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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심상덕의 서울야화] (17) ‘덜덜골목’ 덕수궁

    올여름은 무척이나 더웠습니다. 그래서 냉장고, 선풍기, 에어컨을 많이 사용했을 텐데요. 그런데 이 전기와 관련해 우리 서울의 옛 지명 중에 ‘덜덜골목’이라고 하는 곳이 있었습니다. ‘덜덜골목’이 어디냐고요. 덕수궁에 있습니다. 덕수궁 대한문에서 남쪽 담장을 따라 난 그 덕수궁 돌담길이 바로 ‘덜덜골목’이었던 겁니다. 이 골목에 왜 ‘덜덜골목’이란 이름이 붙었는지 아십니까. 명성황후 시해사건 이후 고종은 언제 어떻게 또다시 무서운 일이 일어날지 몰라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고종은 한밤중에 가랑잎 굴러가는 소리에도 깜짝깜짝 소스라쳐 놀라는 그런 날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긴긴밤을 뜬눈으로 지새우다가 이른 새벽, 까치소리를 듣고서야 잠자리에 들곤 했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고종은 당시 한성판윤, 지금의 서울시장인 이채연을 불러 “자고로 모든 흉한 일들은 한밤중에 일어나는 법이 아니겠느냐. 그러니 내가 지금 거처하고 있는 덕수궁을 한밤중에도 대낮같이 환하게 불을 밝히도록 하라.”고 했습니다. 100여년전인 1900년대의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때 덕수궁에도 ‘전기소’라는 이름의 ‘발전소’가 들어서게 됐다고 합니다. 덕수궁 발전소에 설치된 발전기는 25㎾의 직류 발전기였고, 그 발전기 돌아가는 소리가 ‘덜덜덜덜∼ 덜덜덜덜∼’아주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불을 밝혔다고 합니다. 그래서 서울 사람들은 지금의 덕수궁 돌담길을 덜덜골목이라고 불렀습니다. 덕수궁에 전기가 들어오고 난 뒤 고종은 “이 같은 경사스러운 일에 잔치를 한번 크게 벌여야 되지 않겠느냐. 외국 공사관 사람들을 초대해 잔치를 벌이도록 하자.”고 제안했습니다. 그래서 고관대작은 물론 외국 공사관 사람들을 전부다 초청했는데 이게 웬일입니까. 글쎄, 임금님을 모신 가운데 축하 잔치를 막 시작하려는 순간 전기가 꺼져버려서 암흑천지가 되어 버린 겁니다. 외국 공사관사람들 다 불러놓고 임금님을 모신 그날 잔치는 엉망이 되어버릴 수밖에요. 민간에도 한등 한등 전기가 보급되기 시작한 1909년. 당시만 해도 10촉광 희미한 전등 한개의 한달치 전기 사용료가 1환 60전이었습니다. 그리고 가수 이연실이 부른 ‘목로주점’이란 노래에 나오는 ‘오늘도 목로주점 흙바람 벽엔 삼십촉 백열등이 그네를 탄다.’에 등장하는 30촉짜리 전등 하나의 한 달 전기 요금이 4환이었습니다. 또 50촉광은 6환. 그 당시 물가로 쌀 한되에 단돈 18전이었거든요. 그러니 일반 서민들은 감히 엄두도 못냈던 겁니다. 그 무렵 날품팔이하는 사람들 하루 일당이 30전. 쌀 두되를 살 수 없는 액수였습니다. 당시 관청이나 은행을 포함해 우리 서울의 전등 수가 8000개 정도였다고 합니다. 이 귀한 전기를 덥다는 핑계로 너무 낭비하고 있는 건 아닌지요.
  • [문화콘텐츠 뿌리 인문학] (하)링커를 키우자

    [문화콘텐츠 뿌리 인문학] (하)링커를 키우자

    김용만 우리역사문화연구소장은 요즘 TV를 보면 착잡해진다.SBS ‘연개소문’과 MBC ‘주몽’ 때문이다.‘정통 역사드라마’라기에 ‘연개소문’ 자문에 응했는데, 사실과 다른 설정이 나와서다.‘주몽’은 정반대의 경우다. 정통드라마가 아닌 ‘팬터지’로 만들겠다고 했는데, 이런저런 비판이 일자 슬그머니 역사적 사실에 충실하겠다고 제작진이 밝혀서다. 드라마를 생산·소비하는 양쪽 모두 원하는 것이 ‘재밌게 볼 드라마’인지,‘쉽게 풀어쓴 역사 다큐’인지 불명확하다.‘재미’와 ‘사실’은 끝내 엇갈린 방향으로 뛸 수밖에 없는 두마리 토끼인가. ●‘링커(linker)’를 키워야 이 두 토끼를 잡으려면 ‘전문 지식’과 ‘대중 취향’을 연결(link)해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사실을 분명히 알면서 동시에 대중적으로 풀어내야 한다. 제작·기획 파트에 이런 사람이 있어야 한다. 역사평론가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 소장은 “학자들은 대중이 역사에 무관심하다고 푸념하지만, 사실은 학자가 대중에게 무관심하다.”고 말했다. 이 소장은 인문교양서적 가운데 역사 관련 서적이 항상 상위권에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전문적이고 세부적인 학설뿐 아니라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는 학자도 필요하고 이들에 대한 낮은 평가도 사라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경현 고려대 교수 역시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를 예로 들면서 ‘준전문가’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는 결국 어느 정도 대학교육이 떠맡아야 한다. 서영수 단국대 역사학과 교수는 그런 의미에서 지금 대학 교육을 ‘교수와 학생들간 묵계에 의한 사기’라고 규정했다.“가르치는 교수나 배우는 학생 모두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모든 대학, 모든 학과의 커리큘럼이 천편일률적으로 전문연구자 육성에 초점을 맞춰서다. 전문연구자는 몇몇 대학에서 키우고 나머지는 역사적 지식을 어떻게 활용할지 가르쳐야 한다는 것. 그래서 스스로도 제자들에게 연구도 좋지만 소설이나 시나리오에도 도전하라고 북돋는다. ●‘지적재산권’ 개념을 넓혀야 이들 링커가 나타나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밥벌이’에 대한 걱정 때문이다. 그래서 법률적 판단과는 별개로 지적재산권 개념을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같은 역사를 다뤄도 소설가에게는 판권이 있는데, 연구자나 기획자에게는 왜 없냐는 것. 미술사학자로 콘텐츠업체 다할미디어를 운영하는 김영애 대표도 공감을 나타냈다. 김 대표는 “이공계와 달리 인문학자의 지적재산권은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면서 “저작권료든 자문료든 원고료든, 대가가 있다는 점을 명확히 해야 학자들이 더 많은 내용을 내놓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국가의 지원도 중요하다. 김 대표는 “일본은 대학마다 아카이브 사업을 벌이는데 교수들 사이에서 이 프로젝트만 해도 몇십년은 먹고 살 수 있겠다는 말이 나올 정도의 규모”라면서 “이것 역시 일본이 지적재산권 개념에 엄격하니까 가능하다.”고 말했다. ‘한국생활사박물관’이 모범사례일 수 있다.‘한국생활사박물관’은 학자·편집자·디자이너 등 연인원 400여명이 달라붙어 선사시대 때부터 오늘날까지의 생활사를 ‘박물관’ 형식으로 정리해 호평받았다. 이 책의 저작권은 출판사와 편찬위원회에게 있고, 편찬위 저작권은 이 프로젝트를 이끌었던 편찬위원회 강응천 주간이 대표로 행사토록 되어 있다. 편집기획에 의한 책일 경우 필자뿐 아니라 편집자의 권리도 인정하는 외국 사례에서 따온 것이다. 강 주간은 “비유하자면 영화의 판권이 감독뿐 아니라 배우와 스태프들 모두에게 인정되는 방식”이라면서 “그런 신뢰관계가 있어야 전문연구자와 콘텐츠분야의 사람들간 네트워크가 만들어지고, 거기서 수준있는 콘텐츠를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말했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애니 ‘아마게돈’ 실패 왜? “‘작가’라는 생각에 ‘표현의 자유’ 같은 얘기만 했지 산업적인 면을 보지 못했어요. 후배들은 안 그랬으면 좋겠다는 겁니다.” 한국 만화계의 ‘절대지존’으로 불리는 이현세(50)씨가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의 문화콘텐츠 전문교육과정 대표교수로 임명됐다. 강단(세종대)이 낯설지는 않지만, 무슨 생각으로 책임교수 자리까지 덜컥 수락했을까. 서울 포이동 화실에서 만난 그는 “10년 전부터 가슴에 품었던 걸 이제야 풀어 놓게 됐다.”고 말했다.10년 전이란 다름 아닌 ‘아마게돈’ 이야기.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만화를 원작으로 그 당시로는 거액인 40억원을 쏟아부은 애니였는데 작품성도, 대중성도 인정받지 못했다. 왜 그랬을까? “‘까치’의 머리털을 보세요. 그걸 애니나 캐릭터상품으로 살릴 수 있을까요. 그런데 그 머릿결을 못 살리면 당장 ‘에이∼ 뭐야∼.’하는 반응이 나와요. 워낙 강한 이미지라서 이제 바꾸지도 못해요. 까치를 그릴 때 책으로 낼 생각만 한 거죠.” ‘뿌까’,‘마시마로’와도 비교했다.“거꾸로 뿌까는 굵은 선으로 최대한 간략하게 그렸죠. 이건 명함 같은데 축소해 놔도 ‘미학적인 맛’이 떨어지질 않아요. 이게 상품가치가 있는 캐릭터예요.‘마시마로’는 원래 캐릭터를 노린 게 아니라지만 간략한 선을 통한 이미지 제시라는 점에서는 성공적이죠.” 캐릭터를 강조하는 것은 상업화의 핵심이기 때문이다.“창작에는 스토리 중심과 인물 중심 두가지가 있어요. 스토리 중심은 작품성은 높아도 상업화하기는 어렵죠. 반면 인물 중심은, 캐릭터가 강하기 때문에 만들기가 쉬워요. 강한 캐릭터는 자기들끼리 밥만 먹여놔도 스토리가 나오거든요. 거기다 강한 이미지 때문에 다른데 써먹기도 좋은 거죠.” 그도 ‘천국의 신화’ 때 처음 적용해 봤다. 이전에는 직접경험이나 간접경험(취재)으로 그렸지만,‘천국의 신화’에서는 자료로 연대기만 구성한 뒤 ‘역행과 순행’의 원칙 아래 캐릭터군을 설정하고 이 위에다 스토리를 덧씌웠다. 전문교육과정에도 이 경험을 불어 넣을 계획이다.“애써 만든 작품을 한번 쓰고 만다면 정말 아깝지요. 그래서 아예 기획단계에서부터 게임·애니·음악 등 다른 분야에 쓸 수 있는지 생각해 보자는 겁니다.” 목표는 영화아카데미다.“일종의 성공모델이 필요하다는 거죠. 영화나 드라마가 성공하니까 우수한 인력이 감독이나 PD로 몰려듭니다. 게임도 그런 기미가 보이죠. 다른 분야에는 없어요. 그걸 한번 해보고 싶은 겁니다.” ■ 인문학 미드필더 될려면… 글 사진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의 문화콘텐츠 전문교육과정은 내년부터는 1년 과정이지만 올해는 9월부터 6개월 과정이다. 주·야간 합쳐 모두 50∼60명 정도를 뽑는다. 다음달 1일 서류전형과 8∼9일 심층면접을 거쳐 18일부터 개강한다. 전공은 기획전공과 창작전공이 있다. 기획전공은 아이템 선정과 펀딩, 제작까지의 모든 과정을 다룬다. 창작전공은 작품을 구상하는 단계에서부터 상품화 가능성을 반영하는 방법을 배운다. 전문교육과정은 이 과정에서 ‘스킨십’을 매우 강조한다. 책이나 인터넷에서 찾아볼 수 없는, 시시콜콜한 얘기까지 다 하겠다는 것. 그래서 관련 업체에서 일한 경력이 있거나, 극본이나 시나리오를 쓴 실적이 있는 사람을 우대한다. 또 교수도 이론적인 주장을 펴는 사람보다 곽경택 감독처럼 풍부한 현업 경험을 가진 사람들로 구성한다. 그래야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들 사이에 실질적인 대화가 이뤄질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교육내용도 이에 맞췄다. 아예 몇몇 업체들로부터 프로젝트를 받아와 이 프로젝트를 직접 수행해 나가는 과제해결형 수업이다.“성공모델을 만들고 싶다.”는 이현세 대표교수의 바람이 실현될지 관심이 쏠린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톱·스타 10년 신성일의 영광과 고독

    톱·스타 10년 신성일의 영광과 고독

    10년간 주연작품이 5백편에 육박하고 있다. 국산영화의 3분의1 이상이 신성일(申星一·33)의 것이었다면 신성일아성(申星一牙城)이란 낱말만으로는 모자란다. 5백편 주연이란 기록은 세계 어느 영화사에도 있을 수 없고 앞으로도 있을 것 같지 않다. 한 마디로 60년대의 국산영화는 신성일에 의한, 신성일을 위한 신성일의 것이었다고 할 수 밖에. 10년 겹치기·5백편주연 3천만원 짜리 집도 짓고 영화제작자·연출자는 신성일(申星一)의 「스케줄」에 따라서 촬영 일정을 정한다. 배우가 촬영 「스케줄」에 따르는게 아니고 제작자가 배우의 「스케줄」에 맞춰 촬영계획을 짜는 것이다. 신성일이 한 영화에 주는 시간은 보통 1개월에 하루 정도를 꼽고 있다. 그가 이틀동안 출연해야 한다면 그 영화는 한 달을 더 기다려야 하는 셈이다. 69년에 내놓은 작품이 개봉된 것만도 이미 50편. 요즘도 『만종(晩鐘)』(신상옥(申相玉)감독)을 비롯해서 15편에 동시 출연 중. 한 때는 최고 33편의 겹치기 기록을 세웠다. 아무리 쉽게 만드는 영화라 해도 초인적인 정력이다. 겹치기 출연의 강행군 속에서 10년을 보내 신성일의 오늘의 느낌은-. 『연애 한번 못한다고 병신이라고 하더군요. 한가지만 바라보고 살았으니까 그 말이 곧 내 생활의 일면을 말해주는 것 같아요』 배우 신성일은 있어도 인간 강신영(姜信泳 본명)은 잃은 것 같다면서 『허무하다』고 덧붙인다. 그가 『로맨스·빠빠』(신상옥감독)로 「스타돔」에 나선게 59년(개봉은 60년). 10년간 나라에 바친 세금만도 5천만원이 넘는다. 68년에 7백20만원을 낸 그는 69년도에도 7백만원을 내어 연예인 중 최고 납세자의 위치를 계속 유지했다. 국가소득을 증대시켰다는 점에서도 신성일은 매우 중요한 인물. 23세 때 병아리 「스타」 신성일은 서울 종로구 계동에서 구화 1만7천환짜리 하숙생활을 했다. 신(申) 「필름」이 내놓은 별이란 뜻에서 붙여진 이름 신성일(申星一)이 그 때 신「필름」에서 받은 월급이 지금돈으로 5천원(구화 5만환). 하숙비 주고 옷 사입고 용돈이 항상 모자랐다. 그러나 3년 뒤엔 가회(嘉會)동에 50만원짜리 전셋집을 얻었고 다음해엔 소격(昭格)동에 1백20만원짜리를 샀다. 지금 살고 있는 이태원(梨泰院) 집은 63년에 7백20만원을 주고 산 것. 2층집을 전면개수해서 건평 1백52평, 싯가 3천만원 짜리 4층 저택으로 만들었다. 이것이 가옥구조의 변천으로 비유해 본 신성일의 경제성장률. 청춘(靑春)영화 「붐」타고 출세길 상대역 돼야 여우(女優)도 햇빛 10년동안 신성일의 상대역이 된 주요 여배우는 지금의 부인 엄앵란(嚴鶯蘭)과 김지미(金芝美), 태현실(太賢實), 김혜정(金惠貞) 그리고 문희(文姬), 고은아(高銀兒), 남정임(南貞任), 윤정희(尹靜姬) 등이다. 이 중 절반이 자의든 타의든 「스크린」과 멀어졌다. 신성일의 상대역이 됐다는 건 곧 「톱·스타」가 됐다는 증거고 상대 역에서 떨어졌다는 건 바로 인기저락의 상징처럼 여겨졌다. 문희, 남정임, 윤정희의 3차전이 벌어지기 시작할 때 세 배우는 신성일과 공연하기 위해 남모를 경쟁을 벌였다. 신성일의 의사에 의해 상대역이 결정된다는 소문도 있었다. 지금 이들 세 여배우가 차지하는 신성일과의 공연 비율은 대충 3대 1 정도, 어쨌든 공평하게 나눠졌다. 5백편에 육박하는 작품이지만 신성일의 위치를 확고히 다져준 건 60년대 상반기의 청춘(靑春)영화 「붐」이었다. 『가정교사』 『맨발의 청춘』 『성난능금』 등 당시 「아카데미」극장 단골의 청춘영화는 신성일의 「포스터」를 그려붙이는 것만으로도 우선 「만원사례」였다. 신성일의 연기개안으로 꼽을 수 있는 작품은 유현목(兪賢穆) 감독의 『아낌없이 주련다』지만 그가 꼽는 대표작은 『안개』 『까치소리』 『날개』 등 문예영화. 청춘 영화에서 올린 「스타」로서의 명성이 문예영화 「붐」에서 완숙의 연기력으로 결실한 셈이다. 「톱·스타」 10년의 신성일이 생각하는 「스타」의 조건은? 그는 『영화적인 「센스」 70%와 30%의 양식』이라고 단정했다. 『해보지 않은 사람은 영화연기가 퍽 안이한줄 알고 있다. 그러나 순간적으로 주의를 집중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예민한 관찰력, 적응 능력이 있어야 한다-』 『한국 연예인들이 「스캔들」때문에 기를 못 펴는 경우가 있다. 이것은 양식의 문제다. 30%의 양식을 70%로 활용하면 그런 것(스캔들)에 말려들 우려는 없다』 인기있는 날까지 배우로 현역 물러나면 감독생활 『연애 못한다고 감정이 메말랐다는 평을 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스타돔」에 오르고 정상을 극복한다는게 그리 쉬운줄 아는가?』 주변을 돌아볼 틈도 없이 오직 영화만 알고 살아 온 생활이 오늘의 위치를 갖다준거라고 그는 힘주어 말했다. 착실히 살았기 때문에 대중이 좋아하고 아껴주는 것 아니냐고 반문하면서. 그러나 정상만 바라보고 뛴 생활이 그 자신에게서 사생활을 빼앗아갔다고 후회도 했다. 『전혀 인생을 즐겨보지 못했어요. 위축된 생활, 긴장과 초조감으로 살았을 뿐인 걸요』 그래서 이제는 밤 12시 이후의 촬영은 안하기로 결심했다. 시간이 나면 「무스탕」자가용에 부인 엄앵란을 태우고 경인(京仁)고속도로 「드라이브」를 즐긴다. 70년 부터는 작품을 골라서 출연함으로써 무리한 겹치기를 안할 생각. 『사실 요즘 국산영화는 찍으면서도 의욕을 못 느껴요. 모두 여성취향의 눈물 영화 뿐이라 진력이 나요. 국산영화도 방향을 바꿔야 해요』 -앞으로 10년간은? 『인기가 유지될 때까지 배우를 하겠어요. 배우가 인기에 무관심하다는 건 거짓말이고 언제든 대중이 싫다면 물러서는거죠. 그렇게 되면 감독생활을 해볼 생각입니다. 그동안 여러 감독과 작품 하면서 많이 배웠어요. 출연만 할게 아니라 내 마음에 맞는 작품을 직접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자신이 만들고 싶은 영화는 얼마 전 상영된 『아듀·라미』같은 남성적인 영화. 「여자(女子)」행렬의 영화에 진력이 나서 「남자(男子)」용의 영화를 해보고 싶단다. 어쨌든 60년대 「스크린」을 휩쓴 그의 위치는 이제 「스크린」 안에만 제한돼 있진 않다. 연 7백만원 납세자인 그의 집엔 정치, 경제, 문화계 인사들의 출입이 잦고 단순한 「팬」 이상의 교류(交遊)를 즐기고 있다. 신성일이 어느 때쯤 정치가(政治家)가 되겠다고 나설지 전혀 부정만 할 일도 아니다. [선데이서울 69년 12/21 제2권 51호 통권 제 65호]
  • [어린이책꽂이]

    ●비는 사과소스를 만들어요(줄리언 쉬어 글, 마빈 빌렉 그림, 이상희 옮김, 열린어린이 펴냄) 하늘의 별은 레몬을 짜서 만들고, 비는 사과소스를 만들고, 팔꿈치는 간지럼 나무에서 자라고…. 서정 넘치는 유쾌한 단문, 신비롭기까지 한 삽화가 어우러져 ‘눈맛’과 ‘귀맛’이 훌륭한 그림책.4세 이상.8800원. ●까치옷(방정환 지음, 정혜정 그림, 가교출판 펴냄) 소파 방정환이 들려주는 그림동화. 까치가 상서로운 새로 여겨지게 된 배경을 에둘러 귀띔하는 표제작을 비롯해 ‘무서운 도꺼비’,‘이상한 샘물’ 등 단편동화 3편이 묶였다.5세 이상.9000원. ●어린이를 위한 마시멜로 이야기(호아킴 데 포사다 원작, 임정진 글, 원유미·신명환 그림, 깊은책속옹달샘 펴냄) 세계적 베스트셀러 ‘마시멜로 이야기’의 아동판. 지혜로운 삶을 위한 자기계발서 역할을 톡톡히 해줄 듯. 초등3년 이상.8500원.
  • “멧돼지·고라니 꼼짝마라”

    경남도가 야생조수 포획에 나섰다. 수확기 농작물에 피해를 입히는 야생 멧돼지와 고라니·까치 등의 횡포를 더이상 두고 보지 않겠다는 것이다. 도는 18일 이달부터 오는 10월까지 김해·밀양·거제시와 하동·함양군 등 5개 시·군에 ‘수확기 야생동물 피해방지단’을 구성, 유해조수를 퇴치키로 했다. 야생동물 피해방지단은 시·군별로 엽사 등 20명으로 구성, 야생조수로부터 피해를 입은 주민들이 신고하면 즉시 현장에 출동해 유해조수를 포획한다. 포획한 야생동물은 시·군과 농민 등이 협의해 처리토록 했으며,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시가지와 민가, 다중장소 등에서는 총기 사용을 제한토록 했다. 나머지 시·군에 대해서는 겨울철 수렵장을 설정하거나 야생동물 포획허가 등을 통해 유해 야생조수로 인한 농작물 피해를 최소화하기로 했다. 지난해 도내서 발생한 야생조수에 의한 농작물 피해는 22억 7000만원으로 집계됐으며,2004년에는 33억 2000만원에 달한다. 전체 피해액의 76.4%가 멧돼지와 고라니·까치 등 3종에 의한 피해로 나타났다.창원 이정규기자 jeong@seoul.co.kr
  • [문화콘텐츠 뿌리 인문학] Game 옷 입은 문학 ‘대중속으로’

    [문화콘텐츠 뿌리 인문학] Game 옷 입은 문학 ‘대중속으로’

    “게임으로 ‘반지의 제왕’ 동양버전을 선보이겠습니다. 그리고 ‘리니지’처럼 서구의 영향을 받은 캐릭터가 등장하는 우리 게임도 바꿀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이렇게 큰소리 뻥뻥치는 게임 개발자는 바로 국내 최고의 만화스토리작가 야설록(47). 게임업체 예당온라인과 손잡고 ‘패(覇) 온라인’ 개발 프로젝트를 이끌고 있다.‘아마게돈’·‘남벌’ 등 히트작이 줄이었다지만, 이런 큰소리가 생소한 게임분야에서도 통할까. 여기에는 비밀이 숨어 있다. 바로 ‘산해경(山海經)’이다. 고대부터 중국에 전해내려오는 지리부도인 이 책은 지리정보에다 그 지역 특산물과 진귀한 동·식물들을 기록해 뒀다. 어디에 갔더니 아홉개의 머리에 사람 얼굴에다 새의 몸을 한 신이 있고, 또 다른 곳에 갔더니 까치같은 물고기가 있는데 열 개의 날개가 있고 비늘은 모두 날개 끝에 달린 데다 잡아먹으면 황달을 예방할 수 있다는 식이다. 어찌보면 황당무계한 얘기지만 야설록에겐 상상력의 창고다. “‘반지의 제왕’은 북유럽신화를 담고 있어요. 인간화된 신을 다룬 그리스·로마신화와 달리 북유럽신화는 기괴한 내용을 담고 있거든요. 트롤·오크·요정 같은 캐릭터는 톨킨이 북유럽신화에서 따온 겁니다.‘리니지’ 캐릭터 역시 그렇고요.‘산해경’도 마찬가지입니다. 황당하지만, 수천년 내려온 동양의 상상력이 담긴 거죠.” 그의 사무실에는 큰 지도가 하나 있다.‘어디에서 무슨 방향으로 몇리를 가면 뭐가 있다.’는 산해경 기록을 그대로 옮겨다가 지도로 재구성했다. 그리고 주요 동물은 데생해서 붙여뒀다. 게임의 스토리보드인 셈이다. 여기에다 중원을 놓고 한판 대결을 벌인 치우천왕과 황제헌원의 얘기를 덧씌웠다. 이런 구상이 쉽게 나온 것은 아니다.10여년 동안 각종 문헌들을 들쑤시며 공부한 결과다. 대학을 들락거리기도 했고, 중국 유학생에게 연구비를 주고 논문을 받아 보기도 했다. 그런데 야설록은 이런 내용을 왜 ‘만화’나 ‘무협지’가 아닌 ‘게임’으로 풀어내려 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독자를 늘리고 싶었어요. 책으로 내면 히트해봤자 몇만권이 전부지요. 게임은 다릅니다.‘오디션’이라는 게임은 중국사용자만 7000만명입니다. 작가로서 더 많은 사람에게 작품을 선보일 수 있는 거지요.” ‘영원한 제국’의 저자 이인화로 잘 알려진 류철균 이화여대 국문과 교수가 게임산업에 뛰어들면서 ‘디지털스토리텔링학회’까지 결성한 이유도 여기 있다는 설명이다. 그런데 온라인 게임 최강국이라는 우리가, 정작 이런 분야에서는 왜 늦었을까. 서점에는 거꾸로 온라인 게임을 소설로 풀어놓은 책들이 수북하다. 야설록은 그 원인으로 지나친 엄숙주의를 꼽았다. “순수문학과 대중문학을 엄격하게 나누고, 또 순수문학하려면 문예창작과 나와서 등단해야 하는 곳은 한국뿐입니다. 이 틀을 반드시 깨야 합니다. 경건한 작가가 있으면 그렇지 않은 작가도 있어야지요.”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서울광장] 일산 호수공원의 야생초 화원/황진선 논설위원

    집에서 걸어서 20여분 거리인 일산 호수공원에 1주일에 한두번 씩은 가는데 야생초 화원은 꼭 둘러보는 편이다. 그런데 참나리, 쑥부쟁이, 개미취, 구절초 등이 꽃을 피웠을 때를 제외하고는 즐겁지만은 않았다. 호수공원 개장과 함께 북쪽 끄트머리 자연학습원 안에 400㎡의 야생초 화원이 들어섰지만 그동안 방치되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물론 예산 탓이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지난봄, 야생초 화원이 산뜻하게 단장된 것을 보고 환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새 꽃밭에는 마을에 피는 식물, 약이 되는 식물, 나리와 붓꽃 가족, 덩굴 식물, 향이 나는 식물, 제비꽃 가족, 국화 가족, 벼와 사초 가족으로 나누어 모두 117종을 심었다. 야생초마다 이름과 간단한 설명을 담은, 나무로 만든 고급스러운 팻말도 세웠다. 마을에 피는 식물만 소개하면 양지꽃, 뻐꾹채, 뱀딸기, 쥐오줌풀, 노루오줌, 매발톱꽃, 패랭이꽃, 엉겅퀴, 물레나물, 금낭화, 까치수염이다. 사실 지난 3,4년간 야생초 꽃밭을 서성대면서 공원을 관리하는 분들에게 섭섭했다. 호수공원에서 해마다 4월이면 고양꽃전시회를,3년 주기로는 세계꽃박람회를 열었지만, 야생초는 늘 뒷전이었다. 꽃전시회와 박람회는 화려하고 보기 좋은 외국 꽃들로만 채워졌다. 그리고 장미정원과 주변에는 고양시의 상징인 장미 52종 1만여그루를 심어 놓았다. 그래서 공원 관리자들도 외국꽃 서너번 들여다볼 때 야생초도 한번 들여다봐주면 어디 덧나나 하고 생각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최근에는 수목원과 식물원을 찾는 발길이 부쩍 늘었지만 일반인이 우리 꽃과 나무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한 것은 채 10년도 안 된 것 같다. 자생식물이 많은 것으로 유명한 한택식물원이 공식 개장한 것이 2002년 4월이다. 아마 그 무렵부터 우리 삶의 조건인 식물과 공생해야 한다는 생태주의적인 인식이 퍼지기 시작한 것 같다. 그것은 단일 문화와 단작(單作)을 강요하는 세계화와 글로벌화에 맞서, 문화적·생물학적 종다양성을 추구해온 풀뿌리운동가들의 노력 덕분일 것이다. 호수공원을 산책하면서 바로 이곳이 장미로 상징되는 단작을 추진하려는 세계화 세력과 다양한 야생초로 상징되는 풀뿌리 지역세력이 충돌하는 현장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하지만 야생초 꽃밭은 장미정원에 비해 너무 작고 초라해 안타깝다. 야생화는 대부분 작고, 피어 있는 기간이 아 사람들의 관심을 오래 끌지 못한다. 그러나 원예 식물이 아닌 진짜 토착식물이 우리를 지켜준다고 생각하면, 야생화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제 생명의 지속성은 궁극적으로 종 다양성에 의존한다는 명제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외국의 식물원들은 야생식물요리법을 가르치고, 자연보호단체 회원들에게 전문적인 교육을 하는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해 두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그렇지 못하다. 그래서 우선 1주일에 한두번이라도 수목원과 식물원을 불문하고 야생초에 대해 해설하는 시간을 만들면 어떨까 생각해 본다. 최근에 숲 해설가들이 인기를 끌 듯이 야생초 해설가들도 인기를 모을수 있을 것 같다. 야생초 해설을 희망하는 자원봉사자도 있을 수 있다. 야생초를 돌보는 것이 지역공동체를 보존하고, 삶을 의미있게 유지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해설가는 물론 해설을 듣는 사람도 저절로 기쁜 마음이 우러날 것 같다. 야생초, 이제 제대로 대접해야 한다. 황진선 논설위원 jshwang@seoul.co.kr
  • 장마철 감전·번개의 모든 것

    요즘 같은 장마철에 자주 발생하는 것이 감전 사고다. 많은 비와 함께 동반되는 번개로 인해 화를 입는 사례가 늘고 있다. 수해 현장 등 물이 많은 곳에서는 전기 누전 등에 따른 감전 사고도 빈번하게 발생한다. 그러면 감전은 어떤 때 잘 발생할까. 번개의 경우 우산을 내려놓고, 나무밑이 아닌 차안으로 들어가면 감전을 피할 수 있다고 하는데, 과연 근거가 있는 얘기일까. ●감전은 ‘+’와 ‘-’ 동시에 접촉해야 발생 전기에 감전된다는 것은 전류가 몸을 타고 흐른다는 얘기다. 이때의 조건은 ‘플러스(+)’와 ‘마이너스(-)’의 전기에 동시에 닿아야 한다. 만일 우리가 건물 위에서 떨어지다가 고압선에 매달렸다 치자. 이때 한 개의 전선만 건드린다면 절대 감전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전선의 전압이 수천∼수만 V라 해도 오른손과 왼손 사이에 아무런 전압 차이가 없어 전류가 흐르지 않기 때문이다. 전류는 전압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성질이 있다. 건전지로 말하자면 ‘+’와 ‘-’극 중 한 쪽에만 접촉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고압선에 앉은 까치가 감전되지 않는 것도 같은 이유다. ●물속은 저항 작아 공기보다 더 위험 물속은 공기 중보다 저항이 작기 때문에 감전이 더 잘 된다. 전기가 보다 쉽게 흐른다는 얘기다. 주방·목욕탕 등 습기와 물기가 많은 곳에서 전기기기를 사용하거나 손발에 물이 묻은 상태에서 플러그 등에 접촉할 때 감전사고의 위험이 평소보다 20배나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젖은 손으로 만지면 마른 손일 때보다 몸의 저항이 줄어들어 많은 전류가 우리몸을 통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해 현장 등 물속에서 전깃줄이나 콘센트를 통해 전기가 흐를 때 물속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감전되지는 않는다. 전기가 흐른다 해도 근처의 금속성 물체 등 여러 물체에 흡수되기 때문이다. ●번개는 전하 덩어리의 낙하 번개의 실체는 18세기 미국의 벤자민 프랭클린에 의해 벗겨졌다. 그는 막연히 두려움의 대상이던 번개가 ‘전기적인 현상’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번개는 방전 현상이다. 공기는 기본적으로 전기가 통하지 않는 절연체다. 하지만 ‘+’전하와 ‘-’전하의 성질을 띤 구름과 지면 사이에 전압이 높아지면 전류가 이동하게 된다. 이때 구름 등에서 전하량이 과도하게 넘쳐 지상으로 쏟아져 내리면서 생겨나는 방전이 번개이며, 공기 팽창에 의한 소리가 천둥이다. 반대로 지상의 전하가 대기 중으로 올라가면서도 번개가 생길 수 있다. 번개 칠 때 전압은 10억V 이상, 전류는 수만A(암페어) 이상에 이른다. 번개가 땅위 물체에 떨어지는 이유도 저항 차이 때문이다. 번개가 떨어지는 경로에 공기보다 저항이 작은 물체가 있을 경우 그 쪽으로 흐르게 되는 것이다. 특히 사람의 몸은 약 70%가 물이고, 체액도 여러 이온을 포함하고 있어 전기 저항이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다. ●번개 치면 나무밑보다는 차안이 안전 감전을 피하기 위해서는 사람의 몸보다 전류가 잘 흐르는 물체로 겉을 둘러 싸면 된다. 전류가 몸이 아닌 그 물체로 흘러나가기 때문이다. 번개가 치면 금속성인 차 안보다는 나무 밑이 더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번개가 방출하는 전하는 주로 지표면에서 높이 솟아 있는 물체로 먼저 접근한다. 전하가 흐를 수 있는 경로가 가장 짧기 때문이다. 또한 전위 차이가 매우 크기 때문에 나무에 번개가 맞기 쉽다. 그렇다면 자동차 안은 어떨까. 자동차의 겉표면은 금속으로 덮여 있지만, 차 안은 그렇지 않다. 때문에 자동차가 번개를 맞고 전하가 쏟아지면 겉표면에 퍼진 뒤 바퀴 등을 통해 땅속으로 흘러나가게 된다. 피뢰침의 원리와 같은 효과를 나타내는 것이다.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농작물 피해 야생동물 ‘꼼짝마’ 전북 무료봉사단 10월까지 운영

    “야생동물로 인한 농작물 피해를 무료로 구제해 드립니다.” 멧돼지, 꿩, 까치 등 야생동물로 인한 피해를 막아주는 ‘야생동물 구제 무료봉사단’이 구성됐다. 대한수렵관리협회 전북지부는 이달부터 오는 10월 말까지 4개월간 무료봉사단을 구성해 농가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기로 했다. 무료봉사단은 수렵경력 5년 이상이고 수렵보험에 가입한 모범엽사들로 14개반 77명이다.야생동물로 인한 농작물 피해가 발생할 경우 농가가 시·군 산림담당부서에 신고하면 담당공무원이 현지 피해조사를 한 다음 봉사단에 구제요청을 하게 된다. 도내에서 야생동물로 인한 농작물 피해는 올해 46㏊ 2억 3000만원에 이르고 있다.전주 임송학기자 shlim@seoul.co.kr
  • [농업 희망을 쏜다] (14) 자본·기술·인내로 버텨낸 배 과수원

    [농업 희망을 쏜다] (14) 자본·기술·인내로 버텨낸 배 과수원

    서해안 고속도로 비봉 인터체인지로 빠져나와 화성시 제부도 쪽으로 방향을 틀면 오른쪽에 ‘현명농장’ 간판이 보인다. 다른 농장과 크게 다를 게 없어 보이지만 국내에서 20년이 넘도록 최고의 ‘명품 배’만 생산한 곳이다. 이윤현(60) 대표는 “괭이나 삽으로 농사를 짓던 시대는 갔다.”고 강조한다. 조상 대대로 살던 서울 압구정동을 뒤로 하고 경기도 화성시에 정착한 것도 “제대로 된 배 과수원을 가꾸기 위해서였다.”고 회상한다. 농업은 자본과 기술, 그리고 인내심이 결합됐을 때만 성공할 수 있다고 말하는 이 대표는 “배를 키우려면 배나무와 대화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과수원에도 기업경영 개념 도입돼야 압구정동에서 태어나고 자란 이 대표는 중학교를 졸업한 뒤 인생의 갈림길에 섰다. 홀로 된 어머니와 할머니가 농사일에 매달리는 상황에서 상급학교 진학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어리지만 오이를 재배하고 닭도 키우면서 점차 집안의 대들보 역할을 했다. 하지만 한계가 있었다.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배 과수원과 논·밭 등이 5000평이나 됐음에도 수확은 변변치 못했고 생활은 쪼달렸다. 결국 1973년 압구정동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강남 개발론이 대두되는 시점이어서 다행히 압구정동 땅을 팔아 경기도 화성에 2만 8000평의 배 과수원을 사들였다. 배 과수원이 있으면서도 방치했던 게 마음에 걸려 제대로 해보겠다는 심사에서였다.“압구정동에 있던 땅은 현대백화점이 들어선 자리 주변이죠. 만약 그대로 있었으면 지금쯤 부자가 됐을 것입니다. 하지만 돈만 있고 목표가 없다면 별볼일 없는 인생 아니었겠습니까.” 이 대표는 농촌 청년회 모임인 4H구락부 생활을 해서인지 “흙은 절대로 속이지 않는다.”는 신념을 당시에도 가졌다. 사람이 사람을 속이지 흙이나 나무가 사람을 속이겠느냐는 것이다. 또한 과일에 대한 수요가 앞으로는 크게 증가할 것이라는 선견지명도 작용했다. 그래서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영농의 규모화를 생각해 화성을 택했다. ●배나무에 막걸리와 녹즙 등을 먹이는 ‘친구영농’ 다른 지역 농민들이 과수원을 견학할 때마다 이 대표는 “배나무와 대화하라.”고 강조한다. 모두들 “괜히 하는 소리겠지.”라고 하지만 그는 “그만큼 배나무의 상태를 자주 살피고 관심을 가지라는 뜻”이라고 설명한다. 그렇게 하면 정말 친구를 대하듯이 배나무에 이런저런 말을 하게 되고 함부로 대할 수 없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배나무를 착취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거름만 주고 수확을 많이 기대하는 것은 욕심이라는 것.4년 정도 열매가 열렸던 가지는 잘라주고 새로운 가지를 만들도록 나무를 회춘시킬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게다가 이 대표는 배즙을 만들고 남은 찌꺼기로 유기질 거름을 직접 만들어 준다. 배나무가 좋아하는 이른바 ‘식단’을 짜는 셈이다. 우선 막걸리를 먹인다.9월쯤 1그루당 10ℓ를 주는데 당도뿐 아니라 맛과 향이 좋아진다고 한다. 농촌진흥청의 연구 결과가 이를 뒷받침한다. 또한 미네랄 성분을 함유시키기 위해 바닷물을 퍼서 30배로 희석시킨 뒤 공급한다. 여름에는 아카시아 꽃을 녹즙으로 만들어 잎에 뿌린다. 향을 좋게 하기 위해서다.“비료를 주는 게 아니라 배나무도 세끼 음식을 먹는다고 생각해야 합니다.”그러기 위해선 부지런해야 한다. 이 대표는 지금도 새벽 4시에 일어나 과수원을 돌본다. ●가물거나 태풍이 오면 매출이 더 늘어나는 기술력 현명농장의 배는 도매가격으로 15㎏짜리가 4만 5000원 안팎이다. 일반 배보다 10% 이상 비싸다. 특히 가뭄이나 태풍이 닥치면 더 많은 돈을 번다. 바람에 배가 떨어지지 않도록 나무들을 철사로 이은 ‘평덕시설’을 갖췄기 때문이다.“몇해전 태풍으로 다른 과수원에서는 배가 여물기도 전에 모두 떨어졌는데 우리 농장에서는 0.1%도 떨어지지 않았죠. 전국적으로 생산량이 부족해 배 값이 오르는 상황에서 우리는 피해가 전혀 없으니 돈을 벌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요.” 이 대표는 암반관정을 6개나 뚫어 지하수 2000t을 자동으로 공급하는 자동화 시스템을 만들었다. 가뭄이 들어도 걱정할 일이 없고 당도만 높아진다는 것. 까치나 새가 배를 먹지 않도록 반영구적인 방조망 시설도 설치했다. 공해나 황사 등의 오염물질을 필터로 걸러내는 ‘친환경 과일보호봉지’도 개발해 특허를 땄다. 이같은 과정에 적잖은 돈이 들어갔지만 농업도 투자하지 않고는 성공할 수 없다고 거듭 말한다. 수억원을 들여 배의 당도를 분리·선별하고 저온 저장고의 습도와 온도를 컴퓨터로 관리하는 최첨단 시설도 마련했다. 지난해 매출은 7억원을 기록했다. 배즙에다 배고추장, 배조청, 배캔디 등 제품의 다양화에도 힘쓰고 있다. 그런 이 대표도 기술을 인정받지 못해 자금 조달을 위해 농지뿐 아니라 지상권까지 내놓아야 하는 현실을 아쉬워했다. 이 대표는 “농민들이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려면 빚더미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이같은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농업이 생존할 수가 없습니다.”라며 대책을 마련해 줄 것을 호소했다. 백문일기자 mip@seoul.co.kr ■ 90년이후 생산·수입 급증… 소비증가는 소폭 과수산업은 만성적인 공급 과잉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 90년대 이후 생산량은 증가세를 보이고 있지만, 소비는 뒷걸음질치고 있다. 여기에 도하개발어젠다(DDA), 자유무역협정(FTA) 등 시장개방 확대로 과일 수입이 지속적으로 늘어나 국내 과수 산업의 경쟁력 확보가 시급한 상황이다. 이에 생산량을 조절하고 고품질 생산 등을 통해 소비를 촉진하는 전략이 주요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사과 배 감귤 단감 포도 복숭아 등 ‘6대 과실’의 전체 생산량은 90년 159만t,95년 211만t,2002년 227만t,2004년 216만t 등으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90년과 2004년을 비교할 때 배는 184%, 감귤은 19%, 단감은 196%, 포도는 181%, 복숭아는 75%의 생산량 증가세를 보였다. 반면 사과 생산은 43% 감소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2005년 207만t에서 2010년 216만t으로 늘었다가,2013년 이후 줄어 208만t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전망했다. 반면 과실의 1인당 소비량은 90년 이후 2001년까지는 늘었다가 이후 감소하고 있는 추세다.2004년 1인당 소비량은 90년 대비 21% 늘어난 44.5㎏이었다. 배는 95년 이후 공급량이 지속적으로 늘면서 1인당 소비량도 매년 10%정도씩 증가했다. 이에 비해 사과는 95년 이후 생산이 배 등 다른 품목으로 전환되면서 1인당 소비량은 매년 8%가량씩 감소했다. 감귤 1인당 소비량은 2000년대 이후 정체 상태를 보이고 있다. 6대 과실 수입량은 95년 1만 5400t에서 2004년 17만t으로 크게 증가했다. 특히 오렌지 등 감귤류의 수입량이 10배로 급증하면서 수입 물량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반면 수출량은 90년 1만 3000t에서 2004년에는 2만 8100t으로 늘어났다. 한편 등급별에 따른 과실 가격 차이는 점점 양극화하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상품(上品)’가격 대비 ‘특품’가격 비율은 90년대 후반 102∼126%에서 2000년대에는 123∼153%로 확대됐다.‘상품’가격 대비 ‘하품(下品)’가격 비율도 90년대 후반 47∼56%에서 2000년대에 34∼49%로 늘어났다.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부산에서 서울까지 다시 걷는 옛길] 밀양길

    [부산에서 서울까지 다시 걷는 옛길] 밀양길

    경남 양산시 원동면 가야진사 앞을 지나온 옛길은 밀양 땅으로 들어선다. 지금은 흔적만 남은 작원관 터부터 밀양 땅이다. 이곳을 지나 낙동강을 끼고 가다 삼랑진과 무흘역을 통과해 밀양시내에 들어선다. 그러나 밀양 땅은 쉽게 기자 일행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밀양 땅의 유일한 옛길 출입로인 작원관터는 폭이 불과 70여㎝. 겨우 사람 한명이 다닐 수 있을 정도다. 더구나 왼쪽은 절벽이고 오른쪽은 경부선 철도이다. 이곳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고심 끝에 접근해 보기로 했다. 사람 진입을 막기 위해 처놓은 철조망을 뚫고 작원관터를 향해 갔다.5분 간격으로 굉음을 내며 지나가는 열차 때문에 등에서는 식은 땀이 흘렀다.50m 전방까지는 다가갔으나 더 이상은 어려웠다. 작원관터에서 500m쯤 올라가면 작원마을이 있다. 과거에는 꽤 큰 부락이었던 것으로 추정되나 현재는 30여가구만이 살고 있다. 작원관에서 삼랑진으로 가는 길은 시멘트길로 포장돼 있다. ●작원관터 옛길 폭 70㎝로 좁아져 이 길 중간에는 밀양시 안태리에서 흘러 내리는 안태천을 건너는 3개의 다리가 놓여 있었으나 현재는 돌다리 흔적만 있다. 동행한 밀양시립박물관 김재학(47)씨가 이 다리에 담긴 슬픈 사연을 들려줬다. 첫눈에 한 여인에게 반한 스님이 이 여인에게 사랑을 고백했다. 갑작스러운 고백에 당황한 여인은 스님에게 돌로 다리 놓기 시합을 벌일 것을 제안했다. 먼저 다리 놓는 사람의 소원을 들어주는 시합이었다. 시합 결과 스님이 져 물에 빠져 죽자 처녀도 뒤따라 물에 뛰어들었다는 전설이다. 이때 놓인 다리가 작원대교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 다리는 작원석교라고도 불린다. 삼랑진은 낙동강과 밀양강, 밀물과 썰물이 합쳐진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곳은 김해 방면으로 나가는 나룻목으로도 번창했으며 지금은 경부선과 경전선의 분기점이다. 토박이라는 김길수(67)씨는 “과거 삼랑진은 경남 일대에서는 가장 큰 장이 섰다. 현재도 4일과 9일 5일장이 서지만 규모는 많이 줄었다.”고 말했다. 삼랑진읍 네거리에서 옛길은 두갈래로 갈라진다. 우회전해 무흘역을 가는 것이 길손들이 많이 이용했던 길이다. 그러나 평민들이나 홍수가 나서 길이 침수되었을 때에는 삼랑진네거리에서 좌회전해 뒤기미 마을로 거쳐 무흘역에 도착한다. 김재학씨는 “양반들은 가장 빠른 직선 길을 이용했지만 평민들은 길에서 양반들에게 머리 숙이기 싫어 우회길을 선호했다.”며 “옛길에는 평민들의 고통과 눈물이 담겨져 있었다.”고 설명했다. 미전리의 미전고개가 무흘역이 있었던 자리다. 옛날에 역은 역마(驛馬)를 갈아타는 곳이었다. 사람과 말이 머무르는 여관과 차고의 구실도 하였으며, 통신을 전달하는 수단으로도 이용되었다. 현재의 역은 철도라는 특정한 교통수단 용어로 축소되었다. ●“양반에 머리 숙이기 싫어” 평민들 우회길로 무흘역 터에는 말을 매두곤 했던 500여년 된 포구나무가 마을에 있었으나 40여년전 어느 목사에 의해 베어져 없어진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무흘역에서 밀양으로 가는 옛길은 1022번 지방도를 가로질러 무월터널 위쪽 산등성이를 타고 무월터널 맞은 편에 다다른 뒤 다시 경부선 철도좌측 낙동강의 지류인 밀양강변을 따라 곧 바로 밀양시내로 거슬러 올라간다. 밀양시내로 들어서는 길손은 먼저 밀양강을 건너야 했다. 밀양강은 상시범람해 현재 번화가인 삼문동 일대는 조선시대 늪지대나 다름 없었다. 나룻배가 밀양강을 건너는 유일한 수단인 시절에는 영남루 밑에 큰 포구나무에 배를 묶었다. 주변 바위들은 선착장 역할을 했다. 일제시대인 1910년에야 여러 척의 배를 놓아 만든 배다리를 띄워 왕래했다.1935년 콘크리트 다리가 가설됐으며 현재의 밀양교는 1995년 이 다리를 개수한 것이다. 밀양시청 이인수 공보계장은 “현재 두란노기독서점과 내일동사무소 자리가 밀양관아였다.”고 설명했다. 1479년 조선 성종 10년에 축조된 밀양읍성은 현재 일부가 복원돼 있다. 또 아동산 망루 아래에서 무봉사까지 300m, 아동산과 밀양여고 뒷산 아북산 정상까지 2.2㎞ 등에서 옛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기생 운심이 묘 벌초하면 소원 이루어진다” 밀양읍성을 벗어난 옛길은 밀양향교를 지나 제사고개를 넘어간다. 제사고개는 ‘만주에서 죽은 아버지의 혼이 이 지점에서 닭울음 소리를 듣고 돌아갔다.´는 소식을 들은 아들이 제사장소를 이 곳으로 옮긴 데서 유래됐다. 제사고개에서 기회송림과 금곡마을을 지나면 신안마을이 나온다. 신안마을 500m 위에는 바위절벽이 두갈래로 움푹 팬 자리에 조그마한 무덤이 하나 있다. 사모하던 한 관리를 한번이라도 더 보기 위해 이곳에 묻힌 기생 운심이의 묘다.8월초 이 묘를 벌초하면 한가지의 소원은 성취된다는 이야기가 퍼져 이맘 때면 벌초꾼들로 붐빈다. 옛길은 현재의 상동교인 상동나루와 구역마을 관마을, 유천을 지나 청도로 넘어간다. 글 밀양 한찬규기자 cghan@seoul.co.kr ■ 왜적 침공 방어하던 요새지 작원관은 경북 문경의 조령관과 함께 옛길의 2대 관문 가운데 하나다. 동래에서 한양에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곳을 거쳐야 한다. 작원나루로 출입하는 사람과 화물도 이곳에서 검문을 받아야 통과할 수 있었다. 숙박시설인 역원의 기능도 했다. 고려시대부터 왜적의 침공을 방어하던 요새지로 고려 고종때 창건됐다. 임진왜란 당시 밀양부사 박진이 이곳을 통해 침범해 오던 소서행장(小西行長·괘시유키나가)의 군대를 막기 위해 제일방어선을 구축하고 결사 항전을 했던 곳으로 유명하다. 박진은 700여명의 군사로 1만 8700여명의 소서행장 정예부대와 맞서 하루 이상 전투를 벌였다. 박진 군사의 활약으로 조선 군대는 전열정비에 상당한 시간을 벌 수 있었다. 이곳 일대 옛길은 황산잔도만큼 험하다는 것이 동국여지승람 작원조의 기록이다. 물금취수장 부근에 있는 황산잔도는 황산장 주막에서 거나하게 한잔 걸치고 과거보러 가던 옛 선비들이 무수히 빠져 죽을 만큼 험하기 그지 없었다. 일제시대 때 경부선 철도를 부설하면서 작원관은 인근 50m 옆으로 옮겼고 1923년 낙동강 대홍수 때 유실되었다. 그동안 비만 설치돼 있었으나 밀양시가 당시 있었던 곳에서 1㎞쯤 떨어진 삼랑진읍 검세리 산101번지에 지난해 12월 복원했다. 모두 25억원을 들여 작원관 이외 비각과 충혼탑 등이 들어섰다. 작원이라는 지명의 유래에 대해 두가지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신라 때 어느 임금이 행차를 위해 이곳 나루를 건넜을 때 깎아지른 절벽 위에서 수많은 까치들이 지저귀며 일행을 맞아 유래됐다는 설과 부왕과 함께 종군한 백제 공주가 신라 진영을 교란하기 위해 이곳에 날아와 앉았다는 유래가 있다. 밀양 한찬규기자 cghan@seoul.co.kr ■ 밀양가면 웅어회·돼지국밥 꼭 드이소 밀양에 가면 2가지 음식은 꼭 먹어야 한다. 웅어회와 돼지국밥이다. 이곳에서 ‘보리누루미´라고도 불리는 웅어는 갈치와 비슷한 은빛을 띤 바다 생선이다. 전어와 맛이 비슷한 웅어는 산란철인 5월말에 낙동강으로 올라온다. 비린내를 없애기 위해 막걸리로 씻는 것이 밀양 웅어회의 특징이다. 전어는 조금 무르지만 웅어는 부드럽고 고소하다. 묵은 김치에 웅어회를 곁들여 먹으면 맛을 더해 준다. 약간의 군내가 기름진 맛을 없애줘 개운하기 때문이다. 돼지국밥은 여행자의 음식이다. 열을 식히고 피로회복에도 좋다. 또 먹기 쉽고 값이 싸 주머니 걱정을 덜어준다. 막걸리 한잔이 생각 나도 별도로 안주를 시키지 않아도 된다. 국밥에 있는 고기가 훌륭한 안주다. 옛길을 걸은 나그네는 밀양에서 꼭 돼지국밥을 먹었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밀양의 돼지국밥은 전국적으로 유명하다. 밀양 터미널 앞 단골집은 3대에 걸쳐 40여년 동안 돼지국밥을 팔고 있다. 이 식당의 특징은 돼지국밥에 김치를 넣는다는 것이다. 식당 이름과 같이 단골들이 많다. 이들 중에는 의사, 변호사 등 돼지국밥에 어울릴 것 같지 않은 화이트칼라 계층이 다수이다. 밀양 한찬규기자 cghan@seoul.co.kr
  • [이현세 만화경]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

    [이현세 만화경]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

    얼마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환상적인 경기를 펼친 한국 야구대표팀을 두고 모 신문에서 ‘외인구단’이라는 표현을 사용해 감회가 깊었다. 벌써 30년이 다 돼 가는데도 야구기사에는 여전히 ‘외인구단’과 ‘까치’가 오르내린다. 80년 ‘공포의 외인구단’을 발표하면서 까치는 스타가 되었고, 이현세는 주인공 까치의 동력만으로도 지금까지 밥을 먹고 산다.‘공포의 외인구단’에는 두 개의 헤드카피가 있다. 당시 암울한 세상을 살던 젊은 남자 독자들의 어깨에 잔뜩 힘을 실어준 ‘강한 것은 아름답다.’는 카피와 여자라면 한번쯤은 듣고 싶었을 ‘네가 원하는 것은 뭐든지 할 수 있어.’라는 카피다. 힘의 논리라는 부정적 시각에도 불구하고 ‘강한 것은 아름답다.’는 카피는 프로야구 출범과 함께 강한 설득력을 가졌고 인스턴트 사랑이 시작되는 그 시기에 ‘네가 원하는 것은 뭐든지 할 수 있어.’라는 로맨틱한 카피는 남자 만화에 여자 독자들을 끌어들인 이유가 되었다. 하지만 외인구단에는 또다른 카피 하나가 숨겨져 있다.‘강한 것은 아름답다.’는 카피가 손병호 감독의 것이고,‘네가 원하는 것은 뭐든지 할 수 있어.’라는 카피는 까치 오혜성의 것이라면 숨겨진 그 카피 하나는 외인구단 6인의 카피다. 바로 ‘최소한 하기 싫은 일은 하지 않고 살고 싶다.’는 것이다. 알고 보면 공포의 외인구단은 손병호나 까치만의 것이 아닌,6인의 이야기이다. 정신적·신체적으로 불구자였던 6인의 부랑아들은 자포자기의 최후 순간에 외인구단에 선발되고 생존율 제로의 지옥훈련을 떠나기 전 손병호 감독을 향해 상처 입은 맹수처럼 으르릉댄다.“우리가 지옥훈련을 견디고 살아서 돌아오면 당신은 우리에게 도대체 무엇을 줄 수 있습니까.” 맹수조련사의 대답은 간단했다.“최소한 하기 싫은 일은 하지 않고 살게 해주겠다.” 지옥훈련을 마치고 돌아온 6인의 외인구단은 과연 감독의 말처럼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행동한다. 찾아온 미국 아버지를 쫓아버리는 혼혈아인 하국상이 그렇고, 중요한 시합 날 기어코 결혼식을 올리는 최경도가 그렇다. 그리고 투수 조상구의 경우는 훨씬 더 극적이다. 조상구는 천재타자 마동탁의 전용타격 연습용 투수로 전락한, 오로지 생활을 위해 마동탁의 수모를 견디는 퇴물 선수다. 그런 그가 지옥훈련에서 돌아와서 9회말 투아웃에 주자 2·3루를 두고 4번타자 마동탁과 마운드에서 만난 것이다. 아무리 지옥훈련에서 거듭난 조상구라 해도 상대 마동탁은 신이 내린 천재타자다. 웃으며 서 있는 것은 마동탁이고, 갈등하는 것은 조상구다. 팀의 완전한 승리를 위해 마동탁을 피하고 다음 타자와 승부할 것인가, 아니면 자존심을 걸고 마동탁과 진검 승부를 할 것인가. 더구나 아버지를 부끄럽게 여기던 어린 아들이 처음으로 친구들을 몰고 야구장에 와 있다. 그 때 강철의 사나이 손병호가 마운드에 올라 조상구에게 일갈한다.“내가 약속한 대로 하기 싫은 일은 하지 않아도 된다. 만약 팀의 승리를 위해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한다면 내가 용서할 수 없다. 너희들은 그만한 자격이 있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하기 싫은 일은 하지 않고 사는 사람일 것이다. 최소한 나는 까치가 등장한 이후 그리기 싫은 소재나 내용을 그려본 적은 없다. 그리고 싶은 것만 그리고 산다. 그런 면에서 나는 정말 행복하다. 하지만 내게도 하루 두 시간도 채 못 자고 오로지 그림만을 그리던 긴 시간이 있었다. 불면증에 피골이 상접했던 시절이었지만 불행했던 것은 아니다. 얼마전 김모 국회의원과 소주 한 잔을 나누었는데 서로 죽이 맞아 금세 소주 서너병을 비워버렸다. “이 선생, 나 영국 유학시절 때 말이우, 박사 학위 공부가 좀 지겨웠거든. 귀국할까 하다가 외인구단을 보게 됐단 말이우. 나도 나중에 하기 싫은 일은 하지 않고 살아야 되겠다 싶어 그 공부 끝내버렸수. 고맙소, 이 선생!” 김 의원은 이 덕담을 농담으로 던졌겠지만, 그래도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산다는 것은 정말 행복한 것이다. 만화가
  • 이수호 전 민주노총 위원장 첫 시집 ‘나의 배후는 너다’

    이수호(58) 전 민주노총 위원장이 시집 ‘나의 배후는 너다’(모멘토)를 냈다. 그간 ‘예수 학교에 가다’‘일어서는 교실’등의 산문집과 동화집 ‘까치 가족’을 낸 적은 있지만 시집은 처음.1991년 서울구치소 독방 수감때부터 쓰기 시작해 15년 간 가슴에 쟁여뒀던 시들을 세상에 내놓은 것이다. 1989년 전교조 결성을 주도하다 해직된 그는 10여년간 전교조 사무처장과 부위원장, 국민연합 집행위원장 등을 지내다 98년 서울 선린인터넷고로 복직했다.2001년 전교조 위원장을 거쳐 지난해 10월까지 민주노총 위원장으로 활동했고, 올초 평교사로 돌아와 문학을 가르치고 있다. 시집에는 붉은 색 머리띠를 두르고 투쟁을 이끌던 ‘노동계 수장’의 강인한 면모 대신 주변의 작고 보잘것없는 사물에 정겨운 시선을 보내고, 일상의 소소한 기쁨에 충만한 행복감을 느끼는 늦깎이 시인의 순정한 마음이 엿보인다.‘여의도로 이름이 바뀐 뒤/보기 어렵다는/흰 배추나비 한 마리/팔락 팔락/천막 안을 기웃거린다/참/곱다’(‘꿈’전문)‘누가/몰래 갖다 놓았을까/농성장 구석/새 양말 한 켤레/비닐 천막 안/그윽히/난향 넘친다’(‘누가 몰래 갖다 놓았을까’전문) 전교조 교사 출신의 시인 도종환은 시집 말미에 실린 해설에서 “그는 우리나라 노동운동의 지도자이지만 ‘티없이 맑은 천진스런 웃음’과 ‘언제나 맑게 깨어있는’ 영혼을 지닌 사람을 좋아하는 시인”이라고 평했다.1만원.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수도권플러스] 서달로등 2곳 생태통로 설치키로

    서울시는 내년 말까지 동작구 흑석동 서달로와 서초구 방배동 남부순환로 등 2곳에 육교형 생태통로를 설치하기로 했다고 1일 밝혔다. 서달로 생태통로는 폭 15m, 길이 30m의 육교형 통로로 서달산과 중앙대 뒷산을 연결, 생물이동통로 기능과 함께 주민들의 산책길 구실을 하게 된다. 생태 통로가 만들어지면 한강 노들섬∼노량진공원∼중대뒷산∼서달산∼국립현충원까지 녹지로 연결돼 새로운 녹지축이 형성된다. 남부순환로 생태통로도 폭 30m, 길이 120m의 육교형 다리로 우면산과 방배근린공원을 연결한다. 생태통로가 만들어지면 녹지축이 우면산∼방배근린공원∼서리풀공원∼중앙도서관∼반포천∼한강까지 이어지게 돼 현재 조성중인 관악산∼까치산 생태통로와 함께 중요한 남북녹지축을 구성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 [코드로 읽는책] “권력에 눈먼 독재자” 마오의 폭력성 고발

    세계적으로 1000만부 이상 팔려나간 베스트셀러 ‘대륙의 딸들’의 작가 창룽(張戎·54)이 쓴 마오쩌둥 전기 ‘마오: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들’(황의방 등 옮김, 까치 펴냄)이 우리말로 번역돼 나왔다.이 책은 창룽과 그의 남편인 영국의 역사학자 존 핼리데이가 방대한 자료 조사와 인터뷰를 통해 10여년에 걸쳐 집필한 것으로,2005년 영국에서 출간된 이후 30여개국에서 번역 소개됐다. 마오쩌둥 사망 이후 ‘대륙의 딸들’(1991)을 포함해 마오쩌둥과 그의 시대에 관한 책들은 여럿 나왔지만, 마오쩌둥이 얼마나 잔인하고 오만하며 자기중심적인 폭군이었는가를 밝힌 책은 거의 없다. 마오쩌둥의 위상은 여전히 요지부동. 마오쩌둥을 ‘권력에 눈먼 독재자’로 그리며 신랄하게 비판하는 이 책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주목받을 만하다. 책에 따르면 마오쩌둥은 중국 공산당 창당의 주역이 아니었다. 그의 권력 장악은 1920년대 스탈린과의 비밀 거래에서 시작된다. 중국 통치 이후에도 마오쩌둥은 항구적인 권력 유지를 위해 백화제방 백가쟁명, 대약진운동, 문화혁명 등 프로파간다를 앞세운 일련의 거대한 군중운동을 전개했다. 결국 대기근과 그가 주도한 운동 때문에 “전시도 아닌 평화시에” 중국 인민 7000만명이 희생됐다. 중화인민공화국 건국의 아버지로 불리는 마오쩌둥의 권력은 적나라한 폭력과 테러에 의존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책은 마오쩌둥이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취한 잔혹한 행동을 낱낱이 고발한다. 주더(朱德)와 펑더화이(彭德懷) 부대를 탈취하고, 장궈타오(張國燾)와 샹잉(項英)을 고의로 죽음의 행군에 이르게 한 것, 왕밍(王明)에게 독살을 시도하고 수천명의 인민들이 굶어죽을 때까지 식량을 수출해 소련으로부터 무기를 구입한 것, 추수봉기(마오쩌둥이 농민지도자라는 신화가 만들어진 사건)와 루딩교(橋)의 결사적인 도강 사건을 조작한 것 등이 그 대표적인 예다. 마오쩌둥이 정치무대에서 공허한 영광에 집착했다는 점도 지적한다. 세계 지도자의 이미지를 과시하기 위해 마오쩌둥은 사망하기 3개월 전까지도 외국 정치인들을 계속 접견했다. 후루시초프는 자신의 회고록에서 마오쩌둥의 ‘과대망상’에 대해 이렇게 적고 있다.“마오쩌둥은 자신을 신의 명령을 수행하도록 신이 보낸 사람으로 여겼다. 마오쩌둥은 어쩌면 자신의 명령에 따라 신이 행동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마오쩌둥은 결코 이상주의자나 이데올로그가 아니라 철저한 권력지상주의자였을 뿐이라는 게 이 책의 결론이다. 전2권 각권 1만 3500원.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詩의 대중화를 위한 마지막 봉사”

    시인 오세영(64·서울대 국문과 교수)은 스스로를 “문단에서 외로운 사람”이라고 말한다. 얼핏 자조적으로 들리는 고백의 밑바닥에는 그러나 이념이든, 시적 경향이든 지금껏 어떤 시대 조류에도 휩쓸리지 않고 홀로 제 갈 길을 걸어왔다는 자부심이 깔려 있다. 최근 내놓은 열다섯번째 시집 ‘문 열어라 하늘아’(서정시학)의 맨앞에 실린 ‘서시-자화상’은 시인으로서의 자의식을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다.‘전신이 검은 까마귀,/까마귀는 까치와 다르다./…/그대 차라리 눈발을 뒤지다 굶어죽을지언정/결코 까치처럼/인가(人家)의 안마당을 넘보진 않는다./…/나는/빈 가지끝에 홀로 앉아/말없이/먼 지평선을 응시하는 한 마리/검은 까마귀가 되리라’ 그런 그가 지난 25일 제35대 한국시인협회장에 취임했다. 시협은 1957년 유치환, 조지훈, 박목월, 신석초 등이 문학의 자립성과 순수성을 위해 결성한 단체로 현재 1000여명의 회원이 있다.“대학교수로 35년 재직하면서 보직 한번 맡지 않을 정도로 감투와는 거리가 멀었다.”는 그가 선선히 이 자리를 떠맡은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1968년 당시 시협 회장이었던 박목월 시인의 추천으로 등단했고,86년 김춘수 시인이 회장었을 때 사무국장을 맡아 ‘시의 날’(11월1일) 제정을 주도하는 등 시협과 깊은 인연을 맺어왔다. 그는 “인덕도 모자라고, 능력도 부족하지만 마지막 봉사한다는 생각으로 시협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2년 임기 동안 해야 할 일도, 하고 싶은 일도 많다. 국토순례 시낭송회, 애향시 창작운동을 비롯해 전임 회장이 추진하던 시비(詩碑)공원 조성 등 시의 대중화에 중점을 둘 방침이다. 또 내년 시협 창립 50주년을 전후로 대대적인 행사를 마련할 계획이다. 그는 “정부 지원을 받지 않는 순수 민간단체이다 보니 지금부터 기업협찬을 받기 위해 열심히 뛰어다녀야 할 판”이라며 웃었다. 1968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해 시집 ‘반란하는 빛’ ‘가장 어두운 날 저녁에’ ‘시간의 쪽배’ 등을 통해 ‘동양사상과 모더니즘의 결합’이라는 독특한 시세계를 추구해온 그는 최근 국토사랑을 담은 시에 남다른 관심을 쏟고 있다.“재작년 체코 프라하에 머물 때 작곡가 스메타나와 드보르자크가 작품을 통해 국토사랑을 드러낸 것에 새삼 감동을 받았다.”고 했다. 최근 시 전문지 ‘현대시’에 우리 산과 강, 문화유적의 아름다움을 담은 시를 연재하기 시작한 그는 “그동안 국토사랑을 표현한 시는 행사용 작품이나 어용시라는 느낌이 강했는데 이제 예술시로서 국토사랑을 드러내는 시를 쓰고 싶다.”고 말했다.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주말에 뭘 보러갈까]

    ●미술 ■ 남정예 만화작품전 4일까지 서울 관훈동 인사이트센터 5층.10여년간 조선시대 민화에 매달려온 남정예의 첫번째 개인전. 까치와 호랑이, 봉황, 용, 사슴, 해, 달 등을 통해 삶의 원초적 소망인 장수와 다복, 부귀영화를 기원하는 염원을 담은 작품들을 선보인다.(02)736-1020. ■ 코리아 판타지(氣) 전통적 조형미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온 신범상의 조각전. 고구려 벽화의 사신도(청룡, 백호, 주작, 현무)를 테마로 고구려 역사의 정체성을 현재와의 연결고리로 해석해낸 작품들을 보여준다.(02)730-1144. ■ 김춘수·전혁림 시·판화전 8일까지 대구 대봉1동 맥향화랑. 맥향화랑이 개관 30주년 기념으로 마련한 전시.‘꽃’ 등 김춘수 시인의 대표적 시들, 그리고 중견작가 전혁림이 각 시의 정신을 살려 제작한 판화 20점을 붙여 전시한다.(053)421-2005. ●뮤지컬■ 빨래 4월23일까지 상명아틓로1관. 가진 것 없고, 배운 것 없어 고단한 서울살이. 하지만 빨래로 묵은 때를 털어내듯 어제의 고통을 툭툭 털어내고 새로운 하루를 시작하는 달동네 서민들의 이야기. 추민주 작·연출, 김영옥 박은영 등 출연. 화∼금 8시, 토·일 3시·7시,1만 8000∼3만원.(02)762-9190. ■ 행진! 와이키키 브라더스 4월2일까지 화∼금 8시, 수 3시·8시, 토·일 3시·7시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영화 ‘와이키키브라더스’의 줄거리에 대중가요, 팝을 입힌 편집뮤지컬. 이원종 연출, 이휘재 춘자 안정훈 등 출연.3만∼12만원.1588-7890. ■ 벽을 뚫는 남자 4월2일까지 화∼금 8시, 토 4시·8시, 일 3시·7시 예술의전당 토월극장. 자유자재로 벽을 드나들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된 소심한 남자의 인생 역전기. 임도완 연출, 박상원 엄기준 등 출연.4만∼7만원.1588-7890. ■ 미스터 마우스 4월2일까지 화∼금 8시, 토 4시·7시, 일 3시·6시 사다리아트센터 네모극장. 뇌수술로 천재가 된 바보 인후의 삶을 통해 진정한 행복의 의미를 묻는다. 이현규 연출, 서범석 김태한 출연.3만원.(02)747-2070. ●어린이■ 달도 달도 밝다 4월6일∼5월8일 월 4·8시, 화∼금 4시, 토 1시 예술극장 나무와물. 봉산탈춤, 민요 등 전통 놀이로 만나는 장산곶매 설화.1만 5000원.(02)745-2124. ■ 하마가 난다 4월26일까지 화목금 2시·4시30분, 수 11시·3시, 토일 1시·3시30분 사다리아트센터 동그라미극장. 하늘을 나는 꿈을 이룬 라이트형제와 조선시대 정평구의 이야기.2만원.(02)382-5477. ●클래식■ 서울시립교향악단 ‘비르투오조 콘서트’ 4월7일 오후 7시30분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피아니스트 이경숙, 바이올리니스트 김남윤, 첼리스트 정명화, 지휘자 정명훈의 협연 무대. ■ 코리아 팝스 오케스트라 창단 연주회 4월4일 오후 7시30분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영화 ‘웰컴 투 동막골’‘왕의 남자’‘말아톤’ 주제가,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주제가, 팝으로 편곡한 베토벤과 바흐의 음악 등 다양한 곡들을 연주. ■ 아침에 듣는 클래식-브런치 콘서트 4월 11일 오전 11시 군포시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 로시니의 오페라 ‘윌리엄텔’서곡, 피아졸라의 ‘리베르탱고’등 연주. ●연극■ 격정만리 4월1∼16일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1920년대에서 1950년대까지 혼란의 시대를 살아낸 연극인들의 격정적인 삶을 조명한다. 극단 아리랑의 창단 20주년 기념작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광대들의 혼을 기린다. 김명곤 작·연출, 지현준 이승비 등 출연. 월∼금 7시30분, 토 4시·7시30분, 일 3시,1만 4000∼5만원.(02)762-9190. ■ 어느 계단 이야기 4월1∼12일 화∼금 7시30분, 토·일 4시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스페인 내란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3대의 이야기. 안토니오 부에로 바예호 작·이송 연출, 백성희 이승옥 등 출연.2만∼3만원.(02)2280-4115. ■ 날 보러와요 4월9일까지 화∼금 8시, 토 3시·7시, 일 3시 국립중앙박물관 극장 용. 영화 ‘살인의 추억’의 원작. 초연 10주년을 맞아 최용민, 권해효, 김내하, 류태호 등 원년 멤버들이 출연한다.2만∼5만원.1544-5955.
  • [김인성의 산울림] 충북 제천시 용두산

    [김인성의 산울림] 충북 제천시 용두산

    충북 제천시 모산동과 송학면 경계에 위치한 해발 873m의 용두산은 삼한시대 축조된 의림지와 제2의림지, 솔밭공원을 남녘 자락에 펼치고 있는 제천의 진산이다. 산기슭에서 흘러내린 물이 용두천을 이루며 의림지로 흘러든다. 북서쪽으로는 석기암산(906m)과 감악산(920m)이 이어진다. 제천 시내의 산이어서 교통이 편리하고 찾기가 수월해 주말이면 제천 시민들이 즐겨 찾는다. 산행은 솔밭공원 앞 주차장에서 시작한다. 솔향기 가득한 솔밭공원을 지나면 제2의림지가 나온다. 용두산 등산로는 그 위편, 청소년수련원 오른쪽으로 나 있다. 의림지와 용두산 산림욕장 등을 연계하여 산행하면 다양한 볼거리와 함께 편안한 휴식을 즐길 수 있다. 솔밭공원 앞 주차장에서 400여m 올라가면 진성가든 앞 삼거리에 닿는다. 진성가든에서 ‘용담사 700미터’라고 씌어진 입간판을 따라 걷다 보면 용담사에 도착한다. 10여대 주차할 만한 공간이 절 바로 아래에도 있다. 용담사로 원점회귀 산행을 할 때에는 이곳에 주차하는 것이 편리하다. 용담사 앞에는 맑디맑은 개울물이 흐른다. 산행에 앞서 이곳에서 식수를 준비하는 것이 좋다. 용담사를 나서면 이내 갈림길이다. 계곡길과 왼쪽의 능선길. 어느 길을 택해도 용두산 정상에 이른다. 왼쪽 능선길로 접어들어 한참을 올라서면 첫번째 송전탑이 나온다. 철탑너머로 제2의림지의 초록빛 못물이 눈부시다. 까치봉과 제천 시가지도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소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선 능선길이 이어졌다. 철탑 삼거리에 도착하면 나무 벤치가 놓여 있어 쉬어 가기에 좋다. 이곳에서 정상까지는 20여분. 용담사에서 출발해 1시간 정도면 정상에 도착할 수 있다. 용두산 정상에 서서 제천쪽을 바라보았다. 제천시의 전경과 나무사이로 보이는 의림지의 모습이 이곳이 제천의 진산임을 말해주듯 발아래 펼쳐진다. 북서쪽으로는 석기암산(906m)과 감악산(920m) 산줄기가 이어진다. 용두산 정상 왼쪽에 길안내(석기암 5.6㎞, 오미재 2.4㎞)화살표를 따라 하산을 시작했다.20분가량 소나무가 들어찬 완만한 능선길을 따라 내려가다보니 송한재가 나온다. 송한재에는 석기암과 오미재로 가는 능선길과 송한리 4.5㎞, 물안이골 1.0㎞ 안내표지가 있다. 송한재에서 왼쪽(물안이골 방향)소로길로 접어들면 나무계단으로 된 가파른 내리막길이 이어진다. 나무계단을 따라 10분가량 내려오면 두갈래 갈림길. 어느길로 가도 상관이 없다. 송한재에서 물안이골 기도터를 지나 30여분쯤 내려가면 임도에 다다른다. 임도를 따라 계속 내려가도 되지만, 조금 가다 다시 좌측으로 이어지는 등산로로 내려서는 편이 좋다. 이정표가 잘 설치돼 있어 헷갈릴 만한 곳은 없다. 계곡을 빠져나오면 다리가 나온다. 피재1교. 이곳에서 왼쪽으로 도로를 따라 청소년수련원을 지나면 제2의림지 삼거리, 다시 오른쪽으로 나무다리를 건너면 솔밭농원이 나온다. 용두산 산행은 솔밭공원 앞 버스정류장에서 제2의림지 쪽으로 올라가면서 시작된다. 용담사를 전후로 용두산을 오르는 길은 여러 갈래다. 용담사 직전의 오른편 능선길, 용담사 위쪽의 왼쪽 능선길과 계곡길 등 어느 길을 택해도 엇비슷하게 정상에 닿는다. 용담사 왼쪽 능선길을 택해 정상에 오르면 석기암쪽으로 가다가 송한재에서 주능선을 버리고 왼쪽 길로 내려서야 한다. 계속 직진하면 피재나 석기암봉쪽으로 갈 수 있다. 총 산행시간 2시간40분. # 대중교통 기차-서울 청량리역에서 제천역까지 하루 31편 운행.2시간40분 소요. 버스-서울 구의동 동서울종합터미널에서 10분 간격으로 운행하는 제천행 버스를 이용.2시간20분 소요. 9500원. 강남 고속버스터미널에서도 제천행 버스가 30분 간격으로 운행. # 현지교통 제천역 앞이나 제천 시외버스터미널 뒤쪽 하나웨딩프라자 앞에서 5∼10분 간격으로 운행하는 세명대학교 행 시내버스를 타고 솔밭공원에서 하차. # 승용차 영동고속국도→중앙고속국도→제천IC→제천시내→의림지. 솔밭공원과 용두산 입구에는 토속음식과 꿩이나 염소, 오리 등의 요리를 파는 음식점이 많다. 제천역 앞에는 3일과 8일에 제천 장날이 선다.
  • 儒林(564)-제5부 格物致知 제2장 居敬窮理(54)

    儒林(564)-제5부 格物致知 제2장 居敬窮理(54)

    제5부 格物致知 제2장 居敬窮理(54) 얼핏 보면 퇴계의 이런 답장은 ‘모범이 되어야 할 성인들의 실체’를 유지하려는 구차스러운 변명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남을 비판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비판받지 않을 것이다. 남을 단죄하지 말라. 그러면 너희도 단죄 받지 않을 것이다. 남을 용서하여라.’라고 설법하였던 예수도 율법학자들을 향해 ‘이 뱀같은 위선자들아, 이 독사의 족속들아. 너희가 지옥의 형벌을 어떻게 피하랴.’라고 질타한 것처럼 유비나 선왕의 신하들과 같은 위선자들에게 오만한 태도를 보인 듯한 두 성인 공자와 맹자의 모습 역시 퇴계의 설명처럼 짐짓 그런 행동을 보인 것이었을 뿐, 더 이상 의심할 필요가 없이 성인의 실체는 거경(居敬)에 머무르고 있는 것이다. 이 편지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율곡이 유가사상을 오직 주자를 통해 배우고 익히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사실은 퇴계가 주자전서(朱子全書)를 구하여 문을 닫고 한 여름에도 열독하자 주위 사람들이 더위로 몸을 상할까 경계하면 ‘이 글을 읽으면 가슴 속에서 문득 시원한 기운이 생겨나는 것을 깨닫게 되어 저절로 더위를 모르게 되는데, 무슨 병이 생기겠는가.’하고 대답하였던 것처럼 율곡도 퇴계의 영향을 받아 주로 주자라는 문(門)을 통해 공자와 맹자의 사상으로 들어가고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율곡에 있어 성리학은 바로 주자학(朱子學)이었으며, 주자는 스승과 마찬가지로 율곡에 있어서 유가로 들어가는 염궁문(念弓門)이었던 것이다. 스승 퇴계가 결택해준 ‘거경궁리’의 문장을 확인한 순간 율곡의 가슴 속에는 형언할 수 없는 뜨거운 감동의 물결이 용솟음치기 시작하였다. 율곡은 그 자리에서 떠나온 온계 쪽을 향해 무릎을 꿇었다. 차가운 눈밭 위에 무릎을 꿇은 주인의 모습을 보자 당황한 종자가 만류하여 말하였다. “나으리, 아니 되십니다. 눈이 차갑습니다.” 율곡은 대답도 하지 않고 의관을 정제한 후 갓을 벗었다. “정히 그러하시다면 쇤네가 자리를 깔겠나이다.” 그러나 율곡은 들은 체도 하지 아니하고 그 자리에서 스승이 있는 곳을 향하여 삼배를 올리기 시작하였다. 스승과 제자로서 예의를 갖추기 위함이었으나 원래 삼배는 몸(身)과 말(口)과 뜻(意)의 삼업(三業)에 경의를 표하여 올리는 불교적 배례. “스승님” 삼배를 올리고 나서 율곡은 눈밭 위에 꿇어앉은 채 소리를 내어 중얼거려 말하였다. “스승님께서 내려주신 거경궁리의 요체를 몸을 다하고, 말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궁구하겠나이다. 반드시 궁극의 구경을 이루어 결초보은(結草報恩)하겠나이다.” 배를 올리고 나서 율곡은 일어서서 다시 말 위에 올랐다. “자, 가자.” 말머리에 내걸린 방울이 쩔렁이며 울었다. 종자를 앞세우고 율곡은 강릉을 향해 발길을 재촉하였다. 방울소리에 놀란 까치들이 눈 내린 나뭇가지 위에 앉아 있다가 후드득― 날개를 퍼덕이며 날아올랐다.
  • [길섶에서] 까치집/이호준 뉴미디어국장

    등산로 초입에서 까치 두 마리를 만났다. 유난히 부산스러운 몸짓에 다가가 보니 작은 나뭇가지를 입에 물고 부지런히 움직인다. 새로 짝을 이뤄 집을 짓기 시작한 모양이다. 아하, 봄은 벌써 이만큼 와 있구나. 냇물이 다시 흐르고, 새들이 집을 짓고…. 걸음을 멈추고 까치 한 쌍을 한참 바라본다. 까치는 보통 2∼3월에 둥지를 튼다. 땅에 떨어진 나뭇가지를 재료로 쓰지만 부리로 꺾어서 사용하기도 한다. 둥지는 촘촘하게 잘 엮어져 구렁이나 족제비 같은 적이 침입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비가 와도 새지 않는다고 한다. 따지고 보면 정성이나 솜씨 모두 사람에 못지않은 듯싶다. 예전엔 까치의 집을 보고 한 해의 날씨를 점쳤다고 한다. 가령 나무 꼭대기에 집을 지으면 그 해는 별 재해 없이 날 수가 있고, 반대로 중간의 굵은 가지에 집을 지으면 태풍 등의 재해를 예고한다는 것이다. 문명의 발달이 극에 달했다는 지금도 인간은 자연재해 앞에 여전히 무기력한 존재일 뿐이다. 산길에서 만난 까치 한 쌍에게 부탁해본다. 될 수 있으면 나무 꼭대기에 둥지를 틀어다오. 이호준 뉴미디어국장 sagang@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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