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김정희
    2026-01-21
    검색기록 지우기
  • 소화기
    2026-01-21
    검색기록 지우기
  • 행운이
    2026-01-21
    검색기록 지우기
  • 쌍특검
    2026-01-21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141
  • 법원 “김정희, 천경자 화백 친딸 맞다”

    김정희 미국 메릴랜드주 몽고메리대 미술과 교수가 지난해 별세한 천경자 화백의 법적 친자임을 확인해 달라는 소송을 내 이겼다. 서울가정법원 가사3단독 김수정 판사는 10일 김 교수와 그의 동생인 김종우씨의 아들이 낸 친생자관계 존재 확인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했다. 김 판사는 “천 화백의 아들과 김 교수 사이에 실시한 유전자 검사에서 두 사람이 동일한 모계에 의한 혈연관계로 추정된다는 결과가 나왔다”고 판결 이유를 밝혔다. 김 교수는 국립현대미술관이 소장한 천 화백의 ‘미인도’가 위작이라며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하는 과정에서 법적으로 친자 관계를 인정받기 위해 소송을 제기했다. 천 화백은 첫 남편을 만나 1남 1녀를 낳았고 두 번째 남편인 김남중(별세)씨와는 정희씨와 종우씨를 낳았다고 자서전에 쓴 바 있다. 김남중씨는 당시 법적 부인이 있었기 때문에 김 교수 남매는 아버지 부부의 자녀로 호적에 올랐다. 김양진 기자 ky0295@seoul.co.kr
  • 천경자 차녀 “위작 미인도, 해외 기관에 감정 의뢰해야”

    “25년간 곪아 온 미인도 위작 논란은 어머니에게 크나큰 아픔이고, 작품 생애에 어두운 그림자를 남겼습니다. 이를 거둬 낼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전력을 다하겠습니다.” 지난 6일 귀국해 8일 검찰에 모습을 드러낸 고 천경자 화백의 차녀 김정희(62)씨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미인도 위작 논란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형사6부(부장 배용원)는 8일 김씨를 고소인 자격으로 불러 조사했다. 미국 몽고메리칼리지 미술과 교수이기도 한 김씨는 올해 4월 바르토메우 마리 국립현대미술관장 등 관계자 6명을 사자 명예훼손과 저작권법 위반 혐의 등으로 고소한 바 있다. 김씨와 변호인들은 미인도가 명백한 위작임에도 계속해서 진품이라고 소개하는 것은 명예훼손이자 저작권 침해라고 주장해 왔다. 미인도를 둘러싼 논란은 국립현대미술관이 1991년 ‘움직이는 미술관’ 전시회 때 소장 중이던 미인도를 공개하면서 시작됐다. 미인도는 1979년 10·26 사태 이후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이 소유하고 있던 것을 정부에서 압류한 이후 1980년 문화공보부가 현대미술관이 관리하게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당시 작품을 직접 본 천 화백이 “내가 그린 작품이 아니라 가짜”라고 주장하면서 25년째 진위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1991년 국립현대미술관이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감정을 의뢰했지만 사실상 감정 불가 판정이 나온 것도 혼란을 부추기는 계기가 됐다. 검찰은 분석 기술이 향상된 만큼 국과수에 다시 분석을 맡기는 방안도 염두에 두고 있다. 검찰은 이날 임의제출 형식으로 국립현대미술관으로부터 미인도 원본을 넘겨받았다. 하지만 김씨가 “국내 기관이 아닌 해외의 전문기관에 감정을 의뢰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어 감정기관을 결정하는 데도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조용철 기자 cyc0305@seoul.co.kr
  • [양진건 유배의 뒤안길] 유배의 인연

    [양진건 유배의 뒤안길] 유배의 인연

    ‘채식주의자’로 맨부커상을 받은 소설가 한강의 아버지 한승원 선생은 ‘추사’, ‘다산’, ‘흑산도 하늘길’ 등 유배인을 소재로 여러 소설을 썼다. 이 가운데 신유박해 때 천주교인으로 지목받아 흑산도에서 유배생활을 했던 정약전을 다룬 ‘흑산도 하늘길’을 필자는 재미있게 읽었다. 정약전은 흑산도에서 ‘거무’라는 여인을 첩으로 맞아들여 ‘자산어보’를 집필하며 유배형을 견딘다. 그러나 우울증과 무력증에 시달리면서 술을 가까이하다가 결국 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유배 16년 만에 거무 손에 생을 마감한다. 거무라는 흑산도 여인처럼 유배지 현지에서 맞아들인 첩을 속칭 배수첩(配修妾)이라 한다. 외딴섬의 유배형은 가족을 동반할 수 없기에 독신생활을 감수해야 했지만 반역 죄인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대부는 여자를 얻어 살았다. 배수첩은 유배인의 의식주를 도와주는 것은 물론 후손을 낳고 가계를 만들어 유배지의 성씨와 문화를 다채롭게 하는 데 큰 기여를 한다. 원래 유배의 ‘배’(配)는 배급, 배부 등의 ‘나누다’라는 뜻도 있고 배필, 배우자 등의 ‘짝’이라는 뜻도 있다. 사람의 짝인 부부를 멀리 나누어 놓는 행위가 바로 ‘유배’였다. 사람의 짝인 부부가 멀리 헤어졌지만 유배지에서 불가피하게 선택한 또 다른 짝이 바로 배수첩이었던 것이다. 유배인이 유배지에서 죽으면 배수첩도 운명을 같이했지만 해배가 됐을 때 상황은 좀 복잡했다. 기생 군산월도 함경도 유배인 김진형의 배수첩이었다. 김진형은 해배되면 군산월을 데려가려 했다. 두 달 만에 복권된 김진형은 군산월을 데리고 가다가 무슨 일 때문인지 마음을 바꿔 돌려보내고 만다. 이처럼 해배됐을 때 따라가는 여인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그러지 않았다. 따라가 본들 실익이 없기 때문이었다. 유배생활을 홀로 견디는 남자들도 있었다. 선조 때 유희춘의 부인 송씨는 “당신은 만리 밖 유배지에서 하늘만 찾으며 통곡했지요. 그때 저는 지극 정성으로 예법을 갖춰 어머님 장사를 치러 남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했습니다. 삼년상을 마치고는 또 만리 길에 올라 온갖 고생을 하며 험난한 유배지로 당신을 찾아갔죠”라고 힘줘 말한다. 서슬 퍼런 이런 부인을 생각하면 어떤 엄두도 나지 않을 것이다. 추사 김정희도 마찬가지로 9년여를 제주도에서 혼자 견뎠다. 남자들이야 배수첩이라도 두었지만 여자 유배인은 오로지 홀로였다. 정조가 아낀 당대의 천재였던 황사영과 명문가의 후손이었던 정난주의 11년간의 부부생활은 1801년 신유박해로 파탄을 맞는다. 황사영은 백서사건으로 처형되고 정난주는 제주에서 37년간 유배생활을 하다가 1838년 병사한다. 현재 황사영 묘는 경기도 양주에 있고 정난주 묘는 제주도 대정에 있다. “배필의 의리는 크니 살아서는 함께 늙고 죽어서는 함께 간다”(伉儷之義大矣 生則偕老 死則偕逝)고 했지만 그들은 함께 늙지도 못했고 게다가 죽어서도 멀리 따로 묻혀 있어 함께 가지도 못하고 있다. 이처럼 유배와 관련된 드라마틱한 이야기들은 현재도 진행 중이다. 서귀포에 가면 하예동에 ‘강진황 등대’, 사계리에 ‘김춘지 등대’라는 부부 등대가 있다. 부부는 재일교포로 일본에서 고생하며 번 돈을 기부해 각자의 고향에 등대를 세웠다. 재일교포들은 디아스포라로서 국제적인 유배인들이다. 대부분 유배인들이 그러했듯 그들 역시 고국을 그리워했고 그나마 다행히 등대가 돼 돌아와 고향 바다를 밝히며 밤마다 만나고 있다. 부부는 팔천 겁의 인연으로 만난다고 한다. 요즘이야 쉽게 헤어지기도 하지만 유배를 둘러싼 남녀의 기막힌 인연들을 보고 있노라면 세상사가 참으로 다종다양함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제주대 교수
  • 추사 작품 등 1천200여점 팔아넘긴 업자 2년 만에 검거

    추사 김정희 영정사진 등 수십억원 상당의 고미술품을 처분하고 도주한 미술품 거래업자가 2년여 만에 경찰에 붙잡혔다. 서울 성동경찰서는 자신의 소유가 아닌 고미술품을 팔아넘기고 수억원을 가로챈 김모(45)씨를 횡령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고 24일 밝혔다. 김씨는 2014년 중순쯤 자신이 담보로 관리하고 있던 고미술품 1200여점을 채무자의 동의 없이 7억여원에 내다 팔고 잠적한 혐의를 받고 있다.  애초에 이 그림들은 서울의 한 대학교에 보관돼 있던 것으로, 소유주들이 처분하는 과정에 미술품 거래업자들의 손을 타게 됐다. 애초 업자 정모씨가 처분을 맡았지만 비싸게 팔아주겠다는 말에 고미술품을 A씨에게 넘겼고, A씨는 3억여원 상당의 채무가 있던 김씨에게 담보를 맡겼다.김씨가 처분한 작품 중에는 대례복을 입은 추사 영정사진과 추사의 작품, 한석봉 친필 등 진품 70여점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피해자들은 이 미술품들의 가치가 총 30억원이 넘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경남 산청군 농가에 숨어 있던 김씨를 도주 2년여 만인 이달 20일 검거했다”며 “다른 공범이 있는지를 수사하는 한편 처분된 미술품의 행방을 쫓고 있다”고 말했다.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 [인사]

    ■방송통신위원회 △지역미디어정책과장 류재영 ■문화체육관광부 ◇국장급 전보△문화기반정책관 문영호△저작권정책관 박태영△한국예술종합학교 사무국장 박위진△국립한글박물관장 김철민◇과장급 전보△재정담당관 고욱성△인문정신문화과장 윤성천 ■국토교통부 △부동산개발정책과장 이상훈△첨단자동차기술과장 정의경△자동차운영보험과장 오성익△첨단항공과장 정용식△항공안전정책과장 장만희△항공운항과장 강승호△도시경제과장 김기대△건축문화경관과장 최태용△국제항공과장 김정희 ■한국산업기술진흥원 △소재기반단장 김병규△감사실장 김홍석 ■보험매일 △논설위원 조민성△GA미디어국장 임근식△경영관리부장 박영미 ■남도미디어그룹 △회장 박성호△남도일보 사장 김성의△남도일보 편집국장 오치남 ■제이콘텐트리 M&B ◇승격 및 보임 <이사대우>△영상사업실장 겸 엘르편집담당 강주연◇보임△엘르편집장 최순영 ■서경대 ◇언어문화교육원△원장 구자억△부원장 안병팔 ■일동제약 △개발본부장 전무 최원△IR담당 부장 박종수
  • [양진건 유배의 뒤안길] 유배지의 봄

    [양진건 유배의 뒤안길] 유배지의 봄

    유배지의 봄은 어떠했을까? 회색의 칙칙하고 우울한 풍경들이었을까? 그러나 예나 제나 한라산의 봄은 철쭉의 바다다. 영산홍 말고도 철쭉 품종은 백철쭉, 황철쭉, 아까도철쭉, 자산홍, 겹철쭉, 산철쭉, 홍철쭉, 만병초, 서감철쭉 등 다양하다. 왜철쭉이라고도 부르는 영산홍은 폭군이었던 연산군이 특히 좋아하여 1만여 그루를 심고 추위에 죽지 않도록 움막을 만들기도 했다. 유배인 김정희는 제주 안덕계곡에 핀 영산홍을 보고 “품격이 원래 보통 꽃과는 다르다”(品格元來自不同)고도 했다. 그런 영산홍이 유배지 제주의 봄을 장식했을 것이다. 제주 유배인 김정이 한때 금강산을 다녀오면서 구부러진 가지로 만든 철쭉 지팡이를 박수량에게 선물했다. 곧은 나무는 도끼에 찍혀 재목이 되지만 구부러진 것은 화를 면할 수 있음을 암시한 것이다. 이에 박수량은 지팡이는 구부러졌어도 나무의 곧은 성품을 감추지 못하기 때문에 언젠가 도끼질을 당할 수 있다고 화답하여 화를 경계할 것을 당부했다. 성품은 속일 수 없다는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성품이 곧았던 김정은 기묘사화에 연루, 제주에 유배되어 1년 만에 사약을 먹고 죽는다. 그런가 하면 제주 들판에는 각종 나물들이 자랐을 것이다. 봄의 재미 중 하나가 봄나물을 먹는 것인데 그 가운데 근심을 잊게 해주는 풀이라는 망우초가 있다. 담배와 원추리를 말하는데 유배인들은 원추리 나물무침을 먹으며 근심, 걱정을 달랬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무래도 제주 봄나물의 으뜸은 고사리다. 김정의 ‘제주풍토록’에는 “산나물로는 삼백초와 고사리가 가장 많았다”고 했다. 봄비가 내려 백가지 곡식을 기름지게 하는 날이라는 곡우를 전후해 제주에는 고사리장마가 시작된다. 원래 이때는 햇차를 수확한다. 다산은 강진 유배생활 중에 “곡우에 어린 차를 따서 잎차 한 근을 만들고, 입하 전에 늦차를 따서 떡차 두 근을 만들었다”고 했다. 그러나 제주에서는 고사리를 꺾는다. 남해에서 유배생활하던 유의양은 하동에서 손님이 고사리와 홍합을 가지고 오자 고사리는 받고 홍합은 돌려보냈다. 손님의 집이 지리산 밑이라 홍합은 사온 것이 분명해서 받지 않고, 고사리는 동산에서 꺾은 것이니 받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고사리를 꺾고 말리는 정성을 제대로 알았다면 고사리도 홍합도 마다했을 것이다. 고사리가 귀한 이유는 천 번은 허리를 숙여야 제법 나눠줄 만큼 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고사리는 기막힌 일을 당해 열이 뻗쳐오르는 것을 가라앉혀 주는 성질이 있다. 그래선지 유배인 정온은 고사리를 즐겨 먹었고 그 덕인지 울분을 달래며 제주 유배생활 10년을 잘 견뎌냈다. 인조반정으로 제주에서 풀려난 후 병자호란을 겪은 뒤 그의 은거지도 고사리를 캐는 집이라는 뜻의 채미헌(採薇軒)이었다. 제주 들판을 지나 민가로 내려오면 아마도 앵두꽃이 화사했을 것이다. 처갓집 세배 갈 때는 앵두꽃을 꺾어 간다는 말이 있는데 그만큼 늦게 가도 된다는 뜻이다. 장인, 장모는 다 이해하고 섭섭해하지 않는다는 말인데 유배인들은 그런 앵두꽃을 보며 두고 온 부인과 처가를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정작 유배인들이 살던 집 둘레는 가시울타리로 둘러싼 살풍경이었다. 가시울타리를 치고 그 안에 유배인을 가두어 두던 일을 위리안치(圍籬安置)라 했다. 탱자나무가 주로 이용되었는데 제주에서는 ‘개탕쉬낭’이라 불렀다. 그런데 봄에는 이 개탕쉬낭에도 꽃이 만발한다. 유배인들이 가시울타리를 견딜 수 있었던 것도 필경 그 꽃들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렇게 유배지의 봄은 무르익어 갔을 것이다. 제주대 교수
  • 수묵화 그린 한 손… 반세기 걸은 한길

    수묵화 그린 한 손… 반세기 걸은 한길

    전시장에 들어서면 정면에 있는 높이 8m의 거대한 소나무 숲 그림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두꺼운 껍질로 몸을 휘감고 하늘을 향해 뻗어 나간 소나무는 살아 움직이는 것 같다. 그 왼쪽으로 같은 크기의 수제 옥판선지에 600년 된 노송 한 그루가 넉넉함과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화가들에게 있어 가장 그리기 어렵다는 소나무를 사실적인 묘사와 대담한 구도, 먹의 농담과 속도감 있는 필력으로 담아낸 이는 소산(小山) 박대성(71) 화백이다. “경주에 살면서 자나깨나 소나무를 봐 왔지만 그린 적이 없었어요. 뭔가 자신이 없었고 너무 거대해서 감히 그리지 못했죠. 지난해 솔거미술관 개관을 계기로 이제 한번 도전해도 되겠다는 생각에 큰 소나무를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경북 경주세계문화엑스포공원 내에 위치한 솔거미술관에서 소산 화업 50년을 기념해 대표작 80여점을 선보이는 ‘솔거묵향-먹 향기와 더불어 살다’전이 열리고 있다. 1999년부터 경주로 터전을 옮겨 작업 활동 중인 그는 지난해 경상북도와 경주시에 평생 그린 회화 435점 외에 글씨 182점, 먹과 벼루 213점 등 작품과 소장품 830점을 기증했다. 박대성관 1전시실은 경주 남산의 삼릉 옆에 위치한 소산 화백의 화실에서 본 솔숲 풍경을 그린 ‘솔거의 노래’와 마을의 당산나무에서 영감을 얻어 그린 ‘제주 곰솔’ 외에 ‘금강설경’, ‘법의’ 등 대작 4점만으로 채웠다. 먹 향기와 함께 한평생을 살아온 소산 수묵정신의 진수를 감상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풍경 가운데 설경은 단순해도 그리기 쉽지 않은 소재로, 소산은 쌓인 눈의 부분은 붓질을 하지 않고 대상을 표현하는 흥미롭고 독특한 특징을 보인다. 지난 개관전에 선보인 ‘불국설경’에 이은 신작 ‘금강설경’은 눈보라 휘몰아치는 속에서 의연한 금강의 풍모가 사뭇 감동적이다. 2전시실은 경주를 담은 경주 이야기 시리즈를 위주로, 3전시실에선 외금강전도, 정방폭포 등 국내외 명승지를 그린 작품을 소개한다. 4전시실은 추사 김정희의 서체와 당나라 명필가 장욱, 마오쩌둥의 칼 날리는 듯한 초서체를 모방해 쓴 작품들, 상형문자를 창조적으로 재해석한 작품 등 서예작품들을 전시하고 있다. 마지막 전시실에는 극사실적인 채색화를 비롯해 금강의 풍경을 재해석한 작품들이 걸렸다. 소산은 사연이 많은 화가다. 해방둥이로 경북 청도에서 태어난 그는 한국전쟁 통에 4살 때 한쪽 팔을 잃었다. 남은 손으로 어렸을 때부터 붓글씨를 쓰며 필력을 키운 그는 정규 미술교육을 받지 않았지만, 독학으로 자신만의 독특한 예술 세계를 구축했다. 수묵을 기본으로 전통의 창조적 계승에 매진한 그는 1966년 화단에 진출해 1979년 중앙미술대전 대상을 수상하며 집중 조명받았다. 1988년 호암갤러리에서 대작 100여점으로 개인전을 갖는 등 한국화에선 보기 드물게 스타작가 반열에 올랐다. 경주엑스포 윤범모 예술총감독은 “대담한 구성과 농묵의 강조, 일필휘지와 섬세한 필치의 조화, 여백의 활용, 변화무쌍한 필법 등이 두드러지는 소산의 수묵은 관점적인 것에 집중하는 전통 수묵과 달리 진경 수묵을 추구한다”고 설명했다. 소산은 “제도권 교육을 받았다면 지금처럼 자유롭게 그리지는 못했을 것 같다”며 “스스로 답을 찾다 보면 어느 시점에 이르러 탄력이 붙는다”고 말했다. 스스로 ‘신라인’이라 부르는 그에게 왜 경주 남산에 정착했는지 물었다. 그는 “이보다 나은 곳이 있다면 말해 보라”며 “경주의 기운은 다르다. 이곳에서 신라정신을 새롭게 보듬으며 생이 다할 때까지 그림을 그리는 것 외에는 다른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전시는 9월 25일까지. (054)740-3990. 글 사진 경주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春’ 묵향 그윽한 도시 사군자가 피었네

    ‘春’ 묵향 그윽한 도시 사군자가 피었네

    도시의 거리에만 꽃이 핀 게 아니다. 서울 강남의 빌딩 숲에 자리한 미술관에도 매(梅), 난(蘭), 국(菊), 죽(竹)이 진한 묵향을 뿜어내고 있다. 화선지에 담긴 사군자(四君子)가 서울 강남 포스코미술관에서 관람객을 맞이하고 있다. ‘사군자, 다시 피우다’라는 제목의 이번 전시에는 조선 시대부터 근현대까지 작가 32명의 작품 77점이 선보이고 있다. 포스코미술관이 2012년 ‘겸재부터 혜원까지-천재화인열전’을 시작으로 ‘매화, 피어 천하가 봄이로다’, ‘글자, 그림이 되다’에 이어 준비한 ‘미술로 보는 인문학 시리즈’ 네 번째 전시다. 사군자는 혹독한 겨울을 이겨내고 이른 봄 흰 눈이 내릴 때 가장 먼저 꽃망울을 터뜨리는 매화, 그윽한 곳에서 알아주는 이 없어도 향을 품는 난초, 찬 서리 내리는 차가운 시절에 꿋꿋이 피어나는 국화, 어떤 상황에서도 곧은 줄기와 푸름을 유지하는 대나무를 이른다. 예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한자 문화권인 한·중·일 3국에서는 이들이 지닌 상징성과 좋은 의미를 따르려는 마음으로 각 식물의 아름다움과 특징을 읊은 시문(詩文), 그림이 적지 않았다. 전시는 크게 3개 파트로 구성돼 있다. 1부에서는 조선시대 선비들이 꿈꾸던 이상적 인간인 군자의 모습을 닮은 문인화가들의 시서화가 소개된다. 강진에서 귀양살이 중인 다산 정약용이 시집 가는 딸을 위해 아내가 보내준 낡은 치마폭에 그린 ‘매화병제도’(梅花屛題圖)와 추사 김정희가 제주 유배 시절 아들에게 그려 보여준 ‘난초 그리는 법’(시우란·示佑蘭)은 옛 선비들에게 사군자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명료하게 보여준다. ‘난초를 그릴 때는 자기의 마음을 속이지 않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잎 하나, 꽃술 하나라도 마음속에 부끄러움이 없게 된 뒤에야 남에게 보여줄 만하다. 열 개의 눈이 보고 열 개의 손이 지적하는 것과 같으니 마음은 두렵도다. 이 작은 기예도 반드시 생각을 진실하게 하고 마음을 바르게 하는 데서 출발해야 비로소 붓을 대는 종지를 얻게 될 것이다.’(추사 김정희) 탄은 이정의 묵죽도(墨竹圖), 사계절의 다양한 대나무를 담은 수운 유덕장의 묵죽도6곡병(墨竹圖六曲屛)과 표암 강세황의 사군자도, ‘야일(野逸)하다’는 표현을 듣는 석파 이하응의 묵란도와 유려한 민영익의 석란도, 현대 추상화 못지않은 우봉 조희룡의 홍매도, 수월당 임희지의 난죽도 등 조선 시대 사군자화를 대표하는 회화 작품들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다. 회화뿐 아니라 매화도가 그려진 백자명기, 사군자가 담긴 백자청화연적 등이 함께 선보인다. 2부에선 ‘저항정신의 표상’으로 그린 매난국죽이 펼쳐진다. 일제강점기에 나라를 지키려 했던 지조와 절개의 의지를 표현했던 석촌 윤용구(1853~1939)의 사군자 10폭 병풍, 항일운동가 일주 김진우(1883~1950)의 묵죽 불유분용도 등이 소개된다. 마지막 3부 ‘사군자, 다시 피우다’에선 현대 작가의 작품이 전시된다. 조선 시대 선비 화가들의 전유물이던 사군자가 현대에 이르러 법고창신하는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휘영청 밝은 달을 배경으로 활짝 핀 매화를 그린 월전 장우성(1912~2005)의 ‘야매’(夜梅), 청전 이상범(1897∼1972)의 10군자 병풍, 남천 송수남(1939~2013)의 매화 등이 소개된다. 철과 폴리우레탄을 소재로 한 조환의 철판 사군자, 문봉선의 사군자와 미디어 아티스트 이이남의 영상작업 ‘신묵죽도’도 첫선을 보이고 있다. 전시는 5월 25일까지. (02)3457-1665. 글 사진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천경자 유족, ‘미인도 위작 논란’ 현대미술관에 새달 소송

    ‘미인도’ 위작 논란과 관련해 지난해 말 국립현대미술관을 상대로 소송을 예고했던 천경자 화백의 유족이 거물급 변호사들이 포함된 무료 변호인단을 구성했다. 유족 측은 4월 20일쯤 소송을 제기할 방침이다. 천 화백의 차녀 김정희씨를 대리해 온 배금자 변호사 등은 28일 “한국 현대미술사에 비극이 더이상 재발해서는 안 되며 작가 인권이 유린되는 일이 있어선 안 된다고 공감한 뜻있는 변호사들이 모여 공동 변호인단을 발족하게 됐다”고 밝혔다. ‘위작 미인도 폐기와 작가 인권 옹호를 위한 공동 변호인단’에는 배 변호사 외에 대한변호사협회장을 지낸 위철환(동수원종합법무법인 대표), 서울지방변호사회장을 지낸 오욱환(한원국제법률사무소 대표), 대검 중수부장 출신 박영수(법무법인 강남 대표), 이삼 전 서울고검 검사 등 10명이 참여했다. 변호인단은 발족 취지문에서 “위작 미인도와 관련해 국립현대미술관의 행위는 국가기관이 개인에게 가하는 인권유린 행위”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또 바르토메우 마리 국립현대미술관장이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이우환 화백 위작 논란에 대해선 작가가 ‘진작과 위작을 결정할 수 있다’고 답한 반면, 천 화백과 관련해선 작가 존중의 원칙을 지키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양진건 유배의 뒤안길] 유배의 감동

    [양진건 유배의 뒤안길] 유배의 감동

    유배인들의 일상은 고통과 좌절의 연속이었다. 유배지를 일컬어 ‘산무덤’(生塚)이라고 했으니 오죽했겠는가. 그들은 죽음 외에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는 자기 상실의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와중에도 유배지 주민들과 어울려 의미 있는 자취를 남긴 유배인들이 많다는 사실이다. 다산 정약용은 유배지 강진에서 황상(?裳)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과 사제의 연을 맺었는데 대부분 현지인들이었다. 그 인연이 오죽 깊었으면 스승이 돌아가신 지 15년이 지났음에도 “간밤에 선생님 꿈을 꾸었다”(昔夜夢夫子)고까지 할까. 더욱이 제주 유배인 추사 김정희는 “귀양 사는 집에 머무르니 멀거나 가까운 데로부터 책을 짊어지고 배우러 오는 사람들이 장날같이 몰려들어서 겨우 몇 달 동안에 인문이 크게 개발됐다”고 할 정도였다. 당송팔대가의 한 사람인 동파 소식도 해남도 유배 시절 자신의 억울함과 굴욕은 제쳐 놓고 주민들과의 어울림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 덕에 해남 인문이 흥성했고 영재가 배출됐다. 그러기에 “동파는 불행했지만 해남은 행복했다”고 한다. 러시아의 이르쿠츠크도 서유럽의 분위기를 경험한 장교들이 일으킨 데카브리스트 혁명으로 많은 지식인들이 유배를 가게 되면서 크게 변한다. 보잘것없던 개척 도시가 유배인들의 영향으로 ‘시베리아의 파리’라 불릴 정도로 문화예술을 꽃피울 수 있었던 것이다. 차관을 지내고 데이콤 회장까지 했던 박운서씨는 지난 10년간 필리핀에서 교회 14곳을 세우고, 농사 기술을 가르치다가 지난해 교통사고로 초주검이 돼 서울로 후송됐다. 오른발은 엄지발가락 하나만 남은 채 죽음 직전에 의식을 찾았는데 다시 필리핀으로 돌아갈 날을 손꼽고 있다. 그런가 하면 명문 예일대를 졸업하고 잘나가던 앤드루 윤(윤수현)은 학창 시절 아프리카에서 받은 충격을 잊지 못해 빈곤퇴치 사업에 뛰어들었다. 농사 자금을 저리로 대출해 주고, 물류창고를 지어 좋은 씨앗과 비료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며, 농사 기술을 교육시켜 주는 ‘원 에이커 펀드’를 설립했고 10년 만에 40만 가구를 지원할 만큼 규모가 커졌다. 그 도움으로 약 200만명이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필리핀의 민도로섬이나 아프리카의 케냐, 르완다는 현대판 유배지다. 그곳은 여전히 궁핍한 오지라는 점에서 과거의 제주도나 시베리아와 다르지 않다. 이런 꿈과 미래가 없는 곳에서 현지인들과 어울려 의미 있는 자취를 남기고 있는 현대판 유배인들도 적지 않다. 그들 중에는 40년을 봉사하다 귀국해 “눈을 뜨면 한국 생각을 하고, 잠이 들면 소록도 꿈을 꾼다”는 독일 수녀도 있다. 유배는 철저히 이율배반적이다. 닫혀 있으면서 열려 있고 열려 있으면서 닫혀 있다. 패배하면서 승리하고 승리하면서 패배한다. 우리 인생 자체가 이런 유배 생활이다. 그렇기에 편한 곳이 없고, 편한 날이 없다. 또 혼자 편하면 무얼 할 것인가. 퇴계 이황이 “푸른 하늘 높이 솟아오를 때까지(待得昂靑霄), 풍상을 몇 번이나 겪어야 할 것인가(風霜幾昂靑霄)”라고 했던 소나무처럼 인생의 풍상은 당연한 것이고 함께 겪는 것이다. 이런 이치를 일찍 깨닫고 어려운 곳에서 어려운 사람들과 함께하는 현대판 유배인들이야말로 누구 말마따나 ‘완전 감동’이다. 우리도 더 늦기 전에 그렇게 살아야 한다. 그것이 유배의 교훈이며 감동이다. 제주대 교수
  • [문화 블로그] 미술계 끝없는 ‘위작 스캔들’ 근본적 해결책 없나

    미술계가 위작 논란으로 벌집을 쑤셔 놓은 듯하다. 25년 이상 공방을 벌여 온 고 천경자(1924~2015) 화백의 ‘미인도’ 위작 논란은 이 그림을 자신이 그렸다고 주장해 온 위조범 권춘식(69)씨가 입장을 번복함으로써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이우환(80) 화백의 위작 유통 사건과 관련해서는 경찰이 수사를 진행 중인 가운데 검증 대상에 오른 12점이 모두 위작이라는 ‘안목 감정’ 검증 결과를 한 감정위원이 언론에 공개해 파문이 일기도 했다. 시립 대구미술관에서 지역 기업가로부터 기증받아 전시 중인 이인성(1912~1950)의 1933년 작품 ‘연못’도 진위를 놓고 이견이 분분하다.<서울신문 2월 26일자 22면> 권씨는 최근 언론을 통해 “1978년 위작 의뢰를 받고 3점을 그려 줬는데 나중에 검찰 수사 과정에서 스스로 미인도와 착각해 말한 것 같다. 감형해 줄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다”면서 “내가 그린 것이 확실하게 아니다”라고 밝혔다. 권씨는 1999년 검찰 조사를 받던 중 자신이 그 그림을 그렸다고 주장했고 지난해 천 화백의 별세 이후 미인도 위작 논란이 재점화됐을 때도 이 주장을 반복했다. 최근 한 방송사의 기획물에서는 현장 시연을 벌이기도 했다. 이런 권씨가 이를 번복했으니 논란에 논란을 하나 더 얹은 셈이 됐다. 천 화백의 유족 중 혼외 자녀인 차녀 김정희씨는 국립현대미술관을 상대로 명예훼손 및 저작권법 위반 소송을 벌이기 위해 친자 확인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이우환 화백 위작 유통 사건의 작품 12점은 서울 인사동 K화랑에서 압수한 작품 6점과 K옥션에서 거래된 작품 1점, 개인 소장자의 작품으로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과학 감정을 의뢰한 상태다. 이 화백의 대리인 최순용 변호사는 “작가가 직접 그림을 보게 해 달라”고 공개 요청했으나 경찰은 위작 여부에 대한 법률적 판단은 과학 감정과 안목 감정, 출처 확인 및 해당 작가 확인 등으로 진행한다는 방침으로, 국과수의 결과가 나온 뒤 필요할 경우 이 화백에게 보여주겠다는 입장이다. 김정희의 추사체나 신윤복의 풍속화 같은 고서화부터 이중섭, 박수근의 작품들이 위작 시비에서 자유롭지 못했듯이 위작 스캔들이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닌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최근 미술시장이 급격하게 성장한 10년 사이 그림이 돈이 되는 재화로 여겨지면서 특히 빈번하게 터져 나오고 있다. 위작을 만들어 내는 근본적인 원인은 ‘돈’이지만 점차 조직화, 국제화되면서 미술계의 문제가 아닌 사회문제로 확산되고 있는 점도 심각성을 더한다. 위작 사건에서 감정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이를 효과적으로 걸러 낼 장치가 없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다. 투명성과 공신력을 가진 감정기구가 없고, 과학적인 첨단 감정 기법이 미숙해 안목 감정에 의지할 수밖에 없어 결과를 뒤집는 것 또한 용이하다. 감정위원은 미술시장에서 가격 형성과 유통을 책임지는 갤러리 주인이 대부분이다. 특히 국내 2차 미술시장의 대부분을 점유하는 서울옥션과 K옥션의 실질적 주인이 메이저 갤러리라는 점, 옥션에서 위작이 출현해도 이를 제재할 방법이 없다는 점 등도 시정해야 할 대목이다. 과학적 감정 기법 개발과 전문가 양성, 독립적인 감정기구 설립이 시급하다.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故 천경자 차녀 ‘친자’ 소송… 미인도 진위·상속분쟁 2R

    故 천경자 차녀 ‘친자’ 소송… 미인도 진위·상속분쟁 2R

    법원 인정 땐 유작 권리 행사 가능… “진품 주장 국립현대미술관 소송할 것” 지난해 8월 별세한 천경자 화백의 차녀 김정희(62·미국 거주)씨가 자신을 천 화백의 법적 자녀로 인정해 달라며 법원에 친자 확인 소송을 제기해 그 배경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22일 김씨의 법정 대리인인 배금자 변호사에 따르면 김씨는 지난 18일 친생자관계존재확인 소송을 제기했으며 천 화백의 차남 고 김정우씨의 아들도 고모와 함께 원고인에 이름을 올렸다. 이 사건은 서울가정법원 가사3단독에 배당됐다. 천 화백은 생전에 네 명의 자녀를 뒀다. 첫 남편 고 이형식씨와의 사이에서 장녀 이혜선씨와 장남 이남훈씨를 낳았고, 이혼 뒤 김남중씨와 만나 정희씨와 정우씨를 낳았다. 김남중씨는 당시 다른 여성과 법률상 혼인 상태였던 까닭에 정희씨와 정우씨는 김남중씨의 가족관계등록부에 이름을 올렸고 법률상 어머니도 천씨가 아닌 김씨의 부인으로 되어 있었다. 배 변호사는 이날 서울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정희씨가 어머니의 명예회복을 위한 법적인 절차를 진행함에 있어 권리행사를 위한 공적인 지위가 필요해 소송을 제기했다”면서 “상속재산 분쟁 때문은 절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이어 “모자 관계의 입증은 출산했다는 증거만 있으면 가능하다는 판례가 있다. 정희씨와 정우씨는 천 화백이 집에서 낳아 기르고 함께 생활했다는 사실이 천 화백이 남긴 글에 여러 차례 언급돼 있어 절차상의 무리는 전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배 변호사는 “친자확인 판결이 나는 대로 ‘미인도’를 천 화백의 작품이라고 주장하는 국립현대미술관을 상대로 명예훼손 및 저작권법 위반으로 소송을 제기할 방침”이라며 “법원의 결론이 나오기까지는 두 달 정도 걸릴 것”으로 내다봤다. ‘혼외자식’ 신분이었던 정희씨가 법적 자녀로 인정을 받을 경우 현재 장녀 이혜선씨가 독단적으로 결정해 온 천 화백의 유품 처리에 대해서도 공식 권리를 행사할 것으로 전망돼 상속재산을 둘러싼 분쟁은 불가피해 보인다. 혜선씨는 지난해 8월 천 화백의 사망 사실도 다른 형제들에게 알리지 않은 채 두 달 뒤 유골을 들고 서울시립미술관의 천경자 상설전시실을 다녀갔다. 이어 드로잉을 포함한 미공개 작품 1000여점과 개인소장품 등 4000여점을 부산에 있는 부경대에 기증하고 미술관 건립 의사를 밝힌 바 있다.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목포·강진-시간이 멈춘 남도에서

    목포·강진-시간이 멈춘 남도에서

    타임머신처럼 버스는 근대의 아픔이 서린 1930년대의 목포로, 정약용 선생이 유배 길을 걷던 조선 후기의 강진으로 데려다 주었다. ●목포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전남 목포 온금동溫錦洞의 옛 이름은 ‘다순구미’다. 따사롭다는 뜻의 사투리인 ‘다순’과 몽골어로 후미진 곳을 뜻하는 ‘구미’가 합쳐진 이름이다. 언뜻 보면 통영의 동피랑마을이나 부산의 감천문화마을을 닮은 듯하지만, 관광지화되어 버린 두 마을에선 찾기 힘든 포근함과 한적함이 있다. 일제 강점기의 조선내화공장이 아직도 그 자리에 있고, 70년대 대통령선거 포스터가 여전히 붙어 있을 만큼 옛 모습이 많이 남아 있는 다순구미. 사람의 인생을 닮은 듯 오르막내리막을 반복하는 작은 골목들이 얽힌 동네의 모습이 계속 유지됐으면 하는 바람은 잠시 들렀다 가는 여행자의 욕심일까. 지금 다순구미는 재개발지구로 선정되어 주민들이 하나둘 떠나가고 있다. 뱃사람들이 모여 살던 온금동에서는 아이들을 ‘조금새끼’라고 부르곤 했다. 조금새끼는 선원들이 어업을 나갈 수 없는 조금(썰물) 때 생겨 태어난 아이를 부르는 말이다. 한날에 태어난 아이들은 아버지의 생업을 물려받아 바다로 나갔다가 풍랑에 부딪혀 다시 한날에 바다에 묻힌다. 그래서 다순구미의 남자들은 생일과 제삿날이 같은 경우가 많다고. 목포에 있는 근대역사관은 우리나라 근대 역사의 슬픔과 아픔을 간직하고 있다. 근대역사관 본관은 과거 일본영사관으로 사용됐던 건물이다. 외벽에 새겨진 동그란 문양은 일본 제국주의의 상징인 욱일승천기와 닮아 있으나 시기적으로 들어맞지 않아 일본 왕실의 문양인 국화로 추정된다. 외벽의 부서진 흔적들은 6·25 전쟁 당시 포탄의 흔적이다. 건물 뒤편에 자리한 굴은 일본인들이 전쟁 때 조선인을 강제 동원해 만든 방공호로 지금은 방공호가 지어지던 당시 노동착취의 현장을 재현해 전시하고 있다. 본관에는 일제 수탈에 대한 흔적, 일제강점기 당시 목포의 모습을 비롯해 근대 교육, 종교 등 목포와 우리나라의 근대사에 대한 기록이 전시되어 있다. 유달동 사거리를 지나 한 블록 더 직진하면 과거 동양척식주식회사 건물로 사용됐던 근대역사관 별관을 만날 수 있다. 사진자료 위주로 전시된 별관 2층에는 과거 동양척식회사에서 사용했던 금고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금고 안에는 일제의 만행을 가감 없이 담은 사진들이 걸려 있는데, 그 모습이 너무 잔혹해 임산부나 노약자, 어린 아이들이 관람할 때는 주의가 필요할 정도다. 목포에서 해수와 담수가 만나는 영산강 하구에는 명물이 하나 있다. 한 쌍의 바위가 삿갓을 쓴 사람의 형상으로 보인다고 해 이름 붙은 ‘갓바위’다. 천연기념물 500호이자 목포 8경 중 6경에 해당하는 이 바위는 오랜 시간 풍화와 해식을 겪으며 만들어졌다. 소금장수와 아버지, 아라한과 부처님에 얽힌 두 개의 흥미로운 전설도 깃들어 있다. 목포 근대역사관(본관)전남 목포시 영산로 29번길 6 목포문화원(별관)전남 목포시 번화로 18 (본관)061 242 0340 (별관)061 270 8728매일 09:00~18:00 월요일 휴관 성인 2,000원, 청소년 1,000원 ▶more목포의 문화예술 쉼터 성옥기념관 목포의 전경이 시원하게 펼쳐지는 성옥기념관 로비에 들어서면 다양한 조각품과 거대한 보석, 그림들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성옥기념관은 ‘기업인이 되지 않았다면 소리꾼이 되었을 것’이란 고故 성옥 이훈동 선생에 대한 기록이 담긴 기록실과 3개의 전시실로 구성되어 있다. 각 전시실에는 성옥 선생이 일본으로부터 지켜낸 우리의 문화재와 해외에서 가져온 진귀한 물건과 미술품 등이 전시되어 있다. 전시품들은 작가들이 기증했거나 성옥 선생이 ‘문화보국’을 위해 직접 구입한 것들이다.전남 목포시 영산로 11 061 244 2527 화요일~일요일 09:00~12:00, 13:00~17:00 월요일, 공휴일, 명절 휴관 무료 www.sungok.or.kr ●강진의 옛길을 걷다 차나무가 많아 ‘다산茶山’이란 별명을 지닌 만덕산. 그 안에 다산 정약용 선생의 흔적이 남아 있는 남도유배길이 있다. 남도유배길의 4개 코스는 각각 13km가 넘는 길이다. 하나를 완주하는 데 최소 4시간 이상 걸리므로 도전하기가 만만치 않다. 여행자들에게 추천할 만한 남도유배길의 ‘맛보기’이자 핵심 코스는 2코스의 다산오솔길 중 다산초당-백련사 구간이다. 백련사와 다산초당을 잇는 오솔길은 빨간 동백이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동백림으로 유명하다. 겨울철에 방문하면 하얀 눈 속에서도 고고한 자태를 지키는 동백꽃을 볼 수 있고, 낙화시기에 찾으면 레드 카페트처럼 동백꽃이 깔린 길을 만나게 된다. 이 오솔길은 쉬지 않고 걸으면 약 25분이 소요되지만 풍경을 만끽하며 천천히 걷고 싶은 사람이라면 40분 정도를 예상하는 게 좋다. 다산초당은 정약용 선생이 강진에서 보낸 18년의 유배생활 중 10년을 보낸 곳이다. 정약용의 호인 ‘다산’도 여기서 유래됐다. ‘다산초당’이라고 적혀 있는 현판은 추사 김정희 선생의 글씨다. ‘보정산방’ 현판은 김정희 선생이 중년 무렵에 직접 쓴 것으로 ‘조선의 보배 정약용이 있는 방’이란 의미다. 다산 선생은 주로 이 방에서 시간을 보내고 아이들을 가르치기도 하며 긴 유배생활을 보냈다고 한다. 강진에는 바다와 벗 삼아 걸을 수 있는 길도 있다. 강진의 8개 섬 중 유일한 유인도인 ‘가우도’에 조성된 함께 해海길이다. 가우도 입구에서 출렁다리를 건너 가우도 마을까지 섬 한 바퀴를 잇는 2.43km 길이의 코스로,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걸을 수 있다. 가우도를 찾는 사람들은 대부분 첫 번째 출렁다리를 건너 오른쪽으로 난 데크 길을 따라 걷다가, 두 번째 출렁다리를 지나는 짧은 코스로 트레킹을 한다. 섬 한 바퀴를 도는 데는 약 2시간이 소요되고, 첫 번째 출렁다리부터 두 번째 출렁다리까지 짧은 코스는 약 30분이면 걸을 수 있다. 시간 여유가 많다면 전망대와 가우도 마을까지 둘러볼 것을 추천한다. 남도유배길 코스1코스 | 주작산 휴양림길(해남 북일면 장수마을-다산수련원) | 20.7km | 9시간 소요2코스 | 사색과 명상의 다산오솔길(다산수련원-영랑생가) | 15km | 5시간 소요3코스 | 시인의 마을길(영랑생가-대월 달마지마을) | 13.4km | 4시간 30분 소요 4코스 | 그리움 짙은 녹색향기길(대월 달마지마을-천황사) | 16.6km | 5시간 30분 소요 ▶more 선조들의 삶이 그림 속에 강진 한국민화뮤지엄 강진 한국민화뮤지엄은 2015년 5월에 문을 연 ‘신상’ 박물관이다. 선조들의 삶과 소망을 담아 그려낸 전통 민화를 볼 수 있다. 민화과 관련한 다양한 체험학습도 가능. 단 한국, 중국, 일본의 ‘므흣한(?)’ 춘화가 전시되어 있는 춘화전시는 만 19세 이상 성인만 관람이 가능하다. 전라남도 강진군 대구면 청차촌길 61-5 061 433 9770~1 www.minhwa.co.kr/korea 09:00~18:00 (입장마감 17:30, 월요일 휴관) 성인 5,000원, 학생 4,000원 500년 역사를 담은 청자의 모든 것 고려청자박물관 고려시대 가마터에 세워진 고려청자박물관에서는 500년 역사를 담아 빚어낸 강진 고려청자의 역사와 제조과정 등을 살펴볼 수 있다. 바로 옆에 자리한 고려청자 디지털 박물관은 청자를 소재로 한 게임과 애니메이션을 통해 아이들의 이해를 돕는다. 박물관 일대에서 매년 7월 말부터 8월 초까지 ‘강진청자축제’도 열린다.전라남도 강진군 대구면 청자촌길 33 061 430 3755 www.celadon.go.kr 에디터 고서령 기자 글·사진 트래비스트 심서정 취재협조 솔항공여행사 1688 3372, 강진군문화관광재단 061 434 7999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 [新국토기행] 전북 고창

    [新국토기행] 전북 고창

    고창군은 전북의 서남쪽 끝이다. 동남쪽은 노령산맥을 경계로 전남 장성군, 남쪽은 영광군과 접해 도계(道界)를 이룬다. 북동쪽은 전북 정읍시,북쪽 대부분은 곰소만을 넘어 부안군과 접한다. 서쪽은 길이 80㎞의 굴곡이 많은 서해안이다. 고창은 잘 보전된 청정 환경을 자랑한다. 군 행정구역 전체가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될 정도다. 볼거리, 먹거리가 풍성한 복받은 지역이다. 서해안고속도로가 관통하고 호남고속도로와 서해안고속도로를 연결하는 고창~장성 간 고속도로 등 사통팔달 교통망도 갖췄다. 1974년부터 시작된 야산개발 지역이 많아 밭농사가 발달했다. 넓은 간석지가 펼쳐지는 연안에서는 양질의 소금과 맛 좋은 수산물이 생산된다.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고인돌군과 고창읍성을 비롯해 수많은 문화유적이 분포하고 있다. 인물이 많은 고장으로도 널리 알려졌다. 동아일보 창업주인 인촌 김성수, 진의종 총리(17대), 판소리를 집대성한 동리 신재효, ‘국화 옆에서’로 유명한 미당 서정주 시인 등이 모두 고창 출신이다. >>볼거리 ●성곽길 세바퀴 돌면 극락승천 한다는 고창읍성 고창읍성은 조선 단종 원년(1453년) 외침을 막기 위해 축성한 자연석 성곽이다. 모양성(牟陽城)이라고도 부른다. 우리나라에서 원형을 가장 잘 보존하고 있는 읍성이다. 나주 진관의 입암산성과 연계돼 호남 내륙을 방어하는 전초기지 역할을 했다. 1965년 4월 1일 사적 145호로 지정됐다. 성의 둘레는 1684m, 높이 4~6m, 면적은 16만 5858㎡다. 동·서·북문과 3곳의 옹성, 6곳의 치성(雉城) 등 전략적 요충시설을 두루 갖췄다. 독특한 성 밟기 풍속이 전해 내려온다. 성을 한 바퀴 돌면 다릿병이 낫고 두 바퀴 돌면 무병장수하고 세 바퀴 돌면 극락승천한다는 전설에 따라 해마다 답성놀이가 계속된다. 성을 돌 때는 반드시 손바닥만 한 돌을 머리에 이고 세 번 돌아야 하고 일정한 지역에 쌓아 두도록 했다. 이는 겨우내 부풀었던 성을 밟아 굳건히 하고 쌓아 둔 돌은 유사시 석전(石戰)에 대비하기 위한 선조들의 예지로 분석된다. ●1.8㎞에 걸쳐 이어진 국내 최대 고인돌 밀집지 고창은 군 단위로는 우리나라 최대 고인돌 밀집지역이다. 고창 고인돌 유적은 고창읍 죽림리와 도산리, 아산면 상갑리, 봉덕리 일대에 무리지어 있다. 죽림리와 상갑리 일대 고인돌은 산기슭을 따라 447기가 1.8㎞나 이어진다. 세계적으로도 고인돌이 가장 조밀하게 밀집한 지역이다. 200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탁자식, 바둑판식, 개석식 등 각종 형식의 고인돌과 다양한 크기의 고인돌이 모두 모여 있는 것도 고창 고인돌 유적의 특징이다. 2500여년 전부터 500여년간 이 지역을 지배했던 족장의 가족 묘역으로 추정된다. 서해안고속도로를 타고 고창IC를 빠져나오면 5분 거리에 고인돌박물관이 눈에 띈다. 세계의 고인돌 문화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국내 최초의 고인돌 전문 박물관이다. ●호남의 내금강이라 불리는 선운산도립공원 동백숲과 기암괴석이 어우러진 선운산은 호남의 내금강으로 불리는 명승지다. 아산면, 심원면, 해리면, 부안면 일원에 걸쳐 있다. 도솔산이라고도 부른다. 1979년 도립공원으로 지정됐다. 선운(禪雲)이란 구름 속에서 참선한다는 뜻으로 불도를 닦는 산을 의미한다. 해발 336m로 그리 높지 않은 산이지만 기암괴석이 봉우리를 이뤄 경관이 빼어나고 숲이 울창하다. 정상에 오르면 서쪽은 서해, 북쪽은 곰소만 너머 변산반도를 조망할 수 있다. 1500년 된 고찰 선운사는 조계종 24교구의 본사로 검단 선사가 창건했다. 한때 89개 암자를 거느리고 3000명의 승려가 머물던 대가람이었다. 현재는 4개의 암자와 10개 넘는 건물이 남아 있다. 금동보살좌상, 지장보살좌상, 대웅전 등 보물 6점과 동백나무숲, 장사송, 송악 등 천연기념물 3점, 그 밖에도 많은 지방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 추사 김정희가 짓고 쓴 백파율사비는 추사 글씨 중에서도 대표작이다. 봄에는 3000그루의 동백이 아름다운 자태를 자랑한다. 여름에는 시원한 녹음, 가을에는 붉게 타는 단풍과 무릇꽃이 장관을 이룬다. ●고창군 14개 읍·면 전역이 생물권보전지역 고창군은 14개 읍·면 육상 및 해상 671.52㎢ 전역이 생물권보전지역이다. 이 중 핵심지역은 고창·부안 람사르습지, 선운산 도립공원, 운곡습지, 동림저수지, 고인돌세계문화유산 등이다. 운곡습지 생태관광지역은 아산면 운곡리 일원 1.797㎢ 의저층 산지습지다. 과거 주민들의 삶의 터전이었던 계단식 논이 1980년대 댐 건설로 30년 넘게 방치되면서 자연적으로 생태가 복원됐다. 자연에 의한 생태 복원 사례로 가치가 높다. 2011년 국가습지보호지역과 람사르습지로 등록됐다. 2014년 전북 지역 최초로 국가 생태관광지역으로 지정됐다. 동림저수지는 가창오리 등 철새들의 낙원으로 탐조가와 사진작가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전국에서 가장 넓은 100만㎡ 청보리밭 공음면 선동리에 있는 학원농장은 국내에서 가장 드넓은 보리밭을 볼 수 있는 곳이다. 1994년 관광농원으로 지정됐다. 봄이면 초록색 융단을 펼쳐 놓은 듯한 100만㎡의 청보리밭이 장관을 이룬다. 이 보리밭이 여름에는 해바라기 꽃밭, 가을에는 흰 구름이 내려앉은 듯한 메밀꽃밭으로 변한다. 화훼용 유리온실, 각종 과수단지, 잔디구장, 숙박시설을 갖춰 한가로운 전원 풍경을 만끽할 수 있다. 2004년 전국 최초로 보리를 소재로 한 경관농업축제를 시작했다. 해마다 30만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아와 지역경제 파급 효과가 200억원 이상으로 추산된다. 글 사진 고창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먹거리 ●서해의 해풍이 키운 친환경 복분자 서해의 해풍을 맞고 자란 복분자는 고창군의 대표적인 특산품이다. 6~7월에 검붉게 익는 나무딸기다. 전국적인 복분자 재배와 복분자 술 열풍 진원지가 바로 고창이다. 전국 생산량의 45%를 차지한다. 농약을 사용하지 않는 친환경농법으로 생산한다. 자타가 공인하는 전국 최고 품질로 복분자즙 등 다양한 가공품도 만든다. 복분자는 한방에서 귀한 약재로 썼다. 비타민 B와 C가 많이 함유돼 있고 카로틴, 폴리페놀, 안토시아닌 등 항산화 성분이 풍부한 자양강장 식품으로 통한다. 열매뿐 아니라 잎, 꽃, 줄기, 뿌리 모두 효능이 있는 약재로 알려졌다. 고창에서는 잘 익은 복분자 열매만으로 빚은 복분자 발효주를 많이 생산한다. 복분자주는 청와대가 국빈 만찬주 등으로 사용해 더욱 유명해졌다. 중국 등 해외로 수출되는 효자 품목이다. 보양 식품으로 널리 알려진 풍천장어와 곁들여 마시는 술로 인기를 끌고 있다. 최근에는 복분자가 남성에게만 좋은 게 아니라 여성의 임신에 도움이 된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소비가 늘고 있다. ●설명이 필요없는 풍천장어 선운산 어귀 바닷물과 민물이 합해지는 인천강 지역을 풍천이라 한다. 실뱀장어가 민물로 올라와 7~9년 성장한 뒤 산란하기 위해 내려가다가 이곳에서 머문다. 이때 잡힌 장어를 풍천장어라고 한다. 풍천장어는 고창을 대표하는 특산물로 고유명사 성격을 갖고 있다. 최근 들어서는 자연산이 귀해 양식 장어를 일정 기간 넓은 갯벌에 풀어놔 기르는 준자연산이 인기를 끌고 있다. 유달리 담백하고 고소한 맛을 자랑한다. 일반 양식 장어에 비해 육질이 쫀쫀해 식감이 좋다. 단백질과 아미노산이 풍부해 피부미용과 체력 보강에 좋은 건강식품으로 널리 알려졌다. 노화 방지와 성인병에 좋다는 비타민 E와 A의 함유량이 소고기보다 훨씬 많다. 선운산 도립공원 인근에는 특색 있는 맛을 내세우는 장어 식당이 즐비하다. 고추장 숯불구이가 유명하다. 고창군의 장어 생산량은 연간 2800여t에 이른다. 전국 생산량의 30%를 차지한다. ●야산 황토에서 자라 더 달고 향긋한 수박 야산개발지역 황토에서 재배해 당도와 풍미가 뛰어난 명품 수박이다. 수박 생산량이 전북의 65%, 전국의 15%를 차지한다. 고창 야산개발지역은 통기성과 배수가 좋은 사질양토로 수박 재배에 최적의 여건을 갖췄다. 달고 시원한 고창 황토배기 수박은 여름철 과일의 대명사다. 홍수 출하를 막고 연중 고품질 수박을 생산하기 위해 3단계로 나눠 생산한다. 하우스 재배로 6월 중순에 3000t, 터널 재배로 6월 하순에 2만t, 노지 재배로 7월 중·하순에 3만 7000t을 생산, 출하한다. 수박 재배로만 연간 380억원의 농가소득을 올린다. 2014년 ‘고창 리코스타’라는 수박 기능성 음료를 출하하는 등 고창수박은 2~3차 산업으로 발전하고 있다. ●고창의 차세대 주력 농산물 멜론 고창의 대표 농산물인 복분자와 수박의 명성을 잇는 차세대 작목이다. 최근 전국 최고 명품 멜론 생산지로 부상하고 있다. 2014년 농촌진흥청에서 추진하는 최고 탑과채 프로젝트 단지에서 최우수상을 받아 뛰어난 품질을 인정받았다. 미네랄 성분이 다량 함유된 황토에서 재배해 조직이 치밀하고 아삭한 맛이 특징이다. 향과 풍미, 높은 당도를 자랑한다. 당도 15브릭스 이상만 출하하는 등 품질 관리가 철저하다. 대도시 백화점에 납품하고 홍콩 등 해외 수출도 늘고 있다. ●전국 생산량 절반 차지하는 청정 바지락 오염되지 않은 건강한 갯벌에서 나오는 고창 바지락은 전국 생산량의 50%를 차지한다. 고창 갯벌은 적정 간조시간 유지와 질 좋은 황토수 유입으로 다양한 생물이 서식하는 생명의 보고다. 바지락 고유의 맛과 향이 뛰어나고 필수 아미노산 성분이 풍부하다. 음주 등으로 손상된 간 기능 회복, 노약자와 어린이 허약체질 개선에 큰 도움을 주는 것으로 알려졌다. 철분과 아연도 다량 함유하고 있어 소비자들로부터 각광받고 있다. 유네스코 생물권 보전지역으로 지정된 고창 갯벌 860㏊에서 연간 1만t이 생산된다. 이 중 2500t은 일본 등지로 수출된다. 고창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 [양진건 유배의 뒤안길] 제주의 新유배인

    [양진건 유배의 뒤안길] 제주의 新유배인

    지난해 12월 31일 우크라이나의 친러 분리주의 반군을 비판했던 사람이 법원으로부터 5년의 시베리아 유배형을 정식으로 선고받았다. 시베리아 유배형은 원래 동방을 침략한 러시아제국이 시베리아 지배를 확고히 하기 위해 자국인들을 강제 이주시키면서 탄생한 것이다. 이후 건국된 소련은 이 형벌을 더욱 강화했지만 소련이 붕괴됐음에도 유배형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그런가 하면 독일은 문제 청소년 교육 프로그램으로 유배 캠프를 시행하고 있다. 독일의 기센시는 문제 청소년들을 9개월간 시베리아로 보내 갱생교육을 받게 하는데 섭씨 영하 55도의 극한지에 TV도 인터넷도 없고 가이드와 함께 외딴집에 살면서 빨래와 취사를 직접 한다. 이 프로그램은 과도한 소비문화 유혹에서 청소년들을 격리시킨다는 취지로 진행 중이다. 독일 청소년 선도 단체는 한 해 600여명의 문제 청소년을 대상으로 여러 갱생교육을 하고 있지만 유배 캠프가 가장 효과적이라고 한다. 미국의 경우는 스미스소니언박물관에서 ‘유배로 악명 높은 10개의 섬’이라는 주제로 유배 관광을 안내하고 있다. 영화 ‘빠삐용’으로 유명한 프랑스령 기아나의 ‘악마의 섬’을 비롯해 나폴레옹의 유배지인 ‘세인트 헬레나섬’ 등 이색 관광지로 유배지를 추천하고 있는 것이다. 유배지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려는 노력도 진행 중이다. 오스트레일리아령 노퍽섬을 중심으로 매년 ‘유배의 섬’ 콘퍼런스가 개최되고 있다. 태즈메이니아, 뉴칼레도니아, 괌, 사할린 등 여러 섬들이 참여해 유배지의 역사와 유산에 대한 관심을 기반으로 지속적인 방문 장소로 만들기 위해 고민하고 있다. 덕분에 주요 ‘유배의 섬’들이 현재 세계유산 등재 신청 리스트에 올라갔다. 보다시피 유배라는 주제는 이렇게 전 세계에 걸쳐서 형벌이나 청소년 교육 프로그램 또는 이색 관광지, 세계문화유산 등으로 활발하게 애용되고 있다. 그런데 조선시대 최고의 유배지였던 제주도에서는 이와는 좀 다르게 전개돼서 흥미를 끈다. 최근 미국의 경제전문 미디어 블룸버그는 제주도의 성장 가능성을 주목했다. 제주 경제가 국가에 비해 2배 이상 성장하고 있는데 그 배경이 순유입 인구 증가와 이전기업 효과라는 것이다. 특히 한국의 주요 도시 인구가 감소세인 반면 제주도에는 매달 평균 1000여명이 넘게 유입되고 있는 점을 중요한 성장 배경으로 봤다. 이렇게 유입되는 사람들을 필자는 ‘자발적 유배인’이라 부른다. 그들은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를 비롯한 조선시대 300여명의 유배인들과는 전혀 다른 헬조선 시대의 유배인들이다. 그들은 지옥으로 변하고 있는 육지부의 도시를 자발적으로 버리고 제주도로 들어가 삶의 시계를 좀 늦추고 사람답게 살기를 꿈꾸는 사람들이다. 조선시대의 경우 “추사는 불행했지만 제주는 행복했다”면 이제 그들은 “그들도 행복하고 제주도 행복”하기를 바라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정작 최근의 현실은 땅값이 뛰고 살 집이 없어지는 등 제주마저 급격히 ‘헬조선’이 되고 있다. 그래서 혹시나 “그들도 불행하고 제주도 불행”해지는 것은 아닌지 걱정되는 것이 사실이다. 이러다간 조만간 그들은 돌아설 곳이 없는 유배인이 될지도 모른다.
  • [서동철 기자의 문화유산 이야기] 추사와 예산 화암사

    [서동철 기자의 문화유산 이야기] 추사와 예산 화암사

    추사 김정희(1786~1856)를 만나러 충남 예산에 가는 사람들은 일단 추사 고택을 목적지로 삼게 마련이다. 추사를 비롯한 일가의 무덤이 주변에 몰려 있고 추사기념관도 자리잡고 있다. 주차장은 널찍한 것을 넘어 광활한 수준이니 예술가의 옛집을 이만큼 가꾸어 놓은 사례가 또 있을까 싶다. 그런데 고택 솟을대문으로 들어서면 바로 나타나는 사랑채에서 정작 추사를 느끼기는 쉽지 않다. 줄줄이 걸려 있는 추사체의 기둥글(柱聯)은 오히려 번다하다. ●별사전 받은 증조부 화암사 중건… 집안 원찰 삼아 추사의 체취는 오히려 화암사(華巖寺)에서 짙다. 화암사는 고택 뒷산인 오석사(烏石山) 서남쪽 자락이다. 고택과 화암사는 산길로 이어지지만 자동차를 타고 돌아가면 같은 산자락인지 알아차리기가 쉽지 않다. 오석산은 97m에 불과하니 산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하지만 주변이 야트막한 구릉지대이다 보니 조금만 올라도 눈이 시원해진다. 추사가 소봉래(小蓬萊)라고 써서 뒷산 바위에 새겨 놓은 것도 과장이 아니다. 봉래란 금강산의 다른 이름이다. ●절집 정면 요사채가 가로막아 사대부 가옥 분위기 추사의 증조할아버지 김한신(1720~1758)은 영조의 둘째 딸이자 사도세자의 누이동생인 화순옹주와 혼인했다. 두 사람은 왕실로부터 추사고택 일대 토지를 별사전으로 받았다. 그 땅에 화암사도 포함되어 있었다고 한다. 월성위(月城尉)에 책봉된 김한신은 화암사를 중건해 집안의 원찰(願札)로 삼는다. 그러니 화암사는 한마디로 경주 김씨의 집안 절이었다. 그래선지 절집 배치도 다른 사찰과 조금 다르다. 정면은 안채와 사랑채의 기능이 합쳐진 듯한 요사채가 가로 막고 있다. 사대부 가옥의 분위기를 풍긴다. 오른쪽에 붙인 누각에는 추수루(秋水樓)라는 추사 필적의 현판이 걸렸다. 추사를 포함해 이 집안의 바깥주인들이 공부도 하고 손님도 맞는 기능을 하던 공간이었을 것이다. 중간에는 원통보전(圓通寶殿) 편액이 달렸다. 관음보살을 모셨다는 뜻인데, 그렇다고 비구니 절 요사채 문을 무작정 열어 볼 수는 없다. ●유배 때 절 다시 중건… 무량수각 등 현판 전래 요사채 왼쪽으로 난 대문으로 들어가면 정면에 석축 위에 지은 큰법당이 보인다. 대웅전(大雄殿)이라는 편액을 달고 있는 것은 조금 의아하다. 추사가 제주 대정에 유배되어 있던 1846년 화암사는 다시 한번 중건됐다. 이때 추사가 써서 보낸 ‘오석산 화암사 상량문’과 무량수각(無量壽閣), 그리고 시경루(詩境樓) 현판이 지금도 남아 있기 때문이다. 지금 화암사에 무량수각과 시경루는 간데없고 대웅전과 추수루만 남아 있다. 큰법당의 편액인데도 무량수전이 아니라 무량수각이라고 쓴 것을 보면 온전한 절의 모습을 갖추는 것은 의도적으로 피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유교 국가의 사대부 집안이었으니 다른 사람들의 눈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어쨌든 오늘날의 화암사는 수덕사 말사의 지위를 갖고 있는 만큼 두 현판은 수덕사 근역성보박물관에 가면 만날 수 있다. ●천축고선생댁 표현 화암사를 정통 사찰로 안 본 듯 화암사에서 추사의 흔적이 가장 진한 곳은 대웅전 뒷마당이다. 뒤편으로 돌아가면 병풍처럼 둘러쳐진 바위 이쪽저쪽에 ‘시경’(詩境), ‘천축고선생댁’(天竺古先生宅)이라고 각각 새겨 놓았다. ‘천축고선생댁’은 ‘천축 옛 선생의 집’이라는 뜻이다. ‘인도의 옛 선생’이란 곧 석가모니를 가리킨다. 재치가 넘치지만 본격적인 절집이라고 생각했다면 뒷마당에 이런 글을 새기지는 않았을 듯싶다. 불교를 깊이 이해하고 있지만 신앙은 아니라고 구태여 변명하는 듯한 느낌도 든다. 10년 뒤에는 와병 중에도 서울 봉은사에 판전(板殿) 현판을 쓰는 추사다. 하지만 환갑 언저리까지만 해도 불교를 바라보는 시각이 한 걸음쯤은 떨어져 있었던 것 같다. ‘시경’을 새긴 배경에도 설명이 필요하다. 추사는 아버지 김노경을 따라 청나라에 갔다가 78세의 대학자 옹방강을 만난다. 그에게서 받은 것이 남송 시인 육방옹의 ‘시경’의 탁본이었다. ‘시경’ 각자(刻字)나 ‘시경루’ 편액은 모두 옹방강에 대한 존경의 표시라고도 할 수 있다. 병풍 바위를 바라보면서 글씨에 얽힌 고사(故事)를 되새기고 있으면 마치 추사가 옆에서 말을 걸고 있는 것 같다. 추사고택이 그 집안의 기념물이라면 화암사는 추사 개인의 기념물이라는 느낌이다. 추사는 화암사를 ‘정신적 놀이터’로 삼았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글 사진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농식품부 68년 만에 첫 여성 국장

    농식품부 68년 만에 첫 여성 국장

    농림축산식품부가 1948년 11월 정부 조직으로 신설된 이후 68년 만에 처음으로 여성 고위 공무원(국장급)이 탄생했다. 여성 공무원이 늘어나면서 ‘유리천장’도 서서히 무너지고 있다. 농식품부는 29일 김정희(46) 농촌정책과장을 국장급 고위 공무원에 임명했다고 밝혔다. 다만 승진과 동시에 국방대학 교육으로 파견했다. 김 신임 국장은 행정고시 38회로 농식품부의 요직인 총무과장과 농촌산업과장, 지역개발과장 등을 거쳤다. 김 신임 국장은 “농정 발전을 위해 더욱 봉사하고 여성 공무원에게 꿈과 희망이 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세종 김경두 기자 golders@seoul.co.kr
  • [인사] 공정거래위원회 , 국토교통부, 농림축산식품부, 식품의약품안전처, 대구시, 산림청, 기상청

    ■공정거래위원회 ◇ 국장급 전보 ▲ 시장구조개선정책관 배영수 ▲ 카르텔조사국장 김성환 ▲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 박재규 ▲ 국방대학교 신영호 ■국토교통부 ◇ 실장급 전보 ▲ 주택도시실장 박선호 ◇ 국장급 전보 ▲ 건설정책국장 김재정 ▲ 주택정책관 이문기 ▲ 물류정책관 주현종 ▲ 항공정책관 권용복 ■농림축산식품부 ◇ 국장급 승진 ▲ 국방대학교 파견 김정희 ◇ 국장급 전보 ▲ 농림축산검역본부 인천공항지역본부장 권재한 ◇ 3급 승진 ▲ 운영지원과장 이영식 ◇ 과장급 전보 ▲ 농촌정책과장 강형석 ▲ 농협경제지원팀장 김민욱 ▲ 축산경영과장 김상경 ▲ 유통정책과장 김종구■식품의약품안전처 ◇ 승진 ▲ 일반직고위공무원 이동희 ◇ 과장급 전보 ▲ 처장 비서관 이호동 ▲ 한국의약품안전관리원 파견 조건창 ▲ 의약품안전국 의약품정책과장 김상봉 ▲ 의료기기안전국 의료기기안전평가과장 황인진 ▲ 경인지방청 운영지원과장 한운섭 ▲ 대전지방청 식품안전관리과장 김동욱 ■산림청 [승진] ▲ 국방대학교 교육파견 이종건 [전보] ▲ 남부지방산림청장 김현수 ◇ 과장급 ▲ 운영지원과장 김형완 ▲ 창조행정담당관 안병기 ▲ 국유림관리과장 염종호■기상청 ◇ 고위공무원 전보 ▲ 강원지방기상청장 육명렬 ◇ 3급 과장급 전보 ▲ 국가기후데이터센터장 이재원 ◇ 4급 과장급 전보 ▲ 총괄예보관 장재동 ▲ 지진화산감시과장 유용규 ▲ 전주기상지청 관측예보과장 박종찬■대전과학기술대 ◇ 부속기관장 ▲ 창대체육관장 박노혁 ◇ 계열부장 ▲ 피부보건계열부장 주광석 ◇ 학과장 ▲ 컴퓨터공학&그래픽과 학과장 김진용 ▲ 애완동물과 학과장 강재선 ▲ 패션·슈즈디자인과 학과장 김영란 ▲ 사회복지과 학과장 오영훈 ◇ 센터장 ▲ 교수학습지원센터장 조인경 ▲ DST교육인증센터장 박정훈 ▲ 자유학기제지원센터장 나인선■울산항만공사 ◇ 1급 승진 ▲ 항만운영안전팀장 이형락 ▲ 항만건설팀장 정석숭 ▲ 재무회계팀장 이길연 ◇ 2급 승진 ▲ 전략기획팀 이동만 ▲ 물류기획팀 신광철 ◇ 3급 승진 ▲ 전략기획팀 이지명 ▲ 경영지원팀 강덕호 ▲ 재무회계팀 여종민 ▲ 물류기획팀 문휴진 ▲ 항만운영안전팀 조성덕 ▲ 〃 이현교 ◇ 2급 전보 ▲ 물류기획팀장 김희경 ◇ 3급 전보 ▲ 혁신성과팀장 이은성■대구시 ◇ 3급 전보 ▲ 정책기획관 홍성주 ◇ 4급 직무대리 ▲ 녹색환경국 물관리과장 최영환 ◇ 5급 승진 ▲ 상수도사업본부 최준식 ▲ 보건복지국 박인주 이원기 정인선 홍윤미 ▲ 동구 서정환 ▲ 국제협력관실 양기석 ▲ 여성가족정책관실 최진섭 ▲ 창조경제본부 신형호 ▲ 미래산업추진본부 김선태 ▲ 시민행복교육국 김용범 ▲ 자치행정국 배재학 ▲ 문화체육관광국 정동호 박동만 진수일 박병철 안종수 ▲ 건설교통국 심영근 김영욱 ▲ 의회사무처 임휘철 ▲도시재창조국 신현종 윤진곤 ◇ 5급 직무대리 ▲ 기획조정실 최성호 김건우 조성호 ▲ 창조경제본부 황윤근 김화영 ▲ 시민행복교육국 심홍석 ▲자치행정국 한경호 ▲ 상수도사업본부 김점란 ▲ 보건환경연구원 윤성웅 ▲ 재난안전실 방규열 ▲ 건설교통국 남재성 ◇ 5급 전보 ▲ 대변인실 정병환 ▲ 창조경제본부 이중채 빈은선 이용우 정종섭 ▲ 미래산업추진본부 홍병탁 남인모 최호동 ▲ 녹색환경국 윤재선 박종복 장정걸 ▲ 시민행복교육국 김외숙 ▲보건복지국 최병철 ▲ 문화체육관광국 황용하 신현묵 ▲ 건설교통국 석경원 허준석 한재호 ▲ 공무원교육원 박병묵 ▲ 도시철도건설본부 양우원 최흥곤 김동진 ▲ 서울본부 정희대 ▲ 문화예술회관 이원장 ▲ 체육시설관리사무소 심경택 ▲ 종합복지회관 채종현 ▲ 앞산공원관리사무소 김장길 ▲ 두류공원관리사무소 정진우 ▲ 도시재창조국 황선필 백승태 ▲ 시설안전관리사업소 오덕영 ◇ 5급 전입 ▲ 문화체육관광국 신종식 ▲ 건설교통국 현병철 ◇ 5급 전출 ▲ 남구 이병철 장병용 ▲ 중구 김성수 ▲ 달성군 전영욱 ◇ 5급 파견복귀 ▲ 건설교통국 정현민 ▲ 공무원교육원 배동영 ▲ 상수도사업본부 원승찬 ◇ 5급 파견 ▲ 대구경북연구원 이영락 ▲ 대구테크노파크 이상근 ▲ 대구경북경제자유구역청 이영헌 ▲ 행정자치부 이은규 ▲ 대구문화재단 김병조 ▲ 대구경북첨단의료산업진흥재단 박찬두 이성희 ▲ 지능형자동차부품진흥원 전창환 ▲ 지방행정연수원 중견리더과정 이경중 이종철 장봉기 황성주 이준탁 윤규열 ◇ 5급 파견자 부서배치 ▲ 기획조정실 정동화
  • 우리들병원, 청도에 중국 진출 거점 확보

    우리들병원, 청도에 중국 진출 거점 확보

     척추 전문 우리들병원과 (주)우리들홀딩스는 중국 청도의 하이츠병원(青島市海慈医院)과 의료기술 협력 및 인적 교류를 위한 MOU를 체결(사진)했다고 27일 밝혔다. 청도 하이츠병원은 중국에서도 손꼽히는 대형 종합병원이다.  협약식에는 우리들병원 이상호 회장과 (주)우리들홀딩스 김정희 대표, 청도시 위생국 양시씨양 국장과 청도 하이츠병원 리우홍 병원장, 정부 정책펀드 운용사인 (유)뉴레이크 얼라이언스 매니지먼트 신용규 대표 등 양국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이번 협약은 우리들병원이 자체적으로 개발해 임상에 적용하고 있는 최소침습 척추질환 치료기술에 대해 중국 측에서 관심을 갖고 이를 이용한 환자 치료를 요청해 온데 따른 것으로, 정부의 의료기관 해외진출에 따른 정책 자금 지원으로 협약 체결이 이뤄지게 됐다고 병원 측은 설명했다.  이번 협약에 따라 우리들병원과 (주)우리들홀딩스는 최소침습 수술 전문의를 중국 현지에 파견하는 것은 물론 우리들병원이 중국 의료진을 대상으로 하는 연수프로그램을 제공하게 된다. 또 간호 분야 및 행정 등 병원 운영에 따른 전반적인 시스템 제공 등을 통해 청도 하이츠병원에 체계적인 의료교육과 함께 병원 경영의 노하우를 전수하게 된다. 청도 하이츠병원은 올해 안에 병원 내에 ‘중한 최소침습 척추센터’를 설립해 공동으로 진료활동을 하기로 했으며, 일련의 협약사항 준수를 위해 청도시 위생국이 지원하기로 했다. 또 우리들병원이 향후 중국 청도 및 산동성 일원의 지역에 진출할 경우 하이츠병원이 지원과 협력을 하게 된다. 청도시 하이츠병원은 1400 병상에 1940명의 의료진과 직원들이 근무하는 대형 종합병원으로, 중국 의료를 대표하는 하이츠의료그룹 소속이다. 이상호 회장은 “우리들병원의 최소침습 척추 치료기술을 전파해 중국 국민들도 통증 없이 서고, 걷고, 뛰면서 고통없는 생활을 하도록 하겠다”면서 “최근 들어 중국에서도 최소침습 치료술에 대한 관심과 기대가 높은 만큼 현지 의료기관과의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국내에서와 똑같은 수준의 치료술을 제공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상회 회장은 이어 “현대 의료는 질병의 치료에 멈추기보다 이를 적극적으로 산업화할 수 있어야 한다”면서 “이번 MOU를 시작으로 우리들병원이 중국 의료시장은 물론 글로벌 헬스케어 산업의 중심에 설 수 있도록 다양한 방안을 현실화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심재억 의학전문기자 jeshim@seoul.co.kr
  • [新국토기행] 전남 진도군

    [新국토기행] 전남 진도군

    보배 진(珍), 섬 도(道)가 지명인 전남 진도는 역사와 문화, 신비가 깃든 보배 섬이다. 진도는 국내 최초의 사장교로 야경이 특히 아름다운 진도대교를 지나야 들어갈 수 있다. 다리의 아래가 임진왜란 당시 충무공 이순신의 전적지인 명량대첩지 울돌목이다. 해협의 폭은 좁고 절벽이 가팔라 물살이 거세고 용솟음치는 모습이 장관을 이룬다. 이순신 장군이 13척의 배로 133척의 왜선을 무찌른 명량대첩지와 고려 무인정권이 원나라에 대항해 용장성·남도진성 등을 쌓으면서 항쟁했던 삼별초 성지가 있는 호국의 지방이다. 천연기념물 제53호로 지정된 ‘진도개’와 한국판 모세의 기적으로 불린 신비의 바닷길이 열린 관광지로 유명하다. 조선시대 남화의 대가였던 소치 허유가 말년에 거처하며 여생을 보냈던 화실이 있는 등 그림과 노래·민속이 살아 숨쉬는 지역이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판소리 한 대목을 술술 해내는 곳이어서 ‘소리의 고장’으로 불린다. 진도에는 씻김굿 등 9가지 무형 문화재를 풀어내는 ‘예능 보유자’가 18명이나 된다. 금·토·일요일은 진도아리랑, 강강술래, 남도민요 등 공연을 체험할 수 있고, 우리 전통의 냄새를 한껏 즐길 수 있는 예술 공연 마당이 열리는 민속이 살아 숨쉬는 지역이다. ■역사와 낭만이 있는 볼거리 ●신비의 바닷길… 현대판 모세의 기적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진도 신비의 바닷길은 매년 3~4월 초 고군면 회동리와 의신면 모도리 사이 약 2.8㎞가 바다가 갈라지는 현상이 나타나 현대판 모세의 기적으로 불린다. 조수 간만의 차이로 수심이 낮아질 때 바닷길이 드러나는 현상이지만 40여m의 폭으로 똑같은 너비의 길이 바닷속에 만들어진다는 데 신비로움이 있다. 바닷길이 완전히 드러나는 시간은 1시간 정도다. 바닷길이 열리는 입구에는 뽕 할머니 사당과 동상이 있다. 뽕 할머니의 기도로 바닷길이 열렸다는 전설이 전해져 오고 있다. 매년 이 현상을 보고자 국내외 관광객 80여만명이 몰려온다. 전 세계적으로 일시적인 현상을 보고자 가장 많은 인파가 찾아드는 곳으로 알려졌다. 이곳 진도 신비의 바닷길은 1975년 주한 프랑스 대사 피에르 랑디가 진도로 관광을 왔다가 이 현상을 목격하고 프랑스 신문에 소개하면서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됐다.1996년에는 일본의 인기가수 덴도 요시미가 진도 신비의 바닷길을 주제로 한 ‘진도이야기’(珍島物語) 노래를 불러 히트를 치면서 일본 관광객이 급증하고 있다. 진도군에서는 축제 기간 관광객들을 위해 민속예술인 강강술래, 씻김굿, 들노래, 다시래기 등 국가 지정 중요무형문화재와 상엿소리, 북놀이 등 전남도 지정 무형문화재를 선보이고 있다. 다양한 이벤트로 볼거리를 제공해 해마다 관광객들이 늘어나는 추세다. 올해 축제는 오는 4월 7일부터 10일까지 4일간 열린다. ●운림산방… 추사의 제자, 남화 대가 허유의 화실 국가지정 명승지 제80호로 조선조 남화의 대가인 허유가 말년에 거처하던 화실이다. 1856년 시·서·화의 삼절(三絶)이라 불리는 소치 허유가 작업실로 지은 운림산방은 집 앞쪽의 운치 있는 연못과 뒤쪽의 부드러운 산세를 자랑하는 첨찰산이 있어 한 폭의 풍경화 같다. 소치는 스승인 추사 김정희가 호를 붙여줬다. 작업실이었던 산방 뒤에는 허유의 사당인 운림사가 있다. 운림사 뒤쪽의 숲은 천연기념물 107호인 상록수림이 둘러 있어 사계절 아름다운 풍광을 보여 준다. 이곳에서 허유는 미산 허형을 낳아 그림을 그리게 했으며, 허형과 의리로 맺은 동생인 허백련이 허형에게 처음으로 그림을 배운 곳이기도 하다. 이렇듯 유서 깊은 운림산방은 소치(小痴)-미산(米山)-남농(南農)-임전(林田) 등 5대에 걸쳐 전통 남종화를 이어준 본거지이기도 하다. 최근 남도의 화가들이 그린 문인화 등을 전시하고 경매하는 토요경매가 열려 주목받고 있다. 운림산방과 나란히 있는 진도역사관에서 열리는 토요경매는 매주 토요일 오전 11시에 흥겨운 남도 국악소리와 함께 시작되는데 보통 30여점의 작품이 선보인다. 연못과 정원이 어우러져 조화를 이루며 초가집과 소치기념관, 진도역사관 등이 있다. 영화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 ●진도개테마파크… 위풍당당 명견과의 대화 진도의 트레이드마크인 진도개를 훈련해 공연을 하는 곳이다. 진도개 수영장, 공연장, 사육장, 운동장, 썰매장, 홍보관 등 진도개에 대한 모든 것을 둘러볼 수 있는 여행지다. 공연은 한 마리가 15분 동안 사육사와 함께 여러 가지 묘기를 선보인다.늑대와 개의 차이부터 세계의 다양한 개 품종들과 세계의 명견들을 볼 수 있다. 진도개, 삽살개, 풍산개 등 우리나라의 유명한 개들의 생김새와 실물 모형들을 눈으로 비교하면서 확인할 수 있다. 대전에서 진도까지 걸어서 주인을 찾아온 진도개에 얽힌 유명한 일화를 다룬 영상도 감상할 수 있다. 개들의 아이큐 테스트도 해보고 진도개의 충성심에 얽힌 일화들도 살펴보면서 진도개가 얼마나 충성심이 강하고 똑똑한 개인지 알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삼별초 항쟁지… 13㎞ 둘레 ‘마지막 요새’ 용장성, 남도석성은 삼별초 항쟁의 성지로 고려시대 몽골에 대항한 항전과 저항의 흔적지다. 용장성(사적 제126호)은 고려 원종 11년(1270년) 고려가 몽골과 굴욕적인 강화를 맺고 개경 환도를 강행하자 이에 불복해 대몽 항쟁의 결의를 다짐한 삼별초군이 남하해 근거지로 삼았던 호국의 성지다. 배중손이 지휘하는 삼별초가 진도에 머문 10개월 동안 용장성을 구축하고, 이곳을 항전의 근거지로 삼았다. 산성의 둘레는 13㎞에 이른다. 현재 삼별초의 흔적인 용장성은 대부분 소실되고 일부만 남아 있다. 마치 다랑논처럼 성벽이 계단식으로 축조돼 있다. 이곳에는 최근에 중건된 용장사가 있다. 고려시대의 석불좌상이 경내에 있다. 남도진성(사적 제127호)은 삼별초가 진도에서 최후의 저항을 했던 곳이다. 성의 길이는 610m, 높이 5.1m로 거의 원형 그대로 보존돼 있다. 현재 관아와 내아, 객사를 복원했다. 앞으로 선소와 활터를 복원할 계획이다. 성의 외곽을 건너다니기 위해 축조한 쌍운교와 단운교는 편마암 자연석을 사용한 것으로 전국적으로 보기 드문 형태로 알려져 있다. 삼별초가 여몽 연합군과의 협상 장소로 이용한 벽파진도 있다. 명량대첩 때 충무공 이순신의 군대가 머물렀다. 진도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色다른 먹을거리 [白] 통발로 살포시 올려 흰살이 꽉찬 진도 꽃게 진도 서망항에는 7~8월 금어기를 제외하면 늘 꽃게가 난다. 연중 적조가 발생하지 않는 청정 해역인 데다 플랑크톤을 비롯한 먹이가 풍부하고, 갯바위 모래층이 형성돼 꽃게가 서식하기 좋은 환경이기 때문이다. 진도군에서 2004년부터 바닷모래 채취를 금지하면서 꽃게 서식환경이 자연스럽게 조성됐다. 진도에서는 통발로 꽃게를 잡는다. 그물로 잡을 때보다 스트레스를 덜 받아 게 맛이 훨씬 좋다. 전국 꽃게 생산량의 25%를 차지하고 있다. 서망항에서는 해마다 진도꽃게축제가 열린다. 알이 통통하게 올라 미식가들의 식욕을 한껏 자극하는 진도 꽃게는 꽃게찜과 탕, 간장 게장 등으로 전국적으로 인기가 높다. 중국 백화점에서 소금 게장 및 고가의 수산물 선물용으로 판매되고 있으며, 중국에서 최고 대우를 받고 있다. 중국에서 진도 꽃게를 선호하는 이유는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남방 꽃게(상하이 인근 해역에서 잡힘)와 맛, 색깔, 모양, 냄새 등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紅] 지초뿌리로 담근 붉고 맑은 술 홍주 농림축산식품부에서 주관한 ‘2015년 대한민국 우리술 품평회’에서 리큐르 부문 장려상을 받았다. 진도홍주는 2010년 대한민국 우리술 품평회 리큐르 부문 우수상을 시작으로 2012년 리큐르 부문 장려상, 2013년과 2014년 일반증류주 부문 장려상을 받는 등 국내 전통주 품평회에서 수차례 입상했다. 지리적 표시제가 적용돼 진도 지역에서만 생산된다. 다른 소주와 달리 증류된 소주를 지초뿌리를 넣은 삼베주머니에 통과시키면서 선홍색 홍주가 만들어진다. 흔히 색이 붉어 홍주라고 하고, 지초를 통과한다 하여 지초주라고도 부른다. 산이나 들에서 잘 자라는 지초(일명 지치)의 뿌리로 담근 술이다. 뿌리는 굵고 자색을 띠는데, 이 지초 뿌리를 말려 사용한다. 증류된 술이 지초뿌리를 통과해 담홍색의 맑은 빛을 띤 홍주가 나온다. 40도 이상으로 도수가 높은 술임에도 목 넘김이 자극적이지 않고, 깔끔한 것이 특징이다. 뿌리향이 강하게 느껴지고, 숙취가 없다. 빛깔이 워낙 곱기 때문에 칵테일로 만들어 마시기도 한다. [黃] 땅속 황금빛 영양 덩어리 울금 땅속에 묻힌 황금빛 영양 덩어리로 불린다. 울금의 황금빛을 내는 색소인 ‘커큐민’은 숙취 해소에 탁월하다고 알려진 성분이다. 효능은 물론 독특한 맛과 향이 울금의 가치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 울금은 몸에 피가 제대로 돌지 못해 생기는 증상인 어혈을 풀어주는 특효약으로, 동의보감과 본초강목에도 언급된 귀한 약재다. 농약을 사용하지 않고 친환경으로 재배한다. 국내 울금의 70%가 진도에서 생산되고 있다. 지리적으로 한류와 난류가 교차하는 해양성 기후에 일조량이 풍부해 울금 성장에 가장 적합한 환경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진도 울금은 2013년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간 기능 개선 식품으로 인정받고, 2014년에는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의 지리적 표시제에도 등록됐다. 울금이 인기를 끌면서 수입산 울금도 많이 들어오고 있다. 국내산과 수입산은 ‘흙’과 ‘크기’로 구별된다. 울금의 크기는 국내산이 좀더 크다. 국내에서 생산하는 생울금은 흙이 묻어 있지만 수입산은 흙 없이 깨끗한 상태로 들어온다. [黑] 청와대 명절선물로 납품한 ‘진도 흑미’ 진도 흑미는 지난해 청와대 추석 선물로 선정될 정도로 유명하다. 2009년 이명박 전 대통령 재임 당시 15t을 납품하는 등 두 차례나 대통령 선물로 선정됐다. 지리적 표시제 제84호로 등록돼 있다. 강력한 항산화 작용으로 항암과 피부 노화방지에 효과가 있는 안토시아닌이 다른 지역 검정쌀보다 월등히 높게 함유된 것으로 알려졌다. 또 해양성 기후 등 지역적 특색 덕분에 단백질, 아미노산 및 비타민 B1, B2, B3, 철, 칼슘, 아연, 망간 등의 미네랄 원소들이 일반 쌀의 5배 이상 함유돼 있다. 진도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