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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2·20」 개각/새 얼굴 9인

    ◎김우석 내무/YS 직계… 소탈한 성격에 배짱 두둑 김영삼 대통령이 통일민주당 총재일때 특별보좌역으로 정계에 입문해 줄곧 주변을 지킨 상도동계.소탈한 성격으로 대인관계가 원만하며 뚝심으로 밀어붙이는 배짱도 두둑하다는 평을 듣고 있다.특히 토지개발공사 사장에 발령이 난뒤 노조가 취임저지 등 강력히 반발했으나 며칠만에 노사갈등을 해소하고 조직을 장악해 일화를 남겼다.지난 87년 정계에 입문할때까지는 언론계·경제계에서 다양한 경력을 쌓았다.김대통령의 신임으로 토지개발공사사장과 건설부장관을 지낸뒤 이번에 총선을 치를 내무부장관에 발탁됐다.부인 김정자씨(51)와의 사이에 1남1녀. ◎안병영 교육/대학교육에 남다른 관심… 조화 중시 완벽주의자이면서 동시에 조화와 화해를 중시하는 합리주의자라는 것이 중론. 전임 박영식 장관이 연세대총장 때 교무처장으로 보필하는 등 평소 대학 교육정책에 남다른 관심을 보여왔다. 학자는 갈고 닦은 지식을 사회발전을 위해 사용하는 것에 인색해선 안된다는 것이 평소 소신.경실련에서 발간하는 정책전문지 경제정의 편집장,천주교 서울대교구 민족화해학교 교무위원,계간지 사상 편집위원 등 왕성한 사회활동을 벌여왔다. 독실한 천주교 신자로 부인 윤정자씨(54)와의 사이에 1남1녀. ◎김영수 문체/업무처리 매끈하고 기획력 돋보여 민자당 전국구의원과 청와대 민정수석을 역임한 정세분석통. 검사시절에는 문세광 8·15저격사건과 울릉도간첩단 사건 등 굵직굵직한 공안사건을 많이 다뤘다.지난 92년 대통령선거 기간중 대선기획위원을 맡으면서 뛰어난 분석력과 기획력을 발휘,문민정부 출범과 함께 청와대민정수석에 발탁됐다. 특히 6공말 이동통신사업자 선정을 차기정부로 넘겨야 한다고 제안,김영삼 대통령의 신임을 얻었다.업무처리가 매끄럽고 빈틈이 없는 데다,소리를 내지않고 맡은 업무만 충실히 해 윗사람이 함께 일하고 싶어하는 형이라는 중평.부인 원종순씨(50)와의 사이에 1남1녀.취미는 테니스와 등산. ◎강운태 농수산/내무행정 베테랑… 광주시장 역임 일처리가 깔끔하고 업무에 관한 아이디어가 많은 내무전문관료 출신.대학재학중 행정고시에 합격한 뒤 72년 공직에 발을 디뎌 내무부 주요부서를 두루 거친 내무행정의 베테랑. 단신에 치밀한 성격으로 상하간 신망이 두텁다.검정고시로 대학에 진학했고 기관장이 돼서도 책을 놓지 않는 노력가로 평가받고 있다.재기가 넘치는 재사형으로 작은 일도 놓치지 않는다는 게 주위의 평가. 청와대 내무행정비서관으로 재직하는 동안 시·군통합 등 행정구역개편에 깊이 관여했다.이를 인정받아 광주시장으로 발탁됐었다.부인 이덕희씨(40)와의 사이에 2남. ◎이석채 정보통신/해박한 지식 평판… 추진력 뛰어나 어딜 가도 가만있지 못하는 성격이다.아는 게 많고 일단 입을 열면 속사포다.정연한 논리로 상대방을 설득시키는 힘과 추진력이 있다.경제차관회의에서 그나마 말상대가 되는 사람은 박운서 통산부 차관뿐이라고 말할 정도로 자부심이 대단하다.그래서 일부 오해도 있고,「적」도 있다. 한이헌 전 경제수석과 고시 7회동기이며 이번 입각으로 7회출신 장관 1호가 됐다.5공 시절 전두환 전 대통령의 아프리카순방때 기내 브리핑을 완벽하게 해내 청와대 비서관으로 발탁된 뒤 출세가도를 달려 왔다.지난 6월엔 북경 남북쌀회담 대표로 활약.부인 문경자씨(47)와의 사이에 2남. ◎정종택 환경/정·관계 두루 경험… 민방위 창설 일익 내무부에서 잔뼈가 굵은 실무행정가로 지방재정에 정통하다.충북지사를 거쳐 농수산부장관 재직중 청주에서 출마,11대부터 12·13대까지 내리 당선됐으나 지난 14대에는 고배를 마셨다.계수에 밝고 기억력이 비상하면서도 관료출신답지 않게 친화력이 좋아 주변에 사람이 많은 편이다.정계진출 이후에도 정무1장관을 지내는 등 관운이 좋은 정치인으로 통한다.지난 71년 대통령 정무비서관 재직시 새마을운동을 추진했고 내무부 기획관리실장을 지낼 때는 민방위 창설의 산파역할을 맡았다.부인 이신직여사(53)와의 사이에 1남4녀. ◎김양배 복지/정통 내무관료… 따르는 사람 많아 「불도저」로 불릴 만큼 뛰어난 업무 추진력을 지닌 정통 내무관료 출신.그러나 일이 끝나고 나면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해줘 따르는 사람들이 많다. 우루과이라운드(UR)협상 막바지에 농림수산부장관을 맡았으나 UR 수정계획서 파문으로 취임 3개월만에 물러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5공」때 초대 광주직할시장으로 재직하면서 광주시민의 응어리 해소와 지역발전에 크게 기여했다.문민정부 초대 행정수석을 맡아 현정부와 인연을 맺었다.취미는 독서.부인 김영희씨(53)와의 사이에 2녀. ◎추경석 건교/국세청서 잔뼈… 공직 36년만에 입각 정통 세무관료 출신으로 59년 주사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36년만의 장관 입성.83년 국세청 조사국장으로 재직하며 「명성그룹사건」을 맡아 「명성」을 날렸고 서울지방국세청장 등 요직을 두루 거친뒤 국세청장으로 4년동안 장기 재직했다. 6척장신의 큰 체구에 조직장악력과 추진력이 뛰어나고 부하직원들에겐 온화한 외유내강형으로 상하간에 신망이 두텁다.누구에게나 비서를 거치지 않고 직접 전화를 거는 형이다.독립유공자로 전남지사를 지낸 고 추규영씨의 장남으로 부인 정수자씨(53)와의 사이에 1남3녀.취미는 등산. ◎주돈식 정무1/기자 출신… 조용한 성격의 「일꾼」평 시류에 흔들리지 않는 「충청도 양반」.잠깐의 교사생활을 거쳐 65년부터 조선일보에서 정치부 기자만 했다.정치부장·논설위원을 하며,성격답게 평형감각을 잃지않는 명칼럼으로 필명을 드높였다.「야당투사」였던 김영삼 대통령과 일찍부터 가까웠다.계속 신임받고 있다. 하버드대학 연수시절 아키노 전필리핀대통령과도 돈독한 관계를 맺었다.낮은 목소리로 조용한 성격이지만,업무처리는 야무지다.문민정부 출범후 줄곧 맡아온 중책을 너끈히 해냈다.자제력도 탁월해 한마디로 「소리없는 개혁주의자」다.부인 변성숙여사(53)와의 사이에 1남2녀.
  • 12·12­율곡비리수사 이모저모

    ◎경복궁 모임/최광수·김정렬씨도 참석 예정/이희성 “광주 병력투입은 정당” 강변/천변호사 “김전수석 큰일할 빼짱 없다” 12·12및 5·18수사는 조사가 거듭될수록 거사의 산실이었던 「경복궁모임」의 성격이 명확하게 윤곽을 드러내고 율곡비리수사도 김종휘 전청와대외교안보수석의 조사가 진전을 보이면서 활기를 더하고 있다. ▷12·12수사◁ ○…11일 상오 10시15분 검찰에 출두했던 5·18당시 계엄사령관 이희성씨가 35시간여의 조사를 마치고 12일 하오 9시40분 귀가. 이씨는 조사내용을 묻는 보도진들의 질문에 『5·18관련 군명령계통과 병력출동 상황등을 조사받았다』고 말해 검찰이 5·18사건에 대한 본격수사에 착수했다는 분석을 입증. 이씨는 조사내용에 대해 입을 다물다가 「 5·18 관련 조사를 받았느냐」고 구체적으로 질문하자 『그렇다』며 시인. 그러나 이씨는 『광주지역에 병력을 투입한 것은 정당한 조치였으며 5·17비상계업 확대조치는 당시 대통령이 대답해야 할 사안』이라고 주장. ○…이어 하오 9시50분 쯤에는 정승화 전육참총장이 소환된지 4시간여만에 귀가. 정씨는 「최규하 전대통령이 검찰측의 방문조사를 거절했다는데 어떻게 생각하는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이번 사건은 전국민적 관심이 모아진 사건인 만큼 「대통령으로서 성실히 직무를 수행하겠다」던 대통령 취임선서문의 정신을 존중,진실을 증언했으면 한다』고 주문. 정씨는 또 「신군부측 인사와 대질신문을 했는가」라는 질문에 『어느 누가 감히나와 대질신문을 할 수 있단 말이냐』며 목소리를 높이기도. ○…이에앞서 장세동 전안기부장은 이날 상오 9시50분쯤 검찰청사에 출두,미리 준비한 발표문을 꺼내 낭독. 장씨는 발표문에서 『정승화 전육참총장은 박정희 전대통령 시해범인 김재규 와 함께한 무책임하고 기회주의적인 행동으로 자신은 물론 군의 명예를 저버렸다』고 주장. ○…12·12 및 5·18사건 특별수사본부는 12일 전두환 전대통령에 대한 조사에서 12·12사건 당시 신군부의 지휘부였던 「경복궁모임」에는 전 합수본부장,노태우 9사단장 등 지금까지 알려진 군인사들 외에 최광수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김정렬 전국방장관(87년 국무총리 역임)도 참석할 예정이었던 사실을 확인.그러나 최전실장과 김전장관은 사정상 불참한 것으로 밝혀졌다. ▷율곡비리수사◁ ○…검찰은 11일 밤과 12일 새벽 사이 김종휘 전청와대외교안보수석과 김용호 GD사 한국지사장 및 김송웅 신한시스템사장 등 3명의 자택과 사무실등에 대한 전격 압수수색을 실시. ○…검찰은 김전수석이 자진해서 귀국한 것과 관련,김전수석과 검찰사이에 경미한 사법처리 약속을 포함한 모종의 「묵계」가 있을 것이라는 일부 보도에 대해 크게 불쾌감을 표명. 안강민 중수부장은 『검찰이 장사를 하는 곳도 아니고 죄를 지은 사람에 대해 사법처리를 하는 기관인데 어떻게 피의자와 흥정을 할수가 있겠느냐』고 반문하고 『못믿겠으면 김전수석의 변호인인 천기흥 변호사를 통해 확인해보라』며 「묵계설」을 강력히 부인. ○…김전수석의 자수서를 대신 제출한천기흥변호사는 이날 김씨의 신병처리 방향등과 관련,『검찰의 조사 결과를 보면 실망할 것』이라고 언급. 천변호사는 또 『김수석은 그렇게 큰일을 벌일 베짱이 안된다』면서 『김씨가 미국으로 건너가면서 은행 개인금고에서 인출해간 것은 비밀문서가 아닌 자녀들 명의의 저금통장인 것으로 알고있다』고 해명.◎안양교도소 표정/단식 10일 맞은 전씨 모습 초췌/측근에 백담사 간 부인안부 물어 ○…단식 열흘째를 맞은 전두환전대통령의 생각은 여전히 확고한 것으로 알려졌다.5공의 정통성을 지켜야 겠다는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다는게 측근들의 설명.따라서 단식을 그만둘 기미도 보이지 않고 있다.담담한 표정에 오히려 백담사에 가 있는 부인 이순자 여사의 안부를 물었다고 소개. 이날 안양구치소에서 전씨를 면회한 이양우 변호사는 『그분의 용태가 눈에 띄게 초췌해 졌다』고 전했다.누워있는 시간이 늘어났고 기력이 쇠잔해 접견시간도 1∼2시간에서 30∼40분으로 줄었다고 전했다.이변호사는 전씨가 쓰러지는 상황을 각오하고 있는 듯 하다고 덧붙였다.
  • 술집서 뇌물 정기상납받아/6개 관공서 세금감면 등 대가로 요구

    【부산=김정한 기자】 세무서와 경찰서·소방서 등 6개 관공서가 룸살롱업주로부터 세금감면 및 시간외영업 무마조로 수십만원에서 수백여만원의 뇌물을 정기적으로 상납받은 사실이 드러났다. 6일 부산지검 동부지청에 따르면 부산 동래구 온천1동 D살롱 업주 이모씨(60)등 3명은 지난해 3월부터 지난 1월까지 동래세무서와 동래경찰서·동래구청·동래소방서·온천1파출소·온천1동사무소 등 6개 관공서에 모두 15차례에 걸쳐 10만원에서 3백만원까지 8백7만원을 상납했다. 검찰은 주점의 지분문제로 분쟁이 있는 이 살롱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뇌물을 준 장부를 확보,이 사실을 밝혀냈다. 그러나 부산지검 동부지청 특수부는 15회의 뇌물공여사실중 업주 이씨가 지난해 5월20일 온천1동사무소 직원 박호영씨(37)에게 재산세감세조건으로 준 3백만원만 수사해 박씨와,이씨를 박씨에게 소개해 준 백태권씨(35·온천1동사무소 직원)등 공무원 2명만 특정범죄가중처벌법과 변호사법 위반혐의로 각각 구속했다.
  • 18억 사기대출 알선 전호텔 여사장 구속

    【부산=김정한 기자】 부산지검 특수부는 1일 상호신용금고로부터 18억여원의 대출을 알선해준 대가로 1천7백만원을 받은 황정연씨(50·여·전창원 제일관광호텔 사장·경남 마산시 합포구 월영2동 614의 186)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했다. 황씨는 지난 93년1월말 가칭 관광호텔 (주)르네상스(전페리호텔)회장 권영오(43)씨로부터 대출알선부탁을 받고 당시 대한교육보험 청량리지점의 전상윤(34)과장등을 통해 부일·국민·조흥 등 부산시내 5개 신용금고로부터 모두 18억7천만원을 담보대출 받도록 해주고 대가로 3차례에 걸쳐 1천7백만원을 받은 혐의다.
  • 경기 정무 부지사에 남재우씨/라전모방 살린 전문경영인 발탁

    이인제 경기도 지사는 31일 정무직 부지사로 경기북부 상의 남재우 회장(55)을 임명했다. 남 부지사는 양복지를 생산하는 의정부 소재 라전모방의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이 업계에서 3∼4위에 랭크된 기업이다. 또 중국 요령성에도 3개의 섬유 업체를 거느리고 있다.한 마디로 전문 경영인이다. 그를 부지사로 기용한 이 지사는 『전국 중소 기업의 26%를 차지하는 도내 중소 기업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실물 경제에 밝은 남 부지사를 모셨다』며 『행정에 경영 마인드를 뿌리내리는 데에도 큰 힘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남 부지사 역시 『기업 경영의 경험으로 실물경제에 행정을 접목시켜,경기도의 발전을 가속화하는데 힘을 쏟겠다』며 『도정의 방침인 1등 경기를 만드는데 전력을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그는 평범한 기업인이 아니다.라전모방을 인수한 것은 지난 83년.노재봉 전 국무총리의 부친이 운영하던 회사로,부도 직전이었다. 인수와함께 월급을 33%나 올렸다.파격이었다.식당의 칸막이를 없애 임원 및 간부들과 일반 직원들이 함께 식사를 했다.공사를 분명히 가리기 위해 친인척을 직원으로 쓰는 일도 삼갔다. 자연히 직원들의 사기는 높아지고 일체감이 생겼다.회사를 떠났던 1백50여명의 직원들이 다시 돌아와,적정 인원인 5백50명으로 늘어나며 활기를 되찾았다.83년 하반기에는 매출이 38억원으로 상반기의 19억원의 거의 배가 됐다. 그러나 인수 1년이 됐을 즈음 불가피하게 부도가 났고,연이어 물난리와 화재를 만나 그야말로 재기 불능 상태에 빠졌다.결론부터 말해 그는 이 위기를 극복하는데 성공했다.「인화」를 내세운 경영이 생산성을 몇 배로 높였기 때문이다. 부도를 내자 당시 노조 위원장이 거래처를 찾아다니며 6억원의 납품 대금을 받아오는 등 전 직원들이 회사 일을 자기 일처럼 생각하고 뛰었다.회사의 자금사정을 고려해 월급을 자진해서 미루기도 했다.노조가 직접 수·화재 복구에 나섰고,필요한 지원을 노조가 직접 정부에 요청했다. 인간적인 신뢰감과 우리사주 조합 결성에 힘입어 근로자들이 혼연일체가 되어 뛰어준 결과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이런 경험을 살려 지난 93년 「팔기회」라는 모임을 만들었다.칠전팔기에서 따온 말이다.갖은 고생 끝에 부도를 낸 중소 기업들을 도와주자는 취지이다.상담을 통해 이들에게 용기를 심어주며 경우에 따라 특별 회원인 변호사와 세무사,변리사,경영학 교수 등과 연결해 주기도 한다. 이 지사와는 대학 동문이라는 외에 별 인연이 없다.경기북부 상공인과의 모임과 회장단 인사차 방문했을 때 몇 차례 만났을 뿐이다. 부지사 제의도 지난 29일 아침식사를 함께 하면서 처음 받았다.선거운동에 도움을 주지 않았느냐는 질문에도 단호하게 『전혀 없다』고 말했다. 행정 경험은 없지만 정무 부지사직이 참모 기능이라,참모역에만 주력할 생각이다.행정 부지사가 따로 있어 마음이 든든하다고 밝힌다. 차제에 기업에서는 손을 떼기로 했다.기업경영은 할만큼 했다는 생각에서 이다.라전모방은 물론 중국 요령성 심양시의 통라모방 등 4개 업체를 모두 다른 경영인에게 넘길 생각이다. 현재 중국 요령성대학과 하북 재경학원의 객원교수 등 중국의 각종 기관의 고문을 여러 개 맡고 있다.이를십분 살려,중국에 진출하는 국내 업체에 대한 자문역할은 계속할 생각이다. 그는 경남 마산 출신으로 마산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다.고려모직(주)을 시작으로 원진레이온의 전신인 세진레이온 무역부장 등을 거쳤다.세진레이온과의 인연으로 지난 93년 원진레이온의 설비를 요령성 단동시에 수출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부인 김정숙(49) 여사와의 사이에 2남1녀를 두고 있다.
  • 신당파동/민주­각파“정치생명 싸움”/민자­“시대흐름 역행”당정

    ◎DJ정계복귀 민자당 대응/“또다시 좌절 맛볼것” 비난 강도 높여/“세대교체로 지역주의 극복”… 공감대확산 주력 김대중 아태재단이사장의 정계복귀에 대해 민자당이 비난의 강도를 높여가고 있다.각종 여론조사 결과가 은퇴번복에 부정적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고무된 듯한 분위기다. 민자당은 6·27 지방선거 이후 김이사장에 대한 비난을 자제해왔다.김이사장의 정계복귀를 시간문제로 여기면서도 김이사장이 자신의 거취에 대해 직접 언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지방선거 패배에 따른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한 탓도 있었다.그러다 김이사장이 예상보다 다소 빨리 정치재개를 선언하자 『더이상 두고볼 수 없다』며 맹공을 퍼붓고 있다.국민과의 약속위반 등 도덕성 문제,지역할거주의의 심화,세대교체라는 시대적 흐름에 역행 등이 주요 타깃이다.개인의 목적을 위해 제1야당을 깨고 신당을 창당하려는 것도 공격의 대상이다. 박범진대변인은 전날에 이어 14일 거센 비난 성명을 발표했다.『건국의 아버지인 이승만 초대대통령도 국민이 반대하면 권력의 자리에서 떠났는데 김이사장이 국민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권력을 쥐어보겠다고 정치일선에 복귀한 것은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리려는 어리석은 일』이라고 비난했다.반역사적 행위라는 주장이다.박대변인은 이어 『김이사장은 지방선거 지원유세에서 정계복귀한 지도자로 프랑스의 드골 대통령과 미국의 닉슨대통령을 예로 들었으나 은퇴후 프랑스 정계가 걷잡을 수 없는 혼란을 겪자 이를 수습해 달라는 국민의 요구로 정계에 복귀한 드골의 경우와 자기당의 총재를 정상적인 방법이 아닌 방법으로 쫓아내고 소속의원의 반대를 무릅쓰고 강행하는 김이사장의 경우는 다르다』고 강조했다. 이춘구 대표는 『정치 도의상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공격했고,김윤환 조직위원장은 『오만과 자만에 찬 행동으로 또다른 착각의 시발』이라고 해석했다.강용식 대표비서실장은 『삼풍백화점 붕괴참사로 온 국민이 충격에 휩싸인 분위기를 틈타 정계복귀를 시도한 것은 국민정서상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라고 지적하고 『국민에게 희망이 아니라 절망만을 줄 뿐』이라고 비난했다. 박희태 국회법사위원장은 『그 양반이 언제 정계복귀를 안했느냐.지금까지는 정치를 안한다면서 정치를 했고,지금은 정치를 하겠다면서 정치를 하고 있을 뿐』이라고 DJ의 이중성을 꼬집었다.황명수충남도지부장은 『우리 정치발전에 도움이 안될 뿐더러 본인에게도 불행한 일』이라고 말했고 박명환의원은 『정치의 룰이 또다시 깨졌다』고 개탄했다. 이처럼 비난일색의 분위기속에서 속내는 복잡하다.이른바 지역당 구도의 정착이라는 「현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야당의 막후실력자에서 공식적인 대표자로 등장한 만큼 정국운영의 파트너로서는 물론 차기정권 경쟁 상대자로 인식을 바꿔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불투명한 정국전망 만큼이나 야권에 대한 전략·전술도 복잡다기해 질 수 밖에 없다. 그렇다고 뾰족한 정국해법이 마련돼 있는 것도 아니다.민자당은 우선 김이사장의 정계복귀,나아가 「대권4수」 가능성에 대해 비난여론이 더욱 확산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범위를 좁히면 반사이익,즉 지방선거 때 나타난 「반민자정서」가 「반DJ정서」로 역풍이 불어주기를 바라는 측면도 엿보인다. 김윤환사무총장은 『경솔하게 내가 직접 김이사장을 비난할 필요도 없이 국민들이 판단할 일』이라면서 『국민정서는 지역패권을 싫어하고 세대교체를 원한다』고 자신감을 표명했다.김이사장의 정계복귀에 대해 반대하는 여론은 60% 이상이라고 민자당은 지적하고 있다.결국 또다시 좌절을 맛볼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민자당은 김이사장과 김종필 자민련총재에게 맞서는 최선의 선택은 세대교체라고 여기고 있다.대대적인 당정개편을 통해 이를 구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민주당 각계파 바쁜 움직임/「살생부」동요 막으려 “현역 우선공천”/신당파/중도파 “퇴진” 요구 거세자 자파의원 단속 부심/KT 김대중 아태재단이사장과 이기택총재의 정면충돌로 초읽기에 들어간 민주당 분당사태는 14일 중도파 의원들이 이총재 퇴진과 창당작업 중단을 요구하며 본격적인 세규합에 나서 이들의 향후 행보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중도파◁ ○…「구당과 개혁을 위한모임」을 구성,이기택총재의 퇴진과 신당창당 작업의 중단을 요구하는 본격 작업에 들어갔다.그동안 김원기·조세형·김근태·노무현부총재와 개혁모임등이 제각각 엇비슷한 요구를 해 오다 이날부터 한목소리를 내면서 세확대에 나선 것이다. 중도파 의원들은 이날 낮 국회 귀빈식당에 모여 이총재의 퇴진과 신당창당 반대등의 4개항을 결의했다.회의에는 김원기·조세형·노무현·김근태 부총재와 김정길 전최고위원,김종완·김원웅·원혜영·유인태·이철·장기욱·이상두·제정구 의원,김희선·방용석·이강철 당무위원,김재규 원외지구당위원장등 20명이 참석했다. 이들은 『6·27지방선거를 앞두고 이총재가 보여준 일련의 행태는 민주당이 더 큰 승리를 거둘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했다』고 전제,『총재로서의 소임을 다하지 못한 데 대해 명확히 책임을 져야 한다』고 이총재의 퇴진을 요구했다.김이사장의 신당창당에 대해서도 『신당창당은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에 보낸 국민들의 지지에 부응할 수 없다』면서 『신당창당에 단호히 반대한다』고 밝혔다.이들은 이어 「구당과 개혁을 위한 모임」을 구성키로 하고 소속의원과 원외지구당 위원장,중앙당 당직자등을 상대로 서명작업에 들어갔다.이를 위해 참석한 4명의 부총재와 김전최고위원,이철·제정구·김종완·유인태·김원웅의원이 참여하는 「10인 위원회」를 설치했다. 오찬을 들며 3시간동안 진행된 회의는 민주당 잔류문제 등을 둘러싸고 적지않은 진통을 겪었다는 후문이다.이 과정에서 「어떤 경우에도 이총재와는 정치행보를 함께 하지 않겠다」는 문구가 발표문에서 삭제되기도 했다. 이에 앞서 김원웅의원 등 개혁모임의 의원 12명은 이날 아침 국회에서 별도 모임을 갖고 향후 대책을 논의했다.김의원은 이와 관련,『신당에 참여하는 많은 의원들도 신당을 껄끄럽게 생각하고 있다』고 전하고 『이들 대부분은 내심 김이사장의 정계복귀를 탐탁치 않게 생각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신당추진파◁ ○…김이사장의 창당준비를 맡고 있는 「11인 실무팀」은 이날 상오 여의도 내외문제연구회 사무실에서 회의를 갖고 김이사장 정계복귀와 신당에 대한언론보도 대책을 집중 논의했다. 박지원대변인은 이와 관련,『물갈이 대상 의원들의 명단이 적힌 「살생부」가 있다는 풍문은 방해세력들의 음모』라고 주장하고 『현역의원은 15대총선 공천에서 최우선으로 배려한다는 게 김이사장의 방침』이라며 의원들의 동요를 막기 위해 부심했다. 신당추진파는 이와 별도로 김이사장의 창당선언 뒤 이총재를 고사시키는 방안으로 민주당의 교섭단체 구성을 저지하기로 내부방침을 세운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김이사장은 이날 하오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현장을 방문하고 사고수습 대책본부와 강남성모병원을 잇따라 들러 유가족과 피해자들을 위문하는 것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대민접촉활동에 나섰다. 김이사장은 부인 이희호여사및 아태재단 간부 10여명과 함께 사고대책본부 관계자들과 자원봉사자들을 격려한 뒤 금일봉을 전달했다. 그러나 사고현장에서 실종자 가족 한명이 김이사장 일행의 앞길을 가로막고 『양복 입은 X들이 현장에 왜 왔느냐.DJ도 대통령 한번 해먹어라』고 고함을 치기도. 이 소동 때문인지 김이사장 일행은 황급히 사고현장을 떠나 최명석군과 유지환양 일행이 입원해 있는 강남성모병원으로 향했다. 김이사장의 뒤를 향해 또다른 실종자 가족은 『무슨 자격으로 서울시 간부들의 브리핑을 받느냐.아직도 수백명이 지하에 매몰돼 있는데 정치인들이 사고현장을 방문해 오히려 작업에 방해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기택 총재◁ ○…강창성·이장희 의원등 측근의원및 비서진들과 함께 모처에서 「당사수방안」을 집중 검토했다.이와 함께 사조직인 통일산하회의 원외지구당위원장을 중심으로 김이사장의 창당을 규탄하기 위한 「당수호결의대회」를 다음주 초 열기로 하고 이에 대한 준비작업에 들어갔다. 이총재측은 그러나 신당추진파에 이어 중도파에서도 총재직 사퇴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자 당혹감속에 자파의원및 지구당위원장들을 단속하는 데 부심했다.한편 이총재는 이날 아침 자택에서 기자들과 만나 『김이사장이 정계복귀를 정당화하기 위해 나를 희생양으로 삼으려 한다』면서 『민주당을 사수하면서 3김시대의 종언을 위해 노력해 나갈것』이라고 말했다. ◎92년12월∼95년7월 김대중씨 발언 모음/대권 4는 국민에 폐 끼치는 일­93년11월/정치 다시해도 당·계파업곤 안해­94년5월/나는 유세·투표·출마할 권리 있다­95년6월/국민과의 약속 깬것 변명 않겠다­95년7월 김대중 아태재단이사장은 지난 92년12월19일 대통령선거 패배직후 정계은퇴를 선언하고 93년말까지는 『어떤 경우에도 정치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거듭 다짐했다.그 뒤 『정당에 개입하거나 출마하는 등의 활동을 않겠다』→『대통령은 하늘의 뜻이다.출마한다,안한다 말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나는 유세할 권리도,투표할 권리도 있으며 출마할 권리도 있다』로 말을 바꾸다 『조그만 힘이라도 보태야겠다고 생각했다』며 2년7개월만에 정계복귀를 선언했다.김이사장의 그동안의 관련발언을 간추려본다. ▲오늘로써 국회의원직을 사퇴하고 평범한 한 시민이 되겠다.40년의 파란많았던 정치생활에 사실상 종막을 고한다고 생각하니 감개무량한 심정을 금할 길 없다.당원의 한 사람으로 남아 민주당을돕겠다.(92년12월19일 정계은 퇴선언) ▲어떤 경우에도 정치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결심에 흔들림이 없으며 앞으로 민주당이 이기택 대표를 중심으로 더욱 발전하길 바란다.(93년6월20일 영국에서 기자간담회) ▲세번 대통령에 출마한 사람이 네번이나 나온다면 국민에게 폐끼치는 일이고 체면상으로도 안되는 일이다.(93년11월5일 기자간담회) ▲만약 정치를 다시 한다고해도 민주당이나 계파를 업고 하진 않을 것이다.(94년5월4일 대전일보 인터뷰) ▲정치를 않겠다는 것은 정당에 개입하거나 출마를 하는 등의 활동을 않겠다는 뜻이다.(94년5월10일 워싱턴 특파원 간담회) ▲대통령은 하늘의 뜻이다.여기서 출마한다,안한다 말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95년6월9일 대전 태평동성당 강연) ▲민주당이 대단히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어 민주당이 요청하면 선거지원유세에 나서는 방안을 진지하게 고려할 것이다.(6월12일 목포에서 기자간담회) ▲나는 유세할 권리가 있고 투표할 권리가 있으며 선거에 출마할 권리도 있다.(6월15일 안양지원유세) ▲프랑스의 드골전대통령과 미국의 닉슨전대통령도 정계은퇴했다가 다시 나왔으며 김대통령도 80년10월 정계은퇴를 선언했으나 다시 나와 대통령이 됐다.(6월19일 광주지원유세) ▲정계은퇴란 내가 당의 당수가 된다든지 대통령선거에 나서지 않겠다는 뜻이지 일반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자신의 의견을 말할 자유까지 포기하는 것은 아니다.(6월29일 「한겨레21」회견) ▲사실 정치를 재개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국민과의 약속을 못지킨 것이다.이에 대해 어떤 변명도 하지 않겠다.(7월13일 내외연 전체모임)
  • “만화 위상 높이자”… 잇단 기획전

    ◎「만화산업 진출의 해」맞아 「정예 13인전」 「서울페스티벌」 등 5개 열려 영상산업이 산업자체의 고부가가가치에 의해 국가의 중요정책산업으로 부상함에 따라 영상산업의 핵인 만화산업의 중요성이 크게 강화되고 있다.더구나 올해는 미술의 해 이자 만화산업 진흥의 해.이같은 흐름에 발맞춰 우리 만화의 어제와 오늘을 조망하고 만화에 대한 일반의 인식을 바꿔 문화상품으로서 만화의 발전을 꾀하려는 갖가지 전시가 줄을 잇고 있다. 「우리 만화 가까이 보기­한국정예만화가 13인전」을 비롯,「껍데기는 가라」 「가자 만화의 나라로」 「제1회 서울국제만화페스티벌」 「시사만화를 통해본 해방50년」 등이 그것. 이중 지난 14일부터 전시중인 「한국정예만화가 13인전」(서남 미술관·3770­2672·5월7일까지)은 우리 만화의 현실을 새로 가늠,위상을 높이고자 기획된 전시로 13명의 만화작가가 참여,40m의 벽면에 대표적인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참여작가는 이현세 김수정 박재동 백성민 이두호 이희재 윤승훈 오세영 최정현 허영만 황미나 이용배 등으로 만화원고·캐릭터,그리고 만화원고중 완성직전 연필스케치그림인 콘티 등을 전시하고 있다.또 황순원 원작의 만화영화 「소나기」 등 5∼30분 길이의 중·소형 만화영화 5편도 상영중이다. 4월혁명연구소 역사문제연구소 등이 공동주최한 「껍데기는 가라」(21세기화랑·735­4805·15∼24일)는 4·19와 유신개헌반대 그리고 5·18에 이르는 민주화 투쟁에 관련한 시사만화와 그림 사진작품을 모은 전시.5·18까지의 민주화투쟁을 불러일으킨 한 원인으로서 이승만 독재정권의 실정을 만화에 대한 중요성과 함께 일깨우기 위해 꾸민 전시로 김정헌 신학철 등 작가 10여명의 대작 10편이 전시돼 있다. 오는 5월2일부터 24일까지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 2층(580­1114)에서 열릴 「가자 만화의 나라」는 공공미술관에서 처음 개최되는 어린이 대상의 창작아동만화 큰잔치.한국아동만화의 대표적인 작가 이로마 이재석 이현세 등 40명의 작품이 출품될 예정이다.극작만화 이외 만화일기 코너와 만화영화 코너,우리의 상고사를 그림으로 보는 「대쥬신제국사(대조선제국사)」코너 등도 마련된다. 문화체육부가 오는 8월11일부터 16일까지 서울 삼성동 한국종합전시장에서 개최하는 「제1회 서울국제만화페스티벌」(’95 SICAF)은 저급한 패러다임으로 치부되고 있는 만화의 위상을 바꿔 만화를 예술의 한 장르로 공인받게해 만화산업의 획기적 발전을 다지려는 야심찬 행사.이 행사에는 한국을 포함,미국과 프랑스 등 서구,그리고 일본 등 동남아의 주요만화제작국의 만화잡지와 만화단행본 3백여편이 전시될 예정이다.또 5∼1백분 길이의 국내외 만화영화 1백여편과 만화주인공을 응용한 팬시,PC및 비디오 게임 등 만화산업 전단계의 상품들이 소개될 예정이다. 국립현대미술관(503­7744)이 오는 8월17일부터 9월15일까지 여는 「시사만화를 통해 본 해방 50년」은 1945년 이후 현재까지 한국 현대사의 흐름을 시사만화가의 시각을 통해 보여주는 전시.이 전시에는 서울신문의 「까투리 여사」연재작가였던 윤영옥,「고바우」의 김성환 등 50여 작가의 2백여점이 나올 예정이다.특히 이 전시는 해방 이후 50년 동안 우리사회의 시대정신과 시사만화가 지닌 역사성과 예술성을 접할수있는 좋은 기회가 될것 같다.
  • 지문날인 철폐 앞장/최창화목사 별세

    【도쿄=강석진 특파원】 80년대 재일동포의 인권 향상 등을 위해 일본정부가 강요하는 지문날인제도의 철폐운동에 앞장 섰던 최창화목사 (재일 대한기독교장로회 고쿠라교회)가 8일 상오 11시34분 지난해 6월부터 투병해온 폐암으로 기타큐슈시의 고쿠라(소창)기념병원에서 별세했다.향년 65세. 최목사는 평북 선천군 출신으로 유족은 부인 김정녀 여사(64)와 지문날인 반대운동에 앞장선 선애씨 등 1남2녀.자택은 기타큐슈시 고쿠라북구 백은 1­6­7이며 연락처는 093­521­7271이다.
  • 만학도(외언내언)

    고고미술사학자로 유명했던 삼불 김원용교수가 나이 50이 넘어 영국에서 1년동안 유학한뒤 수상집을 펴냈었다.책이름이 「노학생의 향수」.뒤늦은 유학생활의 신산함과 외로움을 진솔하게 담아 화제가 됐었다. 그중에 이런 글이 있다.하숙방에서 책을 보고있는데 난데 없는 개미떼들이 줄을 지어 문틈으로 행진하더란다.무료한 판에 개미군단을 따라 가 봤더니 복도를 지나 어느 문틈으로 사라지더라는 것.마루바닥에 얼굴을 대고 열심히 관찰하고 있는데 벌컥 문이 열리면서 얼굴이 뻘개진 하숙집 여주인이 나타났다.아뿔사! 그건 여주인의 목욕탕이더란 얘기였다. 학문의 「늦깎이」는 정상보다 몇배나 힘들고 어려운 도정을 걸어야한다.그러나 그런 난관을 극복하고 대성한 이들은 많다.우리 여성계의 거목인 이태영여사도 서른다섯에 서울법대를 졸업,38세에 사법고시에 합격했던 만학도.작고한 여류조각가 김정숙도 33살때 조각가의 꿈을 이루기 위해 대학에 들어갔다.국어학자 일석 이희승도 직장생활하다 44살에 도쿄유학생이 되었다.최근에는 팔순의 시인 미당 서정주의 러시아 유학이 화제가 됐었다. 서울에 주부들만을 대상으로한 주부중·고교가 있다.20대 후반서 60대가 넘은 할머니학생까지 있지만 어찌나 향학열이 높은지 수업시간에 교사들이 쩔쩔 맬 정도라고.「못배운 한」을 풀어보려는 주부들의 열기가 그렇게 뜨거울수 없다고 한다. 지금은 평생교육시대.대학마다 평생대학원이 부설돼 주부나 노인학생들이 몰리고 있다.「성공적인 노후의 삶」「죽음의 준비」등 과정도 있다고 한다.서강대 편입시험에 정년퇴직한 67세와 61세의 「노익장」이 합격을 했다.산전수전 다겪고 손자뻘대학생들과 어울려 학문의 길에 들어선 그 결단과 의지가 놀랍기만 하다. 「배우고 또 수시로 익히면 그 또한 즐겁지 않으랴」(논어)의 경지가 아닐는지 모르겠다.
  • 발레리나 박인자(이세기의 인물탐구:65)

    ◎현란한 율동의 창작무대 쉼없이/82년 「백조의 호수」서 고난도 「푸에테」 24회 선보여/토슈즈 과감히 벗고 출연… 정통발레 변혁 시도/후진 양성하며 항상 공연주역… 내년 4월 「20년 기념작」 준비 박인자 84년 음악전문지 「객석」창간호는 발레리나 박인자를 발레계의 「비범」으로 꼽은 일이 있다.조동화·김영태·채희완등 무용평론가들의 추천이유는 이랬다. 『82년9월 「백조의 호수」3막중 오딜(흑조)에 도전한 박인자는 그동안 갈고 닦은 기량으로 눈이 부시도록 현란한 푸에테를 24회나 도는 저력을 보였다.83년5월 그가 춘 오데드 솔로 역시 에메랄드처럼 빛나는 무대였다.그후 쇼스타코비치의 「아다지오」와 「녹색의 변주곡」에서 그는 지체의 포물선을 감각적으로 금긋는 데 기여했다.개성이 돋보이는 박인자에게서 아직 노련미를 찾긴 어려우나 그의 작업은 신뢰감을 갖고 주시해도 좋을것 같다』는 요지였다. 한 다리로 서서 몸을 완전히 회전시키는 푸에테란 발레리나의 자존심이 걸린 고난도 테크닉의 하나다.최근에는 테크닉 발달로 이보다 긴 푸에테와 필루에트를 성공시키는 예가 흔히 있지만 10여년전만해도 그의 연속 푸에테는 무용계의 화제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그후 개인발표와 지방공연·춤작가 12인전·대한민국무용제등 각종 대형행사에서 박인자는 클래식과 네오클래시시즘 창작발레와 재즈발레에 이르기까지 변화되고 발전된 춤의 모습을 정열적으로 펼쳐왔다.91년 국립극장에 올려진 「레이몬다」가 「클래식의 격정과 정확성」을 갖춘 무대였다면 「불새」의 경우는 모리스 베자르의 단순화된 현대발레를 「스트라빈스키 음악의 역동성을 살려 힘있고 치밀한 원형무로 만든 수작」이었다. ○격있는 화려함 과시 지난해 가을 문예회관 대극장에서 선보인 그의 「나비부인」은 긴 부드러운 의상속에서 물흐르듯 유연한 동작을 구사하여 『40대 무용가 중에서 포르드 브라(팔의 움직임)의 정지미를 이만큼 탄력적으로 과시한 발레리나는 드물다』는 평을 받았다.더구나 창작발레 「초록의 환상」에서 토슈즈를 활짝 벗고 산뜻하게 치솟는 도약은 무중력과 부력의 이미지를 꽂으면서발레는 그 「무엇」이 아니라 지속적인 훈련이고 기교이며 동시에 「격있는 화려함」이라는 것을 단적으로 제시했다. 평론가들의 평이 아니더라도 박인자발레의 매력은 댄서의 묘기를 완벽하게 소화한 프로의식과 아름다움이 넘치는 무대의 회화성에 있다고 볼 수 있다.그리고 분홍신을 신은 것처럼 그는 신들린듯 무대를 선회하고 회전하면서 그가 춤추는 공간에 오색찬란한 빗살무늬를 뿌려나간다. 그의 발레는 60∼70년대 국립극장 무대에 올려진 정교한 클래식 발레와는 그 형식면에서 뚜렷한 차이점을 갖고 있다.즉 그의 춤은 이지적이고 극적인 움직임과 육감적인 신선미를 잃지 않는다.이른바 무엇을 추어도 활기차고 선이 선명하며 창작력과 문학성이 뛰어나다.그는 춤출 뿐만 아니라 탁월한 발레조련사이자 매우 두뇌회전이 빠른 안무의 재구성자이고 「그래서 대학권에 두기에는 너무 아까운 재목」이라고 평론가 김태원은 한탄해 마지않는다. 박인자의 유년의 기억은 햇빛처럼 밝고 순탄하기만 하다.서울 충무로에서 약국을 경영하던 박명근씨와 노오례여사의 6남매중 막내로 태어나 어릴 때는 피아노를 쳤고 금란여중에 다니면서 발레리나 서정자의 눈에 띄어 발레에 입문했다.1백62㎝의 크지도 작지도 않은 유연한 몸매를 타고난 그는 임성남 문하에서 본격적인 발레수업을 받았고 서울예고 2학년때인 69년부터 벌써 국립발레단 정기공연에 참가하여 스승·선배들의 기대를 한몸에 모았다. 대학4년때인 74년 동아무용콩쿠르에서 「지젤」솔로로 하늘의 별따기보다 어렵다는 대상을 수상,신데렐라 탄생을 예고받은 그로서는 실은 더이상 아무것도 부러울 것이 없었다.그가 존경하는 선배 김혜식은 이 콩쿠르에서 금상을 받았고 조승미 역시 은상에 머문 데 비한다면 그의 대상은 발레계의 모처럼의 경사이자 자랑이기도 했다.그러나 기쁨은 잠시,그를 아끼는 국립발레단의 임성남씨와 대학의 스승인 김정욱교수 사이에서 그는 프리마 발레리나냐,대학교수냐의 양갈래 길에서 무엇인가 선택하지 않으면 안되는 결정적인 순간을 맞게 되었다.전문 발레리나로 그를 키운 임성남씨는 당연히 국립발레단 입단을 권유했고 대학 발레의 향상을 걱정하던 원로 김정욱교수는 대학에서 발레를 가르치는 일도 공연 못지 않게 중요함을 누누이 역설해왔다.더구나 그는 4년동안 모교인 수도여사대(현세종대)에서 장학금을 받고 공부한 처지였다. ○고민끝에 「대학」 선택 고민끝에 그는 결국 대학을 선택하기로 마음먹었다.김정욱교수의 뒤를 이어 대학에서 후배를 가르치면서 자신의 무대를 만들자고 생각했으나 박인자의 결정에 놀란 임성남씨는 『그러려면 대상수상을 되물리라』는 농담반 비슷한 격노를 나타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예술가중의 어떤 사람들은 위대성을 타고나게 마련이지만 또 어떤 이들은 후천적으로 이를 획득한다.그러나 아무리 타고난 위대성이라도 갈고 닦지 않는다면 한낱 범용에 그치고 말 것이다』 우연이나 요행은 절대로 훌륭한 예술가에 이르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그는 자신의 재능을 발전시키기 위해 지금도 「피나는 노력」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말한다. 그동안 그는 미국·일본의 발레학교에 나가 다양한 테크닉을 연마하면서 발레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모든 룰들을 다시한번 생각해볼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그중에서 그에게 영향을 준 것은 윌리엄 포사이드와 모리스 베자르의 파격의 안무였다.특히 리옹발레단의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줄리엣을 감시하기 위해 무대에 경비견까지 끌고 나온 것을 보고 그는 고질화된 형식에서 벗어나 맨발벗은 모습을 발레에 적용하는 과감한 용기를 보였다.타당성이 없이 누군가 고수하려는 것을 「누군가 깨야 한다」는 의지로 작품에 맞지 않으면 토슈즈나 튀튀 클래식 튀튀 로맨틱을 고집하지도 않았고 「나비부인」에서 창살에 비친 그림자춤이나 「피아노」에서의 파도와 달빛타기를 푸른 휘장으로 표현한 것도 같은 맥락의 시도다. 박인자에겐 많은 장점이 있다.평상시의 그는 발레리나의 티는 물론 교수의 티도 내지 않는다.지젤의 분위기를 닮은 해맑은 싱그러움을 간직한 채 일상적인 대인관계를 원만하고 진지하게 풀어나간다.그가 모교를 떠나 발레전공이 없는 숙대 무용과로 옮겨간 것은 그가 지도한 후배들에게 교수자리 하나라도 내어주기 위한 배려였다.그의공연장에 장르를 초월한 수많은 무용인이 찾아들고 그의 춤을 격려하고 환호하는 것만 봐도 그의 후덕함을 엿볼 수 있다. ○무용과 음악을 분리 단지 자신의 올바른 주장은 남의 눈치를 보거나 주위를 의식치 않고 똑바로 관철시키는 주의다.문예진흥원 창작활성화 무용기금속에 음악파트가 포함된 것을 보고 무용과 음악을 따로 분리한 것도 그가 이룬 성과다.가족은 건축가인 부군 함정도(서울산업대교수)씨와의 사이에 1남(고교)1녀(여중). 우리의 본격적인 클래식 발레는 김정욱·임성남·홍정희에서 김학자·김혜식·조승미로 이어지고 이들은 대부분 대학에서 후배를 양성하거나,발레를 지도하거나 안무에 치중하는 시기다.대학에 몸담고 있으면서도 지금도 끊임없이 발레무대의 주역이라는 점에서 박인자는 단연 현역의 톱에 틀림없다.그러나 육체를 매체로 하는 무용의 세계에서 무대예술가의 활동시한은 전보다 길어지는 추세이긴 하지만 「꽃처럼 무섭게 시들어버리는 육체의 언어로 예술적 광채를 영속하기란 좀체로 쉽지 않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다.더더욱 인간의 영혼을 전율케 하는 「사색의 끝」에 치닫지 않고서는 모든 움직임은 무의미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그는 바람이나 파도나 봄을 맞는 대지의 꿈틀거림이 인간의 희비애락에 자연스럽게 접목되는 「마음의 춤」을 추구하는 시기다. 그래서 단순하게 허공중에 들어올린 팔 하나라도 가장 자연스러운 바람속의 흐름이기를 원하고 있다. 내년 4월3일 중앙국립극장 대극장무대에 올릴 「박인자발레 20년 대공연」을 앞두고 그는 겨울방학 시작과 함께 짙은 사색에 빠져 있다.그로서는 결국 몇 안되는 별중에서 끝까지 반짝이는 하나이고 싶은 것이다.그리고 그가 춤추고 지나간 자리에 언제까지나 긴 여운으로 불꽃 같은 극미의 항적이 남기를 스스로 기대하려는 것이다. □연보 ▲1953년 서울출생 ▲1966년부터 임성남 사사 ▲1969∼73년 국립발레단단원 ▲1971년 서울예고졸업 ▲1974년 동아무용콩쿠르 대상수상,ASTA총회참가 공연 ▲1975년 수도여사대(현 세종대)졸업 ▲1977년 동대학원 졸업,세종대강사,PATA총회참가 공연 ▲1979년 세종예술원창단 공연 ▲1980년 예무회창단 공연 ▲1982년 박인자발레,대한민국무용제·한국발레협회 창작발레공연 ▲1983년 박인자발레 공연 ▲1984년 일본 도쿄시티발레·아메리카발레센터연수,데이비드 하워드 발레스쿨 수학 ▲1985년 미국 애리조나주립대 교환교수 ▲1986년 김정욱발레페스티벌 출연,86아시아문화예술축전 안무 ▲1987년 박인자발레 공연,숙대교수 ▲1988년 88서울올림픽 문화예술축전·서울국제무용제·현대오페라단 「리골레토」중 「집시의 춤」안무 ▲1989년 박인자발레 공연(대구·서울),발레20 창단기념·임성남 발레45주년기념공연 안무·출연 ▲1990년 세종문화회관 분수대공연,중앙일보사주최「그랜드발레 페스티벌」안무 ▲1991년 박인자발레 공연(부산·서울),춤작가 12인전안무 출연,청룡영화제 오프닝 세레모니 「코러스라인」안무 ▲1993년 박인자 창작발레(창원·대구·여수) 「대지의 소리」「승천」「연습실에서」「해적 2인무」「팝을 위한 바리에이션」「나로부터 멀리」「고귀한 승리」「파키타」「불새」「나는 뭐드라?」「나비」「나비부인」「꼬리기르기」「가을저녁의 시」「피아노」등 다수 한양대 체육대 박사과정 한국발레협회및 한국무용학회 이사 국립발레단 자문위원 숙대무용과 교수
  • 전·노씨 각각 연쇄 연말모임/활발한 5·6공진용 「송년회동」

    ◎당정개편·신당설 맞물려 “시선”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대통령이 잇따라 대규모 송년모임을 갖고 있다.두 전직대통령은 지난해에도 비슷한 송년모임을 가졌으며 이번에도 정치적 의미는 없다고 설명한다.그러나 「12·12사건」 처리문제를 둘러싸고 정치권이 첨예하게 대립되어 있는데다 연말 당정개편에서 옛 여권출신의 기용폭 및 「5·6공 신당설」등과 맞물려 눈길을 끌고 있다. ○…전전대통령은 오는 14일 스위스그랜드호텔에서 노신영 전국무총리 시절의 내각 모임인 「무궁화회」 송년모임에 참석할 예정. 이 모임에는 「무궁화회」회원인 40여명의 전직 각료들이 참석하며 정석모 금진호 의원등 현재의 민자당 의원들도 당시 장관을 지낸 인연으로 참석할 것으로 예상. 특히 「5공」출신 각료들의 또다른 모임인 「평교회」도 「무궁화회」와 같이 송년모임을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이날 모임이 「5공」인사들의 대대적 행사가 될 가능성도 대두.「평교회」는 김정열 전총리시절의 각료모임으로 따로 송년 모임을 가져왔으나 김전총리가 작고함에 따라 「무궁화회」와 합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전전대통령은 노전대통령이 최근 대구를 방문하는등 비교적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는 것과는 달리 공식활동을 자제하는 눈치이나 「12·12」의 기소시한인 오는 12일 뒤에는 보다 행보가 빨라질 수도 있다는 관측. 특히 전전대통령의 측근인 장세동씨는 이번달말쯤 자서전 출판기념회를 준비하고 있으며 그때 「5공」인사들이 대대적으로 세를 과시할 가능성이 있다고 한 정부관계자가 전언.전전대통령의 부인 이순자여사도 회고록 집필을 끝내고 곧 출간할 계획이라는 전문. ○…노전대통령은 지난 7일 무역센터에서 「6공」초기 이현재 전총리내각 모임인 「육초회」 송년모임에 참석한데 이어 강영훈 전총리내각의 「육중회」와 정원식 전총리내각의 「육영회」 송년모임에 각각 참석할 예정.이들 모임에도 민자당 현직 의원들이 대거 참석할 것으로 보여 관심. 지난 7일 「육초회」모임에는 나웅배 이춘구 사공일 정해창 조상호 윤근환 이관 최동섭 권이혁 최명헌 오명 조경희 현홍주씨등 「6공」초 각료들이 부부동반으로 참석했다는 것. 오는 16일로 예정된 「육중회」모임에도 조순 최호중 이한동 이규성 허형구 이상훈 최병렬 김집 김식 박승 장영철 최영철 정종택 씨등이,23일의 「육영회」에는 최각규 김기춘 윤형섭 이어령 박철언 조경식 이봉서 진념 이진설 안필준 최창윤 씨등이 참석할 것 같다고 노전대통령측은 소개.
  • 중국,이념보다 평화공존 중시/이붕중국총리 이한회견 문답

    ◎“남북등거리정책은 한반도 안정에 도움/한국기업 수준높아… 포철 못가봐 아쉬움” 다음은 이붕중국총리의 내외신 기자회견 내용이다. ­제네바 북미합의를 북한이 이행하는데 중국은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 ▲북한과 미국이 합의를 이룬 것을 환영하며 한반도 정세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북한이 자기방식대로 합의서를 이행하는 것을 지지한다. ­정전협정체제를 평화체제로 바꾸는데 대한 입장은. ▲새로운 체제 수립을 위해 남북한과 관련측들이 참여,노력해야 한다. ­한국의 기업들을 방문하는 일정이 많았는데. ▲이번 방한은 주로 경제적 목적이었다.한국의 기업들은 실력과 기술수준이 높았다.일정이 짧아 포항제철등을 보지 못해 유감이다. ­북한을 방문하기 전에 남한을 방문했는데 둘 사이의 관계발전에 어떤 영향을 미친다고 보는가. ▲중국은 이데올로기나 사회제도보다는 평화공존의 원칙을 먼저 생각한다.중국은 반도의 남·북과 다 좋은 관계를 가질 수 있다.이 정책이 남북의 정세안정 유지에 도움이 된다고 본다. ­북한의 경수로 건설지원을 위한 국제 컨소시엄에 참여할 뜻은,참여한다면 어떤 부분에서의 역할을 기대하는가. ▲북한이 북미합의서를 이행하도록 하는데 우리 방식으로 지원할 것이다.핵사찰 문제에 대해서도 우리는 대화와 협상으로 해결토록 도모했다. ­북한내 권력승계 작업은 순조로운가,김정일의 건강상태는. ▲북한은 주권국가다.중국이 선린관계를 유지하지만 북한의 내정에 대해서 다 아는 것이 아니다. ­남북대화 재개를 위해 북한측을 설득할 용의는. ▲한반도 정세안정을 위해 남북간의 다단계 대화를 지지한다. ­등소평의 건강상태는,등소평이후의 중국 권력체제는 어떻게 되는가. ▲중국은 이미 강택민국가주석등 3세대 지도자들이 핵심을 이루고 있다.현재 강주석을 핵심으로하는 지도체제가 단결돼 있다.중국정세에 대해 의심하지 않아도 된다. ◎이붕총리 방한활동 뒷얘기/이 총리,서울·제주 오갈때 부인과 팔짱/제주숙소 객실 1백10개로도 모자라 이붕중국총리의 방한은 한반도 주변에서 일고 있는 해빙무드를 맞아 남북간의 화해만이 한반도에 진정한 평화를 구축할 수 있다는 쪽으로 상호입장을 조율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중국통역원 서툴러 ○…이총리는 이번 방한에 김일성대학출신의 남녀 1명씩의 공식 통역요원을 대동.이 가운데 이총리의 기자회견 전에 심국방 외교부대변인의 두 차례 기자회견을 통역한 여성 통역원 학효비씨는 「한반도」를 「조선반도」로,남북관계를 「북남관계」로 표현하는가 하면 「인터뷰」나 「컨소시엄」등의 간단한 영어도 해석하지 못해 문제점을 노출.이에따라 한승주 외무부장관은 이총리의 기자회견 전날밤 통역자들이 용어선택을 올바르게 하도록 주의시키도록 당국자들에게 지시.결국 이총리의 회견에서는 「북남」대신 「남북」,「조선반도」대신 「반도」라는 용어가 사용. ○“이 총리 바느질 잘해” ○…이총리는 서울과 제주에서 비행기를 오르내리며 부인 주임여사와 팔짱을 끼는 등 사회주의 국가지도자로서는 매우 「자유분방한」 몸가짐을 나타내 관심을 끌기도.주여사는 3일 제주도지사가 베푸는 만찬에서 옆자리에 앉은한외무장관에게 『이총리가 지난 48년부터 54년까지 모스크바에서 유학생활을 해 요리와 바느질을 매우 잘한다』면서 온화한 인품임을 자랑했다고. ○신라호텔서 1박 ○…이총리는 제주도에서 90년 고르바초프 러시아대통령이 방한했을 때 노태우 당시대통령이 묵었던 신라호텔 6층의 프레지덴셜 스위트룸에서 1박.이총리의 일행은 신라호텔의 객실 3백30개 가운데 3분의 1인 1백10개의 방을 차지하고도 방이 모자라 함께 온 50여명의 경제인과 비공식수행원들은 부근 호텔에 묵었다고. ○등소평건강 등 답변 ○…기자회견장에서 이총리는 최고실력자 등소평의 건강상태와 강택민주석과의 관계등을 묻는 질문에 『민감하지만…』이라는 단서를 단뒤 두사람에 대해 「예우」를 갖춰 답변.회견이 끝난뒤 심중국외교부대변인은 『기자들의 질문이 남북관계에만 너무 집중됐던 것 같다』고 가벼운 불만을 표시.
  • 시인 미당 서정주(이세기의 인물탐구:61)

    ◎팔순에도 샘 솟는 시정… 문단의 거봉/새로운 언어­독특한 깊이로 감동의 운율빚어/어릴적 가난­방랑 벽이 창작욕이 밑거름으로/“내 숨결 그칠 때까지 시어 더듬고 또 더듬겠다” 1948년 선문사가 발행한 미당의 두번째 시집 「귀촉도」에서 김동리 발사는 이렇게 쓰고 있다. 「나는 그에 대한 존경과 사랑을 나의 유일한 정신상의 재보로서 쌓아왔다. 그의 뇌락불기한 인격과 자유분방한 시혼은 그 처녀시집 「화사집」을 통하여 이미 세상에 그「비늘을 번득인」바 있지만 그를 사랑하는 사람이건 싫어하는 사람이건 적어도 이 땅에서 시를 아는 사람이면 누구나 오늘날 우리들의 머릿속에서 이 혹성의 찬연한 광망과 위치에 등한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는 오늘날까지도 평자들이 미당을 논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인용되는 명평이다. 「뇌락불기」란 「마음이 작은 일에 구애되지 않고 남에게 구속되지도 않는다」는 뜻이다. 그만큼 미당의 문학적 족적은 광활하고 높고 깊다. 그리고 훨훨 나는 그의 두루마기 차림처럼 시에 관한한 무장무애하고 무소불위하다. 지금은 문단의 거봉으로 우뚝 서 있지만 미당의 지난 세월은 가난과 슬픔과 방황과 방랑벽으로 그 인생의 절반이 혹독하게 얼룩져 있었다. 어릴 때는 당시를 배울수 있는 가정에서 태어났으나 만14세 되던해 서울 중앙고보에 입학해서 광주학생사건에 연루되어 구속된적이 있고 고향의 고창고보에 편입했다가 식민지 교육에 반대하는 집단행동으로 또 한번 퇴학을 당했다.다시 서울로 올라와 극예술연구회 연극배우노릇, 마포 도화동 빈민촌에 입주하여 넝마주이 행색으로 쓰레기를 줍기도 했고 중앙불교전문학교(현 동국대)교장이며 존경하는 스승인 석전 박한영을 만나 안암동 개운사에서 능엄경을 공부하게 되었다. ○어릴때는 당시배워 여기에 그치지 않고 만주로 건너가 만주곡량주식회사 연길지점에서 경리과직원이 되는가 하면 김좌진장군과 이승만대통령의 전기집필,「옥루몽」등 옛소설 번역으로 생계를 잇다가 인촌 김성수 집안과의 인연으로 동아일보 사회부장 학예부장을 지내는 등 그의 인생역정은 파란이 깊고 다양하기만 했다. 이토록이나곡절이 심한 방만한 생활덕분에 한때는 자살을 기도하다 미수에 그치고 생명의 존엄을 체험하고 나서야 미당은 비로소 삶에 대한 의욕과 생명의 활기가 몸속에 용솟음치게 되었다. 그는 마침내 조선대 교수로 재직하면서 광주 무등산 자연속에서 「난생 처음 보는 찬란하고 아름다운 것」들과 조우하게 되었고 이무렵 「무등을 보며」「학」「상리과원」같은 명품을 연달아 탄생시키기에 이른다. 그의 시들은 끊일줄 모르는 시심과 계류와도 같은 운율의 감동을 자아내면서 마치 가을 한낮 거문고 소리처럼 청랑한 운기로 흥취와 운치를 자아내는 것이 일품이다. 그의 탁월한 시업은 과거로의 관념적 도피나 신비주의에 탐닉한 시절이 있었고 영원의 생명에 대한 명상으로 온자하고 정밀한 내면을 구축하면서 「육체적 인간의 본원적 충동을 순화시켜 어느 순간엔가 숭고한 정신적 표현의 극에 도달」한 것으로 회자되기 시작했다. 최근 「시와 시학」지에서 시인들이 「교과서에 실리고 싶은 시」로 추천한 「무등을 보며」는 명편중의 명편으로 미당이 아직 38세이던 19 53년 「현대공론」에 발표한 것이다. 그때 이 시를 읽은 젊은 이들은 「구구절절 감명을 사로잡는 명구」라든지 「화살처럼 꽂히는 충격」으로 이를 극구 찬양해 마지 않았다. 「가난이야 한낱 남루에 지나지 않는다/저 눈부신 햇빛속에 갈매빛의 등성이를 드러내고 서있는/여름 산같은/우리들이 타고난 살결/타고난 마음씨까지야 다 가릴수 있으랴/청산이 그 무릎아래 지란을 기르듯/우리는 우리의 새끼들을 기를 수 밖에 없다…」 미당의 주옥같은 시들을 일일이 다 열거 할 수는 없다. 단지 그가 낳는 시마다 절륜의 절창으로 평가되는 것은 누구나 아는 일이다. 평론가 유종호는 「창의성 있는 언어구사와 독특한 깊이와 지혜, 상당량의 시편이 그릇 큰 시인의 구비조건이라면 20세기 우리 시인 가운데서 이러한 조건을 가장 보기좋게 구비한 이로 미당」을 드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과연 언어를 부리는 장인적 기술에서나 직관과 상상의 능력에 있어서나 만인이 칭송하는 대가의 반열에 선 그는 한국적 릴리시즘의 탁월한 정형을 만들어냈고 안주를 모르는 시정신으로 한국의 운치와 위엄을 어느 시에서나 감동적으로 증명해 왔다. 해인사 체류시절 미당을 사로잡은 소쩍새 울음소리는 그에게 불치의 슬픔을 느끼게 하는 음향으로 다가와 저 유명한 「귀촉도」와 「국화 옆에서」를 세상에 내놓았다. 그는 국민학교 시절에 벌써 일본여선생을 흠모하는가 하면 불혹의 나이때도 때때로 여난을 겪게 되어 「나 바람나지 말라고/아내가 새벽마다 장독대에 떠놓는/삼천 사발의 냉숫물」은 미당을 엿보게 하는 낭만시인의 일면이기도 하다. ○속과 선을 아는 성품 만년의 그는 인생을 관조하는 허허로운 마음과 가족을 거느린 가부장적 자세를 빌리고 있으나 「속도 알고 선도 아는 복합적인 성격」과 대체로 괴팍과 까다로움이 승한 편이다. 그 한 예로 70년대 초반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초청으로 영국시인 스티븐 스펜더가 한국에 왔을때 그를 환영하는 자리에서 미당은 취중이었는지 한국의 정상다운 자존심 때문인지는 몰라도 지팡이를 휘둘러 「TS 엘리엇이 아니면 돌아가라」고 외친 에피소드를 남기고 있다. 시인 고은이 한때 주란과 폭소버릇으로 위아래없이 오만방자하게 굴자 처음에는 하도 어처구니가 없어 어지로운 헛웃음으로 바라보기만 하다가 가족회의끝에 그를 공덕동에서 추방하고 「고은출입금지령」을 내린 일도 있다. 그의 풍류는 나무와 돌과 침향(심향)과 글씨 그림외에도 난취미가 으뜸이다. 지난 70년 25년간 살아온 공덕동을 떠나 관악산밑 사당동으로 거처를 옮기고는 택호를 쑥 봉자 마늘 산자를 따서 봉산산방으로 붙여놓고 그는 한동안 나무심기와 난수집에 주력했다. 시암 배길기와의 광동보세며 삼중당 일력에 자필 시를 써주고 받은 제주한란 이야기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여류시인 김양식과의 중국춘란에 얽힌 대화는 난향같은 일화다. 당시만도 그가 지닌 서른분쯤의 난들은 「겨우 여중 2학년 정도의 잎만 여남은게 솟아올린채 꽃필날이 아득하기만 한데」 난화부재의 겨울날 김양식이 불쑥 전화를 걸어 「대만에서 구해온 중국춘란이 아주 썩좋게 한송이 피었다」고 자랑삼았던 모양이다.이때 미당의 대답이 걸작이다. 「이웃하나가 명주바지를 입으면 여러 가호가 두루 따뜻한거라는데 나도 그 푼수니 염려말고 잘 만끽하시라」고 했다. 그러자 김양식은 가족들과 휴가를 가게되니 「그 사이 며칠만 돌보아주시며 즐겨보시는게 어떻겠느냐」고 물었다. 미당은 그제서야 눈이 번쩍 띄게 반가워했고 비록 빌렸을 망정 책상위에 난을 놓고 보고 또 보고 난향을 맡으며 「시의 감동이란 것도 내 생애에서 항용 이런 식으로 일어났다. 내가 소유하는 것에서보다 소유하지 못했기 때문에 간절해지는 감동으로 시를 쓴 것이 많았다」고 한 산문에 적고있다. ○커피보다는 맥주 즐겨 그의 정열과 의욕은 식을 줄을 몰라 한때는 영어단어를 하루에 수십개씩 외는가 하면 70년 초반부터는 세계를 두루 일주하며 끝없는 여행길에 오르더니 최근엔 세계의 산봉우리를 높이순으로 1천6백여개나 줄줄이 기억해내는 독특한 취미를 보이고 있다. 미당은 올해 팔순이지만 아직도 그 시작은 그의 방창앞에 심은 소나무처럼 청청한 천뢰의 소리를 잃지 않는 기상이다.요즘도 반가운 사람을 만나면 「커피보다는 맥주」를 권하고 제자들이 마련한 시낭독회나 남을 축하하는 자리에 자주 모습을 나타낸다. 지난 9일에는 송파문화원에서 열린 국선문학회에 나와 「국선(국선)」이란 모임이름을 지어주고 후배들의 회장추대를 극구 사양하여 주변을 송구스럽게 했었다. 이제 자기자신을 홀연히 내쳐버리는 무집착의 상태에서 그의 최근의 시들은 글맛이 한층 무르익어「아무 말이나 붙들고 놀리면 그대로 시가 되는 경지」다. 산다는 것이야말로 사변의 연속이었던 시대를 거치면서 일찍이 김동리가 지적했듯이 미당은 지금도 「내 숨결이 아주 내 육신을 떠날 때까지는 더듬어보고 또 더듬어」 새로운 시에 대한 분방한 광망을 접어두거나 조금도 늦추려들지 않는다. ▷연보◁ ▲1915년 5월18일 전북고창 부안면 선운리 질마재 출생.서광한씨와 김정현여사의 2남2녀중 장남 ▲1929년 부안 줄포보통학교 졸업.서울 중앙고보 입학 ▲1931년 전북 고창고보2학년 편입,권고자퇴,서울 상경 ▲1935년 중앙불교전문학교(현 동국대)입학 ▲193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시 「벽」당선 ▲1936년 시전문지 「시인부릭」편집인겸 발행인 ▲1941년 처녀시집 「화사집」(남만서고)1백부 한정판 출간 ▲19 48년 동아일보 사회부장 및 학예부장,문교부산하 예술과 초대과장 ▲1949년 한국문학가협회 시분과 위원장 ▲1952년 광주 조선대학 부교수 ▲1954년 대한민국예술원 초대회원 ▲1955년 미국아세아재단 자유문학상 ▲1960년 동국대 부교수 ▲1961년 제1회 5.16문예상 ▲1966년 대한민국 예술원상 ▲1975년 서울 신문회관서 회갑연 ▲1976년 미당시를 주제로한 시화전 서울서 제주까지 6개월간 전시 ▲1977년 한국문인협회 회장 ▲1979년 동국대 정년퇴임,대우교수로 대학원 강의 ▲1980년 동아일보 문화대상 개인상부문 본상 「귀촉도」「서정주시선」「신라초」「동천」「질마재 신화」「안 잊히는 일들」「늙은 떠돌이의 시」「산시」등 시집 14권,「서정주 문학전집」(전5권) 「서정주 시선집」(전2권)등 시 8백여수와 「서쪽으로 가는 달처럼」등 산문집과 여행기가 있음.
  • 모친 유해앞에 무릎꿇고 오열/박태준씨 귀국… 공항­상가 이모저모

    ◎최형우 내무·문정수총장 등 조문/초췌한 표정… 부인과 말없는 입국 박태준씨가 1년7개월의 유랑생활을 마치고 9일 귀국했다.포항제철회장과 민자당최고위원으로서 우리나라의 경제와 정치 두 무대에서 화려하게 활약하다 사라졌던 박씨의 귀국은 최근의 정치적 상황과 관련,여전히 세인의 눈길을 끌긴 했지만 오랜 방랑 끝에 돌아온 그의 초췌한 모습은 정치의 무상함을 느끼게 했다. ○…박씨는 이날 부인 장옥자여사및 비서 김용기씨와 함께 홍콩에서 일본 후쿠오카를 경유,2시53분 대한항공753편으로 김해공항을 통해 돌아왔다.박씨는 모친의 갑작스런 임종에 충격을 받은듯 조금은 헝클어진 모습이었으며 공항에서 기다리던 기자들의 질문에 일체의 답변을 회피하고 마중나온 황경로 전포철회장,조용경 전보좌역등과 함께 곧바로 양산으로 가는 차에 올랐다. 집에 도착한 박씨는 입관은 했지만 큰아들을 기다리느라고 관뚜껑도 덮지 않은 모친 김소순씨의 유해 앞에 무릎을 꿇고 한동안 오열했다.동생 태화씨는 『어머님이 형님을 무척 보고싶어 하셨다』고전하고 『돌아가시기 며칠 전에는 잠에서 깨어나 주위 사람들에게 「저기 큰아범이 오니 나가보라」고 말씀하시기도 했다』면서 눈물을 훔쳤다. ○…이날 상가에는 민정계 의원들의 방문은 거의 없었던데 비해 정치적으로 반대 위치에 섰던 민주계 실세인 최형우 내무부장관과 문정수 민자당사무총장이 조문해 눈길을 끌었다.최장관은 박씨가 도착한 잠시 뒤 일행 7명과 함께 와 조문하고 박씨를 위로했다. 상오11시30분쯤 상가에 도착한 문총장은 『지난번 대통령선거 때 박씨에게 불유쾌한 감정을 가졌던 것은 사실이지만 지역구(부산)에 내려왔다가 서울로 올라가는 길에 그냥 지나칠 수 없어서 왔다』면서 『당을 대표해서 온 것은 아니고 청와대등과 사전에 협의를 거치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문총장은 정부가 박씨를 선처할 것이라고 알려진데 대해서는 『가을이 오면 낙엽이 지고 봄이 오면 꽃이 피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선문답을 한 뒤 『사법당국이 알아서 처리할 일』이라며 구체적인 언급은 회피했다. 이날 상가에는 민자당의 권오태·김정례 고문과 박준병·안찬희·박재홍·박범진·이해구 의원,민주당의 유준상의원,서석재·이진우 전의원이 조문했으며 김만제 포철회장,전두환 전대통령의 민정기 비서관과 이원홍 전문공부장관,이상하 프레스센터이사장등도 다녀갔다.민정기 비서관은 『합천으로 내려가던 전두환 전대통령이 전화를 걸어 조문하도록 당부했다』면서 『전전대통령은 대구등의 일정이 바빠 직접 오지는 못할 것 같다』고 전했다.이밖에 김수환 추기경과 월하종정,나카소네 야스히로·다케시타 노보루 전일본수상등이 조화를 보냈으며 포철팀 축구선수였던 최순호씨도 방문해 눈길.노태우 전대통령도 10일 상오 정해창 전비서실장과 함께 문상할 예정.상가측에서는 김씨가 별세한 7일이후 상가를 다녀간 조문객이 모두 7백여명으로 대부분 포철의 전현직 임직원이었다고 밝혔다.
  • 김 대통령,작가 박경리씨 초청 조찬

    ◎“「토지」 인간상 신한국인과 닮은점 많아요”/“희망 잃지않는 꿋꿋한 삶 인상적”/20년전 사위 김지하씨 구속때 박씨집 방문 인연/손 여사는 여고2년 후배… 함께 기숙사생활도 소설가 박경리씨가 27일 청와대를 다녀갔다.25년동안 원고지 4만장에 이르는 대하소설 「토지」의 집필을 끝낸 것을 축하하려고 김영삼대통령과 부인 손명순여사가 아침식사에 초대해서다. 김대통령이 소설가를 단독으로 초청해 식사를 함께 나눈 것은 이례적이다.김대통령부부가 박씨와 맺고 있는 인연과 「토지」의 집필완료가 한국문단사에 갖는 의미등을 고려한 초청일 것이다.더 나아간다면 「토지」가 만들어낸 인간상과 김대통령이 추구하는 신한국인상의 맥락이 이어져 있다는 점도 일조했다.그런 흔적이 이날의 대화록에서 많이 눈에 띈다. 김대통령은 『온갖 풍상을 겪으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끈기 있게 살아가는 주인공의 모습이야말로 바로 우리한국인의 참모습』이라면서 『이 소설을 통해 재확인 한 것이지만 나는 항상 우리 한국인들에게는 미래에 대한 꿈이 있고희망이 있다는 생각을 해왔고 지금도 그런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김대통령은 특히 『나도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많은 질곡을 거쳤지만 그때마다 우리민족에 대한 희망과 저력을 믿어왔고 그런 믿음이 있었기에 좌절하지 않고 오늘까지 견뎌왔다』고 말해 「토지」의 인간상과 스스로의 정치역정을 대비시켜 음미했다. 김대통령은 20년전 박씨의 사위인 김지하씨가 「오적」시 사건으로 구속됐을 때 박씨집을 방문한 적이 있다.김대통령의 핵심참모들인 김덕용의원이나 김정남교문사회수석은 김씨의 절친한 친구들이다.또 박씨는 손여사의 진주여고 2년 선배이고 함께 기숙사 생활을 해 대통령내외는 박씨와 남달리 인연이 깊다. 이 때문인듯 이날 조찬회동은 20년전 김대통령이 박씨 집을 방문했던 때와 손여사와 박씨의 기숙사 생활을 회고하며 시종 가족 같은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고 주돈식청와대 대변인은 전했다. 김대통령은 먼저 박씨가 25년동안에 걸쳐 등장인물만도 4백명이나 되는 방대한 작품을 쓴데 대해 축하인사를 했다.김대통령은 『암과 투병하면서 25년동안 4만장 전 16권의 원고를 썼다는 것은 우리문단에 기념비적인 업적을 남긴 것으로 한국 문단 전체의 경사이며 큰 성취』라고 치하했다. 이에 박씨는 『「토지」를 쓰는 것이 생활화 되어 있었기 때문에 25년동안 아무 생각 없이 무념으로 써내려 갔다』면서 『특히 민족의 생활사를 그린다는 집념으로 썼다』고 소개했다. 박씨는 또 『집근처에서 밭농사를 지으면서 자연과 접하고 흙을 만지면서 많은 영감과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을 갖게 됐다』고 설명 했다.박씨는 『항상 글쓰는 소재의 종착역은 한국 국민은 희망이 있고 저력이 있으며 끈기가 있다는 점을 소설 바탕에 깔았다』면서 문학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높아졌으면 좋겠다는 뜻도 밝혔다. 김대통령은 문화를 통해 선진국이 돼야 한다고 화답했다.
  • 조합원들,“파국 막았다” 환영/현중 노사협상 타결 상보

    ◎노사대표,“수고했습니다”격려/「노조원 찬반투표」낙관적 분위기/여사원들,“사장님 파이팅”연호 『수고했습니다』­두달간의 산고를 겪고 23일 「무노동 무임금수용」「자율타결」이라는 옥동자를 탄생시킨 현대중공업 노·사 협상대표들은 악수를 나누며 그동안의 대결과 반목도 잊은듯 밝고 흐뭇한 표정이었다. 이날 정회와 속개를 거듭하며 난항을 계속하는 협상장 밖에서 밤늦게까지 결과를 초조하게 기다리던 조합원들은 잠정합의소식이 전해지자 『파국을 막게됐다』며 이를 크게 환영했다. ○…하오 8시30분쯤 협상장으로부터 잠정합의안이 도출됐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협상장 주변에는 관리직사원과 조합원등 수백명이 몰려들어 장사진을 이루기도. 김정국사장이 협상장을 빠져 나오자 이들은 일제히 박수로 협상타결을 환영했으며 일부 여사원들은 『사장님 파이팅』등을 외쳐대 협상장 주변은 축제분위기를 연출. ○…늦은 시간까지 잠정합의안에 대한 설명을 듣기위해 운동장에 모여있던 조합원들과 조합원가족등 1만여명은 이갑용노조위원장이 교섭결과를 설명할 때마다 박수를 치면서 환영,25일로 예정된 조합원찬반투표결과에 청신호를 보내기도. 특히 조합원들은 일제히 라이터 불을 껐다 켰다 하면서 환호성을 지르며 교섭팀들에 대한 격려와 함께 장기간 파업으로 쌓였던 피로를 해소. 이조합장은 『미흡한 부분에 대해 죄송하다.교섭팀들은 최선을 다했다』면서 조합원들의 현명한 판단을 당부. ○…한편 이날 협상을 마친뒤 열린 쟁대위에서 24일 실무교섭에서 노사양측이 협상안에대한 최종 마무리를 한뒤 대의원대회에 부쳐 25일쯤 총회에 회부하기로 결정.노조측은 이날 쟁대위에서 총회전까지는 파업을 계속한다는 방침을 세웠으나 25일 총회가 실시될 것으로 보여 사실상 파업은 24일로 종결될 전망. ○…회의장에 대한 외부인 출입을 철저히 통제한 가운데 이날 하오2시20분부터 생산기술관 1층 회의실에서 계속된 이날 협상에서 노사 각 10명씩의 협상팀들은 서로의 주장을 놓고 격론을 벌였으나 아무런 진전을 보지 못하고 1시간 만에 정회하자 비관론이 우세.그러나 하오 4시30분쯤부터이진세부사장,김남석노조수석부위장등 노사 2명씩 실무팀을 구성,의견절충에 나서면서부터 회의장 주변은 기대감으로 가득.이들은 서로 기존의 원칙을 고수해 진통을 거듭하다 7시10분에 정회한뒤 20분뒤에 재협상에 들어가자 이때부터 회의장 밖은 희망섞인 기대로 술렁이기 시작,협상타결의 꿈을 부풀게했다. ○…협상타결 소식이 전해지자 조합원들과 협력업체 관계자들이 일제히 환영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회사 관리직 사원들은 합의내용에 대해 불만스럽다는 반응.
  • 백화점·상점은 영업 계속/일인이본 「김일성사망」 발표날

    ◎호텔종업원 오열… 군인들 줄지어 헌화 김일성 사망이 공표되던 날 평양에 머무르고 있었던 일본의 국제정치평론가 나카마루 가오루(중환훈)여사는 그날 이후 평양은 통곡의 바다로 변했다고 전하고 「후계자」인 김정일은 전쟁을 일으킨 아버지의 무거운 짐으로부터 자유로워져 새 출발하려 노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나카마루여사는 김주석을 인터뷰하기 위해 지난 5일 평양에 갔으며 12일까지 일주일간 머물렀다.다음은 나카마루여사가 도쿄신문과의 인터뷰 에서 밝힌 평양 분위기. 예정됐던 김주석과의 만남을 이틀앞둔 지난 9일 평양시내 취재를 마치고 12시40분쯤 숙소인 고려호텔로 돌아오니 호텔 여종업원들이 모두 울고 있었다.통역을 맡았던 여성은 얼굴이 새파래져 『선생 잠깐 방에 계십시오』라고 말했다.종업원들은 김일성의 죽음을 듣고 모두 울고 있었던 것이었다. 김일성 사망이 발표된 평양은 순식간에 깊은 슬픔속에 빠져들었고 온천지가 통곡의 바다로 변했다.김일성동상과 조선혁명박물관 앞에는 엄청난 인파가 몰려 흐느껴 울고 있었다.군인들이 열을 지어 헌화하는 모습도 보였다.영화관은 문을 닫고 다만 백화점·상점만이 영업을 계속했다. 김주석의 죽음을 당국자로부터 직접 들은 것은 공식발표 4시간후.노동당간부가 호텔을 찾아와 『사인은 동맥경화다.평소부터 치료를 받아왔으나 7일 쓰러졌다』고 말하며 김일성의 죽음을 알려주었다.그때 여성통역이 울기 시작했으며 50대의 정부관계자도 얼굴이 파래져 함께 울며 어쩔줄 몰라했다. 당간부는 남북정상회담과 관련,『정상회담은 어디까지나 김주석이 결정한 것이기 때문에 앞으로의 일정은 부총리급,구체적으로는 김용순서기가 협의할 것』이라고 설명했다.그는 핵문제를 둘러싼 미국과의 교섭에도 장례식이 끝난후 적극적으로 나서고 대외정책은 개방적인 전방위외교를 하고 싶다고 밝히고 김정일의 권력계승은 장례가 끝난후 발표될 것이라고 말했다. 주변국의 최대관심인 새 정권의 노선과 관련,일부에서는 김정일의 지금까지 이미지대로 강경노선으로 기울 것이란 우려가 있으나 그렇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새 정권의 대외정책 책임자는김용순서기라고 생각한다.지난 6일 2시간30분동안 김용순서기를 만났을 때 사고방식이 유연하고 세계를 넓게 보고 있는 인물로써 김정일의 오른팔이 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 개방파·「혁명소조」출신 친위그룹 주도/김정일의 적과 동지들

    ◎당 김용순·황장엽­적 「프라하 3인방」 포진/평일모자·빨치산출신 「잠재적」 반발세력 김정일이 일단 북한권력의 헤게모니를 장악할 것이 확실시됨에 따라 그의 친위세력들이 대거 부상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김일성이라는 절대권력자의 사망으로 인한 권력의 진공사태를 메우기 위한 필연적인 수순이다. 따라서 앞으로 김정일체제가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을 지는 미지수이긴 하나 당분간 북한정국은 친김정일 세력과 잠재적인 반대세력간의 물밑 암투가 한동안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친김세력과 반김세력을 명확히 구분하는 것은 북한이라는 특수체제의 성격상 쉽지 않다. 우선 김일성 생전에 김부자간 권력세습에 대한 공개적인 반발은 곧 파멸을 의미했기 때문에 김정일에 대한 불만이 있더라도 내연할 수 밖에 없었던 탓이다.그리고 김정일 친위세력은 대부분 김일성 추종세력과 겹치고 있다는 것도 엄연한 현실이다. 그러나 김정일은 지난 72년 당중앙위 비밀 전원회의에서 공식 후계자로 낙점된 뒤 꾸준히 자신의 시대에 대비해온 것은 사실이다.당·정·군에 걸친 주요 포스트에 은밀히 자신의 세력을 심어온 것이다. 이같은 그의 측근세력은 크게 ▲3대혁명소조를 중심으로 한 소장 저변 친위세력 ▲당·정·군의 이른바 혁명2세대 간부 ▲혁명1세대 중 김정일과 잦은 사적인 교유를 갖는 인물군 ▲친족세력 등으로 대별된다.이들은 상당부분 중첩되는 것도 특징이다. 이같은 관점에서 노동당쪽에선 김용순·김기남·김국태·황장엽 등이 눈에 띈다.이중 대남담당 비서와 최고인민회의통일정책위원장을 겸임하고 있는 김용순은 외교 및 대남관계 핵심브레인으로 등장할 전망이다.「주체사상」의 최대 이론가인 황장엽과 김정일의 각종 연설문 등을 대필해온 김기남 등은 김정일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우상화작업을 선도할 이론과 실무책임자로 부상할 공산이 크다. 김정일의 권력안정에 핵심적 열쇠를 쥐고 있는 군쪽에선 오극렬대장과 김강환·김두남 두 전현 당군사부장이 대표적 측근이다.이들 중 김일성의 빨치산 동료였던 오증흡의 아들인 오극렬이야말로 군부내 「혁명2세대」 중 김정일의 최측근 인사로 차기 인민무력부장이 유력시된다는 관측이다.그는 김정일의 비호하에 초고속 승진을 거듭하다 88년 오진우인민무력부장과의 마찰로 군총참모장직을 재임 10년만에 최광에게 넘겨준 바 있다. 행정 및 경제분야에선 프라하공대 출신의 3인방인 강성산·연형묵·박남기 등과 전현직 국가계획위원장인 김달현·홍석형 및 최영림 등이 측근인사로 거명된다.이들은 대부분 조심스럽지만 개방노선의 불가피성을 인식하고 있는 대표적 테크노크라트들이다. 이밖에 김정일을 위해 중국 문화혁명기의 홍위병과 유사한 기능을 수행해온 3대혁명소조를 이끌고 있는 장성택도 빼놓을 수 없는 측근이다.그는 김정일의 친여동생인 김경희의 남편이라는 사실 하나 때문에 김으로부터 절대적 신임을 얻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처럼 어느 정도 윤곽이 잡히고 있는 측근세력과는 달리 반김세력들은 수면하에 잠재해 있다.더욱이 어차피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북한권력의 속성상 측근세력중에서도 김정일세가 약화될 경우 언제라도 등을 돌릴 인사가 상당하다는 관측이다.이같은 관점에서 주목되는 잠재적 반김 세력들로는 군부와 당에 걸친 이른바 「혁명1세대」그룹 일부와 군부내 소장 및 중견 장교층,그리고 김성애·김평일 등 족벌세력들이다. 김정일의 권력장악에는 오진우를 정점으로 최광인민군총참모장과 이을설호위총국장·백학림사회안전부장·김철만 국방위원을 비롯해 「혁명1세대」의 막내격인 김광진차수 등 빨치산 원로급들의 협조가 절대적이다.그러나 이들중 상당수는 그동안 김일성이 카리스마에 눌려 침묵을 지켰으나 내심 김정일의 노선과 지도력에 회의를 품어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때문에 이들 중 일부가 동구유학을 다녀온 중견장교들과 연계해 김정일체제가 대외적 고립과 경제난을 극복하지 못할 경우 반기를 들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다. 표면적으로는 후원세력이나 언제든지 등을 돌릴 가능성도 있는 인물들로는 친삼촌인 김영주와 계모 김성애,이복동생 김평일 등 족벌세력들이다.특히 김정일과 후계경쟁에서 밀려나 18년의 은둔 끝에 지난해 일약 부주석으로 화려하게 복귀한 김영주는 일단 김의 후견인역을 수행할 것으로 보인다.하지만 당정에 걸친 추종세력이 상당한 것으로 알려져 요주의 인물이라는 관측이다. ◎매부 장성택 가장 신임… 요직 앉혀/작년 재기한 숙부 영주의 향배에 관심/김정일과 족벌내 역학관계 김일성은 생전에 자신의 아들 정일을 둘러싸고 빚어지고 있는 가족간 갈등에 대해 심히 우려했었다고 전해진다.그만큼 김정일과 다른 가족간 대립이 심각했고 이는 자신의 사후 정권존립 자체에 위험요소가 될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김일성의 가장 큰 근심거리는 김정일과 자신의 후처 김성애,자신의 친동생 김영주,김성애와 사이에 난 아들 즉 김정일의 이복동생 평일과의 관계였다. 지난 72년 이후 20여년간 후계자로서의 정권 정지작업을 다져온 김정일에 있어서 가족관계는 철저히 적과 아의 개념이 분명했다.권력장악의 걸림돌이냐 추종세력이냐가 그 기본선으로 특히 김일성과 자신의 생모 김정숙(49년 사망)사이 관계인 「기본가지」와 계모 김성애(김일성과 56년 결혼)와의 관계인 「곁가지」를 철저히 구분했다. 따라서 김정일이 가장 신임하고 있는 것은 친 여동생으로 북한 여성계의 참모역할을 하는 당 경공업위원장인 경희와 그의 남편 장성택이다.그는 실세로 불리며 중앙당 27개 부서 가운데 3대혁명소조부·근로단체부·청년사업부 등 핵심 3개부서를 맡고 있다.이밖에 신임하는 사람으로는 자신의 브레인으로 사상적 부족함을 메워주는 가정교사 황장엽(전 김일성대총장으로 사상담당 당서기·김일성의 조카사위),양형섭(최고인민회의 의장·김의 4촌동생 김신숙의 남편),김정숙 민주조선 책임주필(김의 4촌동생)등이 있다. 김정일이 배척,김일성의 우환거리를 제공했던 이들과의 「가족화해」를 시사한 일련의 사건들이 이어져 세계의 이목을 끈 것은 지난해.70년대 초반 남북조절위 공동위원장,10년간의 당조직위원장을 지내며 막강한 실력을 행사하다 75년 김정일에 의해 사실상 숙청된 김영주가 재등장한 것.당내 막강한 지원세력까지 김정일에 의해 「여독청산」란 이름으로 거의 제거돼 은둔생활에 들어간 그는 지난해 7월17일 「조국해방전쟁 승리기념관」 준공식에김부자등과 모습을 나타내고 이어 며칠뒤 당정치국서열 7위로 부상했다. 또 지난 71년 여맹위원장이 돼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다 김정일에 의해 73년 여사칭호를 박탈당하고 친동생 김성갑마저 평양시 인민위원장 자리에서 쫓겨나는 수모를 겪었던 김성애도 마찬가지.80년 이후 줄곧 공식행사에 얼굴을 못내민채 평양근교 별장에서 두문불출해 오다 지난해 11월 노동신문에 쿠바여성대표단을 맞는 사진이 나오고 이어 여맹전원회의에서 「김정일지도자를 받들자」는 내용의 연설을 했다.지난달 김일성과 함께 카터 전미국대통령을 맞으며 내외에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 것은 세계의 뉴스거리로 받아들여질 정도였다. 한편 김평일은 김정일로부터 가장 박대를 받아온 인물.김일성을 닮은 건장한 체구와 카리스마적 얼굴,원만한 성격이 김정일로 하여금 그를 권력의 언저리에서 감시의 대상으로 올려 놓았던것. 불가리아 대사로,핀란드 대사로 겉돌며 북한주민들로부터 동정을 받았던 그가 최근 북한으로 돌아가 군요직을 맡았다는 소식이 전해진 것도 그 하나다. 이같은 김정일의 관용이 김일성의 심기를 편하게 해주는 단순한 배려로 그치고 김일성이 사망한 지금 다시 이들을 숙청하거나 「안거」토록 할는지는 분명치않다. 일단은 복권된 이들 친족들이 「조카의,의붓아들의,형의,처남의 대권에 도전하지 않고 적극 밀어주겠다」고 약조한 끝에 나온 족벌정치강화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김정일족벌의 정확한 향배는 11일 이후 김정일이 정식 권력승계절차를 마치고 통치를 행사함에 따라 조만간 드러날 전망이다. ◎올들어 공식행사 6차례만 참석/「친필서한」은 부쩍 늘어… “충성경쟁 유도”/김정일 최근 어디서 뭘했나 김정일은 공식석상에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아버지 김일성을 예우하는 차원이라는 분석도 있으나 몇가지의 콤플렉스를 갖고 있기 때문이라는 시각도 있다. 1백58∼1백62㎝로 추정되는 단신에다 그의 연설문이 육성으로 단 한 차례도 방송되지 않을 정도로 말을 더듬는 콤플렉스가 있어 대인 기피증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듯 김정일의 최근 행적 가운데 특별히 눈에 두드러지는것은 없다.평소보다 활동이 눈에 띄게 뜸했다거나 아니면 왕성했다거나 하는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다. 김정일의 최근 행적에서 그의 권력승계 여부를 확인하는 단서를 찾기란 힘들다는 얘기이기도 하다.공식적인 자리에 자주 얼굴을 내미는 대신 뒤에서 조용히 기반을 다져 권력승계에 대비해온 것이다. 김정일이 올들어 공식행사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여섯차례에 불과하다. 새해 벽두에 근로자들과 신년모임을 가진데 이어 2월 28일에는 조총련 책임부의장인 허종만과 면담했다.뒤이어 3월 5일에는 북한군 협주단 공연을 관람했고,4월 6일에는 최고인민회의 9기 7차회의에 참석했다. 4월 25일에는 군창건절을 맞아 아버지 김일성과 함께 564군부대를 시찰했고,5월 6일에는 조총련 제1부의장 이진규와 「친선담화」를 나눴다.지난달 카터 전 미국대통령이 방북했을 때 김정일은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처럼 의례적인 공식활동을 하면서도 실질적인 통치자로서의 정책지도 활동이라 할 수 있는 「현지지도」 및 외빈접견 활동은 김일성이 사망할때까지 단 한차례도 갖지 않았다. 올들어 김정일의 보이지 않는 행적 중 눈에 띄는 것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은 「친필서한」을 보내는 숫자가 예년에 비해 부쩍 늘었다는 점이다.친필서한이란 김정일이 주민들에 대한 「사랑」을 과시하고,이들을 고무·격려하기 위해 직접 쓰는 편지이다.지난 90년 11월 1일 「조선중앙통신사」 당원들에게 보낸 것이 효시이다. 올들어 지난 5월초까지 7차례의 친필서한을 보냈다.예년의 1년치와 맞먹는다. 전문가들은 친필서한이 잦아지고 있는 것을 김정일의 「인덕정치」를 부각시키고 그에 대한 충성심을 고취시키기 위한 정치적인 속셈으로 보고있다.사상적으로 취약한 새 세대들에게는 김정일에 대한 「대을 이은 충성」을 확고히 하고,핵문제로 국제적 압력이 가중되는 상황에서 청년 군인들에게는 김정일 체제 수호를 위한 긴장감을 불어 넣기 위한 목적이라는 것이다. 지난해 이후 김정일의 외형적인 행적에서 변화를 찾는다면 생산현장에 대한 「현지지도」가 줄어든 대신 군관련 행사 참여가 늘고 있는 점이다.군후방일꾼대회·전승기념탑 제막식·공병대회 등에 참석하고,전승기념 퍼레이드를 관람하는 등 군관련 행사에는 매우 활발하게 참여했다.지난해 4월 국방위원장으로 선임된 이후 당연한 결과로 지적되고 있으나,권력승계에 대비해 군부를 미리 장악하려는 의도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 「평양행」 누가 몇명이나 가게 될까(남북 정상회담)

    ◎TV중계팀 포함 수행원·보도진 180여명 “대이동”/경제부처 장관 다수 포함될듯/손여사 동행추진… 북반응 관심 남북정상회담 우리측 수행원의 숫자는 역사적인 사건답게 대규모로 예상되고 있다.보도진을 합쳐 대략 1백80명선.아직 우리측의 생각일 뿐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1일 실무접촉에서도 그와 비슷한 선에서 합의가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이는 90명이었던 남북고위급회담 때의 2배에 이르는 것.제3국과의 정상회담때와 비슷하다.남북고위급회담에는 공식·비공식 수행원 40명과 보도진 50명등 90명이 수행했다.또 시애틀 아·태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일본·중국 방문 때는 공식수행원 15명,비공식수행원 30명과 경호원 60명,보도진 80명등 모두 1백80여명이 수행했다.이 가운데 경호원의 숫자는 정상이 방문하는 나라의 수에 따라 늘어나는 것이 관례.그래서 러시아및 우즈베키스탄 방문 때는 수행원이 2백명에 가까웠다. 고위급 수행원으로는 김영삼대통령의 의중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박관용비서실장과 예비접촉 우리측 수석대표인이홍구통일부총리,그리고 각료 몇 명이 손꼽힌다.수행각료들은 주로 경제부처장관들이 될 가능성이 크다.이밖에 통일원·외무부·안기부의 직원과 남북대화 관계자들이 포함될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정부는 그럴 리는 없을 것으로 판단하면서도 혹시 김정일이 모습을 나타낼 것에 대비해 그를 상대할 우리측의 카운터파트로 누구를 선택할 것인지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는 또 보도진의 숫자를 1백명 쯤으로 잡고 있다.순수한 국내 기자들만이다.외신기자들의 취재 허용 여부는 북한측 뜻에 맡긴다는 방침이다.외신기자들이 판문점을 통해 평양에 들어가든지 중국 또는 일본에서 곧바로 가든지 상관하지 않겠다는 것이다.지금까지 공보처에 방북 취재를 신청한 외신기자는 82명.서울에 상주하는 기자 62명과 도쿄에 주재하는 기자 20명이다.이들은 평양측과 직접 교섭해야 한다. 이번 정상회담이 과거의 남북대화 때와 달라진 점이 있다면 TV중계팀이 수행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우리측은 이 부분을 반드시 관철시키려 하고 있다고 전해진다.CNN이 생중계를 위해 중계차를 갖고 들어가니 만큼 우리측도 그렇게 하겠다는 것이다.국내 언론사가 CNN의 생중계 화면을 보면서 기사를 작성하는 일을 막자는 것이다.CNN은 얼마전 지미 카터 전미국대통령의 북한방문때 도쿄에 주재하는 마이크 치노이기자와 중계차를 평양에 보내 카터의 기자회견을 생방송했다. 정부는 가능하다면 대통령부인 손명순여사의 평양행도 비공개리에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이같은 사실을 공개하지 않는 이유는 북한이 어떤 태도를 보일지 아직 모르기 때문이다.또 국민 여론에도 신경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손여사가 김대통령과 동행하면 북한측에서도 김성애가 공식 석상에 나타나야 한다.김성애는 카터의 방북때 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냈었다. 정부는 정상회담의 경호와 의전을 담당할 선발대가 늦어도 7월11일까지는 평양에 가야 한다는 생각인 것으로 알려졌다.또 그 숫자를 15∼20명선으로 잡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 “금요일의 반란”…충격싸인 민주/「비주류 총무」 선출 배경과 전망

    ◎기반 취약한 이 대표 입지에 치명타/주류­비주류 힘겨루기 가속화할듯 27일의 민주당 원내총무 경선은 비주류 신기하의원이 수적으로 우세한 범주류의 지원을 등에 업은 현직총무인 김대식의원을 꺾는 「의외의 결과」로 막을 내렸다.예상을 완전히 뒤엎었기에 「반란」이라는 시각도 적지 않다.이런 결과는 당내 최대계보인 동교동계와 이기택대표계,김원기최고위원계등 96명의 의원 가운데 70여명을 웃도는 범주류측에서 이탈표가 많이 나왔고 여기에다 이부영최고위원등 개혁모임과 비주류측이 똘똘뭉쳐 신의원을 지원한 때문으로 분석된다. 신의원의 원내총무 입성으로 민주당은 「주류 지도부·비주류 총무」라는 불안한 구조아래 당내 갈등이 증폭됨은 물론,안그래도 취약한 이대표의 지도력에 치명타를 안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읍소작전 먹혔다” 특히 김상현·정대철고문과 이부영최고위원등 비주류측이 주요당직에 교두보를 구축한만큼 앞으로 자신들의 목소리를 키우는 한편 정치현안마다 당지도부에 제동을 걸 것이 분명하다.이와 관련,비주류측이 줄곧 주장해온 내년 자치단체장선거에 앞선 조기전당대회 요구가 일찍 고개를 들 공산이 크며 이에 맞서 이대표쪽과 동교동계등 주류측도 위기감 아래 본격적인 세확장작업에 나설 것으로 보여 민주당은 상당기간 바람잘 날이 없을 것 같다. ○…전날까지도 패색이 짙었던 신의원이 극적인 반전을 이룬데는 여러 해석이 있다. 우선 치열한 당권경쟁을 벌이는 전당대회도 아닌만큼 『총무쯤이야…』라고 할 정도로 의원들의 계보의식이 엷어진 점을 꼽을수 있다.신의원은 이 틈새를 비집고 학연(광주일고·전남대),지연(전남)등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져 계보의 벽을 넘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당직은 돌아가면서 맡아야한다』『3선임에도 변변한 자리 한번 못해봤다』는 신의원의 읍소작전이 먹혀들었다고도 볼수 있다. ○“소외그룹 큰역할” 여기에다 전국구나 초재선의원등 당직과는 거리가 먼 「소외그룹」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지적이 많다.또 당지도부에 대한 불만이 이번 총무경선으로 나타났다는 풀이도 있다.덧붙여 범주류의 지원으로 재선을 확신한 김전총무가 너무 안이한 자세로 선거에 임한 것도 신의원에게 반사이익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날 경선에는 와병중인 관계로 부재자투표를 한 조윤형의원을 제외한 95명이 전원 참석.외유중이던 조홍규·이우정·신진욱의원도 이날 아침 귀국,투표에 참가. 일반적인 예상과는 달리 신의원의 승리로 끝나자 당사자는 물론 의원들도 의외라는 반응이 역력.특히 김총무는 예상치 못한 결과에 큰 충격을 받은 모습.그러나 김상현·정대철고문이 이끄는 비주류측은 환한 웃음을 지어 대조. ○김 전총무 눈물러도 신의원은 당선인사를 통해 『김전총무의 업적위에서 이대표를 비롯한 지도부의 고견을 받들어 성심성의껏 당을 위한 길을 갈 것』이라고 고마움을 표시.김전총무는 눈물이 글썽한 표정으로 『내 인생에 굴절이 많았으나 앞으로 묵묵히 맨 뒷줄에 서서 당과 국민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낙선인사. ◎민주 새원내사령탑 신기하의원/“율사총무끼리 협력 기대”/「상무대으혹」 푸는데 최선/“이 대표와 호흡잘 맞출터” 「신기하후보 49표,김대식후보 46표…」­민주당의 새원내총무에 당선되는 순간 신기하의원의 표정은 복잡했다.당선의 기쁨과 함께 높디 높은 계파의 벽을 뛰어넘었다는 사실에 대한 놀라움이 뒤섞인 모습이었다. 신총무의 취임 일성은 「단합」이었다.『당의 단합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이른바 비주류인 신총무와 범주류인 이기택대표가 마찰을 빚을 지 모른다는 우려에 대해서도 『금실좋은 부부처럼 호흡을 맞춰 나가겠다』면서 「두고 보라」는 표정을 지었다. 비주류인 김상현고문의 목소리가 커지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신총무는 『김고문은 지난 84년 민추협때 모시게 됐고 이대표는 12대 국회의원에 당선되면서 모시게 됐다』면서 『나는 개인적인 친소관계를 정치관계와 구별못하는 사람이 아니다.정치에는 영원한 동지도,영원한 적도 없다』고 말해 묘한 여운을 남겼다.선거가 주류대 비주류의 대결이었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민주당은 김대중선생의 은퇴이후 새로운 계파가 형성되는 과정에 있을 뿐』이라는 말로 일축했다. 민자당의 이한동총무에대해서는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분』이라면서 『같은 법조 출신인 만큼 국정에 대한 시각이 다소 다르더라도 애국애족하는 마음으로 잘 협조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신총무는 그러나 현안인 상무대 의혹에 대해서는 『코를 찌르는 악취가 나는 대표적 부패인데도 정부여당이 의혹을 풀 노력을 전혀 하지 않고 있다』고 강한 어조로 비난했다. 12대이후 3선인 그는 원칙주의자라른 평을 들을 정도로 원리원칙을 중시하는 반면 친화력이 다소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13대때 평민당 수석부총무를 지낸 것 말고는 당직에 기용되지 못하는 불운을 겪기도 했다.광주 서강전문대교수인 부인 김정숙여사(47)와 2남. ▲53·전남 함평 ▲전남대 법대 ▲광주지법판사 ▲민추협상임운영위원 ▲민주당 당무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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