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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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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北 보천보 전자악단 해체

    북한 최초의 현대식 팝 앙상블인 보천보 전자악단이 사실상 해체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선양(瀋陽)의 한 대북 소식통은 29일 “보천보 전자악단이 민족정서에 맞지 않는 음악을 한다는 이유로 여론이 악화되면서 최근 공연을 중단했다.”고 전했다. 이 소식통은 “전자악기 중심의 연주 방식을 바꾸고 이름도 고쳐 재창단될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김일성 주석이 참가한 보천보 항일전투를 기념해 지난 1985년 6월4일 김정일 국방위원장 지시로 창단된 보천보 전자악단의 정식 명칭은 보천보 경음악단.2년 빨리 만들어진 왕재산 경음악단과 함께 북한의 대표적인 경음악단으로 활동해왔다. 대표곡으로는 ‘휘파람’,‘수령님 은덕일세’,‘그 품을 떠나 못살아’,‘우리는 하나’ 등이 있다.최종찬기자 siinjc@seoul.co.kr
  • 동질감과 이질감

    동질감과 이질감

    아주 오랜만에 종친회 모임에 나가보면 느끼는 것이 두 가지 있습니다. 첫째는 모인 분들 중에 제가 가장 어리다는 것입니다. 대부분 60~70대 어른들이시고 심지어는 90세를 내일모레 바라보는 분도 계십니다. 간혹 50대 분들이 계신데 그분은 감히 앉지도 못합니다. 청년 분과를 책임지고 계시는 분이 60대이시니 대략 알 만하지요. 요즘 젊은 사람들이 종친회나 족보에 거의 관심이 없는 세태를 여실히 보여줍니다. 또 하나 느끼는 게 되는 것은 묘한 정서적인 공감대입니다. ‘어찌 됐건 0.01%라도 우린 피가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그런지 생김새도 비슷한 것 같고, 생각하고 말하는 투도 엇비슷해 보입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우린 다 한민족인데도 불구하고 같은 성을 쓰고, 똑같은 조상을 섬긴다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동질감을 느끼는 것이지요. 북쪽의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저는 같은 종친입니다. 그 사실을 전 30대 초반에야 알았습니다. “애써 숨길 까닭은 없지만 그렇다고 무슨 자랑거리라고 동네방네 떠들고 다닐 필요야 있겠나?”는 게 아버님의 변입니다. 말씀 중에 평소 김일성 부자에 대한 좋지 않은 감정을 그대로 내비친 것이라고 볼 수 있지요. 7년 전 김대중 전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하고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이 거론되면서, “내가 전주 김씨고 내 조상묘가 전주 모악산에 있는 것으로 안다”는 언론보도가 있었습니다. 정말 그가 남쪽에 온다면 “종친회에서 뭔가 준비해야 하는 게 아니야?”라는 주변 얘기도 있었지만, 정작 우리 쪽에서는 “무슨 낯으로 조상묘를 찾을 수 있겠냐”는 게 일반적인 생각이었습니다. 얼마 전 정상회담, 평화통일이란 단어가 신문 1면을 어지럽게 장식했을 때 우리 가족과 종친 어른들은 오히려 이질감을 느꼈습니다. 수많은 국민들이 죽어갔고, 아직도 헐벗고 굶주리고 또 죽어가는 북쪽의 한민족이 있는 것을 뻔히 아는데, 어떻게 이를 외면하고 박수만 칠 수 있겠냐는 것입니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이 언제나 맞는 것만은 아닌 듯합니다. 발행인 김성구(song@isamtoh.com) 2007년 11월
  • 北김양건 오늘 노대통령 만나

    북한의 대남정책을 총괄하는 김양건 노동당 통일전선부장이 29일 서울을 방문,2박3일간의 공식 일정에 들어갔다. 김 부장은 방문 이틀째인 30일 청와대로 노무현 대통령을 예방, 면담을 가질 예정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친서 전달 등의 여부가 주목된다. 김 부장은 앞서 방문 첫날인 29일 이재정 통일부 장관과 회담을 갖고 2차 남북정상회담 이행 방안 등 남북 현안을 논의했다. 통전부장의 서울 방문은 1차 정상회담 직후인 2000년 김용순 당시 통전부장에 이어 두번째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특사자격이 아닌, 이 장관과 김만복 국정원장의 초청으로 왔다. 김 부장을 비롯, 최승철 통전부 부부장 등 북측 대표단 7명은 이날 오전 9시 경의선 육로로 군사분계선을 넘었다. 김 부장은 도라산 출입사무소에서 영접 나온 이관세 통일부 차관 등과 “첫눈이 언제 왔느냐.”며 10여분 환담을 나눈 뒤 숙소인 서울 광장동 쉐라톤 워커힐 호텔로 이동했다. 김 부장은 숙소에 도착, 활짝 웃는 표정으로 “반갑습니다.”라며 이 장관과 김 원장에게 인사를 나눴다. 김 원장 주최 오찬 참석에 이어 오후 2시부터 인천 송도 신도시를 방문해 안상수 인천시장으로부터 인천과 해주를 잇는 경제권 건설 구상 등에 대해 설명을 들었으며, 저녁에는 이 장관 주최 만찬에 참석했다. 이 장관과 김 부장은 오후 9시부터 김 부장 숙소에서 회담을 갖고 남북관계 전반에 걸쳐 의견을 나눴다. 북측 대표단은 방문 이틀째인 30일 오전 거제도 대우조선소 등의 시찰과 부산시장 주최 오찬을 마친 뒤 서울로 귀환, 청와대로 노 대통령을 예방할 예정이다.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은 “면담은 북측 대표단 7명이 모두 배석,40분가량 진행될 것”이라면서 “김 부장과 단독 면담은 없다.”고 말했다. 북측 대표단은 마지막 날인 다음달 1일 오전 분당 SK텔레콤 홍보실 방문 등의 일정을 마치고 오후 4시 경의선 남북 연결도로로 돌아간다. 천 대변인은 “남북정상회담과 후속 실무 작업, 북핵 문제의 순조로운 진행 등의 연장선상에서 6자회담 미국측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의 방북과 김 부장의 방남이 이뤄진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김영남 상임위원장의 방남 문제는 별도의 다른 채널을 통해 논의되고 있다.”고 말했다. 최광숙기자 bori@seoul.co.kr
  • “여수 엑스포 北지원 감사” 노대통령, 김정일에 메시지

    청와대가 전남 여수의 2012년 세계박람회 개최지 선정에 모처럼 훈풍을 느끼고 있다.‘여수 호재’가 남북관계는 물론 호남지역의 대선민심 껴안기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가 엿보인다. 노무현 대통령은 평양에서 열리고 있는 남북 국방장관회담 자리를 빌려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북한의 ‘여수 개최’ 지원에 고마움을 전달했다고 청와대가 28일 밝혔다.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은 “어제 남북국방장관회담 전체회의 모두에 김장수 국방장관이 노 대통령의 구두 메시지를 전달했다.”고 소개했다. 노 대통령은 메시지에서 “여수가 2012년 세계박람회를 개최할 수 있도록 북한이 세계박람회기구 총회 등에서 지원해 준 것에 감사한다.”고 밝혔다. 청와대는 “지난달 합의된 남북정상선언 8항의 ‘민족의 이익을 위해 협력을 강화한다.’는 조항을 구체적으로 실현한 첫번째 사례”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청와대 내부에서는 여수 박람회 유치에 따른 지역 주민의 기대심리가 연말 대선에서 호남 민심이 결집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박찬구기자 ckpark@seoul.co.kr
  • 대선 판세 진단? 종전 선언 논의?

    대선 판세 진단? 종전 선언 논의?

    북한의 대남정책을 총괄하는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이 29일부터 3일간 서울을 방문한다. 통전부장의 서울 방문은 1차 정상회담 직후인 2000년 9월 김용순 당시 통전부장이 김정일 국방위원장 특사자격으로 방문한 이후 두번째다. 김 부장의 서울 방문은 대선을 불과 3주도 남겨 놓지 않은 민감한 시점에 이뤄지는 것인 데다 김 위원장의 특사 자격이 아니라는 점에서 상당히 이례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재정 통일부 장관은 28일 서울 삼청동 남북회담본부에서 긴급 브리핑을 열어 “김 부장 등 북측 대표 5명이 남북정상선언 이행을 중간 평가하고 향후 추진방향 논의, 현장 시찰을 목적으로 육로를 통해 내일부터 3일간 방남한다.”고 밝혔다. ●“정상선언 이행 중평” 명목 그는 “정상선언에서 합의한 조선협력단지 건설과 3통(通)문제 해결 등 경협사업 현장을 직접 시찰하며 남북협력에 대한 상호 공감대를 높여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김 부장의 서울 방문은 자신과 국정원장의 초청에 따라 이뤄지는 것으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특사 자격으로 방문하는 것은 아니며 따라서 남측의 공식 파트너도 자신과 김만복 국정원장이 된다고 이 장관은 설명했다. 김 부장은 김 위원장의 최측근으로, 김만복 국정원장과 함께 제2차 정상회담을 성사시킨 주역이다.2차 정상회담 당시에도 김 위원장을 단독으로 보좌해 대남 사업의 최고 실세로 떠올랐던 인물이다. ●특사 자격 아닌 것도 이례적 이 때문에 김 부장의 전격적인 서울 방문은 단순히 정상회담 이행을 위한 실무형 방문에 머무르지 않고 대선을 앞둔 국내 정세 판단과 함께 한반도 종전선언 문제 등을 논의하기 위한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지난 10월 정상회담 이후 이달 들어 총리회담, 남북장관급회담 등 실무회담들이 순조롭게 ‘순항’하고 있는 터여서 굳이 김 부장의 전격적인 등장이 필요한 상황은 아니기 때문이다. 향후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의 서울 방문 등이 타진되는 것이 아니냐는 전망도 나온다. 김 부장 일행은 육로로 개성과 도라산 CIQ를 거쳐 29일 오전 서울에 도착할 예정이다. 최광숙 이세영기자 bori@seoul.co.kr
  • “김정일후계자 차남 김정철 유력”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차남인 김정철(27)씨가 후계자로 유력하다고 일본 마이니치 신문이 보도했다. 이 신문은 지난 24일 “김씨가 올들어 북한의 최고 요직 중의 하나인 조선노동당 조직지도부 부부장에 발탁된 것으로 알려졌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당 조직지도부는 각급 조직과 내각, 인민군까지 통제하는 권력 부서이다. 김 위원장이 조직부부장에 발탁됐을 때도 정철씨와 같은 나이였다. 김 위원장의 후계자로 거론돼 온 인물은 영화배우 성혜빈씨와의 사이에 태어난 정남(36)씨, 오사카 출신 북송동포인 고영희씨와의 사이에 태어난 정철씨, 그 아래의 정운(24)씨 등 3명이다. 그러나 정철씨의 동생인 정운씨는 노동당의 요직이 아닌 조선인민군에 배속돼 있어 후계 구도에서 사실상 탈락한 상태이며, 장남 정남씨는 조직지도부 소속이라는 설도 한 때 있었으나 실제로는 ‘방임 상태’라고 이 신문은 말했다. 정부 당국자는 “정철씨가 조직부부장의 직함을 갖고 있다고 해서 후계구도가 짜여진 것으로 단정하기 어렵다.”면서 “만약 직함을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직책을 실지로 수행하는 부부장인지, 아닌지에 따라 의미가 달라질 수 있다.”고 밝혔다. 최광숙기자 bori@seoul.co.kr
  • [최종찬기자의 시드니 뒤집어보기] (10) 호주 언론에 비친 한국

    [최종찬기자의 시드니 뒤집어보기] (10) 호주 언론에 비친 한국

    호주 언론에서 한국 관련 기사를 보기는 하늘의 별따기다.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차지하는 위상도 한 이유이겠지만 호주의 주류사회에서 바라보는 한국은 주요 관심대상이 아닌 것 같다. 기사의 절대적인 양도 매우 적다. 반면 중국 관련 기사는 상대적으로 넘친다. 호주 내에 중국인이 많기도 하지만 초강대국으로 무섭게 커가고 있는 중국의 국력과 비례한다. 중국 최대명절인 춘제(春節) 관련 기사는 몇 주 전부터 신문과 방송에 오른다. 호주 사람들도 중국 음식을 즐기고 중국문화에 많은 관심을 표명한다. ●노대통령 방문도 거의 보도안해 그런데 지난해 호주 언론에서 이례적으로 한반도에 대해 대서특필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한국이 아닌 북한 핵 관련 소식이었다. 호주는 특히 북한에 대해서는 적대적인 감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미국과 정치적 행보를 같이하는 존 하워드 정권은 북한이 지난해 10월9일 핵실험을 단행하자 호주 주재 북한 대사를 불러 강력히 항의했다. 호주 주요 언론들도 ‘김정일 핵도발’ ‘북한 첫 핵실험후 공포, 분노 만연’등의 선정적 제목과 함께 1면 머리기사로 다뤘다. 이렇듯 한국이 호주 미디어의 사정권 바깥에 있다 보니 노무현 대통령이 작년 말 호주를 국빈방문했을 때 호주 신문이나 방송은 노대통령의 동정을 거의 보도하지 않았다. 시드니대 곽기성 교수는 “호주 언론이 한국을 보는 눈은 치솟는 임금, 빈번한 노조 파업, 외국인의 부동산 소유에 대해 복잡하고 까다로운 법규 때문에 그리 호의적이지 않다.”면서 “한국 관련 기사는 중국과 일본의 3분의1에도 못 미친다.”고 말했다. 가뭄에 콩 나듯 한국 관련 기사가 나와도 십중팔구 부정적 내용이다. 그나마 지난해 대대적으로 보도된 임시취업비자의 경우 우리 교민사회의 부정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저임금에 인권침해를 당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한국인이고 악덕 고용주로 비춰진 사람도 한국인이기 때문이었다. 올 들어 한국 관련 소식이 긍정적인 측면에서 크게 보도된 것은 평양에서 열린 2차 남북 정상회담과 ‘수영천재’ 박태환 선수의 멜버른 세계수영선수권 자유형 400m 우승 정도다. 남북 정상회담에 대해 호주 언론들은 10월6일자 외신면 등에서 ‘한반도 지도자들 냉전 종식 합의’ ‘김정일 냉전 무대에서 나오다’ 등의 비교적 긍정적인 제목으로 처리했다. 특히 박태환 선수가 폭풍 같은 막판 스퍼트로 자유형 400m에서 호주영웅 그랜트 해켓을 제치고 우승하자 호주언론들은 3월26일자 스포츠면 머리기사로 ‘호주 400m 왕조 몰락’이란 제목으로 일제히 보도했다. 시드니대 판카지 모한 교수는 “호주인들이 한국에 대해 호감을 갖고 있지만 호주의 신문과 방송 등 매스컴들의 시선은 요즘 중국에 집중돼 있고 한국에 주목하지 않는다.”면서 “북한 핵문제나 남북 정상회담 등 호주의 국가안보 환경과 직접 관련된 뉴스를 소개하고 있지만 호주 언론에는 한국의 다이내믹한 모습이 나타나지 않는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은 특징없는 나라 인식 뉴사우스웨일스대 신기현 교수는 “일반 호주인한테 한국은 특징이 없는 나라”라면서 “한국이 경제 등 여러 방면에서 급성장했지만 아시아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고정관념을 확인시켜주는 보도가 많다.”고 말했다. 채스트우드에 살았던 김호성씨도 “한국에 대한 언급은 거의 없다.”면서 “지난해 북핵문제가 불거진 이후 북한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을 때도 6자회담의 당사국인 한국에 대해 언급한 내용들은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한국이 호주의 4대 수출국이며 연간 20만명 이상의 한국인 관광객과 4만여명의 청년층이 호주에 체류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한국도 호주의 중요한 파트너 가운데 하나다. 호주 언론은 한국 관련 기사를 이런 양국 관계에 걸맞은 수준으로 처리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한국 정부의 적극적인 홍보 노력이 요구된다. 신기현 교수의 말을 곰곰이 생각해 볼 시점이다.“아직도 호주에는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딱히 정립돼 있지 않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국가홍보 슬로건을 보자. 예컨대 ‘한국, 유쾌한 놀라움!´(Korea,a pleasant surprise´)으로 해봄직하다. 그동안의 ‘역동적인 한국’(Dynamic Korea)이 훌륭한 이미지라는 것은 한국인들만의 생각이다. 한국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던 사람들에게 새로운 관심을 가지게 하는 이미지는 아니다.” siinjc@seoul.co.kr ■조창범 駐濠 한국대사 “취업 이민땐 높은 세율 염두에 둬야” “호주는 경제호황 속에 전문인력 구인난을 겪고 있어 우리 전문 직종이나 기술인력의 이민 전망이 매우 밝습니다. 하지만 호주는 언어와 생활, 제도 면에서 우리와 차이가 많아 이에 관한 이해나 사전준비가 없으면 낭패를 보기 쉬워요.” 조창범(61) 주 호주 한국대사는 호주 이민이나 유학을 고려하고 있는 국민들에게 22일 이렇게 조언했다. ▶호주가 언어, 생활, 제도면에서 우리와 차이가 많다고 했는데. -호주는 서구적 시각을 가진 영어권 사회다. 한국과는 다른 관습과 제도가 있다. 예컨대 지난해 서부 호주로 이민온 우리 용접공들이 연봉에 비해 많은 근로소득세, 사회보장보험 부담으로 예상보다 낮은 실질소득, 언어 장벽, 복잡한 노사관계와 근로조건 때문에 정착에 어려움을 겪다가 중도 귀국하거나 고용주와 분쟁을 겪은 일이 있다. ▶호주가 최근 이민정책을 대폭 강화했는데. -지난 9월1일부터 기술이민 비자를 신청하는 유학생의 경우 과거보다 높은 수준의 영어 실력과 업무 경험을 증명해야 비자를 취득할 수 있다. 호주 언론들은 기술이민자 및 유학생 졸업자의 영어 실력 부족으로 직장 내 원활한 의사소통이 방해받고 사소한 오해나 이해부족으로 노동 분쟁이 발생하고 있다고 자주 지적해왔다. 영어의 경우 생활에 기본적인 의사소통 수단이므로 성공적인 정착을 위해 실력을 높일 필요가 있다. ▶호주 주재 다른 국가 대사관과의 협력관계는. -각국 국경일 행사, 리셉션, 호주 정부기관 초청 행사 등을 통해 120개국 공관원과 접촉하며 주요 관심현안이나 주재국의 주요 정세와 정책동향에 관해 정보를 교환하고 업무적으로 긴밀히 협력해 나간다. 최근 남북관계의 진전에 따라 북한대사관 사람들과도 만나 한반도 문제 등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기도 한다. ▶호주 교민사회를 진단하면. -교민사회가 40년이란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외국계 공동체 중 규모 6위를 차지할 정도로 착실하게 성장했다. 특히 교민 1.5세대 및 2세대를 중심으로 회계사, 변호사, 의사, 교수 등 전문직과 공직 진출자가 증가하고 있다. 호주 주류사회에 성큼 다가서고 있는 것이다. ▶교민에게 다가가는 행정의 구체적인 사례는. -순회영사 서비스, 영사협력원제도, 온라인 영사서비스(e-consul), 사건·사고 출장지원 등이 있다. 순회영사 서비스는 공관에서 먼 멜버른, 애들레이드, 퍼스 등지의 교민들을 위해 영사가 출장을 가서 여권, 호적, 병무, 공증, 영사확인 등의 민원을 현장 처리해주고 교민 간담회를 통해 교민의견을 수렴하고 있다. 영사협력원은 사건·사고가 많은 지역의 교민들을 지원하기 위한 제도로, 현재 멜버른과 퍼스에 1명씩 두고 있다. 올해 4건의 교민 사망사고 중 3건을 영사가 출장 지원했다. ▶호주대사관의 주요 업무와 역점 사업은. -북핵 등 한국의 한반도정책에 대한 호주의 지지를 지속적으로 확보해 나가는 데 중점을 둔다. 또한 안정적인 자원 공급국으로서 호주와 협력 확대를 위해 적극 노력하고 있다. 이와 관련 올 봄 한국석유공사와 호주 우드사이드사(社)간 동해 조광계약 체결, 한국가스공사와 호주 ALNG사간 LNG 연장공급계약을 체결했다. 호주 우드사이드사의 LNG 수송선 2척(약 5억달러 규모) 수주업체로 우리 기업이 선정됐다. ▶양국의 무역규모는. -지난해 교역액은 약 160억달러로 전년보다 17% 늘었다. 한국은 자동차, 휴대전화,TV, 석유화학제품 등 공산품을 중심으로 47억달러를 수출했고 LNG, 원유, 철광석, 석탄, 쇠고기 등 113억달러를 수입했다. 올 상반기 기준으로 한국 기업의 대 호주 투자는 총 408건 31억달러에 달하며, 호주기업의 경우 메콰리뱅크 등 총 285건에 16억달러를 한국에 투자했다. siinjc@seoul.co.kr
  • 한·중·일 “정상회담 정례화”

    |싱가포르 박찬구특파원|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3 정상회의 참석차 싱가포르를 방문중인 노무현 대통령은 20일(한국시간) 원자바오 중국 총리, 후쿠다 야스오 일본 총리와 양자·3자 연쇄 정상회담을 갖고 북핵 6자회담 진전과 한반도 평화체제 추진을 위해 긴밀히 협력해 나가기로 했다.이 정상들은 상호협력 증진과 북핵 문제의 원만한 해결 등을 위해 한·중·일 연례 3자 정상회담을 갖기로 하고, 첫번째 회담을 향후 적절한 시기에 3국 내에서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이와는 별도로 연내 북핵 불능화와 신고 등 북핵 2단계 이행 상황과 불능화 이후 단계를 논의하기 위한 6자회담 수석대표회의가 빠르면 오는 12월 초나 중순쯤 열릴 예정이다.●후쿠다 “북·일 현안 대화 해결” 노 대통령은 후쿠다 총리와의 양자회담에서 “지난달 남북정상회담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북·일 관계 정상화의 필요성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다.’고 밝혔다.”며 북핵 6자회담 진전과 동북아 긴장 완화에 북·일 관계 개선이 기여할 것이라는 뜻을 밝혔다.이에 후쿠다 총리는 “북·일 대화를 통해 납치 문제, 과거 청산 문제 등 현안을 해결할 것”이라고 말했다. 원자바오 총리는 3자 회담에서 “중국은 한반도 평화체제 협상에 적극 참여하겠다.”고 말해 남북 정상간 합의한 남·북·미·중 4자 정상선언에 포괄적인 지지 의사를 밝혔다. 이날 3국 정상은 아세안+3 정상회의의 틀 속에서 진행돼 온 3국 정상회담을 앞으로는 별도의 행사로 도쿄나 베이징 등에서 연례적으로 돌아가면서 갖기로 했다.●징용 한인 유골 101위 내년 봉환 한편 후쿠다 총리는 회담에서 노 대통령에게 도쿄 소재 사찰 유텐지에 보관중인 한반도 출신 군인·군속 유골 1135위 가운데 남한 소속으로 밝혀진 704위 중 유족의 봉환의사를 확인한 101위를 빠르면 내년 1월 우선 봉환하겠다고 밝혔다.ckpark@seoul.co.kr
  • “韓·베트남 협력강화” 양국 정상회담

    “韓·베트남 협력강화” 양국 정상회담

    노무현 대통령은 14일 오후 공식 방한 중인 농득마인 베트남 서기장과 정상회담을 갖고 양국간 정치·경제 등 분야별 현안과 공동 관심사를 논의했다. 양 정상은 양국 수교 15주년을 맞아 양국관계 발전 현황을 점검하고, 향후 양국간 ‘포괄적 동반자 관계’를 심화·발전시키기 위해 적극 협력하기로 했다. 노 대통령은 지난달 남북정상선언 이후 남북한을 연쇄 방문한 마인 서기장에게 “한반도의 평화를 위한 베트남 정부의 건설적 역할에 사의를 표한다.”고 밝혔다. 이에 마인 서기장은 지난달 16∼18일 방북 결과를 설명하고 “방북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남북정상회담의 성과를 높이 평가하고 핵문제를 평화적으로 대화를 통해 해결해 나가겠다.’고 밝혔다.”고 전한 뒤 “한반도의 안정과 남북한 관계의 진전을 위해 베트남이 적극 기여하겠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과 마인 서기장은 양 국민간 상호 이해를 증진하기 위해 한·베트남 국제결혼 문제의 제도적 개선·보완책을 정부와 민간 차원에서 계속 강구해 나가기로 합의했다. 박찬구기자 ckpark@seoul.co.kr
  • 北김정남 파리서 카메라에 포착

    |도쿄 박홍기특파원|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장남 김정남(36)이 이달 초 프랑스 파리에서 머물던 모습이 TV 카메라에 잡혔다. 일본 후지TV는 13일 양복으로 말끔하게 차려입은 김정남이 파리 샹젤리제 근처 고급 호텔을 나와 리무진을 향해 걸어가다 취재진을 만나는 모습을 방영했다. 만면에 웃음을 띤 김정남은 취재진들의 질문에 프랑스어로 “나는 치과치료를 받으러 왔으며 별로 할 말이 없다. 미안하다.”고 말했다.hkpark@seoul.co.kr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회고록 ‘고백’ 출간 원로배우 최은희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회고록 ‘고백’ 출간 원로배우 최은희

    문득 ‘여자의 일생’이 떠오른다. 이미자가 불렀다.‘참을 수가 없도록 이 가슴이 아파도, 헤아릴 수 없는 설움 혼자 지닌 채, 고달픈 인생길을 허덕이면서, 아∼ 참아야 한다기에 눈물로 보냅니다 여자의 일생’ 산전수전을 다 겪은 70대 어머니들이 좋아하는 노래다. 그랬다. 슬퍼도 여자이기 때문에 스스로 달래어가며 살아왔다.1950년대 간통죄 1호라는 비난 속에 이혼과 재혼을 거듭하면서 두 아이의 입양과 남편 외도로 낳은 자식 둘을 키웠다. 그리고 목숨을 건 두번의 납북과 탈출, 망명생활…. 정말이지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소설보다 더 소설같은 삶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불멸의 영화배우라고 한다. 영원한 은막의 스타 최은희씨. # 장면1 1978년 1월 어느날, 최은희가 홍콩 여행 중 바닷가를 구경하려고 항구에 정박 중인 보트에 탔다. 이때였다. 보트의 주인이라는 건장한 남자가 시동을 걸더니 “최선생, 지금 우리는 김일성 장군님의 품으로 갑니다.”고 했다. 몸부림치는 최은희를 밧줄로 묶고 항구밖에 정박 중인 화물선에 강제로 옮겨졌다. 8일 후, 최은희를 실은 배가 남포항에 도착했다. 안경을 낀 한 남자가 마중을 나왔다. 그는 “오시느라 수고했습네다, 내레 김정일입네다.”고 했다. 이어 김정일과 최은희는 리무진에 나란히 동승했다. # 장면2 1983년 3월 어느날. 최은희는 김정일이 베푸는 연회에 초대를 받았다. 이때였다. 회색양복을 입고 머리를 짧게 깎은, 아! 전 남편인 신상옥 감독이었다. 꿈인가 생시인가 망설이는 순간,“포옹 좀 하지, 왜 그러고만 서 있소.” 김정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어 “동무들, 신 선생은 이제부터 내 영화 고문이오. 최 선생은 조선의 어머니요. 이번 4·15 위대한 수령님의 생신을 기해서 두분의 결혼식을 여기서 올립시다.”라고 했다. # 장면3 1986년 3월13일. 베를린 영화제에 참석했던 신상옥·최은희 부부는 오스트리아 빈에서 외신기자들과 기자회견을 앞두고 일본 교도통신의 에노키 기자에게 ‘미국대사관으로 망명을 하려 하니 협조바람´이라는 쪽지를 슬쩍 건넸다. 다음날 이들 부부는 에노키와 함께 호텔에서 택시를 타고 미 대사관으로 향했다.3명의 남자가 탄 또다른 택시가 뒤를 쫓았지만 따돌리고 미국 대사관으로 진입했다. 이때 대사관 직원은 연분홍 장미 한송이를 불쑥 내밀며 “Welcom to the west”라고 했다. 이 밖에도 영화같은 장면은 수없이 많다. 최씨는 ‘고백’이라는 제목으로 최근 자서전을 펴냈다. 화려한 인기여배우로서뿐 아니라 한 여자로서의 치부와 평탄치 않았던 인생길 등을 솔직하게 털어놔 눈길을 끌고 있다.6·25때 헌병대장에게 겁탈당했던 아픔 등을 비롯해 광복과 전쟁, 분단, 군사정권 등 격동의 세월속에 온몸이 던져졌던 생활을 담담하게 고백했다. 파란만장한 현대사를 집약한 한편의 다큐멘터리 그 자체였다.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서강대교 인근의 한 오피스텔에서 최씨를 만났다.“노년이 된다는 것은 많은 굴레로부터 자유를 얻었다는 걸 의미하는지도 모른다.”면서 “여자의 치부까지 드러내기에는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고해성사하는 마음으로 글을 썼다.”고 자서전 발간소감을 피력했다. 직접 쓴 육필원고냐고 했더니 “글쓰는 전문가에게 일부 도움을 받기는 했지만 대부분 내가 직접 썼다.”고 대답했다. 아울러 “글쓰는 사람들은 겨울에는 따뜻한 온돌에서, 여름에는 시원한 수박을 먹으며 편하게 쓰는 줄 알았는데 직접 써보니까 정말 힘든 작업이었다.”며 웃는다. ●고해성사 하는 마음으로 자서전 집필 “북한에는 9년 동안 있었는데 5년 동안 연금상태에서 혼자 지내다가 신 감독과 재결합하면서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지요. 탈출하기 직전까지 2년 3개월 동안 모두 17편의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북한영화에 출연자와 해설자막을 넣은 것이 우리가 처음이었지요.‘불가사리’나 ‘임꺽정’은 최근에도 TV에 나온다고 전해들었어요.” 최씨는 이어 납북됐을 당시에는 겁이 나고 북한당국이 미웠지만 나중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침체된 북한의 영화산업을 잘 부흥시켜달라는 진심어린 주문을 받았을 땐 기분 나쁘지마는 않았다고 술회했다. 또한 연회에 초대될 때마다 자신이 기쁨조에 동원되는 것이 아닌가 두려웠지만 김 위원장은 그런 기색을 전혀 드러내지 않고 건강을 묻는 등 예우에 신경을 써줬다고 부연했다. 하루는 김 위원장 생일에 초대를 받았을 때 아들 김정남과 부인을 직접 소개했다는 일화도 소개했다. 매주 금요일에 연회가 자주 열리는데 여러번 참석하면서 김 위원장 여동생 김경희·장성택 부부, 당시 김영남 외교부장 등과도 합석했다. 연회 참석때에는 입구에 코냑잔을 쭉 늘어놓는데 빈속에 두어잔씩 들이키도록 해 취기가 오른 상태에서 시작됐다고 회고했다. “신 감독은 매사에 치밀하고 형식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북한에 있는 동안 하루 2∼3시간 자면서 영화제작에 몰두했지요. 탈출 시나리오도 전적으로 신 감독이 짰지요.” 이래저래 최씨의 삶은 굴곡의 현대사를 고스란히 반영한다. 그는 경기도 광주에서 5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전화국에 다니는 공무원이었다. 고달픈 그의 인생길은 1947년 ‘새로운 맹세’로 영화계에 데뷔하면서 시작됐다. 미모와 연기력으로 이름이 점차 알려지면서 구애하는 남자가 많았다. 결국 18세때 영화촬영기사와 결혼했다. 하지만 가난과 성격차이 등으로 결혼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그러던 6·25때 최씨는 정훈공작단원으로 전장에 참가했으며, 인민군에 의해 강제 납북됐다가 가까스로 탈출했다. 최씨는 이같은 일로 부역혐의를 받았고 헌병대장에게 조사받던 중 권총협박으로 겁탈까지 당하는 일생일대의 수모를 겪는다. 악몽같았던 전쟁은 끝났지만 평화는 오지 않았다. 남편의 잦은 폭력 등으로 별거생활에 들어갔다. 그러던 1954년 3월, 신상옥 감독한테 “우리 평생, 영화를 같이 합시다.”는 거듭된 프러포즈를 받고 서울시내의 허름한 여인숙에서 둘만의 결혼식을 올렸다. 이때 전 남편이 간통혐의로 고소하게 되자 언론매체에서는 ‘간통죄 1호’라는 기사를 대문짝만하게 다뤘다. 최씨는 신 감독과의 결혼생활에서 아이가 생기지 않자 아이 둘을 입양해 키운다. 그러던 1977년 어느날, 신 감독이 후배 영화배우 오수미와 사이에 아이 둘을 낳았다는 청천벽력같은 사실을 확인하고는 결혼 23년 만에 이혼도장을 찍었다. 최씨 부부는 미국 망명생활 때 이들 네 아이들과 함께 지내다가 1992년 오수미씨가 교통사고로 사망하자 마지막 가는 길까지 지켜주었다. 이들 부부는 1999년 영구귀국하면서 국내에서 재기를 하는 듯 했으나 C형 간염을 앓아오던 신 감독이 병석에 드러눕자 최씨는 병간호에만 전념했다. 안타깝게도 신 감독은 2006년 4월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여생 신감독이 못 다한 일에 바칠 것” 최씨는 요즘 신 감독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더욱 절절하다. 재혼때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서로 교환한 18K금반지를 자꾸 만지작거린다. 그의 가운데 손가락에는 신 감독의 반지까지 나란히 끼워져 있다. 현재 최씨에게는 비록 배아파 낳지는 않았지만 자식 넷이 있다. 큰아들이 아버지의 뒤를 이어 영화계에서 일하고 있고 둘째아들은 미국에서 경찰이 됐다. 큰딸은 네 아이의 엄마로, 둘째딸은 연극활동을 하다가 지금은 평범한 주부가 됐다. “여생을 신 감독이 못다한 것에 바쳐야죠. 기념사업회도 만들고, 또 신 감독이 오랜 세월 간직해 왔던 대본이 있으니 누군가 영화제작을 해줬으면 좋겠고요….” 인물전문기자 km@seoul.co.kr 사진 류재림기자 jawoolim@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30년 경기도 광주 출생 ▲43년 경성기예학교 다니던 중 극단 ‘아랑’입단 ▲47년 ‘새로운 맹세’로 영화계 데뷔 ▲51∼53년 극단 ‘신협’ 배우로 ‘마의태자’‘햄릿’ 등 다수 출연 ▲53∼76년 신상옥 감독과 ‘신필름’설립, 영화 ‘무영탑’‘여자의 일생’ 등 130여편 출연 ▲64∼66년 영화 ‘민며느리’ 등 다수 감독 ▲69년 안양예술학교 교장 ▲78년 납북 ▲83∼86년 북한에서 영화 ‘돌아오지 않는 밀사’‘소금’ 등 17편의 영화제작에 참여 ▲86년 북한탈출 및 미국망명 ▲2001년 극단 신협대표 취임 ▲02년 뮤지컬 ‘크레이지 포유’ 제작
  • 한달새 남·북 교차방문…마인 서기장 역할에 관심

    오는 14일 방한하는 농 득 마인(67)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은 베트남 최고 권력자다. 베트남 공산당을 이끄는 서기장, 대외적 국가원수인 주석, 행정을 담당하는 총리로 나뉘는데 이중 서열 1순위가 당서기장이다. 마인 서기장은 2001년 제9차 공산당 전당대회에서 당 서기장으로 발탁된 뒤 지난해 제10차 전당대회에서 연임에 성공하며 연평균 8%에 이르는 베트남의 발전을 이끌고 있다. 온화한 성품과 말을 아끼는 성격으로 전면에 나서지 않아 일부에선 실질적인 권력이 있느냐는 의문까지 제기되기도 했지만 지난해 공산당 전당대회에서 부패 스캔들로 인한 퇴진 압력을 무마시키는 저력을 과시했다. 특히 원로들을 퇴진시키고 자신의 체제를 구축하는가 하면 당에 자본주의 개념을 도입하는 등 새 시대에 맞춰 당의 체질을 개선하는 과감함도 보여줬다. 그는 1971년 러시아 임업학교를 졸업하고 응우옌 아이 꾹(호찌민의 다른 이름) 공산당학교에 입학해 ‘로열 당원’의 수업을 받았다. 박타이성(박깐성의 옛 이름) 인민위원장과 당 서기 등을 거쳐 91년 권력의 핵인 정치국원에 올랐다. 베트남의 87%를 차지하는 베트족(낑족)이 아닌 소수 따이족인 그가 당서기장에 오르게 된 데는 호찌민 전 주석의 후광이 작용했다는 지적도 있다.‘호찌민의 숨겨진 아들’이란 소문은 지금도 그를 따라다니고 있다. 특히 마인 서기장은 지난달 16일부터 사흘간 평양을 방문,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을 만났다. 한달만에 남북한을 엇갈려 방문하는 셈이다. 마인 서기장의 방한 기간에 지난달 26일부터 4박5일간 베트남을 방문했던 김영일 북한 총리도 남북 총리회담을 위해 서울을 방문할 예정이다. 마인 서기장의 역할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순녀기자·연합뉴스 coral@seoul.co.kr
  • “김정일 공산주의 딜레마 잘 알아”

    “김정일(국방위원장)은 현실을 정확하게 판단하는 눈과 추진력이 있는 사람이었고 공산주의의 딜레마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배우 최은희(75)씨가 5일 출간된 에세이집 ‘최은희의 고백’(랜덤하우스)에서 김정일 위원장에 얽힌 이야기를 털어 놓았다. 최씨는 1978년 홍콩에서 납치돼 평양에 도착한 뒤 김정일이 입은 옷 그대로 북한에온 자신을 위해 화장품까지 챙겨 주는 호의를 베풀었다며 당시의 상황을 회상했다. “현관 앞 응접실에 크고 작은 종이박스와 나무박스들이 40∼50개나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그 안에는 양복감, 한복감, 코트감, 망사 등 온갖 춘하추동 옷감들이 가득 차 있었다. 심지어 내가 쓰던 화장품까지 들어 있어 김정일이 나를 세심하게 배려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최씨는 “남한에서 배우생활을 할 때도 그렇게 사치해본 일이 없는 나는 도깨비에 홀린 기분이었다.”며 특히 김정일은 집에 만들어 놓은 영사실에서 남한 TV방송을 빠짐없이 보고 있었다고 증언했다. 최씨는 책에서 은막 스타로서 살았던 화려한 삶 이면에 가려진 두번의 결혼과 이혼, 육아, 재결합까지 여자로서의 솔직한 인생담을 담담하게 털어 놓았다. 해방 전 처음 무대에 오를 당시의 감회부터 6·25 전쟁기간 중 피란 생활, 군사정권에서 힘겨운 영화활동, 납북과 북한 생활, 미국 망명까지 우리 근현대사의 얼룩이 고스란히 담겼다. 12살 연상의 첫 남편에게 상처를 받은 뒤 운명적으로 만난 고 신상옥 감독과 허름한 여인숙에서 했던 결혼식, 신 감독이 신인 배우 오수미와의 스캔들로 아이 둘을 낳자 헤어지고 각각 북한으로 납치된 사연도 눈에 띈다. 북한에서 어렵게 탈출해 미국으로 망명한 뒤 이혼의 원인을 제공했던 오수미와의 질긴 인연도 비껴가지 않았다. 오수미가 낳은 아이들을 데려와 키우지만 오수미는 교통사고로 숨져 직접 그 유골을 수습한 최씨는 “같은 여성으로서 그의 삶을 되새겨 보니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고 회상하기도 했다.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사설] 마침내 열린 백두산 하늘 관광길

    인천공항과 백두산 삼지연공항을 잇는 하늘 관광길이 마침내 내년 5월에 열린다. 백두산 관광은 2000년 방북한 김대중 대통령과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처음 운을 뗀 이후,2005년엔 시범사업이 무산되는 등 곡절을 겪었다. 실로 7년만에 또 다른 남북 신뢰의 결실을 이룬 셈이다. 아울러 올 연말에는 개성관광이 본격화하고, 금강산 비로봉이 조만간 개방될 것이란 반가운 소식도 있다. 현대그룹과 북측 아태평화위원회가 맺은 백두산 관광협약은 지난달 노무현 대통령의 방북 성과를 가시화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하겠다.1999년 11월 금강산 관광이 시작된 이래 남북의 관광교류가 확대되고 있는 것은 무척 바람직한 일이다. 아무쪼록 북한지역의 관광 확대가 남북의 간극을 좁혀 평화정착은 물론, 경제적으로 ‘윈·윈’하는 발판이 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백두산 관광은 우선 남북경협의 지평을 넓혔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해야 할 것 같다. 그동안 한국 백두산 관광객은 연간 10만명인데, 대개 중국을 거쳐 백두산을 찾았다. 그러나 남북 직항로가 개설되면 이동시간을 현재의 10시간에서 2시간으로 줄일 수 있다고 한다. 따라서 중국 경유 관광객을 상당수 흡수하고, 직접 관광에 따른 추가수요를 창출하면 남북한 모두에 유·무형의 경제적 실익이 적지 않을 전망이다. 국제적으로도 중국의 동북공정으로 부각된 백두산의 중국명 ‘창바이산’(長白山)에 제동을 거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백두산 관광을 통해 남북이 상생하려면 몇가지 조건이 전제돼야 한다. 우선 북한은 관광수입(입객료)에 지나치게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 금강산 관광처럼 막대한 금전적 대가로 현대그룹을 휘청거리게 한 전철을 밟아선 안 된다는 뜻이다. 공항과 숙박시설, 인근 관광지 연계, 입북절차 등 관광인프라의 구축에도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
  • 내년 5월 백두산 ‘직항로 관광’

    이르면 다음달 초부터 북한 개성 관광이 시작된다. 금강산 관광의 하이라이트인 비로봉도 볼 수 있다. 중국을 거쳐 들어갔던 백두산은 서울에서 직항로를 통해 내년 5월부터 구경할 수 있다. 현대그룹은 지난 3일 이같은 내용의 대북 관광사업을 북측과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합의는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을 평양에서 직접 만나 이끌어냈다. 현대그룹은 이 사업에 대해 앞으로 50년간 배타적 권한을 갖는다. 양측은 이를 문서로 작성했다. 현 회장과 최승철 북한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부위원장이 각각 서명했다. 이날 귀국한 현 회장은 귀국 직후 서울 적선동 사옥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방북 결과가 아주 좋았다.”면서 “2년 만에 김 위원장을 다시 만났는데 (김 위원장이)2년 전 합의내용 가운데 잘 안된 게 있으면 얘기하라고 해 생각나는 대로 모두 말해서 많은 것을 받았다.”고 흡족해했다. 현 회장은 이번 방북기간에 북측이 내준 특별기로 백두산도 직접 둘러봤다. 동행한 윤만준 현대아산 사장은 “백두산 삼지연 공항에 B737 정도는 이착륙할 수 있어 한번에 200명 정도는 관광이 가능할 것”이라면서 “세부 실사를 거쳐 중국 경유 상품보다 경쟁력이 있도록 관광요금과 관광코스를 확정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전에도 백두산 관광과 개성 관광에 합의했다가 무산된 적이 있긴 하지만 이번에는 훨씬 구체적으로 합의한 데다 북측의 의지가 매우 강해 성사 가능성이 커 보인다. 안미현기자 hyun@seoul.co.kr
  • 남북정상회담 첫 결실…현대家 숙원해결

    남북정상회담 첫 결실…현대家 숙원해결

    백두산·개성 관광 길이 뚫린 것은 남북정상회담의 첫 결실이자 현대가(家)의 숙원이 이뤄졌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현대의 대북사업권 독점적 지위를 둘러싼 잡음에도 쐐기를 박았다. 현정은(52) 현대그룹 회장은 “그룹 회장으로 일해온 지난 4년 동안 힘든 상황이 많았고 잘 안돼서 속상할 때도 많았는데 이번 방북으로 쉽게 모든 게 해결돼 기쁘게 생각한다.”는 말로 그간의 마음고생을 털어냈다. ●양측 총리회담에 긍정적 영향줄 듯 백두산 직항로 개설은 지난달 남북 정상회담 때 합의한 사안이다. 이번에 현 회장이 백두산을 직접 둘러보고 후속 절차를 마무리지었다. 오는 14∼16일로 예정된 남북 총리회담과 조선협력단지 건설에 관한 민관 실사단의 방북에 긍정적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현대측은 백두산 세부 항로나 국적기 취항 문제에 대해서는 “당국이 결정할 문제”라며 말을 아꼈다. 윤만준 현대아산 사장은 “다만 동해 항로가 시간적으로 짧게 걸릴 것이라는 생각은 하고 있다.”고 밝혔다. 고유환 동국대 교수는 “북한이 앞으로 중국식 특구 모델과 쿠바식 관광개방 모델을 결합한 경제성장을 노린다면 남북은 경제협력 분야에서 정상회담 합의내용을 조속히 이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현정은 회장, 7대 경협분야 독점권 재확인 현 회장은 이번 방북 보따리로 그룹 회장으로서의 능력과 현대가 며느리로서의 공을 한꺼번에 인정받았다. 현 회장은 2003년 남편인 정몽헌 회장이 갑자기 세상을 등지면서 그룹 회장에 취임했다. 이후 시댁과의 경영권 분쟁과 김윤규 전 현대아산 부회장과의 갈등 등으로 적지 않은 시련을 겪었다. 이 틈을 타 롯데관광 등 끊임없이 대북사업을 넘보는 세력이 등장했다. 현 회장은 2005년에 이어 이번에 김정일 위원장을 다시 한번 면담함으로써 그간의 ‘흔들리던 위상’에 쐐기를 박았다. 백두산-금강산-개성 등 관광사업쪽에서 얻을 것은 거의 다 얻어냈다. 나아가 지난 2000년 북측에서 보장받은 7대 경협 분야의 현대 독점권을 재확인하는 기대 밖의 성과도 거뒀다. 시아버지(고 정주영 명예회장)와 남편의 숙원에 완결점을 찍은 것이다. 현대는 앞으로 북측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에도 참여할 것으로 보여 이익 창출이 기대된다. 현 회장 모녀에 대한 김 위원장의 각별한 배려도 눈길을 끈다. 현 회장의 맏딸인 정지이 현대유&아이 전무는 이번에도 방북 길에 동행해 후계자 지위를 확실히 했다. 현 회장은 ‘현대아산과 북측과의 대북사업 독점적 지위에 대한 잡음이 끝난 것인가.’라는 질문에,“그렇다.”고 확답했다. ●관광 대가 조율 등이 변수 당장 변수는 북한에 지불해야 할 관광대가다. 개성 관광이 지금껏 헛돈 것도 이를 둘러싼 이견 때문이었다. 금강산의 경우, 현대아산은 1인당 35달러의 입장료를 북한에 내고 있다. 개성관광은 조계종이 영통사에 50달러를 내고 들어간 전례가 있어 이 선에서 거론된다. 백두산은 금강산과 개성 입장료 사이에서 결정될 전망이다. 숙박시설 등 인프라 시설도 관건이다. 개성은 서울에서 1시간 반이면 도착해 당일 관광이 가능하다. 만월대, 선죽교, 고려왕릉, 박연폭포 등이 관광코스에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입북 절차 완화·관광비용 보완 등 과제로 여행업계는 침체된 국내 관광산업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을 호재로 받아들이고 있다. 백두산이나 개성 관광은 금강산 관광만큼 매력적인 요소를 갖고 있어 성공을 낙관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까다로운 입북 절차와 부담스러운 관광 비용 문제 등 해결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 안미현기자 hyun@seoul.co.kr
  • [사설] 北, 도이머이 제대로 배워라

    김영일 북한 총리가 이끄는 대표단이 4박5일간의 베트남 방문을 그제 마쳤다. 이들은 형식적인 행사 참가나 회담보다는 주로 베트남의 경제 발전 현장을 돌아다니는 데 많은 시간을 보냈다. 경제 정책을 총괄하는 기획투자부를 찾은 데 이어 베트남 관광의 핵심지인 할롱베이에서 하룻밤을 머물렀다. 하뚜 석탄 광산을 둘러보고, 물류 항구인 하이퐁을 시찰하는가 하면, 경제 대도시 호찌민의 산업공단을 견학했다. 대외무역상과 농업상 등 북한의 경제관료들은 베트남의 눈부신 경제 발전상을 눈으로 보고 베트남 관계자들과 열띤 토론도 벌였다고 한다. 북한이 어떤 목적으로 대표단을 보냈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적어도 베트남의 ‘도이머이’에 관심을 보이고 직접 확인했다는 데 적지 않은 의미가 있다. 베트남은 1986년 시장지향적 개혁·개방 정책인 도이머이를 밀어붙여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고 있다. 지난달 중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평양을 찾은 베트남 최고 지도자 농득마인 공산당 서기장에게 도이머이를 벤치마킹하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북한이 베트남식 개혁·개방을 추진할 것이라는 예상은 성급할지 모른다. 북한의 진의는 농득마인 서기장이 이달 중순 한국을 방문하면 어느 정도 드러날 것이다. 경제도 키우고 체제도 지켜야 하는 북한으로선 도이머이가 양날의 칼일 수 있다. 하지만 문을 열면 모기도 들어온다며 개방에 주저했던 과거의 ‘모기장론’으로는 체제 유지마저 힘들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베트남에서 보고 배운 것을 실천에 옮기는 결단을 북한 지도부에 기대한다.
  • “집권시 개성공단·금강산 관광 계속”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더라도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사업을 지속할 뜻을 밝혔다. 이 후보는 30일 방영된 미국의 경제전문통신 블룸버그TV와의 인터뷰에서 차기정부 집권시 남북관계에 대한 질문에 “대통령에 당선되면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 등 북한과의 경제협력사업을 계속할 것”이라며 “김정일 국방위원장과도 기꺼이 만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후보는 다만 남북 평화협정과 관련,“북핵협상의 진전 상황에 따라 이를 이행할 수 있을 것”이라며 “북한이 핵을 보유하고 있는 한 평화협정은 있을 수 없다.”고 전제했다. 그는 이어 “당선되면 법인세를 감면하고 금산분리 규제도 완화함으로써 연 7% 성장률을 이룰 것”이라고 덧붙였다.한상우기자 cacao@seoul.co.kr
  • 현정은 회장,평양 간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30일 북한을 방문한다. 맏딸인 정지이(현대U&I 기획실장) 전무도 동행한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의 ‘독대’ 여부에 관심이 쏠린다. 최근 현대그룹의 독점적 대북사업 지위를 위협하는 일들이 잦아 현 회장이 백두산 관광 등 대북사업 논의를 깔끔하게 마무리지을지도 주목된다. 현대그룹은 29일 “현 회장이 30일부터 다음달 3일까지 4박5일간 방북한다.”고 밝혔다. 항공편으로 베이징을 거쳐 평양에 들어간다. 이달 들어서만 두번째 평양행이다. 지난 2일에는 ‘2007 남북정상회담’ 특별수행원 자격으로 평양을 찾았었다. 그룹측은 “현 회장이 백두산 관광과 개성공단 2단계 사업 등을 주로 협의할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표류 중인 개성 시내관광 문제와 금강산 관광에 비로봉·총석정을 포함시키는 방안도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방북단은 현 회장을 포함해 윤만준 현대아산 사장 등 25명이다. 북한의 조선아시아태평양 평화위원회, 명승지종합개발지도국 고위 관계자들과의 면담이 잡혀 있다. 그룹측은“ 현 회장과 김 국방위원장 또는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의 면담 계획은 현재 잡혀 있지 않다.”고 밝혔다. 이달 초 평양 방문 때 현 회장이 김 위원장을 만나기는 했지만 대통령 수행 자격이라 그룹의 사안을 논의하지 못한 만큼 ‘독대’를 강력히 바라는 눈치다. 현대측은 김 위원장과의 면담이 불발되더라도 대북사업 논의 진척에는 별 지장이 없을 것으로 자신한다. 특히 백두산 관광은 무난히 성사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남북 정상이 이미 백두산 직항로 개설에 합의했기 때문이다. 안미현기자 hyun@seoul.co.kr
  • [씨줄날줄] 브루스 커밍스/이목희 논설위원

    브루스 커밍스 미국 시카고대 교수가 내놓은 저서 ‘한국전쟁의 기원’은 1981년 당시 놀라움 그 자체였다.38선 획정, 남북분단 고착화, 그리고 한국전쟁 발발 책임이 미국에 있다고 그는 주장했다. 이른바 수정주의적 관점이었다. 내용의 옳고그름을 떠나 미국 학자가 그런 주장을 편 것이 신선했고, 충격이었다. 앞서 커밍스는 한국에서 평화봉사단원으로 활동했다. 우리말을 자유롭게 해독하고, 부인이 한국인이다. 평양을 방문하는 등 북한 이해도 역시 높았다. 무엇보다 1975년 미 행정부가 공개한 한국전쟁 사료들을 정밀분석했다. 한반도 문제를 놓고 소련과 중국, 북한의 책임만 강조하던 전통주의적 시각에 일침을 가할 자격을 갖췄다고 본다. 소련 붕괴 이후 커밍스 이론은 위기를 맞는다. 러시아측에서 흘러나온 사료들은 한국전쟁 책임자를 분명히 알려주고 있었다. 김영호 성신여대·박명림 연세대 교수 등 한국 학자들은 커밍스 이론을 극복하면서 한국전쟁의 기원을 객관적으로 분석했다. 그로 인해 한국에서 커밍스의 인기가 식었는가. 천만의 말씀이다. 대북 햇볕정책과 한국사회 일각의 반미 감정…. 커밍스는 여전히 진보진영에서 환영받는 인물이다. 커밍스는 30차례 이상 한국을 오가며 강연, 기고 등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며칠전 서울에서 열린 국제학술회의에 참석, 남북 정상회담 결과를 높게 평가했다. 미국 노틸러스연구소 기고에서는 ‘(핵협상 과정에서) 김정일이 부시를 이겼다.’고 밝혀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커밍스가 진정한 지한파(知韓派)가 되려면 더 솔직해져야 한다. 커밍스는 “나는 한국의 북침설을 말한 적이 없는데 독재자들이 말을 만들어서 좌파로 몰았다.”고 항변하고 있다. 그런 식으로 얼버무리지 말고, 과거 자신의 주장 중 역사적 증거에 맞지 않는 부분은 과감히 시정해야 한다. 또 권위주의 시절 남한의 인권을 비난한 만큼 북한의 인권도 비판해야 형평에 맞는다. 객관화 노력이 없으면 그는 워싱턴 정가나 미국 학계에서 계속 돌출부로 남을 뿐이다. 그처럼 남북한을 동시에 아는 학자를 발견하기 힘든 현실에서 커밍스의 분발이 있기를 바란다. 이목희 논설위원 mhle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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