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도 마스크 코로나19 첫 인정, ‘일국 봉쇄’론 대처 안되는데
북한이 코로나19 확진자 발생을 처음으로 인정했다. 팬데믹이 시작한 지 2년 3개월 만이다. 지난 10일 평양 주민들을 일찍 귀가시키고 “전국적인 봉쇄령”이라고 설명했다는 북한 전문매체들의 보도가 있었는데 첫 감염자 발생이란 중차대한 사태 진전 때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12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회의를 주재하면서 코로나 감염 차단을 국가 최중대 비상사건으로 규정함에 따라 핵실험 등 도발을 자제하고 국제사회에 코로나19 치료제나 백신 등 도움을 청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조선중앙통신은 이날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8차 정치국회의를 당중앙위원회 본부청사에서 열고 코로나19 확진자 발생 사실을 전격 공개했다고 보도했다. 통신에 따르면 정치국은 “2020년 2월부터 오늘에 이르는 2년 3개월에 걸쳐 굳건히 지켜온 우리의 비상방역전선에 파공이 생기는 국가 최중대 비상사건이 발생하였다”고 밝혔다. 이어 “국가비상방역지휘부와 해당 단위들에서는 지난 5월 8일 수도의 어느 한 단체의 유열자(발열자)들에게서 채집한 검체에 대한 엄격한 유전자 배열 분석 결과를 심의하고 최근에 세계적으로 급속히 전파되고 있는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 BA.2와 일치하다고 결론하였다”고 전했다.
확진자 규모는 밝히지 않았지만 발열자들이라고 한 점에 비춰 복수일 가능성이 높다. BA.2는 기존 오미크론보다 전파력이 30∼50%가량 센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진단검사에서 다른 변이체보다 검출하기가 훨씬 어려워 스텔스 오미크론으로 불린다.
정치국 회의에는 정치국 상무위원과 위원 및 후보위원과 함께 국가비상방역부문 간부와 국방성 지휘관들이 방청했다. 참석자들은 긴급 방역대책 논의와 함께 방역으로 인한 안보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대책을 논의했다. 정치국은 보건상황에 민감하게 대응하지 못한 방역부문의 무경각과 해이, 무책임과 무능을 비판했다
김 위원장은 회의에서 “전국의 모든 시, 군들에서 자기 지역을 철저히 봉쇄하고 사업단위, 생산단위, 생활단위별로 격폐한 상태에서 사업과 생산활동을 조직하여 악성 바이러스의 전파 공간을 빈틈없이 완벽하게 차단하라”고 지시했다. 다만 “경제사업에 대한 조직과 지도, 지휘를 더욱 빈틈없게 하여 당면한 영농사업, 화성지구 1만 세대 살림집 건설 등 숙원사업을 제 기일 안에 손색없이 완성하라”고 해 비상방역 때문에 경제가 어려워지지 않도록 노력해 줄 것을 당부했다. 또 “강도 높은 봉쇄상황 하에서 인민들이 겪게 될 불편과 고충을 최소화하고 사소한 부정적 현상도 나타나지 않게 하라”고 언급, 사재기 현상 등을 우려한 것으로 해석된다.
김 위원장은 “이번 최대 비상 방역체계의 기본 목적은 우리 경내에 침습한 신형 코로나바이러스의 전파 상황을 안정적으로 억제, 관리하며 감염자들을 빨리 치유시켜 전파 근원을 최단기간 내에 없애자는 데 있다”면서 “지금 우리에게 악성 바이러스보다 더 위험한 적은 비과학적인 공포와 신념 부족, 의지박약”이라고 강조했다.
정치국은 이런 내용의 당 중앙군사위원회 비상지시문과 내각 비상지시문을 심의 승인하고 일선에 하달하도록 했다.그러나 중국의 최근 상황에 비추어 북한의 봉쇄 대책으로 감염 사태를 차단하거나 예방하는 것은 한계가 분명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세계보건기구(WHO)나 한국 등 국제사회가 지원하겠다고 표명한 백신도 일절 받아들이지 않아 주민 접종률은 0%다. 최근 중국 내 여러 지역의 빠른 확산세로 150만명 정도가 사망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올 정도인데, 백신 접종이 전무한 상태에서 국경을 차단하고 주민들의 지역 이동을 막는 조치만으로 방역에 성공할 것이라고 믿는 것은 지나치게 순진한 생각으로 보인다. 의료 인력과 장비, 시설 등도 전반적으로 열악한 것으로 평가된다. 남한과 국제사회가 제공하겠다고 여러 차례 제안한 백신과 의료장비, 방역 대책 경험과 조언 등을 받아들이는 것만이 최선의 방책으로 보인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장은 생산활동을 아예 충단시키고 아파트에 감금하는 수준의 중국과 달리 생산단위, 생활단위 간 사람과 물자 이동을 차단하겠다는 것인데 이 조치 역시 시간이 지나면 생산활동 중단으로 이어질 것이라며 중국이 직면하고 있는 대혼란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도 오미크론 발생 때문에 7차 핵실험이나 미사일 시험발사 등 을 포기할 가능성은 희박하다며 오히려 침체된 사회 분위기를 전환하고 주민들의 사기를 끌어 올리기 위해 도발에 나설 것이라고 예상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 교수는 AFP 통신과의 인터뷰를 통해 북한 주민들의 “전염병에 대한 두려움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고” 핵실험을 앞당기지 않을까 우려했다. 반면 레이프에릭 이슬리 이화여대 교수는 “긴급한 위협은 외국 군대보다 코로나바이러스이기 때문에 핵실험이나 미사일시험 같은 것에 덜 관심을 갖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고 영국 BBC가 전했다.
한편 우리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날 오전 용산청사 브리핑룸에서 기자들과 만나 ‘스텔스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 유입’과 관련한 북한 조선중앙통신 보도 질문에 “(윤 대통령은) 인도주의적 차원의 지원에 대해서는 예외로 생각하는 것으로 안다”며 “결정된 것은 없다”고 원론적인 입장 표명에 머물렀다. 질병관리청 중앙방역대책본부(방대본)은 이날 코로나19 백브리핑에서 잔여백신 공여와 관련한 취재진의 질의에 “북한 공여를 검토한 바 없으며, 필요 시 관계부처와 협의해 공여 가능성을 검토하겠다”고 답했다.
다만 국내에서는 백신 도입량에 비해 사용량이 감소하며 폐기 백신이 늘어나고 있다. 이날 기준으로 잔여백신은 화이자 770만 2000회분, 모더나 332만 6000회분, 얀센 198만 6000회분, 노바백스 157만 9000회분 등 모두 1477만 4000회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