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연어 자급화, ‘속도’보다 ‘신중함’이 우선이다
지난해 여름, 서울의 밤은 식지 않았다. 기록적인 열대야가 계속됐고, 남해안 양식장들은 고수온으로 비명을 질렀다. 기후위기는 더이상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바다는 그 전조를 가장 먼저 드러내는 곳이다. 생태계의 균형이 무너지면 양식 어종들의 생존도 위태롭다. 바다에서 벌어지는 이 조용한 재난 속에서, 연어가 새로운 해답으로 떠오르고 있다.
고단백, 저지방, 그리고 저탄소 식품으로 각광받는 연어는 이제 한국인의 식탁에서도 일상적인 식재료가 됐다. 2019년 3만 8000t이던 국내 연어 소비량은 2022년 7만 7000t으로 두 배가 됐고, 같은 해 수입액은 약 6억 달러에 달했다. 문제는 우리가 먹는 연어의 대부분이 수입산이라는 점이다. 식량안보, 외화 유출, 글로벌 공급망 불안 등 다양한 요인을 고려할 때 ‘연어 자급화’는 단지 유행이 아니라 필연적인 대응으로 봐야 한다.
하지만 연어 자급화는 단순한 양식장 건설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대서양연어는 차가운 물을 좋아하는 냉수성 어종으로, 서식 적정 수온은 8~16도에 불과하다. 여름 수온이 30도에 육박하는 우리 연안에서는 생존 자체가 어렵다. 게다가 연어는 생애 초기에 담수에서 부화해 성장기를 해수에서 보내는 특성을 지닌다. 이 ‘양서식성’은 자연의 경이로움이자 인공 환경에서 구현하기 가장 까다로운 생태 특성이다.
그래서 대서양연어 양식의 해법으로 주목받는 것이 바로 ‘육상 해수 순환여과시스템’(RAS)이다. 이 시스템은 해수를 정화해 재사용함으로써 외부 해양환경에 영향을 덜 받으며, 안정적인 사육 조건을 유지할 수 있게 해 준다. 하지만 이는 단순한 설비가 아니라 수처리 기술, 바이오보안, 자동화, 빅데이터 기반의 환경제어 등 복합 기술이 결합된 생명산업이다. 하드웨어보다 중요한 것은 소프트웨어, 즉 운용 역량이다. 기술은 장비가 아니라 사람이 다룰 때 비로소 가치를 발휘한다.
이러한 고도화된 시스템을 국내에 도입하기 위해서는 시간과 경험이 필요하다. 지금 일부 지자체는 부지 유치와 시범사업에 나서고 있지만, 과학적 분석 없는 유치 경쟁은 실패를 부를 수 있다. 수온, 용수 확보, 물류, 에너지 비용, 질병 리스크 등 다각도의 타당성 평가가 선행돼야 한다. 특히 부지 선정은 사업의 성패를 좌우할 수 있다. 적합하지 않은 입지는 단순한 실패를 넘어 산업 전반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릴 수도 있다.
기술도, 사람도 준비돼야 한다. 연어 양식은 스마트 수산업의 집약체로, 생물학·공학·정보통신기술(ICT)이 융합된 전문 인력이 필요하다. 단순 어업 종사자로는 이 복잡한 시스템을 운영할 수 없다. 현장 중심의 실습 교육과 인력 양성 시스템 마련이 시급하다. 사람에 대한 투자가 결국 산업의 지속성을 결정한다. 하루아침에 만들 수 없는 ‘사람’이야말로 연어 자급화의 가장 큰 자산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속도’가 아니라 ‘기초’다. 자급화는 수입 대체가 아니다. 기후위기 시대, 식량 주권과 저탄소 식품 체계, 해양 생명산업의 미래가 걸린 전략적 선택이다. 준비 없는 추진은 산업의 신뢰를 무너뜨릴 뿐이다. 정부는 컨트롤타워 역할을 명확히 하고, 민·관·학 협력을 통해 실증과 검증을 거친 점진적 확산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연어는 이제 단순한 생선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해양환경, 식량체계, 기술과 사람. 이 모든 것의 교차점에 연어가 있다. 기후위기 시대, 연어가 살아야 우리가 산다.
김태호 전남대 해양생산관리학과 교수·스마트수산양식연구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