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김종필
    2025-12-17
    검색기록 지우기
  • 분식회계
    2025-12-17
    검색기록 지우기
  • 영등포구
    2025-12-17
    검색기록 지우기
  • 여자아이
    2025-12-17
    검색기록 지우기
  • 안보리
    2025-12-17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6,386
  • [첫 여성대통령 시대] 친박계 전·현의원 주축…정책라인이 ‘싱크탱크’

    [첫 여성대통령 시대] 친박계 전·현의원 주축…정책라인이 ‘싱크탱크’

    이번 대선에서는 ‘주연’인 박근혜 대통령 당선자 못지 않게 ‘조연’ 역할을 한 측근 인사들의 활약도 두드러졌다. 중앙선거대책위원회를 비롯한 각종 선거 기구에서 위원장과 본부장, 단장, 위원 등의 공식 직함을 받은 인사만 줄잡아 500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들은 박 당선자와 다양한 연결고리를 맺고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움직였다. 성공 신화를 쓴 ‘박근혜 사람들’을 들여다봤다. 김무성 본부장 등 ‘10인 회의’멤버 주목 ●‘액션 탱크’, 전·현직 의원들 새누리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의 김무성 총괄선대본부장과 서병수 당무조정본부장, 유정복 직능본부장, 홍문종 조직본부장, 변추석 홍보본부장, 안종범 정책메시지단장, 이정현 공보단장, 권영세 종합상황실장, 이학재 비서실장, 이상일 대변인 등 10명은 선거기간 내내 매일 아침 머리를 맞댔다. 비공개로 진행된 ‘10인 회의’에서 그날 그날의 선거 전략이 나왔다. 대선 승리를 이끈 ‘기관차’ 역할을 한 셈이다. 특히 김 본부장은 지난 10월 당내에서 불거진 ‘친박(친박근혜)계 퇴진’ 논란에 대한 박 당선자의 돌파구였다. 김 본부장은 선거 사령탑을 맡은 뒤 안형환·조해진·박선규·정옥임 대변인과 권영진·백성운 전 의원 등 비박(비박근혜)계 인사들을 대거 캠프에 합류시켰다. 지난 18대 국회에서 박 당선자와 관계가 소원해졌던 김 본부장의 복귀에는 박 당선자의 ‘오른팔’이라고 할 수 있는 최경환 전 비서실장이 역할을 톡톡히 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본부장과 비슷한 길을 걸은 ‘친박 구주류’로는 진영 국민행복추진위 부위원장을 꼽을 수 있다. 친박계 내부 갈등으로 한때 ‘탈박(탈박근혜)’을 선언했던 진 부위원장은 컴백 후 캠프에서 ‘정책 조율사’ 역할을 했다. 이렇듯 박 당선자를 도운 주축 세력은 친박계 전·현직 의원들이다. 상당수는 2007년 대선 경선 때 멤버들로, 사람을 쉽게 바꾸지 않는 박 당선자의 용인술이 반영돼 있다. 이주영 특보단장과 김학송 유세단장, 윤상현 수행단장, 박대출 수행부단장, 조윤선 대변인 등은 박 당선자를 근거리에서 보좌했다. 김태환·서상기·유기준·한선교·김재원·이진복·조원진·서용교 의원 등도 친박계 핵심으로 분류된다. 당의 간판인 황우여 대표와 ‘원내 사령탑’인 이한구 원내대표, 이혜훈·정우택 최고위원 등도 박 당선자를 측면 지원했다. 다만 경선 캠프에서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았던 홍사덕 전 의원은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로 기소되면서 2선으로 후퇴했다. 강석훈·안종범·이종훈 의원 ‘3인방’ ●‘싱크 탱크’, 정책 브레인 박 당선자가 공약을 중시한 만큼 정책 라인 역할도 무시할 수 없다. 우선 강석훈·안종범 의원은 박 당선자의 핵심 정책통이다. 이들은 진 부위원장과 함께 박 당선자가 공약을 발표하면 분야를 가리지 않고 나타나 기자들과의 질의응답에 응했다. 강·안 의원은 이종훈 의원과 더불어 원내에서 ‘경제 브레인 3인방’으로도 꼽힌다. 이들은 모두 교수 출신으로 19대 국회에 입성했다. 안 의원은 또 2007년 대선 경선 당시부터 박 당선자를 도와온 ‘5인 공부모임’ 출신이기도 하다. 여기에는 김광두 서강대 명예교수와 최외출 영남대 교수, 신세돈 숙명여대 교수, 김영세 연세대 교수가 포함됐다. 박 당선자의 기획조정특보인 최 교수는 ‘조용한 조력자’로 통한다. 겉으로 드러난 행보는 없었지만, 박 당선자의 의중을 캠프에 전달하고 조정하는 역할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외부 인사들과 박 당선자 사이의 연결고리 역할도 했다. 실제 박 당선자가 지난 9월 소설가 이외수를 만났을 때 이를 사전 조율한 인물이 최 교수였다. 김 명예교수는 박 당선자의 ‘싱크탱크’ 역할을 해온 국가미래연구원도 이끌었고, 연구원 소속 250여명의 학자들과 함께 박 후보의 대선 공약 밑그림을 짠 것으로 전해졌다. 현명관 전 전경련 부회장도 연구원 소속이다. 이 밖에 윤병세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와 김장수 전 국방부 장관은 외교·안보, 최성재 서울대 명예교수는 복지, 박명성 명지대 교수는 문화, 곽병선 전 한국교육개발연구원장은 교육, 옥동석 인천대 교수는 정부개혁 등의 분야에서 각각 핵심 참모로 꼽힌다. 박효종 서울대 교수는 박 후보의 역사 인식 등과 관련해 조언자 역할을 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당선자 이미지 변신에 기폭제 역할 ●‘새로운 피’, 영입 인사 최근 들어 가장 주목받는 그룹은 외부 영입 인사들이다. 박 당선자의 이미지 변신을 이끌어내는 기폭제 역할을 했다. 인재 영입은 지난해 12월 박 당선자가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은 이후 가속도를 냈다. 특히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장과 안대희 정치쇄신특별위원장 등은 당내 인사와 차별화되는 독자적인 위치를 확보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박 당선자는 1987년 개헌 때 헌법 제119조 경제민주화 조항을 입안한 김 위원장을 끌어들여 경제민주화 논의를 주도했고, 2003년 한나라당의 ‘차떼기 대선자금’ 수사를 진두지휘한 안 위원장을 영입해 쇄신 의지를 보여줬다. 대표적 여성 기업인인 김성주 공동선대위원장, 헌법재판소장을 지낸 김용준 공동선대위원장, 민주당 출신의 한광옥 국민대통합위 수석부위원장, 이상돈 정치쇄신특위 위원 등도 비중 있는 영입 인사들이다. 이 중 김성주 위원장은 적극적인 유세와 언론 접촉 등으로 대선에서 적잖은 공을 세웠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변추석 홍보본부장과 조동원 홍보부본부장도 박 후보의 두터운 신뢰를 받는다. 카피라이터 출신인 조 부본부장은 올해 초 당명 개정 등을 주도했고, 2002년 한·일 월드컵 공식 포스터를 제작했던 변 본부장은 ‘박근혜가 바꾸네’ 등의 선거 슬로건을 만들어냈다. 신뢰 높아… 신동철 부소장 ‘맏형’ ●‘궂은일 전담’, 보좌·지원 그룹 실무 보좌진 그룹도 빼놓을 수 없다. 보안을 중시하는 박 당선자는 입이 무겁고 성실한 보좌진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편이다. 이재만·정호성·안봉근 전 보좌관은 박 당선자가 정치권에 입문한 1998년 이후 줄곧 근거리에서 보좌해 왔다. 박 당선자의 의중을 가장 잘 아는 만큼 이들에 대한 박 당선자의 신뢰는 절대적인 것으로 전해졌다. 신동철 여의도연구소 부소장은 실무 그룹의 맏형 격이다. 여연에서 여론조사를 총괄했다. 백기승 공보위원도 2007년 대선 경선 패배 이후 이른바 ‘마포팀’을 이끌며 박 후보에 대한 홍보 업무를 전담해 왔다. 조인근 메시지팀장, 장경상 전략기획팀장, 이창근 일정기획팀장, 장성철 공보상황팀장, 음종환 공보기획팀장 등 박 당선자의 선거 운동을 실무적으로 뒷받침한 보좌 인력들은 역할에 비해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았던 ‘이름 없는 조력자들’이다. 박 당선자 주변에는 외곽 지원 부대도 있다. 박 당선자와의 개인적인 인연을 바탕으로 의원들 못지 않은 역할을 하고 있다. KBS 보도본부장 출신의 김병호 전 의원이 대표적이다. 이병기 여연 고문, 이성헌·김호연·김선동·손범규·허원제 전 의원, 전광삼 공보위원 등도 박 당선자를 물밑 지원했다. 공개활동 자제… 정치적 무게감 커 ●‘캠프의 중심추’, 원로 그룹 원로 인사들의 경우 공개적인 활동은 자제한 편이나, 정치적 무게감은 상당했다. 부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과의 인연 등을 계기로 박 후보를 돕는 ‘7인회’도 이러한 원로 그룹에 속한다. 강창희 국회의장과 김기춘·김용갑·김용환·최병렬 당 상임고문, 안병훈 전 조선일보 부사장, 현경대 전 의원 등이다. 이번 대선이 보수와 진보의 진영 대결로 흐르면서 캠프 외곽에서 박 후보를 지원하는 움직임도 활발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 이회창 전 자유선진당 대표, 이인제 전 선진통일당 대표,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 김진홍 전 뉴라이트 상임의장, 김창준 전 미국 연방 하원의원 등이 지원 사격했다.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단일후보 ‘불패신화’ 깨졌다

    18대 대선은 단일 후보가 패배한 최초의 기록으로 남게 됐다. 이번 대선까지 총 8차례의 단일화 협상이 있었고 15대 대선의 ‘김대중-김종필(DJP)연합’과 16대 대선의 ‘노무현-정몽준’ 단일화 등 2건이 승리했지만 이번 문재인-안철수 단일화는 실패했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자의 공고한 지지율 벽을 넘지 못하면서 단일 후보 ‘불패의 신화’가 끊겼다. 패인은 매끄럽지 못했던 단일화의 과정에 있었다. DJP연합과 ‘노무현-정몽준’ 단일화는 각각 내각제 및 공동정부 구성을 전제로 한 담판과 여론조사 방식으로 이뤄져 큰 잡음 없이 양측 후보 지지자의 결합이 가능했지만, ‘문재인-안철수’단일화는 사실상 안 전 후보의 일방적 양보로 이뤄졌다. 안 전 후보의 사퇴로 충격을 받은 안철수 지지자들은 한동안 문 후보 지지를 결정하지 못하고 부동층으로 맴돌았다. 안 전 후보 사퇴 이전 10~15%였던 부동층은 20~25%로 두배 이상 늘었다. 무엇보다 지지자들이 받은 마음의 상처가 컸다. 안 전 후보의 지지자인 한 20대 청년은 투신 자살소동을 벌이기도 했다. 일부는 박 당선자를 지지했다. 사퇴 이후에도 여전히 안 전 후보가 부각돼 문 후보는 상대적으로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했다. 또 단일화에 전력을 쏟아붓느냐 ‘문재인 브랜드’를 내세우지 못해 “안철수 없이는 안 되는 후보”라는 오명도 감수해야 했다. 설상가상으로 공식 선거운동 첫날인 지난달 27일에는 실무진의 실수 때문에 메시지가 잘못 나갔다. 문 후보는 자신의 지역구인 부산 사상구 유세에서 준비된 유세문대로 박근혜 대통령 당선자를 ‘유신독재 잔재세력의 대표’라고 몰아붙였지만 이 때문에 한동안 ‘박정희 대 노무현’ 프레임이 부각되면서 현 정부 심판론에 불을 지피지 못했다. 문 후보 측 관계자는 “후보 뿐만 아니라 캠프 관계자 모두가 단일화에만 집중하는 바람에 유세문을 꼼꼼히 검토하지 못했고, 유신독재 메시지가 나가는 순간 ‘아차’하고 바로잡았지만 이미 때는 늦었었다.”고 말했다. 안 전 후보의 뒤늦은 선거 지원도 패인이었다. 안 전 후보는 후보직을 사퇴한 뒤 칩거하다 지난 6일에서야 유세 지원에 나섰다. 안 전 후보의 지원으로 하향곡선을 그리던 문 후보의 지지율이 빠르게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지만 선거판을 뒤집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이현정기자 hjlee@seoul.co.kr
  • [인사]

    ■방송통신위원회 ◇승진△중앙전파관리소장 이정구◇전보△국제기구담당관 이상훈 ■농림수산식품부 ◇승진△농림수산검역검사본부 인천공항지역본부장 김선영◇전보△농림수산검역검사본부 축산물안전부장 김남수△〃 식물검역부장 홍성재△농촌진흥청 기술협력국장 김응본△재해보험팀장 전한영△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운영지원과장 최이규△대통령실 전출 김정욱 ■환경부 △수도권대기환경청 기획과장 이인기 ■국토해양부 △물류시설정보과장 남영우△공공기관지방이전추진단 박상운<인천해양항만청>△항만개발과장 이규용△항만정비〃 송주민△경인해양사무소장 류중빈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통일정책자문국장 신은숙△정책연구위원 김운식△운영지원담당관 고영훈△정책연구위원 이세종◇과장△자문건의 김안나△중앙지역 신용운△중부지역 동승철△남부지역 백찬종△해외지역 안진용◇서기관△중부지역과 김종진△남부지역과 문왕배 ■코레일 △홍보문화실장 장진복△수송조정〃 강해신△부산경남본부장 최덕률△연구원장 엄승호◇철도차량정비단장△수도권 박승언△부산 봉만길◇사무소장△오송고속철도시설 남진우△오송고속철도전기 김덕수◇처장△광역수송 이원순△물류시설 김명열△일반차량 김완주△시설계획 곽영기△선로관리 강태구△토목시설 구자안△정보통신 최경일△교통사업 조중기 ■대한지적공사 △감사 송귀근 ■한국인터넷진흥원 △개인정보보호단장 심재민 ■한국환경산업기술원 ◇승진△녹색생활본부장 조규수◇전보△환경인증본부장 김만영 ■한국전자통신연구원 ◇본부장△창의경영기획 김종대△선진경영관리 황춘식 ■이투데이 △세종시 취재본부장 신동민△광고국장 임영재△코스리(한국SR전략연구소) 소장 손동영 ■KDB대우증권 ◇임원승진△지주시너지추진실장 홍진우<본부장>△경기지역 김기권△고객자산운용 조규학△채권파생영업 김강수△유가증권운용 오종현◇신임 <본부장>△PBS 이경하△강북지역 안성환◇전보△Sales사업부문대표 및 법인영업본부장 마득락△강서지역본부장 김현종 ■크라이슬러코리아 △사장 파블로 로쏘 ■삼성전자 ◇경영임원△부사장 강경훈 길영준 김석필 박종서 백남육 서병삼 엄영훈 이상철 이선우 이영우 이영희 전성호 정금용 정은승 정재륜 조현탁 지완구 팀백스터△전무 권영노 김상무 김완표 김용회 김의탁 김태성 김환(마케팅) 류인 류택원 박영규 박용기 박은수 박창신 상재호 심원환 오방원 윤승로 윤철운 이경식 이규필 이병식 이상수 이종진 이준수 임선홍 장시호 장인성 장재수 전용성(중국) 정수연 정진동 정태경 조용철 조호석 최구연 최규상 최철 최홍섭 황성수△상무 가네코 강성일 강윤석 강현석 고희권 권태훈 김개연 김기용 김도현(이미징) 김방룡 김병주(IT) 김승규 김윤수 김은중 김종근 김종두 김종민 김현철 김형남 김호진 까를로 나운천 남길준 노세권 노형훈 두영수 마틴 맹경무 문석준 박광채 박덕규 박동수(서남아) 박범주 박석민 박시훈 박종태 박찬우 박철용 방현우 서영혁 서응교 손명식 손종록 송태호 스틴지아노 신성우 신수철 안준언 안진 양동성 에벨레 오창민 오치오 유영훈 유우석 윤여봉 윤재호 윤태양 이기호 이덕상 이동용 이람 이문철 이민규 이상길 이상재 이성민 이승구 이승범 이재룡 이재영 이정주 이종오 이철희 이헌 이홍빈 장문석 장성대 장창구 장헌석 전용병 전일환 정광명 정명호 정사율 제현웅 조국환 조성로 조성수 조용휘 조인하 조장호 조재식 주창훈 지현기 진연기 케빈리 폴브래넌 피터반헤케 홍인국◇연구임원△부사장 김병환 김희덕 노태문 송현명 어길수△전무 강사윤 김정한 박영수 박재홍 이상윤 장덕현 장동훈(무선개발) 전재호 정순문 최승철 황정욱△상무 간우영 강석희 강정석 곽지영 권상덕 권재욱 권창기 김경아 김동섭 김석원 김요정 김용구 김정기 김정식 김종선 김지화 김창정 김태진 김한수 류제형 문승도 박성용 박종애 박태성 백일섭 서해규 선경일 신상엽 신왕철 신현석 안병진 유미영 유준영 유현상 유호선 이기수 이기형 이남규 이동기 이문희 이시화 이준화 이진언 임정규 임준서 장동섭 정규환 정선태 정해주 조수진 조용덕 조창현 주재훈 최경록 최성호(DMC硏) 허창완 홍유진 홍종서◇전문임원△부사장 강기중 이현동 장동훈(무선디자인)△전무 강윤제 이인정△상무 김경훈 김준한 양문식 이영태 ■삼성디스플레이 ◇경영임원△부사장 박용환 이선용 최승하△전무 권영찬 김종성 윤재민 이응상 이정영 전현구△상무 김원호 선호 안중현 이동구 정백래 정일혁 최봉수 최원우 한흥국◇연구임원△전무 곽진오 신동호△상무 송기덕 유봉현 이기용 이백운 이주형 이청 ■삼성SDI ◇경영임원△부사장 김영식 박제승△전무 김전득 안재호 조우섭△상무 김용태 김원호 김창국 류양식 배민수 윤기권 이지열 이형노 한기호 ■삼성전기 ◇경영임원△부사장 홍사관△전무 곽병헌 노승환 신영환△상무 박영진 배종민 서달식 신익현 안성희 이선규 정보윤 조기식◇연구임원△상무 김남흥 김상혁 박일웅 정대영 정재우 최흥균 ■삼성코닝정밀소재 ◇경영임원△전무 남신우△상무 김택천 임상재 조장원◇연구임원△상무 문형수 ■삼성SDS ◇경영임원△부사장 박경정△전무 윤심 장화진 조기형△상무 강대익 김동관 김병진 김홍완 노영주 서병교 서재일 이완호 최우형 최재섭◇연구임원△상무 정재군 ■삼성중공업 ◇경영임원△부사장 김정국 이재원△전무 김학빈 손태욱 우종삼△상무 배재혁 안갑준 안평근 이성웅 전홍식 최병삼◇연구임원△부사장 김철년△전무 김세환△상무 고두영 서용석 신동원 ■삼성테크윈 ◇경영임원△전무 조영태△상무 김인덕 김정봉 신중교 윤창수 임봉규 정진학◇연구임원△상무 손영창 엄영구 ■삼성토탈 ◇경영임원△상무 강동균 박진수 윤춘석 천문경◇연구임원△전무 박준려 ■삼성석유화학 ◇경영임원△상무 전웅기 ■삼성정밀화학 ◇경영임원△전무 최동배△상무 김철규 이기열 ■삼성BP화학 ◇경영임원△상무 김성효 ■삼성생명 ◇경영임원△부사장 곽홍주△전무 전영묵 황정호△상무 김용배 방진학 손수용 심광석 이길호 이순배 이창욱 최광모 최성호◇전문임원△전무 인채권 ■삼성화재 ◇경영임원△부사장 황해선△상무 김선택 김정기 문장섭 박경국 손을식 이상봉 이재덕 조정배 최승일 ■삼성카드 ◇경영임원△상무 고영수 김홍일 문제해 신동훈◇전문임원△상무 최재영 ■삼성증권 ◇경영임원△부사장 방영민 임영빈 차영수△상무 김유경 이성한 장원재 ■삼성벤처투자 ◇경영임원△상무 김정호 최영진 ■삼성물산 ◇경영임원△전무 김광일△상무 배영민 홍순택 ■삼성물산(상사) ◇경영임원△전무 김기정 김재환△상무 양정욱 이철웅 장성근 장영준 ■삼성물산(건설) ◇경영임원△부사장 이석호 이영호△전무 권오선 김영찬 장일환 조욱희△상무 김규덕 김봉주 김상영 김상홍 김진호 남명식 노기범 박상욱 박중민 이성하 정용직 최영훈 허영우 허재정 홍운하 홍진무 ■삼성엔지니어링 ◇경영임원△부사장 강성영 최현대△전무 서효원 안정일 이상원 최성안 최영근△상무 김일현 김종필 남궁홍 문덕규 박래진 송창현 이호현 이흥재 조현 최종석 최창영 하태환◇연구임원△상무 노희권 허필민 ■제일모직 ◇경영임원△부사장 이승구△전무 김재흥 박철규 정세찬△상무 김용웅 박재철 박태균 오세우 오시연 최진환 최훈◇연구임원△상무 은종혁 장복남 전환승 ■삼성에버랜드 ◇경영임원△부사장 김동환△전무 정찬범△상무 문지태 박성원 송영기 최봉묵◇전문임원△상무 박재인 ■호텔신라 ◇경영임원△전무 박세권△상무 김영훈 ■제일기획 ◇경영임원△부사장 유정근△상무 구승회 김대영 라성찬 박창수 박철영 배완룡 손광섭 정선우 ■에스원 ◇경영임원△전무 김종인△상무 김성민 배상만 정창문 최윤길 ■삼성경제연구소 ◇경영임원△전무 임상모◇연구임원△전무 김재윤 정권택△상무 김종년 ■삼성인력개발원 ◇경영임원△전무 조원민△상무 임태조 ■삼성 중국본사 ◇경영임원△상무 정완영 ■삼성자산운용 ◇임원승진△법인마케팅본부장(상무) 김경우 ■삼성증권 ◇임원승진△부사장 방영민 임영빈 차영수△상무 김유경 이성한 장원재 김주황 심재만 심재은
  • [대선 첫 TV토론] 2002년 유권자 60% “TV토론, 투표에 영향”

    대선에서 TV토론의 파괴력은 어느 정도일까. 전문가들은 TV토론이 짧은 시간에 많은 유권자에게 후보의 장점과 상대 후보의 약점을 보일 기회라며 대선의 주요 변수라고 얘기한다. 특히 이번 대선처럼 박빙의 승부가 펼쳐지는 경우에는 부동층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다. 이는 역대 TV토론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법정 TV토론회가 공식 도입된 것은 1997년 15대 대선부터다. 당시 이회창·김대중·이인제 등 세 후보가 공식·비공식으로 54차례의 TV토론을 벌였다. 당시 최대 수혜자는 김 후보였다. 달변이었던 김 후보는 김종필 자민련 총재와의 후보 단일화 TV토론에서는 구체적인 수치를 제시하며 ‘준비된 대통령’의 모습을 보였다.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와의 TV토론에서도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후보는 단독 토론회 이후 지지율이 4.7% 포인트 올랐지만 합동토론회에서는 지지율이 0.7~3.0% 포인트 떨어졌다. 반면 김 후보는 TV토론을 통해 ‘반DJ 정서’를 누그러뜨렸고 이는 대선 승리에 디딤돌이 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02년 16대 대선에서도 TV토론은 대선 정국을 달궜다. 노무현·이회창·권영길 후보가 27차례의 토론회를 했다. 노 후보는 정몽준 국민통합21 후보와의 후보 단일화 TV토론에서는 정 후보에게 밀렸다는 평을 들었다. 하지만 대선 후보 토론회에서는 자극적인 단어를 쓰며 공세적 태도를 보였던 단일화 TV토론과 달리 안정감을 보이며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권 후보도 “국민 여러분 행복하십니까.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라는 유행어를 만들며 방송 직후 여론조사에서 최대 10% 포인트까지 지지율이 급상승했다. 2007년 17대 대선의 TV토론은 앞선 두 번과 달리 혹평을 받았다. ‘이명박 대세론’으로 TV토론 영향력도 미미했다. TV토론회의 공식 시청률은 역대 최저인 21.7%였다. 1997년(53.2%)과 2002년(34.2%) 시청률에 비해 현저히 낮았다. 토론회에 참여하는 후보 수가 늘어난 것도 한 원인이다. 이전까지는 당선 가능성이 큰 순서대로 3명의 후보만 참여했다. 하지만 2007년부터는 국회 의석수 5석 이상의 정당 후보, 직전 총선 득표율 3% 이상을 기록한 정당 후보, 후보 등록 마감 30일 전 여론조사에서 5% 이상 지지율을 기록한 후보가 모두 참석하도록 규정이 바뀌었다. 때문에 이명박·정동영 두 후보와 함께 이회창·문국현·권영길·이인제 후보 등 6명이 TV토론에 참석했다. 참여하는 후보가 늘어난 데다 정견 발표 뒤 인신공격에 가까운 말싸움을 벌여 정책토론은 사라지고 네거티브만 남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결국 TV토론에서는 가장 잘했다는 정 후보가 사상 최대의 표 차로 패하는 등 TV토론이 변수로 작용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TV토론의 영향력이 줄었다고 평가하는 것은 성급한 결론이다. 올 대선 구도와 비슷한 2002년 대선의 경우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TV토론이 지지 후보를 결정하는 데 영향을 줬느냐.”는 질문에 유권자의 60%가 “그렇다.”고 답했다.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TV토론은 지지자들이 지지 근거를 확인하고 부동층이 움직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면서 “특히 이번 대선에서는 정책 대결이나 검증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TV토론의 희소가치가 더 높다.”고 지적했다. 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
  • 朴 “盧 정권 이념투쟁만 해”… 文風 차단 주력

    朴 “盧 정권 이념투쟁만 해”… 文風 차단 주력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는 30일 부산·경남(PK) 지역을 1박 2일 일정으로 찾았다. 박 후보는 특히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의 국회의원 지역구인 부산 사상구 유세에서 문 후보와 노무현 정부에 대한 날 선 비판을 했다. ●“부산 가덕도에 신공항 유치” 박 후보는 “문 후보는 선거운동 첫날부터 부산에 와서는 미래는 이야기하지 않고 과거사 공격만 늘어놓았다.”면서 “그런 무책임한 선동만 하니까 정치가 과거로 돌아가고 국민의 삶은 보이지 않는다. 그런 구태의연한 정치로 부산이 발전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노무현 정권에 대해서도 “부산 정권이라고 시민들이 기대를 하고 밀어줬지만 정작 집권하자마자 그런 기대를 저버리고 이념 투쟁과 선동 정치로 날을 지새웠다.”고 비난했다. 민생 정부를 만들겠다고 강조한 박 후보는 “성별과 세대, 지역을 떠나 탕평 인사로 골고루 인재를 등용해 최고의 일류 정부를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또 최근 검찰 문제에 대해서는 “검찰 같은 권력 기관들이 국민 위에 군림하는 일이 절대 없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검찰을 아예 새로 만들겠다는 각오로 확실하게 개혁하겠다.”고 덧붙였다. 지역 공약도 내놨다. 박 후보는 “신공항에 대한 부산 시민의 기대를 잘 알고 있다.”면서 “부산 가덕도가 (신공항의) 최고 입지라고 한다면 당연히 가덕도로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무성 “김영삼·김종필·한화갑 朴지지 약속” 한편 김무성 총괄선대본부장은 이날 부산 지원유세에서 “김영삼 전대통령과 김종필 전 총리, 심대평 전 자유선진당 대표도 박 후보를 지지하겠다고 약속했다.”며 “호남의 대표적 정치인인 한화갑 전 민주당 대표도 조만간 박 후보 지지에 합류할 것”이라고 밝혔다. 부산 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 “安지지 부동표 잡아라” 朴 정치쇄신·文 용광로 선대위 승부수

    ■朴측 安지지층에 공개 구애 새누리당은 안철수 전 무소속 대선 후보의 빈 공간을 차지하기 위해 먼저 ‘정치쇄신’으로 치고 나갔다. 안대희 당 정치쇄신특위 위원장은 26일 오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새누리당은 정치쇄신의 대장정을 시작한다. 박근혜 후보와 새누리당은 쇄신책을 이미 발표했으며, 구체적 실행안 역시 마련돼 있다.”면서 “박 후보와 새누리당은 쇄신안의 충실한 실천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안 위원장은 “정치쇄신의 시작은 선거쇄신”이라면서 “박 후보와 새누리당은 이번 선거에서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흑색선전을 하지 않을 것이고, 막말정치와 폭로정치를 비롯한 혐오정치를 배격하여 반칙이 없는, 원칙에 충실한 선거를 치를 것”이라면서 “문재인 후보와 민주통합당 역시 이러한 박 후보와 새누리당의 선거쇄신 노력에 동참하라.”고 촉구했다. 이어 자신이 야권에 제안한 정치쇄신실천협의기구 구성에 안 전 후보가 호응해 온 것을 상기시키며 “민주당이 안 전 후보와 이른바 새 정치를 위해 야권 단일화를 논의한 것이라면 안 전 후보의 뜻을 존중해 즉각 기구 출범에 동의해야 한다.”고 압박했다. 이어 “새누리당은 협의기구와 별도로 쇄신안 실천 방안을 강구해 국민에게 보여 주겠다.”고 말하면서 검찰 등 권력기관 신뢰회복 방안과 관련해서는 “틀림없이 며칠 내로 발표하겠다.”고 약속했다. 당의 한 관계자는 “문 후보가 정치개혁 문제를 놓고 안 전 후보와 경쟁을 벌이다 내내 공격당하고 곤경에 처하기도 했다.”면서 “두 후보가 이 문제를 매듭짓지 못한 채 사실상 단일화가 결렬됐으므로 정치개혁 문제만큼은 새누리당이 우월적 위치에서 민주당을 공격할 여지가 충분하다.”고 주장했다. 이를 입증하듯 안 위원장은 “안 전 후보의 쇄신안을 적극 보완해 새 정치의 열망을 이룰 것”이라며 안 전 후보 지지자들에게 공개 구애했다. 안 위원장은 “안 전 후보 지지자들이 열렬히 원했던 정치쇄신 방향은 권력형 부패 척결, 친인척 비리 척결, 여야 정쟁 금지, 공권력 오남용 방지 등에 있었다.”면서 “(안 전 후보 측 쇄신안과 우리의 쇄신안은) 70∼80%가 같은 방향”이라고 설명했다. “국회의원 세비심사위 등 구체적 안은 충분히 받을 수 있다고 특위에서 이미 검토했고 근본적 차이를 제외한 몇 가지 부분, 국회 개혁, 국정감사 강화 등은 충분히 받을 수 있는 안으로 검토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당정치를 혐오해 ‘안철수식 새 정치’에 열광해 온 안 전 후보 지지층을 흡수하기 위한 전략인 셈이다. 이지운기자 jj@seoul.co.kr ■文측 ‘국민연대’ 구체화 전략 고심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 측이 ‘새정치공동선언’에서 밝힌 국민연대를 구체화하기 위한 공동선대위 구성이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문 후보 측은 안철수 전 후보 측과 중도·무당파층, 합리적 보수세력까지 포함하는 ‘제2의 용광로 선대위’로 승부수를 띄운다는 복안이다. 하지만 야권 단일화 과정이 순탄치 않았던 만큼 안 전 후보 지지 세력을 이탈 없이 묶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문 후보 측은 공동선대위를 통해 양 세력이 유기적 결합을 이룰 것을 기대한다. 김부겸 전 공동선대위원장은 26일 한 라디오에 출연해 “모든 것을 비워 놓고 안 전 후보 측뿐만 아니라 그동안 어느 세력 편도 들기 어려워 관망하던 분들까지 포함한 큰 선대위를, 제대로 된 의미의 용광로 선대위를 꾸려 보자는 취지”라고 말했다. 외부 인사 영입 카드도 거론된다. 단일화 가교 역할을 자임했던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단일화 촉구 성명을 냈던 황석영씨 등 문화예술·종교계 인사 102명,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 문 후보 지지를 선언하며 사퇴한 심상정 진보정의당 전 대선 후보 등이 영입 대상이다. 당내 대선 후보 경선 패배 후 두 달여간 칩거해 온 손학규 상임고문도 27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리는 집중유세에 참석하는 것을 시작으로 문 후보 지원에 나서며 정치활동을 재개할 것으로 알려졌다. 문 후보 측은 안 전 후보 측 핵심 인사들에게 연락해 공동선대위 합류를 조심스럽게 권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안 전 후보 측 관계자는 “문 후보 측으로부터 크게 바라보고 가자는 연락을 받았다.”고 말했다. 안 전 후보 측에서도 국민연대라는 큰 틀 아래서 문 후보 측과 결합할 것으로 보는 시각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문 후보 측에 흡수되는 방식보다는 안 전 후보를 지원하는 독자적인 세력으로 남기를 바라는 기류가 감지된다. 안 전 후보 측의 한 인사는 “안 전 후보가 어떤 결정을 하느냐에 달려 있겠지만 지역 포럼은 남을 것 같다.”며 캠프 구성원들이 독자 세력으로 남는 쪽에 무게를 뒀다. 민주당 일각에서는 공동선대위가 1997년 김대중·김종필(DJP) 연합 당시의 매머드급 공동선대위와 같은 형태가 되지 않겠느냐는 전망도 나온다. 문 후보 측 관계자는 “1997년 당시에는 공동선대위에서 중요 사항은 결정하되 자민련 조직은 그대로 뒀다.”면서 “안 전 후보 측도 별도 조직을 둘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안 전 후보가 선대위에 참여하지 않고 별도로 지원하는 형태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볼 수 있다. 황비웅기자 stylist@seoul.co.kr
  • 선거운동 초반 지지율 1위, 청와대 들어갔다

    선거운동 초반 지지율 1위, 청와대 들어갔다

    역대 대선에서 D-30일, 후보 등록, 선거운동 기간 돌입 시점은 각 후보 간 지지율의 변곡점이 됐다. 흥미로운 건 대선 여론조사가 처음 시작된 1987년 13대 대선 이후 2007년 17대 대선까지 모두 다섯 차례 대선에서 법정 선거운동 기간에 1, 2위가 바뀐 적은 단 한 차례도 없었다는 점이다. 2002년 16대와 2007년 17대는 이번 18대 대선과 정치 일정이 똑같다. 12월 19일 대선이 치러졌고, 11월 27일부터 법정 선거운동이 시작됐다. 2002년의 경우 후보 등록 직전인 11월 23일 갤럽 조사까지 당시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가 32.3%로 줄곧 선두였고, 노무현 민주당 후보 25.4%, 정몽준 국민통합21 후보가 25.1%로 박빙이었다. 그러나 하루 뒤인 24일 노·정 단일화가 되자 전세는 역전됐다. 25일 여론조사에서 노 후보는 43.5%로 올랐고, 이 후보는 37.0%를 기록했다. 노 후보는 단일화 이후 단 한 차례도 역전을 허락하지 않았고, 정 후보의 지지 철회도 최종 결과에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1997년 15대 대선에서는 11월 3일 당시 김대중 국민회의 후보와 김종필 자민련 후보가 후보 단일화에 전격 합의하며 지각 변동을 일으켰다. 같은 달 15일 여론조사까지 김대중 후보는 34.0%로 1위를 달렸고, 이회창 신한국당 후보와 이인제 국민신당 후보가 각각 24.4%, 23.7%로 박빙이었다. D-30일이던 18일을 기점으로 이회창-이인제 후보의 단일화가 최종 무산됐다. 신한국당은 같은 달 21일 민주당과 합당해 한나라당으로 당명을 바꾸는 승부수를 띄우며 추격에 나섰다. 공식 선거운동 개시 후인 11월 29일 조사에서 김대중 후보는 32.8%, 이회창 후보는 29.3%로 양강 구도가 형성됐고, 김대중 후보의 우위는 선거 결과까지 이어졌다. 2007년 대선은 당시 야당인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가 부동의 1위였다.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와 이인제 민주당 후보, 문국현 창조한국당 후보의 범여권 단일화가 시차를 두고 무산된 후, 이명박 후보는 투표일까지 줄곧 독주 체제를 굳혔다. 안동환기자 ipsofacto@seoul.co.kr
  • [사설] 文·安, 단일화 이후 연대 구상 명확히 밝혀야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와 무소속 안철수 후보 측이 재개한 단일화 논의에는 가장 중요한 사안이 빠져 있다. 단일화 이후, 나아가 단일후보가 대선에서 승리하면 집권세력을 어떻게 구성하고 두 사람이 어떤 관계를 설정할 것인지가 제시되지 않았고, 그럴 기미도 안 보인다. 지난 5일 내놓은 ‘국민연대’ 구상이나, 단일화 협상 중단으로 닷새간 묵혔다가 그제 발표한 새정치공동선언도 대개가 새로울 것 없는 성긴 내용들로, 대체 두 사람이 뭘 어떻게 같이하겠다는 것인지 알 길이 없다. 어제 두 후보가 제각각 언론 인터뷰와 토론회 등을 통해 보여준 엇박자는 국민들을 더 헷갈리게 한다. 그동안 대통령-국무총리 공동정부론을 제기해 온 문 후보는 한국기자협회 토론회에서 “안 후보로 단일화될 경우 공직을 맡을 생각이 없다.”며 백의종군론을 폈다. ‘문재인 대통령-안철수 총리’ 카드는 있을 수 있어도, 그 반대의 경우는 있을 수 없다는 자가당착적 발언으로 들린다. 반면 안 후보는 한국일보 인터뷰에서 “대통령-국무총리 역할분담 약속은 없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과거 DJP(김대중·김종필) 연대는 1년여의 논의 끝에 ‘공동정부 구성’을 국민에게 제시하고, 선택을 물은 바 있다. 반면 2002년 노무현·정몽준 단일화 때는 그 어떤 논의도 없이 단일화에 임했다가 이후 물밑 협상에서 내치와 외치를 나누니 마니 하며 진통을 겪은 바 있다. ‘대선 승리 후 세력 연대’ 정도의 얼개만 내놓은 지금 두 후보의 논의는 이들 과거 두 사례의 중간쯤에 어정쩡하게 자리해 있는 상황이다. 누가 됐든 패자는 승자를 어떻게 돕겠다는 약속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단일화 이후 필연적으로 볼썽사나운 자리 나눠먹기 드잡이가 펼쳐지게 된다. 이는 두 후보의 공멸로 이어질 뿐 아니라 한국 정치를 거듭 퇴보시키는 행위가 된다. 새 정치 선언이라는 장전을 만들고, 분야별 정책을 조율한다고 연대가 완성되는 게 아니다. 단일화 이후 대선에서 승리한다면 집권세력을 어떻게 구성하고 이끌겠다는 구상을 명확히 밝히고 선택을 구해야 한다. 그것이 여론조사 등 단일화 과정에 참여하게 될지도 모를 대한민국 유권자 모두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다.
  • [씨줄날줄] M&A와 후보 단일화/임태순 논설위원

    기업은 인수합병(M&A)을 통해 외형을 키우거나 기업가치를 높인다. 또 사업 다각화나 시너지 효과를 거두기 위해 M&A를 하기도 한다. SK그룹은 알짜배기 공기업을 인수해 덩치를 키운 대표적 기업이다. 유공을 물려받아 SK에너지로 키웠고, SK텔레콤은 한국이동통신을 모태로 하고 있다. 그러나 M&A가 항상 긍정적 효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기업문화의 이질성을 극복하지 못하고 결별하거나 실제 가치보다 프리미엄을 과도하게 지급해 인수기업이 휘청거리는 경우도 있다. 미국의 경영 컨설팅사 매킨지는 1997년부터 2006년까지 M&A를 한 1000개 기업을 분석한 결과 62%가 오히려 기업가치가 저하됐다는 보고서를 냈다. 대표적인 실패사례가 다임러크라이슬러사다. 자동차 업계의 쌍벽을 이루는 독일의 다임러벤츠와 미국의 크라이슬러는 1998년 결합했으나 완고함과 서열 중심의 독일 기업문화와 자유분방하면서도 성과를 중시하는 미국 기업문화가 융합되지 못해 2007년 끝내 갈라서고 말았다. 후보단일화 등 정치적 M&A는 선거에서도 자주 등장한다. 최근의 사례는 곽노현 전 서울시 교육감을 꼽을 수 있다. 그는 진보진영 후보단일화를 통해 교육감에 선출됐으나 후보사퇴의 대가로 금품을 준 사실이 적발돼 직도 잃고 수감생활을 하고 있다. 선거에서의 M&A는 대부분 당선으로 이어져 효과가 높다. 후보단일화는 지지세력이 엇비슷할 때보다 우열이 심할 때 이루어지기 쉽다. 1997년 대선에서 김대중 국민회의 후보와 자민련 김종필 총재가 DJP 공조에 쉽게 합의할 수 있었던 것도 지지율 격차가 컸기 때문이다. 반면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민주당 후보와 정몽준 국민통합21 후보 간의 단일화는 선거 하루 전 파기되기는 했으나 대등한 세력 간 후보단일화로 기록되고 있다. 이번 선거에서도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와 안철수 무소속 후보 간의 대선 후보단일화가 한창 진행 중이다. 두 후보의 지지율은 서로 엇비슷해 단일화를 둘러싼 신경전, 힘겨루기가 치열하다. 급기야 안철수 후보는 민주당이 ‘안 후보 양보론’을 퍼뜨리는 것에 반발, 단일화 협상 중단을 선언하기도 했다. 문재인 후보가 사과를 하고 안철수 후보가 당 혁신을 위한 회동제의를 했으나 두 사람 간의 앙금은 쉬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하늘에 태양이 두 개가 아니듯이 권력의 세계는 나눔에 익숙지 않다. 그러나 두 사람이 정치쇄신을 주장해 온 만큼 그 정신에 충실하면 단일화가 어렵지도 않을 것 같다. 임태순 논설위원 stslim@seoul.co.kr
  • [사설] 文·安, 새 정치선언 넘어 공동정부 구상 밝혀야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와 무소속 안철수 후보가 새 정치 공동선언의 얼개를 마련했다고 한다. ‘안철수 양보론’을 둘러싼 신경전으로 협상이 잠정 중단되는 진통이 따르고는 있으나 조만간 ‘새 정치’의 윤곽이 드러날 듯하다. 새 정치 구현 의지를 내세워 후보 단일화의 당위성을 확보하려는 선제 조치인 셈이다. 국무총리 인사제청권 보장과 대통령 임명권 축소, 정당의 상향식 공천과 비례대표 의원 정수 확대 등의 내용이 담길 것으로 알려졌다.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의 정치쇄신안과 상당부분 겹칠뿐더러 그동안 정치권 안팎에서 숱하게 제기돼 온 내용들이라 그다지 새로울 것은 없지만, 제대로 실천된다면 정치 발전에 기여하게 될 것이라는 점에서 기대를 갖게도 한다. 한데 이 공동선언에는 단일화와 맞물려 가장 중요한 핵심내용이 빠진 것으로 알려졌다. 바로 국민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문재인-안철수 공동정부의 청사진이다. 누가 단일후보가 되든 대선에서 승리하면 두 후보는 공동정부 형태로 국정을 운영할 것으로 보는 게 불문가지의 현실이다. 두 후보가 지난 6일 만나 ‘국민연대’ 구성을 다짐한 것도, 그리고 양측이 새 정치 선언과 별개로 경제·복지 정책과 통일외교안보 정책을 조율하고 있는 것도 다 공동정부 운영의 밑그림을 그리는 차원이라고 할 것이다. 그런데도 두 후보는 단일화가 임박한 지금까지 연기만 피운 채 정작 단일화의 대명제인 공동정부 구성에 대해서는 일언반구조차 없다. 두 후보 나름의 대선 전략일지는 몰라도 유권자에 대한 진솔한 자세는 아니라 할 것이다. 공동정부의 형태는 DJP(김대중·김종필) 연대처럼 대통령-국무총리 분담 체제가 될 수도 있고, 신당 창당 등의 형태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를 권력 나눠먹기로 보느냐, 국민통합 행보로 보느냐는 단순히 관점의 차이를 넘어 전적으로 두 후보의 자세에 달렸다. DJP 연대가 내각제 개헌 밀약으로 혼란을 겪다 끝내 붕괴된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라도 투명하고 당당한 논의가 요구된다. 단일화를 하겠다면 지엽적인 기싸움을 접고 최소한 어떤 모습의 정부로, 어떻게 국정을 꾸려나갈 것인지부터 밝히는 게 유권자에 대한 도리일 것이다.
  •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 “저로 단일화돼야죠…아니었으면 安에게 벌써 양보했을 것”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 “저로 단일화돼야죠…아니었으면 安에게 벌써 양보했을 것”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는 집권 시 임기 초반에 4년 중임제의 ‘원포인트 개헌’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문 후보는 지난 10일 서울신문과 국회 의원회관에서 가진 단독 인터뷰에서 개헌 구상에 대해 “안철수 무소속 후보의 뜻도 같다는 것이 확인되면 공동으로 개헌을 추진하고, 저와 안 후보가 발표하는 새정치공동선언에 개헌안을 담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문 후보는 “정권 교체뿐 아니라 시대 교체까지 이루려면 변화된 시대 과제들이 헌법에 반영돼야 하고, 권력 구조뿐 아니라 국민 기본권 조항까지 헌법을 제대로 손봐야 한다.”며 전면적인 개헌 의지도 밝혔다. 당선 후 국회 개헌특별위원회 설치도 제시했다. 문 후보는 자신으로의 단일화가 “당연한 것”이라며 “저로 단일화돼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안철수 후보에게) 양보했을 것이고, 애초 민주당 경선에도 안 나갔어야 한다.”고 밝혔다. 서울신문은 문 후보뿐 아니라 박근혜·안철수 후보에게도 인터뷰를 요청했으며, 박·안 후보가 이에 응하면 인터뷰를 게재할 계획이다. 대담 박찬구 정치부장 →문재인 후보로 단일화해야 하는 이유는. -제가 100만명 국민 선거인단이 참여한 (민주통합당의) 완전국민경선을 통해 후보로 선출됐다. 저로 단일화돼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너무나 자연스럽다. 제가 대통령감으로 더 낫다고 생각한다. →‘아름다운 단일화’가 무엇인가. -과거의 DJP(김대중-김종필) 연합과 노무현-정몽준 단일화는 정체성이 완전하게 다른 분들 간의 결합이었지만 국민 지지를 받고 정권 교체를 해낼 수 있었다. 2012년 단일화는 가치와 정책을 공유하는, 국민에게 새로운 정치, 정권 교체 이후의 새로운 세상에 대한 희망까지 제시하는 단일화다. 각자 자신에게 유리한 단일화 방식에 집착하지 않고, 국민이 바라는 방향에 맞추는 게 감동을 주는 아름다운 단일화다. →상대 후보로 단일화됐을 때 지지율 이탈을 최소화하는 복안은. -역사적 경험을 갖고 있다. 노무현-정몽준 단일화는 서로 다른 세력이었지만 단일화 이후 두 분이 각각 받던 지지도를 합친 것보다 더 높은 지지를 당시 노무현 후보가 받았다. 정권교체가 될 수 있다는 붐이 생기면 더 많은 지지가 가세하게 되고, 상대적으로 박근혜 후보의 지지는 이탈될 것이다. 그것이 단일화 효과 아닌가. 자꾸 단일화되면 지지율이 이탈될 수 있다고 말하는 건 역사가 보여주는 진실을 가리는 것이다. →두 후보 간의 담판, 여론조사, 국민참여경선, TV토론 배심원제 등 룰이 관심인데. -여러 개인적인 생각이야 있을 수 있지만 그 판단을 말하는 건 적절치 않다. 단일화를 위해 협의 중이다. →국민의사가 반영될 수 있는 객관적인 지표는. -구체적인 방식을 얘기하는 건 적절치 못하다. 사실 (단일화 룰) 논의까지 다 열어놓고 하면 좋겠다는 게 제 생각이다. 양 후보나 시민사회, 언론이 자유롭게 논의하면 좋겠지만 우리 토론 문화가 그렇지 않지 않은가. 한쪽이 이렇게 이야기하면 협박한다고 그러시고…. 자유로운 논의가 되지 않으니 생각을 말하는 게 바람직하지 못하게 된다. →민주당에 대한 안 후보 지지자들의 반감 혹은 실망이 적지 않다는 분석도 있는데. -아니 왜 그게 ‘반감’이라고 표현되는가. 그렇게 반감이 있다면 어떻게 단일화를 할 수 있나. 민주당보다 자기들(안 후보 측)이 더 새로운 정치를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상대에 대한 반감이 있으면 마주 앉을 수 없다. →그동안 기득권을 내려놓겠다고 강조했는데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방식은. -지금까지 밝혔던 정당 혁신의 방안은 단순한 주장이 아니다. 민주당의 실천을 전제로 한 방안이다. 이미 발표한 것만 해도 혁명적인 변화다. 대한민국의 정당 구조, 정당 질서, 정당 문화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것이다. 민주당 의원들도 의원총회에서 당론으로 받아들이고 실천하기로 결의했다. 이제 새로운 정치선언을 통해 추가할 것이고, (안 후보와) 함께 실천하면 된다. →당 지도부 퇴진론에 대해 ‘제게 맡겨 달라.’고 했는데. -새로운 정치 선언을 지금 협의하고 있기 때문에 따로 얘기하는 건 적절치 않다. 과거 열린우리당 때부터 선거에 실패하거나 국민 지지를 잃으면 수없이 지도부를 개편했다. 근본적으로 정당 구조와 질서, 문화를 바꾸는 게 필요하다. →국민연대는 양 진영의 화학적 결합 방식인가. -어떻게 양쪽이 합의될지는 알 수 없다. 단일화의 기본은 선택된 후보가 단일 후보로 나서고, 다른 쪽은 거기에 승복하는 것이다. 저와 안 후보는 그런 단일화를 넘어서서 민주당과 안 후보를 지지하는 세력들이 온전하게 다 함께 힘을 합쳐 단일화를 하자는 것이다. 그 힘을 합치는 방안을 ‘국민연대’라고 표현한 것이고, 어떤 방식으로 할 것인지는 서로 공통분모를 찾아야 한다. →안 후보로 단일화될 경우 민주당 입당 조건은 유효한가. -연대의 방식으로 앞으로 논의해야 될 문제다. 그런 논의는 맡겨 주셔야 한다. →안 후보에 대한 평가는. -안 후보는 이미 많은 기여를 했다. 박근혜 대세론을 무너뜨렸고, 안 후보 자체가 새로운 정치의 엄청난 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제 단일화를 통해 힘을 합치면 대선에서 이길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됐다. →‘새 시대의 맏형’이 되겠다고 했다. 문 후보의 국정운영 구상은. -노무현 대통령은 1987년 체제 속에서 대통령이 됐다. 1987년 체제의 기본 정신이 ‘정치적 민주주의’를 제대로 하자는 것이고, 참여정부는 그 시대정신에 충실했다. 참여정부 기간 동안 정치적 민주주의는 최고도로 발전했다. 그러나 사회경제적 민주화에 대한 요구를 충분히 (수용)하지 못한 게 참여정부의 한계였다. 이명박 정부는 더 후퇴해 버렸다. 이번 대선에서 출범할 정부는 2013년 체제다. 핵심은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 요구다. 2002년 대선 때는 구호로도 쓸 수 없었다. 좌파 소리를 들었다. 10년 동안 국민 의식과 요구가 바뀌었다. “개헌, 임기 초 곧바로 실행… 安후보 동참땐 공동개헌 추진” →1987년 체제의 전환으로서 개헌에 대한 구상은. -시대 교체가 체제 전환이다. 변화하는 시대 과제를 헌법에 제대로 반영해야 한다. 1987년 헌법은 대통령 직선제를 담는 것에 급급했다. 권력구조뿐 아니라 국민 기본권 조항까지 제대로 헌법을 손보는 게 필요하다. 헌법 제도에 관한 충분한 논의를 거치고 여론 수렴이 되면 개헌해야 한다. 국회에 개헌특별위원회를 설치해 연구해야 한다. 우리에게 시급한 4년 중임제나 국회의 대통령과 행정부 견제 강화 등은 합의가 이뤄지면 원포인트 개헌으로 우선해서 할 수 있다. 사전에 선거 공약으로 제시해 국민이 지지하면 임기 초에 곧바로 실행할 것이다. 안 후보도 뜻이 같다는 게 확인되면 공동으로 추진하거나 새정치공동선언에 담을 수 있다. →4년 중임제와 분권형 개헌에 대해 안 후보와 교감이 있나. -총리가 헌법에 정해진 대로 인사 제청권, 각료에 대한 해임 건의권 등을 제대로 행사하면 대통령의 남용을 견제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총리 임명 과정부터 여당과 협의하고, 총리를 중심으로 한 정당 책임정치도 해낼 수 있다. 삼권분립 면에서 국회 기능이 대통령과 행정부를 견제하는 데 치밀하지 못한 부분은 개헌을 통해 확대시켜 나갈 필요가 있다. 미국식으로 법률안 제안권을 국회에 두거나, 예산 편성권도 기본적으로 국회에 두는 방법을 생각할 수 있다. 감사원 기능 중 회계감사 기능을 국회로 이관하거나, 국정감사 상시화로 연중 국회가 가동되게 해야 한다. →경제민주화 관련 차기 정부조직 개편 구상은. -기존 정부부처 기능을 제대로 활성화하려고 한다. 추가한다면, 일자리를 통해 경제민주화를 이뤄야 하는데, 대통령 직속 일자리 위원회를 신설할 필요가 있다. 고용노동부에 일자리청을 두거나 별도로 둘 수도 있다. 재벌 거래질서를 공정하게 하기 위해 공정거래위원회 권한을 대폭 강화하고, 중소기업부를 신설해 중소기업을 적극 육성해야 한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큰 정부가 될 것으로 예측되는데. -‘작은 정부가 선(善)’이라는 미신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명박 정부가 정부 부처들을 폐지하고 통합했다. 그것이 다 실패라고 누구나 생각하고 있다. 심지어 박 후보조차도 그 기능들을 되살리겠다고 하는데, 사실 박 후보와 당시 한나라당 의원들이 폐지법안을 제출하며 다 찬성했었다. 한마디 사과나 반성도 없이, 얼렁뚱땅 선거 때가 되니 부활하겠다고 한다. 큰 정부가 목표는 아니지만 제대로 일할 수 있는 정부, 유능한 정부를 만들겠다는 생각이다. →복지 국가 실현을 위해서는 결국 증세가 필요하지 않은가. -저는 이미 증세를 주장하고 있다. 늘어나는 복지재원 대책으로 증세가 필요하다고 솔직하게 인정해야 한다. 증세가 주는 국민 부담을 피하기 위해 ‘부자감세 철회’라는 표현을 썼다. 참여정부 때 조세부담률이 21%였지만 부자감세로 19% 수준으로 줄었다. 부자감세만 철회해도 조세부담률이 2% 포인트 느는 효과가 있다. 지금 수준보다는 증세가 필요하다. 부자감세를 철회하고, 재벌 기업에 집중된 조세감면을 정비하고 법인세 실효세율도 조금 높여야 한다. 자본소득에 대한 과세도 제대로 하면 서민, 중소상인의 추가적인 세부담 없이도 복지 재원을 감당할 수 있다. →투표율 제고 방안은. -제도적으로 투표시간이 연장되면 많은 분들이 투표할 수 있게 된다. 정치권의 의무다. 단일화가 돼서 대선에 승리할 수 있다면 투표시간 연장에 동의하지 않는 박 후보를 투표로 심판하자는 분위기가 될 것이다. 정리 안동환기자 ipsofacto@seoul.co.kr 황비웅기자 stylist@seoul.co.kr
  • [사설] 文·安 여론조사 중심 단일화 바람직하지 않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와 무소속 안철수 후보의 단일화 방안으로 두 후보의 담판과 여론조사, 모바일 투표, 패널 투표 등이 거론되고 있다. 오는 26일 대선후보 등록 마감까지 보름 남짓 남은 촉박한 일정에다 두 후보 지지세력의 이질성, 선거법 등을 감안하면 선거인단을 따로 구성해 경선하는 방식 등은 실현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 결국 1997년 DJP(김대중·김종필)식 담판이냐, 2002년 노무현·정몽준 단일화 방식인 여론조사냐, 아니면 문·안 두 후보가 TV토론을 한 뒤 이를 지켜본 패널, 즉 두 후보가 합의해 선정한 유권자들의 투표 결과와 여론조사를 합산하는 혼합형이냐 정도만이 남은 선택지로 꼽힌다. 이 중 여론조사가 편의성 측면에서 가장 유력한 방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여론조사만으로 후보를 가리는 방식은 여러모로 온당치 않기에 최우선적으로 제척돼야 한다고 본다. 여론 동향을 탐문하는 정도의 기능에 불과한 여론조사를 대선후보 선정이라는 중차대한 정치적 결정의 도구로 삼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선거제도를 근본적으로 왜곡·훼손하는 행위로, 세계 어느 나라에도 유례가 없다. 지지도, 적합도, 선호도 등 어디에 중점을 두고 어떤 표현으로 설문을 만드느냐에 따라 조사 결과가 정반대로 나타나기 일쑤다. 표본 선정의 한계와 오차, 여기에다 역선택을 근원적으로 차단할 수 없는 기술적 한계 등을 감안하면 여론조사로 대선후보를 가리는 행위는 그야말로 난센스다. 이는 조작된 도박에 후보와 나라의 운명을 맡기는 꼴이다. 10년 전 노·정 단일화 때 국내 유력 여론조사기관들이 죄다 후보 단일화 여론조사 참여를 거부했던 것도, 지금 다수 여론조사기관들과 학계에서 여론조사 단일화 방식에 고개를 젓고 있는 것도 다 이런 이유 때문이다. 두 후보 측이 속히 제3의 방안을 도출하는 게 도리다. 혹여 시간을 질질 끌다가 쫓기듯 여론조사로 후보를 가린다면 유권자들의 검증 기회만 빼앗는 꼴이다. 안 후보 측은 새 정치 선언이 선행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두 논의를 병행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본다. 이 선언에 입각해 DJP식 담판을 벌일 생각이라면, 이 또한 국민들에게 당당히 밝히는 게 온당하다.
  • 2002년 실무협상 이후 ·鄭 담판…2012년 文·安 직접 나서 협상 개시

    야권 단일화 국면에 접어들면서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와 안철수 무소속 후보 간 ‘룰의 전쟁’이 시작됐다. 양측은 2002년 16대 대선 당시 노무현 민주당 대선 후보와 정몽준 국민통합21 후보의 극적인 단일화로 ‘이회창 대세론’을 꺾었던 때를 상기하며 방식과 시기에 따른 유불리를 계산하고 있다. 2012년 대선 야권 후보 단일화 협상은 2002년 당시와 시작부터 다르다. 2002년에는 양 진영의 대리인들이 먼저 협상을 시작한 뒤 후보들이 최종적으로 회동하고 합의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이례적으로 후보들이 전격적으로 협상을 개시하고 실무 협상이 뒤따르는 형태다. 문 후보 캠프 관계자는 “실무 기구가 만들어지더라도 결국 규칙을 최종 결정하는 것은 후보들의 결단에 달려 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2002년에는 TV토론 뒤 100%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당시 노무현 후보가 정몽준 후보에 비해 지지율이 뒤처져 있었음에도 유리한 당내 경선 방식을 포기하고 전격적으로 여론조사 방식을 수용한 결과였다. 하지만 2012년에는 상황도 다르고 따질 것도 더 많다. 우선 야권 단일화를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를 이길 수 있는 유일한 수단으로 기정사실화하고 후보 등록일(11월 25~26일)까지 단일화를 마쳐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다. 협상이 지지부진해 등록일이 가까워질수록 손쉬운 여론조사 방식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 문 후보 측은 여론조사 방식도 수용할 수 있다는 입장이지만 국민 경선 방식이 어떤 형식으로든지 포함돼야 한다는 의지도 강하다. 후보 간 담판 방식이 마지막으로 거론된다. 1997년 15대 대선의 김대중·김종필(DJP) 연합 방식이다. 당시에는 내각제를 고리로 한 두 세력 간 지분 나누기 성격이 강했다. 이번에도 책임총리제를 바탕으로 한 권력분점을 고리로 전격적인 담판이 성사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황비웅기자 stylist@seoul.co.kr
  • [사설] 문·안 단일화, 겉치레보다 비전으로 말하라

    민주통합당 문재인 대선 후보와 무소속 안철수 대선 후보가 어제 단독 회동을 하고 오는 26일 대선 후보 등록 마감 전까지 단일 후보를 정하기로 합의했다. 이와 함께 두 후보 지지자들을 모은 국민 연대를 추진하기로 했다고 한다. 안 후보에 대해 제기되는 무소속 대통령에 대한 일각의 우려를 불식하기 위해 정권 교체에 성공하면 민주당과 안 후보 지지 세력을 합친 신당을 창당하겠다는 뜻을 내비친 것으로 풀이된다. 1987년 민주화 이후 대선에서의 정파 연대나 후보 단일화는 한국 정치의 전형이 되다시피 했다. 13대 대선을 앞두고 이뤄진 1990년 노태우·김영삼·김종필씨의 3당 합당과 1997년 김대중·김종필씨의 DJP연합, 2002년 노무현·정몽준 후보 단일화가 대표적 사례다. 13대 대선과 진보·보수 진영이 각기 따로 후보를 낸 2007년 17대 대선까지 1987년 민주화 이후 다섯 차례의 대선 가운데 세 차례 대선에서 연대가 이뤄졌고 세 차례 모두 연대 세력의 승리로 귀결됐다. 정파 연대나 후보 단일화의 파괴력이 그만큼 막대함을 말해준다. 그러나 그런 높은 승산과 별개로 후보 단일화가 국정의 성공을 담보하는지에는 여전히 의문부호가 따른다. 3당 합당이나 DJP연합 모두 집권 후 권력 다툼 끝에 갈라섰고, 노·정 단일화는 정부 각 부처에 대한 자리 나누기 차원의 물밑 협상을 벌이다 대선 직전 단일화 합의 자체가 파기되는 혼란을 겪었다. 후보 단일화의 첫발을 뗀 문·안 후보는 이런 전례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두 세력 간 연대 수순으로 나아가겠다면 무엇보다 단일화 방식을 따지기에 앞서 비전과 가치의 공유가 선결돼야 한다. 새 정치 선언 같은 겉치레성 구호가 아니라 집권 후 국정 방향에 대한 뚜렷한 비전과 이를 뒷받침할 구체적인 실천 계획들을 제시해야 한다. 이제껏 단일화 논의를 미루다 시간이 부족하니 대선 이후에 구체적 복안을 마련하겠다고 한다면 이는 국민을 우롱하는 처사가 아닐 수 없다. 대북 정책 현안이나 재벌 개혁, 교육 정책 등에 있어서 드러난 간극부터 조율하고 정리하는 게 책임 있는 자세다. 책임총리제를 고리로 권력을 나누겠다면 이 또한 공개적으로 논의하고 국민의 판단을 구하는 게 당당한 태도다. 두 후보의 단일화 논의에 한국 정치의 격과 장래가 달렸음을 명심하기 바란다.
  • 이정현 “단일화는 야합”…우상호 “정치혁신 계기…조용경 “국민 열망”

    이정현 “단일화는 야합”…우상호 “정치혁신 계기…조용경 “국민 열망”

    제18대 대선 유력 후보 3인의 리더십을 한자리에서 비교 평가하는 토론회가 처음 열렸다. 한국대통령리더십학회와 대통령리더십연구소가 30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회관에서 ‘2012 대통령 리더십 대토론회’를 가졌다.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 캠프의 김종인 국민행복위원장과 이정현 공보단장,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 캠프의 박영선 공동선대위원장과 우상호 공보단장, 안철수 무소속 후보 캠프의 조용경 국민소통자문단장과 하승창 대외협력실장 등 6명이 토론자로 참석했다. 유권자들의 가장 큰 관심인 후보 단일화에 대해 안 후보 측 조 단장은 “안 후보를 이끌어낸 것이 정치 혁신에 대한 국민 열망이기 때문에 안 후보가 이를 받들 책임이 있다.”고 단일 야권 후보로서의 당위성을 주장했다.박 후보 측 이 단장은 “2등과 3등 양쪽이 단 한번도 모여서 정책을 논한 적 없는데 정치를 게임으로 보는 야합 단일화를 정치 쇄신으로 보는 국민은 없다.”고 비판했다. ●정수장학회·NLL 날선 공방 그러자 문 후보 측 우 단장은 “공동 가치와 비전을 중심으로 한 단일화로 국가를 바꾸고 정치를 혁신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면서 “선진통일당과 통합한 새누리당은 무슨 할 말이 있나.”라고 반문했다. 안 후보 측 하 실장은 “시대적 과제가 무엇이고 야권 지지자가 어떻게 결집하느냐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후보 측 김 위원장은 “대통령 되겠다는 사람이 무엇을 하겠다는 준비가 안 돼 있다. 국민들에게 적당히 여론이 좋으면 ‘대통령 될 수 있다’고 하면 안 된다.”며 야권 후보들을 동시에 겨냥했다. 그러면서 “대통령이 되고 싶으면 이미 지난해 말까지 대통령이 돼서 무엇을 할 것인지 인사 배치 등 구상이 다 돼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문 후보의 보완사항에 대해 박 위원장은 “성격적으로 너무 착해 흠”이라면서 “친노(친노무현) 그림자 극복 과제는 후보 스스로 너무 잘 알고 있고 용광로 선대위를 구성할 때 친노로 낙인 찍힌 분들이 백의종군을 선언할 만큼 각오가 대단하다.”고 말했다. 안 후보가 국정 운영 경험이 없다는 지적에 대해 조 단장은 “정경유착과 부패, 경제 발전 후퇴, 국민 절망을 풀 단서는 한마디로 정치 쇄신”이라고 단언했다. 국회의원 정수 축소, 정당제 폐지 등 정치 개혁안에 대한 비판에는 “달은 보지 않고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을 보는 격”이라고 맞받아쳤다. 사회자인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소장은 “상대 후보가 이길 비법을 조언해 달라.”는 주문도 했다. 박 후보 측 김 위원장은 “문 후보나 안 후보나 주변에 사람들이 많이 모이다 보니 홀로 결심할 단계는 지났다. 무엇을 단일화의 공통분모로 삼을 것인가가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문 후보 측 박 위원장은 “17대 국회 열린우리당 시절 과반 의석을 갖고도 당시 한나라당을 포용하지 못했다.”고 돌이켜 보면서 “박 후보가 3명 중 가장 강자인데 포용력을 보여 달라.”고 요구했다. 조 단장도 박 후보에 대해 “이 시대 리더십의 요체는 소통과 공감이다. ‘수첩공주’란 별명은 불통이 아니라 오히려 좋은 이미지가 될 수 있다.”고 젊은 층 지지세 확보를 위한 진정한 경청의 자세를 요청했다. 서해 북방한계선(NLL) 논란에 대해 박 후보 측 이 단장이 “NLL 문제는 이어도나 독도가 우리 영토가 아니라는 주장과 똑같다.”고 목소리를 높이자 문 후보 측 박 위원장은 “NLL을 지키지 않겠다고 한 적이 없다. NLL 문제는 안보를 정쟁화하는 아주 좋지 않은 것”이라고 비판했다. 질의자로 나선 노동일 경희대 교수는 “DJP(김대중-김종필) 연합, 노무현-정몽준 단일화 등 앞선 방식의 단일화라면 하나마나”라면서 “상상력을 발휘해 본인들과 국민들 스스로 납득할 가치를 창출해 단일화를 이뤄야 한다.”고 요구했다. 윤희웅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조사분석실장은 “안 후보는 공약, 정책의 파격성이 후보의 불안정성을 부각시킨다.”면서 안 후보가 안정성을 보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삼권분립 가치’ 놓고 논쟁도 한편 박 후보 측 이 단장이 “박 후보가 삼권분립의 헌법적 가치를 실현할 의지를 강하게 가졌다.”고 한 발언을 놓고 문 후보 측 우 단장과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우 단장은 “대통령이 국회 입법권을 장악하겠다는 것은 초헌법적 발상이다. 발언을 수정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이 단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처럼 법을 어겨 탄핵 사태가 오는 등 국론이 분열되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라면서 “인신공격을 하면 정치 쇄신 대상”이라고 맞받았다. 우 단장은 정수장학회 논란과 관련, “박 후보가 ‘정수장학회는 강탈당한 것이 아니며 문제가 없는데 왜 야당이 문제 삼느냐’고 말하는 걸 보면서 표를 의식해 5·16군사정변과 유신 문제에 대해 사과하는 척했구나 의심하게 됐다.”고 지적했다. 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송수연기자 songsy@seoul.co.kr
  • [부고] 이명춘 前국회의원 별세

    [부고] 이명춘 前국회의원 별세

    효림장학재단 이사장을 지낸 이명춘 전 국회의원이 28일 오전 5시 숙환으로 별세했다. 91세. 황해도 봉산 출신인 이 전 의원은 경성사범학교와 육군사관학교(8기)를 졸업했다. 고인은 새마을운동의 전신인 재건국민운동본부 경기도 지부장을 지냈으며 1975년 당시 김종필 국무총리의 비서실장을 맡기도 했다. 1978년 10대 총선에서 유신정우회 소속 전국구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고인은 1979년 10·26 이후 일체의 공직을 사양했다. 유족으로 부인 백보애(84)씨와 3남 2녀가 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장지는 경기 구리시 가족묘원. 발인은 30일. (02)2072-2014.
  • [이춘규 선임기자의 대선 풍향계] 한쪽 후보의 극적 양보 기대감 속 “이제나 저제나” 국민 단일화 피로감 “역사 죄인 되지 마라” 87년 교훈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와 안철수 무소속 후보의 야권후보 단일화 성사는 정권교체라는 측면에서 당연시되는 분위기가 있다. 단일화를 전제로 시기와 방법이 구체적으로 나돌고 있는 이유다. 그런데 누구로 단일화가 되더라도 최소 한 자릿수에서 최대 30%까지 지지표가 이탈할 수 있다는 여론조사가 나오는 등 단일화 만능론을 무색하게 하거나 단일화 무산 가능성도 본격 제기되고 있다. 단일화 무산론은 새누리당에서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와 문·안 후보의 빅3 대결론이 대표적이다. 범야권에서는 여전히 단일화가 당연시되고 있지만 “단일화 무산 가능성이 절반을 넘는다.”는 분석은 물론 70% 이상이라는 주장까지 나온다. 단일화가 난제 중의 난제임을 말해 준다. 역사적으로도 단일화는 난제였다. 1987년 대통령선거 때는 야권의 김영삼·김대중 후보가 재야의 거센 단일화 압박에도 불구하고 ‘3자 필승론’이 나오면서 무산됐다. 그 결과 노태우 민주정의당 후보가 어부지리로 당선됐다. 1997년 대선 때는 김대중 국민회의 후보와 김종필 자유민주연합 총재가 담판을 통해 단일화에 성공, 김대중 후보가 당선됐다. 내각제 개헌을 매개로 했지만 끝내 내각제는 무산됐다. 이인제 국민신당 후보가 여권표를 잠식했지만 불과 39만표 차이였다. 2002년 대선 때는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후보와 정몽준 국민통합21 후보가 여론조사를 통해 단일화를 성사시켰다. 선거 전날 정 후보가 단일화 파기 선언을 해버렸지만 진보진영의 표 결집 현상으로 노 후보가 간신히 이겼다. 2007년에는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와 문국현 창조한국당 후보가 막판까지 티격태격하다 단일화가 무산됐다.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가 초강세여서 단일화를 해도 승리 가능성이 적다는 판단이 작용했다는 평이다. 돌이켜보면 지지율이나 세력 차이가 크게 날 때 단일화는 성공했다. 1997년 대선이 대표적인 예다. 지지율이나 세가 팽팽하거나 단일화 효용이 없을 때는 실패했다. 1987년과 2007년의 경우다. 지지율이 팽팽했지만 세력 차이가 확연했던 2002년에는 단일화에 성공한 듯했지만 최종적으로 결렬됐다. 단일화가 어렵다는 방증이다. 이런 기준에서 보면 문·안 후보의 단일화 여건은 좋지 않아 보인다. 문·안 후보의 지지율은 팽팽하다. 세력 차이도 크지 않아 보인다. 200명 가깝게 팽창한 안 후보 캠프도 정당 수준으로 커졌다. 후보가 자진해서 양보하려 해도 어려운 구조가 돼 버렸다. 1987년 당시 재야세력은 “역사의 죄인이 되지 말라.”며 양 김씨를 압박했지만 단일화에 실패했다. 상대를 주저앉히려 하기보다는 절박성을 갖고 단일화에 임하라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배경이다. 올해도 25년 전처럼 재야를 중심으로 외부 압박이 고조되고 있다. 국민들의 단일화 피로감이 높아지는 등 상황도 점차 엄혹해지고 있다. 한 후보의 극적인 양보를 기대하는 소리도 나오기 시작했다. 두 후보 진영이 단일화 문제를 냉정하게 되짚어봐야 할 때 같다. taein@seoul.co.kr
  • 손 맞잡은 박근혜-이인제…‘忠心’ 잡기

    손 맞잡은 박근혜-이인제…‘忠心’ 잡기

    새누리당과 선진통일당이 25일 합당을 공식 선언했다. 새누리당 황우여, 선진당 이인제 대표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건전한 가치관과 정체성을 공유해 온 두 당이 하나가 돼 시대의 소명에 부응하고 국민 여망을 받들기로 결심했다.”고 밝혔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도 “힘을 합해 국민이 더 잘 사는 나라를 만드는 데 많은 힘이 돼 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환영했다. 이 대표는 “백의종군하면서 박 후보가 당선될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가 새누리당 당적을 갖게 되면 1997년 당의 전신인 신한국당 탈당 이후 15년 만의 ‘친정 복귀’가 된다. 당시 그는 신한국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이회창 후보에게 패배해 탈당한 뒤 국민신당을 창당해 대선 출마를 강행했다가 고배를 마셨다. 2002년 대선 때는 민주당 후보로 나섰지만 ‘노무현 바람’에 밀리자 후보에서 사퇴한 뒤 탈당했다. 이어 자민련에 입당했다가 2007년 대선 때는 민주당에 복당한 후 세 번째 대선 도전에 나섰지만 실패했다. 2008년 총선에서 무소속으로 당선된 그는 지난해 10월 자유선진당에 입당했고 지난 4·11 총선에서 6선에 성공했다. 이렇듯 탈당과 입당, 복당을 반복한 그는 이번을 포함해 당적을 13번째 바꾸게 됐다. 이 대표는 2003년 대선 자금 수사 당시 이회창 후보를 지지하는 대가로 2억 5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 수감됐다가 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았으나 2, 3심에서 무죄를 받았다. 안대희 정치쇄신특별위원장이 이 대표 구속 당시 대검찰청 중수부장으로서 수사를 지휘한 악연이 있다. 합당은 새누리당이 선진당을 흡수하는 형태로 이뤄진다. 선진당은 전신인 자유선진당이 출범한 2008년 2월 이후 4년 8개월 만에 간판을 내리게 됐다. 선진당은 창당 2개월 만에 치른 2008년 총선에서 18석을 얻어 ‘제3당’으로 발돋움했지만 지난 총선에서는 5석에 그쳐 군소정당으로 전락했다. 이는 충청권 기반 정당의 원조 격인 자유민주연합(자민련)의 전철을 그대로 밟는 것이다. 1995년에 창당한 자민련은 1996년 총선 때 50석을 확보했으며 1997년 대선 때는 ‘김대중·김종필(DJP) 연합’을 통해 권력의 한 축을 형성했다. 그러나 2000년 총선 17석, 2004년 총선 4석 등의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든 자민련은 결국 2006년 새누리당 전신인 한나라당에 흡수됐다. 한편 이날 ‘선진통일당 정상화를 위한 전국 당원협의회’는 합당 취소 가처분 신청을 서울남부지법에 제기하는 등 잡음도 일고 있다. 충청권을 대표하는 정치인인 이회창 전 선진당 대표와 김종필 전 총리의 지지 여부에도 관심이 쏠린다. 이 대표는 기자회견에서 “이회창 전 대표가 전폭적인 지지를 표명했다.”고 밝혔지만 이 전 대표는 측근을 통해 “직간접적으로 의사 표명을 한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서울광장] 쇼는 그만 좀 하시지요/육철수 논설위원

    [서울광장] 쇼는 그만 좀 하시지요/육철수 논설위원

    대통령 직선제가 다시 실시된 1987년 대선 때는 분위기가 험악했다. 민주화의 두 축인 김영삼·김대중 후보의 야권 단일화 실패와 지역감정, 군사독재 후유증 등으로 선거판은 전쟁터나 다름없었다. 게다가 ‘5년 단임 대통령’ 개헌안은 선거일(12월 16일)을 두 달도 남겨놓지 않은 10월 27일에야 국민투표를 통과했다. 야권은 통일민주당과 평화민주당으로 갈라져 11월 9일(김영삼)과 12일(김대중) 부랴부랴 후보를 정했다. 그러니 유력 후보(노태우·김영삼·김대중·김종필)들은 국정수행 능력과 정책을 검증받거나 알릴 틈도 없이, 각자 기존의 이미지만 갖고 선거전에 뛰어들었다. 서로 선명성을 내세우고 강성 발언을 쏟아내니 유세장은 폭력으로 얼룩지기도 했다. 김대중 후보는 대구 유세에서 반감이 있는 청중들에게 돌멩이와 달걀 공격을 받았다. 노태우 후보와 김영삼 후보는 광주 유세 때 돌과 쇠붙이가 연단에 날아들어 연설조차 못했다. 요즘 후보들처럼 부드럽고 친밀한 분위기로 아기자기하게 이끌어 가는 선거운동을 지켜 보면 그 당시와 비교가 된다. 벌써 25년이 흘렀고 후보와 유권자도 많이 성숙해졌다. 하지만 후보들의 중량감과 선거의 역동성이 점점 뒷걸음질 치는 느낌을 받는 것은 왜일까. 추석을 지나면서 18대 대통령 선거가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연일 발표되는 여론조사를 보면 박근혜(새누리당)·문재인(민주통합당)·안철수(무소속) 등 ‘빅3’ 후보의 박빙으로 나타난다. 아직 선거전에 본격적으로 돌입한 게 아니어서 후보들은 좋은 이미지를 심기에 정신이 없다. 박 후보는 태풍 피해 현장을 찾아 고무장갑을 끼고 빨래를 하고, 대학생들과 어울려 어설프나마 싸이의 말춤을 추었다. 다문화가정을 대표한 베트남 여성의 발을 씻겨주기도 했다. 문 후보가 논산 육군훈련소를 찾아 얼굴에 위장 크림을 바르고 훈련병처럼 각개전투를 하는 모습도 인상적이다. 어느 여성모임에 참석해 앞치마를 두르고 서툴게 요리 솜씨를 보여주기도 했다. 안 후보도 소방제복을 입고 휴일 근무자들을 격려하고, 태풍 피해 지역을 방문해 어민들을 위로했다. 대학 강연회에도 참석해 젊은이들과 자주 의견을 나눈다. 후보들은 이런 ‘쇼’를 통해 국민과 아픔을 함께하고, 낮은 자세로 섬기며, 세대 간 소통을 하겠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을 것이다. ‘정치는 쇼 비즈니스’라고 했듯, 연출한 이벤트를 탓할 일만은 아니다. 다만 ‘쇼’가 일회성 사진 촬영용으로 끝나지 않고, 거기에 담긴 마음과 열정이 국정에 파묻힐 대통령이 되어서도 변치 않기를 바랄 뿐이다. 이제는 그들의 겉모습을 볼 만큼 봤다. 하루에 한 가지씩 보이려면 후보도 피곤할 테고, 신선하고 눈길을 끄는 행사를 준비해야 하는 캠프 관계자들은 더 고달플 것이다. 형식적인 ‘쇼’는 하면 할수록 식상하고 감동도 식어 버리기 마련이다. 상품은 외관이 좋아야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역시 성능이다. 정치 소비자들은 후보의 성능(국정수행능력과 정책)을 들여다보고 싶어 하는데, 찔끔찔끔 내놓으니 감질이 난다. 박 후보는 ‘하우스 푸어’ 대책을 내놓았다가 시장에서 외면을 당했다. 그래도 대안을 찾으면 되니까 침묵하는 것보다는 낫다. 문 후보는 남북 10·4 선언 5주년을 맞아 대북정책을 밝혔다. 전문가나 언론의 평가·비판과는 별개로 유권자들이 지지 여부를 판단할 근거를 일단 내놓은 셈이다. 안 후보도 “경직된 남북관계를 풀려면 박왕자씨 피격사고, 천안함·연평도 사건에 얽매이지 말고 대화부터 조건 없이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진영논리가 분분하겠지만 그의 대북관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소비자들이 한 가지 성능만 보고 물건을 고를 수는 없는 법. 후보들은 경제민주화, 복지, 동북아 정세 등 집권을 위해 준비한 각자의 보따리들을 좀 더 속도감 있게 풀어야 할 때가 됐다. 그래야 다음 5년 동안에 꿈을 꾸든 미리 희망을 접든 할 게 아닌가. ycs@seoul.co.kr
  • 安의 단일화 구상은 ‘DJP식 공동정부’

    安의 단일화 구상은 ‘DJP식 공동정부’

    안철수 무소속 대선 후보 측이 야권후보 단일화 구상으로 1997년 ‘DJP(김대중·김종필)식 권력분점’ 모델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안 후보 측 핵심 관계자는 4일 “2002년 노무현·정몽준식 후보 단일화도 있고 DJP연합 방식도 있다. 답은 역사 속에 있다.”며 “DJP연합 때처럼 망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 시대의 사명”이라고 강조했다. ‘연합 공동정부 구성’을 매개로 단일화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음을 시사한 것으로 풀이된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는 일찌감치 “책임총리제를 통해 ‘제왕적 대통령’의 권력을 분산하겠다.”며 안 후보에게 공동정부를 구성하자고 제안한 바 있다. 호남과 충청을 기반으로 뒀던 DJ와 JP는 1997년 15대 대선을 앞두고 공동정부 구성에 합의, ‘대통령 김대중·국무총리 김종필’로 권력을 분점했다. 당시는 두 사람이 확고한 정치적 지분을 쥐고 있어 이를 고리로 협상이 가능했다. 정치권은 조직 동원력이 없는 안 후보가 지분보다는 정책연대를 고리로 문 후보와 단일화를 이룰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안 후보 측의 다른 관계자는 “국회의원 하나 없이 대통령이 국정을 운영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현재 상태는 모르겠지만 (안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정당기반을 마련할 것”이라며 대선 전 민주당 입당 가능성에 선을 긋는 한편 대선 이후 민주당과의 국정운영 밀착 공조 가능성을 열어놨다. 창당이나 가설정당 시나리오는 일축했다. 문 후보와 지지층이 겹치기 때문에 창당을 위해 지역 조직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민주당과 마찰을 빚을 수 있고, 가설정당은 온라인을 기반으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인터넷 접근이 어려운 노인 등 정치적 소외계층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단일화 시점은 11월 초·중순쯤, 아니면 대선후보 등록일(11월 25~26일) 직전까지 미뤄질 가능성이 높다. 문 후보 측 핵심 관계자는 “복잡한 단일화 방정식보다는 두 후보의 결단에 의해 이뤄지는 게 단일화”라며 “국민을 납득시킬 수 있는 방식은 정당정치 개혁과 관련한 정책연대뿐이다. 그 전까지는 두 후보 모두 지지율을 높이는 데 주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략을 담당하는 안 후보 측 관계자는 “지금 단일화 얘기를 꺼내면 국민들에게 정치공학적으로 비칠 수 있다.”고 말했다. 문 후보는 정책연대를 통한 단일화를 위해 공약 발표를 후보단일화 이후로 미룬 상태다. 안 후보 측도 오는 7일 공약의 얼개를 발표한 뒤 세부 내용은 시차를 두어 공개하기로 했다. 안 후보 측은 검증공세에도 지지율이 고공행진을 이어가자 고무된 표정이다. 한 핵심 측근은 기자들과의 술자리에서 “저는 고위공무원이 되고 싶습니다.”라는 농 섞인 건배사를 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50여명으로 자원봉사캠프를 꾸려 전체회의에 참석하도록 하는 등 세력 결집에 공을 들이고 있다. 자원봉사캠프에는 서울시장 선거 때 박원순 ‘희망캠프’에 참여했던 인사들과 해외 명문대 유학생, 의사 등 전문직 종사자가 대거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현정기자 hjlee@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