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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주영씨 별세

    현대그룹의 정주영(鄭周永) 전 명예회장이 타계했다. 한국경제 근대사의 마지막 거목인 정 전 명예회장은 21일밤 10시 서울 풍납동 서울중앙병원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6세. 서울중앙병원측은 “정 전 명예회장은 폐렴으로 인한 급성 호흡부전증으로 숨을 거두었다”고 밝혔다. 장남 정몽구(鄭夢九) 현대·기아자동차 총괄회장과 몽헌(夢憲) 현대아산이사회 회장,몽준(夢準) 현대중공업 고문등 가족들이 임종했다. 정 전 명예회장은 지난해 6월 ‘3차 소떼 방북길’에 나서 북한의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을 만나기 위해 비행기를 타고 함경남도 원산으로 날아가는 등 무리한 일정 때문에 귀국한 뒤 기력이 급격히 떨어져 서울중앙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아왔다.입원 중에는 영양주사로 기력을 다소 회복해 서울 청운동 자택이나 계동 본사 사옥에 들르기도 했으나,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한 탓에 기력이 다해 끝내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강원도 통천 출신인 고인(故人)은 1940년 합자회사인 아도써비스공장 설립을 시작으로 자동차산업에 뛰어들었고,50년에는 현대건설을 세워 대규모의 해외수주 물량을 확보,국가경제를 한단계 끌어올리는 데 견인차 역할을 했다. 유족으로는 서울중앙병원에 입원 중인 부인 변중석(邊仲錫·80)여사와 장남 정몽구 현대·기아차 총괄회장,몽근(夢根) 현대백화점 회장,몽헌 현대아산이사회 회장,몽준 현대중공업 고문,몽윤(夢允) 현대해상화재 고문,몽일(夢一)현대기업금융 회장 등 6남1녀가 있다.장례는 25일 오전 8시 가족장으로 치러지며 장지는 경기도 하남시 창우리 선영이다.빈소는 서울 청운동 자택,연락처 (02)732-3778. 주병철기자 bcjoo@
  • 농구계 원로 김정신옹 별세

    농구계 원로 김정신(金程信)옹이 21일 오전 숙환으로 별세했다.향년 85세. 김옹은 해방 후 태극마크를 달고 출전한 첫 올림픽인 48년런던올림픽을 비롯해 각종 국제대회에서 활약했으며 대한농구협회 이사를 거쳐 89년 ‘농구 80년사’ 편집위원장을 역임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양신호(梁信浩)여사와 프로농구 SBS 김인건(金仁建)감독 등 4남이 있다.빈소는 삼성서울병원,발인은23일 오전 7시 (02)3410-6917
  • MBC 새 아침드라마‘내 마음의 보석상자’

    백화점 식당가에서 한식당을 하는 맹여사.어린시절부터 흠모해온 고향 오빠가 사별하자 전실 자식 둘을 마다않고 그와 결혼한다.소설가인 남편은 더없이 자상한 로맨티시스트,하지만 가장으로는 무능하다. 맹여사는 유독 전처소생 아들에게 헌신적인 사랑을 쏟으며 4남매를억척으로 키워낸다. 그녀의 친딸 수정은 이런 엄마가 지긋지긋하다.“절대로 엄마처럼 살지 않을거야”라며 증오와 복수심을 키우지만 운명처럼 다가온 남자는 애 딸린 이혼남.마음을 다잡고 도리질 쳐보지만 사랑을 막을 수가 없다. 5일 첫방송되는 MBC 새 아침드라마 ‘내 마음의 보석상자’(박지현극본·김정호 연출)에는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가족들이 등장한다.혼자서 외동딸을 애지중지 키운 미혼모 집안,이혼한 아들부자와함께 3대가 살고 있는 홀아비 집안 등등. 시청률을 의식해 너무 비정상적인 가족상만을 나열했다는 ‘혐의’에 대해 김정호PD는 “저마다 상처를 묻어둔 채 살아가는 다양한 가족의 모습을 통해 우리 시대에 진정한 사랑과 행복이란 무엇인가를 풀어나가겠다”고살짝 비켜 선다. 수정역의 정혜영은 이름은 낯설지만 비타민약 ‘레모나’CF로 눈에익은 얼굴이다.올해 28세라고는 믿어지지 않게 앳된 얼굴에 사슴같이 큰 눈망울이 매력포인트.그동안 해온 청순가련형과는 달리 당차고씩씩한 혜영을 소화하기 위해 허리까지 내려오던 생머리를 짧게 잘랐다고. 상대역에는 12살이나 연상인 띠동갑 홍학표가 캐스팅됐고 김영애(맹여사),임채무(소설가 남편),김영란(미혼모),김용건(홀아비) 등 중견탤런트도 대거 가세한다.특히 김영애는 KBS 저녁 일일드라마 ‘우리가 남인가요’에서 이기적이고 까탈스러운 성격으로 변모해 아침,저녁을 넘나들며 얼굴색을 바꿀 예정이다.자신의 본래 모습과 80%쯤 닮은 맹여사가 연기하기엔 한결 편하다는 게 그녀의 귀띔. 그동안 대부분의 아침드라마들이 불륜,삼각관계 등 뒤틀린 소재로 주부 시청 시간대를 도배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던 게 사실이다.‘이번에도 그렇고 그런 드라마겠지’하는 시청자들의 선입견을 깨고 ‘내 마음의 보석상자’가 가족속에 숨겨진 보석같은 사랑을 제대로 끄집어내 보여줄지 한번 기다려볼 일이다.아침 9시에 방송된다. 허윤주기자 rara@
  • 제주은행 창업주 김봉학옹 별세

    제주은행 창업주인 김봉학(金鳳鶴)옹이 지난 22일 밤 10시58분 일본 도쿄 자택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향년 80세. 일본 와세다대학을 수료한 김 옹은 지난 69년 제주은행을 설립,초대 은행장과 회장을 지냈다. 또 ㈜제남신문 회장(72년)과 학교법인 천마학원 이사장(88년),대한YMCA연맹 이사장,한·일친선협회 부회장,한·이스라엘경제협회 회장을역임했으며 정부로부터 국민훈장 동백장과 모란장을 받았다. 유족으로 미망인 박옥순 여사와 장남 성인씨(전 제주은행장)와 맏며느리 김정온씨(천마학원 이사장) 부부 등이 있다. 발인 27일 오전 11시 일본 치바현 이치카와시 수와다 2-16-3,연락처제주 (064)757-2802,일본 81-473-72-2772.
  • [데스크시각] 햄버거 경제학과 북미관계

    ‘햄버거 경제학’이란 말이 있다.몇년전 뉴욕타임스의 칼럼니스트인 토머스 프리드먼이 맥도널드 햄버거 체인점이 있는 나라들의 경제,외교적 행동 양태를 소재로 칼럼을 쓰면서 이 용어를 등장시켰다. 결론을 간단히 소개하면 이렇다.맥도널드 햄버거 분점이 있는 나라들끼리는 전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햄버거는 여러 재료와 공정을합쳐서 만드는 종합식품이다. 맥도널드는 외국에 분점을 내면 철저히현지 원료로 햄버거를 만든다는 원칙을 지킨다. 그럴려면 지속적으로공급 가능한 일정수준의 육우산업이 유지되는 나라라야 한다. 감자,양파,토마토,밀 등의 재료를 원활히 공급할 유통구조도 갖추어야 한다.여기다 외국자본을 받아들일 만큼 건강한 자본시장과 글로벌 의식이 뒷받침돼야 한다.그리고 마지막으로 햄버거를 사먹을 정도의 소비력을 가진 두터운 중류층이 뒷받침돼야 한다. 이런 나라들이라면 그동안 쌓아온 경제적 성과들을 한꺼번에 날려버릴지도 모를 위험한 전쟁놀이는 하지 않는다는 게 바로 햄버거 경제학의 논지다.실례도 있다.중동국가중 이스라엘,사우디 아라비아,이집트,요르단에는 맥드널드가 진출해 있다.중동에 아무리 긴장이 감돌아도 이 나라들끼리 전면전을 벌일 가능성은 없다고 한다.인도에도쇠고기를 쓰지 않는 채소 맥도널드 햄버거점이 성업중이다.반면 파키스탄에는 아직 맥도널드가 없다.두 나라는 지금도 툭하면 전쟁을 한다고 난리다. 50,60년대 많은 개발도상국들이 유엔 가입을 국가의 최우선 목표로삼았던 때가 있다.우리도 그랬다.맥도널드 분점이 당시 유엔 가입 정도의 의미를 가진다면 과장일까. 햄버거를 먹으며 행복해 하는 평양사람들을 상상해 본다.물론 유통구조,글로벌 의식,자본시장,구매력등 모든 기준에서 지금의 북한은‘햄버거 국가’기준에 턱없이 미달된다.그러나 햄버거가 가져다주는정치적 효과를 감안해 북·미교류의 최우선 순위를 맥도널드 진출에두었으면 어떨까 하고 생각해 본다. 1990년초 모스크바에 맥도널드 분점이 처음 문을 열었을 때 햄버거를 사먹기 위해 수백미터씩 장사진을 치고 기다리던 모스크바 시민들이 생각난다.모스크비치들은 햄버거를 먹으면서 ‘페레스트로이카(개혁),글라스노스트(개방)의 맛이 바로 이거야’하며 속으로 탄성을 질렀을 것이다. 맥도널드는 체제가 주인인 세상에서만 살아온 그들에게개인이, 그리고 소비자가 주인인 세상의 모습을 전해준 복음이었다. 말끔하게 차려입은 점원들이 90도로 허리를 굽히며 자기들을 맞아주는 그 우쭐함을 햄버거와 함께 즐기며 모스크비치들은 행복해 했다. 반드시 맥도널드가 아니라도 좋다.인센티브제 도입이나 인터넷 개방도 좋고 CNN방송 평양지국 허가도 좋다.극비방문이 아니라 ‘김정일위원장이 모월 모일부터 중국을 방문한다’고 당당하게 발표하는 것도 좋다.멋진 패션의 퍼스트 레이디가 동행한다면 더욱 좋다.라이사여사의 패션이 ‘악의 제국’소련의 이미지를 바꾸는 데 얼마나 큰기여를 했던가.미국도 한국도 그리고 북한도 미사일 협상이나 북한핵동결같은 어렵고 딱딱한 일들에만 너무 매달리는 것은 아닌가. 곧 부시 새 행정부가 출범한다.새 행정부의 북한정책이 클린턴 때와는 달라질 것이란 전망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딕 체니 부통령,콜린파월 국무장관,콘돌리자 라이스 안보보좌관 등은 소련과 동구의 몰락을 목도하고 이를 후원한 주인공들이다.하나같이 ‘사회주의는 미래가 없다’고 믿어온 사람들이다.그러나 사회주의 발전에 대한 북한정권의 의지는 조금도 누그러질 기미가 없다.양자 사이에 낀 샌드위치가 바로 한국이다.양측을 거중조정하는 일은 우리가 예상해온 것보다더 힘들 것같다. 김정일 위원장이 베이징에 진출한 맥도널드점들을 보고 ‘햄버거 효과’에 관심을 가지게 됐으면 좋겠다.맥도널드가 들어서도 하루아침에 사회주의가 무너지지 않는다는 걸 중국이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지금 필요한 것은 아주 작은 변화의 상징이다.그게 한편으로는 미국보수주의자들의 마음을 녹이는 촉매제가 되고 또다른 한편으로는 북한당국으로 하여금 변화를 겁내지 않게 만드는 묘약이 될 수 있다. 이기동 국제팀장 yeekd@
  • 김대중대통령 노벨평화상 수상연설 전문

    국왕 폐하,왕세자와 공주 등 왕실가족 여러분,노르웨이 노벨위원회위원 여러분,그리고 내외 귀빈과 신사 숙녀 여러분. 노르웨이는 인권과 평화의 성지입니다.노벨평화상은 세계 모든 인류에게 평화를 위해 헌신하도록 격려하는 숭고한 메시지입니다.저에게 오늘 내려주신 영예에 대해서 다시 없는 영광으로 생각하고 감사를 드립니다.그러나 저는 한국에서 민주주의와 인권,그리고 민족의 통일을 위해 기꺼이 희생한 수 많은 동지들과 국민들을 생각할 때 오늘의 영광은 제가 차지할 것이 아니라 그 분들에게 바쳐져야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우리 국민의 민주화와 남북 화해를 위한 노력을 아낌없이 지원해 주신 세계의 모든 나라와 벗들에게도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이 노벨평화상을 저에게 주신 이유 중의 하나는 지난 6월에 있었던 남북 정상회담과 그 이후에 전개되고 있는 남북 화해·협력 과정에 대한 평가라고 알고 있습니다. 존경하는 여러분. 노벨위원회가 긍정적으로 평가해 준 최근의 남북관계에 대해 몇 말씀 드리겠습니다.저는 지난 6월에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을 가졌습니다.북한에 갈 때 여러 가지 걱정이 많았지만 오직 민족의 화해와 한반도의 평화를 위한 일념으로 출발했던 것입니다. 회담이 잘 된다는 보장도 없었습니다.남북은 반세기 동안 분단된 가운데 3년에 걸친 전쟁을 치렀으며 휴전선의 철책을 사이에 놓고 불신과 증오로 50년을 살아 왔습니다. 이러한 남북관계를 평화와 협력의 방향으로 돌리기 위해 저는 98년 2월 대통령에 취임한 이후 햇볕정책을 일관되게 주장했습니다.그것은 첫째, 북에 의한 적화통일을 용납하지 않는다.둘째,남에 의한 북한의 흡수통일도 결코 기도하지 않는다. 셋째, 남북은 오로지 평화적으로 공존하고 평화적으로 교류·협력하자는 것이었습니다.완전한 통일에 이르기까지는 얼마가 걸리더라도 서로 안심하고 하나가 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 저의 생각이었습니다. 북한은 처음에는 우리 햇볕정책을 북한을 전복시키려는 음모로 여기고 강하게 반발했습니다.그러나 우리의 일관되고 성의있는 자세와 노르웨이를 비롯한 전세계 모든 나라의 햇볕정책에 대한 지지는 마침내 북한의 태도를 바꾸게 만들었습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남북 정상회담이 열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남북 정상회담은 예상했던 대로 참으로 힘든 협상이었습니다.그러나 우리 두 사람은 민족의 안전과 화해·협력을 염원하는 입장에서 결국 상당한 수준의 합의를 도출해 내는 데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첫째,우리는 조국의 통일을 자주적이고 평화적으로 이룩하자,또 통일을 서두르지 말고 우선 남과 북이 평화적으로 공존하고 평화적으로 교류 협력하기 위해 전력을 다하자는 데 합의했습니다. 둘째,종래 남북 간에 현격한 차이가 있었던 통일방안에 대해서도 상당한 합의점을 도출하는 데 성공했습니다.북한은 우리가 주장한 통일의 전 단계인 ‘1민족 2체제 2독립정부’의 ‘남북연합제’에 대해 ‘낮은 단계의 연방제’라는 형태로 접근해 왔습니다.분단 반세기 만에 처음으로 통일에의 제도적 접점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셋째,한반도에 미군이 계속 주둔해서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안전을 유지하도록 하자는 데에도 합의했습니다. 북한은 지난 50년 동안 남한에서의 미군 철수를 최대 쟁점으로 주장했습니다.저는 김정일 위원장에게 강조했습니다.“미·일·중·러의 4강에 둘러싸여 세계에서도 유례가 없는 특수한 지정학적인 위치에 있는 우리로서는 미군의 한반도 주둔은 필수불가결하다.미군은 현재뿐 아니라 통일 후에도 필요하다.유럽을 보라.당초 ‘나토’의 창설과 미군의 주둔은 소련과 동구 공산권의 침략을 막는 것이 목적이었다.그러나 공산권이 멸망한 지금도 ‘나토’와 미군이 있지 않느냐. 유럽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서는 그 존재가 계속되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대해 김정일 위원장은 뜻밖에도 종래의 주장을 접고 적극적인 찬성의 뜻을 나타냈는데,이는 한반도는 물론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위해 참으로 뜻 깊은 결단이었습니다. 그 외에도 우리는 이산가족이 만나는 데 합의했으며 여러분이 아시는 대로 원만하게 실천에 옮겨지고 있습니다.경제협력에 대해서도 합의를 했습니다.이미 투자보장,이중과세방지 등 4개의 협정을체결하는 합의서에 서명했습니다.우리는 그 동안 북한에 대해 인도적 차원에서 비료 30만t과 식량 50만t을 지원했습니다.그리고 사회·문화 교류에 대해서도 합의해 스포츠,문화예술,관광 교류 등이 점차 활기를 띠고 있습니다. 또한 남북 간 긴장 완화와 평화 정착을 논의하기 위한 남북 국방장관회담이 열려 ‘다시는 전쟁을 하지 말자’는 데 합의했습니다.남북간의 분단된 철도와 도로를 다시 연결하기 위해 양쪽 군이 협력하는 데에도 합의했습니다. 한편 저는 남북관계의 개선만으로는 한반도에서 평화와 협력을 완벽하게 성공시킬 수 없다는 판단 아래,북한이 미국과의 관계를 개선하고,나아가 일본과 다른 서방국가들과도 관계를 개선할 것을 적극 권유했습니다.그리고 서울로 돌아와서 ‘클린턴’대통령,‘모리’총리등 미·일 양국의 정상에게도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권고했습니다. 또한 저는 지난 10월에 서울에서 열렸던 제3차 ASEM 정상회의에서 유럽의 우방국가들에게도 북한과 관계 개선을 하도록 권고했습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바와 같이 지금북·미 관계와 유럽·북한 관계는 상당한 진전을 보이고 있습니다.이러한 일들은 한반도의 평화에 결정적인 영향과 진전을 가져다 줄 것입니다. 존경하는 귀빈 여러분. 제가 민주화를 위해서 수십 년 동안 투쟁할 때 언제나 부딪힌 반론이 있었습니다.그것은 아시아에서는 서구식 민주주의가 적합하지 않으며 그러한 뿌리가 없다는 주장이었습니다.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릅니다.아시아에는 오히려 서구보다 훨씬 더 이전에 인권사상이 있었고,민주주의와 상통한 사상의 뿌리가 있었습니다.‘백성을 하늘로 삼는다.’‘사람이 즉 하늘이다.’‘사람 섬기는 것을 하늘 섬기듯 하라. ’이런 것은 중국이나 한국 등지에서 근 3,000년 전부터 정치의 가장 근본요체로 주장되어 온 원리였습니다. 또한 2,5000년 전에 인도에서 시작된 불교에서는 ‘이 세상에서 내 자신의 인권이 제일 중요하다’는 교리가 강조되었습니다. 이러한 인권사상과 더불어 민주주의와 상통되는 사상과 제도도 많이 있었습니다. 공자의 후계자인 맹자는 ‘임금은 하늘의 아들이다.하늘이 백성에게 선정을 펴도록 그 아들을 내려보낸 것이다.그런데 만일 임금이 선정을 하지 않고 백성을 억압한다면 백성은 하늘을 대신해 들고일어나 임금을 쫓아낼 권리가 있다’고 했습니다.이것은 존 로크가 그의 사회계약론에서 설파한 국민주권사상보다 2,000년이나 앞선 것입니다. 중국과 한국에서는 이미 기원 전에 봉건제도가 타파되고 군현제도가 실시되었습니다. 공무원을 시험에 의해서 뽑는 제도는 1,0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이와 병행해서 임금을 포함한 고관들의 권력 남용을 감시하는 강력한 사정제도도 존재했습니다.이와 같이 민주주의에 대한 풍부한 사상과 제도의 뿌리가 있었던 것입니다.다만 아시아에서는 대의적 민주제도의 기구는 만들어 내지 못했습니다.그것은 서구사회의 독창적인 것으로서 인류의 역사에 크게 기여한 훌륭한 업적이라고 할 것입니다. 서구의 민주제도는 민주적 뿌리가 있는 아시아에서 이를 채택할 때 아시아에서도 훌륭하게 기능하고 있는 것입니다.한국·일본·필리핀·인도네시아·태국·인도·방글라데시·네팔·스리랑카 등 수 많은 사례들이 있습니다.동티모르에서 주민들이 민병대의 혹독한 학살과 탄압에도 불구하고 용기를 가지고 독립을 지지하는 투표에 참가했습니다.지금 미얀마에서 아웅산 수지 여사가 고난의 투쟁을 계속하고 있습니다.아웅산 수지 여사는 미얀마 국민과 민심의 폭 넓은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저는 언젠가 미얀마에 민주주의가 반드시 회복되고 국민에 의한 대의정치가 다시 부활하는 날이 오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존경하는 여러분. 민주주의는 인간의 존엄성을 구현하는 절대적인 가치인 동시에 경제발전과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민주주의가 없는 곳에 올바른 시장경제가 존재할 수 없습니다.또한 시장경제가 없으면 경쟁력 있는 경제의 발전은 기대할 수 없는 것입니다. 저는 민주주의적 기반이 없는 국가경제는 사상누각일 뿐이라고 확신했습니다.그래서 98년 대통령으로 취임한 이후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발전과 함께 ‘생산적 복지’정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지난 2년 반 동안 민주주의와 시장경제,그리고 생산적 복지의 병행 실천이라는 국정철학 아래 국민의 민주적 권리를 적극 보장하고 있습니다.금융·기업·공공·노동 부문의 4대 개혁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왔습니다.복지의 중점을 저소득층을 포함한 모든 국민의 인력 개발에 둠으로써 이제 상당한 성과를 올리고 있습니다. 한국의 개혁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입니다.이러한 개혁을 조속히 마무리함으로써 전통산업과 정보산업,생물산업을 삼위일체로 발전시켜 세계 일류경제를 실현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21세기는 지식정보화시대로서 부(富)가 급속히 성장하는 시대입니다.동시에 정보화시대는 부의 편차가 심화되어 빈부격차가 급격히 확대되는 시대이기도 합니다.국내 뿐만 아니라 국가 간의 빈부격차도 커져 갑니다.이것은 인권과 평화를 위협하는 또 하나의 심각한 현상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우리는 21세기에 있어서도 계속해서 인권의 탄압과 무력의 사용을 적극 반대해야 합니다.아울러 정보화에서 오는 새로운 현상인 소외계층과 개발도상국의 정보격차를 해소함으로써 인권과 평화를 저해하는 장애요인을 제거해야 합니다. 존경하는 국왕 폐하,그리고 신사 숙녀 여러분. 마지막으로 제 개인에 대해서 잠시 말씀드릴 것을 허락해 주시기 바랍니다.저는 독재자들에 의해서 일생에 다섯 번에 걸쳐서 죽을 고비를 겪어야 했습니다.6년의 감옥살이를 했고,40년을 연금과 망명과 감시 속에서 살았습니다. 제가 이러한 시련을 이겨내는 데에는 우리 국민과 세계의 민주인사들의 성원의 힘이 컸다는 것은 이미 말씀 드렸습니다.동시에 제 개인적인 이유도 있습니다. 첫째,저는 하느님이 언제나 저와 함께 계신다는 믿음 속에 살아 오고 있으며,저는 이를 실제로 체험했습니다.1973년 8월 일본 동경에서 망명생활을 하고 있을 당시 저는 한국 군사정부의 정보기관에 의해 납치되었습니다.전 세계가 이 긴급뉴스에 경악했었습니다.한국의 정보기관원들은 저를 일본 해안에 정박해 있던 그들의 공작선으로 끌고 가서 전신을 결박하고 눈과 입을 막았습니다.그리고 저를 바다에 던져 수장하려 했던 것입니다.그때 저의 머리 속에 예수님이 선명하게 나타나셨습니다.저는 예수님을 붙잡고 살려 줄 것을 호소했습니다.바로 그 순간 저를 구원하는 비행기가 와서 저는 죽음의 찰나에서 구출되었던 것입니다. 또 하나,저는 역사에 대한 믿음으로 죽음의 위협을 이겨 왔습니다.1980년 군사정권에 의해서 사형 언도를 받고 감옥에서 6개월 동안 그집행을 기다리고 있을 때 저는 죽음의 공포에 떨 때가 자주 있었습니다.그러나 이를 극복하고 마음의 안정을 얻는 데는 ‘정의필승’이란 역사적 사실에 대한 저의 확신이 크게 도움을 주었습니다. 모든 나라 모든 시대에 있어서, 국민과 세상을 위해 정의롭게 살고 헌신한 사람은 비록 당대에는 성공하지 못하고 비참하게 최후를 맞이하더라도 역사 속에서 반드시 승자가 된다는 것을 저는 수 많은 역사적 사실 속에서 보았습니다.그러나 불의한 승자들은 비록 당대에는 성공을 하더라도 후세 역사의 준엄한 심판 속에서 부끄러운 패자가 되고 말았다는 것도 읽을 수 있었습니다.거기에는 예외가 없었습니다. 국왕 폐하,그리고 귀빈 여러분. 노벨상은 영광인 동시에무한한 책임의 시작입니다. 저는 역사상의 위대한 승자들이 가르치고 알프레도 노벨 경(卿)이 우리에게 바라는대로 나머지 인생을 바쳐 한국과 세계의 인권과 평화,그리고 우리 민족의 화해·협력을 위해 노력할 것임을 맹세합니다.여러분과 세계 모든 민주인사들의 성원과 편달을 바라마지 않습니다. 감사합니다.
  • 金大中대통령 노벨평화상 수상/ 노벨위원회가 밝힌 수상 이유

    김대중 대통령은 동아시아의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기울인 평생의노력, 특히 북한과의 평화와 화해를 위한 노력으로 이 상을 수상하게됐습니다. 이제 막 시작된 것에 불과한 화해의 절차를 위해 상을 수여하는 것이 시기상조가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되어 왔습니다.그에 대한 대답으로 김 대통령의 인권을 위한 그 동안의 노력이 최근 남북한 관계의진전과는 별도로 수상후보로서 충분한 가치를 지녔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그러나 북한과의 화해를 위한 강력한 김 대통령의 다짐 및 이행,특히 지난 1년 동안 이룩한 업적이 이번 수상에 새롭고 중요한 몫을더한 것도 역시 명백합니다. 평화상은 지금까지 이룩해 온 조처에 대해 수여되는 것입니다.그러나 노벨평화상의 역사에서 자주 보아 온 것처럼 올해도 역시 평화와화해를 위한 머나먼 길에 더욱 진척이 있기를 격려하는 뜻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이는 넓은 범위에서 용기의 문제입니다.김 대통령은 고착화된 50년의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아마 세계에서 가장 중무장된 전선 너머로협조의 손길을 뻗으려는 의지를 지녀왔습니다.그의 의지는 개인적,정치적 용기이며 유감스럽게도 다른 분쟁지역에서는 너무 자주 결여되어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현재 김대중씨는 민주한국의 대통령입니다.김 대통령의 집권까지의노정은 멀고도 먼 길이었습니다.수십년 동안 그는 권위주의 독재체제와 승산이 없어 보이는 싸움을 했습니다. 가혹한 교도소 환경 속에서도 김대중씨는 삶을 바쳐서 해야 할 일을찾아내게 되었습니다. 불굴의 낙관적 태도를 가지고 그는 교도소 안에서 발견한 ‘즐거움’에 대해 썼습니다.동양과 서양의 모든 종류의서적 통독이 그것입니다.신학·정치학·경제학·역사 그리고 문학 서적들입니다.가족과의 짧은 면회시간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갖가지방해 시도가 있었음에도,그와 가장 가까웠던 인사들로부터 편지를 받고 답장을 쓸 수도 있었습니다.그리고 마지막으로 정원에서 꽃을 돌보는 일도 허용되었습니다. 김대중씨의 얘기는 몇몇 다른 평화상 수상자,특히 넬슨 만델라와 안드레이 사하로프의 경험과 공통되는 점이 많이 있습니다.상을 받지는않았지만 수상할 자격이 있었던 마하트마 간디의 그것과 함께 말입니다.김대중씨가 간직한 불굴의 정신은 국외자들에게 거의 초인적인 것처럼 보일지 모릅니다.이런 점에서 이번 수상은 보다 진지한 면이 있습니다. 김대중씨는 한국의 전면적인 개혁 프로그램을 바탕으로 대통령에 당선되었으며 ‘햇볕정책’을 통해 북한과 적극적인 협조관계를 추진하고 있습니다.‘햇볕’이라는 말은 이솝우화에 나오는 햇볕과 바람이한 나그네의 옷을 벗기는 내기를 한 데서 따온 것입니다.‘햇볕정책’은 바람을 막지 않더라도 남북한이 공동의 이익을 서로 나누고 이를 강화함으로써 최소한 추위를 누그러뜨리자는 것입니다.김대중씨는남한이 북한을 합병하거나 흡수할 의도가 전혀 없음을 분명히 했습니다.시간이 걸리고 아주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목표는 통일입니다. 김대중씨가 현재 진행 중인 해빙과 화해의 주동자라는 점은 의심할여지가 없습니다.아마 그의 역할은 동서독 간의 관계 정상화에 아주중요한 동방정책 추진으로 노벨평화상을 받은 빌리 브란트에 비교될수 있습니다.남북 이산가족 상봉장면은 전세계에 깊은 인상을 주었습니다. 세계 대부분의 지역에서 냉전의 빙하시대는 끝났습니다.세계는 ‘햇볕정책’이 한반도의 마지막 냉전 잔재를 녹이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그 과정은 시작되었으며 오늘 상을 받는 김대중씨 보다더 많은 기여를 한 분은 없습니다.시인의 말처럼 “첫 번째 떨어지는물방울이 가장 용감하노라”. ◆ 김대중대통령 연보. ■1925년 전남 신안군 하의도에서 아버지 김운식(金雲植)씨와 어머니장수금(張守錦)여사의 4형제 중 차남으로 출생■1933년 하의도보통학교 입학,목포 북교초등학교로 전학해 수석 졸업■1939년 목포상업학교 입학■1945년 4월 차용애씨와 결혼해 홍일(弘一)·홍업(弘業) 두 아들 둠■1954년 목포에서 민의원선거에 출마해 낙선■1956년 10월 민주당 입당■1959년 6월 강원도 인제 재선거에서 낙선■1961년 5월14일 인제 보궐선거에서 당선됐으나 5·16 쿠데타로 수감■1962년 5월 이희호(李姬鎬)여사와 재혼■1963년 11월 목포에서 6대 국회의원에 당선■1967년 7대 의원 당선■1970년 9월 신민당 대통령후보 당선■1971년 5월 대통령선거에서 박정희(朴正熙)후보에게 패배■1973년 8월 도쿄에서 중앙정보부 공작원에게 피랍■1976년 3월 명동성당 ‘민주구국선언’으로 구속■1980년 5월 내란음모죄로 구속■1981년 1월 대법원에서 상고가 기각돼 사형 확정■1982년 12월 미국 망명■1985년 2월 귀국한 뒤 동교동 자택에 감금■1987년 12월 13대 대통령선거에서 낙선■1992년 12월 14대 대통령선거에서 패배한뒤 정계 은퇴를 선언하고유학차 영국으로 향발■1993년 7월 귀국■1994년 1월 아·태평화재단 설립■1995년 7월 정계 복귀■1997년 12월 15대 대통령 당선■2000년 6월 평양에서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정상회담■2000년 12월10일 노벨평화상 수상
  • 金大中대통령 노벨평화상 수상/ 수상 회견

    노르웨이를 방문 중인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9일 밤(한국시간) 노벨위원회 주최 내외신 기자회견을 가졌다. 회견장에는 CNN 등 세계각국 기자 200여명이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 다음은 일문일답. ■북한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과 공동 수상했으면 좋았다고 생각하는가. 같이 받았으면 참으로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김위원장을 만나는 것과 노벨 평화상을 받는 두 가지 꿈이 실현됐다.다른 꿈이 더 있나. 노벨평화상은 받고나면 더 큰 사명이 부과된다는 점에서 올림픽 금메달과는 다르다.더욱 열심히 할 생각이다. ■노벨평화상을 받은 데 대해 북한에서 인사말을 보내온 게 있는가. 또 통일은 김대통령 생애에 이뤄질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간접적인축하의 말은 들었지만 공식적 축하는 없었다.일생을 통일을 위해 헌신했고 어려운 고비도 넘겼지만 임기 중 통일을 성취할 것으로 기대하지는 않는다.그러나 통일이 이뤄질 것이라는 확신에는 변함이 없다. ■이산가족 상봉은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가. 지난 6월 이후 두 차례에 걸쳐 400명이 왕래했다.그러나 이산가족은 2·3세대까지 포함하면모두 1,000만명 가량이 된다고 한다.그래서 먼저 생사를 확인하고 편지 왕래,면회소 설치 등을 통해 이른 시일 내에 이루어 나갈 생각이다. ■지구상에는 아직도 미얀마나 동티모르 같은 인권 사각지대가 있다. 노벨상 수상자로서 인권문제에 대한 견해를 말해 달라. 아웅산 수지여사와 미얀마 국민의 민주화 염원에 대해서는 대통령이 되기 오래전부터 생각하고 있었다.동티모르에서는 한국 군인들이 치안유지 등평화유지군의 활동을 성실히 수행하고 있다. ■북한과 종교 교류를 지원할 생각은 있는가. 한국에는 종교들간의관계가 매우 좋다.예를 들어 가톨릭을 포함해 불교·민속종교 등 7대종교가 내가 귀국하면 노벨상 축하 미사를 서울의 대성당에서 드리기로 돼 있다.남북 종교간에는 충분히 교류가 되고 있지는 않으나 북의 종교계와 대화를 하고 있으며,남북한 종교간의 교류가 진전될 것으로 기대한다.중국 문제는 장쩌민(江澤民)주석을 만나 교황청의 관계개선 희망을 전했고,장주석에게 그렇게 하는 것이 좋겠다는의사를말했다. 여기에 대해 중국측의 반응이 있었다. 교황청이 대만문제를해결하면 중국과 관계진전이 될 것으로 (나는)느끼고 있다.김정일 위원장에게도 교황의 방북의사를 전했고 의향을 물었다.내년에 오시라고 하라는 답변을 받았다.이런 중국 및 북한과의 접촉결과는 모두 교황청에 전달했다. ■한반도 평화조약을 위한 4자회담을 제의한 것으로 아는데 언제쯤평화협정이 체결될 것인지,2002년쯤이면 될 것으로 생각하나. 언제쯤이 될지는 확실히 답하기 어렵다.4자회담 제의에 대해 미·중은 상당히 긍정적으로 답하고 있다.북한에 이 문제를 제기하려고 한다. ■평화상 수상 이후 남북 관계가 어떻게 조정될 것으로 보는가. 이번에 노벨상을 받게 된 것은 인권뿐 아니라 남북정상회담이 가장 큰 이유였다.수상을 계기로 한반도 평화를 (전세계의)절대적이고 가장 큰이슈로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오슬로 오풍연특파원 poongynn@
  • 金대통령 순방 이모저모

    [자카르타 오풍연특파원] 인도네시아를 국빈방문하기 위해 27일 오후 자카르타에 도착한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와히드 대통령 내외와 메가와티 부통령을 각각 예방하고 국빈만찬에 참석했다. 김 대통령은 이날 낮 싱가포르 국빈방문을 마치고 인도네시아로 떠나기 앞서 숙소인 샹그리라호텔에서 동남아연구소 주최 ‘싱가포르 렉처(세계 저명 인사 초청 강연회)’에 참석,‘한반도와 동아시아의 평화’라는 주제로 특별강연을 했다. ◆와히드 대통령 내외 예방=김 대통령과 부인 이희호(李姬鎬)여사는이스타나 메르데카 대통령궁으로 와히드 대통령 내외를 예방했다.휠체어에 의지한 와히드 대통령의 부인은 딸과 경호원의 부축을 받으며 김 대통령 내외와 함께 사진을 찍었다. 인도네시아는 김 대통령이 와히드 대통령 집권 후 처음으로 국빈방문한 외국 정상인 때문인지 현지 기자단이 대거 몰려 취재 경쟁을 벌였다. ◆메가와티 부통령 환담=김 대통령은 수카르노 전 대통령의 딸인 메가와티 부통령과 환담했다.김 대통령은 “95년 서울에서 열린 아·태 민주지도자회의때 야당 지도자로 만났었는데 부통령이 돼 반갑다”면서 “인도네시아 경제가 좋아지고 있다는데 어떠냐”고 물었다.메가와티 부통령은 “좋아지고 있는 게 사실”이라며 “내년 초 북한초청으로 방북할 예정”이라고 소개했다. 메가와티 부통령은 김 대통령에게 자바산 전통 검(劍)인 크리스를,이 여사에게는 인도네시아 전통 옷감인 바티크로 만든 스카프를 각각 선물했다. ◆특별강연=동남아 최고의 ‘렉처’답게 싱가포르의 정치·경제·사회 분야 유력자들과 외국 유력지 특파원들이 대거 참석해 성황을 이루었다. 김 대통령이 강연장인 호텔 1층 아일랜드볼룸에 입장할 때 차기 싱가포르 총리로 내정된 리센중 부총리가 영접하는 등 극진히 예우했다.리 부총리는 ‘렉처’운영위원장으로 리콴유(李光耀)선임장관의 장남이다. ◆일문일답=순차 통역을 통해 35분간 연설한 김 대통령은 참석자들로부터 3개의 질문을 받고 차분하고 설득력 있는 어조로 답했다.김 대통령은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과 미 방송기자 등이 중국·대만관계 등을 묻자 “다른 나라의 내부문제라 내가 직접 거론하기는힘들지만…”이라는 전제를 단 뒤 견해를 밝혔다. 김 대통령은 ‘김 대통령의 한반도 평화에 대한 이니셔티브가 양안(兩岸·중국과 대만)관계에도 적용되겠는가’라는 질문에 “신뢰를 바탕으로 제안을 하되 공동 이익을 도출하는 안을 제안하고,이 안이 거부되더라도 계속 제안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또 북·일관계에 대한 질문에 답변하면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에게 ‘북·일 국교를 맺고 싶다’는 모리 일본 총리의 말을 전했으며,‘감사히 받아들이겠다’는 김 위원장의 반응을 일본측에 전했다”고 남북 정상회담 당시 ‘중개자’ 역할을 공개하기도 했다. poongynn@
  • 독자의 소리/ ‘대학졸업장’ 우대풍조 사라져야

    최근 ASEM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했던 피셔 독일 외상은 달리기로 체중을 37㎏이나 뺀 사실 외에도 또다른 주목거리가 있다.그는 고교를중퇴하고도 장관이 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우리사회에 시사해 주는 바가 크다. 찾아보면 유명인사 중 이러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있다.제2차 세계대전 직전 뮌헨에서 히틀러와 담판을 벌였던 영국의 체임벌린수상도 중등교육까지만 이수했으며, 메이저 총리도 고학으로 겨우중학교를 마쳤다. 우리나라의 경우 H일보를 창업한 장기영씨도 구제 상업고 출신으로재계의 거장이었는가 하면 보사부장관을 지낸 김정례 여사도 대학은문턱에도 가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의 우리사회는 대학간판을 자격요건으로 논하는 시각 때문에 적성에 맞지 않더라도 졸업장을 타기 위해 대학에 진학하는 사례까지 생기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사회풍조가 하루빨리 바뀌기를 기대하며 대학진학의 기회를놓친 젊은이들이라도 앞에서 열거한 사람들의 뒤를 이어 자신의 포부를 펴나가기바란다. 황현성[경기도 수원시 세류2동]
  • 클린턴 레임덕 없는 ‘동분서주’

    [워싱턴 연합] 석달 후면 백악관을 떠나는 빌 클린턴 미 대통령이최근 절정의 정력을 뽐내고 있어 워싱턴 정가의 쑥덕공론에 올랐다. 차기 대통령선거를 보름 남짓 남겨놓은 레임덕 치고는 너무 왕성해대통령 후보들이 무색할 지경이라는 것이다. 지난주와 앞으로 며칠의 일정을 보면 미국 대륙이 모자라 중동까지휩쓸고 있으며 틈나는 대로 힐러리 여사가 상원의원 선거에 출마한뉴욕주에도 들러 적지 않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는 지난 14일 덴버와 시애틀 등에서 모두 일곱 군데의 정치 행사에 참석했다.하루 일곱 곳이라면 조지 부시 공화당 후보나 앨 고어민주당 후보도 엄두를 못내는 일이다. 그는 중동평화협상 중재를 위해 이집트에 도착하자 마자 28시간 동안 20차례의 각종 회담을 주재했고 잠은 중간에 2시간30분 동안 잤을뿐이며 17일 에후드 바라크 이스라엘 총리와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의 폭력 종식 합의를 발표하고 곧바로 귀국길에올랐다. 다음날에는 버지니아주 노포크에서 열린 구축함 콜호 승무원 희생자장례식에 참석했으며 19일에는 힐러리 여사를 위한 정치자금 모금등을 위해 코네티컷주 노워크와 뉴욕에 모습을 드러냈고 백악관으로돌아가는 길에는 전날 밤 푹 쉬었다며 “대학졸업 후 12시간이나 잔것은 처음”이라고 기자들에게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다음달 15∼16일 브루나이의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 참석과 베트남 방문에 이어 평양에서 김정일(金正日) 북한 국방위원장과 역사적인 북미 정상회담까지 가질 전망인데다 12월에는 아프리카 순방 계획이 잡혀 있어 그의 강행군은 백악관을 나서는 날까지계속될 전망이다.
  • 金大中대통령 노벨평화상/ 한국인 수상자’빈 액자’주인 찾았다

    한국인 최초의 노벨상 수상자를 기다리며 비워 둔 채 걸려있던 교보문고 내 액자가 드디어 주인을 찾았다. 서울 종로구 종로1가 교보빌딩 지하에 있는 교보문고는 13일 저녁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이 발표된 직후 종로출입구와 광화문출입구에 걸려있던 2개의 빈 액자에 김 대통령의 초상화를 채워 넣었다. 이날 내걸린 김대통령의 초상화는 가로 29.7㎝,세로 42㎝ 크기로 김대통령의 얼굴과 상반신이 찍힌 사진을 스캐너로 읽어 스케치효과를낸 것. 교보문고는 지난 92년 6월 재개장이후 매장내 두군데 입구에 아인슈타인등 역대 노벨상 수상자들의 스케치 초상화를 담은 액자 74개를전시해 왔는데, 이중 2개는 ‘한국인 노벨상 수상자를 위해 비워뒀음(Reserved for future Korean winners)’이라는 안내문과 함께 빈 채로 전시해 왔다. 교보문고 홍보실 김정환 주임(32)은 “지난 8년간 한국인의 노벨상수상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액자를 비워뒀었다”고 말하고 “김대통령의 수상 확정으로 드디어 빈자리의 주인이 생겨 기쁘다”며 환하게웃었다. 한편서울시내 각 대형서점들은 13일 김대중 대통령의 수상 소식이알려지면서 특별코너를 설치하고 김 대통령 관련 서적 확보에 들어가는 등 분주하게 움직였다.교보문고의 경우 두 개의 전시대를 마련해‘김대중의 3단계 통일론’(아태평화재단),‘김대중 옥중서신’(한울),‘나의 삶 나의 길’(산하) 등 김 대통령의 대표적인 저서를 비롯해 영부인 이희호 여사의 ‘내일을 위한 기도’(여성신문),‘나의 사랑 나의 조국’(명림당) 등 이희호 여사의 저서,강준만 교수의 ‘김대중 죽이기’(개마고원) 등 관련서적 60여종을 내놓았다.종로서적도서둘러 특별 전시코너를 마련했으며 골드북닷컴,을지서적, 씨티문고등 시중 대형서점들도 미리 확보해놓은 서적들을 판매대에 올리는 등분주한 모습을 보였다. 김주혁기자 jhkm@
  • 한·일 정상, 北 SOC 조성 지원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24일 일본 도쿄 부근 아타미시에서 모리요시로(森喜朗) 일본 총리와 2차 정상회담을 갖고 북한에 대한 식량지원 및 농업기반 조성과 철도 건설,도로·항만·전력 등 사회간접자본(SOC) 건설을 지원하는 데 양국이 공동으로 협력하기로 합의했다. 김 대통령은 조찬을 겸한 이날 회담에서 “북한이 어려운 때이므로이 때 지원을 하면 북한도 감사하게 생각할 것이고,이는 북·일관계개선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일본이 대북 식량지원에 나서줄 것을요청했다.이에 모리 총리는 “적극 노력하겠다”며 약속했다. 두 정상은 특히 북한의 식량난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종자개량을 포함한 농업기술 개발 및 농업기반 조성 사업이 중요하다는데 의견을 같이한 뒤 이를 위해 양국이 공동으로 지원하기로 했다. 양국은 이에 따라 조만간 관련 실무자급 협의를 갖고 지원방안을 구체적으로 논의할 예정이다. 김 대통령은 또 “북한 김정일(金正日) 위원장이 통일 후에도 한반도에서 미군 주둔 필요성을 인정한 것은 북·미,북·일관계 개선을염두에 둔 것으로 판단된다”며 대북관계 개선에 적극 나설 것을 권유한 뒤 한국측의 지원을 약속했다. 김 대통령은 2박3일간의 일본방문을 마치고 부인 이희호(李姬鎬)여사와 함께 이날 오후 성남 서울공항을 통해 귀국했다. 양승현기자 yangbak@
  • 여협, 올해의 여성상에 김강자 서장 선정

    한국여성단체협의회(여협·회장 殷芳姬)는 21일 제16회 올해의 여성상 수상자로 미성년자 매매춘 근절에 앞장서 온 김강자(金康子) 서울 종암경찰서장을 선정했다.또 제 36회 용신봉사상 수상자로 홀트국제아동복지회를 설립한 고(故)버서 홀트여사를,제2회 김활란 여성지도자상 수상자로 박영숙(朴英淑) ‘사랑의 친구들’ 총재를 각각 결정했다.그밖에도 사회 각 분야의 여성 진출 1호를 격려하기 위해 마련한 ‘2000 여성1호 기념패’ 수상자로는 강은옥 철도청 기관사,김정옥 서울지검 특수부 수사사무관,남미영 공사 대대장 생도,박현숙자산관리공사 대변인,이영환 인천광역시의회 의장,정나리 연세대학교총학생회장을 선정했다. 여협은 오는 10월6일 오전 10시 서울 이화여고 류관순기념관에서 열리는 제37회 전국여성대회에서 이들을 시상한다.올해 여성대회의 주제는 ‘건강한 가족,희망이 있는 사회’로 강지원 검사,변화순 한국여성개발원 수석연구위원이 특강을 할 계획이다. 허윤주기자 rara@
  • 金대통령·金容淳비서 대화 “기반 닦는게 중요”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14일 김용순(金容淳) 북한 노동당 비서 일행을 청와대로 초청,접견 및 오찬을 함께 한 자리는 시종 부드러운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고 배석한 박준영(朴晙瑩) 청와대 대변인이전했다. 접견은 오전 11시부터 30분 동안 진행됐으며,오찬은 자리를 옮겨 12시부터 1시간40분 동안 계속돼 오후 1시45분에 끝났다. [상호 메시지 구두 전달] 김 대통령이 접견실에서 김 비서 일행을 맞이하자 김 비서는 “건강해 보인다”며 청와대로 초청해 준 데 대해감사를 표시했다.김 대통령은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의 안부를 묻고 칠보산 송이버섯을 추석선물로 보내 준 데 사의를 표한 뒤 “아주맛있게 먹었다.향기가 좋았다”고 시식 소감을 전했다. 김 비서는 김 대통령이 “귀한 손님이 왔는데,태풍과 비 때문에 걱정했다”고 하자 거듭 인사를 한 뒤 ‘따뜻한 인사를 정중히 전한다’는 김 위원장의 메시지를 구두로 전달했다.무엇보다 ‘공동선언의서명이 확실히 말라가고 있고,그것이 굳어지고 있다. 더 굳건히 하는 게 중요하다’는 뜻을 전해 6·15 남북공동선언에 대한 확고한 실천의지를 내비쳤다. [공동선언 실천의지 다짐] 김 대통령은 김 비서와 잠시 평양 정상회담때 서로 선물로 교환한 진돗개와 풍산개를 놓고 환담했으며,김 비서는 “진돗개와 풍산개는 선물교환의 의미가 있는 게 아니고,민족단합과 통일을 열어가는 상징”이라는 김 위원장의 뜻을 거듭 전했다. 또 “두 분이 만든 공동선언 이행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한 뒤“이번에 모든 것이 잘됐다.지방 참관도 잘했다”고 만족해 했다. 그리고 “장군께서 김 대통령의 얘기를 많이 듣고 오라 했다”며 김대통령에게 당부말씀을 청했다. 이에 김 대통령은 “100년전 선조들의 잘못된 선택이 되풀이되어서는 안된다”는 점을 역설했다.그러면서 “민족통일을 바라지만,서둘러서는 안되고 기반을 닦는 것이 중요하다”며 “임기중 이런 노력을할 것이고, 후임자가 그것을 더 진전시켜 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영남 상임위원장 방미 취소] 김 대통령은 화제를 바꿔 김영남(金永南)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의 유엔 밀레니엄 정상회의 불참에 대해 아쉬움을 표시하면서 공동의장 지지성명 등 성과를 설명했다. 이어 “미국도 섭섭해 하고 당황하더라”며 “김 위원장을 리셉션에초청하는 등 미국은 뭔가 분위기를 바꾸려고 했던 것 같다”고 전했다. 또 “남북한이 자주적으로 민족문제를 해결하면서 주변 국가들과도관계를 개선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북한과 미국의 관계개선을 거듭촉구한 뒤 “북한이 국제사회에 진출,남한과 손잡고 나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아무리 시간이 걸려도 평화통일을 이뤄야 한다”며 21세기 우리 민족의 최대 강점인 높은 지식기반과 문화창조력을 설명했다. [통일문제] 김 대통령은 “우리는 오랫동안 체제와 환경이 다르게 살아왔기 때문에 이해하는 데 시간이 걸리며,인내심이 필요하다”며 모든 일에 ‘역지사지(易地思之)’를 당부했다. 김 비서는 “민족문제에 두 분의 생각이 같아 공동선언에 서명한 것같다”며 김 위원장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음을 내비친 뒤 “우리 민족에게 희망을 주는 공동선언을 착실히 이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거듭 다짐했다. [오찬 대화] 접견에 이은 오찬에서 김 대통령과 김 비서는 청와대 건축시기,경복궁,우리 민족의 고유정서인 한과 멋,평양 정상회담 때의어려움,김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주량 등을 화제로 환담을 나눴다.김대통령은 “정상회담을 많이 했지만,일정과 의제가 전혀 없었던 평양회담이 가장 어려웠다”고 토로해 좌중을 웃겼다. 김 비서는 주량과 관련,“김 위원장은 과거에도 조금밖에 마시지 않았다”며 “술을 잘했다는 것은 잘못 알려진 얘기”라고 말했다. 그는 또 이희호(李姬鎬)여사의 저서인 ‘나의 사랑 나의 조국’등을거론하면서 “김 위원장도 읽었다”면서 이 여사의 고생담을 화제에올리기도 했다. 양승현기자 yangbak@
  • 남북 특사회담 이모저모

    14일 오후 발표된 ‘공동보도문’도 최종 문안 작성까지 진통이 컸다.임동원(林東源)특보와 김용순(金容淳) 북한 노동당 비서는 3박4일일정 가운데 이날 가장 긴 하루를 보냈다. 김 비서는 이날 태풍 사오마이 때문에 육로로 북한에 돌아갔다. ▲김용순 비서는 이날 밤 판문점을 통한 북한 귀환에 앞서 판문점 남측지역 ‘평화의 집’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경의선 기공식을 남북이 공동으로 할 것인지를 묻자 “공동으로 한다”고 말해 경의선복원공사 기공식을 남북이 같은 날 할 것임을 시사했다.이에 대해 김형기(金炯基) 통일부 정책실장은 “김 비서의 말은 18일 전후,비슷한시기에 착공할 것을 의미하며 공동 착공식을 하는 것은 아니다”고해명했다. 김 비서 일행은 오후 8시30분쯤 판문점 남측지역인 ‘평화의 집’에도착, 차량을 탄채 오후 8시48분쯤 군사분계선을 통과해 북측 지역으로 넘어갔다. ▲남북은 오후 6시 20분부터 신라호텔 22층 프리덴셜룸에서 양측 대표단이 참가한 가운데 공동보도문 발표 행사를 가졌다.행사장에는 남측에서 임동원 특보·박재규(朴在圭) 통일부 장관·김보현(金保鉉)총리특보·김형기(金炯基) 통일부 정책실장 등 4명이,북측에서는 김용순 비서·림동옥 통일전선부 제1부부장·권호웅 당중앙위 지도원·김광렬 지도원 등 4명이 참석했다. ▲공동보도문은 남측에서 김형기 통일부 정책실장,북측에서 권호웅지도원이 각각 낭독했다.7개항으로 된 공동보도문을 양측이 각각 읽은 후 임 특보는 김 비서 일행의 경주와 제주 방문 장면을 담은 사진첩을 북측에 선물했고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에게 전달하는 선물 내용을 포함해 남측이 김 비서 일행에게전달하는 ‘선물종합 명세서’를 건넸다.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총재와 김용순 비서가 신라호텔에서 조우할 뻔 해 취재진이 한때 긴장하기도 했다.이날 오후 6시40분쯤 공동보도문이 발표된 직후 김 비서가 한창 서울을 떠날 채비를 하고 있을때 이 총재와 부인 한인옥(韓仁玉) 여사가 호텔 로비에 들어섰고, 곧바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어디론가 사라졌다.이 총재는 호텔 23층에서우다웨이(武大偉) 주한중국대사, 이세기(李世基) 전 의원 등과 만찬을 하기위해 온 것으로 밝혀졌다. 한편 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도 이날 이 호텔 이발소에 들렀다는전언이다. 이석우기자 swlee@
  • 金대통령 새달5일에 출국

    김대중(金大中) 대통령과 부인 이희호(李姬鎬) 여사는 다음달 6∼8일까지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리는 유엔 밀레니엄 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5일 출국한다고 박준영(朴晙瑩) 청와대 대변인이 23일발표했다. 김 대통령은 회의 첫날인 6일 김영남(金永南)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단독회담을 갖고 이달말 평양에서 열릴 남북장관급 회담과 비전향장기수 송환 등 ‘6·15 공동선언’ 후속조치의 진행과정을놓고 의견을 교환할 예정이다. 특히 김 상임위원장이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의 메시지를 전할가능성이 커 남북정상간 간접 대화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김 대통령은 또 빌 클린턴 미 대통령,장쩌민(江澤民) 중국 국가주석,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등 5개 주요국가 정상들과 연쇄 개별 정상회담을 갖고 남북 정상회담의 성과와 의미를 설명하고 이에대한 지지를 이끌어낼 계획이다. 모리 요시로(森喜朗) 일본 총리와의 정상회담은 다음달 22일 김 대통령의 방일이 예정되어 있어 추진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양승현기자
  • [외언내언] 북한 언론의 변화

    남북 이산가족 상봉의 대드라마를 성공적으로 이끈 징검다리는 언론매체다.신문과 방송을 통해 대대적으로 소개된 격정의 순간들은 온겨레를 울렸고 안타깝게 만들었다.북한 언론이라고 다를 바 없었다.이념적 편향없이 있는 그대로,그리고 빠르고도 상세하게 보도했다. 지난 85년 첫 이산가족 상봉 때 동정(動靜) 수준의 보도로 일관했던냉담한 태도와는 정반대다.내용면에서도 부정적 평가를 자제하며 이산의 아픔과 통일의 당위성에 초점을 맞추었다.화해와 협력 분위기를반영하려고 애쓰는 기색이 역력했다. 무엇보다 신속한 보도는 기존의관행에 비추어 이례적이다.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은 지난번 남한 언론사 사장들과의 면담에서 북한 언론은 신속성보다 정확한 보도에 역점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은 지난 15일 북측 방문단이 서울에 도착한 사실을 채 2시간이 지나지 않아 속보로 내보냈다. 남측 방문단의 평양 도착도 마찬가지로 처리했다.조선중앙TV도 저녁뉴스에 이산가족 방문단의 움직임을 그날그날 전하면서 상봉 가족들의 대화까지 그대로 내보내는 파격성을 보였다. 종전까지 남한 관련 기사는 대체로 현장음 없이 방송화면과 아나운서의 육성만으로 처리했다.기사 행간에는 ‘오늘의 상봉이 너무도 기뻐 웃음을 감추지 못하고’‘오랜 세월 쌓이고 쌓였던 망향의 설움을 속시원히’ 등의 감성적 표현도 곁들였다. 북한 언론의 역할은 남한과 근본적으로 다르다.모든 언론기관은 국가소유이고 노동당의 철저한 지도와 통제 속에 운영된다.북한 신문학 이론서의 하나인 ‘신문리론’은 ‘북한 신문은 구체적으로 선전선동적 기능,조직자적 기능,문화교양자적 기능을 수행한다’고 규정하고 있다.그러다 보니 남북이 대립하는 상황에서 남한에 대한 보도는비판·비난 일색일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지난 6월의 남북정상회담이후 자극적인 용어는 사라졌다.‘괴뢰 통치배’는 ‘김대중 대통령’으로,‘남조선 괴뢰 국방부’는 ‘남조선 국방부’로 바뀌었다.김대통령과 이희호 여사는 ‘김대중 대통령 내외분’으로 호칭했다.대남 비방 기사도 사라졌다.관영 중앙통신은 인터넷 홈페이지에 남북정상회담 코너를 신설했다. 급물살을 타는 남북한의 화해와 교류 움직임에 비추어 보면 북한 언론의 변화는 당연하다.속셈이 무엇인지를 따지는 것 자체가 시대착오적이다.북한은 곧잘 조지 오웰의 독재체제 풍자소설 ‘1984년’에 비유되곤 했다.그러나 2000년의 북한은 바뀌고 있다. 북한 언론도 달라지고 있다.그것이 대세다. 지금은 이같은 화해의 기운을 더욱 알차게 가꾸어 나가야 할 때다. 김명서 논설위원 mouth@
  • 金법무 유엔인권고등판무관과 간담

    김정길(金正吉) 법무부장관은 10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유엔 인권고등판무관메리 로빈슨 여사와 간담회를 갖고 국가보안법 개폐 문제와 한국 인권상황등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다. 김 장관과 로빈슨 판무관은 ▲국가보안법 개폐 문제 ▲인권법 제정과 국가인권위원회 설치를 둘러싼 정부와 사회·시민단체간 이견 ▲탈북 난민·외국인근로자 인권문제 등에 대해 환담했다. 로빈슨 판무관은 이날 회동에 앞서 인권운동사랑방과 민가협 등 인권단체 관계자들과 면담을 갖고 국내 인권상황에 대한 의견을 수렴했다. 유엔 사무총장 직속인 인권고등판무관은 국제 인권활동을 총괄하는 직책으로,로빈슨 여사는 지난 97년 아일랜드 대통령 임기를 마친 뒤 고등판무관으로 취임했다. 이종락기자 jrlee@
  • 재미언론인 文明子씨, 金正日국방위원장 단독 인터뷰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이 끝난지 보름쯤 지난 6월 30일 재미언론인 문명자씨가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정상회담 이후 세계 최초로 단독인터뷰를 가졌다.장장 6시간 동안 북한 원산초대소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김 위원장은 정상회담 당시 김대중 대통령 내외로부터 받은 느낌을 비롯해 남북공동선언에관한 평가,미일 관계 등 주요 현안에 대해 시종일관 거침없고 당당한 태도로입장을 피력했다. 이번 인터뷰는 정상회담 당시 TV에서 드러났던 김 위원장의 모습을 좀더 세밀하게 보여주고 있어 그의 품성과 지도자적 자질을 파악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문씨는 인터뷰후 지난 7일 중국 베이징에서 신준영 대한매일 기자를 만나 회견기사와 관련사진을 본지에 보내왔다. [편집자 주] 2000년 6월30일 오전 9시50분 원산초대소.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현관 앞까지 나와 필자를 기다리고 있었다.역사적인 순간이었다.김 위원장과의 ‘세계최초 인터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지난 몇 년간 필자는 계속해서 북측에 김 위원장과의 인터뷰를 요청했다.답변은항상 “때가 되면”이었다.지난 5월27일 필자는 남북정상회담 취재를위해 방북했다.외신중 정상회담 취재를 허가받은 기자는 필자뿐이었다.정상회담이 끝난 후 필자는 회담 이후 북의 표정을 취재하기 위해 계속 평양에머물고 있었다.이번에야말로 역사적인 인터뷰가 성사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적지 않았지만 확신할 수는 없었다.김정일 국방위원장 자신의 결심이 있어야만 가능한 문제였기 때문이다.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로부터인터뷰가 성사됐음을 통보받았을 때 필자는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직감할 수 있었다. 원산초대소는 풍광좋은 바닷가에 위치하고 있었다.전날인 6월29일 김정일국방위원장이 정주영 회장을 접견한 장소이기도 했다.김 위원장은 원산 인근의 해군기지 현지 지도차 원산에 머물고 있다고 했다.평양에서 원산비행장까지 30분,비행장에서 초대소까지 자동차로 20분이 걸렸다. 김 위원장은 특유의 점퍼옷 차림이었다.그는 활짝 웃으며 활달하게 손을 내밀었다.함께 면담실로 들어갔다.CNN이 나오고 있었는데 자리에 앉은후 김위원장은 텔레비전을 껐다.인터뷰에는 김용순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위원장이 배석했다. 김용순 위원장과 내 자리에는 ‘성천담배’와 재떨이가 놓여있었는데 김 국방위원장 앞에는 물컵만 놓여 있었다.김 국방위원장은 담배를 끊었다고 했다.그가 말했다. “이 성천담배는 지난 72년 북남회담때 김영주 조직부장이 박정희 대통령에게 선물로 보낸 담배입니다.박 대통령이 즐겨 피웠다고 들었습니다”■외신중 유일하게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 취재를 허가해주시고 이처럼 단독인터뷰를 위해 시간을 내주신 데 대해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내가 외신기자들은 모두 사절해도 문 선생은 부르라고 했습니다.우리 민족으로서 화해와 통일을 위해 정력적인 기자활동을 하고 계신데 마땅히 초청해야 하지 않겠습니까?”■감사합니다.귀한 시간 내주셨는데 전 세계가 궁금해 하는 문제들에 대해한 가지씩 질문드리도록 하겠습니다.우선 6월 정상회담에 대해서입니다.말그대로 전 민족적 열광 속에서 진행되었는데 그 성과를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우리 민족의 힘으로 민족의 염원인 통일을 향해 첫 발을 내디뎠다는데 가장 큰 의의를 두고 싶습니다.이것은 우리 인민들의 간절한 염원이고,나 자신으로선 수령님의 유훈을 계승한다는 의의가 있습니다.우리 속담에 시작이 반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하루빨리 통일을 이룩할 수 있도록 노력할 때가 되었습니다”■지난 6월13일 김대중 대통령이 평양비행장에 도착했을 때 비행장까지 나가서 맞이하셨는데 이는 외교의전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파격적인 조치였습니다.어떻게 해서 그런 결심을 하셨습니까. “내 스스로 결심했습니다.그동안 통일후에도 미군이 계속 주둔해야 한다는발언이나 통일운동가 구속, 비전향 장기수를 돌려보내지 않는 일 등이 보도되어 사실 김 대통령에 대한 우리 인민들의 인상이 좋지 않았습니다.김 대통령께서 통일을 위해 어려운 결심을 해서 평양까지 오시는데 분위기가 그래서는 안되겠기에 예정에 없이 공항에 나갔습니다”■김 대통령에 대한 인상은? “이번 수뇌급 회담에서 합의된 5대 공동선언은 민족의 통일대헌장이라 할정도의 의의를 가집니다.한꺼번에 다 할 수는 없지만 시간이 걸리더라도 반드시 실천돼야 합니다.나는 김 대통령께서 이를 차근차근 실천해나가려는 의지와 성의를 가진 분이라고 믿습니다” 김 위원장은 “사람의 5대 복 중 하나가 처복이라는데 김 대통령은 처복이있는 분이다”라면서 이희호 여사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체구도 크지않은 분이 여성계 지도자로서, 또 남편의 석방을 위해 그처럼 강인하게 투쟁했다는 데에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6월14일 만찬석상에서 김 위원장께서 이희호 여사를 김 대통령 옆으로 부르셨지요? “그 날은 한국측 초청만찬이었기 때문에 자리배치를 남측에서 했습니다.제가 가보니 남자 여자를 갈라서 앉혔는데 이희호 여사도 여자들과 함께 멀리앉아 있었습니다.그래서 내가 말했지요.‘이거 통일을 하자는 뜻입니까? 안하자는 뜻입니까.가족을 갈라 이산가족을 만들어놓아서야 되겠습니까?’”김 위원장은 다시 물었다. “김 대통령은 가톨릭 신자이신데 이희호 여사는 가톨릭입니까? 기독교 신자입니까?” 남편을 따라 개종을했는가라는 의미인 듯했다.나는 “이 여사는 기독교 신자”라고 답했다. ■그동안 역사를 보면 남북관계가 전향적으로 풀렸다가도 다시 대결구도로돌아간 일이 여러차례 있었습니다.현재도 일각에서는 그런 과거가 되풀이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습니다.김 위원장님께서는 6·15공동선언의 실현 전망을 어떻게 예측하십니까? “이번 5대 공동선언은 반드시 실천되어야 합니다.최근 비전향 장기수 송환시기가 당초 합의보다 늦어지는 등 다소 차질이 발생하고 있는데 앞으로는이런 일이 있어서는 안될 것입니다.우리는 5대 공동선언의 실천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남쪽에서는 김 위원장님의 서울방문에 대한 기대가 큰 것 같습니다.언제쯤으로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5대 공동선언의 실천 과정을 보면서 결정할 것입니다”■정상회담 직전에 중국을 방문하셨는데 중국식 개방에 대한 견해는? “경제성장에서 긍정적이었습니다.인민들을 잘 살게 해야 할 것입니다”■남북관계에 획기적인 진전이 있는 데 반해 조·미관계는 주춤한 느낌입니다.어떻게 전망하십니까? “미국에서 페리가 특사로 왔으니까 우리가 볼을 던질 차례가 되었습니다. 곧 고위급에서 대표를 파견할 것입니다”■현재까지 서방에서 대미특사로 거론해온 급보다 더 고위급 인사를 보내신다는 의미입니까? “그렇습니다”■김대중 대통령은 이번 남북정상회담 과정에서 “주한미군의 즉각적인 철수는 현실적으로 힘들다”는 점을 설명해서 김 국방위원장께서 완전한 동의는아니나 일부 납득했다고 말했는데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동안 미군더러 나가라고 했지만 그들이 당장 나가겠습니까.우선 미국스스로가 생각을 달리해야 합니다.그들은 분단에 책임이 있는 만큼 통일에도책임이 있습니다. 지난날 닉슨도 카터도 미군을 철수하겠다고 했는데,주한미군 문제는 우선 그들 스스로가 우리 민족의 통일을 적극적으로 돕는 방향에서 알아서 결정해야 합니다”■제10차 조·일 국교정상화 회담이 지난 5월로 예정됐다가 취소된 후 아직다음 회담 날짜가 발표되지 않았습니다.조·일관계는 어떻게 풀어나가실 예정입니까? “일본을 흔히‘가깝고도 먼 나라’라고 하는데 우리는 일본과 ‘가깝고도가까운 나라’가 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이웃이 마치 지구 양극에 사는 것처럼 지내는 것보다 가까운 친구로 지내는 것이 좋지 않습니까. 우리는 일본과의 국교정상화를 원하지만 그것은 일본의 결정에 달려 있습니다. 일본인들은 우선 납치니 뭐니 하는 얘기를 치우고 과거청산 등 근본문제를 풀기 위해성의와 진실을 가지고 노력해야 합니다” 12시.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다.차림표에는 더운 음식에 ‘야자제비둥지상어날개탕’‘소고기 철판구이’‘감자만두 튀기’‘김치무우장’‘잣죽’,찬음식에 ‘게사니 향료 찜튀기’‘꽃게 살라드’‘록두묵’ 등이 적혀 있었다.‘야자제비둥지상어날개탕’은 반 자른 야자에 담긴 수프였는데 김대중 대통령 초청만찬 때도 대접했던 음식이라고 했다. ■94년 대홍수 이후 경제문제가 심각했는데 그 시기를 어떻게 보내셨습니까? “지난 5년간 어려운 시기 속에서 2,000만의 운명에 대해 참으로 고민 많이했습니다. 그때 우리에게 식량을 보내준 한국,미국,일본 등세계 여러 나라사람들의 인도주의에 깊이 감사합니다”■지도자로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덕목은 무엇입니까? “인민이 지지하지 않는 지도자는 있을 수 없다는 점입니다.수령님께서 말씀하셨듯이 인민들 위에 군림해서는 안됩니다.그들과 함께 일해야 합니다.인민과 지도자의 단결을 방해하는 것이 관료주의인데 우리는 그것이 없었기 때문에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그는 식사중에 전날 만난 정주영 회장의 건강을 걱정하기도 했다.그간 정회장이 해낸 역할을 높이 평가하면서 “이번에 현대가 많은 일을 할 수 있도록 금강산특구 등 원하는 것을 파격적으로 허용해 주었다”고 했다.남북경제협력의 미래를 확신하는 듯 “통일되면 우리나라는 잘 살게 될 것”이라고역설했다. 인터뷰 내내 ‘김대중 한국 대통령’‘한국’‘한국 국민’이란 용어를 일관되게 쓰는 것도 인상적이었다.단, 김영삼 전 대통령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는 여전했다.김 위원장은 “‘김영삼씨만 빼고 전직 대통령들 누구든 초청하겠다’고 김 대통령께 말했다”고 밝혔다.마지막으로 한 가지 물었다. ■정상회담 후 남에서 ‘김정일 쇼크’‘김정일 신드롬’이 일어나고 있다는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그동안 왜곡보도가 많아 인상이 매우 나빴는데 본인이 화면에 나타나니까뿔 달린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나 봅니다” 오전 9시50분부터 오후 3시30분까지 장장 6시간 동안 진행된 인터뷰에서 기자의 눈으로 본 ‘지도자 김정일’은 강하면서도 소탈한 인물이었다.특히 그의 자세와 손짓은 지난 92년과 94년 필자가 두 차례에 걸쳐 인터뷰했던 고김일성 주석을 연상시켰다. 국내외적 현안에 대해 거침없이 답변하는 것은 물론,식사중에는 가톨릭과기독교,고혈압과 유황온천,피자와 녹두빈대떡 등등 다종다양한 화제를 이끌어 갔다. 원산비행장으로 달리는 차 안에서 필자는 생각했다.전 세계가 지금 ‘김정일 쇼크’에 빠져 있다.그런데 과연 누가 변한 것인가.그가 이번에 새로운모습으로 변화한 것일까.그는 원래 그런 모습이었는데 그에 대한 우리의 생각이 변함으로 인해 그가 다르게 보이는 것은 아닌가.분명한 것은 북의 지도자김정일을 제대로 읽기 위한 연구가 새롭게 시작돼야 한다는 점이다. *문명자는 누구. 문명자(文明子)씨는 올해 71세로 재미 원로언론인으로 미국 ‘US아시안 뉴스서비스’의 주필이며,아직도 미 백악관을 출입하고 있는 현역이다. 61년 조선일보 워싱턴 특파원을 시작으로 국내 여러 언론사의 워싱턴 특파원을 지낸 문씨는 73년 11월 당시 보도 금지사항인 ‘김대중 납치사건’을 보도한 직후 미국에 망명했다.90년 이후 10여차례 방북 취재했고 두 차례에 걸쳐 김일성 주석과 회견했다.그녀는 서방기자중 ‘최고의 북한 소식통’으로불릴 정도로 북한 지도층과 북한 사회에 이해가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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