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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택민 주석 방한특집(한·중 새 시대:1)

    ◎강택민 당·정·군 최고위직… 권력 25% 장악/“중국의 트로이카” 강택민·이붕·교석의 역학관계/이붕­경제분야서 전권행사… 영향력 커져/교석­사법·공안기관 출신… 킹메이커 유력 현재 중국의 권력체제는 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의 7인 위원이 이끌어가는 일종의 집단지도체제라고 할 수 있다. 7명의 상무위원 가운데서도 등소평 이후 중국을 이끌어갈 지도자는 단연 강택민 국가주석 겸 공산당 총서기와 이붕 총리,교석 전인대 상무위원장등 3명을 꼽을 수 있다. 전문가들은 현재 강주석이 권력의 25% 정도를,이총리와 교위원장이 각각 20%를,이서환·주용기·유화청·호금도 등 4명의 위원이 나머지 35%를 잡고 있는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중국의 실세 3인 가운데 이붕 총리가 지난해 10월,교석 전인대 상무위원장이 지난 4월에 방한한데 이어 오는 13일 강주석이 방한하게 됨으로써 중국을 움직이는 실세 3명이 1년여에 걸쳐 모두 한국을 방문하게 됐다.마치 경쟁을 하는듯한 양상이다. 강·이·교 세사람은 모두 등소평에 의해 발탁된 인물이다.강은 정통 기술관료 출신이고,이는 행정관료,교는 당과 공안계통에서 성장한 인물이다. 이들은 현재 중국권력의 중심에서 협력과 경쟁의 관계를 이루고 있다. 등소평은 일단 권력의 안정을 위해 세사람 가운데 강에게 많은 무게를 실어줬다.강은 현재 국가주석과 당 총서기,중앙군사위 주석등 당·정·군의 최고직위를 모두 갖고 있다.이는 모택동 이후 처음있는 일이다.등은 지난 몇년동안 군의 요직을 개편하면서 강의 입김이 작용할 수 있도록 배려하기도 했다.강이 국가권력 전체를 완전히 장악한 상황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등사후 그가 명실상부한 중국의 최고지도자가 될 것은 분명하다. 이붕 총리는 경제분야에 대해서는 거의 전권을 행사하고 있다.중국으로서는 경제발전에 정책의 우선순위를 두고있기 때문에,이의 영향력과 지도력이 커지는 것이다.이총리는 외국을 방문할 때 강주석 못지않은 의전을 요구하고 있지만,이따금씩 『우리는 강주석을 중심으로 뭉쳐야 한다』고 강조하며 우위를 과시하기도 한다. 교석위원장은 개인적인 파워면에서는 가장 막강한 것으로 알려진다.그가 당 조직부장과 중앙기율검사위 서기등을 역임한 중국의 대표적인 사법·공안통이기 때문이다.그점이 오히려 그가 최고 지도자가 될 수 없는 요인이라고 지적하는 이들도 있다.전문가들은 그의 역할을 「킹 메이커」라고 말하고 있다.만일 교가 강이나 이 가운데 한사람에게 일방적으로 힘을 몰아주게 되면,현재 중국 권력내부의 세력균형은 크게 흔들리게 된다.그러나 신중한 교는 지금까지 한번도 그런 움직임을 나타내지 않았다고 한다. 등소평 사망후에도 중국의 이같은 권력 체제는 최소한 97년 제15차 당대회 때까지는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97년이 지나고 98년3월에 9차 전인대가 열리면 크고작은 변화가 올 전망이다.총리직의 3임이 허용되지 않기때문에 현재 연임중인 이총리가 자리바꿈을 해야 하기때문이다. ◇인터뷰 ◎“강 주석 방한은 세계 정치사적 사건”/황병태 주중대사/“중은 한국을 가장 편한 파트너로 생각/한반도 안정을 고려 미군주둔 수용” 강택민 중국 국가주석의 방한을 준비하기 위해귀국한 황병태 주중대사는 9일 상오 외무부 기자실에서 회견을 갖고 강주석 방한의 의미를 설명했다. 황대사는 『중국측에서 볼때 강주석 방한은 「세계 정치사적 사건」』이라고 말문을 열었다.황대사는 『김일성 사망후 중국의 장관급이상 인사 가운데 한 사람도 북한을 방문한 일이 없다』면서 『당·정·군 등 3분야의 실권을 가진 국가주석이 처음 한반도를 방문한다는 자체가 의미있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황대사는 강주석이 이번 방문기간 정치·외교적이고 국제적인 현안을 다룰 것이라고 설명했다.황대사는 특히 사회주의 국가지도자가 외국의회를 방문,TV가 생중계하는 가운데 연설하는 것은 유례없는 일이라고 말했다.중국의 한반도 정책은 기존의 「정치는 북한,경제는 남한」이라는 공식을 깨고 남한을 경제 뿐만 아니라 정치적 파트너로 인정하는 방향으로 이미 선회했다는 것이 황대사의 설명이다. ­강주석이 한국방문에 이례적인 선례를 남기는 이유는. ▲우리나라를 정치·경제적으로 가장 편안한 파트너로 생각하는 것 같다.강주석뿐만 아니라 이붕·교석등 세 지도자가 모두 마찬가지인 것 같다. ­북한에 대한 중국의 입장은. ▲중국이 한국과 관계를 개선하며 북한을 의식하는 단계는 넘어섰다.외교·정치·국제문제에 있어서 한·중의 3년간 관계는 다른 나라와의 30년 관계보다 더 긴밀하다고 중국측은 평가하고 있다.김일성사망후 북·중 관계가 소원해진 것이 사실이다. ­김정일 권력승계에 대한 중국의 예측은. ▲공식적인 권력승계없이 김정일이 북한을 통치하는 것이 장기화될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김정일은 김일성체제를 대체할 자기나름의 독특한 지도노선과 이념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김정일에 대한 중국의 평가는. ▲김정일이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은 미·북간의 제네바 핵합의 이행,대남비방,국제사회에 대한 쌀지원 호소 3가지뿐이라고 평가한다.중국은 북한이 식량난등 경제침체에서 벗어나려면 협동농장제를 폐지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그러나 이는 공산체제의 핵심을 변경하는 것이기 때문에 북한으로서는 쉽지 않을 것이다. ­안승운목사 피랍사건 수사결과는. ▲수사과정을 수시로 통보받고 있다.그러나 그 결과는 완전히 수사가 끝난후 양국이 공동발표할 것이다.관련자 사법처리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발표내용이 우리가 생각하는 기대에 떨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주한미군에 대한 중국의 입장은. ▲중국은 한반도문제와 관련,한반도 안정을 위해 현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다. ­비자금사건에 대한 중국 반응은. ▲노태우씨 개인의 문제보다 한국의 청렴정치가 어디로 가느냐에 대해 비상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중국도 부정부패 일소운동을 하고 있기 때문에,한국의 이번 사건을 표본으로 삼고자 세밀하게 관찰중이다.
  • 「김정일 정권의 향방」 김성철 박사·민족통일연 책임연구원 전망

    ◎“김정일 군부의존땐 권력분산 된다”/정권안정 보장 대가로 군의 영향력 확대 허용/경제난 심화되면 김 축출… 「집단체제」 형성할지도 통일원 산하 민족통일연구원(원장 이병용)은 8일 하오 서울시내 타워호텔에서 「김정일정권의 향방」을 주제로 학술회의를 가졌다.이날 회의에서 김일성 사후체제의 안정성에 대한 의구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김정일 정권의 변화전망을 주제로 한 민족통일연구원 김성철 박사(책임연구원)의 발표내용을 간추렸다. 김일성 사후 1년 4개월이 지나도록 북한은 공식 권력승계 징후를 보이지 않고 있다.올해 노동당 창건 50주년을 맞아 김정일은 국방위원장 명의로 최광을 인민무력부장에 임명하고 「최고사령관 명령」에 의해 장령급 승진인사를 단행해 최고 군사지휘권자로서의 권위를 행사했다. 이같은 김정일의 초헌법적 권위행사와 권력승계 지연은 당적 지배를 벗어나 군부 지지를 바탕한 비정상적인 체계의 작동을 의미한다.즉 김정일은 군부와 같은 무력기구에 의존해야 하는 만큼 권력이 분산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이같은 구도는 중장기적으로 두가지 상황으로 예측가능하다. 첫째 김정일이 정권의 안정을 군부에 의해 보장받는 대가로 군부의 영향력 확대를 허용하는 군부와의 연대 시나리오다.이 때 군부는 정치에 직접 참여하지는 않지만 대남 정책등 정책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조정자로서 역할을 행할 것이다. 이 경우 김정일은 정권의 안정을 바탕으로 구조적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경제적 비효율성 탈피,제2경제(암시장)등 양성화를 위한 개방·개혁프로그램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며 상당한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다. 두번째는 김정일 권력승계가 유보되는 상황에서 구조적 모순이 심화돼 김의 몰락에 이어 체제변동이 발생하는 경우다.불가항력의 사태에 의해 김정일정권의 상징조작과 물질적 보상 사이에 존재하는 격차가 두드러지게 될 때 이같은 상황이 발생할 것이다.즉 경제난 등에 대한 주민의 불만이 관료들에 대한 자연발생적인 저항으로 나타나고 이 때 군부는 진압에 나설 것이다. 여기서 군부는 폭동진압에 그치지 않고 정당성을 상실한 김정일을 축출한 후 당정관료들과 집단지도체제를 형성할 수도 있을 것이다.이 때 군부는 직접 주요정책결정에 참여하는 후견인이나 통치자로서의 역할을 하게 되며 이는 북한식 사회주의의 변화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김정일정권을 대체하는 집단지도체제는 공식이념인 주체사상과 수령론을 폐기하고 개혁·개방의 기치 아래 경제회생을 시도함으로써 지금까지의 단절전략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 상황이 북한체제 전체의 붕괴로 이어질 가능성은 낮다.북한체제의 총제적 붕괴는 대규모 난민발생을 억제할 수 있는 실체가 북한내에 존재하지 않는 상황과,외부의 적극적 개입이 가능한 상황이 복합적으로 발생하는 경우가 아니면 불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 미 카터센터 부소장 6·11일 남북한 방문

    지난해 지미 카터 전미대통령과 함께 북한을 방문,김일성을 만났던 미국 카터센터 부소장 스티브 린튼목사가 남북한을 연쇄방문할 예정이어서 남북한간 현안에 대한 중재 역할을 수행할지 여부가 주목된다. 정부의 한 당국자는 6일 『린튼목사는 이날부터 10일까지 한국에 머무르면서 정부관계자 및 기독교등 종교단체 관계자들과 만나 남북현안에 대해 논의한 뒤 11일 북경을 경유해 7박8일간 북한을 방문,김영남 외교부장과 김용순비서등을 만날 예정』이라고 말했다.
  • “미 기업,북에 발전소 짓기로”/김일성대 교수

    ◎나진·선봉에… 합작계약 체결 【도쿄 연합】 일본을 방문중인 김수용 북한 김일성종합대학 교수는 미국의 에너지 관련기업이 북한 경제특구에 발전소 합작 건설을 위한 계약을 체결했다고 4일 밝혔다. 김교수는 이날 니혼게이자이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합작 발전소 건설 예정지는 나진·선봉 자유경제무역지대라고 말했으나 발전소 규모 등 사업의 구체적 내용은 밝히지 않았다. 나진·선봉지구에 대한 미기업의 투자계획이 밝혀지기는 처음이다.
  • 한민족 통합과 「북한의 연착」(사설)

    서울신문 창간50주년 기념 제1회 국제포럼은 「한민족 통합을 준비한다」는 주제에 걸맞게 「자유·민주·평화통일」의 달성을 위한 냉엄한 현실분석과 바람직스런 대안제시가 많았던 알찬 토론회였다.그중에서도 북한현실과 미국정책에 대한 나웅배통일부총리와 릴리 전주한미국대사의 지적은 주목되는 대목이었다. 북한의 최근 동태와 관련해 나부총리는 북한노동당 창설50주년 기념행사를 노동당 아닌 군부가 주도했다고 지적했다.김일성사망 15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최고권력의 공식승계가 없는 비정상적인 현실에서 주목되는 이변이 아닐 수 없다.김일성 사후의 북한권력구조에서 차지하는 군부의 위상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주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릴리 전주한미대사는 미국의 북한정책에 대해 북한의 급격한 붕괴는 동북아의 불안을 조성한다면서 한국과 주변 관련국들은 북한의 「연착」을 공동목표로 삼아야 한다고 지적했다.북한은 핵폭탄 몇개와 한·일 강타가 가능한 미사일을 보유한 듯하다면서 강제적이고 도전적인 사찰로 그것을 완전 제거케 하는것은 북한의 연착을 위태롭게 한다고도 강조했다.미국의 정책기조를 읽게 한다. 미국으로서 그것은 최선의 현실적 대안일지 모른다.우리도 특별히 다른 효과적인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입장은 못된다.그러나 우리가 지적하고 싶은 것은 그러한 미국의 대북정책이 북한의 「민주화 연착」을 유도하는 것이어야지 자칫 공산독재의 연명 내지 군사독재 지원결과가 돼선 안될 것이란 점이다.동시에 북한의 핵동결뿐 아니라 투명성 보장도 가능한한 빨리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북한권력이 강경군부 영향하에 있을지 모른다는 사실은 그 필요성을 더욱 절실하게 한다.미국과 달리 우리는 있을지 모르는 북한핵및 군사력의 직접적인 위협하에 있다.최근 빈번해진 무장간첩사건도 북한군부의 권력득세와 관계가 없는지,도발가능성에 대한 경고는 아닌지 예의주시하며 대응해 나가야 할 것이다.
  • “북,핵폭탄 수개 보유”/릴리 전 주한미대사

    ◎한·일 사정권 미사일 발사장치도/제1회 서울신문 국제포럼 서울신문은 30일 창간 50주년 기념사업의 하나로 한국·미국·일본·중국·러시아·독일등의 세계적 석학과 중량급 한반도문제 전문가들을 초청,「한민족 통합을 준비한다」는 주제의 「제1회 서울신문 국제포럼」을 열고 한민족통합방안과 통일후유증을 최소화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했다. 한국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이날 포럼에서 나웅배 부총리겸 통일원장관은 기조연설을 통해 『북한은 김일성이 사망한지 1년4개월이나 됐으나 아직까지 권력승계를 마무리짓지 못하고 있다』면서 『지난 10월의 노동당창건 50주년 행사는 이례적으로 당이 아닌 군부에 의해 치러져 당이 지배하는 북한에서 주목할만한 변화』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급변하는 주변정세와 북한정세의 불투명성을 고려해 앞으로 우리는 보다 분명한 원칙에 입각해 서둘지 않고 일관성 있는 대북 정책을 추진해 나갈 것』이라면서 『한반도 새 평화체제는 남북 기본합의서를 통해 남북이 당사자 해결원칙에 합의한대로 남과북이 현정전협정을 준수하면서 함께 모색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서울신문 통일안보연구소가 주관하고 한국방송공사(KBS)와 민족통일 중앙협의회가 후원한 이날 포럼에서 손주환 서울신문 사장은 개회사에서 『많은 학자와 전문가들이 21세기에는 한민족의 통일이 현실로 다가올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면서 『북한체제가 세계 사회주의권의 전반적인 흐름에서 예외가 될 수 없을 것이라는 판단 위에 설 때 지금이야말로 가장 현실적으로 통일을 준비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제임스 릴리 전 주한 미국대사는 이날 『북한이 급격히 붕괴하게 되면 난민이 홍수를 이루게 되고,북한내 파괴가 확산되면 동북아시아의 불안정이 초래된다』면서 『한국과 주변 관련국들은 북한의 대량파괴무기 개발계획을 허용치 않으면서 북한의 안착을 공동목표로 삼아야 한다』고 제안했다. 릴리 전대사는 특히 『북한은 핵폭탄 몇개와 일본·한국 및 양국 주둔 미군의 대부분을 강타할 수 있는 미사일 발사장치를 보유하고 있는 듯하다』면서 『그러나현단계에서 강제적이고 도전적인 사찰로 북한의 대량살상무기를 완전 제거하도록 요청하는 것은 쇠락하는 북한체제의 경제개혁과 안착을 위협에 빠뜨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날 포럼에서 릴리 전대사와 러시아의 예브게니 바자노프 외교아카데미 부원장,김학준 단국대 이사장등이 주제발표를 통해 남북한 정치·군사통합방안을 제시했으며,김세원 서울대 사회과학대원장과 차동세 한국개발원 원장,고트프리드 킨더만 독일 뮌헨대교수 등이 휴유증을 최소화할 수 있는 경제·사회통합의 선결과제들을 내놓았다.
  • 창간 50주년 기념 제1회 서울신문 국제포럼 논문 요약

    □제1주제 한반도 정치·군사 통합 서울신문이 창간 50주년과 광복·분단 50돌을 맞아 주최하는 「제1회 서울신문 국제포럼」이 30일 한국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장에서 열린다.「한민족통합을 준비한다」를 주제로 하는 이번 포럼에는 한·미·일·중·독·러시아의 세계적인 석학과 전문가 18명이 참가,한민족통합과 관련한 다각적인 의견개진과 함께 심도있는 토론을 벌이게 된다.주제발표 논문 6편의 내용을 간추린다. ◎한반도 안정과 통일­미국의 입장/북 급격 붕괴는 동북아 안정 저해/미는 남북 대화 촉진의 핵심역 맡아야 한반도통일에 관해 미국이 어떤 정책을 취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에 대한 나의 접근은 다음과 같은 명제및 분석에 근거를 두고 있다. 1,북한의 쇠퇴=북한경제는 실패를 거듭하고 있고 전체주의적 이데올로기는 현대적 여건에 더욱 부적절해지고 있다. 2,북한경제=북한은 내키지는 않지만 살아남기 위해 보다 의미있게 개혁해야 한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다.농작물흉작과 사회주의블록으로부터의 지원부족 때문에 외부지원을 받아 내부개혁을 추진할 필요성이 최근 더욱 절실해졌다.경제개혁은 유일한 희망이자 권장,지원해야 할 사안이다. 3,북한이 급격하게 자멸하지 않는 것이 한·미·일·중·러시아등 관련국에 도움이 된다=북한이 망하면 피난민이 홍수를 이루고 북한내 파괴가 확산되며 동북아시아의 불안정이 초래된다.대량파괴무기개발계획을 허용하지 않으면서 북한의 안착을 공동목표로 삼아야 한다. 4,북한의 정치적 목적=자기들의 힘을 길러 한국을 따돌리며 미국과 직접거래를 하고 한국내 반체제세력을 선동,한국정부의 전복을 시도하는 것이다. 5,군사목적=북한은 내부통제력을 유지하기 위해 강력한 재래식 군사력유지를 추구하고 있다.주변국의 협박과 외부의 침공을 막기 위해 대량살상무기를 필요로 한다.군사력 카드는 불행하게도 북한에 있어서 계속 가장 중요한 것이다. 6,미국의 자세=미국은 북한의 군사공격을 예방하고 북한핵관련 합의내용을 한국과 함께 이행해야 한다.미국의 현자세는 북한이 결국 한국에 흡수될 것이라는 가정에 기초한 것으로 보인다.이 단계에서북한에 대해 강제로 대량살상무기의 완전제거를 요구하는 것은 쇠락하는 체제의 경제개혁과 안착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7,점증하는 한국의 역할=한국의 점증하는 경제력과 남북한 합해 6천만명의 인구,양측의 강력하고 잘 훈련된 군사력으로 볼 때 한국은 미래를 결정하는 데 있어서 과거보다 훨씬 지대한 역할을 하고 자주적이 될 것이다.한국의 내년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입과 김영삼 대통령의 「세계화」 개념은 중요한 진전이다. 8,중국의 역할=한반도문제해결에 있어 중국의 중요한 역할은 꼭 감안되어야 한다.중국은 북한문제에 대해 협조자세를 취해왔고 계속 그래야 한다.미국과 중국은 협력을 손상시킬 대결을 피해야 한다.중국은 통일경쟁에서 승자가 될 가능성이 높은 한국과의 유대,특히 경제협력을 강화하는 한편 북한을 만주국경쪽의 사회주의 완충지대로서 계속 유지시킬 필요가 있다. 9,일본=일본의 경제적 지렛대역할도 목표달성에 중요하다.일본은 전후보상약속과 일본으로부터의 대북송금을 계속 허용할 수 있다.일본은 또 한국과의방위협력을 증대시키고 있다.따라서 일본은 앞으로 북한과 협상할 때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10,남북대화=미·일·중은 한반도의 항구적인 평화안정과 통일을 이루기 위해 건설적인 남북대화재개를 계속 요구해야 한다.미국은 한국의 필수불가결한 역할을 더욱 강조하면서 남북대화촉진의 핵심역할을 맡아야 한다.그러면 북한은 협력 외에는 달리 선택할 길이 없을 것이다.물론 북한의 원시적인 벼랑끝 외교는 계속되겠지만 그 전술도 점차 익숙해져서 더욱 다루기가 쉬워질 것이다. 11,두만강개발계획=남북한 결속과 북한 경제문제의 해결책이 될 것 같지는 않다.자금조달이 어렵고 개발계획이 불분명하다.다른 지역에서 더 적합한 접근방식이 순조롭게 시도되고 있다.나진·선봉 이외의 지역에서 더 많이 이뤄질수록 좋다. ◎김일성 사후의 남북관계 전망/북 개혁파 힘 실어주는 정책 필요/평양 1∼2년내에 경제지원 요청 북한의 절대 최고권력자 김일성이 사망한 지 15개월이 지났다.그런데도 북한에서는 그의 후계자인 김정일의 공식 권력승계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이 때문에 북한의 현재의 권력상황,그리고 북한의 장래에 대해 많은 추측이 제기되고 있다.이 시점까지도 권력승계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은 매우 비정상적이다.이렇게 볼 때 북한은 정상국가가 아니라 비정상국가라고 보는 주장은 일리가 있으며 필자도 비정상국가라고 본다. 그렇다고 해서 북한의 권력구조에 공백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김일성이 지난 73년부터 무려 21년동안 후계자로 키워온 김정일이 북한의 모든 권력을 장악하고 사실상 김정일 지도체제를 이미 확립했기 때문이다.그러나 김일성의 카리스마를 앞세우는 것이 통치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기에 「김일성이 김정일이요,김정일이 김일성이다」라는 구호로 북한 주민을 설득시키면서 김일성의 유훈을 앞세운 이른바 유훈통치를 실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김정일 지도체제는 일종의 집단지도체제의 성격을 띤 것으로 보인다.즉 김정일을 정상에 올려놓고 6∼7명정도의 통치엘리트가 공동통치하는 일종의 단극성과두지배체제가 형성되어 있다고판단된다.그 과두지배체제는 당·정·군의 복합체제일 것이다.이 체제는 오늘날 서방세계와의 교류와 협력은 증진시키되 남한과의 교류와 협력은 최소한의 수준에 한정시키려 하고 있다.남한과의 교류와 협력이 증대되면 북한 주민이 남한의 실상을 정확히 파악하게 돼,「남조선은 미제의 식민지이며 가난하다」라는 북한의 선전이 더 이상 먹혀들지 않게 되고,그렇게 되면 북한 주민의 사상적 무장이 해제될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방세계가 북한에 줄 것이란 너무나 적다.그래서 북한은 경제재건을 위해 별도리 없이 남한에게 협력을 요청해야 한다.앞으로 1∼2년 안에 북한은 반드시 남한을 향해 당국자간의 대화를 통한 경제적 지원을 요청하게 될 것이다. 이로써 남북 사이의 교류는 확대될 것이다.이것은 이미 파탄난 북한경제의 소생에 큰 도움이 된다.그러나 동시에 북한의 권력구조에 개방파와 개혁파를 등장시키게 될 것이다.만약 그들의 정책이 실효를 발휘한다면,그래서 그 방향으로의 진전이 계속된다면 김정일은 거추장스러운 존재가 될것이기 때문이다.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김정일은 군부의 강경파에 의존하는 선택을 취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그래서 북한은 교조주의적 강경파가 폐쇄·빈곤의 노선을 강화할지 모른다.그러나 그것은 결정적인 종말의 시작이 될 것이다. 북한은 90년초 이후 통일을 두려워해오고 있다.특히 동독이 서독으로 흡수통합되는 것을 본 뒤 북한이 남한에 흡수통합되는 것이 아닌가 경계하고 있는 것이다.그래서 김정일체제는 남북대화·남북협력을 될 수 있는대로 기피하려 하고 있다. 따라서 한반도에 평화구조를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북한에서 개방파와 개혁파가 권력의 중심부를 장악하는 시나리오가 바람직하다.우리의 대북정책과 통일정책은 이 시나리오가 전개되도록 구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한반도 평화구조의 골격은 역시 남과 북 사이에 평화협정을 맺고 미국과 중국이 그것을 보장하는 「2+2」공식이 소망스럽다. 김정일은 남한을 배제시킨 상태에서 미국과의 평화협정체결을 획책하고 있다.그렇게 되면 북한체제의 존속을 국제적으로 보장받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그러나 북한이 강력히 주장하는 미·북한간 평화협정은 배격되어야 한다.이는 한·미간 전통적인 협력관계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한반도의 평화구조는 남북한 사이의 합의에 따라 마련돼야 한다.이런 점에서 91년에 맺어지고 92년에 발효된 남북기본합의서를 재활성시키는 노력이 긴요한 것이다. ◎정치및 군사분야의 통합/국제고립 벗게 주변국 도음 긴요/군사대결 끝내게 경협 강화해야 한반도문제와 관련,남북한을 포함한 미·중·일·러시아등 6개 당사국이 품고 있는 생각은 한반도에서 경쟁관계와 긴장을 가중시키고 있다.한반도에서 중국이 갖는 의중은 매우 명백하다.그것은 장기적으로 볼 때 한반도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할 나라는 바로 자기들이라는 확신이다.러시아는 전통적으로 한국에서 자기나름대로 노리는 바가 있었다.지금 러시아는 한반도문제해결과정에서 소외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미국은 남북한의 화해,일·북한간의 화해까지도 조정·통제하고 싶어한다.일본은 강력한 통일한국이 자기들의 운신에 장애가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남북한이 빨리 통일되는 것을 막으려 하고 있다. 이념문제에 있어 남북한은 상대의 이념체계를 전적으로 부정하고 있다.미국과 일본은 남한의 이념모델에 기초한 통일을 받아들일 것이다.반면 중국은 한국땅에 사회주의가 존속되기를 바라고 있다.이상과 같은 분석에 근거해 한반도의 정치·군사상황발전과 관련,몇가지 시나리오를 상정해볼 수 있다. 북한 지도부내 권력투쟁이 가열되고 반대세력이 김정일을 실각시키려 하는 경우로 김정일은 국내외로부터 변화의 압력을 받게 된다.개방·개혁의 영향으로 반체제움직임과 시위가 일어나게 되고 지도부내 권력암투가 벌어지게 된다.이 단계에서 남한이 개입하게 되면 상황은 더욱 복잡해진다.북한 공산정권은 조만간 붕괴되게 되며 중국도 이를 막지 못하게 된다.이렇게 해서 남북한이 합쳐지면 남북한 주민의 입장 차이와 갈등으로 정치·경제·사회적 혼란이 야기된다.이러한 혼란속에서 이뤄진 통일은 명백한 실패로 끝나게 될 것이다. 북한이 변화하지 않는 경우다.김정일에 대한 개인숭배를 강화하고 정보의 유통을 차단한 채 반체제인사에 대한 탄압을 강화한다.핵무기및 군사카드를 포기하지 않는다.또 공산주의기치 아래 통일을 추진할 것이며 게릴라를 남파하면서 DMZ에서 무력도발을 자행하게 된다.그렇게 되면 남북관계는 얼어붙게 된다. 중국·러시아등으로부터 충고와 도움을 받아 북한이 변화하는 경우다.비즈니스와 관련된 국내여행규제를 완화하고 미·일과의 관계를 정상화하며 정치개혁도 함께 추구한다.북한경제는 눈에 띄게 호전되고 북한주민도 어느 정도 자유를 누리게 된다.남한과의 진지한 대화가 가능해지고 이산가족상봉과 각종 교류가 이뤄진다.남북한 공동경제사업이 착수되면서 경제통합이 이뤄지면 정치·군사면에서 화해의 길이 열린다.국제정치행사에 남북한이 공동으로 참석한다.이후 남북한은 연방의회를 만들어 중요한 사안을 다루게 되고 군대의 교류도 시작된다. 이 세가지의 시나리오는 모두 실현가능성이 있으나 이중에서도 「시나리오3」이 남북한은 물론 다른 관련국에게 이로운 것이다.이 시나리오를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한반도통합의 첫번째 단계로 북한으로 하여금 국제사회의 일원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이 단계에서는 ▲미국및 일본과 북한과의 완전한 관계정상화 ▲미·북한간 핵협정의 철저한 이행 ▲주한미군감축과 한반도에서 군사활동을 줄이기 위한 미국의 일방적인 조치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의 각종 호의적 조치등이 요구된다. 두번째 단계는 남북한관계를 위한 바람직한 인프라스트럭처를 만드는 일이다.이 단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한·미·일 세 나라가 북한과 대규모 경제협력을 추진하는 것이다.그리고 세번째 단계는 남북한간 협력을 강화하는 일이다. 쌍방간 외교관계가 수립되면서 평화조약이 체결된다.국제무대에서 남북한의 정치적 협력이 현실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마지막 단계는 통합및 통일단계로 북한사회가 지금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바뀌어져 법치사회가 되고 예측가능한 정부를 갖게 된다.이렇게 되면 국가연합이나 연방화의 과정을 거쳐 통일한국에 대한 논의를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 한­일 기본협정 근본적 재검토를/이철승(기고)

    무라야마(촌산)일본총리와 고노(하야) 일외상의 『한일합방은 합법적인 것이었다』는 망언 파문이 어느 틈엔가 자취를 감추어 이번에도 또 일과성으로 끝나는 게 아닌가 우려된다.그러나 일본 정치지도자들의 거듭되는 망언은 한·일간의 과거와 현재,그리고 미래까지를 규정짓는 것이라는 점에서 이번 만큼은 그냥 넘어가서는 안되겠다. 전후 50년간 일본을 이끌며 냉전체제 미·일 안보조약의 우산 아래서 패전국 일본을 재건해온 주축은 보수우익세력이다.이들은 한국의 보수우익과는 차원이 다르다.한국의 보수우익은 국조 단군의 홍익인간정신과 반공·자유민주주의 이념을 추구하지만 일본의 우익은 군국주의의 연장선상에 있다.과거 일본의 자민당 정권 하에서 툭하면 역사를 왜곡하는 망언이 터져나왔던 게 그걸 입증한다.그런데 이번엔 사회당 정권까지 이에 가세하고 나섰다. 일본은 한반도문제에 관한 한 좌·우익이 꾸준히 역할분담을 해왔다.미국의 영향력하에 있을 때 우익,곧 자민당정권은 「반공」을 앞세우며 우리의 경제난을 이용하여 쉽사리 한·일기본협정을 체결했다.그러는 사이 친북적인 사회당은 김일성집단과 연동하여 대한민국을 견제하고 괴롭혔다.이렇듯 이들은 일본의 국익 앞에서는 좌우합작을 이루어 왔다.이를 통해 남북한 양다리 외교를 벌이며 한반도 분단 고정화를 획책해 왔던 것이다.얼마전 일본 우익의 대표주자격인 가네마루와 오자와,그리고 사회당의 다나베가 북한에서 이른바 한·조협정과 보상문제 등의 내용을 담은 공동성명을 발표한 것도 그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다. 그러고보면 일정치지도자들의 망언은 특정 정치인이나 세력의 차원에서 나온 게 아님을 알 수 있다.그건 일본 전체의 의사가 반영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일본은 냉전체제가 허물어져 미국의 영향력이 약화되고,미국에 대해 「노(NO)」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자신의 힘이 커지자 패권주의를 추구하고 있다.군국주의하의 대동아공영권 건설의 망령이 되살아나고 있는 것이다.그러지 않고서야 과거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진심으로 사죄하지 않으며 강압적인 한일합방이 합법적인 것이었다는 어처구니 없는 말을 할수 있겠는가. 우리는 이러한 일본의 본질을 정확히 읽어야 한다.그리고 냉정한 자세로 이에 대응해야 한다.그러나 작금의 상황을 보면 그러한 자세와는 거리가 있어 안타깝다.국민이나 정부가 즉흥적으로만 대응할 뿐인 현실이 그렇다. 정치권의 자세도 일본 정치인들과는 사뭇 대조적이다.거듭 지적하지만 일본은 국익 앞에서 여와 야,좌와 우가 따로 없다.그러나 우리의 여야는 외교·안보·통일 등에 있어서도 국익에 대한 신중한 고려없이 사사건건 상호 대립·대결로만 일관해 오고 있다. 한일기본협정은 제2조에서 구조약에 대해 「이미 무효」라는 애매한 뜻으로 표현되는 등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뿐만 아니라 일본은 태평양전쟁 한인피해자들에 대한 실태조사 한번없이 주인 없는 송장 치루듯 3억달러로 피해보상을 때워 버리고 말았다.박정희정권은 취약한 정통성을 메우는데 급급해 미국을 앞세운 일본의 농간에 놀아났던 것이다.그리고는 7백50만 피해자 중 기껏해야 8천명에 대해서만 1인당 30만원씩의 보상을 했을 뿐이다.따라서 한·일기본협정은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엄밀한 피해자 실태조사가 실시되어야 하며 이를 바탕으로 최소한 독일과 같은 수준의 과거청산이 이루어져야 한다.그래야만 진정한 의미에서 두나라 사이의 선린 우호관계와 21세기 태평양시대에 동반자로서의 새출발이 가능하다.그렇지 못할 경우 일본은 경제대국이라 하더라도 정치적으로는 국제적 비난을 면치 못하는 절름발이 대국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오늘날 한반도 주변정세를 보면 1백년전 구한말 당시와 흡사하다.붕당과 파벌로 사분오열되고 비자금 등 부패와 타락으로 지리멸렬된 국내정세도 마찬가지다.이러다가 또다시 천추의 한을 남길까 두렵다.궁극적으로 우리는 힘을 키우지 않으면 안된다.우리가 일본보다 우월한 위치에 있다면 망언을 하라고 해도 하지 않을 것이다.그러자면 정치부터 바로 서지 않으면 안된다.
  • 억새풀 등 잡풀 이용한 제지법 개발(북녘 뉴스라인)

    【내외】 펄프용 목재의 부족으로 옥수수 오사리(껍질)등을 종이원료로 활용할 것을 독려해온 북한은 최근 잡풀을 활용한 제지법을 개발,각 지방에 보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제지법은 정무원 산하 식물분원 식물학연구소에서 개발한 것으로 값비싼 용매를 사용하지 않고도 「억새풀」등 잡풀을 이용해 종이를 생산하는 방법으로 북한은 현재 평양시 상원군과 강동군,평남도 신양군,황북도 곡산군,황남도 강령군 등의 종이공장에서 이 방법을 도입,공책·포장지·벽지·고급종이를 생산해 내고 있다고 최근호 민주조선이 보도했다. 이 연구소에 따르면 학술적으로 종이원료에 사용되는 섬유는 길이와 너비의 비율이 1백대1이 넘어야 하는데 「억새풀」의 경우는 2백대1,「아들매기」는 2백12대1,「털새」는 1백78대1로 품질이 뛰어난 종이원료가 되며 특히 이들 잡풀 30만t은 60만㎥의 펄프용 목재에 해당한다고 이 신문은 소개했다. ◎김정일에 “오늘의 위대한 수령” 칭호 【내외】 북한은 27일 김정일을 「오늘의 위대한 수령」으로 호칭하고 김정일에대한 청년세대들의 절대적인 충성을 강조했다. 북한 중앙방송은 이날 사로청(사회주의노동청년동맹,중앙위원장 최용해)이 동맹창립 50주를 앞두고 발표한 「호소문」을 소개하는 가운데 김일성을 「우리당과 인민의 영원한 수령」으로 지칭한데 이어 『우리의 운명이며 어버이인 경애하는 김정일 장군님은 오늘의 위대한 수령』이라고 강조했다. 중앙방송은 또 이 호소문에서 사로청의 역사를 김일성과 김정일의 「영도」로 이루어진 50년이라고 주장하면서 『사로청 창립 50돌을 김정일동지의 두리에 철통같이 뭉친 청년전위들의 일심단결의 대정치 축전으로 장식하자』고 촉구한 것으로 전했다. 사로청은 지난 46년 1월 17일 창립된 「북조선민주청년동맹」을 모태로 한 북한노동당의 가장 중요한 외곽단체중의 하나로,만 14세부터 30세에 이르는 청년학생,군인,직장인 등 모든 청년들이 의무적으로 가입하며 현재 가맹원 수는 약5백만명선 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에너지난 우려 석탄증산 강력 촉구 【내외】 북한은 최근 경제전반에 걸친 에너지난에 심각한우려를 표시하면서 석탄증산을 강력히 독려했다. 북한은 당기관지 노동신문 최근호의 사설을 통해 『석탄이 있어야 전기가 나오고 공장들이 돌아가며 인민경제의 모든 부문에서 생산을 정상화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석탄생산을 늘리는 것이 『현시기 경제건설에서 우리 당이 가장 중시하고 있는 사업의 하나』라고 강조했다. 특히 화력발전소들과 시멘트공장을 비롯한 『어느 부문,어느 단위에서나 절실히 요구되는 것이 석탄』이라면서 석탄생산을 늘리지 않고서는 농업·경공업·무역제일주의 방침을 골자로 하는 새로운 경제전략의 관철도,주민생활 향상도 기대할 수 없다고 되풀이 강조,경제전반에 걸친 심각한 에너지난을 토로했다. 이 신문은 이어 석탄생산에서 제기되는 갖가지 애로와 난관에도 불구하고 당이 제시한 석탄생산목표는 『무조건 수행해야할 책임적인 과제』라고 강변하면서 석탄공업부문과 연관부문의 간부 및 근로자들에 대해 『당의 의도와 나라의 경제발전의 요구를 똑똑히 알고 석탄생산을 늘리기 위한 투쟁을 힘있게 벌일 것』을 촉구했다.
  • 피납북자들의 비극(새로 쓰는 한국 현대사:42)

    ◎총 8만여명… 김규식·안재홍 등 각계 명사 다수/귀향길 막혀 고난의 세월… 대부분 비참한 최후 유엔군과 공산군이 한국전쟁을 마무리짓기 위해 협상을 벌이는 과정에서 철저하게 소외됐던 무리가 있다.그들은 바로 납북인사들이다.전쟁의 와중에 북으로 끌려가 휴전후에도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했던 이들이야말로 영원한 에트랑제였다.그래서 더욱더 관심과 동정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서울서만 2만여명 한국전쟁 기간중 북한군에 납치당한 사람들은 서울 2만7백38명을 비롯해 전국에 걸쳐 8만4천5백32명이나 됐다.이 납북자들은 대부분 북에서의 삶이 제대로 파악되지 않고 있다.남과 북으로부터 모두 소외된채 베일에 싸인 이들이 만난 비극적인 운명은 전쟁 발발 3일째인 1950년 6월28일로 거슬러 올라간다.한강철교 폭파로 미처 피란을 못했던 요인들이 북한 노동당 군사위원회 결정에 따라 우선 포섭대상에 들어갔다. 이 계획은 7월4일 북한군 최고사령관 김일성 등이 참석한 연석회의에서 최종 결정됐다.북한군이 서울을 점령한후 피란하지 못한서울과 점령지역의 주요 정치·종교·경제·문화인 등 각계 인사를 찾아내 포섭하려는 것이었다.군사위원회는 이 결정에 따라 남한의 저명인사를 친·반공의 정도에 따라 5개 부류로 분류했다. 북한은 7월4일부터 김응기 이주상 방학세 김창주 김춘삼 등 실무 집행자들로 하여금 이를 추진시켰다.이에따라 서울시 인민위원회(서울시청)와 성남호텔(서울 광교부근)에 납북 대상자 심사장이 설치됐다.국회의원과 정당·사회단체의 저명인사,임정요인에 대한 심사를 거쳐 이들을 북으로 연행해가기 시작했다.이들 중에는 김규식 조소앙 조완구 김붕준 류동열 최동오 윤기섭 오하영 원세훈 엄항섭 등 임정요인이 들어있었다.안재홍 박열 백관수 정인보 이광수 최규동 방응모 등 전현직 국회의원과 정당 사회단체,문단 인사들이 포함됐다.납북 인사들은 대부분 평양을 거쳐 만포로 들어갔다.도중에 정인보와 이광수,최규동,방응모,김붕준,류동열이 미공군의 폭격과 지병으로 숨졌다. 해방정국에서 미국이 장래의 한국 지도자로 꼽았던 김규식은 만포에서 16㎞ 정도가 떨어진 별오동이라는 마을에서 1950년 12월10일 세상을 떠났다.납북인사들과 당시 함께 생활했던 북한 조국통일민주전선 부국장 신경완의 증언에 따르면 김규식의 최후는 너무 비참했다.별오동에는 유엔군에게 쫓겨온 북한의 주요기관이 모두 있었는데,김규식은 지병인 해소와 노환으로 생명이 경각을 다투었다. 그러나 서울을 떠날 때 지니고 간 약이 모두 거덜났다.당시 상황으로 약을 구할 수 없어 해소에 좋다는 토끼똥까지 달여 먹였다는 것이다.주변의 강력한 요구로 별오동에서 8㎞를 더 들어간 군병원에 입원했으나 병세는 점점 더 악화되었다.홍명희를 만나 중국에라도 보내달라고 요청했지만 끝내 실현되지 못했다.그리고 결국 숨을 거두었다.그날 압록강변에는 많은 눈이 내렸다고 한다. 그의 장례식에는 전쟁을 일으킨 김일성의 꽃다발이 개인 이름으로 도착했다.추도사를 맡은 조소앙은 날씨가 하도 추워 말을 이어나가지 못할 정도였다.김규식의 시신은 상여에도 오르지 못하고 군 트럭에 실려 장지에 갔다.땅이 얼어붙어 내려놓은 관을 땅에 제대로 묻지못하고 가장을 하다시피 장례절차를 마쳤다.김규식의 파란만장한 생애는 그렇게 한만국경에서 막을 내렸다. ○독자 휴전운동 불발 납북자들의 일관된 관심사는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철저하게 정보가 차단됐던 납북자들은 전쟁이 끝나 남한으로 하루빨리 돌아가는 것을 학수고대하면서 고난의 세월을 보냈다.1951년부터 시작된 휴전회담은 이들의 환향의지를 더욱 부채질한 것은 물론이다. 1951년 6월23일 소련의 말리크 유엔대사가 휴전과 관련한 토의를 제의한후 시작된 휴전회담은 납북인사들에게 초미의 관심사가 아닐 수 없었다.납북자 대표들은 휴전회담이 답보상태에 빠졌다는 소식을 전해듣고 독자적인 휴전운동에 나설 것을 결의한 적도 있다.북한측 연락장교들의 인솔로 안재홍 조소앙 김약수 원세훈 윤기섭은 51년 1월25일 판문점까지 오기도 했다.그러나 북한의 조종을 받은 이들은 유엔군측 연락장교 키니대령을 만나는 선에서 활동을 끝냈다. 1953년 7월27일 휴전이 됐지만 납북자들은 여전히 환향의 길이 막힌채 감금에 가까운 상태로 북에서의 나날을 보내야만 했다.휴전협정 체결 90일만인 19 53년 10월26일 판문점에서 정치회의 예비회담이 열렸으나 회의 초반부터 미국측과 북측이 회담방법 등 정치문제를 놓고 팽팽히 맞섰다.그러나 미·영·소·불 등 4개국이 1954년 4월부터 제네바에서 정치회의를 열어 한반도 문제를 토론하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납북자들은 조소앙이 주창한 「중립화 통일론」을 제네바회의에 직접 전달할 수 있도록 주선해줄 것을 북한당국에 건의했다.북한은 납북자들의 의도가 자신들의 통치속셈에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그럼에도 표면적으로 이를 거부하지는 못했다.54년 4월 중순 엄항섭과 권태양 등 납북자 대표는 제네바로 들어가기 위한 입국사증을 받기 위해 소련 외무성의 안내를 받아 모스크바로 떠났다.그러나 소련주재 북한대사는 결국 이들을 제네바 국제회의에 보내지 않았다.스위스 정부가 입국사증을 발급해주지 않는다는 핑계로 이들을 되돌려보냈다.처음부터 북한당국이 납북자들을 제네바 회담에 참가시킬 의도가 추호도 없었다는 사실을 입증시킨 것이다. ○제네바회담 참가 무산 1955년부터 김일성은 평화통일과 평화이미지 선전에 열을 올리기 시작했다.이를 계기로 북한은 납북인사들에게 자신이 내세운 평화통일 방안에 서명할 것을 강요하기 시작하는 등 이들의 정치적 이용을 서둘렀다.그래서 1955년 11월13일 납북요인들의 첫 공동성명으로 알려진 11·13성명을 발표하는데 납북자들이 실제 이용됐다.이 성명에는 납북인사들의 주장은 철저히 배제된채 전쟁 직전까지 북한이 내세운 정치적 허구라 할 수 있는 선전문구만 나열되었을 뿐이었다. 그래서 납북자들은 이후 북한에서의 독립적인 정치활동 보장을 위한 조직체 구성을 시도했다.1956년 7월2일 평양 모란봉극장에서 「재북 평화통일 촉진협의회」 결성대회가 그것이다.각지에서 모인 납북 및 월북 인사 4백여명 등 7백여명이 참석한 이날 대회는 조소앙 안재홍 오하영을 최고위원으로 선출하고 합법적 통일정부 구성과 국제적 중립화 선언,남북의 자유로운 내왕 등을 내용으로 하는 7개항의 행동강령을 채택했다. 그러나 이협의회에는 북한의 노동당 등 친공세력이 깊숙이 관여하고 있었다.또 분열이 이미 고질화돼 있었던 만큼 납북자들의 구심체 역할을 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결국 이 협의회는 1958년 9월9일 지도자인 조소앙이 숨을 거둔후 본래의 취지와는 멀어진채 북측의 대남 위장 정치선전기구로 전락하고 말았다. ◎도쿄대 「납북자 행적」 단행본/“북,납북 인사들 협박… 대남공세 악용”/56년 조국 통일전선 중앙위에 “동원”/“총일 앞장” 조소앙 등 강요된 맹세 서울신문 특별취재반은 일본 도쿄대학 동양학연구소에서 한국전쟁 중 북한으로 끌려간 인사들의 족적을 기록한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하여」란 단행본 책자를 입수했다.이 단행본은 1956년 5월24일부터 25일까지 열린 북한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중앙위원회 확대회의의 주요문헌과 참가자들을 정리한 것이다. 이 책자는 지금까지 잘 알려지지 않았던 납북 임정요인과 인사들의 행적을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이들 재북인사들은 1956년 4월23일부터 29일까지 진행된 조선노동당 제3차대회에 참가한 것으로 돼있다.특히 당대회 직후인 같은해 5월24∼25일의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중앙위원회 확대회의에는 재북평화통일협의회를 준비하고 있던 재북인사들을 대부분 초청한 것으로 밝혀져 이들을 여러 수단으로 회유했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홍명희의 보고와 토론으로 진행된 이날 회의에 남한출신 정치인 조소앙 안재홍 오하영 윤기섭 엄항섭 송호성 김약수,국회의원 출신 노일환 김병회 황윤호 박윤원 이구수 강욱중 최태규 김옥주 배중혁 구덕환 이문원 신성균이 참석했다.이밖에 남한의 각 정당 사회단체 인사들의 명단이 나열되어 있다. 그리고 남한 정치인을 대표해 토론에 나선 송호성 조소앙 안재홍 등의 토론 내용을 소개했다.이들은 분단의 원인과 평화통일의 방책에 대해 토론한후 자신들이 앞장설 것을 맹세했다고 전하고 있다. 어떻든 이 자료는 납북인사들이 철저하게 정치적으로 이용됐음을 보여 주었다.더구나 휴전 이후 정치공세를 강화한 폐쇄사회의 실상을 어느 정도 들여다 볼 수 있다는 점에서 현대사 자료로도 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되었다.
  • 창간 50주년 기념 제1회 서울신문 국제포럼 논문 요약

    □제2주제 한반도 경제·사회 통합 ◎남북 경제통합 어떻게 할 것인가/시장경제 기반구축 등 4단계 추진/시혜적 시각 잘못… 상호이익 우선돼야 북한경제는 80년대말 동구권이 개혁에 착수할 당시의 경제상황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극심한 침체를 겪고 있다.경제체제를 전면개혁하면서 외부로부터 자본을 응급수혈하지 않고서는 경제의 활력이 소생되기 어렵게 돼 있다.북한의 경제상황은 이같이 전면적인 개혁을 필요로 하지만 정치상황은 경제개혁을 제약하고 있다.김정일은 김일성시대와의 결별을 의미하는 전면적인 개혁을 단행하기 어려운 입장인데다 대만을 크게 의식하지 않고 개방과 개혁을 추진할 수 있던 중국과는 달리 남한을 의식해야 하기 때문에 이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현재 북한의 경제규모는 남한의 20분의 1정도에 불과하기 때문에 남북한 경제통합은 남한의 주도로 이뤄질 수밖에 없다.그러나 한국의 경제역량은 통일전 서독에 비해 크게 뒤져 있으며 향후 20년내에 경제력이 커진다 해도 통독전의 서독수준에 이를지 의문이다.하지만 통일의 바탕은 단순한 경제력이 아니라 종합적인 국력이기 때문에 나라 전체가 똘똘 뭉치고 창의력과 잠재력을 발휘한다면 통일을 주도할 수 있는 국력을 갖추게 될 것이다. 남북한 경제의 급진적인 통합은 독일이 겪은 것보다 훨씬 심각한 경제적·사회적 혼란을 초래할 것이므로 남북한의 동질성이 어느 정도 회복된 연후에 남북한 경제의 상호의존성이 심화돼가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 바람직스럽다.이러한 과정은 정부의 3단계통일방안과 조화를 이루면서 북한경제의 시장경제체제로의 전환과 경제통합을 점진적으로 꾀해나가는 4단계를 거치는 것이 소망스럽다고 볼 수 있다. ▲교류·협력의 기반구축단계=이 단계는 핵문제를 비롯한 군사적 긴장이 해소되고 북한이 체제수호적 개방을 추진하는 시기로 남북관계가 어느 정도 개선될 것으로 예상된다.그러나 북한의 대내경제체제개혁이 수반되지 않기 때문에 대외개방의 성과는 북한이 바라는 수준에 못미칠 것이다.따라서 이 단계에서는 남북간 경제교류의 제도화에 역점을 두되 제도화가 이뤄지기 전이라도 실현가능한 물자교류나 경제협력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이 단계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나진·선봉지구개발구상이다.이곳의 개발성공은 개방지역의 확산을 가져올 가능성이 많으므로 이 지역협력사업에 적극 나설 필요가 있다. ▲교류·협력 본격화 단계=이 단계에서는 사회주의개혁세력이 등장하여 체체개혁적 개방을 추진하고 남한정부및 기업이 이에 적극적으로 호응함으로써 남북경제관계가 활성화될 것이다.이에 따라 쌍방간 교류는 직접투자가 크게 증가하고 경제교류업무를 지원하기 위해 서울과 평양에 상주경제대표부가 설치될 수 있을 것이다. ▲남북경제의 동질화 단계=쌍방간 상호무역장벽을 철폐하여 자유무역지대 또는 공동시장형성을 추진할 수 있게되는 단계다. ▲남북경제의 전면통합단계=남북한간 자본이동과 노동력이동을 자유화하고 궁극적으로 통화·재정등의 경제정책체계를 단일화하여 제도적 경제통합을 완성시켜야 한다. 지금까지 살펴본 남북경제통합과정은 객관적인 전망이기보다는 바람직한 희망에 가깝다. 남북경협은 무엇보다 상호경제적 이익에 기초하여 추진돼야 한다.흔히 남북경협을 시혜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으나 이런 자세는 오히려 남북경협에 장애가 된다.경제논리에 충실한 경협을 추진해나가야 하는 것이다.남북경제통합에 대비하여 내부적으로 준비해야 할 과제는 첫째,경제통합을 주도해나갈 수 있도록 우리의 국력을 확충·보강해나가는 것이며 둘째,남북한 관계전망의 불확실성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위기관리능력을 제고시키는 일이다. ◎새 북방정책의 기회와 전략/남북 기본합의서 토대 지원 확대/주변국의 대북 경제교류 강화도 고려 지금 북한에서 외교관·상사대표나 학생신분으로 해외에 나가 서방세계의 정보에 노출되어 있는 북한주민은 대략 5만에서 7만명정도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서방세계에 대한 정보수집기회에 관한 한 북한의 상황은 통독전 동독이나 중국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열악하다.따라서 북한 주민의 인식과 한국을 포함한 서방세계의 현실에 대한 커다란 모순은 북한 지도자들로 하여금 북한을 외부세계로부터 차단시키려 하고 있다.현재 북한은 식량·연료,그리고 생필품 부족으로 시달리고 있는데다 수해까지 겹쳐 전세계적으로 긴급구조를 요청하고 있는 실정이다. 북한의 김정일은 러시아와 동구에서의 공산주의정권의 몰락을 보고 충격을 받았음이 분명하다.김정일은 다른 나라에서 자본주의경제의 중요한 면을 받아들이고 사회주의를 개혁한다는 구실 아래 이념으로부터의 조그만 양보와 후퇴가 결국은 전부를 양보하게 되고 공산주의의 멸망과 패배를 초래한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에 북한경제를 기획하고 통제하는 과정에서 자본주의식 도입등 어떠한 희석도 부인할 것이다. 그런 만큼 러시아에서와 같은 위로부터의 개혁이나 동독식의 아래로부터의 혁명과 같은 실질적인 북한체제의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따라서 남북한관계개선을 위한 장기전략으로는 제한된 방법이지만 한국을 포함한 주요국제사회와 북한간 경제교류와 직능적인 교류의 강화가 고려되어야 한다. 현재 북한은 고통스럽지만 과거 그들이 수립한 경제정책을 재평가할 것을 시사하는희망적인 조짐을 보이고 있다.이와 함께 외국기업들에 대한 대북투자유치,나진·선봉지구와 두만강개발계획의 참여유도등 야심찬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특히 북한의 유엔가입은 국제경제와 기술이전문제에 있어 협력의 기회와 접촉을 확대시키는 역할을 해왔다.북한 주민의 의식을 조직적으로 감염시킬 수 있고 잠재적으로 파괴할 수 있는 외부세계와의 이같은 접촉은 북한이 아직도 뿌리깊게 갖고 있는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이른바 「한국의 신북방정책」을 추진할 수 있는 기회라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다.신북방정책을 위한 결정적 선행조건은 북한및 미·일을 비롯한 다른 주요서방세계에 대한 정책수립에 있어 실질적인 행동과 협력의 정도를 보다 강화시키는 한국정부의 외교노력이다.이러한 상호노력 아래 공동관심과 전략은 남북기본합의서를 준수하는 조건으로 북한에 경제·기술,그리고 다른 기능적 협력이라는 유리한 형태를 제공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이에 대한 응분의 보상은 한국과 서방세계의 투자,경제및 기술협력,그리고 북대서양조약기구 가입국가와의 외교관계정상화등이며 북한이 남북한간에 체결된 기본합의서를 성실히 준수하는 일이다. 하지만 추진과정에서 북한이 가장 두려워하고 있는 이념적인 감염이라든지,체면에 대한 입장은 충분히 고려되어야 한다.일단 한국은 체제적으로 불안한 후유증에 대해 북한이 두려움을 갖지 않도록 어떤 규정을 지켜야 한다고 강요하지 말아야 한다.그리고 이러한 협력을 궁극적인 장기투자로 간주해야 할 것이다. 한국은 궁극적으로 북한에 대한 이러한 협력을 양측의 생활과 경제·기술수준의 격차를 줄이고 한반도의 미래를 위한 장기적인 투자로 간주해야 한다.이러한 정책이 성공적으로 추진된다면 한반도및 동북아시아의 안정에 기여함은 물론 북한사회와 경제체제의 국제화및 현대화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장기적으로 신북방정책은 점진적으로 북한을 변화시키는데도 이바지할 수 있다.경제및 기타 기능적인 협력관계를 근간으로 북한이 현재 주장하고 있는 개념의 연방제와 한국측에서 생각하고 있는 미래의 한반도 민주공화제를 적절히 조화시킬 수도있을 것이다. ◎경제통합의 현실성과 추진 전망/북 체제 개선이 경제통합의 전제/한국 정부의 정책 일관성 유지 바람직 남북한이 극히 상반된 체제를 채택하고 있다는 사실은 경제통합에 있어서 극복해야 할 기본적인 과제다.그러나 현실에 기초하여 양측의 정치적 의지와 노력이 뒷받침돼 경제교류가 일정한 수준으로 발전된다면 북한이 제한적이나마 서서히 개방과 개혁의 수순을 밟을 수도 있을 것이다.현대적인 의미에서의 경제통합은 주권국가간의 합의에 따라 하나의 큰 시장을 단계별로 형성해가는 동태적 과정으로 볼 수 있다.비용이나 후유증면에서 급진적인 통일이 바람직하지 않다면 단계별 경제통합이야말로 장기적으로 경제·정치통일을 이룩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대안이다. 기본적인 체제나 정책기조에는 변함이 없다 하더라도 최근 5년간 마이너스성장을 면치 못하고 있는 북한은 더해가는 주민생활의 빈곤화와 군사력의 약화를 탈피하기 위해서라도 대외경제관계에서 그 돌파구를 찾으려는 징후를 엿보이고있다.북한은 90년대 들어서면서 특히 외국자본·기술유치와 함께 수출확대에 역점을 두고 있다.북한의 대외경제정책 전개과정에서의 변화와 특징은 우선 보다 적극적인 대남 자본·기술유치전략을 들 수 있다.그러나 그 내용을 보면 남한정부를 소외시키고 서방기업을 유치하기 위한 명분으로 이용하려는 측면도 간과할 수 없다.북한은 남한이 내세우고 있는 기능주의적 접근이 북한내 체제변화및 개혁→체제붕괴및 전환→흡수통일로 발전되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따라서 1민족내 2국가,2체제를 유지할 수 있는 정치·외교적 보장이 경제통합을 가능케 하는 필요조건이다. 대북관계에 있어 남한측은 「Noblesse Oblige」라는 입장을 보여야 한다.그러기 때문에 민간기업의 대북진출을 돕기 위해 남한정부는 관리자나 보호자이기보다는 지원자및 조정자로의 역할을 확고히 할 필요가 있다.즉 대북진출을 저해하는 장애요인제거및 행정절차의 간소화,그리고 한반도내 산업구조의 조정등이 중요하다. 현상황에서 쌍무적,그리고 다변적 경제협력의 확대여지는 크다고 본다.남북한 경제거래의 현실에서 출발,각종 장애를 제거하는 이른바 「소극적 통합」이 큰 무리없이 진행된다면 경제협력이나 무역의 확대에 기여할 수 있다.다음 단계로 경제통합을 의미하는 「적극적 통합」을 고려해볼 수 있다.이 경우 다음과 같은 몇가지 전제가 총족되어야 한다. 첫째,공존체제를 보장하는 정책으로서 남북한당국의 정치적 의지는 물론 주변강대국의 지원이 요청된다.평화와 안정 없이는 경제가 제대로 기능을 발휘할 수 없기 때문이다. 둘째,북한에 대한 경제지원을 본격화해야 한다.남한측의 지원은 물론 이 단계에 이르면 동북아개발은행의 설립을 통한 대규모의 다변적 지원도 추진할 수 있다. 셋째,북한내 체제개선을 위한 노력은 남북한 경제통합을 기대할 수 있는 필요조건이다.중국등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사회주의적 이념과 시장경제는 양립할 수 있다고 본다.이밖에 남북기본합의서 내용대로 점진적인 「3통」의 확대가 경제통합의 실천을 위해 필요하다. 그러나 남북한 경제통합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상호신뢰와 이해의축적이다.체제의 성격상 북한이 이러한 태도를 갖출 수 없다면 최소한 남한만이라도 인내와 여유를 가져야 한다.당국간 정책의 일관성과 투명성을 유지해야 하며 동포적 애정이 교감될 수 있도록 인적 교류가 최대한 허용되어야 한다. 통일은 어느 일방이 일방적으로 추구할 경우 더욱 요원해지는 이른바 통일의 역설적 측면이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통일은 우리가 의식적으로 착실히 준비해나갈 때 뒤따르는 결과일 수 있다.결론적으로 통일의 전단계로서 경제통합은 경제논리로만 추진할 수 없으며 당국간 정치적 결단이 기본적인 과제이고 주변강대국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 중 교포 김금룡씨 자살사건 한·중 외교문제 비화 가능성

    ◎자살 김씨 과기협 정회원으로 거물급/비자받고도 집단 퇴짜… 중국민 반발 커 중국 조선족 교포 김금룡(58·중국 연변 조선족 과학기술협회 주석)씨의 돌연한 자살사건이 내달 13일로 예정된 강택민 중국주석의 방한을 앞두고 한·중간 외교문제로 비화될 조짐이다. 김씨가 중국과 중국내 조선족 사회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감안할 때 최근 고개들고 있는 조선족들의 반한감정이 증폭될 가능성이 높아 중국 조선족과 우리나라의 관계에 악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김씨 자살이 한중간 외교문제로까지 번지는 것은 그가 조선족으로는 유일하게 중국과학기술협회 정회원이고 연변 조선족자치주의 정치협상회 회원으로 연변과학기술협회의 주석직을 맡고 있는 등 중국 내에서는 거물급 인사이기 때문이다.그는 또 북한에서도 상당한 신임을 얻고 있어 지난해 김일성 사망 직후 연변에서 열린 남북 과학자들 간의 회의도 주선한 바 있다. 따라서 김씨사건은 중국측이 최근 안승운 목사의 납북과 관련,우리측에 보인 성의를 감안할 때 문제삼을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이는 대련시 공안당국이 최근 주중 한국대사관에 김씨 자살과 관련,강력히 항의를 한 사실과 조선족들이 대련 무역관에 몰려가 항의소동을 벌인 점에서도 감지된다.특히 이들이 조선족이지만 북경주재 한국대사관으로부터 비자를 받아 정식 입국한 중국국민들이어서 집단 입국거부를 당한 사실이 중국민의 감정을 자극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 연변은 남북교역의 중개지로 한국측 경제인사들의 방문이 잦은 곳이라 이곳에 형성되고 있는 반한 감정이 증폭될 경우 남북경협에도 악영향을 줄 여지가 있다. 김씨는 지난 23일 부산에서 열린 신발전시회에 참석하기 위해 22일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초청으로 단원 41명을 이끌고 김포공항에 입국했다가 자신과 동행했던 3명만 입국되고 나머지가 집단으로 입국거부당하자 이에 대한 항의로 서울 리버사이드호텔에서 투신 자살했다.경찰조사 결과 대표단 41명은 대부분 조선족들로 정식절차를 밟아 입국했으나 법무부 출입국관리사무소의 입국심사에서 김단장 등 4명을 제외한 37명은 가정주부 농부 상인 등으로 행사 내용도 모르는 등 입국 목적이 불분명한 것으로 판명돼 23일 곧바로 중국 북방항공편으로 송환조치된 것으로 확인됐다. 무역업계의 한 관계자는 『이번 자살 사건으로 한국기업인들이 남북교역의 중심지로 떠오르는 연변지역을 방문할 때 신변안전에도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며 『그동안 연변지역이 남북경협의 중개무대로서의 역할이 컸다는 점을 감안할 때 남북경협에 차질을 줄 수 있다』며 우려를 나타냈다.그는 조선족들이 자존심이 강한 만큼 어떤 방법으로라도 문제의 실마리를 풀어야 한다고 밝혔다. 무역업계 관계자들은 『연변지역은 북한측이 식량조달 등의 창구로 활용하는 등 매우 중요한 지역이어서 이번 김씨 자살사건으로 조선족 사회에 반한 분위기가 조성될 경우 남북관계에도 악영향이 우려된다』고 말했다.한편 주중한국대사관의 문봉주 공사는 지난 22일 서울에서 입국이 거부된 조선족들에 대한 경위조사결과 자살한 김씨가 이들 조선족들로부터 비자명목의 수수료로 1인당 3만∼5만위안(3백만∼5백만원)을 받은 사실이 밝혀졌다고 말했다.
  • 김정일 이복동생들 모두 외국에 내몰려

    ◎김영일 주독 이익대표부 참사관 부임 【베를린 연합】 김일성의 막내아들인 김영일(39)이 최근 독일주재 북한 이익대표부에 외교관으로 부임함으로써 김정일이 이복형제들을 모두 해외로 내보낸 사실이 23일 밝혀졌다. 외교소식통들에 따르면 김일성과 후처 김성애 사이에 난 2남1녀중 막내아들이자 김정일에게는 이복동생이 되는 김영일은 이달초 베를린 소재 북한이익대표부에 참사관으로 부임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같은 사실은 북한측이 「김영일」이라는 이름을 가진 1955년생 참사관을 이익대표부에 파견하겠다는 외교인력 파견계획을 독일 외무부측에 사전통보했으며 이 「김참사관」이 김일성의 아들이라는 점을 독일측이 확인함으로써 알려지게 됐다. 김은 지난 80년대초 동독에 유학,베를린 훔볼트대학에서 전자공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통독직전에도 동베를린 북한대사관에 근무했던 경력을 가진 것으로 전해졌다. 이로써 지난해부터 핀란드 대사로 나와있는 김평일(42·차남)을 비롯,주 오스트리아 대사 김광섭의 부인인 경진(43·장녀)등 김정일의 이복동생들은 모두 해외로 내몰리게 됐다.
  • 북한,무기보다 민생 해결을(사설)

    식량난과 홍수피해로 세계의 동정을 구하고 있는 북한이 화차 17량분의 대포등 각종 중화기와 탄약을 중앙아시아의 카자흐스탄공화국으로부터 밀수입하려다 적발된 것으로 보도되었다.이 사건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대처해야 하는 것인가.착잡함과 곤혹스러움을 동시에 느끼게 하는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그동안 심각하다는 북한의 식량난완화를 위해 15만t의 쌀을 실어다 준 바 있다.일본이 제공한 30만t까지 합친다면 45만t이나 된다.북한의 식량난호소를 믿고 제공한 원조였다.뿐만 아니라 1백50억달러 재산피해에 5백20만 이재민이 났다는 북한의 수재구호요청에 우리는 물론 유엔과 국제적십자등 세계가 구원에 나서기도 했다. 그런데 북한은 대량의 무기밀수입을 하고 있었다니 말이 되는가.무기 살돈이 있으면 식량구입부터 해야 하지 않는가.식량원조와 수재구호금이 실제로 어디에 쓰였건 결과적으로 우리와 세계는 북한의 무기밀수입을 도운 꼴이다.북한은 식량난의 내용에 대해 한번도 구체적으로 설명한 적이 없다.식량난은 흘러나온 소문일 뿐이며 홍수피해는 10배나 과장된 외화벌이 엄살로 밝혀지고 있다.그동안 거짓말과 배신을 예사로 해온 북한이다.우리는 물론 유엔등 세계가 북한에 농락당하고 있다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게다가 북한은 김일성사후 우리의 호의에 한번도 성의있는 반응을 보인 적이 없다.오히려 도발을 강화하고 있다.쌀을 싣고간 배에 인공기 게양을 강요하고 어선과 선교목사를 납치해 갔는가 하면 무장공비와 간첩을 침투시키고 있다. 이런 북한을 지원할 필요가 있는가.우리와 세계의 도움은 북한의 체제유지를 도울 뿐이다.북한 당국이 아닌 주민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한 인도주의지원의 필요성이 강조되지만 그것은 고통의 완화가 아니라 연장일 뿐일 수 있다.참을 수 없는 주민 스스로의 저항에 의한 변화가 빨리 이루어지도록 방치하는 것이 참으로 그들을 돕는 인도적 처사가 아니겠는가.
  • “북 체제 불안정… 몰락 못면해”/김 대통령,가 TV회견

    【뉴욕=이목희 특파원】 김영삼 대통령은 22일(현지시간) 캐나다 CBC­TV에 방영된 회견에서 『북한은 현재 국제사회에서 가장 불안정한 체제를 유지하고 있으며 작년 7월 김일성 사망 이래 지금까지 어떤 공식적 지도자 승계도 없다』며 『향후 북한문제에 대한 본인의 결론은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한국은 통일되리라는 것』이라고 밝혔다. 김대통령은 『북한의 무역이 현재 남한의 1%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미뤄 승부는 결정났다고 본다』면서 『구소련과 동구가 몰락했듯이 북한도 예외가 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김대통령은 또 『우리는 정확하게 언제 통일이 될지 알 수는 없지만 멀지 않은 장래에 한국은 통일이 될 것』이라며 『한반도가 통일된다면 우리는 경제능력이나 영향력면에서 일본 정도의 역할을 해낼 수 있으리라 본다』고 덧붙였다.
  • “러시아 출판물 사회주의 동경” 선전(북녘 뉴스라인)

    【내외】 북한은 러시아가 사회주의를 버리고 자본주의를 선택한 이후 주민생활 형편이 더욱 나빠졌다고 주장하면서 사회주의를 동경하고 있는 일부 러시아 사회분위기를 선전했다. 북한 당기관지 노동신문 최근호는 러시아 일부 출판물에 게재된 독자들의 글과 편지를 소개하는 가운데 『지난날 소비에트시기가 다시 돌아오면 얼마나 좋겠는가! 나는 그것을 간절히 바란다』『자본주의가 먹을 것을 주는 줄로 생각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는 식의 사회주의 동경여론을 보도했다. 이 신문은 이어 어느 한 주민은 러시아가 개혁·개방을 추진할때 그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서방에 기대를 가졌던데 대해 후회하면서 『우리에게는 자본주의가 필요없다. 나는 다시 사회주의하에서 살고 싶다』고 말한 것으로 소개했다. ◎「김정일화」 대대적 보급에 박차 북한은 최근 김정일을 상징하는 「김정일화」를 대대적으로 보급하기 위해 전국 각지에 「김정일화 온실」을 잇달아 건설하고 있다. 이와 관련,북한은 지난 7일 양강도 풍서군에 김정일화온실을 개관한데이어 18일에는 평양시 삼석구역에 김정일화 온실의 개관식을 진행한 것으로 평양방송이 최근 보도했다. 이날 개관된 김정일화 온실은 태양열을 이용해 내부온도를 조절함으로써 『기온이 몹시 낮고 눈이 내리는 겨울철에도 김정일화를 피울 수 있다』고 이 방송은 전했다. 이에 앞서 북한은 올해 2월에도 김정일의 생일을 앞두고 평양 동대원구역과 양강도의 대흥단군·갑산군에 각각 이같은 온실을 건립 개관한 바 있다. ◎독수리 훈련땐 “북핵 난관 봉착” 엄포 【내외】 북한은 20일 미국이 한반도에서 95독수리 한미합동군사훈련을 실시하는등 대북 군사도발을 감행하고 있다고 비난하면서 미국이 북한에 대한 강권정책을 계속한다면 『조­미교전관계가 더욱더 격화될 수 있으며 조선반도의 핵문제 해결이 커다란 난관에 직면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북한은 이날 당기관지 노동신문 논평을 통해 독수리합동군사훈련의 실시가 북한에 대한 『엄중한 군사적 도발이며 조­미기본합의문에 대한 노골적인 배신』이라면서 이같이 말했다. ◎김일성과 찍은 사진가보로 전수권장 북한은 최근 김일성이 생전에 일반 주민들과 함께 찍은 사진을 각 가정에서 소중히 보관할 것을 강조하면서 이 사진을 대를 이어 「가보」로 전수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 중앙방송은 18일 북한주민들이 『수령님과 함께 찍은 영광의 기념 사진을 자기집에 높이 모시고 날마다 자애로운 그 영상을 우러르고 있다』고 선전하면서 이 기념사진들이 『대를 이어 길이 전할 귀중한 가보이자 영원불멸한 혁명의 유산이 되고있다』고 주장했다.
  • 빨치산의 최후(새로 쓰는 한국현대사:41)

    ◎지리산 본거지로 군사시설 파괴·후방 교란/휴전협정뒤 숙청·토벌로 조직 “지리멸렬” 1953년 7월27일 유엔군과 공산군 대표가 휴전협정에 서명함으로써 한국전쟁은 일단 마무리 됐다.그러나 남한 곳곳에서는 총성이 끊이지 않았다.흔히 빨치산 또는 유격대로 알려진 대한민국에서는 「공비」라 부른 공산주의자 무장집단과의 전투가 끝나지 않은 것이다.이 「전선없는 전쟁」은 1956년까지 계속됐다. 남한에서 빨치산은 한국전쟁 전부터 활동 했다.처음에는 남로당 출신이 주축을 이뤘지만 1949년 3월 북한이 간부들을 파견,빨치산부대를 직접 지휘케 하면서 빨치산은 정규군에 버금가는 체계를 갖추게 됐다.이는 물론 전쟁을 일으키기에 앞서 남한내 공산당 조직을 재가동,전쟁 때 국군의 배후를 공격하기 위한 조치였다. ○「남한 민중봉기」 염두 이어 전쟁 직전인 50년 6월 북한은 남한 각 도에 「정치공작대」5∼6명씩과 일부 무장병력을 다시 침투시켰다.6월10일 김달삼이 이끄는 유격대 2백50여명이 경북 청도 운문산에 유격구를 마련하는 임무를 띠고남하했다.24일에는 남도부를 사령관으로 한 766군부대(7백66명으로 구성)가 해군 함정을 이용,포항 쪽으로 상륙했다.같은 날 또 다른 유격대 2백50여명이 강원도 동해안으로 침투했다.이 부대들은 뒷날 북한 정규군과 합류하라는 지시를 받고 있었다. 개전 다음날인 6월26일 김일성 군사위원회 위원장은 평양방송을 통해 「해방전쟁」승리를 위해 남한 주민들은 총궐기해야 한다고 호소했다.특히 「남반부 남녀 빨치산」에는 더욱 강력한 주문을 했다.곧 『해방구를 확대·창설해 적의 배후를 공격,소탕하라』고 촉구했다.구체적으로는 『적의 참모부를 습격하고 철도·도로·교량과 전신·전화선등을 절단,파괴하고 도처에서 반역자를 처단하며 인민위원회를 복구하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민중봉기」를 염두에 둔 김일성의 이같은 요구는 당시 남한실정을 전혀 모르는 데서 나온 것이었다.김일성의 기대에 찬 독촉이 쉴새없이 방송됐지만 어느 곳에서도 민중봉기는 일어나지 않았다.『전쟁이 일어나면 남한에서 20만 지하당원들이 민중을 이끌고 호응할 것』이라는 박헌영의 호언장담은 무산됐다. 물론 일부 지방에서는 빨치산의 파괴활동이 벌어졌다.가장 널리 알려진 빨치산부대인 지리산 이현상부대는 8월10일 대구 주변인 달성군 가창면에 있는 미군통신부대를 기습,미군 20여명을 살상하고 무전기 14대,소총 20정을 빼앗아갔다.이들은 8월25일에는 경남 거창 미군사령부를 습격,1백여명의 인명피해를 낸 뒤 탱크 3대,화물차 30여대를 부쉈다.9월6일에는 경북 청도에서 북한군과 합동작전을 벌이기도 했다. 이밖에 경남 백운산유격대,경북의 배철이 지휘한 유격대,전남 빨치산,남해안유격대들이 미 공군기지를 점령하거나 경찰과 전투를 벌였고 마을 청년들을 끌고가 빨치산에 편입시키기도 했다.또 북한군 점령지역에 인민위원회를 조직할 때는 적극 나서 북에서 내려온 공산당원들을 도왔다. 하지만 이같은 활동은 전쟁 흐름에 영향을 미치기에는 보잘 것 없는 수준이었다.박헌영·김일성의 기대와는 달리 빨치산은 민중과 괴리돼 있어 힘을 쓰지 못했다.게다가 전쟁전 한국정부가 꾸준히 소탕작전을 벌여 기본조직을무너뜨린 것이 빨치산 세력약화에 결정적 요소가 됐다. 빨치산은 유엔군의 총반격으로 북한군이 밀리면서 뿌리잘린 풀잎처럼 역사의 틈바구니를 떠돈다.북한군이 38선 이북으로 쫓겨간 10월 8일 북한 노동당 정치국 군사위원회는 남한 각 지방당 조직에 『(북한군의)조직적인 후퇴를 보장하기 위해 각 도당이 책임지고 유격대를 조직하라』고 지시했다.김일성도 이틀 뒤 방송에서 전세가 불리해 「전략적으로」후퇴하니 빨치산은 뒤에서 유엔군의 발목을 잡아 북진 속도를 늦추라고 강조했다.이를 위해 ▲당을 지하당으로 개편할 것 ▲유엔군이 이용할만한 요소를 모두 제거하고 군사시설은 파괴할 것 ▲입산경험자와 입산이 가능한 자는 산으로 들어가고 나머지는 남강원도로 후퇴할 것등을 명령했다. 이에 따라 빨치산은 지역별로 유격대를 재편성,산악지대에 들어갔다.이들은 나중에 완전 소탕될 때까지 산을 벗어나지 못한 채 「살아남기 위한」처절한 투쟁을 벌여야만 했다.당시 입산자들은 민청원·자위대원등 남로당 계열과 북에서 파견한 내무서원·정치보위부원·정치공작대원이 대부분이고 후퇴하지 못한 북한군도 적잖게 끼어 있었다. ○이승엽 당정 총 지휘 북한군이 후퇴하자 지리산 이현상 부대는 잠시 지리산으로 돌아왔다 달아나는 북한군을 따라 북으로 갔다.1950년 11월 강원도 평강군 후평리에는 이현상부대를 비롯해 다른 곳에서 도망해온 빨치산들이 한자리에 모였다.이곳에는 당시 남한내 당·정을 총지휘한 이승엽이 기다리고 있었다.이승엽은 이곳에 모인 빨치산으로 「남조선인민유격대」를 조직해 이현상을 부대장으로,여운철을 정치위원으로 삼았다.이때 새로 편성된 이현상부대는 직속부대원 1백50여명 말고도 승리사단 4백여명,혁명지대 1백여명,인민여단 1백50여명등으로 구성됐다. 이현상 부대는 지리산을 본거지로 정하고 남하했다.먼저 태백산맥을 타고 1950년 12월 말쯤 충북 단양에 이르러 문경경찰서를 기습하는등 유격전을 벌였다.다시 속리산을 거쳐 덕유산에 이르러서는 남한내 6개 도당 대표자회의를 소집했다.이 자리에서 빨치산은남부군을 결성,통일된 지휘체제를 구성했다.이현상이 총사령관을,이영회가 부사령관을 맡았다. 이후 빨치산은 북한 노동당의 지시에 따라 남부군을 해체하고 6개 유격지대 체제로 바꾸는등 여러차례 조직개편을 했다.또 북한에서 지도부와 북한군을 남파하는등 안간힘을 썼고 가끔 경찰서·열차를 습격하지만 큰 성과는 올리지 못했다. 38선 일대에서 전선이 고착된 1951년 11월 말 한국 정부는 토벌전투사령부를 전북 남원에 설치,빨치산 소탕에 적극 나서 영호남 일대 빨치산은 치명타를 입고 지리산으로 모여들었다.이후 거듭되는 토벌작전에 몰린 빨치산은 「보급투쟁」이란 명목으로 산간마을에서 생필품을 약탈하는 것으로 겨우 명맥을 이어갔다. ○지도자 대부분 피살 1953년 7월 휴전협정이 체결된 것은 남한내 빨치산에겐 사형선고와 같았다.박헌영·이승엽을 비롯한 남로당계 간부들이 대부분 숙청되면서 빨치산은 북한정권에서 버림받게 된다.휴전협정에서도 빨치산의 지위에 관한 규정은 전혀 없어 이들에게는 북으로 돌아갈 길마저 막혔다. 1953년 4월 북한 노동당의 남로당계 숙청계획에 따라 남부군 총사령관 이현상은 평당원으로 강등됐다.8월에는 이현상이 지리산 빗장골에서 토벌대에 사살됐다.54년 초 김지회·이영회부대가 각각 전멸당하고 빨치산의 마지막 지도자 남도부가 대구에서 체포돼 남한 빨치산은 사실상 소멸됐다.한국정부의 기록에는 1954∼5년에도 「공비 출현,소탕」사실이 가끔 등장한다. 1956년 7월13일 전북 정읍에서 「공비 1명 사살,2명 생포」를 끝으로 빨치산은 정부기록에서 사라졌다. 빨치산은 조선노동당의 혁명전략 계획에 따라 조직돼 활동한 집단이었다.이들의 투쟁은 민족사에 아무런 의미도 남기지 못했다.결국 빨치산은 공산주의가 이 땅에 남긴 역사적 범죄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그러나 빨치산이 남긴 상처는 아직도 우리 사회에 여러 형태로 잠복해 남아 있다. ◎「빨치산 신문」 한국전중 10여종 발행/남부군 「승리의 길」 등 타블로이드판 지면 대부분 전투원 선동­선무 할애 우리 학계의 빨치산 연구는 매우 미약하다.그동안 「빨치산」이란 말조차 금기처럼 여겨온 사회 분위기에 비추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따라서 현재 남아 있는 관련자료는 이우태씨(필명 이태)의 「남부군」을 비롯한 수기 3∼4종에 불과하다. 이같은 현실에서 서울신문 특별취재반은 워싱턴 미국립공문서 보존관리국(NARA)에서 빨치산이 한국전쟁 발발이후 간행한 신문 10여종을 찾아냈다.국내 처음으로 공개되는 이 빨치산신문들은 그들의 실상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이다.따라서 학계는 이 신문들이 빨치산연구에 큰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조선인민유격대 남부군」이 1951년 5월5일자로 발행한 「승리의 길」10호는 타블로이드판 한장에 양면으로 기사를 실었다.앞면 머리기사는 「총사령관 로명선」이 쓴 「5·1절을 맞으면서」란 논설.『5월1일은 전세계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적 력량과 국제적 단결을 시위하는 날』이란 의미 부여와 함께 그 내력을 소개하고 『남부군 전체 군무자 동무들』의 분발을 촉구했다.또 신문 사고의 형태로 『남부군 산하 각부대들이 3월21일부터 4월14일까지 수안보·칠성·청천·봉화·립석을 공격하여 이를 해방시켰다』고 전했다.아울러 「적 사살 1백25명,부상 30명,포로 48명,각종 무기 37정,탄약 2천2백37발」등의 전과를 올렸다고 보도했다. 1951년 11월23일자 「승리의 길」27호에는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4차 전원회의에서 진술한 김일성의 보고를 실었다. 이밖에 빨치산 신문들은 많은 지면을 전투원 선동에 할애 했다.즉 『용감하고 귀중한 빨치산들이여,적들의 지휘처와 참모부를 기습 소탕하며 기동력을 마비시키는 투쟁을 더욱 과감히 전개하라』『리승만의 반동적 지방의회선거를 철저히 파탄 분쇄하자』는 등으로 채웠다.이따금 이명제의 서사시 「정복되지 않은 사람들」(29호)따위 문학작품이나 감상문,외신,전투실기,정찰기,여순병란 회고기등도 실었다.
  • 「빨치산 신문」을 보고/김광운 국사편찬위 연구원(전문가 진단)

    ◎「남부군 총사령관 로명선」 처음 밝혀/김일성 동정 실려… 「북과 계속 연락」 입증/“빨치산의 투쟁양상 밝힐 실증자료” 평가 이번에 서울신문이 발굴한 유격대 발행 신문을 통해 유격투쟁의 구성원,전개양상및 실패 원인을 새롭게 실증적으로 정리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렸다.예를 들면 남부군이 발행한 「승리의 길」27호(19 51년 11월23일자)에는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4차 전원회의에서 김일성이 보고한 내용이 실려 있다.지금까지 통설은 빨치산들이 북한과 직접 연락이 두절된 상태에서 고립되어 싸웠던 것으로 이해해왔다.그러나 유격대 신문의 보도 내용들은 그것을 전면 수정하게끔 한다. 또 「승리의 길」10호(1951년 5월5일자)를 보면 조선인민유격대 남부군 총사령관을 「로명선」으로 기재한 것이 눈길을 끈다.당시 총사령관은 남도부로 알려져 있었다.「로명선」은 새롭게 밝혀진 인물이다. 이밖에 1952년 1월26일 이후 남부군이 조선인민유격대 독립 제4지대로 개편하였다는 사실을 자료로써 새롭게 확인할 수 있었다. 유격대가 발행한 신문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대표적인 것은 이른바 조선인민유격대 남부군의 기관지인 「승리의 길」이다.남부군 기관지부에서 1950년 말부터 순간으로 매월 10·20·30일에 간행했다.이것이 모체가 되어 회문산에서 「회문산 승리의 길」을 발행하였고,덕유산에 있는 남부군 22사단이 기관지로서 「덕유산 승리의 길」을 냈다.또 대구시 서문로 승리일보사에서 1951년 12월27일부터 1952년 1월31일께까지 등사판으로도 「승리의 길」을 계속 간행하였다. 이밖에 각 지역 유격대가 독자적으로 발행한 「산신문」으로는 부산 조국일보사에서 1951년 12월2일 창간호를 낸 「조국을 위하여」,광주에서 간행했다고 하는 「전남 빨치산」,동해남부지구당의 「앞으로」,제7군단보인 「붉은 별」,전남인민보사의 「전남인민보」등과 「별」,「무등산 빨치산」,「불갑 빨치산」,「경남 빨치산」,「유치 빨치산」,「경남 노동신문」등이 있었다. 특정주제를 대상으로 한 것으로는 1951년 중반 조선 빨치산 독립제6지대 정치부가 간행한 「전투문학」이 있으며 여성을 주선전대상으로 삼은 전북민주여성사 명의의 「민주여성」은 전주에서 1951년 9월20일 창간되었다.
  • 독 의원단 방북활동 북한서 왜곡 보도/독 기사당 대변인 항의

    【베를린 연합】 지난달 수해실태 파악차 북한을 방문했던 독일 집권 기민연합 소속 의원들이 『북한방문 활동이 북한의 선전목적에 이용당했다』고 실토한 사실이 19일 밝혀졌다. 기사당(CSU)대외정책 담당 대변인인 크리스티안 슈미트 의원은 지난달 방북시 금수산 기념관등에 참배한 사실이 알려져 F 슐로만 전 독일 국제방송 아시아국장으로부터 공개항의 서한을 받은데 대한 답신에서 이같이 밝혔다. 슈미트 의원은 동료인 페터 람자우어 의원(대외개발협력 전문가)과 함께 벌인 방북활동이 북한당국의 선전목적에 이용당했다고 밝히고 활동내용이 대외적으로 왜곡 전달됐다고 주장했다. 북한당국은 김일성 시신안치소에 있는 방명록에 쓴 내용마저도 왜곡 변형했다고 슈미트 의원은 말했다.슈미트 의원은 자신들은 방명록에도 김주석에 대한 찬사없이 단순히 「북한 주민에게 평화와 자유,통일의 미래가 있기를 바란다」는 내용을 기재했었다고 강조했다. 한편 그는 북한체제가 외부세계에 대한 전면적인 폐쇄를 핵심요소로 하고 있으며 변화 가능성에 대해회의적이라고 평가했다.북한체제는 국민들을 자력으로 먹여살릴 수가 없으며 이같은 관점에서 갑작스러운 붕괴도 배제할 수 없다고 슈미트 의원은 평가했다.
  • 밀입북 박용길 장로 구속집행정지 석방

    서울지법 형사4단독 조승곤 판사는 20일 김일성 1주기 추도행사에 참석하러 지난 6월28일 밀입북,김일성동상에 헌화하는 등 친북활동을 하고 판문점을 통해 귀환,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된 고 문익환 목사의 부인 박용길(76)씨가 이덕우 변호사를 통해 낸 구속집행정지 신청을 받아들여 박씨를 석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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