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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지미
    2026-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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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알 돼간다” 소문난 지미(芝美)-무룡(戊龍)

    “자알 돼간다” 소문난 지미(芝美)-무룡(戊龍)

    이번은 진짜인가? 최무룡(崔戊龍)-김지미(金芝美)가 곧 재결합하리란 소문. 늦어도 4월15일까지는 최무룡이 그들의 보금자리인 정릉 김지미집으로 「컴·백」할 것이란, 상당히 단정적인 소문이다. 최무룡 정릉집 복귀설에 전혀 낭설이라는 김지미 김지미·최무룡이 다시 맺어지리라는 소문은 그동안도 심심치 않게 나돌았다. 다시 맺어진다는 것을 기정사실처럼 믿고있는 영화계 사람들은 그동안도 다만 그 시기가 언제쯤 되느냐에 관심을 두고 있을 뿐이었다. 이들이 4월15일 안으로 한집에 들것이란 소식은 김지미의 측근에서부터 흘러 나왔다. 이 소식통은 최무룡이 정릉 김지미집에 복귀하기 위해서 후암동 집을 내놓았다고 전했다. 이 후암동 집은 최무룡이 김지미와 별거생활을 시작한 얼마뒤에 새로 장만한 집이다. 그동안 그는 이 후암동집에서 그의 어머니와 자녀 4남매를 거느리고 살고 있었다. 4월15일이란 날짜는 늦어질 경우고 어쩌면 4월10일께, 일단 최무룡의 짐을 모두 정릉으로 옮겨갈 것이라고 귀띔했다. 후담동 집이 팔리지 않더라도 최무룡이 정릉집으로 옮겨가는건 틀림없는 사실이라고 전했다. 이런 소문에 대한 장본인쪽의 답변은 어떤 것인가? 김지미쪽은 『전혀 그런일 없다』고 잘라말했다. 『터무니 없는 낭설』이라는 것이다. 『누가 그런 소릴 하는지 맹랑하다』고. 으례히 한번 쯤 잡아 떼보는 것일까? 별거생활 1년 지나도록 아직 이혼수속 하지않고 최무룡 쪽에서도 마찬가지. 『집을 내놓은것도 아니다』라고 부정일변도. 이쯤 되고보면 이 문제는 옮겨가는 날짜로 그어놓은 4월15일이 되어야 어느쪽 주장이 옳은지 알게된다. 사실상 최무룡·김지미가 그들 주변의 소문에 대해서 쉽사리 『그렇다』라고 말할 사람들이 아니다. 그런 예가 없다. 따지고 보면 이들이 헤어질 때도 그랬다. 2년전,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진다』는 유명한 대사를 남기고 갈라설 때도 바로 전날까지 『결코 이혼 않는다』고 주장했었다. 한집안에서도 별거중이며 갈라서는건 시간문제라고 오랫동안 소문이 떠돌때도, 그리고 이의 신호탄처럼 막대한 수표가 부도됐을때도 두사람은 『누가 그런 맹랑한 소릴 하느냐』고 펄쩍 뛰었었다. 그리고 바로 그 다음날 기자들을 불러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진다』를 선언했던 것이다. 그다음 또한가지. 이들은 별거를 시작한지 1년이 넘도록 이혼수속을 하지 않았었다. 경기도 문산(汶山)에 있는 최무룡의 호적엔 김지미의 본명인 김명자(金明子)가 엄연히 아내로 되어있음이 확인되었다. 촬영 현장도 옛보금자리 두사람 농도짙은 러브·신 이 문제를 물었을 때도 김지미는 『별거 직후에 이혼수속을 했다』고 시치미를 떼었다. 소문을 긍정한적이 없으면서 사실은 소문대로 행동한 것이 이제까지의 실제고 보면 이번 예도 이에서 벗어나지 않으리라는 관측이 없을 수 없다. 4월 복귀설도 사실은 1년전부터 나돈 소문이다. 그들 두사람 사이에 어떤 약속이 있었던지는 확실치 않으나 어쨌든 두사람이 71년 4월에 다시 결합한다는 소문은 퍽 집요하게 나돌았다. 이 소문을 더욱 긍정적으로 만든것은 최근 이들의 공연작품 『그날밤 생긴일』이 개봉되면서다. 이 영화에서 두사람은 마치 자기들의 얘기를 실연하듯 『3년만의 사랑』을 연기했다. 농도짙은 「러브·신」이 수없이 튀어나왔다. 촬영장이 바로 정릉 그들의 보금자리고 안고 뒹군 침대도 바로 그들이 사용하던 침대란 얘기. 이 영화의 제작자 최씨가 바로 오랫동안 김지미의 「매니저」역을 해왔고 그 까닭에 두사람이 최대한의 선심을 썼다는 뒷소문도 나돈다. 물론 김지미·최무룡이 함께 연기한 작품이 이것뿐은 아니다. 그들이 함께 있는것 역시 촬영장에서 뿐은 아니다. 실제로 최무룡의 정릉 지미집 출입이 올해들어 퍽 잦아졌다. 4월에 다시 결합한다는 소문을 부정하는 이들도 그들이 다시 맺어질거란 얘기는 구태어 부정을 하려들지 않았다. 김지미는 이 문제에 대해서 『당초 싫어서 헤어진게 아니잖아요』라고 반문했다. 최무룡 역시 『지미가 여자로 돌아온다면 언젠가는 다시 맺어질거』라고 말한적이 있다. 김지미는 아직도 어려운 일이 있을땐 누구보다도 먼저 최무룡을 찾았고, 최무룡 또한 김지미를 대하는 태도가 세상의 헤어진 부부의 그것과는 비교도 안될만큼 따뜻했다. T「호텔」의 「나이트·클럽」에서 깊은밤 두사람이 다정하게 춤추는 모습을 목격한 사람은 많다. 김지미가 외국여행 갔을때도 최무룡의 옷가지를 사들고 왔다는 것도 일부엔 알려져있다. 부부도 아니고 그렇다고 타인도 아닌 관계 - 이것이 지난 2년동안 최·김 두사람의 애매한 관계다. 2년간 겹치기 출연으로 3천만원 빚도 거의 갚아 세상사람들 상식으론 얼른 짐작이 안갈 묘한 관계다. 이 애매한 관계가 4월들어 본격적인 부부관계로 「컴·백」한다는데 새로운 흥미가 쏠리는 것이다. 즉 이를 뒷받침 하는 것으로는 당초 두사람을 갈라놓은 세칭 3천만원의 부채가 이제는 웬만큼 정리됐다는 점이다. 영화제작에 실패했던 최무룡은 지난 2년동안 TV와 영화에, 그야말로 전력투구의 활약을 벌였다. 신영균(申榮均)·신성일(申星一)의 출연이 줄어든 틈에 최무룡은 최고 28편 겹치기의 기록까지 세웠다. 거기서 쏟아진 수입으로 이제 빚은 거의 다 갚았다는 것. 이를테면 이를 악물고 지미를 다시 떳떳한 낯으로 대할수 있는 기간을 단축시켰다고나 할까? 2년전, 이들이 헤어질때 더없이 황량해보이던 정릉집은 이제 값진 가구들과 가꾸어진 정원으로 오붓한 분위기를 이루고 있다. 『사랑하기 때문에』헤어졌던 이들이 『사랑하기 때문에』다시 한집에 모이는 것은 시간문제인것 같다. <관(觀)> [선데이서울 71년 4월 11일호 제4권 14호 통권 제 131호]
  • 비단꽃 흩뿌려진 나라만신 60년길

    비단꽃 흩뿌려진 나라만신 60년길

    대한민국을 대표할 만한 이에게 국민가수, 국민배우 등의 칭호를 붙인다면 그에게는 ‘국민무당’이란 이름이 어울릴 듯하다.1982년 한·미수교 100주년을 기념한 미국 공연 이후 줄곧 나라 굿을 도맡아 온 나라 만신 김금화(76)가 자서전 ‘비단꽃 넘세(생각의나무 펴냄)’를 냈다. 그의 이름인 금화의 뜻이 바로 비단꽃이다. 하지만 이 이름은 김금화가 13살이 되기 전까지 얻지 못했다. 그 이전까지의 이름은 ‘넘세’였다. 넘세는 남동생이 어깨 너머에서 넘어다보고 있다는 뜻. 아들을 학수고대했던 부모는 첫째에 이어 둘째인 금화도 딸로 태어나자 몹시 실망했다. 한스러운 어린 시절 이름만큼이나 그의 삶도 한 권의 자서전으로는 부족할 정도로 파란만장하다. 신기가 내린 사람이 대부분 그러하듯 횟배·학질·감기 같은 잔병치레가 잦았고, 황해도 연백의 빈농 집안에서 피죽 한 그릇 얻어먹기도 힘들었다. 12살에 무병을 앓기 시작했으나 14살에는 정신대 나가는 걸 면하기 위해 5리쯤 떨어진 동네로 시집을 갔다. 그녀가 묘사하는 시집살이는 요즘 드라마에 나오는 호랑이 시어머니에 비할 바가 아니다. 밥도 제대로 주지 않았던 시어머니는 하루종일 고된 농사일을 시키는 것도 모자라 심지어 구타까지 서슴지 않았다.2년만에 시집으로부터 도망쳐 나와 17살에 외할머니로부터 내림굿을 받게 된다. 신어머니를 모시고 굿판을 따라다니며 여러가지 절차를 익히는 무당수업 기간도 시집살이 못지않게 맵고 힘들었다.1970년대 새마을운동이 한창 일어나면서부터는 무당과 굿은 한낱 미신으로 몰려 이리저리 쫓기는 신세로, 시끄러운 굿판을 벌이면 경찰서에 잡혀가기 일쑤였다. 두번째 결혼도 11년만에 파경을 맞았다. 김금화가 살아오면서 가장 기뻤던 순간 중 하나로 꼽는 것은 82년 미국에서 열린 한·미수교 100주년 공연에 참가했던 일이다. 민속에 관심이 많았던, 에밀레 박물관 창설자 고 조자용 선생의 주선으로 성사된 이 공연은 녹스빌에 이어 워싱턴·뉴저지·뉴욕 등 미국의 곳곳을 돌며 석달간 이어질 정도로 성황을 이뤘다. 그는 당시에 대해 “우리 굿이야말로 진정한 한·미수교의 의미를 담은 것이었다고 자부한다. 땅과 얼굴색, 언어가 다른 사람이 굿으로 통했으니 진정한 ‘소통’이며 ‘맺어짐’이다.”라고 회고했다. 김금화는 그의 굿이 유명해지자 영화 ‘서울만신’에서 주인공을 맡은 배우 김지미에게 춤과 굿을 가르치거나 직접 단막극에 출연하기도 했다. 해외공연에서도 항상 인간문화재나 국립무용단에 비해 뒷전이었던 김금화는 85년 중요무형문화재 제82-나호 배연신굿 및 대동굿 예능보유자로 지정돼 서해안 풍어제의 맥을 잇고 있다. 로마대학에서 교황의 진혼굿을 했고, 백두산 천지에서 대동굿을 벌였으며, 베를린에서 윤이상을 위한 진혼굿, 사도세자 진혼굿 등을 펼쳤다. 이제 여든이 다 되어가는 가녀린 몸이지만 화려한 옷자락을 펄럭이며 춤을 추는 그녀에게서는 여전히 범접하지 못할 기가 느껴진다. 김금화가 강화도에 사재를 털어 지은 조촐한 굿당에 ‘금화당’이란 현판을 써서 걸어준 도올 김용옥이 쓴 시가 책 앞머리에 실렸다.1만 2000원.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오피스·뉴스] 청장님 솔선수범에 청내는 긴장

    [오피스·뉴스] 청장님 솔선수범에 청내는 긴장

    관세청은 요새 신임 이택규(李宅珪) 청장의 과잉솔선수범(?) 때문에 전 청내가 아연 긴장의 도가니. 지난 10월 27일에는 느닷없이 세관원복을 입은 청장이 직접 김포공항에 나타나 통관절차를 몸소 살피고 있어 직원들을 또한번 놀라게 했다. 평균 하루 2대 이상의 국제선 비행기가 착륙, 가장 복잡한 하오 6시부터 8시 사이에 세관검사를 직접한 이청장은 『외국인의 한국에 대한 첫인상이 일선 세관에 의해 흐려져 왔다는 점, 시인합니다. 앞으로 1주일간 직접 통관 관계를 지켜보며 모순점을 연구, 시정하여 획기적인 「서비스」방안을 마련 하겠읍니다』고 한마디. 한편 10월 30일 공항 세관 검사대에는 청장과 함께 인기배우 김지미 「후라이보이」구봉서(具鳳書) 고은아(高銀兒)등 7명의 연예인들이 세관원복으로 정장, 입국자들의 짐을 검사했는데 이 광경을 지켜보던 시민들은 평상시에도 저렇게 친절과 신속을 기할수 있다면 까다롭고 불친절하다는 김포세관의 오명을 씻을 수 있지 않겠느냐고 한마디-. [선데이서울 70년 11월 8일호 제3권 45호 통권 제 110호]
  • [안녕하셔요] 방화사상 처음 「레즈비언」 연기한 윤연경(尹姸景)양

    [안녕하셔요] 방화사상 처음 「레즈비언」 연기한 윤연경(尹姸景)양

    『동성연애…. 아휴 땀뺐어요』 - 병아리「스타」 윤연경양(21)의 촬영소감. 최근 제작을 끝낸 『비전(秘殿)』 (이형표(李亨杓)감독)에서 그녀는 김지미(金芝美)양과 함께 「방화사상 최초」로 「레즈비언」을 연기했대서 화제의 주인공이 되고있다. 무표정에 야단맞아…영화보니 가슴철렁 영화 『비전』 은 고려왕조를 배경으로 궁정의 「섹스」에 촛점을 댄, 이를테면 「에로티시즘」을 표방한 사극 영화다. 정사(情事)장면으로 시작되는 첫「신」부터 사련의 파멸을 그린 「라스트·신」까지 수없이 번복되는 정사「신」으로 영화전편에 「섹스·무드」가 질펀하게 깔려있다. 윤연경양은 이 영화에서 왕비 김지미의 시녀 「버들」로 출연했다. 왕이 궁녀의 침실에서 사랑놀이에 탐닉하다 죽고난 뒤에 주인을 잃은 수많은 젊은 여인들의 성적고민이 「버들」윤연경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그 하나가 왕후 김지미와의 동성연애. 『저는 수동적인거니까 격정적인 연기는 안해도 되는줄 알았죠. 잠자코 지미언니가 「리드」하는대로 있으면 된다… 그런데 감독님이 무표정하다고 막 야단치지않아요』 김지미와의 「베드·신」얘기를 더 캐물어보자. - 영화를 보았는지? 자기작품을 볼때의 심경은? 『연기할 때의 생각과 전혀 딴판으로 나왔어요. 입만 딱딱 벌리는 내모습에 가슴이 철렁하더군요』 작년 『무영탑(無影塔)』데뷔…타사(他社)작품에 첫출연 - 그 입표정연기가 퍽 「섹시」하다는 평이던데? 「러브·신」연기가 아직은 생소한 신인배우다. 「스크린」에 펼져진 자신의 「핑크」빛 연기에 스스로 부끄럼을 타는 처녀 「스타」. 윤연경이 「스크린」에 첫선을 보인것은 69연도의 『무영탑』(김수용(金洙容)감독)에서다. 그녀는 세기(世紀)상사가 모집한 신인배우 공개 「콘테스트」에서 2천3백명중 3명의 합격권에 들어서 『꿈에도 그리던』 「스타」의 문을 「노크」하게됐다. 그런데 이 1년동안 그녀가 해낸 영화는 위의 『무영탑』과 『6인의 난폭자』(권영순(權寧純)감독)를 세기에서 했을 뿐이고 타사작품으로 『비전』에 나오게 된 것. 「데뷔」당시의 화려한 각광에 비해서는 극히 저조한 활동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이 예는 윤연경뿐만 아니라 김명진(金明珍) 고상미(高想美) 오수미(吳樹美)등 세기상사의 배우 동창생 4명에게 똑같이 나타난 현상이다. 저조의 원인이 이들 신인배우에게 있는것 같지는 않다. 신인공모사상 가장 많은 경쟁자를 물리친 이들 네 아가씨들은 개성 미모 연기력에서 모두 그나름의 유망주로 평가되었다. 이들의 「데뷔」작(김명진은 『렌의 애가(哀歌)』, 오수미는 『어느 소녀의 고백』, 고상미는 『잃어버린 태양(太陽)』)은 한결 같이 흥행에 실패했으나 배우로서 이들 네 신인의 가능성만은 뚜렷하게 보여준 것이었다. 까다로운 전속조건 5년간 묶여 큰고민 문제는 이들에게 뒷받침이 될만한 작품이 주어지지 않은데 있다. 신인을 발굴만해놓고 육성은 외면하는게 방화계의 큰 통폐인데 이들의 전속사도 결코 예외는 아니다. 그 구체적인 예로 이들의 전속사 세기상사는 이들을 온갖 까다로운 조건 아래 「5년 전속」으로 묶어 놓았다. 그리고 얼마 전부터는 방화제작에서 슬슬 손을 빼고 있다. 묶어놓고나서 일할 자리를 없애버린 것이니까 자연 사장될 밖에. 이들 신인배우는 다른 영화사 작품에 나갈 경우 출연료의 절반이상을 전속사에서 가로채간다는 소문이다. 전액을 다 빼앗겼다는 얘기도 있다. 이것이 모두 「까다로운」 계약조건에 의한 것이라니 약자일 수밖에 없는 신인배우로는 「울며 겨자먹기」로 당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전속기간이 5년이라면 여배우가 누릴 가장 활동적인 황금기다. 이제 1년이 지난 이들은 앞으로 4년을 어떻게 견뎌내느냐로 한결같은 고민이다. 「꿈의 공장」에 대한 동경이 이런 식으로 망쳐진 이들은 이미 의욕상실에 걸려있다. 그중 한두명은 『배우 그만두고 시집이나 가겠다』고 호소할 정도. “전속관계 말못해요” 출연계획 아직없고 영화 『비전』은 윤연경을 이런 의욕상실에서 구제해냈다는 점에서 색다른 의미를 갖고있다. 그녀는 전속사와의 관계를 묻자 『그런 문제는 말할 수 없어요』라고 겁먹은 표정으로 황급히 입을 다물었다. 출연료를 전속사가 가로채간다는 소문에 대해서도 『저는 그런거 몰라요』-. - 앞으로 출연할 영화는? 『아직 없어요. 제가 하고싶다고 되는건 아니니까요』 “단역주기엔 아까와” 서울토박이 둘째딸 윤연경을 처음 「스크린」에 「데뷔」시킨 김수용감독은 그녀의 용모가 『다른 배우에게서 찾을 수 없게 신선미를 풍긴다』면서 『몇작품만 해내면「톱·스타」가 될수 있다』고 말했다. 『비전』에서의 이형표감독은 『연기 「센스」가 있다. 조금만 지나면 진짜 연기자가 될 수 있다』고 극구찬양. 당초 단역 정도로 생각했던 윤양을 정작 「카메라」앞에 내세우고보니 『너무 아까와서』30여 「신」의 중요역할을 주었다는 얘기다. 순 서울토박이인 윤연경의 본명은 윤 영(尹映), 아버지 윤덕창(尹德昌)씨와 어머니 김신자(金信子)씨의 2남1녀중 둘째. 정신(貞信)여고를 졸업했고 「클래식」감상이 취미. 1백62㎝의 키와 33-22-34의 몸매. - 앞으로의 소망은? 『누구나 말하듯 좋은 배우가 되는거 아니겠어요? 그러나 저는 그렇게 조급히 서두르진 않겠어요. 나이가 어리다는 잇점이 있으니까요. 착실히 공부하겠어요』 눈모습이 유달리 귀여운 윤양이 가장 좋아하는 배우는 『로마의 휴일(休日)』에서본 「오드리·헵번」. <권(權)> [선데이서울 70년 10월 11일호 제3권 41호 통권 제 106호]
  • [프라이버시] 여우(女優) 김지미(金芝美)양

    [프라이버시] 여우(女優) 김지미(金芝美)양

    『나는 발바닥에 팔랑개비를 달았다나요. 잠시도 편히 쉴 수 없는 팔자래요…』 뭐 어디라던가? 유명한 관상쟁이가 김지미양보고 그러더란다. 「지미」처럼 관상보고 점치고 푸닥거리 좋아하는 여자도 아마 드물게다. 푸닥거리를 할때는 무당의 꽁무니에 바짝 붙어 다니며 손바닥에서 불이 나도록 싹싹 빌어댄다. 꾸벅꾸벅 수 없이 절은 하는데 밤새 그러다보면 꾸벅꾸벅 조는건지 절을 하는건지 알수 없게 된다. 팔랑개비처럼 영화계를 뛰는 동안 어느덧 영화 출연 5백회를 기록했다. 10여년동안 「톱·스타」 자리를 지키기에 피눈물나는 고초도 많았을 것. 「지미」 쯤 되는 「스타」라면 그렇게 행복하지만은 않다. 집에서 두발뻗고 편히 자보기도 힘들만큼 촬영소 새우잠에 들에서 밤새기를 떡먹듯이 그야말로 팔랑개비인생. 「스타」라는 직업상 잘 입기는 해야겠지만 그러나 막상 집에 돌아오면 허름한 바지에 「쉐터」를 아무렇게나 걸치고 마치 식모차림. 곧잘 누룽지를 긁어 뭉쳐가지고 다니며 차속에서 촬영소에서 우물우물 잘먹기로 유명. 촬영현장 근처 식당에서 밥 한그릇에 김치를 시켜다가 김치국에 비벼서 퍽퍽 퍼먹는 소탈한 모습을 흔히 볼수있다. 그렇게 바쁘게 돌아가는 통에 귀여운 아들을 잃어버린 어머니의 비극도 감수했었다. 따지고 보면 불행한 여인이다. 씩씩하고 투실투실한 한창 재롱동이 아들을 식모에게 맡길 수밖에 없었는데 부엌에 나온 아이가 더운물이 끓는 솥에 빠졌다. 겨우 말을 하기 시작한 아이였다. 병원에서 온통 붕대를 감고 누워있던 아이가 엄마인 「지미」가 울고 있으니까. 『엄마…울지마…』라는 한마디를 남기고 갔다. 슬픔을 삼키고 슬픔을 디디고 「지미」는 또 팔랑개비 여인으로 돌아왔다. [선데이서울 70년 10월 11일호 제3권 41호 통권 제 106호]
  • [안녕하셔요] 지금은 영화에 사로잡혀 있다는 스타 전계현(全桂賢)양

    [안녕하셔요] 지금은 영화에 사로잡혀 있다는 스타 전계현(全桂賢)양

    인기의 내리막길에서 반전(反轉),「스타」의 자리를 되찾은 대표적인 배우가 바로 전계현(全桂賢·31)양이다. 그녀의 배우생활에 빛을 불어넣은게 67연도 정소영(鄭素影)감독의『미워도 다시 한번』. 그후 정소영·전계현「콤비」는『미워도-』2, 3편을 비롯해서『저 눈밭에 사슴이』『잊혀진 여인』『아빠와 함께 춤을』등 이른바 기적적인 흥행기록(20만~37만 관객동원)을 세우면서 방화계의 부러운「콤비」를 이루었다. 그런 전계현이 요즘 정소영 감독 아닌 김기영(金綺泳) 감독과 손잡고 열심히 촬영장을 뛰고 있다. 김감독도 오랜만의「롤·백」으로 야심어린 창작태도-. 촬영중인 작품은 김기영 감독이 직접 각본까지 쓴『화녀(火女)』. 남궁원(南宮遠)과「탤런트」윤여정(尹汝貞)이 함께 출연한다. -정소영 감독과 손을 끊은건 아닌지? 이 물음에 전계현은 얼굴빛을 붉게 물들이면서『아니다』라고 부인했다. 정소영 감독의 영화에는 빠짐없이 출연하던 그녀가 최근 정감독의『필녀(必女)』에서 빠지고 그대신 김기영 감독과 손잡은데서 나온「정·전 콤비 와해설」에 관한 부정이다. 『정감독의「미워도 다시 한번」4편에 곧 출연하게 됩니다. 한편쯤 빠진다고 이상할거 없잖아요? 제게 마땅한 역이 아니면 맡을 수 없는거 아니겠어요? 』 고독한 실생활서 겪은 성숙한 내면을 연기로 -전양에게 마땅한 역이란? 『글쎄요』-전양은 잠시 침묵했다. 처첩 삼각관계의「멜로·드라마」에서 전계현이 맡은 역은 주로 선량하기만한 본처였다. 슬픔을 속으로 달래며 결코 질투나 심술을 표현하지 않는 음지의 여인.『미워도-』3편,『저 눈밭에 사슴이』가 그랬고『잊혀진 여인』에서는 버림받은 여자의 슬픈 행각을 그려냈다. 화사하게 반짝이는 연기보다 요즘 그녀의 실생활처럼 어둡고 고독한 여인상이 그녀에게 제대로 어울리는 것일까? 『화녀』에서는 남편과 가정을 식모에게 빼앗기는 여자, 남편의 명예를 위해 살인 누명을 뒤집어쓰는 아내로 나온다. 엄청난 악에 선으로 도전하는, 그러다가 정신착란증에 빠지는 역할인데 김기영 감독은『정신착란의 복잡미묘한 상태를 전양처럼「리얼」하게 연기하기도 어렵다』고 미리부터 치켜세웠다. 어쨌든 미모로 한몫보는 청춘「스타」들에게 항거해서 전계현은 그녀나름의 연기파 배우로 자리를 굳힌게 사실. 다시말해서 최은희(崔銀姬) 주증녀(朱曾女)이후 남정임(南貞妊) 문희(文姬) 윤정희(尹貞姬)의 청춘「스타」사이에 아직도 군림하는 김지미(金芝美) 또래의 중간층 배우인데 삶의 쓴맛 단맛 아는 성숙한 내면의 여인층이다. 데이트설(說)엔 억울한듯 “안땐 굴뚝 연기났다” - 옷 벗는 연기는? 『한마디로 그런 영화는 안하겠어요. 꼭 옷을 벗어야 분위기를 그릴 수 있는건 아니잖아요?』 『배우가 옷을 벗는다는 건 최후의 보루를 드러내보이는 거라고 생각해요. 관객의 호기심에 영합하는 행위니까요. 그 호기심이란게 끝이 없어요. 가슴을 드러내보이면 그 다음엔 그 이하로 발전해야 만족해요. 배우의 매력이 노출에 있다면 얼마 안가서 그 매력은 전부 소모되고 말 것 같아요』 -육체조건에 혹 자신이 없어서 하는 얘기는 아닌가? 『그럴지도 모르죠』-그러나 이 대답은 마치 신인배우처럼 약간 토라진 답변. -요즘「데이트」중이란 소문이 있던데? 『그런 질문 좀 안해줬으면 좋겠어요.「데이트」는 뭐 혼자하는 건가요? 』 -물론 상대가 있으니까 소문도 났겠죠. 속시원히 털어놓을 생각은? 『먼저 그 소문의 내용부터 털어놓으세요』 -그럼 언제까지나 독신녀로 살아갈 예정인가요? 이물음에 전계현은 처음으로 크게 웃었다. 한동안 이 독신녀 주변에 맴돈「데이트」설이 꽤 신경을 자극했던듯『불안땐 굴뚝에 연기났다』면서 전계현은 상당히 억울하다는 표정이 되었다. 시집안갈 생각 없지만 사는 보람은 영화에도 『물론 좋은 상대가 나타나면 시집갈 생각은 있어요. 그러나 사는 이유가 결혼이 전부는 아녜요. 여자로서의 욕망을 접어두고라도 사는 보람이 있으면 사는 거예요』 -좋은 사람이란? 『결혼하고 싶은 생각이 날만큼 내가 미칠수 있는 사람. 그러나 요즘 저는 남자에게 미칠수있는 상태가 못돼요. 남자보다는 영화가 훨씬 마음을 사로잡아요』 -혹시 남성기피증라도? 『또다시 실패하고 싶지는 않은 심경입니다』 결혼생활에 실패하고 독신녀로 돌아온지 5년. 『그보다는 좋은 작품을 맡아 한「커트」, 한「커트」열심히 찍어나갈 때 훨씬 보람을 느껴요』- 마음을 열중시키는 것은 영화밖에 없다는 얘기. [선데이서울 70년 10월 4일호 제3권 40호 통권 제 105호]
  • 왈칵 진짜로 울어버린 최무룡

    왈칵 진짜로 울어버린 최무룡

    슬픈 장면의 연기가 하도 심각해서 실제로 울었다, 아니다 로 촬영「스태프」사이에 조그만 실랑이가 벌어졌다. 얼마전 정소영(鄭素影) 감독의 영화 『아빠와 함께 춤을』의 촬영 현장에서 벌어진 일. 딸을 딸이라고 부를 수 없는 아버지가 꿈에도 못잊던 딸을 만나 잠깐동안의 회포를 푸는 장면인데 아버지역의 최무룡(崔戊龍)은 실제로 주먹같은 눈물을 쏟아 촬영진을 놀라게했다는 것. 대개 우는 장면의 연기는 눈에 안약을 쏟게 마련인데 이 날의 최무룡은 안약 한방울 안넣은채 눈물을 조종, 차차 격렬해지자 사실처럼 울음을 터뜨린 것. 평소 최무룡의 격정적인 연기력을 내세우는 사람들은 진짜같은 연기에 감탄을 했지만, 김지미와 이혼 후 가족과 떨어져 독신생활을 하고 있는 최무룡의 「처지」를 내세우는 쪽은 끝내 「연기 이상」을 주장, 실랑이가 되었다. 한편 연기보다 감독, 감독보다 제작에 열을 올리던 최무룡은 얼마전부터 제작·감독보다 연기쪽에 열을 쏟아 4,5편의 영화에 주연하고 있다. [선데이서울 70년 7월 12일호 제3권 28호 통권 제 93호]
  • [박성서의 7080X파일] 35년 만에 재결합한 자니브라더스

    [박성서의 7080X파일] 35년 만에 재결합한 자니브라더스

    남성적인 매력이 한껏 돋보였던 남성 4중창단 자니브라더스가 35년 만에 재결합을 선언했다. 평균연령이 자그마치 68세. 이로써 우리나라 최장·최고령의 보컬 팀이 탄생한 것. 유독 박력 있고 시원스러운 가창력과 더불어 싱싱한 수목을 연상시키는 건강미가 매력 만점이던 이들 멤버는 각각 김현진(리드,71세), 양영일(테너,68세), 김준(본명 김산현, 바리톤,67세), 진성만(베이스,67세). 여전히 ‘빨간 머플러’가 썩 잘 어울릴 듯한 외모, 전성기 때 못지 않은 박력에 깊이까지 갖춘 이들의 정겨운 화음은 세월을 뛰어넘어 특히 중장년층들의 깊은 공감을 이끌어낼 것으로 기대된다. 1961년, 당시 최고의 음악성을 갖춘 정예들로 구성된 예그린합창단 1기생으로 출발, 기량을 뽐내던 중 뜻이 맞는 이들 네 명이 모여 4중창단을 결성했다. 이어 문화방송 톱싱거대회 월별 예선을 통과, 연말 본선 결선을 앞두고 예그린이 해체된다. 아울러 이들은 당시 문화방송 톱싱거 경연대회, 동아방송 연말 중창단경연대회 등을 잇달아 휩쓸며 무서운 신예로 급부상했다. 특히 춤과 연기 실력으로 완전무장한 예그린 출신답게 TV쇼를 화려하게 바꾼 동시에 영화주제가 ‘빨간 마후라’를 비롯해 ‘방앗간 집 둘째딸’,‘아나 농부야’,‘수평선’ 등을 잇달아 발표, 정상에 오른다. 아울러 당시 꿈의 무대였던 워커힐에 전속되며 통행금지 시간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을 마치 한 몸인 양 ‘사인오각(四人五脚)’을 이뤄 바쁘게 활동, 전성기를 구가했다. 그러나 최정상에서 이들은 해체를 선언한다. 각자의 재능을 살리기 위해 솔리스트로 전향을 꿈꾸던 이들은 결국 1968년 6월8일 동양TV ‘쇼쇼쇼’를 통해 ‘자니브라더스 고별쇼’를 갖는다. 하지만 이들의 재능을 아쉬워하던 당시 장태화 서울신문사 사장 등 후견인들에 의해 다시 재결성, 그룹명을 ‘메아리진(전국에 메아리친다는 순수 우리 말)’으로 바꾸고 1970년 1월11일 mbc-TV ‘메아리진쇼’를 통해 컴백, 매주 30분씩 브라운관을 화려하게 장식했다. 이들은 당시 중창단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던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제각각 부업전선에 나선 후 이어 1972년, 서울 을지로 4가에 ‘메아리진’이라는 음악 살롱을 차려 경제적 타개책을 적극 모색하지만 1년이 채 못돼 하나둘씩 각자의 길로 흩어진다. 오는 3월12일 공식적으로 KBS 가요무대를 통해 재결합을 선언, 컴백무대를 갖는 이들이 마지막으로 함께 섰던 무대는 1973년 1월, 당시 TBC ‘쇼쇼쇼(PD 황정태)‘ 400회 특집프로그램. 오랜 만에 똑같은 의상으로 통일한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한다.“비록 그동안 제각각의 길을 걸어왔지만 늘 음악과 함께 해왔기에 이 번 재결성은 매우 자연스레 이루어진 일”이라고. 실제로 멤버 중 바리톤 파트의 김준씨는 그룹 해체 후 솔로가수로 전향, 현재까지 매년 음반을 발표해오며 국내 유일의 남성재즈보컬리스트로 활동하고 있고 멜로디 파트의 김현진씨는 그간 보험일을 거쳐 현재 건설업에 종사하고 있지만 본인이 이끄는 ‘울바우 남성합창단’과 더불어 매년 정기공연을 해왔다. ‘빈대떡 신사’의 작곡자인 양원배씨의 차남으로 경희대 음대 출신이기도 한 테너 양영일씨는 지난 23년간 음악교사로 재직해 왔다. 현재는 부산 코스모스악기사 상무로 재직 중이다. 그런가하면 동아방송 성우 1기생이기도 한 베이스 진성만씨는 영화배우 김지미씨의 여동생 김지애씨와 결혼, 지미필름 대표를 거쳐 현재는 요식업에 종사하고 있다. ‘자니브라더스’라는 이름으로 함께 무대에 서는 것이 오랜 꿈이었다는 이들은 이미 지난 가을부터 매주 한 차례씩 모여 호흡을 고르고 화음을 맞춰 왔다. 이전까지는 멜로디 위주의 유니송(Unison)을 주로 발표해 왔지만 이제부터는 하모니 위주의 4성, 즉 네가지 화음을 조화시켜 남성4중창단으로서의 매력을 한껏 펼칠 예정. 클래식과 교회음악에서 출발한 이들이 들려줄 주요 레퍼토리는 역시 올드팬들에게 친숙한 ‘올드송’들이다. 자신들의 히트곡은 물론 민요에서 올드 팝까지 폭넓게 펼칠 예정으로 편곡은 작곡가 김기웅(71)씨가 맡았다. . 대중음악평론가 sachilo@empal.com
  • 톱·스타 김지미도 드디어 벗어

    톱·스타 김지미도 드디어 벗어

    문희(文姬)가 『방의 불을 꺼주오』에서 옷을 벗고, 남정임(南貞姙)이 『사랑하는 마리아』에서 육체미를 과시한데 이어 김지미(金芝美)도 이에 뒤질세라 옷을 벗고 영화에 출연. 바야흐로 국산 「스크린」은 「톱·클라스」 여배우들의 옷벗기 경쟁장이 되고 있는 느낌이다. 김지미의 「누드」를 보일 영화는 최근 촬영을 마친 『돌아오지 않는 밤』. 평소 김지미와 남다른 친분을 가진 정진우감독에 의해 벗겨졌다. 미모에 비해 지체가 빈약한 걸로 소문났던 김지미가 「아주 아름다운 육체」라는 게 연출자 정진우씨의 귀띔. 「스타」의 「섹스·어필」을 파는게 방화의 돌파구처럼 여겨지고 이것이 『방의 불을 꺼주오』와 『사랑하는 마리아』의 흥행성공으로 얼마쯤 실증되고 있는 형편이지만 이에 자극되어 쏟아져 나올 수많은 「섹스」영화가 과연 모두 흥행에 성공할거란 보장은 없다. 반대로 여배우의 「벗기기 작전」은 「스타」의 마지막 보루(?)인 육체의 신비성마저 「덤핑」으로 탕진할 위험이 있다. 여배우의 입장에서는 「예술」이란 위협(?) 때문에 이를 감수하고 있는 형편이다. 에술작품을 위해서는 벗는 것쯤 감수해야 한다는 명분이지만 예술이기보다는 육체가 상품화하고 있는게 아직까지의 실정. 정진우감독은 『제일 먼저 벗긴 건 나다』라면서 『돌아오지 않는 밤』의 제작기간이 너무 오래 걸려 「누드·붐」속의 「누드」 전시에 한발 늦은 것을 안타까와하는 눈치다. 벗기기 작전이 새로운 「아이디어」 라면 관객이 「누드」에 식상하기 전에 팔아야 한다는 상혼. 『초우(草雨)』 『초연(初戀)』 『밀월(密月)』등 수준급의 영화를 내놓아 문제감독으로 주목된 그는 『돌아오지 않는 밤』의 경우 아예 「예술」이란 단어를 빼던지고 있다. 『「테마」도 없고 일관된 「스토리」도 없다. 재미있게 보면 그만이다』 - 이 「재미」를 위해서 김지미의 화려한 「누드」가 화면을 누비게 된단다. [선데이서울 70년 6월 21일호 제3권 25호 통권 제 90호]
  • [안녕하세요] 「스타」 김지미(金芝美)양

    [안녕하세요] 「스타」 김지미(金芝美)양

    『작품수를 줄이니까 마음에 여유가 생겨요』- 「톱·스타」 김지미의 한가한 한 때. 세살짜리 딸 윤영(允英)양과 뜰에서 노는게 가장 즐거운 시간이란다. 작년 여름 「마닐라」의 「아시아」영화제에서 주연상을 타가지고 온 그녀는 이번 「자카르타」에서 열리는 「아시아」영화제에도 대표단의 한사람으로 참가할 예정. 30편 출연에서 9편으로 작품수 줄이고 충실하게 남편 최무룡(崔戊龍)과 이혼을 선언하고 독신녀로 돌아온지 1년, 김지미는 정릉(貞陵)동(812의6) 자택에서 딸 윤영양과 조용히 살고 있다. 「스타」의 집중에서도 제일 크다는 건평 3백평의 2층집은 새로 말끔히 단장을 했지만 어딘가 덩그러니 허전한 분위기. 『전에는 백합꽃을 제일 좋아했어요. 그런데 요즈음은 장미꽃, 특히 새빨간 장미꽃이 마음을 끌어요』 심경의 변화가 꽃에 대한 기호로 표현되는 것일까? 새하얀 백합꽃에서 새빨간 장미꽃. 청순하고 정결한 멋에서 백합을 좋아했다는 그녀는 이제 새빨간 정열의 장미가 훨씬 좋아졌단다. 「스타」중에서 보석을 제일 많이 가지고 있다는 그녀가 그중 좋아한 것이 진주. 진주와 백합에서 이제 「다이아먼드」와 장미로 기호가 바뀌어 졌단다. 김지미 자신은 『나이가 든 탓』이라고 그 나름의 해석을 내렸다. 사실상 김지미의 화장기 없는 얼굴에서는 연륜의 흔적이 어쩔 수 없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목 둘레에 그어진 몇개의 굵은 주름, 웃을때면 눈꼬리에 접히는 잔주름이 김지미의 영화계 15년 세월을 실감케 한다. 57년 『황혼열차(黃昏列車)』를 「데뷔」작품으로 친다면 15년. 그런데 김지미는 아직도 한국최고의 미인이다. 한국뿐 아니라 일본, 동남아(東南亞)에서도 미모의 여배우라면 우선 김지미. 지금도 머리를 쌍갈래로 묶고 여학생 차림으로 나오면 「스크린」속의 김지미는 여고생 그대로 될 수 있다. 하지만 그녀는 그런 소녀역에서 차차 발을 빼고 있다. 「러브·드라머」에서도 그녀가 맡은 역할은 어느 틈엔가 유부녀, 본처, 연상의 여인…. - 현재 촬영중인 영화는? 『「장군의 집」, 「돌아오지 않는 밤」, 「중년부인」, 「동경의 밤하늘」 등 9편이에요. 그중 2편은 중단된거고- 』 7편 가지고 뛰면 꼭 알맞단다. 최고 30편의 영화를 동시출연하던 그녀로서는 이를테면 요즘이 가장 한가한 시기. 영화계 15년중 제일 편안한 시기란다. 『촬영에 쫓겨 가정이나 개인생활을 희생하는게 과연 옳은 일인가 하고 생각케 되더군요. 이제는 자기 자신을 위한 시간을 가져야겠어요. 영화는 마음에 드는 작품을 되도록 조금만 가지고, 그 대신 그 작품에 열성을 기울일 생각입니다』 TV 출연 않는건 연기 소화할 시간없어 - TV에 나갈 생각은? 영화배우의 TV진출이 일종의 「붐」을 이루고 있지만 유독 김지미만은 이를 외면해왔다. 그 이유는? 『첫째 시간이 없기 때문이죠. 영화처럼 겹치기 할 수 있는게 아니고 제 시간을 대야 하는데 연기를 소화할만한 충분한 시간이 없어요. 둘째는 「TV는 영화의 적(適)」이란 제나름의 생각입니다. 그러지 않아도 영화관객을 TV에 빼앗기고 있는데 영화배우들이 모두 TV에 나간다면 영화는 아주 없어질 것 같은 생각입니다. 나도 한가해 지면 TV에 나가게 될지 모르지만 되도록이면 영화배우는 영화만 하는게 좋을 것 같아요』 - 열마전 한(韓)·비(比)합작영화에 출연한다는 소문이던데? 『지난번 「마닐라」에 가서 1차적인 합의는 봤어요. 작품이 선택되면 가을쯤 촬영이 시작될거예요』 [선데이서울 70년 6월 14일호 제3권 24호 통권 제 89호]
  • [박성서의 7080 가요X파일]’과거를 묻지마세요’의 나애심(1)

    [박성서의 7080 가요X파일]’과거를 묻지마세요’의 나애심(1)

    정열적인 눈, 이지적인 마스크로 등장,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으로 노래하는 스타, 즉 ‘싱잉 스타 시대’를 열었던 나애심(77)씨.1953년 ‘밤의 탱고’를 시작으로 300여 곡의 주옥 같은 노래를 남김과 동시에 1980년대 초까지 100여 편의 영화에 출연했던 그는 스크린과 무대를 동시에 장악, 배우와 가수 두 분야에서 모두 큰 획을 그었던 인물이었다. 아울러 ‘백치 아다다’,‘과거를 묻지 마세요’,‘미사의 종’,‘아카시아꽃잎 필 때’ 등 직접 영화에 출연하며 동시에 영화주제가까지 히트시켰다. 당시로서는 꽤 큰 키에 속하는 162㎝에 ‘버스트, 웨이스트, 히프 사이즈가 몇이냐.’로 화제가 되며 한국 여배우 최초로 글래머 스타라는 칭호까지 얻은 그의 또 다른 애칭은 ‘한국의 안나 카시피’. 이렇듯 이국적인 용모가 돋보이던 나씨는 실제로 ‘춤추는 안나’라는 노래까지 발표했을 정도. 나씨로부터 시작된 글래머 스타, 즉 육체파 배우의 계보는 이후 김지미, 도금봉, 김혜정으로 이어졌다. ‘글래머스타’이자 ‘멋쟁이의 대명사’로 1950∼60년대 예술인들의 집합지인 ‘명동시대의 주역’이기도 했던 나씨는 또한 당대 예술가들과 폭넓은 교류를 가지며 시인 박인환이 즉석에서 시를 쓰고 극작가 이진섭씨가 즉흥적으로 곡을 붙여 만든 노래 ‘세월이 가면’을 현장에서 최초로 부른 일화 속 인물로도 유명하다. 본명은 전봉선(全鳳仙).1930년 9월5일 부친 전상연, 모친 장중차 사이의 5남3녀 중 장녀로 평안남도 진남포에서 태어났다.‘과거를 묻지 마세요’ ‘미사의 종’의 작곡가 전오승씨가 바로 그의 친오빠. 진남포여고를 졸업한 뒤 잠시 아이들을 가르치던 스무 살 때 6·25 전쟁이 발발한다. 이어 9월15일 ‘인천상륙작전’이 감행된 이튿날, 그는 당시 정동방송국(현 KBS, 당시 이념의 혼란기라 ‘대적방송국’이라고도 부름)의 ‘HLKA 경음악단‘에서 콘트라베이스를 연주하던 오빠 전오승씨를 찾아 단신 월남한다. 이듬해인 1·4 후퇴 당시 서울로 피란내려온 나머지 가족들과 가까스로 상봉, 피란길에 오른다. “당시 오빠와 함께 방송국 경음악단에서 활동하던 박춘석, 최상용씨 등 연주인 여덟 명의 가족들, 총 80여명과 함께 남쪽으로 끝없이 이어지는 피란민 행렬에 합류했어요. 먹을 것이 없어 한 끼 걸러 한 끼씩 동냥을 하며 죽음의 사선을 넘던 그 25일 간의 일들은 지금도 생각날 때마다 가슴이 메어옵니다.” 그의 회고다. 그렇게 정착한 대구 피란 시절, 그는 작곡가 김동진씨를 단장으로 이북 출신 예술인들로 구성된 ‘꽃초롱’ 단원으로 입단, 첫 무대 활동을 시작한다. 이 무렵 곽규석(후라이보이), 구민(성우) 그리고 현미(가수) 등과 오페라 ‘아리아’의 무대에 서기도 했고 또 호구지책으로 함께 피란생활을 하던 김미정(미스코리아 출신 영화배우, 가수 현인의 미망인), 그리고 이경희(영화배우), 그리고 막내 동생 전봉옥(가수) 등과 함께 ‘아리랑시스터즈’를 결성해 미8군 무대와 일반무대에까지 나섰다. 비록 영어를 전혀 할 줄 몰랐지만 미군부대공연을 갈 때마다 손짓발짓해가며 군인식량이나 초콜릿,DDT, 휴지 등을 얻어 와야 했을 만큼 물자가 매우 귀했던, 절박한 시절이기도 했다. 이러한 와중에도 실력을 인정받은 나씨는 당시 대구에 있던 오리엔트레코드 녹음실을 빌려 정식 음반을 첫 취입한다. 전오승 작곡의 ‘밤의 탱고’,‘정든 님’ 같은 블루스 리듬의 곡들로 당시엔 녹음 시설과 방음 시설이 매우 열악해 어렵게 녹음을 끝낸 뒤 테이프를 틀어 보면 ‘재치국 사이소!’ 같은 당시 주위의 소음들이 종종 들어가 있어 몇 번이고 재취입해야 하는 소동이 다반사로 일어나던 시절이라 회고했다. 이 때 처음 사용한 예명이 나애심(羅愛心).‘나는 내 마음을 사랑한다.’라는 뜻을 담은 이름으로 ‘빈대떡 신사’로 유명한 가수 겸 작곡가 한복남씨가 지어준 것. 환도 직후, 영화배우로도 활동을 시작하는 그는 16㎜ 다큐멘터리 ‘여군’을 시작으로 ‘불사조의 언덕’ ‘미망인’ 등 전쟁영화에 이어 극영화 ‘구원의 애정’에서 첫 주연을 맡는다. 이 영화의 주제가가 ‘물새 우는 강 언덕’. 영화에서는 나씨가 이 주제가를 불렀고 음반으로는 백설희씨가 취입해 널리 알려진 노래다. 이어 문예영화 ‘물레방아’로 주목을 받은 그는 계속해서 계용묵 원작소설을 영화화한 ‘백치 아다다’에 캐스팅되는데 처음엔 기분이 매우 언짢았음을 숨기지 않았다. 가수로서 목소리 연기 또한 누구보다 자신 있었는데 하필 대사가 거의 없는 언어 장애인 역할이 맡겨진 것이 나름대로 불만이었던 셈. 그러나 6개월이라는 장기간에 걸쳐 촬영된 이 영화의 연출을 맡았던 이강천 감독은 늘 검은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고 그의 선글라스 아래에는 항상 눈물자국으로 얼룩져 있었다. 이 감독의 실제 다섯 살 난 딸이 바로 언어장애인이었기 때문. 해서 나씨는 ‘아다다’ 역을 위해 온몸을 던져 열연함과 동시에 ‘가고파’의 작곡가 김동진씨가 곡을 쓰고 홍은원씨가 노랫말을 만든 주제가 또한 발표되자마자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리며 큰 반향을 몰고 왔다. 결국 이 ‘백치 아다다’는 그의 대표곡이자 대표작으로 자리잡는다.1956년의 일이다.(계속) 대중음악평론가 sachilo@empal.com
  • ‘황진이 바람’ 한류 새 동력?

    드라마에서 영화, 뮤지컬까지…. 조선 최고의 기생 ‘황진이’가 대중문화의 코드로 떠올랐다. 물론 예전에도 스크린이나 브라운관에서 김지미·장미희·이미숙 등 당대 최고의 여배우들이 맡은 황진이를 만났지만 이번에는 뭔가 다르다. 뮤지컬로 장르가 확대됐을 뿐더러, 이들 작품 모두가 해외시장을 겨냥하고 있어 황진이가 한류 확산에 얼마나 기여할 것인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드라마 ‘황진이’(연출 김철규, 극본 윤선주, 제작 올리브나인)는 포스터 등 관련 사진들이 9∼13일 프랑스 칸에서 열리는 국제 영상프로그램 박람회 ‘MIPCOM 2006’에 소개됨으로써 세계시장에 얼굴을 알리게 됐다.KBS미디어 관계자는 “칸 최대 규모의 전시장 정문 상단 24.6m, 세로 11.5m의 대형 광고판에 황진이 비주얼을 올릴 예정”이라면서 “매년 1만명이 넘는 방송 콘텐츠 바이어들이 참석하는 만큼 한국 여인의 아름다움과 당당함을 세계적으로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5월 송혜교·유지태가 캐스팅되면서 베일을 벗은 영화 ‘황진이’(감독 장윤현, 제작 시네2000)는 북한 작가 홍석중의 소설을 영화화하면서 남북교류 영화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최근 영화진흥위원회의 ‘남북영화 기획개발비 지원사업’작품으로 선정돼 1500만원의 지원금을 받았다. 제작사측은 북한 금강산과 개성 박연폭포 등에서 촬영하는 것을 추진 중이다. 특히 그동안 청순한 이미지를 보여준 송혜교가 팜므파탈적인 기생을 맡아 노비 ‘놈이’(유지태 분)와의 운명적인 사랑을 어떻게 그려나갈지 관심거리다. 현재 30% 정도 촬영이 진행됐으며, 내년 2∼3월쯤 개봉할 예정이다. 3년간 준비과정을 거쳐 오는 11월25일부터 한달간 서울 유니버설아트센터에서 공연되는 창작 뮤지컬 ‘황진이-산다는 건 꽃과 같아’(제작 스탠딩컴퍼니)는 영화 ‘청연’으로 대종상 음악상을 거머쥔 독일 작곡가 미하엘 슈타우다허가 작곡을 맡았고, 전통적 소재의 대중화를 위해 김종국의 ‘한남자’를 작사한 조은희가 가사를 써 눈길을 끈다. 록그룹 보컬 출신 문혜원과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가스펠 등에 출연한 서정현이 황진이로 캐스팅돼 다양한 노래를 선사할 예정이다. 뮤지컬 ‘황진이’ 관계자는 “독일 등 유럽으로 진출하는 것을 추진 중”이라고 말했다.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톱·스타 10년 신성일의 영광과 고독

    톱·스타 10년 신성일의 영광과 고독

    10년간 주연작품이 5백편에 육박하고 있다. 국산영화의 3분의1 이상이 신성일(申星一·33)의 것이었다면 신성일아성(申星一牙城)이란 낱말만으로는 모자란다. 5백편 주연이란 기록은 세계 어느 영화사에도 있을 수 없고 앞으로도 있을 것 같지 않다. 한 마디로 60년대의 국산영화는 신성일에 의한, 신성일을 위한 신성일의 것이었다고 할 수 밖에. 10년 겹치기·5백편주연 3천만원 짜리 집도 짓고 영화제작자·연출자는 신성일(申星一)의 「스케줄」에 따라서 촬영 일정을 정한다. 배우가 촬영 「스케줄」에 따르는게 아니고 제작자가 배우의 「스케줄」에 맞춰 촬영계획을 짜는 것이다. 신성일이 한 영화에 주는 시간은 보통 1개월에 하루 정도를 꼽고 있다. 그가 이틀동안 출연해야 한다면 그 영화는 한 달을 더 기다려야 하는 셈이다. 69년에 내놓은 작품이 개봉된 것만도 이미 50편. 요즘도 『만종(晩鐘)』(신상옥(申相玉)감독)을 비롯해서 15편에 동시 출연 중. 한 때는 최고 33편의 겹치기 기록을 세웠다. 아무리 쉽게 만드는 영화라 해도 초인적인 정력이다. 겹치기 출연의 강행군 속에서 10년을 보내 신성일의 오늘의 느낌은-. 『연애 한번 못한다고 병신이라고 하더군요. 한가지만 바라보고 살았으니까 그 말이 곧 내 생활의 일면을 말해주는 것 같아요』 배우 신성일은 있어도 인간 강신영(姜信泳 본명)은 잃은 것 같다면서 『허무하다』고 덧붙인다. 그가 『로맨스·빠빠』(신상옥감독)로 「스타돔」에 나선게 59년(개봉은 60년). 10년간 나라에 바친 세금만도 5천만원이 넘는다. 68년에 7백20만원을 낸 그는 69년도에도 7백만원을 내어 연예인 중 최고 납세자의 위치를 계속 유지했다. 국가소득을 증대시켰다는 점에서도 신성일은 매우 중요한 인물. 23세 때 병아리 「스타」 신성일은 서울 종로구 계동에서 구화 1만7천환짜리 하숙생활을 했다. 신(申) 「필름」이 내놓은 별이란 뜻에서 붙여진 이름 신성일(申星一)이 그 때 신「필름」에서 받은 월급이 지금돈으로 5천원(구화 5만환). 하숙비 주고 옷 사입고 용돈이 항상 모자랐다. 그러나 3년 뒤엔 가회(嘉會)동에 50만원짜리 전셋집을 얻었고 다음해엔 소격(昭格)동에 1백20만원짜리를 샀다. 지금 살고 있는 이태원(梨泰院) 집은 63년에 7백20만원을 주고 산 것. 2층집을 전면개수해서 건평 1백52평, 싯가 3천만원 짜리 4층 저택으로 만들었다. 이것이 가옥구조의 변천으로 비유해 본 신성일의 경제성장률. 청춘(靑春)영화 「붐」타고 출세길 상대역 돼야 여우(女優)도 햇빛 10년동안 신성일의 상대역이 된 주요 여배우는 지금의 부인 엄앵란(嚴鶯蘭)과 김지미(金芝美), 태현실(太賢實), 김혜정(金惠貞) 그리고 문희(文姬), 고은아(高銀兒), 남정임(南貞任), 윤정희(尹靜姬) 등이다. 이 중 절반이 자의든 타의든 「스크린」과 멀어졌다. 신성일의 상대역이 됐다는 건 곧 「톱·스타」가 됐다는 증거고 상대 역에서 떨어졌다는 건 바로 인기저락의 상징처럼 여겨졌다. 문희, 남정임, 윤정희의 3차전이 벌어지기 시작할 때 세 배우는 신성일과 공연하기 위해 남모를 경쟁을 벌였다. 신성일의 의사에 의해 상대역이 결정된다는 소문도 있었다. 지금 이들 세 여배우가 차지하는 신성일과의 공연 비율은 대충 3대 1 정도, 어쨌든 공평하게 나눠졌다. 5백편에 육박하는 작품이지만 신성일의 위치를 확고히 다져준 건 60년대 상반기의 청춘(靑春)영화 「붐」이었다. 『가정교사』 『맨발의 청춘』 『성난능금』 등 당시 「아카데미」극장 단골의 청춘영화는 신성일의 「포스터」를 그려붙이는 것만으로도 우선 「만원사례」였다. 신성일의 연기개안으로 꼽을 수 있는 작품은 유현목(兪賢穆) 감독의 『아낌없이 주련다』지만 그가 꼽는 대표작은 『안개』 『까치소리』 『날개』 등 문예영화. 청춘 영화에서 올린 「스타」로서의 명성이 문예영화 「붐」에서 완숙의 연기력으로 결실한 셈이다. 「톱·스타」 10년의 신성일이 생각하는 「스타」의 조건은? 그는 『영화적인 「센스」 70%와 30%의 양식』이라고 단정했다. 『해보지 않은 사람은 영화연기가 퍽 안이한줄 알고 있다. 그러나 순간적으로 주의를 집중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예민한 관찰력, 적응 능력이 있어야 한다-』 『한국 연예인들이 「스캔들」때문에 기를 못 펴는 경우가 있다. 이것은 양식의 문제다. 30%의 양식을 70%로 활용하면 그런 것(스캔들)에 말려들 우려는 없다』 인기있는 날까지 배우로 현역 물러나면 감독생활 『연애 못한다고 감정이 메말랐다는 평을 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스타돔」에 오르고 정상을 극복한다는게 그리 쉬운줄 아는가?』 주변을 돌아볼 틈도 없이 오직 영화만 알고 살아 온 생활이 오늘의 위치를 갖다준거라고 그는 힘주어 말했다. 착실히 살았기 때문에 대중이 좋아하고 아껴주는 것 아니냐고 반문하면서. 그러나 정상만 바라보고 뛴 생활이 그 자신에게서 사생활을 빼앗아갔다고 후회도 했다. 『전혀 인생을 즐겨보지 못했어요. 위축된 생활, 긴장과 초조감으로 살았을 뿐인 걸요』 그래서 이제는 밤 12시 이후의 촬영은 안하기로 결심했다. 시간이 나면 「무스탕」자가용에 부인 엄앵란을 태우고 경인(京仁)고속도로 「드라이브」를 즐긴다. 70년 부터는 작품을 골라서 출연함으로써 무리한 겹치기를 안할 생각. 『사실 요즘 국산영화는 찍으면서도 의욕을 못 느껴요. 모두 여성취향의 눈물 영화 뿐이라 진력이 나요. 국산영화도 방향을 바꿔야 해요』 -앞으로 10년간은? 『인기가 유지될 때까지 배우를 하겠어요. 배우가 인기에 무관심하다는 건 거짓말이고 언제든 대중이 싫다면 물러서는거죠. 그렇게 되면 감독생활을 해볼 생각입니다. 그동안 여러 감독과 작품 하면서 많이 배웠어요. 출연만 할게 아니라 내 마음에 맞는 작품을 직접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자신이 만들고 싶은 영화는 얼마 전 상영된 『아듀·라미』같은 남성적인 영화. 「여자(女子)」행렬의 영화에 진력이 나서 「남자(男子)」용의 영화를 해보고 싶단다. 어쨌든 60년대 「스크린」을 휩쓴 그의 위치는 이제 「스크린」 안에만 제한돼 있진 않다. 연 7백만원 납세자인 그의 집엔 정치, 경제, 문화계 인사들의 출입이 잦고 단순한 「팬」 이상의 교류(交遊)를 즐기고 있다. 신성일이 어느 때쯤 정치가(政治家)가 되겠다고 나설지 전혀 부정만 할 일도 아니다. [선데이서울 69년 12/21 제2권 51호 통권 제 65호]
  • 어느날 갑자기 「스카우트」된 고상미(高想美)

    어느날 갑자기 「스카우트」된 고상미(高想美)

    최근 제작을 끝낸 『여인(女人)의 종착역(終着驛)』 (김응천(金應天)감독)에서 신선한 「마스크」를 뽐낸 고상미(高想美·20). 홍세미(鴻世美)·오수미(吳樹美)등 세기상사(世紀商事)가 내놓은 「미(美)」자 항렬의 셋째 신인이다. 본명은 고충금(高忠琴). 첫 작품이 나오자 마자 3편의 영화에 출연, 겹치기 출연 연습을 닦게 됐다. 69년 마지막에 행운을 잡은 재수 좋은 아가씨. 「데뷔」부터가 순탄했다. 고상미(高想美)는 수천면의 경쟁자와 겨뤄야 하는 공개 「콘테스트」같은 것을 거치지 않았다. 같은 무렵에 「데뷔」한 김명진(金明珍·렌의 애가(哀歌)) 윤연경(尹姸景·무영탑) 오수미(吳樹美) 등 신인은 까다로운 「콘테스트」를 거쳤지만 고상미만은 『배우될 생각도 안했는데』 갑자기, 극히 우연스럽게 「스타」가도에 나오게 됐다. 『친구와 어울려 영화사에 들렀다가 그 곳 고위층과 감독의 눈에 띈게』 수속의 전부. 그러면서도 고상미는 『마검(魔劒)』(임원식(林元植)감독) 『태양(太陽)은 늙지 않는다』 『나이프·장(張)』(두편 모두 권영순(權寧純)감독)에 주연, 기염을 올리고 있다. 『마검(魔劒)』에서는 남궁원(南宮遠)을 상대역으로 하고 『태양(太陽)- 』『나이프- 』에서는 박노식(朴魯植)·김지미(金芝美)와 공연. 「멜로드라마」인 「데뷔」작품을 포함해서 두편의 「멜로」와 두편의 「액션」 영화를 「데뷔」 몇 달 사이에 해내는 셈이다. 『스스로 예쁘다고 생각한 일은 없어요』로 시작해서 자신이 지나 온 얘기를 거침없이 쏟아놓는 품이 퍽 활달한 성격의 아가씨. 용모 역시 「순진·가련」에 그치는 정적인 미모가 아니고 어떤 활력을 느끼게 하는 매력을 갖고 있다. 다음에 고상미 자신이 말하는 대로의 이력을 더듬어 보면- 무용경력이 8년-서울産인 그는 숭의(崇義)여중 3학년 때부터 고전무용을 익혔다. 무용가 김문숙(金文淑)씨한테 3년 가량 사사했고 67년엔 일본 「라이온즈·클럽」의 초청으로 「도꾜」등 대도시 순회공연을 1개월가량. 귀국해서도 「워커힐」「코리어·하우스」등 초청공연에서 무용솜씨를 자랑했다. 그래서인지 그녀는 탄탄하고 비교적 굵은 지체(肢體)를 갖고 있다. 영화 『여인의 종착역』에서 그는 대담하게 옷을 벗고 이 굵직한 팔 다리를 자랑했는데 감독이 노린 점이 바로 이 풍만한 지체미(肢體美)였던 듯. 신인의 청순성과 「섹스·어필」의 공존이 「에로티시즘」에 박차를 가했을건 뻔하다. 영화에 출연하면서부터는 연극 연출가 이진순(李眞淳)씨에게서 연기공부를 했고 승마·운전 등 연기에 필요한 기술을 배웠다. 작곡가 박시춘(朴是春)씨를 찾아가 노래 공부도 했고 현재 취입은 안했지만 노래 솜씨는 「프로」급이라고 자화자찬. 그런가 하면 69년 4월엔 TBC-TV의 「탤런트」시험에도 응모하여 현직 「탤런트」의 명함을 갖고 있다. 1천여명 응모자중에서 뽑힌 TBC 8기 「탤런트」 15명중의 한 사람.『「여인의 총작역」은 시사회를 할때마다 모두 봤어요. 처음엔 나도 모르게 얼굴이 화끈거렸어요. 다시 한다면 그보다 훨씬 잘할 것 같아요』 「누드·신」이 부끄럽다고 생각한 것이 후회된단다. 『이왕이면 좀 더 아름답게 할수 있었을 텐데-』 그러면서도 어려운건 「누드」나 정사「신」이 아니고 『감정을 어떻게 빨리 얼굴 표정에 떠올리느냐는 것』이었다고 심각한 표정을 짓기도. 그래서 집에 돌아가서는 거울을 상대로 자신이 해낸 연기를 모조리 재연해 봤단다. 지금 생각 같아서는 앞으로 3편쯤 해보면 첫 작품처럼 어색한 대목은 없어질 것이라고 자위한다. 현재 한양대학교 무용과 2학년에 재학중인 高양은 영화계가 『막상 들어와보니 너무 복잡한 일이 많다』고 그 나름의 고충을 털어 놓았다. 연기연습, 영화출연하는 일 이외에 신경써야 할 일이 너무 많다고. [선데이서울 69년 12/21 제2권 51호 통권 제 65호]
  • 장훈과 모국색시 “몰랐지 3년”

    장훈과 모국색시 “몰랐지 3년”

    일본 「프로」야구 동영(東映)「플라이어즈」의 강타자 장훈(張勳)이 모국의 아리따운 아가씨를 아내로 맞기 위해 12월 3일 어머니 박분남(朴粉南) 여사와 함께 귀국했다. 3년 연속 일본 「패시픽·리그」수위타자로 동영(東映)「팀」의 「스타·플레이어」인 장훈(張勳)을 남편으로 맞게 된 행복한 아가씨는 67년도 준「미스·코리어」선(善)이었던 김영화(金英華)(23·제일은행 영업부 근무)양. 67년 11월초 어느 날 동영(東映) 「플라이어즈·팀」의 한국친선방문경기가 끝난 이틀 뒤였다. 실업야구 4차 「리그」기은(企銀)대 상은(商銀)의 「게임」이 한창 진행도중 노총각 장훈(張勳)은 아리따운 한국아가씨 2명을 동반하고 본부 귀빈석에 나타났다. 장훈(張勳) 바로 옆에 앉은 아가씨는 김영화(金英華)양, 그 옆엔 약간 나이가 든 아가씨가 일어(日語)를 모르는 김양을 위해 통역을 해주고 있었다. 어떻게 나왔느냐는 질문에 장훈(張勳)은 기은(企銀) 선수중 「스카우트」해 갈 선수가 있어 보러 나왔노라고 했다. 결혼은 언제 할 생각이냐니까 빙그레 웃기만 하고 옆에 앉은 김양을 돌아다 보았다. 통역을 맡고 있던 아가씨가 『일본에 계신 어머님의 최종 승낙을 맡아야 한다나 봐요』하고 귀띔을 해 주었다. 김양은 야구 「룰」에 전혀 백지인 모양이어서 「스퀴즈·플레이」가 벌어지자 장훈(張勳)은 그 요령을 자세히 설명해 주기도 했다. 당시 장훈(張勳)은 이미 김양을 일생의 반려로 점 찍어 놓았던 모양. 두사람이 처음 사귀게 된건 67년 11월이었다. 역시 동영(東映)「팀」의 한 사람으로 친선방한(親善訪韓) 경기에 출전하고 있던 장훈(張勳)이 제일은행 야구부감독인 박현식(朴賢植)씨를 만나 농반 진반으로 『중매 좀 서라』는 말에서 시작, 朴감독이 『마침 우리 은행에 새로 들어온 행원중 「미스·코리어」가 있는데 만나 보겠느냐?』고 제의하기에 이르렀다. 朴감독의 안내로 장훈(張勳)은 손님을 가장, 창구에 앉아있는 김양을 보 수 있었다. 호쾌한 「홈·런」왕(王) 장훈(張勳)도 미녀앞엔 약했다. 첫눈에 반해 버렸다. 결혼할 의사를 밝히자 박감독의 주선으로 그해 12월말 반도「호텔」에서 김양과 김양의 아버지 김상택(金尙澤)(55)씨와 공식적인 첫 선을 보았다. 김양의 집안에서도 「프로」야구의 「스타·플레이어」이자 백만장자인 장훈(張勳)을 사위감으로 마다 할 리가 없었다. 이래서 장훈(張勳)과 김양의 현해탄을 넘나드는 사랑의 편지는 한 주일도 거르지 않게 되었다. 올 해 다시 동영(東映)「팀」이 내한했을 때는 김양의 온가족이 총출동, 장래의 사위 장훈(張勳)이 호쾌한 「홈·런」을 날리는 것을 구경하기도 했다. 장훈(張勳)이 이번 어머니를 모시고 모국에 나온 것은 김양의 부모와 최종 협의 확실한 약혼날짜나 결혼날짜를 정하기 위한 것으로 이번 방한(訪韓)길에 최소한 약혼은 끝낼 모양이다. 양가 부모들이 합의한다면 결혼식까지 끝낼지도 모른다. 경남(慶南) 창녕(昌寧)이 고향인 장훈(張勳)은 1958년 8월 「오사까」대판(大阪) 랑화상고(浪華商高)의 학생으로 제3회 제일교포학생야구단의 일원으로 그리던 모국에 첫발을 디뎠다. 장훈(張勳)의 어머니 朴여사는 장훈(張勳)이 4세때 남편을 여의고 홀몸으로 3남매를 기르면서 「히로시마」서 한국음식점을 경영해왔다. 朴여사는 3남매에게 늘 배필은 한국사람이어야 한다고 말해 왔으며 큰 아들 세치(世治)(40)씨는 이징자(李澄子) 양에게, 또 사위도 한국인인 민대기(閔大基)씨를 맞았다. 그러니까 장훈(張勳)마저 金양에게 장가 들면 朴여사의 숙원은 모두 이루어 지는 셈. 장훈(張勳)이 일약 인기상승의 「스타·플레이어」가 되자 그의 주위엔 숱한 염문이 뒤따르기 시작했다. 인기여배우 김지미(金芝美), TV 「탤런트」선우용녀(鮮于龍女)등이 장훈(張勳)의 이름과 함께 화제를 뿌리기도 했었다. 또 현재 장훈(張勳)의 소유로 되어있는 「도꾜」명치신관(明治神官)앞 6층짜리 「맨션·아파트」를 관리하고 있는 모 일본여인이 장훈(張勳)과 동거중이라는 소문이 떠돌기도 했었다. 그러나 장훈(張勳)은 이런 지난 일들을 깨끗이 씻고 모국아가씨를 조강지처로 맞게 된 것이다. 3년 연속 수위타자도 결혼에 관한한 몇차례 범타(凡打)끝에 회심의 「홈·런」을 때리게 된 것. 張군의 신부가 될 金양의 집안은 원해 평북(平北) 철산(鐵山) 출신. 8·15해방후 월남, 아버지는 서울 용산(龍山)에서 미곡상을 경영하다가 현재는 동두천(東頭川)에서 미곡상을 차리고 있다. 4남매의 외동딸이자 맏딸인 金양은 서울서 상명여고(祥明女高)를 졸업, 경희대(慶凞大) 사학과(史學科)에 진학했으며 대학(大學) 2학년이던 67년 「미스·코리어」에 출전, 준「미스·코리어」 선(善)으로 뽑히고 이 때문에 제일은행에 특채되었다. 지금은 서울 용산(龍山)구 신계(新契)동 25의 9에서 남동생 셋과 함께 자취생활. 장훈(張勳)이 3일, 어머니 朴여사와 함께 귀국하기전만 해도 金양의 어머니 원정숙(元貞淑)(47)여사는 『전혀 사전에 알지도 못했으며 더군다나 12월 10일 결혼식 얘기는 터무니 없는 얘기』 라고 펄쩍 뛰었다. 실상 신계(新契)동 김양의 집은 결혼을 1주일 앞둔 신부의 집이라고 보기엔 너무도 준비가 없었다. 그러나 당사자인 金양은 『곧 어머니와 함께 귀국한다는 소식은 전해왔어요』라면서 그동안 계속 장훈(張勳)과 사랑의 편지가 오고 간 사실은 시인. 그러면서 金양은 『그이가 하도 효자라서 자기 자신의 의사는 결정되지만 최종결정은 어머님 朴여사가 하게 될 것이라고 했어요』하며 朴여사가 金양을 만나보고 마음에 들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12월3일 「노스웨스트」편으로 어머니와 함께 입국한 장훈(張勳)선수는 그의 반도(半島)「호텔」 840호실에 투숙, 약 20일간 머무를 예정이라고 말했다. 어머니와 함께 귀국한 표면상의 이유는 이모를 만난다는 것. 그는 반도(半島)「호텔」에서 기자와 만나 김영화(金英華)양과의 약혼설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여성인 김영화(金英華)양에게 대단히 미안하게 됐다. 나는 金양의 이름을 입밖에 낸 일조차 없다. 金양은 내가 만난 몇몇 여성 중에서 가장 인상 깊게 남아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결혼은 내 한 사람의 의사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그런 단계니만큼 긍정도 부정도 하기 싫다. 金양에 대해서는 이 이상 물어주지 말아달라. 나도 빨리 결혼을 하고싶은 것은 사실이다』 [선데이서울 69년 12/7 제2권 49호 통권 제 63호]
  • [심상덕의 서울야화](16)거지들이 사랑했던 스타 차홍녀

    [심상덕의 서울야화](16)거지들이 사랑했던 스타 차홍녀

    ‘대종상 영화제’를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겁니다. 그동안 우리나라 영화의 발전과 함께 영화에 대한 관객들의 사랑도 해가 갈수록 점점 더 뜨거워지고 있고요. 그런데 옛날 영화 중 1965년 ‘김지미’와 ‘신영균’이 주연했던 전택이 감독의 ‘홍도야 우지마라’를 알고 있을 겁니다. 실제로 이 영화를 본 적이 없다 해도 그동안 연극으로 많이 공연이 됐고, 지난 1950년대에도 같은 제목의 영화가 상영된 적이 있었거든요. 또 1930년대 후반에도 인기몰이를 했던 영화였습니다. ‘홍도야 우지마라’는 지금으로부터 꼭 70년 전인 1936년 동양극장에서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라는 제목으로 연극으로 공연됐던 작품이었습니다. 이 연극에서 홍도 역을 맡았던 배우가 ‘차홍녀’였습니다. 홍도의 오빠역인 경찰관은 그 시절 첫손에 꼽히던 배우 ‘황철’이 맡았고요. 이 작품을 쓴 극작가 ‘임선규’는 처음부터 여자 주인공엔 차홍녀를 생각했었기에 ‘홍도’라는 이름이 등장하게 된 거고, 또 오빠인 경찰관 역엔 황철을 염두에 두고 있었기 때문에 ‘철수’라는 등장 인물을 만들어 냈던 겁니다.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일찍 부모를 잃고 의지할데 없는 두 남매. 홍도는 오빠의 학비를 벌기 위해 기생이 된 뒤, 오빠의 동창생 청년과 사랑에 빠집니다. 그 청년은 이미 약혼녀가 있는데도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홍도를 아내로 맞아들이는 거죠. 그러나 홍도는 남편이 유학을 떠나자 소박을 맞고 쫓겨나게 되는 겁니다. 유학에서 돌아온 남편은 집안 식구들의 모함만 듣고 홍도를 마치 부정한 여자로 치부하면서, 전 약혼자와 결혼할 생각을 갖게 되고 이성을 잃은 홍도는 본의 아니게 전 약혼녀를 살해하게 돼 경찰관이 된 오빠에게 수갑이 채워져 끌려가야 하는 기구한 운명을 다룬 작품입니다. 그런데 ‘대종상 영화제’가 있는 오늘.‘서울야화’에서 왜 ‘홍도야 우지마라’라는 연극과 영화 얘기를 하느냐고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홍도야 우지마라’의 주인공 ‘차홍녀’가 인기절정의 여배우였지만 너무나 아까운 나이 25살에 꽃잎을 떨구게 됐던 겁니다. 그 이유가 뭐였는가 하면요. 당시 극단 ‘아랑’에서 지방 순회공연을 돌던 1940년 겨울. 강원도 철원에서 서울로 돌아오기 위해 기차역에 나갔는데 그날 따라 기차가 한 40분 정도 연착이 되는 바람에 기차역 주변을 서성이고 있을 때, 그 추운 날씨에 역 앞에서 온몸을 웅크리고 덜덜덜덜 떨면서 구걸하는 거지를 발견하게 됐던 거죠. 바로 이 순간 차홍녀가 그 거지 앞을 그냥 지나쳤다면 아무런 탈이 없었을 겁니다. 그러나 평소 인정이 많던 차홍녀는 그 거지에게 적선을 했던 겁니다. 거지는 그 인정이 고마워 손을 내밀었는데 차홍녀가 따스하게 거지의 손을 꼭 붙잡아 줬던 거죠.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입니까. 그러나 바로 그 순간, 그 거지와의 접촉에서 그 당시 한창 유행하고 있던 ‘천연두’에 걸려 지방공연을 다녀온 지 며칠 만에 죽어버린 겁니다. 그 당시 ‘천연두’에 걸리면 전염병치료소인 ‘순화병원’에 강제로 수용돼 비참한 대우를 받았기 때문에 그녀의 가족들은 이같은 사실을 숨기고 한약을 먹이면서 이불을 뒤집어 씌웠다는 겁니다. 차홍녀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그 원인에 대해 서울시내에 소문이 순식간에 퍼져나갔고, 그 당시 동양극장 앞에서 관객들을 상대로 구걸하던 거지들은 물론 서울시내 다른 지역 거지들에게도 소문이 퍼져나가면서 차홍녀의 장례식이 있던 그날, 거지들이 인산인해를 이루었던 겁니다. 그리고 당시 화장터가 있었던 홍제동까지 거지들이 상여의 뒤를 길게 따라가면서 대성통곡을 했다고 합니다.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 우리에게는 ‘홍도야 우지마라’로 더 잘 알려진 연극을 통해 인기 정상에 올랐던 차홍녀. 그녀는 비록 스물다섯살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세상을 떠난 지 60여년이 지난 지금에도 ‘차홍녀’의 사진을 들여다 볼 때마다 아직도 우리 가슴 속엔 마음씨 고왔던 그 시절의 스타 ‘차홍녀’의 따뜻한 체온이 전해지는 듯합니다.
  • 미스·淸州煙草製造廠 임승월(林承月)양 - 5분 데이트(57)

    미스·淸州煙草製造廠 임승월(林承月)양 - 5분 데이트(57)

    『엄마와 오빠 한분 있는 외동딸, 19세이고 직장생활 1년 미만의 초년생(初年生)』 수줍은듯 밝히는 이런 신상(身上)이 조금도 실감나지 않는 듬직하고 어른스러운 표정이다. 임승월(林承月)양이 청주(淸州)연초제조창 자재과에 취직한 것이 69년 1월15일. 날짜까지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다. 지금 청주연초제조창은 여성 1천명, 남성 8백명의 대식구. 그중에 「퀸」으로 뽑힌 것이 송구스러워 못 견디겠단다. 충남 광주(光州)군에 있는 광흥여고(光興女高)를 68년에 졸업했다. 주산(珠算) 1급의 실력파이기도 하다. 『탁구도 좀 치는 것 말고는 방에 앉아서 책 읽는게 취미예요. 일요일에만은 여자친구들과 함께 근교에 산책을 나갑니다』 남자친구는 물론 없단다. 『가정적이고 건실한 남성이 이상형(理想型)이에요. 충청도 태생이라서 그런지 결혼은 단연 중매결혼을 원하고 있고요』 월급은 타는대로 꼬박 꼬박 적금을 들고 있다. 결혼준비 적금일까. 얼굴만 발그레 붉히고 묵묵부답. 김지미, 문주란의 『돌지 않는 풍차』, 김치찌개, 자주 빛, 한복등이 林양이 「좋아하는 것」의 「리스트」. 『아버지는 경찰관이셨는데 6·25때 전사하셨어요. 어머니께서 무척 고생하시면서 저희를 키우셨죠』 오빠 임승규(林承圭)씨는 사기업체 회사원. 『미국영화가 화려하고 「해피·엔딩」이 되어서 좋아요. 한달에 3편쯤 봐요. 많이 보는 편인가요?』 영화감상의 취향까지 분명히 밝히는 똑똑한 「오피스·레이디」다. [선데이서울 69년 11/16 제2권 46호 통권 제 60호]
  • 주말에 뭘 보러갈까

    ●미술 ■ 박종민 조각전 27일까지 서울 가회동. 북촌미술관박종민은 투박하면서도 거친 돌을 온화한 맛으로 살려내는 작업을 해온 작가. 흑·백·적색 등 다양한 대리석을 투박하게 처리함으로써 질박한 한국적 미감을 보여주는 다양한 형태의 작품들을 선보인다.(02)741-2296. ■ 제14회 ‘살롱·드·쁘랭땅’ 한·일 국제회화제 18일까지 서울 태평로1가 프레스센터빌딩 1층 서울갤러리. 한·일 서양화가들이 지난 93년부터 일본 요코하마와 서울에서 매년 번갈아 열어온 교류전. 곽동효, 강석진, 구자승, 우사다 야스오, 이가라시 미치코 등 두 나라 작가 55명이 작품을 선보인다.(02)2000-9737. ■ 정대현 개인전 21일까지 서울 팔판동 갤러리 인. 시간과 공간, 순환 등의 주제를 단순하고 간결한 형태의 조각에 담아온 작가의 10번째 개인전.3m가 넘는 원추·원뿔형 스테인리스스틸 작품 등 조각 15점과 드로잉 30여점이 전시된다.(02)732-4677. ●어린이 ■ 목각인형 콘서트 7월15일까지 월∼목 오전 11시, 금 오전 11시·오후 4시, 토 오전 11시·오후 2시·4시 북촌 창우극장. 러시아에서 인형극을 공부한 김종구의 정통 유럽 마리오네트 인형극.1만 5000원.(02)926-2050. ●클래식■ 김지미·태정화 듀오 리사이틀 21일 오후 8시 예술의전당 리사이틀홀.‘성가원’ 후원기금 마련을 위한 자선음악회.‘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K.545’등 연주. ■ ‘바이올린의 여제’ 안네 소피 무터 내한 공연 18일 오후 7시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소나타 KV 376’등 모차르트 소나타곡 연주. ●연극 ■ 바보각시 7월2일까지 게릴라극장. 마을 사내들에게 자신의 살을 나누어주다 추방된 여인의 이야기인 살보시 설화를 현대적으로 되살렸다. 신도림역에서 포장마차를 하는 바보각시의 죽음을 통해 메마른 도시에 구원의 메시지를 전한다. 연희단거리패 창단 20주년 기념작. 이윤택 작·연출, 이윤주 김소희 등 출연. 화∼금 오후 7시30분, 토 오후 4시·7시30분, 일 오후 3시·6시 1만 5000∼2만원.(02)763-1268. ■ 한여름밤의 꿈 17일 오후 7시30분,18일 오후 3시·6시 19·20일 오후 8시 LG아트센터. 요정은 도깨비로, 서양음악은 전통 국악기로 탈바꿈하는 등 셰익스피어의 원작에 한국적인 옷을 입혔다.27일∼7월1일 영국 런던 바비칸센터 무대에도 오른다. 양정웅 연출, 정해균 김준완 등 출연.2만∼4만원.(02)3673-1390. ■ 나생문 7월2일까지 화∼금 오후 8시, 토 오후 4시·7시, 일 오후 4시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진실은 과연 존재하는 걸까. 영화 ‘라쇼몽’으로 널리 알려진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소설을 각색한 작품. 대나무숲 배경과 타악 연주가 긴장감을 더한다. 구태환 연출, 최광일 장영남 등 출연.2만∼3만원.(02)741-3934. ●뮤지컬 ■ 맘마미아 18일~9월10일 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 2004년 국내 초연 당시 중년 관객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은 흥행작. 결혼을 앞두고 친아버지를 찾아나선 딸과 씩씩한 미혼모 엄마의 이야기가 전설의 그룹 아바의 음악안에 담겨진다. 박해미 이태원 이경미 등 출연. 화∼금 오후 7시30분, 토·일 오후 3시·7시30분. 3만∼13만원.1588-7890. ■ 폴 인 러브 8월27일까지 화∼금 오후 8시, 토 오후 4시·7시30분, 일 오후 3시·6시30분 연강홀. 동생의 약혼녀를 사랑하는 바람둥이 형과 결혼공포증에 시달리는 동생, 그리고 둘 사이에서 갈등하는 약혼녀의 예측불허 삼각관계. 성재준 작·연출, 이지혜 작곡, 김다현 이신성 등 출연.2만∼4만 5000원.(02)708-5001. ■ 김종욱 찾기 7월30일까지 화∼금 오후 8시, 토 오후 4시·7시, 일 오후 3시·6시 대학로 예술마당1관. 첫사랑에 관한 팬터지를 소재로 한 로맨틱 코미디뮤지컬. 해외여행에서 운명처럼 만난 첫사랑 김종욱을 찾아나선 한 여자의 좌충우돌 사랑기. 장유정 극작·김혜성 작곡, 김달중 연출, 오만석 엄기준 등 출연.4만원.(02)501-7888.
  • 인기가수들은 뭘먹고 사나

    인기가수들은 뭘먹고 사나

    한국연예협회는 최근 가수들의 방송출연료를 1백% 인상해달라는 내용의 요청서를 각 방송국에 내놓았다. 현재까지 가수들이 방송국에서 받는 「개런티」는 A급이 한번 출연에 1천2백원(라디오)에서 1천8백원(TV). 신인 가수라면 출연료가 문제될 것도 없지만 결코 후한 대접은 못된다. 여기서 현역 대중가요 가수들의 수입원들을 들춰보면-. 대중가요 가수를 그들의 활동분야별로 나눠보면 「라디오」·TV 「레코드」취입 극장공연·「나이트·클럽」출연등으로 구별할 수 있다. 환갑잔치나 야유회등 사석(私席)까지 포함하면 그런대로 꽤 다채로운 셈이랄까? 그러나 한국연예협회에 등록돼있는 가수 8백40여명중 「레코드」계나 방송계에서 활동을 유지하고있는 가수는 불과 30여명 안팎이다. 「레코드」판매율이나 방송출연회수가 가수의 인기척도라면 손꼽을 수 있는 인기가수는 열손가락으로 헤아릴정도. 현재까지 방송국이 이들 출연가수에 지불하는 「개런티」는 그 인기도에 따라 A·B·C 3등급으로 구분했다. 「라디오」의 경우 노래한곡 녹음에 A급이 1천2백원, B급이 1천원, C급이 7백원선. 公開방송은 조금 더해서 A급이 1천8백원이고 B급 1천5백원, C급 1천3백원선. 가수의 인기가 유동적인한 방송국책정의 등급이 반드시 고정적인건 아니다. 그러나 연예협회측은 이 금액이 67년 6월에 책정된 것임을 지적하면서 최소 1백50%는 인상해야한다는 주장이다. 사실상 가수가 방송출연료를 가지고 생활을 유지한다는 것은 한국실정으로는 아직 요원한 얘기다. MBC-TV가 새로 창설되면서 벌어진 TV「탤런트」쟁탈전은 TV「탤런트」의 줏가를 부쩍 높여놨다. 그러나 비슷한 쟁탈전이 가수쪽에도 벌어지고 덩달아 가수의 줏가도 오를 것이란 기대를 거의 찾을 수 없다. 가수중에는 「개런티」는 안받더라도 출연만 시켜주면 그것으로 만족하겠다는 사람이 많다. 방송에 실려야 노래가 「히트」할 수 있다는 상관관계 때문에 돈보다는 우선 출연 그 자체에 열을 올린다. 심한 경우는 작곡가·가수가 「레코드」를 안고 방송국으로 뛰어 다니며 출연경쟁을 벌이고. 가수의 「개런티」는 극장출연에서 비교적 오붓하다. 「쇼」흥행단체의 집합체인 한국연예단장협회는 아예 가수 하나하나에 단가를 붙여놨다. 하루 극장 출연료가 최고 2만5천원에서 최하 1천원. 비공식적이긴 하지만 5백원 일당의 무명신인도 있고 아예 「개런티」를 받지 않고 나가는 무명도 있다. 제일 비싼 가수는 이제까지 최희준(催喜準), 이미자(李美子)(각 2만5천원) 두사람이었다. 패티 金이 하루 10만원을 홋가했고 尹福姬(윤복희)도 그랬지만 그 가격으로는 아무도 쓰지 않아 흥정이 성립 안됐다. 가수 남진(南珍)은 영화에 출연한 이후 가수보다 배우로쳐서 하루 5만원정. 배우의 무대출연료는 가수와 비교할 수 없게 비싸서 A급인 김지미(金芝美), 신성일(申星一), 문희(文姬), 남정임(南貞妊)등은 하루 10만원씩 받았다. 또 한가지 최근의 동향으로는 인기상승의 조영남(趙英男)과 「펄·시스터즈」의 파격적인 「개런티」를 들 수 있다. 신인이란 「레테르」를 아직 그대로 지닌 이들은 최희준(催喜準), 이미자(李美子)보다 많은 3~4만원을 받고 있으면서도 그들보다 더 잘 팔리고 있다. 이미자(李美子), 최희준(催喜準) 다음의 A급 2만원짜리는 이금희(李錦姬), 김상희(金相姬), 현미(玄美), 배호(裵湖). B급으로쳐서 1만5천원짜리에는 위키李, 유주용(劉冑鏞), 박재란(朴載蘭) 한명숙(韓明淑), 金세레나 등이 있다. 그다음 가수들의 중요한 수입원은 밤일, 즉 「나이트·클럽」등 술집에 나가서 노래하는데 있다. 보통 하룻저녁에 2~3개소의 「클럽」을 왕래하면서 노래 2곡씩을 부르고는 겹치기 수입을 올린다. 출연료는 극장보다 싸서 최고가 하룻저녁에 2만원. 이 2만원짜리는 영업체가 자체선전을 할때 간판구실로 내세울 뿐이고 장기계약은 물론 그 이하, 많아서 1만5천원이다. 「나이트·클럽」을 부지런히 뛰는 가수로는 배호(裵湖), 이상열(李相烈), 「펄·시스터즈」, 金세레나, 문주란(文珠蘭), 정훈희(鄭薰姬), 리타金, 김하정(金夏廷), 황인자(黃仁子), 조영남(趙英男), 하남궁(河南宮), 이석(李錫)등을 꼽을 수 있다. 서울의 「클럽」중 음향시설이 좋다는 K「클럽」과 V「클럽」이 가수들로는 제일 나가기 좋아하는곳. A급 가수는 거의 이 두「클럽」에 한두번이상 출연경력을 갖고있다. 「펄·시스터즈」의 K「나이트·클럽」의 출연료가 하룻저녁 1만5천원이니까, 밤 출연료로는 최고액인셈. 하룻저녁에 두서너군데씩 자리를 바꾸는 문주란(文珠蘭), 배호(裵湖), 정훈희(鄭薰姬)는 각 1만원이 못되지만 겹치기 수입으로 그 2,3배로 늘릴 수 있게 마련이다. 그 다음 「디스크」취입에 의한 수입. 「디스크」가 가수의 상품이고 그 발매부수가 곧 인기의 척도라면 가수의 수입은 이 분야에서 확실히 보장되어야 할 것 같다. 사실 몇몇 인기가수를 둘러싼 「레코드」제작자간의 전속 쟁탈전은 차차 심각해지는 상태이기도 하다. 1년간 전속료로 최고 1백만원이 홋가되고 1급이라면 50만원쯤은 받는다는 게 상식처럼 보인다. 그러나 사실상 가수의「디스크」취입료는 아직 대단한게 못된다. 전속의 경우 계약금 외에 2~5만원의 월급을 받고 「프리」의 경우는 최고가 곡당 2만원정도의 취입료. 조영남(趙英男)이 곡당 2만원을 받고 김상희(金相姬)가 곡당 1만5천원을 받고 있다. 「디스크」계의 인기 주라면 이미자(李美子)를 필두로 패티김, 남진(南珍), 「펄·시스터즈」, 최정자(崔貞子), 배호(裵湖), 은방울자매, 김상희(金相姬), 金세레나, 문주란(文珠蘭), 정훈희(鄭薰姬) 정도. 이밖에 고관이나 재벌의 경사에 초청되어 의외의 수입을 올리는 가수도 없지않다. 환갑집의 단골 가수로는 金세레나가 꼽히는데 거기서 받는 사례는 보통 5~10만원정. 엉뚱하게 큰 목돈을 벌기도 하지만 누구나 바람직한 수입원은 결코 못된다. [ 선데이서울 69년 8/3 제2권 31호 통권 제45호 ]
  • 아시아영화제 프리·섹스·무드

    아시아영화제 프리·섹스·무드

    노골적 섹스•신들 全裸 性交(전라 성교) 장면도 여태까지의 大賞(대상) 곧 감독상의 관례를 깨뜨리고 작품상 감독상이 두개로 나누어 수상된 것도 「아시아」영화제의 이변이었지만 「섹스」와 잔혹의 싸움에서 前者가 이겼다는 얘기가 된다. 감독상을 차지한 申相玉(신상옥)감독의『李朝女人殘酷史(이조여인잔혹사)』가 작품상을 차지하지 못한 것도 바로 이 때문. 주최국인「필리핀」에 돌아간 주연남우상 「릭•로드리고」의 출연영화『이고로타』가「필리핀」 측의 자신만만한 기대에도 불구하고 고배는 마셨지만 이작품이 준「쇼크」는 컸다. 山속 추장의 딸과 도회청년과의 사랑을 그린 이 영화는 대담한「섹스」묘사로 주목을 끌었다. 全裸(전라)로 性交(성교)하는「신」이 기성•교성을 발하면서 2분씩 여러 번 나타나는데 단지「무브먼트」만 없을 뿐이다.이 영화는 지난해 이곳서 9개월에 걸친「롱•런」을 한 작품인데 노골적인「섹스•신」들은 國內(국내)공개때는「커트」되었었다고. 비단 이 작품뿐만 아니라「홍콩」의『죽음의 終末(종말)』, 日本의 『大部』『검은 도마뱀』등에도「섹스」는 노골적으로 나타났다. 『李朝女人殘酷史』에도 역시『섹스』가 아름답게 묘사되어 있다는 평을 받았으나 예의 殘酷調(잔혹조)가 점수를 잃게 한 셈. 기미 알아차린 홍콩측이 출품작 바꿔 작품상차지 이러한 움직임을 알아차린「홍콩」측은『鐵手無情(철수무정)』을 내놓았다가 슬그머니『三笑(삼소)』란 唱劇(창극)으로 바꾸어 결국 작품상을 탔다. 잔혹을 거부한 이번 심사의 흐름은 심사위원들 가운데 독실한 불교도, 회교도가 많았다는데 그 원인이 있었다는 얘기다. 어느 심사위원은「도꾜」나 서울에서「페스티벌」때는 영화의 주제가 疾病(질병)이었는데 이젠「섹스」로 바뀌었다고 의미있는 웃음을 지었다. 감독상은 한국측의 경합-申相玉(신상옥)감독이 8점, 뒤쫓은 李星究(이성구)감독이 6점이었다. 주연 남우상은 ①「릭•로드리고」②申榮均(신영균) ③中代達也(日•『御用舍』주연) 의 순위로서 申榮均 은「네이티브」하다는 평. 주연여우상은 1위 金芝美(김지미)『너의 이름은 여자』2위도 金芝美(李朝女人殘酷史) 3위가「샤리토•솔리스」(比•『이고로타』) 4위가 尹靜姬(윤정희)(『당신』)였다. 尹靜姬는「섹시」하다는 평을 받았다. 한가지 놀라운 것은 이번 영화제에서 남우조연상의 金喜甲(김희갑)씨가 최고득점을 했다는 것.10점만점에 9.18점을 얻어 당당 최고득점. 주연여우상•감독상을 비롯하여 6개부문에 걸쳐 빛나는「트로피」를 한국이 차지한「아시아」영화제 시상식은「마닐라」하늘아래『아리랑』의 감격적인「멜로디」를 메아리지게 했다. 20일 하오7시에 열린 폐회식에선「마르코스」比대통령,「빌레가스」「마닐라」시장, 그리고 3천여명의「필리핀」시민이 초록색 노랑 치마저고리로 단장한 「아시아의 톱•스타」金芝美(김지미)에게 열광적인 박수를 보냈다. 30여명의 교포들은 기쁨의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아시아」영화제 집행위원회 부회장 이병일씨는 식이 진행되는 동안 단상 중앙「마르코스」대통령의 오른쪽에 나란히 앉아 韓•比 두나라의 우의를 다짐했으며 폐회연설을 했다. 심사결과가 발표되는 동안「코리어」의 이름이 여섯번 울려 퍼질때마다 박수가 장내를 진동했다. 悲劇(비극)부문기획상(장구와 춤)부터 시작하여 감독상(申相玉『李朝女人 잔혹사』)「시나리오」상 (李恩成(이은성)•작품『당신』) 편집상 유재원 (『봄•봄』) 조연남우상 金喜甲(『새 색시』) 그리고 여우주연상의 차례로 한국 대표들이 단상에 올라가 「트로피」와 상장을 받을 때마다 「코리어!」란 환호가 터져나왔다. 「갈라•쇼」구경온 교포는「아리랑」민요에 눈물흘려 이러한「코리어」에의 열광은 뒤이어 펼쳐진「갈라•쇼」에서 최고도에 달했다. 「후라이보이」의 「판토마임」과 擬聲(의성)「쇼」는 웃음을 폭발시켜 진행이 중단되는 소동까지 벌였다. 金芝秀양의 부채춤,「패티•金」의『4월이 가면』이 갈채를 받았으며,『아리랑』이 울려 퍼지자 교포들은 손수건을 적셨다. 한편 21일 하오8시 이곳『산•미구엘』회관에서 베풀어진『한국영화의 밤』에선 이번 영화제에서 기획상을 탄『장구와 춤』과 주연 여우상을 차지한『너의 이름은 여자』가 상영되었다. 이 모임엔 「잉글레스」「필리핀」외무차관을 비롯, 영국대사,「파키스탄」대사등 많은 외교사절이 참석했으며 金芝美를「베스트•액트레스•인•아시아」가 아니라 「베스트•액트레스•인•더•월드」라고 격찬했다. [ 선데이서울 69년 6/29 제2권 26호 통권 제40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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