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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족통합을 위한 문화교류/통일철학의 정립부터(사설)

    「꽃파는 처녀」가 「고향방문」의 완강한 장애물이 되고 있다. 「문화」가 「통일흥정」의 만만한 「인질」이 될 수 있음을 증명해 주고 있는 것이다. 통일음악회니 남북영화교류 따위로 「물꼬」가 트였음을 성급하게 진단하는 일이 얼마나 무의미한가를 보여주는 셈이다. 「통일상품」의 시속적인 매력에 편승하여 온갖 교류의 깃발을 들고 나서는 세력과 집단들이 중구난방으로 넘치는 남쪽에 비하면 일사불란하고 물샐틈이 없는 것이 북쪽이다. 고향방문단의 꼬리에 「예술단」을 접붙여 내놓았던 애당초의 북적 제안부터가 그렇게 계산된 것이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고의적인 건망증까지 합세하여 「문화교류의 물꼬」가 트인 것 같은 환상을 자꾸만 조장하고 있는 현실이 우려스럽다. 적어도 아직은 북쪽의 문화예술이 「이념과 체제에의 복무」에서 자유로워지지 않았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이런 현실에 대해 본질적인 천착이 없는 많은 단순하고 선량한 시민들의 감성은 정책당국에 새로운 부담도 되고 있다. 『그까짓 혁명가극하나 보여주고 북한영화 몇개 대학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뭐 위험하다고 화염병과 최루탄 공방전으로 정력의 무한낭비를 하고 있느냐』고 못마땅해 하는 시각도 그런 예에 속한다. 그러나 아직도 적화통일의 환상을 전혀 포기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른바 문화교류도 그 전략으로만 이용하는 것이 북쪽의 입장임이 분명하다면 그렇게 단순한 일은 아니다. 그같은 함정에 빠지지 않은채 통합된 국민으로 거듭나는 「문화적 통일」의 청사진을 마련해야 하는 것이 문화교류의 원칙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야만 우리의 대내적 혼란의 입장정리를 위한 명분도 세울 수 있다. 「이념에 복무하는 예술」로서의 영화를,「동원된 민중」이 들고나온 것을 순수민간 행사로 간주하고 상호주의에 입각해서 교류하는 일이나,친북으로 경도된 재외한인 명사를 통해 취재기자까지 입맛대로 지정한 음악회를 「순수한 문화교류차원」행사로 해석하기 위해서도 논리적 정립은 필요한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문화교류의 목적이 통일의 현재진행을 위한 기여로서의 역할에 우선적으로 있는지,통일된 미래를 위한 기여로서의 역할이 더 소중한지를 논의하는 일로부터 출발되어야 할 것이다. 이와같은 일이 명백히 분리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니겠지만 우선순위와 단계설정 같은 일에서 짚어보아야 할 일이 얼마든지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일들은 또한 우리의 통일철학의 정립이 전제되기를 요구한다. 민족의 단일국가 형성이 인간에게 주어진 최고의 절대가치라고 합의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겠고,인간의 자유가 민족의 단일국가 형성을 위해서 희생될 수 없다고 합의될 수도 있을 것이다. 두가지 경우가 혼재하여 그 차이가 분별하기 어려울만큼 미미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느 경우가 되든 충분한 토론을 해보아야 할 일이다. 우리가 보기에는 충분하고 이상적인 통일이 이루어졌다고 생각되는 독일조차도 『너무 서둘러서 국민통합을 놓쳤다』고 독일의 지성 귄터 그라스는 한탄하고 있다. 남북은 45년 동안 별개의 삶을 살아 왔다. 적어도 우리가 파악하는 한 북한은 36년동안 일제의 침략을 받았고 이어서 45년 동안 공산주의 80년을 지내왔다. 우리가 통일 이후만나야 하는 것은 그렇게 살아온 2천만이다. 그런 과거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를 해보아야 한다. 동질성의 회복을 위해 전통예술 민속잔치를 여는 일은 중요하다. 그러나 이미 극심한 이질화의 진행이 이뤄진 상태에 있으므로 그것조차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다. 교류의 주체를 놓고 이견과 갈등을 연출하는 우리의 현실도 너무 소모적인 경지에 이르지 않도록 논의하고 합의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된다. 문화교류의 주체를 정부와 민간이 공동으로 맡는다는 것은 타당하고 자연스런 일이다. 또한 이념적 메시지를 선전하기 위하여 물량공세를 펴는 대규모 공연작품에 우리가 주눅이 들것은 없다. 더구나 대결하듯 졸속한 대형무대를 만드는 일은 의미 없고 어리석은 일이다. 보편적이고 민족정서가 담긴 내용으로 한민족의 역사를 공유하고 회복해 가는 노력을 해야 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확실하게 80년간 역사로부터 단절되거나 왜곡되어 왔던 것이 북한이다. 그로 인한 이질을 극복하는 일을 문화교류의 순서로 삼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다. 통일 이후를 위한 거시적인 안목과 우리가 서로 합의한 형태의 통일을 앞당기기 위한 미시적 시각을 이상적으로 융합한 문화교류 정책이 제시되기를 기대한다.
  • 1만명 반정부 시위/옐친ㆍ수도시장 가담

    【모스크바 AFP 연합】 7일 모스크바의 붉은광장에서 열린 볼셰비키혁명 73주년 기념식에서 약 1만명의 반정부 시위군중이 공식행사(행진) 열린 지 두 시간 뒤에 30분 동안 「러시아인민의 대량학살 개시」에 반대하는 시위행진을 벌였다. 이날 반대 시위의 선봉에는 죄수복을 입은 노인이 섰으며 따르는 군중들은 민족주의 깃발과 『붉은광장에서 레닌을 추방하라』 『소련공산당은 물러가라』 『오늘은 애도의 날』 『KGB는 물러가라』 『차르없이 73년을 살아온 우리는 이제 공산당 없이도 살 수 있다』는 등의 구호가 적힌 깃발을 들고 행진했다. 보리스 옐친 러시아 공화국 대통령과 가브릴 포포프 모스크바 시장도 이 반정부 시위에 가담했다.
  • 「청와대 담판」에 넘겨진 수습처방/최대의 고비맞은 민자내분

    ◎총재와 대표간 당권배분이 초점/기강확립ㆍ음해세력 제거 요구도/계파 이해대립 첨예화… 접점찾기 안간힘 민자당의 행로가 분당이냐,수습이냐는 주초의 노­김 담판에서 판가름날 것 같다. 그동안 민자당 내분은 내각제개헌 포기를 둘러싼 민정ㆍ공화계 대 민주계의 싸움으로 양상을 띠고 있었으나 2일의 김윤환 원내총무의 마산방문을 기점으로 국면을 달리했다. 그것은 내분의 성격을 더욱 극명하게,그리고 단순화시켰기 때문이다. 즉 노태우 대통령과 김영삼 대표최고위원간의 한판 승부로 국면을 좁혔고 담판의 대상을 당권으로 압축한 것이다. 노­김 담판에서 김 대표가 어느 수준의 당권 확보를 얻어내야 수습에 응할지는 단정하기 어렵다. 다만 김 대표가 차제에 분당→노ㆍ김 공멸을 각오하고라도 확실히 손에 칼자루를 쥐어주어야 한다는 요구만은 분명히할 것 같다. 내각제 합의각서 공개로 정치적ㆍ도덕적 신뢰성에 치명타를 입을 것으로 보였던 YS(김 대표)가 국면을 반전시켜 오히려 노 대통령을 역공하는 고도의 정치술수를 구사하는 것을 보면 당권요구의 「액면가」가 매우 높은 것으로 보인다. 김 대표는 각서공개를 당내 공작정치로 몰아붙인 뒤 내각제 포기를 전격적으로 선언함으로써 야당시절 특유의 선명성 깃발을 휘저으며 내각제서명의 오점까지 세탁하는 성과를 올렸다. 노 대통령의 입장에서 보면 적반하장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김 대표는 이미 왼쪽주머니에 「내각제 포기」를 받아넣어 놓고는 다시 오른쪽주머니에 당권 선물을 넣어주지 않으면 분당을 불사한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3일 마산에서 『내각제 포기 수용여부는 벌써 끝난 얘기다. 그걸 다시 꺼낸다면 국민을 우롱하는 것이다』 『어정쩡하게 안에서 죽느니 차라리 나가서 재기하겠다』 『나에게 분명히 힘을 준다면 들어가겠다』고 말함으로써 이같은 입장을 입증시켜주고 있다. 노ㆍ김 회동에서 담판테이블에 오를 메뉴는 내각제 당권으로 단순화시킬 수 있다. 내각제개헌 포기문제와 관련,두 사람은 현실적으로 추진이 불가능하다는 데는 인식을 같이하고 있어 담판의 결정적인 장애물이 될 것 같지는 않다. 다만 노 대통령은 내각제 지향노선을 밝힌 당의 강령은 손댈 수 없으며 대신 「야당과 당내 민주계가 반대하고 있는 현실을 인정,13대 국회 임기중에는 개헌을 추진않는다」는 정치적 약속을 내부적으로 김 대표에게 해준다는 입장이다. 이에 반해 김 대표는 어떤 형태로든 민자당이 내각제를 포기한다는 입장을 대외적으로 천명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노ㆍ김 담판의 핵심문제는 당권이며 이를 구체적으로 말하면 총재와 김 대표간의 당권 분배라고 할 수 있다. 당권보장 문제와 관련,김 대표는 직설적으로 언급하지 않고 여러 가지 정치적 수사를 동원하고 있다. 당 기강확립,음해의 근절,개혁의 용어를 쓰고 있지만 이런 단어들이 수렴되는 지점은 차기 대권후보를 담보할 수 있는 당권 보장이라고 할 수 있다. 당권 보장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지칭하는지는 불분명하나 김 대표 측근들이 흘리는 말들을 정리해보면 그 윤곽을 잡을 수 있다. 우선은 대표의 인사권 확대를 들 수 있고 다음은 14대 총선의 공천권,그리고 반김 대표세력의 제거 및 기타 당 대표의 위상강화라고 할 수 있다. 현재 당의 인사권은 외형적으로는 총재인 노 대통령에게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3당통합 당시의 지분율을 고려,민정ㆍ민주ㆍ공화계가 5 대 3 대 2의 비율로 각기 노 대통령,김 대표,김종필 최고위원이 행사하고 있다. 김 대표는 이같은 지분율을 철폐,적어도 사무차장급 이하 인사권은 당무를 총괄하는 대표에게 주어야 한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노 대통령이나 JP(김종필 최고위원) 입장에선 계파관리 측면에서 이를 허용하기가 쉽지 않다. 14대 공천권에 대해서도 차기 대권후보로 김 대표가 옹립될 수 있는 수준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나 노 대통령의 입장에선 사실상 14대 공천을 의미하는 원외지구당의 조직책 임명이 이미 각 계파별 지분비율대로 거의 완료된 상태인 데다 김 대표에게 새삼 공천권을 지분율 이상으로 보장한다면 평지풍파 이상의 부작용을 일으킨다는 측면에서 불가한 것이다. 만약 김 대표가 국회의원선거법 개정을 전제로 증설구에 대한 공천권을 반분하자고 할 때도 집권후반기에 나타나게마련인 통치권 누수현상에 더 큰 구멍을 내게할 수 있다는 면에서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 같다. 이밖에 민자당내 반김영삼운동의 진원지처럼 치부되고 있는 박철언 전 정무장관 중심의 월계수회의 해체,대표최고위원과 최고위원간의 확실한 위계질서 보장 등도 담판의 주제가 될 수 있겠지만 노 대통령으로서는 『그것은 김 대표 스스로가 정치력으로 해결할 문제』라는 이상의 보장을 하기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노ㆍ김 담판은 이러한 양자의 이해대립으로 쉽게 결말이 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더욱이 김 대표는 김윤환 총무를 통해 당권 요구의 견적서를 제시해 놓고는 노 대통령과의 청와대회동에 앞서 노 대통령의 수용정도를 사전에 통보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어 자신의 기대에 미흡할 경우 주초 회동 자체를 연기시키거나 차버릴 가능성도 배제키 어려운 실정이다.
  • 외언내언

    맨처음 사자를 만난 여우는 놀라서 까무러칠 뻔했다. 두번째 만났을 때도 무섭긴 했지만 처음보다는 덜했다. 세번째 만났을 때는 가까이 다가서서 말을 붙을 수 있게 되었다. ◆이 이솝의 우화는 아무리 무서운 것도 자꾸 보면 무서움이 없어진다는 것을 가르친다. 비단 무서움만이 아니다. 자주 대하다 보면 잘못된 선입관이나 오해도 풀릴 수가 있다. 상대방의 장점과 결점까지 알게 되면서는 정도 교감되는 것이 세상살이의 인간관계. 『한번 보시면 또 대하고 싶으신 게 정이올시다』(박종화의 다정불심). 그래서 또 대하고 또 대하면서는 잘못되었던 선입관이나 오해가 부끄러워지기도 한다. ◆우리의 남과 북이 무슨 꼬투리로건 자주 만나자고 하는 뜻이 여기에 있다. 반드시 어떤 성과를 기대할 필요도 없다. 만남 그 자체를 쌓아가는 것만으로도 좋다. 그 점에서 깃발 꽂고 마주 앉는 엄숙한 자리보다는 「정론」이 없어도 좋은 거창하지 않은 만남쪽의 축적이 바람직스러운 것. 날씨얘기,가족얘기 등 주고받다 헤어지고 보면 『못니저 생각이 나겟지요』(김소월의 「못니저」). 운동경기의 교환방문도 그런 종류의 교류라고 하겠다. ◆23일의 남북통일축구 2차전을 치르기 위한 북측 축구단이 21일 입경했다. 평양경기에 출전했던 그대로의 선수들을 포함한 78명. 물론 경기는 서로가 최선을 다하여 수준 높은 내용을 펼치는 것이 좋다. 하지만 지나치게 승부욕에 매달려서는 안되겠다. 특히 평양에서의 개운찮았던 페널티킥을 의식해서는 더 안되겠고. 또 한번 지면 어떤가. 이것이 디딤돌로 되어 다른 경기의 교환,다른 분야의 교류로 자연스럽게 발전해 나가도록 유도해야 한다. ◆입장권은 매진됐다. 표를 못 구한 시민들이 초대권 과다 배정에 항의하고 있는 것으로도 알려진다. 어쨌거나 관전의 태도도 훌륭하여 저들에게 정감을 심어야겠다. 그들에게 뜻깊고 즐거운 4박5일을 선물하게 되기를.
  • 중국,보­혁투쟁 격화조짐/강택민ㆍ양상곤,“급속한 개혁” 주장

    ◎이붕총리와 대립 【북경 로이터 연합】 강택민 중국 공산당 총서기와 양상곤 국가주석은 18일 한때 조자양 전 총서기가 주장했던 보다 급속한 개혁요구를 다시 언급함으로써 중국의 권력투쟁에 중요한 변화가 있음을 시사했다. 중국 공산당기관지 인민일보는 강이 『중국은 사회주의의 길을 고수할 것이지만 개혁과 개방을 계속하고 그 과정을 가속화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양상곤 국가주석도 별도의 보고서를 통해 등소평을 지난 10년동안 계속돼왔던 개혁의 건설가라고 추켜세우면서 개혁의 속도가 좀더 가속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북경주재 외교관들은 중국지도자가 보다 신속한 개혁에 대해 언급한 것은 오랜만의 일이라며 지난 87년 제13차 당대회에서 조자양 전 총서기가 주장한 내용들을 상기시켰다. 이들은 최근의 권력투쟁양상을 분석하면서 강총서기가 과도기 지도자가 아니라 최고지도자 등소평의 진정한 후계자로서 자신의 위치를 정립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 서방 외교관은 강과 양의 이번 발언은 등소평의 깃발아래 공동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시사해주고 있는 것 같다고 분석했는데 이는 지난주 신중한 개혁을 주장한 이붕총리의 발언에 배치되는 것이다. 소련에서 교육받은 강총서기가 등소평의 심복으로 널리 간주되고 있으나 스스로의 권력기반이 약해 등 사후 강경 보수파로부터 공격당할 위험성이 크다. 한편 천안문사태 이후 해결되지 않고 있는 중국의 권력투쟁은 올해말 이전으로 예정돼 있는 당중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보다 가속화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 멀고도 먼「백두산 가는길」/이인복 숙명여대교수ㆍ국문학(서울시론)

    ◎이산보다 더 아픈 「이념의 벽」실감 40년 이산의 아버지를 뵈러 가는 길,백두산 가는 길은 멀기도 합니다. 백두산행이 아버지를 만나는 상징적인 행위라는 의식이 아니었더라면 나는 굳이 중국여행계획에 끼어들지 않았을 것입니다. 20년전에 깃발을 들고 전세계를 여행하던 벼락부자 일본인들 같은 언행을 보이면서 우리 한국인들이 지금 중국을 휘젓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한국이 그때의 일본처럼 잘 사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그때의 일본인들과는 다릅니다. 우리는 사실 잘 살지도 못하면서 잘 사는 척 기분을 내 보고 있는 것에 불과합니다. 중국이 실제 이상으로 못사는 척 일부러 궁상을 떨고 있는 것에 상대적 우월감을 느끼고 신이 나서 유치하게 「우쭐대 보는 것」이라면 우리는 중국인들의 음흉한 속셈에 놀아나는 것이 됩니다. 가이드들은 한결같이 『우쭐대는 일본놈들』이라고 말끝마다 입에 뇌었지만,그들이 조선족 가이드가 아닌 중국계일 경우엔 분명히 『우쭐대는 조선놈들』이라고 등 뒤에서 조롱했을 법도 합니다. 「우쭐댄다」는 말은「주제파악을 못하는 거드름」이란 말이니까요. 우리는 중국의 공항 화장실에조차 휴지가 마련되어 있지 않은 중국인의 궁상을 측은히 여길 것이 아니라,오히려 음흉한 계책으로 알아야 할 것입니다. 펄벅의 「대지」에서 오랑은 태어난 아들을 몸으로 가리고 하늘을 우러러 궁상맞게 부르짖습니다. 『못생겼습니다. 못생겼어요. 별볼일 없는 애입니다』 세인의 주목으로부터 감추어 주어 위험을 없이하자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그러한 겸양이 전혀 없고 실제로 가진 만큼이 아니라 오히려 더 많이 가진 것처럼 거짓 거드름을 피우고 있는 겁니다. 그것을 중국인들은 잘 압니다. 우리는 서독의 자세를 배워야 합니다. 소련으로부터 동독을 벗어나게 하기 위하여 2백억을 건네주었다는 말이 있고,또 동독의 경제를 서독의 수준으로 끌어 올리기 위하여 1천억을 투여하리라고 하고,동독의 돈을 서독의 마르크로 바꿔주기 위하여 천문학적인 손실을 감수하며 반허리의 동독민족을 해방시켰습니다. 정치가 동독을 해방시킨 것이 아니라 서독 국민이 출자한 개인재산의 태산같은 돈덩어리가 동독을 매입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한국은 정치로만 남북을 통일시킬 수 있겠습니까. 소련 하나만이 아니라 소련과 중국 두 나라의 간섭으로부터 북한을 구출하기 위하여는 2백억이 아니라 4백억이 필요하고,북한의 경제를 남한 수준까지 상승시키기 위하여는 우리도 1천억의 돈을 남한 국민의 호주머니를 털어 추렴해야 할 것인데,옆마을에 사는 내 형제자매 부모가 원시상태의 기근속에 사는 것은 생각하지 아니하고 가진 것 이상으로 가진척 하면서 중국여행에 돈을 퍼붓는 상황을 목격하며 나는 슬픔보다 짙은 분노에 떨었습니다. 북한 전역을 살 돈이 모금되어야 합니다. 훗날에 물건을 팔게 될 일을 위한 광고도 좋지만 지금 무조건 퍼주는 저자세 무역정책도 보기 싫었습니다. 상해ㆍ심양ㆍ장춘 등 내가 갔던 중국의 도시 어디든 공항의 짐 끄는 차와 텔레비전은 한국 것이었습니다. 일본 것이 아닌 한국의 것 뿐이었습니다. 중국 정부가 벌어들이는 외화 수입의 60%가 관광에서 오고 그것의 절반정도가 한국인이 쓰는 돈임을알아야 합니다. 나는 주는 일이 나쁘다는 것이 아닙니다. 중국은 북한이 아니라는 것,중국에 쏟는 돈을 아껴 두었다가 언젠가 이북을 여행하게 될 때 마음껏 씀으로써 북한 동포를 돕자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이북은 너무 가난하니까. 공항에서 우리는 이북의 교수님들과 25세의 통역관 여성을 만났습니다. 1920년대의 칼라 넓은 양복을 교수님들은 입고 있었습니다. 초라한 속에 거느린 내적 자긍심을 그들은 애써 과시하려 했습니다. 여성에게 물었습니다. 어떻게 영어를 그처럼 잘하느냐고. 그는 평양 외국어대 영문과 출신인데 공부를 못하면 국비 장학금을 못타고 그러면 퇴교 당하니까 일단 졸업하는 사람은 통역에 부족함이 없는 일꾼으로 양성된다고 말했습니다. 나는 한국의 외국어학과 대학생들을 생각하며 마음이 서늘했습니다. 국제 학술대회에서 북한을 대표하여 당당하게 통역을 한,영국계 캐나디언 영문과 교수의 지도를 받았다는,유창한 영국발음의 북한 여성 통역관은 1만5천원으로 다 구비할 검소한 원피스,비닐 핸드백 비닐 구두로 당당히 최상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습니다. 『이산의 아픔 중에서 제일 큰 것은 보고싶다는 감상적 애통 보다도 북한의 동포들이 못먹고 못입을까봐 그것이 피부를 깎는 애통』이라고 했더니,교수님과 통역관 여성은 나를 위로하며 말했습니다. 『닙성은 남조선만 못하고,먹는 것도 남조선만 못하지만,굶는 사람 얼어죽는 사람은 없으니 안심하시라요,그리고 우리는 허영하지 않고 게으르지 않고 조국 건설을 위하여 열심히 일하니까 안심하시라요』나는 그 말속에서 진실의 고백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여성에게 물었습니다. 제일 불행을 느끼는 것이 무엇이냐고. 그가 대답했습니다. 외국 유학을 못가는 것 그 하나 뿐이라고. 그러나 나는 압니다. 그들이 아무리 자긍심을 가장해도 정녕 감출 수 없는 그들의 아픔ㆍ부끄러움ㆍ고충 그것은 그들이 하느님처럼 모시며 달고 다녀야 하는 김일성 배지,가슴에 번쩍이며 빛나는 사람의 배지 그것일 터임을. 다른 것 입는 것이나 먹는 것의 가난함,그것은 극복할 수 있을지라도 오직 하나,사람의 배지를 가슴에 달고 다녀야하는 그 일은 지성인에게 있어서 정녕 고통이 아닐 수 없을 겁니다. 나는 그들이 정말 가엾었습니다. 교수님이 우리 일행에게 명함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러나 비행기를 타기전에 나는 눈물을 흘리며 그 명함을 가루가 될 때까지 찢고 비비어 이름자의 흔적이 없게 만들어 쓰레기 통에 넣었습니다. 「국법을 지키기 위해서」였습니다. 국가가 주지 않은 북한 사람의 명함을 나는 지녀서는 안되니까. 나의 아버지와 오라비들이 살아 있는지 죽었는지를 나의 정부가 알아내어 줄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것처럼,북한 교수가 나누어준 명함도 버려야 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북한의 여성을 껴안으며 『딸아. 장하다. 더 열심히 공부해서 훗날 영국과 캐나다에 유학해라. 서울에서 만나자』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백두산 가는 길은 아직 멉니다. 아버님 만나기 만큼이나 멀고 멉니다.
  • 남북선수 손잡고 입장… “화합함성” 7분

    ◎통일축구 열리던 날의 경기장/공차다 넘어지면 내남없이 부축… 관중 박수/「5ㆍ1경기장」 15만석 꽉채워… 단일깃발로 응원 ○전광판엔 「민족 대단결」 ○…홍백의 남북 축구선수단은 하오 3시5분 서로 손을 잡고 5ㆍ1경기장 트랙에 모습을 나타냈다. 15만 관중은 남북 선수가 2열로 손을 잡고 들어오자 함성을 지르며 일제히 일어나 손뼉을 쳤다. 선수들이 손을 흔들며 천천히 운동장을 반바퀴 돌아 경기장 중앙에 서서 인사를 하자 장내는 함성과 함께 딱딱이 소리가 진동했다. 밴드는 「우리의 소원」을 연주했고 이때 전광판은 「민족 대단결」을 새겼다. 관중들의 함성과 박수는 7분 동안 잠시도 쉬지 않았다. ○태극기ㆍ인공기없이 진행 ○…경기장 전광판은 「북」 「남」이라고 출전팀을 소개했고 태극기와 인공기는 보이지 않았다. 또 맞은편 쪽 전광판에는 『남측 축구선수단을 열렬히 환영한다』 『조국은 하나다』는 구호가 번갈아 나왔다. ○외신기자들,감독인터뷰 ○…이날 남북통일축구경기장에는 대회비중을 감안한 탓인지 남북기자들 외에도 타스통신 신화사통신 등 평양 주재 외신가자들이 대거 몰려들어 눈길. 외신기자들은 특히 한국 북한 감독들에게 집중 인터뷰공세를 펴는 등 남북축구에 비상한 관심을 표명. ○“소원은 통일” 메아리 ○…관중들은 관중석 30여군데에 배치된 악대리듬에 맞춰 「우리의 소원은 통일」 「고향의 봄」을 목이 터져라 부르고 또 불렀다. 15만명이 한꺼번에 쏟아낸 함성과 딱딱이 소리가 원형지붕에 메아리쳤다. 엄청난 응원열기에 한국측 인사들도 매우 상기된 표정. 북한측은 이날 흰 바탕에 하늘색 지도가 그려진 북경아시안게임 단일팀 깃발을 들고 나왔다. ○…남북통일축구대회가 열린 5ㆍ1경기장은 경기가 벌어지기 3시간 전인 12시부터 15만 좌석을 모두 채운 채 단일팀 깃발을 흔들며 뜨거운 분위기를 연출했다. 스탠드 하단에 자리잡은 대규모 악단(2백여명)이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연주하자 관중 모두 따라부르며 흥을 돋웠다. 관중들은 북한 당국에서 각 기관별 직장별로 배분한 무료 초대권을 갖고 입장했고 질서정연하게 응원전을 펼쳤다. ○“아주대회보다 큰 감명” ○…평양설계전문학교 3년생인 정해진 씨(20)와 김용순씨(20)는 『중앙 TV로 생중계되지만 통일염원의 현장을 직접 보고 싶어서 나왔다』며 남쪽 선수들이 운동장에 모습을 나타내자 환호성. 국토사업소에 근무한다는 송도일 씨(34)는 『체육 부문에서 처음으로 통일의 분위기가 무르익었다』면서 『지난 아시아경기대회에서 함께 응원하는 모습을 보고 크게 감명받았는데 이번 통일축구대회는 그것보다 더 큰 감동을 느낀다』고 말했다. ○홍ㆍ백 유니폼 입고 나와 ○…국기없는 홍백의 유니폼을 입은 남과 북의 선수들은 공을 빼앗긴 후 되찾기 위해 태클을 하다가도 상대가 다칠세라 나가던 발을 거둬들였다. 공을 놓고 다투다 넘어지면 모두가 달려가 부축했다. 관중들도 너나 할 것없이 격려의 박수를 보냈다. 평양TV의 중계아나운서도 양팀을 「남측」 「북측」으로 중계했다. 본부석에는 정동성 체육부 장관과 김유순 북한국가올림픽위원회 위원장이 나란히 앉아 파인플레이가 펼쳐질 때마다 박수를 치며 서로가 『이겨라』라고응원했다. 전반 25분 김주성이 첫골을 넣자 관중들의 함성이 스탠드를 흔들었다. 골을 넣으면 습관적으로 펄쩍 펄쩍 뛰던 김주성도 멈칫 서서 관중들에게 깍듯한 인사를 보냈다. ○서로 격려하며 재회약속 ○…5시17분 통일염원을 안고 남북이 함께 뛴 평양통일축구전이 끝났다. 종료 직전 PK성공으로 북측이 역전승을 거뒀으나 전광판의 시계가 멈춘 후 주심의 호각소리가 길게 울려퍼지자 선수들은 누구를 가릴 것 없이 서로의 등을 토닥거렸다. 땀으로 범벅된 윗옷을 바꿔입은 선수들은 다시 장래를 진동하는 박수소리에 보답하는 깊은 인사를 했다. 한국선수들은 바꾼 옷을 입고 관중들에게 축구공을 던져주었다. 23일 서울서 다시 만나 한바탕 놀아주기를 기약하면서. 이날 경기심판(주심 장석진,부심 전천익 리광호)은 모두 북한이 맡았다.
  • 북경아시아드 폐막/94년 일서 재회 약속

    【북경=본사 합동취재단】 제11회 북경아시안게임이 7일 밤 북경공인체육장에서 폐막식을 갖고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37개국 6천여명의 사상 최대규모 선수단이 참가한 가운데 열린 이 대회에서 중국은 금 1백83 은 1백7 동 51개로 아시안게임 3연패를 차지했으며 한국은 금 54 은 54 동 73개로 서울아시안게임에 이어 일본을 제치고 종합 2위를 고수했다.〈관련기사 3·4·5면〉 일본은 금 38 은 60 동 76개로 종합 3위를,8년간의 공백을 가졌던 북한은 금 12 은 31 동 39개로 예상보다 부진을 보이며 4위에 그쳤다. 폐막식은 이날 밤 7시30분 오소조 국가체육위원회 주임의 폐막식 개시선언으로 시작되어 중국풍이 넘치는 춤과 노래와 서커스 등으로 성대하게 펼쳐졌다. 각국 선수단의 입장에 뒤이어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 깃발과 중화인민공화국기 그리고 차기대회 개최지인 일본국기가 차례로 올려졌다. 선수단이 착석한 뒤 「금야성광찬란」(오늘 밤은 별빛도 찬란하구나)의 대제목아래 8개의 식후공개행사가 화려하고 아름답게 펼쳐졌다. 식후공개행사의 마지막엔 수천발의 불꽃놀이가 북경의 밤하늘을 수놓았고 11발의 예포가 은은히 울려퍼지는 가운데 성화는 4년 후 히로시마에서의 재회를 기약하며 서서히 꺼졌다.
  • 북경아시아드 유감(사설)

    16일 동안에 걸쳐 아시아인들의 우정과 힘을 겨룬 제11회 북경아시안게임이 전종목에 걸친 시합을 끝내 작별의 시간만을 남기고 있다. 일찍이 없던 37개국에서 5천여명의 선수들이 모여 최대의 잔치를 벌인 이번 대회가 별다른 탈 없이 마치게 된 것에 우선 더없는 찬사를 보내고 싶다. 참가선수들이나 밤낮없이 경기를 지켜본 전체 아시안들이 경기내용에 때로는 열광하고 또 실망도 하면서 전진과 화합의 마음을 다시한번 다졌으리라 믿는다. 그런데서 이번 대회는 성공적이었고 주최한 중국의 노고가 그 만큼 크다고 여긴다. 중국으로서는 더욱이 당초 예상을 넘는 선전으로 아주 부동의 최강을 과시한 것이 더 큰 보람이 될 것이다. 그러나 문제도 없지 않았다. 주최국으로서 중국은 메달획득에 지나치게 집착함으로써 친선ㆍ우정의 한마당이어야 할 대회의 진정한 의의를 변색시켰다. 경기종목을 형평을 잃을 정도로 자국에 유리하게 채택함으로써 많은 나라들의 경기의욕을 떨어뜨렸고 훈련장 이용에 차별을 두는 것과 같은 텃세가 비난을 받았다. 얼핏 사소한것임에 틀림없으나 2천년의 북경올림픽을 겨냥하고 있는 중국으로서는 특히 유념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어떤가 한국팀은 중국의 독주에도 불구하도 당초 목표로 했던 2위를 확보함으로써 목적을 달성했다. 선수들을 이끌어온 팀관계자들이나 선수들 모두가 그동안의 노고에 보람이 있었다고 여겨 박수를 보낸다. 인기종목의 그늘에 가려 빛을 보지 못해오던 팀이나 선수의 우승,불우를 이겨낸 메달리스트들의 얘기는 우리에게 감동을 주었다. 스포츠는 그래서 늘 신선한 자극이고 그런 감격을 우리 선수들은 해냈다. 또 이번 대회는 때마침 불어닥치고 있는 북방외교의 한 장을 제공했다는 데서 우리에게 남다른 의미를 남겼다. 남북의 응원단이 한 데 어울려 같이 노래부르고 깃발을 흔든 장면은 북경대회가 보여준 감동적인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일부 종목에서는 너무나 기대에 어긋나 실망이 컸다. 처음부터 우승을 예상했던 종목들이 대부분 탈락했다. 그 만큼 상대방에 대한 정보 부재를 그대로 나타냈고 또 어느 종목에서는 선수들의 자만이 그같은결과를 가져왔음을 이번에 볼 수 있었다. 자기수준만을 과신하고 상대방의 전력탐색을 얼마나 소홀히 했는가를 경기결과는 그대로 확인시켜주었다. 「해내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없고서는 또 그런 훈련 없이 경기력의 향상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다시 배워야 될 것이다. 다음의 바르셀로나올림픽을 앞두고 우리는 여기에 중점을 두고 다시 시작하는 전열정비가 있기를 당부한다. 이번 대회를 통해 몇가지 불미스러운 것들로 많은 사람들이 충격을 받았다. 북경거리의 한약방 싹쓸이 쇼핑이 망신스러운 것이었고 쇼핑에는 금메달감이라는 외신보도는 낯뜨겁게 하는 것이었다. 물건값이 싸기 때문에 대량 구입했다는 이해도 있을 수 있으나 정도를 넘었다면 반성할 일이다. 또 하나 남북 축구교섭을 둘러싸고 외교관례를 벗어난 듯한 우리의 자세는 충분히 문제가 된다고 여긴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서둘러야 하고 판별력이 부족했는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남북 교류문제만을 두고도 숱한 과제와 장애요인이 산적해 있다는 것을 감안해서 매듭을 풀어나가는 접근이있기를 거듭 당부한다.
  • 소 우크라이나공/대규모 반공시위/신연방조약 거부

    【모스크바 AP 연합】 소련 우크라이나 공화국 민족주의자 5만여명은 공산당을 비난하고 연방당국과 공화국간의 신연방조약 체결 거부를 촉구하면서 30일에 이어 1일 연 이틀째 항의시위를 벌였다. 이날 시위자들은 신연방조약은 「새로운 속박」이라는 깃발을 들고 연방조약 체결을 반대했으며 공산당을 재판대에 올려야 할 범죄단체로 규정하는 한편 국가보안위원회(KGB)는 인민의 적이라고 주장했다고 우크라이나 공화당의 페트로 보르수크가 전했다. 공화국의 자치권확대를 요구해온 친민주화 민족주의 단체들이 조직한 이날 시위에서 군중들은 또 소련군에 징발된 우크라이나 공화국 젊은이들은 공화국내에서만 복무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보르수크는 군중들이 키예프시 10월 광장에서 집회를 가진 뒤 공화국 최고회의 건물을 향해 시가행진을 벌였으나 경찰은 지켜보기만 했을 뿐 평화적인 행진을 방해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 유럽중심부에 거듭난 「게르만」

    ◎1990년 10월3일 통일… 새독일의 위상/인구 8천만ㆍGNP 1조3천억불의 부국/향후 10년간 국부 두배로… 「제2기적」 기대 1990년 10월3일 0시. 동서로 갈리어 반세기를 살아온 게르만민족이 45년만에 다시 하나가 되는 역사적 순간이다. 통독은 전후 미소를 축으로 한 냉전체제의 종언이자 새로운 탈냉전시대를 출범시키는 출발이기도 하다. 이제 독일 민족은 지나간 분단의 세월속에 쌓인 한과 고통을 라인강물에 띄워보내고 흑적황 3색의 독일깃발을 다시 유럽 복판에 세우는 환희의 순간을 맞고 있는 것이다. 통독은 유럽,나아가 세계질서의 재편을 불가피하게 하고 있다. 동구와 소련 등 사회주의 국가들의 일당체제붕괴에 이어 바르샤바조약기구의 와해가 눈앞에 다가오고 있으며 NATO의 기능도 군사조직에서 정치조직으로 변모할 기미를 보이고 있다. 이와 함께 「하나의 유럽」을향한 국제질서 재편작업이 더욱 박차를 가하게 된다. 그렇다고 통일독일의 장래가 모두 장미빛으로 밝은 것만은 아니다. 아직도 넘어야할 고비가 많다. 베를린장벽이 무너진지 1년도 못돼,그것도 수십만명의 미국과 소련 군대가 대치하고 있는 가운데 통독을 실현시킨 패전 독일민족의 능력을 바라보는 우리의 감회는 실로 착잡하다. 이같은 역사적 순간을 맞아 서울신문은 김진천 파리특파원과 이기백 정치부기자를 역사의 현장에 특파,통독과정을 살펴보고 유럽의 새질서 태동을 점검해 보기로 한다. ▷인구ㆍ영토◁ 통일독일의 인구는 서독의 6천1백만명과 동독의 1천6백60만명을 합해 총 7천7백60만명. 1억명 이상의 10개국과 8천3백만명의 멕시코에 이어 세계 12번째 인구대국. 영토는 서독의 24만8천7백6㎢와 동독의 10만8천3백33㎢를 더한 총 35만7천39㎢로 한반도(22만1천㎢)의 약 1.6배 크기. 2차대전 패전으로 폴란드영토가 된 오데르∼나이세강 동쪽의 실레지아 등 10만3천㎢의 옛독일땅에 대해서는 통일후에도 영토권을 주장하지 않기로 약속된 상태. 수도는 베를린으로 결정됐으나 현재 본에 위치한 행정부가 옮겨갈지 여부는 추후 논의대상이다. 국기ㆍ국가ㆍ국명 등은 동독이 서독에 흡수통합되는 만큼 서독것을 그대고 쓰되 동독인들의 자존심을 고려한 추후변경여부는 미지수. ▷역사◁ 지난 4세기 발트해연안 및 스칸디나비아반도에서 살았던 게르만족의 대이동으로 독일은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게 됐다. 그러나 독일민족은 중세에 들어서도 통일을 이루지 못하고 분열상태를 지속,강력한 힘을 발휘하지는 못했으며 철혈재상인 비스마르크가 등장,1871년 독일제국이 탄생됐다. 제1차대전의 패배로 제정은 무너졌으며 바이마르공화국시대(1919∼1933)로 들아갔으나 소당분립,정쟁격화 등으로 혼란이 계속되던중 1933년 히틀러가 등장하기에 이르렀다. 히틀러는 게르만 제1주의를 내걸며 사상최대의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으나 1945년 패전으로 독일은 동서독으로 분단의 길을 걷게 됐다. 서독은 동독과 수교한 국가들과는 외교관계를 맺지않는다는 냉전시대의 할슈타인원칙을 표방했었으나 브란트전총리는 지난 1969년 집권한 뒤 동방정책을 표방,상호교류를 확대시켜 오늘의 통일을 이룬 결정적인 계기를 만들었다. 동서독은 72년 기본조약체결,73년 유엔동시가입,74년 상주대표부 설치를 거쳐 80년대에는 양국정상의 상호방문이 실현되기도 했다. 지난해 11월에는 동서 데탕트와 고르바초프의 개방정책,동구권의 민주화열기로 지난 61년 구축됐던 베를린장벽이 철폐됐고 지난 7월 통화통합으로 사실상 통독이 가시화됐다. ▷국내정치◁ 통일과 동시에 동독정부 및 의회는 소멸되며 오는 12월2일 전독총선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현서독정부가 계속 집권한다. 다만 총선전까지 동독지역의 대표성을 인정하기위해 메지에르 총리등 독독 지도자들이 서독 행정부에 무임소장관으로 기용되며 4백명의 동독인민의회의원중 인구비례에 따른 1백44명이 서독연방의회(하원)에 자동진출한다. 전독총선에서는 상원 56석(서독지역 41,동독지역 15)과 하원6백85석(서독지역 5백41,동독지역 1백44)의 임자를 가려 하원의 다수당이 통일독일의 명실상부한 초대 집권당이 된다. 동서독의 집귄기민당을 비롯,사민ㆍ자민당 등은 이미 전독총선에 대비해 정당통합절차를 마쳤다. 지금까지의 여론조사결과를 놓고 볼때 기민당을 주축으로 한 중도우파연정이사민당의 인기도를 훨씬 앞지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통독후 총선까지 2개월 사이에 극심한 경제혼란 등 이변이 없는 한 콜 서독총리의 초대 독일재상 꿈이 실현될 가능성이 높다. ▷경제◁ 통독을 가능케 한 주요인이 서독의 경제력 때문이라는 분석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만큼 막강한 서독의 경제력은 동독과의 통합으로 더욱 힘을 발휘하여 마르크화의 위력이 유럽을 강타하게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서독은 지난 89년 총GNP(국민총생산)에서 1조2천억달러를 기록,미국 소련 일본에 이어 세계 4위를 차지하고 있는 경제대국으로 통일을 계기로 경제전망이 더욱 밝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서독은 EC(유럽공동체) 총생산량 가운데 25% 정도를 점유하고 있으나 서독경제력의 10%수준인 동독을 흡수,30%선을 상회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통독은 단순합계로 현상태에서 유럽내 라이벌인 프랑스 영국보다 경제력에서 50∼80%를 능가하게 됐다. 서독은 EC의 대 동구 및 소련교역량 가운데 3분의1 정도를 차지하고 있으나 동구권내에서우수한 공업국인 동독을 흡수함으로써 이지역을 기반으로 하게될 경우 대 동구 교역량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이로 인해 동구는 독일의 영향을 받아 위성국으로 전락할 가능성까지 있는 것으로 점쳐지고 있을 정도이다. 반면 서독은 통독으로 낙후된 동독을 희생시켜야 하는 책임을 맡게되어 통일에 대한 비용을 부담하게 됐다. 서독정부는 지난 5월 1천1백50억마르크(약 7백억달러)의 통일기금을 조성키로 했으나 동독을 서독의 수준으로 상향평준화시키기 위해서는 모두 1조∼2조마르크가 필요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서독정부가 앞으로 10년간에 걸쳐 집중적으로 동독의 철도 도로 전신 등 기간산업에 투자하고 동독의 실업자들에게 수당을 지급하려면 이와 같은 엄청난 재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동독의 8천여 국영기업 가운데 이미 20%가 서독과의 경쟁에서 도태됐으며 30%만이 살아남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또한 서독은 동독의 1백50억달러에 이르는 외채를 청산해야 하며 올 하반기에만 3백30억마르크의 예산적자가 예상되는 등 열악한 동독재정을 떠맡아야 할 입장이며 동독주둔 소련군의 철수비용 및 통일에 대한 보답으로 1백80억마르크를 지불키로 되어있다. 그러나 현 동독경제의 상태 및 막대한 투자재원부담이 통독의 앞날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서독은 지난 88년 7백억달러의 국제수지흑자를 기록하는등 외환보유고 세계 2위의 부국이기 때문에 이러한 재원은 별 문제가 될 수 없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갖고 있으며 대 동독투자로 1백여만명의 새로운 일자리가 생길수 있다는 분석이다. 동독이 90년대를 통해 연평균 7∼8%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현재의 GNP보다 배로 확대돼 제2의 라인강의 기적이 동독에서 만개하게 될 것이라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의 분석도 나오고 있다. ▷군사력◁ 서독의 48만8천7백명과 동독의 17만2천명을 합해 통일독일의 총병력은 66만명인 것으로 돼 있지만 민주화이후 동독군의 탈영이 속출해 실제병력수는 이보다 다소 적은 수준이다. 그러나 통일독일은 군대를 37만명이하로 유지하고 화생방무기를 생산하거나 보유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상태여서 통일후 절반 가까운 병력감축 조치가 뒤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 외언내언

    아시아경기대회가 열린 이후 북경시내에 있는 한약방 「동인당」이 일약 유명해졌다. 북경에 가보지 않은 사람들도 이곳에서 몸에 좋다는 한약재를 팔고 있음을 이제는 알고 있다. 경기관람을 위해 중국에 온 많은 우리 관광객들이 우황청심환을 싹쓸이하면서부터 이곳이 널리 알려지게 된 것. 잘못된 관광의 좋은 실례이다. ◆그 정도로 요즘 우리의 해외나들이 양태는 많이 잘못돼 있다. 동남아 일대에서 마구 사들이는 쇼핑이 그러하고 「뱀탕관광」이 역겹다. 그런가하면 동구 각국·중국연변일대의 졸부들의 행진이 대표적인 난장판 관광이다. 관광이 의도하고 있는 각나라 국민간의 이해나 친선에 도움은커녕 오히려 나라의 체면을 형편없이 실추시키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한때 깃발을 앞세운 섹스여행으로 숱한 비난을 받은 일본의 경우를 연상시켜 이미지의 중요함을 다시 생각케 한다. 개개인의 그릇 인식된 해외여행의 여파는 이렇게 엄청나다. ◆우리는 서울이 수도가 된 지 6백년이 되는 94년을 「한국방문의 해」로 정하고 각국의 관광객을 유치할 계획이라고 한다. 그 전해에는 대전에서 세계박람회가 열릴 예정이어서 93·94년은 그 어느 해보다 많은 관광객들로 붐비게 될 것 같다. 문제는 우리가 소화능력을 제대로 갖고 있느냐는 데에 있다. ◆외국인들은 택시승차난,언어불통을 한국여행에서 가장 큰 불편으로 호소하고 있다. 여기에다 곳곳의 쓰레기더미는 관광한국을 먹칠할 것이 틀림없고 난폭해진 마음가짐은 더욱 염려되는 것이다. 이것들에 대한 대비가 있어야 된다. 관광객 유치가 경제적으로는 어느 정도 도움이 될지는 몰라도 준비부족의 관광객 유치는 그만큼 이미지만을 추락시킨다는 것에 문제가 있다. 관광대책의 전면 재검토가 그래서 새삼 요구된다. ◆지금까지와 같이 관광객을 불러들여 물건이나 팔고 우리 민속이나 소개하는 것이어서는 더이상 곤란하다. 서울올림픽을 통해 한국은 알려질만큼 널리 소개되었기 때문. 국제화시대에서 우리가 어떻게 대응하고 그 속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 한반도에 「교차승인」 기운 감돈다/북한·일본 급속접근의 파장

    북한이 27일 일본에 국교정상화 협의를 제의,일본은 물론 한국을 비롯한 주변국가들을 놀라게 하고 있다. 지금까지 일본과의 수교는 「2개의 조선」을 인정,분단을 고착화시킨다는 이유로 반대해온 북한이 갑작스레 태도를 돌변,수교협상을 제의하고 나온 데 대해 갖가지 추측이 쏟아지고 있다. 소련과 중국이 한국과 접근하고 있는 데서 오는 고립감 탈피가 가장 중요한 이유로 꼽히고 있으나 그렇다면 과연 북한이 「2개의 조선」 반대정책을 포기했느냐는 점이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북한의 태도변화를 바라보는 한국과 일본의 시각을 정리해본다. ◎도쿄의 반응/“수교 앞세워 경협흥정 치중” 의구심/한·소 수교 견제 전술적 전환 시각도 북한의 전격적인 대일 수교제의는 일본에도 큰 충격파를 던졌다. 전혀 「예상밖의 사태」로서 각계가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다. 이번 제안의 배경에는 어떤 판단이 작용했는가,일본 외무성을 비롯한 관계전문가들은 그 저의 분석에 골몰하고 있다. 외무성은 자민·사회 양당 북한방문단과 동행한 가와시마 유타카(천도유) 아시아국 심의관으로부터 상세한 귀국보고를 들은 뒤 대응책을 결정할 방침이다. 27일 평양에서 개최된 북한·일본간의 사상 첫 정부레벨 접촉인 외교 실무담당자 협의에서의 제안 당시 상황은 다음과 같다. ▲천용복(북한 외교부 부부장)=곧바로라도 국교정상화 교섭을 개시하자. ▲가와시마 유타카=그렇다면,(북한의) 방침이 변했다는 것이냐. ▲천=그렇다. ▲가와시마=지금까지 한반도에 2개의 국가를 인정하는 것은 분단을 고착화시킨다고 반대해오지 않았는가. 동·서독은 분단국가이면서도 통일국가가 되었다. 게다가 북과 남을 2중 승인하고 있는 국가가 84개국이나 되지 않는가. 일본 외무성은 이같은 북한의 대일정책 전환의 요인으로서 다음 3가지를 꼽고 있다. 첫째 한국의 활발한 북방정책에 의한 소련·동구제국과의 눈부신 관계진전에 압도되어 있는 점. 둘째 어린이들의 영양부족마저 지적되고 있는 심각한 경제적 궁핍. 셋째 지난 9월 초순 평양을 방문한 셰바르드나제 소련 외무장관으로부터 한국과의 국교수립방침을 통고받고 충격을 받았다는 점 등이다. 북한의 정책전환에 대해 일본 외무성 수뇌는 27일 밤 『북한의 지금까지의 공식발언으로 미루어볼 때 예상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북한은 김일성 주석의 주체사상을 기초로 자주·자립노선을 견지하고 있으며,일본 정부의 한반도정책에 대해 『한국 일변도로 북한에 적대정책을 취하고 있다. 분단고착화를 위한 한·미군사동맹에 가담하고 있다』는 등 격렬하게 비판해왔다. 이번 일본의 북한방문단이 평양에 도착한 당일인 지난 24일 밤 조선 로동당 주최 환영연에서도 국제부장인 김용순은 인사말을 통해 「2개의 조선」을 합법화하는 것에 의한 한반도 분단고착화는 결코 허용할 수 없다며 종전의 원칙론을 고수하고,한국과의 국교수립을 서두르고 있는 소련을 격렬히 비난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대일 국교정상화 제안이 나오리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같은 북한이 일본측에 대해 국교정상화 교섭을 제의한 것은 더이상 국제사회에서 고립될 수 없다고 판단을 내린 한편,『통일의 깃발은내리지 않지만 당분간 정책을 변경,경제중심으로 힘을 쌓아 한국에 대항하려는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여기에 김일성 주석의 78세라는 나이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고 있다. 자신이 건재해 있을 때 정책을 전환하겠다는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김 주석이 이달 중순 중국을 방문했던 것도,한국과의 경제관계를 착실하게 확대해나가고 있는 중국에 대해 『최소한 중국만은 배신하지 않도록 못을 박아두려 했던 것』(외무성 간부)이 아닌가 보고 있다. 북한에 있어서 「2개의 조선」 불인정은 「국시」와 같은 것이다. 그 근간에 영향을 미치는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 문제와 대일 국교정상화는 응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 북한은 남북대화가 진행되고 있던 다나카(전중) 내각시절인 지난 72년을 계기로 『한·일기본조약의 파기가 북한·일본 국교정상화의 전제』라는 방침을 완화,일본과의 국교정상화에 유연한 자세를 취했던 일도 있다. 그러나 그후 관계개선은 기대했던 것 만큼 진전되지 않았으며,78년 일본 사회당의 아스카다 이치오(비조전일웅) 위원장이 북한을 방문했을 때는 국교정상화를 거부,현재에 이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이제와서 느닷없이 국교정상화를 제의한 배경에 대해 일본 외무성 관계자는 『한·소 국교수립을 앞두고 한국을 견제하겠다는 의미가 있다』고 본다. 「전술적 전환」이라는 것이다. 30일 뉴욕에서 개최될 예정인 한·소외무장관회담에서 양국의 국교수립은 결정적인 사실로 되어 있으며,북경아시안게임을 계기로 한국과 중국과의 경제교류도 심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같은 상황에서 어느 정도의 「균형감각」을 취해 서방측과의 관계개선에 나서지 않으면 국제적 고립은 더욱 심화되고,후계자인 김정일에의 정권이양이 원활하게 될 수 없다는 고도의 정치판단이 작용한 것이 아닌가라는 견해도 유력하다. 또 외무성에는 『북한측에는 제18후지산마루(부사산환)호 석방과 때를 맞춰 일본측으로부터 배상·청구권 문제 등 경제협력의 구체적인 내용을 조속히 끌어내려는 계산이 깔려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차가운 시선도 없지 않다. 게오(경응)대오고노기 마사오(소차목정부) 교수는 이렇게 분석한다. 『북한의 진의는 일본과의 국교정상화 교섭을 시작함으로써 배상을 빠른 시일내 받아내려는 것이 아닌가. 일본은 국교정상화가 안된 상태에서는 북한에 보상금을 지불할 수 없다는 의견도 있으며,정상화 교섭 없이는 대규모 경제협력을 얻기도 힘들다. 따라서 우선 국교수립을 목표로 한다는 형식을 내놓았다고 본다. 그러나 북한이 통일을 전제로 하지 않고 일본과 국교를 맺는다는 것은 생각하기 힘들다. 한편 시즈오카(정강)대학 이즈미 겐(이두견원)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북한은 지난 연초부터 줄곧 일본과의 관계개선 준비를 해왔다. 일본의 국내정치가 당시 안정되지 못해 시간이 걸렸던 것뿐,의외성은 없다. 북한측은 배상 문제를 해결하려면 국교수립이 전제가 된다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다. 북한의 논리로는 일본과 국교를 수립하더라도 「2개의 조선」을 인정하는 것으로는 되지 않는다. 일본이 북한을 적시하지 않고 한반도 통일에 반대하지 않는다면 지금까지라도 국교를 맺는 것은 가능했다.북한은 기본자세를 변치 않고 있다. 일본이 통일을 방해하고 있다는 「오해」가 풀린다면 분단고착화가 아니라 통일을 위한 국교수립이라는 것이 된다. 다만 교섭은 쉽사리는 진전되지 못할 것이다. 우선 배상 문제에 대해 일본 국내의 합의조성이 필요한데,거기에는 꽤 시간이 걸린다. 일본 정부는 또 한국의 반응에도 배려하며 교섭을 진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서울의 대응/핵협정 가입 등 평화보장장치 선결/남북한 대화 고려,속도조절을 희망 한소 양국이 30일 외무장관회담을 갖고 양국 수교 문제를 공식 협의하는 등 한소 수교가 임박한 가운데 북한이 일본측에 오는 11월 국교정상화 협의를 공식 제의함으로써 한반도를 비롯한 동북아 질서에 새로운 기류가 형성되고 있다. 또한 방북중인 일본의 가네마루(김환신) 전 부총리 일행이 『북한과 수교 전이라도 배상 문제를 정치적 결단으로 해결하겠다』고 발언하는 등 일·북한 관계개선이 급진전하고 있는 것으로 비쳐지고 있다. 정부는 일·북한 관계 급진전 관련보도에 대해 깊은 우려의 뜻을 일본 정부측에 전달하는 한편 이 보도가 사실로 밝혀질 경우 강력한 대일 대응조치를 강구할 방침이어서 일·북한 관계개선 문제는 한일간 외교마찰을 불러일으킬 소지를 배제하지 않고 있다. 우리 정부가 일본의 대북한 관계개선에 반대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일·북한 접근 문제는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추구하는 범위내에서 진행되어야 하며 특히 남북대화와 관계진전이 고려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정부는 7·7선언에서 북방정책 추진과 함께 한반도의 평화를 정착시킬 여건조성을 위해 북한이 미국·일본 등 우리 우방국과 관계를 개선하는 데 협조할 용의가 있음을 밝혔다. 정부는 북한이 대남 적화통일노선을 포기하거나 핵안전협정에 가입하지 않고 남북 관계개선이 진전되지 않는 상황에서의 일·북한간 급속한 접근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도리어 해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일·북한이 접근하게 된 근본 동인은 한소 수교인 것으로 외교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즉 한소 수교로 인해 일본과 북한의 「충족욕구」가 맞아떨어졌다는 것이다. 과거 독점적인 동맹국이었던 소련을 잃게 된 북한은 일본을 경제협력 파트너로 인식하게 됐으며 일본은 동북아의 주도권을 소련에 뺏기지 않기 위해 「북한카드」를 이용하게 됐다고 관측된다. 경제적 위기에 처한 북한이 남북대화를 통해 남북간 경제협력을 모색하지 않고 일본과 긴밀한 경제협력을 하게 되면 결코 남북 문제 개선과 한반도 평화정착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정부관계자의 공통된 지적이다. 일본이 경제적 활로를 찾고 있는 북한을 이용,핵안전협정 가입 등 한반도 평화를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도 하지 않은 상황에서 대북 관계개선을 추구하는 것은 한일관계에도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지적되고 있다. 일본이 대북접근에 적극적인 이유로는 또 ▲미·중국 수교의 닉슨쇼크(70년초) 이후 북한과의 수교는 미국보다 먼저 하겠다는 내부방침 ▲경제력에 상응한 국제정치적 위상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데 대한 압박감도 들 수 있다. 더욱이 역사적 경험에 비추어 한반도 4강중 내심 한반도 통일에 가장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이 일본인 점을 감안할 때 「북한 카드」를 활용해 정치대국으로 운신하고 한반도 문제에 대한 발언권을 강화하겠다는 속셈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일·북한 관계개선을 장기적으로 볼 때는 북한의 개방과 개혁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정부가 일·북한 관계 급진전과 관련,우려하고 있는 핵심은 현상황에서 북한에 일본의 돈이 들어가면 중단기적인 면에서 북한의 대화·개방에 부정적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소련의 원조 중단,중국의 대북 경제협력 한계성에 비추어 북한은 지금 상당한 경제적 곤경에 처해 있기 때문에 개방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이다. 이런 때에 일본과의 관계개선을 통해 돈이 들어가면 오히려 전반적인 대외개방보다는 김일성 노선의 고수 강화쪽으로 기울어질 공산이 큰 것이다. 우리 정부가 불쾌하게 생각하는 대목도 없지 않다. 가네마루 전 부총리가 북한과 수교전 배상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발언한 것은 지난 65년 한일 국교정상화 과정에서 보상 문제를 오랜동안 어렵게 처리했던점을 감안할 때 한일 관계를 고려치 않은 처사라는 지적이다. 북한측은 일본과의 국교정상화 제의에 대해 『그동안 견지해온 「1개의 조선」 정책의 변경』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과연 북한이 교차승인과 2개의 조선 정책으로 전환했는지는 오는 10월16일 제2차 평양총리회담에서 그들이 어떤 태도로 나오는지를 보면 그 허구여부가 확연히 드러날 것으로 관측된다. 앞으로 일·북한 관계개선 속도조절 문제는 한일 양국간 첨예한 외교 문제로 부각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전망된다. 일본이 우호적인 한일 관계를 계속 유지하려면 대북 관계개선 속도를 상당히 늦출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이미 북한의 조속수교 의사를 읽은만큼 일단 대북관계 속도를 조절한 뒤 한소 수교 진전과정을 지켜보면서 대북 관계개선을 추진할 것으로 외교관계자들은 관측하고 있다.〈박정현 기자〉 ◎일 자민·사회당 대표 방북 4박5일/수교원칙엔 접근… 배상액수 등 난제/예상밖 성과로 되레 큰 짐 떠안은 셈 「가네마루 북한방문단」은 너무 많은 것을 안고 돌아왔다. 가네마루 신(김환신) 전 부총리와 다나베 마코토(전변성) 부위원장을 각각 단장으로 하는 일본의 자민·사회 양당 대표단의 출발 당시의 계산은 제18후지산(부사산)호 선원 2명의 석방과 쌍방의 연락사무소 설치만 합의되면 대성공이라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24일부터 28일까지 4박5일간의 짧은 교섭과정에서 대표단은 스스로 당황할 만큼 많은 것을 얻었다. 전혀 예상하지도 못했던 「국교정상화」 교섭 문제가 공동성명에까지 포함됐다. 가네마루 단장은 묘향산 초대소에서 이틀밤을 머물며 김일성 주석과 3차례의 회담을 가졌다. 기대 이상의 「성과」였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외교적 성과」로 치부한다는 것은 피상적 관찰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은 성과로 볼 수 없다. 오히려 북한측의 치밀한 「전술적 전환」에 타케트가 되었다고 보는 것이 더욱 정확하다. 「성과」란 하나의 목표를 놓고 대등한 입장에서 일진일퇴의 공방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다. 한쪽이 다른 목적을 갖고 일방적으로 제공하는 것은,아무리 상대편이 원하고 있던 사항이라 하더라도 성과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상대방 전략에 대한 「대응의 필요」라는 짐만 지는 셈이다. 북한은 종래의 대일 파이프라인이었던 일본 사회당을 제치고 집권 자민당의 최고실력자 가네마루 전 부총리를 조준,전략의 카드를 마음껏 펼쳤다. 국제적 고립상황의 탈피,경제적 핍박의 해소,한국에 대한 견제 등 필요에 의한 카드였다. 어쨌든 이번 자민·사회 양당 대표단의 북한 방문결과는 엄청났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물론 국교정상화 제의였다. 김일성 주석을 비롯한 북한당국자들이 27일 여러 경로를 통해 일본과의 수교를 제의해온 것에 대해 일본 정부는 한때 당혹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으나 『원칙적으로 받아들인다』는 방침을 세워놓고 있다. 다만 『한반도 전체의 안정,긴장완화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한국·미국과도 의견을 교환해가며 교섭을 진전시킨다』는 입장이다. 이번 북한 방문에서 가네마루 전 부총리는 자민당의 첫번째 대표단 단장으로서 김일성 주석과 회담했다. 이 자리에서 가네마루 전 부총리는 과거 식민지 지배를 사죄하는 가이후(해부)총리의 자민당 총재 명의 서한을 전달하고 충분히 보상하겠다는 뜻을 전달했으며,북한·일본 쌍방은 전면적으로 관계를 개선,새로운 우호관계를 수립한다는 데 인식의 일치를 보았다. 28일 하오 발표된 북한 로동당과 자민·사회 3당의 공동성명에는 국교정상화 교섭을 양쪽 정부에 요청한다는 것을 비롯,과거 식민지 지배에 대한 일본측의 사죄와 반성을 명기했으며 보상의 실현을 위해 정부간 교섭을 개시한다는 사실이 포함되어 있다. 또 일본 정부발행 여권에 북한 제외조항을 삭제한다는 사실,도쿄∼평양간 직행편 개설,연락사무소 설치,통신위성의 이용 등 현안도 명기됐다. 전문 8장으로 된 이 공동성명은 당초 28일 상오 발표될 예정이었으나 보상 문제에 의견이 엇갈려 난항을 거듭,이날 하오 5시 넘어 조인됐다. 기초작업은 자민당의 이시이(석정) 대표단 사무총장,사회당 야마하나(산화) 부서기장 및 북한 로동당 김양건 국제부 부부장 등 사이에 27일 밤부터 28일 상오 8시에 걸쳐 철야로 진행됐으나 결론을 보지 못했다. 이에 따라 가네마루 다나베 양단장과 로동당 김용순 서기가 대표자회의를 열어 조정했다. 이날 문제가 된 보상 문제에 대해 자민당측은 『앞으로 양국 정부간의 교섭을 개시,하루라도 빨리 실현에 노력한다』는 취지로 표현하자는 데 대해 북한측은 『실행해야 할 것은 당장 해야 한다』며 직접적 표현을 고집,가네마루 전 부총리의 정치적 결단을 요구했다. 북한측은 대일 국교정상화를 제안해놓기는 했으나 교섭의 본격화로부터 국교수립까지의 타임테이블이 불투명한 상태에서 보상 문제의 조기타결과 확약을 받으려 했던 것으로 관계자들은 분석하고 있다. 어쨌든 이번 「가네마루 북한방문단」은 많은 과제를 안고 돌아왔다. 특히 한일관계에 새로운 과제를 안겨주었다. 일본 외무성 관계자들은 『몇년 전 같았으면 한국으로부터 맹렬한 반발을 받았을 것이다. 이번에는 그런 일은 없겠으나,한국에 대한 배려 때문에 「황신호」의 서행운전을 해야 할 것은 틀림없다』고 말하고 있다. 이처럼 일본·북한 관계의 급속한 접근은 한국과의 관계는 물론,한반도 정세에 커다란 영향력을 갖는 미국·소련·중국 등 주변제국의 주목을 끌 것은 틀림없으며,일본 정부 자체로서도 일·소 관계 등과 관련되어 극히 어려운 외교교섭이 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 주간 노동자신문/전 편집부장 구속

    국가안전기획부는 28일 전 주간노동자신문 편집부장 김진태씨(33)를 국가보안법 위반(이적표현물제작 등)혐의로 구속했다. 김씨는 지난88년 1월부터 지난해 8월까지 이미 구속된 김진국씨(34) 등 「민족통일민주주의 노동자동맹」(삼민동맹)사건 관련자들과 함께 「노동자의 깃발」 제4호부터 24호까지를 만들어 배포한 혐의를 받고 있다.
  • 학술탐사반 위장,탐지기 동원/유적지 상습 도굴

    ◎60대등 2명 구속 【강화=김동준기자】 경기도 강화경찰서는 26일 문화재학술조사팀을 가장,수입 고성능 금속탐지기로 유물들을 도굴해온 이영천씨(52ㆍ서울 성동구 행당동 342)와 이씨에게 탐지기를 빌려주고 도굴품을 나눠갖기로한 최승진씨(61ㆍ 〃 종로구 평창동 296) 등 2명을 문화재보호법 위반혐의로 구속했다. 경찰은 이들로부터 고려청자대접 6점,호리병 1점,술잔 4점,기름병 1점 등 모두 42점의 도굴품을 증거물로 압수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씨는 지난24일 정오쯤 경기도 강화군 교동면 상용리 야산에서 최근 일본에서 수입한 발굴장비인 고성능 금속탐지기를 이용,압수된 유물을 도굴한 혐의다. 경찰조사결과 이씨 등은 지난9월초부터 백제박물관 고문ㆍ한국미술사학회 연구위원 등을 사칭,현장을 답사하면서 탐지기로 엽전이 묻혀있는 곳을 발견,이곳을 파헤쳐 유물을 도굴해왔으며 도굴장소주변에 백제박물관 깃발을 꽂아 탐사반으로 위장해온 것으로 밝혀졌다.
  • 외언내언

    40년 전의 여름. 물밀듯이 남으로 내려오는 소련제 탱크 위에서 펄럭이던 깃발을 우리는 기억한다. 「인민공화국」기. 중앙청에서 혹은 도청ㆍ군청ㆍ면사무소 옥상에서 공포를 흩날리던 깃발이었다. ◆태극기와는 어디서나 대치관계에 있어 왔던 기가 인공기. 그 깃발 아래서 서로가 총을 쏘고 포를 쏘고 피를 흘렸다. 두 깃발을 앞에 두고 마주앉은 대표들이 설전을 벌여오기는 또 그 얼마였던가. 서로가 그 깃발에 영예를 안기고자 혈투를 벌일 때 태극기와 인공기는 적의를 내뿜었다. 한겨레의 비원과 통한을 상징해 온 두 깃발. 생각하자면 맺힌 응어리는 깊다. ◆그 두 깃발이 베이징 하늘 아래서 함께 함성을 안으면서 물결쳤다. 겨레의 노래 「아리랑」의 합창이 경기장으로,하늘로 울려 퍼지는 가운데. 김기림이 「인민평론」(1946년7월)에 쓴 「한 기ㅅ발 받들고」의 「한깃발」은 아니었다. 「찢어져 퍼덕이던 기빨」도 아닌,「두깃발」이었지만 「한깃발」되었던 태극기와 인공기. 『상황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사람이다』(네덜란드의 지휘자 안세르메).변화한 상황에 부여된 새로운 의미가 이것인가. ◆외국의 언론도 『국기는 두개이나 민족은 하나』였다고 평한 남북 화합의 장이 베이징 하늘 아래 펼쳐졌다. 한 핏줄임을 확인하면서 목놓아 감격한 응원석. 경기 외적인 성과임에는 틀림이 없다. 하지만 매양 우리가 경계해야 할 일은 지나친 흥분. 이런 자리에서까지 「림수경」을 들먹이는 그들의 계산된 생리를 바로 보면서 마음을 풀줄은 알아야겠다. 「서울­평양축구 교환」만 해도 지나친 흥분이 낳은 오발탄. 「침착한 흥분」이어야겠다는 뜻에서의 말이다. ◆지금의 「오발탄」도 언젠가는 「정발탄」이 될 수는 있다. 그런 날을 보다 앞당기기 위해서도 신중하고 침착한 우리의 자세는 요청되는 것. 「두 기ㅅ발」은 「한 깃발」이 되어야 한다. 두 깃발이 섞여 휘날린 이번 대회는 그 날로 한걸음 다가섰음에 다름 아니다.
  • 중국 방문 박철언의원/이종옥과 회동가능성

    【북경 연합】 박철언 민자당의원은 21일 『한ㆍ중국간 무역사무소 개설이 북경아시안게임을 계기로 조만간 이뤄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아시안게임 개막을 하루 앞둔 이날 상오 대한항공 전세기편으로 북경에 도착한 박 의원은 도착 즉시 중국 정부관계자와 비공식 예비접촉을 가진 뒤 기자와 만나 이같이 말했다. 박 의원은 『중국관리와 만나 한ㆍ중 및 남북한 관계 등 추후 접촉에서 논의할 의제들에 대해 광범위하게 의견을 교환했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한ㆍ중 관계에 언급,『무역사무소의 성격을 민간주도로 할 것인가,정부차원으로 할 것인가를 놓고 그동안 양국 정부간 입장이 엇갈렸으나 형식상으로는 민간주도로 하되 비자발급 등 영사업무의 기능을 갖도록 한다는 데 중국측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어 조만간 무역사무소 설치가 가능할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22일 개막식에 앞서 이뤄질 것으로 예상되는 남북한체육장관회담의 전망에 대해 『주요 의제는 북한쪽이 제의한 이번 아시안게임에서의 남북한 공동응원단 구성문제인데 우리측이 서로 각자 자기 국기를 사용하자는 입장인 반면 북한측은 공동깃발을 사용하자고 주장하고 있어 이를 어떻게 절충하느냐가 성공여부를 가름할 관건』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날 역시 북경에 온 리종옥 북한부주석과 만날 용의가 있느냐는 물음에 『중국정부의 입장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당장 대답하기는 어려우며 일단 상황을 지켜보겠다』고 말해 리 와의 회담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 본토에 선박 직운항/대만,41년만에 허용/불법 이주자 송환

    【대북 AP 연합】 대만 적십자사는 19일 중국측과의 불법 이민 송환 합의에 따라 대만에 불법 이주한 본토인들을 송환시키기 위해 지난 49년 이후 처음으로 선박들의 대만­본토간 직접 운항이 허용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대만 적십자사의 첸 창웬 사무총장은 적십자 깃발을 단 선박들이 이들 불법 이주자들을 대만 마추섬에서 복건성 복주시 부근의 마미항까지 수송할 것이라고 밝히고 이 항로 이외에 고려되고 있는 항로는 대만의 퀘모이섬과 복건성의 하문간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새로운 불법 이주자의 본국 송환절차는 다음달 시작될 예정인데 이로써 지난 49년 이후 처음이다.
  • 「유엔가입」 남북한 입장만 확인/첫 실무접촉

    ◎“빠른 시일내 2차 대좌키로”/정부,“절충 실패땐 단독ㆍ동시가입 다시 추진” 남북한은 18일 상오 10시 판문점 중립국감독위원회 회의실에서 고위급회담대표 1인을 포함한 양측 실무대표 3명씩 참석한 가운데 유엔가입문제 논의를 위한 첫 접촉을 가졌으나 북측의 단일의석 공동가입과 우리측의 동시가입이라는 서로 다른 입장만 확인했다. 이날 접촉은 1시간40분 동안 쌍방대표 기조발언과 토론순으로 진행됐으며 회담이 끝난 뒤 쌍방은 이른 시일내에 책임연락관 접촉을 갖고 2차 접촉날짜를 정하기로 했다. 북한은 이날 올 유엔총회에 남북한이 단일의석 유엔가입을 공동으로 신청하자고 공식제의한 것을 비롯,대표권ㆍ결의권ㆍ발언권ㆍ단일의석 명칭 및 깃발ㆍ의무이행ㆍ유엔회비 등에 관한 7개 방안을 제시했다. 북한은 ▲대표권은 1개월 또는 그 이상의 기간을 주기로 엇바꿔 행사하거나 공동으로 행사하고 ▲결의권은 남북간에 합의된 사안에 대해서는 공동으로 찬반을 표시하며 미합의 사항에 대해서는 기권처리하고 ▲발언권은 합의에따라 대표로 선출된 측이 갖도록 하되 대표로 선출되지 못한측은 보충발언을 할 수 있도록 하자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우리측 대표인 임동원 외무부외교안보연구원장은 『유엔이 국제평화와 안정을 이루고 우호관계 발전을 도모하는 기구인만큼 남북이 다같이 들어가는 것이 민족통일을 앞당기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면서 『남북이 서로 실체를 인정한 바탕위에서 통일지향적인 특수관계를 전제로 유엔에 가입,투표를 행사하는 것이 통일과 민족이익에도 더 이롭다』고 강조했다. 임 대표는 또 동서독 및 남북예멘 등 동시가입 후 통일이 된 나라들의 실례를 들며 분단고착화를 막기 위해 단일의석 공동가입을 하자는 북한측 주장을 반박하면서 『남북한이 15개 유엔산하 전문기구 등 많은 국제기구에 함께 가입해 있고 세계 84개국과 동시수교하고 있는 현실로 볼때 동시가입이 통일에 도움이 되고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홍 통일원장관은 이날 국회통일특위에서 『유엔가입과 관련한 남북 실무회담이 무한정 오래가선 안되며 어떤 결론이 나면 우리도 대응할 것』이라고 말해 남북한간 유엔가입에 대한 절충에 실패할 경우 우리의 단독유엔가입이나 남북한 동시유엔가입 등의 정책을 다시 적극 추진할 뜻을 시사했다.
  • 「유엔문제」 실무접촉… 양측 입장과 전망

    ◎“동시”ㆍ“단일”… 남북 주장 여전히 평행선/“대표권 교대로 행사” 북측,억지논리 일관/「결의권 합의」도 사실상 불가능 남북한의 유엔가입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18일 판문점 중립국감독위원회 회의실에서 열린 남북고위급회담 실무대표들 간의 첫 접촉은 다시한번 유엔가입에 대한 남북 쌍방의 현격한 시각차를 보여줬다. 이날 접촉에서 북한측은 지난 5일 제1차 고위급회담 기조연설에서 밝힌 대로 『단일의석 유엔공동가입안이 현실적 측면에서 당위성이 있다』는 기본입장 아래 올 유엔총회에 남북한이 단일의석 유엔가입을 공동으로 신청하자고 공식제의,종전 주장을 되풀이 했다. 반면 우리측은 북한측 안은 유엔헌장과 국제관행 등에 비추어 볼 때 실현 가능성이 없는 비현실적ㆍ비합리적인 방안이라는 지적과 함께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이 한반도의 긴장완화 및 평화통일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일관된 입장을 피력해 의견 접근에 실패했다. 특히 이번 접촉에 임하는 남북 쌍방의 자세 또한 밑바닥부터 사뭇 달랐던 것으로 평가된다. 우리측은 1차 고위급회담에서의 합의에 따라 북한측으로부터 북측의 단일의석 공동가입 방안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을 듣는 만남으로 이번 접촉의 성격을 축소,규정했으나 북한측은 남한측이 자신들의 주장을 받아들여 이번 접촉에 응했다고 보고 이를 고위급회담의 부문별 회담으로까지 확대 해석하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북한측이 이번 접촉을 「대표회담」으로 호칭한다는 사실은 그만큼 북한이 유엔가입문제에 얼마나 많은 신경을 쓰고 있는가를 잘 나타낸다. 물론 북한은 이날 단일의석 유엔가입 실현을 위한 대표권 및 결의권 행사,단일의석명칭 및 깃발,의무이행 등 나름대로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기는 했다. 북한은 대표권문제와 관련,남북이 1개월 또는 그 이상의 기간을 주기로 대표권을 번갈아가며 공동으로 행사하자고 주장하면서 결의권행사는 남북간에 합의된 문제들에 대해서만 찬부를 표시하되 미합의사항에 관해서는 기권으로 처리할 것을 제의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측의 이같은 대안은 남북간의 현실을 놓고 볼 때 상당히 비현실적일 수밖에 없다. 우선 북한측 주장대로 대표권을 행사할 경우 40년 넘게 대결구조를 유지해온 남북한의 서로 다른 정책이나 이익이 유엔총회 및 산하위원회 등에서 단일하게 대표될 수 없기 때문에 결국 허울에 지나지 않는 유명무실한 대표권일 수밖에 없다는 게 공통적인 분석이다. 또한 남북이 서로 합의해 결의권과 발언권을 행사하자고 주장한 것도 가장 기본적인 이산가족들의 남북왕래마저도 거부되고 있는 상황에서는 사사건건 비교효과적인 논쟁만 있을 뿐이지 합의도출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볼 수 있다. 가령 유엔 안보리의 「대이라크 군사ㆍ경제제재조치」에 대한 동참여부와 같은 초미의 현안이 발생했을 때 사태를 보는 남북한의 입장이 너무나도 다를 경우 결의권 행사는 어렵게 되고 이같은 일이 자주 나타나면 유엔회원국으로서의 기능수행에 엄청난 문제점을 야기할 소지가 크며 다른 회원국으로부터도 비웃음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북한 우방인 중ㆍ소마저도 단일의석 공동가입 안을 별로 탐탁지 않게 여기는 것이 저간의 현실이다. 우리측은 이번에도 동서독과 남북 예멘을 예로 들며 서로간에 실체를 인정하는 가운데 통일이 될 때까지 과도적인 조치로 동시가입을 실현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바로 이것만이 분단고착화가 아닌 평화통일로 향한 대장정의 커다란 길목을 마련해 줄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더욱이 남북한이 15개 유엔 산하 전문기구 등 많은 국제기구에 가입해 있고 세계 84개국과 동시수교를 맺고 있다는 현실은 이제 남북 쌍방이 상호 체제를 인정해야만 하는 중요한 이유중의 하나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유엔가입문제는 기본적으로 남북문제와는 별도의 개념으로 파악하고 있는 정부로서는 고위급 회담의 지속적인 개최와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일단 실무대표 접촉에는 응했지만 북한측이 계속해서 자신들의 엉뚱한 논리수용만을 고집한 채 동시가입을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우리만의 유엔가입을 추진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외무부측의 설명이다. 그러나 북한측은 동시가입을 수용할 경우 「2개 조선 반대」라는 기존논리를 전면 폐기해야 하는 엄청난 시련을 겪어야하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도저히 받아 들이기가 힘들다. 결국 이번 접촉에서도 드러났듯이 쌍방간의 뚜렷한 입장차이로 인해 유엔가입문제는 어떠한 결말없이 팽팽한 줄다리기를 계속 할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우리측은 이번 접촉을 계기로 중소가 그동안 우리의 유엔가입 거부 이유로 내세운 「당사국간 협의부족」을 제거하는 소득을 기대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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