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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제사범·信不者… 교통벌점 사면 검토

    ‘중과실범, 행정법규·부정수표단속법·환경보존법·식품위생법·건축법·노동법 위반 사범, 도로교통법 위반자.’ 열린우리당 박병석 기획위원장은 10일 문희상 의장이 노무현 대통령에게 건의하겠다고 밝힌 8·15 대사면과 관련, 이들을 ‘0순위’로 꼽았다. 문 의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60주년은 회갑이라는 것인데, 동양에서 큰 의미가 있다.”며 광범위한 규모의 사면 추진을 시사했다. 그러면서 “중소기업중앙회에서만 중소기업인 14만명에 대한 사면을 건의했다.”고 소개했다.2년 전 8·15때 15만명을 대사면 조치했던 규모를 넘어설 것임을 짐작케 했다.●“사면규모 98년 552만명 넘어서나”열린우리당은 채무 불이행으로 전과자가 된 신용불량자를 사면하는 방안을 신중히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도로교통법 위반에 따른 벌점을 말소해 주는 행정처분 취소도 검토 대상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따라 98년 3·13 대사면의 552만여명을 넘어서는 헌정 사상 최대 규모의 대사면이 이뤄지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일각에서 나온다. 당시 음주운전과 속도위반 등으로 벌점을 받은 532만여명이 벌점 삭제 등 행정처분 취소 혜택을 받았다. 하지만 여론 추이에 따라 규모가 늘어나거나 줄어들 수 있는 유동적인 상황이다. 이와 관련해 문 의장은 지난 5월 대학생 간담회에서 “참여정부만큼 사면에 까다로운 정부가 없다.”며 “대통령이 율사 출신이라서 법적 안정성 확보에 대한 생각이 머릿속에 잡혀 있다.”고 말한 바 있다.●정대철·서청원·김영일씨등 `불법자금´도 대상불법대선자금 사건과 관련해 정대철 이상수 이재정 신상우 전 의원, 대통령 측근인 안희정씨 등 여권 인사와 서청원 김영일 최돈웅 신경식 박상규 박명환 전 의원과 서정우 변호사,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 등 야권 인사들의 사면 여부도 주목된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은 “사면권이야 대통령의 고유권한인 만큼 야당이 뭐라고 왈가왈부할 문제가 아니다.”(전여옥 대변인)라는 등 언급을 회피했으나 “정부 여당 지지율이 곤두박질 치니까 그런 것”(맹형규 정책위 의장),“여러 실정에 따른 사회 혼란을 커버하기 위한 사면은 안 된다.”(김무성 사무총장)는 등 정략적 의도를 경계했다.박지연기자 anne02@seoul.co.kr
  • ‘3당합당’ ‘DJP연합’ 못지않을 파괴력

    여권 핵심의 ‘연정 구상’이 현실화된다면 정치적 파괴력은 과거 ‘3당 합당’이나 ‘DJP 연합’에 못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여소야대의 상황을 탈피하기 위한 ‘승부수’라는 점에서는 현재의 ‘연정 구상’은 이전 정권들의 ‘정치적 사건’과 공통점을 갖는다. 지난 1990년 노태우 대통령 당시 민정당과 통일민주당, 신민주공화당의 3당 합당은 정치구도를 ‘1여3야’에서 ‘거대 여당 대 평민당’의 구도로 뒤바꿨다.88년 13대 총선에서 처음 형성된 여소야대 정국이 무너지면서, 민주개혁 세력도 분열됐다. 또 지난 98년 ‘국민의 정부’는 국민회의와 자민련의 연대, 즉 ‘DJP(김대중·김종필)연합’으로 정권을 잡았다. 출범 첫 내각에서는 김종필 국무총리를 비롯, 자민련 소속 국회의원 6명이 입각했다. 전문성이나 업무 조정력 보다는 대선 승리에 따른 DJP연합의 지분 나눠먹기 성격이 짙었다. 현 여권은 지지부진한 개혁 입법과 이로 인한 국정 운영의 차질을 ‘연정 구상’의 명분으로 내세운다. 재집권을 위한 ‘세력 연대’라는 주장을 표면적으로 올리지는 않고 있다. 여권의 ‘연정 구상’은 평소 ‘정치인 장관’이나 ‘권력 분산’을 강조한 노무현 대통령의 생각과도 상충되지 않는다.현재 국무회의 의결권을 가진 국무위원 20명 가운데 절반인 10명이 여당 정치인 출신이다. 이해찬 총리, 정동영 통일·김근태 보건복지·정동채 문화관광부 장관은 지난 1일로 입각 1년을 맞았다. 김진표 교육·천정배 법무·박홍수 농림·이재용 환경·추병직 건교·오거돈 해양수산부 장관도 열린우리당 출신이다.박찬구기자 ckpark@seoul.co.kr
  • 한 대 1천 7백만원 짜리 자동차

    한 대 1천 7백만원 짜리 자동차

    벤츠 300SE가 1위, 캐딜락68도 천 5백만원 고급 승용차가 요즘 부쩍 많아졌다. 한국「배니티·페어」의 총아는 고급 승용차인 것 같은 기변(奇變). 과연 그 중에서 누구의 차가 제일 좋고 제일 비싸냐는 문제는 여러 면에서 흥미를 끈다. 「캐딜락」은 자동차 나라인 미국에서도 죽은 다음에야 한번 타본다는 귀족차. (미국에선 영구차가「캐딜락)이다) 그「캐딜락」이 서울 시내에서만도 수십 대가 구르고 있다. 서울 서린동의 고급 승용차 매매「브로커」들 얘기론 고급 승용차「랭킹」제1위는「캐딜락」68년형 - 이효상(李孝祥) 국회의장과 삼환(三煥)기업 최종환(崔鍾煥) 사장이 타고 있다. 시가는 1천 5백만원 정도. 이것과 동률 수위가 되는 것으로「벤츠300SE」형이 있는 소유주는 삼성재벌의 이병철(李秉喆)씨. 문종건(文種健) 조흥은행장과 국쾌남(鞠快男) 대한극장 사장도「벤츠300」을 타고 있으며 동명목재(東明木材)에는 2대나 있다는 소문이 있다. 김종필(金鍾泌)씨는「벤츠250」파. 정일권(丁一權) 국무총리의 승용차는 67년형「캐딜락」이며 한국생사 김지태(金智泰) 사장, 대한양회 이정임(李庭林) 사장, 현대건설 정주영(鄭周永) 사장, 대성산업 조영일(趙榮一) 사장 등도「캐딜락」67년형을 즐겨 타고 있다. 「캐딜락」다음이「링컨」. 삼호무역 대표인 정재호(鄭載頀)씨와 선경(鮮京)직물의 최종건(崔鍾建) 사장이 67년형을 갖고 있으며 시가는「캐딜락」67년형과 같은 1천 2, 3백만원. 한일은행장인 하진수(河震壽)씨와 석공(石公)총재 이상규(李祥圭)씨는「비크」파로 67년형의 시가는 1천만원대. 신흥재벌인 한진(韓進)의 조중훈(趙重勳) 사장은「클라이슬러」67년형을 즐겨 타고 있으며 육인수(陸寅修) 국회문공위장(文公委長)은「올스모빌」을 애용하고 있다. 스타 고은아(高銀兒)양도 벤츠 61년형 타고 연예인 계통에서는「스타」고은아양이 타고 다니는「벤츠」61년형이 제일 좋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값은 3백 50만원 정도. 윤정희(尹靜姬)양은「오스틴」62년형을 얼마 전 1백 50만원에 구입했으며, 김지미(金芝美) 최무룡(崔戊龍) 부부는 2대의「크라운」을 갖고 있다. 가수 최희준(崔喜準)씨는 한 달 전「크라운」을 구입했으며, 김진규(金振奎)씨는 형이 분명치 않은「다지」를, 그리고 신영균(申榮均)씨도「크라운」을 갖고 있다. 고급 승용차의 구입「루트」는 현재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직접 수입하는「케이스」이며 다른 하나는 주한 외교사절, 외국인 등이 사용하던 것을 불하 맡는「케이스」. 수입은 수출실적 2백만「달러」에 대해 승용차 수입「쿼터」하나를 주도록 되어 있다. 고급 승용차는 구입 경로가 워낙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다른 사치품과 같이 국제 시세와는 비교도 안될 정도의 비싼 값.「캐딜락」의 원가가 고작 6천「달러」안팎인데 비해 우리나라 시장 가격이 5만「달러」정도니까 그 거래가 얼마나 황당무계하게 이루어지고 있나를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서린동「브로커」들 얘기론 재벌들은 마치「플레이·보이」의 여성편력처럼 고급 승용차에의 편력을 좋아한다. 조금 타다가 싫증이 나면 감쪽같이 바꿔 버리기 때문에 앞서 든 몇몇 예가 1백% 적중할 지는 의문이라고-. [ 선데이서울 68년 11/10 제1권 제8호 ]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50년 ‘목소리 인생’ 성우 고은정씨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50년 ‘목소리 인생’ 성우 고은정씨

    ‘목소리의 마술사’가 있다. 반세기 동안 격동의 현대사를 ‘목소리’ 하나로 관통했다. 질곡의 50년 세월속에 가느다란 성대의 떨림으로 감동과 추억의 파노라마를 무수히 연출했다. 타고난 ‘천(千)의 목소리’는 대중들의 가슴을 쥐락펴락했다. 암울했던 1960∼70년대, 라디오의 ‘연속방송극’과 ‘추억의 영화’ 등 무려 1000여편에 출연했다. 엄앵란 문희 남정임 정윤희 등 내로라하는 당대 여배우들의 목소리를 도맡아 ‘얼굴없이’ 많은 인기를 누렸다. 뿐만 아니다. 고 박정희 대통령 시절부터 김영삼 정부에 이르기까지 정치권 주변에서 이꼴저꼴 다 보면서 연설과 다큐멘터리 대역(代役) 등을 해 흥미진진한 야화도 간직하고 있다. ●‘여자의용군 예술대’ 자원입대 고은정(70)씨.1954년 12월 KBS 성우 공채 1기로 출발,50년 ‘목소리 인생’을 걸어왔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지난해 12월과 올 4월 단막극을 직접 쓰고 출연까지 했다. 최근에는 후배들에게 노하우를 전수하느라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서울 서초동의 모호텔 정원에서 만났다. 먼저 해마다 6월이면 생각나는 일이 있다고 고백했다. 다름 아닌 6·25에 참전했던 것.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않았다며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50년 11월 어느날. 수도여중 3학년 재학 중이었다. 학생들 사이에는 ‘국군이 압록강까지 진격했고, 금방 통일된다.’는 소문이 쫙 퍼졌다. 고은정은 친구들과 모여 “서울고와 용산고 학생들도 학도의용군에 뽑혀 북진대열에 합류하는데 우리 여학생이라고 가만히 있으면 되겠느냐.”고 말했다. 결국 며칠 뒤 고은정은 단짝 친구 3명과 함께 여자의용군에 자원입대했다. 훈련막사는 서울 충무로의 일신초등학교(현 극동빌딩 자리). 때마침 한성여고 밴드부와 동덕여고 무용반 학생들도 와 있었다. 가칭 ‘여자의용군 예술대’가 결성됐다. 고은정의 군번은 0995862. 훈련은 주로 아침 일찍 남산을 한바퀴 돌아오는 것이었다. 20일쯤 지나자 외출허가가 떨어졌다. 이때 가족들이 “난리통에 여자가 무슨 군입대냐.”며 귀대하지 말라고 붙잡았다. 그러나 “어떻게 외출나왔다가 안 들어가느냐.”며 귀대했다. 그런데 동료 3분의1가량이 귀대하지 않았다. 남은 예술대원은 20여명. 이튿날 예술대원은 부산으로 떠나기 위해 겨울용 잠바와 담요 한장씩을 들고 청량리역에 도착했다. 수백명의 남자군인 틈에 끼어 무개화차에 막 오르려는 순간이었다. 신성모 국방장관이 나타나 “왜 여자들을 지붕 없는 차에 태우느냐.”고 호통을 쳤다. 할 수 없이 다음날 별도의 트럭을 이용해 인천항을 거쳐 함정(LST)을 타고 3일 만에 부산항에 당도했다.(관련자료에 따르면 50년 9월 여군교육대가 부산에서 결성됐으며, 군부대와 병원 등의 위문을 위해 군악 및 예술대가 있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군번 0995862 육군 제대 부산에 도착한 예술대원은 영도초등학교의 임시막사에서 지냈다. 며칠 뒤 크리스마스 이브때 고은정은 면회 온 목사의 도움으로 십수권의 책을 장만할 수 있었다. 워낙 책을 좋아한 데다 병원위문을 위해서는 어느정도의 책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의 숙소 앞에 ‘소공녀의 방’이라는 문패를 달았다. 그러던 51년 2월 부대에서 휴가를 다녀오란다. 딱히 갈 곳이 없어 지난번 도움을 받은 목사가 있는 대구로 향했다. 때마침 목사는 제주도의 피란민들을 위해 떠날 채비를 하고 있었다. 고은정도 목사와 함께 떠났다. 도착했더니 돌아올 여객선 사정이 여의치 않은 데다 목사의 강력한 권유로 부대복귀를 하지 못했다. 고은정은 관계요로를 통해 이같은 사정을 전한 뒤 그해 2월 제주 오현중에 설치된 피란민학교에서 중학교 졸업장을 받았다. 이와 관련, 고씨는 “얼마전 육군에 확인해 보니 군번도 있고 제대처리돼 있었다.”면서 당시 입대했던 친구들을 가끔 만나 추억담을 나눈다고 귀띔했다. # 에피소드 1. 74년 8월14일이었다. 영화 ‘맹물로 가는 자동차’ 더빙을 하느라 밤을 새운 뒤 집으로 돌아왔다. 침대에 그대로 쓰러졌다. 꿈을 꾸었다. 고 육영수 여사가 청와대로 초청했다. 고씨는 의사 동생과 함께 갔다. 육 여사는 진작 보고 싶었다며 “조국을 위해 고생이 많은데 부탁이 있으면 해보라.”고 했다. 그러자 고씨는 “서울신문에 다니던 오빠가 필화사건으로 월급을 제대로 받지 못해 걱정”이라고 했다. 고씨는 육 여사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할 때 단골로 등장했지만 한번도 만난 적이 없었다. 얼마만큼 잤을까. 일어나 방문을 열어 보니 아이들이 TV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때였다. 탕탕탕 하는 총소리와 함께 TV 전원이 꺼졌다.8·15기념식장에서 벌어진 ‘영부인 피격사건’이었다. 이후 국립영화제작소에서 만든 육 여사 다큐멘터리에 더욱 많이 출연하게 됐다. 박근혜씨가 영부인 역할을 맡을 때 방송국으로 찾아왔다. 박씨는 “아버지는 고 선생의 목소리가 엄마하고 똑같다는 얘기를 자주 한다.”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그런 뒤 연말마다 청와대에서 금시계를 보내왔다. ●대통령 부인들과 자주 만나 # 에피소드 2. 5·16 직후였다. 동아방송에서 ‘천일야화’라는 대담프로그램을 맡고 있었다. 하루는 김종필(JP)씨를 초청했다. 시간이 됐는데도 그가 오지 않아 찾아나섰다. 점퍼차람의 한 사람이 방송실 입구에서 “나를 찾는 겁니까.”하고 말했다. 인사를 하자 JP는 “고 선생은 골라쓰는 단어가 아주 달라요.”라고 했다. 인연이 돼 나중에는 JP자택에서 부인과 자주 만나게 됐다. “80년대 초반 민정당 창당대회 때 권정달씨의 부탁으로 봉두완씨와 사회를 같이 보게 됐지요. 이때부터 본의 아니게 정치 언저리에 맴돌게 된 것 같아요. 여성계 대표라는 명분으로 종종 청와대에서 이순자·김옥숙 여사와 식사도 했지요. 노태우 전 대통령의 딸 소영씨는 마침 우리 아들과 초등학교 동기동창이었습니다.” 87년 대선을 일주일 앞둔 때였다. 노태우 후보측에서 63빌딩에서 저녁을 먹자는 연락이 왔다. 갔더니 이종찬씨도 함께 있었다. 노 후보는 목이 꽉 잠겨 있었다. 노씨는 “고 선생, 어떻게 하면 목을 살릴 수 있겠소.”라고 물었다. 이종찬씨는 달걀을 먹어야 한다고 거들었다. 고씨는 “소염제를 먹고 당분간 필담으로 대화할 것”을 주문한 뒤 연설 때 5만,10만 관중을 염두에 두지 말고 오직 자신 앞에 있는 마이크를 상대로 감동을 시킬 것을 권했다. 낮은 톤의 목소리가 오히려 장점이라는 설명도 곁들였다. 이어 노 후보가 여성정책 아이디어를 달라고 하자 “이제와서 새로운 정책을 내놓은들 먹혀들지 않기 때문에 선거 때까지 애처가라는 소문만 잔뜩 퍼뜨릴 것”을 주문했다. 전직 대통령의 목소리에 대한 평가도 흥미롭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설득력은 있으나 노 전 대통령의 현대적 감각에는 뒤떨어진다고 평가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경우 10분 동안 113개의 언어가 틀릴 정도였는데 대통령에 당선돼 ‘우리나라에선 통하는구나.’라고 생각했단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전라도 사투리를 사용하지만 발음을 비교적 정확하게 하려고 애를 쓰는 편이라고 했다. 고씨는 “스피치는 공인의 덕목 가운데 매우 중요한데 우리나라 지도자들은 간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학 출강에 여전히 방송활동 고씨는 4남1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본래 이름은 고흥숙.‘흥’자 돌림이다. 막내동생이 한나라당 국회의원 고흥길(성남시 분당갑)씨. 오빠 고흥욱(72)씨는 청와대 출입을 오래한 기자출신으로 현재 LA에 산다. 얼마전 국제전화를 걸어와 “네가 죽었다는 소문이 났는데 무슨 일이냐.”고 뜬금없이 물어 “아냐, 길은정이 죽은 것을 보고 그러겠지.”하고 대답했단다. 어머니는 5남매를 남겨놓고 30대 나이에 요절했다. 새 장가를 든 아버지도 54년 교통사고로 일찍 명을 달리했다. 새어머니는 5남매를 친자식 이상으로 키웠다. 현재 94세로 분당 아들집에서 산다. 고씨 자신은 59년에 결혼, 이듬해부터 연년생으로 자식 넷을 낳았다. 함께 지내는 둘째딸(44)을 제외하곤 다들 결혼했다. 고씨는 5년 전 유방암 수술을 해 고비를 맞았지만 요즘은 서울예대 장로신학대 출강과 극동방송에서 매일 10분짜리 방송 등을 하며 정열적으로 일하고 있다. “할아버지 때부터 내려온 가족사를 쓰고 있어요. 여름방학 때는 밀린 대본을 완성할 예정입니다. 일생을 담은 모노드라마도 무대에 올리고 싶어요.” km@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 1936년 서울 출생 ▲ 51년 제주 피란민학교에서 수도여자중학 졸업 ▲ 54년 수도여고 졸업, 숙명여대 영문과 재학시절 KBS 성우공채 1기 ▲ 56년 최초 연속방송극 ‘청실홍실’ 성우 ▲ 58년 연속방송극 ‘산너머 바다건너’에서 상하이 여자 ‘미라’역을 맡아 주목받음. ▲ 이후 ‘장희빈’‘고운정 미운정’‘왕비열전’‘대동강은 알고 있다.’‘불꽃의 소리’‘113수사본부’등 드라마와 영화를 합쳐 1000여편 출연. ▲ 77년 드라마 ‘대니할머니’당선으로 방송작가 데뷔. ▲ 97년 고은정언어예술원 개원 ▲ 98년 규제개혁위원회 위원 ▲ 2000년 방송위원회 위원, 방송언어특별위원회 위원장 ■ 방송극본 가을에 온 손님, 불모의 수령, 저녁노을, 사랑의 계절, 두고온 언니에게 등. ■ 소설작품 고운정 미운정, 위험한 체험 등. ■ 상훈 국민훈장동백장(2000년)
  • [일본을 다시본다] (1) 일본은 ‘미래’를 대비했다

    [일본을 다시본다] (1) 일본은 ‘미래’를 대비했다

    도쿄만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도쿄 시내 시오도메의 덴쓰빌딩 47층 ‘지팡구’나 시내 한복판 도쿄돔호텔 4층의 ‘유교안’ 등 고급식당은 요즘 예약이 어려워졌다. 골프장의 부킹도 힘들어졌고, 할인요금은 사라졌다. 장기 불황시대와 대비되는 풍경이다. 하지만 중소기업들이나 서민들이 이용하는 시설 등은 여전히 어렵다. 국내총생산(GDP) 등 거시경제 지표와 소비·생산·수출 등도 낙관과 비관이 엇갈리는 것이 장기불황의 터널 끝에 서 있는 일본이다. |특별취재팀|최근 1∼2년 사이 도쿄의 스카이라인이 확 바뀌고 있다. 도쿄 시내의 시오도메, 롯폰기, 시나가와 등에는 40층 안팎 초고층 빌딩들이 재개발이나 도시정비 사업으로 속속 들어섰다. 요즘은 도쿄역 부근에서 재개발이 진행 중이다. 이른바 ‘잃어버린 10년’ 동안 10∼20년 후를 대비한 상징적 모습으로 꼽힌다. 국회 주변은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개혁정책의 결정판이라는 우정사업 개혁문제로 시끄럽다. 고이즈미 총리가 중의원 해산까지 시사하며 밀어붙이고 있지만, 집권 자민당내 ‘우정족’ 의원을 중심으로 한 108명이 야당인 민주당과 연대 운운하며 결사적으로 반대한다.19일 끝나는 정기국회 회기를 연장하자는 주장과 우정민영화 절충론이 9일 동시에 나오고 있다. 집권 5년차로 들어선 ‘고이즈미 개혁’은 곳곳의 철밥통을 깨고 있다. 사법개혁, 도로공사 민영화, 연금개혁, 국립대학 등의 특수행정법인화, 기초자치단체의 대대적 합병 등이 숨가쁘게 이뤄졌다. 공무원들도 실적주의가 도입되고, 국회 직원 수도 대폭 축소된다. 그런 탓에 인사, 돈, 정보의 3대 축으로 이뤄지던 낡아빠진 파벌정치도 크게 약화됐다. 민간부문도 낡은 것을 벗어던지는 변신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신흥 인터넷기업인 라이브도어의 호리에 다카후미(32) 사장 등 30∼40대의 야심찬 기업가들이 인수·합병 등을 앞세워 변화의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정부와 기업·가계 등 전 부문이 “패전 60주년을 맞아 패러다임을 확 바꾸겠다.”는 의지가 넘쳐난다. ●거품과 비효율이 제거된 10년 유명한 온천휴양지인 이즈반도 해안지대에 가면 폐업했거나 휴업 중인 중규모 호텔들의 을씨년스러운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거품경제 시절 과도한 접대비로 회사나 각종 단체의 연수, 회식 등의 ‘이벤트 손님’이 사라진 것이 이런 현상을 촉발한 것이다. 기업들도 대전환기를 맞았다. 현재 기업들은 자발적인 구조조정을 거쳐 체력을 강화한 뒤 고용을 다시 늘리는 ‘선순환적’ 흐름이 형성되고 있다고 노무라증권연구소의 와코 주이치 수석연구원은 분석한다. 아시아경제연구소 히라쓰카 다이스케 지역통합연구그룹장도 “지난 10여년간 특히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좋아졌다.”라고 평가했다. 일본의 거품붕괴는 미국의 베트남전 패전과 같은 충격이었다고 한다. 세계적인 통신사 특파원 출신의 자유기고가 도쿠모토 에이치로는 “학연이나 지연, 파벌 등 부정적인 요소들이 많이 사라졌다.”며 “능력에 의해 경쟁하는 시스템이 갖춰졌다. 특히 IT업체의 창업이 활발해지며 기득권적인 기업구조에 커다란 충격을 가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스피드 경영의 싹이 보인다 일본이 눈에 띄게 빨라지고 있다. 물건을 사고 배달을 요청하면 1주일 정도 기다려야 하던 것은 옛말이다. 급행료를 내면 다음날 혹은 당일도 배달된다. 관청이나 기업, 은행 등도 민원을 신청하면 종전엔 1∼2주일가량 기다려야 했으나 지금은 빠르게 해결되는 곳이 속속 늘어나고 있다. 스피드 경영도 요즘 기업들의 화두다. 도요타자동차의 오쿠다 히로시 회장은 95년 사장 취임 때 “해외사업을 위해 스피드를 향상시켜야 한다.”며 스피드 경영을 진두지휘, 오늘의 초일류 자동차 기업을 일궈냈다. 한 발 앞서 문제점을 개선하고,1초도 아낀 부품조달 등으로 속도를 높인 것이다. 일본인만에 의한 기업경영도 옛말이 됐다. 도요타·닛산·혼다·미쓰비시·마쓰다 등 5대 자동차 업체 중 닛산 등의 3개사 최고경영자가 한동안 외국인이었다. 일본의 자존심이라는 소니도 22일 주주총회에서 미국인인 하워드 스트링거를 회장으로 정식 추대한다. 스피드 경영은 일본 최대 IT재벌인 소프트뱅크 손정의 사장, 온라인 쇼핑몰 업체 라쿠텐의 미키타니 히로시 회장 등 신세대 벤처기업인들이 선도하고 있다는 데 이견이 없어 보인다. ●거품붕괴 이후 위기경보 강화돼 요즘 마루젠이나 기노쿠니야 등 대형 서점에 가면 ‘허구의 경기회복’,‘국가재정파탄’,‘희망격차사회’‘이극화 일본’ 등 향후 일본경제의 위기를 경고하는 서적들이 넘쳐난다. 거품붕괴 뒤 일본에선 ‘위기에 대한 경보’가 발달했기 때문이란 해석이 일반적이다. 거품경제 내내 언론이나 분석가들이 일본의 장밋빛 미래만을 찬양하다가 거품이 붕괴되자 그 반성으로, 사전 경보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방송 아나운서인 오노 게이코는 “지난해 시중에 경제가 좋다는 책들이 넘쳤는데 실제 GDP는 2분기나 마이너스였다. 반면 올해는 경기가 좋지 않다는 책들이 주류다. 그것은 경기가 좋다는 방증”이라고 소개했다. ●후유증, 그늘도 많이 남겼다 5월말 도쿄도 시나가와구의 오이마치역 인근의 라면가게와 술집 밀집 골목은 오후 7시인데도 문을 열지 않은 곳이 많았다. 실직이나 비정규직 전환 등의 서민들에게는 장기불황 후유증이 큰 것이다. 장기불황의 그늘과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기업들이 10여년 동안 고용을 기피,“생산직은 물론 사무직, 연구소도 91년 이후 신입사원 선발을 안한 곳이 많아 기술·기능 전수에서 문제가 생길 것”이라며 “10년 이상 된 사원이 오차 심부름을 하는 곳이 많다.”라고 환동해권 경제연구소 에리나의 미무라 미쓰히로 연구원은 우려했다. 글로벌화 부작용도 극복해야 한다. 도요타자동차·소니 등 굴지의 대기업에는 미국·중국 등 다국적 사원이 많다. 대부분 영어로 이뤄지는 회의에서 ‘사원간 의사소통 효율’이 크게 떨어지고 있다. 아울러 구조조정이 가속화하고 정사원, 계약사원, 촉탁사원, 파견사원 등 사원제도가 복잡해지면서 조직 화합이 어려워진 것도 큰 숙제로 부상했다. 양극화가 심화된 것도 사회적 과제다. taein@seoul.co.kr ■ ”日은 대수술 막 끝낸 환자” 후카가와 도쿄대교수 인터뷰 |특별취재팀|“일본경제는 커다란 수술을 받은 직후의 환자 같은 상황이다. 연간 0∼2%의 성장을 할 수는 있게 됐지만 그나마 이전 같은 고성장은 없을 것이고 미국·중국 등의 외부 충격에 약하다.” 후카가와 유키코 도쿄대 대학원 교수는 학교 연구실에서 서울신문과 인터뷰를 갖고 현재 일본 경제의 상태를 이같이 요약했다.10여년의 장기불황 기간 중 중반까지는 재정의 과도한 사회간접자본 투자 등으로 우왕좌왕했지만, 이후 실효적인 개혁이 시작되면서 좋아졌다는 설명이다. 후카가와 교수는 “7년 정도는 잃어버린 것이 많았다.”면서도 “하지만 이 기간과 이후 기업·가계 부문의 의미있는 개혁들도 진행됐고, 제조업이나 은행 등의 부채 처리가 잘 되면서 전체적으로 개혁작업이 본궤도에 진입하기 시작했다.”고 평가했다. 아울러 이 기간 일본을 부정적으로 짓눌렀던 학벌지배 현상이 약화되는 등 체질개선이 많이 이뤄진 것으로 진단했다. 오랫동안 도쿄대 법학부 출신들이 경제부처를 좌지우지했으나 세계적인 변화에 대응할 능력을 갖춘 경제분야 인재들이 이들을 대체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또 부실기업과 구조조정이 늦어진 기업들이 망해도 사회적 충격을 최소화할 법 정비도 이뤄졌다고 평가했다. 다만 “일본 주가가 저평가됐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쓰러질 기업들이 적지 않기 때문에 주가는 지금 정도가 적당하다.”면서 주가 저평가론을 부인했다. 나아가 지금까지는 시장을 공업기술이 이끌었지만 앞으로는 마케팅이나 소비가 주도하는 시대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삼성이 소비자가 원하는 디자인과 스피드로 제품을 만들어 성공했다.”며 “시대가 변했다는 것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재 일본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만성병이 천천히 진행되는 것처럼 일본의 위기가 그렇다는 설명이다. 이런 까닭에 일본은 ‘조용히, 천천히 성장하는 사회’로 변모할 것으로 예상했다. 미래에 대한 조심스러운 낙관이다. 그러면서 환경기술에서 프런티어 정신을 발휘할 경우 제1의 희망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지진·태풍 등 환경·자연재해를 극복하기 위해 발달시킨 환경·기상기술 등이 세계적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750조엔에 이르는 재정적자에 대해서는 우려를 감추지 않았다. taein@seoul.co.kr ■ 김상연기자의 “일본은 있었다” “일본의 사정은 어떠한가.” “신이 본 바로, 쇼군은 군병의 일을 힘쓰지 아니하여 사람들이 포성을 들으면 어쩔 줄 몰라하였습니다.” 지난달 16일 특별취재를 위해 도쿄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을 때 머릿속은 1636년 조선통신사로 일본에 다녀온 임광과 인조(仁祖)의 대화로까지 달려 올라갔다. 일본 근대화의 배아를 잉태했던 그 도쿠가와 막부시대로부터, 근대화를 완성한 120년 전 김옥균(金玉均)의 황망한 도일과 40년 전 김종필(金鍾泌)의 다급한 방일, 그리고 21세기 대명천지에도 현재진행형인 독도, 야스쿠니 등등…. 번잡한 상념이 무색하게 비행기는 ‘쿵’ 하는 굉음과 함께 나리타공항에 착륙했다. ●개별과 집단 사이… 도쿄시내 남쪽 시나가와역에서 처음 맞닥뜨린 거대한 인파는 이방인을 익사시킬 것만 같다. 바쁜 걸음으로 각자의 방향으로 돌진하는 사람의 물결은 윌리엄텔 서곡 2부의 리듬을 연상시킬 만큼 일관성 있게 빠르고 역동적이다. 그러나 식당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풍경은 돌변한다. 식객의 주류는 혼자서 밥 먹는 사람들. 다른 사람한테 눈길 한번 주지 않은 채 후다닥 먹고 서둘러 나간다. 전철역 인파를 보고 ‘일본은 있다.’고 하고, 식당안을 보고는 ‘일본은 없다.’고 하는 건가? 식당안의 그저그런 ‘나카무라’들이 고니시 유키나가나 이토 히로부미 같은 ‘촉매’를 만나면 전철역의 위협적인 검은부대로 변신하는 건 아닐까?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사이… 아무리 붐벼도 열차에서 승객이 내리기 전에 몸을 밀치며 올라타지 않는 사람들. 도로에선? 횡단보도를 밟고 선 자동차는 없다. 자로 잰 듯 정차해 있다가 일제히 평행을 유지하며 주행하는 행렬. 각박함이 지배했을 법한 ‘잃어버린 10년’도 일본인의 소프트웨어 진보는 막지 못했다. 계층과 빈부를 막론하고 국민 전체가 한몸처럼 움직이는 질서의 소프트웨어는 오랜 시간에 걸친 축적의 발현일 것이다. 그것이 메이지(明治)유신에서 발원한 전체주의적 교육의 소산이든, 이지메(집단 따돌림)를 두려워하는 일본인 특유의 DNA 때문이든. ●전통과 외래 사이… 서울보다 사람이 많다는 도쿄지만 식당 간판이나 인테리어 디자인만큼은 전통 일본풍이다. 그러나 시부야 같은 번화가는 ‘자본주의의, 자본주의에 의한, 자본주의를 위한’ 일본의 다른 얼굴이다. 고층빌딩들의 앞면에 매달린 대형 광고전광판에서부터 바닥에 엎드린 소규모 상점들의 스피커에 이르기까지 저마다 볼륨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린다. 소리가 소리를 누르기 위해 더 큰 소리를 동원하는 메커니즘은 초기 자본주의의 원초적 경쟁을 연상시킨다. 전통과 외래가 자본이라는 동질의 목표를 향해 각개약진하는 모습은 불안하면서도 절묘하다. 인상적인 점은 억압보다는 방임으로 균형을 맞춰 가고 있다는 것. 여고생들이 미니스커트에 가까운 교복을 거리낌없이 입고 다니는 광경에서 전통과 외래의 절묘한 ‘팽창 시너지’가 느껴졌다. “그래, 일본은 어떠한가.” “신이 본 바로, 일본은 있었습니다. 언제든 계기가 주어지면 무섭게 뭉칠 수 있는 잠재력이 엿보였습니다. 방비를 게을리 하다간 장래에 큰 화가 다시 닥칠까 심히 염려되옵니다.” carlos@seoul.co.kr ■ 도움 주신 분들 이번 한·일 수교 40주년 특별기획에 도움주신 분들을 2회에 걸쳐 싣습니다(무순입니다). ▲고노 다로(河野太郞) 자민당 중의원(부간사장) ▲구사노 다다요시(草野忠義)일본 노동조합총연합회 사무국장 ▲다카하시 요시오(高橋由夫) 일본 노동조합총연합회 사무부국장 ▲구마가이 겐이치(熊谷謙一) 일본 노동조합총연합회 국제국장 ▲무쿠타 사토시(田哲史) 일본경제단체연합회 환경·기술본부장 ▲마스다 기요시(益田淸) 도요타자동차 이사 환경부장 ▲후카가와 유키코(深川由起子) 도쿄대학교 대학원 교수 ▲야마모토 이치타(山本一太) 자민당 참의원 ▲기타하시 겐지(北橋健治) 민주당 중의원(역원실장) ▲미카즈키 다이조(三日月大造) 민주당 중의원 ▲기타지마 가즈토시(北嶋一甫) ㈜기타지마 시보리 제작소 사장 ▲오이케 가즈오(尾池和夫) 교토대 총장 ▲사사키 미사오(佐佐木節) 교토대 기초물리학연구소 교수 ▲나카무라 가즈야(中村一也) 교토대 총장 비서실장 ▲사고 노리치카(佐合紀親) 오사카대 우주물리학 박사 ▲다카하시 도루(高橋徹) 교토대 기초물리학연구소 박사후 과정(오사카대 핵물리학 박사) ▲이시무라 시게이치(石村繁一) 남코(NAMCO) 사장 ▲히라이 아쓰오(平井淳生) 경제산업성 상무정보정책국 정보통신기기과 과장보좌 ▲나카지마 구니오(中島邦雄) 정책대학원대학 교수 ▲오카타 야스오(緖方靖夫) 일본공산당 중앙위원회 국제국장, 참의원 의원 ▲오모카와 마코토(面川誠) 일본공산당기관지 新聞赤旗 외신부 기자 ▲노히라 신사쿠(野平晋作) 피스보트 공동대표 ▲다나카 쓰네유키(田中恒行) 일본경제단체연합회 노동정책본부 기획조사그룹장 ▲스즈키 아키히코(鈴木明彦) UFJ종합연구소 조사부 수석연구원 ▲이노우에 사토시(井上哲) 인사원 직원복지국제과 주임국제전문관
  • 외국인노동자 보따리상 ‘기승’

    외국인노동자 보따리상 ‘기승’

    “아저씨, 우리…우리들 나쁜 사람 아닙니다. 이것들 한국에 있는 친구들 주려고 가져 온 거예요.” 지난 27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입국장 세관검색대. 세관원들이 커다란 여행가방을 열자 파키스탄인 S 형제의 얼굴에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하다.2개의 여행용 가방에서는 파키스탄 노래 CD 500장,‘골드리프’란 이름의 현지 담배 10보루가 쏟아져 나왔다. 가방 맨밑에서 1000여개의 정체 모를 작은 쑥색 고체(가로·세로 4㎝ 크기)가 나오자 형제의 표정은 더욱 굳어졌다. “이거 절대로 마약 아닙니다.‘나스와르’라는 건데 담배 냄새 나는 껌 같은 거예요.” 형제는 묻지도 않았는데 장황하게 설명을 늘어놓는다. 그러다 엉겁결에 튀어나온 ‘담배’라는 말에 다시 한번 아차 싶은 표정이다. 담배로 분류되면 40%의 관세를 물어야 하는 탓이다. ●외국인 보따리상 적발 100건 이상 국내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이 늘어나면서 이들을 대상으로 현지물건을 공급하는 외국인 보따리상들이 급증, 세관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전문적인 ‘보따리꾼’에서부터 잠깐 본국에 다녀가는 틈에 몇푼 벌 요량으로 많은 물건을 사오는 ‘노동자’까지 부류도 다양하다. 인천공항세관 휴대품 유치창고 한쪽에는 신고 없이 들여오다 압수된 외국인 보따리상의 물건이 수북하게 쌓여 있다. 세관 관계자는 “비행기 한 대에서 많게는 10명 이상의 보따리상이 적발되기도 한다.”면서 “현재 세관창고에 있는 1800여건(11t)의 유치품 중 10%가 외국인노동자 관련 물품”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인천공항 세관에서만 한 달에 100명 이상의 보따리상이 적발될 정도로 꾸준하게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삭힌 오리알부터 쌀, 고추 없는 게 없어 외국인 보따리상은 대개 필리핀,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국내 이주노동자가 많은 나라를 중심으로 확대되고 있다. 들여오는 물건도 국내에서 좀체 볼 수 없는 것들이 많다. 오리알을 삭힌 피단, 태국고추인 삐끼뉴, 절인 생선 등 전통 음식재료부터 각종 향신료와 소스류, 담배, 쌀, 라면, 의약품, 샴푸, 가짜 청바지 등 없는 게 없을 정도. 세관은 이런 물건들이 외국인 이주노동자 밀집지역내 식료품가게나 상점들을 통해 유통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에서 외국인을 상대로 식품과 잡화류를 파는 이모(43)씨는 “정식으로 수입하면 가난한 외국인 노동자들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가격이 뛰기 때문에 보따리상 물건이 많이 돌고 있다.”면서 “과거 어렵던 시절 한국인들이 외국으로 돈벌러 나갈 때 된장, 고추장 등을 들고 갔다가 당했던 설움과 비슷한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단속하는 입장도 곤란 밀수된 현지 물건은 물 설고 낯선 땅에서 고된 타향생활을 하는 이들에게는 절실한 것들이지만 관세법상으로는 엄연한 불법이다. 담배는 2보루까지, 농산물은 통상 5㎏까지 신고 없이 들여올 수 있다. 그 이상이 되면 관세를 내야 한다. 별뜻 없이 많은 물건을 사오다 적발되는 사람들을 보면 세관측도 마음이 편치 않다. 인천공항 세관 검사담당자 김종필(43)씨는 “자기가 쓸 정도의 현지 물건을 통관기준에 맞춰 들여오는 것은 문제삼을 수 없지만 판매를 목적으로 많은 물건들을 들여오면 세금을 물릴 수밖에 없다.”면서 “하지만 외국인 노동자들의 어려운 사정을 아는 입장에서 적발돼 쩔쩔매는 모습을 보면 측은한 마음도 든다.”고 했다. 세관측은 “특히 농산물과 축산류 등은 전염병 유입 등 검역문제 때문에 현지로 바로 반송하는 일도 많다.”면서 “공연히 밀수범으로 몰릴 수 있는 만큼 외국인 노동자의 자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 [데스크시각] 밀실야합 안된다 여야 공개경쟁하라/박대출 정치부 차장

    ‘김영삼-김대중-노무현 정부’ 세 정권의 공통점 하나. 민(民)의 지지로 탄생했다. 하지만 ‘민’을 독자적으로 얻지 않았다. 모자란 자신의 ‘민’을 상대의 ‘민’으로 보충했다. 김영삼 정권은 3당 합당으로 태어났다. 대구·경북(TK), 부산·경남(PK), 충청으로 지지 기반의 외연을 늘려 집권했다. 김대중(DJ) 정권은 자민련의 김종필(JP) 전 총재와 손잡고 ‘공동정권’으로 출발했다. 노무현 후보는 정몽준 후보와 연대했다. 세 정권의 공통점 둘. 힘을 합친 세력들은 끝까지 가지 않았다.YS 정권은 토사구팽(兎死狗烹)이란 말을 남겼다.TK 세력들은 홀대받았고,JP는 쫓겨나 자민련을 만들었다.DJ는 내각제 합의 파기로 JP와 결별했다. 지난 대선 막판에 노 후보와 정 후보는 결별했다. 정 후보 세력은 스스로 떠났고, 참여정부에 참여하지 못했다. 하지만 참여정부는 집안을 쪼갰다. 민주당을 버리고 열린우리당을 창당했다. 두 공통점은 우리 정치에 교훈을 남겼다. 타 정파와 힘을 합쳐야 정권을 창출할 수 있고, 배신이든 결별이든 다음 수순은 뻔하다는 사실이다. 예외없이 개혁을 내건 점도 마찬가지다. 우리 정치의 아이러니는 배신을 예상하면서도 손을 잡는 데 있다. 크든, 작든 대가가 따르기 때문인 것 같다. 한쪽에는 최고 권력이라는 엄청난 부가가치가 보장된다. 다른 한쪽은 ‘권력 부스러기’라도 향유할 수 있다. 명분과 도덕성만 뒤로하면 둘 다 ‘남는 장사’다. 이 점이 야합이든, 연합이든 추동력을 높이는 마약과 같은 유혹이다. 손을 잡는 정파들은 연대, 연합이라고 주장한다. 대칭점에 있는 세력들은 야합이라고 비난해댄다. 선(善)과 악(惡)으로 극명하게 나뉜다. 남이 하면 ‘악’인 것을 스스로는 ‘선’이라며 열심히 좇는 행태가 정치 현실이다. 다음 대선을 앞두고 벌써부터 조짐이 엿보인다. 열린우리당이 발원지다. 문희상 의장, 정세균 원내대표, 염동연 상임중앙위원, 천정배 전 원내대표 등 신구(新舊) 지도부가 잇따라 민주당과의 합당론을 제기하고 있다. 민주당은 당연히 발끈한다. 한화갑 대표는 “없어질 당에 왜 가나.”라며 화를 낸다. 유종필 대변인은 ‘반란군, 탈영자’라고 격한 소리를 뱉어낸다. 그러면 “합당을 논의할 시기가 됐다.”던 여당 사람들은 “때를 기다려야 한다.”며 슬그머니 꼬리를 내린다. 치고, 빠지고 하는 모양새다. 양당의 합당론을 놓고 최근 어느 여론조사 결과는 부정적이다.‘바람직하지 않다.’가 59.4%로 압도적이다.‘바람직하다.’는 24.1%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합당을 추진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 국민들은 많지 않다. 더욱이 최근의 정치 지도는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양강 구도에서 머물지 않고 있다. 민주당, 자민련, 가칭 ‘중부권 신당’ 등으로 변수가 늘었다. 합종연횡의 그림은 훨씬 복잡해졌다. 열린우리당은 민주당을 ‘1차 구애대상’으로 아예 정했다. 민주당과 손잡지 못하면 필패(必敗)라는 쓴 경험도 지난 4·30 재·보선에서 얻었다. 한나라당 역시 마찬가지다. 민주당과 손을 잡아야 승률을 높일 수 있다. 최초의 ‘영호남 연합정권’이라는 명분도, 지역갈등 해소라는 실익도 있다. 지금까지 연합이든, 야합이든 예외없이 밀실협상에서 출발했다. 권력게임은 ‘그들만의 잔치’가 될 뿐이었다. 국민들은 늘 외면당했다. 소외당한 과정에 서운했고, 배신하는 결과에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협력, 연합이 아니라 야합으로 비쳐진 것은 당연한 이치다. 이젠 합당을 공론화해야 한다. 떳떳하게 선언하는 게 낫다. 구애(求愛) 대상도 공개해야 한다. 열린우리당이 “불가피하게 이혼했다가 재결합하겠다.”고 하든지, 한나라당이 “오랜 반목을 씻고 화합의 길을 열겠다.”고 하든지, 논리는 각자의 몫이다. 그러면 밀실협상이 아닌 공개 경쟁으로 이어진다. 정책으로, 민생으로 가는 길은 필수다. 민심과 몸으로 부딪쳐 이해와 용서를 얻어내야 한다. 그런 뒤 민심이 원하는 대로 손잡을 상대를 선택하면 된다. 민심에 다가가는 지략과 성심을 다하는 열의가 필수다. 섣부른 구애는 오히려 해가 된다. 국민들은 위민(爲民) 정당의 손을 들어줄 것이다. 주권자가 원하면 야합이라고 매도할 수만 없다. 박대출 정치부 차장 dcpark@seoul.co.kr
  • [비교섭단체 릴레이 인터뷰] ③김학원 자민련대표

    [비교섭단체 릴레이 인터뷰] ③김학원 자민련대표

    자유민주연합 김학원 대표는 16일 “햇볕을 찾아 수시로 둥지를 옮기는 ‘철새 정치인’과 국민이 원하지 않는 ‘급조 정당’이 오래가는 걸 본 적이 없다.”며 ‘중부권 신당’에 직격탄을 날렸다. 김 대표는 이날 마포당사에서 서울신문과 단독 인터뷰를 갖고 자민련의 앞날을 비롯해 주요 정치현안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다음은 일문일답. 4·30 재보선 때 충청권에선 ‘신당 바람’이 거셌다고 하는데. -신당 바람이 있었다면 신당측의 무소속 정진석 후보가 연기에서는 지고, 아산에서는 후보조차 내지 못했겠나. 심대평 지사의 심복인 이명수씨가 막판에 자민련을 탈당해 열린우리당으로 간 것도 같은 맥락이다. 자민련으로선 믿었던 정·이 후보가 막판에 ‘기획 탈당’을 감행하는 바람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신당 바람은 미풍에 불과했다. 심 지사에게 섭섭함이 많은 것 같은데. -자민련에서 가장 많은 은혜를 받았던 사람이 배신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해악을 가하고 있다. 자민련 부수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지난해 4·15총선 후 전당대회를 열어 새 지도부를 뽑을 때도 심 지사 추종세력이 조직적으로 방해하고, 전당대회장까지 와서 난장판을 쳤다. 심 지사가 신당을 추진하는 이유가 뭐라고 보나. -자신의 정치적 몸집을 불려 2007년 대선에서 이길 가능성이 큰 정당으로 가려는 것 아니겠나. 자민련을 부수려는 것도 자신의 몸집을 부풀리기 위한 방편으로, 정치 도의상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중부권 신당’은 지역분권형 정당을 주장하는데. -분권형 정당제도는 세계 역사를 보나 우리 정당사를 보나 처음 시도되는 것이다. 한마디로 지역이익을 대변하는 정당을 만들어 연대하자는 것이다. 그런 정당이 필요한지 의문이다. 지역이익에만 몰두하는 지역정당이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나. 최근에 JP(김종필 전 총재)를 만난 적 있나. 중부권 신당에 대한 JP의 생각은. -가끔 만난다. 정계를 떠난 분이기에 업무를 보고하거나 말씀 드린 적은 없고, 가벼운 운동만 하고 그렇다. 중부권 신당에 대해서는 JP도 부정적으로 보고 있고, 성공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김 대표께서는 기회있을 때마다 ‘중도보수 대연합’을 주장하는데. -보수세력은 한나라당뿐 아니라 재야에 더 많이 흩어져 있다. 한나라당과의 당대당 통합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본다. 따라서 재야에 흩어져 있는 개혁적 보수세력과 힘을 합해 재창당 수준의 탈바꿈을 해보려는 것이다. 개헌에 대한 자민련의 입장은. -개헌 논의는 빠를수록 좋다. 우선 2007년 대선에 앞서 모든 것을 마무리하려면 연내에 충분한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 대통령 4년 중임제와 정·부통령제 등이 논의되고 있는데 자민련은 내각제를 당론으로 하고 있다. 전광삼기자 hisam@seoul.co.kr
  • “5·18이 ‘경축’할 일이냐” “기념위 요청… 사과하라”

    5·18 기념탑 문구로 서울시와 열린우리당이 한바탕 설전을 펼쳤다. 열린우리당 서영교 부대변인이 지난 13일 “서울역에 세워진 5·18 기념탑에 ‘경축’이란 문구가 들어 있다.”며 서울시를 비난한 것이 발단. 서 부대변인은 이날 논평에서 “서울시의 광주항쟁 ‘경축’은 얼마 전 이명박 서울시장의 5·18 영정 앞 파안대소와 함께 시장과 그 수하들의 천박한 역사의식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분노하는 국민과 광주영령 앞에 무릎꿇고 사죄하라.”고 촉구했다. 이처럼 ‘경축’ 문구를 둘러싼 논란이 일자 한상석 5·18 민중항쟁 25주년 서울기념행사위원장은 이날 “서울시는 행사위원회와 서울지방보훈청의 요청대로 ‘경축’이란 단어를 사용한 것”이라고 직접 해명했다. 그는 나아가 “이제 5·18 기념탑에도 ‘경축’이라고 쓸 때가 되지 않았느냐.”고 반문했다. 서울시는 이런 한 위원장의 해명에도 열린우리당이 홈페이지에 서 부대변인의 논평을 그대로 두자 김병일 대변인 명의로 맞비난 성명을 내고 즉각적인 사과를 요구하고 나섰다. 서울시는 성명에서 “이명박 서울시장의 ‘군대 동원’ 발언으로 큰 사고를 친 열린우리당 대변인실이 5·18 기념탑에 ‘경축’이라는 문구가 왜 들어갔는지 시에 확인도 하지 않고 막무가내 식의 논평을 내는 등 또다시 큰 실수를 저질렀다.”고 비난했다. 한편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와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가 5·18 묘지를 방문하고 기념으로 심은 나무의 표지석이 잇따라 파손돼 관계자들이 복구에 나섰다. 15일 오후 2시쯤 이회창 전 총재의 기념식수 밑에 있는 표지석이 받침석에서 떨어져 나가 있는 것을 관리소 직원이 발견했다.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의 기념식수 표지석도 잔디에 눕혀져 있는 것을 발견하고 바로세웠다. 서재희기자 s123@seoul.co.kr
  • 문희상의장 “개혁·실용 함께 추구할 것”

    문희상의장 “개혁·실용 함께 추구할 것”

    열린우리당 문희상 의장은 3일 불법대선자금 모금에 연루된 정치인의 사면문제와 관련,“광복 60주년인 오는 8월15일 노무현 대통령에게 사면을 건의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문 의장은 이날 오후 국회에서 서울신문과 가진 단독 인터뷰에서 “진상규명과 반성, 사과에 이어 대법원의 형 확정 이후 용서와 화해의 시점이 올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문 의장은 “당장은 사면을 건의할 생각이 없다.”고 전제한뒤 “8월 15일 국민통합 차원에서 정치인과 경제인, 행정범 등을 일대 사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 개인적인 소신”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정대철 전 민주당 대표, 이상수·신상우 전 의원·이재정 민주평통 부의장, 신계륜 의원, 안희정 전 민주당 국가전략연구소 부소장, 김영일 한나라당 전 사무총장, 최돈웅·서청원·신경식·박상규·박명환 전 의원, 서정우 변호사, 자민련 김종필 전 총재 등이 사면 대상에 포함될지 주목된다. 문 의장은 4·30 재·보선 이후 현 지도부의 실용 노선을 둘러싼 당내 비판에 대해서는 “개혁과 실용, 원칙과 전략은 같이 가야 한다.”면서 “이분법적인 사고는 권위주의 시절의 사고 방식”이라고 일축했다. 그는 “개혁과 민생의 ‘동반 성공’이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그는 재·보선 이후 여소야대 상황의 정국 운영 방향에 대해 “여당이 임의로 정책을 결정할 수 없는 상황에서 어느 정파든, 언제든 연대할 수 있다.”면서 “연대의 형식은 정책연합, 공천연합, 선거연합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민주노동당보다는 민주당이 더 가깝다고 생각한다.”고 전제,“하지만 대의명분과 절차의 투명성이라는 원칙과 조건이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문 의장은 정동영 통일·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의 조기 당 복귀론에 대해 “현 지도부의 대중성이 부족하다고 해서 대중성을 높이기 위해 조기 복귀하는 것은 그분들을 위해서라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회의적인 뜻을 분명히 했다. 문 의장은 정치개혁 차원에서 지역주의를 청산하기 위해 9월 정기국회때 권역별 비례대표 도입 등 선거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국회의원 수를 100명 정도 늘려서라도 지역주의를 없애야 한다.”면서 “야당도 공감대를 이루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영천 재선거에서 지역발전이 주요 이슈가 된 것만 해도 지역주의가 사라지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덧붙였다. 박찬구기자 ckpark@seoul.co.kr
  • [기고] 일본의 독도연가, 그 파장/한석현 정신개혁시민협의회 공동대표

    일본 시마네 현의 ‘다케시마의 날 제정’으로 대한민국이 발칵 뒤집혀져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단불용’의 의지를 표명하고 나선 것이 인상적이다. 현안에 대한 대한민국 조야의 발끈은 100년 전 있었던 시마네 현의 독도 편입이 한일합방으로 이어진 고사를 떠올렸기 때문이겠거니와, 대통령의 언명은 나라 대표로서 취한 온당한 조치였다. 민망한 것은 양반세도에서 친일과 친미로 라인을 이어오며 이 땅에서 어른 행세를 해온 대한민국 내 시대주의 세력이 대통령 언명이 마치 권한의 한계를 벗어난 경거망동이기라도 한 양 여론을 오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누구든지 지각 있는 양식인이요 애국애족의 충정이 간직돼 있고서야 대통령에게 힘을 실어주어야지 어떻게 ‘일본 강점은 축복’이라는 따위 망발로 애국선열의 넋을 모독하고 대통령을 올려놓고 마구 흔들 수 있는가. 반민족 매국노 아류들과 하늘을 두고 살아간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시큰둥하다. 일찍이 김·오히라 메모로 졸속 한 일협정 체결을 주도한 김종필씨가 ‘독도 폭파설’을 들먹여 국민에게 박탈감을 안겨준 바 있었거니와, 일본이 끊임없이 한반도 침략을 노려 호시탐탐해 온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나는 그 근본 원인이 저들의 사나운 침략근성과 불리한 지정학 조건과 맞물려 있다는 진단을 이미 오래전에 내리고 있다. 알려져 있다시피 일본은 1년을 통틀어 지진과 해일, 태풍에 시달리지 않는 많은 날을 가지지 못하는 나라다.‘일본 열도 침몰설’로 신경이 어지간히 곤두서 있기도 하다. 전전긍긍하는 자국민에게 어떻게든 편안한 잠자리를 제공해 주려는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 나머지 한반도의 징검다리를 건너 아시아로 진출하고 이를 발판 삼아 세계 제패로 치달으려는 정략 구도에 어설피 매달려 온 것이 침략국 일본이다. ‘적응의 명수’요 해바라기성 인간, 또는 약삭빠른 카멜레온이기도 한 저들은 같은 아시아권이면서 중·러 등과는 공생을 거부하는 일관된 입장을 고수해 왔다. 그러면서도 한걸음 앞서 산업화를 이룬 서양에는 삽살개 모양 꼬리를 흔들어대곤 한다. 맥락은 지금까지도 연면히 이어지고 있다. 정말이지 이번 시마네 현의 다케시마의 날 제정은 우리에게 세계 유일 초강대국 미국과 짝짜꿍이 되니 보이는 게 없어 작위로 부려보는 객기의 인상을 강하게 풍겨 준다. 이 무슨 치사찬란하고 음험 간교한 족속들의 추태만발인가. 그런데 우리의 외교 라인은 대일정책 기조에 일관성을 잃고 현상에 일희일비하는가 하면 쉬 뜨거워졌다 쉬 식는 냄비 기질을 드러내기 일쑤다. 일본의 실체를 꿰뚫지 못하고 침략 근성의 연원에 대한 근본 성찰에 미흡함이 있어 빚어진 결과가 아닐까. 외교적 차질이나 시행착오는 단 한번만으로 족하며 다시 실패의 전철로 돌아가는 일은 없어야 한다. 현 단계에서 최우선으로 해야 할 일은 일본과의 군사교류협력의 즉각 전면 중단이다. 국익을 위해 제2의 한국전쟁 특수에 기대를 거는 저들이 북 핵 문제의 평화해결을 위한 6자 회담에 끼어들지 못하게 차단의 벽을 쌓는 것도 미룰 수 없는 과제다. 한석현 정신개혁시민협의회 공동대표
  • [직격토론] 日 “한국 독도지배 강화땐 맞대응”

    [직격토론] 日 “한국 독도지배 강화땐 맞대응”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과 독도영유권 주장을 둘러싼 파문이 확산되면서 한·일 양국관계가 유례없는 냉각기를 맞고 있다. 서울신문은 8일 건국대 법대 김창록 교수와 도쿄신문 야마모토 유지(山本勇二) 서울지국장의 대담을 통해 교과서·독도 문제 등 쟁점과 양국간 동반자 관계 재정립을 위한 해법을 찾는 자리를 마련했다. ●야마모토 유지 지국장 일본 외무성 홈페이지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역사적으로나 국제법적으로 독도는 일본 땅이다. 양국의 외교로 사태가 현재보다 나빠지지 않게 해야 한다. 일본에서는 독도가 어디에 있는지 아는 사람이 10%도 없고 관심도 없다. 한국이 독도에 대한 지배를 강화한다면 일본도 대응을 할 것이다. 지난해까지는 다케시마에 대한 보도가 없었는데 일본 정부의 대응도 변한 것으로 짐작된다. 교과서의 경우 합격본이 신청본보다 많이 수정됐다. 부드러워졌다. 채택률도 높아질 것이다. ●김창록 교수 독도 문제는 일본 정부가 지나치게 갈등을 키우고 있다. 독도는 역사적으로나 법적으로 분명히 한국의 땅이다. 한국민들은 영토 문제만이 아니라 과거사와 직결된 인식을 하기 때문에 일본 정부가 계속 도발하면 이 문제가 필요 이상으로 심각해진다. 문제의 본질과 한·일 관계를 고려해 잘 관리해야 한다. 교과서의 경우 역사인식을 개선하지 않으면 계속 검정과 채택률 문제가 불거질 것이다. 일본은 역사문제에 대한 몰이해를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 ●야마모토 양국 국사교과서를 비교해보면 한국은 한·일합병에서 광복까지 40년을 60페이지에 걸쳐 다뤘다. 일본은 2∼3페이지밖에 없다. 이같은 정보량 차이가 한·일 양국민의 역사 인식의 차이로 나타난다. ●김창록 양의 문제만이 아니다. 교과서 기술에 깔려 있는 역사 인식이 문제다. ●야마모토 도쿄신문에 한국 초등학교 역사교과서 내용을 소개했다. 일본 신문에서 한국 교과서를 다룬 것은 처음인 것 같다. 안용복, 다케시마 편입, 위안부 문제, 안중근·유관순 선생 얘기도 했다. 조선총독부는 기간 시설을 정비하고 개발을 하고 토지 조사도 했지만 한국인은 이 점에 대해서 강하게 부인한다고 기사를 썼다. ●김창록 최근 문제에서 보다 중요한 것은 일본 사회가 분기점에 와 있고 그 분기점이 무엇을 의미하며 방향은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일본 정부의 태도가 과거와 상당히 달라졌다. ●야마모토 4년 전 교과서 파동 때와 비교해보면 과거에는 일본의 많은 교과서가 위안부 표현을 썼지만 현재는 거의 없다.4년 전보다 역사 반성이 명백하게 줄어들고 일본이 아시아 근대화에 영향을 미쳤다는 부분이 늘었다.1995년 무라야마 총리는 식민지배와 전쟁에 대해서 사과했다. 고이즈미 정부도 이것이 기본 입장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은 지난 20년 동안 일·미동맹, 중국의 강대국화, 북핵문제에 대한 대응을 강화하고 있다. 한국 입장에서는 우경화라고 볼 수 있지만 일본 사회가 무라야마 총리 시대와는 달라지고 있다. 무라야마 총리의 담화대로 해야 한다는 사람도 있지만 어떤 사람은 의미가 없다고 하기도 한다. ●김창록 1995년 무라야마 총리는 식민지배를 사과했고 1998년 한·일 신파트너십 공동선언에서도 오부치 총리가 거듭 사과했다. 고이즈미 정권 이후 기본 입장이 바뀐 것으로 보인다. ●야마모토 일본 사회는 1998년 이후에 변화가 있었다. 북한의 움직임이다. 핵문제나 납치문제가 일본의 태도를 변하게 한 조건이라고 생각한다. ●김창록 북한 관련 문제들이 일본사회에 큰 충격을 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이유만으로 일본 정부가 한국에 대한 입장을 바꾸었다고 보는 것은 무리다. 자위대 파병과 야스쿠니 신사참배 등이 변하는 일본 사회를 보여준다. 일본의 정체성 변화가 한국에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야마모토 일본 국민이 최근 2∼3년간 관심을 갖는 것은 북한 문제이다. 북한이라는 위험한 나라가 있어서 방위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지속됐다. 대북 압력책과 테러와의 전쟁을 반대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결과적으로 변했다고 본다. ●김창록 대응방식이 중요하다. 납치는 절대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지만 실제 갖는 의미보다 너무 크게 과장됐다. 아시아 전체 질서에서 다뤄져야 하는데 너무 선정적으로 접근했다. ●야마모토 일본은 납치문제 때문에 북한을 지지할 수 없다. 일·북 수교를 하자는 여론이 줄어들고 있다. 고이즈미 총리는 직접 시작한 외교니까 수교를 위해 노력하지만 외무성은 큰 신경을 쓰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김창록 안보리 상임이사국을 지향하는 국가로서 근린국가와의 관계를 고려해야 한다. 북한을 절대악으로 규정하면 어떤 문제도 풀 수 없다. 세계의 지도국이 되겠다고 하기 전에 아시아에서 먼저 비전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야마모토 일본 국민들은 일·한 관계에서 일본이 가해자, 한국이 피해자라는 인식이 있다.1998년 이후 월드컵 등 문화교류가 강화되고 파트너십이 생기면서 일·한 관계는 가해자·피해자가 아니라 동반자 관계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일·북 관계는 납치와 미사일 문제 등을 이유로 일본이 피해자라는 생각이 계속됐다. ●김창록 한국민은 북한 정권을 지지하진 않지만 북한을 형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지메를 당하는 데 거부감을 느낀다. 일본은 한국이 같은 자유주의 국가이기 때문에 편을 들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지만 역사적 맥락에 대한 몰이해에서 나온 잘못된 판단이다. ●야마모토 일본의 70대 이상 정치인들은 외교적으로는 사과를 하는 느낌이 있었지만,50∼60대 정치인들은 국가의 위상이 높아지는 것에 더 관심이 있는 것 같다. ●김창록 한국도 변했다. 김종필로 상징되는 일본통이 물러났다. 그 사람들이 지나치게 일본의 이해관계를 생각하면서 자주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것이 문제였다고 생각한다. 특히 1987년 이후 한국은 크게 변했다. 스스로 민주화를 이루어냈다는 자부심이 강하다. 일본의 정치인들은 과거 문제보다는 현재의 경제력에 걸맞은 군사력을 갖추는 것에 관심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한국은 저자세 외교로부터 대등한 파트너십으로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본은 1998년 ‘한·일 신파트너십 선언’으로 과거사 문제를 털었다고 생각하지만 한국은 과거의 비정상적인 관계를 청산하고 진정한 파트너가 되자고 약속했다고 생각한다. 일본은 이런 역사적 맥락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야마모토 일본과 한국 정치인의 교류는 활발하지만 불편해 보인다. 역사문제 때문인 것 같다. 일본 정치인들이 노무현 대통령을 비롯해 한국의 국회의원들의 생각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다. 한국도 일본의 새로운 움직임을 이해하지 못한다.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분위기가 없다. ●김창록 적극적인 상호 이해가 필요한 시점이 됐다.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은 양국 인식차를 해소하지 못한 채 묻혀버렸다. 식민지 배상문제를 해결하는 협정이어야 했음에도 그러지 못했다. 미봉책으로 덮어오다 보니 지속적으로 문제가 불거지는 것이다. ●야마모토 사할린·원폭피해자·종군위안부 문제에 대해 일본은 1980년대부터 여러 가지 방법으로 대응해 왔다. 특히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는 아시아 평화기금 창설에도 간여하지 않았는가. 역사 인식을 정리하자는 데 동의하지만 한계가 있다 하더라도 당시로서는 최선의 외교방법을 제의했는데 한국은 일본의 대응을 높이 평가하지 않았다. ●김창록 원폭 피해자 문제의 일부 해결은 피해자들이 소송을 통해 쟁취한 것이지 일본 정부가 적극적으로 한 것이 아니다. 일본 정부가 어느 정도 노력을 했지만 피해자를 설득하기에는 부족했다. 게다가 고이즈미 정권 들어서 과거사 문제에 대한 태도가 매우 부정적으로 변했다. 노무현 정부는 최근 일본이 보여주는 모습은 진정한 반성과는 거리가 멀다고 보고 있다. 과거사에 대한 큰 인식차가 문제의 근원이다. ●야마모토 당분간 양국관계의 돌파구는 없다. 고이즈미 총리가 상반기에 한국을 오더라도 불편한 분위기가 될 것이다. 동북아가 계속 대립·갈등을 반복하고 있다. 너무 어려운 시대가 왔다. 한편에서는 교류가 계속된다. 일본 관광객의 숫자는 변함없다. 이론 대립과 교류가 동시에 나오는 시대이지만 희망을 찾고 싶다. 희망이 있다고 생각한다. ●김창록 낙관적이라고 전망할 수 없다. 갈등의 뿌리가 너무 깊다. 식민지배에 대한 양국의 이해가 충돌하는 한 계속 부딪칠 수밖에 없다. 일본이 역사에 대해 보다 겸허하고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정리 구혜영 박지윤기자 koohy@seoul.co.kr
  • ‘NEW 자민련’ 당명 바꿔 보수 이미지 쇄신

    자민련(자유민주연합)이 당명을 ‘뉴(NEW) 자민련’으로 바꾸고 새롭게 태어난다. 자민련은 최근 당명을 바꾸기로 내부방침을 세웠다.‘3김시대’의 냄새가 강해 지금의 정치상황에선 어울리지 않는다는 의견이 많았기 때문.‘자민련’은 1995년 김종필 전 총재가 당시 신한국당을 뛰쳐나온 뒤 만든 보수정당으로, 여야 정당 가운데 가장 오랫동안 당의 간판을 바꾸지 않았다. 새 당명을 위해 격렬한 내부토론을 거쳤다. 그러나 자민련보다 더 좋은 이름을 찾지 못해 결국 새롭게 태어난다는 의미에서 원래의 당명 앞에 ‘NEW’를 추가하기로 했다. 문제는 변경 시기.17대 국회에서 현역의원이 단 4명뿐인 군소정당으로 전락한 자민련으로서는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한 관계자는 “자민련이 국민들의 머릿속에서 잊혀져가고 있는 정당이기 때문에 당명을 바꾼다고 하더라도 전혀 주목을 끌지 못할 수가 있다.”고 고민을 토로했다. 박준석기자 pjs@seoul.co.kr
  • [이해찬 총리의 힘] “대권 욕심없는 사람” 盧 전폭신뢰

    [이해찬 총리의 힘] “대권 욕심없는 사람” 盧 전폭신뢰

    ‘실세’ 총리 이해찬…. 국민들은 지금 새로운 국무총리의 모델을 지켜보고 있다.‘일인지하 만인지상’을 넘어 대통령과 수평적 ‘동지적 관계’에 있는 것이다. 그는 지난해 6월30일 총리에 취임했다.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지금까지 총리에 오른 인사는 초대 이범석(1948년 7월31일∼1950년 4월20일) 총리부터 모두 36명. 이 중 이 총리가 가장 막강한 영향력과 위상을 발휘하고 있다는 데 이의를 다는 사람은 거의 없다. 최근의 일화에서도 이해찬의 ‘힘’은 입증되고 있다. 한덕수 경제부총리 인선 과정이 그것이다. 강봉균 열린우리당 의원과 윤증현 금감위원장이 이런저런 이유로 제동이 걸리면서 다음 후보군으로 신명호씨와 함께 한덕수 국무조정실장의 이름도 10일 오후 흘러나왔다. 이어 11일 아침 이 총리는 청와대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는다.“한 실장을 쓰시는 게 좋을 듯합니다.” 이같은 이 총리의 뜻은 13일 노무현 대통령과 한 실장의 면담으로 이어졌고,14일 경제부총리 인선이 매듭지어졌다.12일 문서를 통해 공식적으로 제청권이 행사됐지만 유례를 찾기 힘든 ‘전화 제청’이 경제부총리 인선에 마침표를 찍은 셈이다. 비슷한 사례는 수도 없다. 최근에는 노 대통령이 내려보낸 일을 이 총리가 되돌린 적도 있다고 한다. 이 총리의 말이다.“내게 올 일이 아닌데 청와대에서 보내 왔더라. 내가 알기를 하나 책임을 질 수 있나, 해서 다시 보냈다.” 총리실 직원들은 과거 경험하지 못한 ‘일복’에 비명을 지른다.400여명이던 직원 수는 이 총리 취임 후 8개월여 만에 파견공무원을 포함,600여명으로 늘었다. 과거 청와대에서 하던 일 대부분이 총리실로 옮겨왔다. 정원에 비해 일은 곱절 더 늘었다고 불평한다. 하지만 위상도 올랐다. 한 서기관은 “업무협조요?좋죠. 요청하지도 않은 자료까지 해당 부처에서 들고 와요. 과거엔 독촉전화 여러번 했죠.”라고 말했다. 이 총리의 위상을 장관들이 속속들이 잘 알고 있다 보니 그 밑의 간부들은 말할 것도 없다는 얘기다. 노 대통령과 이 총리의 관계를 과거 김대중(DJ) 대통령-김종필(JP) 총리의 관계와 비교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정치적 무게로만 따지면 ‘대주주’격인 JP를 따를 총리가 없다. 그러나 당시 총리실의 위상과 역할은 지금과 비교되지 않는다고 입을 모은다. 나눠 먹기식 연립정권의 성격을 지니다 보니 DJ쪽 장관과 JP쪽 장관이 확연히 나뉘었고, 자연스레 총리실의 조정기능도 발휘되지 못했다는 것이다.“DJ쪽 장관이 JP를 제쳐두고 대통령과 ‘직거래’했다.”는 귀띔이다. 이 총리의 파워는 물론 노 대통령에게서 나온다. 국정원과 군, 검찰의 고급정보까지 공유할 정도로 노 대통령이 이 총리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다. 노 대통령은 매주 한두 차례씩 이 총리와 따로 만난다고 한다. 주로 주말에 오찬·만찬을 같이 하며 정책현안이나 정국 전반을 논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우식 청와대 비서실장이나 현안이 있는 부처 장관이 함께하지만 사실상 독대나 다름없다. 공식행사까지 포함하면 이 총리가 노 대통령을 만나는 횟수는 일주일에 10여 차례가 넘는다. 전화로 현안을 논의하는 횟수는 하루에도 여러 번이다. 그럼 노 대통령은 왜 이 총리에게 힘을 실어줄까.‘국정의 분권운영’이 근본취지다. 통상적인 국정 관리는 총리에게 맡기고 대통령 자신은 주요 국정 현안이나 국정방향을 구상하는 데 진력하겠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이런 취지가 제대로 실천되고 있는 배경은 개인 이해찬에게 있다는 것이 주변의 평가다. 이 총리의 측근은 “두 분은 상호보완적인 동지적 관계”라며 “이는 이 총리가 사욕이 없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사욕이란 ‘대권도전’ 의지를 말한다. 이 총리는 이달 초 관훈토론에서 “총리가 대권에 기웃거리면 하는 일마다 오해받고, 정부를 끌어갈 수 없다.”고 선을 분명히 그었다. 노 대통령도 이런 이 총리의 모습을 신뢰한다는 전언이다. 이에 이 총리도 대통령의 국정철학과 혜안을 마음으로 존중하고 있는 듯하다. 이 총리의 역할도 과거 ‘의전총리’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늘어났다. 취임 이후 지금까지 공식적으로 이 총리가 주재한 회의만 800여차례에 이른다. 국무조정실이 자체 집계한 수치다. 한달 평균 100회, 하루에만 5회꼴이다. 당장 16일에만 해도 국정현안정책조정회의 등 4개의 공식일정과 3개의 비공식 일정이 놓여 있다. 짬짬이 총리실 내부 현안까지 챙기면 아침 8시40분부터 밤 10시까지 이어지는 하루 일정이 모자랄 정도다. 그는 공관으로 퇴근한 뒤에도 자정 무렵까지 현안자료들을 꼼꼼히 챙긴다고 한다. 이 총리는 매일 새벽 5시30분에 잠자리에서 일어나 30분 정도 반신욕을 한다. 종합일간지와 지방지를 일람하는 시간이기도 하다.‘일하는 총리’ 앞에서 장관들이 긴장하지 않을 수 없는 까닭도 이 총리의 이런 개인시간 반납에 있는 것 같다. 진경호기자 jade@seoul.co.kr
  • 심지사·염시장 탈당 인터뷰

    “행정도시 건설에 총력을 기울이기 위해 탈당을 선택했습니다.” 심대평 충남지사와 염홍철 대전시장은 8일 기자회견에서 탈당의 변을 이같이 밝혔다. 심 지사는 이날 “행정도시 특별법이 통과됐다고 다 된 것은 아니고 정파와 정당을 초월해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내겠다.”고 다짐했다. 염 시장도 “행정도시 건설에 정략적으로 태도를 바꾸면서 발목을 잡고 있는 한나라당과는 함께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두 사람은 신당창당을 배제하지 않았다. 심 지사는 “상생정치와 국민들에게 희망을 심어줄 수 있는 것이라면 (신당창당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염 시장 역시 “정치적인 거취를 결정할 때 심 지사와 상의하겠다.”고 밝혀 행동을 같이할 뜻을 내비쳤다. 심 지사는 “다른 당으로 가려고 했다면 자민련을 떠나지 않았을 것”이라며 열린우리당 입당설을 부정했다. 염 시장은 그러나 “상황이 되면 가능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심 지사는 “자민련의 진로에 대해 당 지도부와 이견이 있었고 JP(김종필 전 총재)와 얘기를 나눴다 해도 예의차원일 뿐 정치적 의미는 없는 일”이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지역 정가에서는 두 사람 모두 ‘윈·윈’ 전략을 꾀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심 지사는 3선째 지사를 지내 단체장 이후의 활동이 필요했고, 염 시장은 한나라당에 대한 지역여론이 좋지 않은 데다 정치적 기반이 약해 내년 지방선거 때 지원세력이 필요했다는 설명이다. 심 지사는 그러나 “충청권 결속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면서도 지역정당 창당에 대해서는 거부감을 보이는 등 이중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는 “‘중부권 신당’이니 하는 지역이나 특정계층을 기반으로 하는 정치결사체는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국가백년대계에 앞장설 수 있는 정치결사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전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자민련 “JP는 NO다”

    심대평 충남지사의 자민련 탈당으로 중부권 신당 창당설이 불거지면서 정치권 일각에서는 자민련이 와해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이에 따라 김종필(JP) 전 자민련 총재의 의중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김 전 총재는 정계를 은퇴했지만 오랫동안 충청권의 맹주로서 활동했고 아직도 영향력이 상당할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자민련 와해와 신당 창당에 JP의 선택이 중요한 변수이기 때문이다. 아직 JP의 입장이 공식적으로 나오지 않았지만 심 지사의 행동에 ‘OK’사인이 떨어진 게 아니냐는 분석이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JP는 지난 5일 출국해 현재 휴양차 미국 하와이에 머물고 있다. 자민련측은 JP가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전했다. 김학원 대표는 8일 기자회견에서 “JP는 자민련이 얼마나 어려운 상황에서 만들어진 당인지 잘 알고 있다.”면서 JP가 심 지사 탈당에 부정적인 입장이라는 것을 간접적으로 표현했다. 이어 “비애와 참을 수 없는 배신감을 느낀다.”면서 심 지사에 대한 비난의 수위도 높였다. 김 대표의 한 측근도 “최근 심 지사를 만난 JP가 탈당에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그러나 탈당과 신당에 우호적인 인사들은 심 지사가 ‘JP의 복심’이었던 점을 들어 이같은 주장에 동조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JP의 의중과 함께 자민련 현역 의원 4명의 행보도 중요하다. 심 지사는 탈당을 선언하기 며칠 전 이들 의원을 따로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김 대표를 제외한 의원들은 아직 확실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이인제 의원은 “안타깝고 불행한 일”이라고 말했다고 측근이 전했지만 더 이상 언급을 회피했다. 그러나 심 지사의 탈당 선언을 알고도 지난 7일 논산에서 열린 지역행사에 심 지사와 나란히 참석한 것만 놓고도 두 갈래의 해석이 나오고 있다. 현재 외유중인 김낙성·류근찬 의원은 신당 합류설이 흘러나오고 있다. 그러나 류 의원측은 “심 지사와 류 의원은 통화도 자주하는 등 가깝지 않은 사이도 아니다.”면서 여운을 남겼다. 박준석기자 pjs@seoul.co.kr
  • “채찍질·배고픔… 지금도 치떨려”

    “나라에서 진작 조사를 했어야지. 우리나라가 일본보다 힘이 더 있었다면 진작 보상을 받았을 거시여….” 21일 오후 ‘일제강점하 강제동원 피해진상규명위원회’가 전국에서 처음으로 피해 신고자들을 직접 방문한 전북 익산시 황등면 죽촌리 화농마을 경로당. 이미 80이 넘은 고령자가 돼버린 강제동원 피해자들은 60년 넘게 가슴에 묻어두었던 통한의 세월에 대한 진실을 하나씩 밝혀나갔다. 진상규명위는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증언을 기록물로 남겨놓기 위해 캠코더로 녹화작업을 벌였다. 1942년 남태평양 남양군도로 끌려갔다가 해방과 함께 돌아온 임득규(84·죽촌리 633)씨는 “배고픔과 공포에 떨며 3년동안 비행장 건설, 선착장 하역작업을 해야 했다.”고 그날을 회고했다. 당시 이 마을에서 5명이 함께 끌려가 2명은 귀환후 사망하고 3명만 생존해 있다. 아들 종석(53)씨는 “아버님께서 지금도 그 시절을 떠올리시면 치를 떤다.”면서 “그 후유증으로 우울증과 각기병을 앓고 있어 더욱 안타깝다.”고 말했다. 죽촌리 최술량(85)씨는 “시모노세키항에서 어디론가 끌려가 벽돌공장에서 강제노역에 시달렸다.”면서 “가장 큰 고통은 배고픔이었다.”고 증언했다. 또 당시 한달에 120원을 준다고 했지만 처음 두달만 월급이 지급됐고 나머지는 모두 떼어먹었다고 밝혔다. 율촌리 조용섭(82)씨는 64년 전 일제강점기에 노무자로 강제동원됐던 그날을 회고하며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18살 되던 해인 1942년 11월 당시 고향인 전남 여천군 남면 두라리 구장의 지시를 받고 무작정 일본으로 가는 배를 탔다가 2년6개월만에 돌아오기까지 어두웠던 시간을 돌아보는 조씨의 눈에는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매일 12시간씩 밤낮을 번갈아가며 규슈의 탄광 막장에서 목숨을 건 사투를 벌여야 했던 세월들. 조씨는 안남미와 소금에 절인 무로 연명하며, 굴 속에서 살아야 했던 그 시절을 생각조차 하기 싫다며 몸서리쳤다. “언제 막장이 무너질지 몰라 매일매일 먹는 밥이 제삿밥 같았습니다. 게으름을 부리거나 도망치다 걸리면 무지막지한 채찍질을 받아야 했고 월급을 주긴 했지만 이런저런 명목으로 모두 떼어갔지요.” 화약이 터지는 것을 피하기 위해 도망치다 철사줄에 왼쪽 발목이 걸리는 바람에 큰 상처를 입어 평생 다리를 절고 다니는 조씨는 친구와 함께 목숨을 걸고 탄광에서 몰래 도망쳐 고국에 돌아올 수 있었다. 조씨는 “그 당시의 강제노역비라도 돌려받았으면 원이 없겠다.”며 “정부가 보상을 제대로 받아내지 못한 당시 한·일회담대표 김종필씨를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위원회는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증언과 서류, 첨부자료 중에서 사료로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는 관련자료는 국가기록 영구보존문서로 분류해 피해신고와 진상규명절차가 끝나더라도 영구히 보존할 방침이다. 강제동원 피해신고는 지난 18일까지 전국에서 2만 5334건이 접수됐다. 익산 임송학기자 shlim@seoul.co.kr
  • “盧대통령 ‘3년차 증후군’ 조심해야 한다더라”

    “盧대통령 ‘3년차 증후군’ 조심해야 한다더라”

    “집권 3년차를 조심하라고 하더라.”여권 고위 관계자의 말이다. 오는 25일은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 2주년이자 집권 3년차에 진입하는 시점이다. 이런 분기점을 앞두고 여권의 핵심인사들이 과거 정권의 고위직을 지낸 인사들로부터 들은 충고성 메시지다. 이들은 과거 경험을 바탕으로 ‘집권 3년차 증후군’을 경고한다. 집권 3년차엔 정계개편·남북정상회담 같은 빅 이벤트와 측근 비리 등 악재가 5년 주기로 되풀이됐다는 얘기다. 이들은 ‘이기준 교육부총리 인사 파문’도 집권 3년차 증후군의 연장선상이라는 해석을 내놓기도 한다. ●靑·여권 “그럴 가능성 없다” 그러나 청와대와 여권에서는 은근히 신경을 쓰면서도, 집권 3년차 증후군의 가능성은 이제 없다고 단언한다. 과거와는 정치 지형과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는 주장이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집권 첫 해에는 워낙 소수정당으로 출발해 어려움을 겪었고,2년차에는 탄핵이라는 시련을 겪었다.”면서 “올해는 긴장 이완보다는 경제살리기와 북핵 해법이라는 명확한 과제를 갖고 해결에 진력할 시점”이라고 진단했다. 여권 관계자는 “과거 정부에서는 집권 초반기부터 강한 개혁 드라이브를 걸어 3년차에 개혁 피로증후군이 나타났던 측면이 있다.”면서 “하지만 참여정부는 이제서야 강한 의욕을 갖고 일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강봉균 열린우리당 정책위 수석부의장은 “올해 여당의 기반도 튼튼하고 개혁 로드맵을 바탕으로 일을 잘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됐다.”고 진단했다. 국민의 정부에서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을 지낸 전병헌 열린우리당 의원은 “3년차 현상은 극히 미미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개헌·정계개편론 ‘모락모락’ 집권 3년차를 전후해 슬슬 흘러나온 개헌론은 참여정부 들어서도 예외는 아닌 것같다. 올들어 벌써부터 정가에서는 개헌론이 나왔다. 내각제든,4년 중임제든 개헌의 최적기라는 주장도 나온다. 다만 야당에서 김덕룡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개헌론을 먼저 공식 제기했다는 점에서 과거와는 차이점이 있다. 통치학을 연구하는 연세대의 한 교수는 3년차 증후군과 관련해 “세계적으로 5년 단임제는 흔치 않다.”면서 “집권 전반기에 힘이 확 쏠렸다가 후반에 힘이 빠지는데 그 시점이 대략 2년이 되는 시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2007년은 총선과 대선이 맞물려 있어 개헌의 최적기”라면서 “이 시점을 놓치면 다시 20년을 기다려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형준 국민대 정치대학원 교수는 “김영삼 정부 시절에는 1995년에 김종필(JP)씨를 축출했고, 김대중(DJ)정부 시절에는 2000년 DJP 공조가 파기됐다.”면서 “집권 3년차에다 선거가 있었던 해라는 공통점을 안고 있다.”고 정계의 지각변동 가능성을 예고했다. ●권력형 비리·남북정상회담 ‘정현준 게이트’ ‘진승현 게이트’ 등의 권력형 비리가 터진 시점이 DJ 집권 3년차인 2000년이다. 올해도 청와대에 파견돼 있던 건설교통부 직원의 뇌물수수 사건이 불거져 청와대를 잔뜩 긴장시켰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참여정부에서 비리는 집권 1년차에 터진데다, 항상 조심하고 있기 때문에 측근비리나 권력형 비리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의 정부에서 청와대 근무경력을 가진 윤호중 열린우리당 의원은 2003년 당시에 최도술 청와대 총무비서관, 양길승 부속실장의 구속을 의식한듯 “집권 3년차에 나타날 수 있는 측근비리의 ‘예방주사’를 이미 맞았다.”고 진단했다. 김형준 교수는 “김영삼 대통령은 집권 3년차인 1995년에 지방자치제선거를 실시했고, 김대중 대통령은 2000년에 남북정상회담을 했다.”고 말했다.3년차에는 빅 이벤트를 터트릴 수 있다는 얘기다. 정치권 관계자는 “오는 25일 취임 2주년 기념식에서 남북정상회담같은 큰 건을 터트릴 것이란 얘기도 있다.”고 말했다. 박정현 김준석기자 jhpark@seoul.co.kr
  • [우리동네 이야기] 동대문구 이문동

    [우리동네 이야기] 동대문구 이문동

    550년 전에 요즘 말로 방범초소가 있었던 곳….1960년대 JP(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의 별칭)가 권력을 휘두른 무시무시한 중앙정보부, 그것도 본청이 있어 아주 평범한 시민도 “혹시….”하며 께림칙한 표정으로 지나갈 만큼 살벌했던 곳….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은 조선시대 초기 지명이 그대로 전해져 내려오고 있는 서울시내 몇 안 되는 동네 가운데 하나다. 게다가 무려 40여년 동안이나 중정(中情) 본청이 411번지,257번지 일대에 자리해 전국적으로 유명해진 지역이기도 하다. 이문동은 조선시대 7대 임금인 세조가 1465년 11월 하명해 세워진 이문(里門)이 있었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곳이다. 이문이란 성문이나 일반가옥의 대문과 비교할 수 있는 것으로, 대로(大路)에서 마을로 들어오는 골목길 또는 큰길로 이어지는 작은 길 어귀에 마을 문으로 설치된 것이다. 그러나 자율방범대와 비슷한 제도로 운영됐으며 이문동이 지역의 관문 노릇을 했다는 점을 가리켜주는 대목이다. 먼 옛날 얘기로 들리긴 하지만 한때는 ‘신도시’였다는 점도 엿보인다. 이를 증명하듯 지금도 전철과 경원선 등 철도망의 기차가 끊임없이 지나다니고 있다. 또 중랑천 둔치에는 동부 간선도로가 뻗어 있어 서울 교통의 ‘숨통’ 역할을 해내고 있다. 한국외국어대와 바로 옆에 자리한 경희대 등이 모인 대학촌이기도 하다. 북쪽으로는 성북구와 경계를 이뤘으며 강원도 청평 등 물 맑고, 산 좋은 수도권 유원지와 맞닿아 대학생을 비롯한 단체의 이동통로 구실도 톡톡히 해낸다. 이문동에 서울시민들도 잘 모르는 놀랄 만한 사실이 숨어있다. 시내에서 두 군데에 불과한 연탄공장이 자리했다는 점이다. 아직도 연탄을 때는 소외계층에게는 더없이 소중한 것으로, 동대문구가 내건 ‘따뜻한 역사의 고장’이라는 슬로건에 걸맞은 곳이라고 하겠다. 대학가 인근이어서 물가가 싸다는 점에서 동네 이름처럼 서민들과 친근한 지역이다. 따라서 시장, 마켓 등 근린생활권이 발달했다. 먹자골목에서는 3000원대에 ‘민생고’가 해결된다. 하지만 뉴타운 조성 등 서울시내 곳곳이 그렇듯 최근 들어서는 개발 바람도 불어닥치고 있어 가난한 이들이 모여 사는 곳이라는 불명예(?)를 떨쳐내기에 바쁘다.S사가 지은 R아파트 등 고품격 주택단지가 줄지어 들어서고 있다는 점이 그 물증이다. 어언 600년 역사를 바라보는 이문동은 1∼3동으로 나눠졌다. 면적은 합쳐서 1.76㎢,2만 2200여가구에 6만 700여명이 살고 있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박정희 저격사건’ 문서 공개] 韓日 한달간의 외교 냉전

    [‘박정희 저격사건’ 문서 공개] 韓日 한달간의 외교 냉전

    ‘문세광 사건’은 한·일 관계를 단교 직전 상황까지 내몰게 된다. 박정희 정권은 당시 일본의 미온적인 수사협조 등 ‘성의 부족’에 분개했다.8월29일자 외무부 정보보고는 “일본 경시청은 육영수 여사의 저격이 ‘과실 살인’인데도 한국 수사당국이 짜맞추기 수사로 무리한 법 적용을 하고 있다며 우리 정부에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日, 對韓접촉 중단 게다가 일본 정부는 한국에서 일고 있는 반일감정으로 양국관계가 최악의 사태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고 관측했다. 이에 따라 일본 기업들도 대(對) 한국 상담(商談)을 유보했다. 외무부는 “일본의 지원없이 한국경제가 지탱하기 곤란할 것이라는 오만한 자부심을 드러낸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외교부는 “외교 최우선 과제로서 (주재국에) 일본을 압박해줄 것을 요청하라.”고 재외공관에 전문을 보낸다. 앞서 주일 한국대사는 8월24일 다나카 총리를 찾아가 일본의 적극적 수사협조 등을 촉구하는 김종필 국무총리의 친서를 전달했다. 정부는 다나카 총리의 답신에 일본정부의 공식 사과와 조총련에 대한 철저한 수사 등의 언급이 포함될 것을 기대했다. ●韓, 美에 압력행사 요구 그러나 주한 일본대사는 9월8일 외교부 장관을 예방,“특사를 보내면 사죄 사절이란 인상을 주기 때문에 곤란하다.”는 입장을 전달했다.9월9일 김종필 총리에게는 “사죄특사의 파견이라는 인상을 주지 않기 위해 친서에 다른 현안을 언급하는 것이 어떠냐.”고 ‘황당한’ 안을 내놓기도 했다. 일본의 입장에 변화가 없자 9월4일 함병춘 주미대사가 미 국무부 하비브 차관보를 비밀리에 만난 데 이어 김동조 외교부장관도 5일 에릭슨 주한미국 대사대리를 만나, 일본에 영향력 행사를 부탁한다. 한국 정부의 태도가 강경하자 미측은 우려를 표시했다. 하비브 차관보는 “포드 대통령과 키신저 국무장관에게 한국정부 입장을 브리핑하겠다.”면서도 “미국은 모두 우방인 두 나라가 원만히 문제를 해결하기 바란다. 조용히 일본측의 답변을 기다리는 것이 상책”이라고 조언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9월10일 유정회 소속 최영철 의원을 만난 자리에서 “만약 일본정부로부터 11일까지 아무 회답이 없으면 12일에 특별성명을 발표하고 최후 경고를 일본에 발한 뒤 주일대사와 외무장관의 사표를 받든가 하는 조치를 하고, 다음에 단교조치도 불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美 “단교땐 한국 안보 위험” 이에 주미대사관 박근 공사는 12일 하비브 차관보를 만나 거듭 같은 요청을 하지만, 하비브는 격앙된 어조로 “미국은 할 만큼 했다.”며 단호히 거절했다. 박 공사는 이 사실을 정부에 보고했다. 그리고 한 시간 뒤 정부는 다시 하비브에게 전화를 걸어 “몇시간 내에 요구사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예정된 코스’대로 할 수밖에 없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러나 “한국의 방위는 일본을 전제로 할 때만 가능한 만큼 한·일 관계가 깨지면 한국 방위도 어려울 것”이라고 경고가 돌아왔다. 하비브는 한국의 조총련 규제요구는 비합리적이라며 일본의 안을 받아들일 것을 요구했고, 결국 한·일협정의 주역이었던 시나 특사 일행이 방한해 답신을 전달하면서 한달 가까이 지속된 한·일 외교갈등이 봉합된다. 역시 이 과정에도 한·일협정의 배후에 있었던 미국의 중재가 있었다. 이지운기자 jj@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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