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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소년에 권하는 책」 30종 선정

    ◎간행물윤리위,초·중·고·대학생 독자층 구분/교양·문학·역사·어린이 등 9개 부문/「…환경 파수꾼」「참으로 사람답게…」 눈길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위원장 이원홍)는 여름방학을 맞는 청소년에게 권하는 책 30종을 골라 최근 발표했다. 각계 전문가들의 추천을 받은 선정도서들은 문학·역사·교양·어린이등 9개 부문에 걸쳐 고루 들어 있으며 번역서가 7종 포함됐다. 또 청소년들이 수준에 맞는 책을 고를 수 있도록 초·중·고·대학생및 공통으로 독자층을 구분했다. 뽑힌 책은 다음과 같다. ◆어린이△만화일기시리즈 10권(길창덕등 지음,대교 간)△엄마도 모르는 재미있는 과학이야기(아동기획부,중앙미디어)△우리들은 환경파수꾼(김용근,푸른나무)△이야기 과학사(박성래,경원각)△비밀의 동굴(채영주,국민서관) ◆초·중학생△과학이 좋아지는 책(테스로프 편집부등,나라사랑)△입체로 읽는 화학 1∼2(이인호,자작나무) ◆중·고·대학생△조선통신사(신성순·이근성,중앙일보사)△생명과 우주의 신비(윌리엄 쇼어,예음)△어둠이 깊을수록등불은 빛난다(한모음회,제삼기획)△일하기 싫으면 먹지도 마라(김평일,고려원)△내가 만났던 가장 멋진 남자,가장 멋진 여자(황금찬등,보성) ◆고·대학생△박지원의 문학과 사상(김지용,한양대 출판원)△세계의 명시를 찾아서(강우식,문학아카데미)△축복을 웃도는 것(유안진,샘터사)△소금수레 끄는 천리마(엄북명등,서광사)△코끝의 땀방울 바라보는 즐거움(키에르케고르,사람과사람)△문화로 본 현대일본(김문환,나남)△실컷 놀고도 공부는 일등이라뇨(이근미,민예원)△중국 역사기행(권삼윤,조선일보사)△역사로 읽는 원효(김상현,고려원)△돌풍 그린라운드(최무웅,정훈)△책,어떻게 읽을 것인가(김우창등,민음사) ◆대학생△한국상고사(박병식등,교보문고) ◆공통(학생및 일반인)△한국 미술대요(김용준,범우사)△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스티븐 코비,김영사)△위기의 지구(앨 고어,삶과꿈)△이웃에서 동반자로(헬무트 슈미트,매일경제신문사)△아!고구려(조선일보 문화1부,조선일보사)△참으로 사람답게 살기 위하여(김수환,사람과사람).
  • 북한의 인권(김일성 사후:9)

    ◎권력암투로 숙청늘땐 「심각한 상황」/정치범 15만… 수용소 이미 “포화상태”/구타·굶주림 심해 한해 수백명 사망 북한의 요덕정치범수용소에 있다가 탈출한 안혁씨(26)와 강철환씨(26)는 지난 92년 8월 귀순 직후 인터뷰에서 요덕 한곳에만도 5만여명의 정치범들이 수용되어 있다고 전했다.이들 가운데 해마다 3백여명이 수용소를 지키는 보위요원들의 구타나 굶주림으로 죽어가고 있으며 20여명이 공개 처형되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의 열악한 인권상황은 이미 잘알려져 있다.아마도 지구상에 마지막 남은 인권 사각지대일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특히 「특별 독재대상구역」으로 불리는 정치범수용소는 북한의 인권수준이 어느 정도인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국제 인권단체의 보고서와 귀순자들의 증언을 종합해보면 북한엔 14개의 독재대상구역에 15만2천여명의 정치범들과 그 가족들이 집단수용되어 있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모두 북쪽 함경남북도와 평안남북도 산간오지에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 곳의 인권과 생활이 가히 어떤 상태일지 짐작하기에 충분하다. 북한이 정치범수용소를 설치하기 시작한 것은 죽은 김일성이 1인독재체제를 강화하던 지난 60년대 초로 알려지고 있다.1인독재의 기반을 구축하기 위해 저항세력을 숙청했고 이들을 한데 수용하려고 6개의 수용소를 지었다는 것이다.70년대 중반들어 김부자의 세습에 반대한 세력을 수용하기 위해 4개를,70년대 후반 김정일의 후계구도 확립에 반대한 김평일 지지세력등 정적숙청 과정에서 또 4개를 지었다. 이처럼 북한의 인권은 내부 권력체제와 밀접한 관계속에서 생겨난 특수한 문제이다.북한의 새 권력자로 부상하고 있는 김정일은 아직까지 숙청식의 탄압을 자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때문에 김일성이 죽고 김정일이 새 권력자로 들어선다고 해서 북한의 인권상황에 조금도 달라질 게 없다는 것이 북한문제전문가들의 지적이다.외교안보연구원의 유석렬교수는 『내부의 권력승계 작업이 어려움을 겪게되면 대규모 숙청등에 따라 인권상황은 더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북한의 인권탄압 대명사로 불리는 국가안전보위부와 사회안전부 두 기관은 이제껏 김정일의 수하에 있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반체제 세력의 색출과 정보파악,주민감시가 주임무인 국가안전보위부는 주석의 직속기관으로 있다가 지난해부터 김정일이 위원장인 국방위원회 산하로 옮겼다.부장은 아직 공석이라는 얘기와 함께 김정일이 맡고있다는 추측이 함께 나돌고 있으나 정확히 누구인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아무래도 국방위원회 산하이기 때문에 김정일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고 봐야 한다. 벌목공의 감시등 일반치안을 맡고 있는 사회안전부는 비록 정무원 산하기관이긴 하지만 부장이 김정일의 심복으로 알려진 백학림이다.그는 이번 장의위원 명단에 서열 53위로 올라있다. 이처럼 북한의 인권문제는 김정일이 직·간접으로 관여해왔고 앞으로도 더욱 통제를 강화할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세습에 대한 불만세력과 내부의 동요,족벌 사이의 암투가 갈수록 치열해질 것이고 이를 막으려면 통제를 보다 강화해 나갈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여기에 식량부족과 에너지 사정 악화등 경제난의 가중으로 주민들의 동향도 나날이 심각해질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여러모로 볼때 북한의 인권상황은 새 권력체제가 들어선다 해도 지금보다 나빠졌으면 나빠졌지,나아질 것 같지는 않다.이런 점에서 핵문제의 조속한 해결을 위해 북한 인권문제에 조심스러웠던 우리정부가 민족 전체의 복지차원에서 북한의 인권개선 문제를 우선 순위에 올리는 것을 검토하고 있어 주목되고 있다.
  • 반김정일세력/군부소장파·유학생 주축

    ◎북,김일성 사망직후 「불온분자」 색출령 북한은 「정적」이라든지 「반체제」라는 개념이 없는 이른바 「유일사상·유일체제」의 사회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전문가들은 「김정일체제」가 얼마나 오래 가느냐 하는 것은 반금정일세력의 움직임과 관련이 있다고 보고 있다. 북한정권 스스로도 「불온분자」가 있음을 인정한다.북한은 지난 9일 정오 김일성의 사망을 보도하기 직전 북한 전역에 반금정일세력을 색출하도록 긴급지시를 내린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한국과 미국·일본 3개국 정보기관이 파악한데 따르면 북한의 국가사회안전국은 각 지방지부에 「불온분자에 대해 즉각 대응하고 색출하라」는 지시를 시달했다는 것이다. 김정일에 반대하거나 그를 비판하는 세력으로서 우선 주목되는 대상은 북한군부이다.군은 당장 무력을 동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군부의 핵심세력은 3부류로 나누어진다.첫째는 오진우 인민무력부장과 최광 총참모장등 이른바 빨치산세대이다.이어 오극렬 전총참모장,김광진 인민무력부부부장,이봉원 인민무력부총정치국부국장등 60대의 장성그룹이 있다.마지막으로는 수천명에 이르는 해외유학 경험이 있는 영관급 장교들이다. 이들 가운데 김정일체제를 위협하는 계층은 유학파 장교들이다.그들 다수는 러시아및 동구의 변화를 보면서 북한도 변해야 한다는 합리적 사고를 가진 것으로 알려진다.그에 비해 빨치산세대가 김정일에게 등을 돌릴 가능성은 낮다.60대의 장성들도 김에게 충성하며 군원로들의 자리를 차지하려 할 것으로 전망된다. 당과 내각에서는 김일성의 총애를 받던 친·인척이 잠재적으로 김정일의 적대세력이다.김일성의 동생과 부인인 김영주와 김성애,그리고 김성애의 아들 김평일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김정일체제를 위협하는 것은 일반유학생을 중심으로 한 이른바 「지식분자」들의 반금정일세력화이다.이들이 본 외국의 「신세계」가 입과 입으로 전해지면서 김정일에 대한 불만층의 폭이 넓어져 가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우리 정부는 누가 반금정일세력인가에 대해 신중한 편이다.최근 들어서는 유일하게 국방부측이 이와 연관된 자료를 내놓았다. 이병대국방부장관은 지난 11일 국회국방위에 제출한 비공개자료를 통해 김정일에 대한 「비판세력」이 5백77만여명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수용소에 갇혀 있는 정치범,당원이 못된 감시대상자,유학생출신,지주등 출신성분이 나쁜 사람등을 뽑아 보니 그정도 수치가 나왔다는 것이다.모스크바 타임스지도 14일자 사설에서 북한주민가운데 5백만명은 김일성조문에 동참하지 않았다고 썼다.우리 국방부와 비슷한 추정을 하는듯 싶다. 그렇다고 북한의 나머지 1천7백만명이 김정일을 지지한다는 얘기는 아니다.그들은 김에 반대할 엄두를 못내고 있다고 보는게 정확할 것이다.김이 경제정책에 실패,북한주민들을 지금보다 더 못먹인다면 잠재적 반대세력은 더 늘어나고 표면으로 나올 수도 있다.북한사회가 개방되면서도 반대의 목소리가 커져가리라 예상된다. 김정일은 20년전부터 김일성의 비호아래 후계작업을 진행시켜 왔다.자기에게 충성하는 인사들을 이미 당·정·군에 많이 박아놓았다.따라서 스탈린,모택동사후의 소련이나 중국처럼 「대숙청」은 없으리라고 북한전문가는 전망한다.
  • 김성애 모습 삭제하고 방영/북 중앙 TV

    ◎조문장면 녹화필름 재편집 【도쿄 연합】 북한관영 중앙TV가 지난 11일부터 방영했던 김일성 조문영상에 대한 절단과 편집을 실시,김정일의 계모이며 김일성의 처인 김성애 중앙위원의 모습을 없애버린 사실이 확인됐다고 일본의 산케이신문이 15일 보도했다. 산케이신문은 서울의 정보소식통을 인용,북한의 중앙TV가 김일성 사망 4일째인 11일 심야부터 방송한 영상은 약 47분으로 이 가운데 김성애의 모습은 3회 등장했으나 새로운 영상은 약 23분으로 줄었으며 김성애의 모습이 모두 절단된 것으로 확인됐다고 전했다. 이 신문은 최초 영상에서 김정일의 바로 뒤에 김성애가 서있는 것이 그대로 방영된 것은 북한 중앙TV가 삭제등 편집을 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정일은 어렸을때 사별한 생모 김정숙에 대한 사모의 정이 깊으며 이 때문에 계모인 김성애와 김성애의 아들 김평일(전핀란드대사)과의 사이가 극도로 나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 한반도 새상황 수주일내 첫 신호/미 스칼라피노의 「김일성사후」진단

    ◎핵문제 ·대미화해 등 유산 김정일에 부담/지도자 자질의 불확실성 불식도 과제로/미 ·중·일 등 주변국,국익따라 「두개의 한국」 유지 희망 정치,특히 전제정치에서는 언제 태어나고 언제 죽느냐는 문제가 매우 중요하다.김일성의 경우 적절한 시기를 택했는가.우선 그가 19 12년에 태어난 것은 시기적으로 매우 적절한 것이었다.그가 항일투쟁에 한 몫을 할 수 있게 하는 시기였기 때문이다.그나마 그의 항일활동은 훗날 북한관변사가들에 의해 과장기록되지만 말이다. 그러나 그의 사망시기에는 문제가 많다.따라서 역사의 평결을 기다려야만 할 것같다. 김일성이 남북한,그리고 미·북한간 새로운 관계를 모색하고 착수하는 단계까지 생존했다는 것은 일단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카터를 통로로 그는 새로운 관계를 이끌 수도 있는 남북한정상회담을 추진했고 심각한 핵문제해결과 미·북한화해를 위한 새로운 시도를 했다.그러나 그는 새길이 열리기 전에 죽었다. 그의 아들 김정일이 이 새로운 시도를 이어받아 성공으로 이끌어갈 능력이 있는가.상당한어려움에 빠져있는 북한사회를 효과적으로 통치할 수 있는 자질이 있으며 또한 충분한 지지를 받고 있는가.김정일에 대해서는 루머인지 분명한 사실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많은 얘기들이 전해진다. 김정일에 대한 평판은 그가 서구영화와 경주용차,그리고 예쁜 여자들에 깊이 빠져있다는 것이다.이러한 평판들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이때문에 반드시 성공적 지도자가 될 수 없는 것은 아니다.진실로 우려되는 것은 그가 과거 북한이 추구했던 테러정책노선의 핵심이었다는 일부의 지적이다.다만 북한의 국제적 테러들이 그의 아버지 김일성과 무관하게 실행될 수는 없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김정일이 극도의 은둔생활을 해왔다는 것이다.그는 외국인들과 거의 만나지 않았으며 실질적 대화에도 거의 참여하지 않았다.따라서 다른나라 지도자들을 상대하는 그의 능력과 보다 큰 세계에 대한 그의 지식,심지어는 그의 전반적 지도자자질과 능력은 북한국민들에게조차 불확실한 점으로 남아있다. 북한의 권력구조,정책결정과정과 관련하여 다양한견해들이 제시되고 있다.왕조정치적 특성을 강조하는 사람들은 김일성일가 내부에서 벌어지는 상호작용을 중시한다.20년 가까이 연금상태에 있다가 얼마전 갑자기 정치국에 복귀한 김일성의 동생(김영주)의 역할,또한 점점 더 정치적 활동이 늘고 있는 김일성의 처 김성애,김정일의 이복동생으로 최근 핀란드대사직을 마치고 평양으로 귀환한 김평일 등이 이들이다. 북한정권의 엘리트는 아버지(김일성)와 장남(김정일)이라는 두개의 권력라인에 따라 배치돼 있다.이들이 합병될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가족라인을 형성,마찰과 적대관계에 놓이게 될 것인가. 또하나의 심각한 문제는 군부와 관련된 것인데 극도로 군사화된 북한사회에서 최상의 권력은 이들에게 있기 때문이다.김정일은 군부의 핵심인사들로부터 필요한 신임을 받고있는가 아니면 앞으로 받게될 것인가.김정일이 지지획득노력을 계속해왔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2년전 인민군총사령관 지위에 오른뒤 김정일은 많은 장교들을 장군으로 진급시켰었다. 그러나 새 정권,더 나아가 북한이란 체제의장래와 관련해 최대로 중요한 이슈는 거의 틀림없이 정책관련일 것이다.김정일은 심각한 난국에 빠진 경제,보다 젊은 인물들을 중요직책에 포진시겨야 하는 정치적 세대교체,북한에 별로 유리하지 않은 국제위치 등을 물려받게 된다.북한당국은 경제상황의 심각성을 인정,수년동안 중국을 부분적 모델로 한 개혁프로그램의 윤곽을 그려왔다.특별경제구역설정,해외자본유치법제정,유럽및 아시아기업가들을 초청하여 북한투자에 대한 흥미끌기 노력 등등. 하지만 현재까지 이 프로그램은 별 성과를 올리지 못한 도상계획일 따름이다.경제협력논의에 있어 나쁜 전력이 꼬리표로 따라다니는데다 북한이 스탈린식 경제체제의 골격을 지키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이와 함께 정치·군사분야에 있어서의 정책들 특히 핵시설사찰을 둘러싼 북한과 국제사회의 대립,북한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집착 등이 경제프로그램을 무력화해 버렸다.이같은 모순들이 제거될 수 있을 것인가. 북한으로선 최대의 도전이라 할 이같은 문제들은 김일성이 생전에 해결할 수도 있었으나 이제 그의아들 김정일에게 이 과업이 넘겨졌다.물론 많은 사람들은 김일성의 마지막 대화제스처가 제재를 피하면서 핵무기개발프로그램을 계속하려는 벼랑끝 외교전술,지연작전이었다고 믿고 있다.한국과 미국은 북한이 만족할만한 사찰을 받아들이고 가능한한 빠른 시일내 경수로원자로로 전환하는지 여부로 북한의 성실성을 시험하기로 했다.또 그같은 한·미양국의 입장은 계속 견지될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의 몇달은 북한체제가 안정될 것인지 혼란에 빠질 것인지,또 북한이 여전히 국제적 고립상태에 놓일 것인지 국제사회와의 관계를 개선할 수 있을 것인지를 가늠하는데 매우 중요한 시기가 될 것이다.이에 관련된 이해관계 역시 모든 당사자들에게 매우 중요하다.한국으로선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는 것은 물론 북한이 급격히 붕괴하는 것도 원치 않고 있다.한국으로서 가장 바람직한 일은 경제·문화분야의 남북한간 상호교류가 점진적으로 확대돼 결국 한반도평화통일을 가능케 하는 북한내부의 경제·정치적 변화를 가져오게 되는 것이다.북한이 붕괴,이를 한국이흡수하게 되는 경우 그에 따른 정치·경제적 부담은 엄청날 것이다.또한 북한의 정치적 위기가 계속돼 동북아지역에서 분쟁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느냐 여부도 큰 관심을 갖고 지켜봐야 할 문제다. 마찬가지로 미국도 북한에서 합리적 시나리오가 전개되기를 기대하고 있다.이같은 시나리오중 하나는 북한지도부내에서 새로운 군사·기술분야 엘리트들의 영향력이 커져 시장경제로의 점진적인 개방과 탈이데올로기정치노선을 추구하게 되는 것이다. 중국·일본을 비롯한 다른 나라들도 이같은 상황전개에 지대한 관심을 가질 것이다.중국은 북한의 핵무기보유를 원치 않을뿐 아니라 북한이 붕괴,한국의 지배아래 들어가는 것도 바라지 않는다.중국은 완충국가로서의 북한을 유지하기 위해 이미 많은 희생을 치렀다.일본은 친북한성향의 조총련과 마찰을 최소화하기를 원하고 있으며 가능하면 「2개의 한국」정책을 유지할 수 있기를 희망하고 있다.그러나 김일성사후 한반도상황전개는 결국 북한의 사태진전에 달려 있다.한반도 상황을 예측게 할 첫번째 신호는 수주내,길게 잡아야 수개월내에 나올 것이다. ▷약력◁ ▲1919년생,하버드대 졸업 ▲48년 하버드대 강사 ▲49년 캘리포니아 버클리대 교수 ▲동 동아시아문제연구소장 ▲「현대 일본의 정당정치」등 아시아관계저서 다수
  • 김 일가 30여명 핵심요직 포진/「김정일 친인척」의 현주소

    ◎당·행정·입법·사회단체 노른자위 독식 앞으로 김정일체제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세력은 그를 둘러싸고 권력핵심에 포진해 있는 친인척들이다 사망한 김일성이 체제장악과 세습체제 구축을 위해 그동안 핵심 요직에 앉혀놓은 친인척은 약 30여명에 이르고 있다.북한권력의 핵심부인 노동당을 비롯,행정과 입법 사회단체에 이르기까지 곳곳에서 요직을 맡고 있는 것이다. 당에서는 당정치국원이자 부주석인 김영주(김일성의 친동생)박성철(김일성의 4촌동생 남편)을 비롯,당비서인 황장엽(김일성의 고종4촌동생 남편)당중앙위원회 부부장이자 3대혁명소조 사업부장 장성택(김정일의 매부)등이 버티고 있다. 정무원등 행정분야에 포진해 있는 인사는 정무원 총리 강성산(김일성의 이종사촌동생)을 필두로 부총리 김창주(김일성의 4촌)경제사업부 부부장 김정우(김일성의 고종4촌동생)화학공업부부장 강린수(김일성의 외4촌)등이다.이밖에 사회안전부 정치국장 장성우(장성택의 형)인민무력부 작전국 3처장 강운룡(김일성의 외5촌 조카),노농적위대장 강성룡(〃)이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고 있으며 외교쪽에는 핀란드대사 김평일(김정일의 이복동생)오스트리아 대사 김광섭(김정일의 이복여동생 김경진의 남편)등이 있다. 또 입법기구인 최고인민회의 의장엔 김정일후계체제의 이론적 토대를 세운 양형섭(김신숙의 남편)이 포진하고 있다. 이들 친인척들은 김정일 체제에서 상당한 자리바꿈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이들중 김정일의 숙부인 김영주가 앞으로 어떤 역할을 맡게될 지 주목되며 그동안 김정일과 사이가 좋지않은 것으로 알려진 계모 김성애와 김평일은 한직으로 밀려날 가능성이 많은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 “김정일은 간질병 환자”/지도력 취약… 집권해도 권력투쟁

    ◎홍콩지 보도 북한의 김정일(52)은 잦은 발작과 경련을 일으키는 간질병 환자며 이를 치료하기 위해 외국의사들로부터 치료도 받았으나 질병때문에 집권해도 길어야 2년내에 권력투쟁이 발생할 것이라고 북경주재 고위외교관이 밝혔다고 홍콩의 영자지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가 14일 보도했다. 이 신문은 「김정일의 지도력이 간질병 때문에 위협받고 있다」는 제하의 북경발 기사에서 이 외교관의 말을 인용,간질로 인해 김정일은 집권해도 활발한 공적인 역할을 수행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으며 이때문에 지도력이 흔들릴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일의 이같은 질병은 가족의 불화를 증가시킬 것이며 특히 이복형제인 김평일의 도전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포스트지는 말했다.
  • 군 신구세대 갈등/동생 김평일 역할/중국지원의 강도

    ◎눈길끄는 미 전관리 로리스의 분석/김정일체제 유지의 3대 변수/1세대원노 장악한 군부,김정일에 밀착/김평일,젊은세대 장성과 연대… 반기가능/중국 “안정된 권력이양만이 최선” 선택폭 좁아 미국의 북한문제전문가들은 김일성사후 아들 김정일에의 권력승계가 비교적 신속히 이뤄지고 있다는데는 대체로 일치된 견해를 보이고 있다.그러나 김정일체제가 얼마나 갈 것인가 하는데는 적잖은 이견을 보이고 있으나 오래 가기는 힘들 것이라는 부정적인 전망이 우세한 실정이다. 도널드 그레그전주한대사는 북한의 장래에 대해 어느 누구도 예단을 할 수 없다고 전제,김정일이 권력기반을 공고히 할 수도 있고 과도기적 지도자가 될 가능성도 있으며 멀잖아 북한에서 내분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세가지 가능성을 모두 제시했다. 로버트 게이츠전CIA국장은 족벌간 반목이나 친­반 김정일세력간 파벌싸움이 벌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진단하고 있다. 12일자 월 스트리트 저널지에 실린 전직 미행정부관리인 리처드 로리스씨(워싱턴소재 미아시아 커머셜개발회장)의 김정일체제 내분가능성 분석 기고문이 가장 눈길을 끌었다. 로리스씨는 김정일이 일단 권력을 승계할 경우 그 체제유지와 관련,두가지 변수를 제시했다.신구세대 군부의 향배,김정일과 이복동생 김평일사이의 관계가 그것이다. 두사람사이의 관계에 있어 김정일은 기본적으로 테크노크라트세력이 그 기반인 반면 북한사관학교출신인 김평일은 젊은 세대 대령·장군들과 깊은 유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그는 현재 북한군부는 혁명1세대인 노령의 장성들이 장악하고 있다면서 이들 구세대는 지금 영향력을 더욱 강화하거나 아니면 축출당하는 양자택일의 기로에 와있음을 지적했다.이들 세대는 또 김평일과 그룹을 이루고 있는 신세대장군들로부터 위협을 받고 있어 김정일편에 더욱 밀착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로리스회장의 주장이다 . 그러나 로리스회장은 이들 구세대장성들도 김정일이 전혀 군복무를 하지 않았고 성격도 괴팍스러워 김정일에 대한 충성심이 약할뿐아니라 신세대장성들과 보조를 함께 해 김평일지지로 선회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고지적하고 있다.때문에 김정일은 김평일이 군부와 손잡을 가능성에 대비,사전에 이러한 위협을 제거하려 들 가능성도 있을 것으로 그는 분석하고 있다. 그는 또 외부적인 변수로 중국의 이해관계를 상정하고 있다. 로리스회장에 따르면 중국의 입장에서 보면 세가지 각도에서 이해관계를 저울질할 수 있다고 보는데 첫째는 안정된 권력이양측면에서,둘째는 그들이 영향력을 어느정도 발휘할 수 있는 예측가능한 인물이라는 점에서,셋째는 한국전쟁때 함께 싸웠던 「혈맹관계」라는 측면에서 이해관계를 저울질하려들 것이라는 것이다. 이와 함께 그는 단기적인 면에서 김정일의 권력승계는 안정을 꾀할 수 있기 때문에 첫번째 이해에 부합된다고 본다.그러나 나머지 두개의 이해관계는 불확실하다고 보고 있다.중국은 김정일과 군부와의 불화가 어떻게 진행될지 가장 잘 파악할 수는 있지만 그 과정에서 특별한 영향을 미치기는 어려울 거라는 입장이다. 그는 김정일,김평일 그리고 군부 3자관계의 향배에 관한 불확실성은 북한핵문제의 딜레마를 더욱 복잡하게 할가능성도 크다고 본다.북핵문제에 관한 일말의 확실성은 김일성의 돌연한 사망으로 사라진 상태라고 보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북한의 특수부대가 영변의 핵기지시설을 지키고 있고 현실적으로 군부가 연료봉,플루토늄등을 관장하고있으며 김정일의 군부조정능력도 제대로 알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 “후계구도 완성” 안팎 과시/김일성 시신공개·김정일 참배의 함축

    ◎오진우·강성산대동… 군·정장악 시위/자연사 비춰 “모반세력은 없다” 부각 북한이 11일밤 김일성시신을 공개하고 김정일이 권력핵심요원들을 대동하고 참배하는 장면을 공개한 것은 후계구도의 안착을 대내외적으로 과시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즉 북한주민들과 북한권부 동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외부세계에 김정일의 권력승계에 이상이 없음을 시위하기 위한 사전각본에 따른 것이다. 이같은 연출의 한 가운데에는 김정일이 있다는 것은 현재로선 의심의 여지가 없을 것 같다.그가 김일성사망 나흘만인 이날 북한의 고위당·정·군 핵심간부들을 거느리고 빈소에 출현한 것이 그 가시적 증거다. 이날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의사당(주석궁)에는 북한의 권력서열과 일치하는 장례위원 2백73명 거의 전원이 나타났다.특히 평양주재 외교사절들의 조문시 오진우인민무력부장·강성산정무원총리·김영주·이종옥·박성철부주석과 최광총참모장·김영남외교부장 등 핵심인물들이 김정일을 중심으로 일사분란하게 「시립」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두드러졌다. 더욱이 북측이 이날 공개한 TV화면 속의 김일성시신은 그의 사인이 자연사라는 심증을 갖게 할 만큼 훼손된 흔적이 없었다.따라서 여기서도 쿠데타나 모반세력이 없다는 것을 확인시키는 것과 함께 김부자간 후계세습을 기정사실화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는 지적이다. 이날 김일성유해 옆에는 국방위원장과 군최고사령관명의로 된 김정일의 화환이 놓여져 있어 일단 당총비서직과 국가주석직 승계절차는 거치지 않는 것으로 유추된다. 그러나 이날 빈소에서의 여러 정황들을 종합할 경우 김일성의 사망직후인 8일 내부적으로 김정일의 권력승계를 확정했을 가능성이 크다.즉 북한정권의 핵심인물들인 오진우·강성산 등 당정치국위원들이 비밀회합을 통해 이같은 결정을 내렸을 것이라는 추론이다. 주변국중 북한지도부와 교감이 가장 깊은 중국의 강택민·이붕 등이 「조선인들이 김정일동지를 수반으로 굳게 뭉쳐 전진하기를 기대한다」는 조전을 보낸 것도 이 때문에 있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북한은 이미 당중앙위와 최고인민회의를 열어 김정일의 권력승계절차를 밟기 위해 당중앙위원들과 최고인민회의 대의원들을 11일 평양으로 소집해놓고 있다. 하지만 당중앙위와 최고인민회의가 열렸느냐 여부와 관계없이 이들 북한의 핵심기득권세력들이 일단 김정일추대에 합의했다면 그의 당총비서 또는 국가주석취임은 시간문제일 뿐이다.북한권력의 속성상 주요의사결정은 어차피 하의상달식이 아니라 상층부의 지침에 따라 일방통행식으로 결정되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특히 이날 짧은 시간의 화면에서 김용순대남비서와 계응태공안비서 및 장성택3대혁명소조부장은 물론 지난해 강등된 김달현전부총리 등 김정일의 핵심측근으로 알려진 인사들이 대거 「클로즈업」된 사실도 눈여겨볼 대목이다.이들이 김정일시대에 중용이 예상되는 인물들이라는 점에서 이들의 건재사실이 곧 김정일체제구축을 역으로 입증한다는 것이다. 이날 빈소에는 또 김정일의 숙부인 김영주와 함께 김과 갈등관계이던 김성애,확실치는 않지만 이복동생 김평일의 모습도 보였다.이러한 광경 역시 이들의 속마음이야 어떻든 김일성이라는 선장을졸지에 잃은 마당에 일단 한배를 탓다는 위기의식으로 인한 잠정적 결속이 이뤄졌음을 시사한다는 관측이다.
  • 김정일체제 정착되면 개방 “노크”/러서 본 「김일성사후 북한」

    ◎집권초기 대외교류 가능성은 거의없어/현재론 주민 욕구분출 조짐 안나타나/세습정권 장기통치 힘드나 식량위기 해소 주력할듯 러시아는 김일성 사후 북한의 장래를 ▲김정일이 권력을 순조롭게 장악해 일정기간뒤 개방정책을 추진할 가능성 ▲김정일이 초기단계부터 개방정책을 주도할 가능성 ▲김정일이 집권초기에 실각할 가능성 ▲일반주민들의 개혁욕구가 폭발하는 경우 등 모두 4가지 대안을 상정하고 있다고 러시아 외무부의 한 당국자가 11일 밝혔다. 평양주재 러시아대사관에 근무하다 최근 모스크바로 출장중인 알렉산더 말렌코프씨(40·가명)는 이날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하고 『그러나 군부를 포함,현재 북한내에서 반금정일 세력은 전무하며 적어도 초기단계에 김정일의 권력장악은 기정사실』이라고 못박았다. 그는 4가지 대안중 러시아는 김정일이 일정기간 권력을 공고히 한 뒤 집권층 내부에 개방여부를 둘러싼 내분이 표출되면서 불가피하게 개방정책을 시작하는 첫번째 대안을 가장 가능성이 큰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고 말했다. 초기 권력강화기간에는 김정일추종세력들이 단결해 체제강화를 위한 억압정책을 계속할 가능성이 크지만 대부분의 전체주의정권의 경우에서 보듯 일정기간이 지나면 집권층내에서 주도권 쟁탈을 둘러싼 내분이 일어나 이 단결은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고 그는 분석했다.권력강화기간을 거치면서 경제력이 바닥나고 사회적 불만이 극에 달해 변화가 불가피한 시기가 온다는 것이다. 이와함께 소위 김정일 일족내 반란예비세력으로는 김일성의 동생 김영주,김정일의 이복동생 김평일세력,군부 등이라고 이 시나리오는 상정하고 있다. 두번째 김정일이 초기단계부터 개방정책을 추진할 가능성은 소위 김정일 일파내에서 개방파의 목소리가 우세할 경우이다.그러나 이 경우는 그동안 김일성이 유지해온 체제의 보수성등을 감안,큰 가능성은 없는 것으로 이 시나리오는 전망하고 있다. 세번째는 최악의 대안으로 김정일이 집권초기 권좌에서 밀려나는 것인데 이 경우는 북한권력이 곧바로 내부의 대결국면으로 치닫게돼 자칫 유혈사태 등 비극적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것을 의미하고 있다. 마지막 대안은 국민들사이에 개혁욕구가 분출돼 소위 고르바초프 말기의 소련상황이 북한에서 재연될 경우다.그러나 이는 개방개혁에 대한 인식이 어느정도 심어져 있는 북한내 일부 식자층과 일반국민들의 인식차가 워낙 커 개방욕구가 한꺼번에 분출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점에서 기대하기 어렵다. 한편 러시아 일간 이즈베스티야지는 12일자 김일성사망과 관련한 특집기사에서 김정일은 오래 권좌에 머물지는 못할 것이며 가까운 장래에 김정일의 퇴진,북한의 대외개방,국내 자유화 등이 잇따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신문은 『김일성사후 북한에서 일어날 일을 예측하는 것은 스탈린 사망직후 소련의 혁명적 변화를 예견하기 어려웠던 것만큼이나 힘든 일』이라고 전제하고 『그러나 붕괴된 많은 사회주의 국가들의 경험으로 볼때 김정일이 오랫동안 북한을 통치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신문은 특히 김정일은 아버지와 같은 능력을 거의 갖고있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나라전체가 자신에게 복종할 것이라는 망상속에서 자신의 천재성을 굳게 믿고 있다면서 『그러나 그는 곧 자신의 오류를 깨닫게 될 것이며 앞으로 대외관계 개선을 위해 많은 외국인들에게 북한입국을 허용하고 국내적으로도 주민생활 향상을 위해 일부 제약을 철폐하는 한편 특히 식량위기 해결에 노력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한 김정일이 실권할 경우와 관련,이 신문은 『(만일 김정일이 물러났을 경우) 그의 퇴진을 정당화하기 위해 북한의 새 지도부가 김일성정권의 범죄행위에 대해 자주 언급하게 될 것이며 이 모든 것들은 북한이 새로운 방향으로 출발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정들』이라고 강조했다. 끝으로 이 신문은 앞으로 10년후쯤 러시아 동북국경에 인구 7천만의 산업잠재력이 높은 강력한 민주국가가 출현할 가능성이 있다며 통일한국의 등장을 전망하고 통일한국은 세계에서 4번째의 경제중심지로 발돋움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 북의 대남정책/대화기조 유지… 경협에도 적극성(김일성 사후:4)

    ◎김달현 등 개방·유학파 주도/정상회담 조기 재개… 「위상」 다질듯 김일성의 퇴장과 김정일의 등장으로 남북관계는 어떤 형태로든 변화를 맞을 전망이다.그리고 그 변화는 북한의 새로운 체제가 얼마나 빨리 뿌리를 내리느냐와 관련이 있다.지금으로 보아서는 김정일이 김일성이 생전에 누렸던 것과 같은 카리스마를 구축할 수 있느냐의 여부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하지만 분명한 것은 김정일이 당분간 김일성이 취해왔던 대남정책을 그대로 답습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점이다.권력기반이 김일성의 그것에 미치지 못하는 김정일로서는 자신의 위상에 영향을 미칠지도 모르는 시도를 감행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북한은 김일성이 사망 직전에 결정한 남한과의 대화기조를 유지할 것으로 여겨진다.북한은 김일성의 사망 뒤에도 이런저런 경로를 통해 남북정상회담을 그대로 추진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또 미국과의 3단계 고위급회담도 계속할 뜻을 비쳤다.결국 북한의 대남정책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예상이 가능하다.서방진영과의 관계개선을 위한 노력도 계속할 전망이다.비교적 개방적인 것으로 알려진 김정일과 그의 측근들의 퍼스낼리티를 감안하면 남북관계는 지금까지보다 긍정적인 방향으로 가닥을 잡아갈지도 모른다. 김정일의 측근들은 대부분 외국에 유학한 경험이 있고 또 서방의 사정에 정통한 인물들이다.김정일의 판단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사람들이다.김용순대남담당비서와 지금은 한직으로 밀려난 것으로 알려진 김달현전정무원부총리는 북한이 개방 쪽으로 나아갈 수 밖에 없음을 깨닫고 있다.황장엽국제담당비서·강석주외교부부부장등 개방파 외교관들도 마찬가지다.그들은 나진·선봉 지구의 자유무역지대화를 구상했고 또 남포를 무역항으로 개발하자는 아이디어를 낸 사람들로 알려져 있다.김달현은 가장 최근 서울을 방문한 북한관리로 그의 방문은 남북간의 경제협력에 대한 기대를 낳기도 했다.또 지난 92년말 강경파인 윤기복을 대신해 대남담당비서에 기용된 김용순은 서방과의 외교를 주도해온 사람이다.김일성과 김정일이 미국·일본·대만등과의 관계 개선 시도를결심하기까지에는 그의 조언이 상당한 역할을 했다는 분석이 많다.대표적인 김정일의 사람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김일성으로부터도 두터운 신임을 받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김정일은 실제로 남북정상회담과 미국과의 고위급회담에 직접 관여한 것으로 보인다.크리스토퍼 미국국무장관은 그럴 가능성이 매우 큰 것으로 분석했다.미국은 김정일이 빠른 기간내에 권력을 장악하기를 희망하고 있다.김정일과는 이야기가 통하리라는 어떤 확신을 갖고 있는 듯하다.우리 정부도 사실상 김정일체제를 인정하는 분위기다.김정일의 집권이 남북관계에 결코 악재로 작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인 것 같다. 북한의 대남정책은 김정일이 보수·강경파의 견제와 김성애·김평일등 그의 집권으로 신변에 위협을 느끼는 사람들의 조직적인 반발을 어떻게 억누르느냐와 무관하지 않다.그러나 중국이 김정일체제를 지원하고 나섰고 또 남북한간의 대화분위기를 원하고 있는 이상 이들이 김일성이 결정한 남한과의 대화를 뒤엎을 수 있을 것으로는 여겨지지 않는다.결국 김정일과그의 개방적인 측근들은 남북대화에 성의를 보일 전망이다.김정일이 김일성에 비해 불행했던 한반도의 과거에 대한 책임을 덜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더 전향적으로 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 일부 친척의 「잠재적 저항」이 변수/김정일 체제의 앞날

    ◎오진우등 혁명 1세대,실정 누적땐 등돌릴듯 북한의 평양방송은 11일 밤 김정일이 노동당 고위간부들과 함께 수정관에 안치된 김일성의 시신 앞에서 조문하는 모습을 방영했다.북한의 새 권력자로 지목되어온 김정일이 김일성의 사망후 처음으로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내부 권력체제의 정비가 이뤄진 뒤에야 죽은 권력자의 시신을 일반에 공개하는 게 관례처럼 되어있다.이런 시각에서 보면 북한의 권력은 국가주석과 당총비서직을 김정일이 다 맡을 것인지,아니면 주석직은 당의 원로급에 줄 것인지라는 형식적인 절차문제 말고는 김정일로 완전히 후계구도가 굳어졌다고 봐야한다. 전문가들이나 정부 관계자들도 여기에 이견을 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김일성이 지난 73년부터 공들여온 김정일 후계체제의 공식 출범이 시간의 문제로 다가왔다는 설명이다.그렇다고 김정일체제가 김일성과 마찬가지로 그가 죽을 때까지 유지될 것이라는 예측은 찾아보기 어렵다.전문가들도 무척 회의적인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이들은 김정일체제가 앞으로 2∼3년 이상 계속될 것으로 보기도 한다.김일성의 죽음에 따른 국내외적인 공백을 메울 인물이 마땅치 않은데다,이미 권력의 핵심부에 그의 측근들이 대부분 포진해 있기 때문에 일단은 김정일을 중심으로 나아갈 것이라는 분석이다.또 김정일에게 통치권자로서의 역량을 발휘할 기회를 주기위해서라도 이 정도의 기간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는 많은 잠복변수가 산재해 있으며,이를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김정일체제의 유지를 가늠하는 관건이 될 것이라는게 일반적인 지적이다.현 시점에서 그 변수는 크게 세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는 제도상의 이유이다.북한은 지난 92년 개헌을 통해 군부엘리트들이 적법한 절차를 거쳐 권력을 장악할수 있도록 하고있다.북한의 모든 무력을 장악하고 있는,당과 더불어 또 하나의 권력기관인 「국방위원장」을 위원들이 투표절차를 거쳐 언제라도 바꿀수 있도록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지금 이 위원장 자리는 군경력이라곤 조금도 없는 김정일이 맡고있다. 그러나 만일 그의 실정이 누적된다면 그에게 반감을 가지고 있으나 지금은 침묵을 지키고 있는 소장파 장성들이 언제라도 이 위원회를 소집,그를 합법적으로 갈아치울 수 있다.북한에서 군의 축출은 곧 실각을 뜻한다. 두번째는 김정일로부터 그동안 숱하게 견제를 받아온 그의 친·인척들의 공격이다.지금 당장 김정일에게 반기를 들 인물을 찾긴 어렵다.그러나 이들이 언제까지나 이대로 김정일에게 눌려지내기에는 당한 갈등의 골이 너무 깊다는 지적이다.특히 김정일과 그의 계모인 김성애,이복동생 김평일과의 갈등은 유명하다.이번 장의위원회 명단에도 김성애는 1백4위에,그녀의 아들 김평일은 그래도 김일성의 아들인데도 불구,아예 2백73명의 명단에서 빠져있다.게다가 김평일은 조문행렬등 공식석상에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반면 김정일의 여동생 김경희는 47위에,그녀의 남편 장성택은 1백10위에 들어있다. 이는 족벌사이에 갈등의 불씨가 여전히 남아있다는 단서이다.그리고 북한에는 그동안 숱한 숙청에도 아직 군부 소장파와 젊은층사이에 김평일 지지세력이 숨어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세번째는 오진우 최광등 이른바 혁명 1세대의 향배다.이미 고령인데다 모두 은퇴를 남겨놓고 있어 이들은 단기적인 걸림돌로 지적되고 있다.그러나 김정일의 실정이 드러나면 맨먼저 등을 돌릴 세력으로 점쳐지고 있다.김정일때문에 평생의 노력이 무너지는 것을 방치하지는 않을 사람들인 것이다.
  • 김성애 “담담” 김경희 “오열” 대조적/상중의 북한 이모저모

    ◎“김정일과 불화설” 김영주 공개참배/북방송,“김사망에 백두산천지 요동” 북한이 11일밤 TV방송을 통해 공개한 김일성 시신과 김정일의 공개참배 광경은 남측을 비롯한 외부세계의 촉각을 모으기에 충분했다.그동안 김일성의 사인이 베일에 가려졌던데다 김정일이 모습을 전혀 나타내지 않은 가운데 권력의 향배가 어떻게 될지 많은 궁금증을 불러왔기 때문이다. ○…김일성이 사망(8일)한지 93시간만인 이날 하오 9시 평양 금수산 의사당(주석궁)지하에서 진행된 이 행사는 조곡이 은은히 울려퍼지고 실내조명이 어둑하게 비치는 가운데 김일성의 시신이 안치된 수정관에만 밝은 조명을 집중적으로 비쳐 자못 장엄한 분위기를 연출. ○…「김일성화」로 보이는 조화로 둘러싸인 수정관속의 김일성은 얼굴에 특별한 상처가 없이 머리를 짧게 깎은 모습.인민복 차림으로 붉은 자주색 모포를 가슴까지 덮고 있었으며 잠을 자듯 둥근 베개가 베어져 있기도. 김일성의 얼굴은 사망 나흘째임에도 변색흔적등이 없는 것으로 보아 사망 즉시 영구보존 처리에 들어간것으로 추측되기도. 또 수정관앞에는 공화국영웅및 노력영웅 메달과 각종 훈장들이 가지런히 놓여져 있으며 국방위원회 위원장 군최고사령관 명의의 김정일 화환과 노동당·당중앙군사위원회·국방위원회·중앙인민위원회·정무원 명의의 화환이 시신 주위를 장식. ○…고위 당정간부 1백여명을 대동한 채 인민복 차림으로 참배장소에 도착한 김정일은 평소 알려진 모습과는 달리 초췌한 모습. 입장직후 무엇인가를 묻는듯 손가락으로 김일성의 시신쪽을 가리킨 김정일은 옆사람에게 잠시 말을 건네는듯 했으나 시종 굳게 입을 다문채 침통한 표정. 시신을 향해 머리 숙여 참배한 뒤 수정관 주위를 둘러보던 김정일은 간간이 손수건을 꺼내 안경을 벗어 눈물을 훔치기도. ○…이날 첫 공식참배행사에서 가장 주목을 끈것은 참배 서열이 어떻게 되는가와 이른바 김정일과 반목관계에 있다는 가족들의 참석 여부가 주목. 김정일 좌측에는 각각 서열 2·3위인 오진우 인민무력부장,강성산 정무원총리,우측에는 조선인민군 총참모장 최광이 서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고 이을설 호위총국장이 김정일 주변을 분주히 오가는 것이 목격됐다. 오진우등은 김일성과 함께 북한 정권 40여년을 이끌어온 「혁명1세대」로 김정일을 「업어키웠다」는 말이 있는 원로들.이들 역시 시신앞에 머리를 숙인채 눈물. ○…김정일은 자신의 참배가 끝난 뒤 군장성및 북한 주재 외교관의 조문을 받는 순서를 마련. 김정일은 조문객들의 인사말에 꼿꼿히 선채 한손으로 악수만하며 묵묵부답. 평양에 요양차 체류중이던 올해 87세의 한덕수 조총련의장은 지팡이를 짚은채 특히 울먹이며 김정일을 위로.김정일은 다른 조문객들에 대한 태도와 달리 이례적으로 두손으로 한덕수의 위로에 응답,대조를 보였다. ○…가족중 입장때부터 김정일의 바로 뒤 오른쪽에 따라 나온 친 여동생 김경희(48·노동당 경공업위원장)는 참배행사중 내내 오열.김일성과 김의 전처 김정숙의 소생으로 김정일이 가장 신임하는 것으로 알려진 그녀는 검은 상복차림으로 자그마한 체구.이와함께 실력자로 부각되고 있는 남편 장성택도 처남인 김정일과 가까운 거리에 위치해주목을 받기도. ○…한편 김일성의 후처인 김성애와 친동생이자 김정일의 숙부인 김영주부주석등 유가족들이 김정일의 뒤쪽에 위치.확실치는 않으나 지난 3월 핀란드 대사에서 소환된뒤 행적에 관심이 모아졌던 이복동생 김평일도 일단 참석한 것으로 보이나 확인되지는 않았다.경희의 오열하는 모습과 달리 김성애는 비교적 담담한 표정. ○…북한은 12일 김일성의 사망직후 백두산에서 격렬한 기상변화가 있었다고 전하면서 『백두산과 천지도 비분을 삭이지 못해 몸부림치고 있다』고 주장,눈길을 끌었다. 북한의 중앙방송은 이날 상오 뉴스를 통해 김일성이 사망한 8일 새벽 백두산에서는 『짙은 안개의 장막속에서 깊이 잠든 듯 조용하던 천지가 갑자기 격랑을 일으키며 몸부림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또한 이와 때를 같이하여 초속 50m이상의 회오리바람이 불면서 대줄기같은 비가 쏟아져 내렸는데 이날 시작된 비는 잠시도 그치지 않고 3일동안 3백㎜나 내렸다고 이 방송은 강조했다.
  • 북 새체제 대응방식 시각차(의정초점:11일 상임위)

    ◎외통위/여,“원칙있는 자세” 촉구… 야, 유화책 주문 11일 열린 국회 외무통일위원회에서는 북한의 새체제 등장에 따른 정부의 시각변화와 대응책이 논의의 초점이었다.여야의원들은 정부가 앞으로 김정일체제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지를 놓고 미묘한 시각차를 보였으며 일부 야당의원들이 제기한 김일성에 대한 정부의 조의표명문제로 논란을 벌였다. 먼저 남궁진의원(민주)은 『북한 새체제의 권력이 확립될 때까지는 북한의 어느 계층도 자극하지 말고 유화조처를 취해야 한다』면서 『미­북3단계회담의 조속개최및 핵등 북한문제의 일괄타결을 정부가 지원해야 하며 핵과 경협의 고리도 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부영의원(민주)도 『김정일체제는 우리의 인식과는 상관없이 미·중·일등 국제적으로 인정추세』라면서 『정부는 새체제의 안정에 대비,바로 대화할 준비를 갖추고 있느냐』고 물었다. 이종찬의원(새한당) 역시 『김일성 사후 미국이 대단히 유화적인데 반해 우리는 다음 현상을 예측하고 조치를 취한 바가 없다』고 지적한뒤 『북한문제는 정부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일괄타결방향으로 가는 만큼 대범함을 보이라』고 유연한 태도변화를 주문. 이에반해 노재봉·박정수·서정화의원등 여당의원들은 김일성­김정일 세습체제에 대한 성격규정과 함께 정부의 원칙있는 대응자세를 촉구,성급한 유화책을 경계했다. 먼저 노의원은 『유례가 없는 부자승계정권의 성격을 어떻게 규정할 것이냐』면서 『지금의 교류 운운은 김정일체제를 강화시켜 한반도의 영구분단으로 갈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서의원은 특히 『김일성이 없어진 북한은 이제 가난한 동토에 지나지 않는다』며 『정부는 이러한 실체를 냉철히 판단하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대책을 세우라』고 촉구했다. 이들에 비해 박찬종의원(신민)은 『북한을 그대로 놔두자』는 특이한 논리를 폈다.그는 『북한의 시행착오는 필연으로,괜히 도와줍네 하고 나서다가는 함부로 부지깽이로 쑤시다 불씨를 꺼뜨리는 우를 범할수 있다』면서 『정부는 단기 과도체제인 김정일시대 이후상황을 설정해 장기적 관점에서 대책을 세우라』고 주문했다.이날 회의는 특히 김원기·이부영·임채정·남궁진의원등 민주당의원들이 정부에 김일성 조문사절단을 보낼 것을 제의,이를 둘러싼 논쟁도 벌어졌다. 이들은 「문상회담」,「조문외교」의 이점을 강조하며 『신뢰회복과 분위기조성을 위해 조문사절단을 파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면서 『국민정서등 사절단파견이 여의치 않으면 정부의 공식적인 애도표명이라도 있어야 할 것』이라고 정부의 전향적 검토를 촉구했다. 이같은 여야의원들의 질문과 제안에 대해 이홍구부총리겸 통일원장관은 「상황의 이중성」이라는 표현으로 대북관계의 복잡하고 어려운 성격을 설명했다.그는 『북한과는 일면 대결하면서 화해도 추구해야 한다』면서 조문사절단 파견문제에 대해서는 국민적 합의가 없음을 들어 분명한 거부의사를 표명했다. ◎국방위/“북지도부동향 집중감시”/“정보 수집능력 허점없나” 신랄히 추궁 11일 국회 국방위에서는 북한주석 김일성의 사망에 따른 우리 군의 「안보시나리오」가 주된 의제로 다뤄졌다. 여야 의원들은 김일성의 급작스런 사망과 관련한 군의 대처능력과 안보태세,정보수집및 예측능력등에 대해 집중적으로 물었다.북한 지도부및 군부의 움직임에 대한 질문과 더불어 북한의 핵개발 저지와 한반도 전쟁방지라는 두가지 명제를 놓고 숨가쁘게 돌아가고 있는 한반도 상황에 대한 총체적인 점검이 이루어졌다. 먼저 김일성의 사망 사실을 34시간이나 늦은 북한측의 발표를 듣고서야 알게 된 것은 정보능력의 불재가 아니냐는 야당의원들의 질타가 쏟아졌다.민주당의 정대철 나병선 장준익의원등은 『우리 정부의 대북관련 정보의 허점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라고 지적했다.군은 물론 우리측의 모든 정보기관이 『미국의 CIA조차 몰랐다더라』면서 책임을 떠넘기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질책했다.『이처럼 정보능력도 없으면서 만일의 사태를 어떻게 예측할 수 있고,만반의 태세를 자신할 수 있느냐』는 성토였다.이러한 불만은 김일성의 사인에 대한 추궁으로 이어졌다. 여야 의원들은 북한의 권력공백기에 따른 불안감을 해소하고,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안보태세를 강화해야 한다는 원칙에는 서로 이론이 없었다.그러나 김일성의 사망이 확인된 직후 정부가 내린 군 비상경계령조치에 대해서는 확연한 시각차를 드러냈다.민주당측은 김영삼대통령이 군사적 평가를 거치지 않고 이병대국방부장관에게 직접 비상경계령을 시달한 절차상의 문제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다. 반면 김종호의원(민자)은 『안보태세강화가 가장 중요한 시점이었던 만큼 단계적 절차에 따라 제대로 대처했다』고 정부측을 옹호했다.정대철의원은 「한·미·일 위기공동관리체제」를 구성할 것을 제의했다. 의원들은 이어 앞으로 한반도정세의 최대 변수는 북한군이라는 인식 아래 북한 군부의 동향및 북한의 핵정책 변화등에 대한 전망등에 대해 질의를 계속했다.『북한의 핵 개발의지는 어떻게 변할 것인가』(나병선의원),『김영주 김평일등에 의한 궁중쿠데타 또는 군부쿠데타와 주민들의 대거 탈출사태등의 가능성이 있나』(정대철의원),『북한군의 혁명 2세대 실력자에 대한 인사정보는 있느냐』(임복진의원)등. 한반도 안보의 위협요소를 제거하는 방안도 제시됐다.강창성의원은 경제협력 모색을,정대철의원은 장기적인 남북군사교류를,임복진의원은 강경파를 견제하는 대신 온건파를 강화시키는 전략을 방안으로 내놓았다. 이에 대해 이병대국방장관은 『김일성 사망이후 북한측은 군사활동이 저조해지고 대남비방방송을 중지하는 등 특이한 상황이 포착되지 않고 있다』고 답변했다. 이장관은 『북한내부의 지도체제 변화등 동향을 집중감시하고 있다』고 밝히고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군사적 즉각 대응태세를 유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 김일성 사후 한반도정세 진단/전문가 좌담

    북한주석 김일성의 사망은 북한내부의 체제개편은 물론 한반도상황의 대전환을 예고하고 있다.북한은 「김일성신화」의 종언에 따르는 힘의 공백을 어떻게 메워나갈 것인가.김정일체제는 과연 순탄할 것인가.김일성의 사망이 남북관계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통일을 위해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인가,아니면 긴장고조로 이어질 것인가.서울대 이용필교수(정치학)와 통일정책개발원의 장수련원장,서울신문 통일안보연구소의 이재근소장의 긴급좌담을 통해 김일성 이후의 한반도상황을 다각도로 진단해본다. ◎“김정일체제유지 북경에 달렸다”/남북관계 장기적으로 우리에 유리/경제난 따른 반감 커 민중봉기 가능성도/폐쇄적 사회 한계… 중국식개방 불가피/정부 위기관리능력 극대화 필요… 예멘·동독통일 교훈으로 삼아야 ○「주석사망」 음모의혹 ▲이재근소장=김일성이 82세의 노인이긴 하지만 예상보다 빠른 죽음이었습니다.사인은 심장동맥 경화에 의한 심근경색 즉 심장마비라고 발표됐습니다.하지만 사망 후 34시간이 지나서야 공식발표가 있었고 외국의 조문사절을 받지 않겠다고 하는 등 일련의 사태가 혹시 김일성의 사망배경에 「음모」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습니다.일단 이 의문점을 풀기위해 김일성의 사망배경을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이용필교수=김일성이 노령이긴 했지만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을 만날 때도 건강했고 1주일 전까지 만도 평상적인 활동을 했던 점에 비추어보면 갑작스런 죽음은 의외입니다.노인이란 역시 예측할 수 없는가 봅니다.핵문제를 둘러싼 외교적 문제,김정일에게 권력을 평탄하게 계승시키려는 권력내부의 정지작업,많은 외부인사 접견 등에서 심리적인 스트레스가 컸고 이것이 노인으로서 감당하기 어려웠던 것으로 보입니다.여기에 김정일이 최근 공식석상에 나타나지 않고 있는 것은 주목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김정일은 자신의 생일 축하모임에조차 모습을 보이지 않았습니다.이와 관련해 제가 만났던 미국의 한 한반도 전문가도 김정일의 신변에 무언가 「심각한」 일이 생기지 않았느냐는 의문을 갖고 있었습니다.또한 카터 방문시 김성애의 갑작스런 등장,핀란드 대사였던 김정일 동생 김평일의 평양 복귀,김일성의 동생 김영주의 재등장 등 최근의 심상치 않은 권력내 동향도 있었습니다.아마도 자연사라면 국제적인 핵문제와 더불어 국내 체제의 불안정,그리고 권력내부의 역학 변화등이 노령으로서는 견딜 수 없는 심한 스트레스를 주었을 것으로 보입니다.말하자면 50년 이상된 체제내의 「동맥경화증」이 작용한 것이지요. ○체제내 동맥경화증 ▲이소장=다른 측면에서의 설명도 가능할 것 같습니다.장례에 조문을 거절한 것을 근거로 궁정쿠데타의 가능성을 말하는 시각도 있는데요.장원장께서 말씀해주시지요. ▲장수동원장=노령이기에 자연사일 가능성이 많지만 타살 가능성도 없는 것은 아닙니다.외부에 알려진 김정일의 성격이나 위치로 보건대 김정일을 둘러싼 옹호세력이 충동을 느꼈을 가능성이 있지요.이러한 추론의 배경은 김정일이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주도해 왔다는 것입니다.김정일은 평소 핵무기 보유가 북한이 생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생각을 가져왔습니다.이러한 김정일의 측근 세력에게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회담이 자극적 행동을 하는 계기를 부여했을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지요.더불어 말씀드린다면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한다는 것은 단순한 외교용 엄포가 아닙니다.핵무기 개발은 북한의 이른바 적화통일의 걸림돌을 제거하기 위한 「중심고리 전략」에 따른 것입니다.걸림돌 제거란 주한미군 철수와 국가보안법 철폐입니다.당초 북한은 이를 위해 고려연방제를 내놓았으나 우리가 들어주지 않자 이를 대신해 핵무기 개발이라는 카드를 내놓은 것입니다.이를 김정일이 주도한 것이지요.하지만 그동안 김정일이 북한내에서 구축한 권력으로 보아 자연사이든 타살이든 김정일이 권력을 계승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고 봅니다. ▲이소장=북한 내에서는 거의 신격화되었던 김일성의 죽음이 앞으로 남북관계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올 것이 분명한데요.우선 김일성 없는 북한은 어디로 갈 지를 좀 말씀해 주시지요. ▲이교수=섣부른 예측은 위험합니다.우스갯소리지만 김일성이 8일 사망할 것도 몰랐으니까요.하지만 김정일의 권력계승이 결코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이제까지 공산국가에서 2인자가 자신의 노력에 의하지 않고 상속자의 형식으로 권력을 계승한 적은 없습니다.상속권력이란 그 만큼 취약합니다.이것이 조심스러운 관찰을 해야하는 이유입니다.또한 앞에서 말씀드렸던 최근 김정일의 잠적이 정치적인 이유라면 장례 당일 그가 장의위원장을 맡은 것을 공식 확인하기 이전에는 그가 권력을 굳혔다는 것을 예측하는 것도 조심스럽습니다.소련과 중국 등 과거 사회주의권에서는 권력이 혁명 1세대에서 2세대로 넘어가는 과정에 체제변화와 관련,유례없이 극심한 권력투쟁이 있었습니다.이 때문에 김정일의 권력계승 문제는 북한체제의 변화와 함께 살펴봐야 합니다.북한은 ①소련이나 동구형 ②중국형 ③루마니아형 등 3가지 가운데 한 형태로 변화할 것입니다. ▲이소장=포괄적으로 잘 짚어주신 것 같습니다.김정일은 지금까지 아버지의 후광으로 당·정·군권을 장악해 왔습니다.앞으로도 김일성 없이 권력의 장악이 가능할까요. ○권력의 정당성 부족 ▲장원장=중국이 지금까지 북한에미쳐온 영향력으로 볼 때 김정일의 권력계승은 중국의 신임여부에 달려있다고 봅니다.중국은 현재 2010년 전략을 성공으로 이끌어야 할 상황입니다.이를 위해서는 한반도가 화해 분위기를 계속 유지해야 합니다.북한 내부에 시끄러운 문제가 생기면 곤란한 것이지요.이 때문에 김정일이 반중 인물이 아니면 비교적 순탄하게 권력을 계승할 수 있다고 봅니다.다만 김일성은 항일투쟁,6·25전쟁을 왜곡해 자신을 영웅으로 미화시킬 수 있었지만 김정일은 세습권력의 상속자로서 권력의 정당성이 부족합니다.더구나 지난 73년 김정일이 등장한 이후 남북비교는 말할 것도 없고 북한자체의 시기별 단순 비교만 해봐도 더 못사는 경제상황이 되어 버렸기 때문에 김정일에 대한 북한 주민들의 반감이 대단할 것입니다.민중봉기의 가능성이 있는 것이지요.이렇게 되면 중국도 김정일을 지지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소장=북한 군부의 동향도 곁들여서 말씀해주시지요. ▲이교수=김정일의 경우 아마도 독자권력의 유지는 불가능할 것입니다.이를 위해서는 물리력을 가진 군부와 경제문제 해결을 위한 테크노크라트의 지지가 필요할 것입니다.따라서 아마도 김정일과 군부,그리고 테크노크라트 세 집단이 김정일이 상대적으로 우월한 위치에 있거나 동등한 위치에 있는 집단 지도체제를 이룰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하지만 이 경우도 역사상 부자계승이 성공한 경우가 없다는 점으로 보아 김정일 체제가 불안정하다는 것은 타당하다고 봅니다. ○카리스마 별도 없어 ▲장원장=공산국가는 절대 권력자가 없으면 집단 지도체제를 이루지만 속성상 이는 과도체제이며,집단지도가 계속되지 않는 것이 관례입니다.카리스마가 별로 없는 김정일이 중국식 개방을 취할 가능성도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왜냐 하면 군부와 테크노크라트를 끌어 들이려면 이 방법이 유일하니까요.물론 과도적 집단 지도체제 중에서 제3의 인물이 나타날 가능성도 있습니다. ▲이소장=제네바에서의 미·북 회담이 중단되고 남북 정상회담도 사실상 무산됐습니다.앞으로 남북관계는 어떻게 전개되겠습니까. ▲이교수=김일성이 없는 북한은 앞으로 2가지의 특징적 변화가 예상됩니다.우선 그간 극단적으로 폐쇄적이었던 억압 수준이 낮아질 것입니다.억압을 늦추지 않으면 루마니아와 같은 사태가 벌어지기 때문입니다.자연히 외부와의 접촉 기회가 많게 되고 북한으로 들어가는 외부 정보도 늘어날 것입니다.그럴 경우 향후 북한의 체제는 중국식 개방화가 이뤄질 것으로 예상됩니다.중국이 북한을 도와주는 것도 한계가 있기 때문에 북한은 남북관계를 터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따라서 향후 남북관계는 다소의 기복이 있더라도 우리에게 유리하게 전개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소장=북한이 외부적인 긴장을 조성하며 내부체제를 강화할 가능성은 없습니까. ▲장원장=김정일의 광폭한 성격이 아니더라도 단기적으로 남북관계는 경색될 것입니다.하지만 권력승계가 마무리되는데 오랜 시간이 소요되지는 않습니다.1∼2개월 정도일 겁니다.그 때 김정일이 권력을 잡으면 남북 정상회담을 제의할 가능성이 있습니다.핵무기 개발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 시점에서 시간을 벌어야 하기 때문이죠.김정일은 김일성에 비해 정상회담에대한 부담이 없습니다.6·25에 대한 책임도 없고 따라서 국제적 제재를 회피하기도 쉽습니다.북한의 대미협상 전략을 보면 첫째는 정전협정의 평화조약으로의 전환,둘째는 주한미군의 철수입니다.우리는 이같은 상황을 예상하고 지금부터 북한에 대한 역전략을 구사해야 합니다. ▲이교수=우리 체제가 안정되고 견고한 한 김정일을 포함,그 누구도 대남 전략전술을 펴는데 어려움을 겪을 것 입니다.입지가 그 만큼 줄어들기 때문이죠.앞으론 여러 목소리를 들어야지 과거처럼 할 수는 없습니다.지금 북한 주민들 사이에 분열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이제는 살 수 없으니 전쟁이라도 해서 살아야 한다는 말이 공공연히 나오고 있지요.이번에 평양에서 수많은 시민이 오열했다고 하는데,상주가 고통스럽게 우는 것은 대개 자기 설움이 복받치기 때문입니다.김일성이 없는 상황에서의 통제력 강화는 자폭을 불러 일으킬 수 있습니다. ▲장원장=김대통령은 김일성이 죽는 바람에 정상회담으로 인한 부담이 사라졌습니다.정상회담이 연기된 것은 국운이 트인 것입니다.북한의 의도대로 되지 않은 것이지요.핵무기 문제나 주한미군 철수,경제원조 등의 현안이 일단 유보됐다고 할 수 있습니다.다른 이야기입니다만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잘 대처하면 북한을 완전히 궁지로 몰아 자폭시킬 수 있습니다.북한에 있는 무기는 모두 지하에 있기 때문에 3년 내에 고철이 되고 맙니다.공산주의자들은 자신이 없을 때 공갈을 치는 버릇이 있습니다.전쟁 운운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소장=앞으로 우리의 대북전략 내지 문제 해결의 방식은 어떻게 전개돼야 할까요. ▲장원장=통상 비둘기파가 세계 평화에 기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매파가 기여합니다.실익없는 비둘기파의 목소리는 오히려 분란만 일으키죠. ▲이교수=김일성의 사망에 우리가 지나치게 호들갑 떨 필요가 없습니다.대범하게 대처해야지요.특히 정부가 지나치게 과민반응을 보일 필요는 더욱 없습니다.북한의 일거수 일투족을 냉철히 주시하며,미국·일본 등과 대북정책에 있어 긴밀한 조율을 꾀해야 합니다.돌발 사태에 대비하는 대처능력이 중요합니다. ○공산주의 마감예고 ▲장원장=북한을 의도적으로 자극할 필요가 없습니다.오히려 경제안정을 기해야지요.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에 대비해야 한다는 교훈을 명심해야 합니다. ▲이교수=정부의 위기 관리 능력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합니다.독일의 통일,예멘의 통일을 교훈 삼아 남북관계 연구에 박차를 가해야 합니다. ▲이소장=김일성이 죽음으로써 동족전쟁에 대한 책임문제와 사과는 어떻게 되는가요. ▲장원장=6·25의 책임을 북한의 누구에게도 요구할 수 없게 됐습니다.김일성이 숨을 거두기 전에 역사와 민족에 대한 책임을 사과했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이교수=김일성의 죽음은 사회주의 체제가 마감하는 현 추세 속에서 공산주의 마감을 예고하는 것입니다.좌파에 종지부를 찍은 셈이지요.
  • “김일성 사망원인 족벌간 암투때문”/LA교포신문 주장

    김일성의 사망은 북한당국의 발표대로 심장마비에 의한 것이 아니라 족벌간의 암투에 의한 결과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10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교포신문인 미주통일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김정일계보의 강경파가 계모 김성애와 이복동생 김평일의 전면부상을 막기 위해 김일성을 제거했다는 것이다. 이 신문은 최근 김일성이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을 만난뒤로 지난 40여년간의 대남강경노선에서 탈피,유화제스처를 취하자 위기의식을 느낀 김정일주변의 강경파들이 심장마비를 가장,김일성을 제거한 것으로 분석했다.
  • 개방파·「혁명소조」출신 친위그룹 주도/김정일의 적과 동지들

    ◎당 김용순·황장엽­적 「프라하 3인방」 포진/평일모자·빨치산출신 「잠재적」 반발세력 김정일이 일단 북한권력의 헤게모니를 장악할 것이 확실시됨에 따라 그의 친위세력들이 대거 부상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김일성이라는 절대권력자의 사망으로 인한 권력의 진공사태를 메우기 위한 필연적인 수순이다. 따라서 앞으로 김정일체제가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을 지는 미지수이긴 하나 당분간 북한정국은 친김정일 세력과 잠재적인 반대세력간의 물밑 암투가 한동안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친김세력과 반김세력을 명확히 구분하는 것은 북한이라는 특수체제의 성격상 쉽지 않다. 우선 김일성 생전에 김부자간 권력세습에 대한 공개적인 반발은 곧 파멸을 의미했기 때문에 김정일에 대한 불만이 있더라도 내연할 수 밖에 없었던 탓이다.그리고 김정일 친위세력은 대부분 김일성 추종세력과 겹치고 있다는 것도 엄연한 현실이다. 그러나 김정일은 지난 72년 당중앙위 비밀 전원회의에서 공식 후계자로 낙점된 뒤 꾸준히 자신의 시대에 대비해온 것은 사실이다.당·정·군에 걸친 주요 포스트에 은밀히 자신의 세력을 심어온 것이다. 이같은 그의 측근세력은 크게 ▲3대혁명소조를 중심으로 한 소장 저변 친위세력 ▲당·정·군의 이른바 혁명2세대 간부 ▲혁명1세대 중 김정일과 잦은 사적인 교유를 갖는 인물군 ▲친족세력 등으로 대별된다.이들은 상당부분 중첩되는 것도 특징이다. 이같은 관점에서 노동당쪽에선 김용순·김기남·김국태·황장엽 등이 눈에 띈다.이중 대남담당 비서와 최고인민회의통일정책위원장을 겸임하고 있는 김용순은 외교 및 대남관계 핵심브레인으로 등장할 전망이다.「주체사상」의 최대 이론가인 황장엽과 김정일의 각종 연설문 등을 대필해온 김기남 등은 김정일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우상화작업을 선도할 이론과 실무책임자로 부상할 공산이 크다. 김정일의 권력안정에 핵심적 열쇠를 쥐고 있는 군쪽에선 오극렬대장과 김강환·김두남 두 전현 당군사부장이 대표적 측근이다.이들 중 김일성의 빨치산 동료였던 오증흡의 아들인 오극렬이야말로 군부내 「혁명2세대」 중 김정일의 최측근 인사로 차기 인민무력부장이 유력시된다는 관측이다.그는 김정일의 비호하에 초고속 승진을 거듭하다 88년 오진우인민무력부장과의 마찰로 군총참모장직을 재임 10년만에 최광에게 넘겨준 바 있다. 행정 및 경제분야에선 프라하공대 출신의 3인방인 강성산·연형묵·박남기 등과 전현직 국가계획위원장인 김달현·홍석형 및 최영림 등이 측근인사로 거명된다.이들은 대부분 조심스럽지만 개방노선의 불가피성을 인식하고 있는 대표적 테크노크라트들이다. 이밖에 김정일을 위해 중국 문화혁명기의 홍위병과 유사한 기능을 수행해온 3대혁명소조를 이끌고 있는 장성택도 빼놓을 수 없는 측근이다.그는 김정일의 친여동생인 김경희의 남편이라는 사실 하나 때문에 김으로부터 절대적 신임을 얻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처럼 어느 정도 윤곽이 잡히고 있는 측근세력과는 달리 반김세력들은 수면하에 잠재해 있다.더욱이 어차피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북한권력의 속성상 측근세력중에서도 김정일세가 약화될 경우 언제라도 등을 돌릴 인사가 상당하다는 관측이다.이같은 관점에서 주목되는 잠재적 반김 세력들로는 군부와 당에 걸친 이른바 「혁명1세대」그룹 일부와 군부내 소장 및 중견 장교층,그리고 김성애·김평일 등 족벌세력들이다. 김정일의 권력장악에는 오진우를 정점으로 최광인민군총참모장과 이을설호위총국장·백학림사회안전부장·김철만 국방위원을 비롯해 「혁명1세대」의 막내격인 김광진차수 등 빨치산 원로급들의 협조가 절대적이다.그러나 이들중 상당수는 그동안 김일성이 카리스마에 눌려 침묵을 지켰으나 내심 김정일의 노선과 지도력에 회의를 품어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때문에 이들 중 일부가 동구유학을 다녀온 중견장교들과 연계해 김정일체제가 대외적 고립과 경제난을 극복하지 못할 경우 반기를 들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다. 표면적으로는 후원세력이나 언제든지 등을 돌릴 가능성도 있는 인물들로는 친삼촌인 김영주와 계모 김성애,이복동생 김평일 등 족벌세력들이다.특히 김정일과 후계경쟁에서 밀려나 18년의 은둔 끝에 지난해 일약 부주석으로 화려하게 복귀한 김영주는 일단 김의 후견인역을 수행할 것으로 보인다.하지만 당정에 걸친 추종세력이 상당한 것으로 알려져 요주의 인물이라는 관측이다. ◎매부 장성택 가장 신임… 요직 앉혀/작년 재기한 숙부 영주의 향배에 관심/김정일과 족벌내 역학관계 김일성은 생전에 자신의 아들 정일을 둘러싸고 빚어지고 있는 가족간 갈등에 대해 심히 우려했었다고 전해진다.그만큼 김정일과 다른 가족간 대립이 심각했고 이는 자신의 사후 정권존립 자체에 위험요소가 될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김일성의 가장 큰 근심거리는 김정일과 자신의 후처 김성애,자신의 친동생 김영주,김성애와 사이에 난 아들 즉 김정일의 이복동생 평일과의 관계였다. 지난 72년 이후 20여년간 후계자로서의 정권 정지작업을 다져온 김정일에 있어서 가족관계는 철저히 적과 아의 개념이 분명했다.권력장악의 걸림돌이냐 추종세력이냐가 그 기본선으로 특히 김일성과 자신의 생모 김정숙(49년 사망)사이 관계인 「기본가지」와 계모 김성애(김일성과 56년 결혼)와의 관계인 「곁가지」를 철저히 구분했다. 따라서 김정일이 가장 신임하고 있는 것은 친 여동생으로 북한 여성계의 참모역할을 하는 당 경공업위원장인 경희와 그의 남편 장성택이다.그는 실세로 불리며 중앙당 27개 부서 가운데 3대혁명소조부·근로단체부·청년사업부 등 핵심 3개부서를 맡고 있다.이밖에 신임하는 사람으로는 자신의 브레인으로 사상적 부족함을 메워주는 가정교사 황장엽(전 김일성대총장으로 사상담당 당서기·김일성의 조카사위),양형섭(최고인민회의 의장·김의 4촌동생 김신숙의 남편),김정숙 민주조선 책임주필(김의 4촌동생)등이 있다. 김정일이 배척,김일성의 우환거리를 제공했던 이들과의 「가족화해」를 시사한 일련의 사건들이 이어져 세계의 이목을 끈 것은 지난해.70년대 초반 남북조절위 공동위원장,10년간의 당조직위원장을 지내며 막강한 실력을 행사하다 75년 김정일에 의해 사실상 숙청된 김영주가 재등장한 것.당내 막강한 지원세력까지 김정일에 의해 「여독청산」란 이름으로 거의 제거돼 은둔생활에 들어간 그는 지난해 7월17일 「조국해방전쟁 승리기념관」 준공식에김부자등과 모습을 나타내고 이어 며칠뒤 당정치국서열 7위로 부상했다. 또 지난 71년 여맹위원장이 돼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다 김정일에 의해 73년 여사칭호를 박탈당하고 친동생 김성갑마저 평양시 인민위원장 자리에서 쫓겨나는 수모를 겪었던 김성애도 마찬가지.80년 이후 줄곧 공식행사에 얼굴을 못내민채 평양근교 별장에서 두문불출해 오다 지난해 11월 노동신문에 쿠바여성대표단을 맞는 사진이 나오고 이어 여맹전원회의에서 「김정일지도자를 받들자」는 내용의 연설을 했다.지난달 김일성과 함께 카터 전미국대통령을 맞으며 내외에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 것은 세계의 뉴스거리로 받아들여질 정도였다. 한편 김평일은 김정일로부터 가장 박대를 받아온 인물.김일성을 닮은 건장한 체구와 카리스마적 얼굴,원만한 성격이 김정일로 하여금 그를 권력의 언저리에서 감시의 대상으로 올려 놓았던것. 불가리아 대사로,핀란드 대사로 겉돌며 북한주민들로부터 동정을 받았던 그가 최근 북한으로 돌아가 군요직을 맡았다는 소식이 전해진 것도 그 하나다. 이같은 김정일의 관용이 김일성의 심기를 편하게 해주는 단순한 배려로 그치고 김일성이 사망한 지금 다시 이들을 숙청하거나 「안거」토록 할는지는 분명치않다. 일단은 복권된 이들 친족들이 「조카의,의붓아들의,형의,처남의 대권에 도전하지 않고 적극 밀어주겠다」고 약조한 끝에 나온 족벌정치강화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김정일족벌의 정확한 향배는 11일 이후 김정일이 정식 권력승계절차를 마치고 통치를 행사함에 따라 조만간 드러날 전망이다. ◎올들어 공식행사 6차례만 참석/「친필서한」은 부쩍 늘어… “충성경쟁 유도”/김정일 최근 어디서 뭘했나 김정일은 공식석상에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아버지 김일성을 예우하는 차원이라는 분석도 있으나 몇가지의 콤플렉스를 갖고 있기 때문이라는 시각도 있다. 1백58∼1백62㎝로 추정되는 단신에다 그의 연설문이 육성으로 단 한 차례도 방송되지 않을 정도로 말을 더듬는 콤플렉스가 있어 대인 기피증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듯 김정일의 최근 행적 가운데 특별히 눈에 두드러지는것은 없다.평소보다 활동이 눈에 띄게 뜸했다거나 아니면 왕성했다거나 하는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다. 김정일의 최근 행적에서 그의 권력승계 여부를 확인하는 단서를 찾기란 힘들다는 얘기이기도 하다.공식적인 자리에 자주 얼굴을 내미는 대신 뒤에서 조용히 기반을 다져 권력승계에 대비해온 것이다. 김정일이 올들어 공식행사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여섯차례에 불과하다. 새해 벽두에 근로자들과 신년모임을 가진데 이어 2월 28일에는 조총련 책임부의장인 허종만과 면담했다.뒤이어 3월 5일에는 북한군 협주단 공연을 관람했고,4월 6일에는 최고인민회의 9기 7차회의에 참석했다. 4월 25일에는 군창건절을 맞아 아버지 김일성과 함께 564군부대를 시찰했고,5월 6일에는 조총련 제1부의장 이진규와 「친선담화」를 나눴다.지난달 카터 전 미국대통령이 방북했을 때 김정일은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처럼 의례적인 공식활동을 하면서도 실질적인 통치자로서의 정책지도 활동이라 할 수 있는 「현지지도」 및 외빈접견 활동은 김일성이 사망할때까지 단 한차례도 갖지 않았다. 올들어 김정일의 보이지 않는 행적 중 눈에 띄는 것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은 「친필서한」을 보내는 숫자가 예년에 비해 부쩍 늘었다는 점이다.친필서한이란 김정일이 주민들에 대한 「사랑」을 과시하고,이들을 고무·격려하기 위해 직접 쓰는 편지이다.지난 90년 11월 1일 「조선중앙통신사」 당원들에게 보낸 것이 효시이다. 올들어 지난 5월초까지 7차례의 친필서한을 보냈다.예년의 1년치와 맞먹는다. 전문가들은 친필서한이 잦아지고 있는 것을 김정일의 「인덕정치」를 부각시키고 그에 대한 충성심을 고취시키기 위한 정치적인 속셈으로 보고있다.사상적으로 취약한 새 세대들에게는 김정일에 대한 「대을 이은 충성」을 확고히 하고,핵문제로 국제적 압력이 가중되는 상황에서 청년 군인들에게는 김정일 체제 수호를 위한 긴장감을 불어 넣기 위한 목적이라는 것이다. 지난해 이후 김정일의 외형적인 행적에서 변화를 찾는다면 생산현장에 대한 「현지지도」가 줄어든 대신 군관련 행사 참여가 늘고 있는 점이다.군후방일꾼대회·전승기념탑 제막식·공병대회 등에 참석하고,전승기념 퍼레이드를 관람하는 등 군관련 행사에는 매우 활발하게 참여했다.지난해 4월 국방위원장으로 선임된 이후 당연한 결과로 지적되고 있으나,권력승계에 대비해 군부를 미리 장악하려는 의도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 김일성 일가의 가계도/후계 김정일 누구인가

    ◎거대한 정치족벌… 친·처가 권력독식/재혼으로 5남2년… 손자·손녀 8명/처 김성애·동생 김영주 최근 다시 등장 김일성의 친인척 관계는 한마디로 거대한 족벌 정치권력의 덩어리다. 장남 김정일이 김일성 사망과 동시에 정권을 승계하는 당 서열 2위인 당비서자리에 있는 것을 비롯,처 김성애는 여성동맹 중앙위원장,3촌 김형록의 사위 박성철은 국가부주석 겸 당 정치국원등으로 포진해 있다.공통적인 사실은 김정일과의 권력역학관계에 의해 권력서열상의 부침이 반복돼 왔다는 점. 조국평화통일 위원회 위원장 겸 최고 인민위원회 외교위원장이었던 허담(91년 5월사망)의 부인 김정숙(민주조선 책임주필)은 김일성의 4촌누이다.또 최고 인민회의 의장인 양형섭은 고종 4촌 김신숙의 남편.북한의 주체사상을 실제로 발전시키고 있는 당 비서국 사상담당 비서 황장엽은 김일성의 조카이다. 김형직과 강반석을 부모로 둔 김일성에게는 김영주와 김철주 두형제가 있다.70년 초까지 권력서열 2위이던 김영주는 자신의 조카 김정일의 등장(75년)으로 핵심에서 물러나 있다 18년만에 부주석으로 복귀했다. 이밖에 종제(백부 김형록의 아들)인 김창주(부총리),김봉주 (전직총위원장)등이 김일성과 같은 항렬의 친인척. 김일성은 정식으로 두번 결혼,모두 3남4녀를 둔 것으로 알려져 있다.전처인 김정숙과 사이에서는 후계자 김정일과 김영숙 김경희등 1남2녀를 두었고 후처 김성애와는 장녀 김경진(52년생)과 김평일(54년생) 김영일(55년생),김금순(56년생)등 2남2녀를 두고 있다.김경진의 남편 김광섭은 현재 주 오스트리아 대사. 이들 외에 김일성이 김성애와 결혼하기전 애인사이에서 김성일이라는 아이 하나 더 있었다는 설이 있으며 지난해 애인 김송죽과 사이에 김백연(87년생)이란 딸이 있다는 외신이 전해지기도 했다. 지난 63년 결혼한 김성애는 71년 여성동맹위원장으로 기용돼 권력일선에 나섰다가 73년 김정일이 후계자로 부상함에 따라 권력핵심에서 멀어졌다가 90년이후 최근 외부에 나서고 있다. 김일성의 맏사위 장성택(46년생)은당중앙위 위원으로 당 경공업 부장으로 있는 장녀 경희의 남편.김정일의 두터운신임으로 막강한 실세를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일성의 손자 손녀는 현재 9명으로 알려졌다.
  • 83년 이후 「서열 2위」… 당·정·군 장악

    ◎73년 김영주축출… 공적활동 전면등장/반대세력 반발불구 통치권확보 성공/성격 독선적·일부선 “통 크다”… 영화·연극에 큰 관심,직접 제작도 김정일이 사망한 북한주석 김일성에 대한 장례위원 가운데 서열 1위로 발표됨으로써 차기 권력승계작업이 일단은 순조롭게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공산정권의 전례로 비추어 볼 때 숨진 최고지도자의 장례위원장을 맡은 인사가 예외 없이 차기 통치권을 맡아 왔기 때문이다. 이날 그에 대해 북한중앙방송과 평양방송이 혁명의 계승을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김정일은 20여년동안 끈질기게 권력승계 작업을 해온 결과 지난 83년 공식서열 2위에 오른 뒤부터 김일성 사망 직전까지 김일성에 이어 2인자의 위치를 굳혀왔다.군최고 사령관,원수,국방위원장,노동당 정치국 상무위원,중앙군사위원등 그의 맡아온 직책이 이를 입증한다.이복동생 김평일과의 불화설등 반대세력과의 권력투쟁설이 끊임없이 나돌기도 했지만 통치권 장악에 거의 성공한 것으로 관측돼 왔다. ○92년부터 승계완료그는 당·정·군등 북한내 3대 기본권력구조 가운데 형식적인 통수권은 국방위원장직으로 군에 대해서만 갖고 있다.그러나 김일성이 국가주석으로 정을,당 총비서로 당을 이끌어 오면서 형식적인 통수권자였지만 김정일은 사실상 이들 기관도 통치해 왔다는 것이 북한전문가의 대체적인 의견이다.이들 전문가들은 이미 권력승계작업은 지난 92년 김일성의 80회 생일부터 이 문제가 거론되지 않음으로써 사실상 완료됐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이와 관련해 김영남외교부장은 같은해 9월 제47차 유엔총회 참석차 뉴욕에 들렀다가 우리 기자들과의 회견에서 김정일이 사실상 북한의 통치자라고 밝혔었다.앞서 같은해 4월1일 김일성생일행사의 하나로 개최됐던 주체사상토론회에서 김정일이 「당·국가·군대의 수위」로 지칭되고,김부자의 생일을 전후해 오진우인민무력부장,이종옥부주석,연형묵정무원총리등 당시의 당·정·군 간부들이 김정일에 대한 대를 이은 충성을 다짐하기도 했다.이때부터 김일성은 점차 일선에서 물러나는 듯한 움직임을 보여 이같은 관측을 뒷받침했다.김정일은 지난 92년 인민무력부장 오진우원수와 8명의 차솔진급자에게 계급장을 달아 줘 군통수권에 대한 첫 공식행사를 가짐으로써 이를 대내외에 천명했다.이어 지난해 4월에는 군 최고통수권자인 국방위원회 위원장으로 추대됐으며 3개월뒤 장성 99명에 대한 승진인사를 단행,혁명1세대를 퇴진시킴으로써 군을 완전 장악했다. 김정일이 후계자로 부각된 것은 지난 73년.사상·기술·문화 3대혁명소조운동과 3대혁명 붉은기쟁취운동의 실무지도자로 공적활동의 전면에 등장하기 시작했다.같은해 9월 삼촌 김영주를 밀어내고 조직·사상담당 비서로,74년 2월 노동당 정치국 정치위원으로 추대됐다.그는 74년 2월 노동당 제5기 8차 전원대회에서 후계자로 결정됐으나 70년대까지만 해도 「당중앙」으로 모호하게 불려졌다.그러나 80년대부터 「친애하는 지도자 동지」로 표현되기 시작했다.83년 4월이후 오진우인민무력부장을 제치고 당서열 제2위로 부상하면서 명실상부한 후계자의 위치를 굳혔다. 85년 4월에는 「당·국가수위」로 지칭됐다.85년 7월 북한언론으로부터 「김정일시대」라는 용어가 등장하고,91년에는 인민경제대학총장 김국훈이 김정일을 「미래의 위대한 수령」으로 후계구도를 공식적으로 가시화했다.이어 91년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에 추대된뒤 92년 4월20일 원수칭호,93년 4월 최고인민회의 9기5차회의에서 국방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출됨으로써 군을 장악한 명실상부한 실권자로 등장했다. ○원래 이름은 「정일」 김정일은 김일성과 그의 첫부인인 김정숙 사이에서 태어난 2남1녀중 장남으로 지난 41년 2월16일생이고,원래 이름도 정일이라고 한다.그러나 뒤늦게 그를 우상화하는 편법으로 정일로 바꿨고 2년뒤 그의 출생연도도 1년 낮췄다는 설도 있다.82년은 이른바 「조선의 어머니」인 김일성의 어머니 강반석의 출생 90돌이자 김일성의 70돌이며,김일성이 창건했다는 조선인민혁명군의 50돌이었는데 그의 이름도 이에 맞춰 변조했다는 것이다.그의 이복동생 평일,성일에서 보듯 원래 항렬이 일자였다는 것이다. 어릴때 이름이 「슈라」인 것으로 미루어 출생지는 옛 소련이었음을 알 수 있으나 구체적인 지명은 사마르칸트,오케얀 스카야,하바로프스크등으로 엇갈린다.그러나 그를 우상화하는 과정에서 「백두미령」에서 출생해 『혁명의 준엄한 시련을 체험하면서 성장했다』고 미화됐다.북한은 이를 위해 김일성이 빨치산 활동을 할 때 백두산의 한 귀틀집에서 『백두산의 정기를 한몸에 받고 태어났다』는 이른바 「백두산정기설」을 뒷받침하는 각종 흔적들을 조작하기 시작했다.백두산의 「정일봉」,김정일의 탄생을 칭송하는 이른바 「구호나무」등이 그 흔적이다. ○3세대 평양 들어와 김정일은 세살때 광복과 함께 부모를 따라 소련함정을 타고 평양에 처음 들어왔다.43년 소련에서 태어난 남동생 「유라」(소련명)가 있었으나 2년뒤 김일성 관저 연못에 빠져 죽었다.7살때인 49년 9월 생모 김정숙이 출산중 사망하면서 여동생 김경희(46년생)와 함께 김일성의 외6촌동생 강연실에 의해 키워졌다.그의 성격은 생모와 사별후 난폭해지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진다.성격은 괄괄하고 과격하며 독선적이나 통이 큰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김일성앞에서도호주머니에 손을 넣는 유일한 사람이기도 하다.그는 아버지가 너무 바빠 홀로 어린시절을 보내온 것을 자주 불평했다고 한다.66년 홍일천과 연애결혼해 딸 하나를 낳고 69년 이혼한 뒤 73년 김혜숙과 재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정일은 평양의 남산유치원을 나와 49년 간부 자녀들이 다니던 남산 제 4인민학교를 다녔으며 57년 8월 평양제1중학교,60년 8월 평양 제1고급중학교,64년 김일성대학 정치경제학과를 각각 졸업한뒤 노동당에 입당했다.70년 당 문화예술부장,71년 선전선동부 부장으로 진출하면서 영화촬영및 연극공연작업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여온 것으로 전해진다.「피바다」「한 자위대원의 운명」「꽃파는 처녀」등 주요 영화와 가극을 직접 제작하는등 일년에 1백50∼2백편의 영화를 만들어 올만큼 북한영화계의 최고권위자로 꼽힌다.이같은 영화에 대한 애정때문에 신상옥씨 부부를 납치한 것이 깊숙이 베일에 가려져 있던 정체가 상세히 알려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연표◁ △1941.2.16 소련 사마르칸트 출생(북한측,백두산 출생주장) △1953.2 만경대혁명학원(인민반)수학 △1960.8 남산고급중학교 졸업 △1964.3 김일성대학교 졸업(정치경제학과) △1964 노동당 조직지도부 지도원 △1971 노동당 선전선동부 부부장 △1973.11 노동당 정치위원회 후보위원 △1974.2 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위원 △1974.2 「후계자」로 결정(노동당 제5기 8차전원회의) △1980.10 노동당 정치국 상무위원회 위원(6차 당대회) △1980.10 노동당 비서국 비서 △1980.10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노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1990.5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 △1991.12.24 인민군 최고사령관(노동당 제6기 19차 전원 회의) △1992.4.20 원솔 칭호 △1993.4 국방위원회 위원장(최고인민회의 9기 5차회의)
  • 김성애 화려한 복권/김일성 후처,오랜만에 정치무대에

    ◎카터와 대동강유람… 서방에 이례적 공개/“반정일파” 내리막 20년… 작년부터 재부상 김일성 북한 주석의 후처이자 김정일의 계모인 김성애가 카터 전미국대통령의 방북을 계기로 지난 17일 서방 TV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내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그녀가 김주석의 전처(김정숙) 소생의 공식 후계자인 김정일과의 불화로 그동안 공개석상에 모습을 거의 나타내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하다면 극히 이례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무소불위의 절대 권력자인 김일성의 후광을 등에 업고 여맹위원장이라는 대외적 직함으로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던 김성애가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한 것은 지난 74년 6월 「평양시당 전원회의」때부터.이 회의에서 김성애의 존재가 후계체제의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본 김정일측이 그녀의 측근에 대해 월권행위와 전횡을 내사해 집중 비판했기 때문이다. 이후 김성애는 공식활동을 자제하면서 조용히 「자숙」하는 모습을 보였으나 지난해부터 다시 수면 위로 부상하기 시작했다.지난해 7월 시아누크 캄보디아국왕의 방북 환영행사와연말 여맹 전원회의에 나타나면서 어느 정도 「복권」됐을 것이라는 추측을 불러일으킨 바 있고 올해 4월 시아누크의 방북시에도 모습을 드러낸 사실이 북한방송에 의해 보도됐었다. 그녀의 친아들인 김평일은 김정일에 의해 「곁가지」로 몰리면서 주로 대외직책을 맡아오다 지난 3월 핀란드대사를 끝으로 평양으로 귀환해 군관계 요직을 맡았다는 설이 나돌기도 했다. 이러한 사실들은 김정일과의 후계투쟁에서 밀려나 20여년간 모습을 감추었던 김영주가 지난해 정치무대에 복귀한 것과 함께 주목되는 움직임이다. 김일성일가의 이같은 신상변화가 기왕의 후계체제를 다지기 위한 결속차원인지,아니면 김정일 후계체제의 불안감을 느낀 김일성의 노회한 「교통정리」인지는 좀 더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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