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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씨줄날줄] 연탄

    ‘연탄집게 한번 잡아보지 않고 삶을 안다고 하지 마라.’고 한 시인의 말은 영원히 옳다.그러나 오래전부터 시의성을 잃었다.연탄이 곁에 없어도 우리의 겨울이 무난하게 시작된 지 십년은 족히 넘었다.요즘에도 서울에서 하루 30만장의 연탄이 팔린다고 하니,‘우리’라는 말이 잘못됐을 수도 있다.그러나 분명 연탄은 대다수 우리 가정의 부엌에서 사라졌고,삶의 진정한 현실을 쫓는 시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있다. 연탄은 피크를 이루던 1980년대 초반 600만 인구의 서울시에서만 하루 평균치로 700만개가 소비됐다고 한다.한 겨울에는 하루 소비량이 그 두배,세배가 됐을 것이다.가볍디 가벼운 양철 조각의 연탄집게로 삶의 총량을 재려는 시인의 직관이 터져나올 만도 했다.그러나 지금 연탄과 연탄집게를 보기가 쉽지 않다.도시가스를 사용하는 도시 가정은 물론 웬만한 시골 집도 기름보일러로 난방과 요리를 한다.연탄과 함께 사라진 것은 연탄집게의 시적 시의성뿐 아니라,아궁이로 대표되는 우리의 부엌이다.우리 가정 대부분에서 아궁이가 사라졌다. 연탄은 땔나무 화목으로 불을 지피던 전통 아궁이를 폐쇄형으로 개악하긴 했지만 아궁이를 잔존시켰다.무연탄을 단순 가공·성형한 연탄은 엄연한 공산품인데 그 연탄이 우리 전래의 아궁이를 완전 해체·멸실시키지 않고 일종의 상호 인정과 공존을 한 것은 뒤늦게라도 주목할만하다.왜냐하면 연탄은 지난 세기 우리를 관통한 근대화와 함께 창안·도입됐고,개발 절대 시대에 피크에 달했다.개발의 덕목이 절대성을 잃을 때 우연찮게 연탄도 우리의 부엌에서,아궁이에서,시어(詩語)에서 사라지고 있다. 연탄은 도시가스로 대체되었다.그 대체는 구한말부터 시작된 장작,낙엽 등 임산연료의 연탄 대체와 마찬가지로 물리적 차원을 넘어서는 화학적 성격의 것이다.연탄과 도시가스는 단순한 대체물 관계가 아니다.연탄은 땔나무보다는 덜 하지만 사용하는 사람과 물리적 접촉,심정적 연결을 요구한다.일산화탄소를 마셔가며 연탄불을 갈아야 하고 다 탄 연탄재의 처리에 실제 시간을 소비해야 한다.반면 지금 도시가스는 사용하는 사람과 밸브 개폐의 단순 동작 외에는 상호 작용 없이 철저히 절연돼 있다. 도시가스 아닌 연탄은 오늘 인터넷 시대와 맞지 않는 것을 깨닫는다.인터넷과 핸드폰은 연탄과 맞지 않는다,옛날 전화기가 땔나무와 맞지 않듯이. 김재영 논설위원 kjykjy@
  • [씨줄날줄] 아·태 장애인경기

    비(非)장애인이 눈여겨 봐야 할 ‘건강한 심신’의 경연(競演)이 있다.아시안게임에 이어 부산에서 열리고 있는 제8회 아시아·태평양 장애인경기대회가 그것이다.새달 1일까지 17개 종목에 걸쳐 벌어지는 이 대회에 43개국 1700여명의 장애인 선수들이 참가하고 있다.1970년대 중반 이 대회의 출범을 주도한 일본 의사는 장애인의 재활과정에 스포츠가 가지는 중요성을 깊이 인식했다고 한다.장애라는 말에서 운명주의의 무거운 그림자를 느끼지 않을 수없는 우리에게 ‘재활’이란 말은 밝은 반전의 율동감을 준다.밝은 이미지의 재활은 또 운명이나 조건에 굴하지 않고 맞서 싸우는 의지의 강한 인상을 준다.장애인의 스포츠 활동에는 재활의 이런 율동감과 무게가 압축되어 있는 것이다. 장애인의 장애적 모습과 현실은 비장애인을 우울하게 할 수 있다.그러나 장애인이 장애의 조건과 운명에 굴하지 않고 재활의 길을 씩씩하게 걷고 있는 모습은 비장애인에게 삶의 청량제가 된다.그러므로 재활의 다이내믹한 현장인 장애인의 스포츠는 장애인뿐 아니라 비장애인의 건강성에 득이 되는 활동이다.다만 보통의 스포츠를 보던 눈을 보다 넓고 여유있게 교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정상의,보통의 스포츠 대회에서 우리는 잠재된 미지의 능력이 처음으로 발현되기를 기대하지만,장애인의 스포츠 경기에서 우리는 익히 알고 있는 어떤 수준이 ‘상식을 깨고’ 회복되기를 기대한다.이 회복은 스포츠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지만 우리의 인간성에는 심대한 영향을 준다. 장애는 누구에게 운명지워진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잠재된 가능성이기 때문에,장애인이 시현하는 어떤 회복은 한층 의미가 깊다.우리나라에는 150만명의 등록 장애인이 있다.남의 손을 빌리지 않으면 기본적 생존 행위가 어려운 중증성이 30만명을 넘는다. 교통사고 등 후천성 사고로 인한 장애가 90%에 가깝다고 하는 것은 장애인이 될 현대인의 잠재적 확률이 매우 높음을 말해준다.정신 장애와 시·청각 장애 및 뇌성마비,척수 장애 그리고 지체 절단의 모습은 우리의 신체가 유전이나 환경에 매우 취약함을 웅변해준다. 육체적 재활과 정신적 회복 의지를 불태우는 장애인의 스포츠 활동을 열린 눈으로 볼 때 그 취약함은 사라질 것이다.장애인경기대회는 우리 모두의 행사이어야 한다. 그때 우리는 장애라는 자신의, 타인의 조건을 보다 건강하게 볼 수 있게 된다. 김재영 논설위원 kjykjy@
  • [씨줄날줄] 오페라 극장

    체첸 반군이 모스크바의 인질극 테러 장소로 선택한 곳은 극장이었다.극장은 수백명의 다중이 매우 일차원적인 출입문만 남기고 스스로를 한 곳에 집단 밀폐시킨 장소로서 테러리스트들에게는 대규모 인질들을 일거에 포획할 수 있는 이상적인 테러 후보지라고 할 수 있다.700여 명의 인질이 붙잡혀 있는 극장 ‘돔 쿨트르이’(문화의 집)는 외신에 ‘시어터’로 나오지만 영화가 상영되는 보통 극장이 아닌 ‘오페라 극장’성 극장이다.오페라,뮤지컬,발레가 공연되는 이 극장은 객석이 1500석으로 같은 모스크바의 볼쇼이 극장(2200석)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성격은 같은 것이다. 보통 극장과 구별되는 오페라 극장의 성격은 무대에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영화 극장은 같은 필름을 몇백번이고 틀어줄 수 있지만,오페라 뮤지컬발레는 같은 작품을 같은 사람이 연기하더라도 매번 다르다.같은 것,같은 순간이란 것은 무대에 존재하지 않는다.가수의 노래와 발레리나의 춤은 그 순간이 유일하다.그래서 영원하다.이것이 역설적으로 인간의 유한성을 상기시키고 인간을 흥분시킨다. 러시아 문호 솔제니친의 소설에,시베리아 영구추방의 형벌에서 뜻밖에 풀려난 사람이 그 순간 가장 가고 싶은 곳으로 발레 공연 극장을 꼽는 대목이 있다.이때의 ‘발레’로 똑똑하게 드러나는 것은 주인공이나 러시아의 개성이아니라,발레 무대의 ‘사람’성이다.비인간적인 시베리아에 갇힌 주인공의‘발레’라는 말에는 가장 순수한 상황에서의 인간과의 만남,사람과의 접촉,그것에의 간절한 희구가 들어 있다.이때 발레는 육욕보다 더 육체적이고,기도보다 몇배 더 정신적이다. 체첸 반군에게 인질로 붙잡히는 횡액을 당한 극장 관람객들은 러시아 창작의 인기 뮤지컬을 보려고 온 사람들이라고 한다.영화 극장 대신 부러 선택한 사람도 있을 것이고 단순히 인기 공연물이어서 찾은 사람도 많았을 것이다.인질 입장객들의 문화적 취향을 마음대로 추단할 수는 없지만,흔한 영화 극장 대신 뮤지컬,오페라의 오페라 극장에서 일어난 인질 사건은 묘한 문화적 뉘앙스를 준다.인질들도 달라 보인다. 모스크바는 생각보다 문화적이다.이번 인질 사건이 무고한 희생 없이 해결돼 오페라 극장 입장객을 배경으로 모스크바의 문화적인 여유가 덤으로 알려지기를 바란다.물론 체첸 문제는 별개다. 김재영 논설위원 kjykjy@
  • [씨줄날줄] 고백 외교

    북한 김정일 위원장이 일본인 납치와 농축 우라늄 핵개발을 잇따라 전격 시인하자 ‘고백 외교’라는 용어가 국내외 언론에 선보이고 있다.미국 신문에선 아직 독립적으로 사용되지 못하고 설명적 구절 단계이긴 하다.언론에 노출되기 전이나 후나 예측하기 어렵기는 마찬가지인 듯싶은 김정일 위원장이 또 한 건만 고백하면 이 용어는 그대로 단독의 국제 시사용어가 될 수 있겠다. 김 위원장의 추가 고백은 용어 격상이 문제가 아니라 김 위원장과 북한에 대한 예측성을 크게 높이는 중대 자료가 될 것이다.그러나 지금 단계에서도 ‘고백 외교’는 북한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해준다. ‘고백 외교’는 ‘벼랑 끝 외교’와 마찬가지로 외교 본류가 아니다.우리는 수천 수만의 외교 테이블에서 전무했던 자기 편 전죄와 약속 파기의 돌발적·자발적 고백을 보고 정통적 외교가 전복됨을 느낀다.그리고 이 느낌은 새 외교술에 대한 신선함도 주지만 아울러 고백 외교가 이뤄진 테이블 현장에서의 정통 외교 결핍이 감지된다.북한은 의도적으로 그랬을지 모르지만 국외자는 이를 근본적인 결핍과 부재로 평가할 수도 있다.고백 외교는 결코 정통 외교사에 등재된 외교술은 아니다. 우리는 외국 언론의 고백외교 용어에서 주변부의 별종을 바라보는 중심부의 시선을 느낀다.북한이 미국과 밀고 당기며 제네바 핵합의를 도출할 때 북한 외교를 단골로 묘사했던 ‘벼랑 끝 외교’ 용어에도 이 시선은 들어 있다.우리는 미국 외교정책이나 미국 언론도 문제지만,북한은 왜 고백 외교,벼랑끝 외교 같은 정통성이 없는,주변적인 별종의 외교술을 벌여야만 하는가 하고 묻게 된다. 미국 언론은 김정일 위원장 고백 외교의 전술적 가치를 부정적으로 추단하기 앞서 어떤 돌파구를 열 것인지 궁금해 하는 눈치다.그러면서도 신기한 기예를 구경하는 듯한 우월적인 자세가 보인다.고백은 종교적 목적일 때는 정통적이지만,외교의 한 수단으로 채택될 때는 목적도 못 이루고 숨긴 죄만 인정하는 꼴이 될 수 있다.김정일 위원장의 파격적인 고백 외교에서 모든 것을 올바르게, 새롭게 시작하려는 심기일전의 분위기보다는 위험한 카드를 꺼내는 위기가 느껴진다.북한은 언제 정통적인 외교로도 자기 주장을 할 수 있을까. 김재영 논설위원 kjykjy@
  • [씨줄날줄] 터미널

    전국의 버스 터미널이 몇몇 곳만 빼고 영락의 길을 걷고 있다.영락이 무엇을 뜻하는지 쉬 감이 안 오면,눈을 감고 가장 최근에 들렀던 고향 버스 터미널의 대합실을 떠올려 보라.어느 때부터 터미널 대합실은 잘 살다 이유없이 기울어 가는 집안처럼 썰렁하고 때가 끼고 사방 문들이 삐그덕거리고,소변냄새 같은 것이 영 사라지지 않았다.기억을 더듬어 가면서 우리는 대합실의 퇴락과 살풍경함이 참 오래되었음을 깨닫게 된다.무엇보다 고향 버스 터미널에 들른 지가 매우 오래되었음을 깨닫고 놀란다.고향을 찾는 사람이 전국적으로 줄었는지 늘었는지 그것은 모르겠지만,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제 고향에 오더라도 버스 터미널을 경유하지 않고 곧장 고향 집으로 직행하고 있다. 고향의,전국의 버스 터미널 영락은 우리의 이 경유 생략,직행의 간단명료한 결과다.예전의 우리는 버스 터미널을 결코 무시할 수 없었다. 가난했던 시절 버스 터미널의 대도시행 시외버스나 고속버스는,누추한 고향 집의 현재를 어떻게든 뛰어넘고자 하는 우리의 꿈과 의지가 가장 먼저투영되는 거울이었다.없는 살림에 도시 유학을 떠나는 학생이나 없는 것이 싫어 고향 집에서 대도시로 무작정 출분(出奔)하는 청소년이든 고향 버스 터미널은 단순히 버스를 기다리는 곳이 아니었다.가슴 속에 갈무리해야 될 현재의 엉클어짐,가슴 속에서 튀어나올 것 같은 미래에 대한 환상과 두려움은 나이에 비해 처치 곤란할 정도로 막중한 것이었는데,이상하게 터미널의 한 구석에 가만 서 있으면 제자리를 잡는 것이었다. 그렇게 버스 터미널에서 고향을 떠났던 많은 사람들은 이제 대도시에서 고향에 올 때 터미널을 들르지 않는다.자가용을 타고 오기 때문이다.유학과 출분이 나름대로 성공한 것이다.버스 터미널은 그런 성공과 반대로 영락과 열패의 길을 걷고 있다.터미널에 생기와 희망을 주었던,대도시에 청운의 꿈을 품는 젊은 사람들이 더 이상 우리의 고향에 없기 때문이다.청소년은 대부분 도시에 살고 있고,버스 터미널에 오더라도 청운의 꿈 같은 건 가지고 오지않는다. 몇몇 곳을 빼고 전국의 버스 터미널에서 지금 더 큰 도시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변화를 꿈꾸고 만들기엔 너무 나이가 들어 있거나,사회적인 힘이 지쳐 있다.우리의 터미널이 진짜 ‘터미널'(죽을)한 병에 걸려 있지 않기를 희망한다. 김재영 논설위원 kjykjy@
  • [씨줄날줄] 도토리 줍기

    제발 도토리를 그만 주워가고 산에 그대로 놔둬 달라고 시민단체들이 호소하고 있다.도토리와 밤은 다람쥐,멧돼지 등 야생동물들의 겨우살이용 주요먹이인데 사람들이 무차별로 ‘싹쓸이’해가고 있는 것이다.시민단체가 말하지 않더라도 도시 야산이나 공원에서 새벽부터 비닐 봉지를 들고 나무 아래를 샅샅이 파헤쳐 도토리를 줍고 있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생태계에 큰 위협을 준다는 시민단체의 경고가 아니더라도 눈길을 돌리고 싶은 풍경이다. 평소 잘 볼 수 없는 다람쥐,멧돼지가 걱정되어서가 아니다.그것은 결코 아름다운 새벽 풍경이 아니다.새벽 도시 야산에서 낙엽과 부엽토를 날카로운 나뭇가지로 파헤치며 도토리 알알을 비닐 봉지에 쓸어 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은 동물이 아니라,사람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그 생각은 결코 아름답지가 않다.도토리를 줍는 사람들은 사십줄 이상의 나이 지긋한 아주머니,아저씨,할머니,할아버지들로 싱거운 듯하면서도 감칠 맛 있는 도토리묵을 자식,남편,아내,손자손녀들에게 맛보이려는 일념에서 새벽 행차를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땅에 떨어진,낙엽 갈피에 숨어 있는 도토리를 수습,획득하는 그 사람들의 일련의 동작과 행보,그리고 도토리 채집이 끝난 뒷자리의 형국은 그들의 새벽 행차를,그들이 만들 도토리묵의 맛을 결코 아름답게 여기게 하지 않는다.도시 야산에서 도토리를 줍는 사람들은 필요 이상으로 열심이고, 도토리를 줍기 전보다 훨씬 나무나 낙엽이나 자연에 대해 무신경하고 무자비해진다.전후 배경을 생략하고 도토리 줍는 장면만 클로즈업해 바라볼 때 기아가 들어 먹을 것이 없어 초근목피의 하나로 도토리를 줍고 있는 게 아닐까할 정도로 전투적인 도토리 줍기다. 하나도 남김 없이,남 차지가 되기 전에 주워야 한다는 일념과 초조함을 읽을 수 있다.부엽토와 토양이 될 낙엽을 거둬내 저쪽으로 쓸어버리고 흙까지 파헤치면 주변 식물들이 어떻게 되는 따위는 전연 아랑곳없다.도토리 먹이가 없으면 다람쥐가 어떻게 겨울을 날 것인가는 도토리묵 맛을 모르는 한가한 사람이나 생각할 일인 것이다. 도토리를 줍는 것이 나쁜 것이 아니라,나무나 다람쥐나 다른 사람을 생각할 여유없이 너무 열심히 줍는 게 문제인 것이다. 김재영 논설위원 kjykjy@
  • [2002 길섶에서] 두 山

    어느 날부터 우리의 산이 도시와 농촌 종(種)으로 나눠졌다.산은 가만히 있는데,산 아래 인간 마을의 변화가 산의 내면에 두 이질적인 선(腺)들을 생성시킨 것이다.예전 시골 산은 땔감을 구하는 일터거나 소에게 꼴 먹이러 가는 아이들 놀이터였다.그때 우리는 생활의 욕구에서 산을 찾았고,산은 사람 냄새가 진했다. 지금 시골 산은 촌락이 들어서기 전의 원시성을 회복하고 있다.그러고자 해서가 아니라 다닐 사람이 없어 자연히 산 혼자 야성의 내분비선을 합성한 것이다.그런 산은 이농(離農)이 키워낸 낯선 짐승처럼 무섬증을 준다. 반대로 도시의 산은 사람이 들끓는다.산에 오는 사람들의 표정도 다르다.도시인은 생활이 아니라 정서와 심정의 필요에서 가까운 산을 찾는다.사람들은 산에서 산보다는 자기 내면의 길을 더듬고 있는 것 같다.옛날 가난했던 시절 우리 산은 마을이 다 담아내지 못하는 활기를 보듬어줬다.지금 우리는 아파트가 담아내지 못하는 내성과 침잠을 산으로 가지고 간다.우리 산의 내분비 계통이 예전과 같을 리 없다. 김재영 논설위원
  • [씨줄날줄] 지미 카터

    올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된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은 1976년 대통령선거 당시 막판까지 ‘지미 누구?’라는 말을 사방에서 들어야 했고,1981년 1월 백악관을 나설 때는 반 세기 만의 첫 재선 실패 현직대통령(직접선출)이란 명찰을 달고 있어야 했다.대통령제를 창출하고 대통령학을 고도로 발달시킨 미국에서 카터는 실패한 대통령의 명백한 사례로 연구되어 왔다.그로부터 21년 뒤 카터는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뜻밖의 부상이나 권토중래가 아니다.어느 곳보다 퇴임 대통령에 대한 관심이 많은 미국에서 10년 전쯤부터 카터를 ‘가장 성공한 퇴임 대통령’으로 눈여겨 보는 학자와 국민들이 수두룩했다. 이같은 ‘후 명성’은 오로지 카터 전 대통령 스스로의 작품이다. 닉슨까지 살아 있을 때도 카터는 닉슨,포드,레이건,부시 등을 제치고 가장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전임 대통령이었다.이유는,현직 때 얻지 못한 인기를 뒤늦게 얻고 싶어서,같은 당 출신의 후배 대통령에게 영향력을 발휘하고 싶어서 카터가 언론과 국민에게 어필하는 일을 만든 것이 아니라,하고 싶은 일이 있었고,그 일을 진정으로 하다 보니 언론이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고,국민들이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카터 전 대통령의 ‘하고 싶은 일’은 국제 분쟁의 평화적 해결,그리고 못사는 사람을 실질적으로 도와주는 것이다.이것은 재선 실패 5년 후 대외활동을 재개하면서 급조한 것이 아니라 조지아 주지사,대통령 직을 수행할 때부터 분명히 드러난 카터의 성향이자 지향이다.정치가,대통령 가운데 가장 파랗고,맑은 눈을 가진 그를 두고 목사가 될 양반이 정치를 하고 있다는 비아냥이 지금도 이어지지만,카터는 정치력보다는 신념의 힘이 넘치는 정치가다.본인 스스로 일반 대중에 강한 인상을 주는 정치가의 ‘마력적’ 리더십에 문제가 있음을 인정하는데,정치가 카터를 통해 우리는 정치에서의 신념과 리더십의 조화,혹은 부조화의 문제를 본다. 그러나 리더십의 마력은 정치력이 쇠할 때 사라지지만 신념의 힘은 정치판을 초월한다.이것이 카터 전 대통령이 노벨상을 타게 된 이유다.몇달 전 정치적 천성이 몇십 배 앞선 클린턴 전 대통령의 몇백만 달러 방송 스카우트설이 2단짜리 뉴스가 됐을 때 뉴욕타임스와 타임은 카터의 쿠바 방문을 커버스토리로 실었던 것이다. 김재영 논설위원 kjykjy@
  • [씨줄날줄] 유태인과 문학

    올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헝가리의 케르테스 임레는 1944년 15세에 나치의 아우슈비츠와 부헨발트 강제수용소에 끌려갔다 살아난 유태인이다.숫자가 엄청 과장됐느니 하는 뒷말이 끊이지 않긴 하지만,나치의 유태인 절멸 정책으로 중부 유럽에 살던 950만명의 유태인 중 600만명이 강제수용소에서 죽었다고 한다.케르테스보다 한 해 먼저 루마니아에서 출생했던 미국 작가 엘리 위젤도 케르테스와 같은 해 역시 아우슈비츠와 부헨발트에 수용된 뒤 생존,1986년 노벨상을 받았다. 위젤은 억압받는 소수 계층을 위한 활동으로 평화상을 받았으나,그의 책을 통해 홀로코스트의 비극과 그 앞에 선 인간의 실존 의미가 세계의 많은 독자들에게 전달되고 있다. 신의 숨은 뜻을 묻지 않을 수 없을 성싶게 유난한 역사의 핍박,인간의 상황을 누구보다도 초인간적 스케일로 해석해내는 유별난 정신력의 유태인에게 글이나 문학은 삶의 공구로서 커다란 쓸모가 있었을 것이다.유대교 및 기독교 성서 지은이들의 후예,예수와 마르크스와 프로이트의 동족인 유태인들은 세계 현대문학 형성에 필수적인 요소를 제공했다.귀족적으로 유태 색채와는 거리가 멀 것 같은 마르셀 프루스트는 반 유태인이었고,프란츠 카프카는 많은 사람들의 짐작대로 유태계다. 2000년 넘게 조국이 없던 유태인들은 1880년대부터 유럽에서 미국 이주를 시작,1939년에 벌써 미국을 유태인 제1 거주지로 만들었다.이스라엘 건국 이후에도 이 위치는 변동이 없었으며,미국 문학에서 유태인 작가가 차지하는 비중은,미 정치·경제·언론·쇼 비즈니스계에서의 유태인 영향력에 뒤지지 않는다. 아이작 싱어와 솔 벨로는 이미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유태인 중산층 이야기지만 비 유태계인 존 업다이크의 ‘래비트’와 미국 중산층의 전형을 다투는 ‘주커먼’ 연작의 필립 로스는 올해도 역시 노벨상 후보 리스트의 선두에 올랐었다. 미국에서 한 세대 가까이 가장 신비로운 작가로 남아있는 J.D.샐리저,반대로 브로드웨이 성공 극작가의 대명사인 닐 사이먼도 유태계다.안정된 삶의 바탕이 취약한 유태인들은 문학의 혈맥 중의 하나인 풍속에서는 다른 민족에게 뒤질지 모르지만 이야깃거리를 관념으로 입체화하는 능력은 체질적으로 탁월할 것이다.무엇보다 그들은 기억해야만 할 것들이 많은 민족이다. 김재영 논설위원 kjykjy@
  • 히말라야 ‘시모캉리’ 세계 첫 등정

    포스코 산악팀이 티베트 히말라야의 미답봉인 시모캉리(해발 7204m)를 세계 최초로 올랐다. 지난 8월25일 출국한 포스코 시모캉리 원정대는 지난달 29일 시모캉리 정상 정복에 성공했다고 6일 알려왔다.포스코 원정대는 이번에 개척한 등산로를‘포스코 루트’로 명명하는 최초 등정자로서의 영예도 안았다. 시모캉리는 티베트와 부탄의 국경지대에 있는 히말라야의 봉우리 가운데 하나로 얼음절벽과 넓게 형성된 크레바스(얼음이 갈라진 틈),암벽지대를 개척해야만 정상에 오를 수 있어 이전까지 누구도 등정에 성공하지 못했다. 이번 정상 정복에는 등반대장인 남영모,이화형(이상 포항제철소),김재영(광양제철소),권오일(세아제강),이기열(천광스틸)씨 등 5명이 나섰다.이날 현재 이들은 해발 5000m 지점의 베이스 캠프에서 휴식하고 있다.이달 중순쯤 귀국할 예정이다. 전광삼기자 hisam@
  • [씨줄날줄] 아메리카 원주민

    인디언 원주민이 낸 1370억 달러(약 164조원) 규모의 소송에 미국 연방정부가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 한다.의식 있는 한 인디언 여성이 6년 전에 시작한 이 소송은 110여년 전 “개발 이익금을 주겠다.”며 인디언 땅 수십만평을 가져간 미 의회가 이후 이익금도 안 주고 땅도 안 돌려준 것을 문제삼고 있다.한 세기 뒤의 소송 제기지만 법적 계약 사실을 부인할 수 없는 만큼 미정부가 곤혹스러워하는 것이다.만약 당신들 백인 조상이 빼앗아 간 우리 인디언 선조들의 땅 값을 배상하라고 했다면,미국 정부는 콧방귀도 안 뀌었을 것이다. 유럽 식민주의자들이 북미 신대륙을 아메리카 원주민으로부터 ‘횡취’한 것은 역사의 문제이지,법적 문제가 아니라고 ‘법치’의 미국은 굳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그러나 미국 백과사전 인터넷에 들어가 보면 한 나라가 딴 나라의 땅을 뺏어 점령하고 있는 지역 및 국가 중의 하나로 미국이 등재돼 있는 경우가 많다.비록 기정 사실이 아니라 논쟁건이란 딱지가 붙어 있긴 하지만 중국이 티베트를 점령하듯 미국은 아메리카 원주민의 땅을 점령·점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북미의 ‘원주인’들은 땅 환수 같은 것을 구체적으로 생각할 수 없고,그저 콜럼버스와 유럽 식민주의가 주조한 황당무계한 ‘인디언’ 대신 아메리카 ‘원주민’으로 정당하게 불러 주기를 요망한다.미국 대륙에는 270여 곳의‘인디언 보호구역’이 산재해 있다.통틀면 2000만㏊로 미 대륙의 50분의 1을 약간 상회,한반도만한 데 그 대부분이 황량한 오지이고 황폐한 불용지라는 점에 우선 놀라게 된다. 그리고 보호구역 상당수가 부족 이름 뒤에 ‘네이션’이란 명칭을 달고 있어 외국인을 놀라게 한다.그러나 이름만 그러할 뿐 주·연방법이 엄연히 적용되는 자치지역일 따름이다.터키·이라크와 싸우는 쿠르드족도 아메리카 원주민과 같이 ‘스테이트’가 없는 ‘네이션’으로 정치학자들은 분류하지만,미국의 인디언 ‘네이션’은 정치적인 함의보다 어휘의 다의적인 측면이 더 강하다.그만큼 무력화된 것이다. 노예 수입이 마무리된 독립전쟁 당시 60만명이었던 미국 흑인은 지금 3300만명이다.유럽인이 들어올 때최소한 100만명이던 아메리카 원주민은 지금 인구조사에서 200만명이 채 못된다.1300억달러 소송에는 ‘인디언’의 한이 담겨 있다. 김재영 논설위원 kjykjy@
  • [씨줄날줄] ‘책 선물’

    문화관광부가 문화의 달인 새달 전국 9개도의 중학교 1학년생 32만명에게 5000원 상당의 ‘청소년 도서교환권’을 선물할 예정이다.청소년 육성기금의 예산 관계로 올해는 서울과 광역시의 30만 중1들은 제외됐다.모 신문사가 벌이고 있는 책읽기 운동과 다소 관계가 있는 이 도서교환권 선물 사업을 다른 신문사가 세금 남용 운운하며 트집잡기도 했다. 그러나 16억원의 예산 운용을 문제삼는 것보다,이 시대 13살의 틴에이저 초입생들에게 과연 책은 무슨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그런 질문이 더 시급해 보인다. 교환권으로 살 수 있는 책들은 간행물윤리위원회 및 문화부의 월별 추천도서를 토대로 전문가들이 선정한 것들로 한정된다.이 선정 도서들을 읽는 재미가 덜한 ‘양서’들로 짐작해 버리는 것은 섣부른 생각일 수 있지만,이 책들은 32만명의 13살 대다수에게 컴퓨터 게임보다는 확실히 재미가 덜할 것이다. 아이들에게 재미가 있으니 공부하라고 하지 못하듯 우리 어른들은 재미나 흥미를 이유로 아이들에게 독서를 권할 ‘용기’나 ‘확신’이 없다.초등학교 아이라면 모를까,성년을 향한 실질적인 첫 발을 떼는 13살 중1에게 “재미있으니 봐라.”며 책을 건네주거나 사줄 부모는 별로 없을 것이다.재미는 별로지만 교수들이 양서라고 추천하고,입시에 도움이 되는 고전류 리스트에 오른 책들을 사준다.아이가 그런 반열에 오르지 못하는 책들을 독서삼매에 빠져보고 있으면 뺏어버리기 십상이다. 문화부의 청소년 도서교환권은 부모들의 이같은 우격다짐을 ‘선물’이란 당의정을 입혀서 대행하는 것이 돼서는 안된다.세금 남용을 문제삼은 언론도 있지만 대부분의 부모들은 이 사업의 무료 서비스와 함께 교환 도서의 양서 제한에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하나 이번 5000원 무료 쿠폰을 받고 추천 ‘양서’를 산 32만명의 중1 가운데 양서의 좋은 점을 깨닫고 앞으로 양서를 보려고 노력하는 학생들도 분명 있을 것이나, 추천 도서들의 재미없음,진정 좋아서가 아니라 도움이 되기 때문에 읽는다는 양서 독서의 공리주의와 함께 독서의 위선적인 이중성을 체험하고서 책과 더 멀어져 버리는 학생은 없을까. 문화부는 16억원 세금 남용에 관한 비판보다는 도서 선정의 중요함에 더 신경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김재영 논설위원 kjykjy@
  • [2002 길섶에서] 개와 미소

    개를 보면 사람이 달라진다.평소엔 부드러움과는 거리가 있던 사람인데 개를 보자 그냥 얼굴이 풀어지고,어르고 쓰다듬는 게 같은 사람인가 싶다.개를 좋아하는 사람이 짓는 미소는 전광석화 그것으로,그 신속함은 미소의 자연스러움을 확신시켜 준다. 그러나 신속한 만큼 강렬해지는 표변함은 미소 이전(以前)과의 깊은 간극,어떤 거대한 불연속성을 느끼게 한다.개를 보고 아이처럼 웃음짓고 부드러워지는 어른을 보면 즐겁지만,꼭 즐거운 것만은 아니다. 개를 보고 깔깔대며 달려가는 아이들의 돌변은 그 순간이 완벽한 현재이며 장면이다.같은 장면이지만 어른의 미소는 난데없는 돌출의 느낌을 주곤 한다.미소의 현장과 미소 이전의 모습 사이에 괴리가 심해 문득 의문이 생긴다.미소가 잘못된 노출인가,미소 이전이 잘못된 가면인가.아이들의 웃음은 개아닌 다른 것을 보고도 터뜨려질 것이라는 확신을 주지만 어른들의 미소는 개에 ‘조건’지어졌지 않았나 하는 의심을 준다.물론 개가 좋아서이겠지만,‘사람 아닌’개이기 때문에 사람이 달라진 듯 부드러워진 건 아닐까. 김재영 논설위원
  • [씨줄날줄] 안산 노점상

    자연 재해는 파괴의 현장과 원망만 낳는 것은 아니다.가끔 평상에는 보기 어려운 인간의 선의와 희망을 낳는다.경기 안산지역 노점상 50여명은 태풍 ‘루사’피해 소식을 접하고 십시일반으로 270만원을 모아 여러 필요한 물품을 산 뒤 강릉시 피해 지역을 찾아 복구작업을 도왔다고 한다.떡볶이 과일 순대 등을 팔아온 이들은 “먹고 살기 힘든 것은 똑같지만 넋 놓고 앉아 있을 수재민을 생각하면 하루 이틀 생업을 접는 것쯤은 아무렇지도 않다.”고말한다.안산지역의 노점상들은 지난해 말에도 미담의 주인공이 되었다. 이곳 50여 노점상들은 1000포기의 김장 김치를 담가 소년소녀 가장과 홀로 사는 노인,생활보호대상자,외국인 노동자 등 100가구에 전달했었다.당시 한노점상은 “대부분 노점상들이 경제위기 때 부도 등의 어려움을 겪어봤다.”며 “한숨 돌린 상황에서 뒤를 돌아보고 어려운 이웃들을 작은 힘이나마 돕고 싶었다.”고 말했다고 한다. 한겨울 불우이웃에 김장 김치를 갖다줬던 노점상과 강릉 수해복구에 자원봉사 갔던 노점상이 상당수 같을수도 있다.아무튼 이 50여 명은 경기도의 한도시 안산에 대해,수십만 명에 달하는 국내의 노점상에 대해,그리고 수천년동안 논의돼온 이타주의적 인간성의 순도(純度)에 대해 자신들이 의도했던 것보다 몇배나 많은 걸 말해준다.노점상은 유럽 선진국에도 있고 아프리카 후진국에도 있지만 한국에서 노점상은 어느 곳보다 사회학적인 코드로서 유용하다.미국 신문과 경제학자들은 맥도널드 가게의 고기 석쇠 뒤집는 일을 가장 쉽게 구할 수 있는 직업으로 여겨 최저임금 기준을 삼지만, 우리는 부도나 최종적인 실직 등에 몰리면 ‘노점상’을 진지하게 생각한다.노점상으로 성공한댔자 아무것도 아니지만, 이것마저 실패하면 어디로 떨어지는가. 상업만능 시대에 밑천과 상업성이 가장 빈약한 노점상은 그만큼 비상업적인 인간성을 풍부하게 유지할 수도 있겠다.그간 노점상은 행정기관의 단속에 항의하는 집회 등으로 뉴스에 올랐다.이번 강릉 수해복구 현장에 달려간 노점상은 전국 수십만 명 가운데 안산 지역,그것도 50명에 그치지만, 그들의 뉴스는 결코 에피소드에 머물지 않는다.선의는 숫자와 지역을 초월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김재영 논설위원 kjykjy@
  • [씨줄날줄] 육식공룡

    최근 경남 하동 일대에서 원시악어 머리뼈와 함께 9㎝ 길이의 공룡 이빨 화석이 발견됐다.열대 지방에 많이 있는 악어의 머리뼈도 진귀하지만,대형 공룡 치아는 1억년 전 한반도에 몸길이 12m의 육식 공룡이 산 증거로 제시되고 있다.우리나라에서도 30년 전부터 경남 고성·함안 전남 해남 등지에서 발자국,뼈 화석이 발견되고 있는 공룡은 멸종된 만큼 전 지구인에게 이국적이지만 동양,한국인에게 한층 외래의 이미지가 강하다.‘공룡(恐龍)’은 150년 전 서양,특히 미국에서 부활돼 서양의 파워 이미지와 함께 동양에 건너온제국주의 뉘앙스의 박래품(舶來品)이라고 할 수 있다. 1840년대 영국 고생물학자가 모든 화석 파충류를 총칭하여 ‘다이너소’라고 했을 때 그 뜻은 ‘무서울 정도로 큰 도마뱀’이었으나,동양 학자들은 스스로 알아서 ‘무서운 용’으로 격상시켜 불렀다.용은 동·서양에서 모두 상상의 동물로 오래 전부터 존재해 왔다. 그러나 서양의 용이 중세에 무시무시한 괴물의 악마적 그림자와 함께 태어난 데 비해 동양,중국의 용은 그보다 천년전에 최고의 힘과 선의 오색 찬란한 빛을 안고 태어났었다.공룡이 제이름에 얹힌 이 같은 전설과 과장의 무게에 무너지지 않았던 것은 순전히 미국 덕분이었다.공룡은 미국이란 후원자를 만나 현대적 추진력으로 오히려 비상하기에 이르렀다.미국은 이에 못지 않게 공룡 덕을 보았다. 미국은 파고들 역사가 고작 300여 년밖에 안 되는 약점 때문에 비역사적인 인류학에 유난히 힘을 쏟는다는 비꼬는 소리를 감수해야 했는데,어느 날 서부 유타,콜로라도주 등지에서 세계 최대의 공룡 화석산지를 발견하기에 이르렀다.미국 학자들은 인류,지구와 관련지어 공룡의 역사성을 강조하면서 30m가 넘는 몸길이와 100t이 넘는 체중,1억년 이상 지구를 지배하다가 6500만년 전 갑작스럽게,완벽하게 절멸한 점 등을 잘 포장해 대중화했고,미국 전역에 공룡 열풍이 불었다.할리우드도 카우보이 웨스턴물 후속으로 공룡을 파고들어 ‘쥐라기 공원’등을 내놨다. 할리우드 공룡물의 주인공은 ‘티(T) 렉스(rex·왕)’라는 애칭으로 불리는,가장 기민하고 폭군처럼 잔악한 육식공룡티라노사우루스다.이번 국내에서 발견된 치아 화석의 주인 공룡은 육식성이라도 미국물 잔뜩 든 ‘티 렉스’는 아닐 것이다. 김재영 논설위원 kjykjy@
  • 지식나눔운동/ 지식 업그레이드 ‘상생효과’

    대한매일의 ‘지식나눔 운동’에 각계 각층에서 호응이 잇따르고 있다.현재까지 명예논설위원과 자문위원으로 ‘지식나눔 운동’에 동참한 분들은 앞서 두차례 지면에 소개한 700여명을 합해 모두 1300명을 넘어섰다.학계에서는 심윤종 성균관대 총장,신방웅 충북대 총장,민병천 서경대 총장,이병화 신라대 총장,이창훈 한라대 총장,김병묵 경희대 부총장,백종천 세종연구소 소장등이 참여했다.사회·문화계에서는 김소선 흥사단 이사장,정달영 칼럼니스트,은방희 한국여성단체협의회 회장,이남순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김동호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신철영 경제정의실천연합 사무총장,허경 남농미술문화재단 이사장이 동참했다.경제계에서는 김동수 한국도자기주식회사 회장,박종익 대한손해보험협회 회장,이내흔 현대통신산업 회장,정은선 서울지방세무사회 회장 등이 함께 했다.정계에서는 한나라당의 강재섭,홍사덕,김홍신,이윤성,이원창 의원과 민주당의 김원길 의원이 참여했고 관계에서는 김신복 교육인적자원부 차관,이재달 국가보훈처장 등이 동참했다.명예논설위원과 자문위원들은 전문지식과 경험을 지면을 통해 독자들과 함께 나누게 된다.대한매일은 앞으로 참여하는 분들의 명단을 계속해서 지면에 소개할 계획이다. ***명예논설위원 ■학계 ▲강성위 외국어대 철학과 명예교수 ▲강신창 선문대 국제정경학부 교수 ▲강인철 성지대 부학장 ▲강일규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연구위원 ▲강희천 연세대 신학과 교수 ▲계동준 대전대 노어노문학 부교수 ▲고성호 통일교육원 북한학 교수 ▲고수현 성덕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고일선 연세대 간호대학 부교수 ▲곽수일 서울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곽효문 한영신학대 행정학과 교수 ▲구범모 한국정신문화연구원 명예교수 ▲권기성 광운대 정보복지대학원 원장 ▲권기원 성균관대 문헌정보학 교수 ▲권희재 강원대 행정학과 교수 ▲금희연 서울시립대 국제관계학과 교수 ▲김관옥 아주대 국제학부 조교수 ▲김광동 나라정책원 원장 ▲김광수 전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김광식 성균관대 사회과학부 교수 ▲김귀순 부산외국어대 영어학부 교수 ▲김남성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 ▲김대호 인하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김동훈 충남대 행정학과 명예교수 ▲김명회 한국학술연구원 원장 ▲김병묵 경희대학교 부총장 ▲김보환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 ▲김부기 경기대 국제학부 교수 ▲김상용 연세대 법과대학 교수 ▲김석우 서울시립대 국제관계학 조교수 ▲김석준 이화여대 행정학과 교수 ▲김성윤 단국대 정책학과 교수 ▲김성준 서울대 전기컴퓨터공학부 교수 ▲김성태 성균관대 행정학과 교수 ▲김세철 중앙대 의대 비뇨기과 교수 ▲김소구 한양대 지구해양과학과 교수 ▲김순규 경남대 정치학 교수 ▲김순양 영남대 행정학전공 교수 ▲김승철 성균관대 스포츠과학부 교수 ▲김승호 동국대 국어교육과 교수 ▲김신일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 ▲김영문 영남대 정치행정대학 학장 ▲김영선 우석대 교수 ▲김영성 충남대 행정학과 명예교수 ▲김영작 국민대 정치학과 교수 ▲김영진 성균관대 기계공학부 교수 ▲김영환 원광대 정치학부 초빙교수 ▲김우영 대구 가톨릭대 교수 ▲김인혁 창원전문대정치학 교수 ▲김일상 북방문제연구소 부소장 ▲김재영 전북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 ▲김재일 단국대 사회과학대학 부교수 ▲김정길 경기대 행정학과 명예교수 ▲김정완 대진대 행정학과 부교수 ▲김제홍 경민대 인터넷비즈니스과 교수 ▲김종표 한국지방자치발전연구원 원장 ▲김종호 경희대 행정학전공 교수 ▲김지영 한국외국어대 책임연구원 ▲김진기 부경대 국제지역학부 조교수 ▲김춘옥 단국대 사회과학대학 교수 ▲김태기 호남대 외국어학부 조교수 ▲김태일 고려대 행정학과 조교수 ▲김택환 숭실대 정치외교학과 강사 ▲김호섭 아주대 사회과학부 교수 ▲김홍명 조선대 정치철학 교수 ▲김희오 동국대 국제관계학과 교수 ▲남궁근 서울산업대 행정학과 교수 ▲남궁영 외국어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 ▲남상호 대전대 이과대학장 ▲남일재 경남정보대 사회복지정책 교수 ▲노진철 경북대 사회학과 교수 ▲노태구 경기대 정치학과 교수 ▲류경원 충북대 미술과 교수 ▲류재갑 경기대 국제학부 교수 ▲류태건 부경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박경자 한양대 환경조경학과 겸임교수 ▲박광기 대전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박기식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연구센터장 ▲박두복 외교안보연구원 교수 ▲박상식 경희대평화복지대학원 객원교수 ▲박영기 한남대 행정학전공 교수 ▲박용치 서울시립대 행정학과 교수 ▲박재순 한신대 신학대학원 강사 ▲박종성 서원대 정치행정학과 교수 ▲박종철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박종호 청주대 사회과학대학 교수 ▲박준범 서울대 지구환경공학부 교수 ▲박준영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 부교수 ▲박지동 광주대 언론광고학부 교수 ▲박호성 국제평화전략연구원 연구위원 ▲박호숙 국가전문행정연수원 교수 ▲박훈탁 위덕대 국제관계학과 교수 ▲방영준 성신여대 사범대학 학장 ▲배기동 한양대 문화인류학 교수 ▲백경남 동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백남원 서울대 보건대학원 원장 ▲백봉흠 동국대 법과대학 교수 ▲백승기 경원대 부총장 ▲백승주 한국국방연구원 북한연구실장 ▲백종천 세종연구소 소장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조교수 ▲성백린 연세대 공대 생명공학과 교수 ▲성영재 서울보건대 사무자동화과 교수 ▲성진실 연세대 의과대학 부교수 ▲성태규 서강대 사회과학연구소 연구원 ▲소순창 국민대 행정학과 연구교수 ▲소재선 경희대 법과대학 교수 ▲소치형 건국대 정치행정학부 강사 ▲송기도 전북대 정치외교학과 정교수 ▲송기중 서울대 인문대학 교수 ▲송영배 서울대 철학과 교수 ▲송하경 성균관대 유학동양학부 교수 ▲송하중 경희대 사회과학부 교수 ▲신 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신국주 동국대 명예교수 ▲신방웅 충북대 총장 ▲심연수 호남대 정치외교학과 부교수 ▲심윤종 성균관대 총장 ▲심재기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안경환 서울대 법과대학 학장 ▲안국전 국립수산과학원 원장 ▲안성진 성균관대 컴퓨터교육과 교수 ▲안완기 21C정책연구원 분과위원장 ▲양근석 부산정보대학 교수,도서관장 ▲양기웅 한림대 정치외교학과 부교수 ▲양길현 제주대 윤리교육과 교수 ▲양석호 전 상지대학교 총장 ▲어수영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어윤배 숭실대 명예교수 ▲엄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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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2 길섶에서] 재앙과 죽음

    태풍 루사로 200명이 넘는 사람이 죽거나 실종됐다.사람은 다 죽지만 자연재해 사망은 죽음의 의미를 돌멩이의 날카로운 모서리처럼 부각시킨다.왜 그 사람이 그때 죽어야 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은 것이다.물난리를 겪지 않을까 걱정하는 마음에 이웃집에 들렀다가 산사태 벼락을 맞고 그 자리에서 집주인 부부와 함께 숨진 네 명의 마을 사람들.언뜻 자연의 무자비한 위력만 있지,인간이나 신의 뜻이 끼어들 틈은 조금도 없는 것 같다.평상의죽음 앞에서 사람은 신을 찾지만,자연재해의 비명횡사에서 우리는 신의 뜻을 찾기 어렵다. 그러나 그런 때일수록 신의 뜻을 일러주는 인간의 목소리가 필요하다.9·11 미국테러에서 우리 언론이 사망자 숫자 부풀리기에 힘을 쏟을 때 정작 미국의 방송은 여러 종교인을 불러 ‘이것이 신의 뜻이냐.’고 묻고 시청자들에게 그 자상한 대답을 들려주었다. 재해의 횡사를 줄이는 방재의 현대화도 중요하지만,이 안타깝고 어이없는죽음에 대한 해석을 더 문명적으로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 김재영 논설위원
  • [씨줄날줄] 대종상

    연예계 비리를 수사중인 검찰이 2000년 제37회 대종상 영화제 수상자 선정과정에서 금품 로비가 이뤄졌다는 단서를 포착,조사중이라고 한다.대형 연예기획사가 영화제 직전 소속 여배우의 신인상 수상을 위해 심사위원들을 상대로 금품거래를 한 의혹이 있다는 것.최근 한국 영화는 세계 영화시장의 70%이상을 차지하는 미국 작품과 자국시장에서 어깨를 겨루고 있어 국제적으로 주목받고 있다.작품의 선전과는 달리 범영화계가 참여하는 유일의 국내 영화상인 대종상(大鐘賞)은 아카데미상이나 칸 영화제,베니스 영화제 등 외국산에 비해 크게 떨어지는 영화팬의 관심을 끌고 있을 뿐이다. 1962년 당시 문교부의 국산영화제를 모태로 제정된 대종상은 40년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영화상이지만 거의 매년 잡음과 비리 의혹이 불거져 나왔다.특히 외국영화 자유화조치(84년) 이전에는 작품상을 받는 영화의 제작사에 외화 수입쿼터 허용의 특혜가 주어지는 바람에 영화사들의 수상 로비가 치열했다.이런 특혜가 없어진 뒤에는 어중간한 능력의 배우,스태프가 이름을알릴 수 있는 도약판으로 여겨 지저분한 뒷소문이 끊이지 않았다.87년부터 영화인협회가 주관해오고 있는데 91년에는 본선 후보에 오른 5편중 2편의 제작사가 심사의 공정성을 문제삼아 출품을 철회했으며 94년에는 감독상 심사 결과에 불만을 가진 감독이 검찰에 수상작 투표함 증거보전 신청을 하기도 했다.96년에는 본선 진출작 17편중 유일한 미개봉작이 최우수감독,작품상을 휩쓸어 비난을 받았다.지난해에는 최고 흥행작인 ‘친구’가 단 한 부문도 수상하지 못했다. 문화 부문에서 세계적으로 주목받은 작품을 창조하는 것도 어렵지만,관계종사자들이 하나같이 공정성의 권위를 인정하는 상을 제정하는 것 또한 쉬운 일이 아님을 우리의 문화계를 둘러보면 알 수 있다.누가 뽑고 어떤 절차로 뽑히느냐,즉 심사의 객관성 유지가 관건인데 대종상은 20인 이내의 예비심사위와 10인 이내의 본선심사위를 통해 수상작 등을 선정한다.미국 아카데미상의 경우 주관처 영화예술아카데미(AMPAS)를 40명의 평의회가 운영하고 있지만,상 자체는 미 전역에 분포된 4000여명 전 회원의 투표로 25개 전 부문이 결정된다.후보작 또한 부문별 회원들의 투표로 선정되고 있다.대종상이 눈여겨볼 대목이다. 김재영 논설위원 kjykjy@
  • [대한포럼] 노인과 섹스

    “저 곳은 늙은이들이 살 나라가 못 된다.서로 껴안고 있는 젊은이들,/…/,관능의 음악에 홀리어,지성의 기념비를 소홀히 하고 있다.”라고 예이츠는 한탄했다.지금의 우리보다 몇십배나 작고 몇배나 점잖았던 70여년 전의 아일랜드를 두고 쓴 시구다.조국 젊은이들의 관능적 행태에 예순을 넘긴 대시인의 마음이 적잖이 상했던 모양이다.예이츠보다 훨씬 둔감하고,나이도 젊은 한국인 가운데 지금 우리 젊은이들의 관능주의,나아가 관능의 독점 현상을맘에 들지 않아 하는 사람들이 나뿐일까. 역사의 거대담론 기운이 쇠잔해진 최근 십년 동안 우리 사회에서 가장 강해진 것은 ‘젊음’이다.젊은이가 많아졌다는 것이 아니다.수적으로 젊은이는 오히려 십년 전보다 줄어들었다.달라진 것은 젊음의 존재 양상이다.주위를 둘러보면 젊음이 점령군처럼 요소요소에 진주해 있다.진짜 점령군인 양 젊은이에게 맞눈길을 주지 못하는 나이든 사람도 없지 않다.단군 이래 젊음이 이 땅에서 이처럼 힘이 센 적이 있었던가. 반면 단군 이래 노인들이 이처럼 무력해진 적이 있었던가.젊음이 자신의 외적 가치를 알아차릴 때 그 깨달음은 젊지 않은 것에 대한 무시와 무례로 이어진다.젊음의 관능적인 포즈에서 그같은 무시와 무례가 가장 노골적으로 읽혀진다.젊음이,젊음의 관능이 군림하는 시대에 노인은 자신의 관능을,성을 말할 수 있을까. 영상물등급위원회는 70대 실제 부부의 실제 성생활을 담은 영화 ‘죽어도 좋아’를 제한상영물로 판정했다.제한영화관이 없으니 전체 관람불가인 것이다.영등위는 “일반 국민 정서를 해칠 우려가 있다.”는 이유를 들고 있다.67분의 영화 가운데 구강성교와 성기노출의 7분간 성교 장면을 문제삼았다. 너무 적나라한,너무 사실적인 장면이라는 것이다.이 영화는 노인들에겐 애초에 가능하지 않고,그래서 생각하거나 거론할 필요조차 없는 섹스가 실존적으로 중요하며,또 실제로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한다.노인의 섹스에 관한 사회의 상식을 잘못된 편견으로 깨겠다는 말이다.상식과 정설과 기존의식을 타파하는 것은 쿠데타와 같다.그래서 필요한 것은 구호가 아니라 반란의 실제 행위이며,행위의 디테일이다.대안과 반대의 디테일을 보여주지 못할 때 안티와 쿠데타는 실패한다.7분간의 성교 장면은 쿠데타의 상세한 실제상황이며,구강성교나 성기노출은 피해서는 안되는 백병전과 같다. 70대의 노인들이 쿠데타의,반란의 사실적인 디테일을 생산할 수 있을까.‘죽어도 좋아’의 사실성에서 가장 소중한 점은 노인들의 섹스가 주체적이라는 것이다.섹스라고 하는 3차원의 감성과 동작을 73세와 71세의 남녀 노인이 자급자족으로 생산해내고 있다.섹스에 필요한 모든 것이 노인의 왕국에서 생산·조달되는 것이다.거기에는 약물,공상,사회적 일탈의 매매춘,나이차가 나는 연애 등 노인의 왕국,노년의 계(系) 밖에서 수입할 수 있는 섹스 보조물이 전무하다.그래서 ‘죽어도 좋아’의 섹스는 비 외세의존적,독립적,주체적이다.노년의 계 안에 닫혀 있는 섹스가 장면 자체로 어필할 리 없다.그러나 이 영화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주체적 가능성이지 우월적인 매력이 아니다. 매력은 없어도 노인의 섹스는 성공했는가.몰래카메라가 아니기 때문에 ‘죽어도좋아!’라는 영탄을 즉시 현실로 연결지을 수는 없다.오로지 잣대는 그 영탄이 예술적 논리성을 충족시키느냐다.나에겐 논리적인 의구심이 생기지 않았다. 중년의 나는,젊음이 점령군의 배지처럼 날로 위협적인 광채를 더해가는 이때,노인간의 섹스를 사실적으로,주체적으로,성공적으로 영상화한 ‘죽어도 좋아’가 내 정서에 해를 끼쳤다고 보지 않는다.오히려 영혼에 득이 됐다고 생각한다.이 영화를 18세이상 성인이 보고 싶으면 어느 극장에서나 볼 수 있기를 희망한다.영등위의 재심을 기대해 마지 않는다. 김재영 논설위원 kjykjy@
  • [씨줄날줄] 동정호

    중국에서 두번째로 큰 담수호인 동정(洞庭·둥팅)호가 계속된 폭우로 범람위기에 처해 있다고 외신은 전한다.수상면적이 서울시의 여섯배가 넘는 3900㎢이고 수심이 30m를 넘어 제방이 무너지면 자그마치 1000만명의 이재민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4년 전에도 제방이 무너져 4000명이 사망했다고 한다.자연재해의 크기는 치산치수의 행정력도 큰 변수지만 우선 자연 자체의 크기에 좌우될 것이다. 내륙의 고여 있는 물덩어리(靜水塊) 가운데 최심부가 5m 이상인 것을 호수라고 하는데 남한의 4배나 돼 바다로 불리는 카스피해가 세계에서 제일 크다.남북한 통틀어 가장 큰 함남 광포의 수상면적은 고작 13.3㎢.그러나 백두산 천지는 수심이 314m에 달한다.둘레를 조금 과장해 ‘팔백리 동정’이라고 일컬어지는 동정호는 본래 ‘운몽대택(雲夢大澤)’으로 불리며 중국 최대의 담수호였으나 양쯔강의 진흙이 오랜 새월 유입되어 동쪽으로 300㎞ 떨어진 파양호에 1위 자리를 내줬다.동정호나 파양호나 여러 지류들의 물을 받아 바로 위쪽 6400㎞ 수로의 양쯔강으로흘러보내는 집·배수 중간역에 불과하다. 풍광이 뛰어난 곳이면 으레껏 따라붙는 팔경(八景)의 원조인 ‘소상팔경’의 소(瀟)강과 상(湘)강이 동정호로 흘러들고,흘러나가는 강이다.황하의 하가 하남·하북성을 가르듯 동정호를 기준으로 호북성과 호남성이 갈라진다.호남·북성은 고대 진시황에 패망한 항우의 초나라 근거지인데 근세사에서는 손문의 신해혁명과 모택동의 고향으로 각각 이름높다. 특히 양쯔강 중류 한가운데의 동정호부터 중류 끄트머리인 파양호 인근 여산까지는 중국 중세 문학사에서 큰 자리를 차지한다.‘하늘과 땅이 밤낮으로 떠 있는(乾坤日夜浮)’동정호와 양쯔강 경치를 보기에 가장 좋은 악양의 악양루는 두보의 ‘등악양루’와 범중엄의 ‘악양루기’라는 명문을 탄생시켰으며,초나라의 굴원이 빠져 죽은 동정호 옆 멱라수를 조금 지나면 삼국지 적벽대전의 적벽과 소동파 ‘적벽부’의 적벽이 잇따라 나온다.파양호의 여산은 이백의 ‘비류직하삼천장(飛流直下三千丈)’폭포천이 있고,도연명 ‘귀거래사’의 탄산도 멀지 않다. 폭우로동정호 제방과 문학적 유산들이 무너지지 않기를 바란다. 김재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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