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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올 북녘추석 우울하고 쓸쓸”

    ◎수재로 상당수 묘지 유실… 전염병 등 「3재」/연휴없고 9·9절 겹쳐 백미 배급이 고작 북녘동포들에게는 올해 추석이 여느 해보다 우울한 민속명절이었을 것이라는 게 북한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올 7·8월 한반도 전역을 휩쓴 수재로 북한이 사상 유례없는 피해를 당했기 때문일 것이다.가뜩이나 어려운 식량난이 더욱 가중된 데다 농약과 기초의약품 부족으로,추석이 지난 현재까지 병충해와 수인성 전염병 비상이라는 이른바 「3재」를 겪고있는 까닭이다. 특히 이번 수재로 북한 곳곳의 도로와 철도들이 피해를 입은 데다 상당수 묘지마저 유실되는 바람에 북한주민들은 더욱 쓸쓸한 추석을 보낼 수 밖에 없었다.북한 선전매체들이 추석을 전후해 주민들의 한가위 맞이 움직임에 대한 별다른 보도를 하지 않고 있는 점이 이를 말해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올 추석이 북한의 정권수립 기념일인 9·9절(47주년)과 겹쳐 주민들은 국경절에 나오는 얼마간의 백미 특별배급을 받았을 가능성이 있다는 정도이다.이 과정에서 최근 남한과 일본이 제공한쌀이 고위간부급을 비롯한 일부 계층에 공급됐을 공산도 있다는 게 최근 귀순자들의 귀띔이다.북한은 국경절에 1일분의 백미를 지급하는데 노동자는 5백69g,부녀자와 학생은 4백g미만을 받는다. 북한은 6·25 휴전 이후 조상에 대한 제사를 봉건잔재라면서 물자낭비·분파주의·종파주의를 조장하는 관행이라는 이유를 들어 철저히 차단한 바 있다.그러다가 지난 88년에야 비로소 민속명절로 인정해 간단한 제사와 성묘를 허용하고 있는 형편이다.그러나 추석연휴란 있을 수 없어 남한에서와 같은 「민족대이동」현상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더욱이 추석은 다른 민족명절인 구정(음력1월1일),한식(4월6 또는 7일),단오(음력 5월5일)와 함께 하루 대휴로 하여 당일이 평일일 경우는 일요일에 대신 일을 하도록 정해져 있다. 북한은 국가명절과 민족명절을 구분하여 국가명절인 신정(1월1일),김정일 생일(2월16일),김일성생일(4월15일)은 각각 이틀연휴를 허용하고 있다.국제노동자절(5월1일),해방기념일(8월15일),정권창건일(9월9일 9·9절),노동당창건일(10월10일),헌법절(12월27일)도 북한에선 국가명절로 규정돼 있다.
  • 「9·9절」 행사 김정일에 충성 다짐(북녘 뉴스라인)

    【내외】 북한은 9일 정권수립 47주를 맞아 다채로운 경축행사를 갖는 대신 각지 김일성상징물에 대한 대대적인 참배·헌화행사를 진행하면서 김일성·김정일에 대한 「충성불변」을 다짐하는데 주력했다. 북한은 이날 아침부터 평양 만수대언덕의 김일성동상 앞에서 당·정기관 및 사회단체 간부들과 군장병,근로자,청소년·학생들이 참석한 가운데 대규모 헌화행사를 갖고 『김정일의 두리에 철통같이 뭉쳐 해와 달이 다하도록 김정일만을 일편단심 받들고 따를 결의를 다졌다』고 중앙방송이 보도했다. 또한 부주석 이종옥·박성철·김병식등 당·정·군 고위간부들은 그룹별로 나뉘어 휴전협정 40주를 기념해 세워진 전승기념탑을 비롯해 혁명열사릉·애국열사릉을 찾아 화환을 증정한데 이어 김일성의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기념궁전을 참배했다고 북한방송들은 전했다. ◎조총련,대북지원 강화키로 【내외】 조총련은 북한의 정권수립 47주년(9월9일)을 맞아 중앙 보고대회,김정일에게 보내는 전문 등을 통해 대북 지원사업 강화를 다짐했다. 조총련은 지난 8일 도쿄에서 의장 한덕수,책임 부의장 허종만 등이 참석한 가운데 중앙 보고대회를 개최하고 『조총련 조직을 김정일의 사상과 영도에 충직한 일심단결된 대오로,애국애족의 기치밑에 굳게 뭉친 공화국(북한)의 해외 공민단체로 더욱 강화 발전시킬 것』을 역설했다고 중앙방송이 9일 보도했다. 조총련 중앙 상임위원회는 또 김정일에 보내는 축하문을 통해 『내나라 내조국을 더욱 부강 발전시키는 위업에 모든 힘과 지혜,애국열성을 다바쳐 나가겠다』면서 북한의 홍수피해에 대한 「전 동포적」 지원사업 등을 다짐했다. ◎김정일,「안전부」 활동 강화 촉구 【내외】 김정일이 최근 정무원 사회안전부에 『사회안전부 일꾼들은 적대분자들에 대해 무서운 맹수가 돼야 한다』며 체제불만세력 색출과 치안유지에 만전을 기해 줄 것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노동당기관지 노동신문 최근호는 사회안전부의 역할과 활동을 강조한 김정일의 이같은 발언내용을 보도하면서 『전체 사회안전원들이 주민들에 대해서는 순한 양이 되고 목숨도 서슴없이 바치는 참다운 충복이 돼야 하지만 적대세력에게는 무서운 맹수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홍수피해 보도에 이중적 태도 【내외】 북한이 최근 집중호우에 따른 유례없는 홍수피해 보도와 관련,대내외적으로 계속 「이중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어 주목된다. 내외통신 분석에 따르면 북한은 지난 8월중 홍수피해 규모에 대해 해외로 타전되는 중앙통신을 통해서는 이례적일 만큼 비교적 상세히 보도한 반면에 주민들이 청취하는 중앙방송을 통해서는 오히려 서해갑문등 홍수방지시설의 역할로 집중호우에도 끄떡없이 버틸수 있었다며 김일성·김정일의 「업적」선전에 열을 올리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지난 8월말 방북,홍수피해 상황을 조사했던 스위스 외무부대표단의 조사활동이나 2일의 유엔조사단 평양도착 사실도 대외보도를 취급하는 중앙통신과 평양방송만을 통해 보도했다.
  • 김일성 1주기 조문/박용길씨 기소

    서울지검 공안1부(부장검사 장윤석)는 6일 김일성사망 1주기 조문을 위해 북한에 다녀온 고 문익환 목사의 부인 박용길(76)씨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 “김정일 승계지연/친인척 견제 때문”/러지 보도

    【모스크바 연합】 북한의 김정일이 권력승계를 미루고 있는 실제 이유는 북한 권부에 포진한 친·인척들의 견제 때문이며 이들은 향후 북한의 행보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러시아의 주간잡지「노보예 브레먀」(신시대)지가 최근호에서 보도했다. 이 잡지는 김일성 사후 1년동안의 북한의 변화에 대한 분석기사를 통해 부자 권력 세습을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했던 김정일이 느닷없이 전통을 내세우며 권력의 공백을 방치하고 있는 점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전제하면서 이는 반대세력의 존재때문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잡지는 이들 반대세력이 북한 권부 상층부에 포진한 김정일의 친·인척이라고 지적하면서 이들은 김정일이 권부의 중심에 접근하는 것에 제동을 걸고 있다고 강조했다.
  • 대북경각심 늦추지 말아야(사설)

    우리사회에 아직도 북한 간첩들이 활개를 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심각히 생각해야 한다.서울경찰청이 4일 적발한 「5·1동맹」이 우리의 경각심을 요구하는 한가지 사례라 하겠다.「5·1동맹」은 92년 검거된 「남한조선노동당」의 전위조직으로 노사분규를 배후조종하고 동조세력을 포섭해왔으며 보안법위반 구속자와 수배자들을 공공연하게 지원해 왔다.일부 언론매체에 간첩사건이 조작됐다는 내용의 글을 기고하기도 했다.또 일일주점을 열거나 통일음악제 비디오테이프를 판매해 그 수익금으로 활동해온 사실도 밝혀졌다. 「5·1동맹」은 불법적 지하당건설을 꾀해온 과거의 수법에서 탈피,합법을 가장한 공개적인 활동으로 북한의 지령을 수행해온 새로운 형태의 간첩조직이다.민주화과정에서 다소 느슨해진 우리사회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와 독버섯처럼 기생해온 것이다.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할 부분이다. 이번사건은 우리사회의 민주화여부와는 관계없이 적화혁명을 기도하는 친북세력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으며 북한은 대남공작을 계속하고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5·1동맹」은 합법적인 활동을 가장한채 북한의 대남선전선동기구인 한민전의 지령을 충실히 수행해왔고 여자조직원을 밀입북시켜 김일성부자에 대한 「충성의 편지」18통과 3천8백만원의 정성금을 전달한 사실이 밝혀졌다. 이같은 간첩조직이 「5·1동맹」뿐이라고 단정할수 있겠는가.우리는 학원민주화 또는 노동자권익보호등을 명분으로 합법을 가장한 친북세력들이 우리사회 곳곳에 기생하고 있다고 생각한다.이들이 암약하고 있다고 해서 두려워하거나 걱정할 정도로 우리사회가 허술한 것은 아니다.그러나 우리사회의 혼란을 획책하려는 반국가단체나 그 구성원은 뿌리뽑아야 한다.이번 사례를 보면서 국민들은 대북경각심을 늦추지 말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북한을 평화공존의 상대로 이끌기 위해서라도 굳건한 안보의식은 필요하기 때문이다.
  • 「5·1」 동맹의 지능적 반국가 활동상

    ◎“간첩단 사건은 조작” 언론에 투고까지/안보법 위반 구속자 공개지원/재소자 상대 주체사상 교육도 경찰이 4일 적발한 「5·1동맹」은 한때 우리 사회를 뒤흔들어 놓았던 「남한조선노동당 사건」의 전위조직으로서 아직도 사회 곳곳에 반국가단체가 뿌리를 뻗어나가고 있다는 증거라 할 수 있다.특히 이제는 반국가단체의 활동이 지능화되고 갈수록 대담한 수법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심각성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경찰 수사결과 5·1동맹은 일부 언론 매체에 간첩단 사건이 조작되었다는 내용의 글을 기고,여론을 유리한 쪽으로 이끌어가고 보안법 위반 구속자나 수배자를 공식 지원하는 공개적인 활동을 해온 것으로 드러났다.이는 과거와 달리 암약의 방식에서 벗어나 느슨해진 사회 각 조직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가 공공연한 활동을 시작했음을 의미한다.조직원들이 노동현장에서 이적표현물을 제작,배포하고 기회가 주어지면 곧바로 분규를 유도하는 구체적인 행동강령등이 이를 반증해주고 있다. 심지어 경찰이 압수한 조직원들의 행동지침서인 「나의 투쟁」에는 검거이후의 투쟁방법까지 기술해 놓고 있다.검찰·경찰등 수사기관별로 그 특성을 면밀히 파악해 검거이후의 행동지침은 물론 재판과정의 진술및 재판거부 방법등이 그것이다. 여기에 옥중투쟁과 재소자들을 대상으로 의식화운동을 벌이기 위한 세부적인 부분까지 언급해 놓아 반국가단체의 투쟁의 주도면밀함을 보여주고 있다. 이 조직의 구성원은 총책과 비서팀,무장활동을 위한 돌격소조,현장노동자 지도소조등 20여명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주체사상에 입각한 사회주의 국가건설 투쟁 전개」를 목표로 조직강령과 규약은 거의 맹목에 가깝다.한민전의 노선을 절대적인 지침으로 삼아 무조건 따르고 「김일성을 인류해방의 붉은 태양으로 높이 모시기 위한 순교자적 투쟁」등은 이 조직이 단순한,또는 자생적인 반국가단체의 단계를 넘어선 것으로 여겨지는 대목이다.현재복역중인 간첩을 통해 김일성부자에 대한 충성의 편지를 북한에 전달하고 북한의 지령방송을 청취,이에 따라 행동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이번 5·1동맹조직의 검거는 최근 쌀원조 등에서 북한이 보여준 터무니없는 행동의 근거가 우리사회 내부에도 자리하고 있음을 일깨우고 있다.
  • 남로당 전위조직 「5·1동맹」 적발/13명 구속

    ◎“북지령 받아 노사분규 등 부추겨”/김 부자에 충성편지… 구속간첩 구명활동 서울경찰청은 4일 지난 92년 검거된 「남한조선노동당」의 전위조직으로 노동현장에서 노사분규를 유도하고 「남한조선노동당구속자후원회」를 구성해 자금모금등 지원활동을 해온 반국가단체 「5·1동맹」조직을 적발,조직총책 조재진(28·여·고려대 지리교육3년 제적)씨등 13명을 반국가단체구성·가입·회합·통신등 국가보안법위반혐의로 구속하고 한국 시그네틱스 노조사무국장 김기순(28·여)씨를 같은 혐의로 입건했다. 경찰은 이 단체 기관지인 「백두산」과 「새날의 주인」,조선노동당창건 46돌과 김일성주석 80회생일을 기념하는 유인물,당규약 맹세문,이적도서 「세기와 더불어」,컴퓨터 디스켓,학습노트등 모두 1백74종에 이르는 2백33점의 증거물을 압수했다. 「5·1동맹」은 지난 90년12월 북한의 선전·선동기구인 「한국민족민주전선」(한민전)과 연대하여 95년 통일을 목표로 「남한조선노동당」중부지역당 총책 황인오(39·복역중)씨가 조직한 「95년 위원회」의후신으로 91년4월 변의숙씨(28·여·간첩 복역중)를 밀입북시켜 김일성부자에게 「충성의 편지」18통과 3천8백여만원의 정성금을 전달하는등 반국가단체활동을 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구속자는 다음과 같다. ▲조재진 ▲한미선(32·여·중동실업 택시기사·고려대 수학과 졸) ▲이점수(28·한국유리 정보관리실·서울대 공대 졸) ▲정은주(26·여·서문교회부설 유치원교사·총신대 유아교육과 졸) ▲권성기(27·대륙기계·고려대 정외과 4년 제적) ▲이철주(30·영림기계·인천대 건축공학과 4년 제적) ▲신원철(31·삼현수산·인천대 행정학과 졸) ▲김서태(31·과외교사·서울시립대 행정학과 졸) ▲정순구(27·백산서당 영업부·인천대 국문과 졸) ▲현준우(29·대전 모방송 편성국사원·고려대 경영학과 졸) ▲국승용(26·컴퓨터프로그래머·서울대 농대 졸) ▲김미정(29·여·학원 영어강사·인천대 영문과 졸) ▲이범준(31·국제콘택트렌즈 영업사원·인천대 생물과 졸)
  • 대학시절 주체사상 학습/육군병장 등 5명 구속

    【전주=조승용 기자】 전북지구 기무부대와 전북경찰청은 4일 대학내 이적단체에 가입,주체사상을 학습해온 육군 모부대소속 서윤근병장(24)등 군인 4명과 김병량씨(26·우석대 체육학과 졸)등 5명을 국가보안법(이적단체구성 및 찬양고무)위반혐의로 구속했다. 군·경에 따르면 이들은 우석대에 재학하던 지난 92년 이념서클인 「자주대오」에 가입한뒤 조직원 20명과 함께 빈 강의실과 학생회관,자취방 등에서 「혁명적 지도관」 등 북한 원전을 돌려보며 주체사상을 익힌 혐의를 받고 있다. 서병장은 김일성이 사망한 지난 94년7월 휴가를 나와 조직원들과 함께 동료의 자취방에 김일성빈소를 차려놓고 추모식을 가졌다.
  • 북한 수해/145군 물난리… 재민 520만

    ◎재산피해 150억달러… 자력복구 불가능/식량난 가중… 병충해·전염병 창궐 가능성 압록강 및 대동강,청천강유역등 북한의 중서부지역을 할퀴고 간 수마의 후유증이 예상 이상으로 심각한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기왕의 식량난에다 농경작지의 병충해와 북한주민들 사이에 수인성 전염병 만연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북한은 최근 홍수로 황해북도에서만 최소한 15만명이 집을 잃고 15만㏊의 농경지가 유실돼 30만t의 농작물 손실을 입었다고 최근 북한을 방문했던 유엔조사단이 보고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유엔대표단은 이 보고서에서 이번 홍수로 손실을 입은 농작물은 이 지역 주민들의 반년치 식량에 해당하는 양이라고 보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심각한 북한의 피해는 북한이 유엔인도적지원국(DHA)과 세계보건기구에 식량과 의약품등을 지원해 주도록 긴급 구호를 요청했다는 점에서도 심각한 상황으로 받아들여 지고 있다.북한 스스로 5백20만명의 수재민이 발생,1백50억달러 상당의 피해를 냈다고 보고했기 때문이다.보고내용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경우 피해주민이 전인구의 25%에 달하고 피해액수가 GNP(93년 2백5억달러 추정)의 75%에 해당하는 엄청난 규모이다. 물론 이 보고는 실상보다 상당히 과장됐을 공산이 크다는 지적이다.대내적으로 불리한 정보의 차단이 가능한 북한으로선 어차피 대외적으로 스타일을 구기는 「구걸외교」에 나설 바에야 구호물자를 조금이라도 더 얻어내기 위해 피해상황을 가능한한 부풀리는 게 유리한 탓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번 홍수로 북한당국이 스스로 극복하기 어려울 정도로 심대한 타격을 받은 것은 분명하다는 게 정부당국의 분석이다.정부는 신의주 지역에서만도 최소 5만명 이상의 이재민이 발생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북한 외교부측이 유엔인도적지원국에 의해 파견된 유엔구호평가조정팀(UNDAC)에 전한 피해상황에 따르면 지난 7월부터 3차에 걸쳐 한꺼번에 최고 6백㎜에 이르는 집중호우로 평양 남부지역 및 2백여 군지역중 1백45개군이 피해를 입었다는 후문이다.그런데도 북한은 인명피해 만큼은 극구 감추려고 하고 있다. 하지만 김정일의 지휘로 인민군을 동원한 현명한 구조작업의 결과 단한명의 실종자나 사망자가 없었다는 북한당국의 주장은 허구로 드러나고 있다.최근 임진강 우리측 지역에 수해 피해자로 추정되는 북한주민 및 군인 시체 7구가 떠내려 왔기 때문이다. 더욱이 수재 실태 조사차 방북중인 WHO(세계보건기구)전문가는 설사,호흡기 질환등 각종 수해 후유증이 발견돼 전염병이 창궐할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하고 있다는 소식이다.더욱이 이 전문가는 의료장비 및 의약품의 부족으로 수인성 전염병이 일단 발생하면 걷잡을 수 없이 번질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북한이 유엔과 스위스 독일정부에 지원을 요청한데 대해 미국정부는 인도적 차원의 지원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전세계에 “수재구호” 구걸외교/WHO·FAO 등 모든 국제기구에 요청/민심 이반 심각… 체면 내팽개치고 달래기 북한이 전방위 「구호외교」에 총력을 경주하고 있는 인상이다.그동안 내세워온 「주체」라는 슬로건에 걸맞지 않게 전세계를 대상으로 수재구호 요청 「공세」를 벌이고 있는 탓이다. 사실 북한당국은 이번 수재를 계기로 거의 모든 국제기구에 긴급 구호요청을 해놓고 있다.즉 지난달 29일 유엔인도적지원국(DHA)에 식량과 의약품 지원을 요청한 것을 첫머리로 WHO(세계보건기구),FAO(유엔식량농업기구),WFP(세계식량계획),UNICEF(유엔아동기금)등 국제기관에 SOS를 쳐놓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더욱이 북한은 이들 유엔 관련기구 이외에도 국제적십자연맹(IFRC)측에도 긴급지원을 요청,조사단이 곧 파견될 예정이라는 소식이다.뿐만 아니라 독일·스위스 등 서방국가와 미국의 민간단체에까지 원조를 요청하고 있는 형편이다. 이처럼 북한당국이 체면을 팽개치다시피 외부에 손을 벌리고 있는 것은 1차적으로 그 만큼 이번 집중호우로 인한 피해가 심대함을 반영한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이같은 일종의 「구걸외교」는 김일성 생전에는 상상하기 힘든 일일 것이다.때문에 김정일의 공식 권력승계를 앞두고 북한주민들의 민심이반이 심각한 상황임을 뒷받침하다는 추론도 나오고 있다. 말하자면 지난 수년간 누적된경제난에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엄청난 수재를 당하자 북한당국도 대외적인 위상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는 해석이다.즉 더 이상 허리띠를 졸라맬 수 없을 만큼 배를 곯고 있는 주민들에게 최소한의 떡이라도 쥐어주지 않고선 김정일의 등극 자체가 어렵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는 얘기다. 이와 함께 인도적 문제를 고리로 차제에 서방각국과의 관계개선을 촉진하려는 일석이조의 계산도 개재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관측이다. 즉 독일등 서방국과의 구호물자 교섭과정에서 대화와 교류의 물꼬를 트려는 실리적 목적이 숨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의 이같은 다목적 포석이 얼마나 주효할지는 미지수다.우선 DHA등 유엔산하 국제기구들은 어차피 재정능력이 취약해 독자적 대북 지원이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독일·프랑스·스위스등 서방국들도 어차피 국내사정 등으로 상징적인 지원 이상의 대대적인 대북 원조에 나서기는 어렵다는 지적이다. 결국 국제기구를 통한 대규모 지원에 스폰서로 나설 수 있는 국가는 한·미·일 3국으로 압축될 수밖에없다는 게 일반적 예상이다.나아가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역학을 감안할 때 대규모 대북 구호의 실현은 궁극적으로 남북관계에 있어서 북한의 진지한 자세 전환이 선행되어야 가능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국제선명회 대북지원 결정/50만달러·식량 등 곧 전달 국제 구호단체인 국제선명회(총재 딘 허시)는 빠른 시일 안에 북한에 50만달러와 식량 등 구호품을 보내기로 결정한 것으로 2일 알려졌다. 한국선명회측의 한 관계자에 따르면 북한이 지난달 31일 미국의 「국제기업 경영자문회사」와 제네바 주재 국제선명회 사무소를 통해 각각 다른 경로로 긴급지원 요청을 해 왔으며,이 요청을 받은 국제선명회 본부는 한국선명회(회장 이윤구) 등과의 협의를 거쳐 대북 지원사업을 벌일 것으로 전해졌다. 선명회는 북한의 요청에 따라 현금 50만달러와 가공식품 등 식량,중국 의류,콜레라 예방백신,설사약 등 의약품 등을 지원키로 한 것으로 확인됐다.이 관계자는 『북한이 미국내 수십개 민간단체에 똑같은 지원요청을 한 것으로 전해 들었다』고 말했다. 한편 한국선명회는 이번 지원사업에 「상당부분을 지원」키로 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정확한 액수는 밝혀지지 않았다.
  • “한국 유엔서 중요역할 계속 할것”/갈리 유엔사무총장 일문일답

    ◎21세기 대비 총회 등 조직개편 필요 부트로스 부트로스 갈리 유엔사무총장은 30일 유엔본부에서 한국특파원들과 만나 방한목적,유엔에서의 한국역할증대등에 대해 50여분간 이야기했다.다음은 갈리 총장과의 일문일답. ­한국방문 목적은. ▲한국은 내년부터 2년동안 안보리이사국이 된다.국제현안에 대한 모든 결정은 안보리에서 내려진다.유엔사무총장으로서 보스니아사태를 비롯한 국제적 사안들에 대한 안보리이사국의 입장과 전략을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김영삼 대통령을 비롯해 한국정부 지도자들과 만나 입장이 무엇인지 들어보겠다. ­한국이 91년 유엔가입후 벌인 유엔활동을 평가해달라. ▲한국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앞으로도 특히 경제사회이사회에서 계속 중요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유엔 50주년 특별정상회의에 북한의 김정일이 참석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도는데. ▲오는 10월22일부터 3일간 열리는 유엔특별정상회의에 1백40여개국의 국가수반,행정부 고위관리들이 참석하겠다고 통보해 왔다.김정일의 참석여부는 아는바 없다.그의 아버지 김일성은 만난 적이 있지만 김정일은 만나본 적이 없다. ­창설 50주년을 맞은 시점에서 앞으로 유엔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다음 세기에 대비해야 하는 방향으로 조직이 개편돼야 한다.특히 총회와 안보리의 관계를 다시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발족 당시 51개국이던 회원국이 1백84개국으로 늘었으니 현실에 맞는 제도로 개편해야 한다.유엔기구도 축소하고 싶다. ­안보리 개편문제는. ▲지난 2년간 논의해왔지만 아무 결론도 내려진 것이 없다.금년 유엔창설 50주년을 맞아 개편이 이뤄지기를 바랐으나 불행히도 실현되지 못했다.결국 회원국이 결정할 문제다. ­유엔의 재정문제는 얼마나 심각한가. ▲파산이다(웃음).30개 회원국만이 분담금을 제때 내고 나머지 1백50여개국은 분담금이 밀린 상황이다.부채액만도 20억달러에 이른다.재정압박으로 유엔평화유지활동(PKO) 참여병력에 대한 임금을 지급하지 못하고 있다.
  • 당정간부 부정·부패 만연/직위 이용한 개인 영리사업에 혈안

    ◎여행증명서·운전면허증 발급때 뇌물수수/외화벌이 사업체선 중간착복 예사 「절대권력은 절대 부패한다」.이 경구를 실증하듯 올들어 북한 당정간부들의 부정·부패가 한층 극심해지고 있다는 소식이다. 북한의 선전매체들이 최근 당정간부들의 사업태도를 노골적으로 비판하는 논조를 계속 내보내고 있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이를테면 지난 7월31일 중앙방송은 『일선 행정간부들이 군중위에선 특별한 존재가 아니다』며 권위주의적 태도를 고치도록 촉구했다.노동신문은 최근 한술 더 떠 『당이 아무리 좋은 정치를 베풀어도 간부들이 세도를 부리면 그것이 제대로 구현될 수 없다』며 당간부들의 월권을 비판했다. 노동당 입당이나 대학입학 및 졸업을 뇌물로 해결하는 것은 북한사회에서 오래전부터 횡행해 온 공공연한 비리다.최근들어 부정부패의 고리는 여행증명서,운전면허증 발급시 뇌물수수등 일상적인 일에서부터 외화벌이 사업시 중간착복등 사회 전반으로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전문이다. 예컨대 주민들의 식량구입을 위한 이동이 잦아지면서도·시·군 인민위원회 2부 소속 지도원들이 뇌물을 받고 여행증명서를 발급해주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게 최근 귀순자들의 증언이다.또 운전면허증도 도사회안전부 교통처 심사과나 사회안전부 2국 지도원에게 10달러 가량의 뇌물을 제공하면 액수에 따라 2∼4급 면허를 골라 잡을 수 있다고 한다. 더욱이 당간부들이 직위를 이용해 개인 영리사업에 몰두,일반주민들의 불만이 증폭되고 있다.독립된 단독주택에 기거하는 중간간부들이 3∼4마리의 돼지를 기르는 사례가 대표적이다.이들은 심각한 식량난 속에서도 일반주민들이 주식으로 사용하는 강냉이 가루 등을 직권을 이용해 구입,돼지사료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당정 고위간부층 자녀들이 국가기관 보다는 외화벌이사업체에 근무하는 것을 선호하는 경향도 부패풍조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할당된 외화목표액의 초과분이 발생하면 아예 보고하지 않거나 목표액 미달시 실제 획득액 이하로 허위보고해 차액을 착복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는 것이다. 고위간부층들이 해외공관원,무역상사원,벌목공 등에서부터 해외유학생에 이르기까지 해외방문 주민들에게 의약품을 상납받고 있는 것도 근래에 나타난 특징적 현상이다.이는 북한의 병원이나 진료소에서 마이신,페니실린 등 각종 기초의약품의 품귀현상과 무관치 않다는 지적이다. 북한당국도 사태의 심각성을 직시,국가안전보위부,사회안전부등 공안기관들을 총동원해 간부들에 대한 검열과 처벌을 강화하고 있다. 그럼에도 비리의 확산추세는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북한 경제난의 장기화와 김일성 사후 북한체제의 이완현상이 맞물리면서 심화되고 있는 탓이다.더욱이 공안기관 간부들까지 부패 사슬에 연루돼 공생관계를 갖고 있어 문제 해결이 어려워지고 있다는 것이다.
  • 평양행 열차(시베리아 대탐방:32)

    ◎매주 한차례… 객차 1∼2량 연결/블라디보스토크 가기전 우수리스크서 분리/승무원은 북한 보안요원… 철저한 감시속 운행 평양행 열차 시베리아에는 스탈린시절 도처에 강제수용소가 산재해 있었다.그리고 강제수용소 죄수들이 노동자 대신 극지에서 위험한 건설작업을 했다.「굴락」이라고 부르는 이 강제수용소는 흐루시초프가 집권한 뒤 56년 이를 폐지키로 함으로써 90%이상이 문을 닫았다.지금 수용소자리는 늪지로 변해 자취를 감춘 곳이 태반이다.하지만 야말반도·튜멘북부 등지에 있는 옛 수용소자리에서는 지금도 간간이 사람의 유골들이 발견된다고 했다. 튜멘북부에서 온 이 노동자는 자기 일터에서 조금만 더 가면 낚시·사냥을 즐길 수 있고 아직도 「춤」이라고 부르는 이동천막에서 사는 야말 넨츠족·한티 민시족의 사는 모습을 볼 수 있다며 꼭 한번 자기집에 오라고 청했다.여름에는 모기가 너무 많고 10월이면 추워지니 9월이 제일 좋다고 꼭 한번 오라는 것이었다. ○북극행 철길 다시 건설 이 건설노동자는 요즈음 노브이 우렌고이에서 끝난 철길을 북극 가까이에 위치한 노릴스크시까지 연장건설하는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철길 바디는 스탈린시절 수용소 죄수를 동원해 이미 만들었고 이후 스탈린 사후 중단됐다가 최근 다시 공사가 재개됐다고 한다.그러면서 그는 우스갯소리로 그곳에서는 지금은 낮에만 일하고 겨울에는 밤에만 일한다고 말했다.북극 가까운 곳이라 여름철에는 심한 백야현상으로 밤이 거의 없고 겨울철에는 반대로 낮이 거의 없기 때문이라는 뜻이었다.8살난 자기 딸은 집을 떠난 뒤 줄곧 『밤에 어두워 잠을 못자겠다』고 불평한다고 했다. 이르쿠츠크주로 들어서면서부터 스탈린시대 수용소자리가 많이 나타난다.물론 가장 악명높은 강제수용소는 동북쪽의 야쿠츠·마가단 등지에 있지만 이르쿠츠크부터 수용소가 도처에 건설됐다.이르쿠츠크시 진입직전에 만나는 앙가르스크시도 스탈린시절 수용소 죄수가 건설한 대표적인 도시중 하나다.인구 27만명에 이르는 비교적 큰 도시로 51년 대규모의 유화 콤비나트가 세워졌다.앙가르스크 직전 역은 우솔리예 시비르스코예(소금저장소)라는 재미있는 이름을 갖고 있다.한때 아시아 각지로 소금을 수출하던 러시아 최대 소금산지던 곳이다.아울러 러시아전역에 공급되는 「바이칼」이란 이름의 성냥 생산지로 유명하다. 모스크바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 가는 특급 「러시아2호」열차는 격일로 매 홀수날 출발한다.그런데 부정기적이지만 1주일에 한번씩은 이 열차에 평양행 객차가 1∼2량씩 붙는다.취재팀은 중간도시에 계속 내렸다 다시 타는 일을 되풀이했기 때문에 언제가 한번은 이 평양행 「쿠페」를 만나게 돼 있었다.평양행은 하바로프스크에서 블라디보스토크 중간의 교차역인 우수리스크에서 곧바로 남으로 빠져 하산을 거쳐 두만강철교를 넘는 것이다. ○하산거쳐 두만강 넘어 모스크바를 출발한 지 꼭 10일째 되는 날 상오10시45분 기차가 이르쿠츠크주의 일란스카야역에 도착했을 때 처음으로 북한승객을 만났다.20분을 정차하기 때문에 플랫폼에 내려가 바람을 쐬다가 삼삼오오 모여 담배를 피우며 잡담을 나누는 동포를 만난 것이다.기차 제일 뒤쪽에 붙은 객차였는데 「모스크바∼평양행」이라고 행선지표지가 붙어 있었다.몇 사람과 수인사를 한 뒤 기차가 출발하면서 자연스레 그들이 탄 객실로 가서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평양으로 가는 객실은 우선 러시아승무원이 아니라 군복을 입은 북한승무원이 배치돼 있는 게 특이하다.1주일이상을 여행하기 때문에 승무원 6명이 2인1조로 교대근무한다고 한다.승객수는 정원 80명인 객실이 꽉 들어찬 것 같았다.모두 4인1실로 된 방이었다. 책임승무원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박영철이라는 사람은 보안요원인 듯 유난히 「꽉 막힌」사람이었다.별로 유쾌하지 않은 이날의 대화내용중 그가 한 말을 몇 대목만 소개한다.그는 대뜸 김일성 사후 조문건과 평양축전을 가지고 남한정부 욕을 잔뜩 늘어놓았다. 『김영삼 그 사람,정말 그럴 수가 있어.세계지도자가 모두 다 애도를 표하는데 같은 동포끼리 그럴 수가 있어』 『그리고 기자선생.평양축전에는 안오면서 와 쓸데없이 이런데 돌아다니고 있어.평양축전때 말이야 남조선기자는 한명도 안왔더만.그런데 좀 와서 취재보도하면 얼마나 좋아.다 왔는데남조선기자만 안왔어』 가만 놔두면 이런 식으로 끝이 없을 것같아 『그런 말 하기 시작하면 피차 피곤하니 평양동포 사는 이야기나 들려달라』며 말을 막았다. ○북요원,승객면담 차단 그랬더니 더 가관이다.『그말 잘했어.당신 의식주란 말 알디.우리 그거 걱정 안하고 살아.그러면 되는 거 아냐.남조선은 언제 그럴 수 있갔어』 한번더 말을 바꾸어보려고 나이가 얼마냐고 물었더니 50살이라고 했다.그래서 나이보다 젊어 보인다고 해주었더니 반응이 걸작이다.『당연하디.김정일장군 영도하에 그저 아무 걱정 없이 잘사니 젊을 수밖에』… 내내 이런 식이었다.『통일이 멀지 않았으니 기자 똑바로 하라』는 등 「훈계」도 잔뜩 늘어놓았다. 그들과 헤어지고 나온 뒤 한동안 우울한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다.다음 정차역부터 평양행 승객은 휴식시간에 한명도 객차에서 내리지를 않았다. 현지시간 하오9시경 모스크바로부터 4천6백77㎞라는 푯말이 붙은 지점에 니즈니우딘스크역이 지나갔다.「우다강 하류」라는 뜻의 마을이다.플랫폼의 키오스크에는 한국산 과자류,중국산 장난감·일용품이 잔뜩 진열돼 있다.현지시간 상오5시37분 마침내 이르쿠츠크역에 도착했다.도착직전 앙가라강 철교를 지났고 역에 내리면 바로 맞은편에 앙가라강이 마치 호수처럼 잔잔히 펼쳐져 있다. 수백개의 강이 바이칼로 흘러드는데 오직 이 앙가라강만이 바이칼에서 흘러나가는 것으로 유명하다.앙가라는 총길이 1천7백79㎞로 바이칼에서 발원해 북으로 예니세이강으로 연결되며 이 지역의 산업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강이다.3개의 큰 댐이 건설돼 있기 때문이다. 이중 제일 크고 중요한 것은 61년 건설된 브라츠크댐이고 그 다음 규모는 이르쿠츠크시내에 있다.그리고 세번째가 주북단의 우스치림스크댐.그래서 주북단의 우스치림스크에서 주하단에 위치한 이르쿠츠크시내까지 앙가라강은 사실상 주를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거대한 댐이다.
  • 통일 외교안보 정책/전문가 대담(문민정부 후반기 과제:2)

    ◎장기적 관점서 교류확대 꾸준히/교차승인 대비 4강외교 강화를/대북정책 국민적 지지기반 넓혀야/정당 지도자간 비공개 협의 제도화를 성급한 낙관주의는 북 개방에 역효과/「북·미 평화협정 주장」 주변국의 변용 수용 경계해야 문민정부는 출범직후의 북핵문제와 김일성사망등 돌출변수들로 해서 능동적 대북정책을 활기 있게 펴나가는데 여러 어려움을 겪었다.대북 쌀지원등 우리측의 끈질긴 평화노력에도 불구하고 북은 당국간 대화를 회피,한반도 상황은 정체국면을 벗어나지 못했다.김영삼 대통령이 임기 반환점을 도는 시점에서 바람직한 통일외교 안보정책 추진방향을 김학준 단국대 이사장과 정용길 교수(동국대 행정대학 원장)의 대담을 통해 검색해 본다. ▲김학준 이사장=광복과 분단 50주년을 맞는 벅찬 기대와는 달리 남북관계는 아직 경색국면을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문민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의욕적인 대북정책을 펼쳤으나 김대통령이 집권 전반기를 마감하는 오늘의 시점에서 남북관계는 오히려 어려운 국면에 빠져들고 있는 인상입니다.근본적으로는 우리의 선의를 다른 방향으로 이용하는 북이 문제라 하더라도 남북관계 전개 과정에서 우리측이 너무 유화적이었다거나 저자세 협상을 했다는 비판이 없지 않은 형편입니다. ▲정용길교수=통일과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한 점은 인정하지만 대북정책이 혼선을 빚은 점은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특히 성향이 다른 통일부총리가 지난 2년반 동안 5명이나 교체된 것은 정부의 대북정책이 그만큼 일관성을 결여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아울러 국민적 합의를 도출하는 노력도 부족했습니다.결과적으로 지난 2년반 동안의 대북정책은 정부의 관계개선의지에도 불구하고 실행과정에서 세련되지 못한 부분들이 적지 않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김이사장=북한에 대한 안이한 낙관주의가 남북관계에 있어서 우리의 입장을 약화시킨게 아닌가 생각합니다.북한에 동포로서 무엇인가를 베풀어주고 민족주의에 호소하면 쉽게 호응해오리라고 보는게 문민정부 통일정책의 기본 발상이 아니었던가 싶습니다.그러나 북한은 취할 것은 다 취하고 양보할 것은 양보하지않는 녹록하지 않은 존재였습니다.이는 경수로협상 과정과 인공기 강제게양사건,삼선 비너스호 억류사건등을 빚은 쌀 지원 과정에서 여실히 입증됐습니다. 따라서 이제는 대북정책의 국민적 지지기반 내실화가 어느 때보다 강조되어야 할것 같습니다.키신저는 교수시절에 쓴 「대외정책의 국내구조」에서 『대내적 지지기반이 확고하지 않으면 대외정책을 제대로 추진할 수 없다』고 갈파했는데 이는 대북정책의 국민적 지지기반의 중요성과 관련하여 오늘날 우리에게도 적용될 수 있는 훌륭한 교훈입니다. 이같은 맥락에서 이제는 국민과 함께 가는 대북정책을 추진해야 할 때라고 생각 합니다.물론 대북정책 추진시 기밀성과 보안의 중요성도 무시할 수는 없겠죠.때문에 최소한 국회에서의 비공개 토론이나 정당지도자간의 협의를 제도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 합니다. ▲정교수=동감입니다.통일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국내정치의 안정과 남북관계개선,주변국의 지원등 3박자가 제대로 맞아야 한다는 점입니다.북한의 내부사정을 볼 때 당장 통일이이뤄지기는 어려운 상황입니다.국내적으로도 통일비용을 부담스러워 하는 여론이 적지 않습니다.결국 대북정책은 당장의 통일보다 단계적으로 남북관계를 개선하는 쪽으로 추진돼야 할 것입니다. ▲김이사장=북한당국은 현재 통일에 관심을 갖고 있다기 보다 내심 통일을 두려워하고 있다고 봅니다.지난 8월초 남북학자 통일학술회의 석상에서 한 북한대표의 발표에서도 이를 감지할 수 있었습니다.그는 『우리는 독일식 흡수통일도,베트남식 무력통일도 반대할 뿐 아니라 돈으로 상대를 녹여내는 방식도 반대 한다』고 말했습니다.이는 남북경협을 통해 남쪽의 막강한 자본주의가 북한을 변화시켜 체제가 와해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의 표현일 겁니다. 북한은 개혁·개방을 하더라도 극히 제한된 범위내에서만 진행시킬 것으로 관측 됩니다.따라서 북한을 개혁·개방의 무대로 이끌어내려는 우리측의 노력이 얼마 만큼 빛을 볼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정교수=평양은 통일을 두려워하고 서울은 전쟁을 두려워 한다고들 합니다.특히 북한은 동독이 서독에 흡수되는 과정을 보면서 통일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성급한 통일작업 보다는 꾸준히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이를 위해서는 독일의 통일방식을 원용할 필요가 있습니다.즉 인적·물적교류를 꾸준히 확대하는 「작은 걸음 정책」이 필요 합니다.통일에 대한 환상에서 깨어나 차근차근 접근해나가자는 자세가 중요합니다.김대통령이 광복50주년 기념사를 통해 『통일에 대해 환상적인 기대도 성급한 포기도 금물이며 꾸준한 인내심이 필요하다』고 강조한 것도 남북한 모두 당장 통일을 맞이할 조건이 성숙돼 있지 않다는 현실인식을 바탕으로 한 것으로 해석됩니다. ▲김이사장=현정부 뿐만 아니라 과거 우리의 역대정부,심지어 야당지도자들까지도 한건주의식으로 대북 문제에 접근해 과오를 범하는 사례가 없지 않았습니다.이제는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우리의 속담처럼 북한문제를 다루는데 있어서 지도자나 국민 모두가 흥분하지 말고 참을성 있게 서서히 접근해야 할 때입니다. ▲정교수=그동안 정부의 통일외교정책 기본틀은 한·미공조관계 속에서 남북관계를 풀자는 것이었습니다.그런데 최근 북한과 미국·일본간 수교문제가 대두되면서 우리가 다소 소외되고 있는 듯한 모습을 보였습니다.이는 앞으로 한반도 주변 6개국의 교차승인이 이뤄지면 남북한간에 외교적 경쟁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예고해 주는 것입니다.지금의 한반도 주변상황은 구한말 때 보다 외교적으로 더욱 어려운 실정입니다.한반도 주변국들은 당시보다 더욱 막강한 정치·경제적 영향력을 한반도에 행사하고 있습니다.남북한의 자주적 평화체제 구축노력이 어느 때 보다 절실합니다. ▲김이사장=최근 들어 한반도문제가 다시 국제화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우리 민족 스스로의 자결권이 약화되지 않나 하는 우려를 갖게 됩니다.물론 남북한과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4강의 동시수교가 이뤄지면 평화가 제도적으로 이뤄진다는 긍정적인 측면도 없는 것은 아니겠죠.그러나 남북 모두가 경각심을 갖고 남북대화를 다시 시작해 한반도문제를 「한민족화」해 나가야 할 시점이라고 봅니다. ▲정교수=남북한과 미국·일본·중국·러시아간의 교차승인이 이뤄지면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가능성은 한층 높아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그러나 기본적으로 평화체제가 정착되기 위해서는 남북한 스스로가 남북기본합의서나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등 기존의 남북한 합의사항을 존중하는 자주적 노력이 긴요합니다.그런데도 북한은 핵문제나 쌀선박 인공기게양사건,쌀선박 억류등에서 나타난 것처럼 인도적 차원의 협조에 대해서 조차 그 의미를 희석시키려 하고 있어 유감입니다.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북한이 성의있는 자세를 보여야 할 것입니다. ▲김이사장=한반도의 새 평화체제 구축은 남북 기본합의서등 이미 합의한 남북간 합의를 성실히 이행하는 것이 핵심입니다.문제는 북한이 현정전협정이 남북당사자간이 아닌 북·미간에 의한 평화협정으로 대체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현재로선 미국·중국등 국제사회가 모두 이에 반대하고 있지만 정부는 앞으로 새로운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문제가 논의되는 과정에서 20여년 동안 지속된 이같은 북한의 주장이 국제사회에 의해 변용 수용될 가능성을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정교수=현정부 전반기의 통일외교정책을 정리해 본다면 선진한국을 건설한다는 목표아래 외교다변화와 경제실리외교를 전개해 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특히 대북정책에서는 관계개선의 물꼬를 트기 위해 진보와 보수,강·온전략을 병행하는 정책을 구사해 왔습니다.그러나 대북정책이 당장 실효를 거두지는 못했습니다.이는 우리 정책의 혼선에도 원인이 있겠지만 급작스런 변화를 원치 않는 북한 자체에 근본 이유가 있습니다.까닭에 당장 남북관계개선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만큼 우선 통일에 대한 환상을 깨고 국내정치의 안정을 바탕으로 인적·물적 교류를 확대하는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봅니다. ▲김이사장=통일을 중장기적 과제로 본다는 전제하에서 우선 우리 대한민국을 성숙한 민주 복지국가로 육성하는 것이야말로 진정으로 통일의 기틀을 다지는 길일 것입니다.아울러 주변 4강외교,특히 중국등 아시아 이웃들과의 외교을 강화하는 것도 통일의 터전을 닦는 첩경이라고 봅니다.
  • 미 CIS 마자르 박사 「북한과 핵…」 강연 내용

    ◎“「북핵 장기화」 일관성 없는 정책탓”/한·미 동맹관계 유지속 분명한 대북 압박 필요/북 관리들 김일성 사망 예상… 핵 협상 타결 시도 한반도 및 국제문제전문가인 미국제전략연구소(CSIS)의 마이클 J 마자르박사(국제안보담당 선임연구원)는 서울신문사 초청으로 22일 하오 프레스센터 12층강당에서 「북한과 핵,그리고 한반도」란 주제로 특별강연을 갖고 북한문제에 대한 일관성있는 정책수립과 겸손한 문제접근의 필요성을 강조했다.아·태안보협력위원회 창설멤버이기도 한 마자르박사는 현재 CSIS가 간행하는 국제관계전문 권위지 「The Washington Quarterly」의 편집인이며 한·미 두나라의 대북정책을 포괄적으로 연구한 「북한과 핵­핵확산방지의 한 고찰」 등 7권의 저서를 갖고 있다.다음은 강연내용 요약. ○평양 내부사정 오리무중 북한과 북한의 핵야욕에 대해 연구하면서 나는 많은 것을 배웠다. 우리는 북한이 핵무기를 원하는 이유를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북한에 대한 미국의 핵무기 사용을 저지하기 위한 것인지,세계를 위협해 정치·경제적 양보를 얻어내려는 것인지,아니면 남침 능력을 키우려는 것인지.북한의 핵개발 이유를 모르고서는 그 위험에 대해 포괄적인 판단을 내리기 어렵다. 우리는 또 북한내부의 정책토론 특성에 관해서도 아는게 별로 없다.일부에서 믿고 있듯이 강경파와 개혁파들사이에 명백한 분열이 있는지,오늘날 평양에서 누가 결정을 내리고 있는지. 게다가 우리는 북한이 핵무기를 실제로 갖고 있는지 알지 못하며 앞으로도 아마 알기 어려울 것이다.우리가 영변에 있는 핵폐기물 처리시설 2곳을 사찰한다고 해도 여전히 명확한 답변을 얻지 못하리라고 나는 단언한다. 북한은 핵무기를 한개 갖고 있는가,아니면 두개인가.우리는 잘 모른다.북한이 핵폭탄을 갖고 있다고 우리 정보기관이 말할 때 그것은 추측이다. 내가 북한 핵문제를 연구하면서 배운 것은 그 문제에 대해 겸손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우리가 모르는게 아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내가 연구과정에서 발견한 몇가지 중요한 사실과 교훈을 얘기하겠다. 세가지 발견중 첫째로,여러분들은 부시 전대통령이 지난 91년9월 한반도를 포함한 미국의 모든 지·해상배치 전술핵무기를 철수하겠다고 발표했던 것을 기억할 것이다.북한에 대한 미국 외교의 중요한 터닦기 작업이었다. 그러나 이 발표는 그보다 1년전에 이뤄질 수 있었다.부시의 그같은 핵구상은 90년 8월2일 애스핀연구소 연설문에 포함됐었다.그러나 연설 몇시간전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했고 미국은 후세인을 조금이라도 안심시키는 어떤 신호도 보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마지막 순간에 그 구상을 연설문에서 빼버렸다.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하지 않았더라면 한반도에서 미국의 핵주도는 1년전에 시작됐을 것이고 북한에 대한 미국 외교의 전반적인 과정은 급격하게 바뀌었을 것이다. 두번째로,클린턴행정부 출범직후 애스핀 미국방장관은 한반도에서 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담한 계획을 내놓았다.그 계획은 미국이 고위급 사절을 평양에 보내고,만약 북한이 핵무기제조작업을 중단한다면 그에 상응하는 이익을 제공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며,거부하면 제재와 봉쇄를 준비해야한다는 세가지 제안을 담고 있었다. 이같은 접근방식은 당시 미정부의 관계기관대책회의에서 거부됐다.그러나 미국 외교는 결국 국방부계획이 적시한 바와 같이 세가지 요소를 충족시켰을 때만 성공했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즉 지미 카터 전대통령이 평양에 갔고,「합의의 틀」은 북한에 대해 이익 제공을 명시했으며,제재에 대한 미국의 반복된 언급은 위협으로서의 구실을 하고 있다. ○한반도 핵철수 90년 구상 마지막 발견은 북한의 94년초 사고방식과 관련돼 있다.그해 4,5월 북한은 핵프로그램 동결 약속을 깨고 원자로에 핵연료를 재장전하겠다고 위협했다.이러한 위협은 커다란 위기를 자아냈고 이 위기는 카터가 평양에 갔을 때야 해결될 수 있었다. 그 당시 많은 옵서버들은 북한의 동기에 대해 혼란스러워 했다.그러나 북한으로부터 흘러 나온 새로운 정보들은 납득할 만한 이유를 제공했다.일부 북한 관리들은 김일성이 단지 몇달밖에 살 수 없다는 말을 평양측이 94년초 들었다고 외부의 학계에 밝혔다.그 당시 북한내에서 핵문제 타협을 원했던 층들은 김이 생존해 있는 동안 그의 승인을 받아야만 타협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었다. 따라서 94년 봄의 위기는 세계의 이목을 끈 뒤 김이 죽기전에 거래를 마무리하려 했던 북한 관리들에 의해 도발된 것일 수 있다. 내가 연구과정에서 발견한 몇가지 사실들은 우리가 북한의 사고에 대해 참으로 무지하다는 것을 일깨워 준다. 이제 두가지 교훈으로 화제를 바꾸겠다.하나는 핵확산 금지가 한·미 양국의 국익에 얼마나 부합되는지의 문제에 관한 것이고,다른 하나는 우리가 북한에 대해 일관성 있고 의미있는 전략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첫째,우리 두나라 가운데 어느 쪽도 핵비확산이 국익에 얼마만큼 도움이 되는지 결정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미국에 있어서 이것은 범세계적인 문제다.한국에게는 주로 북한문제다.그러나 우리 두나라는 동일한 기본적 결정에 직면하고 있다.핵확산금지는 국익과 외교정책목록의 어느 위치에 놓여져야 하는가. 미국과 한국의 관리들은 여러 차례에 걸쳐 핵비확산은 절대적인 이해의 문제라는 성명을 발표했다.『북한이 단 한개의 핵무기도 갖는 것을 용인할 수없다』는 성명도 나왔다.이러한 목표를 위해 양국은 제재와 봉쇄,심지어는 전쟁불사까지도 위협했다. 때때로 북한에 대한 미국 외교는 핵비확산이 북한과의 관계개선보다 더 중요하고,심지어는 평화롭고 안정된 통일보다도,평화 그 자체보다도 더 중요하다는 점을 시사했다. ○조건부 관계 개선이 최선 그러나 말할 필요조차 없지만 핵비확산이 절대적인 이해의 문제는 아니다.그것은 많은 이해들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만약 북한이 한 쪽에 한두개의 핵무기를 들고 있고 다른 쪽에 전쟁이라는 카드를 보인다면 우리는 항상 핵무기쪽을 선택할 것이다.우리는 북한의 붕괴나 중국과 불화,대가가 큰 북한해안의 봉쇄보다도 한두개의 애매모호한 핵무기를 선택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항상 이렇게 균형잡히고 적절한 방식으로 핵비확산을 생각해오진 않았다. 핵비확산의 진정한 중요성에 대한 우리 사고의 혼란은 특히 목표설정과 관련이 있다.우리는 북한 핵개발계획의 완전 중단을 추구하는가,아니면 미래의 핵개발 중단만을 추구하는가.어느 수준까지 모호성을 용납할 수 있는가. 북한 핵문제에 대한 한·미외교의 첫번째 주요 교훈은 바로 이것이다.즉 우리는 외교정책에서 핵비확산의 역할에 대해 매우 진지하게 사고하고 잘 정의된 결론을 내려야 한다는 것이다. 두번째 교훈은 북한에 대한 전반적 전략과 관계가 있다.결론적으로 말해 우리는 북한에 대해 아무런 전략이나 일관된 견해를 갖고 있지 않다. 북한의 민주화와 책임있는 행동을 촉구하는 최선의 방법이 북한과 관계개선인지,고립화인지하는 큰 문제에 대한 논란에서부터 혼란은 시작된다.미국은 쿠바와 이란을 고립시키지만 중국·베트남과 유대관계를 추구한다.우리는 전략적인 이유라기보다는 정치적인 이유,즉 국내 유권자들때문에 북한에 대해 중간적인 자세를 취한다. 우리는 북한에 대해 폭넓은 전략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핵문제에 대해 어떤 전략을 사용해야 할지를 모른다.만약 우리가 북한과의 관계개선을 추구한다면 중요한 경제투자 제의가 의미있을 것이다.그러나 우리는그렇지 않다.고립이 북한에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제재조치가 올바른 정책이 될 것이다.그러나 적어도 그에 대한 컨센서스는 없다. ○핵 비확산 중요성 정의를 북한의 핵문제는 핵무기나 인권 등 북한에 대한 개별적 정책이 보다 커다란 전략을 벗어나서는 지속될 수 없다는 교훈을 우리에게 준다.그러한 전략이 무엇인지를 정의하기는 쉽지 않지만 전략적인 틀이 없다면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수단은 강경에서 온건으로,관계개선에서 고립으로 표류할 것이다. 두가지 교훈을 종합할 때 우리는 먼저 한반도에서의 핵비확산의 진정한 중요성을 정의하고 그 다음 북한으로부터 우리들의 이익을 증진시키기 위한 분명한 전략을 개발해야만 한다.우리가 이 두가지 과제를 완성했을 때에만 북한에 대한 미국의 외교가 강해지고 일관성을 가지게 될 것이다. 지난 1월 클린턴 미대통령은 「합의의 틀」을 북한과 관계개선을 위한 기회로 사용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물론 정치적인 이유때문이었다.이것은 올바른 결정일 수도,아닐 수도 있다.그같은 결정이 보다 큰 전략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는게 내 견해다. 핵문제가 한·미관계에 긴장을 가져왔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우리는 핵위기를 종식시키기 위한 노력을 하는데 있어 북한에 대해 접근하는 방법이나 협상방식,합의의 형태 등에서 때때로 의견이 다를 수 있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정책을 조율해야 한다.또 일치하지 않을 수 없는 한 가지는 양국간 안보관계의 지속이라는 대명제이다.우리의 동맹관계는 지난 40년간 평화라는 대의명분에 이바지해왔고 앞으로도 계속 그러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마자르 인터뷰/“쌀 제공 통한 북한 변화 기대 어려워” 『최선의 대북한 기본전략은 관계개선 추구라고 생각한다』­마이클 바자르박사는 22일 하오 한국프레스센터에서의 북한핵을 주제로 한 강연에 앞서 서울신문사와 가진 단독 인터뷰를 통해 북한과의 관계개선을 강조했다. ­북한이 서방국가들에 쌀을 요청한데 대해 실용주의 노선으로의 전환이라는 시각과 정권의 위기라는 시각이 있는데. ▲쌀문제가 실용주의 노선으로의 전환이라든가,북한정권 최후의 위기라든가 어느 쪽도 단정하기에는 아직 이르다.한국이나 일본이 쌀을 제공하지 않을 경우에는 중국이라도 나서서 북한의 붕괴를 막도록 지원할 것이다.쌀제공을 통해 북한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생각은 무리다.우리는 회의적인 시각으로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북한정권 붕괴를 강요할 경우 한국에 굉장한 부담이 될 것이다. ­북한에 대한 한·미양국의 바람직한 기본전략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관계개선 추구인가,아니면 고립화인가. ▲최선의 대북한 기본전략은 조건부 관계개선 추구정책이라고 생각한다.한·미 양국간 의견조율은 계속돼야 한다.북한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한국과의 관계가 북한의 이해득실이 걸린 문제가 되도록 만들어야 한다.관계가 증진될수록 북한의 이해관계는 높아진다.물론 북한이 계속 잘못한다면 이득될 것이 없다는 메시지는 계속 전달돼야 하며 이미 전달됐다.앞으로 남북한간 정치·경제교류가 많아지면 우리는 위기시 이를 지렛대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한·미·일과의 관계를 전담하는북한내 지도층 인사는 문제가 생길 경우 관계악화를 막도록 힘쓸 것이다. ­북·미간 연락사무소 상호 개설이 늦어지고 있는데. ▲확실치는 않지만 경수로 제공과 관련한 실무적인 문제는 상당한 의견접근을 이뤘다.큰 위기가 없다면 적어도 연내에 연락사무소 개설이 이뤄질 것으로 본다. ­한반도 통일에 대한 전망은. ▲두가지 가능성이 있다.우선 북한이 지도층간의 분열이나 식량부족등 내부문제로 인해 동독처럼 갑작스럽게 붕괴할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그보다 더 가능성이 높은 것은 북한정권이 어느 정도 계속 존재하면서 남북한이 점진적으로 관계개선을 이뤄 통일이 수년간 지연되는 시나리오다. 북한이 2∼4년내에 붕괴한다거나 5∼7년중에 통일이 가능하다는 예상도 있으나 내가 보기에 한반도 통일은 그보다 훨씬 장기간에 걸쳐 점진적으로 이뤄질 것같다.북한은 10년이상 존속하고 결국 두정부의 협상에 의해 통일을 이룰 것으로 본다.
  • 「한국전쟁 기원」 논쟁(새로 쓰는 한국현대사:32)

    ◎「이데올로기 잣대」 따라 남침­북침설 대립/본지연재 「모스크바 새증언」이 남침 입증 한국전쟁의 진행 상황은 본지 연재물 「6·25 내막 모스크바 새 증언」에서 이미 자세히 소개했습니다.따라서 「새로 쓰는 한국현대사」시리즈에서는 전황을 직접 다루지 않는 대신 한국전쟁 기간중 있었던 주요 사건·사고와 정치·경제·사회적 흐름을 주로 소개하겠습니다.독자 여러분께 배전의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1950년 6월25일 상오 4시 38선 일대에는 가랑비가 내리고 짙은 안개가 드리워 있었다.일요일을 맞아 새벽 단잠에 빠진 한국군부대 막사 위로 한순간 포탄이 우박처럼 쏟아지더니 이어 탱크를 앞세운 북한군 주력부대가 38선을 넘었다.이에 앞서 상오 3시30분쯤에는 북한 게릴라 3천1백여명이 해군 상륙선단편으로 동해안 옥계·삼척·임원 등 3곳에 상륙했다.동족상잔의 비극 「6·25」가 터진 것이다. ○북 군사력 한국 압도 북한군은 개전 3일만에 서울을 점령하고 7월 말에는 경상도·제주도를 제외한 국토 전역을 수중에 넣는 등 파죽지세로 대한민국을 유린했다.북한군이 전쟁 초기 일방적으로 공세를 벌인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북한은 일찌감치 전쟁준비에 나서 개전 당시 군사력에서 한국을 압도했다. 개전 초기 양쪽의 전력을 볼 때 북한이 침략의도를 갖고 대한민국을 먼저 공격한 사실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을 일으킨 쪽이 어디냐는,곧 「한국전쟁의 기원」을 따지는 논쟁이 오랫동안 끊이질 않았다.이는 한국전쟁이 단순히 한민족간에 벌어진 내전이나 국지전 이상의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한국전쟁은 세계가 미국·소련을 중심으로 한 동서 양블록으로 갈라져 냉전체제로 돌입한 다음 벌어진 첫 대결의 장이었다.따라서 한국전쟁 기원에 관한 학설에는 전쟁 자체의 성격 분석을 전제한 이데올로기적 잣대가 작용하게 마련이었다. 한국전쟁을 해석하는 시각은 냉전 발생의 책임을 미·소 중 어느쪽에 두느냐에 따라 두갈래로 나뉜다.하나는 「소련의 공격주의적이고 팽창주의적인 대외정책이 미국의 단호한 반응을 불러일으켰다」고 보는 전통주의 학파다.거꾸로 「미국이 월등한 군사·경제력으로 세계를 지배하려 하므로 소련이 불가피하게 대응했다」는 주장을 내세우는 쪽은 수정주의 학파라고 부른다.기본적으로 전통주의자들은 「남침설」을,수정주의자들은 「북침설」을 지지한다. 전통주의자들은 한국전쟁을 일으킨 주범으로 소련공산당 서기장이자 수상인 스탈린을 대개 지목하며 그 동기는 다음 몇가지로 분석한다.첫째 미국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를 창설,유럽에서 압박을 가하자 이를 분산시키려고 극동에서 전쟁을 일으켰다는 「압력분산설」이 있다.또 ▲세계 적화를 노리는 스탈린이 미국의 대응 의지를 떠보려고 도발했다는 「저항력 실험설」 ▲주한미군 철수,애치슨라인 설정으로 미국이 한국방위를 허술히 한데다 한국에서도 「5·30선거」에서 우익세력이 패하자 그 틈을 노렸다는 「허점공격설」 등이 있다. ○냉전발생책임에 무게 반면 수정주의 학설은 「맥아더와 이승만이 공모해 전쟁을 일으켰다」는 가설에서 출발했다.미국의 좌파 언론인 스톤이 제기한 이 주장은 「이승만은 국내 정치위기를해소하려고,맥아더는 미 정부의 관심을 아시아로 돌리기 위해」전쟁을 획책했다는 논지로 구성됐다.정확한 근거없이 단순한 추측에서 시작된 이 가설은 점차 미국·일본 등 서방국가 좌파 지식인사이에 널리 퍼져 수정주의라는 한 갈래를 이뤘다. 「6·25」를 겪은 한국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어처구니없어 할 「북침설」이 나름대로 세력을 이룬데는 몇가지 이유가 있다.먼저 전통주의자건,수정주의자건 한국전쟁을 지나치게 냉전논리로만 파악했다는 점이다.이들은 당시 남북한의 정세나 군사력 비교 등에 큰 의미를 두지 않고 다만 소련 또는 미국이 왜 전쟁을 일으켰을까에만 관심을 기울이고 분석했다.또 한국전쟁 발발에 관한 북한·소련측 자료가 거의 공개되지 않은 점도 학자들의 연구를 제약한 큰 요인이었다.예컨대 북한군의 남침을 밝히는 한글 문헌은 1986년까지 한건밖에 공표되지 않았다. 이같은 학계 분위기는 80년대 후반 들어 반전한다.미 국립공문서보존관리국에 보관중인 「북한 노획문서」가 공개되면서 북한이 「6·25」를 철저히 준비했고,치밀한 계획에 따라 전쟁을 수행했음이 속속 밝혀졌다.「북한 노획문서」란 인천상륙작전으로 북진에 나선 미군이 평양 등 북한 각지에서 압수한 각종 문서를 총칭하며 그 분량이 1백60만쪽에 이르는 방대한 규모다.이 북한측 자료는,인민군 5개 사단이 6월23일부터 24일 밤사이 38선이북 수㎞ 안에 집결해 25일 새벽 선제공격을 가했음을 생생하게 보여준다.가령 6사단 문화부가 6월13일 예하부대에 내려보낸 「전시 정치·문화사업」명령서를 보면 38선으로의 이동­공격 개시­점령지에서의 정치선전 활동에 이르기까지를 5단계로 구분해 구체적으로 지시하고 있다. 「북한 노획문서」의 공개와 이에 근거한 연구성과 발표는 어느쪽이 먼저 전쟁을 일으켰느냐는 논쟁에 종지부를 찍는다.그러나 이 단계에서도 전쟁을 계획하고 주도한 인물이 누구인지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이를 결정적으로 확인시켜 준 자료가 서울신문이 올해 발굴해 「6·25 내막 모스크바 새 증언」이란 제목으로 연재한 러시아 소장 비밀문서 9백50여건이다.러시아 외무부·대통령궁·옛소련공산당 중앙위·국방부에서 각각 입수,이번에 처음 공개한 이 자료더미는 한국전쟁 준비에서 휴전에 이르기까지 풀리지 않던 많은 의혹들을 해명해 주었다. ○“3인 공동정범” 밝혀 이에 따르면 김일성·스탈린·모택동은 한국전쟁에 있어 각각 주요 역할을 했고 그에 따른 책임이 있다.김일성은 1949년 3월 스탈린을 만나 먼저 전쟁을 제의한다.이를 거부하던 스탈린은 50년 3∼4월 회담에서 남침을 허락했고,이후 53년 3월 사망할 때까지 전쟁을 주도한다.전쟁 계획을 확정하고,중공군을 끌어들였으며,전쟁이 소강상태에 빠진 뒤에도 휴전을 거부하는 등 주요 결정은 모두 스탈린이 내렸다.한편 모택동은 초기에 참전을 주저하긴 했지만 막상 중공군을 투입하고 부터는 전쟁터를 책임진다. 러시아 비밀문서 발굴로 한국전쟁의 기원에 관한 해묵은 논쟁은 사실상 끝난 셈이다.한민족에게 최악의 상처를 남긴 「6·25」에서 김일성·스탈린·모택동이 공동정범이라는 사실은 이제 부인할 수 없는 역사의 진실로 증명됐다. ◎「당 7∼8월 사업계획서」/북,108군·1168면에 「인민위」 설치/도·시·군·면 행정단위 남노당위 “재건”/「평화옹호 서울위」,지지 서명 받아내 전쟁 개시 3일만인 6월28일 서울을 점령하고 7월 말에는 낙동강 동쪽을 제외한 국토 대부분을 점령한 북한은 점령지에서 당·정 기관의 건립,토지개혁,군지원을 보장하는 활동에 즉시 돌입했다. 서울신문 특별취재반은 당시 상황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비밀문건을 미 국립공문서보존관리국에서 입수,국내 처음으로 공개한다.「당 중앙본부 7월∼8월 사업계획서」라고 이름붙은 이 문서는 「절대비밀」로 분류돼 있으며 등사본으로 50부만 찍은 귀한 자료다.이 문건은 전쟁 초기 승승장구하던 북한이 세운 전략을 알려준다. 사업계획서는 점령지 행정 중심방향으로 ▲옛 남로당조직 복구등 당세 강화 ▲군수품 생산 증대 ▲군·면·이 단위 인민위원선거 및 토지개혁 실시 ▲사회단체 활동 강화 ▲농촌에서의 증산 장려와 현물세 징수 등 5개항을 제시했다.또 10일마다 회의를 열어 이같은 지시사항을 점검하도록 했다. 이 문서에서 나타나듯 북한은 행정구역에 따라 중앙(서울)·도·시·군·면 단위로 각급 당 위원회를 재건하는 동시에 임시인민위원회와 사회단체들을 복구했다.당 위원회 재건작업은 북로당원으로서 파견된 공작대원,남로당 출신 월북자,형무소에서 출감한 남로당 간부 출신,빨치산 간부들이 맡았다.이어 두단계에 걸쳐 「인민정권기관」을 지체없이 세웠다.먼저 점령지에 지역 정권기관으로서 임시인민위원회를 구성한 다음 곧바로 선거를 거쳐 인민위원회를 정식 설치했다.남한에서 인민위원회가 들어선 곳은 1백8개 군,1천1백68개 면이었다. 인민위원회는 북한에서 실시한 예에 따라 토지개혁을 실시했다.「무상 몰수,무상 배분」을 원칙삼아 일제와 한국 정부,지주 소유 토지는 모두 몰수해 가난한 농민들에게 나눠주었다.자작농은 5∼20정보만 인정했다. 북한은 정치 선전·선동에도 힘을 기울여 7월14일 「평화옹호 서울시위원회」를 조직,북한을 지지하는 서명을 억지로 받아냈다.그 내용은 ▲유엔에 미국의 참전 중지를 요구하고 ▲이승만 대통령 등 대한민국 요인을 반역자로 지목,처형을촉구한 것이었다.
  • 남총련과 어느 경찰청장의 악연/양승현 사회부 기자(오늘의 눈)

    시위를 막던 전투경찰들의 사진기자 폭행사건이 과거 「시위시대」에 그랬던 것처럼 전경 6명을 형사입건하고 지휘책임자 6명에 대해 징계 조치를 하는 것으로 일단락되어 가는 느낌이다. 그러나 이것은 시위결과의 겉모습일뿐 시위에는 항상 숨겨져 있는 속사정이 있게 마련이다.예전에도 관할경찰서장과 그 지역 대학 총학생회가 서로 친하면 시위진압에 앞서 어느 정도 적정선을 찾곤했다.「어느 선까지는 나가면 안된다」 「학생연행은 가능한한 없었으면 좋겠다」는 식으로 타협점을 찾아놓고 시위를 하고 이를 막았다. 80년대말 딸이 고려대를 다닌 L모 성북경찰서장과 당시 고려대총학생회의 관계가 가장 대표적인 예이다.인간적인 정리도 작용했겠지만 서로 미리 정보를 어느 선까지는 파악할 수 있었다.돌발상황에 적절히 대처할 수 있었던 것이다.그러나 대화의 통로가 사라지고 신뢰가 무너지면 언제 그랬느냐는 식으로 돌아가기 일쑤였다. 이번 「5·18 기소관철 국민대회」 시위의 주축은 누가 뭐래도 광주·전남지역 대학생들의 모임인 「남총련」 학생들이었다.남총련 학생들과 서울경찰의 책임자인 안병욱 청장과는 「시위=진압」의 역사로 볼때 인연이 매우 깊다.그 인연은 악연이라는 표현이 더 적확할지 모른다.경찰내에서는 내로라하는 경비통인 안청장이 전남청장 재직시절 가장 신경을 쓴 업무가 시위진압이었다.안청장과 남총련 학생들과의 결정적인 계기는 지난해 7월 김일성 사망이후 전남 모대학 총학생회의 빈소설치 사건이었다. 「조작이다」,「사실이다」로 한때 우리 사회를 뒤흔들었던 이 사건으로 불신의 골이 패어질대로 팬 상태였다.당시 학생들이 안청장을 지명수배자로 정해 현상금을 내건 것은 그 단면의 하나이다.사진기자 폭행사건 뒤 안청장은 곤혹스런 표정으로 기자실에 들러 여담 비슷하게 『남총련은 (원칙적인 시위진압에 정평이 나있는) 나를 잘 알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그의 얘기속에는 학생들이 거리로 뛰쳐나간 데에는 자기에 대한 감정도 작용했을 수도 있다는 심정적 분석이 깔려있다. 「남총련 학생들은 과격해지기 쉽고 안청장은 시위엔 조금도 타협하지 않는 인물」­이러한 선입견이 학생들을 불법·폭력시위로 잔뜩 긴장한 전경들이 진압과정에서 사진기자의 카메라를 밀친 한 원인이 되지 않았나 싶다.
  • 자서전 「최후의 분대장」 출간/연변조선족 작가 김학철씨(인터뷰)

    ◎“중국내 조선의용군 항일투쟁사 전하고 싶어 집필” 『중국땅에서 일본에 혼신으로 맞섰으면서도 아무도 알아주는 이 없이 잊혀져가고 있는 조선의용군의 역사를 글로 남기고 싶었지요』 조선의용군 일원으로 항일투쟁에 가담했던 연변 동포작가 김학철(80)씨의 자서전 「최후의 분대장」이 문학과 지성사에서 나왔다.광복 50주년을 맞은 지난 15일 기자와의 전화인터뷰에서 그는 『혹독한 일제탄압기인 지난 30년 대에도 우리끼리는 한마음으로 독립투쟁에 나섰다.나라를 되찾은지 50년이 되도록 국토가 두동강난채 있을줄 몰랐다』고 한숨지었다. 19 16년 원산에서 태어난 작가의 삶은 가시밭길로만 이어져온 우리 민족의 신산스런 현대사를 거울처럼 보여준다.「넉가래(갑·수)」하나없이 「오리(을·우)」투성이인 성적표로 어머니를 걱정시키던 개구쟁이 소년 김학철은 멀쩡히 책값을 치르고도 일본순사한테 도둑으로 몰리자 민족감정이 불끈 솟는다.임시정부에 투신코자 다니던 보성고보 교복을 입은채 가출,상해까지 숨어들지만 정작 임시정부는 못찾고조선의용군에 끈이 닿는다.41년 일본과 교전중 포로가 돼 나가사키 형무소에서 부상당한 다리 한짝을 잘라내고 해방 때까지 복역한다.하지만 이 시기는 기나긴 감옥나들이의 서곡일 뿐.김일성 정권의 독재와 맞서다 중국으로 쫓기다시피 건너간 김학철에겐 문화혁명의 회오리와 또 다른 모택동 독재가 기다리고 있었다.바른말 잘하는 작가는 모택동을 천안문위에 올라선 벌거벗은 황제라고 비꼬면서 문혁의 실상을 낱낱이 고발한 「20세기의 신화」를 썼다가 10년징역을 포함,24년동안 실권된다.지난 80년 작가는 겨우 복권됐지만 작품은 아직 빛을 못보고 있는 상태. 이처럼 고난에 찬 일생을 털어놓는 작가의 어조는 그러나 낙천적이다 못해 익살맞기까지 하다.유년시절,독립투쟁당시,하다못해 감옥생활에 이르기까지 웃음을 머금게 하는 주변인물들의 일화가 살아있기 때문이다.험난한 시대를 살았으면서도 지은이가 지켜온 인간에 대한 변함없는 믿음이 역사를 결코 비관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이 책의 매력이다. 이 모든 것을 단지 기억에 의지해 써냈다는 작가는 『앞으로는 연변 조선족이 소수민족으로 겪는 불익도 다뤄볼 예정』이라며 나이가 꺾지못한 창작욕과 인간애를 말했다.「최후의 분대장」은 번역이 끝나는대로 일본 이와나미 출판사에서도 출간된다.
  • 세계 한민족 통일 문제 토론회/지상중계 토론회

    통일원과 국민생활체육협의회가 공동주최한 광복 50주년 기념 세계 한민족 통일문제토론회가 「통일번영의 한민족시대 전망」이란 주제로 16일 이틀간의 일정으로 열렸다.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이번 토론회에는 국내학자들과 외국에서 활동중인 동포 석학들이 참석,북한의 변화와 통일을 앞당기기 위한 다양한 접근방법을 제시했다.이 가운데 신창민 교수(중앙대)의 「분단 50년,남북관계의 현황과 과제」,서병문 베를린 자유대 동북아정치연구소 수석연구원의 「통일환경의 변화와 대책」등 두 발제 논문을 간추려 본다. ◎남북관계의 현황과 과제/대북 경협 과감히 … 군비는 과학화/통일구도와 대결구도 분리 대처/신창민 중앙대교수 북한당국은 주민들에 대한 완전한 정보차단으로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북한주민들이 비교할 수 있는 대상을 단지 자신들의 과거에만 국한되도록 하고 있다.일제치하에서는 하루 한끼를 먹었는데 이제는 두 끼를 먹으니 행복하게 되었지 않느냐 하는 식이다.그리고 「남조선 역도」들이 「미제국주의자」들의 앞잡이가되어 통일이 이룩되지 않고 있어 과도한 군비지출을 하지 않을 수 없고 이로 인해 경제상황이 어려울 수 밖에 없다고 주민들을 설득하고 있다.따라서 북한주민들은 생활이 어려워지면 질수록 북한지도층에게 그 책임을 묻는 게 아니라 남측과 「한판 붙어보자」는 생각이 자연스레 나오게 되어 있다. 북측의 경제는 극도로 피폐해진 상황으로 그 탈출구를 찾기란 극히 어려운 상황이다.결국 통일을 감당할 경제력은 그 초기에는 남쪽으로 부터 나올 수 밖에 없을 것이다.이같은 상황을 감안한다면 통일을 이룩하는데 있어 우리측 내부의 급선무는 그 접근방법에 있어서 확실한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일이다.점차 설득력을 더해가는 「햇볕론」은 북한이 경제적으로 최악의 상태로 가고는 있지만 가까운 시일내에 무너질 가능성이 그리 높지 않다고 보는데서 출발한다.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이런 시각을 위험천만한 발상이라고 여기면서 북측의 실체를 모르는 사람들이 장미빛 자기환상에 젖어 큰일낼 소리를 하고 있다고 보고있다.「햇볕론」은 결과적으로 북측체제를 연명시켜 주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러한 두 상반된 시각에는 각기 나름대로 일리가 있다.다만 우려하는 점과 추진방법이 다를 뿐이다.이런 두가지 시각을 종합해 우리에게 바람직한 통일접근 방안을 설정해주는 것이 지금부터 설명할 「R이론」(Re­unification)이다.통일후 체제는 자유민주와 시장경제체제를 양대지주로 한다는 전제 아래 대북정책은 북측 권력핵심과 주변세력,일반주민으로 양분해 차별화함으로써 한편으론 제약없는 과감한 남북경협을 추진하고 다른 한편으론 불필요한 군사적 긴장감을 유발시키지 않는 한도내에서 과학화의 방향으로 지속적으로 군비확충을 통해 북측과 경쟁을 벌이는 방안이다.이 방안은 대결구조와 통일구도를 분리 대처하는 전략이다. 과감한 경협은 분명 북한의 소득수준을 높여 주게 될 것이다.그러나 이 경우 북측의 생산능력 증대와 소득향상이 이뤄지는 속도보다 주민들의 욕구증가(민간소비지출 수요)는 더욱 빠른 속도로 증가할 것이다.다른 한편으로 남측에서 북측의 핵 무기불투명성 문제를 이유로 군비를 계속 증강시켜 나간다면 북측 당국도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군비지출이 불가피하게 되어 국고가 바닥난 상태(정부지출수요 측면)를 유지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이렇게 되면 북한은 남북경협에 따른 완만한 생산력 증가가 있다 하더라도 위의 두가지 수요증가의 합계를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이에따라 북한체제는 내부적으로 더이상 지탱할 힘을 잃게 되어 통일의 길은 활짝 열리게 될것이다. ◎통일환경의 변화와 대책/정치협상 어려워 교류 우선돼야/북 지도자 안정시켜 변화유도를/서병문 베를린자유대 동북아정치연 수석연구원 적어도 지난 80년대 중반 이후 북한의 지도층은 한국과의 정치·경제·군사경쟁에서 실패했고,이로인해 한반도의 적화통일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사실상 시인했다.김일성 사후 북한은 김정일을 중심으로 한 공동지도체제를 유지하고 있고 미국 및 일본과의 관계개선을 서서히 추진중에 있다.이와함께 제한된 경제개방을 시도하고 있다.김정일의 공식 권력승계는 계속 지연될 가능성도 있으나 그를 중심으로 한 젊은 세대들은경제개혁을 시도할 것으로 생각된다.북한지도자들은 경제발전을 위해선 한국과의 협력이 필연적이라는 점을 인식하고 있으나 이것이 그들의 정치생명을 위협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에 한국과의 접촉을 계속 피하고 있다. 북한은 근래에 들어 현재의 휴전협정을 미­북간의 평화협정체제로 변화시키려고 하고 있으나 이는 한국과의 접촉을 피하고 자신들의 존재를 합법화하려는 시도에 불과하다.미국은 북한이 원하는 평화조약은 반대하더라도 새로운 동북아시아 안보체제나 현재 진행되고 있는 다자간 대화에 참여시킬 것으로 예상된다.이로 인한 남북간 경쟁이 예견되는 것이다.때문에 현재로선 북한과의 협상을 통한 접근은 어렵다고 본다.따라서 남북관계의 획기적인 전환을 위한 분위기 조성이 우선 시급하고 이를 위해선 다양한 접촉을 지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요컨대 한반도 통일은 우선 한민족의 화해와 단합이 결정적이라는 사실을 인정,정치적 통합보다 다양한 접촉과 교류를 증가시키고 북한 지도자들을 안정시켜 북한내 변화를 가능케 하는 것이중요하다고 본다.결국 한반도에 전쟁위험이 사라지고 남북한간에 경제교류가 활성화되면 통일은 시간문제라고 본다.그러나 북한이 계속 고립된 상태에서는 통일이 이룩될 수 없고,흡수통일은 위험할 뿐아니라 감당할 수도 없다.때문에 우리는 4강국의 정책을 이해하고 주변국으로 인해 한반도 긴장이 악화되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이 중요하다.현재 북한과 협상을 통한 접근은 어렵다고 본다.때문에 남북관계의 획기적 전환을 위한 분위기 조성이 시급하고 이를 위해서 다양한 접촉을 지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정상회담은 긴장완화 조성과 화해에 걸정적 계기가 될 수 있는 역사적 기회가 될 것이다.미­북간의 관계개선이나 북한의 전면 개방은 조속한 시일내에 실현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따라서 제3국 또는 유엔을 통한 비정치적인 접촉을 장려하는 것도 우선 중요한 통일준비라고 생각된다. 결론적으로 한국은 민주화·복지화를 계속 발전시켜 나가고 북한을 국제적 고립에서 벗어나게 유도하고 점진적인 민주화와 개방화를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남북한은 더이상 서로를 불신하고 상대방을 계속 없애야할 적으로 보지 않는,같은 배를 탄 공동체로 인식해야 하며 국제무대에서 상호간의 발전을 위해 협력하는 관계로 만들어나가야 한다.한반도의 통일은 주변 4강국의 협력없이는 성취하기 어렵다.따라서 약소국인 한국은 지금까지의 한미안보협력체제를 유지하면서 이를 보충 또는 지지하는 다국 협력체제를 조성하고 적극 참여하는 것이 중요하다.
  • 한총련은 통일방해 집단이다(사설)

    한총련(한국대학 총학생회연합)이 여학생 2명을 밀입북시킨 것을 개탄한다.왜 이런 허황되고 무모한 짓을 저지르는지 안타까운 마음 금할 수 없다.지난 14일 평양으로 들어간 여학생들은 15일 북한의 조평통이 판문점에서 개최한 이른바 「통일대축전」에 「남측대표」로 참석한 뒤 북한의 대학들을 돌아보고 단군릉도 참배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들이 북한에서 어떤 언동을 할 것인가에는 관심이 없지만 이번 사건에서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한총련이 주체사상을 신봉하고 북한의 「남조선 해방전략」을 그대로 추종하는 좌경세력임을 다시한번 확인시켜주었다는 점이다.극소수 재야인사는 한총련 학생들의 밀입북에 대해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통일을 앞당기기 위한 순수한 열정에서 나온 것이라고 강변할지 모른다.임수경양의 밀입북 때도 그들은 그렇게 말했다.그러나 우리는 그녀의 북한에서의 언동이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지 묻고 싶다.북쪽에서는 김일성 우상화놀음을 부추겨주었고 남쪽에서는 다소의 혼란과 함께 그들이 매도해 마지않는 「공안정국」을 자초했을 뿐이다.남북관계도 개선이 아니라 오히려 악화시키는 빌미를 제공했다.이번 밀입북도 똑같은 결과를 가져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한총련은 한마디로 북한당국의 장단에 춤을 추는 통일방해집단이다.우리는 두 여학생의 밀입북을 북한의 지령에 의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북한과의 사전협의 없이 그것이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북한의 선전매체들은 밀입북과 한총련의 반정부시위를 「애국적 용단」이라고 찬양하면서 학생의 소요확산을 부채질하고 있다.북한의 이같은 대남선동이 무엇을 노리고 있는가를 정확히 파악하지도 못한 채 가투에 나서고 있는 소수 학생들을 많은 국민은 안타까운 심경으로 지켜보고 있다. 우리는 한총련에 가입한 학생 모두가 불순하다고 보지는 않는다.「통일투쟁」이라는 명분에 이끌려 맹목적으로 이 조직에 들어간 학생은 이제 과감히 그 울타리에서 뛰쳐나와야 한다.그것이 학생의 본분에 맞는 일이며 우리사회의 안정에도 도움을 주는 일이다.
  • 북 8·15 기념행사/어제 함흥서 개최

    북한은 15일 함남 함흥시에서 총리 강성산과 부주석 이종옥,박성철,김영주,김병식을 비롯한 당·정 고위간부들이 참석한 가운데 조국해방 50돌 경축중앙보고대회를 개최했다. 내외통신에 따르면 함흥광장에서 열린 이날 행사에서 부주석 박성철은 보고를 통해 8·15광복을 『김일성을 수령으로 모심으로써 받아안은 민족적 행운』이라면서 『김일성의 유훈에 따라 혁명위업을 끝까지 완성하기 위해서는 김정일의 영도를 충성으로 받들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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