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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 이웃 작은 등불] “어른들 관심이 아이들 끼니 확 바꿨죠”

    [내 이웃 작은 등불] “어른들 관심이 아이들 끼니 확 바꿨죠”

    “서울신문 보도<8월 22일자 2면> 이후 아이들의 급식 개선을 위한 노력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아이들 급식에 대한 지역사회의 관심이 부쩍 높아졌어요.” 대전 서구 봉산초등학교의 부실급식 사태 진상조사위원장을 맡았던 이건희 참교육학부모회 대전지부 대표는 “올해 8월 이후 바쁘게 지낸 보람이 있다”며 “조사위원장을 맡은 뒤로 학부모 모임에 나가면 다른 학부모들이 고맙다는 인사를 꽤 건넨다”고 말했다. 보도 후 4개월이 지난 이달 22일 봉산초 아이들의 식판에는 잡곡밥, 홍합미역국, 돼지갈비찜, 새송이버섯볶음, 총각김치 등이 반찬으로 올라왔다. 열흘 전인 지난 12일 메뉴였던 현미밥, 동태찌개, 모둠케첩조림, 고추잡채과 꽃빵, 배추김치 등은 아이들이 특히 좋아했다. 지난 5월 우동면, 닭꼬치 1개, 단무지 몇 조각만 달랑 들어 있는 식판을 받아든 것과 비교하면 큰 변화다. 김치 두세 조각이 떠다니는 참치김치찌개, 고기와 메추리알을 하나씩만 준 돈육메추리알조림 등 이 학교의 급식 사진은 지난 6월 인터넷 커뮤니티에 공개되자마자 국민들의 공분을 샀다. “교육당국의 관리 부실, 영양교사와 조리원의 직무유기가 빚어낸 일이었죠. 더 황당한 건 당시의 부실 식단이나 한결 나아진 지금의 식단이나 모두 같은 급식비인 1인당 2570원으로 만들었다는 겁니다.” 이 대표는 지난 6~8월에 진상조사를 진행하면서 매 순간 당황했다고 전했다. 영양교사와 조리원들은 급식과 관련한 일지를 제대로 작성하지 않았고, 부식업체의 납품서류에는 통 단위로 납품하는 마요네즈 수량이 2.94개라고 적혀 있었다. 식재료 주문에 급식 인원은 고려되지 않았고, 아이들은 배를 반도 못 채울 양의 식사를 받아야 했다. 조사 이후 학교 측은 영양교사와 조리원을 교체했고 교육청 지시로 매일 급식 사진을 학교 홈페이지에 공개하고 있다. “한바탕 홍역을 치르고 나서 많이 달라졌습니다. 학교급식지원센터 설치를 논의하고 있고, 중학교 무상급식 도입도 고민하게 됐습니다. 아이들이 밥을 제대로 먹는 것도 중요한 교육과정입니다. 하지만 어른들의 무관심으로 교육청이나 지자체의 정책 순위에서 밀려 있었던 거죠. 결국 학부모들의 관심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학부모들이 직접 나서고, 문제를 찾고, 개선해야 합니다.”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 [장은석 기자의 호갱 탈출] 경비실에 맡겼다는 택배가 사라졌다… 보상책임은 누구?

    [장은석 기자의 호갱 탈출] 경비실에 맡겼다는 택배가 사라졌다… 보상책임은 누구?

    택배업체 부재중 방문표 투입·연락 의무 조치 없이 경비실에 맡겼다면 보상 요구 최근 인터넷 쇼핑몰에서 가방을 산 직장인 A씨는 황당한 일을 겪었습니다. 가방이 담긴 택배 상자가 사라진 겁니다. 가방을 주문한 지 며칠이 지나도 택배가 도착하지 않아 쇼핑몰에 문의했더니 “택배기사님이 아파트 경비실에 맡겨 뒀대요”라고 설명해 줬습니다. 그래서 A씨는 경비실을 찾아가 “저한테 온 택배 못 보셨어요?”라고 물어봤지만 택배 관리대장을 뒤적거리던 경비 아저씨는 “그 집으로 온 택배는 하나도 없어요”라고 말하네요. 택배기사가 경비원에게 말도 하지 않고 택배를 경비실에 그냥 두고 갔는데 분실된 거죠. 경비실 주변에 폐쇄회로(CC)TV도 없어서 누가 택배를 가져갔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습니다. A씨는 잃어버린 가방에 대해 보상을 받을 수 있을까요? 23일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소비자가 없어서 택배기사가 아파트 경비실 등에 맡겼다가 분실된 택배에 대해 보상을 받을 수 있습니다. 소비자분쟁 해결 기준에서 소비자(택배 인수자) 부재 시 후속조치가 미흡해 일어난 피해에 대해 택배 요금을 환불해 주는 것은 물론 손해배상을 하도록 규정하고 있어서죠. 택배업체는 소비자의 집에 ‘부재중 방문표’를 투입하고 소비자에게 미리 연락하는 등 충분한 후속조치를 취해야 책임을 면할 수 있습니다. 그러지 않았다면 분실된 택배에 대해 보상을 해 줘야 합니다. 시골에 계신 어머니가 김치를 보내 주시는 등 개인 사이에 주고받는 택배가 분실된 경우는 이처럼 택배회사로부터 보상을 받으면 됩니다. A씨의 경우처럼 인터넷 쇼핑몰 등 전자상거래 업체로부터 물건을 샀다면 택배회사가 아닌 쇼핑몰에 보상을 요구할 수 있습니다. 사업자는 물품을 구매자에게 인도할 의무가 있는데 이를 이행하지 않은 것이므로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죠. 백승실 소비자원 주택공산품팀장은 “소비자는 일단 인터넷 쇼핑몰과 제품 구매 계약을 했기 때문에 쇼핑몰에 보상을 요구하면 된다”면서 “쇼핑몰에서 사실을 확인한 뒤 택배회사와 책임을 가려 보상을 해 주는 방식”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렇다면 경비실에는 책임이 없을까요? 아파트 경비실에서 주민들의 택배를 대신 받아주는 것이 관행처럼 됐지만 소비자원에 따르면 법적으로 경비실에서 택배를 맡아 줄 의무는 없다고 합니다. 주민 편의를 위해 택배를 받아는 주되 ‘분실 등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문구를 써 붙인 경비실도 많은 이유죠. A씨의 사례처럼 택배기사가 경비실에 아무런 말도 없이 택배를 놓고 간 경우에는 분실에 대한 책임을 경비실에 묻기 어렵습니다. 택배기사가 경비실에서 확실히 택배를 수령했고 문서 등 입증할 자료가 있다면 전부는 아니지만 경비실에도 약간의 책임이 있다고 하네요. 선량한 관리자의 의무 등을 지키지 않아서랍니다. 요즘은 택배기사가 전화를 걸면 경비실에 가기 귀찮아서 “그냥 집 앞에 두세요”라고 말하는 소비자들도 많은데요. 이럴 경우에는 택배가 없어져도 모두 소비자 책임입니다. 소비자원의 정호영 법무관은 “소비자가 ‘집 앞에 두라’고 말했다면 물품의 인수 장소를 지정한 것으로 본다”면서 “택배기사는 소비자가 지정한 인수 장소에 물품을 뒀기 때문에 분실에 대한 책임은 소비자가 져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만약 택배회사나 인터넷 쇼핑몰 등에서 없어진 택배에 대해 보상을 해 주지 않는다면 소비자원에 피해 구제를 요청하고, 소비자분쟁조정위원회에 조정을 신청하면 됩니다. esjang@seoul.co.kr
  • [김석동의 한끼 식사 행복] 추운 날씨의 보양메뉴 추어탕

    [김석동의 한끼 식사 행복] 추운 날씨의 보양메뉴 추어탕

    추어탕은 원래 여름에 지친 몸을 위한 가을의 음식으로, 미꾸라지를 쓴다. 미꾸라지 ‘추’(鰍)자는 ‘고기’(魚)와 ‘가을’(秋)이 합해진 글자다. 추어탕 재료는 미꾸라지 또는 미꾸리인데 비슷하지만 다른 종류로, 미꾸라지는 약간 납작하고 미꾸리는 둥그스름하다. 지금은 더 빨리 자라는 미꾸라지를 많이 쓴다고 한다. 미꾸라지는 강이나 논에서 흔히 잡히므로, 태생적으로 추어탕은 서민음식이다. 문헌에서는 원기를 돋우는 보양식, 속을 편하게 하는 건강식 등으로 소개되고 있다. 이 밖에도 피부 미용, 노화 방지, 성인병 예방 등 현대인들을 위한 다양한 효능이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추어탕은 지방마다 레시피가 달라 그에 따라 각기 특색이 있다. 경상도에서는 푹 삶은 미꾸라지를 으깬 후 배추, 숙주, 토란대 등을 넣고 끓이다 파, 마늘, 고추양념과 방앗잎, 산초를 넣는다. 국물을 맑게 끓이는 스타일이다. 전라도에서는 된장, 시래기, 들깨가루 등을 넣어 걸쭉하게 끓인 다음 부추, 산초를 더한다. 서울에서는 사골 우린 국물에 삶아 놓은 미꾸라지를 통째로 넣고 고춧가루, 두부, 버섯, 파 등을 추가해 끓인다. 서울식은 ‘추탕’이라 부르기도 한다. 강원도식은 감자, 미나리 등을 넣고 고추장을 풀어 빨갛게 끓인다. 그러나 전국 음식이 된 지금은 지방보다는 식당에 따라 특별한 맛을 선보이고 있다. 추어탕은 전국적으로 사랑받는 메뉴여서 인기 있는 맛집 또한 곳곳에 포진해 있다. 덕수궁 뒤편 정동극장 옆 골목길에 40년 넘는 관록의 추어탕 집 ‘남도식당’이 있다. 이 주변 직장인들뿐만 아니라 추어탕 마니아들은 다 아는 집으로, 점심 때는 식당 밖으로 길게 줄이 이어진다. 한꺼번에 들어가 앉으면 주문 없이 단일메뉴인 추어탕을 내어 준다. 전라도식으로 국물 맛이 진하며, 갈아서 나온다. 하나은행 본점 뒤편에는 1932년 문을 연 서울식 추탕집 ‘용금옥’이 있다. 육수에 유부, 작은 두부 등을 넣어 끓이는 탕으로, 모습은 육개장을 연상케 하지만 국물 맛이 부드럽다. 탕에 들어가는 국수사리도 특색 있다. 서울식은 원래 미꾸라지를 ‘통으로’ 끓여내지만, 이 집에서는 ‘갈아서’도 준다. 옛날에는 냄비에 나왔으나 이젠 뚝배기를 쓴다. 좁은 골목길에 자리잡고 옛 모습으로 단골을 반겨 주는 집이다. 젊은 주인장이 주방 입구에서 직접 추어탕을 끓이는 모습이 보기가 좋다. ‘원주 추어탕‘은 강남 교보타워 길 건너편에 있는 1977년산 추어탕 전문가게다. 테이블에서 아주머니가 추어탕을 작은 솥에 직접 끓이면서 요리해 주어 남다른 정취를 느낄 수 있다. 맑은 추어탕이 아니고 된장을 풀어 진하고 걸쭉한 스타일이다. ‘통마리’, ‘갈아서‘ 모두 가능하다. 매콤한 파김치, 시원한 동치미도 좋다. 원주집이지만 일반적인 강원도식과는 달리 고추장을 넣지 않는다. 24시간 영업한다. 여의도 미원빌딩에는 전직 대통령 등 유명 정치인들이 다니던 추어탕집이 있다. 옛날 마산식으로 요리하는 추어탕이라고 해서 상호가 ‘구마산’이다. 삶은 미꾸라지를 갈아서 체로 받쳐 내고, 된장국물에 배추우거지를 많이 넣고 맑게 끓이는 경상도식이다. 미꾸라지 맛에 익숙하지 않은 추어탕 아마추어에서부터 프로까지 골고루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추어탕은 보양, 해장을 겸하는 맛깔난 한 끼로 손색 없는 메뉴다. 이제 가을뿐 아니라 계절에 관계없이 전국 어디서나 즐길 수 있는 음식이 되었지만, 아무래도 날씨가 차가워야 제격이다. 전 금융위원장·지평인문사회연구소 대표
  • 효성, 이웃돕기 성금 10억 기탁

    효성, 이웃돕기 성금 10억 기탁

    조현준 효성 사장은 21일 서울 중구 세종대로 사회복지공동모금회를 방문해 연말 이웃돕기 성금 10억원을 기탁했다. 조 사장은 “소외된 이웃을 돕고 다 함께 행복한 사회를 만드는 데 보탬이 돼야 한다는 것이 평소 저희들의 생각”이라면서 “기업과 사회단체들이 씨줄과 날줄이 되어 훈훈한 사랑이 감도는 따뜻한 사회를 만들어 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효성은 취약계층 지원, 호국보훈 활동, 문화예술 후원 등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사랑의 김장김치 전달, 사랑의 쌀·생필품 전달 등을 통해 지역사회 나눔 활동을 이어가고 있고, 2013년부터는 ‘효성나눔봉사단’을 설립해 임직원들의 봉사활동을 장려하고 있다. 김동현 기자 moses@seoul.co.kr
  • SPC그룹, 저소득 독거노인에 간식 전달

    SPC그룹이 양재노인종합복지관과 함께 독거노인들에게 김장김치와 간식을 나누는 등의 봉사활동을 진행했다고 21일 밝혔다. 이번 봉사활동에서 SPC그룹 임직원들은 지난 12일 12일 양재노인종합복지관과 함께 김장김치, 쌀, 라면, 호빵, 손편지를 담은 ‘나눔 패키지’를 만들었다. 또한 다음날인 13일에는 ‘나눔 패키지’를 독거노인 120세대에 직접 전달함과 함께 따뜻함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회사 관계자는 “나눔 패키지를 전달하면서 어르신과 함께 편지 읽어 드리기, 안마해 드리기 등을 통해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고 전했다.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경기도 대형 사립유치원 회계부정 만연…원장 아들 성인용품도 구매

    경기도 내 대형 사립유치원들 사이에서 원비를 사적용도로 사용하거나 개인의 재산을 불리는 데 이용하는 등 회계부정이 만연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기도교육청 시민감사관은 20일 도내 사립유치원 60곳을 대상으로 지난 1년여간 벌인 운영실태와 회계감사 중간결과 발표를 통해 이같이 밝혔다. 이번 감사대상 사립유치원은 원아 100명 이상이고, 한 명의 설립자가 유치원 2개 이상을 운영하는 곳이다. 여주, 양평, 연천, 가평, 포천 등 도내 5시 시·군 소재 유치원은 원아 수가 100명을 넘는 곳이 없어 감사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감사결과에 따르면 A유치원 운영자는 2014∼2015학년도 유치원회계를 집행하면서 78건 285만여원을 개인용도로 사용하거나 자녀의 업무추진 명목으로 애견물품이나 의류구매 등에 사용했다. B유치원 운영자는 지난해 3월쯤 거주지 인근 마트에서 162만원 상당의 김치냉장고를 구매, 감사 당일까지 개인적으로 사용했다. C유치원은 2014∼2015학년도 신용카드 사용 후 매출전표를 다수 누락했으며, 신용카드로 약 11억 9000만원을 골프장이나 개인 의류 매장 등 사적 사용이 의심되는 곳에서 여러 차례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D유치원은 인근의 또 다른 유치원 원장을 특별강사로 등록하고 2년에 걸쳐 세무신고 없이 매월 180만원을 지급하는 등 원비를 개인 재산을 늘리는 데 활용한 정황도 다수 확인됐다. 이밖에 누리과정 교육활동 시간에 놀이체육, 재즈발레, 요리, 청각 놀이 등 운영계획과 다른 특성화교육을 실시해 학부모들에게 별도의 강사비와 재료비를 부담한 유치원들도 적발됐다. 시민감사관 측은 “감사대상 유치원 중 지적사항이 없었던 곳은 한 곳도 없었다”며 “한 유치원 원장 아들은 서울 홍대에서 성인용품을 구매한 뒤 유치원회계로 처리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송병춘 시민감사관 대표는 “일부 운영자와 원장들은 월 1000만원이 넘는 고액 급여를 받아가면서 유치원 명의의 카드를 사치품이나 정치후원금 등 사적으로 사용했다”며 “반면 교사들은 박봉과 열악한 근로조건에 놓여 있었고, 원아들의 급식재료비는 한 끼에 1000원도 되지 않는 곳도 있을 정도로 급식 질과 안전성에 문제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도교육청은 감사를 마친 사립유치원 7곳을 사립학교법위반 등으로 수사기관에 고발 조치했으며 감사결과를 분석해 국회, 국무조정실, 교육부, 타 시도교육청과 함께 제도개선 방안을 마련 중이다. 도교육청 시민감사관은 2012년 누리과정(만3∼5세 무상보육) 시행으로 사립유치원에도 교육청 예산이 지원됨에 따라 사립유치원을 대상으로 첫 회계감사를 벌였다. 김병철 기자 kbchul@seoul.co.kr
  • [정명진의 외국인관광 이야기] 관광의 질을 높이는 먹거리 TIP

    [정명진의 외국인관광 이야기] 관광의 질을 높이는 먹거리 TIP

    관광에서 먹거리는 여행 만족도의 큰 부분을 차지한다. 외국인 관광객 또한 예외가 아니다. 국가도 문화도 다른 외국인들의 까다로운 입맛. 어떻게 하면 보다 높은 만족감과 함께 새로운 경험을 선사할 수 있을까? 한류에 대한 관심이 커지며 한식에 대한 호기심 자체가 높아진 부분도 있지만 이에 앞서 절대 놓치지 말아야할 포인트는 고객의 문화권에 대한 이해, 적절한 레스토랑, 어플이나 여행사의 활용이다. 지금부터 외국인들의 맛과, 눈과, 귀를 즐겁게 할 차별화된 음식과 레스토랑 준비 등에 대해 알아보자. 먼저 방한 외국인의 문화, 종교적 특징을 알아야 한다. 이슬람권 국가의 경우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것은 당연지사고 소고기나 닭고기 등 허용된 고기도 이슬람 율법에 따라 도축한 할랄 음식이 아니면 절대 입에 대지 않는다. 힌두교도가 소고기를 금하는 것도 기본 중 기본이다. 중국인은 건강식이나 펼쳐 놓고 많이 먹는 차림을 좋아하고 일본은 깔끔한 느낌과 함께 게장, 부대찌개 등 한국의 로컬 음식을 선호한다. 또한 인도, 태국, 파키스탄 등 독특한 식문화를 가진 국가에서 온 외국인의 경우에도 한식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그들의 식문화에 대한 우선적인 배려가 선행돼야 한다. 이외에도 변수는 무궁무진하다. 동남아 지역에서 방한한 외국인들은 특정 패스트푸드점의 햄버거를 하루에 한 번 꼭 먹는 이들도 있고 의외로 고급 음식점보다 시장에서 파는 떡볶이나 김치전에 감탄하는 경우 또한 다반사다. 사철탕을 꼭 먹어보고 싶다고 넌지시 의사를 건네는 외국인 VIP들이 있는가 하면, 구절판 등 정성 가득한 한식을 보고도 기호에 맞지 않아 손을 대지 않는 이들도 있다. 또한 외국인들에게 필요한 레스토랑 리스트의 지속적인 업데이트와 함께 체크리스트를 수립하는 것도 중요하다. 외국인 관광에서는 메뉴와 주류도 중요하지만 그 음식을 즐기는 레스토랑 자체의 분위기나 수준도 고려되어야 할 사항이다. 서양인의 체격을 고려해 천장이 높고 공간 여유가 있는지, 단독실이 아니라면 주변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지, 주변 테이블에 어떤 이들이 않게 되는지, 화장실 청결도 또한 사전에 알아두면 식사 자리가 한결 편해질 수 있다. 레스토랑 측에 미리 양해를 구한다면 코스별로 메뉴가 서빙될 때 해당 메뉴의 음식 이름과 재료가 영문으로 설명된 메모를 함께 제공할 수도 있다. 기업체가 초청한 외국인 VIP나 바이어의 경우에는 해당 기업 계열 레스토랑으로 모시는 것도 센스있는 선택이 될 수 있다. 이 밖에 선호하는 메뉴와 재료를 위주로 식사를 준비하는 부분이나, 외국어가 가능한 서빙 그리고 프라이빗한 룸을 고려하는 부분도 잊지 않아야 한다. 레스토랑까지 이동시 교통체증이 심한 곳은 지양하는 것이 좋다. 외국인 의전 경험이 부족하다면 외국인 전문 여행사에 문의하거나 외국인에게 유명한 레스토랑 관련 앱을 활용하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이미 축적돼 있는 노하우가 생각치 못한 요소요소에서 윤활유가 될 것이다. 대표적인 예로 코스모진의 팁을 하나 소개하자면 외국인 손님에게 음식을 대접하기 전 제공될 요리에 대한 정보를 미리 요청해 해당 메뉴에 대한 설명과 식재료에 대한 정보를 사전에 확인한다. 외국인들에게 생소할 수 있는 단호박 롤, 불고기 냉채, 탕평채 등 요리에 대한 정보를 먼저 보여주고 식재료의 영양 성분을 비롯한 기초적인 데이터를 전달하면 알러지 등 특이사항을 사전에 파악할 수 있음은 물론, 음식에 대한 기대감까지 배가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사전에 철저히 준비된 요리와 분위기는 외국인 관광객들의 입맛은 물론 마음까지 만족시켜 한국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가지고 돌아가는데 일조할 수 있다. 방한 외국인을 배려한 음식의 미학. 관광 만족도를 높이는 중요한 포인트라는 점을 기억하기 바라며 더욱 성숙한 외국인관광 문화가 만들어지길 기대해 본다. 정명진 여행 칼럼니스트(코스모진 여행사 대표) dosa3141@cosmojin.com
  • 한국인 나트륨 섭취량 5년 만에 19% 줄었다

    한국인의 나트륨 섭취량이 5년 만에 20% 가까이 감소했다. 18일 한국건강증진개발원에 따르면 정부가 본격적으로 나트륨 저감화 정책을 추진하기 시작한 2010년 한국인의 1일 평균 나트륨 섭취량은 4785㎎이었지만 지난해엔 3871㎎으로 19.1% 줄었다. 나트륨 섭취량 감소는 식품업계의 공이 컸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 연구에 따르면 2010~2013년 나트륨 섭취량 감소분의 83%는 김치, 장류, 라면 등 가공식품 속 나트륨 함량 감소와 관련됐다. 나머지 17%는 국민의 식품 섭취량 변화에 따른 것이다. 다만 우리나라 나트륨 섭취량은 세계보건기구(WHO) 권고량(2000㎎ 미만)에 비하면 여전히 2배 가까이 더 섭취하는 수준이다. 정부는 나트륨 1일 섭취량 2000㎎ 이하 인구 비율을 2008년 12.8%에서 2020년 30.8%로 높인다는 목표를 세웠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다큐 3일’ 충남 보령 천북굴단지…70여개의 굴 구이 식당가

    ‘다큐 3일’ 충남 보령 천북굴단지…70여개의 굴 구이 식당가

    18일 KBS2 ‘다큐멘터리 3일’에서 ‘굴 익는 마을의 겨울맞이 - 충남 보령 천북 굴단지’편이 방송돼 많은 누리꾼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겨울 칼바람이 불어오는 보령시 천북면 장은리의 바닷가 마을. 그곳에 약 70여개의 굴 구이 식당들이 모여 ‘천북 굴단지’를 이루고 있다. 오래 전부터 이곳 천북 지역에서 나는 굴은 맛과 향이 좋기로 유명했다. 당시 갯벌에서 굴을 캐던 아낙들은 추운 겨울이 오면 모닥불에 모여앉아 허기진 배를 채울 겸 굴을 구워 먹었다. 이 굴 구이 맛이 소문이 나며 하나 둘 굴 구이 식당이 생겨나게 된 것이 지금의 천북 굴단지의 시작이다. 과거 홍성 방조제 건설 이전, 천북 지역은 그야말로 ‘굴 밭’이라 불릴 정도로 굴 생산량이 많았다. 곳곳에서 굴 까기 작업이 한창이었던 ‘수문개’ 마을의 비닐하우스 작업장에도 많은 사람들이 굴을 사러 찾아왔다. 작업장에 찾아온 손님들은 주민들이 먹던 굴 구이를 맛보고 그 맛을 잊지 못해 ‘수문개’ 마을에 다시 들렀고, 그렇게 하나 둘 굴 구이집이 생겨났다. 간판도, 이름도 없는 ‘수문개’ 마을의 굴 구이 집들은 ‘수문개 1호’, ‘수문개 2호’... 비닐하우스 마다 정겨운 번호를 붙여 자리를 지켜왔다. 오늘날 ‘천북 굴단지’의 시작이 된 ‘수문개’ 마을의 어르신들은 지금도 굴 단지의 윗마을에서 한 평생 굴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모두가 잠든 시간 새벽 4시. 굴 단지의 하루는 이때부터 시작된다. 굴이 들어오는 날이면 상인들은 이른 시간부터 굴을 손질할 준비를 시작한다. 펄이 가득 묻어있는 굴을 닦아내고, 손님들에게 팔 굴을 손질하고, 분류하다 보면 어느새 동이 트고 아침이 온다. 한겨울 새벽 내내 작업을 하다보면 그 추위는 이루 말할 수 없다. 추운 겨울에도 매서운 바람 속에서 하루 종일 굴을 닦고 까는 탓에 온 몸이 성한 곳이 없을 정도이다. 굴단지의 상인회 회장을 맡고 있는 ‘박상원’ 사장님은 오랜 겨울을 거치며 상해버린 아내의 손을 보며 눈시울을 붉혔다. 모든 집이 굴 구이, 굴 찜, 굴 칼국수, 굴밥으로 메뉴가 통일 되어있는 천북 굴단지. 똑같은 굴 요리를 팔고 있어 큰 차이가 없어보여도, 집집마다 손맛을 담아낸 김치 맛이 각각 일품이다. 이곳의 김치는 천북 지역에서 난 배추를 바닷물에 절여 만드는 게 특징이다. 바닷물에 절인 배추가 담백하고 아삭해서 손님들이 절임 배추를 따로 택배로 주문할 정도이다. 굴과 함께 먹으면 그 맛이 더욱 좋아 겨울 내내 손님들의 사랑을 듬뿍 받기 때문에 김장철을 맞은 상인들은 분주하다. 천북 굴 단지를 찾는 손님들은 대부분 매해 이곳을 방문하는 오랜 단골들이다. 굴 구이의 맛은 물론이고, 푸근한 분위기, 천수만의 아름다운 바닷가까지. 어느 것 하나 잊을 수 없어 매해 찾아온다 말한다. 가게 주인들 또한 어디서 온 손님인지, 어떤 사연을 갖고 있는 손님인지 얼굴만 봐도 줄줄 말할 정도. 단골손님들에게 이곳은 단순히 ‘맛 집’을 넘어 오랜 추억과 사연이 깃든 잊지 못할 곳이기도 하다. 이곳 사람들에게 겨울은 굴이다. 굴을 캐던 시절부터, 굴을 팔며 살아가는 오늘 날 까지. 자연이 선사한 굴이 있어 행복하다 말하는 사람들. 천수만의 칼바람 속에서도 그들의 겨울은 계속된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길섶에서] 그리운 맛/황수정 논설위원

    동네 마트에서 절임 배추를 싸게 판다고 야단이다. 시속(時俗)이란 참 줏대 없다. 몇 해 전까지도 절여진 배추를 상자째 들이는 김장은 편법 축에 들었다. 장삿속 절임 배추는 며칠씩 비닐에 꽁꽁 동여매이기 마련. 겨울 밥상을 관장하기에는 어째 쩨쩨한 풍모다. 온 집안의 소란한 손발품이 들어가야 김장은 제격이다. 정통의 맛은 그래야지 싶은 고집은 추억 탓이다. 어릴 적 우리 집 김장 날은 잔칫날이었다. 한나절 통배추 백포기쯤 다 쪼개지면 대문 밖에까지 시퍼런 풋내가 진동했다. 남산만 한 고무통에 풋배추를 켜켜이 쌓아 좌락좌락 왕소금을 지르던 어머니 손끝은 찰찰하고 시원했다. 한밤 장독간에 달빛이라도 엉기면 풀 죽은 배춧속은 왜 또 그렇게 샛노랗던지. 시골집에서 김장김치가 올라왔다. 몸살이 질겨서 올해는 절임 배추란 놈을 처음 사 봤다고, 어머니는 고백처럼 전화를 걸어오신다. 먼저 먹을 것, 뒀다 먹을 것 나눠 소금 농도를 늘상 따로 맞춰 주셨던 어머니다. 계피향 설핏한 우리 집 김치맛을 영영 잊어야 할 날, 오고야 말겠지. 살면서 정말 겁나는 일은 어쩌면 그런 것. 그리움이 지금 밥상 위에 있다. 황수정 논설위원 sjh@seoul.co.kr
  • [新전원일기] 쪽파, 외길 인생…대박, 쪽파 인생

    [新전원일기] 쪽파, 외길 인생…대박, 쪽파 인생

    어릴 적 살았던 시골집 마당에는 텃밭이 있었다. 저녁 준비를 하던 어머니가 “마당에 나가 쪽파 서너 뿌리 뽑아 오너라” 하고 심부름을 시키면 슬리퍼를 신고 마당에 쪼르르 달려 나가던 기억이 떠오른다. 쪽파는 어린 내게도 한 손에 잡혔고, 큰 힘을 들이지 않고도 흰 대를 내보이며 손쉽게 땅 위로 딸려 나왔다. 흙이 묻은 뿌리를 조심스럽게 털어다가 부엌으로 달려가던 순간의 뿌듯함, 그리고 코끝에 맴돌던 알싸한 파 향기가 오랜 기억과 함께 솟아오른다. 고향을 떠나 도시에 살게 되면서 이제 더이상 채소를 집에서 길러 먹지 않게 됐다. 당연히 땅에서 갓 뽑아낸 쪽파가 식탁에 오를 일도 없다. 매번 마트에서 사다 먹는 채소인데도, 쪽파를 대량 재배하는 농원에 대한 이야기는 다소 생소하게 들렸다. 쪽파는 대표적인 소면적 작물이다. 그래서 과거에는 주소득원으로 재배하는 작물이 따로 있는 농민들이 남는 밭에 쪽파를 키우는 경우가 많았다. 충남 아산시 도고면 시전리에 자리잡은 ‘신석영 농업회사법인’에서 만난 신석영(49) 대표는 쪽파 농사를 곁다리로 생각하는 것은 교통이 불편하던 과거에나 해당하는 이야기라고 말했다. 21세기 농업의 성패 여부는 규모와 전문성에서 판가름 난다는 것이다. 25년여간 쪽파 농사 한길만을 걸어온 ‘쪽파 부농’의 목소리에서는 자신감이 넘쳤다. # 농사에 아무것도 몰랐던 청년, 쪽파에 빠지다 신 대표와 쪽파의 운명적인 만남이 시작된 때를 회상하자면 1990년대 초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전문대를 갓 졸업한 20대 중반의 청년 신씨가 처음부터 농부를 꿈꿨던 것은 아니었다. “원래는 농산물 유통업에 관심이 있었어요. 대학 시절 품질관리사 자격증도 땄죠. 부모님이 농사를 지으셨던 것도 아니고,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농사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물려받은 땅 한 평 없이 무턱대고 쪽파에 반해서 농사를 짓게 된 거예요.” 농산물 유통에 관심을 가지다 보니 자연스럽게 주변 지역의 재배 작물과 농업 환경을 둘러보게 됐다. 도고면 일대는 예부터 쪽파를 재배하는 농민들이 많았다. 이 지역이 기후가 선선하고 물이 잘 빠지는 토질이라 쪽파를 재배하는 데 유리한 환경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쪽파를 생계 수단으로 삼는 농민들을 보면서 신 대표는 쪽파 농사를 규모 있게 잘 지으면 어지간한 사업보다도 훨씬 더 비전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특히 쪽파는 파종 후 30~50일이면 출하가 가능해 환금성이 높다는 것도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그때 쪽파를 선택하게 된 게 운명처럼 느껴지는 이유가 싱싱하게 자란 쪽파가 그 어떤 화초나 난초보다도 더 예쁘게 보였기 때문이죠. 남들이 들으면 미쳤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지금도 쪽파가 줄지어 자라 있는 밭을 가끔 넋 놓고 바라봐요. 돈을 떠나서 제 눈에는 정말 예뻐 보여요.” 진지하게 쪽파에 대한 사랑을 고백하는 신 대표의 목소리에 처음에는 피식 웃음이 나왔다가 나중에는 점점 빠져들게 됐다. 자신의 입으로 “쪽파에 미쳤다”고 말할 정도로 25년간 쪽파 농사에 매진해 온 신 대표는 이후 쪽파 주산단지인 아산시 도고면에서도 쪽파를 가장 많이 출하하는 거농(巨農)이 됐다. 물려받은 밭 한 뙈기 없이 6500㎡의 땅을 빌려 시작한 농사가 지금은 33만㎡ 규모로 불어났다. 30동의 비닐하우스(약 1만 5000㎡)까지 따로 갖춰 사시사철 계절에 상관없이 쪽파를 출하하고 있다. 마을 어르신에게 조그마한 땅을 빌려 쪽파 농사를 시작한 청년은 20여년이 지난 후 연매출 40억원에 달하는 농업회사 ‘신석영 농업회사법인’의 어엿한 대표로 성장했다. 쪽파가 만들어 낸 기적인 셈이다. 오랜 세월 동안 부침을 겪기도 했다. 쪽파 값이 폭락해 애써 키운 농작물을 시장에 내놓지도 못한 채 갈아엎어 버린 일도 있었고, 수해를 입은 때도 있었다. 그럴 때면 망연자실하지 않고 다음을 기약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것을 몇 번의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배웠다. “쪽파는 밭 한군데에서 일 년에 최대 네 번까지 수확이 가능해요. 그러니 자연재해를 만나거나 병충해를 입었을 때에는 빨리 포기하고 다음 농사를 준비하는 게 나아요. 품질 낮은 작물을 헐값에 넘기는 것도 싫었어요. 제 이름 내걸고 회사까지 세웠는데 신뢰를 갉아먹을 수야 없지요. 말로는 쉽지만 적게는 수천, 많게는 수억원어치의 쪽파를 눈앞에서 포기하려면 마음으로는 피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습니다.” 건강한 쪽파를 생산하기 위해 신 대표가 가장 신경을 쓰는 것은 종자 선택과 관리다. 파 끝이 마르기 쉬운 여름에는 빨리 크면서 더위에 강한 종자를 심고, 재배 기간이 긴 봄과 가을에는 자라는 속도가 더딘 종자를 골라 충분히 햇빛과 바람을 받으면서 자랄 수 있도록 하는 등 출하 시기에 따라 종자가 달라진다. 구입한 종자는 1차 손질을 거쳐 저장고에서 최소 1개월에서 최대 3~4개월까지 건조시킨 후 쓴다. 1차 손질을 한 후 밭에 심었을 때 생산성이 더 높기 때문이다. #쉴 틈 없는 쪽파 사랑, 안정적 유통망 확보로 일반적으로 농촌의 겨울은 한가하다. 땅도 농부들도 쉬면서 따뜻한 봄날을, 그리고 이듬해 농사를 기다리는 시기인 것이다. 그러나 신 대표는 쉴 겨를이 없다. 쪽파 비닐하우스와 작업장을 하루에도 몇 번씩 오가며 둘러보아야 한다. 한 곳에서는 파종 작업이, 다른 한 곳에서는 수확이 한창이다. 김장철이라 쪽파 출하량도 평소보다 많은 편이다. “쪽파는 저장이 힘들고, 신선도가 중요한 식재료에요. 그래서 그날 수확한 쪽파를 매일매일 출하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습니다. 2~3일만 지나도 시들어 버려서 시장에 팔 수 없게 되거든요.” 하루도 빠짐없이 쪽파를 수확하고 출하시키느라 주말도 없이 일해야 한다는 신 대표. 매일 파밭으로 출근하는 그가 공식적으로 쉴 수 있는 날은 추석과 설날 단 이틀뿐이라고 한다. 쉬는 날도 없이 쪽파에 얽매여 있는 삶이 지겹지 않으냐는 질문에 “집에 돌아가 잠을 자는 중에도 쪽파를 생각한다”고 대답한다. “제가 잠자는 동안에도 쪽파는 자라고 있잖아요. 그래서 이부자리에서도 생각하게 돼요. 내일 아침에 밭에 나가면 그 녀석들이 얼마나 자라 있을까. 그 모습은 얼마나 예쁠까 생각하면서 다시 잠에 빠져듭니다.” ‘신석영 농업회사법인’이라는 큰 간판을 내건 작업장 안에서는 스무 명 남짓한 노동자들이 쪽파 세척과 손질 작업에 박차를 가하는 중이었다. 작업장을 가득 채운 푸른 쪽파가 내뿜는 매운 기운에 눈이 아릴 지경이었지만 애써 참았다. 하루 종일 묵묵히 쪽파를 씻고 다듬고 포장하는 일꾼들 앞에서 유난을 떨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쓴맛이 없고, 빛깔이 선명하기로 유명한 ‘신석영 쪽파’가 시장에서 인기를 끄는 것은 정성 들여 농사를 지은 공도 크지만, 이처럼 먹기 쉽고 보기 좋게 손질하는 과정을 좀더 꼼꼼히 거치기 때문이기도 하다. #전국에 입소문 난 ‘신석영 쪽파’ 신 대표가 포장에 특별히 신경을 쓰는 품목은 마트 납품용 쪽파다. 롯데마트와 직접 계약을 맺어 이곳에서 생산한 쪽파를 전국의 롯데마트에서 판매한 지도 3년째다. 종갓집 김치에도 신 대표가 납품한 쪽파가 들어간다. 모두 쪽파 품질이 좋다는 소문을 듣고 업체 측에서 먼저 제안한 계약이었다. 대형마트와 김치공장이라는 안정적 유통망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품질 좋은 쪽파를 생산하는 것은 물론 손질까지 바이어가 원하는 수준과 규격에 맞춰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전국 롯데마트와 김치공장에 납품하는 쪽파가 신 대표의 농가에서 출하한 쪽파의 50%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나머지 50%는 도매시장으로 팔려 나간다. 이곳에서 하루에 생산되는 쪽파만 해도 3~5t가량이며, 연간 생산량은 약 1200t에 달한다. 전국 쪽파 생산량의 20%를 차지하는 아산 도고 지역에서 120여 농가가 연간 6000여t의 쪽파를 생산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신 대표의 쪽파 농사 규모는 가히 독보적이다. 고정 직원 숫자만 5명, 일용직으로 일하는 노동자도 하루 평균 20~30명이나 된다. “쪽파 농사는 손이 많이 가요. 저 혼자서는 여기까지 올 수 없었다고 생각해요. 직원들을 포함해 도와주시는 분들의 도움이 컸죠.” 저장이 어려운 특성상 쪽파는 수입이 불가능한 농산물이기도 하다. 가격에 등락이 있기는 하지만 수입산 농산물 유입으로 인한 피해가 없다는 점이 쪽파의 매력이기도 하단다. 신 대표는 올해 쪽파 값이 예년에 비해 높은 편이라 출하하는 재미가 더 크다는 이야기도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풍년은 하늘에서 내리는 거라고 하잖아요. 농산물 가격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돈을 버는 해가 있으면, 반대로 손해를 보는 해도 있습니다. 일희일비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어요. 물론 돈을 많이 벌면 좋기야 하겠죠. 하하.” 마음을 비우고 정성을 다해 농사를 짓고, 그 이후는 하늘에 맡겨야 한다고 담담하게 말하는 신 대표를 보면서 ‘파가 자라는 이유는/ 오직 속을 비우기 위해서다/ 파가 커갈수록/ 하얀 파꽃 둥글수록/ 파는 제 속을 잘 비워낸 것이다(후략)’라고 노래한 이문재 시인의 ‘파꽃’이 떠올랐다. 혹시 ‘파꽃’이라는 시를 아느냐고 넌지시 묻자 “아유, 쪽파든 대파든, 파꽃 핀 파는 못 먹어요. 질겨서 맛이 없어”라는 신 대표의 답이 돌아온다. 파꽃에 담긴 은유보다는 손에 흙 묻혀 가며 재배한 싱싱한 파 한 단이 그에게는 더 중요하다. 작업장에서 손질된 쪽파들이 회사 앞마당에 대기한 트럭 위로 실리고 있었다. 한 단 한 단 차곡차곡 쌓인 채 박스에 담긴 쪽파는 전국 방방곡곡으로 퍼져 알싸한 파향(香)을 전할 것이다. 김장 김치가 되기도 할 테고, 비 오는 날 술꾼들의 안주로 파전이 되거나, 멸치국수를 훌훌 말아 먹을 때 끼얹는 양념간장이 되기도 할 것이다. 글쓴이 소설가 김유담 부산 출생. 연세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2016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핀 캐리’로 등단.
  • 자취생에 ‘엄마표 김치’ 베푼 미화원들

    자취생에 ‘엄마표 김치’ 베푼 미화원들

    학교·방호원·유학생 등도 참여 김장 250포기 이웃 주민 전달 지난 6일 서울 용산구 숙명여대 순헌관 광장에서는 김장 잔치가 열렸다. 청소 미화원들과 학생 50여명이 모여 함께 김치를 담가 180포기는 인근 지역 이웃들에게, 70포기는 재학생 30명에게 전달했다. 청소 미화원들과 학생들이 함께 김장을 하게 된 것은 숙대에서 6년간 청소용역 미화원으로 일한 심현주(63)씨의 아이디어였다. 심씨는 “학교에서 일하는 동안 보람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며 “처음에는 나 혼자 하려고 했는데 미화원 동료들이 돕기로 했고, 소식이 알려지면서 학교와 학생들까지 도왔다”고 12일 말했다. 그는 “예전에 기숙사에 사는 한 학생이 아는 사람에게서 김치를 받고 좋아하는 모습을 봤다”며 “그 모습을 보며 언젠가 김치를 담가줘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고 설명했다. 심씨가 자비로 김장 재료를 마련했고, 이후 동료 미화원들도 비용을 보탰다. 교내 보안을 담당하는 방호원도 돕겠다고 나섰고 학교에서 금일봉을 전달했다. 숙명여대 총학생회 비상대책위원회는 페이스북에 ‘내가 김장 김치를 받아야 하는 이유’라는 제목으로 김치 받을 사람을 뽑는 이벤트를 했는데 수십명이 신청했다. 김장 행사에는 강정애 총장을 비롯해 교수와 재학생, 외국인 유학생도 참가했다. 김장 선물을 받은 학생들도 청소 미화원과 방호원에게 답례 선물을 전달하기로 했다. 총학 비대위는 최근 이 선물을 구매하기 위해 모금을 진행했다. 대학 관계자는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교육기관으로서 어려운 주민들을 돕고 학생들도 돕는 기회가 돼 뿌듯하다”고 말했다. 이민영 기자 min@seoul.co.kr
  • 자전거 안전모 아이디어 정약용의 실학에서 얻다

    자전거 안전모 아이디어 정약용의 실학에서 얻다

    다산 정약용의 창의·혁신성, 담헌 홍대용의 세계와 소통하는 개방성, 풍석 서유구의 미래를 설계하는 실용성 등 조선 후기 실학자들의 사상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2016 실학 한마당’ 행사가 12일 국립중앙박물관 소강당에서 열린다. 문화체육관광부와 문화융성위원회가 주최하는 이 행사는 ‘21세기 미래의 실학을 생각하다’라는 주제로 진행된 대국민 공모전 ‘실학 상상프로젝트’에서 발굴한 아이디어를 발표하는 자리다. 지난 10월부터 11월까지 두 달간 진행된 공모전에서는 총 6개 팀이 본선에 진출했다. 백성을 사랑하는 다산의 마음을 구현한 ‘휴대용 자전거 안전모’와 담헌에게서 아이디어를 얻은 ‘세계가면축제’, 담헌이 청나라 여행 중 쓴 일기인 ‘을병연행록’을 영상으로 재해석한 ‘신영상을병연행록’이 있다. 또 풍석의 임원경제지 중 음식백과사전 ‘정조지’의 조리법을 응용한 육포인 ‘천리포’도 아이디어로 채택됐다. 박종천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부교수는 다산, 담헌, 풍석의 실학사상 성과를 발표한다. 정순우 실학학회 회장은 ‘조선의 실학과 21세기 신실학’이라는 주제로 조선 후기 실학의 태동부터 세계화·다문화·4차혁명 시대의 실학의 지평에 대해 기조강연을 한다. 정 회장은 “실학은 전근대사회 해체기에 등장하는 포괄적이고 집합적이며 현실 비판적인 문화 현상”이라면서 “조선이라는 일국사적 관점에서 벗어나 한·중·일 공통의 문화 현상으로 볼 수 있다”고 실학의 확장된 시선을 제시한다. 강연과 발표 후에는 곽미경 풍석문화재단 음식연구소 소장의 진행으로 전복김치, 탱자약과 등 정조지의 조리법을 재현한 음식 시식 행사가 이어진다. 문체부와 융성위는 지난 10월 말부터 11월 중순까지 ‘다산 한마당’, ‘담헌 한마당’, ‘풍석 한마당’ 등 인물별로 사전 행사를 진행했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포토 다큐] ‘셰프의 맛, 거리의멋’…달려요, 우리

    [포토 다큐] ‘셰프의 맛, 거리의멋’…달려요, 우리

    가을까지 여의도 강변에서 ‘서울 밤도깨비 야시장 2016’이 열렸다. 다양한 살거리, 볼거리, 먹거리가 있었지만 강변에 줄지어 독특한 디자인을 뽐내는 푸드트럭의 먹거리는 야시장 최고 인기 아이템이었다. 푸드트럭은 우동, 오뎅 등 간편식을 팔던 우중충한 스낵카의 진화다. 2014년 규제 개혁 토론회에서 푸드트럭을 만들던 배영기씨의 “푸드트럭 관련 규제를 개선하면 소자본으로 창의적 아이디어를 실현할 수 있어 소상공인, 청년 창업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건의가 받아들여지면서 활성화됐다. 주유소를 운영하던 배영기씨는 커피 파는 빨간 트럭을 보고 푸드트럭이 소자본 창업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아이템이라 판단해 푸드트럭 개조 사업을 시작했다. ‘푸드트럭 장인’으로 불리는 그는 “푸드트럭 창업을 하는 사람은 돈이 없는 사람입니다. 어렵게 생계를 걸고 창업에 나서죠. 그 사실을 알고 있으니 정성을 기울일 수밖에 없죠”라며 땀 흘려 일한다. 푸드트럭을 운영하는 거리의 셰프는 다양한 경력과 꿈이 있다. “미스 꼬레아(Miss Corea) 푸드트럭 100대를 운영해 200명의 청년에게 하루 5시간만 일하고 꿈을 실현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목표라며 원대한 꿈만큼 커다란 가마솥을 걸고 ‘미스 꼬레아’를 운영하는 임진영씨는 영화 콘텐츠 유통 분야에서 일하다 새로운 일을 찾아 창업을 했다. 소문난 김치볶음밥 맛 덕분에 어린이 간식, 드라마 촬영장 스태프 식사 등 주문이 많다. 특별히 따뜻한 사랑 실천 주문도 있다. 촬영장에서 맛에 반한 최성문 조명감독은 한 달에 한 번 노숙자에게 200명분 김치볶음밥을 미스 꼬레아를 통해 제공하고 있다. 어느 때보다 정성들여 밥을 만든다. “정성들인 음료로 손님들과 마음을 나누고 있다고 느낄 때 행복하다”는 부부 바리스타 푸드트럭도 있다. 커피와 음료를 파는 ‘세라비 카페’(Cest La Vie cafe)를 운영하는 김진영·황미녀씨 부부다. 1급 바리스타 자격증을 취득한 뒤 각종 음료에 대한 공부를 하고 유명 커피 전문점보다 맛있는 커피와 음료를 만든다는 자부심이 대단하다. 메뉴가 유명해져 행복한 셰프도 있다. 야시장에서 최고 인기를 끌고 있는 불에 구운 네모난 고기 ‘파이어 큐브 스테이크’(Fire Cube Steak)를 운영하는 순영옥씨다. 같은 메뉴 푸드트럭이 많이 생겼지만 신경 쓰지 않는다. “큐브 스테이트 하는 트럭 모두 대박 나고 맛있고 톡톡 튀는 큐브 스테이크 인기가 유지될 수 있도록 잘 만들었으면 해요.” 푸드트럭으로 코리안드림을 실현하려는 네팔 출신 셰프도 있다. 8년 전 네팔에서 만난 한국 여성과 결혼한 이태오씨는 네팔 음식을 특화해 ‘디디 아시아 키친’(DiDi Asia Kitchen)을 운영하며 한국인 입맛에 도전하고 있다. 매콤한 커리와 담백한 란 맛에 벌써 단골이 꽤 된다. 아파트 장터에서 동네 아줌마들에게 메뉴도 셰프도 인기가 만만치 않다. 푸드트럭 합법화 2년이 넘었지만 아직 어려움이 많다. 협동조합을 조직해 함께 노력하고 있지만 제한적 영업 장소, 개인사업자 문제 등은 이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 정당한 소상공인으로 사회적, 경제적 역할에 고민하는 이들의 꿈을 위해 정책적 판단이 필요하다. “우리의 꿈은 크다. 푸드트럭은 꿈을 이루기 위한 기반을 다지는 과정일 뿐이다”라는 이들의 자부심이 지켜질 수 있는 환경이 마련돼야 한다. 강성남 선임기자 snk@seoul.co.kr
  • “김치~”…사진에 죽고 못사는 야생 원숭이 포착

    “김치~”…사진에 죽고 못사는 야생 원숭이 포착

    대부분의 야생동물들은 사진 촬영을 무서워하거나 멀리하지만 이 원숭이만큼은 다르다. 왕성한 호기심에 카메라만 있으면 그 앞에 몰려들고 심지어 직접 '셀카'를 남기기도 하기 때문. 최근 잉글랜드 출신의 야생전문 사진작가 에눕 샤가 흥미로운 야생 원숭이들의 사진을 공개해 눈길을 끌고있다. 웃음을 자아내는 이 원숭이들의 이름은 인도네시아 북부 술라웨시 탕코코 국립공원에 사는 멸종위기에 놓인 검정짧은꼬리원숭이. 공개된 사진처럼 검정짧은꼬리원숭이에게는 카메라만 들이대도 멋지고 재미있는 '작품'이 나온다. 샤는 "4주 동안 이 지역에 머물며 야생동물들을 촬영했다"면서 "검정짧은꼬리원숭이는 호기심이 매우 많아 근거리 안에서 마주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원숭이들의 지칠 줄 모르는 관심과 소통을 내 스스로도 느낄 정도"라며 웃었다. 한편 검정짧은꼬리원숭이는 '인간의 저작권'을 넘봤던(?) 희대의 종이다. 지난 2011년 전세계에 웃음을 안긴 원숭이 셀카 사진을 촬영한 바로 그 종이기 때문이다. 당시 영국 사진작가 데이비드 슬레터는 인도네시아 중앙부에 위치한 술라웨시 섬에서 검정짧은꼬리원숭이들을 만났다. 사건은 사진을 촬영하려고 준비하던 중에 발생했다. 한 호기심 많은 원숭이 한마리가 그의 카메라 중 하나를 훔쳐가 버린 것. 이 원숭이는 카메라가 신기했던지 여기저기 만지작거리다 우연히 셔터를 누르기 시작해 수많은 사진들을 스스로 촬영했다. 이중 이빨을 드러내고 웃는 셀카 사진은 원숭이 최고의 ‘명작’이 됐다. 문제는 슬레터가 이 사진을 저작권을 주장하면서 발생했다. 이에 PETA 등 동물단체들은 이 셀카 사진이 슬레터의 도움을 받지않고 직접 찍었기 때문에 저작권은 원숭이 소유라고 반박했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비즈+] 롯데하이마트 전시상품 최대 60% 할인

    롯데하이마트는 연말을 맞아 최대 60%까지 할인하는 총 110억원 규모의 ‘전시상품 특별전’을 연다고 9일 밝혔다. 전국 450여개 하이마트매장과 하이마트 쇼핑몰에서 오는 25일까지 실시되는 이번 행사에는 김치냉장고, TV, 세탁기 등 대형가전을 비롯해 믹서기, 밥솥, 청소기 등이 포함됐다. 롯데하이마트는 이번 행사에서 TCL의 55형 커브드 UHD TV를 80만원대에, 대유위니아의 300리터 스탠드형 김치냉장고를 120만원대에 판매한다.
  • ‘싱데렐라’ 문희준, “소율, 3년 전 첫 만남부터 호감” 반한 계기는?

    ‘싱데렐라’ 문희준, “소율, 3년 전 첫 만남부터 호감” 반한 계기는?

    문희준이 예비 신부 소율과의 애정을 과시했다. 8일 방송된 채널A ‘싱데렐라’에서 문희준은 소율과의 러브스토리를 밝혔다. 문희준은 소율과의 첫 만남에 대해 “2013년 가요 프로 할 때 처음 봤다. 무서운 팬들인 줄 알았다. ‘빠빠빠’ 무대를 보고 가수인 줄 알았다. 그때부터 눈이 갔다”고 말했다. 또한 문희준은 “반한 계기가 있었다”면서 “다이어트 때문에 스트레스가 심했다. (소율이) 우엉차가 다이어트에 좋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 본인이 먹고 있었다. 만나는 날, 되게 큰 박스를 질질 끌고 오더라. 다이어트에 도움이 될 것 같다면서 우엉차 1.5리터 10개를 끓여서 갖고 온 것이다”고 전했다. 문희준은 “평생 사랑하면서 살고 싶다”면서 “사랑의 유통기한이 3년이라고 하는데, 그런 게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며 사랑꾼의 면모를 과시했다. 한편 이날 ‘싱데렐라’에서 문희준은 “도시락은 남자가 싸는 것 아니냐”면서 여자친구를 위해 김치볶음밥, 유부초밥, 김밥 3단 도시락을 싸줬다고 밝혔다. 사진 = 서울신문DB 연예팀 seoulen@seoul.co.kr
  • [한길 큰길 그가 말하다] <31>MC계의 ‘팔방미인’ 허참

    [한길 큰길 그가 말하다] <31>MC계의 ‘팔방미인’ 허참

    허참(67)은 얼마 전 경기 남양주에 있는 자기 농장을 일반에 오픈했다. 음식을 먹고 노래를 듣는 전원형 레스토랑으로 꾸미고 ‘참스팜스’라는 간판을 세웠다. 2층은 일종의 기록실로 만들었다. 자신의 예능 40여년 역사가 담긴 사진, 포스터, 앨범들을 여기에 모았다. 자기 그림 작품들도 여러 점 걸었다. 그래도 가장 눈에 띄는 건 서울 여의도 KBS 녹화홀에서 25년 동안 실제로 썼던 ‘가족오락관’ 네온사인이다. “창고에 처박아 두면 그냥 썩는다고, 방송국에서 선물로 주더군요. 그걸 여기 가져와서 전원을 연결하니까 불이 들어오는데, 눈물이 납디다. 그 오랜 시간 등 뒤에서 나를 지켜보느라 고생했다. 이제는 내가 널 지켜봐 줄게, 이렇게 다짐했어요.” ●1973년 여동생 결혼 밑천인 3만원 들고 ‘무작정 상경’ -기차가 덜컹거리며 부산역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속으로 웃음이 났다. 아무 대책 없는 ‘무작정 상경’의 주인공이 내가 되다니…. 군에서 막 제대한 1973년 어느 날이었다. 지갑 속엔 3만원이 들어 있었다. “오빠가 나중에 돈 벌면 몇 배로 갚아줄게.” 결혼 밑천 삼는다고 고이 모아 온 여동생의 돈이었다. -서울살이는 예상보다도 힘들었다. 집 따위는 애초부터 없었으니 군대나 고향 친구들 집을 번갈아가며 하루하루 전전할 수밖에 없었다. 얼마 후 정동 MBC 근처에서 구멍가게를 하는 친구 집에 얹혀살게 됐는데, 자전거로 채소나 생선 같은 것들을 배달해 주며 공짜 숙식의 대가를 치렀다. 그러고 있다 보면 코미디언이 됐든, MC가 됐든, DJ가 됐든 뭐라도 하나 일자리를 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기회는 뜻하지 않게 왔다. 그해 겨울 군대 친구와 함께 종로에 나갔다가 통기타 라이브 클럽 ‘쉘부르’를 지나치게 됐다. 문앞에 탄산음료 ‘오란씨’ 시음 행사를 한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한 잔 얻어먹을 요량으로 안에 들어갔다. (입구에 유난히 코가 큰 사람이 서 있었는데, 쉘부르의 주인이자 MBC 라디오 ‘별이 빛나는 밤에’의 PD 겸 DJ로 활동하던 이종환 선생이었다) 무대에서는 이태원, 전언수씨로 구성된 통기타 듀오 ‘쉐그린’이 공연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노래를 마친 뒤 객석 손님들에게 경품을 주는 행운권 추첨을 시작했다. 내가 딱 걸렸다. “무대로 잠깐 올라오세요.” 나는 어떻게 말하고 행동해야 사람들을 웃길 수 있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내 몇 마디에 공연장은 폭소와 박수로 가득 찼다. 정신없이 웃던 이태원씨가 물었다.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 “아, 그게…기억이 안 나네요.” “허 참, 자기 이름도 몰라요?” “앗, 제 이름을 어떻게 아셨나요? 저는 허참입니다.” 공연이 끝나고 이종환 선생이 나를 불렀다. “여기에서 일해볼 생각 없나?” -월급은 없었다. 먹여주고 재워주면 그걸로 족했다. 청소나 허드렛일을 하면서 틈틈이 손님들 신청곡 받아 노래를 틀어주는 게 나의 일이었다. 그러다 잠깐씩 무대에 올라 짤막하게 MC를 볼 일이 생겼는데, 차츰 “쉘부르에 명물이 하나 들어왔다”고 입소문이 났다. 날 보러 오는 손님들이 하나둘 늘면서 몇 달 후에는 어니언스, 쉐그린, 김정호, 김세화, 권태수 같은 포크 스타들의 공연을 진행하는 정식 MC로 승격이 됐다. 스탠딩 코미디와 노래를 섞은 ‘허참쇼’라는 코너도 만들어졌다. -MBC의 라디오 PD 겸 DJ였던 박원웅 선생이 어느 날 나를 불렀다. “우리 회사에서 ‘청춘은 즐거워’라는 프로그램을 만드는데 DJ 해볼 생각 없나.” 현기증이 났다. ‘얼마 전까지 자전거에 동태 궤짝이나 채소 꾸러미를 싣고 지날 때마다 그토록 높게 보였던 MBC 사옥. 그곳에 내가 입성한다.’ 나는 그때까지도 쉘부르의 객석에서 소파 몇 개 붙여놓고 슬리핑백에서 잠을 자는 신세였다. 노래 ‘편지’의 성공으로 형편이 나아진 어니언스 임창제가 물려준 슬리핑백이었다. 방송 DJ를 시작하면서 동대문 근처에 방을 얻은 나는 임창제의 슬리핑백을 의기양양하게 다른 친구에게 물려주고 쉘부르 시대를 마감했다. ●남다른 입담… 통기타 라이브 클럽 ‘쉘부르’에서 운명의 MC 제안 -우리 집안의 뿌리는 황해도다. 나도 거기에서 태어났는데, 이듬해 6·25 전쟁이 났고 아버지는 가족들을 데리고 월남을 했다. 어쩌다가 땅끝인 부산까지 와서 부민동에 터를 잡고, 법원 공무원으로 취직했다. 그 덕에 적당히 풍족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초등학교 때 어머니가 소고기 반찬을 싸 주면 나보다 못사는 아이가 배급받아온 옥수수빵과 바꿔 먹기도 했다. -나는 그림에 소질이 있었다. 1956년 부민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학교 대표로 미술대회에 나가 여러 번 상을 받았다. 고등학교 때에는 크리스마스 카드를 직접 그려 팔아 용돈을 벌기도 했다. 미술이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재능이었다면 남다른 끼와 말솜씨는 어머니에게서 받은 것이었다. 소풍 가서 사회자는 늘 내 차지였다. 그래선지 말이나 행동에 남다른 스타 의식이 강했다. 이를테면 아침에 교문에서부터 영화배우처럼 겉멋을 부리며 걸었다. 저 멀리 3층 교실 창문에서 나를 선망의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을 여자애들의 얼굴을 떠올렸다. 웅변대회에도 단골로 나갔다. 주위 사람들을 가장 즐겁게 만들었던 것은 나의 성우 흉내였다. ‘삼국지’, ‘수호지’, ‘전설 따라 삼천리’ 같은 라디오 드라마를 듣고 외워 목소리 흉내를 내면 식구들, 친구들이 자지러지게 웃었다. 국어 시간에 ‘유세차 모년 모월 모일에 미망인 모씨는~’으로 시작하는 고전 ‘조침문’을 ‘전설 따라 삼천리’의 성우 유기현씨 목소리로 읽어주면 교실은 난리가 났다. -공부는 못했다. 일찌감치 대학을 포기하고 영남상고에 들어갔는데, 막상 졸업을 할 때가 되니 아버지는 “네가 장남인데 대학을 가야 되지 않겠느냐”고 하셨다. 재수를 시작했는데, 길게 하지는 못했다. 공부 의욕도 떨어졌지만 집안 형편이 크게 기울어졌다. 안 한 것이든 못한 것이든 공부에 대한 아쉬움은 지금도 크다. -1972년 군 복무 중 ‘10월 유신’이 선포됐다. 박정희 정부는 전군에 ‘문화선전대 경연 행사’를 열어 유신의 필요성을 병사들에게 홍보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당시 사단 웅변대회 선수로 뽑힌 나를 대대장이 불렀다. “이상용, 너는 오늘부터 웅변 대신에 문선대 경연 준비를 해라.” 유신헌법이 뭔지를 내가 알 리 없었다. 나는 위에서 시키는 대로 ‘우리 몸에는 우리 옷을 입어야 하는데, 유신헌법이야말로 우리 몸에 맞는 옷이다’를 주제로 코미디를 구성해 연기했고, 사단에서 1등을 했다. 그때부터 MC 겸 코미디 담당으로 예하부대를 돌며 유신 홍보 공연을 다녔다. MC와 코미디언으로서 능력을 자연스럽게 기를 수 있었던 소중한 경험이었다. 얼마 후에는 사단 내 방송 DJ도 맡게 됐는데, ‘쌀’을 ‘살’로 발음하고 ‘의사’를 ‘어사’라고 말하는 억센 부산 사투리가 문제가 됐다. 문선대 공연에서야 사투리가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수단이었지만, 아무래도 방송에선 아니었다. 교정을 위해 피나는 노력을 했다. 매일 책과 신문을 소리 내어 읽었다. 이 또한 나중에 사회에 나와 큰 도움이 됐다. ●‘수그려라’가 제 좌우명… 저를 방송인으로 남게 한 건 8할이 ‘노력’ -박원웅 선생의 스카우트로 MBC 라디오 데뷔를 한 이후 몇몇 프로그램이 나를 더 따라왔다. 사람들은 나의 부드러운 목소리와 리듬감 있는 말투를 좋아했다. 하지만 얼마 안 돼 위기가 찾아왔다.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가 가요계를 평정할 때였으니 1976년쯤인 듯한데, MBC 라디오의 간부 한 분이 나를 호출했다. “라디오 진행자를 전부 아나운서로 교체하라는 지시가 위에서 내려왔다. 미안하다.” 교통정보 프로그램 ‘푸른 신호등’에서 하차하라는 말이었다. 방 한 칸 신혼살림에 아내는 첫아이를 임신한 상태. 세간이라곤 쌀통 하나뿐이고, 찬장도 없어 사과상자로 대신하고 있던 우리 부부였다. “저, 좀 더 잘하겠습니다. 이거 그만두면 생계가 막막해집니다.” 소용없었다. 다시 실업자가 됐다. 폭음을 하고 들어가 아내의 품에서 한참을 울었다. -방송하는 사람은 방송국에서 안 불러 주면 끝이다. ‘푸른 신호등’에서 졸지에 잘린 뒤 나는 장사를 하기로 했다. MBC 근처에 신발가게를 차렸다. 동대문 시장에서 패션구두 같은 것을 떼어다 아내와 같이 팔았다. 조용필이나 이은하 같은 스타들이 찾아와 도와주기도 했다. 하지만, 6개월도 안 돼 망했다. 장사는 말주변만 갖고 하는 게 아니었다. 그런데 사람이 죽으란 법은 없었다. 묘하게도 신발가게를 폐업하자 방송 요청이 연달아 들어왔다. 잠깐 동안의 실업자 생활과 신발가게 실패를 통해 나는 큰 깨달음을 얻었다. ‘세상에 간단한 것은 없다. 무엇이든 필사적으로 해야 한다.’ -라디오로 주가가 오르면서 TBC ‘7대 가수쇼’ MC로 TV 데뷔를 했다. 운현궁 공개홀에서 남진, 나훈아, 이미자 등 당대의 스타들과 인사를 했다. ‘내가 여기까지 왔나.’ 가슴이 벅차올랐다. 당시 고려진씨와 짝을 이뤘는데 최초의 남녀 공동 MC였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나는 150명 정도의 여성 MC들과 호흡을 맞춰왔다. 얼마 후에는 MBC ‘토요일 밤에’와 함께 주말 저녁을 양분하고 있던 TBC ‘쇼쇼쇼’의 MC로 위키리(이한필)의 뒤를 이어 발탁됐다. 쇼쇼쇼에서 나와 최고의 콤비를 이뤘던 정소녀씨를 만났다. ‘허참’ 하면 ‘정소녀’, ‘정소녀’ 하면 ‘허참’이었다. 다른 프로그램에서 나와 같이 MC를 보던 정혜경씨는 내 이름에 이어 자기 이름을 말하는 순서에서 돌연 ‘정소녀’라고 엉뚱한 소리를 하는 보기 드문 방송사고를 내기도 했다. -한창 때에는 새벽부터 심야까지 하루 종일 쉬지 않고 방송을 했다. 방송을 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극심한 스트레스다. 수십년을 해도 마찬가지다. 거기에서 오는 긴장과 피로, 고독감을 술로 달래면서 건강이 많이 나빠졌다. 한밤중 방송이 끝나면 심신이 허기져서 무교동 낙지골목 등을 훑고 다녔다. 그렇게 일에 술에 파김치가 돼서 집에 갔다가 새벽에 나오는 생활이 이어졌는데, 방송국에서 쓰러져 응급차로 실려간 적도 있었다. -나를 대표하는 ‘가족오락관’은 1984년 4월 3일 벚꽃이 한창일 때 처음 전파를 탔다. 내 나이 서른다섯이었다. 공교롭게 마지막 1237회 녹화일이 2009년 4월 2일이었다. 하루도 어긋나지 않는 만 25년. 나의 청춘과 중장년이 그대로 녹아 있는 사반세기와 좀 더 따뜻하게 이별할 수 있는 기회를 갖지 못했던 것은 참 아쉽다. 새로운 포맷의 참신한 가족오락 프로그램을 만든다고 해서 갑자기 관두게 됐는데, 결과가 좋지 않았다. KBS는 가족오락관 후속으로 ‘가정오락관’이란 프로그램을 편성했지만, 몇 번 내보내고는 시청자 반응이 안 좋다며 폐지해 버렸다. 지금은 온 가족이 모여 볼 수 있는 그런 프로그램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수그려라’가 나의 좌우명이다. 남을 존중하고 경청하려고 애쓴다. 남들 앞에 과하게 나서지 않으려 한다. 나는 항상 나보다 나은 사람들이 많다는 걸 염두에 두고 무대에 오른다. 후배들한테 말한다. 분위기 뜨고 흥겹다고 해서 객석에 마이크 들이대며 반말하는 것도 해서는 안 된다고. -많은 사람들이 묻는다. 방송인으로서 나의 능력이 선천적인 것인지, 후천적인 것인지. ‘끼’는 타고났을지 몰라도 나머지를 채운 것은 나의 부단한 노력이었다고 말한다. 나는 젊어서 사람들 앞에 나서기 위해 시중에 있는 거의 모든 유머집을 구입해 외우고 또 외웠다. 소설이건 수필이건 닥치는 대로 책을 읽고, 중요한 부분을 메모해 암기했다. 교수, 의사, 성악가, 요리사, 언론인 등 자기 분야의 고수들과의 만남을 소중히 여겼다. 그들과의 얘기는 모두가 살아 있는 공부였고, 나는 그 속에서 끊임없이 단련될 수 있었다. 김태균 경제정책부장 windsea@seoul.co.kr ■허참은 누구 본명은 이상용. 1949년 황해도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성장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국민 MC’ 중 한 명이다. TBC 동양방송, KBS 한국방송, MBC 문화방송에서 수많은 TV 및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그중에서도 26년 동안 진행한 KBS ‘가족오락관’은 그의 이름과 동일시된다. 코미디언, 가수, 배우로 활동하기도 했다. ▲영남상고, 동아대, 중앙대 국제경영대학원 수료 ▲TV 프로그램 TBC ‘7대 가수쇼’ ‘쇼쇼쇼’ ‘전국 TOP10 가요쇼’, KBS ‘가족오락관’ ‘도전! 주부가요스타’ ‘왕건오락관’ ‘지구촌 노래자랑’, MBC ‘젊음은 가득히’ ‘지붕뚫고 하이킥’, 대전MBC ‘허참의 토크&조이’, SBS ‘빙글빙글 퀴즈’ ‘잉꼬부부 재치부부’, MBN ‘엄지의 제왕’ ▲라디오 프로그램 MBC ‘싱글벙글쇼’ ‘푸른 신호등’ ‘청춘은 즐거워’, SBS ‘허참의 즐거운 저녁길’ ▲음반 ‘왜 몰라주나’(1976년) ‘추억의 여자·소낙비’(2007년) ▲제29회 한국방송대상(2002년) 제12회 대한민국연예예술상(2005년) KBS 연예대상(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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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법원 ◇법원부이사관 승진△법원행정처 사법지원심의관 김지율△법원행정처 사법등기심의관 오명섭△법원공무원교육원 김정훈△서울중앙지법 민사국장 박용석△부산지법 김치곤△부산지법 동부지원 사무국장 조영수△광주지법·광주가정법원 순천지원 사무국장 박성호△대구지법 사법보좌관 김명식△광주지법 사법보좌관 노덕생◇법원서기관 승진△법원행정처 이진서 이장혁 전제훈△사법연수원 나기웅△법원공무원교육원 김명수배운기△양형위원회 김정태△서울고법 이재천△서울중앙지법 황종삼 조영동 안미복△서울서부지법 주홍재△의정부지법 하태훈 김명진 김종환△인천지법 오문식 이삼권 김번중 김석규 임정호 류호세 모동률△인천가정법원 박민규 △수원지법 윤광근 장규연 정경원 최강노 이동규 이규남 류제연 김현곤 문양주△춘천지법 이영식△대전지법 서두석 오미경 이웅기 변상학 이상철△청주지법 김경동△대구지법 백종복 이태혁△부산지법 석용택 김휘동 제경옥 조정종 김경래 박은주△제주지법 조용기<사법보좌관>△수원지법 이율림△대구지법 장현남△부산지법 임영만 최규석△창원지법 이건호 하홍준 김현석 이도성△전주지법 전선<사법보좌관 후보자>△특허법원 이승헌△대전지법 한윤구△청주지법 최규완△부산지법 김종오 손창배△울산지법 손은희△광주지법 오재홍◇법원이사관 전보△법원행정처 사법등기심의관 박완식△법원행정처 재판사무국장 심재금△서울고법 사무국장 이용선△부산고법 사무국장 박상호△서울중앙지법 사무국장 임용모◇법원부이사관 전보△법원행정처 사법등기심의관 강기호△법원행정처 윤리감사제2심의관 장영수△서울중앙지법 형사국장 이종식<사무국장>△사법정책연구원 김종영△서울가정법원 조범제△서울행정법원 김금남△의정부지법 정준호△의정부지법 고양지원 곽재창△인천지법·인천가정법원 부천지원 이래홍△수원지법 김진수△춘천지법 곽재순△대전지법 박종희△대전지법·대전가정법원 천안지원 이만석△대전가정법원 정성희△청주지법 김동민△대구지법 이영미△대구지법 서부지원 소의섭△대구가정법원 안준기△부산지법 정태진△부산가정법원 고영삼△울산지법 이진호△창원지법 이봉자△전주지법 김동환△제주지법 정일섭◇법원서기관 전보△법원행정처 허명호 방웅석△법원공무원교육원 주연 강봉석△서울고법 염명열 김진국 이희복△부산고법 곽영훈△광주고법 김정필△특허법원 이덕구△서울중앙지법 박천규 양영화 이상영△서울가정법원 김재훈 손경애△서울동부지법 홍금표 김진택△서울남부지법 유영도 김치주 오대원 윤성용△서울북부지법 김상현 한승범△서울서부지법 박성암△의정부지법 최진호 김병환△인천지법 박채규 조순희△수원지법 최선호 김익재 백수옥 조칠곤 문용길 안호창△부산지법 이종철 권경오 김석우△창원지법 박재길△광주지법 윤정구 심월식 정선택 김정권△광주가정법원 이영복△전주지법 양충열△제주지법 오태훈<사법보좌관>△서울중앙지법 조경애 김태현△서울남부지법 남궁호△서울북부지법 이동선△의정부지법 장광수 김동휘 김태진△수원지법 정민호 최병도△울산지법 송인숙 (2017년 1월 1일자) ■미래창조과학부 △성과평가정책과장 홍순정 ■농림축산식품부 △농촌정책국장 이재욱△창조농식품정책관 김인중△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장 남태헌△새만금개발청 개발사업국장 배호열 ■특허청 ◇부이사관 전보△심사품질담당관 손용욱◇과장급 전보△응용소재심사과장 임영희 ■한국가스공사 △공급본부장 박성수 ■KBS △미래방송센터건설단장 김광석△한류기획단장 김충△미래방송센터건설부장△성과평가부장 정의준△법무실장 유용욱△방송본부 2TV사업국 2TV제작투자담당 김광수 ■SBS ◇임원인사△경영본부장 김희남△보도본부장 김성준△경영부본부장 최상재△보도국장 정승민◇직원인사 <보도본부>△뉴스제작부국장 고철종△특임부장 이창재△국제부장 신동욱<예능>△예능1CP 최영인△예능2CP 백정렬△예능3CP 민의식△예능4CP 공희철△예능5CP 김재혁<정책실>△정책팀장 양윤석<편성실>△광고운영팀 마케팅담당 신형철<미디어비즈니스센터>△플랫폼사업팀장 김준환△IP사업팀 콘텐츠유통담당 한광섭<드라마본부>△드라마운영팀 마케팅담당 장기웅<경영본부>△경영기획팀장 조재룡△HR팀장 김기헌<사장 직속>△비서팀장 장현규 ■SBS콘텐츠허브 △대표이사 사장 유종연△신사업실장 엄재용△콘텐츠사업실장 김휘진△플랫폼서비스실장 박종진△기획실장 권영도 ■SBS미디어넷 △대표이사 사장 겸 방송사업본부장 김계홍△CNBC본부장 오동헌△방송사업본부 제작부본부장 염성호△방송사업본부 사업부본부장 이상수△스포츠본부 부본부장 이상근△CNBC본부 보도국장 김병길 ■미디어크리에이트 △영업1본부장 정해선△영업2본부장 조영일△영업3본부장 이종민△기획실장 이석규 ■SBS A&T △기술본부장 장황복 ■한국장학재단 ◇본부장급△총괄본부장 박승렬△서울지역사무소장 겸 학생복지사업단장 김종순△국가장학금본부장 겸 국가장학부장 조정현△국가학자금본부장(직무대행) 겸 대출지원부장 조상기△학생지원본부장 겸 교육기부부장 김찬△경영지원본부장 겸 학자금운영부장 김형진△기획조정실 조철영 ■삼천리그룹 ◇승진△삼천리 이사 조성용△삼천리 이사대우 김한상 박민규 양광열 이성욱△삼천리 ENG 이사대우 남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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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땅끝, 희망 시작… 언제나 36.5℃

    북위 34도 17분 38초. 섬을 제외하고 한반도의 가장 남쪽에 위치한 곳. 전남 해남의 땅끝마을 안내판에 적힌 글귀다. 뭍은 여기서 끝나지만 희망은 비로소 시작된다. 어느덧 한 해의 끝자락. 남루했던 한 해를 남김없이 털어 내고 순백의 도화지 같은 새해를 맞으려는 이들이 땅끝마을을 찾는 건 바로 그 때문일 터다. ●모노레일 타고 사자봉에 올라 온몸으로 맞는 새로운 시작 땅끝마을을 찾는 이들은 대개 서정적인 해넘이 풍경을 기대하기 마련이다. 땅의 끝이라는 지리적 상징성 속에서 한 해의 모든 시름을 부여안고 가라앉는 해를 보는 느낌이 각별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땅끝마을은 사실 해돋이 장면이 더 힘차고 아름답다. 겨울철엔 마을 왼쪽의 백일도와 흑일도 사이에서 해가 뜬다. 방울토마토를 닮은 해가 너른 바다와 크고 작은 섬들을 붉게 물들이는 장면은 서정적이면서도 장쾌하다. 맴섬 일출도 사람들 입에 자주 오르내린다. 맴섬은 땅끝마을 표지석 바로 앞에 있는 갯바위다. 일 년에 단 두 차례, 2월과 10월 중순에 맴섬 사이로 해가 떠오른다. 이 장면을 담기 위해 전국의 사진가들이 몰린다. 새해엔 이 모습을 보기 어렵다. 하지만 뭐, 꼭 맴섬 일출이라야 맛이랴. 바닷가에 서서 온몸으로 새 시작을 맞으시라. 외려 그게 낫다. 포구 뒤는 사자봉이다. 정상에 세워진 횃불 모양의 전망대가 이채롭다. 높이 400여m의 사자봉까지는 모노레일이 운행되고 있다. 바다를 굽어보며 수월하게 오를 수 있다. 전망대 주변에 땅끝탑과 희망의 샘, 산책로 등이 조성돼 있다. ●‘한국의 아름다운 길’ 따라 땅끝조각공원 등 명소 즐비 땅끝마을 주변의 적요한 해안가를 돌아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송지면 엄남리 해안에서 땅끝마을을 거쳐 사구리 해안까지 가는 길은 ‘한국의 아름다운 길’ 중 하나다. 드라이브 코스 주변에 송호해변, 땅끝관광지, 땅끝해양자연사박물관, 사구미해변, 땅끝조각공원 등 명소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땅끝조각공원에 서면 땅끝마을과 주변 풍경이 한눈에 담긴다. 바다를 향해 돌출한 ‘땅의 끝’과 보길도 등 주변 섬들이 그림처럼 어우러진다. 땅끝조각공원에는 26점의 조각 작품이 전시돼 있다. 해남의 산천과 남도의 풍광을 새긴 작품들을 찬찬히 둘러보는 것도 좋겠다. 아울러 송호해변은 울창한 솔숲, 사구미해변은 1.5㎞에 이르는 모래사장이 아름답다. ●이순신 장군과 ‘女스파이’ 어란의 구구절절한 전설 깃들어 해남 여정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어란 여인’ 이야기다. 명량해전의 틈바구니에서 이순신 장군과 ‘여성 스파이’ 어란, 그리고 그의 연인이었던 왜군 장수가 얽히고설켜 영화 같은 이야기를 펼쳐 낸다. 하지만 바로 그 때문에 ‘전설’ 수준의 이야기로 평가절하되기도 한다. 어란 여인 이야기는 사실 정사가 아니다. 조선왕조실록 선조편에 관련 내용이 비치고,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에도 이를 뒷받침한다고 보여지는 대목이 등장한다는 것이 전부다. 이순신 장군과 명량해전의 눈부신 전공을 폄훼하려는 의도가 있는 이야기라며 불온한 시선으로 보는 이들도 있다. 게다가 일본인 손에 의해 전해진 이야기란 점은 이 같은 부정적 인식에 불쏘시개로 작용하고 있다. 이야기의 얼개를 되짚어 올라가다 보면 꼭 두 개의 시점으로 제작된 영화를 보는 듯하다. 첫 장면은 해남의 일본인 사와무라 하치만다로에서 시작된다. 일제강점기 순사였던 그의 귀에 어느 날 어란 여인 이야기가 흘러 들어간다. 평소 해남 땅에 뼈를 묻고 싶다고 말했던 그가 일본으로 돌아간 뒤 유고집이 나오는데, 바로 여기에 그동안 채집했던 어란 여인 이야기가 담긴다. 이게 2006년 해남의 박승룡옹에게 전해졌고, 비로소 세상에 드러나게 된다. 두 번째 장면은 전쟁터에서 시작된다. 정유재란 때 어란진에 주둔하던 왜장 간 마사가게(菅正陰)는 어느 날 자신의 연인이었던 어란에게 출병 기일을 발설한다. 어란 여인은 이를 이순신 장군에게 전하고, 이는 명량해전을 대승으로 이끄는 요인 중 하나로 작용한다. 바로 이 대목에서 어란 여인은 ‘해남의 논개’라는 별명을 얻게 된다. 하지만 어란 여인은 명량해전 이튿날 여낭터에서 몸을 던져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자신의 연인이 울돌목 해전에서 전사한 것을 비관해서다. 자신의 첩보 덕에 조선은 누란의 위기에서 벗어났지만, 정작 자신과 연인은 죽음으로 연을 끊어야 했다. 이러구러 여낭터에서 떠밀려 온 어란 여인의 시신은 한 어부가 거둬 어란마을 끝자락의 바닷가에 묻는다. 그 자리엔 그의 영혼을 위로하는 석등롱(石燈籠)이 세워진다. 어란 여인과 관련해 찾아볼 만한 장소는 두 곳이다. 그가 몸을 던진 여낭터와 그의 시신을 수습하고 석등롱을 세운 어란마을이다. 여낭터는 어란마을 건너편의 바위벼랑 중턱에 있다. 어란항 초입에 ‘여낭터 가는 길’이라는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 국문 아래쪽엔 일본어도 병기돼 있다. 여낭터엔 ‘어란의 여인상’과 표지비가 조성돼 있다. 동굴 형태의 자연석 아래 세워진 어란상은 뜻밖에 작달막하다. 일부에서 ‘미녀 스파이’ 운운했던 것과는 사뭇 다른 이미지다. 기념비 앞면엔 투신 날짜가 적혀 있다. 1597년 9월 17일. 명량대첩 하루 뒤다. 기념비 양옆엔 모두 네 명의 일본인 이름이 적혀 있다. 고니시 유이치로 형제는 어란상과 표지비 조성 비용을 댄 이들이다. 일제강점기에 해남에서 태어난 이들의 부친은 어란리 심상소학교 교장을 지냈고, 외조부는 어란리에 최초로 김 양식을 도입한 인물이라고 한다. 여낭터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눈부시다. 청잣빛의 모티브가 됐다는 영롱한 바다, 어란 바다 위를 가득 메운 양식 어구들, 그 너머로 남도의 뭍과 섬들이 어우러져 있다. 바다 위를 미끄러지듯 흘러가는 어선이 아니었다면 그림으로 착각할 만한 풍경이다. ●거대한 인공 호수엔 30여종 겨울 철새의 ‘화려의 군무’ 해남에는 거대한 인공 호수가 세 곳 있다. 모두 겨울철 탐조 여행으로 이름난 호수다. 영암과 경계를 이룬 영암호는 세 호수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크다. 해마다 30여종의 겨울 철새가 찾는 철새 도래지이기도 하다. 특히 가창오리가 많이 찾는다. 11월부터 도래하기 시작해 12월쯤 최대 개체수를 이룬다. 올해도 30만여 마리가 찾아와 군무를 펼치고 있다. 이웃한 금호호엔 목재데크 산책로가 조성돼 있다. 탁 트인 호수 주변을 걷는 맛이 각별하다. 고천암호는 국내 최대 규모의 갈대밭이 있는 곳이다. 호수와 간척지 등을 합친 둘레가 14㎞에 달한다. 차를 타고 다니며 풍경을 즐길 수 있다. 윤두서 고택도 둘러볼 만하다. 조선의 선비화가 공재 윤두서가 기거했던 고택이다. 조선 후기의 건축양식이 살아 있는 건물로 1670년 지어져 1811년에 중수된 것으로 추정된다. 건립 당시엔 48칸 규모였으나 문간채와 사랑채는 사라지고 현재 안채와 곳간, 헛간, 사당 등이 남아 있다. 글 사진 해남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 여행수첩 (지역번호 061) →가는 길 : 여낭터 찾기가 쉽지 않다. 땅끝마을에서 77번 국도를 타고 송지면사무소 앞 네거리까지 간 뒤 어란항 방면으로 좌회전한다. 어란항 초입에 세워진 이정표를 보고 우회전해 마을로 들어간 뒤 두 번의 갈림길에서 모두 좌회전해 곧장 간다. 야트막한 언덕을 넘고 나면 제주~해남 간 전력변환소가 나온다. 여기서 오른쪽으로 난 오솔길을 따라 30m 정도 걸으면 작은 묘가 나오고, 그 옆으로 난 소로를 따라 20분 정도 걸으면 여낭터다. 어란마을 석등롱은 어란항 뒤편의 골목길을 따라 끝까지 간 뒤 민가 건물을 끼고 오른쪽으로 돌면 나온다. 해남관광안내소 532-1330. →맛집 : 해남 읍내 천일식당(536-4001)은 떡갈비와 한정식으로 이름났다. 계절 별미로는 삼치회가 꼽힌다. 햇김에 흰 밥과 묵은 김치, 삼치 선어 등을 올려 먹는다. 이학식당(532-0203) 등이 알려졌다. 땅끝마을 쪽에서는 땅끝바다횟집(534-6422), 본동기사식당(535-2437) 등이 맛집으로 입소문 났다. →잘 곳 : 땅끝비치(534-1002)는 한국관광공사에서 지정한 굿스테이 업소다. 땅끝마을 언덕에 있다. 유선장여관(534-2959)은 각종 여행서와 언론 매체 등에 오르내리며 명소 반열에 오른 숙소다. 영화 ‘서편제’ 촬영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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