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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행중의 최상주가 입아귀를 비쭉하고 나서 면박을 주었다. “성깔하구선, 쳐다보는 데 체면 깎이나?” “모두 나만 쳐다보는 까닭이 나변에 있나?” “이 방안에 있는 행중 식구들 중에 살송곳 박는 솜씨가 출중하다는 뜻인데, 성깔부터 벌컥하면 어떡하나. 임자는 성질 올곧지 못한 수탉처럼 걸핏하면 핏대를 곤두세우고 대드나?” “어허, 이런 봉패가 있나. 여러 동무끼리 두둔하지는 못할망정 여러 총중이 보는 면전에서 창피를 주면 지렁이도 꿈틀하는 법이야.” “연잎에 물방울 붙는 것을 본 적이 없듯이 자기 행실이 옳으면 감히 욕을 들을까.” 정한조가 나서 오금을 박아주었으니 망정이지 다른 행중이 싸잡아 부아를 돋우었다면, 방구석에 있던 목침이 날아가는 변고가 벌어질 뻔했다. 그런데 윤기호의 말이 언중유골이라고 생각했던 최상주가 지나간 얘기를 다시 되돌려 곱씹고 나섰다. “아니, 우리가 한강 떼배 사공들보다 주머니가 가볍다는 말씀은 듣기 거북하네요. 물길과 산길을 내왕하며 연명하는 게 다를 뿐 가가예문이라고 염낭쌈지 무겁고 가벼운 것은 견주어 보아야 아는 것 아닙니까. 한강 떼배 사공 놈들 울진의 백두대간 금강송을 몰래 벌목해 모리를 챙긴다는 소문이 자자하다는 것 알고 있습니까?” 정한조에게 한주먹 쥐어박혔던 윤기호가 서둘러 손사래를 치며 사과하였다. “아이고. 그렇구말구요. 제 주둥이가 가벼워 창졸간에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혜량하십시오.” 금세 안색을 바꾸어 영색을 짓는 윤기호를 바라보며 껄걸 웃는 중에 정한조가 말했다. “술청거리 색주가에 주등이 켜지기 전에 물상객주들 찾아가서 겨냥한 물화부터 흥정하게. 전대들 단단히 조여 매고 들치기, 날치기, 소매치기는 고려 적부터 있어왔고 지금도 마찬가지일세. 아니면 임소의 반수하며 나한테 혼쭐이 날 줄 알게들.” 볼일이 있다며 행수가 먼저 자리를 뜨자, 행중 몇이 뒤따라 일어서고 몇 사람이 남았다. 어딘가 미련이 남아 냉큼 일어서지 못하는 것을 눈치챈 윤기호가 금방 안색을 바꾸고 남은 사람들에게 소곤소곤 목소리를 낮추었다. “울진 포구로 회정하자면, 썰렁한 접소에서 3, 4일은 족히 기다려야 할 것 아니겠소. 행수가 회정길을 서두른다고 댁들도 덩달아 학춤을 출 수야 없지 않겠소. 유기전이니 시게전이니, 포목전이니 원매할 물건들이 도가에 쌓여 있지만, 흥정이란 시일을 두고 밀고 당겨야 길미가 많은 법이란 것을 시생만 알고 있는 것이 아니지 않소. 괜히 서두르다 보면 억매흥정에 무단히 악명 쓰기 십상입니다. 아시다시피 우리 인생 산다는 것이 칼 물고 뜀뛰기가 아닙니까. 어디 그뿐입니까. 때에 전 입성으로 행로가 번다한 병문 거리로 나가서 해동갑으로 발서슴해본들 반갑게 맞이하는 일점 혈육인들 있습니까. 모두가 허망할 뿐입니다. 길미에만 눈독들이지 말고 쌓여 있는 행역들도 풀어주어야 맛이지요.” “어디 좋은 데가 있습니까?” “시생이 누굽니까. 이 내성장 병문 거리에서 여립꾼으로 잔뼈가 굵은 처지가 아닙니까.” “포주인 말씀이 그럴싸합니다. 거느린 가솔도 없는 처지에 아득바득 이문을 노려서 어디다 쌓아두겠습니까.” “두말하면 잔소리지요.” 그들은 성애 먹던 소반을 밀치고 약고 꾀바른 윤기호와 함께 어물 도가를 나섰다. 벌써 해는 지고 멀리 바라보이는 산허리에 희미한 저녁 이내가 비단 폭을 두른 듯 치렁치렁하게 걸려 있었다. 윤기호가 먼발치로 선머리에 서고 네 사람은 그 뒤를 따랐다. 도감 정한조가 으름장을 놓았던 터라, 누가 염탐이라도 하고 있는 것처럼 뒤통수가 쭈뼛거렸으나, 색주가에서 벌어질 짜릿짜릿한 광경들이 뇌리에 떠올라 윤기호를 뒤따라가는 발걸음을 되돌릴 수 없었다. 계집의 사타구니에 콧등을 박아본 지가 까마득한 옛날로만 생각되었다. 따지고 보면 한 달포 전에 길가에서 인심 좋은 들병이를 만나 육허기를 채운 사정도 없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런 경우를 당하면 어찌된 셈인지 그것이 까마득하게 먼 옛날에 겪었던 일로만 생각되는 것이었다. 해가 진 후에도 길거리는 심심찮게 오가는 길손들로 분주했다. 좌반전, 어리전, 드팀전, 애막, 황화전들을 벌였던 난전 좌판 어름에는 노인네들과 철부지들이 뒤섞여 횃불을 켜들고 땅에 떨어진 낙곡이나 엽전을 줍자고 야단이었다.
  •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반수님께서도 안녕하신지요?” “예. 별 탈 없이 지내고 있었지요.” “이번 파수에는 어떤 물화를 가져갈 요량입니까?” “궂은 날씨에 소금섬을 지고 오느라 행중 모두 뼛골이 어긋날 정도였소. 그래서 우리 행중은 보행객주에 등짐을 내리면 너 나 할 것 없이 정강이를 내놓고 쑥찜질하느라 분주하오. 젊을 땐 얼추 쑥으로 다스린다지만, 나잇살이나 들면 병증이 골수에 사무쳐 기동이 임의롭지 못할 것이오. 그래서 이번 파수에는 피륙을 흥정하든 담배나 곡물을 흥정하든 동무들에게 맡겨 두려 하오. 행중 식구들과 오랫동안 작반하면서 살펴보았소만, 그만하면 나름대로 안목을 가졌고 눈썰미도 출중해서 모두 제 그릇을 가진 터에, 도감이라 해서 감 놓아라 대추 놓아라, 사사건건 간섭이 낭자하면 여기저기서 불퉁가지들 내겠지요.” 정한조의 말에 둘러앉았던 동무들 중에 어떤 사람은 빙긋 웃고, 어떤 사람은 떨떠름해서 마뜩잖아하였다. “임방 하직하고 도가로 오는 중에 술청 거리 앞을 지나치게 되었는데, 어디서 논다니들이 떼로 몰려왔는지 예전과 달리 퍽이나 분주하더군.” 정한조가 술청 거리를 지나오면서 받은 뒤틀린 심사를 얼굴에 그대로 꿰고 윤기호를 쏘아보는데,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소반에 놓아 둔 막걸리 한 잔을 정한조에게 낼름 권하며 말했다. “잘 아시다시피 현동 저자나 내성장에는 경상우도 상인들은 말할 것도 없고 멀리 송도(松都)나 원산(元山)의 행상이나 심지어 호상(胡商) 들까지 출입을 합니다. 그중에서도 울진 포구 염전에서 온 소금장수 행수 상단의 주머니가 가장 두둑하다는 것을 뜨내기 논다니들이라 할지라도 모를 리 없지요. 떼배들이 숨차게 오르내리는 충청도 목계 갯벌 저자나 고령의 개포 뱃나들에는 삼폐 기생이며 들병이들 수십 명이 떼를 지어서 몰려와 주변에 원진을 치고 있답니다. 한수를 오르내리는 떼꾼들의 엽전 꿰미를 겨냥하는 것이지요. 그들에게 미치지는 못하겠지만, 안동부중을 통틀어 울진 포구에서 온 내성 장시 소금 상단만큼 주머니 사정이 두둑한 행중도 찾아보기 힘들 것입니다. 그래서 논다니들은 계집에 주린 상단이 들이닥치면 불난 집 개처럼 날뛰게 되지요.” “귀로 듣기는 좋을지 몰라도 실은 좋지 않은 소문이오. 소금 팔아 길미를 보기는 하지만, 모두 전대에 넣고 다니진 않소.” “모두가 집도 절도 없는 홀아비 신세들인데,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그럴 리가 없다니 포주인이 우리 행중 모두 사타구니라도 뒤져 보았더란 말이오?” “아이구, 아닙니다. 시생이 자발없이 내뱉은 말일 뿐이지요.” “말이란 어 다르고 아 다르다 하지 않았소.” “우리는 전대를 차고 다니지도 않을뿐더러 계집에 주린 사람들도 아니오.” 그 순간, 둘러앉았던 행중의 시선들이 어찌 된 셈인지 일제히 길세만에게 쏠렸다. 눈치를 알아챈 그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열없어서 입도 뻥긋 못 하고 있던 그가 한참만에 모꺾어 앉으며 볼멘소리를 하였다. “이런 낭패가 있나. 왜 나를 쳐다들 봐. 내 턱에 개똥이라도 묻었나?”
  •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섣불리 이르기는 뭣하겠으나, 적당을 소탕하는 데 원상들이 앞장서야 한다는 것은 비켜날 데 없는 사실이겠습니다. 그러나 모진 놈 곁에 섰다가 날벼락 맞더라고 수하에 거느린 죄 없는 차인꾼이나 보행꾼 들이 애꿎은 까마귀밥이 될까 걱정입니다. 개중에는 처자를 둔 위인들도 없지 않기 때문이지요.”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그겠네. 그들 역시 원상들과 팔자를 같이하는 사람들이 아닌가. 원상들이 없었다면, 다리품 팔아 생업을 유지할 수 있겠나. 그건 그렇고 임자는 왜 아직 미장가인가? 아직도 맞춤한 아낙을 찾지 못했나?” “반수님의 말씀을 따르다 보니 아직 물색에는 생각이 미치지 못했습니다.” “내 탓이라니? 그 무슨 해괴한 말인가?” “4, 5년 전에 정색하고 하신 말씀 잊으셨습니까? 하루의 화근은 식전에 취한 술이요, 1년의 화근은 발에 끼는 갖신이요, 평생 화근은 성품 고약한 안해라 하지 않았습니까. 계집은 믿을 수가 없으니 집을 떠나갈 때도 행선지를 말하지 말라 하였지 않습니까. 믿을 수 없는 족속을 안해로 맞이할 바에는 엄지머리로 사는 것이 속 편한 일이겠지요.” “어허, 내가 그런 말을 했었나? 나도 쓸개 빠진 위인이란 소릴 들어도 싸네.” “그 말씀뿐만 아닙니다. 장사를 나갈 때는 나중의 증거를 위하여 행선지를 알리고 관문이나 나루터에서 시간을 허비하지 마라. 수금한 돈은 전대에 넣어 사타구니에다 숨길 일이다. 남에게 위협을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배로 여행할 때는 일찍 숙박을 정하고 밤에는 절대로 길을 나서지 마라. 잘 때도 속옷을 벗으면 안 된다. 예측하지 못한 사태에 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길동무들 몰래 갈보집에 출입하지 말 것이며, 남자에게 영색을 지으며 아양하는 소년을 조심하라. 원매자(願賣者)에게 친절하고 웃는 얼굴로 대하며, 험악하고 오만한 태도를 보이지 마라. 연장자를 존중하고 나이 어린 사람에게 가혹하게 대하지 마라. 또한 약자를 속이거나 강자에게 굽신거리지도 마라. 강자도 약자도 똑같은 태도로 대하라. 큰 거래는 여러 사람과 함께 상담하고 독단이나 속단으로 하지 마라. 사물에 구애받거나 융통성이 없는 자는 실패한다. 도박꾼이나 한량은 가까이하지 마라. 또한 길가의 논다니들과 수작을 걸고 있는 사람과 마주치더라도 상관하지 마라. 군자가 되어야 한다는 말씀을 시생은 항상 가슴에 새겨두고 있습니다.” “사상십요라고, 거기에 있는 말일세.” 반수 권재만을 하직하고 물러나 어물 도가를 찾았더니 공원 곽개천과 바른말 잘하는 배고령, 여색 밝히는 길세만, 결기 있고 면목이 단단한 최상주(崔尙州)가 내성의 어물 도가 포주인 윤기호(尹基鎬)를 둘러싸고 앉아 있었다. 그들이 10여 년 전부터 숙객으로 거래하는 윤기호는 지난날에는 소금 도가의 여립꾼이었는데, 언제부턴가 아예 도가를 꿰차고 물주 노릇하며 내성장 일경의 길미를 농단(斷)했다. 벌써 흥정이 결단이 되었는지 마침 성애를 먹고 있었다. “도감 어서 오시오.” 윤기호가 염치를 차려 벌떡 일어나 화롯가 자리를 도감에게 내주고 비켜 앉았다. 수하 행중이 바라보는 가운데 예의를 소홀히 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울산 포구 소산이라는 것이 언제나 그랬듯이 소금, 미역 아니면 건어물에 염장품이었다. 그러나 이들 물화가 십이령이나 고초령을 넘지 못하면 경상도 북부 일경의 대다수 고을에서는 짜든 싱겁든 명색 소금 맛을 보기 어렵고, 소금이 좋았기에 울산 포구 건어물도 마찬가지로 천세났다. 안동 상주의 주변 지역에서는 낙동강을 타고 오르는 뱃길을 따라 소금섬들이 올라온다지만, 가뭄이나 홍수가 지면 여축없이 뱃길이 막히기 때문에 수급이 들쭉날쭉하여 종잡을 수가 없었고 소금값도 올랐다 내렸다 널뛰기를 반복하였다. 울진 포구 소금 상단이 대접받게 된 까닭은 날씨가 맑으나 궂으나 여름이나 겨울이나 그들로 말미암아 수급이 원활하게 이루어지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울진산 토염은 고가에 매매되었다. 울진 포구 토염이라면, 언제 어디서나 원매자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윤기호는 소금 유통을 농단하면서 구문을 받기도 하였는데, 거개가 소금 한 섬에 닷푼(分)이나 1전(錢)의 구문을 받았으나 그는 대담하게도 한 섬에 2전의 구문을 받았다. 울진산 토염이란 명분 때문이었다. 소금 유통에 대한 주인권(主人權)*이 있었는데, 그 권리가 매매나 상속 혹은 양도되기도 하여 400냥 이상 나가기도 하였다. 윤기호가 노리는 것은 어물 도가의 농단만이 아니었다. 울진 질청의 아전들을 부추겨 염전을 사들이려 한다는 소문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울진 소금 상단이 자신의 농단을 언제부턴가 눈여겨보고 있다는 것은 눈치채지 못했다. 그는 상단 몰래 잠은도매(潛隱盜賣)를 예사롭게 저질렀다. 그것은 물어볼 것도 없이 장시의 법도를 어지럽히는 행위였다. *주인권(主人權):요사이 권리금
  •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도감이 두 사람과 마주친 장소가 얼추 몇 마장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으니. 그들이 적당인 게 틀림없다면 소굴 역시 십이령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는 증거가 아닌가.” “아직은 소굴을 찾아낼 때까지 시치미를 잡아떼고 은밀히 지켜보아야 하겠습니다만, 약차하면 우리 상대가 적환을 입기 전에 먼저 소굴을 색출하여 쑥밭을 만들어놓아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자면 그 운수납자 행세하는 놈의 뒤를 쫓거나 말래 도방에 업어다놓은 위인을 간병 핑계하고 붙잡아두는 게 상책이겠군.” “탁발을 가장한 놈을 놓쳐버려서 제가 먼저 몰골을 드러내기 전에는 뒤밟기가 손쉽지 않을 것이고, 도방에 데려다놓은 병자는 다리가 부러져 굴신을 못 하니, 나가라고 내쫓아도 못 나가겠지요.” “궐자를 잡아두되 쉬쉬하지 말고 삼이웃이 떠들썩하도록 소문내는 것이 탁발승을 유인하는 데 효험이 있을 테지. 이참에 십이령에는 산적들이 언감생심 얼씬도 못 하도록 잡도리해야겠네. 소굴이고 화적이고 두 번 다시 화근이 되지 않도록 아주 작신 분질러 도륙을 내야 하네. 그것이 우리 원상들의 명분이 아닌가. 요사이 장시를 보게. 이런 야단이 없네. 협잡꾼들이 칠년대한에 비 만난 듯이 몰려와 무고한 사람들에게 봉변 안기는 것을 예사로 저지르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어느 놈이 원상인지, 어느 놈이 협잡꾼이고 무뢰배인지 도무지 분간을 할 수 없게 되었네. 구실살이 하는 서리, 마름이며, 사기꾼들이며 와주와 화적들까지도 모두 원상을 가장하고 분탕질이어서 장시의 기강이 순식간에 무너지고 말았네. 백주창탈도 이쯤 되면 걷잡을 수 없게 되었네. 죽은 고양이가 산 고양이보고 아웅 하더라고 신표를 가졌다는 원상들은 걸핏하면 무뢰배들에게 걸려들어 상투가 잡히고 회술레를 당해 인사불성이 되도록 창피를 당하지 않던가. 장시의 풍속이 이토록 더렵혀지면 조만간 푸줏간 칼자며 노복들까지 나서서 우리 원상들을 해코지하려들 것일세. 그러한즉슨, 차제에 원상의 면목을 세우지 못하면 봉변은 그렇다 치고 보부상들이 살아갈 명분조차 찾기 어렵게 된다는 것이네. 이토록 피폐하게 되면 장세(場稅)는 누가 걷고 임방 경영은 누가 하겠나.” “지방 관아의 수령들이 감당하기는 어렵겠지요?” 도감 정한조가 불쑥 퉁기는 말에 반수가 오히려 볼멘소리를 하였다. “토색질에만 눈이 뒤집힌 아전과 늙어서 눈자위에 진물이 나는, 벙거지 쓴 형장들 몇 가지고는 물가에서 살아가는 너구리 한 마리인들 온전히 잡겠나. 감히 적당들을 소탕하겠다고?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얘기일세. 그놈들 고개치 이름 하나도 변변히 아는 게 없네. 원진을 친답시고 숫막집 봉노 질화로 도차지하고 둘러앉아 하품이나 하다가 박차고 일어난다는 것이, 똥 싼 놈은 놓치고 방귀 뀐 놈만 잡아서 곤장을 내려 피칠갑을 시킬 테지. 그 떨거지들에게 설령 그럴 결기가 있다 할지라도 기골이 든든한 우리들 손으로 적굴 놈들을 소탕해야 체면이 설 게 아닌가. 아전이나 군교 들을 믿지 말게. 예전 사람들은 구실아치들도 소박해서 성품들이 진국이었네. 요사이는 벼슬아치든 작청의 구실살이든 군교들이건 모두 기지(機智)를 숭상하게 되었네. 기지는 필시 기교(機巧)를 낳기 마련이고, 기교는 간사(奸詐)를 낳기 마련일세. 간사가 횡행하면 속임수를 낳게 되지. 속임수가 횡행하면 세도가 날로 어지러워지기 마련일세.”
  •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고개를 숙이고 앉았던 정한조의 입에서 한마디가 조용히 흘러나왔다. 시냇가에 허물어진 집은 사기 접시 같은데, 북풍에 이엉 날아가 서까래만 앙상하네. 묵은 재는 눈에 섞여 아궁이는 싸늘한데, 뚫린 벽 틈으로 별빛 새어드누나. 집안의 살림살이 너무나 빈약하여 모두 내어팔아야 7, 8푼도 못 되네. 세 가닥 조 이삭은 삽살개 꼬리 같고, 매운 고추 한 두름은 닭의 창자를 닮았네. 깨어진 항아리는 베로 발라 새는 구멍을 막았고, 찬장과 시렁은 새끼줄로 묶어 떨어지지 않게 하였네. 구리 수저는 오래전에 호장에게 빼앗겼고, 쇠 냄비는 이웃 토호에게 빼앗겼네. 다 해진 푸른 무명 이불 한 채뿐이니, 부부유별이란 말 이 집에선 말뿐이네. 젖먹이 적삼은 어깨와 팔꿈치가 드러나고, 태어난 이래로 바지도 버선도 알지 못하네. 다섯 살 난 맏이는 이미 기병으로 첨정되고, 세 살 난 작은 아이는 벌써 군관에 입적되었네. 두 아들 군포가 1년에 500푼이니, 하루빨리 죽기를 바라는데, 옷가지가 무슨 소용인가. 늑대와 호랑이가 밤마다 찾아와 울 밖에서 으르렁대네. 남편은 나무하러 산으로 가고, 아낙은 방앗간에 품팔이 가니, 대낮에 사립문 닫힌 모양 참담하기 그지없네. 아침 점심 두 끼는 굶고 밤에 돌아와 군불 지피며, 여름에는 다 해진 무명옷에 겨울에는 베옷을 입네. 들녘의 냉이는 이미 싹이 묻혔으니, 땅이 풀려 새싹 나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고, 술지게미라도 얻어먹으려니 남의 집 술 익기를 기다릴 뿐이네. 지난봄 향미 닷 말을 꾸어 먹었는데, 그 일로 금년에는 살아남지 못하리. 나졸이 사립문에 들이닥치면 겁이 덜컥 나지만, 동헌에 끌려가 곤장 맞을 일을 걱정하지는 않네. “시생은 이런 옛날 언문 시구를 중얼거리곤 합니다. 세상이 도둑과 무뢰배와 들치기, 날치기 들로 어지럽게 된 것은 모두 벼슬아치와 글줄깨나 읽었다는 선비 들의 과욕 때문이지요.” “원래 벼슬아치들이란, 가난 속에 살면서도 의리를 지키고 도리를 어기지 않으며 나라의 어려운 일에 바른말하고 살아가면 되었는데, 언제부턴가 그 도리가 흐트러지고 말았소.” “우리들이 어찌 그런 사정을 모르겠소. 그런데 도둑들의 행동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우리들이 배울 점이 있소. 도둑들은 빈둥빈둥 게으름을 피우는 사람들과는 달리 밤 깊은 것을 아랑곳하지 않고 뜬눈으로 일한다는 것이오. 자신들이 겨냥하던 일을 하룻밤에 결단 내지 못하면, 다음날 밤에 다시 죽기 살기로 담판을 짓는다 하오. 뿐만 아닙니다. 도둑들은 같이 일하는 동배간의 행동거지를 자기 자신의 일처럼 엄중하게 생각하지요. 그리고 아주 적은 소득에도 목숨을 걸 뿐만 아니라, 아주 값진 물건에도 크게 집착하지 않고 반푼 어치도 안 되는 물건과 미련 없이 바꿀 줄 아는 너름새가 있습니다. 도둑은 자신에게 닥친 시련과 위기 따위를 아무렇지도 않게 이겨낼 줄 안다는 것이오. 그들은 자신이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그 일이 무슨 짓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다는 것이지요.” 귀 기울여 듣던 조기출이 말했다. “우리 상단의 동무들과 도둑들이 마음가짐이나 처세함에 있어 근본이 다르지 않아 놀랐습니다.” “하긴….”
  •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정한조가 곰방대를 빼물며 등뒤에 멀리 두고 온 묏부리를 바라보다 말고 혼잣소리처럼 한마디 툭 던졌다. “저 멀리 넓재 묏부리가 까마득하게 보이네요. 7, 8년 전이었던가봅니다. 그날 우리 일곱 일행이 해거름에 저 넓재를 넘고 있었는데, 그때 대중없이 뛰어든 산적 두 놈과 딱 마주쳤네요. 그러나 우리가 누굽니까. 네놈들 잘 만났다 하고 다짜고짜 달려들어 싸다듬이로 난장 박살해서 묵사발이 된 놈들을 아갈잡이한 다음, 울진 관아까지 질질 끌고 가서 하옥을 시켰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이상했어요. 우리는 맨몸이었고 저들은 칼을 들기도 했는데, 우리가 덧들이는데도 전혀 대척할 방도를 못 찾았어요. 상투를 잡고 태질을 시키는데도 고스란히 당하고 있었지요.” “그랬소? 그런데 고개 넘을 때는 왜 입도 뻥긋하지 않았소?” “하긴 그때 입이 간질간질했었지요. 그러나 공원께서 얼살을 먹고 굽도 떼지 못하고 설설 길까봐. 가만있었지요.” “예끼, 시생이 무지렁이인 것은 틀림없으나, 그만한 일에 오줌까지 지리겠습니까. 이제는 천둥 번개 치는 밤길에 개호주가 뒤를 따라와도 아무렇지도 않을 만큼 간담이 커졌습니다.” 정한조가 그 소리 못 들은 척 딴청만 피웠다. “나중에사 깨달았습니다만, 명색 산적으로 나섰다는 위인들이 산적이 뭔지 모르고 있었어요. 폐농하고 행리 탈취를 업으로 삼기 시작하면, 엽전이 꿰미째 굴러오는 줄 알았던 것이지요. 길바닥으로 나서기만 하면 화수분이 저절로 굴러올 줄 알았겠지요. 그래서 후회가 되었습니다. 관아에 넘기지 말고 잘 달래서 돌려보낼 일이었는데. 경기의 안성이나 송파나 누원점 같은 대처에서 화적질하는 도둑들의 두령은 모두 군관들이란 말이 파다하게 퍼져 있습니다. 군관들은 길거리와 큰 저자에 도적들을 들여보내 빼앗고 훔치게 사주를 합니다. 도적들이 제 세력만 가지고는 대로에서 갈취와 약탈을 저지를 간담이 없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세도 있는 집이나 부잣집의 기명이나 의복을 훔쳐낸다 하더라도 그것을 처분할 일이 막연하지 않겠소. 그것을 팔 수 있는 방도를 알고 있는 것은 군관들뿐입니다. 그래서 도둑질한 물건의 금어치가 열 냥이라면 넉 냥은 훔쳐낸 자가 먹고, 나머지 여섯 냥은 군관의 몫이 아니겠소. 또 도둑이 처음 소굴에 가담하게 되면 신참례를 하게 되어 있어 세 번이나 장물을 바치고 나서야 자기의 몫을 받게 된다고 합니다. 한 번이라도 눈을 속이려 들었다간, 당장 관가로 잡혀간답니다. 친척이나 이웃이 그 사건에 연루되어 들어간 경우에는 군관의 안면에 구애를 받아 차마 바르게 토설하지 못하고 눈을 내리깔고 중언부언 횡설수설로 눙치게 되겠지요. 이것이 후하다고 하는 풍속이 되어버렸으니 우리 같은 무지렁이들도 그에 따라야 가상한 일로 여기게 되었소.” “그렇다 하더라도 화적질 방조하면 되려 큰코다칩니다. 그때, 구슬려서 돌려보냈다면, 적당 행세해도 이만저만하구나 해서 정신을 못 차리고 뒤돌아서서 다시 적당 행세했겠지요. 그러나 시생이 생각해보면, 애초에 도적이 생겨난 것은 그 화적질이 좋아서가 아니라, 회오리바람처럼 닥치는 기한과 뼛속까지 아리고 쓰린 신산을 견뎌내다 못해 단 하루라도 연명하려는 자들이 있었기 때문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미욱하고 온순한 무지렁이들을 도적으로 만든 자가 과연 누구겠습니까. 공명첩이니 원납전이니 하면서 공공연히 벼슬을 팔아 권세가의 문전이 장시처럼 소란하게 되었지 않습니까. 음직으로 권세를 잡은 그들 자제며 아전 들이 약탈을 일삼으니 적탈민들은 어디를 간들 도적이 되지 않겠습니까.”
  •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그건 그렇구… 그 논다니 창병 얻었단 얘기 밑절미 있는 말인가?” “밑절미가 있던 없던 말이 그렇다는 얘기지. 가랑비에 옷 젖더라고 계집질에 눈이 뒤집혀 허둥지둥 하다보면, 머지않은 장래에 창병 얻어 뼈까지 녹아나서 신세 망치는 날이 오지 않겠나. 창병도 창병 나름일세. 양매창(楊梅瘡)*을 얻으면 그게 바로 악창이어서 약도 없어 목숨 하나 일같잖게 거덜낸다네. 하나뿐인 초라한 육신, 낮에는 부담짐 지우고 밤에는 색탐에 부대끼다보면, 몸가축인들 온전할 리 없지. 초개 같은 목숨 진작 잡도리하지 못하면 지레 죽을 수도 있네. 우리네 행상인들 망하고 나면, 탱자처럼 쭈그러들어 대그락대그락하는 불알 두 쪽만 남을 뿐일세.” 길세만은 잡힌 말꼬리를 떼어버릴 궁리가 없었다. 머뭇머뭇하다가 대꾸할 말미를 놓치고 말았다. 속내가 뒤숭숭한 터에 배고령이 한마디 덧붙인다. “언젠가 행수님 말씀이 생각나네… 매화는 엄동설한을 뚫고 피어나기 때문에 그 진한 향기를 자랑할 수 있는 법이라고… 나 같은 무지렁이가 처음엔 무슨 흰소린가 해서 어리둥절했다네. 그런데 임자를 지켜보자니 그 말씀의 속 깊은 뜻을 얼추 깨닫게 되었다네… 얄팍한 길미나 챙기는 임자가 논다니 밑구멍에 찔러주어야 할 해우채는 오죽했겠나… 주책없다 생각 말고 내 말 새겨듣게. 우리 사이 흉허물 없이 지내니까 이런 말 하는 것일세.” 설피를 꺼내 신어야 할 만큼 한대중으로 내리던 눈은 언제부턴가 씻은 듯이 그쳤다. 산중 날씨란 그래서 짐작할 수 없었다. 말래에서 발행했더라면 너삼밭이 이른 중화 자리가 되었겠지만, 샛재에서 발행했으므로 중화 자리는 빛내골이 되기 십상이었다. 그러나 새벽에 진눈깨비를 만나 지체되었으므로 너삼밭재 밥자리에서 중화를 짓기로 하였다. 그곳에는 안면이 낯설지 않은 어물 저자 차인꾼들 대여섯이 새옹을 걸어놓고 이제 막 한술 뜨고 있었다. 밥자리라고 하지만,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적막강산이긴 매한가지였다. 중화 먹는 말미에도 땀에 젖은 배자와 짚신 감발을 풀어 계곡 자갈 바닥이며 밭둑 위에 널어 말리고 있었다. 그들은 정한조와 조기출 일행 20여 명이 밥자리를 찾아 계곡으로 들이닥치자, 근래에 보기 드물었던 상단의 규모에 기가 질린 나머지 뱀 만난 여치처럼 잽싸게 두렁 위로 몸을 피했다. 그러자 일행들이 나서서 진정을 시켰다. “동고동락하는 터에 그 무슨 해괴한 짓들이오. 얼른 먹던 중화들 드시오.” 너삼밭재에서 들밥을 먹고 허기를 채웠다면, 빛내골과 넓재까지 계속 내달아 광희골 회룡천까지 무슨 일이 있어도 당도해야 했다. 넓재에서 광희골까지는 내리막이어서 길 줄이기가 수월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코치비재와 성황당이 있는 밭재 지나서 숙소참인 맷재까지는 내리막보다는 꼬불꼬불한 자드락길에 오르막뿐이었다. 맷재는 십이령 중에서 마지막 고개로 꼽는 곳이기도 했다. 맷재에서 막지고개만 넘어가면, 현동저자와 내성저자의 차인꾼들과 만나 건어물 상대들이 등짐을 줄일 수 있었다. 행중이 맷재에 당도했을 때는 호랑이를 만나는 불상사가 있더라도 더이상은 발짝을 떼어놓을 수 없을 정도로 지쳐 있었다. 근래에 보기 드물 정도로 먼길 행보를 줄일 수 있었던 것은 20여 명을 헤아리는 대상대가 함께 걸었기 때문이었다. 더욱이나 늦깎이로 상단에 뛰어든 조기출과 같은 사람들은 고단하다 못해 몰골이 파리하고 눈자위가 허옇게 되어 숨을 가다듬기에도 힘겨워 보였다. 정한조가 측은하여 한마디 불쑥 질렀다. “생선 몇 뭇 팔아 하찮은 길미 챙기겠다고 이 고초를 겪는구려. 나물 먹고 물 마시더라도 차라리 옛날로 되돌아가고 싶지 않소?” “도감께서는 정곡을 찌르시는군요. 때로는 그런 마음이 들 때도 없지 않지요. 그러나 행중 식구들에 견모*가 된다 하여도 두 번 다시 죽은 놈 발바닥같이 찬 냉골에 들어앉아 좀먹은 탕건은 쓰고 싶지 않소. 도감 입으로도 괭이 든 비렁뱅이는 없어도 책 든 비렁뱅이는 있다 하지 않았습니까. 비 오는 날 똥장군을 등짐 대신 지고 길바닥에서 엎어지고 자빠지는 한이 있더라도, 감나무 밑에서 홍시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어리석은 짓은 반복하지 않을 것입니다.” *양매창(楊梅瘡): 매독 *견모: 놀림가마리
  •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소금과 미역은 궂은 날씨와는 상극이었다. 습기 먹은 짐들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무거워지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지금은 해동머리라 질척질척해진 길턱 때문에 발길을 재촉하기 힘들다. 그렇다고 멈출 수는 없는 노릇, 누가 일러준 대로 들메끈을 단단히 고쳐 매고 샛재 숫막거리를 나섰다. 고개를 들면 안개 발 같은 진눈깨비가 얼굴에 척척 감기어 모두 목을 쇄골 속으로 감추었다. 그러나 발행한 지 반식경이 지나고부터 휘감기던 눈발이 성기기 시작하여 두런두런 수작들 나눌 만하였다. 뒤따라 걷던 배고령이 입에서 구린내가 났던지 자별하게 지내는 선머리의 길세만에게 바싹 따라붙으면서 불쑥 한마디 던졌다. “임자 보게.” 선머리에 선 길세만은 허리가 끊어질 듯 우려와서 줄곧 끙끙 앓는 소리를 하며 발부리만 내려다보고 걷다가 신둥머리지게 되받았다. “왜 또 그러나?” “말래 숫막거리에 그 암팡진 년 말일세.” “말래 도방 숫막거리에 암팡지다는 평판을 듣는 갈보들이 어디 한둘인가?” “아니… 그 연지골(燕脂溪)* 출신 새침데기 영월댁 말일세.” 시답잖은 농인 줄 알았더니 숫막거리 갈보 얘기가 나오자, 구미가 당겼던 길세만은 비로소 턱만 비틀어 뒤따라오는 배고령을 힐끗 일별했다. 길세만이 구미에 당겨하는 것을 눈치챈 배고령이 가래침을 긁어 계곡 아래 멀리로 내뱉고 나서, “도방이 있는 말래 숫막거리에는 오가는 원상이나 부구 염막 소금꾼 들의 염낭쌈지를 바라고 문을 연 숫막이 열 손가락을 헤아리고 들병이며 떠돌이 논다니 들도 섞여 있지만, 그중에서도 영월댁이 살신도 포르족족한 게 색깨나 쓰게 생겼지. 그 여자 거웃에 손이라도 한 번 넣어보려고 군침을 흘리는 축들이 한둘 아니라더군. 그런데 꼴에 밤똥 싸더라고 그 계집사람이 초면이고 구면이고 가릴 것 없이 사내를 할끔할끔 간색해서 골라가며 살보시를 하는데, 제 눈에 차지 않으면 아예 코대답도 않고 안면을 싹 바꾸고 만다는구먼…. 사내놈을 멧돌치기로 배 위에 올려놓고 한바탕 어진 혼이 나가도록 요분질로 조리를 쳐서 칵 뱉어놓으면, 어지간한 사내는 사흘 동안 자리보전으로 운신을 못 하고 누워 있어야 겨우 기동할 수 있다는 소문이 도방 대처에 짜하게 퍼져 있다네.” “말 같잖은 소리, 밑절미 없는 소리 그만 하게.” “나도 귀동냥으로 들은 소리지만, 그 계집사람하고 한번 붙으면, 뻣뻣한 사내들도 뼛골이 녹아나서 잠시 동안 저승 구경까지 할 수 있다더군.” “양기가 입으로 오르자면 아직 한참 기다려야 할 나이인데… 음탕한 소리 그만하게.” “헌 갓 쓰고 똥 누기 예사지…. 일 년 열두 달 한둔으로 지내는 우리네가 그런 일도 없다면 명치끝까지 차오른 육허기는 어디다 풀고, 가슴에 쌓인 울화는 어디다 쏟아내겠나.“ “심통이 놀부군.” “왜? 들병이하고 놀아났다는 소문나면, 체면 깎일까 봐 그러나?” “어허, 봉패로세. 자다가 얻은 병이라더니 불각시에 왜 나를 물고 늘어지나.” “임자도 그중 하나가 아닌가?” “예끼 고얀 사람, 넘겨짚지 말게. 내가 매달고 다니는 고기 방망이는 구색으로만 달고 다니는 게야. 임자도 알다시피 물색에는 뜻이 없다네.” “잡아떼지 말고 내 말 귀여겨듣게. 그 여자 창병이라는 소문 있다네.” 굳이 보지 않아도 새파랗게 질린 길세만의 안색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점입가경이군. 창병이라는 말, 그게 정말인가?” “아니 땐 굴뚝에서 연기 나는 것 보았나? 내가 괜한 말 지절거리는 게 아닐세. 내가 임자 앞에 있어서 보이지는 않지만, 보지 않아도 시방 임자 안색이 새파랗게 질려 있을 것이야.” “글쎄….” “임자 왜 대꾸가 없나?” “글쎄…. 내가 언제 그 염불 빠진 년과 상종한 일이 있었는지. 생각이 올지갈지해서 그러네.” “얌전한 고양이 부뚜막에 먼저 오른다더니, 임자 알고 보니 말래 숫막거리에 있다는 논다니들 중에 가죽방아 찧어보지 않은 계집이 없구먼. 우리가 봉놋방에 둘러앉아 투전 놀음에 술추렴이나 하고 시시덕거리는 사이, 술 안 마시는 임자는 계집사람들 거처하는 퇴창 밑에 숨어 기회를 엿보아 계집들과 배꼽 맞출 궁리만 트고 있었군. 술추렴할 때마다, 임자는 딴청을 피운 까닭이 거기 있었군.” *연짓골:삼패 기생들이 모여 사는 마을.
  •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5일장의 효시는 성종 초에 전라도 무안과 나주에서부터였다. 오랜 재해를 견디지 못했던 적탈민들이 집에 있던 곡식과 채소를 비석거리에 가지고 나와 필요한 물건과 바꾸어 연명하기 시작하면서 장시를 이루게 되었고, 여러 세궁민들이 그에 합세하면서 규모가 커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점차 폐농하고 장거리로 나선 도부꾼들의 수효도 늘어나게 되었다. 조정에서는 저자가 번성하는 것을 두고만 볼 수 없었다. 저자가 번성하면 농투성이들이 문전옥답을 버리고 모두 장시로 몰릴 것이고, 더불어 시겟금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널뛰듯 해 무뢰배와 사기꾼 들이 횡행하여 풍속이 더럽혀질 것이었다. 농사라는 것은, 몸은 땀으로 절고, 손발은 흙과 똥으로 범벅이 되기 마련이었다. 비바람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벌레 잡기에 잠깐의 말미를 내어 쉴 수도 없어 고단하기 그지없다. 밭뙈기 크기에 따라 부역을 감당해야 하므로 그 괴로움 역시 견디기 어려웠다. 그러나 장사치들은 농간을 부려 보잘것없는 것을 눈 깜짝할 사이에 존귀한 것으로 바꾸고는 그 이익을 챙겨 혼자서 방긋 웃고, 모리를 취하고도 시치미를 딱 잡아뗀다. 이를테면, 백동(白銅)을 가리켜 은(銀)이라 속이고, 염소 뿔을 내밀고 대모(玳瑁)라 하고 개가죽을 담비 가죽으로 꾸며 억매흥정으로 몰아붙인다. 어느 눈썰미 있는 자가 그 속임수를 적발하면 도리어 부아통을 터뜨리며 멱살을 뒤틀어잡고 협잡꾼이 나타났다 고함을 지른다. 그러면, 근처에서 장꾼 행세하며 배회하던 패거리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애매한 사람을 개 잡듯 두드린다. 그런가 하면, 장시에는 들치기, 날치기, 소매치기는 물론이고 온갖 구메 도적이 난무한다. 어리석은 농투성이가 집에서 치던 닭 한 마리를 들고 나와 흥정을 할라치면 언제 어디서 나타났는지 떠꺼머리총각이란 놈이 불쑥 나타나 닭을 가로챈다. 농투성이가 뒤따라가면 쫓기는 놈은 고샅길 속으로 몸을 숨기고 쏜살같이 달아난다. 요행으로 뒤따라잡아 뒷덜미를 낚아챌 만하면 언제 어디서 나타났는지 또 다른 사내가 농투성이 앞을 엎어지듯 가로막으며 방구리 사려 채독 사려 하고 외치며 훼방을 놓아 종국에는 뒤쫓던 놈을 놓치게 만든다. 그들은 농투성이들처럼 배당된 부역도 없어 한껏 즐거움을 누리는 것이다. 그리하여 농사짓는 사람은 그 수효가 나날이 줄어들어, 한 사람이 경작하여 열 사람이 배를 채우니 나라의 창고는 늙은이 뱃가죽처럼 쭈그러들고 말았다. 농자천하지대본이란 말은 그래서 한낱 허언에 불과하게 되었다. 지방 군수들이 이를 좌시하지 않고 조정에 장계를 올려 저잣거리의 작폐를 저지시켜야 한다고 주장하였으나, 조정에서 이를 엄중히 단속할 방도를 찾지 못하고 수수방관하는 사이에 저자의 규모는 점점 커져 활기를 띠었고, 종사하는 행상인들의 수효 역시 불어나 세력화되었다. 조정에서는 할 수 없이 한 달에 두 번의 장문이 열리도록 허용하였다. 그러다 그 다음에는 열흘의 터울로, 나중에는 닷새마다 저자가 열리도록 묵인하게 되었다. 이튿날이었다. 신새벽에 일어나 발행을 서두르던 일행은 예상치 못했던 악천후와 마주쳤다. 진눈깨비가 내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지난밤 잠들 때까지 날씨가 여전히 차갑긴 했어도 구름 낀 하늘은 아니었다. 비라도 내릴 양이면, 행중 식구들 중 대여섯쯤이 어깨나 허리가 결린다거나 굴뚝 연기가 낮게 깔리는 조짐을 보였다. 하지만 전혀 그런 징조가 없었는데, 느닷없이 앞을 분간하지 못할 정도로 진눈깨비가 푹푹 내려붓기 시작한 것이었다. “어허, 좋기만 하던 날씨가 행장 꾸리자마자, 웬 심통이여.” “비알진 벼랑길에 나동그라져 다리나 작신 부러뜨리지 않으려면 감발치고 들메끈들 단단히 조여매시요들….”
  •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행중에는 객지를 말똥같이 굴러다녀도 떠나온 고향을 꿈에도 잊지 않으려고 배고령(裵高靈), 최상주(崔尙州), 장안동(張安東), 박원산(朴元山), 권영동(權永同)같이 자신의 태생지를 이름으로 부르는 행중도 없지 않았으나, 곽개천만은 소년 시절에 만났던 포수가 지어준 이름으로 행세하였다. 행수와 곽개천이 겨끔내기로 주고받는 말을 행중은 그다지 귀여겨듣지 않고 술추렴에만 이마를 곤두박고 있었다. 귀틀집 풀막 지붕을 핧고 지나는 해질녘의 바람 소리가 울적할수록 뱃속은 더욱 허전하여 숨바꿈으로 술 사발을 돌리고 있었다. 만기가 지어준 새웅밥으로 얼추 끼니를 때운 정한조는 이웃 숫막에 사처 잡은 조기출을 찾아갔다. 그는 아직 선비 시절 때를 벗지 못해서 자리를 잡고 좌정하였다하면 행탁에 넣고 다니는 필사본을 꺼내 읽곤 하였다. 정한조가 쪽문 바라지를 열고 봉노로 들어서자, 그는 끝동이 너덜너덜하게 해진 저고리를 얼른 수습하면서 정한조에게 아랫목을 내주고 한쪽으로 썩 비켜 앉았다. 손위 손아래의 경계를 구분하는 처신이 몸에 밴 사람이었다.  “저녁 요기는 하였소?”  “조밥에 소금국으로 얼추 허기증은 모면했습니다. 마땅한 찬반이 없어 쩔쩔매는 늙은 주모를 보다 못한 행중 식구들이 산에 올라가 눈 속을 헤치고 이제 막 움이 돋는 수리취나 참취 같은 나물을 뜯어 삶아 소금물에 찍어먹은 게 고작이었습니다.”  “이번 행로에는 안동, 상주 거쳐서 상무사 임소가 있는 고령까지 갔다가 회정한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러자면 얼추 달포는 걸리겠습니다. 행중이 모두 동행입니까?”  건어물 행상들은 보통 흥부장에서 발행하여 말래를 거쳐 샛재를 지나고 곧은재 아래에 있는 검은돌 마을이나 현동 저자, 그리고 내성장에서 물화를 처분하고 회정하는데 보통 팔구 일이 걸렸다. 그들 행중에는 울진 포구 근처에 가솔을 거느린 행상들이 많기 때문이었다.  “대여섯은 현동저자나 내성에서 회정할 것입니다.”  “고령까지 다녀오자면 이래저래 달포가 지나야 할 텐데, 그때쯤이면 십이령에도 봄빛이 완연하겠지요. 그때가 되면 드릅이나 고비나물 삽주나물이 비석거리에 지천이겠지요. 이번 행보에는 우리 행중과 내성까지 동행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왜? 무슨 일이 있습니까?”  “별일은 없습니다만, 나귀들도 있고 해동머리라서 비알진 길을 건너기가 어려울 것 같아서 하는 말입니다.”  “우린 먼동 트기 전에 발행하려 하였습니다.”  “동행으로 고개를 넘읍시다.”  그런 제안을 받기는 오랜만이었으나 그럴만한 내막이 없지 않겠기로 그리하자고 승낙을 하였다. 그렇다면 당장 내일 샛재에서 발행하는 상단의 수효가 20여 명을 헤아릴 것이었다.  “초행일 텐데, 내륙의 저잣거리를 섭렵하다보면, 무뢰배들이나 협잡꾼들과 여러 번 마주칠 것입니다. 그들은 여간한 행내기들이 아닙니다. 삭은 바자에 노란 개 주둥이라고 말참견 잘하는 놈에 농간만을 일삼는 놈들을 만나 맹랑한 지경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피가 뜨겁고 세력이 다부지다 한들 그 패거리들을 따돌리기 쉽지 않을 것이니, 눈을 똑바로 뜨고 다녀야합니다.”  “명심하겠습니다.”  “장시의 폐단이 나날이 흉흉해지고 있습니다. 멀리까지 가서 기러기가 되어* 돌아오지 않도록 일행을 닦달하시고…”  “여부가 있겠습니까.”    *기러기가 되어: 손해보지 말라는 뜻
  •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그 땡추가 주모가 수절 과부라는 것을 진작 눈치채고 언젠가 소리개 뱁새 덮치듯 날탕으로 삼키려고 주막거리 어름을 정탐하려 들렀는지도 모르지 않겠소.” 월천댁이 입귀를 치켜들고 흔들비쭉하더니, 정한조의 농을 되받아쳤다. “쥐똥 같은 소리 그만하시지요. 개짐 벗어던진 게 까마득한 옛날이네요. 군동내 나는 육고기 탐하는 스님이 있단 소리는 못 들어봤습니다.” “혹간 있을지도 모르지 않소…괴나리봇짐조차 가진 게 없었다면 그게 사칭하는 무뢰배나 난봉꾼 아니겠소.” 정한조는 농으로 얼버무리고 봉노로 들고 말았다. 행중이 한결같이 땀에 절은 짚신과 행전을 풀어 횟대와 시렁에 걸어 말리고 있었다. 몽근 짐들을 지고 벼랑 중턱을 까낸 고개치 길만 걸었으니 두께살이 앉은 어깨는 좀 쑤실까만, 먼길 행보 만리 행역도 대수롭지 않은 듯 술방구리 하나와 두루거리 밥상을 가운데 두고 둘러앉아 곤댓질들 해가며 시답잖은 농들을 건네고 있었다. 원상들이건 차인꾼들이건 미장가가 대부분이었으므로 여럿이 모여 앉아도 상투 튼 위인들은 한두 사람 정도이고 대부분이 머리를 땋아내린 엄지머리들이거나 외자상투였다. 정한조만 하더라도 상투를 틀고 있었으나 나이든 거간들을 상종해야 할 처지여서 외자로 튼 상투였다. 행중이 방안에서 시구문 차례로 술사발을 돌리고 있거나 목침 차지하기 투전 놀음을 하고 있는 사이 만기는 양식 전대를 풀어 울바자 밑에 새옹을 걸어놓고 쭈그리고 앉아 밥을 짓고 있었다. 숫막에서 내놓는 요깃거리란 끽해야 장떡이나 도토리묵이어서 그것으로는 간에 기별도 안 됐기 때문에 뱃구레가 큰 축들은 새옹으로 지은 밥을 안다미로 퍼서 배를 채워야 든든했다. 봉노에 있는 동무들 가운데 행수 정한조가 소금섬을 물로 끌라면 군소리 한마디 없이 끌고 갈 만치 매사에 행수를 따르는 곽개천(郭介天)이 방 귀퉁이에 끼어 앉아 부들자리 위에 산가지를 널어놓고 무슨 셈을 하다 말고 행수를 힐끗 쳐다보며 풀쑥 질렀다. “성님 왜 그러십니까.” “혼자 사는 까막과부 하소연이나 들었네.” “얼른 보아도 하소연이 아니던데요?” “눈치 하구선… 우리 행중 등 뒤를 개호주 한 마리가 줄곧 미행하고 있으니 호식을 당하기 전에 방비하란 말이더군.” “개호주도 영물이라 적선한 사람에겐 얼씬도 않는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러게 말일세. 여기서 내성장까지 갔다가 회정하자면 140리 내왕길을 일순*이 넘도록 눈보라에 시달림을 받아야 할 텐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고개치 길마다 개호주와 숨바꼭질을 해야 한다면, 그 또한 곡경이 아니겠나.” “만기가 밥을 짓고 있으니 요기는 나중에 하시고 우선 목이나 축이시지요.” 곽개천의 태생은 빛내골 산골이라 하였으나 소년 시절부터 말래 숫막거리에 진출하여 퇴개꾼*이건 중노미 노릇이건 닥치는 대로 연명하며 잔뼈가 굵었다. 일찍이 조실부모해서 서발막대 휘둘러보았자 거칠 것이 없는 사고무친이었기 때문이었다. 중노미 노릇으로 남의 대궁으로 주린 배를 채우며 소년 시절을 보내는 중에, 백두대간을 발서슴하며 풍상을 겪는 늙은 포수의 곁꾼이 되었다. 그 포수가 어느 해 한겨울 노루목을 지키고 앉았다가 난데없이 나타난 멧돼지에게 뱃구레가 찢겨 죽고 난 뒤, 그 화승총을 차지하고 명색 소년 포수로 연명하다가 말래 접소에서 정한조를 만나 상단의 차인꾼으로 입문하여 원상이 된 사람이었다. 역시 미장가였으나 장시에 가면 눈치가 멀쩡한 거간들과의 흥정에 밀리지 않으려고 외자 상투로 행세하였다. 늙은 포수를 따라 백두대간의 비알지고 험악한 기슭을 풀방구리에 생쥐 드나들듯 했으므로 십이령 내왕길쯤은 눈감고도 넘을 만큼 이력이 나 있었다. 십이령길 말고도 그만 알고 있는 지름길이 여럿이어서 부상들 가운데서는 그가 축지를 한다는 소문까지 있을 정도였다. *일순: 열흘 *퇴개꾼: 구운 숯을 운반하는 짐꾼
  •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아니 술어미… 우선 행리부터 풀고 봅시다. 나귀들도 작도간(斫刀間)에 들여 매야지요.” “나귀들 수발이야 수하 행중이나 차인꾼 들이 잘 돌보지 않겠습니까. 걱정 붙들어매시고 여기 앉아보시지요.” “시생이 본래부터 물색에는 뜻이 없는 사람이었는데, 소매를 당기는 게 아닙니다. 어디 켕기는 구석이 있소?” 봉당 쪽마루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으며 행수는 너스레를 떨었다. 그러나 평소 거동에 흐트러짐이 없었던 월천댁이 조급하게 구는 것이 적잖이 의아했다. “그날 병구완했던 사내는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행중 사람이 되돌아와서 말래 숫막촌까지 업어간다기에 그냥 바라보기만 하였습니다만.” “지금 말래 도방에서 구완을 받고 있소. 다리가 부러져서 온전히 걷자면 달포는 꼼짝 못 하고 구완을 받아야 할 것이오.” “그런데 그 사람의 행방을 눈이 시뻘게져서 수탐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누가?” 월천댁은 생각만 해도 모골이 송연한지 상반신을 한번 부르르 떨었다. 그러다 군불을 때다가 별안간 밖으로 뛰어나온 것을 깨닫고 다시 정주간으로 달려가서 잉걸불을 수습하고 나왔다. 소생인 구월이나 늙은 중노미는 이웃에 방아품을 팔러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그게 누구였소?” 곁에서 누가 엿듣는 사람도 없건만 월천댁은 행수에게 귀엣말을 하였다. 행수가 더욱 의아하여 되물었다. “탁발하는 운수였단 말이오? 나물 먹고 푸른 똥 싸는 절간 중놈이 비석거리에는 무슨 소간사가 있어 나타났단 말이오?” 월천댁이 소스라쳐 행수 정한조의 무릎을 찰싹 때리며 말했다. “에그… 그 목소리 좀 낮추시오. 누가 듣겠습니다.” “행색이 어땠소? 주모더러 살보시하라고 눈알을 부라립디까?” “에그머니나… 그런 음탕한 소리 그만둬요…. 스님이란 사람이 목자가 온화하지 못했지요. 목탁은 두드리고 있었지만, 힐끗 보아도 두 눈이 얼음에 자빠진 쇠눈깔처럼 번들거려서 소름이 끼칩디다. 염불을 외우면서도 눈자위를 가만두지 않고 정주간이며 봉노를 서캐 잡듯 뒤집디다. 누굴 찾고 있느냐고 물었더니, 아니라고 소매를 내저으면서도 집 앞뒤를 살피는 것을 멈추지 않았지요. 쇤네가 도대체 누굴 찾느냐고 파고들었더니 그제사 요지간에 벼랑길에서 실족한 사내가 혹시 이 숫막에서 묵어간 적이 있느냐고 묻습디다. 나이가 이팔인 딸 소생을 둔 어미 심정이 어떠한지 짐작하시겠지요? 중이든 속이든 낯선 사람이 찾아오면 가슴부터 두근거린답니다.” “그래서?” “그 말에 가슴이 뜨끔했습니다만, 스님의 목자가 하도 불량해 보이고 제가 안다 하고 섣불리 입을 나불댔다간 큰 동티라도 입을 것 같아 우리집에서는 잔술이나 팔지 객주는 치지 않는다하고 둘러대며 모르쇠로 딱 잡아떼고 말았지요. 정말 모르느냐고 되반들거리는 낯짝을 모잽이로 쳐들고 하냥다짐을 하는데, 데면데면하게 굴었다간 당장 이웃을 불러 무릎맞춤이라도 할 것 같아 쇤네 등골이 오싹합디다. 그 유들유들한 스님이 내 속내를 속속들이 꿰고 있을 것 같아서 다리가 후들후들 떨립디다. 외정도 없는 집에 계집사람 혼자서 과년한 여식을 두고 숫막을 경영한답시고 천방지축 요량없이 날뛰다가 언제 된불을 맞게 될지 조마조마하답니다. 언제 어떤 곡경을 치를지 누가 알겠습니까. 그래서 이웃에 방아 품앗이 간다고 핑계대고 다른 데로 가보라고 방색하고 말았습니다만, 다시 찾아와서 지분거리면 그땐 또 뭐라고 둘러댈지 생각이 올지갈지 하답니다.” “봄 얼음 건너듯 언행에 조심만 한다면 별 탈 있을라구…. 그 땡추는 어디로 갔을까?” “방색하고 나서 힐끗힐끗 훔쳐보았더니 저진터재 쪽으로 휑하니 되돌아갑디다.” “저진터재라면 내성 쪽이 아니오?” “그야 알 수 없지요.” “바랑은 지고 있었소?” “이제 보니 그렇네요. 탁발한다는 스님이 짊어진 바랑도 보이지 않습디다.” “속담에… 배를 타는 손님 중에 짐을 가지고 있지 않은 자는 십중팔구 무뢰배라 했습니다. 궐자가 중의 가사를 입고 있었으나 본색은 부랑배였을 거요.” 정한조는 속으로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으나, 겉으로는 태연하게 말했다.
  •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십이령을 넘나드는 원상들 중에는 정한조가 행수 노릇하고 있는 소금장수 행수 상대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곽전(藿田)에서 매수한 미역이나 건어물을 지고 십이령을 넘는 건어물 상단이 있었는데, 15~16명을 헤아리는 그 상단의 행수는 울진 토박이로 조기출(趙基出)이란 사람이었다. 그 역시 사십대 중반의 나이로 정한조와 같은 접소의 공원이었다. 울진 봉화 보부상 관할 지역은 대개 삼척부 울진현의 흥부장과 매야장, 안동부 내성현(奈城縣)의 내성장과 현동장, 장동장을 손꼽았다. 조기출을 행수로 하는 건어물 상대는 이들 장시에서 고포 미역과 김 그리고 건어물로 거래를 트고 있었다. 조기출은 원래 명색이 책상물림으로 궁반 출신이었다. 그는 임오년에 있었던 군란 이후에 반명을 하는 선비들도 상업에 종사할 수 있도록 허용한 후부터 과감히 투필하고 늦깎이로 원상의 신표를 받았다. 수하에 거느린 행중들 역시 가근방 출신들이 많았다. 선비 출신답게 길미를 노리는 수완이 출중하고 시세를 읽는 안목도 탁월하다는 소문이 있었다. 허우대는 책상물림답게 금방 씻은 배추같이 멀쑥하게 생겼으나, 괴이하게도 목소리는 왕방울로 퉁노구를 가시는 듯 요란스럽고 시끄러워 듣기에 거북했다. 원래는 언사가 순박하고 조근조근했으나 장시에서는 목소리 큰 놈이 대접받는다는 어떤 쓸개 빠진 구실아치의 조언을 듣고 그를 좇은 까닭이었다. 글줄깨나 읽은 이력이 있어 원상들이 관아에서 쟁송이라도 생기면 앞장서길 인색하지 않았으나, 장시의 우락부락한 무뢰배들과 대치라도 할라치면 일찌감치 가위가 질려 대차게 헤집고 나가는 담대함이 모자랐다. 아직 큰 풍상을 겪지 못해 마음이 모질지 못하고 술도 배움술이라 많이 먹어야 두 잔이었다. 그도 임방에선 공원의 직책을 얻어 행세하지만 곧잘 도감인 정한조를 찾아와 도움을 청했다. 성품도 무던해서 행중 식구들로부터 걸핏하면 양반 행티 너무 마시라는 핀잔을 들었지만, 마음에 새겨두지 않았다. 좀먹은 탕건에 책상다리하고 뼈빠지게 글을 읽어도 오직 허황될 뿐 이렇다 할 소득이 없었던 궁반 시절과 견주어 보면, 만리 행역 눈보라에 부대껴 육신은 더없이 고단하지만, 마음은 편해서 일찌감치 신표를 얻게 된 것이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이었다. 임오년 난리 이듬해인 계미년(1883년)부터 조정에서는 경상, 전라, 강원, 함경도 연안의 조업권을 일본에 허가해 버렸다. 그런 연유로 연안 어업이 위축되고부터 덩달아 건어물의 수확도 줄어들었다. 생업을 걸었던 상대들도 하나둘 내륙의 상대로 이탈하고 말았다. 야거리배만으로는 종선까지 몰고 다니는 일본 선단의 위세당당한 조업을 당해 낼 재간이 없었다. 해촌의 어부들은 끽해야 팔을 뻗으면 손이 육지에 닿을 것 같은 연안을 맴돌면서 생선 몇 뭇* 낚아 말리거나, 곽전에서 수심곽*과 오들곽*을 걷어 내는 일에 생계를 의존했다. 고포리 해안선을 따라 10여 리에 형성된 바위 밭의 돌곽 미역은 얕은 수심에서 햇볕을 보고 자라 검푸른 색을 띠고 잡벌레가 없을뿐더러 국을 끓이면 그 향기가 온 방안에 퍼졌다. 동짓달에 시작해서 이듬해 4월 사이에 채취한 미역은 크기도 일반 미역이 따르지 못해 고려시대부터 진상품으로 명성이 자자하였다. 1월부터 4월까지는 정어리나 청어, 오징어, 임연수어 같은 어종들이 잡혀 그나마 내륙으로 가져가면 길미가 쏠쏠하였다. 꼭두새벽에 말래 도방에서 발행한 소금 행상들이 샛재에 당도한 것은 산기슭에 서 있는 마른 자작나무 가지들이 우수수 설레는 그날 해거름 무렵이었다. 말래부터 바릿재를 넘어 샛재까지 노정에는 벼룻길과 잔도와 치받이길이 계속되었다. 때문에 발새 익은 길이라지만 욕심껏 걸어도 노정 줄이기가 수월치 않았다. 당도하고 보니 미역 짐과 건어물 짐을 진 조기출 행중들이 먼저 당도해서 맞은편 숫막의 봉노를 지키고 있었다. 숫막이 세 군데나 있어 20여 명의 행중이 한꺼번에 들이닥쳐도 봉노가 비좁은 경우는 없었다. 비좁다 하더라도 서로 빗장거리하듯 어슥버슥 누우면 그대로 곯아떨어졌다. 서로 막역한 사이인 두 떨거지들이 왁자하게 떠들어 대는 와중에, 정주간에서 뒤트레방석을 깔고 앉아 군불을 지피던 월천댁이 정한조가 이끄는 소금 상단 행중이 당도한 것을 얼른 알아채고 봉당 쪽마루에 널린 도깨그릇들을 서둘러 치우고 나서 앉으라는 눈짓을 보냈다. *뭇: 열 마리가 한 뭇. *수심곽: 잠녀들이 깊은 물에 들어가서 채취한 미역. *오들곽: 얕은 물에서 낫대로 건진 미역.
  •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샛재로 되짚어 갔다는 만기 일행이 말래 도방으로 되돌아온 것은 술시가 가까운 시각이었다. 월천댁은 병자의 부러진 다리에 버드나무 껍질을 벗겨 지지대를 붙이고 감발로 싸 동여 놓았다. 만기 일행은 어찌나 황망히 길을 줄였던지 그 한절에도 온몸에 땀이 비 오듯 하였다. 그들은 행수가 누울 아랫목 자리에 병자를 뉘었다. 월천댁의 알뜰한 구완에 병자는 얼추 기신을 차린 듯하였으나 어찌 된 셈인지 감긴 눈은 제출물로 뜨지 못했다. 얼굴이 죽장같이 부어올랐기 때문이었다. 다시 옷깃을 차근차근 뒤져 보았으나 역시 본색을 알아차릴 만한 증거는 찾을 수 없었다. 동무하는 행중이 푸념하였다. “기필코 궐자의 본색을 알아서 무엇하겠습니까. 정신 차리고 일어나면, 제 가던 길을 찾아가겠지요. 우리도 그만하면 도리를 할 만치 했지 않습니까.” “생선과 나그네는 사흘만 되면 냄새가 나는 법인데… 이 위인은 우리들이 업어 온 날짜만 되어도 사흘이나 되는데 도무지 본색을 모르겠네요.” “활인했으면 되었지, 구태여 본색은 알아서 뭣하겠나.” 모두 중구난방으로 한마디씩 거드는 말을 가만히 듣던 행수가 손사래치며 나직하게 말했다. “구완했다는 생색내려 하지 말고 정신이 돌아올 때까지 잠자코 기다리는 게 도리일세.” 부기가 얼추 가라앉아 어섯눈을 뜨고 묻는 말에 대꾸할 만하게 된 것은, 의원이 당도하여 꼬박 뜬눈으로 구완하며 밤을 새운 그 이튿날 해질 무렵이었다. “이제 기신을 차릴 만하오?” 병자는 알아들었다는 듯 희미하게 웃었다. “십이령 비알진 기슭에서 노형을 발견하였소. 함자는 무엇이고 생업은 무엇으로 연명하오?” 위인이 내키지 않는 듯 한동안 대답을 주저하는 기색이더니 끙 하고 반 몸을 비틀어 가까스로 몸뚱이를 일으키고는 입을 열었다. “남행하는… 길이었습니다… 날이 저물자 초행길이라 조바심 나서 용수 걸린 집을 찾아 천방지축으로 헤매던 중에 험구를 만나 실족하고 말았습니다. 비알진 기슭에서 어찌나 곤두박질하였던지. 정신이 올지갈지해서 다른 것은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초행길이라 하더라도 어째서 이곳으로 노정을 고쳐 잡게 되었는지, 도무지 기억에 없습니다… 신세를 졌습니다. 필경 길송장이 되어 개호주에게 물어뜯기거나 까마귀밥이 될 초개 같은 목숨을 성의를 바쳐 활인하여 주셨으니 그 은공 평생 잊지 않으리다….” “낯을 내자고 활인한 것은 아니오만, 입성이며 온몸에 어혈 자국이 낭자하니, 노형의 처지가 범상치 않음이오. 몸에서 누린내까지 나는 걸 보면 실족을 당했을 뿐만 아니라, 싸다듬이로 된불조차 맞은 듯한데, 산속 길을 헤매던 중에 적변을 당했거나, 악소 패거리들을 만나 대판 시비가 붙었던 것은 아니오?” “….” “우리들은 울진 포구에서 검은 돌 마을 거쳐 현동 저자나 내성으로 가는 십이령길을 수시로 넘나드는 원상들이오. 댁의 본색을 알려고 아득바득 파고드는 것을 섭섭하게 생각하지 마시오. 이 십이령길에서 어떤 작폐가 일어나든, 그 내막을 속속들이 알고 있어야 할 처지가 아니겠소. 적변이 있었다면, 그 패당들을 소탕해야 할 것이고, 무뢰배들이 숨어 있다가 길손들을 등쳐 먹고 행리를 탈취한다면, 그 작폐 또한 저지시켜야 할 것입니다.” “시생은 원상도 아니고 농투성이도 아닙니다… 남도 쪽에 시생의 인척이 있어 찾아가는 길이었습니다. 그 도중에 이런 환난을 겪게 되었으나, 박이 터진 것처럼 도무지 기억이 희미할 뿐입니다.” 위인의 말투는 조근조근했으나 겪은 사연이란 내막이 허황되고 동에 닿지 않아 본색을 숨기려 한다는 것은 틀림없었다. 그러나 굳이 기억에 없다고 모르쇠로 버틴다면, 더이상 파고들 빌미가 없었다. 박을 다쳐 기억상실이 되었다면, 사매질로 다스리지 못하는 이상 그대로 믿는 수밖에 용뺄 재간이 없었다.
  •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그는 줄곧 옷깃을 여미며 걸음을 재촉하였다. 말래 도방 거리에 당도해 보았자, 호들갑스럽게 맞이해줄 호박 갈보가 있다거나 갈롱을 떨며 육허기를 채워줄 동자치가 기다리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뜨끈뜨끈하게 군불을 지핀 구들장에 허리를 굽고 한잠 늘어지게 자고 싶을 뿐이었다. 그리고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더라고, 10냥짜리 소금 두 섬을 덧거리로 얻게 된 것도 걸음을 빨리하게 만들었다. 그가 향도하는 행중 식구들은 흉·풍년에 따라서 들쭉날쭉하였지만 대개 4, 50여 명을 헤아렸다. 그 동사하는 식구들을 탈없이 영솔하기 위해선 어떤 경난에도 자신을 지체없이 던지는 희생이 필요했다. 소년 시절부터 행상들에게 익히 보아온 범절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장시에서 억매흥정으로 뜸베질하는 떠돌이 행상을 부상의 이름으로 엄중하게 징치하고, 신표 없이 부상 행세를 하며 눈먼 돈을 노리는 자들을 찾아내 장시에서 내쫓는 일도 모두 그가 앞장서서 해온 일이었다. 그랬기에 언문밖에 모르는 그가 내성 행상에서 도감의 직책에까지 오를 수 있었다. 날씨는 차가워 콧날이 시큰거릴 정도였으나 저녁거미가 내려올 무렵 그는 장대 끝에 내걸린 용수들이 바람에 시달리는 말래 숫막거리에 당도하였다. 거느린 식솔도 없고 정처도 없는 부상들이 묵을 처소라면 조선 팔도 어디서나 숫막뿐이었다. 이토록 스산하게 해질 무렵에는 필경 객회가 쓸쓸하기로, 가랑이 벌리고 앉아 지분이나 다스리는 동자치라도 있다면 먼발치에서 힐끗 훔쳐보는 것만으로도 심란함을 달랠 수 있으련만, 도방 봉노에는 고린내 등천하는 사내들만 우글거리고 있었다. 마침 문틈으로 조용조용 읊조리는 배고령(裵高靈)의 신세타령이 가만가만 새어나왔다. 주인 주인 나오소 좌사 손님 들어가오 서해안에 사는 사람 서로서로 형제인데 고을 백민끼리 남남 보듯 할 수 있소 산토끼가 죽어가면 여우도 슬퍼하네 금수도 그러한데 한심하다 우리 세상 무거운 등짐 지고 이곳저곳 떠돌면서 아침에는 동녘 하늘 저녁에는 서녘 땅 어쩌다 병이 나면 구완할 이 전혀 없네 사람에게 짓밟히고 텃세한테 괄시 받고 언제나 숨겨두면 까마귀의 밥이 되고 슬프다 우리 인생 이럴 수가 어찌 있소 우리네 산다 한들 몇만 년을 살 것이오 한데 묶어 단결하고 기율로써 다스리면 형도 좋고 아우 좋고 서로서로 도울제면 동네방네 좋을시고 우리 고을 좋을시고…… 문 닫은 봉노에서 살담배들을 어찌나 피워댔는지 매캐한 연기가 샛재 잔허리에 아침 안개 끼듯 하였다. 봉노 한쪽에는 저녁거미 내리는 것을 보고 켜둔 산초 기름등잔이 타고 있었으나 담배 연기 때문에 사람들 얼굴도 분별하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행수가 들어서자, 호박고누를 두고 있던 축들이나 술푼주를 가운데 놓고 추렴을 하던 동배간들이 뜨끈뜨끈한 아랫목에 두었던 술푼주와 섞박지 그릇을 치우고 윗목으로 썩 비켜 앉았다. 어슥버슥 누웠던 동무들도 벌떡 상반신을 일으키고 앉았다. 봉노 안에는 쉰내와 고린내가 등천하여 코를 들이댈 수 없을 정도였으나 그것을 가지고 고약하다고 불평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동무 하나가 벌떡 일어나 시렁에서 목침을 내려 행수에게 건넸다. 내왕 길목에 있는 숫막에는 행수만 차지하는 목침이 따로 마련되어 있었다. 제법 결기가 있다는 길손도 얼떨결에 행수의 목침을 범접했다간 귀싸대기를 얻어맞는 봉변을 당할 수 있었다. “포주인은 만나보았습니까?” “몇십 년째 염막에 틀어박혀 울 밖 출입도 않는 사람이 어딜 가겠나.” “흥정은 아퀴를 지었습니까?” “소문이 자자한 자린고비가 값을 눅게 잡아줄 리가 없지… 대신 소금 두 섬을 덧거리로 얻었네.” “그만하면 되었습니다.” “임자들 요기는 하였나?” “장떡에 술국으로 얼요기를 하였습니다.” “만기는 어디 갔나?” “아침 선반머리에 곁꾼 둘을 데리고 샛재로 되짚어 갔습니다. 얼추 올 때가 되었는데요……” “그 숫막에 눕혀 두어도 월천댁이 아금받게 구완을 해줄 텐데?” “만기가 의원이 가까운 말래로 업어 와야 하겠다고 아득바득 우기는 통에 만류할 수 없었습니다. 구억터 소동에서 나귀조차 놓아버리는 실수에 미련하게 굴었던 것이 제깐엔 부담이 되었던가 봅니다.” “국에 덴 놈 물 보고 분다더니… 그럴 테지…” “위인이 뉘집 행랑것이나 장물림 같아 보였지만, 얼추 기신을 차리고 나면 그만한 허우대도 찾기 어려워 보이는 사람이었습니다.” 말인즉슨 언중유골이었으나 행수는 귀여겨듣지 않고 슬쩍 넘겼다. “경황중이라 난 간색도 해보지 못했다네.”
  •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포주인의 비위짱이 뒤틀리지 않게 적당히 구슬러 놓았더니 수전노 행세대로 값을 눅게 잡아 주지는 않았으나, 소금 두 섬을 덧거리로 건네기로 약조해 주었다. 하긴 그들이 아니라면 울진 포구 염막에서 생산된 토염은 팔아치울 곳도 마땅치 않았다. 간혹 떠돌이 장돌림들이 울진 포구 토산염 좋다는 소문만 듣고 섣불리 염호들을 찾아와 흥정해 간 사례도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십이령을 채 반도 넘기 전에 천도나 잔도(棧道)를 건너다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져 평생 동안 돌이킬 수 없는 포병객이 되거나 열명길에 들어서기도 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정한조가 이끄는 소금장수 상단 아니면 고헐간에 소금섬을 넘겨줄 부상들도 흔치 않았다. 내성에서 가져온 무명짐을 넘겨주기로 약조하고 흥정을 여축없이 성사시킨 행수는 해거름에 염막을 나섰다. 염창의 지붕에서 벗겨진 이엉들이 불어오는 바닷바람에 쉴 새 없이 들썩거리고 있었다. 모래펄에 씻기는 파도 소리는 오늘따라 스산했다. 염전이 있는 수산천을 발행하여 도방이 있는 말래의 숫막까지는 등짐 없이 열불나게 걸어도 한식경이나 걸렸다. 포구에서 발행하여 구만리와 외고개를 지나거나 흥부에서 발행하면 쇠치재나 세 고개재를 넘어야 하기 때문에 소금섬을 지고 걷는다면 아침 선반에 발행해서 말래 도방 거리에서 하룻밤을 유숙해야 할 상거였다. 그리고 십이령으로 접어들어 사흘이나 나흘이 되어야 허위단심 현동 저자나 내성 장시 어름에 당도할 수 있었다. 오랜만에 등에 짐바리가 없는 단출한 몸으로 걷고 있다는 것이 꿈만 같았다. 시절로 보아 칼바람이라고 부르는 동남풍이 불어야 할 때였다. 오금 밑을 지악스럽게 파고드는 한기는 뼈에 사무치도록 차가웠다. 그러나 등짐을 지지 않고 반나절을 걷게 되었다는 것이 여간 다행스러운 게 아니었다. 기분은 날아갈 것 같은데, 바람 때문에 길이 줄어들지 않았다. 소년 시절부터 사십 평생까지 등에 진 쪽지게를 벗을 날이 거의 없었다. 그는 자신이 태어난 고장을 모른다.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처럼 자신을 낳아준 아비와 어미의 얼굴조차 기억에 없다. 소년 시절은 구걸로 한둔하면서 숱한 고초를 겪은 것만 기억에 선명할 뿐이었다. 그리고 어느 날 문득 울진 포구의 염전에서 내성 장시를 오가는 소금행상에서 작은 쪽지게를 지고 담꾼 노릇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였다. 나이 사십 초반에 이르렀다는 것도 내성 태생이라는 것도 작반하던 늙은 부상들이 귀뜸해 주었을 뿐이었다. 그때까지 그의 생애는 오직 길바닥에 머물러 있었다. 걷고 또 걸어도 문득 고개를 들면 그는 길바닥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하였다. 등 뒤 쪽지게에 얹은 소금짐은 바위를 지고 있는 것처럼 어깨와 허리를 짓눌렀다. 짓누르는 무게로 말미암아 허리는 자꾸만 아래로 구부러지고 찬 서리 머금은 된비알 치받이 벼룻길을 스친 흙냄새가 콧등에서 폐부에까지 진동한다. 모가지를 잔뜩 빼올리니 5리 길도 걷지 않아 뒷덜미가 둔기로 얻어맞은 듯 뻐근하게 울려온다. 걸음을 한 발짝씩 옮겨놓을 때마다 오금은 자꾸만 오그라들고, 천도에서 튀어 올라온 돌니를 밟을 때마다 등짐을 진 채로 기우뚱거려 수십 길 벼랑 아래로 굴러떨어질 것만 같아 가슴 졸인다. 오줌은 마려워 하복부가 팽팽하게 당겨오는데, 일행은 전혀 쉴 참을 주지 않는다. 쪽지게를 벼랑길에 세워두고 속시원하게 배설하고 싶은 마음 굴뚝 같으나 그렇게 되면 일행은 벌써 저만치 앞장서버려 도무지 뒤따라잡을 수 없게 된다. 물미장을 겨드랑이에 끼고 오지랖을 움켜쥐고 걷노라면 등골에는 어느새 진땀이 흐르고, 발뒤축에서 흘러나온 피가 짚신을 적신다. 치받이길은 그런대로 버틸 수 있다지만, 내리받이길은 더욱 고통스럽다. 허리를 곧추세우고 걷지 않으면 높이 쌓아올린 등짐이 머리 위에서 곧장 쏟아질 듯 위협하여 물미장으로 발부리 앞을 버텨주지 않으면 그대로 벼랑길로 곤두박질쳐 순식간에 어육이 되고 말았다. 5리만 내려가도 두 다리가 바들바들 떨리고 허리는 쥐어짜듯 저려온다. 십이령길 주변에는 이름을 알 수 없는 무덤들이 자주 눈에 띄는데, 그 모두가 내리받이 벼랑길을 내려가던 행상들이 실족하여 열명길에 오른 연고 없는 무덤들이었다. 소금장수들의 허우대가 한결같이 껑충한 것은 모두 그러한 고통과 질곡을 참아내기 위함 때문일 것이었다.
  •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머쓱해서 말구멍이 막힐 줄 알았는데, 정한조는 웃지도 않고 되받았다. “어림없는 얘깁니다. 시생과 같이 한둔으로만 지새우며 연명하는 장물림에게 육허기에 시달리는 동자치인들 좋다 하겠습니까.” “갈매기 떼 있는 곳에 고기 떼 있더라고, 사람 많이 모이는 저잣거리에 출입이 잦다 보면 언젠가 육덕 푸짐한 아낙네가 눈에 띄지 않겠나. 마음먹기 달린 게지. 김 날 때 후루룩 들여 마시는 게 임자라지 않던가. 지금도 늦지 않았으니 가합한 혼처를 찾아 가솔을 거느리게.” “잘못 덧들였다가 제가 도리어 뒤집어쓰게 되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포주인께서나 저나 동병상련입니다….” “누가 아니라나… 하긴 그뿐만 아닐세. 어제도 질청의 호장이 찾아와서 나를 윽박지르고 돌아갔다네. 그래서 내가 시방 좌불안석이야.” “또 무슨 일입니까?” “어느 놈의 사주를 받았는지… 조만간 염전을 내놓으라고 으름장 놓고 갔네.” “척매(斥賣)를 하라는 것입니까?” “그것들의 속내야 뻔하지 않은가. 방매(放賣)하고 나면, 구전이나 톡톡히 뜯겠다는 수작이겠지. 그들이 노리는 것은 염전뿐만 아닐세. 듣자 하니 고포에서 곽전을 가진 물주들도 질청 것들의 농간으로 고충을 겪고 있다네.” 그로써 어장은 궁가(宮家)나 토호들의 소유가 눈에 띄게 늘어나기 시작하였다. 곽전도 진상(進上)과 공상(供上)의 주요 물품인 미역과 김으로 사유화가 진작부터 진행되었다. 미역이 생산되는 터전인 지름 10여 무 정도의 바윗덩이가 200냥이나 400냥의 가격으로 거래되었는데, 거기에 질청의 구실살이들이 끼어들어 농간을 하였다. 특히 곽전인 바위는 매우 정확하게 위치 표기가 가능할 뿐더러 어떤 경우도 변형이 되거나 유실되는 염려가 없는 만큼 가장 확실한 매매 대상이 되었다. 그래서 하늘만 쳐다보는 천둥지기 다랑논이나 비탈진 산기슭에 매달리듯 붙어 있는 따비밭 따위 들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토지 이상의 가치를 가진 재산으로 인정되었다. 어촌 사회는 중앙의 관부로부터 멀리 떨어진 소외 지역이었다. 그러므로 나라에서 내리는 혜택의 기회를 원천적으로 가지기 어려웠다. 때문에 무능력한 백성들이 모여 살기에 가장 알맞은 지역이었다. 도망한 노비들이 해안가 염전이나 곽전으로 숨어들어 보잘것없는 삯전으로 가까스로 연명하였다. 그들 역시 거둬들이는 착취에 시달리고 있었다. 아전, 군교는 물론 심지어 관노(官奴), 관예(官隸)까지도 그들 위에 군림하여 가리틀거나 착복을 자행하였다. 수령의 가친(家親) 생신이나 혹은 그들의 빈객을 빙자하여 물품을 강징하고는 그것을 수령에게 상납하는 것이 아니라, 하속 예리들이 빼돌려 착복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부정에 어민들은 저항할 결집력이 없었다. 신분 자체가 떳떳하지 못한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부패 관리에게 그대로 노출되어 탐학에 시달리고 있었다. 정한조의 입에서도 긴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언젠가는 그들의 탐학과 농간을 저지시킬 날이 오겠지요.” “힘에 부치지만, 견딜 수 있는 데까지 견뎌야지. 반수와 도감의 훈수만 믿고 있다네.” “농이겠지요.” 겨끔내기로 농을 주고받는 두 사람의 속내로는 벌써 흥정이 무르익고 있었다. 포주인이 농을 부드럽게 주고받으면 흥정은 거의 담판이 난 셈이었다. 속셈으로 점치고 있었듯이 새재 눈밭 사이에 노란 복수초가 얼굴을 내밀더란 봄소식에 포주인 송석호도 한결 마음에 위로를 받아 가벼워졌으니 이번 행보에도 값은 눅게 해서 소금 바리를 넘겨주기로 하였다. 포주인도 등 두드리고 배 문질러 주는 수완이 출중한 행수에게 어느새 희미한 정리를 느꼈다. 정한조가 농담 끝에 불쑥 한마디 던졌다. “가난뱅이 구들장에 물난리가 겹친다더니, 이번 길에는 짐승 한 마리가 절음 나서 내왕길에 경난깨나 겪었습니다. 발새 익은 길이라지만, 십이령 고갯길 10리는 평지 길 20리 맞잡이가 아닙니까… 사정이 그러했으니 이번 파수에는 박하게 그러지 말고 좀 눅게 잡아 주시지요. 원님과 급창의 흥정에도 에누리가 있다 하지 않았습니까.” “피아말 엉덩이 둘러대듯 잘도 둘러대는구만. 하긴 절음 난 짐승 때문에 겪지 않아도 될 한고를 겪었다니 숙객*인 임자에게 박절하게 굴 수야 없지.” *숙객: 단골
  • [부고]

    ●최경련(서울 오륜초 교사)씨 부친상 이병화(두산건설 부사장)김종영(메리알코리아 대표이사)씨 장인상 16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8일 오전 7시 30분 (02)3010-2292 ●이선호(충북도 자치지원팀장)씨 장모상 16일 청주 참사랑병원, 발인 18일 오전 8시 (043)298-9200 ●우문기(매일신문 사회2부 부장)인기(LG전자 수석연구원)성기(자영업)씨 부친상 16일 영남대병원, 발인 18일 오전 9시 (053)620-4245 ●조상제(KG ETS 에너지사업부장 상무)씨 장모상 16일 부산 서호병원, 발인 18일 오전 7시 (051)915-6092 ●정형한(전 희성엥겔하드 대표이사)씨 별세 진욱(미국 거주)주아(삼성SDS 수석보)순호(우리자산운용 부장)씨 부친상 유범희(삼성서울병원 교수)씨 장인상 15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18일 오전 7시 30분 (02)3410-6920 ●박창식(전 코리안리재보험 상임감사)씨 부인상 15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18일 오전 6시 (02)3410-6914 ●한창윤(그루 대표이사)태윤(사업)씨 부친상 16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8일 오전 6시 30분 (02)3010-2295 ●성열철(미국 거주)김준영(롯데손해보험 책임)씨 장모상 16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18일 오전 6시 30분 (02)3410-6906 ●김주영(IBK투자증권 컴플라이언스팀장)씨 부친상 16일 일산백병원, 발인 18일 오전 6시 30분 (031)910-7444 ●김종갑(자영업)씨 별세 경갑(한국경제 문화부 편집위원 및 부국장대우)씨 동생상 16일 서울동신병원, 발인 18일 오전 8시 (02)395-0865 ●정철화(경북매일신문 부장)씨 부친상 16일 포항 세명기독병원, 발인 18일 오전 7시 (054)275-9334 ●채형석(전 비상기획위원회)문석(전 KT 충남본부장)풍석(사업)씨 모친상 16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18일 오전 9시 (02)3410-3151 ●정충헌(진천소방서)용훈(충북 충주시청 보도담당)씨 모친상 16일 충북 진천 효병원, 발인 18일 오전 6시 (043)537-0034, 070-4630-8622 ●장창범(금강오길비 미디어본부 상무)창덕(장창덕치과 원장)씨 부친상 16일 부산 BHS한서병원, 발인 18일 오전 9시 (051)751-1860
  • [데스크 시각] ‘5070’의 컴백/김균미 편집국 부국장

    [데스크 시각] ‘5070’의 컴백/김균미 편집국 부국장

    지난주 핫 뉴스는 역시 싸이의 신곡 ‘젠틀맨’ 음원과 뮤직비디오 공개였다. 뮤직비디오는 이틀 만에 유튜브에서 검색 수 5000만건을 넘어서며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최근 수년간 10, 20대 초반의 아이돌 그룹들이 주를 이루는 국내 가요계에서 36세 싸이의 돌풍은 급속도로 연소화되던 추세에 제동을 걸었다. 20년 만에 영화 ‘야관문’에서 49살 어린 여배우와 멜로 연기를 한다는 원로 배우 신성일(76)도 화제였다. 그러고 보면 요즘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이 부쩍 실감난다. 환갑을 넘긴 ‘영원한 오빠’ ‘가왕’(歌王) 조용필(63)이 데뷔 45주년을 맞아 다음 달 19집 앨범과 함께 전국 콘서트 투어에 나서고, ‘발라드의 아이콘’ 이문세(54)가 6월 1일 잠실 올림픽주경기장에서 데뷔 30주년 초대형 콘서트를 갖는다. ‘행진’의 들국화와 봄여름가을겨울도 각각 데뷔 27주년과 25주년을 내걸고 줄줄이 돌아왔다. ‘5070’(편의상 50~70대 지칭)의 컴백은 가요계만의 얘기가 아니다. 소설가 김주영(74)은 객주 9권을 발표한 지 30년 만에 완결편을 지난 1일부터 서울신문에 연재하고 있다. 소설가 조정래(70)도 인터넷에 ‘정글 만리’를 올리고 있다. 황석영(70)과 박범신(67)은 신문 연재소설을 단행본으로 내며 건재를 과시했다. 팔순을 넘긴 박형규 전 고려대 노어노문학과 교수는 레프 톨스토이의 작품 전집을 18권으로 번역해 출간할 예정이라고 밝혀 혀를 내두르게 했다. 그런가 하면 한국학의 석학인 김열규(81) 서강대 명예교수는 60번째 책인 ‘이젠 없는 것들’을 펴냈다. 어디 이뿐인가. 국사학자 한영우(75) 이화여대 석좌교수는 올 들어서만 ‘과거, 출세의 사다리’와 ‘율곡 이이 평전’ 등 두 권의 책을 냈다. 글과 연구의 폭과 깊이, 주제를 꿰뚫는 이들의 통찰력은 후학들을 저절로 부끄럽게 만든다. 공연예술계도 예외는 아니다. 원로 연극인 겸 탤런트 신구(77)와 박정자(71)가 연극 ‘안티고네’로, 손숙(69)은 ‘나의 황홀한 실종기’로 각각 무대에 오른다. 이들의 연기를 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행운이다. 이처럼 ‘전설’들의 ‘컴백’이 반가운 것은 한쪽으로 쏠렸던 ‘사회의 생체시계’를 조금이라도 되돌리지 않을까 싶어서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 사회는 오십대 중반만 돼도 ‘뒷방 늙은이’ 취급을 할 정도로 조로(早老) 현상이 심각했다. 하지만 베이비부머의 은퇴가 본격화되면서 ‘젊은’ 은퇴자들은 사회·문화적으로 새 동력이 되고 있다. 지난해 1000만 관객 영화가 두 편씩이나 나오고 올해까지 한국영화의 르네상스가 이어지는 데에 이들이 기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5070’ 세대는 사회·문화의 새로운 소비자에 머물지 않고 생산자로 부상하고 있다. 장편소설 ‘담징’을 발표하며 소설가로 인생 2막을 시작한 김민환(68) 전 고려대 교수가 “은퇴자들이, 우리 사회 성공 신화를 일군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를 쓰는 붐을 일으켰으면 좋겠다”고 한 말은 그래서 더욱 여운이 남는다. 문화는 퍼낼수록 새 물이 고이는 우물과도 같다. 윗세대가 활발하게 활동한다고 해서 20~30대의 파이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전체 파이는 커진다. 악동뮤지션과 싸이, 조용필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다양성과 깊이를 함께 담아내는 문화정책, 이것이 새 정부의 생애주기별 문화복지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다. kmkim@seoul.co.kr
  •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그는 마침 내성 장시에 들렀다가 회정해서 찾아온 행수를 맞이하며 앉은자리에서 굽도 떼지 않고 엉덩이를 들썩하는 시늉만 하였다. 정한조가 내성 장시 일대를 휘어잡고 있을 정도로 면목이 단단하고 배짱이 드센 위인이라는 것을 익히 알고 있기에 그나마 예의를 차린다는 것이 그 모양이었다. 그는 우선 시절부터 물었다. “시절은 봄이라 하는데… 십이령길은 아직도 한절이나 다름없을 테지?” “아닙니다. 회정하는 샛재길에서 눈밭을 헤적여 보았더니… 눈밭 속에 노란 복수초가 빼식하게 웃으며 꽃잎을 틔우고 있었지요.” 침울하던 안색이 갑자기 밝아진 송석호가 혼잣소리로 푸념하였다. “평생을 젓국내만 등천하는 포구에만 틀어박혀 엉덩이에 두께살이 앉다 보니, 시절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도무지 가늠할 방도가 없다네.” “만에 하나 누가 염전을 떠메고 줄행랑을 놓을까 심기가 불편한 게지요?” 반은 농인 것을 알아차린 포주인은 배시시 웃음 띠고 나서 말했다. 그 나이에 볼따구니에 가뭇가뭇 검버섯이 피어 있었다. 평소 섭생을 소홀히 한 탓이었다. 정한조가 해야 할 흥정은 않고 객담부터 늘어놓았다. “적잖이 식산하였는데… 출타를 삼가시니 입성을 고쳐 가지는 것은 내키지 않더라도 섭생이나 제대로 하시지요. 이제 그만하시면, 냉골을 지키고 앉아 기한에 떨고 누추한 입성으로 신산을 겪지 않아도 될성부른데요.” “홀몸으로 살아가자니, 그게 어디 손쉬운가.” “그 연세에 걸맞은 수절 과수댁이라도 얻어 살면, 얼굴에 검버섯 피는 것은 모면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홀아비로 사는 게 여간 골몰한 게 아니지 않습니까.” “모기도 처서가 지나면 입이 삐뚤어진다 하였네. 임자 알다시피 이 나이에 섣불리 계집 얻어 살송곳 박아보겠다고 진땀 흘려가며 몸부림치다가 일만 그르치고 불알에 똥칠만 할 게 아닌가. 어디 그뿐인가. 성깔 사나운 계집에게 귀싸대기나 얻어맞는 환난을 겪게 될 게야.” 온당한 말이라 생각하면서도 못 들은 척하고 너스레를 떨었다. “찾아보면 용모도 가무잡잡하고 삭신도 노골노골한 까막과부도 없지 않습니다. 아무리 콧등이 센 계집사람이라 할지라도 사내 행세 서툴다 해서 언감생심 하늘 같은 남편에게 손찌검을 하겠습니까.” “여색을 멀리한 지 오래되었다네. 뿐만 아니라, 숨이 턱에 와닿은 내 나이를 몰라서 그러나? 삶은 팥에서 싹이 날 것을 기다린다는 것은, 도깨비 방귀를 잡겠다고 설치는 것과 다름 아닐세.” “여색을 밝히라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남정네란 가솔을 갖추고 살아야 천수를 누릴 수 있다는 뜻이지요. 길고 긴 겨울밤에 질화로 가운데 놓고 마주앉아 조근조근 얘기할 상대라도 있어야 일찍 늙지 않습니다.” “그 말 듣고 보니 눈물이 나려 하네…. 그러나 임자 하는 말을 다시 씹어 보면 내가 측은해서 하는 말인지 임자 스스로 심기를 달래려는 말인지 분간을 못 하겠네. 내 걱정은 말고 임자 오지랖이나 챙기게.” “혹시 이 말은 들어본 적이 있는지요?” “그게 뭔데?” “털은 있고 이빨은 없으되 곶감 씨를 빼물고 있는 짐승이 있는데 그게 무슨 짐승인지 아십니까?” 또 무슨 흰소리인가 해서 귀를 기울였던 포주인은 안색이 돌변하며 이죽거렸다. “예끼 이 사람, 버르장머리하구선. 묵어서 쉰내나는 그 소리 벌써 몇번째인가. 고얀 사람. 임자 오지랖부터 챙기라니깐 농지거리가 기탄이 없네 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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