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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용차 10부제」 이렇게 생각한다

    ◎“교통 소통 원활 도움… 계속 시행하길”/“성공 여부 평가 일러… 근본대책 필요”/범칙금 교통환경 개선에/5월이후의 대책 강구를 교량보수를 위해 현재 고육지책으로 실시되고 있는 승용차 10부제의 성공여부를 평가하는 것은 아직 좀 이른 감이 있지만 나름대로 효과를 거두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시내 승용차 통행량의 감소로 만성적인 교통체증이 어느 정도 풀리고 대중교통수단의 이용도 그만큼 활발해진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그러나 10부제는 어디까지나 한시적인 처방이기 때문에 10부제 적용기간이 끝난 이후의 교통대책에 대해서는 지금부터 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또한 10부제 위반때 내는 범칙금도 교통환경 개선금의 명목 등으로 쓰여져야 한다고 본다.고윤웅(57·내과의사) ◎대중교통 편리함 느끼게/버스­전철역 연계 늘려야 한정된 공간속에서 시민들은 누구나 편리한 생활을 원한다.하지만 열흘에 한번 정도는 시민생활을 위해 자신의 권리를 포기할 줄 아는 시민정신 또한 중요하다.승용차 10부제에 대해 전적으로 찬성한다.기간에 구애받지 말고 계속 실시하는 것을 개인적으로 찬성한다.버스전용차선제도 좋은 제도다.그러나 버스와 전철역간의 연결이 좀더 매끄러워져야 하겠다.목적지에 가기 위해서 어떤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하면 좋은지 안내판을 설치하는 등 시민들이 대중교통의 편리함을 피부로 느낄 수있도록 해주었으면 좋겠다.박종림(30·주부·양천구) 하루 불편…9일 편해져/항구적 시행 검토해볼만 3년째 자가용으로 출·퇴근하고 있다.10부제 시행 이전에는 서울시가 다리 보수를 빌미로 시민들에게 불편을 떠넘기는 것으로만 여겼다.그러나 막상 겪어보니 소통이 한결 나아졌다는 느낌을 받았다.하루 불편으로 9일간이 편해졌다.차제에 10부제를 제도화하고 항구적으로 시행하는 것도 검토해볼만 하다.버스전용차선제도 버스의 난폭운전 등 일부 문제가 있긴 하나 대체로 성공적이라고 본다.정홍길(33·공인회계사) ◎택시 버스차선통제 유감/동등하게 운행허용 해야 승용차 10부제와 버스전용차선제 실시로 차량 통행이 크게 원활해 졌다. 교통체증 해소를 위해 이 제도를 한시적으로 실시할 것이 아니라 앞으로 정착시키는 것이 바람직 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승객 승하차때에만 택시의 버스전용차선 진입을 허용하는 것은 불합리하다. 하차때는 큰 문제가 없으나 승객을 태우기 위해 갑자기 버스전용차선으로 들어가야 할 경우 상당한 어려움이 따른다. 택시도 대중교통인 만큼 버스전용차선 운행을 허용하는 방안이 검토되어야 한다.신철(42·택시기사) ◎규제보다 자발참여 유도/일방강제는 부작용 불러 아무리 좋은 취지의 제도라고 하더라도 입안 및 시행과정에서 민주성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특히 위반차량에 과태료를 부과하는 것은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하는 방식이 아니라 일방적인 강제라는 느낌을 준다.이는 잘못된 교통행정의 결과를 시민에게 이전시키려는 태도가 아닌가 여겨진다. 당국이 규제중심의 제도를 양산하기에 앞서 대중교통수단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려는 의지와 노력을 보여주었으면 싶다.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하는 일이 안락하다면 누가 굳이 「불편한」 자가용을 이용하겠는가 묻고싶다.이정수(24·대학원생) ◎자전거차선 설치 바람직/도로혹충 다각 모색할때 승용차 10부제와 버스전용차선제는 승용차 통행을 억제하여 교통소통을 원활하게 하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특히 버스전용차선제는 버스 통행에 우선권을 줌으로써 대중교통수단의 이용을 촉진한데 큰 의의가 있다.따라서 이 두 제도는 한시적으로만 운영할 것이 아니라 시민 생활에 완전 정착시켜 교통문화의 혁명을 가져오도록 해야 할 것이다.아울러 일부 도로에는 자전거전용차선을 추가로 설치하는 것도 바람직 하다고 본다.근본적인 교통문제 해결의 재원마련을 위해서는 자동차세를 도로확충을 위한 목적세로 운영하고 자동차 생산업체에게 이익의 일정분을 도로망 확충에 기여토록 하는 방안도 적극 검토돼야 할 것이다.김신복(50·서울대교수) ◎차선취반 새 문제점 대두/「5월말시한」 약속지키길 10부제 운행과 버스전용차선제 확대는 대다수 시민들의 편익을 위한 정책인 만큼 1백50% 찬성한다.개인적으로는 10부제를 3기지하철이 완공되는 99년까지 시행하는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그러나 시민들에게 한강다리보수가 끝나는 5월말까지로 약속한 만큼 약속은 지켜야 한다.버스전용차선 전일제운행은 지금까지 시행해 보지 못한 파격적인 정책이다.전용차선제 확대로 출·퇴근시간대는 물론,낮시간대의 교통흐름이 많이 개선됐다.택시 승·하차,버스 운전사들의 차선위반 등이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정성용(46·사무관) 정체극심한 승강장확장/얌체운전추방 노력해야 버스전용차선제 실시로 종전 2시간 걸리던 뚝섬∼구로동 구간 운행시간이 20분쯤 짧아졌고 출·퇴근 시간에도 교통흐름이 훨씬 원활하다.일부 승용차 운전자들의 불만도 있지만 전용차선제가 좋은 효과를 거두고 있는 만큼 승용차 10부제와 병행해 앞으로 계속 시행돼야 할 것이다.다만 교통정체구간에서는 버스정류장을 넓히고 택시승강장과 버스정류장사이의 구간을 확대해 택시의 버스전용차선 침범을 원천적으로 막는등 제도 개선도 필요하다.또 끼어들기,차선걸치기 운전등을 일삼는 일부 자가 운전자들의 의식수준도 개선돼야한다.김문종(42·버스운전사) ◎불가피한 승용차 이용자/선의의 피해없게 보완을 조그마한 가게를 운영하기 때문에 최근까지 주로 승용차로 출·퇴근했으나 승용차 10부제와 버스전용차선제가 실시되면서 거의 지하철이나 버스 등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하고 있다.자동차의 증가에 따른 교통체증에서 벗어날 수 있고 시간도 절약된다는 이점 때문에 개인적으로 잘된 일이라 생각한다. 이번 일을 계기로 10부제와 버스전용차선제를 지속적으로 시행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다만 영업상 승용차를 이용해야 할 사람과 버스전용차선제에 따른 제도상의 문제점을 보완해 선의의 피해가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김정숙(38·음식점주인) ◎투자늘려 장기계획 시급/대중교통 안락하게 전환 한강다리 보수작업이라는 특수상황을 전제로 한 승용차 10부제 성과를 과장해서는 안된다.또 버스전용차선의 정착으로 향상된 속도가 과잉해석 된다든지 소통이 원활해졌다고 강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교통은 흐름이기 때문에 본격적인 보수공사가 시작되면 언제 어디가 막힐지 알수 없는 상황이다.10부제가 성공했다고 부산을 떨기보다는 자가용 이용을 최대한 억제할 수 있는 기본여건을 마련하는데 주력해야 한다.대중교통수단에 대한 과감한 투자를 통해 성숙된 시민의식에 부응해야 할 것이다.임삼진(녹색교통운동 사무처장)
  • 민자 당직개편 마무리/당무위원 46명 확정 발표

    ◎대표 비서실장 강용식/기조위원장 최재욱/조직위원장 김운환/홍보위원장 김길홍 민자당은 11일 대표비서실장에 강용식 의원,기획조정위원장에 최재욱의원,조직위원장에 김운환 의원을 임명했다. 이와 함께 지명직 당무위원에 최형우 이민섭 문정수 이세기 서청원 남재두 강삼재 의원 등 25명을 임명하는 등 모두 46명의 당무위원을 확정했다고 박범진 대변인이 밝혔다. 민자당은 이같은 중·하위당직의 인선으로 선출직인 중앙상무위의장을 제외한 당직개편을 모두 마무리지었다. 지난 7일 전당대회를 통해 독임제로 운영하던 당기구를 위원회제로 바꾼 민자당은 이날 홍보위원장에 김길홍,여성위원장 주양자,정세분석위원장 김영일,제1정책조정위원장 송천영,제2정책조정위원장 이상득,제3정책조정위원장 김기도,민원위원장에는 이택석 의원을 임명했다. 원내기획위원장에는 권해옥,중앙상무위운영위원장 유승규,국제협력위원장 하순봉,국제기구위원장 손학규,정책평가위원장 노승우,교육평가위원장 성무용,중앙당기위원장 유돈우,재정위원장 장영철,평화통일위원장 박명환,재해대책위원장 정필근,민청총단장에는 박종웅의원이 기용됐다. 이밖에 원내부총무에는 허재홍 박주천 김해석 정창현 오장섭 박희부 번형식 박헌기의원,부대변인에는 김형오 김범명 의원과 김정숙 전정무2장관보좌관을 기용하는 한편 교육연수원부원장에는 이순재 의원과 유홍렬 전부원장,안희석 무안지구당위원장을 발령했다. 이날 지명된 당무위원은 오세응 최형우 김영구 박명근 이민섭 정순덕 신상식 이세기 서청원 서정화 정재문 김진재 문정수 남재두 박준병 강삼재 노인환 이웅희 이인제 이해구 강재섭 의원과 남재희 강현욱 김육덕 이윤자 전의원이다.당 총재와 대표 전당대회의장 사무총장 정책위의장 원내총무 정무1장관 중앙상무위의장 세계화추진위원장 국책자문위원장을 비롯,시·도지부위원장은 당연직 당무위원이다.
  • MBC간부 3명 수뢰혐의 포착

    ◎연예계비리 수사/전속계약금 인상 대가 돈 받아/뇌물 준 혐의 극작가 1명 조사 방송 연예인 금품비리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경찰청 특수 수사과는 10일 문화방송(MBC­TV) 기획조정실장 이연헌(52·이사급)씨가 방송 드라마 전속 계약금을 올려주는 대가로 방송작가로 부터 5백만원을 건네받았다는 혐의를 잡고 물증이 확보되는대로 배임수재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키로 했다. 경찰은 또 같은 방송사 제작부국장 이병훈(50)씨와 연속극 담당 부국장급 기획 프로듀서(PD)인 최종수(48)씨 등 2명에 대해서도 같은 혐의로 조사를 벌이고 있다. 경찰은 이와함께 방송작가 김정숙(46·필명 김정수)씨가 이들 3명에게 전속계약금을 올려달라는 조건으로 돈을 건네준 것으로 보고 조사하고 있다.
  • 만학도(외언내언)

    고고미술사학자로 유명했던 삼불 김원용교수가 나이 50이 넘어 영국에서 1년동안 유학한뒤 수상집을 펴냈었다.책이름이 「노학생의 향수」.뒤늦은 유학생활의 신산함과 외로움을 진솔하게 담아 화제가 됐었다. 그중에 이런 글이 있다.하숙방에서 책을 보고있는데 난데 없는 개미떼들이 줄을 지어 문틈으로 행진하더란다.무료한 판에 개미군단을 따라 가 봤더니 복도를 지나 어느 문틈으로 사라지더라는 것.마루바닥에 얼굴을 대고 열심히 관찰하고 있는데 벌컥 문이 열리면서 얼굴이 뻘개진 하숙집 여주인이 나타났다.아뿔사! 그건 여주인의 목욕탕이더란 얘기였다. 학문의 「늦깎이」는 정상보다 몇배나 힘들고 어려운 도정을 걸어야한다.그러나 그런 난관을 극복하고 대성한 이들은 많다.우리 여성계의 거목인 이태영여사도 서른다섯에 서울법대를 졸업,38세에 사법고시에 합격했던 만학도.작고한 여류조각가 김정숙도 33살때 조각가의 꿈을 이루기 위해 대학에 들어갔다.국어학자 일석 이희승도 직장생활하다 44살에 도쿄유학생이 되었다.최근에는 팔순의 시인 미당 서정주의 러시아 유학이 화제가 됐었다. 서울에 주부들만을 대상으로한 주부중·고교가 있다.20대 후반서 60대가 넘은 할머니학생까지 있지만 어찌나 향학열이 높은지 수업시간에 교사들이 쩔쩔 맬 정도라고.「못배운 한」을 풀어보려는 주부들의 열기가 그렇게 뜨거울수 없다고 한다. 지금은 평생교육시대.대학마다 평생대학원이 부설돼 주부나 노인학생들이 몰리고 있다.「성공적인 노후의 삶」「죽음의 준비」등 과정도 있다고 한다.서강대 편입시험에 정년퇴직한 67세와 61세의 「노익장」이 합격을 했다.산전수전 다겪고 손자뻘대학생들과 어울려 학문의 길에 들어선 그 결단과 의지가 놀랍기만 하다. 「배우고 또 수시로 익히면 그 또한 즐겁지 않으랴」(논어)의 경지가 아닐는지 모르겠다.
  • “지방의회 선거때 여성진출 늘리자”

    ◎여성단체들 연대… “여후보 20% 공천,정당에 압력/인물발굴 등 여성정치참여 확대 유도… 세미나도 연초부터 올해 6월로 예정된 제2기 지방의회 선거를 겨냥한 여성계의 준비작업이 활발하다. 이는 지방의회 선거야말로 여성들의 정치참여를 확대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여성계는 후보 발굴작업부터 후원회 결성 및 입후보 희망자들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교육으로 눈앞에 다가온 선거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또한 각 정당에 후보의 20%는 반드시 여성으로 공천하도록 압력을 강화하는 동시에 선거자원봉사자 은행을 가동하고 공명선거를 주제로한 비디오를 제작,혼탁한 선거분위기 속에서 여성들이 불이익을 당하는 일이 없도록 하는 등 지원전략도 아주 다양하다. 현재 제1기 지방의회의 여성의원은 기초에 40명,광역에 7명으로 기초 전체의 4천3백4명과 광역 8백66명의 각 1%도 넘지 못하는 0.9%와 0.8%에 불과하다.따라서 이번 2기에서는 가능한 많은 여성후보를 내세워 당선을 최대화 해보자는 것이 여성계의 계산으로 지난 1기와 비교,여성후보들이 적어도 5배이상은 출마하지 않을까 점치고 있다. 한국여성유권자연맹의 신낙균회장은 『현대는 생활정치 시대로 여성들의 적극적인 정치참여가 촉구된다』고 밝히고 지역의 살림살이를 꼼꼼하게 챙겨야 할 지방의회는 특히 여성들이 적합,보다 많이 진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최근 지방의회의 여성진출 확대를 위해 뛰고있는 대표적인 여성단체들은 한국여성정치문화연구소(이사장 김정숙)와 한국여성유권자연맹(회장 신락균),한국여성정치연맹(총재 김정례),한국여성정치연구소(소장 손봉숙),새마을부녀회중앙연합회(회장 정행길)등.그리고 여성단체협의회와 여성단체연합을 주축으로 56개 여성단체가 20% 할당제를 위한 여성연대를 구축하고 있으며 한국여성개발원(원장 김정자)이 측면에서 지원하고 있다. 이가운데 여성정치문화연구소는 곧 기술적인 선거전략을 수록한 책자「여성과정치」를 발간할 계획이며 1월부터 3월까지 대전 광주 부산 대구 춘천지역 등에서 여성 정치참여 성공전략에 관한 세미나를 개최키로 했다.또 여성정치연맹도 2월말 지자제대비 여성의 의회진출을 위한 선거전략 강연회와 분과별 토의를 준비중이며 여성유권자연맹은 여성 정치지도자 교육과 함께 지난해 9∼12월 선거자원봉사자 교육 수강생 2천명을 중심으로 선거자원봉사제 은행을 설치했다. 그밖에 여성정치연구소가 선거공약과 홍보전략 및 모의합동유세,조직구성과 예산집행에 이르기까지 선거에 관한 모든 것을 최종 정리하는 선거교실「캠페인 스쿨」을 2박3일 과정으로 운영하고 모의선거운동 전략을 비디오로 제작했다.한국여성개발원도 최근 「참신한 정치를 원하세요」를 타이틀로 하는 여성유권자 교육용 비디오작품을 만들어 보급중이다.
  • 뮤지컬 「서울사람들」 민비역 신영미양(인터뷰)

    ◎“명성황후 된 기분으로 일기 쓰고 꿈도 꿔요” 『한 나라의 국모로서 과연 명성황후의 인간적 진실은 무엇이었을까.이런 생각에 빠져 요즘은 제 스스로 명성황후가 된 기분에서 일기도 쓰고 꿈도 명성황후로 꾸고 있어요』 오는 29일부터 12월 4일까지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강당 무대에 오를 서울시립가무단(단장 이의일)의 서울정도 6백주년 기념 뮤지컬「서울사람들」(김정숙 작,김상열 연출)에서 명성황후 민비 역을 맡은 신영미양(23).올해 한양대 음대 성악과를 수석으로 졸업한뒤 곧바로 시립가무단에 입단,뮤지컬 전문배우의 길에 들어선 그는 성악가에의 꿈을 접어둔 것이 좀 아쉽기는 하지만 자신의 선택이 결코 후회스럽지 않다며 의욕을 보인다. 「서울사람들」은 한양천도를 예시했던 무학대사와 서우리라는 미래소년의 만남을 통해 우리 사회의 희망찬 미래상을 그린 2시간짜리 창작극. 그동안 「유논과 아보스」「인어공주」「황금신화 2001」등 불과 몇작품에 얼굴만 잠시 내비치는 정도에 그쳤던 그가 이번에 주위의 「시샘」을 받으며 파격적인 배역을 맡게 된 것은 오로지 발군의 가창력 때문이다. 『성악에서 요구되는 벨칸토 창법이 오히려 노래가사를 명료하게 전달하는데 방해가 되는 것같아요.목의 울림을 줄이고 흉성을 섞어 보다 편안한 목소리로 뮤지컬곡의 분위기를 살려나가려고 해요』 그는 이번 무대를 위해 「목련꽃 아래서」「망국의 한」등 2곡을 부를 예정이다. 중학교 2학년때 뮤지컬「가스펠」에 처음으로 출연하면서부터 뮤지컬스타에의 막연한 동경을 품어 왔다는 그가 가장 닮고 싶은 뮤지컬배우는 「사운드 오브 뮤직」의 주인공 줄리 앤드루스다.노래·춤·연기의 삼박자를 제대로 갖추고 있을 뿐 아니라 무엇보다 자기관리가 철저한 배우라는 생각에서다. 『오페라가 쌍두마차 시절의 예술이었다면 뮤지컬은 우주선이 하늘을 나는 첨단과학시대의 예술이라는 느낌이 들어요.오늘날 무대예술상품의 대명사로 통하는 뮤지컬은 틀림없이 미래 음악극의 선두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입니다』오페라에 대한 뮤지컬의 비교우위론을 당당하게 펼치는 그에게서 한국 뮤지컬의 밝은 장래가엿보인다.
  • 구오동·이팔리/김일성 현지지도 날짜서 지명 따와(오늘의 북한)

    ◎고려대 아세아문제연,북한 행정지명 유형별 분석/김일성 가계/김정숙군·김형직군·정일봉/혁명의식고취/충성동·전승동·해방리 등/체제 충성자/김책시·김제원리·이수덕리 나진·선봉시는 북한당국이 요즈음 외자유치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경제특구이다. 그러나 북한을 고향으로 둔 실향민들조차도 선봉이라는 지명에는 고개를 갸우뚱할 수 밖에 없다.그도 그럴 것이 북한당국이 함북 웅기군을 없애는 대신 「매사에 선봉에 서라」는 뜻으로 새로운 행정지명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북한에선 김일성일가에 대한 충성심 고취나 사회주의식 노력동원을 부추기기 위한 이른바 「북한식 지명」이 수없이 많은데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최근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가 주최한 학술세미나에서 밝혀진 바에 따르면 정치성을 띠고 개명된 북한의 행정지명은 몇가지 유형으로 분류된다. 첫째 김일성 가계의 이름을 직접 딴 행정지명으로 81년 8월 양강도 신파군을 김정숙군(김정일의 생모)으로 개편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88년 양강도 후창군을 김형직군(김일성의 부)으로,90년 풍산군을 김형권군(김일성의 숙부)으로 바꾼 것도 같은 맥락이다.이밖에 민족의 성산인 백두산 밀영속의 한 봉우리 이름을 김정일 이름을 따 정일봉으로 고친 사례도 있다. 둘째 일반어휘에 사회정치적 의미를 부여해 김일성부자에 대한 충성,혁명업적 찬양 및 사회주의적 변화상을 반영한 지명이다. 이를테면 충성동(자강도 강계시,남포시 대안구역 소재),은덕군(경흥군),은혜리(황남 은률군),은정리(황북 서흥군),영광군(함남 오로군)등이 수령과 당에 대한 충성과 감사를 기리기 위해 새로 지어진 행정지명들이다. 이와는 달리 81년 함남 회조군을 낙원을 건설했다는 뜻으로 락원군으로 개칭한 것을 비롯해 수령의 업적과시를 행정지명으로 부여한 것도 적지 않다.개선동(평양시 모란봉구역,강원도 원산시),전승동(평양시 모란봉구역)등이 이에 해당된다. 다른 한편 사회주의적 변화의 현실을 강변하거나 선전하기 위한 것으로는 해방리(황남 옹진군,강원도 고산군),혁신리(자강도 장강군),평화리(함남 금야군,황남 강병군)등이 있다. 셋째 이른바 김일성의 「현지지도」날짜가 지명으로 정착된 곳도 많다.오일노동자구(자강도 장강군,양강도 갑산군),구오동(자강도 만포시),이팔리(함남 부전군),구월동(평남 평성시)등이 그것이다. 넷째 김일성과 북한체제에 충성한 사람들의 이름을 빌린 지명이다.성진시와 학성군을 김책시와 군으로 바꾼 것이라든가 김제원리(황남 재령군),이수덕리(강원 평강군),박춘 로동자구(함북 경성군)등이 이 범주에 들어간다.
  • 모스크바대 부설 국제종합학교/허진 이사장(인터뷰)

    ◎“반김정일세력 폭동 일으킬 가능성”/김정숙·김영주 실각 판단은 성급/지원하되 체제안정엔 도움 안되게 모스크바국립종합대 부설 모스크바국제종합학교 이사장으로 있는 허진씨(67)는 4일 김일성사후 북한정세를 한마디로 「진퇴양난」이라고 진단했다. 허씨는 이러한 판단의 근거로 우선 김일성사망후 후계자로 지목됐으나 아직 정권을 잡지 못한 김정일측 세력과 이에 대한 김일성의 처 김정숙과 동생 김영주,김정일 이복동생 김평일등 반김정일세력이 모두 상대세력에 대항할 만한 뚜렷한 영향력을 확보하지 못한 점을 제시했다. 이런 상태에서 권력쟁취를 위해 섣불리 상대방비판등 무리한 행동을 감행하다가는 오히려 상대방에게 유린당할 우려가 있어 뾰족한 「수」를 쓸 수 없는 형국이라는 것이다. 허씨는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 대북지원은 『기본적으로 독재자 권력연장에 도움이 되지 않는 방향에서 행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민의 폭동등 북한내 김정일반대세력들의 반발이 일어날 가능성에 대해서도 『오늘 아니면 내일이라도 일어날 수 있다』면서 『북한인민은 군부대폭동이 일어나 군사독재가 되더라도 김정일독재보다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무 두려움이 없을 정도』라고 말했다. 허씨는 북한소식 입수경로에 관해 『북한 왕래객과 중국서 나온 신문이 고작일 정도로 뾰족한 수가 없다』면서 『특히 북한내에서도 김일성의 아들·처 이름을 제대로 모르는 인민이 많을 정도로 정보를 구하기가 어렵다』고 북한사회의 폐쇄성을 지적했다. 허씨는 이와 함께 93년12월2일 김일성이 김정일을 불러 후계자지위를 박탈하려 했다고 폭로했다. 즉 노동당관계는 자신과 김성애가 맡고 김정일에게는 군사관계만 맡기려 했다는 것이다. 허씨는 이와 관련,『현재 김정일이 갖고 있는 국방위원회위원장 자리는 병기관리등 군수산업분야에 국한된 것이며 국가방위전략및 전술수집을 담당하고 있는 군사위원회위원장 자리는 아직 확보하지 못한 채 오진우와 함께 부위원장으로 있다』고 덧붙였다. 허씨는 또 북한의 핵무기보유설에 대해서도 『1∼2개정도 보유가능성은 있으나 그렇다 할지라도 운반수단이 없는데다 아직 한번도 실험을 해보지 못한 쓸모없는 것일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허씨는 특히 방한중인 중국의 이붕 총리가 김정일체제 안정이 중요한 만큼 한국이 이를 지원해야 한다고 말한 데 대해 『세습정권을 도와줘야 한다는 발상은 말도 안된다』고 반박했다. 소련자연과학원 원사(정회원)로 명예문학박사이기도 한 허씨는 중국 흑룡강성에서 태어나 광복과 함께 북한으로 돌아가 민주청년동맹 평양시위원회 간부및 북조선 내무성 정치국 고급장교로 근무했다.그는 52년 모스크바국립영화대학에서 극문학·시나리오문학을 배웠다. 그는 스탈린 격하문제가 제기된 56년2월 소련공산당 20차대회에 참가,김일성 개인숭배사상의 허구성을 깨닫고 김일성반대운동에 나섰다. 허씨는 『모스크바의 북조선 유학생들은 너나할 것 없이 김일성의 개인숭배사상을 비판했으며 이 때문에 모스크바 북한대사관에 체포돼 강제이송당할 뻔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57년11월27일 북한 보안요원에 붙잡힌 허씨는 다행히 대사관 2층사무실에서 탈출하는 데 성공,이후 김일성세습체제반대운동에 앞장섰으며 82년 「북조선왕조성립비사」란 김일성의 일대기를 다룬 책을 자신의 호인 임은 명의로 내 김일성의 실상을 파헤치기도 했다. 『대전 과학공원을 동료들과 구경하고 조국의 눈부신 발전상을 알 수 있었다』는 허씨는 4일 모스크바로 돌아갔다.
  • 특별기 타고 급행…“폐암 중증” 관측/오진우,왜 갑자기 파리 갔나

    ◎주치의등만 수행… 정치목적 없는듯/의료수준·인도적 정책 고려 불 선택 북한의 권력서열 2위인 오진우 인민무력부장이 폐암치료를 위해 프랑스를 방문한 것은 입국 신청 4일만에 급작스럽게 이뤄졌다. 한 외교소식통에 따르면 북한측은 지난 20일 북경주재 프랑스대사관에 오진우부장의 입국 비자를 신청했다는 것이다.프랑스정부는 정식 외교관계가 없는 북한 「거물」의 입국 여부를 놓고 고민하다 이틀 뒤인 지난 22일 알렝 쥐페 외무장관의 승인을 받아 입국을 허락한 것으로 알려진다. 오진우부장은 비자를 받은지 이틀 뒤인 24일 서둘러 평양을 출발했다.그의 비자발급을 위한 입국 목적도 「폐암 치료」라고 돼 있을뿐 아직은 그가 중병을 앓고 있는지 단순한 검진차원인지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미수교국간의 영공통과 문제로 특별기보다는 민간항공기를 이용해 달라는 프랑스정부의 의사전달에도 굳이 시간이 별로 걸리지 않는 특별기를 타고온 점등을 보면 그의 폐암이 중증일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오진우부장을 수행한 인물은 주치의2명,간호요원 2명,경호원 1명,통역 1명인 것으로 전해졌다.때문에 그의 프랑스 방문에 신병치료 이외의 망명등 정치적 목적은 없는 것으로 소식통들은 전하고 있다. 그가 입원한 것으로 알려진 파리 시내 라에넥병원은 파리의 6대 종합병원의 하나로 호흡기전문 병원이다.그러나 26일 현재 그의 병원입원 기록은 없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어 가명으로 입원한 것으로 보인다. 오진우부장이 중국 등 수교국을 두고도 프랑스를 택한 것은 프랑스의 발달된 의료기술,프랑스와의 관계및 프랑스의 인도주의적 정책 때문인 것으로 관측된다.프랑스는 80년대 초까지만 해도 사회당 정권의 출범으로 서방국가 가운데 북한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고 84년 12월에는 통상대표부에서 일반대표부로 승격됐다.평양의 양각도호텔도 프랑스 기업이 투자한 적이 있다. 프랑스의 의료기술은 에이즈 백신을 처음으로 발견하는 등 세계적 수준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또 고 김일성주석의 심장박동기도 프랑스 의료진이 방북해 달았을 만큼 북한에는 프랑스 의료기술이 친숙한 점도 고려된듯하다. 또 프랑스가 미수교국의 지도층이 치료나 검진을 희망하는 때는 인도적인 차원에서 허락해준 전례들도 오진우부장의 프랑스행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관측통들은 보고 있다.프랑스는 지난 85년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제2인자의 치료를 받도록 했으며 지난 5월에는 리비아의 외무장관이 만델라 남아프리카공화국대통령의 취임식 참석을 위해 파리를 경유하는 과정에 건강진단을 받을 수 있도록 허락한 적이 있다. ◎오진우의 전력과 최근 행보/항일유격대출신 혁명 1세대… 77세로 거동 불편/군 좌지우지… 김정일과 권력투쟁설 올해로 만 77세인 북한 인민무력부장 오진우는 최근 그의 건강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 육안으로도 확인이 될 정도로 노쇠현상이 뚜렷했다.가장 최근에 그가 공식석상에 나타난 것은 지난 16일 김일성사망 1백일 추모회였는데 이때 다리를 저는등 거동이 몹시 불편한 모습으로 북한 TV에 비쳐졌다. 그는 김정일에 이어 권력서열 제2인자 자리를 지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7월8일 김일성사망 이후 몇몇 주요 행사에 나타나지 않아 김정일과의 불화설등 그의 신변을 둘러싸고 이상이 있다는 추측을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즉,7월20일 중앙추도대회 후 첫 중요행사인 「7·27 전승기념일」 행사에 군원로이며 군부를 장악하고 있는 그가 당연히 참석해야 했으나 불참했고,이어 9·9절(정권수립기념일)행사,10월11일의 단군릉 개건 준공식등 비중있는 행사에 잇달아 나타나지 않았던 것이다.다만 지난달 20일 추석을 맞아 「혁명열사릉」에 헌화한 뒤 다음날인 21일 김정일의 생모 김정숙사망 45주 추모회에 참석했고 또 하루 뒤인 22일 김정숙동상에 헌화한 사실이 전해졌다.생전에 두터운 교분을 유지해 왔던 김일성부부,혁명열사 추모행사에만 참석했을 뿐이다. 폐암이라는 오의 병력에 관해서는 지금까지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지금까지 파악된 것으로는 86년 9월께 음주운전 사고를 내 의식불명의 중태에까지 빠졌었다는 것이 전부일 정도이다.당시 오는 한 연회에 참석한 뒤 만취된 채로 차를 몰고가다 평양시내 전승기념관의 가로수를 들이받아 9개월가량 고위 당정간부 전용병원인 「봉화진료소」에서 치료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이때 김정일이 헬리콥터까지 동원,긴급 후송을 하도록 지시하고 치료에도 세심한 배려를 해 준 것이 계기가 돼 김정일에 호감을 갖게 됐다는 후문이다.그의 출생연도가 김일성보다 불과 5년 아래인 1917년생인 것으로 알려져 폐암이 아니더라도 노환을 피할 수 없는 나이라는 게 일반적인 견해이다. 김일성의 항일유격대원 출신으로 혁명 1세대를 대표하고있는 그는 김일성과함께 오늘의 북한 체제를 구축한 주역의 한사람이다.함남 북청출신인 오는 김일성과 김정일로 이어지는 북한 권력 구조에서 언제나 2인자로 군림함으로써 그의 거취에 관심이 집중됐다.옛 소련보병학교를 졸업하고 육군대학을 수료한 뒤 항일유격대에 가담한 오는 45년 10월 인민군 최고사령부 호위국장에 취임하면서 북한 군부의 핵심라인에 올랐다.이어 60년 8월 1집단군 군사령관을 거쳐 당정치위 후보위원이 됐으며 마침내 76년 5월 인민무력부장에 취임,군부를 장악했다.92년 4월에는 원수에,93년 4월에는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에 올라 실질적인 3인자 지위에 있다가 김일성이 죽자 권력서열 2위로 뛰어올랐다.최근에는 그의 「거세설」·「연금설」과 함께 아들의 중국탈출설도 나왔었다. ◎“오진우란 환자없다” 입원 부인/파리병원 주변 스케치 ○…파리시내 비노가에 있는 북한 일반대표부는 오진우 부장의 방문에도 불구,겉으로는 조용한 분위기. 북한측 한 관계자는 기자가 전화를 걸어 오부장이 대표부내에 있는지 등을 묻자 『그런 일 없다』고 잡아떼면서 『왜 그리 관심이 많으냐』고 딱딱한 반응. 북측은 한달여전부터 폐암치료병원을 물색해 왔으며 암치료약을 상당분량 구입해 평양으로 수송했다는 소문이 나돌기도. ○“오늘중 검진 받을것” ○…오부장은 입원할 병원이 워낙 취재진에게 노출돼 병원에 입원하지 않고 거소에서 의사왕진을 통해 진료를 받을지도 모른다는 관측이 제기되기도. 라에네크병원측은 많은 취재진이 몰리자 『오늘 이 시간 현재 「오진우」라는 환자는 병원에 없다』며 『그러나 앞으로 어찌될지는 모르겠다』고 발표. ○노출우려 왕진 가능성 ○…프랑스 내무부는 26일 상오 오부장이 이날 중 라에테크병원의 검진을 받을 예정이라고 발표. 외무부는 검진결과에 따라 입원,수술,귀국등이 결정될 것이라고 설명. ○외교소식통,망명 일축 ○…한 외교소식통은 오부장이 망명할 가능성에 대해 『프랑스정부는 인권탄압등의 경우에 한해 망명을 허용하는 원칙을 가지고 있다』며 일축. 이 소식통은 『오부장의 프랑스방문이 핵문제합의문 채택에 이어 남북대화등 관계진전을 가져올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전망.
  • 오늘 김일성 사망 100일 추모제/김정일 공석등장 여부 주목

    ◎카리스마 높이려 의도적 “잠재통치” 추정/“지도력 부족 등 권력장악에 이상” 풀이도 지난 7월8일 김일성사망이후 1백일이 다 되도록 공식후계자 김정일의 행적은 여전히 짙은 안개속에 파묻힌 느낌이다. 당총비서와 국가주석등 핵심요직의 승계 절차를 밟기는 커녕 지난 7월20일 김일성 추도대회이후 공식석상에서도 완전히 자취를 감춘 탓이다.그는 추도대회 당일까지만 해도 비교적 활발한 공식활동을 한 바 있다.7월19일의 영결식과 그 다음날의 중앙추도대회에 모습을 드러내는등 장례서열 1위로서의 당연한 역할뿐만 아니라 외빈을 잇따라 접견하는등 최고권력자로서의 면모를 보여줬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추도대회가 있었던 20일 일부 조문인사들에 대한 「위로연」참석을 끝으로 공개무대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이후 열린 ▲「조국해방전쟁 기념일」(휴전일,7·27)▲정권수립기념일(9·9)▲생모 김정숙 45주기 추도식(9·21)▲노동당 창당기념일(10·10)▲단군릉 개건준공식(10·11)등 북한의 큰 행사에도 나타나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김은은둔중에도 막후에서 몇가지 대내외 활동을 수행했다.그에 대한 북한 선전매체들의 우상화 작업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노동자·군인·학생등 일부 주민들에게 친필서한 형태의 감사문을 전한다든가 외국 국가원수및 당지도자들과 전문을 교환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특히 과거 북한의 「혈맹」이었던 중국이 강택민 당총서기겸 국가주석명의로 김정일에게 9·9절 축전을 보낸 사실은 김을 명목상이든 실제적이든 최고권력자로 인정한 결과로 풀이된다. 일부 전문가들은 김의 은둔이 김일성에 대한 「1백일 애도기간」설정에 따른 시한부적 성격이므로 그의 1인자 등극은 시간문제일 뿐이라고 보고 있다.나아가 이같은 막후 통치가 카리스마를 높이기 위한 의도적 선택이라는 분석도 있다.즉,대중연설과 건강에 문제가 있는 김이 굳이 추도기간중에 전면에 나서기보다 막후조종을 하는게 유리하다고 판단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찮다.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독재권력의 속성상 1인자 자리의 장기유고 상태는 김의 지도력 부족이나 치열한 물밑 권력투쟁의 결과일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김일성 사후 김이 측근 인사들을 대거 「전진배치」하는 식으로 인사권을 행사하지 못하고 있는 점도 그의 권력장악력에 대한 이상신호로 받아들여진다는 지적이다.때문에 김정일체제의 행로는 15일 예정된 김일성 1백일추모제에 그가 어떤 위상으로 나타나느냐에 따라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 13회 미술대전/대상 정석수의 「남부정류장」

    ◎우수상 하연수(한국화)·최활영(양화)·백승관(판화)·전종무(조각)씨/모두 1천9백9점 응모… 3백25점 입상/입상작은 새달부터 「과천미술관」서 전시 제13회 대한민국미술대전(2부 구상계열)에서 영예의 대상은 양화부문에 「남부정류장」을 출품한 정석수씨(30·대구시 남구 대명2동 1900의36)가 차지했다. 26일 상오 심사결과를 발표한 한국미술협회(이사장 박광진)는 이번 구상부문 미술대전에는 모두 1천9백9점이 응모한 가운데 양화부문의 대상을 포함,4개부문(양화 한국화 조각 판화)에서 3백25점(한국화 1백37점,양화 1백22점,판화 25점,조각 41점)의 입상작을 냈다고 밝혔다. 우수상 수상자는 ▲한국화부문에 「여인­향기」를 출품한 하연수씨(26·서울 마포구 창전동 6의151) ▲양화부문에 「청적 Ⅱ」를 출품한 최활영씨(27·부산시 영도구 청학1동 389) ▲판화부문에 「진화­Ⅲ 94­10」을 출품한 백승관씨(34·서울 양천구 신정동 신시가지아파트 905­1204) ▲조각부문에 「황후의밥 걸인의찬」을 출품한 전종무씨(33·서울 중구 신당3동 349의224 다세대201호)가 각각 결정됐다. 이종무 심사위원장은 『이번 미술대전에서는 지난해에 비해 출품수가 많이 준 반면 뛰어난 작품이 적지않게 눈에띄었다』면서 『출품작의 감소는 미술대학의 지도계획과 교수분포에 큰 원인이 있는 만큼 이에 대한 대책이 요구된다』고 밝혔다. 입상작은 10월1일부터 18일까지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 전시되는데 이어 수원(11월13∼18일 경기도문화예술회관)부산(11월20∼29일 부산문화회관)제주(12월3∼12일 제주문예회관)에서 순회전시된다. ◎대상받은 정석수씨/사실화의 새로운 의미 표출에 노력 『사실화의 새로운 의미를 보여주겠다는 일념으로 작품을 내왔는데 이렇게 큰 상을 받게돼 영광입니다』 제13회 대한민국미술대전(2부 구상계열)에서 영예의 대상을 수상한 정석수씨(30)는 지난해 미술대전에서 겪었던 낙선의 아픔을 깨끗이 씻은듯 앞으로 계속 정진할 각오를 밝혔다. 수상작 「남부정류장」은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어머니와 동생의 모습을 거의 사진에 가까운 극사실주의 기법으로 그린 그림. 계명대서양화과 재학시절부터 주로 인물화에 치중해오던중 세대간의 갈등을 다룬 연작 4부작을 구상,이번 수상작은 그 첫번째 작품으로 화면구성과 색감처리에서 높은 작품성을 일구어냈다는 평을 받았다. 『인간의 생활속엔 수많은 갈등이 내재돼있고 진정한 의미의 삶이란 갈등마저도 받아들일 수 있는 자세를 의미한다고 본다』는 정씨는 사실적인 기법이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가장 직접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설명한다. 대학시절 은사들로부터 부분적인 영향을 받기도 했지만 가장 보탬이 됐던 스승은 「명화집」이라고 귀띔하는 그는 그림공부를 시작하는 이들에게 이 화집을 자주 볼 것을 권하기도. 아직 미혼으로 현재 대구의 미술학원강사로 일하는 그는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사람사는 모습과 그 진정한 의미를 담아내기 위한 고민이 가장 큰 고민이 될 것 같다』며 웃는다. ○입상자 명단 ▷특선◁ ◇한국화=박순철 박진순 김옥경 김정숙 주영옥 최광석 서일석 김경희 조현동 홍소안 송환아 이관성 조용백 김범수 ◇양화=박혜경이명수 김윤택 주영웅 김태균 서중규 이팔용 이점실 박봉춘 고기범 박 용 송하준 ◇조각=배승현 전덕제 조숙의 이기수 ◇판화=엄대상 박 훈 ▷입선◁ ◇한국화=이현아 최한용 서태섭 최기성 문운식 유흥수 구본순 서성기 박봉열 이서정 윤덕자 이은영 임명숙 노윤경 오유진 최원석 박혁기 박선진 이청초 박무길 김길동 김남주 조남윤 진인범 이화길 이남미 윤경옥 김동환 곽수봉 장현재 이은영 유영열 양동언 임갑재 유기종 이의재 배석미나 이진심 이만식 고선희 김인선 홍푸르메 장 철 김창웅 김현주 이혜연 우승현 정영미 김재구 박영일 김영권 백현호 김영주 성민홍 최전숙 강남곡 이승철 장희영 최승규 함용식 정동복 최진호 유철수 하영준 이은호 김명연 최은미 박태홍 문제성 장안순 모용수 박찬석 김호중 백동칠 임녕하 정영남 김희남 이경모 박계수 강상복 김미경 오숙인 임상빈 이은경 이영환 윤의중 정선심 박운용 정성봉 윤경숙 남학호 이정선 이미자 유광덕 손성완 최명순 김충식 정형열 구경회 황규덕 박완용 권영주 서수령 차연우 이철규 양명이 임소형 송민섭 정근호 박정환 이송아 정난옥 김의신 송현정 김은경 안용철 사지혜 박수인 최정도 박윤호 정성태 조 선 ◇양화=임흥빈 유성복 서송숙 장미혜 김대필 고진오 이정희 박근희 임현규 박상덕 정종기 이경준 김종한 권영술 예양해 권순교 이길성 김복남 엄윤숙 이승봉 이재용 김대하 박만수 김원중 지태섭 문명호 김봉진 유봉현 김예순 김도영 손영선 정계령 최경옥 정청향 김장혁 전태영 김광강 정태영 김형돈 박희옥 이동숙 황경원 김영대 소영욱 박성민 이창규 곽동경 안정균 박계현 하명수 김광수 조몽룡 송길호 박수남 안창표 이봉수 윤장렬 민경숙 정창기 양환태 김명수 이구일 김종길 김순영 맹문주 배수봉 김종한 모종애 황 란 신은봉 조경자 이근복 김인배 박경민 이강미 소순희 최성배 윤석수 김정숙 문춘길 장동문 지창림 최경철 강금석 남기종 한혜영 강연태 조순미 여재식 김은희 김경란 심유림 권진용 전용훈 강승완 조 헌 박천복 김홍렬 유영복 오효석 이형삼 문정애 임정렬 송상섭 한송철 유재하 신홍직 문정호 ◇조각=전용환 박민섭 안철영정두진 노정용 이교동 이상근 이규동 전상욱 방주혁 이상호 조성재 박상희 이경순 송바우 노세주 최부윤 백승업 김동숙 윤기호 최진수 배정길 백은하 박정용 김봉균 김형득 이상춘 송광희 지헌명 천종권 김용진 박영선 고갑주 국경오 최정유 임종필 ◇판화=이숙영 오기옥 조은휘 전종수 노현임 민경희 최수진 전영근 박정호 정기준 조혜경 최병구 박구환 조용훈 유재웅 서정봉 임병중 백성혜 한소영 김예영 정희경 신승균
  • 강명도·조명철씨가 밝힌 「후계자의 사생활」

    ◎“김정일성격은 급하고 저돌적”/「곁가지」 제거에 신경… 도마다 「기쁨조」 운영/세여인 사이 3남3녀… 23살 장남도 방탕 김정일의 성격은 대단히 급하고 저돌적인 편이며 건강도 아주 좋다고 귀순자들은 밝히고 있다. 북한 정무원 총리 강성산의 사위 강명도씨(36)는 27일 기자회견에서 김정일의 성격과 관련,『대단히 급하고 저돌적이다』라고 잘라 말했다. 특히 측근들을 질책할 때는 그 정도가 너무 심해 뭐라고 말하기가 곤란할 정도며,시시때때로 성질이 왔다갔다해 북한에서는 김정일을 「패났다」고 한다고 전했다. 또 초대소(별장)에서 동생 경희가 어머니(김정숙)를 회고하며 눈물을 흘리면 동생을 나무라다가도 따라 우는등 눈물도 많다고 했다. 전건설부장 조철준의 차남이자 김일성대학 경제학부 상급교원(전임강사)인 조명철씨는 김정일이 이복동생 김평일등 「곁가지」등과의 식사및 사진촬영등을 어떤 이유를 들어서라도 피해야한다는등 자신의 입지확보에 장애가 되는 이복형제들의 제거에 신경을 쓰는 졸렬한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김정일은 또 평소 잘 웃지를 않는다고 강씨는 밝혔다. 83년 강씨의 할아버지(강양욱 부주석)가 죽었을 때는 김정일은 김일성과 함께 왔으나 거의 말을 하지않았으며 92년 11월 식품을 담당하는 경리부 시찰을 왔을 때 신제품 음식을 보고는 『잘 됐다』는 의사표시로 미소를 지은 것이 고작일 정도로 거의 웃지않는 편이라고 전했다. 김정일의 방탕한 사생활은 대남정탐본부인 통일전선사업부 이동호 제1부부장이 김정일이 초대소의 여자에게 관심이 많은 것을 알고 78년 문수초대소로 초대,이때부터 기쁨조에 관심을 보인 것으로 밝혔다. 또 허답의 외교부 산하에도 기쁨조를 두고 있으나 정·군을 장악하기 시작한 85년부터는 업무때문에 기쁨조를 축소시켜 현재는 각 도별로 3개씩 모두 72명의 기쁨조가 있다고 덧붙였다. 김일성대학을 졸업한 김정일은 졸업뒤 선전선동부에 근무했으며 전문가 이상으로 피아노를 잘치는등 예술에 조예가 깊다고 밝혔다. 한편 김정일은 유일한 동생인 김경희와 그녀의 남편 장성택을 제일 신임한다고 전했다. 김정일은 또 권력서열 2위인 인민무력부장 오진우,호위총국장 이을설등 항일 빨치산 세대인 이른바 「혁명1세대」는 대부분 존경한다고 덧붙였다. 가족관계는 본처 김영숙과의 사이에 딸 2명과 아들 1명이 있으며 이들은 55호 관저에 있다고 밝혔다. 두번째 처는 무용수 출신의 고영희(40)이며 고와의 사이에 아들과 딸 1명씩을 각각 두고 있다. 자식가운데 가장 나이가 많은 김정남(23·미혼)은 조선예술영화촬영소배우인 성혜림과의 사이에서 났으며 70년대 당시 결혼한 송씨를 차지하기위해 송씨의 남편을 프랑스의 유네스코 대표로 보냈다고 전했다. 김정남은 그러나 지금까지 언론에 알려진 것과는 달리 김정일 후계 승계자도 아니고 김정일을 아버지로 부르지도 못하며 식모등과 함께 문수구역에 거주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를 93년 9월 고려호텔에서 만났다는 강씨는 당시 김이 여자랑 노는등 타락한 생활을 해 호텔출입을 금지당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북한은 특히 전쟁시 사용하기위해 홍콩의 마카오를 비롯,스위스·오스트리아·일본은행등에 외화를 넣어두고 있다고밝혔다. 강씨는 김정일 체제의 수명과 관련,『20년전부터 정치를 시작,85년부터는 사실상 정권을 총지휘해 온데다 당정의 조직지도부가 모두 김일성대학출신의 2세대인만큼 권력기반은 확고하다』면서 『사실상 김정일은 총비서와 주석직을 다 겸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강씨는 그러나 경제의 70%가 파탄에 이르러 경제및 식량난을 해결하지 못할 경우,주민들의 불만고조로 어려운 지경에 처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일성의 이종… 북 대표적 개방파/「사위 귀순」 강성산은 누구 귀순자 강명도씨(36)의 장인인 강성산정무원총리는 현재 북한 권력서열 3위에 올라있는 실세인데다 두번째 총리를 역임하고있는,김정일의 핵심측근.지난 8일 사망한 김일성의 모친인 강반석의 큰 언니 아들이어서 김일성과는 이종사촌관계. 올해 63세인 그는 북한 경제 테크노크라트의 대표주자이며 김달현등과 함께 북한내 몇 안되는 개방파 인물. 함경북도 청진시 출생으로 만경대 혁명학원과 김일성대학 정경학부를 졸업한뒤 모스크바 종합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하고 체코의 프라하공대에 유학하는등 전형적인 엘리트 코스를 밟아왔다. 67년 자강도 당책임비서로 임명된데 이어 70년 39세에 평양시당 책임비서로 발탁돼 세간의 이목을 모았다.김일성부자의 각별한 신임으로 77년 정무원 부총리에 전격 임명된 이후 84년 최고인민회의 7기 3차회의에서 제1부총리자격으로 「남남협력과 대외경제활동을 강화하고 무역활동을 더욱 발전시키는데 대하여」라는 주요보고를 한뒤 총리로 선출됐다. 그는 이해 9월 합영법과 외국인소득세법등 개방정책관련법들을 마련하는등 광범위하고 파격적인 개방준비에 박차를 가했다.그러나 경제개혁이 이렇다할 성과를 거두지 못하자 86년12월 총리직에서 해임돼 당비서로 자리를 옮긴뒤 88년3월 전직총리로서는 이례적으로 함북도당 책임비서로 일했다. 그는 여기서도 두만강개발계획을 창안하는등 개방을 계속 추진해왔으며 그의 이같은 경제개혁추진능력은 김일성으로부터 공개적인 칭찬을 받았고 92년 12월 총리로 재기용됐다. 사위의 귀순이 그의 정치적 입지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되고 있다.
  • 김성애 모습 삭제하고 방영/북 중앙 TV

    ◎조문장면 녹화필름 재편집 【도쿄 연합】 북한관영 중앙TV가 지난 11일부터 방영했던 김일성 조문영상에 대한 절단과 편집을 실시,김정일의 계모이며 김일성의 처인 김성애 중앙위원의 모습을 없애버린 사실이 확인됐다고 일본의 산케이신문이 15일 보도했다. 산케이신문은 서울의 정보소식통을 인용,북한의 중앙TV가 김일성 사망 4일째인 11일 심야부터 방송한 영상은 약 47분으로 이 가운데 김성애의 모습은 3회 등장했으나 새로운 영상은 약 23분으로 줄었으며 김성애의 모습이 모두 절단된 것으로 확인됐다고 전했다. 이 신문은 최초 영상에서 김정일의 바로 뒤에 김성애가 서있는 것이 그대로 방영된 것은 북한 중앙TV가 삭제등 편집을 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정일은 어렸을때 사별한 생모 김정숙에 대한 사모의 정이 깊으며 이 때문에 계모인 김성애와 김성애의 아들 김평일(전핀란드대사)과의 사이가 극도로 나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 오진우­최광/「김정일체제」 군부의 양대 버팀목

    ◎혁명1세대… 김일성 권력투쟁 1등공신/김 생전 한번씩 「딴마음」… 계속 충성 주목 오진우와 최광.김정일이 북한의 새로운 지도자로 위치를 굳혀가는 과정에서 우선적으로 주목해야 할 두 사람이다. 오진우와 최광은 모두 김일성과 함께 만주에서 항일 빨치산으로 활동했던 「혁명 1세대」이다.이들은 해방후 국내기반이 취약했던 김일성이 박헌영의 국내파나 김두봉의 연안파,허가이의 소련파를 꺾고 권력투쟁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뒷받침했던 버팀목이었다. 둘 가운데서도 인민무력부장 오진우는 김일성이 생전에 김정일 후계체제를 위탁한 핵심인물로 알려져 있다.함경남도 북청출신으로 올해 77세인 오는 김정일과 함께 둘밖에 없는 노동당 정치국 상무위원이며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을 겸임하고 있는 군부의 제1인자이다. 오보다 한살 아래인 군부의 2인자 최광 군총참모장은 함경북도 출신으로 권력서열 8위이다.6·25때 제13사단장을 맡을 만큼 김일성의 신임이 두터웠다.최광의 처인 전여맹위원장 김옥순은 김일성의 전처 김정숙이 죽은뒤 김정일·경희 남매의 유모 역할을 맡아 두 사람과 각별한 관계인 것으로 전해진다. 김일성 생전에 김씨 부자에 대한 두사람의 충성심은 우열을 가리기 힘들었다.그러나 김일성이 사망한뒤 김정일에 대한 충성심이 그대로 이어질지는 단언할 수 없다.일부에서는 군의 두 원로가 군복무경험도 없는 김정일을 마음으로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고도 분석한다. 또 하나의 문제는 두 사람 사이의 관계이다.오진우와 최광 사이에는 잊을 수 없는 기억이 있다.오가 김일성의 결정적 신임을 받게 된 것은 69년 1월 6일부터 14일까지 열린 인민군당 제4기 4회 총회에서 부터다.당시 인민군 총정치국장이었던 오는 김일성의 「유일사상체계」에 불만을 품은 민족보위상(국방상) 김창봉과 7군단사령관 정병갑,해군사령관 유창권,함흥주둔군사령관 김양춘등 「항일연군」 출신의 군수뇌부를 반혁명 음모로 몰아 숙청하는 작업을 지휘했다.그리고 이때 숙청된 인물들 가운데 최광이 포함됐던 것이다.최는 그러나 탄광노동자로 좌천된 뒤에도 변함없는 충성심으로 김일성부자를 감격시켜 김정일후계를 공식지명한 80년 6차 당대회에서 복권됐다.오는 80년대초까지는 김정일을 후계자로 지목하는데 반대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그러던 오는 84년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해 사경을 헤매는 상태에 빠졌다.그때 김정일은 특별기로 오를 소련으로 수송,치료를 받도록 조치했다고 한다.오는 그뒤 김정일에게 충성을 맹세한 것으로 알려졌다.
  • 3대혁명 소조/만경대혁명학원/김정일 버팀목 “쌍벽의 두집단”

    김일성 사망후 북한의 세습군주로 부상하고 있는 김정일에게는 그를 지탱해주는 2개 특수집단이 있다.만경대혁명학원 출신집단과 3대혁명소조가 바로 그것이다.만경대학원 출신들이 일종의 두뇌집단이라 한다면 혁명소조는 친위조직으로서 김정일을 돕고 있다. ◎김의 모교… 소장졸업생 대부분 직계 활약/주도권 쟁탈전땐 「돌격대」역 맡을 가능성 김정일의 모교로 졸업생들 가운데 소장그룹 대다수가 김정일의 측근을 형성하고 있다.극소수 김정일과 소원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사람도 있지만 40∼50대는 대개 김정일파로 분류된다.김정일을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만경대혁명학원이다. 만경대혁명학원은 혁명유가족의 자녀들과 당·정 고위간부들의 자녀들에게만 입학이 허용되는 특수학교다.아니 귀족학교라는 표현이 더 옳다.북한의 특수학교로는 또 강반석혁명유자녀학원 해주혁명유자녀학원이 있다. 만경대혁명학원은 지난 47년 10월21일 평남 대성군에서 문을 열고 3백35명을 수용했다가 다음해인 48년 현재의 평양 만경대로 이전하면서 수용인원도 5백22명으로 늘렸다.요즈음 학생수는 9백여명.교육기간은 유치원 상급반 1년,인민학교 4년,고등중학교 6년을 포함해 모두 11년이다.인민무력부 소속으로 학생들은 재학기간동안 장교복장을 하고 의무적으로 모두 기숙사에서 생활한다.졸업후 최우선적으로 김일성종합대학에 진학하거나 장교임관 또는 당·정의 초급간부로 기용된다.원하면 해외유학을 갈 수도 있다.이 학교에 입학만 하면 북한사회의 엘리트코스를 밟을 수 있다. 졸업생가운데 대표적인 인물로는 김정일말고도 강성산(정무원총리)서윤석(평남도당책겸 인민위원장) 전병호(당비서) 최태복(당비서) 연형묵(자강도당책겸 인민위원장) 김환(부총리겸 화학공업부장) 윤기정(재정부장) 오극렬(전군총참모장) 김광진(인민무력부부부장)등이 있다.김정일 오진우(인민무력부장)에 이어 당서열 3위인 강성산과 연형묵 오극렬 최태복 전병호 김광진등 사방을 둘러봐도 대부분 김정일의 직계들이다.정무원총리를 역임했으며 남북고위급회담 단장으로 서울에 왔던 연형묵도 김정일의 사람으로 분류된다.김정일과 나이가 비슷하거나 젊은 층은 당·정에 폭넓게 포진해 김정일이 혁명 1세대들에 맞서 권력을 쟁취해가는 과정에서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앞으로 북한 내부에 헤게모니 쟁탈전이 벌어질 때 김정일의 돌격대로 나설 공산이 크다.상류층의 자제들로 구성돼 김정일과 마찬가지로 개방적인 성향을 지닌 것으로 알려져 있다.김정일의 술친구들은 대부분 김정일 또래의 만경대혁명학원 동창생들이다. ◎혁명2세대 「친위조직」… 2인자부상 기여/총10여만명… 73년 김영주 축출에 앞장도 이른바 북한의 혁명 2세대는 바로 3대혁명소조를 가리키는 것이다.김정일이 김영주 김성애를 누르고 김일성 다음가는 2인자로 군림할 수 있었던 데는 3대혁명소조의 뒷받침이 눈부셨다.김정일이 책임자인 부장에 매제인 장성택을 임명한 것을 보아도 그가 얼마나 이 조직에 애착을 갖고 있는지 금새 알 수 있다.장성택은 김정일과 함께 김정숙에게서 태어난 김경희의 남편이다.당서열 1백위권 밖에 머루르고 있지만 실력자로 알려져 있다. 3대혁명소조는 지난72년 북한의 사회주의헌법에 규정된 「3대혁명」에 따라 73년 2월 발족됐다.김정일이 김일성의 후계자로 내정된 것으로 알려진 72년 12월 노동당 중진들의 비밀회의가 있은지 두달남짓만이다.「3대혁명」이란 사상혁명 기술혁명 문화혁명을 이르는 것으로 3대혁명소조 역시 이들 3분야로 나누어져 있다.소조원은 당원과 국가기관종사원 대학생 대학교원 기술자 과학자 가운데 미혼남녀로 구성돼 있다.지난 83년 9월 개최된 3대혁명소조원 대회에서 현인원 4만6천명,소조를 거쳐간 인원 11만명으로 발표된 바 있으나 그 뒤에는 정확한 숫자가 밝혀지지 않고 있다. 3대혁명소조는 당정책의 관철이라는 표면적인 명분 아래 간부들의 보수주의 경험주의 요령주의 기관본위주의 관료주의를 개조하기 위한 사상투쟁을 활동의 목적으로 삼고 있다.중국으로 치자면 문화혁명을 주도한 홍위병인 셈이다.김정일의 직접 지휘 아래 각급 생산단위는 물론 행정기관 문화기관 학교등에 파견돼 기존의 당조직과 더불어 활동해왔다.하지만 사상투쟁의 실질적인 목적은 김정일의 반대세력 견제와 그의 후계체제 구축이다.3대혁명소조는 사실상 노동당 조직과는 따로 움직이는 김정일의 사조직인 것이다. 김정일은 3대혁명소조를 김영주를 제거할때 제일 먼저 이용했다.73년 당시 당조직부장이었던 김영주를 그릇된 사상의 찌꺼기를 가진 사람으로 몰아 마침내 한직으로 축출하는데 성공했다.김정일은 여맹위원장이었던 계모 김성애를 견제하는 데도 3대혁명소조를 동원했다. 하지만 유사시 김정일의 명령에 따라 목숨까지도 기꺼이 바칠 준비가 돼있는 김정일의 수족으로 알려져 있다.
  • 이름 김혜숙·영숙 설… 47년생 추측/베일속의 김정일 부인

    ◎키 163㎝… 김일성대나와 73년 결혼 김정일의 부인은 과연 어떤 인물인가. 북한 김정일의 권력승계가 확실해지면서 북한의 퍼스트레이디가 될 김정일의 부인에 대해 세간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그러나 정확한 이름 나이 조차 밝혀지지 않을 정도로 그녀의 신상은 베일에 싸여있다. 김정일과 결혼한 이래 공식행사에도 거의 참석하지 않은 그녀는 지난 11일 맏며느리로서 당연히 참석해야할 시아버지 김일성의 첫 공식 참배행사에도 얼굴을 나타내지 않았다.이처럼 외부노출을 꺼려온 그녀가 오는 17일 김일성장례식에는 모습을 드러낼지가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이제까지 북한출신 귀순자,해외동포등을 통해 알려진 정보에 따르면 그녀의 이름은 김혜숙.김영숙이란 설도 있다.47년생이며 함북 회령 출신으로 전해지고 있다.지난 73년 김정일이 후계자로 부상하면서 김정일과 결혼했다. 김일성대학을 졸업한 재원으로 결혼전 노동당 조직선전부 등기원으로 일했으며 현재 알려진 거주지는 평양시 보통강 구역 서장동 관저. 김일성 족벌체제에서는 유일하게어떠한 사회적 직책도 맡고 있지 않은 그녀는 북한지도층의 초청으로 북한을 방문했던 외국 인사들에게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키 1백63㎝ 정도의 볼륨있는 체격에 얼굴은 둥글고 잘생긴 편이었으며 부풀어 올린 파마머리를 하고 있었다.상냥한 말씨를 쓰고 부엌에서 음식을 직접 만들어 차려오는 전형적인 주부였다』김혜숙을 유일하게 만나본 최은희씨의 말이다. 지난 78년 납북됐다 86년 탈출,「김정일 왕국」이라는 수기를 쓴 최씨는 납북된해 김정일 관저에서 열린 생일잔치에 초대를 받아 김혜숙과 여섯살 짜리 아들을 소개받았다고 전한다. 최씨는 이 수기에서 김정일이 부인에게 「당신」이라고 불렀으며 『우리집 사람은 아무것도 모릅니다.여편네란 집에서 아이키우고 살림 잘하면 되는 거지요.저사람은 촌뜨깁니다』라고 웃으며 말했으며 김혜숙의 심장이 약한듯 『최선생(최은희)도 심장이 약하시다니 당신 신천온천 갈때 모시고 가구려』란 말을 했다고 적고 있다. 김혜숙은 김정일의 두번째 부인이다.김정일은 김혜숙과 결혼하기 전 김일성대학 동기생으로 노문학부에 다니던 홍일천과 66년 첫 결혼(맏딸 혜경 출산)했으나 성격차와 김정일의 바람기 등으로 5년만에 이혼한 경력을 갖고 있다.현 김형직 사범대학 학장이며 부교수인 홍일천이 동일인물이라는 설도 있다. 김혜숙을 김정일에게 중매한 사람은 바로 친인척이자 김정일 후계자 작업의 사상적 토대를 구축하며 현재까지 측근으로 있는 황장엽 당서기와 양형섭 최고인민회의 상설회의 의장 두사람이다.김일성부자의 유일지도체계를 북돋우기 위해 김정숙과 같은 고향인 함북 회령출신 가운데 재원을 뽑았다고 한다. 김정일과 김혜숙 사이에는 3대후계자로 키워지고 있다는 정남(김일성대 정치경제학부4년)과 정남아래 설송이라는 딸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일이 홍일천과 이혼한 71년과 73년 사이 월북 배우 성혜임과 결혼했었다는 말이 있으나 정식 결혼이 아니라 단순히 애인사이였다는 편이 더 정확하다.김정일 보다 5살 연상인 성혜임은 당시 월북작가 이기영의 맏아들과 이혼한 직후였다.성혜임부부와 김정일부부 각각의 이혼에 김·성두사람의 관계가 상호 영향을 미쳤다는 추측이 많다.
  • 김성애 “담담” 김경희 “오열” 대조적/상중의 북한 이모저모

    ◎“김정일과 불화설” 김영주 공개참배/북방송,“김사망에 백두산천지 요동” 북한이 11일밤 TV방송을 통해 공개한 김일성 시신과 김정일의 공개참배 광경은 남측을 비롯한 외부세계의 촉각을 모으기에 충분했다.그동안 김일성의 사인이 베일에 가려졌던데다 김정일이 모습을 전혀 나타내지 않은 가운데 권력의 향배가 어떻게 될지 많은 궁금증을 불러왔기 때문이다. ○…김일성이 사망(8일)한지 93시간만인 이날 하오 9시 평양 금수산 의사당(주석궁)지하에서 진행된 이 행사는 조곡이 은은히 울려퍼지고 실내조명이 어둑하게 비치는 가운데 김일성의 시신이 안치된 수정관에만 밝은 조명을 집중적으로 비쳐 자못 장엄한 분위기를 연출. ○…「김일성화」로 보이는 조화로 둘러싸인 수정관속의 김일성은 얼굴에 특별한 상처가 없이 머리를 짧게 깎은 모습.인민복 차림으로 붉은 자주색 모포를 가슴까지 덮고 있었으며 잠을 자듯 둥근 베개가 베어져 있기도. 김일성의 얼굴은 사망 나흘째임에도 변색흔적등이 없는 것으로 보아 사망 즉시 영구보존 처리에 들어간것으로 추측되기도. 또 수정관앞에는 공화국영웅및 노력영웅 메달과 각종 훈장들이 가지런히 놓여져 있으며 국방위원회 위원장 군최고사령관 명의의 김정일 화환과 노동당·당중앙군사위원회·국방위원회·중앙인민위원회·정무원 명의의 화환이 시신 주위를 장식. ○…고위 당정간부 1백여명을 대동한 채 인민복 차림으로 참배장소에 도착한 김정일은 평소 알려진 모습과는 달리 초췌한 모습. 입장직후 무엇인가를 묻는듯 손가락으로 김일성의 시신쪽을 가리킨 김정일은 옆사람에게 잠시 말을 건네는듯 했으나 시종 굳게 입을 다문채 침통한 표정. 시신을 향해 머리 숙여 참배한 뒤 수정관 주위를 둘러보던 김정일은 간간이 손수건을 꺼내 안경을 벗어 눈물을 훔치기도. ○…이날 첫 공식참배행사에서 가장 주목을 끈것은 참배 서열이 어떻게 되는가와 이른바 김정일과 반목관계에 있다는 가족들의 참석 여부가 주목. 김정일 좌측에는 각각 서열 2·3위인 오진우 인민무력부장,강성산 정무원총리,우측에는 조선인민군 총참모장 최광이 서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고 이을설 호위총국장이 김정일 주변을 분주히 오가는 것이 목격됐다. 오진우등은 김일성과 함께 북한 정권 40여년을 이끌어온 「혁명1세대」로 김정일을 「업어키웠다」는 말이 있는 원로들.이들 역시 시신앞에 머리를 숙인채 눈물. ○…김정일은 자신의 참배가 끝난 뒤 군장성및 북한 주재 외교관의 조문을 받는 순서를 마련. 김정일은 조문객들의 인사말에 꼿꼿히 선채 한손으로 악수만하며 묵묵부답. 평양에 요양차 체류중이던 올해 87세의 한덕수 조총련의장은 지팡이를 짚은채 특히 울먹이며 김정일을 위로.김정일은 다른 조문객들에 대한 태도와 달리 이례적으로 두손으로 한덕수의 위로에 응답,대조를 보였다. ○…가족중 입장때부터 김정일의 바로 뒤 오른쪽에 따라 나온 친 여동생 김경희(48·노동당 경공업위원장)는 참배행사중 내내 오열.김일성과 김의 전처 김정숙의 소생으로 김정일이 가장 신임하는 것으로 알려진 그녀는 검은 상복차림으로 자그마한 체구.이와함께 실력자로 부각되고 있는 남편 장성택도 처남인 김정일과 가까운 거리에 위치해주목을 받기도. ○…한편 김일성의 후처인 김성애와 친동생이자 김정일의 숙부인 김영주부주석등 유가족들이 김정일의 뒤쪽에 위치.확실치는 않으나 지난 3월 핀란드 대사에서 소환된뒤 행적에 관심이 모아졌던 이복동생 김평일도 일단 참석한 것으로 보이나 확인되지는 않았다.경희의 오열하는 모습과 달리 김성애는 비교적 담담한 표정. ○…북한은 12일 김일성의 사망직후 백두산에서 격렬한 기상변화가 있었다고 전하면서 『백두산과 천지도 비분을 삭이지 못해 몸부림치고 있다』고 주장,눈길을 끌었다. 북한의 중앙방송은 이날 상오 뉴스를 통해 김일성이 사망한 8일 새벽 백두산에서는 『짙은 안개의 장막속에서 깊이 잠든 듯 조용하던 천지가 갑자기 격랑을 일으키며 몸부림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또한 이와 때를 같이하여 초속 50m이상의 회오리바람이 불면서 대줄기같은 비가 쏟아져 내렸는데 이날 시작된 비는 잠시도 그치지 않고 3일동안 3백㎜나 내렸다고 이 방송은 강조했다.
  • 창립 5주년 맞은 여성정치문화연/김정숙 이사장(인터뷰)

    ◎“여성 정치 참여도 높아져 보람” 『이제 우리나라 여성들도 능력만 갖추면 제도적인 정치참여의 문은 활짝 열려 있습니다.따라서 95년의 지방의회와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에 많은 여성들이 후보가 되고 또 괄목할만한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다른 여성정치관련 단체들과 협력,선거지원에 최선을 다할 계획 입니다』 지난 89년 「한국여성정치문화연구소」를 설립,여성들의 정치참여 당위성에 불을 댕긴 김정숙이사장(전 정무제2보좌관).최근 연구소 창립 5주년을 맞아 미국과 일본·대만의 유명 여성정치인들을 초청,기념 세미나 개최를 준비하느라 분주한 그는 그동안의 연구소 활동성과로 정치에 관심을 갖는 여성들이 늘어나고 여성들의 정계진출을 돕는 여성단체들이 급증한 것등 두가지를 손꼽는다. 『연구소 출범할때가 불과 5년전임에도 불구하고 지금같은 여성들의 활발한 정치참여 분위기는 전혀 느낄수가 없었어요.그러나 노력해서 안되는것은 없다는 생각을 갖고 여성들의 정치참여 확대와 지위향상에 애를 쓰니 여성들에게 유리하게 선거법이 개정되고 여·야가 모두 전국구 의석의 20%를 여성에게 할당키로 약속하는 등 하나 둘 결실이 맺어지는 것같아 보람을 느낍니다』 김이사장은 지난 88년 정치계가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민정당 안양 갑구 지구당 위원장으로 국회의원에 도전했다 패배한 경험이 있다.그러나 96년의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이젠 정말 해볼만하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그간의 경험도 발판이 되려니와 사회 분위기가 여성의 능력을 인정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김이사장은 또 연구소 창립 5주년을 계기로 여성 정치참여 확대에 더욱 박차를 가하기위해 앞으로 다른단체들과 연계,미국의 「에밀리 리스트」같은 여성정치후보 초창기 지원자금기구를 만들어 선거에 나오는 여성후보들을 도울 계획이라고 밝혔다.
  • 개방파·「혁명소조」출신 친위그룹 주도/김정일의 적과 동지들

    ◎당 김용순·황장엽­적 「프라하 3인방」 포진/평일모자·빨치산출신 「잠재적」 반발세력 김정일이 일단 북한권력의 헤게모니를 장악할 것이 확실시됨에 따라 그의 친위세력들이 대거 부상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김일성이라는 절대권력자의 사망으로 인한 권력의 진공사태를 메우기 위한 필연적인 수순이다. 따라서 앞으로 김정일체제가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을 지는 미지수이긴 하나 당분간 북한정국은 친김정일 세력과 잠재적인 반대세력간의 물밑 암투가 한동안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친김세력과 반김세력을 명확히 구분하는 것은 북한이라는 특수체제의 성격상 쉽지 않다. 우선 김일성 생전에 김부자간 권력세습에 대한 공개적인 반발은 곧 파멸을 의미했기 때문에 김정일에 대한 불만이 있더라도 내연할 수 밖에 없었던 탓이다.그리고 김정일 친위세력은 대부분 김일성 추종세력과 겹치고 있다는 것도 엄연한 현실이다. 그러나 김정일은 지난 72년 당중앙위 비밀 전원회의에서 공식 후계자로 낙점된 뒤 꾸준히 자신의 시대에 대비해온 것은 사실이다.당·정·군에 걸친 주요 포스트에 은밀히 자신의 세력을 심어온 것이다. 이같은 그의 측근세력은 크게 ▲3대혁명소조를 중심으로 한 소장 저변 친위세력 ▲당·정·군의 이른바 혁명2세대 간부 ▲혁명1세대 중 김정일과 잦은 사적인 교유를 갖는 인물군 ▲친족세력 등으로 대별된다.이들은 상당부분 중첩되는 것도 특징이다. 이같은 관점에서 노동당쪽에선 김용순·김기남·김국태·황장엽 등이 눈에 띈다.이중 대남담당 비서와 최고인민회의통일정책위원장을 겸임하고 있는 김용순은 외교 및 대남관계 핵심브레인으로 등장할 전망이다.「주체사상」의 최대 이론가인 황장엽과 김정일의 각종 연설문 등을 대필해온 김기남 등은 김정일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우상화작업을 선도할 이론과 실무책임자로 부상할 공산이 크다. 김정일의 권력안정에 핵심적 열쇠를 쥐고 있는 군쪽에선 오극렬대장과 김강환·김두남 두 전현 당군사부장이 대표적 측근이다.이들 중 김일성의 빨치산 동료였던 오증흡의 아들인 오극렬이야말로 군부내 「혁명2세대」 중 김정일의 최측근 인사로 차기 인민무력부장이 유력시된다는 관측이다.그는 김정일의 비호하에 초고속 승진을 거듭하다 88년 오진우인민무력부장과의 마찰로 군총참모장직을 재임 10년만에 최광에게 넘겨준 바 있다. 행정 및 경제분야에선 프라하공대 출신의 3인방인 강성산·연형묵·박남기 등과 전현직 국가계획위원장인 김달현·홍석형 및 최영림 등이 측근인사로 거명된다.이들은 대부분 조심스럽지만 개방노선의 불가피성을 인식하고 있는 대표적 테크노크라트들이다. 이밖에 김정일을 위해 중국 문화혁명기의 홍위병과 유사한 기능을 수행해온 3대혁명소조를 이끌고 있는 장성택도 빼놓을 수 없는 측근이다.그는 김정일의 친여동생인 김경희의 남편이라는 사실 하나 때문에 김으로부터 절대적 신임을 얻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처럼 어느 정도 윤곽이 잡히고 있는 측근세력과는 달리 반김세력들은 수면하에 잠재해 있다.더욱이 어차피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북한권력의 속성상 측근세력중에서도 김정일세가 약화될 경우 언제라도 등을 돌릴 인사가 상당하다는 관측이다.이같은 관점에서 주목되는 잠재적 반김 세력들로는 군부와 당에 걸친 이른바 「혁명1세대」그룹 일부와 군부내 소장 및 중견 장교층,그리고 김성애·김평일 등 족벌세력들이다. 김정일의 권력장악에는 오진우를 정점으로 최광인민군총참모장과 이을설호위총국장·백학림사회안전부장·김철만 국방위원을 비롯해 「혁명1세대」의 막내격인 김광진차수 등 빨치산 원로급들의 협조가 절대적이다.그러나 이들중 상당수는 그동안 김일성이 카리스마에 눌려 침묵을 지켰으나 내심 김정일의 노선과 지도력에 회의를 품어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때문에 이들 중 일부가 동구유학을 다녀온 중견장교들과 연계해 김정일체제가 대외적 고립과 경제난을 극복하지 못할 경우 반기를 들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다. 표면적으로는 후원세력이나 언제든지 등을 돌릴 가능성도 있는 인물들로는 친삼촌인 김영주와 계모 김성애,이복동생 김평일 등 족벌세력들이다.특히 김정일과 후계경쟁에서 밀려나 18년의 은둔 끝에 지난해 일약 부주석으로 화려하게 복귀한 김영주는 일단 김의 후견인역을 수행할 것으로 보인다.하지만 당정에 걸친 추종세력이 상당한 것으로 알려져 요주의 인물이라는 관측이다. ◎매부 장성택 가장 신임… 요직 앉혀/작년 재기한 숙부 영주의 향배에 관심/김정일과 족벌내 역학관계 김일성은 생전에 자신의 아들 정일을 둘러싸고 빚어지고 있는 가족간 갈등에 대해 심히 우려했었다고 전해진다.그만큼 김정일과 다른 가족간 대립이 심각했고 이는 자신의 사후 정권존립 자체에 위험요소가 될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김일성의 가장 큰 근심거리는 김정일과 자신의 후처 김성애,자신의 친동생 김영주,김성애와 사이에 난 아들 즉 김정일의 이복동생 평일과의 관계였다. 지난 72년 이후 20여년간 후계자로서의 정권 정지작업을 다져온 김정일에 있어서 가족관계는 철저히 적과 아의 개념이 분명했다.권력장악의 걸림돌이냐 추종세력이냐가 그 기본선으로 특히 김일성과 자신의 생모 김정숙(49년 사망)사이 관계인 「기본가지」와 계모 김성애(김일성과 56년 결혼)와의 관계인 「곁가지」를 철저히 구분했다. 따라서 김정일이 가장 신임하고 있는 것은 친 여동생으로 북한 여성계의 참모역할을 하는 당 경공업위원장인 경희와 그의 남편 장성택이다.그는 실세로 불리며 중앙당 27개 부서 가운데 3대혁명소조부·근로단체부·청년사업부 등 핵심 3개부서를 맡고 있다.이밖에 신임하는 사람으로는 자신의 브레인으로 사상적 부족함을 메워주는 가정교사 황장엽(전 김일성대총장으로 사상담당 당서기·김일성의 조카사위),양형섭(최고인민회의 의장·김의 4촌동생 김신숙의 남편),김정숙 민주조선 책임주필(김의 4촌동생)등이 있다. 김정일이 배척,김일성의 우환거리를 제공했던 이들과의 「가족화해」를 시사한 일련의 사건들이 이어져 세계의 이목을 끈 것은 지난해.70년대 초반 남북조절위 공동위원장,10년간의 당조직위원장을 지내며 막강한 실력을 행사하다 75년 김정일에 의해 사실상 숙청된 김영주가 재등장한 것.당내 막강한 지원세력까지 김정일에 의해 「여독청산」란 이름으로 거의 제거돼 은둔생활에 들어간 그는 지난해 7월17일 「조국해방전쟁 승리기념관」 준공식에김부자등과 모습을 나타내고 이어 며칠뒤 당정치국서열 7위로 부상했다. 또 지난 71년 여맹위원장이 돼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다 김정일에 의해 73년 여사칭호를 박탈당하고 친동생 김성갑마저 평양시 인민위원장 자리에서 쫓겨나는 수모를 겪었던 김성애도 마찬가지.80년 이후 줄곧 공식행사에 얼굴을 못내민채 평양근교 별장에서 두문불출해 오다 지난해 11월 노동신문에 쿠바여성대표단을 맞는 사진이 나오고 이어 여맹전원회의에서 「김정일지도자를 받들자」는 내용의 연설을 했다.지난달 김일성과 함께 카터 전미국대통령을 맞으며 내외에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 것은 세계의 뉴스거리로 받아들여질 정도였다. 한편 김평일은 김정일로부터 가장 박대를 받아온 인물.김일성을 닮은 건장한 체구와 카리스마적 얼굴,원만한 성격이 김정일로 하여금 그를 권력의 언저리에서 감시의 대상으로 올려 놓았던것. 불가리아 대사로,핀란드 대사로 겉돌며 북한주민들로부터 동정을 받았던 그가 최근 북한으로 돌아가 군요직을 맡았다는 소식이 전해진 것도 그 하나다. 이같은 김정일의 관용이 김일성의 심기를 편하게 해주는 단순한 배려로 그치고 김일성이 사망한 지금 다시 이들을 숙청하거나 「안거」토록 할는지는 분명치않다. 일단은 복권된 이들 친족들이 「조카의,의붓아들의,형의,처남의 대권에 도전하지 않고 적극 밀어주겠다」고 약조한 끝에 나온 족벌정치강화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김정일족벌의 정확한 향배는 11일 이후 김정일이 정식 권력승계절차를 마치고 통치를 행사함에 따라 조만간 드러날 전망이다. ◎올들어 공식행사 6차례만 참석/「친필서한」은 부쩍 늘어… “충성경쟁 유도”/김정일 최근 어디서 뭘했나 김정일은 공식석상에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아버지 김일성을 예우하는 차원이라는 분석도 있으나 몇가지의 콤플렉스를 갖고 있기 때문이라는 시각도 있다. 1백58∼1백62㎝로 추정되는 단신에다 그의 연설문이 육성으로 단 한 차례도 방송되지 않을 정도로 말을 더듬는 콤플렉스가 있어 대인 기피증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듯 김정일의 최근 행적 가운데 특별히 눈에 두드러지는것은 없다.평소보다 활동이 눈에 띄게 뜸했다거나 아니면 왕성했다거나 하는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다. 김정일의 최근 행적에서 그의 권력승계 여부를 확인하는 단서를 찾기란 힘들다는 얘기이기도 하다.공식적인 자리에 자주 얼굴을 내미는 대신 뒤에서 조용히 기반을 다져 권력승계에 대비해온 것이다. 김정일이 올들어 공식행사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여섯차례에 불과하다. 새해 벽두에 근로자들과 신년모임을 가진데 이어 2월 28일에는 조총련 책임부의장인 허종만과 면담했다.뒤이어 3월 5일에는 북한군 협주단 공연을 관람했고,4월 6일에는 최고인민회의 9기 7차회의에 참석했다. 4월 25일에는 군창건절을 맞아 아버지 김일성과 함께 564군부대를 시찰했고,5월 6일에는 조총련 제1부의장 이진규와 「친선담화」를 나눴다.지난달 카터 전 미국대통령이 방북했을 때 김정일은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처럼 의례적인 공식활동을 하면서도 실질적인 통치자로서의 정책지도 활동이라 할 수 있는 「현지지도」 및 외빈접견 활동은 김일성이 사망할때까지 단 한차례도 갖지 않았다. 올들어 김정일의 보이지 않는 행적 중 눈에 띄는 것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은 「친필서한」을 보내는 숫자가 예년에 비해 부쩍 늘었다는 점이다.친필서한이란 김정일이 주민들에 대한 「사랑」을 과시하고,이들을 고무·격려하기 위해 직접 쓰는 편지이다.지난 90년 11월 1일 「조선중앙통신사」 당원들에게 보낸 것이 효시이다. 올들어 지난 5월초까지 7차례의 친필서한을 보냈다.예년의 1년치와 맞먹는다. 전문가들은 친필서한이 잦아지고 있는 것을 김정일의 「인덕정치」를 부각시키고 그에 대한 충성심을 고취시키기 위한 정치적인 속셈으로 보고있다.사상적으로 취약한 새 세대들에게는 김정일에 대한 「대을 이은 충성」을 확고히 하고,핵문제로 국제적 압력이 가중되는 상황에서 청년 군인들에게는 김정일 체제 수호를 위한 긴장감을 불어 넣기 위한 목적이라는 것이다. 지난해 이후 김정일의 외형적인 행적에서 변화를 찾는다면 생산현장에 대한 「현지지도」가 줄어든 대신 군관련 행사 참여가 늘고 있는 점이다.군후방일꾼대회·전승기념탑 제막식·공병대회 등에 참석하고,전승기념 퍼레이드를 관람하는 등 군관련 행사에는 매우 활발하게 참여했다.지난해 4월 국방위원장으로 선임된 이후 당연한 결과로 지적되고 있으나,권력승계에 대비해 군부를 미리 장악하려는 의도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 83년 이후 「서열 2위」… 당·정·군 장악

    ◎73년 김영주축출… 공적활동 전면등장/반대세력 반발불구 통치권확보 성공/성격 독선적·일부선 “통 크다”… 영화·연극에 큰 관심,직접 제작도 김정일이 사망한 북한주석 김일성에 대한 장례위원 가운데 서열 1위로 발표됨으로써 차기 권력승계작업이 일단은 순조롭게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공산정권의 전례로 비추어 볼 때 숨진 최고지도자의 장례위원장을 맡은 인사가 예외 없이 차기 통치권을 맡아 왔기 때문이다. 이날 그에 대해 북한중앙방송과 평양방송이 혁명의 계승을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김정일은 20여년동안 끈질기게 권력승계 작업을 해온 결과 지난 83년 공식서열 2위에 오른 뒤부터 김일성 사망 직전까지 김일성에 이어 2인자의 위치를 굳혀왔다.군최고 사령관,원수,국방위원장,노동당 정치국 상무위원,중앙군사위원등 그의 맡아온 직책이 이를 입증한다.이복동생 김평일과의 불화설등 반대세력과의 권력투쟁설이 끊임없이 나돌기도 했지만 통치권 장악에 거의 성공한 것으로 관측돼 왔다. ○92년부터 승계완료그는 당·정·군등 북한내 3대 기본권력구조 가운데 형식적인 통수권은 국방위원장직으로 군에 대해서만 갖고 있다.그러나 김일성이 국가주석으로 정을,당 총비서로 당을 이끌어 오면서 형식적인 통수권자였지만 김정일은 사실상 이들 기관도 통치해 왔다는 것이 북한전문가의 대체적인 의견이다.이들 전문가들은 이미 권력승계작업은 지난 92년 김일성의 80회 생일부터 이 문제가 거론되지 않음으로써 사실상 완료됐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이와 관련해 김영남외교부장은 같은해 9월 제47차 유엔총회 참석차 뉴욕에 들렀다가 우리 기자들과의 회견에서 김정일이 사실상 북한의 통치자라고 밝혔었다.앞서 같은해 4월1일 김일성생일행사의 하나로 개최됐던 주체사상토론회에서 김정일이 「당·국가·군대의 수위」로 지칭되고,김부자의 생일을 전후해 오진우인민무력부장,이종옥부주석,연형묵정무원총리등 당시의 당·정·군 간부들이 김정일에 대한 대를 이은 충성을 다짐하기도 했다.이때부터 김일성은 점차 일선에서 물러나는 듯한 움직임을 보여 이같은 관측을 뒷받침했다.김정일은 지난 92년 인민무력부장 오진우원수와 8명의 차솔진급자에게 계급장을 달아 줘 군통수권에 대한 첫 공식행사를 가짐으로써 이를 대내외에 천명했다.이어 지난해 4월에는 군 최고통수권자인 국방위원회 위원장으로 추대됐으며 3개월뒤 장성 99명에 대한 승진인사를 단행,혁명1세대를 퇴진시킴으로써 군을 완전 장악했다. 김정일이 후계자로 부각된 것은 지난 73년.사상·기술·문화 3대혁명소조운동과 3대혁명 붉은기쟁취운동의 실무지도자로 공적활동의 전면에 등장하기 시작했다.같은해 9월 삼촌 김영주를 밀어내고 조직·사상담당 비서로,74년 2월 노동당 정치국 정치위원으로 추대됐다.그는 74년 2월 노동당 제5기 8차 전원대회에서 후계자로 결정됐으나 70년대까지만 해도 「당중앙」으로 모호하게 불려졌다.그러나 80년대부터 「친애하는 지도자 동지」로 표현되기 시작했다.83년 4월이후 오진우인민무력부장을 제치고 당서열 제2위로 부상하면서 명실상부한 후계자의 위치를 굳혔다. 85년 4월에는 「당·국가수위」로 지칭됐다.85년 7월 북한언론으로부터 「김정일시대」라는 용어가 등장하고,91년에는 인민경제대학총장 김국훈이 김정일을 「미래의 위대한 수령」으로 후계구도를 공식적으로 가시화했다.이어 91년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에 추대된뒤 92년 4월20일 원수칭호,93년 4월 최고인민회의 9기5차회의에서 국방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출됨으로써 군을 장악한 명실상부한 실권자로 등장했다. ○원래 이름은 「정일」 김정일은 김일성과 그의 첫부인인 김정숙 사이에서 태어난 2남1녀중 장남으로 지난 41년 2월16일생이고,원래 이름도 정일이라고 한다.그러나 뒤늦게 그를 우상화하는 편법으로 정일로 바꿨고 2년뒤 그의 출생연도도 1년 낮췄다는 설도 있다.82년은 이른바 「조선의 어머니」인 김일성의 어머니 강반석의 출생 90돌이자 김일성의 70돌이며,김일성이 창건했다는 조선인민혁명군의 50돌이었는데 그의 이름도 이에 맞춰 변조했다는 것이다.그의 이복동생 평일,성일에서 보듯 원래 항렬이 일자였다는 것이다. 어릴때 이름이 「슈라」인 것으로 미루어 출생지는 옛 소련이었음을 알 수 있으나 구체적인 지명은 사마르칸트,오케얀 스카야,하바로프스크등으로 엇갈린다.그러나 그를 우상화하는 과정에서 「백두미령」에서 출생해 『혁명의 준엄한 시련을 체험하면서 성장했다』고 미화됐다.북한은 이를 위해 김일성이 빨치산 활동을 할 때 백두산의 한 귀틀집에서 『백두산의 정기를 한몸에 받고 태어났다』는 이른바 「백두산정기설」을 뒷받침하는 각종 흔적들을 조작하기 시작했다.백두산의 「정일봉」,김정일의 탄생을 칭송하는 이른바 「구호나무」등이 그 흔적이다. ○3세대 평양 들어와 김정일은 세살때 광복과 함께 부모를 따라 소련함정을 타고 평양에 처음 들어왔다.43년 소련에서 태어난 남동생 「유라」(소련명)가 있었으나 2년뒤 김일성 관저 연못에 빠져 죽었다.7살때인 49년 9월 생모 김정숙이 출산중 사망하면서 여동생 김경희(46년생)와 함께 김일성의 외6촌동생 강연실에 의해 키워졌다.그의 성격은 생모와 사별후 난폭해지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진다.성격은 괄괄하고 과격하며 독선적이나 통이 큰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김일성앞에서도호주머니에 손을 넣는 유일한 사람이기도 하다.그는 아버지가 너무 바빠 홀로 어린시절을 보내온 것을 자주 불평했다고 한다.66년 홍일천과 연애결혼해 딸 하나를 낳고 69년 이혼한 뒤 73년 김혜숙과 재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정일은 평양의 남산유치원을 나와 49년 간부 자녀들이 다니던 남산 제 4인민학교를 다녔으며 57년 8월 평양제1중학교,60년 8월 평양 제1고급중학교,64년 김일성대학 정치경제학과를 각각 졸업한뒤 노동당에 입당했다.70년 당 문화예술부장,71년 선전선동부 부장으로 진출하면서 영화촬영및 연극공연작업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여온 것으로 전해진다.「피바다」「한 자위대원의 운명」「꽃파는 처녀」등 주요 영화와 가극을 직접 제작하는등 일년에 1백50∼2백편의 영화를 만들어 올만큼 북한영화계의 최고권위자로 꼽힌다.이같은 영화에 대한 애정때문에 신상옥씨 부부를 납치한 것이 깊숙이 베일에 가려져 있던 정체가 상세히 알려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연표◁ △1941.2.16 소련 사마르칸트 출생(북한측,백두산 출생주장) △1953.2 만경대혁명학원(인민반)수학 △1960.8 남산고급중학교 졸업 △1964.3 김일성대학교 졸업(정치경제학과) △1964 노동당 조직지도부 지도원 △1971 노동당 선전선동부 부부장 △1973.11 노동당 정치위원회 후보위원 △1974.2 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위원 △1974.2 「후계자」로 결정(노동당 제5기 8차전원회의) △1980.10 노동당 정치국 상무위원회 위원(6차 당대회) △1980.10 노동당 비서국 비서 △1980.10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노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1990.5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 △1991.12.24 인민군 최고사령관(노동당 제6기 19차 전원 회의) △1992.4.20 원솔 칭호 △1993.4 국방위원회 위원장(최고인민회의 9기 5차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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