여겨 ‘주작산 덕룡봉’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산꾼들 역시 주작과 덕룡을 이어 붙여 종주산행에 나서기도 한다. 이 경우 석문공원(소석문) 구름다리를 들머리 삼아 덕룡산 동봉~서봉~475봉(475m) 등을 거쳐 오소재로 내려선다. 거리가 무려 16㎞에 이른다. 노련한 산꾼이 숨만 쉬고 걸어도 7시간, 어지간한 이라면 9시간은 족히 걸린다. 물론 반대 코스도 가능하다. 가장 일반적인 건 소석문에서 출발해 수양마을 쪽으로 내려오는 코스다. 거리는 9㎞ 남짓. 6시간가량 걸린다.‘얄팍한 산행’에 나서는 이들도 있다. 만덕광업에서 곧바로 동봉으로 올라 인증샷만 찍고 내려온다. 이 경우 2시간 안팎이면 그럴싸한 사진을 얻을 수 있다. 줄곧 오르막 구간이긴 해도 거리는 편도 1㎞ 미만이다. 덕룡의 두 핵심 봉우리를 돌아보는 코스도 있다. 수양마을에서 출발해 서봉, 동봉을 거쳐 만덕광업으로 하산하거나 수양마을로 원점회귀한다. 거리는 5㎞ 미만이다. 얄팍하기는 매한가지지만 강진 이곳저곳을 돌아봐야 하는 갈길 바쁜 관광객들에겐 이 단거리 코스가 가장 현실적인 대안으로 보인다. 휴식 시간까지 포함해 4시간 정도면 충분하다. 오소재와 주작산 전망대, 소석문(석문공원) 구름다리 등의 명소는 하산해서 차로 돌아보면 된다. 덕룡산은 오르기 힘든 산이다. 암릉의 형태가 변화무쌍해 잠시도 쉴 틈을 주지 않는다. ‘용의 등뼈’ 하나를 넘고 나면 또 다른 등뼈가 앞을 막아선다. 이 지역 산꾼들의 ‘라떼’ 시절엔 산에 철심은커녕 로프 하나 매달려 있지 않았다. 그 탓에 산행 시간도 10시간 이상 걸렸단다. 물론 암봉 아래에 우회로는 있다. 하지만 우회로로 가는 이는 거의 없다. 이는 암봉을 발아래에 둔 정복감, 아찔한 바위 벼랑에 서서 빼어난 풍경을 맞는 성취감을 포기하는 것과 진배없으니 말이다.요즘은 위험 지역에 로프를 매어 놓거나 ‘ㄷ’자 형 철심을 박아 뒀다. 그 덕에 산행 시간도 꽤 줄었고 좀더 안전해 졌다. 그래도 아찔한 구간은 여전히 많다. 한 발짝 내디딜 때마다 정말 조심해야 한다. 그렇게 힘들여 암봉 위에 오르고 나면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풍경과 마주한다. 칼날이 여러 개 겹쳐진 듯한 암릉 사이사이마다 분홍빛 진달래가 보석처럼 박혀 있다. 고된 산행 끝에 만난 절경이라 그럴까. 과장 좀 보태, 신이 만든 정원에 실수로 발을 들인 듯한 느낌이다. 덕룡산 진달래는 대규모 군락을 이루는 경우가 드물다. 암릉과 산허리 등에 소박한 규모로 핀다. 여느 진달래 명산처럼 흐드러지지는 않았지만 외려 이 모습이 더 단정하고 아름답다.백룡의 등뼈에 올라타서 아래를 굽어보는 맛도 그만이다. 강진만과 다도해의 시원한 풍경이 발아래 펼쳐진다. 앞뒤로는 삼국지 장비의 장팔사모를 연상케 하는 뾰족한 암벽이 연달아 펼쳐진다. 쉽게 말해 눈 두는 곳마다 절경이다. 덕룡산 주변에 유명 관광지들이 많다. 백련사 동백숲은 자체가 천연기념물(151호)로 지정된 명소다. 수백년 묵은 고목 1500여그루에서 떨어진 동백꽃이 숲 바닥에 낭자하다. 산행 들머리인 석문공원은 ‘강진의 소금강’이라 불리는 곳이다. 요즘 강진의 랜드마크로 떠오른 가우도는 ‘강진만의 여의도’라고 불린다. 서울 여의도의 양 끝에 다리가 놓였듯, 가우도 역시 도암면, 대구면과 각기 다른 연륙인도교로 이어져 있다. 월출산 아래 터를 잡은 백운동 정원도 필수 방문 코스다. 담양의 소쇄원, 보길도의 부용동 등과 함께 호남 3대 정원이라 불린다. 글 사진 강진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 -‘얄팍한’ 덕룡산 산행의 들머리인 수양마을 주작산별빛마루펜션은 영업을 중지했다. 내비게이션 주소는 신전면 수양길 148-217이다. 옛 펜션 건물 조금 지나 공터에 차를 대면 된다. 만덕광업 쪽으로 오르는 이들도 꽤 많다. 광산 바로 앞에 작은 주차공간이 있다. -주작산휴양림은 강진 남쪽에서 가장 권할 만한 숙소다. 다만 현재는 코로나19로 폐쇄 중이다. 강진 읍내에선 프린스행복호텔이 깨끗하다. -강진 읍내에 오감통 먹거리장터가 있다. 강진을 대표하는 한정식, 토하비빔밥 등의 먹거리를 내는 집들이 몰려 있다. 칠량면의 청자식당은 바지락 회무침 비빔밥이 맛있는 집이다. 강진을 오갈 때 거치는 영암 학산면 독천리 일대에 낙지요리를 하는 식당들이 많다. 갈비와 낙지를 함께 끓인 갈낙탕, 연포탕 등 ‘혼밥’도 낸다.
  • “상춘객 막아라” 활짝 핀 유채꽃 갈아엎은 제주

    “상춘객 막아라” 활짝 핀 유채꽃 갈아엎은 제주

    만개한 유채꽃을 보기 위해 상춘객들이 몰려들자 코로나19 감염을 우려한 서귀포시와 가시리 마을회가 8일 트랙터를 동원해 상암 월드컵경기장 축구장(9292㎡)의 10배가 넘는 크기인 9.5㏊ 규모의 표선면 가시리 유채꽃광장에 핀 꽃들을 갈아엎고 있다. 이날 한국의 아름다운길 100선에 선정되기도 했던 녹산로 일대 유채꽃길 약 10㎞에 핀 꽃들도 모두 제거됐다. 제주 연합뉴스
  • “상춘객 막아라” 활짝 핀 유채꽃 갈아엎은 제주

    “상춘객 막아라” 활짝 핀 유채꽃 갈아엎은 제주

    만개한 유채꽃을 보기 위해 상춘객들이 몰려들자 코로나19 감염을 우려한 서귀포시와 가시리 마을회가 8일 트랙터를 동원해 상암 월드컵경기장 축구장(9292㎡)의 10배가 넘는 크기인 9.5㏊ 규모의 표선면 가시리 유채꽃광장에 핀 꽃들을 갈아엎고 있다. 이날 한국의 아름다운길 100선에 선정되기도 했던 녹산로 일대 유채꽃길 약 10㎞에 핀 꽃들도 모두 제거됐다. 제주 뉴스1
  • 부산 기장군, ‘천만그루 나무심기 사업’추진

    부산 기장군이 천만그루 나무심기에 나선다. 마을, 도로변, 산책로,유휴부지, 도심지 녹지공간 등에 천만 그루의 나무를 심어 도시 심폐기능을 강화하기 위해서이다. 기장군은 천만그루 나무심기 사업 추진을 위해 부군수를 단장으로 하는 ‘천만그루 나무심기 사업 추진단’을 구성·운영한다고 8일 밝혔다. 원활한 사업추진을 위해 해당 부서에서는 아파트나 마을에 나무를 지원할 수 있도록 조례 제정을 검토하도록 했다. 산책로와 등산로도 적극 발굴하고 나무를 심을 수 없는 곳에는 유채나 코스모스등 꽃을 심기로 했다. 또 산불감시초소를 추가 설치하고 인력과 장비를 확충하는 등 산불예방을 위한 대책도 마련하기로 했다. 기장군은 숲과 환경을 훼손하는 인·허가의 경우에는 반드시 군수에게 보고후 처리하도록 했다. 사업에 필요한 국·시비 예산 확보를 위해 기장군은 산림청 등 관계기관과 협의해 나갈 계획이다. 오규석 기장군수는 “2011년 추진했던 ‘10만 군민 100만 그루 나무심기 사업’의 경험과 지혜를 바탕으로 ‘천만그루 나무심기 사업’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부산김정한 기자 jhkim@seoul.co.kr
  • 상춘객 몰린 제주 녹산로 유채꽃 조기에 모두 갈아 엎어

    상춘객 몰린 제주 녹산로 유채꽃 조기에 모두 갈아 엎어

    제주의 대표적인 봄 관광 명소인 서귀포시 표선면 녹산로 유채꽃밭이 예년보다 일찍 8일 모두 제거됐다. 이는 관광객이 대거 몰려들자 코로나 19 전파를 우려한 지역 주민들의 조기 제거 요청에 따른 것이다. 시와 표선면 가시리마을회는 이날 트랙터 4대를 동원해 가시리 녹산로 일대 유채꽃길 약 10㎞와 9.5㏊ 규모의 유채꽃광장 내 유채꽃 등을 모두 뽑아내 파쇄하는 등 제거했다.유채꽃광장은 상암 월드컵경기장 축구장(9292㎡)의 10배가 넘는 크기다. 녹산로 유채꽃 파쇄는 매년 4월말에서 5월 중순 사이 해오던 일이지만, 시들지 않은 생생한 꽃들을 갈아엎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시는 유채꽃을 제거한 유채꽃 광장 등에는 코스모스를 파종해 가을 꽃 축제 준비에 들어갈 예정이다. 연간 16만명이 찾는 가시리 녹산로는 만개한 벚꽃과 유채꽃을 한 번에 즐길 수 있어 봄이면 상춘객들의 방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제주 최고의 드라이브 코스로 꼽히며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시 관계자는 “녹산로 유채꽃은 제주의 대표적인 봄 관광자원이여서 조기 제거를 두고 마을회와 시가 고민들을 거듭해 왔다”면서 “가시리 마을에 노인분들이 많아 코로나19 우려가 컸고, 사회적 거리두기도 2주간 연장돼 조기 제거를 하게됐다”고 말했다. 제주 황경근 기자 kkhwang@seoul.co.kr
  • [포토] “유채꽃 갈아엎자” 트랙터 출동

    [포토] “유채꽃 갈아엎자” 트랙터 출동

    서귀포시청 관계자들이 8일 오전 제주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 9.5㏊ 규모의 유채꽃 광장을 트랙터를 이용해 파쇄하고 있다. 2020.4.8 연합뉴스
  • [길섶에서] 도둑맞은 봄/김균미 대기자

    곳곳에 봄꽃 천지다. 한강을 따라 개나리와 진달래가, 서울 양재천에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집 근처 산책로를 따라 이름도 모르는 들꽃들이 만개한 지 오래다. 건물 사이 그늘진 길을 따라 미색의 목련꽃과 살구꽃도 활짝 피었다. 보도 중간중간에 놓인 화분에는 색색의 팬지가 피어 있다. 화분에 꽃을 옮겨 심던 사람들은 기억나는데, 매일 아침저녁 출퇴근길에 있던 팬지는 왜 눈에 들어오지 않았을까. 버스 창 너머로 스쳐 가는 꽃들이 왜 이리도 낯설까. TV 뉴스와 신문에 실린 상춘객 사진으로 대신 봄꽃 소식을 접한다. 통행이 허용된 꽃길마다 마스크를 한 사람들로 북적인다. 몰리는 관광객 때문에 정성 들여 가꾼 유채꽃밭을 갈아엎은 강원 삼척시.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 중 한 곳인 제주 녹산로 유채꽃도 한 달이나 앞서 자취를 감출지 모른단다. 코로나19가 바꾼 봄 풍경이다. 집 밖에는 변함없이 봄기운이 완연한데, 사람들 마음은 아직도 겨울이다. 갑갑해 걸으러 나가도 사람들 피하느라 꽃에 눈길 한번 제대로 못 준다. 꽃시장에서 작은 화분 하나 사다가 봄 기분을 내 보는 데 만족한다. 코로나19에 도둑맞은 봄, 마스크 쓰지 않고 맨얼굴로 맞았던 봄이 그립다. kmk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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