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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정은, 내년 핵개발 완성 목표… 10조弗 줘도 포기 안 할 것”

    “김정은, 내년 핵개발 완성 목표… 10조弗 줘도 포기 안 할 것”

    중국, 결심만 하면 북한 정권 끝나 대북제재 효과 숫자로 판단은 금물 북한 주민 상당한 동요 느끼는 중 태영호 전 주영 북한대사관 공사는 27일 기자간담회에서 탈북에 대한 개인의 소회는 물론 북한 체제와 사회 전반에 대한 이야기들을 풀어 놨다. →가족과 함께 대한민국에 온 소회는. -북한 김정은 정권은 부모 자식 간 숭고한 사랑마저 악용해 해외에 나간 주재원은 자식 한 명을 인질로 잡아 둔다. 저는 다행스럽게 자식들을 다 데리고 올 수 있었다. 어떤 경로, 과정을 거쳐서 올 수 있었는지는 여러 생명과 관련된 문제라 말하기 적절치 않다. →북한은 2017년 말에 핵을 완성한다는 계획인가. -북한은 김일성, 김정일 때도 핵개발을 중단해 본 적이 한번도 없다. 김정은은 ‘핵·경제 병진노선’을 공식 채택했는데 여기서 경제는 전 세계와 북한 주민을 기만하기 위해 붙인 것이고 실상은 핵 최우선 정책이라고 보면 정확하다. 북한은 한국의 대선이 진행되고 미국 대선 후 정권 인수 과정인 2016~2017년 말을 핵완성의 적기로 본다. 국내 정치 일정 때문에 한·미가 북한 핵개발을 중지시킬 조치를 취하지 못할 거라는 타산이다. 북한은 핵개발을 완성해 핵보유국 지위에서 대화를 진행할 생각이다. 한·미가 유지해 온 ‘선(先)비핵화 후(後)대화’가 아니라 ‘핵동결 대 제재 해제’ 전략이다. →해외 북한 공관의 외화벌이 활동은. -북한 공관에는 다기(多岐)한 부서 사람들이 나온다. 기관마다 부과된 ‘외화벌이 과제’는 다르다. 경제부서에서 나온 주재원들은 구체적인 과제를 집행하지 못하면 추궁을 받는다. 그러나 외교관에게는 구체적인 과제를 주지는 않는다. 다만 매달 사후 총화(평가)를 통해 어느 공관이 얼마나 외화를 벌었나를 평가한다. →공개 활동을 결심한 배경은. -한국에 도착한 순간부터 공개활동을 진행해 김정은 정권을 빨리 붕괴시키고 우리 민족을 핵참화에서 구원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북에 두고 온 가족과 저 때문에 피해를 입은 동료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지만 방구석에서 눈물이나 흘리고 해서 도움이 될 게 없다. 싸울 때만 통일의 아침을 불러올 수 있다. →김정은만 처리되면 북한 체제가 무너진다고 생각하나. -공포정치와 처형으로만 유지되는 사회는 예가 없다. 북한은 계급투쟁에 기초한 공산주의 이론에 더해 조선시대의 충효사상으로 유지되는 사회다. 정체성과 명분을 중시하지만 김정은 시대에 와서는 이 둘을 다 잃었다. 김정은은 집권 5년이 되는 지금까지도 주민들에게 집권의 명분과 정체성을 명백히 밝히지 못했다. →한국 정부의 대북 정책을 어떻게 평가하나. -한국에 와서 보니 대북 정책에 대한 논쟁이 상당히 많더라. 현재 김정은의 핵개발 정책을 포기시키느냐 마느냐 문제는 인센티브의 양과 관련된 문제가 아니다. 김정은이 있는 한 북한은 절대로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1조 달러, 10조 달러를 준다고 해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해외에서 체제 선전활동은 어땠나. -북한 엘리트층도 기회주의적으로 살고 있다. 낮에는 ‘김정은 만세’를 외치고 저녁에서 이불을 쓰고 한국 영화를 본다. 저 역시 기회주의적 삶을 살 수밖에 없었던 걸 부끄럽게 생각한다. 영국에서 사람들에게 체제 홍보를 하면 제 앞에서 ‘어떻게 그런 체제를 홍보할 수 있냐’고 물었다. 직무상 체제를 옹호해야 했기 때문에 매우 힘든 시간을 보냈다. →북한은 중국을 어떻게 보나. -북한이 중국에 자주적인 것은 사실이다. 북한은 중국의 약점을 잘 알고 있다. 중국은 북한을 동북아의 완충지대로 간주하고 있어 이 지대를 유지하기 위해 북한에 끌려다닐 수밖에 없다. 중국이 결심만 하면 북한 정권 끝내는 건 일도 아니다. 하지만 중국은 압록강, 두만강으로 다가올 수 있는 자유민주주의와 미군의 전진을 막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북한 정권을 비호해 주고 있다. →북한의 경제 모델은 어떤가. -실정은 원시적 자본주의인데 상부 구조는 사회주의 계획경제에 기초하고 있다. 상부 구조와 하부 구조의 마찰이 큰 아킬레스건이다. 북한은 ‘수령 신격화’에 기초한 사회다. 수령은 주민들의 의식주를 보장해 줘야 한다. 그런데 북한이 시장 경제를 받아들이면 김정은의 위치가 어디에 있을 수 있겠나. →대북 제재 효과를 체감했나. -대북 제재로 김정은 정권은 상당한 위기에 몰리고 있다. 제재 효과는 숫자를 가지고 판단하면 안 된다. 북한 주민 심리가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와 김정은의 정책이 어떻게 파탄 나는지를 봐야 한다. 한 예로 올 3월 제재가 나오자 김정은은 여명거리 건설을 지시했다. 10월 10일 전까지 완성해 제재가 물거품이라는 것을 보여주라고 호통쳤지만 안 됐다. 북한 사람들은 제재가 심화되는 속에서 상당한 동요를 느끼고 있다. →인권 압박 효과는. -북한을 가장 위축시키는 게 인권 문제다. 핵 문제는 어딜 가서도 당당하게 말한다. 많은 나라들이 내심으로는 북한이 어떻게 핵보유국 지위에 올라가는가를 궁금해한다. 그러나 인권 문제에 대해서는 북한을 지지하는 나라는 하나도 없다. 지난 3월 유엔인권이사회에서 북한은 공식 표 대결을 포기했다. 한국 정부가 추진해 온 대북 인권 공세의 커다란 승리다. 북한은 인권에서 승산이 없다는 걸 알고 있다. 김정은을 국제형사재판소에 넘기는 게 중요하다. 북한 주민들은 이게 뭔지 모른다. 하지만 재판에 넘겨진다는 소문은 김정은이 범죄자이며 북한의 미래가 없다는 것을 뜻한다. 북한은 김정은 세 글자가 유엔 결의에 들어가는 걸 막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해외에서 한국 언론 등도 접촉했나. -북한 외교관들은 아침에 일어나면 처음 컴퓨터를 켜고 뉴스를 본다. 한국, 해외 언론이 북한에 대해 뭘 썼는지 다 안다. 스마트폰에 뉴스 앱을 설치해 다 본다. 제가 오늘 말하는 것도 거의 그대로 북한 외교관, 해외 주재원들이 즉시 다 볼 것이다. 북한에 있을 때 탈북 결심에 힘을 준 게 먼저 와 있는 탈북민들의 활동이었다. →재일동포 출신 고영희가 김정은의 생모가 맞나. -김정은은 ‘백두혈통’을 강조하는데 집권 5년차인 지금까지도 생모의 이름을 주민들에게 공개하지 못하고 있다. 김정은 어머니를 ‘선군조선의 어머니’라고 하지만 이름은 내놓지 못했다. 늙은 아버지의 동료들이 옆에 있는데 그 앞에서 자기 어머니가 김정일의 공식적인 부인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이 백두혈통의 허구성이다. →북한 외교관의 한 달 월급은. -한국분들이 들으면 생존이 가능하냐고 생각할 정도다. 대사는 900~1100달러, 참사·공사는 700~800달러다. 북한은 말하자면 사회 자체가 수용소이며 병영이라 대사관에서 집단 생활을 한다. 전기세, 물세는 국가가 부담하기에 생존이 가능하다. 또 모든 수단 방법을 동원해 돈도 번다. →한국 드라마는 어떤 것을 봤나. -엘리트들은 역사물을 좋아한다. ‘불멸의 이순신’, ‘육룡이 나르샤’, ‘정도전’ 등. 일반 주민들은 ‘겨울 연가’, ‘가을 동화’ 등. 북한 젊은층은 남한 드라마를 너무 많이 봐서 말투도 바뀌었다. ‘자기야’, ‘오빠야’, ‘할꼬야?’ ‘ㅋㅋㅋ’ 이런 건 북한에 전혀 없던 표현이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목도한 소감은. -나라 운영에서 시스템이 대단히 중요하다는 걸 느꼈다. TV 보면 당장 나라가 끝날 거 같지만 그럼에도 한국 사회는 아무 일 없는 것처럼 가동된다. 100만명이 모였다 흩어질 때 경찰의 연행이 없고 시위 후 청소하는 장면을 보고 대단한 감명을 받았다. 한국이 세계 민주화 과정을 새로운 단계로 선도한다는 생각을 했다. 강병철 기자 bckang@seoul.co.kr
  • 태영호 전 주영 북한대사관 공사 기자간담회 전문

    태영호 전 주영 북한대사관 공사 기자간담회 전문

     *일시: 2016년 12월 27일 오후 2시~오후 4시 30분  *장소: 정부서울청사 합동브리핑실    태영호 전 공사: 진실을 알리기 위해 밤낮으로 뛰는 기자 여러분들께 감사드린다. 저는 몇 달 전까지만 해도 김정은 정권을 위해 남북외교 대결 최전선에서 뛰어온 태영호다. 북한에서도 잘 살던 저희 가족이 왜 귀순했는지 여러가지 추정하며 커다란 관심을 보였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유학하고, 평양 국제국제학교에서 외교관 양성교육을 받았다. 영국, 덴마크에서 남부럽지 않게 살았다. 해외에서 자유민주주의를 경험하면서 북한 정권은 미래가 없다는 걸 점차 알게됐으나 북한에 남겨둔 가족과 일가 친척에 대한 연좌제 두려워 차마 박차고 나오지 못했다. 김정은 집권 이후 유학을 오래한 김정은이 세상 돌아가는 걸 잘 아니 합리적 이성적 판단을 내려줄 거란 한가닥 희망을 가지고 살았다. 그러나 시간 흐를수록 고모부 장성택, 측근들도 무자비 처형하는 행태를 보며 절망감 빠져들었다. 지난 5월 7차 당대회를 계기로 한·미 대선 등 정치적 변환기를 이용해 핵개발을 2017년 말까지 무조건 완성하는 광신적 정책 채택하고 질주하는 모습을 보며 빨리 남한으로 가서 무엇이든 해야한다는 생각을 했다.  여러분, 지금 김정은 체제는 겉으로는 공고한 거처럼 보이지 안은 썩어 들여가 대내외 심각한 위기다. 낮에는 김정은 만세를 외치지만 밤에는 이불쓰고 한국 영화 보는 게 현실이다. 김정은 삼수갑산에서 바늘 떨어지는 소리도 듣게 해달라며 간부들 일거수일투족를 감시하고 공포 정치를 한다. 이런 미친광이 행태를 보면서 태양과 너무 가까이 가면 타죽고 멀어지면 얼어 죽는다는 기회주의적 생각을 한다. 노예 생활이 40, 50년 증손자까지 이어지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저는 제 가족들에게 이 순간 내가 노예 사슬을 끊어주니 자유롭게 살아라라고 말했다. 진작 오지 못했을까 후회까지 했다. 김정은 정권을 누가 무너뜨러주지 않을까 살아온 과거가 부끄럽다. 김일성 김정일 때도 핵개발을 중단하지 않았지만 김정은은 완성 시간표까지 정해놓고 위험 천만한 핵질주의 마지막 직선주로에 들었다. 손에 핵무기가 주어지면 우리는 영원히 핵의 인질이 될 것이다. 이 한몸 숨길 곳 없는 자그마한 영토는 구석기 시대로 돌아갈 것이다.  북한에 계신 여러분, 쭈뼛거리지 말고 들고 일어날 때 김정은 물먹은 벽처럼 허물어질 것이다. 김정은을 쳐내고 통일된 나라에서 행복하고 자유롭게 삽시다. 해외에서 고생하는 북한 주민 여러분, 이미 수만명이 남한으로 왔습니다. 탈북 면허증이 주어져 있는 이 순간을 놓치지 말고 대한민국으로 오시라. 외교관 여러분, 자식들을 인질로 잡아둔 김정은을 순한 양처럼 따르지 말고 다같이 들고 일어납시다. 자식에게 노예 사슬을 끊어주었다고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탈북자 여러분은 통일 선봉이다. 통일되는 날 고향으로 돌아가 가족, 마을 사람들에게 통일 선봉 투사, 노예 해방자라는 명예로운 칭호 받을 것이다. 통일 앞장설 때 김정은 연좌제 허물어 질 것이다. 3만명 탈북민의 김정은 타도 외침이 망배단에서 울려 퍼질 때 통일의 아침은 밝아올 것이다. 통일된 대한민국 만세!    대한민국 온 간단한 소회? 자녀 하나는 평양에 두는데 온 가족이 다 올 수 있었던 이유?  -언급한 거처럼 김정은 정권은 부모 자식간 가장 숭고한 사랑마저 악용해 해외에 나간 주재원의 자식 한명을 인질로 잡아둔다. 그러나 저는 천망다행스럽게 제 자식들을 다 데리고 올 수 있었다. 제가 어떤 경로, 과정 거쳐서 제 자식들 데려 올 수 있는지 문제는 현재 북한에 계시는 여러분들 생명하고 관련된 문제라 이 자리에서 구체적으로 말하기는 적절하지 않다.    2017년말 핵 완성 관련 설명 부탁한다. 또 영국에서 하던 업무 뭐였나?  -2017년까지 핵개발 완성 대해서는, 김일성, 김정일 때도 북한은 핵개발을 중단해본 적이 한번도 없다. 단 김정일 때까지만 해도 조선반도 비핵화라는 거짓 외피를 뒤집어 쓰고 핵개발을 은밀한 방법으로 해왔다. 김정은은 핵경제 병진노선을 공식 채택했다. 여기서는 경제는 세계와 주민 기만하기 위해 붙인 것이라고 사실상 핵 최우선 정책이라고 보면 정확하다. 7차 당대회 이후 김정은은 가장 빠른 시일내 핵완성할 것을 당 정책으로 명했다. 왜 2017년말을 완성 시간표로 정했느냐는 문제다. 북한이 핵개발 적기로 보는 거는 한국 대선 진행되고 미 대선 후 정권 인수 과정인 2016~2017년말을 가장 적기로 봤다. 왜냐면 정치적 국내 일정 때문에 미국과 한국이 북한 핵개발을 중지시킬 수 있는 물리적, 군사적 조치를 취하지 못할 거라는 타산이 깔려있다. 북한은 자유 민주주의 체제의 2가지 단점이 있다고 본다. 하나는 미국, 한국에서 보수든 진보가 집권하면 새 정권은 반드시 북한과 새로운 정책을 시도할 것, 두번째는 정권 바뀌면 사람도 바뀐다는 타산이다. 북한은 한국에서 대선 끝나고 미국에서 새로운 대북 정책 팀이 꾸려진다면 필경 북한과 새로운 정책 시도할 것으로 간주한다. 이럴 때 북한은 빨리 핵개발 완성해서 새 미국, 한국 정부와 북한이 도달한 핵보유국 지위에서 새로운 대화를 진행한다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한미가 유지해온 선 비핵화 후 대화 도식을 깨고, 새로 집권하는 한미 정부와 북한이 핵동결 대 제재 해제, 한미 합동 군사 해제 등 북한 요구 사항 들이대 핵보유 인정받는 전략이라고 보면 된다. 영국 있을 때 북영 간 쌍무 관계 위주로 담당했다. 북한의 주요 대외정책, 김정은 우상화 핵 정책 관련 입장을 영국에 알리는 일이다. 공관원들이 업무 관련 없는 행동 하지 않느냐고 했는데 옳다. 자기 업무와 관련없는 여러가지 외화벌이에 동원된다.    6,7차 핵실험 관련 공문 받았다고 했는데, 과거에도 받았나, 구체적 방침은? 외화벌이 구체적 활동은 뭐냐?  -국회 정보위에서 언급했다는 공문 문제는 제 의도와는 다르게 보도됐다. 북한은 해외 공관에 언제 핵실험한다고 공문 내보내지 않는다. 단 저는 정보위에서 핵개발 관련된 정책적 측면을 얘기한 것이다. 구체적인 국가 기밀에 속하는 내용을 공문에 쓰지 않는다. 당 정책을 설명한 거다. 언제 하느냐와는 별개의 문제다.  -북한 공관에는 다양한 부서 사람이 나온다. 외무성도 있고 무역성 등 다른 기관에서 나온 사람들이 있다. 매 기관에서 나온 사람 따라서 부과된 ´외화벌이 과제´는 다 다르다. 경제부서에서 나온 분들은 구체적인 과제를 주고 그 과제를 집행하지 못할 때는 상부에서 추궁이 제기된다. 그러나 외무성 외교관한테는 그렇게 구체적으로 과제를 주지는 않는다. 가령 이번달에 10만 달러 받쳐라 그런 식으로 안준다. 단 매달 사후 총화를 통해서 어느 공관이 어느 정도 외화를 벌어서 평양에 바쳤나를 총화한다. 외교관들이 지닌 과제와 부담은 다르다. 경제부서 분들은 부담이 높고, 그거 못 벌어 바쳐서 상당한 심리적 압박 받는다.    구체적인 액수?  -공관별 할당 액수는 없다. 단 개별적인 할당량이 있다. 그거는 제가 구체적으로 알지 못한다.    한국에 들어온 시기 언제, 경로는? 빨치산 후손 맞나?  -도착 시기, 경로 관련해서 한국 언론과 외국 언론이 보도한 많은 부분은 사실 아니다. 여름에 와서 첫 겨울을 맞이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그리고 가족이야기인데, 저는 태가이지만 북한 대장이던 태병렬과 아무런 혈연 관계가 없다. 아내는 오백룡 가문이 맞다. 아내 가족이 다 북한에 있는 상황에 가족 얘기 하기가 곤란하다.    귀순 시기가 7월? 8월?  -구체적 시기는 곤란하다. 여름으로 이해해 달라.    미국으로 안가고 한국온 거는 미국에서는 가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인가?  -시기, 경로 대해서 언론 보도된 거는 대부분 사실과 맞지 않다. 대부분 내용이 사실 아니다.    공개 활동 결심한 배경은? 신변 걱정 안하나?  -서두 발언에서 언급했지만 저는 우리 민족을 핵참화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해 뭘 할지 고민했다. 저는 한국에 도착한 순간부터 저는 공개활동을 진행해서 김정은 정권 빨리 붕괴 시키고 우리 민족을 핵참화에서 구원하겠다는 생각으로 첫 순간부터 공개 활동 하기로 맘 먹었다. 물론 북애 두고온 가족과 피해 입은 동료 생각하면 마음 아프다. 방구석에 앉아서 눈물이나 흘리고 해서 도움될 거 없다. 제가 싸울 때만이 통일의 아침을 불러올 수 있다.    망명지 한국 외 다른 곳 선택할 생각?  -비록 우리 한반도가 분단된 지 70여년 지났지만 하루 빨리 제 세대에 나라 통일하는 걸 평생 숙원으로 생각한다. 빨리 통일하기 위해서는 북한과 지리적으로 제일 가깝고 같은 민족이고 언어, 피가 통하는 대한민국에 와서 통일을 위한 투쟁 벌이는 게 나라 통일 앞당기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했다.    김정은 하나만 어떻게 하면 체제 무너질 거라 생각하는 이유는?  -단마디로 말하기는 복잡한 문제다. 여기서 말할 수 있는 거는 김정은 대까지 김씨 일가가 3대에 왔다. 공산정권 수립이 70년 됐다. 물론 인류 사회 발전 역사를 볼 때 새 제도가 수립되면 한동안 무질서도 존재한다. 그러나 사회 제도가 수립되고 70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공포정치와 처형으로만 유지되는 사회는 예가 없다고 생각한다. 북한은 계급투쟁에 기초한 공산주의 이론에 플러스, 조신시대의 지도자에 충효 강조하는 사상에 유지되는 사회다. 정체성과 명분을 중시하는 사회다. 그러나 김정은 시대에 와서 명분과 정체성을 잃었다. 집권 5년이 되는 이때까지도 북한 주민들에게 자기가 집권하게 돼 명분과 정체성을 명백히 밝히고 있지 못하다. 김정은이 마지막이라는 건 확고하게 말할 수 있다.    북한 고위 엘리트들도 운명공동체 의식 없어졌나?  -그렇다.    한국 정부의 대북 정책을 계속 봐왔을텐데 이런 정책이 본연의 목적에 부합한다고 보나?  -한국 와서 언론을 보면 현 대북 정책에 대해 상당히 논쟁 많은 걸 봤다. 한 부류는 계속 대북 제재 정책을 계속해서 얻을 게 뭐냐, 핵질주로 계속 가지 않냐며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는 분들과, 일부는 지금의 정책을 계속 강경 모드 유지해서 김정은을 고립, 위기로 몰아가야 한다는 의견도 봤다. 저는 현재 김정은의 핵개발 정책을 포기시키느냐 마느냐 문제는 어떤 인센티브의 양과 관련된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 김정은이 있는한 절대로 북한은 핵무기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1조달러, 10조달러 준다고 해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북한 핵개발 현재는 어디까지 왔나?  -저는 북한 핵개발 정책적 측면 말했다. 저는 핵 전문가가 아니다. 현재 어느 시점에 와 있는지 저는 잘 모른다. 체제 특성상 외무상이 아니라 더 높은 분들도 핵개발이 어느 수준인지 모른다.    탈북의 결정적 계기? 김정철 동선 노출과 관련해서 책임 문제가 불거졌다는 보도 있었는데?  -저는 오래전부터 북한 체제는 미래 없다는 거 알고 있었지만 선뜻 박차고 나오지 못했다. 북한 정권 단죄하고 핵참화에서 구하는데 조그마한 도움이라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한다. 김정철도 개인이기 때문에 개인 신상 관련 정보는 제가 보호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가 인권유린하고 민족에 해를 끼쳤다면 달라질 것이다. 하지만 김정은 형이라는 이유로 욕하거나 개인 신상 공개하면 연좌제 실시하는 김정은과 다르지 않다고 본다. 제 탈북 관련해 북한이 말하는 것들은 다 사실이 아니다.    해외에서 주로 어떤 사람 만나 선전활동했나? 그들 반응은?  -저를 포함해 북한에서 엘리트층도 기회주의적으로 살고 있으며 저도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 수 있다. 낮에는 김정은 만세 외치고 저녁에서 이불 쓰고 한국 영화 본다고 말했다. 저 역시 북한 정권 몸 담고 있을 때 겉으로 김정은 만세 외칠 수밖에 없었고, 기회주의적 삶을 살 수밖에 없었던 거 부끄럽게 생각한다. 영국에서 다기(다양)한 견해 가진 사람들과 북한 체제 홍보할 때면 제 앞에서 북 체제 비난하고 어떻게 그런 체제를 홍보할 수 있냐고 말했다. 저는 직무상 옹호해야 되기 때문에 매우 힘든 시간을 보냈다고 이해하면 된다.    북한이 중국 어떻게 보고 있나? 전략적 인내에 대해 북한 입장은?  -북한이 상당히 중국에 대해 자주적인 거처럼 보인다. 중국은 전혀 북한 통제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북한이 자주적인 거는 사실이다. 북한이 어떻게 자주적 정책을 실시하고 있는가. 북한은 중국의 약점을 알고 있다. 중국 앞에서 북한이라는 동생이 형 앞에서 배짱 부려도 어찌하지 못할 것이다. 중국은 북한을 동북아의 완충지대로 간주하고 있다. 북한이 어떤 짓을 해도 중국은 이 죤을 유지하기 위해 끌려다닐 수밖에 없다. 중국은 결심만 하면 북한 정권 끝내는 건 일도 아니다. 아직 중국은 압록강, 두만강으로 다가올 수 있는 자유민주주의와 미군이라는 물리적 전진을 막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북한 김정은 정권을 비호해주고 있다.  -북한은 오바마 행정부의 정책을 북한 핵개발을 다그칠 수 있는 면죄부로 지금까지 간주해왔다.    외교관 이력은? 마지막으로 평양 떠난 온 거 언제?  -근무기간 밝히는 건 그렇고, 90년대 말에는 덴마크, 스웨덴, 2000년대에는 영국에서 근무했다. 북한 마지막 다녀온 거는 2014년이다.    북한의 경제 모델은? 김정일 시대와 김정은 시대 정책 결정 방법 다른가?  -북한이 직면한 아킬레스건 하나는 올바른 경제 정책을 주민들에게 제시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집단주의 정신과 생산 수단의 사회적 소유에 기초한 사회다. 이런 사회주의 계획경제를 떠나서 점차 시장에 의거한 경제로 변화한다. 김일성, 김정일이 내놓은 사회주의 계획경제 이론에 기초했지만 실정은 원시적 자본주의인데 상부구조는 사회주의 계획경제, 집단주의에 기초하고 있다. 상부구조, 하부구조 마찰이 큰 아킬레스건의 하나다. 왜 공식적인 정책으로 바꾸지 못하고 있나. 북한은 수령 신격화에 기초한 사회다. 수령은 신과 같은 존재이며 모든 주민들의 의식주 문제는 수령이 보장해 주어야 한다. 북한 노동당이 시장 경제 정책 받아들여서 수요, 공급에 의해 좌우되는 경제 정책 만들면 김정은이 서 있을 위치가 어디에 있겠나. 이 문제 때문에 아직 북한은 사회주의 경제, 현실에 맞지 않는 이론은 주민들로 하여금 북한 등돌리게 한다.  -한국에 와서 가장 많이 당한 질문이 북한이 의사결정에서 가장 핵심 기구, 컨트롤 타워는 어디 있느냐고 여럿 물었다. 외부에서 볼 때는 국방위인지 국무위인지, 모든 사람들이 이 문제 물어봤다. 이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사회, 종속 관계에 집중돼 있다. 가운데에서 나라 컨트롤하는 타워라는 건 북한에 없다, 오직 김정은이라는 신, 수령과, 정책 집행 부서가 종적으로 연결된 사회다.    영국에 있을 때 대북 제재 효과 체감 했나?  -대내외적 심각한 위기 몰렸다. 이중에는 대북 제재로 인해 김정은 정권이 상당한 위기에 몰리고 있다는 걸 저는 말하고 싶다. 현재 대북 제재 효과 얼마나 내고 있는가 판단할 때 절대 경제적 형편이나 숫자 가지고 제재 효과성 여부를 판단하면 안된다. 제재 효과 판단은 2가지다. 북한 주민 심리가 어떻게 변하고 있나, 그리고 김정은 정책을 어떻게 파탄으로 몰아가고 있는가 봐서 판단해야한다. 올 3월 김정은이 제재 나오자 전체 간부 모아놓고 려명거리 건설을 지시했다. 10월 10일 전까지 완성하여 대북 제재가 물거품이라는 거 보여주라고 호통쳤다. 여명거리는 10월10일까지 완성하고 입주했어야 한다. 북한 사람들은 제재 심화되는 속에서 상당한 동요를 느끼고 있다. 나선 지대처럼, 북한 변두리 지역에 내놨던 경제특구를 북한 종심 지역으로 확대한다는 경제특구 개발 정책 내놓고, 원산지구를 세계적 관광지로 개발하라고 지시했다. 수많은 자본 투하. 이런 정책이 대북 제재 속에서 실현 가능할까? 김정은 꿈을 물거품으로 만들어놨다.    인권 압박 효과는?  -북한 가장 위축시키는 게 인권 문제다. 핵은 어디 가서도 당당하게 말한다. 많은 나라들이 내심으로는 북한이 어떤 방법으로 핵을 개박하고 핵보유국 지위에 올라가는가, 우리도 혹시 북한 예를 따를 수 없는가 북한에 물어본다. 그러나 인권 문제 대해서는 북한 지지하거나 동조하는 나라는 하나도 없다. 인권 애기 나오면 외국인들 첫 질문이 뭔지 아냐(미소) 북한에서 만민이 법앞에 평등하냐고 물어보나고 하면 저는 무슨 그런 질문을 하냐고 하면. 그럼 김정은 어떻게 병원 애육원에서도 담배를 피우느냐. 이게 법앞에 만민이 평등한 사회냐. 인권 문제 논쟁 벌이면 벌일수록 어려움 빠졌다. 3월 제네바 인권이사회에서 북한이 공식 표 대결을 포기했다. 한국 정부가 추진해온 대북 인권 공세의 커다란 승리다. 북한은 인권에서 승산이 없다는 걸 알고 있다. 이런 결의안에 리더십이라고 한 거 아쉬운 문제다. 앞으로 김정은 이름이 들어갈 것으로 생각한다. 김정은을 국제형사재판소에 넘기는 게 중요하다. 북 주민들은 이게 먼지 모른다. 단 무슨 재판에 넘겨진다는 소문이 북한 내부에 퍼진다고 생각해보라. 북한 아이들도 재판 나간다는 건 범죄자가 잘못해서 끌려간다는 걸 안다, 이건 곧 김정은이 범죄자이며 북한의 미래가 없다는 걸 뜻한다. 북한은 김정은 세글자가 유엔 결의 들어가는 걸 막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한국 언론 접촉한 적 있나?  -주성하 기자가 한국에서 쓴 기사 100% 다 보고 큰 힘 얻었다. 인터넷에 쓴 서울에서 쓰는 편지보고 눈물 흘린 거 한두 번이 아니다. 아이들도 같이봤다. 저는 주성하 기자가 쓴 글 보면서 주성하씨도 한국 가서 노력해서 그야말로 한국에서 알려진 분이 됐는데 우리도 한국 가서 하바닥에서 한층한층 노력하면 우리도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하고 한국 왔다. 제가 한국 온 거는 선생님 도움이 컸다. (웃음)  최고의 영광을 제가 주셨다.(웃음)  -딱 보니까 인터넷에서 본 분이라는 생각을 했다. 사진보다 낫다. (웃음) 북한 외교관들이 아침에 일어나면 처음 컴퓨터를 켜고 보는 게 뭔지 아느냐. 연합뉴스다. 북한란을 보면 그날 하루동안 한국, 해외 언론이 북한에 대해 뭘 썼다는 걸 다 안다. 대외 활동 할려면 사전 정보를 알아야 하기 때문에, 스마트폰에 연합뉴스 앱을 설치해 다 본다. 제가 오늘 말하는 것도 거의 그대로 북한 외교관, 해외에 있는 사람들은 즉시 다 본다. 제가 가장 북한에 있을 때 한국 오기로 결심하고 힘을 준 게 뭐냐면 이미 저보다 먼저 한국와서 활동하고 계시는 탈북민 활동이다. 고영한 전략연구원 부원장이나, 주성하 기자, 강철환 등이 쓴 글 다 본다. 한국 TV에서 나오는 이만갑, 모란봉클럽. 몰라수다 북한수다. 탈북민들이 활동하는 건 100% 다 본다. 가서 어떻게 사는가. 탈북민 생활 다룬 영화나 드라마는 북한에서 1순위다. 불어라 미풍아 mbc 드라마는 모든 사람들이 본다. 제가 이걸 보면서 딱 우리 가족의 지난 날을 본 거 같은 느낌이다. 덴마크 생활할 때 한 학급에 저희 큰애와 한국애가 같은 학급에 있었다. 카톨릭 영어 학교. 하루는 우리 큰 애가 집에 와서 가방을 바닥에 던지면서 아버지 이순신이 누구냐고 물었다. 북한은 역사 교육을 잘 안한다. 역사를 알면 현실과 비교하게 된다. 제가 깜짝 놀라서 이순신을 어떻게 알지 했는데. 이순신 앞에 위대한이라는 글자를 붙일 수 있느냐고 물었다. 학교에서 선생이 매 나라마다 자기 민족에 제일 위대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이름을 써내고 왜 위대하냐고 이유를 써냈다. 우리 아이는 김일성이 위대하다고 말했다. 나라를 해방시키고 일본을 내몰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국 애는 이순신이라고 말했다. 일본을 내몰았으니까. 선생님이 같은 일본을 내몬 것인데 왜 한쪽은 김일성이고 한쪽은 이순신이냐고 했다. 애들은 임진왜란이고 그런 거 모르니 그렇게만 한 거다. 근데 아이한테 제가 이걸 잘못 말하면 애가 잘못될 수 있다. 그때 제가 그건 복잡한 문제인데 크면 말해줄게라고 했다. 불어라미풍아 보며 생각했다. 이념 문제는 어릴 때부터 생겨나는 것이다. 어린 나이가 이순신이 위대해라고 당당하게 말했던 거, 드라마를 해외 나온 사람들이 많이 보면 그런 생각했다. 불어라 미풍아 마지막 장면이 미풍이가 통일을 위해 망배단으로 촛불을 들고 가는 모습이 됐으면 좋겠다 (웃음)    외부 정보 유입되는 경로?  -북한 사회는 외부로부터 정보 유입이 차단된 조건에서만 존재가 가능한 사회다. 북한에 외부 정보가 유입되는 날 북한은 스스로 허물어진다. 수령에 대한 신격화에 기초해서 유지되는 사회다. 김정은은 김정일의 여러 여인 중 하나에서 난 아이다. 그런 정보가 내부에 들어가면 수령 신격화가 유지 되겠나. 유지될 수 없다. 어떻게든 외부 정보 차단하기 위해 별이별 조치 다 취한다. 인터넷 열어놓지 못하는게 허구성 밝혀지는 날 스스로 무너지게 돼 있다. 어떻게 외부 세계 생각과 정보, 김씨 가문 허구성 알려줄 수 있겠는가. 저같이 외부에 나가 있던 사람들이 알고 있지만 북한에 들어가서 말하지 못한다. 외국에서 살다 들어왔다면 자동적으로 보위부 파견 감시요원 붙인다. 외부에 나갔던 사람들은 그 실상을 다 알지만 그 정권 밑에서 살아가야 할 사람들은 절대 그런 말을 하지 않는다. 단기 출장 와서 들었다는 사람들도 자기 동료들, 친구들한테 그런 말 안한다.    고영희가 김정은 생모 맞나?  -간단히 설명하기 쉽지 않은 문제다. 김정일, 김정은 후계 구도 과정은 다르다. 김정일 구도는 상향식 후계 구도다. 김정일은 자기가 공식 후계자 될 때까지 10여년 동안 탄탄한 대로 다졌다. 삼촌 쳐냈고, 김성애 형제들, 이복 동생들 하나하나 걸림돌 쳐내면서 후계자까지 갔다. 북한은 공산주의+유교 사회. 명분과 정체성 중시해. 김정일이 후계자 될 명분은 뭐냐. 김정일은 후계자 되기 전까지 그 능력을 충분히 보여줬다는 명분이다. 정체성은 아버지는 빨치산 대장, 어머니는 항일 영웅. 피가 좋다. 김정일 보다 좋은 정체성 가진 사람 내놓을 수 없다. 유교 사회의 장자 세습 원칙. 김정은은 백두혈통 강조하는데, 집권 5년차인 오늘날까지도 생모 이름 주민들에게 공개못하고 있다. 김정은 어머니를 선군조선의 어머니라고만 공개. 이름이 뭔지는 내놓지 못했다. 늙은 아버지 동료들이 옆에 있는데 거기 앞에서 자기 어머니가 공식적인 김정일 부인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여기서 활동 열심히 하겠다고 했는데 신변에 대한 두려움 없나?  -저는 이렇게 생각한다. 통일이란 건 어떤 개인이나 집단 희생 없이는 되지 않는다. 통일의 재단에 바친 몸인데 그 길로 가다가 테러로 죽는다면 그것이 곧 통일을 위한 기폭제가 돼서 더 많은 동료들이 저와 같은 길에 들어서지 않겠느냐 생각한다.    해외 나가면 다 인터넷 볼 수 있나?  -지금은 스마트폰 시대다. 해외 주재원들과 애들은 다 스마트폰 쓴다. 버젓이 인터넷 켜고 연합뉴스 보는 건 업무상 유리한 점도 있지만, 해외에 있는 사람들이 인터넷 보는 건 어려운 일 아니다. 보위원들이 다 따라다니며 감시할 수는 없다. 고영숙 인터뷰가 났을 때 절대 보지 말라는 지시가 내려오기도 했다. 인터넷 접근하는 사람 통제하는 시스템이 무너지고 있고 김정은도 알고 있다.    평양 엘리트층이 해외 정보 어느 정도 아나? 김정철 정신이 불안한 상태라는데?  -북한은 외부 정보의 유입이 철저히 차단된 속에서만 존재가 가능하다. 이런 원칙은 그 누구도 예외가 아니다. 아무리 중앙단 부부장 과장 정치위원 이런 분들이 제 목을 쥐고 있다고 해도 당에서 제공해주는 정보만 본다. 나머지 정보에는 접근할 수 없다. 반면에 외무성이나 대남 부서 사람들은 그걸 모르고는 정책 짤 수 없으니 제한된 사람들에게 정보를 열어준다.  -김정철은 개인이기 때문에 개인과 관련된 사안은 밝히기 부적절하다.    한달 월급 얼마였나? 한국 드라마 뭐 봤나?  -차마 월급을 공개하기는 여러분들 앞에서... 한국분들이 들으면 생존이 가능하냐고 생각할 정도다. 나라마다 다른데 대사는 900~1100불, 참사, 공사는 700~800불다. 1000불도 안 되는 돈으로 영국에서 어찌 살 수 있나 의문 제기되는데, 북한은 말하자면 사회 자체가 수용소고 병영이냐. 대사관은 축소판이다. 북한 외교관들은 대사관 안에서 집체 생활을 한다. 전기세, 물세 등 국가가 부담한다. 월급은 본인 식생활, 옷만 하면 돼. 생존이 가능하다. 또 가능한한 모든 수단 방법 동원해 돈 번다.  -한국 드라마는 사람, 계층마다 다르다. 북한 사람치고 한국 영화, 드라마 못 본 사람은 제가 아는 사람 중에는 없다. 공부한 사람들은 역사물 좋아한다. 불멸의 이순신, 육룡이 나르샤, 정도전. 일반 주민들은 겨울 연가, 가을 동화, 풀 하우스 등등. 이를 차단하는 조치가 간단치 않다. 지하철 공공버스 이런데 109대 소속이 나가서 수시로 검열한다. 북한 애들은 너무 남한 드라마 많이 봐서 말투도 바뀌었다. 자기야 오빠야, 할꼬야? ㅋㅋㅋ, 이런 거 북한에는 전혀 없던 표현들이다. 선전원이 잡아서 텍스트 딱 보고 한국 말투 있으면 바로 ´가자´고 한다. 근데 이게 또 돈벌이가 됐다. 전화 뺏기면 20~30달러. 살려주십쇼 하면 보위부원들이 다 지우라고 해서 돌려준다. 새로운 거 보려고 하고 없는 것 추구하려는 속성은 막을 수 없다. 북한이 주민 통제 하다하다 막지 못하는 건 2가지다. 마약과 한류다.    공포정치 사례는? 감시 지령 받은 적 있나?  -북한은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그 어느때라도 숙청이 중단된 적이 없다. 공산주의는 계급투쟁, 상호 비판 통한 불순분자는 밖으로, 수용소든, 배출하는 과정 통해서 북한 체제는 존재한다. 신진대사 과정 통해서 이단자 부단히 숙청하는 과정 통해서만 북한 사회는 존재한다. 김정은은 공포 심리를 앞장서 조성해서 일반 대중이 들고 일어날 꿈도 못 꾸게 한다. 공포 선행 통치. 김정일 만세 행사 한다고 하면 그때는 보안요원들이 넥타이 메고 나와 공손히 검열했다. 지금은 군복 입고 총을 차고 신분증 검열하고 들여보내는데, 거기에 기관총구를 들이대고 있다. 총구가 제 가슴을 통과한다고 생각해보라. 저 군인이 아차 실수해서 방아쇠 당기는 죽을 수도 있으니 이상한 행동 조금이라도 하면 안되겠다. 이게 공포 선행 통치다.  -북한의 감시 체계는 말단까지 다 미치고 있다. 북한 주민이 100명 이상일 때, 반대로 영국 유럽처럼 현지에 나간 인원이 10명도 안되는데는 당비서나 안전요원이 안 나와 있다. 그런 데서는 대사가 있고 두번째 외교관이 당비서겸 안전보위 업무를 한다. 감시해서 상부 보고 기능 수행한다. 다 인간 세상이기 때문에 매일 보는 동료를 감시해서 보고한다는 거 힘들다. 적당히 눈감아준다고 보면 된다. 북한의 모든 사람들은 기회 주의적으로 움직이고 있고 하나의 세트장에서 움직이는 것으로 보면 된다.    대외 정책 결정 체제?  -원리적으로 북한은 조선노동당이 영도하는 사회다. 외무성에서 작성에서 당 국제부에 보고하고 국제부에서 김정은에게 보고하는 게 순리다. 그러나 북한은 특수한 체제다. 결국 당 국제부와 외무성은 전혀 별개의 기관. 두 기관은 서로 개입 안한다. 당 국제부는 조선 노동당과 다른 나라 정당 관계만 관할한다.    박근혜 탄핵 목도 했는데 소회는?  -사람이 살아가고 나라 운영하는 데서 시스템이라는 게 대단히 중요하구나라는 건 한국 정치 정세 보면서 느꼈다. TV 보면 당장 나라가 끝날 거 같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는 모든 사람들이 평온하게 지내고 아무 일 없는 거처럼 사회가 가동된다. 세계적으로 100만명이 모였다 흩어질 때 경찰 연행이 없고 시위 후 청소하는 장면 보고 대단한 감명 받았다. 한국이 세계 민주화 과정을 새로운 단계로 선도해서 끌고 나가고 있지 않느냐, 한국이 민주화 선두로 바뀌는 과정이지 않겠는가 생각했다.    이민탈북 얘기 많이 나온다. 대화 나눌 때 생각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한국 바라보는 시선은 모순된 심정 하나는 한국은 정말 30, 40년간 압축적인 성장과 짧은 시일내 민주화 이뤄낸 대단한 나라구나 그러나 또 역시 한국 드라마 문화 콘텐츠 보면 한국은 대단히 경쟁력 심한 사회다 경쟁 없는 북한 사회서 살다가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살 수 있을까 이런 고민 많이 하게 된다. 생계형 탈북과 이민형 탈북문제 이야기했다. 엘리트층 견주에서 보면 한국 온다 갈까 생각할 때 제일 첫번째 생각하는 게 본인이 가진 사회적 지위 한국에 가면 밑으로 내려갈 수 있지 않느냐. 북한에서 양반 지위 살았는데 누구도 누리지 못하는 특권에서 살다가 한국가면 천민으로 떨어질지 이런 심리적 부담 내가 어떻게 극복해 나갈까 가정 내에서 애들도 아버지가 누구도 받을 수 없는 교육 시키고 가장으로서 지위 높았는데 한국 사회가면 지위 떨어지고 심리적인 담벽 어떻게 넘겠는가 이문제 많이 고심해. 한국 드라마 영화 보면 아이들때부터 배낭매고 학원다니며 공부 열심히 하고 대학 교육 굉장한데 북한도 물론 돈있는 집 중점학교 넣고 공부는 시켜. 제 아들도 한국 가서 대학 가 수십년 머리 싸매고 공부한 애들과 경쟁해 이길 수 있겠나 이런 부담감 많이 갖고 있다. 이민 온 탈북민 어떻게 사는가 많이 봐 연구원 자료 홈피 등. 물론 한국에 와 잘 정착하는 분들도 있지만 탈북민 평균 소득 146~7만원 한국 근로자 절반도 안된다 등 한국에 와서 실제 생활하며 보니 제가 생각했던 거와 많이 달랐다. 제가 사회 배출되면 한국에서 물론 자본주의 사회지만 자본주의 사회 경쟁 기초로하고 있고 생존 치열하지만 북한 주민과 사람들에게 한국에 와서 본인만 열심히 살면 여러 가능성 열려 있고 이미 한국 정부가 탈북민들 위해 어떤 시스템 있는지 알게 되면 더 많은 사람들 한국 사회를 동경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개성공단을 어떻게 바라봤나?  -개성공단은 북에 있어 맨 처음 시작할 때 김정일이나 북한 당국 고충이 상당히 컸다. 이미 지나간 일이지만 제일 처음 공단 시작할 때 북은 공단 통해 중공업과 화학공업 등 덩치큰 공업 들어올 거라 생각 들어오면 한강 기적처럼 순리 밟지 않을까 탄산해 시작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중화학공업 안들어오고 소비재공업만 들어와 우리가 한국에 당한 거 아니냐 내적 논리 생겼다. 개성공단 북한 사회 미치는 여파 줄일 수 이겠느냐가 관점이었는데 다행히 개성공단 휴전선 지대 있어 다른 말로 북한 주민 일반 주민들 개성시에 갈 수 없어 개성시 주민 맘대로 다른 지역 갈 수 없어 전연지대 특별 통행증 발급받아야 개성시까지 올 수 있다. 해?는데 결국 북한 모기장 치니 모기 들어오는 거 막을 수 있었다. 이게 북의 판단이다. 이 모기장에서 모기가 새어나가지 않았나 개성공단 가면 많은 경우 노동자들에게 물자를 준다. 기름, 초코파이를 준다. 우대물자가 많은 경우 평양 비롯한 외부 시장으로 흘러들어가 초코파이 시장 인기 상품 잘사는 사람들 등산갈 때 초코파이 사갖고 가야 잘 사는 애에 속한다. 대놓고 팔면 걸리니 장마당 밑에 놓고 판다. 여자들 다가가면 돈 있는 거 알아 그럼 초코파이 몇개 살래 물어봐 개성공단은 북한의 남한발전 실상 일리는 데 커다란 역할 했다고 볼 수 있다. 현 시점에서 개성공단 어떻게 하나 개인적으로 한국 정부가 개성공단 폐쇄했는데 만일 북한 핵질주 멈추기 위해 남한 정부서부터 폐쇄 선전 조치 안 취했다면 다른 나라가 제재 따라왔을까 그렇지 않았을 거다.    공사 직무는 북한에서 어떤 직급?  -부국장급 사이 국장급보다 높지 않다    탄핵 정국 탄핵 이후 대선으로 이어져 정치적 해석도 나온다  -처음으로 공개활동 시작해 국회 정보위 분들하고 만나고 보도 나온 거 보니 일부 티비서 왜 지금 이 시점이냐, 보수계에서 쓰는 마지막 수 아니냐 , 또 현 정국 물타기 위한 국정원 작전이라고 티비 나오는 거 봤다. 이야기하고 싶은 건 전 통일하러 왔다. 한국 정치 개입할 의사 없고 한국 정치 잘 모른다. 한국 도착 순간부터 함께 다니는 분들한테 내가 언제 나가 공개활동 할 수 있고 자유롭게 할 수 있느냐 물어보니 그분들이 한국은 법치국가 모든 거 법과 규정 원칙대로 한다, 현재 우리가 가진 원칙에 의해 태 공사 11월 말 사회에 배출될 거 같다, 저 애들 생각할 때 애들 매일 인터넷하고 맘대로 다니는 애들 답답한데 정확한 원칙 규정에 복종해야 한다, 이건 국가가 세운 규정이니 누구도 어길 수 없다. 규정 시일에 맞춰 이 시점 여러분들과 기자간담회 한다.    사회배출 시점 언제 설명 들었나  -제가 한국 도착해 첫 질문이 내가 언제 배출되나, 활동하냐. 절차 쭉 설명했다. 단언하는 건 새해 전 설 전 나갈 수 있다고.    여름에 그 얘기 들었나  -네    대북제재 효과?  -직접 느낀 팩트만 얘기하겠다. 영국에 있으면서 보험 영국 조선국영보험 회사 지점 있어 북한 보험 95% 자금이 런던 보험시장서 들어간다. 세계서 제일 큰 보험 시장이 런던이다. 수십년간 북한 런던 재보험시장서 엄청난 돈 빨아들어가 이번 대북제재로 이유 유럽동냉 영국 정부 보험 런던재보험 시장 추출 결정하고 북한 보험 쫓겨났다. 하내 수천만불 빨려들어간 북한 보험 줄 막혔다. 국제기구 대사관 2명 외무성 파견 아닌 국가해사안보청 해운업 하는 부서에서 나와 외교관으로 imo에서 근무했다. 이분들 재정사정 외무성하고 달라 배 움직이니 외화 많다 대상 안되는 넉넉한 생활하는데 올해 초부터 이분들에 대한 유지비 생활 돈 나오지 않아 집주인으로부터 집 내놔라 전화 끊겠다 재정적 어려움 겪는 거 보면서 한국에 와 북한 가장 큰 외화벌이 원천 보험 해운업 제가 일하는 동료들 직접당한 고통이다. 대북제재 현주소 설명해줬다.    북미정상회담 가능성 질문에 대해 개인적으로 보지 않는다고 했다. 김정은 5년간 시진핑 못만나 체제 끄는 김정은 외교력은?  -미국 양당제 그러나 지금까지 북한 문제에 대한 접근 법은 공화당과 민주당 완전히 달랐다. 북한이 미국 행정부와 처음 핵문제 합의한 것도 클린턴 민주당 때 일 그 이후 북한은 민주당 여러 인사와 대화채널 갖고 민주당과 계속 거래 대화 진행해왔다. 반대로 미 공화당 기본 대북 팀은 일반적으로 강경파 네오콘으로 꾸려졌다. 네오콘 가장 높은 분 존볼튼은 북한에 대해 상당히 적대적이다. 일반적 미 공화당 본능적으로 거부감 가졌다. 94년 제네바 합의 나왔을 때 미 공화당 즉시 입장 발표 정권 잡으면 제네바 합의 휴지조각 만들겠다고 했고 부시 올라가 다 뒤집어 엎었다. 북한 본능적으로 공화당에 거부적 인식이 상당하다. 앞으로 트럼프의 대북제재 라인 국무성 라인 어떻게 꾸려질지 봐야하지만 공화당 속성을부터 대북팀 강경파 네오콘 세력 다시 차지할 것이다. 중국 시진핑 관계에 대해 김정은로선 중국 하루라도 빨리 방문하지 못해 몸살 날 것이다. 김정일 김정은 후계자 내세우기 위해 중국 찾아가 그런데 김정은은 핵 개발 하겠다는 거 공개적으로 선언해 결국 지금까지 조선반도 비핵화 은폐된 구호를 들고 핵무기 개발하던 북한이 중국에 대해고 핵무기 갖겠다고 공개 선언했고 이건 중국 뺨친거 랑 같다. 시진핑 위치에서 만일 김정은 중국 초청한다면 가장 기본적 문제 답 달라 할 것 핵무기 포기 선언해라, 김정은 중국에 가서 내가 핵무기 포기할게 이런 약속 현재 못한다. 근본적으로 핵무기 걸림돌 앞에 김정은 중국 방문 성사 매우 어려울 것이다.    김양건은 어떻게 죽었나?  -김양건 어떻게 죽었나 북한 내부에서도 상당히 미스테리로 남아있다. 그러나 단지 주민들 속에서 돌아가는 말은 김양건이가 저녁에 김정은한테 가 술먹고 술 완전히 깨지 않은 음주상태서 차 몰다가 다른 차 사고로 새벽에 죽었다. 일반 주민들 속에서 도는 얘기 사실인진 모른다. 북한 대남 관련, 북한은 한국 대선 미국에서 정권 인수 과정 진행될 때 복잡한 정치 일정 맞물린 2017년 핵개발 계획표 정했다. 전술적으로 북한 어떻게 이 목표 다가설까 전술적으로 북한은 대북제재 무용론 확산시키려고 한다. 그것은 끊임없는 도발과 핵실험 해서 한국언론 미국이 북한에는 정말 약이 없다. 이방법 안된다 해서 대북제재 무용론 기울어지게 만들어 한국정부 미국 정부 계속 괴롭히면 새로 올라간 정부 정세 안정 방향으로 기조 바뀔 것이다. 한국 수출 위주 국가로 경제 불안하면 작동 못해 새로 올라간 정부 정세 안정관리 방향으로 바꿀 것이다. 그러면 북 바라는 핵동결 핵보유국 지위 얻을 수 있다. 대북제재 무용론 확대가 북의 전술이다.    장성택 처형 관련 왜 죽었는지?  -중요한 건데 목격하지 않았으니 정답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장성택 처형 문제는 북한 사회에 큰 충격 준 사건이다. 지금까지 김씨 가문 내 권력 투쟁 계속 있었다. 김정일 때도 김정일과 삼촌 김성혜 김평일 곁가지 치는 가문내 싸움 있었지만 절대 북은 공개 안한다. 다 외적으로 처리했다. 북한에서 예를 들면 김정은 올라갈때 김성혜 칠 때 곁가지 치는 거 뭘보고 곁가지라고 할까 가문 내 권력...장성택 일사천리로 회의해 처리하고 처형했다. 김정은이가 이렇게 한 게 거수인가 아닌가 두고봐야 할 일이지만 대단히 충격적 사건이다. 조용한 방법 아닌 공개적 방법으로 했을까 제 생각엔 장성택 사회 미친 영향과 권력 범위가 너무 컸다. 당 회의에서 공개하고 전 사회 운동으로 단시간에 처리 안했으면 큰 반발 있었을 것이다. 당내 정파 많이 제거했지만 당 한개부서 정파 집단 몰아 없앤 역사 없었다.    해외 공관 인권문제 진행돼 곤란하다고 했는데 탈북자 감시 공관 지시 내려왔나?  -북한은 일반적으로 탈북자와 절대 접촉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한국에 온 뒤 언론서 탈북자 만나고 이렇게 보도 나왔는데 그건 사실과 다르다. 단 최근 탈북자 정책에서 북한이 하나 취했다가 취소한 결정 탈북해온 분들 셰계 도처에서 인권 청문회 유엔 각나라 국회서 영국도 하고 탈북민 단체가 청문회 하는데 지금까지 북한은 탈북민 위주 인권청문회 외교관 주동적 참가해 인권 정책 설명하는 청문회 북한 표현으로 수라장으로 만들라 이게 북 정책이다. 몇 곳에서 해봤다. 북한 외교관 발언권 주지 않으니 연설문 읽고 탈북민 퇴장하고, 영국도 많은 해외가 그렇다. 해외 나온 외교관 제기했다. 이거 국제사회 나가 국가 대표하는 북 외교관들이 탈북민들과 1대1로 공개장소에서 싸우니 출연하는 탈북민들이 망명정부 북한 대표하는 망명정부처럼 보여지고 북한 취약성 국제사회 더 보여준다. 탈북민 주최 행사 외교관이 나가서 1대1 싸우는 거 바람직하지 않다. 건의해 승인됐다. 지금은 탈북민들 국제인권청문회 내부 행사 북한 외교관 참가해 수라장 만드는 건 찾아볼 수 없다. 탈북민이 얻은 큰 승리로 평가한다. 강병철 기자 bckang@seoul.co.kr
  • 탈북한 북한 외교관 태영호는 누구?

    탈북한 북한 외교관 태영호는 누구?

    27일 “김정은(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있는 한 북한은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는다”고 단언한 태영호 전 주영 북한대사관 공사는 지금까지 탈북한 외교관들 중 최고위급에 속하는 인물이다. 태 전 공사는 지난 8월 17일 통일부에 의해 부인·자녀와 함께 입국한 사실이 알려졌다. 이는 지난 1997년 미국으로 망명한 장승길 당시 주이집트 북한대사에 이은 19년 만의 최고위급 북한 외교관의 탈북으로 평가받았다. 태 전 공사는 서유럽 사정에 정통한 베테랑 외교관으로 평가받던 인물로, 2001년 6월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북한과 유럽연합(EU)의 인권대화 때 대표단 단장으로 나서면서 외교무대에 이름을 알린 바 있다. 탈북 외교관들의 말을 종합하면 태 공사는 성분이 탁월한 가문에서 태어난 덕분에 고등중학교 재학 중 중국으로 건너가 영어와 중국어를 배웠다. 항간에는 그의 아버지가 김일성 전령병으로 활동한 항일 빨치산 1세대 태병렬인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으나 그는 “성이 태가이지만 북한군 대장이었던 태병렬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며 “(부인인) 오혜선은 오백룡 가문인건 맞다”고 확인한 바 있다. 오백룡은 김일성의 빨치산 동료이자 노동당 군사부장을 지낸 인물이다. 태 공사는 중국에서 돌아온 뒤 5년제 평양 국제관계대학을 졸업하고 외무성 8국에 배치됐다. 그는 곧바로 김정일 총비서의 전담통역 후보인 덴마크어 1호 양성통역으로 선발돼 덴마크 유학길에 올랐다. 태 공사는 1993년부터 주 덴마크 대사관 서기관으로 활동하다가 1990년대 말 덴마크 주재 북한 대사관이 철수하면서 스웨덴으로 자리를 옮겼다. 스웨덴 생활은 길지 않았고 태 공사는 곧 귀국해 EU 담당 과장을 거쳐 10년 정도 전에 영국 주재 북한 대사관으로 파견됐다. 슬하에 2남 1녀를 두고 있는 태영호 공사는 김정은 체제에 대한 염증과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동경, 자녀와 장래 문제로 탈북을 결심한 것으로 알려진 바 있다. 태 전 공사는 2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통일부 출입기자단 간담회에서 이같이 밝히고 “1조 달러, 10조 달러를 준다고 해도 북한은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김정은의 핵 개발 정책을 포기시키느냐 마느냐는 문제는 (경제적) 인센티브의 문제가 아니다”며 “김정은 정권이 곧 핵무기”라고 강조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일문일답] 태영호 “北, 핵질주 마지막 직선 주로 들어섰다”

    [일문일답] 태영호 “北, 핵질주 마지막 직선 주로 들어섰다”

    지난 7월 귀순한 태영호 전 주(駐)영국 북한대사관 공사가 북한의 핵개발을 저지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태 전 공사는 27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통일부 출입기자단과 공개 간담회를 하고 “김정은은 위험천만한 핵 질주의 마지막 직선 주로에 들어갔다”면서 “김정은의 손에 핵무기가 쥐어진다면 우리는 영원히 김정은의 핵 인질이 되고, 한반도에서 핵 전쟁이 일어난다면 자그마한 영토는 잿더미로 변해 구석기 시대로 되돌아 갈 것”이라고 밝혔다. 태 전 공사는 북한의 핵개발 의도와 함께 자신의 망명 이유와 김정은 체제의 실상도 밝혔다. 태 전 공사는 “우리 민족을 핵 참화에서 구제하기 위해 오래 고민했다”면서 “어떻게 하면 김정은 정권을 붕괴시키고 우리 민족을 다가오는 핵 참화에서 구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서 공개 활동을 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다음은 태 전 공사와의 일문일답. ▲모두발언몇 달 전까지만 해도 김정은 정권을 위해 남북 외교대결 최전선에서 활약해 온 태영호다. 해외에서 자유민주 체제의 우월성을 실감하면서, 그리고 인터넷 등을 통해 한국의 진화하는 민주화 과정을 목격하면서 북한 정권에는 미래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러나 북한에 남겨둔 가족과 일가 친척들이 연좌제로 처벌받을 것이 두려웠다. 김정은이 해외에서 공부해 북한과 우리 민족의 미래를 위해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을 내려 줄 것이라는 한 가닥 희망을 갖고 살았다. 그러나 고모부(장성택)는 물론 측근도 무자비하게 처형하는 행태를 보고 점점 절망감에 빠졌다. 특히 김정은이 제7차 당 대회를 기점으로 한국과 미국 대통령 선거의 정치적 교란기를 이용해 핵 개발을 2017년 말까지 무조건 완성한다는 정책을 채택하고 핵 질주하는 모습을 보면서 빨리 한국으로 가서 민족을 핵 참화에서 구원하기 위해 무엇인가 해야 겠다는 결심을 굳히게 됐다. 지금 김정은 체제는 내부적으로 썩어들어가고 있다. 낮에는 김정은 만세를 외치지만 밤에는 이불을 쓰고 한국 영화를 보고 있는 것이 북한의 현실이다. 이런 동향을 누구보다 잘 아는 김정은은 주민과 간부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면서 공포통치를 하고 있다. 저는 북한 대사관을 벗어나는 순간 (가족에게) 내가 너희의 노예 사슬을 끊어 준다고 말했다. 통일을 하는 것은 우리 민족을 위한 새로운 도약 기회이기에 앞서 저와 여러분의 생사 전반이 달려 있는 중대한 문제다. 지금 김정은은 핵개발 완성 시간표까지 정해놓고 위험천만한 핵 질주의 마지막 직선 주로에 들어섰다. 김정은의 손에 핵무기가 쥐어진다면 우리는 영원히 김정은의 핵 인질이 되고, 한반도에서 핵 전쟁이 일어난다면 자그마한 영토는 잿더미로 변해 구석기 시대로 되돌아 갈 것이다. (북한 주민에게) 김정은을 가볍게 쳐내고 통일된 나라에서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자. 이미 수만 명의 북한 주민이 대한민국으로 왔다. 이 순간을 놓치지 말고 어서 대한민국으로 와라. 통일이 되면 탈북민은 통일의 선봉 투사, 노예 해방자라는 명예로운 칭호를 받게 될 것이다. 3만 명 탈북민의 김정은 타도 외침이 울려퍼질 때 통일의 아침은 반드시 밝아 올 것이다. ▲질의응답-북한이 보통 해외에 파견하는 간부들은 자녀 1명은 평양에 두도록 하는 것으로 아는데 예외였나.→김정은 정권은 부모와 자식 간의 가장 숭고한 사랑마저 악용해 해외 상주 직원은 자녀 중 1명을 북한에 인질로 잡아놓고 있다. 저는 천만다행으로 자식을 모두 데리고 올 수 있었다. -북한이 2017년 말까지 핵 개발을 완료한다고 했는데 더 설명해달라.→북한은 김일성이나 김정일 때도 한 번도 핵 개발을 중단한 적이 없었다. 다만 김정일 당시는 조선반도(한반도) 비핵화라는 거짓 외피를 뒤집어쓰고 은밀히 핵 개발을 했다. 김정은은 핵·경제 병진 노선을 당 정책으로 공식 채택했다. 경제는 세계와 주민을 기만하기 위한 것이고 사실상 핵 최우선 정책이다. 김정은은 핵 개발을 가장 빠른 시간에 완성할 것을 당 정책으로 규정했다.북한은 한국에서 대통령 선거가 진행되고, 미국에선 대통령 선거 이후 정권 인수가 진행되는 2016년부터 2017년 말까지를 핵 개발의 적기로 본다. 이 기간에 국내 정치일정 때문에 미국과 한국이 북한의 핵 개발을 중지시킬 수 있는 물리적, 군사적인 조치를 하지 못할 것이라는 타산(계산)이 깔렸다. 북한은 한국에서 대선이 끝나고 미국에서 새로운 대북 정책팀이 꾸려지면 북한과 새로운 정책을 시도할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이럴 때 북한은 빨리 핵 개발을 완성해서 새로 집권한 미국, 한국 정부와 북한이 도달한 핵보유국 지위에서 새로운 대화를 시도할 것이다. 미국과 한국 정부가 유지한 ‘비핵화 후 대화’ 도식을 깨고 제재 해제와 한미 군사훈련 중단을 내세워 핵 보유를 국제적으로 인정받으려는 전략이다. -언제 핵실험을 실시할 것이니 구체적으로 대응하라는 방침이 (재외공관에) 있었나.→국회 정보위에서 (제가) 언급했다는 공문 문제는 의도와 다르게 보도됐다. 북한은 해외 공관에 언제 핵실험을 한다는 등 구체적인 국가 기밀에 속하는 것을 공문으로 보내지 않는다. 국회 정보위에 나가서는 북한의 현재 핵 개발과 관련한 정책적 측면을 얘기했다. -한국에 도착한 시기와 경로는. 빨치산 가문 출신인가.→여름에 한국에 와서 (지금이) 첫 겨울이다. (항일 빨치산 1세대이자 김일성의 전령병으로 활동한) 태병렬과는 어떤 혈연적 관계가 없다. (부인) 오혜선은 (김일성의 빨치산 동료이자 노동당 군사부장을 지낸) 오백룡과 혈연관계다.탈북 시기나 경로와 관련해서 언론에 보도된 대부분의 내용은 사실과 다르다. -언론에 나서고 적극적으로 공개 활동을 하게 된 계기는. 북한 내 가족의 신변은 걱정되지 않았나.→우리 민족을 핵 참화에서 구제하기 위해 오래 고민했다. 어떻게 하면 김정은 정권을 붕괴시키고 우리 민족을 다가오는 핵 참화에서 구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서 공개 활동을 하기로 결정했다. 북한에 두고 온 가족과 저 때문에 피해를 본 동료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그러나) 제가 방구석에서 눈물을 흘려도 소용이 없다. 김정은 정권과 싸울 때 통일을 앞당길 수 있다. -미국은 망명지로 생각하지 않았나.→한반도가 외세에 의해 분단된 지 70여 년이 지났지만, 하루빨리 저의 대(代)에 나라를 통일하는 것을 평생의 숙원으로 생각하고 있다. 북한과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대한민국에 와서 통일을 위한 투쟁을 벌이는 것이 통일을 앞당기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한다. -김정은이 사라지면 북한이 붕괴한다고 말한 이유는.→북한에서 공산정권 수립 70년이 됐다. 사회제도가 수립돼 70년이 지난 오늘까지 공포정치와 처형으로 유지되는 사회는 미래가 없다. 북한은 계급투쟁에 기초한 공산주의 이념에 더해 지도자에게 충(忠)과 효(孝)를 강조하는 조선 시대 ‘선비학’에 기초해 유지됐다. 정체성과 명분을 중시한다. 김정은 시대에 와서 북한은 지금까지 유지되던 명분과 정체성을 잃었다. 김정은까지 겪고 본 북한 주민은 물론 엘리트층도 북한 세습 체제는 미래가 없다고 느끼고 있다. 저는 김정은이 마지막이라고 확고히 이야기할 수 있다. -현 한국 정부의 대북정책은 어떻게 보나.→전문가 사이에서 현 대북정책에 대해 논쟁이 많은 것을 한국에 와서 언론을 통해 봤다. 대북정책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과 대북정책을 강경 모드로 유지해서 김정은 정권을 고립으로 몰고 가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김정은의 현재 핵 개발 정책을 포기시키느냐 마느냐는 (경제적) 인센티브의 문제가 아니다. 김정은 정권은 곧 핵무기다. 김정은이 있는 한 (북한은)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는다. 1조 달러, 10조 달러를 준다고 해서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는다. -현재 북한의 핵 개발이 어떤 상태까지 왔다고 보나.→핵 개발의 정책적 측면을 말씀드린 것이다. 핵 개발의 수준이 어느 지점에 왔는지는 잘 모른다. 북한은 체제 특성상 외무상이나 더 높은 사람도 핵 개발이 어느 수준에 왔는지 모른다. -영국에서 체제 선전을 할 때 어떤 느낌이 들었나.→북한의 일반 주민은 물론이고 엘리트층도 기회주의적으로 살고 있다. 저도 ‘김정은 만세’를 외치지 않을 수 없었고 기회주의적으로 살 수밖에 없었던 것을 부끄럽게 생각한다. 영국에서 각이(各異)한 계층을 만나면 대부분의 사람은 어떻게 그런 북한 체제를 홍보할 수 있느냐고 얘기한다. 직무상 북한 체제를 옹호해야 하기 때문에 매우 힘든 시간을 보냈다. -외무성에서 일했는데 북한이 중국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궁금하다. 김정은은 버락 오바마 미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북한이 중국에 자주적인 것은 사실이다. 북한은 중국의 약점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이라는 ‘동생’이 배짱을 부려도 중국은 어떻게 하지 못할 것이다. 북한이 어떤 일을 해도 중국은 ‘버퍼 존’(완충지대·buffer zone)을 유지하기 위해 끌려갈 수밖에 없다.중국이 결심만 한다면 북한 정권을 끝내는 것은 일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중국은 압록강과 두만강으로 다가올 수 있는 자유민주주의와 미국이라는 물리적 존재를 막기 위해 아직도 김정은 정권을 비호하고 있고,김정은 정권은 이를 잘 알고 있다.북한은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를 핵 개발에 대한 ‘면죄부’로 생각하고 있다. -외교관 경력과 마지막으로 평양을 떠난 시기는.→1990년대 말에는 덴마크와 스웨덴, 2000년대에는 영국에서 근무했다. 북한에서 마지막으로 (해외 근무를) 간 것은 2014년 초다. -북한 당국이 경제 모델로 삼고 있는 것이 있다면.→북한이 현재 직면한 가장 큰 아킬레스건은 올바른 경제정책을 주민에게 제시하지 못하는 것이다. 북한은 점차 시장에 의거한 경제로 변화하고 있다. 북한 경제는 원시적 자본주의인데 정책은 사회주의 계획정책이다. 북한이 현실을 인정하고 경제정책을 중국이나 베트남처럼 시장경제에 의한 정책으로 바꾸는 것이 순리다.김정은과 노동당은 왜 정책을 바꾸지 못하느냐는 질문이 제기된다. 북한이라는 사회는 수령의 신격화에 기초해서 움직인다. 수령은 신과 같은 존재고 모든 의식주는 수령이 보장해 줘야 한다. 경제정책이 수요와 공급에 의해 움직이게 하면 북한 사회에서 점차 김정은의 존재는 없어진다. 그래서 현실에 맞지 않는 사회주의 계획경제를 유지하고, 주민이 세뇌 교육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효과를 낳고 있다. -핵실험 등 중요한 의사결정을 할 때 김정일과 김정은의 차이점은.→북한의 의사결정에서 가장 핵심기구, ‘컨트롤 타워’가 어디냐고 모든 사람이 물어봤다. 정책을 통합·조정해서 김정은에게 보고하는 컨트롤 타워라는 것은 북한에 없다. 북한은 김정은이라는 신(神)과 모든 정책부서가 종적으로 연결된 사회다. -한달 월급 얼마였나?→차마 월급을 공개하기는 여러분들 앞에서 그렇다. 한국분들이 들으면 생존이 가능하냐고 생각할 정도다. 나라마다 다른데 대사는 900~1100불, 참사, 공사는 700~800불. 1000불도 안 되는 돈으로 영국에서 어찌 살 수 있나 의문 제기되는데, 북한은 말하자면 사회 자체가 수용소고 병영이다. 대사관은 그 축소판이다. 북한 외교관들은 대사관 안에서 집체 생활을 한다. 전기세, 물세 등 국가가 부담하고 월급은 본인 식생활, 옷만 하면 돼 생존이 가능하다. 또 가능한 한 모든 수단 방법 동원해 돈을 번다. -한국 드라마는 뭘 보나?→한국 드라마는 사람, 계층마다 다르다. 북한 사람치고 한국 영화, 드라마 못 본 사람은 제가 아는 사람 중에는 없다. 공부한 사람들은 역사물 좋아한다. 불멸의 이순신, 육룡이 나르샤, 정도전. 일반 주민들은 겨울 연가, 가을 동화, 풀 하우스 등등, 이를 차단하는 조치가 간단치 않다. 지하철 공공버스 이런데 109 소속이 나가서 수시로 검열한다. 북한 애들은 너무 남한 드라마 많이 봐서 말투도 바뀌었다. 자기야 오빠야, 할꼬야? ㅋㅋㅋ, 이런 거 북한에는 전혀 없던 표현들이다. 선전원이 잡아서 텍스트 딱 보고 한국 말투 있으면 바로 ‘가자’한다. 근데 이게 또 돈벌이가 됐어. 전화 뺏기면 20~30달러 주면서 살려주십쇼 하면 된다. 보위부원들이 다 지우라고 해서 돌려준다. 새로운 거 보려고 하고 없는 것 추구하려는 속성은 막을 수 없어. 북한이 주민 통제 하다하다 막지 못하는 건 2가지. 마약과 한류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목도했는데?→사람이 살아가고 나라 운영하는 데서 시스템이라는 게 대단히 중요하구나라는 건 한국 정치 정세 보면서 느낀다. TV 보면 당장 나라가 끝날 거 같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는 모든 사람들이 평온하게 지내고 아무 일 없는 거처럼 사회가 가동된다. 세계적으로 100만명이 모였다 흩어질 때 경찰 연행이 없고, 시위 후 청소하는 장면 보고 대단한 감명 받았다. 한국이 세계 민주화 과정을 새로운 단계로 선도해서 끌고 나가고 있지 않느냐, 한국이 민주화 선두로 바뀌는 과정이지 않겠는가 생각한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태영호 전 공사 “김정은, 내년 말까지 핵개발 완성할 것”

    태영호 전 공사 “김정은, 내년 말까지 핵개발 완성할 것”

    태영호 전 주영국 북한대사관 공사는 “(북한에) 1조 달러, 10조 달러를 준다고 해도 북한은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태 전 공사는 2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통일부 출입기자단 간담회에서 “김정은(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있는 한 북한은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김정은의 핵 개발 정책을 포기시키느냐 마느냐의 문제는 (경제적) 인센티브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김정은 정권이 곧 핵무기라는 것이다. 태 전 공사는 “북한은 김일성, 김정일 때도 핵 개발을 중단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면서 “김정일 때만 해도 ‘조선반도 비핵화’라는 거짓 외피를 뒤집어쓰고 핵 개발을 은밀히 했다”고 말했다. 이어 “김정은 정권은 내년 말까지 핵 개발을 완성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핵 질주를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정은 정권이 핵-경제 병진 노선을 당 정책으로 공식 채택했다는 것을 근거로 내세웠다. 그는 “경제는 세계와 주민을 기만하기 위한 것이고 사실상 핵 최우선 정책”이라고 말했다. 북한이 핵 개발 완료 시점을 내년 말로 못박은 이유에 대해서는 “한국과 미국이 자국 정치일정 때문에 북한의 핵 개발을 중지시킬 수 있는 물리적, 군사적인 조치를 하지 못할 것이라는 타산이 깔렸다”고 설명했다. 태 전 공사는 지난 7월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공사로 근무하던 중 한국으로 망명했다. 지난 23일부터 대외 활동을 시작했다. 내년부터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소속으로 활동할 것으로 알려졌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태영호 전 공사 “김정은, 내년 말까지 핵개발 완성할 것”

    태영호 전 공사 “김정은, 내년 말까지 핵개발 완성할 것”

    태영호 전 주영국 북한대사관 공사는 “(북한에) 1조 달러, 10조 달러를 준다고 해도 북한은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태 전 공사는 2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통일부 출입기자단 간담회에서 “김정은(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있는 한 북한은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김정은의 핵 개발 정책을 포기시키느냐 마느냐의 문제는 (경제적) 인센티브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김정은 정권이 곧 핵무기라는 것이다. 태 전 공사는 “북한은 김일성, 김정일 때도 핵 개발을 중단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면서 “김정일 때만 해도 ‘조선반도 비핵화’라는 거짓 외피를 뒤집어쓰고 핵 개발을 은밀히 했다”고 말했다. 이어 “김정은 정권은 내년 말까지 핵 개발을 완성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핵 질주를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정은 정권이 핵-경제 병진 노선을 당 정책으로 공식 채택했다는 것을 근거로 내세웠다. 그는 “경제는 세계와 주민을 기만하기 위한 것이고 사실상 핵 최우선 정책”이라고 말했다. 북한이 핵 개발 완료 시점을 내년 말로 못박은 이유에 대해서는 “한국과 미국이 자국 정치일정 때문에 북한의 핵 개발을 중지시킬 수 있는 물리적, 군사적인 조치를 하지 못할 것이라는 타산이 깔렸다”고 설명했다. 태 전 공사는 지난 7월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공사로 근무하던 중 한국으로 망명했다. 지난 23일부터 대외 활동을 시작했다. 내년부터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소속으로 활동할 것으로 알려졌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北 연말연시는 ‘김정은 백두혈통’ 띄우기

    세계 곳곳이 축제 분위기로 들뜨는 크리스마스를 즈음해 북한 매체들은 일제히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을 포함한 ‘백두혈통’ 띄우기에 나섰다. 김씨 일가와 관련한 각종 기념일이 이 시기에 몰리면서 ‘세습 체제 공고화’를 위한 행사로 연말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25일 북한 노동신문 등에 따르면 크리스마스이브인 지난 24일은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최고사령관으로 추대된 지 25주년을 맞는 날이었다. 노동신문은 이날 김정일의 ‘선군(先軍) 사상’을 칭송한 뒤 “위대한 장군(김정일)님 헤쳐가신 선군혁명 영도의 길위에 오늘은 경애하는 원수(김정은)님이 선군혁명의 천만리를 가고 가신다”며 김정은을 치켜세웠다. 북한 매체들은 또 24일이 김일성의 부인이자 김정은의 조모인 김정숙의 99회 생일이라며 그의 삶을 조명하는 글도 잇달아 내보냈다. 노동신문은 지난 23일자 신문 2면을 모두 김정숙 관련 일화나 기념행사를 소개하는 데 할애했다. 북한도 명목상으로는 헌법에 ‘신앙의 자유’를 언급하고 있다. 하지만 사실상 종교 행위가 금지돼 있어 주민들이 크리스마스를 기념하는 건 불가능하다. 대신 북한은 이 시기에 김씨 일가의 행적을 추모하는 각종 경축 행사를 개최한다. 특히 김정은 집권 이후에는 그의 생일(1월 8일)까지 기념일로 챙기면서 연말연시에 우상화를 위한 각종 행사가 집중됐다. 강병철 기자 bckang@seoul.co.kr
  • [당신의 책]

    [당신의 책]

    모던 팝 스토리(밥 스탠리 지음, 배순탁 외 옮김, 북라이프 펴냄) 음악평론가인 저자가 1950년대부터 2000년까지 팝의 본고장인 미국과 영국 모던 팝의 풍경을 한 권에 담아냈다. 저자가 말하는 ‘모던 팝’은 로큰롤 이후의 모든 팝을 가리키며 처음으로 젊은 세대의 소리를 대변한 음악을 말한다. 장르로는 록, 솔, R&B, 펑크, 힙합, 테크노, 레게 등을 아우르고 있다. 뮤지션과 밴드의 뒷이야기뿐 아니라 모던 팝의 성장 과정에서 탄생한 수많은 장르와 프로듀서, 레코드 레이블, 음악 잡지와 차트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음악 팬이라면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음악을 즐길 수 있도록 도와줄 가이드이자 처음 음악과 사랑에 빠진 ‘그’ 음악을 찾게 만들 것 같다. 896쪽. 3만 2000원. 위대한 독재자가 되는 법?(미칼 헴 지음, 박병화 옮김, 에쎄 펴냄) 역사적 팩트와 블랙 유머를 곁들여 글로벌 독재자들의 기괴하고 생생한 민낯을 재구성한 책. 노르웨이 정치평론가인 저자는 독재 권력이 어떻게 유지되는 지, 어떻게 돈을 쓰고 입고 먹고 하는 지 등 독재자에 대한 소소한 이야기들을 반어와 풍자 기법으로 펼쳐낸다.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자신을 ‘위대한 독재자’로, 때로 ‘자상한 어버이’로 포장해 선전하는 독재자가 동물적이고 사적인 욕망에 급급한 적나라한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흉측한 진면목을 직시하게 하는 데 있다. 북한 김일성-김정일-김정은 일가부터 리비아 카다피, 루마니아 차우셰스쿠 등 죽거나 실각한 독재자들의 삶을 위트있게 추적해 냈다. 256쪽. 1만 3000원. 나는 형제를 모른 척할 수 있을까(히라야마 료·후루카와 마사코 지음, 오선이 옮김, 어른의시간 펴냄) 일본 사회학자가 초고령사회의 단면인 형제 격차와 형제 부양에 대한 불안을 쓴 책이다. 비정규직의 증가와 비혼화로 인해 부모 간병 이후 자립하지 못하는 형제의 장래까지 걱정해야 하는 시대라는 새로운 문제를 짚고 있다. 일본 사회는 여러 명이 노인 1명을 부양하는 ‘기마전형’에서 1명이 1명을 부양하는 ‘목말형’으로 이동하는 대간병 시대를 맞고 있다. 일본은 니트족마저 고령화돼 ‘중장년 니트족’이 크게 늘고 있으며, 생애 미혼율도 높아지고 있다. 가족 내 형제 리스크의 생생한 사례를 다루며 이에 대한 사회·제도적 해결책을 모색한다. 224쪽. 1만 4000원.
  • [글로벌 인사이트] 자선·자유·킹메이커, 혹은 정치무대 복귀… 오바마 어느 길 갈까

    [글로벌 인사이트] 자선·자유·킹메이커, 혹은 정치무대 복귀… 오바마 어느 길 갈까

    미국 대통령은 오르기도 쉽지 않지만 내려오는 것도 만만치 않은 자리다. 그들은 퇴임을 앞두고 자신의 성격과 신념에 부합하는 제2의 직업을 찾아야 하지만 전직 대통령이라는 상징성 때문에 구직에 제약이 많다. 퇴임 이후 어렵게 할 일을 찾는다 하더라도 인구 3억명의 대국을 운영하고 전 세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나날이 떠오를 때마다 엄청난 공허감과 무력감을 이겨내야 한다. 특히 한 달 뒤에 55세로 퇴임하는 버락 오바마처럼 중년에 백악관을 떠나야 하는 대통령일수록 은퇴 계획을 세우고 퇴임 이후 삶을 살아내는 데 있어 더 큰 도전에 직면하게 된다. 오바마는 백악관 이후의 삶을 본격적으로 준비하고 있다. 그는 최근 자신의 대통령기념관이 들어설 시카고 남부 잭슨공원 내 시립 골프장 2개를 최고급으로 재설계하는 프로젝트를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에게 부탁했다고 시카고트리뷴 등이 1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 골프장은 미국프로골프(PGA) 챔피언십 대회 개최가 가능하도록 재설계되며, 내년 봄 착공해 2020년 개장할 예정이다. 재설계 비용은 최소 3000만 달러(약 360억원)로 추정된다. 오바마 측은 이 골프장에 PGA 대회를 유치해 대통령기념관 홍보에 적극 활용할 계획이다. 오바마는 앞서 워싱턴DC의 사립학교 시드웰 프렌즈 스쿨에 재학 중인 막내딸 사샤를 위해 퇴임 이후에도 당분간 워싱턴DC에 머무르겠다고 밝힌 바 있다. 오바마는 퇴임 이후 전직대통령법에 따라 연방정부로부터 연 20만 5700만 달러(약 2억 4000만원)의 연금을 받고, 사무실 운영비, 비서진 급여, 의료비, 여행 경비, 통신비 등을 지원받는다. 또 오바마와 부인 미셸은 대통령 경호를 담당하는 비밀경호국으로부터 평생 경호를 받는다. 오바마는 퇴임 이후 자신이 머무를 집과 사무실, 자신의 업적을 기릴 기념관을 순조롭게 준비하고 있지만 전직 대통령으로서의 역할과 직업에 대해서는 거듭 고민하는 모습이다. 미국 언론들은 미디어 분야 진출, 미국프로농구(NBA) 구단주, 벤처 기업 투자자 등 다양한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지만, 오바마 측은 이와 관련해 공식적인 입장을 내놓고 있지 않다. 오바마와 마찬가지로 비교적 젊은 나이에 퇴임한 빌 클린턴(70·퇴임 당시 54세)과 조지 W 부시(70·퇴임 당시 62세) 전 대통령은 전혀 다른 행보를 보이며 은퇴 이후 삶을 살아가고 있다. 클린턴은 2001년 1월 임기 마지막 날 억만장자 마크 리치를 사면해 논란을 빚어 퇴임 직후 한동안 공개 활동에 나서지 못했다. 클린턴은 사기, 조세포탈, 적성국과의 불법 석유 거래 등의 혐의로 기소된 뒤 외국으로 도피한 리치 등 176명을 사면했는데, 리치의 전 부인 데니스 리치가 민주당과 클린턴기념관, 힐러리 클린턴의 2000년 상원의원 선거 캠프에 후원금을 낸 사실이 드러나면서 스캔들로 비화됐다. 클린턴은 몇 달 후 사면 스캔들이 잠잠해지자 클린턴재단을 설립해 공개 활동을 재개했다. 클린턴은 재단을 통해 2004년 인도양 쓰나미와 2005년 미국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대형 피해가 발생했을 때 약 1억 6000만 달러(약 1896억원)의 구호금을 모금했으며, 미국 공립학교에서 설탕 음료를 퇴출하는 등 공익 사업도 진행했다. 또 1994년 재임 당시 르완다에서 인종청소를 막지 못한 죄책감으로 퇴임 이후 르완다 등 아프리카에 병원을 건립하는 데 많은 돈을 지원했다. ●클린턴·부시, 나란히 ‘실패한 킹메이커’로 클린턴은 재단 활동을 위해 총 20억 달러의 기부금을 모았는데, 기부자 중에는 자국민의 인권을 탄압하는 사우디아라비아 왕실이나 이라크에서 민간인에게 총기 난사를 한 미국 사설경호업체 블랙워터 등 논란 많은 단체가 포함돼 있는 것으로 드러나 비판을 받기도 했다. 클린턴 자신도 퇴임 이후 강연과 집필로 1억 5000만 달러(약 1780억원)를 벌어들여 전직 대통령이라는 지위를 전 세계적 돈벌이로 이용했다는 비아냥도 샀다. 클린턴이 퇴임 이후에도 대외 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는 것과 달리 부시는 자신의 정치적 고향인 텍사스에서 조용하고 평범한 삶을 누리고 있다. 부시는 텍사스 집에서 머물며 이웃과 바비큐 파티를 하고 골프를 치며 산악자전거를 타는 등 정계 입문 전에 즐겼던 개인적 활동을 주로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재단이 자궁암 퇴치를 위한 프로그램을 확대하고 병원을 보수하는 사업을 하고 있는 아프리카에 이따금 방문하는 것이 주요 대외 활동의 전부다. 부시는 지난 2월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부상을 입은 군인 66명의 초상을 직접 그려 책으로 출간하면서 언론의 주목을 받은 바 있다. 부시는 퇴임 이후 그림에 취미를 붙여 자신과 세계 지도자의 얼굴이나 개를 그려 오다가 부상 장병의 초상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부시가 자신이 결정한 이라크 침공과 관련해 정치적 의도를 갖고 부상 장병의 초상을 그리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 제기되지만 부시의 연설작성가인 폴 웨너는 “초상화는 참전 용사에 대한 경의의 표현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클린턴과 부시는 올해 가족의 대선 운동을 지원하며 함께 정치 무대에 복귀했다. 클린턴은 부인 힐러리의 민주당 경선 및 대선 유세에 직접 나서면서 선거 캠페인에 깊이 개입했으며, 공개 활동을 꺼렸던 부시도 동생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가 공화당 경선에 나서자 유세에 참가해 동생을 지원했다. 하지만 젭은 경선의 문턱도 넘지 못했고, 힐러리는 본선에서 도널드 트럼프에게 패하면서 클린턴과 부시는 ‘실패한 킹메이커’가 됐다. 미국의 전직 대통령 중 가장 인기가 많고 모범으로 꼽히는 인물은 지미 카터(92·퇴임 당시 57세) 전 대통령이다. 카터는 1980년 재선에 실패하면서 불명예 은퇴했지만, 1982년 설립한 카터 센터를 통해 각종 공익 활동에 나서면서 명예를 회복했다. 카터 센터는 100여개국의 선거를 감시하며 전 세계에 민주주의를 증진시켰으며, 아프리카에서 유행하던 메디나충의 근절에도 노력을 기울여 1986년 350만명에 달하던 감염자 수를 지난해 22명으로 획기적으로 줄이기도 했다. 카터는 이러한 성취를 인정받아 2002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카터, 전직 대통령 지위 자선활동 자리로 재정의” 카터는 평화에 대한 자신의 어젠다를 추구하기 위해 퇴임 이후에도 외교적 문제에 관여했다. 카터는 1993년 북핵 위기가 발생하자 이듬해 개인 자격으로 북한을 전격 방문해 김일성 주석과 면담하면서 미국과 북한을 중재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는 또 조지 H W 부시 정부가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정권을 붕괴시키기 위한 동맹을 형성하고자 하자 유엔의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이사국에 로비해 미국의 시도를 저지시키기도 했다. 주간 애틀랜틱은 “카터는 전직 대통령이라는 지위를 인도주의적이고 자선적인 활동을 하는 자리로 재정의했다”고 평가했다.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탄핵 위기에 몰려 미국 역사상 처음 대통령직에서 사임한 리처드 닉슨(퇴임 당시 61세) 전 대통령은 사임 이후 명예 회복을 지속적으로 시도했다. 닉슨의 부통령이었던 제럴드 포드는 1974년 닉슨의 사임으로 대통령직을 승계한 뒤 닉슨이 대통령 재임 기간 저지른 모든 범죄를 사면했지만, 닉슨의 추락한 명예는 회복시키지 못했다. 닉슨은 백악관에서 쫓겨나다시피 나와 고향 캘리포니아로 돌아간 뒤 억울함과 분노로 인해 병까지 얻기도 했다. 닉슨은 이후 자서전을 출간하고 언론과 인터뷰를 하면서 대외 활동에 나섰고, 자신의 정치적 유산인 중국과의 데탕트를 과시하기 위해 중국을 다시 방문하기도 했다. 닉슨은 카터 정부가 1978년 중국과 관계 정상화를 할 때 조언을 주기도 했다. 하지만 닉슨은 생전에 전직 대통령으로서의 예우는 받지 못했다. 닉슨의 동료들은 기금을 모아 1990년 닉슨도서관을 건립했지만, 정부로부터 공식 대통령기념관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닉슨이 1994년 숨을 거둔 뒤 클린턴 당시 대통령은 장례식에서 닉슨의 외교적 성취를 평가하는 추도 연설을 했으며, 그로부터 13년이 흐른 2007년에 닉슨도서관은 연방 대통령기념관 시스템에 공식적으로 포함되게 됐다. 애틀랜틱은 오바마가 퇴임 이후 부시와 비슷하게 정적인 삶을 보낼 것이라고 내다봤다. 두 사람 모두 애초에 대통령직에 대한 열망이 적었고 대중의 관심을 바라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다만 오바마의 선임고문인 발레리 자렛은 “오바마가 서핑만 하며 소일하진 않을 것”이라면서 “오바마는 자신의 사회적 의무를 강하게 인식하고 있기에 어떤 식으로든 사회 참여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세금 없다던 北, 연말행사비 명목 가구마다 강제모금…자금난 방증”

    “세금 없다던 北, 연말행사비 명목 가구마다 강제모금…자금난 방증”

     국제사회 대북 제재로 자금난을 겪는 것으로 알려진 북한이 연말 행사 모금 명목으로 가구당 일정액을 걷기 시작했다고 요미우리신문이 소식통을 인용해 18일 전했다.  요미우리는 ‘김정은 체제 흔들리는 충성’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북·중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당국은 11월쯤부터 가구당 0.7달러(약 830원)를 징수하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북한 원화의 미국 달러 대비 공식환율은 1달러에 110원 정도지만, 실제 시장 환율로는 8300원 정도로 추산된다.  신문은 “김정은의 군 최고사령관 취임 5년(이달 30일) 등 연말행사에 대한 모금 명목”이라면서 “(가구당 걷는 0.7달러는) 농가의 10일치 생활비를 넘는다고 한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평안북도 정부 관계자가 친한 중국인에게 ‘농민들은 하루하루 (필요한) 쌀만으로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불만을 터뜨렸다”고 소개했다.  신문은 “이러한 배경에는 제재에 의한 자금난이 있는 듯하다”며 “(북한산) 석탄 수출 상한제가 마련된 11월 유엔 제재로 더욱 곤란을 겪는다는 게 확실하다”고 분석했다.  최근 우리 정부는 지난 3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제재 결의(2270호)와 한국과 일본, 미국, 유럽연합(EU) 등의 전방위 제재로 북한의 외화수입이 2억 달러가량 줄었을 것으로 추정한 바 있다.  신문은 또 북·중 국경 지역 북한 무역 관계자들이 김일성과 김정일 배지를 용돈 벌이로 판매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건축가 황두진의 무지개떡 건축을 찾아서] 우두커니 알 수 없는 존재감, 공허함만 맴도네

    [건축가 황두진의 무지개떡 건축을 찾아서] 우두커니 알 수 없는 존재감, 공허함만 맴도네

    연재를 시작하면서 다짐한 것이 있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모든 건물을 직접 가서 본 후 글을 쓰겠다는 것이었다. 사진도 가급적 직접 찍은 것을 사용하고자 했다. 이제 연재의 마지막 글을 쓰면서 그 원칙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접는다. 직접 보지 않은, 아니 그럴 수 없는 도시에 대한 글이기 때문이다. 사진 자료는 북한의 도시와 건축 연구에 있어 독보적인 존재인 재미 건축가 임동우 선생으로부터 받았다. 구글 어스와 네이버, 다음 지도 등으로 평양의 주요 거리 이름을 파악했고, 주로 서구인들이 유튜브에 올려놓은 관련 동영상을 통해 낯선 도시의 거리 풍경을 볼 수 있었다. 또한 국토교통부가 만든 국가공간정보유통시스템인 브이월드(http://map.vworld.kr) 역시 평양에 대한 입체 건물 정보를 비교적 자세히 소개해 놓고 있어 큰 도움이 됐다. 즉 공개된 자료들을 가지고, 최대한 객관적으로, 그러나 어쩔 수 없이 상당 부분 추측하며 쓰는 글이다. # 쉽게 가볼 수 없는 도시 ‘평양’ 개별 사례를 이야기하기 전에 사회주의 도시계획에 대한 기본적인 설명이 필요할 것이다. 토지와 자본이 원칙적으로 국가 소유이므로, 도시 내의 자원을 분배하는 도시계획이야말로 사회주의 이념의 기본을 잘 보여 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우선 이들은 평등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도농 간의 격차를 줄이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즉 대도시라는 개념 자체에 반대한다. 도시가 성장하면 사회적 격차가 커지는 것으로 보기 때문에 이를 억제하기 위해 국가 차원에서 많은 수단을 동원한다. 자연스러운 성장 보다는 계획적인 성장을 도모하는 것이다. 중국과 같은 예외가 있지만, 사회주의 계열 국가에 대체로 거대 도시가 많지 않은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어쩔 수 없이 생긴다고 하더라도 가장 대표적인 도시에 국한되고 그다음 도시들은 규모가 상당히 작아진다. 북한의 경우도 수도인 평양직할시의 인구는 325만명이지만, 두 번째 도시 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함흥과 청진은 67만명에 불과하다. 또한 같은 이유에서 도농 간의 통합을 지향한다. 그래서 도시 안에도 의외로 경작지가 있다. 평양의 채소 공급지로 알려져 있는 대동강의 두루섬 같은 곳이 대표적인 예다. 또 다른 특징은 직주근접을 강조한다는 것이다. 사실상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중요한 개념이기 때문에 사회주의만의 독창적인 내용이라고 보기는 어려우나, 생산과 유통시설을 주거지역에 근접 배치해 노동자 계급의 복지를 증진시키려는 것이 목적이다. 북한 관련 동영상에 걸어다니는 사람들이 많이 등장하는 것은 이러한 도시구조와도 관계가 있다. 대한민국으로 치면 아파트 단지 내에 공장과 매장이 들어서는 것 같은 상황인데, 이렇게 다양한 도시 기능이 복합된 주거 지역을 특별히 ‘마이크로 디스트릭’(micro district)이라는 명칭으로 부르기도 한다. 1920년대에 처음 도입된 이 개념은 소련이 붕괴되면서 비판받기 시작해 지금은 유명무실한 상태다. 직주근접은 물론 자본주의 도시 이론에서도 중요한 개념으로 등장한다. 이처럼 자본주의 도시와 사회주의 도시가 서로 이론적 입장을 교환 혹은 공유하는 것은 일종의 사상적 역설이라고나 할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로 발터 벤야민의 ‘아케이드 프로젝트’에서 나오는, 푸리에 등이 꿈꿨던 이상적 공산사회의 도시건축적 장치인 아케이드가 오히려 자본주의가 심화되면서 더 발달했다는 지적 등을 언급할 수 있겠다. 평양의 경우 요즘은 오히려 체제의 선전을 위해 고층 건물들이 들어서는 추세지만 기본적으로는 중층의 획일적인 밀도로 도시의 대부분을 채우고 있다. 고밀도에 익숙한 자본주의 도시와 비교하면 길도 넓고 공원 등 녹지 등이 많이 확보돼 있어 마치 전원 도시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이 역시 전쟁 시 폭격에 대비해 미리 도시의 각 지역을 이격시킨 것이기도 하다. 한국전쟁 당시 미군 폭격기 조종사들이 ‘더이상 폭격할 목표물이 없다’며 그냥 돌아왔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평양은 완벽하게 파괴된 바 있다. 그 뼈저린 기억이 아직 남아 있어서 도시계획에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체제의 선전과 홍보를 위한 대규모 가로와 광장, 그리고 각종 기념물들이 더해지면 우리가 일반적으로 이해하는 사회주의 도시, 그중에서도 특정 개인 및 집단을 우상화해 온 평양의 도시적 특징이 만들어진다. # 무지개떡 건축은 평양을 이해하는 하나의 단서 이런 배경에서 보면 평양에 사회주의판 무지개떡 건축이 상당히 많을 것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다만 소비를 중심으로 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처럼 거리를 활기 있고 즐겁게 만드는 역할보다는 기본적인 삶의 조건들을 충족시켜 주는 정도의 성격이 더 강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전반적인 경제 수준, 특히 소비문화의 현격한 차이 또한 염두에 두고 볼 필요가 있다. 특히 유튜브의 관련 동영상들을 살펴보면 일부 지역에 이런 건물이 상대적으로 더 많이 분포돼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동영상으로 확인한 범위 내에서 이야기하자면 대표적으로는 서울의 강북에 해당하는 서평양의 주요 간선도로인 영광거리(평양역과 평양대극장 사이)와 김일성광장을 관통하는 승리거리의 남단 부근에서 많이 발견된다. 다만 서울로 치면 강남에 해당하는 대동강 너머의 상대적 신개발지 동평양 지역의 동영상에서는 이렇다 할 무지개떡 건축의 존재를 볼 수 없었다. 물론 주로 관광객들이 검열을 받아 가며 찍어 올린 동영상임을 감안하고 봐야 할 것이다. 심지어 관광객들이 갈 수 없는 거리도 많다고 하니 평양이라는 도시 전체에 대한 이야기를 할 상황은 아니다. 특이한 것은 동영상에 등장하는 무지개떡 건물들이 대체로 오래돼 보인다는 것이다. 그리고 건물의 양식에서 유럽의 사회주의 건축의 영향이 읽히기도 한다. 한국전쟁 이후 북한의 재건에는 구소련을 포함한 동구권 국가들과 중국 인민지원군이 대거 참여했다. 사회주의 도시계획의 이념을 충실히 따르고 있었을 때는 이런 유형이 많이 지어졌지만 그 이후에는 점차로 사라진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할 뿐이다. 한국전쟁 당시 평양은 너무 심하게 파괴돼 다른 공산권 국가들은 아예 수도 이전을 권했으나 김일성의 의지, 그리고 젊은 건축가 김정희 등의 노력으로 1953년 그러니까 한국전쟁 종료를 전후해서 ‘평양 마스터플랜’의 발표와 함께 전후복구가 시작된 바 있다. 최근에는 대동강변의 미래과학자거리에 초고층 주상복합이 등장하는 등 북한이 국제도시로서 평양의 외형적 면모를 일신하는 데 상당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여기 몇 장의 사진을 소개한다. 전후 복구 과정에서 지어진 것으로 짐작되는, 동유럽 사회주의 건축의 분위기가 풍기는 사례부터 비교적 최근에 지어진 것으로 보이는 사례까지 비교적 다양하다. 지명이 보이는 사례의 경우 지도에서 확인해 보면 역시 평양 구도심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아마 거의 전부가 서평양 중에서도 오래된 지역에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사진 1은 전혀 위치를 짐작할 수 없을 뿐 아니라 간판이 아예 없기 때문에 거리에 면한 저층부의 용도가 무엇인지도 파악되지 않는다. 다만 색채와 창을 내는 방식 등이 차이가 있는 것으로 보아 저층부에 비주거 기능이 들어가 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주거 부분은 발코니와 창틀에 화분이 놓여 있는 등 어느 정도 생활의 흔적과 온기가 느껴진다. 전체적인 분위기로 보아 비교적 오래된 건물로 짐작된다. 역시 창턱이 높고 게다가 입구에도 계단이 있어서 거리의 분위기를 밝게 하는 데는 전혀 기여하지 못하고 있다. 사진 2는 ‘대동문’이라는 이름으로 보아 평양성 내성의 동문이면서 북한 국보 4호인 대동문 인근 지역에 있는 건물인 듯하다. 대동문이 인민대학습당과 만수대 회관 중간의 대동강변에 있으므로 이 역시 서평양의 구도심 지역이다. 식료품 상점으로서 일상생활을 위한 기초적인 먹거리 공급이 주목적이므로 거리의 분위기를 활기 있게 하는 데는 거의 기여하지 않는다. 자본주의 도시 같으면 창문의 높은 턱을 없애고 밖에서도 내부를 훤히 볼 수 있거나 사람들이 쉽게 드나들 수 있는 구조로 만들었을 것이다. 상층부는 주거 시설일 텐데 생활의 흔적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상가 부분은 타일로 비교적 깨끗하게 마감했다. 사진 3은 여러 가지 점에서 흥미롭다. 일단 건축 양식으로 보아 전후에 동구권 국가들이 직접 참여해 건설한 사례로 짐작된다. 서구 고전 건축에서 흔히 사용되는 저층부의 거친 석재 처리, 난간의 디테일, 그리고 외벽의 색채 등에서 그런 단서를 읽을 수 있다. 다만 실제 석재는 아니고 콘크리트에 도색을 한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점은 낚시도구라는 일종의 여가를 위한 도구를 파는 상점이라는 것이다(물론 대동강 등에서 생계형 낚시를 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으나 확인할 방법은 없다). 역시 밖에서 내부가 잘 보이지 않고 높은 창턱, 입구의 계단 등 또한 공통적이다. 에어컨 실외기를 무심하게 거리 쪽으로 설치하는 것은 유감스럽게도 남북한이 공통이다. 사진 4는 비교적 신시가지다. ‘창전’이라는 이름이 보이는 것으로 봐서 만수대 주변, 북한의 최고 부촌으로 알려진 창전거리 인근 지역으로 추측된다. 부착형 간판과 수직형 돌출 간판이 동시에 붙어 있는 것이 특이하다. 그러나 옷상점에서 기대하는 화려한 전시와 조명 등의 개념은 아예 찾아볼 수 없다. 역시 창턱이 높고 입구에는 계단이 있다. 보행자를 자연스럽게 유도하려는 노력이 특별히 보이지 않는다. 거리에 면해 있다고 해서 보행자 친화적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잘 보여 주는 사례다. 디테일의 지원을 받지 않는 개념은 무의미하다. 사진 5는 5, 6층 내외의 중층 건물이다. ‘오탄’은 서울의 여의도에 해당하는 양각도 건너편의 대동강변 지역이다. 식료품 상점이지만 역시 내부가 잘 보이지 않고 높은 창턱과 입구의 계단 등도 예외 없는 공통점이다. 상층부 주거의 열린 창문을 통해 커튼, 일부 생활 집기 등이 엿보인다. 구매활동의 즐거움과는 거리가 먼 오직 실용적인 목적에만 충실한 디자인이다. 남북 관계가 최악의 상태인 지금 북한의 도시와 건축에 대한 관심은 단순 호기심이거나 혹은 공허함으로 다가올지 모른다. 그러나 언젠가 어떤 식으로든지 관계라는 것이 만들어질 것이라고 가정한다면 그 시각은 당연히 전면적으로 수정돼야 한다. 여느 도시나 그렇듯이 수많은 층위가 복잡하게 얽혀 있을 평양이라는 도시를 이해하는 하나의 단서로 이 연재의 관점이 적절하다고 생각돼 제일 마지막 대상지로 삼게 됐다. 이것으로 부족한 글을 마친다.
  • “조만간 망한다”던 김정은 정권 벌써 5년...“체제 안정화 국면 들어섰다”

    “조만간 망한다”던 김정은 정권 벌써 5년...“체제 안정화 국면 들어섰다”

    북한 김정은 정권이 집권 5년을 넘어서면서 안정화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전문가들의 진단이 나왔다. 체제 자신감을 바탕으로 남한에 예상 밖 도발을 감행할 가능성이 커졌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는 8일 서울 광화문 센터포인트빌딩에서 ‘김정은 체제 5년의 북한 진단 그리고 남북관계’를 주제로 제3차 통일정책포럼을 개최했다. 이정철 숭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올해 36년 만에 당 대회를 한 북한이 생각보다 빠르게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며 “5년마다 개최해야 하는 당 대회를 35년 동안 개최하지 않은 것은 북한이 ‘고난의 행군’ 시기부터 올해까지를 비상체제로 봤기 때문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를 뒤집어 보면 북한이 이제 당-국가 체제라는 정상 국가 체제로 회귀하기 위한 시도를 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김정은은 이번 당 대회를 통해 조직지도부가 당과 국가의 중심이고 자신이 그 정점에 있다는 점을 선언했다”며 “김일성대를 나온 김정일과 달리 김정은은 군사대학을 수료함으로써 군부에 대한 정당성도 확보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김정은 시대가 김정일 시대와 확연히 다른 점은 당이 군을 완전히 장악해 ‘군복 입은 당’이라는 당-국가 체제의 원형을 회복했다는 점”이라면서 “이후 김정은은 다양한 숙청, 은퇴, 강등, 재임용이라는 ‘견장 정치’로 군부와 관료 길들이기에 나섰고 그 결과 엘리트 균열의 가능성을 봉합하는 데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또 “문제는 유엔의 대북제재가 강화되고 있지만 김정은 또한 자신의 기반을 강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북한의 대응이 강 대 강 대결 국면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도 “현재 나타나는 북한 군부의 잦은 인사는 김정은식으로 군을 장악하기 위해 철저히 계산된 것이라는 평가가 설득력을 얻는다”는 견해를 밝혔다. 김 교수는 “북한은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 외 저비용 고효율의 선별된 재래식 전력에 대해서도 집중적으로 군사력 건설을 도모하고 있다”며 “북한의 신형무기 개발과 이에 따른 대남 전술 변화에 대해 면밀한 대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상현 세종연구소 연구기획본부장은 이날 행사를 위해 준비한 글에서 “북한은 핵 능력에 대한 자신감을 확보하고 김정은의 권력 강화를 위해 더욱 호전적인 위협과 도발을 강구할 것”이라면서 “핵과 미사일 등 고강도의 전략적 타격 능력뿐 아니라 한국과 미국의 의표를 찌르는 도발을 감행할 여지가 커지고 있다”고 전망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국제우주정거장에서 본 평양은 한산했다(영상)

    국제우주정거장에서 본 평양은 한산했다(영상)

    세계에서 가장 폐쇄적인 국가로 꼽히는 북한의 내부는 다른 나라도 엿보길 원하는 것 같다.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은 1일(현지시간) 국제우주정거장(ISS)에서 촬영한 북한 평양의 모습을 담은 영상 한 편을 소개했다. 이 영상은 지난 5월 30일 400㎞ 상공에서 ISS에 장착돼 있는 고해상도 카메라 ‘아이리스’(Iris)로 촬영한 것이다. 영상은 평양 내부에 있는 주북한 중국대산관, 개선청년공원, 김일성경기장, 평양개선문 등 여러 랜드마크를 보여준다. 또 대동강 너머로는 문수 물놀이장, 능라도에는 곱등어관으로 불리는 돌고래쇼장의 모습도 찍혀 있다. 특히 평양의 모습은 오가는 차량이 없어 도로는 텅 비어 있고 인적도 드물어 마치 모든 것이 정지된 것 같다. 이 영상을 제공하는 캐나다 기업 어스캐스트(UrtheCast)의 기술자들은 “금수산태양궁전 부지 안에서나 간신히 사람들이 걷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어스캐스트는 러시아연방우주국(Roscosmos)과 1000억 달러 계약을 체결해 2년 전 ISS의 러시아 세그먼트에 아이리스 카메라를 설치했다. 이 카메라는 도로 위 차량은 물론 해변에 넘실대는 파도까지 선명하게 찍을 만큼 성능이 뛰어나다고 한다. 어스캐스트는 이 카메라를 통해 지구에 관한 상세한 정보를 수집하는 기업이나 개인에게 데이터를 제공한다. 예를 들어, 산림 벌채를 추적하거나 교통량 모델을 제작하는 전문가들이 이 카메라의 데이터를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어스캐스트는 북한 외에도 지난해 아랍에미리트의 두바이와 이집트 가자의 피라미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케이프타운 일대를 촬영한 바 있다. 사진=어스캐스트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국제우주정거장(ISS)서 본 평양…인적 드물어(영상)

    국제우주정거장(ISS)서 본 평양…인적 드물어(영상)

    세계에서 가장 폐쇄적인 국가로 꼽히는 북한의 내부는 다른 나라도 엿보길 원하는 것 같다.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은 1일(현지시간) 국제우주정거장(ISS)에서 촬영한 북한 평양의 모습을 담은 영상 한 편을 소개했다. 이 영상은 지난 5월 30일 400㎞ 상공에서 ISS에 장착돼 있는 고해상도 카메라 ‘아이리스’(Iris)로 촬영한 것이다. 영상은 평양 내부에 있는 주북한 중국대산관, 개선청년공원, 김일성경기장, 평양개선문 등 여러 랜드마크를 보여준다. 또 대동강 너머로는 문수 물놀이장, 능라도에는 곱등어관으로 불리는 돌고래쇼장의 모습도 찍혀 있다. 특히 평양의 모습은 오가는 차량이 없어 도로는 텅 비어 있고 인적도 드물어 마치 모든 것이 정지된 것 같다. 이 영상을 제공하는 캐나다 기업 어스캐스트(UrtheCast)의 기술자들은 “금수산태양궁전 부지 안에서나 간신히 사람들이 걷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어스캐스트는 러시아연방우주국(Roscosmos)과 1000억 달러 계약을 체결해 2년 전 ISS의 러시아 세그먼트에 아이리스 카메라를 설치했다. 이 카메라는 도로 위 차량은 물론 해변에 넘실대는 파도까지 선명하게 찍을 만큼 성능이 뛰어나다고 한다. 어스캐스트는 이 카메라를 통해 지구에 관한 상세한 정보를 수집하는 기업이나 개인에게 데이터를 제공한다. 예를 들어, 산림 벌채를 추적하거나 교통량 모델을 제작하는 전문가들이 이 카메라의 데이터를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어스캐스트는 북한 외에도 지난해 아랍에미리트의 두바이와 이집트 가자의 피라미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케이프타운 일대를 촬영한 바 있다. 사진=어스캐스트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포토] 롤러블레이드 타고 김일성광장 가로지르는 북한 주민들

    [포토] 롤러블레이드 타고 김일성광장 가로지르는 북한 주민들

    북한 평양의 김일성광장 인민대학습당 앞에서 북한 주민들이 줄지어 롤러블레이드를 타고 광장을 가로지르고 있다. 사진=AFP 연합뉴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한반도 운명의 카운트다운 시작?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한반도 운명의 카운트다운 시작?

    내년 1월 출범할 트럼프 행정부의 외교안보라인에 군 출신의 초강경 인사들이 대거 포진하면서 김정은 정권의 앞날에 먹구름이 끼고 있다. 트럼프 당선인은 가장 가까이서 외교안보정책을 보좌할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에 “세계 대전도 치를 준비가 되어 있다”고 호언하는 마이클 플린 전 국방정보국(DIA) 국장을, 국방정책을 총괄할 국방장관에 ‘미친 개(Mad dog)’로 불리는 제임스 매티스 전 중부군사령관을 내정했다. 플린 전 국장은 김정은 체제가 더 이상은 존속되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여러 차례 해 온 바 있다. 매티스 전 사령관 역시 최근 트럼프와의 면담에서 북한 문제를 진지하게 논의한 것으로 알려져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미국의 대북정책에 중대한 변화가 올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 미국과 중국에서 이상한 움직임이 감지되기 시작했다. 중국군 고위장성이 미국에 간 까닭? 지난 10월 31일, 중국의 서부 지역을 담당하는 서부전구(西部戰區) 사령원 자오종치(赵宗岐) 상장이 하와이에 있는 미 육군 태평양사령부를 방문했다. 우리 군으로 따지면 4성 계급으로 야전군 사령관에 해당하는 자오 상장은 11월 2일에는 미국 본토에 있는 미 육군 제1군단 사령부를 방문했다. 이 방문단에는 서부전구 소속 육군소장 1명과 공군소장 1명을 비롯한 3명의 장군과 6명의 영관급 장교가 대동했다. 고위 장성이 해외 국가를 찾아 군부대를 방문하는 것은 흔한 일이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정책부서에 근무하는 경우에 국한된다. 야전에서 부대를 지휘해야 하는 지휘관이 임기 중 해외 국가를 찾는다는 것은 대단히 드문 일이다. 더욱이 혼자 간 것이 아니라 고위 장성들은 물론 실무를 맡는 영관급 장교들까지 상당수 대동하고 외국을 방문한다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더 의구심이 드는 것은 미 육군이 밝힌 자오 상장의 방미 목적이다. 미 육군 제1군단 사령부는 자오 상장의 방문단이 재난구조(Disaster relief)와 인도적 지원(Humanitarian aid) 문제 협의를 위해 미국을 찾았다고 밝히고 있다. 그런데 미 육군 제1군단과 중국인민해방군 서부전구는 그 어떤 하등의 접점도 없는 부대라는 점에서 의문점은 시작된다. 미 육군 제1군단은 태평양 육군 예하 부대로서 한국과 일본, 호주와 동남아시아를 비롯한 서태평양 지역을 관할하고 있는 부대다. 중국 서부전구는 티베트와 신장웨이우얼자치구(新疆维吾尔自治区), 닝샤후이족자치구(宁夏回族自治区)를 비롯해 쓰촨성(四川省), 윈난성(云南省), 간쑤성(甘肃省), 산시성(陕西省), 칭하이성(靑海省) 등 주로 서부 사막과 고원지대를 관할하는 부대다. 즉, 이들 부대 간 작전구역의 접점은 없으며, 만약 중국군이 미 육군 제1군단과 인도적 지원을 위한 훈련을 한다면 한반도 지역을 담당하고 있는 북부전구가 나서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서부전구의 고위 장성을, 그것도 부대를 지휘하는 지휘관과 참모들과 함께 미국에 보내 재난구조와 인도적 지원에 관한 협의를 진행했다. 일각에서는 이 협의의 배경이 11월 중순에 중국 윈난성(云南省) 쿤밍(昆明)에서 실시된 미·중 연합 재난대응 훈련의 실무 사안을 논의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도 내놓고 있지만, 매년 실시되는 훈련의 실무 협의를 위해 고위급 장성이 참모들을 대동하고 직접 미국을 찾을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그렇다면 자오 상장은 미국에 왜 갔으며 도대체 어떤 협의를 하고 돌아온 것일까? 곳곳에서 발견되는 이상 징후 자오 상장이 미 육군 제1군단을 찾은 것은 제1군단 예하의 지원부대인 제593원정지원사령부(이하 593ESC)와 모종의 협의를 하기 위해서였다. 593ESC는 헌병여단과 의무여단 각 1개, 그리고 통신대대로 구성되는데, 이 부대의 임무는 관할 구역 내에서 전쟁이 발발하면 가장 먼저 투입되어 미군과 동맹군의 군사력 전개를 지원하고, 작전구역 내 치안유지 및 의료지원을 제공하는 것이다. 그런데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중국군 서부전구와 미 육군 593ESC 사이에는 작전구역이 겹치지 않기 때문에 서부전구 최고 지휘관이 굳이 이 부대를 찾아 실무 협의를 진행할 그 어떤 현안도 존재하지 않는다. 더욱 이상한 점은 자오 상장과 중국군 방미단이 593ESC를 방문한 당일, 한국군 장교들도 이 부대에서 유사한 주제로 회의를 했다는 사실이다. 이날 593ESC에는 한국군 제3야전군 사령부 소속으로 한미연합사단의 참모장 등 핵심 보직을 맡고 있는 6명의 영관급 장교가 와 있었다. 즉, 같은 날 같은 장소에 한국과 미국, 중국의 장교들이 난민통제와 인도적 지원 등 같은 주제를 가지고 회의를 했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영관급 장교들이 참석하는 국제회의는 실무 차원의 협력 사안을 조율하기 위해 개최된다. 따라서 지난 11월 2일 루이스-맥코드 합동기지의 593ESC에서는 한·미·중 3국의 군 실무자들이 북한 급변사태로 대량의 난민이 발생했을 경우에 대비한 실무 회의를 가졌다고 추론할 수 있다. 미국과 중국은 11월 2일 회의에 이어 11월 11일부터 13일까지 사흘 동안 중국 윈난성 쿤밍에서 같은 주제로 실무 회의를 가졌다. 중국 국방부 보도 자료에 따르면 이 회의에는 양측 관계자 20여 명이 참석했으며, 다국적 연합군의 구조작업 및 재해 감소 작전, 국제적 인도주의 지원 작전 참가를 위한 절차와 시스템, 산악지형에서의 인도적 지원 작전의 주제가 논의되었다. 이들이 논의한 국제적 인도주의 작전의 대상지와 산악지형은 과연 어디를 의미하는 것일까? 이러한 회의를 전후하여 한·미·중 3국은 그동안 실시되지 않았던 유형의 군사훈련을 실시했다. 한국은 10월 29일부터 11월 6일까지 해군과 해병대 병력이 참가한 가운데 난민 통제와 수송, 의료지원 등 민사작전 훈련을 처음으로 실시했다. 또한 정치권의 강력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을 강행 처리하고, 한일 군수지원협정 체결을 추진하는 등 일본과의 군사협력을 위한 제도적 장치를 급히 마련하려 하고 있다. 통상 연말에 실시되는 전군주요지휘관 회의를 이례적으로 한 달 일찍 실시하고, 장병들에게는 “동요하지 말고 적만 바라보며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라”는 지시를 거듭 반복하고 있다. 미국은 10월 31일부터 11월 3일까지 한국에 거주하는 미국 시민권자들을 일본으로 대피시키는 훈련(Courageous Channel 2016)을 7년 만에 실제 기동훈련으로 실시한데 이어, 11월 13일부터 19일까지 윈난성 쿤밍에서 미·중 재난대응 훈련(U.S-China Disaster Management Exchange 2016)을 실시하며 난민에 대한 통제 및 인도주의적 지원 절차를 훈련했다. 또한 특히 토마스 밴달 미8군사령관은 11월 8일 강연회에서 북한 안정화 작전에 대한 언급과 함께 “통일 준비가 됐다”는 발언을 함으로써 그 발언의 의미가 무엇인지 관심이 모아지기도 했다. 이상 징후는 중국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중국은 옌벤조선족자치주(延邊朝鮮族自治州) 지역을 시작으로 북·중 접경지역의 철조망과 경계초소를 급속도로 보강하기 시작했고, 접경지역 일대에 제16집단군 예하 정규군과 무장경찰 병력을 대폭 증강하는 한편, 북한과 마주보고 있는 지린성 카이샨툰(開山屯)에 대규모 병력 주둔을 위한 군 기지 건설에 착수했다. 이와 더불어 최근까지 단둥(丹東)과 신의주, 지안(集安)과 만포, 쑹장허(松江河)와 혜산, 허룽(和龙)과 무산을 잇는 4개 축선에 대한 철도와 도로 증축을 마무리지었다. 이는 유사시 군사력을 신속하게 국경 지역으로 투입해 북한 영내로 진입할 수 있는 여건을 보장하고, 북한에서 대량의 난민이 발생해 중국 국경 지역으로 쏟아져 들어올 경우 이를 효과적으로 통제하기 위한 사전 준비 작업으로 의심되고 있다. 일본 역시 긴박하게 움직이고 있다. 일본은 11월 초 일본 안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외국의 분쟁 등 ‘주요 영향 사태’를 상정, 자위대 2만 5000여 명과 미군 1만 1000명의 병력이 참가하는 대규모 연합훈련인 킨 소드(Keen Sword) 훈련을 실시하며 유사시 미군 후방 지원과 탄도 미사일 방어 절차를 숙달했다. 곧이어 11월 15일 각의에서 자위대의 해외 무력 사용 범위를 확대하는 방안을 의결했고, 17일 아베 총리가 트럼프 당선인을 만나고 돌아온 직후 무려 2조원에 달하는 긴급 추경예산을 편성, 미사일 방어 능력을 대폭 보강하기로 결정했다. 이러한 움직임을 눈치 챈 북한의 움직임도 다급해지기 시작했다. 김정은은 11월 들어서만 무려 7차례, 매주 평균 2차례씩 군부대를 방문하고 있다. 월평균 1회 군부대를 찾았던 예년과 달리 군 시찰 횟수가 크게 증가한 것이다. 김정은은 유사시 남한 후방에 침투해 요인암살과 테러, 소요사태 유발 등 후방교란 임무를 수행하는 특수부대는 물론, 전시 후방 보급 임무를 책임지는 후방총국 예하 부대들을 집중적으로 시찰하고 전투준비태세를 점검했다. 또한 각 지역에 김일성·김정일 초상화 등 사적물을 유사시 안전하게 대피시키기 위한 훈련 지침을 하달하는 등 전에 없었던 이상 행보들을 보이고 있다. 10월 말부터 동북아 각국에서 나타나고 있는 이러한 이상 징후들은 주변 강대국들 사이에서 김정은 정권 제거에 대한 모종의 합의가 있었으며, 북한이 핵실험이나 장거리 미사일 발사 등 중대 도발을 할 경우 이것을 구실로 북한에 대한 실제 군사 작전에 나서기 위한 사전 준비 작업인 것으로 보인다. 즉, 미국의 행정부 교체 시기마다 군사 도발을 해 왔던 북한이 트럼프 행정부 출범 전후로 도발을 할 경우 미국과 중국 주도로 북한 정권 교체를 위한 군사작전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대단히 높아졌다는 것이다. 현재까지 공개된 퍼즐들을 맞춰 구성된 시나리오는 이렇다. 북한이 핵실험을 하거나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할 경우, 미국은 이를 미국 본토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 예방적 자위권을 행사한다는 명분으로 해·공군력과 특수부대를 이용해 북한 지도부를 일거에 제거하는 참수작전에 나설 것이다. 이 과정에서 북한이 한국과 일본을 향해 대량의 탄도 미사일을 발사하면 한일정보보호협정으로 정보 교환이 가능해진 한미일 3국의 MD 전력이 북한 미사일 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하며 공동으로 요격에 나설 것이다. 이후 지도부가 제거되어 권력 공백 사태가 발생한 북한 지역에는 한·미·중 3국 병력이 신속히 전개해 대량살상무기를 수거하고 난민을 통제할 것이다. 중국의 경우 공업시설과 인구가 밀집된 동북3성 지역으로의 난민 유입은 극심한 사회 혼란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고, 이들 난민 유입으로 인한 혼란이 자칫 중국 내 소수민족의 분리독립 운동을 자극할 우려가 있기 때문에 이들을 서부전구 통제 하에 있는 서부 사막이나 고원지대와 같은 고립된 지역으로 옮겨 별도의 수용 시설에 격리시킬 가능성이 높다. 이후 중국이 북한 북부 지역을, 한·미 양국이 북한 남부 지역을 군정 통치하여 안정화 작전을 수행하되, 중·장기적으로 중국은 북한 북부 지역에 친중인사로 구성된 정부를 수립해 자신들이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완충지대를 확보하려 할 것이다. 이러한 형태의 시나리오는 미국과 중국, 일본의 국익과 국가전략에 가장 부합한다. 미국은 핵과 ICBM을 개발해 자국 본토 안보를 위협하고 있는 북한을 제거할 수 있고, 중국 입장에서는 “북경과 상해를 향해 원자탄을 날리겠다”며 중국까지도 위협하고 있는 통제 불능의 김정은 정권을 대신할 친중 위성 정권을 수립해 자국 안보를 더욱 굳건히 다질 수 있다. 일본은 대북 군사작전을 계기로 자위대의 보통 군대화는 물론 미국의 핵심 파트너 국가로서 국제사회에서의 영향력을 더욱 키울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극심한 혼란과 경제적 타격을 받게 됨은 물론 사실상 통일과는 상당히 멀어지게 될 것이다. 북한 급변사태 대비를 위한 안정화 작전 수행 능력이 크게 부족할 뿐만 아니라, 현재도 혼란스러운 정국에 대규모 난민 문제까지 더해질 경우 정치권은 패닉 상태에 빠지고, 경제 역시 심각한 위기 상황에 내몰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무엇보다, 북한 북부 지역에 중국의 위성정권이 들어설 경우 한반도의 온전한 통일은 사실상 요원해진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주변 정세가 이토록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사실들이 국내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정치권과 국민 그 누구도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역사를 돌이켜 볼 때 한반도 전체를 휩쓴 대규모 전란 직전에는 항상 극심한 정쟁(政爭)이 있었다. 임진왜란 전에는 동인과 서인의 갈등이, 6.25 전쟁 직전에는 좌우 이념 대립이 극에 달해 서로 싸우느라 외부의 위협을 보지 못했다. 이처럼 극심한 혼란의 와중에 몰려오는 거대한 전운(戰雲)을 우리나라는 슬기롭게 극복해 낼 수 있을까? 이일우 군사 전문 칼럼니스트(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 finmil@nate.com
  • 국정교과서 ‘대한민국 수립’ 강조하고 北체제 비판 서술 대폭 보강

    국정교과서 ‘대한민국 수립’ 강조하고 北체제 비판 서술 대폭 보강

    28일 공개된 국정 역사교과서에서 눈에 띄는 부분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대한민국 수립’이라고 기술하며 건국 과정의 정당성을 강조한 점과 북한에 대한 부정적 서술을 강화한 점이다. 특히 북한 체제 비판과 관련한 내용은 분량 면에서도 현행 교과서 보다 배 이상으로 늘었고 기술도 상당히 구체적이다. 특히 1948년 8월 15일을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 아닌 ‘대한민국 수립’으로 기술해 ‘뉴라이트’의 시각을 반영, 우편향 논란을 촉발하기에 충분해 보인다. 뉴라이트란 2000년대 들어 ‘새로운 보수’를 지향한다며 등장한 세력으로, 그동안 1948년 8월 15일을 ‘건국절’이라고 주장해왔다. 또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와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 대해 ‘대한민국의 선진화를 저해하는 행위‘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총 7개 단원으로 구성된 고교 한국사에서 현대사 부분은 제일 마지막인 ‘대한민국의 발전과 현대 세계의 변화’에 등장한다. 국정 한국사 교과서는 250쪽 ‘대한민국 수립’이라는 소주제에서 ‘제헌 헌법에 따라 국회에서 이승만과 이시영이 각각 대통령과 부통령에 선출되었고, 광복군 지도자 이범석을 국무총리로 하는 내각이 조직되었다. 대한민국 정부가 구성됨으로써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법통을 계승한 대한민국이 수립되었다’고 기술했다. 현행 검정교과서에 ‘이승만 대통령은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의 수립을 국내외에 선포하였다’(천재교육 308쪽), ‘이승만 대통령은 곧바로 내각을 조직하고 1948년 8월 15일에 대한민국 정부의 수립을 국내외에 선포하였다’(금성출판사 370쪽) 등 ‘정부 수립’이라고 돼 있는 표현을 ‘대한민국 수립’으로 고친 것이다. 대한민국 수립 혹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 이르는 과정을 설명하는 부분도 국정과 현행 검정은 미묘한 차이를 보인다. 우선 현행 교과서는 ‘대한민국 정부의 수립’이라는 소단원에서 ‘총선거에는 김구, 김규식 등 남북 협상에 참여한 정치 세력이 통일 정부 수립을 요구하며 불참하였다. 좌익 세력도 제주도를 비롯하여 전국 각지에서 단독 선거 반대 운동을 벌였다’(천재교육 308쪽), ‘유엔에서 남한만의 단독 선거를 결정하자 좌익 세력을 중심으로 곳곳에서 단독 선거 반대 투쟁이 일어났다’(비상교육 351쪽) 등의 혼란상이 묘사돼 있으나 국정 교과서에는 포함돼 있지 않다. 현행 교과서에는 정부 수립을 전후한 진영 간 갈등 사례도 별도 소주제로 등장한다. 이 가운데 제주 4·3 사건에 대해 현행 교과서는 ‘1948년 4월 3일 제주도에서는 남로당 제주도당의 주도 아래 남한만의 단독 선거 반대와 통일 정부 수립을 주장하는 무장 봉기가 일어났다…미군정은 경찰과 군대를 동원해 무력 진압에 나섰다. 이후 무장 봉기 세력과 토벌대 간의 무력 충돌과 토벌대의 진압 과정에서 수만 명의 무고한 제주도민이 희생당하는 사태가 벌어졌다’(천재 309쪽), ‘이승만 정부는 군인과 경찰, 우익 단체들을 동원하여 대규모 진압 작전을 벌였다.진압과정에서 2만 5000명 이상의 주민들이 희생되는 등 큰 피해가 발생했다’(금성출판사 369쪽) 등 비교적 상세한 기술과 함께 수만명의 제주도민 피해, 이승만 정부의 무력 진압 등에 초점을 맞췄다. 그러나 국정 교과서에는 ‘1948년 4월 3일에는 5·10 총선거를 반대하는 남로당 제주도당의 무장봉기가 일어났다. 1953년까지 지속된 군경과 무장대 간의 무력 충돌과 진압 과정에서 많은 무고한 제주도 주민들까지 희생되었다. 이로 인해 제주도에서는 총선거가 제대로 실시되지 못하였다’(250쪽)라고만 짧게 기술했다. 여수·순천 10·29 사건에 대한 서술도 뉘앙스 차이를 보인다. 검정교과서는 ‘이승만 정부는 제주도에서 일어난 무장 봉기를 진압하기 위해 여수와 순천에 주둔 중이던 국군을 파견하려 했다. 이때 부대 내에 있던 좌익 세력들이 제주도 출동 반대,통일 정부 수립 등의 구호를 내세우며 반란을 일으켰다. 정부는 여수·순천 지역의 반란을 진압하는 동시에,군대 내 좌익 세력을 몰아내는 숙군 작업을 강화하였다. 1948년에는 좌익 세력의 활동을 근본적으로 차단하려는 의도 아래 국가 보안법을 제정하였고, 이듬해에는 국민보도연맹을 조직하였다’(천재 309쪽)고 썼다. 하지만 국정 교과서에는 ‘대한민국 수립 직후인 1948년 10월 19일 여수에 주둔하고 있던 국군 제14연대 내 좌익 세력이 제주도로 출동하라는 명령을 거부하고 반란을 일으켜 여수·순천 지역을 점령하였다. 정부는 계엄령을 선포하고 반란군을 진압하였다’(250쪽)라고 기술했다. 6·25 발발 당시의 서술과 관련해 현행 검정교과서는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이 38도선을 넘어 기습 남침하였다. 3일 만에 서울이 함락되었고 이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이 피난길에 올랐다’(천재 313쪽), ‘인민군은 1950년 6월25일 남침을 강행하였다’(금성 378쪽) 등으로 기술하고 있다. 그러나 국정 교과서는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은 38선 전역에서 불법적으로 기습 남침하였다. 북한군은 치밀하게 준비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불과 3일만에 서울을 점령하였고 7월말에는 낙동강까지 밀고 내려왔다’(254쪽)고 서술, ‘불법적인 기습 남침’을 강조했다. 6·25 전쟁의 피해와 영향을 서술한 부분에서도 시각 차이가 드러난다. 현행 교과서는 ‘전쟁으로 민족 공동체 의식이 약해졌으며 서로 불신하고 적대하는 감정이 깊어지는 가운데 한반도의 분단 체제가 더욱 공고해져 갔다…전쟁 이후 반공은 한국 사회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가치가 되었으며 정부는 국가 보안법을 개정하고 반공 교육을 강화하였다’(천재 314쪽), ‘각지에서 발생한 민간인 희생은 이후 남북한 주민이 상대방에 대한 적개심을 갖게 되고 더 나아가 분단이 굳어지는 데 많은 영향을 미쳤다’(금성 381쪽) 등 민간인 피해나 그로 인한 분단 고착화 등에 초점을 맞췄다. 그러나 국정 교과서는 ‘전선이 오르내리는 동안 좌우 이념 대립은 더욱 격화되었는데, 특히 북한이 강압적으로 시행한 점령지 정책은 많은 반발을 샀다. 전쟁을 통해 국민들이 경험한 공산주의 실상은 전후 한국 사회에서 반공 이념이 자리잡게 된 배경이 되었다’(256쪽)고 기술, 이승만 정부의 반공주의 배경을 설명하는 데 방점을 뒀다. 국정 교과서는 ‘북한의 3대 세습 독재 체제와 남북한 관계’라는 별도 소단원 아래 김일성 독재 체제의 구축, 3대 세습 체제 형성, 탈북자와 인권·이산가족 문제, 북핵 위기와 북한의 대남 도발,평화 통일의 노력 등 5개 주제를 자세히 기술했다. 4페이지 분량으로 현행 교과서에 비해 배 이상 늘어난 분량이다. 김일성 독재 체제 구축과 3대 세습 체제 형성까지의 기술 역시 현행 교과서는 약 8줄에 불과하지만 국정 교과서는 한 페이지를 할애해 김일성이 권력을 장악해 나간 과정, 3대 세습 체제 형성 과정을 자세히 기술했다. ‘김일성은 소련파와 연안파 등 반대파들을 차례로 제거하여 1인 독재 권력을 강화하였다’ ‘중소 이념 분쟁을 이용하여 사상, 정치, 경제, 군사, 외교에서 주체를 명분으로 내세워 수령 독재 체제를 더욱 공고히 하였다’ ‘분야별 자주 노선 주장들을 1960년대 후반부터 주체사상으로 집대성하면서 김일성 독재를 이념적으로 정당화하였다’ ‘장남인 김정일을 후계자로 최종 선정함으로써 유례가 없는 부자 세습 체제를 구축하였다’ ‘유일사상 체계확립 10대 원칙을 세우고 김일성을 신격화하기 위한 우상화 정책을 대대적으로 전개하였다’ 등의 서술이 대표적이다. 북한 인권에 대한 비판적 기술도 상당히 늘었다. 현행 검정교과서는 ‘언론과 종교 활동 제한, 여행 거주 이전의 자유 억압,정치범 수용소 운영, 공개 처형 등의 인권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천재 356쪽) 정도로 언급했다. 금성교과서의 경우 ‘북한은 ’우리식 인권‘을 내세우며 개인의 자유보다는 전체 조직을 위한 공민의 의무를 강조하고 물질적 보장이 인권의 가치로서 더 중요하다고 주장하였다’ 등 북한이 인권을 제한하는 이유를 북한 입장에서 설명하기도 했다. 그러나 국정 교과서는 한 페이지에 걸쳐 북한의 인권 탄압, 반인륜적 통치 방식, 유엔의 북한 인권 결의안 채택 등을 자세히 소개했다. 또 2008년 금강산 관광객 피살사건 기술 외에 천안함 사건과 관련해서는 ‘2010년 3월26일 서해 백령도 인근 해상에서 한국 해군의 천안함이 북한의 어뢰공격을 받아 40명이 사망하고 6명이 실종되었다. 2010년 11월 북한군의 연평도 포격으로 군인과 민간인이 사망하는 피해를 입었다’고 상세히 기술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北에서의 만화란 풍자라고는 없는 전래동화 이야기”

    “北에서의 만화란 풍자라고는 없는 전래동화 이야기”

    탈북민 남한정착기 다룬 ‘로동심문’네이버 인기 힘입어 단행본 출간 “웹툰으로 북과 남을 가깝게 만들고 싶어요.” 탈북민의 남한 정착기를 다룬 웹툰 ‘로동심문’이 은근히 인기다. 지난 5월 아마추어 작가들의 무대인 네이버 도전 만화에 등장한 이 작품은 넉달 만에 베스트 도전으로 승격하며 정식 연재의 꿈을 부풀리고 있다. 최근 단행본(꼬레아우라 펴냄)이 출간되기 도 했다. ‘로동심문’은 실제 평양 출신 탈북자가 그리고 있어 더욱 화제다. 최근 서울신문과 만난 최성국(36) 작가는 ‘로동심문’이 북과 남의 벽을 허무는 밑거름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어려서부터 그림에 재주가 있었다. 중학교 때 그렸던 반미, 충성 선전물이 눈에 띄어 전문 미술교육을 받게 됐고, 평양미술대학에 진학했다. 졸업 뒤에는 푸짐한 배급으로 북에서 꿈의 직장으로 여기는 4.26만화영화촬영소에 들어갔다. 외화벌이를 위해 1980년대에 만들어진 곳이다. “미국 디즈니나 일본 작품은 지겨울 정도로 보며 참고했지요. 프랑스, 이탈리아 쪽의 하청을 하거나, 디즈니와 유사한 작품을 만들어 수출하기도 했어요. 국내용으로는 TV 애니메이션, 북쪽 표현으로 아동영화를 만들기도 했어요. 한국처럼 재미난 작품은 안 만들어요. 주로 당에 대한 충성심과 미제에 대한 투쟁심을 고취시키는 그런 작품을 만들었죠.” 북에도 출판 만화가 있기는 있다고 했다. “김일성이 태어나기 이전의 전래동화 같은 옛 이야기, 남으로 치면 ‘선녀와 나뭇꾼’이나 ‘심청전’을 극사실주의 그림체로 그려요. 만화적인 그림체는 없어요. 사회주의는 모든 게 신성화되어 있어 풍자가 존재할 수가 없기 때문이죠. 김일성 등을 풍자하는 것은 신을 모독하는 것이 되니까요.” 8년간 일했던 촬영소를 떠난 뒤 중국에서 들여온 중고 컴퓨터에서 미처 삭제되지 않은 남쪽 영화, 드라마 등을 복제해 몰래 팔았다가 적발이 됐다. 남쪽 행을 결심하게 된 이유다. “2000년대 초반부터 한류가 북한 사회에 번지며 패러다임이 바뀌었어요. ‘한국스럽게’ 됐다고 할까요. 당시 영화로는 ‘어린 신부’, 드라마는 ‘줄리엣의 남자’, 노래는 룰라 등이 인기가 많았죠.” 남한 땅을 밟은 것은 2010년. 처음엔 만화 쪽 일을 하고 싶었다. 그런데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남쪽에서 유행하는 작품을 보니 당최 웃음 코드를 모르겠고, 황당하기까지 했다. 처음엔 디자인 회사에서 일하다가 대북 관련 방송국에 들어가 PD로, 기자로, 아나운서로 다양한 경험을 한 게 다시 만화에 도전하는 계기가 됐다. “시사 코너도 만들어보고 콩트 코너도 만들어보며 조금씩 남쪽 사회를 알아가게 됐죠. 그러다가 한 번에 확 보이더라고요. 70년 이상 갈라진 남북을 보수와 진보, 좌와 우를 떠나 한데 아우를 수 있는 매개체가 있어야 겠다는 생각을 늘 해왔는데, 이 때 만화를 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른 탈북민들도 ‘로동심문’을 보고 즐거워 한다는 최 작가는 국가정보원 이야기가 나오자 얼굴이 흐려졌다. ‘로동심문’에서는 국정원 사람들이 인간적으로 묘사된다. 요즘 국정원이 여러 논란을 일으키며 지탄받고 있기 때문에 미묘할 수 있는 대목이다. “제가 경험한, 있는 그대로를 그리고 있지만 국정원에서 강요받았냐, 시켰냐는 댓글도 이따금 달려요. 대부분은 북에 대해 몰랐다, 오해했다, 통일을 잘 준비해야 겠다는 댓글이 많죠. 그런 댓글이 힘이 되죠. 대한민국이 진정한 선진국이 되려면 북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직 먹고 사는 문제가 녹록지 않아 출판사에서 일하면서 이따금 안보 강사로 나서기도 한다. 하지만 언젠가 전업 작가가 되고 싶다는 꿈이 있다고 눈을 빛낸다. “머릿 속으로 구상하고 있는 작품이 있는데 비밀이에요. 일상적인 소재지만 누구나, 특히 남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글 사진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골프선수라 속이고 방북한 호주청년 “北사과 요구 거절”

    지난달 골프선수라고 속이고 평양을 방문한 호주 청년들이 북한 당국으로부터 사과를 요구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 호주언론 쿠리어메일은 브리즈번 출신의 모건 루이그와 에번 샤이가 여행사 에이전트를 통해 다시 방북해 TV 생중계로 사과할 것을 요구받았으나 거절했다고 보도했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전세계 언론의 주요뉴스를 장식한 이들의 모험담(?)은 지난달 8일과 9일 평양 골프콤플렉스에서 열린 아마추어 챔피언십에 참가신청을 하면서 벌어졌다. 당시 중국에서 열린 폴로 대회에 출전한 이들은 장난삼아 북한에서 열리는 골프대회에 이메일로 출전 신청을 했는데 뜻밖에 신청이 받아들여졌다. 이에 이들은 그린 재킷과 비슷한 상의와 호주 배지까지 옷에 붙이고 방북해 닷새동안 평양에 머물렀다. 루이그는 "아마도 북한의 인터넷 사정이 좋지않아 우리의 정확한 신분을 파악하지 못한 것 같다"면서 "첫날 120타를 치고 캐디로부터 '가문의 수치가 될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고 털어놨다. 특히 이들은 방북 기간 중 김일성 김정일 동상 등을 방문해 촬영한 기념 사진도 공개하며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현지언론에 따르면 28세 동갑내기인 이들은 부동산과 건축일이 본업으로 전세계적인 보도 이후 큰 유명세를 얻었다. 루이그는 "다시 방북해 공개적으로 사과할 생각은 없다"면서 "북한 감옥에서 수년 간의 힘든 노동은 전혀 매력적이지 않다"고 밝혔다. 이어 "보도 이후 유명해져 SNS상에 수천 명의 팔로워가 생겼고 여성들의 관심이 많아졌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한편 북한의 아마추어 챔피언십은 북한 전문 영국 여행사가 외국인 관광객 유치를 위해 만든 대회지만 대부분 싱글 핸디캡 이상의 실력이 뛰어난 아마추어들이 참가한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광화문 박정희 동상 계획 “김일성 흉내내기…이거야말로 종북”

    광화문 박정희 동상 계획 “김일성 흉내내기…이거야말로 종북”

    국민의당은 3일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 등이 광화문에 박정희 동상을 세우겠다는 계획을 밝힌 것에 대해 “박정희 우상화는 김일성 우상화 흉내내기요, 이것이야말로 종북”이라고 비난했다. 장진영 국민의당 대변인은 이날 논평에서 “진정한 존경은 동상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리고 진정한 효도는 부모를 욕되게 하지 않는 것이 근본”이라면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육영재단, 정수장학회, 영남학원, 한국문화재단, 한국민속촌, 설악산 케이블카 등 박정희 일가가 보유하고 있는 재산만 1조원에 이른다는 주장까지 있다”면서 “(박정희 대통령 기념재단의 주장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청빈의 정신이 절실하다는 것인데 소가 웃을 노릇”이라고 분노했다. 이어 그는 “이런 축재를 한 대통령이 또 있는가. 그것도 모자라 희대의 사이비교주 최태민 일가에게도 수천억원의 재산을 만들어 준 인물에게 청빈의 정신이 가당키나 한가”라며 “박근혜 대통령이 아버지를 이용해 작금의 위기를 넘겨보려 한다면 그것은 허망한 개꿈일 뿐이요, 남아있는 박정희 향수마저도 없애는 크나큰 불효를 저지르는 길임을 알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하 경실련) 공동대표 인명진 목사 또한 이날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제 정신이 있으신지 모르겠다. (박 전 대통령의 동상은) 함부로 세울 것이 아니다”라며 “이 분들이 다 그래도 이름 있으신 분들인데, 신문도 안 보시는지”라고 비판했다. 이어 “특히 (박 전 대통령의 딸인) 박근혜 대통령 치하에서 이런 일이 이루어진다는 것도 문제다. 3000억, 4000억? 정말 국고를 이렇게 써도 되는가? 국민들의 세금이다. 사리를 분별하지 못하는 처사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인 목사는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 “옛날 정권에 있던 측근 비리의 경우 대통령이 직접 관련된 적은 없었다”면서 “대통령 자신이 바뀌지 않으면 수습이 안 될 일이다. 실질적으로 박 대통령이 국정을 통치할 만한, 국정을 이끌어갈 만한 신뢰와 지지를 잃었다”라고 전했다. 박정희 대통령 기념재단은 전날 서울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추진위 출범식을 열고, 범국민 모금운동을 벌여 박 전 대통령 탄생 100주년인 내년 서울 광화문 광장에 박 전 대통령의 동상을 세우겠다고 했다. 이날 출범식에는 한광옥 신임 대통령 비서실장 내정자, 정홍원 전 국무총리, 김기춘 전 비서실장 등 박근혜 정부의 전직 고위관료들이 대거 참석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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