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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래유산 톡톡] 어려운 시절 따뜻한 정 담긴 작품… 읽다보면 미소가

    [미래유산 톡톡] 어려운 시절 따뜻한 정 담긴 작품… 읽다보면 미소가

    최현배 선생의 ‘사주오 두부장수’는 짧은 산문으로 정과 해학이 있는 작품이다. 1940년 민족주의 글을 싣기 위해 만들어진 잡지 ‘문장’지에 실렸다. 따뜻한 마음을 품을 수 있게 해 주는 작품으로 해방 전 어두운 시절을 보내던 독자들에게 힘을 실어 줬을 것이라 짐작할 수 있다. 내용은 행촌동의 도붓장수 중 하나인 두부장수에 대한 이야기이다. 두부장수는 특이하고 재미있는 두부팔이 외침과 더 얹어주거나 외상으로도 주는 정이 많은 사람이다. 어느날 두부장수가 나타나지 않자, 외상값을 못 갚은 가족은 두부장수를 걱정한다. 그리고 오랜만에 어느 거리에서 우연히 만나자 놀라고 반가워하며 외상값 받으러 오라고 당부한다. 이런 모습들이 아주 짧은 작품 속에 정겹게 녹아 있다. 어려운 시절에 사람들 간에 오가던 따뜻한 정을 묘사한 이 작품을 읽다 보면 해방 전이나 지금이나 시대를 초월해 저절로 미소를 머금게 한다. 석교감리교회는 일제강점기 때인 1910년 5월 미국의 남감리교 선교사인 로버트 하디(하리영)가 서대문 밖에서 전도활동을 하며 예배를 드리기 시작한 곳이다. 처음엔 한옥을 예배당으로 개조해 사용했다고 한다. 신도가 늘어나자 석교교회 건립을 추진하게 됐는데 교인 대부분이 가난한 성문 밖 주민들이어서 건축비를 감당할 수 없었다. 미국에서 헌금이 모여 1917년 2층의 적벽돌 교회로 준공됐다. 종탑은 1950년대에 증축됐다. 석교교회는 1층 회당 입구에 수직성을 강조한 첨두아치와 강당식 평면을 갖춘 건축물로 고딕 양식의 원형을 건립 당시의 모습으로 비교적 잘 보존하고 있다. 건축사 및 종교사적으로 보존가치가 높아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됐다. 교회명 ‘석교’는 지금은 사라졌지만 인근 영천시장 입구 쪽으로 무학천이 흐르고 돌다리가 있어 붙은 이름이다. 일제 말기인 1930년대에 ‘황민화정책’이 시행되면서 저항해 순교하는 경우가 있었으나 대부분의 기독교는 생존을 위해 순응했고, 석교교회도 그중의 하나였다. 아픈 과거의 역사를 잊지 않고 돌아보게 해 주는 유적으로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김윤정 서울 도시문화지도사
  • 김정환 서울시의원 “야외 아리수 음수대, 관리주체 따라 수질공개 들쭉날쭉”

    김정환 서울시의원 “야외 아리수 음수대, 관리주체 따라 수질공개 들쭉날쭉”

    서울특별시의회 김정환 의원(더불어민주당·동작1)은 지난 11일 진행된 2019년도 서울시 상수도사업본부 소관 행정사무감사에서 야외에 설치된 아리수 음수대의 관리 문제를 점검했다. 공원 등 야외에 설치된 아리수 음수대는 상수도사업본부에서 설치한 228대를 포함해 총 1466대에 이른다. ‘서울특별시 아리수 음수대 설치 및 관리에 관한 조례’에서는 야외에 설치된 아리수 음수대는 청소 등 위생관리와 고장 등 유지관리를 해당 기관에서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현재 음수대의 수질검사는 상수도사업본부에서 실시하지만, 수질검사 공개는 자치구, 녹지사업소, 시설공단 등 각 해당 기관에 일임해 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관리기관의 분산은 아리수 음수대 수질공개가 일관되게 이루어지지 않는 문제로 이어진다. 실제로 현장조사 결과 일부 공원에 설치된 음수대에는 수질검사표가 부착도 되어 있지 않았으며, 전년도 수질검사표가 부착된 공원 음수대도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김 의원은 학교, 관공서 등 실내 음수대는 수질검사결과를 검사기관에서 부착토록 하고 있으나 공원 음수대에 대해서는 관리기관에서 부착토록 하는 이원화된 운영을 지적했다. 또한 부착된 수질관리표의 형식이 제각각인 점에 대해서도 통일된 양식을 통한 관리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밝혔다. 이에 대해 백호 상수도사업본부장은 “시민들이 안전하고 깨끗한 아리수를 음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라고 말하며 “야외 음수대 수질공개부분은 실내와 실외 기준을 바꾸어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해 수질관리표의 양식 또한 통일감 있게 게시토록 하겠다”고 밝혔다. 김 의원은 최고 품질 수준의 아리수 공급을 위한 상수도사업본부의 노고가 헛되지 않도록 시민들이 가깝게 아리수를 직접 체험하게 되는 야외 음수대 시설도 꼼꼼하게 관리 할 것을 주문했다. 특히 작은 부분까지 신경 써서 품질을 관리하는 것이 우리 아리수를 홍보하고 이용을 권장하는 일임을 강조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만추… 여기, 맛 강추

    만추… 여기, 맛 강추

    여행에서 음식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때로는 여행의 좋고 나쁨이 음식의 만족도에 따라 결정될 정도여서 볼거리와 맛집 체험을 동시에 누릴 수 있다면 금상첨화가 따로 없을 것이다. 경기지역은 볼거리도 많지만 먹거리 또한 즐비한 곳이다. 어느 곳이든 서울에서 자동차로 1시간 거리로 접근성이 좋아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떠날 수 있다. 여행하기 딱 좋은 계절, 가족 또는 연인과 경기도에서만 느낄 수 있는 식도락 여행을 만끽해 보자. 경기관광공사가 추천하는 여행지 먹거리를 소개한다. ●신륵사 구경 곁들인 여주 사찰음식 신륵사·영녕릉·목아박물관 등 가 볼 만한 곳이 많은 여주를 찾는다면 사찰음식을 권하다. 최근 웰빙 열풍과 함께 착한 먹거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제철 산나물을 중심으로 한 상 가득 차려 주는 여주지역 사찰음식점은 약이 되는 건강한 밥상을 찾는 이들로 늘 붐빈다. 인근에서 채취하고 재배한 식재료를 사용하고 조미료를 쓰지 않는 대신 직접 담근 장과 효소로 간을 한다. 강천면 이호리 ‘걸구쟁이네’에서는 ‘20가지 나물밥상’을 만날 수 있다. 봄철에 이 산, 저 산에서 따서 말려 놓은 건나물과 직접 밭에서 키운 나물로 음식을 만든다. 금사면 외평리 ‘목련정사’도 소문난 곳이다. ●두툼하고 부드러운 ‘안성마춤 한우구이’ 안성은 예부터 특산물이 많은 넉넉한 고장이다. 안성시는 쌀과 배 등을 ‘안성마춤 5대 브랜드’로 선정해 육성한다. 그중 돋보이는 게 안성마춤 한우다. 소의 생산부터 사육, 도축, 가공, 유통 전 과정을 종합관리시스템으로 관리하며 고품질을 유지한다. 위생적으로 냉장 숙성시켜 맛이 부드럽고 한우 고유의 풍미가 일품이다. 일죽면 한우타운 등에서는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 관광객에게 인기가 좋다. 두툼한 고기를 참숯에 올려 겉만 바삭할 정도로 구워 육즙을 살려야 안성맞춤 한우의 제맛을 느낄 수 있다. 주변의 안성맞춤랜드와 안성유기박물관 등 인기 관광지도 있다. ●쫀득한 육질의 연천 민물매운탕 경기도 최북단에 자리한 연천은 수려한 자연경관만큼이나 맛깔스러운 민물매운탕의 진수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연천이 민물매운탕으로 유명해진 것은 임진강과 한탄강이 흘러와 만나는 곳이기 때문이다. 두 강은 민물고기 보고다. 쏘가리, 꺽지, 동자개, 메기, 버들치, 돌무지, 동사리, 어름치, 마자, 모래무지 등등이 서식한다. 연천의 민물매운탕은 거칠게 굽이쳐 흐르는 강줄기와 낮은 수온에 단련된 싱싱한 민물고기로 요리하기 때문에 육질이 쫀득쫀득하다. 또 집집마다 특별한 비법의 양념장으로 끓여 낸 걸쭉한 국물 맛이 특징이다. 늦가을 알을 가득 밴 참게와 민물새우, 미나리의 향이 함께 어우러져 잊을 수 없는 맛의 추억을 선물한다. 허브빌리지, 연천 전곡리 유적지 등을 둘러보면 좋다. ●조선 성종도 반했던 이천 쌀밥정식 이천은 쌀로 이름난 지역이다. 도자기와 온천으로도 유명하다. 흙과 물이 좋으니 기름지고 차진 쌀이 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한번 맛본 사람들은 같은 품종이라도 다른 지역 쌀보다 밥맛이 더 좋다고 이구동성이다. 성종 임금이 세종 능에 다녀오는 길에 이천에서 지은 밥을 먹고 그 맛이 일품이라 해 이천 쌀이 진상미로 오르게 됐다고 전해진다. 이천으로 들어가는 3번 국도를 따라 신둔면과 사음동 일대에는 쌀밥거리가 형성돼 있다. 식당마다 차이는 있지만 20여 가지에 이르는 다양한 반찬이 나오는 쌀밥 한정식을 맛볼 수 있다. 특히 이맘때 햅쌀로 지은 밥이 가장 맛이 좋다. 돌솥에 갓 지은 쌀밥과 뚝배기에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된장찌개, 고기와 생선구이, 간장게장, 계절나물 등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한 상 가득 차려진다. ●바닷바람 맞으며… 제부도 바지락칼국수 찬바람이 불어오면 따끈한 국물이 생각난다. 이럴 때 부담 없이 찾게 되는 게 칼국수다. 밀가루를 반죽하고 밀어서 넓게 편 후 돌돌 말아서 칼로 썰어 칼국수 면을 만든다. 미리 불에 올려 둔 큰 솥에 호박과 감자를 면과 함께 넣고 끓이면 투박한 칼국수가 완성된다. 칼국수 진수를 맛보고 싶다면 바닷길이 열리는 제부도를 가 보자. 화성의 대표 관광지 제부도로 가는 진입로 주변과 바닷길 입구는 물론 제부도 안의 해안도로에도 수많은 칼국수 식당이 있다. 대부분 인근에서 캐는 바지락과 해물을 아낌없이 푸짐하게 넣어 시원한 바지락칼국수를 낸다. 서해의 짭조름한 바닷바람과 시원하게 펼쳐지는 풍경을 감상하며 먹는 바지락칼국수는 제부도의 별미이다. 식당에 따라 보리밥이 함께 나오는 곳도 있으며 조개구이나 대하구이와 함께 구성된 세트 메뉴 등 다양하게 선택할 수 있다. ●푸짐한 포천 이동갈비· 수원 왕갈비 포천 이동갈비의 가장 큰 매력은 무엇보다 푸짐함이다. 칼집을 넣어 넓게 편 갈빗살과 갈비를 이쑤시개에 꽂아 만든 이동갈비 대여섯 대가 1인분이다. 간장과 물엿 등을 기본으로 하는 달짝지근한 양념은 식당마다 고유의 비법으로 고기를 연하게 만들고 풍미를 더해 준다. 반찬으로 나오는 백김치는 뒷맛을 잡아 주고 찌개와 밥 외에 국수와 냉면을 저렴하게 내주는 것 또한 매력이다. 포천시 이동면 장암리와 도평리 일대에 이동갈비 거리가 형성돼 있다. 갈비 하면 수원갈비다. 1940년대 ‘화춘옥’에서 해장국에 들어가던 갈비를 구워 팔며 시작한 게 시초이다. 당시에는 17㎝ 크기의 큰 갈비를 화덕에 구워 양재기에 담아 냈다. 양념은 소금양념을 기본으로 사용했다. 이후 여러 갈빗집이 생기면서 갈비의 크기는 작아지고 양념도 간장 양념법이 일반화됐다. 그사이 갈비는 외식의 대표메뉴로 자리잡았지만 일부 갈빗집에서 취급하는 큼지막한 생갈비가 수원갈비의 원형에 가깝다. ●‘기력 북돋우는 보약’ 양평 연잎밥 양평은 ‘세미원’이나 ‘두물머리’ 등 볼 것도 즐길 것도 많지만 먹거리 또한 다양하다. 양평에서 맛볼 수 있는 음식 중 연을 테마로 한 요리를 빼놓을 수 없다. 연은 예부터 기력을 왕성하게 하고 백 가지 질병을 물리친다고 해 식용으로 많이 애용되며 잎과 줄기, 뿌리, 씨 등 어느 것 하나 버릴 것 없는 보양식이다. 연꽃으로 유명한 세미원 주변에 연 요리를 즐길 곳이 있다. 연잎 음식을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육콩이네’에서는 연잎돌솥밥과 연자전을 맛볼 수 있고, ‘두물머리연칼국수’에서는 세미원의 연으로 만든 연칼국수와 궁중요리 중 하나인 연저육찜을 맛볼 수 있다. 30년 넘는 전통을 자랑하는 ‘연밭’은 연잎찰밥과 명태찜을 곁들인 연밭정식과 연자녹두전 등 연 요리를 선보이는 한식당으로 양평군 맛집으로 선정된 곳이다. 김병철 기자 kbchul@seoul.co.kr
  • 전북 바다양식장 새만금사업 이전 회복

    새만금사업 추진으로 크게 위축됐던 전북의 바다양식장 사업이 다시 회복된 것으로 나타났다. 7일 전북도에 따르면 세계에서 가장 긴 33㎞의 방조제를 축조하는 새만금사업으로 양식장 7683㏊가 폐쇄됐다. 그러나 대체어장 개발 등으로 양식장 면적이 점차 늘어나 새만금사업 이전수준으로 회복된 것으로 분석됐다. 실제로 도내 서해안 바다양식장 면적은 1만 2744㏊로 새만금사업 이전 1만 2518㏊ 보다 226㏊ 증가했다. 특히, 전북의 바다양식장은 바지락 등 패류 위주에서 김, 해삼 등 수출이 잘되는 고소득 전략품종으로 전환이 이루어졌다. 한편, 도는 수산자원 회복과 생산증가를 위해 연안해역에 인공어초 설치, 바다목장 조성사업을 확대할 방침이다. 도는 또 가리비 시험양식 등 양식장의 품종 다변화를 추진해 어가소득을 높이기로 했다. 이와함께 전국 최초로 민물새우, 큰징거미새우 등 부가가치가 높은 갑각류 우수종자를 생산하는 내수면 연구시설을 조성할 방침이다. 전주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 [대법원장, 피고인석에 서다-41회] “도대체 어떤 일에 엮인 건지”… ‘통진당 재산 가압류’ 검토 문건의 배경

    [대법원장, 피고인석에 서다-41회] “도대체 어떤 일에 엮인 건지”… ‘통진당 재산 가압류’ 검토 문건의 배경

    2014년 12월 19일 헌법재판소가 통합진보당을 ‘위헌정당’으로 판단하고 해산 결정을 했다. 당장 통진당 소송 국회의원과 지방의원들의 의원직 상실 여부가 쟁점이 됐고, 서울행정법원과 광주·전주지법에 의원직 지위확인을 청구하는 행정소송이 제기됐다. 당시 법원행정처가 행정소송을 맡은 일선 재판부에 소송과 관련된 행정처의 입장을 전달한 것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가운데 대표적인 재판 개입 의혹으로 꼽히고 있다. 헌재의 결정으로 의원직만 잃은 것이 아니다. 정부는 정당 해산의 후속 조치로 통진당 재산을 국고에 귀속하기 위한 절차에 들어갔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통진당 중앙당 및 각 시·도당을 관할하는 법원에 통진당이 보유한 예금채권에 대한 가압류를 신청했다. 당시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은 이인복 대법관이었다. 30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부(부장 박남천) 심리로 열린 양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의 40회 재판에서는 2013년 2월부터 2015년 2월까지 사법지원실 심의관을 지낸 최우진 수원지법 부장판사가 증인으로 출석해 통진당 재산 가압류 신청사건과 관련해 행정처의 입장이 일선 법원에 전달된 과정을 설명했다. 가압류 신청사건이 접수된 뒤 통진당 각 시·도당에 당사자 적격이 있는지, 보전처분(권리를 보전하기 위해 소송이 확정되거나 집행되기 전 법원이 하는 잠정적인 처분), 가압류와 가처분 중 어느 것이 가능하고 적정한지 등 여러 법률적 쟁점이 문제가 됐다. 이 사건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던 청와대가 법원의 의견을 받아보기로 하면서 당시 김종필 청와대 민정비서관이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당시 기획조정실장)에게 연락해 “통진당 잔여재산을 환수하기 위해 가압류나 가처분 중 어느 것이 적정한지에 대한 검토자료를 달라”고 요청했고, 이에 따라 법원행정처장이던 박 전 대법관과 임 전 차장이 사법지원실을 통해 검토자료를 만들고 일선 재판부에 전달하게 했다는 게 박 전 대법관의 공소사실이다. 2014년 12월 22일 최 부장판사는 대전지법 기획법관으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전국에 통진당 재산 가압류 사건이 많은데 검토를 해보니 가압류 신청이 부적절하고 여러 쟁점이 있으니 행정처 차원에서 검토를 해야하는 것 아니냐”는 취지의 요청이 이어졌다. 전국 다수의 법원에 가압류 사건이 신청됐는데 각 법원별로 결론이 달라지면 혼선이 빚어질 수 있으니 행정처가 가만히 있으면 안 되고 쟁점을 검토해서 일종의 기준을 마련하는 등 ‘조치‘를 취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었다. “처음 전화를 받았을 때는 당황해서 ‘조치’ 이야기하는데 무슨 조치인지 어려워 통화의 세부적 내용은 생각을 못했다”고 최 부장판사는 기억했다. 그는 “전화와서 말한 내용 자체가 당황스러워서 뭐를 해야할지 막막했고 말 그대로 무슨 조치를 해야하는지 생각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면서 “이야기를 들어보니 해당 사건의 쟁점이 문제인 것 같고 해서 일단 행정처 차원에서 조치를 하기 보다는 연구회 등에서 개별적으로 쟁점을 올려서 토의하는 방법을 활용해 보면 어떻겠냐 말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헌재 통진당 해산 결정 후 잔여재산 환수 착수…일선 법원 “혼란” 그런데 같은 날 대전지법 천안지원의 판사에게서도 일선 재판부가 혼란스러워한다는 내용의 전화가 왔다고 한다. 최 부장판사는 “(대전지법의) 전화를 끊고 나니 각급 법원에서 재판에 혼란을 느끼는 부분에 대해 (행정처의 검토를) 요청한 건데 내가 그대로 묵살하는 행위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면서 “사건이 뭔지 파악하기 위해 검색을 해 실제로 전국 법원에 가압류 사건이 들어왔다는 것을 알게 됐고 (잔여재산에 대한) 보전 처분 사례가 없어서 고민을 한 시간 정도 한 걸로 기억한다. 그 때 천안지원의 다른 판사가 같은 취지의 건의를 해왔다”고 말했다. 최 부장판사는 사법지원실 총괄심의관인 전지원 대전고법 부장판사에게 전국 법원에 통진당 재산 가압류 신청사건이 접수됐고 일선 법원에서 혼선을 겪고 있으니 행정처의 정리가 필요하다는 요청이 들어왔다는 사실을 보고했다. 전 부장판사는 “일단 사건 내용을 파악해보라”고 한 뒤 윤성원 당시 사법지원실장(전 인천지방법원장)에게 보고를 하러 자리를 떠났고 최 부장판사는 자신에게 연락을 한 대전지법과 천안지원 판사들에게 해당 사건의 검토자료를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이후 그날 저녁 무렵 최 부장판사는 전 부장판사에게 “부장판사 재판연구관들에게 사건 검토를 부탁했으니 쟁점을 보내주고, 부장들의 의견을 구한 뒤 각 쟁점 검토 내역을 일선 법원에 알려주는 게 어떻겠느냐”는 지시를 받았고, 다음날 부장 연구관들에게 의견을 받아 검토문건을 최종 정리했다. 부장판사인 재판연구관들이 검토한 내용은 통진당 예금 보전처분은 가압류가 아닌 가처분으로 신청해야 한다는 취지의 결론이었고, 이는 최 부장판사가 작성한 ‘통진당 예금계좌에 대한 채권 가압류 신청사건에 관한 검토’ 보고서에 담겼다. ‘징수위탁은 유효한 집행방법이 될 수 없으므로 민사집행법에 따른 보전처분에 의할 수밖에 없고, 국고귀속의 실효성 확보를 위해서는 시·도당이 당사자 능력과 적격을 모두 갖추었다고 보는 견해를 취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보이며, 국가의 해산정당에 대한 권리는 특정물에 대한 권리라고 할 것이어서 그 보전처분은 가압류가 아닌 가처분이 되어야 할 것’. 그러나 검찰은 “이 사건의 다양한 쟁점들에 대해 충분히 검토되거나 논의된 전례가 없었고 참고할 수 있는 판결례 등도 없었으며, 각 쟁점과 관련, 예상되는 상반된 견해들도 각각 충분한 논리적 근거가 있었기 때문에 특정한 결론이 가장 적합하다는 식의 판단이 이뤄지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고 공소장에 적시했다. ●행정처 보고양식 뺀 일반 문서 양식으로 “자연스럽게 공유된 것처럼” 최 부장판사가 일선 법원들에 보낸 보고서는 기존의 행정처 내부 보고서와는 양식이 달랐다. ‘대외비’ 등의 단어가 빠졌고 제목을 표기하는 방식 등이 달랐다. 또 전달 방식도 조금 독특해 보였다. 최 부장판사는 자신에게 요청을 한 대전지법과 천안지원 판사들에겐 직접 메일로 이 보고서를 전달했고, 나머지 법원에는 신청 사건을 맡은 단독 판사들에게 메일을 보냈다. 가장 먼저 서울중앙지법에서 신청 사건을 맡고 있던 김모 부장판사에게 일선 법원의 신청 단독을 맡은 판사들에게 배포해달라고 부탁했다가 거절을 당했다. 이러한 전달 방식에 대해 최 부장판사는 검찰 조사에서 “판사들 사이에서 자발적으로 공유되는 것으로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또 최 부장판사는 보고서를 보내면서 “권위있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정리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처럼 양식도, 전달 방식도 남달랐던 데 대해 최 부장판사는 “행정처 표시가 나는 보고서를 보낼 경우 행정처에서 검토한 걸로 오해가 될 수 있어서 (기존 양식을) 지우고 보냈다”고 말했다. “우리(행정처)가 검토한 게 아니고 쟁점도 대전이나 천안지원 판사들이 검토한 것을 정리하기만 했을 뿐”이기 때문에 행정처가 공식적으로 내려보낸 보고서는 아니라는 것이다. 행정처의 조치를 요청한 해당 판사들이 분석한 쟁점 정리를 토대로, 대법원 재판연구관 세 명의 결론 정리가 이뤄졌고 자신은 이 모든 내용을 취합해 정리한 것이기 때문에 행정처 공식입장이 담긴 문건은 아니고 판사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공유되는 내용이 되길 바랐다. “증인은 당시에 법원행정처가 일정한 방향으로 정리한 검토 자료를 일률적으로 배포하지 않았다면 1심 재판의 결론이 다양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나.” 검찰의 이 물음을 시작으로 검찰과 최 부장판사 사이의 약간의 신경전이 법정에서 오갔다. 최 부장판사가 “그 부분은 쉽게 예상하지 못했다”고 답하자 검찰은 “검찰에서의 진술과 다르다”며 최 부장판사가 검찰 조사에서 같은 질문에 “저 역시 통진당 잔여재산 1심 재판의 결론은 다양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결정 내용의 법리 오류가 있을 때도 비난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답했다고 지적했다. 그러자 최 부장판사는 “그 조서를 작성할 때 검사와 오래 이야기를 했고, 그렇게 단언하게 진술한 것은 아닌데 최종적으로 검사가 저렇게 말해서 ‘그럴 수도 있겠다’는 취지로 말한 거였다”면서 “판사들이 어떻게 검토할지는 내가 예상하지 못하는 상황이었고 다양한 결론이 나왔을 때 어떤 비난을 받을지 우려는 했다. 경우에 따라서는 몇몇 다른 결과가 나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아주 다양하게 결론이 나온다고 생각한 건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행정처 문건 일선 판사들에 배포한 판사… “그 상황에선 괜찮은 방안” 이어 검찰이 “증인은 당시 윤 실장이나 전 부장판사로부터 검토 자료를 일선 담당 판사들에게 전달하라는 지시를 받고 거절하거나 이의제기를 하지 않았는가?“ 물었다. 최 부장판사는 “네. 행정처 내 외부 전문지식이 있는 부장판사들로부터 검토 의견을 받아서 결과를 취합해 담당 판사들에게 전달해주자는 제안을 받았을 때 제가 생각할 수 있었던 막연한 생각으로는 행정처에서 할 수 있는 여러 조치들 중에선 그 상황에서는 가장 괜찮을 수 있겠다, 문제가 안 되겠다 생각했다”고 답했다. “이 같은 문건을 검토해서 배포하는 게 가장 적절한 조치였다고 생각했다는 건가?” (검사) “가장 적절했다는 취지가 아니고 당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 중 괜찮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는 거다.” (최 부장판사) “검토 자료 작성 및 배포 지시에 대해 재판에 공정성과 독립을 침해할 수 있어 부적절한 지시라고 생각한 적은 없나?” (검사) “당시에는 그렇게 생각 안 했다.” (최 부장판사) “전혀 하지 않았나?” (검사) “네.” (최 부장판사) “검찰 조사에서의 진술과 다르다”며 검찰의 지적이 이어졌다. “조사 당시에도 (지시의) 부적절한 부분에 대해 부담스럽다는 진술을 해서 다시 물었다. ‘(앞선 조사에서) 윤 실장이나 전 부장판사로부터 자료를 담당 판사에게 전달하라는 지시를 받았을 때 부적절하고 부담스럽다고 생각하고 어쩔 수 없이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는데 이유가 뭔가‘ 물으니 ‘일단 재판 기록을 특정한 방향으로 검토한 자료를 심의관인 제가 전달하는 것 자체가 아무리 재판을 지원한다는 순수한 의도를 설명해도 자료를 받는 판사들 입장에서는 부담을 느낄 거고 행정처가 부당하게 관여한다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에 전달 자체가 부적절하다. 제가 (그런 일을) 한다는 게 부담스럽다’고 진술했다.” (검사) “저것도 마찬가지로 오랜시간 검사와 이야기를 하다가 처음에는 지금 (법정에서)한 것처럼 말했는데 검사가 ‘청와대가 개입됐다’고 말하고, 나는 전체 상황은 모르는 가운데 어쨌든 검사가 ‘재판에서 문제되는 쟁점에 대해 행정처 문건을 주는 것이 부적절한 것 아니냐’는 추궁을 이어갔고 그에 대해 반박했지만 검사가 보는 입장이 전혀 틀린 것은 아니니까, 최종적으로는 저렇게 조서에 정리되는 것을 확인하고 날인했다.” (최 부장판사) “부담스럽다는 진술을 한 적이 있나, 없나.” (검사) “그 멘트는 검사가 한 멘트이고 내가 이야기하지는 않았다. 부담스럽다고 내가 이야기했더라도 그 상황 자체가 부담스럽다는 거지, 지시 자체가 부담스럽다는 것은 아니었다.” (최 부장판사) 최 부장판사는 자신이 쓴 보고서가 청와대로 전달된다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고도 강조했다. 지시를 받을 때는 물론이고 자신이 일선 판사들에게 보고서를 배포할 때에도 청와대로 건네질 것이라는 사실은 전혀 알지도, 생각하지도 못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보고서가 작성되는 무렵, 전 부장판사는 선관위를 통해 ‘채권 가압류 신청 제기 상황’ 자료를 받아 최 부장판사에게 건넸다. 가압류·가처분과 같은 신청 사건은 밀행성 때문에 공개하지 않는 법원의 규정 때문에 어떤 재판부의 누구 판사가 맡는지 행정처에서는 파악할 수 없도록 돼있기 때문이었다. 이 자료는 윤 전 실장이 선관위원장인 이 전 대법관에게 문의해 확보한 것으로도 드러났다. ●신청 사건 당사자인 선관위에 자료 요청…재판부 ”이상하지 않았나?“ 증인신문이 끝날 무렵 좌배석 판사가 최 부장판사에게 “윤 전 실장이 이 전 대법관을 찾아가 사건 전체 현황과 내부검토 자료를 요청하면서 사법지원실에서 검토가 완료되면 보고하겠다고 한 것을 증인은 자세하게는 몰랐다고 했는데 눈치는 챘던 건가?” 물었다. 최 부장판사는 “그 무렵 전 부장판사가 ‘누구에게 보고해야 하니까’라며 변경된 내용을 보고서에 반영해서 보내달라고 했다”면서 “그래서 처장님이나 차장님께 보고하거나 아니면 선관위에 보고될 수 있겠다고는 생각했다”고 답했다. 다만 최 부장판사는 “그러나 이 전 대법관에게 직접 보고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선관위가 신청사건의 당사자인데 보고한다는 게 이상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이 이어지자 최 부장판사는 “깊이있게 생각하지 못해서… 최근에는 규칙이 개정돼서 안 되지만 (이전에는) 가처분 신청할 때 직접 당사자와 연락해서…(할 수 있어서) 그런 식으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고 그 당시 문제의식을 갖진 않았다”고 말했다. 박 전 대법관 측 변호인이 가장 마지막 질문을 보탰다. “네 차례 검찰 조사를 받았는데, 분위기가 어땠는가?” 앞선 증인신문 과정에서 최 부장판사가 검찰에서의 진술이 자신의 생각과 다르다고 설명한 부분을 꼬집은 것이다. 최 부장판사는 이렇게 말했다. “추궁이라면 추궁이고요. 일단은 처음에 소환됐을 때 이 건 관련이라고 들었고 이 건이 외부에 행정처 문건으로 알려지면 문제가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행정처에서 가장 고민하면서 처리했던 문제입니다. 다만 (행정처 문건을 일선 재판부에 보낸 것의) 범죄성립 여부 관련해서 간단하게 이 사건은 제가 경험한 것은 크게 문제 없이 받아들여 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진술거부권’을 고지하길래 제 얘기를 들어봐달라고 하면서 기억나는 이야길 했습니다. 그랬더니 ‘아무나 조사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스탠드 잘 잡으라’(※최 부장판사는 이 말을 ‘피의자로 전환될 수 있다’는 취지로 받아들였다고 이어진 고 전 대법관 변호인의 질문에 설명했다) 하고 청와대 얘길 했습니다. 그 때는 (청와대 얘기는) 거기서 처음 듣는 거라 제가 어떤 일에 끼어서 한 건지 가늠이 안 가고 위축되는 게 없지 않았습니다. 물론 검사님은 그 외 부분에서는 친절하게 했지만 그런 과정에서 의견을 물을 때는 저도 초반에 적극적으로 했는데 잘 반영되지 않았습니다. 다음날 일정도 있고 서울에서 잘 곳도 없어서 가급적 빨리 끝내는 것으로 조사를 받아야겠다고 생각해서 했고 완전히 제가 얘기한 것과 다른 취지의 기재된 것만 수정했고 다 반영했습니다.” 자신이 취합해서 정리한 보고서가 과연 어디까지 전달됐는지, 대체 자신이 어떤 사건에 엮였는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고 그는 강조하며 증언을 마쳤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서울신문은 전직 대법원장이 법정에 피고인으로 선 헌정 사상 초유의 사태를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2019년 5월 29일부터 매주 최소 두 차례 이상 열리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재판을 지면 제약에서 벗어난 온라인을 통해 글로 생생하게 중계합니다.
  • [대법원장, 피고인석에 서다-40회] “언론의 관심을 돌리고 청와대의 환심을 사라?” 행정처의 위기대응 안팎

    [대법원장, 피고인석에 서다-40회] “언론의 관심을 돌리고 청와대의 환심을 사라?” 행정처의 위기대응 안팎

    2016년 4월 드러난 ‘정운호 게이트’ 사건은 그해 말 박근혜 전 대통령과 ‘비선 실세’ 최순실씨의 국정농단 사건이 불거지게 되기까지 일종의 ‘나비효과’로 여겨졌다. 정운호 전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의 도박사건을 맡은 뒤 50억에 달하는 수임료 문제로 폭행사건까지 일어난 부장판사 출신 최유정 변호사와 대검 기획조정부장을 지낸 홍만표 변호사 등이 연루된 법조 비리로 사건이 커졌고, 당시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까지 얽히면서 미르·K스포츠재단의 문제점이 드러나며 결국 국정농단 사건이 알려졌다. 그런데 정운호 게이트는 국정농단 뿐 아니라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의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건에서도 한 축으로 등장한다. 부장판사 출신 최유정 변호사와 김수천 당시 부장판사가 연루되면서 사건이 돌연 대형 법조비리 사건으로 번졌다. 양승태 사법부는 위기에 놓인 법원을 보호하기 위한 갖가지 방안을 모색한다. 양 전 대법원장의 공소장에 검찰은 ‘부당한 조직 보호’라고 지적했다. 25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부(부장 박남천) 심리로 열린 양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의 39회 재판에는 2015년 2월부터 2017년 2월까지 법원행정처 사법정책실 심의관을 지낸 최누림 대구지법 포항지원 부장판사가 증인으로 출석했다. 최 부장판사는 지난 16일 증인으로 출석한 문성호 판사와 함께 근무했다. 정운호 게이트에 대한 검찰 수사가 확대되면서 일부 법관들의 비리 수사로 이어지자 법원행정처는 그야말로 비상이었다. 임종헌 당시 법원행정처 차장은 2016년 5월 기획조정실과 사법정책실 심의관들에게 수사와 관련된 여러 문제점이나 대응방안을 검토하도록 했다. 서울중앙지법 법관들에게는 정운호 게이트 관련 사건에 대한 영장정보를 빼내도록 한 혐의도 받고 있다. 행정처에 영장 정보 등을 유출한 혐의(공무상 비밀누설)로 당시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을 지낸 신광렬 서울고법 부장판사와 영장전담 법관이던 조의연·성창호 부장판사도 피고인으로 별도의 재판을 받고 있다. ●‘정운호 게이트’ 터지자 행정처 ‘비상’…심의관들 “언론 관심을 검찰로 돌려야” 심의관들이 모인 카카오톡 대화방에서도 관련된 언론보도 내용을 수시로 공유하며 수사상황을 교류하느라 분주했다. “최대한 방향을 검찰로. 물론 검찰은 우리 공격 준비 중”, “정운호 관련 수사 축소로 관심을 돌리는 방법도 있겠네요”, “정운호 수임료가 천문학적 규모의 현금, 수표로 출처도 모두 확인 필요”, “(횡령 정황에도 도박만 수사했다는 언론보도 기사 링크와 함께) 좋은 기사입니다” (이상 2016년 4월 27일~5월 2일 행정처 심의관들의 카카오톡 대화) 검찰은 이날 법정에서 심의관들의 카카오톡 대화를 가리켜 “심의관들이 정운호 게이트에 대한 언론의 관심을 검찰로 돌리는 방안을 강구한 것인가“ 최 부장판사에게 물었다. 최 부장판사가 검찰 조사에서도 그런 취지로 발언해 진술조서에 담겨있다고도 했다. 그러나 최 부장판사는 “그런 (방안을 강구한) 적 없다”, “그런 취지로 증언한 적 없다”고 답했다. “언론기사를 함께 스크랩하며 언론의 관심을 검찰로 향하게 하는 방안을 제안하기도 했는데 그럼 이런 스크랩은 왜 한 건가?”라는 물음에는 “당시 법조계 최대 현안이었고 법원에 대한 내용이어서 주요 이슈에 관한 기사를 공유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행정처에서 대응 태스크포스(TF)팀을 꾸리지도 않았다고 최 부장판사는 강조했다. 그는 심준보 당시 사법정책실장이 총괄한 TF에 팀원으로도 활동하지 않았냐는 검찰의 물음에 “TF를 발족한 적 없다”면서 “각 실국별로 제도개선안을 전부 기획조정실에서 취합한 뒤 관련 실무 심의관들이 모여서 토의한 적이 있다. 이후 5월 말이나 6월 초쯤 심 전 실장을 중심으로 정책개선 방향을 법원장회의나 대외적으로 공표할 것을 전제로 논의한 적은 있다”고 말했다. 최 부장판사는 당시 자신을 비롯한 심의관들이 검토한 것은 검찰 수사를 막기 위한 방안이 아닌 사건의 원인으로 지목된 사법 관련 제도개선안이었다고 설명했다. 카카오톡 대화 뿐 아니라 행정처 보고서에서도 언론의 관심을 돌리는 방안들이 거론됐지만 별로 중요하지 않은, 보고서에만 작성된 방안이라는 취지로 언급했다. 김민수 창원지법 마산지원 부장판사(당시 기획조정심의관)는 2016년 5월 12일자 ‘정운호 사건 관련 대응방안’ 보고서 초안을 작성해 최 부장판사에게 보내며 “차장님께서 우리 심의관들의 활발한 의견 교환을 주문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서도 최 판사는 “제도개선 방안에 대한 토의를 요청했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이 보고서에는 ‘홍만표 변호사가 관여한 형사사건 중 부적절한 기소가 의심되는 사건을 적극 발굴해 진보 언론에 제공할 필요가 있다’는 내용도 적혀 있다. 그러나 최 부장판사는 “해당 문서는 거의 제도개선안을 다룬 것으로 검사가 말한 내용이 앞에 일부 기재된 건 사실이지만 저희는 뒷부분에 있는 제도개선안에 대해서만 의견을 나눴을 뿐”이라고 말했다. 김 부장판사는 앞서 이 재판의 증인으로 나와 5월 12일자 ‘정운호 사건 관련 대응방안’ 보고서가 당시 법원행정처장이던 고 전 대법관의 주재로 열린 실장회의를 거쳐 양 전 대법원장에게도 보고됐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최 부장판사는 “저는 아는 바 없다”고 일축했다. 그러나 최 부장판사는 정운호의 상습도박 사건의 증거기록을 무단으로 열람하기도 했다. 5월 13일 처장 주재 실장회의에서 정운호 사건에 대응하기 위한 방안들이 논의된 뒤 최 부장판사는 ‘2012년 6월 마카오 320억 도박 보고서’를 작성해 보고했다. 증거기록을 열람·분석해 정운호의 과거 마카오 도박 혐의가 누락된 채 기소됐다는 등 검찰의 수사와 관련된 의혹을 찾아낸 내용인데, 심 전 실장이 김현석 당시 대법원 선임재판연구관에게 부탁해 정운호의 상고 취하로 검찰에 반환됐어야 할 증거기록을 최 부장판사가 보게 된 것이다. 이후 최 부장판사가 작성한 보고서의 결론은 검찰 수사가 부당하다는 취지로 모인다. 검찰 수사의 문제점을 부각시키기 위해 이런 보고서를 작성했냐는 검찰의 질문에 최 부장판사는 “아니다”라면서 재판 과정에 조금 의아한 점이 있었는데 언론에서 먼저 정씨 기소 범위가 이상하다는 의혹 보도를 했고 증거기록을 보다 보니 의문스러운 점이 있어서 정리하게 됐다고 다른 답변들보다 훨씬 길게 보고서를 쓴 이유를 설명했다. ●증거기록 무단 열람한 뒤 ‘정운호 수사 문제점‘ 보고서로 검찰 수사 부당성 지적 2016년 8월 중순을 넘어서자 법관들을에 대한 검찰 수사가 본격화됐다. 임 전 차장은 최 부장판사에게 정운호 수사에 대한 문제점을 정리해서 보고하라고 지시했고 최 부장판사는 ‘6대 문제점’을 정리한 뒤 문제점을 부각시키기 위한 것으로 보이는 방안들을 보고서에 담았다. 수사 과정 시 업무상 횡령 혐의사실을 조사했는지를 재판의 피고인신문에서 묻고, 마카오 320억 도박 혐의를 기소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재판부가 검찰에 석명을 요구하거나 횡령금의 구체적 사용처 확인을 위한 상습도박 기록 송부 촉탁 및 선행조사 등의 방안들이 적혀 있었다. 홍만표 변호사 사건에 대해서는 통신기록 사실조회, 검찰청 출입기록 사실조회 등이 적혔다. 검찰이 “행정처가 재판부에 석명 및 직권조사를 하게 해서 결국 검찰 수사의 문제점을 드러내려는 취지였느냐” 물었다. 그러자 최 부장판사는 “행정처가 아니고 임 전 차장이 이 내용들을 불러줬다”면서 “본인 업무수첩에 긴 노란색 포스트잇에 목차가 있었고 앞에 나온 건 다른 문건을 주셨다. 제가 거기에 대해 듣고 나서 다소 의아하다는 표정을 짓자 ‘왜 그러느냐’고 물으셨고, 거기에 대해 저는 ‘현실성 없는 두 가지 방안 다 검토해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임 전 차장은 ‘현실성 없는 방안이지만 토의용으로 논의만 하는 거다. 논의만 하려고 하니 빨리 정리만 해서 주면 좋겠다’고 말했다”고 전했다.앞서 지난 11일 법정에 증인으로 나온 심 전 실장(서울고법 부장판사)은 검찰 수사의 문제점을 지적한 최 부장판사의 보고서를 작성하도록 지시하거나 관여했냐는 점을 거듭 물었다. 증거기록을 열람하도록 한 것도 자신이 지시한 것이 아니라 최 부장판사가 먼저 와서 “기록을 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고 진술했다. 심 전 실장이 모른다는 입장을 반복하자 검찰은 “이 법정에 나와 증언한 심의관들은 당시 일이 너무 많아서 시키는 일만 하기에도 너무 격무에 시달렸다고 하는데 최누림 판사가 시키지도 않은 일을 스스로 했다는 건가?“라고 묻기도 했다. 그러자 심 전 실장은 “최 판사가 굉장히 별종이라는 걸 알고 본다면 이상하지 않을 겁니다”라고 답했다. 정운호 게이트가 불거지기 몇 달 전, 양승태 사법부가 헌법재판소와 최고 사법기관으로서의 위상을 두고 신경전을 벌였다는 사건에서도 최 부장판사의 이름이 등장한다. 문 판사가 검토하기도 했던 헌재의 한정위헌 관련 사안들에 대해 임 전 차장이 최 부장판사에게도 지시를 한 것이다. 2015년 11월 8일 임 전 차장은 두 페이지 정도 분량의 기초자료와 함께 헌재에서 진행 중인 현대차 노조 사건 관련 내용을 건네면서 헌재가 위헌성 여부를 검토해보라고 지시했다. 한정위헌은 법률의 위헌성을 심판하는 것이 아니라 법률에 대한 법원의 해석의 위헌성을 심판하는 것이다. 2010년 현대자동차 전주공장의 협력업체 비정규직 노동조합 간부들은 정리해고를 이유로 정식 쟁의절차 없이 잔업과 휴일특근을 거부해 사업장에 약 3억원의 손해를 발생시킨 혐의(업무방해) 재판에 넘겨져 2012년 7월 12일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됐다. 그런데 이들이 형법상 업무방해죄 규정에 대해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고, 행정처에서 헌재 내부 정보를 파악한 결과 한정위헌 결정이 날 가능성이 높았다. 법원 판단이 이뤄진 사건에 대해 헌재가 다른 결론을 내릴 경우 대법원 판단이 위헌이라고 지적받는 모양새가 되는 것이니 행정처로서는 헌재의 결정을 최대한 막으려 했을 것이라고 검찰은 보고 있다. ●“임종헌, ‘국정운영 저해’ 표현 추가 지시… ”여당, 여권 쪽에 전달할 설명자료“ 최 부장판사는 지시를 받은 그날 바로 ‘업무방해죄 관련 한정위헌 판단의 위험성’ 보고서를 작성해 임 전 차장에게 보냈다고 한다. 그렇게 빨리 작성해서 보고할 수 있었던 이유는 내용이 결국 임 전 차장이 불러준 것을 그대로 “타이핑했을 뿐”이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가 작성한 보고서에는 이런 내용들이 있다. ‘헌법재판소가 한정위헌 결정을 하게 된다면 이는 대법원의전원합의체 판결의 법률해석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최초의 사례로 사법기관 갈등을 부추겨 대법원·헌법재판소의 정면충돌을 초래‘, ‘법적 안정성, 질서안정 핵심인 사법기관 갈등 → 국정 안정의 저해요소로 작용할 것’, ‘국민의 입장에서 극심한 불안과 혼란이 야기될 가능성’. 또 ‘다른 소제목 아래에는 ‘업무방해죄에 대한 한정위헌 논리는 민주노총·민변의 숙원으로 광복 후 70년간 일관된 ‘위력’의 개념에 관한 해석을 부정하는 것으로 법치주의를 훼손’, ‘불법파업을 업무방해죄로 처벌하지 못한다면 형사처벌 공백이 발생하고 불법파업이 폭증하여 산업계·재계의 부담’이 급증하고 국가 경제가 급속히 악화’라는 내용이 담겼다. 최 부장판사가 보고서를 작성한 뒤 자신의 상급자인 한승 당시 사법정책실장에게 먼저 보고서를 보낸 뒤 임 전 차장에게 메일로 보고서를 전달했다. 이후 두 사람 모두에게 수정 지시가 왔고 자신이 작성한 초안에 없던 내용을 두 군데 추가했다고 한다. 한 전 실장으로부터는 ‘대법원은 과거 업무방해죄 처벌범위가 너무 넓다는 비판을 수용해 전격성, 중대성을 추가해 적용범위를 축소시켰음’이라는 표현을 추가하라고 지시했다고 최 부장판사는 설명했다. 과거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판례를 요약한 내용이다. 보고서 작성을 지시한 임 전 차장은 수정 주문사항이 더 많았다. 최 부장판사는 우선 임 전 차장이 법률적인 부분을 대폭 줄이고 산업계나 재계 등 대외적으로 미칠 수 있는 악영향을 강조하라고 지시했다고 전했다. 통계자료 등을 반영하라고 해 포털사이트에서 검색해 통계를 집어넣었다고도 말했다. 특히 임 전 차장은 ‘국정 안정의 저해요소’라는 표현을 더하라고 직접 지시했다고 최 부장판사는 언급했다. 보고서 초안에서부터 담긴 ‘파업공화국’ 등의 표현 역시 임 전 차장이 불러준 내용이라고 했다. 과연 이런 보고서는 왜 만들어졌을까. 이 문건은 기존의 행정처 내부 문건과는 양식부터 달랐다. 제목표시줄과 그 아래 작성 날짜와 작성자가 명시된 내부 문서와 달리 이 문건에는 작성일자와 작성자가 표시되지 않았다. 글씨체와 문서 양식도 달랐다. 최 부장판사는 “대외기관에 전달하기 위한 문건에는 통상 작성일자와 작성자를 기재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리고 검찰 수사 결과 이 문건은 곽병훈 당시 청와대 민정비서관에게 전달됐다. 임 전 차장이 “청와대에 전달할 보고서”라면서 작성을 지시했는지를 두고 법정에서 약간의 혼선이 오갔다. 검찰은 최 부장판사가 검찰 조사에서 “임종헌으로부터 ‘청와대에 전달할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고 진술했다”며 조서를 공개했다. 그러나 최 부장판사는 단호하게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면서 “(심의관을 지낸) 2년 동안 청와대나 BH에 전달할 것이라는 말을 들은 적은 한 번도 없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임 전 차장이 이 보고서를 누구에게 전달하기 위해 줬다고 들었느냐는 물음에는 “여당이나 여권 측이라고 검찰 조사에서도 말씀드렸다”고 답했다. 다만 보고서가 양 전 대법원장에게도 보고가 됐는지, 어떤 경위로 청와대에 전달됐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한다고 부인했다. 이와 관련, 당시 법원행정처장을 지낸 박 전 대법관의 변호인은 반대신문을 통해 행정처에서 대외기관에 전달하기 위해 작성하는 보고서는 해당 기관의 특성에 맞게 방향성을 조정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 검찰의 공소장에 임 전 차장이 ‘헌재의 한정위헌 결정으로 인해 불법파업에 대한 형사처벌 공백이 발생해 결국 국가 경제가 급속히 악화될 것이라는 내용 등 청와대의 환심을 살 수 있는 문구들을 다수 포함시켜 청와대 설명용 문건을 작성하여 보고하라’는 취지의 지시를 했다고 돼있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라고 거듭 강조했다. 최 부장판사도 이 같은 취지의 변호인 질문에 “그렇다”고 호응했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서울신문은 전직 대법원장이 법정에 피고인으로 선 헌정 사상 초유의 사태를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2019년 5월 29일부터 매주 최소 두 차례 이상 열리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재판을 지면 제약에서 벗어난 온라인을 통해 글로 생생하게 중계합니다.
  • 김동식 서울시의원, ‘정신장애인 사회복귀서비스를 위한 정책토론회’ 개최

    김동식 서울시의원, ‘정신장애인 사회복귀서비스를 위한 정책토론회’ 개최

    서울시의회 보건복지위원회 김동식 의원(더불어민주당ㆍ강북 제1선거구)은 지난 22일 서울시의회 제2대회의실에서 ‘정신장애인 사회복귀서비스를 위한 정책토론회’를 개최했다. 김 의원은 “그 동안 정신장애인에 대한 치료와 사회복귀서비스가 의료적 관점에 집중되어 사회복귀를 저해한다는 비판이 있어 왔다”며 “정신장애인을 위한 다양한 치유방법과 대안적 서비스 개발 등에 대한 논의를 위해 토론회를 개최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날 토론회는 10여 명의 시의원과 관계 공무원, 전문가 및 시민 등이 참석한 가운데 보건복지위원회 이병도 부위원장의 사회로 진행됐다. 박상태 자문교수(고려대학교 통합의학교실)와 김소연 센터장(행복심리상담센터)의 주제발표를 시작으로, 최동표 협회장(서울시정신재활시설협회), 조옥희 교수(경희사이버대학교 한방건강관리학과), 신영아 교수(대체의학박사, 중부대학교), 정안식 대표(코리안매니아, 당사자모임)의 토론이 이어졌다. 주제발표를 맡은 박상태 교수는 자연의학, 영양식이요법, 원예요법, 산림치유 등 정신장애인을 위한 다양한 치료 및 치유법을 소개하면서 “현재 조현병 등 정신질환은 주로 의학적 방법으로 치료를 하고 있으나, 검증된 통합치유법을 적절히 접목하면 치료효과를 극대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다음 발제자로 나선 김소연 센터장은 동물매개치료 프로그램이 조현병 환자의 공감능력과 대인관계 향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연구 수행 결과를 발표했다. 김 센터장은 “정신의료사회사업 영역에서 동물매개치료 프로그램을 적용한 다양한 프로그램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이뤄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진 토론에서는 동물매개치료의 효과성뿐만 아니라, 푸드테라피, 아로마 요법 등 자연치유적인 통합치유에 대한 여러 가지 제안과 논의가 이뤄졌다. 좌장을 맡은 김 의원은 “오늘 토론회는 정신장애인을 위한 다양한 형태의 대안적인 치유방법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진 뜻깊은 자리였다”며 “토론회를 통해 논의된 의견을 바탕으로 정신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어울려 건강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실질적인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가야 금속공예 대표작 금귀걸이 보물 된다

    가야 금속공예 대표작 금귀걸이 보물 된다

    가야 금속공예 대표작으로 꼽히는 ‘합천 옥전 28호분 금귀걸이’를 비롯해 1980∼1990년대에 나온 5~6세기 가야 유물 5건이 보물이 된다. 문화재청은 경남 합천 옥전 28호분과 M4호분, M6호분에서 1쌍씩 나온 금귀걸이와 M3호분에서 발굴한 고리자루 큰 칼 4점, 경남 함안 마갑총에서 나온 말갑옷 및 고리자루 큰 칼을 보물로 지정예고한다고 23일 밝혔다. 합천 옥전 28호분 금귀걸이는 금판 고리를 연결해 길게 늘어뜨린 형태다. 현존 가야 긴사슬 장식 금귀걸이 중 가장 화려하고 보존 상태도 뛰어나다. M4호분 금귀걸이는 좌우 한 쌍이 온전한 형태로 나왔다. 무덤 주인공 유골의 귀 위치에서 발견해 실제 착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가야 귀걸이 양식을 대표하는 가늘고 둥근 주고리 아래 공과 나뭇잎, 산치자 열매 모양 장식을 차례로 늘어뜨렸다. 금 알갱이를 테두리에 붙이거나 금선 형태를 만든 누금세공기법과 금판을 두드려 요철 효과를 낸 타출기법이 모두 적용돼 당시 발달한 세공기술을 보여 준다. M6호분 금귀걸이는 목곽 남쪽에 놓인 무덤 주인공 머리 부근에서 발견됐다. 신라 금귀걸이 중간식 형태와 가야 산치자형 끝장식이 결합한 양식이다. M3호분 출토 고리자루 큰 칼 일괄은 칼 여러 점이 한 무덤에서 나온 첫 사례다. 손잡이와 칼 몸통 등을 금과 은으로 장식해 삼국시대 동종 유물 중 제작 기술과 형태 등이 가장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용봉문 고리자루 큰 칼에서는 손잡이 부분을 가는 은선으로 감은 뒤 매우 얇은 금박을 붙인 흔적이 발견됐다. 지금은 사라진 전통적인 금부 기법의 일종으로 보인다. 함안 마갑총에서 나온 말갑옷 및 고리자루 큰 칼은 무덤 주인공 좌우에 하나씩 놓였다. 5세기 아라가야 때 사용된 것으로 확인됐다. 동북아 철기의 개발·교류 양상 등을 보여 주는 말갑옷은 원형을 파악할 수 있을 정도로 온전히 남아 희소성과 완전성 면에서 가치가 높다. 문화재청은 “가야 생활상과 기술 수준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는 유물들로, 가야 유물의 역사·학술·예술적 가치를 재평가해 보물로 지정한다”고 설명했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운하 위 떠다니며 먹고 마시고 잠드는 도시

    운하 위 떠다니며 먹고 마시고 잠드는 도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은 혹평을 피해 갈 수 없는 도시다. 홍등가와 마리화나 카페, 마약 같은 것이 먼저 떠오르는 이 도시는 거리낌없이 검은 손을 내민다. 중앙역에서 그리 멀지 않은 담 광장 골목에 손가락을 까딱까딱하면서 눈길을 보내는 남자들이 서 있었다. 마리화나 거래의 신호라 했다. 연성 마약에 속하는 마리화나는 네덜란드에서 불법이 아니다. 하지만 나는 소심해져서 경보 선수처럼 걸음이 빨라지고 있었다. 하지만 칭찬할 이유도 많다. 도시 전체가 박물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암스테르담은 독특한 건설의 역사를 담고 있는 계획도시다. 동성결혼, 낙태, 안락사를 세계 최초로 허용한 진보적 성향에 최근엔 친환경까지 더해졌다. 자전거는 암스테르담 사람들의 발이다. 하노이의 오토바이 물결처럼 암스테르담 자전거 행렬은 끝이 없다. 그러니 치마를 입고 다니는 여성을 보기가 힘들고, 핸드백 대신 책가방을 메고 다니는 모습이 일반적이다. 최근엔 친환경 운하 관광상품인 ‘쓰레기 낚시’ 크루즈를 내놓기도 했으니, 암스테르담인들의 독특한 친환경 아이디어에 “역시 네덜란드!”라는 감탄이 나온다. 암스테르담을 둘러보는 덴 운하 크루즈가 제격이다. 네오고딕 양식의 중앙역을 지나 안네 프랑크의 집, 국립 미술관, 하이네켄 공장 같은 명소를 모두 배에서 볼 수 있다. 거대도시 암스테르담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사람들은 늪지의 물을 빼고 운하를 파고 나무 기둥을 박아 지반을 다졌다. 그 위에 집과 교회, 궁전을 지었다. 암스테르담, 로테르담, 잔담처럼 도시명에 담(dam) 자가 붙었다면, 해수면보다 낮은 지대에 둑(dam)을 쌓아 건설한 도시란 뜻이다.17세기에 이르러 도시 면적은 5배로 커졌고, 중심축에서 퍼져 나가는 부채꼴 모양의 거대한 구도심이 형성됐다. 그 사이엔 거미줄처럼 이리저리 얽힌 운하 연결망이 있다. 바로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기록된 싱겔 운하다. 땅이 좁으니 집도 좁을 수밖에. 뾰족한 박공 지붕의 집은 종잇장 하나 들어갈 틈도 없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집 앞 폭이 무척 좁고 한 층에 창문이 세 개 이상 되는 집이 별로 없는데, 과거엔 집 너비와 창문 수에 비례해 세금을 매겼기 때문이다. 땅이 귀한 암스테르담에서 집값이 비싼 것은 당연한 일. 가난한 사람들은 운하에 배를 띄우고 집으로 개조해 살았다. 운하에 줄지어 떠 있는 암스테르담의 명물, 하우스 보트다. 정식 등록된 주택으로, 그 숫자가 1만 2000개를 넘는다. 내부엔 거실, 부엌, 침실, 화장실 등 있을 건 다 있다. 갑판엔 작은 화단을 마련해 튤립도 심는다. 암스테르담을 다시 여행하게 되면 호텔 대신 하우스 보트에서 지내봐야겠다. 하우스 보트 옥상에서 하이네켄을 마시며 옅은 햇살에 잠들어 보고 싶다. 김진 칼럼니스트·여행작가
  • 제18호 태풍 ‘미탁’ 특별재난지역 2차 선포…총 11개 지역으로 확대

    제18호 태풍 ‘미탁’ 특별재난지역 2차 선포…총 11개 지역으로 확대

    정부가 제18호 태풍 ‘미탁’으로 큰 피해를 입은 전남 해남군, 경북 경주시, 성주군과 강원 강릉시 소재 강동면·옥계면·사천면 및 동해시 소재 망상동, 전남 진도군 소재 의신면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추가 선포했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지난 10일 특별재난지역으로 1차 선포한 강원 삼척시와 경북 울진군, 영덕군을 포함해 모두 11개 지역(6개 시·군, 5개 동·면)이 특별재난지역으로 지정됐다. 이번에 선포된 특별재난지역 주요 피해를 살펴보면 강원 강릉시 강동면·옥계면·사천면, 동해시 망상동은 주택 378동 침수, 농경지 24.4㏊ 침수·매몰 등 침수 피해가 특히 컸다. 전남 해남군과 진도군 의신면은 대부분의 피해가 사유시설 피해로 김 양식시설에 집중됐으며 일부 도로 붕괴 등의 피해도 있었다. 경북 경주시와 성주군은 농경지 침수·매몰, 벼 도복 등의 농가 피해가 많았고 교량, 도로사면 붕괴 등 공공시설 피해도 컸다.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되면 해당 지자체의 재정자립도에 따라 피해 복구비 중 지방비로 부담해야 하는 비용의 50∼80%를 ·국고에서 지원해 준다. 또 주택 파손, 농·어업시설 파손 등 피해를 본 주민에게는 생계구호를 위한 재난지원금 지급, 전기요금·건강보험료 등 공공요금 감면, 병력 동원 및 예비군 훈련 면제 등의 혜택을 준다. 진영 행정안전부 장관은 “특별재난지역에 대한 국비 추가 지원 등을 반영한 복구계획을 이달 말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심의·확정할 예정”이라며 “이번 피해지역에서 수해가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피해원인을 근본적으로 해소하고, 각종 방재시설이 기후변화나 기상이변으로 인한 집중호우에 최대한 견딜 수 있도록 개선하는 방향으로 종합적인 복구계획을 수립할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이범수 기자 bulse46@seoul.co.kr
  • 항일 무장 독립운동 3대 맹장… 연구 논문 한 편 없고 묘는 北에

    항일 무장 독립운동 3대 맹장… 연구 논문 한 편 없고 묘는 北에

    “그분을 상면하니 저런 분이 어찌 왜놈의 군인과 맞서 선두 지휘를 하시며 혈전을 하셨나 할 정도로 외모가 잘생기셨고 그 풍채가 관후 유덕하시며 인자한 풍기가 주위 사람에게 호감을 주실 뿐 아니라 인정이 철철 넘쳐 흐른다. 그분이 무기형을 받고 마포로 수감된 후 왜놈에게 요구 조건을 제시하나 불허하므로 단식투쟁을 선포하고 단식에 돌입하였다. 처음 15일간은 물도 한 잔 안 먹었다. 소장이 병동에다 수감하고 왜놈 간수에게 감시를 하게 하고 조선 사람은 얼씬도 못하게 하고 매일 변기를 검사하였다. 물 한 모금도 안 먹었으니 소변인들 나올 리가 없었다.” 독립운동가 이규창(이회영의 아들)은 회고록에서 서울 마포형무소(경성감옥)에서 같이 수감 생활을 한 오동진 선생에 대해 이렇게 썼다. 김좌진, 김동삼과 함께 무장 독립운동계의 3대 맹장으로 평가받는 오동진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건국훈장 다섯 가지 가운데 1등급인 대한민국장을 받은 독립운동가는 모두 30명인데 오동진도 그중의 한 사람이다. 독립운동사에서 김구, 안창호, 안중근, 윤봉길에 필적할 만한 공을 세운 인물로 평가받지만 잘 알려지지 않았다. 변변한 연구 논문 한 편 없다. 옥중에서 선생은 일제에 저항해 여러 번 단식투쟁을 했다. 마포형무소에서 한 단식 기간은 무려 48일로 세계에서 유일한 사례라고 한다. 악랄한 일본인 형무소장도 그런 선생에게는 예를 갖추고 인사를 했으며 ‘가미사마’(神)라고 부르기도 했다. 1889년 평북 의주군 광평면 청수동 659에서 태어난 선생은 생후 반년 만에 생모를 잃고 후모(後母) 백씨의 손에 자랐다. 어릴 때부터 온후하고 정의감이 남다르게 강했던 선생은 기쁨과 슬픔을 얼굴에 잘 드러내지 않았다고 한다. 19세에 안창호 선생이 세운 평양 대성학교 사범과를 졸업한 선생은 고향에 일신학교를 설립해 청소년들을 가르쳤다.1919년 3월 기미독립만세운동은 선생의 인생 행로를 바꾸었다. 만세운동에 적극적으로 가담해 체포령이 내려지자 선생은 3월 18일 중국 관전현 안자구(安子溝)로 망명했다. 이때부터 평생 온몸을 내던진 선생의 무장독립투쟁이 시작됐다. 선생은 비밀결사인 광제청년단을 조직하는 한편 의용대를 편성해 군자금을 모금했다. 이듬해 6월 대한민국임시정부는 만주에 이탁을 파견해 광복군총영을 조직했는데 선생은 총영장(總營長)이 됐다. 광복군총영은 임시정부에서 장총 240여정과 탄약을 입수해 무장투쟁을 준비했다. 마침 우리 민족의 독립 의지를 알릴 기회가 찾아왔다. 미국 상원의원 일행이 1920년 8월 14일 서울에 들어온다는 정보를 입수한 것이다. 총영은 결사대원을 평양·신의주·선천·서울로 보내어 미 의원단이 그 지역을 통과할 때 파괴 공작을 펴 이목을 끌기로 했다. 안경신 일행은 안주경찰서의 일제 경찰과 친일 조선인 경찰을 사살했으며 평양의 경찰서 신축 건물을 폭파했다. 신의주 철도호텔에 폭탄을 투척했고 선천경찰서도 파괴했다. 이 사건 이후 일제는 선생을 체포하느라 혈안이 됐다. 선생은 1922년 6월 양기탁의 동삼성(東三省) 독립운동단체 통합 제안으로 발족한 대한통의부 군사위원장이 돼 독립군을 지휘하며 무장투쟁을 벌였다. 1924년에는 대한통의부 와해 후 새로 통합된 독립운동단체인 정의부가 출범했는데 선생은 군사위원장과 총사령을 겸임했다. 선생이 이끌던 무장 독립군은 국내에 침투해 일제와 싸워 큰 전과를 거두었다. 독립군들은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신출귀몰하며 압록강 일대 삭주, 벽동, 후창, 초산, 무산 등의 경찰 주재소와 관공서를 습격했다. 독립군 결사대에는 여성들도 있었다. 일제 평북경찰부의 통계에 따르면 선생은 1927년까지 부하 1만 4149명을 지휘해 일제 관공서를 143회 습격하고, 일제 관리 149명과 밀정 765명을 살상했다.그러나 무장 항쟁을 이끌던 선생은 밀정의 덫에 걸려 일제에 체포되고 말았다. 선생은 독립군 부하들의 양식 조달을 위해 지린에 농업공사를 만들었는데 운영난으로 그와 부하들은 굶기를 밥 먹듯이 했다. 이를 본 옛 동지 김종원이 선생에게 “삼성(三成) 금광주인 최창학이 선생을 만나 뵙고 싶어 한다”고 거짓말을 했다. 이 말을 믿은 선생은 1927년 12월 16일 창춘 시내 약속 장소에 나갔는데 일제가 파 놓은 함정이었다. 일제의 앞잡이로 변신한 김에게 유인당한 선생은 잠복해 있던 신의주 경찰서 고등계 형사인 김덕기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선생은 일제의 취조에 자신이 지휘한 무장 투쟁을 부인하지 않았지만, 고문을 당하면서도 부하들의 이름은 발설하지 않았다. 선생의 활동만큼 일제가 붙인 죄목은 방대했고 수사·재판 기록은 쌓아두었을 때 높이가 5m가 넘어 3·1운동 이후의 만주 독립운동사와 같았다. 선생은 광인(狂人) 행세를 하고 1929년 11월부터 33일이나 단식을 하는 등 재판에 협조하지 않았다. 또 “한번 몸을 나라에 바쳤으니 나 개인의 집안일을 돌보고 걱정하고 그리워할 수는 없다”며 아내는 물론 어떤 면회도 거절했다. 부인과 아들은 옥 밖에서 통곡을 하고는 돌아갔다고 한다. 1928년 4월에는 부하 2명이 선생을 구하려고 경찰서로 잠입했다가 체포되기도 했다.재판이 열린 신의주 지방법원 법정에는 선생의 모습을 보려는 방청객들이 쇄도했다. 선생은 그들 앞에서 큰 소리로 “독립만세”라고 외치거나 노래를 불렀다. 또 “하느님의 명령”이라면서 재판을 거부했다. 선생의 광적인 행동은 일부러 미친 척함으로써 일제와 일인(日人)의 재판에 저항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일본인 의사는 선생에게 ‘형무소 정신병’이라는 기이한 병명을 붙였다. 하지만 선생은 정신을 차려서는 “내가 무슨 잘못한 일이 있기에 징역살이를 하며 또한 설혹 잘못한 일이 있다 하더라도 나는 조선 사람이니까 너희 일본놈의 재판을 받을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1932년 3월 9일 선생은 구형대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고 2심 선고도 무기징역이었다. 선생은 상고를 포기했으며 장기수를 수감하던 마포형무소로 이감됐다가 1944년 정신질환자들을 수용하던 공주형무소로 다시 옮겨졌다. 한 달이 넘는 단식도 이겨냈던 선생은 17년이 넘는 세월의 모진 옥고를 견디지 못하고 광복을 1년도 채 남겨 놓지 않은 그해 12월 1일 옥중에서 순국했다. 선생의 나이 55세였다. 선생을 체포하고 옥사하게 한 김덕기는 노덕술, 하판락과 함께 조선인 3대 악질 형사였다. 김은 16년 동안 일제 경찰로 일했고 평북경찰부 고등형사과장 자리에 올라 수많은 독립군과 애국지사들을 잡아들여 고문했다. 그가 검거해 송치한 독립군이 1000명이 넘었고 그중 20%가 사형 또는 무기징역형을 받았다. 광복 후 김은 반민특위에 체포됐지만 대부분의 혐의를 부인했다. 그러나 반민족 행위자로서는 처음으로 사형을 선고받았고 반민특위 해체로 감형된 뒤 6·25전쟁 중에 횡사한 것으로 전해진다.오동진이 숨을 거둔 땅 충남 공주의 공산성 주차장 한쪽에 선생의 추모비가 덩그렇게 서 있다.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 무후선열제단에는 순국선열 중 유해를 찾지 못한 130분의 위패가 봉안돼 있는데 선생의 위패도 있다. 선생의 묘소가 없는 것은 아니고 북한 애국열사릉에 있다. 공주형무소에서 순국한 선생의 유해가 왜 북한으로 옮겨졌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선생은 아들 하나를 두었는데 어린 나이에 만주에서 사망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고 부인의 행적도 알 길이 없다. 글 사진 논설고문 sonsj@seoul.co.kr
  • 과방위, ‘KIST 빛낸 인물들’ 조형물에 조국 딸 이름 등재 논란

    과방위, ‘KIST 빛낸 인물들’ 조형물에 조국 딸 이름 등재 논란

    KIST 원장 “이런 사례 생겨 당혹…삭제 검토”與 “이름 전산 자동추출…뺄 때 기준 있어야”한국 “친일행각 드러나면 서훈도 박탈” 압박원장 “조민 3주 인턴 안하고 증명서 발급”‘조국 부인 동창’ 소장 “잘 모르고 발급…자책”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의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등 국책연구기관 국정감사에서는 11일 ‘KIST를 빛낸 인물들’ 조형물에 조국 법무부 장관 딸의 이름이 오른 문제를 놓고 공방이 벌어졌다. 자유한국당은 조 장관 딸의 ‘KIST 인턴 경력 허위 기재’ 의혹에 대한 집중 공세를 펼쳤다. 이병권 KIST 원장은 조형물에서 조국 딸의 이름을 삭제하는 것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한국당은 이날 KIST의 조형물에 조 장관의 딸 이름이 새겨져 있는 것과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김성태 의원은 이병권 KIST 원장에게 L3 연구동 앞의 KIST를 거쳐 간 사람들의 이름이 새겨진 조형물 사진을 보여주며 “여기에 버젓이 조국 씨의 딸 이름이 있다”고 말했다. 같은 당 윤상직 의원은 “2일만 출입한 인턴의 이름을 (조형물에) 놔둬야 하냐. 확대 감사 때까지 이름을 삭제하라”고 요구했다. 윤 의원은 “이는 KIST의 명예와 관련된 것이며, 미꾸라지 한 마리가 KIST 명예를 더럽힐 수 없는 것은 아닌가”라고 주장했다. 박대출 의원도 “(조형물에 함께 이름이 올라간) KIST를 빛낸 2만 6000여명을 욕되게 하는 것”이라며 비판했다. 정용기 의원은 “조민 이름이 들어간 조형물에 이 원장 이름도 같이 있다”면서 “종합 감사 때까지 이름을 들어내지 않으면 언젠가는 원장의 이름도 파헤쳐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이에 대해 이 원장은 “좋은 뜻으로 만들었는데, 이런 사례가 생겨서 굉장히 당혹스럽다”면서 “이름을 빼는 것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김경진 무소속 의원은 “조형물에 조민 이름이 있다고 하는데 그 조민이 맞냐, 다른 조민이 아닌가”라고 물었다. 이 원장이 “아마 그 사람이 맞는 것 같다”고 답하자 장내에는 웃음이 터지기도 했다. 김 의원은 “2016년 국감 당시 박근혜 대통령 재임 시절에 KIST 안에 박정희 전 대통령 동상을 세운 것에 대해 KIST가 부끄러운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는데, 지금 역시 전체적인 상황으로 보면 좀 부끄럽지 않나”라고 말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조민 이름을 그냥 둬야 한다고 옹호했다. 김성수 민주당 의원은 “조민 이름만 빼는 건 곤란하다고 생각한다”면서 “KIST가 직접적 계약관계를 통해 관계를 맺은 모든 연구자, 학생, 임시직의 전산이 자동 추출돼 2만 6077명의 이름이 들어갔다고 한다”고 설명했다. 김 의원은 “기준에 의해 넣었으니 뺄 때도 기준이 있어야 한다”면서 “복잡할 것 같으면 그냥 두든지, 다 조사해 기준에 의해 빼든지, 조형물 자체를 없애든지 고민하라”라고 말했다.이에 한국당 윤상직 의원은 “친일 행각이 드러나면 서훈을 박탈하기도 했다”면서 “이름을 빼는 것과 관련한 기준이 없다면 기준을 세워서라도 빼야 한다”고 반박했다. 한국당은 조씨 인턴 경력과 관련한 사실관계를 따져 묻고 관련자 징계를 요구했다. 최연혜 의원은 “KIST 출입관리 시스템을 살펴보니 조민 학생의 방문증 발급 내역은 단 3일이며, 이 가운데 KIST 서약서에 인턴으로 제시된 기간에 해당하는 날짜는 단 이틀뿐”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 원장에게 ‘조국씨는 누구 하나가 문을 열면 따라 들어갔다고 했는데, 이것은 불가능한가’라고 물었고, 이 원장은 “출입증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답했다. 윤상직 의원은 “KIST 전산상 조 장관 딸이 인턴 기간 중 두 번 출입한 게 맞느냐”고 확인하자 이 원장은 “그렇다”라고 말했다. 김성태 의원의 ‘부산대에 조씨가 제출한 문건 양식이 KIST 양식과 동일하냐’는 질문에 이 원장은 “이메일을 통해 개인적으로 확인서를 써준 것”이라고 밝혔다.박대출 의원은 “이광렬 KIST 기술정책연구소 소장에 대한 징계 절차를 밟지 않을 것이냐”면서 “확인된 사실관계만으로도 KIST가 명예회복을 해야 할 일이 산적하지 않냐”고 추궁했다. 이광렬 소장은 조 장관의 부인 정경심 교수의 초등학교 동창으로, 조 장관 딸에게 인턴 증명서를 발급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에 이 원장은 “빠른 징계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이 원장은 또 ‘이 소장으로부터 조민이 3주 인턴을 하지 않았는데 3주 인턴을 했다는 (증명서를 작성한) 사실을 인정받았냐’는 질문에는 “그렇다. 자기는 잘 모르고 그렇게 했다고 한다. 자책을 많이 하고 있다”라고 답했다. 민주당은 한국당의 공세에 맞서 전날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직할 연구기관 국감에 이어 부실 학회 논란, 기초 연구 활성화, 연구·개발(R&D) 지원 문제를 비롯한 정책 질의에 초점을 맞췄다.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과방위 ‘조국 딸’ KIST를 빛낸 인물 조형물 등재 논란

    과방위 ‘조국 딸’ KIST를 빛낸 인물 조형물 등재 논란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의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등 국책연구기관을 대상으로 한 11일 국정감사에서는 조국 법무부 장관 딸의 KIST 인턴 경력 허위 기재 의혹이 도마에 올랐다. 무소속 김경진 의원은 “KIST를 빛낸 인물을 써놓은 조형물에 조민 이름이 있다고 하는데 그 (조 장관의 딸인) 조민이 맞냐? 다른 조민이 아닌가“ 질문했다. 이에 이병권 KIST 원장은 “그렇다”고 답하자 장내엔 잠시 웃음이 터지기도 했다. 김 의원은 “2016년 국감 당시 박근혜 대통령 재임 시절에 KIST 안에 박정희 전 대통령 동상을 세운 것에 대해 KIST가 부끄러운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는데 지금 역시 전체적인 상황으로 보면 좀 부끄럽지 않나”라고 지적했다.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조민 이름은 떼는 게 맞다”고 주문하자 이 원장은 “검토해보겠다”고 답했다. 한국당 박대출 의원은 “이광렬 소장에 대한 징계 절차를 밟지 않을 것이냐”며 “확인된 사실관계만으로도 KIST가 명예회복을 해야 할 일이 산적하지 않냐”고 질의했다. 이광렬 KIST 기술정책연구소 소장은 조 장관의 부인 정경심 교수의 초등학교 동창으로, 조 장관 딸에게 인턴증명서를 발급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에 이 원장은 “빠른 징계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한국당 최연혜 의원은 “조국 씨가 저지른 비리 중 자녀의 부정 입학을 위해 수많은 대학과 공조직들이 유린됐는데 그 시발점에 KIST가 있다”고 주장했다. 최 의원은 “조민 씨가 부산대 의학전문대학원에 제출한 자기소개서에는 대학 때 3주간 인턴을 했다고 하고, KIST가 언론에 배포한 자료에는 5일을 했다고 한다. 조국 씨는 2주 동안 했다며 3자가 엇갈리는 주장을 하고 있다”며 “KIST 출입관리시스템을 살펴보니 조민 학생의 방문증 발급내역은 단 3일이며, 이 중 KIST 서약서에 인턴으로 제시된 기간에 해당하는 날짜는 단 이틀뿐”이라고 했다.최 의원은 “조국 씨는 누구 하나가 문을 열면 따라 들어갔다고 했는데 이것은 불가능한 것인가”라고 묻자 이 원장은 “출입증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답했다. 한국당 김성태 의원은 “부산대에 조민 씨가 제출한 문건 양식이 KIST 양식과 동일하냐”고 질문했고, 이 원장은 “이메일을 통해 개인적으로 확인서를 써준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원장은 “정경심 교수가 인턴증명서를 청탁한 사실이 있냐”는 김 의원의 질문에는 “그런 사실은 없다”고 답했다. 한편 더불어민주당은 한국당의 ‘조국 공세’에 맞서 부실학회 논란, 기초연구 활성화, 연구·개발(R&D) 지원 문제를 비롯한 정책 질의에 집중했다. 민주당 김성수 의원은 원광연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 이사장에게 ‘부실학회’ 논란 재발 방지를 위한 권장 학회리스트와 같은 ‘체크리스트’ 마련 및 취합 작업을 제대로 하고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또 김 의원은 연구회의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문제를 거론하며 “1년 가까이 노사 양측의 얘기만 듣는 이 상태로 가면 부지하세월”이라며 “상황 점검만 할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어떤 방향으로 가자고 가닥을 타줘야 한다”고 했다. 민주당 박광온 의원은 일본의 노벨 화학상 수상을 언급하며 “우리가 언제쯤이면 (노벨상 수상을) 할 것이라는 기대를 갖기는 어려워 보인다”며 “출연연이 보유한 일본 수출규제 핵심기술 보유현황을 보면 444건 중 기술 이전이 이루어진 것은 83건뿐”이라고 말했다. 강윤혁 기자 yes@seoul.co.kr
  • 서울대 국감서 야당은 조국 딸, 여당은 나경원 아들 두고 공방

    서울대 국감서 야당은 조국 딸, 여당은 나경원 아들 두고 공방

    10일 서울대 관악캠퍼스에서 열린 국회 교육위원회의 서울대 국정감사에서는 여야 간 ‘자녀 의혹’ 공방이 벌어졌다. 자유한국당은 조국 법무부 장관 딸의 서울대 공익인권법센터 인턴 활동 관련 의혹을, 더불어민주당은 나경원 원내대표 아들의 연구 포스터 작성 특혜 의혹을 제기했다. 한국당 전희경 의원은 “(조 장관의 딸) 조민 씨는 일관되게 ‘인터넷에서 공고 보고 내가 직접 전화를 걸어 지원했다’고 하고 있다”면서 “서울대에서 고교생 인턴을 하는 경우를 본 적 있냐”고 오세정 서울대 총장에게 질의했다. 이에 오 총장은 “흔한 것은 아니지만 이공계의 경우 고교생들이 학교 와서 실험을 같이하고 논문 내는 경우도 있다”고 답했다. 조 장관의 아들이 공익인권법센터에서 인턴활동 예정증명서를 발급받은 사실과 관련해서도 공세가 이어졌다. 조 장관 아들이 발급받은 예정증명서의 사용 목적 등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다는 서울대 측의 답변에 한국당 김한표 의원은 “너무 허술한 것 같다. 동사무소도 그렇게는 안 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같은 당 곽상도 의원은 조 장관의 딸이 서울대 환경대학원을 휴학할 때 제출한 진단서가 위조됐을 가능성을 들었다. 곽 의원은 “(조 장관 딸이) 부산대 (의전원) 합격자 발표 바로 다음 날 휴학을 신청하면서 병원 진단서를 첨부했다”며 “진단서 사본을 보면 2014년 10월까지만 발행 일자가 기록돼 있고 날짜도 없고 나머지는 백지상태“라고 지적했다. 이에 김연수 서울대병원장은 “개인 진료에 대한 내용을 타인이 밝히는 것은 개인정보 보호법 위반”이라며 “진단서 사본에 ‘서울대병원 병원장’이라는 서체가 들어가 있다. 이 서체와 제출된 진단서 양식을 볼 때 서울대병원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조 장관 딸의 환경대학원 장학금 수령 문제도 언급됐다. 한국당 김현아 의원은 장학금 지급 기록이 남아 있지 않은 데 대해 “어떤 기준이든 간에 활자화됐든 아니든 장학금 신청기록, 추천자, 선정이유에 대해서는 기록이 남아 있어야 한다”며 “왜 떳떳하게 운영이 되지 않느냐”고 질타했다. 한편 여당 의원들은 한국당 나 원내대표 아들 김모 씨의 연구 특혜 의혹을 제기했다. 서영교 의원은 “유력 정치인의 아들이 서울대 의대 윤형진 교수 실험실에서 논문을 만드는 일을 했다. 서울대에서 프로그램에 참여하라고 (학생을) 뽑은 적이 없고 엄마 부탁으로 왔다”고 지적했다. 오 총장은 “연구진실성위원회에 제보가 들어와 조사하기로 한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같은 당 박경미 의원은 김씨의 포스터가 IRB(연구윤리심의) 승인을 받지 않은 데 대해 “조 장관 딸의 논문이 대한병리학회로부터 취소된 첫 이유가 IRB를 거치지 않고 허위로 기재했기 때문”이라며 “김군의 두 가지 중요한 스펙인 과학경진대회와 포스터도 취소될 가능성이 높고 예일대 입학도 취소될 가능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박 의원은 또 IRB 승인이 누락된 것은 나 원내대표 때문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전문연구자가 IRB 승인을 받지 않는 원시적 실수를 할 리 없다”며 “IRB 승인이 누락된 이유는 나 원내대표가 촉박하게 청탁했기 때문이다. (미국에 있던) 아들이 서울에 와 있는 동안 실험이 이뤄져야 한다 해서 연구윤리를 위반하게 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곽혜진 기자 demian@seoul.co.kr
  • 서예지, 편하면서 시크한 무드 공항패션 ‘편한 게 최고’

    서예지, 편하면서 시크한 무드 공항패션 ‘편한 게 최고’

    배우 서예지가 4일 남다른 감각의 스타일로 역대급 미모의 공항패션을 선보였다. 평소 단아한 비주얼에 뛰어난 연기력으로 사랑을 받고있는 배우 서예지는 매거진 ‘마리끌레르’ 11월호 화보 촬영차 프랑스 파리로 출국하기 위해 4일 인천국제공항을 찾았다. 공항에 등장한 서예지는 선선한 가을날에 어울리는 청순하고 시크한 매력의 스타일링을 선보이며 수많은 공항 인파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날 서예지는 회색 후드 상의에 청바지를 매치해 청순함이 돋보이는 캐주얼한 공항패션을 선보였다. 여기에 검정 가방과 배색의 포인트 스트랩이 매력적인 미니멀한 보스턴백을 착용해 시크하고 고혹적인 이미지를 완성했다. 서예지가 착용한 제품은 MCM의 ‘밀라노 보스턴’ 백이다. 이 제품은 이탈리아의 건축물 양식에서 영감을 받아 탄생한 것으로 당시 건물의 기하학적인 인테리어 요소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시크한 디자인이 매력적이다. 가방에는 ‘MCM 하프 로고’를 패턴화한 포인트 스트랩이 달려 있어 세련된 느낌을 준다. 넉넉한 수납 공간으로 데일리백 뿐만 아니라 여행용 가방으로도 활용할 수 있도록 실용성을 높였다. 한편, 배우 서예지는 지난 9월에 개봉한 영화 ‘양자물리학’에서 사교계의 황금인맥을 자랑하는 성은영역을 맡아 열연을 펼쳐 탄탄한 연기력으로 호평을 받았다. 사진 = 서울신문DB 김채현 기자 chkim@seoul.co.kr
  • PD수첩, 조국 딸 표창장 위조 의혹 다뤄..‘새로운 사실은?’

    PD수첩, 조국 딸 표창장 위조 의혹 다뤄..‘새로운 사실은?’

    조국 법무부 장관의 딸이 2014년 부산대 의전원에 지원할 당시 제출했다는 동양대 총장의 표창장을 둘러싼 논란을 다룬 MBC ‘PD수첩’ 시청률이 동시간대 1위를 차지했다. 2일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장관과 표창장’을 내용으로 1일 방송한 ‘PD수첩’은 전국 가구 기준 5.6%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전주인 지난달 24일 방송의 3.5%보다 2.1%포인트 상승했다. 이날 ‘PD수첩’은 조 장관을 둘러싸고 약 두 달 가까이 정국을 달구고 있는 딸의 표창장 위조 의혹에 대해 집중취재했다. 이 과정에서 최 총장의 주장과 상반된 동양대 관계자들의 인터뷰를 전했다. 전 동양대 조교는 “상장은 조교나 임원이 임의대로 만들기 때문에 그 내용은 얼마든지 다르고 그 안의 양식도 다를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최 총장은 조 장관 딸의 봉사활동 자체가 없었다고 주장하지만 당시 조국 장관 딸은 실제로 동양대를 방문했고, 또 당시 최 총장과 조 장관 딸, 정경심 교수가 같이 이야기를 나눴다는 목격담도 나왔다. 제작진은 최 총장과 최교일 자유한국당 의원이 최근 만났다는 총장 측근 정씨의 녹취록도 함께 전했다. 정씨는 “편을 잘못 들었다가 자유한국당이 정권 잡으면 학교 문 닫아야 한다. 자유한국당이 학교를 그냥 놔두겠나”라며 최 총장이 자유한국당 고위 관계자들과 만나 교감한 적 있다고 증언했다. 하지만 최 총장은 ‘PD수첩’에 이를 부인했다. 검찰의 무리한 기소를 비판하는 현직 검사의 증언도 공개됐다. 그는 “그 기소 자체가 굉장히 부실한 수사다. 원본도 찾지 않고, 피의자 조사도 하지 않고, 그냥 무턱대고 청문회 당일 기소를 한 것 자체만 봐도 굉장히 의도를 가지고 한 수사다. 특수수사의 문제점이 굉장히 심각하다”고 비판했다. 사진 = 서울신문DB 김채현 기자 chkim@seoul.co.kr
  • 예천 용문사 대장전·윤장대 국보로 승격된다

    예천 용문사 대장전·윤장대 국보로 승격된다

    보물 제145호인 경북 예천 용문사 대장전(大藏殿·왼쪽)과 보물 제684호 예천 용문사 윤장대(輪藏臺·오른쪽)가 국보로 승격된다. 문화재청은 두 보물을 묶어 ‘예천 용문사 대장전과 윤장대’라는 명칭으로 국보 지정을 예고했다고 1일 밝혔다. 윤장대는 불경을 넣고 손잡이를 돌리며 극락정토를 기원하는 불교 공예품으로, 한번 돌리면 경전을 읽은 것으로 인식돼 불경을 읽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중요하게 여겨졌다. 윤장대는 영동 영국사, 금강산 장안사 등지에 설치한 기록이 있으나 국내에서는 용문사에 유일하게 남아 있다. 용문사 윤장대는 중국 송나라 전륜장 형식을 수용해 제작한 것으로 추정되지만, 정확한 제작 시기는 파악되지 않았다. 대장전과 맞물려 만들어졌을 것으로 보고 있지만, 창건된 고려시대인지, 중건된 조선시대인지 확실하지 않다. 다만 최근 동쪽 윤장대에서 중국 명희종의 연호와 연관된 ‘천계오년’(天啓午年)이라는 묵서명이 나타나 1625년 이전이라 추측할 뿐이다. 대장전은 고려 명종 3년(1173) 김보당의 난을 극복하려고 조응대선사가 발원하고 1185년 조성했다. 건축 양식은 공포(지붕 하중을 받치기 위해 만든 구조물)가 여러 개인 다포계 맞배지붕으로, 전반적으로 17세기 후반 모습을 간직했으나 일부 여말선초(麗末鮮初) 기법이 남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용문사 대장전은 중세 건축물로서는 드물게 건립 시기와 목적이 기록으로 나타나고, 윤장대는 희소성과 상징성이 있다”며 국보 승격 의미를 설명했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에버랜드 가을 정원서 바비큐 파티 만끽

    에버랜드 가을 정원서 바비큐 파티 만끽

    에버랜드가 100만 송이 장미가 만개한 야외 정원에서 가을 입맛 사로잡는 세계 바비큐 축제를 연다. 내일부터 다음달 9일까지 장미원에서 13일간 펼쳐지는 에버랜드 ‘레드앤그릴 바비큐 페스티벌’(Red & Grill Barbecue Festival)에서는 중국, 베트남, 스페인 등 세계 8개국 테마의 바비큐 메뉴 22종을 시원한 맥주와 함께 즐길 수 있다. 지난 2016년부터 매년 가을 펼쳐지고 있는 레드앤그릴 바비큐 페스티벌은 봄에 열리는 ‘스프링온스푼 푸드 페스티벌’과 함께 에버랜드를 대표하는 양대 음식 문화 축제로 꼽히고 있다. 올해는 지난 3년여 간의 푸드 페스티벌 노하우를 바탕으로 더욱 푸짐하고 트렌디한 메뉴들을 선보이는 것은 물론, 고객들이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현장 이벤트를 마련해 모두가 함께 즐기는 축제의 장으로 마련했다. 먼저 중독성 있는 매운맛이 일품인 중국식 ‘마라 오징어구이’와 베트남식 샌드위치인 ‘반미 바비큐 플레이트’를 선보인다. 이 두 메뉴는 최근 국내에서의 인기를 반영해 새롭게 선보이는 축제 메뉴다. 아울러 토르티야와 함께 터키레그, 구운 새우 등 푸짐한 구성으로 지난해 바비큐 축제에서 가장 인기가 많았던 ‘멕시칸 빅플레이트’와 육즙 가득한 스페인풍의 ‘로스트 비프스테이크’도 판매한다. 여러 명이 함께 든든하게 배를 채울 수 있는 바비큐 메뉴로 좋다. 한식 마니아라면 언양식 불고기 컵밥과 춘천식 닭꼬치 등이 마련된 한국 부스를 방문해보길 추천한다. 이외에도 8개 국가별로 마련된 각 부스에서는 산토리니 레모네이드, 흑당 버블티, 망고주스 등 바비큐와 잘 어울리는 다양한 음료도 판매한다. 또한 축제 기간 장미원 일대는 다양한 포토스팟과 인증샷 소품, 이색 연출물 등을 통해 야외 캠핑장 분위기로 변신한다. 특히 축제 기간에 맞춰 100만 송이 가을 장미는 물론, 포인세티아, 메리골드 등 다양한 가을꽃이 만개해 720석 규모의 야외 파라솔 의자에 앉아 맛있는 음식과 함께 가을 정취를 만끽할 수 있다. 에버랜드는 레드앤그릴 바비큐 페스티벌에서 음식을 구매하는 모든 이용객에게 재미있는 문구가 삽입된 알록달록 레터링 스티커 4종을 무료로 선물하는 이벤트도 한다. 오는 11월 17일까지 펼쳐지는 에버랜드 핼러윈 축제에 맞춰 좀비블러드케이크, 해골핫도그, 눈알모히또에이드 등 달콤·살벌하게 즐길 수 있는 핼러윈 신메뉴 44종도 선보이고 있어 레드앤그릴 바비큐 페스티벌과 함께 맛볼 수 있다. 김태곤 객원기자 kim@seoul.co.kr
  • 첫 일터서 들은 첫 한국어는 “야, X새끼”… “한국은 기회의 땅이지만 자유는 없었어요”

    첫 일터서 들은 첫 한국어는 “야, X새끼”… “한국은 기회의 땅이지만 자유는 없었어요”

    [2019 이주민 리포트-코리안드림의 배신] (2) 두 얼굴의 한국 별다른 교육 없이 일감만 주고 윽박질러언어 소통 잘 안되고 생경한 문화에 위축회식하며 친분 쌓는 情 많은 문화는 좋아“한국은 기회의 땅이지만 자유의 땅은 아니었어요.” 지난달 27일 네팔 카트만두의 뉴바네쇼 거리에서 만난 네팔 남성 5명은 자신들이 경험한 한국을 이렇게 평가했다. 한국에서 짧게는 4년, 길게는 13년까지 이주노동을 한 푸르너 스레스터(41)와 유벅 라즈 갈레(49), 바라카레 샤칼(51)과 수만(46) 형제, 비노드 스레스터(29)다. 그들은 “한국을 좋아한다”고 전제하면서도 “욕설에 시달리고 극단적 업무 스트레스를 받아도 일터를 옮기는 게 너무 어려워 괴로움도 컸다”고 털어놨다. ●“3개월만 친절히 대해 주세요” 유벅의 한국 생활 7년은 파란만장했다. 2009년 비전문취업비자(E9)를 받아 한국에 온 그의 첫 일터는 김 양식장이었다. ‘일이 고될 것’이라는 건 각오한 터였다. 하지만 가장 견디기 힘든 건 따로 있었다. 노골적인 폭언과 무시 등 마치 ‘계급’이 다른 사람처럼 대하는 동료들의 태도였다. 입국 뒤 여독이 풀리기도 전 배를 탔는데 한국인 동료로부터 들은 첫마디가 아직도 귓전을 맴돈다. “야, X새끼야, 줄 잡아. 줄!”배를 타지 않는 날에는 김을 만드는 공장에서 일했다. 공식 업무가 오전 6시부터 밤 10시까지 이어졌다. 점심·저녁 시간을 빼고도 하루 14시간씩 일했다. 퇴근 시간이 돼도 “들어가라”고 말하는 사람이 없었다. 매달 손에 쥔 월급은 84만원. 주말수당이나 잔업수당은 말 꺼내기도 어려웠다. 유벅은 한국에 온 지 13일째 되는 날 새벽 택시를 타고 도망쳤다. 그렇게 불법 체류자가 됐다. 반면 비노드는 비교적 운이 좋았다. 이주노동자로는 드물게 사업장을 옮길 기회를 얻어서다. 2012년 E9 비자를 받아 대구의 프레스 공장(알루미늄 제품 생산 공장)에 배정됐다. 비노드는 “육중한 프레스 기계가 너무 무서웠다. 아침마다 회사 가는 게 두려워 우울증에 걸릴 정도였다”고 회상했다. 그는 한 달을 견디다 대구 성서공단 내 노조를 찾아가 도움을 청했다. 당시 비노드를 도왔던 노조 관계자는 “우리가 사장에게 ‘그냥 두면 사고 날 수도 있다’고 경고해 어렵게 사업장 변경을 허락받았던 기억이 난다”고 전했다. 실제 비노드의 동료 중 일부는 프레스 공장 일을 견디다 못해 고향으로 돌아갔고, 한 명은 끝까지 견디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이후 대구 이불공장으로 사업장을 옮긴 비노드는 잘 적응했다. 이주노동자들은 “외국인 동료가 공장에 오면 업주와 동료들이 딱 3개월만 적응을 도우며 기다려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수만은 “문화가 다른 곳에 와서 처음 일을 배우는데 동료들이 지나치게 몰아붙이면 정말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전했다. 실제 한국 공장이나 농장 등에 배치되면 별다른 교육 없이 첫날부터 일감을 던지고 “처리하라”고 윽박지르는 경우가 흔하다. 잘 통하지 않는 언어, 생경한 문화 탓에 위축돼 있는데 무작정 일처리를 지시하면 업무 효율은 떨어진다. ●“짧게라도 가족을 초대할 수 있었으면…” “한국 사람들은 일할 때 빼고 다 좋다.” 유벅이 한국인의 ‘정’에 대해 말하자 다른 네팔인들이 “맞다”며 호응했다. 비노드는 동료들과 함께하던 회식이 여전히 그립다고 했다. “일할 때는 서로 얼굴 볼 여유조차 없는데 회식 땐 삼겹살 구워 먹으며 피로도 풀고, 친분도 다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한국에서 일하며 종잣돈을 마련했다며 고마움을 숨기지 않았다. 수만과 푸르너는 한국에서 10년 넘게 하루도 쉬지 않고 12시간씩 일해서 꼬박 모은 1억원으로 카트만두에 3층짜리 건물을 올렸다고 한다. 다만 임대료로 매달 300달러(약 35만원) 버는 게 고작이다. 샤칼, 수만 형제는 간담회가 끝날 때쯤 가슴속 이야기를 조심스레 꺼냈다. 샤칼은 “가족들과 행복하게 살기 위해 한국행을 택했지만 정작 노동자들은 휴가를 마음대로 쓰기도 어렵고 가족들을 한국에 초청할 수도 없다”면서 “장기간 가족을 못 봐 우울증에 걸린 이주노동자들이 적지 않은 만큼 일정 기간 가족을 초대할 수 있게 해 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카트만두 기민도 기자 key5088@seoul.co.kr ●제보 부탁드립니다 서울신문은 이주노동자와 결혼이주여성, 이주아동이 겪는 각종 문제를 집중적으로 취재해 보도할 예정입니다. 이주노동자로서 임금체불, 산업재해 은폐 강요, 폭언과 폭행 등 부조리를 직접 경험했거나 이를 목격했다면 제보(key5088@seoul.co.kr) 부탁드립니다. 또 결혼이주여성이나 이주아동을 향한 폭언·폭행, 따돌림 등 혐오와 폭력에 대한 취재도 이어갈 예정입니다. 제보해주신 내용은 철저히 익명과 비밀에 부쳐집니다. 끝까지 취재해 보도하겠습니다.
  • ‘그 농부가 찾은 쇳덩이는 청동상’ 판정하고…암시장 소문 쫓아 희귀지도 도둑 잡아내고

    ‘그 농부가 찾은 쇳덩이는 청동상’ 판정하고…암시장 소문 쫓아 희귀지도 도둑 잡아내고

    ’문화재 발굴’이라면 그럴듯한 발굴 현장부터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일반 국민이 우연히 발견한 문화재도 상당수다. 도난 문화재를 회수하는 일도 발굴만큼 어렵다. 문화재를 받고, 되찾는 문화재청의 ‘고군분투’는 오늘도 이어진다. ●국민이 찾은 매장문화재 25% 보상금 받아 매장문화재 보호 및 조사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문화재를 발견하면 7일 이내에 시·군·구 등 담당 지방자치단체나 경찰서에 신고해야 한다. 90일 동안 공고한 뒤 소유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국가가 보관·관리하고, 가치에 따라 신고자에게 보상금이나 포상금을 준다. 매장문화재는 우연한 기회에 발견한 사례가 많다. 밭을 갈거나 비닐하우스 공사를 하다가, 염소 사육장을 청소하다가 혹은 하천에서 물놀이하다가 발견하는 사례도 있다. 2014~2018년 5년 동안 일반 국민이 찾아내 신고한 매장문화재는 모두 329건에 이른다. 이 가운데 75건이 보상금을 받았다. 확률로 따지자면 4건 중 1건 정도쯤 되는 셈이다. 신고가 들어오면 우선 국립고궁박물관이나 문화재청 산하 연구소 등에서 일하는 전문직이 현장에 나가 조사한다. 이어 문화재청이 상반기와 하반기에 도자, 회화, 조각 등 각 분야 5명 안팎의 전문가로 구성한 위원회를 열어 금액을 결정한다. 최근 5년 가운데 가장 높은 보상금을 받은 문화재는 2016년 발견한 고려시대 희귀 청동상과 탑 부재다. 충남 천안시에서 한 시민이 밭을 경작하다 발견했다. 이 시민은 보상금으로 1050만원을 받았다. 같은 해 경기 남양주시 한 시민이 밭을 갈다 호미에 걸린 돌판을 신고했는데 조사 결과 조선시대 희귀 석함이었다. 문화재청은 보상금을 800만원 지급했다. 지난해에는 경기 양주시 한 시민이 산에서 토사를 옮기다 화강암 1기를 찾았는데, 조선 성종 10번째 왕녀인 정혜옹주의 태실석함으로 추정돼 보상금 500만원을 받았다. 보상금이 개별 유물에 관해 지급한다면, 포상금은 이후 추가 발굴로 나오는 유물에도 지급한다. 김미란 문화재청 발굴제도과 사무관은 “개별 유물이 나온 지역을 조사하고, 그곳에서 유물이 잇따라 나오면 이에 관한 포상금을 지급한다”고 설명했다. 5년 동안 329건 가운데 3건에 불과하다. 문화재로서 가치가 낮은 경우 보상금이나 포상금을 기대하기 어렵다. 특히, 매장문화재가 존재하는 곳인 ‘유존지역’에서 발굴된 문화재는 가치가 높다 하더라도 받지 못한다. 김 사무관은 “유존지역은 문화재가 이미 매장된 게 확인돼 문화재청이 발굴 중인 곳”이라며 “이런 곳에서 문화재를 발견한 주민이 보상금을 기대하며 신고하지만 받지 못해 불만을 제기하는 사례가 꽤 있다”고 설명했다.●도난 문화재 신고 이후 실제 회수율 57.7% 도난당한 문화재를 되찾는 일도 만만찮다. 문화재청 안전기준과 사범단속반이 전담한다. 이들은 문화재청 소속이지만 경찰과 마찬가지로 사법권이 있다. 주로 내사를 통해 조사에 나서고 경찰과 함께 공조 수사를 펼친다. 한상진 사범단속반장은 “문화재 도난·도굴 행위라든가 문화재 불법거래 제보 전화(080-290-8000)가 있지만, 신고가 거의 들어오지 않는다”면서 “도난 문화재는 대부분 장물이어서 문화재 관련 종사자들의 제보나 업체 탐방 등에서 나온 기밀 정보를 토대로 조사를 시작하는 사례가 대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이후 수사는 대개 비밀스럽게 진행된다. 한 반장은 “1년에 굵직한 사건은 평균 5건 정도로, 수사를 완료하고 검찰에 송치되기까지 1년이 넘는 사례가 태반”이라고 덧붙였다. 2014~2018년 5년 동안 도난 신고는 3181건으로, 이 가운데 회수된 게 1836건이다. 회수율로만 따지면 57.7%에 이른다. 최근 가장 주목받은 사건으로 보물 제1008호 ‘만국전도’ 사례가 꼽힌다. ‘만국전도’는 조선 현종 때인 1661년 서양 선교사 알레니가 들여온 소형 세계지를 본떠 확대해 제작한 국내에선 가장 오래된 서양식 세계지도다. 현대 지도와 똑같이 오대양 육대주를 배치하고, 남북회귀선 등 서양식 지도표기법을 따라 그렸다. 1994년 서울 동대문구 휘경동 함양 박씨 문중에서 지도를 도난당한 뒤 25년간 행방이 묘연했다. 사범단속반이 지난해 ‘만국전도’가 암거래 시장에 나온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경찰과 함께 수사에 착수했다. 지난해 11월 ‘만국전도’를 팔려고 시도했던 A씨의 경북 안동시 주거지 압수수색에 나섰고, 한 반장이 A씨를 설득해 벽지 속에 숨긴 ‘만국전도’를 찾을 수 있었다. 중요도가 높은 업무지만 일이 고되기로 유명하다. 한 반장을 포함해 2명이 이 일을 전담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인력 부족 문제가 꾸준히 제기되면서 내년에 1명 더 늘어난다. 한 반장은 이와 관련, “1년에 150일 이상을 현장에서 일하기 때문에 어지간한 이들은 꺼리는 업무”라며 “대형 문화재를 회수하면 주목받지만, 그때만 반짝 눈길을 끌 뿐, 인력 충원은 이에 비해 더딘 편”이라고 토로했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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