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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민조씨 ‘가짜사진 트릭사진’ 출판

    사진은 가장 사실적인 장르다.있는 그대로를 표현한다.그러나 조작·왜곡·합성 등으로 사진의 사실성이 훼손되는 일이 많아지고 있다.‘가짜사진 트릭사진’(전민조 엮음)은 이러한 사진의 허상을 폭로하고 있다. 정치적 목적으로 조작된 대표적인 사진 중의 하나는 북한이 지난 1994년 공개한 ‘백두산의 김일성·김정일 부자’ 사진이다.김정일의 키가 아버지보다작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인데 이 사진에서는 키가 비슷하다. 신문 사진기자 출신의 지은이는 김일성·김정일의 사진을 백두산이 아닌 다른 곳에서 촬영한 다음 각기 오려서 백두산 천지를 배경으로 찍은 사진에 몽타주했다고분석한다. 맥아더 장군이 상륙정에서 내려 바지를 적시며 걸어나오는 유명한 사진에도‘허상’이 있다. 많은 한국 사람들은 이 사진을 인천상륙작전 때의 모습으로 알고 있다.그러나 태평양전쟁 중 맥아더 장군이 필리핀에 상륙할 때 찍은사진이다. 맥아더 장군이 일본군에 쫓겨 이동해 있다가 필리핀의‘코레이돌’을 떠난지 2년 7개월여만인 1944년 10월20일 필리핀으로돌아오는 모습을 담은 것이다. 더욱이 이 사진은 연출된 작품이다.맥아더 장군의 역사적인 필리핀 상륙 장면을 놓친 ‘라이프’지(미국의 사진전문 잡지)의 칼 마이단스 기자를 위해 1945년 1월19일 군함을 동원, 루손 섬에서 상륙 장면을 재현하며찍은 사진이다. 이 책은 그밖에 지난 대통령선거 때 김대중 후보와 김일성을 나란히 있게변조한 사진,멸종되었다고 믿고 있던 한국산 호랑이가 경북 대덕산에 나타났다며 어린이대공원에 있는 호랑이를 보도한 이야기,한국의 악우회(岳友會)등반대가 정상이 아닌 다른 곳에서 사진을 찍고 정상을 등정했다고 발표한내용을 비롯 많은 조작·표절·오보·컴퓨터 그래픽 조작 등을 담고 있다. 지은이는 사진의 이러한 ‘허상’에 우려를 나타낸다.그는 특히 한국 사진기자들이 현장에서 연출을 하지 않으면 사진이 안되는 것처럼 연출사진 중독증에 걸린 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한다.‘연출은 조작과 날조로 이어질 수있으며 한국의 사진 저널리즘이 제대로 발전하려면 지나친 사진 연출이 없어져야 한다.’이창순기자 cslee@
  • 북한 ‘주체음악’ 실상 파헤친다

    KBS라디오(FM 97.3MHZ, AM 972KHZ) 사회교육방송이 방송사상 최초로 북한주체음악의 실상을 파헤친 ‘주체음악,허공에 떠있는 신기루’를 내보낸다.14일 새벽 2시5분. 이 프로는 우리 민요 ‘양산도’와 변형된 북한의 ‘양산도’를 비교하고,보리타작 때 부른 민요 ‘옹헤야’가 ‘풍년을 가져오는 주체농법의 하나’로 활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소개한다.아울러 북한의 인기가요 ‘휘파람’과‘해당화’, 북한 정책가요‘도시처녀 시집와요’와 북한민요‘용강 기나리’등도 들려준다. ‘휘파람’은 북한의 대표적인 대중가요.지난 48년 발표된 시를 80년대 중반 노래로 만들었으며 아직까지 북한주민 사이에 불려진다.이 노래는 ‘복순이네 집 앞을 지날 땐 이 가슴 설레어/나도 모르게 안타까이 휘파람 불었네/휘-휘-휘-휘-휘파람’이라는 가사로 연인의 사랑을 그리고 있다. 이는‘진한남녀간의 사랑’을 노래한 곡이 없는 북한에서 예외적이다. 이와 함께 북한귀순 가수인 신영희와 김혜영 등이 나와 ?김정일이 ‘사랑의 미로’를 잘 부르며 ?한국가요가 ‘연변가요’로 ‘둔갑’돼 북한에서인기를 끌고 있다는 점을 말해준다. 제작진은 북한에서 음악은 주체사상의 확립을 위한 한 수단으로서 중요성을 갖고 있다고 밝힌다.그럼에도 북한음악의 실체는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지않다는 점에 착안.이 프로를 만들었다고 배경을 설명한다.북한 음악은 사회주의적 사실주의를 미학원리로 삼고 있으며,독특한 ‘민족성악발성법(민성발성)’에 따라 빠르고 경쾌하고 밝고 가녀린 목소리를 모든 성악에 공통적으로 도입하고 있다. 연출자인 이희옥PD는 “연변의 민요를 듣다보니 자연스레 북한의 음악에 관심을 갖게 됐다”면서 “주체음악은 주민들에게 희망찬 미래에 대한 환상을심어주려는 북한 통치자들의 의도를 담고 있으나 통일이 되면 신기루처럼 사라질 노래”라고 말했다. 허남주기자 yukyung@
  • 北, 金正日에 처음 ‘각하’ 호칭

    북한은 김일성 사망 이후 5년 동안 유훈통치를 해온 김정일에 대해 ‘각하’라는 호칭을 지난달 초 처음 사용한 것으로 확인됐다. 합동참모본부는 8일 북한이 지난달 2일 비무장지대에서 확성기를 이용해 대남 선전전을 펼치면서 “김정일 각하가 인민군 부대를 시찰할 때 전투력 강화방법을 제시하였다”면서 ‘각하’라는 호칭을 사용했다고 밝혔다. 합참 관계자는 “북한은 올초부터 김정일에 대해 기존의 ‘장군’,‘최고사령관’,‘지도자동지’ 등과 함께 ‘21세기를 짊어질 통일 대통령’으로 불러왔다”고 밝혔다. 김인철기자 ickim@
  • 金日成사망 5주기 추모대회

    8일 김일성(金日成)주석 사망 5주기를 맞은 북한은 온통 그의 짙은 그림자로 뒤덮여 있는 형국이었다.북한체제가 여전히 그의 ‘유훈통치’로 지탱되는 인상이었다는 얘기다.아들이자 후계자인 김정일(金正日)당총비서 겸 국방위원장의 위상이 상대적으로 왜소해 보일 정도였다. 5주기 중앙추모대회는 8일 김일성의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기념궁전 광장에서 열렸다.김정일 당총비서도 참석한 가운데 이른 아침인 6시 50분부터 약 45분간 진행됐다. 북한 중앙방송 보도에 따르면 금수산기념궁전 참배에는 김영남(金永南)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홍성남(洪成南) 내각총리 등도 참석했다.전병호·최태복(崔泰福)·김용순(金容淳) 당중앙위 비서,이을설(李乙雪) 원수,백학림사회안전상,김일철(金鎰喆)인민무력상 등 당정군 고위인사들도 수행했다. 대회의 가장 큰 특징은 군부 고위인사가 처음으로 추모사를 낭독했다는 사실이다.추모사 내용에서도 “적들이 도발하면 무자비하게 격멸소탕하겠다”는 등 ‘화약내음’이 물씬 풍겼다. 군복차림의 조명록(趙明祿)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 겸 군총정치국장은 김주석 사망 후 5년간은 “전례없이 간고하고 준엄한 시련의 시기”였다고 회고했다.이어 이를 김정일 총비서의 ‘선군(先軍)정치’로 헤쳐나갈 수 있었고,나아가 “강성대국 건설의 지름길을 열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북한의병영국가 색채가 짙어지고 있음을 고스란히 보여준 것이다.이는 김정일의 부족한 카리스마와 무관치 않다는 지적이다.배급경제의 붕괴와 식량난 등 최악의 경제난으로 말미암은 체제불안을 군부의존형 통치로 버텨나가고 있다는점에서다. 이날 노동신문 사설은 김 당총비서의 모든 통치활동이 김주석의 유훈에서비롯됐음을 곳곳에서 강조했다. 사설은 “김일성 동지의 유훈은 우리 혁명의 고귀한 지침”이라고 전제,“모든 부문에서 수령의 유훈관철을 위한 투쟁을 힘있게 벌여야 할 것”이라고 독려했다.특히 “강성대국을 건설하려는 것은 수령님의 생전의 뜻”이라고말해 김총비서의 구상으로 알려진 ‘강성대국’이 실은 김주석에 의해 설계된 구호임을 시사. 구본영기자 kby7@
  • [외언내언] 金日成 사후5년

    북한은 7월8일 김일성(金日成)사망 5주기를 맞아 그의 생전 업적을 찬양하는 각종 모임과 행사를 다채롭게 펼치며 추모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키고 있다.특히 올해 5주기는 김일성의 정치적 업적을 제고하는 행사로 일관된 것이 특징이다.올해 최초로 남한의‘열린음악회’ 같은 대규모 TV공개 쇼 프로그램을 개최해 북한 주민들의 추모 분위기를 더욱 돋우었다.해외에서도 태국(泰國)신문에 전면 추모광고를 게재한 것을 비롯해 지난 5월부터 20개 친북국가들에서 각종 추모행사를 벌였다. 또 김일성 시신이 안치돼 있는 금수산궁전 참배객이 500여만명에 이른다고북한 언론매체들이 선전하고 있다.북한은 김일성 사후 그의 카리스마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출생연도를 주체연호로 사용하고 생일을 태양절로 제정하는 등의 방법으로 영생불멸의 신적 존재로 부각시켰다.또 그의 유훈통치를 통해 김정일(金正日)체제를 유지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그러나김일성이 없는 북한의 현실은 그가 남긴 평등의 빈곤 속에서 총체적 위기를맞고 있다.회생불능 상태의 경제파탄과 식량난으로 인한 주민들의 전반적인사상동요,그리고 일련의 탈북현상 등 심각한 내부 위기상황은 체제존립에 중대한 도전이 되고 있다. 김정일에게 상속시킨 북한판 사회주의는 정치적 누수현상이 심화되는 가운데 깊은 터널을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북한체제가 안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점을 해결하지 못할 경우 김정일체제 붕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 일반적 분석이다.따라서 김일성 5주기를 기해 북한이 해결해야 할 정책과제는 북한이 현재 안고 있는 위기요인을 해소하는 일이다.심각한 식량난과만성적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과감한 개혁과 개방을 선택해야 한다.‘이밥에 고깃국을 먹는 인민의 지상낙원’을 약속했던 김일성의 원대한 포부는완전히 실패로 끝나고 말았으며 그가 죽은 이후 남긴 유산은 처참한 빈곤과경제적 파탄뿐이었다. 북한의 이같은 절망적 상황은 철옹성 같은 북한체제의 말기적 위기를 초래했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 힘겹게 진행되고 있다.그러나 무엇보다시급한 정책과제는 진정한 남북화해와 협력시대를 여는 일이다.김일성은 사망 7개월전 지미 카터 전미국대통령과의 만남에서 “북한도 변해야 산다”는 점을 분명하게 강조했다.“북한의 변화는 생존의 선택”이라고 한 김일성의 사실상 유언의 의미를 북한 당국은 교훈으로 실천해야 한다.북한의 그같은변화가 빨리와야 하겠다는 것이 우리의 입장이며,과감한 발상의 전환이 있기를 기대한다. [장청수 논설위원 csj@]
  • [국회 현안별 對 정부 질문] 金日成사망 5주기 북한의 현주소

    8일로 북한은 김일성(金日成) 사망 5주기를 맞는다.그의 그림자는 여전히북한 전역에 짙게 드리워져 있다. 북한의 ‘내일’조차도 그를 떼놓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다.북한 주민들의일상을 규율하는 ‘유일사상’과 식량난으로 요약되는 최악의 경제난을 유산으로 남긴 탓이다. 남북 차관급회담 박영수(朴英洙) 북측 단장은 지난 3일 북한의 구호를 하나소개했다.‘가는 길 험난해도 웃으며 가자’는 선전문구였다. 북한의 엄혹한 ‘오늘’을 이보다 더 적절히 함축할 수는 없을 것 같다.90년대 이후 한계를 드러낸 ‘우리식 사회주의’는 김일성 사후 더욱 빠른 속도로 뒷걸음질쳤다. 김일성이 사망했던 94년 경제성장률이 -1.7%였다.그후 95년 -4.5%, 96년 -3.7%, 96년 -3.7%, 97년 -6.8%를 기록하는 등 점점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었다. 95년 수해 등 잇단 자연재해는 설상가상격이었다.매년 200만t 안팎의 식량부족 사태로 번진 것이다. 북한당국도 자존심을 접고 국제사회에 구호의 손길을 내밀었다.아사자가 적게는 수십만,많게는 200여만명에 이른다는 소문이 나도는 마당임에랴. 북한당국도 자구책을 강구했다.97년부터 김일성 유훈통치를 끝내고 김정일(金正日)을 전면에 내세웠다. 97년 10월 김정일은 노동당 총비서로 추대됐다.이후 북한은 98년 9월 최고인민회의에서 헌법 개정을 통해 주석제를 폐지하고 김정일 국방위원장 중심체제를 구축했다. 그러나 김정일의 지도력은 여전히 취약한 느낌이다.선군(先軍)정치를 강조하는 등 북한의 병영국가 색채가 날로 짙어지고 있음이 이를 반증한다. 북측도 폐쇄체제의 한계를 느꼈던 것 같다.그러나 대외 관계에서는 일차적으로 위험부담이 큰 체제개방보다는 ‘벼랑끝 외교’를 선택했다. 이를테면 핵 등 대량살상무기 개발 의혹을 야기한 뒤 협상과정에서 대가를얻는 방식이다.영변 핵시설로 북­미 제네바 협정을 이끌어냈다.그런가 하면 금창리 지하시설로 미국으로부터 식량지원을 받아냈다. 대남 관계에서는 양면성이 특징이다.이따금 긴장을 고조시키면서도 우리측민간과의 경협을 통해 경제적 실리를 추구하는 방식이다.금강산관광객을 억류하면서도 금강산사업 자체에는 의욕을 보이고 있는 점이 이를 말해준다. 북한의 ‘선미후남(先美後南)’ 노선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미국과는 관계개선을 적극 추구하지만 남한당국과의 대화에는 소극적이라는 점에서다. 오히려 남북관계에 인위적 긴장을 연출하기도 했다.최근의 서해 북방한계선침범사건이 단적인 사례다. 그러나 북측의 제한적인 대외 개방노선은 또 기로에 섰다.한·미·일이 제시한 대북 포괄적 접근안을 수용,개방의 길로 나아가느냐,쇄국정책으로 점진적인 고사의 길로 가느냐의 양자택일의 문제다. 구본영기자 kby7@
  • 남북 차관급회담 우리대표단 철수 안팎

    베이징 구본영특파원 남북 당국간 대화가 다시 때아닌 겨울잠에 빠지려나.베이징(北京) 남북 차관급회담이 좌초되면서 제기된 의문이다. 베이징회담은 그동안 남북 당국간 유일무이한 공식 창구였다.회담의 결실과는 별개로 지속성,그 자체의 의미도 적지않았다.따라서 남북이 재회의 기약도 없이 등을 돌림으로써 남북관계의 장기교착 국면이 예고되고 있다. 우리측은 일단 이날 오전(현지시각)까지 북측이 차기 회담일정을 통보해오길 기다렸다.전날 회담 말미에 북측이 전화접촉으로 회담일정을 논의할 뜻을 비쳤기 때문이다.당시 박영수(朴英洙)북측단장은 “회담이 결렬된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는 전문이다. 그러나 북측은 끝내 반응이 없었다.회담재개의 3가지 전제조건도 견지하겠다는 뜻이었다.즉 ▲서해사태 사과 ▲황장엽(黃長燁)씨의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 비하 인터뷰기사 해명 ▲비료수송 계획 통보 등을 요구하는 등의고자세를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회담 결렬의 책임을 우리측에 떠넘기려는 속셈에 다름아닐 것이다.그렇다면 북측이이번 회담에 임한 의도가 새삼 궁금해진다.가장 그럴싸한 시나리오는 북측이 비료만 챙기려는 속셈이었다는 것이다. 이산가족문제 논의시점에 대한 북측 태도에서 감지된 사실이다.북측은 남측이 지원키로 한 비료 중 미선적분 10만t 인도가 재개되는 시점에 이산가족문제를 ‘협의’하겠다고 나왔다. 우리측 입장과는 정면 배치되는 셈이다.정부는 이산가족문제에 대한 ‘상당한’ 진전이 있을 때 비료 추가지원이 가능하다는 방침을 누차 밝혔다. 따라서 북측이 비공개 접촉 과정에서부터 비료에만 눈독을 들인 채 눈가림용 ‘연기’를 했을 가능성까지 제기된다.마치 이산가족문제 해결에 그들식표현대로 ‘통 크게’ 나설 수 있는 것처럼 바람만 잡았다는 것이다. 물론 앞으로 비공개 접촉으로 차기 회담일정을 잡을 수도 있다.김보현(金保鉉)총리특보-전금철(全今哲)아태평화위 부위원장간 남북 비공개 채널을 가동해서다.그러나 당국간 대화무대가 다시 마련될 때까지 상당한 냉각기가 필요할 것같다. kby7@
  • 李鵬 10월초 訪北

    중국은 리펑(李鵬)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을 단장으로 하는 방북단을북·중 국교수립 50주년 기념일인 10월6일을 전후해 북한에 보낸다는 방침을굳혔다고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가 30일 보도했다. 베이징(北京)소식통에 따르면 중국은 리 위원장의 조기 방북을 통해 양국관계의 회복을 강조하고 김정일(金正日) 노동당총비서의 중국 방문의 길을트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 공산당 서열 2위인 리 위원장의 방북은 북한 수뇌부로선 8년만인 북한 2인자 김영남(金永南)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의 이달초 중국 방문에 대한 답방이다. 황성기기자
  • 閔씨·北감시원 대화내용·사죄문 요지

    민씨 선생님 안녕하십니까.수고가 많으십니다. 감시원 예,고맙습니다. 민씨 저기 바위에 새겨진 첫째 한자(彌勒佛·미륵불의‘彌’)가 무슨 자이지요. 감시원 남조선에서는 한문도 많이 배운다고 하던데 그것도 모르십니까.남조선에서는 무엇을 믿고 있나요. 민씨 저는 불교쪽과 비슷합니다. 감시원 불교쪽인데도 이런 글자를 모릅니까. (이후 잠시 민씨와 감시원은 나이를 화제로 환담) 민씨 저는 정주영 회장님을 존경합니다.말로만 들어보던 금강산에 와보니너무 아름답고 경치가 좋아 흥분이 됩니다.선생님은 정 회장을 어떻게 생각하세요. 감시원 김일성 주석님께서 오랫동안 닦아놓은 것을 남쪽 사람들이 와서 오염을 시켜 싫습니다. 민씨 저는 빨리 통일이 되어서 우리가 금강산에 오듯이 선생님도 남한에와서 살았으면 좋겠어요. 민씨 북한에서 남한의 TV 내용을 본 적이 있습니까. 감시원 예,본 적이 있습니다. 민씨 그러면 남한 TV에서 전철우·김용을 본 적이 있습니까. 감시원 저희 북한 TV도 재미있는데 무엇하러 봅니까. 민씨 전철우나 김용이 TV프로에 가끔 나오는데 유머프로도 재미있게 하고잘 살아요. 감시원 관광증을 주십시오. 민씨 선생님 죄송합니다. 감시원 빨리 관광증을 내놓으십시오. (이후 민씨는 관광증을 압수당했으며 10분 후 다른 여자감시원이 나타나 사죄문과 벌금 100달러를 부과했다.여기서 작성한 사죄문은 ‘금강산관광을 와서 법칙에 어긋나는 행위를 하여 100달러를 낸다’는 내용으로 북측 감시원이 불러주는 대로 작성. 이후 민씨는 관광조장과 함께 출입국관리사무소까지 동행했고 권총을 휴대한 군인 4명이 저녁 8시쯤 민씨를 북측이 임시사무실로 사용하는 컨테이너에 수용했다) - 閔씨 작성 사죄문 요지 북한주민들에게 진심으로 사죄드립니다.김정일 장군께서는 군사분계선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남측과 북측 사이의 타협을 인정하고 관광으로 베풀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저는 공화국에 해가 되는 행위를 하였습니다.그리하여공화국 법에 따라 처리되어야 하나 이렇게 베풀어주신 것에 대하여 감사하고 반성하며 사죄드립니다. 제가 잘못한 행위는 미륵불이라는 한자를 알았는데도 고의적으로 대화를 나누고 싶어 선생님한테 다가갔습니다. (대화 중략) 지금 시간이 흘러 생각하니 북한사람들이 제가 생각했던 것과 달라 심정을다 밝히겠습니다. 북한사람들은 제가 생각하는 그런 분들이 아니고 인정 많고 마음씨 착하고솔직하며 따뜻한 분들입니다.이제서야 그 사실을 깨달았습니다.이 모든 것을 반성하고 깊이 사죄를 올립니다. 1999년 6월24일 민영미
  • 이승만·이기붕·김일성 별장 복원후 안보전시관으로

    강원도 속초 화진포 일대에 있는 김일성·이승만·이기붕 별장이 안보전시관으로 탈바꿈된다.육군은 27일 6·25전쟁 발발 50주년을 앞두고 관광객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고 안보의식을 고취시키기 위해 이들 별장을 원형대로 복원,다음달 15일부터 일반인에게 무료로 개방한다고 밝혔다. 김일성 별장은 해방 직후 건립돼 6·25전쟁 발발 이전까지 김일성이 김정일과 함께 여러 차례 이용했던 곳으로 지하 1층,지상 2층으로 복원돼 6·25전쟁 및 김일성부자 우상화실태 등에 관한 각종 역사자료를 전시하게 된다.김일성이 사용했던 응접실 세트와 전화기,라디오,찻잔,주전자,옷걸이 등도 진열된다. 이승만 별장은 이 전 대통령의 침대와 서재,두루마기,친필 휘호,석·박사학위증 등의 유품을,이기붕 별장은 부통령에서 3·15 부정선거,4·19 혁명에이르기까지 정치 역정을 보여주는 사진을 각각 전시한다. 김인철기자 ic
  • 閔씨 귀환이후 한반도기류

    베이징 남북 차관급 1차회담이 끝나고 금강산 관광중 억류된 민영미씨가 돌아온 이후 남북관계는 ‘조정기’에 들어섰다고 보여진다.각종 남북협상에몇가지 중요한 고비가 남아 있어 그 결과에 따라 한반도 전체의 정치·군사적 풍향이 달라질 전망이다. 우리 정부로서는 대북 포용정책이라는 큰 틀은 그대로 유지한다는 입장이다.그러나 서해 교전사건,금강산 관광객 억류사건,베이징회담에서 북한측의 지연전술 등으로 ‘상호주의 강화’ 필요성이 대두됐다.북한측에 요구할 것은분명히 한다는 생각이다.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대북 경협 확대의 전제로투자보장협정 등 당국간 보장책을 촉구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당장 우리가 북한측을 ‘컨트롤’할 수 있는 지렛대는 비료 추가 제공,금강산 관광 재개 여부,대북 경협추진 등이다.지난 26일부터 재개될 예정이던 비료 10만t 추가지원은 이미 유보되어 있다.민영미씨가 귀환했음에도 금강산관광은 재개되지 않고 있다. 7월1일 차관급회담에서 이산가족문제의 상당한 진전이 있고,현대와 북측간의 금강산관광객안전보장조치가 조기에 확실히 마련된다면 비료지원과 금강산관광이 재개될 것이다.반대의 경우 남북 긴장은 한층 높아질 것이다.군사적 측면에서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 움직임이 주목된다.따라서 이번주는 남북관계가 정상화의 길로 들어서느냐,아니면 악화되느냐의 갈림길이다. 북한은 베이징 차관급회담 등에서 ‘시간끌기 전술’을 펴면서도 판 자체는 깨려 하지 않고 있다.군부 등의 강경입장을 고려,내부 입장을 조정하고는있지만 경제적 실리 등을 감안할 때 남북관계를 무작정 긴장국면으로만 몰고가지는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일단 우세하다. 우리측이 북한의 지연전술이나 억지에 넌더리를 내면서도 뭔가 분위기 반전을 기대하는 근거도 여기에 있다.오는 7월1일 차관급 2차회담에서는 북측도나름대로 이산가족 카드를 내밀 것이라는 뜻이다.금강산관광객 신변안전보장 문제도 빠르면 이번주중 매듭지어질 공산이 크다. 북한이 서해 교전사태로 입은 피해와 이에 따른 내부적 충격을 가라앉힐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관측도 있다.그러나 북측은 우리측과의 베이징 비공개 접촉 과정에서 비료만 지원해주면 이산가족문제 해결에 “통크게,폭넓게,전반적으로” 임하겠다는 언질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표현법 자체는 북한 최고지도자인 김정일 당총비서겸 국방위원장의‘전매특허’격이다.‘통큰 정치’(廣幅 정치)는 ‘인덕(仁德)정치’와 함께 북한당국이 김정일의 지도력을 찬양할 때 갖다 붙이는 수사다. 때문에 김당총비서가 이산가족문제나 금강산 관광,남북 경협 등에 있어 뭔가 복안을 가지고 있다는 추론도 가능하다.7월1일 차관급회담과 금강산 관광객 안전보장 협상 등에서 북측이 ‘현실’과 ‘통큰 정치’를 어떤 식으로접합시킬지 주목된다. 구본영기자 kby7@
  • 민씨 석방협상과 대가

    억류 6일 만에 풀려난 민영미씨(閔泳美·36)의 극적 석방의 배경에는 만폭호 보상과 별도의 자금지원 등 현대그룹과 북한 측의 ‘이면합의설’이 나돌고 있다.북측과의 별도 ‘이면합의’가 없이는 서해안교전 사태 등으로 ‘궁지’에 몰린 북측을 설득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대북 실무협상의 주역인 현대아산 김윤규(金潤圭)사장은 26일 “일각에서제기된 민씨 석방과 만폭호 보상 연계처리 주장과 정주영(鄭周永) 명예회장의 친서 휴대설은 사실무근”이라고 해명했다.다만 김사장은 “정부의 도움이 큰 힘이 됐다”고 말해 협상과정에서 정부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음을 내비췄다. 그러나 현대측의 공식 부인에도 불구하고 만폭호 충돌사건의 관련사인 김충근(金忠根)현대상선 사장이 민씨가 억류된 미묘한 시점에 북측과 접촉하기위해 중국 베이징에 머문 사실,그리고 그동안 외환사정 악화로 달러벌기에매진해 왔던 북측이 이번 협상에서도 돈을 요구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만폭호 보상문제가 민씨석방 안팎의 댓가로 제시됐을 것이라는 추측을 신빙성있게하고 있다. 한편 만폭호 보상설,정부 도움설과 함께 민씨 석방은 현대그룹 정주영(鄭周永)명예회장과 북한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의 합작품이라는 설도 일각에서 나온다.‘금강산관광은 계속돼야 한다’는 정명예회장의 뜻이 김윤규(金潤圭)현대아산 사장-김용순(金容淳)조선 아·태 평화위원장의 핫라인을 통해 지난 25일 김국방위원장에게 전달되자 ‘즉시 석방하라’는 지시가 떨어진것이 아니냐는 주장이다. 현대의 한 관계자는 “지난 23일 정명예회장으로부터 ‘밀명’을 받고 중국 베이징에 날아간 김윤규사장은 베이징에서 북한측 인사를 거의 만날 수 없었다”고 말해 이를 뒷받침했다.김사장은 평양으로 김용순 위원장과 송호경부위원장에게 급보를 띄웠고 결국 최종 석방합의는 일본 도쿄에서 열린 김용순 위원장과의 담판으로 나왔다는 해석이다. 실제 김사장은 24∼25일 이틀동안 도쿄에 머물렀으며 25일 일본 나리타공항에서 베이징으로 다시 들어가다 언론에 노출됐다. 노주석기자 joo@
  • 北 대표단 면면

    베이징 구본영특파원 베이징 남북 차관급회담 북측 대표단은 회담이 열린 당일인 21일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소속이 2명,아태평화위 소속이 1명으로 확인됐다.단장인 박영수(朴英洙·62) 조평통 서기국 부국장,최성익(崔成益·61) 부장 및 권민(權珉·43) 아태평화위 참사 등이 그 면면들이다. 이들의 직함으로 보아 북한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의 원격 지휘를 받고있는 것으로 보인다.김정일의 핵심측근인 김용순(金容淳) 아태평화위원장겸조평통 부위원장을 통해서다. 박단장은 남북 적십자회담,남북 특사교환을 위한 실무접촉 등에 두루 참가해온 전형적인 북한의 회담 일꾼.94년 3월 특사교환을 위한 판문점 실무회담에서 ‘서울 불바다’ 발언으로 강성 이미지를 남겼다. 최성익도 낯익은 얼굴.85년 고향방문단 교환 때에 이어 90∼92년 1·3·5·7차 고위급 회담 수행원으로 서울에 왔다. 아직 생소하지만 눈여겨봐야 할 인물이 권민 아태평화위 참사.94년 설립된아태평화위는 북한 노동당 산하의 위장 민간기구로 각종 남북 경제·사회교류를 전담한다. 때문에 대표단에 그가 끼어들었다는 것은 북측이 정치선전 이외에 실리적인거래를 원한다는 신호로 봐야할 것같다.권민은 특히 전금철 아태평화위 부위원장과 함께 베이징 비공개접촉에도 깊숙이 참여했다. kby7@
  • [외언내언] 남북체육교류

    현대그룹소속 남녀농구단이 다음달 12일 평양을 방문,15일까지 머물면서 북한 남녀팀과 4차례의 친선경기를 갖는다.이번 남북농구경기는 현대가 지난해 금강산관광사업을 확정지으면서 평양 보통강 주변에 건설키로 합의했던 1만2,000명 수용규모 실내체육관 착공식을 기념해서 열리는 것이다.4월에 착공하려던 계획이 3개월 지연됐다.이번 남북농구경기가 성사된 데에는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의 농구에 대한 상당한 관심과 농구광인 장남 김정남의 영향도 크게 작용했다는 후문이다.남북한의 농구전력은 대표팀간의 경우 한국이 한수 우위라는 평가지만 이번 경기는 한국의 단일팀과 북한의 대표팀간의 경기가 될 것같아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다. 이번 경기에는 미국 프로농구 진출을 시도했던 세계 최장신 리명훈(235㎝)과 여자팀의 이경숙(202㎝)이 출전키로 돼 있어 경기수준에 관심이 쏠리고있다.그동안 소문으로만 떠돌던 리명훈선수의 한국 프로농구 진출문제도 관심사다.이번 평양 남북농구경기는 분단 이후 첫 경기라는 의미와 함께 남북체육교류의 활성화를 위한 기폭제 역할이 된다는 점에서 개최의미를 더해주고 있다.이번 농구경기가 순조롭게 진행될 경우 배구,민속씨름 등 현대가 보유하고 있는 다른 종목의 경기개최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또 8월에는 남북노동자 축구대회까지 예정돼 있어 스포츠를 통한 남북교류의 의미있는 진전이 기대된다. 이번 경기가 성사될 경우 경·평(京·平)축구대회 복원 및 2002년 월드컵남북분산개최 가능성이 커지는 등 남북체육교류가 앞으로 크게 활성화될 것으로 예상된다.올 가을 열릴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남북여자 경·평축구대회도 양측 체육교류강화의 좋은 조짐으로 받아들여진다.특히 이번 평양남북농구경기는 시기적으로 서해교전 사태 이후 열리기 때문에 남북간 화해분위기조성에도 크게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비정치적 체육교류를 통해 남북간의 신뢰를 구축하고 민족화합을 이룩하는 기틀을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남북간에 체육교류가 활성화되면 인적왕래의 물꼬가 트이고 경기를 통한 민족의 일체감을 확인,조성할 수 있다. 또 앞으로 남북단일팀구성으로까지 발전될 경우 세계 체육강국으로의 부상은 물론 민족의 우수성과 저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점에서 남북체육교류는통일과정의 필수적 과제라고 생각한다.다음달의 평양 남북농구경기가 체육교류를 통한 남북화해와 협력이 더욱 넓어지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張淸洙논설위원 csj@]
  • 김평일 평양 귀환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이복동생인 김평일 주 폴란드대사가 최근 북한으로 돌아와 평양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당국자는 20일 “김평일 대사가 1주일 전 폴란드를 떠나 평양으로 들어간 것으로 확인됐다”면서“자세한 이유는 알려지지 않고 있으나 신병문제또는 북한 권력 내 그의 위상변화문제 등 때문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오일만기자 oilman@
  • ‘북한의 실체 어떤 모습일까’ 실상다룬책 잇따라 출간

    북한은 알 수 없는 나라다.서해에서는 무력도발을 일으켜 남북한 교전이라는 긴장상태를 만들어 놓고서도 동해를 통한 금강산 관광은 허용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굶어죽는데도 군사력 강화를 위해 대규모 투자를 계속하고 있으며 세계질서를 주도하는 미국에게도 도전적이다.이러한 북한의 실체를 정확히 파악하기는 매우 어렵지만 어느정도 그 실상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줄만한 책들이 나왔다. 최근에 나온 대표적인 ‘북한 읽기’ 책들은 ‘북한 이해의 길잡이’(김성철·임강택·홍용표 등 10명 공저,박영사 2만원),‘북한법 50년,그 동향과전망’(이장희 등 7명 공저,아사연 2만5,000원),‘1999 민족의 희망찾기’(강정구·법륜 엮음,정토출판 1만원) 등이다. ‘북한 이해의 길잡이’는 통일연구원 연구진들이 몇년동안 북한 및 통일문제 연구와 강의의 경험을 바탕으로 북한식 사회주의 체제의 독특한 작동원리와 정치·군사·사회 등 각 분야의 실상을 이념적 편견 없이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정영태 선임연구위원은 서해에서 무력도발을 일으킨 북한의 군사전략과 관련 “북한은 미사일과 같은 전략무기개발을 지속적으로 추진,대내적으로는주민들에게 강대국의 환상을 심어주고 대외적으로는 한국·미국 등과의 협상력을 강화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아시아사회과학연구원에서 낸 ‘북한법 50년,그 동향과 전망’은 북한의 헌법·형법·민법·경제법(합영법)·소송법·국제법 등을 있는 그대로 소개하고 있다.부록에는 ‘김일성 헌법’이라고 불리는 북한의 개정 헌법과 형법·민법·가족법의 법전을 수록하고 있다. ‘1999 민족의 희망찾기’는 ‘우리민족서로돕기 불교운동분부’가 북한돕기운동을 펴는 과정에서 탈북자들을 통해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북한 식량난의 심각성과 그로 인한 사회변화 등을 소개하고 있다.불교운동본부는 1998년 5월 중국으로 넘어온 식량난민 770명을 인터뷰한 결과,770명의 가족 4,121명중 95년 8월부터 98년 3월 사이에 1,107명(27%)이 사망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히고 북한인구중 300만명 이상이 굶어죽거나 영양실조로 인한 합병증,전염병 등으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했다.1997년 9월30일부터 11개월간 탈북자 1,69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는 김일성·김정일부자와 지도층에 대한 불신의 조짐을 유추할 수 있는 결과가 나왔다.북한이 못살게 된 이유중 지도자의 책임(11.4%),지도층의 실정(12.3%),국가정책 실패(12.9%) 등 36.6%가 지도층과 국가정책 실패 때문이라고대답한 것이다.탈북자들의 생각을 북한 전체로 일반화시킬 수는 없지만 계속되는 경제난으로 김일성·김정일 부자의 신화와 그들에 대한 절대적 신임에균열이 나타날 수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창순기자 cslee@
  • 北 ‘서해交戰 책임 떠넘기기’ 공세

    북한은 서해 해상에서 남북한 함정간 교전이 발생한 지 5일이 지난 19일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을 거론하며 남한 정부를 비난하는 등 한국과 미국·일본등을 상대로 무차별 비난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북한은 19일 관영 중앙방송을 통해 발표한 해군사령부 대변인 명의의 성명에서 서해사태가 남한의 ‘계획된 전쟁도발 책동’에 따라 일어난 것이라고비난하며 사죄를 요구했다. 북한은 특히 “대통령 김대중도 지난 10일 아주 잘한다고 떠벌리면서 현지괴뢰 악당들에게 축하메시지라는 것을 보내주었고…”라며 김 대통령을 직접겨냥했다. 북한은 현정부 출범 이후 방송보도나 성명·담화 등을 통해 남한을 비난하면서도 김 대통령의 이름 대신 ‘남조선 집권층 상층’ 또는 ‘현 집권자’등으로 표현했었다. 북한은 또 19일 평양방송을 통해 “미국이 서해사태를 기회로 남한에 군비를 증강시키고 있으며 이것은 전쟁의 불집을 터뜨리는 데 목적이 있다”며대미 비난공세도 한층 강화했다. 평양방송은 “미제가 괴뢰들을 사주해 서해상에서 충격적인 도발을 감행했으며 그것을 구실로 전면 전쟁을 일으키려 한다”면서 “우리는 제국주의자들의 어떤 침략에도 만반의 준비가 돼 있다”고 주장했다. 북한은 일본도 ‘전쟁도발의 한 가담자’라면서 비난을 퍼부었다. 평양방송은 일본 방위청이 지난 16일 국방부와 긴급 연락망을 통해 정보교환을 한 것 등을 언급하면서 “일본도 이번 전쟁도발의 한 가담자임을 명백히 증명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군 관계자는 북한의 이같은 움직임에 대해 “서해교전 완패의 책임을 남한및 미국·일본 등 외부에 전가하고 대내적으로 긴장 분위기를 고조시켜 주민결속을 다지려는 의도가 담긴 것”으로 분석했다. 한편 19일 평양에서 열린 김정일 당총비서의 당 사업 시작 35주년 중앙보고대회에 김영춘 군총참모장이 참석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됨에 따라 서해 교전과 관련,북한 군부 핵심에 변화가 있는 게 아니냐는 추측을 낳고 있다. 김인철기자 ickim@
  • 中 “햇볕정책 지속희망”

    베이징 연합 탕자쉬앤(唐家璇) 중국 외교부장은 18일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대북(對北) ‘햇볕정책’이 커다란 성공을 거두고 있다면서,이 정책이 지속되기를 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소식통들은 탕 부장이 이날 상오 박정수 부총재를 단장으로 한 새정치국민회의 대표단을 접견하는 가운데 ‘햇볕정책’의 성과를 높이 평가하고,이 정책에 대한 중국정부의 지지 입장을 밝혔다고 말했다. 탕 부장은 이어 서해에서 발생한 남.북 함정간 교전사태에 언급,양측이 상황을악화시킬 수 있는 행동을 자제하고,대화와 협상을 통해 평화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바란다는 중국정부의 입장을 거듭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 노동당 총비서 겸 국방위원장 김정일의 방중문제에 대한 그의 언급내용은 알려지지 않고 있으나,다른 소식통들은 그의 방중이 이뤄지더라도 가까운 장래는 아닐 것으로 관측된다고 말했다. 한편 국민회의 대표단은 17일 하오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대외연락부측과양당간 교류.협력 강화방안을 논의한 후 이에 관한 양해각서에 서명했다.
  • ‘北수뇌부 침묵’ 폭풍전야 정적일까

    서해 교전 사태 이후 북한 내부는 두갈래 기류다.정권수뇌부는 침묵을 지키고 있다.반면 선전매체들은 대남 비방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 북측은 교전사태를 빚은지 사흘째인 18일 대남 방송(평양 방송)을 통해 보복을 다짐했다.대내 방송인 중앙방송도 서해사태와 관련,남측을 거칠게 비난했다.“괴뢰들이 서해상에서 공화국을 반대하는 도발행위를 확대하고 있다”며 책임을 남측에 떠넘겼다. 노동신문은 한발 더 나아가 서해상의 교전을 한·미 양국의 계획적인 도발이라고 역선전을 폈다.남측이 “미국의 유사시 공세적 대북 작전계획인 5027-98실행의 돌격대로 발벗고 나서고 있다”는 비방이었다. 이와 달리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은 태풍권에서 한발 비켜나 있다.중앙방송의 17일 보도에 따르면 서해상의 긴장의 파고가 고조된 시점에서 변방인 자강도를 방문했다.딴전을 피우듯 ‘경제 현지지도’에 나선 것이다. 얼굴없는 조평통 대변인 성명 발표가 나왔을 뿐 다른 북측 고위간부들도 입을 다물고 있다.연일 계속됐던 서해상의 무력시위도 잠잠해지고있다. 이는 폭풍전야의 정적일까.다수의 북한전문가들은 아니라고 답한다.“서해교전에서의 약세를 실감한 마당에 전열정비가 이뤄질 때까지 섣부른 추가도발에 나서지는 않을 것”(박갑수 통일교육원 교수)이라는 얘기였다. 북측도 서해 교전 결과 ‘강성대국’의 허상을 자각했다는 것이다.북측 매체들의 요란한 소리는 역설적으로 내부 정비기간을 갖겠다는 뜻인 셈이다. 그렇다고 북측의 잇단 보복 다짐을 한쪽으로 흘려버릴 순 없을 것 같다.한당국자는 보복을 벼른뒤 테러 행위 등을 저지른 과거의 사례를 들었다.즉 중국 동북3성에서의 안승훈 목사 납치사건,사할린에서의 남측 영사 피살사건등을 거론하며 우려를 표시했다. 한 고위관계자는 “북측은 경제가 거덜난 90년대 들어 재래식 무기보다 미사일·핵 등 대량살상무기 개발에 박차를 가해 왔다”고 귀띔했다.미국으로부터 체제보장을 받기 위한 지렛대 마련 차원이라는 것이다. 구본영기자 kb
  • 交戰 전후 움직임

    서해 교전 사태에도 불구하고 북한군 최고실력자 김정일과 군부가 이례적으로 차분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북한 중앙방송은 17일 김정일 당총비서가 최근 자강도에서 발전소와 압록강타이어공장 등 여러 부문의 인민경제 사업을 ‘현지 지도’하고 근로자들의노고를 치하했다고 보도했다. 현지 지도 날짜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지만 전례로 미루어 방송보도 1주일 전의 상황일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따라서 김정일이 자강도에 머문 기간은 남북한 해군이 서해에서 대치하다가 교전까지 벌인 1주일과 대체로 일치한다. 군사대치가 무력충돌로까지 번진 긴박했던 기간 동안 북한군 최고사령관이자 국방위원장은 지방 경제부문을 시찰한 것이다.우리 군 당국이 긴장 속에사태 추이를 점검하며 작전 지침을 내렸던 상황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북한의 인민무력성은 서해 교전이 있었던 지난 15일부터 평양의 5·1경기장에서 체육대회를 주관했다.교전 다음날인 지난 16일부터 18일까지는 ‘농촌김매기’를 지원토록 총동원 지시를 내렸다. 북한방송은 지난 16일부터 서해 교전상황을 ‘남조선의 정전협정 위반 및김정일에 대한 도전’이라고 비난하면서 “인민군의 인내력과 자제로 확전을 방지하였다”고 보도했다.북한방송은 이어 “우리는 대화에도 전쟁에도 다준비가 돼 있다”면서 “김정일 총비서가 ‘남조선은 긴장상태를 격화시키지 말고 완화로 나가야 한다’고 지적했다”고 덧붙였다. 북한은 우리 해군이 서해에서 처음으로 ‘충돌식 밀어내기’ 작전을 전개한 다음날인 지난 12일 전군에 ‘근무강화령’을 내리는 등 긴박하게 대응했다.하지만 교전이 벌어진 15일 이후에도 별다른 추가 조치를 내리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남북한 해군이 물리적으로 충돌할 당시에는 북한 서해안에 배치된 100㎜ 해안포 및 실크웜 지대함(地對艦)미사일 등의 이상 징후가 포착되기도 했으나 16일 이후에는 잠잠하다. 군 관계자는 “북한군이 서해 사태에도 불구하고 이미 계획한 부대활동을계속하고 있다”면서 “북한군 수뇌부가 도발 및 피해 책임을 남한측에 전가하면서도 협상의사를 갖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김인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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