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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발’…30代 작가 24명 의기투합 ‘백년몽원’전

    ‘도발’…30代 작가 24명 의기투합 ‘백년몽원’전

    전시장 입구 바깥에 덩그러니 놓인 탁구대. 처음엔 작가들의 심심풀이용인 줄 알았다. 게임 한 판 벌일라치면 특이한 풍경에 맞닥뜨린다. 흰 선, 그러니까 아웃을 판정해줄 흰 선을 한데 모아 탁구대 한가운데 네모를 만들어뒀다. 탁구대 위 흰 선이 그려진 부분을 일일이 오려내 가운데 네모 부분에 채워 넣고, 원래 녹색으로 칠해진 네모 부분을 파내 원래 흰 선이 있던 곳에 배치했다. 그러니까 지금 그곳에서 시합을 하는 이들은 모두 흰 선 바깥으로 공을 주고받는 셈이니 전부 아웃이다. 흰 선이 뭉쳐진 네모 안에서만 공을 주고받는다면? 흰 선에 공이 걸치는 플레이, 그러니까 에지 플레이는 성공했을 때만 약간의 짜릿함을 줄 뿐, 늘 조마조마하다. 정체성이라는 이름의 강력한 원심력에 매인 사회에서 살아간다는 것이 이런 게 아닐까. 아웃될까 봐 늘 스스로 경계하며 노심초사하는 삶. 경계 재배치의 이런 효과, 그러니까 강남좌파니 미래 보수의 아이콘이니 하는 용어들을 비틀어대는 것이다. 이런 재배치의 배후세력은 뭘까. 정치권력? 재벌? 언론? 이원호(39) 작가는 이게 끝이 아니라고 말한다. “이건 사전 정지 작업이에요.” 그렇다면 본격적인 작업은? “테니스장에서도 선을 긋는 하얀 가루를 긁어모아서 이런 작업을 했고요, 궁극적 목표는 축구장입니다.” 독일에서 오랫동안 활동한 작가라 작품 구상도 독일에서 시작했다. 독일이야 축구장이 널렸으니 가능할 법도 하지만 한국에서, 그것도 젊은 작가의 실험에 축구장을 선뜻 내 줄 곳이 있을까. “그래서 프레젠테이션 정말 열심히 했어요. 뗏장을 떠내도 잔디는 자꾸 자라 원상태로 돌아갈 테니 걱정 마시라고도 하고. 하하하. 한 건설사의 청주 구장을 쓰기로 했습니다. 회장님 최종 결재만 남았어요.” 8~9월 중으로 작업해서 10월쯤엔 축구장 작업을 동영상과 사진으로 남겨 개인전을 열 예정이다. 9월 4일까지 서울 마포구 상암동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에서 열리는 ‘백년몽원’(百年夢源)전엔 이런 재치가 엿보이는 작품들이 여럿 있다. 이원호 등 30대 젊은 국내 작가 17명과 외국 작가 7명이 함께하는 기획전이다. 미술 100년 역사에서의 ‘백년’과, 안견의 ‘몽유도원도’에서 착안한 한국적 이상향에서 ‘몽원’을 따왔다. 추상이나 순수예술을 강조해온 미국 중심의 미술 풍토에서 벗어나 우리만의 새로운 이상향을 찾아 떠나보자는 취지다. 그래서 ‘저항적 비평주의’를 지향하는 작가들을 엄선했다는 것이 공동기획자 김기라 작가의 설명이다. 네덜란드 작가 윱 오베르톰은 에이즈와 동성애 문제를 다룬 법정 영화 ‘필라델피아’를 패러디했다. 화면의 한 쪽에선 영화 속 장면이 진행되고, 다른 한쪽에서는 작가 자신이 흑인으로 분장해 영화 속 대사들에 대꾸한다. 또 한쪽 벽면에는 5명의 어른 남자 얼굴을 배치해뒀다. 캐나다 작가 롭 재미슨의 작품이다. 그냥 종이를 뭉쳐 만든 평범한 얼굴인 것 같은데 관건은 그 아래 드리워진 그림자다. 콘돔을 덧씌운 남자의 성기다. 그림자 모양을 생각해 만들었다. 목소리 쫙 깔고 이리저리 어슬렁대면서 잘난 척 참견해대는 기성세대에 대해 ‘고추나 덜렁거리고 다니는 마초 꼰대’라 비웃는 듯 보인다. 독일 작가 요그 오버그펠은 허름한 그림을 선보인다. 초상화라는 것은 대개 권력자나 위인들을 위해 바쳐지는 작품이다. 그래서 훤칠하고 뛰어나게 보이게 하려고 안달이다. 순수하지 못한, 정치적 의도가 개입될수록 그렇다. 정치 지도자 동상이란 게 남북 가릴 것 없이 촌스러운 금박에 한손 드는 포즈를 취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오버그펠은 그래서 스탈린을 연상케 하는 인물 초상화를, 물감을 대충 바르고 테이프를 찍찍 찢어붙이는 형식으로 최대한 허름하게 그렸다. 슬쩍 비웃어주는 거다. 자디잔 영어 알파벳으로 동양의 산수화를 그려낸 유승호의 문자산수, 스카치테이프를 덧바르면서 스케치를 반복해 독특한 질감을 선보이는 이상용의 테이프드로잉, 인간사를 원숭이에 비유해 20세기 역사를 비판하는 발두어 부르비츠의 사진콜라주 작품 등도 만날 수 있다. (02)308-1071. 글 사진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까도男보다 찌질男이 대세?

    까도男보다 찌질男이 대세?

    TV 드라마가 아무리 ‘까도남’(까칠한 도시 남자)을 생산해도 현실에서는 ‘찌질남’이 더 대세다. 바보 남성을 내세운 MBC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 KBS 개그콘서트의 ‘남성인권보장위원회’와 ‘두분 토론’ 등이 인기를 끄는 것도 이 같은 현실을 반영해서다. 21일 서울 대현동 이화여대 포스코관에서 열린 비판사회학회의 동계 워크숍 ‘드디어 남성을 말하다’가 시선을 끄는 이유다. 서울대에서 여성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안상욱씨는 ‘루저 문화의 등장과 남성성의 변화’라는 논문에서 ‘찌질남’ 혹은 ‘루저남’으로 대변되는 패배적이고 염세적인 얘기가 왜 생겨나고 어떻게 소통되는지에 주목한다. 그가 드는 가장 큰 요인은 경기 불황이다. 1인 생계 부양자로서의 위치가 흔들리면서 남성의 위치 자체가 농담거리로 전락했다는 것이다. 가수 장기하가 ‘장기하와 얼굴들’ 이전에 결성한 밴드는 ‘청년 실업’이다. MBC ‘무한도전’은 아예 ‘멍청한 남자들의 성장기’를 컨셉트로 출발했다. KBS ‘두분 토론’에 등장하는 남자는 “여자는 소나 키우라.”고 고압적으로 일갈하지만 표정이 괴상하게 일그러져 있다. 스스로도 말이 안 되는 얘기를 하고 있음을 알고 있다는 의미다. 다루는 주제는 한마디로 ‘마초적’(남성 우월적)인데 표현 방식은 “폭력적이기보다 귀엽고 재미있는, 그래서 수용 가능한 형태”라는 게 안씨의 분석이다. 그는 이를 ‘88만원 세대’의 특징으로 간주한다. 안씨는 “한국 사회에 남성 권력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고 사회 상층으로 올라갈수록 남성 수가 많아지는 것 또한 엄연한 현실”이라면서 “그러나 지금의 젊은 세대들은 어릴 적부터 여성 우월 문화를 꾸준히 접해 와, 옛 남성들이 가진 그런 권력을 가져본 적도 없고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고 말한다. 기성세대처럼 ‘꼰대짓’ 할 가능성조차 사라진 젊은이들의 자조적 웃음이 바로 요즘의 루저 문화를 양산해 냈다는 진단이다. 우리 사회가 남성성의 변화 과정을 돌아봐야 할 필요성을 제기하는 대목이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메카로 가는 길’로 12년만에 연극무대 컴백 서인석

    ‘메카로 가는 길’로 12년만에 연극무대 컴백 서인석

    “이제 ‘꼰대’가 됐나 싶었죠. 이 작품 하면서 개인적으로는 나와 가족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늙는 것도 서러운데 감동을 주는 늙은이가 되자, 그렇게 다짐하고 있습니다. 허허허.” 분장도 채 지우지 못한 채 인터뷰에 응한 배우 서인석(60)은 농담을 섞어가며 여유로운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나 긴장한 느낌이 역력히 전해졌다. 12년만의 연극무대 외출이자, 30년만에 아돌 후가드의 작품과 만났기 때문이리라. 그는 후가드 원작, 송선호 연출의 ‘메카로 가는 길’(플래너코리아 제작)에서 마리우스 목사 역을 맡았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종 갈등 문제를 다뤄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후가드와는 인연이 깊다. 1978년 ‘아일랜드’, 1980년 ‘핏줄’에 이어 세번째 만났다. ‘메카로’는 1974년 남아공 시골마을 뉴베데스타를 배경으로 백인 기독교인들에게 괴짜 취급을 받는 할머니 헬렌과 보수적인 마리우스 목사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인종과 종교 갈등이 배경에 깔려 있지만 갈등 자체보다는 헬렌 할머니의 자아 찾기에 초점을 맞췄다. 앞서 두 작품은 1972년작, 1963년작인데 비해 ‘메카로’는 그보다 늦은 1984년 작이다. 때문에 송선호 연출의 표현을 빌리자면 “조금 더 성숙된, 생의 보편적인 주제를 다루는 작품”이다. 그렇기 때문에 제목에 등장하는 ‘메카’는 이슬람보다는 인종 차별을 옹호하는 기독교에 비판적인, 초기 기독교 원형을 상징한다. 진중한 작품인 데다 러닝타임 2시간에 움직임은 비교적 적고 대사량이 워낙 많아 소화해 내기가 쉽지 않다. 자근자근한 목소리로 내면연기를 소화해 낸 헬렌 역의 배우 예수정이 “대사가 많아 공연이 끝나면 말하기가 싫어진다.”고 할 정도다. 그렇지만 극 막바지, 촛불이 무대를 가득 채운 뒤부터는 헬렌의 주옥 같은 대사들이 쏟아지니 끝까지 긴장감을 가져볼 만한다. 다음은 서인석과의 일문일답. →왜 이리 오랜만에 연극으로 돌아오셨습니까. -컴백이라고 하는데, 그 표현은 맞지 않습니다. 그동안 TV에서 대형사극을 죽 했습니다. 지방 촬영이 많다 보니 시간을 내질 못했을 뿐입니다. 아시잖아요. 무대는 내가 서 왔고, 서 있을 자리입니다. →후가드 작품과는 30년만의 만남인데요. -삼세번이란 말도 있잖아요. ‘아일랜드’ 때 200회 연속 매진 기록을 세우면서 ‘후가드 작품은 서인석’이라는 등식이 생겼나 봐요. 후가드 작품을 한다고 연락이 왔더군요. 그래서 흔쾌히 나섰습니다. 이번 작품도 묵직하지만, 그래도 이런 연극은 한번 해 볼 만하다 싶어요. 그나마 나은 거라면 앞의 두 작품에서는 흑인 역을 맡아서 검은 칠을 하고 나서야 했는데, 지금은 백인 목사 역이라 그런 고역은 피했네요.(웃음) →다시 만난 후가드 작품은 어떻습니까. -후가드의 가장 큰 주제는 ‘신과 인간의 관계’입니다. 신이 주신 율법 외에 인간이 왜 편의적으로 이런저런 규칙을 만들어 남에게 상처를 주느냐는 항변입니다. 이번 작품도 마리우스는 억압적인 목사 역으로 나옵니다. 종교의 권위를 내세우는. 그런데 결국엔 헬렌의 입장을 지지해 줍니다. 그래서 조금 더 풀어서 표현했어요. 원래는 엄격하고 억압적인 청교도 복장으로 설정됐는데, 그보다는 시골 이웃 주민 같은 캐릭터로 만들었습니다. 설정하는 데 고생 좀 했습니다. →마리우스 목사처럼 자신이 정말 ‘꼰대’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까. -초짜 배우일 때 명동극장 맨 말석에 앉아서 언젠가 나도 저 자리에 가리라 했는데, 지금은 중상쯤으로 올라가 있더군요. 그럴 때 그런 생각도 듭디다. →아드님도 배우 하신다고 들었는데, 반대가 심하셨다고요. 그게 혹시 ‘꼰대’하고 연결됩니까. -제가 고등학교 때부터 연극에 푹 빠져서 대학도 연영과(연극영화과)에 몰래 들어갔어요. 아버지가 연영과가 뭐냐 물으시기에 “예, 영어를 연구하는 곳입니다.”라고 거짓말하고 들어갔죠. 그런데 대학 2학년 때부터 대본 끼고 다니고 어째 하는 짓이 수상해 뵈니까 주변에 물어보셨던 모양이에요. 결국 들키고 말았죠. 그때 밥상도 한번 엎으셨어요. 연영과보다도 속였다는 것 때문에. 그래서 아들이 배우하겠다 했을 때 “니가 이런 식으로 복수하냐.” 그랬어요. 하하하. 연기란 건 헝그리 정신이 중요한데, 물질적인 것뿐 아니라 ‘내가 저 작품에서 저 역할 못하면 죽겠다.’ 싶을 정도로 정신적인 헝그리도 필요하거든요. 그래서 반대했죠. ‘서인석의 아들’ 같은 배경은 배경일 수도 없거니와 삶 자체가 완전히 발가벗기는 것인데 그래도 되겠느냐 했더니 그래도 하겠다는데 어떡합니까. →아드님 작품은 보셨는지. -보긴 봤는데, 뭐…. 허허. 소규모 저예산 영화 찍고 다녀요. (아들 서장원의 데뷔작은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다.) 그런데 저도 마찬가지예요. 젊은 시절 연극에 빠져 지낼 때는, 말 그대로 모든 게 다 헝그리했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돈을, 부자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벌었고. 그래서 스스로 헝그리 정신을 잃은 게 아닌가 하는 경계심이 강합니다. 채찍질하는 거죠. →앞으로 도전해 보시고 싶은 작품은 있습니까. -젊은 시절에 못했던 연륜있는 배역을 해 보고 싶습니다. 젊었을 때 햄릿을 했다면, 지금은 리어왕인 셈이지요. 제가 실험극장 출신인데 올해가 극단 창립 50주년이에요. 연말쯤에 기념작품을 올릴 예정인데, 거기에도 출연할 생각입니다. ‘메카로’는 오는 22일까지 서울 대학로 예술극장 대극장. 3만~5만원. (02)3272-2334. 글 사진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데스크 시각]소통, 스포츠에서 배워라/김영중 체육부장

    [데스크 시각]소통, 스포츠에서 배워라/김영중 체육부장

    최근 아는 사람에게서 들은 얘기 하나. 한 고등학교에서 교사가 학생에게 물어본 것이었다. 휴대전화에 부모 전화번호를 저장할 때 별명을 뭐라고 하는지가 질문이었다. 많은 학생이 어머니는 ‘마귀’, 아버지는 ‘호랑이’라는 등 적대적인 표현을 사용한다고 응답했다. 흔히 부모들은 자식과 대화하고 이해하기 전에 무조건 공부만 하라고 닦달한다. “어른 말만 들으면 성공한다.”고 훈계하는 ‘꼰대’가 전형적인 부모의 모습일 것이다. 쌍방향이 아닌 일방향의 언어는 일종의 폭력이란 것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부모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반발심만 생긴다. 소통이 없는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이 그대로 드러난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의 화두는 소통이다. 너도나도 소통이란 말을 꺼내 지겨울 정도다. 전형적인 진부한 단어가 되고 있다. 역설적으로 그만큼 우리 사회가 꽉 막혀 있다는 증거이다. 지난 2일 기자회견을 갖고 축구국가대표팀 지휘봉을 내려놓은 허정무 전 감독이 커 보이는 이유는 뭘까. 단지 성적 때문일까. 그는 2년6개월 대표팀을 이끌면서 대단한 성적을 냈다. 토종 감독으로 월드컵 원정 첫 승을 일궈냈고, 사상 첫 원정 16강 진출도 이뤄냈다. 대표팀에는 ‘양박쌍용’으로 불리는 박지성, 박주영과 이청용, 기성용이란 걸출한 해외파가 있었다. 하지만 이를 기존 선수와 완벽하게 결합해 팀 성적으로 연결시킨 것은 소통의 리더십이다. 감독과 코치 간은 물론 선수와 코치, 감독 간에 소통이 없으면 ‘따로국밥’이 된다. ‘아트사커’ 프랑스는 감독과 선수 간의 불화로 자중지란을 겪다 남아공월드컵 조별리그에서 탈락하는 수모를 겪었다. 허 전 감독이 제시한 해결책은 간단하고 당연한 것이었다. 바로 대화를 통한 소통이었다. 허 전 감독은 사퇴 기자회견에서 소통의 어려움을 토로했지만 뚝심으로 밀어붙였다. 그는 “소통의 리더십은 말은 쉽지만 하기가 쉽지 않은 게 우리나라 현실이다.”라고 했다. 의도적으로 선수들끼리 자연스럽게 얘기할 시간을 많이 갖게 했다. 그러다 보면 상대방을 이해하게 되고 소통하게 된다. 우리나라 스포츠는 소통을 통해 엄청난 성과를 일궈내고 있다.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가장 먼저 빛났다. ‘피겨여왕’ 김연아와 전통 강세 종목인 쇼트트랙에서 금메달을 기대했다. 스피드스케이팅은 아시아인에게 맞지 않는다며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이전 성적도 초라했다. 그런데 이 종목에서 금메달이 쏟아졌다. 편견과 두려움이 없고 열정과 자신감이 넘치는 모태범 등 신세대들이 주연을 맡아 드라마를 완성했다. 재능에 지옥 훈련이 결합된 결정체였다. 이를 여물게 하는 데 허 전 감독처럼 김관규 감독의 소통의 리더십이 한몫 했다. 김 감독은 “선수들과 소통하면서 실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야말로 감독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라고 했다. 서구인보다 뒤진 체격적인 단점을 보완하려면 보통사람들은 견딜 수 없는 엄청난 훈련량을 소화해야 한다. 자발적이어야 한다. 그래야 이어지는 고통 속에서 뒤처지지 않고 훈련의 효율성도 올라간다. 눈을 스포츠 밖으로 조금만 돌려도 답답한 현실과 맞닥뜨린다. 갈등이 치유되기는커녕 커지고 있다. 정치만 봐도 그렇다. 압도적인 지지 속에 출범한 이명박 정부는 ‘돌진’하다 역풍을 맞았다. 6·2 지방선거에서 여당이 참패한 것이다. 지난 1일부터 지자체는 여야의 불편한 동거가 시작됐다. 삐걱거리는 소리가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이를 해결할 유일한 방법은 소통이다. 공부는 제쳐놓고 운동장에서 땀만 흘리는 무식한 ‘놈’들이 모인 곳이 스포츠계라고 폄하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랬던 스포츠가 우리 사회의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허 전 감독과 김 감독도 원래 권위적이었다. 무서운 호랑이 지도자였다. “나를 따르라.”는 카리스마 리더십의 시대가 지나갔다는 것을 둘 다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둘은 변신했고, 성공했다. jeunesse@seoul.co.kr
  • 백일섭-고두심, 새주말극 ‘결혼해주세요’서 8년만 재회

    백일섭-고두심, 새주말극 ‘결혼해주세요’서 8년만 재회

    명품 중견 연기자 백일섭과 고두심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국민 아버지와 어머니’로 뭉친다. 백일섭과 고두심은 ‘수상한 삼형제’ 후속으로 오는 6월19일 첫 방송되는 KBS 2TV 새 주말극 ‘결혼해주세요’에서 김종대와 오순옥 역을 맡아 명품 부부 연기를 펼친다. 지난 2002년 방송된 MBC 주말극 ‘여우와 솜사탕’ 이후 8년 만에 부부로 재회하는 셈이다. 백일섭이 연기하게 될 김종대는 6급 공무원으로 퇴직한 대한민국 1% 꼰대 남편이다. 집안일은 당연히 여자가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어떤 자리에서도 자신이 중심이 되어야 직성이 풀리는 마초근성의 소유자. 전임교수가 된 아들만을 편애하고 아내, 딸, 며느리, 여동생까지 여자는 발 아래로 보는 우리 시대 대표 보수 가부장이다. ‘결혼해 주세요’를 집필하는 정유경 작가는 “종대는 선과 악이 공존하는 우리 시대의 가장 현실적인 아버지로 백일섭씨가 푸근하고 인자한 아버지의 이미지를 갖고 있는데, 그 틀을 깨고 독불장군 가부장의 역할을 하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왔다.”고 전했다. 이러한 종대의 곁을 지키는 아내 순옥 역은 고두심이 연기한다. 35년간 자신을 구박하는 남편의 비위를 맞춰가며 없는 살림에 삼남매를 키우느라 전전긍긍했지만, 손 하나 까딱하지 않는 남편과 떡집을 운영하느라 바쁜 며느리 때문에 아직도 집안일에 파묻혀 산다. 영화 ‘굿모닝 프레지던트’, KBS 역사드라마 ‘거상 김만덕’ 등에서 카리스마를 넘치는 강한 여성상 보여줬던 고두심은 ‘결혼해주세요’를 통해 우리 시대의 보통 어머니로 안방극장에 컴백하게 됐다. 남편, 자식, 며느리, 시누이 사이에서 ‘큰 소리’가 날 때마다 교통 정리하면서도 황태를 방망이로 두드리며 스트레스를 푸는 어머니로, ‘국민 엄마’의 타이틀에 걸맞은 역할을 맞게 된 셈이다. ‘결혼해주세요’는 한 지붕 아래 살고 있는 네 커플의 각기 다른 결혼 이야기를 통해 우리 시대의 사랑, 결혼, 이혼 등에 대해 유쾌하고 담백하게 그려나갈 계획이다. 사진=서울신문NTN DB 서울신문NTN 김진욱 기자 action@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태국 씰빠꼰대학교, 한양사이버대학교 방문

    태국 씰빠꼰대학교, 한양사이버대학교 방문

    태국 씰빠꼰대학교(Silpakon University) 교육공학과 교수 및 대학원생 34명이 4월 30일 한양사이버대학교를 방문했다. 한국의 우수한 이러닝 교육에 대해 연구하기 위해 방문한 이들은 한양사이버대학교 미디어제작센터에 들러 이러닝 제작 및 운영 과정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인터넷서울신문 맹수열기자 guns@seoul.co.kr
  • ★볼일 없어도 인생은 재밌다

    ★볼일 없어도 인생은 재밌다

    찌질한, 호구 같은 이들만 몽땅 모았다. 세탁소에 맡긴 낡은 바지 하나가 없어져 모처럼 공짜 술자리에 끼지 못하는 지지리 궁상의 소설가이거나 기껏해야 수도권 대학, 그것도 충남에 접경한 호구대학에 다니며 강의 시간 내내 잡담을 끊이지 않는 학생들이다. 교수래야 학생들과 신경전이나 벌이고 상처받는 ‘꼰대’일 뿐이다. 그도 아니면 호구시에 있는 입시학원에서 숭고한 대의명분이나 있는 양 학생들 발을 씻겨주네 마네 하며 원장과 실랑이나 하는 것이 고작인 강사다. 아니면 십수년 전 고등학교 전교조 선생님이 경찰에 붙잡혀 갔을 때 함께 촛불시위 벌였던 기억을 추억으로 파먹고 사는 이들이다. 김종광(39) 단편소설집 ‘처음의 아해들’(문학동네 펴냄)에는 딱 평균만큼으로 궁상맞은, 평범한 우리네 인간군(群)이 등장한다. 전반부 네 편 ‘세족식’, ‘당장, 나가버려!’, ‘처음의 아해들’, ‘옷은 어디에?’에서는 비루한 현실의 모습을 반영하듯 학생도, 선생도, 교수도 속물스럽다. 애써 감추고픈 보통 사람들의 삶의 장면들이, 찌질한 욕망이 고스란히 노출된다. 그러나 아들과 아버지가 등장하는 ‘내시경’을 기준으로 소설집은 꼭 절반으로 접어놓은 데칼코마니처럼 후반부에서는 또다른 인간군이 등장한다. 배경은 여전히 호구시다. ‘시골사람 중국여행’, ‘면민바둑대회’, ‘우라질 양귀비’, ‘빵집이 사라졌네’ 등 네 편은 전반부의 청춘들처럼 똑같이 별 볼일 없는 삶이다. 다만 수십년의 세월을 훌쩍 지내온 중씰한 늙은이들이다. 이를테면 지금 청춘들의 20~40년 뒤 모습쯤 되겠다. 바로 우리네 부모들인 것이다. 시골에서 소를 기르고, 농사짓거나 탄광에서 탄을 캔다. 또 틈틈이 빵집에서 부업하는 이들이다. 전반부의 청춘들처럼 여전히 퇴직금조차 받지 못해 쩔쩔매고, ‘바둑 천재’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40년 동안 동네 이발소를 지켜오는 식이다. 하지만 이들은 확연히 달라졌다. 충분히 넉넉하고 유쾌하고 희망을 품게 하는 삶의 모습으로 변주돼서 나타난다. 이들은 가난과 불확실·불안에 떠는 이 시대의 청춘들, 다시 말해 지난날의 자신들에게 마치 “인생, 뭐 있겄어? 어울려서 살믄, 그냥 재미가 있는 거여.”라고 말하듯 한 수 가르쳐주고 있는 것이다. 단편 모음이면서 구성을 통해 하나의 일관된 완성도를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 김종광 특유의 입담과 해학으로 시종일관 못난 것들의 삶을 유쾌하면서도 신명나게 이야기를 풀어간다. 그리고 살며시 위로해준다. 삶이 아무리 힘들고 모질어도 모두 신명난 민초의 바다, 커다란 역사의 바다 안에 있는 것 아니냐고, 그러니까 너무 외로워하지 말라고 말이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3시간으로 압축된 ‘15주년 표류기’ 쓰러질 때까지 놀아봅시다

    3시간으로 압축된 ‘15주년 표류기’ 쓰러질 때까지 놀아봅시다

    “처음엔 나침반도, 아무것도 없이 망망대해에 던져진 느낌이었죠. 지금 멋지게 항해하고 있지만 여전히 표류하고 있다는 생각도 들어요. 어떻게 평가한다기보다 그동안 살아남은 게 대견하다, 휴~ 다행이다 하는 느낌입니다.”(이상면) 1990년대 후반 ‘말 달리자’의 깃발을 들어 올리며 국내 인디 음악의 태동을 이끌었던 크라잉넛이 데뷔 15주년을 맞았다. 이들이 좀 특별한 순간을 마련했다. 이름하여 ‘15주년 표류기’다. 23~24일 서울 마포아트센터 아트홀맥에서다. 약 3시간 동안 팬들과 쓰러질 때까지 놀아보겠다는 박윤식(보컬·34), 한경록(베이스·33), 쌍둥이 형제 이상면(기타·34)·상혁(드럼·34), 김인수(키보드·36)를 최근 그들의 작업실인 서울 서교동 ‘토바다스튜디오’에서 만났다. 초·중·고등학교 동창끼리 뭉쳐 1995년 서울 홍대 앞 클럽 드럭에 혜성과 같이 등장했던 이들이다. 외제 펑크만 수용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레게, 스카, 폴카, 보사노바, 트로트 등을 섞어 수많은 히트곡을 쏟아내며 ‘조선 펑크’라는 새로운 개념을 만들었다. “홍대 앞은 정말 작은 동네였어요. 이제는 흥청망청 쇼핑 문화가 들어와 정작 홍대 앞에는 예술하고 음악하는 사람이 없어요. 예술 카페, 음악 클럽이 골목골목으로 들어가고 연남동, 상수역까지 넓어졌어요. 그래서 요즘엔 홍대 앞이 아니라 홍대 옆이라고 합니다.”(김인수) 콘서트만 여는 것은 아니다. 공연 실황 DVD로도 만든다. 인디 밴드로는 드물게 베스트 앨범도 낸다. 신곡 1곡을 포함해 크라잉넛의 역사를 정리할 수 있는 15곡을 추릴 예정이다. 기존 곡들은 새로운 편곡으로 모두 다시 녹음한다. 직접 프로듀싱하지 않아 마음에 들지 않았던 노래도 다시 제대로 녹음하겠다며 싱글벙글이다. 이르면 여름쯤 선보이게 된다. 베스트 앨범 발매에 맞춰 ‘크라잉넛처럼 놀고 크라잉넛처럼 즐겨라’라는 책도 발간할 계획이다. “후배 밴드들에게 클럽 라이브가 불법이었던 시절을 이야기하면 다른 별에서 온 것처럼 쳐다봐요. 형님이라는 생각에 어깨에 힘을 주면 젊은 밴드들이 안 놀아줘요. 살짝 묻어가야죠. 하하하.”(박윤식) 형님 티를 내지 않는다고 하지만, 음악적으로는 선배 역할을 톡톡히 한다. 매달 ‘크라잉넛쇼’의 오프닝 무대에 후배 밴드를 초대하는 등 인디 뮤지션들의 소통과 교류 마당을 제공한다. 인디 1세대로서의 책임감이 묻어나는 부분이다. 그래서인지 사뭇 진지한 이야기도 이어진다. 인디도 우물 안에서 꾀꼬리 소리를 내지 말고 우물 밖으로 나가야 한다, 어느 게 표절이고 어느 게 진짜배기인지 구분할 수 있을 만큼 문화 수준이 높아져야 한다, 메이저에서 인디 문화를 상업적으로 이용하지 말아야 한다…, 이름이 높아지고 인기를 얻었다고 인디 시스템을 버려서는 안 된다…. “현재 메이저 음악은 포화 상태인 것 같아요. 언제인지 모르겠지만 무너질 때가 있을 겁니다. 몇몇 작곡가 집단이 쏟아내는 비슷한 노래에 질린 대중들이 새 노래를 찾아 듣는 문화가 생겨나겠죠. 인디들은 그때 그 수요를 충족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추는 게 중요할 것 같습니다.”(이상혁) 초창기에 김인수가 합류해 식구가 늘어난 것을 제외하고 멤버 구성에 변화가 없다. 동반입대·동반제대를 하며 팀을 탄탄히 유지했다. 음악을 일이 아니라 즐거운 놀이로 생각하는 점이 끈끈한 유대감의 원동력이다. 요즘 팀워크 개념이 달라진 것 같다며 안타까움을 표하기도 한다. 처음 밴드를 시작할 때 끝까지 함께 가겠다는 분위기보다 그때 그때 부속품 갈아끼우듯 교체하는 분위기가 서글프다는 것이다. “10년 이상 같이 해야 나올 수 있는 멤버들 사이의 교감은 정말 달라요. 감동은 아무 곳에서나 오는 게 아니죠. 비틀스보다 롤링스톤스처럼 오래 가는 게 좋습니다. 믹 재거, 키스 리처드 등 롤링스톤스 형님들은 60세가 넘어도 여전히 날아다니잖아요.”(한경록) 10년 혹은 15년 뒤의 모습을 물었더니 다시 한 번 왁자지껄이다. 공통된 이야기는 이 멤버 그대로 술잔을 기울이고 있을 것 같다는 것. 문득 팀에 유부남이 많아졌다는 것을 느낀다. 한 명은 벌써 일곱 살배기 딸이 있다. 박윤식, 한경록에게 언제 장가가느냐고 물었더니. 한경록이 씩 웃으며 답한다. “우리 ‘꼰대’ 같이 말씀하시네. 하하하” 30대 중반에 접어들었어도 악동들은 여전히 악동들이었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청춘이여! 고개를 들어라

    그 시절에는 알지 못했다. 오히려 너무 더뎌 답답할 때조차 있었다. 주체하지 못할 만큼 꿈과 희망이 펑펑 솟다가도 문득문득 드는 막연한 불안감과 두려움은 그 시절을 무작정 질주하고 분출하게끔 만들었다. 그 시절의 제 면모는 모두 흘려보낸 뒤 문득 뒤돌아보고서야 확인할 수 있었다. 그 푸른 찬란함이란…. 청춘(靑春)이다. 많은 이들이 찬양의 헌사를 아끼지 않는 것이 청춘이다. ‘청춘! 이는 듣기만 하여도 가슴 설레는 말이다.’로 시작하는 민태원의 ‘청춘예찬’은 중학교 3학년 국어교과서에 실리며 이제는 ‘국민수필’ 반열에 올랐을 정도다. 하지만 정작 그 복판에 있는 이들에게는 어른이 되고 싶은 소년들이 동정을 내던지고픈 충동을 느끼듯 힘들고 거추장스럽게 느껴지는 것 또한 청춘이기도 하다. 청춘의 시기를 일제강점, 한국전쟁, 반지성적인 이데올로기 대립 등 꼬박 한국 현대사의 격랑 속에서 보내야 했던 노() 교수가 무한 경쟁으로 내몰리는 21세기 한국 청년들에게 격려와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다. 원로 국문학자인 김열규(78) 서강대 명예교수는 최근 내놓은 ‘그대, 청춘’(비아북 펴냄)을 통해 20대들이 간직해야 할 열쇳말 열다섯 개를 제시하며, 자신의 주전공인 문학은 물론 미학, 인류학, 역사학 등의 풍성한 사례를 갖고 얘기해주고 있다. ‘보석같이 젊은 날을 위한 15일 인생수업’이라는 부제가 말해주듯 김 명예교수는 시간, 그 속의 자아(自我)를 시작으로 야망, 고독, 도전, 결핍, 방황 등을 거쳐 낭만, 교양, 사랑으로 이어지는 15일짜리 생각할 거리를 하나씩 던진다. 토익점수와 자격증, 어학연수 등 스펙 쌓기에 여념없는, 그럼에도 ‘88만원 세대’의 굴레를 쉬 벗어던지기 어려운 청년들에게 청춘의 상징이어야 할 낭만과 꿈, 사랑과 도전에 대해 숭고한 과제를 생각케 한다. 나이먹은 ‘꼰대’의 고리타분한 얘기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백척간두진일보(百尺竿頭進一步·백척의 높은 장대 끝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라)’를 요구한다. 그리고 ‘고개 떳떳이 들고 눈 똑바로 뜨고 혼자서 걸어가라. 길 끝에 닿는 날, 온 세상이 그대를 향해 박수칠 것이다.’라는 격려도 빠뜨리지 않는다. 뿐만 아니다. 그가 소개한 장 자크 루소의 ‘에밀’의 한 대목은 ‘지금 당장의 어느 상황 속에다 자신을 내맡기기만 한다면 그는 인간들 가운데서 가장 타락한 인간이 될 것이다.’라고 말한다. 모험하지 않고, 도전하지 않고, 꿈꾸지 않는, 일상에 안주하려는 청년들에게 던지는 강력한 경고의 메시지이다. 시종일관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지만 울림이 크다 못해 서늘하기조차 하다. 나아가 도전하는 이가 그 노정에서 필연적으로 부닥칠 고통을 즐길 것을 희망한다. 삶을 정직하게 대면하는 이라면 마음을 다잡고 “고통, 너, 그래 잘 왔다! 한 번 겨루어 보자꾸나.”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책 중간중간에 푸시킨, 예이츠, 롱펠로, 랭스턴 휴즈, 톨스토이, 김영랑 등 동서의 주옥 같은 명시를 집어넣어 꼭꼭 씹어 읽을 수 있도록 한 것은 평생 문학을 벗삼아온 노 교수가 청춘들에게 바치는 작은 선물이다. 1만 4000원.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어른사회에 던지는 10대들의 비판

    청소년들은 자신들을 다룬 청소년 소설에서조차 종종 어른의 시각으로 재단돼 왔다. 지난해 촛불집회를 계기로 청소년 집단 역시 정치·사회 담론의 주요 주체임이 확인됐지만, 청소년 소설의 소재는 학교·가족을 위시한 교육·성장 문제를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전업작가 김종광(38)의 청소년 소설 ‘착한 대화’(문학과지성사 펴냄)는 이런 청소년들에게 정치적 주체의 자리를 돌려주는 새로운 시도다. 소설은 형식부터 새롭다. 2000년 희곡으로 등단한 이력을 자랑하듯 작가는 수록된 열네 편의 작품 전부를 대화로만 구성했다. 지문도 없이 이어지는 두 고등학생의 대화 속에는 민주주의, 민족과 국가, 빈부격차, 자살 등 결코 가볍지 않은 주제들이 등장한다. ●대화체로 구성된 열네편의 작품 제목은 ‘착한 대화’이지만 작품 속 대화들은 결코 기성세대가 바라는 ‘착한 학생’들의 대화가 아니다. 골계·해학·능청이 버무러진 두 ‘고삐리’의 수다는 현실적이고 청소년스럽지만, 또 한편 기성세대에 대한 풍자의 성격이 짙다. 학생회장과 그의 퇴진을 요구하는 또 다른 학생대표의 대화인 ‘타율과 자율 사이’는 고등학교로 배경을 옮겨 놓은 대의민주주의 정당성 논쟁이라 볼 수 있다. ‘다중’의 요구를 대표하지 않는 친학교 성향의 학생회장에게 또 다른 학생대표는 학생들의 서명을 들고 와 ‘용단’을 요구한다. 학생들의 요구 사항은 두발자유, 휴대전화 사용 자율화, 교사의 폭언·구타·얼차려 금지 등 자연스러운 것들. 하지만 그 자연스런 요구 속에는 ‘미국 좋다는 건 다 따라 하면서 미국의 자율학교는 들은 척도 안 하는’, 또 ‘학원·과외·교복 등 자신들은 겪지도 않은 강압적인 교육환경을 청소년들에게 요구하는’ 기성세대의 자가당착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이 있다. ●강압적 교육환경서 정권비판 엿보여 이러한 어른들을 향한 비판은 자연스럽게 정권에 대한 비판으로 옮아 간다. 교육현실에서 시작된 이 대화에는 ‘강부자·고소영’, 촛불집회, 아고라, 88만원 세대 등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궜던 키워드들이 오르내린다. 그렇다고 해서 ‘착한 대화’가 그렇고 그런 ‘삐딱한 시각’만을 청소년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14편의 대화 속 28명의 인물들은 각각 어느 쪽도 쉽게 손을 들어줄 수 없을 만큼 자체적으로 탄탄한 논리를 가지고 있으며, 또 그만큼 둘 사이는 팽팽한 긴장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니 결국 이들의 논쟁은 어떤 것도 결론이 나지 않고 평행선을 긋고 만다. 이들의 대화가 모두 정치·사회적 문제에만 치중된 것은 아니다. 연애, 섹스, 자기정체성 등 청소년기의 고민도 주로 주제로 다루고 있지만 이 역시 결론이 나지 않기는 마찬가지. 자살을 시도하려는 여인과 옛 남자친구의 대화는 자살을 말리지도, 동반자살을 설득하지도 못하고 끝나며(‘교통사고인가 해방인가’), 하룻밤만 같이 자자는 남학생과 절대 안 된다는 여학생의 줄다리기(‘할 수 있을까 없을까’)도 끝내 어느 쪽으로도 기울지 않는다. ●진정으로 ‘착한 것’에 대한 사유 촉발 이러한 결론을 내지 못하는 치열한 논쟁은 쉽사리 합의점을 찾지 못하는 우리 사회에 대한 뼈아픈 현실인식이기도 하지만, 청소년들이 스스로 생각하는 장을 만들겠다는 글쓴이의 창작 의도와도 맞닿는다. 이미 두 권의 청소년 소설을 낸 김종광은 계몽을 위한 ‘꼰대의 잔소리’가 아니라 “‘진정으로 착한 것’에 대한 청소년들의 다양한 사유를 촉발하는 안내서가 됐으면 한다.”고 작가의 말에서 밝혔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릴레이톡톡①] 이윤석 “가부장적? 그게 원래 성격”

    [릴레이톡톡①] 이윤석 “가부장적? 그게 원래 성격”

    윤정수로부터 [릴레이톡톡]의 바통을 이어받은 이윤석은 “정수가 저를 왜 추천했을까요? 저한테 재미있는 말이 나와야 기자분이 기사를 쓸 수 있을 텐데 걱정이네요. 회사 가서 혼나시는 거 아녜요?”라고 걱정의 눈초리로 바라보며 머리를 긁적였다. 이윤석과 마주 앉아 인터뷰를 하기 전, ‘국민약골’이란 수식어만 맴돌았다. 기자가 묻는 질문에 대답대신 ‘허허실실’ 웃기만 할 것 같았다. 하지만 그를 만나면서 왜 ‘박사 개그맨’이란 타이틀은 진작 떠올리지 못했는지 자책했다. 그를 통해 ‘박학다식’이 어떤 건지 절감하며 귀로 새겨듣고 손으로 받아 적느라 정신없었다. TV와 라디오로 매일 만나는 그이지만 일단 안부부터 물었다. 이윤석은 KBS 라디오 ‘오징어’와 KBS 2TV ‘해피선데이-남자의 자격, 죽기 전에 해야 할 101가지’(이하 ‘남자의 자격’), SBS ‘스타주니어쇼-붕어빵’에 출연하고 있으며 일주일에 한 번은 경기대학교 대학원으로 강의를 나간다. “요즘 같은 스케줄은 저한테 정말 좋아요. 사실 라디오를 진행하기 전에는 ‘올빼미형 인간’이었어요. 낮 12시 넘어서 일어나느라 불규칙적인 생활을 했거든요. 하루가 길어졌다고 할까요? 아내도 상당히 좋아해요. 아무래도 고정적이고 안정적인 수입이 생기다 보니까 좋대요.” 화제는 최근 반응이 좋은 KBS 2TV ‘남자의 자격’으로 이어졌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이윤석은 금연에도 도전하고 아기도 보고 실제로 아내도 공개했다. “방송에서는 보여드리지 못했는데 제가 전형적인 꼰대(?)스타일이에요. 이상하게 똥고집 같은 게 있어요. 남들이 다 건강을 위해서 금연하자고 하는데 제가 필요하지 않으면 따르지 않는 거죠. 제가 술과 담배를 너무 좋아해서 절대 끊을 수가 없네요. 그런 도전 자체에 의의가 있었던 것 같아요. 물론 금연은 아기가 생기면 고민해봐야 할 문제지만요.” 이윤석은 ‘남자의 자격-금연 편’을 통해 아내가 노출된 이후 많은 말들을 들었다고 했다. 특히 이윤석의 가부장적인 부분이 비춰져 의외였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고. “그게 원래 제 성격이에요. 겉보기랑 많이 달라요. 아내는 제가 연예인 같지 않아서 마음에 들었던 것 같아요. TV에서는 제가 많이 웃기는 걸 좋아하고 밝은 것처럼 비쳐지지만 사실 그렇지 않거든요. 사실 부부가 웃기려고 결혼하는 건 아니잖아요.” “아내는 분명 결혼 전보다 결혼한 후 지금 훨씬 저를 더 좋아할 거예요. 저에게 빠져든 거죠.”라는 이윤석의 말은 우스갯소리라고 하기에는 사뭇 진지했다. 이윤석은 “제 신념 중에 하나가 ‘처음에 잘해주다가 나중에 변하는 것보다 처음에 아예 기대치가 낮았다가 점점 잘해주자’거든요. 그래서 아내와도 결혼하게 된 것 같고요. 아마 집사람도 저랑 결혼하기를 잘했다고 생각할 거예요. 현명한 선택을 한 거죠.(웃음) 제가 심심해서라도 앞으로 아내한테 더 잘해주지 않을까요?” 어른들 말씀에 두 마리 토끼는 한꺼번에 잡을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이윤석은 ‘방송과 학교’라는 두 마리 토끼를 손에 움켜쥐고 있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오랜 시간 이윤석을 지칭하던 ‘국민 약골’이라는 타이틀 대신 ‘박사 개그맨’이 자리했다. “책을 워낙 좋아해서 계속 공부를 했고, 이왕 공부했으니 강단에 서보자고 했던 게 오늘까지 왔네요. 제가 교수평가에서 낙제점을 바로 넘기는 점수를 받는 것 같아요. 학생들이 저를 별로 좋아하지 않을 거예요.(웃음) 왜냐하면 제가 신앙을 가지고 있는 친구들한테는 무신론과 관련된 책을 읽어보라고 하거든요. 또 진보적 성향을 띤 친구들한테는 정반대의 보수적인 입장을 담은 책을 읽어보라고 권하고.” 왜 굳이 그렇게 어려운 강의를 하는 것일까. 기자 역시 대학교 다녔을 때를 떠올려보니 매 학기 그런 교수님들이 꼭 계셨다. 그 당시 교수님께는 직접 여쭙지 못했던 걸 이윤석에게 대신 물었다. “학생들 본인이 고집하는 것에 자꾸 교수가 제동을 거니까 이해할 수 없겠죠. 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인생을 살면서 직접 부딪혀서 겪어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전에 간접 경험으로 배우길 바라는 거죠. 저는 학생들이 책을 통해 보다 다양한 경험을 섭렵하길 바라거든요. 늘 행동보다는 생각을 먼저 하라고 얘기하죠.” 이윤석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다 보니 새 프로그램에 대한 기대도 생겼다. 그냥 웃고 떠들면서 다른 연예인 가십거리나 들추는 진행에 얽매이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저는 큰 욕심이 없어요. 제가 받혀줄 수 있는 역할이 있다면 그걸로 만족해요. 물론 혼자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생각도 있죠. 시청자들의 피드백을 통해 제가 할 수 있는 역할을 꾸준히 보여드리고 싶어요. 만약 제가 해볼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맡아 진행하거나 출연해보고 싶어요. 이렇게 말하면 다들 EBS에 가라고 하는데, 섭외가 와야 가죠. 연락 오면 바로 가야죠.(웃음)” 사진제공 = 남성패션 매거진 ‘아레나’, 방송화면 캡처 서울신문NTN 김예나 기자 yeah@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성적 고정관념 깬 로맨틱 코미디

    성적 고정관념 깬 로맨틱 코미디

    MBC 월·화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이 고공행진을 하고 있다. 첫 회 시청률 14.4%(TNS미디어코리아 조사)로 출발한 이 드라마는 방송 6회만에 23.2%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이보다도 더 특기할 만한 것은 이 작품이 ‘논쟁적 문화코드의 집결판’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이다.‘드라마’라는 장르가 한 시대 문화의 리트머스지와 같은 것이라면 ‘커피프린스 1호점’은 여러 면에서 우리 문화의 성숙도를 드러낸다.먼저 ‘팜므 파탈’에 대한 시선을 들 수 있다. 완벽한 외모에 성격도 좋고 실력도 뛰어난 화가 한유주(채정안). 능력있고 당당한 모습이 일본영화 ‘스트로베리 쇼트케이크’에서 나나난 기리코가 연기한 지각있는 예술가 도코를 연상시킨다. 이들은 최근 크게 부각되고 있는 ‘알파걸’에 속한다.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을 지닌 팜므 파탈의 모습도 보여준다. 이제까지의 영화·드라마들에서 팜므 파탈이 보통 남성을 유혹해 치명적인 상황으로 몰고가는 악녀 정도로 그려졌다면, 이들은 자기 주장이 뚜렷하고 능동적인 삶을 사는 진정한 여성 실력자들로 묘사된다. 아르바이트 자리를 얻기 위해 남장을 한 여성 고은찬(윤은혜)은 ‘미소년’으로 통한다. 드라마 시작 전후로 터져나오는 보도들도 앞다퉈 윤은혜 캐릭터의 중성적 매력에 대해 이야기한다. 또 할머니의 맞선 압박을 피하기 위해 게이 행세를 하는 최한결(공유)은 어떤가. 은찬이 여자라는 사실을 아직 눈치채지 못한 채 한결은 자신이 은찬에게 끌리는 것을 고민한다.7회 방송분에서는 병원 정신과까지 찾게 된다. 동성애에 대한 편견을 완전히 씻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이는 우리 사회 성관념과 성적 논쟁이 한결 더 개방적이고 자유로워졌음을 보여준다. 가부장적인 홍사장(김창완)이 시대 감각이 뒤떨어지는 ‘꼰대’로 그려지는 것도 눈여겨볼 만하다. 지금까지 드라마들에서 중년 남성이 고압적이고 권위적인 모습으로 등장하는 것은 현실의 반영으로 여겨졌지만, 이 드라마에서는 젊은 사람들과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문제 요인으로 간주된다. 이밖에 노선기(김재욱)가 일본에서 만난 여자친구를 찾으러 한국까지 날아온 것은 어학연수나 유학 등으로 국제 연애가 활발한 시대상을 반영한다. 또 한결이 취중에 얼떨결에 예랑(민서현)과 모텔에서 함께 투숙하고, 연인인 한유주와 최한성(이선균)도 집에서 잠자리를 함께 하지만, 이에 대해 ‘두 사람이 잤느니 안 잤느니’ 하는 논쟁은 일지 않는다. 혼전 동거 논란이 들불처럼 타올랐던 4년 전 드라마 ‘옥탑방 고양이’ 시절만 떠올려 봐도 격세지감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대해 문화평론가 김헌식 씨는 “‘커피프린스 1호점’은 개방적인 이성관계나 동성애 코드를 시청률을 끌어올리는 장치로 사용하되 그것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지 않는 것이 특징”이라면서 “예전에는 이런 소재 자체가 화제가 됐지만 요즘은 자연스럽고 흥미롭게 받아들인다는 점에서 사회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 열린우리 네티즌들도 ‘내홍’

    “친노세력은 차라리 갈 데가 없으니 집만은 없애지 말라고 사정을 해라.(아이디 야초,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 홈페이지)”,“민주당 들어가기엔 차마 낯 뜨거워서 제물로 우리당 해체를 준비하는 것 다 안다.(김승현, 열린우리당 게시판)” 노무현 대통령과 정동영·김근태 두 전직 열린우리당 의장간의 공방이 거세지자 인터넷에서는 지지자들간 ‘난투극’이 벌어지고 있다. 노 대통령과 두 전직 의장간의 싸움이 감정적으로 치닫고 있는 것 이상으로 인터넷 게시판에서는 ‘갈 데까지 간’ 험한 말들이 오가고 있다. 아이디 ‘고질병’은 정 전 의장의 홈페이지 게시판에 ‘천박한 기회주의자 DY’라는 제목으로 올린 글에서 “‘어떻게 하면 열린우리당을 멋지게 나갈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매몰되어 있는 듯하다.”며 정 전 의장을 공격했다.‘김근종’은 열린우리당 홈페이지에서 김 전 의장에게 “더 이상 분란과 앞뒤없는 선동은 그만하라.”며 당을 떠날 것을 요구했다. 두 전직 의장의 지지자들은 노 대통령과 ‘각’을 세우고 있는 것을 응원했다. 아이디 ‘대한국인’은 김 전 의장의 홈페이지 게시판에서 “놈현(노무현)씨와 그 일당들(노빠)이 조잡하고 시원하게 싸움을 걸어왔는데 꼰대(김근태)도 좀 멋지고 시원하게 한판 싸움을 주도하길 바란다.”며 싸움을 부채질했다.‘대막리지’는 정 전 의장 홈페이지에 “물귀신도 아니고 지금 하는 정치적 행태 볼썽사납다.”며 노 대통령을 비판했다. 노 대통령뿐만 아니라 친노직계인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을 겨냥한 글도 상당수 눈에 띄었다. 아이디 ‘막걸리’는 김 전 의장의 홈페이지 게시판에 “유시민, 넘칠 만큼 동지들을 많이도 우려 먹었다. 아직도 부족하여 동지의 피로 궁물(국물)을 만들고 동지의 눈물로 간을 맞추려 하는가?”라고 공격했다.‘정종원’은 열린우리당 게시판에 “당원들의 의사에 충실한 정동영이 기회주의자냐.”면서 “유시민이 기회주의자이고 분열주의자다.”라고 적었다.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70년간 가사 5000곡 쓴 한국가요계 거목 반야월씨

    [김문기자가 만난사람]70년간 가사 5000곡 쓴 한국가요계 거목 반야월씨

    단장(斷腸)의 고통이란 이런 것일까.1950년 9월초였다. 남편을 애타게 기다리던 아내는 할 수 없이 어린 딸과 피란길에 나섰다. 서울 미아리고개를 막 넘었을 때였다. 허기를 견디지 못한 어린 딸이 자욱한 화약연기 속에 숨을 헐떡이다 그만 명줄을 놓고 말았다. 오열을 토해내던 아내는 정신을 차려 딸의 시신에 간신히 흙을 덮고는 다시 길을 떠났다. 남편과 재회한 것은 그로부터 몇달 뒤였다.6·25전쟁이 끝날 무렵인 어느 겨울날, 남편은 아내와 함께 딸이 묻힌 미아리고개 근처를 찾았다. 그러나 아무리 찾아도 딸의 무덤은 보이지 않았다. 너무 얕게 묻어서 이리 저리 발끝에 차이다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을 것이라고 여겼다. 남편은 비통한 마음에 아내의 손을 붙잡고 한참동안 흐느꼈다. 저절로 한 편의 시를 썼다. ●‘단장의 미아리고개´ 작사가 “미아리 눈물고개 님이 넘던 눈물고개/화약연기 앞을 가려 눈 못뜨고 헤매일 때/당신은 철사줄로 두손 꽁꽁 묶인 채로/뒤돌아보고 또 돌아보고/맨발로 절며절며∼.” ‘단장의 미아리 고개’, 말 그대로 장(腸)이 끊어지는 아픔의 노래다. 이 시는 1956년 이해연의 목소리로 처음 불려진 후 지금까지도 애송되는 국민 가요가 됐다. 이 노랫말을 지은 작사가 반야월(90) 선생.1917년생이니 우리 나이로는 91세인 셈. 부인인 윤경분(86) 여사도 살아 있어 가끔 당시의 아픈 기억을 떠올리곤 한다. 반 선생은 자타가 공인하는 우리 가요사(史)의 백과사전이요, 산 증인이다. 올해로 70년 가요인생을 맞는다. 그동안 무려 5000곡에 가까운 노래를 만들어냈으니 기네스북 등재가 부럽지 않다. 특히 노래비만 해도 ‘울고넘는 박달재’‘단장의 미아리고개’‘만리포사랑’‘소양강처녀’‘삼천포아가씨’ 등 10여개에 달해 생존 가요인으로는 가장 많은 노래비를 가지고 있다. ●청계천 주제로 10곡 선보인다 그는 요즘도 여전히 현역이다. 보통 사람의 나이로 보면 눈과 귀가 멀어 뒷방에 나앉을 법도 하건만 매일 오선지 위에 시를 써내려간다. 최근에도 ‘청계천 트위스트’,‘청계천 엘레지’,‘꿈꾸는 청계천’ 등 청계천을 소재로 한 가사를 10곡이나 만들어 놓았고, 이 가운데 여러 곡이 녹음 중이어서 늦어도 상반기 중 팬들에게 선보일 예정이다. 무엇이 그토록 반 선생의 창작열을 달구고 있을까. 서울 중구 을지로 3가에 위치한 한국가요작가협회 사무실에서 반 선생(협회 원로원 의장)과 어렵게 마주 앉았다. 파란 체크무늬 넥타이에 정장을 한 모습이 90나이가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건강이 어떠냐고 했더니 “이젠 잘 안들려. 성질은 급하고 할말은 많은데 말야.”라며 웃는다. 이어 “다리도 좀 쑤시지만 전철타고 다녀.(다리)부러지지 않으려고 정신 바짝 차리고 있지.”라고 특유의 괄괄한 성격을 드러냈다. 병원에서 가끔 건강을 체크하는 것 이외에는 특별히 아픈데는 없다고 했다. 채식 위주의 소식(小食)도 건강비결 중 하나라고 귀띔했다. “이 나이에 매일 일기 쓰고 4개의 일간신문을 다 보고 살아. 사회면은 물론 사설까지 몽땅. 그러다 보니 잠은 새벽 1시쯤에나 자게 돼. 모든 것이 정신 통일이야. 그리고 말야, 아직까지 작품을 쓰고 있잖아. 그러니 치매 걸릴 틈이 어딨어? 음식? 거 많이 먹으면 못써. 그저 맛있는 음식을 찾아 식도락하고, 즐거움 속에 그냥 소리내어 크게 웃는 거야. 하늘이 놀랄 정도로 말야. 자, 따라해 봐.‘우하하하’, 이게 최고지, 암.” 그는 가끔 택시를 타는 경우가 있다. 그 때 자신을 알아보는 운전사에게 자신의 나이를 물으면 70대라고 한단다.“기자양반, 다니다보면 나를 알아보는 사람 많아. 그러니 내가 세수 안하고 꺼벙하게 다닐 수 있겠어.‘꼰대’소린 듣기 싫거든.”이라며 깔끔한 옷차림을 자랑하는 그다. 최근 작품으로 화제를 옮겼다. 주저없이 서랍 속에서 악보를 꺼내더니 막 작업을 끝낸 ‘꿈꾸는 청계천’을 먼저 낭송한다.‘아, 청계천아 꿈꾸는 청계천아/육백년 긴 세월에 부귀영화 속절없고/임금님께 바친 절개 치마폭에 한을 담고/낙화되어 사라져간 궁녀들의 눈물이여.’ 고저장단, 정확한 발음과 감정이입이 사뭇 감동적이다. 듣는 자세가 진지해서일까. 그는 “자 들어봐, 이번에는 ‘청계천 블루스’야.”라며 다시 낭송을 했다.“네온등 꽃물결에 황혼빛 청계천/새단장 곱게 꾸민 분수가 꿈을 쏟네/그이와 만나자고 약속한 광교다리/퇴근길 늦은시간 가슴만 조마조마/아 서울의 연인이여 청계천 블루스/울어라 색소폰아 밤새워 같이 울자∼.” “어때, 괜찮아? ‘청계천 시리즈’로 10곡을 만들고 있어.(옆에 앉아 있는 작곡가 김병환씨를 가리키며)작곡이 훌륭해. 청계천을 가끔 걷다 보면 이 생각, 저 생각 많아. 그래서 쓰기 시작했어. 이봐, 청계천의 다리가 몇갠줄 알아? 광교, 수표교, 배오개….22개나 돼. 다들 600년의 역사와 한이 담겨 있거든.” ●“‘꼰대´ 소린 듣기 싫다고” 옛날에는 을지로 3가 일대를 ‘스카라 계곡’으로 불렀다고 한다. 남산에서 내려온 물이 스카라 극장 앞을 거쳐 청계천으로 흘러갔다는 것. 지금도 그렇지만 이곳 일대가 생활무대여서 제2의 고향으로 여길 정도다. 그가 왜 ‘청계천 시리즈’ 노래를 만들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는 눈 감는 순간까지 펜을 놓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어디 (죽는 것도)맘대로 돼야 말이지. 먼저 간 동료나 선배들이 꿈속에서 천천히 오라고 자꾸 그래. 죽을 때까지 현역으로 살면서 후배들을 이끌고 뒷바라지하라는 팔자지 뭐겠어.”라며 또한번 크게 웃는다. 요즘의 가요계 세태와 관련해서는 “국적 불명의 노래가 많은 데다 기승전결이 없어 영 맛이 없어. 또 듣는 노래가 아닌 보는 노래로 변질돼가고 있어 안타깝기도 하고….”라며 원로다운 충고도 아끼지 않았다. 그러면서 “(일제시대 때)노래도 글도 다 빼앗긴 시절에 눈물로 우리 노래를 지켜왔어. 온돌, 김치, 된장만이 전통이 아니라 노래도 전통이 있는거야. 살려야 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따라서 매년 한번씩 ‘가요사랑 뿌리찾기 운동’을 펼칠 예정이라면서 살아 있는 동안 전통가요 살리기에 앞장서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의 본명은 박창오(朴昌吾). 경남 마산에서 태어났다.1939년 조선일보와 태평레코드사가 주관했던 전국가요음악 콩쿠르에서 1등으로 뽑혀 가수생활을 시작했다. 예명은 ‘진방남’.1940년 ‘불효자는 웁니다’로 일약 스타가 된다.1942년에는 작사가 ‘반야월(半夜月)’로 또다른 인생을 시작했다. 달이 차면 기울 듯, 이왕이면 곧 일그러질 보름달보다 앞으로 점점 커질 반달이 희망적이라는 뜻에서 ‘半夜月’로 했다. 이밖에 추미림, 박남포, 남궁려, 금동선, 허구, 고향초, 옥단춘 등의 예명으로 암울했던 시절을 노래했다. ●“가요 뿌리찾기 운동 할 거야” 그는 애주가로 소문나 있다. 지금은 부인의 건강 때문에 일찍 귀가하지만 그 전만 하더라도 항상 후배들과 술자리에서 어울렸다. 술시(時)가 되면 초걸이(1차)를 시작으로 소걸이(2차), 중걸이(3차)까지는 기본이다. 이 때마다 ‘자, 사랑합시다.’라며 권주사를 드높인다. 가끔 중중걸이(4차)까지 해도 귀가 때는 지하철을 이용한다. 얼마전에는 70여년의 음악인생을 정리한 ‘불효자는 웁니다’라는 930쪽짜리 회고록을 펴내 주위를 놀라게 했다. 흥미진진한 가요사의 이면까지 담아 사료적으로도 중요한 저술이다. 슬하에 2남4녀를 두었으며 대부분 음악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다. # 주요 노래 꽃마차, 고향만리 사랑만리, 불효자는 웁니다, 세세년년, 잘 있거라 항구야 등. # 주요 작사 두메산골, 만리포사랑, 무너진 사랑탑, 벽오동 심은 뜻은, 비 내리는 삼랑진, 산장의 여인, 삼천포 아가씨, 유정천리, 울고넘는 박달재, 잘했군 잘했어 등. # 주요 저서 반야월 히트가요 선집, 반야월 명작가요 전집, 반야월 가요야화, 불효자는 웁니다 등. 인물전문기자 km@seoul.co.kr
  • [’서울신문 102년-갈등넘어 소통으로/대담] “다이내믹과 질서의 융합이 우리 문화의 힘”

    [’서울신문 102년-갈등넘어 소통으로/대담] “다이내믹과 질서의 융합이 우리 문화의 힘”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젊음과 나이듦으로 나눠지거나 첨단과 ‘구닥다리’로, 또는 혼돈과 질서로 분열되고 있다. 그래서 둘 중에 하나를 꼭 선택해야 할 것 같다.‘다이내믹 코리아’와 ‘고요한 아침의 나라’는 함께 존재할 수 없는 것일까. 김지하(65) 시인과 허운나(58) 한국정보통신대 총장은 아니라고 했다. 오히려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결합했을 때 문화적 파괴력이 생긴다고 강조했다. 서울대 문리대 선후배 사이지만, 김 시인과 허 총장은 이날 처음 만났다. 어색한 분위기를 월드컵 얘기로 풀었다. 역시나 이들은 한국팀의 선전만큼이나 장외의 에너지에 관심을 보였다. ▶허운나 총장 스위스전에서 우리가 진 뒤 텔레비전 화면에 ‘축구는 오늘…죽었다’라는 문구가 나왔다. 우리팀이 더이상 나아갈 데가 없다는 말이 아니라 흥과 신명이 죽었다는 말이다. 전국에 분출하던 신명이 그만 폭삭 가라앉았다는 말이다. ▶김지하 시인 2002년에 월드컵 축제라는 엄청난 사건이 일어났지만, 지식인 사이에서는 ‘히스테리다’‘파시즘적이다’‘일회적이다’라는 말이 나왔다. 나는 아니라고 했다. 특히 이탈리아전에서의 ‘어게인 1966’이라는 카드섹션이 예뻤다. 북한이 이긴 경기를 어게인하자는 생각은 조직된 지도그룹이 이끌어서 나오는 게 아니니 환원주의로는 설명할 수가 없다. 자기조직화 원리에서 발로된 역동적 균형은 1999년 시애틀에서 있었던 반WTO 시민시위와 닮았다. 인터넷을 보고 수천명이 자유무역과 선진국, 신자유주의에 반대해 모였지만 아무도 이 모임을 예상하지 못했다. 그런데 2002년 탄생한 ‘대∼한민국’이라는 구호가 유목민적인 3박과 농경적인 2박의 결합에서 나왔다면,2006년의 꼭짓점 댄스는 4박자 일변도였다. 전체적으로도 자발적인 게 아니라 기업들이 만든 뻔한 프레임의 선전공세에 밀린 느낌이다.2002년 월드컵 축제의 에너지는 이후 촛불로 다시 왔는데, 지식인이 끼어들어서 반미 데모를 했다. 젊은이들은 반미는 아니라고 갈라섰고,2006년의 어색함은 이 갈라섬에서부터 비롯됐다. 이분법적인 반미야말로 아날로그적인 사고이다. (탐색이 끝나고 선후배 사이의 대화는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속성 자체를 향해 파고 들었다.) ▶허 총장 우리는 디지털에 관한 한 인프라를 가장 잘 만들어 놓은 나라다. 이를 이용해 메시지를 만들 수 있는 기반도 가졌다. 영화·드라마·게임·애니메이션 모두 우리는 최고다.2006년 전세계로 퍼진 거리의 전광판 응원에서 우리는 세계를 리드했다. 그런데 2006년의 기운은 약간 달랐다는 점을 부정할 수가 없다. 신명을 아날로그적 콘텐츠라고 하고 이 환희나 흥분을 실어나르는 것을 디지털이라고 하면 신명이 컸기 때문에 2002년의 축제가 가능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차원에서는 이번 2006년에는 신명의 농도가 묽었다고 본다. ▶김 시인 2002년에는 적어도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결합지향을 갖고 있었다. 나는 유비쿼터스 단계에 가면 분열된 가치체계가 반드시 결합할 것이라고 보고, 이를 ‘디지털아날로그’‘디지털에코’라고 불렀다. 이 분야에서 ‘다이내믹 코리아’의 역동적 이미지와 ‘고요한 아침의 나라’라는 질서의 이미지를 함께 갖고 있는 우리는 빠를 수밖에 없다. 두 개의 상반된 이미지가 융합할 수 있다는 데 동의한다면,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결합지향적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허 총장 두 개의 상반된 이미지를 한 나라가 갖고 있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다. 특히 최근 여러 나라를 둘러보며 한국만큼 다이내믹한 나라가 없다고 생각했다. ●유비쿼터스 단계되면 분열된 가치 결합 ▶김 시인 디지털은 뇌의 모방이기 때문에 이중성을 갖고 있다. 서로 반대되는 게 켜졌다, 꺼졌다를 반복하는 이중분열의 숨은 차원에 생명의 영적 차원이 있다. 아날로그의 차원이다. 결국 디지털이 치유의 방법이 되려면 아날로그가 필연적으로 결합해야 한다. (김 시인은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분열한 게 아니라, 예전과는 다른 형태의 조화를 이루고 있다고 설명했다. 허 총장은 이렇게 조화를 이룬 우리 문화가 나라 바깥에서 얼마나 사랑을 받고 있는지 목격담을 털어놓았다.) ▶김 시인 1879년에 충청도 지방에서 김일부라는 사람이 한국주역인 정역을 발표하며, 율여(律呂) 개념을 뒤집은 여율(呂律) 개념을 제시한다. 여(呂)는 여성·아이들·시끄러운 것·혼돈·역동성을 뜻한다. 율(律)은 남성·질서·이성을 말한다. 지금은 여의 무게가 더 커지고 있다. 균형이라는 건 기우뚱거리는 데서 나온다. 왼쪽으로 기울어질 수도 있고, 오른쪽으로 기울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한쪽이 없어지거나 정복당하는 것은 균형이 아니다. 월드컵 때는 혼란이 앞서고 질서가 뒤를 이었을 뿐 어떤 게 사라지지는 않았다. ▶허 총장 균형이라는 말은 한쪽이 일방적으로 득세하는 것을 뜻하는 게 아니다. 그 가능성이 한류로 상징되는 문화 부문에서 실현되고 있다. 바깥에서 한류를 목격했는데, 가슴이 뛰었다. 중동이나 아프리카에도 한류가 있다는 건 보기 전에는 믿기지 않는다. 직접 가서 보니 하루에 다섯번씩 기도하는 이슬람국인 이집트나 알제리에서도 저녁이 되면 사람들이 한국 드라마를 본다. 행복하고 아름다운 것들을 추구하는 아랍에서는 가을동화나 겨울연가가 인기지만, 나라별로 한류에 대한 이미지는 다르다. 예를 들면 베트남에서는 한국의 엄청난 파워, 흥이랄까 다이내미즘 때문에 국가발전이 빠른 것에 대해 존경심을 표시한다. ▶김 시인 미국 할리우드 아트디렉터인 제인 케이건은 한류 기술체계도 디지털로 변형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동쪽으로 말을 달리며 서쪽으로 활을 쏘는 고려 무사의 모습을 상상해 보라. 다이내믹 코리아와 모닝캄의 상반된 이미지가 상호 긴장을 주고 있다. 그런데 정작 우리 안에서는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2005년도 문화산업 총매출액이 63조원이다.2003년부터 두해 동안 이 분야는 22.8% 성장했다. 다른 7대 동력산업의 성장률을 합쳐도 3.3% 정도다. 그런데 정부의 문화정책 관련 예산 비율은 역주행을 하고 있다. (환갑을 앞둔 후배와 환갑을 훌쩍 넘은 선배는 디지털 세대의 문화에 관심을 떼지 못했다. 자신들의 전성기였던 산업화 시대에 느끼지 못한 가능성이 이제 열리고 있다는 기쁨 때문이다.) ▶김 시인 28살 먹은 여성에게 자신의 세대를 뭐라고 부르고 싶으냐고 묻자 ‘밀실 네트워크 세대’라고 불러달라고 하는 인터뷰를 봤다. 자기네들은 전부 ‘방콕’이라는 것이다. 외로운 사람들이 디지털·컴퓨터로 모인다. 그런데 10명만 모였는 줄 알았는데, 나중에 보니 수백명·수천명·수십만명이 뜨는 것이다. ●개인화된 디지털 문화 토털세계 통해 세상과 소통 ▶허 총장 디지털 문화의 많은 부분이 ‘방콕‘(방에 틀어박힘) 상태로 개인화되고 있지만, 동호회 문화가 생기고 싸이월드를 통해 개인의 토털세계가 형성돼 세상과 소통하게 된다. (디지털과 아날로그에 대한 담론이 처음 나오고 10여년이 흘렀다. 디지털 세대에 대한 애정은 어느덧 애증이 돼 있었다. 시인은 디지털 세대가 스타일을 찾기를 바랐다.) ▶김 시인 아날로그 스타일을 무시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내가 어렸을 때 6·25 전쟁이 나서 400만명이 죽었다. 연좌제에 걸려 고생한 사람은 셀 수가 없다. 그 지독한 난리를 겪고도 웬만한 집들은 거지가 가면 불러서 밥을, 그것도 밥상에 차려서 줬다. 그게 우리의 민심이고 스타일이었다. 이제 그 아날로그 스타일은 무너졌고, 디지털 세대는 자기의 스타일을 아직 못 만들었다. 이 세대가 월드컵 같은 경험을 통해 그 스타일을 세우는 게 반갑다. 조선왕조실록을 번역해서 인터넷에 올려 놓으면 그 안에서 부인네들 30여명이 계를 한다고 대신들이 임금에게 고자질하는 대목을 찾아내는 게 젊은 세대들이다. 한류 탐구자들에 의해, 디지털 세대에 의해 어떤 영화 시나리오나 드라마, 애니메이션, 게임이 나올까.‘왕의 남자’도 결국 실록의 한 줄에서 출발한 게 아닌가. 아날로그를 ‘꼰대’ 취급할 게 아니다. 배우려고 들어야 한다. ▶허 총장 이집트에 가보니 문화를 뜻하는 컬처(culture)라는 말에 네트워킹을 합성해 ‘컬넷’이라는 것을 구축해 놓았다.180도 반구형 화면에 파라오 가면부터 파피루스까지 유적들이 열거된다. 파피루스를 선택해 글자 하나를 건드리면 그에 관한 이야기와 기록이 눈앞에 펼쳐진다. 이게 디지털을 이용한 문화의 재구성이고, 이것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깊다. 심미적인 것 자체가 상품이 되고 눈길을 끌어야 살아남는 ‘어텐션 이코노미’의 시대가 되지 않았나. ▶김 시인 다이내믹한 디지털과 질서의 아날로그는 함께 가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의 중도가 나타날 때가 됐다. 지식인들은 월드컵 현상이 나타나면 재해석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젊은이들은 아날로그를 무조건 꼰대 취급만 할 게 아니다. 배우려고 들어야 한다.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생산적인 방향에서 겨냥하고, 새로운 문화정책과 방향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다이내미즘과 질서의 이미지를 모두 갖고 있는 우리는 이미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소통을 이룬 경험이 있으니, 그것을 가장 잘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정리 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김근태복지 “두발자유화 요구 지지”

    김근태복지 “두발자유화 요구 지지”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이 최근 두발자유화를 요구하며 거리집회를 벌인 고교생들에게 “꼰대가 아니라 친구가 되고 싶다.”며 공개적인 애정표현을 했다. 김 장관은 14일 자신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고교생의 두발자유화 요구를 적극 지지하고 “청소년들의 거리축제에 경의를 표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 글에서 “두발 문제의 핵심에 인권문제가 있음을 명확히 밝힌 청소년들의 사려 깊음과 이를 축제로 승화시키는 문화적 당당함이 참으로 시원해 보인다.”면서 “미선이와 효순의 집회, 탄핵반대집회 등을 통해 저항과 축제가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을 체험한 세대다운 긍정적인 모습”이라고 치켜세웠다. 그는 이어 “많은 어른들이 학생들에게 자제를 호소하고 있지만 너무 오버할 필요는 없다.”며 “내가 보기에 새롭게 변하는 세상을 잘 모르는 것은 오히려 우리 어른들일지 모른다.”고 말했다. 강충식기자 chungsik@seoul.co.kr
  • 남과 여/허무한 마흔...40대男 80% 우울함 느껴 마음이 성장한다는 징표

    ●한 남자(48세) 대기업의 이사로 안정된 가정을 가진 그는 타고난 머리와 승부욕으로 학교에서나 직장에서나 치열하게 살았다.직위,경제력은 물론 쑥쑥 일류대학을 들어간 아이들로 자식농사도 성공했다.아내와도 별 문제없다.허리에 살이 붙었지만 아직 보기 나쁘지 않은 아내에게 불만없다.그런데 요즘 그가 살 맛이 없다.우울하고 헛살았다는 생각이 든다.별것도 아닌 텔레비전 드라마를 보다 눈물이 흘러 아내 몰래 얼른 닦았다.‘봄을 타나?’‘내가 늙었나?’ ●또 한 남자(42세) 며칠 전 15명 부원들과의 회식 중 그는 정면에 앉은 단 한 사람의 부원만이 자신의 말에 ‘어쩔 수 없이’ 귀기울이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15년전 자신이 끔찍하게도 싫어했던 부장 앞에 앉은 자신,바로 그 모습이었다.“옛날에 말야,내가…” 별 실력도 없고 인정도 받지 못했던 부장의 물고 늘어지듯 이어지던 이야기는 정말 고문이었다.스스로 늙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맞춘 눈길을 놓치지 않으려는 듯 이야기를 늘어놓았던 자신이 더할 수 없이 비참해졌다.“아,내가 ‘꼰대’가 다 됐구나.” 아,옛날이여. ●또 다른 남자(51세) 아내가 차가워졌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린다.그전에는 토라진 아내를 며칠 무시했다가 외식이라도 하면서 풀어줬다.부부싸움중 “나는 당신과 아이들을 위해 죽도록 일했다.이만하면 됐지 뭐가 불만이야?”라고 소리칠 때만 해도 아내가 평소처럼 물러설 줄 알았다.그러나 놀랍게도 “그∼래.대단하게 남편노릇,애비노릇 잘했다.이젠 그만해도 돼!”라고 아내가 되받아치는 게 아닌가.직장에서도 ‘실세’라는 소리를 듣는 그가 “아내가 미워죽겠다.”라고 말하며 초라해진 자신의 변화에 스스로 놀라고 있다. 갖출 만큼 갖췄다는 잘 나가는 남자들이 허무를 배우고 있다.남자들이 ‘울고 싶다.’고 말한다.울고 싶은 남자,울게 하라.그것이 뭐 대순가. 그러나 문제는 울고 싶은 남자가 정작 입을 앙다물고 눈물을 참고 있다는 사실이다.스스로 ‘운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음이다.태어날 때는 우렁찰수록 좋았다지만 더이상 남자는 울어서는 안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아니 그렇게 세뇌됐기때문이다.“사내자식이 울면 안돼.”“남자가 말야….”로 이어지던 부모님과 인생선배,직장선배들의 잔소리를 기준으로 ‘괜찮은 남자’ 축에 들었던 그가 마흔 중턱에서 그만 ‘형편없는 남자’로 전락할 수는 없지 않은가. ●40대,무의식 속에서 감성적인 성장이 시작된다 그러나 걱정할 것 없다.이는 남자 10명 가운데 8명에게서 나타나는 보편적 변화다.외형적 목표만을 향해 달렸던 남자들이 비로소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시기,40대는 성숙으로 가는 길목이다.‘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누님’이라 시인은 노래했던가.이제는 돌아와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는 시기를 맞은 40대의 남자,당신 자신을 향해 축배하라.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씨는 “그 흔들림,혼란에 당혹하지 말라.40대에 찾아든 회의는 외적 가치가 아니라 내면적인 가치에 더 비중을 두기 시작했다는 것,즉 다시 마음이 성장하기 시작했다는 징표다.축복이다.”라고 말하며 “이 시기에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며 자신을 위해 투자한 남자는 부드럽고,열려있는 매력적인 남자가 될 것이다.”고 말했다. 처음 겪는 혼돈과 방황의 시기를 성찰의 시기로 삼은 사람만이 자신의 인생을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다.‘강한 남성’을 좇을 것이 아니라 ‘사려 깊고 따뜻한 남성’이란 새로운 가치에 눈뜨고,파도를 타듯 그 변신에 올라탄다면 ‘나도 괜찮은 사람이야.’라는 감정적 카타르시스를 느끼고,새로운 힘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울고 싶으면 실컷 울어라,남자여.굳은 얼굴로 살아온 사람이 갑자기 속마음을 털어놓는다면,젊은 시절로 돌아간 듯 달라진다면 이상하게 볼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지만,내 마음을 들여다보며 그 속에 침잠(沈潛)하라.내적인 자각을 경험하지 못하고 단지 청년기의 목표,도전에만 매달린 채 인생을 끝낸다면 60대에는 허무의 나락에서 헤어나올 수가 없다. 지적 통찰력이 아니라 감정적인 통찰력을 찾아라.감정을 꼭꼭 눌러온 당신,40대 남자의 마음 속에 이미 존재하고 있다.개화(開花)를 기다리며. 허남주기자 yukyung@
  • [외언내언] 대중가요의 수준

    건전해야할 대중가요가 날로 저속해지고 있다. 가장 많은 사람이 부담없이듣고 부를 수 있는 것이 대중가요다.그런데 최근 일부 대중가요의 내용이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운 욕설과 저속어로 대중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청소년보호위원회(위원장 강지원)는 17일 ‘DJ DOC’(디제이 덕)의 5집 앨범이 남녀 성기를 뜻하는 비속어와 저속한 표현을 사용한 것을 이유로 ‘청소년 유해 매체물’로 규정, 미성년자에 대한 판매를 금지시켰다. 또한 서울 강남 경찰서장과 경찰간부 21명은 DJ DOC 멤버 이근배씨와 앨범제작회사 (주)새한을 상대로 배포금지 가처분신청과 함께 이들을 명예훼손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3인조 인기그룹인 ‘DJ DOC’은 새앨범에서 경찰에 대한 노골적인 비하와 원색적인 욕설을 담고 있다 한다.경찰이 배포금지가처분신청과 함께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한 것은 경찰청장 등이 모인 간부회의에서 ‘DJ DOC’프로덕션의 소재지역을 관할하는 강남경찰서가 대표로 고소하기로 결정한 데 따른 것으로 알려진다. “이것봐, 포졸이! 내 말좀 들어봐!…새가 날아든다 웬갖 짭새가 날아든다.… 문제야 문제, X같은 짭새와 꼰대가 문제.민중의 지팡이, 흥 X까다.” 국가공권력을 온갖 욕설과 비속어로 조롱하고 있는 이 가사는 창작의 자유를 넘어선 방종과 만용이다.이런 노래를 불러 청소년들에게 무엇을 남기겠다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다.더구나 ‘DJDOC’멤버들이 음주운전과 뺑소니 혐의 등으로 수차례 경찰에 불려온 것에 앙심을 품고 사사로운 감정을 노래에담아 공권력을 모욕했다면 더욱 용납되기 어렵다. 지난 총선때 대중가요 ‘바꿔 바꿔’가 시대정신으로 부상하면서 정치변혁의 큰 역할을 하였듯이, 비록 쉽게 부르고 쉽게 잊혀지는 대중가요일망정 시대정신과 대중의 정서를 담는 것이 바른 자세이다. 선대들은 그렇지 않았다.한말 판소리 ‘새타령’의 가사를 살펴보자. “남원산성 올라가 이화문전 바라보니/수진이 날진이 해동청 보라매 떴다/보아라 종달새 이산으로 가며 쑥국쑥국 저산으로 가며 쑥국쑥국/어야허 어이야 디야허 등가 내사랑이라” 여기서 말하는 ‘남한산성’은 남원의 지명이아니라 ‘남은(餘) 산성(山城)’곧 일제가 지배하지 못한 의병의 주둔지를 말하고, ‘이화문전(梨花門殿)’은 이왕문전(李王門殿)의 뜻으로 조선왕조를 지칭한다.수진이(사냥매) 날진이(야생매) 해동청(海東淸) 보라매는 모두 한국의 전통적 사냥매를 일컫는것으로서 여기서는 의병을 가리킨다. ‘종달새’는 백성(민중)을, ‘쑥국’은 수국(守國) 즉 나라를 지키자는 뜻이고, ‘어야허’는 호국신을, ‘등가(登歌)’는 궁중의 종묘악으로 국태민안을 축원하는 아악을 말한다. 무엇을 의미하는 가사인지 짐작할 것이다.선대들은 이렇듯 판소리 가사 하나에도 애국충정을 담았던 것이다. 金三雄 주필 kimsu@
  • [촬영현장] MBC 새 일일극‘날마다 행복해’

    28일 오후 서울 목동 아파트단지 옆 주택가.카메라와 조명판,각종 촬영장비를 챙겨넣은 철제가방 등이 널린 좁은 골목길에 수십명이 모여서서 웅성대고 있다.얼핏 무질서한 군중 같지만 유심히 보면 모두들 한 인물을 구심점으로불규칙한 동심원을 그리고 있음을 알게 된다.MBC 장수봉PD다. 주머니가 잔뜩 붙은 감색 등산용조끼와 운동화속에 밀어넣은 국방색 바지,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연출 주안점 X도 없어,젊은 놈들 연기 훈련시키는거지”,“꼰대(중견 연기자)들 어제 다 찍었어”험한 말을 연발하는 그는 헌칠한 남녀 배우들이 누비는 이곳에서 자못 피에로같다. 하지만 기자며 스탭이며 연기자들은 불로 향하는 나방처럼 그 곁으로 다가서지 못해 안달이다.장씨가 이곳서의 촬영분으로 막을 올릴 새 일일극 ‘날마다 행복해’(10월11일 첫방송,월∼금 오후8시25분)의 연출자이기 때문만은아닌 것 같다.오척단구의 이 ‘인상파’에게서 세파에 찌든 보통사람들은 묘한 동질감과 친화력을 느끼는가 보다. ‘날마다…’는 줄곧 평범한 사람들 삶에 포커스를 맞춰온 장PD의 장기가 또한번 발휘될 드라마.여자들만 사는 유정(이태란)네 집에 준제(김상경)네 식구들이 세들어오면서 두 가족이 싸우고 화해하다 정들어가는 과정을 그린다. 우연히 유정과 같은 ‘소나티네’속옷 개발과에 배치된 준제가 유정과 사장딸 주란(김정은)사이에서 벌이는 애정 갈등,껄렁한 백수인 준제 동생 훈제(이훈)가 식당집 딸 금희(박선영)를 만나면서 사람 돼가는 과정 등에 유정엄마(박원숙),준제엄마(김용림)등의 감초연기를 얹어 밝고 경쾌하게 보여준다는 기획의도다.‘일곱개의 숟가락’‘사춘기’등을 통해 탄탄한 기본과 훈훈한 시선을 보인 이정선씨가 집필한다. 이날 촬영 하이라이트는 단연 준제와 유정의 첫 상면.제대한 준제가 그새 이사한 집을 찾느라 한눈 팔던중 유정의 차에 부딛쳐 나동그라지는 장면이다. 브레이크가 늦게 걸렸는지 유정의 차에 부딛쳐 수박 깨지는 ‘퍽’소리가 제법 컸다.얼굴을 찡그리고 간신히 일어선 김상경이 일부러 허리를 돌려보이며 “나 괜찮아”하는데도 겁에 질린 이태란은 훌쩍임을 그치지 않는다.어디선가 다가선 장PD,“야 임마,괜찮아,이건 연기야”하며 이태란 어깨를툭툭 두드리더니 좌중을 둘러보며 “자,한번 더 갑시다”한다.원래 크고작은 돌부리들이 무수하지만 꺾이지 않고 한번 더 일어서 가는 것이 평범한 삶의위대함 아니겠는가. 손정숙기자 jsso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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