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감시하는 그들을 감시하다
내 데이터를 가져다 뭐하게/말테 슈피츠·브리기테 비어만 지음/김현정 옮김/책세상/284쪽/1만 5000원
지난 5월 국내 한 시중은행이 몇몇 직원의 이메일을 보존하려 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보존한다’는 건 사실상 ‘들춰 보겠다’는 것과 뜻이 같다. 앞서 4월엔 유통업체 홈플러스가 고객정보를 팔아넘겨 수백억원의 부당 이득을 취한 사실이 드러났고, 1월엔 다음카카오 등 포털 업체가 ‘투명성 보고서’를 통해 정보·수사기관의 이용자 정보 요구 관행에 대해 밝히기도 했다. 누군가 나를 감시하고 있다는 막연한 상상, 혹은 ‘음모론’ 수준에 머물렀던 관념들이 현실 속에서 구체적인 모습을 갖게 된 것이다.
이 같은 현상이 우리에게만 일어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이 책에 따르면 독일·영국 등 개인의 사생활과 인권을 중시하는 유럽 국가들에서도 개인정보가 공공연하게 거래된다고 한다. 권력기관들이 여러 수단을 동원해 개인의 디지털 삶을 엿보는 경우도 흔하다. 그러니 미국 국가안보국과 중앙정보국의 국장을 역임한 인물이 “메타 데이터를 이용해 사람을 죽이는 일을 했다”는 끔찍한 고백을 하는 일도 빚어졌을 게다.
이처럼 막연했던 감시의 가능성이 구체화되면서 디지털 시대의 미래도 점점 암울해지고 있다. 자유와 소통, 투명성 등 디지털이 갖는 장점보다 감시가 쉬워졌다는 우려가 더 큰 무게감을 갖기 때문이다. 책이 주목하는 것도 바로 이 지점이다. 천부적 인권이라 할 정보의 자기결정권 수호, 그로 인해 비롯될 가치 있는 디지털의 미래가 책의 간행 의도다.
책은 감시의 토대가 만들어진 곳을 집중적으로 파고든다. 공공기관, 통신사, 보험사, 은행, 여행사, 인터넷 포털 등이 대상이다. 저자는 자신의 개인정보를 누가, 어떻게 수집하고 관리하는지, 그 정보로 무엇을 하는지를 추적했다. 정보의 흐름에 관한 한 정말 ‘빠삭’하다 할 만큼 빈틈없이 찾아냈다.
책은 디지털 시대의 권력이 정보 감시에 있다고 본다. 여기에 ‘빅데이터’라는 기술의 진보는 정보와 감시 권력의 공생을 더욱 공고히 해 줬다. 이른바 ‘빅브러더’는 이 같은 환경에서 생긴다. 당신보다 더욱 당신스러운, 당신이 잊은 기억까지 기억하고 있는 당신의 아바타를 보며 빅브러더가 어떤 궁리를 할까를 생각하면 모골이 송연해질 터다.
누군가가 자신을 관찰하고 있다고 느낄 때 개인의 사고와 행동은 크게 달라진다. 차가운 감시의 시선은 자기 검열의 메커니즘을 작동시킨다. 이는 다시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고, 불신을 부르는 악순환을 낳는다. 아쉬운 건 빅브러더의 못된 손을 막을 방법이 없다는 것. 책은 말미에 몇 가지 대안을 제시하고 있지만 그야말로 ‘도덕책’ 수준이다. 이를 빅브러더들이 그대로 실행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까워 보인다.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