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김정일
    2026-03-12
    검색기록 지우기
  • 생산능력
    2026-03-12
    검색기록 지우기
  • 여객기
    2026-03-12
    검색기록 지우기
  • 물류센터
    2026-03-12
    검색기록 지우기
  • 청와대 오찬
    2026-03-12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2,201
  • 정보위·통일외무위(초점상위)

    ◎‘황장엽 파일’ 진위여부 집중 추궁/정보위­“여야 정치인 관련자 즉각 공개” 촉구/통외위­‘전쟁가능설’ 발언 신뢰성 싸고 공방 14일 국회 정보위원회와 통일외무위원회에서는 황장엽씨의 기자회견 내용이 최대 이슈로 떠올랐다.야당 의원들은 ‘황장엽 파일’에 대한 수사 진척상황에 촉각을 곤두세우면서 연말 대선에 이용될 가능성을 경계했다.특히 야당 의원들은 황씨의 전쟁 발발 관련 발언의 신뢰성에 문제를 제기하면서 ‘황장엽 파일’을 포함해 황씨 발언 내용 전체의 신빙성을 깎아내리려 애쓰는 모습이었다. ▷정보위◁ 권영해 안기부장을 출석시킨 가운데 비공개로 진행된 정보위(위원장 김종호)에서 야당의원들은 ‘황장엽 파일’의 명단공개와 정치인 포함여부를 끈질기게 물고 늘어져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않겠다”는 답변을 얻어냈다.야당 의원들은 또 황씨가 국회 정보위·통일외무위·국방위 연석회의에 출석할 것을 요구했다. 국민회의 박상천 의원(전남 고흥)은 미리 배포한 질의서에서 “황장엽의 발언은 과연 신뢰할만한 것인지 전문기관의 검증이 필요하다”고 문제를 제기하고 “수사 대상중 정치권 인사는 몇명이고,여당이나 야당 관련자는 각각 몇명인지 즉각 밝혀야 한다”고 촉구했다.박의원은 “김현철 등 저명인사들이 황씨를 만났다는 언론보도가 있는데 이들도 ‘구두 리스트’에 포함되느냐”고 물었다.같은 당 천용택 의원(전국구)은 “지난 6월 김영삼 대통령의 미국방문때 김정일의 권력승계후 남북정상회담을 주선해줄 것을 클린턴 대통령에 요청하고 미북간 독자접촉을 양해했다는데 이것이 사실이냐”며 “핵무기 보유 진술의 정보가치와 증거가 무엇이냐”고 따졌다. 권안기부장은 “안기부는 현재 전쟁이 발발할 구체적 징후를 파악하지 못했으며 황씨의 ‘5∼6분내 서울 잿더미’발언은 북한 고위층에서 자주 사용하는 표현으로 큰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고 밝혔다.권부장은 정보위 출석에 앞서 “미국과 일본을 제외한 우방국들이 황씨 면접을 요청해오면 정보협력 차원에서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통일외무위◁ 권오기 부총리 겸 통일원장관을 출석시킨 통일외무위(위원장 정재문)에서는 황장엽 발언의 진위확인을 놓고 공방이 벌어졌다.자민련 이동복(전국구)·이건개(〃),국민회의 이협(전북 익산을)의원은 “황장엽 진술 가운데는 군사적으로나 상식적으로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황당한 내용이 적지 않다”며 “특히 전쟁 발발 주장은 50년동안 존재해 온 전쟁 가능성이 ‘임박설’로 바뀌고 있다”며 발언의 진위 여부를 가릴 것을 촉구했다. 신한국당 김도언 의원(부산 금정을)은 “황씨의 발언은 부정적인 측면과 긍정적인 측면이 있으나 전쟁만은 막고 안보취약 요소를 확인시키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었다”고 지적했다.권부총리는 ‘황 파일’에 대해 “정치적 관점에서 봐서는 안된다”고 밝히고 “황씨는 정치·철학적으로 높은 위치에 있었지만 전술 및 정보를 취급할 위치에 있지는 않았다”며 황씨 발언의 신빙성에 문제가 있음을 시인했다.
  • 권 안기부장 “황장엽 파일 수사중”/국회상임위 정책질의

    ◎김정일 9∼10월께 승계 확실 국회는 14일 통일외무 정보위 건설교통위 등 9개 상임위 전체회의 등을 열어 소관부처별 정책질의와 법안심의를 계속했다. 권오기 부총리는 이날 통일외무위에 참석,야당의 황장엽씨 국회 출석증언 요구에 대해 “현 시점에서 황씨를 국회에 불러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라고 밝혀 거부의사를 분명히 했다.〈관련기사 6면〉 권부총리는 “황장엽 파일에 대해 수사당국의 조사가 진행중”이라고 말하고 수사를 대선과 무관하게 진행해 달라는 야당 의원들의 요구에 “정치적 관점에서 봐서는 안되며 이렇게 될 일이 저렇게 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정치적 목적과는 무관하게 수사가 진행될 것임을 강조했다. 권부총리는 북한군 후방이동과 대북식량 연계지원 방침을 묻는 질문에 “4자회담이 열리면 여러가지 얘기가 나올수 있을 것”이라며 “정부는 휴전선 북쪽 방향으로 1백㎞이내에 북한 병력의 3분의 2가 배치된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 북 “또 홍수나면 끝장” 수방 비상

    ◎수해 겹치면 식량난 심화… ‘승계’도 지연/군인 등 동원 제방보수·조림사업 부산 장마철에 접어든 요즘 북한 지도층이나 주민들은 하늘에 새카만 구름만 몰려와도 가슴이 철렁할 것이다.심각한 식량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올 농사에 잔뜩 기대를 걸고 있는데,지난 95년과 96년 잇따라 큰 비가 내려 막대한 수해를 입었던 악몽의 7월하순이 성큼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그래서 북한 전역에서는 수방대책을 마련하느라 비상사태에 들어간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13일 현재까지 북한엔 아직 이렇다할 큰 비가 내리지 않았으나 북한당국은 전체 경제부분에 걸쳐 만반의 홍수대책을 세우라고 연일 다그치고 있다.올해에도 수재가 겹친다면 지난 2년간의 홍수피해마저 제대로 복구하지 못한 상태에서 올 농사에 치명타를 가해 식량난 해결이 막막해지기 때문이다. 선전매체들의 보도에 따르면 북한 전역에서는 제방공사,배수시설 및 저수지 보수 등 수해대책 마련에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최근 중앙방송은 평북 철산,선천군에서는 배수문 공사 및 강하천 제방보수에 주력하고 있으며 용천,박천,영변,운산군에선 고인 물을 뺄 수 있게 배수·양수설비 준비작업에 힘을 쓰고 있다고 보도했다.특히 황북도 금천군에서는 근로자,군인들이 대거 동원돼 제방공사에 쓸 채석기지를 조성하고 보보수와 제방 잔디입히기 투쟁을 전개하고 있다고 전했다.또 노동신문은 올 장마는 시작과 끝이 뚜렷하지 않고 변화가 심하다면서 강우량이 많은 지역들에 대해 집중호우에 철저히 대비할 것을 촉구했다. 북한당국이 이번 장마 기간중 가장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시기는 이달말이고 그 대상지역은 지난 2년간 비피해가 컸던 청천강 상류와 대동강 중류,임진강 중류 및 하류지역 등이다.‘1백년만의 큰 물’이었다는 지난 95년의 경우에도 7월26일부터 8월4일까지 많은 비가 내린데다 96년에도 7월하순에서 8월초사이에 폭우가 쏟아졌다.그 당시 대표적인 수해지역은 이들 강을 끼고 있는 희천,철원,토산지방 등이었다. 2년 연속 엄청난 수해를 경험한 북한은 지난 95년부처 뒤늦게나마 나무심기,사방사업 등 자연재해를 막기 위한 국토관리사업에 나섰다.주체농법시책에 따라 경작지를 늘리기 위해 산기슭을 개간,다락밭으로 만드는 바람에 웬만한 산은 모두 민둥산이 되어 비가 조금만 내려도 산사태가 나고,토사가 흘러 하상이 높아져 강이 쉽게 범람하는등 치산치수를 소흘히 한 폐해가 갈수록 엄청나게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그러나 아직도 수해복구가 되지 않은 지역이 많은데다 치산치수사업마저 시작단계에 지나지 않아 큰 비가 내렸다하면 피해는 막심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북한 당국은 그동안 수재에 대해 인재가 아닌 천재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지난 93년에 냉해,94년 우박피해에 이어 95,96년의 수해등 연 4년간 자연재해를 입은 것은 사실이다.그러나 95,96년의 비피해가 엄청났던 것은 불가항력적인 요인도 없지 않았지만 삼림을 훼손한 인재에 더 큰 원인이 있다는 것이 북한문제전문가들의 지배적인 분석이다. 올해 북한의 벼 작황은 이상 고온으로 약간의 피해는 있으나 현재로선 비교적 양호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그러나 이번에 많은 비가 내려 농작물에 많은 피해가 있을 경우 지난 8일로 김일성 3년상을 끝내고 오는 10월쯤 공식적으로 권력을 승계할 것으로 예상되는 김정일의 정치일정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북한문제전문가들은 전망하고 있다.「만풍년」을 구가하며 승계행사를 대대적으로 치르면서 총비서 등에 취임하려는 정치시나리오가 뒤틀릴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 “황장엽씨 회견시기 적절”

    ◎북 반발 불구 4자예비회담 큰타격 없어/여 후보 결정전 회견… 정치이용 오해 불식 황장엽씨가 내외신 기자회견을 한지 13일로 사흘이 지났다.회견이 끝난 뒤에도 ‘현 시점에서 황씨의 회견을 하는게 바람직했느냐’는 일부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이에 대한 정부 당국의 반응은 “시의적절한 회견이었고,만족할만한 성과를 거뒀다”는 것이다. 미국·중국 등은 오는 8월5일 4자회담 예비회담을 앞두고 북한이 황씨 회견에 자극받아 과격 반응을 보일까 우려했었다. 공안당국의 고위관계자는 “미국 등 관련국의 우려는 기우였다고 판단된다”고 말했다.그는 “황씨의 회견직후 북한은 ‘4자회담이 공중분해될 수도 있다’고 위협했으나 공식기관이 아닌 대남흑색선전방송 ‘민민전’을 통해 밝힘으로써 큰 무게를 싣지 않았다”고 분석했다.다른 고위 정부관계자도 “북한이 4자회담 예비회담을 거부하려는 아무런 징후도 보이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 관계자들은 “지금 황씨 회견을 하지 않았다면 8월이후 4자회담 본회담이 무르익을때 더욱 회견하기가 어려워질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김정일이 후계승계를 공식화하기 이전에 황씨 회견을 하는게 우리로서 부담이 덜하다는 측면도 있다. 국민정서로 볼때 황씨의 회견은 오히려 뒤늦은 감이 있다.황씨가 서울에 도착한 것은 4월 중순.보통의 귀순자와 달리 황씨의 회견이 늦춰지자 ‘위장망명한 것 아니냐’ ‘전향을 거부했다’는 등 온갖 추측이 나돌았다.남북분단후 최고 거물 망명자의 생생한 ‘발언’을 듣고 싶어하는 분위기도 있었다.황씨 회견을 계속 늦추면 ‘정부의 직무유기’라는 비난이 나올만했다. 국내정치적 면에서 황씨 회견후 ‘황장엽 파일’존재 여부가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그러나 정부·여당이 이를 대선에 이용하려 했다면 12월 선거직전에 회견을 했을 것이라고 정부관계자는 말했다.여당 대선후보가 결정되기전 회견을 하는게 정치적 이용의 오해가 가장 적다는 얘기다.
  • 북녘서도 서울말씨 유행/북송교포 간주 외화상점 등서 후한 대접

    ◎통제 강화 불구 일반주민·학생에도 번져 북한 전역에 ‘서울말씨’의 사용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고 한다.주된 이유는 북송교포들 때문.서울말씨를 쓰는 북송교포들은 경제력 수준때문에 외화상점 등에서 비중있는 고객들로 분류된다.이 때문에 일반 북한 주민들이 교포들의 말씨를 흉내내고 있다는 것. 귀순자 증언에 따르면 북한주민들중에서도 거간꾼,외화상점 판매원,장사꾼들이 열성적으로 서울말씨를 배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호텔이나 외화상점에서 ‘서울말씨’를 사용하면 북송교포로 간주돼 후한 대접을 받기 때문이다.물품거래시에도 상대방에게 본인의 경제력을 간접적으로 나타낼수 있어 효과가 있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들이 흉내내는 서울 말투는 주로 억양쪽이다.거칠고 투박한 북한식 억양대신 부드러운 서울 억양을 따르고 있다.언어형태면에서 어미를 ‘∼니까’에서 ‘∼요’로 바꾸어 언어의 딱딱한 맛을 없애는 것이다. 이러한 말씨는 장사꾼들에게는 물론이고 이제는 일반주민과 학생들에게까지 퍼져나가고 있다.평소 대화에까지 ‘서울말씨’가 이용되고 있을 정도라고 한다. ‘서울말씨’의 사용이 확산되자 북한당국도 단속에 나섰다.김정일은 지난 96년 “일부 평양 시민들이 서울말을 사용하고 있는데 이는 결코 공화국 전통의 말씨가 아니다.서울말을 쓰는 사람은 엄격 통제 하겠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이런 지시는 거의 효과가 없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북한의 상류층들이 ‘서울말씨’의 사용을 세련미의 척도로 여기고,자기 과시를 위해 서물말을 은근히 쓰는 풍조의 확산정도가 ‘단속’만으로 막기에는 너무 퍼져있다는 것이다.
  • 국토환경부장에 조영남(북녘 뉴스라인)

    지난해 북한 정무원 부서로 신설됐던 국토환경보호부의 부장직은 조영남(전 사회안전부 국토관리총국 총국장)이 맡고 있음이 최근 노동신문의 보도로 확인됐다. ○인삼재배 특별지역 지정 북한은 수출주종품인 인삼을 대량 생산하기 위해 개성의 개풍·판문군을 비롯해 평양과 황북 일부 지역의 인삼재배지들을 특별지역으로 지정,관리하고 있다고 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 최근호가 보도했다. 북한과 러시아는 10일 오는 8월부터 평양과 블라디보스토크 사이에 직항로를 개설하는데 합의했다고 러시아방송이 이날 보도했다. ○군지원사업 강화 촉구 북한은 최근 “군대가 강해야 가정의 행복도 있다”고 주장하며 각단위는 물론 가정들에 대해 ‘군지원 기풍 확립’과 ‘군지원 사업 강화’를 촉구하는 등 군사 중시 분위기 조성에 주력하고 있다. ○개량종 염소 보급 착수 식량난에 따라 풀먹는 집짐승의 사육을 적극 권장하고 있는 북한 은 국가과학원 주도로 가축연구사업을 추진해 수익성이 높다는 개량종 염소를 개발,보급에 나섰다고 민주조선 최근호가 밝혔다. ○‘총폭탄’ 정신교재 발간 북한은 김일성 사망후 지난 3년동안 각급 학교 학생들에게 총폭탄정신과 자폭정신 등을 집중 주입시키는 김정일우상화 학습교재들을 대량발간,보급해왔음이 최근 노동신문 보도로 확인됐다.
  • 조총련 탈퇴 재일교포 상공인 51명/북한 비판모임 결성

    조총련(재일본 조선인총연합회) 산하 상공단체의 전 간부들이 최근 북한정부를 비판하는 단체인 ‘북한의 민주화와 재일의 내일을 생각하는 모임,민주 무궁화’를 결성했다고 일본의 마이니치신문이 13일 보도했다. ‘민주 무궁화’는 지난 7일 조총련 탈퇴자를 중심으로 한 51명으로 결성됐는데 조총련을 재정적으로 지원해온 상공관계자들의 행동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고 신문은 전했다. 이 모임의 대표간사에는 조총련 효고현 니시고베상공회 부회장 등을 역임한 김정일씨(56)가 취임했다.
  • 한국배제 미와 직접거래 속셈/북한 레이니·샘넌 초청 왜 했나

    ◎식량지원·경제제재 완화 등 교섭 예상/미,남북긴장 완화만이 해결책 전할듯 제임스 레이니 전 주한대사와 샘 넌 전 미 상원의원의 방북은 형식적으로 ‘사적방문’의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이미 한미 양국간 정부 고위급에서 사전양해가 이뤄져 실질적으로 ‘특사방문’의 성격을 띤다. 지난 2월 주한미대사를 그만둔 레이니는 한반도사정을 잘 아는 인물로 한국정부로부터 신뢰를 받고 있는 인물이며 지난 1월 상원직에서 물러난 민주당출신 넌 전 의원도 상원 군사위원장을 지낸 군사안보분야 전문가로 클린턴 행정부의 핵심인사였다. 따라서 이들이 북한의 초청에 응해 방북하는 것이지만 한·미 양국의 대북정책을 충분히 전달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미국 인사들을 특별히 초청한 것은 한국을 배제하고 미국과 직접 대화창구를 마련,한국을 외교적으로 고립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북한은 이들에게 식량지원문제를 집중적으로 제기하는 한편,미국의 대북경제제재 완화,양국 수교교섭재개 등도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레이니와 넌은 ‘구조적인 식량문제 해결에 도움을 줄수 있는 곳은 한국뿐으로 이는 남북관계의 긴장완화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미북관계도 이 속에서만 개선될 수 있기 때문에 북측은 우선 4자회담 등 남북대화에 응해야 한다’는 입장 등 4자회담에 관한 입장만을 전할 것으로 알려졌다.하지만 이번 방북에서 이들이 보다 폭넓은 미북간의 현안들을 논의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한편 레이니와 넌이 이번에 접촉할 북측 고위당국자 가운데 김정일도 포함되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 20여개의 땅굴 초전 봉쇄해야/지만원 군사평론가(전문가 기고)

    북한은 3일안에 전쟁을 종결할 수 있다고 장담한다.인민군의 역량과 한국군의 대응태세만을 보면 그럴수 있는 확률이 매우 높다.그러면 북한은 왜 전쟁을 유보하고 있을까.주한 미군이 작전권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남침은 바로 미국과의 싸움이기 때문에 미국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가 가장 큰 변수다.김정일로서는 어제의 판단과 오늘의 판단이 다를 것이다. 북한은 이틀만에 서울을 완전 포위할 수 있다.6·25때 보다도 쉬울 수 있다.이 경우 서울에 사는 수만명의 미국인 및 일본인들은 인질이 될 것이다.미국은 인질에 매우 약하다.인질을 구출하기 위해서라면 어떤 대가도 치를 것이다. ‘서울 불바다’의 무기는 분당 1만발 이상을 수도권에 작약시킬수 있는 대구경포와 미사일들이다.이에 대한 현실적인 대응책은 없다.군은 포병 레이더로 발사대의 위치를 탐지해 공격한다고 하지만 수십개의 레이다로 어떻게 수천개의 포를 모두 찾아낸다는 말인가.포병 위치 한 곳을 레이다로 찾아 포를 쏘기 위해서는 적어도 30분이 필요하다.그러나 30분이면 서울은이미 불바다가 됐을 것이다. ○북 핵무기 보복 우려 스커드와 같은 미사일은 패트리어트로 막는다고 하지만 불과 수십대의 패트리어트로 수백대의 미사일 발사기에서 무차별로 날아오는 포탄을 어떻게 막아낼 수 있는가.북한은 11만명의 남침용 특수군을 갖고 있다.군은 이들이 저공 침투기인 AN­2기를 타고 침투할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300대의 침투기로는 두시간동안 잘해야 3천명을 나를 수 있을 뿐이다.AN­2기보다 더 무서운 것은 땅굴이다. 20여개의 땅굴에서는 시간당 4만명의 특수군이 쏟아져 나올수 있다.그들은 우리의 제1방어진지를 한국군이 도착하기 휠씬 전에 점령할 것이다.제1방어선이 무너지면 전방에 아무리 많은 한국군이 있어도 이들은 엉거주춤한 상태에서 포위되고 그 결과 서울은 불과 몇시간 내에 점령될 수 있다. 인민군이 유류와 식량 부족으로 지속적으로 공격하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하지만 그들은 전방에 배치돼 있는 한국군의 식량 유류 탄약을 빼앗아 쓸 구체적인 방법을 알고 있다.지난번 강릉 침투사건에서 보여준 바와 같이 인민군과 한국군 사이에는 전장의 시스템화·정신력·속도·훈련 등에서 엄청난 격차가 존재한다.북한은 한국군의 약점을 너무나 자세히 알고 있다. 지금의 전쟁은 2주일이상 끌어서는 안된다.미국으로부터 증원군이 한국에 오려면 2개월이상 걸린다.그래서 북한은 “미 증원군이 기지개를 펴기도 전에 전쟁을 끝낼수 있다”고 생각한다.반면 한국군은 아직도 전쟁을 동원력에 의존하고 있다.이는 엄청난 시대착오다.그렇기 때문에 인민군은 한국군을 얕본다. ○군비경쟁 한계 도발 그러나 미국이 ‘윈윈전략’을 고수하는 한 북한은 핵무기와 같은 대량 파괴무기에 의해 초전 보복을 받을수 밖에 없다.이는 동맹국에 대한 국제적 책임을 이행하면서 미국의 인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한 거의 유일한 방법이다. 초전보복만이 장기전으로 인해 발생될 엄청난 전화를 막을수 있다.말할수 없는 참상이 벌어진다해도 테러국으로 지탄받고 있는 북한에 동정을 보낼 나라는 없다.그래서 북한은 전쟁도발을 망서릴 수 밖에 없다.그러나 망설임이 곧 포기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러면 근본적인 해결책은 무엇인가.전력증강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한국군은 인민군보다 4배나 많은 예산을 써왔지만 앞으로 10년이 지나도 한국군은 북한군의 전력을 따라잡지 못한다.그리고 군비경쟁은 민족의 공멸을 자초한다.상호 감군을 위해 주변국의 중재를 강력히 요청해야 한다. 정부는 공격용 무기를 후방으로 배치하도록 협상하겠다고 한다.그러나 후방으로의 배치는 엄청난 시설투자를 요구한다.북한이 쌀을 받는 대신 최대의 안보수단을 일방적으로 양보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다.
  • 국민 안보의식 강화해야/경남대 극동문제연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는 지난 10일 황장엽씨의 기자회견에서의 증언관 관련,“국민의 안보불감증 불식,안보의식 강화와 북한의 전쟁도발에 대한 군사적 대비책 점검 및 한·미 안보동맹관계 공고화의 계기로 삼아야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극동문제연구소는 12일 ‘황장엽과 북한의 새로운 인식’이라는 평가보고서를 통해 탈냉전기 유일 초강대국인 미국과 한국과의 튼튼한 안보공조체제 등 한반도 및 동북아의 안보상황 환경에 비춰볼 때 북한이 전쟁을 일으킬 수 있는 개연성은 적은 것으로 보이지만 그들이 미증유의 경제난을 겪고 있고 주민들의 불만이 팽배한만큼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야 하며 “북한을 달래 개혁과 개방의 길로 나서도록 유도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극동문제연구소는 또 황씨가 기자회견에서 한국인들이 잘 모르는 여러가지 충격적인 내용을 밝혔다고 전제하고 ▲북한이 남침을 북침으로 가장하려 한다 ▲미국의 개입을 막기 위해 자살조를 준비시키고 있다 ▲개전초기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려하고 있다 ▲북한에는 대립세력이 없으며 모든 것이 김정일 한사람에 의해 완벽하게 장악돼 있다 ▲북한은 아무리 힘들어도 개혁 개방정책을 실행에 옮기지 않을 것이라는 등의 증언을 예로 들었다.
  • 잘못알고 있는 북한실상(사설)

    ‘황장엽 기자회견’은 우리에게 많은 충격을 주었다.그중에서도 남쪽의 우리가 가진 북한에 대한 ‘우스운 선입견’을 한심해하는 그의 말은 우리를 무안하게 한다.가령 “강경파와 온건파의 대결구도”에 관한 질문에 그는 명쾌하게 대답한다.“국가도 당도 인민도 심지어 민족까지도 ‘김정일’의 사유물인데 ‘김정일파’ 하나뿐이지 강경파 온건파가 어디있는가.”우리식대로 그려놓은 ‘북한’이 얼마나 한심한 ‘허구’인가를 그는 분명하게 증언했다. 북한은 최근 주체연호를 사용한다고 발표했다.김일성의 생년을 원년으로 하는 연호다.군주주의 일본이 명치소화에 이어 평성을 쓰듯 그것은 왕권의 상징이다.명색이 공화국인 북한이 개인의 생년을 연호로 쓴다는 것은 그들이 김일성왕조의 나라임을 공식 선언하는 일이다.부자세습도 왕권의 계승임을 밝히는 일이다.이것만으로도 황씨의 증언은 보완된다. ‘남북교류’의 구호를 목청높게 외치는 우리 재야단체에는 유난히 ‘민’의 이름을 확보한 것이 많다.관의 주도를 배제하고 민간이 주도해야 바람직한 운동이 가능하다며 학생,지식인 예술인들이 만든 단체들이다.북한 돕기를 하겠다는 종교인들 역시 우리처럼 북쪽에도 민간기구의 활동인이 있다고 믿는 것같다.그러나 황씨의 증언은 그런 것을 웃고 있다. 그들이 상대하는 북측의 단체들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를 그의 말은 일깨운다.‘회담’으로 일을 풀자든가 ‘온건파’가 목소리를 낼수 있게 해야 한다는 이론이나 “거기도 사람사는 땅”이라는 전제로 출발하는 우리의 북한정서에 찬물을 끼얹는다.주색에 곯고 ‘바보’처럼 둔해서 곧 망할 일 밖에 남아있지 못한 것이 김정일이라는 생각도 ‘남쪽의 미신’임을 황씨는 밝힌다.이런 안일하고도 무책임한 북한관을 불식하는 일이 이제 절박해졌다.‘파업’이나 ‘데모’에 대해 절망감을 느끼는 듯한 그에게서 그 절박성이 더욱 선명하게 읽혀진다.
  • 황장엽 회견을 보고/3인 특별 좌담

    ◎안보의식 해이·국론 분열되면 언제든 남침”/북은 개혁·개방­전쟁의 갈림길… 대화 시급/강한 군사력·북 포용정책 함께 추진할때 □참석자 ·전인영­서울대 교수 ·현성일­전 북한외교관 ·황승길­본사 국제전략연 위원,북한문제 전문가 지난 4월 우리나라로 망명한 ‘주체사상의 창시자’ 황장엽씨가 10일 기자회견에서 밝힌 ‘김정일의 전쟁시나리오’는 내외에 엄청난 충격을 안겨주었다.황씨 회견을 계기로 북한의 무력도발 가능성과 김정일의 노선,그의 발언이 남북관계에 미칠 영향 등을 전인영 서울대교수,현성일씨(귀순 전 북한외교관) 홍승길 서울신문사 국제전략연구소 연구위원 의 좌담을 통해 알아본다.〈편집자주〉 ▲전인영 교수=황씨 기자회견은 망명이후 첫 공개증언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가장 관심을 끌었던 부분은 역시 북의 전시관리체제였다.결국은 전쟁이 발발할 것이라는게 황씨의 입을 통해 확인됐다.우리사회에는 안보불감증이 널리 퍼져 있지만 북한에서는 우리와 다른 긴장된 생활을 하고 있으며 무력을 이용한 통일을 줄곧 추구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다시 한번 입증된 셈이다. ○북의 전쟁의도 분명 ▲홍승길 연구위원=어제 회견에서 정부의 대북정보가 거의 들어맞은 것으로 밝혀졌다.특히 북측의 전쟁의도,전쟁수행역량이 분명하게 밝혀져 국민들의 안보의식을 고취시키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긍정적 의미도 있었으나 몇가지 부정적 영향도 우려된다.황씨가 남북대화에 거부적 입장을 보여 대화위주의 대북전략에 차질을 빚지 않을까하는 점과 황씨를 한사람의 귀순자로 보기보다 영웅시하지 않는가 하는 면이 걱정된다. ▲현성일씨=황씨 증언의 핵심은 전쟁발발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남한측에 있다는 부분이다.북한이 식량난에 허덕여 이판사판으로 불장난을 할 수 있다는 관측도 많이 나오기는 하지만 김정일은 승산없는 싸움은 결코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전교수=김정일의 전쟁시나리오가 92년 소련해체 직후 북한의 위기상황에서 나왔다는 점에 놀랐다.당시는 북한이 수세로 남북대화에 응했던 시기이기 때문이다.또 북한이 간단하게 남한을 공략할 수 있다고 인식하는 것과 전쟁의지가 강력하고 일관성있게 유지된 것도 놀랍다. ▲현씨=전쟁에 관한 얘기는 북에 있을 때도 많이 들었다.황씨가 이번에 말한 것은 단계별 전략으로 매우 구체적이었다.북한내에서는 전쟁발발시 무엇보다 미군개입의 차단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미군 1천명만 죽이면 미국내에서 반전기운이 싹터 북한이 유리하다고 여기고 있다.또 전쟁이 나면 미사일로 주한 미군부대와 일본 오키나와 미군기지를 먼저 침공한다는 말도 하고 있다. ○전쟁방지 우리 책임 ▲전교수=이미 전쟁발발을 경고한 상황에서도 남북간에 전쟁이 일어난다면 그 위험성을 간과한 남측의 책임이 더 크지 않겠냐는 황씨의 발언을 실감있게 들었다. ▲홍위원=김정일에 대해서 민족발전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에 결국 한반도에서 전쟁을 피하는 것은 우리가 져야 할 책임이다.어떻게든 전쟁을 피해야 한다.황씨는 논문 ‘조선문제’에서 대북개혁전략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페쇄·고립정책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기자회견에서는 북을 개혁·개방으로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그의 견해가 왜 바뀌게 됐는지 배경설명을 했어야 했다. ▲전교수=국가위기는 힘이 약하고 국론이 분열돼 있을때 주로 온다.6.25전쟁도 마찬가지다.안보 없이는 경제발전도 국민복지도 없다는 사실을 전 국민이 알아야 한다.북한처럼 전쟁을 수단으로 여기는 나라와 대처하고 있는 현실에서는 안보의식의 강화를 통한 국론통일을 꾀해야 한다. ▲홍위원=황씨는 안기부,정보기관,군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이를 사시적 관점으로 보거나 당리당략으로 해석해서는 안된다. ▲현씨=황씨가 김정일에 대해 무계획하고 조급하고 독단적이라고 말했다고 해서 그가 앞뒤 좌우 안가리고 덤벼든다는 말은 아니다.그에게 있어 김정일체제 유지는 지상과제다.그가 사회주의를 살리겠다고 마음먹었으면 진작에 개혁개방을 했을 것이다.때문에 남북관계는 남한 국민 모두와 김정일의 대결로 보아도 무방하다.국민 여론에 의해 움직이는 남한사회와 달리 북한은 김정일 개인의 결정으로 좌우되기 때문이다.남한 여론이 불안해질때 김정일은 대남통일전선전술의 적기로 여기고 전쟁을 감행할 것이다. ▲홍위원=기존의 대북정책이 남북경쟁차원에 입각한 평화전략이었다면 앞으로는 통일실현을 위한 대북전략으로의 방향전환이 필요하다고 본다. ▲전교수=황씨의 말 가운데 전쟁이 난다면 그 책임은 남한에 있다고 한 말은 매우 인상적이다.군사적 대응과 유연한 외교적 대응을 함께 해나가야 한다.오랜 시간을 두고 교류 협력을 꾀하는 한편 강한 군사력을 키울 필요가 있다.그러면서도 우리는 북한을 포용하는 정책을 펴나가야 한다.햇빛과 바람은 함께 필요한 것이다. ▲현씨=현재 북한의 권력구조,특히 당과 군,보안기구,외교분야는 이미 80년대 김정일의 의도대로 구축된 것이다.따라서 김정일이 주석직을 승계한다해도 전면적 물갈이는 없을 것이며 권력개편도 의미가 없다.부분적 인사개혁은 가능할 것이다. ○북도 주변환경 적응 ▲전교수=북한의 특수성을 인정해야 한다.김정일은 개혁개방의 필요성을 다 인정하고 있지만 정치적 위험부담 때문에 못하고 있다.소극적,보수적이다.그러나 주변환경의 변화때문에 변할수 밖에 없다.북한은 현재 최소한의 것만 받아들이면서도 상황에 따라 흘러가고 있다.앞으로 생존을 위해 주변환경에 적응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급류를 건널때 저절로 몸이 하류쪽으로 밀려내려가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현씨=김정일의 가장 큰 목적은 체제유지다.남북이 긴장관계에 있어야 주민의 불만을 대외적으로 희석할 수 있고 국제사회로부터 원조도 끌어들일수 있다.그러나 이같은 수단이 체제유지연장에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경제를 회생시킬수는 없을 것이다.따라서 김정일도 뭔가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것은 알 것이다.아마 다음해 남한에 새정권이 들어서면 북한에서 주동적으로 대남정책을 펴려 할 것으로 예상된다. ▲홍위원=기본적으로 북한은 군사에 치중하고 있다.집권층에 포진하고 있는 호전적인 군사강경파는 남한내 좌익세력의 약화로 더욱 조바심하고 있다.김정일의 성격상 대담한 대남정책들이 튀어나올 수도 있다. ○개혁·개방 어려울것 ▲전교수=황씨가 기자회견에서 강경파도 온건파도 없다고 얘기했는데 개인적으로 이 부분이 아쉽다.사람이 여럿이면 입장 차이가 있게 마련인데 김정일 혼자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것은 있을수 없는 일이다.북한내 세력구조에 대해서는 좀 더 깊은 정보가 필요하다. ▲현씨=김정일은 현재 속으로는 개혁의 필요성을 절감하면서도 겉으로는 개혁을 주장할 수 없는 상황이다.그나마 북미 외교관계를 통해 나진·선봉지역에 투자를 유치하려고 하지만 이는 외화벌이에 한정될 뿐 진정한 개혁·개방은 아니다.지난 90년초 북한은 나진·선봉지역에 상당한 기대를 갖고 있었지만 결국 제대로 되지 않았다.한국 미국 일본이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김정일이 개혁,개방을 시도하는 것은 김일성이 추진한 자립적 민족경제정책의 실패를 인정하는 것이고,이렇게 되면 ‘김일성의 후계자’라는 김정일의 유일한 카리스마가 무너지게 된다.따라서 개혁·개방정책은 김정일의 목숨과 관련된 것이다.김정일은 현체제를 유지하면서 경제회생책을 쓰는수 밖에 없는 것이다. ▲전교수=북한은 개혁개방이냐 전쟁이냐의 갈림길에 서있는데 황씨는 전쟁쪽이라는 비관적전망을 제시했다.전쟁은 반드시 피해야 한다.북한이 개혁개방으로 인한 두려움을 덜 느끼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안도감을 느껴야 대화도,군축도 하는 것이지 불안하면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접근법이 중요하다. ▲현씨=개혁개방은 그 결과보다 주민들이 두렵기 때문에 하지 않는다.개혁개방을 했을때 주민들이 당장에는 모르지만 나중에는 하고 싶은 소리를 하면 막을 길이 없어서다. ▲전교수=앞으로 1∼2년내 북한붕괴 등 극적인 변화가 있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일단 21세기로 넘어가야 변화가 있을 것이다.북한의 붕괴가능성을 평가하려면 여러 분야에서 북한이 어느 정도 해이해졌는가 하는 지표를 잘 지켜봐야 한다.아직까지 북한은 동원체제로 자발적 정치참여가 없고 경제가 마이너스성장을 거듭해 취약하지만 군·경이 버텨주고 있다.또 외교적으로도 탈냉전시대에서 북한에 압력을 가하는 국가는 없다.미국 일본도 북한과 관계개선을 위해 노력중이며 중국도 최소한 북한에 식량 등을 지원하고 있으며 러시아도 관계복원을 원하고 있다.북한의 정치문화도 여전히 봉건국가적인 순종형이다.북한은 경제적으로 회생가능성이 없는 아프리카와 달리 가능성이 있는 국가다. ▲현씨=북한이 가까운 장래에 붕괴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김정일이 죽을 때까지는 갈 것 같다.최근 체제유지의 근간인 당비서,보위부 위원들까지 체제에 대해서 비난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주민들의 조직적 반체제 움직임은 결코 허용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김정일이 곱다기 보다는 저희들이 살기 위해 그런 일은 안할 것이다.김일성이 “땅과 물과 인민만 있으면 안 망한다”고 평소 이야기했던 부분이 이를 뒷받침한다. ▲홍위원=북한의 우리식 사회주의를 유지하는 바탕은 수령과 당의 일심단결인데 아직 북한에는 사상과 통치체계와 통제가 있기 때문에 이 우리식 사회주의가 유지되는 것이다. ○1∼2년 현체제 유지 ▲전교수=공개처형등 철권으로 다스린다면 앞으로 1∼2년간은 큰 저항없이 체제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4자회담의 주대상은 한국보다는 미국이기 때문에 한국에 대해 비난은 하면서도 현재의 대외정책기조를 그대로 몰고 갈 것으로 보인다.특히 극심한 식량문제 때문에 섣불리 행동하지는 못할 것이다. ▲전교수=황씨의 회견은 북한 고위핵심인물의 증언을 직접 접할 수 있었다는데서 큰 의미를 찾을수 있다.무게있는 말은 정책수립에 참고해야 한다.단순히 전쟁 없이 잘되리라는 희망적 생각만 하지 말고 안보불감증을 극복할 수 있는 대책을 세우지 않는다면 앞으로 큰 비극이 일어날수도 있다.
  • 주요 조사결과/체제에 염증… 민족적 차원 망명 결심

    ◎‘리스트’없이 국내외 접촉인물 제시 ■위장 망명설 황장엽에 대해 의혹이 갈 만한 부분인 망명동기,“귀순도 망명도 아니다”라는 입국시 발언내용,망명결심에서부터 결행에 이르기까지의 과정 등에 대해 현재까지 면밀히 조사한 결과 위장망명으로 판단할 만한0사항이 드러나거나 확인된 사실이 없음.황장엽은 김정일 독재체제에 대한 염증과 조국통일에 기여해 보겠다는 민족적 차원의 고뇌가 작용하여 망명을 결행한 것으로 판단됨. ■사상 전향문제 황장엽은 60년대 후반부터 마르크스·레닌주의의 변증법 원리와 인간중심의 철학적 원리를 접목시켜 주체사상을 이론화·체계화하기 시작하였으나 74년 김정일이 주체사상을 김부자 우상화 논리인 혁명적 수령관에 결부시키며 김부자 독재를 위한 도구로 전락시키자 사상적 갈등과 환멸을 느끼게 되었으며 소련과 동구 사회주의 몰락 이후에는 자신이 본래 구상했던 주체사상에 대해서도 이론적 오류와 현실적 한계성을 인식하기 시작하였음.이와 함께 북한공산체제로는 민족의 발전과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기약할 수 없다는 확신하에 보다 자유롭고 번영된 대한민국에 대한 동경심을 포지해 왔으며 더우기 국내 입국 이후 남한의 발전상을 직접 확인하면서부터는 북한공산체제는 몰락할 수 밖에 없다는 확신과 함께 주체사상에 대해서도 실패를 자인하고 있음 결론적으로 황장엽은 북한공산독재체제를 거부하고 자유민주체제인 대한민국으로의 망명의 길을 선택하였고 그동안 주체사상을 통해 김부자 체제보위에 앞장서 온데 대해 깊은 자책감을 느끼고 있어 더 이상 사상전향 여부를 논할 필요는 없음. ■‘황장엽 리스트’문제 황장엽이 “북한의 지하조직이 상당수 남한에 침투해 있으며 남한내부동향에 대한 보고서가 김정일에게 올라오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한 것은 사실이나 “남한에 고정간첩 5만여명이 암약하고 있다”든가 “이들의 명단을 가지고 있다”는 등의 말은 누구에게도 언급한 바가 없는 것으로 일단 확인되었으며 조사과정에서 이른바 ‘리스트’같은 것을 제시하지는 않았음. 그러나 황장엽은 대남 공작부서에서 근무하지는 않았지만 오랜세월동안 북한 고위층의 지위에 있으면서 득문한 북한의 대남공작관련 사항과 평양 및 해외체류시 접촉했던 국내외 인물들에 대해 진술한 바 있음. 이에 따라 안기부는 황장엽의 이러한 진술내용과 관계당국에 존안된 각종 정보자료를 토대로 대공수사활동의 연장선상에서 이를 추적중에 있으며 그 결과 대공혐의가 밝혀지는 대상에 대해서는 당연히 소정의 법적절차에 따라 처리해 나갈 것임.
  • 황씨 망명동기/김정일 독재·주민탄압에 염증

    ◎“김일성 부자체제에 동조” 양심의 가책 황장엽씨는 망명동기를 ‘북한의 무력남침 위험성을 폭로하고 평화통일에 기여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황씨는 ‘국민들에게 드리는 글’을 통해 “우리는 남한 동포들에게 전쟁의 위험성을 알져주지 않고 오늘의 엄중한 상태를 보고만 있는 것은 자기 생명의 모체인 민족을 배반하는 범죄가 된다는 양심의 가책을 받아 남행을 결의하여 나섰다”고 설명했다. 안기부도 황씨의 망명동기를 ▲김정일 독재체제에 대한 염증 ▲독재체제에 동조해온 양심의 가책 ▲전쟁을 막고 민족의 장래에 기여하려는 신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안기부 조사에 따르면 황씨는 김정일이 극심한 식량난을 아랑곳하지 않고 전쟁준비와 주민탄압을 자행하는데 염증을 느끼기 시작했다.또 통일의 길을 열기 위해서는 하루 빨리 김정일정권이 망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이처럼 북체제에 염증을 느끼고 있던 황씨는 지난해 2월 모스크바대에서 개최된 세미나에서 주체사상에 대한 선전을 소홀히 했다는 이유로 일부 당간부들로부터 비판을 받았고 김정일로부터도 책임추궁을 받았다.
  • 황장엽·김덕홍 주요 진술내용:Ⅳ

    ◎외세개입 없을땐 100% 적화통일 가능/나진·선봉에 남한기업 투자 원치 않아 ▷북한 대외관계◁ ○외교정책·전략 소·동구붕괴 이후 북한 대외정책의 핵심은 ‘체제고수’라는 기본목표하에 내부를 공고히 하면서 대국(주변4각)들과의 마찰을 가급적 피하고 이들을 이용해 나가는 전략임. 외교정책 결정은 소·동구 붕괴이전에는 ①외교부 수립 ②당 국제부 심사 ③김정일 비준 ④외교부 하달순이었으나 90년대 들어 김정일이 직접 관장한 이후부터 외교부가 주도하고 있음. 외교정책 주도인물로는 김영남·강석주 등을 들수 있는데 외교부가 주관한 대미 핵협상이후 강석주가 김영남을 제치고 김정일에게 직접 보고하는 등 신임을 받고 있음. 북한지도층은 일본으로부터 배상금을 받아 경제난국을 타개하려고 했는데 일·북 관계에 진전이 없자 미국과의 관계가 먼저 개선 되어야 함을 깨달았음. 북한이 미국과의 관계에 주력하고 있는 것은 중국의 간섭을 견제하면서 대미관계 개선을 통해 일본을 따라오게 하고 한국과 미국을 이간시키기 위한 것임. 김정일을 UN을 미국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부속기구로 보고 있으며 대 UN외교활동 중점을 주한미군 철수와 국제기구로부터의 지원획득에 두고 있음. ○해외 주체사상연구소 70.10 김일성과 단독 면담하여 주체철학 확립사업을 승인받고 4년간에 걸친 집필활동을 통하여 김일성 명의로 주체사상을 집대성 하였음. 최근까지 주체사상 연구소 활동을 위해 연간 100∼120만불의 예산을 사용해 왔음. 주체사상의 세계전파를 위해 78.4 동경에서 주체사상 국제연구소르 창설(초대 이사장 야스이 카오루,현재는 이노우에 슈하치)하고 매년 자금을 지원해 왔으나 최근에는 북한의 자금난으로 2년전부터 조총련에서 지원하고 있음. 현재 지역별 주체사상연구소는 인도,불란서,페루,나이제리아에 있으며 동 조직에 대한 자금지원을 하지 않고 있지만 과거에는 아주 주체사상연구소(인도)에 매년 3∼4만불,중남미 지역 1만불,불란서에 5천불 정도 지원한 바 있음. 해외주재 북한대사가 주체사상 전파업무를 담당하게 되어 있으며 일부지역에는 전담요원이 파견된 바도 있으나 이들 조직의 활동보고를 받거나 평가를 내리지는 않았음. ○주요국과의 관계 김정일의 대미접근 의도는.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통해 시간을 벌면서 「평화적」이라는 대외명분도 세우려는 것으로서 중국의 개혁·개방의 길로 나아가는데 대해 골탕을 먹이고 남한을 고립시키는 등 여러책략을 기본고리로 미국과 상대하려는 것임. 김정일은 미국을 타도대상인 적인 동시에 이용할 대상으로 인식하고 있어 미국과의 수교가 상당기간 성사되지 않을 것으로 보며 수교시 주한미군 철수문제가 제기되고 북한의 남한 고립정책이 더욱 강화될 것임. 북한이 미국과 미사일 관련 협의에 수표하더라도 종잇장에 불과할 것이므로 이를 지키지 않을 것임. 내부적으로 ‘미·북 핵합의’를 “신출귀몰한 김정일의 지시에 따라 승리한 것”으로 선전하고 있으며 대부분 주민들은 정보가 차단되어 있어 모두 이를 믿고 있는 실정임. 김정일이 “일본에 대해서는 고자세를 취함으로써 일본을 끌어 당기라”고 지시한바 있으며,대일관계 개선 목적은단지 사죄와 보상금을 얻어내는데 있음. 일본과의 수교회담은 처음에는 일본과 직접하면 된다고 생각했으나 차츰 미국의 승인없이는 안된다고 생각하게 되어 대미관계 개선에 우선을 두고 있음. 일·북 수교회담이 조만간 재개될 가능성이 있으며 1백억불정도의 보상만 받을수 있으면 당장이라도 수교할 것임. 북한과 중국과의 관계는 계속 유지될 것이며 북한은 미국과의 접근을 원치않는 중국을 자극하여 보다 많은 지원을 얻어내려 할 것임. 북한은 한·중 수교이후부터 중국을 자본주의 국가로 인식하고 있으며 외교적 사안을 전혀 통보하지 않는 등 다소 불편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음. 북한은 소련붕괴이후 중국의 영향력으로부터도 벗어나려 하고 있기때문에 중국측에서 김정일을 수차 방중 초청해도 거절하고 있음. 북한은 남쪽을 무력으로 통일시키는데 러시아로부터 지원을 받을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크게 비중을 두지 않고 있음. 러시아가 한국의 자본과 러시아 기술을 이용하여 북한의 공장을 정상화시키려고할 경우 북한은 설비는 받아들일 것이나 남쪽인원은 받아들이려 하지 않을 것임. 북한은 대만에서 돈을 끌어들이기 위해 대만과의 관계개선을 추진하고 있음. 북한은 홍콩의 중국반환에 대비하여 보위부 반탐국장을 단장으로 한 대표단이 작년 여름 총영사관 설치문제와 관련하여 홍콩을 방문하였다고 함. 91년경 김일성은 “아프리카 국가들은 줄때 뿐이며 자본주의 국가나 남조선에서도 받아먹고 있어 ‘밑빠진 독에 불붓기’”라면서 “이제부터는 동남아에 중심을 두어야 한다”고 언급하였음. 김정일도 21세기를 태평양 시대라고 보고 동남아를 중요시하면서 필리핀·호주 등과의 수교를 추진하고 있음. 김일성은 91년경 교시를 통해 동남아 다음으로 브라질,페루 등 중남미 국가 야당과의 사업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는데 이는 이들국가의 여당은 접근하기 어렵기 때문인 것으로 보임. ○조총련의 대북송금 실태 김정일은 조총련의 송금을 최대의 명줄(중요자금원)로 간주하고 있으나 80년대에는 송금액이 6억달러 정도였으나 지금은 정확한 액수를 알수 없으며 빠찡코,부동산 등의 수입이 감소하여 많이 줄어들고 있음.또한 북한은 조총련에 교육비 명목으로 선전차원에서 자금을 보내기는 하지만 직접 투자는 하지 않고 있으며 지난번 일본 지진시 북한이 위로금을 보냈을때 ‘황’이 “뭐 그렇게 많이 보내느냐”고 하자 통전부 간부가 “보내면 몇배로 되돌아온다”고 대답한 바 있음. 지난 91∼92년도에 수교교섭시 일본으로부터 배상금을 1백억불 이상 받아낼 계획이었음. 김일성 생존시에 배상금을 쓰는 문제에 대해 조금 논의를 했는데 경제부문이 아닌 다른부분에 쓰려는 것으로 들은바 있음. ▷대남 및 남북관계◁ ○북한의 대남 기본전략 과거 김일성은 대남혁명전략으로 남한내 이른바 ‘민족해방 인민민주주의혁명’을 일으킨 다음 연방제로 통일하는 평화적 방법과 전쟁이라는 비평화적 방법을 병행하였음. 김정일은 오직 무력에 의해서만 통일이 가능한 것으로 보고 있으며 남한에 비해 경제력은 열세이나 일본 등 외부간섭이 없으면 100% 힘에 의한 적화통일이 가능하다고 믿고 있음. 극심한 식량난에도 아랑곳없이 군사력 강화는 물론 무력통일을 위한 사전 기반조성의 일환으로 주한미군 철수·남한 내부와해 및 지하당조직 공작을 추진하고 있음. 특히 최근에는 남한과 해외의 군사정보 수집을 위해 별도 공작기구를 설립하는 등 군관련 공작에 주력하고 있음. ○연방제통일전략(합작통일전략) 북한의 기본 대남전략은 ①남한은 내부적으로 와해시키고 ②무력으로 밀고 나가자는 것이며 현재 ‘남한정세가 정치적 문제·학생데모 등으로 혁명의 좋은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고 인식하고 있음. 북한이 대남 강경노선을 유지하는 것은 김정일이 “아버지의 뜻을 이어 무력으로 통일해야 한다”고 결정한데 따른 것이며 남북관계에서 온건파가 발붙일 자리는 없음. 북한의 연방제 통일전략은 외국 등 외부의 간섭을 배제한 가운데 남한내에 혼란을 일으키고 인민 봉기에 의한 정권을 수립한 후 합작하겠다는 것으로 속임수에 불과함. 김정일은 개방을 하면 체제가 무너지고 자신도 죽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공식권력승계를 하더라도 대남정책에는 변화가 있을수 없고 있지도 않을 것임. ○대남정책 입안 및 집행절차 대남 공작사업은 대남사업을 전담하는 당 소속 통일전선부·사회문화부·작전부·조사부와 인민무력부 정찰국에서 각각 자체계획을 수립,김정일의 비준을 받아 집행하고 있음. 공작부서간 상호 업무협조는 김정일의 직접적인 통제아래 이루어지므로 김정일 이외에 어느 누구의 지휘나 협의·조정없이 자체적으로 수행함. ○남북대화 북한은 남북대화를 ‘적과의 전쟁’으로 간주하여 모든 전략을 김정일의 결재하에 추진하고 있음. 남북대화 전략은 노동당 통일전선부에서 수립하며 동 전략에 따라 조평통·정무원 등 관계자로 구성된 회담대표단이 이를 수행함. 90년 남북 고위급 회담에 응했던 것은 남한을 안심시키고 국제적 이미지를 좋게 하자는 의도였으며 당시 연형묵 총리는 로봇에 불과했음. 94년 남북 정상회담을 추진한 것은 김일성이 서울을 방문할 경우 지지하는 사람이 많아 유리할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며. 회담목적은 연방제통일과 남북 경제교류 문제를 논의하려는 것이었음. 4자회담은 잘 응하려 하지 않을 것이며 쌀을 준다면 나올 수는 있겠으나 딴 이야기나 하며 시간을 끌 것임. 북한이 ‘3+1’회담을 주장한 이유는 중국의 조선문제에 대한 간섭을 싫어하기 때문임. 북한 고위인사 대부분중 대미협상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으며 대미협상이 김정일의 권위와 위상을 높이는 것으로 보고 있으나 4자회담 참석에는 반대하고 있음. 조선기독교연맹 위원장 강영섭은 통일전선부 사람들이 작성해주는 것을 읽는 허수아비에 불과하며,북한에는 종교를 믿으면 곧바로 통제구역으로 쫓겨남. 민간급 접촉은 김정일의 지시로 통전부에서 전담하고 있으며 남한사회를 교란시키기 위해 재야단체 등을 반정부 투쟁에 끌어들이려는 유인술책임. 또한 당국간 대화 거부입장을 정당화 하여 국제사회의 비난을 피하고 국내 일부단체의 대북접촉을 부추겨 통일국론을 분열시키면서 경제지원 등도 얻어내 보려는 속셈임. 남북경협은 대외경제위 산하 ‘대외경제협력 추진위’가 주관하고 있으며 동 기구는 크게 나진·선봉투자,금강산 개발,남한 기업인 접촉 등 3가지 업무를 담당함. 최근 언론에 보도된 바와같이 비단섬을 경제특구나 관광특구로 개발하려고 하는것은 중국인을 대상으로 1일관광을 시키는 정도일 것이기 때문에 경제발전에 도움이 되지는 못할 것으로 봄. 북한이 나진·선봉지역을 개방한 것은 폐쇄정책을 고수하고 있다는 국제적 비난을 모면해 보기 위한 것으로 남한기업의 투자는 원하고 있지 않으며 남한기업인에게는 경영권을 절대로 주지 않을 것임.
  • 황장엽·김덕홍 주요 진술내용:Ⅲ

    ◎획일적 계획경제 체제가 경제파탄 초래/‘죽도록 일해봐야 소용없다’ 인식 일반화/김정일 “개혁·개방하면 망한다” 맹신 ▷북한 경제분야◁ ○경제난 원인 북한경제가 파탄상태에 직면하게 된 원인은 기본적으로 물질적으로 자극을 무시하고 정치적 자극을 우선시함에 따라 노동자들이 일한 만큼 평가받지 못하고 있어 “죽도록 일해도 소용없다”는 인식이 일반화 되었으며 생산물 가격을 수요와 공급,그리고 가치법칙을 무시한채 중앙에서 일방적으로 결정하는 획일적인 계획경제 체제에 연유함. 그러나 보다 현실적인 요인으로는 67년이래 경제·국방 병진정책의 지속적 추진으로 군수공업에 너무 많은 투자를 하고 있어 민수부문과의 불균형 상태가 지속되고 있고 김부자 개인 독재정치의 후과로 비경제적인 대기념비 창조물건설 등에 너무 많은 재원을 낭비함으로써 자원을 탕진한데다 소·동구권 붕괴로 이들로부터의 원조중단과 경화결제 요구에 따른 수입 원자재 획득이 곤란한 점 등을 들수 있음. ○경제난 실상 북한의 현 경제는 일제시대 보다도 더악화된 ‘마비상태’라는 표현이 가장 적절함. 완충기(’94∼’96)는 기만에 불과하고 차기 경제개발계획 수립은 아예 생각할 수 없는 상태로,우선은 지속되고는 마이너스 성장을 정지시키는 것이 급선무임. ○경제통계 과장 실태 공산주의의 제일 나쁜 점은 진실성이 없다는 점으로 당의 이익과 선전,주민 사기양양을 위해 진실을 은폐하고 대외발표를 기만적으로 하는 것이 하나의 습관임. 예산계획 수립시 각부서에서 요구하는 사항이 많아 예상 획득량을 기준으로 작성하기 때문에 계획자체가 과장되고 있음. 최고인민회의에서 대외에 공표하는 예산은 규모가 크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해 연말에 재정부가 당비서회의에 보고하는 것보다 항상 2배이상 과장되며 매년 그 과장 정도가 점점 커지고 있음. ○아편생산 및 판매 실태 북한에서는 80년대부터 양귀비를 ‘백도라지’라고 명명하고 국가적 차원에서 재배를 권장하고 있으며 마약제조·밀매는 비밀을 보장할 수 있는 군·보위부·안전부 등에서 주로 관여하고 있음. 아편정제는 청진 나남제약 공장에서하고 있고 기술부족으로 제품의 질이 아주 낮으며 무역상사 등을 통해 밀매하고 있음. 94.6 정무원 마약담당 책임일꾼은 “동남아 사람들로부터 좋은 종자와 재배방법을 입수하고 판로를 개척할 것”을 지시한바 있으며 96년에는 러시아에서 북한인이 아편을 판매하다 적발되어 국제적 물의를 일으킨 적도 있음. ○최근 식량난 실태 평양지역은 96년에 1일 300g 정도의 식량을 배급하였으나 지방은 배급을 중단한지 오래이며 부족식량은 신주의 등 국경지역을 통해 중국에서 들어오는 곡물을 구해 충당하고 강냉이죽에 풀을 섞어서 연명하고 있음. 96.12 중앙당은 곡물생산량 부족에 따라 “3개월은 국가에서,3개월은 수입 양곡으로,3개월은 직장자체 해결,나머지 3개월은 개인이 자체 조달”하도록 방침을 수립한 바 있음. 95년 홍수피해 이전까지만 해도 김정일은 자존심을 앞세우면서 “항일 빨치산때 풀뿌리를 캐먹었는데 어디가서 구걸을 할것인가”라고 말한 바 있음. 그러나 식량난 해결을 위한 아무런 대책이 없게 되자 외부에 홍수피해를 구실로 대외원조를 요청하게 된 것으며 일부지역에 대해서는 배급실태를 확인할 수 있으나 사전에 다 조작해놓아 정확한 분배감독이 불가능함. ○개혁·개방 문제 김정일은 “개혁·개방하면 사회주의가 망한다”고 매일 말하고 있으며 중국의 개혁·개방에 대해 비난을 많이 함. 김용순·김가남·김국태·한성룡 등 당비서들은 개혁·개방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으나 이를 이야기하면 반동으로 취급 당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말을 하지 못함. 중국식 농협개혁은 비판받기 때문에 고려하지 않고 있으며 중국 견학후에도 나쁜 점만 보고하고 있음. 작년에 실시한 분조관리제 개선안은 농민들이 자주 제기하던 문제로서 일정량만을 국가에 납부하고 나머지는 농민들이 나누어 갖는 제도로서 새로운 개혁조치가 아니라 과거부터 있던 규정을 그대로 적용한 것에 불과하며 과거 10년간의 평균 생산량을 기준으로 하여 목표량을 산정하였으나 비료를 주지않아 생산목표를 달성한 농장은 10개 미만임. ○북한·중국간 경제협력 관계 김정일은 중국이 잘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부하들의 중국 모방을 사대주의로 매도하는 등 중국과의 경제협력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음. 한편 최근 중국측은 북한에 대해 신규거래에 앞서 기존거래에서 발생한 빚을 먼저 갚도록 요구하고 있는 실정임. 중국측은 “북한 봉화화학 공장에 대한 원유공급 계약기간(20년)이 95년 종료되었으니 재계약을 하려면 빚을 다 갚고 하라”고 요구한바 있으나 실제 원유공급 중단 여부는 불분명함. ▷북한 사회분야◁ ○주민의식 성향 북한주민들은 유치원 시절부터 김부자의 말·행동을 무조건 따르는 ‘환상교육’을 받아왔기 때문에 “김정일을 옹호·보위하고 총폭탄이 되는 것”을 삶의 근본적인 요구로 받아들이고 있음. 북한은 김정일을 정점으로 한 수직적 관계만이 존재하고 개인간 횡적관계는 철저히 차단된 봉건사회 구조를 유지하고 있음. 그러나 경제난이 악화되면서 일반주민 뿐만 아니라 주민 통제를 담당하고 초급 당 간부·안전원마저도 일을 하지 않고 오직 먹고 살기 위한 식량구입에만 매달리고 있음. 최근 당간부 등 핵심계층과 대학생들 사이에서“폐쇄정치는 망국의 길,개혁·개방만이 살 길”이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으나 아직 김정일의 잘못을 직접 거론하면서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단계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음. ○인권탄압 실상. 김정일은 “국제사회에서 핵문제·화학무기에 이어 다음에는 인권문제를 들고 나올 것”이라고 말한바 있으며 북한에는 인권관련 법률을 형식상으로 만들어 놓았을뿐 인권자체가 없다고 보아야 함. ‘통제구역’은 56.8 발생한 ‘8월 종파분자사건’(최장익·윤공흠 등의 반김일성 음모)에서 유래한 것으로. 김일성이 “종파분자들은 머리꼭대기까지 잘못돼 있어 가족들과 함께 산간벽지로 보내 격리시켜 살게해야 한다”고 언급한바 있음.최초로 통제구역이 설치된 지역은 58년말 평남 북창군 소재 득장 탄광 이었으나 그 이후에 평양 승호리 등 여러곳에 설치하였으며 처음에는 종파분자만을 통제구역에 보내다가 나중에는 김부자 비난 등 정치범들을 수용하였음. 60년대경 김일성이 “난쟁이들이 종자를 퍼뜨리면 안되기 때문에 한 곳에 모아두라”고 지시함에 따라 함남 정평군에 난쟁이수용소를 설치하여 집단 수용하고 있음. 최근에는 공개처형이 전국에서 집행되고 있는데 92년도에 주민들이 공무중인 안전원들을 구타하자 김정일이 “이제부터는 총소리를 내야겠다.안전원에 손을 대면 무조건 쏘아버려라”고 지시함에 따라 확대되었으며 95년에 외화벌이 명목으로 포르노영화를 만든 것이 문제가 되어 영화부문 간부와 배우등 7명이 평양형제산 구역에서 30만의 군중이 모인 가운데 공개총살된 바 있음. ○범죄만연 실태 80년대 후반부터 사회주의 도덕성이 무너져 각종 범죄가 급증하기 시작했는데 이는 경제적 궁핍이 주원인이지만 젊은사람들이 군대에서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겨야 한다”는 것만을 배워온데에도 원인이 있음. 범죄자 수용시설로는 각 도에 교화소가 한개씩 있고 시·군안전부에는 ‘구류소’가 설치되어 있는데 수용인들은 대규모 토목공사 또는 공장지역에 강제노동인력으로 동원되고 있음. 평양시의 경우 보통강구역에 수천명 수용규모의 제8교화소가 있으며 평북도 신의주 교화소는 여자죄수만수용하는데 미상시기에 남신의주로 이전하였음. 한편 북한당국은 범죄예방·처벌을 위해 각 단위마다 ‘법무생활 지도위원회’를 설치하였는데 군의 경우 군 당책임비서·행정경제위원장·보위부장·안전부장·검찰소장 등으로 구성되며,동위원회에서 모든 범죄자를 처리하고 있음. ○당간부 생활 및 동향 감시실태 김국태·김기남·조명록·김영춘·김용순·이하일·이창선 등 김정일 핵심측근들은 중앙당사 옆에 위치한 아파트에 살고 있는데 이들의 아파트는 일반아파트 2채를 통합한 호화 주거지임. 정치국 후보위원·부총리급 이상은 차량을 지급해 주고 있는데 부총리급은 벤츠 280형·정치국 위원은 벤츠 380형임. 〈동향감시 실태〉 당 간부들에 대한 감시는 일반주민들보다 더 심하며 심지어 집에 도청장치까지 해놓고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고 있음. 당 간부들의 조직생활은 군대보다 더욱 심한데 점심시간에 1분만 늦어도 생활총화시 자아비판을 하도록 하고 있음. 이같이 고위간부들에 대해 엄격한 감시·통제를 하는 것은 김정일이 반기를 들 가능성이 가장 많은 대상으로 의심하고 있기 때문임.
  • 황장엽·김덕홍 주요 진술내용:Ⅰ

    ◎산소 없애 생물 죽이는 ‘기화폭탄’개발 소문/남측 정정혼란때가 전쟁도발 최적기/김정일 전쟁명령 지휘체계 대폭 축소/‘전쟁나면 미국도 사정권’ 승리 장담 ▷북한의 전쟁준비 동향◁ (1)전쟁준비 관련사항 ○김정일의 전쟁관 및 전쟁의지 김정일은 군대가 많고 수십년간 전쟁을 준비해 왔기 때문에 전쟁을 하면 이길수 있다고 생각하며 한국군을 겁내지 않고 있음. 김정일은 김일성이 50% 밖에 독립시키지 못했다면서 자기대에는 무조건 무력통일시키겠다고 하며 “통일조국의 대통령이 되겠다”는 정치적 야욕을 가지고 있음. 북한은 전쟁을 6개월 이상 끌지 않는다고 해서 전쟁물자를 6개월분만 비축하고 있음.북한 특수부대원들에게 한국군 군복을 입혀 북측지역에 침투할 것으로 위장한 후 한국군이 먼저 도발했다면서 서울에 5∼6분동안 포를 쏘아 잿가루로 만든 다음 미군이 증원되기전에 부산까지 밀고 내려가고 미국이 개입하려 할 경우 동경 등 몇개 일본도시를 미사일로 타격하여 불바다로 만들겠다고 위협함으로써 개입을 저지시킨다는 계획을 수립하고 있음 김정일이 권력의 핵심으로 등장한 70년대초부터 모든 부서는 전쟁준비에 주력하도록 해왔으며 특히 91.12 김정일이 최고사령관이 된 이후에는 전쟁분위기가 더욱 고조되었음. 김일성 사망이후 김정일은 수시로 “조국통일의 주력은 군대다.믿을 것은 군대뿐이다.모든 힘을 다해 군대를 지원하라”는 지시를 수시 하달하는 등 오직 전쟁준비에 광분해 왔음. 김정일을 포함한 지휘부는 전쟁시 승리를 100% 확신하고 있으며 일반주민들은 남한군을 「허재비」(허수아비)로 인식하고 있음. 김정일은 “북한이 없는 지구는 존재할 필요가 없으며 북한이 망하게 되면 세계와 함께 자폭하겠다”고 극언하였음. 북한의 김정일 및 당·정·군 고위간부들은 경제력 등은 남한이 월등하나 군사력은 북한이 우세하여 외부간섭(미국)만 없으면 100% 힘에 의한 적화통일이 가능하다고 믿고 있음. 한편 주민들은 극심한 식량난으로 차라리 전쟁이 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음. 62.10 쿠바사태시 김일성은 “형님 지갑돈은 내 지갑돈만 못하다.항상 내지갑에 돈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전쟁준비를 시작,경제건설과 국방건설을 병진한다는 정책을 추진해왔음. 김정일은 64년 김일성대학을 졸업한 후 국방건설 현장을 돌아다니면서 직접 지휘하였으며 그때부터 지금까지 모든 군사분야에 관여해 왔음. 북한은 전쟁이 발발할 경우 평시체제를 그대로 전시에 적용하는 전시형 국가관리체제를 유지하고 있으며 무기생산은 100% 자체 해결하고 있고 전투헬기·미사일·방사포도 대대적으로 생산하고 있음. 63년 김일성을 수행,평강지구(5군단 사령부)를 방문했는데 갱도에서 모든 생활이 가능하고 대포출입이 가능케 되어있는 등 완전 지하요새화가 되어 있었음. 산업분야의 전기공급이 아무리 부족해도 지하군사시설에 사용되는 전력은 절대로 다른 곳에 전용할 수 없음. 평양근교 지하 군사시설의 경우 조명·급수·환기장치 등이 완비되어 있음. 92년 창군 60주년 군사퍼레이드시에 본 모든 장비는 자행식이었으며,군내에서는 남한을 3번 “잿가루”로 만들수 있는 무기를 가지고 있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함. 북한의 특수전 부대들은 부대별로 남한내 미사일기지·공항 등 주요 전략시설에 대한 타격목표를 선정해놓고 있으며 유사시 항공육전대(공수부대)나 쾌속정으로 들어가서 타격하도록 되어있음. 중앙당 간부를 비롯,전 주민들은 군대에 ‘헌납미’를 바치는 등 적극 지원하고 있으며 중앙당에서 군에 대한 간부들의 지원실적을 파악하고 있기 때문에 지원활동에 경쟁적으로 나서고 있음. ○전쟁 도발 시기 과거 북한이 도발의 호기라고 보았던 시기는 ‘4·19’라고 생각하였으나 소련과 중국이 반대했으며 또한 전쟁복구 건설이 겨우 끝난 시기였기 때문에 내려오지 못했으며 지금은 대선문제로 상당히 노리고 있을 것임. 한편 전쟁위기가 높았던 시기는 푸에블로호 사건(68.1)·EC­121 격추사건(69.4)·판문점 도끼만행사건(76.8)때로서 주민들을 모두 소개시킨채 “들어오면 하겠다”는 분위기여서 전쟁이 일어날 것으로 보였음. 미국과 중국의 태도가 문제이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한국의 정정이 더 혼란상태에 빠지는 때가 도발의 최적시기가 될 것이며 남한내 지하조직을 이용,혼란을 조성하는 한편 미국의 군사력이 여타 분쟁지역으로 쏠릴때 도발할 것으로 예상함. 김정일을 비롯한 지도부는 경제가 더욱 어려워지고 민심도 불안해지고 있는 현상황에서 믿을 것은 무력밖에 없기 때문에 전쟁이외에는 출로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음. ○전쟁지휘 체계 및 군사전략 전쟁지휘체계는 종래 ‘김일성→인민무력부장→총정치국장→총참모장’체계로 되어 있었으나 김일성 사망이후에는 지휘계통을 거치지 않고 ‘김정일→총참모부 작전국장’으로 바로 지시가 내려갈 수 있도록 되어있는 등 김정일의 독단적 명령에 의해 전쟁이 발발할 수 있음. 북한은 전쟁 발발시 평시체제를 그대로 전시에 적용하는 전시형 국가관리체제를 유지하고 있어 별도의 전쟁지휘기구가 필요없음. 북한의 전쟁 시나리오는 ‘전략전’전략에 입각,십수만명의 특수부대원을 사전에 투입시켜 미사일 기지·비행장 등 주요시설을 타격하는데 이어 기동전을 통해 남한전역을 장악한다는것임. 특히 김일성 사후 미사일·방사포 등 화력을 통해 단시간내 서울을 비롯한 전략지대를 타격·파괴시킨후 협상을 추진한다는 전법을 세워두고 있음. 김정일은 김일성 사망 2년전에 최고사령부 ‘작전조’와 함께 남침 시나리오를 작성하였으며,동 시나리오를 본 군 지휘관들이 당장 실천에 옮기자고 하였으나 김일성이 인민생활부터 먼저 해결한 다음에 해야 한다면서 유보하였음. 전쟁이전 단계에서는 우선 남한을 미·일·중·러 등 큰 나라와 이간시켜 국제적으로 고립시키고 미군철수를 유도하는 것임. 김일성,“미군만 철수하면 제주도를 떼어주어도 좋다”고 언급 미국이 개입할 경우에는 ‘인간어뢰’와 항공기에 의한 자살특공대 등으로 미항공모함을 몇척 까부셔 미국여론이 조선전쟁 참여를 반대토록 유도하며 또한 장거리 미사일로 일본을 초토화하겠다고 위협하여 미국이 물러서도록 유도할 것임. 북한은 동맹조약에도 불구하고 중국과 러시아가 지원해 줄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고 있으며 다만 북침시에는 중국이 북한을 지원해줄 것으로 믿고있음. ○김정일의 군부장악정도 김정일은 최고사령관(91.2)과 국방위원장(93.4)에 취임,명실공히 군통수권을 장악한 이후 대규모 장성진급 및 3선 감시체계(지휘·정치·보위부) 등을 통해 군부를 완전히 장악하였음. 총참모장조차 김정일의 지시사항만 수행하고 있으며 사소한 반대의견이나 제안을 할 수 없을 정도로 군을 장악하고 있고,조명록(총정치국장),김영춘(총참모장),원응희(보위사령관) 등이 측근으로 활동하고 있음.조명록 총정치국장은 공군사령관을 하다가 김정일이 마음이 곱다고 해서 군 정치책임자로 발탁하였음.김영춘 총참모장은 정치적인 감각이 없으며 전략을 쓸만한 인물이 못됨.오극렬 작전부장은 무력부내에 기반을 갖고 있고 머리가 명석하며 김일성이 총참모장직에서 해임시켰음에도 불구하고 김정일이 당작전부장으로 재기용했음. (2)군사력 증강 관련사항 ○무기개발·생산 및 기술도입 실태 북한의 잠수함 건조는 러시아가 해체한 잠수함에서 회수한 강판을 도입하여 사용하고 부품은 외국에서 도입하여 사용하고 있는데 특히 전자부품 및 장비는 일본에서 도입하고 있음. 김정일은 중국의 무력을 높게 평가하지 않기 때문에 중국으로부터의 무기 또는 무기개발기술을 도입하고 있지않으며 소련의 신형무기를 얘기해도 “그런 것은 다 낡은 것”이라고 무시하면서 설명서를 보지도 않음. 북한은 무기개발을 위해 필요한 외국기술자 초청은 인민무력부가 외교부를 통해 비밀리에 추진하고 있음. ○군수부문 우대정책 지속 67년 제4기 15차 당 전원회의시 경제·국방 병진정책을 제시한 이후 군수부문 우대정책을 지속 실시하고 있음.동 희의에서 주변국가들의 정세를 분석한후 무력통일을 자체의 힘으로 해야 한다고 결정하였음. 김정일의 군수공장 우대 실태를 보면. 각 공장·기업소는 민수에는 일체공급하지 못하더라도 군수부문에는 계획대로 최우선 공급해야하며 그렇지 않으면 군사재판에 회부토록 하였음.군수공장은 정무원과 별도로 당중앙위 군수공업부(비서 전병호)에서 관장하고 있으며 모든 민수공장에도 군수생산 직장(부서)을 설치하였으며 여기에 대한 검열도 군대가 하고 있음.군수생산계획 집행여부를 평가하기 위해 당중앙위 군사위원,정치국 상무위원,도당 책임비서,공장·기업소 당비서 및 지배인 등이 참석한 가운데 ‘당 중앙군사위원회 명령 총화회의’를 개최하여 실적 부진자는 직위고하에 관계없이 문책하고 있음. ○전쟁물자 비축 군수동원총국에서 전쟁물자 비축을 총괄하며 동 총국은 행정적으로 호위총국과 같은 독자적인 기구로서 정치위원이 중장으로 편제되어 있는 등 중요시되는 기관임. 전쟁물자의 수입은 2경제위원회가 외화벌이를 해서 조달하며 정무원 등 다른 부서에서는 관여하지 못함. (3)핵·생화학·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 ○핵개발 문제 김일성은 64년 중국의 핵실험에 대해 “장수가 바지벗고 칼차는 격”이라고 말했던 점으로 보아 당시만 해도 핵무기를 가지려는 의지가 있었던 것 같지는 않음. 84∼85년경 당시 주평양 소련대사가 황장엽에게 “북한이 핵을 개발한다는 말들이 많은데 어떻게 된 것이냐”고 물으면서 NPT가입을 종용한데 대해.황장엽은 “그런게 있겠는가”하는 식으로 대응한후 이를 김부자에게 보고하자 김부자로부터 “묵살하라”는 지시를 받은바 있음. 김영남 외교부장은 85·12 NPT에 가입하고 핵안전협정을 체결(92·4)했으나 군수담당 관계자들은 “NPT 가읍으로 골치가 아프게 되었다”면서 김영남을 비판한 바 있음. 북한이 핵무기를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은 비록 핵무기와 관련시설을 직접 본적은 없으나 92년 IAEA 특별 사찰 문제가 제기되었을때 NPT를 탈퇴(93·3)했다는 점에서 모든 당비서들이 그렇게 믿게 되었듬. ○미·북 핵합의 관련동향 미·북 핵협상시 모든 전략은 김정일이 강석주를 통해 직접 지시했으며 여타기관은 여기에 관여하지 않았음. 북한이 화력발전소 대신 경수로 지원을 요청한 것은 화력발전소는 완공후 유류 등 원료공급 능력이 없는 반면 경수로는 연료인 우라늄이 대량 매장되너 있기 때문이었을 것임. 경수로 건설 관련 남측인력의 대규모 방북시 신포인근을 철저히 통제,북한주민과의 접촉을 최대한 차단할 것임. ○핵관련 북한내 동향 및 기타사항 91·12 ‘한반도 비핵화선언’에 합의한동기는 대외적으로 평화이미지를 과시하고 남한 내부의 핵관련 정책분열을 조장키 위한 것이기 때문에 북한에서는 별다른 의미를 두지 않고 있음. 85·12 NPT 가입은 구 소련으로부터 원자력발전소 건설을 위한 지원을 얻기 위한 것이었음(85·12 구 소련과 440MW 경수로 4기 공급협력협정 체결). 92·4 IAEA와 핵안전협정을 체결한 것과 미·북 제네바 기본합의(94·10)등은 모두 시간을 벌기위한 전략에서 추진되었고 그 결과 북한은 경수로 건설,매년 50만톤 중유 획득 등의 이득을 보게 되었으며 아무것도 잃은 것이 없다고 인식하고 있음. 일부 고위층 간부들은 92·4 IAEA와 핵안전협정을 체결 이후 핵사찰 문제로 인해 대북한 국제정세가 긴장하게 돌아가자 자승자박한 것이 아닌가 하고 외교부에 불만을 토로한 바 있음. ○화생방무기·미사일 개발실태 높은 수준의 화학무기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믿고 있으며 ‘화학무기 금지협약’에도 가입하지 않는다는 것이 북한의 확고한 입장이며 상층부에서는 생물무기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인시기하고 있음.북한은 남침시 미국의 개입을 방지하고자 화학무기가 장착된 장거리 미사일로 ‘일본을 초토화’시키겠다고 위협할 것임. 항간에는 포에 장착하여 발사하면 부근의 산소가 없어져 모든 것이 죽는다는 폭탄(기화폭탄 추정)이 개발되었다는 소문이 있음. (4)대남 군사태도 ○대한국·주한미군 인식 북한권력 핵심층과 군 간부들은 북한의 재래식 전력이 세계4위 수준이며,화학무기는 세계적 수준으로 약점이 없는 부대라고 생각하고 있어 한국군의 능력에 대해 심각하게 여기지 않고 미군만 없으면 전쟁에서 이길수 있다고 믿고 있음. 남한의 함정·항공기 움직임을 적시에 식별·감시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고.남한 국방비가 북한보다 많다고 하지만 이에 상관없이 수도권에 대한 5∼6분 정도의 포공격으로도 잿가루가 된다고 믿고 있음. 지금까지의 전쟁에서는 미국땅에 포탄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앞으로 북한과의 전쟁에서는 미국은 결코 후방이 될 수 없다고 하면서 북한 특공대가 남한과 같이 미국에도 임의의 신간에 침입할 수 있는 것처럼 주민들에게선전하고 있음. 미국이 침공할 경우 인적손실을 감수하더라도 함정·항공기 등을 몸으로 직접 막게되면 미국이 물러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으며 걸프전은 전쟁이 아니라고 하면서 미국과 대응할 수 있는 기술적준비가 다 되어 있다고 함. 91년 걸프전 이듬해 김정일은 미국 무기의 약점을 분석하고 이를 격파하는 영화를 제작,군내 작전국등 지휘부 간부에게 시청케 함으로써 미군도 이길수 있다는 자신감 고취 교육을 실시하였음. 미순양함 1척을 자폭해서라도 폭파시키면 미국내에 반전여론이 만연되어 한국을 포기하게 될 것이며,남쪽을 ‘불바다’로 만들겠다는 말만으로도 남한인민들을 전쟁공포로 떨게 만들수 있다고 믿고 있음. ○팀 스피리트훈련 인식 북한 당·정 간부들은 T/S훈련의 목적이 ①훈련을 진행하다 북한의 방어태세가 허술할 경우 북침하거나 ②한반도에 전쟁 분위기를 조성하여 북한경제를 마비시키기 위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음. 동 훈련기간중 전군의 군사장비들이 상시 기동태세를 유지함으로써 유류난 속에서도 막대한 유류소모가 불가피하고 군 병력의 경제건설 활동도 중잔됨으로써 북한경제에 미치는 피해가 상당함. 특히 93·3 T/S 훈련을 핵사찰 문제로 인해 ‘준전시 상태’를 선포하는 등 최고조의 긴장태세를 유지하였는바 김정일은 집무실 지하에 설치된 작전상황실에서 집무를 하였고 중앙당은 각과별로 1명씩 당중앙위원회에서 비상근무를 하였으며 모든 차량을 징발하여 대기시키고 군대를 갱도에 투입하였음.
  • “북 5∼6분내 서울 초토화계획”/황장엽씨 회견

    ◎북침위장 도발… 미군개입땐 일 포격 황장엽 전 북한노동당 비서는 10일 “한반도에서 한번은 결국 전쟁이 벌어질 것이고 기본적으로 전면전이 될 것”이라면서 “남한정세가 복잡 혼란하고 (남한의) 동맹국이 다른 곳에 역량을 분산시킬 때 북한이 전쟁을 도발할 것이며 (북한은) 지금 대선을 앞두고 기회를 상당히 노리고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황씨는 또 “북한은 특수부대원들에게 한국군 군복을 입혀 한국군이 북측지역에 침투한것으로 위장한 후 한국군이 먼저 도발했다고 주장,서울에 5∼6분동안 포를 쏘아 잿가루로 만든 다음 미군이 증원되기 전에 부산까지 밀고 내려가는 계획을 수립하고 있다”면서 “미국이 개입하려 할 경우에는 도쿄 등 몇개 일본도시를 미사일로 타격해 불바다로 만들겠다고 위협함으로써 개입을 저지시킬 계획”이라고 밝혔다. 황씨는 이날 안기부청사에서 가진 기자회견과 당국의 조사과정에서 이같이 밝히고 “북한은 전쟁이 발발할 경우 평시체제를 그대로 전시에 적용하는 전시형 국가관리 체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무기생산은 100% 자체해결하고 있고 북한 전지역이 요새화돼 있다”고 말했다. 황씨는 또 북한은 “장기전이 되면 남한의 경제력과 우방때문에 불리해지지만 속전속결로는 전쟁에 이길수 있다고 판단,전쟁을 6개월이상 끌지 않는다는 전략하에 전쟁물자를 6개월분만 비축하고 있다“고 밝혔다. 황씨는 북한은 높은 수준의 화학무기를 가지고 있으며 생물무기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말했으며,핵무기와 관련시설을 직접 본적은 없으나 92년 국제원자력기구(IAEA)특별사찰이 제기됐을때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했다는 점에서 모든 당비서들이 핵무기를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됐다고 밝혔다. 황씨는 “북한 김정일은 지난 92년 남침 시나리오를 작성했으며 이를 본 군지휘관들이 당장 실천에 옮기자고 했으나 김일성이 인민생활부터 해결한 다음에 해야한다면서 유보했다고 전했다. 이에앞서 안기부는 황씨에 대한 수사결과 발표를 통해 “황씨는 북한 고위층에 있으면서 득문한 북한의 공작관련 사항과 평양 및 해외체류시 접촉했던 국내외인물들에 대해 진술한바 있다”면서 “황씨의 진술과 관계당국에 존안된 각종 정보자료를 토대로 이를 추적하고 있으며 대공혐의가 밝혀지는 대상에 대해서는 당연히 소정의 법적절차에 따라 처리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 앞으로의 생활/황씨 연구·저술활동 전념할듯

    ◎당국 보호아래 남북문제 자문역 수행 예상 황장엽씨 망명사건은 10일 기자회견과 안기부의 수사결과 발표로 일단락됐지만 황씨는 당분간 ‘보통사람’으로 생활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황씨는 탈북인사 가운데 최고위급 인사이기 때문에 정착에 따르는 보안문제도 고려돼야 한다.따라서 황씨는 87년 KAL기 폭파사건으로 검거돼 전향한 김현희씨처럼 계속 ‘특별한 대우’를 받으며 당국의 보호아래 생활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오는 14일부터 발효되는 ‘북한탈출주민 보호 및 정착지원법’은 일반탈북자와는 달리 ‘국가안전보장에 현저한 영향을 끼칠 우려가 있는 자’에 대해서는 안기부장이 별도의 정착지원시설을 마련,보호토록하고 있다. 황씨는 서울도착 이후 본격화하기 시작한 저술활동에 전념하며 북한체제와 김정일정권을 이해할 수 있는 정보를 더 많이 제공할 것으로 예상된다.또 정부의 대북정책이나 남북관계를 풀어가는데 중요한 자문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보인다. 당국은 황씨의 향후 활동계획에 대해 “통일에 기여하겠다는 본인의희망에 따라 연구에 전념토록 배려하면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자긍심을 갖고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조치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 “상상 넘는 전쟁준비”에 경악/황장엽 회견­각계반응

    ◎주체사상 허구성 확인… 학생운동 변화있어야/황씨 폭로 평화통일에 도움됐으면 10일 전 북한 노동당 비서 황장엽씨의 기자회견을 지켜본 시민들은 “북한은 남한을 말살하기 위해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전쟁준비를 하고 있다”는 말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남한에서는 이를 심각하게 느끼지 못하고 있으며,전쟁 억지와 평화통일을 위해서는 남쪽의 대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지적에 공감을 표시하기도 했다. 이른바 ‘황장엽리스트’와 관련,“구체적인 리스트는 없다”며 넘어간데 대해서는 “구체적인 설명이 없어 아쉽지만 황씨가 북한에서 접촉한 국내외 인사들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통해 국민적 의혹을 해소해야 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서강대 박홍 명예총장은 “참된 민족화해와 통일을 위해서 남한의 사상적 방어가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을 입증해주는 회견이었다”고 평가했다. 서울대 손봉호 교수(사회교육학)는 “북한 권력층이 체제유지를 위해 굶주린 북한 주민들을 전쟁의 공포로 내몰고 있다는 황씨의 발언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면서 “전쟁 가능성이 기정사실화된 만큼 우리는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호철 변호사는 “개인의 영달이 아닌 북한체제에 대한 혐오와 통일을 위한 열망에서 망명했다는 황씨의 설명에 공감한다”면서 “황씨의 지적대로 전쟁 가능성에 대한 경각심을 늦춰서는 안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연세대 김범수군(26·토목공학과 4년)은 “한총련 등 운동권이 추구해온 북한의 주체사상이 허구였음을 확실히 보여준 자리였다”면서 “건전한 대학문화가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북한동포 돕기운동에 적극 나서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황씨의 평양상고 제자인 최재경씨(68·치과의사)는 “선생님의 폭로와 증언이 평화통일을 하루라도 앞당기는데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귀순자 김남준씨(36)는 “황씨가 김정일에 대한 인간적 평가를 하지 않은 것은 북쪽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의도 때문인 것으로 보이나 아쉬움이 남는다”고 피력했다. 이정옥씨(30·주부·인천 남동구 만수6동)는 “북한 정권과 실생활을 폭로하는황씨의 말에서 객관적이고 솔직하다는 느낌을 받았다”면서 “황씨의 발언으로 국민들의 전쟁 불안감이 커진 만큼 정부는 이에 대한 대책을 분명히 밝혀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