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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말이야 옳았지만, 비가 내리는 바위틈에서 까닭 없이 야숙하는 판국에 잠이 올 리 만무였다. 잠이 오지 않았으니 가슴속은 써늘하게 식어왔다. 고달프게 살아온 풍진 세월이 뇌리 속으로 뭉클뭉클 집혀왔다. 아리고 쓰린 감회가 비바람 소리와 함께 가슴속을 핥고 지나갔다. 기진했던 삶의 편린들이 뼛속으로 고스란히 전달되면서 잠은 저만치로 달아나고 육신은 한속으로 사시나무 떨듯 하였다. 이튿날 새벽 그들은 연기가 나지 않는 싸리나무를 꺾어 지은 수수밥을 손바닥으로 받아 구렁이 개구리 녹이듯 순식간에 삼키고 나서 다시 길을 재촉하였다. 당도한 곳은 밤새웠던 토굴에서 엎어지면 코 닿을 자리인 한나무재 계곡이었다. 울진 흥부에서 내성 쪽으로 가다 보면 만나는 한나무재는 왼쪽으로 통고산 노루막이가 아스라이 바라보이고 오른쪽으로는 높다란 응봉산 능선이 버티고 있다. 그래서 한나무재는 십이령 중에서도 숨이 탁 막힐 정도로 깊은 산진수궁(山盡水窮)이었다. 그런데 한나무재 계곡에 당도한 그들은 어찌된 셈인지 잠행을 멈추고 일곱 사람 모두가 스스럼없이 모습을 드러냈다. 계곡의 너른 바위에 자리를 잡은 곽개천은 사위를 꼼꼼하게 살펴보았다. 그의 시선이 한곳에 머물렀다. 계곡 바로 곁 가풀막진 산비알 아래로 오종종하게 붙어 있는 다랑논이 바라보였기 때문이다. 하늘의 처분만을 기다리는 그들 다랑논은 밤새 내린 비로 축축하게 젖어 있었지만 오랫동안 경작하지 않은 묵정논이었다. 뿐만 아니었다. 다랑논 한 귀퉁이에 추녀가 땅에 질질 끌리도록 쓰러진 움막집 하나가 보였는데, 역시 버려진 움막이었다. 일행은 그 움막에서 이틀 밤을 보냈다. 그들이 그 움막을 엄폐물 삼아 은신했던 것은 그 산기슭이 십이령 중에서도 가장 인적이 없어 짐승들만 다니는 길목으로 소문나 있었고, 길손들이 봇짐을 털린 곳은 통고산과 응봉산 사이에 있는 계곡 길이었다는 것을 여러 번 들었기 때문이다. 과연 곽개천의 짐작은 제대로 맞아떨어졌다. 이틀 밤을 지새우고 사흘째 되던 날 아침 선반머리였다. 통고산 마루에 당보수(塘報手)로 내보냈던 행중이 움막으로 숨차게 뛰어들었다. 통고산 벼랑길로 여섯 명의 장정들이 계곡길을 겨냥하고 내려오는 낌새를 목격한 것이었다. 그 길로 내려온다면 필경 내왕이 빈번한 한나무재길을 거치지 않을 수 없었다. 길이 아닌 길을 선택한 것과 등짐이나 괴나리봇짐조차 걸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산적일시 분명했다. 버려진 다랑논을 경작하려는 농투성이는 더욱 아니었다. 그러나 한 가지 염려스러운 것이 있었다. 그들의 본색이 산적이 분명하다 할지라도 행중이 매복하고 있는 움막 앞은 지나간다는 보장이 없었기 때문이다. 곽개천이 당보수로 나갔던 행중에게 물었다. “병장기를 지녔던가?” “멀리서 지켜보았기 때문에 적실치는 않으나, 몸에 지닌 병장기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품속에 감추었을 테지. 이곳까지 당도하자면 얼마나 걸릴까?” “산속 치받이길인데도 상단에 버금갈 정도로 걸음이 매우 빨랐습니다.” “저들을 유인해야 하네. 솔가지로 불을 피워서 연기가 산기슭을 타고 오르도록 하게. 이 계곡 길에 사람이 있다는 것을 눈치채게 만들어야 저들이 다른 길목으로 빠지지 않고 곧장 이 계곡 길로 들어설 것이야.”
  •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그날 밤 해가 지고 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동산 마루가 날 샐 무렵처럼 희뿜하게 밝아오더니, 스무날을 지난 조각달이 빠끔하게 얼굴을 내밀었다. 곽개천과 동행할 일곱 사람은 어느덧 몸이 물먹은 솜처럼 나른해지면서 눈두덩이 천근같이 무거워오고 허리에 맥이 빠지기 시작했다. 여느 때 같았으면 차렵이불을 덮지 않아도 부들자리 위에 네 활개를 내던지고 쓰러지면 그대로 곯아떨어졌을 테지만, 그날 밤만은 접소의 넓은 봉노에서 말뚝잠으로 밤을 지새웠다. 졸음이 줄기차게 밀려와 연신 턱방아를 찧으면서도 어느 누구도 눕는 법이 없었다. 앞으로 다가올 열흘 동안의 말미를 놓치면 모든 게 허사로 돌아갈 것이란 정한조의 말이 귓가를 맴돌아 도저히 잠들 수 없었다. 축시 말쯤 털고 일어난 일행은 마른세수로 면상의 검댕만 털고 새벽동자도 거른 채 말래 도방에서 발행을 서둘렀다. 그들의 차림새도 평소와는 달랐다. 원상의 차림새도 아닌 길손이나 농사꾼 차림이었고, 몸에는 이렇다 할 병장기도 지니지 않아 약초꾼이나 대갓집 행랑짜리들로 보이기 십상이었다. 괴나리봇짐에 짚신 몇 켤레가 대롱대롱 매달려 걸음을 옮겨놓을 때마다 엉덩이 뒤에서 달랑거렸다. 지니고 있는 병장기는 없었으나 일행 모두 유심히 살펴보면 한결같이 말뚝을 뽑은 것처럼 허우대가 단단해 보이는 사람들이었다. 원상은 넷이었고, 셋은 십수 년 동안 행중들과 고락을 같이하였던 차인꾼들 중에서 선발한 사람들이었다. 쪽지게도 없는 단출한 행색이었으니, 행보는 바람 부는 날에 띄운 울릉도 소금 배처럼 미끄러지듯 빠를 수밖에 없었다. 중화 전에 샛재 비석거리 어름에 당도하였다. 그러나 일행은 비석거리를 먼발치로 비켜갔다. 변복을 하였으나 만에 하나 그들의 정체가 눈총들이 번다한 샛재 술청거리에 퍼질까 염려했기 때문이다. 샛재에서 한나무재까지는 짐승들만 알고 지나다니는 또 다른 조도가 있었는데, 소금 상단 중에서 그 길을 알고 있는 사람은 포수 출신인 곽개천 한 사람뿐이었다. 샛재에서 구억터를 거치고 너삼밭, 자치골을 지나 한나무재까지는 장정 걸음으로 하루 행보였다. 그러나 그들은 어쩐 셈인지 해가 아직 나절가웃이나 남아 있던 구억터에서 바위 그늘을 찾아 야숙하였다. 구억터에서 야숙할 아무런 이유도 없었는데, 곽개천을 따라 오들오들 떨며 또다시 밤을 지새운 것이었다. 게다가 비 오는 소리까지 들렸다. 토굴 밖으로 기어나갔다가 되돌아온 일행이 나직하게 속삭였다. “비 오는 기세가 아무래도 지나가는 산돌림은 아닌 것 같군.” “아무려니 봄비일시 분명한데 한동안 지분거리다가 그치겠지….” “아녀. 그런 말 있지. 상고대라구. 산 위에서부터 몰아치는 비바람이 억센 걸 보면 진작 그칠 비가 아닌 게야.” 듣고만 있던 곽개천이 한마디 던졌다. “가근방 산기슭에는 손바닥만 한 천둥지기 다랑논들이 갯가의 바위에 붙은 조개처럼 다닥다닥하지 않은가. 그 모내기 앞둔 다랑논에 봄비가 푸짐하게 내려준다면 그런 분복이 어디 있겠나. 모주 먹은 돼지처럼 투덜거리지 말고 모두 눈들 붙이게.”
  •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반수 어른께서 수령을 찾아가 병장기를 빌려 쓰게 조처한 것은 다른 비책이 있었기 때문이야. 소문으로 퍼뜨리지 않아도 적굴에서 풀어놓은 간자들이 냉큼 눈치채고 말았을 터, 그렇게 되면 저들은 필경 몸을 사리고 몇 군데의 은신처로 둔적하여 당분간 숨죽이고 지내겠지. 반수 어른께서 대낮에 여봐란듯이 소매에 바람을 일으키며 아문을 찾아간 것은 그런 숨은 뜻이 있었네. 질청의 썩어 빠진 아전이나, 더그레 입은 수자리 들 중에는 필경 적당과 은밀히 내통하며 구린 돈을 챙겨 온 자들이 있었을 것이야. 우리가 통문을 돌리고 병장기를 빌려 적당들을 섬멸하거나 등시 색출하고 나면 육방 아전이며 군교 들이 벌떼같이 일어나 병장기 빌려 준 생색을 내며 너도나도 손을 벌릴 게 뻔하지 않은가. 구린내 등천하는 그들에게 수십 냥씩 속절없이 뜯기다 보면 우리 접소에서 애면글면하며 모아 둔 돈주머니는 순식간에 거덜나고 말겠지. 거절하면 당장 죄안을 날조하여 우리를 잡아먹고 말 테지…. 그래서 지금 우리의 처지는 궤상육(机上肉)이나 다름없네. 상단의 전대를 노리는 것들이 어디 적굴 놈들뿐이겠나. 사방에 깔려 있다는 것을 명심하게.” “그 모두가 반수 어른과 성님의 계책이었다는 말씀입니까?” “그렇다네….” “그 계책이 무엇입니까.” “귀를 좀 빌리세.” 정한조에게 귀를 빌려 준 곽개천의 표정은 자못 심각하였다. 그는 때때로 정한조에게 되물어 가면서 계책을 귀담아 듣고 난 다음 손으로 구레나룻을 쓰다듬으며, “그 계책이 그대로 들어맞기만 한다면 본때 있게 설분할 수 있겠습니다.” “설분한다는 생각이 앞선다면, 일을 그르칠 수도 있네. 십이령길을 넘나드는 길손과 원상 들이 복물을 털리거나 손명(損命)당하지 않고 고개를 넘나들고, 해안가 염호와 흥부와 내성의 원상 들이 어육지변을 당하지 않고 안녕을 지킬 수 있다는 명분을 생각하게.” “성님, 명심하겠습니다.” “우선 침착하게. 잠깐 딴전을 판다든지, 굴레 벗은 당나귀처럼 괄괄하게 굴었다간 칼 물고 뜀뛰기로 언제 저승사자에게 끌려갈지 장담할 수 없네. 내가 짐작하기로는 적굴의 두령이란 자의 식견과 술수가 남달라 나 같은 떠돌이 행상 하나쯤은 순식간에 잡아먹을 수 있는 계략과 완력을 가졌을 것이야. 천하를 호령하였다던 진시황도 속절없이 흙이 되는데, 나 같은 천출이야 흙 되는 게 두려울 것은 없지만, 적굴 놈들 소탕에 실패하고 행중 식구 한둘이라도 저승사자에게 끌려가는 신세 될까 그게 걱정일세.” “성님께서는 그런 말씀 하지 마십시오. 각성바지에 제 잘난 맛에 사는 위인들이지만 해로동혈하는 사이 아닙니까. 아무리 구차한들 성님에게 그런 수치가 돌아가지 않도록 계략을 짜겠습니다.” “계략대로 일을 진행하자면, 적굴 밖에서 삼삼오오 패거리를 지어 다니는 산적들을 찾아내어 하나하나 순식간에 제거해 나가야 하겠는데…. 그렇게 되면 어느 놈이 산적인지, 어느 놈이 왈패인지 흰죽에 콧물 빠뜨린 격이 되어서 본색을 찾아내기 힘들 것이야.” “성님 염려 붙들어 매시지요. 시생에게는 손쉬운 일입니다.”
  •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살담배가 타들어가는 곰방대를 들고 귀를 기울이던 곽개천이 말했다. “성님…… 저는 지난날 포수질했던 경험으로 어렴풋이 눈치채긴 했으나, 긴가민가하였습니다. 성님처럼 조리 있게 따져 보지는 못했습니다.” “적굴 놈들은 미련한 우리가 미처 눈치채지 못한 사이에 바로 우리 코앞까지 기어들어서 우리의 동정을 속속들이 염탐했네. 양식과 전대를 어떤 물상객주에서 조달하고 어디에 숨겨두고 다니는지, 어떤 염전이나 거간 들과 거래를 트고 지내는지 샅샅이 염탐하고 다녔다네. 내성의 윤기호도 그들과 내통하고 있었네. 지난번 임자와 우리 동무들을 꼬드겨서 단골 숫막으로 가, 그 왈짜들에게 갖은 수모를 당하지 않았나. 그것은 허물이 많은 윤기호가 그들로부터 협박을 당해 우리 동무들의 행색을 보여 달라는 요구에 시달렸던 나머지 저지른 일일세. 운수납자로 가장한 놈은 십이령길을 수시로 드나들면서 우리 숙소참이 어디고 나루에 닿으면 도강처(渡江處)는 어디며 밥자리는 어딘지, 내성 내왕 행보가 며칠이나 걸리고 어떤 동무들이 짝패가 되어 십이령을 넘나드는지 우리를 그림자처럼 뒤따라다니고 있었네. 그래서 해동머리께가 되면 필경 택일하여 우리를 한꺼번에 덮칠 계산만 하고 있었네. 이 첩첩산중도 보름만 넘기면 해토가 될 터, 생각하면 등골에 진땀이 흐르네. 이렇게 소상하게 우리 행로를 염탐하고 있다는 것은 첫번째, 그 적굴의 두령이란 놈이 아주 영특하고 치밀하단 뜻이겠는데, 이것은 아마도 글줄깨나 읽은 내력이 있는 놈이 분명하다는 얘기야. 이렇게 염탐을 치밀하게 한다는 것은, 저들의 수효가 많지 않아 무작정 우리 상대를 덮치기에는 어렵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겠나.” “윤기호로 말하면 우리 십이령 소금 상단과는 10년 숙객으로 흉허물 없이 지내는 사이가 아닙니까. 내성에서는 괄시 못 할 소금 도가를 경영해서 화식한 사람이 도둑의 접주 노릇을 하고 있다니…. 성님 말씀이 옳다면 우리 행중은 그동안 떼송장 날 줄 모르고 통방이 속을 수시로 들락거린 셈입니다…. 관변의 앞잡이는 여러 번 보았습니다만, 도둑의 잡이는 난생처음입니다.” 곽개천의 좁은 미간에 잔뜩 서린 적의를 눈치챈 정한조의 목소리가 더욱 작아졌다. “차제에 우리가 먼저 일어나 적굴을 도륙내야 하네.” “성님 말씀대로 따른다 하여도 3, 40이 적은 수효입니까. 우리는 뭉쳐보았자. 차 떼고 포 떼면 2, 30이 아닙니까. 추수가 끝나는 겨울철이어야 행상 길을 나서는 도부꾼이나 삯전이나 바라고 행상 길을 나서는 차인꾼 들은 거개가 가솔을 거느린 겁쟁이고, 흔치는 않으나 원상들 중에도 식솔을 거느린 동무가 있지 않습니까. 적굴 놈들과 정면으로 맞서 싸운다는 것은 깔딱낫으로 고목 찍기가 아니겠습니까.” “그것도 모르는 것은 아닐세. 다행히 반수 어른께서 울진 수령을 찾아가 병장기를 얻어 쓰도록 합의하였으니, 잘하면 우리에게 승기가 있네.” “그런 일이 있었군요.” *통방이:쥐덫
  •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척후로 나갔던 곽개천은 중도에서 벌어진 사단으로 말래 도방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정한조는 돌아온 그를 데리고 북적거리는 도방을 나와 근처의 호젓한 숫막으로 찾아들었다. 내왕이 번다한 술청을 피해 구석진 골방을 골라 그와 마주 앉았다. 엿듣는 사람이라도 있을까 해서 쪽마루로 통하는 지게문을 열고 마당가며 울타리 밖까지 살핀 다음 자못 긴장한 표정으로 귀엣말로 속삭였다. “임자, 내 말을 귀여겨듣게. 방귀 소리라 하더라도 귀 너머로 흘려선 안 되네.” “성님 말씀, 제가 듣고 귀양 보낸 적이 있었습니까.” “내가 가슴속에 넣어만 두고 발설하지 않았던 몇 가지 얘기가 있네.” “말씀만 하시지요.” “첫째는 그 유명한 송파장 쇠살쭈였다는 천봉삼이란 위인 말일세.” 부리를 헐려는데, 곽개천은 냉큼 정한조의 말을 가로챘다. “그놈이 본색을 숨기고 송파장 천봉삼이라고 거짓 둘러대고 있는 줄은 저도 짐작하고 있습니다.” “임자가 눈치채리란 것도 짐작했네. 내가 길세만이나 박원산, 권영동 같은 동무들을 지목하여 십이령 길목에 있는 고샅길이나 토굴 하나도 놓치지 말고 적당들의 동정을 샅샅이 염탐하라고 삼이웃이 떠들썩하도록 북새통을 피운 것은 천봉삼으로 사칭하는 그놈도 눈치채라고 조처한 것일세.” “성님은 어떻게 눈치챘습니까?” “눈치채게 된 것에는 두 가지 까닭이 있었네. 첫째, 그 위인이 궁색한 변설을 늘어놓긴 하였으나, 낙상으로 병색이 뼛속까지 스며들어 굴신을 못 하는 주제인데도 우리가 잠깐 한눈이라도 팔면 장달음 놓을 궁리만 하고 있었다는 것이네. 위인이 주렸던 배도 차고 휘지고 마른 뼈에 살이 붙자, 틈만 나면 자취를 감추고 가로새려하지 않았나. 둔적하여 은신한 위인을 찾아낸답시고 우리 행중이 몇 차례나 고초를 겪었지. 둘째, 위인이 적굴에는 조련으로 단련된 7, 80여 명이나 되는 화적들이 기거하고 있고, 화승총 든 놈들만도 얼추 30여 명을 헤아린다고 떠벌렸는데 모두 거짓이지 않았던가. 왜 그랬을까. 우리 상단의 세력이 강건하다 할지라도 감히 적굴에 덧들일 엄두를 못 내게 하려는 술책에서 나온 거짓 발명이 아닌가. 내가 짐작하기로는 적소에는 많아야 30여 명이 기거할 테고, 화승총 가진 놈들도 끽해야 열을 넘지 않을 것이야. 그놈은 흥부장의 해물 저자와 접소의 행상들, 해안의 염호들 동정을 소상하게 염탐하려고 찾아온 염탐꾼이 틀림없네. 심지어 흥부장에서 울릉도로 가는 소금 배들의 해로까지 염탐하려 했을 것이야. 그놈이 우리들에게 보여 준 송파 임소의 척문은 진짜 천봉삼을 잡아 업치고 빼앗은 것일 터. 그 척문을 손에 넣은 뒤 우리의 행적을 찾아 무작정 십이령을 넘다가 낭떠러지 위에서 실족하여 눈밭에 굴러떨어진 것이야. 적소에 있는 산적들의 수효가 궐자의 말대로 30여 명이라면 제아무리 완력 드센 놈이라 할지라도 감히 단신으로 다시 적굴로 숨어들어 제 식솔을 구명할 엄두가 나겠는가. 올곧은 정신 가진 놈이라면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우리 상단의 도움을 얻어 식솔을 구명하려 했겠지.”
  •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지난날부터 눈독 들이던 차, 마침 단출한 행보에 수작이나 건네서 산 설고 물 선 타관에서 그나마 위안으로 삼자 하였는데, 매몰차게 쏘아붙이는 구월이 때문에 그는 적잖게 체모를 구기고 상심하여 그날 저녁 밤잠조차 설치고 말았다. 그로부터 이틀 뒤 길세만은 겨냥하였던 내성에 당도하였다. 그곳에 당도하고 나서야 도감 정한조가 자신에게 왜 포주인 윤기호의 동정을 기찰하라는 분부를 내렸는지 깨달았다. 그날 저녁 윤기호를 따라 색주가를 찾았다가 돌이킬 수 없는 수모를 겪었던 그때, 그 무뢰배들의 얼굴을 기억하는 사람 중에 길세만도 끼어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안면이 없는 낯선 숫막에 식주인을 정하고 윤기호가 경영하는 소금 도가의 동정을 살피기 시작했다. 그러는 중에 말래 도방에서 머물던 정한조는 천만뜻밖의 소식을 듣게 되었다. 사태가 정신없이 돌아가느라 한동안 잊어버리고 지냈던 조기출의 소식이었다. “어허, 새우는 대대로 곱사등이라더니, 누가 선비 출신 아니랄까봐 겁이 났던지 조기출 집사가 보꾹에 목을 매고 말았습니다.” “누가 어쨌다고?” “조 집사가 보꾹에 목을 매고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걸 발견하고 끌어내렸답니다.” “그래서 죽었나 살았나? 보꾹에 씨앗자루 매달렸단 얘긴 들었어도 송장 매달렸단 얘긴 난생처음일세.” “누가 아니랍디까. 천만다행으로 겨우 목숨을 건졌답니다만, 평생 사람 행세는 못 하게 되었다고 난리를 피웁디다. 적실하지 않습니다만 폐인이 되었다는 얘기지요. 못생긴 며느리 제삿날 병난다더니 설상가상 도방이 이런 경난을 겪는 와중에 살풍경한 꼴을 보일 게 뭐람. 애매한 목숨 한 사람을 공중 날린 포원이 있다 해도 심사를 억누르고 달래고 참아야 할 것 아닙니까. 억수장마에도 빨래 말미는 있더라고 말미를 두고 성깔을 부려야지. 한발만 물러서면 살길이 필경 있기 마련인데.” “도대체 어디서 그런 무엄한 짓을 저질렀나?” “집에서 멀리 떨어진 넓재 아래 숫막에다 사처 잡고 한 이틀 늘어지게 자고 일어나는가 했더니, 일 같잖게 자문하고 말았답니다. 주막의 중노미란 놈이 아니었다면 전체송장 될 뻔했지요.” “조기출이 저지른 짓이 경솔하다고 너무 타박하지 말게. 천성이 착했기에 저지른 일이 아니겠나. 선비들이란 원래 대가 약하고 섬약하지 않은가. 상단들이 가는 길에는 짐승들이 출몰하는 영애처가 여럿일 뿐만 아니라, 화적들이 수시로 출몰하는 가운데 겨냥하는 저잣거리까지 향도해서 무사히 당도시킨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세. 게다가 집사의 책무까지 맡게 되어 체모를 지키기 어렵게 되었으니 생각다 못해서 저지른 일일 테지.” “선비 출신이라 얼음 위에 밀듯 경사(經史)를 중얼거리고, 사람의 도리를 담론하기 버릇해서 체모가 깎이는 일이 없도록 언제나 상석에 모시고, 혹간 버르장머리 없이 구는 동패라도 있으면 혼찌검을 내주곤 했는데, 쪽박 쓰고 벼락 피하기라더니, 스스로 자문을 하는 걸 보면 선비는커녕 우리 같은 상것들보다 졸렬한 사람이었소.” “차후로 어리석은 행중이 본받을까 두렵긴 하지만, 고깃값도 못하게 되었다는 탄식 끝에 저지른 짓이니 해량들 하시게. 약고 꾀바른 사람이었다면, 소임을 다른 일행에 전가하거나 빠져나갈 구멍을 찾았을 테지.” 아니래도 뒤숭숭하던 접소가 발칵 뒤집히고 말았다. 송장이나 다름없는 조기출을 이틀씩이나 걸려 말래 도방까지 업어 온 사람은 적굴을 찾아내겠다고 척후를 떠났던 곽개천이었다. 또다시 급주를 놓아 의원을 부르는 난리 북새통을 벌였으나, 목을 몹시 상했던 나머지 혀를 굴려도 말구멍이 터지지 않았다. 의원의 말로는 목의 부기가 가라앉아 쾌복이 된다 해도 예전의 멀쩡한 외양을 그대로 갖추기는 어렵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이튿날 네 사람의 척후들은 시간차를 두고 말래 도방을 떠났고, 신기료 장수로 변복한 길세만은 맨 나중에 내성 길에 올랐다. 괴나리봇짐 하나 메고 말래에서 샛재까지 걸으면 바릿재와 찬물내기를 지나 산길로 시오리 남짓했다. 양식 전대 하나만 뱃구레에 차고 아침선반에 발행하였으니, 딱 중화참에 맞추어 샛재 숫막거리에 당도하였다. 싸리나무 울타리 뒤로 몸을 숨기고 숫막의 동정을 살펴보았다. 늙은 중노미는 보이지 않았고 주모 월천댁이 봉당에 혼자 앉아 결이 나간 동자박을 들고 바늘로 꿰매고 있었다. 정주간에는 찌그러진 널쪽문이 곧장 떨어질 듯 거북하게 걸려 있었고, 담벼락에는 망태와 광주리 몇 개가 걸려 있었다. 마당 귀퉁이에는 누렇게 삭아 가는 평상이 놓여 있었다. 그 뒤쪽으로는 당나귀 서너 필을 매어 둘 만한 작둣간이 있었다. 그 작둣간 뒤로 썩 비켜선 으슥한 구석에 거적문을 단 뒷간이 바라보였다. 식주인을 정하고 유숙하는 길손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길세만은 가만히 숫막으로 들어섰다. 패랭이 벗고 물미장 치우고 옹구바지 행색인 길세만을 월천댁은 금세 알아보지 못하고 어디서 어디로 가는 뉘시냐고 물으며 다가왔다. 대꾸는 않고 히죽히죽 웃고 있는 그를 찬찬히 들여다보고 난 뒤에 누군지 알아차린 월천댁은 놀라고 기가 차서 그의 허벅지를 꼬집으며 야단을 떨었다. 미행 중이라는 것을 귓속말로 알려 주고 중화를 걸게 먹은 다음 햇살이 따가운 툇마루 귀퉁이에 걸쳐앉아 낮잠을 달게 자는 척 헛코를 골기도 하였다. 월천댁이 안심하고 이웃에 방아품을 팔러 간다며 잠시 집을 비운 사이 길세만은 골방 문을 가만히 열고 구월이를 불렀다. 등을 바람벽에 붙이고 앉아 버선볼을 받던 구월이가 화들짝 놀라 외짝 바라지를 열었다. 난데없이 입귀가 돌아가도록 웃고 있는 길세만을 발견하고 수인사는커녕 삼이웃이 떠나가라 부아통을 터뜨리며 마실 간 어미를 불렀다. “어허 내가 환한 대낮에 무슨 해코지라도 할 줄 아는가. 구면인 사람 보고 왜 그렇게 악증인가. 우리가 한두 해 알고 지내는 사이인가?” 구월이는 문고리를 잡은 채로 길세만을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며 암팡지게 쏘아붙였다. “여러 해 알고 지냈다 해서 처자가 혼자 있는 방 앞에 와서 사람을 놀라게 합니까.” “내가 구월이에게 찍자를 부리자고 불렀던가. 날 너무 홀대하지 말게.” “홀대고 뭐고 수작 마시고 잽싸게 봉노로 돌아가시지요. 삼이웃이 눈치채면 체면 깎이는 봉변당하십니다.” 톡톡히 무안을 당한 길세만의 얼굴이 원숭이 밑구멍처럼 벌게졌다. “이제 겨우 이팔 처자가 말대답 한 가지는 모질게 씹어 뱉는구만.” “오는 말이 고와야 가는 말이 곱지요.” “나도 아직 핫아비도 아닐뿐더러 끗발이 죽지도 않았네. 마음 한 가지만 다잡아 먹으면 처녀장가도 부끄럽지 않은 사람일세.” 그 말을 구월이가 말씨 곱지 않게 되받아치며 돌쩌귀가 부서져라 문을 처닫으면서 고시랑거렸다. “난봉꾼 주제에 마음 다잡아 보았자 사흘이겠지요.” “어허, 봉패로세. 평소 숙객으로 지내는 사이라, 일차 상면해서 인사 수작이나 나누자 했는데, 빼죽거려서 무안만 당했네. 소행머리하구선.” “남녀가 유별한 것은 적막강산에 살고 있는 아녀자라 해서 다르지 않은데, 땅거미가 지려는 시각에 편발 처자가 거처하는 뒷방 문앞에 와서 상면은 무슨 잠꼬대 같은 소립니까. 소금 짐 지고 다니는 행상이라 해서 범절조차 없을까요. 지분거리지 말고 썩 비키세요.” “어허, 촌닭이 관청 닭 눈 빼 먹는다더니.” “초상 술에 권주가라더니, 댁의 반죽도 남 못지않네요.” 숫막 뒷골방에 거처하면서도 봉노에서 주고받는 농지거리를 귀동냥한 탓이리란 생각은 들었다. 평소에는 말수도 적고 다소곳하기 그지없었던 처자의 입에서 터져 나오는 성깔이 소태 같았다. 듣고 보니 말은 옳았으나 왠지 제 풀에 울화가 치밀었다. 당장 뛰어들어 귀쌈을 눈물이 쑥 나오게 때려 주고 싶기도 했으나, 방아품 팔러 갔던 월천댁이 돌아오면 소동이 커질 것 같아 시치미 떼고 냉큼 돌아서고 말았다. 길세만은 누가 듣고 있지도 않은데 혼자 중얼거렸다. “지미, 콧등이 그렇게 셀 줄은 미처 몰랐네. 운수 사나운 놈은 밀가루 장사하면 바람이 불고 소금 장사하면 비가 내린다더니 천상 내가 그 꼴이군.”
  •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질청 아전들의 행패를 항용 상종하는 원상들보다 더 소상하게 알고 계시군요. 아니래도 포구에 있는 60여 호의 염호들도 구실살이들의 등쌀에 원성이 자자하답니다. 시생도 들은 풍월입니다만, 좀 알려진 가문에서는 향임 맡기를 꺼린다고 합니다. 구실살이들이란 신통치 못한 부류들이 맡게 되는데, 위세가 별로 없으니 아전들이 그들과 합세하여 일을 꾸민다고 합니다. 이서들을 장악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수단은 그들의 약점을 잡는 일뿐입니다. 그렇지 못하면 수령이라 할지라도 단박에 발목이 잡혀 저들의 농간에 휘말리게 됩니다. 얼마 전 이웃 고을에서 일어난 일입니다만, 한때는 부호장(副戶長)과 예방(禮房)이었던 자가 이듬해에는 땔감을 담당하는 시탄빗(柴炭色)과 고기잡이에 대하여 수세하는 어세빗(漁稅色)을 맡았으나 이것을 돈을 받고 부이방(副吏房)에게 양도하였습니다. 한 해는 소금 굽는 일에 수세하는 염세빗(鹽稅色)이었다가 그 자리를 관청빗(官廳色)에 팔고 부호장을 맡기도 했답니다. 이런 폐단은 비단 이웃 고을에서만 볼 수 있는 일은 아닙니다. 물화도 아닌 직임을 사고파는 수완과 사술이 저잣거리에서 말똥처럼 뒹굴며 거래하는 우리 행상들의 재간과 기민함을 뺨칠 만합니다. 이서들의 횡포와 농간이 여기에 이르렀으니, 어느 누가 그들을 믿고 따르겠습니까.” “지방관아의 사령들도 다를 바 없습니다. 이들도 원래는 근본 없는 떠돌이로 성정이 포학합니다. 하나같이 늙고 병들어 허리 펴고 서 있기조차 힘든 작자들입니다. 정해진 녹봉이 없으니 천상 횡령과 뇌물로 가계를 수습하고 순라를 핑계하여 마을의 고삿길을 돌면서 갈취할 물건이 없나 살피고 다닙니다. 아무 일 없이 잘 지내는 염호들을 찾아가 염한들과 시시덕거리면서 갈취할 구멍만 찾습니다. 도둑이나 범인을 알아내는 재간이 믿을 수 없을 만큼 출중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뇌물만 바치면 똥싼 놈은 은밀히 방면하고 겨 먹은 놈만 잡아들여 두 번 다시 굴신을 못 하도록 치도곤을 내려 하옥시킵니다. 수령이 저들의 포학함을 은연중 눈감아주고 있기 때문에 애꿎은 민호(民戶)들만 등골이 빠집니다. 수령의 분부가 있거나 없거나 저들끼리 눈짓으로 주관하여 잡아들여 주리를 안기거나 곤장을 내립니다. 기포(譏捕)는 뒷전이니, 병기고에 있는 병장기들이 녹이 슬고 부러지고 찌그러져도 거들떠보는 법이 없습니다. 썩을 대로 썩은 위인들이 무슨 수로 제구실을 하겠습니까. 제구실은 고사하고 적당과 내통하지 않는 것만 천만다행으로 알아야지요.” “작청 사람들을 두둔하실 줄 알았는데, 안전께서 먼저 그들의 허물을 낱낱이 발고하시니 시생이 더불어 할 언사를 찾지 못하겠습니다.” “나 역시 음직으로 수령 행세하며 이 고을 저 고을을 가솔도 없이 방울나귀나 타고 떠돌고 다닙니다만, 오늘에 이르러 나물 먹고 물 마시는 일로 하루가 흡족했던 궁반 시절이 그리울 따름이지요. 두어 칸 집에 솜옷 한 벌, 그리고 여름 베잠방이 한 벌 있고, 시렁 위에 서적 몇 권 얹어두고 거멀못 박힌 소반 하나에 지팡이 하나, 조밥에 소금국이면 족한 걸, 어쩌다 꼴같잖은 벼슬길에 뛰어들어 동가식서가숙으로 궁상을 떠는지 스스로 염치없고 가증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듣자 하니 안전의 생활도 한둔으로 세월을 보내는 부상들의 처지와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심려가 적지 않겠습니다.” “환담을 나누다 보니 할 말 못 할 말 지껄이게 되었습니다만, 수령 생활도 무엄하기 짝이 없는 육방 관속들 눈치 살피느라 고달프기만 합니다. 어찌 되었던 십이령길을 온전하게 지켜 울진의 염호와 고을 민초들을 구휼하고 장시의 번성을 꾀해야겠다는 임방의 작정에 수령으로서 경의를 보냅니다. 울진 소산이 소금 아니면 건어물과 염장품으로, 백성들이 연명하는 것인데, 차제에 수령이 주선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곰곰이 가다듬어 적당을 소탕하는 데 일조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반수를 믿고 병기고의 병장기들을 풀도록 주선해야지요.” “임소의 처사를 그토록 믿어주신다니 황감할 따름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여항에서는 질청의 아전들과 벙거지 패랭이며 더그레 걸친 위인들치고 올곧은 심사를 가진 위인을 찾기 힘들다는 소문이 자자하지요. 파시철에 어염을 눅은 값으로 사서 쟁여두었다가 산간지방으로 가서 됫박 곡식과 바꿔 연명하는 도부꾼들조차 행상이라 해서 폐해를 입습니다만, 힘없는 백성들이라, 하소연할 곳이 없습니다.”
  •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십이령은 행상인들의 행로만 번다한 곳이 아닙니다. 내륙에서 동해에 흩어진 여러 포구를 드나드는 행차와 길손 들이 비좁도록 내왕하는 유일한 행로입니다. 소금은 물론이거니와 해산물과 염장품이 아무리 풍부하다 해도 십이령이나 고초령을 넘지 못하면 그들 물산도 한낱 허섭스레기에 불과합니다. 포구 어름에는 60여 호나 되는 염호들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만 그들이 손수 거둔 소금 짐을 내륙까지 나르지는 않습니다. 적경이 있더라도 그들이 몸소 겪는 우환이 아니니까, 행상인들의 고초를 강 건너 불 보듯 합니다. 그러나 한수가 모두 녹두죽이라도 국자 없이는 쓸모없다는 말이 있듯이 울진 포구의 물산이 아무리 풍부하다 한들 내왕 길목에 화적떼가 지키고 앉아 봇짐을 털고 살육을 저지른다면 머지않아 울진 포구와 십이령은 승냥이 울음소리만 낭자한 적막강산이 될 터이지요. 십이령길을 적당들의 폐해로부터 지켜내고 가꾸는 일은 부평전봉(浮萍轉蓬)하는 행상인들뿐만 아니라 관아에서도 발 벗고 나서야 하지 않겠습니까.” 현령이 고개를 숙이고 앉아 진력나도록 침묵만 지키다가, 우물쭈물 발명을 하였다. “질청을 지키는 이서배들을 자칫 잘못 다루었다간 십중팔구 얼굴을 쳐들고 다니지 못할 정도로 수령의 체모를 구겨놓기 일쑤입니다. 간교함과 거짓이 횡행하는 근원인 그들의 권세를 대수롭지 않게 여긴 수령이 도임하자마자 교활한 향리들의 폐해를 줄이려고 심지를 다잡아먹고, 정사를 엄중히 닦달하고 평소에도 사리에 그름이 없는데도 저들의 구미에 맞지 않고 성가시다 해서 삽시간에 수탈을 일삼는 탐학한 수령으로 낙인 찍어 버립니다. 더욱이나 안동을 비롯하여 상주, 예천, 의성의 이서배들이 매우 투박하고 교활합니다. 세습이기 때문에 콧등에 흙이 쓸리도록 허리가 굽어도 이서배의 복장을 벗지 않습니다. 그들은 고을의 소상한 사정을 거울 속 들여다보듯이 환하게 꿰고 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지요. 잡기와 투전에 능수능란할 뿐 아니라 온갖 계략과 농간, 술책 따위로 수령과 백성들 사이를 간교한 몸짓으로 넘나들며 개처럼 꼬리를 칩니다. 착취에 이골이 나서 돛단배 일곱 척을 날탕으로 삼킨다 해도 돛대도 보이지 않을 정도입니다. 염막이나 어물 도가를 찾아가 수령을 빙자해 억지로 돈을 맡기고 이듬해 가을에 거액의 이자를 붙여 받아 챙깁니다. 살림이 결딴나서 기황(饑荒)이 뼛속까지 스민 세궁민들을 보살펴 긍휼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수령을 큰소매 속에 넣고 주무르는 솜씨는 가히 혀를 내두를 정도입니다. 수령이 그들의 토색질을 저지시키겠다고 작정하고 모조리 잡아들여 저지른 범증을 낱낱이 증거한 다음 치도곤을 내려도 그 모든 고통과 수모를 아무렇지도 않게 참아냅니다. 참으로 바퀴벌레 같은 존재들이지요. 파직이 되더라도 전혀 겁먹은 기색을 보이지 않고 끈질기게 관변을 배회하며 한시도 눈을 떼지 않고 수령의 동정을 살핍니다. 호장이란 놈은 농염한 미술을 가르친 관기를 동헌 골방에 집어넣고 수령이 미색에 빠져들게 주선하고는, 저희들끼리 담벼락 밑에 숨어서 눈짓을 주고받으며 킥킥거립니다. 조롱거리가 된 수령이 여색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비틀거리고 있는 동안 저들은 고을을 휘젓고 다니면서 마귀처럼 백성들의 고혈을 빨아냅니다. 어리숙한 수령이 도임하자마자 거짓 분부를 만들어 선정비나 공덕비를 세운답시고 고을의 세궁민들에게 초장료다 무명잡세다 하며 징구하여 저들의 복장을 채우고 나머지를 수령에게 바쳐 눈을 어둡게 합니다. 은혜와 의리와는 거리가 먼 늙은 아전들이 물들기 쉬운 병이 탐욕밖에 더 있겠습니까. 낙정하석(穽下石)이란 옛말처럼 남의 밥에 바늘 넣기를 예사로 저지르지요. 걸핏하면 어깃장을 놓고 나아가서는 죄안을 날조하여 수령으로 하여금 견책을 받게 하거나 수렁으로 빠뜨려 골탕을 먹입니다. 보복이 미진하면 야차처럼 뒤따라다니면서 개인과 가문을 결딴내려 듭니다. 수령의 면전에서 주둥이로는 사또, 사또 하면서 감히 턱을 쳐들고 변설이 도저한 것은 대저 그러한 연유 때문입니다. 그러고도 작청에 나와서는 청빈을 가장하고 수령이 보랍시고, 키 얕은 솔소반에 밥사발 하나와 장찌개 한 그릇으로 중화를 때우곤 합니다. 수령이란 사람들은 산 설고 물 선 고을에 어느 날 느닷없이 단신으로 뚝 떨어졌으니 고을의 풍속과 물정에 어두워 숙맥일 수밖에 없지요. 바람 따라 돛 달더라고 그래서 작청의 이서배들이 하자는 대로 이리저리 끌려다닐 수밖에 없습니다. 그 패역(悖逆)의 무리야말로 수령을 잡아먹는 저승판서라 할 수 있습니다. 수령 역시 언제 과만이 닥쳐 신연 행차가 들이닥칠지 모를 판에 정사에 정신을 기울일 겨를이 없지요. 대중없는 여항간 풍설이나 주워들으며 거짓으로 고개만 끄덕이다가 거둬들인 초장료나 챙겨들고 다음 도임지로 발행하는 것이지요. 조정에서는 목사, 유수, 군수, 현령, 현감을 막론하고 지방관아 수령들을 내키는 대로 갈아치우기 때문에 이서배들이 수령 행세한 지는 오래전부터입니다.”
  •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선비 차림으로 쏘다닐 때도 있었지요.” “제딴엔 자주 변복하여 신출귀몰 흉내내겠다는 셈속이군. 수하에 거느린 적당들은 병장기는 갖추었소?” “패랭이에 배자 입은 놈, 맨상투에 두건 쓴 놈, 병장기로 죽창 든 놈, 괭이, 쇠스랑, 도끼 든 놈이 있는가 하면 화승 가진 놈들도 2, 30은 되었지요, 환도 가진 놈도 숱하게 있습디다.” “화승 가진 놈은 딱히 몇이나 됩디까?” “7, 80 중에 30여명은 되었습니다.” “조금 전에는 삼십이라 하지 않았소.” “얼추 삼십은 헤아렸지요.” “사술(射術)은?” “곁눈질로 봤습니다만, 과녁을 잘도 맞힙디다.” “화약은 어디서 구처하시오?” “시생과 같은 밥쇠가 그 내막을 어찌 알겠습니까.” 정한조는 곽개천과 일행이 되어 다시 내성의 임방을 찾아갔다. 저간에 벌어졌던 사태를 낱낱이 아뢰고 통문을 돌려 부상들이 발기할 것을 조리 있게 아뢰었다. 반수 권재만 역시 더 이상 적당들의 폐해를 바라만 볼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장시를 가다듬어 나가려면 차제에 적당의 소굴을 찾아내 소탕해야 했다. 그러나 아무리 대의명분이 뚜렷하다 해도 절차를 따라야 했다. 이튿날로 길을 나서 울진 관아를 찾았다. 그때 울진 현령은 문천군수로 재임하다가 울진으로 승진 전보를 받아 도임한 사람이었다. 현령의 명색이든 군수의 명색이든 부임하여 과만이 되었던 아니건, 지방 관아의 수령들은 누에똥 갈듯이 교체를 일삼아 사흘 도리로 수령이 바뀌었다. 오늘 신연 행차가 있는가 하면 두 달포가 채 못 가서 또 다른 신연 행차가 당도하곤 하였다. 어떤 고을에서는 신연 행차가 오리정에서 우연히 마주쳐서 서로 내로라하여 멱살잡이하는 난리 북새통이 벌어져 지나가는 세궁민들의 웃음거리가 되곤 하였다. 그런 웃지 못할 폐단이 횡행했던 것은 도임하는 수령들마다 음직이 예사로울 뿐만 아니라, 공명첩을 사고파는 일이 집 앞에 있는 텃밭에서 거둔 채소를 사고파는 일처럼 수월했기 때문이다. 해안과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울진 관아는 홍살문을 들어서면, 먼저 통인청(通引廳)이 보이고, 뒤로 사령청(使令廳)이 보였다. 오른손 편에 구실아치들이 진을 치고 있는 작청(作廳)이 있고, 왼손 편으로 외관(外館), 그리고 그 맞은편에 관문루(關門樓)가 있었다. 관문루를 지나면 사령방(使令房)과 급창방(及唱房)이 나란하고, 왼편으로 뚝 떨어져서 내아(內衙)가 있고, 내아 바로 앞에 관노청(官奴廳)이 그리고 정면으로는 동헌(東軒)이 버티고 있었다. 현령은 동헌 방에서 임소의 반수인 권재만을 면대하였다. 도임한 지 두 달포도 지나지 않았으므로 두 사람도 초면이었다. 반수는 한훤 수작 나눈 뒤에 현령이 먼저 좌정하기를 선 채로 기다렸다. 서로 예를 차리고 수작이 무르익을수록 젊은 수령의 인품이 그만하면 때를 벗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게트림도 않고 복색도 수수하며 수작도 차분하고 공손했으니 그만하면 됨됨이가 그릇되지 않아 보였다. 두 사람은 주위를 내치고 조촐한 다담을 가운데 놓고 마주 앉았다. “승냥이 울음소리를 낙으로 삼아 십이령 가풀막진 된비알에 발붙이고 살아가는 것은 울진 내성 소금 상단뿐인 줄 알았던 것이 큰 불찰이었습니다. 흉도들이 그곳에 소굴을 만들고 내왕 길손들의 봇짐과 등짐을 늑탈하고 심지어 인명까지 살상할 줄은 미처 예상치 못했습니다. 이들을 도륙 내지 못하면 내왕이 끊이지 않았던 십이령길은 며칠 못 가서 적당들에게 유린당해 개호주나 나다니는 적막강산이 될 것이고, 울진과 내성의 백성들이 가계가 피폐하여 장차 어떤 곡경을 치르게 될지 예상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대저 경제라는 것이 상단들과 길손들의 내왕에 구애가 없고 소통이 피 흐르듯 원만해야 좋은 장래를 바랄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간 사소한 적경(賊警)들이 없지는 않았습니다만, 그때마다 우리 행상인들이 임의로 징벌하여 멀리 내쫓곤 하였습니다. 그런데도 질청의 아전들은 적간(摘奸)조차 기휘(忌諱)하여 나 몰라라 해왔습니다. 민간에서는 질청의 구실살이들이 작간(作奸)하여 무명잡세와 토색질에 눈이 어두울 뿐만 아니라, 화적질이나 도둑의 접주며 장물아비들의 범증을 방조하여 더러운 돈을 챙긴다는 원성이 자자합니다. 민간에서는 박달나무가 얼어 터지는 강추위에도 뇌물이라면 고쟁이만 입고 백 리 길 가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부류들이 바로 질청 것들이라고 입을 비쭉거립니다.” 현령은 소굴의 적당들을 섬멸하자면, 작청의 구실살이며 사령들을 동원해야 하겠다는 반수의 간청을 침통한 표정으로 귀기울여 들었다. “명색 수령입네 하고 동헌에 들어앉은 사람의 염치가 부끄럽게 되었습니다. 간혹 적경이 있다는 얘기를 작청의 구실살이들로부터 듣긴 하였습니다만 그런가 보다 했지, 그들의 악행과 폐해가 한 고을이 도륙이 날 지경까지 간 줄은 몰랐습니다.”
  •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정한조의 짐작은 제대로 들어맞았다. 내성에 두고 온 상단들이 울진 포구로 회정하는 길인 너삼밭재에서 버려진 차인꾼의 시신을 거두었다. 십이령이라고 함은 쇠치재, 바릿재, 샛재, 너삼밭재, 너불한재, 작은한나무재, 넓재, 코치비재, 곧은재, 막고개재, 살피재, 모래재를 일컫는 것인데, 담꾼의 시신이 발견된 너삼밭재는 울진 포구 경내인 샛재와 저진터재 사이에 있었다. 그 고개가 넓재에 비하면 높은 편은 아니었지만, 울진 포구 소금 상단이나 어물 상단들이 밥자리로 자주 이용하는 계곡이 자리잡고 있어 그들 사이에서는 밥자리로 불리는 곳이기도 하였다. 내왕 길손들이 손쉽게 발견할 수 있는 곳에 보란 듯이 시신을 유기한 것은 소금 상단을 위협하려는 악행임을 삼척동자라도 알 만하였다. 뿐만 아니라, 그런 참혹한 일을 대담하게 연달아 저지르는 까닭은 천봉삼을 구명한 사람들이 십이령을 넘나드는 소금 상단이었다는 것을 염탐한 결과이기도 했다. 화적들에게 대중없이 덧들이다가 칼 맞은 차인꾼은 평소에는 “그 사람 똥 안 싸면 부처”라는 별호를 들을 정도로 무골호인이었다. 언문도 모르는 판무식이었지만, 누가 시키지 않으면 이틀 사흘이 지나도 구린 입을 떼지 않을 정도로 과묵한 사람이기도 했다. 그러나 불의와 마주쳤을 때는 잠시도 참지 못하는 병통이 있어 애꿎은 목숨을 속절없이 날려버린 것이었다. 울진 포구 소금 상단과 생사고락을 같이한 내력은 오래전부터였으나 태생은 안동 부중 내성 쪽 사람이었다. 내성과 울진 포구의 경계에 있는 선달산과 옥석산 중로에 있는 박달령 아래 생달이라는 궁벽한 마을이었다. 알고 보니 아직 엄지머리 미장가여서 슬하에 거두는 식솔은 없었으나, 학같이 늙은 일흔 노모를 지성껏 봉양하는 효자였다. 정한조가 앞장서서 장례비를 갹출하여 보란 듯이 장례를 치르고, 생달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박달령의 노루막이에 양지볕을 골라 묻어 주었다. 부의전은 반수 30냥, 접장 15냥, 공원들은 5냥, 일반 부상들은 3냥씩 거두었으니, 아무런 불평이 없었다. 무덤에서는 박달령을 오가는 길손들의 모습이 손에 잡힐 듯 바라다보였다. 행중에서 장례를 엄중하게 치르는 것에 불평도 없지 않았으나, 정한조의 생각은 달랐다. 명줄을 버린 차인꾼은 원상들과 달리 하잘것없는 삯전으로 연명하는 신세였지만, 소년 때부터 소금장수 상단과 비가 오나 눈이 내리나 고락을 같이한 세월이 10년이 넘었으므로 흉허물 없는 동배간이나 진배없었다. 뿐만 아니라, 소굴에 있는 놈들도 장례를 모양 있게 치르는지 섬거적에 둘둘 말아 시구문에다 버리는지 눈여겨보고 있을 것이었다. 차인꾼이 남기고 떠난 노모는 치매가 있어 아들이 저승길로 들었는지 출타 중인지 깨닫지 못했다. 가세조차 구차하여 삼순구식이 어려운 형편이라, 늙은이가 열명길에 오를 때까지 상단에서 생계를 돌보기로 하였다. 적당들이 여러 총중이 손쉽게 볼 수 있는 장소에 시신을 버려 위협으로 삼았다면, 장례를 떡 벌어지게 치른 것도 저들에게 위협일 수 있었다. 장례를 치른 뒤 정한조는 못다 한 얘기가 있어 천봉삼과 마주앉았다. “내성 임소의 반수님을 뵈러 갈 것입니다. 우리의 피가 뜨겁고 세력이 다부진들 부아통을 터뜨리고 대중없이 대처했다간 필경 작폐를 당하리다. 반수님을 뵙고 통문을 돌리는 것도 침착하게 잠행으로 조처하지 않으면 반드시 실패가 따를 것입니다. 통문을 돌리는 일은 적당들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조심해야 하겠지요. 형세가 고약하게 되었소만 노형이 보건대, 도대체 저들의 수효가 얼마나 되었소?” “얼추 70, 80여명이 소굴을 수시로 드나들었습니다만 수효를 딱히 가늠하기는 어려웠습니다. 눈대중일 뿐이지요. 패거리 중에는 농투성이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만, 무뢰배, 타짜꾼이며 소매치기, 들치기, 날치기로 연명하던 놈들도 끼어 있고, 심지어 도부꾼 행세하던 놈들도 있어 모이면 적당이고 헤치면 양민이었지요. 함경도, 충청도, 경상도 할 것 없이 여러 고을에서 흘러든 유민들이 대부분입디다.” “와주 노릇 하는 수괴는 만나보았소?” “먼빛으로 몇 번 본 적이 있습니다.” “어떤 놈이었소, 용모단자(容貌單子)를 그릴 수 있겠소?” “평소 상복 차림에 방갓을 쓴 채로 몸을 숙이고 다니다 보니, 그의 얼굴을 아는 이가 별로 없습니다. 시생은 몇 번 면대한 일이 있어서 기억은 합니다만, 적실하진 않습니다.” “안다는 얘기요, 모른다는 얘기요? 면대를 했다면 얼추 외양은 꿰고 있을 것 아니오.” “마흔 중반으로 보였는데 험상궂게 생기지도 않았고, 허우대도 그다지 훤칠하지 않았지요. 글줄 깨나 읽었는지 식견이 제법입디다. 떨거지들이 나아가고 물러나는 계략을 모두 그놈이 통섭하는 눈치였습니다.” “방갓 쓰고 다니는 놈들이 어디 한 둘이어야 말이지.”
  •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노형의 애꿎은 심사는 십분 그렇다 하더라도 지금까지 저지른 처신은 대의에 어긋나는 처사였소. 그럼 시생들이 노형을 구출할 그 시기에 식솔을 이끌고 도망했더란 말이오?”  “처음에는 그랬지요. 야음을 틈타 식솔을 데리고 소굴을 빠져나오는데, 오싹한 한기를 느낀 젖먹이가 울음을 터뜨리는 바람에 산기슭을 열 발자국도 돌아나가지 못해 발각되고 말았습니다. 식솔은 다시 산채로 끌려가고 시생 혼자 포박당하여 소굴이 어딘지 짐작하지 못하도록 눈을 막고 밤과 낮을 도와 산길을 걸었습니다. 시생의 짐작으로는 어떤 때는 발아래로 여울물 소리가 낭자한 섶다리를 건너는가 하면, 사공이 부리는 거룻배를 타고 내를 건넌 적도 있었습니다. 한 발 잘못 내디디면 절벽 아래로 떨어져 절명할 수 있는 잔도를 걸었던 기억도 있습니다. 경난은 그뿐이 아니었습니다. 밤낮을 걷게 하더니 어느 눈밭에 이르러 안대를 풀어주고 다짜고짜 매타작을 내리기 시작했지요. 난장을 내려 어육으로 만들고도 미진했던지, 시생을 아예 까마귀밥이 되도록 길송장으로 만들 작정이란 것을 나중에야 눈치챘지요. 초주검이 되어 정신이 가물가물해질 무렵 죽은 시늉을 하지 않으면 그나마 시신조차 거두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자각이 너무 늦었던 모양입니다. 발길질이 언제부터 멈추었는지, 그들이 언제 시신을 버리고 도타하고 말았는지 도무지 기억에 없습니다. 요행히 죽지 않고 숨이 끊어질 찰나에 구명된 것은 모두 도감님의 은덕입니다. 시생이 그것 하나만은 가슴속에 아로새겨 언젠가는 보은을 하리라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어찌된 인연인지 시생을 두 번씩이나 활인하시니 말문이 막힐 뿐입니다. 시생이 끝까지 본색을 밝히지 못헸던 것에는 두길보기하려는 것이 아니라, 일지매가 무고한 사람에게 피해가 돌아가지 않도록 깔축없이 매화꽃을 남겼다는 이야기처럼 시생으로 말미암아 다른 사람들이 고초를 겪는 일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을 해량하십시오.”  “듣고 보니, 의심을 풀려다 근심을 사게 되었구려. 이제 노형의 본색을 알게 되었으니, 와중에도 천만다행이오. 첩지가 아니었다면 노형을 멍석말이해서 도방에서 내쫓을 법하였소. 그러나 산채에 남은 가솔이 지금까지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지 알 길이 없지 않소.”  “물론입니다. 그렇다고 산채 찾기를 단념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죽었든 살았든 시생의 눈으로 보기 전에 어찌 단념할 수 있겠습니까.”  “허 참, 의심을 풀려다 근심을 사게 되었소.”  “모두가 시생의 불찰입니다.”  “우리가 노형을 환난에서 구하고 난 뒤 며칠 지나지 않아서 우리 상단이 숙객으로 드나드는 샛재 숫막촌을 찾아와 동무의 행방을 수소문했던 운수납자가 있었는데, 그자가 스님으로 변복하고 행세하는 자였소. 혹시 짚이는 구석이 없소?”  위인이 잠시 생각에 잠기었다. 부러진 다리로 무리한 탓인지 간혹 얼굴을 찡그리고 입술을 깨물어 고통을 참기도 하였다.  “운수납자라니요? 그건 금시초문입니다. 소굴에서 땡추 한 놈인들 목격한 적이 없습니다. 운수납자를 가장했던 척후가 아니겠습니까. 시생을 눈밭에 유기하고 떠난 다음 어딘가 미심쩍어 시신을 찾아보러 되돌아왔던 게지요.”  “그들이 노형을 산비탈에 유기한 뒤 이틀 만에 다시 그 장소에 되돌아온 것입니다. 그렇다면 소굴이 그곳에서 눅게 잡아도 4, 50리 상거에 있다는 증거지요. 노형의 눈을 가리고 하루 밤낮을 끌고 돌아다닌 것은 가까이 있는 소굴의 정체가 탄로날 위험이 있기 때문 아니겠소. 적당들이 소굴의 정체를 숨기려 나름대로 계략을 쓴 것입니다. 끌고 다니면서 어느 장소에서 요절낼까 주저가 많았겠지요. 내왕이 번다한 길목에 노형의 시신을 버린 것은 십이령을 넘나드는 소금 상단에 대한 경고이고 위협이었소. 그러고 보면 일전에 목숨을 잃은 차인꾼의 시신을 굳이 끌고 간 연유도 알 법합니다. 십중팔구 그 시신을 십이령 가운데 있는 고개치까지 끌고 와서 유기할 것이 틀림없소.”
  • “자연과 인간의 거리, 문학으로 좁히자”

    자연과 인간의 공존과 문학의 역할을 모색하는 제7차 한중작가회의가 26일 중국 푸젠성 샤먼(廈門)시에서 열렸다. ‘자연과 인간, 아름다운 공존의 방식’을 주제로 한 이번 행사에는 양국 작가 40여명이 참석했다. 김주연 숙명여대 석좌교수는 기조발표에서 “오늘날 자연을 노래하는 일은 부질없는 시대착오적 여가로 밀려나고 있고 (모두) 주머니에 담긴 스마트폰을 꺼내 연신 게임을 하는 일에만 열중한다”면서 “오늘의 문학은 기계가 차단시킨 자연과 인간 사이의 거리를 회복시키는 일을 사명으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국 측 기조발표자로 나선 난판 푸젠성 사회과학원장은 “우리는 한때 혁명으로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지금은 혁명이 지나간 후에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직면해 있다”면서 “중국의 당대문학은 새로운 해석과 탐구, 사상, 지혜, 용기, 통찰력을 필요로 하는 영역에 투입된 것이 분명하다”고 밝혔다. 난판 사회과학원장은 “중국 당대문학의 급선무는 진지하게 이 세대 사람들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것이고 주변의 역사와 전방위적인 대화를 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행사에 한국에서는 소설가 김주영·박상우·서하진·전경린·천운영, 시인 황동규·정현종·이시영·나희덕·김민정 등 약 20명의 문인이 참석했다. 중국에서는 아라이 쓰촨성작가협회 주석, 리숭타오 중국시가학회 부회장, 양커 광둥성작가협회 부주석, ‘신세기 10대 청년 여류시인’ 칭호를 받은 안치 등 20여명이 참석했다. 작가들은 26, 27일 이틀간 시와 소설 분과로 나뉘어 각자의 작품을 낭독한 뒤 작품의 의미와 배경, 양국의 문학이 자연과 인간을 그리는 방식 등에 대해 묻고 답하는 시간을 가진다. 샤먼(중국 푸젠성) 배경헌 기자 baenim@seoul.co.kr
  •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배은망덕이라는 것을 시생인들 모르겠습니까. 더 이상 폐단이 되어서는 안 되겠기에 병간하는 사람이 깊이 잠든 사이에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잘 알고 있습니다. 동무께서 시생을 소굴에서 나온 적당이 아닌가 의심하고 있다는 것도 왜 모르겠습니까. 하긴 시생이 화적의 소굴에서 한 반년가량 그들과 같이 비위를 맞춰주며 기거한 것은 틀림없습니다. 절간에 간 색시는 중놈이 시키는 대로 하더라고, 초로 같은 목숨이나마 부지하자면 그들 입맛을 거스를 수 없지 않겠습니까. 둔처에 그토록 오래 머물렀던 것은 시생의 내자와 피붙이가 함께 적당들에게 끌려가는 불상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소굴에 인질로 잡히고부터 내자는 형용이 수척하기가 도마 위에 말라붙은 생선 부스러기처럼 쪼그라들었고, 내자 가슴에 안겨 있는 소생은 정신이 가물가물하여 우렁차던 울음소리조차 매미 우는 소리 같았습지요. 그런 고초를 겪는 내자와 피붙이를 화적의 소굴에 남겨두고 혼자 도망한다는 것은 인두겁을 덮어쓰고는 차마 못 할 짓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매불망 식솔과 함께 도망할 기회를 엿보느라, 그들과 한통속인 것처럼 안면을 바꾸고 처신하며 산채 일을 거들다 반년이나 되는 세월을 헛되이 보내고 말았습니다. 산채에서도 본색이 무엇이냐고 시생을 수차례 잡아업치고 난장 박살을 낼 듯이 위협하였습니다. 그때마다 시종일관 소작하던 전답을 잃은 유민으로 가장하고 본색은 모르쇠로 잡아떼었지요. 전답을 빼앗겨 일가친척은 물론이고 알음도 없는 삼남 고을로 내려와 정처를 찾아 기웃거리던 중에 댁내들과 마주친 것이라고 둘러댔지요. 그러나 아닙니다. 시생도 광주 땅 송파 저자를 하직하고 떠나기 전까지는 쇠살쭈 행세하며 풍파깨나 겪었습니다.” 위인이 괴춤을 한참이나 이리저리 뒤지더니 기름종이로 싼 봉지 하나를 꺼내들었다. 그러고는 때와 땀에 절은 작은 쪽지 하나를 꺼내 정한조에게 건네주었다. 닳고 낡아서 희미하게 지워진 문자가 확연하지는 않았으나, 차근차근 뜯어보니 그것은 임오년에 난리가 일어난 뒤, 조정에서 양반들도 상업에 종사할 수 있도록 허가하면서 당시 보부청에서 발행했던 부상의 첩지였다. 놀랍고 두려워 만감이 교차하는 정한조를 바라보던 위인이 말했다. “시생의 성명은 천봉삼이라고 합니다.” 정한조가 말했다. “내가 알기로는 임오년 이후에는 조정에서 부상들이 거주지를 벗어나지 못하도록 금지했는데?” “그렇습니다. 장시에 무뢰배들이 들끓어 풍속이 어지러워지자 보부상들의 거주지 이탈을 금지시켜 행상인들의 기강을 바로잡고 어지러운 장시의 동요를 막으려 하였지요. 그런데 시생이 어쩌다 군란의 소동에 휩쓸렸고, 대원위대감께서 청국으로 끌려가는 수모를 당하는 와중에 관령을 어겨서 군교들에게 쫓기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 길로 송파를 떠나 살길을 찾겠다고 남행길을 선택한 것입니다. 숨어살기로 작정한 것이지요.” “그러한 사정이 있었다면 어째 진작 토설하지 않았소. 두길보기한 것이오?”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시생이 다시 소굴로 숨어들어 내자와 피붙이를 구출하려는 생각에 본색을 숨긴 채 자취를 감추려 하였지요. 시생이 산채에 붙잡혀 있다가 도타한 사람이란 소문이 퍼지고 이것을 눈치챈 관아에서 산채를 박살내겠다고 군졸을 풀면 적당 소탕은커녕 소동만 커지고 산 토끼 죽은 토끼 둘 다 놓치는 것도 모자라 구출해야 할 시생 식솔의 목숨 부지는 뒷전으로 밀려나게 된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어 구린 입을 떼지 않고 있었습니다. 지방관아에서 구실살이한다는 아전들이나 수자리 산다는 군교라는 작자들이 이름만 그럴듯했지 늙고 병든데다 예나 지금이나 뇌물에만 눈이 어두워 어디 제구실하는 꼴을 본 적이 없습니다.”
  •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혹 떼러 갔다가 혹 붙이게 되었으나 월천댁과는 오랫동안 식주인으로 터온 탓에, 박절하게 뿌리칠 수는 없어 정한조는 얼추 얼버무리고 샛재 주막을 나섰다. 그날 해가 반나절이 기운 뒤에 말래 도방에 당도하였다. 듣던 대로 송만기는 꿩을 잡아 털을 뜯다가 놓친 사람처럼 얼굴이 쭉정이같이 누렇게 떠서 텅 빈 처소를 지키고 있었다. 정한조와 마주치자, 무안하고 수치스러워 고개조차 들지 못했다. 울화가 치밀었으나 언 수탉같이 초췌한 몰골을 보니 허물만 할 수도 없었다. 돌이켜보면, 자취를 감춘 궐자로 말미암아 만기는 두 번이나 낭패를 저지른 셈이지만, 그것은 그와 만기 사이에 끼어든 악연의 결과일 수도 있었다. 두 번 다시 그런 허방을 짚지 않도록 하냥다짐을 한다 해도 사람의 운세가 잘못 꼬이기 시작하면 그런 실책을 막아낼 재간이 없는 법이었다. 등을 문질러 주고 손을 잡아 끌어 주질러앉히고 타이르는 말로 물었다. “추쇄는 해보았나?” 투전에서 망통 끗발을 뽑은 사람처럼 핑계할 구멍을 찾지 못하고 한동안 우물쭈물하다가 발명한답시고 사내답지 못하게 어깨를 떨어가며 나직하게 말했다. “그동안 병구완하느라 탈진도 하고, 봉노 윗목에 팔베개하고 누워 깜박 조는 사이에 자취를 감춰버려서 창졸간에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새벽녘에 목덜미가 선뜻하여 소스라쳐 깨어난 뒤 사방을 뒤졌으나 흔적도 찾지 못했습니다. 도방에 있던 차인꾼이며 마바리꾼 들을 동원하여 추쇄해 보았으나 차인꾼들에게 고생만 사준 꼴이 되었습니다.” “궐자에게서 한시도 눈을 떼지 말라고 신신당부하고 하냥다짐까지 두었거늘, 사람이 고깃값을 할 줄 알아야지.” “저희 허물이 큽니다.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조리돌림을 하신대도 감내하겠습니다.” “지난겨울 동안 비렁뱅이처럼 한뎃잠 자면서 한속에 부대끼고 비보라에 부대끼며 갖은 풍상 겪었으니 골수가 녹아나도록 고단했겠지. 두부 먹다가 이 빠지는 법도 없지 않은 법, 상심할 것 없네. 부러진 다리가 쾌복되지 않았으니 멀리 가진 못했을 것이야. 게다가 동달이 차림이 아닌가. 등잔 밑이 어둡더라고 숫막거리 어름에 몸을 숨기면서 야음에 멀리 도타할 기회를 엿보고 있을 수도 있네.” “아니래도 숫막거리 가근방을 이잡듯이 뒤져 보았습니다만.”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사헐처가 있기 마련이야. 위인이 병자라는 것을 명심하게. 절대로 멀리 튀지는 못했을 것이야. 튀다가 발각되면 그땐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궐자인들 모르고 있을까. 사람 동원할 것 없이 몇 사람만 불러 찾아보기로 하세. 사람을 동원하고 홰를 켜고 법석을 떨면 가뭇없이 숨어버릴 것이야. 잠행으로 발짝 소리를 죽여가며 말래 도방 주변 숫막촌을 뒤져 보는 게 좋겠군.” 하지만 정한조의 예상은 빗나가는 듯했다. 십수 명을 동원하여 말래 도방 주변을 샅샅이 뒤졌으나 궐자의 행방은 오리무중이었다. 부러진 다리로 시오리도 온전히 걷지 못했으리라는 정한조의 예상은 새벽이 되어서야 깔끔하게 빗나가고 말았다. 그렇다고 단념할 수 있는 일도 아니었다. 위인이 곁부축 없이는 오리 길 행보도 못다 갈 병추기인데도 무릅쓰고 줄행랑을 놓았다는 것 자체가 정한조가 처음 생각했던 것처럼 적당들과 내통을 가진 위인임을 증거해 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은밀한 가운데서 위인을 추쇄한다 할지라도 소문이 퍼지지 않을 수 없고, 또 발 없는 소문이 천리를 가는 기력을 가졌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는 것이었다. 위인의 행방을 수소문한 지 하루가 지나고 이틀째 되던 저녁나절, 목발을 짚고 겨우 행보를 떼어놓는 자가 고포의 미역 도가 근처에서 배회한다는 기별이 들어왔다. 고포 미역을 거래하는 부상들의 귀띔이었다. 궐자가 사라져서 톡톡히 수치를 당한 송만기가 정한조를 작반하여 말래에서 행보가 빠듯하게 한 고포로 달려갔다. 위인은 그곳 미역 도가 근처 어막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정한조와 만기가 들이닥쳤으나 별반 놀라는 기색이 아니었다. 일단 줄행랑을 놓기는 하였으나 근력에 부쳐 더 이상은 행보를 떼어놓을 형편이 못 되자 자포자기한 셈이었다. 두 사람이 위인을 곁부축하여 말래 도방에 당도한 때는 자정을 코앞에 둔 시각이었다. 주위를 모두 물리친 후 위인을 바람벽에 기대앉도록 배려하고 마주 앉은 정한조가 묻기도 전에 위인이 먼저 자복을 하였다. 어조가 매우 침착하고 음성도 나직하여 꾸며대는 거짓이 아닌 것은 확실해 보였다.
  •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또 궁상떨고 있네. 어미로서 피붙이를 두고 모질게 폄하하면 안 되지. 구월이가 못 들었으니 망정이지 알았다면 어미를 얼마나 원망하겠소.” “잔술 팔아 연명하는 숫막 여편네가 내지른 천출이긴 합니다만, 도감 어른도 아시다시피 제 소생이 됨됨이가 워낙 맵짜고 성깔도 다부지지 않습니까. 용모도 그만하면 천출치고는 밉상은 아니지요. 그런데 명색 내 속으로 내지른 여식을 술청 심부름이나 시키고 본데없는 사내들과 겨끔내기로 희롱이나 받고 채다 보면 나중에는 염전에 있는 부잣집 후취로 내주기 십상이 아니겠습니까. 묵사발이라고 우습게 알고 함부로 내돌리다 보면 깨지지 않으란 법이 없지 않습니까.” “염전 부자들 후취가 어때서? 그런 인연 찾아내기도 갈밭에 꽂힌 화살 찾기처럼 어려운 일이잖소.” “부자 아니라, 울진 질청의 구실아치들이라 하더라도 후취 자리라는 것이 저년에겐 거적문에 백통 돌쩌귀 달기가 아닙니까. 분수에 넘치는 인연은 나중 가서 필경 소박당하기 마련입니다. 천출은 천출끼리 인연을 맺어야 뒤탈이 없는 법입니다. 후취 자리라는 것이 십중팔구 사내 구실 못 하는 늙고 병든 병추기 만나기 십상일 것이고, 풍 들린 시어머니 병수발에 날밤이나 새우고 해코지를 못 해서 눈깔이 시뻘건 전처 소생들 등쌀에 하루하루를 살얼음 밟듯 살아야 하는데, 그 고초와 수치를 어찌 감당하겠습니까. 그것들이 처음에는 구박하다가 나중에는 소박하여 필경 친정으로 내쫓고 말겠지요. 도감도 아시다시피 재치와 총명이 남다른 아이인데. 앓느니 죽고 말더라고 우리 구월이 그런 후취 자리에다 내던지기는 죽기보다 싫소. 언감생심 칼 물고 뜀뛰기지 가당키나 한 일입니까.” “비석거리에 뻔질나게 드나드는 방물장수 여편네들도 있지 않소. 그네들이 방방곡곡 휘젓고 다니면서 보고 듣는 견문이 많고 반죽도 좋아서 혼사를 맺어 주는 일이 많다고 하지들 않소. 말래에 가면 매파도 없지 않고.” “약고 꾀바른 봇짐장수 여편네들은 중신한답시고 구전에만 눈이 어두워 걸핏하면 손바닥부터 내민답디다. 그렇다고 이 첩첩산골에 매파가 찾아올 리도 없지요.” “어리석은 사람. 오뉴월 황소 불알 떨어지면 구워 먹으려고 다리미에 불 담고 다닌다더니 주모가 그 짝 났구려.” “아닙니다. 비록 산협 숫막에서 술막질하고 있는 견문 없는 계집이지만, 나름대로 안목은 있답니다.” “조금 전에 듣자 하니, 신랑감을 눈여겨보아둔 것 같던데?” “예.” “그게 누구요?” “귀를 좀 빌립시다요.” 주모에게 귀를 빌려준 정한조가 처음에는 눈이 휘둥그레졌다가 나중에는 떨떠름해서 면상이 일그러졌다. “슬하에 일 점뿐인 여식을 떠나보내면, 주모 혼자서 그 소슬한 세월을 어찌 보내려 하나. 지금 당장은 애물단지라지만, 불과 며칠 지나지 않아서 홀연히 떠나보낸 것을 후회하며 밤낮으로 눈물짓게 될 것이오.” “걱정은 내 몫입니다. 도감께서는 혼사가 성사만 되도록 알선해 주십시오.” “중신애비가 되어 달란 얘기겠는데, 물론 운을 떼어 보겠네만 대답이 어떻게 나올지 장담할 수는 없으니 그리 알고 있으시오.” “말귀가 어둡긴 하네요. 그러니깐 데릴사위 삼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겉보리 서 말만 있어도 처가살이하지 말라는 말은 못 들어 보았소? 당사자가 처가살이를 바라겠소? 누워서 침 뱉기지만, 행상꾼은 좋은 신랑감이 아닙니다. 건장한 남편이 집을 보전하려고 상인이 되었다네. 세월이 유수와 같이 흘러 머리는 어느새 백발로 뒤덮이어 자손이 장성하였지만, 서로 알아보지 못하네. 집으로 돌아온 그를 보고 노인이 된 안해는 어디서 오신 뉘시냐고 물었다는 옛말이 있다는 것 아시오?” “남의 복장 풀쑥풀쑥 지르지 말고 저년 연분이나 맺어 주오.” “주모가 눈썰미 한 가지는 제법이오. 내가 운은 떼어 보겠다고 하지 않았나.”
  •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한 가지 수상한 것은 있습니다. 저들이 장례를 치러주지도 않을 것인데, 어째서 시신을 거두어갔는지 그리고 원상과 차인꾼을 분별하기가 어렵지 않았을 텐데 어찌 원상들은 욕보이지 않고 차인꾼들만 죽이고 또 협박하여 소굴로 데려갔을까요. 그 내막을 짐작할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시신을 가차없이 버리고 갔을 터인데요.” “원상을 욕보이면, 필경 임소 전체가 들고일어나 보복이 돌아올 수도 있을 것이고, 차인꾼을 둔소로 데려가면 고분고분해서 저들과 짝패되기 십상이라는 생각을 가졌겠지. 아니면 세작이나 척후로 써먹을 속내가 있었던지. 그리고 가근방 내왕길 지리에 밝은 사람이 필요했을 테지. 시신을 거두어간 것은 부상들이 통문을 돌려 도회를 열고, 장례를 시작으로 하여 임소의 부상들이 결속을 다지고 둔소를 소탕하려는 계기로 삼을까 걱정해서일 것이오. 그들 소굴에 책사도 있다는 증거 아니겠습니까.” “그 말이 그럴듯하군.” “아서, 그게 아닐 수도 있네. 일면식도 없는 도둑의 속내를 앉아 있던 우리가 어찌 알겠나. 함부로 예단하는 게 아닐세.” “그 말도 일리가 있군.” “어허, 그놈들 귀신 잡아먹고 도깨비 똥 눌 놈들이로군.” “그런데 행수님은 왜 말씀이 없습니까.” “……“ 좌중의 시선이 지금까지 말 한마디 없었던 도감 정한조에게 쏠려 있었다. 그러나 그는 끝내 꿀 먹은 벙어리였다. 어떤 속내를 가지고 있는지 짐작하기 어려웠다. 한마디하라고 짓조르고 드는 것을 생트집으로만 알아서 정한조는 입도 뻥긋하지 않았다. 좌중은 물을 끼얹은 것처럼 가라앉았다. 침묵의 시간이 흘러갔고 고단했던 일행들은 새벽잠으로 곯아떨어졌다. 이튿날 깨어보니 정한조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는 한숨도 자지 않고 곽개천을 밖으로 조용히 불러내어 먼저 말래 도방으로 가겠다고 통기하고 한밤중에 겁도 없이 단신으로 말래로 떠난 것이었다. 야밤에 혼자서 십이령을 넘는다는 것은 여간한 간담이 아니었다. 화적은 고사하고 짐승의 밥이 되기 꼭 알맞았다. 곽개천이 동행하겠다고 하였으나 끝끝내 내치며 듣지 않았다. 도대체 이렇게 서두르는 까닭이 어디 있느냐고 아득바득 따지고 들었으나 천근 같은 입을 열지 않았다. 개호주 울음소리가 끊이지 않고 들리는 음산한 밤중에 내성을 발행한 그는 열불나게 길을 줄이기 시작했다. 끼니를 꼬박 굶은 채 밤낮을 가리지 않고 산짐승과 동행도 해가면서 이틀 만에 샛재 비석거리에 당도하였다. 불각시에 모습을 드러낸 그는 화들짝 놀라 눈을 하얗게 뜨는 월천댁에게 물어보았으나 자취를 감추었다는 포병객이 찾아왔었다는 귀띔은 없었다. 당장은 실망스러웠으나, 열 일을 제쳐두고 그 위인의 행방을 쫓아야 했다. 근자에 일어난 수상쩍은 사태와 적변의 시단이 모두 궐자의 행적과 상당한 관계를 가졌다는 생각을 머릿속에서 지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저러한 사정을 알아챌 리 없는 월천댁은 딴청을 피웠다. 봉당 쪽마루에 걸터앉아 초연히 먼산바라기를 하는 정한조에게 바싹 다가앉으며 월천댁이 말문을 열었다. “우리 구월이 말이요.”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더니, 기운도 탈진해서 눈앞에 보이는 것이 모두 희미한 사람에게 또 무슨 넋두리를 하려고?” 월천댁은 정주간 안쪽에 있는 골방을 턱짓으로 가리키며 제법 침통한 표정으로, “글쎄, 도감 어른도 아시다시피 저년이 이팔방년이 내일모레 아닙니까.” “그건 나도 알고 있소.” “간혹 봉노 앞을 지나다니는 도감 어른 수하 중에 한 사람을 보니까. 허우대도 튼실하고 붙임성도 있어 보입디다. 성깔도 녹록지 않아 보이던데. 새앙머리한 처자 나이 이팔이라면 명치끝까지 차오른 게지요. 그래서 이 에미에게는 저 꼴같잖은 소생이 노상 끌탕이랍니다. 숫막이라는 것이 길가에 나와 앉은 하찮은 거처가 아닙니까. 삽짝도 없어 문만 벌컥 열면 바로 안방이지요. 어느 떠돌이 비렁뱅이가 한밤중에 칼 물고 들이닥쳐 저년 앙가슴 내질러 자빠뜨리고, 자던 입에 콩가루 털어넣듯 막무가내로 육허기나 채우고 튀어버릴까 해서 자다가도 문득 깨어나면 가슴이 두근거려 두 번 다시 잠을 청할 수가 없습니다. 그로써 절개가 이지러지고 나면, 갈 곳은 대처의 색주가뿐이지요. 그런 오욕을 당하면 색주가에서 살꽃이나 파는 처량한 신세밖에 될 게 없습니다.”
  •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손짓으로 차인꾼을 불러 세운 행수란 놈은 곱상스럽게 생긴 외양과는 달리 완력이 장사였다. 오줌을 지리며 엉거주춤 다가서는 차인꾼의 상투를 한손으로 비틀어 잡고 태질을 시켜 얼살을 빼는가 하였더니, 거기서 그치지 않고 또다시 허릿바를 끌어올려 덜미잡이로 엎치자, 차인꾼은 제힘에 겨워 꼬꾸라져서 콧등에 흙이 묻어났다. 순식간에 사람의 혼백을 빼놓는 것이었다. 그렇게 넋을 빼놓은 다음에 그가 물었다. “어디로 가는 길이냐?” “모르겠습니다.” “이놈, 어디로 가는 줄 모르다니, 넋은 어디다 두고 다니길래 제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른 채 이런 산중에서 소피보는 계집이나 간색하며 허둥지둥한단 말이냐?” “보시다시피 쇤네는 태게꾼일 뿐입지요. 원상들이 향도하는 데로 몇 날 며칠이고 입 닥치고 따라갈 뿐 신지가 어딘지 알지 못합니다.” “그래? 태게꾼이라 해서 눈에 보이는 것도 없고, 신지가 어딘지 궁금하지도 않더냐?” “쇤네는 그저 원상들이 가는 대로 따라다니는 것을 천직으로 알 뿐입지요.” “혼백은 집 시렁에 얹어두고 고깃덩이만 왔다 갔다는 얘기렸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와들와들 떨고 있는 차인꾼의 뒤통수를 다시 한번 치고 나서, “이놈 봐라. 한 입으로 두말하고 있네. 방금 넋은 빼고 다닌다고 네놈 주둥이로 씨부리지 않았더냐?” “…….” 한마디 언사에 실려 있는 위엄을 듣자 하니, 산골 무지렁이 출신은 아니란 것을 단박 알아차릴 만하였다. 살년을 견디다 못해 산적으로 나선 일자무식 세궁민은 아니었다. 글줄이나 읽은 위인이란 생각이 얼른 뇌리를 스쳐갔다. “쇤네는 삯전이나 받는 담꾼일 뿐입니다요.” “이놈, 가재는 게 편이란 말을 듣지 못했느냐? 네놈이 담꾼이든 원상의 행세를 하는 놈이든 상관없이 같은 일행인 것만은 틀림없는데, 비겁하게 발뺌을 하여 그 초라한 목숨이나 구걸하자는 것이냐? 이놈 보아하니 아직도 제정신을 못 차리고 한 입으로 두말하고 있네.” “아, 아닙니다.” “아니긴 뭐가 아니냐. 이 배은망덕한 놈.” “창졸간에 불쑥 나온 말이니 해량하십시오.” “이놈 포달 떠는 꼴이 가관이군.” 당장 목이라도 베일 기세였다. 그러나 그는 차인꾼에게 명령하여 널브러진 시신을 들쳐 업도록 하였다. 조기출을 비롯한 일행은 다만 사태를 지켜보기만 할 뿐 대꾸 한번 변변스럽게 하지 못하고 눈앞에서 벌어진 참혹한 살육을 바라만 볼 뿐이었다. 시각은 어느새 자정을 넘기고 있었다. 몸은 물먹은 솜같이 무거웠으나, 잠은 벌써 저만치 달아나버렸다. 이틀 전에 겪었던 봉변을 소상하게 이야기한 조기출의 입에서 문득 한마디가 흘러나왔다. “구차하게 살아남기만 해서 뭣하겠소. 전대 털린 것은 그렇다 치고 수하에 따르던 차인꾼 한 사람 속절없이 저승으로 보내버린 주제에 어디다 비위짱 좋게 낯짝을 쳐들고 다니겠습니까. 적당들이 그런 술책으로 우리 일행의 눈을 어둡게 만들 줄이야 꿈엔들 생각했겠습니까. 적당들 턱밑에 낯짝을 디밀고 죽여달라고 지다위 못 한 것이 여한이 되었습니다. 명줄을 놓아버린 사람이나 끌려간 사람이나 원망이 구천에 사무치겠지요. 어찌 되었거나 시생과 같이 미욱하고 무지한 밥쇠가 살아서 무엇하겠습니까.” “운세 사나웠던 탓이오. 너무 자책 마시오. 하늘이 무너져도 살아날 구멍은 있다 하지 않았소.” “행수 명색이었던 시생이 행중이 화적떼에게 된불을 맞고 멸구를 당하게 되었다면 사태를 불문하고 떨치고 나서서 사태를 수습했어야 했는데, 난생처음 봉적한 일이라 할지라도 흡사 구경꾼처럼 수수방관하고 있었던 치욕은 무엇으로도 씻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도감 정한조나 둘러앉은 원상들 역시 말이 없었다. 말없이 앉아 있기 진력날 즈음에 침묵하던 곽개천이 입을 열었다. “내가 그 자리에 있었더라도 적당들의 짜놓은 미술에 여지없이 끌려들었을 것입니다. 적당들은 고개치나 산코숭이 같은 내왕이 호젓한 곳에서 느닷없이 모습을 드러내고 북새통을 놓으며 복물과 전대를 취탈해 왔는데, 이 화적들은 백주창탈을 예사롭게 저질렀을 뿐만 아니라, 살인까지 예사로 저지르고 말았소. 그 악행의 속내를 짐작하기 어렵게 되었소. 게다가 미술을 쓴다는 사례는 지금까지 한 번도 없지 않았습니까. 그것은 적당들도 이젠 완력만 가지고 봇짐을 털려는 것이 아니란 뜻이겠지요. 그렇다면 내 불찰로 자책만 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우리도 그들과 맞설 수 있는 계략을 꾸며야 할 때가 온 것입니다.”
  •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헤어진 지 불과 이틀 만에 다시 만난 조기출 일행의 행색은 꿰다 만 산적같이 꾀죄죄하게 육탈이 된 것은 물론이었고, 모두 쥐 뜯어먹은 송곳 자루같이 남루했다. 꿩 구워 먹은 자리에는 재라도 남아 있지만, 그들은 육탈은 물론이고 손에 쥔 것이라곤 흙먼지뿐이었다. “이런 작변이 있나. 어쩌다가 이토록 몰골 숭한 꼴을 당하였소? 이틀 전만 하여도 허우대들 멀쩡하지 않았소.” “적변을 당했습니다.” 먼저 잠들었던 일행이 나중 온 일행들을 미지근한 온기가 남아 있는 아랫목으로 잡아끌어 앉히고 물을 떠다 먹이며 야단을 떨었으나 봉노 안의 부산스러움은 좀처럼 가라앉을 기미가 아니었다. 나중 돌아온 일행의 수효를 눈대중으로 점고하던 정한조가 조기출을 똑바로 바라보며 무거운 입을 열었다. “일행 중에 두 사람은 어디로 갔습니까?” “……” “이런 낭패가 있나. 두 사람 목숨이 창졸지간에 모두 거덜났더란 말이오?” “한 사람은 그 자리에서 적당의 칼을 맞고 숨을 거뒀습니다. 시신조차 산적들이 거두어 갔습니다. 한 사람은 혼비백산하여 산비알로 튀었는데 어디로 줄행랑을 놓았는지 도무지 행방이 묘연했습니다. 잠시 찾아 헤매긴 하였으나 찾지 못했습니다.” 여기저기에서 구들장이 꺼져라 하고 한숨 소리가 터져나왔다. “도대체 어느 어름에서 적변을 당했다는 것입니까?” “내성 경내를 금방 벗어나 상주길로 접어들어 반나절도 못 간 백주 대로였습니다. 해가 나절가웃이나 기울었을까요. 그때라면, 백주 대낮이나 다름없지요.” “백주 대낮인데도 아무런 대책 없이 몽땅 털렸더란 말이오?” “복물은 물론이고 장두전이며 전내기 짚신까지. 육승포 외골 전대에 감추었던 150냥을 몽땅 털리고 사람 목숨까지 거덜내고 말았습니다. 전대를 빼앗기지 않으려 했다간 적당들이 배를 가르고 창자라도 꺼내갈 기세였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저희들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을 신표하며 물미장까지 빼앗아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150냥이면, 한양 변두리에 가서도 기와집 두 채 값입니다. 그런데 그들에게는 소용없을 성부른 물미장까지?” “예.” 조기출 일행은 샛재 숫막에서 정한조 일행과 같은 날 발행했지만, 복물짐이 비교적 단출했던 탓으로 내성에는 하루 먼저 당도하였다. 그러나 한시라도 빨리 길을 줄일 욕심으로 내성에서 사처를 잡지 않고 내처 상주길로 접어들기로 하였다. 해가 질 때쯤이면 맞춤한 숫막을 찾아들어 하룻밤을 유숙할 작정이었다. 내리고 있는 진눈깨비가 언제 그칠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진눈깨비가 내리면 습기 먹은 건어물이나 미역 짐이 더욱 무거워지기 때문에 촌각을 다투어 길을 줄이는 것이 상책이었다. 열불 나게 길을 줄이는 중에 중화참이 지나고 나자, 극성스럽던 진눈깨비가 씻은 듯이 긋고 난 다음 촘촘한 봄 햇살이 자드락 가득히 넘쳐나고 있었다. 일행의 발걸음도 햇살과 함께 한결 가벼워지고 농담까지 나누며 산코숭이를 돌아가고 있었다. 일행이 산코숭이를 돌아가려는 그 참에 난데없는 일행과 만나게 되었다. 쓰개치마로 얼굴을 가린 스무 살 안팎의 남색짜리 새색시와 코에서 흙냄새가 풍기는 늙은이였다. 보아하니 꼬락서니는 뭣하나 명색 신행길이 분명했다. 대낮이라 하나 허리가 매화나무 등걸처럼 휜 늙은 노인네 한 사람과 나이 불과해서 이팔로 입에서 젖비린내조차 가시지 못한 어린 각시가 작반하여 행로가 한적한 산중길을 더듬다간 어떤 봉변을 당할지 몰랐다. 그래서 조기출 일행이 자청하여 작반을 청하게 되었다. 늙은이도 퍽이나 다행스러웠던지 일행을 향하여 행수가 어느 분이신지 과람하다며 몇 번이나 허리를 조아려 체면을 차렸다. 너무나 한적한 터에 내려쪼이는 햇살 아래로 일행을 할끔할끔 눈짓하며 장금장금 걸음을 떼어놓는 각시에게 모두 시선을 빼앗기게 되었고, 쓰개치마 사이로 보이는 용모를 훔쳐보자 하니, 산중 아낙네치고는 이목구비가 뚜렷하여 밉상이 아니었다. 일행은 예법에 어긋나는 행동을 두려워할 겨를도 없이 마치 도깨비에 홀린 것처럼 신행길을 바싹 따라붙어 농을 걸기도 하였다. “허릿매가 잘록하여 색탐깨나 하게 생겼는걸.” 신부는 일행들이 언죽번죽 걸어오는 농염한 희롱에도 이렇다 할 대꾸가 없었다. 그러나 싫다는 기색은 보이지 않아서 산골 계집치고는 때를 벗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어허, 저 엉덩이 보게나. 교태와 고혹함이 가히 현종을 모신 양귀비일세.” “예끼, 이 사람. 하찮은 산골 각시를 감히 어따 빗대나.” “양기가 명치끝까지 차올랐으니, 추물인들 서시로 보일 수밖에.” 늙은이가 뒤따라야 할 신행길에 난데없는 행상꾼들이 언죽번죽 걸쭉하게 내뱉으며 뒤따르는 형국이 되고 말았다.
  •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말래 도방에서 병구완을 받고 있던 그 위인이 끝내 본색을 밝히지 않고 버티더니, 불현듯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네. 의리는 새옹을 팔아서라도 갚아야 한다고 배워왔었는데, 궐자가 그 의리를 헌신짝 버리듯 배신하고 말았다네.” “부러진 다리가 쾌복이 되지 않았을 텐데요?” “그런 휘진 몸으로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는 것도 불길한 징조일뿐더러, 오랜 숙객*으로 서로 흉허물 없이 지내는 우리 상단 일행을 색주가에 데리고 가서 창피를 안긴 윤기호의 속내 하며, 운수납자 행세하는 무뢰배가 자취를 감춘 병자를 뒤쫓고 있다는 소식도 서로 얼개가 되어 있는 것 같으면서도 전혀 다른 내막인 것 같기도 해서 머릿속이 뒤숭숭하고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네. 도방으로 오는 도중에 숫막 쪽 마루에 혼자 우두커니 앉아 오랫동안 생각을 해보았으나 전혀 짚이는 게 없었네.” “그 포병객은 만기가 남아서 차인들과 같이 병구완을 하고 있지 않았습니까.” “만기가 아직 황구를 벗어나지 못해서 좀 해망쩍은 구석이 있지 않은가. 내가 여러 번 알아듣도록 일러두었지만, 몰래 자취를 감추려고 기회를 엿보는 놈에겐 당할 재간이 없었겠지.” “도감 어른께선 만기를 너무 두둔하는 것 같습니다.” “만기도 원상인데 우리가 역성들어주지 않는다면 그 사고무친한 아이를 누가 위해주겠는가. 아니래도 은(銀)을 주고 사는 것이 초년고생이라고 내가 떠먹이듯이 달래주었으니, 공연한 트집 잡아서 번거롭게 만들지 말게나.” “윤가를 어떻게 할까요? 못된 소행머리를 가졌다면 이참에 우리와 거래를 끊어버리는 게 옳지 않겠습니까. 윤가의 처신을 대수롭지 않게 보아서는 안 되겠습니다. 두부 먹다가 이빨 빠지는 일도 허다하지 않습니까.” 성깔 있는 곽개천의 말에 사뭇 어두운 안색이던 정한조가 가만히 손사래를 쳤다. “그렇게들 간단하게 생각할 일이 아닐세. 윤기호로 말하면 명색 내성 장시를 휘어잡고 있다는 포주인이 아닌가. 우리가 궐자와 오랫동안 거래를 트고 자별하게 지내던 인연을 단칼에 무 자르듯 할 수는 없는 노릇일세. 그랬다간 또 어떤 환난이 닥칠지 모를 일이 아닌가. 수상한 일일수록 순서에 따르는 법 차근차근 알아보도록 하세. 포주인이 설마 우리를 무단히 야료하려 들었겠나.” “야료가 아니라, 우릴 날탕으로 삼키려 했는지도 모를 일이지요. 도감 어른 말씀처럼 두고만 보다가 나중에 큰 손실을 보고 나서야 땅을 치며 후회하지 않겠습니까?” “손실당할 게 뭐가 있나. 우리가 억매흥정으로 소금 짐을 넘긴 것도 아니고 시게전이든 드팀전이든 행상들을 상종하여 풍속을 어지럽히고 색주가에서 색사나 벌이며 희희낙락한 적도 없지 않은가. 윤가의 사위스러운 속내를 세세하게 읽을 수는 없지만, 우릴 욕보일 심지를 품고 있다 할지라도 우리가 원상의 정도를 지킨다면 함부로 덧들이지는 못할 것이야. 우리들 처신하기 나름일세.” 사달은 그것에서 끝나지 않았다. 한시름 놓았다 싶었던 일행이 다시 등잔을 끄고 누웠다. 추녀를 스치고 지나는 칼바람 소리는 3월 초입에 이르렀는데도 여전히 스산했다. 너무나 을씨년스러워 귀를 막고 싶을 정도였다. 멀리 있는 색주가에서 들려오던 가녀린 소음도 드디어 가라앉아 사위가 고즈넉하여 바람벽을 기어오르는 벌레 소리도 들릴 지경이었다. 삿자리를 깐 방바닥은 헐벗은 각설이 불알처럼 차가웠으나 눈두덩은 벌써 천근같이 무거웠다. 바로 그때였다. 도방 울바자 너머로 부산하게 내닫는 발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그 발소리는 도방의 울바자 앞에서 멈추어 섰다. 몇 사람은 벌써 코를 골고 있었으나, 생각이 많았던 정한조는 뜻밖의 발소리에 진작부터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문밖까지 걸어온 발소리가 멈추고 그를 찾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감 어른. 시생 조기출이올시다.” 벌떡 일어난 정한조가 찌그러진 외짝 바라지를 손으로 쳐서 벌컥 열었다. 어두운 밤빛 속이어서 확연하게 짚여오지 않았으나, 분명 상주와 고령의 저자를 겨냥하고 발행하였던 조기출이었다. 그뿐만 아니었다. 떨고 서 있는 조기출의 등뒤에 어슥버슥 서 있는 7, 8명의 일행들 행색 역시 덕장에 매달려 눈보라에 시달리는 동태 꼴이었다.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무명 저고리에 껴입었던 배자하며 단단히 조여매었던 통행전이며 패랭이는 어디로 갔는지 오리무중이었고, 동저고리와 옹구바지 차림으로 사시나무 떨듯 하였다. 사추리에 달린 불알인들 온전했을까. 비 맞은 수탉 꼴이 된 몰골들을 한동안 넋을 빼고 우두커니 바라보고 있던 정한조가 소스라치며 밖에 서 있는 일행을 봉노 안으로 불러들였다. 찬바람이 봉노 안으로 몰아치는 바람에 잠들었던 일행이 눈이 휘둥그레져 일어나 등잔에 불을 당기느라 난리 법석을 떨었다. “이게 어떤 육시랄 놈들의 소행이오?” *숙객:단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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