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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욕필 평양공연] 美반응“역사적 새출발”

    |워싱턴 김균미특파원|“뉴욕 필하모닉의 역사적인 평양공연으로 북한과의 음악외교가 시작됐다.” 미국 언론들은 26일 뉴욕필하모닉의 평양공연에 역사적 의미를 부여해 비중있게 다뤘다. 현지에 기자들을 보낸 미국 언론들은 연일 평양발 기사를 내보내고 특집방송물을 제작, 방송하는 등 높은 관심을 보였다. CNN방송은 미국 이외 지역에 방송되는 인터내셔널 채널을 통해 평양공연을 이례적으로 생중계했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시차 때문에 12시간 뒤인 26일 저녁(현지시간) 녹화방송된다. 미 언론들은 뉴욕필의 평양공연이 북한내에서 이뤄진 첫 미국 공연단체의 공연인 데다 북한 주민들에게 TV와 라디오로 생중계된다는 점에서 운둔의 나라 북한의 꽁꽁 잠긴 문을 열고 역사적인 전환점이 될지에 관심을 보였다. 미국 언론들은 ‘오케스트라 외교’로 북·미관계가 장기적으로는 개선될 가능성을 내비치면서 설익은 낙관론을 경계하는 분위기다.CBS는 냉전시대였던 1959년 뉴욕필의 모스크바 공연을 상기시키며 즉각적인 해빙을 기대할 수는 없겠지만 역사적인 출발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전했다. AP통신은 공연에 앞서 학교와 도서관 등에서 만난 북한 주민들의 뉴욕필 평양공연에 대한 반응도 함께 소개했다. CNN방송은 공연시작 직후 인터넷에 양국 국가와 조지 거쉬인의 ‘파리의 미국인’ 연주 장면을 2∼3분으로 편집한 동영상을 올려놨다. 양국 국가가 연주되는 3분23초 동안 북한 주민들과 외국인들의 얼굴을 클로즈업하는 등 공연장 분위기 전달에 노력했다. 뉴욕타임스는 인터넷에 평양 현지공연 기사와 함께 공연장면과 평양시내를 담은 사진 20장을 올려놓았다. kmkim@seoul.co.kr
  • 고기구·박주영 투톱 北 벌떼수비 뚫는다

    고기구·박주영 투톱 北 벌떼수비 뚫는다

    |충칭(중국) 임병선특파원|‘고기구(포항)­박주영(FC서울) 투톱으로 북한의 벌떼수비 뚫는다.’ 허정무 감독이 이끄는 국가대표팀이 20일 밤 9시45분(이하 한국시간) 중국 충칭의 올림픽스포츠센터 스타디움에서 열리는 북한과의 동아시아축구연맹(EAFF) 선수권대회 2차전에서 A매치 경험이 한 번밖에 없는 고기구를 최정점에 박고 박주영을 처진 스트라이커로 받치는 실험을 꾀한다. 대표팀은 19일 밤 9시30분부터 시작한 훈련에서 4-4-2 포메이션을 선보였다. 남북의 공식 A매치는 2005년 8월 전주에서 열린 제2회 대회 2차전 이후 30개월만. 한국이 역대 전적 5승3무1패로 앞서 있지만 승패보다 중요한 것이 다음달 남아공월드컵 아시아예선 2차전을 앞두고 북한의 기를 꺾어놓아야 한다는 점. 허 감독은 앞서 숙소인 충칭칼튼호텔에서 한국 기자들과 만나 “박주영과 함께 스리톱을 형성해야 할 염기훈(울산)과 이근호(대구)가 중국전 후반 급격한 체력 저하를 보였다.”고 걱정했다. 또한 북한의 밀집수비를 뚫기 위해선 최전방에 장신 공격수 한 명을 내세우는 게 중요하다고 판단한 것 같다. 지난 18일 회복훈련에서 허 감독이 고기구를 ‘개인과외’한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 수비진은 중국전과 확연히 달라져 포백으로 돌아간다. 소속팀에서의 포백 경험이 풍부한 강민수(전북)와 ‘골넣는 수비수’ 곽태휘(전남)가 중앙을 맡고 좌우 풀백에는 박원재(포항)와 이종민(울산)을 세운다. 이는 북한의 주 공격루트가 원톱 정대세(가와사키)에 미드필더 숫자가 4명이나 돼 굳이 중앙 수비를 셋이나 둘 필요가 없는 데다 역습 전략으로 나올 것이 뻔하기 때문. 허 감독은 “중국에 오기 전부터 북한전에는 포백을 쓰려고 마음먹었다.”고 밝혔다. 곽태휘에겐 정대세(가와사키)를 꽁꽁 묶으라는 특명이 내려진다. 불꽃체력을 앞세우던 북한이 일본전 막판 보인 급격한 체력 저하를 감안, 중국전에서 능력을 입증한 이종민에게 과감한 오버래핑을 주문한다는 복안이다. 허 감독의 용병술이 다시 먹힐지도 관심거리. 중국전 후반 17분 구자철(제주)을 들여보내 포메이션에 변화를 가져와 수비진을 혼란시켰고 막판에 고기구를 투입해 곽태휘의 재역전골을 이끌어냈는데, 이번엔 중국전 후반에 투입돼 경기 흐름을 바꿨다는 평을 듣는 19세 막내 구자철을 언제 어떻게 교체투입해 김정훈 북한 감독의 허점을 파고들지 주목된다. bsnim@seoul.co.kr
  • 韓총리후보 청문회 ‘가시밭길’

    韓총리후보 청문회 ‘가시밭길’

    정부조직개편안 협상이 결렬되자 이번에는 한승수(얼굴) 국무총리 후보자 청문회가 최대 쟁점으로 부상했다. 통합민주당은 한 후보자 경력 부풀리기 의혹에 이어 부동산 투기 의혹을 제기하는 등 전의를 불태워 한나라당과의 갈등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서갑원 의원은 19일 오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한승수 국무총리 후보자와 가족들은 부동산 투기가 있는 곳에 늘 함께 했고 스톡옵션 등 일부 재산신고를 누락했다.”고 한 후보자의 재산과 관련된 의혹을 제기했다. 서 의원은 1977년 이후 한 후보자의 부동산 매입 현황과 당시 해당 지역의 부동산 투기 열기를 전하면서 “부동산 투기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탁월한 솜씨를 뽐내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서 의원은 “시가 1억 6464만원 상당의 스톡옵션은 신고하지 않았고 재산이 거의 없는 장남이 4억원 상당 아파트에 전세로 살았지만 증여세를 냈다는 기록은 없다.”며 재산 신고 누락·편법 증여 의혹도 제기했다. 한 후보자측은 “사실무근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고, 청문회에서 모두 설명하겠다.”고 말했다. 스톡옵션 누락신고 의혹에 대해서도 “지난해 6월부터 신고대상에 포함된 줄을 모르고 있었다.”며 고의 누락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민주당은 “총리 청문회에서는 가능하면 협조하겠다는 게 내부 방침이었으나 그냥 지나치기에는 어려운 대목이 발생하고 있다.”고 선전포고를 했다. 하지만 민주당이 실제로 한 후보 임명동의안을 부결시키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총리 없는 정부 출범의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반면 한 총리가 총리로 임명되더라도 그 과정에서 도덕성 문제가 쟁점이 되면 새 정부는 출범부터 오점을 남기게 된다. 민주당이 총리 후보자에 대한 검증을 마다할 이유가 없는 점도 여기에 있다. 어느 경우든 청문회에서도 양당의 대치 국면은 이어져 정국은 당분간 꽁꽁 얼어있을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나길회 홍희경기자 kkirina@seoul.co.kr
  • 中 폭설피해지역 관광에 이재민들 “버럭”

    폭설로 피해를 입은 중국의 몇몇 마을에 설경을 보기위한 관광객들이 몰리고 있다. 아직 피해복구가 되지 않은데다 이재민들의 심리적 상처가 아물지 않은 터라 관광객들을 향한 비난이 줄을 잇고 있다. 최근 광둥(廣東)성 상카이펑(上開封)촌에는 아이들을 동반한 가족과 연인들이 꽁꽁 언 얼음 위와 눈밭에서 설경을 즐기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상카이펑은 이번 폭설 피해를 가장 먼저 입었으며 피해규모도 매우 큰 지역에 속한다. 해발 700m 산중에 위치한 이 마을은 이미 전기가 끊긴지 한달이 넘은 상태. 마을 주민들은 평소보다 몇십 배 비싸게 산 물로 간신히 생활을 유지하고 있는 판국에 도움을 주기는 커녕 즐기다 가는 관광객들이 야속할 따름이다. 이 마을에 사는 48세 랴오(廖)씨는 “얼마 전부터 수많은 사람들이 차를 끌고 마을로 들어와 얼음과 눈 구경을 하고 있다.”면서 “설경을 보는 것도 좋지만 이재민들 옆에서 웃고 떠들며 사진 찍고 돌아가는 그들이 원망스럽다.”고 토로했다. 암흑 속에서 새해를 보낸 마을 주민들은 적절한 피해복구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어 매우 난감한 실정이다. 이 소식을 접한 한 네티즌(221.239.*.*)은 “다른 사람의 아픔은 보지 않고 자신의 즐거움만 생각하는 이기주의 관광객”이라고 올렸고 또 다른 네티즌(222.87.*.*)은 “당국은 피해복구에 힘쓰지 않고 뭘 하고 있는 것인가”라고 지적했다. 또 한 네티즌(219.134.*.*)은 “광둥 지역에서는 눈 뿐 아니라 얼음을 보는 일이 매우 드물다. 그래서 신기해하는 심정은 잘 알겠다.”면서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재민들의 심정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충고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여자프로농구] 삼성, 신한銀 12연승 막았다

    삼성생명이 ‘무소불위(無所不爲) 레알 신한’의 거침없는 연승 행진을 저지했다. 삼성생명은 31일 용인체육관에서 열린 여자프로농구 신한은행과의 홈경기에서 이종애(10점 7리바운드 4블록슛)가 골밑에서 눈부신 활약을 펼친 가운데 변연하(13점)와 이미선(12점 7어시스트 4가로채기)이 깔끔한 야투를 잇달아 성공시키며 55-45로 승리,‘미리 보는 챔피언전’의 자존심 대결에서 승리했다. 이로써 2위 삼성생명은 1위 신한은행과 승차도 ‘4’로 줄였다. 상대전적에서도 3승3패로 균형을 맞춰 냈다. 신한은행은 12연승 신기록 행진을 이어가려 했으나 삼성생명의 악착 같은 수비를 뚫지 못해 4패째를 당했다.4패중 3패가 삼성생명에게 당한 것. 승리 방정식의 출발은 ‘찰거머리 수비’였다. 삼성생명은 가로채기에서 무려 8개를 성공시키며 신한은행(3개)을 압도했다. 리바운드에서도 똑같은 41개를 잡아내며 정선민(19점 9리바운드)-하은주(7점 8리바운드)가 버티는 신한은행에 전혀 밀리지 않아 승리의 발판을 만들었다. 특히 이종애는 4쿼터 5분 51초를 남겨 놓고 5반칙으로 물러날 때까지 신한은행의 ‘거탑’ 하은주를 꽁꽁 묶었다. 하은주는 이날 평소보다 많은 20분51초를 뛰었지만 골밑에서 이종애의 찰거머리 수비에 막혀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신한은행은 3점슛 14개를 던져 고작 1개만 성공하는 등 야투가 림을 거듭 외면한 가운데 정선민 외에는 뚜렷한 공격 루트를 가동하지 못해 무릎을 꿇어야 했다. 신한은행은 2쿼터 막판 이미선과 변연하에게 연속으로 3점포를 얻어 맞아 27-24로 역전을 당한 뒤 계속 10점 안팎으로 끌려 다녔다. 경기 종료 1초전 선수진(2점)의 득점으로 한 경기 팀 최소득점 타이 기록인 43점을 면한 것에 위안을 삼아야 했다.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Let’s Go] 겨울에 만난 창녕 ‘우포늪’

    [Let’s Go] 겨울에 만난 창녕 ‘우포늪’

    우포늪에 오실 땐 맨발로 오세요 사람도 자연의 일부가 되는 우포에 오실 땐 맨발로 오세요 사시절 모양 색깔 모두 다른 우포에 오실 땐 맨발로 오세요 수초에 뒤덮인 퇴적늪의 단단함을 때론 살얼음 차가움을 자분자분 맨발로 느껴보세요 (하략) -송미령의 시 ‘우포늪에 오실 땐 맨발로 오세요´ 중. # 늪마다 독특한 풍경 철저히 준비하고 떠난 여행에서는 많은 배움을 얻고, 준비 없이 떠난 여행에서는 많은 것을 느끼고 온다 했다. 전자를 여행자라 한다면, 후자는 방랑자쯤 될까. 경남 창녕의 우포를 찾아가는 길은 후자에 속했다. 우포늪은 창녕군 대합면과 대지면, 이방면, 유어면 등에 걸쳐 있는 국내 최대의 자연 습지다. 소의 머리를 닮은 우항산이 늪에서 물을 마시는 듯하다고 해서 우포(牛浦)늪이란 이름을 갖게 됐다. 늪 전체의 넓이는 서울 여의도와 비슷하다. 가장 큰 우포를 비롯해 인근의 목포와 사지포, 쪽지벌 등 4개의 늪을 아울러 우포늪이라 부른다. 나이는 한반도와 동년배다. 대략 1억 4000만 살 정도 됐다. 면적에 비해 다양한 종류의 희귀 동식물들이 서식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2.3㎢쯤 되는 담수면적에 1000여종의 생명체가 올망졸망 살아가고 있다. 창녕 사람들은 우포를 굳이 ‘소벌’이라 부른다. 소벌이란 순 우리말 표현을 두고 일제강점기에 우격다짐으로 바뀐 ‘우포’로 부르기가 썩 내키지 않아서인 듯하다. 다른 늪의 경우도 마찬가지. 공식 문건에 표기되지는 않지만, 각각의 특징이 잘 드러나는 우리말 이름을 갖고 있다. 주민들이 ‘소벌’로 부르는 우포는 ‘소(牛)를 먹이거나, 소 모양의 넓은 벌판’이라는 뜻이다.‘나무벌’ 목포는 ‘왕버들 나무(木)가 많은 벌’이고,‘모래벌’ 사지포는 ‘모래(砂) 섞인 땅(地)으로 된 벌’이다.‘쪽지처럼 작은 벌’이라는 뜻의 쪽지벌은 다행히 예쁜 순 우리말 이름을 그대로 지켜오고 있다. 작다는 의미를 가진 ‘쪽’이란 표현을 일제가 자기네 식으로 바꾸기엔 한계가 있었던 모양이다. # 우포, 겨울을 말하다 소목 제방에 올라 바라본 소벌. 넉넉하고 포근한 모습이다. 그 너른 품안에서 싱싱한 아침을 맞은 겨울철새들이 저마다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큰고니(백조) 무리는 차가운 얼음 위로 제 모습을 비춰보며 ‘나르시시즘 놀이’를 즐기는 듯하고, 물닭들은 물고기를 잡느라 자맥질에 바쁘다. 생기를 잃은 채 숨을 죽이고 있을 거란 예상에 쨍∼하고 금이 가는 순간이다. 오래 전 딱딱하게 얼어버린 늪에서 희망을 본 이가 송미령(51) 시인이다. “얼굴이 베일 만큼 차가운 겨울바람에서 맛있는 냄새가 나요. 얼어붙은 나뭇가지에서 움이 올라오고 있다는 것을 느낄 때면 가슴이 설레죠. 겨울엔 모든 것이 정지해 있을 듯하지만, 새벽과 저녁 무렵이면 생기가 넘쳐 흘러요. 겨울철새들이 먹잇감을 구하느라 물속에 머리를 처박기도 하고, 때론 먹이를 두고 싸우기도 하죠.” 소목 제방 왼쪽으로 난 길은 반드시 걸어봐야 한다. 나뭇잎 무성한 계절엔 보이지 않고, 겨울과 초봄에만 잠깐 드러나는 길이다. 개구리덤 주변의 겨울 철새들과 원시적인 풍경 사이로 난 길을 따라 자박자박 걷다 보면 모래벌과 만난다. 소벌의 광활한 풍경에 비하면 아기자기한 호수의 느낌을 주는 곳이다. 얼지 않은 물가 가장자리에 수백 마리 철새들이 부리가 닿을 만큼 옹기종기 모여 있다. 앙상하게 가지만 남은 나무들은 호젓함을 더한다. 예쁜 그림이 담긴 우편엽서를 보는 듯하다. 모래벌을 지나 나무벌로 향했다. 수심이 깊어 많은 수중식물들이 서식하는 곳이다. 꽁꽁 언 얼음 위엔 왕버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왕버들 뿌리 위로 덩그러니 놓여 있는 쪽배에 오래도록 시선이 머물렀다. 낡고 초라한 모습이다.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은 뱃머리 너머로 예전 많은 창녕 사람들에게 아낌없이 자신의 생명력을 나눠주던 우포늪의 모습이 자연스레 오버랩됐다. # 시인, 늪에 빠지다 우포늪 끝자락의 쪽지벌은 크기가 가장 작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다른 지역에 비해 진입로가 잘 닦여 있어 탐방객들이 진면목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지나쳐 버리기 십상이다. 쪽지벌 사초군락지는 송미령씨가 우포늪에서 가장 좋아하는 공간 중 하나다.‘우포늪에 오실 땐 맨발로 오세요’란 시도 이곳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었단다. “신발을 벗고 맨발로 자분자분 걷고 싶은 생각이 드는 곳이에요. 바람에 살랑대는 사초 위에 누워 보세요. 마치 자연의 일부가 되는 것 같은 생각이 들 거예요.” 창녕에 둥지를 튼 지 벌써 27년. 거의 매일 이곳을 찾았으니, 사초 위에 얼마나 많은 추억을 맺어 놓았을까. 그 중 몇몇은 가슴 깊숙한 곳에 묻어 두었을 게다. 시나브로 해거름이 찾아왔다. 늪은 어제처럼, 억만년 전에 그랬던 것처럼 저녁 노을 속으로 천천히 가라앉고 있었다. 창포물로 감은 머릿결 같은 사초 위에 잠시 쉼을 청했다. 포근하고 부드럽다. 우포의 정취를 오롯이 느끼려면 맨발이 아닌 ‘맨살’로 찾을 일이다. 글 사진 창녕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여행수첩 ▶가는 길 영동고속도로→여주분기점→중부내륙고속도로→창녕 나들목→우회전→우포늪생태학습원→우포늪전망대 ▶맛집 우포의 가장 큰 먹거리는 토종붕어. 겨울철에 특히 큰 씨알의 붕어가 많이 난다.‘우포붕어찜’은 붕어찜 요리로 근동에서 명성이 자자한 집.1인분에 공기밥 포함 1만 1000원을 받는다. 붕어 매운탕은 3만원.(055)532-2088. ▶가볼 만한 곳 ▲ 창녕고분군 ‘제2의 경주’라고 불리는 창녕은 신석기에서 근세에 이르는 다양한 시대의 문화재가 분포하고 있다. 특히 비화가야의 수도였던 만큼 가야시대 무덤 형태를 한 고분이 1만기나 남아 있다. 그 중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이 볼 만하다. ▲ 석빙고 공기의 대류현상을 이용해 얼음을 천천히 녹게 한 시설물. 송현동에 있다. 겨울철 저장해 놓은 얼음이 7∼8월 한여름까지 녹지 않았다고 한다. 공기를 식히는 역할을 담당한 원통형의 ‘홍예’ 등 건축물 자체가 아름답다. 미리 군청에 연락하면 내부를 둘러볼 수 있다. ▲ 관룡사와 용선대 화왕산군립공원에 자리한 관룡사는 신라시대 고찰. 관룡사에서 20분 남짓 떨어진 용선대도 잊지 말고 찾아볼 것. ▲ 산토끼 노래비 동요의 대명사 ‘산토끼’는 1930년 이방면 이방초등학교에 근무하던 이일래 선생이 작사·작곡했다. 이방초등학교 교정에 산토끼 노래비가 있다. 창녕군청 (055)530-2520, 창녕환경운동연합 532-7856.
  • [여자프로농구] ‘레알 신한’ 9연승 질주

    ‘레알 신한’이 9연승을 달렸다. 신한은행은 20일 천안에서 열린 여자프로농구 국민은행과의 경기에서 정선민(21점 10리바운드), 이연화(11점 3점슛 3개) 등의 고른 활약에 힘입어 국민은행을 74-54로 꺾고 9연승,1위를 지켰다. 국민은행은 3연패로 5위 신세계에 승차없이 승률에서만 앞서 간신히 4위를 유지했다. 신한의 무서운 집중력은 23-32로 9점을 뒤진 채 시작한 3쿼터에서 나타났다. 정선민이 공격과 수비에서 골밑을 완전히 장악하고 진미정(7점)의 외곽포로 3쿼터를 되레 48-39,9점차로 뒤집은 채 마친 신한은행은 4쿼터 하은주(7점)까지 가세해 초반 72-46까지 앞서갔고, 주전 전원을 빼는 여유를 보이며 낙승했다. 국민은행은 3쿼터 8분 여 동안 4점으로 꽁꽁 묶여 코앞에 닥친 듯했던 승리를 놓쳤다. 김영옥(9점)이 최고 득점 선수일 정도로 야투가 남발된 것이 패인이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아버지의 장화 발자국

    아버지의 장화 발자국

    칠흑같이 어두운 겨울밤, ‘삐걱’ 하고 대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단잠을 주무시던 어머니는 아버지의 헛기침 소리에 벌떡 일어나 “이제 오는교?”라며 마중했다. 방문을 열자 눈은 마당을 하얗게 덮었고 아버지의 장화 발자국만 또렷이 남아 있었다. “아이고! 또 넘어졌는교? 괜찮은교?” “실산 모퉁이를 돌아오는데 길이 안 보이는 바람에 그만….” 아버지의 무릎과 어깨 언저리에는 아직도 눈길에 넘어진 자국이 남아 있었다. “아, 눈 올 때는 그냥 맨몸으로 오라고 그렇게 얘기했는디, 다리도 옳지 않은 사람이….” 아버지가 퇴근하실 때는 항상 시커먼 얼굴에, 동발 서너 개가 어깨에 실려 있었고 손에는 도시락 보자기가 들려 있었다. 그것은 당시 우리에겐 낯설지 않은 가장 친근한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지고 오신 동발은 막장에서 쓰다 남은 나무토막으로 유일한 우리 집 땔감이었다. 아버지는 막장에서 채탄 작업을 하시는 광부였다.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그 일을 했다고 하니 30년은 훨씬 넘게 하신 모양이다. 집에서 20리 남짓 떨어진 곳으로 매일 걸어서 출퇴근을 하셨고 야간 일이 돈이 더 된다며 밤을 낮 삼아 일하셨다. 몸이 피곤하고 감기 기운이 있을 때면 약 대신 흑설탕을 양은 냄비에 타서 훌훌 마시는 것이 전부였다. 오늘도 어머니가 타주신 흑설탕물을 드셨고 나도 아버지가 드시다 남은 달콤한 설탕물을 마시고 잠이 들었다. 동지가 지난 이튿날, 밤 10시가 넘었을 무렵 이웃집 아저씨로부터 전갈이 왔다. 아버지는 아직 일이 좀 남아 있어 내일 아침에 퇴근한다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급히 밤참 도시락을 쌌고 몸이 불편하여 못 가니 나보고 다녀오라고 하셨다. 어두컴컴한 밤, 신작로에는 아직 간간히 눈이 내리고 있었고 어제 내린 눈이 얼어붙어 발을 옮기는 것이 여간 힘들지 않았다. 꽁꽁 얼어붙은 타이어 자국을 뽀드득 뽀드득 밟으며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겼다. 오구니재를 지나 청벽에 다다르자 전봇대 사이로 ‘휘휘’ 하며 세차게 불어대는 바람소리가 귀신의 휘파람 소리 같아 발걸음을 더듬거리게 했고 절벽에서 간간이 돌이 굴러 떨어질 때면 머리끝이 하늘로 치솟았다. 한 시간 남짓 걸었을까? 저 멀리 희미한 불빛이 보였다. 작업장에 도착해보니 모두가 시커먼 얼굴에 똑같은 헬멧을 쓰고 있어 누가 누군지 분간할 수 없었다. 한참을 기다리자 삐그덕 삐그덕 레일 소리가 들리더니 석탄을 싣고 나오는 활차 한 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서너 명이 함께 밀고 있었는데, 다리를 절고 있는 사람도 보였다. 분명 아버지였다. 막장에서 무너진 돌에 맞아 다리가 골절되어 늘 절고 다니셨고 눈이라도 오면 곧잘 넘어지셨던 아버지. 그래도 왼쪽이 다쳐 천만다행이라며 하루도 일을 빠지시는 날이 없었다. “아버지!” 부르며 가까이 가자 “추운데 여까지 우에 왔노? 집에 가서 묵으면 되는데. 빨리 가그라” 하며 도시락을 받아 드셨다. 뒤돌아선 아버지의 등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나는 멀찍이 떨어진 전등불 아래서 시커먼 얼굴로 도시락을 드시는 아버지를 보았다. 다른 몇몇 사람들은 집에서 가져온 음식을 난로에 끓여 먹는데 아버지는 한쪽 귀퉁이에서 온기가 가신 찬밥에 김치 몇 조각으로 식사를 하셨다. 내가 볼까 애써 감추려 하시던 아버지의 모습에 눈물이 핑 돌아 한참 동안 허공만 바라보았다. 그날 밤 아버지 얼굴을 떠올리며, 달그락 달그락 밤길을 걸어오니 하나도 무섭지 않았다. 체구도 키도 작은 우리 아버지, 남을 탓할 줄도 시기할 줄도 모르고 동네의 궂은일을 도맡아 하셨던 아버지는 동네에서 늘 부지런함의 표상이었다. 아버지의 삶의 공간은 우리 동네와 일하던 막장, 읍내 시장이 전부였다. 학교에서 아버지 직업을 조사하면 ‘광부’라고 써가는 것이 싫었고, 시커먼 얼굴로 동네 앞을 지나실 때 꼬마들이 돌을 던지며 놀리는 것도 싫었다. 그러나 이젠 잔소리도 들을 수 없고 그 모습도 볼 수 없게 되었다. 불혹이 넘은 지금, 눈 내리는 겨울밤이 오면 아버지가 너무 보고 싶다. 우리 집 대문이 ‘삐걱’하고 열리며 동발을 한 아름 메고 들어오실 것만 같다. 그 작업장으로 달려가 힘껏 안아보고 싶다. 아버지 팔짱을 끼고 하얀 눈길을 따라 밤새껏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밤길을 따라 굽이굽이 새겨진 장화 발자국은 저 눈꽃만큼이나 아름다운 아버지의 인생이었다. 2008년 1월
  • 경인 운하 후보지 굴포천 방수로 공사현장 가보니

    경인 운하 후보지 굴포천 방수로 공사현장 가보니

    “4㎞만 더 뚫으면 한강입니다.” 온 나라의 관심이 한반도 대운하에 쏠린 가운데 17일 원조 운하격인 인천 굴포천 방수로 공사 현장을 찾았다. 신공항고속도로 옆으로 나란히 뻗어 있는 굴포천 방수로는 영하 10도를 오르내리는 강추위에 꽁꽁 얼어 있었다. 하지만 깊은 물길과 높은 제방은 방수로라기보다는 거대한 운하의 모습이었다. ●예산 문제 등으로 공사 중단 상태 현재 진행 중인 공사는 2단계.1단계에서 밑바닥 기준 너비 20m로 뚫은 방수로를 80m로 확장하는 것으로 지난해 60m로 확장했고, 나머지 20m의 확장공사를 남겨두고 있다. 방수로 상단을 기준으로 하면 폭이 140m로 청계천의 2∼7배 너비이다. 국민들의 관심과 달리 굴포천 공사는 중단돼 있었다. 업계관계자는 “예산 문제 등으로 공정률이 40%에도 못 미친다.”면서 “오는 2∼3월 예산이 배정돼 공사를 시작해도 올해 말 완공여부도 불투명하다.”고 말했다. 굴포천 방수로 공사는 당초 김포 일대 상습 침수지역의 홍수를 막기 위해 시작했다. 그러나 이왕이면 물류 및 관광기능을 수행하는 운하가 낫지 않으냐는 의견에 따라 운하로 변경했다. 이에 따라 현대건설 등이 1996년 민자사업으로 운하사업을 제안했지만 환경단체 및 주민들의 반발 등으로 결국 운하건설 사업은 보류되고, 방수로 공사만 수행하게 됐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이 한반도 대운하를 공식화하면서 경인운하를 보는 눈이 달라졌다. 경인운하가 완성되면 경부대운하가 서해로 이어지는 데다가 조기 완공이 가능해 한반도 대운하의 성공여부를 가늠할 수 있는 시범사업 성격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는 운하사업 착수 했으면…” 굴포천 방수로 공사 구간은 영종대교 동단에서 인천 상야동까지 14.1㎞로 뻗어 있다. 차로는 10여분 거리. 이곳에서 한강쪽으로 4㎞만 파면 18㎞의 경인운하가 탄생한다. 상야동에서는 멀리 한강이 보였다. 박한욱 경인운하지역협의회장은 “4㎞만 뚫으면 한강과 맞닿는데 사업이 지지부진하다.”면서 “올해는 운하사업에 착수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폭 80m면 4000t급 선박 두 척이 교차운항할 수 있다.”면서 “기존 구간의 확장과 잔여 구간 4㎞ 연장 등의 공사를 마치는 데 2년이면 충분하다.”고 말했다. 경인운하 사업은 국무조정실에서 다룬다. 환경영향평가 등은 통과됐지만 경제성이 문제.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변했다. 방수로 시점부에는 청라지구가 개발되고 있고, 서울시는 한강에 물류와 관광기능을 추가하는 한강르네상스 계획을 세웠다.50㎞ 떨어진 개성까지 뱃길을 열 수도 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올해 말 경인운하 착공 계획을 발표했다. 인천 김성곤기자 sunggone@seoul.co.kr
  • [李 당선인 신년회견] 신년회견 분야별 내용분석

    [李 당선인 신년회견] 신년회견 분야별 내용분석

    새 정부가 ‘경제 살리기’를 위해 재정지출 확대 대신 공격적 규제완화 ‘카드’를 꺼낼 전망이다. 특히 외환위기 이후 지속적인 규제 개혁을 통해 규제 완화의 틀은 상당부분 갖춰져 있는 만큼 새 정부는 기업들의 ‘체감도’를 높여 투자를 이끌어내는 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출자총액제한제도 폐지, 금융·산업분리 완화 등을 우선 추진 과제로 꼽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은 4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투자를 가로막는 규제부터 우선적으로 정비해야 한다.”면서 “규제일몰제와 네거티브 시스템 도입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규제일몰제란 새 규제를 도입할 때 존속기한을 미리 정해 기한이 지나면 자동 폐기하는 제도다. 또 네거티브 시스템이란 규제를 만들 때 금지되는 사항 외에 나머지는 원칙적으로 허용하는 방식으로, 포지티브 시스템의 반대 개념이다. 이는 이 당선자가 대폭적인 규제 완화를 통해 4∼5%로 ‘저성장의 늪’에 빠져 있는 잠재성장률을 7%선으로 끌어올리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이 당선인은 대신 “(경제성장률을 높이기 위해) 재정지출을 무리하게 늘린다든가, 부작용이 있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이른바 ‘747 공약’(연평균 7% 성장,10년 뒤 1인당 국민소득 4만달러 달성, 세계 7대 강국 진입) 달성 여부에 집착, 단기부양에 나설 경우 물가상승 등 부작용이 더 클 수 있다는 우려가 반영된 것이다. 이 당선인은 “경제성장률 7%는 임기 5년, 길게는 10년을 중심으로 내놓은 비전”이라면서 “올해 경제성장률은 6%는 될 수 있고, 물가상승률은 3∼3.5% 사이에서 잡도록 노력하겠다.”고 언급, 이를 뒷받침했다.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양도세 인하 새달 처리… 거래 숨통” 새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가격안정과 거래 활성화라는 양대 축 사이에서 ‘줄타기’가 이뤄질 전망이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이 14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주택 가격이 현재 가격 이상으로 오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전제한 뒤 “주택거래 침체는 경제 전체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어 활성화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거래에 숨통을 틔워줄 양도소득세 인하는 빠르게 진행될 전망이다.2월 국회에서 법률 개정안을 상정·처리하겠다는 방침을 굳혀 속도가 붙고 있다. 이에 따라 장기보유 1가구1주택자에 대한 양도세 감면폭이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3년 이상 보유시 매년 3%포인트씩 최대 45%까지 양도소득을 공제해주는 장기보유특별공제율을 최대 80%까지 확대하는 방안이 유력하다. 양도세 부담으로 주택을 팔지 못한 장기보유자들의 매물을 이끌어내 집값 하락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 당선인은 또 “취득·등록세 완화 문제도 조만간 16개 시·도지사와의 면담에서 추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취득·등록세 완화에 따른 지방재정 감소분을 중앙정부가 보전해줄 경우 급물살을 탈 가능성도 높다. 반면 투기수요를 부추겨 가격 불안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는 종합부동산세 완화 등은 시장안정을 전제로 추진 여부가 결정될 전망이다. 이 당선인은 “종부세는 부동산경기를 파악해 올 하반기에 검토할 것”이라고 못박았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방향은 바람직하지만, 효과는 제한적이라는 게 중론이다. 현재 1가구1주택자의 경우 3년 이상 보유(수도권은 2년 거주)하면 양도세가 면제되는 만큼 장기보유특별공제율 확대에 따른 수혜대상은 공시가격 6억원 초과 주택을 3년 이상 보유한 사람으로 제한되기 때문이다. 함영진 부동산써브 연구실장은 “고가주택 기준을 현행 6억원에서 9억원으로 상향 조정하거나,2주택자의 양도세 중과 대상을 축소하는 등 추가적인 대책이 뒷받침돼야 양도세 등의 인하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수도권 규제보다 지방 지원 위주로” 지방경기를 활성화하기 위한 ‘첫 단추’ 역할은 지방의 투기지역·투기과열지구 해제 작업이 맡을 것으로 기대된다. 또 그동안 꽁꽁 얼어붙었던 수도권 규제에도 ‘훈풍’이 불 전망이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은 14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지방은 미분양주택이 10만가구에 육박할 만큼 거래가 중단돼 있다.”면서 “지방에 남아 있는 투기과열지구를 풀어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투기지역과 투기과열지구는 지난해 미분양사태가 잇따르자 선별적으로 해제 조치됐다. 그러나 투기지역의 경우 충남 천안시·아산시와 울산 4개구 등 6곳, 투기과열지구는 부산 해운대구와 울산 남구·울주군 등 3곳이 여전히 묶여 있다. 투기지역·투기과열지구에서 해제되면 분양권 전매와 대출 규제 등이 완화돼 주택 구입이 쉬워진다. 하지만 부동산 전문가들은 투기지역·투기과열지구 해제만으로는 미분양주택을 해소하는 데 역부족이라고 지적한다. 해제 조치는 특정 지역에만 제한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반면, 전체적인 지방 주택시장은 이미 ‘공급과잉’ 상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당선인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추가 대책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언급이 없었지만, 지방경기를 살리기 위한 다양한 제도적 장치들이 뒤따를 것으로 보인다. 같은 맥락에서 이 당선인은 “수도권보다 지방이 더 많은 혜택이 되는 정책을 펼 필요가 있다.” “지방이 수도권보다 더 나은 조건을 만들겠다.” 등의 표현을 통해 후속 대책이 마련될 가능성도 시사했다. 이 당선인은 또 “특정 지역을 규제해서 다른 지역에 도움을 주는 정책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혀 규제·억제 일변의 수도권 정책에도 손질을 가할 것으로 관측된다. 따라서 1994년부터 수도권에 적용하고 있는 공장총량제 등에 대한 완화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다만 이 당선인은 “당장 수도권 규제를 완화하겠다는 것은 아니다.”면서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따라서 ‘선(先) 지방경제 활성화, 후(後) 수도권 규제완화’의 수순을 밟을 것으로 전망된다.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모든 절차 다 거쳐… 일방처리 안해”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이 자신의 대표 공약인 ‘한반도 대운하’에서 한발 빼는 걸까. 이 당선인은 14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대운하 사업은 100% 민자사업으로 정부가 일방적으로 할 수 없다.”며 “정부로서는 스케줄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정부는 민간 투자자들이 검토해 제안이 들어올 때 사업 타당성 검토나 환경영향 평가 등 완벽한 절차를 거쳐서 만들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 당선인은 여론수렴 과정의 중요성도 거듭 강조했다.“원칙적으로 국민적 납득과 합의가 매우 중요하다. 청계천 복원 때도 많은 반대입장이 있었지만 4000번이 넘는 만남으로 설득했다. 앞으로 민자 사업으로서 정부는 충분한 검토를 하면서 해 나간다는 것을 이해해 달라.”고 말했다. 그동안 “국민 여론을 수렴하겠다.”고 하면서도 사업 추진을 기정사실화해 온 것과 비교해 온도차가 감지된다. 이 당선인과 별개로 인수위도 당초 정부 예산으로 사업을 추진하겠다던 호남운하와 충청운하에 대해 추가 검토가 필요하다는 뜻을 밝혔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강승규 부대변인은 “100% 민자사업은 경부운하 사업을 지칭하는 것”이라며 “호남 운하와 충청 운하 부분에 대해서는 공약에서 재정(정부예산)으로 추진한다는 부분이 있지만 이 부분도 추가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민간투자를 강조하고 나선 이 당선인측의 이같은 기류 변화는 무엇보다 4월 총선이라는 정치 일정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총선을 앞두고 대운하가 정국 쟁점으로 부각되는 것이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데 한나라당과 공감을 이뤘다는 얘기도 나온다. 김지훈기자 kjh@seoul.co.kr ■“자사고 100개 만들면 사교육 줄 것”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은 대학의 자율적인 학생 선발과 자율형 사립고 100개 설립 등 교육개혁에 대한 의지를 다시 한번 밝혔다. 이 당선인은 자사고 설립에 따른 사교육비 증가 가능성에 대해 “전국에 자사고 6개를 만들고 거기 들어가려고 수많은 학생들이 과외를 했다.”면서 “자사고 100개를 교육이 취약한 농촌과 중소도시에 만들면 학생들이 들어가는 게 어렵지 않다.”고 밝혔다. 자사고에 대한 수요를 고려해 충분한 ‘공급’이 이뤄지면 사교육이 줄고 교육의 질도 높아진다는 설명이다. 이 당선인은 또 “대학에 입시 자율을 주더라도 본고사를 부활시키지 않을 것”이라며 본고사 부활에 대한 우려를 일축했다. 그는 “내신을 살리려 수능 등급제를 했고, 그래서 수능의 변별력이 없어지니 대학이 논술을 하는 것”이라면서 “대학에 변별력만 주면 논술고사를 어렵게 할 필요가 없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급격한 교육의 자율성 확대에 대한 우려도 있다. 이영기 변호사는 “장기적으로는 자율화의 방향이 맞지만 우리 나라의 자율화는 성적에 따른 줄세우기로 나타났다.”면서 “대학 스스로 합리적으로 변화할 수 있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자사고 100개 설립에 대해 “그 안에 못 들어가면 열등생 취급을 당하기 때문에 그 범위 안에 들기 위해 광범위한 사교육 열풍이 불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상위권 학생들 간의 자사고 및 특목고 입학 경쟁이 중상위권학생들로 확대되는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한상우기자 cacao@seoul.co.kr
  • 분양시장에 훈풍 불까

    아파트 분양 시장이 살아날까. 주택 공급 규제가 풀릴 것으로 예상되면서 아파트 분양 시장에 숨통이 트일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미분양 적체로 고심하는 건설업체들은 벌써부터 분양 시장에 훈풍이 불어올 것을 기대하는 눈치다. 하지만 부동산 전문가들의 전망은 다르다. 군불(규제완화)이 아파트 분양 시장을 따뜻하게 하는데 에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내다봤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 지방 도시의 투기과열지구·투기지구 해제 방침을 내놨지만 이 정도로는 꽁꽁 얼어붙은 분양 시장을 녹이는 데 한계가 따를 것으로 보고 있다. 분양 시장이 쉽게 살아나지 않을 것으로 보는 이유는 다양하다. 우선 투기과열지구나 투기지구 해제에 따른 반짝 효과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미 미분양 적체를 해소하기 위해 지난해 지방 도시의 투기과열지구를 풀어 큰 효과를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다. 투기지역도 아파트가 대량 공급되고 있는 천안, 아산, 울산을 빼고는 풀렸다. 수도권까지 규제완화가 풀리면 청약시장에 훈풍이 불겠지만 투기가 우려돼 정부가 극약처방은 내놓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투자 수요 감소도 분양 시장 침체를 장기전으로 끌고 간다. 실수요자 위주의 청약만으로는 분양 시장을 달구는 데 한계가 따른다. 실수요자 위주의 주택 청약제도 기조가 변하지 않는 한 아파트 분양시장의 훈풍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김태호 부동산랜드 사장은 8일 “주택 공급이 늘면서 무주택자가 줄어 실수요자 위주의 청약만으로는 꽁꽁 얼어붙은 분양시장을 녹이지 못할 것 같다.”고 내다봤다. 공급 과잉도 원인이다. 투자 수요는 물론 실수요자도 움직이지 않는 상황이어서 지방 도시마다 쌓여 있는 미분양 물량과 추가 공급분을 소화하기에는 시장이 너무 좁다. 박원갑 스피드뱅크 부사장은 “지역 경제가 살아나지 않는 한 지방 미분양 아파트 소진은 어려울 것 같다.”고 전망했다. 양도소득세·종합부동산세 완화 약속도 당장 이뤄지지는 않을 전망이다. 대출 규제·금리 인상도 신규 청약 걸림돌이다. 전문가들은 대부분 양도세와 종부세 완화 방안이 나와야 시장이 움직일 것으로 예상했다. 청약제도는 손을 대면서도 대출 규제는 여전히 쥐겠다는 정책 또한 투자 수요를 억제할 것으로 보인다. 건설업체들의 고분양가 고집도 수요자들의 발길을 돌리게 하고 있다. 류찬희기자 chani@seoul.co.kr
  • 사카슈빌리 그루지야 대통령 재선 확정

    ‘장미혁명’의 주역이 벼랑 끝에서 되살아났다. 미하일 사카슈빌리(41) 전 대통령이 5일(현지시간) 치러진 그루지야 대선에서 52.8%의 득표율로 재선에 성공했다고 BBC 등 외신들이 6일 전했다. 지난해 11월 반정부시위 격화로 사임 압력이 거세지자 ‘조기 대선’ ‘사임후 재선 도전’이란 승부수를 띄워 기사회생한 것이다. 그러나 그의 앞길은 결코 장밋빛만은 아니다. 곤두박질치는 경제, 친미정책에 따른 ‘옛 종주국’ 러시아의 강력한 압력과 견제 등으로 수월찮은 앞길이 기다리고 있다. 러시아는 국경을 접한 ‘유럽의 길목’이자 원유, 가스 등 자원부국인 그루지야가 노골적인 친미 국가로 행세하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 없다며 별러 왔다. 게다가 사카슈빌리는 임기 중 유럽연합(EU),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입 추진 등 확연한 친미 정책을 펼쳐 러시아와의 관계를 꽁꽁 얼렸다. 러시아는 그루지야산 식량의 수입 금지로 목을 죄고 있다. 국내 유권자들의 싸늘한 시선과 돌아선 마음을 어떻게 돌려놓을지도 사카슈빌리의 과제다. 인구 450만명 가운데 30만명이 실업자고 100만명이 빈곤층일 정도로 궁핍한 상황이다. 게다가 그의 독선적인 정국운영 태도는 “옛 소련연방 가운데 처음으로 민주시민혁명으로 정권교체를 이룩했다.”는 찬사를 4년만에 사라지게 만들었다. BBC는 “사카슈빌리는 민주주의와 경제번영을 약속했지만 돌려준 건 독재뿐”이란 유권자들의 자조를 전했다.‘국민의회’의 레반 가체칠라드제를 비롯한 야당세력도 이번 선거를 부정선거로 규정하고 항의 시위를 확대하고 있다. 그가 반대여론을 무마시키고 민주화와 경제회생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지, 민주혁명의 참뜻을 구현해 나갈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장미혁명 2003년 시민들의 민주화 시위로 피흘리지 않고 정권교체를 이룩한 그루지야의 시민혁명. 옛 소련연방 가운데 최초의 민주·시민혁명으로 꼽힌다. 당시 예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 전 대통령 정부의 선거 부정을 규탄하는 시민들은 장미를 들고 시위에 나섰다. 혁명주역이던 사카슈빌리는 그 뒤 열린 선거에서 96%의 압도적 지지로 대통령직에 올랐다.
  • 막오른 대선… 3일 첫 후보 경선 ‘네거티브 합종연횡’

    |워싱턴 이도운특파원|미국 민주당과 공화당의 대통령 후보 경선을 하루 앞둔 2일 새벽. 아이오와 주는 며칠째 계속된 한파로 꽁꽁 얼어붙었다. 주도(州都)인 디모인 시의 기온은 영하 15도까지 떨어졌다. 그러나 매서운 추위와 바람도 ‘대권’을 향해 달리는 후보와 선거운동원들의 발을 묶지는 못했다. 선거전이 치열해지면서 막판에 경쟁 후보를 비난하는 ‘네거티브’ 선거운동도 판치고 있다. 공화당의 미트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 캠프는 아이오와에서 선두를 다투는 마이크 허커비 전 아칸소 주지사를 비난하는 광고를 지역 방송에 냈다.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이 허커비의 외교 정책을 “터무니없다.”고 폄하했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라이스의 발언은 허커비가 외교전문지 ‘포린 어페어스’를 통해 조지 부시 행정부의 국제문제 처리 스타일을 오만하다고 비판한 것에 대한 반응으로 밝혀졌다. 반면 허커비 캠프는 “롬니가 부정직하다.”고 공격하는 광고를 방송하려다가 취소했다. 그러나 광고 내용은 허커비의 기자회견을 통해 언론에 전달됐다. 허커비 캠프는 제작된 광고가 유튜브 등 인터넷에서 퍼져나가는 것을 기대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후보간의 합종연횡 움직임도 보인다. 민주당 경선 후보인 데니스 쿠치니치 하원의원측은 아이오와에서의 경선에서는 큰 기대를 하지 않는다면서 “아이오와에 한해서 오바마 후보를 지지해줘도 좋겠다.”고 밝혔다. 또 지난 2000년 녹색당 후보로 출마, 민주당 앨 고어 후보 낙선의 한 요인이 됐던 시민운동가 랠프 네이더는 에드워즈 의원 지지를 선언했다. 양당 모두 치열한 접전이 벌어지는 상황을 반영하듯 1일(현지시간) 발표된 여론조사도 결과가 엇갈렸다. 아이오와 최대 지역신문인 디모인 레지스터의 조사에 따르면 민주당에서는 오바마 의원이 32%의 지지율로 경쟁자인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25%)과 에드워즈 전 의원(24%)을 7%포인트 이상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화당의 경우 허커비 전 지사가 32%의 지지율로 롬니 전 지사(26%)를 6%포인트 앞섰고, 존 매케인 상원의원 13%, 프레드 톰슨 전 상원의원 9%, 루돌프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 5% 순이었다. 그러나 CNN과 오피니언 리서치가 이날 발표한 공동 여론조사 결과는 민주당의 경우 힐러리가 33%로 선두였고, 오바마는 31%, 에드워즈 22%로 집계됐다. 공화당에서는 롬니가 31%로 1위, 허커비는 28%로 2위였고, 톰슨은 13%, 매케인 10%, 줄리아니는 8%였다. dawn@seoul.co.kr
  • [서울신문 신춘문예-희곡당선작] 별방/이양구

    [서울신문 신춘문예-희곡당선작] 별방/이양구

    등장인물 남자, 여자, 아들, 모(母), 부(父) 배경 단풍이 절정에 이른 가을, 오후, 외딴 산 속, 폐가, 마당 한가운데 튀어나온 바위 하나, 지붕과 마당·헛간에 낙엽 1 남자가 마당으로 들어온다. 고요히 폐가를 바라본다. 천천히 걸어가서 봉당에 앉는다. 잠시 시간이 흐르고 여자와 아들이 들어온다. 여자 : 아이구 다리야… 이 먼 데를 오자고…. 남자 : …. 아들 : 평소에 운동 좀 하세요. 많이 걸어야 건강하대잖아요. 요샌 웰빙이라고 다들 일부러도 많이 걸어요.(다리를 주물러 주며) 미국에서도 저녁만 되면 파크에 조깅하러 나온 사람들 많아요. 세상이 아무리 살기 좋아지면 뭐해요, 내 몸이 건강해야지. 여자 : 우리 아들 미국 갔다 오더니 유식해졌네. 그래도 건강하자고 이 산골을 오니? 남자 : …. 아들 : 좋은데요… 아버진 여기에서 초등학교까지 다니신 거예요? 남자 : …. 여자 : 그 놈의 별방, 별방, 술만 먹으면 말 안 하디? 아들 : 별방… 아버지 회사 이름… 이 동네 이름에서 따오신 거예요? 남자 : …. 여자 : 뭐 좋은 기억이라고… 이 산 구석에서 살았던 기억을 잊고 싶지 않대나 뭐래나. 저래 뵈두 니 아버지가 감상적인 데가 있다. 아들 : 자기 뿌리를 잊지 않는 건 좋은 거죠. 전 미국에 가 있으니까 도리어 조국에 대해서 생각하게 돼요. 나를 있게 해준 것에 대한 감사라고 해야 하나… 하여튼요. 엄마는 어린 시절이 그립지 않으세요? 여자 : 똥구멍 찢어지게 가난했던 시절이 뭐 그리울 게 있어. 그런 건 빨리 잊어버려야지. 먹고 살기도 바쁜데. 쓸 데 없는 생각 하지 말고 공부나 열심히 해. 아들 : …아버지. 별방이 무슨 뜻이에요? 남자 : …. 아들 : 별… 방… 떨어져 있다는 뜻인가? 어쨌든 느낌이 좋아요. 왠지 별이 내려와 쉴 것 같은… 아랫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이고… (단풍 한 장 줍는다) …아버지. 아까부터 왜 그렇게 말이 없으세요? 무슨 걱정이라도…. 남자 : …조금 피곤해서. 여자 : 그렇게 한 번 와 보자더니. 와 봐야 뭐 있어. 그냥 폐가지. 근처에서 놀다 가자니까. 기어이 끌고 와서는… 다리만 아프지.…어머니도 어떻게 이런 데서 사셨을까…. 아들 : 할머니 할아버지 살아 계셨으면 같이 오고 좋았을 텐데…. 남자 : …. 여자, 뒤란으로 간다. 여자 : (소리) 웬 우물이래… 어머 대추 좀 봐. 아들, 뒤란으로 들어갔다 나온다. 손에는 대추 몇 알. 아들 : 이것 좀 드세요. 달아요. 남자 : …. 남자, 먹는다. 아들 : 달죠? 남자 : 그래…. 아들 : 어렸을 땐 많이 드셨겠네요. 남자 : 가을마다…. 여자, 나온다. 가방을 뒤진다. 아들 : 뭐 찾으세요? 여자 : …. 아들 : …놔두세요. 다람쥐들 먹게. 여자 : 두면 뭐해, 어차피 썩을 거. 아들 : 엄마…. 여자 : 시장 가서 사려고 해 봐. 얼마어친데. 여자, 두리번거리더니 막대기도 찾아서 뒤란으로 간다. 아들 : 엄마… 짐승 먹게 둬요…. 아들, 뒤란까지 갔다가 돌아온다. 남자 :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휴가 왔습니다. 아들이 미국 유학 갔다가 잠시 귀국해서요. 가족끼리 단풍 구경 왔습니다. 예… 우리가 고비 한 두 번 넘겼나요… 곧 결제하겠습니다. 아들 : 누구…? 남자 : 거래처. 결제해 달라고. 아들 : …요새 건설 경기 많이 안 좋다던데. 남자 : 밥걱정은 안한다. 아들 : …중견 건설회사 몇 개 무너졌다고. 남자 : 아버진 아직 괜찮아…. 아들 : …. 아들, 바위로. 바위를 발로 툭툭 찬다. 아들 : 마당 한가운데 바위라니… 흉물스럽게. 이거 왜 안 뽑았어요? 남자 : 생각보다 뿌리가 깊어. 아들 : 뽑아 봤어요? 남자 : 할아버지가. 너무 깊어서 다시 덮었대. 아들 : 어디… (뽑으려고 한다. 바위는 끄떡없다) 정말이네. 남자 : …. 아들, 바위에 걸터앉는다. 침묵 아들, 뭔가를 발견했다. 헛간 쪽으로 걸어간다. 동화책을 줍는다. 아들 : (툭툭 턴다) 동화책이에요… 전래동화.(넘겨본다) 아버지 건데요….5의 1 박상철…. 남자, 다가온다. 아들 : 기억나요? 남자 : …. 아들 : …. 남자 : …할아버지가 사다 주신 거야. 아들 : …. 남자 : …. 남자 봉당에 앉는다. 아들도 옆에 앉는다. 아들, 책을 읽는다. 뒤란에서 대추 터는 소리. 아들 : …밑줄이 있어요. 남자 : …. 아들 : (읽는다) 바위를 들추자 눈앞이 훤히 트이며 별세계가 펼쳐졌다… (뒤진다) 여기도 있어요. 눈을 떠보니 어느새 별세계에 와 있었다… 별세계… 별방… 별세계란 뜻이에요? 남자, 동화책을 받아서 넘겨본다. 아들, 바위로. 아들 : 어디, 다시 한 번. 힘을 준다. 꿈쩍 않는다. 남자가 온다. 아들 : 해보시게요? 남자, 바위로. 남자가 힘을 주려고 할 때 여자의 비명. 여자가 뛰어온다. 아들, 여자에게. 아들 : 왜요? 여자 : 쥐…. 아들 : 난 또…. 남자 : …. 여자 : 흰쥐였어…. 남자 : …. 아들 : 흰쥐가 이런 데? 남자 : …. 여자 : 여보. 남자 : …. 여자 : 뭐 해요? 아들 : 그게… 동화책. 여자 : 동화책? 아들 : 아버지가 어렸을 때 읽은 동화책에… 바위를 들추면… 남자가 바위를 힘껏 들춘다. 갑자기 쏟아져 나오는 백색의 햇살. 차차 빛이 사라지며 시간과 공간이 응고된다. 남자 : (소리) 밤마다 꿈을 꿨어. 자고 있으면 누가 날 자꾸 깨워. 일어나 보면 흰쥐가 한 마리 서 있어.…따라가 보면 하얀 길이야. 사위는 캄캄한데 멀리서 불빛이 한 점 보여… 어릴 때 학교 갔다 늦게 올 때면 엄마가 처마 밑에 달아놓고 나를 기다리던 불빛 같아… 엄마가 있나 싶어 걸어가면 자꾸만 내가 녹아내려서… 더 걸을 수가 없었어… 내 가슴 한 복판에 얼음처럼 꽁꽁 얼어 있던 것이 자꾸만 녹아내려서… 그 자리에 쓰러져 버렸어… 눈을 뜨면 나는 이 바위 앞에 와 있었어… 여기서 누가 날 부르는 것 같아서 오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어…. 남자, 쓰러진다. 암전 2 밤 같은 장소 남자가 바위 앞에 쓰러져 있다. 흰 옷을 입은 모가 방에서 나온다. 모 : …누구? 남자 : …. 모, 다가온다. 모 : …누구세요? 모, 깨운다. 남자, 정신을 차린다. 모 : …괜찮으세요? 남자 : 여보…? 모 : …. 남자 : 승우는…. 모 : …. 남자 : …우리 아들 못 보셨나요? 방금까지 여기 있었는데…. 모 : 누구… 같이 오셨어요? 남자 : 예… 아들하고 아내하고…. 다들 어디 갔나요? 모 : 못 봤어요. 소리가 나서 나와 보니까… 이렇게…. 남자 : 소리가 나서…. 모 : 예… 큰 소리가 났어요…. 남자, 주위를 둘러본다. 남자 : 그럼… 여기 계셨단 말인가요? 모 : 예… 우리 집이니까…. 남자 : 우리집… 그럼 아직도 사람이… 분명히 폐가였는데…. 모 : 폐가였어요. 그런데 바깥양반이…. 남자, 주변을 돌며 찾는다. 남자 : (큰소리로) 여보… 승우야…. 모, 화급히 남자에게 다가가서 모 : 애기가… 남자 : …. 모 : 애기가 깨요…. 남자 : …. 모 : 방에 애기가 있어요. 남자, 방문을 열어본다. 남자 : …방금까지 여긴 아무도 없었는데…. 모 : (근심) 애기가… 남자 : 예…. 남자, 집밖으로. 돌아와서 뒤란으로 갔다가 다시 마당으로. 손에 대추 한 알. 대추알을 씹어본다. 남자 : 그대로야…. 남자, 돌로 간다. 뽑으려고 한다. 안 된다. 남자 : 이걸 들었는데… 이걸…. 다시 힘을 준다. 모 : 안 뽑혀요. 바깥양반도 뽑으려고 했다가… 뿌리가 너무 깊어서…. 남자 : …뿌리가 너무 깊어서…. 남자, 모를 뚫어지게 바라본다. 모 : …왜? 남자, 갑자기 무슨 생각이 난 듯 헛간으로. 뒤란으로. 다시 돌아온다. 다시 한 번 모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본다. 봉당에 가서 쓰러지듯 앉는다. 남자, 고개를 숙인 채 긴 침묵. 모, 부엌으로 가서 냉수 한 그릇 떠 온다. 모 : 이거…. 남자, 모를 빤히 바라본다. 냉수를 받아서 마신다. 한동안 말이 없다. 남자 : 이 물 맛… 기억나요. 어떻게 잊겠어요…. 모 : …. 남자 : …흰쥐를 따라서 왔었어요…. 모 : …. 남자 : 밤마다… 여길 왔어요…. 모 : …. 남자 : 꿈을 꿨죠…. 모 : …. 남자 : 어쩌면 이것도 꿈일지도 모르죠…. 모 : …. 남자 : …믿지 못하시겠지만… 전 아주 먼 데서 왔어요…. 모 : 먼 곳… 어디? 남자 : …아주 먼 데요…. 모 : …. 남자, 모에게 그릇을 준다. 모 그릇을 가지고 부엌으로. 남자, 마당을 거닌다. 모가 나온다. 남자 : 아버지는… 아니, 바깥 분은요? 모 : …아직 산에요…. 남자 : 그러시겠죠… 오늘도 찬합에 술빵을 넣어서 가셨나요? 모 : 그걸 어떻게? 남자 : 달이 중천은 지나야 돌아오시겠죠…. 모 : …. 남자 : …당신은 상철일 재워놓고 처마밑에 앉아서 기다리셨을 테고…. 모 : 어떻게 우리 애 이름을? 남자 : …. 모 : …누구세요? 남자 : 절 보세요. 모 : …. 남자 : 자세히 보세요. 누굴 닮았는지…. 모, 남자에게 가까이. 남자의 얼굴을 유심히 본다. 모 : (떨림) 닮았어요… 아버님? 남자 : …그런가요? …아버지도 할아버지를 닮았을 테니까…. 모 : …. 남자 : …. 모 : 그렇지만 아버님은 돌아가셨어요… 형제도 없으시고…. 남자 : …. 모 : 누구세요? 남자, 마당을 걷는다. 남자 : …저도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겠어요. 이게 꿈이 아니라면… 아니, 꿈이라 해도… 당신이 지금 내 눈앞에 있고… 당신이 꾸는 꿈이든 내가 꾸는 꿈이든…. 모 : …. 남자 : …간절히 바랐어요. 꿈이어도 좋으니까… 꼭 한 번 어머니를 다시 만나고 싶다고요…. 남자, 모를 본다. 남자 : 늙으신 어머니 대신, 이렇게 젊은… 우리 어머니를 만나다니…. 모 : …. 남자 : …어릴 적 아버지가 사다 주신 동화책 속에나 나오는 얘기가… 애기 적 나를 키우는 어머니를 만나다니…. 남자, 바위로. 돌을 들추려고 한다. 바위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남자, 다시 힘을 준다. 모, 남자에게 다가온다. 모 : …그러니까, 당신이 내 아들이란 말인가요? 남자 : …어머니께서 오십 년 넘게,…십년 전에 돌아가셨으니까… 사십 년 넘게 키운 아들이… (다시 돌에 힘을 준다) …이걸 들추고…. 남자, 안간힘을 쓰다가 넘어진다. 모 : …. 남자 : …. 모, 남자를 본다. 침묵 모 : …밤마다 같은 꿈을 꿨어요…. 남자 : …. 모 : …놀라서 잠을 깨면… 포대기에 싸둔 애기가 사라지고 없었어요… 문밖에서 애기 울음소리가 났어요… 아직 걷지도 못하는 애기가 먼 길 다녀온 사람처럼 지친 어깨로 서 있었어요….…얼굴이 늙어 있었어요…. 남자 : …. 모 : 늙은 애기가… 밤마다 찾아와서… 잘못했다고, 잘못했다고… 빌었어요…. 말도 못하는 우리 상철이가…. 남자 : …. 모 : …어떻게 이런 일이…. 침묵 모 : …그게 사실인가요? 남자 : …. 모 : …상철이가 빌었어요… 용서해 달라고…. 남자 : …. 모 : …돈이 필요했다고.…아니면 식구들 데리고 자기가 죽었을 거라고…. 남자 : …. 모 : …우리 상철이가… 어떻게 나한테… 그렇게 끔찍한 짓을… 모, 손으로 입을 막는다. 모, 남자 옆에 쓰러지듯 앉는다. 침묵 모 : …애들은 몇이나 돼요? 남자 : …. 모 : …몇이나 돼요? 남자 : 하나…. 모 : …공부는 잘 해요? 남자 : …. 모 : …건강하고? 남자 : …. 침묵 모, 남자 쪽으로. 모 : …손 한 번만 잡아 봐도 돼요? 남자 : …. 모, 천천히 손을 내밀어 조심스럽게 손을 잡는다. 모 : …이상해요.…정말 내 아들인 것 같아요…. 모, 남자의 손을 더 따뜻하게 쓰다듬어 준다. 천천히 머리로, 어깨로. 남자, 벌떡 일어선다. 헛간으로. 도끼를 찾아서 쥔다. 남자, 방으로 뛴다. 모 : 안 돼! 남자, 문 앞에서 멈춘다. 모 : …그 애가 없으면 내가 어떻게 살겠어요…. 그 애를 죽이는 건 나를 죽이는 거나 마찬가지예요…. 남자 : …. 모 : (손을 내민다) …어서. 남자 : …. 모 : 이리…. 침묵 모 : 어서…. 남자, 도끼를 떨어뜨린다. 모, 남자에게 다가온다. 도끼를 들고 밖으로. 남자, 힘없이 주저앉는다. 모, 빈손으로 돌아온다. 침묵 모 : …진지는? 남자 : …. 모 : …들어가세요. 남자 : …. 모 : …시장하실 텐데…. 남자 : …. 모 : 어서…. 모, 부엌으로. 주루막을 둘러멘 부(父) 들어온다. 남자와 부, 마주본다. 모, 나온다. 세 사람, 그 자리에. 암전 3 방안 호롱불 켜져 있고 세 사람 밥상에 둘러앉아 있다. 한쪽에는 포대기에 덮여 잠든 애기. 부 : …잡수세요…. 남자 : …말씀을…. 부 : …. 모 : …. 남자 : 말씀을 낮추셔야…. 부 : 그래도 어떻게…. 남자 : …. 모, 젓가락으로 더덕을 집어서 남자에게. 모 : …이것 좀…. 남자 : 이 귀한 걸…. 남자, 더덕을 집어서 모에게. 다시 한 젓가락 집어서 부에게. 모 : …. 남자 : …내다 파시지…. 부 : 또 캐면 되니까…. 부, 한 젓가락 집어서 남자에게. 남자 : …돌아가면 매일 먹을 텐데…. 남자, 한 젓가락 집어서 모에게. 모 : …. 남자 : …이보다 더 좋은 것도 매일 먹으니까…. 모 : …. 남자 : …고기도 매일…. 모 : …. 모, 남자에게 한 젓가락. 남자 : …. 부 : 귀한 손님인데…. 모 : 어서…. 남자, 망설이다가 한 입 떠 넣는다. 남자 : …두 분도…. 부 : …. 모 : …. 남자 : 두 분이 드셔야 저도…. 부모 : …. 부모 각자 한 숟가락씩 뜬다. 모, 숟가락을 놓는다. 남자 :…. 모 : 입맛이…. 침묵 남자, 수저를 놓는다. 부, 밥상을 옆으로 치운다. 침묵 남자, 지갑을 꺼낸다. 지폐를 꺼낸다. 부모, 손사래. 남자 : 전… 돌아가면 또 있으니까…. 남자, 다시 건넨다. 실랑이. 부, 돈을 받는다. 돈을 들여다보다 방바닥에 내려놓는다. 남자 : …. 모, 남편 가까이 와서 돈을 내려다본다. 모 : …. 부 : …. 남자, 돈을 다시 지갑 속으로. 침묵 남자 : …정말 그리 가면 돌아갈 수 있을까요? 부 : …가보기는 해야지요…. 모 : 옛날에도 그 굴로 들어간 사람이 있었다고…. 남자 : …. 부 : …온 뜻이 있으면 가는 뜻도 있을 테니…. 모 : …. 부, 일어선다. 부 : …한시라도 빨리…. 남자, 엉거주춤 일어선다. 모, 따라서 일어선다. 부 : 당신은…. 모, 애기 옆으로. 남자 : …어머니…. 남자, 절한다. 모, 어정쩡한 자세로 맞절. 남자, 일어선다. 남자 : 그럼…. 모 : …저기. 남자 : …. 모, 보따리를 내민다. 모 : 이걸…. 남자 : …. 모 : …승우를 만나면…. 남자 : …. 모, 남자의 손을 잡아준다. 모 : …다 잊고… 남자 : …. 모 : …우린 괜찮으니까…. 남자 : …. 모 : …승우를 생각해서…. 부와 남자 밖으로. 모, 마당으로 나와 둘이 사라진 쪽을 본다. 암전 4 같은 장소 황혼 여자와 아들 마당에. 남자, 집밖에서 들어온다. 보따리를 들었다. 여자 : 여보…. 아들 : 아버지. 남자 : …. 여자 : 어떻게 된 거예요? 남자 : …. 여자 : …당신 얼굴이… 머리에 웬 흰머리가? 남자 : …. 여자 : 그건 웬 보따리예요? 남자 : …. 여자, 보따리를 푼다. 더덕, 약초 등. 여자 : …이게 얼마어치야? 남자 : …. 여자 : 어떻게 된 거예요? 남자 : …어머니가…. 여자 : …. 남자 : 나… 당신한테 할 말이…. 아들 : …. 여자 : …. 남자 : …십년 전… 어머니 아버지 그 사고…. 여자 : 여보. 아들 : …. 남자 : 사실은…. 여자 : 여보! 아들 : …. 침묵 여자 : …너는 먼저 내려가. 아들 : …. 여자 : 어서. 아들 : 아버지. 하실 말씀이…. 여자 : 내려가라고. 아들 : …. 여자 : 아버지랑 내려갈 테니까. 아들, 밖으로. 남자 : …못 믿겠지만…. 여자 : 지나간 일이에요. 남자 : …. 여자 : 잊어요. 남자 : 당신…? 침묵 여자 : …굳이 확인하고 싶지 않았어요…. 남자 : …. 여자 : 그렇게라도 살아야 했으니까…. 남자 : …. 여자 : 우리 여길 떠나요. 남자 : …. 여자 : …승우가 있잖아요. 남자 : …. 여자 : 먼저 내려가 있을 게요. 남자 : …. 여자, 보따리를 챙겨서 밖으로. 남자 그 자리에. 남자, 마당 한 가운데 튀어나온, 바위를 본다. 막
  • “마음 주고 몸도 주고…돌아버렸네”

    “마음 주고 몸도 주고…돌아버렸네”

    『사랑주고 마음주고 님은 멀어져 갔네. 마음주고 몸도주고 님은 멀어져 갔네…』싸움을 하다말고 곧잘 유행가가락에 맞춰 이상한 노래를 부르던 50대의 여인이 같이 살던 남편이 가출하자 20살이나 손아래인 그의 배다른 아들을 육체의 노예로 사로잡아 5년동안 뜨거운 관계를 맺어오다 며느리에게 들켜 쇠고랑을 찼다. 20세 연상(年上)의 불붙은 정열…감쪽같이 “오 내사랑” 5년 그는 젊은아들을「섹스」의 노예로 만들어 한껏 즐기다가 아들이 결혼하자 새로 들어온 며느리까지 학대하며 아들의 국부를 잡고 황혼질투전(?)을 벌이기도 했다. 화제의 주인공은 지난 15일 서울용산경찰서에 간통혐의로 구속된 전금례(全錦禮)여인(53·가명·서울용산구 용산동)과 그의 배다른 아들 김순성(金純星)씨(31·가명·회사원). 이들이 눈이 맞고 정이 들어 육체가 불덩어리로 변한 것은 5년전 일. 9년전 전여인을 세째번 부인으로 맞게된 김씨의 아버지 김노인(64)은 4년동안 함께 살다가 세상이 싫다며 어느 이름모를 절간으로 들어갔다. 주인없는 집에는 전여인과 그의 배다른 아들이 남게됐다. 서울에서도 손꼽히는 명문대학의 전기공학과를 졸업한 김씨는 모회사에 취직했다. 64년 4월하순께.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취해 집에 돌아온 김씨는 여느때처럼 전여인과 한방에서 잤다. 새벽녘이었을까? 술이 깨기 시작한 김씨는 이상한 체온을 느꼈다. 전여인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벌거숭이로 김씨의 그곳을 매만지고 있었다. 김씨는 조용히『왜 이러십니까?』하고 떠밀었다. 김여인은 대답대신 가쁜 숨을 몰아쉬며 김씨의 뭄뚱이를 터질듯이 껴안는 것이었다. 그 순간 김씨도 이성을 잃고 말았다. 그날부터 두사람의 관계는 한남자와 여자로 불륜의 정부 사이가 됐다. 전여인은 직장에서 돌아오는 김씨에게 깍듯한 대접을 했다. 나이는 비록 20살 위이지만 전여인의 정열은 대단했다. 하룻밤에도 몇번씩이나 김씨에게 뜨거운 육체를 식혀달라고 요구했다. “나혼자만 팽개쳐 두기냐”…침실 덮치고 망칙한 행패 김씨는 50대여인의 몸뚱이를 식혀주기에 힘이 벅찼다. 그러나 불륜의 관계는 5년동안 이웃에 들키지 않고 탈없이 계속됐다. 남들이 보는 앞에서는 비록 배다른 사이지만 어엿한 모자관계로 행세해온 이들에게 검은 그림자가 드리운 것은 김씨가 지난해 11월 25일 모여대를 졸업한 강칠숙(姜七淑)여인(24·가명)을 아내로 맞아들이면서부터. 결혼은 했으나 따로 방을 얻을 돈이 없었던 김씨는 계모와 함께 한집에서 살았다. 전여인은 벽하나를 사이에 둔 오른쪽 방을, 김씨는 왼쪽방을 썼다. 전여인은 아내를 새로 맞이한 아들이 자꾸만 멀어져가자 질투의 불길을 태웠다. 눈치를 챈 김씨도 전여인의 질투가 폭발할까봐 몹시 조심하며 아내몰래 드나들며 몸으로 시중(?)들기를 잊지않았다. 그러나 50대여인의 질투는 드디어 폭발했다. 지난해 12월 14일 밤이었다. 전여인이 술에 취해 아내와 함께 자고 있는 방에「팬티」만 입고 뛰어들어 며느리 강여인이 신혼여행때 입던 잠옷으로 갈아입고 김씨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왜 나를 두고 너희들끼리 먼저 왔느냐』며 한바탕 고함을 치던 전여인은 그래도 분을 가눌 수 없다는 표정으로 김씨에게 달라붙어 김씨의 국부를 붙잡으며『너를 꽁꽁 말려서 죽이고 말겠다』고 막무가내였다. 이들 세식구는 이날낮 김씨친구의 초대를 받고 나들이를 갔다고 전여인만 남겨놓고 부부가 먼저 돌아왔던 것. 엉겁결에 이 광경을 목격한 김씨의 아내 강여인은 깜짝 놀랐다.(아무리 모자간이지만 성장한 아들의 그 부분을 붙잡고 앙탈을 하다니…) 노래속에 비밀이? 방문 연 새댁은 봤다 강여인은 세상에 흔히 있는 어머니의 아들에 대한 질투려니하고 넘겨버렸다. 그러나 남편의 행동은 날이갈수록 수상쩍기만 했다. 남편은 집에 돌아와 초저녁에는 자기와 자리를 같이하고 새벽녘이면 잠옷차림으로 시어머니방에 들어가 잠자고 아침에 돌아오곤 했다. 그래도 모자간의 정이려니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강여인이 의심을 품기 시작한 것은 김씨 가 외국에 가는 수속을 한 구청에서 교부받아다 놓은 호적등본을 우연히 본뒤부터였다. 지금까지 자기에게 친어머니라고 해왔던 전여인이 남편의 계모인 사실을 알게됐다. 이와 더불어 남편이 잠자리를 비우는 습관은 하루도 빠짐없이 계속됐다. 한편 전여인은 남편이 잠자고 나온날 아침이면 발을 씻는다며 세숫대야에 물을 떠오라고 했다. 또 강여인이 시어머니의 이부자리를 치우러 들어가면 이불과 방바닥에는 남자의 음모가 떨어져 있을 때도 있었다. 의심은 더욱 짙어만 갔다. 남편 전씨는 강여인과 잠자리를 함께 하다가도 옆방에서 전여인이 벽을 툭툭치며 어디가 아프다고 소리치면 곧장 옆방으로 들어가 자고왔다. 그러다가다도 두사람은 싸움을 하기가 일쑤였다. 아들과 대판 싸움을 벌이다가도 전여인은「히트·송」 에 가락을 맞춰 노래하며 빈정됐다. 『사랑주고 마음주고 님은 멀어져 갔네 마음주고 몸도주고 님은 멀어져갔네…』 노래속에 전여인의 비밀의 숨겨져있는 것 같기만 했다. 그러던 어느날 드디어 강여인이 못볼 것을 보고야마는 비극의 날은 오고야 말았다. 지난 2월 20일 새벽 2시쯤, 여느때처럼 밤중에 잠자리에서 빠져나가는 남편의 뒤를 강여인은 숨죽여 밟았다. 강여인이 방문을 열었으나 서로 엉킨 두몸뚱이는 전혀 눈치를 채지 못할 정도였다. 강여인의 가슴은 내려앉고 폭발하는 분노를 누를길없어 자기방으로 되돌아 오고말았다. 차마하니 있을 수 없는일, 못볼것을 보고야만 며느리 강여인은 그저 눈물만이 어이없이 얼굴을 적셨다. 며느리의 고발로 경찰신세를 지게된 전여인은 8·15때 남동생과 월남, 서울시내 모요정에서 접대부를 하며 착실히 돈을 모았다. 전여인이 김씨의 아버지 김노인과 재혼한 것은 9년전일. 주벽이 심한 김노인은 두번째로 아내를 여의고 세번째로 전여인을 맞았으나 4년동안 함께 살다가 훌쩍 집을 나가버린 것. 아마도 미치광이처럼 육정으로 기승을 떨어 견디다 못해 홀연히 사라져버렸는지도 모를 일…. 불륜의 육정은 끝내 백일하에 드러나고 법의 판가름을 받게 되었지만 그 이전에 악몽을 깨칠만한 한가닥 양식이나마 없었던게 더욱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안태석(安泰錫) 기자> [선데이서울 71년 4월 25일호 제4권 16호 통권 제 133호]
  • [서울신문 신춘문예-소설당선작] 우유의식/홍희정

    홈쇼핑 채널에서는 석류 즙에 대한 소개가 한창이었다. 쇼 호스트는 활기찬 하이 톤의 목소리로 석류의 장점을 연신 강조했다. 중년의 여자 탤런트가 과장된 몸짓으로 와인 잔에 석류 즙을 따라 부었다. 살포시 눈을 감은 채 석류 즙을 마시는 그녀의 모습이 클로즈업되며 텔레비전 화면에 가득 찼다. 고개까지 젖히며 잔을 비운 그녀는 장난스런 표정을 지으며 거꾸로 든 빈 잔을 머리 위로 올리고 흔들어 보였다. 누군가가 입 꼬리를 옆으로 잡아당긴 것처럼 웃는 그녀의 얼굴은 의욕이 넘쳐 보였다. 활기찬 그녀와는 달리 나는 젖은 빨래처럼 팔, 다리를 늘어뜨린 채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판단력이 사라진 채 멍하니 텔레비전만 바라볼 뿐이었다. 내 머리는 우주를 떠받들고 있는 듯 무거웠다. 눈은 가물가물해서 자꾸만 시야가 흐려졌다. 나는 당장이라도 텔레비전을 끄고 깊은 잠을 자고 싶었다. 하지만 텔레비전을 끄고 나면 그나마 남아 있던 잠의 꼬리마저 도망쳐 버릴 것 같았다. 나는 심한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꿈을 꾸는 것이 두려워 쉽게 잠들지 못했고, 그것이 불면증으로 이어진 케이스였다. 며칠 전에 들른 병원에서는 언제나 그랬듯이 심리적인 문제일 거라는 말만 되풀이할 뿐이었다. 나는 적정량의 수면제로만으로는 잠이 오지 않았고 그나마 처방 받은 수면제도 다 먹어 버린 지 오래였다. 철이 들면서부터 나는 늘 같은 꿈에 시달려 왔다. 사실 그것은 꿈이기 이전에 오래전 내가 겪은 일이었다. 나와 동생은 이불도 깔리지 않은 방에 함께 누워 있었다. 이유는 모르지만 낮에 비를 너무 많이 맞고 돌아다닌 우리는 온몸이 젖은 채였다. 동생은 어디가 아픈지 자꾸 기침을 했지만 나는 너무나 피곤해서 눈을 뜨지 못했다. 동생을 돌볼 사람이 나뿐이라는 사실도 버겁게만 느껴졌다. 한참 동안 계속되던 동생의 기침 소리가 갑자기 커지더니 이내 작아졌다. 그제서야 나는 불안한 마음이 들어 잘 떠지지도 않는 눈을 비비며 몸을 일으켰다. 방안은 너무 캄캄해서 동생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나는 더듬거리며 동생의 얼굴을 만져 보았다. 손끝에 닿는 동생의 얼굴이 얼음처럼 차가웠다. 동생이 죽은 뒤로 나는 매일 같은 꿈을 꾸었다. 방안 구석에 서 있는 지금의 내가, 동생의 얼굴을 더듬는 어린 나를 바라보는 꿈이었다. 그리고 꿈의 마지막에는 항상 어린 내가 지금의 나를 날카롭게 응시했다. 그때마다 나는 번뜩이는 어린 나의 시선에 몸이 굳어 버렸다. 잠에서 깨려고 필사적으로 움직여 보아도 온몸이 꽁꽁 묶인 듯 꼼짝할 수가 없었다. 나도 모르게 꿈속의 장면을 떠올리던 나는 늘어뜨린 팔, 다리가 굳어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급하게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휴대폰을 열어 화면에 나오는 홈쇼핑 주문 전화번호를 눌렀다. 자동주문 전화는 1번, 상담주문 전화는 2번이라는 안내 멘트가 끝나기도 전에 나는 2번 버튼을 힘껏 눌렀다. 버튼을 누르는 내 손이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상담원과 연결이 되자 나는 주저하지 않고 상품을 주문했다. 나의 신용카드 번호와 주소를 확인하는 상담원의 목소리에 나의 손은 떨림을 멈추었다. 하지만 주문을 마치고 휴대폰을 닫자 갑자기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웃음소리가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리모컨을 들어 텔레비전을 껐다. 그리고 바닥에 있던 옷가지를 주워 입고 무언가에 도망치듯 황급히 밖으로 나갔다. 새벽 3시의 주택가 골목은 고요했다. 가로등 불빛을 제외하고는 모두 불이 꺼져 있었다. 건너편 동네의 아파트를 바라보니 드문드문 불이 켜 있는 창문들의 모양이 무표정한 이모티콘처럼 보였다. 나는 어디로 걸어가야 할지 고민하다가 평소처럼 집 근처 편의점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캄캄한 골목에 내가 신은 슬리퍼 소리가 타박타박 울렸다. 목적지도 없이, 그것도 새벽 3시란 시간에 동네를 어슬렁대는 것은 짝사랑에 빠졌을 때처럼 나의 감정을 뒤죽박죽으로 만들었다. 나는 문득 외롭기도 했다가 갑자기 서럽기도 했다가 느닷없이 의욕이 생기기도 했다가 결국엔 허무하기도 했다가 나중엔 내 자신이 우스워졌다. 괜히 나온 것 같아 후회가 되었지만 그렇다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기는 싫었다. 운 좋게 잠이 든다 해도 반복될 꿈이 두려웠다. 나는 항상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순간까지 가서야 눈을 뜨곤 했다. 꿈에서 깨고 나면 나는 깨어 있는 누군가와 이야기하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다. 하지만 늦은 새벽까지 내 전화를 받아주던 친구들도 하나 둘 떨어져 나가 이젠 전화를 걸 사람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홈쇼핑을 보며 상담전화를 걸어 물건을 주문하기 시작했다. 주문하는 물건이 무엇인지는 나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깨어 있는 누군가와 이야기할 수 있다는 사실이 중요할 뿐이었다. 열 평 남짓한 나의 원룸은 홈쇼핑으로 주문한 물건들이 뜯지도 않은 상자 채 쌓여 가고 있었다. 한참을 걷다 보니 저만치 불이 켜진 편의점 간판이 유난히 반짝거렸다. 갑자기 나는 깨어 있는 누군가가 보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다. 슬리퍼 바닥이 땅에 부딪치며 나는 소리가 점점 빨라졌다. 결국 나는 편의점을 향해 뛰어가기 시작했다. 내가 편의점의 문을 힘주어 열자 전자음의 멜로디가 울려 퍼졌다. 높은 톤의 음악소리는 단순하지만 날카로웠다. 카운터 쪽을 바라보니 아르바이트 생인 듯한 남자가 고개를 뒤로 젖힌 채 졸고 있었다. 편의점에는 그 말고 다른 사람은 없었다. 나는 냉장 코너 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우유와 삼각 김밥과 오렌지주스를 차례로 한 번씩 들어 올렸다 다시 내려놓았다. 식욕이 없어서인지 머릿속이 멍하기만 했다. 나는 결국 캔 커피를 집어 들고 카운터로 갔다. 잠을 자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지만 언제나처럼 그것밖에는 마시고 싶은 것이 없었다. 나는 계산대로 걸어가 캔 커피를 올려 놓았다. 그는 여전히 자고 있었다. 나는 헛기침을 하며 캔 커피를 들었다가 조금 거칠게 카운터에 다시 내려놓았다. 하지만 그는 좀처럼 깨어날 줄을 몰랐다. 그가 자는 모습에 나는 자꾸만 불안해졌다. 그를 깨우고 싶은 마음을 참느라 캔 커피만 만지작거렸다. 차가운 캔 위에 맺힌 물방울이 나의 손을 적셨다. 당장이라도 그의 어깨를 잡고 흔들고 싶었다.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그의 어깨가 아닌 나의 가슴께로 젖은 손을 가져갔다. 평소에 나는 누군가가 잠든 모습을 보면 명치끝이 답답해지곤 했다. 잠을 자고 있는 사람이 숨마저 얕게 쉬고 죽은 듯이 잠을 잘 때면 동생이 떠올라 견딜 수가 없었다. 뚜껑을 덮어 버린 커다란 항아리에 갇힌 것처럼 두려움에 휩싸였다. 때문에 장소에 상관없이 누군가가 자는 모습을 보면 참지 못하고 깨운 적이 여러 번 있었다. 지하철에서도 도서관에서도 유독 미동도 하지 않고 잠든 사람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황급히 그들의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잠에서 깬 사람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거나 몹시 화를 냈다. 나는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노력도 해보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자고 있는 사람을 보면 얼굴을 돌리고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려보아도 어느새 상대의 어깨를 흔드는 나를 발견하곤 했다. 이번에도 나는 혹시 그가 숨을 쉬지 않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되었다. 초조한 마음에 그를 유심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다행이 그의 가슴은 호흡에 따라 규칙적으로 오르락내리락하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 움직임에 나는 막혔던 숨이 터지듯 안도했다. 나는 그를 조금 더 가까이서 관찰했다.2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그는 몹시 피곤해 보였다. 고개가 뒤로 젖혀지면서 저절로 반쯤 벌어진 입주변이 하얗게 부르터 있었다. 하지만 유난히 힘차게 숨을 들이마시고 내뱉는 그의 호흡만은 의욕이 넘치는 듯 활기차게 느껴졌다. 힘차고도 부드럽고도 성실한 호흡이었다. 나는 캔 커피 따위는 잊어버린 채 한참 동안 그의 자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는 심각한 꿈을 꾸는지 미간을 찌푸리기도 하고, 알 수 없는 말로 잠꼬대를 하기도 했다. 나는 지금까지 이렇게 활기차고 부지런한 모습으로 자는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나도 모르게 카운터에 손을 집고 서서 그의 얼굴 가까이 내 얼굴을 가져갔다.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의 코로 공기가 듬뿍 빨려 들어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그의 코끝에 천천히 손가락을 가져갔다. 들락날락하는 공기가 나의 손끝을 부드럽게 간지럼 태웠다. 그것은 새끼 고양이가 엉킨 실타래를 풀며 장난을 치듯 따뜻하고 평온한 기분이 들게 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감긴 그의 눈꺼풀 안쪽에서 눈동자가 움직이며 속눈썹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제서야 나는 그에게 너무 가까이 가 있던 자신에게 놀랐다. 그가 갑자기 깨기라도 한다면 곤란한 상황이 될 게 뻔했다. 그런 생각이 들자 갑자기 손바닥에 땀이 흥건히 고였다. 나는 황급히 편의점 문 쪽으로 걸어갔다. 편의점 문의 손잡이를 잡은 채 나는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곤하게 자고 있는 그가 몹시 부러웠다. 그리고 언제까지나 그의 자는 모습을 바라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손잡이를 잡은 나의 손끝에 미련이 남아 있었다. 나는 최대한 천천히 문을 밀었다. 그때 문이 열리면서 전자음의 음악소리가 흘러나왔다. 갑자기 잠에서 깨어난 그가 나를 보며 말했다. -어. 어서 오세요.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채 인사말부터 한 그는 들어오는 게 아닌 나가려는 자세의 내 모습을 보고 의아스러워하는 듯했다. 나는 손잡이를 잡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그를 바라보았다. 의심받을 행동을 한 건 없지만 왠지 마음이 불편했다. 망설이던 나는 그를 향해 말했다. -들어오려던 게 아니라 막 나가려던 참인데…… 별로 살 게 없어서요. 새벽 3시에 일부러 편의점을 찾아온 사람이 하는 말로는 적당하지 않은 것 같았지만 나는 달리 할 말이 없었다. 잠에서 완전히 깨지 않은 듯 그는 나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나는 나도 모르게 불필요한 말이 자꾸 나왔다. -캔 커피를 사려고 했는데 자는 모습이 너무 피곤해 보여서요. 그는 손등으로 눈을 비비더니 웃으며 말했다. -깨우셔도 되는데 그랬네요. 지금 계산해 드릴게요. 그제서야 나는 캔 커피를 카운터에 그대로 놔둔 것이 생각났다. 할 수 없이 카운터 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그에게 카운터에 올려져 있던 캔 커피를 건네었다. 그러자 바코드를 찍으며 그가 말했다. -밤에 이런 거 좋지 않아요. 그는 의자에 앉은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으므로 나는 그의 표정을 볼 수 없었다. 하지만 그의 담담하면서도 진심이 담긴 듯한 목소리는 그가 자던 모습과 꼭 닮아 있었다. 나는 돈을 꺼낼 생각은 못하고 그의 정수리만을 바라보았다. 고개를 들어 쑥스러운 듯 웃는 그의 얼굴이 붉어져 있었다. 그가 캔 커피의 바코드를 한 번 더 찍었다. 그러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냉장고에 캔 커피를 가져다 넣고 우유 두 개를 꺼내 왔다. 그는 입구를 조금 연 우유를 전자레인지에 넣고 작동 버튼을 눌렀다. 나는 그가 하는 행동을 묵묵히 바라보았다. 경쾌한 소리와 함께 전자레인지가 멈추었고 그는 따끈해진 우유 팩을 나에게 건네주었다. 우리는 우유 팩을 손에 쥔 채 편의점에서 함께 아침을 맞았다. 그는 전에도 가끔 캔 커피를 사러 온 나를 기억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횟수가 반복될수록 늦은 새벽에 커피를 사는 내가 의아스러웠다고도 했다. 커피를 마시며 편의점을 나가는 내 뒷모습이 이상하게 마음에 쓰였었다며 웃는 그의 얼굴이 성실해 보였다. 보통 사람들이었다면 그 웃음을 믿었겠지만 나는 그렇지 않았다. 웃는 얼굴 따위야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나는 그저 그가 힘차게 숨을 쉬며 자던 모습만 떠오를 뿐이었다. 그는 나에게 밤에 커피를 마시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궁금한 것을 순수하게 물어볼 수 있는 그의 태도도 잠든 그의 모습과 꼭 닮아 있었다. 나는 커피와 상관없이 어차피 잠이 잘 오지 않는다고 말하고 입을 다물었다. 내 말은 들은 그가 자신은 밤에 실컷 잘 수 있다면 소원이 없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밤에 일하고 낮에 잘 수밖에 없는 자신의 이야기를 나에게 들려주었다. 그가 야간에만 일을 해야 하는 이유는 햇빛 알레르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른 아침이나 저녁의 햇빛 정도야 괜찮았지만 그때를 제외한 시간에는 피부가 민감하게 반응한다고 했다. 햇빛을 받으면 피부에 빨간 반점이 생기며 참을 수 없이 따가워져서 살갗이 찢어지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 나는 주변에 햇빛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을 본 적은 있었지만 그만큼 심한 사람을 본 적은 없었다. 그래서 그가 말하는 살갗이 찢어지는 느낌이 어떤 것인지 짐작을 하기가 힘들었다. 그 뒤로 나는 새벽 3시면 매일 편의점에 들렀다. 그런 시간들이 한 달쯤 지나자 우리는 함께 잠드는 사이가 되었다. 아침 6시에 그는 퇴근을 하면서 항상 우유 두 개를 들고 내가 사는 원룸으로 왔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간편한 식사로 차가운 우유를 마시는 시간에 우리는 식탁에 마주 앉아 따뜻하게 데워진 우유를 마셨다. 매일 반복되는 행동은 우리에게 하나의 의식과도 같았다. 우리는 그것을 ‘우유 의식’이라고 부르며 웃곤 했다. 불면증이었던 나도 그와 함께 ‘우유 의식’을 하고 나면 편안히 잠들 수 있었다. 비록 보통 사람들이 잠자리에 드는 시간은 아니었지만 그런 건 내게 중요하지 않았다. 잠시만이라도 좋으니 죽은 듯이 자고 싶었던 때와 비교하면 호사스러운 시간이었다. 나는 다른 사람과 함께 잠자리에 누우면 언제나 상대보다 늦게 잠이 들었었다. 그리고 상대가 곤하게 자는 모습을 보면 애정이 생기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쓸쓸해지곤 했다. 혼자 남겨진 것 같은 느낌에 가슴이 아려왔다. 상대도 언젠가는 사라질 사람인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우울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는 달랐다. 그는 언제나 내가 잠들 때까지 깨어 있어 주었다. 싱글 침대 위에서 그와 꼭 붙어 있으면 힘차게 뛰는 그의 심장소리가 나에게 전해졌다. 규칙적인 그의 심장박동과 나를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에 나는 안도하며 잠이 들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잠에서 깬 내가 불안함에 황급히 그를 찾으면 그는 항상 씩씩한 숨소리를 내며 자고 있었다. 그런 그의 곁에서는 신기하게도 나는 꿈을 꾸지 않고 잘 수 있었다. 가끔 미세한 불안함이 고개를 들 때도 있었다. 그럴 때면 나는 호흡에 따라 힘차게 오르락내리락하는 그의 가슴을 한참 동안 들여다보았다. 힘차고도 부드럽고도 성실하게 숨을 쉬며 자는 그의 모습은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았다. 그가 나의 원룸에 찾아오기 시작한 지 일주일쯤 되었을 때 나는 백화점에 가서 두 개의 머그잔을 구입했다. 우유팩도 나쁘진 않았지만 머그잔에 담아서 데운 우유는 온기가 더 지속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머그잔에 담긴 우유를 마시며 나는 그에게 아르바이트를 줄였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와 함께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그는 웃으며 그러겠다고 했다. 그는 일주일 중 네 번의 밤엔 아르바이트를 했고 세 번의 밤엔 나와 데이트를 했다. 그와 함께 하는 데이트는 해가 없을 때만 가능했으므로 우리가 집을 나설 때는 언제나 밤이었다. 우리는 아무도 없는 캄캄한 공원을 걷기도 했고, 모든 상점이 문을 닫은 명동거리를 돌아다니기도 했다. 배가 고프면 24시간 문을 여는 기사식당에서 밥을 먹었고, 다리가 아프면 비디오 방에 가서 영화를 보았고, 때때로 PC방에서 서로에게 총을 쏘는 게임도 했고, 찜질 방에 가서 구운 계란을 먹기도 했다. 그와 데이트를 하며 나는 밤에도 깨어 있는 사람들이 무척 많다는 사실을 새삼 알게 되었다. 예전에도 24시간 영업을 하는 곳들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나에게 추상적으로 느껴질 뿐이었다. 하지만 그로 인해 나는 밤에도 사람들이 살아 있다는 구체적인 느낌을 갖게 되었다. 밖으로 나가지 않는 밤에는 예전에 홈쇼핑에서 주문했던 물건들을 함께 뜯어보며 시간을 보냈다. 우리는 껍질째 넣어도 무엇이든 주스가 된다던 주서기에 파인애플을 통째로 넣고 갈아보기도 하고, 소나기가 와도 완벽한 방수가 된다던 등산화를 신고 샤워를 하기도 했다. 한번은 하루에 한 포씩 먹으면 좋다는 석류 즙을 한꺼번에 누가 더 많이 먹나 내기를 한 적도 있었다. 그는 13포째 봉지를 뜯다가 포기를 했다. 그리고 26포의 석류 즙을 마시고 27번째 봉지를 뜯는 나를 필사적으로 말렸다. 말리는 그의 모습이 우스워서 나는 일부러 3포를 더 마셨다. 여름인데도 반팔 옷을 입지 못하는 그가 나를 말리며 진땀을 뺐다. 그는 햇빛 알레르기 때문에 언제나 긴 팔과 긴 바지를 입고 주머니에 손을 넣고 다녔다. 심지어 잠을 잘 때도 긴 옷을 벗지 않았다. 그런 그가 안쓰러워 나는 원룸에 있는 단 하나의 창문에 까만 도화지를 꼼꼼히 붙였다. 하지만 그는 긴 옷을 입는 게 습관이 되어서 피부를 내놓으면 잠이 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나는 그저 그가 편하게 자는 걸 바랐으므로 그가 하고 싶어 하는 대로 내버려 두었다. 피부끼리 닿는 부드러운 감촉도 좋을 테지만 뽀송한 면 티에서 느껴지는 감촉도 좋았다. 우리가 편히 잠들 수만 있다면 나는 어떤 감촉이라도 상관없었다. 매일매일이 한결같이 흘러갔다. 그가 퇴근을 하는 아침이면 나는 식탁 위에 두 개의 머그잔을 올려놓고 그를 기다렸다. 그러면서 더 이상 바랄 게 없다는 생각을 했다. 그와 있으면 예전의 나로 돌아가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그에게 처음으로 나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오늘은 ‘우유 의식’을 하며 예전에 내가 잠들지 못했던 이유를 말해 주기로 했다. 그리고 그를 위해 더블 침대를 하나 구입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가 편하게 자는 것을 바라면서도 미세하지만 집요하게 느껴지는 불안감에 침대 구입을 망설이고 있던 참이었다. 그런 결심을 하고 나자 그의 귀가가 더욱 기다려졌다. 그런데 평소 같으면 벌써 도착했을 그가 오지 않고 있었다. 시계는 6시 2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한 번도 이런 일이 없었기에 나는 그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지 불안했다. 그는 휴대폰이 없어서 내가 연락을 할 방법도 없었다. 낮과 밤이 바뀐 생활이 지속되자 주변 사람들과 연락을 주고받을 일이 없어졌다고 했다. 나 역시 그와 지내는 동안 그에게 전화연락을 할 일 따위는 생긴 적이 없었다. 그는 성실했고 한결같았다. 그런 그가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나는 편의점에 가볼까 생각도 해 보았지만 용기가 생기지 않았다. 심장이 쿵쾅거리는 것을 느끼면서도 별 일 아닐 것이라고 밀려오는 불안감을 외면했다. 누구에게나 한 번쯤 사정이 생길 수도 있다고 나 자신을 다독거렸다. 그러나 습관이란 무서웠다.7시까지 깨어 있던 나는 불안함과 나른함에 결국 선잠이 들었다. 그리고 아주 오랜만에 꿈을 꾸었다. 하지만 그것은 예전에 내가 꾸었던 꿈과는 달랐다. 그와 내가 함께 침대에 누워 있었다. 하지만 웬일인지 그는 나에게 등을 보인 채 누워 있었다. 항상 내가 잠들 때까지 나를 안아주던 그였는데 이상했다. 나는 불안한 마음에 동그랗게 구부려진 그의 등에 몸을 꼭 붙이고 그의 겨드랑이 사이로 나의 팔을 집어 넣었다. 그리고 크고 단단한 그의 등에 귀를 대었다. 나는 숨을 쉴 때마다 커다랗게 부풀었다 가라앉기를 반복하는 그의 등과 가슴을 좋아했었다. 그러나 그의 등은 조금의 움직임도 없이 딱딱할 뿐이었다. 나는 팔을 좀 더 뻗어 그의 왼쪽 가슴에 손바닥을 대보았다. 힘차게 뛰어야 할 그의 심장이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당황스럽고 무서워 그를 깨울 용기가 나지 않았다.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내 눈에 눈물이 차 올라 그의 모습이 초현실주의 그림처럼 뒤틀려 보였다. 나는 아랫입술을 깨물며 그의 어깨를 잡아 힘껏 내 쪽으로 돌렸다. 그러자 그의 몸이 내 쪽을 향하면서 창백하다 못해 투명해진 얼굴이 툭 하고 침대위로 떨어졌다. 아니 그것은 얼굴이 아니고 가면인 것 같기도 했다. 나는 표정이 떨어져 버린 그의 얼굴로 황급히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 그의 얼굴이 아닌 동생의 얼굴이 있었다. 나도 처음 들어보는 날카로운 괴성이 나의 뱃속 깊은 곳에서 터져 나왔다. 잠에서 깬 나는 한참 동안 움직일 수가 없었다. 감긴 눈이 뜨거웠고 목구멍이 찢어질 듯 아팠다. 하지만 나는 눈물을 흘릴 수도 소리를 지를 수도 움직일 수도 없었다. 내가 겨우 눈을 떴을 때 여전히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시간은 오전 10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식탁 위의 머그잔은 아까 내가 놓아둔 모습 그대로였다. 나는 몹시 불안해졌다. 편의점에 가보기 위해 침대에서 일어났다. 물에 젖은 듯 무거워진 몸을 움직이기가 쉽지 않았다. 자꾸만 다리가 휘청거려서 신발을 신는 데 한참이 걸렸다. 그때 문밖에서 누군가가 디지털 키를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문이 열리고 평소처럼 그가 현관으로 들어섰다. 분명히 내 앞에 서 있었지만 나는 그가 유령처럼 느껴졌다. 나도 모르게 그를 힘껏 밀어버렸다. 무방비 상태였던 그는 휘청거리더니 넘어지고 말았다. 반은 어리둥절하고 반은 미안한 듯한 표정으로 그가 몸을 일으켰다. 그는 많이 걱정했냐고 말하며 나에게 다가왔다. 아직 꿈의 잔상에서 깨지 못한 나는 그의 손길을 거칠게 쳐냈다. 교대할 아르바이트 생이 늦게 오는 바람에 편의점을 비울 수가 없어서 늦었다는 그의 말이 거짓말처럼 느껴졌다. 의심의 독이 내 몸을 가득 채웠다. 나는 식탁으로 걸어가 그의 머그잔을 밀쳐 버렸다. -당신 말 따위 믿지 않아. 그의 머그잔은 둔탁한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떨어지면서 머그잔의 손잡이가 깨져 버렸다. 몇 번이나 미안하다고 말하던 그도 주춤하는 듯했다. 그의 태도가 나를 더욱 동요하게 만들었다. 내 몸은 마비가 되는 것처럼 뻣뻣해져 왔다. -남겨진다는 게 어떤 기분인지 당신이 알기나 해! 나도 모르는 말이 내게서 튀어나왔다. 그리고 나는 그것이 그를 향해서 하는 말인지 오랫동안 꿈속에 나타난 동생에게 하는 말인지 아니면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인지를 알 수가 없었다. 식탁을 집고 있는 내 손이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때 그가 떨고 있는 나의 손위에 자신의 손을 올려놓았다. 그의 손은 가을 단풍잎처럼 빨갛게 변해 있었다. 순간 나는 햇빛 알레르기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그가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주머니에 넣고 달리려니까 빨리 달릴 수가 없어서…… 느릿한 그의 말에 나는 누군가의 농담에 받아칠 말을 찾지 못하는 사람처럼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는 손 때문에 몹시 고통스러워했다. 그리고 나는 내가 그에게 살갗이 찢어지는 아픔은 물론이고 더 큰 상처까지 준 것 같아 고통스러웠다. 그 일이 있은 뒤에도 그의 생활은 전과 다르지 않았다. 그는 일주일의 네 번의 밤에는 아르바이트를 했고 세 번의 밤은 나와 함께 보냈다. 달라진 거라곤 아침 6시가 되어도 누워 있기만 하는 나를 대신해 그가 머그잔에 우유를 담아 데우는 일뿐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렇지 못했다. 작은 침대에 그와 몸을 붙이고 있어도 잠이 오지 않았다. 나는 그의 면 티에서 더 이상 아무런 촉감도 느낄 수 없었다. 꼭 붙어 있는 우리의 몸 사이로 무언가가 비집고 들어오는 것만 같아 숨이 막혔다. 그가 나를 꼭 안을수록 내 마음은 줄을 놓쳐 버린 풍선처럼 그에게서 멀어지고 있었다. 나는 더 이상 그의 품에서 잠을 이룰 수 없었고 그런 나 때문에 그도 잠을 자지 못했다. 그는 점점 야위어갔다. 하지만 나는 그를 위해서 아무것도 해 줄 수가 없었다. 새벽 3시의 골목과 같은 침묵이 우리 사이에 계속되고 있었다. 머그잔을 앞에 놓고 마주 보고 있어도 온몸이 땀에 젖도록 서로를 붙인 채 밤을 새 보아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그는 아르바이트가 없을 땐 예전에 갔던 밤의 장소에 나를 데리고 가기도 했지만 나는 어디를 가도 무표정할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이번에는 이길 자신이 있다고 말하며 내 앞에 석류 즙이 가득 담긴 상자를 끌고 왔다. 나는 그가 내 손에 쥐여 주는 석류 즙 봉지를 멍청하게 바라볼 뿐이었다. 시작, 이라고 힘차게 외친 그는 정말 누군가와 경쟁이라도 하듯 빠르게 봉지를 비워 가기 시작했다. 그는 봉지를 제대로 뜯을 새도 없이 허겁지겁 석류 즙을 마시기 시작했다. 거칠게 봉지를 뜯는 그의 손에 석류 즙이 이리저리 튀었다. 그가 즐겨 입는 하얀 티 위로 석류 즙이 흘러내렸다. 주변에 쌓이는 빈 봉지가 늘어갈수록 그의 옷이 점점 더 붉어졌다. 나는 그가 쥐여 준 봉지를 손에 쥔 채 그를 지켜볼 뿐이었다. 그렇게 한참 동안 석류 즙을 마시던 그가 갑자기 ‘컥’ 하는 소리와 함께 마신 것을 토해 내기 시작했다. 석류 즙을 비운 것보다 더 빠른 속도로 모든 것이 쏟아져 나왔다. 방바닥은 물론이고 그의 얼굴과 몸 전체가 붉게 물들어 갔다. 그 모습은 마치 붉은 노을 앞에선 그를 연상하게 했다. 그는 언젠가 나에게 바깥에서 마지막으로 노을을 본 게 언제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나는 두 팔을 벌린 채 저물어 가는 햇빛을 마음껏 받고 있는 그를 상상했다. 한 번도 본적이 없었고 앞으로도 볼 수 없는 장면이 내 앞에 있는 그의 모습과 겹쳐졌다. 나는 그의 자는 모습을 처음 봤을 때처럼 그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고통으로 일그러진 그의 얼굴이 달아올라 있었다. 붉게 충혈된 그의 눈에서 갑자기 무언가가 흘러내렸다. 그것은 얼굴 위로 튄 석류 즙에 섞여 잔인하리만큼 아름답고 투명한 붉은색이 되어 흘렀다. 하지만 그는 눈물을 닦을 새도 없이 계속해서 석류 즙을 토해 냈다. 그리고 그날 이후로 그는 더 이상 나를 위해 애쓰지 않았다. 며칠 뒤 출근을 한다고 나간 그는 다음 날 아침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그가 다시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당연한 듯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어쩌면 나는 나 자신을 위해서라면 그가 내미는 손을 잡았어야 하는 건지도 몰랐다. 하지만 자는 모습이 성실하기만 한 그에게 차마 내 이야기를 할 수는 없었다. 이야기를 꺼내고 나면 이해 받고 싶어질까 봐 두려웠다. 나는 그에게 그럴 자격이 없었다. 매일 ‘우유 의식’을 함께해 준 그에게 조금도 마음을 열지 않았던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배려였다. 오늘도 같은 꿈이었다. 나는 그의 어깨를 잡으며 주체할 수 없이 온몸이 떨려 왔다. 할 수만 있다면 도망쳐 버리고 싶었다. 떠날 수 있는 방법은 많았다. 하지만 나는 결국 머무는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나는 그의 어깨를 힘껏 내 쪽으로 돌렸다. 수십 번도 넘게 반복한 행동이었지만 나는 숨이 막혀 왔다. 그러자 그의 얼굴, 동생의 얼굴 그리고 어린 나의 얼굴이 나를 향해 다가왔다. 나는 그것들을 껴안고 싶은 마음과는 다르게 필사적으로 피할 뿐이었다. 손을 내저으며 최대한 몸을 작게 웅크렸다. 모든 상황이 잔인했다. 하지만 그들이 잔인한 것인지 내가 잔인한 것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나는 땀으로 흠뻑 젖은 채 잠에서 깼다. 햇빛이 들어오지 않아 캄캄한 방안은 시간을 가늠할 수가 없었다. 작은 창문 위 까만 도화지는 조금의 틈도 없이 꼼꼼하게 붙어 있었다. 마치 내 자신을 보는 것 같은 생각에 나는 다시 숨이 막혀 왔다.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창문을 열었다. 여름 바람이 훅하고 방안으로 들어왔다. 시계를 보니 저녁 6시였다. 나는 방안을 둘러보았다. 한때 이곳에는 머그잔에 담긴 우유처럼 온기가 가득 찼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가 없는 일주일간 홈쇼핑에서 주문한 상품들이 방안을 채우고 있을 뿐이었다. 뜯지도 않은 상자의 숫자가 늘어날수록 공허함은 커지기만 했다. 나는 식탁으로 걸어가 나란히 놓인 두 개의 머그잔을 감싸 쥐었다. 손잡이가 없는 그의 머그잔에 담긴 우유가 찰랑거렸다. 아침에 따라놓은 우유는 차갑게 식어 있었다. 나는 그가 떠난 뒤에도 매일 ‘우유 의식’을 거르지 않았다. 하지만 내 몫의 우유를 다 마신 뒤에도 여전히 잠은 오지 않았다. 그러나 혼자 하는 ‘우유 의식’을 멈출 용기도 나에겐 없었다. 나는 ‘우유 의식’을 하고 나면 억지로라도 침대에 누워 잠이 오길 기다렸다. 그 기다림 끝에 잠이 들면 매일 같은 꿈을 꾸었다. 등을 보이고 누운 그를 꿈속에서 보았는데 앞으로 일어날 일을 알면서도 매번 두려웠다. 그와 지내는 동안의 ‘우유 의식’은 나의 삶을 유지할 수 있게 해 주는 버팀목이었지만 이제 그것은 나의 삶을 조여 오는 올가미가 되어 있었다. 나는 갑자기 방안의 공기마저 쌀쌀하게 느껴졌다. 황급히 리모컨을 찾아 텔레비전을 켰다. 화면에는 두 명의 쇼 호스트와 한 명의 여자 탤런트가 하이 톤의 목소리로 석류 즙에 대해 설명하는 모습이 나오고 있었다. 그들은 석류가 여성에게 미치는 영향과 폴리페놀 성분이 피부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 대해 쉴 새 없이 이야기했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들이 하는 말 중 몇 가지 반복되는 단어만이 띄엄띄엄 들릴 뿐이었다. 석류, 비타민C, 여성, 남성, 남녀노소, 온 가족, 활기찬, 여성,95%, 에스트로겐, 무이자 3개월, 온 가족, 활기찬, 하루 한 포, 석류, 매일 아침.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들의 이야기를 듣던 나는 휴대폰을 열어 홈쇼핑의 상담 전화번호를 눌렀다.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고 싶어 참을 수가 없었다. 통화버튼을 누르자 수화기 너머에서 경쾌한 음악소리가 흘러나왔다. 그 음악은 내가 그의 자는 모습을 처음 보았던 날 편의점 문이 열리며 흐르던 음악소리를 떠올리게 했다. 상담원이 전화를 받으며 말했다. 정성을 다하겠습니다.○○홈쇼핑입니다. 나는 가슴이 먹먹해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러자 상담원은 잠깐의 시간을 두고 나에게 다시 말했다. 고객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방송중인 석류 즙을 구매하시겠습니까? 나는 간신히 목소리를 짜내어 그녀에게 인사를 건네었다. 안녕하세요. 나의 인사에 그녀는 반복되는 말을 다시 건네었다. 네, 고객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잘 알고 있는 내용이었지만 나는 그녀를 향해 질문했다. 석류 즙 한 포에 몇 개의 석류가 들어있나요? 네, 고객님. 한 포에 두 개 정도의 석류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는 그녀의 대답이 끝나기가 무섭게 다시 물었다. 석류는 국내산인가요? 그녀는 조금 당황하는 듯했지만 일관된 톤의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닙니다. 최고급 이란산 석류를 사용합니다. 나는 그녀와 좀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 한참 동안 질문을 계속했다. 나의 질문이 계속될수록 그녀의 말투는 빨라졌고 대답은 짧아졌다. 나의 마지막 질문에 그녀는 홈페이지를 통해 자세한 상품정보를 참조한 뒤 다시 전화를 달라고 말했다. 더 이상 그녀는 나의 질문에 답을 해주지 않을 것 같았다. 내가 석류 즙을 주문하겠다고 말하자 그녀는 나에게 잠시 기다려 달라고 말했다. 수화기 너머로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녀는 매우 빠르고 강하게 키보드를 두드리는 것 같았다. 나는 그녀와 나 사이의 흐르는 침묵을 견딜 수가 없었다. 터져 나오는 울음을 참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혹시 저 기억하세요? 여러 번 구매했었는데. 그러자 그녀가 상냥하지만 기계적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감사합니다.○○○ 고객님께서는 석류 즙 재구매 고객이시므로 만원의 할인혜택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나는 상담원의 말에 휴대폰을 놓친 채 일주일간 참아 왔던 울음을 터트렸다.
  • 전국이 ‘꽁꽁’

    전국이 ‘꽁꽁’

    주말과 휴일 전국에 강추위가 몰아쳤고, 호남·서해안 지역에는 폭설이 내려 각종 사고와 교통두절 사태가 잇따랐다.30일 서울의 체감기온은 강풍의 영향으로 영하 14.5도까지 떨어졌다. 31일에도 추위가 계속돼 아침 최저기온은 영하 14∼영하 1도, 낮 최고기온도 영하 5∼영상 4도로 예상된다. 서울의 아침 최저기온은 영하 9도까지 내려갈 전망이고, 강한 바람까지 예상돼 30일보다 더 춥겠다. 새해 1일 아침도 영하 7도까지 떨어질 전망이다. 기상청은 30일 “찬 대륙성 고기압이 급격히 팽창하면서 한파와 폭설, 강풍이 발생했다.”면서 “1일까지 전라남·북도와 제주 산간, 충남 해안에 5∼20㎝의 눈이 더 내릴 것”이라고 예보했다. 기상청은 새달 2일 쯤 정상 기온을 되찾을 것으로 전망했다. 지난 29일 밤부터 내리기 시작한 눈은 30일 오후 11시 기준으로 정읍 29.2㎝를 비롯, 광주 20.7㎝, 고창 18.2㎝, 부안 16.1㎝, 군산 15.3㎝, 임실 12.7㎝ 등의 적설량을 기록했다. 한파와 폭설로 일부 항공편과 여객선 운항이 통제됐다. 대설특보가 내려진 국립공원 지리산과 덕유산 등의 입산도 금지됐다. 유출기름 방제작업이 바쁜 충남 태안 앞바다에도 풍랑경보와 대설주의보가 발령돼 작업이 중단됐다. 아울러 한파와 폭설 때문에 보일러 동파와 자동차 추돌사고가 잇따랐다. 무안 남기창·서울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프로배구] 현대, 삼성 꽁꽁 얼렸다

    ‘장신군단’ 현대캐피탈의 블로킹은 말 그대로 철벽이었다. 현대캐피탈은 이선규(8개)와 박철우(6개)의 블로킹을 포함해 한 경기 팀 최다 블로킹 기록(24개)을 세우며 이번 시즌 전승 가도를 달려온 ‘무적함대’ 삼성화재를 격침했다. 종전 기록은 지난해 삼성화재가 세워던 22개였다. 여자부에서는 리그 2연패를 달성한 흥국생명이 ‘거포’ 김연경(24득점)의 고공 강타를 앞세워 선두 KT&G를 3-0으로 완파, 이번 시즌 1패 후 파죽의 7연승을 달렸다. 현대캐피탈은 30일 대전 충무체육관에서 열린 07∼08 프로배구 V-리그 남자부 경기에서 ‘거미손’ 이선규(14득점)와 라이트 박철우(13득점)의 활약을 앞세워 장병철(16득점)이 분전한 삼성화재를 3-0으로 완파했다. V-리그 3연패를 노리는 현대캐피탈은 1라운드에서 삼성화재·대한항공·LIG손해보험에 당한 패배를 2라운드에서 완벽히 설욕하며 파죽의 5연승으로 6승3패를 기록, 선두 경쟁의 불씨를 당겼다. 반면 이번 시즌 무패였던 삼성화재의 연승 행진은 ‘8’에서 멈춰 8승1패로 단독 선두를 유지하긴 했지만 2위 대한항공(7승2패)과 3위 현대캐피탈의 사정거리에 들어갔다. 삼성화재로서는 매 경기 20득점 이상 올려주던 크로아티아 출신 ‘괴물’ 용병 안젤코 추크의 공백이 어느 정도인지 확인시켜 준 경기였다. 안젤코는 전날까지 나흘간 한국을 찾은 여자 친구 미넬라와 휴가를 보낸 탓에 훈련 부족으로 기용되지 못했다. 1세트는 현대캐피탈 박철우의 독무대였다. 박철우는 경기가 시작하자 마자 잇따라 블로킹을 성공시키며 1세트에서만 블로킹 4개, 스파이크 3개를 성공시키며 맹활약해 현대캐피탈의 25-21 승리를 견인했다.2세트에선 센터 이선규의 철벽 블로킹이 위력을 떨쳤다. 이선규는 블로킹과 속공을 잇따라 성공시키며 2세트 압승을 주도했다. 현대캐피탈은 15-10에서 윤봉우의 속공과 후인정의 블로킹 등으로 내리 3점을 따냈다. 이후 이선규가 삼성화재 스파이크를 잇따라 가로막아 점수차를 크게 벌리며 일찌감치 세트를 마무리했다.3세트에선 삼성화재의 조직력이 되살아나 고전했지만 ‘루키’ 임시형과 주상용의 좌우 강타와 이선규·윤봉우의 블로킹을 앞세워 24-22로 달아난 뒤 세터 권영민의 블로킹으로 대미를 장식했다.전광삼기자 hisam@seoul.co.kr
  • 썰매를 타고/정유정 글·그림

    춥다. 손도 발도 꽁꽁 언 겨울이다. 아이가 홀로 썰매를 탄다. 친구도 없이 혼자 탄다. 꽈당 혼자 넘어지고, 히죽 혼자 웃는다. 앉아 타면 스르륵! 서서 타면 씽씽 쌩쌩! 아이는 혼자 썰매 타고, 혼자 찔끔 눈물 흘린다. ‘썰매를 타고’(정유정 글·그림, 사계절 펴냄)는 홀로 썰매 타는 볼 빠알간 아이 이야기다. 초록 털장화를 신고, 색동 빵모자를 썼다. 오리떼 노는 저수지를 피해 쾅쾅 발 굴러도 안 깨지는 얼음 논바닥에서, 아이는 혼자 썰매를 탄다. 경기도 안성 도심의 아파트에 사는 작가는 같은 도시 변두리 작업실로 출근하던 중이었다. 작업실 근처 저수지 가에서 홀로 썰매 타는 한 아이를 발견한다. 친구도 없이 혼자 미끄러지고 넘어지며 썰매를 지치는 아이를 보며, 작가는 생각했다.‘저 아이는 지금 누구와 썰매를 타는 걸까?’ 답을 얻고픈 작가는 아이가 했던 것처럼 혼자 썰매를 타봤다. 혼자 미끄러지고 넘어지고, 혼자 손 호호 불고, 혼자 아픈 엉덩이 쓰다듬은 후에야, 작가는 아이 곁에서 함께 썰매 타던 동무들이 눈에 들어왔다. 쪼르르 달려 나온 청설모를, 깡총 뛰어든 아기사슴을, 뒤뚱뒤뚱 걸어온 오리를, 우람한 체격의 반달곰을, 아이는 차례차례 썰매에 태운다. 상상력 하나로 외로움을 거뜬히 이겨낸 아이에게, 얼마 후 반가운 현실의 목소리가 들린다.“아빠가 한번 태워줄까?” ‘혼자인 시간’마저 웃는 얼굴로 이겨내는 아이의 생기발랄함이 따뜻한 그림을 껴입어 더욱 훈훈해졌다.7세 이하. 1만 500원. 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지하로 꽁꽁 숨은 불법성인오락실 현장 르포

    지하로 꽁꽁 숨은 불법성인오락실 현장 르포

    27일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에 있는 지상 3층 지하 1층 상가건물. 전날 경찰의 단속에 5일간 운영되던 불법 성인오락실이 풍비박산난 현장이다. 입구부터 사람 키만 한 화분 2개가 통로를 가로막고 있다. 계단 중간에 철제문 하나, 지하 입구에 이중 잠금장치가 돼 있는 철제문과 나무문 등 삼중으로 꽁꽁 숨어 있다.1층에서 부동산중개소를 운영하는 박모(54)씨는 “매일 지하 1층 입구를 지나 화장실에 가는데 지하에 성인오락실이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말했다. 안으로 들어가니 132㎡ 공간에 문제의 바다이야기 오락기 41개가 빼곡히 들어차 있다. 문 근처 화재경보기는 부서진 지 오래였고 1987년에 제조된 분말소화기는 켜켜이 먼지가 앉았다. 환풍기는 작동되지 않았고 비상구 안내 유도등과 스프링클러도 보이지 않았다. 비상계단이 있지만 업주가 단속 때 도주하는 시간을 벌기 위해 이중문을 만들어 놓은 데다 계단은 어깨 넓이에 불과해 사람이 몰리면 압사 위험이 커보였다. 서대문경찰서 관계자는 “망을 보다 단속이 뜨면 안에다 얘기한 뒤 안에서 리모컨으로 삼중문을 여는 구조라 불이 나면 손님들이 대피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교묘한 위장수법… 단속 비웃듯 우후죽순 26일 5명의 목숨을 앗아간 경기 안산시 불법 성인오락실 화재 사건을 계기로 서울신문 취재진이 서울 시내 불법 성인오락실들을 긴급히 찾아봤다. 오락실은 단속의 눈을 피해 보이지 않는 곳으로 꽁꽁 숨어 ‘화약고’처럼 운영되고 있었다. 단속의 손길은 모자랐고 불법 시설이라는 이유로 소방 점검도 없어 대형 화재 사고에 무방비로 방치돼 있었다. 3층 모텔 건물의 지하 1층에서 운영하다 지난 26일 새벽에 단속된 성북구 장위동 업소 역시 삼중문으로 잠겨 있는 데다 억지로 문을 열 경우 경보음이 울리게 돼 있었다. 역시 소화기와 스프링클러는 찾아볼 수 없었고, 담배 연기를 빼기 위한 환기통만 있었다. 비상계단은 없고 화장실 천장으로 연결된, 성인 한 명이 겨우 빠져나갈 만한 철제 사다리가 유일한 비상통로였다. 경찰은 끊임없이 단속하고 있지만 성인오락실은 더 교묘한 위장 수법을 동원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다. 올 1월부터 지난달 말까지 서울에서만 8417개 업소가 단속됐고 전국적으로도 지난해 11월부터 지난달까지 6만 1178곳이 적발됐다. 하지만 지금도 추산조차 할 수 없을 만큼의 성인오락실이 운영되고 있어 경찰을 한숨 짓게 하고 있다. 경찰청 생활질서계 관계자는 “겉으로 보기에는 도저히 알아볼 수 없도록 이중삼중으로 위장하고 회원제로만 운영되기 때문에 경찰도 돈 잃은 사람들의 신고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면서 “적발해도 압수한 컴퓨터의 데이터 자료를 분석해 처벌의 기준이 되는 영업기간이나 이익을 정확하게 밝혀낼 수 있는 인력이 부족해 주로 벌금형에 그치고 있다.”고 밝혔다. ●“불법업소 사전인지 건물주가 나서야” 불법영업은 제도권 밖이기 때문에 소방 관청도 단속과 점검에 한계를 느끼고 있다. 서울소방방재본부 검사지도팀 관계자는 “불법 영업을 하는 곳에 가서 소방시설을 설치하라고 지도할 수는 없는 게 현실”이라면서 “숨어 있는 오락실을 모두 점검할 인력이 없기 때문에 불법 업소가 들어오는 걸 아는 건물주들이 나서 줘야 한다.”고 말했다. 글 사진 이재훈 신혜원 장형우기자 nomad@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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