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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격동의 반세기 발자취/1945∼95:2

    ◎전화폐허서 교역 13위 경제강국 건설/부·마사태­10·26사건… 박정권 18년 마감­1979년/「민추협」 발족… 민주화운동 본격 점화­1948년/금융실명제·재산공개 등 대대적 개혁조치­1993년 ▷1971년◁ 2월17일 남한의 한필성,북한의 필화 남매가 국제통화로 서로 생사를 확인했다.4월27일 제7대 대통령선거,5월25일 제8대 국회의원선거가 실시됐다.7월28일 서울형사지법 판사 39명이 정부의 압력에 반발해 집단으로 사표를 내는 사법파동이 일어났다.8월23일에는 실미도 특수부대원이 서울로 난입해 난동을 부렸다.10월1일 전국에서 장발족 단속이 시작됐다.12월25일 대연각호텔에 화재가 발생했다. ▷1972년◁ 7월4일 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됐다.8월3일 모든 기업의 사채를 동결하는 이른바 「8·3 조치」가 발표돼 기업들이 자금숨통을 트게 됐다.10월17일 유신이 선포,박정희의 장기집권 계획이 모습을 드러냈다. ▷1973년◁ 8월8일 김대중씨가 동경에서 괴한 5명에게 납치돼 강제송환됐다.10월6일 이화여대생들은 쌍쌍파티 중단을 결의했다.석유수출국기구(OPEC)가 원유생산량 25% 감축을 결정함으로써 석유파동이 발생,국내경제가 심한 몸살을 앓았다. ▷1974년◁ 4월17일 박영복 부정대출 사건이 일어나 금융시장이 크게 교란됐다.7월13일 민청학련사건 관련자 이철 유인태 김지하등 7명에게 사형이 선고됐다.8월15일 광복절 경축식장에서 박대통령 저격사건이 발생,육영수여사가 재일교포 문세광의 총에 맞아 숨졌다.같은 날 서울 지하철 1호선이 개통됐다. ▷1975년◁ 2월12일 유신헌법에 대한 찬반투표가 실시돼 가결됐다.3월17일 서울 면목동 YH무역 여공 2백여명이 신민당사에서 임금인상과 근로조건 개선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1976년◁ 8월1일 양정모가 몬트리올올림픽 레슬링 자유형 페더급에서 해방후 첫 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했다.8월18일 판문점 도끼만행사건이 일어났다.10월24일 박동선이 로비활동을 펼친 것이 미국에서 문제화됐다. ▷1977년◁ 8월20일 우리나라 최초의 원자력발전소인 고리 1호기가 시험송전을 시작했다.9월15일 고상돈이 에베레스트를 정복했다.11월11일 이리역에서 한국화약의 화약수송열차가 폭발하는 참사가 일어났다. ▷1978년◁ 1월14일 여배우 최은희가 홍콩에서 납북됐다.4월24일 전남 함평에서 고구마 수매부정에 항의하는 농민대회가 열렸다.6월30일 현대아파트 부정분양사건이 사회에 물의를 일으켰다.7월6일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박정희 후보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1979년◁ 10월7일 박정희를 비난하던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이 파리에서 실종됐다.10월18일 부산에 비상계엄령,10월20일 마산·창원에 위수령이 발동됐다(부마사태).10월26일 박정희 대통령이 김재규 중앙정부 부장의 총에 맞아 숨졌다.12월12일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정승화 계엄사령관을 연행하는 과정에서 총격전이 발생했다(12·12사태). ▷1980년◁ 4월21일 사북광업소 광부 7백여명이 어용노조에 반발해 광산촌을 점거하고 경찰과 충돌하는 유혈사태가 일어났다.5월18일 광주에서 민주화운동이 시작됐다.5월31일 국가보위 비상대책위원회(위원장 전두환)가 신설됐으며 8월27일 전두환이 통일주체 국민회의에서 제14대 대통령에 당선됐다.10월13일 삼청교육 실시가 발표됐다. ▷1981년◁ 1월13일 대학졸업 정원제가 도입됐다.15일 민주정의당이 창당,전두환이 초대 총재로 선출됐으며 제12대 대통령 후보로 지명됐다.23일 대법원은 김대중 내란음모사건관련 피고인 12명의 형량을 확정했으나 김대중은 나중에 사형에서 무기로 감형됐다.전두환은 2월25일 대통령선거인단 선거에서 제12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1982년◁ 3월18일 고신대생 문부식등이 부산 미문화원을 방화했다.3월27일에는 프로야구가 출범했다.5월7일 대검은 대화산업회장 이철희·장영자부부를 외국환 관리법 위반혐의로 구속했다.18일에는 이 사건과 관련,대통령 처삼촌인 이규광등이 구속됐다. ▷1983년◁ 1월11일 나카소네 일본총리가 방한,한일정상회담을 갖고 40억 달러를 7년에 걸쳐 제공하기로 합의했다.3월17일 일본에서 활약중이던 프로기사 조치훈이 기성을 획득,일본 바둑계의 주요 타이틀을 석권했다.5월18일 김영삼 신민당총재는 민주화와 정치활동 피규제자 해금을 주장하며,자택에서 단식에 들어갔다.6월12일 청소년축구대표팀이멕시코에서 열린 세계청소년 축구대회에서 4강에 진출했다.9월1일 대한항공 여객기가 소련 전투기에 의해 격추돼 탑승자 2백69명 전원이 사망했다.10월9일에는 버마 아웅산묘소 폭발사건이 발생,전두환 대통령의 버마 방문을 수행하던 서석준 부총리등 17명이 사망했다.11월17일 동아건설은 단일공사로는 세계최대 규모인 리비아 1단계 대수로 공사를 32억9천만 달러에 수주했다. ▷1984년◁ 5월18일 김영삼과 김대중이 주도하는 민주화 추진협의회가 발족됐다.22일에는 서울지하철 2호선이 완전개통됐다.9월6일 전대통령은 일본을 공식방문했다.일본의 히로히토 왕은 만찬에서 과거의 한일관계에 유감을 표명했다.9월 북한 적십자가 보내준 수재구호물자를 남한측이 인수했다.미국방송이 의정부에 핵배낭 특수부대가 배치돼 있다고 보도했다. ▷1985년◁ 5월23일 대학생 73명이 미 문화원을 점거하고 광주사태에 대한 미국 사과 요구 및 반미구호를 외쳐 충격을 주었다.9월20일 남북 고향방문과 예술공연단 각 1백51명이 서울과 평양을 교환 방문했다. ▷1986년◁4월들어 민주화를 요구하는 학생들의 분신등 시위가 본격화됐다.7월2일 부천에서 시위중 체포된 여대생 권인숙양을 경찰관이 성고문한 사건이 처음 알려져 물의를 빚었다. ▷1987년◁ 1월14일 서울대 박종철군이 치안본부 대공수사단에 연행돼 조사받다가 고문사했다.4월8일 김대중·김영삼씨는 직선제 개헌을 강력히 추진하기 위한 신당창당을 선언했다.13일 전대통령은 특별담화를 통해 개헌논의 유보를 발표하고 직선제 요구를 거부했다.24일에는 통일민주당의 창당을 방해하는 용팔이 사건이 발생했다.6월10일 민정당은 전당대회에서 노태우대표를 차기대통령 후보로 지명했다.그러나 박종철 고문치사 규탄 및 호헌철폐 시위가 전국으로 확대되면서 29일 노대표가 직선제개헌 수용을 밝혔다.12월16일 실시된 제13대 대통령선거에서 노태우 민정당 후보가 당선됐다. ▷1988년◁ 1월14일 문교부는 새로운 한글 맞춤법과 표준어규정을 확정 발표했다.2월25일 노태우대통령이 취임했다.4월26일 13대 국회의원선거가 실시됐다.그 결과 처음으로 여소야대의 현상이 나타났다.9월17일 역사적인 서울올림픽이 개막돼 10월2일까지 계속됐다.11월부터는 5공비리 청문회가 시작됐다.11월23일 전두환전대통령은 백담사로 은둔했다. ▷1989년◁ 3월25일 문익환목사가 방북,김일성과 면담했다.6월30일에는 외국어대 임수경양이 북한에 들어가 평양청년학생축전에 참석했다.9월11일 노태우 대통령은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을 발표했다. ▷1990∼1년◁ 90년2월9일 민정당과 민주당 공화당이 합당,민자당이 창당됐다.10월1일 한소양국이 수교했다.91년2월 수서지구 택지특별분양 사건이 발생,이원배등 의원5명과 청와대비서관,정태수 한보그룹 회장등 8명이 구속됐다.12월18일 노대통령은 한반도 핵부재를 선언했으며 같은달 31일 남북한은 한반도의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에 가서명했다. ▷1992년◁ 3월24일 14대 총선이 실시돼 2번째 여소야대가 실현됐다.정부는 6월30일로 예정된 지방자치단체장선거를 95년이후로 연기한다고 발표했다.8월22일 중국과 수교,주변 4강과 모두 외교관계를 수립했다.12월19일 14대 대통령선거에서 민자당의 김영삼후보가 당선됐다. ▷1993년◁ 김영삼대통령은 2월25일 취임후 공직자 재산공개,군 하나회 숙정,금융실명제 실시등 굵직한 개혁조치를 단행했다.이회창원장이 이끄는 감사원은 6월 율곡사업감사,7월 평화의 댐 감사등 과거비리를 사정했다. ▷1994년◁ 정부의 외교가 북한핵문제 해결에 집중됐다.그 결과 10월21일 제네바에서 미북기본합의서가 타결됐다.국내적으로는 구포 열차전복사건,위도 여객선 침몰사건,목포 아시아나 항공기 추락사건,아현동 가스폭발사건,성수대교 붕괴등 대형사고가 잇따라 발생했다. ▷1995년◁ 6월27일 역사적인 4대 지방자치선거가 일제히 실시된 결과 수도 서울의 시장에 민주당의 조순후보가 당선되는등 시도지사에 대거 야당 후보들이 당선됐다.4월28일 대구가스폭발에 이어 6월29일 삼풍백화점 붕괴등 대형사고가 계속됐다.
  • 막오른 야권개편(「6·27」이후 정국:9)

    ◎「신당 파장」… 야 판도 큰 변화 온다/자민련 세불리기 박차·TK신당설 확산/각당 이합집산속 민주잔류파 행보 변수 가능성으로만 이야기돼 오던 「6·27 지방선거 이후 정계개편」이 급속히 가시화되고 있다.최근 민주당에서 이탈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DJ(김대중 아태재단이사장)신당」의 태동이 그 신호탄이다. 「DJ신당」의 움직임은 필연적으로 정치권 전체에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다.무엇보다 민주당을 깨고 나갈 호남권 인사 중심의 신당이 최소한의 명분을 갖추기 위해서는 호남권 이외 지역에서 다수의 인사를 영입해야만 한다.신당세력의 자민련 박철언 부총재에 대한 영입노력에서 보듯 그 파장은 정계개편의 당위성을 축적해 온 정치권 전체로 확산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실 지방선거 이후 정계개편은 그 폭과 넓이에 있어 여권을 포함,대대적이 되리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이른바 TK(대구·경북)지역을 중심으로 한 민자당의 민정계의원들의 이탈 가능성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그러나 민자당내 TK그룹의 리더인 김윤환 사무총장체제가 출범하며 여권의 지각변동 가능성은 일단 수면아래로 잠겨있는 양상이다.따라서 최근 민자당이 제외된 정치권의 개편움직임은 정계개편이라기 보다는 야권개편으로 보아야 옳을 것 같다. 야권개편의 두축은 말할 것도 없이 「DJ신당」과 김종필 총재가 이끄는 자민련이다. 민주당을 군소정당화시키고 제1야당으로 출범할 것으로 예상되는 「DJ신당」은 명실상부한 「김대중당」이 될 것이 분명하다. 자민련은 당세확장을 위해 주로 여권인사들에 대한 영입작업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지역적으로는 지역기반인 충청권과 새로이 세력권으로 확보한 강원권은 물론 대구·경북지역에도 손을 뻗치고 있다.그러나 자민련이 현재 추진하는 당세확장은 정치권의 구조를 뒤바꾸는 작업이라기 보다는 단순한 몸불리기의 수준에 그치고 있다.그러나 이같은 몸불리기 또한 앞으로 예상할 수 있는 대대적인 정계개편을 대비한 것임은 물론이다. 또 「DJ신당」의 출범을 기정사실화할 때 이기택 총재를 비롯,이부영·노무현 부총재와 박계동 의원등 민주당에 남을 가능성이 큰 인사들의 움직임에도 눈길이 쏠린다.정치권 일부에서는 민주당에 잔류할 것으로 예상되는 인사 가운데 상당수는 민자당의 민주계와 상당한 이념적 교감을 지닌 것으로 보고 있다.따라서 내년 총선을 앞두고 있을지도 모르는 정계개편에서 이들이 민주당 간판을 그대로 유지할지도 관심거리가 되고 있다. 정계개편의 가장 큰 변수인 TK지역 인사들 또한 「종속변수」가 아닌 「독립변수」가 될 가능성이 있다.「TK신당설」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대구·경북지역에서 무소속이 대거 당선되면서 좀더 광범위하게 퍼져나가고 있다.현재 민자·자민련에 속해있는 이 지역출신 5·6공 인사들과 무소속 인사들이 연합해 「3김」 가운데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새로운 정치세력을 만든다는 것이 이들의 구상이다. 「DJ신당」출범 움직임이나 자민련의 몸불리기 노력이 이번 지방선거에서 3김의 영향력을 재확인한데서 힘입었다면 가칭 「정치개혁시민연합」의 정치세력화 움직임은 「반3김」을 표방하고 있다. 이 모임에는 박형규목사와 장을병 전성균관대총장,성유보 전 한겨레신문편집위원장,장기표 21세기 사회발전연구소장,최열 환경운동연합사무총장,장두환 역사비평사대표,임현진 서울대교수등이 발기인으로 참여하고 있다.이 모임에는 또 이돈명·홍성우 변호사와 김지하 시인도 뜻을 같이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정치권에서는 이 모임이 활동여하에 따라서는 어느 정도 공감을 얻을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총선에 영향을 미칠 정도의 정치세력으로 성장하기에는 한계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따라서 이 모임 또한 앞으로 있을 대규모 정계개편에서 「한부분」을 차지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DJ 신당」 민자·자민련 시각/“명분없다” “세대교체 촉발” 반응 다양­민자/논평 자제… 내각제 개헌에 도움 기대­자민련 김대중 아태재단이사장의 신당추진 움직임이 구체화되고 있는데 대해 민자당과 자민련은 공식적인 언급은 삼가고 있으나 내년 총선과 관련해 오래전부터 예고됐던 정계개편의 첫 뚜껑이 열렸다는 인식 아래 대책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민자당◁ ○…내심 김이사장의 신당설이 탐탁치 않은 표정이나 아직 구체적인 발표가 없어서인지 공식 논평은 하지 않고 있다.그러나 정치권 전체에 미칠 영향 때문인지 의원들은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이다. 박범진 대변인은 『아직 언급할 단계가 아니며 당지도부가 이에 대해 논의한 바 없다』고 밝혔다.그러나 서울과 호남권 인사들은 대체로 『올 것이 왔다』면서도 『지금까지는 김이사장이 그래도 대접을 받았지만 과거처럼 대권욕만 내세워 명분없는 창당을 하게 되면 결국 민심을 얻는데 실패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덕룡 의원은 『민주당이 갈라지면 정치권 전체에 커다란 요동이 몰려 올 것』이라고 전망했고 강삼재 의원은 『분당은 하책중의 하책으로 김이사장에게는 결코 유리하게 작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영일 정세분석위원장은 『결과가 그렇게 나온다면 명분도 도덕성도 없는 이합집산에 불과하다』면서 『전당대회를 통해 당권을 합법적으로 바꾸는 길을 택하지 않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지역당 고착화라는 비판적인 시각 말고도이를 세대교체분위기 확산 및 민자당 결속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유성환 의원은 『민주당의 이기택 총재,이부영 부총재등 개혁모임인사들과 대화의 길을 여는 것도 바람직하다』고 말했다.임정규 부대변인은 『결국은 김이사장의 신당은 고질적인 지역당의 망령을 되살아나게 하는 것』이라면서 『지역당을 부추기는 구세력에 대한 세대교체를 앞당기게 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자민련◁ ○…역시 분명한 의사 표명을 자제하고 있다.김종필 총재등 당지도부는 애써 무관심한 것처럼 보이려 하지만 행여 동요하는 의원들이 있을까 신경을 쓰는 눈치다.특히 대구 경북권 의원들을 동교동측이 접촉한다는 소문이 들리자 집안 단속에 주력하는 모습이다.그러나 동교동계가 신당을 만들게 되면 내각제 개헌의 연대분위기가 확산될 것이라는 기대도 갖고 있다. 박철언 부총재는 동교동측과의 접촉은 부인하지 않고 있으나 신당창당이 야권통합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에 부정적으로 여기고 있다는 전문이다.그러나 『당장 정치행보를 같이할 생각은 없지만 신당에 대한 혐오감도 없다』면서 『자민련과 신당이 앞으로 연대할 융통성은 얼마든지 있다』고 신축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자민련은 김이사장의 신당으로 정계의 이합집산이 활발해질 것으로 보고 이를 계기로 당세를 더욱 확장한다는 복안이다.한영수 원내총무는 『자민련은 이미 문호개방을 표방했고 정치권의 유동성이 늘어나면 원내의원수도 지금 21명에서 40명까지 늘릴 수 있다』고 중도세력 영입을 희망했다.
  • “지역감정 조장 즉각 중단하라”

    ◎“국민통합 외면… 「분열 고착화」 우려”/각계대표 66명 정치권 각성 촉구 서영훈 신사회공동선운동연합대표,한완상 한국방송통신대총장,송월주 조계종총무원장,이세중 변호사,장을병 전성균관대총장,인명진 목사,시인 고은 김지하씨,영화감독 이장호씨등 각계 인사 66명은 22일 망국적 지역감정 조장등 혼탁·타락선거에 대한 정치권과 정부의 각성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은 성명에서 『여야 모두 이번 선거를 정책 대결의 장으로 보지 않고 연고표 모으기와 지역주의 공방에만 열을 올림으로써 선거를 통한 지역사회의 통합 내지는 국민통합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처음부터 외면하고 있다』면서 『이대로 가다가는 지방자치제 본래의 의미 실종은 물론 지역간 대결과 분열의 고착화라는 엄청난 선거후유증을 남기게 될 것이 뻔하다』고 경고했다. 이들은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일체의 언동을 즉각 중지할 것을 여야 각 정당과 후보자들에게 촉구하면서 『국민들은 오로지 당선만을 위해 지방색을 조장하는 후보에게 절대로 표를 주지 말아야 한다』고 호소했다. 이들은 또 『후보자와 유권자들은 이번 선거에서 중앙정치가 아닌 생활정치가 중심이 되고 아울러 지역·학연·혈연이 아닌 정책중심의 선거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달라』고 당부했다. 이들은 『경찰과 검찰,그리고 법원은 선거부정 수사와 판결에 있어 여야의 차별 없이 엄정하게 사법권을 행사하고 특히 사전선거운동과 공천관련 금품수수에 대해서는 보다 철저하게 법을 집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정부에게 특정지역에 대한 특혜계획 등 선심행정의혹을 사는 일체의 관권개입을 중지할 것을 요구하는 한편 언론에 대해서도 중앙정쟁 위주의 선거보도를 시정하고 후보자간 정책공약 중심의 보도에 충실할 것을 촉구했다.
  • 일 언론/김지하 시인 재조명 활발

    ◎오에 겐자부로 노벨상 수상연설서 김 시인 언급계기로 관심/김 시인의 지적편력·생명사상 높이 평가/아사히·도쿄신문,김 시인­오에 좌담·인터뷰 특집 최근 일본 언론에 한국의 시인 김지하씨가 활발하게 소개되고 있다.김 시인은 물론 그가 한참 활동하던 군부 독재정권 시절 저항의 몸부림이 절절히 배어 있는 작품들은 일본에서 상당히 알려져 있었다.그의 대표작 가운데 일부는 일본어로 번역돼 출판돼 있기도 하다. 그러나 최근 그가 다시 조명을 받고 있는 것은 이러한 저항 시인으로서가 아니다.일본 언론들이 그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은 독재 치하로부터 민주화로 한국 사회가 변화해 나가는 과정에서 김시인이 보여주고 있는 탐색과 고뇌를 통한 인간의 재발견 작업이 강력한 호소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김시인이 다시 조명을 받게 된데는 지난해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오에 겐자부로씨에 덕입은 바 크다. 오에씨는 수상 연설인 「애매한 일본의 나」에서 한국에 대해 두번 언급했다.첫번째는 일본의 도덕성을 언급하는 부분에서 「조선어를 모국어로 하는 사람들도 방사능 장해를 짊어지고 있는 피해자들에 포함돼 있다」고 말한 부분이고 두번째가 연설의 후반부에서 김시인을 중국의 정의,막언 두 시인과 함께 언급하면서 그의 정치적 자유를 위해 단식투쟁을 한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 한 것이다.오에씨는 연설을 다소 서투른 영어로 했지만 그의 수상 연설은 일본 신문에 일본어로 전문 소개됐다. 그 뒤 아사히신문은 올해 들어 지난 10일자에서 오에씨와 김시인의 좌담을 기획,전면 보도했다. 일본의 두번째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오에씨와 자리를 같이한 김시인은 『동북아시아인들이 자본주의 기계문명 아래서 존재의 분열을 경험하고 있다』면서 『이의 출구로서 인간의 가운데 영적인 우주가 내재하고 있다고 하는 동학 불교 양명학 등 동양사상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오에씨는 자신은 서구 휴머니즘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고 소개하면서 『생명과 환경을 중요하게 여기고 국경을 초월해 손을 잡자고 하는 김시인의 「아시아 생명공동체」론에 일본인이 공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사히신문에 이어 도쿄신문은 지난 21일부터 3차례에 걸쳐 김시인의 대형 인터뷰 기사를 싣고 그의 사상 편력과 아시아 생명공동체의 내용을 솔출판사에서 나온 「중심의 괴로움」에 실린 새 작품 소개를 곁들여 가며 상세하게 소개했다.특히 그가 저항의 시인에서 동학의 「인내천」 사상을 바탕으로 한 「생명의 시인」으로 옮아가는 과정에 초점을 맞췄다. 일본에서 그가 새롭게 각광을 받는데는 시대 상황의 변화가 크게 작용하고 있다.일본은 냉전체제 아래서 경제발전 한길을 걸어왔지만 이제 냉전체제가 붕괴되면서 정치를 비롯한 새로운 지향점,변화가 요구되고 있지만 뚜렷한 것이 제시되고 있지 못하다.21세기를 향한 지적인 탐색이 요구되고 있는데 김시인의 아이디어가 호소력을 갖고 다가서고 있는 것이다. 이와관련,김시인을 취재한 도쿄신문의 고토 기이치 기자는 『아시아 시대다.경제가 성장했지만 소외문제도 심각해졌다. 새로운 가치관의 모색이 필요하다』면서 『인간의 문제를 깊이있게 다루고 있는 김시인의 모습은 대단히 인상적』이라고 말하고 있다.
  • “가시적 실천으로 당화합 추구”/김덕룡 민자총장 포부와 면모

    ◎“지방선거 앞둬 걱정” 신중성 여전/“YS 분신”… 71년부터 김 대통령 「밀착 보좌」/새정부 첫 정무장관… 개혁작업 최일선 활약 8일 민자당 사무총장으로 다시 정치전면에 나서게 된 김덕룡 의원. 「김영삼 대통령의 분신」으로 불릴만큼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는 그는 논리가 정연하고 분석력이 뛰어나 「컴퓨터」라는 별명을 듣고 있다.표정이 변함없고 늘 조용한 성격이라 「자크」라는 소리도 듣지만 새정부 출범과 함께 정무장관으로서 개혁작업의 최일선에서 활약하며 뛰어난 업무추진력을 발휘한 바 있다. 그는 이날 임명소감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아직 총재로부터 정식 임명장을 받기 전』이라고 상기시키고는 『임명권자의 뜻이 있을테니 총재를 만난 뒤 다시 한번 얘기할 기회를 달라』고 특유의 신중함을 보였다.그러면서도 『경륜도 짧고 능력도 부족한 사람이 지방선거를 앞둔 중대한 시점에 중책을 맡아 걱정도 든다』고 겸손해 한 뒤 『당을 단합시키고 당직자들과 협의해서 좋은 방안들을 내도록 하겠다』고 「단합」을 강조했다. 구체적인 화합방안에 대해서는 『말이 아니라 구체적 실천이 필요한 때』라고 했고 「세계화에 걸맞는 차세대형 정치인」이라는 주위의 평가에 대해서는 『세계화는 함께 해 나가야 할 우리 모두의 숙제』라고만 했다. 서울대 문리대 학생회장 출신의 김 총장이 김영삼대통령과 인연을 맺은 것은 지난 71년 수행비서로 들어가면서부터.「6·3운동」의 주역으로 옥고를 치르던 대학시절 김영삼 의원을 처음 만난지 8년만이었다. 시인 김지하씨의 양심선언사건 때 김영삼 신민당총재를 「제거」하기 위한 중앙정보부의 「작전」에 따라 구속된 뒤 79년 YH사건 백서발간,83년 김영삼 단식사건의 외신제보등으로 세차례 김 총재를 대신해 옥고를 치렀다.79년 김총재의 비서실장에 임명된 뒤 10·26,「서울의 봄」과 5·17,「민추협」결성 등 시련기는 물론 3당통합 때 통합추진위 대변인 등으로 격동의 한복판에서 김대통령의 곁을 한번도 떠나지 않았다.김 대통령은 지금도 그를 「김실장」으로 부르고 있다. 정치규제에 묶여 13대 들어서야 서울 서초을에서 원내에 진출한재선의원에 불과하지만 그를 중진급으로 부르는데 시비를 거는 사람은 거의 없다. 새정부 출범과 함께 정무장관으로서 공직자재산공개·금융실명제 등 굵직한 개혁작업을 입안·추진하던 그가 지난 93년말 장관직을 갑자기 물러나자 항간에서는 「너무 잘나가던 실세」로 찍혀 「물을 먹은 것」이라는 입방아도 있었다.그러나 김대통령은 이런 평가를 비웃듯 지난해 대통령 연두기자회견이라는 다소 어울리지 않는 자리에서까지 『김의원을 아끼는 마음은 결코 변할 수 없다』고 깊은 신뢰를 표시했다. 지난해 8월 민자당 서울시지부장에 임명된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12·23개각」을 앞두고 「새시대 새인물론」을 편 것이 「젊은 총리 대망론」으로 확대해석돼 김대통령으로부터 질책을 받자 일부에서는 『재기가 어려울 것』이라고도 했다.하지만 이번에 집권당 사무총장으로 중용됨으로써 그같은 인식이 피상적인 것이었음을 입증시켰다고 할 수 있다.그는 최근 자전적 에세이집 「머리가 하얀 남자」에서 『21세기 일류국가 건설을 위한 사고의 대전환』을스스로에게 촉구하고 있다.「세계화」를 내걸고 새출발을 다짐한 민자당의 「눈」으로 그가 다시 떠오른 것은 우연이 아닌 것 같다. 부인 김열자여사(53)와 사이에 2남.▲전북 익산 출신(54세) ▲서울대 사회학과졸 ▲신민당 총재비서실장 ▲민추협 기조실장 ▲통일민주당 대변인 ▲민자당 총재비서실장 ▲정무1장관 ▲민자당 서울시지부장.
  • 내한 일노벨상 수상작가/오에 겐자부로(인터뷰)

    ◎“인류의 화해·상처치유 위한 작품 구상” 지난해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오에 겐자부로(대강건삼낭·60)씨가 크리스찬아카데미 창립30주년기념 한·일심포지엄에 발제자로 참석하기 위해 1일 내한했다. 오에씨는 이날 하오 3시 서울 수유리 아카데미하우스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한국 사람들과 공동의 관심사에 대해 함께 대화하고 작품에 대한 비판도 받는다는 희망과 두려움을 동시에 갖고 왔다』면서 『김지하시인과 폭넓은 대화를 갖고 싶다』고 밝혔다.다음은 일문일답 내용. ­70년대 김지하시인 석방운동에 참가한 문인으로서 황석영 박노해 등 현재 구속된 한국의 문인들에 대한 견해는. ▲한국의 정치상황에 대해서 뭐라 말할 입장은 못된다.그러나 문인들의 표현의 자유를 정치적 요구에 따라 억압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노벨상 수상기념 연설에서 일본 헌법상의 영구평화원칙을 개정하려는 것은 아시아와 원폭피해자에 대한 배반이라고 말했는데. ▲일본헌법 개정 움직임에 반대하며 앞으로 일본의 국제적 역할은 인류전체의 화해와 치유를 위해 노력하는 일이라 생각한다.일본의 상처를 치유하는 노력을 포함해서 특히 한국 중국 필리핀 등과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긴밀히 협력하고 진정한 화해를 이룩해야 한다. ­소설을 그만 쓰겠다고 말한적이 있는데….그리고 소설의 미래에 대한 전망은. ▲1주일 전에 완성한 3부작 소설 「타오르는 푸른나무」를 끝으로 소설을 그만 쓰고 세계의 상처 치유와 화해를 어린이들에게 전달할 수 있는 작품을 5년동안 공부하며 구상할 계획이다.종전의 소설형식은 쇠퇴할 것이라 보며 앞으로는 한국 중국 등 세계문학사에서 주목받지 못한 변두리국가에서 훌륭한 작품이 나올 것이라 생각한다. ­작품세계에서 보여준 화해와 치유노력이 서구적이라는 지적이 있는데. ▲그렇다고 생각하진 않는다.그러나 김지하시인의 불교적 세계관과 지명관목사의 기독교적 휴머니즘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우고 싶다.
  • 한국·일본의 과거·미래점검/크리스천아케데미 창립30돌기념 심포지엄

    ◎양국 작가·교수 등 지식인 참석 한국과 일본의 작가·대학교수 등 지식인들이 한데 모여 양국의 과거와 미래를 점검하는 심포지엄이 열린다. 크리스천아카데미(원장 강원용)는 창립 30주년을 맞아 일본 이와나미(암파)서점과 함께 서울 아카데미하우스(2월1∼3일)와 도쿄 아사히스퀘어(4월7∼8일)에서 한차례씩 심포지엄을 갖기로 했다. 「해방50년과 패전50년­화해와 미래를 위하여」를 주제로 내건 이 심포지엄 서울모임에는 사카모토 요시카즈 도쿄대 명예교수,이정식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교수,야스에 료스케 이와나미서점 대표,지명관 한림대 일본학연구소장들이 참석해 사상적·정신적 과제를 주로 다룰 예정이다.특히 지난해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 오에 겐자부로가 방한,김지하시인과 대담할 계획이다.. 또 일본 행사에는 소설가 이데 마구로쿠,김용덕 서울대교수,미야진키 이사무 대화총련 이사장,조순 전 부총리,가모 다케이코 도쿄대교수,김영호 경북대교수,하라 도시오 전 교토통신사장,이헌조 금성사회장들이 참여해 역사청산과 미래구상등에 대해 중점적으로 의견을 나눈다. 강원룡원장은 심포지엄 개최와 관련,『국교 정상화 30년을 맞아 한일관계의 근본문제를 파고들어감으로써 협력의 새 방향을 찾아야 한다』면서 이번 대회를 통해 과거청산의 해결책과 미래지향의 과제를 함께 찾을 수 있기를 바랐다.
  • 한국의 발전이끈 50인

    1945년 광복 이후 지금까지 50년 동안 어떤 사람들이 우리나라를 이끌어 왔는가.서울신문이 광복 50년을 이끌어온 각계인사 50인을 선정,소개한다.북한사람과 외국국적을 가진 사람은 선정대상에서 제외했다. ▷이승만◁ 1875.3.26∼1965.7.19.황해도 평산출신.배재학당졸업·미국 프린스턴대학 철학박사·초대∼3대 대통령,독립협회등의 간부로 개화운동.일제때 상해임시정부 대통령을 역임하는등 광복때까지 해외에서 독립운동.해방직후 미국에서 귀국해 민주진영 최고지도자로서 건국준비에 매진.48년 제헌의회의 국회의장에 이어 초대 대통령에 당선.장기집권을 위해 불법적 개헌을 감행한끝에 60년 4·19혁명으로 하야 한뒤 하와이로 망명했다. ▷김구◁ 1876.8.29∼1949.6.26.황해도 해주출신.대한민국 임시정부 경무국장 국무령 주석·한국독립당 집행위원·민주의원 총리·국민의회 부주석.일제때 신민회 황해도총감을 시작으로 평생을 독립운동에 몸바친 민족주의자.한인애국단을 조직해 이봉창의사 등으로 하여금 일본왕등에게 폭탄을 던지게 했다.임시정부 주석으로 광복군을 창설했으며 해방뒤 남북분단을 막기 위해 평양을 방문하기도 했다. ▷김병로◁ 1887∼1964.전남순창출신.1913년 일본메이지대졸업.일제시절 경성법전·보성전문교수 거쳐 변호사로 활약하면서 광주학생운동,6·10만세운동,원산파업사건 등 민족운동관련사건 무료변론.항일단체인 신간회중앙집행위원장역임.46년 남조선과도정부사법부장을 맡았고 건국후 초대·2대 대법원장을 거치며 우리나라의 사법제도의 기틀을 다졌다. ▷조병옥◁ 1894.3.21∼1960.2.15.충남 천안출신·미국 콜럼비아대 대학원 수료·1929년 광주학생사건으로 3년 복역·조선일보 전무·37년 수양동우회사건으로 복역.해방뒤 우익의 한국민주당을 창당하고 미군정아래서 경무부장을 역임했으나 이승만정권의 독주에 반발,52년 반독재구국선언을 주도.54년 보수야당을 묶은 민주당을 창당,60년 민주당 대통령후보로 입후보했으나 신병으로 선거 한달전에 미국육군병원에서 사망했다. ▷신익희◁ 1894.6.9∼1956.5.5.경기도 광주출신.한성공립외국어학교졸·1919년 상해 망명·임정 내무총장·법무총장·48년 초대 국회의원·국회의장·대한국민당 위원장을 역임.54년 자유당정권이 4사5입 개헌등 횡포를 부리자 야당세력을 묶어 민주당을 창당.56년 대통령선거에 출마,한강 백사장유세에 수십만 인파를 모으는등 지지를 받았으나 이틀뒤 전주유세장으로 가던 야간열차에서 사망했다. ▷최현배◁ 1894.10.19∼1970.3.23.호 외솔.경남 울산출신.일신학교·한성고등학교·일본 히로시마고등사범·경도제국대학졸업.연희전문 교수·문교부 편수국장·한글학회 이사장·학술원 회원역임.국어학 연구·국어정책의 수립·국어운동 추진에 공헌.「우리말본」으로 20세기 전반의 문법연구를 집대성.한글전용을 주창해 각종 교과서에 한글 가로쓰기 체제를 확립했다. ▷백낙준◁ 1895∼1985.평북 정주출신.22년 미국 파크대졸.27년 연희전문교수.46∼60년 연세대총장을 역임한 것을 비롯,대한소년단총재·문교부장관·국사편찬위원·국토통일자문회의장·외솔회이사장과 학술원 명예회원 역임.교육자로서 후진 양성에 헌신하면서 한국기독교 발전을 위해 「한국개신교사」등 많은 저술을 남겼다. ▷유일한◁ 1895∼1971.평양출신.19년 미미시건대 졸업.26년 제약회사인 유한양행 창설.42년 미육군성고문.44년 로스앤젤레스·뉴욕한미상공회의소회장을 역임.해방 이후에는 대한상공회의소회장을 맡아 우리나라의 산업부흥에 기여했다.또 전재산을 털어 한국고등기술학교를 설립한데 이어 유한학원을 설립,기업이윤을 사회에 환원하는 본보기가 됐다. ▷윤보선◁ 1897.8.26∼1990.7.18.충남 아산출신.영국 에딘버러대 졸업.대한임시의정원 의원·대한적십자사 총재·제4대 대통령·신민당 총재.이승만대통령 시절 비서실장·서울시장과 상공장관을 지냈으며 「4·19」로 60년 대통령에 취임.그러나 1년만에 「5·16」에 성공한 박정희에 의해 하야당했다.3대국회 이후 야당에 몸담으며 반독재·반군정투쟁을 벌였다. ▷최규남◁ 1898.1.26∼1992.4.27.황해 개성출신.연희전문 수물과·미웨슬리안대·미시건대학원졸.서울대교수·서울대총장·문교부장관·민의원·학술원회원 등 역임.국내 물리학계의태두이자 교육행정가로 큰 업적을 남김.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미시건대학에서 물리학 박사학위 취득.서구의 신물리학을 국내에 도입,한국 물리학계의 초석을 다졌고 원자력발전과 과학기술교육의 기초를 다졌다. ▷우장춘◁ 1898.4.8∼1959.8.10.일본 도쿄태생.동경제대 농학과졸(1919).세계적인 육종학자로 채소종자의 육종합성에 성공하고 씨없는 수박을 개발하는 등 해방후 국내 농업발전에 기여.대학졸업후 일본 농림성 농사시험장에서 18년간 근무하면서 육종학연구.36년 종의 합성설로 동경제대에서 박사학위 취득.50년 정부 초청으로 귀국.농업연구소장·학술원회원 등을 역임했다. ▷장면◁ 1899.8.28∼1966.5.14.인천출신.미국 맨해튼 가톨릭대 졸.제헌의원·초대 주미대사·60년 부통령입후보 낙선·60년 4·19로 제2공화국 국무총리·60년 당시 민주당 신파의 영수로 이승만정권의 부정선거결과로 촉발된 「4·19」로 총리에 취임.그러나 구파출신 윤보선대통령과 권력암투를 벌인데다가 불안정한 정치로 5·16정권에 쫓겨났다. ▷김활란◁ 1899∼1970.인천출신.이화여전·미웨슬리언대학졸.25년 이화여전교수로 임용돼 해방직후부터 61년까지 이화여대총장을 역임.대학을 운영하면서도 한국여자기독교청년회 연합회재단이사장·공보처장·대한적십자사부총재 등을 역임하며 우리나라 개화기와 해방이후 신여성 교육에 헌신하고 기독교를 통한 사회운동에 일생을 바쳤다. ▷함석헌◁ 1901.3.13∼1989.2.4.평북 용천출신.동경고등사범졸.28∼38년 오산학교교사.74년 민주회복국민회의 대표위원.교육자·종교인·언론인등으로 활발하게 사회참여를 하며 성서와 노장철학을 바탕으로 비폭력 저항운동을 편 사상가.자유당 및 군사정권시대에는 반독재자유민권투쟁에 앞장.「뜻으로 본 한국역사」등 저서와 「씨알의 소리」등을 발간했고 민권운동에도 헌신했다. ▷한경직◁ 1902.12.29.평남 평원출신.숭실대·미국 프린스턴대졸.영락교회 목사·숭실대학장·기독교1백주년 기념사업협의회총재·대한예수교 잘로회 총회장 역임.종교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템플턴상 수상.한국 개신교 부흥에 불을 당긴 성직자.평생을 자신의 이름으로 된 집이나 저금통장 하나없이 청빈한 삶으로 일관하면서 세계적인 기독교 지도자로 활동해왔다. ▷이상백◁ 1904∼1966.서울출신.일본 와세다대학 사회철학과 졸업.서울 대학교 문과대교수(47).한국사회학회장(57).국제올림픽위원회(IOC)위원.서울신문사 체육공로상 수상.일제시대에 일본 농구협회를 창립하고 제11회 올림픽 때는 일본선수단 총무로 참가.광복직후 조선체육동지회를 결성해 대한체육회 발족에 디딤돌을 놓았으며 64년 대한올림픽 위원회 위원장을 거쳐 64년 한국의 제2대 IOC위원으로 한국체육의 근대화를 이루었다. ▷유진산◁ 1905.10.18∼1974.4.28.충남금산 출신.보성고보졸.일본와세다대학 정경학부중퇴.만주에서 중경임정 연락원활동.46년 대한청년단 창립·자유당정권의 사사오입개헌파동뒤 민주당 창당에 참여.신파로 출발했으나 뒤에 구파로 변신,민주당 원내총무를 거쳐 분당뒤 신민당 간사장·대표위원을 지내는등 정통야당의 맥을 이었다.너무 타협적이라는 비판도 있었으나 현실을 감안한 정치력의 달인이었다는 평가가 높다. ▷이병철◁ 1910.2.12∼1987.11.19.경남 의령출신.중동 중학 4년 수료.일본 와세다 대학 정경과 2년 수료.38년 삼성상회 서립.삼성물산·제일제당·제일모직 설립.61년 한국경제인협회(전경련 전신)초대 회장.삼성그룹의 창업주로 해방 이후 궁핍했던 시절 소비재산업 중심으로 한국 경제를 일으킨 경제계의 선구자다. ▷이범석◁ 1900.10.20∼1972.5.11.서울 출신.운남육군강무학교기병과졸.만주 청산리전투사령관·한국광복군참모장·초대국무총리·주중국대사·원외자유당부당수·내무부장관·참의원·국민의당 최고위원.항일독립투사로서 해방이후에도 활발한 정치활동을 했다.초대 국무총리로서 국방부장관을 겸임하면서 건국과 건군에 큰공.52년에는 이승만대통령의 「러닝 메이트」로 부통령에 입후보하기도 했다. ▷윤석중◁ 1911.5.25∼.서울 출신.일본 상지대졸.새싹회 회장·난파기념사업회 이사장·한국문인협회 아동문학분과위원장·방송윤리위원회 회장·한국방송협회 회장 역임.예술원회원.일제하 소학교시절 일본말 노래가 싫어 우리말 동요에관심을 가진후 평생을 어린이 운동에 몸바친 아동문학가.「초생달」「굴렁쇠」「바람과 연」등 20여권의 동요·동시·동화집을 냈다. ▷성철스님◁ 1912.4.10∼1993.11.4.속명 이영주.경남 산청출신.진주중학 졸업.35년 지리산 대원사에서 수행.68년 해인사 초대방장,81년 조계종 종정 취임.수행의 깊이와 경전의 섭렵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경지로 한국 불교계의 정신적 사표가 됨.16년간의 생식과 8년간의 눕지않는 수행자세,「중답게 산다」는 생활철학등으로 원효 이래 한국불교의 최대 거목이라고 칭송받고 있다. ▷김용기◁ 1912∼1988.경기도 양주출신.농촌계몽등을 통한 민족운동을 위해 40년 양주군에 봉안이상촌 건립.52년 광주군에 가나안 농장을 설립한데 이어 62년 가나안농군학교 설립.73년 강원도 원성군에 신림 가나안 농군학교설립,82년 가나안 농군사관학교설립 등을 통해 농촌의 젊은 일꾼을 양성하고 농촌발전에 큰 업적을 세웠다. ▷김동리◁ 1913.11.24∼.경북 경주출신.경신중 중퇴.청년문학가협회회장·예술원회장·한국문인협회 이사장·서라벌예술대학장·국정자문위원 역임.예술원회원.35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화랑의 후예」당선으로 등단.단편소설「무녀도」「바위」「황토기」「밀다원시대」「등신불」과 장편 「사반의 십자가」「을화」등 발표.신·인간·자연을 주제로 삼아 특유의 순수문학 세계를 가꾸어 온 한국문단의 대부(대부)이다. ▷김기창◁ 1914.2.18∼.호 운보·서울출신.1930년 승동보통학교 졸업 및 김은호 문하입문.31∼36년 선전 연입선.37∼40년 선전 연4회 특선.69년 국전 심사위원 부위원장.71년 3·1문화상.예술원 회원.근대 한국화의 추상화작업 선도,전통수묵산수를 뛰어 넘어 특유의 바보산수와 청록산수로 한국화의 새로운 미술운동에 큰 영향을 끼쳤다. ▷서정주◁ 1915.5.18∼.호 미당.전북 고창 출신.고창 고보 중퇴·중앙불교전문학교 명예졸업.동아일보 사회부장·문교부 예술과 초대과장·한국문학가협회 시분과위원장·동국대 부교수 역임.대한민국 예술원 회원.「귀촉도」「신라초」등 시집 14권,「서정주 문학전집」「서정주 시선집」등에 시8백수 수록.「동천」을 비롯,수많은 절창을 통해 민족어를 연마하고 민족심성을 계발한 한국 서정시의 대가이다. ▷정주영◁ 1915.11.25∼.강원도 통천 출신.송전소전학교 졸업.현대그룹 회장·명예회장·대한체육회장·전국경제인연합회장·명예회장·국회의원·국민당 대표.47년 맨손으로 출발,기발한 아이디어와 불도저같은 추진력으로 현대를 국내 최대의 기업군으로 키운 「현대신화」의 주역.92년 국민당을 창당,대통령선거에 나섰다 실패하고 그룹경영에서도 손을 뗐다. ▷장기영◁ 1916.5.2∼1977.4.11.서울출신.선린상고졸.한국은행 부총재·한국일보 사장·IOC위원·한국일보 회장·부총리겸 경제기획원장관·남북조절위원회 위원장대리·국회의원.금융계 언론계 정계등 여러방면에서 활약,「불도저」로 불리기도 했다.54년 한국일보를 창간했으며 초창기 한국체육을 궤도에 올려 놓았다.경제기획원장관으로 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세워 고도 경제성장의 기반을 구축했다. ▷박정희◁ 1917.11.14∼1979.10.26.경북 구미 출신.대구사범·육사졸.국가재건최고회의의장·제5∼9대 대통령.61년 「5·16쿠데타」를 일으켜 제2공화국을 종식시키고 군사통치.64년 공화당 후보로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72년 10월 유신을 거쳐 79년 10·26으로 유명을 달리하기까지 18년동안 장기집권.몇차례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추진,「한국경제의 기적」을 창출하고 자주국방의 기틀을 마련했다. ▷정일권◁ 1917.11.21∼1994.1.18.연해주 추풍출신.만주국 군관학교·일본 육사졸업.육군총참모장겸 육해공군 총사령관·육군대장·육군참모총장·국무총리·국회의장·해방직후 국방경비대 창설에 참여.경비대가 국군으로 개편된 뒤에는 군요직을 두루 역임했다.박정희대통령 시절 국무총리·국회의장으로 장기재직하면서 영향력을 발휘했으나 「얼굴마담」이라는 비난도 받았다. ▷김소희◁ 1917.12.1∼.본명 김순옥.전북고창출신.전남여고보 2년 수료.송만갑 정정렬 신호렬로부터 창악 가야금 서예 배움.한국국악협회 이사장 역임.중요무형문화재 판소리 예능보유자.감성에만 치우치지 않는 품위있는 소리로 판소리의 격을 끌어올렸다고 평가받는 살아있는 최고의 명창.전통 국악의 맥을 오늘에 잇고 많은 해외공연으로 전통예술이 국제적으로평가받는데도 기여했다. ▷김승호◁ 1918.7.13∼1968.12.1.서울출신.보성고등보통학교졸.39년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로 영화배우 생활 시작.59년 서울시 문화상 수상.63년 제10회 아시아영화제 남우주연상 수상.「시집가는 날」「박서방」「역마」「혈맥」등 2백50여편의 영화에 출연하며 중년의 서민적 아버지상을 탁월하게 연기,한국영화 붐을 조성하는데 공헌했다. ▷장준하◁ 1918.8.27∼1975.8.17.평북 의주출신.44년 학도병으로 끌려갔다가 중국에서 탈영한뒤 광복군에 가담.45년 김구 비서로 귀국.53년 「사상계」창간.67년 국가원수모독죄로 투옥.제7대 국회의원에 옥중당선.독재정권에 대한 비판적 논조의 「사상계」가 폐간된 뒤 75년 등산중 의문의 실족사.62년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막사이사이상(언론부문)을 받았다. ▷김수환◁ 1922.5.8∼.대구출신.일본 상지대 철학과·성신대학 신학부졸.51년 천주교 신부서품,69년 47세로 최연소 추기경에 서임.아시아주교회의 상임위원장·서강대 재단이사장 역임.천주교 서울대교구장·70년대 유신독재체제하에서는 민주화와 인권운동,80년대에는 인간성회복과 제도의 민주화를 외치면서 양심의 대변자 역할을 맡아 명동성당을 「한국민주화의 성지」로 만듦.천주교는 물론 한국사회의 정신적 지도자로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조남철◁ 1923.11.30∼.전북 부안출신.국수 9연패·패왕 4연패·최고위 7연패등 50∼60년대 각종 기전 석권.83년 9단·37년 도일,바둑수업을 받은 뒤 43년 귀국해 걸음마단계의 현대바둑 보급에 힘쓴 한국바둑의 선구자.84년 일본 대창상,89년 은관문화훈장수상.현재 한국기원 명예이사장으로 후진을 양성하고 있다. ▷남덕우◁ 1924.10.10∼.경기 광주출신.국민대 정치학과.미국 오클라호마 주립대(경제학박사)졸.서강대 교수·재무장관·부총리겸 경제기획원 장관·국무총리·무역협회 회장.69년부터 10년간 경제각료로 일하며 부가가치세를 신설하는 등 경제개발정책의 기틀을 다짐.71년의 외환위기와 74년의 오일쇼크를 극복,연10%의 고도성장을 이룬 주역이다. ▷김대중◁ 1925.12.3∼.전남 신안출신.목포상고졸업.6선 의원.신민당 대통령후보.80년 내란혐의로 사형선고.87·92년 야당 대통령후보.아시아 태평양평화재단 이사장.70년대와 80년대 20년동안 낙선과 투옥을 거듭한 강력한 반정부운동 지도자.강력한 카리스마를 지니고 있으며 92년 대통령선거에서 패한뒤 정계를 은퇴.아태재단을 통해 평화·통일을 연구하며 「야당의 후견인」역할을 하고 있다. ▷김종필◁ 1926.1·7∼.충남 부여출신.육사 졸.초대 중앙정보부장·6대 국회의원·공화당 의장·국무총리·공화당 총재·민자당 대표최고위원.「5·16」의 막후 실력자로 중앙정보부및 공화당의 산파역할과 한·일 회담의 주역을 맡았다.박정희의 장기집권을 위한 3선개헌에 반대해 공직을 사퇴하고 외유에 나서면서 「자의반·타의반」이란 말을 남겼으며 반대세력에 밀려 실각도 했지만 결국 박정희의 18년 장기집권을 도왔다. ▷김준◁ 1926.4.25∼.전남 영광출신.49년 서울대농대졸.전남대 농대교수를 역임,62년 재건국민운동 경북지부장,64년 농협대교수 등을 맡으며 새마을 운동의 선구자로 활약.입법회의의원·새마을운동중앙본부회장·명예회장 등을 역임.건국이래 최대의 국민운동을 이끌며 「잘살아 보자」는 기치아래 피폐된 농촌 부흥과 사회발전에 기여했다. ▷박경리◁ 1926.10.28∼.경남 충무출신.진주고등여학교 졸.56년 현대문학에 단편 「흑흑백백」이 추천완료돼 등단.작품집 「불신시대」「환상의 시기」,장편 「시장과 전장」「김약국의 딸들」등.69년 「현대문학」에 연재하기 시작한 5부16권의 대하소설 「토지」를 26년만인 지난해 완결.치열한 작가정신으로 격동기 우리민족의 삶을 다양한 인물묘사와 섬세한 필치로 표현한 이 작품으로 한국문학사에 한 획을 그었다. ▷박태준◁ 1927.9.29∼.경남 양산 출신.일본 와세다대.육사졸.최고회의 비서실장.대한중석 사장.포항제철 사장·회장·명예회장.민정당 대표위원.민자당 최고위원.황량한 모래벌판이었던 포항에 세계 2위의 조강능력을 지닌 포항제철을 건설한 「포철 신화」의 주인공으로 「철의 사나이」로 불린다.민자당의 민정계 관리자로 정계에 나섰다가 실패,포철에서도 손을 뗐다. ▷김영삼◁ 1927.12.20∼.경남 거제출신.서울대 철학과 졸.3대 국회의원에 당선된뒤 9선·신민당 원내총무·신민당 총재·제14대 대통령.최연소·최다선 의원이며 최연소 제1야당 총재.93년 31년만의 문민 출신 대통령으로 취임.한때 「40대 기수론」을 들고 나와 정계에 파문을 일으켰고 84년 전두환대통령시절 4주일동안 민주화를 요구하며 단식투쟁.대통령취임후 특유의 결단력과 정면돌파로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전두환◁ 1931.1.18∼.경남 합천출신.육사졸.예비역 육군대장.국보위상임위원장.제12대 대통령.79년 국군 보안사령관으로 「12·12 사태」를 주도.박정희대통령 서거이후 공백상태이던 권력의 중심부를 장악.80년 「5·18」로 권력의 정상으로 등장한 뒤 그해말 대통령에 취임.재임 7년동안 엄격한 물가관리로 경제안정성장 주도.1인당 국민소득 2배이상 상승.평화적 정권교체 실현. ▷김운용◁ 1931.3.19∼.서울출신.미국 텍사스웨스턴대·연세대 정치외교과 졸.미국 메리빌대 법학박사.주미대사관 참사관(63),IOC부위원장·대한올림픽위원회 위원장·세계태권도연맹 총재·국제경기연맹 총연합회 회장.국제 스포츠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세계 스포츠계의 제2인자.태권도를 2000년 시드니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되도록 막후 조정해 한국 스포츠의 이미지를 세계 정상으로 끌어올렸다.현 사마란치 IOC 위원장의 유력한 후임후보로 꼽히고 있다. ▷노태우◁ 1932.12.4∼.대구출신.육사졸.예비역육군대장.제13대 대통령.「12·12」를 주도.권력핵심부에 진입.제5공화국 때 체육·내무부장관 역임.87년 「6·29선언」으로 민주화의 물줄기를 텄고 그해말 제13대 대통령으로 당선.88년 서울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렀고 「북방외교」로 공산권국가들과 국교수립.지방자치제 일부 실현.90년 여소야대 국면에서 3당통합으로 안정기반 구축. ▷임권택◁ 1936.5.2∼.전남 장성출신.광주 숭일고 중퇴.61년 「두만강아 잘 있거라」로 영화감독 데뷔.「만다라」「씨받이」「길소뜸」등 90여편 연출.89년 대한민국 문화훈장 보관장.93년 「서편제」로 제1회 상해국제영화제 최우수감독상.94년 「태백산맥」을 베를린 영화제 본선에 진출시킴.우리영화의 세계화와 한국영화 중흥에 크게 공헌했다. ▷김우중◁ 1936.12.19∼.서울출신.연세대졸.축구협회 회장·한국기원총재·대우그룹 회장·전경련 부회장.샐러리맨(한성실업)에서 연간 매출 35조원의 재벌 총수로 성장.기업인의 노벨상인 국제 기업인상(84년)수상.발로 뛰는 비즈니스로 아프리카등 수출 사각지대를 개척.기업 인수와 부실기업 재건의 명수로 알려져 있다. ▷김지하◁ 1941.2.4∼.전남 목포출신.서울대졸.64년 「서울대한일굴욕회담반대투쟁위원회」일원으로 학생운동에 참여.6·3사태 관련 첫구속자가 됨.이후 80년대 초반까지 정치적 억압과 사회적 질곡에 맞서 「오적」「타는 목마름으로」등 문제 시를 잇따라 발표하며 투사 시인으로 활동.최근엔 생명의 본질에 대한 통찰과 함께 생명왜곡 현상을 염려하며 「생명사상」에 몰두하고 있다. ▷이미자◁ 1941.10.30∼.서울출신.문성여고졸.67년 무궁화훈장 받음.대중가수로는 최초로 세종문화회관 공연.59년 데뷔이래 1천6백여곡을 부르고 이 가운데 4백여곡을 히트시켜 「엘레지의 여왕」으로불림.왜색시비에도 불구하고 60년대부터 30년 가까이 대중의 정서를 트로트 노래로 대변하며 한국 가요계를 대표해 왔다. ▷김수현◁ 1943.3.10∼.본명 김순옥.충북 청주출신.고려대 국문과졸.한국방송작가협회 이사장(87년∼).67년 라디오 드라마 「저 눈밭에 사슴이」로 데뷔한 이후 「새엄마」「사랑과 야망」「배반의 장미」「사랑이 뭐길래」「작별」등 수많은 TV드라마 집필.솔직담백한 표현과 인간심리를 꿰뚫는 듯한 대사처리로 안방극장을 휘어잡은 「언어의 마술사」이자 대중문화시대의 선두주자였다. ▷황영조◁ 1970.3.22∼.강원도 삼척출신.삼척 근덕중·강릉 명륜고·고려대.91유니버시아드(쉐필드).92바르셀로나 올림픽대회.94히로시마 아시안게임 마라톤 1위.한국 마라톤을 세계 정상으로 끌어올린 주인공.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손기정씨의 우승 이후 56년만인 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우리 국민들에게 큰 자긍심을 심어주고 마라톤 재건의 계기를 만들었다.
  • 생명운동모임 출범/시인 등 1백명 참석

    「생명가치를 찾는 민초들의 모임」은 12일 하오 5시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시인 김지하씨와 최열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 등 1백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첫번째 모임을 갖고 본격활동에 들어갔다. 이들은 『생명운동의 다른 형태로 환경운동·여성운동·자치운동이 있다』면서 『생명운동은 자연과 인간,인간과 인간,여성과 남성간의 왜곡된 관계를 회복하는 운동』이라고 주장했다.
  • 「토지」 26년의 창작혼 기리다

    ◎원주시 단구동 박경리씨 자택서 완간 기념 잔치 한마당/칩거 14년만에 문인등 3백명 처음 초청/박씨 “과분한 축하… 묘한 슬픔마저 느껴져”/기념문집 봉정… 서울시립국악관현악단 공연도 박경리씨의 대하소설 「토지」완간 기념잔치가 8일 강원도 원주시 단구동 박씨 자택에서 열렸다.이날 잔치에는 문인들을 비롯한 사회각계 인사들과 독자들은 물론 「토지」의 무대가 된 경북 하동군 평사리 주민들까지 먼길을 달려와 참석했다. 잔치는 고사하고 문단의 사람 만나는 일조차 꺼려 원주에 칩거한지 14년째인 박씨의 집은 모처럼 사람사는 분위기에 휩싸였다. 이른 아침 서울을 떠나 속속 잔치에 합석한 문인과 애독자들은 뜰안에 마련된 잔칫상에 둘러앉아 26년간이란 오랜시간을 한 작품에 매달려 살아온 노작가의 치열한 창작혼을 화제 삼아 아낌없는 축하의 이야기꽃을 피웠다. 참석자는 사위인 시인 김지하씨 부부와 소설가 박완서 정한숙 최일남 이문구 조정래 윤흥길 박범신 김성동 김민숙 김향숙 신경숙씨,시인 정현종 이근배씨,문학평론가 김병익 김치수씨등 문인들과 김형국 서울대 환경대학원장,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정몽준 국회의원,김대종 원주시장,김찬국 상지대 총장,김수학 전 토지개발공사 사장,김성우 한국일보 주필,최상룡(고대) 민희식(한양대)교수등 3백여명. 『오늘 우리가 여기서 벌이는 한마당은 문학적 성취를 기념하는 준공식입니다.작품의 무게도 무게지만 작가의 인간적 치열성이 이처럼 유례없는 잔치를 마련할 수 있게 한 것입니다.그리고 오늘 이자리는 70평생 생일이나 회갑같은,여느 사람들이 치르는 잔치를 한번도 제대로 치른 적이 없는 선생님께 바치는 일대 축연입니다』. 김형국 서울대 환경대학원장(행사준비위원장)이 간단한 개회사겸 축사를 통해 박씨의 치열한 창작혼과 외롭고 험난했던 문학인생을 기리자 하객들은 일제히 박수로 응답했다. 이어서 소설가 박완서 최일남씨와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박희천 문예진흥원 부원장,김대종 원주시장의 축사가 이어졌다.박완서씨는 『여태까지 거품같은 축제를 많이 보아 왔으나 이렇게 모든사람이 마음으로부터 축하를 드리는 잔치는 처음 보았다』고 말했고 최일남씨는 『문학의 이름으로 박선생님을 한번 업어드리고 싶은 심정이다.오래 오래 건강히 사시면서 나이가 주는 글의 뜻이 무엇인가를 새겨줄 글을 써주시기 바란다』고 말했다. 또 문학평론가 김병익씨는 기념사를 통해 『「토지」는 우리민족의 총체적 역사가 반영된 삶의 파노라마를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우리 문학작품 가운데 「가장 뛰어난 작품」이자 세계문학속에서도 탁월한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기념사에 이어 김형국 서울대 환경대학원장이 「토지」16권의 양장본을,박완서씨가 기념문집 「수정의 메아리」,비평집 「한과 삶」,박경리시집 「자유」,사진작가 강운구씨의 사진집 「박경리」를 봉정했고 평사리 주민 10명과 함께온 하동군 조선호면장이 꽃다발을 증정했다. 박씨는 답사에서 『그냥 살아 가듯 글을 썼을 뿐인데 이렇게 큰 축하를 받아도 될지 모르겠다』면서 「이름도 없이 격려편지를 보내준」 많은 독자들에게 감사를 표하고 『지금은 기쁨보다 묘한 슬픔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잔치의 말미는김영동 서울시립국악관현악단 상임지휘자가 연출한 단촐한 공연으로 장식됐다.사물놀이와 가야금산조에 이어 창무회무용단 김선미회장의 살풀이춤 한 판이 폐막행사격으로 마련됐고 참석자들은 아쉬운듯 밤늦게까지 남아 못다한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잔치가 끝난 시간은 하오 10시쯤.『주업이 농사고 부업이 글쓰기』라고 말할 정도로 박씨가 토지를 쓰는 틈틈이 애착을 갖고 간수해왔던 뜰안의 텃밭이 이날 잔치를 위해 갈아엎어졌지만 아직 수확이 덜된채 남아있는 콩밭과 배추밭의 모습이 『아직도 쓸게 많아 남아있다』는 박씨의 말과 어울려 긴 여운을 남겼다.
  • 대하소설 「토지」 26년만에 탈고,박경리씨의 요즈음(인터뷰)

    ◎“인류차원서 「일본론」 꼭 써 볼래요”/“뜰안의 채소 돌보다가도 문득 글 쓸 생각”/사위 김지하 등 후배문인들 새달 기념잔치 마련 지난 69년 현대문학에 연재하기 시작,26년간에 걸친 대장정끝에 지난달 중순 대하소설 「토지」를 탈고한 박경리씨(68).탈고후 찾아오는 사람도 많고 문단에서는 갖가지 기념행사를 준비하는등 분주한 모습을 보이지만 정작 박씨 자신은 덤덤한 표정이다. 탈고는 했지만 뜰 안에 심어놓은 배추며 나물등을 손 보다가도 문득 문득 「원고」를 써야한다는 생각을 갖게 되곤 한다며 웃는다.집안에 심어놓은 농작물이며 채소등을 챙기다보면 주업이 농사이고 글쓰기는 부업이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고도 한다. 지난 80년이후 줄곧 「토지」를 써온 은둔의 땅 원주시 단구동 자택에서 기자를 맞은 박씨는 다소 지친듯한 얼굴이지만 그러나 아직도 무언가를 해야한다는 강한 작가 의지를 내비쳤다. 『어떤 이는 절보고 은둔작가라고 하지만 작가에게 은둔이란 말이 어울리나요.창작에 관한한 작가는 철저하게 혼자일 수 밖에 없지 않습니까.이 집에 오게 된 것도 글을 쓰기 위해서가 아니라 가정형편상 와야만 했기 때문에 온 것이고요』 14년전 원주 집에 처음 올때만 하더라도 주변에 집도 별로 들어서지 않아 외졌는데 이젠 아파트도 들어섰고 제법 도시 냄새가 나 세월이 제법 흘러갔다고 잠시 회상에 젖어들기도 한다. 원고지 4만장에 등장인물만도 4백여명.웬만한 작가라면 감히 엄두도 못낼 역작임에도 박씨는 「토지」에 대해 결코 구태의연한 토를 달지 않는다. 『단편소설 한 편을 쓰는데도 숱한 고비가 있게 마련인데 어찌 어려움이 없었겠어요.사위(김지하시인)투옥무렵 가장 인간적인 갈등을 느꼈다고 할 수 있는데 작품속에 그런 고민들이 녹아들었다고도 할 수 있지요』 작품을 쓰는 동안 고비와 갈등의 연속이었던만큼 지난 26년간의 질곡이 새삼스럽지도 않을 뿐더러 따라서 허탈감같은 것은 전혀 느끼지도 못한다고 했다. 며칠전 이화여대에서 명예문학박사학위를 받은 직후 한 대학원 졸업생이 『성경보다도 선생님의 토지에 더 의존해 살아간다』는 말을 듣고 왈칵 눈물을쏟았다는 박씨.그는 지난 세월을 그렇게 자신에 충실하며 작품에 몰두해왔다. 56년 현대문학에 단편 「흑흑백백」이 추천 완료돼 문단에 등단한후 「불신시대」「환상의 시기」「시장과 전장」「김약국의 딸들」등 굵직굵직한 작품을 쓰기도 했지만 현대문학에 「토지」를 연재하면서부터는 이 작품에만 몰두해왔다. 『이정도면 됐지,무얼 또 씁니까.이젠 좀 쉬고 싶어요』 「토지」를 끝내놓고 여행도 좀 하고 싶었지만 엄두가 나지 않아 선뜻 나설 수가 없단다.그럼에도 평소 생각해온 「일본론」만은 꼭 써내야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일제 36년간은 우리민족이 일본의 절대적인 영향권아래 갇혀있었던 암흑의 시기지요.20세에 해방을 맞았어요.감수성 예민한 나이에 겪었던 그 답답한 시절은 저로서는 도저히 그냥 넘길 수 없는 체험으로 남아있지요』 『일본의 정치 문화 분석없이 「토지」는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박씨는 그러나 「토지」가 일제의 실상을 드러내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허구이기에 일본이 저지른 역사적 행위를 정면적으로 들춰낸 「일본론」으로 볼 수는 없다고 말한다. 『민족주의자 입장에서 일본을 매도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새삼스럽게 일본을 고발하자는 것도 아니고 단지 「인류」라는 차원에서 일본의 존재를 짚어보고 싶을 따름입니다.언제가 될진 모르지만…』 「토지」가 구한말부터 해방까지 험한 역사를 살아낸 민중들의 이야기라고 할때 그것은 틀림없이 「한」을 다룬 「한」의 역사다. 『우리민족의 한은 미래에의 의지와 희망의 역동성을 담고있다』는 말 그대로 박씨는 「토지」에서 어둠과 퇴락에서 건져낸 민중의 한을 희망과 의지로 승화시키는 미학을 보여주고 있다. 이루 다 헤아리기도 힘들 정도로 숱하게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가 다 주인공이고 삶의 철학을 확고하게 갖춘 역사의 증인들인 셈이다. 수많은 등장 인물들의 개성을 일관성있게 묘사할 수 있었던 비결을 묻는 질문에 그는 거리낌없이 말한다. 『작품을 쓸때 구성을 미리 해놓고 시작해본 적이 없어요.구성을 전제로 써나갈때 박제화된 인간밖에 그릴 수 없고 살아있는 인물을 기대할 수 없게 되지요.토지의 인물들은 물론 체험을 통해 만들어낸 가상인물이지만 제가 겪었던 생생한 기억속의 역사 인물들이라서 굳이 메모나 구상이 없어도 자연스럽게 그려나갈 수 있었지요』 흔히 「토지」가 한이 주조를 이루는 작품이라는 평을 듣는데 대해서는 『반드시 한의 소설만은 아닙니다.처음 작품을 시작했을때와 지금의 시점에서 토지라는 개념을 비교해보면 놀랄 정도로 엄청난 변화를 느끼게 돼요』 자연이 인간을 다스리던 시기엔 인간도 토지에 수동적으로 의지해 살 수밖에 없었던 반면 차츰 사유재산 개념이 생겨나면서부터 인간이 토지를 다스리고 물욕이 성하게 됐다는 설명이다. 박씨는 따라서 토지속에 등장하는 동학과 코뮤니즘의 논쟁을 이렇게 마무리짓는다. 『코뮤니즘이란 통계로 설명하는 사상으로 정신이 빠져있지요.반면 동학은 물질적인 계산에 치우치지 않는 인간의 정신을 중시한 훌륭한 사상입니다.』 요즘 우리 사회에 다발하는 각종 문제가 물질에 편중돼있어 마치 마차가 내리막길을 달리는 위기감으로 비쳐지며 이는 곧 생명의 위기로 받아들여야한다는 박씨.모든 현상이 양면성을 갖고있는만큼 보이는 부분보다는 보이지않는 부분을 보려고 노력해야하며 인류를 위기에서 건져내기 위해서는 모든 생명의 삶을 절실히 생각해야 한다고 말한다. 오는 10월 9일 박씨 집에선 「토지」완간을 기념하는 잔치가 사위 김지하시인등 문인들의 주최로 마련될 예정이다.평소 성격상 잔치를 바라지도 않을 터이지만 『후배 문인들의 성화에 못이겨 침묵을 지키기로 했다』는 박씨도 그날의 잔치가 싫지만은 않은 표정이다.
  • 김 대통령,작가 박경리씨 초청 조찬

    ◎“「토지」 인간상 신한국인과 닮은점 많아요”/“희망 잃지않는 꿋꿋한 삶 인상적”/20년전 사위 김지하씨 구속때 박씨집 방문 인연/손 여사는 여고2년 후배… 함께 기숙사생활도 소설가 박경리씨가 27일 청와대를 다녀갔다.25년동안 원고지 4만장에 이르는 대하소설 「토지」의 집필을 끝낸 것을 축하하려고 김영삼대통령과 부인 손명순여사가 아침식사에 초대해서다. 김대통령이 소설가를 단독으로 초청해 식사를 함께 나눈 것은 이례적이다.김대통령부부가 박씨와 맺고 있는 인연과 「토지」의 집필완료가 한국문단사에 갖는 의미등을 고려한 초청일 것이다.더 나아간다면 「토지」가 만들어낸 인간상과 김대통령이 추구하는 신한국인상의 맥락이 이어져 있다는 점도 일조했다.그런 흔적이 이날의 대화록에서 많이 눈에 띈다. 김대통령은 『온갖 풍상을 겪으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끈기 있게 살아가는 주인공의 모습이야말로 바로 우리한국인의 참모습』이라면서 『이 소설을 통해 재확인 한 것이지만 나는 항상 우리 한국인들에게는 미래에 대한 꿈이 있고희망이 있다는 생각을 해왔고 지금도 그런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김대통령은 특히 『나도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많은 질곡을 거쳤지만 그때마다 우리민족에 대한 희망과 저력을 믿어왔고 그런 믿음이 있었기에 좌절하지 않고 오늘까지 견뎌왔다』고 말해 「토지」의 인간상과 스스로의 정치역정을 대비시켜 음미했다. 김대통령은 20년전 박씨의 사위인 김지하씨가 「오적」시 사건으로 구속됐을 때 박씨집을 방문한 적이 있다.김대통령의 핵심참모들인 김덕용의원이나 김정남교문사회수석은 김씨의 절친한 친구들이다.또 박씨는 손여사의 진주여고 2년 선배이고 함께 기숙사 생활을 해 대통령내외는 박씨와 남달리 인연이 깊다. 이 때문인듯 이날 조찬회동은 20년전 김대통령이 박씨 집을 방문했던 때와 손여사와 박씨의 기숙사 생활을 회고하며 시종 가족 같은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고 주돈식청와대 대변인은 전했다. 김대통령은 먼저 박씨가 25년동안에 걸쳐 등장인물만도 4백명이나 되는 방대한 작품을 쓴데 대해 축하인사를 했다.김대통령은 『암과 투병하면서 25년동안 4만장 전 16권의 원고를 썼다는 것은 우리문단에 기념비적인 업적을 남긴 것으로 한국 문단 전체의 경사이며 큰 성취』라고 치하했다. 이에 박씨는 『「토지」를 쓰는 것이 생활화 되어 있었기 때문에 25년동안 아무 생각 없이 무념으로 써내려 갔다』면서 『특히 민족의 생활사를 그린다는 집념으로 썼다』고 소개했다. 박씨는 또 『집근처에서 밭농사를 지으면서 자연과 접하고 흙을 만지면서 많은 영감과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을 갖게 됐다』고 설명 했다.박씨는 『항상 글쓰는 소재의 종착역은 한국 국민은 희망이 있고 저력이 있으며 끈기가 있다는 점을 소설 바탕에 깔았다』면서 문학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높아졌으면 좋겠다는 뜻도 밝혔다. 김대통령은 문화를 통해 선진국이 돼야 한다고 화답했다.
  • 박경리의 「토지」(외언내언)

    『한국 대하소설의 뿌리이자 봉우리』 『한국문학의 지평을 넓힌 작품』 『거대한 모성의 발현』…. 박경리의 소설 「토지」에 대한 헌사는 이루 다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작품이 완성되기도 전에 20명에 가까운 평론가가 본격적인 작품론을 썼고 지금도 여러 평론가가 「토지」의 작품론을 집필중이다. 이 소설이 광복절인 지난 8월15일 드디어 완성됐다.지난 69년 「현대문학」에 작품이 연재되기 시작하여 여러매체를 통해 발표돼 온지 26년만의 일이다. 책으로는 전5부 16권으로 8월말 완간될 「토지」의 시간적 배경은 1897년 동학혁명의 실패와 좌절에서 부터 1945년 8·15 민족해방에 이르기까지.기울어 가는 가문을 당차게 지켜내는 서희를 비롯하여 눈물겹도록 지순한 사랑을 보여주는 월선과 용이 길상등 수백명의 인물과 수많은 사건들이 그물망처럼 얽히고 설키는 이 작품을 작가는 작가노트도 없이 「살아있는 생명체」로서 창조해냈다.『구한말과 일제강점기를 핍박속에서 견뎌낸 우리민족의 딱한 사정과 생명력을 담았다』고 작가는 말한다.한 작가가 한 민족의 역사와 문화의 총체를 이처럼 방대한 부피로 탐사해낸 유례는 세계문학사에서도 찾기 힘든일.1·2부의 시대적 배경과 맞물리는 운명론적 갈등구조 때문에 『역사의 병풍을 두른 연애소설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초기에 나오기도 했지만 서구적 서사개념을 뛰어 넘는 독특한 구조와 특유의 생명사상이 긴밀하게 연결돼 있는 것으로 평가(문학평론가 임우기)받는 이 작품이 한국문학의 커다란 결실이라는 것은 의심할수 없을 듯싶다. 중년에서 고희를 바라보는 나이에 이르도록 작품을 집필하면서 암과의 투병,6·25때 남편을 형무소에서 잃은데 이어 외동딸의 지아비인 사위(시인 김지하)마저 형무소에 보내야 했던 시대와의 맞섬을 이겨내고 책읽기의 즐거움을 안겨준 작가의 위대한 정신의 승리에 경의를 표한다.
  • 「6·3사태」 주역들 어디서 무얼하나

    ◎정치권서 가장 두각… 현역의원 11명/「민비연 3총사」 국회진출 실패 기록/문민정부 요직 포진… 개혁 견인차로 오는 3일은 제3공화국 초기 한일국교정상화 반대시위로 계엄령이 선포되고 대규모 구속사태가 빚어졌던 이른바 「6·3사태」가 30주년이 되는 날이다. ○한·일수교 반대 시위 지난 65년 6월의 한일국교 정상화를 앞두고 2년남짓 「반외세·반봉건·반독재」를 외치며 박정희정권의 「굴욕외교」에 끈질기게 저항한 이 「6·3사태」의 주인공들은 「6·3세대」로 불리면서 30년이 지난 지금 우리사회의 단단한 중추세력으로 자리잡고 있다. 이들은 이번에 「6·3사태」 30주년을 맞아 당시를 조망하는 「6·3학생운동사」를 발간하고 강연회와 리셉션도 갖는등 지난 4월의 「4·19」에 대한 새로운 자리매김 움직임에 이어 「6·3사태」의 역사적 재평가를 위해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강연회에서는 이홍구통일부총리와 일본 시즈오카(정강)대학의 이즈미 하지메(이두견원)교수가 주제발표를 할 예정이며 강연 뒤에는 김덕수사물놀이패의 축하공연도 갖는다. ○강연회·축하 공연도 당시 20대 전후의 혈기왕성한 대학생들이었던 「6·3세대」는 이제 50대 초반이 되어 정치권을 비롯한 각계의 중추세력으로 성장했을 뿐 아니라 문민정부 출범과 함께 정부의 요직에도 포진,개혁시대의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다. ○「6·3이념」 토대 제공 이들 「6·3세대」가 가장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분야는 역시 운동권출신들답게 정치무대로서 현역의원만 11명에 이른다.민자당의 김덕용의원(서울대)과 서청원정무1장관(중앙대),이명박·김호일(고려대),박희부의원(동국대),민주당의 이부영최고위원과 이협의원(이상 서울대),김덕규사무총장·조홍규·박정훈의원(고려대),박석무의원(전남대)이 그들이다.원외인사로는 민자당의 정성철·김문원위원장(이상 서울대)과 민주당의 김선흥위원장(동국대)등이 꼽힌다. 민자당의 김영진·이긍긍·김영일·박주천(이상 서울대),박재홍(고려대),김길홍(외국어대),김진재의원(건국대),민주당의 유준상·김충조·남궁진의원(이상 고려대)등은 「6·3사태」의 핵심멤버는 아니지만넓은 범주에서 같은 세대로 분류된다. 한편 「6·3사태」에 이념적 토대를 제공한 서울대 「민족주의비교연구회」(민비연)의 3총사였던 현승일국민대총장과 김도현문화체육부차관,김중태씨 등은 모두 정계진출을 시도했으나 똑같이 실패한 기이한 인연을 갖고있다. ○시인 김지하도 포함 관계에는 김정남청와대교문사회수석,최기선인천시장(이상 서울대)등이 있다. 학계에서는 현승일총장 말고도 이경숙숙명여대총장(숙대),김학준단국대교수(서울대·전청와대공보수석),최장집고려대교수(고려대),이영희인하대교수(서울대),윤영오국민대교수(연세대)등이 활동하고 있다. 이밖에 송철원신문로포럼대표(서울대)와 이재오전민중당사무처장(중앙대),안성혁한국장애인공단이사장(연세대),6·3동지회 간사를 맡고있는 홍사임의료보험관리공단상무(여·성균관대),시인 김지하씨(서울대)도 「6·3사태」의 주역들이다. 60년대를 상징하는 학생운동권그룹인 이들은 사태후 「6·3동지회」(회장 이명박의원)를 만들어 연대감을 키워왔으며 이제는 각계에서 「6·3세대」라는대명사로 바로 전의 「4·19세대」및 70년대 「민청학련세대」와 함께 3대 운동권출신 세력군을 이루고 있다.
  • 예술원이 낸 한국예술총집/「문학편Ⅲ」 나와

    ◎시인·소설가 40명에 대한 비평가들의 평론을 담아 대한민국예술원이 「한국예술총집」시리즈의 하나로 최근 「문학편 Ⅲ」을 펴냈다. 이 책은 지난 60년대에 등단한 시인 20명과 70년대 선보인 소설가 20명에 대한 비평가들의 평론을 담고 있다. 문학평론가 최동호씨는 이 책에 실린 「한국 현대시의 전개­60년대 시인들의 세계」에서 그 시인들을 『해방전 세대와 해방후 세대를 잇는 교량』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이들이 비록 『지난 30여년동안 순수 서정세계를 지켜왔거나,초기의 현실비판시를 더욱 확대·심화시켰으며,또는 불교적·유교적 교양을 시에 용해했다』는 방향성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언어에 대한 탐구,존재에의 천착,시적 사상에 대한 모색등에서 같은 경향을 보였다』고 분석했다. 또 고형진씨는 「1970년대의 소설」이란 해제에서 그 특징을 『치열한 현실인식의 토대위에 이뤄졌으며 계층간의 갈등과 이념의 문제를 정면으로 다뤄 전시대의 소설과 구별되는 점』이라고 풀이했다. 이 책에 언급된 시인은 마종기 박이도 허영자 이승훈김종해 최하림 박의상 홍신선 박제천 강우식 이가림 김여정 오세영 마종하 강은교 박정만 김지하 이성선 이건청 조정권이다. 70년대 작가로는 박태순 김원일 이문구 한승원 이동하 윤흥길 오탁번 조정래 조해일 김주영 송영 조세희 송하춘 한수산 박범신 문순태 유홍종 김원우 이문열 윤후명이 비평대상에 올랐다.
  • 시선집 「황토현… 노래」,「전봉준을 위하여」 출간

    ◎시·판소리에 나타난 동학정신 조명/89편수록… 농민항쟁의 좌절·비애 절절이 갑오농민전쟁 발발 1백주년(19 94년)을 앞두고 시와 판소리에 나타난 동학정신을 조명한 2권의 책이 나왔다. 동학농민혁명백주년기념사업회가 엮은 시선집 「황토현에 부치는 노래」(창작과 비평사간)와 시인 장효문의 「전봉준을 위하여」(자유세계간)는 동학을 문학적으로 조명한 첫 작업이란 점에서 관심을 끈다. 그러나 갑오농민전쟁에 대한 한국문학의 시적 형상화작업은 때늦은 감이 있다.근대문학의 경우 소설가 채만식,극작가 김우진을 제외하고 시로 형상화된 작품은 거의 없었다.또 지난 68년 신동엽이 「금강」을 발표하기 이전에는 19 47년에 발표된 조운의 시조「고부 두성산」1편이 겨우 명맥을 이었을 뿐이다. 우리 근대사에 큰 획을 그은 갑오농민전쟁에 대한 시적 대응이 문학사에서 어떻게 진행돼 왔는지를 한눈에 가늠할 수 있는 「황토현에…」는 74명에 달하는 시인들의 시 89편이 실려 있다.지금까지 발표된 2백50여편중에서 가려 뽑은 것이다.조운,신동엽,고은,황동규,김지하,김남주,고재종,안도현등 원로에서부터 젊은 시인의 작품까지 잘 모아져 있다. 특히 일명「파랑새요」로 불리는 「새야 새야 파랑새야」를 비롯,「가보세 가보세」「개남아 개남아」「칼노래」「유시」등 5수의 민요가 수록돼 민초들의 마음속에 그려진 동학의 모습을 짐작케 한다.민요편에 수록된 「유시」는 18 95년 3월29일 녹두장군 전봉준이 처형되기 전에 남긴 작품.「때 만나서는 천지도 내편이더니/운 다하자 영웅도 할 수 없구나/백성사랑 올바른길 무슨 허물이더냐/나라위한 붉은 마음 그 누가 알리」라고 읊은 전봉준의 비통한 심사가 절절하다. 이밖에 신동엽의 「금강」,황동규의 「전봉준」,양성우의 「만석보」,김남주의 「황토현에 부치는 노래」,문병란의 「전라도 뻐꾸기」등 대표적인 동학관련 시들이 빠짐없이 수록됐다. 20여년을 동학문학연구를 위해 매달려온 시인 장효문씨(53)의 「전봉준을 위하여」에는 동학농민혁명현장기행과 함께 「창작판소리 전봉준」이 실려있다.자신이 이미 발표한 「서사시 전봉준」을 개작해판소리한마당의 창본을 마련한 것이다.「고부성의 함성」「일어나면 백산,앉으면 죽산」「전주성의 무혈입성」「우금치여 말하라」「새야 새야 파랑새야」등 다섯 대목으로 동학을 판소리로 형상화했다. 문학평론가 최원식교수(인하대·국문과)는 『농민군의 일어섬을 기리고 그 좌절을 애도하는 80년대 시 일각의 단순한 봉기주의 모델로는 갑오농민전쟁에 대한 장려한 서사시적 화폭은 결코 이루어 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면서 동학전쟁을 문학화하려는 시인들의 좀더 창조적인 대응을 주문했다.
  • “신명창” 임진택·김명곤 복더위속 소리판 달군다

    ◎임/31일 서울 학전소극장서 「오적」 「소리…」/김/28일 부산 경성대서 「금수궁가」 공연예정 「신명창」으로 떠오른 두 소리꾼이 창작판소리로 복더위 속 서울과 부산의 소리판을 달군다.임진택이 「오적」과 「소리내력」을 오는31일과 8월1일(하오 3시·6시) 서울 학전소극장에서 공연하는가 하면 김명곤은 이에 앞서 「금수궁가」공연을 28일(하오 5시·7시30분) 부산 경성대 콘서트홀에서 갖는것. 두 사람은 소리라는 「기능」에 초점이 맞추어진 일반적인 의미의 소리꾼과는 다른 이른바 「먹물」소리꾼.임씨(44)는 서울대외교학과 출신으로 명창 정권진선생으로부터 「심청가」를 배웠다.70년대부터 창작판소리공연과 마당극연출에 몰두해오다 현재는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민예총)의 사무총장을 맡고 있다. 극단 아리랑 대표로 영화배우이기도 한 김씨(42)는 영화「서편제」의 대성공으로 또 다른 의미의 스타로 떠오른 소리꾼.서울대독문과 출신인 그도 명창 박초월선생으로부터 「수궁가」와 「춘향가」,「흥보가」를 배웠다. 두 사람이 소리꾼이 된것은 이같은 경력이 말해주듯 판소리자체의 매력도 매력이지만 판소리가 자신의 의사전달 수단으로 유용하게 쓰여질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이들은 현재 나이도 적거니와 소리공력도 한다하는 명창들에 비해서는 깊다고는 할수 없는 것이 사실.그러나 암울했던 70년대와 80년대 이들이 판소리라는 그릇을 통해 낸 목소리는 그 사회적 의미를 제쳐놓더라도 판소리 자체의 생명력을 높여 오늘의 판소리 붐을 가져오는데 한몫을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신명창」으로 불릴 자격이 충분하다는 것이다. 이번 공연도 물론 이같은 작업의 연장선상에 있다.「오적」은 잘 알려진대로 권력층의 부패를 통렬하게 비판해 19 70년 발표된 이후 국내외적으로 커다란 반향을 일으킨 김지하의 담시.임씨는 이를 판소리화해 그동안 국내외에서 모두 160여차례 공연했다.이번 공연은 그동안 권위주의 정권 아래에서 공식적인 발표가 금지되어 왔다가 책과 음반으로 나온 출판·출간기념회를 겸한다.이규호가 장단을 칠 이번 공연에서는 김지하의 또다른 담시 「비어」의 첫째대목 「소리내력」도 함께 불려질 예정이다. 「금수궁가」는 「오늘의(금)수궁가」혹은 「금지된(금)수궁가」라는 뜻이라고 한다.부패한 용왕과 독재자 호랑이를 물리치는 토끼의 기지와 활약을 그린 이 작품은 「수궁가」를 시대상황에 맞게 각색한 것이다.
  • 초여름문단 개인전집발간 붐/생존작가작품 중간결산/작고작가들 재조명

    ◎평론가 김현,시인 김지하·고은,소설가 박완서 등 상재/생존작가 대상·상업주의엔 비난의 소리 개인전집발간이 붐을 이루고 있다.최근 발간된 것만 해도 평론가의 경우 김현,김우창전집이 나왔으며 시인으로는 김지하,고은전집이 상재됐다.소설가는 이문열,박완서등의 전집류가 선보였다.이들은 각기 해당분야를 대표하는 인물이란 점에서 개인전집발간의 의의를 찾을 수 있다. 개인전집은 작가 또는 평론가의 흩어져 있는 작품을 한데 모으고 그 작품세계에 대한 중간결산을 겸한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이다.그러나 외국의 경우 전집발간이 대개 작가사후에 이뤄지고 있는점에 비춰볼때 한창 창작활동중인 생존작가의 전집발간은 다소 무리라는 지적도 따르고 있다. 또 이같은 전집발간현상에 대해 문단일각에서는 온갖류의 전집을 내고 있는 일본의 풍토를 그대로 베껴 먹고 있다는 비난의 목소리도 있다.사실 작가들은 전집발간을 꺼리지만 상업성을 앞세운 출판사들이 경쟁적으로 이들 인기작가들의 전집 묶음을 유혹하고 있다는 것이다.그러나 이번에 나온 전집중 「김현문학전집」「김우창전집」「김지하시전집」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평가가 내려지고 있다. 사거 3주기인 지난 27일에 맞춰 완간된 「김현문학전집」의 경우 고인이 몸담았던 문학과 지성사에서 그를 추모하기 위해 펴냈다는 점에서 다른 전집류와는 차이를 보이고 있다.지난 27일 경기도 양평군 양평읍 도곡리묘소에서 거행된 추도식에는 문학평론가 김병익,김치수씨등 동인들과 정과리,이인성,황동규,황지우씨등 선후배문인 70여명이 참석해 추모행사와 함께 전집 봉정식을 가졌다. 「김현문학전집」은 우리 문학비평의 교과서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왕성한 책읽기와 글쓰기 그리고 사유에 몰두했던 김현의 정치한 문학세계를 아우르고 있다.91년 6월 1차분 3권이 나온이래 3년만에 16권으로 완간된 큰 작업이었다.이번에 나온 마지막 간행분은 그의 예술기행과 에세이를 모은 「김현예술기행/반고비 나그네길」(13권),짧은 평론및 산문들을 모은 「우리 시대의 문학/두꺼운 삶과 얇은 삶」(14권),유고일기집「행복한 책읽기」(15권),화보와 연보,추모글등이 실린 「자료집」(16권)등 4권이다. 최근 3권짜리로 완간된 김지하시인의 「김지하시전집」(솔출판사)도 김지하시인의 이본시집들이 공통적으로 드러내는 많은 오자와 원문과의 불일치,초기시들을 둘러싼 오해,편집상의 잘못등을 바로 잡은 결정본 내지 정본이라고 부를만 하다.지난63년에 발표된 최초의 시「저녁이야기」이후 첫시집 「황토」와 70년대의 서정시편,80년대초·중반에 걸쳐 쓴 연작시 「애린」의 초기 시편을 모두 묶었다.출판사측은 『정밀하고 체계적이며 믿을 만한 결정본시전집이 없었기 때문에 김지하 시의 문학적 성취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제대로 조명받지 못했었다』고 전집발간이유를 밝혔다. 이밖에 이문열의 2권짜리 「중·단편집」(열린책들),박완서의 3권짜리 「박완서소설전집」(세계사),「고은 시전집」1·2(민음사)이 선보였다.이가운데 이문열의 중·단편집은 79년이후 발표된 작품을 발표순으로 묶었을 뿐이며 「박완서전집」의 경우도 「휘청거리는 오후」와 「도시의 흉년」등 2편을 수록하는데 그쳤다. 올해로 시력35주년에 환갑을 맞은 고은시인의 「고은시전집」1·2는 지난 83년도에 나온 「고은 시전집」의 증보판.83년판과 다른 점은 새로쓴 증보판서문과 책뒤에 붙은 작가연표에 83년이후부터 현재까지의 행적을 추가한 정도에 불과하다. 이영준민음사주간은 『전집발간이 눈에 띄게 많아진 것은 우리의 문학적 역량이 축적되고 있다는 점에서 일단 환영할만한 일』이라고 말하면서 그러나 상업적 인기에 편승한 생존작가의 전집묶음은 재고해 봐야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 「평론가협」,26·27일 원광대서 관련 세미나

    ◎권력과 문학의 갈등 분석 문학평론가들이 보는 정치권력과 문학의 함수관계는 어떤 것일까. 60·70년대와 광주민주화운동으로 대표되는 80년대등 시대별 문학현실을 정치권력과의 관계에 빗대 살펴보는 「정치권력과 문학」세미나가 오는 26·27일 이틀간 한국문학평론가협회(회장 김우종)주최로 전북 이리시 원광대 숭산기념관에서 열린다. 1960년대의 문단현상을 「문학은 현실의 감시자인가,정치권력의 시녀인가」라는 주제로 발표하는 이명재교수(중앙대 국문과)는 60년대는 4·19학생의거와 5·16군부집권으로 이어진 특수한 여건속에서의 그 역학관계를 살펴봐야 한다는 문제제기와 함께 군부통치하의 검열등에 의한 탄압현상을 꼽았다.우선 65년 김정욱의 「송아지」,솔로호프의 「고요한 돈강」,구상의 「수치」등이 방송·출판·공연금지됐고 남정현의 「분지」는 작가구속에까지 이르렀음을 사례로 들었다. 이교수는 이같은 문단탄압에 대한 대응으로 평단의 경우 문학가들도 사회의 한 구성원된 도리로 사회를 감시하고 현실에 참여해야한다는 앙가주망이론이 정립됐다고 주장했다.시단의 경우 김수영,신동엽등이 등장해 정치권력에 항거하는등 민중의식이 표출됐으며 작단에서도 최인훈의 「광장」,하근찬의 「왕릉과 주둔군」,정을병의 「개새끼들」등이 우리 사회의 병폐를 고발했다는 것이다. 삼국유사의 우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이야기를 정치권력과 문학과의 갈등을 나타내는 문학적 원형으로 삼아 70년대 상황을 비유한 최정숙씨(덕성여대 강사)는 김지하의 「오적」과 이른바 「문인간첩단사건」을 대표적 예로 들었다.즉 김지하가 「오적」을 통해 「당나귀 귀」를 발설한 도전자였다면 이호철,임헌영,김우종,정을병등 5명이 관련된 문인간첩단사건은 「당나귀 귀」발설자들의 출현을 사전에 봉쇄하기 위한 사전예방용 조치였다고 주장했다. 「정치적 주제와 그 표현의 문제」를 발표하는 이보영교수(전북대 영문과)는 광주민주화 운동과 관련된 80년대의 대표적 소설로 임철우의 「봄날」과 이순원의 「얼굴」을 꼽았다.「봄날」의 경우 광주사건의 피해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움으로써 정치적 문제의 비정치적 접근법을 사용한데 반해 「얼굴」은 가해자인 공수부대원을 내세워 정치적 주제에 대한 표현방법을 달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 서울시립 국악관현악단 「소리여행」 연주회

    ◎전통 선율과 영상 “파격의 새 실험” 관객들이 여행을 떠나듯 가벼운 마음으로 즐길 수 있는 국악무대가 펼쳐진다. 오는 25일과 26일 하오7시30분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에서 「소리여행」이라는 제목으로 개최되는 이 공연은 국악에대한 고정관념을 깨뜨리고 관객들이 보다 친밀함을 느낄 수 있도록 새로운 감각으로 연출된다.지휘자인 서울시립국악관현악단 김영동씨의 이름을 본떠 「김영동의 우리음악 찾기」라는 부제를 붙였다. 일반인들과의 간격을 좁히기 위한 시험적 성격의 이번 공연은 자연의 풍경과 인간의 삶의 모습들이 뒤편 대형화면에 영상으로 처리되는 가운데 아름다운 국악선율이 흘러 빛과 소리가 함께 어우러지는가 하면 객석 곳곳에 최첨단 스피커등을 설치해 입체적인 음향을 즐길 수 있도록 했다. 이와함께 전통적인 악기 편성에서 벗어나 만돌린·기타·신시사이저·구음등을 첨가하고 객석에도 오르간등을 배치해 다향한 음색과 음향효과를 추구하게 된다. 1부는 「수제천」·「영산회상」을 현대감각에 맞게 편곡한 「신수제천」·「영산회상불보살」과 「삼포가는 길」·「어디로 갈꺼나」등 일반인에게도 널리 알려져 있는 곡이 연주된다. 2부에서는 김지하씨의 대설 「남」을 줄거리로 삼은 「개벽」이 초연된다.이 무대는 명창 박동진씨가 소리와 말로 공연을 이끌어 나가고 시립국악관현악단·합창단·가무단·무용단등 1백50여명이 출연,음악과 노래·춤이 어우러지는 종합예술로 꾸며진다.또 그동안 국악무대에서 보기 힘들었던 징고·건고·노도·절고·다듬이·조롱박등 50여종의 국악기가 등장,잊혀졌던 우리 고유의 음색과 음향을 되살리는 순서도 마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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