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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한제국 황제·황후 입던 의상 선보인다

    대한제국 황제·황후 입던 의상 선보인다

    대한제국 황제와 황후가 착용했던 황색 곤룡포와 황원삼이 일반에 공개됐다. 세종대 박물관이 세종대 창립 75주년을 맞아 1일부터 박물관 3층 전시실에서 개최하는 ‘박물관 소장 유물 특별전시’를 통해서다. 세종대 박물관은 1973년 개관 이래 4000여점의 유물을 소장, 관리해 오고 있다. 이번 특별전에선 고종황제(왼쪽·1852~1919)와 순종황제(오른쪽·1874~1926)대에 입었던 황색 곤룡포(중요민속문화재 제58호) 2벌과 황후 황원삼(중요민속문화재 제49호), 황후 적의(중요민속문화재 제54호), 동궁비 원삼(중요민속문화재 제48호), 왕비 당의(중요민속문화재 제103호) 등 조선시대부터 대한제국시대 황실의 복식문화를 보여주는 희귀 유물이 대거 선보였다. 박물관 측은 “곤룡포 2벌은 황제를 상징하는 황색으로 만들어졌으며 고종황제와 순종황제대에 입었던 진품이고 황후 황원삼은 순종황제의 계비인 순정효황후가 착용했던 대례복”이라며 “황색 곤룡포와 황원삼은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유일한 황실 복식 유물로 문화재적으로나 역사적으로 가치가 매우 높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곤룡포는 조선시대 세종대부터 입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진다. 왕이 평상시 업무를 볼 때 입었던 집무복으로 가슴과 등, 양 어깨에 용 무늬를 금실로 수놓은 둥근 보(補)가 달려 있어 용포 또는 망포라고도 불렀다. 처음에는 붉은색 곤룡포를 입다가 고종황제에 이르러 황제국 지위에 맞게 황색 곤룡포를 입었다. 고종황제가 착용했던 장신구인 패옥(중요민속문화재 제48호), 황실에서 사용했던 별전괴불(중요민속문화재 제47호), 단원 김홍도가 그린 것으로 전해지는 ‘해상군선도’와 ‘평양시가도’ 등의 작품도 전시됐다. 특별전은 11일까지 이어진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美서 잠자던 김홍도 병풍·신윤복 풍속도 찾았다

    美서 잠자던 김홍도 병풍·신윤복 풍속도 찾았다

    단원 김홍도가 1788년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10쪽짜리 병풍과 혜원 신윤복의 낙관이 찍힌 풍속도가 미국 필라델피아 펜실베이니아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견됐다. 22일 재미 민간사학자 유광언씨에 따르면 로버트 C 베르빌이란 사람이 이 대학 박물관에 기증한 21점의 예술품 가운데 국내에 알려지지 않았던 단원 김홍도의 병풍과 혜원 신윤복의 풍속도가 새롭게 확인됐다. 이번에 발견된 단원의 병풍은 높이 2m, 폭 4.5m로 실물 그대로 보존됐다. 한지에 칠한 색채도 선명하게 남아 있는 만큼 보존 상태도 양호하다. 제목은 따로 기재돼 있지 않지만 그림 마지막에 ‘戊申’(무신)과 ‘檀園’(단원)이란 글자가 쓰여 있고 낙관도 선명하게 찍혀 있다. 그림은 중국 황실이 대규모로 무사들을 대동하고 사냥에 나선 장면을 생동감 있게 표현하고 있다. 단원의 그림은 주로 정조의 직접 명령이 있거나 고객이 일대일로 의뢰했을 때 그려졌던 데다 병풍의 크기를 고려하면 위작일 가능성은 매우 낮은 것으로 보인다. ‘패밀리 라이프’(Family Life)라는 영문 제목으로 적힌 족자 그림 2점은 전형적인 혜원 신윤복의 풍속도를 담았다. 그림은 초가삼간 처마 아래 삼대 가족이 옹기종기 모인 장면을 묘사했다. 산 중턱에 뜬 보름달은 화려하지는 않지만 온화한 가정의 모습을 비추고 있다. 또 다른 그림도 가족들이 대청마루에 둘러앉아 각자 일하는 모습을 자연스럽게 그렸다. 두 그림 모두 상단 가운데 ‘蕙園’(혜원)이란 글자와 낙관이 찍혀 있다. 두 점의 족자 그림 모두 보관 상태가 매우 양호하고 족자봉이 상아로 만들어져 있다는 박물관 측 설명을 보면 최고급품으로 제작됐음을 알 수 있다. 유씨는 “한국 정부가 작품들에 대한 연구와 더불어 박물관 소장품을 최소한 온라인으로 국민이 감상할 수 있도록 지원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펜실베이니아대 박물관은 단원의 낙관이 찍힌 중국 황실 사냥도 등 1869점의 한국 예술품과 민속문화재를 소장하고 있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전통건축이 품은 하늘과 땅, 사람

    전통건축이 품은 하늘과 땅, 사람

    우리 전통건축에는 선조들의 정신과 철학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우주와 자연의 질서에 순응하는 유교의 자연관, 도가의 비움사상과 불교의 공(空)사상을 빌려와 삶의 공간을 구성했다. 유네스코에 등재된 12개의 세계 문화유산을 비롯해 궁궐과 사찰, 전통 마을 등 전통 건축물들이 세계적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서울 이태원동 삼성미술관 리움에서 19일부터 열리는 ‘한국건축예찬-땅의 깨달음’전은 우리 전통건축의 의미와 가치를 되새기고자 마련된 전시다. 건축물과 관련된 고미술품과 현대사진 작가들의 사진, 영상물과 3D 재현 영상물을 총동원한 융·복합형 전시로 우리 전통건축의 미학과 정신을 심도 있게 재조명한다. 주명덕, 배병우, 구본창, 김재경, 서헌강, 김도균 등 세대를 달리하는 현대사진 작가들과 박종우 영상감독이 2년여의 시간 동안 사계절을 거치며 아름다운 사진과 영상으로 담았다. 삼성문화재단 창립 50주년을 기념해 특별하게 공을 들인 이번 전시는 해인사, 불국사, 통도사, 선암사, 종묘, 창덕궁, 수원화성, 도산서원, 소쇄원, 양동마을 등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전통건축 10곳을 선정한 후 우리 선조들이 존중했던 하늘과 땅, 사람의 3개 주제로 묶어 구성했다. 우선 ‘침묵과 장엄의 세계’라는 주제 아래 불교사찰과 종묘를 하나로 엮어 한국인의 정신세계와 우주관, 세계관을 짚어본다. 사찰의 경우 자연특성을 활용한 가람배치와 사찰 건축 특유의 화려함과 장엄미가 주목할 만하다. 원로작가 주명덕은 법보사찰인 가야산 해인사의 비경과 함께 성철스님 생존 당시부터 기록해 온 스님들의 수행 장면을 보여준다. 구본창은 통도사와 금강계단, 전각들을 섬세하게 담아냈고 문화재 전문 사진가 서헌강은 석조건축과 목조건축이 조화를 이룬 불국사의 화려함을 담았다. 또 ‘금동대탑’의 구조와 설계를 보여주는 3D 스캔과 9층으로 추정 복원한 영상, 석굴암의 축조 과정을 3D로 재현한 영상, 해인사와 불국사의 가람배치를 비교 연구한 전봉희 서울대 교수의 ‘사찰의 가람배치’가 선보인다. 조선시대의 왕실사당이자 유교건축의 백미인 종묘는 배병우의 사진과 박종우 감독의 영상으로 그 침묵과 장엄미를 연출했다. 두 번째는 ‘터의 경영, 질서의 세계’를 주제로 통치이념을 건축적으로 어떻게 조영했는지를 살핀다. 창덕궁의 사계를 기록한 배병우의 사진과 창덕궁과 창경궁을 그린 ‘동궐도’(국보 249호, 동아대 소장), 김홍도의 ‘규장각도’를 통해 창덕궁의 자연친화적 구성을 들여다본다. 19세기 대원군에 의해 중건된 경복궁과 육조거리를 재현한 한국전통문화대학교의 ‘경복궁과 육조거리’ 모형은 서울의 변화를 역설적으로 짐작하게 한다. 18세기 후반 정조와 정약용이 설계하고 채제공이 축성한 수원화성은 김재경의 사진과 ‘화성능행도’, ‘화성의궤’, 팔달문의 3D 복원영상으로 비교해 볼 수 있다. 또 하버드대 옌칭도서관에 소장된 ‘숙천제아도’가 국내 최초로 공개된다. 조선 말기 문신 한필교가 42년 동안 부임했던 중앙 및 지방 관아의 모습을 그림으로 남긴 화첩으로 전라도 장성부, 황해도 서흥부, 한성의 종묘 등 부임지의 우물 위치부터 다른 마을로 이어지는 길과 산 이름까지 상세히 기록돼 있다. 세 번째는 ‘삶과 어울림의 공간’이라는 제목으로 서원과 정원, 민가를 하나로 묶었다. 양동마을, 도산서원, 소쇄원을 주명덕, 김도균, 구본창이 각각 사진으로 기록했다. 동영상, 스캔 영상과 함께 18세기 서대문 밖 경기감영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린 ‘경기감영도 12곡병’, 소쇄원도가 전시된다. 양동마을의 무첨당을 실제 크기로 재해석한 김봉렬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의 ‘한옥구조의 재해석-유첨당’ 등이 소개되어 선조들의 슬기로운 건축 원리가 담긴 전통건축을 입체적으로 조명한다. 리움 측은 “하늘과 땅, 사람을 존중하며 자연과 함께해 온 한국 전통건축은 그 자체로 우리가 지켜야 할 문화유산이자 시간을 초월한 영원한 건축이며 우리 시대를 지탱하는 정신이자 지혜의 원천”이라며 “이번 전시가 한국 전통문화에 대한 가치를 새롭게 인식하고 우리 건축문화사를 바라보는 관점을 넓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미술관은 방학을 맞은 학생들과 청소년들이 우리 전통건축의 아름다움과 품격을 감상할 수 있도록 평일에 20세 미만 청소년 무료입장 제도를 운영한다. 전시는 내년 2월 6일까지. 함혜리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하늘,땅, 인간의 조화... 한국 전통건축에 담긴 미학과 정신

    하늘,땅, 인간의 조화... 한국 전통건축에 담긴 미학과 정신

     우리 전통건축에는 선조들의 정신과 철학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우주와 자연의 질서에 순응하는 유교의 자연관, 도가의 비움사상과 불교의 공(空)사상을 빌려와 삶의 공간을 구성했다. 유네스코에 등재된 12개의 세계 문화유산을 비롯해 궁궐과 사찰, 전통 마을 등 전통 건축물들이 세계적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서울 이태원동 삼성미술관 리움에서 19일부터 열리는 ‘한국건축예찬-땅의 깨달음’전은 우리 전통건축의 의미와 가치를 되새기고자 마련된 전시다. 건축물과 관련된 고미술품과 현대사진 작가들의 사진, 영상물과 3D 재현 영상물을 총동원한 융·복합형 전시로 우리 전통건축의 미학과 정신을 심도 있게 재조명한다. 주명덕, 배병우, 구본창, 김재경, 서헌강, 김도균 등 세대를 달리하는 현대사진 작가들과 박종우 영상감독이 2년여의 시간 동안 사계절을 거치며 아름다운 사진과 영상으로 담았다.  삼성문화재단 창립 50주년을 기념해 특별하게 공을 들인 이번 전시는 해인사, 불국사, 통도사, 선암사, 종묘, 창덕궁, 수원화성, 도산서원, 소쇄원, 양동마을 등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전통건축 10곳을 선정한 후 우리 선조들이 존중했던 하늘과 땅, 사람의 3개 주제로 묶어 구성했다. 우선 ‘침묵과 장엄의 세계’라는 주제 아래 불교사찰과 종묘를 하나로 엮어 한국인의 정신세계와 우주관, 세계관을 짚어본다. 사찰의 경우 자연특성을 활용한 가람배치와 사찰 건축 특유의 화려함과 장엄미가 주목할 만하다. 원로작가 주명덕은 법보사찰인 가야산 해인사의 비경과 함께 성철스님 생존 당시부터 기록해 온 스님들의 수행 장면을 보여준다. 구본창은 통도사와 금강계단, 전각들을 섬세하게 담아냈고 문화재 전문 사진가 서헌강은 석조건축과 목조건축이 조화를 이룬 불국사의 화려함을 담았다. 또 ‘금동대탑’의 구조와 설계를 보여주는 3D 스캔과 9층으로 추정 복원한 영상, 석굴암의 축조 과정을 3D로 재현한 영상, 해인사와 불국사의 가람배치를 비교 연구한 전봉희 서울대 교수의 ‘사찰의 가람배치’가 선보인다. 조선시대의 왕실사당이자 유교건축의 백미인 종묘는 배병우의 사진과 박종우 감독의 영상으로 그 침묵과 장엄미를 연출했다.  두 번째는 ‘터의 경영, 질서의 세계’를 주제로 통치이념을 건축적으로 어떻게 조영했는지를 살핀다. 창덕궁의 사계를 기록한 배병우의 사진과 창덕궁과 창경궁을 그린 ‘동궐도’(국보 249호, 동아대 소장), 김홍도의 ‘규장각도’를 통해 창덕궁의 자연친화적 구성을 들여다본다. 19세기 대원군에 의해 중건된 경복궁과 육조거리를 재현한 한국전통문화대학교의 ‘경복궁과 육조거리’ 모형은 서울의 변화를 역설적으로 짐작하게 한다. 18세기 후반 정조와 정약용이 설계하고 채제공이 축성한 수원화성은 김재경의 사진과 ‘화성능행도’, ‘화성의궤’, 팔달문의 3D 복원영상으로 비교해 볼 수 있다.  또 하버드대 옌칭도서관에 소장된 ‘숙천제아도’가 국내 최초로 공개된다. 조선 말기 문신 한필교가 42년 동안 부임했던 중앙 및 지방 관아의 모습을 그림으로 남긴 화첩으로 전라도 장성부, 황해도 서흥부, 한성의 종묘 등 부임지의 우물 위치부터 다른 마을로 이어지는 길과 산 이름까지 상세히 기록돼 있다. 세 번째는 서원과 정원, 민가를 하나로 엮어 ‘삶과 어울림의 공간’이라는 제목으로 묶었다. 양동마을, 도산서원, 소쇄원을 주명덕, 김도균, 구본창이 각각 사진으로 기록했다. 동영상, 스캔 영상과 함께 18세기 서대문 밖 경기감영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린 ‘경기감영도 12곡병’, 소쇄원도가 전시된다. 양동마을의 무첨당을 실제 크기로 재해석한 김봉렬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의 ‘한옥구조의 재해석-유첨당’ 등이 소개되어 선조들의 슬기로운 건축 원리가 담긴 전통건축을 입체적으로 조명한다.  리움 측은 “하늘과 땅, 사람을 존중하며 자연과 함께해 온 한국 전통건축은 그 자체로 우리가 지켜야 할 문화유산이자 시간을 초월한 영원한 건축이며 우리 시대를 지탱하는 정신이자 지혜의 원천”이라며 “이번 전시가 한국 전통문화에 대한 가치를 새롭게 인식하고 우리 건축문화사를 바라보는 관점을 넓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미술관은 방학을 맞은 학생들과 청소년들이 우리 전통건축의 아름다움과 품격을 감상할 수 있도록 평일에 20세 미만 청소년 무료입장 제도를 운영한다. 전시는 내년 2월 6일까지. 함혜리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세밀화 추상화…간송미술문화재단 ‘화훼영모… ’展

    세밀화 추상화…간송미술문화재단 ‘화훼영모… ’展

    ‘내 지금 생물을 바라보며 하늘의 마음을 보았노라.’(我今觀物見天心) 조선 전기의 뛰어난 문장가인 매계(梅溪) 조위(曺偉)의 시에 나오는 구절이다. 우리 선조들은 꽃과 새, 곤충과 물고기들을 자연의 일부인 동시에 우주 만물의 섭리가 함축된 존재로 인식했다. 보고, 기르고, 나아가 글과 그림으로 옮겨 내면서 자연과 생명의 오묘한 이치를 터득하고 자신의 성정을 함양하고자 했다. 간송미술문화재단이 수장 작품 중에서 동식물을 소재로 한 전통 회화작품들을 시기별로 선별해 ‘화훼영모-자연을 품다’전을 서울 동대문 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고 있다. 화훼영모(花卉翎毛)란 꽃과 풀, 날짐승과 길짐승을 가리킨다. 서울 성북구 성북동 간송미술관에서 1년에 두번씩 열던 소장품전을 DDP 개관과 함께 대중 속으로 들여온 뒤 여는 다섯 번째 기획전으로, 그림을 통해 시대 정신과 기법의 차이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이번 전시에는 오세창 선생이 화첩으로 만들어 소장하던 고려 공민왕(1330~1374)의 ‘이양도’(二羊圖)부터 조선왕조 말기의 이도영(1884~1933)이 그린 ‘백령식록’(百齡食祿)까지 550년의 기간 동안 각 시기를 대표하는 거장들의 작품 90여점이 출품됐다. 한국민족미술연구소 백인산 연구실장은 “선조들은 동식물들을 통해 도덕적 이상과 더불어 무병장수나 입신출세, 부귀영화 등과 같은 현세적 욕망을 담아내곤 했다”며 “시대별 화법의 변화와 각 소재들이 담고 있는 상징, 문화적 코드를 맞춰 가며 읽으면 더욱 재미있게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고려 말 조선 초 주자성리학의 도입과 정착 시기에는 중국 남방 화풍의 강한 영향을 감지할 수 있다. 출품작 중 김안로의 막내아들 김시(1524~1593)가 그린 ‘야우한와’(野牛閒臥)에서 보듯이 배경은 우리 산수지만 소는 남중국의 물소다. 주자와 송설이 남중국 출신이라는 점과 무관치 않다는 해석이다. 16세기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가 조선성리학을 이뤄내면서 그림에도 진경산수화가 출현하고 화훼영모화의 소재로 우리 주변의 동식물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화훼영모화는 진경시대에 이르러 겸재 정선(1676~1759)에 의해 독자적 사생 기법이 완성되고 현재 심사정(1707~1769)이 시도한 조선남종화풍으로의 반전을 거쳐 조선 고유색이 다양한 형태로 극대화된다. 패랭이꽃이 피어 있고 참개구리와 나비가 모여든 한여름의 오이밭 풍경을 담은 ‘과전전계’(瓜田田鷄·오이밭의 참개구리)는 진경산수화의 대가 정선이 70대 후반에 그린 그림이다. 겸재풍의 사생 기법을 계승한 변상벽(1730~1775), 김홍도(1745~1806), 김득신(1754~1822)에 의해 절정에 이른다. 표암 강세황(1713~1791), 추사 김정희(1786~1856)는 청조문인화풍의 함축된 생략 기법을 화훼영모에 도입했다. 조선 말기에 이르면 문화 노쇠 현상과 맞물려 사생력이 후퇴하고, 화려하고 장식적인 측면이 부각된다. 옛사람들은 진흙 속에서도 화사한 꽃을 피우는 연을 보고 세속에 물들지 않는 고고한 군자를 떠올렸다. 시서화 삼절로 명성이 높았던 강세황의 ‘향원익청’(香遠益淸·향기는 멀수록 맑다)은 두 포기의 연으로 청정한 자태를 담아냈다. 화훼영모화가 인기 있었던 이유는 사물들이 지닌 의미에 빗대 많은 메시지를 담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잉어는 등용문을 뜻하니 과거에 급제해 출사하라는 뜻을, 모란은 부귀영화를 기원하는 등 문화적 의미를 지닌다. 김홍도의 ‘황묘농접’(黃猫蝶·노란 고양이가 나비를 놀리다)은 화창한 봄날 뜰에 있던 주황빛 고양이가 패랭이꽃을 보고 날아든 검푸른 제비나비를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순간을 포착한 그림이다. 평화로운 전원 풍경을 담은 이 그림에는 ‘일흔, 여든이 되도록 청춘을 누리며 뜻하는 대로 이뤄지소서’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전시는 내년 3월 27일까지. (02)2153-0608.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간송문화재단 동식물 소재 동양화 걸작 선보인다

    간송문화재단 동식물 소재 동양화 걸작 선보인다

     ‘내 지금 생물을 바라보며 하늘의 마음을 보았노라.’(我今觀物見天心)  조선 전기의 뛰어난 문장가인 매계(梅溪) 조위(曺偉)의 시에 나오는 구절이다. 우리 선조들은 꽃과 새, 곤충과 물고기들을 자연의 일부인 동시에 우주 만물의 섭리가 함축된 존재로 인식했다. 보고, 기르고, 나아가 글과 그림으로 옮겨 내면서 자연과 생명의 오묘한 이치를 터득하고 자신의 성정을 함양하고자 했다.  간송문화재단이 수장 작품 중에서 동식물을 소재로 한 전통 회화작품들을 시기별로 선별해 ‘화훼영모-자연을 품다’전을 서울 동대문 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고 있다. 화훼영모(花卉翎毛)란 꽃과 풀, 날짐승과 길짐승을 가리킨다. 서울 성북구 성북동 간송미술관에서 1년에 두번씩 열던 소장품전을 DDP 개관과 함께 대중 속으로 들여온 뒤 여는 다섯 번째 기획전으로, 그림을 통해 시대 정신과 기법의 차이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이번 전시에는 오세창 선생이 화첩으로 만들어 소장하던 고려 공민왕(1330~1374)의 ‘이양도’(二羊圖)부터 조선왕조 말기의 이도영(1884~1933)이 그린 ‘백령식록’(百齡食祿)까지 550년의 기간 동안 각 시기를 대표하는 거장들의 작품 90여점이 출품됐다.  한국민족미술연구소 백인산 연구실장은 “선조들은 동식물들을 통해 도덕적 이상과 더불어 무병장수나 입신출세, 부귀영화 등과 같은 현세적 욕망을 담아내곤 했다”며 “시대별 화법의 변화와 각 소재들이 담고 있는 상징, 문화적 코드를 맞춰 가며 읽으면 더욱 재미있게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고려 말 조선 초 주자성리학의 도입과 정착 시기에는 중국 남방 화풍의 강한 영향을 감지할 수 있다. 출품작 중 김안로의 막내아들 김시(1524~1593)가 그린 ‘야우한와’(野牛閒臥)에서 보듯이 배경은 우리 산수지만 소는 남중국의 물소다. 주자와 송설이 남중국 출신이라는 점과 무관치 않다는 해석이다. 16세기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가 조선성리학을 이뤄내면서 그림에도 진경산수화가 출현하고 화훼영모화의 소재로 우리 주변의 동식물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화훼영모화는 진경시대에 이르러 겸재 정선(1676~1759)에 의해 독자적 사생 기법이 완성되고 현재 심사정(1707~1769)이 시도한 조선남종화풍으로의 반전을 거쳐 조선 고유색이 다양한 형태로 극대화된다. 패랭이꽃이 피어 있고 참개구리와 나비가 모여든 한여름의 오이밭 풍경을 담은 ‘과전전계’(瓜田田鷄·오이밭의 참개구리)는 진경산수화의 대가 정선이 70대 후반에 그린 그림이다. 겸재풍의 사생 기법을 계승한 변상벽(1730~1775), 김홍도(1745~1806), 김득신(1754~1822)에 의해 절정에 이른다. 표암 강세황(1713~1791), 추사 김정희(1786~1856)는 청조문인화풍의 함축된 생략 기법을 화훼영모에 도입했다. 조선 말기에 이르면 문화 노쇠 현상과 맞물려 사생력이 후퇴하고, 화려하고 장식적인 측면이 부각된다.  옛사람들은 진흙 속에서도 화사한 꽃을 피우는 연을 보고 세속에 물들지 않는 고고한 군자를 떠올렸다. 시서화 삼절로 명성이 높았던 강세황의 ‘향원익청’(香遠益淸·향기는 멀수록 맑다)은 두 포기의 연으로 청정한 자태를 담아냈다. 화훼영모화가 인기 있었던 이유는 사물들이 지닌 의미에 빗대 많은 메시지를 담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잉어는 등용문을 뜻하니 과거에 급제해 출사하라는 뜻을, 모란은 부귀영화를 기원하는 등 문화적 의미를 지닌다. 김홍도의 ‘황묘농접’(黃猫弄蝶·노란 고양이가 나비를 놀리다)은 화창한 봄날 뜰에 있던 주황빛 고양이가 패랭이꽃을 보고 날아든 검푸른 제비나비를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순간을 포착한 그림이다. 평화로운 전원 풍경을 담은 이 그림에는 ‘일흔, 여든이 되도록 청춘을 누리며 뜻하는 대로 이뤄지소서’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전시는 내년 3월 27일까지. (02)2153-0608.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개막] 서울국제뮤직페어, 단원미술제, ‘서울시 생활권계획’ 참여단 전시회

    ● 2015 서울국제뮤직페어가 6일 오후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공식 개막 행사와 콘퍼런스 기조연설을 시작으로 막을 올린다. 올해로 4회째를 맞은 이번 행사는 오는 8일까지 사흘간 열린다. ●제17회 단원미술제가 오는 9∼31일 안산시 단원구 성포동 단원미술관 등에서 열린다. 행사는 미술제 공모작가 작품전시, 연예인 초청공연, 미술관 음악회 등 다채롭게 진행된다. 9∼10일에는 김홍도의 그림을 주제로 현대와 전통이 조화된 체험 프로그램 ‘김홍도 사진관’, ‘어린이 놀이마당’이 펼쳐지며 노적봉폭포공원 둘레길에서는 9∼16일 야외특별전이 열린다. 오는 10∼25일에는 작가와 함께 하는 미술워크숍이 개최된다. 자세한 내용은 단원미술관 홈페이지(www.danwon.org)를 참고하면 된다. ●서울시는 주민이 참여해 지역생활권의 발전방향과 전략을 마련하는 ‘서울시 생활권계획’의 참여단 활동 모습과 결과를 소개하는 전시회를 6∼9일 시민청에서 연다. 서울시 생활권계획은 도심권과 동북권, 서북권, 서남권, 동남권 등 5개 권역을 116개 지역생활권으로 세분해 각 지역생활권의 발전 방향과 전략을 마련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공간계획을 수립하는 것이다. 지난해 22개 시범 지역생활권에서 913명의 주민이 참여해 워크숍을 열었으며 올해도 약 3000여명의 주민이 참여해 139차례의 워크숍을 열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서울 핫 플레이스] 요리 보고~ 조리 보고~ ‘둘리’ 집에 놀러와요

    [서울 핫 플레이스] 요리 보고~ 조리 보고~ ‘둘리’ 집에 놀러와요

    서울의 최북단 도봉구. 도봉에는 연간 1000만명이 찾는 도봉산이 있다. 도봉구에는 ‘도봉산이 있고, 도봉산이 있고, 도봉산이 있다’고 할 만큼 도봉산만 있었다. 이 때문에 ‘도봉산을 타고 내려와 막걸리 한잔하고 돌아서면 땡인 동네’였다. 그러나 이동진 도봉구청장이 2010년 7월 취임한 뒤 구에 꼭꼭 숨어 있던 근현대 역사·문화 자원을 차근차근 발굴해 개발하면서 도봉은 온 가족이 즐길 만한 동네로 변모했다. ●‘조선 최고 부자·문화재 지킴이’ 간송 전형필 가옥 주말에 아이들과 함께 산도 타고 아빠·엄마의 어렸을 적 이야기도 들려주고 근현대사에 대한 교육도 하고 싶다면 ‘도봉역사관광문화벨트’를 추천한다. 먼저 북한산 둘레길을 가볍게 산책한 뒤 도봉산 옛길과 방학동길을 따라 쭉 내려오면 처음 만나는 곳이 간송 전형필의 가옥(시루봉로 149-18)이다. 간송은 1906년 종로4가에서 태어났다. 그의 증조부인 전계훈이 종로4가의 거의 모든 상권을 장악했고 왕십리, 답십리, 청량리까지 확장한 덕에 말 그대로 ‘금숟가락을 물고 나온 아이’였다. 일본 와세다대 유학생이던 그는 23살의 나이에 당대 최고 한학자로 불리는 위창 오세창 선생을 만나 민족 문화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24살 때 막대한 유산을 받은 뒤로 헐값에 일제로 흘러가던 우리 문화재를 사 모으게 된다. 간송이 사재를 털어 지킨 문화재는 훈민정음 해례본, 고려청자, 추사 김정희의 글씨, 겸재 정선과 단원 김홍도의 그림 등이다. 훈민정음 해례본은 기와집 10채 값을, 고려청자 20여 점은 기와집 400채 값을 치른 것으로 알려졌다. 복원된 가옥 옆에는 간송과 그의 아버지 전영기의 묘가 나란히 있다. 1900년대 초반 지어진 뒤 제대로 개·보수가 이뤄진 적 없었던 이 집은 2011년 이동진 도봉구청장이 산행 중 주민들과 함께 발견했다. 이후 구가 유족 등과 함께 문화재청에 문화재 지정신청을 한 뒤 최근에야 제 모습을 되찾았다. 간송 가옥의 첫인상은 “애걔” 하는 소리가 절로 나올 만큼 별 볼일이 없다. 조선 최고 부자가 살았다고 하기에는 안방과 마루, 사랑채로 구성된 구조가 너무 단출하다. 간송의 본가는 서울 종로이고 도봉의 집은 땅을 관리하기 위해 전국에 지어 놓은 집 중 하나였다고 한다. 간송 시절에 도봉은 경기도 땅이었다. 종로 본가와 다른 가옥은 한국전쟁 등을 거치며 다 소실됐고 현재 이 집만 남았다. 규모는 작지만 향나무와 소나무, 자작나무를 재료로 ‘한 일(ㅡ)’ 자로 지어진 집은 명문가답게 고풍스럽다. 간송 가옥 보수에 참여한 목수는 “돌을 놓는 방법은 물론 문 크기, 빛이 들어오는 방향 등이 조화를 이루도록 설계된 집”이라면서 “서울 명문 가옥의 축소판”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11일 정식 개관한 간송 전형필 가옥에선 앞으로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문화재 교육 프로그램도 운영될 예정이다. ●‘불온한 시인’ 김수영문학관선 낭독의 체험 전형필 가옥을 나와 정의공주와 연산군묘, 원당샘공원을 지나면 ‘불온한 시인’ 김수영의 문학관이 나온다. 김수영이 도봉 쪽에 살았나 갸웃할 것이다. 김수영은 한국전쟁 때 의용군으로 징집돼 북으로 끌려간 탓에 1952년까지 거제도 포로수용소 생활을 했다. 그리고 1954년 부인 김현경씨 등 가족과 재회한다. 이때 새 삶의 터전이 도봉동이다. 지하 1층~지상 4층 규모의 김수영문학관은 전시실과 수장고, 도서관, 동아리방 등으로 구성됐다. 전시실에서는 그가 펴낸 시집을 비롯해 작품 초고, 산문 원고, 번역서, 펜과 수첩, 서재 등을 볼 수 있다. 특히 김수영 시인의 시를 직접 낭독하고 들을 수 있는 체험관이 있어 눈길을 끈다. ●책 보고 노래하고… 엄마·아빠·아이들의 놀이터 ‘둘리 뮤지엄’ 이쯤 되면 아이들 입에서 “이게 뭐야! 하나도 재미없어” 소리가 나오기 시작할 가능성이 99.99%다. 이때 눈앞에 둘리와 도우너, 또치, 마이콜, 희동이가 짠! 하고 나타난다. 바로 지난 7월 개관한 둘리뮤지엄이다. 도봉구가 ‘둘리 아빠’ 김수정 작가와 힘을 합쳐 만든 이곳은 한국 최대의 캐릭터 박물관이다. 둘리가 살았던 고길동의 집이 도봉구 쌍문동이라는 점에 착안해 만든 어린이 문화시설이다. 1층에 들어서 아이들이 “둘리야” 하고 큰 소리로 외치면 빙하 속에 잠자는 둘리가 눈을 뜨면서 모험이 시작된다. 1층에서는 둘리의 극장판 ‘얼음별 대모험’의 이야기를 기반으로 도우너의 시간 여행 미끄럼틀과 우주버스 타기, 우주의 적 바요킹과의 대결 등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다. 바요킹을 무찌르고 나면 스튜디오에서 둘리와 함께 기념사진을 찍을 수도 있다. 2층은 둘리 연재 만화를 보고 자란 어른들도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2층은 2009년 새로 제작된 ‘고길동의 아마존 표류기’와 ‘둘리와 친구들의 저승행차’ ‘마법의 피라미드 여행’ ‘유령선 탈출기’ ‘알 수 없는 나라’ 등의 에피소드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각각 포토존이 있다. 캐릭터 전시 공간에 들어가면 둘리 소시지, 둘리 책가방, 둘리 필통, 둘리 물감 등 엄마·아빠가 초등학생 때 썼던 물건들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둘리뮤지엄의 수장고에는 이런 물품 1000여점이 보관돼 있다. 시설 관계자는 “키덜트들이 특히 좋아하는 공간”이라면서 “이곳을 보고 마이콜 뮤직스테이지로 가면 엄마와 아빠가 손을 잡고 ‘요리 보고~ 저리 보고~’ 하며 둘리 주제가를 열창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3층으로 올라가면 시계 그네와 정글짐 등 아이들이 몸으로 놀 수 있는 키즈카페가 마련돼 있다. 1, 2층에서 꼬마들을 데리고 다니느라 진을 뺀 부모를 위한 커피숍도 이곳에 있다. 몸으로 뛰놀기에 체력이 달리는 아빠들은 근처 어린이 도서관을 이용해도 좋다. 어른 5000원, 어린이 7000원을 받는 뮤지엄동과 달리 도서관은 ‘공짜’다. 현재 5000여권의 책을 소장한 어린이 도서관은 ‘숲속의 둘리’라는 주제로 꾸몄다. 아이들이 뒹굴면서 책을 볼 수 있다. 책의 종류도 둘리 성격에 맞춰 ‘공부’보다는 ‘놀이’와 ‘친구들과 잘 지내는 법’ 등에 맞춰 구비됐다. 어른들을 위한 만화책도 있다. 학교 때 만화방을 들락거렸다면 부모들도 심심하지 않다. 앞으로는 구연동화와 종이접기 등 다양한 프로그램도 진행할 예정이다. ●한적한 골목엔 ‘한국의 간디’ 함석헌 선생의 흔적 가득 둘리뮤지엄을 나와 정의여고 방향으로 걸으면 한적한 주택가가 나온다. 이 골목 한쪽에 ‘한국의 간디’ 함석헌 선생 기념관(쌍문동 도봉로 123길 33-6)이 있다. 생의 마지막 7년을 보낸 집을 수리해 기념관으로 만들었다. 1901년 평안북도 용천에서 태어난 그는 한국의 대표적 인권운동가이자 시인이자 철학자이자 종교인이다. 기념관에선 그의 책과 저서, 생활용품 등 유품 400여점과 생전 육성이 담긴 강의 테이프, 동영상 등을 만날 수 있다. 특히 지하 1층 세미나실은 게스트룸으로 이용할 수 있다. 함석헌기념관을 다 봤다면 주변 주택가를 한번 휙 둘러봐도 좋다. 기념관을 주변으로 초대 대법원장을 지낸 가인 김병로, 전태일 열사 등 한국 근현대사를 빛낸 쟁쟁한 인물들의 집터가 남아 있다. 김동현 기자 moses@seoul.co.kr
  • ‘문화 지킴이’ 간송의 혼 되살아난다

    2011년 10월. 주민들과 서울 도봉산 둘레길을 걷던 이동진 도봉구청장의 눈에 한옥 한 채가 들어왔다. 담장 위의 기와는 깨져 있고 훼손 부위가 많아 파란 천막으로 덮어 놨지만 그 생김 자체는 근엄하고 기품이 있었다. 이 구청장이 이상하다 싶어 어떤 집인지 물으니 지역 토박이 주민이 “간송 전형필 선생의 집인데 모양이 저렇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간송 전형필. 조선 말 당대 최고 부잣집에서 태어난 그는 사재를 털어 훈민정음 해례본, 고려청자, 추사 김정희의 글씨, 겸재 정선과 단원 김홍도의 그림 등 국보급 문화재를 일제가 강탈하는 것을 막았다. 이 구청장은 “문화재를 통해 민족의 정신을 지킨 간송의 가옥이 저렇게 방치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구는 먼저 유족과의 협의 과정을 거쳐 간송의 가옥을 문화재청에 문화재 지정·신청을 했고 2012년 12월 14일 국가문화재 521호로 지정됐다. 이어 1900년대 초 지어진 뒤 한번도 제대로 수리가 안 된 집을 고치기 시작했다. 특히 한국전쟁 때 소실된 대문과 일부 담장은 개보수가 시급했다. 이 구청장은 “본채와 부속 건물, 주변 담장의 원형을 되찾는 데 중점을 뒀다”면서 “주변은 공원으로 정비해 주민들이 이용할 수 있게 했다”고 설명했다. 앞으로 전형필 가옥에선 문화재청 문화유산 체험 교육 프로그램인 ‘생생문화재 사업’과 ‘도봉 역사문화 탐방길’ 등이 운영된다. 또 지역 주민과 시민을 위한 열린 문화 공간으로 개방하는 방안도 고민하고 있다. 구는 11일 오전 10시 30분에 간송 전형필 가옥 개관식을 연다고 7일 밝혔다. 김동현 기자 moses@seoul.co.kr
  • [여행 가방]

    [여행 가방]

    에버랜드 ‘해방둥이’ 무료입장 에버랜드는 광복 70주년을 맞아 ‘해방둥이’(1945년 출생자)와 배우자에게 16일까지 에버랜드 이용권과 식사, 음료를 무료로 제공한다. 또 이름에 ‘대한’, ‘민국’, ‘만세’, ‘광복’, ‘해방’ 중 하나가 들어간 사람도 같은 기간 에버랜드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신분증이나 홈페이지를 통해 내려받은 쿠폰을 지참해야 한다. 태권도 도복을 입은 사람도 동반 3인까지 에버랜드 이용권을 37% 할인받을 수 있다. 이 기간 경희대 태권도 시범단의 전통 태극 무예 공연 등도 열린다. 대명리조트 폴 인 어쿠스틱 축제 대명리조트가 주최하는 ‘폴 인 어쿠스틱 페스티벌’(www.fiafestival.com)이 9월 19~20일 비발디파크 잔디광장 특설무대에서 열린다. 여성 보컬리스트 박선주, 장혜진, 베이시스트 서영도, 트럼페터 안희찬, 일본의 재즈힙합 뮤지션 켄이치로 니시하라, 래퍼 버벌진트 등의 라인업으로 구성됐다. 티켓 가격은 1일권 4만원, 2일권 6만원. 인터파크(1544-1555)에서 예매할 수 있다. 휘닉스파크 22일부터 꽃차대전 강원 평창의 휘닉스파크가 22~23일 제 2회 대한민국 산야초 꽃차대전을 연다. 전국 꽃차 전문가 100여팀이 참가해 각자 준비한 꽃차를 선보이며 열띤 경연을 펼친다. 출품된 꽃차들은 22일 오후 2시부터 밤 8시까지, 23일 오전 9시부터 정오까지 휘닉스파크 더 호텔 2층 그랜드볼룸에서 일반에 공개된다. 입장료는 없으며 꽃차 관람과 시음이 가능하다. 단원 김홍도의 자손인 담원 김창배 작가의 한국화 전시도 함께 진행된다. 휘닉스파크는 이 기간 가족단위 방문객을 위해 꽃 향기 방향제 만들기, 압화 공예 체험 등의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슬로프 정상의 하늘정원 등 슬로프 곳곳에 벌개미취들이 만개하기 시작했다. 토종 야생화인 벌개미취는 메밀꽃과 더불어 강원 지역의 명물로 꼽힌다.
  • 어, 이건 못 보던 조선 풍속화네

    어, 이건 못 보던 조선 풍속화네

    윤두서, 신윤복, 김홍도 등의 풍속화는 조선시대 농민, 상인, 대장장이, 아낙네 등 백성들이 밭 갈고, 술 마시고, 드잡이하며 지내는 모습 등 흥겨우면서도 힘겨운 삶의 여러 단면을 엿보게 했다. 번듯한 역사책에는 적어 놓지 않은, 역사책 바깥의 도저한 삶을 담아낸 생생한 기록물이 됐다. 그렇다고 높은 양반님네들이라고 자신의 소소한 일상이나 의미 있는 모임, 흥겨운 술자리 등을 기록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조선시대의 삶, 풍속화로 만나다’(다섯수레 펴냄)는 흔히 알려진 서민 풍속화와 함께 임금과 관료들의 삶을 그린 관인(官人) 풍속화, 선비들의 삶을 담아낸 사인(士人) 풍속화를 소개한다. 조선시대 여러 계층의 다양한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했다. 이러한 풍속화 역시 역사책 줄 사이사이 빈 공간을 메우는 기록물의 가치를 담고 있음은 물론이다. 예컨대 청계천 물길 트는 작업을 둘러보는 영조의 모습은 ‘수문상친림관역도’(1760)로 남았고, 과거에 합격한 동기생들끼리 모여 각자 기녀들을 옆에 앉혀 놓고 술 마시며 연회를 즐기는 모습은 ‘희경루방회도’(1567)로 기록됐다. 70세 이상의 노모를 모신 13명의 관료가 연 부모의 장수 축하연은 ‘제재경수연도’(18세기)로 담아냈다.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스스로 붙인 이름, 선비의 혼 담다

    스스로 붙인 이름, 선비의 혼 담다

    호(號), 조선 선비의 자존심/한정주 지음/다산초당/704쪽/2만 9700원 조선시대 선비들은 세 개의 이름을 썼다고 한다. 태어날 때 부모가 붙여주는 ‘명(名)’과 성인이 된 뒤 윗사람이 붙여주는 ‘자(字)’, 그리고 자신이 지어 부르는 ‘호(號)’가 그것이다. 명과 자와는 달리 호는 본인이 직접 지은 이름이기 때문에 그 사람의 삶과 생각을 가장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호, 조선 선비의 자존심’은 조선시대 선비 이름 ‘호’에 담긴 의미를 통해 조선시대의 사람들과 사회를 들여다보고 있어 흥미롭다. 선비의 호는 연고 있는 지명이나 좋아하는 사물에서 딴 게 대종을 이룬다. 이이의 ‘율곡(栗谷)’과 박지원의 ‘연암(燕巖)’, 정철의 ‘송강(松江)’이 그것들이다. 조선시대 기호사림의 태두인 이이의 호 ‘율곡’에 얽힌 이야기는 아주 새삼스럽다. 이이의 연고지라면 많은 사람들이 강릉 오죽헌을 떠올린다. 하지만 정작 이이의 삶과 철학의 주 무대는 경기도 파주 파평면의 ‘율곡(밤골마을)’이었음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그 밤골마을은 19세가 되는 해 성혼을 만나 도의지교(道義之交)를 맺은 곳이다. 임금이나 조정에서 자신의 뜻을 수용하지 않을 때 물러나 거처했던 땅이기도 하다. 삶의 고비 때마다 몸을 의탁했던 힐링의 장소였다고 할까. 사랑하는 어머니이자 유일한 스승이었던 신사임당이 묻힌 곳이자 자신과 후손들이 사후 몸을 눕힐 영면의 땅이었으니 이이가 첫 번째 호로 택한 게 당연해 보인다. 이황의 ‘퇴계(退溪)’에 얽힌 사연도 비장하다. 이황은 성균관, 호조, 홍문관, 춘추관, 사헌부 등 60여개의 중앙관직을 두루 역임했지만 마음을 벼슬에 두지 않아 병을 이유로 사직했다가 임금이 부르면 어쩔 수 없이 나아가기를 거듭했던 인물이다. 46세 때 부인이 사망하자 작정하고 고향인 경북 예안현(지금의 안동) 온계리로 귀향해 양진암을 짓고 거처했다. 고향 온계리에 흐르는 ‘토계’라는 시내 이름을 ‘퇴계’로 바꿔 자신의 호로 삼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평생 품고 살았던 물러날 ‘퇴(退)’자를 행동으로 옮겼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당시 이황은 ‘퇴계’라는 제목의 시문까지 짓고 호에 ‘물러날 퇴’자를 쓴 이유를 설명했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김시습의 ‘매월당(梅月堂)’이나 김홍도의 ‘단원(檀園)’, 돌 깎는 것을 좋아해 ‘돌에 미친 바보’라는 정철조의 ‘석치(石痴)’처럼 취향을 호로 삼거나 강세황의 ‘표암(豹菴)’처럼 생김새를 담은 경우도 적지 않다. ‘어우야담’으로 유명한 유몽인은 ‘쓸데없는 소리로 사람들을 현혹한다’면서 희화화한 ‘어우당(於于堂)’ 호를 썼다. 책이 가장 많은 부분을 할애한 건 역시 조선시대를 지탱한 선비의 꼿꼿한 삶과 정신이다. 정조 이산의 호 ‘홍재(弘齋)’와 정약용의 ‘여유당(與猶堂)’은 대표적이다. 정조는 왕위에 오른 뒤 왕세손 시절 호에 새긴 ‘홍(弘)’자의 뜻처럼 넓은 도량으로 정적들을 상대한 것으로 유명하다. 임금이 되자 가장 먼저 자신을 ‘노론 세력이 역적으로 몰아 죽인 사도세자의 아들’임을 밝히고도 어머니를 죽였다고 왕실과 조정의 대신들을 몰살하다시피 한 연산군처럼 피의 복수를 하지 않은 것이다. “내 병은 내가 스스로 잘 안다. 결단력이 있으나 꾀가 없고 선(善)을 좋아하지만 가릴 줄을 모른다. 마음 내키는 대로 즉시 행동하며 의심할 줄도 두려워할 줄도 모른다”고 스스로 말했던 정약용은 어떤가. 흔히 ‘다산(茶山)’의 호로 더 유명한 정약용은 ‘다산시문집’ 여유당기에서 여유당 호를 쓴 이유를 이렇게 적고 있다. ‘나는 노자의 이런 말을 본 적이 있다. 신중하라 겨울에 시냇물을 건너듯. 경계하라 사방의 이웃을 두려워하듯. 이 두 마디는 참으로 내 병을 고치는 약이 아닌가 싶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재계 인맥 대해부 (4부)뜨고 지는 기업&기업인 대성그룹] 독실한 기독교 가문에 자유연애… 종교만남서 인연 맺은 혼맥

    [재계 인맥 대해부 (4부)뜨고 지는 기업&기업인 대성그룹] 독실한 기독교 가문에 자유연애… 종교만남서 인연 맺은 혼맥

    독실한 기독교 가문인 대성그룹의 혼맥은 종교적인 만남 속에 인연을 찾은 경우가 많다. 정략결혼보다는 비교적 자유로운 연애 속에 때때로 실속 있는 재계 간 혼사들이 이어진다. 대성그룹 창업주 고 해강(海崗) 김수근 명예회장은 1916년 대구에서 부친 김두윤(작고), 모친 기묘임(작고)의 3형제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유복한 지주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10세 때 아버지를 여의면서 가세가 기울었다. 대구상고를 중퇴하고 당시 일본 기업이었던 삼국석탄 대구지점에 취직했다. 이후 1940년 일본 유학길에 올라 일본대학 법학부를 수석 졸업했다. 7세 연하인 여귀옥(작고) 여사와는 26세인 1942년에 결혼했다. 여 여사는 대구 남산교회에서 만났다. 모친 기씨의 마음에 든 여 여사는 당시 신명여고를 졸업해 평양여자신학교를 수료한 명망가 집안의 고명딸이었던 터라 김 명예회장은 결혼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여 여사는 세계기독교여자절제회 한국지부 회장을 맡기도 했다. 59년간 동고동락했던 부부는 2001년 김 명예회장이 세상을 뜨고 5년 뒤 여 여사도 생을 마감하면서 하늘의 연으로 이어졌다. 두 사람은 4남 3녀를 뒀다. 4남 영철씨는 1973년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6남매는 전원 명문대 졸업에 2개 이상 석사 학위 소지자여서 자식 농사를 잘 지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장남 영대(법학과 수석 졸업), 차남 영민(사학과), 3남 영훈(행정학과), 장녀 영주(미대)씨는 모두 서울대 출신이다. 차녀 정주씨는 이화여대 영문학과(수석 입학·졸업), 3녀 성주씨는 연세대 신학과와 미국 애머스트대 사회학과를 나왔다. 장남 김영대(73) 대성산업 회장은 어머니 친구의 소개로 1971년 검사 출신 변호사 차영조 변호사의 딸 정현(66)씨와 혼사를 맺었다. 정현씨는 서울대 음대에서 피아노를 전공했다. 두 사람 사이에는 정한, 인한, 신한씨 3형제가 있다. 장남 김정한(43) 라파바이오 사장은 1997년 서울 덕수교회에서 대원외교 동창인 전성은(42)씨와 화촉을 밝혔다. 전씨는 뉴잉글랜드 음대를 졸업하고 예일대 음대에서 석사 과정을 마쳤다. 그녀의 부친 전경호 서한모방 회장은 김 회장과 경북사대부고 동창이다. 둘은 1남 1녀를 뒀다. 고려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차남 김인한(42) 콜로라도대 정치학과 교수는 대학 캠퍼스 커플이다. 평범한 가문의 같은 과 후배인 이내리(37)씨와 2002년 서울 덕수교회에서 결혼했다. 두 사람 사이에는 아들이 둘 있다. 3남 김신한(40) 대성산업가스 사장은 미국 유학 중 지인의 소개로 만난 한조희(34)씨와 신앙생활을 함께하며 1년간 교제하다 2006년 서울 온누리교회에서 간소하게 결혼식을 올렸다. 한씨는 주유소업체 중앙에너비스 한상렬 사장의 딸이다. 한씨는 결혼 3개월 전인 그해 3월 창업주의 미망인이자 시조모인 여 여사의 상중일 때부터 대성가 며느리 역할을 해 온 것으로 전해졌다. 두 사람은 세 아들을 낳았다. 차남 김영민(70) 서울도시가스 회장은 1979년 친지의 소개로 서울대 성악과를 나온 민명옥(65)씨와 백년가약을 맺었다. 민씨의 부친은 민유봉 전 유화증권 사장이다. 김 회장 부부는 은혜(35), 요한(33), 종한(26)씨 등 2남 1녀를 뒀다. 장남 김요한 서울도시가스 부사장만 결혼했다. 3남 김영훈(63) 대성그룹 회장은 1993년 박영창 목사의 소개로 김홍도 금란교회 목사의 차녀인 김정윤(46)씨와 결혼했다. 두 사람은 17살 차이를 극복하고 사랑에 성공했다. 슬하에는 의한(21), 은진(18), 의진(15)과 늦둥이 은정(5) 등 1남 3녀가 있다. 김영훈 회장은 경기고 동문인 김한(61) 광주은행장과 서울대 동창인 신희택(63) 서울대 법대 교수와 절친한 사이다. 장녀 김영주(67) 대성그룹 부회장은 1975년 서울대 의대 출신의 내과 전문의 신현정(70)씨와 연을 맺었다. 신씨는 개인병원을 운영한 뒤 현재 그룹 계열사인 대성에너지 제1·2·3서비스 사장으로 일하고 있다. 두 사람 사이에는 신정희(40), 신명철(38)씨 등 1남 1녀가 있다. 벤처사업 캐피탈을 하고 있는 장남 신명철 킹스베이캐피탈 공동 창업자는 변호사 권순혜(34)씨와 결혼해 온유(5), 민유(2) 두 딸을 두고 있다. 권씨는 호주 퀸즐랜드대 법학과를 나온 호주 변호사로 전 이건산업 사장이었던 권주혁 동원그룹 상임고문의 딸이다. 김 부회장은 화가이자 인테리어 디자이너이기도 하다. 차녀 김정주(66) 대성홀딩스 공동대표이사는 하버드대 신약학 박사 출신으로 2013년까지 연세대 신학대에서 신약학을 강의했다. 지금은 대성그룹 계열사인 출판사 대성도 운영하고 있다. 세계기독교여자절제회 수석부회장으로 독신이다. 막내딸은 대한적십자사 총재인 김성주(59) 성주그룹 회장이다.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단원풍속도 등 공공저작물 200만여건 온라인에 푼다

    정부가 만든 공공저작물 200만건이 올해 추가로 개방된다. 문화체육관광부는 14일 “김홍도의 단원풍속도첩과 감산사 석조아미타불입상 등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개방한 국보, 보물 등 중요 소장품 1만 936점과 문화재청의 문화유물 사진 등을 비롯한 200만건의 공공저작물을 공공누리포털(www.kogl.or.kr)에 개방할 예정”이라며 “지난해 저작권법 개정 이후 공개한 293만 3000건에 더해 개방된 공공저작물은 500만건에 이를 것”이라고 밝혔다. 서울시 역시 공공저작물 26만 5000여건을 개방했고, 올해 추가로 46만여건을 개방할 예정이다. 2013년 문체부의 현황 및 수요 조사에 따르면 정부와 공공기관 홈페이지에 게재된 공공저작물은 760만여건에 이른다. 이것이 모두 개방될 경우 경제적 효과는 2조 8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됐다.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양꿈 꾸고 나서 임금 되고…영물로 여겨 악 쫓는 상징

    양꿈 꾸고 나서 임금 되고…영물로 여겨 악 쫓는 상징

    태조 이성계는 양 꿈을 꾸고 임금이 되었다. 이성계는 초야에 묻혀 지내던 시절 양 꿈을 꿨는데, 꿈속에서 양을 잡으려 하자 뿔과 꼬리가 몽땅 떨어져 나가 깜짝 놀라서 꿈을 깼다. 무학대사를 찾아가 꿈 얘기를 했더니 곧 임금이 될 것이라고 해몽했다. 한자 ‘羊’(양)에서 양의 뿔에 해당하는 ‘??’획과 양의 꼬리에 해당하는 ‘ㅣ’획을 떼고 나면 ‘王’자만 남게 돼 곧 임금이 된다는 것이다. 이후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면서 양 꿈은 길몽으로 해석됐다. 양은 옛날 제왕의 꿈이었다. 양과 연관된 한자들도 제왕이 갖춰야 할 덕목과 닿아 있다. 큰 양을 뜻하는 대양(大羊) 두 글자가 붙어 아름답다는 뜻의 미(美)자가 되고, 나(我)와 만나면 옳을 의(義)자가 된다. 선함(善), 상서로움(祥) 등 양과 어우러진 한자는 대부분 좋은 뜻을 담고 있다. 양은 십이지의 여덟 번째 동물이다. 시간으로는 오후 1~3시, 달로는 6월에 해당하는 시간신이다. 방향으로는 남남서를 지키는 방위신이다. 양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순박하고 어질고 인내심 많은 동물로 통한다. 성질이 온순해 무리를 지어 살면서도 우위 다툼을 하지 않고 암컷을 독차지하려는 욕심도 부리지 않는다. 순한 눈망울은 평화를 연상케 한다. 반드시 가던 길로 되돌아오는 고지식한 정직성도 있다. 무릎을 꿇고 젖을 먹고 늙은 아비 양에게 젖을 빨리며 봉양해 은혜를 알고 효심을 일깨우는 동물이기도 하다. 다만 일단 성이 나면 참지 못하는 다혈질적인 면도 있다. 속담, 설화 등에 등장하는 양도 이런 특징을 잘 반영하고 있다. ‘아무리 못된 시어머니라도 양띠 해엔 딸을 낳아도 며느리를 구박하지 않는다’는 속설은 양이 지닌 효의 이미지에서 비롯됐다. ‘양띠는 부자가 못 된다’는 속담은 양띠 사람은 양처럼 너무 정직하고 정의로워 부정을 참지 못하는 맑은 성품에 근거한다. 낙랑·삼국·고려·조선 등 옛 출토유물과 조각, 그림 등에서 만나는 양의 모습도 마찬가지다. 석암리 낙랑 고분에서 출토된 양 모양의 패옥(佩玉)과 청동제 꽂이장식, 법천리 백제 무덤에서 발굴된 양 모양 청자, 수락암동 고려 고분의 양 벽화, 고려 공민왕(恭愍王)의 ‘2양’(二羊) 등은 모두 벽사와 길상을 상징하고, 위기를 만나도 당황하지 않고 여유와 멋을 느끼게 하는 평화스러운 면모를 드러낸다. 조선시대 그림 중에는 단원 김홍도 등이 그린 ‘금화편양도’(金華鞭羊圖)가 백미다. 어질고 착한 소년 황초평이 신선이 돼 금화산에서 양을 친다는 내용의 ‘황초평전’(黃初平傳)을 소재로 그린 그림이다. 채찍을 들고 있는 소년 ‘황초평’ 뒤로 흰 양들이 따르고 있다. 신선이 된 황초평은 기독교 성화에 나타난 양 치는 선한 목자 예수 이미지와 흡사하다. 사람이 양을 기르기 시작한 것은 약 1만년 전으로 알려졌다. 기원은 불확실하지만 중앙아시아 고원지대에서 유목민들에 의해 가축으로 길들여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양은 유목민들에겐 없어서는 안 될 동물이지만 농경민족인 우리와는 큰 인연이 없다. 옛 사람들은 양띠를 생김새가 비슷한 염소띠로 바꿔 부르기도 했다. 이런 이유로 양과 관련된 옛 기록은 비교적 적다. 삼한시대에 양을 식용으로 썼다거나 고려 정종 때 개성 근처에서 왕실의 식용으로 양을 길렀으나 사료가 많이 들어 섬으로 귀양 보냈다는 얘기 정도가 남아 있을 뿐이다. 서양도 양을 인간의 이로움을 위해 희생하고자 태어난 동물로서 높은 경지의 도덕성과 생생한 진실을 상징한다고 봤다. 그래서 선량한 사람이나 성직자에 비유되기도 했다. 기독교 문명의 뿌리인 성경에는 양 이야기가 500번 이상이나 인용된다. 속죄양(贖罪羊)이라는 말이 있다. 양이 일찍부터 영험한 동물로 여겨져 제물로 사용된 데서 유래됐다. 동양에서 양은 소·돼지와 함께 제물로 쓰였고, 시대에 따라선 성수(聖獸)로까지 떠받들어졌다. 양 뼈는 인간의 길흉화복을 점치는 영물로 간주되기도 했다. 양의 가죽 옷은 제후나 대부 등 높은 신분의 사람만이 입을 수 있었다. 서양에선 예수가 십자가에서 처형된 뒤 양을 제물로 삼는 번제(燔祭)가 없어졌다. 천성이 착하고 제물로 희생되는 양의 속성이 우리 민족에 비견되기도 했다. 구한말 지사 김종학 선생은 ‘흰빛을 좋아하는 우리 선조는 심약하기 이를 데 없는 산양떼를 빼닮아 오직 인내와 순종으로 주어진 운명에 거역할 줄 모르니…, 슬프다 양떼들이여!’라고 통탄했다. 천진기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관은 “양은 희생, 재물, 종교인, 선량한 사람 등을 의미한다”며 “예부터 양띠 해는 그해의 수호신이라 할 양의 성격을 닮아 평온하고 평화로운 한해가 될 것이라고 믿었다”고 설명했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진경산수화로 유람하는 조선의 산천

    진경산수화로 유람하는 조선의 산천

    조선시대에는 중국의 유명 화가들이 그린 작품을 최대한 비슷하게 따라 그리는 것을 최고의 배움이요 재능으로 여겼다. 하지만 아무리 잘 그린들 그것은 중국의 산이요 강이었다. 17세기 조선성리학의 토대가 확고해지면서 우리의 강산을 우리 고유의 시각문화로 담아야 한다는 움직임이 일었고 이는 시대의 문화를 특징 짓는 주된 흐름이 된다. 우리 국토 안에 있는 진짜 경치(眞景)를 사생해 내는 진경산수다. 진경산수는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가 토대를 마련한 조선의 성리학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다. 율곡학파가 주도하고 퇴계학파가 동조해 인조반정이 성공한 이후 우리 산천과 삶의 풍경에 자주적 정신과 자연관을 접목한 진경산수화의 서막이 열린다. 하지만 제대로 화법을 창안하고 이를 완성해 진경시대 문화를 연 것은 겸재 정선(1676~1759)이다. 주역에 밝은 문인화가였던 겸재는 주역의 음양조화와 음양대비의 원리를 토대로 진경산수화법을 창안했다. 중국 남방화법의 기본인 묵법으로 음인 흙산을 표현하고 북방화법의 기본인 필법으로 양인 바위산을 표현했다. 중국에서는 대립적으로 발달해 온 남북 화법을 이상적으로 조화시켜 우리 산천의 표현에 가장 알맞도록 만들어 낸 획기적인 화법이었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배움터 2층 디자인박물관에서 간송미술문화재단의 소장품을 주제별로 묶어 소개해 온 간송문화전의 세 번째 전시 ‘진경산수화-우리 강산, 우리 그림’전은 진경산수화의 진수를 감상할 수 있는 보기 드문 기회다. 겸재와 그 뒤를 잇는 현재 심사정, 단원 김홍도, 진경산수의 정신과 화풍을 발전시킨 조석진, 안중식, 노수현 등 조선시대 화가 21명의 작품 90여점을 한자리에 모았다. 이번 진경산수화전에는 겸재 59세 때의 작품인 경북 울진의 명승 ‘성류굴’부터 84세로 세상을 떠나기 얼마 전에 그린 것으로 여겨지는 ‘금강대’까지 출품된다. 우리 국토에서 명승지로 꼽히는 금강산과 관동팔경, 단양팔경, 서울 주변의 경교명승, 박연폭포 등이 포함된다. 한국민족미술연구소 백인산 연구실장은 “진경은 조선성리학이라는 고유이념을 바탕으로 움터오는 조국애와 국토애의 발현현상이었다”면서 “절묘하게 남북화법을 조화시킨 기법으로 우리 산천의 특징을 담아낸 겸재의 진경산수화들을 연대별로 유의하며 보면 진경산수화법의 변화과정을 확연히 구분해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겸재는 36세 때 금강산 초입의 금화현감으로 있을 때 진경시의 대가인 사천 이병연과 함께 스승인 삼연 김창흡을 모시고 금강산을 처음 여행한다. 이때 완성된 시화첩 ‘해악전신첩’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겸재는 당대 제일의 화가로서의 명성을 얻게 된다. 그로부터 36년이 지나 72세가 된 겸재는 그곳을 다시 찾아 무르익은 솜씨로 ‘금강내산’을 그렸다. 비로봉을 정점으로 내금강 1만 2000개 화강암봉을 부채꼴 모양으로 펼쳐놓아 막 피어나는 백련꽃 봉우리처럼 화면을 구성했다. 평생을 수련하며 독자적인 진경산수화풍의 완성에 매진한 그가 노년기에 터득한 우주 자연의 섭리를 풀어낸 명작이다. 비슷한 시기에 그린 ‘단발령망금강’, 봄의 금강산 경치를 그린 ‘금강전도’, ‘만폭동’ 등은 필묘법과 묵묘법을 적절히 조화해 그린 진경산수화풍의 전형적인 작품들이다. 겸재는 말년에 이르러 장식적인 요소를 모두 걷어내고 극도로 추상화된 진경산수화법으로 그려낸다. ‘금강대’는 겸재 만년 특유의 대담한 필법을 보여 주는 작품이다. 겸재 다음 세대인 현재 심사정, 능호관 이인상, 진재 김윤겸, 단릉 이윤겸 등 사대부 화가들은 겸재의 영향으로 진경산수화를 각자의 기법으로 완성한다. 진경 말기에 이르면 단원 김홍도, 고송유수관 이인문, 긍재 김득신 등 화원화가들이 배출돼 겸재의 진경정신을 계승한다. 특히 김홍도는 정조의 왕명을 받들고 강원도 영동 9군의 명승을 사생해 돌아오는데 세련된 필법으로 섬세하고 충실하게 묘사해 겸재와는 또 다른 흥취를 자아낸다. 이번 전시에는 진경 문화가 부정당하기 시작하는 북학시대에 그려진 이방운, 윤제홍, 김기서, 조정규, 허유 등 진경정신을 상실한 산수화와 국망기에 활동한 김영, 조석진, 안중식 등의 작품들이 함께 걸렸다. 밝은 인공조명과 현대적인 공간의 생김새 탓에 고미술의 느낌이 반감되는 게 흠이지만 작품에만 집중하면서 진경문화의 실체와 시대별 진경산수화의 특징을 비교 감상하면 큰 공부가 된다. 전시는 내년 5월 10일까지. 입장료는 성인 8000원, 학생 4000원. 1644-1328.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김홍도·신윤복의 화실 속에 머물다

    김홍도·신윤복의 화실 속에 머물다

    붉은색 커튼 뒤로 보라색 카펫이 깔린 근사한 살롱이 있다. 방 주인은 물감이 묻은 붓을 테이블에 놓고 잠시 자리를 비운 듯하다. 누구의 방인가? 경대 속에 비친 그림을 자세히 보니 김홍도의 자화상인 ‘포의풍류도’다. 방에는 자화상 속에 등장하는 비파, 생황, 거문고 등 악기가 놓여 있다. 원래 한 폭으로 그려진 ‘군선도’가 세 부분으로 나뉘어 좌우, 그리고 안쪽에 있는 방 가운데에 놓여 있다. 화가 남경민이 구성해 본 김홍도의 화방 모습이다. ●새달 19일까지 안국동 사비나미술관에서 전시 그동안 서양 대가의 작업실을 자신만의 상상력으로 재구성해 화폭에 담아 온 작가는 서울 종로구 안국동 사비나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개인전 ‘풍경 속에 머물다’에선 김홍도, 신윤복, 정선, 신사임당 등 조선시대 대표 화가들의 작업실을 소재로 작업의 스펙트럼을 확장하며 새로운 변화를 추구한다. 선명한 색상, 한국 민화처럼 그림자를 생략한 평면적인 화법이나 전통적 표현 방식, 그림 속에 단골로 등장하는 창밖의 풍경과 오브제들은 작가의 독특한 미학을 보여 준다. 작가는 시공간을 초월해 초현실적인 공간에서 옛 거장들의 내면을 보여 주고 있다. 고증과 사료를 바탕으로 화가의 방을 재현하는 데 머물지 않고 적극적으로 그림에 개입한 흔적을 남긴다. 소담스러운 분홍색 작약이 한가운데 놓인 작품 ‘초대받은 N- 김홍도 화방을 거닐다’에서는 김홍도가 즐겨 연주했던 악기들과 스승인 강세황의 책 등을 테이블에 놓았다. 하지만 안쪽 방에 놓인 테이블에는 작가 자신의 붓, 에스프레소커피 주전자를 올려놓는가 하면 기다란 의자 위엔 작가에게 각별한 의미를 부여한 해골과 날개를 그려 넣었다. 남경민의 다른 그림에서도 자주 보이는 한쪽 날개는 예술가로서의 꿈을, 해골은 죽음 자체보다는 작가 자신을 돌아보고 성찰하는 도구를 각각 의미한다. 창밖의 풍경은 동양인지, 서양인지, 지상인지, 낙원인지 불분명하다. 신윤복의 방은 분위기가 또 다르다. ‘신윤복 화방-화가 신윤복에 대한 생각에 잠기다’에는 세련된 올리브색 커튼을 걸었고 고아한 자태와 진한 향기를 내뿜는 백합을 놓았다. 그런가 하면 자연을 벗 삼아 은둔한 정선의 방은 지적인 분위기를 내려고 차분한 색채를 사용했다. 정선이 은둔한 거처에서 보이는 바깥 풍경과 그 풍경을 담은 정선의 그림, 그리고 그 풍경을 작가가 현대적으로 재현한 그림 등을 마치 틀린 그림 찾기라도 하듯 한 화면에 배치했다. ‘책가도-숭고함에 대한 환영’에서는 가야왕관, 금동관음보살 좌상, 금제탑형 사리기 등 우리 것과 서양의 십자가, 묵주, 서양명화 수태고지 등 숭고함의 상징을 담은 오브제들이 화면에 등장한다. 작가는 과거와 현재를 이어 주는 매개체로 나비들을 그려 넣었다. ●남경민 작가 “과거와 현재, 현실과 비현실 공존” 정조의 개혁 정치를 상징하는 대표적 장소인 규장각과 규장각에서 바라본 부용정의 경관은 ‘규장각 안에서 부용정을 바라다보다’로, 창덕궁 뒤쪽에 있는 왕비의 처소인 경훈각은 ‘경훈각-풍경을 향유하다’로 작가의 상상을 통해 시대를 넘어 관람객과 만난다. 남경민 작가는 인문의 작업실을 구현하기 위해 오랜 시간 연구 과정을 거친다. 역사의 무대가 되는 장소를 방문하고 스케치하는 것은 물론 각종 문헌자료를 탐독하고 미술사학자를 직접 만나 자문하기도 한다. 그는 “내 그림에는 과거와 현재, 현실과 비현실이 공존한다”며 “자료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 우리 선대 대가들의 화방 풍경은 나만의 상상 속에서 오히려 더욱 자유로웠다”고 말한다. 창문 밖, 거울 속, 책상 위 혹은 이젤 위, 벽에서 같은 듯 다르게 그려진 그림들을 찾아보는 것도 전시 관람의 묘미다. 김홍도, 신윤복, 정선, 신사임당의 대표작들을 찾아 도판이라도 한번 보고 가면 그림을 보는 재미가 각별할 것이다. 12월 19일까지. (02)736-4371.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김문이 만난사람] 전통 고택 경주 수오재에 옮겨 짓기 20년 이재호 기행작가

    [김문이 만난사람] 전통 고택 경주 수오재에 옮겨 짓기 20년 이재호 기행작가

    인생을 살면서 ‘나 자신’을 지키지 못해 벌어지는 일은 얼마나 많을까. 나를 오롯이 지켜 내는 일이 어디 쉬운 일이기나 할까. 정약용의 ‘여유당전서’에 ‘수오재’(守吾齋)에 대한 얘기가 등장한다. ‘수오재는 나의 큰형님 정약현께서 당신이 사시는 집에 붙인 이름이다. 나는 처음에는 그런 이름을 붙인 데 대해 의심을 했다. 내가 장기로 귀양 온 이후 홀로 지내면서 조용히 앉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어렴풋이 그 이름의 의문점에 대해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나는 벌떡 일어나 스스로 말하였다. 대체적으로 천하의 물건은 모두 지킬 만한 것이 없고, 오직 마음만은 지켜야 한다. 나의 밭을 지고 도망갈 자가 있겠는가? 밭은 지킬 만한 것이 못 된다. 내 집을 이고 달아날 자가 있겠는가? 집은 지킬 만한 것이 못 된다. 나의 원림(園林)에 있는 꽃나무, 과일나무 등 여러 나무들을 뽑아 갈 수 있겠는가? 그 뿌리는 땅에 깊이 박혀 있다. (중략) 그런데 마음은 어떤가. 이익과 작록이 유혹하면 그리로 가고 위엄과 재화가 위협하면 그리로 간다. 유독 나의 큰형님만은 당신의 마음을 잃지 않고 수오재에 편안히 앉아 계시니 어찌 본디부터 지킴이 있어 마음을 잃지 않았기 때문이 아닌가. 이것이 큰형님께서 당신의 집 이름을 그렇게 붙인 까닭인 것이다.’ 그러면서 ‘나(吾)를 지키지 못해’ 자신이 귀양살이를 하고 있다는 뜻을 내비친다. 경북 경주시 배반동 효공왕릉 앞 한적한 동산 자락에 ‘수오재’라는 한옥 고택 4채가 있다. 수오재의 주인장은 이재호(57)씨다. 그는 기행작가이면서 수필가로 활동하고 있다. 또 동국대 인문대 객원교수, 울산문화재연구원 이사, 반구대사랑시민연대, ‘경주길’ 대표 등의 직함도 가지고 있다. ‘천년고도를 걷는 즐거움’, ‘삼국유사를 걷는 즐거움’ 등의 책도 펴냈다. 그는 원래 서울에서 살았다. 1987년부터 유홍준 교수와 전국의 문화유산을 함께 오랫동안 답사했다. 그러던 중 1994년 사라져 가는 문화유산을 세상을 전하기 위해 경주에 터전을 마련했다. 경주를 택한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 저녁 노을을 볼 수 있는 곳, 둘째 주변에 문화유산이 있어야 할 것, 셋째 영원히 개발되지 않을 곳 등이다. 그래서 신라 52대 임금인 효공왕릉이 있는 곳으로 정했다. 그는 이곳에 터전을 잡고 살면서 전국을 돌아다녔다. 공단과 도로개발 등으로 방치된 한옥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를 살려 보자는 마음으로 그동안 경북(칠곡·영천·경주·마산·거창), 전남북(김제·영광·함평) 등지에서 13채의 한옥을 옮겨 왔다. 이 중에 4채를 원래대로 되살려 짓고 나머지 9채는 새로 짓기 위해 준비 중이다. 한옥을 옮기는 방법은 방치된 한옥을 분리해 트럭에 싣고 수오재로 가져오는 것이다. 이 중에는 지은 지 200년이 된 김제의 만경고택, 마산의 황부자집은 거의 문화재급에 해당하는 소중한 것들이다. 옮겨 온 것들 중에 지을 돈이 없어 시간이 지나다 보니 썩어 버리는 것도 더러 있다. 고택 재현은 그가 직접 팔을 걷어붙이고 한다. 그러다 보니 이러저런 사연들로 수오재는 많은 사람이 찾는 명소가 됐다. 국내 유명 인사들은 물론 터키 대사, 슬로바키아 대사 등 외국인들도 많이 다녀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집을 한 채 짓고 나면 다시는 안 지으려고 합니다. 여윳돈이 많든 적든 대개가 인부들 때문에 마음고생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저는 반대로 생각합니다. 살아가면서 행하는 것들은 지나고 나면 실체가 없고 잔영과 추억만 남지만 집은 공간과 실체가 남는 최고의 공간예술이고 즐거움이라고 생각합니다.” 미친 듯이 20년 동안 전국의 사라져 가는 고택을 옮겨 짓는 것은 그에게 어떤 필연적 인연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경남 의령에서 태어날 때부터 그는 고택 기와집에서 살았다. 자연스럽게 한옥의 따뜻한 구들방과 청마루 다용도 목적의 공간을 체험했던 것이다. 집 뒤에는 아주 큰 대밭이 있었고 밤나무밭은 그림처럼 산으로 연결돼 있었다. 청마루는 지금의 아파트 거실 역할을 했는데 밀폐된 아파트와 달리 자연과 얼마든지 교감이 가능했다. 앵두꽃이 흐드러지게 피면 마음이 울렁거렸고 연노란 감잎이 돋아나면 새로운 만물을 잉태하는 대자연의 순리를 체득할 수 있었다. “저의 집 마당은 온 하늘을 안고 온 눈비를 맞으며 온 바람과 색깔을 담은 거대한 우주의 그릇이었습니다. 아무리 춥고 지치고 고단해도 군불 지펴 등을 방바닥에 대고 드러누우면 참으로 따뜻한 행복감을 느끼곤 했습니다. 글을 쓰거나 예술을 하는 사람들은 결국 어릴 때의 정서가 매우 중요합니다. 저 역시 어릴 때 한옥에서 자란 자양분이 제 인생의 나침판이 돼 30대부터 한옥을 옮겨 짓는 인연으로 연결된 것이지요.” 결국 한옥은 자신에게 따뜻한 정과 아늑한 휴식을 제공했으며 봄, 여름, 가을, 겨울의 4계절을 온몸으로 느끼면서 살아가는 지혜를 알게 했다고 추억한다. 다시 말해 몸과 마음이 한없이 편안하다는 것이 이씨를 한옥에 미치게 했다는 것이다. 하여 어른이 되면서 인생의 가치관, 즉 ‘세상에 감동을 주는 것’을 구체화하게 된다. 자연과 인간, 문화유산에서 감동을 받아 세상에 전해 주는 것이다. 사라져 가는 고택, 방치된 한옥을 다시 짓는 일도 그러하다. 이어 화제를 한옥의 수난사로 돌린다. “우리나라가 조국 근대화의 물결로 초가집도 없애고 마을 길도 넓힐 때 흙과 나무의 천연재료로 지은 우리의 한옥들은 모진 수난을 겪게 됩니다. 특히 1971~1977년 사이에 초가집에서 슬레이트로 바뀐 집이 자그마치 240만채였습니다. 기와집도 예외는 아니지요. 시멘트에 포위돼 국적 불명의 어설픈 수리가 계속되면서 한옥도 아니고 양옥도 아닌 이상한 집들로 변했습니다. 그나마 다행히 2000년대를 시점으로 서울의 북촌 등지에서 한옥 살리기 붐이 조성되면서 이제는 한옥에 사는 것이 하나의 로망으로 되는 현상까지 발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긍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지만은 않는다. “거의 모두가 새 나무로 지어진 새 한옥이라 느낌이 없다. 새로 지어진 한옥촌, 한옥호텔 등을 보노라면 아무런 감흥이 오지 않는다”면서 “아무리 돈이 많아도 사업적인 머리를 쓰는 사람은 고택을 옮겨 짓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집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느냐”라고 말했다. 만약 자신이 고택에 대한 사랑이 없었다면 돈을 아무리 많이 줘도 고택을 옮겨 짓는 일은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요즘 들어 자신이 하고 싶었던 꿈과 가치관을 실현하면서 현실에서 무릉도원을 만들고 싶은 열정이 갈수록 더 많이 생겨난다고 했다. “지금도 좋은 고택이 있다면 마음이 흥분되고 벌써 머리로 집을 다 지어 버립니다. 사라져 가는 한옥을 살린다는 의미도 있지만 제가 살아 있는 당대에 고택의 맛을 즐기고 싶은 것이 가장 큰 욕심입니다. 고택은 최하 50년이 지나야 그 엷은 맛이 나려 하고, 100년은 지나야 고색의 맛이 풍기고, 150년은 지나야 고색창연한 깊은 향기가 풍겨 오는 것입니다.” 그의 철학은 수오재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옮겨 지은 전체 고택 한옥은 시멘트를 안 쓰고 천연재료로만 지었다. 그러다 보니 천장이 낮거나 반듯하지 못해 찾아오는 이들에게 미안할 때도 있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에게 고택의 맛과 건강을 선사하기 위해 한결같이 흙을 고집해 왔다. “사람은 자기 식의 삶의 방식이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정말 원해서 그렇게 살기보다는 살기 위해서 그렇게 사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세상이 아무리 발전해도 근원적인 회귀본능은 자연입니다. 오히려 첨단화될수록 세상은 더 각박해져 자연을 그리워할 것입니다.” 그러면서 단원 김홍도의 ‘삼공불환도’(三公不換圖)를 예로 든다. 이 그림은 김홍도가 왼숙기에 들어선 57세에 그린 것으로 3정승과도 안 바꾼다고 할 정도로 유명하다. 이씨는 삼공불환도를 연상하면서 나름대로 수오재에 대한 정경을 읊조린다. ‘수목이 우거진 정원 속에 대나무가 청아한 바람을 일으키고, 별당아씨는 바람을 안고 그네를 타고, 선비는 담소하다 책을 읽고 누워 휴식을 취하네. 안채 마당에서는 베틀 위에서 베를 짜고 마당에서는 닭들이 한가롭개 노닐며 개들도 여유롭게 바라보고 있다. 여러 채의 기와집들은 저마다 아름다움을 주고받으며 주인과 손님의 품격을 살려 준다. 하늘은 고요한데 바람은 일렁이고 정경운 삶이 그저 한가롭다.’ 이씨는 언제부터인가 수오재 역시 3정승과도 절대 바꾸지 않겠다는 생각에 ‘삼공불환 수오재’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선임기자 km@seoul.co.kr 이재호 기행작가는 경남 의령에서 태어났다. 대학과 대학원에서 미술을 전공했다. 민예총 창립 발기인이며 한국문화유산답사회 초대 총무로 1987년부터 유홍준 교수와 함께 전국의 문화유산을 답사하며 역사기행 문화를 선도했다. 또한 대곡댐 반대, 울산 병영성 살리기, 울산 옥현 유적지 보존, 가지산(석남사) 살리기, 석굴암 모형 반대 운동에도 앞장섰다. 1994년 서울에서 경주로 삶의 터전을 옮겼다. 이후 각종 개발 등으로 전국에 방치된 고택 한옥을 경주 수오재에 옮겨다 짓고 있다. 현재 기행작가이면서 수필가로 활동하고 있다. 동국대 인문대 객원교수, 울산문화재연구원 이사, 반구대사랑시민연대, ‘경주길’ 대표 등의 직함도 가지고 있다. ‘천년고도를 걷는 즐거움’, ‘삼국유사를 걷는 즐거움’ 등의 책을 펴냈다. ■‘김문이 만난 사람’은 이 인터뷰로 시리즈를 마무리합니다.
  • 제주 말 풍경 사진 속 주인공 찾습니다

    제주 말 풍경 사진 속 주인공 찾습니다

    ‘그때 그 시절 사진 속 주인공을 찾습니다.’ 국립제주박물관은 기획특별전 ‘한국의 마(馬)-시공을 달리다’에 전시한 근·현대 제주 말 풍경 사진에 등장하는 주인공을 찾는다고 21일 밝혔다. 말 풍경 사진 50장 가운데 국가기록원이 제공한 1950~1980년대 사진 4장이다. 첫 번째 사진은 1957년 제주의 목장 풍경을 담고 있다. 사진에는 멀리 한라산을 배경으로 오름이 군락을 이루며 그 앞으로 소와 말이 방목된 넓은 목장이 펼쳐져 있다. 두 번째 사진은 1958년 말과 소가 방목된 제주의 목장을 배경으로 외국인 일가족을 담고 있다. 세 번째 사진엔 비포장 길에 트럭 1대가 세워져 있고 마을 주민으로 보이는 사람이 말을 끌고 가는 풍경이 담겼다. 산방산이 사진 오른쪽에 있어 서귀포시 대정읍 지역에서 찍은 것으로 추정된다. 1988년 서울올림픽 개최 당시 제주의 성화 봉송 장면을 담은 네 번째 사진은 조선시대 전통 복장을 한 주자 일행이 제주시 동문로터리를 지나 부두 방향으로 가는 순간을 포착했다. 이 네 장의 사진에 등장하는 인물이나 사진이 찍힌 정확한 위치 등에 대한 정보가 있으면 제주박물관 학예연구실(064-720-8104)로 연락하면 된다. 제주도가 전국 제1호 말 산업특구로 지정된 것을 기념해 마련된 이번 기획전에는 국가지정문화재 9건 19점을 비롯한 유물 261건 490점이 전시된다. 한국 말의 역사와 문화를 총괄한 기획전으로는 국내 최대 규모이자 최고 수준이다. 오는 12월 7일까지 계속된다. 조선시대 화가인 단원 김홍도가 그린 ‘단원풍속도첩’(보물 제527호), 임진왜란 때 의병장인 최문병의 말 안장(보물 제747호), 통일신라 때 발걸이인 ‘청동흑칠호등’(보물 제1151호), 정조 임금이 탔던 어승마가 그려진 ‘화성원행반차도’, 18세기 초 제주의 풍속이 담긴 ‘탐라순력도’ 진본 등 제주에서 최초로 전시되는 유물이 다수 포함돼 있다. 제주 황경근 기자 kkhwang@seoul.co.kr
  • 금란교회 김홍도 목사, 사기 미수 혐의로 징역 2년 선고 뒤 법정구속…이메일 암호로 위장

    금란교회 김홍도 목사, 사기 미수 혐의로 징역 2년 선고 뒤 법정구속…이메일 암호로 위장

    ‘금란교회 김홍도 목사’ 금란교회 김홍도 목사가 사기미수 혐의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는 소식이 전해져 충격을 주고 있다. 지난 2일 서울북부지법 형사 단독 변민선 판사는 “미국의 한 선교단체에 100억원 이상을 배상하게 되자 이를 피하려 위조문서를 법원에 제출한 혐의로 기소된 김홍도 금란교회 목사에게 징역 2년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고 말했다. 금란교회는 지난 2000년 미국의 한 선교단체에 약 50만달러(약 5억 3000만원)의 헌금을 받으면서 2008년까지 북한에 신도 1000명 규모의 교회를 짓고 추후 약 980만 달러를 받는 협정을 맺었다. 그러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결국 2011년 이 선교단체는 미국 법원에 헌금 반환소송을 제기해 김홍도 목사 측이 1438만 달러(약 152억원)을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을 받아냈다. 이 선교단체는 미국 법원 판결을 바탕으로 지난해 5월 국내 A법무법인을 통해 서울북부지법에 집행판결청구소송을 냈다. 그러나 김홍도 목사와 사무국장 박모씨는 A법무법인 명의의 서류를 제출하면서 미국 선교단체가 부당한 방법으로 승소했기 때문에 미 법원 판결이 무효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원은 검찰이 증거로 제출한 박 사무국장과 미국 선교단체 직원사이의 이메일 교신 내용 등을 토대로 김홍도 목사 등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메일은 ‘멍멍대장’(박 사무국장), ‘구렁 I’(선교단체), ‘구렁 L’(A 법무법인), ‘구렁 G’(검찰) 등 ‘007작전’을 방불케 하는 암호가 사용됐다. 변 판사는 “거액의 지급을 피하려고 A 법무법인을 매도하고, 미국과 한국의 사법 체계의 공정성을 의심케 할 행위를 했다”며 “국제사기조직 피해자인 것처럼 허위 진술을 하고, 선교단체 사람들을 포섭해 동향을 보고하게 하는 등 종교인으로서 도저히 할 수 없는 행위를 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변 판사는 “이들이 서류를 위조했다고 의심할 수 있는 정황은 있지만, 증거들만으로는 단정할 수 없다”며 사문서위조 혐의는 무죄를 선고했다. 사기미수, 무고, 위조사문서행사, 출판물에의한명예훼손 등 나머지 혐의는 모두 유죄로 인정됐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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