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꽃잎
    2026-06-11
    검색기록 지우기
  • 6회 연속
    2026-06-11
    검색기록 지우기
  • 중독자
    2026-06-11
    검색기록 지우기
  • 선착순
    2026-06-11
    검색기록 지우기
  • 이정선
    2026-06-11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449
  • 관화미심… 연꽃 보고 있자니 마음도 고와진다

    관화미심… 연꽃 보고 있자니 마음도 고와진다

    짧은 장마가 지나가더니 햇볕의 기세가 맹렬합니다. 한증막에 들어선 듯 숨이 턱턱 막혀 이곳이 한국인지 동남아인지 착각이 들 정도입니다. 무더위에도 제 일에 열심인 꽃이 있습니다. 계절을 아랑곳하지 않고 꽃잎을 틔우는 일에 열중하는 꽃, 연꽃입니다. 연꽃의 고고한 자태와 고운 색을 보노라면 여름이 연꽃의 계절임을 실감하게 됩니다. 경기 양평의 세미원에는 지금 연꽃이 한창입니다. 연과 연 사이를 거닐며 연향에 취해도 보고, 넘실거리는 연꽃 바다에 무시로 감탄도 합니다. 이곳은 정말, 연꽃이 한창입니다.수십 가지 연꽃이 활짝… 19일까지 연꽃문화제 ‘관수세심(觀水洗心) 관화미심(觀花美心)’이라 했다. ‘장자’의 말로 ‘물을 보며 마음을 씻고 꽃을 보며 마음을 아름답게 하라’는 뜻이다. 세미원이라는 이름은 이 문구에서 따왔다. 세미원은 물과 어우러진 연꽃 정원이다. 6월 중순부터 8월까지 홍련과 백련을 포함해 수십 가지 연꽃이 피는 만큼 여름에 찾는 이가 가장 많다. 세미원 연꽃문화제가 열리는 19일까지는 오전 7시부터 밤 10시까지 문 여는 시간을 연장한다. 세미원이 처음부터 연밭이었던 건 아니다. 연밭 부지는 15년 전만 해도 상류에서 떠내려온 쓰레기들로 가득했다. 상수원 보호구역이라고 사람들의 접근을 막기 위해 두른 철망이 오히려 독이 됐다. 철망에 쓰레기가 걸리며 수질은 더욱 악화됐다. 주민들과 환경단체는 힘을 합쳐 수질 정화 능력이 뛰어난 연을 심기 시작했다. 여기에 경기도의 지원을 받아 2004년, 세미원이 문을 열었다.백자 청아함 닮은 백련지… 한복 차려입은 듯 홍련지 여기도 연꽃, 저기도 연꽃. 어느 곳을 보아도 연꽃이다. 여름 바람이 일렁이자 연꽃들이 일제히 춤을 춘다. 연꽃의 파도가 밀려온다. 세미원에서 연꽃을 볼 수 있는 곳은 크게 세 곳. 홍련지, 백련지, 페리기념연못이다. 홍련지의 붉은 연꽃은 끄트머리로 갈수록 색이 붉어진다. 하얀 듯 불그스름하고 불그스름한 듯 하얗다. 안내판에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모습’ 같다는 설명이 있다. 말 그대로다. 홍련은 연지 곤지 찍고 분홍빛 한복으로 단장한 여인을 닮았다. 바라볼수록 우아한 자태요, 뜯어볼수록 오묘한 색이다. 5000㎡ 연못에는 움푹 들어간 나무 데크 두 개가 있어 사진을 찍기 좋다. 이른 아침부터 대포 같은 카메라를 든 사람들도 여럿이다. 백련지의 흰 연꽃은 백자의 청아함을 닮았다. 백련지 가운데에는 연못을 가로지르는 다리, 일심교가 놓여 있다. 돌다리는 두 사람이 동시에 지나가기 어려울 정도로 폭이 좁다. 딴생각에 빠지지 말고 지금 내딛는 한 발에 집중하라는 의미일 터. 연잎이 워낙 크다 보니 다리를 건널 때 어쩔 수 없이 연잎을 스치게 된다. 바다의 물살을 가르듯 연잎의 바다를 헤치고 나아가는 기분이 근사하다.연꽃 단지 중 유독 사람이 몰린 곳, 세계적인 연꽃 연구가 페리 슬로컴 박사의 이름을 딴 페리기념연못이다. 이곳의 연은 페리 박사가 손수 개발해 세미원에 기증한 것들이란다. ‘미세스 페리 디 슬로컴’, ‘더 퀸’이라는 이름의 연꽃들은 화려한 외양을 뽐낸다. 연보다는 새색시의 부케 같다. 뭉게구름처럼 뽀얀 미색의 꽃잎이 겹겹이다. 그 모습이 어찌나 탐스러운지 카메라를 든 이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연못 앞에는 기와지붕을 올린 정자가 있다. 삼삼오오 모여 담소를 나누는 이들의 표정이 평온하다. ‘관화미심’, 연꽃을 보고 저도 모르게 마음이 고와진 탓일 게다. 연꽃만큼 정원의 면면도 어여쁘다. 냇가에 놓은 돌다리 길, 한강 물이 솟아오르는 장독대 분수, 탁족할 수 있는 세족대, 돌 빨래판으로 만든 산책길 세심로, 모네의 그림 ‘수련’을 재현한 사랑의 연못, 나룻배 52척을 연결하고 위에 목판을 얹은 배다리 등 각 구역이 짜임새 있다. 그중 세족대와 세심로는 직접 발을 담그고 걸어 볼 가치가 있다. 더운 날씨에 연꽃을 보겠다고 이리저리 발품을 팔았다면 세족대는 더위를 떨칠 수 있는 최고의 장소다. 세족대에는 탁족을 하며 몸과 마음을 씻자는 의미가 담겨 있다. 발을 씻으며 마음도 가다듬었던 옛 선비들처럼 말이다. ‘관수세심’(觀水洗心)에 걸맞은 공간이다. 세족대 물에 5분만 발 담가도 정수리까지 시원 세족대 물에 발을 담그면 ‘악’ 소리가 난다. 햇볕이 뜨거워도 물은 한겨울 얼음장처럼 차갑다. 5분만 발을 담가도 더워진 정수리까지 시원해진다. 깨끗함은 연꽃의 속성이다. 진흙탕에서 자라지만 진흙에 물들지 않는다. 오물에서 피어도 향기가 그윽하다. 세심로는 빨래판에 옷을 빨 듯 길을 걸으며 마음의 때를 씻어내라 한다. 빨래판 모양의 길을 걷는다고 때 묻은 마음이 금세 깨끗해지지는 않겠지만, 연꽃과 나란히 걸으며 발걸음 하나하나에 집중해 본다. 어젯밤 든 부정적인 생각, 그 전날 내뱉은 가시 돋친 말을 빨래판 길에 툭툭 털어 본다. 맑은 꽃을 닮고 싶다는 마음을 품어 본다. 세미원의 화두, ‘관수세심 관화미심’을 행하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연꽃을 보고 사진을 남기는 것이 아니던가. 세미원은 한낮보다는 이른 아침에 가는 편이 낫다. 연 꽃봉오리가 아침에 열리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햇볕을 피할 수 있는 그늘이 적기 때문이다. 햇빛을 가릴 모자나 양산은 필수다. 글 이수린 유니에스 여행작가·사진 장명확 작가
  • 뮤지컬 ‘웃는남자’는 로맨스물? 일본 포스터 바뀐 이유는

    뮤지컬 ‘웃는남자’는 로맨스물? 일본 포스터 바뀐 이유는

    블록버스터급 뮤지컬이 ‘로맨스물’로 바뀌었다? 창작뮤지컬 일본 포스터를 보고 하는 말이다. EMK뮤지컬 컴퍼니가 선보인 대형 뮤지컬 ‘웃는남자’는 지난 17일 일본 진출 소식을 알리며 한국과 일본 현지에 ‘티저 포스터’를 공개했다. 작품의 대략적인 내용을 암시하는 티저 포스터만 보면 로맨스 뮤지컬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포스터는 흰색 바탕에 일본어 제목 ‘笑う男’와 함께 서브 타이틀처럼 ‘영원한 사랑’(the Eternal Love, 永遠の愛)이라는 문구를 담았다. 포스터만 보면 175억의 제작비가 투입된 블록버스터급 작품이라고 상상하기 어렵고, 한국처럼 빈부격차에 대한 문제의식을 담은 문구도 없다. 해외진출과 함께 포스터가 바뀐 이유는 일본 관객의 취향 때문이었다. 일본 공연제작사 토호(東寶)는 라이선스 공연 계약 과정에서 “한국 포스터가 무섭다”는 의견을 밝혔다고 한다. 젊은 여성 관객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한국 뮤지컬 시장과 달리 일본 시장은 여전히 50~60대 중장년 관객층이 두텁다. 이들에게 한국 포스터는 젊은층에게는 익숙한 공포물처럼 느껴질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실제 한국 포스터가 남자 주인공 ‘그윈플렌’의 그로테스크한 얼굴을 내세운 것과 달리 일본 포스터는 백지에 꽃잎이 떨어지는 모습을 연출해 로맨스 뮤지컬이라고 해도 깜빡 속을만하다. 해외배급을 맡고 있는 김지원 EMK인터내셔널 대표는 “일본측에서 남녀 주인공의 사랑이 부각될 수 있도록 포스터를 만드는게 좋겠다는 의견이 있었다”면서 “최종적으로 완성된 포스터는 또 바뀔 수 있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그렇지만 스토리는 한국 공연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토호는 내년 4월 1300석 규모의 도쿄 닛세이 극장에서 라이선스 공연을 올릴 예정이다. 토호 연출부 소속 우에다 잇코가 연출로 확정됐고, 주인공 그윈플렌에는 배우 우라이 켄지가 출연한다. 앞서 한국 공연의 개막일이었던 10일 초연에는 세계 7개국 극장 관계자 및 해외 프로듀서 38명이 참석했다.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 [이소영의 도시식물 탐색] 나라꽃 무궁화를 그린다는 것

    [이소영의 도시식물 탐색] 나라꽃 무궁화를 그린다는 것

    무덥고 습한 기후가 지속될 때면 나는 하루가 다르게 생장하는 식물들을 관찰하느라 여느 때보다 바빠진다. 그러다 보면 매일 일로써 그려야 하는 식물들을 관찰하는 데에 시간을 쏟느라 정작 내가 평소 개인적으로 그리고자 했었던 식물들의 생장 과정을 놓치게 되는 일이 많은데, 그렇게 자꾸만 시기를 놓쳐 다음해를 기약하다 수년이 지나버리게 되는 식물들도 많다. 그중 하나가 무궁화다.내가 다니던 수목원에는 커다란 무궁화 정원이 있었다. 수목원의 중심, 사람들이 가장 많이 오가는 길목에 무궁화 정원이 있는 건 이들이 우리나라 국화라는 이유에서였다. 한여름 무더위에 사람들이 산책조차 마다할 시기, 정원엔 무궁화 꽃이 가득 핀다. 그 꽃은 희거나 붉거나 푸르렀고, 꽃잎이 겹꽃으로 화려하거나 홑꽃으로 단아하기도 했다. 이들은 나무마다 모두 각기 다른 색과 형태의 꽃을 피웠다. 그 다양한 색에 감탄하며 이름표를 들여다보면 ‘선녀’, ‘아사달’, ‘첫사랑’과 같은 우리말 이름이 쓰여 있었다. 무궁화를 그리고자 하는 마음이 든 건 이들을 보고 난 후부터다. 무궁화는 우리나라의 국화이지만 우리나라의 자생식물은 아니다. 중국 원산의 식물이다. 물론 수백년 전 중국에서 건너와 우리나라에 심어지기 시작했지만, 그조차도 일제시대에 거의 모두 베어져 버렸다. 그렇게 우리나라에 오게 된 무궁화는 오래 꽃을 피우는 특성이 우리나라 사람의 끈기와 닮았고, 흰 꽃이 백의민족을 상징하거나 여러 가지 이유로 우리나라 국화가 되었다.물론 그 나라에 자생하지 않는 식물이 국화인 경우는 많다. 네덜란드의 국화인 튤립은 터키 원산이며, 프랑스의 국화 장미는 서아시아 원산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무궁화와 이들 국화의 차이점은, 각국의 국화만큼 우리나라 사람들은 무궁화를 널리 애용하거나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연구자들은 국화인 무궁화의 보급을 위해 그들의 효용성을 연구하고, 우리나라에서 잘 생육하거나,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색과 형태를 띠는 무궁화를 육성해 왔다. 그렇게 육성된 무궁화만 200여종이 된다. 하지만 사람들은 가로수나 공공기관 혹은 공원, 도시 어딘가에서 자라고 있는 이 무궁화가 그만큼 다양하게 존재하는지조차 모른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는 늘 새로운 것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도시에서 가장 사랑받는 식물은 늘 우리가 기존에 보지 못했던, 특이하고 신기한 형태의 외국 식물이다. 그에 비해 무궁화는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하고 뻔하게 느껴질지 모른다. 하지만 내가 수목원의 무궁화 정원에서 보았던 그 꽃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무궁화의 형태와 성질을 넘어서는 것들이었다. ‘선녀’는 꽃이 새하얗지만 꽃잎이 빛을 따라 은은한 연보랏빛을 띠고, 아사달은 분홍색 물감을 묻힌 붓이 스친 듯 꽃잎 부분 부분에 분홍색 무늬가 새겨져 있었다. 들여다보면 볼수록 다양하고 아름다운 형태였다. 늘 생각했다. 이런 무궁화의 존재를 누군가 그림으로 기록해야 하지 않을까. 더 나아가 이 기록은 기록의 의미를 넘어 사람들에게 무궁화의 다양성을 이야기할 수 있는 매개가 되어 줄 것이다. 네덜란드는 튤립 버블이라 불리는 황금시대가 지나고 경제가 붕괴되면서 튤립 문화는 잠식될 뻔했다. 그러나 곧 국내가 아닌 주변 국가에 눈을 돌려 세계에 튤립을 수출하기 시작하면서 튤립 문화는 살아난다. 네덜란드가 외국에 튤립을 수출하고자 했을 때 가장 먼저 했던 일은 식물세밀화가들을 모아 네덜란드에서 육성하고 재배한 튤립 그림을 그리는 일이었다. 그렇게 기록된 튤립 세밀화로 인쇄물을 만들어 주변 국가에 네덜란드 튤립을 홍보하고 수출하여 지금까지 튤립 문화가 지속될 수 있었다. 여전히 네덜란드는 세계에서 튤립 세밀화를 가장 많이 가지고 있고, 그때의 그 그림은 현재 중요한 튤립 연구 데이터로 이용된다. 언젠가 일본 진다이식물원의 무궁화 정원에 간 적이 있다. 정원 입구에 무궁화에 대한 설명이 쓰인 표지판이 있었는데, 그 표지판엔 무궁화 연구를 이토록 많이 하는 우리나라는 쏙 빠진 채 일본과 중국 이야기만 쓰여 있었다.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런 경험이 쌓이고,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나라 무궁화를 그리고자 하는 마음은 더해진다. 어제는 무궁화를 그리려 수목원의 무궁화 정원을 다녀왔다. 조생종인 몇몇은 이미 만개했고 대부분은 봉오리를 맺은 채 꽃이 필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올해는 두어 종의 무궁화를 그릴 생각이다. 이렇게 매년 꾸준히 조금씩 그리다 보면 언젠가 우리나라의 무궁화 컬렉션을 완성할 날이 오지 않을까.
  • 속세를 떠난 山… 법이 머무는 寺… 물러서야 보이는 풍경

    속세를 떠난 山… 법이 머무는 寺… 물러서야 보이는 풍경

    지난 6월 30일 기쁜 소식이 있었습니다. 경북 영주 부석사 등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이 우리나라의 열세 번째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것이지요. 그중 충북 보은의 법주사는 수도권에서 2시간 거리이자 문화재가 그득히 담겨 있는 보물 같은 절입니다. 천년 고찰을 품에 안은 속리산은 속세를 떠난다는 의미를 가졌지요. 연신 내리는 비에 몸도 마음도 꿉꿉한 어느 날, 세상으로부터 잠시 숨어들기 좋은 이름이 아니겠습니까. 글로 짐작하는 것과 눈으로 보는 것은 다릅니다. 물결치는 산의 능선과 그 안의 오래된 절을 마주하는 순간 세계문화유산의 아름다움을 절로 깨닫게 됩니다.속리산 자락에 안긴 법주사는 신라 진흥왕 14년(553)에 의신이 창건한 사찰이다. 인도에서 가져온 불경을 모셨다 하여 ‘부처님의 법이 머무는 절’이라는 의미로 법주사(法住寺)라는 이름을 지었다. 절을 휘감은 속리산은 속세를 떠난 산이라는 뜻이다. 부처님의 법은 세상의 번잡스러움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 불교국가였던 신라부터 유교를 국가 통치 이념으로 삼은 조선 중기까지 여러 차례 중수를 거듭한 대사찰은 ‘호서제일가람’이라는 칭호를 누려 왔다. ‘호서’는 삼국시대에 가장 중요한 호수로 여겼던 제천 의림지의 서쪽을 일컫는다. 절에는 눈여겨볼 유물이 한둘이 아니다. 우리나라 유일의 5층 목탑인 팔상전을 포함해 국보 3점, 보물 13점을 품은 절은 그 자체로 기나긴 한국 불교 역사의 증거다.●부처님을 만나러 가는 오리숲길 산사(山寺)는 말 그대로 산에 있는 절이다. 산사에 가려면 기꺼이 걸어야 한다. 탈것을 타고 절 바로 앞에 내리는 건 산사를 제대로 보는 것이 아니다. 유홍준 교수는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우리나라 산사 건축은 진입로로부터 시작된다. 산사의 진입로는 그 자체가 건축적, 조경적 의미를 지닌 산사의 얼굴”이라고 말한 바 있다. 법주사에도 진입로이자 걷기 좋은 숲길 오리숲길이 있다. 아득한 옛날부터 법주사를 찾은 사람들이 숱하게 걸었을 길이다. 길은 속리산 버스터미널부터 법주사까지 이어진다. 숲길의 거리가 10리의 절반인 5리(2㎞)라서 오리숲길이다. 세속의 때를 털어버리는 시간은 30분이면 충분하다. 소나무가 하늘을 뒤덮고 남한강 지류인 달천이 흐르는 길을 걸으며 속세와 서서히 멀어진다. 숲길은 뙤약볕이나 소나기를 피할 수 있을 만큼 나무 그늘이 무성하다. 숲길 초입에는 소나무와 전나무가, 중반부터는 신갈나무나 당단풍이 주를 이룬다. 나무들은 각자의 신록을 열심히 뿜어 올린다. 1460년을 관통하는 숲의 재잘거림을 들으며 산사에 다다른다. 이제, 산에 있는 부처님을 뵐 준비가 됐다.●깊이와 높이가 깃든 천년 고찰 금강문을 지나 경내로 들어서자마자 감탄이 터져 나온다. 사방을 둘러봐도 속리산 자락이다. 천년 고찰은 겹겹이 어깨동무를 한 산등성이에 둘러싸여 있다. 불교에서는 속리산의 여덟 개 봉우리가 연꽃잎처럼 사찰을 감싸고 있다고 본단다. 풍수에 무지한 이가 봐도 명당임을 알겠다. 산사는 건물을 놓을 때 산의 지세를 고려한다. 법주사의 경우에는 금동미륵대불 뒤에 수정봉이, 대웅보전 뒤에 관음봉이 우뚝 서 있다. 탁 트인 평지에 일렬로 늘어선 금강문, 천왕문, 팔상전, 대웅보전은 사찰의 중심축을 이룬다. 탑 하나, 건물 하나 허투루 놓지 않은 짜임새 있는 배치다. 세계유산위원회가 말한 “창건 이후 현재까지 이어지는 지속성과 한국 불교의 깊은 역사성”은 법주사 곳곳에 자리한 문화재가 증명한다. 산사에 익숙하지 않은 중생에게는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문화재가 제일이다. 법주사가 품은 국보와 보물을 찾아보는 데만도 시간이 제법 걸리는데, 그중 팔상전은 놓치지 말아야 할 국보(제55호)다. 우리나라 유일의 5층 목탑이다. 신라 진흥왕 14년(553년)에 세운 탑은 임진왜란 때 불에 타면서 1624년에 다시 지었다. 23m에 달하는 목탑은 내부에 부처의 일생을 8폭 그림으로 나타낸 팔상도가 그려져 있다. 빛바랜 목탑의 자태는 옆에 있는 금동미륵대불의 화려함과 대비돼 더욱 고아하다. 한때 알록달록했을 단청은 색이 흐릿하니 바랬다. 목탑에서 시간이 흘러 더욱 아름다워진 것의 깊이를 본다.쌍사자 석등(국보 제5호)은 통일신라 시대의 석등으로 사자를 조각한 석조물 중 가장 오래됐다. 사자 두 마리가 앞발과 주둥이로 윗돌을 받치고 있는 모습이 익살맞다. 통일신라 때의 석등은 주로 8각 기둥이었는데, 사자가 이를 대신해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시도였을 것이라 추측된다. 사자 머리의 갈기나 다리 근육까지 사실적으로 조각돼 있어 꼼꼼히 살펴볼수록 재미있다. 돌로 만든 연못 석련지(국보 제64호), 6m 높이 바위에 미륵불을 새긴 마애여래의좌상(보물 제216호), 아담한 절집마냥 사모지붕을 올린 원통보전(보물 제916호), 옛날 3000여명의 승려들이 먹을 밥을 지었다는 철솥(보물 제1413호) 등도 눈여겨볼 일이다. 금동미륵대불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번쩍번쩍 빛나는 금색이요, 33m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크기다. 금동미륵대불의 역사는 신라 혜공왕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776년에 청동으로 주조한 뒤 1000년간 모습을 유지한 불상은 흥선대원군이 경복궁 중건에 자금을 마련한다는 구실로 몰수됐다. 이후 시멘트로, 청동으로, 금동으로 여러 번의 복원을 거쳐 오늘날의 금동미륵대불이 됐다. 거대한 불상 앞에 서면 부처님 발 아래 연꽃밖에 보이지 않는다. 고개를 하늘로 한참 치켜들어도 부처님 얼굴이 보일락 말락 한다. 금동미륵대불을 마주하는 이들이 자꾸 뒷걸음질을 하는 이유다. 그러다 보면 부처님 뒤의 산 능선과 하늘이 눈에 덜컥 걸린다. 산자락 아래 서 있는 부처님은 높이로 가르침을 준다. 땅만 보지 말고 하늘을 올려다보라 한다. 높이 봐야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다고, 더 많은 것을 보려면 뒤로 물러서야 할 때도 있다고, 깊은 산속까지 찾아와야 느끼는 것도 있는 법이라고. 적요한 산사가 안겨 준 성찰이다.●세월의 풍파를 견딘 정2품 소나무 법주사에서 나오는 길에 눈도장을 찍어야 할 나무가 있다. 600년 동안 속리산 입구를 지켜 온 거목 정이품송이다. 세조 재위 10년(1464년) 세조가 요양하러 법주사로 가던 중 소나무에 임금이 타는 가마인 연이 걸릴 것 같아 “연 걸린다”고 하자 늘어져 있던 가지를 번쩍 들어 올렸다는 일화는 너무도 유명하다. 돌아오는 길에 세조 일행은 이 소나무 아래에서 소나기를 피했다고 한다. 세조는 “올 때 나를 무사히 지나도록 하더니 갈 때는 비를 막아 주니 참으로 기특하도다”라고 칭찬하며 정2품의 벼슬을 하사했다. 지금의 장관급에 해당하는 높은 품계다. 벼슬을 받은 소나무도 세월을 막을 수는 없는 법. 지금은 우산 모양의 수형을 잃고 한쪽 가지가 많이 잘려 나갔다. 그뿐 아니다. 솔잎혹파리의 맹공격에 시달린 때도 있었고 태풍과 비바람에 이리저리 휠 때도 있었다. 인고의 세월을 버틴 것에게만 주어지는 훈장 같은 상처들이 온몸에 새겨졌다. 높이 15m의 나무는 쇠지팡이의 부축을 받으며 꼿꼿이 서 있다. 100세 시대를 이야기하는 인간들을 수령 600년의 나무는 말없이 내려다본다. 모진 풍파에 수세는 약해졌지만 세월의 깊이는 더해진 모습으로. 글 이수린(유니에스 여행작가) 사진 권대홍(라운드테이블 사진작가) ■여행수첩(지역번호 043) →가는 길 : 당진영덕고속도로 속리산 나들목에서 ‘속리산, 법주사’ 방면으로 우회전한다. 상장교차로에서 ‘속리산’ 방면으로 좌회전, 갈목삼거리에서 ‘속리산국립공원, 법주사’ 방면으로 우회전한 뒤 속리산로를 따라가면 법주사 입구다. →맛집 : 속리산터미널과 속리산조각공원 사이에 식당이 몰려 있다. 옛고을(543-3930)은 산채 한정식과 버섯전골을 잘한다. 영남식당(543-3924)에선 보은의 특산품인 대추로 지은 대추한정식을 맛볼 수 있다. 후평사거리 근처의 용궁식당(542-9288)은 숯불 맛 나는 오징어불고기와 순대국밥으로 유명하다. →잘 곳 : 속리산조각공원 인근의 레이크힐스관광호텔(542-5281)은 130여개 객실을 갖췄고 시설이 중후하다. 삼림욕을 즐기고 싶다면 속리산말티재자연휴양림(543-6282)이나 충북알프스자연휴양림(540-3712)이 제격이다.
  • 전통주 갤러리, 7월 시음 테마주 5종 선정

    전통주 갤러리, 7월 시음 테마주 5종 선정

    강남역에 위치한 전통주 갤러리(관장 이현주)는 7월의 시음 테마주로 ‘한여름 밤, 달구경 하기 좋은 우리 술’로 총 5종을 선정하였다. 선정된 5종은 다음과 같다. ▶소백산 막걸리 탁주 소백산 막걸리는 알코올 도수가 6% 쌀과 지하 암반수가 주재료며 생산지는 충북 단양, 대강양조장에서 제조됐다. 한국의 3대 과거길 중 하나인 소백산 기슭 죽령에서 1918년부터 4대를 이어오는 유서 깊은 술도가 대강 양조장에서 빚는 막걸리다. 농림축산식품부에서 신평양조장과 같이 첫 번째로 선정한 찾아가는 양조장으로 소백산, 월악산, 단양 8경을 비롯한 주변에 명소가 많다. 소백산 자락의 지하 400m 암반수로 만들며, 노무현 대통령이 앉은 자리에서 6번을 연달아마셔 당시 청와대에 200회 이상 납품되기도 했다. ▶천비향 탁주 ㈜좋은술의 천비향은 ‘천년의 비밀을 간직한 향’이라는 뜻을 품고 있으며 14%의 알코올 농도로 이뤄 졌다. 보기 드문 다섯 번 발효한 오양주로 쌀의 양이 일반 탁주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이 들어가며 입안에 감기는 보들보들한 촉감이 인상적이라는 평을 많이 받고 있다. 경기도 평택의 햅쌀 중에서도 찰기가 좋기로 소문난 슈퍼오닝 월광 품종의 멥쌀과 찹쌀을 사용한다. ▶백련 맑은 술 백련 맑은 술은 12%도수로 이뤄진 충남 당진의 해나루쌀과 백련잎(하얀 연꽃잎)을 넣어 빚은 술로 2014년 삼성 이건희 만찬주로 선정되어 유명해졌다. 엷고 은은한 허브 계열의 아로마가 산뜻하게 돋아난다. 신평은 새로울 신(新), 평평할 평(平)을 써서 새로운 평야라는 뜻을 가진 당진의 옛 지명이다. ▶김천과하주 ㈜김천과하주의 쌀과 누룩 등으로 제조된 김천과하주는 경북 무형문화재로 송강호 전통식품명인이 만드는 술이다. 제품명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 수장 이여송 장군이 이곳에서 물을 마셨는데, 그 맛이 너무 좋아 자신의 고향에 있는 개울인 과하천이라고 똑같이 지었다. 이후 이 개울의 물로 술을 빚으면 과하주라고 불렸다. 또 하나는 여름을 나는 술이라고 하여, 지날 과(過) 여름 하(夏) 하는 이름이다. 여름에 술이 산패되는 것을 막기 위해 알코올 도수를 높여 술의 저장성을 좋게 한 술로, 스페인의 셰리와인, 포르투갈의 포트와인 등과 비슷하다. 이번에 시음할 술은 16도의 약주, 23도의 과하주(過夏酒) 방식의 과하주 두 가지 버전으로 출시되고 있다. 알코올 농도는 23%다. ▶복분자음 복분자음은 과실주로 알코올 농도는 12%다. ㈜배상면주가 고창 LB에서 제조됐으며 복분자의 고장으로 유명한 고창해서 나는 복분자를 높은 함량으로 넣어 빚은로 마시고 나면 향과 맛이 좋아 ‘음~’하는 감탄사가 절로 난다 하여 복분자음이라 불린다. 고창군과 MOU 협정을 맺어 지역 농산물 소비 활성화에 기여하고 있으며, 실질적으로 복분자 과즙에 증류주를 넣은 것이 아닌, 직접 복분자를 발효하여 제조, 비교적 가볍고 경쾌한 맛이 살아있다. 선정된 총 5종의 술은 매일 오후1시, 3시, 5시 간격으로 서울에 위치한 전통주갤러리에서 진행된다. 자세한 정보는 해당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 가능하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문 대통령이 간디 추모공원 방명록에 인용한 간디 어록

    문 대통령이 간디 추모공원 방명록에 인용한 간디 어록

    문재인 대통령이 간디 추모공원을 방문해 인용한 마하트마 간디 어록의 키워드는 역시 ‘평화’였다. 인도를 국빈 방문 중인 문 대통령은 부인 김정숙 여사와 함께 10일(현지시간) 간디 추모공원인 ‘라즈 카트(Raj Ghat)’를 방문해 헌화했다. 간디 추모공원은 우리의 국립현충원처럼, 외국 정상들이 인도를 방문할 때 참배하는 곳이다. 청와대는 “인도의 정신적 지도자이자 국부로 불리는 마하트마 간디와 인도 국민에 대한 존주으이 뜻을 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라즈 가트’는 힌디어로 ‘왕의 무덤’이라는 뜻이다. 간디가 1948년 극우파 힌두 청년들에게 암살당한 뒤 그 유해를 이곳에 화장했다. 문 대통령 부부는 붉은색 꽃잎을 제단 위에 뿌리고 묵념했다. 문 대통령은 방명록에 “‘평화로 가는 길은 없다. 평화가 길이다’ 위대한 간디 정신을 되새깁니다. 2018.7.10 대한민국 대통령 문재인‘이라고 적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샛노란 고흐 ‘해바라기’ 점점 시들고 있다고?

    샛노란 고흐 ‘해바라기’ 점점 시들고 있다고?

    컬러의 말/카시아 세인트 클레어 지음/이용재 옮김/월북/316쪽/1만 5800원세계인이 사랑하는 화가 빈센트 반 고흐(1853~1890)는 대표작 ‘해바라기’ 연작을 그릴 때 동생 테오에게 편지를 보냈다. “‘마르세유 사람이 부야베스를 먹는 기세’로 그림을 그리고 있다”고. 그가 맹렬하게 그려냈던 ‘해바라기’는 작열하는 듯한 샛노란빛의 기세로 많은 이들을 매혹해 왔다. 당시 고흐는 꽃이 빠르게 시들어 이른 아침에만 그림을 그릴 수 있다고도 했다. 그런데 영원히 생생할 것만 같았던 그의 그림이 시들고 있다. 해바라기 꽃잎을 칠한 크롬 옐로의 성질 때문이다. 크롬 옐로는 1762년 시베리아 베레소프 금광에서 발견된 진홍색 수정, 홍연색에서 추출된 색이다. 프랑스 화학자 니콜라스 루이 보클랭은 홍연석이 다양한 색을 품고 있음을 발견했다. 레몬 옐로부터 황적색, 진한 적색까지 띠는 이 광물이 안료로 만들어진 것은 1804년. 기존에 쓰이던 색이 아니다 보니 고흐는 크롬 옐로의 극적인 노란색에 매우 의존했다. 하지만 크롬 옐로는 시간이 지나면 갈색으로 변해 버린다. 실제 고흐 그림을 수년간 연구한 학자들은 그림 속 꽃잎의 크롬 옐로가 심각한 수준으로 변색됐다고 우려했다. 책은 이처럼 색에 대한 인간의 다양한 편견과 평가, 쓰임까지 아우르며 이름 하나로 가둘 수 없는 색의 무한한 지도를 펼쳐 보인다. 지구상의 모든 색을 목록에 담으려 했던 인간의 시도는 특정 색에 대한 선호와 평가 절하, 혹평, 유행 등 다채로운 사연과 역사를 만들어 냈다. 디자인 저널리스트인 저자가 ‘엘르 데코레이션’에 3년간 실었던 색상 칼럼 가운데 75가지 색을 모았다. 저자는 때로는 우아한 위트, 때로는 가차없는 독설로 색에 대한 감각을 찬란하게 일깨운다. 왜 19세기 후반 인상파 화가들이 ‘바이올레토마니아’(보라색광)라 불리며 기존 예술계의 공격을 받았는지, ‘모비 딕’을 쓴 허먼 멜빌이 그토록 표현하고 싶어 했던 고래의 숭고한 흰색은 무엇이었는지, 베이지는 왜 고상하면서도 질리도록 밍밍한 소비주의를 상징하는 색이 되었는지 색의 천일야화가 펼쳐진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그늘족/홍일표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그늘족/홍일표

    그늘족/홍일표 저들이 모르는 나라에는 오늘도 혼자 사는 아침이 있고 혼자 자라는 계단이 있다 공중에서 떼어낸 새들이 푸드덕거린다 몇몇 나비들이 그를 조상하고 어디엔가 다른 하늘이 있을 거라고 말하는 예언자들이 나무 꼭대기에 죽은 부엉이를 올려놓는다 내 안에서 누가 총을 쏜다 다연발 권총이다 퍽퍽 장미가 핀다 피의 수요일이다 벙어리가 된 광장을 가로질러 집으로 돌아왔는데 발이 없다 나는 쓸쓸한 아침을 위로하는 방법을 궁리하다가 멸망한 제국이 박하사탕처럼 희어질 때까지 지저귀는 땅속의 새를 본다 가끔 돌 틈에서 꽃잎으로 진화한 새의 표정을 발견한다 두 다리를 만지면서 아침이 살아 있음을 확인하고 나는 살냄새 가득한 즐거운 재앙 속으로 들어간다 혼자 잠 들고 혼자 잠깨는 ‘그늘족’이 혼자 사는 아침의 풍경이다. 그는 혼자 자라는 계단이 있고, 공중에서 떼어 낸 새들은 땅속에서 지저귀고, 죽은 부엉이를 나무 꼭대기에 올려놓는 예언자가 있는 곳에서 혼자 산다. 그를 ‘그늘족’이라고 부를 수 있으리라. ‘그늘족’이 맞는 아침에는 자라는 계단, 달아나는 얼굴, 장미꽃, 바다의 노령(老齡) 등이 성분으로 골고루 섞여 있다. 그의 안쪽에서 누군가 다연발 권총을 쏘아 대고, 따라서 그가 맞는 수요일은 늘 “피의 수요일”이다. 그는 발 없이 광장을 가로질러 돌아온다. 혼자 사는 생활에는 얼마간의 피로와 쓸쓸함이 깃드는 법이고, 그것은 “즐거운 재앙”이다. 장석주 시인
  • ‘컬투쇼’ 이영자 “꽃 중에 제일 꼴보기 싫은게 장미...못 먹으니까”

    ‘컬투쇼’ 이영자 “꽃 중에 제일 꼴보기 싫은게 장미...못 먹으니까”

    ‘컬투쇼’ 방송인 이영자가 스페셜 DJ로 나섰다.23일 오후 방송된 SBS 파워FM ‘두시탈출 컬투쇼’에는 방송인 이영자가 출연, 스페셜 DJ로 청취자를 만났다. 이날 김태균은 컬투와 의리를 지키기 위해 스튜디오를 찾은 이영자에게 장미 꽃다발을 선물해 눈길을 끌었다. 김태균은 “제가 많은 여배우들이 왔어도 꽃 선물을 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에 이영자는 “내가 꽃 중에 제일 꼴보기 싫은 게 장미다”라며 “꽃은 가성비가 안 나온다. 장미는 보기만 하지 먹을 수가 없다. 꽃잎을 따먹을 수도 없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이어 “바질, 호박잎 등은 바로 따먹을 수 있는 건데 가성비가 없는 꽃다발이다”며 “장미는 이런 거 보는 것밖에 안 되지 않냐”라고 호통을 쳤다. 사진=SBS 연예팀 seoulen@seoul.co.kr
  • “당신의 밝은 미래 응원하겠습니다” 성남시 성년의 날 1만1436명에 축하카드

    “당신의 밝은 미래 응원하겠습니다” 성남시 성년의 날 1만1436명에 축하카드

    경기 성남시는 올해 스무 살이 되는 1999년생 1만1436명에게 성년 됨을 축하하는 카드(사진)를 보냈다고 21일 밝혔다. ‘제46회 성년의 날’을 맞아 대상자들이 성인으로서 자부심과 책임감을 느끼는 계기를 만들어 주기위해 축하카드에는 이재철 성남시장 권한대행의 응원 메시지를 담았다. 풀잎과 꽃잎 이미지로 ‘20’이라는 숫자를 꾸민 카드에 “기다림과 성숙의 세월을 지나 스무 살을 맞이한 당신에게 축하를 보냅니다. 가슴 한편에 간직해 왔던 빛나는 꿈을 마음껏 펼치게 될 당신의 밝은 미래를 응원하겠습니다” 라고 적었다. 성남지역에선 지난 19일 오후 2시 중원청소년수련관 야외광장에서 성년 된 40명과 부모가 참석한 가운데 ‘전통 성년례’가 열렸다. 신동원 기자 asadal@seoul.co.kr
  • [부동산 플러스] 흑석동 ‘시그니처 캐슬’ 특화 설계

    [부동산 플러스] 흑석동 ‘시그니처 캐슬’ 특화 설계

    롯데건설이 서울 동작구 흑석9구역 재개발사업 시공권 확보에 나서면서 ‘시그니처 캐슬’ 아파트(조감도) 특화 설계를 내놓았다. ‘바람’과 ‘꽃’을 외관 디자인 및 설계의 개념으로 삼았다. 스카이 라운지와 연결된 꽃잎 모양의 ‘블라썸 브릿지’는 외부에 전망 엘리베이터를 설치해 중앙광장과 한강 전경을 바라볼 수 있게 했다. 옥상에는 사계절 사용할 수 있는 리조트 개념의 온수 풀장도 들어선다. 단지 주 출입구 ‘시그니처 게이트’는 웅장한 곡선 형태로 만들고, 아파트 측벽에는 LED로 다양한 영상을 연출할 수 있는 ‘미디어 아트월’도 설치한다.
  • [서동철 논설위원의 스토리가 있는 문화유산기행] 궁예가 불 지르고 왕건이 중건한 영월 흥녕사 터

    [서동철 논설위원의 스토리가 있는 문화유산기행] 궁예가 불 지르고 왕건이 중건한 영월 흥녕사 터

    법흥사(法興寺)가 있는 강원 영월군 무릉도원(武陵桃源)면은 2016년 수주(水周)면이 이름을 바꾼 것이다. 무릉도원이 중국 시인 도연명의 ‘도화원기’에 나오는 이상향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무릉도원면으로 이름을 바꾸자 “이러다 유토피아면도 나오는 것 아니냐”는 우스개도 없지 않았다. 그런데 무릉도원면에는 예부터 무릉리와 도원리가 있었다. 나름대로 역사성과 동떨어진 작명(作名)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도화원기’는 어부가 물고기를 잡으려고 강을 따라 계곡 깊숙이 들어가다 복숭아꽃 만발한 살기 좋은 산속 마을을 발견하는 이야기다. 금은보화와 산해진미가 널린 호화로운 천국이 아니라 달콤한 향기가 감돌고 꽃잎이 바람에 날리는 소박한 꿈속의 마을이다. 무릉도원면이 그런 동네다. 많은 사람이 찾아들면서 법흥천을 거슬러 올라가는 아름다운 계곡에는 펜션이며 캠프장이 수없이 들어섰다.법흥사는 영월과 평창, 횡성에 걸쳐 있는 해발 1167m의 사자산 아래 자리잡고 있다. 절을 창건할 때 도승(道僧)이 사자를 타고 왔다고 하여 사자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그런데 사자는 부처를 상징한다. 깨달음을 이룬 이가 앉는 자리가 사자좌(獅子座)이고, 그가 말하는 진리의 가르침이 사자후(獅子吼)다. 법흥사는 5대 적멸보궁(寂滅寶宮)의 한 곳으로 꼽히는 성지다. 신라승려 자장(590~658)은 당나라 청량산에서 문수보살을 친견하고 석가모니 진신사리를 전수받아 643년 돌아왔다. 오대산 상원사, 태백산 정암사, 영축산 통도사, 설악산 봉정암에 이어 마지막으로 사자산에 진신사리를 봉안했다. 당시 사자산에 창건한 절 이름은 흥녕사(興寧寺)였다.진신사리란 부처의 유골이니 적멸보궁은 곧 부처의 무덤이다. 한국 불교에만 있다는 적멸보궁은 진신사리를 모신 무덤과 그 무덤을 바라보며 배례하는 전각을 가리킨다. 부처의 유골이 묻혔다면 그 산 전체가 적멸보궁이기도 하다. 그러니 오대산, 태백산, 영축산, 설악산이 모두 부처의 무덤이고, 사자산이 또한 그렇다. 흥녕사는 ‘누구나 깨달으면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선종(禪宗)이 사회 변화를 주도하던 신라 말 다시 역사에 등장한다. 철감 도윤(797~868)이 구산선문(九山禪門)의 하나인 사자산문을 개창한 곳은 화순 쌍봉사지만, 그의 제자 징효 절중(826~900)이 흥녕사에 머물며 선맥을 이어 감에 따라 문파의 중심지로 부각된 것이다. 흥녕사는 역사에 기록된 대로 891년(신라 진성여왕 5) 병화로 소실된 것을 944년(고려 혜종 1) 중건했다. 그 뒤 다시 불타서 천년 가까이 소찰(小刹)로 명맥만 이어 오다가 1902년 비구니 대원각(大圓覺)이 몽감(夢感)에 의하여 중건하고 법흥사로 개칭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절은 1912년 다시 소실됐고, 1933년에는 적멸보궁을 지금의 터로 이전 중수했다고 법흥사 측는 홈페이지에 밝히고 있다. 그런데 작고한 미술사학자 호불 정영호 선생의 1969년 동국대 석사학위 논문이 ‘신라 사자산 흥녕사지 연구’다. 그는 1955년 절터를 처음 답사한 뒤 1967년과 1968년 신라오악종합학술조사단의 일원으로 현장을 다시 조사했다. 1934년생이니 일선에서 산전수전을 다 겪고 35세가 되어서야 석사학위 논문을 쓴 것이다. 선생은 논문에 ‘현재 절터 일대는 경작지로 변해 지상의 유구마저 파괴되고 광활한 사역에는 주초석 몇 점만 잔존하여 청자 및 기와 조각을 수집할 수 있을 뿐’이라고 했다. 이어 ‘유물은 모두 석조물로 고려 초기에 건립된 징효대사보인탑비를 비롯해 석조부도 2기와 석실, 석관, 석조불대좌 등이 오래된 것으로 잔존한다’고 덧붙였다. 법흥사를 두고는 ‘금세기에 들어와 흥녕사 옛터에 조영된 사찰로 선문과는 직접 관련은 없다’고 적었다.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법흥사를 돌아봤다. 법흥계곡을 따라 난 길이 끝날 때쯤 나타나는 이정표를 따라 왼쪽으로 방향을 돌리면 새로 지은 일주문이 보인다. 사실 ‘새로 지은’이라는 표현이 적절하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은 약간의 시간차가 있을 뿐 모든 전각을 새로 지었기 때문이다. 일주문에서 조금 더 차를 달리면 놀이공원을 방불케 할 만큼 넓은 주차장이 나타난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법흥사와 적멸보궁을 찾는다는 뜻이다. 차에서 내리면 절 주변을 에워싸고 있는 적송숲이 먼저 눈길을 끈다. 이 정도의 노거수(老巨樹)가, 그것도 토종 적송이 제대로 보존되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절 초입에 보이는 2층 전각은 원음루다. 부처의 가르침을 소리로 전하는 법고, 운판, 목어가 있다. 이 세 가지와 더불어 사물(四物)을 이루는 범종은 극락전 앞에 있다. 원음루에 다가가니 1층에 ‘금강문’이라는 현판이 붙어 있다. 여기서부터가 본격적인 성역(聖域)이다. 정면으로 곧바로 난 산길로 10분 남짓 오르면 적멸보궁이다. 전각 안에는 다라니경을 외는 사람들로 가득하고, 밖에도 두 손을 모으고 수없이 전각을 도는 기도객들이 보인다. 전각 너머에 정영호 선생이 언급한 석분이 있다. 입구가 직사각형인 석분은 기도를 위한 돌방으로 안쪽으로는 사리를 모셨던 돌널이 있다고 한다. 다시 산을 내려오면 원음전 서쪽은 극락전 권역, 동쪽은 요사채 권역이다. 요사채 권역에 숙소로 쓰는 듯한 큼지막한 전각에 붙은 ‘흥녕원’(興寧院)이라는 편액이 눈길을 끈다. 구산선문 시절의 흥녕선원 터에서 법등(法燈)을 이어 가고 있다는 자부심의 표현이다.서쪽의 극락전 앞마당은 뭔가 채워지지 않은 듯 황량하다는 느낌마저 든다. 극락전 오른쪽에 보이는 커다란 비석이 흥녕사터 징효대사탑비다. 비문에는 징효 절중이 출생해서 입적할 때까지의 행적이 실려 있다. 비석은 대사가 입적하고 44년이 지난 944년(고려 혜종 원년)에 세워졌다. 왼쪽 산비탈에는 그의 부도가 있다. 비문에 새겨진 내용 가운데 흥미로운 것은 절중과 후삼국의 관계다. 신라 왕실의 후손으로 알려진 궁예는 오늘날 영월 남면의 세달사에서 머리를 깎았다. 양길도 멀지 않은 원주에서 세력을 키웠다. 흥녕사가 소실된 891년의 병화는 ‘북원의 적수 양길이 그 부장 궁예를 보내 백기(百騎)를 거느리고 북원 동쪽의 부락과 명주 관할인 주천 등 십여 군현을 침습하게 했다’는 ‘삼국사기’ 기록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 학계는 본다. 궁예가 군사를 몰아 험준한 영월 지역으로 들어간 목적은 사자산문의 인적·물적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라는 연구도 있다. 한편 징효대사탑비의 건립과 흥녕사의 중건은 고려 왕실이 주도했다. 탑비에 적힌 시주자 가운데 왕요군(王堯君)과 왕소군(王昭君)은 훗날 정종과 광종이 되는 태조 왕건의 아들들이다. 또 태조의 제15비 광주원부인과 제16비 소광주원부인, 혜종비 후광주원부인의 아버지인 광주(廣州)의 왕규를 비롯해 왕건의 장인들도 다수 참여했다. 결국 절중과 사자산문이 궁예와는 적대적이었던 반면 왕건과는 우호적이었음을 보여 준다. 글 사진 dcsuh@seoul.co.kr
  • 강수지♥김국진 결혼식, 뭉클함에 눈물 바다 “행복합니다”

    강수지♥김국진 결혼식, 뭉클함에 눈물 바다 “행복합니다”

    강수지, 김국진의 결혼식이 화제다.지난 15일 방송된 SBS 예능프로그램 ‘불타는 청춘’에서는 멤버들이 강수지, 김국진의 깜짝 결혼식을 준비해주는 모습이 그려졌다. 이날 이수경은 결혼식을 따로 올리지 않겠다고 말한 강수지를 위해 이바지 음식을 준비했다. 이에 멤버들은 강수지, 김국진을 위한 깜짝 결혼식을 준비하게 됐다. 멤버들이 준비 한 결혼식에 강수지, 김국진은 당황하면서도 감동을 받은 표정을 지었다. 강수지는 눈물을 흘리지 않기 위해 꾹 참는 모습을 보였다. 그 모습을 본 강경헌, 박선영, 양수경은 눈물을 흘렸다. 멤버들은 결혼식을 올린 두 사람을 향해 “잘 살아라”라고 말하며 축복의 의미가 담긴 꽃잎을 뿌렸다. 결혼식이 끝난 뒤 강수지는 “이런 자리를 둘 다 쑥스러워해서 이런 자리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렇게 마련해주시니까 기분이 더 행복한 것 같다”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사진=SBS ‘불타는 청춘’ 방송 캡처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정찬주의 산중일기] 불두화 꽃그늘 아래서

    [정찬주의 산중일기] 불두화 꽃그늘 아래서

    산방 연못가에 불두화가 탐스럽게 피어 있다. 마치 백자 밥그릇에 수북하게 담긴 쌀밥 같다. 부처님오신날 전후로 핀다고 해서 불두화(佛頭花)란 이름이 붙었겠지만 실제로는 어버이날 무렵에 피기 시작해서 스승의 날부터 만개하는 꽃이다. 나는 낙향해서 한동안 불두화와 수국을 구분하지 못했는데, 이제는 그렇지 않다. 불두화는 수국과 꽃 모습은 흡사하지만 잎끝이 세 갈래로 갈라져 있는 것이 다르다. 산중에서 살다 보니 관찰력이 배가된 느낌이다. 불두화를 보고 있으려니 세 분의 스승이 생각난다. 모두 내 인생의 신호등이 돼 주신 분들이다. 문학의 스승이신 동국대 전 총장 고우(古雨) 홍기삼 박사님은 나에게 고결한 문학정신과 문장의 조화가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셨고, 불가의 스승이신 법정 스님은 방대한 불경 속에서 불법의 핵심을 짚어 주셨고, 인생의 스승이신 아버지께서는 나의 사춘기 방황을 멈추게 해 주셨으며 남을 위해 살라고 유언하셨던 것이다. 그러니 이 세 분은 나의 문학관, 종교관, 인생관에 크게 영향을 미친 분들이 아닐 수 없다.며칠 전이 어버이날이었으므로 아버지 이야기를 짧게나마 하고 싶다. 돌아가신 지 11주년이 넘었다. 폐암 3기 판정을 받은 선친께서는 병상에서 몇 개월 누워 계시다가 돌아가시기 2개월 전에는 의사 권유로 퇴원하셨다. 광주 집으로 가지 않고 내 산방으로 오셨다. 나와 함께 살기 위해서였다. 어머니와 나, 아내는 하루 8시간씩 3교대로 간병하기로 했다. 퇴원하신 아버지는 워낙 애연가였으므로 담배를 다시 피우셨다. 나는 엄했던 아버지의 유일한 친구가 되어 농담하곤 했다. 그러다가 아버지는 무심한 성격인 내게 접빈객(接賓客)을 잘하라는 말씀을 남기시고는 곡기를 끊으신 지 2주 만에 눈을 감으셨다. 새벽에 팔다리를 주물러 드리고 나서 잠시 나란히 누웠다가 일어나 보니 직감한 대로였다. 편안하게 주무시는 모습을 보니 좋은 곳으로 가신 것이 분명했다. 희미하게 웃고 계셨다. 그래서인지 슬프지 않았다. 아버지의 일생이 미소 속에 다 들어 있는 듯했다. 나처럼 사춘기 때 방황을 많이 한 사람도 드물 것 같다. 중2 때부터는 학교공부를 아예 하지 않고 우리 집에 전세 들어 살던 월부책 장사의 책만 읽었다. 톨스토이의 ‘인생독본’을 읽은 뒤 친구들에게 개똥철학자 행세를 하고 다녔다. 재수 시절에는 가출을 했다. 어느 낯선 도시에서 낭만과 불안의 하루하루를 되풀이하다가 아버지에게 붙들려 귀가하고 말았지만. 그때 나는 불벼락이 내릴 줄 알고 몹시 위축돼 있었는데, 아버지는 내게 라이터를 주시면서 뜻밖에 목소리를 낮추어 자애롭게 훈계하셨다. “새 옷으로 갈아입어라. 벗은 옷은 마당으로 가지고 나가 태워라. 너는 이제 어제의 네가 아니다.” 아버지의 훈계는 그뿐이었지만 어머니와 동생들을 볼 면목이 없어서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고 싶었다. 당장 도서관으로 달려가 나를 숨겼다. 아버지를 생각할 때마다 또 하나 늘 떠오르는 일화가 있다. 아버지와 큰아버지의 우애인데 삼국유사에나 나올 법한 일화가 아닌가 싶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두 분이 돌아가시고 나자 아버지께서는 친족이 모인 자리에서 “앞으로 나는 형님 내외분을 아버지 어머니로 생각하면서 모시겠다”고 선언했다. 형제들의 우애를 강조하고자 하신 빈 말씀이 아니었다. 실제로 아버지께서는 미국에 사는 여동생 집에서 6개월 동안 사실 일이 생겼을 때 큰아버지를 남모르게 위로한 일이 있었다. 당시 농사를 짓던 큰아버지께서는 지병이 있어 광주의 딸 집에 와 계셨는데, 아버지는 큰아버지께서 좋아하시는 단팥빵을 6개월 동안 배달하도록 한 제과점에 계산하고 떠나셨던 것이다. 훗날 이 이야기를 들은 법정 스님께서 아버지에게 드리라고 두툼한 겨울 내의 한 벌을 주신 적이 있다. 신도가 보내 준 내의였겠지만 스님께서는 형님을 대하는 아버지의 마음에 자못 감동하셨던 듯하다. 불두화만 보고 있으려니 함박꽃이 ‘나도 여기 있어요’ 하고 소리친다. 법정 스님께서 사랑했던 모란 꽃잎이 봄바람에 너울너울 하늘거린다. 용인에 계시는 고우 선생님 댁에는 무슨 꽃이 피어 선생님의 속뜰을 환하게 비추고 있는지 궁금하다.
  • [반려독 반려캣] 이웃에게 꽃 선물하는 ‘낭만 고양이’ 등장

    [반려독 반려캣] 이웃에게 꽃 선물하는 ‘낭만 고양이’ 등장

    만일 당신의 집 앞에 누군가가 계속해서 꽃잎을 놔둔다면 어떤 기분이 들겠는가. 최근 영국에 사는 ‘로지’라는 이름의 한 여성은 집 앞에 분홍색 꽃잎이 놓여 있을 때가 많아 의아하게 생각했다. 딱히 짚이는 데도 없거니와 누가 이런 낭만적인 행동을 하는지 전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얼마 전, 그녀는 그 '진실'과 마주할 수 있었다. 고양이 전문매체 러브미우에 따르면, 로지는 집 밖이 훤히 보이는 부엌에서 요리하던 중 고양이 한 마리가 테라스에 꽃잎을 놔두는 모습을 목격했다. 고양이는 바로 그녀는 물론 여러 이웃에게 사랑받고 있는 ‘윌로우’라는 고양이였다. 그녀는 그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워 재빨리 스마트폰 영상으로 촬영했다. 로지는 러브미우와의 인터뷰에서 “대개 고양이가 물어오는 것은 동물 사체 정도라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녀의 집 앞에 놔둔 꽃은 윌로우가 평소 자신을 살갑게 대해주는 로지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것일지도 모르는 것이다. 윌로우는 주인집 정원에 떨어져 있던 꽃잎을 로지 집 처마에 놔두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런 윌로우에게 “사람보다 매너가 좋다” “기특하다” “최고의 선물이다” 등 호평이 이어지고 있다. 한편 고양이가 사람에게 꽃을 선물하는 사례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3월 캐나다에서는 한 고양이가 주인에게 꽃을 선물해 화제를 모은 바 있다. 사진=로지/러브미우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길섶에서] 대발견/손성진 논설주간

    걸어도 끝이 없이 물안개 앞을 가리는 봄 길엔 이팝나무, 명자나무 하양 빨강 꽃잎이 밟고 가라는 듯 후드득 떨어진다. 따라가고 따라가다 보면 저 뭉게구름 맞닿은 어딘가에 내 건조한 정신을 누일 짙푸른 바다가 있을 것이다. 길섶에 클로버 군락이 점점이 새하얀 꽃을 피워 올리고 있다. 참 희한한 날이다. 눈을 부릅떠도 한 번도 찾지 못했던 네잎 클로버를 발견한 것이다. 그것만으로 희한하다고 할 수 없다. 오잎 클로버, 육잎 클로버가 눈에 띄는 게 아닌가. 무슨 대발견인가 싶어 찾아보니 실제로 오잎, 육잎 클로버가 있단다. 온난화로 인한 돌연변이라나. 가녀린 갈대 나부끼는 둑에 앉아 뱀 등처럼 느릿느릿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본다. 고즈넉한 강변 풍경에 마음은 여유로워진다. 눈을 감고 그 여유로움에 몸을 실어 흘러가 본다. 푸른 바다가 눈보다 살갗에 먼저 다다라 간질인다. 바다가 내 품 속에 들어온다. 눈을 뜨니 금빛 저녁 햇살이 저만치서 손을 내밀 듯 다가온다. 저렇게 맑은 하늘과 눈부신 황혼을 본 적이 있었던가. 네잎, 오잎, 육잎 클로버와 함께 책갈피에 담아 두고 싶었다. 손성진 논설주간 sonsj@seoul.co.kr
  • [김응교 교수 작가의 탄생] 죽음에서 살아남았고 살기 위해 죽음을 썼다

    [김응교 교수 작가의 탄생] 죽음에서 살아남았고 살기 위해 죽음을 썼다

    베트남에서 온 작가는 한국의 해물탕을 좋아한다. 이유는 국토 한 면이 바다에 접한 나라 사람이라서 그렇다고 했다. 어제 병원까지 다녀왔던 분이라 뵐 수 없겠지 했는데 다행히 시간을 내주셨다. 서태지가 나왔던 1991년 현재, 16개국 언어로 번역됐고 노벨문학상 후보로 언급되는 그의 장편소설 ‘전쟁의 슬픔’은 제목만치 서글프다. 그를 만난 아침은 소설의 첫 장면처럼 축축한 습기로 가득했다. 소설 주인공 끼엔은 열일곱 살 때 북베트남 정규군에 입대한다. 당시 조국의 독립과 통일을 위해 베트남의 젊은이들은 많이 자원입대했다. 온기가 남아 있는 적병의 몸에 못을 박듯 한 발 한 발 방아쇠를 당겼던 끼엔은 전쟁 후 살아남은 단 열 명의 병사 중 한 명이었다. 전사자 유해발굴단으로 끼엔은 부대원이 몰살당한 지역을 찾아간다. 가는 곳마다 끼엔은 생시를 구별할 수 없는 혼령을 목격하곤 한다. 머리가 잘려나간 한 무리의 흑인 병사가 산기슭으로 행군하는 것을 보았다는 이들도 있었다. 전쟁이 갈라놓은 첫사랑 프엉도 찾아온다. 정신적인 트라우마를 겪은 끼엔에게 프엉만은 확실한 존재였다. 하지만 전쟁은 프엉과의 추억을 앗아갔다. 전쟁은 그녀를 변화시키고, 두 사람 사이에 균열을 만들었다. 죽지 않기 위해 끼엔은 글을 쓴다. 악몽과 현실 사이에서 버티고자 끼엔이 할 수 있는 일은 죽음을 쓰는 일이었다.“신짜오(안녕하세요).” 중얼거리며 외웠는데 금방 잊은 인사말, 통역해 주시는 하재홍 선생께서 가르쳐 주셔서 인사할 수 있었다. 하 선생은 천호동에 있는 한 모텔에 머물고 있는 그를 모시고 내려왔다. 그는 담배를 맘대로 태울 수 있는 모텔이 호텔보다 좋다고 한다. 홍마초의 뿌리와 이파리, 꽃잎을 담뱃잎에 섞어 말아 피워 물고 환각에 들어가곤 했다던 북베트남 병사들이 떠올랐다. 꼬박 밤을 새운 나보다 더 초췌한 그를 만나 가까운 해물탕집으로 가려 할 때 비가 스멀스멀 내리기 시작했다. 전쟁 얘기를 시작할 때 마치 정글에 비 내리듯 한꺼번에 빗물이 쏟아졌다. 장딴지까지 차오른 핏물 속을 행군했다는 구절이 떠올랐다. 벌건 내장을 드러낸 해물탕이 나왔다. ‘전쟁의 슬픔’은 시간의 흐름대로 쓴 톨스토이식 소설이 아니다. 끔찍한 비극의 찌끼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청년이 의식과 무의식, 현실과 기억, 지금과 과거를 오가는 ‘의식의 흐름’대로 쓴 소설이다. 그렇다고 도스토옙스키의 글쓰기와도 달랐다. “그래요. 맞아요. 의식의 흐름대로 쓴 소설이에요. 처음부터 그렇게 쓰자 해서 쓴 소설이 아니라 쓰다 보니 이렇게 됐어요. 내 소설이 도스토옙스키 소설과 비슷하다는 데 베트남어판 도스토옙스키 소설은 번역이 이상한지 읽기 어려웠어요.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이 1988년 베트남말로 번역됐는데 참 좋았어요.” 그가 ‘백년의 고독’을 읽었다는 말에 멈칫했지만, 단순히 마르케스의 영향으로는 읽히지 않았다. 신화나 전설을 차용했던 마르케스의 신화적 상상력과 달리, ‘전쟁의 슬픔’은 비극적 사실과 고통스러운 기억 자체를 신화적 상상력으로 끌어 쓰고 있었다.소설에서 2375회나 이름이 등장하는 끼엔은 1969년에 고등학교를 마치고 입대해 북베트남 보병사단의 병사로 서부고원 전선에서 싸웠던 작가의 이력과 유사하다. 다만 이 소설의 주인공은 내가 보기에 끼엔이 아니다. 숨은 주인공이 있다. 끼엔이 외면적 주인공이라면, 950회 이름이 나오는 프엉은 내면적 주인공이다. 의식의 흐름대로 쓰는 작가들, 도스토옙스키나 카프카 같은 이들은 여러 인물에 자신의 내면을 투영해 넣는다. “어떻게 아셨어요? 맞아요. 끼엔은 베트남 전쟁을 겪은 베트남 병사의 일반적인 정서를 가진 인물이고요. 프엉은 내면의 제 자신입니다.” 마르케스와 다른 그의 글쓰기에는 베트남 특유의 상상력이 있었을 것이다. 죽은 혼령들은 왜 이리 많이 나오는지. 끼엔이 찾아가는 곳은 사람들이 많이 죽은 ‘고이 혼’이라는 지역이다. 우리말로 하면 ‘혼을 부른다’는 초혼(招魂) 지역이랄까. 거기서 끼엔은 죽은 자를 두 눈으로 자주 본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으스러진 육신을 끌고 다니는 귀신들이 지천에 널려 있는 곳이다. 정신병이 아니라 해질녘 나무들이 바람결에 내는 신음이 귀신의 노랫소리로 들린다. 소설에는 귀신 72회, 유령 24회, 혼령 18회, 망령이 4회 등장한다. 모두 죽은 이의 영혼들이다.“베트남 사람들에게는 이상한 상상력이 아니에요. 동남아 사람들은 육신이 사라져도 혼령이 일상에 함께한다고 믿지요. 내 작품에서 영혼, 귀신, 죽은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은 일반 사람들의 정서 속에 이렇게 남아 있다는 것을 그대로 쓴 거예요. 억울하게 죽은 귀신들, 전쟁에서 총에 맞아 죽어도 혼령으로 떠돌죠. 문화권이 다르면 이해하기 힘들겠죠. 공산주의 유물론의 관점에서는 유령이 뭐냐 하지요. 가톨릭 신도들은 영혼이 위로 간다 하지만, 베트남 사람들은 위가 아니라 혼령은 영원히 우리 주변에 있다고 믿어요.” 작가로서 그는 죽은 자와 산 자를 소통시키는 영매(靈媒)다. 죽은 자 중에 호아라는 여성 병사 얘기가 가장 마음 아팠다. 호아라는 이름은 이 소설에서 98회 등장한다. 이 소설에서 세 번째로 많이 등장하는 이름이다. 호아는 부대원의 길을 인도하는 선도병이었는데 길을 잘못 들어 미군이 있는 곳으로 부대원을 인도했다. 그들을 포위한 미군이 다가오자 부대원을 남기고 호아가 미군에게 뛰어든다. 풀밭에 쓰러진 호아 위로 알몸의 미군들이 숨을 헐떡이며 먼저 차지하려고 으르렁댔다. 집단 강간당하는 장면을 숨어서 보면서도 끼엔은 수류탄을 던지지 못한다. 수류탄을 던지면 위치가 발각돼 죽을까 봐. 수류탄을 던지지 못했던 비겁함은 살아남은 끼엔에게 가장 아픈 트라우마로 남는다. “내가 경험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전쟁 때 여군들이 생포되면 전부는 아니더라도 미군에게 강간당한다는 얘기가 많았어요. 그 얘기를 쓴 거죠.” 영화 ‘지옥의 묵시록’, ‘디어헌터’, ‘택시 드라이버’, ‘람보’, ‘플래툰’ 등은 베트남 전쟁을 주제로 한 미국 영화다. 지금까지 베트남 전쟁에 대해 알고 있는 정보는 미국의 시각을 통한 것이었다. 우리는 우리가 오리엔탈이면서 오리엔탈리즘 시각에서 베트남을 소비해 왔다. 이 영화들은 전쟁에 참여했던 미국인들이 겪는 내면의 싸움이며, 자가치유 방식이다. 미국인이 겪는 베트남전 트라우마가 이 영화들이 주제다. 그나마 박영한의 ‘머나먼 쏭바강’, 안정효의 ‘하얀전쟁’, 황석영의 ‘무기의 그늘’은 우리의 입장에서 전쟁이 파괴한 인간을 그리고 있다. 한편 ‘전쟁의 슬픔’에는 영웅이 없다. 도박과 환각에 빠진 베트남 병사들이 등장한다. 짐승으로 오인해 민간인을 사살하는 장면도 나오기에, 베트남 정부로서는 지금도 꺼림칙한 소설이다. 승리한 전쟁을 ‘슬픔’으로 표현했다며 처음엔 제목이 ‘사랑과 숙명’으로 바뀌어 나왔다. 1995년 런던 인디펜던츠 번역 문학상, 1997년 덴마크 ALOA 외국문학상, 2011년 일본경제신문 아시아 문학상 등을 받았지만, 정작 베트남 정부로서는 감추고 싶은 금서(禁書)였다. 베트남 국내에서 학생들은 지금도 이 소설을 잘 모른다. 한국에 온 베트남 유학생에게 물어 보면 외국에서 이 소설이 유명하다는 사실을 한국에 와서 알았다는 학생도 있다. 그의 건강을 염려하는 사람들이 많다. 주인공 끼엔처럼 그는 아직도 악몽에서 괴로워하는 걸까. 이만큼 끔찍한 소설을 쓴 사람이 정상인으로 살 수 있을까. 베트남 파병을 다녀와서 매일 군인 수통에 소주를 넣어 마시고, 군용 단도를 차고 다니면서 주변 사람을 위협하는 등 평생 트라우마에 시달리다가 돌아가신 한국인 얘기를 전했다. “많이 회복됐어요. 글을 쓰는 창작 활동이 치료에 도움이 되지요. 그래요. 그럴 거예요. 전쟁 후 베트남 사람들은 그래도 주변에서 대화도 하고 함께 울어 주고 그러는데 미군이나 한국군은 더 심하게 트라우마를 겪었을 거예요. 미군이나 한국군은 낯선 타국에서 전쟁의 비극을 겪은 것이죠. 베트남 군인은 함께 전쟁을 겪은 베트남 사람들이 위로해 주고 풀 수 있었는데, 미군이나 한국군은 아무도 공감해 주지 않았을 거예요. 대화 상대도 없으니 몸부림치다가 죽어갔을 거예요.” 이제 가장 궁금한 질문을 던졌다. 베트남 전쟁이 끝난 1975년 4월 30일, 제27청년여단 소년병 500명 가운데 살아남은 열 명 중 한 명이었다. 전쟁의 트라우마로 방황하던 그는 어떻게 작가의 길을 선택했을까. “어렸을 때부터 책 읽는 것을 좋아했어요. 교수였던 아버지는 작가 친구들이 많이 있었어요. 그분들은 전쟁 무용담이나 문학 작품 얘기를 많이 했죠. 군에 입대하고 6년 동안 전쟁터에 있느라 글을 잊었지요. 전쟁 끝나고 돈 벌러 다녔는데, 아버지 친구들이 글재주 있다며 기억해 주셔서 문예창작학과에 들어간 거죠. 처음엔 전쟁 중 청년들의 연애 이야기를 쓰려고 했는데 가장 깊은 체험이 전쟁이었기에 전쟁 소설을 쓴 겁니다.” 그에게 글쓰기는 슬픔을 극복하는 생존 방식이었다. 통일을 경험한 베트남 작가로 한국인에게 전할 말씀을 부탁드렸다. “베트남은 무력통일이었기에 승자 북베트남과 베트콩이 남베트남 체제를 완전히 바꿔 놓았어요. 통일 후 갈등이 컸어요. 남베트남 사람 중 재산을 빼앗긴 사람들은 보트피플로 망명했어요. 전쟁을 통한 통일은 가짜 통일이에요. 진짜 통일은 평화를 통한, 대화를 통한 통일이에요. 기다리는 시간이 중요해요. 하나씩 하나씩 해결해 나가는 인내가 필요해요.” 현재 한국의 교역국 1위는 중국, 2위는 미국, 3위는 베트남이다. 문재인 정부가 베트남과의 교역을 중요하게 생각해서가 아니라, 이 소설과 베트남 문학은 이제 우리가 주목해야 할 텍스트다. 내년에 베트남 문학과 교류를 추진을 위해 베트남에 가볼 요량이라고 말씀을 드렸다. “2000년에 소설가 이문구 선생이 작가회의 회장이었을 때 베트남 작가협회와 결연을 했어요. 이후 경제협력은 많이 하는데 문학 쪽 교류는 거의 없는 편이죠. 가와바타 야스나리, 오에 겐자부로, 무라카미 하루키 등 일본 문학이 많이 번역되는데 한국 문학 번역은 고은, 방현석, 김영하 외에 뜸해요.” “깜언깜언(정말 감사합니다).” 배운 표현을 이제야 써 봤다. 기회 있을 때마다 조금씩 베트남 말을 써 봐야겠다. 해물탕이 많이 남았는데 더는 먹을 수 없었다. 위장이 아니라 마음이 쓰렸다. 아차, 지금까지 그의 이름을 쓰지 않았다. 그의 필명은 사람 이름이 아니라 땅의 이름이다. 개울물도 낮은 신음소리를 내며 흐르는 베트남의 지명이다. 그는 국제적인 인물로 적지 않은 인세를 받아 서방으로 이민 갈 수도 있었을 텐데, 전쟁 중 정글에서 자던 병사처럼 지금도 허름한 곳에서 노숙인처럼 살아야 편하다는 그의 선조가 견디며 살던 땅의 이름이다. 1952년생 바오닌. 시인·숙명여대 교수
  • ‘화무십일홍’의 원리 찾다…낙과 줄여 생산증대 기대

    ‘화무십일홍’의 원리 찾다…낙과 줄여 생산증대 기대

    국내 연구진이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과 가을 낙엽의 원리를 밝혀냈다.곽준명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뉴바이올로지 교수와 이유리 기초과학연구원(IBS) 식물노화·수명연구단 연구위원 공동연구팀이 식물은 꽃잎과 나뭇잎이 떨어져야 할 위치에 정확하게 ‘리그닌’이라는 고분자 화합물을 만들어 잎이나 열매를 떨어뜨린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번 연구성과는 세계적인 생물학 분야 국제학술지 ‘셀’ 4일자에 발표됐다. 연구팀은 생물실험에서 많이 쓰이는 애기장대를 활용해 식물에 남는 잔존세포와 잎이나 꽃이나 잎이 떨어져 나갈 때의 이탈세포에서 나타난 물질과 메커니즘을 밝혀냈다. 연구팀은 식물의 생장과 노화 과정에서 리그닌을 만들어 꽃잎이나 나뭇잎이 떨어져야 할 정확한 위치에서 잎을 떨어진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리그닌은 그동안 단순히 잎과 꽃이 떨어졌을 때 식물 본체를 보호하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만 알려졌지만 연구팀은 이번에 잎을 떨어뜨리는데도 상당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또 리그닌은 육각형 벌집 구조로 잎과 꽃을 정확하게 분리시키고 본체를 보호하는데 최적 형태를 갖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번 연구결과를 활용하면 고추처럼 열매가 잘 안 떨어져 수확이 어려운 품종은 탈리 현상을 촉진시켜 수확을 쉽게 만들고 과수의 경우는 탈리 현상을 억제해 낙과를 줄여 생산량을 늘릴 수 있을 것이라고 연구팀은 기대하고 있다. 곽준명 DGIST 교수는 “이번 연구는 리그닌이라는 물질이 그동안 밝혀지지 않았던 식물에서 세포와 기관 분리에 핵심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는데 의미가 크다”라며 “이번에 새롭게 발견한 리그닌 역할과 식물의 탈리 메커니즘을 토대로 이를 촉진하거나 억제하는 화합물을 찾는 후속 연구를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유용하 기자 edmondy@seoul.co.kr
  • ‘겟잇뷰티 2018’ 문가비, 서현진으로 대변신? 청순 메이크업 도전

    ‘겟잇뷰티 2018’ 문가비, 서현진으로 대변신? 청순 메이크업 도전

    온스타일 ‘겟잇뷰티 2018’에서 핫한 섹시스타 문가비가 ‘서현진 메이크업’으로 청순미를 장착한 낯선 모습을 공개한다. 오늘(27일, 금) 밤 9시에 방송되는 온스타일 ‘겟잇뷰티 2018’ 14회 ‘뷰티 꿀라보레이션’ 코너에서는 톱스타 전담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 직접 스타들의 메이크업 비밀병기를 공개한다. 한효주, 서현진, 아이유, 태연, 오연서까지 메이크업으로 화제가 된 스타들의 숨겨진 꿀팁이 공개되는 만큼 시청자들의 큰 관심이 예상된다. 겟뷰 인플루언서 김수미, 문가비, 러블리즈 정예인이 각각 한효주의 우아한 투톤 마스카라 메이크업, 서현진의 지속력 만점 립앤아이 메이크업, 태연의 보송 페이스 메이크업 꿀팁으로 대결을 펼친다. 걸그룹 선배인 태연 메이크업에 도전하는 정예인은 직접 꽃잎 속눈썹을 제작해오며 열정을 불태웠다는 후문. 특히 섹시함이 돋보이는 문가비의 첫 청순 메이크업 도전이 눈길을 모은다. 문가비는 스스로에게 “청순해져라” 주문을 걸며 걸음걸이부터 말투까지 ‘아프로가비’로 재탄생했다는 후문. 평소 ‘청순’이라면 질색하는 문가비가 서현진 메이크업 꿀팁으로 어떤 모습으로 변신했을지 궁금증을 자아낸다. 또한 ‘뷰라벨’ 코너에서는 최근 민낯같은 자연스러움과 간편한 톤 보정 아이템으로 인기 급상승 중인 ‘톤 업 크림’ 검증이 이뤄진다. SNS 대란 톤 업 크림부터 다이아몬드 가루가 들어간 톤 업 크림 등 100개의 제품 가운데 착한 성분과 피부 톤 개선효과, 가성비까지 갖춘 톤 업 크림이 공개된다. 뿐만 아니라 톤 업 크림의 성분과 사용 순서, 미백 효과, 바르고 자도 되는지 등 톤 업 크림에 대한 궁금증을 전문가 크루가 속 시원히 풀어주는 시간도 갖는다. 뷰티신상 라이브 방송인 ‘라라리뷰’ 시간에는 모델 고소현과 김나래가 미세먼지에 대처하는 메이크업&클렌징 팁을 공개한다. 고소현은 90초 만에 할 수 있는 초스피드 수분팩과 미세먼지 철벽 커버 메이크업 꿀팁을, 김나래는 진동 클렌저를 이용한 딥 클렌징과 ‘탄산 세안법’을 전수할 예정. 담당 아티스트들이 전하는 스타들의 메이크업 비밀병기와 ‘뷰라벨’ 선정 톤 업 크림, 미세먼지에 대처하는 뷰티꿀팁까지 공개되는 ‘겟잇뷰티 2018’ 14회는 27일 금요일 밤 9시에 방송된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길섶에서] 낙화/박건승 논설위원

    며칠 전 봄비가 꽤 사납게 내리던 날. 늦은 밤 창가를 물끄러미 보다 떨어지는 꽃잎을 떠올린 것은 예기치 못한 일이었다. 벚꽃·살구꽃·개나리꽃이 시든 것은 한참 전 일이고, 철쭉처럼 키 작은 봄꽃만 남아 있는 터라 떨어질 꽃잎이 딱히 많이 있는 것도 아닌데 왜 문득 낙화가 생각났던 것일까. 조지훈은 ‘꽃이 지기로서니 바람을 탓하랴/주렴밖 성근 달이 하나 둘 스러지고/귀촉도 울음 뒤로 먼 산이 닥아서다/촛불을 꺼야 하리, 꽃이 지는데…’(‘낙화’)라고 적었다. 쓸쓸하다 못해 뭔가 싸하다. 하기야 어떤 무명씨는 ‘꽃잎 떨어져 바람인가 했더니 세월이더라’고 자조적으로 읊조리기도 했다. 낙화에 대한 상념은 누구나 다 같을 순 없는 법. ‘가야 할 때가 언제인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봄 한 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 할 때…’(이형기 ‘낙화’) 이 시인에게 낙화란 녹음과 결실을 향한 축복의 과정이었으리라. 낙화는 끝이 아니기에 꽃잎이 진다고 낙담할 일은 아닌 것 같다. 그 꽃은 1년 뒤에 다시 피리니. 박건승 논설위원 ksp@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