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에 새 둥지 튼 피아니스트 김선욱 내한 공연
지난해 세계적인 음악 매니지먼트사인 아스코나스 홀트와 소속 계약을 맺은 뒤 7월 훌쩍 영국으로 떠난 김선욱(21).런던에 둥지를 튼 지 5개월만에 그가 한국무대에 서기 위해 돌아왔다.3~4일에는 대전과 전주에서 바이올리니스트 김화라와 신년듀오콘서트,31일에는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마렉 야노프스키가 지휘하는 베를린방송교향악단과 협연으로 관객을 만난다.
연말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지난달 29일 서울 프라자호텔에서 만난 그는 지난 5개월의 런던 생활에 대해 “연주자이기 전에 음악애호가이고,공연 전날에도 연주회를 보러 갈 정도인데,원없이 연주회를 즐겼다.”고 운을 뗐다.
“외국연주자들이 아시아를 방문하는 건 1년에 한 두번 정도지만,런던에서는 정말 많은 공연이 있어요.메시앙의 투랑갈릴라 교향곡 연주회가 서너 번 연달아 있고,우리나라에서 보기 힘든 브렌델,폴리니,바렌보임 등 굵직굵직한 공연들을 볼 수 있었죠.”
그중에서도 그는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있는 사이먼 래틀이 원전악기 연주단인 계몽시대 오케스트라와 슈만의 교향곡 4개를 한꺼번에 연주했던 공연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워낙 접하기 힘든 기회였기 때문이다.
런던의 장점은 또 있다.“지난해만 해도 한 달에 서너 번 해외연주회가 있었는데 공연하러 10시간 동안 비행기를 타야 하는 것이 너무 힘들었어요.런던은 유럽 각국을 다니기에 좋고,미국과도 가깝죠.지리적 이점도 있고,다른 연주자들의 활동을 가까이서 보니 정말 큰 도움이 됩니다.”
클래식음악계에서 보는 김선욱의 앞길은 이제 걸림돌 따위는 없는 탄탄대로다.한국예술종합학교를 졸업했고,병역문제도 해결됐다.예술공익근무요원으로 근무하며 6개월마다 한 번씩 연주실적을 제출해야 하지만,공연 스케줄이 빡빡한 그에겐 어려운 일이 아니다.
정작 자신에게는 걸림돌이 있다.바로 ‘경험’이다.거장 피아니스트 안드라스 시프가 “음악 내면까지 이해하는 젊은 피아니스트”라고 극찬했지만 감정을 담아내기란 쉽지 않다.“악보를 보고 셈여림,프레이즈(악절),흐름,구조,페달 등을 미리 계획을 짠 뒤 연습을 해요.악보의 기본에 가장 충실한거죠.하지만 감정을 잡는다는 건 공식도,답도 없어요.이건 연주자의 경험에 따라 달라지는 거라,1년 전에 보지 못했던 것을 발견하고 표현해내는 것은 뿌듯하면서도 참 어려워요.”
터는 런던에 닦았지만,한국팬이 그를 만날 기회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서울시향(3월),김준희·김태형과 함께하는 ‘백건우와 영피아니스트’(5월),정명훈과의 실내악 ‘7인의 음악가들’(8월) 등이 줄줄이 이어진다.특히 서울시향과는 차이콥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연주한다.“차이콥스키,프로코피예프 등 러시안의 곡은 두렵다.”고 조심스럽게 표현한 그의 새로운 도전인 셈이다.
베를린방송교향악단과의 협연도 내심 기대하고 있다.이 악단이 스승인 김대진 예술종합학교 교수와 협연한 2003년 내한공연을 두고 그는 “딴죽 걸 수 없는 독일음악을 선사한 대단한 공연이었다.”고 평가한다.그러기에 “그들과 베토벤 협주곡 4번을 같이 한다는 건 더할 나위 없는 영광”이라면서 기대와 설렘이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이후의 계획을 묻자 10대 시절(그래봤자 2년 전이다!) 이야기를 불쑥 꺼낸다.“10대 때는 미래 계획을 세웠어요.후회되는 게 하나도 없을 정도로 이뤄졌죠.언제 학교를 졸업하고,언제 국제 콩쿠르에 나가고….운도 따라주었는지 성과는 기대 이상이었고요.”
그래서 계획이 더욱 구체적이 되었다는 얘기일까.하지만 의외다.“이젠 계획을 짜지 않아요.달성하지 못하면 어쩌나 두렵기도 하고….연주할 날이 50년 이상 남았잖아요.급하게 하지 않을 거예요.”
‘경험’을 중시하는 그는 이번 연주회를 위해 24시간을 연습해도 10년 후보다는 잘 하지 못할 것을 안다.그렇게 20대가 된 지금 더욱 어른스러워졌다.“남이 내 연주를 어떻게 들을까 신경쓰지 않기로 했어요.내가 얼마나 발전하고,내 연주를 얼마나 만족스럽게 완성하느냐,최고의 수준을 보여줄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한 거죠.”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고 온 그의 연주가 기대될 수밖에 없다.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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