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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정일 총사령관 체제(사설)

    북한의 김정일이 인민군총사령관에 추대된 것은 놀랄일은 아니지만 몇가지점에서 주목할만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지난 80년 제6차 로동당대회에서 김일성주석의 후계자로 지목된 이후 권력세습의 훈련을 받아온 그가 지금은 당·정 전반에 걸쳐 실질적인 권한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에 북한 권력의 마지막 핵심고리인 군부도 장악할것이라는 점은 예상된 것이었다.그것이 좀 빨라졌다는 느낌은 있지만 당연한 수순의 하나로 생각된다. 그러나 국가주석이 「전반적 무력의 최고사령관」임을 규정하고 있는 북한헌법(제93조)을 무시한채 당중앙위 전원회의가 김정일을 군최고사령관으로 추대한 것이 외형적인 권력조직상 가능한것인가 하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주석의 자리를 물려주지 않은채 군최고사령관직만 넘겨준것은 논리상으로는 이해하기 어렵지만 실질적으로는 김일성주석의 교시나 로동당규약이 헌법보다 우위에 있는 북한 권력체제의 속성상 그런 편법도 가능하다고 생각된다. 따라서 이번의 조치는 김정일 권력승계의 대외적인 공시가 임박했음을 뜻하는것으로 볼 수 있다.92년은 김일성주석의 80회생일과 김정일의 50회생일이 겹쳐있어 완벽한 권력승계의 절차인 제7차 로동당대회가 93년에 이루어질것으로 예측되고 있는데 이번 조치로 당대회가 예측보다 앞당겨질 수 있다는 조짐을 보여주고 있다.이제 북한은 김일성으로 상징되던 「신화적 수령」에 의한 통치체제는 일단 막을 내리고 현실적 지도자로 권력주체가 바뀌어가는 문턱에 섰다고 볼수 있다.김정일의 군총사령관추대가 보여주는 또 하나의 주목거리는 그것이 92년을 불과 며칠앞둔 시점에서 또 남북사이에 기본합의서가 채택되고 국제적인 핵사찰의 압력이 가중되고 있는때에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우리는 북한이 이를 계기로 모종의 긍정적인 변화를 시도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기대를 갖고 있다.김일성주석은 지난 24일의 당중앙위 전원회의에서 남북고위급회담과 관련,「중요한 결론」을 내렸다고 하는데 이 결론이 이를 시사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김일성주석은 남북관계개선과 대외정책의 전환에 따른 내부적인 갈등의 소지를 해소하기 위해권력승계를 마무리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되며 김정일은 이를 계기로 대남정책및 대외정책에서 보다 전향적인 방향을 모색할 것이란 것이 우리의 판단이다. 핵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26일의 판문점실무접촉에서 북한은 핵안전협정서명과 핵재처리 시설의 포기를 수용하는등 전향적인 자세를 보여주어 앞으로의 접촉이 순탄할 것으로 예상된다.김일성주석은 92년 신년사를 통해 핵문제를 매듭지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핵문제가 타결되지 않는한 남북의 기본합의서는 발효될 수 없으며 북한의 국제적 신뢰도는 밑바닥으로 떨어질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김일성부자도 이점을 잘 알고 있을 것으로 믿는다.그렇다면 권력승계를 마무리짓고 있는 이 시점에서 남북관계개선과 대외정책의 전환도 확고하게 마무리지어야 할것이다.우리는 김정일체제가 혼란에 빠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그런 의미에서도 「우리식대로 살자」는 폐쇄의 틀에서 벗어나 책임있는 국제성원으로서의 역할을 다해주기 바란다.
  • “지금은 「대권」 보다 경제난극복 힘쓸때”/노 대통령 기자간담내용

    ◎민주계 「연대서명」 관심가질 가치없어/정주영씨 신당추진 이해할 수 없는 일/능력있는 사람 친인척이라고 배제 안해 노태우대통령은 26일 낮 청와대에서 출입기자들과 오찬을 겸한 간담회에서 민자당의 차기 대통령후보결정문제,14대 총선과 연관지은 내년도 정국전망,북한의 핵개발저지를 포함한 남북한관계 등에 대한 구상과 의견을 밝혔다. 일문일답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올 한해를 어떻게 회고하시는지요. ▲참 바쁜 해였습니다.금년초에 나는 여러분에게 이제 북한도 변할 것이라고 얘기했었습니다.이런 입장에서 보면 우리가 그토록 소망했던대로 남북한이 유엔에 동시에 가입했고 비핵화선언에 이어 남북한간에 합의서가 채택됐습니다.그리고 핵부재선언이 뒤따랐습니다.이같은 일들이 우리의 자주역량에 의해 주체적 의지로 이룩해 냈다는데 역사적 뜻이 있습니다. ­내년은 사실상 임기 마지막 해가 됩니다.복잡할 것으로 예상되는 국내외 정세와 연관지어 내년을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금년 못지 않게 격동의 해가 될 것입니다.경제의 블록화현상 등 이념대립보다는 경제적 이해관계를 주조로 해 국제적 신질서가 형성될 것입니다. 국내적으로는 물가를 다스리는 일이 첫째 과제입니다.이를 위해서는 우리 상품의 국제적 경쟁력이 회복되는 징후가 연초부터 나타나야 할 것이고 이를 위해 진력하겠습니다. 또 대통령선거때부터 공약한 사항을 성실하게 마무리짓겠습니다.오늘 열린 국정평가회의에서 공약사항의 95% 정도가 완료됐거나 계획대로 추진하고 있다는 보고를 받고 보람을 느꼈습니다 ­민자당의 민주계가 내년 1월중순에 차기대권후보 가시화를 위해 탈당불사·연대서명 등으로 불안이 고조되고 있습니다.어떻게 처리할 생각입니까. ▲지금 국민의 관심이 제일 높은 것은 경제적 어려움의 극복입니다.통치권자를 위시해 경제인·정치인등 각 분야 지도자가 이것을 해결하는데 전력을 다해야 합니다. 내년도 정치일정과 관련,후보가시화다 뭐다 하는 것은 언론의 지나친 민감성 때문입니다.일부 소수 정치인도 이런 관심을 가질 수 있지만 말릴 수는 없습니다.몇몇 신문에서 이런 저런 얘기가보도되지만 관심 가질 비중이나 가치가 없습니다. ­지난 연초 회견때 대통령 임기만료 1년전에 후계가시화가 될 것이라고 밝혔는데 이것은 총선전에 후계구도를 가시화하는게 좋다는 생각이었습니까. ▲이것 저것 따질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가시화라는 것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자연스럽게 부각될 수도 있고 어느 사람이 「내가 출마하겠다」고 할 수도 있고 대통령인 제가 「누구가 좋다」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이것이다」라고 확정짓고 보면 경직되고 상황을 그릇 판단하기 쉽습니다.원칙만은 지켜나간다고 생각해주면 좋겠습니다. 연초에 가서 내년 정치일정이 많으니 당이면 당,여야막론하고 여러의견을 참작해 자연스럽게 결정을 할 것입니다. 이시점에서는 「이렇게 해야한다」 혹은 언제 해야한다라고 국민에게 밝힐 결정사항이 없습니다. ­오늘 아침 신문을 보면 민자당 민주계에서 국정쇄신과 친인척배제 요구를 들고 나오면서 차기후보문제에 접근하는 것으로 보도되고 있습니다. ▲신문이 잘못 쓴 것 같습니다.이런 저런 방법을 쓰는 것처럼 신문이 보도하고 있으나 그런 방법을 쓰는 사람이 우리 당내에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엉뚱한데서 공작을 하는지 흘리는지는 몰라도….글쎄요.제가 민주계 사람들의 마음을 알기로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그것은 정상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개각의 성격을 두고 특정지역 편중이라는 지적이 있습니다. ▲인사는 목표가 설정되면 그 목표에 맞추어야 합니다.나는 어느지역은 쓰고 어느지역은 배제하는 그런 대통령은 분명히 아닙니다.능력위주로 하는 것이 인사의 원칙이며 지역으로 나누면 안됩니다. ­친인척배제도 대통령의 공약이었습니다.박철언 금진호 김복동씨 등이 14대총선 출마의사를 표명했는데 이것은 친인척배제 공약에 어긋나는 것 아닙니까. ▲국민에게 약속한 사항은 친인척을 무리하게 공직에 임명않겠다는 것이었으며 그 공약은 분명히 지켰습니다.배제할 친인척이 있어야 배제를 할 것 가닙니까. 14대총선에 당선된 사람은 나의 뒤를 있는 정권에 이바지할 사람이지 나와 인연갖고 갈 사람이 아닙니다.내가 대통령이라고 해서 친인척에 대해 그들의 능력과 자질,국가에 이바지할 역할을 죽여버리는 것은 나라에 죄를 짓는 일입니다.그런 원칙은 지켜왔고 앞으로 도 지켜갈 것입니다. ­민자당내에서 총선전에 대권후보를 가시화해야 총선에 이길 수 있다는 시각과 총선후에 해야 유리하다는 시각이 엇갈리고 있습니다.어느것이 국정운영과 총선에 도움이 된다고 보십니까. ▲장단점이 있습니다.내(부)적으로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장단점을 분석해서 장점이 많은 것을 때가 되면 건의해올 것이고 합리적인 건의는 받아들일 생각입니다. ­최근 한 잡지에 6·29선언의 주체가 누구냐는데 대한 전직 청와대비서관의 글이 게재돼 물의를 빚었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별로 얘기할 것이 없습니다.큰 일이 있고난 다음에는 공다툼이 있게 마련입니다.2∼3년전 어느 잡지가 크게 다루었던 사안인만큼 새삼스러운 것도 아닙니다. ­민자당에 당분간 더 조용히 있으라고 특별지시할 생각은 없는지요. ▲당내에서 이런저런 소리가 있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조치를 취해야할 것으로는 전혀 보지 않습니다.총재에게도 다른 생각을 말하는 사람도 있어야 합니다.그래야 민주주의가 됩니다.언론에서 실상은 아무것도 아닌데 분란인 것처럼 보도하는 일이 많습니다. ­북한의 김정일이 군총사령관을 맡은 것과 관련,남북정상회담에 대한 견해를 말씀해 주십시오. ▲정상회담이 빨라질 수 있다고 말한적이 있는데 이는 늦어질 수 있다는 말도 포함되는 것이지요.김의 추대는 예측되어온 사항으로 새삼스레 놀랄 일은 아니며 우리가 취할 대비책은 이미 취하고 있습니다.김이 군총사령관이 됐다해서 주목할 만한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보며 정권을 언제 완전인수할지는 두고볼 일입니다.지금 속단키는 어렵습니다. ­김정일과 정상회담을 하게 되는 일은 없을까요. ▲내가 대통령으로 임기를 가지고 있는 기간 동안에는 북한의 권력이양이 되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정주영현대그룹명예회장의 신당결성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잘 이해가 안갑니다.아마 본인이 연세도 많고 그동안 경험도 많으니 이런저런 생각이 많겠지만 스스로가 국민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인식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이 사임한데 대한 감회는 어떠신지요. ▲착잡한 심정에서 고르바초프대통령과 만난 일들을 생각했습니다.위대한 사상가나 개혁자가 자신의 사상과 개혁의 희생물이 된다는 역사의 아이러니를 느꼈습니다.그러나 세계각국의 지도자들이 반응을 보인대로 그는 세계사의 물줄기를 바꾼 위대한 개혁자로 업적은 희망하는 방향으로 나갈 것이라는데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 김정일에 충성 당부/김 주석,군간부에

    【도쿄 AFP 연합 특약】 북한의 김일성주석은 25일 군간부들에게 군최고사령관직을 승계한 자신의 장남 김정일에게 충성할 것을 당부했다고 북한 중앙통신이 보도했다.
  • 북한 권좌 조기세습의 「신호」/김정일 군최고사령관 등장 의미

    ◎당·정 이어 군부통제권까지 장악/김일성 사후 권력갈등 소지 제거 김정일이 24일 열린 북한노동당6기 19차 전원회의에서 군최고사령관으로 추대됐다는 북한중앙방송의 25일자 보도는 두가지 점에서 주목된다. 그 하나는 김정일이 노동당 전원회의라는 공식절차를 통해 군최고사령관에 추대됐다는 점이다.다시 말해 이번 보도는 이제까지 간간이 흘러나왔던 김정일최고사령관 「호칭설」과 달리 그 절차를 명시함으로써 의심의 여지를 불식시켰다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이는 지난 80년 제6차 노동당대회를 통해 공식적으로 표면화된 김정일권력승계가 최종 단계에 이르고 있음을 나타내는 동시에 김정일이 당정에 이어 북한권력의 마지막 핵심고리인 군부를 완전히 장악했음을 명시적으로 천명한 것으로 김의 공식적인 권력승계가 임박한 것이 아니냐는 추측을 낳고 있다. 이와 더불어 당6기 19차전원회의가 지난해 5월이후 1년7개월만에 열렸다는 점이 이번 보도의 또다른 특징이다.당대회와 당대회 사이 북한 노동당이 직면한 중요문제를 토의·결정하는 최고결정기구인 당중앙위전원회의가 「남북합의서」가 채택되고 국제적인 핵사찰압력이 가중되고 있는 시점에 열렸다는 것은 북한이 권력승계의 마무리작업과 대내외정세에 따른 국면전환을 연계해 진행시키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는 남북관계개선과 현실주의에 토대를 둔 대외정책추진 등 북한의 정책전환에 따른 내부적인 결속와해를 최소화하면서 김일성·김정일부자세습을 부동의 사실로서 확인함으로써 자신의 사후에 빚어질지 모르는 내부적인 권력갈등의 소지를 완벽하게 없애겠다는 김일성의 의지를 반영한 것으로도 해석해볼 수 있다. 또한 대일수교추진 등에 있어 적극성을 보인 것으로 알려진 김정일이 북한군부를 대표하게 됐다는 사실은 앞으로 북한이 대남정책 및 대외정책 추진에 있어 보다 전향적인 방향전환을 모색하지 않겠느냐는 기대를 갖게 한다. 그럼에도 북한의 사회주의헌법 93조는 최고인민회의에서 선출된 국가주석,곧 김일성주석이 「전반적 무력의 최?自渶?관」임을 규정하고 있는데 이로 인해 당중앙위 전원회의 결정에도 불구하고 주석직의 승계가 없는 김정일의 최고사령관 추대가 외형적인 권력조직상 가능한 것인가하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때문에 이번 최고사령관 「추대」보도 역시 김정일이 군부에 대해서도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으며,또한 당차원에서의 군통수권을 완전 장악했음을 의미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가 정부조직상의 최고사령관의 지위에 올랐음을 뜻하는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이경우 김정일은 북한방송의 표현과 달리 이제까지 김일성이 맡아온 당중앙위 군사위원회 위원장에 추대됐으며 이 사실이 곧 당우위의 북한권력 특성상 사실상의 최고사령관의 지위승계로 평가된 것으로 해석해 볼 수 있다. 다만 현재까지의 정황으로 판단할 수 있는 것은 김정일이 지난해 5월 정부기관인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에 선출돼 군에 대한 통수권을 내용상 승계한데 이어 이번에 「군최고사령관」에 추대됨으로써 최고 지도자의 지위에 한발 더 다가섰다는 점이다. 동시에 지난해 5월 「당6기 18차전원회의개최→최고인민회의 제9기1차회의소집」의 절차를 거쳐 국방위 제1부위원장에 올랐듯 이번 「당6기19차 전원회의개최」에 이어 내년 2월 김정일의 생일을 전후해 또는 4월 중순쯤 「최고인민회의 제9기3차회의」가 소집돼 김정일에게 보다 명실상부한 지위를 부여하지 않겠느냐는 예측을 낳고 있다.
  • 김정일 군최고사령관 승계/로동당서 추대/북한 권력이양 매듭단계

    【내외】 북한은 24일 김정일을 북한군 최고사령관으로 추대했다고 북한의 중앙방송이 25일 보도했다. 이 방송은 이날 열린 당6기 19차 전원회의에서 당중앙위 정치국 상무위원 겸 당비서인 김정일이 군최고사령관으로 추대됐다고 두차례에 걸쳐 거듭 밝혔다. 김정일이 북한군 최고사령관에 추대된 것은 지금까지 김일성이 가지고 있던 군통수권을 김정일에게 넘겨준 것으로서 이는 김정일의 권력승계가 거의 마무리 단계에 이르렀음을 보여주고 있다. 지난 73년 9월 당5기 17차 비밀전원회의에서 당비서로 선출,김일성의 후계자로 지목된 김정일은 80년 10월 제6차 당대회에서 당중앙위원·정치국 상무위원·비서국 비서·당군사위원으로 공식 등장,권력전면에 나섰으며 지난해 5월 최고인민회의 9기 1차회의에서 국방위원회(위원장 김일성)제1부위원장으로 선출됐었다. 한편 중앙방송은 김일성이 주재한 이날 회의에서 제5차 남북고위급회담결과 및 평화통일을 촉진하기 위한 과업과 조직문제가 토의됐으며 「중요한 결론」이 내려졌다고 전했다.중앙방송은 또 이 회의가 팀스피리트훈련중지와 남북정치협상회의의 조속한 개회를 요구했다고 덧붙였다. 이와관련,관계당국은 『김정일의 권력승계가 최종 단계에 와있음을 시사하는 중요한 변동임에는 틀림없으나 그가 빠른 시일내에 국가주석직을 승계할지는 분명치 않다』며 『국가주석직 승계보다는 국방위원장 또는 당중앙위 군사위원회위원장,당중앙위 총비서 등 김일성이 겸직하고 있는 직책 가운데 하나를 김정일이 50회 생일을 맞는 92년 2월을 전후해 넘겨줄 가능성이 오히려 높다』고 밝혔다.
  • 소 콤소몰스카야지서 보도/“어릴적 김정일 거칠고 변덕쟁이”

    ◎「빨치산 투쟁영웅」과는 거리 먼 보통아이/김정숙은 「김일성­김성애 불륜」 알고 자살 김일성의 본처 김정숙(김정일의 생모)은 김일성의 당시 비서였던 현재의 처 김성애와의 불륜관계에 대한 충격으로 지난 49년 30세의 젊은 나이에 자살했다고 일본의 지지(시사)통신이 21일 소련의 콤소몰스카야 프라우다지를 인용 보도했다. 콤소몰스카야 프라우다는 김정일은 김일성이 소련군 제88대대장 시절이었던 지난 42년 소련 하바로프스크 교외의 바츠코예 마을에서 태어나 53년 한국전쟁이 끝날 때까지 소련과 중국을 전전했다고 보도,김정일이 김일성과 함께 항일 빨치산투쟁에 참여했다는 「전설」을 전면 부인했다. 김정일은 유년시절 조국에 대해 별로 아는 바가 없었던 평범한 어린이로 「민족의 아들」이니 「빨치산 투쟁의 영웅」이니 하는 북한측 선전과는 거리가 멀다고 이 신문은 보도했다.김정일은 오히려 성질이 온순치 못하고 변덕스러웠으며 어른을 공경할줄 모르는 어린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콤소몰스카야 프라우다지는 48년 김이 생모 김정숙과 함께 평양의 조용한 요양소에서 휴식을 취하는 장면의 사진과 함께 김정일에 관한 기사를 보도했다.보도에 따르면 김정일은 해방후 김일성과 함께 평양으로 돌아왔으며 김정일은 신변의 안전을 위해 소련에 의해 안전지역에서 보호되었다는 것이다. 이 신문은 또 김정숙의 사인과 관련,김정일은 김일성과 김성애사이에서 태어난 김평일(전불가리아대사)및 김성애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 “「핵없는 한반도」실현 첫고리 풀었다”(「핵부재 선언」이후:중)

    ◎그 의미와 비핵화 전망… 전문가 좌담/「NCND정책」 소멸… 「핵주권」 확립 의의/북,핵사찰 수용땐 단계적 군축도 가능/“북의 재래군사력 위협 상존… 안보의식 해이 경계를” ▲유석렬교수=노태우대통령의 12·18 핵불재발표는 북한이 핵무기개발을 포기할 수 있는 최대한의 명분을 주는 동시에 비핵화공동선언을 촉구한다는 의미를 갖는다고 봅니다.북한이 그동안 주한미군의 핵무기철수를 주장해온 만큼 노대통령의 핵불재발표는 북측요구를 그대로 수용하고 핵부재를 북측에 공식통보하는 것입니다. 또한 남한내 핵무기 존재여부에 대해 미국과 함께 시인도 부인도 않는다는 NCND정책을 취해왔으나 핵부재를 발표함에 따라 한반도 핵정책에 주권을 확립했다는 의미도 갖습니다. ○「안보 자신감」 바탕 ▲오관치책임연구원=노대통령이 핵부재를 밝히게된 배경을 보면 핵무기가 없어도 북한의 전쟁가능성을 막을 수 있다는 안보적 자신감을 들수 있습니다.또한 걸프전에서도 보았듯이 재래식무기로도 전쟁을 수행,승리할 수 있다는 확신이 한미양국사이에 서있다는 점을 들수 있습니다.따라서 한반도에 핵이 없다는 사실은 안보상황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입니다. ▲유교수=핵부재를 발표한 것은 「공세적 양보」라고 할 수 있습니다.즉 북측의 요구를 받아들이면서 녕변·군산에 대해 동시 시범사찰을 제의하고 핵무기개발을 포기하면 팀스피리트훈련을 중단 내지 축소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오연구원=중장기적 차원에서 군사 위협은 핵이지만 단기적으로 북한의 재래식군사무기위협이 상존해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됩니다.북한의 군사력은 공세적이며 우리의 방어종심이 얕습니다.따라서 핵부재를 밝혔다해도 안보의식을 느슨히 해서는 곤란하다고 봅니다. ▲유교수=북한은 이제 우리의 핵부재발표로 핵사찰을 거부할 명분도 없어졌고 곧 핵사찰을 선언할 가능성이 높습니다.북한의 핵안전협정 서명은 남북관계를 푸는 핵심문제가 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북한에도 결국 “득” ▲유교수=우리의 핵부재선언으로 북한이 더 이상 핵사찰을 거부할 명분이 없을 뿐만 아니라 핵안전협정에 서명하는 것이 북한에도 궁극적으로 이익이 될 것으로 봅니다. 그러나 유의해야 할 대목은 핵안전협정 서명이 북한의 핵사찰로 이행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봅니다.즉,우선 서명은 해놓고 핵재처리·농축시설을 폐기하지 않고 시간을 끌 수도 있기 때문이지요. 북한은 시간을 끌면서 주한미군 철수,팀스피리트 중지,미국과의 수교 등 다른 양보를 받아내기 위해 마지막 카드라 할 수 있는 핵카드를 당장에 포기하진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수용가능성 반반 ▲오연구원=동감입니다.우리의 핵부재선언이 북한의 핵협정서명으로 이어질지는 아직 미지수입니다.물론 현재로서는 북한이 당면한 경제난과 김정일정권의 정통성 확보를 위하여 받아들일 가능성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확률은 반반으로 보아야 할것 같습니다. ▲유교수=지금 당장 북한에 대한 핵사찰을 강행한다고 하더라도 잘 알려진 영변 핵시설 이외에 박천이나 기타 은폐된 핵처리 시설에 대해서는 사실상 불가능한지도 모릅니다. 사실 북한의 핵문제는 스스로 필요가 없다고 결정하지 않고서는 외국압력에의해 핵개발을 중단토록 하기는 어렵다고 할 수 있습니다. 북한의 최대 역점 현안이 체제를 유지하는 것이고 이를 위한 평화정착의 필요성 때문에 북한도 남북정상회담을 갖는 것이 그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하리라 봅니다. ▲유교수=북한이 핵사찰문제에 대해 소극적 반응을 보일 경우 미·일은 물론 중·소·EC등 관계당사자들의 압력이 가중될 것으로 예상됩니다.물론 국제원자력기구(IAEA)이사회에서 내년 2월 필요한 조치를 강구하게 될 것입니다. 또 걸프전에서 이라크에 대응조치를 취했던 것처럼 유엔 안보리에서도 북한의 핵사찰에 대한 대응조치를 취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물론 핵사찰에 북한측이 순응해 온다면 군축문제도 단계적으로 실현가능하리라 봅니다. ○남북합의의 전제 ▲오연구원=남북합의서와 비핵공동선언은 별개의 문제입니다.그러나 비핵공동선언이 남북합의의 전제조건인 만큼 이것이 충족될때 남북간의 합의서는 실효성을 얻을 것입니다. ▲유교수=지난번 북경에서 열린 일·북한 수교협상에서 북한의 핵사찰에 대한 전제조건이 있었지만 배상문제에 대해서는 상당한 의견접근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일본 스스로도 핵재처리시설 폐기에 난색을 표시하고 있는 만큼 일본측이 북한의 핵사찰에서 한발 더 나아가 핵재처리시설폐기까지 수교의 전제조건으로 삼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이에 비해 미·북한수교는 북한의 핵재처리시설이 폐기돼야만 가능할 것입니다. ○신뢰구축의 호기 ▲오연구원=비핵공동선언 이후의 남북관계는 지금보다는 그 여건이 호전될 전망입니다. 북한으로서는 체제유지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부담이 있긴 하지만 북한사회의 물질적 여건이 충족되지 않는한 내부반발을 무마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대남정책의 수정이 불가피할 것입니다. 따라서 북한이 향후 대남 혁명전략을 근본적으로 수정할 때 남북관계는 새로운 장을 펼칠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북한의 기본적인 생각은 남한측에 「기회의 창」이 열려 있는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적화통일을 이룩한다는 것이었습니다.그러나 이같은 그들의 의도가 뜻대로 되지 않는 상황이 도래한만큼 그들도 군비감축을 통해 경제를 회복하고 대내외적인 신뢰구축을 이룩할 가능성이 그 어느때보다 높아지고 있습니다.
  • “정말 어려운 일 해냈다”… 감격의 악수·환호

    ◎서울 총리회담 마지막날 표정/“우린 서로 궁합이 잘맞는 모양”/정 총리/“이처럼 역사적인 서명은 처음”/연 총리/북 기자,“「장군의 아들」 주인공이 김정일이냐” ▷서명식◁ ○…정원식국무총리와 연형묵북한정무원총리는 13일 상오9시 역사적인 남북합의서 서명을 위해 서울쉐라톤 워커힐호텔 컨벤션센터무궁화홀에 마련된 회담장에 입장. ○기자와 가벼운 조크 김종휘대통령외교안보보좌관,송한호통일원차관등과 함께 비교적 차분한 표정으로 회담장에 들어선 정총리는 북측기자들에게 먼저 『다들 표정이 밝아 보이는군요』라며 인사를 건넨다음 우리측 기자들에게도 『수고많으셨습니다』라고 격려. 연총리는 백남준조평통서기국장·김광진인민무력부,부부장등과 함께 입장했으며 정총리가 『잘주무셨습니까.표정이 밝군요』라고 인사를 건네자 『예,어제 약속한대로 초저녁부터 잘 잤습니다』라고 화답. ▷합의서 채택◁ ○…상오9시 정각에 개최된 본회의에서 북측 백남준대표와 우리측 송한호대표는 전날 실무대표접촉에서 타결한 합의서를 감격한듯 다소 격앙된 목소리로 각각 낭독,보고함으로써 합의내용을 공식화. 쌍방 대표의 보고가 끝난 뒤 사회를 맡은 정총리는 북한측에 『어떻습니까』라고 물었고 연총리가 이에 『이의 없습니다.좋습니다』라고 대답하자 정총리는 『그러면 합의서는 채택되었습니다』라고 상오9시30분쯤 공식 선언. ○6차회담 일정 이견 ○…이어 쌍방은 6차 평양회담 개최 날짜를 놓고 협의를 시작했으나 상호 입장이 엇갈려 30여분동안 밀고 당기는 줄다리기를 계속. 이날 진통은 전날 밤 실무대표접촉에서 우리측이 내년 1월중 6차회담 개회를 제의,북측으로부터 긍정적인 반응을 받았으나 연총리가 2월21일 개최를 주장하는 바람에 비롯. 우리측은 1월말 또는 2월초 개최를 주장했으나 북측은 2월 중순이후를 고집해 결국 북측안에 가까운 2월18일 개최로 결정. ○…정총리는 이어 10시20분쯤 『합의서는 대단히 중요한 사업인만큼 일단 서명합시다』라고 제의했으며 연총리가 『이처럼 역사적인 사인이 어디 있겠느냐』고 말하자 『우리의 궁합이 잘 맞아서 된것 같다』고 대답. ○일제히 일어서 박수 이어 쌍방 총리는 각각 만년필로 2부의 합의서에 역사적인 서명을 한뒤 1부씩 교환하면서 굳게 악수를 하자 쌍방 대표들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로서 환영. 정총리가 『참 어려운 일을 했다』며 『다함께 악수하자』고 제의하자 쌍방 대표는 전원 악수를 교환했으며 역사적인 장면을 다시한번 담기를 희망하는 사진기자들의 요청에 합의서를 멋쩍은 표정으로 한번 더 교환. 이어 쌍방 총리의 폐회발언을 한뒤 상오10시40분쯤 5차회담은 종료. 양총리는 이어 10시50분쯤 나란이 대기실 밖으로 나가 호텔앞에 대기하고 있는 승용차에 같이 탑승,청와대로 직행했는데 정총리는 뒷좌석 오른쪽의 상석을 연총리에게 양보. ○…대표단이 청와대를 예방하는 사이 북측기자단은 쉐라톤 워커힐호텔내 가야금홀에서 「장군의 아들Ⅱ」를 관람했는데 일부 북측기자들은 『장군의 아들이면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동지의 아들인 김정일동지에 관한 영화냐』며 관심을 표명. 북측기자들은 그러나 우리측 관계자들이 『일제하에 만주등에서 항일투쟁을 하던 김좌진장군의 아들 김두한씨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다』라는 설명에 다소 실망하는 눈치. ○「안기부장 독대」 부인 ▷기자회견◁ 우리측 대표단의 이동복대변인은 이날 하오 이번 고위급회담을 마무리 하는 기자회견을 갖고 회담의 성과및 앞으로의 전망등에 대한 우리측 입장을 상세히 설명. 이대변인은 먼저 이날 본 회의가 예정보다 시간이 많이 소요된것과 관련,『6차회담 날짜를 잡는데 남북양측간의 의견이 엇갈렸기 때문』이라고 밝히며 『우리측은 합의서의 발효일을 앞당기기 위해 내년1월안에 6차회담을 갖자고 제의했으나 북측이 1월중에는 내부적으로 바쁘고 2월16일에는 김정일생일이 있고 해서 2월하순경에 열자고 주장해 진통을 겪었다』고 소개. 이대변인은 이어 연형묵 북한총리가 우리측 서동권안기부장을 독대했다는 일부보도에 대해서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고 부인하기도. ○호텔관계자와 작별 ▷호텔→판문점◁ ○…연총리를 비롯,3박4일의 일정을 모두 마친 북측대표단 90명은 이날 하오3시 판문점으로 떠나기에 앞서 이들을배웅하기 위해 호텔로비에 도열한 호텔직원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며 작별 인사. ○“정 총리 고생 많았다” ▷판문점◁ ○…북측대표단의 수행원과 기자들은 우리측지역 평화의 집을 도보로 출발,중감위 회의실을 거쳐 조평통소속 「여성일꾼」들의 환영을 받으며 10여분만인 하오4시52분 입북을 완료. 이들은 『오늘은 매우 기쁜날』이라며 자신들을 배웅나온 우리측 안내원들과 악수하고 더러는 포옹하며 아쉬움속에 작별. 한 판문점 북측요원은 『통일각에는 조평통의 전금철부위원장이 영접나와 있다』며 『연총리는 평양까지 열차편을 이용할 것』이라고 귀띔. ○…대표단이 잠시 휴식을 취하며 환담하는 동안 자신을 조평통간부라고 소개한 북측의 한 수행원은 『회담이 잘되고 합의서가 채택돼 평양에 돌아가는 체면이 서게됐다』고 말문을 연뒤 『연총리의 공이 컸지만 정원식총리선생도 수고가 많았다』고 추켜세워 회담성과에 만족하는 북측 분위기를 반영. ○…북측 대표단은 이날 4시40분쯤 남측지역인 평화의 집에 도착,배웅나온 김종휘대통령외교안보보좌관등 6명의 남측 대표들과 10여분간 환담. 연총리는 떠날 시간이 돼 『각자 가자니 섭섭하구만』이라며 자리에서 일어서자 남측대표 2∼3명이 동시에 『도로 서울로 가시죠』라고 했으며 이에 북측 백남준 대표는 『잡으려면 서울서 남으라고 해야지…』라고 응답.
  • 「남북평화협정」 결실의 두 주역

    ◎남측 정원식총리/소리없이 일하는 「토론명수」 「남북화해와 불가침및 교류협력에 관한 기본합의서」타결을 이번에도 「현장」에서 조율해낸 정원식총리는 지난 5월24일 「강경대군 사건」여파로 물러난 노재봉총리의 뒤를 이어 입각,6공의 4기 내각을 이끌고 있는 조타수다. 지난 6월3일 강의중 외대생들에게 집단폭행을 당해 당시 파국으로 치닫던 정국 분위기를 극적으로 반전시킨 것은 두고두고 기억될 일화.임명 당시 「공안통치의 연장」이라는 야권과 재야의 주장과 달리 「조용히 일하는 내각」의 모습을 정착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대화와 타협에는 인색하지 않으면서도 원칙만은 끝까지 고수하는 「소신파」라는게 정총리에 대한 일반적인 평가다. 정총리는 전교조파동 당시 전국의 교사들에게 편지를 보냈는가 하면 학생이나 교수들과 논쟁도 서슴지 않았으며 야당지도자들을 찾아다니며 협조를 구하는 고행도 불사. 특히 세종대사태땐 주위의 만류를 뿌리치고 학교를 직접 방문했다가 타고있던 승용차가 학생들에게 파손당하는 봉변을 겪기도했고 부산대에서는 학생들에게 감금당하는 수모를 겪으면서도 직접 현장을 뛰는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이번에 남북고위급회담에서 극적으로 합의가 도출된 것도 따지고보면 정총리의 이같은 적극성,타협정신,원칙고수의 자세와 무관치 않은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황해도 재령출신인 정총리는 서울대 사대를 졸업하고 57년 미국에 유학,피바디대학에서 교육심리학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63년부터 서울대 사대에서 교육학을 강의했다. 79년부터 서울사대학장을 역임한 것을 비롯,심리학회장·교육학회장·교육개혁심의회 교육발전분과위원장 등을 맡아 학교안팎에서 교육발전에 힘써 왔으며 6공 2기내각에 문교부장관으로 입각,2년1개월의 장수를 누렸다. ◎북측 연형묵총리/권력서열 4위의 혁명2세대 정원식총리와 함께 제5차 남북고위급회담에서 「남북화해와 불가침및 교류협력에 관한 기본합의서」타결을 이끌어낸 연형묵북한정무원총리는 북한 권력서열 4위의 혁명2세대. 1932년 평남산인 연총리는 어려서 부모를 따라 만주로 이주,북간도에서 살다가 해방후에돌아와 만경대학원과 김일성대학 이공학부를 졸업한 북한의 대표적인 테크어 크랫이다. 훤칠한 키에다 당당한 체구,거무스름한 얼굴에다 오른 손을 번쩍들면서 활짝 웃는 표정이 트레이드 마크.김일성주석과 이미지가 비슷하다는 이유로 그를 경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부드러운 표정이 믿음직스럽다며 친근감이 든다는 사람도 적지않다. 그는 현재 정무원총리로 북한행정집행기구의 총책임을 맡고 있는 동시에 당정치국원·당중앙위원 등을 겸직,노동당의 정책결정에도 깊이 관여하고 있다. 그는 지난 85년 정무원 제1부총리겸 금속기계공업위원장을 맡아 정무원에 처음 진출,88년12월 이근모의 후임으로 총리직에 선임됐는데 기계공업분야에 정통하며 북한의 대외경제협력등을 추진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83년과 84년 김일성을 수행,중국·소련·동구권 등을 방문하는등 김주석의 신임이 두터운 편이며 러시아어와 불어·일어등에도 능통,국제감각도 뛰어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연총리는 판단이 예리하고 날카로우며 합리적인 성격의 소유자로 알려졌는데 김정일의 신임 역시 두텁다고. 남북고위급회담 북측 수석대표로 세번째 서울을 찾은 그는 비빔국수와 비빔밥을 좋아하는 대식가이기도. 부인 김성숙(57)은 김일성의 친척이며 슬하에 2남2녀를 두고 있다.
  • 문선명씨의 오만한 작태(사설)

    북한을 방문한 통일교 교주 문선명목사의 분별없는 처신은 우리에게 당혹감과 함께 분노를 느끼게 한다.그의 방북이 개인적인 차원임에도 불구하고 그 한계를 넘어선 언동은 오만한 작태로 볼 수 밖에 없다.북한당국의 국가원수급 예우에 들뜬 탓인지,40여년만에 고향땅을 밟은 감격에 겨운 탓인지 자신이 해야할 일과 해서는 안될 일을 분별하지 못했다.지난달 30일 평양에 도착한 그는 이날밤 북한당국이 마련한 환영만찬에서 김일성주석과 김정일비서를 최대의 경어로 칭송,낯뜨거운 꼴을 보이더니 지난 5일에는 북한의 조선해외동포위원회 위원장 윤기복과 「공동성명」 이란걸 발표했다.그런데 이 공동성명의 내용이 가관이다. 이산가족의 만남을 위해 면회소와 우편물교환소의 설치를 위해 노력한다는 것도 그렇지만 ▲한반도 핵의 평화적이용과 ▲불가침조약체결을 촉구한 것은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해괴한 행각이 아닐 수 없다.윤기복은 대남전략을 주도하고 있는 북한의 당국자이고 문선명목사는 순수한 민간인이다.북의 당국자와 남의 민간인이 남북의 막중한 현안들을 어떻게 해결하겠다는 것인가.이런 것들은 남북의 책임있는 당국자들이 해결해야할 미묘한 사안들이다. 그런데도 김일성주석은 문선명목사와 면담하는 자리에서 「공동성명」의 내용을 추인했다고 한다.남북고위급회담이 진행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김주석이 일말의 가치도 없는 일에 선뜻 도장을 찍어준 저의는 어디에 있을까.통일전선전략과 대남전략의 상투적인 수법에 지나지 않는다.남쪽에 주체적 통일열기를 북돋우고 사회의 혼란을 부채질해 보겠다는 정치적인 책동으로 보아야 한다. 우리는 이러한 책동을 임수경양과 문익환목사등을 통해 이미 경험한 바 있다.문선명목사는 북한이 줄기차게 추구하고 있는 통일전선전략의 또하나의 희생양에 불과하다.문선명목사가 승공투쟁을 주도해온 진정한 종교지도자라면 어느곳에서든 그 언동은 정정당당해야 한다.북한의 인권문제를 거론하고 핵무기개발의 포기를 냉엄하게 촉구하는 한편 신앙의 자유를 강력하게 요청했어야 한다. 그런데도 이런 절박한 문제를 외면한채 북한의 장단에 춤이나 추는꼭두각시 역할밖에 못했다면 그는 표리가 부동한 위선자이며 거짓 목사로 지탄 받을 수 밖에 없다.공안당국은 문선명목사의 방북 언동이 당초의 방문목적과는 어긋난다고 판단,실정법위반여부에 대한 검토작업에 나섰다고 한다.또 각종 사회단체와 종교단체는 문목사를 규탄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그의 실정법위반여부는 앞으로 밝혀지겠지만 어떤 형태로든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판단이다.문목사는 방북기간중 여러형태의 경제협력을 타진했고 북한은 1억5천만달러의 헌금을 요청했다고 한다.경제파탄에 직면해 있는 북한을 도와주는 것은 좋은 일이다.그러나 이것도 우리 정부가 설정해 놓은 원칙에 어긋나서는 안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문목사의 방북을 계기로 우리는 북한당국에 또다시 촉구하고자 한다.상투적인 통일전선전략을 이제는 버려야 한다는 것을….
  • “소 연방 와해,한반도 정세에 도움”/미 스칼라피노교수 초청 강연

    ◎“멀잖아 북한 정치·경제 변환 있을것” 세종연구소(소장 정일영)는 6일 동아시아문제의 세계적 권위자인 로버트 A 스칼라피노 버클리대 명예교수를 초청,「소련연방의 해체와 동북아시아,특히 한반도에 미치는 영향」이란 주제로 강연회를 가졌다. 스칼라피노교수는 이 강연에서 『소연방의 해체는 한반도에서의 긴장완화와 실질적인 남북관계 증진에 도움이 될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특히 한미관계와 관련,『미국은 과거의 후견인 역할로부터 탈피,동반자적 역할을 담당하려하고 한국의 국력신장에 걸맞게 방위비 분담도 점차 늘려갈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이날 하오3시 성남 세종연구소 대강당에서 열린 강연회에는 2백여명의 국내 학계·관계인사들이 참석했다. 강연의 주요내용은 다음과 같다. 소련이 향후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를 전망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동아시아의 장래와 관련하여 러시아공화국의 역할이 가장 중요한 것이 될 것이다.러시아공화국은 향후 일본과의 북방영토문제,한반도의 장래,중국과의 정치적·경제적 관계,북태평양 지역에 있어서 미국과의 전략적 관계등에 깊이 간여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소연방의 해체가 중국·북한및 베트남의 지도부에 미친 영향은 대단히 크다. 수년내에 중국의 「8노」나 김일성중심의 갑산파,그리고 호지명의 동료들은 사망할 것이다.그럴 경우 당·정부및 군대를 단합시키는 능력은 위협을 받게 될 것이고 극도의 불안정 상태가 야기될 것으로 보인다.소연방의 해체는 또한 대외정책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최근까지만 해도 북한 대외무역은 절반 이상이 소련과의 교역이었으며 군사장비·원유및 기술분야에서의 대소의존도는 매우 높았다.따라서 소련으로부터의 수입이 감소되고 소련이 북한과의 교역에서 우호가격이 아닌 국제시장가격에 의한 결제를 요구함에 따라 가뜩이나 어려운 북한경제에 큰 타격을 가할 것이다. 따라서 북한으로서는 대외무역과 외국자본 유치를 위한 정책을 추진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으며 한국과 일본과의 교섭에 있어서 일대 전환을 하게 됐다.정치적으로도 북한은 한소수교이후 일본과의 수교문제를 적극적으로 검토하기에 이르렀고 유엔가입 문제및 대미관계 개선에 있어서도 급격한 정책 전환을 하지 않을수 없었다. 중국의 경우와도 같이 북한은 조만간 정치적·경제적인 전환을 맞이할 것이다.그 전환은 김일성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한 세대가 정치일선에서 물러나는것을 의미한다.이미 젊은 엘리트들이 등장하고 있으며 김정일의 존재 여하에 관계없이 변화를 가속화할 것이다.
  • 북한테러 사령탑은 김정일/KAL 피격4돌 계기로 본 실상

    ◎니카라과등 38국에 요원파견 훈련/작전부는 요인 납치·정찰국선 파괴공작/60년대 이후 22개국 반정단체 지원 1백15명의 무고한 목숨을 앗아간 대한항공 858기폭파사건이 발생한지 29일로 네돌이 됐다.최근에는 국제사회에서 테러국가로서의 이미지를 벗지 못하고 있는 북한이 핵사찰까지 거부함으로써 전세계에 적지않은 우려와 불안을 불러일으키고 있기도 하다. 미케네디재단 상임 연구원인 게리 밀홀린은 최근 『북한의 핵은 세계 암거래시장으로 흘러나갈 것이며 이 핵은 테러리스트 손에 넘어갈 경우 한개의 폭탄으로 워싱턴시는 물론 주요 도시를 파괴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무시무시한 경고를 보내고 있을 정도다.대한항공기 폭파사건을 계기로 북한의 테러조직과 폭력혁명의 실상등을 알아본다. ▷테러기구◁ ▲북한의 테러기관은 통치기구의 핵심인 로동당 중앙위 직속기구로 돼있는 연락부,통일전선부,작전부,대외정보조사부,인민무력부 정찰국등을 들 수 있으며 김정일이 직접 이들 기관을 지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연락부는 주로 남한내간첩망을 조직하고 유지하는 일을 담당하고 있으며 아웅산 폭파사건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통일전선부는 테러활동외에도 남북대화와 대남선전선동,심리전등도 도맡아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작전부는 테러리스트의 훈련과 요인납치및 살해,외국인 테러리스트에 대한 훈련과 지원업무등을 하며 대외정보조사부는 해외정보수집과 테러를 병행하고 있다.또 인민무력부 정찰국은 4만명 규모의 특수8군단을 비롯,경보병여단및 해상특공부대등 모두 10만명 이상의 병력을 보유하면서 파괴공작을 일삼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테러분자양성◁ 테러리스트는 사상적으로 견실한 사람,다시 말해 주체사상에 투철한 사람으로 가정·사회적 배경,당성등 주위환경과 사업조건이 좋아야하는 것은 물론 육체적 건강이 뒷받침돼야 한다.정치,군사,경제,사회문제등에 대한 판단이나 분석이 예리해야하며 또 목숨을 버리더라도 입을 열지 않을 정도로 입이 무거운 것도 필수적인 선발조건이다. 훈련과정은 단기 3∼6개월에서 장기 1∼2년까지로 돼 있으며 훈련내용은 도시및농촌게릴라 전투에 대한 이론과 전술등으로 육박전,각종 무기및 폭발물 사용법,사보타지,정찰법,지도작성법,비밀통신법,비밀거점확보방법,주변사람조종법,공공시설물 파괴방법,요인납치및 암살방법등을 모두 배우게 된다. ▷테러실상◁ 대한항공기 폭파사건 이후에는 뜸해졌으나 그전만 해도 대남테러및 게릴라활동은 물론이고 해외에서 저지른 테러·공작활동도 적지 않았다.대남활동 가운데 대표적인 것으로는 청와대 습격사건(68년),울진·삼척 침투사건(68년),미얀마의 아웅산 묘소폭파사건(83년),대한항공기 폭파사건등이 있는데 아직도 생생하게 우리들 기억에 남아 있다.이밖에도 크고 작은 테러,게릴라 활동은 부지기수여서 지난 67년과 68년에는 각각 6백29건과 5백64건을 기록했을 정도다. 해외에서는 지난 82년 파나마에서 반정부파괴활동을 지원하다 북한요원 5명이 추방됐으며 인도에서도 대학생을 세뇌하려다 발각돼 요원 1명이 역시 추방됐다. 이밖에도 북한은 80년대 들어 베네수엘라,튀니지,버마,스리랑카,콜롬비아등지에서 반정부활동을 지원하다적발되기도 했다. 또 북한은 69년 이후 팔레스타인해방기구등 36개국에서 1만여명의 요원들을 데려다 게릴라 훈련을 시켰으며 니카라과,엘살바도르등 38개국에 특수요원들을 파견,현지에서 훈련을 시킨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뿐만 아니라 북한은 테러수출국답게 60년대 이후 아르헨티나 인민해방군등 22개국의 반정부단체에 소총,탄약,수류탄,경기관총등 무기및 자금을 지원해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 북한 여성의 「서울나들이」(사설)

    「아시아의 평화와 여성의 역할」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열린 서울토론회의 공식 일정은 끝났다.46년만에 「여성대표」자격으로 참석한 북한여성대표들의,「평화모색」과는 관계없는 행동만 남겼을 뿐인 이 회의의 흔적을 이쯤에서 한번쯤 곰곰 톺아보는 일도 중요할 것이다. 우선 북한여성 대표들은 그들이 목적하고 온 것을 십이분 달성한 것같다.첫째 그들은 토론주제 바꾸기를 관철했다.원주제와 직접 관계없는 「통일문제」를 토론 내용으로 「쟁취」한것이다.그것으로 그들은 배제된 「정치」를 다시 끌어들이는데 성공했다.두번째로 그들은 송이수까지 계산된 김일성화와 김정일화로 엮어 만든 김일성꽃다발을 「남한인민들」앞에서 당당하게 떠받들고 소리내어 그것을 예찬하는 일에 성공했다.그것도 민족 지도자의 한사람이었던 몽양의 묘소를 교묘히 이용하여. 세번째로 그들은 서울 한복판에서 확성기를 대놓고 이렇게 외치는데 성공했다.『북은 남침을 한 적도 없고 현재 할 의사도 없으며 앞으로 할 계획도 없다』.그리고 『있다면 북침이 있을 뿐이다』라고 거침없이 소리치는데 성공한 것이다.이 대목에서 토론장에서는 「웃음이 터져나왔다」고 한다.어처구니 없어서 나온 실소였겠는데 북한대표의 귀환 「보고」용으로는 이 웃음조차도 소득이 될 것이다. 이밖에도 「이대방문」이라는 카드도 효과적으로 써먹었다.이슈가 없어서 골몰중인 운동권학생들에게 근사한 빌미를 줄 수 있었으므로 성공하든 안하든 손해볼게 없는 카드였다.주최측의 사려없는 준비과정과 결정이 그런 결과를 불렀다.이 카드를 거꾸로 이용하여 시장이나 거리구경까지도 그들은 배척할 수 있었다.문목사와 임수경이라는 「약점」을 슬쩍슬쩍 건드려가며 장난성 자극을 충분히 즐겼던 그들은 북쪽 체제가 파견한 여성 척후병 역할을 잘 해냈다. 이 모든 것은 처음부터 예견되었던 일이므로 우리에게는 충격도 아니고 실망도 느끼지 않는다.그들이 벌이는 이 가장행열의 레퍼토리에는 우리도 충분히 적응되었으므로 실소나 한번 하고 나면 그뿐이다.그러나 그들을 대화의 장으로 이끌어 키높이가 비슷한 동반자로 성숙시켜 통일을 도모하려는우리의 뜻에는,이런 일의 반복은 도움이 안된다.그들이 「적의 심장에 비수 한개를 꽂고 돌아 왔다」고 의기양양해하며 더욱더욱 문단속에 골몰한다면 우리의 뜻은 뒷걸음질치는 결과 밖에 안될 것이다. 그렇게라도 「만난 것이 소득」이라고 대견해하는 주최측의 자긍에 찬물을 끼얹을 생각은 없지만,그들에게 반성할 일이 없다고는 할 수 없다. 북이 기회있을 때마다 드러내는,그 변함없는 「막무가내」를 그렇게 허랑허랑하게 받아주는 것에 대해서 이제는 반성을 해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수십년동안 「생떼쓰기」를 조금도 멈추지 않아온 그들은 「여성」을 「파견」하면서도 여전히 같은 방법을 썼다.그런 그들에게 말끝마다 박수를 쳐주고 통일가장행열에 같이 늘어서서 「댕기매기」니 통일노래부르기 따위를 호들갑스럽게 함께하는 일은 그들의 환상을 더욱 심화시키는 결과가 될지도 모른다.담담하고 어른스럽게,적어도 진실이 스며들 수 있는 분위기를 위해서 만이라도 사려깊은 대응을 했다면 좀더 성과가 있었을 것이다.
  • “북한핵 무력저지” 열띤 찬반논쟁/미 상원 외교위 청문회 중단

    ◎비밀제조·거래막을 조치 불가피/찬성론/군사행동은 「대남 보복」 유발 위험/반대론 ◇제레미 스톤(미과학자연맹회장)=북한의 핵개발저지와 관련,안보 관점에서 중요한 것은 중국 일본 소련 미국이 남북한의 현 경계선을 보장하는 것이다.미국은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는 대가로 그러한 경계선을 보장하는 조직적인 협조를 제의해야 한다. 북한은 김정일의 권력세습을 중국으로부터 인정받는 것이 중요하다.따라서 중국과 협조해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반핵단체들은 북한이 IAEA 사찰을 받아들이고 핵재처리시설을 폐기,외부세계의 핵무기 부재를 납득시킬때까지 북한상품에 대한 세계적인 배척운동의 조직을 고려해야 한다. 평양은 미국과의 접촉 확대를 바라고 있기 때문에 미국으로서도 다음과 같은 협상거리를 활용해야 한다. ▲고위급 북한관리의 워싱턴 방문 허용 ▲코콤 규제완화 ▲북한에 대한 적성국 교역법 적용 해제 ▲한국휴전협정의 평화협정 전환 ▲업계 사무소나 연락사무소 대사관 설치등을 통한 승인 움직임. 그러나 미국이 북한에 대해 군사행동을 취하거나 다른 나라의 무력행사를 지원하는데는 반대한다. 그러한 행동은 한국에 대한 북한의 보복행동으로 이어지며 결국 전면전으로 발전할 것이다.또한 한국의 전적인 동의없이 행동하는 것도 부도덕하다. ◇게리 밀홀린(「핵 군축에 관한 위스콘신 계획」사무국장)=북한의 핵개발에 대한 대응책은 3가지를 생각할 수 있다.첫째는 사실상 아무것도 하지 않고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지켜보는 것이며 둘째는 외교로서,경제적 정치적 제재를 이용해 북한을 굴종시키는 것이다.셋째는 군사행동이다. 지금은 북한의 핵개발성공이 임박했기 때문에 부시 미행정부가 뒤늦게 추구하기 시작한 제2방안,즉 외교가 실효를 거둘 시간이 없다. 북한의 핵개발을 저지하기 위한 목표를 평화적으로 달성할 수 있는 최선의 기회는 유엔안보이로 하여금 북한에 대한 전면사찰 수락 시한을 설정케 하는 것이다.북한이 이에 호응하지 않을 경우 안보리는 무역금지나 해운봉쇄조치까지 고려해야 하다. ◇레오나드 스펙터(카네기 국제평화재단 수석연구원)=최근의 정보 평가에 의하면 북한의 핵재처리 시설은 완성이 임박했다.이 공장이 가동을 시작하면 북한은 앞으로 1년내에 최초의 핵장치 물질을 획득할 수 있다. 또 영변에 건설중인 제2 원자로가 가동되면 북한은 연간 핵무기 4∼5개 상당의 플루토늄을 생산할 수 있다. 외교적 노력이 실패할 경우 영변을 군사적으로 공격한다는 생각은 큰 잘못이다.그러한 공격의 결과는 한국에 큰 재해가 될 수 있다.이경우 1981년 이스라엘의 바그다드 교외 오시라크 원자로 공격이나 1991년 미국의 걸프전 낙승은 적절한 선례가 못된다.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은 1981년 이라크는 이스라엘에 보복을 할 수가 없었지만 북한은 영변이 미군이나 한국군에 의해 공격을 받을 경우 한국에 강력한 반격을 가할 능력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가장 쉽게 감행할 수 있는 방안은 스커드 미사일로 서울을 때리는 것이며 이 미사일엔 화학탄두가 장착될지도 모른다. ◇조셉 처바(워싱턴소재 정책연구소 「국제안보협의회」회장)=미국이 다른 강대국들의협조속에 외교적 경제적 조치를 취하더라도 북한의 핵 야망을 포기시킬 수는 없을 것 같다.북한은 핵무기 제조에 필요한 플루토늄을 가동중인 제2 원자로에서 이미 생산하고 있다.제3의 원자로도 1년내 가동을 시작할 것이다.북한에 대해서는 전통적 외교와 평범한 무기통제가 통하지 않는다.문명적인 접근방안은 결국 부적절하다고 판정되겠지만 그때까지 장비와 기술이전에 대한 통제는 더욱 강화되고 지속되어야 한다.그러나 많은 나라들이 이에 협조하지 않거나 사실상 협조할 수가 없을 것이다.수출 통제는 마음만 먹으면 여러 나라가 이를 빠져 나갈 수 있다. 미국이 핵확산을 막기 위한 비상대책으로서 『단호한(또는 선제적인)무장해제』를 고려하지 않는 것은 우둔한 처사다. 악의에 찬 대량파괴를 공개적으로 위협한 국가에 대해 미국은 다른 모든 수단이 실패할 경우 그 나라의 무기생산 시설과 미사일 발사대에 대한 선제 방어정책을 유보한다고 경고해야 한다.그러한 위협의 진원에 대한 선제적인 비핵공격은 극단적인 행동으로 보일지 모르나 사후 보복 보다는 낫다.선택의 여지를 남겨두는 건 재앙의 발생을 기다리면서 미국과 우방을 재앙에 노출시키는 것이다.
  • 외언내언

    「남북의 창」「통일전망대」를 통해 우리는 북한이 그다지 생소하지 않게 되었다.다소 부자연스러움이 느껴지는 가성의 여자목소리,「외닥딱!」이니 「일떠서다」따위 투박한 어휘가 문어체속에 예사롭게 섞이는 북한식 언어에도 이제는 적응이 꽤 되었다.◆그런 가운데서도 도무지 어색해서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김일성화」「김정일화」라는 것을 소개하는 장면들이다.식물학자,역사학자,예술가들이 총동원되어 이런 것을 만들어내고 있는 이 사회에 대한 「불가해」함이 한없이 낯설게 만드는 사회다.왜 이런 짓을 하고,하란다고 하고 있는 것은 또 무엇때문일까.◆그 곤혹스런 명칭의 꽃들로 만든 화환이,서울하고도 수유리의 몽양묘소에 등장했던 모양이다.김일성의 이름을 새긴 커다란 리본까지 달린 이 꽃다발을 안고 오느라고 그들은 매우 송구했을 것이다.이런 몸짓이 이쪽에서는 아무런 효과도 낼 수 없음을 그들은 진정 모르는 것일까.◆북에서 온 여성대표단장 여연구는 며칠사이에 스타로 등장했다.나타나기만 하면 다투어가며 손을 잡으려고 야단이고연설을 하면 구절구절마다에서 박수를 쳐댔다.그의 목소리는 많은 북쪽 여성들이 쓰는 가성이 아니었다.기품있고 정감이 느껴지는 깊이있는 소리였다.◆그런 목소리에 취하기라도 한듯 남쪽의 인심좋은 여성들은 그의 만찬답사 구절구절마다에서 박수를 보냈다.그런 분위기 속에서 「핵」문제 「통일」문제 들이 구절마다에 박혀 있다가 튀어나오기도 했다.드디어는 「김구선생」을 꼭지에 놓고 「문익환목사」와 「임수경」양도 쓰윽 끼어들었다.한 대목이 끝날 때마다 박수를 치던 참가자들은 그러나 이 대목에서는 정확하게 건너 뛰고 말았다.◆거의 기계적으로 치는 박수였는데도 절묘하게 뛰어넘는 「박수치기」였다.어떤 틈새기라도 있으면 비집고 정치선전을 하고 싶어하는 북측에 비하면 서툴고 무모한 측이 남쪽인 것 같은데 「아닌 것」에는 말려들지 않는다.그래도 여전히 버릇을 못버리는 그들이 웬지 슬프다.
  • 몽양 묘소에 선전성 김일성 화환/북한여성들 서울 오던날

    ◎철거요구 우리측과 옥신각신/개회식선 「그리운 금강산」 축가 ○…25일 하오 여연구씨가 검은색 비로드천의 한복에 흰색 베일 차림으로 서울 도봉구 우이동 여운형 묘소를 참배하는 동안 북측 일행이 갑자기 김일성 명의의 화환을 묘소앞에 배열하고 정치선전극을 벌여 이의 철거를 요구하는 우리측과 마찰을 빚었다. 북측 참가자일행은 참배도중 미리 갖고온 커다란 상자에서 「고 몽양 려운형선생을 추모하며 김일성」이라는 내용의 글씨가 쓰여진 화환과 「아버님을 추모하며 려연구·려원구·려붕구」라는 2개의 화환을 꺼내 묘소앞에 내세운 것. 이들 대형조화 2개는 이른바 「김일성화」와 「김정일화」,국화 등으로 장식한 것으로 누가 보아도 정치선전의도가 짙은 것으로 보였다. 이에 추모사업회 관계자들이 『민간차원의 순수한 행사에 꽃만 놓으면 됐지 굳이 김일성 휘장을 걸 필요가 있느냐』고 항의하자 북한측은 『여성들끼리 하는 일을 왜그럽니까,2분만 기다려 주시지요』라며 대꾸,우리측과 10여분간 옥신각신. 북측은 기록용 사진을 찍고 마지못해 철거. ○…『아버님이 귀여워해 주시던 소녀 둘째딸이 40여년이 지난 지금 여기에 섰습니다』 25일 하오 서울 도봉구 우이동 106번지 몽양 여운형씨의 묘소를 찾은 여연구 북측 대표는 묘지내에 들어서기도 전에 눈물부터 흘렸다. 여씨는 이날 하오 2시55분 남측 이효재씨와 승용차편으로 아버지의 묘에 도착,하얀 스카프를 머리에 덮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20여분동안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다. ○…이날 몽양의 묘에는 여명구씨(64·의학박사)와 올케 오세연씨,몽양선생 추모사업회원 등 30여명이 미리 대기. 특히 여씨의 증조할머니뻘 되는 여귀옥씨(대한기독교 여자절제회)와 그의 두딸은 추모사와 추모곡을 준비하기도. 또한 몽양선생 추모사업회측은 미리 향을 피우고,여대표에게 전달할 선물 등을 빈틈없이 준비. ○…「아시아의 평화와 여성의 역할」 서울토론회에 참석하는 북측 참가단 15명은 25일 상오 11시 판문점 중립국감독위를 통해 남녘땅에 첫발을 디뎠다. 여연구 북한 최고인민회의 부의장을 비롯한 세미나 참석 북측 참가자 5명은최봉춘 북측 책임연락관 안내로 중립국감독위 회의실을 넘어서자 마자 미리 대기중이던 이효재씨(한국여성단체 연합회장)등 우리측 영접위원 5명으로부터 각각 꽃다발을 전달받은 후 서로 가볍게 포옹. 특히 47년 이화여전 재학중 월북해 44년만에 남녘땅을 밟은 여부의장은 얼굴에 웃음을 띠면서도 만감이 교차되는 듯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하오 6시 호텔 2층 임페리얼룸에서 열린 개회식에서는 윤정옥 대표가 개회선언을 했으며 이어 이효재 대표가 경과보고,이우정 대표가 환영사,참가대표와 영접위원 소개,축가 등의 순서로 진행. ○…개회식 마지막 순서로 평양범민족통일 음악제에도 참가했던 윤인숙 교수(단국대 음대)가 축가 「그리운 금강산」을 불러 분위기를 돋우었다. ○…북한측 일행이 몽양 묘소를 참배하고 다소 늦는 바람에 기자회견은 30분 늦게 시작됐으며 여연구 대표는 선친묘소 참배때 무리한 탓인지 불참. 이 자리에서 북측 정명순씨는 『서울 방문 기간중 문익환 목사와 임수경씨,문규현 신부,유원호씨를 만나고 싶다』고 불쑥 제의하면서 선물까지 가져왔다는 말을 끝내 잊지 않았다.
  • 북,금토일요일 차량 주유 금지/지방·농촌선 우마차 사용 의무화

    ◎김정일,유류난 타개책 지시 북한은 최근 극심한 유류부족에 직면,이를 타개키 위한 각종 기발한 조치를 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9일 내외통신에 따르면 북한당중앙위 비서국은 김정일의 명령에 따라 ▲각급 공장과 기업소의 모든 차량에 대한 금·토·일요일 급유중지 ▲화물자동차는 목탄(목탄)대신 옥수수속대를 말려 묶은 「주체연료」를 쓸 수 있도록 개조할 것 ▲지방·농촌에서는 우마차를 이용할 것 ▲각 도당위원회는 낡은 차량을 폐기하고 불요불급한 차량을 회수할 것 ▲그리고 이 유류절약을 앞장서 실천하는 자에게는 「애국투사」칭호를 부여하도록 할 것등을 지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때문에 북한주민들은 금·토·일요일에는 화물수송이나 특별한 볼일을 볼 수 없고 공장등의 시설이 동파될 우려를 안고 있는데다 평양등 대도시에서는 청소차의 운행횟수가 줄어들어 큰 불편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사할린서 한국 영화촬영진 만나 남행 결심”

    ◎귀순 김용씨 기자회견 일문일답/북,경제난 외면 무기생산 독려/50개 회사 차려 무역활동 혈안 북한로동당 산하 무역회사에서 외화벌이담당 책임지도원으로 일하다 한국으로 탈출한 김용씨(33·평양시 모란봉구역 서흥동 48반 17층 4호)는 7일낮 서울 앰배서더호텔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북한의 실상과 망명동기등을 자세히 밝혔다. 김씨는 북한에 노모와 부인및 아들 1명을 두고 있다.다음은 김씨와의 일문일답. ­망명동기는. 『김정일의 친필지시사업을 수행하기 위해 사할린에 갔으나 달러가 없어 낭패를 겪었다.궁여지책으로 사업수행자금도 조달하고 개인적으로 돈도 벌겸해서 중·소간 송어교역중개에 손을 대려다 이 사실이 정무원직속무역회사 「오산덕총국」직원에게 탄로나는 바람에 처벌받을 것이 두려워 망명을 결심하게 됐다.또 당시 사할린에서 현지촬영을 하던 남한영화 「명자 아끼꼬 쏘냐」촬영진들을 만났는데 이들로부터 남한실상을 들은 것도 망명을 결행하게 된 동기의 하나다』 ­북한이 최근 대외무역을 중시하면서 많은 무역회사들이 활동하고 있다고하는데 그 실상은. 『지난 86년부터 각 기관별로 외화를 자체 조달토록하는 「독립채산제」가 도입되면서 각기관소속의 무역회사가 생겨났다.현재 평양시에 30개,지방에 20개등 50여개의 독자적 무역회사가 활동중에 있다』 ­북한의 경제가 매우 나쁘다고 하는데 군수산업은 어떠한가. 『북한은 주민의 경제난을 아랑곳 않고 군수산업발전에 열을 올리고 있다.이들 군수공장은 자강도 강계시 및 성강군 등지에 밀집돼 있는데 각종 탄알은 「93호공장」에서,로켓탄등 신형무기탄두는 「26호공장」(대외적 명칭은 남문뜨락또르공장)에서,첨단전자무기는 「11호공장」에서,무기생산에 필요한 특수강은 「8호제강소」에서 생산된다.또 자강도에는 예비식량저장창고 및 대형식료공장이 건설돼 있다.평양시 모란봉에는 모란봉구역관내 주민모두를 대피할 수 있는 지하대피소가 있는데 올봄 처음 공개됐다』 ­식량난은 어느 정도인가. 『지난해 가을에는 넉달동안 배급이 끊어진 곳도 많았으며 온 가족이 도토리를 따기 위해 휴가를 내기도 했다.지난 가을 지력을 높이기 위해 흙깔이를 했으나 이번에는 농약이 부족,벌레피해를 막지 못해 올해도 풍년을 기대하기 어렵다.게다가 김일성이 지난 88년 평양에서 열린 비동맹회의때 「자급자족」을 이룬다고 큰소리 쳤기 때문에 식량수입도 공개적으로 할 수 없는 처지다』
  • “식량 1백50만t/북,연내 수입 비상”

    ◎북한 상사원 김용씨,귀순 회견 북한로동당산하 「백두산건축연구소」소속 「연화무역회사」의 책임지도원이었던 김용씨(33)가 소련 사할린출장중 지난 10월5일 현지를 이탈,유럽 제3국을 경유하여 10월17일 입국 망명해왔다고 국가안전기획부가 7일 발표했다. 김씨는 이날 서울 앰배서더호텔에서 있은 기자회견을 통해 『올해초 정무원산하 국가계획위원회와 농업위원회가 김정일당비서에게 금년 식량 부족분이 1백50만t에 달한다는 정식 보고서를 제출했을 만큼 북한의 식량난은 매우 심각하다』고 밝히면서 이에따라 연형묵정무원총리는 지난 3월 정무원직속 무역회사인 「오산덕총국」등 모든 기관소속 무역회사들에 대해 총1백50만t이상의 식량을 외국에서 조달하라는 특별지시를 내린 바 있다고 말했다. 김씨는 또 『북한은 지난 89년 자강도 만포시 외곽 군용비행장에서 승용차로 30분거리인 강계시 흥주리에 김일성과 김정일의 초대소(별장)를 각각 건설했다』며 『이들 초대소는 만포비행장에서 중국까지의 거리가 비행기로 불과 10분도걸리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할때 유사시 김일성부자의 제3국 망명을 위해 설치된 것이 틀림없다』고 주장했다. 김씨는 『김정일의 매제인 장성택당3대혁명소조부장이 김정일을 보좌하는 제2인자의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고 증언,지난 9월 망명한 전북한외교관 고영환씨의 진술을 재확인하는 한편 장의 부인이자 김정일의 누이동생인 김경희당경공업부장,그리고 장의 친형인 장승훈정무원 사회안전부 정치부장등이 또다른 실세라고 밝혔다.
  • 전 김일성 통역관겸 고위외교관/고영환은 말한다:10

    ◎“쾌락의 화신” 김정일,외국여인도 수입/「아미산 대표부」·「기쁨조」 운영/희귀식품 조달하려 유럽·아에 요원 파견/농촌·공장처녀 차출… 현대판 「기생수업」/평양 「목란관」서 비밀 연회… 일반주민은 몰라 「김일성 왕조」의 후계자 김정일. 그가 아버지만한 정치적 카리스마를 갖고 있지 못한데다 도덕성에서도 크게 뒤지고 있는 것은 북한주민들의 큰 불행인지 모른다. 김정일에 대해선 이래저래 말들이 많으나 기상천외의 「아미산대표부」나 「기쁨조」같은 것을 거느리며 호사를 탐하고 있는 사실에서 그의 됨됨이는 숨김없이 드러나고 있다. 김정일은 북한에서 나는 것은 아무것도 먹지를 않는다. 김정일은 오로지 그의 까다로운 입맛을 만족시키고 「친애하는 지도자동지」에 대한 예(?)를 다하기 위해 「아미산 대표부」가 해외에서 들여오는 음식물만을 먹는다. 아미산은 평양 서성구역 금수산의사당(주석궁)북쪽 대성산 자락에 있는 높이 1백53m의 작은 산이름. 인민무력부 산하 호위총국(사령관 이을설,김일성과 김정일·고위정치국원들의 경호를 맡고 있는 특수부대)에서 관리하는 아미산대표부는 이 산의 이름을 딴 기관으로 세계 각지의 진귀한 특산물을 김정일에게 상납하기 위한 임무를 띠고 모스크바·파리·오스트리아등지에 요원들을 파견해 놓고 있다. 흑해의 캐비어,알제리의 특산 수박과 멜론,정력제로 알려진 앙골라 앞바다에서 잡은 푸른상어알,노르웨이의 바닷가재등이 아미산대표부가 김정일에게 진상하는 대표적인 특산물들이다. 아미산대표부는 선도유지를 위해 비행기 한대를 그 자리에서 전세내 직수송 할 만큼 활동자금에 구애를 받지 않는다.노르웨이 바닷가재의 경우 냉동처리를 하지 않고 바닷물이 든 박스에 포장,싱싱한 활어상태로 평양까지 실어간다.아미산대표부가 사용하는 자금은 모두 현찰외화로 특별지급된다. 영화에 각별한 애착을 갖고 있는 김정일을 위해 세계 각국의 유명 영화필름을 구입하는 것 또한 아미산대표부의 주요 임무가운데 하나다. 이와 별도로 당 중앙위 서기실에서 직접 요원을 해외에 파견하기도 하는데 이들은 스웨덴 등지의 젊은 아가씨들을 돈으로 「사」 평양으로 「직송」한다.모두가 글래머인 서구 아가씨들은 기본사례비 2만달러에 일주일동안 평양체류 숙박,왕복 항공료등을 무료로 제공받는 조건으로 들어와 김정일이 베푸는 연회에서 춤을 추고 스트립 쇼도 벌인다.이들은 김정일『단 한사람을 위한 호스티스 들이다. 김정일이 벌이는 파티의 주무대는 「목란관」.김정일의 집무실인 당 중앙위 건물에서 불과 2∼3분 거리에 위치해 있는 대형 연회장이다.김정일은 집무중 피곤하다 싶으면 언제든 『공연준비를 하라』고 지시,목란관으로 내려가서 「공연」(?)을 즐긴다.목란관은 그 외형을 일반주택과 같이 꾸몄기 때문에 북한주민들은 그 안에서 펼쳐지고 있는 「판」을 전혀 알수가 없으며 상상할 수도 없다. 아미산대표부와 함께 김정일을 위해 존재하는 전문 위안조는 17∼19세 사이의 처녀들로 구성된 「기쁨조」다.이름그대로 춤추고 노래하고,안마와 술시중을 들며 김에게 기쁨을 주는 「처녀조직」. 당초 이 기쁨조는 80년께 당·정 간부들의 가정에 경사가 있을때 노래나 무용·만담등으로흥을 돋우기 위해 평양 만수대예술단소속 단원들로 구성한 특별조직이었다. 그러나 점차 김정일 개인의 사적 위안단이 돼가면서 그의 「성은」아래 당당한 위세를 떨치기 시작했다. 원래 기쁨조는 평양출신 처녀들로 조직됐으며 그중에는 외교관의 딸들도 여럿 포함돼 있었다.그러나 기쁨조의 예술적 성격이 탈색되면서 알만한 사람은 자식들을 「기쁨조」에 보내지 않으려 기를 쓰고 있다. 이에따라 현재는 선발담당원들이 농촌이나 공장을 직접 찾아가 여학교 또는 공장의 정문을 지키며 집으로 돌아가는 처녀들을 관찰,「곱다」고 판단되면 그들의 부모들을 설득해 뽑아간다. 이렇게 채홍사들에게 뽑힌 「처녀」들은 아픈데가 있으면 치료를 받고 용모도 말끔하게 다듬어져 일반적인 학습에서부터 악기다루는 법,춤추는 법등에 이르기까지 현대판 「기생수업」을 본격적으로 받는다. 주로 17∼19세 정도의 발랄한 나이인 이들은 2∼3명씩 조를 이뤄 오스트리아 파리등지로 해외나들이를 하기도 하는데 해외여행은 『예술하는 사람들은 해외견문도 넓혀야 한다』는 김정일의 지시에 따른 것이다. 김정일의 각별한 「사랑」을 받고 있는 만큼 「기쁨조」의 세도 또한 막강하다.이들 앞에선 외국주재 북한외교관원들도 몸을 사려야 한다. 행여 술자리에서 김정일에게 「어디 어디 사람들,영 못쓰겠데요』라고 고자질을 할 경우 그 다음날로 목이 뎅강 날아가거나 강등되기 때문. 김정일만을 위한 아미산대표부나 기쁨조의 실상은 철저히 비밀에 붙여지고 있다.일반 「인민」들이 김정일의 호화방탕한 생활을 알게 될 경우 무너질 「친애하는 지도자 동지」에 대한 신뢰를 우려해서임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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