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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일축구」 오늘 잠실서/하오 3시부터… 양 TV 생중계

    역사적인 남북통일축구 서울 2차대회가 23일 하오 3시 잠실 올림픽주경기장에서 열린다. 지난 11일 평양 1차대회에 이어 12일 만에 열리는 이번 대회는 승부를 떠나 민족화합과 통일의 기틀을 다지는 좋은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이날 경기에 앞서 하오 2시30분 염광여상 고적대 3백여 명이 「고향의 봄」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연주하는 퍼레이드가 펼쳐지며 2시45분 평양대회 때와 같이 양팀 선수들이 손을 잡고 함께 입장,트랙을 반바퀴 돈 뒤 간단한 입장식을 갖는다. 입장식은 정동성 체육부 장관의 환영사와 김유순 북한 단장의 답사,꽃다발 증정,선수단 격려의 순서로 이어진다. 양측 선수들의 기념촬영이 있은 뒤 하오 3시 정각 역사적인 남북통일축구 2차대회가 시작된다. 이날 경기는 KBS­1TV와 MBC­TV로 전국에 생중계 된다. 한편 남북한 선수들은 22일 올림픽유스호텔에서 오찬을 함께 하고 23일 경기에서 페어플레이와 따뜻한 동포애를 보여줄 것을 다짐했다.
  • “통일축구가 통일축제 되길 바란다”/북한 축구팀 서울 오던 날

    ◎연도 시민 열렬한 환영에 손들어 답례/만찬장서 「고향이 봄」ㆍ「우리의 소원」 합창/“평양냉면 맛있었다” “남쪽은 양 적지 않나” ▷판문점 도착◁ ○…김유순 위원장은 평화의 집에 도착한 뒤 별도의 도착성명은 발표하지 않고 우리측 김용균 체육부 차관과 장충식 KOC 부위원장의 안내를 받으며 곧바로 휴식처인 평화의 집으로 직행. 김 위원장은 『남측 땅을 밟고 보니 한 핏줄 한 조선땅임을 실감했다』고 말문을 연 뒤 『어떻게 갈라져 살겠느냐,빨리 같이 살아야겠다』면서 『통일축구가 통일축제로 되기를 바란다』고 방한 소감을 피력. ○…장충식 KOC 부위원장은 『남북축구경기 동안 북측 국민들이 보여준 열렬한 성원에 감사한다』면서 인사말을 꺼내자 김유순 북측 위원장은 『같은 식구들인데 응당 그렇게 해야죠』라며 화답. 또 김형진 부위원장은 『환영인파를 조직한 것도 아닌데 자발적으로 나와 열렬히 환영했다』며 『통일축구가 성공적으로 끝날 것으로 확신해 통일될 날이 당겨진 것 같다』며 응수. ○“축구표 파느냐” 질문 ○…김형진 부위원장은 『북남 축구 서울경기의 축구표를 파느냐』고 질문. 이에 대해 우리측 체육회담 대표인 이학래 한양대 교수가 『3시간 만에 매진되었다』고 말하자 김형진 씨는 『표가 매진된 것이 문제가 아니라 경기장에 온 관중들의 열기가 문제 아니냐』며 되받기도. 이어 평양경기에 참가했던 이학래 대표는 『평양에서 먹은 옥류관 냉면이 특히 인상적이었다』며 『김유순 위원장과 김형진 부위원장에게 남측 냉면맛을 한번 보라』고 권유. 이에 대해 김형진 부위원장은 『우리측은 대접용이니까 양이 많겠지만 남쪽은 장사를 하다보니 양이 적지 않겠느냐』고 농담. 이를 지켜보던 오완건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이 『두 분 위원장이 맛 보시겠다면 평양 때와 마찬가지로 큰 그릇에 양을 듬뿍 넣어 주도록 하겠다』며 맞받아치자 한바탕 웃음판이 벌어졌다. ○…이날 북한측 기자단은 김용균 체육부 차관에게 『평양축구를 마치고 돌아간 남측 선수들을 남측 국민들이 환영해주지 않아 섭섭했다는데 왜 환영을 해주지 않았느냐』며 『우리는 평양경기를 TV로생중계했고 남측도 생중계할 줄 알았는데 왜 하지 않았느냐』며 질문공세를 펴기도. 김 차관은 이에 대해 『TV중계는 북측과 남측의 중계방송 방식이 달라 못한 것으로 알고 있으며 축구단은 평양에서 돌아온 즉시 유스호스텔에서 대대적인 환영행사를 했다』며 어리둥절한 표정. ○“최순호 선수 최우수” ○…20명으로 구성된 북한 남자 축구팀은 회색 싱글차림으로 비교적 단정한 모습. 지난 1차전에서 페널티킥을 성공시켰던 탁영빈 선수는 2차전에 임하는 소감에 대해 『승부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며 『우리는 남북 축구대결을 통해 통일에 기여하려는 것이다』라고 피력. 탁 선수는 또 『한국 선수중 누가 제일 실력이 낫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최순호 선수의 활약이 가장 좋다』고 대답. 김광민 선수는 『2차전에 대비한 특별한 훈련은 안했다』고 밝히고 『우리는 승부에 관계없이 통일을 위해 싸우겠다』고 통일을 거듭 강조. 북한 선수중 유일한 조총련계 동포로 부모가 일본에 살고 있다고 밝힌 김종성 선수는 『부모 고향은 충남 부여이고고모가 서울에 살고 있다』고 말했으나 고모이름은 모른다고 언급. 한 선수는 또 평양에서 페널티킥이 나온 데 대해 『텃세였다. 섭섭하게 생각한다』고 말하고 『그러나 볼을 바깥으로 차버린 남조선 골키퍼의 행동도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연도◁ ○…북측 대표단 78명은 승용차 18대와 버스 7대 등에 나누어 타고 판문점을 거쳐 상오 10시55분쯤 자유의 다리를 지니 임진각으로 넘어왔다. 이날 임진각에는 경찰이 일반차량 출입을 통제한 탓에 환영객은 많지 않았으며 관광객과 구경나온 이웃 주민 등 1백50여명 만이 망배단 등에서 북측 대표단을 맞았다. 이들은 북측 임원과 남녀 선수들을 태운 차량이 지나가자 활짝 웃는 얼굴로 박수를 치며 환영했으며 북측 대표들도 손을 흔들어 답례했다. 북측 대표단은 통일로∼독립문∼여의도∼올림픽대로 등을 거쳐 임진각을 통과한지 1시간20분 만인 낮 12시20분쯤 숙소인 워커힐호텔에 도착,여장을 풀었다. 북측 대표단 차량행렬이 통일로를 지나 서울시내로 접어들면서부터 환영시민들이 눈에 띄게 늘었고불광동을 지나자 거리에는 이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 사람들도 많았다. 경찰은 이날 학생시위 등 만일의 사태에 대비,통일로 곳곳에 경찰 4백여명을 배치하는 한편 경기도 고양군 삼송리 검문소 등에서 검문ㆍ검색을 했다. ○꽃다발 세례에 “상기” ▷숙소◁ ○…북한 선수단은 예정보다 20여분 늦은 낮 12시20분쯤 숙소인 쉐라톤워커힐호텔에 도착했다. 45명의 대원여고 고적대의 주악이 울려퍼지는 가운데 김유순 북한 국가체육위원회 위원장을 선두로 대형 버스에서 내린 북한 선수단 일행은 미녀모델과 연예인들의 꽃다발 세례를 받고 다소 상기된 표정을 지었다. ○…이날 호텔에는 코미디언 이주일 씨를 비롯한 가수 탤런트 모델 등 연예인 80여명이 상오 11시부터 꽃다발을 들고 북한 선수들을 기다렸다. 가수 김태화 정훈희 부부와 진미령,국악인 이호연 씨 등은 『북한 선수단이 온다는 소식에 잠까지 설치고 나왔다. 웬지 가슴이 설렌다』고 소감을 피력. ○공정경기 특별주문 ○…박종환 한국 남자팀 감독은 『안방에서 손님을 맞는 주인 입장에서 모든 정성을 기울이겠다』고 말하면서 『지난 11일 평양 5ㆍ1경기장에서 열렸던 1차대회와 같은 어이없는 판정은 없을 것』이라고 단언. 박 감독은 이번 서울대회 주심을 맡은 길기철 씨와 미리 만나 승부에 관계없이 공정하게 경기를 진행해줄 것을 특별히 주문했다고. 박 감독은 스코어에 연연하지 않고 우리팀이 실력이나 매너에서 모두 우위에 있다는 사실만 보여주겠다고 2차대회에 임하는 소감을 피력. ○…북한 선수단은 숙소인 쉐라톤워커힐 전체 6백37개의 객실중 64개를 사용. 김유순 단장은 17층 1백20평짜리 다이아몬드 룸에 묵는데 하루 숙박료가 85만원에 이르는 초호화 룸. 임원들은 16층 17개 객실에 나뉘어 묵게 되며 선수들은 15층 40개 객실에 분산투숙했다. ○“잠실 스타디움 훌륭” ▷경기장 답사◁ ○…북한 남녀 선수단 54명은 이날 하오 4시13분에 23일 경기가 펼쳐질 잠실올림픽 주경기장에 도착. 남자는 메인스타디움에서,여자는 보조구장에서 각각 40여분 동안 몸을 풀었다. 선수들이 몸을 푸는 동안 장내에는 「아리랑」 「고향의 봄」 등의 음악이 울려 퍼졌으며 동쪽에 설치된 대형 전광판에는 서울올림픽 개ㆍ폐회식과 각종 경기 장면 등으로 편집된 「서울올림픽 하이라이트」가 아름답게 수를 놓았다. 명동찬 남자팀 감독은 『잠실올림픽경기장이 북한의 5ㆍ1경기장보다 규모가 작긴 하지만 잔디상태가 아주 좋고 경기장이 아담해 좋은 경기를 펼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경기장에는 한국 여자 대표팀 선수들이 마중나와 주경기장 2층에서부터 그라운드를 밟을 때까지 북측 선수들과 한 사람씩 짝을 지어 계단을 내려왔다. ○…이에 앞서 김유순 북한 국가체육위원회 위원장ㆍ김형진 부위원장 등 임원 일행은 선수단 도착에 앞서 3시25분쯤 경기장에 도착해 이병규 관리소장의 안내로 경기장ㆍ선수실 등을 둘러본 뒤 외빈실에서 30여분 동안 휴식하며 환담. 김유순 위원장은 색깔로 구분한 잠실경기장이 대단히 아름답다며 『남북이 하루빨리 통일이 돼 평양의 5ㆍ1경기장과 서울의 잠실 주경기장보다 더 큰 50만 수용의 경기장을 지으면 좋지 않겠느냐』고 말하는 등 화기애애한 분위기. 이날 경기장에는 지난 평양경기 때 부친을 상봉한 이회택 전 국가대표팀 감독이 나와 북한 선수 및 임원들을 반겼다. ▷만찬◁ ○…김우중 대한축구협회장 주최로 이날 밤 힐튼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환영만찬회에는 정동성 체육부 장관ㆍ김유순 북한 국가체육위원회 위원장 등 남북 고위인사와 남북 남녀선수,그리고 초청인사 등 2백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차분하면서도 정겨운 분위기 속에서 2시간10분 동안 진행됐다. 김우중 회장은 이날 『이번 통일축구 서울경기로 민족통일의 기반이 조성되길 바란다』며 건배를 제의하는 것으로 환영 인사말을 대신했고 김유순 위원장은 『남북통일축구경기가 통일운동사에 아로 새겨질 것으로 확신한다』며 역시 건배를 유도. 주빈석에는 정동성 장관ㆍ김유순 위원장ㆍ김우중 회장ㆍ김형진 북한올림픽위원회 부위원장과 축구원로 김화집옹 등 10명이 앉았으며 나머지 27개 테이블에도 남북 선수ㆍ초청인사들이 8∼10명씩 섞여 앉아 평양경기와 서울의 첫인상 등을 화제로 삼아 얘기꽃을 피웠다. 이날 저녁식사 메뉴로는 거위간ㆍ모듬생선회와 안심스테이크 등 8가지 코스인 양식으로 준비됐는데 북측 참석자들 대부분은 그릇을 깨끗이 비웠다. 호텔측은 지난번 총리회담 때 북측 인사들이 즐기던 곡주인 「문배주」를 포도주와 함께 내놓았다. 식사를 마친 북한 선수 및 임원들은 만찬장 출입구 맞은편 무대에서 펼쳐진 테너 엄정행ㆍ소프라노 백남옥 씨의 가곡공연을 관람했는데 노래가 끝날 때마다 박수를 보냈다. ○남북 선수 섞여 앉아 공연 마지막에 「고향의 봄」과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 합창되자 참석자 모두가 일어서 따라 부르기도. 김우중 회장은 북한 김유순 위원장에게 TV와 비디오 세트를 선물했으며 김 위원장은 미리 준비해온 인삼불로주와 대평곡주를 김 회장에게 전달했다. ○…북한 기자들중 비교적 나이가 많은 편인 리충국 중앙통신논설위원은 만찬이 끝난 뒤 『양식으로 차린 음식이 별로 입에 맞지 않았다』고 말하고 『호텔측에서는 정성을 다한 것 같으나 한식이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하오 9시30분쯤 만찬장인 힐튼호텔을 출발한 북한 선수단은 10시10분 숙소인 워키힐호텔에 도착,때마침 본관 지하1층 가야금홀에서 쇼를 관람하고 나오던 시민들의 환영을 받았다. 북한 선수들은 시민들이 『반갑습니다』라며 박수로 맞이하자 여유있는 모습으로 손을 흔들며 『반갑습니다』라고 답례. 북한 선수들은 이어 각자의 방으로 올라가 서울에서의 첫 잠자리에 들었다.
  • 초라한 판문점 마중… 형평잃은 대접/한종태 정치부 기자(문화초점)

    ◎「남의 실체」 의도적으로 불인정 16일 상오 판문점 북측 지역인 통일각에서 있었던 우리측 대표단에 대한 환영행사는 예상밖으로 너무나도 「초라」했다. 북한측이 보낸 환영인사라고는 고작 김광진 인민무력부 부부장을 비롯한 북측 대표단 6명과 우리측 대표단에게 꽃다발을 안겨준 화동 7명뿐 더이상의 환영인파는 찾을 수 없었다. 「역사적」 등의 수사를 쓰지 않더라도 남한의 국무총리가 남북간 현안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분단 이후 처음으로 북한땅을 밟는다는 북행의 의미를 생각한다면 이날 북한측이 보여준 태도는 섭섭함마저 든다. 우리측 대표단이 개성역과 평양역에 도착했을 때도 환영나온 민간인은 한명도 없었다고 수행기자들은 전하고 있다. 우리모두가 잘 알다시피 우리측의 민간인이나 민간단체가 북행할 때는 표현이 힘들 정도로 엄청난 환영열기를 만들어준 그들이다. 물론 그것은 다분히 계산된 유화적 제스처다. 불과 이틀 전에 판문점 북측 지역인 판문각 앞뜰에서 행해진 범민족통일음악회 우리측 참가단에 대한 환영인파와 그보다며칠 전에 있었던 남북통일축구대회 참가 대표단에게 베풀어준 열렬한 환영모습에서도 이같은 현상은 뚜렷하게 나타난다. 무려 6백명이 넘는 환영인파가 좁은 장소에 나와 우리측 전통음악인들을 부여잡고 눈물까지 흘리는 장면에서도,15만명을 수용하는 5ㆍ1경기장을 가득 메운 통일축구대회 관중들에게서도 누구나 동족으로서의 가슴 찡한 무언가를 느꼈음 직하다. 북한측 자세의 이러한 대비는 자신들이 실체를 인정하지 않고 있는 남한당국의 고위인사들이 평양에 온다는 사실 자체가 반갑지 않다는 것 이외에는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다. 그렇더라도 「조국통일이 지상과제」라고 떠들어대는 북한측이 스스로 생각하는 비중은 다를지 몰라도 똑같은 초청대상자인 우리 정부당국과 민간인 사이에 이같이 형평잃은 대접을 했다는 것은 기본적인 의전절차를 떠나서 아무래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지금까지 남한당국 배제논리에 따라 줄곧 남북간 민간대화를 부르짖어온 북한 입장에서는 당연한 일일 수도 있다. 또한 북한이 체제유지의 근간이념인 「하나의 조선」 정책을 수정하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남한당국에 대한 「오만함」은 계속될 수밖에 없고 또 이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한소 수교 및 한중 관계개선,그리고 일 북한 관계진전 움직임 등 한반도주변 상황이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는데도 아직까지 대남 정책에서는 어떠한 변화 가능성도 용납치 않으려는 듯한 북한이 답답할 뿐이다. 결과적으로 이제는 최근 잇따라 있었던 남북 상호교환방문 사례들을 곰곰이 분석해보고 우리들의 대북 자세를 다시한번 정리해볼 시기가 아닌가 싶다. 몇차례에 걸친 북한의 유화적인 자세에 『북한이 드디어 화해와 협력의 국제적 추세에 동참하기 시작했다』라고 너무 성급하게 기대 이상의 판단을 내리지는 않았는지 곱씹어볼 때라고 생각된다. 일부에서는 오는 18일 김일성 주석이 강영훈 국무총리와의 단독면담에서 상당한 정도의 대남메시지를 전할 것으로 관측한 바 있으나 당분간 이같은 기대는 「기대」에 그칠 수밖에 없을 가능성이 크다. 우리가 아무리 정치ㆍ경제적으로 대북우위를 점하고 있더라도 북한이 「하나의 조선」이라는 빗장을 풀지 않는 한 진정한 남북 화해의 길은 요원할 수밖에 없고 그럴수록 남북현실에 대한 분명한 인식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고 느껴진다. 북한측이 보여준 이날의 초라한 영접에서 다시한번 『통일에 대한 환상은 금물』이라는 얘기를 가슴깊이 되새기게 된다.
  • 「통일음악회」 17명 평양에/판문점 거쳐 어제 도착

    ◎24일까지 5차례 공연 오는 18일부터 평양에서 열리는 범민족통일음악회에 참가하기 위해 국악인을 중심으로 한 14명의 서울전통음악연주단(단장 황병익 이화여대 교수)과 기자 3명이 14일 하오4시쯤 평양역에 도착했다고 국토통일원이 밝혔다. 14일 통일원에 따르면 이들 17명은 이날 상오11시 판문점을 통과,환영행사를 가진뒤 개성을 거쳐 하오4시쯤 평양에 도착해 고려호텔 2층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는 것이다. 황단장은 기자회견에서 서울전통음악연주단의 전체 프로그램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느냐는 북한 중앙방송 기자의 질문을 받고 『인간과 인간을 주제로 한 애틋한 내용을 담고있다』고 말했으며 『역마다 나온 수많은 환영인파는 상상을 초월하는 환영으로 감개무량하다』고 소감을 밝혔다고 통일원은 전했다. 한편 내외통신에 따르면 북한방송들은 이날 연주단의 평양도착 사실을 보도하면서 「문예총」위원장 백인준과 문화예술부 제1부부장 허백산,「조평통」부위원장 여연구 등이 우리측 음악인들을 영접했으며 수많은 예술인들과 근로자들이 꽃다발을 들고 나와 이들을 환영했다고 전했다. 우리측 민간인들이 개인 자격으로 판문점을 통과해 북한을 방문하기는 휴전이후 이번이 처음인데 방북 음악인들은 오는 24일까지 10박11일동안 평양에 머물면서 18일부터 23일까지 열리는 범민족통일음악회에 참가한뒤 오는24일 낮12시 판문점을 거쳐 돌아올 예정이다. 한편 황교수 등은 평양체류 기간동안 윤이상음악회를 관람하는 한편 모두 5차례의 전통음악공연을 갖는다.
  • 「만찬회」서 있었던 일/황석현 북한부장(데스크메모)

    북한의 연형묵 총리가 판문점을 거쳐 서울로 들어오는 역사적인 장면을 감회어린 심정으로 지켜봤다. 분단 이후 45년만에 북한의 정무원 총리가 처음으로 남쪽땅을 밟았다는 것은 여러가지 측면에서 큰 뜻을 지니고 있지만 필자에게는 40여년이나 헤어져 있던 고향이웃이 불쑥 집으로 돌아오는 것같은 감상적인 느낌이 우선 와 닿았다. 이같은 감상은 필자 뿐만 아니라 북쪽의 대표들이 휴전선이란 장애물을 걷어버리고 성큼 남쪽땅에 들어서는 모습을 지켜본 모든 이들의 한결같은 심정이었으리라고 생각한다. 올해 65세인 연형묵 총리는 퍽 건강해 보였고 환영의 꽃다발을 안겨준 어린 소녀를 붙들고 귀여워하는 모습은 인자한 우리들 할아버지의 바로 그것이었다. ○「역사적 만남」 감회 깊어 얼마나 아름다운 정경인가. 필자는 또 북측 대표단이 서울에 들어온 첫날 밤,이들을 환영하는 만찬회에 참석,북한동포들과 만나 얘기를 나누는 행운을 맛보기도 했다. 이날밤 필자의 짝이된 사람은 「통일신보」 기자라고 자신을 소개한 박영상씨였다. ­나이는 50세.김일성종합대학 졸업. 아들 둘을 두었는데 큰 아들(24)은 「머리가 나빠」 노동을 하고 있고 둘째 아들(22)은 다행히 자신을 닮아 김책 공과대학에 다니고 있다고 자랑. 생활은 그쪽 수준으로는 중상으로 괜찮은 편. 서울은 처음­. 얘기를 나누는 도중에 얻어낸 그의 짧은 신상명세서이다. 보기보다는 소탈하고 사교적인 그에게 서울의 첫 인상을 물어보았다. 『말로는 들었지만 이처럼 복잡하고 공기가 탁한줄은 몰랐다. 자동차에서 뿜어 나오는 배기가스가 사람몸에는 제일 나쁜데 웬 자동차가 이렇게 많은가. 자가용 안가지기 운동을 펼쳐야 할 것 같다. 또 외국어간판이 너무 많아 눈이 어지러울 지경이다. 간판만 보아도 남조선에는 주체의식이 없는 것 같다. 서울에 비하면 평양은 아주 쾌적한 도시이다』 ­평양은 특별한 사람들이 모여사는 특별한 도시가 아닌가. 『그렇지 않다. 평양은 혁명의 수도이기 때문에 수준높고 재간많고 기술좋은 사람들이 많이 필요하다. 그래서 평양에는 이런 사람들이 다른 도시보다 많이 모여있을 뿐이다. 남조선에서도 큰기업은 질좋은 일군들을 이곳저곳에서 끌어모으고 있지 않는가. 그런 것을 뭐라고 그러던데…』 ­스카우트 말인가. 『그렇다. 말하자면 평양이란 도시가 수준높고 재간많고 기술좋은 사람들을 많이 스카우트 한 것 뿐이다』 ­동구의 대 변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대 변화라니…』 ­대 변화가 아니고 동구의 사회주의 국가들이 거의 몰락하고 있는 사태에 대한 얘기다. 이 질문에는 박영상 기자는 약간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것은 그 나라들의 내부문제일 뿐 우리가 이렇고 저렇고 할 것은 못된다. 사회주의제도가 나빠서 그쪽 국가들이 무너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그들과 다르다. 우리인민은 주체사상으로 튼튼히 무장되어 있고 주체적인 사회주의국가를 건설해서 행복하게 살고 있다. 우리인민은 자본주의를 원치 않는다』 ○서로 이해의 폭 넓혀야 박기자는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면서 주체사상이 얼마나 위대한 사상이며 고려연방제가 얼마나 합리적인 통일방안이며 북쪽의 군축제의가 또 얼마나 건설적인가를 역설하다가는 「왜그렇게 말귀를 못알아 듣느냐」는듯 답답하다는 표정을 지었고 정치적인 논쟁을 애써 피하려는 필자를 향해 『황선생은 워낙 겸손하셔서…』라면서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우리가 이날밤 유일하게 합의한 것은 『계속 만나 대화를 나누자』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평양에서 다시 만나자는 악수를 나누고 헤어졌다. 이날 밤의 만남이 유쾌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기분나쁜 것도 아니었다. 비교적 담담한 심경이었다고 할까, 우리민족이 통일의 대업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남과 북이 어떤 모양새로든 서로 자주만나 대화를 나누는 것이 무엇보다도 필요한 수순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남북 총리회담은 이틀째인 5일부터 공식적으로 시작됐다. 이번 서울회담에서는 「군비축소」「유엔 가입문제」「남북 정상회담」「경제 및 인적교류」 서로가 시각을 달리하는 많은 현안문제가 걸려있다. 이 많은 쟁점사안중 한 분야만이라도 합의가 된다면 더말할나위가 없이 기쁘겠지만 설사 모든 분야에서 합의를 끌어내지 못했다고 해도 실망할 것은 없다. ○들뜨지말고 차분하게 서울회담에서 충분한 대화를 나누고도 합의가 안된다면 다음 평양회담을 기대하고 그것도 안된다면 다시 서울ㆍ평양을 오가면서 서로 이해의 폭을 넓혀가는 것이 중요하다. 총리회담에 기대를 걸고 있는 수많은 시민들은 이번 서울회담이 첫 걸음이라는 점을 인식,보다 폭넓은 마음을 가져야 한다. 최근 우리사회에서는 「냄비문화」라는 속어가 등장하고 있지만 통일문제에 관한한 냄비문화의 속성에서 벗어나야 한다. 기대를 하는 것은 좋지만 들뜨지 말아야 한다는 점을 서로가 일깨워주어야 한다. 과거의 숱한 회담에서 좌절을 겪었던 우리는 이제 들뜨지말고 차분하게 회담의 진행을 지켜보는 성숙된 자세를 지녀야 한다. 회담이 진행되고 있는 중이지만 북한 대표단에게 섭섭한 일 두가지만 얘기하고 싶다. 하나는 문익환ㆍ임수경 등 밀입북했다가 실정법에 의해 구속되어 있는 사람들을 만나 위로하고 싶다는 것과 또 하나는 남쪽의 강영훈 총리는 북쪽의 연형묵 총리를 「총리」로 예우하고 있는데 반해 연총리는 강총리를 「수석대표 선생」으로 호칭하고 있다는 점이다. 밀입북했다 구속된 사람들을 만나 위로하고 싶다는 심정은 충분히 이해가 가지만 그것이 이번 회담의 공식의도가 아니고 또 회담에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없다는 점에서 그런 요구는 자제해주었으면 하는 것이고 강총리에 대한 호칭문제도 북한의 기본전략 즉 「두개의 조선」 부정논리에서 나온 것이겠지만 어차피 서울에 왔고 또 노태우 대통령을 예방까지 하는 마당에 예의상으로라도 「총리」로 부르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그러나 이것을 가지고 북측 대표단을 탓하거나 항의를 하자는 것은 아니다. 다만 총리회담을 보다 원만하게 또 성공적으로 이끌었으면 하는 필자의 충정에서 나온 것임을 이해해 주었으면 한다.
  • 평양손님,서울시민과 어울린다/북녘대표들 3박4일 어떻게 지내나

    ◎판문점서 영접… 호텔서 양측 상견례/두차례 영화구경… 워커힐 민속공연 참관/북,속기사 대동 청와대행 의미 둔 듯 정부는 남북 고위급회담 북한대표단의 입경을 하루 앞둔 3일 3박4일의 체류일정별로 모든 준비를 마무리짓고 최종예행까지 끝냈다. 또 청와대와 관련부처들은 북한대표단의 면담계획을 재점검하고 전략회의를 열어 이번 서울회담에 대비한 입장과 대응책을 논의하는 등 초읽기에 들어갔다. ▷체류첫날(4일)◁ ○…북한측 대표단이 판문점의 군사분계선을 통과하는 시간은 정확히 상오 10시. 북한 대표단은 군사정전위 건물사이의 분계선을 걸어서 통과,우리측 지역으로 넘어온 뒤 「평화의 집」 앞에서 간단한 도착행사를 갖는다. 연형묵총리는 우리측 차석대표인 홍성철통일원장관을 비롯한 회담대표 6명(강영훈국무총리 제외)의 영접을 받고 악수를 교환한 뒤 우리측의 꽃다발 증정에 이어 연총리는 10분 정도의 도착성명을 한다. ○…북측 대표단은 호텔 정문앞에서 우리측 수석대표인 강총리의 영접을 받고 인사를 교환하며 남북 쌍방 회담대표간의 첫 상견례를 갖는다. 북한대표단은 호텔내에서 우리측 대표 일부와 비공식적인 점심식사를 한 뒤 휴식을 취할 예정. ○…북한대표단 90명은 하오 6시쯤 숙소를 출발,우리측 강총리가 남산기슭의 힐튼 호텔에서 하오 7시부터 베푸는 만찬에 참석한다. 호텔 지하1층 그랜드볼륨앞 「포이어」에서 칵테일 파티로 시작되는 이날 만찬 석상의 헤드테이블에는 쌍방 수석대표인 강ㆍ연총리가 중앙에,김상협 대한적십자총재,민관식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김용식 국토통일고문회의장,최호중외무부장관,홍 통일원장관,북측의 차석대표인 김광진 인민무력부부부장 등 8명이 자리하게 된다. 또 만찬에는 통일원및 적십자사 관계자를 비롯,각 부처의 장ㆍ차관,언론계 인사,전경련 등 경제4단체의 장 등 3백20명이 초대된다. 만찬에는 프랑스식 7코스 요리가 나오며 백조가 깃을 펴고 「환영」이라고 쓰여진 남대문모양의 얼음장식이 분위기를 돋운다. 강총리는 이날 만찬이 끝날 때쯤 연총리에게 고급 청자화병을,나머지 회담대표들에게는 고급양복지,수행원들에게는 손목시계,기자들에게는 탁상시계를 선물할 예정. 북측 대표단들은 밤 9시쯤 만찬과 여흥을 끝내고 남산순환도로를 통해 서울의 야경을 구경하면서 무역회관으로 향한다. 이들은 무역회관에서 문화영화 한편을 관람한 뒤 숙소로 돌아갈 예정. ▷체류이틀째(5일)◁ ○…10시부터 시작되는 남북 총리회담 제1차 본회담은 강총리의 인사발언을 시작으로 공개로 진행된다. 이날 회담장에는 남북 쌍방의 회담대표 14명(각 7명씩),수행원 66명(각 33명),취재기자단 1백명(각 50명)등 1백80명과 쌍방의 의전및 기록요원 약간명이 참석한다. 연총리가 이어 인사발언을 하고 강총리와 연총리는 기조발언을 통해 총리회담에 임하는 쌍방의 기본입장을 피력한다. ○…북한 대표단은 낮 12시쯤 회의를 마치고 식사와 휴식을 취한 뒤 쉐라톤 워커힐호텔 가야금식당에서 민속공연을 관람한다. 북측은 우리측이 제시한 산업시찰 남산타워 방문등 관광일정은 모두 거부했으나 예술단 공연관람만은 유일하게 자신들이 요구했다. ○…연총리들은 하오 7시쯤 고건서울시장이호텔신라에서 베푸는 만찬에 참석,각계각층의 서울시민 대표들과 함께 저녁식사를 한다. 과거 적십자회담등의 전례로 보아 동창ㆍ친지 등과의 해후도 예상된다. 이어 이들은 무역회관에서 극영화인 아제아제바라아제를 관람한다. ▷체류사흘째(6일)◁ ○…남북쌍방은 전날의 「탐색전」에 이어 상오 10시부터 본격적인 2차회의를 비공개로 갖는다. 이날은 총리단독 회담,쟁점의제별 부문회담이 열려 상호 신뢰구축을 위한 일련의 조치에 합의를 도출해낼 수 있는 회의이다. 회의를 마친 뒤 연총리의 종결발언과 강총리의 고위급회담은 사실상 종결된다. 북측 대표단은 삼원가든에서 불갈비로 점심을 한 뒤 중앙박물관을 관람한다. ○…노태우대통령은 이날 하오 4시 연총리등 북한대표단의 예방을 받고 남북 관계개선에 관한 소신을 피력하는 한편 김일성 북한주석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연총리에게 전달할 예정. 청와대를 예방할 북한측 인사는 연총리등 북한대표 7명과 림춘길총리책임보좌관,최봉춘총리보좌원 겸 연락관,그리고 수행원 겸 속기사 등 모두 10명이며 우리측 배석인사는 강총리등 우리측 회담 대표 7명과 노재봉비서실장 이현우경호실장 이수정공보수석비서 등 10명이다. 노대통령이 김일성주석에게 보낼 별도의 친서는 고려하지 않고 있으나 만약 북한측이 김주석의 친서를 갖고 오거나 선물을 준비했을 경우 상응한 조치를 할 것으로 알려졌다. ▷체류나흘째(7일)◁ ○…북한대표단은 상오 9시 강총리의 환송을 받으며 호텔을 출발,입경때의 역코스를 거쳐 상오 11시쯤 판문점을 통해 평양으로 간다. ▷회담최종점검◁ ○…강영훈국무총리ㆍ홍성철통일원장관 등 우리측 대표단 7명은 3일 하오 5시 남북대화사무국에서 마지막 대책회의및 리허설을 가진 뒤 하오 6시35분쯤 회담장인 인터콘티넨탈호텔에 들러 준비상황을 점검. 강총리 등은 2층에 마련된 회담장과 대표단 휴게실,외신ㆍ내신ㆍ북한기자 프레스센터 등을 차례로 돌아보며 관계자들로부터 간단한 준비상황을 보고받고 그동안의 노고를 치하. 강총리는 이날 회담장에서 사진기자들의 요청에 따라 홍장관ㆍ정호근합참의장ㆍ김종휘 대통령외교안보보좌관ㆍ임동원외교안보연구원장 등 우리측 대표단 4명과 함께 자연스러운 포즈를 취하기도. 강총리는 이어 기자들을 둘러보며 『회담장소가 좋으니 이번 회담이 잘될 것』이라고 낙관적인 전망을 한 뒤 31층 레스토랑에서 관계자들과 함께 식사했다. ○…고위급회담 프레스센터가 인터콘티넨탈호텔 2층에 설치돼 3일 하오 문을 열었으며 오는 7일 하오 7시까지 24시간 운영될 예정. 이날 프레스센터 개소직후 김형기 남북대화사무국 공보관은 『북한의 입지를 어렵게 만들거나 자극하지 않는다는 것이 우리측의 기본입장이며 취재도 이런 연장선상에서 해달라』고 북한측에 대해 우호적 태도를 견지해 달라고 여러차례 당부하면서 ▲북한측 인사와의 과도한 개별인터뷰시도 ▲음식얘기 등 시시콜콜한 신변잡사 ▲북측 대표단 차량추적 ▲추측보도 등을 자제해 주도록 부탁.
  • “총리회담 성과있게”… 도상연습 부산

    ◎평양 손님맞이 준비상황 이모저모/합의도출 위한 의제별 쟁점 분석/“북측 대표는 「회담꾼」”… 대화법 가상훈련도 /“일정 협의 창구” 림춘길 막후 인물로 주목 남북 고위급회담을 사흘 앞둔 1일 정부는 관계기관을 총동원,범정부적으로 벌여온 회담준비작업에 마무리 손질과 점검을 하는등 비상체제에 돌입했다. 정부는 회담준비를 의제와 북한대표단의 73시간 서울체류 일정등 2가지로 나눠 가상의 시나리오를 작성,도상연습을 벌이는등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정부는 의제분야는 청와대ㆍ총리실ㆍ경제기획원ㆍ외무ㆍ국방ㆍ통일원ㆍ안기부 등으로 회담전략기획단을 구성,운영하고 행사분야는 안기부ㆍ통일원을 주축으로 공보처ㆍ치안본부ㆍ한국전기통신공사 등으로 행사통제단을 구성해 준비를 전담. ○…정부는 의제를 군축ㆍ유엔가입ㆍ인적왕래ㆍ경제협력 등으로 세분,예상문제를 작성해 이에대한 대비책을 수립. 정부가 회담에서 가장 신경을 쓰는 부분은 북한대표단 대부분이 전문적인 「회담꾼」이라는 분석에 따른 회담진행 요령과 대화방법. 강영훈총리를 비롯한 우리측 대표는 회담진행도중 북한대표단의 발언때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여서는 안된다는 등의 회담진행방법에 대해 남북대화 전문가들로부터 브리핑을 받고 있다. 또 우리측 대표가 논쟁에 휘말려 말꼬리를 잡힐 경우에 대비해 전문가들로 구성된 가상의 북한대표단을 구성,설전에 대한 연습도 가졌다. ○…강총리는 회담 첫날 약 30분간의 기조연설을 통해 우리측 입장을 모두 밝힌다는 방침아래 기조연설문을 최종점검한 뒤 지난달 31일의 청와대 국가안보회의에서 최종 확정지었다는 후문. 의제는 북한대표를 자극시키지 않고 상호신뢰 구축을 위한 교류협력 분야에 중점을 두는등의 기본원칙에 따라 선정되었다고 정부의 한 관계자가 전언. 정부는 이번 회담에 웬만한 선진국의 정상이 방한할 때의 규모에 버금가는 의전및 경호단을 구성했으며 행사요원은 4백여명,경호및 교통통제요원은 3천여명 정도가 동원된다는 것. 강총리는 1일 저녁 우리측 회담대표와 준비관계자를 초청,힐튼호텔에서 만찬을 갖고 그동안의 노고를 치하. ○…회담장인 인터콘티넨탈호텔 2층에는 2백76평규모의 프레스센터가 설치되었으며 이곳에 회담 모니터 TV 4대,판문점 직통전화 2회선,기사송고용 전화 67회선,팩시밀리 5대 등의 가설이 완료된 상태. 프레스센터는 본회담 하루전인 3일 하오 3시부터 7일 하오 5시까지 운영되며 매일 상오 9시30분과 하오 3시30분 2차례에 걸친 브리핑이 있을 예정. 일반 시민들이 이 호텔에 자유롭게 출입은 할 수 있으나 회담장과 북측 대표단의 숙소인 이 호텔 25∼33층에는 출입이 철저히 통제될 전망. ○…북한대표단은 4일 판문점 우리측 지역 평화의 집에 도착한 뒤 도착 연설과 우리측의 꽃다발 증정등 간단한 영접행사를 갖고 낮 12시쯤 인터콘티넨탈호텔에 도착할 예정. 우리측의 강총리가 호텔입구에서 이들의 역사적인 서울 방문을 맞이할 계획이나 북측 대표단에 대한 공식적인 조찬및 오찬은 없고 우리측 대표ㆍ수행원ㆍ기자단들과 개별적으로 식사를 하게될 것이라고 남북대화사무국이 발표. 우리측은 북한대표단을 위해 문화영화 1편과 극영화 1편등 2편을 준비했는데 북한사람들이 극영화를 좋아해 극영화로 채택될 가능성이 높다. 우리측은 당초 「씨받이」 「아제아제바라아제」 등 2∼3편을 선정했으나 「씨받이」는 아무래도 야하다는 지적에 따라 「아제아제바라아제」가 가능성이 높다. 강총리는 4일 하오 7시쯤 북한대표단초청 만찬을 인터콘티넨탈호텔에서 갖는데 이 자리에는 우리측의 적십자사를 비롯한 남북대화 관계자 1백여명을 초청할 예정. 또 고건서울시장의 초청만찬이 5일 저녁 힐튼호텔에서 열리는데 이 자리에는 경제계ㆍ문화계ㆍ체육계 등 서울시민을 대표하는 인물이 초청될 예정. 특히 이날은 정주영현대그룹회장이 참석,북측 대표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려 금강산개발문제를 협의하게 될 것이라고 정부의 한 당국자가 소개. 북측 대표단이 떠나기 전날인 6일 박준규국회의장은 올림픽공원 주변무대에서 우리측 정계인사들도 초청한 만찬을 주최하며 박의장은 이날 연형묵총리에게 칠보로 장식된 은제주전자를 선물할 것으로 알려졌다. 김대중 평민당총재등 야당의원들도 초청될 예정이나 이들이 사퇴서를 내놓고 있는 상황에서 참석여부가 관심거리. ○…북한대표단 수행원 33명가운데 연총리 책임보좌관인 림춘길과 책임연락관 최봉춘을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 북한문제 전문가들의 일치된 지적. 림춘길은 현재 조평통부위원장직을 맡고 있으며 지난 80년부터 「총리회담 실현을 위한 실무자회의 대표단 대표」와 84년부터 남북 적십자회담 자문위원을 지낸 인물. 과거의 남북 대화과정에서 막후의 실력자는 자문위원ㆍ수행원 등으로 위장해 사실상 회담을 지휘해 왔기 때문에 그가 상당한 재량권을 갖고 있을 것이라는 추측들. 정부도 이같은 분석에 따라 림춘길과 막후대화를 벌이기로 하고 우리측의 상대역을 고르고 있는 중. 북한이 림춘길에 대해서는 장관대우를 해달라고 우리측에 요청한데서 그의 비중을 알 수 있으며 우리측은 림춘길과 최봉춘에게 일반 수행원에게 버스를 제공하는 것과 달리 승용차를 제공할 방침. 최봉춘은 고위급회담 실무접촉과정에서 우리측의 김용환책임연락관과 잦은 접촉을 가져왔던 인물로 이번에도 아직 합의되지 않은 북한 대표단의세부적인 체류일정등을 협의하는 창구를 맡게 될 것으로 보인다.
  • 「빨간머플러」노병들 40년만의 재회

    ◎어제 강릉기지서 6ㆍ25참전용사 환영회/김정렬 초대 총장등 80여명 첫출격지 집합/「승호리철교」폭파등 무용담 후배들과 나눠 자연스럽게 가슴위에 엊혀졌던 손들이 어느틈엔가 잇따라 거수경례도 바뀌었다. 그리고 애국가가 울려퍼지는 길지않은 동안 노병들은 40년전으로 돌아가는 모습이었다. 31일 상오 공군 강릉기지에서는 김정렬초대공군 참모총장 등 6명의 역대참모총장과 이곳 기지에서 출격했던 왕년의 전투조종사와 정비사ㆍ무장사 8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6ㆍ25참전공군용사초청 환영회」가 열렸다. 강릉기지는 전쟁이 한창이던 지난51년 10월1일 미공군에서 독립,한국공군최초의 단독출격을 시작해 휴전때까지 모두 7천8백80회의 출격을 기록,혁혁한 전과를 올린 한국공군의 발상지와도 같은 곳이다. 이날 C­130허큘리스수송기로 서울을 출발,환영식장에 내리던 노병들은 뜻밖의 옛친구들을 만나기도 했다. 노병들은 꽃다발을 건네주는 초로의 여인3명과 40년전의 쑥스러운 미소가 아닌 환한 웃음으로 악수를 나누었다. 51년당시 강릉여고 2년생이던 김미자씨(56ㆍ강릉시청가 정복지과장)는 『전쟁중이라 생화가 없어 흰종이에 물감을 들여 화환을 만든뒤 6㎞나 떨어진 이곳 비행장까지 걸어와 출격하는 조종사들에게 걸어주었다』면서 『출격했던 비행기가운데 돌아오지 않는 비행기가 있는 날에는 무사귀환을 축하하는 화환을 걸어주며 조종사의 눈에서 눈물을 보아야했다』고 회상했다. 이날 환영식장에는 최신 예 F­16전투기와 국산 F5F제공호 등 모두 6대의 비행기가 노병들을 위해 전시됐으나 이들에게 가장 반가운 것은 물론 자신들이 타던 낡은 F51무스탕기였다. 원산이 고향으로 고향집일대를 폭격할때 가장 가슴이 아팠다는 손흥준씨(64ㆍ예비역대령)는 『비록 키가작아 방석을 쌓고서야 조종이 가능했지만 51년10월 처음 무스탕을 탔을때의 기분은 정말 좋았다』며 『모든 것이 우리 상황에 맞는 전투기를 우리손으로 만들고 있는 것도 자랑스러운 일』이라면서 전시된 국산제공호를 타보기도 했다. 노병들은 시범비행을 위해 대기하고 있는 F­5편대의 후배조종사 어깨를 두드리며 옛무용담을 자랑하기도 했다. 편대장 정석환소령(30)은 백발이 성성하 노선배의 격려를 받고 『선배들이 정말 자랑스럽다』면서 『부끄럽지 않은 후배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이날밤의 위로연에서 노병들은 미공군이 5백회이상이나 출격했어도 폭파하지 못한 평양 승호리철교를 단3회 출격으로 동강낸 일과 김일성이 금강산과도 바꾸지 않겠다고 한 월비산고지를 폭격해 탈환,전승의 기세를 잡은 일 등 영광의 기억들을 자랑했다. 한 후배조종사는 백발의 선배 노병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노병은 죽지도 사라지지도 않습니다. 선배들의 기개는 우리들과 우리들 후배의 가슴속에 영원이 살아있을 것입니다』
  • 「전민련」에 당부한다(사설)

    남북의 보통사람끼리 만나 통일논의를 해보게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에 부풀게 한 「범민족대회」 예비회담을 계기로 「전민련」이 우리앞에 명료하게 부상됐다. 정당성과 합법성에 의심을 받아가며 지하에 머무르는 것 같던 재야 운동권단체와 통일정책 당국이 보조를 맞추며 추진하는 「범민족대회 예비회담」의 주선과정은 짧은 동안 그 자체만으로 우리에게 기대와 호감을 제공해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26일,에비회담 첫날이 무산되는 과정을 지켜보며 우리가 느낀 심경은 깊은 실망의 늪을 헤매는 것이었다. 북측의 거의 시나리오화한 트집극은 차라리 예상했던 일이어서 새삼스러울 게 없다. 하지만 전민련측의 행동이 모처럼의 기대와 호감을 많이 희석시킨 것은 우리를 많이 서운하게 만들었다. 우선,이번 예비회담을 진정으로 성사시키려면 전민련측은 정부측의 「관례사항」 준수에 북측이 트집잡을 빌미를 줄여주도록 협조했어야 했다. 한마디로 회담이라지만 그것에 따르는 기계적인 절차와 현실적인 기능이 굉장히 많이 있다. 그것을 전민련측이 해내는 데는 한계가 있는 것이다. 회담장소ㆍ수용능력ㆍ경비 등은 치안을 주도하는 정부의 관장사항이다. 이런 일의 수행과정에서 관료적 경직성이 다소 작용하더라도 원숙하게 적응하는 것이 전민련측의 성숙함이고 승리이기도 하다. 재야적 시각으로 보면 정부측에 회담주도권 장악의 속셈이 비쳐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부측 처사를 의연하게 수렴하여 북측 대표를 회담장에 앉히기만 했다면 그 성과는 전민련의 공으로 결실될 수밖에 없다. 다음으로는 전민련측이 보여준 다소 과잉한 행동거지도 우리를 실망시켰다. 통일에의 비원은 전민련만의 것이 아니다. 가슴속에 통곡을 담고 반백년가까운 세월을 살아온 동족 모두의 것이다. 우리 모두에게 통일은 너무 절박하고 소중한 것이어서 일부 사람들이 자신들의 위상이나 행동을 정당화하고 선전하는 수단으로 삼는 것처럼 보이는 일에는 저항을 느낄 수도 있다. 또한 통일의 궁극적인 달성이 전민련이라고 하는 지극히 일부의 특정세력에 의해 이뤄질 수는 없다는 것을 7천만 한민족 모두는 알고 있다. 그러므로전민련이 통일의 카드를 무소불능의 면죄부처럼 휘두르며 국제법상의 민간인 통제구역에서 시위를 떼쓰고 제지하는 관리에게 극렬한 항의를 한다든지 북쪽의 생트집으로 무산된 엄연한 결과를 놓고 정부에 책임을 돌려 원색적 비난을 하며 농성을 기도하는 일 따위는 몹시 눈에 벗어나는 행동이었다. 그리고 또하나 우리를 아연케 한 일이 있다. 환영꽃다발을 줄 화동의 구성이다. 문익환목사의 손자녀와 함께 간첩복역수 자녀로만 구성되었다는 사실이 6ㆍ25 남침시절을 문득 연상시켰기 때문이다. 감옥을 깨고 나온 사상범이 남침 인민군을 해방군으로 맞던 광경이다. 이 대회를 이렇게 이끌어간다면 「범민족대회」란 명칭은 부당하다. 북측에 악용될 소지만 명백하다. 특히 자신이 무슨 일을 하는지도 잘 모르는 어린이들을 이렇게 이용하는 일은 위험하다. 어쨌거나 전민련은 이제 국민앞에 노출되었다. 정의로 포장된 연막속의 신비한 존재가 아니다. 정신이 노출된 뒤에 받아야 할 가혹한 비판에 대해서 깊은 사려가 있어야 할 것이다. 이 간곡한 충고에 귀기울이기를 당부한다.
  • 김현희 서울의 혈육 상봉/외할아버지 4촌 일가와 해후

    ◎“어머니 보고 싶다”계속 흐느껴 KAL기 폭파범 김현희양(28)이 21일 상오9시30분쯤 서울 중구 장충동 이북5도청에서 외할아버지의 사촌동생(외재종조부)인 임관호씨(70ㆍ서울 관악구 남현동 이화연립) 등 외가친척들을 극적으로 만났다. 1천만 이산가족재회추진위원회의 주선으로 이날 임씨를 만난 김양은 『이북에 있는 외삼촌과 얼굴이 닮았다』며 임씨를 안고 기쁨의 눈물을 흘렀다. 김양은 임씨가 김양의 어머니인 임명식씨(56)와 외삼촌ㆍ이모들의 이름을 정확히 대자 외할아버지임을 알아보고 덥석 안겼다. 김양은 특히 임씨가 보관하고 있던 어머니 임씨의 개성 명성(구 호수돈)여자중학교 재학시절 사진을 보여주자 울먹이며 『이 사진을 엄마가 갖고 있는 것을 본적이 있다』면서 『엄마ㆍ아빠가 보고 싶다』고 흐느꼈다. 김양은 『남한에 친척이 살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며 『북한 같으면 피해를 입을까봐 찾아올 생각도 못할텐데 큰 죄를 지은 저를 친척이라고 이렇게 찾아주셔서 감사하며 앞으로 자주 찾아뵙고 싶다』고 말했다. 연보라색 바탕에 청색 줄무늬가 있는 투피스를 입고 머리를 묶은 단정한 모습으로 나온 김양은 임씨와 함께 나온 임씨의 누나 임명복씨(71) 등 친척 7명과 어머니의 얘기 등을 하며 만남의 기쁨을 나눈뒤 위원회가 준비한 금반지와 꽃다발을 선물로 받았다. 개성에서 김양의 어머니 등과 함께 살다 6ㆍ25때 남하했다는 임씨는 지난 88년 1월18일 대한항공 858기 폭파사건수사결과 발표당시 김양의 어머니가 개성출신인데다 여자에게는 흔치않은 남자이름인 임명식이라는 보도를 보고 김양이 북한에 있는 사촌형 증호씨의 외손녀라고 직감했으나 그동안 망설여 오다 지난 4월12일 김씨가 특별사면되자 위원회측에 인척관계를 확인해 달라고 요청해 이날 만나게 됐다.
  • 척추 다친 박소영양에 “온정 밀물”/본지보도에 각계서 성금 보내와

    ◎두달간 1억8천만원 걷혀/코흘리개와 익명의 정성도/“꼭 일어나 다시 평행봉 잡겠어요”박양 『지난5월 소영이 돕기운동이 시작된 뒤 주위의 따뜻한 사랑에 힘입은 듯 마비됐던 하반신가운데 허벅지까지의 신경이 되살아났습니다. 오늘 이 엄청난 액수의 성금을 받고 보니 소영이는 성원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꼭 일어설 것이라고 믿습니다』 북경 아시안게임과 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에 출전할 국가대표체조선수로 뽑힌지 사흘만인 지난해 12월26일 연습도중 척추를 다쳐 식물인가과 다름없는 처지가 됐던 박소영양(서울 수유여중3년)을 돕자는 서울신문보도(지난 5월27일자)가 나간지 두달. 20일 상오11시 수유여중 교장실에서 이종록교장선생님으로부터 각계에서 들어온 1억8천여만원의 온정어린 성금을 전달받은 소영양의 아버지 박일룡씨(51)는 『꼭 일어설 것』이라는 말을 몇번이나 다짐하듯 되풀이했다. 소영이 돕기운동이 시작된 것은 지난 5월15일. 스승의 날 기념행사장에 모인 수유여중선생님과 학생들 가운데 누구에게선가 『소영이를 돕자』는 말이 나왔고 즉석에서 2백36만4천원의 성금이 모아졌다. 성금이 모이자 곧바로 이교장을 대표로 「박소영돕기성금관리위원회」가 만들어 졌다. 「위원회」에 모인 선생님과 학생들은 궁리끝에 소영양의 고통을 화면에 담은 15분짜리 비디오테이프를 만들어 각계각층에 호소하기로 했다. 소영양이 물리치료를 받는 모습,옷을 갈아입느라 애쓰는 모습,남동생 찬희군(13ㆍ전농중1년)이 병원에 간 아버지 대신 밥짓고 빨래하는 모습 등 눈물겨운 장면들이 수유여중 각교실에 설치된 TV를 통해 방영되는 날 전교생은 눈물을 흘리며 다시 2백10만원을 모았다. 「위원회」는 이 테이프 50여개를 이웃 각급학교에 보냈고 소영양이 병실에서 친구들에게 보낸 편지를 담은 호소문 1만여장도 돌렸다. 교사ㆍ학우들의 소영양돕기운동소식이 서울신문보도를 통해 알려지자 각계에서는 엄청난 온정이 몰려들었다. 서울시교육위를 비롯,각급 학교에서는 성금모으기가 시작됐으며 위원회 이름으로 된 은행구좌에는 「박소영에게」로 만 되어있는 무통장입금이 쇄도했고 서울신문이나 학교로 직접 찾아오는 사람도 줄을 이었다. 코흘리개 국민학생들까지 저금통을 들고 찾아왔다. 이날 훨체어를 타고 성금 전달식장에 나와 학생대표로부터 성금과 함게 쾌유를 비는 꽃다발을 받은 소영양은 『이렇게 엄청난 도움을 받고 보니 꼭 일어나 다시 평행봉을 잡겠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날 성금가운데 1억여원은 장기신용은행에 소영양이름으로 예치돼 5년뒤 1억7천8백만원을 찾게되며 8천4백21만원은 현금으로 전달됐다.
  • “통독 만세”… 폭죽ㆍ경적속 열광/경제통합 첫날 베를린 표정

    ◎비밀경찰 본부서 “밤샘 춤파티”/환전인파 쇄도… 실신사태 속출 그것은 한편의 감동적인 드라마였다. 1일 0시 역사적인 동서독 경제통합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동독은 일순간 환희로 가득찼다. 동베를린 중심부 알렉산더광장을 꽉메운 수만명의 동독인들은 광장시계탑의 대형시계가 0시를 알리자 일제히 환호성을 울렸다. 그순간 동베를린 하늘은 폭죽의 불꽃과 섬광으로 수놓아졌으며 가정에서,거리 곳곳에서 샴페인이 터뜨려졌다. 자동차들은 경적을 울려대고 많은 사람들은 서로 부둥켜 안고 춤을 추기도 했다. 지난해 11월 베를린장벽이 개방되던 날 전세계를 감동시켰던 「광란의 축제」가 재연되는 순간이었다. 동베를린 하늘에 울려퍼진 알렉산더광장 시계탑의 자정을 알리는 종소리는 단순히 하루를 마감하는 종소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동독의 마지막을 알리는 역사의 종소리였다. 동독은 이제 종소리와 함께 역사속으로 묻히고 있는 것이다. ○…자정을 앞두고 쓸모가 없게 된 동독 화폐 잔돈부스러기들을 다 써버리기 위해 거리로 몰려나온 동베를린 시민들은 길거리 카페와 주유소등에 장사진을 쳤으며 한밤중인데도 불구하고 잔뜩 들뜬 분위기가 시가지를 뒤덮었다. 동서독의 모든 국경들은 일시에 개방됐으며 동서베를린 경계에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찰리검문소를 지키고 있던 경비병들은 자리를 떠서 사라져갔다. ○…다른 은행들과는 달리 동베를린 시민들의 편의를 위해 유일하게 이날 0시부터 화폐교환을 해줄 수 있도록 은행문을 연 동베를린시내 알렉산더광장 근처의 도이체방크 주변에는 쓸모없게 된 동독 화폐를 서독 마르크화로 바꾸려는 시민들이 1만명이상 몰려들어 축구장에 몰려든 관중을 방불케 하기도.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일시에 몰려들어 밀고 밀치는 소란과 아우성이 계속되고 일부 시민들이 군중사이에 끼여 실신하는 사태가 빚어지자 은행측은 질서정리에 나선 경찰의 휴대용 확성기를 통해 바꿔줄 돈이 충분하니까 서두르지 말라는 안내방송을 거듭하는등 고객 접대에 안간힘. ○…이날 도이체방크에서 동독화폐를 서독 마르크화로 가장 먼저 환전한 사람은 올해 41세의한스 요하임 코살리씨로 그는 은행측으로부터 1백마르크와 꽃다발을 선물로 받는 행운을 잡았다. 코살리씨는 예금액중 약 1천2백달러 상당을 서독 마르크화로 환전했는데 그는 이 돈으로 가족과 휴가를 즐길 계획이라고 응답. ○…이날부터 서독 마르크화만이 동서독 양국의 공식화폐로 통용되게 됨에 따라 못쓰게 된 동독 화폐들이 화폐 수집가들의 투자대상이 돼 주화 풀세트의 경우 벌써부터 고가로 거래되고 있다고. ○…동베를린의 비밀경찰 병영으로 사용되던 건물에서 30일 밤 서독마르크화 시대의 도래를 기념하는 주요행사의 하나로 「도이치 마르크화속에서 춤을」 즐기자는 구호아래 개최된 파티에는 1천명이상의 동서독 젊은이들이 쇄도해 춤과 열기로 범벅. 주최측은 예상을 넘는 고객들이 몰려들자 정원을 초과한 수백명의 젊은이들을 돌려보냈으나 그래도 준비한 음식과 맥주등이 모자랐다고 즐거운 비명. ○…동베를린시내 문화의 전당건물에 모여 영화관람등을 하고있던 수백명의 젊은이들은 이날 0시 구내 방송을 통헤 『때로는 사랑했고 때로는 증오했던 우리의 조국 동독 인민공화국에 작별을 고한다』는 방송이 흘러나오자 휘파람과 환성을 지르며 환호. 연인들이 입을 맞추고 동전을 공중에 던지는등 한바탕의 소동이 가라앉으면서 방송에서는 곧이어 동독국가가 흘러나왔다. ○…대부분의 동독 국민들은 이날 동서독의 경제통합을 환영했으나 일부에서는 앞으로 예상되는 대량의 실업사태및 인플레등과 관련,불안한 표정을 감추지 않기도. 동독에서 앞으로 일자리를 잃게될 것으로 추정되는 실업자 수는 최저 50만명에서부터 최고 4백만명까지 전문가들에 따라 추정치에 큰 차이가 나고 있는 실정이나 어떻든 대량의 실업사태가 올 것이라는 점은 분명한 실정. ○…동독 당국은 공중전화와 기차표 판매대등에서 서독 마르크화를 받아들이고 동독 화폐를 사용할 수 없도록 기계를 재조정하는 작업을 진행하는등 경제ㆍ화폐통합에 따라 생겨날 문제점들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한 조치로 분주한 모습. 또 백화점과 대형상점들도 아예 문을 닫고 1일부터 판매될 서방상품들을 위해 기존판매상품들을 창고로돌리고 서방상품들을 위한 매장진열과 서구풍의 화려한 실내장식작업에 나서는등 달라진 환경에 대처하기 위해 기민하게 움직이고 있는 실정.
  • 노대통령(정상회담 여로)

    ◎“노대통령­고르비 만남은 엄청난 지진” 퀘일/노­부시,8개월만에 3번째 반가운 악수/교민들 「통일대통령」 피킷들고 대환영 ○…노태우대통령은 6일 상오 10시(한국시간 하오 11시) 정각 이날 아침 함께 조찬을 했던 퀘일 부통령의 안내로 백악관 동쪽집무실에 도착,존 리드 국무부의전장으로부터 영접을 받으며 로비에 대기중이던 미측 배석자들과 악수를 나누며 인사를 교환. 노대통령은 이어 루스벨트룸에서 방명록에 서명한 뒤 부시대통령의 집무실인 오벌 오피스에 들어섰고 이때 자신을 맞기 위해 입구에 서있던 부시대통령과 반갑게 악수,8개월여만에 3번째 만나는 돈독한 우의를 과시. 노대통령과 부시대통령은 오벌 오피스의 소파에 나란히 앉아 내외신 사진기자들에게 두 차례에 걸쳐 포즈를 취해주며 담소. 노대통령과 부시대통령은 기념촬영이 진행되는 동안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한소 정상회담에 관해 환담. 부시대통령은 『샌프란시스코회담은 아주 적절했으며 매우 중요한 것이었다』고 말하고 『오늘 노대통령과의 만남을 고대해 왔다』고 말했다. 이어 부시대통령은 『오늘 이 자리에서 한소회담 내용등을 구체적으로 논의하자』고 제의. 이에 노대통령은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이 샌프란시스코에서 바쁘고 열띤 하루를 보냈다고 하더라』고 전하며 『그는 무척 기분이 좋아보이더라』고 고르바초프대통령과의 대좌인상을 피력. ○…노태우대통령은 부시 미대통령과의 한미 정상회담을 갖기 앞서 백악관 서쪽 부통령집무실 2층에서 댄 퀘일 미부통령과 조찬을 함께하며 환담. 퀘일 부통령은 『노대통령께서 백악관 서쪽 집무실을 방문해 주셔서 감사하다』며 『지난해 미국을 방문했을 때 샌프란시스코지역에 지진이 일어나서 만나뵙지 못해 안타까웠다』고 피력. 이어 퀘일부통령이 『샌프란시스코 한소 정상회담에서 고르바초프 소대통령을 만나본 소감이 어떠냐』고 묻자 노대통령은 『대단히 우호적인 분위기속에서 성과있는 회담이었다』고 대답. 조찬에 앞서 퀘일부통령은 접견실에서 노대통령은 반갑게 맞은 후 이어 도보로 조찬장으로 자리를 옮겨 2층 발코니에서 백악관을 내려다 보며건물구조를 설명했고 멀리 보이는 워싱턴 초대대통령기념관과 제퍼슨 대통령기념관을 가리키며 친절하게 설명. 이어 노대통령과 퀘일부통령은 사진기자들에게 포즈를 취해주며 손을 흔들어 인사하기도. 조찬도중 퀘일부통령은 『지난해 노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했을 때 샌프란시스코에 지진이 일어났는데 올해도 또 지진이 일어났다』며 『노대통령과 고르바초프대통령이 샌프란시스코에서 만난 것 자체가 엄청난 지진이 아니냐』고 노­고르바초프회담을 지진에 비유해 의미를 높이 평가. ○…노대통령과 부시 미대통령은 이날 45분동안 회담할 예정이었으나 이보다 15분 연장된 11시까지 회담했으며 당초 배석을 하지 않기로 했던 퀘일부통령까지 자리를 같이해 한소 정상회담 내용에 대한 미국측의 깊은 관심을 반증. 백악관측은 이날 11시부터 미군기지 이전문제가 현안이 되고 있는 그리스의 콘스탄틴 미초타기스수상과 부시 대통령의 회담일정을 잡아 놓았으나 노대통령과의 회담시간이 연장되는 바람에 이 일정을 11시30분부터로 연기하기도. 노대통령이부시 대통령과 약 1시간동안의 회담을 마치고 나오자 오벌 오피스앞에 기다리고 있던 20여명의 백악관 출입기자들은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과의 샌프란시스코회담 내용을 집중 질문. 노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북한의 개방화와 남북대화재개를 강조하며 『고르바초프대통령도 이를위해 북한에 압력을 넣기로 했느냐』는 질문에 『물론이다』고 만족스런 표정으로 대답. 노대통령은 또 『고르바초프대통령과 만난 결과 한반도긴장완화에 대한 자신을 얻었으냐』는 질문에 『물론 확신한다. 그리고 한반도 평화가 정착되면 주한미군도 조정할 수 있을 것이다』고 주한미군철수문제를 우회적으로 답변. 백악관 출입기자들은 노대통령이 약 5분동안 질문에 대한 즉석답변을 마치고 백악관을 떠나려하자 계속 한소 정상회담과 관련한 질문공세를 벌이는등 큰 관심을 보이기도. ○…노대통령은 이에앞서 5일 하오 5시10분(한국시간 6일 상오 6시10분)부시 미대통령과 한미 정상회담을 위해 워싱턴근교 앤드루스공군기지에 도착,교민 3백여명으로부터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노대통령은 박동진주미대사,리드 백악관의전장 등으로부터 기상영접을 받고 트랩을 내려 앤더슨 미국무부 동아태 부차관보,로해치기지사령관 등 미국측 인사와 이승곤주미공사등 한국측 인사들과 악수. 노대통령은 교포소녀 김민아양(11)으로부터 꽃다발을 받은 뒤 곧바로 교포들이 대기하고 있는 환영대로 가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며 환영하는 교포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며 인사. 교포들은 「통일대통령 노태우」 「축 한소 정상회담 성공」 「북방정책성공으로 평화통일 앞당기자」라는 등의 피킷등을 흔들며 노대통령에게 『수고 많이 하셨어요』라고 일제히 환호. 노대통령은 한 교포가 『고르바초프대통령과의 회담성과가 좋아서인지 화색이 작년보다 좋으시다』고 인사를 하자 『세상이 많이 달라졌지요』라고 답례. 노대통령은 남매어린이를 안고나온 교포부부가 대형태극기를 내밀며 사인을 요청하자 매직펜으로 「대통령 노태우ㆍ1990년 6월5일」이라고 친필 서명.
  • 「노대통령의 날」 선포…상항엔 환영물결(노대통령 정상회담 여로)

    ◎호텔 정문엔 한ㆍ미ㆍ소기 나란히/북가주 10만 교포,환영위 구성/30국 기자 1천명 운집… 세계의 관심 입증 노태우대통령은 12시간의 장거리 여행끝에 태평양을 건너 3일 상오 10시(현지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공항에 도착,역사적인 한소 정상회담과 한미 정상회담을 위한 바쁜 일정에 들어갔다. ○교민1백명 태극기 마중 ○…노대통령이 도착한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에는 부시 미대통령의 특별지시를 받은 조제프 리드백악관의전장과 아트 아그노스 샌프란시스코시장등이 나와 노대통령일행을 영접. 이날 상오 공항에는 교민1백여명이 「환영 노태우 대한민국 대통령」이라고 쓰인 플래카드와 태극기를 흔들며 대통령일행을 환영. 노대통령은 장거리 여행에도 불구하고 시종 미소를 띤 얼굴로 교민들과 차례로 악수를 나누며 환영에 답례. 노대통령의 이번 미 국방문은 업무성격의 방문이기 때문에 미 정부차원의 특별한 공항 환영의전행사는 생략. 노대통령은 공항에서 미정부가 제공한 차량에 탑승,숙소인 시내 페어몬트호텔로 직행. 페어몬트호텔은 지난 48년 유엔창립총회가 열린 유서깊은 곳으로 호텔측은 역사적인 한소 정상회담을 기념하기 위해 2일부터 정문에 태극기와 성조기ㆍ소련국기를 내걸었고 그랜드볼룸에 프렌스센터를 설치. ○…샌프란시스코시는 시의회의 결의로 노대통령이 도착하는 3일을 「노태우대통령의 날」로 공식선포하여 노대통령을 환영. 아트 아그노스 샌프란시스코시장은 샌프란시스코공항에서 대통령을 영접하는 자리에서 노대통령에게 행운의 열쇠를 증정하면서 「노태우대통령의 날」 선포문을 함께 전달. ○스위트룸에 투숙 예정 ○…노대통령이 유숙할 페어몬트호텔의 방은 정식으로 알려지지 않고 있으나 샤론 아놀드 호텔홍보담당관은 『통상적으로 외국정상들이 이용하는 렌트하우스는 이미 계약이 끝난 상태이므로 부득이 62개 스위트룸 가운데 1개를 노대통령이 사용할 것』이라고 코멘트. 그는 『한소 정상회담이 페어몬트호텔 어느곳에서 열리게 될 예정이냐』는 보도진의 질문에 대해서도 『호텔측으로서는 아직까지 아는 바 없다』며 함구. ○…샌프란시스코를 비롯한북가주지역 10만 교포들은 이번 한소 정상회담 개최소식이 알려지면서 「노대통령 한소 정상회담 북가주 교포환영위원회」를 구성해 열렬히 환영. 교포들의 이같은 환영채비는 과거 대통령의 방미때와는 달리 순수한 범교포적 차원에서 추진된 것이 특징. 한편 샌프란시스코에는 지난 1일부터 세계 30여개국 기자 1천여명이 속속 몰려들어 이번 한소 정상회담에 대한 세계적 관심도를 반영. 이중 미국의 3대 TV네트워크도 샌프란시스코에 톱앵커맨등을 파견키로 했는데 NBC의 톰 브로커,ABC의 피터 제닝스,CBS의 댄 래더 등이 4일 저녁뉴스를 전국에 생방송할 예정. ○…노대통령은 3일 하오 3시 성남 서울공항에서 박준규국회의장ㆍ이일규대법원장ㆍ강영훈국무총리 등 3부요인과 전각료,민자당의 김영삼대표최고위원과 김종필ㆍ박태준최고위원 등 당간부,청와대수석비서관,3군총장 등 1백여명의 환송을 받으며 특별기편으로 출국. 노대통령은 이날 하오 2시40분 헬기편으로 공항에 도착,환송식장인 청사 2층 옥내행사장으로 가 군악대의 팡파프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강총리와 이연택총무처장관의 안내를 받아 중앙연단에 올라가 출국인사. 노대통령은 이어 화동 정미숙양(10ㆍ서울사대부국 4년)으로부터 꽃다발을 받고 환송객들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 이에앞서 노대통령은 이날 하오 청와대를 떠나면서 부인 김옥숙여사ㆍ아들 등 가족들의 배웅을 받는 자리에서 외손녀 윤정양(2)을 안고 『네가 컸을 때는 우리나라가 통일이 되어 분단이나 전쟁이 없는 세상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옥숙여사 동행 안해 ○…이날 노대통령이 타고간 특별기는 대한항공에서 임대한 보잉 747기로 태극기와 대통령 휘장기를 비행기 앞 양쪽에 게양했고 서울공항 청사건물에는 「안녕히 다녀오십시오. 환송 노태우대통령 미소 정상과의 회담을 위한 미국 방문」이라고 쓴 현판을 부착. 이번 노대통령의 방미는 「공식방문」이 아닌 「업무여행」(WORKING VISIT)인 관계로 환송행사는 옥내행사로 간소하게 치러졌으며 소련과 아직 수교가 되지 않았음을 감안,소련국기는 물론 태극기와 미국국기도 연도에 걸지 않았다고. 또 대통령 부인김옥숙여사가 동행치 않아 이날 공항행사에도 3부요인등이 동부인하지 않았으며 수행원도 각료로는 최호중외무부장관만 수행했으며 관계비서관등도 최소한의 인원으로 구성. ○「통일로 가는 길」 소개도 ○…미국의 AP통신은 3일 노태우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의 회담과 관련,『한국인들은 이번 한소 정상회담을 남북통일로 가는 단계로 보고 있다』고 샌프란시스코발로 보도. 이 통신은 노대통령이 지난 88년 7월 한반도의 평화를 증진시키고 경제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북방정책」을 펴기 시작했다고 소개. AP통신은 『한국교포들은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리는 역사적인 회담에 깜짝 놀랐으며 만일 고르바초프가 남북한간의 통일을 원한다면 그는 북한에 압력을 가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한 재미교포 한국언론인의 말을 인용 보도하기도. ○소 영사관에 하루 묵어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이 1박2일간 머무를 예정인 소련영사관일대는 사복경찰과 기관원들이 삼엄한 경비망을 구축,행인들의 동태를 면밀히 감시. 샌프란시스코에는 약3만명의 소련계시민들이 거주하고 있는데 고르바초프를 맞아 환영행사를 계획하고 있지 않아 들뜬 한인사회와 대조적인 모습. 한편 독립을 선언한 발트 3국 출신인들은 4일 대대적 반소시위를 계획하고 있기도.
  • 교민들 눈물 닦으며 노대통령 환송/동경∼서울 여로 이모저모

    ◎가이후,“기술이전” 촉구하자 “노력하겠다”/일 프레스클럽 회견뒤 「진실일본」 휘호남겨 ○따뜻한 환대 감사 ▷2차 정상회담◁ ○…노태우대통령과 가이후 일본총리의 26일 상오 2차 정상회담은 1차 정상회담과 마찬가지로 개별회담과 확대정상회담의 순서로 1시간30분동안 진행. 상오 9시 회담장인 영빈관 2층 사이란노마홀(채란간)에 들어선 가이후총리는 양측 배석자들과 인사를 나눈 뒤 곧이어 입장한 노대통령과 밝은 표정으로 악수를 교환. 회색 싱글 차림의 노대통령과 연회색 싱글차림의 가이후총리는 전날밤 총리주최 만찬이 늦게까지 계속됐음에도 불구하고 피곤한 기색없이 환한 얼굴로 기념촬영을 위해 잠시 포즈. 이 자리에서 노대통령은 『짧은 방문기간동안 따뜻하고 정성어린 환대에 감사한다』며 일본 정부의 세심한 배려에 인사. 노대통령과 가이후총리는 이어 30여분동안 개별회담을 가진 후 장소를 소회의실로 옮겨 외무·법무·상공·과기처장관 등 관계장관들을 배석시킨 가운데 50여분간 확대회담을 계속. ○일 성의 거듭 촉구 ○…노대통령은 26일 상오 예상보다 18분 정도 길어진 확대정상회담에서 『내가 일본을 방문한다고 하니까 한국의 기업인들이 찾아와 88년 올림픽이 끝난 뒤 일본으로부터 기술이전이 중단됐다고 하더라』고 소개하고 『한국기업인들이 가까운 일본을 놔두고 미국·유럽 등 먼곳에 가서 기술을 도입하고 있는 실정이니 일본을 가까운 나라로 생각하겠느냐』며 일본측의 기술이전 확대를 강력히 촉구. 이에대해 가이후총리는 『기술이전은 정부차원에서 할 수는 없고 민간차원에서 이뤄져야 한다』며 『그러나 대통령께서 간곡히 말씀하시니 기업인들에게 이야기해 기술이전을 활발히 하도록 조언하겠다』고 약속. 가이후총리는 이어 『한국에 기술이전을 하려 해도 한국의 투자환경이 미흡하고 한국기업인들이 정당한 대가를 치르려 하지 않으며 한국의 노사분규 등으로 일본 기업인들이 꺼린다고 하는 소리를 들었다』고 한국내 사정을 거론했는데 노대통령은 『투자환경이 좋지 않다고 하는 것은 옛날 특혜를 누리던 시절을 생각하기 때문이고 노사분규는 성장과정에서 피할 수 없는 현상으로 곧 안정될 것으로 생각하며 이제 한국기업인들이 공짜로 기술을 얻으려는 사람이 없다』고 설명하며 일본측의 성의를 거듭 촉구. ○방한 초청에 사의 ▷일왕과의 작별◁ ○…노대통령 내외는 상오 11시 숙소인 영빈관에서 아키히토(명인) 일왕 부처와 작별인사를 나누면서 방일기간중의 환대에 사의를 표시. 노대통령 내외는 작별인사차 영빈관을 방문한 아키히토 일왕 부처를 현관에서 영접,2층 아사히노마로 안내하여 10여분간 환담. 노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도쿄에 머무르는 동안 일왕 부처와 일본 국민들이 보여준 따뜻한 환대와 배려에 감사한다』며 일왕및 일본지도자들과의 만남을 통해 이번 방일이 결실있는 성과를 거둔 데 대해 만족을 표명. 노대통령은 이어 일왕이 적절한 시기에 한국을 방문해줄 것을 요청했으며 이에대해 아키히토일왕은 방한초청에 사의를 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대통령 내외와 아키히토 일왕 부처는 환담이 끝나자 기념촬영을 했으며 아키히토 일왕 부처는 아사히노마 입구 홀에서 대기하고 있던 우리측 공식수행원들과 일일이 악수를 하며 노고를 치하. 아키히토일왕은 최호중외무·이종남법무장관에게 『여러가지 유용한 얘기를 많이 나눴느냐』고 한일 외무장관회담에 관심을 표시했고 박필수상공·정근모과기처장관에게는 『충분한 논의를 했느냐』고 역시 관심을 표명. ○기자 2백90명 참석 ▷일본기자클럽 회견◁ ○…26일 일본기자클럽 오찬회견이 열린 도쿄 우치사이 와이초(내행정) 프레스클럽 10층 국제회의장에는 2백60여명의 내외기자와 30여명의 사진기자가 입장해 초만원. 이날 사회를 맡은 미즈카미 겐야(수상건야)이사장은 노대통령을 소개하면서 『지난 87년 여당총재로서,그리고 선거를 앞둔 대통령후보로서 이곳을 방문했던 노대통령이 한국의 대통령으로 이곳을 다시 방문하겠다는 당시의 약속을 지켜 찾아준 것을 마음으로부터 환영한다』고 말했으며 노대통령은 『무엇이든지 자유롭게 물어주시기 바랍니다』라며 인사. ○…1시간45분여에 걸친 식사와 기자회견이 끝나자 노대통령은 일본기자클럽을 위해 「진실일본」이라는 휘호를 남겼으며 미즈카미 사장은 관례대로 만년필을 선물하며 『이것으로 2개째』라고 조크. 노대통령은 만년필을 받아들고 『지난번에는 펜이 칼보다 무섭다는 말을 남겼으나 이번에는 없을 「무」자를 남기고 싶다』고 피력. ○일일이 악수교환 ▷교포리셉션◁ ○…노대통령은 이날 오사카 국제공항 라운지에서 35만 관서지방 재일교포를 대표해 참석한 1백20여명의 교포들을 위해 리셉션을 마련,이들을 격려. 하오 3시40분쯤 부인 김옥숙여사와 함께 리셉션장에 입장한 노대통령은 교민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눈 뒤 다과를 들며 이들의 애환을 듣고 『용기를 잃지 말고 당당하게 살아가 달라』고 당부. 노대통령은 『우리 동포들이 가장 많이 살고있는 오사카를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 처음 방문해서 여러분의 건강한 모습을 뵙게 되니 참으로 기쁘다』며 『짧은 시간이지만 오사카에 사시는 동포들을 꼭 뵙고 가야겠다는 생각에서 이처럼 바쁜 걸음을 하게됐다』고 설명. 이날 노대통령이 약20분 가까이 연설하는 동안 10여차례의 박수가 이어졌는데 노대통령 내외가 『몸 건강히 잘 계세요』라며 라운지를 나서자 교민들은 곳곳에서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며 환송. ○5분간 귀국인사 ▷서울공항◁ ○…노대통령 내외는 26일 하오 6시50분 특별기편으로 서울공항에 도착,강영훈국무총리,이연택총무처장관,노재봉대통령비서실장의 기내영접을 받은 뒤 3군 군악대의 팡파르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트랩에서 태극기와 노대통령의 캐리커처 수기를 흔드는 1천2백여명의 환영객들에게 손을 흔들어 답례. 감청색 싱글차림의 노대통령과 미색 한복을 입은 김옥숙여사는 트랩에서 내려와 3군의장대를 사열한 뒤 김재순국회의장,이일규대법원장및 민자당의 김영삼대표최고위원,김종필최고위원 내외와 각료,민자당 3역,3군총장 등과 악수를 교환. 노대통령은 김대표최고위원·김최고위원에게 『여러가지로 고맙습니다. 성원해주신 덕분입니다』라고 인사했으며 화동으로부터 꽃다발을 증정받은 뒤 5분간 귀국인사. 노대통령은 인사말을 끝낸 뒤 환영인파의 맨앞줄로 가 일일이 악수하고 하오 7시15분쯤 군악대의 주악이 흐르는 가운데 환영객의박수를 뒤로 하고 헬기편으로 청와대로 출발.
  • 일왕,“불행했던 시대” 대목서 긴장/노대통령 방일여로 이모저모

    ◎도이 사회당위장도 “엄청난 과거사과”/가이후총리 “동년배끼리 대화로 풀자” 노태우대통령은 24일 낮 12시 특별기편으로 일본 하네다공항에 도착한 뒤 환영행사 참석,일왕 예방,도쿄도지사 접견,일본 유력인사 개별접견에 이어 가이후총리와의 1차 정상회담,일왕 주최 만찬참석 등 잠시의 틈도 없이 바쁜 일정. ▷일왕 주최만찬◁ ○…과거사에 대한 사과문제로 가장 관심을 모은 아키히토 일왕의 만찬사는 24일 저녁 8시40분쯤 시작. 미리 준비된 만찬사를 천천히 읽어 내려가던 아키히토 일왕은 과거사에 언급하면서 『우리나라에 의해 초래된 이 불행했던 시기에 귀국의 국민들이…』라는 대목에서 잔 기침을 해 다소 긴장한 듯한 모습. 그러나 아키히토 일왕은 젊은이들의 교류를 비롯한 양국의 장래문제를 언급하면서는 밝은 어조로 바꾸면서 『노대통령의 방일은 21세기로 이어지는 새로운 양국관계의 초석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고 강조. ○애국가 연주뒤 축배 만찬사가 끝난 뒤 애국가 연주에 이어 아키히토 일왕은 한국과 한국국민의 번영을 기원하는 축배를 제의. 이어 노대통령은 만찬답사에서 전후 일본의 발전과 아키히토 일왕의 즉위를 축하하고 고대로부터의 양국간 문화교류를 선린우호의 역사를 담담한 어조로 지적한 뒤 근세에 있어서의 어두웠던 과거에 언급. 노대통령은 『역사의 진실이 지워지거나 망각될 수는 없다』고 힘을 주어 강조하고 『그러나 우리는 과거의 속박에 언제까지 묶여 있을 수 없다』고 새로운 시대를 열어나갈 것을 역설. 노대통령은 『일본의 역사와 새로운 일본을 상징하는 폐하께서 이 문제에 깊은 관심을 보여주신 것은 의미 깊은 일』이라고 이날 아키히토 일왕이 과거사 문제를 언급한 데 대해 평가하고 『과거 역사의 그늘을 걷고 잔재를 치우는 데 모두 노력하자』고 다짐. 만찬이 진행되는 도중 노대통령 내외의 입장,아키히토 일왕의 만찬사,노대통령의 답사,민속공연은 보도진에게 공개됐는데 이때마다 취재기자들이 열띤 취재경쟁. ○…노대통령 내외는 이날 하오 7시50분쯤 일왕 궁성인 황거내 만찬장 호메이 덴(풍명전) 현관에 도착,기다리고 있던 아키히토일왕내외로부터 영접을 받고 반갑게 악수. 노대통령과 아키히토일왕은 만찬장인 호메이 덴 2층으로 오르면서 잠시 환담을 나누고 『오늘 만찬을 통해 반가운 사람들을 모두 만나게되어 기쁘다』고 인사. 이어 하오 8시35분쯤 노대통령과 아키히토일왕을 선두로 대통령부인 김옥숙여사,미치코왕비,나루히토(덕인) 왕세자부처,그밖의 왕족들 순서로 만찬장에 입장했는데 이순간 미리 테이블에 착석해있던 귀빈들이 일제히 일어섰으며 궁내청소속의 실내악단이 서울올림픽 공식가요 「벽을 넘어서」를 은은히 연주. 노대통령 내외와 아키히토 일왕 내외가 착석한 헤드 테이블에는 가이후총리 내외,사쿠라우치 중의원의장 내외,다케시타 나카소네 전총리 내외,쿠사바최고재판소장관 내외 등 일본측 인사와 최호중외무부장관등 우리측 수행장관들이 같은 열에 나란히 착석. 이날 만찬 음식은 제비집스푸 연어구이 등 주로 서양식이었으며 메인디시는 쇠고기였고 포도주와 일본주도 포함. ○…노대통령 내외는 하오 10시45분쯤부터 순쥬노바로 자리를 옮겨 일본 민속공연 「아악」을 일왕 내외와 약 20여분간 관람. 노대통령이 관람한 아악은 고대 한반도에서 전래한 고려악형식이었으며 노대통령은 민속공연이 끝난 뒤 연주자석으로 가 피리모양의 악기를 입에 대보기도 하며 연주팀을 격려. 이날 궁성만찬은 당초 하오 8시부터 10시30분까지 2시간30분간 진행될 것으로 예상했으나 노대통령과 아키히토일왕 사이에 환담이 길어지는등 화기애애한 분위기에 따라 45분이 길어진 밤 11시15분께야 종료. ▷1차 정상회담◁ ○…이날 하오 영빈관에서 열린 노대통령과 가이후총리간의 제1차 정상회담은 접견환담및 확대정상회담의 순서로 진행 ○가벼운 담소로 시작 하오 6시 정각 영빈관에 도착,접견실인 2층 사이란 노마홀에 들어선 가이후총리는 곧이어 입장한 노대통령과 환한 얼굴로 악수를 나누며 사진기자들을 위해 잠시 포즈. 노대통령과 가이후총리는 이어 2명씩의 배석자와 함께 자리에 앉아 가벼운 담소로 대화를 시작. 가이후총리는 이 자리에서 일본측의 사정으로 노대통령의 방일이 두차례씩 지연된 데 대해 송구스러움을 표한 뒤 한국내에 노대통령의 방일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방문을 결심한 데 대해 사의를 표명. 노대통령은 이에대해 『정달 어려운 방일이었다』고 털어놓고 『그런만큼 뜻있는 방문결과가 나오기를 기대한다』며 『20세기를 깨끗이 정리하여 밝은 21세기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자』고 강조. 가이후총리는 『각하께서 6ㆍ29 민주화선언의 선두에 나서 보통사람의 위대한 시대를 개척해 나가시는 것을 보고 신선한 인상을 받았다』며 『우리는 같은 연대 출신이므로 뜻을 나누면 대화로써 모든 것이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고 피력. 가이후총리는 이어 『곧 있을 정상회담에서도 솔직히 말씀드리겠지만 과거의 역사를 깊이 반성한다』며 「공식 사죄」에 앞서 사죄의 뜻을 간략히 표명. 노대통령은 이에 「고맙다」고 응답한 뒤 자신가 가이후총리,아키히토 일왕이 가가가 32,31,33년생임을 들어 『서로 배짱이 통하는 동년배의 우리가 진정한 대화를 나누면 긴 역사속에서 짧고 불행했던 기간은 능히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 ▷각계 인사접견◁ ○…노대통령은 영빈관에서 스즈키 도쿄도지사를 접견한 데 이어 나카소네(중증근),다케시타(죽하) 전총리,도이(토정)사회당위원장,이시다(석전)공명당위원장,오우치(대내) 민사당위원장 등 일 정계원로및 중진들을 차례로 접견. 다케시타 전총리는 노대통령을 만나 『이번 방문이 성공적이기를 빈다』고 했고 도이 사회당위원장은 『과거 양국간에 있었던 엄청난 일에 마음으로부터 사과한다』고 36년 식민통치등에 대한 사회당으로서 입장을 전달. ○일왕과 1호차 탑승 ▷환영식◁ ○…노대통령 내외는 이날 하오 1시20분 숙소인 영빈관 앞뜰에서 아키히토일왕 내외 나루히토(덕인)왕세자 왕족대표인 마사히토(정인) 일왕제 가이후 일총리부처 일본 전각료들이 참석한 가운데 베풀어진 환영식에 참석,일 자위대 의장대를 사열한 뒤 일본측 환영인사들과 인사를 교환. 노대통령은 하오 1시19분 아키히토 일왕 부처와 영빈관 현관 입구에서 첫 인사를 교환한 뒤 붉은 카펫이 깔린 테라스에서 일왕 부처와 나란히 서서 의장대가 연주하는 애국가와일본국가를 들으며 새로운 한일 선린우호관계 발전을 다짐. 노대통령은 다나카 요시모토(전중의구) 수석영접위원의 안내로 사열대에 올라 의장대의 총례를 받은 뒤 도보로 의장대를 사열. 노대통령은 사열을 마친 후 환영식에 참석한 사쿠라우치요시오(앵내의웅) 일 중의원의장 쓰치야 요시히코(토옥의언) 참의원의장및 일 각료들과 차례로 악수를 나누며 인사. 노대통령은 10분간에 걸친 환영식이 끝나자 아키히토 일왕과 국빈 1호차에 탑승하면서 환영나온 도쿄 한국인학교 학생,일본국민교생,재일교민 등 2백명을 향해 손을 들어 인사했고 이들은 양손에 든 태극기와 일본국기를 흔들며 환호. ▷일 하네다 공항◁ ○…노대통령 내외는 24일 정오 도쿄 하네다 국제공항에 도착,이원경 주일대사및 다나카 요시모토(전중의구) 일 외무성 의전장의 기상영접을 받은 뒤 21발의 예포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트랩을 내려와 역사적 일본방문을 시작. 노대통령 내외는 이어 다나카 의전장의 소개로 나카야마다로(중산태랑) 일 외무장관 내외와 야나기 겐이치 주한 일본대사 내외등 일본측 영접인사들과 인사를 나눈 뒤 재일동포 화동으로부터 꽃다발을 증정받고 대기하고 있던 국빈차량에 탑승. 이날 하네다 공항에는 경호관계로 일반 환영객은 출입이 금지됐고 공항구내에는 일본경호요원들이 50∼1백m 간격으로 배치돼 삼엄한 경비를 펼쳤으며 일본 NHK­TV는 정오 뉴스시간에 생중계로 도착광경을 방영.
  • 첫 전당대회ㆍ축하리셉션 이모저모

    ◎“하나로 새출발”… 닻올린 「민자호」/총재ㆍ최고위원 제청에 기립박수로 동의/피켓 물결속 노대통령 단합ㆍ결속을 강조/참석자들 「손에 손잡고」 합창… 자축행사 절정에 민자당은 9일 상오 10시 서울 잠실 올림픽공원 펜싱경기장에서 전국대의원및 각계 초청인사등 8천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3당합당이후 1백여일만에 첫 전당대회를 열고 당의 체제를 정비하고 공식 출범했다. 민자당은 이어 이날 하오 서울 삼성동 종합무역전시관에서 각계 인사들을 초청한 가운데 축하리셉션을 열고 새로운 출발과 당의 결속을 다짐했다. ○…이날 대회는 상오 9시57분쯤 서울올림픽 공식가요인 「손에 손잡고」가 연주되는 가운데 노태우대통령이 김영삼ㆍ김종필최고위원과 박태준최고위원대행과 함께 참석자들의 환호를 받으며 대회장에 입장하면서 시작. 전당대회의장으로 선출된 채문식고문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대회는 총재와 최고위원 선출및 대표최고위원을 지명하는 순서에서 절정을 이뤘다. ○당원등 8천명 참석 채전당대회의장이 『지난 7일 제6차 당무회의가총재와 최고위원을 제청한 바 있다』고 밝히면서 김영삼최고위원이 총재후보를 제청하겠다고 말하자 김최고위원은 단상앞으로 나가 『민자당을 대표하는 총재에 이나라 대통령이신 노태우대통령을 제청한다』며 만장일치로 지지를 보내주길 요청. ○박수속 나란히 입장 김최고위원의 제청이 끝나자마자 장내는 일제히 기립박수로 노대통령을 총재로 선출했으며 경쾌한 축하음악이 이 순간의 분위기를 고취. 상오 10시41분 채의장이 초대총재에 노대통령이 만장일치로 선출됐음을 선포하자 노대통령은 두손을 높이 들어 대의원들의 환호에 답례했으며 여성당원들로부터 축하꽃다발을 받고는 다시 꽃다발을 들고 대의원들에게 인사. 노대통령은 최고위원석으로 가서 김영삼ㆍ김종필최고위원 박태준최고위원대행과 차례로 악수를 나눈 뒤 이들의 손을 잡고 단상으로 나와 맞잡은 손을 높이 치켜들어 당수뇌부의 결속과 단합을 다짐했으며 참석자들은 박수로 이에 화답 ○…노대통령은 이어 그 어느때보다도 억양의 높낮이를 분명히 해가면서 자신에 찬 목소리로 총재취임사를 14분간에 걸쳐 낭독. 노대통령은 자신을 총재로 뽑아준 데 대해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며 『당원동지 여러분의 열과 성을 함께 모아 임부를 다해갈 것』이라고 다짐하자 취임연설의 첫 박수가 터졌다. 노대통령은 대회장이 88 서울올림픽의 경기장이었음을 상기시키고 『2년전 이자리에서 두꺼운 벽으로 갈라졌던 세계를 하나로 만들었다』면서 『그런 우리가 하나로 못될 이유가 뭐가 있느냐』고 반문하며 상호이해와 양보,당의 단합을 거듭 강조. 노대통령은 연설이 거의 끝날 무렵 최고위원석을 향해 뒤돌아 보며 『창당과정에서 보여준 김영삼ㆍ김종필 두동지의 구국정신과 높은 경륜에 대해 뜨거운 찬사를 보낸다』며 박수를 유도했고 이에 두 김최고위원은 자리에서 일어나 대의원들에게 인사. 노대통령의 이날 취임연설은 마치 대통령선거유세때의 연설처럼 짧은 문장으로 힘있게 연결됐는데 연설도중 11차례의 열띤 박수를 받았다. ○…이어 진행된 최고위원 선출에 앞서 김재광의원은 『지난 7일의 당무회의에서 민주ㆍ번영ㆍ통일의 과업을 이룩할 당의 최고지도자로 김영삼ㆍ김종필ㆍ박태준최고위원을 추대키로 의결한 바 있다』면서 이들 세분을 만장일치로 뽑아달라고 제청. ○14분동안 취임인사 이에 대의원들은 기립박수로 제청에 동의를 표시했으며 세 최고위원은 자리에서 일어나 대의원들에게 인사. 최고위원 선출이 끝나고 대표최고위원 지명순서에 들어가자 노대통령은 『민주발전에 평생을 바쳐오신 김영삼최고위원을 대표최고위원에 지명한다』고 선언. 김대표최고위원은 노대통령에게 다가가 악수로 감사를 표시했고 노대통령은 김대표최고위원의 손을 잡고 단상앞으로 나아가 함께 맞잡은 손을 높이 들어 대의원들의 열띤 환호에 답례. 김대표최고위원은 인사말을 통해 『지속적이고 총체적인 국정개혁만이 사회적 불안과 국민의 위기감을 씻어낼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길』이라며 개혁론을 재삼 강조. 김종필최고위원은 즉석 연설을 통해 『민자당은 집권여당이기 때문에 권리이전에 하나부터 백까지 책임을 져야 하고 민주주의의 토양을 다지고 번영된 국가,통일과업을 선두에 서서 영도해나가는 대통령을 모든 지혜와 성의를 다해 뒷받침해야 한다』면서 국태민안과 국리민복을 위해 기꺼이 희생하겠다고 다짐. 박태준최고위원은 「이인동심기리단금」(두 사람이 마음을 합하면 능히 쇠라도 자를 수 있다)의 옛말을 인용하면서 노대통령을 정점으로 단합할 것을 강조. 전당대회가 진행되는동안 김종필ㆍ박태준최고위원은 단상에 나설 때마다 노대통령에게 목례를 보냈으나 김영삼대표최고위원은 이를 외면해 대조적인 모습. ○…이날 행사장에는 「조국에 영광을 국민에 희망을 당원에 보람을」「세계로 미래로 통일로」 등의 구호를 담은 대형 플래카드가 부착됐으며 대의원들은 노태우총재의 사진과 대형캐리커처,김영삼ㆍ김종필ㆍ박태준최고위원의 이름이 적힌 피켓ㆍ깃발 등을 들고 있다가 이들의 이름이 호명될 때마다 피켓을 치켜 들거나 깃발을 흔들며 환호. 대회장의 단상에는 노대통령과 세 최고위원을 비롯,각계 대표 50여명이 자립잡았는데 단상 중앙에 노대통령,우측 뒤편에 세 최고위원석이 배치돼 이날 전당대회에서 의결된 총재중심의단일지도체제가 좌석배치에서도 반영된 느낌. 이날 전당대회에 앞서 약 1시간 10분가량 진행된 식전행사에는 조영남ㆍ송창식ㆍ최진희씨등 인기가수와 안비취ㆍ묵계월씨등 명창과 풍물놀이패등이 등단,대회장 분위기를 돋우기도. ○성악가도 특별출연 ○…이날 하오 6시부터 2시간동안 한국종합전시장에서 진행된 축하리셉션에는 총재인 노태우대통령과 3최고위원을 비롯한 민자당의원들과 각부처장ㆍ차관,주한외교사절,각계대표등 3천여명이 참석. 노대통령은 이날 저녁 7시쯤 박준병사무총장ㆍ김동영원내총무ㆍ김용환정책위의장등 당3역과 김윤환정무1장관의 영접을 받으며 연회장에 도착. 노대통령은 이어 연회장 입구에 도열해 있던 김영삼대표최고위원,김종필ㆍ박태준최고위원,채문식당고문 등과 악수를 나눈 후 함께 연회장에 입장해 장내를 돌며 일반 참석자들과 인사. 노대통령은 이어 인사말을 통해 『이 땅에 민주ㆍ번영ㆍ통일의 새로운 시대를 열 민주자유당이 닻을 올리고 이제 내외의 축복속에 출범했다』면서 『오늘 첫 전당대회가 민주주의의 나라,번영하는 나라,통일된 나라를 건설하는 데 튼튼한 주춧돌을 놓은 것으로 역사가 기록하도록 열과 성을 다하자』고 강조. 노대통령은 『30년 다른 길을 걸어온 정치세력이 하나가 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며 어려움이 따르게 마련』이라면서도 『우리는 이제 한 배를 탄 공동운명체』라며 단합을 거듭 강조. ○난국극복 결의 다져 노대통령은 『범죄와 폭력을 해결하라,법질서를 바로세워 편안한 사회를 만들어 달라는 국민의 요구가 인내의 수위를 넘어서고 있고 경제에 대한 불안심리도 높아졌다』며 『나는 이 모든 문제에 정면대결해 확고한 안정을 이룰 것』이라고 단호한 의지를 표명. 약 5분간 계속된 인사말에서 노대통령은 또 『실망이 있는 곳에는 희망이,불신이 깔려있는 곳에서는 신뢰가,갈등이 깊어진 곳에서는 화합이 샘솟게 해 그것이 내를 이루고 도도한 강물이 되어 바다로 넘치게 해야 한다』며 김대표최고위원,김종필ㆍ박태준최고위원과 힘을 합쳐 총재로서의 책임을 다할 것을 다짐. 이에앞서 김영삼ㆍ김졸필ㆍ박태준최고위원 등의 건배순서가 있었는데 김종필최고위원은 『우리당을 이끌고 모든 당원을 정성모아 격려하는 대통령을 으뜸보좌하는 김영삼대표최고위원을 위해 건배하자』는 건배제의에 따라 함께 건배를 하며 노대통령과 김영삼최고위원간의 관계를 거듭 확인. 김영삼대표최고위원은 건배에 이어 인삿말을 통해 『이제부터 과거와 같은 분열과 대립에 종지부를 찍고 화합과 믿음의 바탕위에 성숙한 정치를 펼쳐 나가자』고 강조하고 『과거의 정파를 초월,굳게 단결결속할 때 국민들은 우리를 지지할 것이며 우리는 반드시 승리하게 될 것』이라며 3계파의 단결을 거듭 역설. 이날 노대통령과 김영삼대표최고위원 김종필ㆍ박태준최고위원은 참석자들의 테이블을 돌면서 환담을 나누었고 축하연 중간에 한국계 소련성악가 루드밀라 남 여사와 국내 저명한 성악가들이 특별출연,가곡을 불러 축하분위기를 돋우었으며 나중에는 참석자들이 「손에 손잡고」(서울올림픽 주제가)를 합창해 절정. ◎국민에게 드리는 메시지 우리는 오늘날 우리가 처한 국내외의 시대적 상황을 보며 우리의전진을 가로막았던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고 희망찬 내일,더 밝은 미래를 열고자 민주자유당의 깃발아래 하나로 뭉쳤습니다. 대립과 갈등의 유산을 청산하고 성장과 발전을 이룩할 수 있는 정치안정의 디딤돌은 이제 확고히 마련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두 어깨에 매우 무겁고 많은 짐들이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의 단결된 힘을 바탕으로 이 땅에 진정한 민주주의를 꽃피워야 함은 물론 모든 국민들이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경제를 되살리고 남북으로 갈라진 7천만 겨레가 한마음으로 얼싸안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 세기를 한민족 영광의 세기로 마무리짓는데 선봉역을 다할 것을 다짐하면서 앞으로 우리당이 나아갈 방향을 밝혀 드리고자 합니다. 첫째,지역간ㆍ계층간ㆍ세대간 갈등을 해소하고 국민과 함께 호흡하며 국민속에 뿌리를 내리는 국민정당이 되겠습니다. 둘째,현실에 안주하는 구태의연한 권위주의적 정당이 아니라 모든 결정을 민주적으로 택하고 모든 행동을 전향적으로 취하는 온건중도적 개혁정당이 되겠습니다. 셋째,순간의 인기에 영합하여 공허한 약속을 남발하는 무책임한 정당이 아니라 국민에게 약속한 공약에 대해서는 반드시 책임을 지고 민의를 수렴하여 광범위한 정책을 개발하는 정책정당이 되겠습니다. 넷째,민족의 동질성과 신뢰를 회복하기 위하여 남북간의 교류와 협력을 적극화하고 국민적 합의를 바탕으로 한 통일정책을 추진하여 자주ㆍ민주ㆍ평화적인 통일을 앞당기는 통일정당이 되겠습니다. 우리당은 앞으로 국민여러분의 기대에 부응하는 새로운 정치시대의 일꾼으로 더 넓은 세계를 바라보며 더 밝은 미래를 펼쳐 나가기 위해 국민 여러분과 함께 땀흘려 일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 북의 남편과 말잊는 재회/40년 그리움 고향의 꽃 한다발로 전달

    ◎손경한씨 어머니 【도쿄=강수웅특파원】 김선순씨(62ㆍ부산 동래구 칠산동 195의4) 일가족이 6ㆍ25때 인민군에 입대한뒤 소식이 끊겼던 북한의 남편 손영종씨(62ㆍ북한 사회과학원 역사연구소 연구실장)를 40년만에 처음으로 일본 도쿄에서 상봉했다. 손씨의 형 영춘씨(65),여동생 영숙씨(60)와 함께 17일 하오 도쿄에 도착한 김씨는 이날 하오8시50분 도쿄 오테마치(대수정) 팔레스호텔 2층에 마련된 별실에서 남편 손씨와 재회의 감격을 누렸다. 30분쯤 먼저 회견장에 들어온 북한의 손씨는 김씨로부터 고향에서 가져간 꽃다발을 건네받고도 한동안 말문을 열지못한채 눈시울을 붉혔으나 형 영춘씨가 뒤쫓아 들어오며 『너 이놈 살아있어 다행이다』라고 소리치자 마침내 울음을 터뜨리며 반가워했다. 북한의 손씨는 6ㆍ25가 일어난 1950년 서울대 문리대 3학년 재학중 부인 김씨에게 『잠시 학교에 다녀올테니까… 』하며 집을 나간채 행방불명된뒤 이번에 아시아 사학회창립총회겸 한ㆍ중ㆍ일 고대사에 관한 학술심포지엄에 참석하기위해 도쿄에 왔다가 지난16일 아들인 변호사 손경한씨(40ㆍ서울 태평양 법률사무소)와 상봉하게 됐다. 손변호사는 지난 85년 미국유학중 북한학자로부터 아버지가 북한에 생존해 있는 사실을 확인,이번에 정부의 승인을 받고 생후 처음으로 아버지를 만나기위해 도쿄에 왔었다.
  • 한필성ㆍ필화 「남북 오누이」 40년만에 일 삿포로서 극적 상봉

    ◎“오빠!왜 이제 왔어요”… /목메인 남매,오열ㆍ절규도 잊어/생이별의 한은 울음까지 삼켜 【삿포로(일본)=동계아시안게임 특별취재반】 『오빠,왜 이제 왔어요』 『40년만에야…』 헤어지기 40년,생사를 확인한지 19년만에 극적으로 상봉한 남북의 오누이는 오히려 담담했다. 통곡도 오열도 절규도 없었다. 40년 생이별이 서러웠고 남북의 정치적대립으로 상봉직전에서 또 19년을 기다려야했던 안타까움과 그동안 가슴을 저린한이 큰울음까지도 삼켰기 때문이다. 지난50년 6.25의 와중에서 이산가족이 돼버린 한필성(62ㆍ목축업 경기도 파주군 교하면 통패리 166의2) 한필화(48ㆍ북한국가체육위원회 동계경기지도부국장)남매는 지난71년 극적으로 서로의 생사를 확인,상봉직전까지가 세상의 이목을 집중시켰었다. 필성씨는 71년 2월7일 삿포로 동계프레올림픽에 출전한 북한 스피드스케이팅선수중 여동생 필화씨가 포함돼 있는 것을 알고 일본 아사히신문 주선으로 도쿄로 날아가 30분동안 전화로 통화,「목소리만의 상봉」은 이루었으나 남북간의 팽팽한대립의 벽에 막혀 눈물을 뿌리며 귀국해야만 했다. 그로부터 19년만인 8일 하오8시 이국땅 삿포로에서 필성,필화남매는 혈육의 정을 갈라놓은 벽을 마침내 허물고 40년만에 재회했다. 17살 홍안소년이던 필성씨는 어느덧 환갑을 넘은 노인으로,8살의 귀엽기간 했던 막내동생 필화씨도 중년을 넘긴 주부로 세월이 흐른뒤였다. 삿포로 지도세공항 입국장대합실. 첫눈에 서로를 알아본 오누이는 비명처럼 반가움의 한마디를 토해 놓고는 어깨를 들먹이며 얼싸안고 흐느꼈다. 두 오누이의 극적인 만남은 북한선수단 임원으로 지난2일 삿포로에 도착,선수촌 프린스호텔에 묶고있던 필화씨가 남편 임세진씨(김일성대학 체육교수)와 조총련 간부 송암우의 안내를 받아 삿포로에 도착한 한필성­홍애자 내외를 마중나옴으로써 지도세공항 로비에서 이뤄졌다. 한필성씨는 회색싱글 양복차림,홍애자씨는 분홍빛 치마저고리에 꽃다발을 한아름 안고 공항에 나와 플래시세례를 받았으며 1백50명의 내외신기자들 앞에서 큰절을 올리고 돌아서는 순간 회색빛깔의 양장차림에 파머를 한 필화씨가 『오빠』하고 부르며 와락 달려들어 극적인 상봉이 이뤄졌다. ◎“기쁘단 것외엔 할말 없어 이젠 어머니한 푼것 같다” ○한필성ㆍ필화 남매 회견 지도세공항에서의 아쉬운 첫만남을 마친 필성ㆍ필화남매는 이날 하오10시15분쯤 공항에서 동남쪽으로 40㎞ 떨어진 삿포로 프린스호텔에 도착,45분동안 기자회견을 가졌다. ­지금의 소감은. ▲필성=기쁘다는 말밖에 할말이 없다. ▲필화=19년전에 만날 수 있었는데 이제야 만나게 됐다. 하지만 나도 오빠만큼이나 기쁘다. ­사전에 상봉을 위한 연락이 있었는가. ▲필성=없었다. 서울에는 나같은 이산가족이 많다. 남북한의 자유왕래가 이뤄지지 않더라도 생사확인과 서신교환만이라도 했으면 좋겠다. 일이 더 잘풀려 교향방문단교환이 성사되면 제일 먼저가고 싶다. ­앞으로의 일정은. ▲필성=오늘(8일)은 일단 따로 숙소를 정해 각자 휴식을 취하겠다. 하지만 내일부터는 동생이 삿포로를 떠날때까지 숙식을 함께할 예정이다. ­북한을 떠날때 어머니가 무슨 말씀을 하셨나. ▲필화=『이번에는 꼭 오빠를 만나라,네가 지명한 체육인이니 주위의 도움을 청하면 상봉이 성사될 것이다. 오빠를 만나면 큰절을 올리고 숙식을 함께하라. 너만이라도 필성이를 만날수 있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말씀하셨다.
  • 노대통령,양 김에 “동지” 호칭/창당 결의대회­축하연 주변

    ◎만장일치 박수로 안건 처리… 화합 과시/초청 받은 평민선 한 사람도 참석 안해 민주자유당은 9일 상ㆍ하오에 걸쳐 민정ㆍ민주ㆍ공화 3당합당 수임기구 합동회의를 열어 창당을 결의한 뒤 축하연을 베풀고 거대여당의 공식 출범을 경축. ○…민자당은 이날 하오 6시부터 1시간여 동안 삼성동 종합무역전시관(KOEX)에서 노태우대통령을 비롯,김영삼ㆍ김종필최고위원 3명과 3부요인ㆍ국무위원ㆍ국회의원ㆍ대법관및 사회단체장ㆍ정계원로ㆍ일반인 등 3천여명이 참석한 매머드 축하연을 개최. 이날 행사장에는 25인조 대형브라스밴드가 경쾌한 배경음악을 연주했으며 공식행사에 앞서 30여분간 여흥프로를 마련,분위기를 돋웠다. 아나운서 황인용씨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여흥순서에서는 가수 김지애ㆍ유열ㆍ최진희씨 등이 우리 민요와 가요를 불렀으며 참석자들도 박수로써 이에 호응하는등 즐거운 분위기. 하오 6시30분 서울올림픽 주제가 「손에 손잡고」가 배경음악으로 울려퍼지고 참석자들의 환호ㆍ박수가 터지는 가운데 노대통령등 3인 최고위원이 입장함으로써 공식행사가 시작. ○3천명 참석… 대성황 노최고위원이 이날 KOEX현관에 도착하자 전민정ㆍ민주ㆍ공화 3당의 3역이 영접,2층 로비로 함께 올라왔고 이곳에서는 두 김최고위원과 박태준최고위원대행 그리고 전민정의 남재희 채문식 윤길중 박준규 김정례 유학성 임방현씨,전민주의 김명윤 김재광 황명수 정상구씨,전공화의 백두진 전예용 이병희 구자춘 이종근씨 등이 도열해 있다가 노최고위원과 차례로 악수. 1노2김 최고위원은 나란히 손을 흔들며 행사장에 입장,헤드테이블에 자리했는데 이곳에는 이일규대법원장 강영훈총리와 정일권 신현확 이현재 전총리 등이 합석했으며 윤보선 최규하 두 전임대통령도 초청됐으나 와병,개인사정 등 이유로 불참. 이어 3인 최고위원이 차례로 축하인사말을 했으며 노최고위원은 축하인사를 통해 『우리의 현실과 먼 장래를 생각하고 구국의 큰 결단을 내려준 김영삼 김종필 두 동지에게 경의를 표한다』고 처음으로 「동지」 표현을 구사. 노최고위원은 『흑아니면 백이라는 우리의 정치풍토에서 이같은 용단(합당)이얼마나 어려운 것인가 우리는 알고 있다』며 『「작은 나」를 버리고 「대의의 길」을 택한 민정ㆍ민주ㆍ공화당에 몸담아온 모든 동지들의 희생적 헌신에 대해 나는 뜨거운 동지애를 보낸다』고 사의. 김종필최고위원은 즉석인사말에서 『노대통령은 외유내강하신 분으로 90년대 초석을 놓을 것이 확실하니 우리는 그분을 열심히 보좌하면 될 것』이라고 노대통령을 칭송. 인사말이 끝나자 박태준민정대표위원의 제의에 따라 참석자 전원이 건배를 통해 신당의 앞날을 축복했으며 이어 3인의 최고위원들은 각 테이블을 순방하면서 참석자들과 인사. 3인 최고위원들은 「희망의 나라로」가 연주되는 가운데 대회장을 떠나 이날 행사는 1시간20여분만에 종료. 이날 행사장에는 시루떡ㆍ순대 등 8도의 전통음식이 차려져 있었고 술도 막걸리로 준비,앞서 상오의 합동회의 분위기가 다소 딱딱했던 것과 달리 화기가 넘치기도. ○시루떡ㆍ막걸리 준비 이날 축하연에는 김대중총재등 평민당의원 전원도 초청받았으나 한명도 참석지 않았고 행사주최측은 참석자들에게 3인 최고위원의 캐리커처가 그려진 실크스카프를 선물. ○…이에 앞서 이날 상오 10시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회관 2층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민정ㆍ민주ㆍ공화 3당합당 수임기구 합동회의는 민정 35ㆍ민주 46ㆍ공화 30명 등 1백11명의 성원위원중 1백6명의 위원이 참석한 가운데 예정된 식순에 따라 1시간25분동안 일사천리로 진행. 대회장에는 뒷면에 「민주 번영 통일의 시대로」라는 대형 플래카드 1개만 걸려 있었을 뿐 정치집회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대형화환이나 꽃다발은 물론 정치구호 등이 적힌 피켓이 눈에 띄지 않아 이채. 사실상 민주자유당의 창당대회인 이날 회의는 아직 3당간의 이질감이 극복되지 않은 탓인지 다소 서먹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으며 의장단 선출에서 대표자선출ㆍ위임사항 의결 등 8건의 안건이 상정됐으나 이의제기 없이 박수로 제안내용을 추인. ○다소 서먹한 분위기 이날 회의에서 사회자(김덕룡의원)를 비롯,합당결과보고(박준병의원) 합당결의(김동규의원) 강령ㆍ기본정책 채택(김용환의원) 당헌의결(이승윤의원) 대표자선출(김용채의원) 창당선언문채택(김동영의원) 대국민 메시지채택(정동성의원) 위임사항의결(최각규의원)등 주요안건의 보고나 제안자는 모두 15인 통합추진위 소속 위원중에서 선발됐는데 이들은 보고나 제안설명에 앞서 합당의 역사적 의미를 강조하며 『만장일치로 통과시켜달라』고 요구하는등 합당결정과정 참가자로서 대회분위기를 고조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모습. ○박 정무의 노고 위로 ○…대회참석자들은 이날 대회장입구에 마련된 방명록에 서명을 하고 대형모조지 1장에 차례로 사인을 한 뒤 입장. 대회장은 합당의 성격을 반영하기 위해 정당구분이나 명패없이 자리를 배치했으며 외유중인 정순덕의원과 오유방의원(이상 민정),최형우ㆍ문준식의원(이상 민주),반형식 민주당 경북도지부장(원외)등 5명이 불참. 이날 채택된 창당선언문과 대국민 메시지는 최재욱민정의원과 김학준대통령사회보좌역이 각각 초안을 작성했다고. ○…만세삼창과 함께 대회가 끝난 뒤 김영삼ㆍ김종필총재와 박태준대표는 단상에서 윤길중ㆍ채문식민정당고문과 김동영민주당부총재ㆍ이병희공화당부총재 등 3당 중진들로부터 축하인사를 받았으며 김영삼총재는 회의장을 나서면서 3당통합의 핵심인사인 박철언정무1장관에게 『수고 많이 했다』며 악수를 청해 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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