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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력난속에도 평양은 “불야성”/김일성 80살잔치 이모저모

    ◎외빈맞이에 10만동원… 동상엔 헌화행렬/로동신문엔… 백두산정상의 김정일사진 장식/평양주재 러시아대사 불참… 불쾌감표시로 추측 「어버이 수령」김일성주석이 80회 생일을 맞은 15일 평양시가지는 8백만송이의 꽃으로 뒤덮였으며 축제가 벌어진 김일성경기장은 매스게임에 나선 10만 청소년들의 경축 함성으로 가득찼다. 수만명의 시민들이 운집한 김일성광장은 굉음을 울리며 행진하는 인민군 탱크와 열병에 나선 전사들로 가득차 순식간에 거대한 병영으로 변했다. 이날 북한관영 라디오와 TV는 김일성을 찬양하는 노래를 반복 방송했으며 로동신문은 1면을 김일성의 만수무강과 김일성에의 충성을 다짐하는 로동당과 정무원,그리고 각급국가위원회 명의의 축하 메시지로 뒤덮었는데 이날자 로동신문부록은 쌍안경을 들고 백두산 정상에 서 있는 김정일의 컬러사진으로 전면을 장식하기도. ○…봄날씨 답지 않게 기온이 내려간 이날 만수대 언덕에 버티고 선 높이20m의 김일성동상앞은 꽃다발을 바치려는 「인민」들로 붐볐으며 김일성의 생가가 있는 만경대에도 3천6백여명의 외국 하객들과 함께 많은 주민들이 몰려들어 「위대한 수령님」에게 경의를 표했다. ○「최후까지 권좌 유지” ○…평양시가지 곳곳에는 4월15일 80회 생일을 뜻하는 숫자 「4·15」「80」과 「위대한 수령님의 만수무강을 축원합니다」라는 글귀가 새겨진 네온사인이 밤을 밝혀 심각한 전력난으로 가로등조차 점등되지 않던 평소의 모습과 좋은 대조를 이뤘다. ○변함없는 충성 맹세 ○…이에앞서 북한은 14일 평양체육관에서 김일성의 80회생일(4·15)을 기념한 경축중앙보고대회를 갖고 김에 대한 절대적인 충성을 맹세했다. 오진우 인민무력부장,이종옥 부주석,연형묵 총리등 당정고위간부들과 군·사회단체간부 및 조총련축하단을 비롯한 해외축하사절들이 참석한 가운데 실황중계된 이 모임에서 당중앙위 당중앙군사위 중앙인민위 정무원은 공동명의의 「공동축하문」을 전달했다. 이날 부주석 이종옥은 축하문을 통해 북한이 그동안 혁명의 길에서 준엄한 시련의 고비에 여러번 부닥쳤으나 김일성의 현명한 영도로 사소한 오류나 착오도 없이 전진할수 있었다고 말하고 『제국주의자들과 반동들의 반공화국 반사회주의 책동이 전례없이 강화되고 있는 오늘도 북한은 추호의 동요없이 힘차게 전진하고 있다』고 강조하면서 『김일성동지를 영원히 수령으로 높이 받들고 주체의 혁명위업완성을 위하여 억세게 싸워나갈 것』을 맹세했다. 연형묵총리도 보고를 통해 『사회주의 공산주의로 가는 길은 그 누구도 끝까지 걸어보지 못한 생소한 길이며 멀고도 험난한 노정』이라고 지적하면서 이같은 난관을 극복하는 열쇠는 오직 수령을 중심으로 일심단결하여 수령에 대한 충실성을 신념화·양심화·도덕화·생활화하는 것이라고 역설했다. ○행사객 높이려 고심 ○…북한은 15일의 김일성 80회생일에 해외각국의 고위인사들을 대거 초청하는 등 행사비중을 높이느라 무진장 애를 쓴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의 초청으로 김일성생일잔치에 참석한 외빈으로는 중국국가주석 양상곤을 비롯해 ▲캄보디아국가주석 겸 최고민족회의(SNC)의장 노로돔 시아누크 ▲카이손 폼비한 라오스 대통령 ▲란사나콘테 기니 대통령 ▲조세프 사이두 모모 시에라리온 대통령 ▲요웨리 무세베니 우간다 대통령 ▲오미안 누게마 무바소크 적도기니 대통령 ▲수다르 모노 인도네시아 부통령 ▲해밀턴 그린 가이아나 총리 겸 부통령 ▲후안 알메이다 보스케 쿠바 국가평의회 부위원장 ▲알리 아크바르 벨라야티 이란 외무장관 등 고위급만도 10여명에 달하고 있다. ○…북한은 그들이 불러들인 외빈들이 평양에 도착할 때마다 10만여명의 인파를 동원,대대적인 환영행사를 펼치는 동시에 김일성과 총리 연형묵,외교부장 김영남 등이 나서 회담과 환영연회를 베푸는 등 외국하객들의 환심사기에 급급. 북한은 특히 일본자민당대표단을 맞아서는 13일 저녁 평양 인민문화궁전에서 「우호친선의 밤」행사를 갖고 북­일본간 조기 국교정상화와 협력증진을 강조했는데 이 자리에는 북한측에서 국제담당 당비서 김용순,대외문화연락협회위원장 정준기등이 참석했다. ○…일본의 산케에(산경)신문은 15일 열린 김일성 80회 생일 행사에 평양 주재 러시아 대사는 참석하지 않는 이례적인 사태가 벌어졌다고 이날 모스크바 발로 보도했다. 산케이 신문은 이날 모스크바의 서방측 소식통을 인용,이같이 전하고 지난 13일 모스크바 주재 북한 대사관에서 열렸던 축하회에도 러시아의 외무부 국장급 인사 밖에 참석하지 않음으로써 모스크바 현지에서는 러시아가 김일성의 80회 생일 행사에 은근히 불쾌감을 표시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 하는 관측들이 외교단들로부터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 가네마루(일 자민당부총재) 권총 피격/어제 아시카가시서

    ◎강연중 암살위기 모면/“일­북수교 적극 추진” 발언 말썽… 극우파 범인 검거 【도쿄=이창순특파원】 일본의 막후실력자 가네마루신(김환신)자민당 부총재에 대한 저격미수사건이 20일 하오5시55분경 도치기(판목)현 아시카시시에서 발생했다. 일경찰은 우익단체 우국성화회소속으로 알려진 히로시 와타나베씨(22)를 현장에서 검거,저격사건의 배경과 동기등을 추궁하고 있다. 조사에 따르면 와타나베씨는 이날 가네마루부총재가 도치기현의 자민당소속 의원을 지원하는 강연회에서 연설을 마치는 순간 3발의 권총을 발사했으나 3발중 1발은 가네마루가 서 있던 강연대에 맞았으며 2발은 빗나가 가네마루는 무사했다. 피격사건이 발생하자 연설회장에는 2천명의 청중들이 웅성거려 한때 소동이 일었으나 가네마루는 단상에서 관계자로부터 꽃다발을 받는등 예정대로 일정을 끝내고 하오6시쯤 자동차로 도쿄의 자택으로 향했다. 한편 도쿄의 자택으로 돌아온 가네마루는 이같은 사건에 대해 『이해할수 없다』고 말하고 『이번 사건이 북한과 관련이 있다면 유감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 총선 「D­30」… 여야 뜨거운 지원유세

    ◎여,야의 바람몰이·선동정치 맹공/“수도권서 표줘야 경제 회생길 터”/“운동권 비호하며 세상 어지럽힌게 누구냐”/민자/“특정 「지역당」안되게 도와달라” 호소/민주 민자당 수뇌부는 24일 서울·경기등 수도권지역에서 안정속의 개혁을 위한 집권여당의 안정의석 확보의 중요성을 강조했으며 민주당도 「야권바람」을 일으키기 위한 지원유세를 벌였다. ▷민자당◁ ○…민자당의 김영삼대표최고위원은 24일 성동구민회관에서 열린 성동을지구당(위원장 김도현)개편대회에서 수도권 안정의석 확보의 당위성과 안정속의 개혁필요성을 강조하며 유권자들의 지지를 호소. 김대표는 『우리는 14대총선을 반드시 승리로 이끌어 안정속에서 나라를 구하고 경제를 살리며 통일을 이룩해야 한다』고 14대총선 필승을 다짐한뒤 『현재 야당이 하는 말을 들어보면 마치 우리나라는 미래도 희망도 없는 것같다』고 지적,『혼란을 선동하는 사람을 선택해야 하는지 혼란을 수습하는 사람을 선택해야 하는지는 여러분들이 잘 판단해 달라』고 당부. 김대표는 이어 『이번총선의 승리는 노태우대통령의 훌륭한 임기마무리와 차기정권의 안정적 창출에 필수적』이라고 역설하고 『안정과반수 획득에 실패하면 차기 대통령선거에서 승리할 수 없다』며 비장한 각오를 표출. 이날 행사에는 윤길중의원과 유성환전의원등 주요 당직자 30여명이 참석했는데 특히 국민당 성동을지구당 조직책을 맡았던 정진화전의원은 이날 『국민당공천을 포기하고 앞으로는 김도현위원장을 적극적으로 돕겠다』고 밝혀 눈길. 한편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금메달리스트인 손기정씨는 자신이 마라톤에서 승리하고 받은 「승리의 투구」모형을 이날 김 위원장에게 전달. ○…이날 하오 무역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강남을지구당(위원장 김만제)개편대회에는 2천여명의 당원및 지지자가 참석해 김위원장의 화려한 경력과 지명도를 그대로 반영. 행사장 주변에는 「살리자 우리 경제」「물가안정의 주역,흑자경제의 기수 김만제」등 김위원장이 당면한 경제난을 해결하는데 적격자임을 강조하는 플래카드를 붙여 경제통으로서의 김위원장의 이미지를 부각. 또식전 행사로 흥겨운 사물놀이를 펼쳐 그 어느 개편대회보다 축제분위기를 연출. ○…연이틀째 수도권 지원유세에 주력하고 있는 민자당 김종필최고위원은 24일 서울 도봉을지구당(위원장 김규원) 단합대회와 노원을(위원장 김용채)의정보고대회에 잇따라 참석,특유의 「선정치안정 후경제재도약」논리를 펴며 민자당지지를 호소. 김최고위원은 특히 이들 두 지역구의 공화계위원장들이 야당측의 「바람몰이선거」전술에 시달리고 있는 점을 감안한 듯 전례없이 강한 톤으로 야당측의 「선동정치」를 맹비난. 김최고위원은 경제가 어려워진 것은 3당통합때문이라는 야당주장에 대해 『터무니없는 소리』라고 일축한뒤 『3∼4년전 여기저기 사람을 보내「전교조」「전대협」합법화하라며 세상 어지럽게 한 사람들이 누군데 이제와서 그런 소릴 하느냐』며 민주당측을 공박. 김최고위원은 『일본국민들은 자민당을 견제할 정도의 세력만 야당에 주고 자민당 40년 집권을 가져오게해 오늘의 일본을 경제대국으로 만들게 했다』고 전제,『우리도 90년대 안에 1인당 2만달러 소득을 올려 통일에 대비해야 한다』면서 이를 위한 집권당의 안정의석 확보 필요성을 역설. 김최고위원은 특히 민자당측이 14대총선공약의 일환으로 각종 행정규제 완화방안을 제시하고 있는 것과 관련,『사회가 복잡해지고 다양화됨에 따라 행정이 행정편의적으로 일을 처리하려는 경향이 있으나 이를 국민편의 쪽으로 돌리려면 국회가 제몫을 다해야 한다』고 유권자의 올바른 선택을 강조. ▷민주당◁ ○…24일 하오 서울 송파갑지구당(위원장 김희완)대회에 나란히 참석한 김대중·이기택대표는 당내 공천탈락자들의 조직분규를 의식,『이지역 공천경합자였던 남현식전신민위원장이 이날 김위원장에게 꽃다발을 보내고 격려했다』면서 『이는 화해와 결속의 결정판이며 통합야당이 나아갈 비전』이라고 추켜세우기도. ○…김대표는 경기 안산·옹진지구당위원장(김동현)대회에서 『오늘로써 노태우대통령이 집권한지 4년을 맞았다』면서 『3당합당전 2년간은 민주화추진등에 대한 노대통령의 약속에 희망을 걸었으나 이후거여의 횡포로 정치와 경제는 불안정과 침체에 빠져들었다』고 공격. 김대표는 이날 행사참석에 앞서 『내일 부산지역 지구당대회에 참석해서는 김영삼민자당대표가 대통령이 될수 없다는 점을 주지시켜 부산을 핵으로한 YS바람을 차단시키겠다』고 예고. ○…이대표는 경기 여주(위원장 이규택)이천(〃황규선)대회에서 『민자당이 우리당을 지역당·특정인정당이라고 모함하고 있으나 호남에서 전멸한 민자당이야말로 지역당』이라고 공격하며 『내가 정치를 하는한 민주당이 특정지역 또는 특정인의 정당이 되도록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다짐. 한편 이대표는 이날 『민주당은 5월전당대회에서 당수와 대통령후보를 뽑게 된다』면서 『나는 무리해서 당권­대권에 도전하지는 않겠으나 내가 정치를 하는한 민주당이 어느 특정지역이나 특정지역인사의 정당이 되는 것을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히는등 민주당이 김대표와 호남당이 아님을 강조해 눈길.
  • 대학졸업시즌… 화제 2제/전북대 김수곤총자의 면학가풍

    ◎총장 맏형 이어 막내도… 「4형제 박사」/둘째·셋째도 교수… 수여식서 박수/2세까지 수재… 모두 전북대가족 4형제 대학동문박사가 탄생해 화제가 되고있다. 22일 열린 전북대 졸업식에서 이대학 김수곤총장(57)의 막내 동생인 창곤씨(38·이리 김안과 원장)가 의학박사 학위를 받음으로써 김총장 4형제는 모두가 박사가 된것이다. 특히 이들 4형제가 전원 전북대 출신인데다 총장인 맏형을 비롯,둘째 셋째가 전북대 교수여서 창곤씨가 학위증을 받을 때에는 축하의 박수가 더욱 열렬하게 터져나왔다. 김총장은 영문과를 졸업한 미국 텍사스대 철학박사이고 둘째 승곤씨(53)는 물리학과를 나와 캐나다 빅토리아대에서 이학박사학위를 땄고 셋째 양곤씨(43)는 수학과를 졸업한뒤 캐나다 토론토대에서 이학박사학위를 받았다. 이들 형제가 박사학위를 취득하기 까지에는 무엇보다 맏형인 김총장의 헌신적인 뒷바라지가 큰 힘이 됐다고 가족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둘째 승곤씨는 『선친이 공직생활을 하다 「5·16」직후 실직,대학 진학을 포기해야 할 형편이었으나 형이 다니던 사관학교를 그만두고 전북대에 편입학해 장학금으로 생계를 꾸려나가면서 동생들의 등록금까지 챙겨주었기 때문에 대학에 갈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막내 창곤씨도 『가난한 살림에서도 공부에만 열중하던 형들의 모습을 보면서 자라온 탓인지 형들처럼 박사과정을 밟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김총장 형제들은 자녀들까지 모두 전북대를 졸업했거나 재학중인 철저한 「전북대 가족」인데 지난해에는 김총장의 맏딸 현숙양(25·의대 대학원 1년)이 전체수석으로 졸업했으며 전북과학고에 수석합격해 전북대 진학을 희망하고 있는 둘째 승곤씨의 맏아들 성수군(17)이 계속 선두를 지키고 있는등 경사가 겹쳐 주위로부터 부러움을 사고 있다. ◎국교­대학 동문… “평생의 반려로”/부부 졸업생 이종운·신선교씨/“해외선교 함께”… 나란히 신학교 편입 『졸업은 우리부부에게 또 하나의 만남입니다』 22일 상오 서울 성동구 모진동 건국대 졸업식에서 꽃다발을 함께 안고 선 이종운(23)·신선교씨(23)부부. 국문과에 함께 입학해 4년동안 줄곧 「잉꼬커플」이라는 별명을 들으며 친구에서 애인으로 그리고 졸업직전 백년가약을 맺은 열애의 주인공들이다. 이들이 처음 만난 것은 국민학교 6학년때. 친구들에게 「뚱뚱이와 홀쭉이」라 불렸던 이씨와 신씨는 반은 서로 달랐으나 집이 바로 이웃해 있어 같은 반 친구처럼 붙어다녔다. 중·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학교가 갈려 6년을 떨어졌던 이들이 다시 만나게 된 것은 88년 3월초 국문과 신입생 환영회때. 고등학교때 다이어트로 몸무게를 30㎏이나 줄인 이씨와 키가 부쩍 자라 1백70㎝의 장신이 된 신씨 였지만 금세 옛 동창이라는 걸 알아봤다. 이씨는 과 부대표로 적극적이고 친구들에게 헌신적인 신씨에게 마음이 끌렸고 신씨는 신씨대로 『진지하고 남을 이해할줄 아는 어른이 된 이씨가 믿음직 스러웠다』고 했다. 3학년때 신씨가 홍역으로 입원했던 1주일동안 곁에서 꼬박 뜬눈으로 밤을 새우는 이씨를 본 양가부모들은 결국 『도저히 못말릴 사이』라고 공인할 수 밖에 없게 됐다고 했다.이들은 마침내 지난해 12월 결혼식을 올리고 성북구 종암동에 보금자리를 꾸몄다.그렇게 사랑에 열을 올리면서도 누구나 쉽게 빠지게 마련인 운동권행사 등엔 한눈을 팔지 않았고 두사람 모두 4년동안 줄곧 장학금을 받을 정도로 학교성적도 괜찮았다. 두사람 모두 해외선교사가 되는게 꿈이어서 오는 3월엔 침례교계통의 신학교에 나란히 편입학할 예정이기도 하다.
  • 북대표,27일 모종의 「핵카드」제시 시사

    ◎「총리회담」대표단 돌아오던 날/“합의서·비핵선언 성실 이행”/양 총리 다짐/노 대통령,“역사적인 일 수행” 대표단 치하/판문점서 동계 오륜 「금」소식 듣고 만족 표시/정 총리 ▷평양 출발◁ 지난 3박4일의 평양체류일정을 마치고 21일 상오 평양을 떠나기전 정원식총리를 비롯한 우리측 대표들은 북측수석대표인 연형묵총리로부터 그간 평양에 체류하는 동안의 활동을 담은 사진첩을 선물로 전달받고 10여분간 환담하며 작별 인사. 연총리는 상오 8시12분 백화원초대소 1호각에 먼저 도착,대응접실에서 우리측대표 7명과 총리특별보좌관 책임연락관에게 전해줄 9권의 사진첩을 들춰보다가 8시20분 정총리가 들어서자 『잘 쉬셨느냐』며 반갑게 악수. 연총리는 정총리에게 사진첩을 건네주면서 『가보로 보관하세요.통일사에 남을 역사적 사진이 많소』라면서 사진첩을 한장씩 넘기며 설명한 후 다른 대표들에게도 일일이 사진첩을 전달. 양측총리는 자리에 앉아 「남북합의서」「비핵화공동선언」과 분과위구성운영안 발효에 대해 얘기를 나누면서 정총리가 『우리 둘이서 다시한번 다짐합시다』며 그 성실한 이행을 촉구하자 연총리도 『다짐하지요』라며 화답. 정총리는 이어 『과거 판문점에서 있은 군사정전회담이 너무 오래끌어 서양사람들이 판문점이란 말을 우유부단·지지부진이라는 뜻으로 옥스포드사전에도 올려놓고 있다』고 소개하면서 『이제 우리는 그말을 어려움을 극복한다는 새로운 뜻으로 정립하자』라고 제의. 정총리는 또 앞으로 있을 판문점에서의 핵통제위원회구성·운영문제 논의등을 들어 『의견이 엇갈리고 여러 난관이 있겠지만 나는 우리대표들에게 사소한 일로 지지부진않도록 확실한 지침을 주겠다』며 북측의 상응한 자세를 촉구. ▷판문점◁ 지난 18일부터 평양에서 열린 제6차 남북고위급회담에 참가했던 우리측 대표단 90명은 21일 하오1시10분 판문점을 통해 남측으로 귀환. 대표단은 이날 하오1시 판문점 북측지역인 「통일각」에 도착해 정원식총리를 비롯한 회담대표들은 승용차로,수행원과 기자들은 도보로 각각 군사분계선을 넘었다. 정총리등 우리 대표단은 평화의 집까지 같이 타고온 최우진,최봉춘북측대표와 악수를 나눈 뒤 마중나온 최호중부총리겸 통일원장관등 정부 관계자들과 인사를 교환. 정총리등은 환영나온 9명의 아가씨들로부터 꽃다발을 받고 『감사합니다』라고 큰 목소리로 말하며 환한 표정. 정총리는 『4차회담이 끝나고 이곳에 왔을 때에는 「긴장과 이질감의 3박4일이었다」는 소감을 말했었다』며 『그러나 이번에는 합의서를 실천에 옮겨야 한다는 생각때문에 「긴장과 중압감의 3박4일이었다」는 표현을 쓰고 싶다』고 소감을 피력. 정총리는 『핵문제에 대해서는(핵통제공동위의) 문안서명은 못했지만 합의서발효 1개월내인 3월18일까지 공동위를 구성하겠다는 북측의 동의를 얻어낸 것이 성과라면 성과』라고 자평. 이와관련,핵관련 접촉의 남측대표인 공로명외교안보연구원장은 『북측 김영철대표가 27일에 있을 핵접촉에서 「얼굴이 붉어질 사람들 많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는데 의미가 있는 것 같다』며 27일 접촉에서 모종의 「물건」이 나올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정총리는 마중나온 정부관계자들에게 『서울의 분위기는 어떠했느냐.보도는 많이 됐느냐』며 자신의 평양활동에 대한 국민들의 반응에 큰 관심을 표시. 정총리는 또 알베르빌 동계올림픽 결과에 대해 『이진삼장관이 동메달 하나라도 따오겠다고 했는데 성적이 좋은가』라고 질문. 정총리는 현재 한국선수단이 금 은 동메달 각 1개씩을 땄다는 설명을 듣고 『그게 큰 뉴스였겠구만.상위권에 들어가겠는데』라며 만족감을 표시. ○…이날 판문점에 나온 북측의 한 관계자는 8차회담장소가 백두산으로 정해진 것에 대해 『백두산은 평양에서 헬기로 40분이면 갈수 있는 거리』라며 『기대할만하지요.멋있는 일 아닙니까』라고 한마디. ▷청와대◁ ○…노태우대통령은 21일 하오 청와대에서 정원식국무총리등 제6차 남북고위급회담에 참석했던 우리측 대표단으로부터 회담결과를 보고받고 노고를 치하. 노대통령은 『이번회담에서 합의·선언문을 교환,발효시킨 것은 평화통일을 위한 민족대장정에 있어 첫걸음을 내디딘 역사적인 일』이라고 평가하고 『이런뜻에서 나도 지난 19일 대국민 특별담화를 발표하고 7천만 국내외 동포들과 함께 기쁨을 나누었다』고 설명. 노대통령은 『합의에 대해 실천이 뒤따르지 않을 때 오히려 새로운 불신의 골이 만들어지게 될 것』이라면서 『여러분들이 북한측에 이점을 여러번 강조했기 때문에 북한측도 이제는 이러한 위험성을 인식하고 있을 것』이라고 피력. 노대통령은 『핵문제와 관련해 진전이 있었다면 북한이 3월말 또는 4월초에 최고인민회의를 열어 핵안전협정을 추인키로 한 것으로 북한이 구체적 날짜를 처음으로 밝힌 것은 하나의 성과』라고 평가. 노대통령은 이산가족문제에 전혀 진전이 없는데 대해 『1천만 이산가족들은 또다시 큰 실망을 하고 있을텐데…』라고 우려를 표시하기도. 노대통령은 대표단의 이동복대변인에게 『우리측 기자들은 대부분 처음 방북한 사람들인데 지난번 방북기자들의 북한에 대한 반응과 차이가 있었느냐』고 관심을 표명. 노대통령은 막후에서 고생한 실무자들에게 『없어서는 안될 「통일꾼」』등의 표현을 쓰며 일일이 격려한 뒤정총리에게 『이 자리에 참석은 안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소리없이 수고하고 기여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나를 대신하여 이들을 격려해 달라』고 지시.
  • “대동강 풀리는 우수에 화해 봄소식을”/정 총리

    ◎정 총리 일행 평양 1박 이모저모/“합의서발효 축배를”화기에 찬 만찬/평양·개성엔 김정일생일 간판 즐비/북한식 브레이크댄싱등 공연 이채/정 총리,“이번에도 서설… 좋은 결과 기대” ▷만찬◁ 18일 하오 목란관에서 열린 연형묵총리주최 만찬은 남측 대표단 90명과 북측 관계인사 1백60여명등 2백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2시간여동안 진행됐다. 정원식총리와 연총리는 이날 하오7시3분쯤 나란히 만찬장에 입장,헤드테이블에 착석. 연총리는 만찬 시작에 앞서 약 8분간에 걸친 연설을 통해 『통일은 우리 겨레가 8·15의 그날에 못다이룬 민족적 성업을 완전히 성취하게 될 제2의 광복을 의미한다』며 『오는 95년을 기필코 통일의 원년으로 만들겠다』고 피력. 정총리는 이어 답사를 통해 『우리 속담에 「우수·경칩에 대동강도 풀린다」는 말이 있다』고 전제,『우수인 내일 합의서 발효와 더불어 화해의 봄이 왔다는 소식을 온 겨레에 전하도록 노력하자』며 건배를 제의. 만찬장 헤드테이블에는 정·연총리를 비롯,우리측에서 김종휘·송응섭대표와북측에서 안병수대표 등이 앉았으며 나머지 대표등 참석자들은 19개의 라운드테이블에 섞여앉아 담소를 교환. 이날 만찬에는 꿩구이·조개숙회 소라전골 녹두산적 사슴구이쌈 비둘기찹쌀찜 등 전통요리가 나왔으며 특히 남한에서는 멸종위기에 있는 산천어구이가 나왔는데 북한에서는 산천어의 인공양식에 성공했다고 북측 한 참석자가 설명. ○…북한의 연형묵총리는 정총리에게 『만찬사 잘 들었습니다.잔을 죽 비우세요』라며 첫 건배의 잔을 다 비울 것을 권유. 이에 정총리는 『화해의 시대를 여는 마당에 좋습니다』라고 화답했으며 정총리 오른쪽 옆에 앉아있던 김광진인민무력부부부장도 『기쁜 날인데 많이 먹어야죠』라고 맞장구. 정총리는 건배한 뒤 『생각해보면 이번 합의서발효는 참으로 감격스러운 일입니다.근 반세기동안 남북이 반목하다 이제 합의서 발효를 계기로 인간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서로 화해하게되니 기쁩니다』라고 소감을 밝히고 『7천만 우리 민족도 이제 전쟁의 위협에서 벗어나게 됐다』고 강조. ▷공연◁ ○…만찬에 이어 북측이 서양음악을 받아들여 새로 조직했다고 자랑하는 왕재산경음악단이 연주와 노래,무용 등을 1시간동안 공연. 여자무용수 8명이 남녀 한복을 나눠 입고 나온 「춤추는 인형」은 남쪽의 「로봇춤」과 비슷한 북한식 「인형춤」이었고,「피끓는 청춘」이란 제목의 남성무용은 서방측의 「브레이크 댄스」를 흉내낸 형식이어서 눈길. 이밖에 「아리랑」「새목동」「뱃노래」「봉선화」등은 우리 귀에 익은 전통음악을 기조로 일부 서양식 리듬을 첨가했는데,로동신문의 리길성 부국장은 『남쪽에서는 우리보고 개방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공연을 본 느낌이 어떠냐』고 자랑. 이날 공연은 관람자 전원이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함께 부르는 것을 끝으로 피날레를 장식. 연총리와 함께 무대로 나간 정원식총리는 남녀 가수들에게 각각 꽃다발과 스카프 50장을 선물하고 특히 여자무용수들이 순식간에 의상을 바꾸는 「사계절」이란 무용에 깊은 관심을 표명,『어떻게 옷을 갈아 입느냐』고 질문하기도. 연총리가 이에 『가르쳐드리지 마라.서울에서 가르쳐드려라』며 농담을 건네자 정총리도 즉석에서 『여러분들을 서울로 초청하겠다』고 맞장구. ▷백화원 초대소◁ ○…18일 하오1시쯤 숙소인 백화원 초대소에 도착한 정원식총리는 초대소 현관에서 마중나와있던 연형묵총리와 악수를 나누며 반갑게 인사. 양총리는 이어 응접실로 자리를 옮겨 날씨와 합의서 발효 등을 화제로 10여분동안 환담. 정총리는 『서울회담 때도 눈이와 좋은 결과를 낳더니 오늘도 눈이 내려 좋은 소식을 예고해주는 것 같다』고 말을 건넸으며 연총리는 『하느님도 손님들 오시는 것을 아시는 모양』이라고 인사. 정총리는 『4차회담이후 4개월만에 합의서에 서명하고 이번에 발효까지 시키게 된 것은 연총리가 잘 리드해주신 덕분』이라고 연총리를 치켜세웠고 연총리는 『정총리가 회담대표로 나서면서부터 잘 되는것 같다』고 덕담. 연총리는 이어 강영훈전총리의 안부를 물었으며 정총리는 새로 교체된 한갑수기획원차관과 공로명외교안보연구원장을 소개하는 등 화기애애한 분위기. ▷평양 도착◁ ○…정원식총리를 비롯한 우리측 대표단이 동평양역을 거쳐 평양역에 도착한 것은 낮12시37분. 역에는 환영인파도 보이지 않았으며 북측안내원과 기자들만 나와 남측대표단을 마중. 평양시내전역은 개성에서와 마찬가지로 김정일비서 50회 생일을 기념하는 「2·16경축」입간판과 인공기·로동당기로 치장돼 있었다. 거리에는 드문드문 행인들의 모습이 보이긴 했으나 우리측 대표단의 백화원초대소행 차량행렬엔 거의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판문점∼평양◁ ○…판문점을 출발,버스편으로 개성에 도착한 우리측 대표단 일행은 북측이 마련한 특별열차로 갈아타고 곧바로 평양으로 직행. 모두 칸막이로 된 16량의 특별열차는 서흥∼봉산∼사리원∼평산을 거쳐 1백98㎞의 길을 출발한지 3시간30분만인 낮12시25분 평양역에 도착. 눈발이 날리는 개성시내 광장에는 김정일의 50회 생일을 축하하는 문구가 가득적힌 대형입간판이 줄지어 있어 김일성부자의 권력세습이 임박했음을 시사. 「최성필」(50)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우리측 한갑수경제기획원차관의 안내원은 『개성시민들이 남측 대표들을 환영하지 않는 것은 임수경양 등 방북인사들을 풀어주지 않기 때문』이라고 예의 정치적인 발언을 늘어놓기도. ○…평양으로 가는도중 우리측 수석대표인 정원식총리는 북측대변인 안병수,조평통서기국장 백남준대표등과 잠시 환담하면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 정총리는 6차 평양회담에 임하는 소감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지난 5차회담때도 눈이 내려 좋은 결과를 보았는데 이번에도 눈이 오는 것을 보니 회담이 잘 진행될 조짐』이라고 말문을 연뒤 『어려운 과정을 거쳐 합의한 문건을 발효시키는 이번 회담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회담의 의의」를 설명. 동석한 북측의 안병수대표는 『마음이 가볍다』며 『분과위 구성운영논의및 핵문제도 잘 될것』이라고 낙관. ○…잠시 휴식을 취한 정총리는 열차를 돌아다니며 우리측 대표단 일행과 북측의 안내원및 열차승무원·접대원들과 일일이 악수를 하고 격려. 열차가 사리원을 지나자 정총리는 『여기서 내가 소학교를 다녔다』며 감회에 젖은 표정으로 물끄러미 창밖을 응시. 정총리는 또 『내가 해주에 있는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고향을 떠났다』며 정지용시인의 「향수」의 한 구절인 「고향을 차마 꿈엔들 잊으리랴」를 되뇌기도.
  • “현대를 정치도구로” 국민당의 문어발식 정경유착

    ◎지구당 창당행사에 현대인력 대거 차출/임직원 잇단 입당 “전사원의 당원화” 우려/전국지사에 적극지원 지시… 부·과장급 30명 당서 일해 가칭 「통일 국민당」의 정주영씨가 최근 각 지구당 창당대회에 현대그룹 사원들을 대거 동원하는가 하면 입당을 종용하는 등 현대그룹을 정치적 기반 구축을 위한 도구로 사용하고 있어 「재벌당」의 정경유착이라는 당초의 지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난달 10일 발기인대회를 치른 「국민당」은 지난달 26일 정씨의 아들 정몽준의원의 울산지구당창당대회를 비롯,31일까지 모두 40여개 지구당창당을 강행했다. 불과 20여일동안 전국지역의 지구당을 창당하는 「속전속결」의 각 행사장마다 정씨는 현대인력을 차출하는가 하면 임직원들로부터 입당원서를 받아 「국민당원화」를 꾀하면서 그룹 직원들 사이에서 비난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 정씨가 지난 1월초 현대그룹 종합기획실과 현대건설 문화홍보실에 근무하던 과장급이상 직원 20여명을 국민당 창당준비요원으로 차출,인물영입과 행사·당사확보 등에 노력한 일은 이미 널리 알려진 일이다. 정씨는 또 지난달 20일쯤 그룹내 부장급이상 간부를 중심으로 한 60여명을 추가로 차출해 창당작업실무를 담당시키라고 지시했다. 이에따라 이모 사모씨 등 정씨의 비서진이 그룹내 부장급이상 간부들을 개별접촉,당사무국요원으로 일해줄 것을 요구했다.이에따라 현대건설의 김모부장이 지난 24일부터 「통일국민당」총무부장직을 맡는 등 부·과장급 30여명이 국민당에 파견돼 정씨를 돕고 있다. 또한 1월중순이후 현대증권의 부사장급이하 간부진들은 전국 지사를 방문하며 『당분간 국민당을 지원하라』고 독려했으며 현대그룹본사측은 지난달 27일 전국지사에 『국민당 창당에 따라 모두 총선지원체제로 돌입하여 지역별로 적극 지원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더욱이 정씨는 지난달 28일 현대그룹 소속 헬기(11인승)2대를 이용,청주 갑지구당(위원장 김진영)창당대회에 참석하는가하면 행사장 주변 식당에서 아무에게나 식사를 대접하는 등 재력을 과시하고 있다. 특히 정씨는 창당대회장에 임직원뿐만 아니라 가족들까지 동원,지난달 26일 울산지구당창당대회때 그룹사원부인들로 구성된 50여명의 어머니합창단을 배치했고 28일 서울 종로지구당창당대회때는 그룹직원 7백50여명이외에 식권소지여부를 불문하고 구경꾼 2백여명에게도 식사를 제공했다. 또 지난달 10일 서울 종로구 평창동 서진빌딩에서 열린 창당 발기인대회때는 한복차림의 여직원 20여명을 동원,참석자 안내는 물론 꽃다발을 증정케 하는등 행사진행을 맡겨 회사내 행사인지 정당행사인지를 분간할 수 없도록 했다. 이날 행사장에서는 단2대의 엘리베이터중 한대를 행사종료시간에 맞춰 「정회장님이 타시게」문을 열고 고정시켜 놓는 바람에 많은 방문객이 계단으로 걸어내려가며 불평을 터뜨리기도 했다. ◎현대그룹의 딜레마/「대주주의 막강한 입김」 외면못해 어정쩡/북한 진출·자금동원등 어려워져 이중고 현대그룹은 정주영 전명예회장이 사장단을 비롯한 임·직원들에게 통일국민당에의 입당을 요청하는가 하면 지구당 창당대회에 지원을 요구하는 등 그룹을 정치에 끌고 들어가려하고있어 진퇴양난의 고민에 빠져있다. 신당창당에 앞서 현대그룹과 완전 결별을 선언한 정씨이지만 창업주·대주주로서 그의 영향력이 아직도 막강하기 때문에 그의 요청에 따라 정치활동을 도와주자니 기업이 여러가지 좋지 않은 영향을 받게 될 것이고 그렇다고 완전히 모른척할 수도 없는 난처한 입장에 놓여있다. 정세영현대그룹회장은 이같은 현대의 고민과 관련,31일 기자간담회에서 정전명예회장의 통일국민당과 현대그룹과는 완전히 별개라고 다시한번 선언하고 『그러나 정전명예회장이 고향에 돌아와서 도와달라고 할 수도 있는 문제 아니냐』고 밝혔다.정회장은 『현대 사장급 임원들이 처음 회사에 입사할 때 정치를 하겠다고 온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라며 그룹의 임원및 간부들이 절반 또는 3분의1이 국민당에 입당할 것이라는 소문은 사실과 다르다고 일축했다. 정회장은 이어 『그룹 임원중 몇사람이 국민당원이 되는가를 지켜보면 현대그룹과 국민당과의 관계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정회장의 이같은 무관설 해명에도 불구하고 아직 현대그룹의 경영에서 정주영씨가 완전히 손을 끊었다고 믿는 사람은 그룹내에도 드문 것같다. 이같은 사실은 정회장이 이날 자신이 『창업주도 2세도 아닌 1·5세』라면서 『내가 아마 현대그룹의 마지막 그룹회장이 될것』이라고 말한데서도 잘 나타나 있다. 현대그룹회장이 정세영회장으로서 끝날 것이라는 것은 정전명예회장도 그동안 공·사석에서 여러번 강조해 왔었다. 현대그룹은 정씨의 정치참여로 정부의 공사입찰 및 자금동원에서 애를 먹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회장은 『명예회장이 정치활동을 시작한 이후 정부로부터 압력이나 자금봉쇄를 당한 적은 전혀 없다』면서도 『다만 일부 관청이 지레 선입견을 갖고 현대그룹을 견제하는 경우는 있다』고 말해 음성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시사했다. 또 대북한 진출과 관련해서도 정전명예회장이 추진해온 금강산개발과 원산조선소건립 등을 『정치적 분위기가 완화되면 추진이 가능할 것』이라고 전망,정씨가 정치에 참여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적극적인 추진이 어렵다는 점을간접적으로 비추었다.
  • 옷은 「국민당」 몸은 「현대당」/최철호 정치부기자(오늘의 눈)

    정주영씨의 통일국민당은 결국 「사당」「재벌당」의 테두리를 벗어날 수가 없는가. 현대그룹이 계열기업 사장단은 물론,일반 직원들에게까지 통일국민당 입당원서를 배포한 사실은 「국민당=현대당」이라는 일반의 의혹을 더욱 깊게 해주고 있다. 현대측은 이것이 강요가 아닌 권유였다는 해명으로 비난의 화살을 피하려하고 있다.그러나 우리 사회 통념상 직장상사가 내미는 입당원서를 뿌리칠만한 직원이 과연 얼마나 될는지….이는 현대라는 거대조직을 십분 활용해 당원수를 일시에 부풀리려했다는 말로 밖에는 달리 설명할 수가 없다. 정씨는 지난 10일 국민당 창당발기인대회를 끝내면서 『나는 현대그룹에서 가졌던 모든 기득권을 포기하겠다』고 힘줘 말한바 있다. 그런데 단지 20여일만에 그의 이같은 발언이 구두선에 불과했다는 것이 사실로 드러나고 말았다. 사소한 일로 넘겨 버릴수도 있겠지만 지난 28일 국민당 종로지구당 창당대회에는 현대그룹 여직원들이 꽃다발부대로 동원되기도 했었다.국민당과 현대그룹과의 끈끈한 관계를 그대로 보여주는 단면이라고 할 수 있다. 국민당 출범의 토대가 현대그룹이었다는 점에서 이제와서 양자의 결별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라고 할 수도 있다.정당설립을 위해 오래전부터 그룹 기조실직원 20여명을 동원,「별동부대」를 만들어 준비해 왔고 계열사의 문화홍보실을 통해 창당작업을 뒷받침해 온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이같은 배경에서 많은 사람들은 국민당이 공당으로서의 기본목표인 국리민복을 수행할 수 있을지에 대해 의심을 품어왔다.42개 계열사를 거느리고 17만명을 지시하던 거대재벌의 총수가 정당의 총재로서 변신한 것은 보다 큰 자기 몫을 챙기려는 「장삿속」때문일 것으로 여기는 시각이 적지 않았다. 기성정치에 환멸을 느껴 당을 만든다는 그는 이미 기성정치인 뺨치는 수준으로 정치활동을 하고 있다는 비난이 높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비난은 부를 가진 자가 정치에 나선데 대한 질시에서 바롯된 얄팍한 차원의 것이 아니다.자기자본 비율이 26.9%밖에 안되는 「속빈 강정기업」들을 더욱 충실히 다져나가야할 그가 정치에 뛰어들어 또 얼마만큼 속빈강정의 정치를 할 것인지를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 공항 환영행사뒤 바로 국립묘지 참배/부시 내한 첫날 이모저모

    ○…부시미대통령은 5일 하오3시30분 전용기편으로 서울공항에 도착,사흘동안의 공식일정을 시작. 부시대통령일행이 탄 전용기가 서울공항에 도착하자 장선섭외무부의전장과 그레그 주한미대사가 기내영접. 쥐색코트차림의 부시대통령은 바바라여사와 함께 21발의 예포가 울리는 가운데 트랩을 내려와 미리 나와있던 정원식국무총리에게 『안녕하십니까』라고 인사. 부시대통령내외는 이어 차가운 날씨속에 환영나온 이상옥외무장관,한봉수상공장관,현홍주주미대사,주한미대사관·미8군관계자들과 반갑게 악수를 나눈뒤 미대통령 전용승용차에 올라 동작동 국립묘지를 향해 출발. 이날 부시대통령의 서울공항도착행사는 공식환영행사가 6일 청와대에서 열리기 때문에 정총리를 비롯한 우리측 영접인사와 미측관계자등 20여명만이 참석,특별한 환영식이 없이 7분만에 끝났다. 이에따라 일반 환영객 참석은 물론 꽃다발증정등 일체의 행사도 생략. ○…부시대통령은 하오4시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에 도착,귀빈실에 잠시 머문뒤 4시5분쯤 현충탑에서 강명석국립묘지관리소장의 집례로 헌화하고 분향. 부시대통령은 이어 방명록에 서명한뒤 승용차편으로 청와대로 출발. ○…노태우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부시대통령과 1시간여동안 테니스를 친뒤 관저에서 비공식만찬을 주재. 노대통령과 부시대통령의 테니스시합은 지난해 7월 백악관에서의 시합에 이어 2번째. 그러나 이날의 청와대일정은 미국측의 요청에 따라 비공개. ◎한미 정상회담 일지 ▷6공이후◁ ▲88.10.20=노태우대통령­레이건대통령회담(워싱턴) ▲89.2.27=노대통령­부시대통령(서울) ▲89.10.17=노대통령­부시대통령(워싱턴) ▲90.6.6=노대통령­부시대통령(워싱턴) ▲91.7.2=노대통령­부시대통령(워싱턴) ▲91.9.23=노대통령­부시대통령(뉴욕) ▲92.1.6=노대통령­부시대통령(서울) ▷6공이전◁ ▲52.12.2=이승만대통령­아이젠하워대통령당선자(서울) ▲54.7.30=이승만대통령­아이젠하워대통령(워싱턴) ▲60.6.20=허정국무총리­아이젠하워대통령(서울) ▲61.11.14=박정희국가재건최고회의의장­케네디대통령(워싱턴) ▲65.5.18=박정희대통령­존슨대통령(워싱턴) ▲66.11.2=박대통령­존슨대통령(서울) ▲68.4.17=박대통령­존슨대통령(호놀룰루) ▲69.8.22=박대통령­닉슨대통령(샌프란시스코) ▲74.11.22=박대통령­포드대통령(서울) ▲79.7.1=박대통령­카터대통령(서울) ▲81.2.2=전두환대통령­레이건대통령(워싱턴) ▲83.11.14=전대통령­레이건대통령(서울) ▲85.4.26=전대통령­레이건대통령(워싱턴)
  • “첫눈은 길조… 회담기대 크다”/남북총리

    ◎북측 대표 서울 오던날 이모저모/남북총리 만찬전 10여분간 “별실 요담”에 눈길/정 총리,「우리의 소원…」 합창하며 눈시울 붉혀 ▷만찬◁ ○…연형묵총리를 비롯한 북측 대표단은 10일 하오7시 정원식국무총리가 호텔 신라 다이너스티홀에서 주최한 공식만찬에 참석. 정·연 양총리는 만찬이 시작되기전 10여분간 별실에서 양측 책임연락관들이 배석한 가운데 요담을 나누느라 칵테일리셉션에는 모습을 나타내지 않아 눈길. 시종 화기애애한 분위기속에서 두시간 가까이 진행된 이날 만찬에는 북측 대표단외에 최호중부총리겸 통일원장관,강영훈전국무총리,정호근전합참의장,이봉서상공·박철언체육청소년·이어령문화부장관,박영식연세대·박홍서강대총장등 각계 인사들과 언론인 전·현직 남북관계인사들이 참석해 성황. 연총리는 정총리와 강전총리사이에 앉았으며 특히 지난 3차례의 회담때 자신의 파트너였던 강전총리에게 『건강 일없습니까』라며 반갑게 인사. ○…이날 만찬은 식사를 마친뒤 KBS 김동건아나운서의 사회로 약 1시간30분간 진행된 공연에서 차츰 분위기가 고조돼 가면서 절정. 양측대표단 일행과 참석자들은 서울시립합창단의 「기다리는 마음」「뱃노래」로 시작된 공연을 매우 열심히 경청했는데 특히 마지막 프로그램인 난파어린이합창단의 합창도중 한 어린이가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선창하자 좌중에서 이를 따라부르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나면서 결국 사회자의 제의로 모두 일어서 일제히 합창하는 숙연한 분위기를 연출,결국 정총리는 눈시울을 붉히지 않을 수 없었다고 총리실관계자가 전언. 이에앞서 이날 공연도중 예정에 없던 공연이 즉석에서 연출돼 눈길을 모았는데 사회자가 호텔종업원중 만찬석상에서 자신의 노래솜씨를 선물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며 제의해 참석자들의 박수갈채를 받으며 등장한 종업원 황선학씨는 이산가족의 슬픔을 노래한 「잃어버린 30년」이란 가요를 기성가수 뺨치게 구성지게 불러내 열렬한 환호를 받기도. ▷판문점◁ ○…연형묵정무원총리등 북측대표단을 태운 승용차가 10일 상오10시10분 판문점 평화의 집앞에 도착하자 연총리는 환영나온 우리측차석대표 김종휘대통령외교안보보좌관과 반갑게 악수를 나누고 『오랜만입니다』『반갑습니다』고 인사. 연총리는 쥐색코트차림으로 화동 최순정(10·서울사대부국 3년)양으로부터 꽃다발을 받은뒤 보도진을 향해 활짝 웃으며 포즈를 취했다. ▷호텔도착◁ ○…연형묵 북한총리는 10일 낮12시10분께 서울2푸1374호 검은색 그랜저승용차를 타고 숙소겸 회담장인 쉐라톤 워커힐호텔에 도착,호텔관계자들의 영접을 받으며 현관에 들어서 기다리고 있던 정원식국무총리와 반갑게 악수. 정총리가 『먼길을 오시느라 수고했다』고 하자 연총리는 『오랜만입니다』라고 인사. 정총리는 이어 김광진인민부력부부부장,안병수대변인등 북측대표단일행을 일일이 악수로 맞이했고 연총리는 특히 민병환 정총리수행비서관에게 『아버님(민관식씨)은 건강하시냐』고 안부를 물어 눈길. ○…정총리와 연총리는 곧바로 1층 회담장옆 무궁화볼룸에 마련된 대기실로 들어가 10여분간 날씨와 회담전망등을 주제로 환담. 정총리는 이어 『우리 기상청발표에 따르면 오늘 오후에는 첫눈이 온다고 했다』면서 『첫눈은 좋은 징조를 뜻하니 이번 회담전망이 밝을 것이라는 기분이 든다』고 회담에 진전이 있기를 희망. 연총리가 투숙할 다이아몬드 스위트룸은 하룻밤 숙박료가 1백80만원인 1백20평규모의 대형객실.연총리는 회담기간동안 이 방에서 「버틀러 서비스」를 받게 되는데 버틀러 서비스란 호텔 종업원이 24시간 대기,온갖 편의를 제공하는 「섬세한」 서비스란게 호텔 관계자들의 설명. ○…북측대표단은 10일 낮 숙소이자 회담장인 쉐라톤 워커힐호텔에 도착,대변인 안병수조평통부위원장을 통해 회담의 전도를 어둡게 전망하고 정치선전을 담은 「서울도착성명」을 발표. 안대변인은 『우리 인민들은 1년이 넘도록 진행되고 있는 회담의 부진상태와 긴장한 상태를 두고 어두운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며 『많은 사람들이 말싸움으로 시간을 보내는 회담을 계속할 필요가 있느냐는 소박하고도 솔직한 질문을 제기하고 있다』고 술회.
  • 실효성있는 것부터 하나씩(사설)

    복잡다기한 국내외정세속에서 우리의 주요과제인 남북문제를 풀어갈 제5차 남북고위급회담이 10일부터 3박4일간 서울에서 열린다.이번회담에서는 지난번 평양회담에서 제목만 합의한 「남북사이의 화해와 불가침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의 내용을 다루게 되어있어 표면상의 기대는 크지만 최근 일련의 정황으로 보아 어느만큼 기대충족이 될지 의심스럽다. 우선 남북회담 자체만을 놓고보아도 순탄치않을 조짐이 보인다.남북은 이번 회담을 보다 효율적으로 진행시키기 위해 판문점에서 네차례나 실무대표접촉을 갖고 상호체제의 존중,내정불간섭,비방 중상과 파괴전복행위중지,이산가족재결합,교류협력등 원칙적문제에 관해 합의했다. 그러나 교류를 실천하기 위한 서울·평양상주대표부 설치라든가 3통위원회의 설치,언론개방등 구체적인 문제에는 북한이 반대의 태도를 확실히 함으로써 합의서 내용절충이 난항을 겪고있다.북한측의 이같은 자세는 말로는 통일을 위해 모든 것을 하겠다면서 막상 구체적인 행동으로 들어가는 것을 꺼리는 이중성의 표본으로보여 유감이다. 회담외적인 최근의 해프닝들을 보아도 북한이 과연 남북대화와 평화통일에 뜻이 있는지 의심스럽다.몽양묘소에서의 김일성 꽃다발소동이라든지,문선명통일교주를 불러놓고 벌이는 「말장난」이라든지,그밖에 어떤것을 보아도 「북한을 믿을 만하다」는 평가가 나오기 어렵다.오히려 통일전선전략을 전혀 수정하지 않고있다는 우려만 심해질 뿐이다. 이같이 신뢰를 기초로 하지않는 대화는 진정한 합의와 결실을 낳기 어렵다.더욱이 지난번 회담에서 제기됐던 북한핵문제가 이번회담에서도 가장 중요한 사안이 될것이 틀림없다고 본다면 과연 어떤 획기적 합의가 이루어질 수 있겠는가 회의적이다. 사실 구체적인 담보없이 남북의 평화와 안정등에 대한 원칙적이고 선언적인 합의서가 나온다해도 북한의 핵위협이 점차 가시화되고 이를 제어할 방법이 없다면 합의서는 휴지쪼가리가 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신뢰구축을 위한 구체적 장치 없이 무조건 불가침선언만 하면 된다는 주장은 누구에게 물어보아도 설득력이 없다. 우리는 남북간의 신뢰구축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며 그같은 신뢰를 토대로 점진적인 통일작업을 이루어나가야 된다고 믿는다.따라서 이번 회담도 신뢰구축을 위한 구체적 방안이 논의되고 양보와 조화속에 어느정도라도 채택되어야 함을 강조한다.이같은 노력은 화해와 평화라는 세계조류나 통일열망이라는 국민적 기대와도 궤를 같이하는 것이다. 지금 통일이 싫다는 국민은 없다.이제는 통일로 가기위한 보다 구체적이고도 가시적인 방안이 남북간에 진지하게 논의되어야 한다.이번회담은 이같은 기대에 최소한이라도 부응하여야 할것이다.말로는 「파괴전복행위 포기」라면서도 기회만 있으면 포기는 커녕 이를 조장하는 이중성이 계속 용인된다면 이는 남북 7천만 국민의 기대를 저버리는 결과를 빚을 것이다. 정부는 신뢰회복과 점진적 교류라는 대화기조를 확실히 유지하면서 남북간의 관계를 크게 저해할 요소,예를 들어 북한핵문제등은 확실한 원칙아래 흔들림없는 자세로 임해야 할것이다.
  • 북한 여성의 「서울나들이」(사설)

    「아시아의 평화와 여성의 역할」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열린 서울토론회의 공식 일정은 끝났다.46년만에 「여성대표」자격으로 참석한 북한여성대표들의,「평화모색」과는 관계없는 행동만 남겼을 뿐인 이 회의의 흔적을 이쯤에서 한번쯤 곰곰 톺아보는 일도 중요할 것이다. 우선 북한여성 대표들은 그들이 목적하고 온 것을 십이분 달성한 것같다.첫째 그들은 토론주제 바꾸기를 관철했다.원주제와 직접 관계없는 「통일문제」를 토론 내용으로 「쟁취」한것이다.그것으로 그들은 배제된 「정치」를 다시 끌어들이는데 성공했다.두번째로 그들은 송이수까지 계산된 김일성화와 김정일화로 엮어 만든 김일성꽃다발을 「남한인민들」앞에서 당당하게 떠받들고 소리내어 그것을 예찬하는 일에 성공했다.그것도 민족 지도자의 한사람이었던 몽양의 묘소를 교묘히 이용하여. 세번째로 그들은 서울 한복판에서 확성기를 대놓고 이렇게 외치는데 성공했다.『북은 남침을 한 적도 없고 현재 할 의사도 없으며 앞으로 할 계획도 없다』.그리고 『있다면 북침이 있을 뿐이다』라고 거침없이 소리치는데 성공한 것이다.이 대목에서 토론장에서는 「웃음이 터져나왔다」고 한다.어처구니 없어서 나온 실소였겠는데 북한대표의 귀환 「보고」용으로는 이 웃음조차도 소득이 될 것이다. 이밖에도 「이대방문」이라는 카드도 효과적으로 써먹었다.이슈가 없어서 골몰중인 운동권학생들에게 근사한 빌미를 줄 수 있었으므로 성공하든 안하든 손해볼게 없는 카드였다.주최측의 사려없는 준비과정과 결정이 그런 결과를 불렀다.이 카드를 거꾸로 이용하여 시장이나 거리구경까지도 그들은 배척할 수 있었다.문목사와 임수경이라는 「약점」을 슬쩍슬쩍 건드려가며 장난성 자극을 충분히 즐겼던 그들은 북쪽 체제가 파견한 여성 척후병 역할을 잘 해냈다. 이 모든 것은 처음부터 예견되었던 일이므로 우리에게는 충격도 아니고 실망도 느끼지 않는다.그들이 벌이는 이 가장행열의 레퍼토리에는 우리도 충분히 적응되었으므로 실소나 한번 하고 나면 그뿐이다.그러나 그들을 대화의 장으로 이끌어 키높이가 비슷한 동반자로 성숙시켜 통일을 도모하려는우리의 뜻에는,이런 일의 반복은 도움이 안된다.그들이 「적의 심장에 비수 한개를 꽂고 돌아 왔다」고 의기양양해하며 더욱더욱 문단속에 골몰한다면 우리의 뜻은 뒷걸음질치는 결과 밖에 안될 것이다. 그렇게라도 「만난 것이 소득」이라고 대견해하는 주최측의 자긍에 찬물을 끼얹을 생각은 없지만,그들에게 반성할 일이 없다고는 할 수 없다. 북이 기회있을 때마다 드러내는,그 변함없는 「막무가내」를 그렇게 허랑허랑하게 받아주는 것에 대해서 이제는 반성을 해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수십년동안 「생떼쓰기」를 조금도 멈추지 않아온 그들은 「여성」을 「파견」하면서도 여전히 같은 방법을 썼다.그런 그들에게 말끝마다 박수를 쳐주고 통일가장행열에 같이 늘어서서 「댕기매기」니 통일노래부르기 따위를 호들갑스럽게 함께하는 일은 그들의 환상을 더욱 심화시키는 결과가 될지도 모른다.담담하고 어른스럽게,적어도 진실이 스며들 수 있는 분위기를 위해서 만이라도 사려깊은 대응을 했다면 좀더 성과가 있었을 것이다.
  • 외언내언

    「남북의 창」「통일전망대」를 통해 우리는 북한이 그다지 생소하지 않게 되었다.다소 부자연스러움이 느껴지는 가성의 여자목소리,「외닥딱!」이니 「일떠서다」따위 투박한 어휘가 문어체속에 예사롭게 섞이는 북한식 언어에도 이제는 적응이 꽤 되었다.◆그런 가운데서도 도무지 어색해서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김일성화」「김정일화」라는 것을 소개하는 장면들이다.식물학자,역사학자,예술가들이 총동원되어 이런 것을 만들어내고 있는 이 사회에 대한 「불가해」함이 한없이 낯설게 만드는 사회다.왜 이런 짓을 하고,하란다고 하고 있는 것은 또 무엇때문일까.◆그 곤혹스런 명칭의 꽃들로 만든 화환이,서울하고도 수유리의 몽양묘소에 등장했던 모양이다.김일성의 이름을 새긴 커다란 리본까지 달린 이 꽃다발을 안고 오느라고 그들은 매우 송구했을 것이다.이런 몸짓이 이쪽에서는 아무런 효과도 낼 수 없음을 그들은 진정 모르는 것일까.◆북에서 온 여성대표단장 여연구는 며칠사이에 스타로 등장했다.나타나기만 하면 다투어가며 손을 잡으려고 야단이고연설을 하면 구절구절마다에서 박수를 쳐댔다.그의 목소리는 많은 북쪽 여성들이 쓰는 가성이 아니었다.기품있고 정감이 느껴지는 깊이있는 소리였다.◆그런 목소리에 취하기라도 한듯 남쪽의 인심좋은 여성들은 그의 만찬답사 구절구절마다에서 박수를 보냈다.그런 분위기 속에서 「핵」문제 「통일」문제 들이 구절마다에 박혀 있다가 튀어나오기도 했다.드디어는 「김구선생」을 꼭지에 놓고 「문익환목사」와 「임수경」양도 쓰윽 끼어들었다.한 대목이 끝날 때마다 박수를 치던 참가자들은 그러나 이 대목에서는 정확하게 건너 뛰고 말았다.◆거의 기계적으로 치는 박수였는데도 절묘하게 뛰어넘는 「박수치기」였다.어떤 틈새기라도 있으면 비집고 정치선전을 하고 싶어하는 북측에 비하면 서툴고 무모한 측이 남쪽인 것 같은데 「아닌 것」에는 말려들지 않는다.그래도 여전히 버릇을 못버리는 그들이 웬지 슬프다.
  • 몽양 묘소에 선전성 김일성 화환/북한여성들 서울 오던날

    ◎철거요구 우리측과 옥신각신/개회식선 「그리운 금강산」 축가 ○…25일 하오 여연구씨가 검은색 비로드천의 한복에 흰색 베일 차림으로 서울 도봉구 우이동 여운형 묘소를 참배하는 동안 북측 일행이 갑자기 김일성 명의의 화환을 묘소앞에 배열하고 정치선전극을 벌여 이의 철거를 요구하는 우리측과 마찰을 빚었다. 북측 참가자일행은 참배도중 미리 갖고온 커다란 상자에서 「고 몽양 려운형선생을 추모하며 김일성」이라는 내용의 글씨가 쓰여진 화환과 「아버님을 추모하며 려연구·려원구·려붕구」라는 2개의 화환을 꺼내 묘소앞에 내세운 것. 이들 대형조화 2개는 이른바 「김일성화」와 「김정일화」,국화 등으로 장식한 것으로 누가 보아도 정치선전의도가 짙은 것으로 보였다. 이에 추모사업회 관계자들이 『민간차원의 순수한 행사에 꽃만 놓으면 됐지 굳이 김일성 휘장을 걸 필요가 있느냐』고 항의하자 북한측은 『여성들끼리 하는 일을 왜그럽니까,2분만 기다려 주시지요』라며 대꾸,우리측과 10여분간 옥신각신. 북측은 기록용 사진을 찍고 마지못해 철거. ○…『아버님이 귀여워해 주시던 소녀 둘째딸이 40여년이 지난 지금 여기에 섰습니다』 25일 하오 서울 도봉구 우이동 106번지 몽양 여운형씨의 묘소를 찾은 여연구 북측 대표는 묘지내에 들어서기도 전에 눈물부터 흘렸다. 여씨는 이날 하오 2시55분 남측 이효재씨와 승용차편으로 아버지의 묘에 도착,하얀 스카프를 머리에 덮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20여분동안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다. ○…이날 몽양의 묘에는 여명구씨(64·의학박사)와 올케 오세연씨,몽양선생 추모사업회원 등 30여명이 미리 대기. 특히 여씨의 증조할머니뻘 되는 여귀옥씨(대한기독교 여자절제회)와 그의 두딸은 추모사와 추모곡을 준비하기도. 또한 몽양선생 추모사업회측은 미리 향을 피우고,여대표에게 전달할 선물 등을 빈틈없이 준비. ○…「아시아의 평화와 여성의 역할」 서울토론회에 참석하는 북측 참가단 15명은 25일 상오 11시 판문점 중립국감독위를 통해 남녘땅에 첫발을 디뎠다. 여연구 북한 최고인민회의 부의장을 비롯한 세미나 참석 북측 참가자 5명은최봉춘 북측 책임연락관 안내로 중립국감독위 회의실을 넘어서자 마자 미리 대기중이던 이효재씨(한국여성단체 연합회장)등 우리측 영접위원 5명으로부터 각각 꽃다발을 전달받은 후 서로 가볍게 포옹. 특히 47년 이화여전 재학중 월북해 44년만에 남녘땅을 밟은 여부의장은 얼굴에 웃음을 띠면서도 만감이 교차되는 듯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하오 6시 호텔 2층 임페리얼룸에서 열린 개회식에서는 윤정옥 대표가 개회선언을 했으며 이어 이효재 대표가 경과보고,이우정 대표가 환영사,참가대표와 영접위원 소개,축가 등의 순서로 진행. ○…개회식 마지막 순서로 평양범민족통일 음악제에도 참가했던 윤인숙 교수(단국대 음대)가 축가 「그리운 금강산」을 불러 분위기를 돋우었다. ○…북한측 일행이 몽양 묘소를 참배하고 다소 늦는 바람에 기자회견은 30분 늦게 시작됐으며 여연구 대표는 선친묘소 참배때 무리한 탓인지 불참. 이 자리에서 북측 정명순씨는 『서울 방문 기간중 문익환 목사와 임수경씨,문규현 신부,유원호씨를 만나고 싶다』고 불쑥 제의하면서 선물까지 가져왔다는 말을 끝내 잊지 않았다.
  • 「아시아의 평화와 여성역할」 세미나 참석/북 참가단 일행 입경

    ◎여연구 포함 15명 남북분단이후 처음으로 남쪽땅을 밟은 북한여성들이 25일 서울에서 첫밤을 보냈다.여연구 북한최고인민회의 부의장을 비롯한 5명과 참관인 4명,기자 15명으로 구성된 북한참가단 북한인사들은 「아시아의 평화와 여성의 역할」토론회에 참가하는 등 30일까지 서울에 머문다. 북측참가단은 이에앞서 이날 하오4시20분쯤 라마다올림피아호텔 12층 갤럭시룸에서 정명순대변인의 기자회견을 통해 발표한 도착성명에서 『수레가 바퀴 하나로는 돌아갈수 없듯이 남북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는 여성들이 가정의 울타리를 벗어나 민족통일에 앞장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울토론회는 이날 하오6시 라마다올림피아호텔 2층 임페리얼룸에서 윤정옥씨의 개회선언으로 막이 올랐다.이우정·이효재·윤정옥씨 등 3인이 공동으로 주재한 개회식에서는 북한참가단 5명과 일본참가단 3명에 대한 소개와 아울러 정의숙 이화여대재단이사장·이태영(가정법률상담소장)·김현자씨(전국회의원)등 우리측 여성계인사 10인으로 구성된 영접위원단이 북측에 꽃다발을 전달했다.
  • “서울회담땐 합의문에 도장 누릅시다”/평양회담 대표단 귀환하던 날

    ◎정 총리 “「합의 그룻」 만들고 와 홀가분”/북한측 대표 6명,판문점까지 전송/“실무회담 간단치만은 않을것” 우리측 우려도 ▷판문점◁ ○…정원식국무총리등 우리측대표단 일행은 개성을 거쳐 25일 낮12시50분쯤 판문점 북측지역 통일각에 도착,이곳까지 전송나온 김광진차석대표등 북측대표 6명과 작별. 정총리는 이 자리에서 『이번 회담에서 돌파구를 열게돼 올때보다 가벼운 마음으로 돌아간다』고 심경을 피력. 이에 대해 안병수북측대표는 『그동안 세차례 회담에서 비관적이던 민심을 이번 회담을 통해 일단 멈춰 놓았다』고 화답. 정총리등 대표단 일행은 북측 최우진대표와 최봉춘책임연락관의 안내로 평화의 집앞에 도착,꽃다발을 받고 손을 흔들며 답례.대표단은 북측대표들과 10여분간 5차 서울회담에 대한 기대감등을 표시하며 환담한뒤 북측이 마련한 8대의 벤츠승용차를 타고 군사분계선을 넘어 귀환. 정총리는 미리나와 기다리고 있던 취재기자들에게 『염려해 주셔서 잘 다녀왔습니다』라고 인사. 한편 회담지원차 방북했던 한 정부당국자는 『고생했다』라는 취재기자들의 인사에 『큰 선물을 드렸다』고 회담결과에 만족을 표시. ○…정총리등 대표단 7명은 평화의 집 회의실에서 마중나온 이연택총무처장관과 심대평국무총리행정조정실장등 관계관들과 다과를 함께 하며 「가깝고도 먼」평양 여정에 관해 환담. ○“큰 선물 안고 왔습니다” 정총리는 『체류일정은 3박4일 밖에 되지 않았으나 한 열흘쯤 지난 느낌』이라며 『특히 개인적으로는 지난 46년 사리원을 떠나 월남한지 45년만에 군사분계선을 넘어 이북을 다녀왔으니…』라며 감회어린 표정. 정총리는 이어 이총무처장관에게 『그동안 별일이 없었습니까』라고 물으면서 국내상황에 관심을 표명하자 이장관은 『국회일정이 한창 진행중』이라고 보고. 회담결과에 대한 질문에 송한호통일원차관은 『합의서 명칭에는 의견일치를 보았으나 불가침등 중요한 여러문제에 있어서는 양측의 입장차이가 분명해 간단치 않을 것』이라고 회담전망을 평가하면서 『5차 서울회담 이전에 있을 대표접촉은 11월중순쯤에나 가능할 것』이라고 언급.우리측 이동복대변인은 판문점 남측지역 평화의 집 도착직후 발표한 도착성명에서 『평양방문을 통해 한반도에 평화의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는 확신을 갖고 돌아왔다』고 일성. 이대변인은 『만족할만한 구체적 문안내용 합의에까지는 이르지 못했으나 이번 회담에서 「화해와 불가침및 교류·협력을 명기하는 단일합의서」를 채택키로 남북이 합의한 것은 전향적인 성과』라고 강조. 그는 또 『불가침을 말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핵무기 개발을 서두르는 북한의 2중적 태도의 위험성을 지적하고 하루속히 국제기구의 핵사찰을 수용하고 핵무기개발은 포기토록 북측에 강력히 촉구했다』고 설명. 대표단은 평화의 집에서 늦은 점심을 들고 하오 2시 조금넘어 판문점에서 청와대로 직행,회담결과를 노태우대통령에게 보고. 정총리는 3층식당에 수행원들의 박수를 받으며 들어와 오찬에 앞서 『모두들 수고하셨습니다』며 건배를 제의. 정총리는 이연택총무처장관과 나란히 앉아 식사를 하며 남북고위급회담에 관한 국내보도 내용을 설명받고 평양에 다녀온 소감과앞으로의 할일 등에 대해 많은 얘기를 나누는 모습. ○연 총리와 친구된 느낌 ▷평양역◁ ○…정원식총리와 연형묵북한총리는 25일 상오 8시20분쯤 평양역으로 출발하기에 앞서 숙소인 백화원초대소 응접실에서 약 20분동안 평양의 3박4일과 5차서울회담등을 화제로 환담을 나눴는데 24일 공동보도문을 합의한 때문인지 시종 밝은 분위기. 정총리는 『비록 3박4일 밖에 안되지만 옛친구처럼 느껴진다』면서 『모든 회담이 다그렇지만 신뢰구축이 중요한데 이번 회담은 그런 점에서도 성과가 있었다』고 말하자 연총리는 『어제 분위기(만찬)도 아주 좋았다』고 화답. 이어 연총리는 『5차회담은 잘돼야죠』라며 정총리를 바라보자 정총리는 『시작이 반이라는 말도 있듯이 5차회담때 우리는 사인만 하도록 하고 남은 시간은 관광이나 하자』고 응답. ○…이날 상오 9시 평양역을 출발한 정원식총리는 특별열차안에서 북측차석대표인 안병수조평통부위원장등과 이번 4차회담등을 화제로 환담을 나누며 낮12시40분쯤 개성역에 도착. 정총리는 개성으로 오는 도중 몇몇 남북기자들이 찾아가 회담결과에 대한 소감을 묻자 『이번 회담은 남북간화해,불가침,교류문제에 타결을 보지는 못했으나 지난 세차례회담의 교착상태로부터 타결을 위한 돌파구를 열었다는데 의의가 있었다』고 자평. 정총리는 『이제 남북간 합의를 위한 그릇을 만들었으니 앞으로 이것에 무엇을 담느냐가 문제』라고 실무대표접촉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그래도 그릇을 만들었다는 데서 꽤 홀가분한 기분으로 서울로 간다』고 피력. 5차서울회담의 전망에 대해 정총리는 『실무대표회담에서 최대한 호양정신을 발휘해 노력만 하면 상당한 진전이 있지 않겠느냐』고 대답. 동석한 안병수북측대변인은 『이제 관심의 초점은 4차회담의 공동보도(발표문)자체보다 5차회담의 운명에 달려있다』고 내용상 합의의 필요성을 지적하면서 『실무회담의 진척과 관계없이 실무회담에서 맺힌 고리를 풀기 위해서라도 5차서울회담을 해야한다』고 실무·본회담 불연계입장을 거듭 강조. 안대변인은 『큰분들(양측총리)이 왔다갔다 하는데빈손으로 서울과 평양을 다닐수 있느냐』면서 『두총리들은 예비회담에서 다 해결하고 도장이나 누르면 된다는 생각일 것』이라며 정총리의 동의를 구하기도.
  • 강택민·양상곤·이붕/북경역서 포옹 영접/김일성 중국방문 이모저모

    ◎꽃다발·국기 든 7백명 동원/숙소는 조어대… 연도엔 환영시민 안보여 ○…김일성이 특별열차편으로 도착한 북경역 구내에는 외국기자들의 접근이 허락되지 않아 대부분의 북경주재특파원들은 역주변에서 김의 차량행렬을 지켜보는 수 밖에 없었다. 중국관영 신화사통신은 김이 4일 상오 10시에 북경역에 도착,영접나온 강택민총서기,양상곤국가주석,이붕총리등과 포옹하며 인사말을 주고 받았다고 전했다. 이어 오성홍기와 인공기가 나부끼는 가운데 역 구내에서 환영식이 벌어져 김과 강택민·양상곤·이붕등이 중국인민해방군의장대를 사열했다.이날 환영식장에는 손에 꽃다발과 양국 국기를 든 약7백여명의 북한·중국주민들이 동원돼 김의 북경방문을 환영했다.이들중 북한 주민들은 약2백∼3백명인 것으로 전해졌다. 북경역에 나온 중국측 주요인사로는 이철영(정치국원) 오학겸(부총리) 진기위(국방부장) 유화청(당중앙군사위부비서장) 온가보(당서기) 진희동(북경시장)등이다. 김일성일행이 탄차량 행렬은 10시10분쯤 북경역을 출발,숙소인 조어대로 향했다.김이 강택민과 함께 탔을 것으로 짐작되는 세단을 선두로 약50대의 차량이 뒤를 이어 북경역을 빠져나갔으나 연도의 시민들은 손을 흔들거나 박수를 치지는 않았다. 차량행렬이 지나는 장안로와 복흥로에는 4일아침 일찍부터 군데군데에 5색의 천(깃발모양)을 걸어 환영을 표시했으며 천안문광장에는 북한의 인공기와 중국의 오성홍기를 꽂아 놓기도 했다. 이날 아침 북경주재 북한대사관 주변은 전에없이 한산하고 조용했다.모두들 김을 환영하기 위해 동원된듯 보였다. ○…중국외교부관리들은 김의 일정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4일 하오 강택민총서기가 주최하는 환영연이 열리고 5일에는 이붕총리와 회담할 것이라는 내용만 밝히고 그외의 질문에는 일체함구.
  • 노 대통령 하와이 방문 이모저모

    ◎“UN 가입으로 타율의 역사 끝났다”/한인 출신 대법관 격려 ▷교민초청 리셉션◁ ○…노태우대통령은 27일하오(현지시간)숙소인 칼라힐튼호텔에서 열린 교민대표초청 리셉션에 참석,『유엔가입으로 남에 의해 운명이 결정되던 타율의 역사는 끝났다』고 강조. 전에 없이 베이지색의 밝은 양복을 입고 리셉션장에 들어선 노대통령은 교민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며 격려한뒤 『이번 유엔총회에서 회원국 국가원수로서 세계문제에 관해 우리의 입장을 당당히 밝혔다』고 소개하는등 유엔방문결과에 아주 만족해하는 모습. 노대통령은 교민대표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었는데 지난주 평양을 방문했다는 서대숙 하와이대 한국학연구소장은 『평양에 머무르는 중 북한 TV를 봤는데 북한이 유엔에 가입한 사실만 보도하고 남한에 대해선 단 한마디 언급이 없었습니다』라며 『그쪽 학자들에게 그래서야 쓰겠느냐고 말해주었습니다만 그래도 나은 우리가 참아야 하지 않겠습니까』라고 건의. 이에 노대통령은 『경제등 모든 면에서 앞선 우리가 참고 감싸주는게 당연하다』며 『대통령도 참지 못하면 할수 없겠더라』고 말해 한바탕 웃음. 노대통령은 그러면서 북한이 아시안게임때 중국이 1등,자기네가 2등 한 것처럼 북한주민들에게 선전한 것같더라며 딱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노대통령은 또 하와이주 대법관이 된 문대양씨에게는 후배교포들도 많이 양성해달라며 건승을 당부. ◎힐튼호텔앞 교민 운집 ▷하와이교민 환영◁ ○…27일 하오(한국시간 28일 상오) 마지막 기착지인 하와이 호놀룰루의 히캄공군기지에 도착,손장래총영사와 태평양사령부 의전장의 기상영접을 받고 트랩을 내린 노태우대통령내외는 카이타노부지사및 와이헤헤주지사부인으로부터 레이를 증정받은뒤 환영나온 교민들과 6월 샌프란시스코 한소정상회담 귀로에 들렀던 지난해 6월이래 1년여만에 반가운 악수. 라시 태평양사령관내외와 화시 호놀룰루 시장내외및 김정남 한인회장등 양측 출영인사들과 인사를 나눈 노대통령내외는 교민화동으로부터 꽃다발을 선물받고 곧바로 1백50여명의 교민환영단 앞으로 다가가 『다시 만나 반갑다』고 일일이 악수를나누었고 교민들은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며 반가움을 표시. ▷멕시코 출발◁ ○…멕시코 공식방문을 끝낸 노태우대통령은 26일 상오 11시(한국시간 27일 상오 2시) 멕시코시티 베니토 후아레스 국제공항에서 교민들과 아쉬운 작별인사를 교환하고 귀로의 경유지인 호놀룰루로 출발. 노대통령은 이날 상오 10시50분쯤 공항에 도착,페르디난드 솔라나 멕시코외무장관의 안내로 연단에 올라 21발의 예포발사를 지켜본뒤 환송나온 교민들과 일일이 악수. 1백50여명의 교민들은 「평양으로 슛 골인하세요」「시베리아빙산 녹인 멋쟁이 우리 대통령」등의 피켓을 들었고 교민3세인 하스타 루에고씨는 「타향살이 몇해던가 한인후손들 잊지마세요」라는 피켓을 든채 눈물을 글썽였으며 또 다른 교민후손은 「고향앞의 버드나무 올봄도 푸르렀던가」라는 피켓을 흔들기도.
  • “「통일의 길」 닦는 힘찬 발걸음 될것”(유엔코리아)

    ◎노 대통령 출국·뉴욕 현지표정/“이젠 국제발언권 가져 큰 희망”/3부 요인등 시민 1천여명,정상외교 환송/「지구촌 행사」 만전에 대표부직원들 “비상” ○…노태우대통령내외는 유엔총회연설과 멕시코 공식방문을 위해22일하오 출국하기에 앞서 서울공항에서 거행된 환송식에 참석,3부요인 정당대표국무위원 일반시민등 1천여명의 환송을 받고 출국인사. 노대통령은 이날 정원식총리와 이연택총무처장관의 안내로 환송식장에 도착,대통령에 대한 경례등 의식절차를 생락한채 곧바로 인사말을 통해 『이번 유엔과 멕시코방문은 열흘간의 일정이지만 그 어느 때보다 큰 기대와 희망을 안고 떠난다』면서 『저의 이번 여행이 우리힘으로 통일의 길을 개척하는 힘찬 발걸음이 될 것』이라고 강조. 노대통령은 『20세기에 접어들어 남에게 외교권을 빼앗긴 이래 국제사회에서 발언권을 가진 당당한 나라가 되는 것은 겨레의 오랜 소망이었다』며 을사보호조약후 헤이그에 밀사로 파견됐던 이준열사등의 고난을 예로 들어 유엔가입을 평가한뒤 『온겨레가 걸어온 고난의 역경을 세기며 유엔회원국 대통령으로 세계평화의 전당에 서게된 것은 감회깊은 일』이라고 피력. 노대통령내외는 이어 환송나온 시민들에게 다가가 시민들로부터 『잘 다녀오십시요』라는 인사를 받고 『감사합니다』라고 답례한뒤 화동 김동기군과 김다혜양(서울사대부국 3년)으로부터 꽃다발을 받고 가볍게 포옹. 노대통령은 또 박준규국회의장 김덕주대법원장 조규광헌법재판소장 민자당의 김종필 박태준최고위원등 환송인사들과 일일이 악수. 노대통령은 특히 민자당의 김윤환,민주당의 김원기총장들에게는 『잘 좀 해달라』는 말로 순방기간동안 국정감사를 비롯한 국회활동을 잘 이끌어 달라고 당부한뒤 3군의장대를 사열하고 도열병사이를 지나 전용기에 탑승. ▷유엔본부 이모저모◁ ○…노태우대통령의 뉴욕 방문을 사흘앞둔 19일 주유엔대표부는 노창희대사주재로 밤늦게까지 회의를 갖고 노대통령영접 계획인 암호명 「지구촌행사」 준비작업을 점검하는등 차질없는 준비를 위해 부산한 모습. 「지구촌 행사」 계획은 노대통령의 총회기조연설(24일)한미정상회담등 노대통령부부의 3박4일동안 체류일정,30명의 경축사절단 접대등 3가지부분으로 나눠 추진하고 있다고 대표부의 한 관계자가 설명. 노대통령은 24일 총회연설을 마친뒤 부시미대통령의 숙소인 월도프 아스토리아호텔을 방문,올해들어 두번째 한미정상회담을 가질 예정이나 자세한 일정은 주미한국대사관측과 미국무부사이에 협의중이며 마하티르 말레이시아 총리,볼제르 뉴질랜드 총리등과도 연쇄 정상회담을 가질 계획. 한편 이상옥외무장관은 노대통령의 20일 시애틀 도착을 영접하기 위해 19일 상오 현지로 출발. 유엔가입 경축정부사절단인 노신영 전총리·최광수 전외무장관이 이날 뉴욕에 도착한데 이어 20일에는 김운용IOC위원,21일 강영훈·노재봉전총리·민관식전민주평통부의장 홍성철민주평통부의장 서기원한국방송인협회장 현승종교원단체총연합회장 김용식전외무장관 이계순정무2장관등 사절단일행이 속속 개별 도착할 예정. ○…노창희대사는 이날 낮12시50분(한국시간 20일상오1시50분)유엔본부38층 총장실을 방문,페레스 데 케야르 사무총장에게 신임장을 제정,유엔의 정식 대사로서 활동을 개시. 노대사는 이자리에서 앞으로 유엔활동에 적극 참여할 것을 거듭 다짐했으며 케야르총장은 『한국이 국제평화와 인류복지를 위한 유엔의 활동에 적극 참여해 달라』고 당부했다고 배석했던 대표부의 당국자가 전언. 노대사는 신임장을 제정한뒤 기자들과 만나 장석주 북한외교부 부부장이 남북외무장관 회담을 우리측에 제의했다는 벌언과 관련,『아직 공식 제의받은바 없다』며 『이장관은 북한의 김영남외교부장을 비롯,미·일·중·소등 많은 나라 외무장관과 만날 계획이지만 일본을 제외하고는 일정이 확정된게 없다』고 설명. 이에앞서 박길연 북한대사도 12시40분 케야르 총장에게 신임장을 제정. 박대사는 신임장 제정에 앞서 기자들과 만나 『지난 9월초 평양에서 열린 77그룹 각료회의 아시아지역회의에 참석했던 한국정부 대표단을 숙소인 고려호텔에 왜 격리했느냐는 질문에 『그러길래 콜레라에 걸리지 말았어야지』라고 대답.
  • KAL기 희생자 선상 추모제 80분

    ◎8년전 그 바다 위에 진혼의 꽃다발만…/소 악대,「고향의 봄」 연주속 유족 통곡/소복차림 미망인,난간 붙잡고 절규/소 관계자도 눈시울… “진상조사 적극 지원” 약속 【유지노사할린스크=외무부공동취재단】 사고후 8년만에 처음으로 1일 사고현장에서 거행된 KAL기 추모제는 북위 1백41도 21분 동경 46도 32분 추락지점에서 유족들의 눈물바다를 이룬채 1시간20분가량 진행됐다. 소련측이 제공한 대형여객선 유리트리노프호(4천5백t급)선상에서 거행된 이날추모제는 비통한 분위기속에서 엄수됐으며 일부 유족들은 오열을 참지 못하고 시종 목놓아 통곡했다. ○…이날낮 12시20분쯤(한국시각 상오 10시20분) 소련군악대의 한소 양국 국가연주로 시작된 추모제는 고인들에 대한 묵념,추도사에 이어 분향및 선상 헌화순으로 진행. 소련작가의 이름을 딴 홈스크항을 떠나 두시간여 항해끝에 사고해역에 도착,뱃고동 소리와 함께 닻을 내리자 소련 육군 군악대는 「고향의 봄」과 양국의 전통 조곡을 연주하기 시작. 이어 한소 양국 정부대표의 추도사와 홍현모유족회장의 추도사로 이어지면서 분위기가 고조되기 시작했고 사고비행기의 교체기장 고 김희철씨의 딸 김수지양(22)의 고별사에 이르자 유족들의 비통함은 절정에 달했다. 추도사는 공로명주소대사,표도로프 사할린주지사,홍유족회장의 순으로 진행됐는데 한결같이 KAL기사건의 조속한 진상규명을 촉구. 한국정부를 대표한 공대사는 『냉전대결 상황에서 일어났던 사건의 진상이 소련의 급속한 변화에 발맞춰 규명되어야 한다』고 말했으며 표도로프 주지사는 『이 사건과 관련해서는 어떤 새로운 정보도 중요하다』고 강조. 홍회장은 『잦아진 왕래에도 불구하고 소련은 해명과 사죄없이 사건을 얼버무리고 있어 우리의 아픈 상처를 더욱 깊게 한다』며 『이 바다속에 검은 머리결을 물결에 너울거린채 아직도 눈을 감지못하는 희생자들의 얼굴을 쓸어내려주고 싶다』고 애도. ○…공대사와 소련측 대표들이 분향을 마치자 유족들은 소련군악대가 전통 러시아 조곡을 연주하는 가운데 선상 2층으로 내려와 차례로 헌화. 헌화는 권정달전의원을 비롯한 유족들이국화·백장미·백합등을 들고 갑판으로 내려오자 배의 선원과 사할린 거주 한인등 남녀 5명씩 10명이 대형화환 2개를 10여m아래 바다에 띄우면서 시작. 유족들이 뱃고동 소리와 함께 꽃송이를 던진 뒤에도 한동안 고인의 이름을 크게외치면서 통곡하자 이를 지켜보던 소련 관계자및 선원들은 눈시울을 적시기도. 20여분간의 선상헌화가 끝난 이날 하오 1시40분쯤 여객선이 큰 고동을 울리며 홈스크항으로 뱃머리를 돌리자 일부 유족들은 『잘있거라』 『다시 찾아오겠다』고 오열을 터뜨리며 난간을 부여잡고 애통해 했다. ○…추모제의 시작을 알리는 소련군악대의 「고향의 봄」연주가 울려퍼지자마자 일부 여자유족들은 오열을 참지 못하고 통곡. 윤정임씨(여)는 사고로 숨진 아들의 이름을 부르면서 『이식아,내가 어찌 여기있단 말이냐』라고 울부짖었고 하얀 소복차림의 임매심씨(70)와 석수원씨등 연로한 몇몇 여자 유족들도 목놓아 절규해 보는이들을 안타깝게 했다. 가까스로 눈물을 참던 유족들도 홍유족회장이 비통한 어조로 추도사를 낭독하자 대부분눈물을 떨구면서,추모제 현장은 눈물바다로 변했다. 사할린거주 한인대표로 참석한 서옥재씨(여·51)등 4명의 여자 한인들도 『유족들의 비통한 모습을 보니 우리도 눈물이 난다』며 연신 눈물을 훔쳐냈다. 사고로 아들 부부와 손자등 일가족 4명을 잃었다는 박윤섭씨는 꽃다발과 함께 과자꾸러미를 바다에 던지며 오열. 사고비행기의 부기장이었던 선동휘씨의 미망인 유행자씨는 집 앞뜰의 대추나무에서 따왔다는 대추 한접시를 바다에 뿌리며 고인의 넋을 위로. 선부기장의 아들 재곤씨(26)는 『기장복을 입고 집을 들어서는 아버지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며 눈물을 글썽. 기장 천병인씨의 미망인 김옥희씨는 시종 눈물을 흘리며 『진실이 반드시 규명돼야 고인도 눈을 편히 감을 것』이라고 진상규명을 촉구. ○…정재문(민자)이수인(신민)박찬종의원(민주)등 국회 대한항공기 피격사건진상규명 청원심사소위 위원들은 추모제가 시작되기전 선상에서 소련 연방정부의 키레예프 외무부본부대사와 표도로프 사할린주지사등과 면담을 갖고 사건진상 규명을 촉구하는 국회서한을 전달했다. 키레예프대사는 이 자리에서 국회서한을 판킨 외무장관에게 전달할 것을 약속했고 표도로프 지사는 『연방정부의 의사와 관계없이 사할린지역의 조사활동에 최대한 협력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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